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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먼 나라에 살고 있는 아기 다람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옆집에 사는 산타를 바라보는 게 일상이다. 산타는 크리스마스 날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준비하거나 순록을 돌보며 지낸다. “바빠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란다. 선물을 줄 상대방이 있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거든.” 산타는 선물을 썰매에 싣고 떠났다. “산타에게는 선물이 없는 걸까? 산타에게도 선물을 주면 좋을 텐데…. 그래, 없다면 내가 준비하자!” 하지만 아기 다람쥐는 산타가 무얼 좋아하는지 몰라 끝내 선물을 정하지 못한다. 집에 도착한 산타는 도토리 한 알을 품은 채 자신을 기다린 아기 다람쥐를 보자마자 기뻐하며 말한다. “오호! 나한테도 이렇게 멋진 선물이 왔을 줄이야!” 산타는 다람쥐에게 “나를 많이 생각해 준 게지?”라고 묻는다. 산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상냥하게 웃는다. 산타는 선물을 주는 존재로만 여겼던 통념을 뒤집는 발상이 재밌다. 선물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삽화는 화려하면서도 따뜻하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3차원(3D)으로 제작한 옷, 모자 등을 살펴보는 ‘가상현실(VR) 스토어’, 움직이는 증강현실(AR) 카탈로그 등 3D 패션 콘텐츠로 디지털 패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 눈길을 끈 것 같아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한 ‘2022 스타트업 배틀필드’에서 우승한 최현석 에프앤에스홀딩스 대표가 말했다. 이번 행사는 콘텐츠 스타트업 유망주를 가리는 프로그램으로, 총 8개 스타트업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들은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사업 모델을 발표했다. 최 대표는 “회사가 운영 중인 패션 메타버스 몰 플랫폼 ‘패스커’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에프앤에스홀딩스는 VR, AR 기술을 바탕으로 실물을 보는 것처럼 온라인 쇼핑몰을 구현해 호응을 얻었다. 외국어 회화를 공부할 수 있는 오디오 플랫폼을 구축한 스타트업 ‘하이로컬’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동영상을 촬영하면 자동으로 브이로그를 만들 수 있는 앱 ‘Viiv’를 만든 미디어 ‘몬스터’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쓰타야 서점을 운영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사 컬처컨비니언스클럽(CCC)의 마스다 무네아키 회장이 이번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책과 음반 등을 판매하고 전시도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유명한 쓰타야 서점은 일본에서 1500개가량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마스다 회장은 특별상을 받은 스타트업 ‘예간 아이티’를 직접 선발했다. 예간 아이티는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한 공간을 메타버스 맵으로 전환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번 행사에서 예간 아이티는 쓰타야 서점을 메타버스에 그대로 옮기고 고객이 자기만의 아바타를 만들어 제품을 구입하는 방식의 콘텐츠를 제안했다. 마스다 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이런 서비스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예간 아이티의 박병재 대표는 “CCC와 함께 CCC의 자회사인 디지털할리우드주식회사(DHW)와 업무협약을 맺기로 했다”고 밝혔다. 총상금 1억 원 규모의 이번 행사는 세계 시장에 진출하길 희망하는 창립 7년 이내의 국내 콘텐츠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열렸다. 본선에 진출한 8개 팀이 영어로 발표를 했고, 최종 4개 팀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콘텐츠진흥원은 “상을 받은 스타트업은 상금과 함께 제작사, 투자사와 미팅하는 기회를 갖고 컨설팅도 받는다. 내년에 콘텐츠진흥원이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지원할 때 가산점도 부여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남아프리카공화국 구굴레투 마을에 사는 시지웨는 4명의 동생을 홀로 돌본다. 아빠는 일하러 바다에 나갔고, 엄마는 아픈 할아버지를 돌보러 이웃마을에 갔다. 동생들은 배가 고프다며 음식을 찾지만, 집 안 어디에도 음식 재료는 없다. 시지웨는 냄비에 물을 채우고 끓이며 맛난 음식을 만드는 것처럼 행동한다. 동생들은 기뻐하며 “이제 곧 먹는 거지?”라고 재차 묻는다. 밤은 깊어가고 동생들은 하나둘 졸린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든다. 시지웨는 안도하며 말한다. “희망의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다음 날 엄마의 친한 친구인 마닐라 아줌마가 시지웨를 찾는다. 아줌마는 과일과 곡식, 생선 등을 건넨다. 시지웨는 아줌마가 선물한 식재료로 동생들에게 만난 음식을 만들어준다. 동생들은 말한다. “최고의 식사야!” 동생들을 안심시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시지웨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자세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등장인물을 실감나게 그린 삽화는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해인 수녀가 번역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정부가 백날 현장 간담회만 하면 뭐하나요. 보여주기식 행정만 더 늘어난 것 같아요.” “공연을 올리려 해도 대학로 인력난이 너무 심한데 정부가 이런 사정을 아나요.” 최근 동아일보에 ‘배우는 OTT로 스태프는 건설-배달…구인난에 불꺼진 대학로’(본보 11월 4일자 A20면) 기사가 실린 뒤 공연계 종사자들의 토로가 쏟아졌다. 연극업계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곳 중 하나다. 배우들은 대학로를 떠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나 웹콘텐츠 업계로 이동했고 오디오, 조명, 무대 설치를 담당하는 기술 스태프는 건설업과 배달업으로 빠져나갔다. 공연 제작자들이 “공연을 올리려 해도 인력난에 허덕인다”고 아우성치는 이유다. 보도 하루 전날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공연장의 안전관리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현장의 의견을 듣겠다며 경기 안산시 공연장안전지원센터에서 ‘공연 안전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문체부는 보도자료까지 내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업계에선 이런 ‘생색내기’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공연장 안전을 다루는 일선엔 숙련된 기술 스태프가 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문체부가 최근 2년간 678억 원 규모로 운영해온 공연예술분야인력지원사업은 올해 말 끝난다.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에 따르면 정부에 지원 연장을 요구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한 상태다. 안전 인력 구인난을 겪고 있는 공연계에서 현장 간담회로 ‘안전 생색’을 낸 문체부의 행보에 혀를 내두르는 이유다. 앞서 최근 문체부는 일각에서 ‘윗선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보도자료 발표를 이어왔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 ‘윤석열차’와 관련한 보도자료다. 대통령을 풍자한 고교생의 작품으로 논란이 일자 문체부는 이례적으로 당일 두 차례에 걸쳐 보도자료를 냈다. 지난달 4일 오전 11시 44분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엄중히 경고하며, 신속히 관련 조치를 하겠다”는 자료를 낸 뒤 약 9시간이 지난 그날 오후 9시 8분쯤 다시 “문체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승인사항을 위반했음을 확인했고, 이에 따른 엄격한 책임을 묻겠다”고 자료를 통해 밝혔다. 하루 두 차례에 걸쳐 ‘문제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 ‘들여다봤더니 문제점이 드러났다’라고 자료를 낸 건 이례적이었다. 야당에선 “문체부가 협박성 자료를 내며 적절치 못한 대응을 했다”고 비난했다. 이러니 문화 현장에서 문체부의 행보에 대해 ‘보여주기식 문화행정’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내세울 게 아니라 현장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행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알리는 게 우선이다. 문체부는 윗선의 심기를 거슬릴 만한 논란에 대해서만 발 빠르게 대처하지 말고 팬데믹 이후 고전하는 기초예술분야의 지원책 마련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문체부는 정부부처이지 ‘보도자료 속보’ 경쟁을 하는 언론사가 아니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아이는 늘 혼자다. 아이의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회사일로 바쁘다. 아이는 주말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보러 간다. “엄마, 잘 지냈어? 내가 재미있는 공룡 이야기 읽어 줄게.” 하지만 엄마는 대답이 없다. 그때였다. “그 다음은 뭐야? 네가 읽는 책 정말 재미있다. 내 이름은 두리야.” 책에 등장한 공룡이 아이에게 나타났다. 아이와 두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 뒤로 아이는 매주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에게 책을 읽어주면 ‘커다란 비밀친구’ 두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속마음을 터놓을 때마다 두리는 “그럴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라며 위로한다. 그런 두리와 아이에게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내 가족과 친구들은 오래전에 다른 별로 갔어. 나도 이제 가야 할 것 같아…. 엄마가 그리워.” 아이는 마음이 아프지만 두리의 등을 쓰다듬으며 친구를 떠나보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깊어지는 아이와 두리의 우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이별을 슬퍼하기보단 두리와의 추억으로 이겨 나가는 아이에게서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진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싫은데도 꾹 참으면 네 마음이 즐겁지 않잖아.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해야 친구도 네 마음을 알 수 있어.” 엄마는 얼굴 표정에서 뭔가 속상한 티가 나는 딸을 보며 걱정한다. “엄마, 어린이집에서 서우가 자꾸 껴안아. 나는 껴안는 거 싫은데.”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라고 알려준다. 아이는 소심하게 답한다. “서우가 속상해하잖아….” 병원 놀이 중 의사 역할만 고집하는 친구 때문에 싫어도 매번 환자 역할만 하거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다 어른들의 권유로 다른 아이에게 억지로 양보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한다. “네 마음이 원하지 않는 걸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각 에피소드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겪었을 법한 상황이다. 아이가 곤란해할 때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에게도 도움이 될 대화가 많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싫어’라는 말이 네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줄 거야”라는 엄마의 조언은 위로가 된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고 김지하 시인(1941∼2022)과 문학평론가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85)가 금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 34명을 선정해 21일 발표했다. 고 김지하 시인은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작품을 통해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저항 시인으로, 생명 사상을 정립하고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점이 인정됐다.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 문학의 특수한 인식론적 구조를 해명하는 데 공헌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와 함께 은관문화훈장은 한국 행위예술 1세대로 평가받는 이건용 화백(80)과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수많은 인재를 키워낸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남윤 명예교수(73)가 받는다. 보관문화훈장 수훈자로는 60년간 동시 38권, 동화집 15권을 창작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공헌한 한국문인협회 신현득 고문(89), 개인 소장 유물을 기증한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89), 국내 융합 디자인 교육에 새로운 지평을 연 서울대 이순종 명예교수(70), 한국현대무용 1세대 최정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77), 심재찬 국립극단 이사(69)가 선정됐다. 옥관문화훈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전승교육사로 한국 음악 발전에 기여한 곽태규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원장(68), 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76), 박신일 전 중랑문화원장(80), 김철수 경북대 명예교수(76)가 받는다. 화관문화훈장 수훈자는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김원용 회장(68), 이영희 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84)이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해가 이글이글, 모래밭이 뜨끈뜨끈한 여름. 캥거루 ‘슬립’의 소원은 오로지 하나, ‘해수욕 하기’다. 슬립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무언가를 집중해서 한참을 찾는다. 주변 동물 친구들이 그런 그 모습을 지켜보며 “거기에 있는 게 확실해?”라고 여러 번 물어봐도 슬립은 묵묵부답이다. 친구들이 도와주겠다 말해도 슬립은 그저 무언가를 찾을 뿐…. 그사이 아기 캥거루, 꽃, 냄비, 빗자루, 사다리, 바나나 등 온갖 것들이 슬립의 주머니에서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슬립이 외친다. “드디어! 한참 찾았네!” 많은 친구들이 궁금해했던 슬립이 찾던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책은 슬립이 찾고 있는 물건이 무엇일까 상상하며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또 애써 찾은 물건을 다른 용도로 쓰는 장면에선 반전을 즐길 수 있다.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을 수상한 저자의 글 위에 더해진 화려한 색감의 그래픽이미지는 세련되면서도 간결한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책의 최고 매력은 삽화 이미지를 보는 재미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이진영 동아일보 논설위원(54)이 19일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했다. 최은희 여기자상은 일제강점기 최초의 여기자로 활동하며 여권 신장에 앞장섰던 추계 최은희(1904∼1984)가 기탁한 기금으로 1984년 제정됐다. 이 위원은 여성·문화·환경·교육·복지·미디어 분야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뤄왔다. ‘현장 칼럼’ ‘수요 인터뷰’를 통해 체험적 칼럼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 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앞으로도 자부심과 두려움을 갖고 조심스럽게, 치열하게 취재하고 쓰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이진영 동아일보 논설위원(54)이 19일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했다. 최은희 여기자상은 일제강점기 최초의 여기자로 활동하며 여권 신장에 앞장섰던 추계 최은희(1904~1984)가 기탁한 기금으로 1984년 제정됐다. 이 위원은 여성·문화·환경·교육·복지·미디어 분야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사회 구조적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다뤄왔다. ‘현장 칼럼’ ‘수요 인터뷰’를 통해 체험적 칼럼의 영역을 개척했다. 이 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앞으로도 자부심과 두려움을 갖고 조심스럽게, 치열하게 취재하고 쓰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어느 겨울날, 꼬마 돼지는 다락방 청소를 하다 털실 뭉치를 발견한다. “이걸로 예쁜 스웨터를 짜야겠다. 친구들한테도 따뜻한 옷이 필요할 텐데.” 꼬마 돼지는 다양한 색의 털실 뭉치를 들고 친구들을 찾아간다. 토끼에겐 봄의 들판을 닮은 초록색 털실 뭉치 두 개를, 고양이에겐 빨간색 털실을 선물한다. 하늘을 닮은 파란색 털실 뭉치는 작은 새에게 전한다. “너를 위한 선물이야”라는 다정한 한마디도 잊지 않는다. 털실을 나눠주고 집에 돌아온 꼬마 돼지는 깜짝 놀란다. 친구들한테 털실을 나눠주느라 정작 자기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친구들이 꼬마 돼지 집을 찾으며 반전이 일어난다. 친구들이 스웨터를 만들고 남은 털실로 화려한 무지개색 스웨터를 만들어 꼬마 돼지에게 선물한 것. 꼬마 돼지와 친구들은 모두 따뜻한 옷을 입고 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꼬마 돼지와 친구들이 서로 챙겨주고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섬세한 펜화와 따뜻한 파스텔 색감이 조화를 이룬 그림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방탄소년단(BTS) RM은 유명 미술관만 찾는 게 아냐. 지방의 작은 미술관도 직접 찾아다니면서 학예사들을 감동시키더라.” 얼마 전 중소 규모 미술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친구가 BTS의 리더 RM을 칭찬했다. 미술 애호가이자 컬렉터로 알려진 RM(본명 김남준)이 미술관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 작가 장욱진의 경기 용인 고택을 방문했던 일화를 꺼냈다. “요즘 미술계 중심엔 RM이 있다” “미술계의 떠오르는 파워맨 RM”처럼 오글거리는 수식어도 더해졌다. RM의 미술 사랑은 유명하다. 그래서 초반엔 그 얘기가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RM이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 1억 원을 기부해 ‘올해의 예술후원인 대상’을 받은 것, 소장한 권진규 화백의 조각품을 서울시립미술관에 대여한 것, 김환기 김창열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 틈날 때마다 전시장을 찾아 작품 옆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BTS 팬덤 ‘아미’ 사이에선 RM이 간 전시를 따라가는 일명 ‘RM 투어’가 인기인 것까지…. 뉴스로 접한 익숙한 팩트의 나열일 뿐이었다. 그런데 대화 중간 누군가 올해 8월 RM의 뉴욕타임스(NYT) 인터뷰 기사를 봤냐고 질문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본 기사는 흥미로웠다. RM의 작업 스튜디오에는 윤형근의 추상화를 비롯해 박수근 장욱진 백남준 등 20세기 한국 주요 작가들의 작품 20여 점이 걸려 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RM이 피곤하거나 힘들 때 가끔 작품 앞에 서서 대화를 나눈다는 고백이었다. 작업실 중앙에 걸린 단색화 거장 윤형근 작가의 그림 앞에 서서 “윤 선생님, 괜찮겠죠?”라고 묻는 식이다. RM은 작품 앞에 서 있다 보면 작가들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에서 나오는 아우라 때문이죠.” RM은 서양 유명 작가들의 작품보단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한다. BTS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란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을 사랑한다. 어린 나이에 K팝 스타로 성공한 RM이 고가의 미술품을 수집하는 것은 동료 연예인들이 건물을 사들이며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투자용이라기보단 자신의 정신적 근육을 키우고 단단한 어른이 되기 위한 매개체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밥상물가를 걱정하는 서민에겐 RM처럼 거장의 비싼 작품을 집에 들여 작품과 대화하며 영혼을 채워 넣는 삶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꼭 비싼 그림일 필요가 있을까. 서점에 놓인 수많은 서적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영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대사에 꾹꾹 눌러 담은 연극, 몸짓 하나에 아름다움과 메시지를 함축한 무용 공연…. 우리의 영혼을 채워 넣을 예술은 도처에 있다. 올가을, 우리도 RM처럼 예술을 통해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 보는 건 어떨까.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툭 하면 싸우는 형제들. 몇 살 터울이 나지 않는 이들은 같은 장난감을 두고 서로 갖고 싶어 다툰다. 심한 장난을 치다 누군가가 토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언제나 함께하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사이라는 것. 형제는 가족이면서도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 같은 관계가 아닐까. 다섯 남매의 일상을 통해 형제애를 그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형제끼리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당부와 멀리 있더라도 항상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를 안아주겠다는 이들의 고백이 사랑스럽다.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밤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닥쳐와도 문제없어. 우리가 함께하는 한 모두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며 서로를 응원해 줄 거야” “멀리 있더라도 내 마음을 활짝 열고 너를 안아줄게.” 1인칭 시점으로 형제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대화체의 문장에선 따뜻함이 묻어난다. 형제의 일상을 담은 일러스트 느낌의 그림도 깜찍하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너구리가 산책 중인 강아지를 놀라게 하고 족제비가 카페를 기웃거린다. 대한민국에서 최근 일어난 일들이다. 2017년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멧돼지가 나타나 뛰어다녔다.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뉴욕 부근 뉴저지 주에는 흑곰 5000마리가 산다. 반세기만에 200배 이상으로 늘었고 알래스카보다 면적당 곰 밀도가 높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캠퍼스 환경학 교수인 저자는 1970년대 이후 북아메리카와 유럽, 동아시아의 도시들이 야생동물들과 함께 사는 ‘어쩌다 숲’이 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인간을 위해 설계된 도시는 어떻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공간으로 바뀌게 됐을까. 신간 ‘어쩌다 숲’에 따르면 19세기 말 조경사 옴스테드는 미 전역에 수많은 도시 공원을 설계했다. 뉴욕 센트럴 파크가 대표적이다. 같은 시대의 에버니저 하워드는 도심 주변에 외곽 마을들이 방사형 도로로 연결된 ‘정원 도시’ 개념을 수립했다. 야생동물들을 배려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아이디어는 동물들이 모이는 계기로 연결됐다. 대부분의 도시는 본디 동물들이 살기 좋은 지역에 터를 잡았다. 기후가 쾌적한데다 깨끗하고 풍부한 물, 풍족한 식물군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도시들을 광범위한 교외 마을의 군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물들은 낮에 교외 마을에서 음식과 물을 얻고 밤에 은신처로 돌아갔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모기잡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새가 야생동물의 도시 귀환에 중요한 주역이 됐다. 1991년 새크라멘토 시는 이 새가 사는 관목의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자연사회보존계획(NCCP)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본 딴 프로그램을 26년 뒤 29개 도시가 마련했고 11개 도시가 도입을 추진 중이다. 도시 교외 주민들은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해 건설을 억제하고 주거 밀도의 한계를 정했다. 사람이 살기 좋은 교외는 야생동물에게도 덜 적대적인 장소가 됐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늘어도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종(種) 수는 한정되기 마련이다. 도시 야생동물의 이야기는 결국 ‘소수의 성공 스토리’다. 도시는 치열한 진화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삼색제비는 배수로에 집을 지으면서 날개가 짧아졌다. 도시 하천에 출몰하는 연어는 화학물질에서 배아를 지키는 생체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도시의 도마뱀은 콘크리트 벽을 타기 위해 다리가 길어지고 발바닥이 더 끈끈해졌다. 남부 프랑스에서는 메기가 물에서 튀어 올라 비둘기를 사냥한다. 새들은 시끄러운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새소리를 바꿨다. 야생동물이 모일 수 있는 도시는 인간에게도 이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복원하면 녹지가 늘어나고 도시 열섬이 줄어든다. 하천을 잘 가꾸면 수변 공원이 생기고 홍수의 위험도 줄어든다. 숲을 잘 가꾸면 공기를 정화하고 물을 저장해준다. 결국 인간과 동물이 서로 잘 살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도시의 과제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미국보다 도시화가 훨씬 진행된 아파트 숲 속의 한국인에게 더 절실한 과제일지도 모른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경기 부천시의 한 산하기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주최한 만화축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전시해 논란이다. 그림은 이 기관이 최근 주최한 공모전에서 해당 부문 중 최고인 금상을 받았다. 4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진흥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흥원 주최로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 중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만화 작품이 전시됐다. 한 컷으로 된 이 작품을 보면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가 철도 위를 달리고 있고, 조종석에는 아내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사람이 타고 있다. 또 객실에는 검사복을 입은 4명의 사람이 칼을 들고 있으며 열차 앞에는 4명의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달아나고 있다. 열차가 지나온 철도 주변에는 건물들이 파괴된 모습도 그려졌다. 지방의 한 고등학생이 그린 이 그림은 올 7~9월 진흥원 주최로 진행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금상(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 공모전은 고등부 카툰·웹툰, 중등부 카툰·웹툰·캐릭터 등 5개 부문으로 진행돼 모두 209개의 작품이 접수됐다. 진흥원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해당 작품을 포함한 이 공모전의 수상작들을 이번 축제에 전시한 것”이라며 “외부 인사로만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공모전 심사를 맡았으며, 수상작 선정에는 어떠한 의도도 없다”고 해명했다. 진흥원은 경기 부천시의 산하 기관으로, 진흥원장과 부천시장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인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공모전의 심사 기준과 선정 과정 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체부는 이날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데 대해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며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행사에 문체부 후원 명칭을 사용하고 대상에 문체부 장관상을 수여하는 것을 취소하겠다”고 했다.부천=공승배기자 ksb@donga.com김정은기자 kimje@donga.com}
세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뛰어다니다 블록을 밟고 자빠진다.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운다. 아이의 울음에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온다. “블록이 범인이었구나, 어제 거실에서 블록 놀이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답한다. “내가 했어….” 엄마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논 다음에는 스스로 정리하기로 한 약속을 상기시킨 뒤 아이를 도와 장난감 정리에 나선다. 아이와 엄마는 놀이터로 향하던 중 횡단보도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아이는 차가 없으니 그냥 건너자고 재촉하고,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안 돼.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건너가기로 약속한걸”이라고 타이른다. “여럿이 함께 잘 지내기 위해 만든 규칙도 약속이야.” 각각의 에피소드는 엄마와 아이가 일상에서 한번씩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에게 규칙과 약속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팁을 얻을 수 있고, 아이들 입장에선 지켜야 할 약속을 배울 수 있다. 따뜻한 색감의 삽화도 인상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942∼2020)의 기증 1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다음 달부터 지역순회전을 갖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 달 5일 국립광주박물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지역 국립박물관에서는 올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토대로 박물관별로 전시를 연다. 지역 미술관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선별한 명작 50여 점을 포함해 기관별 상황에 맞춰 전시를 한다. 첫 주자인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조선 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등 271점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이중섭의 ‘오줌 싸는 아이’ 등 90여 점을 선보인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중세 시대 서양 미술’을 다룬 미술시간. 화면에 뜬 중세 시대 그림을 감상하던 중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왜 그림 속 사람들의 머리에서 빛이 나는 건가요?” 그러고 보니 각 그림마다 인물 가운데 몇몇은 머리 위에 둥근 해가 뜬 것처럼 빛이 난다. 선생님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들이라 숭고한 영혼의 증표로 머리에서 빛이 나도록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실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품이 훌륭하거나 다른 이들을 돕고 배려하는 사람들에게서 빛이 난다고 하지요.” 소녀는 하굣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점을 발견한다. 소방관과 구급대원, 노숙자를 돕는 할머니, 연탄 배달을 하는 봉사자들 머리 위에 나타난 ‘밝은 빛’이다. 저자는 타인에 대한 배려, 약자를 향한 관심, 희생을 ‘빛’으로 형상화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타심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았다. 3D그래픽으로 그린 그림은 애니메이션을 한 장면 한 장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다부진 체격에 힘이 센 친구들이 모인 ‘청팀’과 다소 마르고 왜소한 친구들이 뭉친 ‘홍팀’. 양 팀이 줄다리기에 나선다. 한판 붙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예측이 쏟아진다. “힘센 애들은 다 청팀이야.” 하지만 승부는 겨뤄봐야 아는 법. 위축돼 있던 홍팀을 향해 군중 속 누군가가 외친다. “줄다리기는 힘보다 기술!” 첫 경기에선 청팀이 가볍게 이기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청팀을 향해 날아온 꿀벌 한 마리 때문에 잠시 우왕좌왕하는 사이 홍팀이 힘을 합쳐 간발의 차로 이긴다. 세 번째 경기에선 홍팀 선생님이 “우리가 이기고 있어”라고 한 선의의 거짓말에 홍팀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결국 홍팀의 승리로 경기는 끝난다.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말아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단다” “그저 묵묵히 걷는 거야. 지나간 일은 잊고. 앞을 향해”와 같은 글귀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팽팽한 줄다리기 경기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삽화도 인상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오가는 고물가 시대다. 그 여파는 문화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뮤지컬 업계에선 티켓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렸던 ‘VIP석=15만 원’ 공식이 깨졌다. 카카오M이 인수한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11월 개막하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VIP석 가격을 16만 원으로 책정한 것. 팬들은 “커플이 뮤지컬을 보려면 30만 원 넘게 필요하다”, “연말에 4인 가족 관람은 어려울 것 같다”는 원성을 쏟아냈다. 최근 4년간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은 7만(A석)∼15만 원(VIP석)을 유지했다. 작품별로 제작비가 달라도 경쟁작들이 내건 티켓 가격대를 맞췄다. ‘시장의 통상 가격’을 따른 셈이다. 쇼노트의 행보에 다른 제작사들도 티켓가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한 제작자는 “욕을 먹을까 봐 선뜻 티켓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많은 제작사들이 VIP석 16만 원 책정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팬들의 아우성에 제작사들은 “물가가 다 올랐지 않느냐”며 억울해한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들여다보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작품을 로열티를 내고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오거나 대본과 음악, 의상, 무대세트, 자잘한 소품까지 해외 프로덕션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레플리카 작품이 상당수다. 1400원대를 향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과 제작비 인플레이션으로 티켓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제작사의 아우성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뮤지컬 티켓 가격은 크게 제작비(대관료+배우 개런티+인건비 등), 공제비용(로열티+티켓 수수료 등), 제작사 수입의 3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적정 티켓가는 정해져 있고 작품별 제작비는 다르다 보니 제작사는 손익분기점을 정한 뒤 VIP석, R석, S석, A석 등 좌석의 비율로 수익을 맞춰 왔다. 극장 1층 전체를 VIP석으로 정한 공연도 있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VIP석 비율을 높여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게 제작자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1인당 16만 원의 티켓 가격은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다. 간만에 문화생활을 해볼까 마음먹었다가도 통장 잔액을 보며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임에 틀림없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는 티켓 가격을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한다. 관객이 많으면 값을 올리고, 적으면 할인하는 ‘가격 탄력제’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 공연 시작 2시간 전 추첨을 통해 남은 VIP석을 할인하는 로터리 티켓 제도와 최대 75% 할인가에 즐기는 입석 티켓 제도도 운영한다. 주중 티켓 가격은 주말보다 저렴하다. 1000석 이상 대극장용 공연이면 천편일률적으로 ‘VIP석=15만 원’을 적용하는 한국에선 흥행 작품은 수익을 내지만, 흥행 실패작은 좌석을 채우지 못해 손해를 보기 일쑤다. 이참에 한국 뮤지컬 시장에 가격 탄력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수익을 맞춰야 하는 제작사에도 유리하고, 관객에겐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