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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이사장 이광복)는 13일 제56회 한국문학상, 제35회 윤동주문학상, 제38회 조연현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한국문학상 수상자로는 시집 ‘한강의 새벽’의 조남익 시인, 시조집 ‘우리가 산다는 것은’의 박영교 시조시인, 평론집 ‘문학과 문화의 접점’의 정영자 문학평론가, 동시집 ‘꽃과 나무 이야기’의 김종상 아동문학가를 선정했다. 윤동주문학상은 시집 ‘뒷굽’의 허형만 시인과 시 ‘득실’ 외 2편을 쓴 이동희 시인이 수상한다. 조연현문학상 수상자는 소설집 ‘잠든 정원으로부터’의 오은주 소설가, 평론집 ‘시조의 이론과 시조 창작론’의 김봉군 문학평론가, 수필집 ‘내 쫌 만지도’의 양미경 수필가다. 시상식은 다음 달 5일 오후 3시 반 서울 양천구 대한민국예술인센터에서 열린다.}
“중국에서는 특별한 영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와 나라에서 태어나 작가로 글을 쓰는 건 행운입니다.” 작품 가운데 8권이 금서로 지정된 거장은 중국 작가여서 행운이라고 했다. 기이한 사건·사고가 넘쳐나는 탓에 글감을 찾기 쉽다는 해학적 표현이었다. 소설가 옌롄커(61)가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마련한 ‘2019 세계작가와의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12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중국 사회와 작품 세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모옌, 위화와 함께 당대 중국을 대표하는 문호로 꼽힌다. 장편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사서’, 중편소설 ‘여름 해가 지다’, 산문집 ‘나와 아버지’ ‘연월일’ 등이 국내에 출간됐다. 고도성장 이면에 가려진 중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그려내는 작품을 주로 써왔다. 최근 홍콩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일까. 작가는 미리 “민감한 문제에는 답하기 힘들다”고 양해를 구했건만, 정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홍콩 시위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과정”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인류의 자유와 존엄을 위한 모든 노력은 숭고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폭력이 자행돼선 안 됩니다. 사람의 목숨은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선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보다는 중국에서 살아가는 14억 인구의 삶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중국에선 ‘영어가 후난 지방에서 탄생했다’거나 ‘예수의 고향은 중국 동북 지방’이란 주장이 지식인들 사이에서조차 회자된다. 이런 황당한 일화를 얘기하기엔 3박 4일도 부족하다”며 “나의 소설은 현실보다 단순하다”고 중국 사회를 에둘러 비판했다. 문제적 작가로 불리지만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작가’, ‘나약한 사람’으로 규정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작품을 써내지 못한 데다, 중국 사회에 대해 사실을 적었을 뿐 비판한 적은 없다는 자평이다. 코소보 인종청소 문제를 옹호한 전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에 대해선 “중국 작가들과 다르다. 작가는 참여하고 의견을 내야 하는데, 중국 작가는 침묵한다. 참여는 중요하다”고 했다. “검열제도는 글 쓰는 이들의 자유를 억압합니다. 하지만 금서가 꼭 좋은 책은 아니고, 거꾸로 그 와중에 출간하는 작품이 모두 나쁜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도) 예술적인 관점에서 대표작을 펴내지 못하면 철저히 실패한 인생이 될 테지요.”이설 기자 snow@donga.com}
‘광고 표시를 하지 않고 다수의 페이지에서 책을 홍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을 모르고 서평에 계속 노출되며 결국 책을 사게 됨’. 페이스북 그룹 ‘도서사기감시단’(감시단)에 6일 올라온 글이다. 광고 에이전시 체인지그라운드와 출판사 로크미디어 등의 홍보 방식을 지적하는 이들이 만든 단체다. 올해 6월 27일 개설됐고 가입 인원은 10일 기준으로 3096명이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페이지 13개에 대한 언팔로 운동과 광고·협찬 문구 표기 요청을 주로 한다. 회원들은 “정신노동이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 “가성비 뛰어나” vs “불균형 심화” 올해 출판계의 뜨거운 화두는 유튜브셀러(유튜브+베스트셀러)다. ‘겨울서점’, ‘책읽찌라’ 같은 북튜버가 부쩍 늘었고, ‘김미경TV’, ‘라이프해커자청’, ‘신박사TV’ 등 출판계를 뒤흔드는 채널이 등장했다. 경제·자기계발서를 주로 소개하는 김미경TV의 ‘북드라마’에 책이 소개되면 베스트셀러 목록이 들썩인다. ‘라이프해커자청’이 ‘인생을 바꾼 심리학 책’으로 꼽은 책은 절판 위기에서 벗어나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를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대형 서점의 유료 매대나 인터넷 서점 광고보다 효과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홍보·협찬 비용이 계속 오르면 대형 출판사와 중소형 출판사 간 불균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김지원 길벗출판사 디지털콘텐츠팀 차장은 “유튜브셀러를 필요로 하는 흐름은 막을 수 없다”면서도 “협찬 여부를 구독자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 같은 윤리 강령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新출판권력 유튜브셀러, 왜곡 현상 막아야” 출판계가 한목소리로 지목하는 문제는 유튜버셀러로 인한 베스트셀러 왜곡이다. 출판계와 감시단에 따르면 출판사 로크미디어는 자사 홍보 채널인 ‘신박사TV’,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 ‘부모공부’, ‘더불어배우다’에 일제히 신간을 노출하고 서평을 단다. 입소문을 탄 책은 노출 빈도가 더 잦아져 금방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한다. ‘돈의 역사’(로크미디어),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브론스테인), ‘베스트 셀프’(안드로메디안)가 이런 방식으로 올해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다고 감시단은 지적했다. 로크미디어, 브론스테인, 안드로메디안, 커넥팅, 비잉은 모두 뿌리가 같은 출판사다. 한 출판사 대표는 “광고 에이전시 체인지그라운드는 유튜브, 카카오 브런치와 1boon, 페이스북의 홍보 채널을 구축한 뒤 다른 책의 협찬·홍보도 진행한다. 일종의 마케팅 회사인 셈이다”라고 했다. 청년의 멘토를 자처하면서 자사 책을 구입하게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체인지그라운드가 운영하는 네이버 독서 모임 카페 ‘씽큐베이션’은 최근 ‘더 히스토리 오브 더 퓨처’(커넥팅)와 ‘모기’(커넥팅)를 3기 도서로 선정했다. 일부 유튜브 채널이 광고 수단이 됐다는 제보가 빗발치자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달 25일 ‘유튜버셀러 현상을 진단하다’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출판인회의 측은 “베스트셀러 왜곡 현상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독서는 취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만큼 구독자가 적은 유튜브 채널과 소형 출판사를 연결해 서로 ‘윈윈’하는 방식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블로그처럼 유튜브도 자연스럽게 자정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북튜버로 활동하는 이시한 성신여대 겸임교수는 “매달 방송을 여덟 번 하는데 한 번 정도만 협찬으로 진행한다. 협찬 비중이 커지면 채널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비율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 사회에는 수시로 부동산 광풍이 분다. 미래의 부를 꿈꾸며 녹물이 나오는 집에서 견디는 ‘몸테크’를 하거나 여러 채를 적은 돈으로 사들여 ‘갭 투자’를 하는 풍경이 흔해졌다. 집은 거주하는 공간이 아닌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됐다. 건축사학자인 저자가 건축학자, 인문학자,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집의 의미를 분석했다. 집은 정서적 안정과 정신적 가치를 얻는 공간이다. 정주, 즉 한곳에 정착해서 오래 살면 집은 더 이상 투자의 대상이 아닌 존재론적 확신을 주는 대상이 된다. 물론 그 가치를 만드는 건 개인의 몫이다. 집을 어떤 가치로 정의하고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집은 나그네가 머물다 가는 여인숙이 되기도 하고 포근한 어머니 품이 되기도 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지나치게 비대하다. 반면 지방은 소멸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인적·물적 자본이 몰린 도시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성장=밀도’의 공식으로 도시 풍경은 잿빛으로 물든 지 오래. 서민들이 적정 비용의 괜찮은 주택에 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정의로운 도시’와 ‘지방회생’은 각각 도시와 지방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한 책이다. 전자는 미국 건축가가, 후자는 일본 슈토다이(首都)대 도쿄도시사회학부 교수가 썼다. 도시 난개발과 수도권 집중화가 세계적 문제인 만큼, 한국 상황에도 두 책의 논점이 적절히 녹아든다. ‘정의로운 도시’는 건축비평가로도 활동하는 저자가 2010∼17년 사이 쓴 조각글을 묶었다. 전문가 눈에 포착된 뒤틀린 도시계획의 민낯을 시원하게 까발린다. 뉴욕은 생김새부터 돈을 좇은 지 오래다. 백인 부유층 거주지인 맨해튼 마천루의 곡선은 현금의 흐름을 닮았다. 빌딩 숲이 하늘 대부분을 가리자 인근 주민들은 초강수를 둔다. 1100만 달러(약 130억 원)를 들여 공중권(air rights)을 사들여 조망권을 지켜낸 것이다. 뉴욕은 복합적인 이유로 조금씩 균형을 잃어갔지만 저자가 꼽는 결정적 계기는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2002∼13년 재임)의 실책이다. 부유한 동네는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의 높이 기준을 완화하고 가난한 동네는 반대로 기준을 강화해 부동산의 빈부 차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도시의 초록 들판은 부족하고 부유층에 부동산 가치가 날로 유리해지는 지금, 자본주의 바깥의 건축은 가능한 걸까. 30장 ‘자본주의 없는 건축’에서 저자는 9가지 대안을 모색하지만 확답은 내놓지 못한다. 다만 책 전반에서 이렇게 당부할 뿐이다. “불평등은 주거비용 적정성의 위기로 현실화된다. … 건축 보존을 인간 보존과 연계해야 할 때다. 동네도 사람이다.” “건축가들도 죽음의 방을 설계해달라는 요구를 받을 때 저항을 해야 한다.” “공동체가 절대 권력자와 금권 정치가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방회생’은 일본 지방분산 정책의 허실을 분석했다. 전후 3세대를 거치며 일본은 수도로 사람이 몰리는 ‘도쿄 일극화’가 정점을 찍는다. 지방 소멸 가능성까지 고개를 들자 일본 정부는 2014년 ‘지방창생’ 정책을 꺼내든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비친 지방창생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 ‘수익화’에 방점을 둔 데다 지방 가치를 무시한 ‘도시의 정의’를 따른 정책이라는 것. 저자는 지방 관광 사업을 예로 들어 정책의 빈틈을 꼬집는다. “향토 요리가 전국적으로 소개가 됐다고 치자. 그러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난다. 하지만 교통, 숙박, 물품 구입으로 인한 수익은 지방이 아닌 중앙으로 모인다.” 책 후반부에는 대안을 길게 제시한다. 저자는 경제에서 사회로 눈을 돌리고, 도쿄 일극이 아닌 다극화를 지향하며, 중앙이 아닌 다수의 극이 연결된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대로 가다간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나라가 무너질 것이다. … 생산력과 생활수준은 다소 낮아지겠지만 대신 느긋함을 확보할 수 있다. … 문제는 경제, 행정, 재정이 아니다. 사회와 국민의 마음이다. 망가진 사회와 마음을 다시 세워야 한다.” 책을 덮고 나면 도시에 사는 이들은 창밖 풍경이 한결 복잡하게 다가올 것이다. 지방에 사는 이들은 지방의 가치에 새로이 눈뜨게 될는지 모른다. 때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고(정의로운 도시), 간결한 정책 논문처럼 읽히는 점(지방회생)은 다소 아쉽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박찬욱 감독(56·사진)이 7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제29회 필름 프롬 더 사우스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실버 미러 명예상’을 받았다. 이 영화제는 해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30여 개국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블루투스 헤드폰, 아껴둔 ‘책읽아웃’, 그리고 청소는 삼합.” “(운전해서) 달려야 할 200km와 듣지 않은 ‘책읽아웃’은 찰떡궁합.” 책을 다루는 팟캐스트 가운데 가장 팬덤이 두꺼운 ‘책읽아웃’에 달린 댓글들이다. 지루한 일을 해야 할 때 ‘책읽아웃’만큼 좋은 콘텐츠가 없다는 뜻이다. 2017년 방송을 시작한 ‘책읽아웃’은 최근 2주년을 맞았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김하나 작가(44)와 오은 시인(37)이 격주로 번갈아 가며 각각 ‘측면돌파’와 ‘옹기종기’를 진행한다. 책읽아웃의 핵심은 ‘책’과 ‘대화’다. 책을 쓴 저자를 초대해 전방위 대화를 이어간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예스24 중고서점 홍대점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진행자와 게스트의 밀도 높은 ‘대화의 정수’”라고 자평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만난 40여 명 가운데 각각 김원영 변호사(김)와 김혜순 시인(오) 편을 ‘레전드’로 꼽았다. 골형성부전증을 앓는 김원영 변호사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펴냈다. 김혜순 시인은 최근 세계적 문학상인 ‘캐나다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초현실적인 기분에 휩싸였어요. ‘작가님과 한 편의 춤을 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둘이 동시에 눈물을 흘렸죠. 교양과 배려, 가치 등을 고루 갖춘 대화의 정점을 경험했습니다.”(김) “숭고함을 느꼈습니다. 모든 회가 정보의 유익함과 깊이 있는 통찰을 갖췄지만, 김 시인과의 만남은 ‘영계 체험’ 급이었죠. 서슬 퍼런 얼음장 같은 대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한번 찾아 들어보세요.”(오) 이들 진행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김 작가 진행은 ‘논리, 깊이, 차분한 말솜씨’에, 오 시인 방송은 ‘자유분방, 재미, 언어유희’에 가깝다. “오 시인은 타고난 천진함이 있어요. 순간적으로 게스트에게 몰입해 맞장구를 칠 때 진가가 드러나죠.”(김) “경청 뒤 질문을 되던지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주제를 놓고 옆으로 가지를 뻗는 동시에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죠.”(오) 두 사람은 직업이 여러 개다. 김 작가는 카피라이터에서 전직해 에세이스트, 인문학자, 방송인으로 살고 있다. 오 시인은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면서 각종 진행, 방송, 그리고 대학 강의까지 소화한다. 그들에게 책읽아웃의 의미를 물었다. “여러 직업 중에 제일 좋아하는 일이에요. 저는 일하는 것도 책, 쉬는 것도 책이에요. 일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고, 동시에 성장의 토대가 되는 책읽아웃을 사랑합니다.”(김) “2주에 한 번 한 작가의 세계를 빈틈없이 익히는 게 쉽진 않아요. 방송을 마치고 나면 기가 쑥 빠지죠. 하지만 진행하면서 ‘오은이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깨닫는 부분이 많아요. 책이 주는 내적 충만함도 상당하고요.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이젠 살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하하.”(오) 물론 이따금 어려움도 겪는다. 김 작가는 책의 내용을 수긍하기 힘들 때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하거나 장점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이어간다. “여러 제품 가운데 돋보이는 점을 찾아내 포장하는 카피라이터로 오래 일했어요. 그 내공이 진행에도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오 작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을 고치느라 진을 뺐다고 한다. “침묵도 대화의 일부분이더라고요. 핑퐁처럼 자유롭게 진행하되 침묵이 필요한 순간에는 ‘음’ ‘그렇군요’ 하면서 휴지기를 둡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현대인에게 두 사람은 “대화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진심이 통하는 순간, 이해를 구하거나 공감을 주는 찰나…. 그런 대화가 내일을 살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바탕으로 시시콜콜 수다 떠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최근 채식주의를 통칭하는 ‘비거니즘(veganism)’ 열풍이 거세다.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을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성큼 다가온 비거니즘의 현재를 가상 인물인 이비건 씨(25)의 시선으로 구성해 봤다. ‘비건’으로 산 지 3년째다. 시작은 아토피였다. 음식으로 체질을 바꾸면 도움이 될 거란 지인 말에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환경과 동물권, 가치소비로 관심이 뻗어나갔다. 채식은 보통 8단계로 나뉘는데, 열매에 해당하는 과일과 곡식만 먹는 ‘프루테리언’부터 어패류나 유제품, 가금류는 먹기도 하는 ‘폴로’까지 다양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비건이라면 열에 다섯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격이 예민하고 까다로울 거라 지레짐작하는 이들이 열에 아홉쯤 됐다. 지금은 아니다. 1, 2년 전부터 젊은층을 중심으로 비건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환경과 동물에 대한 관심이 비건 문화의 폭발적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젠 대학마다 비건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호회가 생겼다. 인스타그램에는 비건 소모임 모집 공고가 줄줄이 올라온다. 한국채식연합이 추산한 국내 채식인구는 약 150만 명. 10년 전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 이달 2, 3일에 열린 ‘제7회 비건 페스티벌’은 3년 만에 참가자가 20배나 늘었다고 한다. 피부에 와 닿는 가장 큰 변화는 먹을거리다. 서울대와 동국대, 삼육대 등에 비건 식당이 들어섰다. 많은 대학 학생회가 비건을 위한 식당이나 메뉴를 개설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비건 모임에서 만난 선배 언니는 5년 전엔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던 비건 식당이 이제 80여 곳으로 늘었다며 박수를 쳤다. 이뿐 아니다. 채식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채식한끼’나 ‘베지카우’도 생겼다. 특히 내가 즐겨 찾는 곳은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있는 비건 거리. 자취를 해서 이따금 요리를 해먹는데, 각종 향신료와 음식 재료를 살 수 있는 가게가 모여 있다. 우유 대신 코코넛크림을,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쓰는 비건 빵집도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는다. 비건 빵집만 찾는 성지순례도 유행이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마포구의 비건 빵집 ‘야미요밀’은 평일인데도 손님들로 붐볐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김미향 씨(31)는 “대표 메뉴인 크림빵은 33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하지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면 1.5배 정도 차이는 감당할 만하다”고 했다. 야미요밀에 따르면 고객 구성은 비건이 20%, 건강식에 관심 많은 이들이 40% 정도다. 외국인 비율도 높다고 한다. “2017년 창업한 후 올해 매출이 200% 성장했다. 택배 서비스도 시작했다”고 직원이 귀띔했다. 대중화가 안 돼 일반 쇠고기보다 2∼3배나 비싸지만 인조고기도 인기다. 외국에서 만든 비건 달걀은 실물과 똑같다고 한다. 화장품과 세제, 초콜릿, 아이스크림, 고기, 치즈…. 필요한 모든 것에 비거니즘이 도입되고 있다. 가방은 에코백이나 가죽 느낌의 천으로 만든 제품을 쓴다. 패딩점퍼는 좀 비싸도 버려진 털을 재생해 만드는 브랜드나 오리털보다 몇 배 비싸도 고급 섬유로 만든 제품으로 사 입을 생각이다. 비거니즘에서 채식은 사실 모래알 같은 의미다. 비건의 핵심은 가치지향적인 태도다. ‘월간 비건’의 이향재 편집장은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지만 결국 적게 쓰고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가치를 따르게 된다. 비건 문화의 핵심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존”이라고 했다. 비건에 입문하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건강, 환경 문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다. 주축은 밀레니얼 세대다. 가치소비에 관심이 많은 데다, 풍부한 외국 경험을 통해 비건을 접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환경 문제를 생존과 연결해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는 “축산업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8%를 차지한다. 비건을 실천하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건인이 늘고 있다”고 했다. 비건 바람은 세계적 현상이다. 대체육류 시장은 2040년 세계 육류 소비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세계 최초로 ‘비건 패션위크’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최근 입사한 은주 언니는 최근 이따금 고기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전환했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가 많다 보니 아예 안 먹을 순 없다고 한다. 언니는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하는 소모임을 제안했다. 나는 적극 찬성했다. 알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비건에 동참할 것이다.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이설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최근 채식주의를 통칭하는 ‘비거니즘’(veganism) 열풍이 거세다.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을 뛰어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성큼 다가온 비거니즘의 현재를 가상 인물인 이비건 씨(25)의 시선으로 구성해봤다. ‘비건’으로 산지 3년째다. 시작은 아토피였다. 음식으로 체질을 바꾸면 도움이 될 거란 지인 말에 채식을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환경과 동물권, 가치소비로 관심이 뻗어나갔다. 채식은 보통 8단계로 나뉘는데, 열매에 해당하는 과일과 곡식만 먹는 ‘플루테리언’부터 어패류나 유제품, 가금류는 먹기도 하는 ‘폴로’까지 다양하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비건이라면 열에 다섯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격이 예민하고 까다로울 거라 지레짐작하는 이들이 열에 아홉쯤 됐다. 지금은 아니다. 1, 2년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건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환경과 동물에 대한 관심이 비건 문화의 폭발적 성장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젠 대학마다 비건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호회가 생겼다. 인스타그램에는 비건 소모임 모집 공고가 줄줄이 올라온다. 한국채식연합이 추산한 국내 채식인구는 약 150만여 명. 10년 전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 2, 3일에 열린 ‘제7회 비건 페스티벌’은 3년 만에 참가자가 20배나 늘었다고 한다. 피부에 와 닿는 가장 큰 변화는 먹을거리다. 서울대와 동국대, 삼육대 등에 비건 식당이 들어섰다. 많은 대학 학생회가 비건을 위한 식당이나 메뉴를 개설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비건 모임에서 만난 선배 언니는 5년 전엔 서울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던 비건 식당이 이제 80여 곳으로 늘었다며 박수를 쳤다. 이뿐 아니다. 채식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어플리케이션 ‘채식한끼’나 ‘베지카우’도 생겼다. 특히 내가 즐겨 찾는 곳은 해방촌에 있는 비건 거리. 자취를 해서 이따금 요리를 해먹는데, 각종 향신료와 음식재료를 살 수 있는 가게가 모여 있다. 우유 대신 코코넛크림을, 밀가루로 대신 쌀가루를 쓰는 비건 빵집도 ‘핫 플레이스’로 각광 받는다. 비건 빵집만 찾는 성지순례도 유행이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마포구의 비건 빵집 ‘야미요일’은 평일인데도 손님들로 붐볐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김미향 씨(31)는 “대표 메뉴인 크림빵은 33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하지만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면 1.5배 정도 차이는 감당할 만하다”고 했다. 야미요밀에 따르면 고객 구성은 비건이 20%, 건강식에 관심 많은 이들이 40%정도다. 외국인 비율도 높다고 한다. “2017년 창업 이후 올해 매출이 200% 성장했다. 택배 서비스도 시작했다”고 직원이 귀띔했다. 대중화가 안 돼 일반 소고기보다 2, 3배나 비싸지만 인공 고기도 인기다. 외국에서 만든 비건 달걀은 실물과 똑같다고 한다. 화장품과 퍼, 세제, 초콜릿, 아이스크림, 고기, 치즈…. 필요한 모든 것에 비거니즘이 도입되고 있다. 가방은 에코백이나 가죽 대체로 만든 천 가방을 쓴다. 패딩 점퍼는 좀 비싸도 버려진 털을 재생해 만드는 브랜드나 오리털보다 몇 배 비싸도 인공 고급섬유로 만든 제품으로 사 입을 생각이다. 비거니즘에서 채식은 사실 모래알 같은 의미다. 비건의 핵심은 가치 지향적인 태도다. ‘월간 비건’의 이향재 편집장은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시작하지만 결국 적게 쓰고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가치를 따르게 된다. 비건 문화의 핵심은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존”이라고 했다. 비건에 입문하는 이들은 크게 3종류로 나뉜다. 건강, 환경문제,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다. 주축은 밀레니얼 세대다. 가치소비에 관심이 많은데다, 풍부한 외국경험을 통해 비건을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환경문제를 생존과 연결해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는 “축산업으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8%를 차지한다. 비건을 실천하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건인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비건 바람은 세계적 현상이다. 대체육류 시장은 2040년 세계 육류 소비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한다.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세계 최초로 ‘비건 패션 위크’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최근 입사한 은주 언니는 최근 이따금 고기를 섭취하는 플랙시테리언으로 전환했다.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가 많다보니 아예 안 먹을 순 없다고 한다. 언니는 비건과 논비건이 함께하는 소모임을 제안했다. 나는 적극 찬성했다. 알면 이해하고, 이해하면 비건에 동참할 것이다.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 이설 기자 snow@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비뚤배뚤한 그림이 그려진 동화적 표지와 달리 이야기는 꽤 서늘하다. 세상살이를 안다는 건 순응하게 된다는 뜻이다. 예전 같으면 주먹 불끈 쥐었을 일에 눈을 질끈 감고, 팔을 걷어붙이는 대신 고개를 조아린다. 어른은 그런 거란 자기 위안을 방패삼아 존엄과 멀어져 간다. 저자가 ‘팽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이다. 10편의 단편이 실렸다. 다수의 작품에는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도 중요한 것을 잊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모는 가난하니까 이런 데 사는 것”이라는 어린 조카의 타박을 고모는 친밀함으로 응수한다. 마음이 오가는 작은 시간이 쌓이며 두 사람은 거리를 좁혀간다. ‘돌담’의 주인공인 나는 회사의 무신경함에 조금씩 시들어간다. 이익을 위해 독성 물질이 첨가된 장난감을 팔면서도 “그 정도는 괜찮다”는 회사. 나의 항의에 회사는 협박으로 응수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떠올리며 끝내 버텨낸다. ‘어느 날(feat.돌멩이)’은 종말 직전의 어느 날이 배경이다.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주인공은 “우리가 아무리 멀어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가깝다고, 영영 함께인 것”이라 읊조린다. 진창 같은 현실에 의연함, 작은 빛줄기, 희미한 희망으로 맞서는 인물들이 대견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검은색 지갑을 펼치며 내보인 사진에는 장성한 이란성 쌍둥이 아들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총, 균, 쇠’ ‘문명의 붕괴’ 등 세계적 저작으로 명성을 떨친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교수(82)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진화·역사·인류학으로 영역을 확장해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김영사 사옥에서 만난 자리에서 “생리학자 시절 ‘담낭’에 대한 글을 썼는데 다섯 명만 관심을 보였다. 정치와 문명사 등으로 주제를 확장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 6월 국내에 출간한 신작 ‘대변동’의 연장선에서 한국과 세계의 위기, 그리고 돌파구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책에서 국가적 위기 해결을 돕는 인자 12가지를 선별했다. 국민적 합의, 책임 수용, 경험한 위기, 국가의 핵심 가치 등이다. 그런 뒤 핀란드와 칠레 일본 독일 미국 등 7개 국가의 위기 극복 과정을 분석했다. 그는 “60년간 여러 나라에서 살았는데, 각 국가는 저마다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아내가 임상치료사인데 개인의 위기 극복을 예측하는 인자들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책을 구상했다”고 했다. 국가의 위기 극복 메커니즘을 들여다본 셈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로 ‘북한’을 꼽았다. 핵을 보유한 북한과 매끄러운 관계를 맺는 법으로는 핀란드 사례를 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직급별로 소련과 물밑에서 교류해 신뢰를 쌓은 핀란드처럼 외부에 알리지 않고 북한과 교류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처한 외교적 위기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냉각된 한일 관계를 풀어나갈 해법으로는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한 뒤 폴란드와 관계를 회복한 독일 사례를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의 파워 게임 사이에서 취해야 할 한국의 입장에 대해서는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약소국이라고 꼭 선택을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이해관계에 따라서 둘 사이를 오가면 되죠. 핀란드는 옛 소련과 서구 사이에서 상황별로 균형을 잘 잡았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 체제를 택한 중국은 이번 세기의 주인이 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정치적 이념 갈등에 대해서는 “자긍심 고취”를 해법으로 들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이념 갈등을 겪고 있다. 리더는 단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진영과 상관없이 자긍심을 느낄 위인을 찾아 기념일에 그 대목을 강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가 공통으로 직면한 위기로는 핵무기와 기후문제, 자원 고갈, 불평등 등 4가지를 꼽았다. “불평등이 특히 심각하죠. 부국은 빈국을 이익이 되는 차원에서 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대만처럼, 내게 도움이 될 국가를 택하는 거죠. 그러면 원조가 더 활발해집니다. 우리는 위기가 닥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요. 핀란드는 위기관리를 전담하는 부처를 따로 두고 있는데, 최근에는 전력망이 망가진 상황을 가정해 대처법을 논의했다고 하더군요.”이설 기자 snow@donga.com}
딱 1년 전, 출판사 창작과비평 홈페이지에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일의 기쁨과 슬픔’이 공개됐다. 작품이 올라오자마자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기 위해 중고 거래를 하는 거북이알(닉네임), 살벌한 직장세계에서 레고와 클래식으로 숨통을 틔우는 케빈과 안나…. 세밀화처럼 그린 직장인들의 내·외면 풍경은 20, 30대들에게 폭풍 지지를 받았다. 등단작으로 이름을 알린 ‘뜨거운 신인’ 장류진 작가(33)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이 드디어 나왔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포함해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렸다. 29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에서 만난 장 작가는 라벤더 색감의 표지를 입은 소설집을 어루만지며 “쓰고 보니 오늘날 직장인과 청춘들의 이야기였다”고 했다. “요즘 청춘요?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란 기대는 없지만, 오늘이 내일보다 나았던 시절은 기억하는 세대 같아요. 부모 세대가 누린 희망이 자신에게 없다는 걸 수긍하는 세대죠. 하지만 마냥 좌절하진 않아요. 그 속에서 나름의 기쁨과 슬픔을 찾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게 이들의 힘 아닐까요?” 작품들 속에는 척척 제 앞가림을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단편 ‘잘 살겠습니다’에서 나는 회사동료 빛나 언니를 볼 때마다 갑갑증을 느낀다. 언니는 식당에서 비싼 ‘특’을 시키면 양이 푸짐하단 당연한 상식도, 청첩장을 받았으면 최소한 축의금은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다. 그런 언니를 보며 나는 계산기를 두드린다. ‘25000(빛나가 결혼식 못 가는 대신 산 밥값)-13000(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밥값)=12000’. “1000원, 2000원에 머리 싸매는 이야기에 쾌감을 느낍니다. 실생활에선 누구나 그러지 않나요. 저요? 나와 빛나 언니가 반반 섞였어요. 주판알을 튕기다가도 퍼주기도 하는 게 우리네 모습이니까요.” ‘여러 결의 마음들이 딱딱한 세계의 표면에 부딪혀 기우뚱 미묘히 흔들리는 순간…’(정이현), ‘삶의 디테일, 탁월한 가독성, 예민한 사회적 감각’(이장욱), ‘자기가 개발한 것에 착취당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회사인간들’’(강영숙)…. 얼굴도 모르는 후배의 첫 책에 선배들이 줄줄이 추천사를 달았다. 그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특히 정 작가님의 ‘기우뚱’이라는 대목에선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모두가 자식 같은 작품이지만, 가장 기특한 건 표제작이에요. 평생 제 이름 뒤에 붙을 제목이니까요. ‘탐페레 공항’은 새로운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라 애틋합니다. ‘새벽의 방문자들’은 산고의 고통이 특히 아팠어요. 성매매를 하는 남성들의 외모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조심스러웠거든요.” 10년간 직장생활을 한 그에게 소설은 일상의 비타민이었다. 2011년 판교의 IT회사에 입사한 뒤로 바지런히 소설 강좌를 찾아 들었다. 일과 소설 사이 줄곧 유지해온 균형추가 최근 회사를 관두며 소설로 옮겨갔다. “고등학생 때 조한혜정 교수님의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에 감명받아 사회학과에 진학했어요. 삶과 밀착된 사회학 이론을 배우는 게 좋았죠. 일상의 이면을 이야기로 담아내는 소설가의 역할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며칠간 한국에 머물면서 새삼 문학의 보편적 가치를 확인했습니다. 신성한 빛이 깃든 문학은 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수상을 계기로 박경리 작가를 발견한 건 제게 큰 격려이자 지금까지 지나온 삶에 대한 보상과 기쁨입니다.” 제9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83)는 26일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국 문학의 상징이자 인간으로서도 문화와 나라를 대표하는 박경리 작가의 이름을 딴 상을 받게 돼 뿌듯하다”며 “집에 가면 한국 문학, 특히 박경리 작가의 작품을 바로 찾아 읽고 싶다”고 했다. 1990년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이날 알바니아어로 소감을 말했다. 한복을 입은 화동들이 꽃다발을 건네자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올해 수상자인 카다레는 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 ‘돌의 연대기’ ‘누가 후계자를 죽였나’ 등으로 알바니아 독재정권의 폭력을 고발해왔다. 신화, 전설, 민담을 활용해 비극의 역사를 유머로 승화한 작품세계로 이름을 알렸다. 2005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았고 2016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최고훈장을 수훈했다.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 작가다. 카다레는 한국과 알바니아의 정치적 유사점을 짚으며 문학의 본령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처럼 알바니아도 유럽과 발칸을 대표하는 정부로 사실상 나뉘어 있다. 하지만 정치·역사적 위기와 갈등 속에서도 문학은 지속돼 왔다. 문학의 생명력은 그 무엇도 앗을 수 없다”고 했다. 또 고대 그리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를 인용하며 ‘문학의 상실’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그리스 비극은 인류의 큰 자산인데 당시 거장인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은 대부분 사라졌다”며 “알바니아와 한국도 이런 종류의 상실을 (다른 나라보다) 자주 경험했을 것 같아 이야기를 소개한다”고 했다. 김우창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은 “그 어느 작가보다 인간의 문제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해결은 없다는 사실을 거듭 이야기해 온 작가”라며 “명분이나 이론보다 삶에 대한 절실함이 인간의 진실이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장크리스토프 플뢰리 주한 프랑스문화원장은 “문학 작품의 수준뿐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카다레 작가의 삶에 큰 경의를 표한다”고 축하했다. 시상식에는 원창묵 원주시장, 정창영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대표, 전병국 강릉원주대 부총장, 김삼남 호텔 인터불고원주 대표, 김지하 시인, 김순덕 동아일보 전무 등이 참석했다. 카다레는 28일 오후 7시 반 서울 디어라이트 북카페에서 ‘박경리문학상 수상 작가와 독자들과의 만남’ 행사를, 29일 오후 2시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강연을 한다. 원주=이설 기자 snow@donga.com}
《스산한 가을을 맞아 굵직한 해외 작가의 장편 3권이 국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간됐다. 노벨상 수상자와 노벨상 단골 후보, 현대 미국 문학사의 문제작가…. 독특한 형식과 진중한 시각이 돋보이는 세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 방랑자들 올해 1월 국내에 선보인 ‘태고의 시간들’을 만난 뒤로 이따금 올가 토카르추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격조 있는 애처로움과 비애, 영계에 다녀온 듯한 잔향…. 명작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이번 책은 장편소설치고도 꽤 두툼하다. 목차만 무려 다섯 페이지. 112개의 조각글이 실렸는데, 화자 상황 메시지 장르가 모두 다르다. 두 줄부터 열세 장까지 분량도 제각각이다. 여느 소설처럼 줄거리나 시간 순을 따르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텍스트의 묶음으로, 형식적인 재미를 더했다. “금방 그곳에 뿌리내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유전자가 내게는 없었다.”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호스텔은 연령 차별주의 혐의로 고소를 당해야 마땅하다”…. 떠나고 머무르는 이들의 자기고백 혹은 이들에 대한 관찰기가 이어진다. 공항, 여행안내서, 지도, 호스텔에 대한 단상도 담겼다. 이동하는 육신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흔들림으로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성찰기다. 일상의 틈새로 두고 보며 방랑의 여운을 느끼길 권한다. ○ 잘못된 만찬 단순하지만 기묘하게 뒤얽힌 인물들의 관계, 쉴 틈 없이 내달리는 이야기. 페이지가 훅훅 넘어간다. 전쟁, 고문, 죽음, 독재, 파괴를 줄기로 한 비극이지만 우스꽝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부조리한 사회를 유머로 비트는 작가의 장기가 집약된 소설이다. 아스마일 카다레는 조국 알바니아의 이야기를 주로 써온 거장이다. 이 책의 배경도 물론 알바니아다. 이탈리아가 물러난 알바니아 남부 도시 지로카스트라에 독일군이 진군한다. 약소국의 지위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독일군을 믿느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독일 군대를 이끄는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은 뮌헨 시절을 함께한 형제와 다름없는 옛 친구를 이곳에서 조우한다. 알바니아인 의사 구라메토다. 그러나 오랜 해후의 기쁨은 곧 어그러진다. 알바니아 저항군이 독일군 척후병을 공격하고, 슈바베 대령은 알바니아인 인질들을 광장에 붙잡아둔다. 그리고 대령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저녁을 대접하는 구라메토. 이날 만찬으로 인질들은 풀려나지만 참석자는 모두 사지가 굳어 죽은 채 발견된다. 페이지를 듬성듬성 넘기면 ‘잘못된 만찬’의 진실을 만나기 쉽지 않다. 역사적 비극을 신화의 단계로 끌어올리면서 읽는 즐거움까지 잡은 거장의 솜씨가 눈부시다. ○ 조반니의 방 “당신이 내게 웃을 땐 증오스러웠어. 남들한테 다 짓는 웃음을 나한테도 짓고, 남들한테 하는 말을 나한테 하고….” 데이비드에게 독설을 토해내던 조반니의 눈에 이내 눈물이 고인다. “나는 혼자 설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었잖아.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그저 상황을 피하고만 싶은 데이비드와 달리 조반니는 필사적으로 그를 원한다. 정념의 밑바닥을 훑는 사랑 이야기다. 삼각관계, 계급 격차와 사랑, 성소수자 문제가 서사와 긴밀히 얽혀 무게감을 더한다. 미국인 데이비드는 파리에서 이탈리아인 바텐더 조반니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데이비드에겐 헬라라는 약혼녀가 있다. 데이비드와 조반니는 성별이 같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조반니와 달리 데이비드는 교묘히 선택과 책무를 회피한다. 1900년대 초반을 흑인이자 성소수자로 살아간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이 썼다. 저자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백인 남성이 가져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해 분열하는 데이비드를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며 누구에게나 그러해야 한다”던 볼드윈의 외침이 주는 울림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옮기는 걸음마다 구름 떼 같은 인파가 몰렸다. 20일 막을 내린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인 노르웨이의 숱한 스타 작가들 중에서도 단연 화려한 팬덤을 자랑한 이가 있다. ‘노르딕 스릴러’의 대부 요 네스뵈(59)다. 그는 도서전에서 16, 17일 두 차례 독자와 만났다. “미국 심리학자의 책을 보다가 ‘나이프’라는 제목이 떠올랐어요. 총과 달리 가까이 다가가야 공격이 가능한 칼을 쓰면 살인이 더 어려워진다는 내용이었죠. 이번 책 ‘나이프’에서 해리에게 부족한 친밀감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다. 노르웨이 오슬로 경찰청 강력반장으로 일한 해리 홀레가 주인공. 1997년 ‘박쥐’를 시작으로 최근작 ‘나이프’까지 12권을 펴냈다. 국내에는 10권 ‘폴리스’까지 나왔다. 11권 ‘목마름’은 2020년, 12권 ‘나이프’는 2021년에 독자와 만난다. 팬들은 그의 소설을 두고 “트릭이 다 한다”고들 한다. “IQ 200도 네스뵈는 못 이긴다”는 말도 나온다. 이 방향이다 싶어서 사건을 추리하다 보면 어김없이 허를 찔린다. “트릭 설계를 즐기고 그걸 만드는 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스릴러의 힘은 쌍방향 읽기입니다. 독자와 게임 또는 대화를 하면서 소설은 앞으로 나아가죠. 물론 독자들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이따금 알아맞히기도 하지요.” 공들여 플롯을 직조하는 데만 주력하진 않는다. 해리와 주변 인물들의 심리 탐구에도 동등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한 발짝 떨어져 문제적 인물을 보듬거나 바짝 붙어 서서 사회 문제를 해부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그는 “작가는 현실과 사회를 고민해야 하는 책무가 있고 그 일을 즐기는 편이다. 스스로 정치적이 돼야 사회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생긴다고 본다”고 했다. 오슬로는 시리즈의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이다. 평온한 도시에서 핏빛 범죄가 연이어 터지고, 해리는 고집스레 잔혹한 범인을 쫓는다. 네스뵈는 “오슬로는 잃어버린 사랑과 같다. 유년 시절 오슬로에서 자랐다. 그곳과 함께였고, 사랑했고, 언젠가 다시 머물 것”이라고 했다. 지극히 평화로운 북유럽에서 범죄 소설이 흥하는 이유가 뭘까. “오슬로에도 어두운 부분이 있어요. 심지어 17세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였다고 해요. 소설에서 그리는 무대는 현실의 오슬로 90%에 고담시티 10%를 섞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네스뵈는 밴드 보컬로 오랜 기간 활동했다. 경제학을 공부해 금융권에서 일한 적도 있다. 암벽 등반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그는 “그리스에서 막 등반을 마치고 왔다. 약간의 공포감을 주는 동시에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암벽 등반은 내게 휴식 시간이다”라고 했다. 사서로 일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 책에 둘러싸여 자랐지만 스릴러는 읽지 않았다고 한다. “이야기의 뼈대는 논리에서 나오지만 흐름은 무의식에서 탄생하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도 좋지만 음악도 정말 사랑합니다. 잠들기 전 기타 연주는 인생의 작은 선물이죠.”프랑크푸르트=이설 기자 snow@donga.com}
“그들(북한)이 자주 이야기하는 낙원과 천국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학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83)는 ‘제9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유럽에서는 알바니아가 가장 혹독한 공산 독재국가였지만 북한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독재자들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유명할수록 더 그렇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어느 정도 알바니아와 비슷하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비극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어디에서 사랑받을지 모르는 게 문학의 운명입니다. 문학은 인간성을 향해 가야 합니다. (일부 작가들이) 문학의 임무를 배신한 작품을 쓰는 등 문학이 본질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발칸반도에 위치한 소국인 알바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스탈린식 독재체제가 들어섰다. 카다레는 이를 고발하는 소설로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알렸다. 첫 장편 ‘죽은 군대의 장군’(1963년)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 장편 20여 편, 단편집, 에세이, 시집을 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인 1990년 프랑스로 망명해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전설, 민담, 설화를 차용해 우화적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게 주특기다. “풍자는 공산정권 작가들이 억압에 대항하기 위해 찾아낸 작법입니다. 문제는 가공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도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극단적으로 기묘한 정치 환경에 놓인 경험이 자신의 작품에 깃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자유를 통해서만 인간이 실존하는 건 아니다. 자유를 좇으면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그는 올해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77)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알바니아계에 대한 인종청소를 벌인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를 옹호한 한트케의 수상을 놓고 발칸반도에서는 반발이 거세다. 카다레는 한트케와 저녁 식사를 같이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고 한 뒤 “작품과 정치색을 별개로 봐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지만 문학이 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있다. 인종학살은 어떤 경우에도 수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박경리 작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선생의 작품을 접하고 싶다고 했다. 간담회에 함께한 그의 아내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있다며 한국 문학에 대한 친근감을 나타냈다. 제9회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은 26일 오전 11시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에서 열린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중국 소설 부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17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저작권센터에 각국 편집자와 에이전트들이 모였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와 이 책을 세계에 소개한 대만 그레이호크 에이전시의 그레이 탄 대표(40) 등 20여 명이 소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는 해외 저작권자와 국내 출판권자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16개국에 이 책을 알린 탄 씨를 만났다. 그는 “책 소개를 듣자마자 감이 왔다”고 했다. ― ‘82년생 김지영’을 어떻게 알게 됐나. “2017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로부터 기획안을 건네받았다. 첫눈에 반응이 좋겠다 싶어 대만에 소개했고, 예상대로 크게 성공했다. 사회적 이슈와 맞물린 데다 분량이 짧았다. 한국에서 이미 성공한 점도 확신을 줬다. 당시 한류 확산과 사드로 인한 중국의 제재가 맞물리면서 한국 출판은 대만, 베트남, 태국 쪽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조남주 작가와 함께 공지영, 정유정 작가의 책도 (대만에) 소개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여권(女權)이 강한 편으로 알려진 중국에서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시아 여성들만 공감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영국, 스페인, 네덜란드, 미국, 프랑스 에이전트들이 이구동성으로 ‘딱 내 이야기야!’라고 외쳤다. 김지영의 아픔을 전 세계 여성들이 아직 겪고 있는 것이다.” ― 영국 출판사 사이먼앤드슈스터 도서전 부스에 책 포스터가 크게 걸려 있는 것을 봤다. “미국과 영국에서 내년 2월경 동시 출간할 예정이다. 헝가리, 스페인, 프랑스, 체코 등도 남아 있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 한국 소설이 소개되는 전기를 맞는 것이다.” ― 케이팝의 선전으로 케이문학에 대한 선호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하던데…. “한강 작가가 부상한 이후로 변화가 느껴진다. 소설을 해외로 내보낼 때 지역색과 보편성을 두고 우선순위를 따지는 건 해묵은 논쟁이다. 관건은 두 가지의 조화와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한다.” ― 한국 에이전트가 아닌 대만인인 당신이 이 책의 수출 활로를 뚫었다. 대니 홍 에이전시의 대니 홍 대표는 당신에 대해 “하루 2권씩 책을 독파하는 못 말리는 책벌레다. 영어도 굉장히 잘한다”고 했다. “중국 홍콩 대만 시장에서 오래 일했고 서구권에도 책을 여러 차례 소개해왔다. 일할 때 필요한 네트워크와 플랫폼이 있어서 일을 맡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서양인은 동양인이라면 국적과 상관없이 비슷하게 여기지 않나. 우리도 서양인을 만날 때 국적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듯이.” ― 어떤 책을 주로 소개하는가. “문학을 좋아하고 문학만 다룬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도 중국에 소개해 1000만 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에이전트로 15년간 일했다. 영문학 석사 시절 ‘왕좌의 게임’을 번역하며 출판계에 입문했다. 일이 좋아 학업도 중간에 그만뒀다.” ― 문학은 다른 문화권에 특히 스며들기 쉽지 않은 장르다. “문화권에 따라 선호하는 장르와 주제가 제각각이다. 해당 국가 독자의 성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김지영을 소개한 인연으로 한국이 각별하게 느껴진다. 한국 책을 많이 발굴해 알리고 싶다.”프랑크푸르트=이설 기자 snow@donga.com}
1960, 70년대 수험생들에겐 영어 단어 사전을 뜯어 삼키며 암기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국내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린 ‘책 먹는 여우’에도 지식을 향한 필사적인 욕구가 묻어난다. 책에 대한 사랑이 넘쳐 책을 몽땅 먹어치우다가 감옥에 갇힌 여우가 작가가 되면서 결핍을 극복한다는 어린이책이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특히 한국에서 빅 히트를 쳤다. 지난해 교보문고가 꼽은 ‘지난 10년간 가장 많이 읽은 어린이 책’ 3위에 올랐다. 최근 ‘책 먹는 여우’ 4계절 편을 준비 중인 프란치스카 비어만(49)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18일 만났다. 그는 “책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돼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는 한국 친구들이 알려준 깻잎을 즐겨 먹고 김치도 담그게 됐다”고 했다. ― 이야기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던 중 단어에서 영감을 얻었다. ‘집어삼키다’라는 뜻의 ‘verschlingen’은 책을 독파한다는 뜻이다. 두꺼운 책(‘dicker schinken’)은 햄을 뜻하기도 한다.” ― 한국에서 특히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뭘까. “한국을 두 번 방문해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했다. 한국의 부모들은 교육열이 높고 아이들은 그것에 억눌려 있는 것 같았다. 책에 대한 열정을 좇다가 성공했다는 여우의 이야기가 덜 강제적으로 느껴져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 이 책을 ‘독서 교육’과 연결짓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청소년기까지 부모가 책을 읽어준다. 유아기에는 잠자기 전 부모가 동화를 읽어주다가 글을 깨친 뒤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한다. 여러 대목을 번갈아가며 읽기도 하고 캐릭터에 대한 담소도 나눈다. 지난 휴가 때 18세, 12세 아이들과 소설 ‘네버엔딩 스토리’를 봤다. 모험 소설을 주로 읽는다.” ― 한국 청소년들은 입시 준비로 바쁘고 여유 시간은 게임 등으로 보낸다. “한국보다는 덜하겠지만 독일에도 입시 부담이 있다. 그래도 꾸준히 책을 읽는다. 권장 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목 덕분이다. 읽기를 제도화한 장치인 셈이다.” ― 도서전에서 독일이 독서 강국임을 느꼈다. 책 관련 행사를 토크쇼처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촘촘한 독서 지원 제도가 빛을 발한 것 같다. 예컨대 동화 작가가 학교를 방문해 낭독 행사를 열면 지원금을 준다. 작가와 직접 책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은 훨씬 흥미를 보인다. 한 달에 1, 2회 초등학교에서 낭독회 행사를 한다.” ― 분홍색 브로치가 인상 깊다. “여성주의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달고 다니는 나만의 표시다. 성소수자, 가족, 아동학대 등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다. 늑대와 돼지가 결혼하는 것처럼 은유적인 표현을 종종 활용한다. 최근에는 청소년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보면서 환경을 꼭 한 번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다.”프랑크푸르트=이설 기자 snow@donga.com}
지난해 호명되지 못한 노벨 문학상의 영예는 10일(현지시간)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폴란드는 국가적 경사를 맞고도 한 마음으로 기뻐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인 ‘법과 정의당’(PiS)과 각을 세워온 토카르추크가 수상 당일 소감 발표에서도 13일 치러질 총선 투표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집권당 지지자들은 “그의 수상으로 폴란드가 분열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토카르추크의 바람과 달리 PiS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반(反) 난민 성향에 사법·언론 기관에 대한 통제 강화를 예고해온 PiS의 재집권에 대해 토카르추크는 “행복하지 않다”고 밝혔다. 15일 제77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간담회에서 “독일에서 장편 ‘야곱의 책들’의 낭독 투어를 하던 중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었고, 때마침 열린 도서전에 참석하게 됐다”며 발언을 이어갔다. “사회와 기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그들의 정책이 극장과 박물관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폴란드 작가들은 검열을 받지는 않지만 몇몇 주제에 대해 스스로 검열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으로 그런 분위기가 강화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PiS에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동참했고 앞으로의 4년은 과거와 다를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그는 사회 참여가 활발한 폴란드 작가들 중에서도 목소리가 도드라지는 편이다. 환경, 여성 인권, 동물, 성소수자 등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 그의 장편 ‘야곱의 책들’은 거미줄처럼 복잡다단한 21세기 유럽의 현실 문제를 18세기로 옮겨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현실을 묘사하면 곧 정치적인 성격을 품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다. 우리가 먹고, 생활하고, 소통하는 모든 것에 정치적인 면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일상은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또 정치는 우리가 처지 또는 소속이 다른 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공동으로 호명된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77)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한트케는 1998년 코소보 인종 학살의 주범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에 동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요 언론과 조이스 캐롤 오츠 등 세계적 작가들이 비난 행렬에 동참해 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그는 “한트케와 비교해 좋은 작가(Good Girl)로 호평을 받는 것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호의적인 논평에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하지만 보통 나는 (정치적 발언으로) 나쁜 역할을 주로 한다. 이 때문에 지금의 역할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토카르추크는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노벨 문학상까지 받으면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문학은 현실과 환상, 전통과 미래, 일상과 거대 담론을 넘나든다. 경험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조합해 만든 허구의 세계에서 현실의 문제를 꼬집는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독자의 마음에 의심을 품게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다. 도발하고, 의구심을 일으키고, 불분명한 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문학이 사람들을 성별, 인종, 국가를 초월해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연결한다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부터 연대하도록 만든다고 믿는다. 늘 현실을 고민하는 작가로 남고 싶다.” 프랑크푸르트=이설 기자 snow@donga.com}
냉전시대가 종식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민주주의가 이데올로기의 승자로 등극하는 듯했다. 물고 뜯던 세계는 비로소 평온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곳곳에서 불안한 신호가 감지됐다. 불평등 확산, 경제 성장 둔화,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역사가 뒷걸음치는 건 신권위주의에 발목을 잡힌 탓이라고 분석한다. 러시아의 정치사회사를 추적하며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권위주의가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과정을 분석한다. 시발점은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와 블라디미르 푸틴의 결합이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는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했다. 정치 체제가 부재한 가운데 구소련의 국가 자산을 차지한 올리가르히는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 구소련 정보기관 출신인 푸틴은 이들이 체제를 지켜줄 인물로 고른 전략적 인물이었다. 책은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의 사상사를 꼼꼼하게 훑는다. 푸틴이 체제 기틀을 다지기 위해 일린의 사상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일린은 도덕과 신앙심에 근거해 개인이 법에 대한 양심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일린의 기독교 전체주의에 기대, 집권 기틀을 다졌다. 기반을 다진 푸틴은 장기 집권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사이버전을 벌인다.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말레이시아 민항기를 격추시키고선 딱 잡아떼고, 우크라이나 네오나치가 어린이를 십자가형으로 죽였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의 무자비하고 치밀한 사이버전 덕분에 당선됐다고 본다. “러시아인은 자신들이 창조한 (허구의) 생명체를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트럼프는 혼돈과 약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사이버 무기의 탄두였고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했다.” 집필 의도에 대해 저자는 “사실 자체가 의문시되는 시대에 당대의 세계사에서 상호 연결된 사건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권위주의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역사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탐사 저널리즘에도 힘을 싣는다. “불평등이 고조됨에 따라 정치적 허구가 더욱 강화되는 우리 시대에 탐사 저널리즘은 소중해진다. 저널리즘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와중에 용감한 기자들이 위험한 현장에서 기사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