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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동인천역 근처의 한 동네. 여덟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수업을 마치고 아빠 가게로 신나게 뛰어간다. 그의 아빠는 ‘간판장이’. 페인트와 붓, 연필, 자 등이 수북이 쌓인 작업실 안은 아빠의 땀 냄새와 뒤섞여 추억의 공감각을 자아낸다. 영화 포스터부터 이발소 간판, 광고 전단, 식당 메뉴판까지 형형색색의 물건들이 아빠의 만능 손에서 만들어진다. 홍콩영화 간판을 지켜보던 아이는 쌍절곤을 쥔 이소룡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놀라기도 한다. 수십 년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딸은 이제는 세상에 없는 아빠와 그의 작업실을 낡은 사진첩으로나마 접한다. ‘만약 아빠가 살아계시면 지금 무얼 하실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작업실에서 놀고 계실지 모르지….’ 이 그림책은 딸에게 생전 할아버지의 모습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있다면 책장을 덮을 때쯤 애잔함과 그리움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 세대의 연구자가 줄었습니다. 심각한 문제예요.” 일본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사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급감했다며 우려했다. 10년 전만 해도 1년에 5명 이상씩 국내외에서 일본사 박사학위 취득자가 나왔는데 요즘에는 1, 2명에 불과하다는 것. 동일본 대지진과 팬데믹에 따른 여파도 있지만 최근 한일 관계 악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이 발표한 ‘정체기에서 쇠퇴기로 접어든 일본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일본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 1633명(2019년 기준) 중 50대 비중이 75%에 달한다. 30, 40대 젊은 연구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양상이다. 연구자 고령화는 연구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14개 주요 학술지에 게재된 일본 관련 논문 수는 2012년 1099편에서 2019년 762편으로 약 30% 줄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학계뿐만이 아니다. 일반인들의 일본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식고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올 5월 펴낸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사토 마사루의 대담집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는 독서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초판 1500부조차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북방영토 협상을 이끈 외교관 출신의 사토 마사루는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생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한 작가. 이 책은 사토 마사루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반(反)지성주의자’로 비판하는 등 국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일본 소재 책으로 국내 출판시장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파워라이터가 현저히 줄어 요즘에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인이 뭘까. 박훈 교수는 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 ‘저팬 패싱(일본 무시)’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일본이 미워도 배울 게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마저도 사라졌다는 것.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젊은층의 저팬 패싱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가 2025년부터 적용되는 고교 일반 선택과목에서 일본사가 포함된 동아시아사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에 동양사학회 등 6개 학술단체가 교육부 방침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문제는 일본의 국력이 우리가 패싱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9105억 달러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지렛대로 우리 국력을 극대화하려면 좋든 싫든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 극일(克日)을 외치기 전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부터 새길 일이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1973년 경북 경주시 계림로 14호 무덤에서 발견된 ‘황금보검’은 한눈에 봐도 이국적이다. 금 알갱이들로 테두리를 빼곡히 장식한 칼집 위로 빨간색 석류석이 박혀 더없이 화려하다. 하단에는 타원형 유리 장식을 붙인 흔적이 뚜렷하다. 이것과 비슷한 형태의 보검이 카자흐스탄 보로보예에서도 나왔다. 학계는 계림로 황금보검이 중앙아시아 혹은 흑해 연안에서 만들어진 후 신라까지 흘러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른 문명 교류의 발자취가 보검에 남아있는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황금보검을 비롯해 외래계 유물 253점을 선보이는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특별전을 24일 개막했다.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목걸이 등 국보 및 보물 8건도 전시된다. 전시는 선사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외래문화가 한반도로 유입된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남 사천 늑도에서 확인된 일본 야요이계 토기와 서역인을 닮은 경주 용강동 흙인형(토용), 경남 창원 현동의 낙타 모양 토기 등의 유물이 대표적이다.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이번 전시가 문화 다양성과 소통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TV든 유튜브에서든 온갖 ‘먹방’이 넘쳐나는 시대다. 그러나 조리법뿐 아니라 식재료의 연원과 획득, 명칭에 대한 역사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음식 공부는 아직 낯설다. 먹고 즐기는 음식인데 뭐 그리 심각하냐고 쏘아붙이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음식 사학자인 저자의 연구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저자는 라면, 아이스크림, 잡채, 전어 등 언뜻 별 맥락이 없어 보이는 12가지 메뉴들을 통해 음식을 올바로 탐구하는 노하우를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문화인류학의 ‘총체적 관점’을 중심에 놓고 있다. 이는 한 대상을 연구할 때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주변 요소들이 무엇이고,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규명하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음식의 탄생과 변천에는 이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적 배경이 두루 깔려 있다는 것. 예컨대 이 시각으로 보면 ‘가을은 전어철’이라는 상식도 20세기 이후 통용됐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전어를 산란기인 4∼6월에 주로 즐겼다. 전어는 산란을 마친 후 살이 잔뜩 차오르는 가을에 가장 맛이 좋은데 이보다 일찍 잡은 건 왜일까. 저자는 산업화 이전 어로 기술의 한계를 이유로 든다. 근해에서 산란을 마친 전어는 먼바다로 나가는데 동력선이 없던 조선 어부들은 이를 뒤쫓아 나가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옛 음식 기록에서 사실 왜곡의 가능성 등 다양한 연구 꿀팁이 흥미를 돋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모든 생명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그렇다면 우주도 마찬가지일까. 우주도 끝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겟돈’ 같은 세상의 종말일까. 오랜 세월 인류가 품어온 이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 철학, 종교, 과학은 그 나름의 정답을 구하려 분투해왔다. 추상적인 주제여서 실험을 통한 검증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이 다룰 수 있을까 싶지만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런 ‘궁극의 질문들’에 대해 각 분야 과학자들이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답안이다. 뉴턴의 고전 역학조차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 최신 과학연구라고? 걱정 마시라. 대중강의와 교양서 발간을 통해 훈련된 이른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필자로 나서 과학지식을 알기 쉽게 떠먹여준다. 통상 과학 입문서가 공자 왈 맹자 왈 시절의 고전을 다루는 반면에 이 책은 지금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연구의 최전선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우선 우주부터. 빅뱅 이론을 통해 우주는 138억 년 전부터 시작된 타임라인을 갖고 있음이 증명됐다. 그렇다면 우주도 인생처럼 그 끝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초신성 폭발을 관측한 천문학자들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우주는 팽창을 거듭하며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 추세라면 언젠가 우주의 모든 은하는 뿔뿔이 흩어지고 빛은 완전히 사라지는 ‘암흑의 시대’가 도래한다. 사실상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의 ‘끝’인 셈이다. 언뜻 우울한 서사로 보이지만 여기서 저자는 로맨틱한 역발상을 제시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1초 사이에 우주는 더 팽창하고 더 어두워진다. 이는 우리에게 매일 밤 우주를 놓치지 말고 눈에 담아야 하는 가장 합당한 이유를 말해준다.’ 다음은 스케일을 좁혀 한반도. 어쩌면 약 10년 내 남북한 모두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백두산 분화 가능성이다. 화산학자들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백두산은 발해 멸망 후 20년이 지난 946년에 대폭발을 일으켰다. 문제는 마그마가 백두산 천지 바로 아래까지 밀고 올라온 데다 백두산 분화에 영향을 끼치는 일본 열도의 대지진이 임박했다는 것. 2032년까지 99%의 백두산 분화 가능성을 점친 일본 학자의 예측이 부디 기우로 끝나기를 바라 본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영화 ‘덩케르크’(2017년)는 승전의 환희가 전혀 나오지 않음에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절망의 나락에 빠졌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지도자와 병사들의 치열함이 담겨 있어서다. 실제로 독일군에 밀려 고립된 영국군을 본토로 귀환시킨 덩케르크 작전(1940년 5∼6월)은 “오늘의 철수는 위대한 승리”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반전의 계기가 됐다. 독일군의 전광석화 같은 전격전(blitz)에 희생될 뻔한 20만 명의 연합군 병력을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전쟁사학자가 쓴 이 책은 처칠,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등 전시 지도자 9명의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과연 이들의 어떤 면모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지를 분석한다. 이 중 처칠의 덩케르크 철수 결정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상황을 주도하는 리더십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처칠은 프랑스 방어에 영국 공군을 동원해달라는 동맹국의 간곡한 요청을 단칼에 뿌리친다. 유럽 대륙에서 독일군을 막아내기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칠은 ‘영국군을 후퇴시킨 무능한 총리’라는 여론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덩케르크 철수를 밀어붙였다. 저자는 역사 덕후였던 처칠이 당시에 신경 쓴 건 의회나 여론이 아닌 훗날의 역사적 평가였다고 말한다. 여론에 일희일비하며 정책을 수시로 뒤집는 포퓰리즘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를 장식할 상징적 인물로 스탈린을 세우는 파격을 택했다. 수천만의 자국 인민을 희생시킨 최악의 독재자에게서 31년의 철권통치를 가능케 한 요인을 알아본 것. 이에 대해 저자는 계급투쟁의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광신적 ‘신념’을 꼽는다. 이와 함께 측근은 물론 가족조차 믿지 않은 병적인 의심과 공포를 활용한 통치방식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스탈린은 권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평생 떨어야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퇴근길 한강대교를 자주 걷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멋진 야경을 감상하는 데 이만한 곳이 없다. 다리 중간 노들섬에 이르면 2년 전 개장한 라이브 공연장을 찾은 아베크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연과 문화, 사람이 어우러진 공간이 삶에 작은 여백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올 들어 금속뭉치들이 한강대교 난간 위에 길게 설치되고 있다. 자살방지용 ‘안전난간’으로 불리는 롤러다. 키 180cm 이하 보행자 눈높이에 위치해 스카이라인을 딱 가린다. 강 주변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까치발을 들어야 한다. 앞서 서울시 당국은 자살 시도를 막겠다며 마포·한강대교에 일반시민과 유명인사들이 쓴 자살 방지 문구를 2012년부터 난간에 새겨 넣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올해에만 약 17억 원의 예산을 들여 안전난간 공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마포대교에 안전시설물을 설치한 후 투신 시도자 수가 26.5%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인근 한강·양화·서강대교의 투신 시도자 수는 되려 38.5% 늘었다. 일종의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다른 다리에도 안전난간을 확대 설치할 방침이지만, 모든 다리에 설치한들 자살 시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안전난간 설치에 들어가는 예산을 자살예방 프로그램 등에 투입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생명 존중’이라는 절대 가치에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쉽지 않다. 이의를 제기하면 “그깟 돈 몇 푼과 시민들의 조망권을 감히 자살방지 효과와 비교할 수 있느냐”는 반론에 부닥치기 일쑤다.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에 대한 방역수칙 논란도 이와 닮은 구석이 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확산 국면이던 지난해 2월 전국 국립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문을 일제히 닫았다. 이후 잠시 재개장됐지만 그해 5월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터지자 수도권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시 폐쇄했다. 전시 특성상 관람객 간 대화가 거의 없는 데다 마스크 쓰기와 인원 제한이 철저히 지켜졌음에도 유흥업소와 같은 수위의 조치가 시행된 것이다. 그 결과는 사람들이 ‘쉴 공간’을 찾아 카페 등 다른 곳으로 몰리는 풍선효과였다. 이후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힘든 소규모 집단감염이 창궐하면서 확진자 수는 급증했다. 감염 예방이라는 절대 가치 추구에 정책 실효성이 훼손된 셈이다. 정부는 뒤늦게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는 이달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의 관람인원 제한을 풀기로 했다. 오바타 세키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올 7월 국내에 번역 출간한 ‘애프터 버블’(미세기)에서 일본 정부가 생명논리에만 빠져 과도한 방역대응으로 일관했다고 지적한다.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논의가 봉인되고 감염 방지에만 몰두했다는 것. 그는 “코로나 대책에서 효율성 논의는 봉인되고 그저 거리 두기를 해달라며 의료진에게 감사를 건넸다. 논의 없이 감정적으로 넘어가려 한 것”이라고 썼다. 생명 존중이라는 지고지순의 가치에 반기를 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방역을 포함한 국가정책에서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실효성 내지 효율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중요한 이유다.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지금도 어떻게 읽느냐는 늘 고민이다. 단어를 외울 때마다 영어사전을 한 페이지씩 씹어 먹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지만 학창시절에는 정독(精讀)만이 정답인 줄 알았다. 실수로 책을 밟는 것도 ‘신성모독’처럼 여기던 때다. 그러나 기자가 되고 나서는 취재 분야의 정보를 빨리 취합하려고 발췌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책을 정성들여 묵독하던 자세는 점점 잊혀져갔다. 그러면서 독서의 깊은 맛을 잃게 되었다는 반성도 해본다. 일본 출판사 편집자로 30년 넘게 활동한 저자는 이 책에서 9세기 말 헤이안 시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독서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시대별로 상이한 독서 양태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군웅할거의 전국시대를 끝낸 에도 막부 시대가 열리자 칼 대신 책을 든 사무라이들은 ‘유교식 독서’에 나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국가를 다스릴 통치이념으로 주자학을 선택한 데 따른 것. 사무라이들을 위한 교육 입문서 화속동자훈(和俗童子訓)에 따르면 유교식 독서법은 ‘우선 손을 씻고 마음을 삼가며 자세를 바르게 한 후 책상 위에 책을 바르게 놓고 앉아서 읽는 것’이다. 이는 문학작품인 ‘겐지 이야기’나 ‘호색 일대남’을 읽으며 쾌락적 독서를 추구한 헤이안 시대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저자는 “에도시대 독서는 사서오경 등 유교 경전을 축으로 한자로 쓰인 소수의 역사서나 병서를 반복해 읽고 확실히 기억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 같은 봉건시대 독서법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2년 간행된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이다. 물리학, 지리학, 경제학 등 실학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 책은 해적판까지 약 340만 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 독자 상당수는 사농공상의 신분제 폐지로 고양된 평민층. 이들은 새 시대 입신출세의 매뉴얼로 후쿠자와의 책을 파고들었다. 시대에 따라 독서의 형식과 내용은 변해왔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은 만국 공통이지 않을까.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전통문화의 우수성만 되뇐다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 경쟁력이 생긴다.” 올 7월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소개된 고인의 어록은 문화재 담당기자인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하에 궁궐 전각을 꽁꽁 걸어 잠그는 국내 문화재 정책을 볼 때마다 일상에서의 문화 향유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컬렉터이자 문화인으로서 이 회장의 식견에 놀랐다. 베테랑 현직 언론인인 저자는 고인의 중고교 동창은 물론이고 삼성 전직 임원들, 학계 및 문화계 인사 등을 폭넓게 취재해 인간 이건희의 다양한 측면을 입체적으로 포착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대대적인 경영 혁신뿐 아니라 그의 유년, 학창 시절부터 이건희 컬렉션의 탄생 과정까지 아우른다. 이 중 문화인으로서 고인을 조명한 마지막 챕터에서 리움미술관 부관장을 지낸 김재열 전 한국전통문화대 총장이 전하는 고인의 말(“문화는 경제적 백업이 없으면 허사다. 한국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삼성을 최대한 이용하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수준급의 고미술품 지식을 갖추고 열정적으로 이를 수집한 건 단순히 개인의 심미안을 충족시키려는 차원은 아니었다. 이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전무후무한 그의 컬렉션이 국립 및 지방 미술관의 전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문화계 평가로도 이미 증명됐다. 신경영 선언 전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 과정을 당시 삼성맨들을 통해 생생히 재구성한 것도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예컨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라며 극일(克日) 정신이 충만했던 이 회장은 일본인 기술고문들과 밤샘 토론을 벌이며 개선점을 집요하게 찾아냈다. 당시 이 회장과 장시간 대화한 기보 마사오 전 삼성전자 고문은 고인을 “역시 집념, 집념의 사나이”라고 회고한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꾸라”고 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 직후 사장보다 급여가 더 높은 인재를 영입하라는 특명을 계열사 사장단에 내린다. 이렇게 모인 이른바 S급 인재들은 삼성의 기술혁신을 이끌게 된다. 시대를 앞서간 이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은 저자가 고인을 경제 ‘대가’가 아닌 경제 ‘사상가’라고 칭한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다가가 경건한 마음으로 암벽을 손으로 쓸어보았다. 석류석 덩이가 손가락 끝에 단단하게 부딪히는 감촉을 느끼며 내 손길이 신성모독인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린란드에서 특별한 암벽을 찾아냈을 때의 감흥을 미국 지질학자인 저자가 이 책에 묘사한 대목이다. 붉은색 석류석과 검은 흑연 조각이 뒤섞여 햇볕에 반짝이는 암벽을 보며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피해 달려간 언덕을 떠올린다. 강렬한 감정에 휩싸인 그는 카메라마저 내려놓은 채 풍경 자체에 깊숙이 빠져든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래전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 둘 다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세상의 끝, 동토의 자연을 시적 언어로 노래한다. 차이라면 한 사람은 사진가이고 다른 이는 지질학자라는 점이다. 사방휘석, 섭입, 근원암 등 지질학 전문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책은 전반적으로 서정적인 자연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는 덴마크인 지질학자 2명과 그린란드의 오지 5만 km²를 돌아다니며 암석들을 쫓는다. 누군가에게는 얼음 위로 고개를 내민, 흔한 돌들이다. 하지만 지질학자의 시선은 이와는 다르다. 그는 “돌멩이의 존재로부터 우리가 결코 경험해볼 수 없는 수십억 년 이전의 세계를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아주 오래전 지각작용을 통해 지구의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그린란드 해안 절벽에서 대륙 충돌의 흔적을 발견해낸다. ‘베개 현무암’으로 불리는 변형된 화산암 조각을 찾은 것. 이는 두 개의 대륙지각이 충돌하기 전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해저지층의 존재를 시사한다. 충돌 직후 맨틀을 향해 땅속 250km 깊이까지 묻혔다가 다시 지표로 올라온 암석의 긴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자연의 엄청난 스케일이 조그마한 암석에 숨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비롭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영화 ‘트랜센던스’(2014년) ‘루시’(2014년) ‘엑스맨’(2000년) 등은 인간 뇌의 무한한 잠재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컴퓨터에 주인공의 기억을 이식하는 내용의 트랜센던스는 첨단 과학기술과 결합해 뇌 기능을 극대화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는 하나같이 뇌와 거기 담긴 기억 그리고 의식을 일종의 기계 혹은 물질로 보는 유물론의 사고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을 관념이 아닌 물질로 보는 시각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영국 유전학자인 저자는 생명과학의 핫이슈인 뇌 과학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추적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기계론’을 쓴 18세기 프랑스의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는 뇌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747년 펴낸 인간기계론에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물질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뇌에 주목했다. 영혼의 모든 능력이 뇌 등 특정 신체조직에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과 중세 스콜라철학의 관념론 시각에서 인간의 정신을 바라보던 유럽인들에게 그의 시각은 불경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한 고국에서 쫓기듯 네덜란드로 갔다가 결국 독일에서 생을 마쳤다. 사실 생각과 감정이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17세기까지는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16세기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쓴 인체 해부 책을 통해 뇌 구조가 다른 어떤 장기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기능은 오리무중이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나나요? 심장인가요 아니면 머리인가요?”라는 구절을 쓴 배경이다. 최신의 뇌 과학 연구는 라메트리가 열어놓은 유물론 시각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뇌가 기계 혹은 컴퓨터라면 부품을 분해하듯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구체적으로 획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뇌 반응이 여러 영역에서 동시에 활성화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저자는 “뇌는 여느 기계와 달리 인간이 설계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뇌는 그 복잡다단한 구조와 기능으로 인해 21세기에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셈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동맹국 요원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첩보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2015년)에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여성요원 일사가 자신의 상관에게 내뱉는 대사다. 사전에 부여된 임무가 아닌데도 목숨을 걸고 미국 정보요원 에단을 구출해낸 이유를 ‘동맹국’에서 찾은 것이다. 국가정보 분야에서 미국과 영국의 특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따지고 보면 반세기 넘게 핵 확산 억제 원칙을 견지해온 미국이 이를 깨고 최근 핵잠수함 기술을 호주에 제공하기로 한 것도 앵글로색슨 국가들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스’(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구성된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제)에서 연유한 바가 크다. 근현대사 전공자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지낸 저자는 이 책에서 모세의 ‘약속의 땅’ 정탐부터 최근의 미국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3000년의 세계 정보활동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이 중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미영 밀월관계는 양국의 정보 협력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 배경과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정보활동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잘 활용한 국가는 역사적으로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1차 대전 경험을 바탕으로 신호정보(SIGINT·시긴트)를 적극 수집해 나치와 맞선 영국이 대표적이다. 반면 미국은 일본의 암호전문 해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진주만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잠재적 위협국가의 이념과 역사 흐름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예를 들어 나치와 공산주의 이념에 정통했던 서방 정보기관들은 2차 대전과 냉전에서 빛나는 활약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탈냉전 후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해선 무지했고, 이는 결국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안보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정보 실패’를 막으려면 권력자의 입맛대로 정보를 해석, 가공하는 행태를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북 화해 무드가 무르익은 3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 지도부 교체를 둘러싼 국가정보원의 예측이 빗나갔다는 지적이 뼈아픈 이유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최근 동네 놀이터에 푹 빠진 초등학생 딸에게 ‘다방구’ 놀이를 가르쳐줬다. 당연히 알고 있으려니 했는데 의외로 아이는 처음 들어보는 놀이라고 했다. PC방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1980년대 얼음땡과 더불어 다방구는 아이들의 양대 놀이였다. 얼음땡이 ‘동작 그만’의 절제력을 요구한다면, 다방구는 동네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공간 감각과 술래가 포기할 때까지 숨는 끈기가 관건이다. 모두가 성인이 돼서도 필요한 미덕이랄 수 있겠다. 재밌는 건 딸이 전파한 다방구가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신흥 게임’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경도(경찰과 도둑의 준말) 놀이보다 재밌다”며 다방구를 하기 시작했단다. 옛 동네놀이가 새롭게 부활한 셈이다. 최근 전 세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한 드라마 ‘오징어게임’도 다방구 같은 동네놀이에서 비롯됐다. 드라마에서는 오징어게임을 비롯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등 여섯 가지 게임이 나온다. 이 중 유독 오징어게임을 제목으로 정한 데 대해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은 “내가 어릴 때 했던 게임 중 가장 격렬한 것이라 이걸 목숨 걸고 하는 것에 대한 처절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오징어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 30대 이하 세대는 황 감독의 말에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는 초등학생 때 이 놀이(1980년대 서울 일대에선 ‘오징어 가이상’이라고 불렀다)를 하다 옷이 찢어지고 살갗이 터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미식축구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몸싸움의 기억이 생생하다. 옛 동네놀이 중 ‘찜뽕’도 최근 재조명됐다. 3년 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찜뽕과 비슷한 ‘베이스볼5’의 올림픽 정식종목 등재를 추진키로 한 것. WBSC는 베이스볼5의 경기 규칙을 발표하면서 “전용 장비와 경기장이 필요한 야구는 제3세계에서 대중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돼 베이스볼5 보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주먹야구로도 불리는 찜뽕은 야구와 비슷한데, 배트 대신 주먹으로 공을 치는 게 다르다. 이희환 인천대 학술연구교수가 올 6월에 발표한 ‘권구(拳球·찌푸, 찜뿌, 찜뽕) 연구’ 논문에 따르면 찜뽕은 일제강점기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 탄생해 권구(주먹야구)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행해졌다. 물자가 부족해 배트나 글러브를 구하기 힘든 시절 찜뽕놀이는 소년들의 야구 열정을 채워줬다. 동네놀이의 화려한 부활은 여러모로 반갑다. 특히나 콘텐츠가 전부인 시대에 ‘오징어게임’의 흥행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는 갈수록 심화되는 세대 간 문화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올드 미디어화된 TV가 트로트 열풍으로 뒤덮인 반면, 젊은층은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몰리고 있다. 연령층에 따라 이용하는 미디어마저 나뉘는 세태에서 옛 동네놀이를 매개로 신·구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고도성장의 후과로 옛것이 쉽사리 잊혀지는 우리 사회에서 ‘오징어게임’ 열풍은 과거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11년 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취재할 때 다큐멘터리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는가?’(2006년)가 떠올랐다. 다큐는 GM이 1996년 전기차 EV1을 출시하고도 내연기관에 밥줄이 달린 석유업계 등의 입김으로 인해 이를 폐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막 기사회생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가 2010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이처럼 바뀐 흐름을 주도한 건 2008년 전기차 ‘로드스터’를 출시한 테슬라였다. 미국 자동차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테슬라 성장에 감춰진 이면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서문에 밝힌 대로 테슬라와 일론 머스크 팬들의 ‘공공의 적’인 그가 쓴 책인 만큼 완벽한 균형을 바라기는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아이언맨’ 모델이자 테크업계 신화로 통하는 머스크와 테슬라의 한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저자는 테슬라가 정보기술(IT) 측면에서 편의성을 추구하느라 자동차의 기본인 안전성에 소홀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2014년경 사고가 난 테슬라의 모델S 차량들에서 서스펜션 불량이 공통으로 발견된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수리비 할인 등을 대가로 테슬라가 고객들과 비밀유지 협약을 맺었다는 것.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조사를 사전에 차단해 리콜 조치를 막으려고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스마트폰 앱을 업그레이드하듯, 출시 후에도 차량용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테슬라의 ‘반복 엔지니어링(iterative engineering)’ 시스템도 안전성에 취약하다고 말한다.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차가 시장에 나올 수 있을 뿐 아니라 규제당국이 특정 부품의 문제점을 추적하는 데 혼란을 줄 수 있어서다. 이는 어쩌면 IT 기반 테크 기업이 보수적인 자동차 산업에 진출할 때부터 예고된 태생적 한계가 아닐까. 제목의 루디크러스(ludicrous·터무니없는)는 순간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리는 테슬라의 최고급 사양(루디크러스 모드)을 뜻하는 동시에, 이 회사의 이미지 과장을 비꼬는 의미도 담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 책의 인상파 그림들을 보면서 영화 ‘비포 선라이즈’(1995년)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남녀 주인공 제시와 셀린의 짧고도 꿈같은 사랑이 벌어진 장소들을 연이어 훑는 신에서 관객은 ‘덧없음’을 느낀다. 인물들이 빠진 텅 빈 장소는 밝은 배경인데도 처연함을 자아낸다. 산란하는 빛들 속에서 인물을 포함한 사물의 형태가 와해되어 간 인상주의 화풍도 찬란하지만 덧없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한 시도 아니었을까. 책의 부제 ‘일렁이는 색채, 순간의 빛’이 와닿는 이유다. 프랑스의 서양미술사 전문가가 쓴 이 책은 화보집에 가까운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묵직하다.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조르주 쇠라 등 인상파 거장들이 당대 유럽 화풍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미술사 관점에서 분석한다. 거장들의 대표작들을 한 페이지씩 털어 소개해 독자들이 명작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인상파 특유의 분할주의(물감을 섞지 않고 다양한 원색의 점들을 찍어 색채 혼합 효과를 내는 기법)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일부 대표작의 클로즈업 사진을 별도로 넣은 것도 매력적이다. 팬데믹으로 움츠러든 요즘,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 중 1891년 작이 눈길을 끈다. 눈 내린 설원 위에 쌓인 건초더미가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저자는 “우리 삶에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있음을 보여주듯, 모네는 눈 내린 추운 날에도 언제나 한 줄기 빛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썼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금과 은으로 겹겹이 장식된 연꽃 주위를 산봉우리와 능선이 휘감는다. 네 개의 봉우리 사이에는 봉황과 사슴이 세밀한 필선으로 새겨져 있다. 뚜껑과 결합된 그릇에는 연꽃 위로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세 마리 용이 빙 둘러싸고 있다. 1971년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받침 은그릇(동탁은잔·銅托銀盞)’은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를 연상시킨다. 금동대향로도 역동적인 용틀임과 피어오르는 연꽃무늬가 절묘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15cm 높이의 화려한 동탁은잔이 은으로 만든 뚜껑과 그릇, 청동받침으로 구성돼 있다면 금동대향로는 금동 뚜껑과 받침이 한 세트를 이룬다. 14일 개막하는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은 백제사를 다시 쓴 무령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처음 선보인다. 무령왕릉은 지석(誌石)을 통해 묻힌 이의 이름과 무덤 조성연도가 확인된 유일한 삼국시대 왕릉이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정문 왼쪽의 기존 상설전시실(웅진백제실)을 무령왕릉 출토품으로만 리모델링하는 한편으로 오른쪽의 별도 기획전시실도 관련 전시로 꾸몄다. 한수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웅진백제실이 관꾸미개 등 화려한 명품 유물로 구성됐다면 기획전시실은 발굴 과정과 이후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13일 미리 둘러본 전시에서 압권은 왕비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동탁은잔이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크기가 작다 보니 본연의 가치에 비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유물이다. 이에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도입부 전체를 동탁은잔의 단독 전시공간으로 할애했다. 동탁은잔은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용봉문환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 등 화려한 금속공예품과 더불어 521년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되었다)을 선포할 당시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동탁은잔은 고리자루큰칼, 청동거울 등과 더불어 제작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앞서 일본학계는 유물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감안할 때 중국 양나라가 은잔을 만들어 무령왕에게 하사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 절터, 익산 왕궁리 유적 등에서 백제 고고자료가 꾸준히 축적됨에 따라 중국 양식을 백제가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자체 제작했다는 국내 학계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남조에서 수입된 것으로 본 무령왕릉 출토 청동거울 3점도 백제 장인들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지난해 열린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한 ‘무령왕릉 출토 금속공예품의 현황과 의의’ 논문에서 “무령왕의 발 부근에 부장된 신수경(청동거울)의 경우 무령왕 연간의 백제 장인들이 새로운 밀랍 주조기법으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중국 한나라 때 청동거울 유물 중 무령왕릉 출토품과 유사한 문양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표면에 새겨진 일부 글자가 지워진 흔적이 발견된 게 근거다. 이번 전시에선 20세기 최대 고고 발견으로 평가되는 무령왕릉 발굴이 졸속으로 진행된 뼈아픈 역사도 조명됐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보수공사 중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된 날인 1971년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김영배 당시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장이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 보낸 보고서에는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이번에 전시된 보고서에서 김 분관장은 “귀중한 유적인 만큼 시급히 조사 작업을 진행치 않으면 도굴 및 파괴의 우려가 있으니 긴급 조치 바람”이라고 썼다. 이에 따라 무령왕릉 유물 수천 점은 출토 위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채 이틀 만에 부대에 실려 옮겨졌다.“졸속발굴 아픔… 과학분석 통한 새 성과 다행” 발굴 참여 지건길 前중앙박물관장“부대에 담아 이틀 만에 발굴 끝내… 2년후 천마총 발굴때 반면교사로” “1973년 천마총을 발굴할 때 2년 전 무령왕릉에서의 졸속이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13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난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78·사진)은 “예상치 못한 완전분(도굴되지 않은 무덤) 발견에 조사원들 모두 정신이 혼미해졌다”며 무령왕릉 발굴 상황을 돌이켰다. 꼬박 이틀 만에 수천 점의 유물 수습을 마친 무령왕릉 발굴을 반면교사로 삼아 2년 뒤 천마총 발굴 때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국책 발굴사업의 효시로 통하는 천마총 발굴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무령왕릉도 제대로 발굴했다면 천마총만큼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발굴보고서 등에 따르면 1971년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공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무령왕릉이 발견됐다. 이어 이틀 뒤인 7일 오전 발굴에 들어가 이튿날 오후 10시부터 유물 수습이 시작됐다. 발굴단은 밤새도록 5000여 점의 유물을 부대에 퍼 담아 외부로 옮겼다. 이 작업이 모두 종료된 게 9일 오전 9시. 발굴에 착수한 지 만 이틀 만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유물은 정확한 출토 위치를 몰라 성격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무덤 바닥에서 대거 쓸려나온 수많은 금속 장식들이 대표적이다. 지 전 관장은 무령왕릉 발굴 당시 28세의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 학예연구사였다. 발굴단장이자 국립박물관장이던 삼불 김원룡 교수는 그의 서울대 고고학과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하늘 같은 스승에게 ‘차근차근 조사하자’고 직언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무령왕릉 발굴 성과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습된 유물들에 대한 과학 분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유물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뤄져 ‘신(新)보고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발굴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몇 해 전 경주 월성 발굴 속도전 논란과 맞물려 “학술 발굴이 차근차근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공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공주=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소위 ‘입시 영어’에서 해방된 지 20년이 넘었건만 이 책에 자연스레 손이 갔다. 학교만 졸업하면 끝일 줄 알았건만…. 대학원 원어 강독부터 해외 출장까지 영어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중고교 시절 두꺼운 성문종합영어의 책장을 넘기며 내쉰 한숨 소리가 여전히 귀에 생생하다. 이 책은 한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몽골어 중국어 등 최소 9개 언어(본문 내용 기준)를 익힌 미국인 언어학자의 외국어 학습 체험기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낸 그는 책 전체를 영어가 아닌 한글로 썼다. 언어 천재의 팁이 일반인에게 얼마나 유용할까 싶지만 책은 ‘영어 완전정복’류의 단순한 실용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유용한 팁이 없는 건 아니니 안심하시라.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의 솔직한 실패담이었다. 그는 한국인 여러 명과 모인 자리에서 이들 사이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해 슬럼프에 빠진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는 “모른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냥 같이 웃고 넘어가면서도 속으로 우울해지곤 했다”고 고백한다. 여러 언어 익히기를 즐기는 언어학자마저 외국어 학습의 길은 지난한 셈이다. 그의 슬럼프 극복법은 외국어 학습의 놀이화 혹은 취미화다. 언어는 다독(多讀)이 최선의 방안인데 지루하면 절대 꾸준한 반복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 그의 경우 외국어 학습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와 관련해 양차 대전의 참화를 겪은 유럽 각국이 유럽연합(EU)으로 통합을 이뤄낸 배경에는 상호 간의 활발한 외국어 학습이 전제됐다. 저자는 다독 과정에서 실용적인 팁을 제시한다. 학습자가 관심 있고 읽고 싶은 텍스트를 골라 읽어야 효과가 좋다는 것. 특히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읽는 도중 맥이 끊길 정도면 과감히 해당 텍스트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관건은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꾸준히 외국어 텍스트를 접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입시용 텍스트에 얽매이지 않고 자율학습이 가능한 사회인의 외국어 학습이 되레 유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영어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40대 이상 중년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라 천년 왕성(王城)인 경주 월성(月城)이 4세기 중엽 처음 지어져 5세기 초 완공된 사실이 발굴 조사 결과 처음 확인됐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서기 101년(파사왕 22년)보다 약 250년 늦은 것으로, 신라의 고대국가 발전에 대한 역사해석에 파장이 예상된다. 월성 축조 단계에서 20여 명의 신라인이 ‘사람 제물’로 바쳐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흔적도 발견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월성 서쪽 성벽에서 출토된 유기물 40여 점에 대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성벽 기초부가 4세기 중엽부터 조성됐으며, 보축을 거친 성벽이 5세기 초 완공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7일 밝혔다. 발굴단에 따르면 신라인들은 일종의 뼈대 역할을 한 기초부와 중심 토루(土壘·흙무더기)를 돌과 흙으로 쌓은 뒤 그 양옆으로 흙과 볏짚, 모래 등으로 구성된 성벽을 4차례에 걸쳐 덧대어 쌓았다. 지금까지 역사학계 일각에선 월성이 처음 지어진 시기를 3세기 말 혹은 5세기 후반으로 보는 등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결과는 이 같은 연대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계는 4세기 중엽 월성이 처음 지어진 사실은 이 시기에 신라가 성읍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도약했음을 보여주는 핵심 근거라고 보고 있다. 거대한 성벽을 축조하려면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돼야 하는데 이는 강력한 왕권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신라는 3세기 이전까지는 사로국(斯盧國)으로 불리며 경상도 일대 소국들을 병합하는 성읍국가 단계를 거쳤다. 그러다 영토를 넓힌 4세기 마립간(신라왕의 옛 이름) 시대가 열리면서 왕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고대국가 체제가 형성된다. 이 시기는 대릉원 등 경주에 거대한 봉분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들이 잇따라 조성된 시기이기도 하다. 현장을 둘러본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는 “월성이 초축된 4세기 중엽 신라에 결정적인 정치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로 신라의 고대국가 성립이 삼국 중 가장 늦었음이 확실해졌다. 백제의 경우 왕성인 서울 풍납토성을 3세기 후엽부터 쌓기 시작한 사실이 과거 발굴조사로 확인된 바 있다. 신라에 비해 약 반세기 앞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월성 초축 시기를 놓고 삼국사기와 발굴 조사 결과가 서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학계 일각에선 신라가 삼국통일 후 사서 편찬 과정에서 삼국 중 가장 미약했던 과거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과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쪽에선 파사왕대 별도의 소규모 토루를 지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김재홍 국민대 교수는 “월성이 지어지기 전 이곳에 살던 호공의 집을 탈해가 빼앗은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온다”며 “파사왕 당시 월성에 자연구릉을 이용한 토루를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월성 서쪽 성벽 토루 옆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에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20대 여성 인골 1구가 발견된 것도 주목된다. 앞서 2017년에도 이 인골과 50cm가량 떨어진 곳에서 사람 제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견됐다. 이를 인신공희로 보는 근거는 이들 인골이 토루 경계에 놓여 성벽 축조 방향과 일치하는 데다 인골 옆에서 동물 뼈, 토기 등 제의의 흔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발굴단은 성벽 축조 과정에서 액운을 막고 무사히 건립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람 제물을 바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1985, 1990년에 이뤄진 월성 발굴 때 발견된 인골 20여 구도 인신공희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만약 이들도 사람 제물이 맞다면 월성 서쪽 성벽을 세우면서 최소 27명이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재홍 교수는 “인신공희 인골들은 고대국가로 도약한 신라의 정치권력이 사람을 지배하게 됐음을 과시하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최근 대군주보(大君主寶), 칙명지보(勅命之寶) 등 고종의 국새 4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이들 국새는 구한말 정부 외교문서나 관료 임명 등 행정문서에 폭넓게 사용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보도자료에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고종이 대군주보를 사용했음은 밝힌 반면 칙명지보가 1910년 한일병합조약 문서(순종황제 칙유)에 쓰인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한제국은 칙명지보 국새를 2개 만들었는데, 이 중 하나가 한일병합조약 때 사용됐다. 현존하는 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개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칙명지보가 한일병합조약 문서에 쓰인 것인지에 대한 기자의 거듭된 질의에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칙명지보가 주로 행정결재에 쓰인 국새이다 보니 외교문서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부끄러운 역사’를 굳이 들춰낼 필요가 있느냐는 속내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30일 뒤늦게 발굴조사 보고서가 발간된 전남 함평군 신덕 1호분 사례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신덕 1호분은 1991년 첫 조사가 이뤄졌지만 30년간 발굴조사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 발굴 직후 약(略)보고서라도 내놓는 학계 관행에 비춰 보면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는 무덤 모양이 일본 고대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열쇠구멍 모양의 전형적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봉분을 가진 무덤)’인 탓에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한몫했다. 조사 결과를 검토한 고고학자들은 무덤 주인이 왜인(倭人)이 아닌 백제, 왜, 가야와 활발히 교류한 지역 수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최근 내렸다. 발굴조사 결과를 신속히 공개했다면 신덕 고분이 임나일본부의 증거라는 억지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역사 연구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발전할 수 있다. 최근 별세한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의 학문 인생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반공주의자로 6·25전쟁 때 미군 통역관으로 복무한 그는 김일성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지만 역사 사실에 대해선 엄정함을 유지했다. 학계 일각에서 ‘가짜 김일성’ 논란이 일었을 당시 고인은 김일성이 1930년대 만주에서 항일 게릴라 활동에 참여한 사실을 팩트대로 책에 썼다. 이로 인해 그의 대표 저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는 한때 이적표현물로 취급된 적도 있다. 그러나 고인은 김일성의 항일투쟁 효과가 미미했으며 특히 광복 후 권력을 잡기까지 소련과 중국에 종속된 사실을 명확히 지적했다. 북한 당국이 김일성 공식 전기에서 1931년 중국공산당 입당을 누락한 사실을 밝혀낸 게 대표적이다. 민족 주체를 앞세운 북한 당국이 김일성과 중국공산당의 초기 관계를 의도적으로 누락했음을 드러낸 것. 또 자료를 통해 광복 직전 소련 당국이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4년간 훈련시킨 사실도 밝혀냈다. 사회 전반에 팽배한 편 가르기, 반일(反日)몰이 등에서 연구자들마저 자유롭지 않은 요즘,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실(史實)만 올곧게 추구한 고인의 삶이 더 값지게 여겨진다. 김상운 문화부 차장 sukim@donga.com}
최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미국에 대한 신뢰성과 도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개입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발을 빼 아프간인들을 탈레반 폭압 아래 놓이게 하느냐는 거다. 이런 분위기는 막 들어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역량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미 국민들의 도덕적 잣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1950년대 6·25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의 핵무기 사용 요구를 거부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자칫 미소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렸지만 당시 미 국민의 여론은 트루먼에게 불리했다. 수많은 미군 병사들이 공산군에 희생당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너무 유약하게 반응한다는 거였다. 만약 당시 핵이 사용됐다면 공산군은 물론 한국인들도 피폭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세계적 국제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는 이 책에서 “트루먼은 자신의 국내 정치 기반이 약화되는 걸 받아들였다. 여기서 도덕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사실 무정부 상태의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도덕성 외교를 운운한다는 게 한가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른바 소프트파워(문화 예술 학문 등에서의 매력을 통한 국가 영향력) 개념을 창시한 저자는 외교정책의 도덕성은 국익과도 직결됨을 강조한다. 각 국면에서 지도자의 도덕성이 국익을 어떻게 정의하고 추구할지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 14명의 외교정책 의도와 수단, 결과를 도덕적 차원에서 따져본다. 그에 따르면 이 세 척도에서 우등생은 루스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 아버지 부시다. 6·25전쟁 때 트루먼의 사례에서 보듯 이들은 각기 다른 외부환경에서 도덕적 가치를 적절히 추구했다는 것이다. 반면 헨리 키신저 등이 높게 평가하는 닉슨에 대해선 박한 점수를 줬다. 저자는 “닉슨이 국제경제와 인플레이션, 인권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거뒀으며 무엇보다 베트남전에서 미군 2만1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선택을 내렸다”고 혹평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