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구독 2

추천

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4-10-25~2024-11-24
칼럼48%
인사일반13%
경제일반10%
미국/북미7%
국제일반7%
국제경제3%
국제인물3%
여행3%
기획3%
기타3%
  • [책의 향기]기억하는 역사는 얼마나 진실일까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이다. … 전후 세대에게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또 물어서도 안 되지만, ‘기억 연구’라는 영매를 통해 과거의 비극과 만나고 죽은 자들과 소통하고 기억해야 하는 책임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은 뒤 좀 후회했다. 명쾌한 문장 덕에 배운 게 많지만, 머리도 가슴도 뻑뻑해졌다. ‘역사에 대한 기억’이 이다지도 복잡한 일일 줄이야. 자칫 양비론이나 양시론에 휘둘리고픈 유혹마저 느껴졌다. 일단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쉬운 남의 일부터 짚어 보자. “베일 뒤에 숨은 가해자”였던 오스트리아.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국가였다. 당시 ‘제3제국’ 전체 인구 가운데 오스트리아인은 8% 정도였지만 나치 친위대의 14%나 차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전후 스스로를 나치의 첫 번째 피해국이라 불러왔다. 히틀러의 서슬에 휘둘린 불가항력적 가담자일 뿐이라는 논리다. 2013년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가 ‘과거 청산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46%는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희생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일본이 자행하는 ‘기억 조작’은 더하다. 우리를 비롯해 아시아를 사지로 몰아넣은 제국주의 주범이 가녀린 원폭의 피해자인 양 행세한다. 위안부 문제는 군이나 정부가 이를 지시했다는 증거나 문서는 어디에도 없다는 얄팍한 ‘실증주의’를 들이민다. 특히 “많은 일본인이 자신은 군부 지도자들에게 속은 순진한 보통 사람일 뿐이며, 오히려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속에서 천불이 날 얘기지만, 저자는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도 냉정히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다. 사례로 든 ‘집합적 유죄’란 개념이 그렇다. 해나 아렌트는 단지 독일인이란 이유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만약 전후 일본이 똑같은 논리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 더. 그렇다면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인 행위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론 사안마다 경중이 다르며 ‘침묵’과 ‘부정’과 ‘왜곡’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억 전쟁의 면죄부를 ‘내로남불’로 선택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 하나씩 풀어나갈 수밖에 없으리라. ‘기억 전쟁’은 몹시 날카롭고 매섭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암세포는 우리 사회, 우리 인식 속에서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어떤 수술이나 약물이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넋 놓고 있다간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암을 앎으로써 다시 한번 출발점에 서야 한다. 지난한 싸움이라 할지라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2-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25년간 여행하며 수집한 세상과 그 시대의 사람들

    “이웃을 사랑하기란 어렵고, 적을 사랑하기란 더 어려우며, 후자는 실제로 가끔 부주의한 판단이다.” “자유는 자칫 퇴색하기 쉬운 개념이다. 자유 덕분에 오히려 엄격한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선택지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명언 노트라도 하나 사야 할까. ‘경험 수집가의 여행’은 최근 몇 년 사이 읽은 책 가운데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문장들이 가장 뻔질나게 튀어나온다. 일상생활에서 들었다면 느끼했을지도 모를 이런 글귀를 세련되고 유려하게 엮다니. 일단 저자의 펜에 경배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임상심리학과 교수인 그는 원래 저널리스트로서도 방귀깨나 뀌는 인물이다. 실은 이 책도 뉴욕타임스와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 가운데 엄선했다고 한다.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를 돌며 겪은 기록들은 쫀득쫀득하면서도 싱싱한 날것의 냄새가 물씬하다. 뭣보다 ‘경험…’은 한가한 여행 후일담과는 결이 다르다. 저자는 여행이란 직접 체험이 담겼기에 관광보다 윗길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르포라고 봐야 옳을 듯하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저자가 놓치지 않는 대목이 바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15년 국내에도 출간했던 ‘부모와 다른 아이들’(열린책들)에서 보여줬던 놀라운 취재와 따스한 인간애를 다시 한번 만끽할 수 있다. 묵직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심층보고서 ‘부모와…’와 달리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가벼운 맘으로 접근할 수 있단 매력은 덤. 다만 한계도 살짝 엿보인다. 25년간 다양한 언론에 썼던 기사를 모으다 보니 아무래도 ‘도도히 흐르는 굵은 강줄기’는 흐릿하다. 게다가 1988년의 소련과 2015년의 호주는 변해버린 저자의 나이와 환경만큼이나 동떨어진 분위기인 것을. 물론 이런 아쉬움을 메워주는 지성과 문장력이 있긴 하다. 어쨌거나 이번 기회에 서재에 좋아하는 작가 이름을 또 하나 추가하시길. 그만한 ‘솔로몬의 지혜’가 없어 보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정치의 숨겨진 본질, 시공을 넘어선 탐구

    생존해 있는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글은 국내에 번역되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보기 드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아감벤은 발터 벤야민 저서의 이탈리아 번역 책임자다. 벤야민과 유대인 랍비 출신 종교학자 야콥 타우베스에게 끌려 ‘남겨진 시간’이란 책을 썼다.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는 생면부지의 타우베스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 토론을 제안했다. 네 사람 사이에 시공을 뛰어넘어 정치의 본질에 대한 낯선 생각들이 오갔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그를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고대 로마법상의 특이한 존재다. ‘호모 사케르’를 통해 드러나는 정치의 숨겨진 본질은 벤야민의 메시아주의,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주권자라는 슈미트의 사상과 연결돼 있다. 아감벤을 다룬 국내 사회과학 분야의 첫 저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불운 이겨내고 성공 이룬 ‘슈퍼맨’들의 비밀

    잠깐 눈을 감아보자. 누구나 생애 한 번쯤은 초인을 꿈꾼 적이 있지 않은가.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거나 복면을 쓰고 빌딩을 타는. 물론 꼭 슈퍼히어로일 필요는 없다. 뭔가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픈 맘을 다들 품어본다. 하나 나이를 먹을수록 환상은 저 멀리 떠나간다. 평범하다 못해 남보다도 뒤처지진 않는지. 괜스레 뒷목이 구부정해진다. 그런데 ‘슈퍼노멀’은 왠지 그러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는 기분이 든다. 실은 책 자체가 힐링을 주려는 목적을 지니진 않았다. 오히려 과거에, 주로 어린 시절에 여러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지를 주목한 책이다. 다시 말해, ‘Super Normal’은 고난을 극복한 품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소개다. 미국 버지니아대 교육학 교수인 저자는 현지에서도 유명한 임상심리학자라고 한다. 20년 넘게 수많은 이들을 상담해왔는데, ‘역경을 기회로 바꾼’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정불화 등을 겪은 이들은 행동장애나 학습장애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꼭 정신질환이 아니어도 문제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엇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이를 이겨내는 힘. 저자는 이 슈퍼노멀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했다. 일단 이런 회복탄력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인간의 뇌가 지닌 ‘투쟁-도피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투쟁 반응이란 말 그대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해군장교로 훌륭하게 성장한 폴이란 인물은 어린 시절 극심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힘겨웠지만 그는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기 삶을 지키고 처한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흔히 분노는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장애물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피 반응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만약 어린아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면 이에 맞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럴 경우 외적으로 순응하는 척하면서 현실과 ‘거리 두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한다. 한마디로 투쟁 반응이 ‘문제 중심 대처’라면, 도피 반응은 ‘정서 중심 대처’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이를 통해 곤란을 버텨낸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다. ‘슈퍼노멀’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역경을 이겨낸 우리네 이웃의 승전보만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아픔과 고통이 남아있단 점을 잊지 않는다. 만화나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그렇지 않나. 겉으론 화려하고 남부러울 게 없지만, 실은 인간적인 번뇌까지 벗어날 순 없다. ‘슈퍼’하긴 해도 ‘노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서적임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배어있는 점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불운한 출발에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슈퍼노멀‘

    잠깐 눈을 감아보자. 누구나 생애 한번쯤은 초인을 꿈꾼 적이 있지 않은가.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거나 복면을 쓰고 빌딩을 타는. 물론 꼭 슈퍼히어로일 필요는 없다. 뭔가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픈 맘을 다들 품어본다. 하나 나이를 먹을수록 환상은 저 멀리 떠나간다. 평범하다 못해 남보다도 뒤쳐지진 않는지. 괜스레 뒷목이 구부정해진다. 그런데 ‘슈퍼노멀’은 왠지 그러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는 기분이 든다. 실은 책 자체가 힐링을 주려는 목적을 지니진 않았다. 오히려 과거에, 주로 어린 시절에 여러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지를 주목한 책이다. 다시 말해, ‘Super Normal’은 고난을 극복한 품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소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육학 교수인 저자는 현지에서도 유명한 임상심리학자라고 한다. 20년 넘게 수많은 이들을 상담해왔는데, ‘역경을 기회로 바꾼’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정불화 등을 겪은 이들은 행동장애나 학습장애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꼭 정신질환이 아니어도 문제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엇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이를 이겨내는 힘. 저자는 이 슈퍼노멀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했다. 일단 이런 회복탄력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인간의 뇌가 지닌 ‘투쟁-도피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투쟁 반응이란 말 그대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해군장교로 훌륭하게 성장한 폴이란 인물은 어린 시절 극심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힘겨웠지만 그는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기 삶을 지키고 처한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흔히 분노는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장애물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피 반응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만약 어린 아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면 이에 맞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럴 경우 외적으로 순응하는 척 하면서 현실과 ‘거리 두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한다. 한마디로 투쟁 반응이 ‘문제 중심 대처’라면, 도피 반응은 ‘정서 중심 대처’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이를 통해 곤란을 버텨낸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다. ‘슈퍼노멀’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역경을 이겨낸 우리네 이웃의 승전보만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아픔과 고통이 남아있단 점을 잊지 않는다. 만화나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그렇지 않나. 겉으론 화려하고 남부러울 게 없지만, 실은 인간적인 번뇌까지 벗어날 순 없다. ‘슈퍼’하긴 해도 ‘노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서적임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배어있는 점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9-01-18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인 10대… 이게 다 뇌 때문이야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었다. 소싯적에 주구장창 들었던 그 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공저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신경학과 교수인 젠슨은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평생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고 작동하는지를 살펴왔는데, 특히 10대 시기에 관심이 컸다. 왜 그런가 하니, 본인이 아들 둘을 키운 엄마였기 때문이다. 젠슨 박사는 앤드루와 윌이 청소년이던 시절에 크나큰 충격을 먹었다. 착하고 바르던 아들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았다. 어느 날 갑자기 괴상망측한 머리 스타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내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굴곤 했다. 오죽했으면, 서문 제목이 ‘믿을 수 없겠지만 외계인은 아닙니다’일까. 그런데 이 질풍노도를 그동안 과학계 안팎에선 꽤나 오해했다는 게 저자의 요지다. 젊은 혈기나 부실한 교육, 혹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던 ‘호르몬의 이상 분비’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바로 뇌가 덜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우리로선 알아먹기 힘드니 집어치우자. 지금까지 뇌 발달은 6∼8세 정도면 성인의 뇌에 근접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신 연구는 뇌가 10대는 물론이고 20대까지도 계속 성장한다는 걸 밝혀냈다. 게다가 발달에는 순서가 있는데, 뒤쪽에서 앞쪽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가장 늦게 발달하는 앞쪽 뇌가 ‘이마엽’과 ‘관자엽’이다. 짐작했겠지만 전자는 판단과 통찰, 충동 조절을 관장한다. 후자는 감정과 성욕, 언어를 맡고 있다.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사례로 접근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선 최근 9∼26세를 대상으로 ‘나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추측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복잡한 과정은 생략. 결론적으로 청소년은 나쁜 일이 벌어질 확률이 자기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클 경우, 실제 확률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반대 경우엔 잘 기억하면서. 다시 말해, 성인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뇌에서 부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앞쪽 ‘앞이마겉질(prefrontal cortex)’에 집중돼 있다. 아직 이 부분이 덜 성장하다 보니 그토록 무작정 위험한 일에 뛰어들고 있었던 셈이다. ‘10대의 뇌’는 참 재밌다. 또 한 명의 저자인 미 워싱턴포스트 유명 과학칼럼니스트 넛의 공이 큰 듯한데,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잘 정리했다. 추천사를 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말마따나 “10대 때 읽었다면 부모님께 까닭 없이 화내거나, 지나친 감수성에 사로잡혀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당연히 부모에게도 소중한 지침서가 되어줄 책이다. 다만 명쾌한 해설과 별개로, 조언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녀가 흡연을 하는 경우에 대한 처방이 그렇다. 여러 노력이 실패했다면, 차라리 씹는담배나 전자담배를 권하란다. 뇌는 이해가 가나 정서적으론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승자’가 하는 말이니. 왜 승자냐고? 큰아들은 명문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는 하버드대를 나와 뉴욕에서 경영자문직을 얻었다. 갑자기 눈길이 확 쏠리지 않는가. 이 책을 더 꼼꼼히 읽고 싶었던 이유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기행 일삼는 10대들, 이유 있었네!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었다. 소싯적에 주구장창 들었던 그 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공저자 가운데 하나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신경학과 교수인 젠슨은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평생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고 작동하는지를 살펴왔는데, 특히 10대 시기에 관심이 컸다. 왜 그런가하니, 본인이 아들 둘을 키운 엄마였기 때문이다. 젠슨 박사는 앤드루와 윌이 청소년이던 시절에 크나큰 충격을 먹었다. 착하고 바르던 아들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았다. 어느 날 갑자기 괴상망측한 머리 스타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내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굴곤 했다. 오죽했으면, 서문 제목이 ‘믿을 수 없겠지만 외계인은 아닙니다’ 일까. 그런데 이 질풍노도를 그동안 과학계 안팎에선 꽤나 오해했다는 게 저자의 요지다. 젊은 혈기나 부실한 교육, 혹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던 ‘호르몬의 이상 분비’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바로 뇌가 덜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우리로선 알아먹기 힘드니 집어치우자. 지금까지 뇌 발달은 6~8세 정도면 성인의 뇌에 근접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신 연구는 뇌가 10대는 물론 20대까지도 계속 성장한다는 걸 밝혀냈다. 게다가 발달에는 순서가 있는데, 뒤쪽에서 앞쪽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가장 늦게 발달하는 앞쪽 뇌가 ‘이마엽’과 ‘관자엽’이다. 짐작했겠지만 전자는 판단과 통찰, 충동 조절을 관장한다. 후자는 감정과 성욕, 언어를 맡고 있다.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사례로 접근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선 최근 9~26세를 대상으로 ‘나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추측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복잡한 과정은 생략. 결론적으로 청소년은 나쁜 일이 벌어질 확률이 자기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클 경우, 실제 확률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반대 경우엔 잘 기억하면서. 다시 말해, 성인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뇌에서 부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앞쪽 ‘앞이마겉질(prefrontal cortex)’에 집중돼있다. 아직 이 부분이 덜 성장하다보니 그토록 무작정 위험한 일에 뛰어들고 있었던 셈이다. ‘10대의 뇌’는 참 재밌다. 또 한 명의 저자인 미 워싱턴포스트 유명 과학칼럼리스트 넛의 공이 큰 듯한데,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잘 정리했다. 추천사를 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말마따나 “10대 때 읽었다면 부모님께 까닭 없이 화내거나, 지나친 감수성에 사로잡혀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당연히 부모에게도 소중한 지침서가 되어줄 책이다. 다만 명쾌한 해설과 별개로, 조언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녀가 흡연을 하는 경우에 대한 처방은 그렇다. 여러 노력이 실패했다면, 차라리 씹는담배나 전자담배를 권하란다. 뇌는 이해가 가나 정서적으론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승자’가 하는 말이니. 왜 승자냐고? 큰 아들은 명문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는 하버드를 나와 뉴욕 경영자문직을 얻었다. 갑자기 눈길이 확 쏠리지 않는가. 이 책을 더 꼼꼼히 읽고 싶었던 이유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9-01-11
    • 좋아요
    • 코멘트
  • 윤도한 이어 여현호… 언론인 출신 ‘靑직행’ 논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소통수석비서관에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을 임명한 데 이어 9일 국정홍보비서관에 여현호 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를 임명하자 이들의 원소속 언론사 노조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는 이날 여 비서관 임명에 대해 성명을 내고 “권력을 감시하던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권력 핵심부의 공직자로 자리를 옮겼다”며 “공정성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해치는 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여 기자의 청와대행이 한겨레가 언론인 윤리에 어긋난다고 줄곧 비판해온 행태에 해당함을 분명히 밝힌다”며 “청와대에도 깊은 유감”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홍보를 총괄하게 될 여 비서관은 한겨레신문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선임기자를 지냈으며 임명 이틀 전인 7일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겨레신문은 여 비서관이 논설위원이던 2015년 10월 정연국 당시 MBC 시사제작국장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되자 사설로 “현직 언론인이 최소한의 ‘완충 기간’도 없이 언론사에서 권력기관으로 곧바로 줄달음쳐 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앞서 언론노조 MBC본부는 8일 윤 수석의 임명에 대해 성명을 내고 “사실상 현직 언론인이 청와대에 직행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며 “권력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던 기자가 다른 자리도 아닌 청와대를 대표해 홍보하는 자리로 갔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윤 수석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MBC에서 명예퇴직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정양환 기자}

    • 2019-0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기묘하고 진기한 이야기

    “이 물고기는 몸길이가 삼십 리를 넘는다. 등에 모래가 쌓이면 떨어뜨리려고 바다 위로 올라온다. 이때 뱃사람들이 섬이라 생각해 배를 가까이 대면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면 파도가 거칠어져서 배가 이 때문에 부서진다.”(‘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서) 메이지 유신 직후, 근대화 물결이 밀려오던 일본. 무역회사 회사원인 사사무라 요지로 일행은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 나누길 즐긴다. 주로 믿기지 않는 괴담을 소재로 얘기꽃을 피우지만 옥신각신하기 일쑤. 결국엔 젊은 시절 방방곡곡을 여행했던 은거 노인 잇파쿠 옹을 찾아가 해답을 구하곤 한다. 그때마다 잇파쿠 옹, 아니 야마오카 모모스케는 놀라운 경험담을 들려준다.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를 일컫는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 시리즈 3편에 해당하는 이 책은 얼핏 봐선 다소 잡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에도시대 기담집인 ‘회본백물어’를 소재로 했으니 뻔한 귀신 얘기 수준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앞선다. 등장하는 내용을 봐도, 웬만한 섬만큼 크다는 ‘붉은 가오리’나 멧돼지를 맨손으로 잡아먹는 ‘산 사내’가 등장하니 지레짐작이 맞다 싶을 정도. 하지만 현지에서 “민속학과 종교학을 아우르는 천재”라 불리는 작가의 작품이 거기서 멈출 리 없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단편처럼 엮인 이 책은, 일단 기본적으로는 사사무라 일행이 야마오카 영감에게 듣는 진기한 체험담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그가 들려주는 얘기는 황당하면서도 왠지 있을 법한 구석이 많다. 게다가 그 속엔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냉정한 칼이 숨겨져 있다. 제130회 나오키상을 받을 때 가장 극찬이 쏟아졌다는 에피소드 ‘붉은 가오리’를 보자. 위에서 언급한 엄청난 크기의 물고기가 진짜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야마오카가 경험한 미지의 섬엔 육지와 수백 년째 인연이 끊긴 사람들이 모여 산다. 일종의 신정국가가 돼버린 그곳은 ‘섬 아버지’가 죽으라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불길로 뛰어드는 백성들이 있다.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감정을 겪고 있는 걸까. 그리고 모든 걸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왕이자 신은 과연 행복한 걸까. 그 섬은, 언제 물 밑으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물고기 등보다 뭐가 나은 걸까. ‘항설백물어’ 시리즈는 어딘가 모르게 ‘아라비안나이트’가 떠오른다. 목숨을 걸고 밤마다 만담을 해야 했던 셰에라자드의 비장함이야 없겠지만, 천변만화하는 스토리 속에 푹 빠져들다 보면 날 새는 줄 모를 법도 하다. 특히나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그런지 더욱 감칠맛이 풍부하다. 게다가 의외로 현실감도 넘쳐서, 오히려 ‘홍콩 할매’ 같은 밑도 끝도 없는 괴담을 기대한 이라면 실망할 터. 전작을 읽지 않았어도 별 상관없단 것도 장점이라 하겠다. 다음 편은 언제 나오려나.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日 작은 지자체의 마스코트 ‘구마몬’의 기적

    짐짓 무게 잡고 집었다가 낄낄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사실 ‘구마몬(혹은 쿠마몬·くまモン·사진)’의 성공신화는 알 만큼 아는 얘기다. 2010년 일본 구마모토(熊本)현의 마스코트로 만든 이 곰돌이는 탄생 약 1년 만에 헬로키티, 도라에몽과 어깨를 견줄 캐릭터로 성장했다. 이후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며 지난해 창출한 매출이 1조4000억 원이라고 한다. 국내도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구마몬 관련 상품이 무수히 쏟아진다. 하지만 ‘구마몬의…’는 달콤한 열매에 취하기보단 ‘캐릭터 왕국’ 일본에서 구마몬이란 씨앗이 어떻게 꽃을 피울 수 있었는지를 알뜰살뜰 소개한다. 예산도 넉넉지 않은 조그만 지방자치단체에서 아이디어로 승부해 키워낸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지역 홍보에 얽매이지 않고 캐릭터부터 키운 승부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적극 활용해 스토리텔링을 쌓아간 전략 등 배울 점이 넘쳐흐른다. 놀랍게도 이들은 책마저 재밌게 썼다. 구마몬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던 걸까. 통통 튀는 문장이 갈수록 다음 얘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분명 치열했을 고민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자칫 백서(白書)만큼 딱딱할 뻔한 소재를 한 편의 신나는 모험담으로 탈바꿈시켰다. 살짝 시샘도 피어오른다. 뭣보다 구마몬이 이만큼 성장한 건 담당 관청의 공이 가장 컸다. 단지 ‘열심히’ 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기관장과 기본을 지키되 경계에 얽매이지 않은 공무원들이 똘똘 뭉쳐 이룬 결과다. 우리로선 참으로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최근 국내 관공서도 ‘구마몬 배우기’ ‘타도! 구마몬’ 열풍이 불고 있다니 기대해 봐도 좋을까. 제발 일렬로 쭉 서서 사진 찍고 오는 시찰 따위에 돈 쓰지만 마시길. 책에 나온 이 한 문장을 기억해주시길. “저(구마몬)의 최대 목표는 ‘현민(縣民)의 행복량 최대화’입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2-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의 만남… 국내외 유명작가 걸작 한곳에

    “리처드 아트슈와거부터 톰 프라이스까지.” 경남 남해군 창선도에 자리한 ‘사우스케이프 스파앤스위트’에 국내외 저명한 미술가의 작품들이 대거 전시돼 화제다. 정재봉 회장과 조민석 건축가의 협업을 통해 예술과 라이프스타일이 결합한 독특한 전시공간이 형성됐다. 리셉션 공간에서 만나는 미국 아티스트 리처드 아트슈와거(1923∼2013)의 ‘Exclamation Point(느낌표)’와 잔디광장에 설치된 미 조각가 리처드 에드먼의 ‘볼란테(Volante)’는 꼭 봐야 할 작품. 국내 작가의 작품도 놓치면 아쉽다. 문범 홍동희 이광호 황형신 등 중량감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특히 회랑을 수놓은 조각가 정현(52)의 청동 조각품은 ‘사유’라는 주제에 걸맞은 감상 시간을 선물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양육고민, 학부모가 묻고 베테랑 교사가 답하다

    “초등학생이면 겨우 십여 년 남짓 키운 건데 벌써부터 왜 이리 힘든 걸까요? …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과 혼자 ‘성장’이라는 고독한 싸움을 치르고 있는 아이의 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모쪼록 제가 옮긴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 책을 읽는 부모님들의 지극한 마음에 가닿기를 바랍니다.” 오래전, 선배들에게 물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어떤 거야?” 누군가 답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어질어질해. 기쁘거나 혹은 힘들어서”라고. 그때 또 덧붙였다. “학교 가면 전쟁이야.” 참 묘하다. 세상은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됐다. 근데, 어째 아이 키우는 건 갈수록 어려워진단다. 분명 나아진 점도 있을 텐데, 왜 이리들 부담감은 더 커지는지. 고민은 고민을 낳고, 자꾸만 누군가가 필요하다. 저자는 1992년부터 교편을 잡은 강원도 초등학교 교사다. 2008년쯤 학교 생활 등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통해 전국 학부모들이 고민을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열심히 상담에 응했다. ‘초등학교…’는 그런 다양한 사례를 모으고 추린 책이다. 실은 자녀 양육에 관한 책, 지금도 엄청나게 많다.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거다. 어설프게 구분하자면, 대충 두 갈래로 나뉜다. ‘아이에게 자유를! vs 이래야 성공한다!’ 정도.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역시 현실을 직시하는 현직 교사라서 그런가보다. 예를 들면, 아이의 교육을 위해 강남 이사를 고민하는 학부모에겐 ‘얼른 강남으로 가라’고 답한다. 왜? 이런 질문을 한 엄마는 이미 가지 않으면 불행하다. 만약 가지 않았는데, 자녀와 관련해 아쉽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계속 후회할 거다. 다만 분명히 못 박는다. 왜 강남을 꿈꾸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당신은 ‘돼지 엄마’라고.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을 위한 거라고. 이렇게 말하니 되게 학부모에게 냉정한 교사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느 상담서적보다 부모의 맘을 어루만지려 노력한다. 자신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기에 공감을 표한다. 특히 너무 아이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려 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물론 보호자로서 열과 성을 다해야 하지만, 아이의 작은 잘못까지 부모 탓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인격체로 자녀를 대하며,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실용적인 조언도 적지 않다. 자녀가 학교에서 가해자로 학교폭력위원회에 가게 생겼을 때나 담임이 아이에게 특수학급을 권유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지에 대한 설명은 꽤나 요긴해 보인다. 곁에 두고 참고서처럼 상황마다 들춰 봐도 괜찮겠다. 다만 제목에 부제처럼 달린 ‘담임선생님께는 말하지 못하는…’에는 시비를 걸고 싶다. 눈길이야 끌겠지만 너무 자극적이다. 책도 가장 먼저 담당 교사와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길 권했는데, 이 글귀는 이율배반적인 느낌도 든다.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부모는 교사를 믿고, 교사는 부모를 믿어야 한다. 어떤 일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2-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갈수록 아이 키우기 왜이리 힘들까요?” 현직 교사의 조언은…

    “초등학생이면 겨우 십여 년 남짓 키운 건데 벌써부터 왜 이리 힘든 걸까요? …학부모의 간절한 마음과 혼자 ‘성장’이라는 고독한 싸움을 치르고 있는 아이의 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모쪼록 제가 옮긴 아이들의 목소리가 이 책을 읽는 부모님들의 지극한 마음에 가닿기를 바랍니다.” 오래 전, 선배들에게 물었다.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어떤 거야?” 누군가 답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어질어질해. 기쁘거나 혹은 힘들어서”라고. 그때 또 덧붙였다. “학교 가면 전쟁이야.” 참 묘하다. 세상은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다 됐다. 근데, 어째 아이 키우는 건 갈수록 어려워진단다. 분명 나아진 점도 있을 텐데, 왜 이리들 부담감은 더 커지는지. 고민은 고민을 낳고, 자꾸만 누군가가 필요하다. 저자는 1992년부터 교편을 잡은 강원도 초등학교 교사다. 2008년쯤 학교생활 등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했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을 통해 전국 학부모들이 고민을 털어놓았고, 선생님은 열심히 상담에 응했다. ‘초등학교…’는 그런 다양한 사례를 모으고 추린 책이다. 실은 자녀 양육에 관한 책, 지금도 엄청나게 많다.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거다. 어설프게 구분하자면, 대충 두 갈래로 나뉜다. ‘아이에게 자유를! VS 이래야 성공한다!’ 정도. 하지만 이 책은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역시 현실을 직시하는 현직 교사라서 그런가보다. 예를 들면, 아이의 교육을 위해 강남 이사를 고민하는 학부모에겐 ‘얼른 강남으로 가라’고 답한다. 왜? 이런 질문을 한 엄마는 이미 가지 않으면 불행하다. 만약 가지 않았는데, 자녀와 관련해 아쉽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계속 후회할 거다. 다만 분명히 못 박는다. 왜 강남을 꿈꾸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미 당신은 ‘돼지 엄마’라고.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을 위한 거라고. 이렇게 말하니 되게 학부모에게 냉정한 교사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느 상담서적보다 부모의 맘을 어루만지려 노력한다. 자신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이기에 공감을 표한다. 특히 너무 아이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지려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물론 보호자로서 열과 성을 다해야지만, 아이의 작은 잘못까지 부모 탓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인격체로 자녀를 대하며,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실용적인 조언도 적지 않다. 자녀가 학교에서 가해자로 학교폭력위원회에 가게 생겼을 때나 담임이 아이에게 특수학급을 권유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지에 대한 설명은 꽤나 요긴해 보인다. 곁에 두고 참고서처럼 상황마다 들쳐 봐도 괜찮겠다. 다만 제목에 부제처럼 달린 ‘담임선생님께는 말하지 못하는…’에는 시비를 걸고 싶다. 눈길이야 끌겠지만 너무 자극적이다. 책도 가장 먼저 담당 교사와 허심탄회하게 상의하길 권했는데, 이 글귀는 이율배반적인 느낌도 든다. 최선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부모는 교사를 믿고, 교사는 부모를 믿어야 한다. 어떤 일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2-21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개혁-부흥에 일생 바친 정조, 어떤 세상 꿈꿨나

    지금 정조(正祖·1752∼1800)를 다시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살짝 심드렁한 기분으로 펼친 책인 걸 부정하기 힘들다. 평전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한 세종과 함께, 대왕으로 숭상하는 임금이 아닌가. 교과서와 영화 등에서 숱하게 등장해 생소함이 1도 없는데. 심지어 드라마 덕분에 ‘이산’이란 이름까지 낯이 익으니. 실제로도 ‘정조 평전’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밝혀내는 책은 아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인한 짙은 그림자나 규장각과 탕평책, 수원 화성 축조 등의 공적도 웬만큼은 다 안다. 하지만 막상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누군가를 ‘안다’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섣부른 일인지 깨닫는다. 그 대상이 위인일 경우엔 특히나 그렇다는 걸 책은 잘금잘금 짚어 준다. 뭣보다 여주대 교수인 저자는 오랜 세월 정조를 연구해 온 학자답게 인물의 입체적인 면을 다각도로 조명하려 애썼다. 국내외 정치 사회 문화적 변동이 꿈틀대던 18세기에 정조가 추구했던 개혁과 부흥의 노력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정조는 “국왕과 백성의 관계를 달과 시냇물로, 왕과 신하의 관계를 달빛과 구름에 비유하곤” 했다고 한다. 푸른 달빛이 냇물에 직접 비쳐야지 구름에 가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즉, 지배자는 임금 한 사람이며, 나머지는 모두 민(民)인 셈이다. 이는 당파와 신분을 뛰어넘어 인재를 등용하고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의지다. 하지만 강력한 왕권 확립에 치중한 결과, 소모적 당쟁은 줄였을지 몰라도 공론을 형성해 생산적인 견제가 가능한 구조가 무너졌다. 이는 결국 정조 사후 세도정치가 똬리를 트는 데 기여하고 만다. 정조의 대표적 공적으로 꼽히는 규장각을 통한 지식 경영 또한 마찬가지다. 일종의 ‘싱크 탱크’였던 이 기구를 바탕으로, 국내외 지식과 정보를 모으고 젊은 인재를 키워낸 건 당연히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너무 ‘교육’에 방점을 찍다 보니 소통이 원활한 군신 관계이기보단 가르치고 혼내는 사제 관계로 기울었던 점, 정통 문예에 초점을 맞춰 소설의 유행과 같은 새로운 흐름엔 보수적이었던 점 등은 약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몇몇 아쉬운 대목을 들춰내더라도, 정조대왕의 위대함은 여전히 오롯하다. 정조는 자주 신하들에게 “물결이 아니라 나루가 있는 곳을 보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후대에 와서 이렇다 저렇다 첨언을 하지만 ‘세상을 다스리는 통찰’은 누구보다 깊고 넓었다.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은 교만 때문이고, 스스로에게 관대한 것은 나약한 까닭이다”(홍재전서)라며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면서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매진한 그의 생애는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저자는 특히나 지금 시대라면 ‘정조’를 다시 읽을 것을 주문한다. 사마천의 말마따나 “난세를 다스려 올바른 세상을 되돌리는 해법”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백척간두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했던 군왕의 삶은 일깨우는 바가 크다. 다만 이 책이 다소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단 점은 덧붙인다. 해박한 이에겐 놀랍지 않고, 낯선 이에겐 녹록지 않다. 타깃 층을 확실히 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2-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누군가에게 불편한 디자인이 불평등을 낳는다

    “우리의 권리를 알고 살자. 디자인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디자인에는 우리의 삶을 변질시킬 힘도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디자인에 의해 차별당할 수도 우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곧장 결론부터 까서 죄송. 하지만 굳이 책 끄트머리에 있는 글귀를 먼저 쓴 이유는 간단하다. 이게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전부’이기 때문이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인 저자는 괜한 학술적 장광설로 시간을 끌지 않는다. 투사(鬪士)로 변신해 직구로 내리꽂는다. 세상을 둘러싼 디자인, 싹 뜯어 고쳐야 한다고. 원서 제목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좀 길긴 한데, ‘디자인으로 정의(혹은 규제)되는: 일상의 상품과 장소에 숨겨진 성과 연령, 육체에 대한 편견의 놀라운 힘’ 정도 되겠다. 그니까 우리가 무심코 마주치거나 익숙하게 사용하는 많은 것이 실은 약자나 소수를 차별하고 있단 소리다. 나중에 책을 보면 알겠지만, 정말 ‘거의 모든 것’을 거론한다. 하이힐이 성차별적이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건 알 만한 얘기. 높지만 근사한 침대도 아이나 병자가 추락할 가능성이 큰 나쁜 디자인이다. 오른손잡이에 맞춰져 있는 학교 책상, 좁고 불편한 비행기와 버스 통로, 좌석도 마찬가지.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는 배달 포장과 운동선수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용품,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지하 쇼핑몰…. ‘생산자’와 ‘다수’의 이익에만 부합하는 디자인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쯤 되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흔히 디자인은 보기 좋게 만들어 “소비자와 고객을 유혹해서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하는 거라 치부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와 우리 가족에게 유리한 세상, 지금보다 안전하고 행복하고 편안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디자인이라고 명명한다. 나이나 성별, 피부, 체형 때문에 피해를 본다면 그건 제대로 된 디자인이 아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투사’의 글이다. 사소한 것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고 걸고넘어진다. 공중화장실의 성평등 문제에 상당 분량을 할애했는데, 저자는 실제로 2010년 미 의회 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해 변화를 이끌어 낸 바 있다. 이런 이들 덕분에 세상이 바뀌는 거 아니겠나. 고마운 인물이고, 고마운 책이다. 게다가 ‘좋아 보이는…’은 주장만 나열하지 않고 나름의 대안을 성실히 소개한다. 미 캘리포니아주 라호야 해변의 남녀 중립 화장실이나 학생에게 적절한 온도와 공기를 제공하는 독일 쾰른 발도르프 학교 등을 통해 디자인이 뭘 할 수 있는지 살핀다. 흥미롭게도 서울의 지하철 안전시스템이나 젠더 친화적 공중화장실 등도 좋은 사례로 소개한다. 다만 과하다 싶은 지적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앉아 일하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넉넉한 바지 주머니 탓이라고 말한다. 수긍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줄기차게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첫 머리글의 나머지 대목을 곱씹어보자. “디자인은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장착한다면 변화는 우리 손에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2-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시장 안 스마트팜… 농업과 예술이 만나다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개념적으로’ 알고 있죠. 하지만 막상 평소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종사자가 아닌 이상 대답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 때문에 예술로 바라본 농업 자체가 관객들에게 신선한 질문을 던졌다고 봅니다.” 21일부터 열린 특별전 ‘예술+농촌, 공간-농업과 기술의 만남’은 참 생경한 전시다. 어쭙잖게 넘겨짚자면, 농업과 예술은 왠지 가장 서로 멀리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이 주관한 이 독특한 전시에 참여한 김형규 작가(35)는 “생각해보면 둘 다 ‘인간의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는 공통점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도 다소 어색하긴 했죠. ‘농업’이란 게 미술전시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는 아니잖아요. 전시를 위해 2∼3개월 스터디도 열심히 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해답을 던지기보다는, 우리가 바라보는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내면 관객들이 거기서 뭔가를 찾아가길 기대했어요.” 실제로 김 작가가 김기라 작가와 함께 선보인 ‘문명적인 이해-비밀스러운 농장’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스마트팜’을 소재로 했다. ‘비닐하우스의 미래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팜은 모종마다 햇빛이나 물, 비료, 습도 등을 자동으로 체크해 공급한다. 작가들은 이 스마트팜의 축소판을 전시장에 설치하고, 안팎에 미디어아트 작품을 설치해 생각거리를 던졌다. 이 밖에 이진경 이동욱 백정기 작가 등도 단풍잎과 수석 등을 이용한 회화나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김 작가는 “결국 자연에서 출발한 농업이 기술과 연결되는 지점이 인류의 생애 자체와 맞닿아 있단 생각이 든다”며 “예술 담론으로 농업을 고민하는 시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가 농업을 마주하는 자세도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1-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해방 전후에서 찾은 우리 법조계의 현재

    해외도 마찬가지지만, 3권 분립 민주국가에서 사법기관은 그 나라의 청렴과 직결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시류나 권력과 별개로 대나무처럼 꼿꼿이 원칙을 지키는. 하지만 최근 들려오는 저잣거리 소식만 들어봐도 이렇게 말하기 머뭇거려진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데라 여기고 넘어가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런 법조계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출발했는지를 짚기 위해 해방 전후의 시기를 살핀다. 이전 책 ‘헌법의 풍경’(2004년) 등에서 탄탄한 문장을 선보였던 저자는 이번에도 상당한 공력을 발휘했다. 연구 및 집필에 3년 이상 걸려서 나온 두툼한 책은, 일반인에겐 생소한 당대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풀어냈다. 부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에서 대략 힌트를 얻겠지만, 그 시절 사법 현장은 혼탁했던 당시 상황을 붕어빵 찍어내듯 닮았다. 욕망과 야합, 보신(保身), 폭력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저자는 이런 맥락을 모르고선 현재의 법조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봤다. 평가는 갈라질 수 있겠지만, 이러한 문제제기가 하나의 경종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도 된다. 다만 이쪽에 관심 없는 이들에겐 너무 낯선 얘기로 가득하다. 분명 엄중한 사안이나 받아들이는 체감 온도는 꽤나 차이가 날 듯하다. 영 힘들면, 에피소드 위주로 엮은 4장부터 읽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저자는 추천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화폭에 오롯이 담은 대지와 우주

    ‘흙의 작가’로 불리는 채성필 작가(46)의 개인전 ‘Symphonie de terre(대지의 교향악)’가 28일부터 열린다. 채 작가는 흙과 천연안료를 이용해 대지(흙)의 근원적 공간을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인간의 본질, 자연의 생성과 순환을 주제로 작품들을 선보이며 국내와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다. 2년 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채 작가는 모두 1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타이틀 작인 ‘Symphonie de terre’는 빛의 파노라마를 통해 대지와 우주를 담은 작가의 새로운 도약으로 평가받는다. 가로 5m가 넘는 ‘익명의 땅’ 연작 등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 작품의 이미지로 제작한 판화 3점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그림손 개관 10주년 초대전이기도 하다. 다음 달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그림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1-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리로 형상화한 자연미… 유화 속 돋보이는 조형미…

    올해 11회를 맞는 대구아트페어에서 갤러리 ‘셀로아트’가 눈길을 끄는 국내 작가 3인의 작품을 선보인다. 셀로아트는 15일 “22일부터 열리는 대구아트페어에 곽동준 박선기 신승헌 작가의 작품 25점을 소개한다”며 “떠오르는 젊은 작가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 미술 애호가의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초대작가인 곽동준은 남서울대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유리라는 재료를 통해 구름과 물방울 같은 자연적인 형태를 형상화한 작품을 내놓는다.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미래를 향한 모호함을 이미지로 표현”하려는 그의 시도는 추상적이면서도 몰입도가 높다. 동국대 미술대를 졸업한 신승헌 작가는 전형적인 유화 기법을 썼지만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 개인전과 아트페어에 내놓은 작품이 모두 팔릴 정도로 관심이 크다는 후문. “간결한 색과 선이 만들어내는 사각의 형태를 통해 관계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컨템퍼러리 아트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박선기 작가의 작품도 놓치면 아쉽다. 신라호텔 등에 설치된 작품 덕에 대중적 인지도도 높은 박 작가는 투명한 크리스털 아크릴 비즈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빛의 반사가 만들어낸 착시가 관객들에게 즐거움마저 선사한다. 셀로아트가 참여한 대구아트페어는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다. 국내외 갤러리 111곳이 작가 700여 명의 작품 5000여 점을 전시한다. 25일까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1-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뇌가 건강해지는 춤의 마법… 다 함께 ‘쉘 위 댄스’

    뭐랄까…. 이 책은 ‘바람’ 같다. 일단은 산뜻하다. 뇌 과학자와 신경과학자의 공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발랄하다. 이렇게 말하면 기존 과학서적을 폄하하는 게 될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아무리 재밌는 과학책도 싱긋이 미소가 번지는 일은 없다. 그런데 ‘뇌는…’은 읽다 보면, 쓰윽 어깨가 가벼워지고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춤바람이라도 난 듯이. 자, 저잣거리 약장수에게 홀릴 맘으로 페이지를 넘겨 보자. 이토록 춤을 상찬한 책은 개인적으로 본 적이 없다. 인류의 태생부터 함께했다는 댄스는, 한마디로 만병통치약이다. 뇌와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만든다. 심장 척추 관절을 튼튼하게 만들 거라는 건 예상 가능할 터. 여기에 인간의 뇌에 개운한 리듬을 전달하고, 몸에는 도파민이 분비되며, 체취에는 페로몬이 배어나온다. 게다가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과 공감능력까지 높여준다. 설마 과학자들이 ‘뻥’을 칠 리도 없고. 이 정도면 100년 묵은 산삼을 캐러 갈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오예! 하지만 남실남실 기분을 북돋우는 ‘뇌는…’은 또 엔간히 힘 빠지게 만드는 구석도 있다. 배 나온 아저씨들이 운동 좋은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사는 게 팍팍하다 보니 춤이라곤 술 먹고 노래방에서 흐느적거리는 거 말곤 배운 적이 없어서다. 물론 여기에 게으름과 주변 시선도 플러스. “아니,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해요?”라고 저자들은 토끼 눈을 뜨지만, 우리네 시선에선 “속 편한 소리하고 앉았네” 하는 삐죽거림이 튀어나온다. 뇌는 춤추고 싶은 ‘바람’을 가졌는지 몰라도, 삶이 언제나 바람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속 좁게 굴었지만, ‘뇌는…’은 참 리드미컬하다. 다소 ‘과학책’답지 않긴 해도, 이렇게 과학자들이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손 내미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다. 춤의 ‘ㅊ’도 모르지만 왠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 보고 싶다. 하지만 뭣보다 중요한 건, 읽은 뒤에도 정말 한 발 스텝을 뗄 수 있는가이다. 문득 영화 ‘쉘 위 댄스’가 다시 보고 싶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8-1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