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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랠리를 펼쳤던 11월 뉴욕증시가 마무리되었습니다. 30일(현지시간) 주요 지수는 혼조세로 마감했는데요. 다우지수는 1.47% 상승해 올해 들어 최고치를 경신했고요. S&P500은 0.38% 상승, 나스닥지수는 0.23% 하락을 기록했습니다.월간 기준으로 보면 참 좋았던 11월입니다. 한 달 동안 다우지수는 8.8%,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각각 8.9%와 10.7% 상승했죠. 모두 올해 최고의 상승률이었는데요. 미국의 소비지출과 인플레이션, 노동시장이 모두 냉각되면서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확신을 줬기 때문입니다.이제 통화정책의 변화, 즉 연준의 금리 인하가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죠. 헤지펀드계 거물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회장은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서 “연준은 이르면 2024년 1분기에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요. 이날 발표된 미국의 10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0% 오르는 데 그쳐, 2년 7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카슨 그룹의 글로벌 거시 전략가인 소누 바게스는 “통화정책 변곡점이 가까워졌고, 연준이 2024년 첫 6개월 동안 최소한 한 차례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를 더욱 확고히 했다”고 말합니다.이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기업은 역시 테슬라입니다. 드디어 전기픽업 사이버트럭 공식 출시 행사와 함께 판매가격이 공개됐는데요. 가장 싼 모델 가격이 6만990달러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2019년에 일론 머스크 CEO가 이야기했던 예상 가격(4만 달러)보다는 50% 높은 가격이죠.정작 이날 테슬라 주가는 1.78% 하락했는데요. 사이버트럭은 이미 백만 명 넘게 예약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고객에게 실제 인도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릴 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머스크는 10월 실적발표에서 “우리는 사이버트럭으로 우리 무덤을 팠다”면서 생산량 확대가 쉽지 않다고 밝힌 바 있죠.한편 이날 OPEC+ 회원국들은 온라인 회의를 열고 원유 생산량 추가 감산에 합의했습니다. 추가 감산량이 하루에 100만 배럴이 될 거라는데요. 그런데 이 발표에 국제유가는 오히려 2% 넘게 하락했습니다. 이날 결정한 추가 감산이 이행 의무가 없는 자발적 감산이기 때문이죠. 실제로는 회원국들이 생산량을 줄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미 앙골라는 주어진 감산 목표량을 거부했다고 합니다.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9월 하루 1320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하죠.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네옴시티 같은 야심찬 프로젝트에 착수한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선 유가가 배럴당 88달러 정도로 올라야 수지타산이 맞다는데요. 점점 OPEC+의 추가 감산으로 유가를 떠받치기란 쉽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1869년 발표된 소설 ‘해저 2만리’ 속 노틸러스호를 아시나요. 전 세계 해저를 탐험하는 이 잠수함에 전기에너지를 공급하는 건 나트륨(Na) 배터리였죠. 바닷물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는 원소인 나트륨으로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SF적 상상이 150여 년 지나 현실이 되었습니다.중국 CATL부터 스웨덴 노스볼트까지.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사들이 속속 나트륨이온배터리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이미 표준 전쟁이 치열한 리튬이온배터리 업계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인데요. ‘그게 되겠어?’라고 별것 아닌 걸로 치부하기엔 기술 개발 속도가 꽤 빠릅니다. 배터리 시장 ‘게임체인저’를 꿈꾸는 나트륨이온배터리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잇따른 ‘나트륨배터리’ 출사표노스볼트(Northvolt)는 스웨덴의 전기차용 배터리 제조 스타트업입니다. ‘유럽 대륙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최초의 유럽 기업’이죠. 지난해 말 전기차용 리튬이온전지 생산을 시작했지만, 한국이나 중국 경쟁사와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 노스볼트가 며칠 전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끄는 발표를 했습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노스볼트가 밝힌 자체 개발 나트륨이온배터리의 에너지밀도는 ㎏당 160와트시(Wh). 중저가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180~200Wh/㎏)에 근접한 수준이죠(한국 배터리 3사의 주력인 삼원계 배터리는 240~300Wh/㎏). 노스볼트는 내년에 시제품을 내놓겠다고 했는데요. 이 회사 피터 칼슨 CEO는 이 신기술이 10년 안에 노스볼트의 “현재 포트폴리오(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보다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했습니다.사실 노스볼트보다 먼저 나트륨이온배터리 시장에 뛰어든 제조사는 수십 곳에 달합니다.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중국 BYD(비야디)와 하이나(HiNa)배터리(中科海鈉), 영국 파라디온(Faradion, 인도 릴라이언스그룹이 인수), 미국 나트론에너지 등이 있죠. 중국에서만 34개 나트륨이온배터리 공장이 건설 중이거나 건설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중 선두주자는 단연 CATL(닝더스다이)입니다.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이자,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강자인 바로 그 CATL 말입니다.2021년 여름 CATL의 1세대 나트륨이온배터리(160Wh/㎏) 깜짝 공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실험실에서나 연구되다가 잊힌 기술인 줄 알았던 나트륨이온배터리를 상용화해 전기차에 장착하겠다고 선언했으니까요. CATL은 이보다 월등한 성능의 2세대 제품(200Wh/㎏)을 현재 개발 중인데요. 올해 안에 중국 체리자동차가 CATL의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장착된 새 전기차 ‘아이카(iCar)’를 출시할 거란 소식도 예고돼있습니다. 과연 진짜 연말까지 나올지, 나온다면 어떤 스펙과 가격일지가 궁금한데요.중국에선 이미 전기오토바이용 나트륨배터리가 온라인쇼핑몰 타오바오에 출시돼 판매 중이라고 합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이 제품은 영하 30도 추위에도 성능이 끄떡없다고 광고 중이죠. 내년엔 아마도 수십만 개의 나트륨이온배터리 이륜차가 중국 시장에 출시될 거라고 합니다.나트륨, 싸다 싸!종합하자면 리튬 대신 나트륨을 사용한 배터리가 진짜로 나옵니다. 이 신기술에 많은 기업이 열광하고 있고요. 상당한 투자가 이미 이뤄지고 있죠. 그럼 알아봐야겠죠. 도대체 뭐가 그리 좋길래?일단 쌉니다. 리튬이온전지보다 소재값이 훨씬 덜 들죠. 현재 원자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비교해볼까요. 탄산리튬 가격이 급락했다고 하지만(1년 전보다 –77%) 여전히 톤(t)당 13만 위안(약 2400만원). 탄산나트륨은 그 76분의 1 수준인 t당 1700위안(약 31만원)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나트륨이온배터리는 음극에 동박(구리) 대신 알루미늄박을 쓸 수 있죠. 알루미늄은 구리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이 때문에 대량생산만 된다면 LFP(리튬인산철)배터리보다 원자재 비용을 30~40% 낮출 수 있을 겁니다.소재를 구하기도 쉽습니다. 일단 나트륨은 리튬보다 지각에 훨씬 많이 매장돼있죠(나트륨은 지각의 2.7%, 리튬은 0.0065% 차지). 육지가 아닌 바닷물에서도 구할 수 있고요. 호주나 칠레 등 일부 국가에 매장량이 집중된 리튬과는 다른 점입니다.또 추위에 강합니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온도가 낮으면 에너지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게 단점이죠. LFP배터리는 영하 20도일 땐 주행거리가 50~70%로 뚝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CATL에 따르면 나트륨이온배터리는 영하 20도 이하 추위에서도 90% 이상 성능을 발휘합니다. 안정성 높은 나트륨의 특성 때문이죠.리튬이온배터리와 생산공정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건 제조사 입장에선 큰 장점입니다. 소재는 대부분 바뀌지만(아래 표 참조) 제조 기술 자체엔 크게 차이가 없죠. 아마도 생산라인을 싹 다 바꿀 필요 없이 기술 일부만 교체하면 제조가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분리막 빼고 소재 다 바꿔?나트륨이온배터리삼원계 리튬이온배터리리튬인산철(LFP)배터리양극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뉨(전이금속산화물, 프러시안블루, 폴리음이온화합물)니켈 코발트 망간 화합물리튬인산철음극탄소계 재료(하드카본 또는 소프트카본)흑연전해질헥사플루오로인산나트륨헥사플루오로인산리튬분리막동일음극기판알루미늄박동박양극기판알루미늄박아니, 나트륨이온배터리에선 리튬은 물론 대부분 소재(분리막과 양극기판 제외)가 싹 다 바뀐다고? 배터리 소재 관련 기업에 투자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신경 거슬리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데요.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성공한다면 리튬 수요를 억제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업이 더 저렴하고 효율적인 셀을 추구함에 따라 끊임없이 발전하는 (배터리) 산업에서 금속 사용량을 예측하는 시도의 위험성을 일깨워줍니다.”하지만 걱정 수위를 조절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적어도 나트륨이온배터리가 리튬이온배터리를 완전히 대체할 거라는 전망은 아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나트륨 이온은 분명 눈여겨볼 도전자입니다. 하지만 1991년 소니가 리튬이온배터리를 처음 상용화한 이래, 리튬이 시장의 지배자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죠. 바로 작기 때문입니다.원자번호 3번의 리튬은 현존하는 가장 가벼운 금속입니다. 스마트폰부터 전기차까지, 모든 전자장치가 원하는 건 작고 가벼운 배터리이죠. 그 점에 있어서는 리튬을 이길 소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트륨은 리튬과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는 알칼리 금속(반응성 강함)이지만, 원자번호 11번으로 크고 무겁습니다. 이 때문에 단위당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 더 높고, 나트륨이 낮습니다. 같은 부피 또는 무게에 담을 수 있는 에너지 양에서 나트륨이 불리하죠.달리 말하면 비슷한 무게·부피라면 나트륨이온배터리 장착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더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성능이 떨어지는 거죠. 만약 CATL이 개발 중이라는 200Wh/㎏급 2세대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실제로 나온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요.물론 모든 전기차가 한번 충전에 500㎞씩 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적당히 괜찮은 용량이면 충분한 차량도 있죠. 그래서 많은 이들이 전망하기로는 리튬이온배터리와 나트륨이온배터리은 공존할 겁니다. 일단은 그리 큰 에너지 용량이 필요 없는 전기 자전거와 이륜차, 저속 전기차(카트)에 나트륨이온배터리가 먼저 쓰이겠죠. 같은 이유로 내연기관 차량에 들어가는 납축전지도 나트륨이온배터리로 바뀔 가능성이 큽니다. 납축전지는 안정성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시장이 죽지 않고 오히려 커지는 추세인데요. 납과 황을 쓰기 때문에 환경을 오염시키죠. 중국의 신쳉 컨설팅은 “미래엔 나트륨이온배터리가 납축전지 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태양광·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저장해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역시 주요 사용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ESS는 어차피 움직일 필요 없으니 좀 무겁고 커도 상관없으니까요.소형 전기차에도 나트륨이온배터리가 쓰이겠지만, 초반엔 ‘하이브리드’ 형태로 들어갈 겁니다. 즉, 나트륨과 리튬이온전지 둘을 섞어서 한 차량에 쓰는 형태이죠. CATL이 ‘AB배터리’라고 이름 붙인 방식인데요. 가성비와 주행 성능,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BYD 역시 이런 하이브리드 방식을 소형차 모델 ‘씨걸(Sesgull)’에 적용할 예정입니다.리튬가격이 발목 잡을까그럼 나트륨이온배터리가 판을 뒤엎지는 못하더라도 그 앞날엔 비교적 희망이 가득한 걸까요. 글쎄요. 관건은 원자재 가격입니다. 과연 리튬가격이 어디까지 더 떨어지느냐에 사실상 모든 게 달려있달까요.1980년대부터 연구됐던 나트륨배터리가 최근 2년 사이 기업의 주목 받은 건 사실 요동치는 리튬가격 때문이죠. 2020년 말 t당 3만 위안대였던 탄산리튬 가격은 한동안 정말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지난해 11월엔 59만 위안을 넘어서기까지 했죠.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놀라운 속도로 리튬 가격이 폭락 중입니다.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하면서 리튬 공급이 과잉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이제 글로벌 리튬시장의 공급과잉이 2028년까지 이어질 것(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이란 리튬 비관론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나트륨이온배터리는 이제 막 산업화의 초기에 있습니다. 전기차에 장착해도 될 수준으로 에너지 밀도를 끌어올리려면 갈 길이 먼데요. 리튬가격이 예상과 달리 급락한다면 기업들의 나트륨배터리 개발 의지가 꺾일지 모릅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충분한 새로운 리튬 광산이 생성된다면(리튬 공급이 충분하다면) 나트륨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과학자와 엔지니어에게 급여를 지급할 인센티브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죠. 리튬배터리의 대체제가 되고픈 나트륨배터리. 정작 그 운명은 리튬에 달려있는 셈입니다. By.딥다이브배터리 관련주에 투자한 분들을 요즘 참 많이 봅니다. 다들 지식 수준도 상당한데요. 문제는 이 산업이 아직 표준화가 안 되어 있고 새로운 기술이라서 변화무쌍하다는 겁니다. 이를 둘러싼 경제환경도 예측이 쉽지 않고요. 솔직히 리튬가격이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 누가 알았나요(). 결국 지속적인 공부밖엔 답이 없겠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의 나트륨이온배터리 개발 소식으로 다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집니다. 중국 CATL은 올해 안에 체리자동차의 소형 전기차에 나트륨이온배터리를 장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매장량이 풍부한 소재인 나트륨의 가격은 리튬의 76분의 1 수준. 안정성이 높아 고온과 저온에서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문제는 에너지 밀도. 같은 크기나 무게이면 주행거리가 더 짧아집니다. LFP배터리의 80~90%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전기차에 쓰이긴 부족해 보입니다. 우선 이륜차와 카트, 에너지저장장치에 쓰일 거란 전망입니다.-나트륨배터리의 앞날을 결정하는 건 리튬가격이 될 겁니다. 만약 1년 새 77% 급락한 리튬가격이 더 추락한다면 나트륨배터리의 가성비가 그리 빛나 보이지 않겠죠. *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사상 최대 매출의 블랙프라이데이가 지나고, 미국 국채 수익률은 급락했습니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데요. 차익실현 움직임 때문인지, 27일(현지시간) 뉴욕증시는 소폭 하락세를 기록했군요. 다우지수는 –0.16%, S&P500 –0.2%, 나스닥지수 –0.07%.미국은 24일 블랙프라이데이에 이어, 이날은 사이버먼데이였죠. 이 시기의 온라인 매출로 연말 쇼핑 시즌 성과를 가늠할 수 있어서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데요. 당초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 전자상거래 매출액이 전년보다 7.5%나 증가했다고 하죠(어도비 애널리틱스 분석). 미국의 소비는 여전히 탄탄합니다. 이 소식에 일부 소비주 주가가 상승세를 탔습니다. 전자상거래업체 쇼피파이 주가는 4.9% 올랐고요. 아마존 주가는 0.67% 상승하며 주가가 2022년 4월 이후 최고 수준(147.73달러)으로 마감했습니다. 후불결제회사 어펌홀딩스 역시 ‘선구매 후지불’ 실적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12% 가까이 주가가 급등했죠.이날 채권시장에서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습니다. 미국 재무부의 만기 2년, 5년 국채 입찰에서 강한 수요가 나타난 영향인데요. 이날 발표된 10월 신규주택판매 지표가 예상을 크게 밑돈 것도 국채 수익률 하락을 부추겼죠. 벤치마크인 10년물 국채금리는 0.09%포인트 하락한 4.39%를 기록했습니다. 두 달 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간 겁니다. 모건스탠리 E트레이드의 크리스 라킨은 “경제 지표 둔화로 인해 시장 친화적인 금리 인하가 가속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시장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전반적으로 채권과 주식시장 모두 안정된 모습인데요. 그래서이겠죠. 연말, 그리고 내년 미국 증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부쩍 늘었습니다. 블룸버그가 구독자 대상으로 실시한 MLIV펄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근 조사에선 응답자의 60% 이상이 “다음 달 주식이 채권보다 나은 수익을 제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이는 2022년 8월 이 질문을 처음 한 이래 가장 낙관적인 주식시장 전망이라고 합니다.금융회사들이 내놓은 내년 S&P500 전망치도 이런 시각을 반영하는데요. 도이체방크는 인플레이션이 냉각되고 기업수익이 반등하면서 S&P500이 2024년 말까지 5100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현재 수준보다 약 12% 오른다는 뜻이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BMO캐피탈마켓 역시 S&P500이 2024년 다시 상승해서 2022년 초의 사상 최고치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봅니다.UBS글로벌웰스매니지먼트의 제이슨 드라호는 “시장은 연착륙에 맞춰 가격이 책정되고 소비자 지출이 유지될 것”이라며 “앞으로 몇주 동안 투자자들은 소비자 지출 데이터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가상화폐 업계의 왕이 미국 정부 압박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창업자인 자오창펑(趙長鵬) 이야기인데요. 자금세탁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막대한 벌금과 함께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죠.바이낸스와 자오창펑이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관심 끄는 뉴스가 아닐 수 없는데요. 동시에 가상화폐 시장 입장에선 오히려 잘된 일일 수 있단 분석도 나옵니다. 왕좌에서 내려온 자오창펑, 그리고 바이낸스 제국을 들여다봤습니다.5.5조 벌금 맞은 바이낸스43억 달러(5조5000억원). 21일 바이낸스가 미국 정부와 합의한 벌금 액수입니다. 미국인 고객이 북한·이란·러시아 같은 제재 대상 국가 또는 하마스·이슬람국가 같은 테러단체와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걸 알고도 중개한 혐의에 대해 자오창펑 CEO가 유죄를 인정한 건데요. 미국 역사상 기업이 낸 벌금 중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과거 비슷한 혐의로 HSBC가 냈던 벌금과 비교해도 두배 수준이죠.그 정도 벌금이면 회사가 휘청거리는 거 아니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바이낸스이니까요.1억6000만명 넘는 고객을 둔 바이낸스는 가상화폐 거래 시장 점유율이 44%에 달합니다. 전 세계 가상화폐 현물과 파생상품 거래의 절반 가까이가 바이낸스를 통해 이뤄지는 거죠. 올해 1분기 62%였던 점유율이 많이 떨어진 게 이 정도입니다. 매출이나 이익 같은 재무정보를 공개하진 않지만, 거래마다 0.1%가량을 수수료로 떼니까 엄청난 돈을 쓸어 담고 있겠죠.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이미 바이낸스는 벌금을 내려고 현금 80억 달러를 확보해뒀다고 합니다.벌금이 아무리 많아도 바이낸스 입장에선 최악은 아닙니다. 합법적 테두리 안에선 계속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재무부 산하기관의 모니터를 받는 조건이 붙긴 했는데요. 적어도 ‘바이낸스가 문 닫을까 걱정해서→고객들이 가상화폐를 인출하려 몰려들고(코인 런)→그것 때문에 회사가 망하는’ 일은 없을 거란 뜻이죠.이번 합의로 자오창펑은 앞으로 3년간 바이낸스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됐는데요. 그래도 바이낸스 최대 주주(지분율 90% 추정) 권한은 잃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의 엄청난 부엔 아무런 타격이 없죠. 가상화폐 호황기였던 2022년 1월 자오창펑의 재산은 무려 960억 달러(약 115조원)에 달해 세계 11위였는데요(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이후 많이 줄어든 게 230억 달러(세계 69위)입니다. 아직 자오창펑에 대한 재판은 남아있는데요. 미국 언론에서는 유죄판결을 받아도 18개월 이내의 형을 받을 거라고 전망합니다.결론적으로 바이낸스와 자오창펑은 망하진 않았습니다. 샘 뱅크먼 프리드의 FTX(2022년 11월 파산한 미국의 가상화폐 거래소)나 권도형의 테라(2022년 5월 붕괴된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와는 달리,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죠.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이에 안도했습니다. 바이낸스 벌금 소식에 비트코인 가격이 살짝 내렸다가 다시 오른 게 이를 반영합니다.하지만 바이낸스와 자오창펑 모두에 고의로 법을 위반한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 표현대로 “두 개의 가장 큰 가상화폐 거래소(FTX와 바이낸스) 중 하나는 사기, 다른 하나는 돈세탁범”인 것으로 밝혀진 거죠. ‘CZ’라는 이니셜로 불리던 가상화폐 업계의 최고 리더, 자오창펑의 신화는 사실상 무너졌습니다.설립 8개월 만에 업계 1위 신화1977년생인 자오창펑은 권도형(1991년생)이나 샘 뱅크먼 프리드(1992년생)처럼 젊지도 않고, 스탠퍼드대학 출신도 아닙니다. 그다지 화려한 스타성 있는 인물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런 그가 가상화폐 업계에서 거물이 된 건 바이낸스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 덕분입니다.중국 출신인 자오창펑은 12살에 캐나다로 이민 간 중국계 캐나다인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뒤 주로 증권 거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요. 2013년 ‘순자산의 10%만 비트코인에 투자해라. 아마 10배가 될 거다’라는 친구 조언을 계기로 가상화폐에 눈을 뜹니다. 그는 비트코인 백서를 읽은 뒤 완전히 빠져들었죠. 상하이 아파트까지 팔아 비트코인에 몽땅 투자했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60% 넘는 손해를 봤지만, 더욱 가상화폐 세계에 몰두합니다.2017년 7월 그는 바이낸스 코인(BNB)을 출시해 ICO(초기 코인 공개)로 1500만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이를 밑천으로 바이낸스 거래소를 설립하죠. 마침 가상화폐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던 타이밍이었습니다. 바이낸스는 매일 사용자 수가 5000명씩 증가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커나갔죠. 설립 8개월 만에 바이낸스는 세계 거래소 중 거래량 1위로 올라서며 업계를 놀라게 만듭니다. 무명이었던 그는 단숨에 포브스 표지 모델이 되었죠.이러한 급성장 요인으로는 수수료율이 낮으면서도(기본 0.1%), 웬만한 코인은 다 상장돼 있을 정도로 상품이 다양하다는 점이 꼽힙니다. 한국의 거래소에선 찾아볼 수 없는 최대 125배 레버리지 파생상품도 있다고 하죠(코인 현물 가격이 1% 오르면 125% 수익률). 아울러 람보르기니를 경품으로 내거는 등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벌였습니다. 무엇보다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누구나 바이낸스 거래 계좌를 만들 수 있도록 익명성을 보장해서 큰손들을 끌어모았는데요.정작 자오창펑 본인은 바이낸스 성공 비결이 ‘서비스 품질’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2017년 당시 가상화폐 거래소 시스템은 느리고 인터페이스는 투박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자 모든 사이트가 다운됐죠. 우리는 교환 속도를 더 빠르게 했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훨씬 더 좋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본사 없어서 규제 못 한다?바이낸스가 경쟁사와 가장 다른 점은 본사가 따로 없다는 점입니다. 공식적인 은행 계좌나 공개 주소도 없죠. 점조직 형태의 탈중앙화된 ‘무국적 거래소’를 초기부터 표방했는데요. 따라서 어느 정부의 관할 아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는 게 바이낸스의 주장입니다. 이 때문에 2017년 중국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소 영업을 전면 중단했을 때도 바이낸스는 끄떡없었습니다. 중국 시장의 선발주자였던 오케이코인(오케이엑스)과 후오비가 크게 타격 입은 것과 대조적이었죠.국적이 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규제도 통하지 않는다? 궤변처럼 들리지만, 이런 주장은 실제로 통했습니다. 바이낸스는 철저히 사무실이나 서버 위치를 비밀로 하며 규제를 피해 갔죠. 이를 위해 자오창펑은 직원들에게 바이낸스에서 일하는 걸 밝히지 말고 내부 커뮤니케이션 기록은 바로 삭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는 대놓고 “불필요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매우 창의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죠.동시에 자오창펑은 돈에 관심이 없고 자동차나 집도 소유하지 않는, 바이낸스 로고가 박힌 티셔츠나 후드티를 입고 다니는 수수한 이미지로 어필했습니다. 본인 추정으로는 2022년 비행기 안에서 580시간을 보낼 정도로 전 세계 가상화폐 컨퍼런스의 단골 초청 게스트였는데요. 지난해 강력한 경쟁업체 FTX까지 무너지면서, 바이낸스 제국의 위상은 더 공고해졌습니다. 참고로 2022년 11월 FTX 파산엔 자오창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자오창펑이 FTX 관련 코인(FTT)을 전량 매도했다고 밝히면서 코인런 촉발)는 지적도 나옵니다.꼼수는 통하지 않았다바이낸스는 오래전부터 미국 정부의 타깃이 되어왔습니다. 수년 전부터 불법 거래 혐의로 조사해왔다고 하죠. 물론 자오창펑은 이를 피하기 위해 근거지를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녔고요. 하지만 그의 ‘무국적 거래소’ 꼼수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가 미국 거주자에 대한 고객신원확인 규정을 어겼고, 자금 세탁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방조했다는 여러 증거와 증언을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미국 정부의 법원 서류에 따르면 자오창펑은 바이낸스에 미국 고객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 고객을 차단한다면 “바이낸스는 오늘날처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채팅을 남기기도 했죠. 미국 거주자는 바이낸스 전체 사용자의 16%에 달했지만, 이를 숨기기 위해 바이낸스는 사용자 위치를 “UNKWN(‘UNKNOWN’을 의미)”으로 고칩니다. 이를 두고 자오창펑은 “허락보다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낫다”면서 상황을 “회색지대”라고 묘사했습니다. 빠른 성장을 위해 규제 따위는 잠시 모른 척한 거죠.이전에 자오창펑은 바이낸스에 대해 미국 규제당국이 제기한 혐의들이 모두 ‘퍼드(FUD)’라며 적극적으로 반박해왔습니다. FUD는 공포(Fear)·불확실성(Uncertainty)·의문(Doubt)의 약자인데요. 가상화폐 업계에서 가짜뉴스, 악성루머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과거 그는 FUD를 의미하는 손가락 네개를 펼친 사진을 자신의 X(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적 있죠. 하지만 그가 유죄를 인정하면서 이는 벌금 40억 달러를 의미하는 사진으로 패러디됩니다.가상화폐 시장엔 호재라고?자오창펑의 뒤를 잇는 바이낸스 CEO는 싱가포르 규제기관 출신 인물인 리처드 텅입니다. 하지만 실제 주도권은 바이낸스 공동 창업자이자, 자오창펑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결혼은 하지 않음) 허이(He Yi) 최고마케팅책임자(CMO)가 쥐게 될 거란 관측도 나오죠.미국 정부의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된 바이낸스가 과연 지금 같은 제국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규제를 다 따르면서도 고객 기반을 잃지 않기란 사실 쉽지 않죠. 다만 바이낸스 입장에선 어차피 규제 틀 안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 길을 택한 건데요. 달리 보면, 미국 정부 역시 까다로운 조건을 달긴 했지만 바이낸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블룸버그 칼럼 표현대로 “미국 규제당국이 합법적인 이민자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죠.바로 이 때문에 이번 미국 정부와 바이낸스의 합의로 다음 단계의 진전, 예컨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현물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 승인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이낸스 사태가 ‘가상화폐 시장엔 호재’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는데요. 역시나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시장입니다. By.딥다이브참 극적인 성공도, 갑작스런 몰락도 많은 가상화폐 시장입니다. 권도형, 샘 뱅크먼 프리드, 그리고 자오창펑까지. 신화적 인물들이 줄줄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그 와중에도 충격을 빠르게 회복해 가는 비트코인 가격도 신기하고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미국 정부가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바이낸스가 43억 달러의 막대한 벌금을 매겼습니다. 자오창펑은 유죄를 인정하고 CEO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중국계 캐나다인 자오창펑은 2017년 바이낸스를 설립한 뒤 8개월 만에 전 세계 거래소 1위로 만들어내며 업계 거물이 됩니다. 본사를 따로 두지 않은 ‘무국적 거래소’ 컨셉으로 규제를 교묘히 피해갑니다.-하지만 미국 규제당국의 집요한 조사에 결국 덜미가 잡힙니다. 자오창펑은 바이낸스의 빠른 성장을 위해 규제를 일부러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바이낸스는 규제의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다음 단계의 진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정말 이번 사태가 가상화폐 시장엔 호재가 될까요?*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주요 산유국 협의체 OPEC+의 내부 갈등 조짐에 유가가 내리막입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개발사 구하기에 나섰다는 소식에 홍콩과 중국 본토 증시는 23일 상승했죠. 미국 증시가 추수감사절로 휴장한 이날, 글로벌 시장은 대체로 조용했습니다. 24일 미국 증시는 다시 문을 열지만 오후 1시(미국 동부 표준시)까지만 단축 운영합니다. 26일 열릴 예정이었던 OPEC+ 정례회의는 돌연 30일로 미뤄지더니,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바뀌었습니다. 당초 이 장관급 회의에선 추가 감산 문제가 다뤄질 걸로 전망됐는데요. 감산을 둘러싼 산유국들의 의견차이가 커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나이지리아나 앙골라 같은 아프리카 회원국들의 반발이 크다고 하죠. 국제유가 상승을 위해 감산을 요구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산유국 설득에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입니다.이날 국제유가는 1% 넘게 하락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76.09달러, 브렌트유 선물은 80.89달러에 거래됐습니다. 투자자문사 어게인캐피털의 존 킬더프 창업자는 “OPEC+ 회의 연기로 당분간 에너지주는 비관적”이라며 “WTI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 60달러 초중반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23일 홍콩 증시에선 중국 부동산 관련주가 급등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개발사 50곳을 뽑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 덕분입니다. 규제당국이 만들고 있는 명단 초안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개발사들은 일제히 주가가 급등했죠. 이날 홍콩증시에서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은 24%, 위안양그룹(시노오션) 31%, 욱휘홀딩스(CIFI)는 48% 주가가 상승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부동산 위기 종식을 위해 역대 가장 강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는데요.문제는 중국 은행 산업이 이를 떠받칠 여력이 충분하냐는 점입니다. 중국 대형 국영은행은 이미 마진 감소와 대출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중국 은행주 주가가 하락세인 것도 이 영향입니다. 노무라 추산에 따르면 중국 부동산 개발사가 짓고 있던 주택을 완공하기 위해 추가로 필요한 자금은 무려 3조2000억 위안(582조원)에 달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글로벌 경제계에서 현재 시점 가장 핫한 뉴스는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 축출 소식.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던 샘 올트먼이 17일 갑자기 오픈AI 이사회에 의해 해고됐는데요. 19일엔 올트먼이 MS에 합류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놀라운 소식의 연속입니다.자기가 만든 회사를 이끌어오던 창업자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난다?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오늘은 해고된 유명 창업자들과 그들의 반격 스토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원조 ‘Mr. 테슬라’ 마틴 에버하드기업의 이사회는 투표를 통해 CEO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회사와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명분에서 말이죠. 때로는 창업자라 해도 이사회에 의해 잘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아주 큰 뉴스거리가 되곤 하죠. 해고된 유명 창업자들은 많지만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 테슬라 공동 창업자테슬라 창업자가 일론 머스크가 아니란 사실, 알고 계시나요. 테슬라는 마틴 에버하드가 2003년 친구인 마크 타페닝과 함께 공동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때 당시엔 새로운 기술이었던 리튬이온배터리를 이용한 고성능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설립한 스타트업이었죠. 이듬해 4월 머스크는 750만 달러를 투자했고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이 됐습니다. 에버하드는 CEO를 맡아 테슬라의 첫 번째 자동차 로드스터(Roadster) 개발을 진두지휘했고요.2006년 7월 테슬라가 할리우드 스타 초청행사를 열고 대당 10만 달러짜리 로드스터 100대를 사전주문 받을 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자신감 있고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괴짜인 에버하드는 ‘미스터(Mr.) 테슬라’로 불렸습니다. 언론은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를 만든 인물’이라며 그를 찬양했죠. 그럼 일론 머스크는? 놀랍게도 그 행사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머스크 이름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아서, 그가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하지만 그해 말부터 에버하드의 로드스터 생산 계획은 삐걱거렸습니다. 수백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을 관리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테슬라는 최고재무책임자도, ERP 프로그램도 없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에버하드는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큰 조직을 이끌 경영 능력은 미숙한 전형적인 스타트업 창업자였습니다.결국 2007년 여름, 에버하드는 로드스터 생산지연으로 인해 CEO직에서 해고됩니다. 에버하드는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비방 금지 계약’을 맺었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나는 내가 대우받은 방식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테슬라와 고객, 투자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합니다.2008년 테슬라 CEO로 취임한 일론 머스크는 에버하드를 “함께 일한 최악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발끈한 에버하드는 2009년 5월 머스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죠. 머스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퇴출을 주도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는데요. 넉 달 뒤 두 사람은 합의했고 에버하드는 소송을 철회합니다.에버하드는 테슬라를 떠날 때 5% 미만의 지분율 소유하고 있었다는데요. 올해 초 인터뷰에서 여전히 작은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그는 한동안 전기차 관련 기업에서 일한 적 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은퇴한 기업가’로 소개합니다. 지금은 테슬라 공동창업자였던 타페닝과 함께 소규모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두 사람은 아직도 1988년부터 해온 대로 매주 수요일에 만나 커피를 마신다고 합니다.‘포털의 황제’ 제리 양제리 양(Jerry Yang), 야후 공동 창업자한때 그는 ‘포털의 황제’로 불렸습니다. 미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 스탠퍼드대 대학원 조교 시절, 인터넷 사이트를 주제별로 정리한 무료 사이트 ‘제리 양의 월드와이드웹 가이드(Jerry‘s Guide to the World Wide Web)’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1995년 야후를 설립하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나가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 신화를 씁니다.2000년대 초반까지 야후는 승승장구했죠. 하지만 검색 기능에서 한발 앞선 구글이 치고 나오면서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특히 2008년 2월 446억 달러(주당 31달러)에 야후를 인수하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업계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만한 가격이었지만, 제리 양은 야후를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주가는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제리 양은 여러 건의 주주 소송에 직면합니다. 결국 2009년 그는 CEO 자리를 내려놔야 했죠.훗날 인터뷰에서 제리 양은 야후가 투자한 알리바바 지분 가치가 엄청나게 커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MS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야후는 2012년 불과 주당 13달러라는 헐값에 알리바바 주식 5억2300만주를 알리바바에 다시 매각했죠. (참고로 2014년 알리바바 나스닥 상장 직후 주가는 약 90달러)제리 양은 야후를 떠난 뒤 투자회사 AME 클라우드 벤처스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알리바바의 이사회 멤버이자, 스탠퍼드대학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죠. 포브스에 따르면 아직 55세(1968년생)인 그의 순자산은 26억 달러로 여전히 상당한 부자(세계 순위 1272위)입니다.애슬레저 트렌드 창시자, 칩 윌슨칩 윌슨(Chip Wilson), 룰루레몬 창업자사업 실패나 경영 판단의 오류가 아닌 이유로 축출당하는 창업자도 있습니다. 부적절한 언행으로 말이죠. ‘요가복 계의 샤넬’ 룰루레몬을 창업한 칩 윌슨이 그런 경우이죠.룰루레몬은 1999년 캐나다 밴쿠버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습니다. 기능성 운동복 사업을 했던 칩 윌슨은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했죠.룰루레몬은 처음부터 단순한 운동용이 아닌 일상복을 위한 애슬레저 의류 회사를 표방합니다. 타깃 고객은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싱글 여성. 윌슨은 “자기 소유 콘도를 갖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하고 하루 1시간 30분씩 운동할 수 있는” 고객이라면 기꺼이 100달러짜리 요가 바지에 지갑을 열 거라고 내다봤죠.그의 직감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신축성 있으면서도 탄탄한 소재로 몸매를 잡아주는 룰루레몬 요가복은 대히트를 칩니다. 레깅스 열풍을 일으키며 이후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해 나갑니다.칩 윌슨의 경영철학은 좀 독특했습니다. 집요하게 자신이 원하는 조직문화를 추구했는데요. 직원들이 리테일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1년, 5년, 10년 뒤 목표를 적어서 매장에 걸어두게 하거나, 동기 부여 수업을 참석하게 했죠. 이에 세뇌당하는 것 같다는 직원 불평이 이어졌고요.2011년엔 쇼핑백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 ‘Atlas Shrugged’의 첫 문장(‘Who is John Galt’)을 넣었는데요. 이게 엄청난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타주의를 배척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자유시장주의의 상징적인 책이었기 때문이죠. 이 소란으로 윌슨은 최고 혁신·브랜딩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이후 윌슨은 비상임 회장직만 유지했는데요. 그마저 잃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3년 룰루레몬 검정색 요가 팬츠가 너무 속이 훤히 비쳐 보인다는 이유로 반품이 이어집니다. 이때 윌슨이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망발했습니다. “솔직히 일부 여성의 신체는 (요가)바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여성들이 분노했고, 룰루레몬 주가까지 급락합니다. 이사회와 긴장관계에 있던 윌슨은 회장직 사임을 발표합니다.그는 여전히 룰루레몬 지분 8%를 보유한 개인 최대 주주입니다. 그의 순자산은 62억 달러(세계 431위)에 달하죠. 그는 지난해 낸 회고록 ‘룰루레몬 스토리’에서 자신을 ‘실적주의에 사로잡힌 이사회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는데요. 실패를 두려워하는 ‘합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면 창의성이 사라져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없다(즉, 자신은 창의성 넘치는 혁신의 리더였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스티브 잡스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 공동 창업자쫓겨난 창업자 스토리엔 이 사람이 빠질 수 없죠. 궁지에 몰린 모든 창업자에게 희망이 되는 사례, 스티브 잡스입니다.1976년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하고 세계 첫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냅니다. 애플이 급성장하자 1983년 잡스는 펩시콜라 출신 전문 경영인 존 스컬리를 영입하고 본인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매진하죠.잡스는 ‘미친 듯이 위대한’ 제품을 추구하는 인물이죠. 그의 끝없는 완벽주의와 막대한 마케팅에 대한 고집으로 인해 첫 번째 맥 컴퓨터 가격은 무려 2500달러로 책정됐습니다. 당시 주류 컴퓨터는 1000달러 정도. 당연히 맥 컴퓨터 판매량은 형편없었습니다. 예측치의 10%에 불과했죠. 하지만 잡스는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직원을 꾸짖었다는데요. 직원을 향해 ‘똥(shit)’ 또는 ‘멍청이(asshole)’ 같은 욕을 퍼붓는 건 그에겐 일상적인 일이었죠.1985년 스컬리 CEO는 잡스 해고를 위한 이사회를 소집합니다. 익명투표를 벌인 끝에 애플 이사회는 잡스를 축출했죠.분신 같은 회사에서 쫓겨나는 창업자의 기분은 어떨까요?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된 날, 매킨토시 마케팅 담당이었던 마이크 머레이는 너무 걱정돼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몇 시간 동안 함께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잡스가 자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까지 말이죠.잡스 이후 또 다른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1996년 12월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죠. 그리고 1997년 9월. 마침내 잡스가 애플의 CEO를 맡게 되는데요. 그 이후는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훗날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유명한 졸업식 축사에서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의 무거움은 다시 초보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영웅으로 돌아오려면회사에서 쫓겨난 리더들이 누구나 스티브 잡스처럼 시련을 딛고 일어나 더 위대해질 수 있는 건 아니죠. 사실 축출된 리더의 화려한 복귀는 영웅 신화(초기 성공-시련의 지속-좌절-최종 승리)만큼이나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반등에 성공한 리더들에겐 공통점이 있다는데요.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오래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2007년 1월호)에서 이를 분석했습니다. 시간은 꽤 지났지만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해서 소개해드릴게요.그에 따르면 쫓겨난 창업자나 CEO가 재기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평판입니다. 이전의 대중적 평판을 재건할 수 있어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죠.이사회는 리더를 해고하면서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해고 이유를 일부러 숨기기도 합니다. 예컨대 “개인적인 이유로”, 또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임했다고 발표하는 식이죠. 이어 언론이 추측 기사를 쏟아내면서 쫓겨난 리더의 평판은 더 훼손될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소넨펠트 교수는 함부로 ‘비방 금지 계약’에 서명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회사를 떠난 뒤) 발언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수년 동안 실업 상태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해 평판을 회복해야 하죠.그런데 이사회가 밝힌 해고 이유에 대해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다면? 그때도 방법은 있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그에 따르면 “대중은 종종 진정한 회개를 엄청나게 용서합니다.”평판 지키기 못지않게 중요한 건 자신의 실패에 직면해서 인정하는 겁니다. 과거 실패에 연연해 분노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란 뜻이죠. ‘월가의 황제’ JP모건 CEO 제이미 다이먼은 이를 잘 해낸 모범사례입니다. 1998년 씨티그룹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다이먼은 자신의 멘토였던 샌디 웨일 씨티그룹 회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실직 시절 그는 위대한 국가 지도자들의 전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하죠. 그리고 해고된 지 1년 뒤 샌디 웨일 회장을 점심식사에 초대합니다. 왜?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요. “나는 이 사건을 뒤로 하고 계속 나아가길 원했다”는 게 그의 회고입니다. 2000년 다이먼은 뱅크 원 은행의 CEO로 화려하게 돌아왔고요. 뱅크 원이 JP모건과 합병하면서 2005년 JP모건 CEO에 오릅니다.소넨펠드 교수는 반격을 위해선 다른 사람들을 전투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조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있는 ‘영웅적인 지위’를 추구해야 합니다. 다시 조직을 만들고, 이끌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라는 거죠. 마치 잡스가 그랬듯이 말이죠.그는 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재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죠. 주 이란 대사관의 인질을 제때 석방시키지 못한 ‘실패한 대통령’이란 낙인도 찍혔습니다. 하지만 아내 로잘린의 열렬한 지원을 받아 사람들을 모집했고, 1982년 ‘카터 센터’를 세웁니다. 그리고 국제 분쟁 조정과 민주주의·인권 증진에서 역할을 하죠. 이 공로로 그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영웅적인 리더’가 아니라서 이런 조언이 딱히 와닿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소넨펠드 교수의 마지막 당부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모두가 패배하더라도 삶에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그것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의 희망과 자부심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유명한 기업의 리더가 이사회에 의해 해고되는 사례는 찾아보면 꽤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내쫓기는 창업자 스토리는 큰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스타 창업자도 사업이 실패하거나 경영 판단에 오류가 있으면 잘릴 수 있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 야후 창업자 제리 양도 그렇게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경영 능력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빗는 것 역시 해고의 빌미가 됩니다.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은 여성 비하적 발언으로 자리를 잃었습니다. -해고 이후 오히려 더 대단해진 리더들도 있긴 하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시 영웅적으로 돌아오려면 평판을 지키고 사람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자신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 스스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유명한 창업자라 해도 이사회가 나서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 한국에선 낯선 일이지만 미국에선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오픈AI 이사회가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을 해고한 것이 가장 최근 사례. 해고 이유는 경영 능력 부족과 주주 반발, 부적절한 언행 등 다양하지만 이사회가 돌아서면 창업자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CEO에서 쫓겨난 스타 창업자들 원조 ‘미스터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가 아닌 마틴 에버하드다. 2003년 테슬라를 공동 창업한 에버하드는 초대 CEO를 맡아 첫 번째 차량인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 개발을 이끌었다. 2004년 테슬라에 투자한 머스크는 이사회 의장에 머물렀다. 열정 넘치는 괴짜 에버하드는 언론이 주목하는 스타 CEO였다. 2006년 테슬라가 10만 달러짜리 로드스터 시제품을 공개하자 100대의 사전 주문 물량은 동났다. 에버하드는 2007년 초 차량을 고객에게 인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생산 계획은 삐걱거렸다. 테슬라엔 수백 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망을 관리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드스터 출시 일정은 계속 지연됐다. 그해 여름, 에버하드는 로드스터 생산 지연에 책임을 지고 CEO직에서 해고된다. 쫓겨날 때 그의 보유 지분은 5% 미만. 그는 “사람들 생각과 달리 억만장자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1990년대 닷컴 시대 상징인 야후 공동 창업자 제리 양은 경영 판단의 문제를 이유로 CEO에서 잘렸다. 2000년대 들어 야후는 구글의 공세에 크게 밀리던 상황. 이런 야후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2008년 놀라운 제안을 내놓는다. 시장 가치보다 62% 비싼 주당 31달러, 총 446억 달러에 야후를 인수하겠다고 한 것. 하지만 야후를 팔 생각이 없었던 제리 양은 이를 거절했다. 몇 달 만에 주가는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제리 양은 여러 건의 주주 소송에 직면한다. 2009년 1월 제리 양은 결국 CEO 자리를 내려놓는다. 훗날 인터뷰에서 제리 양은 “야후가 투자해둔 중국 알리바바 지분 가치가 엄청나게 커질 걸 알았기 때문에” MS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야후를 떠난 뒤 그는 투자회사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 부적절한 언행도 내쫓기는 이유 회사 실적엔 아무 문제가 없어도 축출당하는 창업자도 있다. 주로 부적절한 언행 때문이다. ‘요가복계의 샤넬’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은 여성 비하 발언으로 회장직을 잃었다. 윌슨은 운동과 여가를 합친 ‘애슬레저’ 트렌드의 창시자다. 1998년 설립된 룰루레몬은 ‘100달러짜리 레깅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윌슨은 독특한 조직문화에 대한 고집으로 경영진, 이사회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아동노동에 찬성하고, “일본인이 L 발음을 못 해서” 회사 이름을 룰루레몬으로 지었다고 말하는 등 망언도 잦았다. 2013년 룰루레몬의 검은색 요가 바지가 너무 속이 훤히 비쳐 보인다는 이유로 소비자 반품이 줄을 이었다. 그러자 윌슨 회장은 TV 인터뷰에서 “솔직히 일부 여성의 신체는 (요가) 바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소비자 몸매 탓을 했다. 이 일로 그는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지난해 낸 회고록에서 윌슨은 자신이 실적주의에 사로잡힌 이사회의 희생양이 됐다고 변명했다. 여전히 룰루레몬의 개인 최대주주(지분 8%)인 그는 순자산 62억 달러의 부자다.● 해고 후 더 위대해진 창업자 쫓겨난 창업자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인물은 역시 스티브 잡스다. 1976년 애플을 공동 창업한 잡스는 1985년 이사회 익명 투표를 거쳐 해고당한다. 해고의 이유는 잡스가 주도한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형편없이 부진한 실적이었다. 잡스의 완벽주의로 인해 첫 번째 맥 컴퓨터 가격은 2500달러로 책정됐고, 판매량은 예측치의 10%에 그쳤다. 잡스는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에 다른 직원을 탓했다. 갈등 끝에 존 스컬리 CEO는 이사회를 소집하고 잡스의 해임안을 상정한다. 잡스 본인이 영입했던 CEO에 의해 쫓겨난 것이다. 잡스는 해고된 직후 유럽 여행으로 마음을 다잡고 또 다른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했다. 이후 1996년 12월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다시 애플로 돌아온다. 훗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한 유명한 연설에서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다. 성공의 무거움이 다시 초보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다.” 기업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과거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쫓겨난 리더가 재기하려면 먼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분석한다. 잡스를 그 모범 사례로 꼽았다. 아울러 △대중적 평판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지지를 구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영웅적 지위’를 추구하라고 덧붙였다. “누구도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할 수 없고, 오직 우리만이 그것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게 소넨펠드 교수의 조언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에 다시 인공지능(AI) 바람이 불어옵니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주가 상승에 힘입어 증시 랠리가 이어졌죠. 20일(현지시간) 다우지수 +0.58%, S&P500 +0.74%, 나스닥지수 +1.13%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엔비디아는 21일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죠. 월스트리트는 분기 매출 162억 달러, 이익 72억 달러를 예상하는데요. 특히 엔비디아가 지난 20개 분기 중 19분기에서 예상을 웃돈 실적을 내놨기 때문에 실적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습니다.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2.28% 올라 사상 최고치인 504.2달러로 마감했는데요.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날 시장에선 엔비디아 주가 510달러, 또는 550달러에 베팅하는 콜옵션이 활발하게 거래됐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목표주가도 현재가보다 약 30% 높은 655.6달러입니다. 다들 ‘가즈아’를 외치는 분위기로군요.19일 밤 MS는 오픈AI에서 축출된 샘 올트먼을 채용한다고 발표했죠. 투자자들이 이 소식에 열광하면서 20일 주가가 2.05% 뛰었습니다.샘 올트먼은 17일 갑작스레 해고된 뒤 오픈AI로 복귀를 위해 협상을 시도했는데요. 이 제안이 무산되자 MS가 올트먼을 고용해 새로운 첨단 AI 연구팀을 맡기겠다고 한 겁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오픈AI 직원 약 770명 중 700명 이상이 ‘샘 올트먼을 복권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그만두겠다’는 성명에 동참했다는데요. 만약 이런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않으면 오픈AI를 떠나 MS가 새로 만들 올트먼 팀에 합류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MS가 이직을 보장해주기로 했다는 점도 공개했죠.MS로서는 샘 올트먼이 오픈AI에서 쫓겨난 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요. 오픈AI 입장에선 직원 대다수가 실제로 떠나면 회사 자체가 문 닫을 판이죠. 이사회가 직원 성명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관심거리입니다.오픈AI 이사회는 여전히 샘 올트먼이 해고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죠. 오픈AI의 임시 CEO를 맡은 에멧 시어는 “이사회는 안전에 대한 의견 불일치 때문에 샘을 해임하지 않았다”고만 설명합니다. 언론에서 추측하는 AI 안전성이냐 수익성이냐 하는 논쟁이 핵심이 아니라는 건데요.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오픈AI 스토리. 다음엔 또 어떤 반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넓은 책상, 세련된 인테리어, 쾌적한 네트워킹 공간, 고급스런 조명과 편안한 의자, 충분한 간식까지. 사무직 근로자라면 누구나 이런 사무실을 꿈꿉니다. ‘출근하고 싶어지는 사무실’이라는 로망이 있죠. 하지만 현실에선 사무실이 닭장이나 감옥처럼 느껴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좋은 사무실→업무 집중력·효율성 향상→생산성 증대’는 공식입니다. 비용 때문에 또는 기존 관성 때문에 이를 이루기 어려울 뿐이죠. 그래도 최근엔 사무 공간의 변화를 꾀하는 기업들이 국내에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데요. 사무실 공간기획 전문가인 이재홍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코리아 상무를 만나, 좋은 사무실이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내 자리’ 없어져도 만족도 큰 이유 서울의 주요 업무권역엔 비는 사무실이 거의 없습니다. 서울 A급 오피스빌딩 평균 공실률은 꾸준히 하락해 9월엔 2.2%에 그쳤죠. 당분간 새로 지어질 건물도 많지 않아 새 사무실 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기업의 고민이 시작됩니다.“기업들은 ‘우리는 계속 성장하는데, 과연 지금 공간을 재계약하는 게 맞나’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기 위해 저희한테 문의해오죠.”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쿠시먼) 고객사인 로레알코리아가 이런 경우였습니다.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사무실 임대 만료를 앞두고 재계약할지, 이사할지를 고민했죠. 결과적으론 기존 사무실을 재임대하면서 공간을 완전히 새롭게 바꿨습니다. 지정좌석이 아닌 자율좌석제의 ‘스마트 오피스’로 변신시켰죠.자율좌석제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로레알이 업무 특성에 따라 최대 주 2회 재택근무가 가능한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출근하는 목적이 주로 개인 업무보다는 콜라보레이션에 있었죠. 기존 지정좌석제일 땐 책상이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비좁았습니다. 자료나 샘플 박스가 공간을 차지했고, 미팅공간은 적었습니다. 그래서 쿠시먼은 개인 업무용 좌석을 줄이는 대신 책상 간격을 시원하게 넓히도록 공간을 설계합니다. 캐주얼 미팅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여러 크기의 회의실은 대폭 늘렸죠. 올해 7월 입주 뒤 로레알코리아 직원들의 새 사무공간에 대한 만족도와 이용도 모두 높다는데요.그런데 궁금합니다. 자율좌석제는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건데, 그래도 괜찮을까요. 이재홍 상무는 “단순히 공간 활용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자율좌석제를 도입하면 직원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100명 중 60명만 출근하니까 자리를 100개에서 70개로 줄이자’라는 식은 곤란하죠. 직원들 입장에선 잃는 것(내 자리)만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리를 잃는 대신 내가 이용할 공간이 훨씬 더 많아진다면, 만족도는 높아집니다. 내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자리가 많아지는 거죠.”업무 스타일에 맞춰 자율좌석제를 도입하는 기업은 늘고 있습니다. 도요타코리아는 지난해 강남에서 을지로 센터원으로 사옥을 옮기면서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는데요. 주로 영업직이 많다 보니 자리에 앉아서 일하기보다는 회의나 미팅을 하러 회사에 온다는 점을 반영했습니다. 기존보다 면적이 60% 줄었지만 좌석 간격은 확 넓어졌는데요.이 상무는 자율좌석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유가 선택권에 있다고 봅니다. ‘내가 일할 곳은 내가 선택한다’는 거죠.“그 전엔 회사가 직원이 일할 곳을 선택했습니다. ‘넌 임원이 되면 방을 가질 수 있어. 넌 막내니까 복도 자리에 앉아. 미팅은 여기서 해. 휴식은 밖에서 해’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사람마다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다르거든요. 조용한 곳에서 잘 되는 사람도 있고, 화이트 노이즈가 있는 데서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자율좌석제에선 직원이 자기가 일할 공간을 선택한다는 점이 가장 다릅니다.”너무 큰 임원실의 문제이 상무는 국내 대기업 사무공간의 특이점 중 하나로 임원실을 꼽습니다. 임원실이 상당히 큰 기업이 많죠. 국내 일부 대형 은행의 경우 본부장은 10평, 부문장은 15평으로 정해져 있다는데요. 대형 로펌 변호사 사무실이 2.5~3평, 외국계 금융사 CEO 방도 4평 이하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 큽니다.“국내 한 금융사의 경우 임원 수는 전체의 5%도 안 되는데, 임원실이 사무실 면적의 20%를 차지하더라고요. 전체적으로는 임직원 1인당 면적이 3평이 넘게 나오지만, 실제론 업무공간이 너무 좁았죠. 사실 직원의 생산성을 높여야 임원도 성과를 내니까, 임원실을 줄여서 생산성을 위한 공간으로 되돌리는 게 맞을 텐데요. 그런 얘기가 통하지 않는 기업도 있긴 합니다.”그는 “임원실 목적이 기밀유지와 중요한 대화, 직원 미팅인데 그 기능을 위해선 4~5평이면 충분하다”면서 “임원실은 그 2배이면서 직원들 책상은 작고, 공유 공간은 개수대 수준인 기업도 많다”고 덧붙입니다.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아예 임원실을 없애는 경우도 있습니다. 쿠시먼 고객사인 한 외국계 제약사는 전체 직원 수가 190명인데 방을 가진 임원이 45명이나 됐습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모여 이야기 나눌 공간이 너무 적었죠. 그래서 사장 포함해 모든 임원이 방을 없애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결과 전체 공간이 900평에서 600평으로 줄었는데도, 직원 개인 업무공간은 크게 넓어지고 미팅룸도 늘릴 수 있었습니다.사실 이렇게 바꾸기 전엔 부정적 의견 많았습니다. ‘잘 될지 모르겠다’라는 회의적 시각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바꾸고 나서 만족도 평가에서는 평균 점수가 10점 만점에 8점이었습니다.이번에 리모델링을 한 로레알코리아엔 임원실이 여전히 있습니다. 다만 임원이 사용하는 방이긴 하지만 임원이 없을 땐 다른 사람이 와서 미팅을 하는 공간으로 쓰인다는 점이 파격적인데요. “기존과 뭐가 다르냐면 ‘개인화’를 하지 않습니다. 임원이 그 방을 사용은 하지만 자기 가족사진이나 화분 같은 개인 물건을 갖다 놓지 못하죠. 언제든 그 임원이 없을 땐 직원들이 미팅을 할 수 있고요. 만약 임원이 출장을 가거나 하면 직원이 그 방을 예약해서 개인 업무도 할 수 있습니다.”한때 국내 기업에서 임원 방을 없애는 게 유행이었죠. 방 밖으로 나오되 대신 높은 파티션을 쳐서 가리는 식으로요. 이 상무는 “그건 의미 없다. 차라리 방을 만드는 게 낫다”고 잘라 말합니다. 벽만 없앴지 임원이 쓰는 공간을 줄이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직원들이 ‘임원이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나왔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거고요. 국내 기업의 완고한 점 중 하나는 팀장의 자리배치입니다. 팀장이 직원들과 나란히 앉지 않고, T자형으로 앉기를 고집하는 기업이 많죠. 그는 “그건 관리자 입장이 반영된 배치”라고 지적합니다. 직접 눈으로 팀원을 보면서 말로 소통하는 게 익숙한 나이 든 사람들을 위한 자리배치라는 겁니다. 하지만 20~30대 팀원들은 말이나 전화 대신 카카오톡 같은 SNS로 소통합니다. 굳이 얼굴 잘 보이도록 앉을 필요가 없죠. 하지만 임원 방이나 팀장의 특별한 책상 배치가 일종의 ‘보상’이란 생각 때문에 변화는 더딥니다. 직원들도 모르는 공간의 비밀자율좌석제, 스마트 오피스가 모든 기업에 답은 아닙니다. 이 상무는 “사전 분석과 기획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요.사옥 이전을 위해 쿠시먼에 공간기획을 의뢰한 한 대형 게임회사는 지적좌석제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임원 인터뷰와 전 직원 설문조사 결과, 직원 대부분이 평균 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그중 11시간은 개인 자리에 앉아서 일한다고 나왔기 때문이죠. 그는 “자기 자리 없이 매번 앉을 자리를 찾게 하는 게 더 비효율적인 경우”라며 “개인 좌석에서 최대한 편하게 일하도록 하기 위해 이를 더 넓히고 대신 미팅룸은 줄이기로 했다“고 설명합니다.직원 설문은 기획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만 봐선 답을 알 수 없습니다. 직원들이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게 다르기 때문인데요. 이 상무에 따르면 그동안 30여 개 기업의 컨설팅을 진행하면서 직원들에게 ‘생산성 향상을 가장 부족한 시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미팅룸’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피크시간에 미팅룸 점유율이 얼마나 되느냐’를 보면 달랐습니다. 아무리 높아도 60%밖에 되지 않았죠.최근 컨설팅 진행 중인 외국계 IT 기업도 그런 사례입니다. 직원 설문에서 ‘미팅룸이 너무 부족해서 예약을 못 한다’는 응답이 쇄도했는데요. 정작 피크타임 미팅룸 점유율은 43%에 불과했습니다. 왜 그런지 들여다보니 예약 뒤 ‘노쇼’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는데요. 미팅룸을 늘리는 대신, 노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고민 중입니다. 미팅룸이 실제와 달리 부족해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내 눈앞에 보이는 미팅룸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라는 게 이 상무의 설명입니다. 멀리 있는 방이 비어있어도 직원들은 바로 앞에 있는 미팅룸만 본다는 거죠. “물론 전반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미팅룸은 외국계와 비교할 때 현저하게 적은 건 맞습니다. 왜냐면 임원실이 크니까요.”자율좌석제가 잘 맞는 기업이 점점 많아지고, 만족도도 비교적 높다고 하지만 단점은 없을까요. 그가 꼽은 단점은 이겁니다. “신입사원이나 다른 회사에서 이직한 사람이 새로 들어오면 기존 사람과 어울리기가 어렵다.” 자칫 회사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죠. “따라서 자율좌석제에 맞춰 기업이 신규 입사자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더 늘리고, 적응을 돕기 위한 ‘멘토 시스템’ 같은 걸 도입해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공간엔 스토리가 필요하다 좋은 걸 알아도 실행이 어려운 건 보통 돈 때문이죠. 정해진 자리 없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스마트한 사무실을 구축하는 데는 돈이 꽤 많이 듭니다. 이 상무는 “인테리어보다는 돌아다니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IT 네트워크 인프라에 돈이 많이 든다”고 설명합니다. IT 시설 투자비용이 일반 사무실보다 20% 정도 더 들어간다는데요.그래도 기업의 관심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오피스 신규물량이 줄어든 게 한 요인이고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반강제적으로 한 경험 덕분에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최근 이 상무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기 위한 스마트 오피스를 넘어서 직원과 외부인까지 공감할 만한 스토리가 있는 공간 기획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건축·디자인과는 전혀 관련 없는 분야, 예를 들어 광고회사와 강사 출신의 직원들도 영입했다는데요. 사무공간을 기획하는 데 스토리텔링 역량이 풍부한 문과 출신이 필요하다? 무슨 이야기일까요.“기업이 아무리 좋은 공간, 멋진 사무실을 만들어도 스토리가 없으면 직원이나 외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아요. ‘돈 많이 벌었나 보네’, ‘이번에 이익 낸 거 저기 다 들어갔겠구먼’, ‘연봉은 동결인데 왜 이런 데 돈을 쓰지’라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오죠. 아마존이나 애플 같은 기업이 사옥을 지을 때 반드시 기업 철학과 연결해 스토리를 만들어가려는 이유도 그래서이죠. 스토리가 있으면 그 공간을 사람들이 궁금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부동산 업계가 숫자에 집중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토리의 중요성이 부각될 거라고 봅니다.” By.딥다이브공간에 대한 갈망 때문일까요. 사람들은 ‘남이 어떤 집에서 사나’ 못지 않게 ‘남이 어떤 사무실에서 일하나’를 참 궁금해합니다. 기사엔 로레알코리아와 도요타코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 이름은 공개할 수 없어서 그 점이 좀 아쉽네요. 인터뷰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서울 주요 업무권역에 빈 사무실이 없습니다. 사무실 부족현상 때문에 기업들의 공간에 대한 고민이 커졌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있나’를 분석해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기업들이 많아진 이유입니다. -최근엔 지정좌석을 없애고 자율좌석제로 바꾸는 기업이 많습니다. ‘자기 자리’는 없어지지만 대신 더 쾌적하고 다양한 공간이 늘어나는 데다, 내가 일할 곳은 내가 정하는 선택권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대체로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사무실을 좁고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너무 넓은 임원실입니다. 임원실은 두되, 공간은 줄이고 ‘개인화’하지 않아서 언제든 다른 직원이 미팅룸으로 이용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스마트 오피스로의 전환엔 투자비가 꽤 듭니다. 하지만 원격근무 경험이 쌓인 덕분에 기업의 관심은 커지고 있죠. 앞으론 더 나아가 공간에 스토리까지 입히는 기업이 더 많아질 겁니다.*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연준의 금리인하가 이제 끝났다는 확신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증시는 데이터를 주시하며 일단 숨고르기에 나섰습니다. 16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13% 하락, S&P500과 나스닥은 각각 0.12%와 0.07%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습니다.이날 발표된 미국의 11월 둘째 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3만1000건. 전망치(22만2000건)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거의 2년 만에 최고치로 증가했는데요. 올 5월 3.4%였던 실업률도 조금씩 올라서 10월엔 4%를 코앞에 둔 3.9%를 기록했습니다. 그동안 뜨거운 고용시장은 연준이 고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혔죠. 고용시장이 냉각되고 있다는 건 연준 의도대로 고금리 약발이 먹히고 있다는 뜻인데요. 해리스파이낸셜그룹의 제이미 콕스는 블룸버그에 “통화정책의 지연이 경제를 따라잡았다”면서 “이제 싸움은 인플레이션에서 경기침체 방지로 옮겨가고 있다. 금리인하는 생각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이날 월마트의 실적발표도 같은 메시지를 줬습니다. 월마트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냈지만 향후 순이익 전망을 낮추면서 이날 주가가 8% 넘게 빠졌는데요. 특히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가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디플레이션’을 언급했다는 점이 주목받았습니다. 그는 “미국은 앞으로 몇 달간 디플레이션 기간을 헤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죠. 특히 건조식품(통조림, 파스타 등)이나 소모품(치약 등)을 중심으로 몇 달 안에 월마트에서 파는 제품가격이 하락할 거라는 전망입니다.지난 1년 내내 인플레이션, 가격 인상 이야기만 듣다가 갑자기 디플레이션 전망이 나오니 어리둥절한데요. 이런 변화로 인해 타격을 입는 업체는 월마트가 아닐 거란 분석도 함께 나옵니다. 월마트의 특장점이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인데요. 글로벌데이터의 닐 사운더스 애널리스트는 “미국인들은 여전히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고, 많은 사람이 월마트로 눈을 돌린다”고 말하죠.이날 국제유가는 급락했습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WTI(서부텍사스산원유)는 전날보다 4.9% 하락한 배럴당 72.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7월 6일 이후 4개월 만에 최저치입니다.글로벌 성장 둔화로 수요가 줄어들 거란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인데요. 원유 공급량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충분합니다. 15일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재고는 지난주 360만 배럴 증가했는데요. 이는 로이터 전망치(180만 배럴 증가)를 크게 웃돈 수치였죠.주요 산유국으로 구성된 OPEC+는 이달 말 회의에서 감산 연장 여부를 결정할 텐데요.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올해 감산을 연장하더라도 2024년 초엔 석유 시장이 공급과잉으로 돌아설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미국·가이아나·브라질 같은 OPEC+가 아닌 지역의 석유 공급이 계속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브라질은 2029년까지 세계 4위 산유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물가와 유가, 모두 흐름의 변화가 감지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요즘 애들은 도대체 왜 이래?”이런 이야기 들은 적, 또는 해본 적 있나요? 아니면 혹시 본인이 ‘요즘 애들’ 당사자인가요?주변에 부쩍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많아진 걸 보면서 나이듦을 실감합니다. 왜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그렇게도 미워할까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요? 객관적으로 요즘 애들은 문제가 있다고요? 글쎄요. 심리학 연구 결과는 좀 다르게 나오는데요. 오늘은 ‘요즘 애들 효과(Kids these days effect)’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는 한탄 요즘 애들은 늘 어딘가 부족했습니다. 언제부터?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624년부터요. 고대 그리스 교육자들이 당시 아이들의 “사치, 나쁜 매너, 권위에 대한 경멸, 연장자에 대한 무례, 운동 대신 수다를 좋아하는 것”을 걱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죠.나이 든 어른들의 젊은이에 대한 불평불만은 놀랍도록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면.젊은이들은 자신감이 넘치면서 교만합니다.“그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그것에 대해 확신한다.” “(청년들은) 아직 삶의 겸손함을 경험하지 못했고, 환경의 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만하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돈을 허투루 쓰죠.“수염 없는 청년은 무엇이 쓸모 있을지 모르고 돈을 낭비한다.”(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 시인 호레이스, ‘시의 예술: 피소스에게 보낸 서신’)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줄 모르고“위원장은 젊은이들의 영어 문제를 언급하면서 많은 젊은이가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하거나 전달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1938년 영국 글로스터시티즌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 현대 젊은이들의 실패’ 기사)게으릅니다.“요즘 젊은이들은 걷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동으로 버스를 탄다.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걷기의 미래는 암울하다.”(1951년 영국 포커크헤럴드의 ‘스코틀랜드 통행권’ 기사)성년이 되어서도 미성숙하죠.“몸은 다 자랐으나 어른 노릇을 못 하는 청소년, 그들의 갈등은 과연 ‘새로운 종’의 문제라고 부를 만하다. 우리는 청소년의 성년화를 남들보다 더욱 유예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심지어 성년을 훨씬 넘은 젊은이들이 겨루는 사법시험과 행정고시의 터전에까지도 어버이들의 물결은 넘실댄다.”(1986년 동아일보 ‘횡설수설’)불평불만이 너무 많은데다“이 세대가 이전 세대와 정말 다른 점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그렇게 잘 사는데도 그것에 대해 그렇게 씁쓸하게 불평하는 세대라는 것이다.”(1993년 워싱턴포스트 ‘지루한 20년대’ 기사)기대치가 너무 높습니다.“그들은 ‘지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 낮은 수준의 일자리’를 피하고 싶어 한다.”(1995년 파이낸셜타임스 ‘X세대를 만나보세요’ 기사)물질 만능주의적 성향이 뚜렷한데“강남에 사는 청소년일수록 특이한 옷차림을 해 시선이 집중되면 만족감을 느끼는 과시소비 성향이 높았다. 돈이 부족하면 친구에게서 빌려서라도 사는 소비집착 성향을 나타냈다.”(1997년 동아일보 ‘소비생활연구원 설문조사 청소년 고가 외제품 선호 위험수위’ 기사)현대 기술로 인해 결정하기를 점점 어려워하죠.“그들은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오락을 갈망하지만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TV 리모컨을 한번 누르는 것만큼 짧다.”(2001년 타임 ‘주의를 기울여 진행하기’ 기사)2013년 타임지는 ‘The ME ME ME GENERATION’이란 제목의 표지기사를 실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를 ‘아직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게으른 나르시시스트’로 묘사하는 내용이었는데요.이를 보고 많은 이들이 37년 전인 1976년 8월의 뉴욕매거진의 표지기사를 떠올렸습니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 톰 울프가 쓴 ‘The Me Decade’라는 기사였는데요. 1970년대 당시 20대였던 베이비붐 세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우스꽝스럽고 자기중심적이며 버릇없는 세대’라는 게 톰 울프(당시 만 45세)의 주장이었습니다.종합하자면 언제나 요즘 애들은 암울했습니다. 적어도 수천 년 동안 나이 든 세대는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도 바뀌지만, 변치 않는 게 있다면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에 대해 불평한다는 사실이죠. 왜 그런 걸까요. 혹시 인류가 정말로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 걸까요? 애들이 아니라 기억력이 문제다이에 관한 실험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존 프로츠코 UC산타바바라 연구원의 2019년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게재한 논문 ‘요즘 아이들: 요즘 젊은이들이 부족해 보이는 이유’인데요.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젊은 세대를 폄하하는 건 잘못된 기억과 편견의 결과일 뿐입니다. 즉, 문제가 있는 건 요즘 애들이 아니라 나이 든 이의 기억력입니다.프로츠코 박사는 미국에 사는 성인 3458명(33~51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권위에 대한 존중(권위주의), 지능(IQ), 독서 즐기기라는 세 가지 특성을 제시하고 요즘 아이들의 점수를 매기도록 했습니다. 세가지 영역에서 젊은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부족한지, 나은지를 평가하게 한 거죠. 그 결과는 상당히 뚜렷했는데요.어른들은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분야일수록 요즘 젊은이들이 부족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즉 권위주의적인 사람은 요즘 젊은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어른을 덜 존경한다고 평가했죠. IQ가 높은 사람일수록 젊은이들이 예전보다 덜 똑똑하다고 생각했고요. 스스로 책을 잘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과거보다 독서를 덜 좋아한다고 응답합니다.눈에 띄는 건 이 효과가 특성별로 구분돼 나타났다는 점인데요. 책을 잘 읽는 어른이라고 해서 젊은이가 어른을 덜 존경한다고 보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어떤 영역에 탁월한 사람일수록 그 영역에 한해 젊은이들에게 유독 야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사실 이 결과는 좀 놀라웠는데요. 왜냐하면 다른 건 몰라도 지능만큼은 객관적인 기록상으로도 ‘요즘 아이들이 더 IQ가 높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미국은 10년마다 3포인트 상승). 하지만 정작 지능지수가 좋은 똑똑한 어른들은 이를 부정했죠.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요. 프로츠코 박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세대를 거쳐 계속해서 발생하는 ‘기억력 틱’입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기억에 투영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쇠퇴’가 너무나 명백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겐 과거 아이들이 어땠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가 거의 없습니다.”우리는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 과거의 자신과 동 세대 친구들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죠. 그래서 과거 아이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할 때, 그 공백을 현재의 정보로 메웁니다. 그때 보통 자기자신의 정보를 이용하죠. 이른바 ‘현재주의(Presentism, 기억할 때 현재의 조각을 가져다가 과거 기억 속에 넣음)’라고 부르는 편견인데요. ‘내가 지금 책을 많이 읽는 건 어린 시절에 나를 포함한 과거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자신이 뛰어난 분야가 있으면, 그와 관련해 같은 세대 아이들에 대해 더 관대하게 평가하는 거죠.못 믿으시겠다고요? 그래서 프로츠코 박사는 또 다른 실험도 했습니다. 어른들에게 ‘읽기 테스트’를 진행했는데요. 그중 일부는 실제 결과와 다르게 ‘당신의 읽기 능력은 전국 인구의 하위 3분의 1에 속한다’는 거짓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에게 요즘 아이들의 독서 능력을 평가해달라고 했죠. 그 결과, 나쁜 평가를 받은 성인들은 요즘 아이들을 훨씬 좋게 평가했습니다. 자신이 책을 잘 읽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과거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죠.이 연구가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요. ‘요즘 애들은 생각보다 훌륭하다’는 게 아닙니다. 기억 편향 때문에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은 부족하다고 여기는 현상, 즉 ‘요즘 애들 효과’가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란 게 결론입니다. 프로츠코 박사 말대로 “밀레니얼 세대도 아이들에 대해 똑같은 불평을 하게 될 거고, 이는 1000년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세대주의와 영이즘의 위험성‘에이지즘(ageism)’이라는 말이 있죠. 연령, 특히 노인에 대한 차별을 일컫는 말인데요. 그 반대가 ‘영이즘(Youngism)’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고정관념을 이유로 젊은이도 연령차별을 받고 있다는 거죠. 다만 아직 에이지즘에 비해 영이즘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무슨 젊은이가 연령차별이냐고요?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영이즘’은 존재하고, 이는 사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스테판 프란시올리 뉴욕대학교 MBA 교수가 2021년 논문(영이즘: 젊은 성인에 대한 편견의 내용, 원인 및 결과)에서 이를 다뤘는데요. 그에 따르면 젊은 세대에 대한 불리한 고정관념 때문에 더 가혹한 사회적 판단을 겪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죠. 24세 이하의 젊은 근로자는 경기침체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결론입니다.어쩌면 젊은이들에 대한 고정관념에 일말의 진실이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나쁜 일일까요. 발달심리학자인 UC데이비스의 칼리 트레츠니우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르시시즘은 청년기에 더 높은 게 발달 측면에서 타당합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서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좀 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그럼 어디까지가 편견이고, 어디까지는 사실이며, 어느 부분은 세대 불문 모든 인간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일까요. 그걸 알아낼 수 있는 연구는 아쉽게도 아직 없습니다. 코호트 효과(특정연도 출생)와 기간 효과(모든 이에게 영향 미치는 역사적 순간), 연령 효과(나이듦으로 인한 자연스런 변화)를 각각 분리해서 분석하려면 상당히 방대한 데이터와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할 겁니다.현재로선 ‘세대주의’는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다소 위험합니다. 코트 루돌프 세인트루이스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특정 세대의 모든 구성원이 해당 세대의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세대주의 함정’을 피해야 합니다. 복잡한 사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단순한 세대 개념에 의존하는 것은 그만둬야 합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여기까지 읽은 X세대들의 불평이 들리는 듯한데요. 몇 가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겠습니다. 여러 데이터에 따르면 오늘날의 젊은 층은 이전 세대보다 더 건전하고 문제를 덜 일으킵니다.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조사에 따르면 요즘 10대는 예전보다 담배를 덜 피우고, 술을 덜 마시고, 임신을 덜 하고, 싸움도 덜 하고, 일반적으로 문제행동을 덜 겪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10대의 섹스는 수십 년에 걸쳐 감소했죠. 30년 전엔 미국 10대 중 약 절반이 성 경험이 있었지만, 2021년엔 이 비율이 30%로 줄었습니다. 10대 임신율은 X세대가 어렸을 때보다 77% 감소했고요. UCLA 연구에 따르면 이전보다 파티에 덜 참여하고 학업에 더 집중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덜 놀고 더 열심히 공부하죠.미국의 특수한 상황이라고요? 한국엔 30년 치까진 아니지만 비슷한 통계가 2005년부터 나와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 13.3%였던 청소년 흡연율은 지난해 4.5%로 드라마틱하게 떨어졌습니다. 술도 마찬가지이죠. 2006년 28.6%였던 청소년 음주율은 지난해 13%를 기록했습니다. 이 얼마나 착한 아이들입니까.물론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가 이전보다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띕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대학 진학이 늘어난 게 주요 이유이거든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의 낸시 힐 교수는 1940~1970년대 대학생들의 인터뷰 기록을 발굴해 책으로 냈는데요. 그는 “오늘날 대학생들의 불안과 외로움이 그들의 조부모인 1970년대 대학생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합니다. “우리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제 60대와 70대가 되었고 그들의 삶은 괜찮아졌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주세요.”그래서 결론은? 다행히 요즘 아이들은 괜찮아 보입니다. 적어도 이전 세대보다 더 나빠졌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요즘 아이들은 미래 어느 날, 아마 2050년쯤이 되면 ‘요즘 애들은 이상하다’고 불평할 겁니다. 이는 반복되는 운명이니까요. By.딥다이브“우리의 부모는 조부모보다 나빴다. 그들의 아들인 우리는 그들보다 무가치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더 타락한 자손을 남기게 될 것이다.” 호레이스가 기원 전 20년에 쓴 오디세이아의 한 구절입니다. 이 무서운 이야기가 현실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기원 전 624년부터 ‘요즘 아이들이 문제’라는 기성세대의 불만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언제나 나이 든 어른이 보기에 요즘 아이들은 게으르고, 자기 중심적이며, 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혔습니다.-하지만 이는 잘못된 기억과 편견의 결과입니다. 나이 든 사람은 어릴 적 또래가 어떠했는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재 자신을 기준으로 요즘 아이들을 평가하곤 합니다. 그 결과 객관적 근거 없이 요즘 세대가 쇠퇴하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청년에 대한 고정관념은 ‘영이즘’으로 이어집니다. 편견 때문에 이들은 더 가혹한 사회적 판단을 받곤 합니다.-여러 데이터는 요즘 아이들이 오히려 과거 세대보다 문제를 덜 일으킨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행히도 요즘 애들한테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들도 더 나이 들면 그 시대 아이들에 대해 불평하게 되겠죠.*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하루 앞둔 뉴욕증시가 보합세로 마감했습니다. 13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16% 상승 마감했고요. S&P500은 -0.08%, 나스닥 지수는 -0.22%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10일 발표된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전망 하향 조정(안정적→부정적)은 증시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죠. 이보다는 이번 주 나올 인플레이션 데이터와 연방준비제도 이사들의 발언 내용에 관심이 집중되는데요.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14일의 10월 CPI 발표입니다. 블룸버그 설문에 따르면 월가에선 9월 3.7%였던 CPI 상승률이 10월엔 3.3%로 둔화할 걸로 기대하는데요. 도이치뱅크의 짐 리드 연구원은 “컨센서스는 연준 인플레이션과 싸움에서 거의 승리했다는 걸 시사하며, 시장은 확실히 (연준의) 비둘기파적인 전환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CPI 발표를 앞두고 반가운 소식도 나왔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13일 미국 소비자의 기대 인플레이션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3.7%→3.6%)과 5년 기대 인플레이션(2.8%→2.7%)이 모두 전달보다 소폭 하락했습니다.이번주는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와 대표적인 소매업체 타겟, 홈디포의 실적 발표도 예정돼있습니다. 15일엔 10월 소매판매 지표도 발표되고요. 미국 경제의 소비력을 가늠할 수 있을 텐데요. 머피앤실베스트자산운용의 폴 놀테는 “소매판매 데이터를 통해 연휴 시즌을 앞두고 있는 소비자의 기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보잉입니다. 보잉 주가는 에미레이트항공과 무려 52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구매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에 이날 4%나 상승했습니다. 보잉의 777X 모델 90대와 787 5대를 구매한다고 하죠. 보잉은 이날 두바이 에어쇼에서 다른 항공사로부터도 연이어 주문을 따냈는데요. 보잉의 커머셜 책임자인 스탠 딜은 이러한 주문 흐름에 대해 “아직 (주문이) 끝나지 않았다”면서 “엄청나게 큰 규모”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워낙 큰 주문량이어서 벌써부터 이 모든 항공기가 제시간에 인도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나오긴 하는데요. 그렇다 해도 보잉엔 또다른 좋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릴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의 회담이 열릴 예정인데요. 중국 최근 양국 간 해빙 신호로 보잉 제트기 구매동결 해제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위워크가 6일 공식적으로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위워크의 화려한 몰락기는 이미 전해드렸는데요(). 위워크를 이야기할 때 자동으로 같이 거론되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손정의(손 마사요시)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그 엄청난 스케일만큼이나 남다른 투자 실패 리스트로 유명합니다. 위워크는 그 실패 중에서도 정점이라 할 수 있죠. 위워크 파산을 계기로 소프트뱅크의 과거 투자 기록을 들여다봤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왜 실패했는지도 살펴보시죠. *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위워크 투자는 인생의 오점”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9일 상반기(4~9월)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적자 규모가 무려 1조4087억엔(약 12조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290억엔)보다 엄청나게 불어났는데요. 자회사 ARM 상장으로 회계기준이 바뀐 영향이 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사업은 9월 말 기준으로 총 누적 투자손실 규모가 73억 달러(약 9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그동안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은 총 475곳. 이 중 74%인 354개 사가 투자시점보다 기업가치가 하락했죠.언론의 관심은 위워크 파산으로 소프트뱅크그룹이 날리게 될 돈이 총 얼마나 되느냐에 쏠렸는데요. 고코 요코미츠 최고재무책임자(CIO)는 주식과 부채를 합친 위워크 투자액이 143억 달러(약 18조8000억원)라고 밝혔습니다. 이 손실의 상당 부분을 이미 회계에 반영했고, 나머지는 이번 분기(10~12월)에 모두 반영할 거라고 합니다.이미 손정의 회장은 지난 6월 주주총회에서 위워크 투자가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말했죠. “일부 임직원의 충고가 여러 번 있었지만, 위워크에 많은 돈을 쏟아 버렸다”며 투자 실패 책임이 모두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는데요.손정의 회장은 뻔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위워크 창업자 아담 노이먼의 비전을 보고 위워크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시장 분석 보고서보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는 그의 대담하면서도 순진한 투자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이죠. 게다가 위워크가 2019년 IPO에 실패한 뒤에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돈을 더 집어넣었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됐습니다.손 회장이 투자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인데요. 투자자로서 손정의 회장이 왜 실패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좀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20여년 전 그의 첫 번째 대실패 시기로 말이죠. 유례없는 실패와 컴백의 역사‘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잃은 사람’.2000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런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닷컴 버블로 그가 1년 동안 잃은 금액이 무려 700억 달러에 달했기 때문이죠.이에 앞서 소프트뱅크는 1995년 검색포털 야후에 투자해 대박을 냈죠. 이어 온라인 증권거래회사 이트레이드(E-Trade), IT 미디어 지디넷(ZDNet), 미국 온라인 슈퍼마켓 웹밴(Webvan)을 포함해 800개에 달하는 스타트업 지분을 사 모았는데요. 덕분에 기술주 버블이 절정이었던 1999년, 잠시나마(3일) 손정의 회장은 빌 게이츠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얻었습니다. 손 회장은 “그땐 내 개인 순 자산이 매주 100억 달러씩 늘어났다”고 회고했는데요. 그해 말,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2000년 3월 소프트뱅크 주가는 6개월 전의 100분의 1로 폭락합니다. 시가총액의 99%가 증발한 거죠. 손 회장은 “거의 파산할 뻔했다”고 말합니다.하지만 그는 포기 따위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손정의를 잘 아는 사람은 그가 타인에 대한 섬뜩할 정도로 무관심하다고 지적하죠. 일종의 소시오패스 성향인데요. 그래서인지 그는 과거의 실패는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숙합니다. 폭망의 2000년에 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습니다. 중국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를 투자해 최대주주가 된 겁니다. 당시 알리바바는 설립한 지 불과 1년 된 직원 20여 명짜리 회사였죠. 손 회장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을 만난 지 6분 만에 투자를 결정합니다. 사업계획도, 수익성도 없어 보였지만 “그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투자했다고 설명하죠.이 투자로 그는 이전의 실패를 한 방에 만회합니다. 2014년 알리바바가 뉴욕증시에 상장하자 소프트뱅크의 보유지분 가치가 600억 달러로 불어났죠. 전 세계가 ‘알리바바의 기적’이라며 손정의 회장에 열광합니다. 비전펀드라는 원대한 비전이런 성공에 안주하면 손정의가 아닙니다. 만 60세가 되면 은퇴한다던 계획도 취소하고 원대한 구상을 향해 나아가는데요. 세계 최대의 벤처캐피털인 비전펀드(Vision Fund)를 2017년 출범시킵니다. 비전펀드는 규모가 무려 1000억 달러에 달해 투자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동시대 다른 펀드보다 30배나 큰,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니까요.당초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1호의 규모를 300억 달러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중동에 프리젠테이션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목표금액을 1000억 달러로 바꿨죠. “인생은 너무 짧아서 작게 생각할 수 없어”라는 이유였는데요.그의 터무니없고 야심 찬 목표는 통했습니다. 손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45분 동안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45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합니다. ‘1분당 10억 달러’ 짜리 딜이었죠. 사우디뿐 아니라 애플과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까지 합세하면서 비전펀드 1호는 목표금액을 가뿐히 달성합니다.손 회장은 비전펀드 출범부터 줄곧 “우리는 한 가지 테마에 집중한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AI)”이라고 강조합니다. 기술의 진보로 AI가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이 곧 올 거라고 봤기 때문인데요.이를 위해 그가 제시한 투자철학이 이른바 ‘AI 군(群) 전략’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중 AI라는 공통의 테마로 엮을 수 있는 최고의 혁신기업만 골라 투자해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개념이죠. 어떤가요. 꽤 괜찮은 전략처럼 보이지 않나요? 과연 오긴 올까 싶었던 AI시대가 이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걸 보면, 그가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본 셈입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AI를 열심히 외치고도 손 회장은 지금 실패를 맛보고 있을까요. 로봇피자와 개 우버의 실패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AI 군 전략이 통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AI나 기술혁신과는 거리가 먼 기업들에 투자금을 낭비했기 때문이죠.손정의 회장에게 엄청난 액수를 모으는 건 꽤 쉬운 일이었지만 이를 관리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 관리 인력을 수백명으로 확 늘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펀드를 어떻게 운용해나갈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된 방향은 없었죠. 결국 의사결정자는 단 한명, 손 회장이었습니다.물론 그는 야후의 제리 양과 알리바바 마윈의 재능을 알아본 놀라운 직감의 소유자입니다. 하지만 그 감이 늘 맞을 순 없죠. 직원들은 시장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올렸지만 실제 투자 결정은 손 회장의 직감에 의해 좌우됐습니다. 설득력 있는 기업가들은 그를 만나자마자 마음을 사로잡아 수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하곤 했죠. 손 회장 스스로 밝힌 대로 그는 ‘미친놈(crazy guy)’에 투자하길 좋아합니다.그 결과 뭐가 혁신인지 모르겠는 스타트업들이 투자 리스트에 대거 이름을 올립니다. 그 중 대표적인 기업 몇 곳만 소개해드리자면.줌 피자(Zume Pizza)=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피자 브랜드. AI와 빅데이터를 이용해 로봇이 1분에 372개의 피자를 구워내서 4분 30초 안에 갓 구운 피자를 배달해준다는 컨셉이다. 2018년 소프트뱅크에서 3억75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2년 뒤인 2020년 직원 절반을 해고하고 피자 사업을 접었다.브랜드리스(Brandless)=식품이나 미용용품 같은 자체브랜드 제품을 저렴하게(3달러) 판매하는 미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201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2억4000만 달러를 유치했다. 2020년 폐업 뒤 다른 곳에 인수됐다.카테라(Katerra)=실리콘밸리 기반의 건설 스타트업. IT 기술을 활용해 모듈러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어 생산성을 높이는 걸 목표로 했다. 201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두차례에 걸쳐 10억 달러를 투자금으로 받았다. 2021년 파산했다.와그(Wag)=LA에 본사를 둔 주문형 강아지 산책 서비스 기업. 모바일 앱을 통해 개 산책이나 애완동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전문가를 찾아준다. ‘개를 위한 우버’로 불린다. 2018년 소프트뱅크로부터 3억 달러를 유치했다. 이후 소프트뱅크는 투자 손실을 감수하고 지분 전체를 회사 측에 다시 매각했다.물론 아직 운영 중이고, 증시에 상장까지 한 기업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주택담보대출 기업 베터(Better, 5억 달러 투자), 스마트 유리기업 뷰(View, 11억 달러 투자)처럼 상장 후 주가가 형편없이 떨어진 경우도 꽤 있죠. 이에야스를 꿈꾸는 손정의소프트뱅크의 실제 투자 방식은 ‘AI 군 전략’보다는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전략에 가까웠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전격전(Blitzkrieg) 전술에서 따온 개념인데요.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스타트업 규모를 최대한 빨리 키우는 방식이죠. 초기 손실을 감수해서라도 일단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면, 그 뒤엔 승자독식을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요.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의 성장이 이런 블리츠스케일링 성공사례로 설명됩니다.달리 보면 사실상 ‘합법적인 독점’을 추구하는 셈인데요. 문제는 이 방식이 실제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한 기술회사에만 통한다는 겁니다. 마진이 낮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기술회사로 포장한 경우라면, 이렇게 초기에 자본을 쏟아부어 덩치를 키운다 해도 돈을 벌 수 없겠죠. 바로 이 부분에서 왜 손정의 회장의 투자 중 많은 부분(위워크 포함)이 실패로 끝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그것들은 AI 기술 혁신과는 거리가 먼, 돈이 안 되는 사업이었습니다.소프트뱅크는 선택된 기업들에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부었죠. 손 회장은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기업가에겐 요구하는 투자금의 두배, 세배를 제공했습니다. 2022년 비전펀드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뒤 손 회장은 “나 자신이 부끄럽다”면서 “가치평가에 있어 일종의 거품 속에 있었다”고 말했는데요. 사실 그 거품을 만든 게 바로 손 회장 자신이었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프리젠테이션 실력으로 유명하죠. 그가 미래 비전에 대해 쏟아내는 스피치를 들으면 청중들이 홀딱 빠진다고 합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에야스가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막대한 군사적 손실을 입었다는 얘기와 함께 말이죠. 언뜻 보면 이에야스에 빗대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내용인데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누구입니까.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선 패배했지만 전쟁에선 승리하고 천하를 통일한 인물이죠. 손 회장은 이게 끝이 아니고 다시 도약할 거라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올해 들어 손정의 회장은 “10년 안에 AI 혁명을 주도하겠다”면서 다시 공격적인 AI 투자 계획을 연이어 밝히고 있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소프트뱅크그룹의 보유현금은 5조엔, 여기에 이번 ARM의 상장으로 7451억엔이 추가됐습니다. 무엇보다 ARM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를 담보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죠. 지난 9월엔 이스라엘 네트워크 보안업체 카토네트웍스(Cato Networks)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는데요.“세계에서 가장 AI를 잘 활용하는 그룹이 되고 싶다”는 손정의 회장. 과연 무너진 ‘AI 군 전략’을 재건해낼 수 있을까요. 미래를 알 순 없지만 그가 아주 놀라운 회복능력을 보여준 적 있는 투자자인 건 틀림없습니다. By.딥다이브‘작게 생각하지 말라. 온 세상이 바뀔 것이다’. 손정의 회장이 비전펀드 담당 직원들에게 많이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크게 생각해야 큰 성공을 거둔다는 뜻이었을 텐데요. 그만큼 실패의 위험도 엄청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위워크 파산으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 실패가 다시 부각됩니다. 무려 143억 달러의 투자금을 날리게 됐는데요. 그는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말합니다.-손 회장은 2000년 닷컴버블 붕괴로 나락에 떨어졌지만, 곧바로 알리바바 투자로 대박을 친 놀라운 스토리의 주인공입니다. 원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는 2017년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를 출범시켜 투자업계를 놀라게 합니다.-그는 ‘AI 군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최고의 AI 혁신기업을 골라 투자해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이었는데요. 하지만 자신의 직감을 믿고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이 속속 실패로 돌아오고 있습니다.-지난해 “나 자신이 부끄럽다”며 반성했던 손정의 회장. 최근엔 AI 투자 재개를 선언했습니다. 그의 또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요.*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뉴욕증시가 하락 마감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매파적인 발언 영향입니다. 8거래일 연속 이어갔던 S&P500 지수의 상승세도 9일(현지시간)엔 꺾였습니다. 다우지수 -0.65%, S&P500 -0.81%, 나스닥지수 -0.94%.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은 이거였습니다. “인플레이션을 2%로 낮추기 위해 필요한 경우,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 몇 달간의 견조한 지표로 인해 오판할 위험과 과도한 긴축의 위험을 모두 해결하고자 우리는 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하고 있다. 물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은 갈 길이 멀다.” 사실 발언 내용 자체는 원론적인데요. 하지만 지난주 FOMC 이후 ‘이제 금리 인상은 끝났다’고 환호했던 시장엔 찬물을 끼얹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페롤리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확신하는 시장 기대와 비교하면 매파적으로 읽혀진다”면서도 실제 발언 내용은 지난주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LPL파이낸셜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인 퀸시 크로스비는 “시장은 강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과매수 수준에 가까워졌다”며 “파월 의장의 코멘트는 시장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논리적 구실”이라고 말합니다.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디즈니입니다. 이날 시장의 예측보다 좋은 주당 순이익(주당 0.82달러)을 보고하면서 주가가 2020년 이후 가장 큰 폭(6.9%)으로 뛰었는데요. 밥 아이거 CEO는 20억 달러의 비용 삭감을 통해 디즈니를 “새로운 건축의 시대”로 전환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배당금을 지급한다는 계획도 밝혔고요. 디즈니의 테마파크 매출은 31% 증가하며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스트리밍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1억5020만명으로 추정치(1억4740만명)를 웃돌았고요. 주가 급락으로 올해 최악의 날을 기록한 종목도 있습니다. 제약사 일라이릴리 주가가 4.49%나 하락했는데요. FDA가 일라이릴리의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를 비만치료제로 승인했다는 소식이 나오자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이익을 실현한 겁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판’ 거죠. 일라이릴리는 올해 들어 60% 넘게 상승한 인기 있는 주식이었는데요. 주 1회 주사를 맞으면 체중이 최대 22% 감소하는 마운자로에 대한 시장의 높은 기대 때문입니다. 일라이릴리는 올해 안에 미국에서 ‘젭바운드’라는 상품명으로 이 비만치료제를 판매할 예정인데요. 다만 워낙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 전 세계 론칭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탄소중립 바람을 타고 성장했던 해상풍력 발전 시장이 역풍을 맞았다.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대형 해상풍력 개발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됐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고금리·고물가라는 암초에 걸려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해상풍력 프로젝트 줄취소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업체 외르스테드(오스테드)가 1일 미국 뉴저지주 해안에서 진행 중인 2개의 대형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한 손상차손 284억 덴마크 크로네(약 5조3000억 원)를 실적에 반영한다는 소식에 이날 오스테드 주가는 26% 급락했다. 오스테드의 마드스 니페르 최고경영자(CEO)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면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기엔 “상황이 장부에 기록된 것보다 더 나빴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을 뺀 건 오스테드만이 아니다. 경쟁사 바텐팔리(바텐폴)는 7월 영국 북해의 풍력발전 단지 개발을 중단했다. 계속 진행하기보다는 그동안 투입된 55억 스웨덴 크로나(약 6600억 원) 손실을 감수하는 게 낫다고 봤다. 안나 보리 바텐폴 CEO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여파로 LS전선이 바텐폴과 맺었던 2400억 원 규모의 초고압 케이블 공급 계약도 해지됐다. 이베르드롤라는 8월 미국 매사추세츠 해상풍력 프로젝트 계약 철회를 발표하고, 위약금 4800만 달러를 냈다. 입찰 시점인 2021년과 달리 지금은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인플레이션 강풍에 휘청해상풍력 프로젝트 좌초를 불러온 요인은 고금리·고물가이다. 해상풍력은 수주에서 완공까지 7∼8년이 걸리고 사업비도 수조 원대에 달한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보통 부채 비율이 80%에 이른다. 금리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각종 비용이 무섭게 뛰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풍력 터빈 값은 2년 동안 약 40% 올랐다. 타워, 하부구조물, 전력케이블 가격도 인상되고, 인건비도 급등했다. 바텐폴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해상풍력 사업 비용은 40% 급등했다. 공급망 병목현상도 발목을 잡았다. 니페르 CEO는 “장비와 설치용 선박 확보의 심각한 지연에 직면했다”고 프로젝트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오스테드는 바다에서 공사할 해상풍력 전용 설치 선박을 미국 조선소에 주문했지만 제작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공급망 차질은 해상풍력 업계가 자초한 면도 있다. 그동안 풍력터빈 제작사들이 경쟁적으로 터빈 블레이드 크기를 키운 탓에 최신형 블레이드 길이(107m)는 축구장 가로 길이(105m)보다 길어졌다. 그만큼 타워와 하부구조물까지 크고 무거워졌다. 이를 감당할 선박과 항구, 크레인이 모두 부족하다. 컨설팅업체 우드 매켄지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풍력 설치선 중 절반은 최신 터빈 모델을 실을 수 없다. 이제 터빈 크기를 그만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업계는 ‘지원 늘려 달라’ 요구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20년 35GW인 전 세계 해상풍력 누적 설치 용량이 2050년엔 1000GW까지 늘어나야 한다. 최근 수익성 악화로 해상풍력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다. 업계와 환경단체는 해상풍력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 달라고 요청한다. 미국에선 해상풍력 개발사들이 비용 상승분을 반영해 전력 공급 단가를 기존 계약분보다 최대 66% 올려 재협상하자고 나섰다. 또 전체 제품의 20%를 미국산으로 채워야만 세액공제를 해주는 까다로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한다. 영국에서도 해상풍력 전력 가격을 대폭 높여 달라는 업계 요구가 이어진다. 9월 영국 정부는 해상풍력 프로젝트 입찰을 진행했지만, 너무 싼 전력 단가 때문에 지원한 기업이 없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경제 상황을 반영한 풍력산업 지원책을 지난달 발표했다. 계약 입찰 시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해상풍력 회의론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그 괴물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필요로 했고 결국 효과가 없었다”는 글을 올리며 오스테드의 프로젝트 취소를 반겼다. 미국 공화당 측은 주로 유럽 기업에 보조금이 집중되는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대해 부정적이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에 잇달아 악재가 터져 나오면서 국내 풍력 부품 제조사 역시 주가가 급락했다. 실적이 나쁘진 않지만 향후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주영 이베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이은 해상풍력 이슈로 풍력발전 시장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면서도 “각국 정부 주도의 투자가 늘고 있어서 글로벌 풍력발전 시장은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해상풍력 발전육지가 아닌 바다에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 육상풍력 발전보다 소음 민원이 적은 데다 바람이 강하고 안정적이라는 게 장점이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매도. 정부가 일요일인 5일 ‘당장 6일부터 내년 6월까지 공매도 전면금지’를 결정해 시장 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경제 위기가 닥쳐오는 상황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조치데요.세계 주식시장 역사를 살펴보면 ‘공매도 금지’는 사실 수시로 시행되어온 흔한 규제입니다. 그 배경엔 아주 뿌리 깊은 ‘공매도 혐오’ 정서가 깔려있죠. 오늘은 공매도 금지와 혐오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공매도 금지의 오랜 역사주가가 오를 주식을 사서 돈을 벌 수 있다면, 반대로 주가가 떨어질 주식을 파는 방법으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주식시장은 일찌감치 깨쳤죠. 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뒤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싸게 사서 갚는 거래방식, 즉 공매도가 400여 년 전부터 나타나 활개 친 이유입니다.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이 네덜란드에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불과 6년 뒤, 시장을 뒤흔든 공매도 투자자가 나타납니다. 아이삭 르메르(Isaac le Maire). 무역회사인 동인도회사(East Indies Company)를 공동창립했지만 돈 문제로 인해 쫓겨난 인물이었죠. 그는 동인도회사에 복수하는 동시에 큰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다른 투자자와 짜고 동인도회사 주식을 대대적으로 공매도한 겁니다.르메르 일당의 공매도는 비윤리적이었습니다.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거짓 소문을 퍼뜨렸거든요. ‘희망봉 해안 어딘가에서 배가 침몰했다더라’는 식으로요. 어차피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곧바로 확인할 길이 없던 시절입니다. 작전은 먹혔고 주가가 급락했죠.동인도회사는 반격에 나섰습니다. 정부에 공매도를 금지해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죠. 주식시장에 “사악한 관행”이 퍼져있다며 “공매도가 동인도회사 투자자들, 특히 과부와 고아들(당시의 취약계층들)에 매우 큰 손해를 끼친다”고 호소했는데요.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1610년 ‘공매도 금지’를 결정합니다. 세계 증시 역사상 첫 공매도 금지 규제였죠.이후 시장이 불안정해지면 각국 정부는 공매도 탓이라고 보고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우회하는 투자자들 때문에 금지령이 잘 통하지 않았죠. 프랑스는 172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160년 넘게 공매도를 금지했는데요.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공매도가 이 기간 동안 있었습니다. 이에 나폴레옹은 “공매도는 국가의 적”이라며 반역죄로 간주했습니다.미국 증시는 공매도 금지령을 1850년대 해제한 뒤 공매도가 활개를 쳤습니다. 그 중 전설적인 트레이더 제시 리버모어가 있죠. 철도주를 공매도한 리버모어는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1907년 증시 폭락으로 부를 축적하며 월스트리트에 빠르게 유명해졌는데요. 그의 공매도 커리어 절정은 1929년 대공황이었습니다. 추정치에 따르면 그가 당시 공매도로 번 돈이 1억 달러일 거라고 하죠.하지만 이내 역풍이 일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리버모어의 공매도가 주식시장 붕괴와 경제 불황을 초래했다고 믿었습니다. 리버모어는 살해 위협에 시달려 경호원을 고용해야 했죠. 국민의 공매도를 향한 분노가 커지자 허버트 후버 대통령까지 공매도 비난에 나섰습니다. 결국 의회가 나서서 공매도 규제 법안을 만들었죠. 그 결과 1937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업틱룰(uptick rule)을 만들었는데요. 공매도할 때 직전 체결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도할 수 없게 한, 즉 주가 하락 시 공매도를 금지한 겁니다. 업틱룰은 2007년 폐기되기까지 무려 70년 동안 유지됩니다.금지하면 효과가 있긴 한가?공매도 금지론자의 주장은 시장이 불안할 때 공매도가 이를 더 부추긴다는 겁니다. 주가 하락을 더 악화시켜 패닉 매도를 초래할 수 있다는 건데요. 시장이 불안정할 때, 예를 들어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공매도를 일시 금지한 논리도 이거였습니다.그런데 공매도를 금지하면 시장이 정말 안정되는 효과가 있긴 할까요. 이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한 경제학 논문 여러 편이 나와 있는데요. 학계의 결론은 대체로 모입니다.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해서 시장이 안정되거나 주가가 덜 빠지는 건 아니란 겁니다.캐나다 온타리오대학의 안드리 쉬킬코 교수는 2012년 논문에서 하락장에서 가격하락에 공매도도 기여하긴 하지만, 실제 가격하락에 미치는 영향은 공매도가 아닌 일반적인 매매거래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공매도가 주범이 아니라는 거죠.벨코 포탁 버팔로대학 교수의 2014년 논문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공매도가 가격 왜곡을 초래한 증거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특히 그는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가 오히려 유동성을 늘리고 가격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하죠.공매도 금지가 별 소용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13년 영국 카스비즈니스스쿨의 알렉산드로 베버 교수는 금융위기 당시 30개국의 데이터를 취합해 공매도 금지 효과를 평가했는데요. 시가총액이 작고 변동성이 높은 종목의 경우 공매도가 금지되면 유동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게 결론입니다. 특히 미국이 아닌 신흥국 증시는 이런 부작용이 더 크다고 하죠.‘공매도 금지 무용론’을 주장하는 측이 가장 빈번하게 인용하는 건 크리스토퍼 콕스 전 미국 SEC 의장의 발언입니다. 2008년 9월 19일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 금지를 발표했던 당사자이죠. 콕스 의장은 같은 해 12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위원회가 다시는 그런 일(공매도 금지)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비용이 이익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이것은 감정의 문제다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연구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고 한들, 공매도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잦아들진 않을 겁니다. 공매도는 감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겁니다. 따라서 그 기업 임직원이나 주주와 정 반대편에 서게 되죠. 만약 공매도 투자자가 큰돈을 벌게 되면 엄청난 분노가 일어납니다. 주가 하락으로 누군가가 크게 돈을 잃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가 급락은 회사 직원과 투자자뿐 아니라 공급업체·지자체·채권자 같은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펜실베니아대학 와튼스쿨의 사샤 인다르테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공매도를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실패로부터 이익을 얻는 게 기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매도자는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볼 때 이익을 얻죠. 마치 이웃집에 대한 보험에 가입했는데 이웃집이 파괴된 것과 같습니다.”이 때문에 공매도 투자자는 약자를 잡아먹는 자본시장의 독수리, 또는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드는 상어떼에 비유되기도 하죠. 2006년 개봉한 제임스 본드 영화 ‘카지노 로얄’에선 공매도 투자자가 핵심 악당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만큼 공매도에 대한 증오는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2001년 엔론의 회계부정을 일찍 알아차린 걸로 유명한 ‘공매도의 제왕’ 짐 차노스는 20년 전 뉴요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매일 월스트리트와 언론, 1만개의 기업 홍보부가 우리를 바보라고 부를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주식을 살 때와 같은 꾸준한 지지의 북소리가 당신(공매도 투자자) 뒤에는 없습니다.”만약 주가 급락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면 투자자들은 분노의 대상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 대상은 공매도 투자자가 되기가 쉽죠. 기업 임직원이나 일반 투자자만 그런 게 아닙니다. 규제 당국도 공매도를 싫어합니다.독일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 사례가 이를 잘 드러내줍니다. 와이어카드는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핀테크 기업이었는데요. 2016년부터 영국의 공매도 투자업체들은 와이어카드가 부패·사기에 연루돼있고 자금세탁 통제도 취약하다고 비판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냅니다. 이어 2019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매도 업체와 내부고발자를 취재해 와이어카드 회계에 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냈죠.그러자 독일 규제당국 BaFin은 초강수를 둡니다. FT 기자 두 명과 공매도 투자자 여러 명을 형사 고발했죠. 또 경제와 시장 안정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와이어카드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했고요. ‘앵글로색슨 약탈자들의 사악한 음모의 희생자’라는 와이어카드 주장을 수용한 건데요.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2020년 회계감사에서 와이어카드의 현금 중 19억 유로가 사라졌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주가는 폭락했고, 회사 대표는 체포됐고, 회사는 결국 파산했죠. 그 손실 중 상당 부분은 독일 연기금이 떠안아야 했습니다.좀 오래전 얘기이긴 하지만, 1995년 말레이시아 재무부는 공매도 투자자에게 태형(공개 채찍질)을 가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도 했었죠. 그 법안이 통과되진 않았지만 정부가 공매도를 싫어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여전히 회자됩니다.순기능 있긴 하지만엔론이나 와이어카드는 공매도 투자자가 사기 기업을 적발해낸 경우이죠. 한때 스타벅스를 위협했던 중국 루이싱커피의 회계부정을 폭로한 것 역시 공매도 투자자 머디 워커스였습니다. 2020년 니콜라 수소트럭이 사실 운전한 게 아니라 굴러 내려갔다는 보고서를 냈던 힌덴버그도 있고요.공매도 투자자들은 공매도의 순기능을 시장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억울해합니다. ‘탄광의 카나리아(위험을 먼저 알려줌)’ 역할도 한다는 거죠. 와이어카드를 겨냥한 공매도자 중 한 명이었던 파미 콰디르는 인터뷰에서 “더 많은 투자자들이 공매도처럼 투자를 생각해야 한다(회사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질문해야 한다는 뜻)”면서 “공매도는 포퓰리즘적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악당이 된다”고 말하는데요.하지만 여러 이유로 공매도를 절대 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둔 유명 투자자들도 많습니다. 유럽의 전설적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1906~1999년)도 그중 하나인데요. 1930년 증시 대붕괴로 엄청난 돈을 번 직후, 공매도를 그만뒀습니다. 그는 저서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내가 많은 돈을 버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손해를 봤다. 평소 좋아했던 친구와 동료들이 파멸했다. 내 지갑은 항상 두둑했지만 그것을 같이 즐길 누군가가 내 곁에 없었다. 성공을 기뻐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정반대였다.” 이런 깨달음으로 투자철학을 바꾼 그는 남은 일생 동안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롱포지션으로 투자해서 훨씬 더 큰 돈을 벌었죠.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이와는 다른 이유로 공매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공매도가 너무 위험하다고 보는데요. 그는 2001년 버크셔해서웨이 연례회의에서 공매도가 “많은 사람을 망쳤다”고 말합니다. “무한한 손실에 직면해 파산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라는 거죠. 그는 “내 경험상 매수 쪽에서 돈을 버는 것이 훨씬 쉽다”고도 덧붙입니다. 2008년 폭스바겐 주가를 5배로 급등시켜 잠시나마 전 세계 시총 1위로 만들었던 숏스퀴즈(short squeez) 사건을 떠올리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겁니다(포르셰가 폭스바겐 지분 74%를 인수하면서, 공매도 투자자들이 주식을 갚기 위해 사들일 유통 주식이 동났음).생명의 위협을 느껴 공매도를 중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2012년 중국 에버그란데(헝다)의 파산을 예측했던 걸로 유명한 시트론리서치 얘기인데요. 시트론리서치 창립자 앤드류 레프트는 2021년 1월 “더이상 공매도 보고서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당시엔 게임스톱 주식을 둘러싸고 미국 개미투자자와 공매도 투자자들이 한판 붙었던 때죠. 투자자들은 레프트와 자녀들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해킹하고 살해 협박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레프트는 “나나 우리 가족에겐 공매도자가 되는 위험과 보상이 가치가 없다”며 두 손을 들고 맙니다.공매도에 대한 혐오와 압박은 갈수록 거세집니다. 그렇다고 400년 넘게 이어져온 공매도 투자가 쉽게 사라지지야 않겠죠. 까칠하기로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 마크 코호데스가 FT 인터뷰에서 했던 말로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혐오와 증오를 받습니다. 규제 당국은 당신을 반대하고, 규칙은 당신을 반대하고, 회사는 당신을 반대하고, 자연의 모든 힘은 여러분을 반대합니다. 따라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By.딥다이브한국이 공매도를 전면 중단한 6일, 필리핀 주식시장은 공매도를 허용했습니다. 마닐라 증권거래소의 96년 역사상 처음이라는데요. 필리핀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합니다. 같은 날 두 나라의 정반대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공매도는 주식시장이 생긴 초기부터 있었던 투자방법입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고 봤기 때문에 400년 전부터 공매도 금지령이 내려졌다 풀리기를 반복했습니다.-공매도를 금지하면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학술 연구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오히려 공매도를 금지하면 시장 유동성을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이성보다는 감정의 문제입니다. 주가하락으로 남이 손해를 입어야 돈을 버는 공매도의 특징은 혐오를 불러일으킵니다. 기업 임직원과 주주들은 물론 규제당국도 공매도를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사기 기업의 실체를 파헤쳐 진실을 드러내는 건 공매도의 순기능입니다. 하지만 혐오가 계속되는 한 공매도자가 환영받기란 어렵습니다. 갈수록 개인 투자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매도를 더 강하게 규제하라는 압박은 커질 겁니다.*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식 시장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을까. 이를 실제 데이터로 확인한 경제학 논문은 여러 편이다. 그 결론은 대체로 하나로 모인다. 공매도 금지가 급격한 가격 하락을 막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대의 안드리 슈킬코 교수는 2012년 논문에서 하락장에서 주가 급락에 공매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공매도가 가격 하락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 매도 거래와 비교하면 현저히 작았다. 공매도가 주범이 아니란 뜻이다. 벨코 포탁 버펄로대 교수의 2014년 논문도 비슷한 결론이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공매도가 가격 왜곡이나 금융회사 파산을 초래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가 오히려 시장 유동성을 늘리고 가격 효율성을 높인다고 봤다. 공매도 금지가 별 소용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3년 영국 카스비즈니스스쿨 알레산드로 베버 교수는 금융위기 당시 30개국 데이터를 취합해 공매도 금지 효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시가총액이 작고 변동성이 높은 주식 종목의 경우 공매도가 금지되면 유동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액 주식이 많은 신흥국 증시에서 이런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났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은 공매도 금지의 부작용을 확인한 보고서를 2011년 발표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주 공매도 금지로 인해 주식시장 거래 비용이 높아져 시장 유동성이 10억 달러가량 줄어들었다고 추정했다. 아울러 금융주 주가 하락을 늦추는 효과도 거의 없었다는 평가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지난주 급등했던 뉴욕증시가 숨고르기 중입니다. 6일(현지시간) 주요 지수는 강보합세로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10%, S&P500 +0.18%, 나스닥 +0.30%. 지난주 S&P500지수는 5.9% 올라 올해 최고의 한 주를 기록했죠.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끝났다는 신호가 나온 덕분이었는데요. 이날은 국채금리가 다시 뛴 것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0.08%포인트 오른 4.65%를 기록했는데요. 7일 시작될 미국 재무부의 국채입찰을 앞두고 회사채 매물이 쏟아져 나오자 국채금리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번 주 후반엔 제롬 파월 의장을 포함한 연준 인사들의 연설이 예정돼있습니다. 월가는 그들의 발언에서 금리 방향에 대한 힌트를 찾으려 할 텐데요. 발언 내용에 따라 시장이 일희일비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CIBC프라이빗웰스의 CIO 데이비드 도나베디안은 “올해 남은 기간 증시는 금리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조울증적 변동’을 겪으며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월가의 신중론자들은 지난주의 랠리가 일시적인 것에 그칠 수 있다고 봅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윌슨은 어두운 실적 전망, 약화된 거시 데이터를 언급하면서 “연말 랠리에 대해 더 흥분하기는 어렵다”고 말하는데요. JP모건체이스의 마르코 콜라노빅 역시 성장 둔화에 대한 전망이 다시 부상하면서 주식이 곧 다시 투자자들에게 매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반면 일부 분석가들은 시장의 평온함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카고옵션거래소 변동성지수(VIX)는 지난달과 비교해 크게 하락했죠. 미즈호증권의 전략가 로랑 라스코스키는 “대형 매크로 이벤트가 지나가고 대다수 S&P500 기업이 이미 수익을 보고했기 때문에 VIX가 단기간에 급등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날 브렌트유 선물은 금요일 종가보다 0.35% 높은 배럴당 85.18달러에 마감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연말까지 하루 100만 배럴 이상의 석유 감산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한 영향입니다. 눈에 띄는 소식은 테슬라의 저가 전기차 생산 계획입니다. 독일에서 2만5000유로(약 3490만원) 가격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건데요. 일론 머스크 CEO가 지난주 독일 베를린 공장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에게 밝힌 내용이라고 합니다. 로이터에 따르면 테슬라는 생산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크게 절감하는 획기적인 공정 개발에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다만 정확히 언제부터 생산하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는데요. 테슬라는 현재 독일 공장 생산규모를 두 배로 증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다만 이런 소식에도 이날 테슬라 주가는 0.31% 하락 마감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한때 470억 달러(약 63조원) 가치로 평가받았던 위워크(WeWork)가 이르면 다음주 파산신청을 할 계획입니다. ‘사무실의 미래’로 찬사 받았던 공유오피스 기업은 이제 ‘역사상 가장 과대평가됐던 스타트업’이란 기록으로 남을 판입니다.위워크의 극적인 몰락은 이미 드라마로 나왔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요. 위워크가 망하는 건 팬데믹 때문일까요? 공유오피스의 호시절은 이제 지나간 걸까요? 파산 임박한 위워크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돈 떨어진 위워크, 파산 임박위워크가 이르면 다음 주에 뉴저지 법원에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할 계획입니다. 10월 31일 이런 내용의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나오면서 위워크 주가는 40% 넘게 급락했는데요. 솔직히 놀랍지 않은 소식입니다. 이미 위워크는 지난 8월 초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회사가 존속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상당한 의구심이 있다”고 공개했죠. 이는 ‘12개월 안에 현금이 바닥나서 파산할 수 있다’는 자백이나 다름없었습니다.위워크는 전 세계 39개국에 777개 공유오피스 지점을 운영 중입니다. 고객 수도 약 65만명에 달하죠. 전성기 때보다는 쪼그라들었다지만, 여전히 공유오피스 업계를 대표하는 브랜드입니다.그런데 돈을 계속 까먹고 있습니다. 2010년 설립 뒤 위워크는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는데요. 지난 2분기에도 막대한 적자(3억4900만 달러)를 기록했고, 6월 말 기준 남은 현금은 2억500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버는 돈에 비해 고정비용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매출의 74%를 임대료로 내고 있다고 하죠. 연간 임대료와 이자비용으로만 27억 달러 넘게 쓰고 있습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2027년까지 내야 할 임대료만 계산해도 100억 달러에 달하고요.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데요.이용 고객이라도 늘면 일말의 희망이 보일 텐데, 그마저 줄고 있습니다. 지난해 75%였던 좌석 점유율은 72%로 감소했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회사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고객 이탈은 가속화됩니다. 고객 보증금을 환불해주느라 현금 소진은 더 빨라지겠죠.트렌디한 인테리어와 무제한 제공되는 커피·맥주, 코워킹(co-working)과 소셜네트워킹이라는 근사한 슬로건까지. 모두가 좋아했던 위워크는 어쩌다 이렇게 됐나요.테크회사라고 우기던 부동산회사위워크가 왜 이 지경이 됐는지를 이야기할 땐 흔히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①애초에 비즈니스 모델 자체에 문제가 있다. ②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 먼저 위워크의 사업 모델부터 살펴볼까요.“우리의 임무는 세계 의식을 높이는 것입니다.”2019년 8월 위워크가 화려한 기업공개(IPO)를 위해 제출했던 투자설명서(S-1 서류)에 등장한 문구입니다. 이는 결국 IPO 무산과 창업자 아담 노이만 퇴출, 수백억 달러의 기업 가치 증발로 이어지는 비극적 드라마의 시작점이 됐지만요.‘세계 의식 고양’이란 알 수 없는 목표를 위해 아담 노이만이 택한 전략은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이었습니다. 일단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고객을 끌어모아 덩치를 키우면 언젠가는 네트워크효과로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게 되는 기술 플랫폼 기업처럼 말이죠. 위워크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전 세계 핵심 지역의 건물과 부동산을 빨아들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풀려진 가격에 장기임대 계약을 맺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어쨌든 겉으로는 아주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동시에 ‘데이터 회사’로 스스로를 포장했습니다. 회원들의 작업 습관 데이터를 일일이 모아 분석해서 이를 작업 공간 설계에 활용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지금 보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지만, 당시엔 통했습니다. 공유경제를 선도하는 기술기업으로 평가받은 덕분에 상장 직전인 2019년 1월 위워크 기업가치는 무려 470억 달러(약 63조원)를 기록합니다. 특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죠.하지만 S-1 서류에 담긴 적나라한 대차대조표는 위워크 비즈니스 모델의 실체를 까발렸습니다. 당시 위워크는 매출이 1달러 늘 때마다 지출이 2달러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막대한 비용이 계속 드는 부동산 사업’이 위워크의 본질이었습니다. 고객이 늘어도 추가비용은 거의 없는 기술기업의 사업 모델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죠. “위워크의 근본 문제는 본질적으로 부동산 사업인데 기술 스타트업처럼 행동하려는 시도였습니다.”(테크런던 어드보케이츠의 러드쇼 회장)IPO 무산 뒤 그해 말 위워크 기업가치는 70억 달러로 곤두박질칩니다. 창업자 노이만은 쫓겨났고, 위워크는 출혈 지출을 멈추기 위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부동산 비즈니스에 충실하게 바뀌었습니다. 소프트뱅크의 지원으로 살아난 위워크는 2021년 10월엔 SPAC(특수목적회사)을 통해 90억 달러 가치로 상장돼 반짝 부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이후 줄곧 내리막이었습니다.부동산 회사의 특징 중 하나는 경기를 많이 탄다는 점입니다. 위워크처럼 장기계약으로 부동산을 확보해(보통 15년 임대), 단기계약으로 고객에게 빌려주는 비즈니스는 특히 그렇죠. 경기가 좋아서 수요가 넘칠 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회사가 내는 임대료는 고정돼있는데 회비는 올려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경기가 고꾸라지고 회원 수가 줄면 임대료도 내기도 어려워집니다. 뉴욕대 금융학 교수인 애스워드 다모다란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경기가 좋을 땐 건물을 가득 채울 겁니다. 하지만 불경기가 되면 그들은 떠날 것이고 빈 건물과 지불해야 할 비용만 남게 될 것입니다.”특히 위워크의 주요 고객 기반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저금리 호시절이 끝나고 스타트업에 투자 빙하기가 닥치자 그 한파가 고스란히 위워크에 몰아닥칩니다.이게 다 팬데믹 탓? 글쎄코로나 팬데믹과 재택근무 유행 역시 위워크 몰락을 앞당긴 요인으로 꼽힙니다. 코로나가 대유행하면서 고객들이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위워크 이용을 줄줄이 취소했으니까요.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이스테인 반 니우에뷔르흐 교수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킨 요인이 위워크 쇠퇴를 초래한 요인과 동일하다”라고 설명합니다. 니우에뷔르흐 교수 연구에 따르면 도심 사무실 공간의 가치는 2019년부터 2029년까지 45% 감소할 거라고 하죠.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팬데믹 당시 위워크는 수많은 임대 계약을 재협상했고 일부 지점을 철수시켰습니다. 하지만 전체 임대료는 5%도 채 줄지 않았다고 하죠. 지점을 닫아도 수십억 달러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는 불리한 계약조건 때문이었는데요. 과거 빠르게 사무실을 늘리기 위해 몇년 치 임대료를 회사가 보증했던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문제는 위워크의 파산으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미국 사무용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입을 거란 점입니다. 파산 신청을 한다는 건 법원 결정에 따라 밀린 임대료를 내지 않고 임대계약을 끝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위워크가 빌려쓰고 있는 건물 주인들한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미국 전체 사무실 공실률은 2분기에 18.2%로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CBRE 통계). 자칫하면 위워크가 있었던 오피스가 고스란히 공실 목록에 추가될 판입니다.그런데 여기서 하나 꼭 알아두실 게 있습니다. ‘사무실의 종말=공유오피스의 끝’은 아니란 점입니다. 위워크의 쇠퇴가 워낙 극적이어서 다 그런 줄로 잘못 아실 수 있는데요. 실제로는 다른 공유오피스 기업은 오히려 팬데믹 충격에서 벗어나서 최근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공유오피스 브랜드 ‘스페이스(Space)’와 ‘리거스(Regus)’를 운영하는 스위스 기업 IWG는 위워크보다 큰 세계 최대 규모의 공유오피스 사업자인데요. 올해 상반기 이익이 48%나 급증했습니다. 또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낙관적”이라고 내다봤죠. IWG도 물론 팬데믹 땐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2020~2022년 3년 연속 적자에 시달렸죠. 그런데 올해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거라고 합니다.IWG만이 아닙니다. 미국 공유오피스 기업인 인더스트리우스(Industrious)는 올해 매출이 35% 넘게 증가할 거라고 합니다. 이 회사 제이미 호다리 CEO는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지난 10년 중 어느 때보다 수요가 많다. 회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과”라고 설명했는데요.미국의 사무실은 텅텅 비어간다는데, 왜 공유오피스 수요가 늘어나냐고요? ‘3일 출근+2일 재택’ 방식의 하이브리드 근무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이런 업무환경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공유오피스 이용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5일 출근을 위한 고정적인 사무실 공간 수요가 줄어드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유연한 업무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이 시점에 위워크가 파산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한데요. 결국 외부 환경 탓이라기보다는 위워크의 잘못된 과거 유산이 발목을 잡았다고 봐야겠습니다. 창업자 아담 노이만이 남겨놓은 엉망진창인 대차대조표와 아등바등 씨름하다가 나가떨어진 셈입니다. ‘리더의 그림자는 길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리더십의 실패는 조직에 아주 오래 남는다는 뜻이죠.그래도 창업자는 잘 먹고 잘살더라위워크 창업자 아담 노이만은 2019년 IPO를 앞두고 ‘세계 최초 조만장자’를 꿈꿨다고 하죠. 카리스마가 넘치다 못해 허무맹랑한 야심가였던 노이만은 2019년 9월 위워크 CEO에서 쫓겨났는데요. 그가 위워크에서 저지른 이상한 짓이 많은데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자신이 서핑하러 갈 때 이용할 걸프 스트림 제트기(6300만 달러)를 사고, 자신 소유의 건물 4개를 위워크에 임대하고, 지주회사를 통해 ‘We’라는 상표를 구입한 뒤 위워크로부터 라이센스 비용 59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사무실에서 맨발로 다니고, 데킬라 마셔대고, 마리화나 피운 것까지 다 얘기하면 입 아플 정도.노이만 부부의 스토리는 지난해 ‘우리는 폭망했다(We Crashed)’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나오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노이만 부부가 실제로는 전혀 ‘폭망’하지 않았단 점입니다. 폭망은커녕 상당량의 위워크 주식과 함께 2억 달러 넘는 막대한 현금까지 챙겨 떠났는데요.아담 노이만은 현재 ‘플로우(Flow)’라는 이름의 부동산 스타트업을 준비 중입니다. 미국 내슈빌, 애틀랜타, 마이애미 등지에 약 3000채의 아파트를 확보해 임대 사업을 벌일 거라는데요. 그렇게 회사를 말아먹고 다시 또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다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위워크 파멸의 스토리에서 살아남은 단 한명의 승자, 아남 노이만의 앞날도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위워크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가장 큰 투자 실패 사례로도 유명하죠. 120억 달러 이상의 엄청난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데요. 위워크의 몰락은 단순히 코로나 탓, 부동산 경기 탓으로 돌리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공유경제의 상징으로 통했던 위워크가 이르면 다음주 법원에 파산신청을 합니다. 계속되는 막대한 적자로 인해 돈이 바닥났고 채무 상환에도 실패했습니다.-위워크의 본질은 부동산 재임대업입니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 기업을 표방하며 빠르게 덩치를 키우면서 기업가치를 부풀리는 데 집중했는데요. 결국 거품은 터졌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확산된 것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만 다른 경쟁업체는 올해 들어 다시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는데 비해, 위워크는 오히려 주저앉고 있습니다. 경제환경 탓이라기보다는 위워크 자체의 취약성이 문제입니다.-정작 이 모든 문제를 만든 창업자 아담 노이만은 막대한 현금을 챙겼고, 다음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드라마보다 더 기막힌 스토리입니다.*이 기사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지긋지긋했던 금리 인상이 드디어 끝난 걸까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상이 마무리될 수 있다고 암시하면서 뉴욕지수는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2일(현지시간)은 다우지수는 +1.70%, S&P500 +1.89%, 나스닥지수+1.78%을 기록했는데요. 특히 S&P500 지수 상승률은 지난 4월 이후 최고치라고 합니다. 1일 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몇 달 동안 장기채권 수익률 상승으로 금융여건이 긴축됐다”라고 말했죠. 이를 두고 시장에선 기준금리 인상이 이제 끝났다는 뜻으로 해석하는데요. 일부에선 가까운 미래에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에 벌써부터 주목하기도 합니다. 물론 파월 의장은 현재 금리인하가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요. 시장은 원래 그렇게 앞서가곤 합니다. 그래서 3일 발표될 고용보고서에 많은 관심이 쏠립니다. 연준의 통화정책은 결국 데이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고용보고서의 결과가 나쁠수록, 즉 신규 고용이 줄고 실업률이 뛰고 급여 상승률이 꺾여야 주식시장은 환호할 텐데요. 다만 현재로서는 고용보고서가 너무 좋게 나올까봐 걱정인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JP모건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프리야 미스라는 “급여 데이터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약한 보고서가 나오면 금리는 계속 낮아지겠지만, 강력한 보고서가 나오면 시장은 연준이 이에 반응할지를 초조하게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날 분기 실적을 발표한 기업 중엔 스타벅스가 눈에 띕니다. 동일매장 매출이 8% 증가해 시장 추정치(6.3%)를 크게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올렸는데요. 특히 월가가 걱정했던 중국 시장 매출이 탄탄하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스타벅스 주가는 올해 들어서 지난 1일까지 7.9% 하락하며 부진했는데요. 이날 단숨에 9.48%나 급등했습니다. 또 이 기업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죠. 애플이 장 마감 뒤 3분기 실적을 내놓았습니다.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약 1% 감소한 895억 달러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월가 전망치(893억 달러)를 살짝 웃돈 수치입니다. 순이익은 같은 기간 11% 증가했습니다. 주당 이익이 1.46달러로 예상치(1.39달러)를 웃돌았죠.다만 중국에서의 매출(151억 달러)은 2.5% 감소해, 애널리스트 추정치(170억 달러)를 밑돌았는데요. 화웨이의 도전으로 중국 내 판매가 부진하다는 점이 최근 애플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죠. 애플의 CFO인 루카 마에스트리는 이에 대해 “중국은 항상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마에스트리 CFO는 4분기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와 거의 같을 거라고 전망했는데요. 4분기가 원래 아이폰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라는 점에서 이런 예측은 투자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는 전년보다 늘지만, 아이패드와 스마트워치 라인 판매가 크게 감소할 거라고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이 영향으로 시간외 거래에서 애플 주가는 2% 넘게 급락했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