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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의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에 등장하는 노인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독은 모조리 깨버린다. 최고의 독을 만들려는 장인의 고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자신이 생성한 그림을 이 노인처럼 파괴할 수 있을까. 미국 럿거스대 예술과인공지능연구실에서 2019년 발표한 알고리즘 ‘AICAN’은 한꺼번에 수도 없이 많은 그림을 만들 수 있다. 15~20세기 미술사에 등장했던 화가 1119명이 그린 8만1229점을 학습해 새로운 그림을 내놓는다. 이전 작품들과 유사하면서도 기존 스타일과는 가능한 한 다른 그림을 만들도록 설계됐다. 모방 속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과정마저 인간 예술가와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AICAN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송곳 같은 평가다. 이 알고리즘은 ‘독 짓는 늙은이’처럼 스스로 만든 작품을 파괴할 수도, “이게 내 최고작”이라고 선언할 수도 없다. 과학기술 철학자인 저자는 23일 출간한 신간 ‘AI 빅뱅’(동아시아)에서 “하나의 그림이 완성됐다고 판단할 권리는 화가에게 있다”는 세계적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의 말을 인용해 되묻는다. 예술의 완결성을 판단할 수 없는 AI가 과연 예술가인가, 그런 AI가 무작위로 만든 그림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가. 저자는 “가치를 평가하고 표현하는 일이 예술과 문학의 원천에 있다면, AI는 아주 세련되고 훌륭한 도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고 분석한다. 비평이야말로 예술창작에 있어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남을지 모른다는 전망도 담았다. 저자는 교육, 학술 등 일상의 여러 면에서 코앞으로 다가온 AI 시대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AI와의 공생 방법을 찾는다. AI를 잘만 활용하면 인간은 최고의 조력자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독일 기업 ‘딥엘(DeepL)’이 내놓은 AI 번역 서비스에 두꺼운 과학책 문서 파일을 올리면 순식간에 책 한 권이 번역된다. AI가 번역에 걸리는 시간을 단숨에 줄여주는 것이다. 저자는 “AI 번역 서비스 덕분에 앞으로는 전 세계 동시 출간도 많이 시도될 것”이라며 “AI가 도움이 되는 측면은 ‘생성’ 자체보다 ‘생산성’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인간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위기는 AI에서 오는 게 아니다. 위기의 본질은 혁신하지 못하는 타성과 고착에 있다”는 입장이다. 이 지적은 국내 전문가 집단과 교육자들을 겨냥한다. 기존에 전수돼온 지식을 정리하는 것은 AI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어서 머지않아 AI로 대체될지 모른다. 미래의 대학과 교실은 교과서에 정립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발굴하고 창작하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AI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고민할 자유’다. 주어진 알고리즘을 따르기만 하는 AI와 달리 인간은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명령을 내리고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나간다. AI와 다른 인간의 본질을 고찰한 저자의 고민 속에서 AI 시대 인간이 길러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답을 얻을 수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무릎을 꿇은 채 절을 하고, 두 팔을 벌려 춤을 추는 사람 모양의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상)들…. 1926년 경북 경주시 황남동 유적에서 조각난 채 출토된 토우 수십 점이 본래 제자리를 찾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별개의 장식인 줄 알았던 토우들이 지름 약 10cm 크기 토기 뚜껑 위에 접합돼 옹기종기 모이자, 새로운 장면이 펼쳐졌다. 둥근 원을 그리며 한자리에 모인 이들이 망자를 떠나보내는 ‘헤어짐의 축제’가 작은 토기 위에 펼쳐진 것이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6일 개막하는 고대 상형 토기·토우 장식 토기 특별전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에서는 국보 ‘경주 미추왕릉지구 토우장식 긴 목 항아리’ 등 4∼6세기 가야와 신라고분에서 나온 상형 토기와 토우 장식 토기 332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5세기 황남동 유적에서 출토된 토우 장식 토기 97점이 복원을 마친 뒤 처음 공개되는 2부다. 이상미 학예연구사는 “약 20년 동안 단면을 일일이 접합한 결과 이 토우들이 하나의 거대한 장송의례를 상징한다는 추론이 나왔다”며 “구성원을 잃은 상실감을 노래와 춤으로 극복하고 삶을 회복하려는 의식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꾸민 진열장 표면에서는 장송의례를 펼치는 사람과 동물의 행렬을 형상화한 영상이 흘러나온다. 전시의 마지막은 약 1cm 크기의 ‘죽음의 순간을 지키는 사람 토우’ 1점이 장식한다. 이 토우는 죽은 이를 감싸 안은 사람을 형상화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망자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곁을 지킨 누군가가 있었다는 애도의 의미가 담긴 유물”이라고 했다. 10월 9일까지. 3000∼5000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유물의 명칭은 유물의 역사를 이해하는 첩경입니다. 일본 학계가 명명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따를 게 아니라 연구를 통해 알맞는 새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일본 소재 한국의 고대 유물 7건을 분석한 ‘일본 소재 한국 고대 문자자료’(주류성)를 최근 출간한 박남수 동국대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66·사진)은 22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 소재 한국 고대 유물에 대한 연구를 일본 학자들이 주도했고, 한국 학계는 수동적인 입장만 취해 왔다는 자성에서 출발한 책”이라고 했다. 박 연구원은 책에서 일본 학계가 명명한 유물의 이름을 한국 고대사에 비춰 새롭게 명명했다.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돼 있는 ‘좌파리가반(佐波理加盤) 부속문서’를 ‘신라 내성(內省) 문서’로 바꿔 부르는 식이다. 이 문서는 1930년대 쇼소인 남쪽 창고에서 유기그릇의 일종인 좌파리가반을 정리하던 중 포개진 사발 사이에서 꼬깃꼬깃 접힌 채로 발견됐다. 학계에서는 8세기 전반 신라에서 수공업을 담당하는 관청인 공장부 등에서 만들어진 사발이 일본에 수출되면서, 사발을 보호하기 위해 이 문서로 감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문서에 공물(貢物)과 관리 급여인 녹봉(祿俸)에 대한 내용이 기록돼 있어 신라 궁궐의 사무를 총괄하던 내성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박 연구원은 “일본과 국내 학계 모두 이 문서가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일본 학계가 정한 명칭에는 이 문서가 어디서 왔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문서에 8세기 무렵 고대 한일 양국의 문화교류사가 담겨 있는 만큼, 신라 내성에서 만들어져 일본까지 건너왔다는 사실이 문서의 명칭에 담겨야 이 사료의 역사성이 자세히 드러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일본 국보 ‘스다하치만신사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은 ‘백제 동성왕 인물화상경’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이 청동 거울의 제작 시기를 491년으로 보면서 “5세기 후반 일본에서 기거하다 귀국한 백제 왕은 동성왕이 유일하다는 점으로 미뤄 명문 속 ‘대왕(大王)’은 곧 동성왕을 가리킨다”며 “491년 백제 동성왕이 전쟁과 수재를 겪고 난 뒤 제례용으로 제작한 거울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 학자들이 정한 명칭에서는 우리 역사와 관련된 티끌만 한 실마리도 찾을 수 없다”며 “이번 책은 유물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는 시도”라고 강조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6월 한 달간을 ‘2023 여행 가는 달’로 정하고, 숙박비와 교통비, 놀이공원 등을 할인하는 캠페인을 한다. 코레일 협력여행사와 주요 온라인 여행사에서 숙박 및 관광지 입장권 등 관광 상품과 결합된 교통권을 구매하면 고속철도(KTX) 요금을 주중 최대 50%, 주말 30%까지 할인해 준다. 관광 상품과 연계된 서해금빛열차, 남도해양열차 등 6개 노선 관광열차 역시 최대 50% 할인받을 수 있다. 김포에서 출발해 광주, 포항경주, 사천, 울산, 무안으로 가는 항공권, 시티투어 버스와 렌터카도 할인해 준다. 24일부터 예약하면 할인권 사용이 가능하다. KTX는 코레일 협력여행사와 코레일 앱에서 예매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 항공권은 진에어, 하이에어 앱에서, 시티투어버스는 카카오T 앱에서 각각 할인해 준다. 렌터카는 카모아 앱에서 예매하면 할인된다. 12개 광역시도의 숙박시설 가운데 7만 원을 초과하는 곳을 예약할 경우 5만 원을 깎아주는 할인권도 30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선착순으로 발급한다. 다음 달 2일부터는 5만 원이 넘는 전국 숙박시설을 예약하면 3만 원을 깎아주는 할인권을 제공한다. 31일부터 ‘여기어때’, ‘G마켓’, ‘위메프’에서 전국 놀이공원을 예약하면 1만 원 할인권을 준다. 다음 달 1일부터는 등록 캠핑장을 예약하고 이용하면 1만 원 상당의 포인트를 환급해 준다. ‘순천만국가정원·여수 투어’, ‘대구 근대골목 이야기’ 등 국내 여행사의 80여 개 여행프로그램은 30% 이상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템플스테이 50% 할인(한국불교문화사업단)도 한다. 할인 캠페인은 예산이 모두 소진되면 종료된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북 포항시 보경사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비롯해 전국 14개 사찰에서 도난당했던 불화 11점과 불상 21점이 지난달 대한불교조계종으로 돌아왔다. 환수된 불교문화재 총 32점 중에는 회화·역사·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걸작들이 포함됐다. 1999년 보경사에서 도난당한 영산회상도는 18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적인 설채법(設彩法·색의 농담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법)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도난당한 전남 ‘구례 천은사 제석천상(帝釋天像)과 나한상(羅漢像)’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694년 조각승(彫刻僧) 색난(色蘭) 등 7명이 함께 제작한 사실이 확인된다. 조계종은 “보물급 문화재가 다수 포함돼 문화재 지정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계종은 2020년 1월 국내외 경매시장을 감시하던 중 도난 신고가 접수된 보경사 불화 2점의 출품 정보를 입수했다. 이후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조계종과 협력해 같은 해 9월 A 씨의 자택에서 은닉된 도난 불교문화재 32점을 찾아냈다. 지난해 법원은 A 씨에게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하고 유물을 모두 몰수했다. 조계종은 2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환수 고불식을 연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적의 모든 시설을 파괴하고 임시정부의 신성(神聖)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26년 중국 상하이에서 항일운동단체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를 결성한 나창헌(1896∼1936)은 죽음을 불사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켜냈다. 밀정을 처단했고 상하이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해 철혈(鐵血)로 일제에 맞섰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학생 대표로 3·1운동에 나선 그는 1922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경무국장 등을 지냈다. 독립지사이자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로 활동하며 임시정부의 무력과 재정을 뒷받침했다. 신간 ‘나창헌 평전’(역사공간)을 최근 출간한 장석흥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명예교수(66·사진)는 20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독립운동사가 단절되지 않았던 건 백범 김구(1876∼1949) 등 1870년대 태어난 2세대 독립운동가의 뒤를 이은 3세대 독립지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특히 나창헌은 1900년대 전후 태어난 3세대 독립지사의 대표”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은 한 사람이나 한 세대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없습니다. 저는 나창헌의 생애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진 독립운동의 흐름을 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상하이로 망명해 활동한 나창헌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으로 알려져 있어 사료를 모으는 데 4년이 걸렸다. 장 교수는 “나창헌에 대한 정보를 담은 사료는 여럿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라며 “나는 이미 축적된 사료 속에서 그와 관련된 정보를 모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임시의정원 자료에 따르면 나창헌은 상하이에서 세웅의원을 운영하던 1926년 임시정부에 303원을 기부했다. 당시 개인 평균 기부액은 5원가량이었다는 점에서 나창헌의 기부액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장 교수는 “나창헌은 무장투쟁뿐 아니라 막대한 재정으로도 임시정부의 근간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 속의 한 신문조서에는 그가 1936년 위암으로 서거했을 때 우파 한국국민당뿐 아니라 좌파 민족혁명당 인사까지 조문했다고 나와 있다. 장 교수는 “흔히 ‘반공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나창헌은 좌우를 막론하고 존경받던 독립지사였다”며 “우리는 나창헌에 관해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 더 많은 사료를 찾아내 개정증보판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11년 타계한 한국 문학의 거장 박완서(1931∼2011)는 생전 경기 구리시 아치울에 집을 지으며 마당에 붉은 모란 두 그루를 심었다. 그의 딸인 수필가 호원숙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 곁에 하얀 모란을 심었다. 모녀가 심은 모란 세 그루 아래, 지난해부터 또 다른 새끼 모란이 분홍 빛깔을 내며 피어났다. 노년의 모친을 돌보는 등 어머니의 ‘집사’로 살아왔던 저자가 자기만의 글을 쓰며 또 다른 ‘나’를 꽃피운 것처럼…. 저자가 누군가의 딸이 아닌 ‘수필가 호원숙’으로,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있는 아치울에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다. 저자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일상이 된 글쓰기에 대해 “내가 바라보는 것이 영감을 줬고 아름다웠으므로 그때그때 잊지 않기 위해 쓰게 됐다”고 고백한다. 저자에겐 새벽하늘 떠오른 별도 글을 쓸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는 “주변에 가로등 빛 때문에 별빛이 선명하지는 못해도 오리온자리를 보면 반갑다”며 “나란히 있는 별 세 개. 공기가 맑다는 증거”라고 썼다. 온종일 마당에 자란 나무의 가지를 친 뒤에는 ‘몸과 마음을 기울여 봄을 맞이하는 일’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도 담았다. 저자는 고교 2학년 때 어머니의 첫 소설 ‘나목’이 처음 출간된 때를 떠올리며 “문장 하나하나가 후벼 파듯이 다가오는데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던가. 밥을 먹지 못하고 첫 책을 읽던 딸 방 앞에서 서성이던 어머니의 모습이 꿈속만 같다”고 했다. 어머니의 원고를 받아 근처 신문사나 잡지사에 갖다 주는 일은 어린 딸에게 “뿌듯하고 거룩한 일이었다”며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도 드러냈다. 어머니가 드나들던 안방과 손때가 묻은 소반, 삐걱대던 대문 소리까지 저자가 떠올린 어머니와의 추억들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어떤 날엔 꽃과 나무에 관해, 또 어떤 날엔 TV 프로그램과 영화, 시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쓴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억지로 쥐어짜지 않고 목적 없이 쓴 글”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알게 됐고 나만이 가진 언어의 리듬과 감각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제 인생의 마지막 시간과 힘을 모두 다 바쳤습니다만…. 윤동주 시인의 시비(詩碑)를 끝내 세우지 못했습니다. 면목 없고 부끄럽습니다.” 12일 오후 7시 반 서울 마포구 한 호텔의 로비. 윤동주 시인(1917∼1945·사진)의 시비 건립을 추진해 온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78) 후쿠오카현립대 명예교수가 이를 후원한 신원한 순천향대 의대 명예교수(74)에게 말했다. 니시오카 교수는 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일본 규슈 옛 후쿠오카 형무소 주변에 시비를 건립하는 운동을 2015년부터 해 왔지만 관할 구청의 반대로 건립이 결국 무산되자 후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날 니시오카 교수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신 교수에게 흰 봉투 하나를 건넸다. 한글로 ‘신원한 교수님께’라고 적힌 봉투에는 우리 돈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2015년 신 교수가 니시오카 교수에게 보낸 후원금이었다. 신 교수가 “그동안 활동비도 많이 썼을 텐데, 이 돈은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자, 니시오카 교수는 다시 한번 두 손으로 봉투를 건네며 우리말로 말했다. “저는 ‘윤동주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승에 가서 ‘한 점 부끄럼 없는 마음으로’ 윤동주를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받아주세요.” 니시오카 교수는 전날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세우는 협의회’의 해산을 선언하고 한국 후원자들에게 후원금을 되돌려주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가 협의회를 꾸린 건 윤동주 타계 70주기였던 2015년 2월. “식민지배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윤동주를 기려야만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후원금 반환 소식을 듣고 이날 찾아간 기자에게 니시오카 교수가 말했다. “후쿠오카는 윤동주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곳인데도 그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윤 시인이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까 안타까운 마음에 시비 건립 추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연세대 국문과에서 한국 판소리를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동주의 ‘서시’에 매료돼 1994년 후쿠오카에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을 결성했다. 30년 가까이 매달 이어져 온 이 모임은 윤 시인의 기일(2월 16일)마다 옛 후쿠오카 형무소 터와 담을 맞댄 공원에서 위령제를 지내왔다. 니시오카 교수는 “한국에서 나를 지지해준 많은 분들 덕분에 지난 8년이 외롭지 않았다”고 했다. 협의회가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대구문인협회를 포함한 단체와 개인 등 한국인 30여 명이 약 1000만 원을 후원했다. 하지만 장벽을 넘기는 어려웠다. 8년간 줄기차게 옛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 인근 모모치니시(百道西) 공원에 시비 건립을 타진했지만 관할 지자체인 사와라(早良)구의 반대로 끝내 무산된 것. 니시오카 교수는 “시의원과 담당 공무원들을 수십 차례 만났지만 A4용지 2쪽짜리 거절통지서만 돌아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통지서에는 ‘(윤동주 시비가) 시민의 교양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인근 대학이나 학교 주변에 시비를 세우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한일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인지 벽이 너무 높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 나이 곧 여든입니다. 이제는 힘이 없어요.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나를 지지해준 한국의 후원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후원금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인사는 온라인으로 하고, 후원금은 계좌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니시오카 교수는 3박 4일간 서울과 인천 강화도, 대구 등을 다니며 후원자들을 일일이 만났다. 후원자 상당수가 70, 80대여서 어쩌면 이번 만남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021년 3월 선종한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1935∼2021)의 묘역도 찾겠다고 했다. 이 대주교는 2016년 자비 100만 원에 단체 후원금을 더해 총 400만 원을 보냈다. 니시오카 교수는 “이 대주교는 별세하기 1년 전에도 후쿠오카에 있는 나를 찾아와 격려하셨을 정도로 믿고 도와주신 분”이라며 “경북 군위군 가톨릭군위묘원에 계신 이 대주교의 묘역을 찾아가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지막 해산 보고를 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대구 계산성당을 방문해 후원금 400만 원을 돌려줬다. 수필가 장호병 씨(71)도 니시오카 교수가 이날 대구에서 만난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장 씨는 대구문인협회장이던 2017년, 협회 소속 문인 10여 명과 돈을 모아 총 410만 원을 니시오카 교수에게 전했다. 장 씨는 15일 전화에서 “여든을 바라보는 노교수가 손수 후원금을 되돌려주는 모습을 보면서 이 돈을 허투루 써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문인들은 돌려받은 후원금으로 8년간의 시비 건립 운동 기록을 담은 책을 내기로 했다. 장 씨는 “비록 실패의 기록이지만 이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남겨야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가 우리의 뒤를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니시오카 교수 역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중간에 다리를 놓은 사람입니다. 후쿠오카에 윤동주 시비를 건립하는 일은 이제 일본의 후대에게 맡기고 싶습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해 말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공연장에서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국악밴드 ‘악단광칠’이 대금, 피리, 아쟁, 가야금 등 우리 전통악기로 편곡한 우크라이나 행진곡 ‘오, 초원의 붉은 가막살 나무여’를 연주하자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구슬피 우는 대금 소리에 맞춰 두 손을 높이 든 채 좌우로 몸을 맡긴 관객들의 몸짓이 마치 파도 치듯 객석을 가득 메웠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을 때 한 관객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이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어요. 당신들의 음악이 나를 울렸습니다.” 활발히 해외 공연을 벌이고 있는 악단광칠이 미국 투어를 마치고 7일 귀국했다. 김약대(대금)와 이만월(피리·생황), 김최종병기활(아쟁), 원먼동마루(가야금), 전궁달(타악), 선우바라바라밤(타악) 등 국악기 연주자 6명과 홍옥, 유월, 명월 등 소리꾼 3명이 모인 악단광칠은 전통악기를 고수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뭉쳐 ‘광칠’이란 이름을 붙였다. 서울 용산구 연습실에서 16일 만난 단장 김약대(본명 김현수·41)와 단원들의 얼굴에선 활기가 느껴졌다. 이들은 “해외 투어에서 큰 힘을 얻었다”며 웃었다. 미국 투어는 2021년과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로, 이들은 “관객의 반응이 더욱 뜨거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객석 곳곳에서 악단광칠의 의상을 따라 입은 관객들을 마주쳤다. 공연이 끝난 뒤 “당신들의 노래로 위로를 받았다”며 식사를 대접한 외국 관객도 있었다. 선우바라바라바라밤(본명 선우진영·30)은 “이전까지는 우리 음악을 알리러 갔다면 올해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한판 굿을 벌이고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악단광칠의 전통 가락이 해외에서 통하는 이유는 뭘까. 홍옥(본명 방초롱·26)은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 같이 굿 한판을 벌이려는 자세가 우리의 매력”이라고 자평했다. 이들은 언어나 문화가 다른 해외 관객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 나라의 대표 명곡을 우리 전통악기로 편곡해 선보이고, 현지 언어를 배워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이들은 20일 전북 전주시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리는 개원 10주년 공연 개막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예정이다. 유월(본명 이유진·28)은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국내 공연이 반갑다”고 했다. 이 무대에서는 신곡 ‘MOON 굿’을 포함해 총 3곡을 선보인다. 동해안 지방의 무당들이 춤을 추며 벌이는 ‘문굿’에서 영감을 받은 신곡은 지난해 말 해외 투어로 멤버 모두가 지치고 힘들 무렵 만들었다. 홍옥은 “함께 춤을 추면서 가장 순수한 우리 모습을 되찾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세계 무대를 누비는 이들이지만 가장 서고 싶은 무대는 한국에 있다. 김 단장은 “언젠가 1만5000석 규모 잠실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960년 당시 동아일보 호외를 포함한 ‘4·19혁명 기록물’ 1019건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18일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심사한 결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최종 등재됐다”고 밝혔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4·19혁명 기록물 가운데 신문 자료는 총 6건으로, 이 중 5건이 당시 동아일보 호외다. 특히 1960년 3월 15일 본보 ‘선거의 불법·무효선언/민주당 법정투쟁 결의’ 호외(사진)는 3·15부정선거 당일 불복 투쟁이 본격 시작됐음을 널리 알려 4·19혁명의 도화선 중 하나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도 당시 시위 사진 및 영상 자료, 사상자 기록·수습 조사 활동 자료, 이승만 대통령 사임서 등을 비롯해 1960년 2월 28일 대구 학생집회부터 이 대통령 퇴진까지 혁명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4·19혁명이 제3세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1960년대 세계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기록유산으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에는 1894, 1895년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 침략에 항거해 민중이 봉기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조선 정부와 동학농민군, 일본공사관 등의 기록이 포함됐다. 이로써 한국은 ‘난중일기’ 등 총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1960년 당시 동아일보 호외를 포함한 ‘4·19혁명 기록물’ 1019건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18일 등재됐다. 문화재청은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4·19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심사한 결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최종 등재됐다”고 밝혔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4·19혁명 기록물 가운데 신문 자료는 총 6건으로, 이 중 5건이 당시 동아일보 호외다. 특히 1960년 3월 15일 본보 호외 ‘선거의 불법·무효선언/민주당 법정투쟁 결의’는 3·15부정선거 당일 불복 투쟁이 본격 시작됐음을 널리 알려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도 당시 시위 사진 및 영상 자료, 사상자 기록·수습 조사 활동 자료, 이승만 대통령 사임서 등을 비롯해 1960년 2월 28일 대구 학생집회부터 이 대통령 퇴진까지 혁명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 포함됐다.문화재청은 “4·19혁명이 제3세계에서 최초로 성공한 비폭력 시민혁명인 동시에 1960년대 세계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친 기록유산으로서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에는 1894, 1895년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 침략에 항거해 민중이 봉기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조선 정부와 동학농민군, 일본공사관 등의 기록이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돼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기억의 저장소로서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게 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난중일기’ 등 총 18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지난해 말 폴란드의 한 공연장에서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국악밴드 ‘악단광칠’이 대금, 피리, 아쟁, 가야금 등 한국의 전통악기와 황해도민요 가락으로 편곡한 우크라이나의 행진곡 ‘오, 초원의 붉은 가막살 나무여’를 부르자,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구슬피 우는 듯한 대금과 아쟁 소리에 맞춰 두 손을 높이 든 채 좌우로 몸을 맡긴 관객들의 몸짓이 마치 파도치듯 객석을 가득 메웠다. 한바탕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왔을 때, 한 외국인 관객이 그들에게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이 지금 우크라이나에 있어요. 당신들의 음악이 나를 울렸습니다.” 지난해의 절반을 북미, 유럽, 중동 등 해외 투어 일정으로 분주하게 보냈던 악단광칠이 올해 아랍에미리트와 미국 투어를 마치고 7일 귀국했다. 김약대(대금), 이만월(피리·생황), 그레이스 박(아쟁), 원먼동마루(가야금), 전궁달(타악), 선우바라바라밤(타악) 등 국악기 연주자 6명과 3명의 소리꾼(홍옥, 유월, 명월)으로 꾸려진 악단광칠은 기타나 드럼 등 서양 악기 없이 오직 전통악기를 고수한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뭉쳐 ‘광칠’이란 이름을 붙였다. 16일 서울 용산구 연습실에서 만난 단장 김약대(본명 김현수·41)와 선우바라바라바라밤(본명 선우진영·30), 홍옥(본명 방초롱·26), 유월(본명 이유진·28)의 얼굴에선 지친 기색 없이 활기가 느껴졌다. 이들은 “오히려 해외 투어에서 큰 힘을 얻었다”며 웃었다. 2021년과 지난해에 이은 세 번째 미국 투어에 나선 이들은 “관객의 반응이 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선우바라바라바라밤은 “이전까지는 우리 음악을 알리러 갔다면 올해에는 우리를 알아봐주고 우리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한 판 굿을 벌이고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너희 밴드 이름을 들어 봤다’며 먼저 와 반겨주고, 악단광칠의 무대 의상을 그대로 따라 입은 관객들도 곳곳에 보였어요. 공연이 끝나고 나면 ‘너희들의 음악에 마음을 위로 받았다’며 식사를 대접한 관객도 있었죠.”(선우바라바라바라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에서 펼쳐진 이들의 공연 영상이 지난해 1월 19일 유튜브에 공개된 것이 계기였다. 콜드플레이, 아델, 방탄소년단(BTS)과 같은 세계적인 팝스타가 거쳐 간 이 프로그램에서 펼친 무대를 통해 악단광칠의 음악이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 해외 관객들이 익히 아는 ‘K-POP’과는 전혀 다른 가락인데도 악단광칠의 음악이 통하는 이유는 뭘까. 홍옥은 ‘굿 스피릿’을 이유로 꼽았다. 그는 “전통 굿판을 가보면 음악은 거들 뿐 결국에는 다 같이 하나가 되는 판이 펼쳐진다. 악단광칠의 음악은 관객이 우리가 깔아놓은 판에서 하나가 될 때 완성된다”고 했다. 이들은 언어나 문화가 전혀 다른 해외 관객과 하나가 되기 위해 그 나라의 대표적인 명곡을 한국 전통악기로 편곡해 선보인다.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다.“음악뿐 아니라 언어로도 외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 전 숙소에서 만난 현지인들에게 그 나라 말을 배우고 익혀요. 굿판을 벌이는 무당이 계속 말을 걸 듯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계속 말을 걸고 싶어서요.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 같이 한 판을 벌이려는 ‘굿 스피릿’이야말로 해외에서도 먹히는 우리의 매력 아닐까요.”(홍옥) 요즘 한국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이들은 20일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열리는 개원 10주년 개막 공연 피날레 무대에 오른다. 전통 국악을 전공한 이들에게 이 무대는 더욱 각별하다. 유월은 “해외 공연보다 국내 공연이 더 반갑다. 우리에게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안도감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서도민요를 전공한 유월은 “내 전공은 국악 중에서도 비주류라 설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었다. 노래를 너무 하고 싶어 악단광칠에 합류한 덕분에 이제 한국에서도 내 소리를 낼 수 있는 무대와 기회가 생겼다”며 웃었다. 이번 무대에선 지난해 말 만든 신곡 ‘MOON 굿’을 포함해 총 3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동해안지방의 무당들이 춤을 추며 벌이는 ‘문굿’에서 영감을 받은 이 곡은 해외 투어 일정으로 멤버 모두가 지치고 힘들 무렵 만들었다. 홍옥은 “신곡을 작업하는데 멤버 모두 춤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가장 순수해졌던 그 느낌을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는 현실에서 도피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춤을 추면서 원래의 ‘나’를, 가장 순수한 우리를 되찾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무대를 누비고 있지만, 이들이 가장 서보고 싶은 무대는 한국에 있다. 단장 김약대는 “언젠가 우리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로 1만5000석 규모의 잠실체조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해외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우리가 기획한 무대에 관객들을 초청해보고 싶어요. 우리만의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온 관객들로 가득 채워진 그런 무대를 꿈꿉니다.”(김약대)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불교의 세 가지 보물 ‘불(부처)·법(경전)·승(존자)’ 도상 125개를 비단에 한 땀 한 땀 수놓은 뒤 이어 붙여 만든 19세기 자수가사(刺繡袈裟)가 1979년 보물 지정 후 44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17일 대전 유성구 센터에서 보존 처리 중인 보물 자수가사(사진)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가사는 ‘무자생 박씨(戊子生 朴氏)’ 여성이 발원해 만든 것으로, 착용 목적이 아니라 예불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자수가사는 국내에 20여 점이 남아 있지만 법의 전체를 도상으로 빼곡하게 수놓은 건 이 가사가 유일하다. 안보연 문화재보존과학센터 학예연구사는 “불교미술과 복식사 연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물”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개 현장에서는 섬세한 바느질선이 드러난 유물 뒷면을 볼 수 있었다. 뒷면에 붙어 있던 배접지를 보존 처리를 위해 잠시 제거한 덕이다. 자수가사는 누더기를 입은 부처의 뜻을 잇는다는 취지로 여러 천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다. 각 조각을 꿰매는 과정에서 일부분을 바느질하지 않고 놔둬 작은 틈을 만드는데, 이를 ‘통문(通門)’이라고 한다. 가사 뒷면에서 통문도 보였다. 대전 보존과학센터는 23∼25일 이 자수가사와 보존 처리 과정을 공개하는 행사 ‘보물 자수가사 프로젝트: 보존과학자의 1492일’을 연다. 자수가사는 허동화 한국자수박물관장(1926∼2018)이 소장하다가 서울시에 기증했다.대전=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반 고흐, 르누아르, 보티첼리….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거장의 명작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특별전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의 티켓 온라인 예매가 15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다음 달 2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내셔널갤러리 소장품 중 보티첼리, 라파엘로, 마네, 모네, 고갱 등의 엄선된 명화 52점으로 구성된다.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기부터 인상주의 회화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 명작을 통해 거장의 시선이 신으로부터 사람과 우리 일상으로 향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전시에서는 인간의 다채로운 표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카페에서 술잔을 나르는 종업원을 담은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 도마뱀에게 물려 얼굴을 찡그린 소년을 생생하게 그린 카라바조의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사진), 렘브란트가 자신의 얼굴을 묘사한 ‘63세의 자화상’이 대표적이다. 티켓은 네이버 예약, 인터파크 티켓, 티켓링크 홈페이지 등에서 예매할 수 있다. 2주 간격으로 관람 기간을 달리해 판매한다. 이달 15일부터 31일까지는 다음 달 2일부터 30일까지의 티켓을 미리 판매하는 식이다. 단체 관람은 전화로 예약할 수 있다. 전시 개막 후부터는 매표소에서 현장 구매가 가능하다. 7000∼1만8000원.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추위와 두려움에 떨었을 이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싶은 마음에 집에 있던 한국 음식 재료를 꺼내와 보여줬어요. 한국 음식을 사랑하는 저희 집에는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등이 있거든요.” 지난해 12월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주 북서부에 내린 폭설로 고립됐던 한국인 관광객 9명에게 2박 3일간 집을 내준 미국인 부부 알렉산더 캠파냐(40), 앤드리아 캠파냐 씨(43)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관광공사(사장 김장실) 초청으로 13일 방한한 캠파냐 부부를 서울 종로구의 한식당에서 14일 만났다. 이날 부부는 5개월 전 자신의 집 문을 두드렸던 일행 중 한 명인 박건영 씨(55)와 재회했다. 이 부부는 박 씨 등과 지내는 동안 제육볶음과 닭볶음탕을 함께 만들어 먹었다. 박 씨는 “캠파냐 씨 부부가 냉장고 문을 활짝 열어 보이며 ‘한국 요리를 마음껏 만들어 먹으라’고 해준 말이 참 고마웠다”고 했다. 이에 알렉산더 씨는 “우리가 평생의 친구가 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수확”이라고 화답했다. 13일부터 열흘간 한국을 여행하는 부부는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비무장지대(DMZ)를 꼽았다. “한국 음식뿐 아니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 가는 것이 오랜 꿈이었는데, 이를 이뤄 영광입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사진)이 멤버 7명 모두가 참여한 신곡 ‘더 플래닛(The Planet)’을 12일 오후 발표했다. 최근 멤버 일부가 군에 입대한 BTS가 ‘완전체’로 신곡을 선보이는 건 지난해 6월 ‘옛 투 컴(Yet to come)’ 이후 11개월 만이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은 신곡에 대해 “BTS 멤버 7인 7색의 개성과 청량한 보컬이 조화를 이룬다”고 소개했다. 곡은 멤버 진(본명 김석진·31)과 제이홉(본명 정호석·29)이 입대하기 전 녹음을 마쳤다. ‘더 플래닛’은 14일부터 SBS에서 방영될 예정인 국산 애니메이션 ‘베스티언즈(BASTIONS)’의 주제가다. 가사는 환경을 파괴하는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너와 나의 작은 별/지금 아파하고 있어’ 등 지구의 소중함을 알리는 메시지를 담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로 김혜란 씨(72)와 이호연 씨(67)를 인정 예고한다고 문화재청이 12일 밝혔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전승돼온 경기민요는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김 씨는 1980년, 이 씨는 1986년 이수자를 거쳐 각각 1986년과 1996년부터 전승교육사로 경기민요 전승에 힘써 왔다. 문화재청은 30일 동안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정 여부를 확정한다. 국가무형문화재 ‘고성농요’ 보유자 김석명 씨(84)는 명예보유자로 인정됐다. 고성농요는 경남 고성 지역에서 전승돼온 전통 농요로, 김 씨는 1992년 보유자로 인정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몇 년 전 학교를 때려 부순 장발에 턱수염을 기른 꼬마들이 아니라, 우리야말로 오늘날 이 세상의 진정한 혁명가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공동 창립자 고든 무어(1929∼2023)가 1973년에 한 말이다. 냉전이 벌어지던 당대 세상을 바꾼 건 “금지를 금지하라”고 했던 ‘68혁명’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혁명’이었다는 얘기다. 요즘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가전기기가 별로 없다. 무어의 말대로 반도체는 삶의 방식을 바꿨다. 라이프스타일뿐일까. 미국 터프츠대 국제사 교수인 저자는 반도체가 현대의 세계사를 결정지었다고 본다. 책은 반도체 패권을 놓고 벌어진 세계 각국과 반도체 기업의 전쟁사를 미국의 관점에서 조망했다. 100명이 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정부 관료, 최고경영자(CEO)와의 인터뷰를 통해 반도체가 바꾼 현대의 정치·경제·사회사를 그려냈다. 반도체 기술력은 냉전 시기 미국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저자는 반도체 기술의 우위를 선점한 미국이 아시아 국가와 ‘반도체 공생 관계’를 맺어 공산주의의 확산을 저지했다고 분석했다. 1960년대 미국과 일본 정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일본에 생산기지를 열도록 했다. 대만과 싱가포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이들 국가에 미국 반도체 기업의 해외 설비 공장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경제동맹을 구축했다. 이로써 세계 경제의 패권을 장악하고 냉전에서 승리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이후에도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 왔다. 1980년대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저리 대출을 내주며 지원했다. 일본의 하이테크 산업이 미국을 앞지르자 미국 국방부는 즉각 ‘특별대책본부’를 꾸렸다.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곧 국가 위기로 인식하고 대응에 나선 것. 결국 1986년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메모리 칩 수출 쿼터’를 강제해 미국에서 판매되는 일본산 칩의 수량을 제한했다. 1980년대 인텔을 포함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후발 주자인 삼성에 투자한 이유 역시 일본의 메모리 칩 시장 점유율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21세기 반도체 전쟁은 중국과 벌이고 있다. 2020년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정보기술(IT) 대기업 화웨이를 겨냥한 ‘수출 통제 명단’을 발표했다. 화웨이가 미국 기술이 이용된 고성능 컴퓨터 칩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수출 자체를 막아버린 것. 이에 맞선 중국은 ‘반도체 독립’을 위해 외국의 반도체 제조사를 인수하고, 자국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반도체 독립이 성공한다면 세계 경제를 다시 만들고 군사력의 균형을 재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산업이 미중 간 헤게모니 전쟁의 최전방으로 변한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이 중국 현지에 있는 우리 반도체 기업의 생산 공정 업그레이드와 첨단 장비 도입마저 규제하려는 상황이다. 한국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세계 어떤 시장보다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중국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얼핏 맞는 말 같지만 결국 한국은 피해를 감수하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동참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야말로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멤버 7명 모두가 참여한 신곡 ‘더 플래닛(The Planet)’을 12일 오후 발표했다. 최근 멤버 일부가 군에 입대한 BTS가 ‘완전체’로 신곡을 선보이는 건 지난해 6월 ‘옛 투 컴(Yet to come)’ 이후 11개월 만이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은 신곡에 대해 “BTS 멤버 7인 7색의 개성과 청량한 보컬이 조화를 이룬다”고 소개했다. 곡은 멤버 진(본명 김석진·31)과 제이홉(본명 정호석·29)이 입대하기 전 녹음을 마쳤다. ‘더 플래닛’은 14일부터 SBS에서 방영될 예정인 국산 애니메이션 ‘베스티언즈(BASTIONS)’의 주제가다. 가사는 환경을 파괴하는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너와 나의 작은 별/지금 아파하고 있어’ 등 지구의 소중함을 알리는 메시지를 담았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로 김혜란 씨(72)와 이호연 씨(67)를 인정 예고한다고 문화재청이 12일 밝혔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전승돼온 경기민요는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김 씨는 1980년, 이 씨는 1986년 이수자를 거쳐 각각 1986년과 1996년부터 전승교육사로 경기민요 전승에 힘써왔다. 문화재청은 30일 동안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인정 여부를 확정한다. 국가무형문화재 ‘고성농요’ 보유자 김석명 씨(84)는 명예보유자로 인정됐다. 고성농요는 경남 고성 지역에서 전승돼온 전통농요로, 김 씨는 1992년 보유자로 인정됐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