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박제균 고문

동아일보 임원진

구독 1

추천

안녕하세요. 박제균 고문입니다.

phark@donga.com

취재분야

2024-11-05~2024-12-05
칼럼97%
선거3%
  • [박제균의 휴먼정치]나는 왜 김정주 같은 친구가 없나

    ‘대박 검사장’ 진경준 사건은 최근 술자리 단골 안주다. 세간의 설(說)이 오가다 보면 이런 농담도 나오게 마련이다. “난 왜 김정주 같은 친구가 없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넌 검사가 아니잖아….” 하지만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 같은 스폰서는 검사 세계에서도 ‘대박’이다. ‘스폰서 검사’나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 드러나듯 수억 원대가 뇌물의 최대치였다. 돈과 권력으로 맺어진 친구 진경준-김정주 커넥션은 이 판을 수백억 원대로 키웠다.1%만 판치는 ‘100% 대한민국’ 김정주는 시세차익 122억 원의 대박 주식을 건넸을 뿐 아니라 주식 대금 4억 원까지 살뜰하게 챙겨줬다. 3000만 원대 제네시스 차량도 줬고, 진경준 부부 해외여행 경비까지 댔다. ‘권력이 벌어준 돈’ 맛에 취한 진경준은 김정주로부터 독립해 나름의 ‘창업’까지 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이던 2009∼2010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탈세의혹 내사를 무마하는 대가로 처남의 청소용역업체에 ‘일감 몰아주기’를 요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업체가 대한항공을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사 등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익은 134억 원이나 된다. 진경준이 거기서 멈추고 옷을 벗었다면? 수백억 원대 재산가 변호사에 전관예우까지 받으며 지금도 떵떵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간 크게도 돈과 권력을 함께 거머쥐려 했다. 아니, 거기서 멈출 수 없었을지 모른다. 수백억 원의 재산은 권력이 가져다준 것이기에 권력이 사라지면 손아귀에 쥔 모래처럼 빠져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지 않았을까. 그런 불안을 덜어주고, 돈과 권력을 양손에 쥐는 베팅을 하도록 진경준의 간을 키워 준 사람이 있다고 나는 본다. 대한민국 검찰의 인사와 감찰 실세인 ‘우병우 선배’다. 멈출 줄 몰랐던 진경준은 돈과 권력을 모두 잃게 됐다. 특임검사팀은 진경준의 140억 원대 불법재산을 묶어 두는 조치를 법원에 청구했다. 처남 업체가 벌어들인 돈도 범죄 수익으로 판명나면 추징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우병우-진경준-김정주로 이어지는 3각 커넥션은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온 대다수 검사들까지 깊은 허탈감에 빠뜨렸다. ‘100% 대한민국’을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서 유독 1%의 특권층이 판치는 현상이 도드라지는 것은 왜일까.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의 얘기. “박근혜 정부 인사를 보면 정무직 이상 요직에 공무원 법조인 군인과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연(緣)이 닿는 ‘패밀리 교수군’의 4가지 부류만 쓴다. 공무원과 법조인, 군인 모두 상명하복 조직이다. 대통령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말할 사람들이 아니다. 국무총리도 검찰 출신 아닌가. 패밀리 교수 또한 다른 의견을 내겠는가. 무엇보다 이들은 정권이 끝나면 자기가 속했던 그룹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다. 그들만의 카르텔에서 벗어날 수 없다.”편중 인사가 특권층 키워 박 대통령이 상명하복 조직에 편중된 인사를 하는 것은 ‘배신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국가보다는 자신이 속한 카르텔에 충성하면서 밥그릇만 챙기는 것은 더 큰 배신이다. 무엇보다 이구동성으로 ‘1% 카르텔’을 비난하면서도 기회만 된다면 그 카르텔에 끼고 싶어 안달인 한국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우린 정녕 이런 사회를 물려주어 자식들마저 어디 돈 많은 친구 없나, 힘 있는 친구 없나 기웃거리게 만들 건가.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7-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박제균]김문수와 정동영

    정치인이 골프를 치다 벼락에 맞아 죽었다. 얼굴을 보니 웃는 표정.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란다. 정치인 풍자 유머다. 정치인이 정치의 꿈을 접을 때는? ‘관 뚜껑에 못 박을 때’라나. 정치부 기자 시절 낙선 경험이 있는 의원에게 들은 얘기. “선거에 떨어진 날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오던 기자들 전화가 딱 끊어지더라. 그게 그렇게 허전할 수 없다….” ▷2007년 여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은 531만 표라는 사상 최대 표차로 참패한 지 4개월 만에 서울 동작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당선이 보장된 지역구(울산 동)를 던지고 올라온 정몽준에게 패했다. 정동영은 이듬해 4월 재·보선을 앞두고 탈당해 자신의 지역구였던 전주 덕진으로 돌아가 당선됐다. 2012년 총선에선 서울 강남을에서 떨어지자 2015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다시 탈당해 관악을에 출마했다. 여기서도 고배를 든 그는 국민의당으로 옮겨 4·13 총선 때 다시 전주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된 뒤 얼마 되지 않아 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김 의원은 특이하게도 내가 입은 티셔츠의 박음질에 관심을 보였다.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때인 1971년 구로공단 미싱공장에 위장취업했을 때 박음질을 배웠다고 했다. 김 전 지사는 운동권 출신답지 않게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 ‘보수의 아이콘’이 되려 했으나 정작 보수층으로부터 그다지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경기지사를 연임하며 적잖은 업적을 냈지만 이 또한 저평가된 편이다. ▷김 전 지사가 8·9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보수의 본고장 대구에서 당선돼 ‘큰 꿈’을 이루려던 그가 낙선 4개월 만에 당 대표 자리를 노린다니 씁쓸하다. “대권을 포기하더라도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는 설명도 옹색하게 들린다. 더구나 이번 전당대회에는 2012년 당 대선후보 경선 때 현역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했던 김용태 의원이 뛰고 있다. 정치인에게 정치란 마약과도 같은 걸까.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7-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대통령의 타이밍

    지난 주말 TV 채널을 돌리다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 재방송을 봤다. 노래 대결에서 패하면 복면을 벗는데, 더원이란 가수가 가왕(歌王)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복면을 벗은 뒤 아쉬워했다. “발라드를 부를걸 그랬나 봐요.” 더원이 부른 노래는 아이유의 히트곡 ‘좋은 날’. 덩치 큰 더원이 아이유의 귀여운 율동을 흉내 내며 부르는 ‘좋은 날’이란…. 노래 실력은 알겠는데,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정치는 타이밍의 예술 발라드를 부를 때와 경쾌한 댄스곡을 할 때가 따로 있듯 모든 것엔 때가 있다. 특히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대세론’을 풍미하던 시절 신문 1면에 사진이 실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원로 정치인 A 씨가 찍히곤 했다. 참모들은 A 씨가 이 총재의 수구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질색하곤 했다. 결국 참모들이 나서 A 씨가 이 총재 곁에 오지 못하도록 했다. 놀라운 일은 사진 찍을 땐 보이지 않던 A 씨가 현상(現像)만 하면 이 총재 주변에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참모들은 “A 씨는 타이밍의 귀재”라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도 타이밍의 귀재였다. 타이밍이 성패를 가르는 군사정변을 성공시켰을 뿐 아니라 적기(適期)에 필요한 경제정책을 내놓아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다. ‘공격적인 창업자’와 ‘주저하는 2세’는 재계에서도 흔한 현상. 아버지와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타이밍 감각은 무딘 편이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이런 스타일 때문에 대선 후보 땐 ‘원칙의 정치인’ 이미지를 굳혔다. 그러나 통치자는 달라져야 한다. 정치와 정책이 타이밍을 놓치면 국민과의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 박 대통령은 2014년 세월호 참사 33일 만에 눈물로 사과했다. 절절한 토로였으나 실기(失期)한 뒤여서 호소력이 약했다. 4·13총선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고도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투의 달랑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놓았다. 국민은 폐부를 파고드는 조용필 노래를 듣고 싶은데, 속사포 랩으로 퉁쳐버린 경우라고 할까. 총선 후 한 달이 지나서야 찔끔 청와대 인사를 했고, 그나마 참패 책임론이 불거진 현기환 정무수석비서관은 남겼다. 현 수석은 총선 한 달 반 뒤에야 물러났으나 개각은 여전히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민주화 이후 가장 타이밍 감(感)이 뛰어난 대통령은 단연코 YS(김영삼)다.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회를 숙청해 대한민국에서 쿠데타의 공포를 없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는 터키에서도 엊그제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YS는 ‘돈과 권력을 동시에 가져선 안 된다’며 공직자 재산공개를 통해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줬다. 부자라고 불이익을 받는 시대는 지났지만, 권력으로 돈을 벌거나 돈으로 권력을 사는 악행은 엄단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권력을 치부(致富)에 악용한 진경준 검사장 비호 의혹을 받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다.우병우 교체 失期 말아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리더십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재임 중 테러조직 폭격을 오늘 결정할까, 내일 할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오늘 결정해서 해결할 확률이 70%만 돼도 나중에 결정해 확률을 100%로 올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 대통령의 결정은 시간 싸움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7-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언제부터 우린 말만 앞서는 나라가 됐을까

    임진(壬辰)년 그해, 의주로 피란길을 떠난 선조가 임진강 나루에 이르렀다. 가슴을 치며 중신들에게 묻기를 “장차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이항복이 답한다. “의주로 가서 머물다 팔도가 함락되면 명나라로 가는 것이 가할 줄 아옵니다.” 류성룡이 막아섰다. “불가합니다. 임금께서 우리 땅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떠나신다면 그때부터 조선은 우리 땅이 아닙니다.”(송복의 ‘조선은 왜 망하였나’)선의 기대려는 사드 無用論 류성룡의 충절(忠節)이 돋보이는 대목이지만, 왜(倭)가 침략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던 조정이 임금의 피란처를 두고도 갑론을박한 일은 돌아볼수록 한심하다. 되씹고 싶지 않은 치욕의 역사가 떠오른 것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배치를 둘러싼 국론 분열상 때문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국가 안보가 걸린 중대사를 두고도 서로 치고받는 나라가 됐을까. 중국 언론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필리핀 손을 들어준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앞장서 비난한다. 사회주의 국가니 그렇다고 치자. ‘언론 자유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중국 주장이 일리 있다’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사드 배치 반대론자의 주요 논거는 ‘실효성이 없다’는 것. 성능이 확인되지 않은 데다 고작 1개 포대 48기의 요격 미사일로 1000여 기의 북한 미사일을 막아내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논리다. 어차피 방어가 안 되는데, 공연히 중국을 자극해 경제 보복 등의 빌미를 줘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현재 대한민국 상공은 북한의 장사정(長射程) 방사포와 스커드, 노동 미사일 등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그러나 동네 깡패에게 힘이 달리니, 공연히 대항하려다 깡패 뒤의 보스를 자극하지 말자는 것처럼 무책임한 주장이다. 기초체력을 키우든, 신무기를 갖출 경제력을 키우든 자강해야 산다. 상대방의 선의(善意)에만 기댔던 나라는 패망을 피하지 못한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사드를 시작으로 패트리엇(PAC-3) 요격 미사일이든, 이지스함에서 발사되는 SM-3 미사일이든 다층 방공망 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일각에선 강대국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위치가 분열 유전자를 우리의 DNA에 각인시켰다는 주장도 나온다. 스위스가 영세중립국을 표방한 것은 독일(북) 프랑스(서) 이탈리아(남) 오스트리아(동) 같은 서구의 전통 강국에 둘러싸여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명까지 목숨을 바치는 용병의 전통과 민간인도 48세까지 매년 20일씩 실전 훈련을 받는 시스템으로 키운 만만찮은 군사력으로 주위에서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차기 대권을 꿈꾼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사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주장하다 말이 꼬이자 스위스 국민투표 사례를 거론했다. “우리 민도(民度)가 스위스보다 낮다는 얘기냐”고 엉뚱한 얘기까지 끌어댔다. ‘구덩이에 빠지면 아래를 더 깊이 파지 말라’는 미국 속담처럼 실수를 만회하려다 또 실수하는 법이다.웬 ‘스위스 민도’ 타령인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등 각종 국론 분열 사례를 돌아보자. 말만 앞세워 반대하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잊어버리곤 하지 않았던가. 류성룡은 임란(壬亂) 중인 1595년 이렇게 개탄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오래 견뎌내는 것이 없다. … 의지가 굳게 서 있지 못하고, 계획이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엔 갑의 말을 듣고 일을 진행하다가 저녁엔 을의 말을 듣고 폐지한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7-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친박은 없다

    그때 박근혜 의원은 혼자였다. 2002년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캠퍼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박 의원 옆엔 아무도 없었다. 파리 특파원이던 나는 이 대학에서 열린 한영(韓英)포럼을 취재 중이었다. 박 의원은 그해 2월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포럼에 참석했다. 탈당 이유는 ‘제왕적 총재’ 아래서 ‘이회창 사당화(私黨化)’했다는 것. ‘이회창’만 ‘박근혜’로 바꾸면 뒷날 그가 많이 듣게 되는 비판이 아닌가. 대선을 앞두고 난공불락일 것 같던 ‘이회창 대세론’ 아래 박 의원이 설 땅은 거의 없었다.50대 서청원, 의장을 놓치다 그로부터 10년 뒤. 다시 마주 앉은 박근혜 대선후보. 주위엔 수많은 보좌진이 있었다. 정치부장으로서 박 후보를 인터뷰하는 자리였다. 유력 후보를 처음 인터뷰하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다. 박 후보는 10년 새 대세론의 이회창계보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계보다 훨씬 단단한 친박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 듯, 친박계가 이제 쇠락하기 시작했다.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자 일부 친박이 서청원 의원에게 출마해 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든다. 김영삼(YS) 대통령의 가신(家臣)이었던 서 의원은 1997년 대선에 나선 이회창 후보가 YS와 차별화하자 결별했다. 하지만 2002년 대선 때는 중앙선대위원장으로 이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민주계 출신으로 이회창을 돕다 친박계로 변신한 서 의원. 국회 최다 8선으로 ‘정치 8단’쯤 되는 그가 전대 출마를 고사하는 이유는 뭘까. 총선 이후 강성 친박에 제동을 걸곤 하는 그가 세상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무엇보다 그는 50대였던 2000년에 국회의장을 손에 쥘 뻔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직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리 만무하다. 당시 5선의 그는 민주당 이만섭 의원과 의장직을 놓고 자유투표로 겨뤘다. 한나라당이 제1당인 여소야대(與小野大)임에도 8표 차로 석패했다. 당내 경선에서 그가 이겼던 박관용 의원은 다음 국회의장이 됐다. 이번에 ‘친박 대표’로 낙인찍히면 차기 의장직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친박계가 쇠락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수장인 박 대통령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총선 전에는 공천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매달렸고, 그것이 친박의 구심력이었다. 총선은 끝났고, 1년 7개월 남은 정부의 자리는 썩 매력적이지 않다. 박 대통령 또한 챙겨주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은 ‘의리’를 강조하지만 의리로만 결속하는 조직은 없다. 일각에서 TK(대구경북)에선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퇴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대단한 착각이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의 딸이자, 부모를 모두 총격에 잃은 ‘비운의 공주’ 박근혜에게 느끼는 ‘짠한’ 부채의식은 대통령이 되면서 갚았다.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모를까, 쉽지 않은 일이다.대통령 성공 막는 ‘보스’ 인상 박 대통령으로서도 지난 총선 때 너무 강하게 박힌 ‘친박계 보스’ 이미지가 성공을 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통치행위가 계파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읽힐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상징적으로라도 김무성 유승민 의원을 보듬어야 하는 이유다. 한때 친박계보다 셌던 친이계는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총선을 거치며 친노(친노무현)는 사실상 사라지고 친문(친문재인)만 남았다. 그런 게 정치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7-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우리 안의 브렉시트

    ‘관료는 영혼이 없다’지만 A에게선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났다. 능력을 인정받아 젊어서부터 승승장구했으나 부하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고위직에 올라서도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소신을 잃지 않았다. 따르는 후배 공무원들이 많았고, 갑자기 옷을 벗었을 때는 선배 중에도 아까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이기주의로 쪼개진 사회 기자인 나보다 더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를 비판하던 A와는 딱 하나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바로 연금 문제였다. 연금개혁이 이슈가 됐을 때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얼마나 특혜인지, 혈세로 연금 재정을 메워야 하는 일반인의 박탈감이 얼마나 큰지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설명해도 씨알조차 먹히지 않았다. 그 대신 ‘평생 박봉에 고생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공무원의 최후 보루’라는 판에 박힌 얘기를 되풀이하곤 했다. 누구보다 수치에 밝고 객관적인 그였음에도…. 중소기업을 하는 지인은 사회에서 가까워진 선배 B가 19대 국회의원이 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임기 초 “꼭 한번 의원회관에 놀러오라”는 B의 얘기에 기껍게 찾아간 지인이 들은 첫마디. “나한테 뭐 부탁할 거 없어?” 마치 민원인 대하듯 하는 B의 태도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후원금 좀 내라’ ‘행사 지원을 하라’는 요구가 많아졌다. 기분은 나빴지만 거절하기는 어려웠다는 고백이다. 언제부터 한국사회가 이토록 직역(職域)이나 지역, 혈연 또는 계파 이기주의에 함몰돼 갈가리 찢어졌을까. ‘우리가 남이가’ 식의 이익공동체만 난무할 뿐 대한민국 전체를 ‘운명공동체’로 바라보는 시각은 실종된 지 오래다. ‘내 편’과 ‘네 편’으로 싸우며 내 편이 이길 수 있다면 고립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총선 전후 청와대와 친박 핵심이 국민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막장 패권 드라마를 멈추지 않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세계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도 상대에 대한 ‘톨레랑스(관용)’가 사라진 세상의 단면도다. 그래도 과거 정치인들은 말이라도 ‘대의(大義)’를 내세웠다. 정치부 기자 초년병 시절 정치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경구(警句)가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였다. 언제부턴가 한국정치에서 이 말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들은 기억이 2012년 김무성 의원이 공천에 탈락한 뒤 탈당을 고민하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을 선언할 때. 김 의원은 자신이 했던 “나보다 당이 우선이고, 당보다 나라가 우선”이란 말을 돌아봤으면 한다. 29년 전 어제, 대한민국은 운명공동체였다. ‘6·29 민주화 선언’은 지금까지 계속되는 ‘87년 체제’의 주춧돌이다. 87년 헌법은 민주화라는 대업(大業)을 이루고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나는 본다. 다들 ‘5년 단임제의 폐해’를 말하지만 눈앞의 이익에 빠져 개헌을 주도할 세력도, 지도자도 보이지 않는다.‘나보다 당, 당보다 나라’ 2013년 11월 타계한 전쟁영웅 채명신 장군. 5·16군사정변 때 5사단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해 쿠데타를 성공시킨 주역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는 결연히 반대했다. 이 때문에 1972년 전역한 뒤 1988년까지 16년간 해외에서 사실상 유배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에도 정치에는 눈도 주지 않다가 장군묘역(8평)을 마다하고 1평 사병묘역에 묻혔다. 대의를 위해 소리(小利)를 내던지는 지도자가 아쉽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6-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박제균]‘핌피’ 부추긴 추다르크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7월 5일 밤 서울의 한 식당. 집권당이던 민주당 의원들과 출입기자들의 술자리에서 사달이 났다. 한 여성 의원은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비판한 문인에 대해 ‘가당찮은 ×’이라는 험구를 쏟아냈다. 참석한 동아일보 기자에게는 자신의 인터뷰 기사가 그 문인 기사보다 작게 나간 것을 항의했다. 급기야 탁자를 내리치며 욕설까지 뱉었다. “사주(社主) 지시로 글 썼느냐. 이 사주 같은 ×, 비겁한 ×. 이 ××야.” ▷김 대통령 발탁으로 정계에 진출한 판사 출신 추미애 의원이다. 여성 최초로 직선 5선에 오른 그의 별명은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 2004년 총선 때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위기에 처한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사죄의 ‘3보 1배’를 했으나 당을 구하진 못했다. 럭비공처럼 튀는 직정(直情)적 성격만 부각되곤 했다.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안의 상정조차 막아 원성을 사더니 그해 말엔 한나라당 상임위원들과 노동관계법을 통과시켜 출당(黜黨) 위기에 몰렸다. ▷더불어민주당 8·27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추 의원이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공약해 다시 구설에 올랐다. 27일 전주를 방문해 “당 대표가 되면 새만금 신공항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당권 주자로 뛰는 전남 출신 송영길 의원에게 맞서 전북 표심에 구애하겠다는 계산이다. 전남 정치권은 반발했다. 운항 실적이 저조한 무안공항과 광주공항을 통합 재편해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로 영남이 둘로 쪼개졌다가 겨우 봉합된 게 엊그제다. 추 의원은 28일 “새만금 신공항 계획은 제가 선뜻 꺼낸 선심 제안이 아니라 이미 타당성 조사 중인 국책사업”이라고 해명했다. ‘타당성 조사’와 건설 약속은 다르다. 수익성 있는 사업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겠다는 지역이기주의를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이라고 부른다. 핌피를 부추겨 물을 흐리는 건 늘 정치인들이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6-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양극화 상업주의

    입 달린 사람마다 양극화(兩極化)를 말하는 시대다. 20∼2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도 초점은 여기에 맞춰졌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모두 양극화 해소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같은 하늘을 바라볼 때 다른 하늘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것이 기자의 본성이다. 이들에게 양극화 해소는 시대정신일까, 아니면 ‘시대의 패션’일까. 이들은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시대정신? 시대의 패션? 4선인 정 원내대표는 부친인 정석모 전 의원(10∼15대)에 이어 부자 10선(選) 기록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금수저’다. 올해 재산 신고액이 44억 원. 공직자 신고 기준에 따른 재산은 실제 액수의 절반 이하라는 게 정설이다. 김 대표는 여야를 넘나든 비례대표 5선 기록 보유자. 능력도 있지만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의 손자로 역시 금수저 출신. 올해 신고 재산 88억 원. 특이하게도 금괴를 8.2kg(3억여 원어치) 갖고 있다. 역시 금수저인 안 대표의 지난해 신고 재산은 787억 원. 안랩 주식의 절반을 기부하는 바람에 줄어든 게 그만큼이다. 그런데 올해는 주가가 올라 두 배가 넘는 1629억 원으로 뛰었다. 재산 기부 전인 2014년의 1569억 원보다 오히려 늘었다. 여당 원내대표로는 선구적(?)으로 지난해 교섭단체 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지적했던 유승민 의원도 부친이 국회의원(유수호·13, 14대)을 지낸 금수저. 신고액은 지난해 35억 원에서 올해 44억 원으로 9억 원가량 늘었다. 금수저라고 해서, 재산이 많다고 해서 당의 대표로 나선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주장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당이, 아니 자신이 먼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반성부터 해야 울림이 생긴다. 금수저와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양극화는 내년 대선에서도 첫 번째 화두로 예상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다. 다만 정치인들이 입을 맞춘 듯, 양극화를 주워섬기는 것은 그것으로 얻는 정치적 이득이 있기 때문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것도 모자라 대물림까지 하려는 국회의원과 법조인, ‘노(勞)피아’는 기득권을 내려놓은 뒤 양극화를 말해야 설득력이 있다. 65세 정년에 든든한 연금, 노후 걱정 없는 강남좌파 교수가 ‘격차 해소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해도 노후 불안에 떠는 소시민은 ‘그래 너 잘났다’로 듣는다. 50대 초반인 대기업 고참 부장 A 씨. 그는 요즘 들어 ‘내 인생의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채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입사 동기들은 거의 다 회사를 나갔고, 남은 동기는 임원을 달았다. 부쩍 ‘자리를 치워줬으면…’ 하는 노골적인 압력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기득권 내려놓고 말해야 A 부장은 어릴 때 ‘신동’ 소리까진 못 들었지만 공부를 잘했다. 서울대는 아니지만 명문대를 나와 평생 열심히 일했다. 자식은 한 해 2000만 원이 드는 기숙학원까지 보내 서울의 알 만한 대학을 나왔지만 취업을 못한다. 노후 대비라고는 서울 강북의 집 한 채와 예금 약간, 65세쯤이나 돼야 나오는 알량한 국민연금이 전부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의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채웠을까….’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6-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박 대통령이 역사에 죄를 짓지 않으려면

    “저는 집권 후 4년 중임제와 국민의 생존권적 기본권 강화 등을 포함한 여러 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해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지금이 개헌 골든타임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직전인 2012년 11월에 발표한 공약이다. 박 대통령이 말한 ‘국민적 공감대’는 확보돼 있다. 적어도 개헌 필요성에 대해서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20대 국회 들어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개헌 논의가 이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개헌 시기는? 현행 헌법은 1987년 ‘독재 타도’를 내세운, 사실상 시민혁명 상황에서 탄생했다. 혹자는 ‘지금이 정치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국민 불신·불만이 혁명 직전 상황’이라고 말하지만, 혁명적 상황이 다시 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개헌을 하려면 헌법상 발의와 공고, 공포의 주체인 대통령의 의지가 관건이다. 박 대통령은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개헌 얘기가 나올 때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입을 막았다. 입장을 바꿔보면 박 대통령의 공약 파기도 이해는 된다. 박 대통령뿐 아니라 어떤 최고 권력자가 ‘대한민국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에 충만한 임기 초에 개헌이라는 블랙홀에 주인공 자리를 내주고 ‘과도기 대통령’ ‘과도기 정권’으로 밀려나려 하겠는가.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 임기 초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개헌의 골든타임이다. 전임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임기 후반에 개헌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그때마다 ‘권력 연장’ 의도라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나는 꼭 그렇게만 보지는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국가 정점에 오른 순간 대개는 사심을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종교에 빠진다. 의욕적으로 해보려다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때가 임기 후반이 아닐까. 하지만 그때쯤이면 대권 고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미래권력이 개헌을 양해해줄 리 없다. 지금은 어떤가. 대선이 1년 반밖에 안 남았지만 가시권엔 미래권력이 안 보이고, 미래권력이 아닌 현재권력이 개헌에 반대하는 희귀한 경우다. 박 대통령은 4월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만났을 때 개헌에 대해 “경제가 살아났을 때 국민들의 공감대를 모아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논의의 문은 열어놓았다. 초를 치는 것 같지만 여대야소(與大野小) 정국에서도 실패한 경제 살리기가 여소야대에서 될까. 이미 한국 경제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 전망에도 증시가 출렁거릴 정도로 세계 경제와 연동돼 있다. 무엇보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구조를 바꿔놓지 않는 한 요원한 일이라고 나는 본다. 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보다는 ‘경제를 살리는 구조’로 정치의 판을 바꾸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으면 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공화정으로는 거대해진 로마의 경영이 더 이상 어렵다는 것을 간파하고 사실상 제정(帝政)을 시행했다. 결국 ‘독재자’라는 이유로 암살됐지만 ‘팍스 로마나’의 기틀을 잡았다.“추진 반대 안 해” 표명해야 물론 개헌은 대통령이 나선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다만 박 대통령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국회에서 추진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정도로 입장 표명만 해도 엄청난 동력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개헌에 최적화된 정치상황은 다시 오기 어렵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박 대통령은 물론 기성세대는 역사와 후손에 죄를 짓는 것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6-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가장 위험천만한 南南분열

    “행정부와 의회가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우리 외교정책도 중국의 달라진 G2 위상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수정돼야 한다. 중국의 대북제재를 압박하기 위해 의회가 원자력협정 중단 법안을 발의한 것은 재검토돼야 한다.”美日언론, 외교에 한목소리 미국 언론이 7일 끝난 미중(美中) 전략경제대화를 비판한 것을 가상해 본 기사다. 그러나 미 유수 언론에서 이런 논조의 기사나 사설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금 문제 같은 경제정책이나 동성애와 낙태 등 각종 사회정책은 혹독하리만치 후벼 파는 미국 언론도 국익이 걸린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일본 언론은 한술 더 뜨고, 사회주의 중국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 언론만이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거리낄 것 없는 언론자유’를 구가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과 개성공단 폐쇄는 물론 천안함 폭침 같은 피격 상황에도 정반대 논조의 기사가 나왔다. 언론 자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민감한 외교안보 기사를 다룰 때는 국익의 무게와 교량(較量)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 자세다. 언론부터 이러니 사드의 영어 약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입해야 되느니 마느니, 미사일방어 효과가 있느니 없느니’ 목소리를 높인다. 한국에 사드 배치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이런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한심할까.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정부 부처도 제각각이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외교부와 통일부의 속내가 같은 경우는 드물다. 전통적으로 외교부는 미국에 경도된 시각으로 정책을 바라본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에 일본 전문가는 많지만 한국 전문가는 드물다. 미국도 일본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을 보는 경우가 많다. 외교부 시각이 미일 중심일 수밖에 없다. 통일부는 대북 화해협력이 부처의 ‘존재 이유’지만 힘도, 정보도 없다. 외교부의 파워에, 국가정보원의 정보에 밀릴 수밖에 없다. 통일부가 외교부보다 셌던 적이 있다. 노무현 정권 때다. 한국의 위상과 외교 현실을 무시한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북핵은 자위수단’이라는 황당한 대통령 발언이 나왔다. 통일외교 정책의 엇박자를 막으려면 결국 외교부와 통일부를 유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국정원은 또 어떤가. 연간 2조 원에 가까운 예산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방대한 조직이지만 예산 명세를 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까. 기업으로 치면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공룡이다.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 조정하기 위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NSC 상임위원장인 국가안보실장에 연달아 군 출신이 앉으면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소리가 높다. 초대 김장수, 2대 김관진 실장은 유능한 군인이었을지 몰라도 외교안보를 총괄할 정책 좌장감은 못 된다.안보 분열은 파멸의 길이다 이념 갈등까지 혼재된 안보정책 남남 분열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골이 깊다. 문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마느냐는 갈등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 굳이 임진왜란 때 동인과 서인, 병자호란 때 주화파와 주전파의 싸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라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적어도 내년 대선만큼은 각 주자들이 선명한 외교안보 정책을 내고, 치열하게 맞붙는 ‘안보 대선’이 됐으면 한다. 격론의 용광로 속에 남남 분열을 태우고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도록.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6-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반기문 발트하임의 방북

    “반기문은 대선에 나올까? 늘 그렇듯이 ‘정치는 생물’이지만, 나는 나오는 쪽에 건다. … 과연 그가 전 인생을 건 싸움에 나설지, 5월 방한 행보를 들여다보면 좀 더 분명해질 것 같다.”김일성-박정희 연쇄회담 ‘반기문, 꽃가마는 없다’는 제목의 3월 11일자 본 칼럼 내용이다. 5월 방한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전 인생을 건 싸움’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그가 이번에 남긴 말 가운데 유독 내 눈길을 끈 것은 북한 관련 언급이었다.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제가 유일한 만큼 기회가 되면 (방북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 얼핏 정부 당국이 들으면 기분 나쁠 정도로 자신을 ‘유일한 남북 대화 채널’로 차별화했다. 방북에 집념을 드러내는 그를 보면서 전임자 한 사람이 떠올랐다. 4대 유엔 사무총장인 쿠르트 발트하임(1972년 1월∼1981년 12월). 그는 1979년 5월 2, 3일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났다. 다음 날인 4일 서울을 방문해 5일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만났다. 당시 발트하임은 남북 정상에게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 통로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자신이 대화 채널이 되거나 그 역할을 수행할 ‘옵서버’를 지명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2007년 타계한 발트하임은 지하의 그가 알면(?) 깜짝 놀랄 정도로 갑자기 한국인의 관심을 받는 인물이 됐다. 유엔 총장을 지낸 뒤 대통령에 당선된 유일한 반 총장(8대) 전임이기 때문이다. 3선을 노렸던 발트하임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자신의 주요 업적으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해 박 대통령 서거로 없던 일이 됐고, 결국 3선에 실패했다. 반 총장이 이런 사실(史實)을 모를 리 없다. 총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그의 표현대로 ‘한국 시민으로서 할 일’의 발판을 다지는 데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하는 것만큼 딱 떨어지는 그림도 없다. 발트하임은 1938∼45년 나치 장교로 근무했다. 이런 전력이 총장 시절 드러났다면 직무 성격상 수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력이 드러난 것은 그가 오스트리아 대선 후보로 뛰던 1985년. 그만큼 선진국에서도 국제정치보다 국내정치의 검증이 무섭다. 그럼에도 이듬해 54%의 득표율로 당선된다. 독일보다는 전후 청산이 덜 엄격했던 사회 분위기에 ‘나치 치하에서 누구라도 별수 없었다’는 ‘시대의 공범자 의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발트하임 사례에서 보듯 반 총장에 대한 검증은 이미 시작됐다. 최근 외교문서 공개로 1980년 미국 유학 중이던 그가 망명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난 게 그 신호탄이다. 반 총장은 방한 중 “나를 흠집 내기 위한 보도”라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열을 올렸다. 국록을 먹는 고위 공무원이 당시로선 반정부인사 동향을 보고한 것이 크게 누가 될 일은 아니다.검증 통과보다 비전이 중요 외교관 출신으로 꽃길만 걸어온 그가 치열한 검증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 그러나 검증의 가시밭길을 통과해서라도 대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유엔 사무총장 출신 반기문이 집권한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이끌겠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일이다. 국민들에겐 유엔 총장을 배출한 나라라는 긍지보다 하루하루 안전하게 먹고사는 문제가 비할 수 없이 중요하다. 화려한 이력과 권력욕만으로 대선에 달려들었다간 첫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인 그는 물론 나라에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6-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야당 집권해도 더 나빠질 것 없다”

    “정치인이나 관료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노심초사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자신의 인사 문제가 최우선이다. 인사를 꿰면 취재는 저절로 된다.” 정치부 기자 초년병 시절 선배가 알려준 취재 비법이다.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익을 위해 봉사해야 할 자리지만, 권력 엘리트들의 관심은 언제나 자신의 ‘자리’였다. 대체 정치는 왜 하는가 ‘선거만 없으면 지상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이 반증하듯, 국회의원 최우선 관심사는 차기 총선에서의 당선이다. 그 다음 원내대표, 사무총장 같은 당직이나 국회 의장·부의장, 상임위원장 같은 국회직에 군침을 삼킨다. 관료의 최대 관심은 물론 승진. 그것도 어떤 자리로 가느냐다. 그들이 원하는 자리의 경쟁자나 장애 요소, 인사의 키를 쥔 인물 등을 읊으며 때론 맞장구도 쳐주고 하면 어렵던 취재가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20년도 더 된 취재 후기를 떠올린 이유는 요즘 들어 부쩍 ‘도대체 정치는 왜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어서다. 특히 막장 공천 분탕질부터 총선 참패 이후 한 달 보름이 다 되도록 계파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집권세력을 보면서 ‘국리민복을 위하는 척이라도 해주면 안 되나’ 하는 심정마저 든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친박의 패권주의가 첫째 원인이지만, 비박계라는 사람들도 잘한 건 없다. 원 구성 협상을 앞두고 친박 좌장 최경환 의원을 만나려는 비박계가 줄 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국회 부의장이나 상임위원장 같은 국회직을 노리고 최 의원의 지원 약속을 얻어내려는 그들을 보면 ‘정치란 과연 이런 것인가’ 하는 허무감마저 든다. 새누리당이 혁신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선거가 끝났기 때문이다. 당선이 최우선인 정치인들이 금배지를 거머쥔 이상 혁신에 조급할 이유도, 국민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정진석 원내대표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형국이다. 하지만 벌써 그에게 ‘김무성의 그림자가 비친다’는 소리가 나온다. 둘 다 집안 좋고, 인물 좋고, 사람 좋고, 기자들도 좋아하지만 너무 ‘좋은 게 좋은’ 사람이란 얘기다. 흔히 국회의원에게 4선은 ‘선택의 기로’라고 한다. 지역구 관리에 기대어 5선을 하려면 공천에서 기득권 배제 케이스로 탈락하거나, 본선에서 지역구민의 피로감 때문에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4선 안팎에서 광역단체장 선거로 방향을 돌리거나 이도저도 안 되면 불출마를 선언하는 의원이 많다. 정진석은 4선을 했지만 당적을 이리저리 바꾸거나 비례대표를 하면서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차기 총선 불출마든, 정계은퇴든 정치생명을 걸고서라도 혁신에 올인(다걸기)하라. 정치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보수 유권자도 재집권 포기” 시중에는 보수성향 유권자들마저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포기했다는 말이 파다하다. 집권보다는 눈앞의 소리(小利)에 매몰된 집권세력에 대한 깊은 배신감의 발로다. 문제는 집권세력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좌우 정권교체 10년 주기론’이 자연스럽게 먹히는 토양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그룹 중 하나인 탈북자 출신 사업가는 최근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비해 더 좋은 것도 없었다. 야당이 집권해도 더 나빠질 것이 없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5-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새누리당 문제의 뿌리는 不姙이다

    불임(不姙). 새누리당의 갈팡질팡은 여기서 출발한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이라는 사람들이 임기 2년도 안 남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장 공천을 저지른 것도, 혁신세력이 대통령과 차별화할까 봐 회의 소집마저 무산시키는 난장을 치는 것도 당에 ‘세자(世子)’, 또는 세자 후보군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세자’ 후보군 안 보여 대선 1년 7개월을 앞두고 이런 적은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 때는 노태우가, 노태우 때는 김영삼이, 김영삼 때는 이회창을 비롯한 ‘9룡’이, 김대중 때는 이회창이, 노무현 때는 이명박 박근혜가, 이명박 때는 박근혜가 있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대선후보가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며 당을 역동시키는 에너지를 창출한다. 지금은 미래권력이 안 보이니까 현재권력이 여전히 강한 구심력을 유지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후반까지 박 대통령 못지않은 고정표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당을 장악하진 못했다. 적어도 야권에는 문재인 안철수처럼 가시권에 든 대선후보군이 있다. 여당에서 가시권 대선주자였던 김무성은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 이후 보수 지지층에서 찬밥 대접을 받는다. 오세훈 김문수 같은 잠재 후보군은 총선에서 떨어졌다. 유승민 의원은 지도자라기보다는 평론가 인상이고,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오렌지족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현재권력이 영원할 줄 착각하는 친박에선 “비박(비박근혜)은 당을 나가주면 좋겠다”는 오만한 소리까지 나온다. 비박이라야 ‘웰빙 새누리당’ 안에서 커온 사람들이라 나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차제에 이런 질문은 던지고 싶다. 보수정당은 왜 50년 동안 같아야만 하나? 1963년 창당된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부터 민주정의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새누리당까지 모두 그 뿌리가 같다.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정주영의 국민당 같은 보수 색채를 띤 당도 있었다. 하지만 특정 지역과 금력에 치우친 정당이어서 정통 보수정당이라고 하긴 어렵다. 보수정당이 하나니까 꿈도 다른 언어로 꿀 것 같은,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한 그릇에 들어가 지지고 볶으며 ‘잡탕 정당’ 소리를 듣는다. 한 가지 반찬만 골라야 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도 지쳤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수도권 지역구에서 15%의 득표율을 올리고 비례대표 13석을 차지한 것도 보수 유권자가 고를 수 있는 ‘유사 보수’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야권은 분당(分黨)하면서 오히려 정치가 정상화되는 형국이다. 제3당인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것은 대화와 타협을 증진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탈당 사태 이후 남은 친노·운동권 세력은 위기감 때문에 김종인 대표를 영입해 적어도 겉으로는 변화의 몸짓을 보인다.보수정당은 50년 같아야 하나 보수라고 못할 일인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갈라서서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경쟁하면 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하든, 자체 후보를 세우든 각각의 대선후보를 만들어보라. 필요하다면 대선을 앞두고 보수후보 단일화를 할 수도 있다. 우파 또는 좌파 정당들이 힘을 합쳐 집권한 후 연정을 하는 것은 유럽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30년 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개헌이 어렵다면 정계개편을 통해서라도 정치의 판을 확 바꿀 필요가 있다. 그만큼 한국정치는 골병들었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박근혜가 시진핑을 설득할 수 없는 이유

    “아버지가 최고 간부로 권세를 누리던 시절 늘 상냥하게 웃어주던 이웃사람들, 아버지의 운전사, 가정부, 경비들 모두 나를 외면했다. 9세 소년에 불과한 내가 처음으로 인심의 냉담함을 뼈저리게 느낀 일이었으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배신 트라우마 공유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1962년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권력투쟁에 밀려 몰락했을 때를 회고한 글이다(소마 마사루의 ‘시진핑’에서 재인용). 어디서 많이 본 내용 같지 않은가. 박근혜 대통령이 1993년에 출간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는 비슷한 얘기들이 나온다. “옛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그들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이 한결같은 경우가 그야말로 드물었다… 이러저러한 배신을 하고 변할 것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한국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공교롭게도 ‘배신의 트라우마’를 공유한다. 그 결과 생긴 권력관마저 판에 박은 듯하다. “권력이나 부귀영화는 꽃처럼 쉽게 변한다. 정치란 얼마나 잔혹한가.”(시진핑) “권력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아무 죄 없는 사람의 가슴에 영원히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박근혜) 지난해 9월 톈안먼(天安門) 성루 외교로 정점을 찍은 박 대통령의 친중(親中) 노선은 외교가에서도 의아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보수 성향의 박 대통령이 3년이나 친중 외교를 펼친 데는 두 지도자의 정서적 유대가 한몫했다고 나는 본다. 한 살 차이(박근혜 64세, 시진핑 63세)로 권세와 몰락, 배신과 집권을 겪은 ‘공주’와 ‘태자’. 시 주석이 2005년 저장 성 당 서기 자격으로 방한해 만났을 때부터 친밀감을 느꼈을 것이다. 두 지도자의 밀월은 1월 북한 4차 핵실험으로 끝났다. 애초에 중국을 지렛대로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려던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전략 자체가 너무 순진무구(?)했다.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의 어릴 적 이름은 한자가 다른 위안차오(援朝)다. 리 부주석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르는 6·25가 발발한 1950년에 태어났다. 당시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캉메이(抗美)와 위안차오(援朝)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6·25 참전 중국군 전사·행방불명자는 중국 측 발표로 13만 명. 하지만 유엔 참전 16개국 전사자 17만 명보다 많을 것이란 게 정설이다. 유커들의 필수 관광코스에 판문점이 꼽히는 것도 선대가 피 흘려 지킨 북한에 대한 정서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정서가 ‘북한을 포기하면 미군과 국경을 맞닥뜨린다’는 중국의 오랜 국가 전략을 단단히 뒷받침한다.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한다고, 시진핑이 9일 북한 7차 당 대회에 맞춰 김정은에게 보낸 축전에서 ‘동지(同志)’라는 표현이 빠졌다고 좋아할 수 없는 이유다.북한 문제는 ‘웨이팅 게임’ 북한 문제는 모두 상대가 먼저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웨이팅 게임’이다. 한국은 북한 변화(핵과 대남적화 전략 포기), 북한은 미국 변화(평화협정 체결), 미국은 중국 변화(대북 전면 압박), 중국은 한국 변화(친미 노선 탈피)를 기다린다. 어느 나라도 쉽게 변할 수 없기에 풀기 어려운 문제다. 그렇다면 상대의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우리가 변해야 한다. 독자 전쟁 수행능력을 갖춰 미국 도움 없이 북한을 억지(抑止)하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자강(自强)만이 답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5-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박제균]막말 ‘더티 해리’ 대통령

    1989년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다바오 시. 교도소에서 벌어진 폭동사건 와중에 호주 여성 선교사가 집단 성폭행 끝에 숨졌다. 당시 시장이 그때를 회상했다. “그녀(선교사) 얼굴이 너무 예뻐서 내가 먼저 (강간) 했어야….” 당장 호주와 미국 대사가 항의하고 외교문제로 비화됐다. 그러자 그는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것”이라며 “내가 대통령이 되면 외교관계를 잘라 버리겠다”고 맞받았다. 그런데 진짜 대통령이 됐다. ▷9일 대선에서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71).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하며 ‘다바오 처형단’이란 자경단을 조직해 1700명의 범죄 용의자를 재판 없이 사살했다. 최악의 범죄도시가 깨끗해졌다. 대선에 출마해서도 “대통령이 되면 범죄자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 “범죄자 10만 명 시체를 마닐라 만(灣)에 처넣어 물고기를 살찌우겠다”는 험악한 말도 쏟아냈다. ▷‘필리핀의 더티 해리’란 별명도 얻었다. 강력계 형사가 범죄자를 거칠게 처단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미국 영화 ‘더티 해리’에서 따온 것. 인구 80%가 가톨릭 신자인 나라에서 지난해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춘부의 자식’이라고 욕해도, “장애인은 자살을 생각해보라”라는 험구를 내질러도 ‘범죄의 천국’ 필리핀의 국민은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막말 대선후보는 많았지만 대통령이 된 건 그가 처음이다. ▷막말 정치인의 원조 격인 프랑스의 장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FN) 당수. “나치의 유대인 학살 캠프는 역사에서 사소한 일” 같은 숱한 인종 비하 발언을 뱉었는데도 2002년 대선 결선투표까지 올라갔다. 브라질에선 여성 의원의 몸을 밀쳐 ‘성폭행범’이란 말을 듣자 “너는 손댈 가치도 없는 여자”라고 폭언했던 자이르 볼소나루 의원이 2018년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정치인의 막말은 가난과 치안부재 속에서 기성정치에 대한 분노에 부글대는 유권자의 정서를 유독가스처럼 파고드는 변종 포퓰리즘이다. 막말 하면 빠지지 않는 한국 정치판. 미국의 트럼프 같은 스타가 탄생할까봐 겁난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5-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보수우파, ‘임을 위한 행진곡’부터 許하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도입부 가사의 비장미와 격정적인 멜로디 때문에 대학 시절 집회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5·18민주화운동 행사가 이 노래 때문에 시끄러워질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논란의 핵심부터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합창(合唱)은 되고 제창(齊唱)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합창이나 제창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적어도 국가보훈처 주관 5·18 행사에서 합창은 합창단 노래를 따라 부를 수만 있다는 뜻이다. ‘애국가 제창’처럼 별도 식순으로 지정해 참석자 전원이 부르는 것은 안 된다. 이 노래는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정부 주관으로 첫 기념식을 연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2년간 기념곡으로 제창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제창이 공식 식순에서 제외됐다. 이에 반발한 5·18 단체들은 2010년부터 별도 기념식을 연다. 국가보훈처는 이 노래가 북한이 5·18을 소재로 만든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됐고, 정부에서 기념곡을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제창을 반대한다. 북한 영화에 아리랑이 나온다고 아리랑을 금지곡으로 할 것인가. 정부 주관 행사에서 12년간 제창했던 상징곡을 갑자기 빼앗기다시피 한 5·18 유족이나 관련자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1년에 한 번 국가 추도행사에서 제창한다고 이념에 색깔이 물드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기념곡으로 지정해 하나로 통합된 추도행사에서 애국가와 함께 제창하도록 해야 한다. 보수도 달라진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바뀌어야 한다. 20대 총선 유권자는 50대(19.9%)와 60대 이상(23.4%)이 43.3%로 30대(18.1%)와 20대 이하(17.6%)를 합친 것보다 7.6%포인트 많았다. 이런 구성비에 야권 분열 구도로 새누리당 압승이 예상됐지만 결과는 어땠나. 50, 60대 유권자의 양(量)이 늘었지만 질(質)이 달라진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독재 타도 데모에 나섰던 60대와 대학 시절 ‘임을…’을 목 터지게 불렀던 50대가 새누리당의 텃밭이던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에 주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여권 성향 유권자의 변화는 야권 분열 선거 구도마저 무력화시켰다. 수도권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국민의당이 야권표보다 여권표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19대 총선 수도권에서 5%포인트 미만 득표율 차로 당락이 갈린 지역구가 31곳이나 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수도권 지역구 득표에서도 15%나 가져가면서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그 결과 더민주당이 압승했다면 야권이 아닌 여권 분열 구도였음이 자명하다. 자식의 취업난을 목도한 여권 성향 유권자에게 ‘금수저’와 ‘헬조선’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수가 ‘집토끼의 반란’에서 살아남으려면 ‘각개 전투에선 지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각오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국정 교과서와 사이버테러방지법, 근로시간 단축 문제 같은 전선(前線)에서 유연함을 보여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구조조정 문제 등 안보와 시장경제의 핵심가치를 지키는 데 협상력을 높일 필요도 있다. 진보좌파는 김종인 안철수류(流)의 우클릭으로 지평을 넓히고 있다. 보수우파, 좀 더 좌클릭해도 대한민국 안 무너진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5-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박 대통령이 가장 먼저 만나야 할 사람

    “대통령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한국의 대통령 입에서 나온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집권 4년 차 대통령의 무력감과 회한을 토로했다. “꿈은 많고 의욕도 많고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했는데, 거의 안 됐어요. 혼자 가만히 있으면 너무 기가 막혀 마음이 아프고….” “대통령이 돼도 한번 해보려는 것을 이렇게 못할 수가 있느냐. 나중에 임기를 마치면 엄청난 한(恨)이 남을 것 같아요.” 총선 참패에 ‘내 탓이오’는 없고 ‘네 탓’만 하는 박 대통령을 보면 ‘정말 그렇게 못 바꾸나. 아니, 바뀌는 척이라도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 입장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면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식물국회’에서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이해도 간다. 지금 박 대통령의 처지와 고뇌에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이가 딱 한 사람 있기는 하다. 박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여소야대보다 더 힘든 것은 여당과 정부 내부에서 삐거덕거리는 것”이라며 “여당과 정부는 수레의 두 바퀴다. 이 바퀴는 이리 가는데, 저 바퀴는 저리 가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며 비박(비박근혜) 지도부 체제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야심 차게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은 2010년 6월 박 대통령이 공개 반대하면서 부결됐다. MB 레임덕의 신호탄이었다. 본보 정치부장이던 나는 집권 4년 차 이후 이 전 대통령을 정치부장단 오찬과 인터뷰 건으로 청와대에서 두 번 대면한 일이 있다. 당시 측근 비리와 내곡동 사저 논란에 시달린 MB는 지친 표정이었다. 무력감도 깊게 느껴졌다. 국회선진화법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막강한 ‘미래 권력’ 박근혜가 레임덕의 진원(震源)이었다. 취임 후 전직 대통령을 초청한 일이 없는 박 대통령은 MB부터 만나야 한다. 집권 4년 차 이후의 국정 경험을 경청하고, 전임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경험은 소중한 국가 자산이다. 정적(政敵)이던 MB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대선 본선에서 맞붙었던 전임 조지(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초청해 화해의 장(場)을 펼치지 않았던가. MB와의 단독 회동이 불편하다면 건강이 허락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함께 만나도 좋겠다.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은 말이 여당 정권승계지, 정권교체보다 더하다. MB 정부에서 잘나가던 관료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 물 먹은 이가 태반이다. 도리어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 정부에서 3년 넘게 장수하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의 반목은 대통령 단임제의 폐해를 증폭시켜 엄청난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집권 4년 차 이후 관료들은 차기 정권에서 물먹을까 봐 청와대 파견을 기피하는 게 현실이다. 5년마다 리셋(초기화)하는 ‘초보 정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실패의 사슬을 끊을 때도 됐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4-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총선 참패는 靑 ‘좁쌀 인사’부터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반년밖에 남지 않은 2012년 8월. 청와대는 주요국 대사 등 17명 해외공관장 인사를 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서 벌어졌다. 새 청와대가 공관장 인사를 하려고 보니, 임기를 채운 사람이 별로 없었다. 고민하던 청와대는 부임 1년도 안 된 몇몇을 불러들여 새 사람을 앉혔다. 당연히 주재국에선 ‘외교적 실례’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퇴임을 앞두고 대거 ‘이명박 표 공관장’의 대못을 박으려 했던 전 청와대에 1차 책임이 있다. 그렇다고 외교적 실례를 무릅쓰고 ‘박근혜 표 공관장’을 심었던 현 청와대도 잘한 것은 없다.일선부처 국장까지 간섭 ‘정치 9단’이었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때론 인사 잘못이 있어도 시중 여론을 시의적절하게 반영해 바로잡곤 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오기 인사’, 이명박의 ‘고소영 인사’, 박근혜의 ‘수첩 인사’까지, 인사에 능한 대통령을 본 지 오래다. 국정실패는 인사실패부터 시작된다. 그래도 전 정권까지는 해당 부처에 어느 정도 재량권을 줬다. 박근혜 청와대는 일개 부처 국장 인사까지 일일이 손대고 있다. 일선 부처가 청와대에 인사안을 올릴 때는 대체로 3배수로 제출한다. ‘1순위: A, 2순위: B, 3순위: C’ 식이다. 전 정권까지는 대개 1순위의 A가 큰 하자가 없으면 낙점됐다. 그런데 현 청와대는 A를 제치고 B, 때론 C를 낙점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책이 있으면 대책이 있다’고 했다. 꾀가 난 공무원들은 부처에서 미는 사람을 B, C 자리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눈치챈 청와대는 A, B, C를 모두 비토하고 ‘새판을 짜오라’고까지 한다. 그러다가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이 자리를 꿰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정상적인 의사결정 통로를 통해 이루어지느냐다. 청와대에는 대통령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가 있다. 국정(정책)기획수석과 정무수석은 상시 참석 위원이며 인사 대상자 해당 분야 수석이 돌아가면서 배석한다. 인사위원회까지 통과된 인사안이 막판 ‘어디선가’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러니 공무원들의 원성이 자자하지 않겠는가. 세종시에서 이해찬 의원이 연달아 당선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지만 입법 권력이 세질수록 청와대는 고유 권한인 인사권에 집착한다. 세계 어떤 선진국가에서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정부가 거대 기업·기관의 사장과 이사, 감사 등 재계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가. 시장경제의 근간인 주식회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불통인사로 오만 돋보여 대통령의 인사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인사와는 달라야 한다. CEO는 일 잘하고, 예쁘기까지 한 사람을 쓰면 그만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과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에서 보듯, 국민이 ‘어, 왜 이러지?’라고 느끼면 불통(不通)이 시작된다. 불통이 쌓이면 오만과 독선이 돋보이고, 결국 민심이 돌아서 심판을 내린다. 사족: 인사 얘기를 쓰는 것은 무척 조심스럽다. 예기치 못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거나 보복 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최대한 관련자들이 지목되지 않도록 두루뭉술하게 쓴 점, 양해 부탁드린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4-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위기의 박근혜, 개헌 ‘블랙홀’ 펼칠까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도로명 주소로는 종로구 청와대로1. 우리는 언제쯤 국민의 진정한 박수를 받으며 이곳을 떠나는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1987년 5년 단임제 헌법 개정 이후 청와대에 입주한 5명의 전임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정권 말에 코너에 몰렸고, 신임 대통령을 향한 환호를 뒤로하며 쓸쓸히 그곳을 떠나야 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만은 예외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민의는 ‘예외 없음’이라고 말한다.전임 대통령은 ‘오래된 미래’ 내년 하반기부터 대통령 선거전이 격화되는 것을 감안하면 박 대통령의 실질적 임기는 1년 남짓 남았다. 여대야소(與大野小)에서도 안 돌아가던 국정이 여소야대(與小野大) 3당 체제에서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전임 대통령들의 집권 4년 차는 박 대통령의 향후를 예고하는 ‘오래된 미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인 2011년 2월 1일 “개헌은 여야가 머리만 맞대면 그렇게 복잡할 것은 없다. (지금 하는 것은) 늦지 않고 적절하다”며 취임 후 처음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6년 2월 25일 취임 3년을 맞아 “대통령이나 정부, 국회든 5년의 계획을 세워 제대로 일을 하려면 중간에 선거가 너무 많은 것은 좋지 않다”며 개헌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 ‘미래권력’이던 박 대통령은 개헌에 반대했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참 나쁜 대통령”이라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왜 전임 대통령들은 똑같이 집권 4년 차에 개헌론을 꺼내 들었을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개헌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반대해 왔다. ‘포스트 박근혜’가 안 보이는 친박(친박근혜) 핵심들이 지난해 말 ‘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실세 총리’를 골자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을 꺼냈을 때도 찍어 눌렀다. 당시 박 대통령은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걱정 같은 건 해본 적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 오만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된 이번 총선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전임 대통령이 집권 4년 차에 개헌론을 꺼낸 이유도 자명하다. 개헌은 레임덕마저 빨아들일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으로 개헌으로 가는 최적의 정치적 토양이 조성됐다고 나는 본다. 레임덕에 시달릴 박 대통령과 호남 승부에 정치생명을 걸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이만한 위기 타개책이 없다. 총선 전 “3당이 되면 대선 결선투표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에게도 솔깃한 카드다. 총선 결과 대선주자가 ‘전멸’당하다시피 한 새누리당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개헌의 토양 무르익었다 정략적인 개헌 추진이라고?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대선 때마다 나라가 두 동강, 세 동강 나고 실패한 대통령을 줄줄이 양산하는 ‘87년 체제’는 30년이 다 됐다.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4년 연임제든, 분권형 대통령제든 권력구조뿐 아니라 21세기형 선거구제와 지방분권, 인권과 정보화 시대, 필요하다면 국회선진화법까지 개헌의 용광로에 넣어 검토할 때가 됐다. 어차피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국정이 흔들릴 것이라면 더욱 치열하게 흔들면 어떨까. 그래서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30년’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면 총선 참패도 박 대통령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4-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박제균의 휴먼정치]대통령이 예뻐하는 그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사람을 예뻐할까? 예를 들어 살펴보자. 먼저 이한구 전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20대 총선 공천 정국에서 가장 큰 논란의 소용돌이에 섰던 남자다. ‘막장 공천’으로 낙인찍힌 ‘비박(비박근혜) 학살’을 주도하면서 손에 피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의 욕이란 욕은 다 먹었지만, 박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친박(친박근혜) 대리인 역할을 누구보다 충실히 수행한 사내다.“이한구 일 잘 못해” 그런데 공천이 끝난 뒤 청와대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다르다. 박 대통령은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을 신뢰한다. 그런데 바로 ‘묵묵히’가 문제였다. 너무 시끄럽게 일을 벌였다. 무엇보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누구보다 먼저 잘라내야 할 유승민 이재오 의원을 살려놓았다. 유 의원을 진작 잘랐어야지, ‘공천 보류’니 뭐니 하면서 일주일 이상을 질질 끄는 바람에 ‘박근혜 대 유승민’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민심의 역풍에 뒤통수를 맞은 친박 핵심 김재원 의원과 ‘원조 진박(진짜 친박)’ 조윤선 강석훈 의원이 경선에서 나가떨어졌다. 서울 강남벨트에 출마했던 조, 강 두 의원은 10표 남짓 차이로 떨어졌으니 청와대에서 탄식이 나올 만도 하다. 한때 총선 이후 ‘이한구 국무총리’설이 돌기도 했지만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 좌장’ 최경환과 ‘친박 원로’ 서청원은 어떨까. 당초 친박계 내부에서는 20대 국회 전반기를 ‘최경환 대표-서청원 국회의장’ 구도로 가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막말 윤상현’을 감싸며 악재를 키웠다는 평가가 들린다. 아무리 박 대통령이 윤상현을 총애해도 필요할 땐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하는데, 사사로운 정리(情理)에 끌렸다는 것이다. 대신 ‘신박(신박근혜)’ 원유철 원내대표와 이인제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에서 김무성 대표를 적절히 견제해 박 대통령의 신뢰지수가 높아졌다고 한다. 최경환-서청원 체제 대신 ‘원유철 대표-이인제 국회의장’ 카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내부를 들여다보자. 이병기 비서실장이 전임 김기춘 실장보다 대통령과의 ‘심리적 거리’가 멀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박 대통령과 이 실장은 ‘화학적으로도’ 섞이기 어렵다고 나는 본다. 이 실장은 조용하면서도 자신의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그런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남의 말을 잘 들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는 최고의 참모였던 이 실장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박 대통령은 황교안 국무총리나 유민봉 전 국정기획수석비서관(새누리당 비례대표 12번), 안종범 경제수석처럼 시키는 일을 조용히 수행하되,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을 믿는다. 어쩌다 재량권을 발휘해 일을 했다간 대낮에 ‘레이저’를 맞거나 한밤에 ‘불의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지휘관에 재량권 부여해야 자고로 지도자는 현장 지휘관에게 일정한 재량권을 부여해야 조직의 활력이 극대화된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 패권을 놓고 격돌했던 포에니 전쟁. 로마 사령관은 군사작전을 짜는 것은 물론 강화조약을 맺는 재량권까지 있었다. 패전해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반면 카르타고 사령관은 패전하면 죽임을 당했다. 100년 이상 끈 전쟁이었지만, 승패는 일찌감치 결판났던 게 아닐까.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4-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