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허진석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38

추천

안녕하세요. 허진석 기자입니다.

jameshur@donga.com

취재분야

2024-11-04~2024-12-04
기업53%
경제일반20%
산업7%
IT7%
사회일반7%
국제일반3%
신기술3%
  • 심재돈 前 서울지검 부장검사, 변호사 활동 시작

    심재돈 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장검사(51·사진·사법연수원 24기·사시 34회)가 최근 서울 서초구에 사무실을 열고 개업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경기 김포 출신으로 인천 선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심 변호사는 1995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서부지원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창원지검과 인천지검, 청주지검, 서울지검(특수부) 등을 거쳐 대검찰청 중수부 연구관, 수원지방검찰청 부부장 검사,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장, 대검찰청 첨단범죄수사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3부 부장검사 등으로 활약했다. 2013년부터 최근까지 김앤장법률사무소 재직 기간에는 주로 기업형사 사건을 담당했다.}

    • 2018-06-18
    • 좋아요
    • 코멘트
  • [데스크 진단]떡잎은 보호받아야 한다

    “나는 사업을 잘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계속 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기업인이 있다면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식자(識者)는 자본주의와 경영의 냉혹함을 얘기하며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대중(大衆)은 그 실천을 보지 못하니 그 말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할지 모른다. 요즘 대학가(大學街)는 장학금 신청의 계절이다. 얼마 전 한국장학재단이 내년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을 마감했다. 16일 서울 강서구의 송원김영환장학재단에서도 내년 신규 장학생을 뽑는 면접이 있었다. 장학회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눈여겨볼 스토리가 있는 곳이다. 우선 장학금 지원 기준이 유독 고학생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낮에는 공장을 다니고, 건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9남매 형제들을 돌보며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지금은 고인이 된 재단 설립자의 경험 때문이다. 송원그룹 창업주인 고 김영환 회장은 창업 3년 뒤인 1977년부터 당시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사내 장학금을 마련했고 9년이 되는 1983년에 지금의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한 번 선발이 되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연간 1000만 원을 지원한다. 조건 없이 대학원까지 지원한다. 주거지가 없으면 기숙사를 제공한다. 이는 모두 ‘나처럼 고생하며 공부하는 학생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설립자의 바람이 실현된 결과다. 면접장은 가끔 눈물바다가 된다. 자기소개서에는 차마 적지 못한 어려운 사연을 털어놓다가 벌어지는 일이다. 아버지의 오랜 가출로 인해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 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국가장학금을 신청조차 못한 학생이 발견돼 선발되기도 했다. 16일 면접에서는 옆자리 학생의 딱한 처지를 듣고 자신은 장학금을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학생도 있었다. 이 장학회는 2013년 30주년이 되기 전까지 장학회 활동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설립자가 살아계실 때는 장학금 증서 수여식도 갖지 않고 통장으로 조용히 학비를 보냈다. 고인은 생전에 “떡잎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장학사업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이렇다 보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장학금을 오히려 더 지급하는 용단도 내릴 수 있었다.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명한 경영을 지향했고, 주변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세무조사를 나왔던 담당자의 추천으로 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장학회는 다만 장학생들이 서로 알고 지내기를 원해서 매년 졸업한 회원의 가족까지 참여하는 수련회를 간다. 나중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도 힘을 합쳐 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다른 여러 장학재단도 훌륭한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은 물론이고 중소·중견기업들이 운영하는 곳도 적지 않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은 더 절실해 보인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흐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낭만을 즐긴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듯하다. 해가 갈수록 면접에 응하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것을 안타까워한다고 한다. 소득 불평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소식도 드물다. 겨울 한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다음 학기 학비와 생활비를 걱정하고 있을지 걱정스럽다. 학생이 최소한 대출을 안고 사회에 진출하지는 않도록 기업의 장학재단 참여가 더 늘기를 고대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12-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실험실 결과를 돈과 일자리로

    제약사 동아ST는 올해 2월 미국의 세계적 제약기업 애브비로부터 480억 원을 받았다. 임상시험 단계에 한참 미치지 못한 ‘초기물질’을 넘기고 6350억 원이라는 거금을 받기로 지난해 말 계약한 대금이다. 이 회사가 초기물질을 찾아내 넘긴 과정은 실험실 결과가 경제적 가치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다. 이 회사가 찾아낸 바이오 물질은 ‘DA-4501’이라는 머티케이(MerTK) 억제 물질이다. 암은 똑똑해서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속이는데, 이때 머티케이를 활용한다. 머티케이는 자연사하는 세포를 인지해 면역체계에 공격할 필요가 없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암 세포는 자기 주변에 이 머티케이를 깔아둠으로써 면역체계를 속이는 것이다. 암 종양 주변의 머티케이를 걷어낼 수 있다면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활용해 암 세포를 없앨 수 있다. 특정 암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우리 면역체계를 활용하기에 그만큼 잠재력이 크다. 동아ST는 DA-4501의 특성을 발견한 뒤 지난해 4월 미국암학회(ACCR)에 참석했다. 신약 개발 초기 단계 물질을 찾은 정도여서 현장에서 발제와 토론을 하는 간이 발표 형식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애브비 관계자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아ST 홍보 업무를 겸하고 있는 동아제약 관계자는 “애브비도 내부에서 머티케이 억제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진척이 없다가 동아ST 연구 결과를 듣고 현장에 미리 와 있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8개월 뒤 기술 이전 계약으로 이어졌고, 애브비는 지금 이 물질을 갖고 신약 개발을 추진 중이다. 학술 결과 발표 현장인 학회에서 사실상의 기술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적어도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그렇다. 기술과 자본의 고도화로 신제품 개발 경쟁이 격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일반화될 공산이 크다. 과학과 상품 간 거리가 짧아지는 것이다. 분자생물학 분야의 과학적 연구가 축적되면서 지금은 매출액 기준 세계 1∼10위의 제약사가 모두 바이오의약품을 만들고 있다. 단일 의약품으로 판매액 1위(143억 달러·2015년 기준)를 차지하는 것도 류머티스 관절염을 치료하는 ‘휴미라’라는 바이오의약품이다. 바이오의약품은 화학의약품보다 정교하게 병을 치료하고 부작용도 적은 편이다. 바이오신약 개발은 수조 원의 연구비는 물론이고 십수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섣불리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도 대처하기 나름이다. 글로벌 제약 기업들은 개발에 따른 위험 부담을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실험실 결과도 흡수하고 있다. 오히려 작고 유연한 기업일수록 연구개발로 성과를 올리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과 반도체 산업에 기대 돈과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 지금은 그 분야가 바뀌는 전환기에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졸업생 창업 분야를 조사했더니 2010년대까지 바이오테크와 의약품, 에너지 분야가 꾸준히 늘고 있고 제조업과 엔지니어링은 줄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절대적 비중은 높지만 2000년대 들어 정체하고 있다. 대한민국 성장기에 강조되었던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별로 집중해야 하는 분야가 다를 뿐이다. 정부의 과감하면서도 효율적인 과학·기술 투자가 중요한 이유다. 실험실 과학자가 성공하는 사회에서는 과학의 중요성을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11-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삼성바이오로직스, 바이오 제약 시장 ‘게임 체인저’ 될것”

    “세계 바이오의약품 생산 관행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23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세계의약품전시회(CPhI) 사전 콘퍼런스’에서 기조강연에 나섰다. 비서구권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CPhl 기조강연을 한 것은 김 사장이 처음이다. 그는 ‘바이오의약품 제조 수요의 성장과 신뢰도 높은 공급 능력’을 주제로 세계 바이오 및 합성의약품 기업 최고경영자와 임직원 100여 명을 상대로 강연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음 달 10일로 상장 1년을 맞는다. 김 사장이 언급한 ‘게임 체인저’는 세계적 제약사들이 자사 개발 바이오신약의 70∼80%를 직접 생산하는 관행을 바꾸겠다는 의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개발회사의 직접 제조비용보다 더 싸게 공급함으로써 바이오시밀러뿐만 아니라 신약도 위탁해 생산하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1월 말 3공장을 준공한다. 1, 2공장과 합쳐 전체 생산 능력이 36만 L(배양기 기준)가 돼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경쟁 기업인 론자가 26만 L, 베링거인겔하임이 25만 L 정도다. 생산능력이 크면 제조단가를 낮출 수 있는 여지도 많다. 김 사장은 “공장 건설 기간을 단축하고 공정관리를 효율화함으로써 론자나 베링거인겔하임보다 싸게 공급하고 있다. 3공장의 가동률이 높아지면 가격경쟁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의약품 생산의 ‘씨앗’이 되는 세포주 개발과 임상의약품 생산을 해주는 위탁개발사업자(CDO)로 외연을 넓히는 것에도 착수했다. 곧 세계적 제약회사와 협업해 첫발을 내디딜 예정이다. 김 사장은 “세계 바이오의약품 개발 현장에서는 신약 물질을 개발하고도 임상의약품을 제때 만들지 못해 애로를 겪는 경우가 많다”며 “바이오 벤처들에게는 안정적인 개발 인프라를 제공하고 우리는 그들을 미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후발 기업들의 추격 가능성에 대해서는 “제약산업에서도 시간은 곧 돈이다. 우리는 공장 건설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노하우와 고품질을 고르게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 이들 기술은 일이 급하면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 한국의 문화와 정확한 공정관리 기술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공장 부지를 인천 송도 본사에 확보하고 있지만 아직 투자 결정은 내리지 않은 상태다. 김 사장은 “2020년경 알츠하이머병 치료용 바이오신약의 성패가 가늠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약 개발 회사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으면 4공장을 바로 착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알츠하이머병용 바이오의약품은 고령화로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정기적 투여로 생산량이 많기 때문에 설비투자를 미래 해둬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공장 준공 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받는 생산 승인 기간이 경쟁사들은 통상 4년이 걸리지만 우리는 2년 5개월이면 받아낼 정도로 품질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알츠하이머병용 같은 대형 신약이 개발되면 상당수 물량이 삼성바이오로직스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4공장 이후의 공장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 직접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21년까지 5년간 연평균 9.4% 성장해 약 3440억 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프랑크푸르트=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17-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정책도 ‘벤처’처럼 거침없어야

    독일 뮌헨공대에는 아주 놀라운 학사 정책이 있다. 박사학위 수여 여부를 사실상 대기업이 결정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회사 BMW와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이 그런 식이다. BMW는 미래 자동차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뮌헨공대에 연구과제로 제안한다. 대학은 박사학위를 줄 만한 과제를 골라 대학원생들에게 공지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심에 따라 적절한 과제를 선택한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학생들이 과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마치면 BMW가 그 성패를 판별한다. 학위 수여 방식의 혁신이다. 더 놀라운 점은 BMW가 그 학생을 채용해 사내벤처까지 설립하는 점이다. 미래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자본과 연구시설, 인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정식 기업으로 독립시키게 되니 학생의 연구 결과물을 심사할 때부터 허투루 할 수 없는 구조다. 뮌헨공대는 학생이 설립하는 기업에 자본금을 출자해 돕고, 향후 상업화에 크게 성공하면 자본을 회수해 교육에 재투자한다. 학생과 대기업과 대학이 얻는 몫은 명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튼튼한 벤처기업도 탄생한다. 학생이 대기업 사내벤처를 거쳐 벤처기업까지 차릴 수 있는 기회가 부러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영국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금융산업에서 미국 등의 위협이 느껴지자 핀테크 산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한 ‘규제 샌드박스(제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까지는 규제를 미적용하는 정책)’가 바로 영국이 핀테크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선택한 과감한 정책이다. 사실 벤처기업 육성 정책으로 먼저 세계의 부러움을 산 나라는 한국이다. 1997년 8월 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이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마련되는 등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후 벤처 거품 등으로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지원 정책이 벤처기업의 특성에 맞춰 신속하게 마련된 점은 평가하고 싶다. 당시 벤처기업협회에서 일했던 인사는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온 의원과 관료들은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벤처기업육성법을 만들게 됐는지, 벤처기업은 어떻게 정의하는지, 지원 정책은 뭐가 있는지 전방위적으로 알아낸 뒤 돌아가곤 했다”고 회상했다. 벤처기업법이 신속하게 마련되던 당시는 실직자가 급증해 경제 회생과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었다. 지금 한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18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정책금융에서 연대보증 제도를 내년 말까지 폐지하기로 했다. 벤처기업계는 꾸준히 연대보증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기술신용 등급과 신생 기업 위주로만 이를 적용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찔끔찔끔 대상을 넓히다가 이번에 아예 제한 없이 폐지하기로 했다. 벤처업계에서는 이를 반기면서도 좀 더 일찍 과감하게 시행했더라면 많은 젊은이가 새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뮌헨공대와 영국 정부처럼 말이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벤처(모험)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 결과도 모험적일 수밖에 없다. 기술을 평가해 자금을 제공하는 기술보증기금에 적자를 용인하지 않거나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면서 100% 회수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모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여느 정책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10-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박성진 청문회, 이념보다 능력을 보고 싶다

    면접을 준비 중인 A 씨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동종 기업 고위직으로 스카우트를 제안 받아 응했는데,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도 업적은 있다’는 취지로 평가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A 씨를 스카우트하기로 한 기업 이사회에서 ‘어떻게 노무현 코드에 맞는 사람을 스카우트할 수 있느냐’며 반발하고 있고, 아예 면접도 보러 오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까지 전해 듣고 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부당한 차별 없이 능력만 보고 인재를 뽑아야 한다’며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최종 학력이나 출신, 사진 등을 보지 않고 채용을 하는 것이다. A 씨를 둘러싼 논란은 그런 의미에서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는 여럿 있다. 계층 간 이동의 용이성, 많으면서도 고른 소득 분포, 높은 여성의 사회진출 비중, 사상과 언론의 자유, 관용성과 포용성 등이다. 우리는 이런 특성이 잘 갖춰진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부러워하며 쫓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특히 이런 지표들이 강조되고 있다. 문제의 회사는 ‘대한민국’이다. 노무현을 박정희로 바꿔치면 A 씨는 다름 아닌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다. 노무현이 아니라 박정희와 이승만의 긍정적인 면을 평가했다고 해서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박 후보자가 청문회감도 아니라며 펄쩍 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이라 어정쩡한 태도다. 자유한국당은 야당이면서도 자신들과 코드가 비슷하다고 여겨서인지 잠잠하다. 코드가 주요 판단 기준이어서 야기된 요상한 구도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이념 과잉에 빠져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박 후보자의 임명 타당성에 대해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많은 국민이 바라는 ‘상식과 이성’에 관한 얘기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인선에서 짚어야 할 핵심은 이념을 둘러싼 이런 것이 아니다. 중소벤처기업 분야는 이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야다. 100대 국정과제에서 경제 부문은 대부분 ‘소득을 재분배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기조에 맞춰져 있는데, 중소벤처기업 분야만은 전략적 접근을 통해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성장 전략의 핵심인 셈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석유화학 등 기존 5대 주력 산업에 대한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런데도 앞으로 100년, 200년 한국경제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사업 분야에서의 성과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격차가 여전한 가운데 추격자이던 중국은 이미 상당수 분야에서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 분야를 키우겠다는 것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한 미래 산업을 새로 만드는 ‘빅 픽처’의 영역이다. 독일의 강소(强小)기업들처럼 세계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과 지원이 필요하다. 장관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에 관한 논란은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박 후보자는 ‘기술의 사업화’에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기술 창업’이다. 세계에서 독보적인 기술로 기업을 만들면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복지 격차가 줄게 된다. 청문회는 11일 열린다. 그날 박 후보자의 코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미래를 밝힐 능력을 알고 싶다. 그를 내치려면 이념이나 종교가 아니라 능력과 관련한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게 대한민국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양식(良識)이라고 생각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9-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현대오토에버, 대구 복지지설에 멀티학습방 지원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보기술(IT) 회사인 현대오토에버(대표이사 장영욱)가 대구지역 아동관련 사회복지시설 5곳에 멀티학습공부방을 지원키로 하고 16일 대구시 북구 가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전달식을 가졌다. 현대오토에버는 노트북과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멀티학습에 필요한 학습비도 함께 지원한다. 멀티학습공부방은 2013년부터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현대오토에버 대표 사회공헌사업이다. 현대오토에버 융합IT사업부 김종진 이사는“앞으로도 아동들의 교육 기회를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허진석기자 jameshur@donga.com}

    • 2017-08-16
    • 좋아요
    • 코멘트
  • [데스크 진단]전기차 위협하는 탈원전

    지금은 산업의 격변기다. 앞으로 10년을 더 탈 자동차를 사려고 하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성능과 디자인, 주머니 사정 정도만 고려하면 됐다. 지금은 에너지원까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볼보자동차는 최근 내연기관 신차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당장 2019년부터 볼보의 내연기관 신규 자동차는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기존 차량은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10여 년이 더 지나면 세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자동차 산업에 던지는 상징적 의미가 작지 않다. 전기차로 출발한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포드자동차를 앞지른 것에 이어 전기를 에너지로 한 자동차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리는 견고한 신호다.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인 카를 벤츠의 ‘페이턴트 모터바겐’이 1888년 프랑스에서 양산되기 시작한 지 131년 만의 일이다. 1903년 자동차가 도입된 한국은 116년 만에 맞는 신물결의 파도다. ‘말 없이 달리는 마차’의 시대가 ‘기름 없이 달리는 자동차’의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구매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전기가 대세인 것 같아 전기자동차를 선택하고 싶지만 순수 전기차는 아직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현대차의 아이오닉과 기아차의 쏘울, 르노삼성의 SM3ZE, 한국GM의 스파크와 볼트 등이 시장에 나와 있는 정도다. 최근 테슬라도 들어오긴 했다. 격변기 가운데 소비자는 이런 적은 종에서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폭은 좁지만 연료비가 적게 들어 마음이 흔들린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연료비가 10∼20% 수준이다. 아반떼1.6 휘발유가 연 157만 원의 유류비가 들 때 전기차 아이오닉을 사용하면 16만∼38만 원 정도면 된다. 근데 고민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전기차는 10년 정도 사용하면 배터리를 갈아야 하는 변수가 있다. 지금은 배터리가 전기차 제조원가의 30∼40%로 1000만 원이 넘는 가격대이지만 기술 발달로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이 점도 살펴야 한다. 최근에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바로 탈원전 이슈다. 전기차 선택 배경에는 친환경과 낮은 충전비가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에 이어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원전을 줄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전이 줄면 전기료가 인상될 공산이 크다. 1kWh를 생산하는 데 원전은 40원이면 되지만 신재생에너지로는 240원이나 든다. 2016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30.7%나 된다. 기후변화를 염려해 전기차를 선택하려던 소비자도 멈칫하게 한다. 원자력을 줄이고 정부 방침대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면 탄소 배출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최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유명 환경보호론자와 과학자 27명이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 달라는 서한을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격변기의 정책은 더 정교해야 한다. 싼 가격에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한국이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중요한 힘이기도 하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가진 한국에 수출 경쟁력은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된다. 안전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작용이 없도록 타이밍을 현명하게 살펴야 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7-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어느 기업의 ‘정규직 채용 투자’

    안마의자로 유명한 바디프랜드의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본사는 독특했다. 근무시간 중에도 이용이 가능한 피트니스클럽과 카페, 미용실, 네일아트 전문숍, 꽃집, 고급 레스토랑, 병원 등이 회사 안에 있었다. 유니폼과 셔츠를 맞춰주는 옷 가게와 업무 공간에 걸어둘 그림을 그리는 화가까지 두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런 복지시설에 근무하는 피트니스클럽 강사와 카페 직원, 미용사, 네일아티스트, 원예사, 요리사, 영양사, 홀 서빙 직원 등이 모두 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이 덕분에 고급 레스토랑을 비롯한 대부분의 시설이 무료다. 미용실과 네일아트 전문숍에서는 시중가 10만 원대의 서비스를 재료비 2만 원 정도만 내고 이용한다. 바디프랜드는 회사가 성장하면서 2015년 10월 지금의 큰 사옥으로 이사했다. 다양한 복지시설도 처음으로 갖췄다. 이때 구내식당과 레스토랑, 카페·베이커리 운영 인력 30명, 피트니스클럽 운영 인력 10명 등 약 50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뽑았다. 바디프랜드는 왜 복지시설 인력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걸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슈인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2007년 출범한 바디프랜드는 창업 초기부터 전 직원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삼았다. 안마의자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제품을 소비자에게 설명하고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영업이나 배송 담당 직원, 콜센터 직원이 자주 바뀌어서는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정규직 채용 원칙은 2014년 서울 강남구 뱅뱅사거리에 처음으로 작은 사옥을 가졌을 때 미화원과 경비원을 정규직으로 뽑는 것으로 이어졌다. 현재 바디프랜드의 직원 약 1100명은 모두 정규직이다. 본사에서 일하는 약 500명은 물론이고 전국 110곳의 직영매장(전시장)과 콜센터,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도 모두가 그렇다. 모든 매장을 정규직 직원으로 운영함으로써 ‘낯선 제품’의 유통 가격이 흐려지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이동환 부사장은 “한때 대리점 체제로 운영을 했는데, 대리점주의 사정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애프터서비스도 일관되지 않아 금방 접었다”고 말했다. 업무 효율성도 높아져 안마의자를 배송할 때 타사는 3, 4명이 움직이지만 바디프랜드는 2명이 해낸다고 덧붙였다. 복지시설 운영 인력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한 것은 원칙과 관행 때문이지만 회사는 여전히 ‘전 직원 정규직 채용’이라는 ‘투자’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 부사장은 “회사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어 경험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직원 정규직 채용의 가장 큰 원동력은 성장세다. 2014년 1438억 원이던 바디프랜드 매출액은 2015년 2636억 원, 2016년 3665억 원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1000억 원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930억 원으로 알려졌다. 바디프랜드같이 정규직 직원을 많이 갖춘 기업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지속성이다. 한국은 최근 ‘쿠팡맨 사태’도 겪고 있지 않나. 바디프랜드도 단순한 선의로 전 직원 정규직 채용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기업 성장 정책을 우선시하지 않는 일자리 추구 정책은 환상에 불과하다. 씨도 뿌리지 않고 수확을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중요하지만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6-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정규직 전환의 성공조건

    통신업을 한 지 20년이나 되는 SK브로드밴드가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유례없는 정치적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과 인터넷TV(IPTV), 전화 등의 애프터서비스(AS)와 신규 고객 유치 업무를 하는 103개 고객센터 소속 위탁업체 직원 5189명 전부를 내년 7월까지 모두 자회사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21일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0)’의 슬로건이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쳐 이런 조치가 발표된 것 아니냐는 해석 때문에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이 5월 10일인데, 열하루 만에 이른바 ‘코드’를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발표를 했다고 여기는 것이 상식적인 해석일까. 경과만 살펴봐도 이런 해석은 무리다. SK브로드밴드는 고객센터를 자회사에 의한 직영 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올해 1월에 이미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그 이전인 2015년 5월에는 고객센터의 안정적 운영을 돕는 방안과 고객센터의 구조를 혁신하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종합개선 방안도 마련했다. 2014년 3월 민주노총 산하에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가 생기고, 이후 부분·순환·전면 파업 등으로 고객 서비스가 불안정해진 것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시장 상황은 핵심적 영향을 끼쳤다. 인터넷 가입 가구가 거의 포화상태에 있고, 통신사별로 상품 차별화가 힘든 상황이어서 고객센터의 응대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고장 나 신고를 했는데도 늦장 출장이 잦다면 통신사를 바꾸지 않을 고객이 몇이나 되겠는가. 통신사업자를 바꾸는 가구가 늘어나면 회사는 황금알을 낳아 줄 거위도 잃게 되는 게 현재의 시장 상황이다. 가구별로 지금은 인터넷과 IPTV, 전화 서비스 정도를 사용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그 서비스는 사물인터넷(IoT)과 헬스케어 인공지능비서 헬스케어 에너지관리 등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는 이에 자회사 ‘홈앤서비스’(가칭)를 만들어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임으로써 홈토털 서비스의 허브로 육성한다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올해 3월 이형희 사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5년간 5조 원을 투자해 국내 제1의 유무선 플랫폼이 되겠다”고 밝힐 때 ‘유통 경쟁력 강화’도 얘기했다. 정규직 전환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어 왔다. SK텔레콤은 2013년 5월 통신망 유지 보수 업무를 하는 인력과 고객 상담과 불만 접수 등의 일을 하는 인력 약 43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기술 변화 속도에 맞춰 효율적으로 지역별 기지국을 통합 관리하고 고객 눈높이에 맞춘 응대로 가입자를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정규직 전환 후 고객상담센터 직원들의 퇴사율이 2011년 6.5%에서 2016년에는 1.9%로 크게 낮아져 내부에서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얘기를 최근에 들었다. 새 정부는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임부회장의 발언을 반박하면서 정부가 민간기업에 정규직 전환을 강요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것을 질타했다. ‘강요가 아닌 필요’에 의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건강한 일자리를 만드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와 재계는 시선이 다르지 않다. 본질은 양질의 일자리다. 정부와 재계가 마음을 모아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주기를 국민은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5-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새 시장 개척하는 ‘기찬’ 상품들

    일본 유니클로는 최근 소비자의 취향이나 몸 사이즈에 딱 맞는 맞춤형 의류를 열흘 이내에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기존에는 1년이 걸리던 옷의 기획과 생산 판매를 2주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아리아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판매점에서 팔리는 옷이나 소비자의 취향은 전자태그와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디자이너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돼 생산 기획에 활용된다. 그만큼 생산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시장 수요를 잘못 판단해 생기던 재고도 줄일 수 있게 됐다. 상품을 만든 뒤 팔겠다는 게 아니고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서 팔겠다는 제조업체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유니클로는 반년이나 1년 전에 상품을 기획해 파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따뜻한 겨울 같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피할 길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다.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은 아리아케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시대가 의류제조업에서 정보제조소매업으로 바뀌고 있다”며 구글이나 아마존을 경쟁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늘 입어 오던 옷뿐만 아니라 주방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제품인 믹서에도 신제품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가구 업체 한샘이 처음으로 만들어 팔고 있는 진공 믹서 ‘오젠’이 그 주인공이다. 진공 상태에서 과일을 갈아 재료와 공기의 접촉을 차단함으로써 산화를 방지하고, 원재료의 색과 영양소를 더 많이 살려 준다는 제품이다. 믹서 시장에서 진공 상태에서 과일을 간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즙이 층층이 분리되는 현상도 줄고, 맛도 한층 더 진하다는 게 써 본 사람들의 평가다. 평범한 믹서에 혁신을 불어넣은 이 제품은 지난해 제네바 국제 발명품 전시회에서 금상과 함께 전시 주최 측이 수여하는 특별상도 동시에 받았다. 한샘 측은 “오젠을 발판 삼아 해외 시장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판 TV도 평범하게 보인 지 오래인데 최근 이 시장에도 획기적인 제품이 등장했다. LG전자가 올해 내놓은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W’다. 이 제품은 두께가 4mm에 불과하고 광고에서 무용수들이 하는 것처럼 벽에 밀착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이다. 화면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들어내는 단순함으로 TV를 예술품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획기적인 제품력 덕분에 1400만 원이라는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이런 고가 신제품에 힘입어 LG전자에서 TV 사업을 하는 HE사업본부는 1분기 영업이익으로 3822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 기록이다. 영업이익률도 8.8%로 1분기 실적으로는 최고였다. 세계 경기는 회복되고 있다는데 내수 시장에는 아직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달 일제히 매출 감소를 겪었던 백화점들은 이번 황금연휴에 매출 증가를 기대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큰 재미는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 등의 영향이 있었다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항상 어렵고 소비자들은 늘 쓸 돈이 부족하다. 그러나 해답은 언제나 돈보다 뛰어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최근에 등장한 신제품들은 웅변하고 있다. 기업은 결국 ‘신상품’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5-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바이오, 우물쭈물할 때 아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출시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최근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이 편치 않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바이오의약품인 인보사는 무릎에 주사를 하는 방식으로 통증 완화와 연골 보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니, 품목 허가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하반기에는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게 됐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자식들이 많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고령 사회로 가는 지구촌 전체의 고민이다. 코오롱 이웅열 회장은 신체가 견뎌 낼 수 있는 햇수보다 길어진 수명으로 인해 생길 이런 큰 시장을 약 20년 전에 내다봤다. 좋은 바이오의약품이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부모 세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일자리 때문이다. 무릎 통증을 덜게 해드린다고 자식들이 부모에게 마사지를 해드리면 경제활동으로 잡히지 않지만, 의사가 약과 물리치료 등으로 통증을 줄여주고 돈을 받으면 국내총생산(GDP)에 잡힌다. 새 약을 만들고 유통하고 처방을 하는 곳에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생긴다. 수출로 얻는 경제적 잉여는 주변의 일자리도 늘리면서 사회를 더 활기차게 만든다.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선박 수출로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활력을 유지했다.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0년이면 2780억 달러(약 33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약 379조 원에 버금가는 규모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잠재력 높은 선수지만 아직은 애송이다. 전 세계 줄기세포치료제 품목 허가가 7건뿐인데 이 중 4건이 한국 제품인 것은 잠재력의 방증이고, 지난해 바이오의약품 수출 규모가 14억4066만 달러(약 1조6423억 원)에 불과한 것은 애송이의 한 단면이다. 잠재력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한국의 바이오의약품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의 바이오의약품 경쟁력은 2009년 세계 19위에서 2016년 24위로 뒷걸음질을 치는 중이다. 경쟁력 하락의 원인으로 바이오의약품의 안전성을 담보하면서도 산업으로 육성하는 데 필요한 통합법과 통합기구의 부재가 지적되고 있다. 전 세계가 바이오의약품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달려드는 와중인데, 한국에선 바이오의약품 관련 법 조합이 현행 약사법에 단 3곳에서 언급될 뿐이다. 실제로 인보사를 개발한 코오롱생명과학의 연구팀은 인보사가 행정적으로 ‘신약’이라는 사실을 인정받는 데 애를 먹었다. 약사법에 유전자치료제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고, 신약에 대한 정의 규정만으로는 유전자치료제가 신약에 해당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생명윤리법과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 허가 및 심사 규정에 불일치가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유럽은 10년 전인 2007년에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특별법 ‘ATMP’를 제정했다. 일본은 2015년 바이오의약품 개발부터 상용화를 관리하는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를 설립해 우리보다 앞서 달리고 있다. 우물쭈물할 시간은 없어 보인다. 통합법과 통합기구를 만들 때 ‘린 스타트업’(최소 요건으로 시작한 뒤 시장의 반응을 보며 개선하는 창업) 방식이라도 도입해 시대와 산업의 변화 속도에 발을 맞춰야 한다. 행정과 정치가 규정 공백을 없애는 것으로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할 때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4-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홍탁성 “커피맛은 기본… 타르트로 전세계 공략”

    “코코넛 슈거로 만든 타르트로 세계 시장까지 진출할 겁니다. 커피 맛은 기본이고 맛있는 먹거리 때문에 찾아오는 카페가 되는 것이 드롭탑의 목표입니다.” 국산 커피 프랜차이즈인 ‘드롭탑’의 홍탁성 대표이사(60)는 골목마다 커피전문점이 들어선 국내 카페 시장에선 차별화된 먹거리가 성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23일 밝혔다. 2011년 출범한 드롭탑은 현재 전국에 220여 개의 직영점과 가맹점을 두고 있는 커피전문점이다. 홍 대표는 세계적인 글로벌 단체급식 회사 ‘아라마크’에서 아시아 이머징마켓 총괄사장과 한국 대표이사 사장으로 8년 동안 일하고 2016년부터 드롭탑을 이끌고 있다. 그는 드롭탑을 맡은 이후 먼저 차별화된 먹거리 개발에 힘썼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멀리 가지만 커피만을 목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통찰 때문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타르트(과일을 얹은 파이의 일종)였다. 스타벅스 등 다른 카페들도 음식 부문을 강화하고 있지만 타르트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카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서구에서는 타르트와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대표적인 디저트로 통하고 있어 세계로도 진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신선한 식재료를 계절별로 다양하게 접목시킬 수 있어 무궁무진한 맛과 모양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는 “여기에 건강을 생각해서 기존 설탕에 비해 당 성분이 10% 수준인 코코넛 슈거까지 접목해 ‘코슈타르트’로 이름을 붙였다. ‘맛있고, 사진을 찍고 싶고, 선물을 하고 싶은 타르트’라는 원칙하에 다양한 타르트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드롭탑은 타르트를 들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와 중국에는 이미 가맹점을 열었고 올해 안에 싱가포르와 캄보디아에서도 문을 연다. 그는 “가맹점 수보다는 뉴욕이나 파리의 관광 명소에서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오는 드롭탑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에서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을 부리고 대접해 본 그는 “한국 사람들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섬세하고 사람들을 정감 있게 대할 수 있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 2017-03-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로봇세와 기업인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가 새삼 세상의 주목을 다시 받고 있다. 로봇세 신설 주장 때문이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으니 그런 로봇을 소유한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걷자는 생각을 최근 밝혔다. 실직자를 위한 복지에 쓰자는 것이다. 컴퓨터 운영체제로 큰돈을 번 후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그는 자선과 기부로 세상의 관심을 계속 받고 있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는 시애틀에는 닉 하나우어라는 벤처캐피털리스트도 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침구 회사를 경영하면서 정보기술(IT) 업체에 투자해 큰돈을 번 인물이다.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저스의 가족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첫 번째 아마존 투자자였다. 그는 자신을 기업가 겸 시민운동가라고 스스럼없이 소개한다. 시애틀에서 최저 시급을 15달러로 올려야 한다는 운동을 주도했다. 2014년 6월 시애틀은 최저 시급 15달러를 법제화한 미국 최초의 도시가 됐다. 30여 개 기업의 설립과 투자에 참여하고 은행까지 소유하면서 자본주의와 비즈니스에 대한 시야를 넓힌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상품을 살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중산층이야말로 자본주의 번영의 근간이라는 것이다(자본주의 번영의 결과가 중산층이 아니라는 말이다). 정부 보조를 받지 않는 여유 있는 근로자를 늘려야 기업도 더 많은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빌 게이츠가 말한 로봇세는 부(富)가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이려는 아이디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높인 기업이 나타나면 부는 더 소수의 계층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사회 전체의 수요 창출을 위해서라도 기본 소득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빌 게이츠나 닉 하나우어 같은 상위 0.1%의 사람들이 점심으로 1000끼를 먹을 수 없고, 고급 자동차 외에는 차량을 구매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로봇세는 미래 사회에서 기본 소득 제도를 실시하는 데 주요한 재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는 경제 논리가 있다. 대기업이나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중소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얘기다. 닉 하나우어와 빌 게이츠는 부자임에도 낙수효과와는 반대되는 ‘분수효과(fountain effect)’를 얘기하고 있다. 빌 게이츠의 로봇세 주장으로 닉 하나우어까지 떠올리게 된 것은 한국의 상황과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검증이 필요하고 논란이 계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대표적인 부자들이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여느 부자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부러운 대목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대기업 경영자가 최순실 사태에 엮여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기업인들의 무죄 주장에 일리가 있다. 검찰과 특검이 대기업을 피해자와 피의자로 각각 달리 본 것도 사건의 여러 측면을 방증한다. 다만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사회의 평판이 지금과 달랐다면 여론의 향방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존경받는 기업이 많을수록 기업을 색안경 끼고 보는 시각도 줄었을 것이고, 과도한 출국금지에 발이 묶여 경영활동을 위한 금쪽같은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회의 효율성과 품격을 모두 높일 수 있는 존경받는 부호가 늘어나길 기대한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3-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세슘 분유’와 신뢰 자본

    하늘과 땅의 방향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을까. 전투기 조종사들이 구름 속에서 회전 훈련할 때 그런 체험을 한다. 본인의 감각으로 분명 하늘이라고 판단되는 방향을, 계기판은 땅이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순간적인 판단이 목숨과도 직결된 찰나, 조종사들은 조종간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까.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조종사들은 평소 ‘계기판을 믿으라’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기저귀와 분유가 또 논란이다. 피앤지의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기저귀에서 맹독성 화학물질 다이옥신이 검출됐고, 압타밀 분유에서 방사선을 방출하는 세슘이 나왔다는 소식 때문이다. 두 가지 모두 아기가 쓰는 제품이어서 더 민감한 반응들이 나왔다. 맹독성 화학물질, 방사선의 이미지와 아기 얼굴을 떠올리면 직관적으로 공포심이 생긴다.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유해물질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해물질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오랫동안 과학기술을 축적해 왔다. 다이옥신의 경우 현행 ‘식품의 기준 및 규격 고시’에 허용 기준치가 쇠고기는 지방 1g당 4.0pg TEQ이다. 피코그램(pg)은 1조 분의 1g이고 TEQ는 환산된 ‘독성등가값’이라는 의미다. 성인의 경우 다이옥신이 1조 분의 4g 정도 들어 있는 쇠고기를 하루 1인분(약 200g) 정도로 평생(70년)을 먹어도 해롭지 않은 기준값이다. 돼지고기는 2.0pg이고, 닭고기는 3.0pg이다. 문제가 된 기저귀에서 검출됐다고 알려진 양은 g당 0.000533pg TEQ이다. 아직 아기 피부에 대한 기준은 없다. 그렇다고 위험성을 추정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다이옥신이 지방에 축적돼 있기 때문에 음식물에 의해 90% 이상 유입된다고 보고 있다. 1∼3%는 호흡에 의한 것이다. 압타밀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밝힌 세슘-137의 검출량은 kg당 0.697베크렐(Bq)이다. 성인의 연간 피폭 허용량(5mSv)을 기준으로 한 국내 기준치 370Bq보다 훨씬 낮고, 독일방사성방호협회나 핵전쟁방지국제의학자기구 독일지부가 영·유아용 식품에 적용한 기준치인 4Bq과 비교해도 낮다. 환경운동연합은 2012년 일동후디스 산양분유에서 세슘이 0.391Bq 검출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검출된 세슘의 양이 안전기준치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극소량이라며 환경운동연합이 위자료 8000만 원을 일동후디스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2014년 양측의 화해로 종결됐다. 기업을 일방적으로 옹호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전투기 조종석의 계기판 같은 ‘기준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의 차이라고 했다. 신뢰는 사회의 중요한 자본이라는 것이다. 기준치를 근거 없이 버리는 것은 지금까지 축적해 온 인류의 과학지식을 버리는 것이다. 과학지식이 완벽하지는 않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는 ‘최선’이다. 기준치를 저버리는 것은 인간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마련해 둔 ‘허용 안전 기준’라는 제도도 무시하는 것이다. 세슘의 위험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돼 기준치를 바꿀 필요가 있는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기존의 기준치는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약속은 믿고 가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한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그냥 나가세요’

     세상 일자리를 뒤흔들 기술이 나왔는데, 이렇게 잠잠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이미 태풍의 눈 속에 들어간 상태여서 잠깐 잔잔한 걸까. 계산대를 없앤 매장 ‘아마존 고’ 얘기다. 들어갈 때 스마트폰을 개찰구에 갖다 대면 결제 준비는 끝이다. 그 뒤로는 원하는 상품을 그냥 들고 나오면 된다. 매장 안에서 물품을 자기 가방에 넣고 나와도 계산은 자동으로 처리된다. 아마존은 이 기술에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그냥 나가세요)’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기술의 확산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미국은 자국 일이라 그런지 분석과 전망에 좀 더 부지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구글 같은 기업들이 수개월 내에 비슷한 기술을 완성해 유통기업들에 판매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연말이면 월마트에도 적용될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근거는 이렇다. 아마존 고에 적용된 기술들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는 자율주행차의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카메라 영상을 인식하는 ‘컴퓨터 비전’과 빅데이터로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여러 센서를 결합해 상황을 파악하는 ‘센서 융합’ 기술들이다. 매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들이 고객을 구별한 뒤, 고객이 가방에 넣는 물품까지 인식하는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세계 여러 자동차 기업은 물론이고 구글과 애플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대학 연구소들이 갖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여러 곳에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설치 비용마저 비싸지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율주행에 적용된 센서들은 상용화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품산업 애널리스트인 필 렘퍼트 씨는 “저스트 워크 아웃 기술은 금전등록기 1대 가격보다 쌀 것이다. 도입의 관건은 비용이 아니라 유통기업 이사회 결단이다”라고 분석했다. 일자리 감소로 인한 노조나 소비자 반발이 변수라는 얘기다. 아마존 고는 계산원의 일자리가 사라진 디스토피아를 먼저 떠오르게 만든다. 소비자가 매장 직원 업무의 일부를 대신해 바코드를 스캔하던 ‘그림자 노동’의 시대보다 더 혹독한 일자리 감소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미식품상업노동조합(UFCW) 마크 페론 노조위원장은 아마존 고 개장 소식이 알려진 직후 “지역사회와 매장 계산원의 삶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탐욕스러운 결정”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에는 2015년 기준으로 340만 명의 계산원과 880만 명의 소매상이 있다. 이들은 미국 전체 일자리의 8.5%를 차지한다. 적절한 장소에 더 작은 매장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긍정적 예견도 있다. 계산원은 필요 없지만 매장 관리를 책임지고, 상품을 트럭에서 내리고, 물품을 선반에 정리하는 사람은 있어야 하기에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고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의 매장 계산원 종사자 수는 2013년 기준으로 39만 명에 이른다. 평균 근속 연수는 4.5년, 월급은 100만 원(중간 값), 여성이 62%를 차지한다. 새 패러다임 적응에 롯데나 신세계 같은 기업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 지혜는 자동차를 무시하고 마차를 그냥 사용하자는 식이 아니라 운전을 잘하자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계산원을 상품을 정확히 설명해 주는 쇼핑 전문 도우미로 양성한다면 고객의 만족도까지 높이는 윈윈 전략이 될 것이라는 구체적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7-01-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최순실 게이트와 리더의 책임

     “의사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아는지 아나?” “…….”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은 환자(의 안위)를 통해서밖에 없어.”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주인공 김사부가 후배 의사에게 던진 말이다. 후배 의사는 자신이 의사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을 품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사태를 보며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된 사람들은 당시에 자신들의 일을 어떻게 평가하며 수행했을까 궁금했던 터라 극 중 이 대사가 유독 또렷이 들려왔다. ‘의사’는 ‘대통령’으로, ‘환자’는 ‘국민’으로 치환돼 들렸던 것이다. 드라마적 상상력을 발휘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을 때 그들의 심경을 상상해 봤다. 대통령이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으로 대기업들의 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했을 때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일인자의 명령이니 탁월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마음먹었을까. 아니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지만 윗사람의 지시이니 그냥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정호성 부속비서관은 강남에 사는 한 아주머니에게 대통령의 말씀 등을 심부름하면서 자신의 일이 공무로서 적합한지 회의(懷疑)한 적이 있을까.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과 관련된 일은 이 정권의 국정 기조여서 조그만 행적도 크게 떠들고 싶어 하는 홍보 사안이다. 그런데 800억 원이라는 돈을 모으는 일을 공개도 하지 않고 비밀리에 진행한 것은 관련 공직자들이 당시에도 합리적으로 의심을 할 만한 부분이다. 역시 대기업들로부터 주로 돈을 모은 청년희망재단의 모금이 공개적으로 이뤄진 것과 비교해도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리더의 지시가 의심이 된다. 최순실에게 직접 돈을 보냈던 삼성의 직원들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 매일 업무에 치이고 상사에게 꾸지람도 듣는 상황인데, 범죄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것 같은 지시를 무슨 명분으로 거절할 수 있을까.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이런 상황에서 아랫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지도자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다(아랫사람을 벌하지 말자는 얘기는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덕과 불찰로 국가적 혼란을 겪게 돼 국민께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민심은 물론이고 여당인 새누리당까지 “적폐를 청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 ‘불찰’과 ‘적폐’라는 큰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심해서 잘 살피지 않은 탓으로 생긴 잘못’과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옳지 못한 해로운 경향’에는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많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고, 조직원들이 힘을 모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한 최고경영자는 자신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이렇게 묻는다고 들려줬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매일 열심히만 하면 더 나아지는 길인가.” 투명성은 건강하게 발전하는 국가나 조직의 필요조건이다. 조직의 효율성과 조직원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정공법(正攻法)이기도 하다. 국가나 조직은 투명성을 바탕으로 조직원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돼야 자발성의 힘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6-12-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이동통신 20% 요금할인 ‘자동화’

     중동의 한 부유한 왕은 자신의 두 왕자가 현명하기를 바라면서 상속 조건을 다음과 같이 내걸었다. ‘광활한 사막을 왕자들이 낙타를 타고 건너는데, 더 늦게 도착하는 낙타의 주인에게 왕가의 재산을 물려주겠다.’ 뜨거운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작은 보폭으로 최대한 느리게 건너야 하니 왕자들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사히 끝내는 데 성공했다. 두 왕자가 찾아낸 지혜는 낙타를 서로 바꿔 타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소유한 낙타를 결승선에 더 빨리 집어넣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달렸겠는가. 창의적인 얘기들을 모아놓은 책에서 오래전 읽은 이 내용이 생각난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이동통신 ‘20% 요금할인제’의 짜임새 때문이다. 현 정책은 이동통신사가 요금할인제 홍보를 느리고 작게, 불성실하게 수행할수록 이득을 얻는 모순된 구조로 돼 있다. 낙타를 천천히 몰아야 이기는 게임인 것이다. 요금할인제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고 2년이 경과했거나 처음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게도 보조금과 비슷한 혜택을 주기 위해 마련한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다. 두 해 전 이맘때 이른바 ‘단말기유통법’이 도입되면서 그 기초가 마련됐다. 그러나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를 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요금할인제 가입이 가능한 약 1255만 명 중 86%나 되는 1078만 명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혜택을 받는 가입자는 약 177만 명에 불과하다. 이동통신 전체 가입자 약 5405만 명 기준으로 보면 3.3%에 불과하다.  혜택을 못 받는 사람 수도 놀랍지만 이통사가 거저먹는 수입 규모는 더 놀랍다. 국회 고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이통 3사가 요금할인제 미가입자들에게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월 최대 745억 원으로 추산된다. 1년이면 8940억 원으로 지난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영업이익(총 3조6332억 원)의 4분의 1이나 된다. 12개월 중 3개월 수입이 그냥 굴러들어오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이통사는 요금할인제를 성실히 안내할 이유가 없다. 이통사들이 안내 문자를 한 차례 발송했다고 하지만 실제 발송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고, 발송됐다는 안내 문자도 ‘할인’이라는 용어가 빠져 있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정부나 국회의 추가 대책은 기존의 모순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부는 이통사들에 더 열심히 안내토록 하겠다고 했고, 의원 발의 법안은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매기겠다는 정도다. 더 나은 대안이 있다. 가입 2년이 경과하는 등 요금할인제 대상이 되면 자동으로 가입시키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사라진다는 명분으로 정책 당국이 자동 가입에 소극적이라고 하는데 따져보면 소비자가 손해를 볼 일은 거의 없다. 요금할인제에 가입했다가 1∼2년의 약정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기기 변경이나 번호 이동을 하더라도 할인받았던 금액보다 적은 금액만 반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너지(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정책의 한 방편인 ‘자동 가입’이 힘을 발휘할 분야다. 이렇게 틀을 바꾸는 것이 소비자 권익을 지키고, 가계 통신비 부담 경감이라는 정책 목표도 달성하는 지름길 아닐까. 정보에 취약한 약자들이 더 낸 쌈짓돈을 강자인 이통사가 거저먹는 정책은 정의에도 위배된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6-11-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손 잡자니… 한일군사정보협정 딜레마

     높아진 북한 도발 위협에 대처하려면 한미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유사시 한미 연합전력은 주일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후방사령부의 지원을 받는다고 전제하고 작전계획을 세워 놓았다. 사실상 일본의 협력 없이는 한미가 전쟁을 치를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 퇴행적 발언과 과거사 문제 미해결로 ‘유기적인 협력’의 한 축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에 종속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미국이 체결할 것을 종용하고 있지만 답보 상태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가 대표적이다. GSOMIA는 양국이 군사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법적 보호장치다.  2012년 완성된 ‘한일 GSOMIA’ 합의문은 총 22조로 군사정보의 △분류 △보관 △전달 △파기 등만 나열할 뿐 정보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각자 공유할 정보를 선정하고 원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한국은 과거 러시아와도 무기 수입을 계기로 2002년 GSOMIA를 체결했다. 하지만 한일 GSOMIA는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비공개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렸다가 ‘밀실 추진’ 논란이 빚어지면서 한일이 서명하기 1시간 전에 이를 취소하고 담당 외교관이 사직하는 후유증을 남긴 뒤 답보상태다. 일본 방위성의 마에다 사토시(前田哲) 방위정책국장이 9월 말 동아일보 기자에게 “한일 GSOMIA가 맺어지면 북한 잠수함 활동 등 일본의 정보로 한국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일본 정부가 적극성을 보인 것도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높아진 ‘일본 재무장’에 대한 경계심은 한일 군사협력의 또 다른 장애물이다. 조숭호 shcho@donga.com / 도쿄=허진석 기자}

    • 2016-10-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데스크 진단]지진 이후 다른 불안들

     리히터 규모 5.8의 경주 지진이 12일 발생한 이후 여진이 계속되면서 괴담도 함께 피어나고 있다. 24일에 더 큰 지진이 발생한다는 괴담이 대표적이었다. 역대 최대 지진을 겪고 놀란 민심을 달래기 위해 경북 도지사는 24일 경주 지진의 진앙 지역인 내남면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고, 경찰 300여 명은 경주 시내 곳곳에 분산 배치돼 25일 새벽까지 밤샘 근무를 해야 했다. 29일에도 큰 지진이 날 거란다. 괴담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두고 2008년 확산돼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광우병 괴담처럼 불안과 무지를 먹고 자란다. 최근엔 사드 전자파 괴담이 있었다. 괴담에 필요한 백신은 과학적 합리성이다. 괴담에 나온 것과 같이 날짜를 지정해 지진을 예측하는 기술은 현재 인류에겐 없다. 그래서 지진은 ‘경보’이고 날씨는 ‘예보’다. 민방위 훈련 때의 공습경보처럼 지금 일어난 일의 위험을 가장 빨리 알리는 것이 최선책일 뿐이다. 날씨를 예보하는 기상청이 공교롭게도 지진 경보에 필요한 관측을 담당하고 있지만 날씨와 지진은 그 속성이 크게 다르다. 예측에 필요한 기초 자료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날씨는 인공위성과 레이더, 각국의 관측 자료, 역학을 기반으로 한 수치예보모델 등의 도구를 활용할 수 있지만 지진은 땅속을 볼 수 있는 도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일본에 있다는 ‘지진 예보’도 지진의 진동이 도달하는 시간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면서 진동 몇 초 전에 일부 지역에서 먼저 지진 발생 사실을 아는 정도에 불과하다. 진앙 지역에서의 도지사의 하룻밤이나 경찰들의 밤샘 근무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큰 사회적 비용이 우려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3일 의원총회를 통해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과 원전 안전강화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잠정 중단하고 안전성 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을 중시하는 이런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고도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논의가 과학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진행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필 내년 말이면 대통령 선거 일정이 시작된다. 영남권의 지지가 절실한 야당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원전 건설 중단을 과하게 밀어붙일 공산이 큰 사안인 것이다. 새누리당은 신고리 5, 6호기 건설과 관련해 뚜렷한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은 알지만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급격히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 부지 인근에서 새로 활동성 단층이 발견됐지만 검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원전 건설 반대의 주된 근거다. 현재 원전 건설 기준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다시 면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나마 더민주당은 원전 건설의 ‘잠정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 합리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 때문에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것을 막으려면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지만, 한국은 그런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 전개될 원전 건설 중단 논의 과정에서 전문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번 경주 지진 때 집 밖으로 뛰쳐나가신 노모를 영남 지역에 두고 있는 필자도 지진은 걱정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대지진도 아니고 강진도 아닌 ‘중간 정도의 지진’이라는 사실을 보는 냉철한 눈도 필요한 시점이다. 지진 후 지진보다 더 큰 사회적 피해가 발행할까 하는 이런 우려들은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 과학적 합리성에 바탕을 둔 이성적 행위만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불안을 줄일 수 있다.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 2016-09-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