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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었다면 상수(上壽), 올해 100세가 됐을 스승을 위해 백발의 제자들이 오선지에 선율을 그려 넣었다. 한국 현대음악의 선구자인 작곡가 나운영(1922∼1993·사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제자들이 쓴 헌정곡과 스승이 남긴 곡을 선보인다. 나운영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제자들이 후원한 ‘나운영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가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다. 한국과 미국, 독일에서 활동하는 연주자와 성악가로 구성된 ‘이니스 앙상블’이 나운영의 대표곡 10곡을 선보인다. 나운영이 처음 작곡한 현대음악인 ‘현악4중주 제1번 Romantic’(1942년)과 그가 생전 가장 사랑했던 곡이자 김소월의 시에 선율을 입힌 ‘접동새’(1952년) ‘초혼’(1964년)이 포함됐다. 노(老)제자들의 헌정곡도 연주한다. 국내 첫 유학파 여성 작곡가인 이영자 전 이화여대 작곡과 교수(91)가 ‘아름다운 헌정’을, 나운영기념사업회장인 나인용 연세대 명예교수(86)가 ‘달밤 주제에 의한 로망스’를 스승에게 바친다. 나 명예교수는 “선생님께서 ‘선(先) 토착화, 후(後) 현대화’를 말씀하시며 현대음악을 쓰되 먼저 국악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며 “평생 국악 소재로 현대음악을 썼으니 이만하면 가르침을 잘 따른 제자”라며 웃었다. ‘달밤…’에 대해 “선생님의 가곡 ‘달밤’의 멜로디에 제가 쓴 선율을 결합해 피아노곡 형태로 새로 엮었다”고 했다. 이 전 교수는 “제 음악의 길에 언제나 기둥으로 서 계셨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헌정’에 담았다”고 했다. 나운영은 중앙중학교 재학 시절인 17세에 가곡 ‘가려나’가 동아일보 ‘신춘 현상 문예 작곡 부문’에 당선되며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도쿄 제국고등음악학교에서 유학한 후 귀국해 우리 고유 음악에 현대음악을 접목시키는 작곡기법과 이론을 정립했다. 1954년 덕성여대에 한국 최초로 국악과를 창설했고 연세대 서울대 이화여대 목원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교향곡 13곡과 협주곡 6곡, 오페라와 실내악, 가곡, 찬송가 1105곡 등을 쓰고 10권의 음악이론서를 남겼다. 동아일보 사가(社歌)도 작곡했다. 나운영의 딸인 나효선 동덕여대 명예교수는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곡으로 음악회를 구성했다. 한국적 곡조를 살려 곡을 쓰겠다는 아버지의 혼이 담긴 음악을 중심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전석 초대.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드라마 ‘보이스’(2017년), ‘닥터 프리즈너’(2019년), ‘해피니스’(2021년)…. 배우 이주승(33)의 얼굴을 알린 작품들엔 공통점이 있다. 살인사건을 다룬 스릴러에 이주승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나온다는 것. 소름 끼치는 연기를 선보여 ‘악역 전문 배우’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최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착한 역할을 훨씬 좋아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은 끝도 없이 내려가서 엄청 힘들어요. 악역으로 기억해 주시지만 착한 역할도 많이 했습니다. 하하.” 이번엔 살인사건의 목격자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빈센트 리버’에서 그는 동성애 혐오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데이비 역을 맡았다. 배우 김현진 강승호와 번갈아가며 데이비를 연기한다. 피해자 빈센트의 어머니 아니타(남기애 정재은 우미화)와 대화하며 ‘그날’의 진실을 좇는다. 영국 출신 작가 필립 라이들리가 쓴 희곡은 2000년 영국 런던 햄프스테드 극장에서 초연됐다. 국내에선 연극 ‘와이프’ ‘그을린 사랑’ 등으로 많은 상을 받은 연출가 신유청이 지난해 초연부터 함께하고 있다. 등장인물은 단 2명. 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족과 사건의 목격자다. ‘쏟아지는 그날의 진실’이란 포스터 속 문구와 시놉시스만 보면 얼핏 추리극 같다. “연극을 보다 보면 누가 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관객들은 결국 사랑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빈센트의 죽음을 겪은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요.” 고교 3학년 때 독립 장편영화 ‘청계천의 개’(2008년)의 조연으로 데뷔한 그는 독립·상업영화 20여 편에 출연했다.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그가 연출·각본·주연을 맡은 영화 ‘돛대’는 지난해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뻔하지 않은! 보고난 후에 옆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이라면 연극과 영화, 가리지 않고 계속 연기하고 싶습니다.” 10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 4관, 전석 5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시즌 막바지에 이르면 체력적, 정신적으로 지치게 돼요. 아이러니하게도 지쳤을 때 가장 좋은 춤이 나오거든요. 에투알(수석무용수)로서의 첫 시즌을 고국에서 마무리하게 돼 행복합니다.”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BOP) 에투알에 오른 발레리나 박세은(33)이 동료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8, 29일 열리는 ‘2022 에투알 갈라’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박세은에게 이번 공연은 지난해 6월 에투알 지명 후 첫 국내 무대다. BOP 무용수들이 한꺼번에 한국을 찾는 것 역시 1993년 이후 29년 만이다.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세은은 “한국 발레리나 최초로 BOP에 입단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섬세하고 우아한 프랑스 발레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 오래전부터 갈라 무대를 꿈꿨다”고 말했다. 박세은은 이번 무대에서 에투알 승급 당시 파트너였던 동료 에투알 폴 마르크와 함께 파드되(2인무) 두 장면을 선보인다. 제롬 로빈스가 안무한 ‘인 더 나이트’의 ‘젊은 연인’ 파드되와 루돌프 누레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발코니 파드되다. ‘인 더 나이트’에선 BOP 전속 피아니스트 엘레나 보네이가 프레데리크 쇼팽의 ‘녹턴’을 직접 연주한다. 박세은은 “‘인 더 나이트’를 가장 인상적인 무대로 꼽고 싶다”며 “심플하면서 세련된 무대와 의상, 쇼팽 음악과 자연스러운 프랑스 발레가 조화로운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폴 마르크는 “박세은은 성격도, 생각도 비슷한 최고의 파트너”라고 칭찬했다. 박세은과 함께 BOP의 에투알로 활동 중인 폴 마르크, 도로테 질베르, 발랑틴 콜라상트, 제르맹 루베를 비롯해 총 10명의 단원이 출연해 발레단 대표작의 주요 장면들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의 특징 중 하나는 ‘발레의 정수’라 손꼽히는 고전·현대 작품이 다수 포함됐다는 점이다. 눈에 띄는 고전 작품은 조지 발란신의 ‘한여름 밤의 꿈’, 롤랑 프티의 ‘랑데부’, 미하일 포킨의 ‘빈사의 백조’, 뱅자맹 밀피에의 ‘아모베오’다. 현대 작품인 알리스테어 메리어트의 ‘달빛’과 크리스토프 윌든의 ‘애프터 더 레인’이 국내에 소개되는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함께 방한한 발레 마스터 리오넬 델라노에는 “루돌프 누레예프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한 안무가들의 작품을 모은 갈라”라며 “고난도 테크닉을 구사해야 하는 고전부터 세련된 현대 작품까지 다양하게 준비했다”고 했다. 박세은은 “굉장히 어려운 안무를 쉽게 풀어내는 프랑스 발레의 매력을 한국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6만∼25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어느 소설가와 번역가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모모’ ‘끝없는 이야기’ ‘기관차 대여행’ 등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를 창조해낸 독일 소설가 미하일 엔데(1929∼1995)와 그의 문장을 일본어로 옮겨온 번역가 다무라 도시오(70)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1995년 8월 엔데가 타계하기 하루 전날까지 함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죽음을 목전에 둔 노(老)작가는 오랜 친구와 대화를 나눴고, 친구는 그의 말을 충실히 기록했다. 저자는 엔데와의 대화를 통해 ‘쓴다는 것’ ‘소년 시절의 기억’ ‘사색의 시기’ ‘꿈’ ‘죽음’을 주제 삼아 그가 삶에서 건져 올린 생각을 펼쳐낸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삶과 죽음, 글쓰기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도 담았다. 독일 뮌헨 슈바빙의 예술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목격한 폭력과 강압, 연극학교에서 배우로 활동했을 때 느꼈던 것들, 이탈리아 팔레르모 광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야기꾼을 보고 작가로서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결심한 순간 등이다. 특히 글쓰기에 관한 엔데의 생각은 인상적이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선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정신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와 인간의 바깥 세계보단 인간의 내적 세계에서 비롯된 고민에서 글쓰기의 시작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엔데의 주장이다. 자연과학적 주장을 무조건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잘못됐다고 말한다. 도식이 그어 놓은 경계 너머에서야말로 모든 인간의 내면에 사는 어린아이를 깨우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엔데를 인터뷰한 다무라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번역가이자 애독자다. 그렇기에 엔데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 더 잘 이해할 만한 내용도 다수 담겨 있다. 엔데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다무라가 회고하는 엔데의 모습을 통해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거장의 경험과 생각이 마구 섞인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0년에 한 번씩 나를 해방시킬 죽음을….” 그에게 삶은 고통스러웠다.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올라탔던 기차처럼.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그는 ‘하차’를 감행했다. 더 이상 인생이란 기차에 실려 떠밀리 듯 종착역으로 가고 싶지 않을 때, 그는 10년마다 의식처럼 삶을 놓아버리려 했다. 서른한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 당시 영미 문단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맹렬한 야수’와 같은 문체로 거침없이 고통과 상실, 우울을 토해냈다. 세상은 플라스의 시를 “여성답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십수 년 뒤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1981년)은 그해 예술성을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안겼다. 지금껏 사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일한 작가다. 12일 개막한 뮤지컬 ‘실비아, 살다’(사진)는 기차가 감내해야 할 어둡고 긴 터널과도 같던 플라스의 삶을 곱씹었다. 그는 짧은 생애에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뮤지컬은 그의 삶과는 다른 결말을 마련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낙관과 희망으로 날아오르는 플라스의 생애를 펼쳤다. 대본부터 제작까지 아우른 조윤지 연출가(37)는 “그의 일기를 읽어 보니 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었다는 걸 느꼈다. 조금 더 뻔뻔하게 살았으면 어떨까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2013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조 연출가의 성향이 반영된 탓인지, 뮤지컬은 연극적인 향취가 짙다. 시인의 문장을 활용한 대사와 노랫말은 곱씹을수록 아름답다. 클래식과 아프리카 전통음악 등을 버무리고, 독특한 마임을 활용한 춤도 흥미롭다. 다만 따라가야 할 대사가 적지 않아 배우들의 전달력이 매우 중요하다. 쇼처럼 화려한 뮤지컬을 기대한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실비아 역 김주연 최태이 주다은, 테드 역 문지수 이규학. 8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TOM2관, 4만5000∼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명년은 바로 우리 부황(父皇·아버지인 황제) 폐하의 성수(聖壽·임금의 나이)가 망륙(望六·60세를 바라봄)이 되시고 보위에 오르신 지 40년이 되는 두 가지 경사가 겹친 경사스러운 해입니다. 이 또한 우리 왕조에 드물게 있는 큰 경사이니 전보다 더욱 성대한 예를 거행해야 합니다.” 1901년 11월, 훗날 대한제국의 순종이 되는 황태자는 아버지 고종에게 이러한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나라 안팎 어두운 정세 속 황실의 위엄을 세우고 군신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진연(進宴·궁중 잔치) 개최를 요구한 것. 고종은 “백성들에 대한 일이 황급하니 여유로운 일을 할 겨를이 없다” “잔치를 여는 일은 백성들이 먹고살기 어려운 지금 의논할 일이 전혀 아니다” 등의 이유를 들어 네 차례나 거절했지만, 황태자는 굴하지 않고 다섯 번째 상소를 올려 뜻을 관철시킨다. 고종 즉위 40주년이던 임인년(1902년), 덕수궁 관명전에서 열린 조선왕조의 마지막 궁중 잔치 ‘임인진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120년 전 열린 대한제국 황실의 궁중 잔치가 ‘새로운 임인년’을 맞아 공연 예술로 재탄생한다. 국립국악원은 다음 달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임인진연’을 재현한다. 연출은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서편제’의 무대를 만든 박동우 홍익대 교수가 맡았다. 창작을 가미하기보다는 사료를 바탕으로 충실한 재현에 초점을 맞춘다. 궁중 잔치의 절차와 음악, 춤 등을 기록한 진연의궤(進宴儀軌)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임인진연 도병(圖屛·그림들로 만든 병풍)을 참고했다. 진연의궤는 한글 번역본 800쪽에 달할 정도로 상세하다. 당시 진연은 남성 신하들과 공식 행사로 올린 외진연과 황태자, 황태자비, 좌우명부, 종친 등 황실 가족과 함께한 내진연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번 공연은 그중 예술성이 강한 내진연을 복원한다. 궁중 예술의 향연이 펼쳐질 무대는 120년 전 잔치가 열렸던 덕수궁을 재현했다. 공연 구성은 황제에게 일곱 차례 술잔을 올린 예법에 따랐으며 무용수들은 악사들의 궁중 음악에 맞춰 궁중 무용을 선보인다. 궁중 무용은 봉래의 헌선도 몽금척 가인전목단 향령무 선유락, 궁중 음악은 보허자 낙양춘 해령 본령 수제천 헌천수가 마련된다. 음악과 무용은 황제의 무병장수,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시공간 제약에 따라 공연 형식에 알맞게 각색한 부분도 있다. 예악당 무대 크기는 실제 임인진연이 열렸던 덕수궁의 절반 정도다. 참여 인원도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본래 임인진연은 하루 종일 치러졌지만 이번 공연에선 의례와 음식 올리는 절차 등을 생략해 90분으로 압축한다. 객석은 황제가 앉는 ‘어좌’와 같게 설정해 관객이 황제의 시선에서 진연을 볼 수 있게 했다. 전석 2만∼5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자전적 기록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공식적으로 122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영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가 2001년 완성한 희곡에서 카사노바는 무려 1000명의 여성을 만난 걸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느낀 카사노바는 유럽 전역을 누비며 마지막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는데…. 그레이그의 ‘카사노바’가 신예 스타 연출가 임지민(38·사진)의 손을 거쳐 연극으로 태어났다. 14일 국내 초연되는 연극 ‘카사노바’ 이야기다. 작품은 새롭게 단장한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개관작으로 선정됐다. 2014년 연극 ‘타이니슈퍼맨션’으로 데뷔한 임지민은 ‘집에 사는 몬스터’(2019년)로 제40회 서울연극제 대상을,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21년)로 제5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으며 연극계가 주목하는 스타 연출가로 부상했다. 15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만난 그는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카사노바를 호색한 혹은 결국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로맨티시스트로 그려냈지만 그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카사노바가 ‘몇 명의 여성을 만났나’보다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나’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연극에는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카사노바(지현준) 때문에 아내와 이별해 복수극을 꾸미는 캐비넷 메이커(정승길), 카사노바의 첫사랑 미세스 테넌트(이영숙)와 그의 비서 마리 루이스(허진). 그리고 메이커가 복수를 위해 고용한 탐정 케이트(이지혜). 그 밖에 카사노바와 데이트한 5명의 여성은 케이트를 연기한 배우 이지혜가 1인다(多)역을 펼친다.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한 장의 그림이 떠올랐어요. 네모난 액자 안에서 카사노바는 여성과 정사를 나누고, 메이커는 그 액자에 망치질을 하고, 미세스 테넌트가 세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죠. 그 모습을 공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카사노바와 정반대 성격을 가진 메이커는 존재만으로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서사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연극은 진행된다. “카사노바는 상대에 따라 감각적으로 변화, 교감할 수 있는 인물이고, 메이커는 변하지 않는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에요. 섣불리 한쪽 편을 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본 관객이 직접 판단하게 하고 싶었어요.” 전작에서도 보여준 그의 특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연출은 이번 작품에도 유효했다. 프로시니엄 무대를 벗어나 객석 사이사이 배우가 연기할 공간을 심어뒀다.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 전석 2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이탈리아 출신 자코모 카사노바(1725~1798)는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자전적 기록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공식적으로 122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영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가 2001년 완성한 희곡에서 카사노바가 만난 여성은 무려 1000명. 그럼에도 공허함을 느끼는 카사노바는 유럽 전역을 누비며 마지막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맨다.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데이비드 그레이그의 ‘카사노바’가 신예 스타 연출가 임지민 연출가(38)의 손을 거쳐 연극으로 태어났다. 국내 초연되는 ‘카사노바’는 젊은 예술가의 창작 실험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새롭게 단장한 국립정동극장 세실의 개관작이다. 2014년 데뷔한 임지민은 ‘집에 사는 몬스터’(2019년)로 제40회 서울연극제 대상을,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2021년)로 제58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으며 연극계가 주목하는 스타 연출가로 부상했다. 15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만난 그는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카사노바를 호색한 혹은 결국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로맨티시스트로 그려냈지만 그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카사노바가 ‘몇 명의 여성을 만났나’보다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나’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연극에는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카사노바(지현준) 때문에 아내와 이별해 복수극을 꾸미는 캐비넷 메이커(정승길), 카사노바의 첫사랑 미세스 테넌트(이영숙)와 그의 비서 마리 루이스(허진). 그리고 캐비넷 메이커가 복수를 위해 고용한 탐정 케이트(이지혜). 그 밖에 카사노바와 데이트한 5명의 여성은 케이트를 연기한 배우 이지혜가 1인다(多)역을 펼친다. “희곡을 처음 읽었을 때 한 장의 그림이 떠올랐어요. 네모난 액자 안에서 카사노바는 여성과 정사를 나누고, 캐비넷 메이커는 그 액자에 망치질을 하고, 미세스 테넌트가 세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죠. 그 모습을 공간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카사노바와 정반대 성격을 가진 캐비넷 메이커는 존재만으로 연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선명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서사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연극은 진행된다. 그는 “카사노바는 매 순간에 전념하는 자, 캐비넷 메이커는 일생을 전념하는 자”로 표현했다. “카사노바는 상대에 따라 감각적으로 변화, 교감할 수 있는 인물이고, 캐비넷 메이커는 변하지 않는 자신의 관점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이에요. 섣불리 한 쪽 편을 들고 싶진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본 관객이 직접 판단하게 하고 싶었어요.” 전작에서도 보여준 그의 특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연출은 이번 작품에도 유효했다. 프로시니엄 무대를 벗어나 객석 사이사이 배우가 연기할 공간을 심어뒀다.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우들의 리얼한 호흡, 그 체험을 극대화하는 게 무대예술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왕 무대에서 하는 거라면 살아있는 몸들이 관객에게 생생한 체험으로 다가오는 게 더 ‘대박’ 아닐까요.”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나는 아마 변호사는 되지 못할 거야. 자폐가 있으니까. 하지만 증인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증인’(2019년) 속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자폐성 장애인 지우(김향기)는 극중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우는 변호사 순호(정우성)를 도와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내지만 장애로 인해 변호사는 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증인’의 각본을 쓴 문지원 작가는 그로부터 3년 뒤 지우의 꿈을 이뤄낸다. 지난달 29일 처음 방송된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서다. ‘이상한…’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대형 로펌에 입사해 동료 변호사들과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시청률은 첫 회 0.9%로 출발해 7일 방영된 4화에선 이 채널 최고시청률 5.2%를 기록했다.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스트리밍 순위는 국내 1위, 세계 10위다. TV 드라마 화제성 지수도 1위에 올랐고 제작사 에이스토리 주가는 첫 회 방송 후 70% 이상 급등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이에 자폐성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각본을 쓴 작가의 세계관도 주목받고 있다. 에이스토리를 통해 문 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작품의 방점은 ‘이상한’에 찍혀 있다. 이 드라마를 보는 건 독특한 걸음걸이와 말투로 첫눈에도 뭔가 ‘이상한 우영우’를 알아가는 경험이다. 문 작가는 “일반적이지 않은, 낯선, 독특한, 엉뚱한, 별난, 상식적이지 않은 특별한 사람을 가리켜 흔히 ‘이상하다’고 한다. 이상한 사람들은 타인을 긴장시키고 때론 문제를 일으키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풍요롭게 만든다”고 했다. ‘이상한’에 천착하는 그의 고민은 영화 ‘증인’에도 나온다. 일반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던 지우가 특수학교로 전학 간 후 내뱉는 대사에서다. “(친구들이) 많이 이상해서 좋아요. 정상인 척 안 해도 되니까요.” 지우와 달리 ‘이상한…’의 우영우는 비장애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길을 택한다.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졸업하고 대형 로펌에 입사해 엉뚱하고 참신한 시각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우영우의 로펌 동료들은 그를 장애인이라 동정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특별대우도 없다. 드라마는 비장애인이 갖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숨기지 않고 사람들이 ‘이상한 우영우’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작품 모두 법정물이지만 범죄보다는 자폐성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벽을 허물고 소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이상한…’은 강력 범죄가 아니라 유산에 욕심을 낸 형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주로 다뤄 서민의 현실을 조명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극악한 사건을 그린 다른 작품과 달리 ‘선함’이 이긴다는 게 드라마의 콘셉트”라며 “센 캐릭터, 자극적 사건에 지친 사람들이 따뜻한 이야기를 보고 싶은 욕망이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지옥행을 고지받고 두 아이와 사별을 앞둔 엄마(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악귀에 들린 딸을 구하려고 타인에게 저주를 내리는 무당(tvN 드라마 ‘방법’)…. 배우 김신록(41·사진)에게 주어진 배역은 강렬하고 기괴하다. 극단적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인물을 연기한 그는 단숨에 대중에게 각인됐다. 김신록은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해 18년째 연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 해도 빠짐없이 연극 무대에 섰던 그가 이번엔 1인극에 도전한다. 26일 개막하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연습에 한창인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연극 무대에 설 때 힘을 얻는다. 무대에서 활성화된 에너지가 다른 영상 작품을 찍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살아있는…’은 서핑을 하다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19세 청년 시몽 랭부르의 장기가 타인에게 이식되는 24시간을 다룬다. 프랑스 소설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이 2014년 펴낸 동명의 장편소설이 원작이다. 국내에선 2019년 초연됐다. “시몽의 심장, 간, 폐 등이 이식되는 과정에서 ‘시몽은 대체 무엇일까’란 질문이 나옵니다. 시몽의 장기를 시몽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해체된 장기도 그 사람이라면 여러 형태의 삶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명의 역동성과 전이(轉移)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배우 한 명이 100분간 휴식 없이 16개 배역을 연기하는 모노극으로, 김신록과 함께 손상규 김지현 윤나무가 캐스팅됐다. 외워야 할 대사 분량은 A4용지 36장에 달한다. “대사를 외울 때 ‘반드시 왜 이 말이어야 하는가’에 천착하는 편이에요. 작가가 어떤 의미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되새기다 보니 이중, 삼중의 시간이 필요해요.” 최근 10여 년간 그는 배우보단 ‘연기 선생님’으로 살았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양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메소드 연기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럽의 극단에 방문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무대보단 주로 강단에 섰다. “공연을 했지만 강의로 버는 돈이 주 수입원이었죠. 2019년쯤 연기로 수익을 100% 창출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2019년부터 3년간 연기에만 전념해 전업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는 연극뿐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방영 예정인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 ‘스위트홈2’와 디즈니플러스 ‘무빙’에도 출연한다. “일상을 다룬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농담 반 진담 반 ‘멜로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녀요. 한눈에 읽히지 않는 저의 에너지와 표정을 누군가 발견해주었음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9월 4일까지, 서울 중구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 전석 5만5000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지옥행을 고지 받고 두 아이와의 사별을 앞둔 엄마, 악귀에 들린 딸을 구하려 타인에게 저주를 내리는 무당…. 배우 김신록(41)을 대중에 각인시킨 배역들은 대부분 강렬하고 기괴하다. tvN 드라마 ‘방법’,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조연이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보였다. 조금은 낯선 외모의 그는 2004년 연극 ‘서바이벌 캘린더’로 데뷔한 18년차 배우다. 데뷔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연극 무대에 섰던 그가 이번엔 1인극에 도전한다. 26일 개막하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배우로서 연극 무대에 설 때 힘을 얻는다”며 “무대에서 활성화된 에너지가 다른 영상 작품을 찍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19살 청년 시몽 랭브르의 장기가 다른 환자들에게 이식되는 24시간을 다룬다. 프랑스 소설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이 2014년 펴낸 동명의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국내에선 2019년 초연된 작품이다. “시몽의 심장, 간, 폐 등 여러 장기가 흩어져서 여러 나라로 가는 24시간 동안 관객에게 ‘시몽은 대체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지죠. 우리는 시몬의 장기들을 시몬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몸이 해체되어도 여전히 그 사람일 수 있다면 여러 형태의 삶에 대한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생명의 역동성과 전이(轉移)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입니다.” 작품에선 배우 1명이 100분간 휴식 없이 16개 배역을 연기한다. 홀로 외워야 하는 대사 분량은 무려 A4용지 36장 가량 된다. “대사를 외울 때 ‘반드시 왜 이 말이어야 하는가’에 굉장히 천착하는 편이에요. 작가나 번역가가 왜 이 단어를 선택했고, 이건 어떤 의미일까 되새기다보니 이중, 삼중의 시간과 고민이 필요합니다.” 최근 10여 년간 그는 배우보단 ‘연기 선생님’으로 살았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양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졸업 후 메소드 연기를 배우기 위해 미국, 유럽의 극단에 방문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그는 무대보단 강단에 주로 섰다. “너무 오랫동안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어요. 간간히 공연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강의로 버는 돈이 주 수입원이었죠. 2019년쯤 연기를 통해 수익을 100% 창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업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연극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눈을 돌렸다. 김용환 감독의 드라마 ‘방법’에서 무당을 연기했고 이후 ‘방법’의 각본을 쓴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에서 저주 받은 여성을 연기했다. 방영 예정인 넷플릭스 시리즈 ‘모범가족’ ‘스위트홈2’와 디즈니플러스 ‘무빙’에도 출연한다. “판타지성과 세계관이 강렬한 작품이 흥미로워요. 그런데 반대급부로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요즘엔 농담반 진담반으로 ‘멜로하고 싶다’고 말해요. 1차적으로 발견되거나 읽히지 않는 저의 에너지, 표정을 누군가 사용해주었음 좋겠다는 마음입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국립발레단(KNB) 수석무용수 박슬기, 솔리스트 송정빈 등이 발레 안무가로 변신한다. 올해로 7회를 맞이한 국립발레단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가 16,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 프로젝트는 강수진 단장 취임 후 2015년부터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안무 능력을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올해 무대엔 수석무용수 박슬기, 솔리스트 송정빈 배민순 한나래 정은영, 드미솔리스트 선호현, 코르 드 발레 최미레, 수석무용수를 지낸 후 지난해 퇴단한 이영철 등 무용수 8명이 안무한 작품을 선보인다. 선정된 작품은 외부 위원이 포함된 심사위원들로부터 심사를 받았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이 처음 선보인 ‘해적’의 안무를 담당해 국립발레단 대표 안무가가 된 송정빈은 생상스 오페라 음악 ‘바카날’에 맞춰 안무한 ‘삼손과 델릴라’를 선보인다. 박슬기가 안무한 ‘컬러링 유어 라이프’는 무용수 4명에게 각각 다른 색깔과 상황을 부여하고 자신이 색칠하는 대로 물들어가는 상황을 표현했다. 한나래와 정은영은 이번 무대에서 안무가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한나래는 타악기 음악에 맞춰 하얀 천을 활용한 안무작 ‘The Way to Me’를, 정은영은 인간 내면의 불안을 표현한 ‘억압’을 각각 선보인다. 5000∼3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바리톤 이응광(41)은 스위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 서 왔다. 2008년 동양인 최초로 스위스 바젤 오페라극장 전속 주역 가수가 된 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피가로,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등 주역을 꿰찬 그가 올해 한국에서 특별한 무대에 선다. 다음 달 3∼7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리는 뮤지컬 ‘나폴레옹’ 헌정 콘서트에서 나폴레옹 역으로 뮤지컬에 데뷔하는 것. 그가 뮤지컬에 도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7일 그를 만났다.》 “예술적 스펙트럼을 확장하고 싶어 기회를 잡았어요. 익숙한 무대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얻게 될 반응이 두렵긴 해요. ‘이응광이 해석한 나폴레옹’을 좋아하실 수 있게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콘서트는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노래만으로 만든 뮤지컬 ‘나폴레옹’에 수록된 넘버 40여 곡을 배우, 무용수, 오케스트라가 함께 선보이는 것으로, 12월 월드투어를 앞두고 기획됐다. 1994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나폴레옹’은 2015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이어 국내에서는 2017년 한국어 라이선스 버전으로 공연됐다. 뮤지컬을 위해 16년 차 성악가는 창법부터 바꿨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에 널리 쓰였던 벨칸토 창법을 쓴다. 하지만 평상시 목소리를 활용한 새 창법으로 넘버 ‘달콤한 승리의 여신’을 불렀다. 이를 들은 원작자 티머시 윌리엄스는 “엄청난 목소리(Super voice)” “놀랍다(Amazing)”라고 극찬하며 그를 나폴레옹에 캐스팅했다. “뮤지컬과 벨칸토 창법은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예전처럼 불렀다간 ‘성악가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밖엔 되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목소리를 상하지 않는 선에서 과감하게 창법을 바꿨습니다.” 서울대 음대와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그는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주요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엘리트 성악가’의 길을 걸어왔다. 바젤 오페라극장의 전속 가수가 된 뒤 유럽 전역을 돌며 주요 오페라 무대에 섰지만 그를 발탁한 독일 출신 디트마어 슈바르츠 예술감독이 2015년 사퇴하면서 그도 극장에서 퇴단했다. 그리고 치열한 오디션 인생이 시작됐다. “영국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 극장 같이 꿈꾸던 극장에서 오디션 기회가 주어졌어요. 근데 평소엔 잘 부르던 노래도 무대에만 서면 벌벌 떨게 되더라고요. 좋은 기회를 여럿 놓치면서 인생의 쓴맛을 봤죠.”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이 확산되면서 공연은 줄줄이 취소되고 함께 음악을 하던 동료들은 우버를 몰거나 주차장 안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팬데믹이 없었다면 여전히 클래식 무대가 제가 속한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믿었을 거예요.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대에서 완전히 내려오게 될지도 모른단 걸 깨달았습니다. 방향을 바꿔야 했죠. 제가 원하는 건 계속 노래하는 거니까요.” 휴가 갈 때도 악보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그는 “매일 불안과 재미, 설렘을 수없이 느낀다”고 말했다. “절실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잃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공부하고 노래합니다. 근데 가끔은 술 마시고 춤도 추고 흐트러지고 싶기도 해요. 언제쯤 맘 편히 일탈할 날이 올까요?(웃음)” 10만∼14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독일 표현주의 화가 가브리엘레 뮌터(1877∼1962)란 이름을 듣곤 러시아 태생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를 먼저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듯, 많은 여성 미술가는 천재성과 독보적인 작품 세계에도 불구하고 남성 거장의 애인 혹은 뮤즈라는 수식어를 떼어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뮌터도 마찬가지다. 뮌터는 여성 화가를 ‘여자 환쟁이’라 낮잡아 부르고 ‘선천적인 아마추어’로 경멸하던 시대에 살았다. 독일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가 1858년 출간한 저서 ‘미술에서의 여성’에서 “여성은 미술을 할 자격이 있는가, 있다면 얼마나 있는가?”란 질문을 당당하게 던질 수 있을 정도였다. 20세기 초 독일 현대 미술을 이끈 표현주의 그룹이자 칸딘스키가 속했던 ‘청기사’의 멤버 프란츠 마르크, 아우구스트 마케, 파울 클레, 아르놀트 쇤베르크 역시 부인이나 동반자가 예술적 성취를 포기하고 내조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들 중 성 역할 분담, 성별에 따른 능력 차에 대한 편견을 당연시하는 불평등 관계에 매몰되지 않은 이는 뮌터와 칸딘스키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사적으로도 뮌터의 그림은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간단한 문장에 갇히지 않는다. 뮌터는 추상에 천착하는 칸딘스키의 행로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물을 구상적으로 재현하려 했고 현실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대상과 풍경에 대한 애착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저자는 “비구상을 향해 가는 칸딘스키를 따라가지 않고 땅과의 접촉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절실한 욕구가 여전히 그녀 안에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뮌터를 칸딘스키의 애인이자 뮤즈, 청기사의 주변인 정도로 축소하려는 미술계의 관습적인 평가에 도전한다. 태생부터 성장, 미술적 성취에 이르기까지 뮌터의 독립적인 삶에 초점을 맞춰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방식을 자유롭게 실험해 온 미술가로 조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뮌터의 삶과 작품에 칸딘스키가 미친 영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뮌터를 가렸던 불필요한 수식어를 거둬 내고 새롭고 정확한 관점으로 한 명의 예술가를 다시 보려는 시도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정부가 국립극장(사진)이 있는 서울 용산구 서계동의 옛 기무사 수송대 터(7820m²)에 복합문화공간을 짓기로 한 데 대해 연극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국립극단은 2010년 재단법인화된 후 남산에서 서계동으로 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부터 이 부지에 ‘제2의 예술의전당’을 지어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무용 오페라 등 여러 장르를 공연하도록 하겠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12월 문체부는 국회 승인과 기획재정부 심의 등을 거쳐 서계동 부지 개발 사업 기본계획 고시를 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연극계는 “서계동 부지는 2010년부터 국립극단이 맨바닥부터 갈고닦아 온 터전”이라며 “멀티플렉스 공연장은 시대 역행의 상징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무용계와 뮤지컬계 등은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반기고 있다. 현재 서계동 부지에 있는 극장은 국립극단 출신 원로 배우 고 백성희 장민호의 이름을 딴 백성희장민호극장(200석)과 소극장판(100석)이다. 내년 7월 복합문화공간 공사가 시작되면 두 극장을 허물고 대극장(1200석), 중극장(500석), 소극장 3개(100석, 200석, 300석)를 지을 계획이다. 쟁점은 연극 아닌 타 장르(뮤지컬, 무용, 오페라 등)도 공연되느냐다. 문체부 관계자는 “극장 수와 객석 규모가 절대적으로 커지는 만큼 국립극단에도 많은 기회가 열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연극계는 “연극 중심으로 운영되며 국립극단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서계동이 활용돼야 한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또 다른 쟁점은 개발 방식이다. 문체부는 부지를 임대형 민자사업(BTL) 방식으로 개발한다. 민간에서 개발비 1244억 원을 들여 시설을 짓고 문체부가 20년간 상환하는 것. 연극계에선 “민간 자본이 투입되면 극장 운영 시 수익형 사업에 치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문체부는 정부가 소유권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운영도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입장이다. 5일 문체부와 범연극인비상대책위원회는 비공개 회동을 갖고 BTL 방식에 대해 협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는 “합의에 이를 때까지 비대위와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보통 로맨스 드라마는 주인공의 연애가 끝나면 이야기도 끝난다. 하지만 시즌이 바뀌면서 주인공의 애인도 바뀌는 드라마가 있다. 30대 여성 유미(김고은)의 연애와 일상을 다룬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이다. 지난해 9, 10월 방송된 시즌1은 2030 여성 시청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부터 공개된 시즌2는 4주 연속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유료가입기여지수 1위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총 14부작으로 5일 기준으로 8회까지 공개됐다. 매주 2회 차씩 방송한다. 드라마의 원작은 2015년 4월부터 연재된 동명 웹툰으로, ‘달콤한 인생’(2011년)으로 데뷔한 이동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윤준상 애니메이션 감독은 2차원(2D)으로 표현된 세포 캐릭터를 생동감 넘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웹툰과 드라마 속 ‘유미의 세포들’을 그린 둘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쫄쫄이 타이츠를 입은 세포들의 세계로 표현된다는 것. 유미가 배고프면 거대한 몸집의 출출세포가 활개를 치고, 사랑에 빠지면 사랑세포가 월등한 능력을 지닌 프라임세포로 진화하는 식이다. 식욕은 출출세포, 마음은 감성세포, 성욕은 응큼세포…. 이 작가가 사람의 생각과 감각을 세포로 연결 짓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우연한 순간이었다. “데뷔작을 마치고 새 작품을 준비할 때 아내가 함께 고민해주겠다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봤어요. 머릿속에서 뻑뻑한 맷돌이 힘겹게 돌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는데 그게 첫 시작점이었죠.”(이동건) 극 중 세포들이 입는 쫄쫄이 타이츠는 인물에 따라 색깔도 바뀐다. 유미의 세포는 파란색, 시즌1 남친 웅이(안보현)는 남색, 시즌2 남친 바비(박진영)는 짙은 녹색이다. “뮤지컬 ‘캣츠’에 등장하는 젤리클 고양이의 쫄쫄이 의상을 보며 처음 세포들을 상상했어요. 사랑세포가 마법을 쓰는 설정은 마법 쓰는 고양이 ‘미스토펠리’에서 따왔습니다.”(이동건) 프레임 크기가 작은 웹툰에선 강조되지 않았던 세포마을의 배경은 애니메이션에서 재창작됐다. “캐릭터에 맞는 성우의 목소리 연기와 음향효과도 넣었어요. 유미 세포의 마을 키워드는 복고, 개발자 구웅은 모던한 미래, 다정다감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바비는 신비함을 모티브로 삼았고요.”(윤준상) ‘유미의 세포들’만의 매력은 인물의 행동을 세포들이 겪는 사건으로 재구성한다는 점. 창작진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목이다. 키스신은 혀 세포들이 탱고를 추는 장면으로, ‘작심삼일 다이어트’는 3일 동안 다이어트세포의 몸집만 비대해지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디테일한 심리 묘사는) 여성 입장에서 쓴 노랫말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읽는 습관이 있는데,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의 노래 가사를 읽으며 ‘아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했죠.”(이동건) 웹툰 특유의 만화적 캐릭터를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공주병에 걸린 귀여운 밉상 루비 역의 배우 이유비와 유미를 짝사랑한 ‘츤데레’ 편집장 안대용 역의 전석호가 대표적이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떠올리지 못하는 감정을 잘 표현해 입 벌리며 보고 있습니다.”(이동건) “(1일 방송된) 안대용 에피소드(8화)는 소년만화와 1980, 90년대 홍콩 누아르 감성으로 무장한 세포들의 눈물 젖고 땀내 나는 이야기입니다. 제작하는 데 가장 시간이 많이 든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윤준상)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보통 로맨스 드라마에선 주인공의 사랑이 끝나면 이야기도 끝난다. 하지만 시즌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의 사랑도 바뀌는(?) 드라마가 있다. 30대 여성 유미(김고은)의 자유로운 연애와 소소한 일상을 다룬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유미의 세포들’이다. 지난해 9, 10월 시즌1이 방송된데 이어 지난달 10일 시즌2가 시작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드라마에만 있는 또 다른 특이점. 등장인물의 생각과 감정, 행동이 쫄쫄이 타이즈를 입은 세포들의 세계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거대한 몸집의 출출세포가 활개를 치고, 사랑에 빠지면 사랑세포가 월등한 능력을 지닌 프라임 세포로 진화하는 식이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의 원작은 2015년 4월부터 연재된 동명 웹툰으로, ‘달콤한 인생’(2011년)으로 데뷔한 이동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드라마에선 웹툰 속 2D 그림을 윤준상 애니메이션 감독이 생동감 넘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펼쳐냈다. ‘유미의 세포들’은 2030 여성 시청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역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 중 유료가입기여지수 1위를 기록했다. 웹툰과 드라마 속 ‘유미의 세포들’을 그린 두 사람을 최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식욕은 출출세포, 마음은 감성세포, 성욕은 응큼세포…. 이동건 작가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각각의 세포로 연결짓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건 우연한 계기였다. “데뷔작을 마치고 새 작품을 준비할 때, 함께 고민해주겠다는 아내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봤어요. 머리 속에서 뻑뻑한 맷돌이 힘겹게 돌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는데 그게 첫 시작점이었죠.”(이동건) 극중 세포들의 의상은 몸에 딱 붙는 쫄쫄이 타이즈.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타이즈 색깔도 바뀐다. 유미의 세포는 파란색, 시즌1 남친 웅이(안보현)는 남색, 시즌2 남친 바비(박진영)는 짙은 녹색으로 된 타이즈를 입는다. “뮤지컬 ‘캣츠’에 등장하는 젤리클 고양이의 쫄쫄이 의상을 보며 처음 세포들을 상상했어요. 사랑세포가 마법을 쓰는 설정은 마법 쓰는 고양이 ‘미스토펠리’에서 따왔습니다.”(이동건) 정지 화면의 웹툰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되기 위해선 추가 작업이 따른다.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와 음향효과, 배경음악 등이 대표적이다. 프레임 크기가 작은 웹툰에선 강조되지 않았던 세포마을의 배경과 분위기는 애니메이션에서 재창작된 수준이다. “웹툰 특성상 단순하게 표현된 부분들이 많아 디테일을 추가했어요. 유미 세포들의 마을 키워드는 복고, 개발자 구웅은 모던한 미래를, 바비는 다정다감하지만 속을 알 수 없기에 신비함을 각각 모티브로 삼았습니다.”(윤준상) ‘유미의 세포들’만의 매력은 사람이 느끼는 감정변화를 세포들이 겪는 사건들로 재구성해낸다는 점. 창작진의 상상력이 맘껏 발휘되는 대목이다. ‘키스신’은 혀 세포들이 탱고를 추는 장면으로, ‘작심삼일 다이어트’는 1월 1일부터 사흘간 다이어트세포의 몸집만 비대해지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디테일한 심리 묘사는) 여성 입장에서 쓴 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읽는 습관이 있어요.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 속 노래 가사를 읽으며 ‘아 그럴 수도 있겠네’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이동건) 웹툰 원작 특유의 만화적 캐릭터를 잘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공주병에 걸린 귀여운 밉상 루비(이유비)와 유미를 짝사랑했던 츤데레 편집장 안대용(전석호)이 대표적이다. “배우들은 역시 캐릭터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느꼈어요. 전 떠올리지 못하는 감정선을 잘 표현해서 입 벌리며 보고 있습니다.”(이동건) “특히 안대용 에피소드(8화)는 소년만화와 열혈함, 1980, 90년대 홍콩 느와르 감성으로 무장한 세포들의 눈물 젖고 땀내 나는 이야기입니다. 강추합니다!”(윤준상)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새로운 건 별로 안 좋아해요.” 내놓는 작품마다 신선, 장르 파괴, 참신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김보람 예술감독(39). 그는 의외의 속마음을 털어놨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4일 만난 그는 “새로움을 찾아내는 걸 창작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있는 능력을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과정이야말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6∼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S시어터에서 ‘무교육적 댄스’ ‘사우나 세미나’를 연달아 선보인다. 김보람의 철학이 담긴 두 작품은 모두 신작이 아닌 구작(舊作)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무교육적 댄스’에선 과거 안무작 ‘볼레로’(2008년)와 ‘언어학’(2016년)을 시현하고 관객을 작품에 참여시켜 작업방식과 과정을 공유한다. 8일 공연이 끝난 후엔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돼 있다. “‘무교육적 댄스’엔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무용을 교육적으로 본다’와 ‘교육이 없다(無)’는 것이죠. 축구 경기를 볼 때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쥘 때가 있잖아요. 이건 스포츠 경기 규칙을 아는 사람만 자동적으로 느끼는 감각이죠. 무용도 마찬가지예요. 아는 만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9일 공연되는 ‘사우나 세미나’는 ‘바디콘서트’(2010년)를 스탠딩 형태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다프트펑크, MC 해머, 비욘세의 팝 음악뿐 아니라 헨델과 바흐의 클래식, 아리랑 등 여러 음악을 사용했다. 공연명을 ‘사우나 세미나’로 정한 이유도 재밌다. “무용수들은 한 번 공연하면 살이 4kg가량 빠질 정도로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무대에서 땀을 줄줄 흘려요. 그래서 공연 이름을 ‘사우나 세미나’로 정해봤죠. 이 작품을 스물여덟 살에 만들었는데 그땐 돌도 씹어 먹을 나이였죠. 그래선지 지금은 좀 힘들더군요. 하하.” 그가 2007년 창단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이날치 ‘범 내려온다’부터 콜드플레이 ‘하이어 파워(Higher Power)’, 스페인·쿠바의 춤곡 ‘볼레로’까지 춤으로 모든 장르 음악을 섭렵해왔다. 가수 엄정화, 그룹 코요테의 백업댄서였던 그가 서울예대에서 현대무용을 배우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만든 후 줄곧 고집해온 원칙이 있다. 춤은 절대 가수를 ‘보조’하는 장식이 아니라는 것. 가수나 밴드의 뒤가 아닌 옆이나 앞에서만 그들의 춤을 볼 수 있는 이유다. “춤은 개별 예술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요. ‘저 춤 때문에 음악이 훨씬 좋게 들렸어!’ 이런 말을 듣는 춤을 계속 출겁니다.” 4만∼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허공에 매달린 팽팽한 외줄 위에서 잰걸음으로 걷고 달리고 공중회전까지 하는 줄타기는 남사당 기예(技藝) 중 으뜸으로 친다. 공중에서 부리는 재주가 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다고 해서 붙인 ‘어름’에 인간과 신의 중간을 뜻하는 ‘사니’를 더한 말인 ‘어름사니’는 줄타기꾼을 일컫는 남사당 용어다. 서주향(30·사진)은 국내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여성 어름사니’. 경기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단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전수장학생인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만났다. 그는 “왼쪽 엉덩이로만 줄을 탔는데 최근 무형문화재 전수장학생이 된 후 김대균(국가무형문화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 선생님께 오른쪽 엉덩이로 줄 타는 법도 배우고 있다”며 “배울 기술이 한참 남았다”고 했다. 6∼10일 국립국악원에서 열리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에서 그는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와 함께 여러 줄타기를 선보인다. 난도가 가장 높은 ‘양발 끝으로 코차기’도 한다. 영화 ‘왕의 남자’(2005년) 마지막 장면에서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이 보여준 기술이다. “20년 넘게 줄을 탔지만 40개가 넘는 기술 중 할 수 있는 건 15개 정도예요. 백텀블링(뒤로 하는 공중회전)도 하고 싶어서 최근 애크러배틱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안성 남사당 보존회에서 일하던 이웃 할아버지의 권유로 줄타기를 시작했다. 이후 평범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휴일과 명절도 없었고, 오전에 시작한 연습은 새벽 1시를 넘길 때가 많았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향했어요. 친구들과 떡볶이 먹는 게 소원이었죠.(웃음) 하지만 귀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집이 어려웠는데 조금이나마 돈을 벌어 보탰고 해외 공연도 많이 나갔죠. 줄타기를 생각하면 ‘애증’이란 단어가 떠오르네요.” 남사당패는 원래 남자로만 이루어진 연희집단이다. 그는 조선 후기 최초의 여성 꼭두쇠(남사당패 우두머리)였던 ‘바우덕이’의 이름을 딴 풍물단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남사당처럼 바지를 입고 패랭이를 쓴 채 줄을 탄다. 최근 새 목표가 생겼다. “여성 댄스팀 ‘프라우드먼’을 보며 ‘여성 어름사니’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졌어요. 언젠가는 패랭이 안에 감춘 긴 머리는 풀고 비키니 같은 의상을 입은 채 줄을 타는 게 꿈입니다.” 9일 오후 8시,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무료.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허공에 매달린 팽팽한 외줄 위에서 잰걸음으로 걷고 달리고 공중회전까지 하는 줄타기는 남사당 기예(技藝) 중에서 으뜸으로 친다. 공중에서 부리는 재주가 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하다고 해서 붙인 ‘어름’에 인간과 신의 중간을 뜻하는 ‘사니’를 더한 말인 ‘어름사니’는 줄타기꾼을 일컫는 남사당 용어다. 서주향(30)은 현재 국내에서 활동 중인 유일한 ‘여성 어름사니’다. 경기 안성시립 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단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전수장학생인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만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왼쪽 엉덩이로만 줄을 탔는데 최근 무형문화재 전수장학생이 된 후부터 김대균(국가무형문화제58호 줄타기 예능보유자) 선생님께 오른쪽 엉덩이로 줄 타는 법도 배우고 있다”며 “20년 넘게 줄을 탔지만 배워야 하는 기술이 아직 한참 남은 어름사니”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6일부터 국립국악원에서 열리는 ‘2022 대한민국 전통연희축제’에서 서주향은 동두천이담농악보존회와 함께 그간 연마한 여러 줄타기를 선보인다. 이번 공연에선 난도가 가장 높은 줄타기 기술인 ‘양발 끝으로 코차기’도 볼 수 있다. 영화 ‘왕의 남자’(2005년)의 마지막 장면에서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이 보여준 그 기술이다. “20년 넘게 줄을 탔지만 할 수 있는 기술은 15개 정도예요. 대대로 내려오는 줄타기 기술은 40개가 넘죠. 줄 위에서 백덤블링(뒤로 하는 공중회전)도 하고 싶어서 최근엔 아크로바틱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직 못 해본 기술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그는 이웃 할아버지의 권유로 줄타기를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안성 남사당 보존회에 일을 열심히 하던 이로, 체구가 작은 서주향에게 줄타기를 한번 해보라고 했고 서주향은 공연장에 나갔다가 풍물단에 들어가게 됐다. 이후 평범하지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풍물단 어름사니였던 그에겐 휴일도 명절도 없었다. 오전에 시작한 연습은 매번 자정까지 이어졌다. 새벽 1시를 넘길 때도 많았다.“학교 끝나면 곧장 연습실로 향했어요. 한때는 방과 후에 친구들과 같이 떡볶이 먹으러 가는 게 소원이었죠.(웃음)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하지만 줄타기를 하면서 귀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가정형편이 어려웠는데 조금이나마 돈을 벌어서 보탬이 될 수 있었고 해외 공연도 많이 나갔죠. 줄타기를 생각하면 ‘애증’이란 단어가 떠오르네요.” 남(男)사당패는 원래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연희집단이다. 그는 조선 후기 최초의 여성 꼭두쇠(남사당패의 우두머리)로 활약했던 ‘바우덕이’의 이름을 딴 풍물단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남사당처럼 바지를 입고 패랭이를 쓴 채 줄을 탄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프라우드먼’ 같은 여성 댄서들을 보면서 ‘여성 어름사니’라는 걸 드러내고 싶어졌어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선보이는 춤 동작들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더라고요. 언젠가는 패랭이 안에 감춘 긴 머리는 풀고 비키니 같은 의상을 입은 채 줄을 타는 어름사니로 사는 게 꿈입니다.” 9일, 국립국악원 연희마당, 전석 무료.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