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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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취재분야

2025-02-05~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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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런던 ‘르코르동블뢰’에서 사찰음식 강의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원경 스님)이 세계적 요리학교인 르코르동블뢰를 대상으로 사찰음식 강의를 마쳤다. 사업단에 따르면 강의는 17, 18일 사찰음식교육관과 르코르동블뢰 런던캠퍼스를 화상으로 연결해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사찰음식 전문가 법송 스님이 강의를 맡아 파, 마늘 등 오신채를 제거한 사찰김치를 소개했다. 이어 요리 시연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강의에선 상추대궁김치, 깻잎김치, 알배기배추 오이김치, 고추수박김치 등 여름 채소로 만드는 사찰김치와 더불어 감자투생이, 콩국수 등 곁들여 먹기 좋은 여름 사찰음식 조리법도 소개했다. 법송 스님은 올 4월에도 한국 사찰음식의 특징과 봄 제철음식을 주제로 쑥버무리, 취나물, 고수전 조리법을 강의했다. 사업단은 주영 한국문화원 및 르코르동블뢰 런던캠퍼스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올해 런던캠퍼스의 ‘채식 전문 조리과정’에 사찰음식 정규 강의를 2회 진행하기로 했다. 사업단장인 원경 스님은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찰음식에 대한 호응도 커질 것”이라며 “세계 여러 교육기관과 협력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식문화인 사찰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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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박해이면서 코로나 피정 시기… 힘들수록 이웃 도와야”

    “붉은 노을 속에 떨어지는 해를 보며 인생의 아름다움과 그 끝을 생각했습니다. 매일매일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일몰의 광경은 신(神)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신의 맨 얼굴이었습니다.” 최근 출간된 고찬근 신부(61)의 단상집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달출판사)의 일부다. 사제의 길에 들어선 지 거의 30년 만에 안식년을 맞은 그는 일본 후쿠오카시 외곽 해변에서 다시 가야 할 길을 떠올렸다. 1989년 사제품을 받은 고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소국장과 명동대성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일본 도쿄한인성당에서 사목하다 일시 귀국한 그를 1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성당에서 만났다. ―어려운 시기 한국에 나왔다. “거의 전쟁처럼 준비하고 나왔다. 자가 격리 면제 대상이지만 체온과 건강 상태 등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내고 있다. 홀로 지내는 88세 노모가 약해지셔서 뵙고 싶었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마지막 선물이라며 안구 기증을 당부하셨다. 기증 받을 이를 위해 눈을 열심히 관리하고 눈에 좋다는 보조식품도 챙겨 드신다.” ―일본 생활은 어떤가. “2018년 8월 명동 주임신부 임기를 끝내고 떠났으니 4년째다. 안식년 때는 후쿠오카시 외곽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혼자 지냈다. 시계 없이 살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그랬더니 하루 한 끼 먹게 되더라.” ―책에는 노을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죽음은 현재의 나를 잘 깨어 있게 해주는 삶의 일부다. 매일 노을을 보면서 ‘야, 하느님 작품 활동은 정말 왕성하네’라고 감탄하며 자연스럽게 하느님 묵상에 빠져들었다.” ―안식년 시기에 인생의 완전한 분해와 재조립이 이뤄졌다고 했는데…. “한국 나이로 서른에 신부가 됐는데 솔직히 그때는 너무 젊었다. 주변의 기도와 젊은 혈기에 ‘하느님을 인생의 모토로 삼겠다’ ‘평생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전하겠다’ 이렇게 나선 것 아닌가 싶다(웃음).” ―재조립 결론은 무엇인가. “신부 되기를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길이었다. 하느님이 철없는 내게 준 축복이었다.” ―책에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인 삶의 키워드가 많다. “신(神)과 종교? 신은 알 수 없고, 믿음과 희망 속에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인간이라면 가야 할 길이다.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해 믿는 게 종교라는 의미다. 하느님을 위한 게 아니다. 하느님은 잘 살고 계시다. 우리가 해 드릴 게 없다.” ―김수환 추기경 곁에 오래 있었는데, 가장 기억나는 일은 무엇인가. “추기경님은 무엇보다 솔직한 분이었다. 항상 주변의 기대와 존경이 많았는데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힘들어하셨다. 그럼에도 그런 기대에 순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에서 평범하지 않고 놀라웠다. 추기경님의 유머 감각에 조금 도움을 드렸다. ‘고 신부, 뭐 재미있는 얘기 없나’는 말에 아이디어를 드리면 눈이 안 보이도록 환하게 웃으시곤 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매일 기사 쓰느라 힘들었다. “명동 주임신부로 미사와 광화문 시복식을 준비하던 저는 죽었다(웃음). 힘들기보다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신자들 많이 오지 않냐? 힘들어하지 말고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정말 잘해야 한다’는 교황님 당부가 기억난다.” ―앞으로 계획은…. “엄연한 죽음이 내게 멀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초읽기에 몰리기 전에 잘 준비해야 한다. 영적으로 깊어져 하느님을 체험하고 신자들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겨운 이들을 위한 조언을 들려 달라. “도쿄의 신자들에게 지금은 ‘코로나 박해이면서 코로나 피정 시기’라고 했다. 힘들다고 주저앉을 게 아니라 이웃을 돕자고 제안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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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티칸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

    김대건 신부(1821∼1846)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가 21일(현지 시간) 로마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유흥식 대주교(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주례로 봉헌됐다. 이날 성직자와 평신도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사에서 유 대주교는 ‘성(聖) 김대건 신부님,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강론했다. 그는 “성 김대건 신부님은 25년 26일이라는 짧은 지상의 삶을 통해 인간의 참된 삶의 가치를 보여주셨다”며 “엄격한 유교 신분사회에서 인간 존엄과 평등 사상,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한마디로 믿음과 삶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유 대주교는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염원과 교황 방북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이날 미사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념 메시지가 낭독됐다. 교황은 메시지에서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이 미움을 이기기에 선이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기쁜 희망으로 드러내 보여줬다”고 밝혔다. 미사는 약 1시간 동안 한국어로 진행됐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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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커피로 블렌딩한 인문학 수업

    2018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간 353잔에 이른다. 하루 한 잔만 마시자고 작심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은 커피에 푹 빠져 있다. 이 책은 커피에 얽힌 국내외 역사와 커피 산업 트렌드를 담고 있다. 교육학자 출신으로 ‘커피 인문학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신간에서 커피를 중심으로 역사와 경제, 인문학을 흥미롭게 블렌딩하고 있다. 아라비카(arabica)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품종이다. 1753년 생물학자 린네는 저서 ‘식물의 종’에서 커피나무를 뜻하는 ‘코페아(coffea)’에 아라비카라는 별칭을 붙였다. 20세기 후반까지 커피의 고향은 아라비아, 구체적으론 예멘으로 알려졌지만 생물학 연구에 의해 에티오피아 카파 지역이 커피나무 원산지로 공인됐다. 모카 하면 달달한 커피가 떠오르는데 예멘 남부의 항구 이름이기도 하다. 17세기는 모카항에서 유통된 예멘 커피의 전성기였다. 18세기 초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경매시장에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생산, 가공된 자바 커피가 등장했다. 인도네시아를 차지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오랜 노력 끝에 모카로 상징되는 예멘 커피의 독점시대를 끝낼 수 있었다. 커피는 단순한 상품에 그치지 않았다. 17세기 유럽 각지에 들어선 커피하우스는 ‘불온사상의 온상’으로 불리며 시민혁명을 이끈 첨병 역할을 했다. “커피는 많은 바보들이 일시적으로나마 현명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몽테스키외의 우스갯소리가 나온 배경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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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흥식 대주교, 21일 로마서 김대건 탄생 기념미사 봉헌

    유흥식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김대건 신부(1821∼1846·사진) 탄생 200주년 기념 미사를 진행한다. 1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이 미사는 김대건 신부 탄생일인 21일 오후 3시 반(현지 시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유 대주교 주례로 봉헌되며 교황청립 로마 한인 신학원, 로마 한인 성당, 로마 유학 사제단, 이탈리아 한인 수도자 모임, 주교황청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교황청 성직자성은 최근 홈페이지를 통해 유 대주교의 장관 취임 소식을 전한 바 있다. 주교회의는 21일 전국 1750여 개 성당에서 기념 미사가 봉헌되며 교구별로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는 인형극 ‘가회동 이야기’, 연극 ‘마흔 번째 밤’, 콘서트 ‘스물두 번째 편지’, 창작 뮤지컬 ‘우리 벗아’를 10월 중 기념 공연으로 개최한다. 대전교구는 22일까지 솔뫼성지 일대에서 기념행사를 연다. 20일 기후위기―감염병 종식을 위한 미사, 22일 김대건 신부 기념 뮤지컬 ‘마지막 편지’ 공연이 예정돼 있다. 수원교구는 제14회 교구 창작성가제 주제를 ‘나는 천주교인이오!’로 정하고 김대건 신부의 삶과 영성을 표현한 창작곡을 공모할 예정이다. 참가 신청은 30일까지이며 본선은 11월 20일 진행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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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닦은 불심과 사회복지 활동, 이게 제 ‘소림무술’이죠”

    서울 종로구 세검정에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사찰이 있다. 좁고 가파른 진입로를 놓치면 지나치기 쉽다. 이름은 소림사(少林寺). 기록에 따르면 태조는 조선을 건국하기 전 이곳의 한 굴에서 5일간 기도했으며 왕위에 오른 뒤 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처음에는 소림굴로 불리다 중창 뒤 소림사가 됐다. 절 이름은 중국에 선종을 전한 달마 대사가 9년 동안 면벽좌선(面壁坐禪)했다는 숭산 소림사에 따온 것이다. 소림사 하면 무술을 떠올리지만, 이곳의 주지는 비구니 정관 스님(60)이다. 1984년 혜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그는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박사 1호로, 현재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장을 맡고 있다. ― 창건 기록이 흥미롭다. “이곳은 불심(佛心)이 깊었던 태조의 기도처였다. 창건 당시 소림사가 무술보다는 기도와 수행의 명소로 이름이 높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주지살이는 어떤가. “지난해 11월 주지로 부임했는데 도량 정비를 위해 할 일이 많다. 지금 약사전이 있는 큰 굴과 그 위에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굴이 있다. 창건 당시 소림굴이 정확히 어느 곳인지 검증해 사찰의 역사를 정리하고 알릴 계획이다.” ― 그래도 소림사 주지인데, 무술은…. “굳이 말하자면 부처님 제자로 평생 갈고 닦은 불심과 사회복지가 나의 무술이다(웃음).” ― 출가 발심(發心)은 어떤 계기가 있나. “고교 시절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즐겨 읽었고, 운문사의 공부하는 스님들에 관한 책을 읽다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 절에 가면 시 쓰고 사색하는 그런 삶을 사는 줄 알았다.” ― 안 그랬나.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아침 예불을 시작으로, 일과 공부로 하루 종일 쉴 새가 없었다. 군불 때기, 밥 짓기, 풀빨래…. 남편 없는 시집살이였다(호호).” ― 사회복지 분야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운문사 강원을 마친 뒤 중앙승가대에 진학했다. 불교학과와 사회복지학과가 있었는데 불교는 평생 공부하는 것이고, 사회복지는 이때 아니면 못하겠다 싶어 선택했다.” 2004년 경기 부천 원미노인복지관 운영으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정관 스님은 2007년부터 15년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장을 맡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2000명이 이용할 정도로 활발하게 운영됐다. ‘플러스 카페’는 4호점까지 내며 어르신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종로&장금이’는 장 담그기 사업으로 인기를 끌었다. ― 노인복지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비결은 무엇인가 “흔히 정치 1번지라는 종로를 ‘노인복지 1번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일정한 돈을 벌고, 당당하게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신(新)노인이 되어야 한다. 일은 안하고 잔소리하면서 대우만 받으려는 ‘꼰대형’ 노인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 종로&장금이는 좋은 아이디어 같다. “노인들은 전통음식의 장인(丈人)이다. 이들의 노하우를 살린 된장과 고추장 등을 지역 사회에 알리고 브랜드화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코로나19로 내년으로 연기된 ‘장(醬)문화축제’와 함께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되는 레시피 북도 발간할 계획이다.” ― 코로나19로 대면 행사가 어렵다. “노인복지 분야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스포츠댄스와 사물놀이 강좌, 컴퓨터 교육과 유튜브 활용하기, 남성 어르신 음식 만들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 좋아하는 경구를 들려 달라. “삼일수심 천재보(三日修心 千載寶) 백년탐물 일조진(百年貪物 一朝塵), 삼 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고 했다. ‘초발심자경문’ 중 스님이 되어 처음으로 지켜야 할 덕목 중에 나오는 구절인데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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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눈보라에도 꿋꿋한 매화처럼 어려움 이겨내리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목회자이자 시인으로 활동 중인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59·사진)가 최근 출간한 11번째 시집 ‘외로운 선율을 찾아서’에 실은 시 ‘꽃과 예수’의 일부다.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과 예장 합동 총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바쁜 목회자의 삶 속에서도 시를 놓지 않았고 윤동주문학상 천상병귀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번 시집에는 팬데믹 시대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시들을 담았다. 특히 사군자를 주제로 한 시들은 현대적 이미지와 서정을 녹여냈다. 소 목사는 “우리 모두 코로나로 힘들지만 겨울 눈보라 속에서도 피어나는 매화가 되고 푸른 순정을 잃지 않는 난초가 되었으면 한다. 달빛 향기를 머금은 국화, 고결한 절개와 지조를 간직한 대나무가 돼 오늘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을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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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척교회라면 이웃과 동행해야죠”

    경기 고양시 덕양대로의 한 상가 2층에 작은 교회가 있다. 오솔길교회라는 이름처럼 자그마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손바닥보다 조금 큰 십자가가 보이고 긴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다. 약 50m²(15평)의 공간이다. 규모는 작지만 이 교회는 뮤지컬 배우와 성악가가 참여하는 음악회와 그림 그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한때 어린이 야구단까지 운영했다. 6일 이 교회의 ‘숲길지기’를 자처하는 김범기 목사(49)를 만났다. 그는 부목사 시절이던 2015년, 43세의 한창 나이에 갑자기 파킨슨병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2017년 4월 9일 교회를 개척했다. 그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 교회가 아담하다. “처음 오는 분들 중 이곳은 사무실로 생각하고, 본당(예배당)은 어디에 있냐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작은 공간을 다시 예배당과 학생들을 위한 공부 공간으로 나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는 40명 넘게 함께한 적도 있다.” ―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파킨슨병 판정을 받기 석 달 전 셋째인 막내가 태어나 앞이 더 캄캄했다. 불치병에 걸린 부목사를 받아주는 교회는 없었다. 2년 동안 교회 일을 할 수 없어 교단법에서 허용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 어떻게 교회 개척을 결심했나.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며 목회에 대한 갈망이 더욱 깊어졌다. 비록 아픈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개척의 길로 인도하신다면, 이런 몸이라도 쓰겠다고 하신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 섰다.” ― 교회 개척은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 “개척교회 3년 생존율이 2%라고 한다. 하지만 아프고 나서는 무서운 게 없더라. 오솔길교회도 몇 년은 우리 가족만 예배드릴 각오를 했는데 지금 신자가 15명이나 된다. 교계에서는 이걸 ‘기적’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그는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교회 유머’를 들려줬다. “절대로 울지 않는 코끼리가 있는데 울리면 1만 달러를 주겠다고 합니다. 누군가 나와 어떤 얘기를 했더니 코끼리가 울었다고 해요. 그게 목사가 교회 개척한 얘기랍니다. 또 하나, 절대 앞발을 들지 않는 코끼리가 있어요. 누군가 ‘나랑 같이 교회 개척하자’고 하니 코끼리가 앞발을 번쩍 들더랍니다. 두 손 든 거죠. 하하.” ― 교회 규모에 비해 큰 음악회와 그림 그리기 대회 등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왔다. “교회는 사회와 동행해야 한다. 전국에 5만여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5만 1번째 교회가 되고 싶지 않다. 노을음악회와 그림대회, 지역신문 발행 등 우리가 한 일은 모두 이웃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과거 교회가 먹을 것을 나눴다면 이제는 정보와 문화를 나눠야 한다.” ― 올해 음악회는 어떻게 진행하나. “29일 교회가 있는 아파트 단지 특설무대에서 오페라 ‘마술피리’ ‘라보엠’, 뮤지컬과 영화음악의 하이라이트를 공연한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져 많은 이웃들이 공연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양=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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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랍 세계, ‘그게 그거‘ 아니냐고요? 실례입니다

    “선생님, 사모님께 음식 잘 먹었다고 전해 주세요.” “식사에 대한 감사 인사는 나에게 하면 되는 거야. 내 처에 관한 이야기나 이름조차 네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어.” 저자가 예멘의 한 가정에서 식사 대접을 받은 뒤 겪은 일화다. 따끔한 조언이 이어졌다. “이곳은 네가 이전에 있었던 이집트가 아니라 예멘이야. 이집트는 잊고 이곳의 문화를 익히도록 해.” 저자는 2003년 이집트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유학과 기업 활동을 통해 18년 동안 아랍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아랍이라는 단어에서 흔히 떠올리는 건 이슬람교, 석유, 전쟁 등이다. 이런 고정관념을 걷어내야 아랍인들이 만든 오랜 역사와 문화, 사회의 실체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이집트, 예멘,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5개국 편으로 구성돼 있다. 같은 이슬람 국가라도 하나의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아랍 지역 22개 국가는 종파와 부족, 심지어 가문에 따라 문화와 관습이 다르다. 저자는 이방인 눈으로 볼 때 놀라웠던 광경을 통해 이런 차이를 알려준다. 예멘에서 출발한 비행기에서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가리는 ‘니캅’을 착용하고 있던 여성들이 두바이에 도착하자마자 이를 벗어 가방에 구겨 넣은 것.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랍 여성들이 두르는 천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가림 정도와 색깔 등에 따라 히잡, 차도르, 부르카 등 다양하며 안 쓰는 지역도 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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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찰에 들어선 순간 조급함 사라지고 부처님이 부리는 마법이 시작됩니다”

    옛날 옛적 동해 용왕의 아들이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한 사찰에서 멈춘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도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 경남 밀양 만어사(萬魚寺)에 얽힌 전설이다. 최근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담앤북스)를 출간한 배종훈 작가(46·사진)는 그의 사찰 스케치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으로 만어사를 꼽았다. 그는 ‘당신을 기다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의 작품과 함께 “부처님이 오시는 날, 그날이 오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용왕의 아들도, 물고기도, 우리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썼다. 이 책에는 경기 파주 보광사, 충남 서산 개심사와 부석사, 전남 화순 운주사와 만연사, 강원 양양 낙산사, 경북 영덕 장육사 등 사찰 29곳의 풍경과 기록들이 실려 있다. 중학교 국어 교사이기도 한 배 작가는 틈틈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기록해온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여행 작가, ‘템플 스케처(temple sketcher)’로 활동하고 있다. 템플 스케처는 사찰과 관련한 드로잉 콘텐츠와 에세이를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는 2019년 초부터 그림 도구와 카메라를 챙겨 매달 한 번씩 사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떠났다. “책에 언급된 사찰들은 서너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어 익숙한 곳들이다. 사찰들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그곳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이 거의 없는 사찰의 내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한때 미술과 교직을 두고 진로를 고민했던 그는 따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다. 2004년 교사가 되기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만화로 옮긴 ‘넥타이 휘날리며’가 첫 책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림은 반복할수록 좋아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작품을 올려 독자들과 소통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앞으로 6년에 걸쳐 사찰 100곳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사찰 여행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한다. “조급한 마음은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사라지고 없습니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평소 살펴보지 않던 나무와 바위, 흙, 그리고 작은 벌레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 어쩌면 부처님이 부리는 마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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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평생 종단의 혁신 위해 정진했던 종문의 사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내고 불교의 사회 참여에 크게 기여한 월주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26일 전북 김제 금산사에서 거행됐다. 영결식에서는 불교식 의례 뒤 월주 스님의 제자이자 장의위원장인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영결사와 종정 진제 스님의 법어, 각계 인사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원행 스님은 “1961년 금산사에 주지로 부임한 후 60여 년간 손수 어루만지시던 돌덩이와 초목은 지금도 제자리인데 대종사는 지금 어디에 계시냐”며 “일평생 종단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정진했던 ‘종문(宗門)의 사표(師表)’였기에 남기신 자취가 너무도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몸소 사바세계에 뛰어들어 중생과 함께하는 삶을 실천했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에는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대표 스님들, 천주교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오우성 교정원장, 손진우 성균관장, 안숙선 명창 등 각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방역지침에 따라 영결식장에 입장하지 못한 스님과 신도 등 500여 명은 무더위 속에도 식장 밖에서 대형 화면을 통해 추도 장면을 지켜봤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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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방한 기린 고인돌… 순교자 믿음으로 핀 ‘신앙의 꽃’

    20일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 옆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이 완공됐다. 이곳은 지상 1층의 건물면적이 4752.5m² 규모로 주변에 광장과 산책로, 야외전시장 등이 있다. 솔뫼성지는 한국 최초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2014년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기도 했다. 천주교대전교구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음 달 14∼22일 ‘기억과 희망’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24일 찾은 이곳에서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고인돌 형상의 입구다. 특히 윗부분을 이루는 돌은 가로 10m, 세로 1.5m 크기에 무게가 10t에 이른다. 이 돌에 얽힌 사연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를 찾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황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던 대전교구는 고민에 빠졌다. 검소하기로 소문난 교황의 성향을 감안하면서도 방문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마땅한 선물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론은 반석(盤石)과 3만 개의 묵주였다. 반석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축성(祝聖·사람이나 물건을 하느님께 봉헌해 성스럽게 하는 행위)을 받은 묵주로 사제와 신자들이 교황을 위해 매일 기도하겠다는 의미였다. 초대 교황의 이름 베드로는 ‘돌, 바위’라는 뜻의 라틴어 페트라와 관련이 있다. 역대 교황들은 교회의 반석이자 베드로의 후계자로 불린다. 문제는 돌이었다. 충남 서산의 한 채석장에 거대한 돌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그 돌을 보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운반비를 뺀 돌 가격만 1억 원이었다. 채석장 대표와 성지 전담 이용호 신부의 신경전이 이어졌다. 2주 뒤 이런 대화가 오갔다. “큰 돌과 나무는 따로 임자가 정해져 있다는데….” “신부님, 좋은 꿈 꾸셨죠. 5000만 원에 드리죠.” 하지만 이조차도 빠듯한 교구 예산으로는 넘볼 수 없는 가격이었다. 다시 2주 뒤 연락이 왔다. “돌 주인은 신부님이 아니라 교황님이에요. 돌은 3000만 원에 드리고, 운반비도 여기서 부담할게요.” 그 돌에 무언가를 새기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작업하는 이들은 “교황님이 축성한 돌을 누가 만지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돌을 세로로 높이 세울 것도 고려했지만 우리 문화에 익숙한 고인돌 스타일이 낙점됐다. 인근 덕산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한티고개에 묻혀 있던 바위 50여 개도 야외 공간에 조성돼 있다. 이 신부는 “한티고개는 천주교 박해시대 순교자들이 지나간 길”이라며 “반석과 돌들은 순교자의 굳건한 믿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복합예술관 지붕은 12개의 크고 작은 들장미 꽃잎이 겹쳐 있는 모습이다.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사목 표어인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박해로 인한 피와 땀이 오히려 신앙의 꽃을 피워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건설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부는 미사를 올리는 성전과 원로 조각가 이춘만의 이름을 딴 미술관, 상설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복합예술관 곳곳에 이 작가의 브론즈를 소재로 한 작품 4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성전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허명자 작가가 작업했다. 이 신부는 “좋은 건축물에는 사람이 모인다”며 “이곳을 찾은 이들이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당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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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주스님 자비행 잊지 않을것” 추모 발길 이어져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입적한 월주 스님 빈소가 있는 전북 김제 금산사를 찾아 조문했다. 23일 문 대통령은 삼배 후 “산중 수행에만 머물지 않고 늘 중생들 고통에 함께했던 큰 스님의 보살행, 자비행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1994년 종단 개혁 과정에서 월주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며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라)의 삶을 실천한 분”이라고 추모했다. 월주 스님의 제자로 장의위원장을 맡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출가 초기 은사의 말씀이 평생의 가르침”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부처님 법(法)에 귀의하고, 부처님 법에 찬탄하며, 부처님법에 참회하고 발원(發願)하라.”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화엄사 조실 명선 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도 빈소를 찾았다. 야권 대선 주자 중에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처음으로 월주 스님을 조문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 전 원장은 이날 합장한 뒤 고개를 숙여 반배를 올렸다. 김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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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대통령, 월주스님 빈소 조문…“자비행 잊지 않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입적한 월주 스님 빈소가 있는 전북 김제 금산사를 찾아 조문했다. 23일 문 대통령은 삼배 후 “산중 수행에만 머물지 않고 늘 중생들 고통에 함께했던 큰 스님의 보살행, 자비행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1994년 종단 개혁 과정에서 월주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며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일심의 근원으로 돌아가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라)의 삶을 실천한 분”이라고 추모했다. 월주 스님의 제자로 장의위원장을 맡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출가 초기 은사의 말씀이 평생의 가르침”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부처님 법(法)에 귀의하고, 부처님 법에 찬탄하며, 부처님법에 참회하고 발원(發願)하라.”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 해인사 방장 원각스님, 화엄사 조실 명선 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스님,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구룡사 회주 정우스님,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도 빈소를 찾았다. 야권 대선 주자 중에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처음으로 월주 스님을 조문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최 전 원장은 이날 합장한 뒤 고개를 숙여 반배를 올렸다. 김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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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 사회참여 이끈 월주 스님 입적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내고 ‘깨달음의 사회화’를 실천해온 월주 스님(사진)이 22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 만월당에서 86세로 입적했다. 폐렴 치료 중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전북 정읍시에서 태어난 월주 스님은 금오 스님을 은사로 19세에 출가해 금산사, 개운사, 영화사 주지를 지냈다. 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 1994년 제28대 총무원장,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1998년 종단 행정에서 물러난 뒤 고(故) 김수환 추기경, 고 강원용 목사와 함께 활동하며 종교계 화합과 사회 활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 나눔의집 이사장, 지구촌공생회 대표 등을 맡았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오전 10시 금산사에서 거행된다. 분향소는 금산사와 서울 조계사, 봉은사, 영화사 등에 마련됐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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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구석진 곳이 내 수행현장”… 세상과 함께하는 불교 꿈꿔

    “나의 수행 현장과 염화실(拈華室·조실이나 방장 스님이 거처하는 방)은 사회와 지구촌의 구석진 곳이다. 나는 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22일 입적한 월주 스님은 2012년 동아일보에 53회에 걸쳐 연재한 회고록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언급했다. 세상과 함께하는 불교를 꿈꿔 온 월주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이었다. 195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1961년 26세 때 금산사 주지가 됐다. 조계종 본사(本寺) 주지로는 최연소였고, 지금도 바뀌지 않은 기록이다. 1950, 60년대 비구와 대처승의 대립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월주 스님은 불교사 격랑의 한복판에 줄곧 서 있었다. 정치권력에 의한 불교계 최대 수난인 1980년 10·27 법난(法難) 때는 종단 행정의 책임자인 제17대 총무원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날 오전 당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됐고, 가사와 장삼 대신 푸른 수인복을 입고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신군부의 이른바 불교정화 작전명은 ‘45계획’이었다. 조계사 주소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를 딴 것이다. 이후 월주 스님은 미국 등지에 머무르며 한국 불교의 나아갈 길을 고민한 끝에 깨달음의 사회화를 불교의 시대적 책무로 설정했다.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 연임 강행 끝에 종단 안팎의 반발로 사퇴한 뒤 그해 치러진 선거를 통해 월주 스님은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복귀했다. 총무원장으로 있던 1995년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선언했다. 이후 종단 차원에서 노동과 인권, 복지, 환경, 통일 사업에 나섰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설립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강원용 목사와 함께 금 모으기와 실업 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종교계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종교 간 화합이자 자신이 속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사회적 실천의 상징이 됐다. 160cm가 조금 넘는 키에 둥그런 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스님은 한때 80개가 넘는 직함을 가졌다.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내게는 ‘제2의 출가’였다. ‘나’의 좁은 우물을 벗어나 모든 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 2004년 국제개발협력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던 시기에 대한 회고다. 이 단체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5개국에 2000개가 넘는 우물을 팠고, 네팔과 라오스 등 8개국에 60개가 넘는 학교를 준공했다.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그릇은 ‘사람’이다. 은사인 금오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의 큰 봉우리였던 탄허, 청담, 성철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서옹 서암 월하 혜암 스님 등 역대 종정 스님과 고산, 법장, 정대, 지관 스님 등 역대 총무원장들과는 불교 개혁 과정에서 같은 배를 타기도 했고, 때로 불가피하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해 메모 없이도 시점까지 언급하며 특정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종교계뿐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국악인 안숙선 씨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도영(전 조계종 포교원장), 도법(실상사 회주), 원행(조계종 총무원장), 성우(동국대 이사장), 일원(금산사 주지) 스님이 월주 스님의 제자들이다.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 토각귀모(兎角龜毛).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들은 깨달음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토끼의 뿔을 찾아다녔다는 월주 스님은 이런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천지본태공(天地本太空) 일체역여래(一切亦如來) 유아전생애(唯我全生涯) 즉시임종게(卽是臨終偈) 할(喝!)·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 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월주 스님 이력△1935년 전북 정읍 출생△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 계사로 비구계 수지△1961∼71년 금산사 주지△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1994∼98년 조계종 제28대 총무원장△1998∼2003년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위원장△1998∼2020년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 이사장△2004년 지구촌공생회 대표△2010년 실상사, 2012년 금산사 조실 추대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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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계 사회 참여 이끈 월주스님 입적 “내 모든 생애가 임종게”

    “나의 수행 현장과 염화실(拈華室·조실이나 방장스님이 거처하는 방)은 사회와 지구촌의 구석진 곳이다. 나는 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22일 입적한 월주 스님은 2012년 동아일보에 53회에 걸쳐 연재한 회고록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언급했다. 세상과 함께 하는 불교를 꿈꿔온 월주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이었다. 195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1961년 26세 때 금산사 주지가 됐다. 조계종 본사(本寺) 주지로는 최연소였고, 지금도 바뀌지 않은 기록이다. 1950, 60년대 비구와 대처승의 대립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월주 스님은 불교사 격랑의 한복판에 줄곧 서 있었다. 정치권력에 의한 불교계 최대 수난인 1980년 10·27 법난(法難) 때는 종단 행정의 책임자인 제17대 총무원장 직을 맡고 있었다. 그날 오전 당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됐고, 가사와 장삼 대신 푸른 수인복을 입고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신군부의 이른바 불교정화 작전명은 ‘45계획’이었다. 조계사 주소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를 딴 것이다. 이후 월주 스님은 미국 등지에 머무르며 한국 불교의 나아갈 길을 고민한 끝에 깨달음의 사회화를 불교의 시대적 책무로 설정했다.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 연임 강행 끝에 종단 안팎의 반발로 사퇴한 뒤 그해 치러진 선거를 통해 월주 스님은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복귀했다. 총무원장으로 있던 1995년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선언했다. 이후 종단 차원에서 노동과 인권, 복지, 환경, 통일 사업에 나섰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설립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강원룡 목사와 함께 금 모으기와 실업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종교계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종교간 화합이자 자신이 속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 넘는 사회적 실천의 상징이 됐다. 160㎝가 조금 넘는 키에 둥그런 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스님은 한때 80여 개가 넘는 직함을 가졌다.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내게는 ‘제2의 출가’였다. ‘나’의 좁은 우물을 벗어나 모든 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 2004년 국제개발구호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던 시기에 대한 회고다. 이 단체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5개국에 2000개가 넘는 우물을 팠고, 네팔과 라오스 등 8개국에 60개가 넘는 학교를 준공했다.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그릇은 ‘사람’이다. 은사인 금오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의 큰 봉우리였던 탄허, 청담, 성철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서옹 서암 월하 혜암 스님 등 역대 종정 스님과 고산, 법장, 정대, 지관 스님 등 역대 총무원장들과는 불교개혁 과정에서 같은 배를 타기도 했고, 때로 불가피하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해 메모 없이도 시점까지 언급하며 특정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종교계 뿐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국악인 안숙선 씨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도영(전 조계종 포교원장), 도법(실상사 회주), 원행(조계종 총무원장), 성우(동국대 이사장) 일원(금산사 주지) 스님이 월주 스님의 제자들이다.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 토각귀모(兎角龜毛).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들은 깨달음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토끼의 뿔을 찾아다녔다는 월주 스님은 이런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천지본태공(天地本太空) 일체역여래(一切亦如來) 유아전생애(唯我全生涯) 즉시임종게(卽是臨終偈) 할(喝!)·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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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 입적…‘깨달음의 사회화’ 헌신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두 차례 지낸 월주 스님(사진)이 22일 오전9시 45분 전북 김제 금산사 만월당에서 86세로 입적했다. 월주 스님은 최근 폐렴 치료를 위해 입원했으나 갑작스럽게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월주 스님은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금산사, 개운사, 영화사 주지를 지냈으며 1980년 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 1994년 종단 개혁 당시 제28대 총무원장, 조계종 원로의원 등을 역임했다. 월주 스님은 ‘깨달음의 사회화’를 실천했으며 경실련 공동대표와 우리민족서로돕기 대표,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위원장, 나눔의집 이사장, 지구촌공생회 대표 등을 맡았다. 국내외에서 활발한 나눔과 봉사 활동을 펼쳐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모란장을 수훈하고 만해대상, 대원상, 조계종 포교대상 등을 받았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엄수되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오전 10시에 거행된다. 빈소는 금산사, 서울 조계사와 영화사에 마련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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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과 달라이라마가 주인공… 소설 ‘수상한 휴가’ 국내 출간

    교황과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의기투합해 비밀 휴가를 떠난다. 이들이 실종됐다고 생각한 종교계는 발칵 뒤집힌다. 현실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출간된 소설 ‘수상한 휴가’(오후의 서재)의 발칙한 상상이다. 미국 작가 롤런드 메룰로는 ‘부처와 아침을’ ‘신과 함께 한 골프’ 등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수상한 휴가’는 여행기 형식이다. 교황과 달라이라마는 장발에 선글라스, 수염으로 변장한 채 평범한 일상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떠난다. 이들은 도로에서 호객하는 창녀, 무솔리니 추종자들, 퇴역 영화배우, 자연재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난다. 유머 속에 울림이 있는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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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福 구하는 불교 벗어나 자신의 참모습 찾는 ‘불바보’ 돼야”

    1987년 어느 날 새벽, 우유 배달로 학비를 벌던 청년의 자전거와 택시가 부딪쳤다. 우유팩과 함께 길바닥에 쓰러진 청년은 급히 다가온 택시 기사에게 “괜찮으니 그냥 가시라”고 했다. 뜻밖의 사고 뒤 그의 머릿속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경북대 행정학과 동기생들이 한창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그해 가을 그는 부산 범어사 청련암을 찾았고, 3개월 뒤 선무도(禪武道) 대가로 알려진 양익 스님(2006년 입적)을 은사로 출가했다. 1995년 태백산에 지은 삼성암에서 10년간 수행을 이어갔다. 산에서 내려온 그가 2009년 부산 해운대에 창건한 대광명사의 신도는 그간 10여 년 사이 3000여 명으로 늘었다. 대광명사 주지이자 2017년 서울에 ‘지금선원’을 개원한 목종 스님(60)의 출가 스토리다. 지하철과 철도 역사 게시판을 통해 불법(佛法)을 전하는 ‘풍경소리’ 대표로 6월 취임한 그를 12일 서울 강남구 선원에서 만났다. ―서울살이는 어떤가. “매주 월, 화요일에는 서울, 나머지는 부산에 머무르고 있다. 서울살이도 5년째 접어드니 지낼 만하다.” ―부산에서 서울 포교에 나선 이유는…. “부산은 불교세가 강해 포교 여건이 좋은 편이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이라는데 불교의 입장에서는 상황이 좋지 않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불교가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 나를 포함한 출가자들의 책임이 크다. 부처님의 귀한 법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세간에 비친 출가자들의 모습도 바람직하지 못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것 같다.”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신뢰감을 쌓기 위해서는 자주 만나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았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후 사람 구경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불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문제다.” ―어떤 고정관념인가.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열심히 기도하고 공덕을 쌓아 복(福)을 구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지만, 좋은 마음이나 좋은 물건을 얻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불교 공부의 목적은 자신의 마음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공부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나. “사람들은 즐겁다, 괴롭다 하며 그 마음을 ‘나’로 착각한다. 몸도 생로병사를 겪는데 몸은 변화하지만 주인은 변함이 없다. 그런 마음과 몸을 나로 착각하니 끊임없이 무언가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사고와 행동의 중심 아닌가. “모두 경험하겠지만 마음은 하루에도 수천 번 바뀌지 않나. 마음은 수시로 바뀌지만 그 마음의 주인인 나는 변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조건이든 변하지 않는 진여자성(眞如自性), 나의 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없음의 경지인가.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으니 구할 필요가 없다. 내 마음, 내 몸이 애타게 구하는 것이 허상임을 알아야 한다.” ―선원의 이름을 ‘지금선원’이라고 했다. “그 깨달음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따로 나중에 쌓아서 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불바보’(불교바로보기) 운동과도 연결되나. “유튜브 등을 보니 무속인이나 신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불교를 너무 자기 식대로 이해하고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 불교를 바로 알리기 위해 유튜브를 통해 ‘불바보TV’를 운영하고 있다. 불교의 핵심은 견성(見性), 깨달음에 있고, 부처님이 오신 이유도 그 깨달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 불바보가 되자. 하하.” ―풍경소리의 포교 활동은 어떻게 하나. “전국에 있는 3000개 정도의 역사에 경전이나 좋은 글을 전시한다. 모든 작업이 봉사와 후원을 통해 이뤄진다. 앞으로 일반 공모를 통해 널리 알릴 계획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202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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