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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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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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7~202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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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제와 와인, 교황의 도시 아비뇽[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10여 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새벽 4시쯤에 출발해 자동차를 타고 남부 도시 아비뇽까지 간 적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김밥에 컵라면을 먹어가며 쉬엄쉬엄 13~14시간을 달려 저녁 해질 무렵에 아비뇽에 도착했다. 아비뇽의 성채를 지나 교황청 밑 도심 지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올라오니 거대한 고딕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었다. 마침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 이 열리던 7월이어서 교황청 앞 광장에서 밤늦게까지 현대무용과 마임 등 길거리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비뇽 교황청 내부까지 들어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프로방스 취재길에 교황청에 들러 내부까지 꼼꼼히 둘러보았다. 아비뇽은 론 와인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축제의 도시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교황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중세 로마 교황권과 프랑스 왕권간의 충돌로 교회가 대분열하고 ‘아비뇽 유수’가 벌어진 현장이었던 아비뇽 교황청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비뇽 교황청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 양식의 궁전’이라고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그 말대로 아비뇽의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opes, 교황의 궁전)’는 면적 1만5000㎡에 이르는 웅장하고 육중한 석조 건물이다. 성벽의 높이가 50m, 두께는 4m에 이른다. 뾰족한 탑과 망루가 세워진 성채가 그야말로 도시를 감싸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비뇽 교황청은 14세기 67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들이 살던 곳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병영으로 변모됐으며, 19세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됐다. 그래서인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의 미술품으로 화려한 로마 바티칸 교황청에 비해 아비뇽 교황청 내부에는 남아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 당시 ‘성상 파괴 운동’의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황청 옆에 있는 아비뇽 대성당 입구의 성상은 아직도 머리 부분이 부서진 채 그대로 있다. 프랑스 제11대 왕 필리프 4세(1268~1314) 때 당시 교황청은 교황권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왕권과 대립했다. 필리프 왕은 교황의 양해 없이 프랑스 내의 교회에 ‘임시세‘를 부과했고, 이탈리아 로마 남동쪽 ‘아나니’에 있는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급습해 3일 동안 투옥시켰다. 아나니는 보니파시오 교황의 탄생지며 별궁이 있던 곳이다. 교황은 시민들의 협력으로 구출됐으나 1년 후에 병사하고 만다. 아나니 사건 이후 왕권은 신장되고, 교황권은 쇠퇴하면서 교황청은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기게 된다. 1305년 프랑스인 클레멘스 5세(1264~1314)가 교황이 된 이후로 교황청은 67년간 프랑스에 있게 된다. 아비뇽에 거주한 교황들은 클레멘스 5세에서 시작해 요한 1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이노센트 6세, 우르반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1세까지 7대의 교황으로 이어지는데, 이로써 아비뇽은 제2의 로마로서 부각된다. 아비뇽 유수 시절 네번째 교황으로 재직했던 클레멘트 6세(재위 1342~1352)는 1348년 시칠리아 여왕으로부터 아비뇽을 사들여 교황청 궁전을 건축했다.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면 대연회실을 비롯해 기도실, 예배실, 회랑, 회의실, 주방 등 20여 개가 넘는 방을 관람할 수 있다. 내부의 화려한 장식과 가구는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 데, 입장할 때 주는 태블릿PC를 빈 벽에 비추면 중세시대 모습을 3D 증강현실 기술로 실감 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교황의 예배당과 침실에는 13~14세기 이탈리아와 프랑스 화가들의 프레스코화 그림이 벽에 남아 있고, 바닥의 모자이크 타일도 오랜 세월에 퇴색된 채 남아 있다. 성 마르샬, 성 요한, 대강당의 벽화는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지오바네티의 프레스코화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교황의 침실 벽의 프레스코화는 하늘색 배경 위에 포도 덩굴과 떡갈나무 잎사귀 그림이 섬유의 텍스타일 디자인처럼 새겨져 있다. 식물 사이사이로 새와 다람쥐가 묘사돼 있는 장면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의 틀은 밖으로 갈 수록 좁게 만들어져 있어 원근법을 활용한 장식으로 보인다. 벽체의 아랫부분은 커튼모양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바티칸 교황청의 내부 방들 아랫부분이 명암과 원근법을 활용한 그림으로 장식돼 입체처럼 보이는 눈속임을 활용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교황의 방에서 나오면 클레멘트 6세의 서재인 ‘사슴의 방(Chambre de Cerf)’으로 연결되는 좁은 복도가 있다. 이 벽에는 1343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화가에 의해 그려진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자연의 농장 안에서 사냥과 낚시, 과일따기 등 전원 속 즐거움을 그린 그림이다. 연못에서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흰담비를 이용해 사냥을 하고, 허브, 꽃이 피어 있는 숲 속에서 과일을 따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이 방의 천정 밑에는 화려한 레임 밑으로 붉은색 배경에 낚시, 사냥, 동물들이 나오는 프리즈(frieze) 장식도 둘러싸고 있다. 교황청 벽화라면 바티칸의 ‘천치창조’나 ‘최후의 만찬’과 같은 성화를 떠올리는데, 아비뇽 교황청에는 전원 속에서 매우 세속적인 즐거움을 표현한 그림이 그려 있어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밖으로 나오면 교황의 정원이 펼쳐진다. 요한 22세, 베네딕트 12세, 클레멘스 6세, 우르비노 5세 교황은 분수와 나무, 꽃이 있는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요한 22세는 곰, 사자, 낙타, 멧돼지, 사슴, 토끼 등 방대한 동물을 우리에서 길렀고, 후계자들은 타조와 공작도 정원에서 보고 즐겼다고 한다. 베네딕트 12세는 정원에서 교황의 식탁에 오르는 채소를 기르게 했다고 한다. 양배추, 시금치, 양파, 콩, 가지, 단호박 등의 야채와 마조람, 보리약초, 파슬리, 황소반 등 의약용 약초도 길렀다고 한다. 아비뇽시는 옛 문헌을 참고해 베네딕토 12세와 클레멘스 6세의 상부 정원과, 우르바노 5세의 하부정원의 꽃과 나무, 분수 등을 복원하고 있다. 현재 정원에는 포도나무, 꽃, 채소, 향신료 허브 등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교황청의 지붕으로 올라가면 뾰족탑과 요철 문양의 성채, 활을 쏘는 십자가 모양의 틈 넘어 아비뇽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교황청 오른편에 12세기에 세워진 아비뇽 대성당(노트르담 데 돔)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비뇽 대성당은 머리 꼭대기 돔 위에 4.5톤 무게의 황금빛 성모상이 햇빛에 비쳐 빛나고 있다.팔레 데 파프 광장의 한쪽에는 프티팔레 미술관이 있다. 아비뇽 유수 기간인 1320년에 지어진 옛 대주교의 궁전이었다. 현재 이곳은 보티첼리, 비토레 카르파초 등 13~16세기 이탈리아 종교화, 교황청 유물 등 뛰어난 종교 예술 컬렉션을 보유한 아비뇽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다.아비뇽 대성당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로쉐 데 돔 공원(Rocher des Doms)’이 나온다. 절벽으로 이뤄진 언덕 위에 만들어진 영국식 정원으로 아기자기한 연못도 있고, 인공 동굴도 있다. 공원의 정상 부근의 파노라믹 전망대에서는 붉은색 지붕이 모여 있는 아비뇽 시가지와 론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둥근 탑 아래로 론강에 놓여 있는 생베네제교가 입체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언덕 위 전망대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면 생베네제(Saint Benezet) 다리가 나온다. ‘아비뇽 다리 위에서’(Sur le Pont d‘Avignon)이라는 프랑스 민요로 유명한 다리다. 파리에서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쉬를 퐁 다비뇽 오니 덩스~, 오니 덩스~‘(아비뇽 다리 위에서 다함께 춤추자)하며 입에 달고 살던 동요였다. 아비뇽 페스티벌이 열릴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만들며 춤을 추거나, 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부르는 노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빙글빙글 돌며 ’강강술래‘ 를 부르던 것과 같이 프랑스인들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다.생베네제 다리는 12세기 양치기 소년 베네제가 신의 계시를 받고 하나하나 돌을 쌓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베네제는 론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강렬한 영감을 받고 계획을 실행하려 하지만 아비뇽 사람들은 비웃고 손가락질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베네자가 천사의 도움으로 서른 명의 장정들 힘으로도 들 수 없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서 옮기는 종교적 기적을 보여주게 된다. 이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 사람들은 다리 놓기에 참여하게 된다. 1177년에 시작된 대공사는 1185년에 마침내 완성된다. 베네제는 이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아 생(Saint) 베네제라 불리게 된다. 프랑스 아비뇽은 프로방스에 위치한 보클뤼즈의 중심이다. 알프스에서 발원해 지중해로 흘러드는 론 강이 아비뇽 생베네제 다리 밑으로 흐른다. 생베네제 다리는 원래 22개의 아치로 이뤄진 길이 920m의 다리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1226년 루이 8세가 아비뇽에 쳐들어온 전투 때 다리의 4분의 3이 파괴됐다. 이후 로마식 교각으로 겨우 재건했으나 17세기 초에 잦은 강의 범람과 홍수로 다리가 또 붕괴됐다. 현재는 4개의 아치만 남아 있다. 다리 중간 1,2층에는 생니콜라스 예배당과 생베네제 예배당이 있다. 강과 어부의 수호자인 성 니콜라스를 위한 예배당이자 천사의 계시를 받은 생베네제의 무덤이 있던 곳이다. 생베네제 다리가 끊긴 마지막 지점에 가면 론강 건너편에 바스텔라스 섬이 보인다. 야생적인 론강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섬을 만들어왔는데, 아비뇽 올드타운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바스텔라스섬은 면적이 700ha나 된다. 프랑스의 강 주변 섬 중에 가장 면적이 크다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이 되면 자동차를 타고 다리를 건거나 배를 타고 바스텔라스 섬으로 건너가보자. 아비뇽 시민들이 와인 한병과 과일, 샌드위치를 싸들고 피크닉을 떠나는 장소다. 바스텔라스 섬 쪽의 강변에 서서 아비뇽 구시가지를 바라보는 풍경이 기가 막히다.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교황청과 아비뇽 대성당에서 이어지는 생베네제 다리까지… 론강 물 위에도 아비뇽의 역사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이 비치는 것이 포인트다. 석양에는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하는데, 푸른색으로 넘실 거리는 론강의 숨결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교황청 역사지구를 둘러보다가 지친다면 교황청 바로 뒷편 골목에 있는 5성급 호텔 라 미랑드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좋다. 14세기 추기경의 궁전이었던 곳을 새단장한 호텔로, 창문으로 교황청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18세기 스타일의 앤티크 객실이 인상적이다. 1층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과 함께 분위기 있는 살롱 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이 곳 레스토랑의 19세기 키친에서도 호텔 셰프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프로방스의 미식과 요리를 직접 만들고 체험하면서,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아비뇽 구시가의 중심에는 시계탑 광장이라는 뜻의 ‘오를로쥬 광장’(Place de l‘horloge)이 중심이다. 오를로쥬 광장 왼편에는 아비뇽 시청사와 오페라 극장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 프랑스의 대부분의 광장에는 꼭 있는 회전목마가 놓여 있다. 애잔한 배경음악의 영화에 나올 법한 회전목마다. 노천카페와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는 광장 오른편에는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에 뿌리를 둔 예술 영화관 유토피아(Utopia)가 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비스트로도 있다. 아비뇽 구시가를 걷다보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건물을 발견한다. 프라이빗 호텔로 쓰이는 ‘라 디빈 코메디(La Divine Comédy)’의 정원에는 프로방스의 명물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거닐며 산책할 수 있다. 연못과 수영장, 대나무숲으로 구성된 프로방스의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라 디빈 코메디’는 이탈리아 대문호 단테의 ‘신곡(神曲)’이다. 이 정원을 걷다보면 단테가 두루 여행했던 천국과 지옥의 진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리라. 프로방스 보클뤼즈 지역의 중심도시인 아비뇽은 론(Rhone) 와인의 수도이기도 하다. 구시가지 골목길에 있는 ‘르 방 드봉 스와(Le vin devant Soi)’는 론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는 와인샵이다. 이 샵의 이름이 흥미롭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을 패러디해 ‘자기 앞의 와인’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자기 앞의 생’이 앞으로의 여생을 의미한다면, ‘자기 앞의 와인’은 내게 남은 여생에 즐길 와인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인가. 이 와인샵에서는 일정액의 카드를 구입하면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취향 껏따라 마실 수 있는 시스템이 눈에 띈다. 주인장은 지도를 펼쳐놓고 코트 뒤 론 부터 샤토 네프 뒤파프, 타벨, 바케라스, 지공다스, 에르미타쥬, 생조셉, 코트 로티, 콩드리유 등 론 지역의 명품 와인들의 포도 품종과 맛, 향기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아비뇽 교황청에서 가까운 골목길에 있는 ‘라 푸르셰트(La Fourchette)’는 미슐랭가이드가 추천하는 아비뇽 10대 레스토랑 중 하나다. 입구부터 메인홀까지 레스토랑 벽면에는 아비뇽 페스티벌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다. 축제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식당이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40년 넘게 운영해온 이 레스토랑에서 맛볼 요리로는 프로방스 아비뇽식 소고기찜 요리인 ‘도브(Daube de Boeuf)’를 추천한다. 국물이 자작한 소고기 스튜요리로 마치 갈비찜과도 유사한데, 레드와인과 토마토, 올리브, 아티쵸크, 그리고 허브를 넣어 5~6시간 익혀내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맛을 느낄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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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방스 햇살 품은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곳[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프랑스 남부 아비뇽은 14세기에 로마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해 7명의 교황이 재위했던 도시다. 인근 론강 유역에는 교황의 와인을 만들던 포도밭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매년 7월이면 세계적인 연극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이 펼쳐지는 프로방스 도시로 와인 여행을 떠나 보자.》 ●사냥 그림이 그려져 있는 교황청7월의 아비뇽은 축제의 도시다. 건물 곳곳에는 오페라, 연극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길거리와 광장 곳곳에서 마임과 무용 공연이 펼쳐지는 아비뇽은 론 와인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비뇽이 세계사에 기록된 ‘아비뇽 유수’와 교황의 도시라는 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로마 바티칸을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아비뇽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경험도 색다를 수밖에 없다. 아비뇽을 둘러싸고 있는 성채 밑으로 들어가면 교황청 밑 도심에 대형 주차장이 있다. 차를 세우고 광장으로 올라오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딕 건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팔레 데 파프(Palais des Papes·교황의 궁전)’. 면적 1만5000㎡에 이르는 육중한 석조 건물이다. 뾰족한 탑과 망루가 설치된 건물의 높이는 50m, 두께는 4m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비뇽 교황청은 14세기 68년간(1309∼1377년) 7명의 교황이 살던 곳이다. 프랑스 왕권과 로마 교황권의 대립 끝에 가톨릭 교회가 로마와 아비뇽으로 대분열했던 시기의 중심 도시다. 아비뇽에 거주한 교황들은 클레멘스 5세에서 시작해 요한 22세, 베네딕토 12세, 클레멘스 6세, 이노센트 6세, 우르반 5세 그리고 그레고리오 11세까지 7대의 교황으로 이어졌다.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면 대연회실, 기도실, 예배실, 회랑, 주방 등 20개가 넘는 방을 관람할 수 있다. 교황청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병영으로 변모하고, 19세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면서 성상과 장식품 등이 대부분 파괴됐다. 그런데 입장할 때 주는 태블릿PC를 빈 벽에 비추면 중세시대 모습을 3D 증강현실 기술로 실감 나게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교황의 침실과 예배당, 대강당 등에 남아 있는 프레스코화가 눈길을 끈다. 이탈리아 화가 마테오 조바네티 등 13∼14세기 화가들의 작품이다. 특히 교황의 침실 벽을 장식하는 포도 덩굴과 떡갈나무 잎사귀 문양 속에는 다람쥐와 새들이 숨어 있고, 클레멘트 6세 교황의 서재로 연결되는 복도에는 사냥과 낚시, 꽃과 과일이 그려진 벽화가 있다. 바티칸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성화에 비해 아비뇽 교황청에는 세속적인 즐거움이 담긴 현대적 벽화가 그려져 있어 사뭇 다른 느낌이다. 밖으로 나오면 교황의 정원이 펼쳐진다. 교황청 옆에 12세기에 세워진 아비뇽 대성당의 꼭대기에 4.5t 무게의 황금빛 성모상이 도시의 수호자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아비뇽 대성당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론강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민요로 유명한 다리가 나온다. ‘생베네제 다리’다. 12세기 양치기 소년 베네제가 천사의 도움으로 장정 서른 명의 힘으로도 들 수 없는 거대한 바위를 들어서 옮기는 기적을 보여준 후 사람들이 동참해서 놓은 다리라는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길이 920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였는데, 현재는 22개 아치 중 4개만 남아 있다. 느릿느릿 아비뇽 역사지구를 걷다가 지칠 즈음 교황청 바로 뒤편 골목에 있는 5성급 호텔 라 미랑드에서 차를 한잔 마시며 쉬어가도 좋다. 14세기 추기경의 궁전이었던 곳을 새 단장한 호텔로,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과 살롱 스타일의 카페가 있다. 19세기풍의 키친에서는 호텔 셰프가 진행하는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아비뇽 구시가를 걷다 보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라 디빈 코메디(La Divine Comédy)’를 만난다. 프로방스의 명물인 사이프러스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거닐며 산책할 수 있다. ‘라 디빈 코메디’는 이탈리아 대문호 단테의 ‘신곡(神曲)’이다. 이 정원을 걷다 보면 단테가 여행했던 천국과 지옥의 진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리라.●교황의 와인, 샤토네프뒤파프 “철커덩!”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언덕 마을인 ‘샤토네프뒤파프(Châteauneuf-du-Pape)’다. 절반쯤 무너져 내린 성 앞에서 만난 마리 조제 씨(오랑주 샤토네프뒤파프 관광사무소)는 손에 둥근 손잡이가 있는 고색창연한 열쇠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굳게 잠긴 성문 구멍에 열쇠를 밀어넣자 붉은색이 칠해진 나무 문이 열렸다. 14세기 교황의 별장 안으로 타임슬립을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성은 원래 4개의 탑과 연회장, 화려한 장식이 있는 방이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교황이 여름에 이 성에 올 때는 100∼200여 명의 수행원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했지요.”론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인 ‘샤토네프뒤파프’는 교황(Pape)의 새로운(Neuf) 성(Château)이라는 뜻이다. 아비뇽에서 두 번째 교황인 요한 22세가 여름 별장으로 지은 궁전이었다. 주변의 포도밭은 교황 전용 포도주를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됐다. 그러나 교황의 별장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폭파시켜 북쪽 절반이 파괴된 채 텅빈 폐허로 남아 있다. 주변 포도밭을 걸어 보니 밭에 감자만 한 둥글둥글한 차돌이 가득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아비뇽으로 유유히 흘러 지중해로 가는 론강을 따라 알프스에서 쪼개진 돌들이 이곳에서 자갈 마당을 이뤄 놓은 것이다. 작은 몽돌이 아니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공룡알 해변’에서나 볼 수 있는 큼직한 차돌이었다. ‘갈레 룰레(Gallet Roulet)’라고 불리는 이 돌들은 낮에 품은 프로방스의 강렬한 햇볕을 한밤까지도 유지하며, 반사열을 나무에 전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샤토네프뒤파프는 돌멩이가 포도를 익히는 특이한 토양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시라 등 13가지 포도 품종을 블렌딩해서 만드는 샤토네프뒤파프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대를 이어 만드는 경우가 많다. ‘샤토 드 라 가르딘(Château de la Gardine)’도 그중 하나다. 본래 교황청 소유였던 포도밭을 가스통 브루넬이 1945년 구입하면서 라 가르딘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초창기 선조들의 얼굴과 이름을 넣은 ‘가스통 필리프(Gaston Philippe)’와 ‘리모르텔(L’Immortelle)’은 수령 60년 이상의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엄선해서 만든다고 한다. 리모르텔의 라벨은 와인 메이커의 친구 예술가가 그려준 그림인데, 안타깝게도 이 화가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와인메이커 파트리크 브뤼넬 씨는 “완전 수작업으로 와인을 만드는 리모르텔은 친구를 기리기 위해 ‘불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의 도시, 오랑주샤토네프뒤파프에서 북쪽으로 약 11km 떨어진 오랑주는 고대 로마 유적의 보고다. 오랑주에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기원전 49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개선문이다. 높이 18m, 폭 19m, 두께 9m의 이 개선문은 세 개의 아치로 구성돼 있다. 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거리를 계속 걸어가 구시가지를 지나면, 오랑주의 명물인 고대극장이 나타난다. 이 고대극장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 지어진 것으로, 198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매년 7∼8월에 열리는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의 주요 무대다.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이다. 무대 전면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부조상이 내려다보는 돌벽(높이 38m, 가로 103m)이 있어 객석 어디에서나 풍요한 반사 음향을 들려준다.글·사진 아비뇽=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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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담양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

    전남 담양의 양곡수매창고를 개조한 문화예술공간 ‘담빛예술창고’에는 국내 유일의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높이 4m, 폭 2.6m의 오르간 제작에는 담양의 명물인 대나무 700여 개가 쓰였다. 2015년 첫선을 보인 이 악기는 일반 파이프 오르간에 비해 더 따뜻하고 아늑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주말마다 열리는 연주회에서 높은 천장을 가진 내부 공간을 울리는 오르간 소리는 담양 사람들에게 최고의 힐링이 되고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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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나 건배한 ‘샴페인의 섬’ 비금도[전승훈의 아트로트]

    ‘날아오르는 새의 섬.’ 전남 신안군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펼친 큰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그림산의 절경과 끝없는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난 섬’ ‘샴페인의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금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천사대교를 건너니 암태도 남강선착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를 싣고 페리호를 타면 50분 만에 비금도에 도착한다. 해변이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해변이다. 또한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하누넘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비금도를 가로지르는 그림산과 선왕산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다도해의 섬들이 몽환적으로 떠 있고, 염전 위로 붉은 노을이 진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어 어느 곳을 바라봐도 힐링이 되는 섬이다. 그런가 하면 알파고와 대결했던 세계적인 바둑 명인 이세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금도 해변이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72년 전 이 섬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리들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스토리 때문이다. 1851년 4월 2일. 프랑스의 고래잡이선 나르발호가 비금도 모래 해변 바위섬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에서 출항한 나르발호는 고래를 찾아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을 넘어 한국까지 와 신안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바다에는 서양의 포경선이 수시로 출몰했는데, 1849년에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해안에 좌초된 나르발호 선원들은 200년 전 하멜이나 처형된 프랑스 신부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로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거 처형당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상황. 그래서 9명의 선원이 소형 배를 타고 탈출해 4월 19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구조를 요청했다.샤를 드 몽티니 영사(1805~1868)는 다음 날인 4월 20일 곧바로 통역관과 영국 상인, 중국인 선원 등 30명을 태운 배를 이끌고 비금도에 있는 선원들을 찾아나섰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 대정 해변에 도착해 “난파된 프랑스 배와 선원들을 봤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북상해 신안 앞바다 섬들을 하나하나 뒤지며 찾아다닌 끝에 비금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비금도에 도착한 몽티니 영사는 걱정과는 달리 선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쌀 등 음식을 제공받고, 숙소에서 당국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과 일성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선원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 2척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5월 2일 비금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프랑스 선원들을 직접 배에 태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일. 몽티니 영사와 나주목사는 송별회를 가졌다. 몽티니 영사는 배에서 샴페인과 와인 수십 병을 꺼내 왔고, 조선인들은 도자기와 항아리에 담긴 전통술을 가져왔다. “선실에서 조선의 관료들에게 내일 출발에 필요한 식량을 요청하고 나서,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배의 50여 명의 선원이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을 칭하는 듯)을 각자 앞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함께 마셨습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식사(pittoresque repas)였습니다.” (몽티니 영사의 보고서)“우리는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과 와인, 독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나는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샴페인과 와인, 특히 도수가 높은 술을 열정적으로 마셨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인들에게도 마시고 샴페인 병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몽티이 영사의 보고서)당시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비금도에서의 송별연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인들이 따라 주었다는 항아리 단지에 담긴 술은 막걸리로 보이며, 독주도 마셨다는 말로 보아 소주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처음 샴페인을, 프랑스 사람이 처음 우리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공식 기록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비금도를 ‘날아오르는 새의 섬(l’île de l’Oiseau Volant)’이라고 썼다.지난달 2일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는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옹기로 만든 갈색 주병(酒甁)이었다. 1851년 비금도에서 몽티니 영사가 선물로 받아 본국에 가져갔던 바로 그 술병이었다. 비금도 사건을 연구했던 피에르 에마뉘엘 루 교수(파리7대학)는 “초기에 비밀리에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개인적으로 표류했던 선원도 있지만,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조선의 관료와 첫 공식 만남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금도는 한-프랑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나 병인양요(1866년)로만 기억하는데, 비금도 사건은 난파된 선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국 관료들이 힘을 합한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술과 음식을 나눈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며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화합의 장소로 잘 기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몰려오는 예술섬 신안군의 비금도, 도초도, 노대도, 안좌도 등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앤터니 곰리 등 세계적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서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비금도를 한-프랑스 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리는 기념관, 샴페인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해변 공원 등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섬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주변 바닷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에 220t의 철근을 사용해 ‘북방의 천사’(높이 20m)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신안의 명물인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철근이 모여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스코가 40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곰리의 작품은 밀물 때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의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내년 말까지 연꽃을 닮은 지형의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의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농업으로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에마뉘엘 루 교수 인터뷰 비금도에서의 한불간의 첫 만남을 연구한 교수는 피에르 에마뉘엘 루 파리7대학 교수다. 그는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에서 샤를르 드 몽타니 영사의 보고서를 찾아내고, 몽타니 영사가 조선에서 가져온 도자기 술병도 확인했다. 그는 2012년에 펴낸 ‘십자가, 고래, 대포(La Croix, La Baleine, Et Le Canon)’라는 책에서 19세기 중엽 한불관계 초기 프랑스의 대조선 정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다음은 에마뉘엘 루 교수와의 전화 인터뷰. ― 신안 비금도 사건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는. “제가 2005년 프랑스 파리 이날코대학 한국학과 석사과정을 다닐 때 초기 한불 관계와 외교수립 과정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썼다. 지도교수는 ‘병인양요’를 중심으로 연구해보라고 조언해줬다. 그런데 교수님이 한불수교가 병인양요만으로 이뤄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 전후로 뭔가 여러가지 한불간의 접촉이 있지 않았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1840~50년대 한국 관련 문헌을 다 뒤져봐야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 해무부 고문서관, 파리 외방전교회에 수없이 찾아가 자료를 찾아봤다. 흥미롭게도 제가 파리 외무부 고문서관에서 가장 먼저 요청한 자료가 바로 비금도 관련 자료였다. 프랑스 외무부 고문서관에서 19세기 중엽 조선 관련 자료는 주로 중국 문서철이나 일본 문서철에 포함돼 있다. 프랑스 영사나 외교관들이 중국, 일본에 주재해 있었고 조선에는 주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50년대 중국 상하이 영사관 자료를 뒤지는데, 가장 먼저 비금도에 난파했던 ‘나르발(Narval)호’ 사건 관련 문건이 나왔다. 행운이었다.” ―그전에도 비금도에 프랑스 배가 난파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나? “전혀 몰랐다. 상하이 영사관 문서를 보다가 처음 알게 됐다.” ―나주 목사가 선물했던 도자기 술병이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 있었다는 건 알았나? “그 때는 몰랐다. 2012년도에 19세기 중엽 프랑스의 대조선 정책 연구를 주제로한 석사논문을 개편해서 프랑스에서 ‘십자가, 고래, 대포(La Croix, La Baleine, Et Le Canon)’라는 책을 펴냈다. 책을 낼 때만해도 도자기의 존재를 몰랐다. 그런데 2015년 프랑스 세브르국립도자기 박물관에서 열린 한국관련 전시회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 19~20세기 한국 도자기와 물품이 전시됐었다. 몽티니 영사는 1856년 잠깐 프랑스로 돌아왔는데, 당시 본국에 전달했던 물품 중에 비금도에서 가져온 술병이 포함돼 있었다. 이 도자기는 창고에 수장돼 있었는데, 이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옹기병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는데, 저만 그 앞에서 10분 이상 바라보았다. 이 병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티니 영사가 비금도에 가게 된 과정은. “1851년 4월2일 29명이 탄 나르발호가 비금도에 난파됐다. 프랑스 선원 29명은은 조선정부가 외국인(프랑스인)을 체포하거나, 처형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9명의 선원들이 작은 고래잡이용 배를 타고 다시 황해를 건너 상하이로 가서, 프랑스 영사관에 구조요청을 했다. 선원들은 몽티니 영사에게 ‘포경선 나르발호가 조선 땅에서 난파했는데, 우리 20명의 선원들이 아직 남아 있다. 구해달라’고 말했다. 몽티니 영사는 바로 다음날 배를 구해 영사관 통역관 1명, 영국 상인 1명, 포경 선원의 친척 1명, 나르발호 선원 5명, 중국인 20여 명 등 총 30명 정도를 태우고 비금도로 향했다. 배는 ‘록샤(Lorcha)’라고 불리던 중국과 서양 스타일이 혼합된 배였다. 그런데 문제는 몽티니 영사를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은 비금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난파된 배에서 돌아온 9명의 선원들이 비금도를 ‘티오상(Tio-sang)’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Tio-sang’이란. “19세기 한국어의 발음을 생각하면 조선을 ‘됴선’이라고 표기한다. 그래서 ‘됴선’을 들리는 대로 ‘티오상(Tio-sang)’이라고 한 것이다. 포경선 선원들이 비금도에 난파한 직후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비금도 사람들이 ‘조선이다. 조선 땅이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상하이에서 출발한 몽티니 영사는 처음에 제주도 서남쪽 대정해안에 도착했다. 이 곳은 200년 전에 ‘하멜표류기’를 쓴 네덜란드 상인 하멜이 표류했던 지점과 거의 비슷하다. 중국 상해에서 배를 타고 가면 해류와 바람 때문에 항상 제주도에 먼저 도착한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에서 ‘티오상이 어딘 줄 안냐? 난파한 프랑스 배를 보았는가?’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모른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 몽티니는 다시 배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고 며칠 있다가 전라도 신안의 다도해에 도착했다. 몽티니는 신안의 섬 하나하나를 뒤지면서 난파된 선원들을 봤느냐고 수소문했고, 마침내 비금도에서 선원들을 발견했다. 상해에서 출발한지 거의 2주일 만이었다. 비금도가 큰 섬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현지 주민들과 관료들이 찾아와 구경하게 되고, 만나게 됐다. 몽티니 영사는 5월1일에 비금도에 도착하고, 5월 3일에 상해로 돌아갔다. 사실은 사흘도 안되는 짧은 방문이었다.” ―몽티니는 한국인들과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나. “몽티니는 통역관을 데리고 갔지만, 그들은 중국어만 할 줄 알았지 한국어를 몰랐다. 대화를 할 때는 주로 그림이나 필담으로 했다.” ―이 사건은 어떻게 기록돼 있나. “몽티니 영사 보고서는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것이다. ‘4월 중순에 포경선 선원이 상해에 도착했고, 제가 아주 용감하게 조선땅에 가서 선원들을 구조해왔다’는 내용이다. 관련 한국측 자료도 있다. 나주목사가 한양으로 보낸 장계 같은 것이다. 한국측 자료를 보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뭐하러 왔는지도 몰랐고, 그냥 이국인(異國人)이라고 표현한다. 고래잡이 어선이라는 점도 잘 몰랐다. 다만 조선은 난파한 이국인들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계속 이야기하니까, 이 사람들을 중국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배 2척이 필요하다는 장계를 조정으로 올렸다. 한양의 조선 조정에서는 비변사 회의를 열어 ‘이국인들에게 배를 마련해서 돌려보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날에 몽티니가 비금도에 도착했다. 그래서 조선에서 배를 마련하기 전에 몽티니가 타고 온 배를 타고 29명의 선원들이 다시 상해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1851년에 영국 잡지에서도 비금도 사건 관련 기사가 실렸다. 당시 상하이에서 발행된 ‘더 노스 차이나 헤럴드(The North-China Herald)’라는 영문 잡지가 있었다. 몽티니 영사랑 배를 타고 비금도에 같이 간 영국 상인이 아주 길게 연재한 글이다. 비금도 사건 관련 기록은 프랑스 외교문서, 영국 잡지 기사, 조선의 공식문서로 남아 있다.” ―양국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마시고 만찬하게 된 과정은? “몽티니 영사와 나주 목사는 5월 2일에 만나서 선원들과 관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조선인들에게 샴페인을 주었고, 조선인들도 술을 가져왔다고 한다. 지난 5월2일 프랑스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샴페인과 막걸리의 만남’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몽티니 보고서를 보면 ‘샴페인과 와인, 리큐어(Liqueurs Fortes)’라는 표현이 나온다. 또한 선원 50여명이 각자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 앞에 앉았고,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에 든 술을 잔에 따라주며 마셨다고 돼 있다.”―술은 몇 병이나 마셨나. “19세기 다른 서양인들이 쓴 조선 관련 보고서를 보면 ‘조선인들은 고래처럼 술을 마신다’라는 기록이 있다. 술고래다. 아마도 비금도에서도 술을 많이 마셨을 것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il est rare de voir des hommes boire comme les Coréens’(한국인들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ils sont passionnés pour les vins et surtout les spiritueux(한국인들은 와인과 독주에 대한 열정이 넘쳐난다). 조선의 상관(관료)들은 자기들이 술을 마실 뿐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술을 주고 가져가도록 했다‘고 썼다. 그날 몇시간 동안 그림같은(pittoresque) 만찬을 즐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술을 마시고 난 뒤 분위기는 어땠나. “19세기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의 다른 기록을 보면 ‘조선인들은 처음엔 우리랑 얘기를 안하려고 했는데, 술을 가져다 주니까 서로 말이 통하며 일이 잘 풀렸다’는 기록이 있다. 비금도에서 현지 관료들은 몽티니가 조선과 통상 요구를 하거나 선교를 하러 온 게 아니고,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아마 더 쉽게 대화하게 됐다. 그래서 몽티니가 5월1일 비금도에 도착하고, 다음날인 2일 저녁에 술을 마시게 됐다. 이게 마지막 만찬이었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화려한 송별파티였다.” ―당시는 천주교 박해로 프랑스 신부들을 죽이기도 했는데 왜 그냥 순순히 추방하고 중국으로 다시 돌려보냈나. “사실 19세기 서양인들은 조선 앞바다에서 난파하게 되면, 200여 년전 ‘하멜표류기’의 주인공인 하멜처럼 감옥에 갇히고, 유배생활을 하거나, 선교사들처럼 처형당해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몽티니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빨리 한국에 가서 조선에 난파한 우리 선원들을 구해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조선 왕조 이전, 아마 고려시대 이전부터도 조선(중국, 일본, 동남아)엔 ‘표류민 송환 제도’가 있었다. 외국 표류민이 발견되면 잘 대접해서 보호한 뒤 다시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제도다. 조선 후기에도 해마다 신안 앞바다에는 중국이나 일본, 서양에서 온 배가 난파하거나 표류하는 사람이 많았고, 대부분 표류민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서양인들도 마찬가지다. 1840~50년대에는 조선 앞바다에는 나르발호 뿐만 아니라 수백척의 서양 고래잡이 포경선이 활동했다. 당시 가끔 포경선이 조선의 앞바다에 난파하거나 표류하면, 정부에서 그 사람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나온다. 당시 서양의 상선이 표류할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만약 서양인이 통상이나 선교를 하러 왔다고 말하면 당연히 쉽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서양인들은 두가지로 불렸다. 먼저 통상이나 선교를 하러 온 서양인을 ‘양적, 양추’라고 부른다. 서양 오랑캐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은 입항을 거절한다. 그러나 포경선원이라든가 표류하는 서양인들은 그냥 ‘이양선(異樣船)을 타고 온 이국인(異國人)’이라고 불렀다. 이국인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고 중성적인 표현이다. 잘 대접해주고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몽티니는 천주교 선교사가 아니었다. 그는 나주 목사나 현지 관리에게 천주교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사람들을 구하러 왔다고 말했다.” ―당시 조선 앞바다에 서양의 포경선은 얼마나 많이 왔었나. “19세기 포경업은 미국인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에 유럽의 프랑스, 독일인이었다. 18세기~19세기 초까지는 주로 대서양에서 고래잡이를 했다. 그런데 고래가 줄어들자 인도양으로 옮겼고, 1840년대까지 뉴질랜드 부근 남태평양에서 고래를 잡았다. 이후 북태평양쪽으로 올라가게 된다. 1840~50년대에는 한국 동해와 일본 동쪽의 태평양, 오오츠크해에서 고래를 많이 잡았다. 한국의 서해 흑산도 인근에서도 고래를 잡았다. 1840년대와 50년대에는 나르발호 뿐 아니라 다른 서양의 포경선들도 한국과 일본 앞바다에서 표류하는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나발호는 어떤 배였나. “당시 프랑스 포경선들은 전부 프랑스 북부 항구인 르아브르에서 출항했다. 당시 한번 고래잡이 출항을 하면 3년 간 전세계를 돌도 귀항하곤 했다. 대서양을 지나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서, 인도양에서 중국, 한국, 일본, 오오츠크해를 지나 태평양 건너 하와이, 남미 칠레를 지난 뒤 다시 대서양을 건너서 르아브르로 돌아왔다. 1849년에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이름붙인 리앙쿠르호도 프랑스 포경선이다. 리앙쿠르호는 1847년에 르아브르에서 출항해 3년 여 동안 세계를 돈 뒤 1850년에 다시 르아브르로 돌아왔다.” ―나르발호가 비금도에 난파했던 정확한 장소는 어디인가. “비금도 서해안 쪽이다. 비변사등록,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등 한국 측 자료를 보면 비금도 서면 율내촌이라고 나온다. 조선시대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찾아보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비금도에 가서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금도에서의 첫 만남이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에서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프랑스와 조선이 수교를 맺기도 전, 프랑스 외교관이 조선 땅에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방문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전에도 조선땅에 들어간 프랑스인은 있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비밀리에 입국했었고, 프랑스 해군장교도 조선 앞바다에 간 적이 있다. 그런데 프랑스 외교관으로서는 몽티니 영사가 처음이다. 특히 몽티니 영사는 마지막 날에 지역을 관할하는 나주 목사를 만남으로써 공식적으로 양국의 관료가 만나게 됐다.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이라고 생각할 때는 주로 선교사 박해, 아니면 병인양요같은 전쟁을 생각한다. 그래서 한불 관계의 첫만남은 갈등으로 시작됐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사실은 비금도 포경선의 표류사건을 통해서 한불관계 시작은 갈등보다는 인도주의적인 만남이었고, 음식과 술이 있는 문화교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비금도 사건이 전쟁이나 박해같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화합의 자리로 끝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후 몽타니 영사의 행보는. “몽티니 영사는 1851년 이후로 당시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와 외무장관에게 해마다 프랑스와 조선이 수교를 맺어야 한다고 보고서를 보냈다. 프랑스 포경선원과 선교사들의 안전과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을 개항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몽티니 영사의 조선과의 수교협상 요구를 계속 무시했다. 당시 나폴레옹 3세나 외무부 장관에게 한반도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주된 관심사는 중국, 일본이었고, 1850년대 말에는 주로 베트남의 개항에 관심이 더 컸다.”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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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나 건배한 ‘샴페인의 섬’[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날아오르는 새의 섬.’ 전남 신안군 비금도(飛禽島)는 하늘에서 보면 날개를 펼친 큰 새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안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그림산의 절경과 끝없는 명사십리 해변으로 유명한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가 처음 만난 섬’ ‘샴페인의 섬’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금도에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 전남 목포 KTX역에서 차를 타고 천사대교를 건너니 암태도 남강선착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차를 싣고 페리호를 타면 50분 만에 비금도에 도착한다. 해변이 4.2km에 이르는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모래사장을 차를 타고 달릴 수 있을 만큼 눈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해변이다. 또한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면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하누넘 해변’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다. 비금도를 가로지르는 그림산과 선왕산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 정상에서 바라보면 다도해의 섬들이 몽환적으로 떠 있고, 염전 위로 붉은 노을이 진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어 어느 곳을 바라봐도 힐링이 되는 섬이다. 그런가 하면 알파고와 대결했던 세계적인 바둑 명인 이세돌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비금도 해변이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72년 전 이 섬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관리들이 샴페인과 막걸리를 주고받으며 첫 만남을 가졌던 스토리 때문이다. 1851년 4월 2일. 프랑스의 고래잡이선 나르발호가 비금도 모래 해변 바위섬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프랑스 북부 르아브르에서 출항한 나르발호는 고래를 찾아 대서양, 인도양, 남태평양을 넘어 한국까지 와 신안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바다에는 서양의 포경선이 수시로 출몰했는데, 1849년에는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동해에서 독도를 발견해 ‘리앙쿠르섬’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해안에 좌초된 나르발호 선원들은 200년 전 하멜이나 처형된 프랑스 신부처럼 감옥에 갇히거나 목숨을 잃을 것이란 공포에 떨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은 신유박해(1801년), 기해박해(1839년)로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 대거 처형당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았던 상황. 그래서 9명의 선원이 소형 배를 타고 탈출해 4월 19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가 구조를 요청했다. 샤를 드 몽티니 영사(1805∼1868)는 다음 날인 4월 20일 곧바로 통역관과 영국 상인, 중국인 선원 등 30명을 태운 배를 이끌고 비금도에 있는 선원들을 찾아나섰다. 몽티니 영사는 제주도 대정 해변에 도착해 “난파된 프랑스 배와 선원들을 봤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북상해 신안 앞바다 섬들을 하나하나 뒤지며 찾아다닌 끝에 비금도를 발견했다고 한다. 비금도에 도착한 몽티니 영사는 걱정과는 달리 선원들이 주민들로부터 쌀 등 음식을 제공받고, 숙소에서 당국의 보호 아래 잘 지내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고 한다. 비변사등록과 일성록에 따르면 조선의 조정에서는 비금도에 난파한 프랑스 선원들이 중국으로 갈 수 있도록 배 2척을 마련해 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몽티니 영사는 5월 2일 비금도를 관할하는 나주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프랑스 선원들을 직접 배에 태워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떠나기 하루 전날인 2일. 몽티니 영사와 나주목사는 송별회를 가졌다. 몽티니 영사는 배에서 샴페인과 와인 수십 병을 꺼내 왔고, 조선인들은 도자기와 항아리에 담긴 전통술을 가져왔다. “선실에서 조선의 관료들에게 내일 출발에 필요한 식량을 요청하고 나서,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배의 50여 명의 선원이 다양한 음식이 차려진 작은 테이블(‘소반’을 칭하는 듯)을 각자 앞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항아리 단지와 잔을 들고 다니면서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술을 대접하고 함께 마셨습니다.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식사(pittoresque repas)였습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과 와인, 독주를 함께 마셨습니다. 나는 한국인들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샴페인과 와인, 특히 도수가 높은 술을 열정적으로 마셨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자신들이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인들에게도 마시고 샴페인 병을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당시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보낸 보고서에 비금도에서의 송별연 장면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선인들이 따라 주었다는 항아리 단지에 담긴 술은 막걸리로 보이며, 독주도 마셨다는 말로 보아 소주도 제공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국 사람이 처음 샴페인을, 프랑스 사람이 처음 우리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공식 기록이다. 몽티니 영사는 보고서에서 비금도를 ‘날아오르는 새의 섬(l’île de l’Oiseau Volant)’이라고 썼다. 지난달 2일 프랑스 파리 교외에 있는 세브르 국립도자기박물관에서는 ‘샴페인과 막걸리의 첫 만남’이라는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옹기로 만든 갈색 주병(酒甁)이었다. 1851년 비금도에서 몽티니 영사가 선물로 받아 본국에 가져갔던 바로 그 술병이었다. 비금도 사건을 연구했던 피에르 에마뉘엘 루 교수(파리7대학)는 “초기에 비밀리에 활동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개인적으로 표류했던 선원도 있지만, 몽티니 영사는 프랑스 정부의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조선의 관료와 첫 공식 만남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금도는 한-프랑스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의 첫 만남을 선교사 박해나 병인양요(1866년)로만 기억하는데, 비금도 사건은 난파된 선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양국 관료들이 힘을 합한 인도주의적 만남이었고, 술과 음식을 나눈 문화 교류의 장이었다”며 “비금도가 한국과 프랑스 양국의 화합의 장소로 잘 기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거장들이 몰려오는 예술섬 신안군의 비금도, 도초도, 노대도, 안좌도 등엔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앤터니 곰리 등 세계적인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이 들어서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예술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비금도를 한-프랑스 간의 역사적인 첫 만남을 기리는 기념관, 샴페인과 막걸리를 즐길 수 있는 해변 공원 등 한국과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섬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금도 명사십리 주변 바닷가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곰리의 작품이 들어선다. 곰리는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에 220t의 철근을 사용해 ‘북방의 천사’(높이 20m)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이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 세워지는 곰리의 작품은 신안의 명물인 소금 결정체처럼 정육면체 모양의 철근이 모여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스코가 40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곰리의 작품은 밀물 때는 바닷속으로 들어갔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보기 드문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의 설치미술가 터렐은 노대도에 화성과 목성의 소리를 채집해서 색상으로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수국축제’로 유명한 도초도에는 덴마크 출신의 세계적 설치미술가 엘리아손의 작품이 들어선다. 내년 말까지 연꽃을 닮은 지형의 중심에 수국을 형상화한 엘리아손의 미술관이 들어서고, 주변은 계절마다 다양한 빛깔의 경관농업으로 ‘대지의 미술관’을 형성하게 된다. 안좌도엔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한 물에 떠 있는 ‘플로팅 뮤지엄’이 들어선다.글·사진 신안=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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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오랑주 고대 극장

    프랑스 남부 아비뇽 북쪽에 있는 오랑주에서는 매년 7∼8월에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린다. 축제 장소는 오랑주 고대 극장이다. 기원후 1세기경 로마 옥타비우스 황제가 세운 극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869년 시작된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축제다. 지름 103m, 높이 37m에 약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반원형 극장이다. 전면에는 두께 1.8m의 벽면이 있어 영상을 쏘아 무대 효과를 낼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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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없는 날, 야구장선 뭐하고 놀까…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문을 연 후쿠오카 돔구장[전승훈의 아트로드]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높이 234m로 일본 해변에 세워진 타워로는 가장 높은 ‘후쿠오카 타워’와 일본 최초로 세워진 개폐식 돔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후쿠오카에 도착할 즈음 하카타만의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근처에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 돔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돔구장 바로 옆에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BOSS E·ZO 후쿠오카’가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 현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빅보이’ 이대호 선수가 뛰던 일본 프로야구(NPB)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후쿠오카PayPay돔은 1993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보스 이조 후쿠오카’는 경기가 없을 때에도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다. 지상 40m 높이에서 건물 벽면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는 약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 스마트폰으로 숲 속 동물과 물고기를 수집할 수 있는 환상의 디지털 아트세계, 직접 배팅과 수비, 주루 플레이를 체험해볼 수 있는 익사이팅한 야구 체험존까지…. 이 건물에서 요즘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팀랩 포레스트(teamLab Forest)’다. 한 때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던 ‘포켓몬GO’의 AR(증강현실)을 업그레이드해 재미와 학습을 겸비한 환상적인 엔터테인먼트다. 내부로 들어가면 면 화려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연못이 펼쳐지는데, 코끼리나 고래, 사슴을 닮은 신기한 동물들이 숲 속을 거닐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앱을 깔면 본격적인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화살을 쏘아 동물을 잡고, 바다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다. 벽에 있던 동물이 화면으로 들어오는데 동물의 특징과 생태를 설명해주는 문구가 제공된다. 잡은 동물은 다른 숲에 가서 놔줄 수도 있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컬렉션을 완성하다보면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또다른 방(Immersive Museum FUKUOKA)으로 가면 모네, 고흐,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몰입형 전시(9월 10일까지)도 펼쳐진다. 올림픽경기장을 비롯해 야구장, 축구장 등 거대한 스타디움을 지을 때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건설비용과 사후 운영 비용이다. 대부분 적자에 허덕이거나 지자체의 골칫덩이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수한 이 구단은 좌석부터 건물 이름, 시구자까지 기업마케팅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돔구장은 거대한 미식체험장이자 콘서트장이다. 코로나 기간에는 아예 돔구장 옆에 야구경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지었다. 건물 내부의 중심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오 사다하루(83) 소트트뱅크호크스 회장에게 헌정된 베이스볼 뮤지엄이 있다. ‘왕정치(王貞治)’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다 기록인 868개의 홈런을 친 레전드 선수다.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가 선수시절 쓰던 배트와 글러브 뿐 아니라 아라카와 코치와 함께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며 외다리 타법을 연마했던 방까지을 재현해놓았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89PARK’다. 실제 타격과 수비, 주루를 하면서 야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160km의 구속이 얼마나 빠른지 심판석과 선수석에서 체감해보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내가 투수가 되어 공을 던져보며 구속을 확인해보는 코너도 있다. 와인드업을 해서 던져보니 처음에는 70km, 나중에는 94km가 나왔다. 사력을 다해 던졌는데도 100km를 넘지 못했다. 두산베어스 전 프로야구 선수 유희관이 120km대 직구로 ‘느림의 미학’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도 얼마나 빠른 것인가. 더 던지면 어깨가 아플 것 같아 100km를 깨겠다는 욕심은 접어야 했다. 대신 포수를 향해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깨는 제구력 게임을 즐겼다. ​ 다음은 타격이다. 스크린 골프처럼 스크린 야구를 펼치는 곳이다. 언더핸드 투수가 던지는 공이 화면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정타를 맞추려고 힘껏 휘둘렀는데 장타가 나오지 않았다. 공의 약간 아랫부분을 맞춰야 공이 뜬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윙을 수정하니 ‘빵’ ‘빵’하며 장타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배트가 공에 제대로 맞는 순간 화면에서 빛이 번쩍하며 공이 백스크린 상단을 맞췄다. 짜릿한 손맛이다. 뒤에서 바라보던 일본 여성들도 환호성을 질러댔다. 다음으로는 수비 연습. 화면에서 투수가 볼을 던지면 좌우로 움직이는 구멍에서 공이 튀어나온다. 공이 나오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달려가서 글러브로 공을 잡고, 1루수 또는 3루수로 지정된 곳으로 송구를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달려가 전진수비를 해야 시간내에 정확히 송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감독이 펑고를 쳐주고 송구하는 훈련을 한 느낌이다. 두 번이나 수비게임을 하고 나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다음에는 주루와 견제 연습이다. 출발신호가 들리면 실제 홈에서 1루까지 거리를 영상 속 선수와 달리기를 겨룬다. 견제는 1루에서 2~3m 정도 리드를 하고 있다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면 재빨리 귀루하는 게임이다. 투수의 동작을 유심히 보고 순발력을 다해 귀루해야 세이프를 받을 수 있다. 정말 야구장에서 공격과 수비, 주루의 모든 것을 체험해볼 수 있는 3차원 게임이다. 운동을 하며 놀다가 출출해지니 3층 푸드홀로 향했다. 라멘, 꼬치, 스시 등을 파는 맛집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LB카페’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 라이센스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대형 TV화면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레스팀의 김하성 선수 출전 경기 생중계를 보면서 맥주와 커피,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입구에는 오타니, 트라웃 등 스타들의 이름이 새겨진 공식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다. 유럽에서 펍에서 축구경기를 보는 것처럼, 메이저리그 야구를 즐기면서 햄버거와 스파게티, 스테이크를 먹는 곳이다. 음료 중에는 불량식품처럼 형광색 초록빛이 나는 상큼한 멜론티가 눈길을 끌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운코 뮤지움'(UNKO Museum FUKUOKA, 9월3일까지 전시)이다. ‘운코’는 한국말로 ‘응아’랑 비슷한 의미다. 똥이 달팽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쌓여 있는 ‘운코’를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전시장 내부에 들어가면 승리를 기원하는 황금색 운코가 놓여 있고, 관람객들은 손에 아이스크림모양의 운코를 들고, 머리에 운코를 단 헤어밴드를 하며 즐거워 한다.분홍색, 노랑색, 연두색 운코가 마카롱 과자나 케익모양으로 놓여 있는 테이블은 공주의 애프터눈 티테이블이다. 커플이 들어가는 운코 러브방, 음악에 맞춰 화면속에서 날아오는 운코를 터뜨리며 춤을 추는 댄스게임방, 바닥에 있는 운코 그림자를 밟으면 총천연색으로 터져나가는 게임방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논다. 전시장 입구에는 변기가 놓여 있다. 소프트뱅크 경기 시구를 위해 이 곳을 찾았던 이대호 선수가 뚜껑을 열고 소변을 보려는 익살스런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 똥’을 비롯해 수많은 동화책에서 똥을 주제로 한 그림에 아이들이 열광한다. 그러나 똥모양을 귀여운 캐릭터와 게임, 액서세리로 만들어 즐기는 일본의 문화는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옥상에는 돔구장 주변의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絶景) 3형제’ 놀이기구가 있다. 그 중 ‘쓰리ZO’는 옥상에 복잡하게 설치된 레일에 매달려 탑승자의 무게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롤러코스터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구간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짜릿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스베ZO’는 지상 40m 건물 벽면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이다.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E·ZO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지에서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 놀이시설의 티켓을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5가지 어트랙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펀티켓을 ‘디스커버리 큐슈(Discovery Kyusu)’에서 미리 구매하면 싸고 편리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경기 할인티켓도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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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호가 뛰던 돔구장, 승리하면 불꽃쇼와 함께 지붕이 열린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지난 7일 밤 9시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PayPay 돔. 9회 초 소프트뱅크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를 4대0으로 꺾고 승리하자 경쾌한 음악이 경기장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돔구장의 천정에서 터져 쏟아지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불꽃들. 홈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였다. 지상 68m 높이의 실내 돔구장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다니!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돔구장의 천정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트모양으로 절반이 열린 돔구장 천정 너머로 힐튼호텔과 후쿠오카의 밤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돔을 한번 개폐하는 데 드는 전기료는 한화로 약 1000만 원 가량. 호크스팀이 승리를 했을 때 불꽃놀이와 함께 홈팬들을 위한 화끈한 서비스인 셈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빅보이’ 이대호(41) 선수가 2014년부터 4번타자로 뛰며 2년 연속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이다. 이대호는 2015년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대호는 지난달 28일 다시 후쿠오카 돔구장을 찾아 열띤 환호 속에 시구행사를 갖기도 했다. 1993년 4월에 문을 연 후쿠오카 PayPay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개장한 캐나다의 로저스 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우리나라도 야구장에서 즐기는 치맥이 유명하지만, 후쿠오카 돔구장에는 규슈 지방의 맛집이 빼곡하다. QR코드를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좌석까지 배달해주기도 한다. 소프트뱅크 호크스팀의 선수와 감독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도시락도 판다. 감독의 도시락이 가장 비쌀 줄 알았는데 아니다. 감독과 코치 얼굴이 들어간 도시락은 2000엔인 반면, 4번타자 호타준족 외야수 야나기타 유키의 도시락은 2300엔으로 가장 비싸다. 10kg짜리 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손짓하면 언제든지 달려와 무릎꿇고 호스를 꺼내내 컵에 생맥주를 따라준다. 미식(美食)을 즐기며 야구경기와 치어리더, 마스코트의 다양한 쇼까지 즐기는 야구장은 거대한 디너쇼 극장을 방불케했다. 일본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구단이 홈구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것은 후쿠오카 PayPay돔 밖에 없다. 한국계 일본인 기업인인 손정의가 인수한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홈구장을 직접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좌석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기업 스폰서들에게 마케팅용으로 판매해 재정자립도는 높였다. 야수의 플레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코카콜라석은 그물망이 없어 헬멧을 쓰고 경기를 지켜봐야 한다. 해변의 의자처럼 파라솔 밑에서 누워서 볼 수 있는 좌석도 있고, 명란젓 회사와 증권사가 협찬해 독특하게 꾸민 좌석도 있다. 매일매일의 경기도 기업 스폰서의 이름을 붙여주며, 시구는 연예인이 주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그날의 스폰서 기업의 회장이나 사원대표가 시구를 한다. 후쿠오카 돔구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장애인석이었다. 구석에 마지못해 만들어놓은 좌석이 아니라 내야가 잘 보이는 위치에 널찍한 테이블과 좌석이 함께 있었다. 의자를 접거나 옮길 수 있어 휠체어 전동차를 탄채 장애인도 야구를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배려한 점이 돋보였다. ​ 4만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후쿠오카 페이페이돔은 관광객들을 위한 돔투어 프로그램이 잘 돼 있다. 파리, 베를린의 오페라극장이나 뉴욕, 런던의 뮤지컬 극장에 가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돔투어는 ‘돔만끽 코스’와 ‘어드밴처 코스’로 나뉜다. ‘돔만끽 코스’는 투수들이 워밍업하는 불펜 연습장, 선수들의 락커룸, MVP시상식이나 입단식이 열리는 기자회견장, 경기장의 잔디를 밟아보고 선수들의 타격, 수비연습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 홈플레이트 근처에 있는 원정팀 덕아웃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수와 감독이 대기하는 곳을 축구에서는 벤치라고 하는데 야구에서는 왜 ‘덕아웃(dug out)’이라고 부를까? 해설해주는 가이드가 이렇게 설명한다. “야구에서는 투수의 볼을 포수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에 그라운드보다 약간 낮은 자리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대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덕(dug·파내다)’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는 내야의 인조잔디였다. 보통 인조잔디는 선수들이 슬라이딩했을 때 화상을 입을 우려가 있고, 비가 올 경우 미끄럽다는 단점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천연잔디를 선호한다. 그런데 소프트뱅크 홈구장의 인조잔디를 자세히 보니 천연잔디와 거의 다름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구장 관계자는 옛날 버전의 짧은 인조잔디와 리모델링한 현재의 인조잔디를 비교해주는 모형을 갖고 설명했다. ‘필드터프’로 불리는 현재의 롱파일 인조잔디는 길이가 약 6.3mm로 길었다. 잔디는 4.4mm 높이의 푹신한 소재가 감싸고 있는데, 위에 노출된 부분은 천연잔디처럼 부드럽게 이리저리 눕게되는 형태였다. 어드밴처 코스를 택하면 돔의 천장까지 올라가볼 수 있다. 투어를 신청한 관람객들에게는 안전을 위해 플래시가 장착된 헬멧과 목장갑을 나눠준다. 이어서 ‘백스크린’ 뒤쪽의 좁은 계단 통로를 올라간다. 후쿠오카 PayPay돔의 백스크린인 ‘호크스비전’은 점보제트기 3대를 세워 둔 것과 같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계단을 타고 지상 35m 지점에 올라서니 돔 구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 곳에서 지상 68m 돔구장 천정으로 올라가는 계단(캣워크)이 있다. 불꽃놀이 장인이 경기 1시간 전부터 불꽃 장치를 들고 올라가 대기하는 통로다. 장인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천청에 대기하며 불꽃놀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승리를 기원한다고 한다. 1만2000톤 무게의 육중한 지붕이 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름 약 21m인 세 장의 지붕이 돔 둘레를 따라 이동하며 전부 열릴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다. 면적만해도 5900평이나 되며, 두께 4m에 이르는 지붕 한 장의 무게는 4000톤으로 사람이 천천히 걷는 속도로 움직인다. 평소에는 지붕을 닫은 채 경기를 하다가 날씨가 맑고, 바람이 세게 불지 않는 날, 홈팀이 승리했을 때 뚜껑이 열린다. 불꽃놀이 장인이 걸어가는 천장행 통로는 관람객은 갈 수 없다. 대신 허리를 낮춰 개구멍을 통과하니 돔의 바깥으로 나아가는 길이 나왔다. 통로 옆으로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있는 레일이 놓여 있었다. 돔구장이 열릴 때 사용하는 레일이다. 돔구장 밖으로 나아가니 비가 내렸다. 돔의 거대한 곡선의 홈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린다. 이탈리에 피렌체에 갔을 때 보았던 두오모 성당의 돔지붕처럼 아름다웠다. 어떻게 중세시대에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 위로 둥근 곡선의 지붕을 얹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보고 있는 돔구장은 지붕이 열리고 닫히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지붕 바깥으로 나가니 후쿠오카 앞바다 하카타만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랑의 종’이 매달려 있다. 연인끼리 와서 이 종을 울리면 사랑이 이뤄진다던가. 비내리는 후쿠오카의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종의 줄을 당겨 ‘땡땡땡~’ 치고 내려왔다. 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E·ZO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디스커버리 큐슈(discoveryKyusu)’ 네이브 스토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경기 할인티켓을 살 수 있다.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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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꽃놀이와 美食, 짜릿한 야구체험까지… 돔구장에서 만나요[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일본 규슈(九州)지방의 관문인 후쿠오카(福岡)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다. 높이 234m로 일본 해변에 세워진 타워로는 가장 높은 ‘후쿠오카 타워’와 일본 최초의 개폐식 돔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이다. 서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후쿠오카에 도착할 즈음 하카타만의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 근처에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 돔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돔구장 바로 옆에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 ‘보스 이조(E-ZO) 후쿠오카’가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 현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대호가 뛰던 돔구장의 불꽃놀이7일 오후 9시 반. 일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의 돔구장. 9회초 소프트뱅크가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4-0으로 꺾고 승리하자 경쾌한 음악이 경기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갑자기 경기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어서 돔구장의 천장에서 터져 쏟아지는 붉은색, 초록색, 노란색 불꽃들. 안방팀의 승리를 축하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였다. 지상 68m 높이의 실내 돔구장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다니.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장면이었다. 이어서 굉음과 함께 천천히 돔구장의 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트 모양으로 절반이 열린 돔구장 천장 너머로 힐턴호텔, 후쿠오카의 밤바다와 하늘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돔을 한 번 개폐하는 데 드는 전기료는 약 1000만 원. 호크스팀이 승리했을 때 불꽃놀이와 함께 안방 팬들을 위한 화끈한 서비스인 셈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빅보이’ 이대호 선수(41)가 2014년부터 4번 타자로 뛰며 2년 연속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던 팀이다. 이대호는 2015년에 MVP까지 거머쥐었다. 이대호는 지난달 28일 다시 후쿠오카 돔구장을 찾아 열띤 환호 속에 시구 행사를 갖기도 했다. 1993년 4월에 문을 연 후쿠오카 PayPay 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개장한 캐나다의 로저스 센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개폐식 돔구장이다. 우리나라도 야구장에서 즐기는 치맥이 유명하지만, 후쿠오카 돔구장에는 규슈 지방의 맛집이 빼곡하다. 좌석까지 배달해 주는 미식(美食)과 생맥주를 즐기고, 치어리더와 캐릭터 댄스까지 야구장은 거대한 디너쇼 극장을 방불케 한다.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 가면 백스테이지 투어를 하는 것처럼 야구장에는 돔 투어 프로그램이 잘돼 있다. ‘돔만끽 코스’는 불펜 연습장, 라커룸, MVP 시상식이나 입단식이 열리는 기자회견장, 방문팀의 더그아웃을 둘러보고 경기장의 잔디도 밟아 볼 수 있다. 어드벤처 코스를 택하면 돔의 천장까지 올라가 볼 수 있다. 투어팀은 플래시가 달린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구장 내 점보제트기 3대 크기 ‘백스크린’ 뒤쪽의 좁은 통로를 올라간다. 지상 35m 지점에 올라서니 돔구장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지상 68m 돔구장 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캣워크)이 있다. 불꽃놀이 장인이 경기 1시간 전부터 불꽃 장치를 들고 올라가 대기하는 통로다. 약 20분에 걸쳐 1만2000t 무게의 육중한 지붕이 열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천장의 복잡한 구조물 사이에 뚫린 구멍을 통과해 돔구장 지붕 밖으로 나가니 비가 내렸다. 돔의 거대한 곡선이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처럼 아름다웠다. 지붕 밖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준다는 ‘사랑의 종’이 설치돼 있다. 비 내리는 후쿠오카 하카타만의 바닷가 절경을 바라보며 종을 ‘땡땡땡’ 치고 내려왔다. ●스포츠와 예술을 온몸으로 체험거대한 스타디움을 지을 때 가장 큰 우려는 천문학적인 건설 비용과 사후 운영 비용이다. 한국계 일본인 사업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인수한 이 구단은 좌석부터 건물 이름, 시구자까지 기업 마케팅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한다. 돔구장은 거대한 미식 체험장이자 콘서트장이다. 최근에는 아예 돔구장 옆에 야구 경기가 없어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첨단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문을 열었다. 야구 체험과 가상현실(VR) 게임, 디지털 아트, 음식과 놀이시설을 즐길 수 있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다. 건물 내부의 중심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레전드인 오 사다하루 소프트뱅크 호크스 회장(83)에게 헌정된 베이스볼 뮤지엄이 있다. ‘왕정치(王貞治)’로 잘 알려진 그는 세계 최다 기록인 868개의 홈런을 친 레전드 선수다. 뮤지엄에 들어가면 그가 선수 시절 쓰던 배트와 글러브뿐 아니라 아라카와 히로시 코치와 함께 검을 들고 허공을 가르며 외다리 타법을 연마했던 방까지 재현해 놓았다. 남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89PARK’다. 실제 타격과 수비, 주루를 하면서 야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시속 160km의 구속이 얼마나 빠른지 심판석과 선수석에서 체감해 보니 비명이 절로 나온다. 내 투구 속도를 재보고, 코치가 쳐주는 펑고를 잡아 송구를 하고,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게임도 있다. 스크린 골프처럼 투수가 실제로 던지는 공을 타격하는 방도 있다. 배트가 공에 제대로 맞는 순간 화면에서 빛이 번쩍하며 공이 백스크린 상단을 맞혔다. 짜릿한 손맛이다. 여성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팀랩 포리스트’다.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던 ‘포켓몬GO’의 증강현실(AR)을 업그레이드한 환상적인 공간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화려한 나무가 울창한 숲과 연못이 펼쳐지는데, 코끼리나 고래, 사슴을 닮은 신기한 동물들이 숲속을 거닐고 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깔아 화살을 쏘고, 그물을 던지면 동물을 잡을 수 있다.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모네,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몰입형 전시도 연인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운코(Unko) 뮤지엄’이다. ‘운코’는 우리말로 ‘응가’랑 비슷한 의미다. 달팽이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쌓여 있는 ‘운코’를 보기만 해도 아이들은 자지러지며 웃어댄다. 승리를 기원하는 황금색 운코,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로 변신한 분홍색 연두색 운코 캐릭터와 게임에 열광하는 일본 사람들의 심정을 알다가도 모를 느낌이었다. 옥상에는 돔구장 주변의 바닷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절경(絶景) 3형제’ 놀이기구가 있다. 그중 ‘쓰리ZO’는 옥상에 복잡하게 설치된 레일에 매달려 탑승자의 무게로 움직이는 아날로그 롤러코스터로, 건물 밖으로 나가는 구간에서는 가속도가 붙어 짜릿한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스베ZO’는 지상 40m 건물 벽면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 100m의 튜브형 미끄럼틀이다. 놀다가 출출해지면 라멘, 꼬치, 스시 등을 파는 3층 푸드홀로 가면 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MLB카페’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 라이선스를 받은 레스토랑으로, 메이저리그 생중계를 보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공식 굿즈를 구입할 수도 있다. 여행 정보=후쿠오카 여행을 간다면 ‘후쿠오카 PayPay 돔’ 투어(약 1시간)를 한 뒤 ‘보스 이조 후쿠오카’에서 음식과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시사이드 모모치 해변으로 걸어가 ‘후쿠오카 타워’에서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현지에서는 보스 이조 후쿠오카 놀이시설의 티켓을 따로따로 구입해야 하는데, 5가지 어트랙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펀티켓을 ‘디스커버리 큐슈’에서 미리 구매하면 싸고 편리하다. 또한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안방경기 할인 티켓도 일본에서 직접 사는 것보다 10∼20%가량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글·사진 후쿠오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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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 귀족 스포츠 폴로 경기를 제주에서? 폴로와 만난 현대미술[전승훈의 아트로드]

    “달리는 말 위에서 스틱을 휘둘러 공을 딱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골프를 칠 때도 공이 스윙 스팟에 제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가 나잖아요? 바로 그 손맛에 하는 겁니다. 멈춰져 있는 골프공을 잘 맞추기도 어려운데,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잔디 위를 구르고 있는 공을 맞춘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 (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 축구장 6배 크기의 잔디밭. 말을 탄 8명의 선수들이 공을 좇아 쏜살같이 달려 간다. 말 위에서 긴 스틱을 휘둘러 하얀색 공을 맞추자 ‘탕’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우두두두~’ 육중한 말들이 지축을 박차는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이어지는 박수소리, 환호성소리. 서양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알려진 폴로 경기를 한국에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면서도 진기한 장면이다.제주시 구좌읍 한국폴로클럽(KPC)은 한국과 일본 지역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들어진 폴로 경기장이다. 2010년에 문을 연 제주 폴로경기장의 클럽하우스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유작이다. 콘크리트와 목재를 이용해 한옥처럼 편안하게 햇빛을 끌어들이는 긴 처마가 인상적인 건물이다. 탁트인 전망을 갖춘 카페와 야외 수영장과 콘도까지 갖추고 있다. 멤버십으로 운영되고 있는 폴로 클럽에는 약 30여 명의 회원이 있으며, 일본에서 경기를 하러 오는 회원도 있다. 현재 폴로는 전세계 약 80여 개국에서 3만 여명이 즐기고 있다. 국내의 선수층이 매우 얇다보니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주축을 이뤄서 경기를 벌였다. 지난해에는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포드, 영국 옥스포드, 캠브리지대 등 명문대 폴로팀을 제주로 초청해 친선경기를 벌였다. 또한 한국 대표팀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폴로 경기의 유래폴로는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경기다. BC 6세기~AD 1세기에 페르시아(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성행했으며 원래 국왕 직속 기마대의 훈련용 경기로 펼쳐졌다. 한 팀이 100명 정도로 구성됐던 당시의 폴로 경기는 호전적인 민족이 행하는 축소판 전투와 다름없었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폴로는 아라비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동양에서는 ‘격구(擊毬)’로 불렸는데 말을 타고 하는 경기이기에 귀족 스포츠가 됐다. 격구는 삼국시대 고구려에 전해졌다. 통일신라 고분 모서리 기둥에는 ‘폴로 스틱을 든 페르시아인’이 새겨져 있다. 고려시대 무인정권 시절에도 격구는 각종 궁중 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용비어천가’ 제44장에 격구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무과시험에서도 정식 과목이었다. 조선시대 군사훈련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이십사반(二十四般) 무예의 하나로 격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13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를 정복하면서 인도에도 폴로를 전파했다. 처음으로 폴로 경기를 한 유럽인들은 인도의 아삼 주에 있던 영국인 차(Tea) 농장주들이었다. 이들은 1859년 실차르에서 최초의 유럽인 폴로 클럽을 결성했다. 1866년 초 인도에 주둔해 있던 제10 경기병대소속의 장교들이 팀을 짜서 경기를 한 이루 폴로는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1875년경 폴로는 영국 전역에 빠르게 보급됐다. 리치먼드파크와 헐링엄에서 여러 번 경기가 펼쳐지면서 1만 명 이상의 관중들을 끌어모았다. 처음엔 이 경기를 영국에 소개한 군인들 사이에서 성행했지만, 차츰 귀족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이후 폴로는 모든 스포츠 중 가장 귀족적인 스포츠로 자리잡게 됐다.폴로는 서양 왕족들이 스스로 즐겼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자녀에게 폴로를 적극적으로 가르쳤다.폴로의 기본 정신은 ‘사교’다. 말을 타고 달리는 위험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칙과 에티켓을 지켜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경기 중에는 선수는 물론 모든 관람자들까지 경기를 마친 후에는 함께 해야하는 의무적인 행동이 있다. 바로 잔디밭 위로 말들이 달리면서 생긴 디봇(divot) 자국을 다함께 밟아주는 행동이다. 영국의 찰스 국왕도 예외없는 ‘잔디밟기’ 에티켓이다.●폴로 경기의 규칙폴로는 말을 탄 선수가 ‘말렛(Mallet)’이라고 불리는 스틱을 이용해 공을 치며 진행된다. 450kg 정도의 말을 탄 채 돌진하는 모습은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또한 선수가 스틱을 이용해 상대방의 스틱을 쳐서 스윙을 막거나 방해하는 동작들은 화려한 검무를 보는 듯 하다. 시속 60km로 달리면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경기도중 말 위에서 다른 말로 갈아타기도 하면서 사람과 말이 하나로 호흡하는 현란한 승마 기술도 볼 수 있다. 지난달 중순 제주 한국폴로클럽을 찾았을 때는 중학생 선수 11명의 데뷔 게임이 펼쳐졌다. 대부분 회원의 자녀 선수들. 지난해부터 배우기 시작해 6개월간 훈련을 거쳐 첫 폴로 시합을 하게 된 것이다. 성인들의 게임과 달리 경기장 규모를 작게 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나무 망치가 달린 스틱을 휘두르며 공을 패스하고, 골문으로 슛을 할 때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이날 경기와 연습을 지켜보면서 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와 남종훈 부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며 폴로 경기 규칙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 데뷔한 어린 선수들은 어떻게 훈련을 했나. “제주 국제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서울에서 주말마다 내려와서 훈련하는 친구들도 있다. 작년 8월부터 금요일 밤에 비행기타고 내려와서 토요일, 일요일에 세 번의 연습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작년 겨울에는 태국에서 전지훈련도 갔다 왔다. 무엇보다 폴로가 재미가 있으니까 열심히 한다. 동물을 컨트롤 하면서 경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즐거움이다.” ―폴로 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폴로는 한 팀에 4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한다. 각 팀 선수들은 1~4번의 번호를 붙인다. 1번과 2번은 포워드(forward)이고, 3번과 4번은 백(back)이 된다. 그 가운데 3번 선수가 에이스로 패스를 전담하며, 팀 전술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는다. 원하는 방향과 거리에 맞게 정확하게 볼을 전달해주어야 득점으로 연결이 될 확률이 크다.” ―어떤 전술이 있나. “축구처럼 다양한 작전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한다. 스페인 축구처럼 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티키타카’ 전술을 쓰기도 하고, 롱패스 위주로 하는 전략도 있다. 패스를 할 때는 달려가는 말과 선수가 가는 방향을 예상해 앞서서 밀어주어야 한다.”폴로 한 경기는 7분씩 4처커(Chukker)를 한다. 처커란 농구의 쿼터(quarter), 아이스하키의 피리어드(period)와 같은 개념이다. 각 처커 사이에는 3분씩의 휴식시간과 5분간의 하프타임이 있다. 심판은 말을 탄 2명의 엄파이아와 사이드라인의 1명의 래퍼리로 구성된다. 선수들은 말에 올라 탄 채 말렛으로 공을 쳐서 상대팀 골문에 넣으면 1점이 주어진다. 상대팀 말과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바로 뒤에 있는 경우 공을 치려는 상대의 말렛을 자신의 말렛으로 막는 것은 허용된다. ―폴로 경기를 할 때 말은 몇마리나 필요한가. “폴로 경기는 4처커를 뛰는데, 한 처커(7분)마다 말을 교체해서 타야 한다. 양팀 선수 8명이 필요한 말이 총 32마리다. 심판이 타는 말까지 합치면 34마리 정도다. 보통 말은 한 처커를 뛰고 나면 퇴근한다. 말이 축구장 6배 될 정도로 큰 운동장에서 전속력으로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시합을 할 경우에는 한 처커 경기 도중에도 2마리씩 말을 갈아 타기도 한다.” ―제주 한국폴로클럽에는 말이 몇마리가 있나.“75마리의 말이 있다. 그 중 85%는 폴로클럽 소유의 말이고, 나머지는 회원이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말이다. 개인 소유의 말은 본인만 탈 수 있다. 연습이나 시합에서 본인이 길들인 말을 탔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합 중에는 내가 소유한 말이라고 해도 한 처커 밖에 탈 수가 없다. 나머지 처커는 클럽 소유의 말을 빌려서 타야 한다.”​―폴로경기에 사용하는 말은 어떤 종류인가.“아르헨티나에서 전량으로 수입해서 데려오는 ‘폴로 포니(Polo Pony)’라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폴로에 특화된 훈련을 받는데 보통 7,8살 된 말을 수입해 온다. 품종 자체가 굉장히 순하고 영리하다. 폴로경기를 하다보면 말끼리 자리싸움을 하다가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말의 경우 경기가 격렬해져 부딪치게 되면 순간적으로 날뛰어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폴로포니는 부딪쳐도 본인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이 돼 있다. 지능이 높은 말은 오토매틱 자율주행처럼 선수가 공을 치기 좋은 위치로 알아서 찾아간다.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체중이동만으로도 말이 방향을 전환한다. 중간 등급 정도의 말은 약 4000~5000만원 정도 가격이다.”폴로 경기를 할 때는 말의 앞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붕대를 감고 타이즈를 신긴다. 팀을 구별하는 패션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말렛(스틱)이나 공에 맞을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말렛을 휘두를 때 털에 엉키지 않도록 목부분의 갈기는 면도를 하고, 꼬리털도 단정하게 땋아줘야 한다. 폴로 경기장은 골대에서 골대 사이 거리가 280m, 폭은 180m 정도다. ―폴로 경기의 규칙은.“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말렛으로 공을 휘두르는 폴로 경기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꼭 지켜야할 규칙은 달려가는 말의 진행방향이 절대 크로스되면 안된다. 말이 공을 향해 달려갈 때는 같은 방향으로 달리며 경쟁해야 한다.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가로 막아버리면 사람과 말이 크게 다치게 된다. 이것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룰이다. 그리고 폴로는 한 골을 넣을 때마다 골대를 바뀐다. 만약 A팀이 오른쪽으로 공격을 해서 골을 넣었으면, 다음에는 골대를 바꿔 왼쪽으로 공격해서 골을 넣어야 한다. 필드가 굉장히 넓다보니까. 한 팀은 태양이나 바람을 마주보고 하고, 다른 팀은 등지고 경기를 하게 된다. 바람이나 햇빛의 영향을 양팀이 모두 똑같이 적용시키기 위해 골대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다.” ―또다른 에티켓은?“폴로에는 휴식시간에 관람객들이 모두 경기장으로 내려와 디봇 자국을 밟아주는 문화가 있다. 골프장에서 디봇자국을 덮어주는 매너하고 비슷한 것이다. 폴로는 매너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경기 중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도발이나 언행을 상습적으로 하는 사람은 클럽 멤버에서 퇴출된다.” ―폴로에 쓰는 공은 어떤 것인가. “폴로공은 플라스틱을 압축해 놓은 흰색공을 쓴다. 야구공보다는 조금 더 크지만, 경도 자체는 세지 않다. 사람이 맞으면 피멍 정도가 들 정도다.” ―프로리그 폴로경기는 어떻게 진행되나. “골프에서도 핸디캡이 있듯이 폴로 선수들에도 핸디캡(등급)이 있다. 핸디캡은 -2골, -1골, 0골에서 +10골까지 있다. 숫자가 높을 수록 실력이 좋은 선수다. 보통 프로의 기준을 +3골로 본다. +10골은 최정상급 선수로 전세계에 몇 명 없다. +5골만 해도 정말 대단한 선수다. 보통 초보자들은 -2골부터 시작을 한다. 먼저 2점을 받고 경기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2골 핸디캡은 골프로 치면 18홀 모두 양파를 하는 수준으로, 140~150타 정도 치는 수준이다. 팀을 이뤄 시합할 때는 선수들의 핸디캡을 총합으로 계산한다. 만일 A팀의 핸디캡 토털이 +13골이고, B팀은 +12이라면 B팀이 1:0으로 앞선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한 골의 실력차를 인정해준 상태에서 시합을 하는 것이다.” ―폴로 경기를 배우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 “본격적으로 말을 타고, 달리고, 공을 치는 데까지는 약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첫 시합을 가진 청소년들의 경우 약 6개월간 연습을 했다. 어린 나이일 수록 더 빨리 배우는 것은 맞는 것 같다.” ―폴로 경기를 하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은. “폴로는 경쟁의 스포츠라기 보다는 사교의 스포츠다. 지난해에 제주 폴로클럽에서는 하버드, 스탠포드, 예일, 옥스포드, 캠브리지 등 영국과 미국 명문 대학의 폴로클럽을 초청해서 친선 경기를 진행했다. 폴로 경기는 경기자체도 즐겁지만, 경기를 마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사교를 하는 과정도 무척 중요하다. 해외의 폴로 클럽에는 왕실이나 귀족,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폴로 경기 자체의 매력은 무엇인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채를 휘둘러 공을 딱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골프를 칠 때도 공이 스윙 스팟에 제대로 맞으면 경쾌한 소리가 난다. 폴로의 스윙도 골프와 매커니즘이 거의 비슷하다. 골프는 멈춰져 있는 공을 때리는 데도 잘 맞추기 힘든데, 폴로는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움직이는 공을 정확하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을 타는 실력이다. 기승 실력과 공을 치는 것은 한 8대 2정도의 비율로 기승이 더 중요하다.” ―폴로 선수들은 몸무게 제한이 있는가. “외국의 프로선수의 경우 약간 덩치가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선수 몸무게가 가벼워야 말한테도 좋고, 경기력도 좋아진다. 100~120kg 되는 사람은 말에게 무리가 가겠지만, 그 이하는 폴로 경기가 가능하다. 폴로클럽 회원 중에는 80kg대도 있다.”―폴로 경기용 말의 수명은?“보통 말의 수명은 30~40년이다. 제주 폴로클럽의 말은 복지가 좋다. 넓고 깨끗한 마사에서 수의사들의 관리를 받으며, 미네랄과 비타민이 든 사료를 먹는다. 20살 정도면 경기에서 은퇴하는데, 은퇴 후에는 노동을 하거나 도축을 하지 않는다. 경기장 뒷쪽으로 가면 은퇴한 말들이 휴식을 취하는 목장이 있다. 말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한다.” ―폴로 경기를 레슨해주는 프로들은 어디서 온 분들인가. “뉴질랜드, 영국, 아르헨티나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제주에 상주하며 지도해주고 있다. 현재 전세계 폴로 최강국은 아르헨티나다. 지난해 11월에 아르헨티나 프로리그 오픈컵에 초대돼 갔는데 인프라가 정말 좋았다. 한 동네에 축구장 6배 넓이의 폴로 경기장이 300개나 있었다. 이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본능적으로 말을 탄다. 상금이 큰 대회는 유럽에서 많이 열린다. 2024년에 파리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폴로를 시범경기 종목으로 넣으려고 한다.”―해외에서 폴로 경기의 위상은 어떤가.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받아들여진다. 영국의 찰스 국왕과 카밀라 왕비도 윈저성 근처의 폴로 경기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동남아 국가에서도 폴로 경기를 한다. 브루나이에서는 왕족이 폴로 경기를 하는데 국민들이 열광하는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동북아에서 현재 폴로 경기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일본에는 폴로클럽이 없다. 제주 폴로클럽 회원 중에 한 분이 일본 기업 회장의 손자가 있는데, 홋카이도에 폴로 경기장을 지으려고 준비 중이다. 중국은 폴로 경기장은 있는데,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폴로 경기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 ―폴로 클럽 회원의 경우 1년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가. “폴로 경기는 해외에서도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스포츠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폴로 경기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면 연간 약 1~2억원 정도 든다. 한 게임에 처커 4게임을 한다. 한 처커(7분30초) 마다 한번씩 말을 바꿔 타야 한다. 연습경기가 아니라 본 시합 때에는 한 처커에 2마리의 말을 타기도 한다. 한 경기에 총 8마리의 말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국제대회 나가면 경기 참가비, 숙식비도 엄청나게 비싸다. 폴로 경기는 상금이 없고, 모든 비용을 참가자들이 스스로 부담한다. 폴로를 통해 글로벌한 인맥 네트워크를 맺는 데는 매우 좋은 기회다.” ―폴로의 매력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모두가 폴로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먼저 말 타기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누구나 말에서 떨어지는 것은 무서워한다. 그만큼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해야 하는 운동이다. 폴로 클럽 회원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말에서 ‘떨어져 본 사람’과 ‘떨어질 사람’. 무조건 몇 번씩은 말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폴로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인정한다. 만나면 ‘야, 너도 폴로해? 말에서 떨어져봤어? 그래 너 멋있다!’고 말하며 금방 친해진다. 필리핀, 두바이에 가면 60, 70대의 나이에도 폴로를 열심히 하는 회장님들이 계신다.”●폴로클럽 안의 현대미술 갤러리“폴로 경기장에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온 왕족, 귀족, 기업인 등 VIP손님들이 많은데, 한국의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세계에 소개하는 갤러리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한국폴로클럽 아트갤러리 오픈 폴로컵’ 대회를 열었는데, 폴로 회원과 게스트들이 한국 예술가들의 작품에 큰 관심을 갖고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미오컨템포러리 박현정 대표)지난해 5월에는 제주 한국폴로클럽안에 있는 클럽하우스 1층에 아트갤러리가 오픈했다. 원래 헬스클럽이 있던 공간인데 갤러리로 개조해 꾸민 것이다. 아트컨설팅과 전시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미오컨템포러리가 운영하는 이 갤러리에서는 6월 15일까지 전광영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전통 한지로 작업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유명한 전광영 작가는 1994년부터 시작된 한지 오브제 작업을 토대로 다양한 크기의 스티로폼을 종이에 싸고 묶는 기법을 통해 조형성을 만들어낸다. 전 작가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전시(Collateral Event)’로 선정된 바 있다. 세계 최대규모 미술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린 수백 건의 전시 중 엄선한 30건으로 뽑힌 전시다. 아시아의 보자기 문화에서 착안한 작가의 연작 시리즈는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한약방 천장에 매달려 있던 무수히 많은 한약재 봉지를 바라보던 기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약봉지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한지로 감싼 후 매듭을 묶어 작은 조각을 만든 후 화면에 일정한 패턴으로 재배열해 그만의 독특한 입체 회화 ‘집합’ 시리즈를 창조해 낸 것. 70~80년에서 많게는 150년 전에 만들어진 책들을 해체해 낱장이 된 한지가 작가의 손끝에서 수천수만의 매듭으로 연결되어 현대미술 작품으로 재탄생 된다. 한국코리아폴로클럽 고영만 대표는 “동양적 철학의 사유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님의 작품으로 올 첫 전시를 시작하게 되어 의미 있게 생각한다”며 “폴로클럽이 가진 역동성을 예술이라는 문화와 접목시킴으로써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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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한국폴로클럽에 문을 연 아트갤러리

    “달리는 말 위에서 스틱을 휘둘러 공을 딱 하고 맞힐 때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멈춰 있는 골프공을 잘 치기도 어려운데, 달리는 말 위에서 구르고 있는 공을 맞힌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죠!”(한국폴로클럽 최용호 이사) 축구장 6배 크기의 잔디밭. 말을 탄 8명의 선수가 공을 쫓아 쏜살같이 달려간다. 달리는 말 위에서 긴 스틱(맬릿)을 휘둘러 하얀 공을 맞히자 ‘탕’ 하는 소리가 퍼져나간다. “우두두두∼” 하며 육중한 말들이 지축을 박차는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린다. 이어지는 박수 소리와 환호성. 서양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는 스포츠인 폴로 경기를 한국에서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낯설면서도 신기한 현장이다. 제주시 구좌읍 한국폴로클럽(KPC)은 한국과 일본 지역에 최초이자 유일하게 만들어진 폴로 경기장이다. 2010년에 문을 연 폴로 경기장의 클럽하우스는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의 유작이다. 탁 트인 전망을 갖춘 카페와 야외 수영장과 콘도까지 갖추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영국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 폴로팀을 제주로 초청해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폴로 한 경기는 7분씩 4처커(Chukker)를 한다. 처커란 농구의 쿼터, 아이스하키의 피리어드와 같은 개념이다. 폴로를 할 때 한 처커(7분)마다 말을 교체해서 타야 한다. 한국폴로클럽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전량으로 수입해 오는 ‘폴로 포니(Polo Pony)’ 품종의 말 75마리가 있다. “폴로는 경쟁의 스포츠라기보다는 ‘사교’의 스포츠다. 경기 중간에는 선수와 관람객들이 잔디밭 위로 내려와 말들이 달리면서 생긴 디벗(divot) 자국을 함께 밟아주는 전통이 있다. 각국 왕실이나 귀족, 세계적 기업의 오너가 폴로클럽 회원으로 있기 때문에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남종훈 한국폴로클럽 부대표) 지난해 5월에는 제주 한국폴로클럽 1층에 아트갤러리가 오픈했다. 원래 헬스클럽이 있던 공간을 개조해 꾸민 이곳에는 현재 전광영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미오컨템포러리 박현정 대표는 “폴로클럽에는 해외에서 온 왕족, 귀족, 기업인 등 VIP손님이 많아 한국의 대표 작가들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병행전시(Collateral Event) 부문에 선정됐던 전 작가는 전통 한지(韓紙)로 작업한 ‘집합(Aggregation)’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는 약봉지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삼각기둥을 한지로 감싼 후 매듭을 묶어 재배열하는 독특한 입체 회화 ‘집합’ 시리즈를 창조해냈다. 한국폴로클럽 고영만 대표는 “동양적 철학의 사유를 본인만의 개성으로 표현해낸 세계적인 작가를 올해 첫 전시로 모시게 돼 의미있게 생각한다”며 “폴로클럽에 예술과 문화를 접목함으로써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제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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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신안군 도초도 자산어보 촬영지

    영화 ‘자산어보’는 신유박해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 선생이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의 주요 촬영세트는 신안군 흑산도가 아니라 도초도에 있다. 도초도 발매리 서쪽 끄트머리 언덕에 있는 가거댁(이정은)의 초가집이다. 대청마루를 둔 안채와 부엌, 돌담과 우물·평상·아궁이 등 영화 속 소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청마루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 때리기 좋은 명당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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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일본 규슈 구마모토성

    일본 규슈에 있는 구마모토성은 가토 기요마사에 의해 지어진 성이다. 천수각 지붕 양쪽 끝은 호랑이 모양의 머리에 가시가 돋친 상상의 물고기 ‘샤치호코(鯱)’로 장식돼 있다. 불이 나면 물을 뿜어낸다는 ‘물호랑이’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당시 성 곳곳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천수각의 샤치가와라(샤치호코가 장식된 기와)도 떨어졌다고 한다. 현재 구마모토성은 무너진 담장과 기와, 석재들의 본래 위치를 찾아 복원 중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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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바닷가에 핀 갯메꽃

    전남 신안군 우이도 모래산 언덕에는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이 활짝 피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면 함초롬히 얼굴을 내미는 꽃송이다. 갯메꽃은 거칠고 짠 소금기 바람 속에서도 모래밭에 뿌리박은 덩굴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가는 염생식물이다. 진하고 화려한 색깔의 서양 나팔꽃은 외래 유입종이지만 육지 들판에 피어나는 토종 ‘메꽃’, 바닷가에 군락을 이뤄 피는 ‘갯메꽃’은 한복처럼 은은한 연분홍빛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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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호가 쏘아올린 ‘도요샛’ 이름의 비밀은?[전승훈의 아트로드]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날으는지~”(정광태, 이태원 ‘도요새의 비밀’)​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에 실려 궤도에 오른 ‘도요샛’은 무게 10kg에 불과한 초소형 인공위성 ‘큐브샛(Cubesat)’이다.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은 축구장만큼 큰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1000 kg이 넘는 대형위성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크기다. 초소형 군집위성인 도요샛은 마치 드론처럼 4대의 큐브샛이 함께 나란히, 또는 일렬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도요샛’은 영어로 스나이프(SNIPE, Scale MagNetospheric and lonspheric Plasma Experiment)라고 불린다. 지구 자기장과 이온 전리층의 플라즈마 실험의 크기를 측정한다는 목표가 담긴 줄임말이 SNIPE다. 그런데 영어로 Snipe는 ‘도요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위성이라는 뜻의 ‘SAT’을 붙여 도요샛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 가장 작고 멀리 나는 새, 도요새의 비밀 도요새라는 이름은 초소형 인공위성에 그야말로 딱 맞는 이름이다. 도요새는 ‘가장 작고, 가장 멀리 나르는 새’로 유명하다. 우리 가요에도 도요새는 많이 등장한다. “마도요! 젊음의 꿈을 찾는 우린 나그네. 머물 수는 없어라~” (조용필 ‘마도요’)도요새는 지구의 순례자다. 붉은가슴도요새의 다리에 표식을 한 후 12년 만에 포획을 해보니 평생 52만km의 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필립 후즈라는 과학자는 100g 정도에 불과한 이 새가 날아다닌 여정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38만km)보다 더 길다고 해서 ‘문버드’(Moon Bird)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감동적인 관찰기를 책으로 남겼다.경기 화성호 습지에 많이 찾아오는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습지를 찾는 마도요의 40%를 차지하는 종으로 화성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다. 이 새는 북극권인 시베리아에서 짝짓기와 알을 낳고, 남반구의 끝자락인 호주,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한다. 매년 2만7000km가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새다.호주에서 긴 월동기간을 보낸 이들은 3~5월이 되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자기 몸무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먹이를 먹어치우며 2주만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 에너지가 지방으로 저장되는데 출발 직전의 도요새를 만져보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일 정도라고 한다. 대집단을 이루어 출발하는 알락꼬리마도요의 목적지는 한반도 서해안. 태평양을 건너오는 1만km의 구간 동안 먹이는 물론 물 한 모금도 못마시고, 날개를 접고 쉬거나, 잠도 자지 못한다.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도요새는 물에 빠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곳은 없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음 뿐이다. 이렇게 도착 전에 30%는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도착할 때 쯤이면 몸무게가 40%이상 줄어들게 된다. 한 조류학자는 “도요새들은 갯벌에 다리보다 부리가 먼저 닿는다”고 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 먹이를 보충하는 것이 시급한 상태이기 때문이다.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의 갯벌에서 긴부리로 칠게나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체력을 회복한다. 여름에 시베리아로 날아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9~10월에 다시 한반도 서해안을 찾는다. 그리고 겨울에 다시 호주까지 1만km를 날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겨울철 호주에서는 알락꼬리마도요가 돌아올 즈음이면 떠들썩한 축제를 연다. 종을 울리며 무사히 돌아온 도요새를 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4월이면 북반구로 떠나는 알락꼬리마도요 등 여러 도요새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모자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고 기도문을 외우는 도요새 환송식을 진행한다고 한다.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 갔을 때 국립빅토리아미술관 앞에 알락꼬리마도요와 비슷하게 긴부리를 가진 새의 모습을 표현해놓은 LED조형물을 보았다. 호주가 도요새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 도요샛 3기 ‘다솔’은 어디에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도요샛은 총 4기가 ‘완전체’인 군집위성이다. 4기가 우주에서 종대나 횡대로 늘어서 편대 비행을 할 예정이었다. 태양풍에 따른 ‘우주날씨’ 변화를 측정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전날 위성 분리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3호기(다솔)는 아직 교신이 안 됐다. 오전까지 연락이 닿지 않던 4호기(라온)는 수신에 성공했다. 도요샛과 같은 큐브샛 인공위성은 1999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과 스탠퍼드대학이 교육 목적으로 처음 개발했다. 우주공학교육에 주로 사용됐지만 점차 궤도 내 신기술 실험, 우주 환경시험 등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발전했다. 크고 무거운 대형위성은 개발과 발사에만 수천 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작은 크기의 큐브샛은 적은 비용으로도 제작과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4대의 각 위성들은 우주 공간에서 10km부터 100km 간격으로 천천히 멀어지며 편대 비행을 할 수 있다. 각 위성의 가스 추력기를 활용해 위성간 비행거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4대가 동시 편대 비행을 하며 움직이면 관측대상에 대한 시공간적인 연구가 가능하다는 잇점이 있다. 한 관측 대상을 서로 다른 시간에 관측하는 것 외에도 4대의 위성이 4곳의 지역을 관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일한 시간에 각 4곳의 공간적 물리량의 분포까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차세대소형위성 2호는 앞으로 2년간 태양동기궤도에서 지구를 하루에 약 15바퀴 돌면서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도요샛의 주 임무는 지구 가까운 곳의 자기장과 플라즈마를 관측하는 것이다. 천문연은 지속적으로 3호기와의 교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다만 만에 하나 교신이 계속 안 되더라도 3기로 임무 수행은 대부분 가능하다는 게 천문연의 설명이다. 당초 도요샛 4기는 횡대·종대 비행을 하며 우주 날씨를 관측하도록 설계됐다. 이재진 천문연 우주과학본부장은 “여러 대가 있으면 더 기능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론적으로는 2기 이상이면 편대비행 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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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루즈와 스킨스쿠버의 성지, 사우디 홍해가 올해말 본격 열립니다.”[전승훈의 아트로드]

    “올해 4분기 중에 홍해에 최고급 리조트가 들어서는 프로젝트가 완공됩니다. 아라비아 반도의 고대 유적과 문화, 자연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오세요.” (알하산 알다바그 사우디관광청 대표)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대규모 ‘사우디관광 서울 로드쇼’를 열었다. 22일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사우디의 16개 현지 관광협력사와 호텔 리조트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의 여행사와 항공사 등 관광업계와 미디어를 대상으로 사우디의 주요 관광명소와 여행객 환대 정책을 소개했다. 사우디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관광에 1조 달러(약 1310조 원)를 투자해 세계에서 가장 흥미롭고 성장하는 관광지로 자리잡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특히 사우디는 한국 시장을 아시아의 관광을 선도하는 영향력이 큰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 사우디관광청은 “한국 관광객이 지난해 1만1000명에서 올해는 5만3000여 명이 사우디를 찾을 것으로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국영항공사 사우디아(SAUDIA)는 한국과 사우디를 잇는 직항편을 대폭 늘렸다. 지난해 8월부터 인천에서 수도 리야드로 가는 직항편이 운행됐는데, 올해 3월부터는 사우디 제2의 도시인 제다로 연결되는 ‘인천~제다 노선’도 추가해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무료 비자도 확대된다. 현재 한국인 관광객은 ‘e-비자‘(전자비자)를 발급받으면 사우디를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무료 호텔 숙박(1박)이 포함된 ’96시간 경유 비자‘를 신설했다. 두바이, 이집트, 요르단 등 중동지방을 여행하면서 사우디에 2~3일 경유해 관광하고 싶은 사람은 ’96시간(4일) 경유 비자‘를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무료 호텔 숙박(1박)도 제공된다.이날 사우디 관광로드쇼 갈라 디너에서는 K팝 그룹 ‘슈퍼주니어’가 사우디아라비아 관광청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이날 슈퍼주니어의 이특, 신동, 은혁, 동해, 려욱, 규현은 사우디 관광청 홍보대사 임명장을 받았다. 이날 현장에 참석하지 못해 영상 메시지를 보낸 리더 이특은 “최근 사우디 관광청의 초대로 멤버들과 여행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왔다”며 “사우디는 한국과 직항 노선도 있으니 많이 방문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알하산 알다바그 사우디관광청 APAC 대표는 “K팝의 전설적인 그룹인 슈퍼주니어는 항상 사우디와 좋은 인연을 맺어왔다”며 “한국과 사우디가 서로가 지속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사우디 관광청은 2020년 6월 설립 이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주요 지역 총 16곳에 해외지사를 오픈했다.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아티스트 최초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슈퍼주니어는 2019년 아시아 가수 최초로 사우디 단독 콘서트를 열어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사우디 관광청과 함께 여행 예능프로그램 ‘램프의 기사’를 촬영하기도 했다. 사우디에는 6개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과 1만 개가 넘는 미지의 고고학 유적지가 존재한다. 사우디 정부는 고대 유적과 현대문명이 어우러진 리야드와 제다, 알울라를 사우디 관광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소개했다. 사우디의 발상지인 수도 리야드의 디리야 투라이프(Turaif), 제다의 알 발라드 구시가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알울라다.자연경관으로는 홍해가 대표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손길이 닿지 않은 산호초를 자랑한다. 크루즈를 타고 휴식을 취하거나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 있으며, 제다 연안에서 연중 이용 가능한 스노클링 등 수상 레저 프로그램과 함께 깨끗한 해변을 즐길 수 있다. 2023년 시작한 홍해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유수의 호텔 브랜드와 함께 해변 및 섬 관광 개발을 하고 있다. 네옴의 섬도 개방하여 럭셔리 요트 섬인 신달라와 함께 공개한다.사우디 관광청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 알하산 알다바그는 “이번 로드쇼는 사우디 관광청이 기존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려는 한국 시장과 한국 여행 파트너에 대한 약속”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알하산 알다바그 대표와의 일문일답.―슈퍼주니어를 사우디 관광 홍보대사로 임명했는데. 사우디에서의 K팝 인기는 어떠한가. “K팝 가수들은 사우디에서 매우 인기가 높아 아시아 관광객 유치에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홍보대사가 될 수 있다. 슈퍼주니어, 블랙핑크, BTS 등이 사우디에 와서 공연을 했는데, 올 때마다 스타디움이 남녀 관객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콘서트를 보면서 소리치고, 울고, 환호한다. 한국은 또한 게임 강국이기도 하다. 한국의 게이머들은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생중계하는데 매우 인기가 높다. 엄청난 팔로워들을 갖고 있다. 사우디에서는 올해 9월 전 세계 최대의 게임 챔피언십 대회를 열 예정이다. 1등 상은 수백만 달러의 상금을 받는다. 사우디를 세계에 알리는데 한국과 적극 협력하고 싶다.”―사우디를 관광하는 좋은 방법은.“사막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고대 유적이 즐비한 알울라에는 사막에 인피니티풀 수영장과 스파를 갖춘 해비타스, 반얀트리 같은 럭셔리 리조트가 있다. 그러나 좀 더 사우디 전통의 체험을 하고 싶은 분들은 에어비앤비와 같은 ‘게더른(Gathern)’ 앱을 이용해서 농가(Farm House)에서 숙박할 수도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 농장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소의 젖을 짜고, 닭장에서 신선한 계란을 직접 주워 오고, 야외에서 요리를 하는 사우디 전통스타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가이드를 동반한 하이킹과 트레일을 경험할 수 있다. 농장은 20명 정도의 단체 관광객도 숙박이 가능하다.”―사우디에도 산과 계곡에서 캠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데.“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이 남부 산악지대다. 한국의 강원도처럼 높은 산에 숲이 우거져 있어 아름답고, 날씨도 좋고, 깨끗한 환경이 있다. 사우디는 모두 사막만 있는 줄 아는데 남부는 산과 계곡이 있어 캠핑족들의 성지다. 제가 로드트립을 갈 때 주로 가는 부저리시는 알바하랑 아브하 사이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캠핑하기에 좋다. 테노마는 하이킹과 캠핑, 암벽등반으로 유명하다. 아브하에서는 산악을 등반하는 케이블카를 탈 수도 있다.”―홍해 프로젝트는 언제 오픈하나. “올해 4분기에 완공돼 오픈할 예정이다. 식스센시스, 세인트레드시, 리츠칼튼 등 3개의 호텔 리조트가 먼저 문을 연다. 각 호텔별로 150~170개 정도의 침실이 있는 럭셔리 호텔들이다. 또한 같은 시기에 홍해국제공항도 문을 연다. 매우 럭셔리한 컨셉으로 지어진 공항이다. 홍해의 섬에 리조트가 있는데 지속 가능하고, 해양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지어지고 운영될 것이다. 홍해국제공항은 제다와 네옴 사이에 들어설 예정이다.”―홍해에서 즐길 수 있는 해양스포츠는. “홍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다. 아름답고 컬러풀한 산호초 군락이 매우 방대하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잘 보전된 산호초 사이에는 다양한 수중생물들이 살고 있다. 스쿠버다이빙을 못하더라도 스노클링만으로도 바닷속 풍경을 보며 즐길 수 있다. 제다에서 배로 45분만 타고 가면 베하다라는 섬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려 섬 주변에서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큰 고기, 작은 고기 모든 종류의 해양생물을 볼 수 있다. 홍해의 제다와 요르단 페트라, 이집트 룩소르 등 홍해의 주요 관광지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홍해 크루즈도 매우 인기 있는 여행코스다.”―홍해프로젝트와 네옴프로젝트 사이에 관계는. “모든 프로젝트는 다 연관이 돼 있다. 네옴은 미래형 스마트도시다. 테크놀로지가 가미된 도시다. 홍해프로젝트는 럭셔리 휴양 리조트다. 사우디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고,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알울라 마라야 콘서트홀이 네옴프로젝트의 모델하우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권의 모든 왕과 대통령들이 모여서 하는 ‘아랍정상회의(GCC)’를 개최했었다. 당시 제대로 된 회의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알울라 사막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했다. 수많은 디자인이 제안됐으나 우리는 사우디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방해하는 건물을 원치 않았다. 결국 겉면이 거울로 된 디자인이 채택됐다. 거울은 사막의 풍경을 반사한다. 먼 곳에서 보면 마치 사막의 풍경 속에서 인공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건축물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한국인 관광객들이 사우디아라비아만 찾기란 쉽지 않다. 요르단, 두바이, 이집트 등 중동 국가와 사우디가 관광을 협력할 방안은. “우리도 최우선전략이 이웃 국가들과의 관광벨트 형성이다. 두바이 같은 중동에 한 번이라도 오고, 아랍의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사우디에 올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큰 나라이고, 아랍문화의 정수이고 심장이다. 사우디는 다양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고, 역사 문화적 배경이 깊다. 요르단 페트라나 두바이에 온 사람들이 사우디에 들러 2~3일간 경유해 관광할 수 있도록 비자나 숙박에 도움을 주는 상품도 적극 개발하고 있다.”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 202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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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라게 하겠다”[전승훈의 아트로드]

    프랑스 남부 아를이 고흐가 사랑한 도시였다면, 엑상 프로방스는 폴 세잔(1839~1906)의 고향이다. 엑상프로방스 도심 북쪽 고지대인 로브 언덕에는 세잔의 아틀리에(Atelier Cézanne)가 있다. 세잔은 1902년부터 1906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매일같이 이 작업실에서 사과를 그렸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언덕길을 올라, 꽃이 피어있는 나무가 가득한 정원을 지나니 세잔의 아틀리에가 나타난다. 1층엔 매표소와 아트숍이 있고, 세잔의 일생을 보여주는 영상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아뜰리에가 나온다. 시간마다 인원 제한이 있어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한다. 아뜰리에에 들어서자 햇살이 쏟아졌다. 왼쪽과 오른쪽 벽이 온통 커다란 유리벽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광을 좋아했던 만큼 아뜰리에에서도 햇살을 중요시했던가 보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아뜰리에에는 세잔이 입었던 물감 묻은 작업복과 모자가 걸려 있다. 야외에서 스케치할 때 갖고 다녔던 휴대용 팔레트와 붓, 의자와 우산도 놓여 있다. 또한 테이블 위에는 물병과 잔, 빨간색, 노란색, 푸른색 과일이 담긴 접시가 그대로다. 하얀색 테이블보가 아무렇게나 접혀 있는 것까지 그림 속 모습이다. 테이블 뒷쪽에는 세잔이 ‘해골 피라미드’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던 해골 3개가 놓여 있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해골은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의 모티브로, 인생의 유한함을 상징하는 소품이다. 세잔은 1897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후년들어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해골 피라미드’ ‘해골과 촛불이 있는 정물’ 등 많은 정물에서 해골을 넣어 그렸다. 또한 석고상과 십자가, 도자기 등 그림의 소품 뿐 아니라 대형그림을 그릴 때 쓰던 사다리도 그대로 있다. 1895년 7월 날짜가 쓰여진 편지도 있는데,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에게 보낸 편지였다. 마치 작가가 잠깐 외출한 듯. 구석구석 세잔의 숨결이 느껴져 지금이라도 한쪽 문을 열고 세잔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이 곳에서 그린 세잔의 사과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세번째 사과로 불린다. 첫번째는 이브의 사과, 두번째는 뉴턴의 사과다. 스티브 잡스의 사과를 네번째로 꼽는 사람도 있다. 청년시절 세잔은 파리의 살롱전에 번번이 떨어지고 1863년부터 1866년까지 연달아 입선에 실패했다. 파리 생활에서 세잔은 ‘물감만 떡칠한 그림’이라는 야유와 조롱을 10년이나 견뎌냈다. 1874년 첫 번째 ‘인상주의 작품전’이 열렸고 세잔은 석 점의 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그러다 그는 38세가 되던 해 낙향을 결심하는데, 이후 기존 미술평단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한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는 선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세잔의 아뜰리에는 ‘관찰’의 성지다. 그의 관찰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꿰뚫어보는 것으로 나아갔다. 세잔은 200여 점의 정물화에서 사과의 형태와 색깔을 끝없이 관찰하며 그렸다. 옆에서 본 사과, 위에서 본 사과, 아래에서 올려다 본 사과, 썩은 사과, 싱싱한 사과… 그는 이렇게 다양하게 관찰해서 바라본 사과를 한 접시 위에 담겨 있는 것으로 그렸다. 한가지 방향에서 바라본 1점 투시 원근법에 익숙한 미술계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이른바 ‘입체파(큐비즘)’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20세기 최고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세잔을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칭했다. 피카소는 실제로 세잔의 사과에 영향을 받아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 피카소는 처녀들의 눈, 코, 입을 각각 다른 방향에서 쳐다보는 각도로 그린 후 한 얼굴에 넣었으니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충격은 피카소, 브라크, 앙리 마티스와 같은 화가들의 현대미술 운동으로 이어졌다. 세잔은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와 형상에 주목했다. 그리고 사과, 물병, 접시 등 정물의 모든 형태를 기하학적인 원기둥과 구, 원뿔로 해석해 추상화의 단계로 나아갔다. 생트빅투아르 산을 그린 그의 풍경화도 마찬가지였다. 삼각형의 산과 네모난 집과 둥글거나 뾰족한 나무들… 추상에 가까운 기하학적 형태와 견고한 색채의 결합은 고전주의 회화를 넘어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잔의 아뜰리에에서 뒷쪽 로브(Lauves) 언덕길을 약 15분 정도 오르면 ‘화가들의 땅’(Terrain des peintre)이 나온다. 생트 빅투아르 산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지점이다. 세잔은 이곳에 이젤을 펴고 생트 빅투아르산과 나무와 숲, 마을 풍경을 그렸다. 지금도 생트 빅투아르 산 아래로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삼각형, 네모꼴 모양의 집들이 점점히 박혀 있다. 세잔은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 장 바시스탕 바유와 함께 이 석회산을 오르내리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세잔은 무려 유화 작품 44점과 수채화 작품 43점에서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렸다. 이 곳에는 세잔처럼 생트 빅투아르 산 풍경을 그리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이드가 세잔의 작품을 담은 판넬이 세워진 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난 후 흰색 팔레트에 빨강, 노랑, 파랑, 흰색 등 몇가지 색깔의 물감을 나눠주었다. 세잔 아뜰리에를 관람하고, 스케치도 해볼 수 있는 체험형 현지의 여행상품을 신청한 사람들인 듯하다. 이러한 관광객 외에도 자신의 스케치 수첩을 꺼내놓고 펜으로 슥삭슥삭 그리고 있는 아마추어 화가들도 많이 있었다. 세잔의 나이 67세. 1906년 10월15일에 그는 이 언덕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고, 그것이 생트빅투아르 산과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평상시 편두통을 앓던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쓰러졌다. 누군가가 그를 세탁소 카트에 실어 집까지 데려다 줬는데, 다음날 그는 또 작업실에 그림을 그리러 나갔다. 그러다가 다시 쓰러졌고, 결국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엑상프로방스(프랑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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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백담사 계곡 돌탑

    설악산 백담사 앞 계곡에는 수천 개의 돌탑이 쌓여 있다. 바로 백담사에서 템플스테이하는 사람들이 염원을 담아 쌓은 것이다. 백담사 광일 스님은 돌탑을 잘 쌓으려면 넓적한 돌을 올려놓는 사이사이에 작은 고임돌을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작은 고임돌을 구석구석에 받쳐 놓으면, 태풍이 불어와도 이 돌탑은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지탱하는 것은 곳곳에 있는 작은 고임돌 같은 사람들 덕분인지도 모른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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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과 맞닿은 야생화 탐방길, 천상의화원 곰배령[전승훈의 아트로드]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하늘고개 곰배령아~.’(곰배령)강원 인제군 설악산의 오월은 생명력 넘치는 푸른 신록의 잔치다. 곰배령과 백담사 계곡에는 도시에서는 벌써 진 야생화와 철쭉이 아직도 그대로 피어 있어 가장 늦게까지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하얀 별처럼 흐드러지게 핀 바람꽃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드라마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딸(유호정)을 중심으로 서울과 곰배령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 미움, 화해로 이어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착한 드라마였다. 만일 시즌제로 계속 방영됐다면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이나 전원생활의 향수를 담은 드라마로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종영됐지만 배경이 됐던 곰배령의 인기는 해마다 더해 가고 있다. 설악산 남쪽 점봉산(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점봉산은 한반도 전체 식물 종의 5분의 1에 이르는 854종이 자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높아 설악산국립공원(197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1982년), 산립유전자원보호구역(1987년)에다 백두대간보호지역(2005년)까지 겹쳐 철통처럼 보호된다. 그래서 점봉산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입산 금지구역인데, 이 산 남쪽 자락을 생태 탐방 목적으로 2009년 7월부터 사전 예약을 받아 개방한 구간이 바로 곰배령(1164m)이다. 지난주 곰배령 등산로 입구에서 등록명부를 QR코드로 확인한 후 들어가니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최근에 내린 봄비로 계곡에 가득한 물소리가 시원하다. 왕복 10km 정도의 곰배령은 계곡 주변의 숲길을 따라 넓고 평탄하게 걸어가는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 쉽게 트레킹할 수 있다. 곰배령은 야생화 관찰의 명소이기 때문에 전문가용 DSLR 카메라에 접사렌즈까지 장착한 탐방객이 많다. 키 작은 야생화를 찍기 위해 모두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들이댄다. 야생화 탐방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희귀식물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며 반갑게 소리친다. 이들은 꽃 이름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자연을 즐긴다. 이날 함께 산행을 한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이호 운영관리부장은 “곰배령이 야생화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곡 골짜기마다 작은 물골 수백, 수천 개가 흐르며 연결돼 있는 풍부한 수량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습지에서 잘 자라는 야생화가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을 이루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희귀식물을 채취하는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5월 현재 곰배령에 가장 무성하게 피어 있는 주인공은 ‘홀아비바람꽃’. 한 개체에서 하나의 꽃대만 올라와 꽃 한송이를 피운다. 그래서 이름이 홀아비바람꽃이다. 곰배령 정상부 근처 숲속에는 별처럼 하얀 홀아비바람꽃이 보랏빛 얼레지, 푸르스름한 현호색, 노란색 피나물과 동의나물꽃, 산괴불주머니와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 옥빛 백담계곡에서 ‘Love Yourself’ 설악산을 찾을 때는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을 이용하면 좋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숲에 휴양림이 있다면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한려수도 등 전국의 산과 바다에 있는 국립공원에는 생태탐방원이 있다. 매월 초 국립공원공단 예약사이트에서는 숙소를 잡기 위한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을 예약하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설악산의 경우 곰배령 야생화 탐방, 백담사 계곡 트레킹과 명상 치유, 노르딕 워킹 배우기, 산양 복원 프로젝트 견학, 밤하늘 별자리 관찰, 소원등 만들기 등 자연과 생태를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특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설악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설악산의 깃대종(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식물)인 눈잣나무가 새겨진 나무조각으로 ‘소원등’을 직접 만들고, 앞마당에 나가 해먹에 누웠다. 마당에 있는 조명을 끄니 갑자기 설악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진다. 가장 먼저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하다. 북극성과 샛별(금성)뿐만 아니라 국자 손잡이를 그대로 이어간 곳에 있는 밝은 별로 ‘봄의 대삼각형’ 별자리를 찾다 보면 밤이 깊어져 간다. 생태해설사가 이적, 아이유, BTS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른 우주와 별에 관한 최신 가요를 배경으로 낭독해주는 명상의 글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다. 이곳에서는 구조 작업 중 힘든 일을 겪은 소방관들의 마음 치유를 위한 단체 프로그램도 진행해 오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인제 백담사 계곡에서 펼쳐지는 치유 프로그램이다. 에메랄드빛 물이 흐르는 계곡길에서 노르딕 워킹을 배우기도 하고,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광일 스님과 함께 명상과 차담을 해보기도 한다. 5월의 신록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을 광일 스님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니 조용한 모래톱이 나온다. 이곳의 바위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명상이 끝난 후 광일 스님은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라고 외쳐 보라고 했다. 배에 힘을 주고 내 이름을 외치니, 저 멀리 봉우리에 부딪친 메아리가 다시 ‘승훈아, 사랑해!’라는 말을 되돌려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비록 내가 혼자 스스로 소리를 지르고, 메아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랑해’란 말에 감동하고 말았다. BTS의 ‘Love yourself’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 참 고마운 메아리다. 광일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아프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다”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 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 하다가 꼭 한 번 들를 만한 곳이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설악산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의 뷰를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는 한계령휴게소에서만 마실 수 있는 명물. 이 휴게소는 ‘올림픽 주경기장’ ‘공간사옥’ ‘남산 타워호텔’을 설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그대로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고, 철골조의 구조체에 목재로 마감해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단차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 기념품숍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넓은 테라스는 한계령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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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꽃 야생화가 가장 늦게까지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바람마저 길을 잃으면 하늘에 닿는다 점봉산 마루 산새들도 쉬어가는 곳… 하늘고개 곰배령아∼.’(곰배령) 강원 인제군 설악산의 오월은 생명력 넘치는 푸른 신록의 잔치다. 곰배령과 백담사 계곡에는 도시에서는 벌써 진 야생화와 철쭉이 아직도 그대로 피어 있어 가장 늦게까지 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가 개국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드라마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이었다. 아버지(최불암)와 딸(유호정)을 중심으로 서울과 곰배령을 오가며 펼쳐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 미움, 화해로 이어지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착한 드라마였다. 만일 시즌제로 계속 방영됐다면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같이 농촌이나 전원생활의 향수를 담은 드라마로 장수했을지도 모른다. ● 하얀 별처럼 흐드러지게 핀 바람꽃드라마는 종영됐지만 배경이 됐던 곰배령의 인기는 해마다 더해 가고 있다. 설악산 남쪽 점봉산(해발 1424m)에 있는 곰배령은 봄, 여름, 가을까지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천상의 화원’이다. 점봉산은 한반도 전체 식물종의 5분의 1에 이르는 854종이 자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높아 설악산국립공원(197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1982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1987년)에다 백두대간보호지역(2005년)까지 겹쳐 철통처럼 보호된다. 그래서 점봉산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입산 금지구역인데, 이 산 남쪽 자락을 생태 탐방 목적으로 2009년 7월부터 사전예약을 받아 개방한 구간이 바로 곰배령(1164m)이다. 지난주 곰배령 등산로 입구에서 등록명부를 QR코드로 확인한 후 들어가니 우렁찬 계곡의 물소리가 방문객을 맞는다. 최근에 내린 봄비로 계곡에 가득한 물소리가 시원하다. 왕복 10km 정도의 곰배령은 계곡 주변의 숲길을 따라 넓고 평탄하게 걸어가는 길이라 남녀노소 모두 쉽게 트레킹할 수 있다. 곰배령은 야생화 관찰의 명소이기 때문에 전문가용 DSLR 카메라에 접사렌즈까지 장착한 탐방객이 많다. 키 작은 야생화를 찍기 위해 모두들 땅바닥에 주저앉아 휴대전화를 들이댄다. 야생화 탐방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희귀식물을 만날 때마다 감탄하며 반갑게 소리친다. 이들은 꽃 이름을 서로 묻고, 가르쳐주며 자연을 즐긴다. 이날 함께 산행을 한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 이호 운영관리부장은 “곰배령이 야생화의 명소가 된 이유는 계곡 골짜기마다 작은 물골 수백, 수천 개가 흐르며 연결돼 있는 풍부한 수량 덕분”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습지에서 잘 자라는 야생화가 어떤 곳보다도 다양한 종을 이루게 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희귀식물을 채취하는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것도 생물종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5월 현재 곰배령에 가장 무성하게 피어 있는 주인공은 ‘홀아비바람꽃’. 한 개체에서 하나의 꽃대만 올라와 꽃 한송이를 피운다. 그래서 이름이 홀아비바람꽃이다. 곰배령 정상부 근처 숲속에는 별처럼 하얀 홀아비바람꽃이 보랏빛 얼레지, 푸르스름한 현호색, 노란색 피나물과 동의나물꽃, 산괴불주머니와 함께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 옥빛 백담계곡에서 ‘Love Yourself’설악산을 찾을 때는 국립공원공단 설악산생태탐방원을 이용하면 좋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숲에 휴양림이 있다면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한려수도 등 전국의 산과 바다에 있는 국립공원에는 생태탐방원이 있다. 매월 초 국립공원공단 예약사이트에서는 숙소를 잡기 위한 예약 전쟁이 벌어진다. 국립공원 생태탐방원을 예약하면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설악산의 경우 곰배령 야생화 탐방, 백담사 계곡 트레킹과 명상 치유, 노르딕 워킹 배우기, 산양 복원 프로젝트 견학, 밤하늘 별자리 관찰, 소원등 만들기 등 자연과 생태를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특히 저녁식사를 마치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설악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 경험은 잊을 수 없다. 설악산의 깃대종(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식물)인 눈잣나무가 새겨진 나무조각으로 ‘소원등’을 직접 만들고, 앞마당에 나가 해먹에 누웠다. 마당에 있는 조명을 끄니 갑자기 설악산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진다. 가장 먼저 머리 바로 위에 있는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또렷하다. 북극성과 샛별(금성)뿐만 아니라 국자 손잡이를 그대로 이어간 곳에 있는 밝은 별로 ‘봄의 대삼각형’ 별자리를 찾다 보면 밤이 깊어간다. 생태해설사가 이적, 아이유, BTS 등 인기 가수들이 부른 우주와 별에 관한 최신 가요를 배경으로 낭독해주는 명상의 글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다. 이곳에서는 구조 작업 중 힘든 일을 겪은 소방관들의 마음 치유를 위한 단체 프로그램도 진행해 오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인제 백담사 계곡에서 펼쳐지는 치유 프로그램이다. 에메랄드빛 물이 흐르는 계곡길에서 노르딕 워킹을 배우기도 하고, 백담사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 광일 스님과 함께 명상과 차담을 해보기도 한다. 5월의 신록이 상큼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을 광일 스님과 함께 걸었다. 산책로에서 살짝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가니 조용한 모래톱이 나온다. 이곳의 바위에 앉아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한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온몸을 자연에 맡긴다. 명상이 끝난 후 광일 스님은 한 명씩 일으켜 세워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라고 외쳐 보라고 했다. 배에 힘을 주고 내 이름을 외치니, 저 멀리 봉우리에 부딪친 메아리가 다시 ‘승훈아, 사랑해!’라는 말을 되돌려 준다. 누군가에게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비록 내가 혼자 스스로 소리를 지르고, 메아리가 나에게 해준 말이었지만 ‘사랑해’란 말에 감동을 먹고 말았다. BTS의 ‘Love yourself’처럼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해주는 것. 참 고마운 메아리다. 광일 스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고, 아프기 때문에 남도 사랑할 수 없다”며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볼 만한 곳=인제와 양양을 잇는 국도44호선을 넘어가는 고개 정상에 있는 ‘한계령 휴게소’는 드라이브 하다가 꼭 한 번 들를 만한 곳이다. 뾰족한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설악산 칠형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유리창의 뷰를 즐기며 먹는 황태해장국이 별미다. 또 16가지 한약재를 달여 만드는 약차는 한계령휴게소에서만 마실 수 있는 명물. 이 휴게소는 ‘올림픽 주경기장’ ‘공간사옥’ ‘남산 타워호텔’을 설계한 한국 현대 건축 1세대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81년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악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지붕선이 자연의 풍경에 그대로 녹아들고, 철골조의 구조체에 목재로 마감해 폭설과 강풍,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했다. 내부에서는 단차를 이용해 카페와 식당, 기념품숍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구획하고, 외부의 넓은 테라스는 한계령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된다.글·사진 인제=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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