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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확정 지은 둘은 서로를 향해 달려가 격하게 껴안았다. 18m 남짓 거리를 두고 호흡을 맞추던 NC 투수 원종현과 포수 양의지다. NC가 창단 9년 만에 처음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르는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둘은 33세 동갑내기. 20대 초반만 해도 이런 환희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군산상고에 다니던 2005년 황금사자기 홈런왕 출신 원종현은 고졸 후 LG에 입단했다. 광주 진흥고를 나온 양의지는 두산에 막차로 지명됐다. 19세에 청운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서울의 인기 구단에 몸담아 가슴이 설렜다. 양의지는 서울 구로동 사촌 집에서 잠실까지 전철을 타고 다니며 손바닥에 피가 날 정도로 운동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원종현은 2006년 프로 데뷔 후 2시즌 동안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양의지는 2시즌에 3경기 1타수 무안타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뒤 입대해 경찰청 야구단에서 동기로 뛰었다. 많이 혼나면서 야구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제대 후 둘은 경기 구리시에 거처를 마련했다. 2010년 연봉은 최저 수준인 2400만 원. 원종현은 원룸, 양의지는 옥탑방에 전세를 얻어 지내며 서로 의지했다. “앞이 잘 안 보였다. 종현이가 자주 놀러왔다. 같이 밥도 먹고, 당구도 쳤다.” 양의지의 회상이다. 병역을 마친 뒤 둘의 운명은 달라졌다. 복귀 후 신인상까지 거머쥔 양의지는 2차례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두산 왕조를 이끌었다. 반면 원종현은 가시밭길의 연속. 팔꿈치 부상과 갑자기 제구력 난조에 빠지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에 시달리다가 LG에서 쫓겨난 뒤 자비로 수술을 하며 1년 6개월의 지루한 재활 과정을 거쳤다. 오갈 데 없던 그는 2011년 전남 강진에서 열린 신생 NC의 입단 테스트를 거쳐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2년간 2, 3군을 전전하다 오버핸드스로에서 스리쿼터형으로 투구 폼을 바꾸면서 구속이 시속 155km까지 올라 NC 불펜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15년 28세 나이에 대장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과 12차례의 항암치료를 견뎠다. 심한 헛구역질과 구토에 머리카락이 빠져 삭발까지 했어도 독하게 버틴 끝에 2016년 복귀했다. 원종현은 1군에서 단 1개의 공이라도 던지면 여한이 없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어떤 역경도 견뎌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재기라고 강조했다. LG 방출 후 서울에 머물며 몸부림칠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뒷바라지 덕분이었고, 새롭게 NC가 출범해 기댈 언덕이 돼준 것도 행운이었다. 최일언 투수코치가 없었다면 투구 폼도 바꿀 수 없었다. 미국 전지훈련에서 안색이 안 좋은 그의 귀국과 암 검사를 권한 건 김경문 당시 NC 감독이었다. 암 발견 전에 만나 투병할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야채, 닭가슴살 등 건강 도시락을 챙겨준 여자친구는 평생의 반려자이자 두 딸의 엄마가 됐다. 양의지 역시 유승안 김경문 김태형 감독 등 포수 출신 지도자를 두루 거치면서 기량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두 선수는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은다. “젊은 나이에 겪었던 어려움이기에 이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 잘 갚아야 한다. 절실한 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어느덧 올해 달력도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연말이다. 한창 푸르게 싹을 틔워야 할 청춘에게 세상은 잿빛처럼 보일지 모른다. 20대 초반 미생이던 원종현과 양의지도 그랬다. 하지만 시련과 고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준비했기에 기회를 잡았다. 누군가가 곁에서 힘이 돼준다면 희망은 더 가까운 데 있을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기를.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DB그룹이 35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의 새로운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한다. DB그룹은 3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김남호 DB그룹 회장과 허광수 대한골프협회 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여자오픈 후원 조인식을 개최하고 2021년부터 타이틀스폰서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후원기간은 5년 장기 계약으로 알려졌다. 김남호 DB그룹 회장은 이날 조인식에서 “대한민국 골프의 발전에 보탬이 되고자 국내 최고의 메이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을 후원하기로 했다”며 “한국여자오픈을 통해 우리나라 여자 골프선수들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해 나가는 큰 꿈(Dream Big)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며, 대한골프협회와 함께 이 대회를 내셔널타이틀에 걸맞은 최고의 골프 축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본 대회의 개최 장소는 조만간 유치를 희망하는 골프장을 중심으로 실사를 거쳐 결정하고, 총 상금은 최고 대회에 걸맞은 수준인 최소 10억 원 이상으로 협의를 거쳐 발표될 예정이다. 7월 김남호 회장이 취임하면서 2세 경영의 막을 올린 DB그룹은 보험, 증권, 은행, 제조, 서비스 부문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다양한 스포츠 지원 및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개막전인 DB손해보험 프로미 오픈과 국내 골프선수 후원을 통해 골프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강원 원주를 연고로 한 DB 프로미 프로농구단을 통해 지역사회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스포츠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학창 시절 별명은 ‘대시(-, 선)’다. “바-바-바-바이든….” 말을 더듬는 게 선과 점으로 이뤄진 모스 부호를 떠올려서다. 낯선 상황이나 긴장하면 말을 더듬어 놀림의 대상이었다. 고교 1학년 때는 말더듬증 때문에 공개 발표에서 제외됐다. “다른 아이들 모두 조회 시간에 일어나 250명 학생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지만 나만 예외였다.” 이런 대우에 대해 바이든은 마치 ‘바보’에게 씌운다는 모자를 쓰고 구석에 서 있는 것과 같았다며 수치로 여겼다. 말하기에는 머뭇거렸던 그가 스포츠만큼은 자신 있고 거침이 없었다. “스포츠는 내가 세상에서 인정받게 해주는 입장 티켓이 분명했다. 경기할 때 나는 쭈뼛거리지 않았다. 말을 더듬을 때에도 ‘나한테 패스해’라고 말했다.” 그의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회고다. 왜소한 체구에도 남다른 운동 능력을 지닌 바이든은 어려서부터 야구, 농구 등 여러 종목을 즐겼는데 특히 미식축구(풋볼) 선수로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 고교 3학년 때인 1960년 소속팀은 8승 무패로 콘퍼런스 타이틀을 안았다. 그 중심이 바이든이었다는 게 동료, 코치의 증언이다. 그가 맡은 와이드 리시버나 하프백은 순발력과 빠른 주력, 뛰어난 캐칭이 요구된다. 쿼터백의 패스를 받아 단번에 승부를 뒤집어야 하기에 순간적인 판단력도 필수. 어느새 대시는 바이든의 질주를 상징하는 별명이 되었다. 경기 도중 바이든이 쓰러져도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아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가려는 걸 막았다고 한다. “걸을 수 없는 게 아니라면 일어나라. 다시 뛰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결코 불평하지 말고, 결코 핑계대지 마라. 우아한 패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우아한 승자가 되기를 바란다.” 바이든이 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다는 이야기다. 바이든과 풋볼의 만남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지난달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럭비 정신을 경영철학에 접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뿌리가 같은 풋볼과 럭비는 영역 침투형 스포츠로 무엇보다 희생, 인내, 도전, 협동을 강조한다. 철저한 역할 분담과 팀워크, 세밀한 전략으로 거친 수비를 함께 뚫고 전진해야만 터치다운에 이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장기 스포츠 활동이 건강과 체력뿐 아니라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 자존감을 키운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가 심한 우리에겐 스포츠 교육에도 전환이 필요하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여러 운동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평생 스포츠에 참여할 기반이 마련된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남상우 박사는 “영국에선 스포츠 습관화 전략을 수립해 3∼7세 아동에게 스포츠 재정의 4분의 1을 투입한다”고 말했다. 바이든도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했다. 리틀 야구팀에서 뛰던 그는 아마씨 기름을 먹인 글러브를 침대에 놓고 잤으며, 비로 경기가 취소되면 지구가 멸망한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야구를 소중히 여겼다.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정부가 관장하는 미취학 아동 대상의 스포츠 사업이나 프로그램은 찾기 힘들다. 학교나 지역 단위 스포츠클럽 활성화도 시급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스포츠클럽은 축구, 피구, 배드민턴 등 일부 종목의 쏠림 현상이 심하다. 많은 학생이 다양한 종목과 대회 참여 기회의 확대를 원하고 있다. 교육 효과가 큰 단체종목을 두루 접하게 해야 한다. 우수 지도자 양성도 과제다. 코로나19 사태로 운동할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대책 마련은 빠를수록 좋다. 뛰고 던지며 땀 흘린 학생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가 밝고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알록달록한 컬러가 마치 가을 단풍을 보는 듯 했다. 경기 고양시 농협대에 위치한 NH농협은행 여자 소프트테니스(정구)부 숙소 앞에 가지런히 놓인 53켤레의 운동화가 그래 보였다. 이 신발들은 지난달 전북 순창군에서 열린 제41회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장기 대회 때 출전했던 남녀 실업팀 선수들이 신었던 것이다. 대회 종료 후 따로 모아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등 현지 소프트테니스 선수들에게 보낼 계획이다.이번 운동화 기부는 현재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소프트테니스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종률 감독(65)이 한국실업소프트테니스연맹 정인선 회장에게 요청을 해 성사됐다. 최 감독에 따르면 동남아 소프트테니스 선수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 속에서 밑창이 닳아 금세 발가락이 나올 것 같은 운동화를 신은 채 라켓을 휘두르고 있다. 새 운동화 구입은 언감생심이어서 일본 등에서 보낸 중고 운동화를 겨우 장만해 신는다고 한다. 중고 운동화 가격도 2만~4만 원이라 구입이 쉽지 않아 맨발이나 슬리퍼를 착용하고 운동하는 경우도 많다. 캄보디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00 달러 안팎. 일부 정구 선수들은 한 끼에 1500원 내외인 점심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는 게 최 감독의 얘기다. 2007년부터 동남아 몇몇 국가를 돌며 소프트테니스 순회 지도에 나서고 있는 최 감독은 “성심껏 동참해 준 모든 지도자와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 현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캄보디아 경찰청 소속 남녀 대표팀 선수 12명과 상비군, 주니어 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정인선 회장은 “소프트테니스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이 필요하다. 실업연맹 뿐 아니라 모든 정구인이 합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남아 소프트테니스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들은 NH농협은행 소프트테니스부 유영동 감독과 8명 선수는 매달 캄보디아, 네팔. 라오스 등에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소프트테니스 선수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장한섭 NH농협은행 스포츠단 부단장이 소프트테니스부 감독 시절부터 시작해 벌써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유영동 현 NH농협은행 감독은 “이젠 우리 팀의 새로운 전통이 된 것 같다. 뜻 깊은 일이라는 생각에 선수들도 후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도 지속적으로 동남아 지역에 라켓, 공 등 용품 지원에 나서고 있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문경시청이 4관왕에 오르며 여자 소프트테니스(정구)를 2020시즌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14일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에 따르면 문경시청 여자팀은 올해 열린 4개 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문경시청은 13일 충북 옥천 중앙공원 소프트테니스장에서 열린 제56회 국무총리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여자일반부 단체전 결승에서 안성시청을 2-1로 눌렀다. 이로써 문경시청은 앞서 열린 대통령기와 회장기 대회와 지난주 제98회 동아일보기 대회에 이어 4연속 타이틀을 안으며 무적의 면모를 과시했다. 시즌 처음 출전한 춘계연맹전(옥천군청 우승)에서 준우승을 한 걸 빼면 80%의 우승 확률이다. 주인식 문경시청 감독은 “메이저 대회 3개를 포함해 마지막 대회인 국무총리기까지 정상에 올라 감격스럽다. 코로나19로 어려움도 많았는데 선수들이 고생한 덕분이다”고 말했다. 이날 결승에서 문경시청은 복식에서 송지연-박다솜 조와 이지선-황보민 조가 이겨 노장 김경련을 앞세운 안성시청을 제압했다. 김희수 문경시청 여자팀 코치는 “특별한 비결 보다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의 장,단점을 면밀히 관찰 파악해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 보완에 중점을 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올바른 자세와 분위기가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희수 코치는 지난달 체육유공자로 인정받아 최고 영예인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기도 했다. 문경시청은 남자일반부 결승에서도 라이벌 달성군청을 2-1로 누르고 시즌 첫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문경시청은 3년 전 동아일보기 대회 동반우승에 이어 다시 한번 남녀 팀이 모두 챔피언이 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문경시청은 간판스타 전지헌과 김범준, 추명수-류종민 조가 이겨 승리를 결정지었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한국 소프트테니스(정구) 남자단식의 차세대 유망주 김태민(창녕군청)이 시즌 2관왕을 차지했다. 김태민은 13일 충북 옥천 중앙공원 소프트테니스장에서 열린 제56회 국무총리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 남자일반부 단식 결승에서 라이벌 김진웅(수원시청)을 4-1로 눌렀다. 이로써 김태민은 10월 회장기 대회 우승에 이어 두 번째 정상에 오르며 시즌 마지막 무대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김태민은 6월 옥천 실업연맹전 때는 어깨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최근 제98회 동아일보기 전국대회에서는 결승에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간판스타 김진웅을 눌러 새로운 기대주 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여자일반부 단식 결승에서는 임유림(경남체육회)이 이지선(문경시청)을 4-1로 꺾고 우승했다. 이로써 임유림은 올해 동아일보기 대회에서 3위로 마친 아쉬움을 달랬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안나린(24·문영그룹)은 오랜 침묵을 깨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8일 인천 스카이72 골프앤리조트 오션코스(파72)에서 끝난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에서 2주 연속이자 대회 2연패를 노리던 강호 장하나(28)를 3타차로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7년 투어 데뷔 후 4년 가까이 92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던 그는 지난달 12일 오택캐리어 챔피언십에서 93번째 도전 끝에 첫 우승을 달성한 뒤 불과 4주 사이에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7년 투어 데뷔 후 지난해까지 안나린이 3년 동안 벌어들인 상금은 약 4억6700만 원. 하지만 하나금융그룹챔피언십 우승 상금 3억 원을 포함해 올해에만 약 5억9500만 원을 벌어 상금 랭킹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2승 이상을 올린 선수는 박현경(20), 김효주(25)에 이어 안나린까지 3명뿐이다.어떤 변화가 이런 극적인 반전을 일으켰을까. 안나린은 우선 긍정적인 마인드를 꼽았다. 그는 골프 시작 자체가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늦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골프를 권유하셨는데 안한다고 했어요. 뛰어노는 걸 좋아하다 보니 태권도, 축구처럼 동적인 운동을 즐겼어요. 골프는 가만히 서서 하는 것 같아 재미가 없어 보였죠.” 인연이 없는 줄 알았던 골프였지만 그가 먼저 다가가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골프 선수들 플레이하는 걸 보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신지애, 최나연 프로가 활약하던 모습을 자주 봤어요.” 대한항공 엔지니어로 일하던 아버지가 제주로 전근을 가면서 한라중에 다니던 2009년 가을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뒤늦게 골프에 입문하면서 국가대표나 상비군 경력도 변변히 쌓을 수 없었고 주니어 대회 때도 우승 한번 한 적이 없었다. 2부 투어 시절 유일하게 우승 경험을 했을 뿐이다. 투어에 뛰어들어서도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졌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안나린은 “물론 나 역시 우승을 간절히 원했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그날이 따라오리라는 생각뿐이었다. 투어 프로라는 생활 자체가 직업으로서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름 얘기를 꺼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나린’이란 이름은 순한글 고어에서 유래했어요. 내려준다는 의미라고 해요. 올해 하늘에서 큰 선물을 내리신 것 같아요.(웃음)”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노력 없이 성적이 거저 따라오는 건 아니다. 안나린은 높아진 그린적중률을 상승세 비결로 설명했다. 투어 데뷔 후 지난 3년 간 그의 그린적중률은 65% 전후에 머물렀다. 이번 시즌에는 10일 현재 74.7%에 이른다. “예전에는 아이언 샷이 짧거나 길어지는 등 그린 공략할 때 앞뒤 미스가 많았어요. 요즘 샷과 관련해서 터치감이나 페이스에 맞는 느낌이 몰라보게 좋아진 것 같아요. 거리 컨트롤이 잘 되면서 자신감도 커졌습니다.” 그린적중률이 높아지면서 평소 장점인 퍼팅은 더욱 위력적인 무기가 돼 타수를 줄이는 데 효과를 보고 있다. 10대 시절 골프 유망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김성윤 코치와 2년가량 호흡을 맞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안나린은 첫 승을 거둘 때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10타차 선두로 출발하고도 지나치게 긴장한 실수를 쏟아내 2타차까지 쫓긴 끝에 간신히 승리를 지킬 수 있었다. 2승 달성 때는 달랐다. 현역 선수 가운데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가을 여왕’ 장하나와 신흥 강자라는 평가를 받는 박민지와 공동 선두로 출발해 부담을 느낄 법했다. 하지만 16번홀까지 보기 없이 무결점 플레이로 좀처럼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안나린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위즈골프 윤소원 대표는 “장점이 많은 선수다. 일단 성실하고 늘 열심히 한다. 퍼팅에 강점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윤 대표 또 “다른 선수들보다 차분하고 자기표현도 꽤 잘한다. 가족이 화목한 것도 큰 장점이다”고 덧붙였다. 안나린은 13일 강원 춘천시 라비에벨CC 올드코스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 SK텔레콤 ADT캡스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상금왕도 노릴 만한 위치다. “좋은 일이 많았던 한 해였던 만큼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시즌이 끝나면 올해보다 좀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해야죠.” 안나린의 시선은 벌써부터 내년을 향하고 있었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최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골프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하루 1000개 이상 연습 볼을 친 적도 있다. 정형외과적 어프로치 없이는 바른 스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퍼팅을 정확도의 게임이라며 중시했다.” 안양CC 총지배인으로 10년 동안 이병철 삼성 창업주, 이건희 회장과 인연을 맺은 안용태 GMI컨설팅그룹 회장의 회고다. 한 일간지 추도사에 따르면 이 회장은 ‘퍼팅이 컵에 미달하는 것은 소심하다고 했고, 지나가는 사람은 쓸 만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공무원이야.” “달걀 아니야.” 골프에서 퍼팅이 짧아 홀에 미치지 못했다면 동반자에게 이런 짓궂은 놀림 한 번쯤 듣기 마련. 과단성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소신 없이 눈치만 보는 상황이나 마치 공이 깨지기라도 할세라 과감하게 밀어주지 못하는 새가슴을 빗댄 것이다. ‘네버 업, 네버 인(Never up, Never in)’이다. 퍼팅한 공이 홀을 지나쳐야만 홀 안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진리를 실천하기 힘든 이유는 뭘까. 골퍼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스리퍼팅의 원인도 첫 퍼팅이 짧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골프 여제’ 박인비는 컴퓨터 퍼팅이 주무기다. 이번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39.8야드로 최하위권(139위)이지만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는 2위(28.76개).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고 했던가. 박인비는 상금 랭킹 선두(약 106만 달러)를 달리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 평균 타수 1위인 김효주도 비거리는 47위(237.2야드)에 머물지만 퍼팅 수는 가장 적다(29.17개). 박인비에게 퍼팅 비결을 물었더니 “짧은 퍼팅이 없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늘 그랬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조언까지 해줬다. “어렴풋이 거리를 맞추되 홀 뒤 30cm 지점을 노리는 게 좋은 거리감이라 여기고 퍼트를 한다. 스트로크보다는 거리감에 집중하다 보면 홀을 지나가는 퍼트가 나온다.” 300m 티샷이나 1m 퍼팅이나 똑같이 한 타다. 14개 클럽 가운데 퍼터를 가장 자주 쓴다. 하지만 드라이버는 헤드가 부러질 정도로 연습하면서도 퍼팅은 가볍게 여겨 제대로 공 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골퍼의 자존심이 비거리만은 아니다. 퍼팅 훈련은 지루하면서도 고된 것이 사실이다. 박인비는 하루 훈련 스케줄을 짤 때 드라이버, 아이언, 웨지를 각각 20%, 퍼팅은 40% 비율로 배정한다. 동료들도 부러워할 만한 퍼팅 실력을 지닌 박인비도 집에 10개가 넘는 퍼터를 갖고 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린 상태나 컨디션에 따라 퍼터를 바꿔가며 쓴다. 골프의 퍼팅은 축구에서는 골 결정력과 같다. 양발을 자유롭게 쓰는 손흥민은 어려서부터 프로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요즘까지도 오른발과 왼발을 모두 사용해 트래핑과 슈팅을 할 수 있도록 반복 훈련하고 있다. 골프에서 홀의 직경은 108mm다. 그래서 18홀을 돌다 보면 백팔번뇌에 빠진다고 한다. 그린에서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서다. 퍼팅에 앞서 홀까지 가상의 선을 그리게 된다. 그린 경사, 잔디 결도 세심하게 읽는다. 퍼팅 라인은 가보지 않은 길이라 처음엔 불안하고 망설이게 된다. 일단 홀을 지나치게 퍼팅을 하게 되면 설사 빗나가더라도 남은 퍼팅은 한결 편해진다고 한다. 공이 지나간 길을 한 번 봤기 때문에 그 다음 퍼팅 성공률은 높아진다는 게 고수들의 설명이다. 목표를 눈앞에 두고 머뭇거려선 안 되는 게 골프뿐일까. 평소 노력과 경험을 믿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래야 후회라도 덜 한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경기 여주 빅토리아골프클럽(회장 원용석)은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모금한 독도사랑 기부금을 전달했다. 28일 독도사랑운동본부에 따르면 빅토리아골프클럽은 올해 1월 독도후원기업에 가입 후 아이스크림과 먹는 샘물 등 양심 판매존 이벤트와 독도 사진전을 통해 모은 적립금을 독도사랑 기부금으로 내놓았다. 2006년 9홀 대중제 골프장으로 개장한 빅토리아골프클럽은 캐디 없이 혼자서 라운드가 가능한 ‘셀프 플레이’로 유명하다. 비용 부담이 적고 수도권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페어웨이와 그린 상태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빅토리아 골프클럽 정선재 부장은 “골프 대중화에 맞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내장객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독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어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독도 사진전, 독도 홀인원 이벤트 등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최혜진(21·롯데)은 2020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3년 연속 대상을 노리고 있다. 1999년 대상 시상제도가 도입된 뒤 3연패는 2006~2008년 신지애가 유일하다. 27일 현재 최혜진은 대상 포인트 396점으로 1위에 올랐다. 이 부문 2위 임희정은 334점. 앞으로 남은 대회는 3개. 29일 개막하는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제주 핀크스)에 이어 다음달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스카이72 오션), 시즌 마지막 대회 SK텔레콤 ADT캡스 챔피언십(라비에벨)이 열린다. 대상 타이틀 방어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최혜진의 발걸음은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이번 시즌 13개 대회에 출전해 아직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대 KLPGA투어 21번 대상 가운데 우승이 없는 수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상 처음으로 무관의 대상 수상자라는 진기록을 세울 가능성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승을 올리며 상금왕, 다승왕, 대상, 평균타수 1위를 휩쓸었던 대세 최혜진으로서는 아쉬움이 많은 성적표다. 우승만 없을 뿐 최혜진의 기량은 여전히 투어 톱 레벨이라는 평가다. 13개 대회에서 12번이나 10위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톱10 입상률이 92.3%에 이른다. 이 같은 상승세를 바탕으로 우승 없이도 대상 포인트를 꼬박꼬박 쌓은 덕분에 순위표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있다. 최혜진이 우승 갈증에 허덕이고 있는 이유로는 우선 퍼팅 문제가 꼽힌다. 라운드 당 평균 퍼트수는 32.04개로 72위에 머물렀다. 그린적중률 1위, 그린을 놓쳤을 때 타수를 잃지 않는 파브레이크 능력 6위를 감안하면 퍼팅 실력을 바닥권으로 보기는 힘들다. 결정타가 없다는 게 이유로 꼽힌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과 박세리 한국 여자골프 대표팀 감독은 “전반적인 퍼팅 능력이 아니라 승부처에서 퍼팅을 놓치는 현상이 자주 나온다. 우승의 갈림길이나, 타수차를 벌려야 할때 등 중요한 대목에서 퍼팅 실수로 타수를 줄이지 못하거나, 오히려 타수를 잃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시즌이 종착역을 앞두고 있는데도 우승하지 못하면서 부담감과 심리적인 압박감도 커지고 있다. 악천후에 발목을 잡힌 대목도 불운이었다. 6월 S-오일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단독 선두에 올라 시즌 첫 승의 기대를 키웠으나 대회가 폭우로 취소돼 헛심만 쓴 꼴이 됐다. 지난주 휴엔케어 여자오픈에서도 1라운드에 선두를 질주하다가 강풍으로 2라운드가 취소됐다. 72홀에서 54홀로 축소된 대회에서 2라운드에서도 선두를 유지했으나 최종 3라운드에 역전을 허용해 우승의 꿈을 접었다. 예정대로 4라운드 경기를 모두 치렀다면 최혜진의 물오른 경기력을 감안할 때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침 이번주 SK네트워크 서울경제 레이디스클래식은 지난해 최혜진이 우승했던 대회다. 시즌 첫 승과 타이틀 방어의 두 토끼를 잡는다면 대상 3연패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래저래 최혜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KLPGA투어 대상은 최고 스타 단 한 명에게 돌아가는 영광의 타이틀이다. 1999년과 2000년 정일미가 2년 연속 수상으로 스타트를 끊은 뒤 강수연, 이미나, 김주미가 영예를 안았다. 2004년과 2005년 송보배가 다시 2연패를 달성한 뒤 신지애가 3년 연속 주인공이 됐다. 2009년 서희경을 시작으로 이보미(2010년), 김하늘(2011년), 양제윤(2012년), 장하나(2013년), 김효주(2014년), 전인지(2015년), 고진영(2016년), 이정은(2017년)까지 해마다 수상자가 바뀌었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누구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맞는다. 40일 남은 수능이거나, 얼어붙은 채용시장에서 어렵사리 갖게 된 입사 면접이 될 수도 있다. 모의고사에선 문제를 잘 풀거나, 가상 인터뷰에서는 말이 술술 나오다가도 정작 실전에선 지나치게 떨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요즘 방송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골프 스타 박세리는 예능 초보지만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흔들리는 법이 없다. 생방송에도 여유 넘치는 모습이 전성기 현역 선수 시절 당당한 발걸음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 최다인 25승을 올린 박세리는 연장전에서 6승 무패를 기록했다. 골프대회 연장전은 대부분 서든데스(sudden death) 방식이다. 죽음이란 단어에서 보듯 한 홀 결과가 운명에 직결된다.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5번 이상 연장전을 치른 선수 가운데 승률 100%는 그가 유일하다. 대표적 멘털 스포츠인 골프에서 강심장의 대명사로 불릴 만하다. 최근 LPGA투어에서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김세영은 롤 모델 박세리만큼이나 뒷심이 강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통산 5승 가운데 4승을 역전승으로 채운 그는 LPGA투어 진출 후 연장전에서 4승 무패를 기록했다. 4차례 연장전을 모두 첫 판에서 이겼는데, 그것도 버디 3번과 이글 1번으로 승리를 확정지었다. 마지막 라운드에 늘 입는 빨간 바지가 마법을 부린다는 찬사를 듣는 이유다. 공동묘지에서 담력을 키웠다는 얘기까지 들었던 박세리에게 강한 뒷심의 비결을 물었더니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마음을 내려놓고 플레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훈련법을 소개했다. “무작정 공을 많이 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실제 경기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이나, 실수에 대처하는 요령을 수없이 반복 연습했다.” 김세영도 잠들기 전에 연장전, 1타 차 등을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한다. 김세영은 태권도 공인 3단이다. 박세리는 중학교 때까지 육상선수로 뛰었다. 다양한 운동을 접하며 응용력을 키우고, 체력을 강화한 덕분에 연장전에서도 지치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승부사로 불리는 김세영이지만 LPGA 메이저대회에서는 28번 도전하는 동안 정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우승 문턱에서 자멸한 적도 많다. “욕심이 앞섰고 쉽게 감정에 휘말린 탓이다. 평상심을 유지하며 돌아갈 줄 알게 되면서 꿈을 이뤘다.” 역대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최다인 14개의 홈런을 날린 이승엽은 올림픽, 아시아경기 등 주요 대회에서도 거포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런 그도 한국시리즈 타석당 삼진은 24.4%로 정규시즌(16.3%)보다 많다. 게스 히팅(상대 투수의 볼 배합을 읽고 다음 구질과 코스를 예측하는 타격)의 대가인 이승엽이 ‘한 방’에 승패가 좌우되는 단기전에서 더 두려움 없이 휘둘렀다는 방증이다. “큰 경기일수록 상대 견제는 심해지고 힘든 볼이 들어온다. 주위 기대감은 증폭된다. 그럴수록 머리가 복잡해선 안 된다. 많은 생각보다 그저 내 실력과 경험을 믿어야 한다.” 김연아가 피겨 여왕에 오른 것은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량을 120%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온갖 부담감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소 실력을 빙판에 쏟아낸 결과다. 골프 전설 보비 존스는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는 두 귀 사이에 있는 5.5인치”라고 했다. 머리(마음)가 몸(신체)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의미.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을 강조한다. 이는 내면적 수양이 필수라고 한다. 목표를 향할 때 땀과 눈물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결정적인 시험대에 섰을 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용의 눈동자를 찍고 비로소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설레는 마음으로 나선 주말 새벽 골프였는데 난감했다고 한다. 자욱한 안개로 5m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공도 덜 잃어버리며 기대 이상의 타수로 전반 9홀을 마쳤다. 파3홀에선 티샷을 2m에 붙여 버디를 낚았다. “티박스에서 캐디가 앞이 안 보이니 그린 방향이라며 플라스틱 화살표(←)를 놓아주더군요. 거리는 150m만 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허허.” 후반 들어 청명한 가을 하늘이 드러났지만 스코어는 나빠졌다. 티샷은 붓으로 난초를 치듯 좌우로 날아갔다. 전반엔 어차피 잘 안 보이니 시선을 공에 고정한 채 힘 빼고 가볍게 쳐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날이 개면서 날아가는 타구가 궁금해 자주 헤드업을 하게 됐다. 안 보이던 해저드, 벙커 등이 아른거리면서 클럽 선택과 코스 공략에 머리가 복잡해진 것도 되레 실수를 불렀다. 며칠 전 만난 주말 골퍼 A 씨의 라운드 복기였다. 그의 얘기에 최근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정상에 오른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떠올랐다. 눈을 감은 채 친 퍼트를 앞세운 42개월 만의 우승이었다. 그는 “눈을 감으면 눈을 뜨고 할 때보다 자유로운 느낌으로 일관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골프 신동이던 가르시아는 프로 데뷔 18년 만인 2017년 마스터스에서 그린재킷을 입으며 메이저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이후 전성기를 맞나 싶었으나 슬럼프에 허덕였다. 올 2월 이후 12개 대회에서 25위 이내 성적은 한 번뿐. 9년 만에 처음 세계 50위 밖으로 밀려났다. 부진의 주된 이유로 약점이던 퍼팅이 꼽혔다. 지나친 긴장에 몸이 기계처럼 경직되면서 퍼팅이 짧아졌다. 가르시아의 부활은 눈을 감으며 평정심을 유지한 게 비로소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시즌 1.5m 이내 퍼팅 성공률이 76.6%(151위)에 그쳤으나 이번 대회 나흘 동안 같은 거리에서 한 56개의 퍼팅 중 55개를 성공시켰다. 퍼팅에서도 헤드업은 금물. 공이 홀 바닥에 떨어졌는지는 눈이 아니라 귀(소리)로 확인하라고 한다. 퍼팅 입스가 있는 골퍼는 눈의 움직임이 빨라져 뇌와 근육 컨트롤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눈을 감으면 퍼터 헤드 무게를 느끼며 올바른 스트로크 동작을 유도하게 된다. 그린에서 진땀 흘리는 주말 골퍼에게도 유용한 연습 팁이 될 만하다. 아시아 최고의 슈터였던 이충희는 한때 인사성이 없다는 오해를 샀다. 시력이 좌우 0.2 정도여서 5m가 넘으면 상대방을 또렷하게 식별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에선 렌즈가 없어도 백발백중. “슛은 눈이 아니라 느낌으로 쏜다. 림이 뿌옇게 보여도 상관없다.” 그는 중고교 시절 밤이면 조명도 없이 달빛에 의지해 슈팅을 했다. 깜깜해도 하루 1000개의 슛을 성공시킨 뒤에야 코트를 떠났다. 전기요금을 아끼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긍정적으로 여겼다. 골프 실력도 핸디캡 3의 고수인 이충희는 “야간 훈련으로 거리와 손끝 감각을 확실하게 길렀다”고 말했다. 눈 감고 하는 슈팅이 흐트러진 신체 균형과 모션을 바로잡아주고 자신감을 키워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눈을 감거나, 눈이 나빠도 최고수가 되려면 평소 부단한 노력이 기본 전제다. 이충희의 지론은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골프에서도 ‘천고마비’가 중요하다. ‘천천히 고개를 들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는 의미. 숙일 줄 알고, 눈도 감아야 ‘굿샷’ 소리를 듣는 게 스포츠뿐일까. 시신경과 청각세포에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정보가 혼란을 주거나 독이 되기도 한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일도 쏟아지고 있다. 가끔은 눈과 귀를 닫고 오롯이 본질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고, 귀를 감싸야 온전히 들리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유현주(26)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최고 인기스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적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만 비교하면 그런 평가가 나올만 하다. 그의 팔로워는 2일 현재 27만9292 명에 이른다. 열성 팬이 많기로 유명한 전인지(7만8537명)와 박성현(9만1034명)을 합해도 유현주를 넘지 못한다. 이번 시즌 KLPGA투어 상금 랭킹 1위 박현경은 3만7000 명 정도다. 역시 SNS에서 강세를 보이는 안신애는 약 18만 명이다. KLPGA투어 관계자에 따르면 “정확한 집계는 하지 않았지만 회원 가운데 유현주가 팔로워가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현주가 뜨거운 시선을 받는 것은 뛰어난 외모와 패션 감각이라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인스타그램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필드 안팎에서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골프는 SNS 활동에 최적화된 스포츠라는 분석이 있다. 플레이 도중에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거나 관련 글을 포스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 20,30대 골프 인구와 여성들의 골프 진입이 늘어난 것도 유현주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 여성 주말골퍼인 회사원 A 씨는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파워풀한 스윙을 지닌 유현주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회에 출전하면 카메라에 집중 표적이 되는 유현주는 “많은 관심을 갖는 건 선수로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내가 외모만 갖고 있는 건 아니고 외모가 부각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흔히 ‘실력=인기’라는 말도 유현주에게는 예외다. 그는 2011년 KLPGA 회원이 된 뒤 우승 경험이 없다. 정규투어에는 2012년 데뷔했으나 상금랭킹 73위에 머물러 시드를 잃었다. 그 후로도 1,2부 투어를 넘나들고 있다. 역대 최고 성적은 2012년 부산은행·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기록한 공동 14위다. 지난해 11월 KLPGA투어 시드 순위전에서 30위에 올라 올해 조건부 시드를 받고 정규투어에서 뛰고 있다. 이번 시즌에도 6차례 컷탈락하며 최고 성적은 7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기록한 공동 25위. 지난주 팬텀클래식에서 1라운드 공동 선두로 마쳤으나 최종 성적은 42위였다. 상금 랭킹 95위에 처져있어 내년 시즌 정규투어에서 뛰려면 시드전을 거쳐 살아남아야할 형편이다. 인기가 거품이라거나, 운동에 더 전념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정글에 비유되는 KLPGA에서 정규투어 무대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3부 투어에 걸쳐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현주도 “골프를 열심히 하려고 애쓸 뿐이다. 뛰어난 기량이 없다면 1부 투어에서 뛰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유현주에 대한 높은 관심은 스폰서 계약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는 의류(크리스애프앤씨) 신발(아디다스골프) 골프존, 엑스골프 등과 계약하고 있으며 골프장, 리조트, 건강기능식품업체 등과도 후원받고 있다. 한 스폰서 기업 관계자는 “유현주 프로를 통해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업체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잘 맞춰주는 편이다”고 말했다. 유현주는 인스타그램이나 대회 도중에도 자신의 후원 업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다. 유현주 신드롬을 보면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는 내털리 걸비스(37·미국)가 떠올랐다.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든 걸비스는 2002년 LPGA투어 입회 후 ‘바비 인형’, ‘섹시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렸다. 과거 국내 LPGA투어 대회에 출전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금발에 파란 눈이 인상적인 그는 “후원 받는 업체가 몇 군데인가”라는 질문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18개”라고 답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걸비스가 스폰서 계약으로 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자신의 높은 상품성에 대해 “대회 때는 물론이고 필드에서 쉬더라도 방송을 통해 내 성격을 마음껏 보여준 게 인기의 비결”이라고 털어놓았다. SNS가 활발했던 시절이었다면 그의 가치는 더 하늘을 찌를 수 있었다. 스폰서 업체를 각별하게 챙기기로 유명한 걸비스는 당시 만남에서 묻지도 않은 후원사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테일러메이드 클럽을 사용하면서 정확도가 높아졌다”, “아디다스 의류 덕분에 좋은 옷을 많이 입게 됐다” 등의 식이다. 걸비스의 이런 모습에 후원 업체는 흐뭇할 수밖에 없다.미국 LPGA투어 데뷔 후 5년 넘게 우승이 없어 ‘얼굴과 몸매로만 먹고 산다’는 비판을 듣던 걸비스는 ‘섹시 테니스 스타’ 안나 쿠르니코바(러시아)의 ‘붕어빵’으로 비교되곤 했다. 하지만 걸비스는 2007년 에비앙마스터스에서 프로 첫 승을 거둬 실력도 인정받으며 스폰서 계약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 대회는 아직도 걸비스의 유일한 우승으로 남아 있다. 그는 “다른 여성처럼 여성골퍼도 외모에 자신감이 있을 때 필드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걸비스는 아직도 가끔씩 LPGA투어 대회에 나서고 있다. 올해 4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했다. 평균타수는 76타. 투어 카드는 없지만 여전히 지명도가 높아 스폰서 초청을 받거나, 상위권 선수의 불참에 따른 출전자격을 받고 있다. 걸비스는 올 연말 은퇴를 발표했다.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나는 정상과 너무 멀어졌다.” 유현주도 누구보다 우승 트로피를 간절히 원할지 모른다. 정상에 오른다면 본인 뿐 아니라 팬, 스폰서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성 있는 존재감만으로도 KLPGA투어를 빛내는 훌륭한 흥행카드가 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한국 골프의 전설 최상호(65)는 올해로 골프와 인연을 맺은 지 50년이 됐다. 10대 중반이던 1970년 경기 고양시 집 근처 뉴코리아CC 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입장쿠폰도 받고, 공도 닦아주던 게 그 시작이었다. 프로 입문 뒤 KPGA 정규투어 최다인 43승을 쌓았다. 2위는 20승(박남신). 격차가 워낙 커서 불멸의 기록이라는 찬사가 나온다. 최상호가 첫 승을 신고한 1978년부터 마지막으로 정규투어 우승을 한 2005년 사이에 무관이었던 시즌은 1988년 한 해뿐. 그랜드시니어 부문(60세 이상) 11승을 포함해 챔피언스투어(50세 이상)에서도 최다인 26승을 올렸다.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꾸준함이다. 20년 넘게 매일 1300개 이상 공을 때렸다. 필드에서 선망의 대상인 최상호가 두 아들에게는 오랫동안 골프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아버지처럼 골프 선수가 되겠다고 할까 봐 걱정해서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기에 아예 ‘싹’도 트지 않게 했다. 그 이유를 물었다. “골프는 유전적인 영향보다는 오로지 노력만이 성패를 좌우한다. 자연과 싸우며 죽은 공을 살려야 하는 너무 힘든 직업이다. 내가 평범했다면 모를까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공부를 선택한 두 아들은 국내 명문대를 졸업해 각각 대기업 직원과 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5명의 손자를 둔 할아버지 최상호는 쉬는 날 두 아들과 나가는 골프 라운드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고 한다. 잭 니클라우스, 게리 플레이어 등 대스타들의 아들은 골프 선수로 나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골프 역사를 빛낸 부친의 위업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1900년 이후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우승한 부자(父子) 챔피언은 8건에 불과하다. 미국 ESPN에 따르면 역대 메이저리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차례로 선수가 된 경우는 255건에 이른다. 이 중 부자가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사례는 전무하다. 14명의 아버지만이 가입했으며 아들 가입은 로베르토 알로마르와 켄 그리피 주니어 등 2명뿐. 타고난 신체조건과 근성, 남다른 훈련 환경 등이 유리하게 작용했을 야구 2세도 아버지의 벽은 높기만 했다. 축구 레전드 차범근의 아들 차두리는 은퇴하면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더욱 실감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스포츠 스타 2세로 아버지의 길을 따른다면 ‘누구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현미경 같은 주위의 시선 속에 비교되는 삶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불공정, 특혜 시비에 휩싸이기도 한다. ‘농구 대통령’ 허재는 두 아들도 농구를 한다. 허재가 대표팀 감독이던 시절 두 아이도 태극마크를 달면서 ‘셀프 선발’ 논란이 일었다. 농구 가족에게 상처가 됐지만 실력으로 입증하는 길밖에 없었다. 두 아들은 지독한 훈련 끝에 한국 농구의 간판스타로 올라섰다. 며칠 전 방영된 채널A 예능 ‘도시어부2’에 허재와 차남 허훈이 출연했다. 낚시광 아버지와 달리 허훈은 낚시가 처음이었다. 국내 최초로 3점슛 9개를 연속해서 적중시키며 최우수선수에도 뽑힌 허훈. 낚시터에선 몇 시간째 ‘0’마리였다. 그래도 아버지 도움은 있을 수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26cm 붕어로 첫 손맛을 봤다. 14시간 동안 8마리를 낚았다. 초짜치고는 대단한 조과. “낚싯대 대신 공을 쓰는 게 낫겠다”던 허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감을 금세 잡더라”며 칭찬하는 허재의 입도 귀에 걸렸다. 부모는 부모일 뿐이다. 자식의 일을 대신 해줄 수도 없고, 하려 해서도 안 된다. 스스로 뿌리고 거둔 열매라야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운동이든 낚시든 뭐든.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농구대통령’ 허재에게 낚시가 없었다면 코트 인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용산중과 용산고 시절부터 이미 당대 최고 대어로 이름을 날린 그는 일찌감치 대학팀들의 스카우트 공세를 받았다. 양대 농구 명문 고려대와 연세대를 제치고 중앙대가 허재 영입에 성공한 데는 낚시가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 당시 정봉섭 중앙대 감독은 허재 아버지 허준 옹(2010년 작고)이 낚시광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허재가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5년 가까이 허준 옹과 낚시를 다니며 정성을 쏟은 끝에 ‘청룡군단’ 중앙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여의주를 품은 중앙대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양분하던 대학 농구 코트 판도를 뒤흔들었다. 한기범, 김유택, 강정수, 강동희, 장일 등을 앞세워 캠퍼스 최강으로 군림했다. 허재는 대학 내내 자신에게 러브콜을 보낸 현대, 삼성이 아닌 신생 기아자동차를 선택한다. 이 선택에 정봉섭 감독의 영향력은 물론 클 수밖에 없었다. 기아자동차는 현대 삼성의 양강 체제를 무너뜨리고 농구대잔치 시절 왕조를 이뤘다. 어찌 보면 한국 농구 역사가 낚시터에서 이뤄졌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허재 역시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낚시의 묘미에 빠져들었다. 골프 이전에는 낚시가 유일한 취미였다. 낚시라면 농구만큼이나 열정이 많은 허재가 자신의 뒤를 이어 농구 선수의 길을 걷고 있는 아들 허훈(KT)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허재는 17일 오후 9시 50분 방영 예정인 채널A 예능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2’에 등장한다. 허재는 “아들과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서로 바쁘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며 “방송을 계기로 처음 같이 하게 됐는데 소중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 최우수선수 출신 허훈 역시 “낚시라는 걸 처음 했는데 어디서도 느끼지 못한 신선한 분위기였다. 치열하게 운동만 하다가 여유로워 좋았다”고 했다. 도시어부 녹화 당시 허재는 아들에게 떡밥을 개고, 찌를 맞추는 요령 등 낚시의 기본을 일일이 가르쳐줬다. 허재는 “훈이가 운동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처음 해본 낚시인데도 잘 하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재는 낚시에 얽힌 일화도 많다. 1987년 충남 아산(온양)에서 있었던 남녀 농구대표팀 합동 단합대회 에피소드는 여전히 생생하다. 허재는 대표팀 다른 선배 3명 등 네 명이서 관광용 소주 67병과 맥주 한 상자를 비웠다. 그러고도 모두 잠든 사이 새벽 낚시를 해 붕어를 잡아왔다. 당시 멤버였던 현 프로농구 감독은 “새벽에 화장실에 갔더니 세면기에 붕어가 잔뜩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떠올렸다. 허재는 “낚시터에 왔는데 가만있을 순 없었다. 좀 취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며 웃었다. 선수와 감독 시절 다혈질로 알려진 허재는 낚시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게 사실. “내가 낚시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믿지를 않는다. 성격이 급하긴 한데 낚시터 가면 12시간도 앉아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잡념을 없애는 데 최고다. 물론 한 잔 하는 맛도 최고다.” 허재는 아버지에게 배운 낚시를 통해 마인드 컨트롤과 대인관계 형성에도 도움을 많이 봤다. KCC 선수 시절 하승진은 “허재 감독님과 낚시를 갔는데 고기도 구워주시고 자상하게 대해주셔 마음을 열 수 있었다. 감독님을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온갖 뒷바라지로 자신을 키운 아버지(허준 옹)와는 낚시를 하며 부자간의 애틋한 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쌓을 수 있었다. 허재는 은퇴 후 아내, 두 아들과 미국 연수를 떠났다가 KCC 감독 제의를 받고 귀국했다. 자신만 돌아와 기러기 생활을 하고 나머지 가족은 계속 미국 유학생활을 시키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극구 만류로 모두 귀국했다. “가족은 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 늘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게 아버지 주장이었다. 만약 가족들이 미국에 그냥 있었다면 후일 한국 프로농구의 간판으로 성장한 허재의 두 아들 허웅(DB)과 허훈은 없었을지 모른다.앞으로 허재는 자신이 아버지와 그랬듯 두 아들과 짬나는 대로 낚시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허훈 역시 “다음엔 아버지, 형과 다시 낚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농구 코트에선 모든 게 빠르다. 낚시터는 기다림의 공간이다. 농구를 하는 두 아들도 그런 지혜를 터득했으면 좋겠다. 뭐든 완급조절이 중요하다. 새 시즌엔 부상 없이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왕성한 방송활동과 함께 세월을 낚는 허재의 한 마디였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지난 주말 모처럼 온 가족이 TV 앞에 모였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아빠와 거리 두기가 심해진 10대 중반 두 딸까지 명당자리를 다퉜다. 10년 만에 국내에 복귀한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 등장한 컵 대회 결승 생중계 덕분이다. 왕성한 방송, 유튜브 활동으로 연예인 같은 인기를 누리는 김연경은 팀을 결승까지 이끈 뒤 GS칼텍스를 만났다. 4경기에서 한 세트도 잃지 않아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단 한 세트도 따지 못한 흥국생명의 완패였다. GS칼텍스는 철저한 분석을 통해 상대 공격 루트를 봉쇄했다. 4경기에서 47.4%였던 김연경의 공격성공률은 28.6%로 떨어졌다. 공격점유율이 25.6%에서 33.9%로 늘어났음에도. 데이터 배구 전문가인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GS칼텍스는 장신 러츠(206cm)가 김연경(192cm)을 막도록 라인업을 바꾼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세터 출신답게 흥국생명 세터의 볼 배급도 언급했다. “평소 이다영은 라이트 공격수를 향하는 토스가 일정하지 않다. 그런데도 다급한 나머지 믿는 선수(김연경)에게만 볼을 집중하다 보니 성공률이 더 떨어졌다. 나중엔 김연경이 그만 주라고 사인을 보내더라.” 기대가 컸던 컴백무대에서 마침표를 못 찍은 김연경이 넷플릭스 추천 1순위로 꼽은 작품이 있다. 마이클 조던과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의 성공 신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다. “조던이 구단, 선수 간 불화 등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고 우승을 이루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몰입했다.” 김연경의 추천사처럼 이 작품은 조던의 강력한 리더십, 갈등과 치유 등 감춰진 내면을 끌어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990년대 6번 우승(3연패 2회)을 차지한 왕조의 황제로 군림한 조던은 모든 경기를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뛴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서란다. 때론 폭군이었다. 강한 훈련을 신봉하면서 못 따라오는 동료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챔피언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가장 잘 알고 있던 그는 그 기준에 미흡하면 폭언도 퍼부었다. 선수단이 전세기로 이동할 때 승무원에게 후배 호러스 그랜트는 밥도 주지 말라고 했다. 플레이가 형편없었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컨디션 관리를 강조한 것이었다. 스티브 커는 연습경기 후 조던의 주먹을 맞고 눈에 멍이 들었다. 거친 몸싸움 끝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둘 사이는 끈끈해졌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던 스코티 피펜이 1998년 파이널 6차전에서 허리 통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해졌지만 “코트에서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해보라”며 투지를 주문했다. 조던은 누구보다 많은 땀으로 솔선수범했기에 정나미 떨어질 법한 행동도 쓴 약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공통의 목표만 있었을 뿐 내 편, 네 편 가르기는 없었다. “내가 하지 않은 걸 남에게 시키지 않았다. 내 열정은 전염성이 있다. 늘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프로야구 두산은 ‘어우’ 대명사로 불린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 3번 우승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우리에겐 좋을 게 없는 표현이다. 부담, 방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선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지피지기와 원 팀 정신으로 흐름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에 오르고, 지키는 일은 결코 슈퍼스타(리더) 혼자서 해낼 수 없다. “재주로 몇 게임 이길 수 있지만 우승은 팀워크와 통찰력이 있어야만 한다.” 조던이 남긴 이 명언이 스포츠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경북 군위에 18홀 대중골프장이 새롭게 조성된다. 외식 전문업체인 의령소바(대표이사 박현철)가 9월 착공에 들어가는 이지 스카이(EASY SKY) 컨트리클럽(CC)이다. 의령소바는 ‘의령소바’와 ‘기찬메밀국수’라는 브랜드로 전국에 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외식 전문업체가 단독으로 골프장 사업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2022년 5월 개장을 목표인 이지 스카이CC는 경부고속도로 북대구 나들목에서 20분, 구미와 안동, 영천 나들목에서 40분이면 도착이 가능한 뛰어난 접근성을 지녔다. 대구와 경북지역은 물론 대전과 청주 등 충청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이 있다는 분석이다. 98만1818㎡(약 29만7000평) 부지에 국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18홀(파72·6999야드) 규모로 설계됐다. 대림건설이 시공을 맡는다. 코스는 편안한 플레이가 되도록 세팅했다. 넓으면서 굴곡이 없는 페어웨이와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그린에 벙커와 해저드 부담을 줄여 주말 골퍼들이 여유로운 라운드를 즐기기에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18홀을 도는 동안 ‘힐링 골프’가 되도록 코스마다 풍광에 걸맞게 다양한 종류의 꽃나무 92만 그루를 심어 꽃길 코스를 조성할 예정이다. 골프장 관계자는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처럼 초록빛 잔디와 화려한 꽃의 조화를 통해 내장객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지 스카이CC는 차별화된 음식을 제공할 계획이다. 모기업이 음식전문기업인 만큼 색다른 레스토랑을 연출한다는 구상. 호텔 수준의 다양한 종류와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고급화된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경영 철학을 담았다. ‘면장(麵匠)’으로 알려진 박현철 대표가 직접 골프장을 운영하며 음식에도 정성과 혼을 담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현철 대표는 “의령소바와 기찬메밀국수라는 브랜드로 전국에 100개 이상 매장을 보유하다 보니 고객들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며 “이지 스카이CC를 찾는 골퍼들이 누구나 만족할 수 있도록 부담 없는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지 스카이CC는 넓은 라커룸에 사우나에는 지하 1000m의 암반수에서 뽑아 올린 광천온천수를 제공하기로 했다. 여성 골퍼만을 위해서는 오픈 공간 없이 개별 파우더 부스를 설치한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지난 주말 경기 성남 남서울CC에서 끝난 허정구배 제67회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은 한국 골프 스타의 산실이다. 70년 가까운 오랜 역사 속에서 숱한 한국 골프의 간판스타를 배출했다. 이 대회 우승을 계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경태, 노승열, 이수민 등은 프로 데뷔 후 필드 강자로 떠올라 한국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투어에서 활약했다. 최근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해지스골프오픈에서 우승한 김한별도 2017년 이 대회 챔피언 출신. 올해에는 국가대표 조우영(한국체대 1년)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유서 깊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조우영은 최종 3라운드에서 이글을 2개나 낚으며 최종 합계 9언더파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9번 홀과 16번 홀에서 2온에 성공한 뒤 이글에 성공한 게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지난달 20일 대구CC에서 끝난 송암배에서 2차 연장전 끝에 정상에 오른 뒤 한 달도 채 안돼 권위 있는 타이틀 2개를 잇따라 거머쥐었다. 송암배와 허정구배를 한 해에 동시 석권한 경우는 2013년 이창우 이후 7년 만이다.골프를 배우는 친구의 영향으로 8세 때 골프채와 처음 인연을 맺은 조우영은 평균 270m 보내면서도 90%를 넘나드는 높은 페어웨이 안착률을 기록할 만큼 안정된 드라이버 샷을 지녔다. 뒷심 부족이 약점으로 지적됐지만 최근 성적에서 보듯 고비에서 흔들리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퍼팅을 적중시키는 집중력이 향상됐다는 평가다. 보완해야할 부분은 쇼트게임이라고 밝혔다. 조우영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한연희 전 대표팀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연습 장소는 이번 대회와 같은 남서울CC. 조우영은 “평소 연습하던 골프장에서, 명성 있는 대회에서 우승하게 돼 매우 뿌듯하다. 지난해 긴장을 많이 했는데 올해 좀 성숙해진 것 같다. 한 타 한 타 신중하게 샷 한 것이 우승의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한연희 감독은 “드라이버와 퍼터에 장점이 많다. 차분하고 내성적이지만 송암배 우승 이후 자신감과 여유가 생겼다. 무엇보다 틀에 박히지 않고 몸에 맞는 자연스러운 스윙이 강점이다”고 평가했다. 한국체대는 이번 대회에서 조우영을 비롯해 박준홍과 오승현이 2,3위에 이름을 올려 아마추어 골프 명문의 위상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한국체대 박영민 교수는 조우영에 대해 “여름방학 기간 대회가 많아 체력 소모가 많았을 텐데 컨디션 관리를 잘했다. 성실한 성격이 빛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이번 대회기간에는 제9호 태풍 ‘마이삭’이 한반도를 강타해 정상 개최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대한골프협회는 철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과 함께 면밀한 기상 체크로 매끄럽게 경기를 진행했다. 협회는 기상청의 시간대별 태풍 이동 경로를 분석해 1라운드는 예년보다 빠른 오전 8시 첫 조를 출발시킨 뒤 2라운드는 태풍이 한반도를 빠져나간 뒤인 오전 11시 30분 첫 조를 내보내도록 조정했다. 티오프 시간을 늦춰 전날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 제거 등 코스 정비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협회는 대회 기간에 폭우 및 낙뢰 위험으로부터 선수와 관계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기 위해 2019년부터 미국 기상업체인 ‘모바일 웨더팀’의 기상예보 유료서비스에 가입해 대회 장소 골프장 지역의 날씨 정보와 실시간 낙뢰 정보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정확한 시간에 중단, 재개가 가능하다는 게 협회 관계자의 얘기다. 대한골프협회 오철규 사무처장은 “기상정보를 항상 켜놓고 낙뢰 및 폭우의 구름 상황을 추적하고 있다. 해당 골프장 중심으로 20마일(약 32km) 이내 접근하면 면밀하게 모니터링을 시작해 10마일(약 16km) 이내면 경기 중단 시점으로 간주한다”고 설명했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골프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늘어나는 시기다. 코로나19 확진이 필드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탁 트인 야외에서 밀접접촉을 피하면서 운동할 수 있어 국내 골프장은 오히려 성수기를 맞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모처럼 나선 골프 라운드에서 호쾌한 장타를 꿈꾸는 마음은 남녀노소가 똑같을 게다. 평소 꾸준한 스윙 연습이나 근력 훈련이 어려운 주말골퍼라면 티만 잘 꽂아도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에 따르면 드라이버 스윙에서 헤드스피드와 로프트가 동일한 조건이라면 티의 높이가 2인치(약 5cm)일 때 ‘어택 앵글’이 가장 커져 비거리를 극대화 할 수 있다. 이른바 장타에 이상적이라는 상향타격이 이뤄지는 것이다. 어택앵글은 임팩트 직전에 헤드와 티 위에 놓은 공이 이루는 각도를 말한다. 클럽헤드가 지면과 수명을 이루는 최저점인 0도를 기준으로 대부분의 스윙은 -3도에서 10도 사이에 분포한다. 예를 들어 어택앵글이 마이너스라고 하면 다운블로로 공을 가격하게 돼 오히려 비거리 손실은 본다. 티 높이가 낮으면 클럽헤드가 최저점에 도달하기 이전에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스윙의 최저점을 지난 뒤 임팩트가 일어나야 공이 적당히 뜨고 톱스핀을 먹게 돼 캐리와 런을 모두 늘릴 수 있다. 다운블로는 백스핀을 증대시켜 거리 손실을 가져온다. 미국 트랙맨의 실험에서도 드라이버 샷은 클럽헤드가 스윙 최저점을 지나 올라가는 단계에서 5도의 상향 각도로 공을 때려야 최대 비거리가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흔히 티샷할 때 드라이버 크라운(맨 윗부분 뚜껑)이 티업한 공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중심선에 일치하는 것이 이상적인 높이로 여긴다. 최근에는 비거리 증대를 위해 크라운을 공의 밑 부분에 맞추는 추세가 늘고 있다. 한국 프로골프의 간판스타 박상현은 장타를 내려면 “어드레스 때 공 위치를 평소보다 앞쪽에 놓고, 공 반개 정도 높게 놓은 뒤 힘껏 스윙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타이거 우즈 등을 가르친 션 폴리 코치는 “날씨나 페어웨이 상태, 코스 등에 따라 티 높이를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은 “뒷바람이 불 때는 티를 조금 높게 꽂고 맞바람일 때 그 반대로 한다. 하지만 주말 골퍼의 경우 맞바람에 티를 낮게 꽂는 걸 무척 주의해야 한다. 스윙이 가파르게 돼 과다하게 스핀이 걸리거나 공이 뜨게 돼 거리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맞바람이 불 때는 티를 낮게 꽂아야 저탄도로도 비거리 손실을 줄이며 방향성을 높인다. 뒷바람이 부는 상황에서는 티를 높게 꽂으면 비거리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초보자일수록 티가 너무 높으면 정확한 임팩트가 쉽지 않고 고탄도에 훅성 구질이 나올 확률이 높다. 티가 낮으면 탄도가 낮아지고 페이드나 슬라이스 구질이 나올 수 있다. 골프용품 전문가인 재미교포 램퍼트 심 칼스배드 골프 부사장은 ”볼 스트라이킹 능력이 뛰어난 미국PGA투어 프로들은 보통 2와 3분의4 인치 티를 많이 쓴다. 반면 한국의 일반 골퍼에게는 3인치 이상의 티가 많이 팔린다. 티가 낮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느낌을 갖게 되고 뒤땅 우려도 있어서다“고 말했다. 티의 기울기도 구질에 영향을 준다. 타깃 방향으로 약간 기울여 놓으면 자연스럽게 페이드성 구질을 구사할 수 있다. 반대로 티를 티잉구역 뒤쪽으로 기울여 놓는다면 저탄도에 드로우 구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골프 규칙에 따르면 티의 높이는 4인치(10.16cm)를 넘지 못하도록 돼 있다. 19세기 초 나무 티가 발명되기 전에 골퍼는 모래로 티를 만들었다. 손이나 원뿔모양이 틀을 사용해 작은 마운드를 만든 뒤 그 위에 공을 올려놓고 티샷을 한 것. 미국골프협회에 따르면 1899년 보스턴의 치과의사 조지 그랜트 박사가 처음으로 목재 골프티를 발명했다. 하버드대 치과스쿨을 졸업한 사상 두 번째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랜트 박사는 취미 삼아 골프를 즐기다 흙으로 티를 만드는 불편함 탓에 나무 티를 제작한 뒤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장타로 유명한 영국의 여자프로골퍼 로라 데이비스는 요즘도 티를 꽂지 않고 흙이나 모래 한 줌 위에 공을 올려놓고 샷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티는 보통 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는 제작비가 적게 들고 환경오염 소지도 적다. 플라스틱 티는 나무에 비해 잘 부러지지 않아 내구성이 강하지만 좀처럼 썩지 않아 환경파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첨단기능이 도입된 티도 쏟아지고 있다. 슬라이스를 방지시켜준다거나 비거리를 최대한 늘려준다는 특수 재질의 마법의 티도 등장했다. 야간 라운드가 늘어나면서 밤에 쉽게 찾을 수 있는 야광티도 있다. 어떤 골퍼는 공만큼이나 티를 소중히 여기기도 한다. 이런 골퍼를 만난 캐디는 티를 잘 찾아야 하기에 티가 떨어지는 위치까지 신경 쓰기도 한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한만두’를 아십니까. 분식 얘기는 아닙니다. 코리안 특급을 떠올린다면 야구에 제법 관심이 많다고 인정받을 만합니다. 박찬호는 LA 다저스 시절 세계 야구 역사에 전무후무할 기록 하나를 남깁니다. ‘한 이닝에 만루 홈런 두 개’를 허용한 거죠. 주인공은 페르난도 타티스(세인트루이스)입니다. 21년도 넘은 이 사건을 소환한 건 타티스가 24세 때 낳은 아들 타티스 주니어(21) 때문이죠. 야구 2세로 샌디에이고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한만두 2세’가 최근 텍사스와 맞붙었을 때입니다. 10-3으로 앞선 8회 초 1사 만루에, 볼카운트 3-0에서 그는 치기 좋은 한가운데 속구를 제대로 받아쳐 담장을 넘겼습니다. 시즌 11호 홈런으로 이 부문 리그 1위에 올라섰죠. 그 옛날 아버지의 만루홈런만큼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야구의 불문율 논란에 불을 붙여서입니다. 야구에서 크게 앞선 팀은 희생번트나 도루 등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기면 빈볼로 응징하거나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타티스 주니어의 홈런이 나오자 교체된 텍사스 투수는 다음 타자의 등 뒤로 공을 던졌습니다. 텍사스 감독은 경기 후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샌디에이고 감독도 ‘타티스가 기다리라는 사인을 못 본 것 같다’고 미안함을 표시하더군요. 일종의 묵계를 깨뜨린 걸로 본 거죠. 타티스 주니어 역시 “몰랐다. 다음엔 치지 않겠다”며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거세게 일었습니다. 충분히 홈런을 노릴 만했다는 거죠. 그를 두둔하는 동료 선수들과 현지 언론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야구처럼 다른 스포츠도 비슷합니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 지나친 개인기나 세리머니를 자제합니다. 축구는 쓰러진 선수가 나올 경우 볼을 밖으로 내보내 경기를 중단시킨 뒤 상태를 보거나 치료하게 합니다. 농구에선 4쿼터 막판 승패가 갈리면 작전 타임이나 반칙 작전을 쓰지 않습니다. 배구에서 결정적인 스파이크나 블로킹을 성공시켜도 네트 너머 상대를 바라보며 환호하지는 않습니다. 국민타자 이승엽은 국내 최다인 통산 467홈런을 날렸습니다. 실력만큼이나 인성도 남다르다는 평가입니다. 홈런을 친 뒤 고개를 숙인 채 빨리 베이스를 돈다거나 겸손한 멘트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3볼, 0스트라이크에서 친 홈런은 1%도 안 되는 4개더군요. 이 대목에서 이승엽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타티스 주니어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저라도 무조건 쳤을 겁니다. 프로라면 최선을 다하는 게 맞는 겁니다. 7, 8점 차가 뒤집어질 수도 있고요.” 그 역시 상대 투수가 자신이나 동료를 삼진으로 잡은 뒤 어퍼컷이라도 날리면 열 받는다고 합니다. 한국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선 기싸움이 중요하기에 홈런 뒤 액션이 커진다고 하네요. 전통이나 동업자 정신만 강조하다가 게임의 극적인 요소를 반감시키면 안 될 일입니다. 맥 빠진 엔딩을 원하는 팬들은 없습니다. 열린 해석으로 의외성이나 이슈가 불거진다면 관전의 맛을 더하는 양념이 됩니다. 이승엽은 자신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반구저신(反求諸身)’이라는 고사성어를 적어뒀습니다. ‘남 탓을 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서 문제점을 찾는다’는 의미랍니다. ‘대학’에서는 ‘혈구지도(絜矩之道)’를 강조합니다. 기역자 모양의 직각자로 잰다는 뜻으로 내 마음을 잣대로 삼아 남의 마음을 재고, 나의 심정을 기준으로 남의 처지를 헤아리라는 말입니다. 달라진 시대에 맞춰 불문율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출발점이 되는 타인에 대한 배려만큼은 늘 중시돼야 합니다. 코로나19 유행의 절박한 위기감 속에서 그 정신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