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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투표 거부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든다.” 최근 여야의 공천 파동을 지켜본 각계 원로 및 교수들은 후보자들을 제대로 선택하지 않으면 정치가 더욱 거꾸로 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유능한 인재가 들어와야 하는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공천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7일 “각 정당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공천을 했다”며 “후보들을 판단할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묻지 마’ 투표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우려했다.○ “계파 줄 선 후보 응징해야” 각계 원로와 전문가 10명 모두는 당론과 계파주의 추종을 불량 후보 감별법의 주요 기준으로 꼽았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친박(친박근혜), 비박(비박근혜), 친노(친노무현) 등 계파를 들먹이는 후보들은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비전이 없고, 지역에 대한 전문성도 없는 후보들이 계파를 앞세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당론만 따라가면 거수기일 뿐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다”라며 “완장 차고 권력자에게 줄을 선 후보는 응징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19대 국회에서 여야는 민생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4년 내내 당내 계파 정치라는 구태를 보이며 권력투쟁에만 여념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도 제대로 걸러지지 않을 경우 20대 국회에서도 여야의 고질적 계파 갈등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계파를 자신이 정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빽’인 것처럼 생각하는 후보들이 있다”며 “계파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의정활동을 하려는 후보들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없어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도 “권력에 아첨하고 양심을 파는 것은 자존심이 없는 인간”이라고 했다. 지역주의 조장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선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지역주의와 연고주의를 강조할 것”이라며 “지역주의에 매몰된 선거는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덕성, 표로 심판해야”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도덕적으로 국민 상식의 최소 조건에 맞는 후보자를 뽑아야 한다”며 “법 위반뿐만 아니라 논문 표절 등이 있으면 신뢰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남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 도덕적인 깨끗함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며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 전과나 범죄 등을 갖고 있는 후보들이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탈세와 전과자 등을 언급하며 “재산이 많으면서도 공익을 위해 기부를 전혀 안 한 사람도 안 된다”고 말했다. 도덕성은 후보들의 절제 능력과 연계돼 있는 만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단국대 가 교수는 “민주화운동 등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기 또는 음주운전 등의 경력을 갖고 있는 후보는 걸러내야 한다”며 “이는 자신에 대한 절제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김 교수도 “아무리 잘해도 막말 등으로 도덕성에 문제가 있으면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병역, 납세 의무 등은 후보 자질의 기본으로 분류됐다. 고려대 이 교수는 “세금도 안 내고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부패 혐의나 갑질 논란 등으로 지탄받는 후보들은 국민이 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국회의장도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거나 탈세와 부동산 투기 등을 한 후보들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 “전문성, 미리 갖춰야” 전문성이 부족한 후보들도 불량 자질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국회는 여러 가지 정책에 따라 국민 생활과 국가 경영에 관련된 법을 만드는 기관”이라며 “각 분야와 지역에 대한 전문성이 있어야 지역 사정도 잘 알게 되며, 이는 국가 전체의 이익과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김 전 국회의장도 “후보가 국회에 들어오면 전문성을 발전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미리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손 교수는 “전문적 지식은 국회 보좌진 등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며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는 능력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사익 추구형도 철저하게 가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개인의 이익과 특정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며 “고집스러울 정도로 소통하지 않는 후보들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고성호 sungho@donga.com·손영일·홍정수 기자}
4·13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개혁 공천’을 표방했지만 전과 기록이 있는 후보가 40.6%로 역대 총선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동아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4·13총선 후보 명부를 분석한 결과 이번 총선에서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는 새누리당이 80명, 더불어민주당이 99명, 국민의당이 67명, 정의당이 30명으로 집계됐다. 무소속 후보 중에는 55명이 전과 기록을 갖고 있다. 여야는 당규에 공천 부적격 기준을 규정하고, 일정 정도 이상의 범죄 전력을 가진 사람을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각 당은 공천 심사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전력은 눈감아 준 경우가 많았다. 가장 많은 3개 전과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 집시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인 것으로 나타났다. 간통, 도박 등 파렴치한 범죄를 포함해 상해, 사기, 절도, 업무상 배임 및 횡령, 뇌물 수수, 병역법 위반 등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60여 건에 이르렀다. 전과 기록을 가진 후보 383명 가운데 재범 이상은 46.7%인 179명으로 집계됐다. 가장 전과가 많은 무소속 손종표 후보(대전 대덕)는 집회 및 시위법 위반,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총 10차례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당별로는 새누리당 전하진 후보(경기 성남 분당을)가 4건, 더민주당 신정훈 후보(전남 나주-화순)가 5건, 국민의당 김철근 후보(서울 구로갑)가 5건으로 각각 당내에서 전과 기록이 가장 많았다.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집회 및 시위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수감생활을 한 ‘시국사범’ 출신도 적지 않았다. 서울 은평을에 무소속 출마한 이재오 의원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있다. 세종시에 무소속 출마한 이해찬 의원(6선)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의장 출신인 더민주당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갑)은 직선제 개헌 투쟁을 하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대구 수성갑에서 맞대결을 벌이는 새누리당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더민주당의 김부겸 전 의원은 모두 197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다가 옥살이를 한 민주화투쟁 ‘동지’다.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경남 창원 성산)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이른바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홍정수 hong@donga.com·김아연 기자}
새누리당이 25일 서울 은평을, 서울 송파을, 대구 동을에 총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최종 방침을 내놓자 출마가 좌절된 후보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서울 송파을은 현역인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번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역이다. 무공천 지역 3곳 중 유일하게 현역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을 뒤집고 유영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을 공천하지 않은 것이다. 유 전 위원은 대표적인 ‘원외 진박(진짜 친박근혜)’으로 분류된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네거티브 대응팀’에서 활동했으며 박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불리기도 했다. 2004년부터 경기 군포에서 세 차례 총선에 출마했지만 모두 떨어졌던 그는 이번에 친박계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송파을에 단수 후보로 추천됐지만 결국 출마 자체가 봉쇄된 셈이다. 이곳은 당내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여 온 김영순 전 송파구청장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다. 유 전 위원을 공천하더라도 본선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역시 ‘진박’ 인사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대구 동갑)과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대구 달성)을 살리는 조건으로 친박계 지도부가 김무성 대표와 ‘절반’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유 전 위원은 “당의 결정인 만큼 받아들이겠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대구 동을의 이재만 전 동구청장과 서울 은평을의 유재길 전 은평미래연대 대표는 “김 대표가 참정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특히 공천이 보류됐던 지역구 6곳 중 유일하게 대구 지역에서 탈락한 이 전 구청장은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정말 분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무공천 지역 발표 직후 서울 영등포구 새누리당사를 항의 방문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 전 구청장은 “예비후보로서 선거운동을 약 5개월 동안 해왔는데 어떻게 출마를 아예 못 하도록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서울 은평을)에 투입됐던 유 전 대표도 “정치 신인의 참정권을 침해한 이 결정이 과연 김 대표가 말하는 정의이고 민주주의냐”며 반발했다. 유 전 대표는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의 친동생이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우리야말로 당의 희생양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4일 공천 보류 지역 5곳을 무공천하겠다고 밝히자 해당 지역에 단수 추천된 후보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당 대표의 직인을 받지 못하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수 없는 데다 무소속 출마도 전날 밤 12시로 끝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들 ‘친박(친박근혜)’ 후보들은 “당이 우리의 참정권을 침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영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서울 송파을)은 “공천은 내가 아니라 당이 한 것”이라며 “공천 절차가 잘못됐으면 진작 바로잡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 서울 은평을에 투입된 유재길 새은평미래연대 대표 역시 “김 대표가 나의 피선거권을 원천봉쇄했다”고 비판했다. 무소속 유승민 의원(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을에 단수 공천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며 허탈해했다. 정종섭 후보(전 행정자치부 장관·대구 동갑) 측은 “당의 최종 결정을 기다릴 것”이라면서도 “공천의 정통성에 대해 시비가 붙으면 본선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의 과거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공천 결정을 받았던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측도 “김 대표의 갑작스러운 선언으로 ‘식물인간’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반면 공관위의 단수 후보 추천 결정에 반발하며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결정이 나왔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서울 송파을의 김영순 후보(전 송파구청장)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훼손시켰던 상향식 공천 정신이 이렇게나마 되살아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정수 hong@donga.com·송찬욱 기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온 김삼순 계단으로 여기까지 걸어 올라오신 분 있죠? 그게 사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조선신궁’ 참배계단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부리부리한 눈빛의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사방에 숨어 있는 역사의 흔적을 가리키자 참석자 50여 명이 흥미롭게 두리번거렸다. 서울 남산 허리에 보이는 평범한 모습의 공사장이 사실 일제강점기에 신사 참배를 강요하려 만들었던 조선신궁의 터가 있던 곳이라고 설명하자 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 서거 106주기(26일)를 일주일 앞둔 19일 서울 중구 남산 안중근기념관. 경기 화성 태안초등학교 교사인 우동희 씨(47)가 ‘참 좋은 문화유산 무료답사’를 진행했다. 우 씨는 왜 기념관이 여기에 세워졌는지부터 찬찬히 설명을 시작했다. 조선신궁으로 억압받았던 민족혼을 안 의사의 민족정신으로 채우려는 것이라는 말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념관 안에 들어서서는 1층에 있는 안중근 의사상(像) 앞에서 다같이 참배한 뒤 “안 의사의 자세가 약지를 자른 왼손을 위로 얹은 상태였다면 더 의미 있었을 것”이라며 세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안 의사는 1909년 뜻이 맞는 11명과 함께 일본에 항거하는 의미로 왼손 넷째 손가락을 자르고 독립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우 씨는 1993년부터 매월 한 차례씩 무료 문화유산 답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사회과 국정교과서 심의위원으로도 참여했던 우 씨의 강의 내용은 한국사는 물론이고 동식물, 동서양 미술, 세계사 등까지 아우른다. 교사로 일하면서 주말을 쪼개 무료 답사를 하는 이유는 “역사는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는 신념과 열정 때문이다. 우 씨는 “30여 년간 국립중앙박물관을 1000번 넘게 갔고 문화재에 관련된 책을 7000권 넘게 읽으며 쌓은 내공을 재능기부로 나누고 싶다”며 “제 강의에 찾아온 분들이 역사 현장을 직접 보며 역사의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며 웃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새누리당이 23일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사진)을 4·13총선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위촉했다. 강 전 장관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하고 공식 입당했다. 강 전 장관은 이날 “이제부터 진박(진짜 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고 오직 ‘진국’들이 이끌어 나가는 새누리당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겠다”고 말했다. 그는 ‘진국’에 대해 “국민을 생각하는 진실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강 전 장관은 새누리당의 ‘깜짝 영입’ 제안을 수락한 이유를 묻자 “상상도 안 했던 권유여서 고민을 많이 했다”며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인기 있는 말을 쏟아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권에서 야권으로 자리를 옮긴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의 차별점에 대해선 “두고 보면 알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강 전 장관은 이날도 비례대표 등으로 현실정치에 복귀할 뜻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총선에서) 역할을 한 뒤 원래대로 정계 은퇴한 사람으로 재야에서 (정치권)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관을 지내고 16·17·18대 국회의원이었던 강 전 장관은 이날 위촉식에서 입당원서를 작성한 뒤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별도로 꽃다발을 건네자 “이건 친박이 주고, 이건 비박이 주는 거냐”고 말했다. 계파 간 갈등에 빠진 당 지도부를 향해 뼈 있는 농담을 한 거였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새누리당이 22일 발표한 비례대표 공천자 45명 중 눈길을 끈 인물은 남성 후보 중 1번(전체 2번)을 받은 이종명 전 육군 대령(56·육사 39기)이다. 이 전 대령은 2000년 6월 비무장지대(DMZ) 수색작전 중 전우들이 지뢰를 밟아 크게 다치자 직접 이들을 구하러 뛰어들었다. 추가 폭발이 우려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망설임은 없었다. 그러나 이 전 대령도 전우를 구하다 지뢰가 폭발해 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부대원들에게 “위험하니 들어오지 말라”고 제지하며 포복으로 현장을 탈출했다. 이 전 대령은 2년이 넘는 재활치료를 마친 뒤 군에 복귀해 후학 양성 임무를 맡았다. 지난해 정년 복무를 마친 뒤 전역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이 전 대령의 이런 모습이 비례대표 후보의 다섯 가지 유형 중 세 번째인 ‘한계를 극복하거나 희생·봉사로 국격을 높인 국민감동 지도자’와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이 시대의 살아있는 영웅을 기대하는 국민적 여망과 바람에 다가가려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서울 종로]오세훈 20대-40대서 뒤져… 유권자 충성도는 정세균 높아4·13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에서 새누리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기세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리서치앤리서치(R&R)에 의뢰해 19, 20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다.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는 상징성뿐 아니라 거물급 후보들이 맞붙어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선 서울시장 출신인 오 전 시장과 당 대표 출신 현역 5선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 모두 인물 경쟁력에선 밀리지 않는 구도다. 현재까지 오 전 시장이 치열한 당내 경선에 따른 ‘컨벤션 효과’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9.4%포인트 차로 정 의원을 앞서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뒤지고 있는 40대가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오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찬반 주민투표를 부쳤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학부모 사이에선 부정적 여론이 남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 전 시장은 이를 의식한 듯 “많은 지지를 보내주셔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당선 뒤) 일로써 보답하겠다”고 했다. 정 의원은 지역 주민의 충성도가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절대로 투표하지 않을 후보를 묻는 질문에 정 의원은 6.0%였던 반면 오 전 시장은 21.7%나 됐다. 여권 견제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44.3%)는 답변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여당 후보를 지지한다(42.2%)가 팽팽했다. 정 의원은 “(종로에서) 4년 동안 삶의 질 향상 등 많은 성과를 냈다. 지역 민심은 상당히 우호적”이라고 강조했다. [대구 수성갑]새누리 지지 31% 김부겸 선택… 김문수는 숨은 표 기대대구 수성갑은 상대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이곳을 지역구로 택한 이유다. 동아일보와 채널A 조사에서 김 전 의원은 50.0%의 지지도를 얻어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지사(31.6%)를 18.4%포인트 차로 앞서는 걸로 나타났다. 최근 대구 지역에서 불거진 ‘진박(진짜 친박) 후보’ 공천 논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친박(친박근혜)계가 ‘진박 마케팅’을 구사했지만 응답자의 53.0%가 새누리당이 공천을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지역 정서는 여전히 여권에 우호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과 새누리당 지지도가 각각 50.3%, 50.8%로 나왔다. 김 전 지사 측이 드러나지 않는 여권의 숨은 표를 기대하는 이유다. 김 전 지사 관계자는 “시민 반응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며 “새누리당과 김 전 지사가 훨씬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시민이 알아주고 있다”고 승리를 자신했다. 다만 여권에 대한 견제심리도 만만치 않다. 국정 운영 견제를 위한 야당 후보 지지는 41.3%였고, 절대로 투표하지 않을 후보를 묻는 질문에 여당 후보인 김 전 지사가 22.4%였다. 여당 지지층도 아직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지지자 중 57.4%가 김 전 지사를 지지했지만 31.6%는 김 전 의원을 선택했다. 더민주당 지지층에선 92.6%가 김 전 의원을 지지했다. 연령별로는 김 전 지사는 50대 이상에서, 김 전 의원은 20∼40대에서 높게 나왔다. 김 전 의원은 “이번 기회에 새누리당을 긴장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앞서고 있는 결과로 나온 것 같다”며 “교만하지 않고 경청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밝혔다.[인천 계양을]野 분열에도… 더민주 송영길, 與윤형선에 13.5%P 우세역대 선거에서 야권 우세 지역으로 분류돼 온 인천 계양을은 4·13총선에서 전·현직 야당 의원이 맞붙는다. 16∼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인천시장과 현역인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이다. 새누리당에선 의사 출신인 윤형선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 이번 조사에서 야권 후보가 분열됐음에도 송 전 시장이 지지율 35.4%를 얻으며 최 의원(10.7%)을 크게 앞섰다. 윤 후보는 21.9%였다. 송 전 시장은 “지역 발전 공약에 대한 지지가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야당 의원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보다 중앙 정치로 가는 디딤돌로 삼았다”며 “20년간 지역에 헌신해 온 일꾼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번 선거는 양당 체제에 도전인 만큼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옳았음을 끝까지 증명하겠다”고 했다. 정당 지지도의 경우 새누리당이 28.6%로 더민주당(25.7%), 국민의당(12.5%)보다 높았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각 정당의 공천 갈등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인물을 보고 지지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인천시장을 지낸 송 전 시장이 일단 인지도 등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응답자들은 후보를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후보자의 자질(40.9%)과 정책 및 공약(30.1%)을 우선시했다. 소속 정당은 17.7%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계양을은 2000년 16대 총선 때부터 야당이 석권해 온 지역이지만 정당보다 인물의 비전을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경기 분당을]2與 1野 구도… 與 전하진, 더민주 김병욱에 9.6%P 앞서경기 분당을은 ‘경기도의 강남’ ‘천당 아래 분당’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여권 강세 지역이다. 그러나 4·13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분열돼 표심의 향배가 주목되는 지역이다. 새누리당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양강 구도 속에 새누리당 전하진 의원이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후보를 이겼다. 그러나 4년 만에 치러지는 ‘리턴 매치’는 ‘이여일야(二與一野)’ 3자 구도가 되면서 혼전이 예상된다. 이번 조사에서 전 의원(31.8%)은 김 후보(22.2%)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분당을에서 16∼18대 내리 3선을 했지만 중도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청와대로 들어갔던 임 전 실장은 15.6%를 얻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은 과거 사화(士禍)에 버금가는 악습이라고 비판했던 임 전 실장은 “무소속 출마가 지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려움을 뚫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전 의원은 “지역에서 잘못하면 두 사람 다 죽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공천 내홍’을 두고 현지 여론은 좋지 않았다. ‘잘못한다’는 평가가 47.4%로 ‘잘한다’(26.7%)보다 많았다. 김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정책특보를 지낸 측근이다. 자신이 후보직을 양보해 손 전 고문이 승리했던 2011년 4·27보궐선거를 재연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제2의 손학규’ 정신으로 분당대첩에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고성호 sungho@donga.com·홍정수 기자 송찬욱 기자 song@donga.com}
중학교 3학년 중현이(가명)는 같은 반 남자아이를 성추행했다. 단지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는 이유였다. 중현이는 중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었다. 기분이 좋을 땐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지만 나쁠 땐 한없이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홀로 중현이를 기르던 어머니도 생계 때문에 아들을 돌봐줄 겨를이 없었다.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다 결국 ‘왕따’가 된 중현이는 늘 ‘버려졌다’고 생각하며 주변 아이들을 괴롭혔다. 소년부 재판에 넘겨진 중현이는 ‘7호’ 처분을 받았다. 소년의료보호시설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전의료소년원에 배정받은 뒤 약물치료와 재활교육을 받기 시작하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퇴원한 지 2년이 지난 뒤 중현이는 이제 여자친구도 사귀고 학교 성적도 중상위권이다. 중현이처럼 심신장애가 있거나 정신적 치유가 필요한 비행청소년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부터 18세까지의 아이들 중 의학적인 치료나 요양이 필요한 아이들은 소년법에 따라 10가지 처분 중 7호 처분을 받고 소년의료보호시설로 가게 된다. 이들은 우울증이나 발달장애, 충동조절장애 등 다양한 신체·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10개 소년원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3월 기준 전체 1018명의 보호소년 중 정신질환, 품행장애 등으로 정신적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은 230명(22.6%)이었다. 하지만 전국에서 유일한 소년의료보호시설인 대전의료소년원의 정원은 60명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인내와 전문성을 갖고 대해야 할 아이들이지만 이들을 돌보는 인원도 빠듯하기만 하다. 대전의료소년원에서 의료적 지원을 담당하는 직원은 현재 25명. 이 중 의사와 간호사는 각각 2명, 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의사 한 명은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는 계약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나머지는 행정업무나 학생지도를 담당하는 보호직 공무원이다. 이들도 2, 3년마다 인사이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문성을 쌓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을 증상별로 나눠 세심한 지도를 하기엔 역부족이다. 가장 많은 관심과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인권위는 “이런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방치되면 나중에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과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년원 관계자도 “재범을 저지를 수 있는 아이들의 재활을 위해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지만 아직은 힘에 부칠 때도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인권위는 1월 법무부에 치료·치유전문 의료소년원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법무부도 2014년부터 경기 의정부에 신규 의료전담소년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문제에 부딪혀 답보 상태다.대전=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중국에서 12억 원 상당의 마약류 등을 들여와 불법으로 판매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에서 마약류의 일종인 GHB(일명 ‘물뽕’)와 비아그라, 여성흥분제 등을 들여와 국내에 불법으로 유통한 혐의로 총책 김모 씨(41)를 구속하고 배송을 담당한 박모 씨(41)와 구매자 윤모 씨(43)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3월부터 약 1년간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물뽕과 비아그라, 최음제를 판다”는 광고를 내고 택배를 통해 판매한 혐의다. GHB는 액체 상태로 주로 물이나 술에 타서 마시기 때문에 ‘물에 탄 히로뽕’이라는 뜻의 은어인 ‘물뽕’으로 불린다. 성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 ‘데이트 강간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광고메일을 보고 구매를 신청한 사람들 800여 명에게 GHB 한 병당 32만 원을 받고 판매했다. 공급은 김 씨의 친형(44)이 맡았다. 형이 중국에서 GHB를 1L 단위로 포장해 국제택배로 보내면 동생은 이를 12mL짜리 용기에 옮겨 담았다. 이는 약 10회 투약분이다. 김 씨의 친구인 박 씨는 택배 배송을 담당했다. 이들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화번호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문은 인터넷으로만 받고, 중국에서 원료를 받을 때에도 무인택배함을 이용했다. 윤 씨 등 구매자들은 대부분 30~40대 남성 회사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비아그라는 효능이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에 검거되지 않은 김 씨의 친형에게도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광고발송·주문접수 등을 도왔지만 신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판매책과 다른 구매자들에 대한 수사도 이어갈 계획이다.홍정수기자 hong@donga.com}
‘22만 명 성매매 리스트’를 작성한 서울 강남의 성매매 조직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를 알선한 총책 김모 씨(36) 등 6명을 구속하고 조직원, 성매수 남성 등 10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김 씨 등은 2014년 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약 5000회에 걸쳐 회당 20만∼30만 원을 받고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성 매수 남성을 유인하는 채팅요원, 성매매 여성을 남성에게 차로 데려다주는 운전요원, 성매매 여성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채팅요원에는 남자 고교생도 2명 포함돼 있었다. 불구속 입건된 107명 중에는 사건 무마 등의 대가로 금품 및 성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는 현직 경찰관 3명도 들어 있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대형마트에서 장난감 1300만원어치를 훔친 부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대형마트에서 고가의 장난감을 상습적으로 훔친 혐의로 박모 씨(33)를 구속하고 부인 강모 씨(33)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부부는 지난해 12월 4일부터 이달 5일까지 서울 노원구와 중랑구, 경기 의정부 등에 있는 대형마트 11곳에서 102회에 걸쳐 1300만원 상당의 장난감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마트 보안요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유모차에 여섯 살짜리 아들을 태우고 자연스럽게 완구 코너로 향했다. 부부가 주로 노린 것은 ‘레고’ 장난감이었다.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도 비싼 편이기 때문이다. 훔친 장난감 중 가장 비싼 ‘레고 스타워즈’ 모델은 시중 가격이 17만 원대였다. 이들은 장난감을 구경하는 척 하면서 마트에서 도난을 막기 위해 붙여놓은 보안 태그를 몰래 떼어낸 뒤 유모차에 장난감을 싣고 담요로 덮어 가리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부부는 생필품 등 실제로 구매할 물건만 계산하고, 장난감은 숨긴 채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부부는 이렇게 훔친 장난감을 173회나 인터넷 중고사이트에서 팔아 800만 원을 챙겼다. 팔고 남은 것 중 경찰이 압수한 장난감만 366개, 500만 원어치에 이른다. 이들은 퀵서비스 일을 하던 남편 박 씨가 일자리를 잃어 생계가 어려워져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이들의 범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홍정수기자 hong@donga.com}
15일 오후 2시 18분 서울 강동구 광진교 남단 사거리 인근. 좁은 2차로에서 소방차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삐뽀∼삐뽀∼’ 사이렌이 울렸지만 도로 위의 차량들은 못 들은 척 소방차 앞으로 끼어들기 일쑤였다. ‘골든타임’ 확보가 시급한 소방차 앞에서 정체된 도로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소방차에 양보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수차례 안내방송을 한 뒤에야 차들은 느릿느릿 비켜 주기 시작했다. 민방위의 날이던 이날 서울 강동소방서가 진행한 ‘소방차 길 터 주기’ 국민참여훈련은 당초 20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다. 순찰차와 물탱크차 등 소방차 7대가 천호시장과 암사역 등 복잡하고 좁은 구간 15km를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는 가정 아래 통과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본보 기자가 함께 탄 소방차가 실제로 훈련을 마치는 데는 목표의 두 배에 가까운 38분이 걸렸다. 소방차 행렬은 훈련 시작 3분 만에 유치원 앞에 불법 주차된 노란색 어린이 통학버스에 가로막혔다. “길을 비켜 달라”는 안내방송을 계속했지만 반대편에서 주행하는 차량들도 비켜 줄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30초 뒤에야 마주 오던 차량이 잠시 멈춰 주는 틈을 타 소방차 행렬이 중앙선을 넘어 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겨우 정체 구간을 벗어나자 2분 만에 복병이 나타났다. 직진하던 맨 앞 순찰차 바로 뒤에 파란색 시내버스가 끼어든 것이다. 뒤따르던 소방차 6대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자칫하면 추돌사고까지 날 뻔했다. 훈련대원들은 사이렌을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전통시장인 천호시장 앞에서 한 할머니가 지휘차량 앞을 무단 횡단해 급정거가 반복됐다. 소방차들은 ‘길이 열리면 생명이 열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달고 있었지만 승용차와 시내버스의 끼어들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강동소방서 현장대응팀 이운영 소방관은 “미국에서는 사이렌을 켜면 반대 차로 차량들도 멈춘다”며 안타까워했다. 훈련에 동행했던 시민 이완택 씨(61·여)도 “위험한 상황이 계속돼 가슴이 오그라들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로 위 얌체 운전 등으로 소방차가 사고 발생 5분 안에 현장에 도착한 비율은 2014년 기준으로 약 61%에 불과하다. 김연출 강동소방서 현장대응단장은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교차로나 횡단보도에서는 시민 의식이 부족할 때가 많다”며 “소방차가 보이면 사고 현장에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길을 양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훈련은 국민안전처 주관으로 화재 진압이 취약한 전국 243개 구간에서 동시에 실시됐다. 정부는 차종에 따라 5만∼8만 원인 긴급 차량 진로 방해 과태료를 상반기 중 20만 원으로 올릴 방침이다.홍정수 hong@donga.com·이호재·박성민 기자}
‘god 콘서트 VIP석 티켓 삽니다! 연락주세요!’ 지난해 12월 9일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접속한 차모 씨(27)는 티켓을 구매하고 싶다는 글을 발견한 뒤 글쓴이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차 씨는 원래 가격에 약간의 웃돈까지 붙여 “계좌번호를 알려줄 테니 일단 입금하면 배송하겠다”고 말했다. 콘서트를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피해자는 ‘의심 반 기대 반’으로 31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티켓은 배송되지 않았다. 잠적한 차 씨는 또 다른 ‘삽니다’ 글을 찾아 나섰다. 사기 전과자인 차 씨는 직접 판매글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사기를 쳤다. 차 씨는 이런 식으로 지난해 5월부터 이달 7일까지 통장 4개를 돌려 사용하며 173명에게서 5900만 원을 가로챘다. 아이돌 가수 빅뱅,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의 인기 콘서트 티켓부터 항공티켓, 흙침대, 중고책까지 대상 물품도 가리지 않았다. 3일 이상 같은 장소에서 머물지 않고 모텔을 옮겨 다니며 경찰 단속을 피하던 차 씨는 피해자들의 잇따른 진정에 통신 기록을 추적한 경찰에게 결국 꼬리가 밟혔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차 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4일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2일 지방의 산골 마을 작은 초등학교에서 특별한 입학식이 열렸다. 다른 학생들보다 머리 하나가 훌쩍 큰 형제가 늦깎이 입학을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서너 살 많은 이 형제는 “학교에 오니 정말 좋다”며 연신 웃었다. 한 달 전까지도 형제는 학교라는 걸 몰랐다. 부모는 멧돼지, 들개 같은 산짐승이 위험하다며 형제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지역 경찰서의 ‘학대전담 경찰관’이 미취학 아동 실태를 조사하다 형제를 발견했다. 부모가 학대한 흔적은 없었지만 명백한 교육적 방임이었다. 경찰관은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도 범죄”라고 경고하는 한편으로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형제의 통학차량을 마련해줬다. 이 경찰관은 “부모의 잘못된 판단으로 몇 년째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동기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돌보고 챙기겠다”고 말했다. 전국 학대전담 경찰관이 학대아동 구하기에 발 벗고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달 22일 본청 여성청소년과 산하에 349명 규모로 학대전담 경찰관을 발족했다. 기존 가정폭력전담 138명에 추가로 211명을 투입했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굶주림과 폭행에 시달리다가 맨발로 탈출한 ‘16kg 소녀’에 이어 올해 1, 2월 경기 부천에서 학대로 숨진 초등생, 여중생이 잇따라 발견된 게 계기가 됐다. 전북 익산에서는 학대전담 경찰관이 2003년 양아버지가 기차에 버리고 내린 입양 아동을 13년 만에 발견하기도 했다. 경찰은 4일 “나모 씨(55)의 네 아이 중 15세 된 아이가 중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조사 끝에 나 씨가 2001년 당시 생후 1년도 안 된 나정훈(가명) 군을 입양해 키우다 뒤늦게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치료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2003년 12월 서울행 기차에 나 군을 두고 홀로 내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관은 나 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서울과 익산을 오가며 어린이집, 복지시설, 서울역 등을 샅샅이 뒤져 서울 서초구의 한 복지원에서 16세 차정훈으로 생활하던 피해 아동을 발견했다. 학대전담 경찰관은 경찰서당 1.4명의 인원으로 힘든 임무를 맡다 보니 고충도 많다. 활동비도 부족하고 차량도 제대로 지원되지 않지만 이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경찰관 A 씨는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여성, 노인학대까지 챙겨야 하는데 근거법이 없다”며 “유관기관의 원활한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현장에선 현재 운영 중인 ‘학교전담 경찰관’의 성과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학교전담 경찰관은 1인당 10개 학교를 맡아 교사와 학교폭력 정보를 공유하고 학생을 만나 상담하는 등 현장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성과도 컸다. 2012년 193명으로 시작해 지난해 1138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학교폭력 피해 응답자는 2.1%에서 0.94%로 줄었다. 경찰은 학대전담 경찰관을 중장기적으로 1000여 명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예산 확보 등 정부의 우선 지원이 필요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가정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아동학대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며 “학교전담 경찰관이 학교, 지역사회와 연계해 학교폭력을 예방하듯 학대전담 경찰관도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 현장에서 중심 역할을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홍정수 기자}
“저 믿고 이 서류만 작성하시면 ‘전세자금’ 절반을 떼어 드릴게요.” 2014년 2월 급전이 필요했던 정모 씨(55)는 김모 씨(44)의 ‘청산유수’에 흔들렸다. 생활비는 바닥난 지 오래지만 직업이 없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정 씨는 결국 ‘눈 딱 감고’ 김 씨가 내민 허위 재직증명서를 작성했다. 김 씨가 떼어준다고 한 돈은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내놓은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대출금’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재원으로 한다. 주택금융공사가 대출금의 90%를 보증한다. 하지만 곳곳에 ‘허점’이 있었다. 상품을 판매하는 일부 시중은행은 대출심사를 실사 대신 전화로 했다. 일단 대출금이 나오면 대출 신청인이 실제로 계약한 집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직원과 지인들의 명의로 유령회사 3개를 차린 뒤 대출이 필요한 사람 16명과 집주인 11명을 모집했다. 집주인에게는 “전세계약서를 써주면 대출을 받아 계약금의 일부를 주겠다”며 “문제가 되더라도 책임은 세입자에게 간다”고 안심시켰다. 직업이 없고 신용이 낮은 대출 신청인들을 설득한 뒤 허위 재직증명서를 발급했다. 은행에서 확인전화가 와도 회사 관리인들이 받아 “직원이 맞는데 지금은 출장 중”이라고만 확인해 주면 그만이었다. 김 씨는 이렇게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은행 5곳에서 13회에 걸쳐 한 번에 적게는 6000만 원, 많게는 1억3000만 원씩 총 12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대출받았다. 들어온 돈은 김 씨와 모집책, 집주인, 대출 신청인들이 나눠 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김 씨 등 2명을 구속하고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저 믿고 이 서류만 작성하시면 ‘전세자금’ 절반을 떼어 드릴게요.” 2014년 2월 급전이 필요했던 정모 씨(55)는 김모 씨(44)의 ‘청산유수’에 흔들렸다. 생활비는 바닥난 지 오래지만 직업이 없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정 씨는 결국 ‘눈 딱 감고’ 김 씨가 내민 허위 재직증명서를 작성했다. 김 씨가 떼어준다고 한 돈은 정부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내놓은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대출금’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재원으로 한다. 주택금융공사가 대출금의 90%를 보증한다. 하지만 곳곳에 ‘허점’이 있었다. 상품을 판매하는 일부 시중은행들은 대출심사를 실사 대신 전화로 했다. 일단 대출금이 나오면 임차인이 실제로 계약한 집에 살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김 씨는 직원과 지인들의 명의로 유령회사 3개를 차린 뒤 대출이 필요한 사람 16명과 집주인 11명을 모집했다. 집주인에게는 “전세계약서를 써주면 대출을 받아 계약금의 일부를 주겠다”며 “문제가 되더라도 책임은 세입자에게 간다”고 안심시켰다. 직업이 없고 신용이 낮은 대출신청인들을 설득한 뒤 허위 재직증명서를 발급했다. 은행에서 확인전화가 와도 회사 관리인들이 받아 “직원이 맞지만 지금은 출장 중”이라고만 확인해 주면 그만이었다. 김 씨는 이렇게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은행 5곳에서 13회에 걸쳐 한 번에 적게는 6000만 원, 많게는 1억3000만 원씩 총 12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대출받았다. 들어온 돈은 김 씨와 모집책, 집주인, 임대인들 나눠 가졌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김 씨 등 2명을 구속하고 3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천장엔 박쥐 배설물로 삭은 슬레이트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50m² 정도 되는 보건소는 수도 시설은 물론 전기 조명조차 갖추지 못했다. 진료실과 벽 하나 사이인 출산 공간에는 산모가 다리를 뻗을 공간도 없었다. 그래도 이곳 탄자니아 시니앙가 주 키샤푸 군의 한 보건지소에서는 하루에 한 명꼴로 새 생명이 태어났다. 지난달 29일 만난 의사 델리스터 무노 씨(46·여)는 “여기선 기본적인 검사와 응급처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집에서 출산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말했다.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 탄자니아는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이 2013년 기준 5.2명에 이른다. 하지만 공공 보건의료 인력은 필수치의 35%에 불과해 임산부들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인구 대부분이 사는 농촌의 의료 환경은 도시 지역과 격차가 매우 크다. 시니앙가에서는 지난해 임신부 세 명 중 두 명이 집에서 출산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적 문화 탓에 출산 2, 3일 전까지도 임신부들이 밭에서 강도 높은 일을 하다 유산하는 일도 벌어진다. 간단한 처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혈압, 과다 출혈 등에도 의약품이나 의료 지식이 부족해 산모나 아이가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잦다. 지난해 탄자니아에서는 임신부 10만 명당 398명이 사망했다. 한국이 11명인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비영리법인 굿네이버스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의 지원으로 지난해부터 4년간 총 56억 원의 예산을 들여 탄자니아 시니앙가에서 모성 보건 환경 개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의료 시설의 환경을 개선해 산모들이 병원을 더 많이 찾도록 하는 게 목표다. 하는 일이 없던 ‘마을 보건요원’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것이 첫 번째였다. 이들은 이제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임신부 현황을 파악·관리하고, 응급 상황에는 임신부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도 한다. 자녀가 6명인 사토 만제 씨(25·여)는 “임신한 뒤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마을 보건요원들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지역 의료인들에게도 기본적인 산부인과 응급처치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개원한 키샤푸 지역 병원 산부인과 전문 병동에는 현대적 의료 설비를 지원했다. 굿네이버스 탄자니아 지부 시니앙가 이인석 사무장은 “단순히 병원을 지어 주는 것보다 지속적인 해결책이 될 것으로 본다”며 “보건 의료 지식을 현장의 목소리와 융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탄자니아=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클럽에서 마약을 판매하거나 투약한 남녀 30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해 4월부터 강남과 이태원의 클럽 6곳에서 손님들에게 대마와 필로폰 등을 판매한 혐의로 전직 영어강사 허모 씨(35)와 유흥업소 직원 김모 씨(36), 클럽 종업원 최모 씨(34)를 구속했다고 8일 밝혔다. 또 이들에게서 마약을 구입하거나 건네받은 뒤 투약한 혐의로 남녀 2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 씨는 허 씨 등에게서 구입한 필로폰 21g을 지난해 4월부터 이태원 클럽 등에서 제모 씨(28·여) 등 10명에게 다시 판매하거나 건넨 뒤 상습적으로 투약한 혐의다. 최 씨는 외국인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구입한 대마 100g과 허브마약(중독·환각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뿌린 식물류) 100g을 강남의 클럽에서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씨도 정모 씨(24·여) 씨 등 8명과 함께 수차례 마약을 흡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된 김 씨와 최 씨는 클럽을 찾은 손님들 중 마약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할 때 좋다”, “피로가 풀린다”는 말로 유혹하며 마약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은 손님들을 일단 중독시켜 나중에 마약을 비싼 값에 판매하려는 생각으로 여성들에게는 무료로 마약을 권했다고 경찰 조사에서 털어놨다. 남성들에게도 초반에는 싼 값에 마약을 판매했다. 실제로 이번에 불구속 입건된 투약자 대부분은 초범이었다.홍정수기자 hong@donga.com}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사람 가슴 찢어지게 하니….” “앞에 커플들 엄청 지나다니는데 손목 자르고 싶다.” A 씨(27·여)의 휴대전화는 10초가 멀다하고 울려댔다. 헤어진 남자친구 김모 씨(26)가 보내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모텔에서 A 씨는 김 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에 김 씨는 A 씨의 얼굴과 목을 폭행했다. A 씨가 김 씨를 피하자 그의 집착은 점점 심해졌다. 김 씨는 카카오톡으로 “메시지에 답을 해라”, “다른 남자를 만나면 칼로 손목을 자르겠다”, “칼로 쑤셔버린다”는 끔찍한 협박을 쉬지 않고 보냈다. 말 뿐이 아니었다. 김 씨는 “너를 기다린다”며 A 씨가 다니던 학원이나 자주 이용하던 지하철역 앞에서 실제로 찍은 사진을 보냈다. 지난달에는 “당장이라도 손을 다칠 수 있다”며 자신의 손을 유리조각으로 자해해 상처가 난 사진까지 보내 A 씨를 공포에 떨게 했다. 5개월간 김 씨가 보낸 메시지는 수만 건. 김 씨가 보낸 메시지는 A 씨가 직접 삭제하거나 카카오톡을 탈퇴해 지워진 것 등을 제외하고도 2만여 건에 달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김 씨를 폭행 및 협박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낸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A 씨는 “1분에 약 15회의 문자를 받은 적도 있다”며 “5개월간 매일같이 약 1000건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잘못이란 걸 알고 있었으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항변했다. 경찰은 김 씨에게서 다시는 A 씨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또 김 씨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A 씨에게는 심리상담을 지원할 예정이다. 경찰은 “연인 사이라고 해도 협박문자는 물론, 상대가 원하지 않는 문자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내는 것 역시 엄연히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홍정수기자 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