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란

한애란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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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1년차 기자입니다.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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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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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동결이겠지? FOMC 앞둔 뉴욕증시 1%대 상승[딥다이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미국 증시는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30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모두 1%대 상승을 기록했죠. 다우지수 +1.58%, S&P500 +1.20%, 나스닥 +1.16%.투자자 관심은 이번 주 나올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집중됩니다. 우선 일본은행은 오늘(31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데요. 일본은행이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의 상한선(현재 1.00%)을 올릴지가 관심거리입니다. 만약 상한선을 올린다면 심각한 약세에 빠진 엔화 가치가 반등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반대로 유지한다면 엔화 가치는 곤두박질칠 수 있죠.11월 1일(현지시간)엔 연준의 통화정책이 발표됩니다. 모두가 동결을 예상하고 있죠. 9월 이후 시장금리가 급등하면서 이미 기준금리를 올린 거나 다름없는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들은 최근 두 달의 시장금리 급등이 이미 0.25%포인트씩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에 맞먹는다고 설명합니다. BNY멜론의 샤믹 다르 이코노미스트는 “채권시장이 연준이 원하는 긴축정책을 제공하고 있다는 건 연준이 좀 더 신중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합니다.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우려는 다소 누그러졌습니다.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3.45% 하락한 82.59달러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하마스가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전 수준과 거의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 침공이 더 넓은 지역 분쟁으로 번지진 않는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전 메릴린치 트레이더 톰 에세이는 “이스라엘이 주말 사이 가자지구로 병력을 이동시켰지만 이번 작전은 아직 우려만큼 크지 않다”면서 “지정학적 불안을 약간 줄이는 데 도움 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이날 기술주는 대체로 주가가 상승했습니다. 목요일 장 마감 뒤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애플 주가는 1.23% 올랐죠. 지난주 좋은 실적을 발표한 아마존 역시 3.89%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테슬라는 그렇지 못했는데요. 주가가 4.8% 급락해 197.36으로 마감했습니다. 지난 5월 26일 이후 가장 낮은 종가인데요. 테슬라에 배터리를 납품하는 일본 파나소닉이 테슬라 판매 부진을 이유로 배터리 생산량을 줄인 것이 주가 하락을 부추겼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투자전략가들은 연말 전망치에 대해 좀 더 신중해졌는데요. 대표적인 월가 강세론자인 오펜하이머의 최고투자전략가 존 스톨츠퍼스는 당초 4900이었던 S&P500 연말 전망을 4400으로 낮췄습니다. 그는 “8월 이후 석 달 동안 발생한 주가 조정 현상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면서도 지정학적 위험과 금리 우려 탓에 지수가 연말까지 기존 예상치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전망을 수정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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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시대 종말이라며? 빅 오일은 왜 M&A 하나[딥다이브]

    ‘석유 시대의 종말이 다가온다’라는 이야기 나온 지 오래됐죠. 최근 이런 관측을 무색하게 만드는 깜짝 소식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미국의 석유 공룡,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각각 석유·가스 생산회사와의 초대형 M&A를 발표했죠.재생에너지 확대, 전기차 보급으로 화석연료 수요가 곧 꺾일 거라는 예측 따윈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데요. 도대체 석유시대는 지금 어느 국면에 있는 걸까요. 저물어가나요, 아직 창창한가요. 석유 메가딜과 엇갈리는 석유시장 전망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2030년 피크 오일’ 예측한 IEA글로벌 석유업계에 모처럼 초대형 딜이 나왔습니다. 이달 11일 엑손모빌이 셰일가스 시추업체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를 595억 달러(약 80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고요. 이어 23일 경쟁사 셰브론이 석유·가스 생산업체 헤스를 530억 달러(약 71조원)에 인수한다고 공개했습니다. 1998년 미국 엑손과 모빌사의 합병(803억 달러) 이후로 25년 만에 석유업계 사상 가장 큰 딜 1, 2위라고 합니다.엑손모빌과 셰브론은 지난해 기록적인 수익을 올려 현금이 넘치는 거대 기업입니다. 최근에도 국제유가 상승 덕을 톡톡히 보고 있고요. 그럼에도 이번 M&A 소식은 시장을 놀라게 했는데요. 거대 석유기업들이 석유시장의 중장기적 성장에 베팅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니다.M&A의 의미를 살피기 전에 석유시장 전망부터 따져볼까요. ‘피크 오일(Peak Oil)’이란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석유생산량이 최대치에 도달해 꺾이기 시작하는 시점을 일컫는 용어인데요. 이 이론을 만든 미국 지질학자 킹 허버트는 1974년 “세계 석유생산량이 1995년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석유시대는 여전히 번성 중인데요.하지만 그 시점을 계속 늦춰잡고 있을 뿐, 피크 오일 전망은 여전히 나옵니다. 지금은 석유생산량 대신 석유 수요를 기준으로 정점을 계산한다는 게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죠. “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듯, 석유시대도 석유가 고갈되기 전 종말을 고할 것”이란 중동 석유왕 아흐메드 자키 야마니(전 사우디 석유장관)의 유명한 발언이 떠오릅니다.국제에너지기구(IEA)는 24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전 세계 화석연료 수요가 정점을 치는 시점을 2030년으로 전망했습니다. 전기자동차 보급이 빠르게 늘어나고, 각국이 청정에너지를 늘리고 있다는 게 전망의 근거이죠. 다만 수요 위축은 서서히 진행될 걸로 내다봤습니다. 2020년대 후반 하루 최대 1억200만 배럴까지 늘어난 석유 소비가 2050년쯤엔 9700만 배럴로 감소한다는 예측입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보고서 발표 전인 9월 FT 기고문에서 “끝이 없어 보이는 화석연료 성장의 시대가 10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설명했죠. ‘석유 관련 예측의 표준’으로 여겨지는 IEA가 내놓은 전망이다 보니 상당한 무게가 실렸습니다.‘석유 소비 계속 는다’는 OECD하지만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전망은 완전히 딴판입니다. OPEC은 IEA 사무총장의 FT 기고문이 나오자 발끈해서 즉시 반박자료를 내기도 했는데요. 이어 9일 하이탐 알 가이스 OPEC 사무총장은 “2022년 하루 9960만 배럴인 석유수요가 2045년까지 계속 늘어나서 하루 1억1600만 배럴이 될 것”이란 OPEC의 예측치를 공식적으로 공개합니다. 유럽 각국이 ‘에너지 안보’를 중시하면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늦추고 있는 데다, 신흥국의 인구와 경제성장이 빨라지고 있다는 게 예측의 근거입니다. 전기차발 수요감소론에 대해서도 “전기화가 어려운 상업용 차량이 증가한다”며 정반대 시각을 드러냈죠.IEA와 OPEC이 석유종말론을 두고 한판 붙는 모양새입니다. 1970년대에 IEA 설립을 주도한 게 OPEC이란 점에서 아이러니하죠.석유업계 최고경영자들 역시 OPEC과 같은 입장인데요. 엑손모빌에 팔리는 파이오니어의 스캇 셰필드 CEO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IEA가 우리 제품에 대한 수요를 오해하고 있다”면서 “(IEA 예측에) 나는 동의하지 않고 메이저 업체와 OPEC,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는 “누가 제트연료(항공유)를 대체하나? 누가 석유화학 제품을 대체하나? 어떤 대안이 있나?”라고 반문했는데요.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 역시 FT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현실세계에 살고 있고, 실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본을 배분해야 합니다. 석유수요는 2030년 이후에도 계속 증가할 겁니다.”석유·가스 생산 늘리는 메이저들석유 메이저의 메가딜 역시 이런 낙관적 전망에 무게를 싣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 딜로 두 미국 석유기업은 든든한 먹거리를 확보했습니다. 엑손모빌은 파이오니어를 인수함으로써 석유·가스 생산량을 단숨에 20%나 늘리게 됐고요. 셰브론은 헤스를 사들이면서 ‘최근 10년간 발견된 유전 중 세계 최대’이라는 남미 가이아나 해안의 스타브록 광구 운영에 참여하게 됐죠.미국 석유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면, 유럽계 석유 메이저들은 다시 석유로 빠르게 유턴 중입니다. BP와 셸(영국), 토탈에너지(프랑스)는 2010년대 후반 들어 태양광·풍력 사업을 엄청 키워왔죠. 석유 회사가 아닌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기업을 잇달아 인수하며 공격적으로 투자해왔는데요. 그랬던 유럽계 기업들이 방향을 전환 중입니다. 왜냐. 화석연료에 비해 재생에너지가 돈이 안 되거든요.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가스값이 급등했죠.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곳을 찾느라 분주했고요. 반면 태양광·풍력 발전은 금리 인상과 각종 자재비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수익성을 높이고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선 석유시대에 좀더 오래 머무는 게 나은 선택이 된 거죠.셸은 올해 1월 새 CEO가 취임한 뒤 가스 생산량을 늘리기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지난달엔 북미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LNG 프로젝트를 탐색 중이라고 공개하기도 했죠. 토탈에너지 역시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2028년까지 생산량을 연 2~3%씩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재생에너지에 올인했던 BP도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는데요. BP는 2030년까지 석유·가스 생산량을 40%나 줄이겠다는 계획을 올 2월 수정해, 25%만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수익성 좋은 석유와 가스로 돌아가고 있습니다.통합의 물결은 이제 시작여기까지 보시면 ‘IEA 예측은 틀렸고, 석유시대 종말은 없는 건가’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만약 석유가 계속 번성할 거라면, 파이오니어와 헤스는 왜 기업을 판 거죠?블룸버그에 따르면 파이오니어는 엑손모빌에 단 9%의 프리미엄만 받고 지분을 넘겼습니다. 헤스 역시 셰브론에 매각되면서 챙긴 프리미엄이 10%에 불과하죠. 이전 25년 동안의 에너지 업계 M&A의 평균치(26.5%)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시장 전망이 좋다고 보기엔 너무 싸게 주식을 넘긴 셈입니다.‘왜 회사를 파느냐’는 투자자 질문에 헤스 창업자의 아들인 존 헤스 CEO는 “우리 주가가 꽤 올랐다”고만 답했습니다. 주가가 5년 동안 161% 상승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요. 하지만 석유·가스 수요가 계속 늘어서 이 사업이 앞으로도 대박 날 거라고 봤다면 지금 타이밍에 팔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이를 두고 FT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셰브론과 엑손모빌의 막대한 지출은 석유시대의 연장이 아니라, 에너지 불확실성이란 새로운 시대를 반영한다.’ 거대 기업들이 미래를 밝게 봐서가 아니라, 불확실하다고 보고 일단 몸집을 키워 방어에 나서고 있다는 거죠. 경쟁사보다 더욱더 싸게 석유를 생산할 수 있다면, 나중에 혹시 수요가 꺾이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그보다 작은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신 지금 기꺼이 기업을 팔고 있고요. 환경보호기금의 부회장인 마크 브라운스타인은 “인수합병 물결은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서 마지막 빛을 짜내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합니다.지금의 석유업계 M&A 물결이 석유시대 번영의 상징인지, 마지막 발버둥인지는 좀더 지켜봐야 답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다만 분명해보이는 건 유럽의 석유 메이저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요. 투자업계에선 영국에 본사를 둔 BP와 셸이 합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경쟁하려면 규모가 필요하다”(투자회사 베리텐의 아준 무티 분석가)는 이유인데요. 물론 BP와 셸은 이런 시장 관측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선 벌써부터 ‘다음 딜’을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By.딥다이브‘나이지리아인들은 테슬라를 운전하거나 태양전지판으로 집에 전력을 공급하지 않을 거다‘. 셰브론의 헤스 M&A 소식을 다룬 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이 석유 수요 전망을 두고 설명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여러분은 석유시대 종말론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이달 들어 엑손모빌과 셰브론, 두 거대 석유공룡이 잇달아 석유·가스 생산기업을 M&A했습니다. 그 규모가 25년 만에 최대 수준이어서 업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IEA는 ‘화석연료 수요가 2030년을 정점으로 꺾인다’는 예측을 발표했습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으로 석유 수요가 서서히 줄어들 거란 전망이죠.-반면 OPEC은 계속 증가한다고 내다봅니다. 저소득국가의 인구와 경제가 모두 빠르게 성장할 거기 때문이라는데요. 이미 석유기업들은 돈 안 되는 재생에너지 투자는 줄이고 다시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전망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에너지 불확실성’의 시대인데요. 일단은 덩치를 키우는 게 석유기업에겐 나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자, 다음 M&A는 어디가 될까요. *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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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적 좋고 경제 강해도 주가는 뚝…나스닥 조정장 진입[딥다이브]

    경제성장도, 기업실적도 예상치를 한참 웃돌았지만 주식시장은 내리막입니다. 3분기까진 좋았지만 앞으로는 나빠질 거란 걱정 때문이죠. 26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76%, S&P500 –1.18%, 나스닥지수 –1.76%. 이날 빅테크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습니다. 특히 전일 장 마감 뒤 기대치를 상회한 깜짝 실적을 발표한 메타(페이스북) 주가가 3.73%나 빠졌는데요. 메타가 이스라엘 전쟁을 이유로 4분기 매출 전망치를 보수적으로 제시하자 시장이 실망한 겁니다. 전날 주가가 9% 넘게 빠졌던 알파벳(구글) 주가는 이날도 2.65%나 하락했습니다. 앞서 24일 알파벳은 광고부문 성장으로 매출이 11%나 성장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정작 시장은 클라우드 사업부의 실적 부진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틀 연속 주가가 주저앉았습니다. 이로써 나스닥 100지수는 7월 고점 대비 10% 넘게 빠졌습니다. 공식적으로 ‘조정 국면’에 진입한 겁니다. 이날 장 마감 뒤 나온 아마존의 3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긴 했는데요. 시간 외 거래에서 아마존 주가는 초반에 13%나 뛰었다가 다시 오름폭을 크게 줄여가고 있습니다.이날 발표된 미국의 3분기 GDP 경제성장률은 놀랄 만큼 좋았습니다. 무려 4.9%의 성장률을 기록했는데요. 2021년 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은 “7월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이 예상한 건 0.6%였다”면서 “소수점을 오른쪽으로 옮겼으면 더 정확한 추정이었을 것”이라고 전했는데요. 깜짝 성장을 이끈 건 소비였습니다. 미국인들이 서비스와 상품 구매를 늘리면서 소비자 지출이 4%나 성장했습니다. 강력한 노동시장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한 미국인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앞으로의 전망에 쏠립니다. 금리가 계속 높아지는 데다, 팬데믹으로 유예됐던 학자금 대출 상환까지 10월에 재개되면서 4분기엔 소비 증가세가 꺾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인데요. 경제학자들이 전망하는 4분기 GDP 성장률은 0.9%입니다. 이날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경제가 매우 잘 돌아가고 있다”면서 “미국 경제가 연착륙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놨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보다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찰스스왑 영국 법인장 리차드 플린은 “투자자들은 경기침체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을 계속 인식할 것”이라고 봤고요.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엘리자 윙거는 “예상보다 소비 모멘텀이 강해졌지만 이는 대부분 일시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선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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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도 청정수소 생산에 10조원 투입… 中-유럽과 주도권 다툼 [딥다이브]

    수소경제 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각국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중국, 유럽에 이어 미국도 ‘청정수소 허브’라는 이름으로 수소 인프라 투자를 본격화했다. 탄소 중립으로 가기 위해 청정수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 글로벌 수소산업 성장이 시작된다 13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7개 청정수소 허브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초 제안서를 냈던 79개 프로젝트 중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미국 전역에 자리잡은 7개 수소허브엔 각각 7억5000만∼12억 달러, 총 70억 달러(약 9조5000억 원)의 연방 예산을 투입한다. 민간투자 규모는 4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들 수소허브에선 총 300만 t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잡은 2030년 목표치(1000만 t)의 30%에 해당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소허브는 청정 제조·일자리 창출에 대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유럽과 중국은 이미 수소 인프라 투자가 한창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수소 저장 터미널 건설을 시작했다. 여러 국가를 잇는 수소 전용 배관망 건설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3월 수소 로드맵을 발표한 중국 역시 기업과 지방정부가 앞다퉈 투자에 나섰다.● 그레이수소·블루수소·그린수소 주요국이 청정수소 생산 및 유통망 건설에 앞다퉈 뛰어드는 건 수소 없이는 탄소 중립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주로 매우 높은 열이 필요한 산업이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유리·세라믹 제조업이 대표적이다. 탄소 중립으로 가려면 석탄(코크스)이나 천연가스를 대체할 연료가 필요한데, 수소가 그 대안이다. 항공기도 탄소 배출 없는 장거리 운항을 위해선 수소가 필요하다.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항공기는 단거리 운항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와 수소연료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가야 한다. 문제는 생산단가다. 현재 생산되는 수소 대부분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그레이수소’이다. 생산 비용이 kg당 1달러 안팎으로 저렴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아 청정수소라 할 수 없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쓰되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에 묻는 ‘블루수소’는 탄소 배출이 적은 대신 kg당 1.8∼4.7달러로 좀 더 비싸다. 태양광·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서 만드는 ‘그린수소’는 탄소 발생이 아예 없다.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원이지만 생산비는 가장 많이 든다. kg당 4.5∼12달러 수준이다. 물을 전기 분해하는 설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청정수소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 보조는 필수다. 미국의 수소허브 프로젝트 역시 ‘10년 안에 청정수소 생산 비용을 80% 떨어뜨려 kg당 1달러로 낮춘다’는 바이든 행정부 수소샷(Hydrogen shot) 구상의 일환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수소허브가 완성되면 수소 생산단가 kg당 1달러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인가 이번에 선정된 수소허브 7곳 중 그린수소만 생산하는 건 2곳뿐이다. 3곳은 블루수소, 나머지 2곳은 원자력발전을 이용한 ‘핑크수소’를 생산한다. 수소허브 프로젝트 참여기업에 엑손모빌이나 셰브론 같은 대형 석유회사가 포함된 이유다. 이들 기업은 탄소 포집 기술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적극 투자해 왔다. 환경단체는 미국 정부의 블루수소 지원을 비판한다. 블루수소는 탄소를 포집하는 과정에서 천연가스를 추가로 써서,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이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미 최대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벤 질루스 회장은 “블루수소는 거대 석유·가스회사가 수십 년 동안 오염을 유발하는 진출로를 제공할 수 있다”며 “기후 변화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그린수소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로 볼 것인가는 중요한 이슈이다. 이제 막 첫 단추를 끼우는 수소산업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연말까지 청정수소 생산기업에 줄 세액공제(kg당 최대 3달러)의 세부 가이드라인을 정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기업은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 전기로 만든 수소에도 혜택을 달라’고 로비 중이다. 반면 환경단체는 ‘느슨한 지침은 탄소 배출을 늘릴 수 있다’면서 지원 대상을 더 좁히라고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어디까지를 청정수소에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내년에 ‘청정수소 인증제’를 도입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청정수소의 등급을 나눠 정하고, 향후 보조금 지급에 활용할 계획이다. 4월 설명회에서 발표된 초안에 따르면 청정수소엔 그린수소뿐 아니라 블루수소·핑크수소가 모두 포함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인증제는) 국제적인 호환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동향도 살펴왔다”면서 “11월 중순쯤 청정수소 인증제 등급 기준의 확정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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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차요금 20배 뛴다? 경제 파탄 아르헨티나의 반전 대선[딥다이브]

    인플레이션은 연 138%, 빈곤율은 40%에 달하고 중앙은행 금고는 텅 비었습니다.어느 나라 이야기인지 짐작하시겠죠? 아르헨티나입니다.경제가 위태로운 아르헨티나 대선이 전 세계 관심을 끄는 가운데 22일 1차 투표가 진행됐는데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현 경제부 장관 세르히오 마사 후보가 선두를 차지했죠. 나라 경제를 붕괴시키고도 끄떡없는 페론주의의 힘이 놀라운데요. 11월 19일 ‘무정부 자유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와 결선투표를 진행합니다. 아르헨티나 경제와 대선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치솟는 파란달러 환율과 물가‘10월 22일 블루달러 가격은 1달러당 1150페소입니다. 한 달 전보다 55%, 1년 전보다 301% 상승했습니다.’아르헨티나 최대 신문사 클라린은 매일 그날의 블루달러 환율을 주요 뉴스로 전합니다. 블루달러란 암시장에서 유통되는 달러이죠. 참고로 정부가 정한 공식 환율은 1달러당 350페소입니다. 은행에선 1달러를 350페소에 살 수 있는데, 암시장에선 그 세배에 가까운 1150페소를 줘야 하다니. 그럼 은행에 가면 되지 않나 하실 텐데요. 달러가 부족한 아르헨티나 정부가 환전량을 엄격히 제한하기 때문에 가도 살 수 없습니다. 블루달러 환율이 시장 표준이 된 이유입니다.아르헨티나는 정부가 정한 비공식 환율 종류만 12개에 달합니다. 주식거래용 환율이 따로 있는가 하면(1달러에 약 900페소), 대두 수출용 환율, 카타르 환율(자국민이 카타르 월드컵 티켓처럼 해외구매를 할 때 적용하는 환율), 콜드플레이 환율(해외 가수 초청 시 적용하는 환율) 등이 있습니다.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아르헨티나 정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환유출을 막으려다 보니 환율이 누더기가 된 겁니다. 그럼에도 아르헨티나의 고질적인 외환부족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외화보유액은 240억 달러인데요. 대부분 중국 인민은행과 맺은 위안화 스와프(180억 달러)인 데다, 민간부문 외화예금 준비금처럼 뺄 수 없는 돈을 제외하면 실제 꺼내 쓸 수 있는 순외환보유액은 마이너스(-) 77억 달러입니다. 말 그대로 금고가 텅 비다 못해 적자입니다. 6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으로 주요 수출품인 옥수수와 콩 생산량이 올해 반토막 난 영향이 큽니다. 가뜩이나 경제난이 심각한 와중에 하늘마저 도와주지 않는데요.공산품 대부분을 수입하는 아르헨티나이다 보니 인플레이션이 엄청납니다. 9월엔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38.3%를 기록했는데요. JP모건은 올해 연말이면 연간 인플레이션이 210%까지 치솟을 거라고 경고했죠.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려, 기준금리가 무려 133%에 달합니다. 현금 가치가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올해 2000페소짜리 고액권 지폐를 새로 발행했는데요. 지금 블루달러 환율로는 그 가치가 2달러도 안 되는 겁니다. 이 정도는 초인플레이션 축에도 못 낀다아르헨티나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거야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죠. 사실 아르헨티나가 세계적 부국이었던 전성기(1900년대 초~1940년대 초반)를 제외하면, 그 이후엔 인플레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특히 1980년대 말엔 엄청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한 해 물가상승률이 1989년 3083%, 1990년은 2370%이었죠. 특히 1990년 3월 기준으로는 무려 2만% 넘는 연간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그때의 기록이 강렬해서 아르헨티나에선 지금 단계(연간 138% 상승)를 ‘초인플레이션(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르진 않을 정도입니다.30여 년 전의 이런 초인플레이션을 잡은 게 뭔지 아시나요. 바로 달러입니다. 1991년 정부는 화폐개혁과 함께 ‘1달러-1페소’ 페그제를 도입했죠. 1페소를 1달러로 교환하는 걸 중앙은행이 보증해주기로 한 건데요. 이 대담한 경제정책은 바로 마법 같은 효과를 냅니다. 일단 인플레이션이 1991년 7.7%로 뚝 떨어졌죠. 경제도 다시 성장세를 회복했고요. 하지만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1999년 브라질이 헤알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달러화가 강세를 띠자 아르헨티나의 수출이 급감했습니다. 페그제에 묶여있다 보니 통화가치를 떨어뜨리지 못한 탓이 컸죠. 게다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외채 발행을 엄청 늘렸는데, 신흥시장 위기가 터지면서 외국 자금이 무섭게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2001년 모라토리엄 선언, 2002년 페그제 폐지로 이어졌죠.달러화 공약이 불러온 금융시장 대혼란그럼에도 30년 전의 강렬한 기억 때문일까요. 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에선 ‘달러화’를 공약으로 내건 급진파 경제학자 하비에르 밀레이가 초반에 돌풍을 일으킵니다. 달러화(Dollarization)란 1대 1 페그제 정도가 아니라 ‘쓰레기(밀레이의 표현)’인 페소를 아예 없애고 미국 달러를 유일의 법정통화로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2000년 미국 달러를 공식통화로 채택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은 에콰도르처럼 말이죠.밀레이 후보는 달러화를 포함한 ‘무정부적 자본주의’ 정책으로 젊은층을 사로잡았는데요. 특히 불필요한 정부기관과 방만한 재정을 잘라내 버리겠다며 전기톱 퍼포먼스를 벌이며 강렬한 이미지를 심었죠. 구체적으로는 국영산업을 민영화하고 18개 연방부처 중 10개를 폐쇄하고, GDP의 15%만큼 연방지출을 삭감한다는 게 그의 공약입니다. 정치적 기반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그는 올해 8월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만큼 기존 정치인에 신물 난 유권자들이 과격하고 새로운 주장에 동조하고 나선 겁니다. 과연 그가 말하는 ‘달러화’가 정말 가능한가(아르헨티나가 어디서 달러를 구하지?), 맞는 방향인가(통화정책 주권을 미국 연준에 넘긴다고?)라는 논란이 전 세계적으로 일었습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가졌다고는 하지만, 달러화를 한 국가 중 가장 경제규모가 큰 에콰도르 GDP와 비교하면 5배 수준이거든요. 진짜 달러화가 된다면 세계 경제사에 기록될 큰 사건입니다.대부분 경제학계가 달러화 공약에 회의적인 가운데, 지난 두달 동안 아르헨티나 금융시장은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페소화가 진짜 쓰레기가 될 수 있단 걱정이 고조되면서 너도나도 달러를 사두려고 한 겁니다. 밀레이 후보는 “페소 정기예금을 갱신하지 말라”면서 이를 부추겼고요. 8월 예비선거 직전엔 블루달러 환율이 1달러에 660페소 정도였는데요. 1차 대선이 앞둔 이달 들어선 1000페소를 돌파했습니다. 대혼란이 아닐 수 없죠. 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였던 알폰소 프라트 게이는 이게 다 밀레이의 작전이라고 봅니다. “밀레이는 완전한 붕괴 없이는 통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죠.분노 투표 누른 공포 투표그런데 22일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열어보니 또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부 장관이자 예비선거에서 3위에 머물렀던 집권당 마사 후보가 꽤 큰 차이(득표율 37%)로 1위에 오른 겁니다. 밀레이 후보는 30%로 2위이고요. 국가 경제가 이 모양인데 집권당에 표를 몰아주다니. 도대체 이런 반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밀레이 후보의 호전적인 선동(예-‘교황은 똥덩어리다’)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킨 건 작은 이유입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죠. 선거일 며칠 전 아르헨티나의 철도노조가 기차역에 띄운 이 홍보물 사진을 보시면 짐작할 수 있는데요. 마사 후보가 당선되면 열차표 값은 지금처럼 56.23페소이지만, 밀레이 후보가 당선되면 1100페소가 될 거란 내용의 선전물입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기∙수도∙대중교통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 중이죠. 철도노조는 친시장적인 밀레이가 당선되면 철도 민영화와 함께 보조금도 폐지할 거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일종의 공포 조장 선거운동인데요. 놀랍지 않게도 이게 꽤 잘 통했습니다. ‘공포투표’가 ‘분노투표’를 압도한 겁니다.8월 예비선거에서 크게 뒤진 뒤 집권당은 달콤한 조치들을 연이어 내놨습니다. 언론에서 ‘플랜 플라티타(Plan Platita; 소액자금 계획)’로 부르는 일련의 퍼주기식 경제정책들인데요. 식료품 부가가치세 21%를 환급해주고, 수백만 명 근로자(최상위층 포함)에 소득세를 깎아주고, 연금수급자에게 100달러 어치(공식환율 기준)의 페소 보너스를 지급해줬습니다. 농산물 수출세도 깎아줬고요. 동시에 “증세는 없다”면서 유권자들을 다독였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마사의 행보를 두고 ‘통제불능의 산타클로스’라고 꼬집습니다. 도대체 재정이 바닥난 정부가 무슨 돈으로 이렇게 퍼주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페소화를 마구 찍어내겠죠. 자칫 인플레이션만 더 자극할 위험이 있는데요. 아르헨티나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일부 증세를 약속했던 터라, 이런 정책들이 나온 게 더 놀랍습니다. 알레한드로 베르너 전 IMF 국장은 “IMF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본 적 없는 수준의 냉소주의와 무책임함”이라고 비판합니다.아르헨티나는 국민 5명 중 2명이 빈곤층입니다. 상반기 40%를 돌파한 빈곤율은 올 연말엔 42%로 높아질 전망이죠. 절망적인 상황에서 당장 손에 돈을 더 쥐여주는 조치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마사 후보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두 달 만에 역전에 성공했으니까요. 이번 결과를 두고 ‘페론주의의 부활’이라며 전 세계가 놀라워합니다. ‘온건파 실용주의자’로 일컬어지는 마사 후보가 망해가던 페론주의를 간신히 구했다는 평가입니다. 윌슨 센터의 이코노미스트 아르투로 포르제칸스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속 가능하지 않더라도 모든 효과를 포용하는 페론주의 지도자의 카멜레온 같은 능력”이 힘을 발휘한 겁니다. 결국 아르헨티나 대선은 좌파 페론주의 후보와 급진적 시장주의 후보의 대결로 압축됐습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가장 양극화된 시나리오이자 채권시장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시나리오이다.” 앞으로 결선투표까지 4주 동안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면서 시장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현금살포 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본 집권당이 이런 정책을 더 내놓을 거란 점도 걱정입니다. JP모건은 이날 메모에서 “11월 19일 결선까지 정부는 계속해서 토끼를 모자에서 꺼내려고 할 것”이라며 “대선 이후 시정해야 할 불균형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죠. 누가 당선되든, 새 대통령이 취임할 12월 10일엔 지금보다 더 나빠진 경제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By.딥다이브아르헨티나 대선 1차 투표 결과는 완전히 반전이었습니다. 대부분 전문가가 여당 후보가 1위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공포심 조장+현금 쥐어주기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이 이어집니다. 동시에 두 후보 중 누가 당선 되더라도 경제는 걱정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치솟는 물가와 급락한 통화가치로 아르헨티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가뭄까지 겹친 탓에 수출은 급감하고 빈곤층은 급증합니다. 이번 대선이 주목 받는 이유입니다. -극단적인 자유주의자, 밀레이 후보가 ‘달러화’를 공약하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동시에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졌고 암시장 환율은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1차 투표에선 집권당 마사 후보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보조금 없애면 큰일난다’는 공포 조장이 잘 먹혔는데요. 세금 환급해주고, 현금 보조금 쥐여주는 퍼주기식 정책도 한몫 했습니다. -페론주의와 급진주의자의 대결로 압축됐는데요. 남은 4주 동안 불확실성은 더 고조될 수도.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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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10년물 금리 4.8%로 뚝…뉴욕증시는 혼조세[딥다이브]

    5% 선을 뚫었던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23일(현지시간) 급락했습니다. ‘리틀 버핏’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이 장기국채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한 영향인데요. 덕분에 금리 영향을 크게 받는 나스닥지수는 소폭 상승 마감(+0.27%)했습니다. 다우지수와 S&P500은 각각 0.58%와 0.17%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 초반만 해도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5.02%까지 올랐는데요. 이후 금리가 급락해 4.83%대로 후퇴했습니다. ‘헤지펀드의 왕’으로도 불리는 빌 애크먼 회장이 엑스(X, 옛 트위터)에 장기국채에 대한 약세베팅을 포기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재 장기국채에 숏포지션(공매도)을 유지하기엔 세상에 너무 많은 위험이 있다”고 썼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투자자들의 국채 매입이 늘 거라고(금리는 하락) 내다본 거죠.애크먼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아주 요동을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앞서 애크먼은 지난 8월 초 30년 만기 국채에 공매도를 하고 있다고 공개했었죠. 그는 당시 장기물 금리가 5% 이상으로 치솟을 거라는 전망을 내놔서 투자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요. 이후 실제로 국채금리가 무섭게 뛰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수익을 올린 애크먼 회장이 이제 전망을 수정한 거죠.다만 이날 애크먼은 “경제가 최근 데이터가 시사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채권왕’ 빌 그로스 야누스캐피탈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엑스에 “4분기 침체를 예상한다”고 밝혔죠. 투자 구루들이 잇달아 미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내놓으면서 주식시장은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좋은 소식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은 빅테크 기업의 실적 발표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오는 24일(현지시간)엔 MS와 알파벳, 25일 메타, 26일엔 아마존이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P500 시가총액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상위 5개 기업(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엔비디아)의 수익은 전년 대비 평균 3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하지만 부정적 전망도 이어집니다. 월가의 대표적인 약세론자인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윌슨 수석주식전략가는 연말 랠리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4분기와 2024년 실적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S&P500이 추가 하락해도 놀랍지 않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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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전기차 회사가 줄줄이 망해가고 있는 이유[딥다이브]

    자동차 산업 초창기인 1908년, 미국의 활성 자동차 제조업체 수는 253곳에 달했습니다. 자동차 제조 스타트업 전성시대였죠. 이후 수십 년 동안 시장 경쟁과 1929년 대공황 충격을 거치며 지금의 빅3(GM·포드·스텔란티스) 체제로 시장은 재편됐습니다.100년 전 자동차 산업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난립했던 전기차 스타트업들이 잇달아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10년의 투자 붐이 끝난 중국 전기차 시장은 이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 모드로 진입했는데요. 오늘은 줄줄이 망해가고 있는 중국 전기차 기업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잘나갔던 WM도 파산 위기2015년 설립된 WM모터스는 한때 ‘전기차 스타트업의 네 마리의 용’ 중 하나로 불렸습니다. 중국 3대 전기차 스타트업(니오·샤오펑·리오토)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죠. 특히 2018년 출시한 EX5가 인기를 끌면서 당시엔 테슬라의 잠재적 경쟁자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중국의 전기차 투자 붐을 타고 WM모터스는 2016~2022년 약 400억 위안의 투자를 유치했는데요. 바이두·텐센트·PCCW 같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투자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동안 누적 판매 대수는 10만대에 달합니다.그리고 이제 WM모터스는 파산 일보 직전입니다. 이달 초 ‘WM모터스가 파산 신청을 하고 회장이 미국 뉴욕으로 도피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이에 WM모터스는 ‘파산이 아닌 (그 이전 단계인) 사전구조조정을 법원에 신청했다. 회장이 해외로 나가긴 했는데 투자자 유치를 위해서다’라는 해명자료를 냈습니다. 보도 내용이 어느 정도는 사실임을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이죠.WM모터스가 고꾸라진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잇단 차량 화재로 인한 품질 논란, 경쟁사에 비해 부족한 지능형 기능, 너무 이른 제2공장 투자, 경영진 간 내부 갈등, 상장 실패, 무엇보다 판매부진. 그 와중에 올해 초엔 차 값을 최대 2만5000위안 인상하기까지 했죠. 테슬라가 주도한 가격인하 치킨게임이 시작된 상황에서 거꾸로 가는 무리수를 둔 겁니다.2년 전 WM모터스의 SUV를 구입했던 한 고객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WM모터스가 문을 닫으면 애프터서비스도 중단될 거라 새 차를 사야 할 겁니다. 더 중요한 건 망한 브랜드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게 창피하다는 거죠.”속도가 전부인 시장사라지게 생긴 전기차 스타트업은 WM모터스만이 아닙니다. 중국엔 라이센스를 받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200여 곳, 이 중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를 실제 생산하는 브랜드는 약 50개인데요. SCMP 보도에 따르면 적어도 15개의 전기차 스타트업이 파산 위기에 놓였습니다.아이웨이즈(Aiways, 爱驰汽车)도 그 중 하나입니다. 2017년 디디추싱과 CATL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아이웨이즈는 ‘유럽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 전기차 기업’으로 주목받았죠. 실제 그간 15개국에 6259대의 자동차를 수출했는데요. 하지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난해 판매량이 고작 4626대에 그쳤고요. 상장까지 실패하면서 결국 자금난에 빠진 아이웨이즈는 올해 3월 직원 급여를 주지 못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고, 본사 사무실은 현재 텅 비었습니다. 직원들은 정부에 “(아이웨이즈의) 파산 절차를 시작하고 미지급 임금을 달라”고 요구합니다.망해가는 전기차 기업엔 저마다의 사정이 있습니다. 헝치(恒驰)자동차는 그 태생부터 문제입니다. 중국 부동산 위기의 주범 격인 에버그란데(헝다) 그룹이 모회사이니까요. 한때 아시아 부자 2위에 올랐던 쉬자인 에버그란데그룹 회장은 자동차를 만드는 게 꿈이었는데요. 2019년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자 8000명을 채용하며 통 큰 행보를 보입니다. 2년 뒤 상하이모터쇼에 무려 9개의 신모델을 선보여 업계를 놀라게 했고요.그런데 실제 양산은 계속 늦어졌습니다. 그리고 2022년 10월 첫 양산모델 헝치5가 드디어 나왔는데요. 이게 SNS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됩니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량부터, 디스플레이의 그래픽이 깨지고, 주행보조기능·통풍시트가 먹통 되기까지. 온갖 전자적 결함의 집합체였던 거죠. 결국 헝치5 생산공장은 가동을 멈췄고요. 자금난에 빠진 헝치자동차는 두바이에서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지만, 모회사 에버그란데가 청산 일보 직전인 상황이라 투자가 무산될 판입니다.이 밖에도 무려 5개 공장(22만대 생산 가능)을 지어놨지만 지난해 고작 5321대를 판매한 천지자동차, 지난해 10월 첫 차량을 출시한다며 2만5000명 예약을 받았다가 생산을 못 해 전액 환불해준 뉴트론도 있습니다. 다들 어떻게든 부활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이들 기업이 어려움에 빠진 세부 이유는 조금씩 달라서 한마디로 요약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이죠. 전기차 산업에선 속도가 생명이라는 겁니다. 자칫 삐끗해서 가속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기라도 하면, 다시는 따라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한 진보한 기술의 신모델 차량을 적기에 내놓아야만 뒤처지지 않습니다.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그걸로 끝입니다.살아남을 제조사는 몇 곳?시장이 성숙해지면서 소수의 플레이어로 재편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특히 올해 들어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전쟁이 불붙으면서 그 속도가 빨라졌는데요. 아직 중국 전기차 제조사는 대부분 적자 상태입니다. 자금력에서 뒤지는 중소 제조사가 버티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죠.과연 몇 곳이나 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UBS의 폴 공 애널리스트는 FT와의 인터뷰에서 “2030년엔 10~12개의 중국 자동차 제조사가 대규모로 운영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통합의 물결이 일면서 소수의 회사만 살아남을 거란 전망이죠.중국 전기차 업체 샤오펑 CEO인 허샤오펑(何小鹏)은 더 가파른 변화를 예상합니다. 그는 지난 4월 “자동차 산업이 전기화로 전환하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자동차 제조사가) 대거 퇴출당할 것”이라며 “2027년까지 전기차 제조사가 8개 정도 남을 것”으로 봤습니다. “모든 선수는 리그에서 강등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도 말했는데요. 정작 샤오펑 역시 적자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승자는 BYD, 그리고 또 누구?그럼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요. 일단 1순위는 말할 필요 없이 BYD(비야디)이죠.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 BYD의 질주가 무섭습니다. 지난해 BYD가 전 세계 전기차(순수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에서 테슬라를 제치고 은 이미 전해드렸는데요. 그래도 순수전기차(BEV)만 따지면 테슬라가 한참 앞서갔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조만간 역전될 듯합니다.올해 3분기 테슬라의 전 세계 판매량은 43만5059대, BYD의 순수전기차(개인용) 판매량은 43만1603대입니다. 별 차이 없죠. 지금 추세대로라면 4분기엔 순수전기차에서도 BYD가 전 세계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자체 생산 배터리와 반도체를 이용한 ‘가성비 좋은 전기차’라는 BYD 전략은 중국은 물론 해외시장에서도 통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스타트업 3인방 중엔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리오토의 선전이 돋보입니다. 리오토는 평균 찻값이 40만 위안(약 7400만원) 안팎인 고급 대형 SUV에 집중하는데요. ‘1980년대생 아빠들의 로망’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입니다.최근 중국 시장에서 급부상한 건 화웨이입니다. 화웨이의 전기차 브랜드 아이토(AITO)는 대형 SUV M7의 신형 모델을 지난달 출시했는데요. 한 달 만에 6만대가 계약되는 대박을 쳤습니다. 구형보다 저렴하고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인 24만9800위안(약 4600만원)이란 가격이 인기 비결인데요. 스마트 콕핏(운전석), 주행보조 기능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동안 전기차에선 존재감 없던 화웨이의 급발진에 업계는 ‘진짜 화웨이가 온다’며 긴장하고 있죠.중국 전기차 시장 재편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새로운 브랜드의 진출을 위한 문은 점점 닫히고 있죠.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갈 신규 진출 기업이 과연 있을까요. 시장에선 딱 한 곳에 주목합니다. 바로 샤오미인데요. 샤오미는 첫 번째 전기차 모델 MS11을 시험생산 중이라고 알려져 있죠. 최근 홍콩 톈펑증권의 궈밍지 애널리스트는 샤오미의 첫차가 2024년에 30만 위안(약 5500만원) 미만 가격에 출시될 거란 보고서를 냈습니다. 다만 아직 이미지도 공개되지 않은 단계라서 기대(‘젊은이들을 위한 차가 될 것’)와 걱정(‘이미 늦었다. 레이쥔의 최대 실패작이 될 것’)이 공존합니다.한편 9월 중국 신에너지차(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 대수(74만6000대)는 1년 전보다 22% 늘면서 역대 최대 기록을 썼습니다. 보조금 폐지와 경기 둔화에도 시장은 계속 커지는데요. 중국 언론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만두를 빚듯이’ 끊임없이 새로운 모델이 나오는 데다, ‘가격 인하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영향입니다. 글로벌 전기차 산업의 판도 변화를 한발 앞서 보여주는 중국 시장. 그 트렌드를 놓치지 않도록 예의주시해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중국 시장 판매 부진으로 인해 최근 테슬라 주가가 충격을 받았죠. 딥다이브에서 BYD(비야디)의 부상을 처음 다룬 게 10개월 전인데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무섭게 치고 올라올 거라곤 예상 못 했습니다. 파산 위기에 처한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만은 않은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WM모터스·아이웨이즈·헝치자동차 등 한때 주목 받았던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이 파산 위기에 몰렸습니다. 판매부진과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결국 공장을 닫고 생산을 중단했는데요.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난립했던 중국의 전기차 제조사는 결국 소수의 대형사 위주로 재편될 겁니다. 전문가들은 8~12개 제조사만 살아남을 거라고 내다봅니다.-과연 누가 살아남을까요. 절대 강자 BYD가 1위 자리를 확고히 하는 가운데 흑자로 돌아선 리오토, 신형 모델로 돌풍을 일으킨 화웨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출혈을 감수하는 가격경쟁으로 인해 중국 전기차 시장의 재편은 빨라지고 있습니다. 중국 이외의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도 곧 닥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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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 5% 선 돌파[딥다이브]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다”는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의 발언이 시장에 충격을 미쳤습니다. 19일(현지시간)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는 5% 선을 돌파했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75%, S&P500 -0.85%, 나스닥 -0.96%. 파월 의장은 이날 뉴욕이코노미클럽 행사에서 연설과 대담을 했습니다. 한시간 동안 이어진 그의 발언은 변화무쌍했는데요. 그는 초반엔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다는 신호를 보내서 뉴욕증시를 상승세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높다”면서 “더 강한 성장의 증거는 통화정책의 추가 긴축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얘기했죠. 11월은 동결이라면서도 추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은 건데요. 이에 증시는 하락세로 돌아섰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5% 선을 돌파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0년물 금리가 이날 오후 5시쯤(미 동부시간 기준) 연 5.001%를 기록했는데요. 5% 돌파는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의 일입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10년물 금리 5%는 중요한 이정표로 여겨집니다. 국채 투자의 매력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후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FHN 파이낸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크리스 로우는 “5% 수익률은 10년 만기 국채가 좋은 투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심리적 수준으로 오랫동안 국채를 생각해본 적 없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라며 “이는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날 나스닥에선 18일 실적을 발표한 두 기업이 눈에 띕니다. 넷플릭스는 이날 주가가 16% 넘게 뛰었습니다. 3분기에 전 세계 신규 가입자 수가 876만명이나 늘면서 시장 예상치(549만명)를 크게 뛰어넘었기 때문인데요. 광고요금제 도입과 계정공유 단속이 우려와 달리 가입자 증가에 크게 기여한 겁니다. 이에 모건스탠리와 JP모건 등이 일제히 넷플릭스 목표 주가를 상향하며 비중확대 의견을 냈죠. 반면 테슬라 주가는 9% 넘게 하락했습니다. 전날 실적 발표해서 일론 머스크 CEO가 “사이버트럭이 현금흐름에 기여하기까지는 1년에서 18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힌 게 영향을 미쳤는데요. 머스크에 따르면 테슬라는 연간 25만대의 사이버트럭을 생산하게 되겠지만 이는 2025년에야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3분기 실적이 예상치를 밑도는 가운데, 앞으로의 성장에 대한 전망까지 어두워진 건데요.이에 애널리스트들도 어두운 전망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LSEG에 따르면 월가 애널리스트 14명이 테슬라 목표주가를 낮췄는데요. 샌포드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토니 사코나기는 “테슬라 주가를 정당화하려면 테슬라는 자동차회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회사와 유사한 영업마진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테슬라는 점점 일반 자동차 회사처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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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정수소는 얼마나 깨끗한가…미국 ‘수소허브’ 둘러싼 논쟁[딥다이브]

    수소경제 시대가 다가온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수소는 화석연료나 태양광·풍력과 달리 특정 지역에 편중돼있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그만큼 수소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각국의 경쟁도 치열한데요. 얼마 전 미국이 이를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총 70억 달러 예산을 투입할 7개 ‘수소허브’ 프로젝트를 선정한 겁니다.중국·유럽보다 한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수소산업 키우기에 뛰어들었는데요. 하지만 미국에서 수소는 여전히 논란의 청정에너지원입니다. ‘기후 기술의 성배’라는 찬사와 ‘돈 낭비’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죠. 오늘은 청정수소와 수소허브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수소가 왜 꼭 필요한가13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7개의 수소허브 선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1월 받은 79개 제안서 중 심사를 거쳐 최종 7곳이 낙점받은 건데요. 7개 프로젝트에 총 7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의 연방정부 예산을 투입할 계획입니다.수소허브에 대한 민간 투자는 약 400억 달러에 달할 거라고 하죠(미국 에너지부 추정). 최종적으로 수소허브에서 300만t의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게 목표인데요. 미국이 세운 2030년 수소 생산 목표량(1000만t)의 30%에 해당합니다.한마디로 미국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들여서 수소 생산 인프라 건설에 나서는 건데요. 이미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수소에 생산보조금(㎏당 최대 3달러)을 준다는 계획도 세웠거든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엄청난 투자를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소 없인 탄소중립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탄소배출 없는 친환경 에너지로는 풍력과 태양광이 있죠. 하지만 이런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주로 아주 높은 열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죠. 철강이나 비철금속, 유리나 세라믹 제조처럼요.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이런 제조업에서 석탄(코크스)이나 천연가스를 대신할 연료가 필요한데, 그 대안이 바로 수소입니다.바이든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수소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강철이나 알루미늄을 제조하려면 화씨 1000도 이상 온도에서 가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료를 태워야 하죠. 풍력이나 태양광으로는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소가 들어오는 곳입니다.”또 다른 분야는 항공입니다. 비행기에 커다란 리튬이온배터리를 달면 되지 않냐고요? 하지만 배터리로는 소형 기체(최대 50명)의 단거리 운항(최대 1000마일)만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100% 전기화는 불가능하죠. 따라서 장거리 운항을 위해서는 지금의 항공유를 대신할 연료가 필요한데요. 이 역시 수소가 대안입니다. 지난해 롤스로이스와 이지젯이 이미 수소 구동 항공기엔진 가동 시험에 성공한 적 있죠.문제는 이런 여러 분야에서 수소 에너지가 필수인 건 맞는데, 그리로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물론 돈입니다.‘수소샷’의 원대한 포부‘문샷(Moonshot)’이란 말 들어보셨죠. 1962년 9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발표한 달 탐사선 계획을 뜻하는데요. 불가능해 보이는 혁신적인 발상의 대명사로 쓰이죠. 이 문샷을 본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수소샷(Hydrogen shot)’이란 걸 주창했습니다. 2021년 미국 에너지부가 밝힌 계획인데요. 10년 안에 청정수소 생산비용을 지금보다 80% 낮은 1㎏당 1달러로 낮추겠다는 내용입니다.이게 왜 혁신적 발상인지를 살펴보기 전에. 수소의 종류부터 살펴볼까요. 수소는 지구 어디에나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이지만, 그냥 얻을 순 없고 만들어 내야 하죠. 그 생산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요. 아마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그레이수소는 지금 대부분 수소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죠. 천연가스의 개질(reforming) 반응을 이용해 수소를 만드는데요. 천연가스 역시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수소를 만들 때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탄소포집장치’를 이용해 이 이산화탄소를 따로 모아 땅에 묻는 경우는 ‘블루수소’로 분류되죠. 탄소배출이 제로까진 아니지만,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는 그레이수소보다 훨씬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그린수소는 그레이수소나 블루수소와는 달리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아예 없습니다. 전해조(전기로 물에서 수소와 산소를 분해하는 장비)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데요. 이때 전기는 풍력·태양광 발전으로 공급합니다. 참고로 전해조를 이용하되, 풍력·태양광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을 쓰면 ‘핑크수소’라고 별도로 분류합니다.생산비용은 그레이수소<블루수소<그린수소입니다. 블룸버그NEF의 분석에 따르면 그레이수소는 ㎏당 0.98~2.93달러, 블루수소는 1.8~4.7달러, 그린수소는 4.5~12달러이죠. 미국의 ‘수소샷’ 구상은 이렇게 비싼 청정수소의 생산단가를 그레이수소 수준으로 드라마틱하게 낮추겠다는 겁니다. 수소허브 프로젝트도, 수소생산 보조금 지급도 모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투자인 겁니다.청정수소는 얼마나 깨끗한가이쯤에서 아마 눈치채셨을 텐데요. 왜 미국 정부는 ‘그린수소’가 아니라 ‘청정(Clean) 수소’ 허브를 건설한다고 밝혔을까요. 그린수소가 아닌 수소산업까지 키우겠다는 뜻입니다. 블루수소와 핑크수소까지 청정수소라고 보고 지원하는 거죠.이번에 선정된 7개 수소허브 프로젝트 중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그린수소에 집중하는 건 2곳뿐입니다(캘리포니아, 퍼시픽 노스웨스트). 나머지는 천연가스와 탄소포집기술을 이용한 블루수소, 또는 원자력 발전을 통한 핑크수소를 생산하죠.바로 이 점 때문에 수소허브를 둘러싼 논쟁이 거셉니다. ‘과연 청정수소는 정말 깨끗한가’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데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야당(공화당) 쪽이 아닙니다(오히려 공화당 일부 의원은 수소허브 대환영). 주로 환경단체이죠.미국 최대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회장 벤 질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화석연료 산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화석연료 의존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수소는 거대 석유·가스 회사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진출로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정부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 거죠.실제 엑슨모빌과 셰브론이 참여하는 걸프만 연안 수소허브, 천연가스 업체 EQT와 제휴한 애팔래치아 수소허브가 지원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이들 기업은 천연가스를 이용한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모아서 땅에 묻는 ‘탄소포집기술’을 쓸 텐데요. 문제는 이 탄소포집기술이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겁니다. 지난달 미국의 비영리단체 에너지경제금융분석 연구소는 이런 제목의 보고서를 냈죠. ‘블루수소:깨끗하지 않고, 저탄소도 아니며, 솔루션도 아니다’. 흔히 블루수소 생산과정에 쓰이는 메탄 중 단 1%만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99%는 땅에 묻음)고 주장하지만, 과학적 분석에서 확인되는 양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블루수소는 더러운 대안”이란 주장입니다. 이 보고서 작성자인 데이비드 슈리셀 연구원은 “정부의 블루수소 지원이 돈 낭비, 시간 낭비가 될 것이 걱정”이라고 말합니다.원자력을 쓰는 핑크수소도 환경단체의 환영을 받진 못합니다. 중부대서양 수소허브는 델라웨어주의 원자력 발전소에 의존하게 될 텐데요. 델라웨어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마야 반로스는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수소허브 프로젝트는) 앞으로 몇 년 내 폐쇄될 예정의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걸 뜻한다”고 우려했죠.청정수소냐, 그린워싱이냐…논쟁은 진행형결국 ‘어디까지를 깨끗한 수소로 보고 정부가 지원해야 하느냐’라는 문제입니다. 앞으로 미국에서 이 논쟁은 더 거세질 겁니다. 수소허브 프로젝트 선정은 일단 끝났지만, 아직 큰 게 남았기 때문인데요. 바로 ‘수소 생산세’를 어디에 얼마나 공제해주느냐는 겁니다.아까 미국 정부가 IRA법에 따라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기업에 보조금(㎏당 최대 3달러)을 줄 거라고 설명드렸는데요. 당연히 청정수소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느냐에 따라 보조금 액수는 달라지겠죠. 지금 미국 재무부가 그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중입니다. 아마 올해 말쯤에 기준이 나올 텐데요. 여러 기업들이 화석연료를 쓴 전기를 이용해 만든 수소도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엄격한 기준을 부과하면 태동 단계인 수소산업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게 이들 기업의 논리이죠.반면 환경단체들은 규정을 느슨하게 하면 되레 반환경적 결과를 초래할 거라 우려합니다. 지난 2월 환경단체들은 공동으로 재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탄소의) 순배출량 증가를 초래하는 수소프로젝트에 100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죠. 수소허브보다 훨씬 더 큰 예산이 걸린 이슈입니다.‘수소경제로 가자’는 큰 틀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어떻게 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중요한 논의가 아닐 수 없는데요. 한국도 2024년부터 ‘청정수소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하죠. 청정수소이냐,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서도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1960년대에 사람을 달에 보낸다던 ‘문샷’ 구상이 성공했듯이(1969년 아폴로 11호 달착륙), 미국의 ‘수소샷’ 구상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가가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여서 아마도 달성 가능할 거란 긍정적 전망이 힘을 얻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수소경제가 현실이 될 것만 같은데요. 그리로 나아가는 길에 있을 수많은 논쟁이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합의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미국이 13일 7개의 수소허브 건설 지역과 규모를 확정했습니다. 연방 예산 70억 달러를 투입하는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10년 뒤 청정수소 1㎏의 생산비용을 1달러로 낮춘다는 ‘수소샷’ 구상의 일환입니다. 탄소배출 없는 그린수소 원가를 80% 낮춰 천연가스로 만드는 그레이수소만큼 경쟁력 있게 하겠다는 겁니다.-수소경제로 가기 위한 큰 진전이지만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환경단체들이 회의적입니다. 무탄소가 아닌 블루수소, 원자력을 이용한 핑크수소까지 청정수소로 보고 지원하기 때문입니다.-과연 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로 볼 수 있을까요. 미국 정부의 ‘수소생산세’ 공제 기준을 놓고도 논란이 거셉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앞으로 활발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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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적시즌 기대감 커진다… 뉴욕증시 일제히 상승[딥다이브]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확산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 속에 주가는 오르고 유가는 하락했습니다. 3분기 실적 시즌에 돌입한 뉴욕증시는 16일(현지시간) 3대 지수가 모두 상승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93%, S&P500 +1.06%, 나스닥 +1.20%. 전통적인 피난처로 여겨지는 금, 미국 달러, 국채 가격은 이날 모두 하락했습니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10년물 미 국채 금리가 0.08%포인트 오른 4.71%로 마감했죠. 지난주 금요일 급등했던 국제유가도 이날 다시 하락했습니다.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1.03달러(1.2%) 하락한 배럴당 86.66달러에 거래를 마쳤죠. 뉴욕증시는 중동 분쟁의 확대를 걱정하기보다는 3분기 기업 실적에 주목했습니다. 앞서 지난주 금요일 JP모건, 웰스파고,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이 호실적을 발표했는데요. 이날 실적을 발표한 찰스슈왑 역시 예금감소세가 줄고 있다는 소식에 주가가 4.66% 뛰었습니다. 초반 성적표가 양호하게 나오면서 전반적으로 이번 실적시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분위기인데요.CFRA리서치의 투자전략가 샘 스토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군사적 충격이 국지적이었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시장이 빠르게 반등할 수 있다”며 “3분기 실적이 추정치를 초과할 것이기 때문에 투자자의 신뢰를 높여줄 것”이라고 마켓워치에 말합니다. 이번 주엔 대형은행(17일 BOA, 골드만삭스, BNY멜론)과 빅테크(18일 넷플릭스, 테슬라)의 실적발표가 예정돼있습니다.한편 경제학자들이 미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나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실시한 분기 조사 결과인데요. 경제학자 설문조사에서 내년 경기침체 확률이 48%로 이전(7월 54%)보다 낮아졌다고 합니다. 침체 확률이 50%선 밑으로 떨어진 게 지난해 중순 이후 처음이라는군요.또 경제학자들의 약 60%는 ‘연준이 이미 금리 인상을 마쳤다’고 응답했습니다. 또 연준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는 시점은 내년 2분기가 될 거란 응답이 절반 정도를 차지했죠. 월스트리트저널은 “종합적으로 볼 때 이러한 예측은 연준이 경기 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연착륙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시사한다”고 분석합니다. 모처럼 긍정적인 전망으로 가득한 날이로군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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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늦기 전에 얼리자? 난자동결은 보험일까 복권일까[딥다이브]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갖고 싶을 수 있으니 일단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난자를 얼려놓자.’ 이런 생각하는 미혼 여성들이 빠르게 늘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난자동결 시술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난자동결은 여성의 선택지를 넓혀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종의 보험일까요. 아니면 자칫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는 비싼 복권일까요. 엇갈리는 연구 결과와 통계들이 나오는데요. 마침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 교수의 연구와도 맞물린 주제, 난자동결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난자동결의 전 세계적 인기난자동결은 말 그대로 난자를 꺼내 냉동 보관하는 겁니다. 나중에 이를 다시 해동해 시험관 시술에 써서 임신하기 위해서죠.생소한 분들을 위해 과정을 좀 자세히 설명해볼까요. 난자동결 시술 과정엔 총 2주 정도가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 호르몬주사를 하루 한 번 배에 찔러넣어 난소를 자극하죠. 난자가 평소(1달에 1개가 성숙돼 배란)보다 더 많이(보통 7~14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배란되기 직전 시점을 골라 난자를 채취합니다. 질을 통해 넣은 주삿바늘로 난소를 십여 차례 찔러가면서 말이죠. 꽤 아프기 때문에 보통 수면마취를 합니다. 채취 당일은 쉬어야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아마도 일상생활에 지장 없을 겁니다. 1회 시술 비용은 한국이라면 200만~500만원, 미국은 5000~1만 달러 수준입니다.어떤가요. 간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해볼 만하다 싶으신가요. 아시다시피 나이가 들수록 난자의 질이 떨어져 임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에 젊을 때 난자를 냉동시키는 건 ‘생식력 보존’을 위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통계로 보면 필요한 시간과 돈,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증가세가 놀라운 수준인데요. 미국의 경우 4년 만에 73% 늘었고요(2016년 7193명→2020년 1만2438명). 영국은 최근 2년 만에 64%나 증가했습니다(2019년 2576건→2021년 4215건).그럼 한국은? 얼마 전 차병원그룹이 통계를 공개했는데요. 2020년 574건이던 난자동결 시술 건수가 지난해엔 1004건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2년 증가율 75%). 얼리면 마음 편하다?난자동결이 왜 이렇게까지 급증하는지를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일단 결혼이 점점 늦어진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고요. 코로나 영향도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데이트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이러다가 당분간 짝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난자동결을 결심한 사람이 늘어난 거죠. 또 다른 유력한 원인은 이겁니다. 마케팅. 사실 한국에서는 그렇게까지 흔하진 않을지 모르겠는데요. 미국에선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SNS에서 불임클리닉의 난자동결 시술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물론 미혼 여성만 타깃으로 광고를 띄움). 주로 인플루언서가 직접 나와 자신의 시술 경험을 공유하는 식이죠. 마치 치아미백이나 피부미용 시술 사례를 홍보하는 것과 비슷한데요.불임클리닉이 이런 광고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난자를 얼리면 임신능력 저하에 대한 걱정을 잊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의 커리어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영영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여성의 마음(또는 본능)을 꿰뚫어 본 겁니다.1980년대 이후 난자동결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이 여성 근로자의 삶을 놀랍도록 변화시킨 건 사실입니다. 이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의 주요 연구업적 중 하나인데요. 지난 100년의 미국 대졸 여성을 세대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보조생식술의 등장으로 일과 아이, 둘 다 가진 고학력 여성이 전보다 늘어나게 됐다는 내용입니다.좀 더 설명하자면, 197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은 피임약이라는 혁명을 맞이합니다. 덕분에 경력 단절 없이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됐죠. 혼전임신이 확 줄면서 결혼 자체를 미룰 수 있었으니까요. 대신 이들이 잃은 게 있습니다. 결혼이 늦다 보니 출산 시기를 아예 놓쳐버린 겁니다. 이 때문에 이 세대의 고학력 여성 중엔 아이가 없는 비율이 크게 늘어납니다. 결과적으로 일 때문에 아이를 포기한 셈이죠. 이와 달리 1980년대 이후 미국 대졸 여성은 좀 늦더라도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의 등장 덕분이죠. 이제 고학력 여성들은 커리어를 위해 아이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특히 석박사 학위가 있는 여성 중 자녀가 있는 비율은 바로 이전 세대보다 크게 늘었죠.그렇다면 역시 난자동결은 불임클리닉 광고대로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희망의 기술인 걸까요. 글쎄요. 그렇게 결론이 단순하진 않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세계가 워낙 복잡 미묘하기 때문이죠.그래서 출산 성공률은 얼마?난자동결의 최종 목표는 성공적인 출산입니다. 그럼 얼렸던 난자를 해동해 시험관시술을 했을 때 출산까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잘 모릅니다. 통계마다 수치가 워낙 제각각이기 때문인데요. 일단 영국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에 따르면 얼렸던 난자를 이용한 여성의 이용한 정상 출산율은 18%입니다. 일반적인 시험관시술 성공률(26%)보다 훨씬 낮은, 실망스런 수치인데요.미국 뉴욕대 난임센터 연구 결과는 이보다는 희망적입니다. 냉동된 난자에서 정상 출산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39%로 나타났는데요. 만약 난자동결 시술을 받을 때 나이가 만 38세 미만이라면 성공률이 51%로 높아집니다. 특히 38세 미만이면서 난자를 20개 이상 해동했다면 출산 성공 비율이 70%라고 합니다. 동결 시점의 나이와 얼마나 많은 난자를 얼렸느냐(보통 시술 횟수와 비례)가 중요한 겁니다.다시 말해 난자동결은 임신 성공을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든든한 ‘보험’은 아닐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비싼 복권(꽝 나올 확률 높음)’이 될 수 있는 거죠. 미국 생식의학회 회장인 마르셀 시더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교수는 NYT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성들이 난자동결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입니다. 임신율은 많은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 않아요. 저는 항상 환자들에게 ‘냉동실엔 아기가 없어요’라고 말해줘요.”그럼 성공확률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더 일찍, 20대 초반에 난자를 얼려야 하냐고요? 그건 전문가들이 권하지 않습니다. 자연임신을 할 수 있는 기간과 기회가 많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이죠. 비싼 복권을 사놓고 아예 평생 긁지도 않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참고로 동결한 난자는 매년 일정금액(미국은 500~1000달러, 한국은 20만~30만원)의 보관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시술을 일찍 하면 그만큼 비용도 더 듭니다.부작용 위험도 고려해야 합니다. 호르몬주사의 드물지만 아주 치명적인 부작용이 난소과자극증후군인데요. 몸이 붓고 복수가 차고 심하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죠. 나이가 어리면 이 부작용 발생 위험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난자동결 지원을 둘러싼 논쟁현실적으로 난자동결을 할까 말까 망설이게 만드는 건 이런 의학적 이유보다는 비용입니다. 특히 미국의 비싼 병원은 시술 한 번에 1만5000달러, 5년 보관료까지 하면 2만 달러(약 2600만원)가 들어서 웬만해선 엄두가 안 나는데요. 바로 이 점 때문에 난자동결 비용 지원을 약속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2014년 애플과 페이스북(현 메타)이 난자동결 지원을 직원 혜택으로 내걸어서 크게 화제가 됐죠. 지금은 구글·넷플릭스·우버 등 IT기업뿐 아니라 블랙록 같은 대형 투자회사, 쿨리 같은 로펌에서도 난자동결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지원합니다. 머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대기업(임직원 수 2만명 이상) 중 19%가 난자동결을 직원 혜택 패키지에 포함시켰습니다. 2015년 6%에서 크게 늘었는데요. 경쟁력 있는 여성 인재를 확보·유지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재보험사 코리안리가 지난해부터 난자동결 시술비용을 최대 200만원 지원해주고 있더군요.그런데 직원들에게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은 이 혜택을 두고 미국과 유럽에선 많은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이 혜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거냐는 의심-‘이거 출산이 아니라 혹시 ‘출산 연기’를 장려하고 있는 거 아니야?’-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을 회사에 바치기 위해 출산을 미루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 거란 우려였죠. 뉴욕대 경영대학원 리사 레슬리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 ‘진보인가요 아니면 압박인가요? 난자동결 지원과 다른 직장생활 정책의 신호효과’에서도 이런 부정적 인식이 드러납니다. 연구 결과 회사의 난자동결 지원 혜택이 다른 출산장려책(시험관시술 지원, 직장 내 어린이집, 유급 육아휴직제도, 유연근무제)보다 유독 직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더 많이 불러일으켰다는데요. 난자동결을 회사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는 게 ‘업무가 우선이고 개인생활을 좀 희생할 수 있다(일을 위해 출산을 미뤄라)’는 신호로 읽힐 수도 있다는 결론입니다.솔직히 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굴 필요가 있나 싶은데요. 또 다른 미국의 연구(2020년)에서는 회사로부터 난자동결 지원을 받은 직원들을 인터뷰해보니, 출산을 미뤄야 한다는 압력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는 반응 일색이었거든요. 지원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것 아닐까요.하지만 이 점은 지적해야겠습니다. 난자동결을 지원해 주는 건 일-가정 균형 문제 해결과는 별개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뒤로 미뤄둘 뿐이죠. 한국에서도 서울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난자동결 비용을 최대 200만원 지원해주기 시작했는데요. 부담을 덜어주는 건 좋습니다. 그런데 과연 ‘얼려놓은 난자를 녹여서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다시 골딘 교수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가 볼게요. 보조생식술 덕분에 ‘커리어와 아이’를 모두 손에 넣은 미국 대졸 여성들. 그럼 그들은 일-가정 균형 면에서 성공한 걸까요. 전혀 아닙니다. 최근 30년 동안 남성 대졸자와의 소득 격차가 거의 줄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과 아이를 모두 얻은 고학력 여성들이 출산 이후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좀 더 유연한 일자리(칼퇴근 가능한 업무나 파트타임 같은)를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게 핵심 결론입니다. 난자동결과 시험관시술로 아이를 늦게 갖는 건 가능해졌지만, 육아로 인해 여성이 커리어 일부를 포기하는 건 여전하단 겁니다.그럼 해법은? 골딘 교수는 일자리 구조의 변화, 돌봄에 대한 사회적 지원, 그리고 특히 남성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남성들이 직장에서 맹렬하게 달려드는 것을 줄이고, 다른 남성 동료들이 육아휴직 갈 때 지원해주고, 아동 돌봄을 보조하는 정책에 투표하고, 가정이 일보다 더 가치 있다는 점을 회사에 알려야 한다’는 겁니다. 동의하시나요? 이상적이지만 참 갈 길이 멀겠다 싶은데요. 합계 출산율 0.76명(상반기 기준)의 한국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 아닐까 합니다. By.딥다이브제가 난자동결 시술을 처음 취재했던 게 2007년. 당시 차병원에 난자를 동결해둔 미혼여성은 딱 2명뿐이었습니다. 한명은 항암치료를 앞둔 암환자, 다른 한명은 한국의 난자동결 비용이 미국보다 훨씬 싸다는 걸 알고 찾아온 미국 교포였죠. ‘건강에 문제 없지만 언젠가 출산을 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으로’ 난자를 얼리는 미혼여성은 그때만 해도 뉴욕타임스 기사에나 나오는 사례였는데요. 지금은 한국에서도 연 1000명이 넘게 시술을 한다니,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생식력 보존을 위해 난자를 얼리는 시술을 하는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만혼 추세에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었죠.-불임클리닉의 마케팅도 영향을 끼칩니다. 잠시 임신 따위는 잊고 커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보험’ 정도로 받아들이는 추세이죠. 실제 난자동결을 포함한 보조생식술은 미국 대졸 여성이 직업을 유지하며 아이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했습니다.-하지만 ‘지나친 낙관’은 곤란합니다. 영국에선 동결된 난자를 이용해 정상 출산을 하는 확률이 18%라는 통계가 있죠. 자칫 ‘보험’이 아니라 ‘비싼 복권’이 될지도 모릅니다.-미국이나 영국에선 난자동결 비용을 지원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출산을 미루라는 압박’이란 일부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정말 출산을 장려하려면 ‘어떻게 하면 얼린 난자를 녹이고 싶게 만들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둬야 하겠습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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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준에 맞선 美 장기채 ETF 투자자, 올해 100억 달러 잃었다[딥다이브]

    예상을 살짝 웃돈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가 뉴욕증시를 끌어내렸습니다. 12일(현지시간) 3대 주요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51%, S&P500 –0.62%, 나스닥지수 –0.63%. 이날 개장 전 나온 9월 CPI는 전달보다 0.4%, 전년 대비로 3.7% 상승했습니다. 시장 전망치를 0.1%포인트 상회한 수치인데요. 다만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4.1%로 8월(4.3%)보다 둔화됐습니다. 9월 CPI가 기준금리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립니다. 한쪽에선 물가와의 전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자산관리업체 글렌메데의 제이슨 프라이드 투자전략 책임자는 “CPI 보고서엔 연준이 인플레이션 요정을 다시 병 속에 집어넣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내용이 거의 없다”면서 “연준이 여전히 한번 더 금리 인상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반대로 이제 금리 인상은 끝났다는 신호로 보는 쪽도 있습니다. 구겐하임 인베스트먼트의 이코노미스트 매트 부시는 “우리는 더 이상의 (금리)인상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연준)은 11월 1일 회의에서 하이킹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할 거고, 4분기 내내 경제가 둔화되고 노동시장이 약해지는 조짐을 보게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시장 반응을 종합하자면 11월 1일 열릴 FOMC 회의에서는 금리를 동결할 거란 기대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연준이 곧 금리 인하로 돌아설 거란 확신은 다소 약해지고 있습니다. 이날 채권시장에선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4.7%선, 30년물 금리는 4.86%로 올랐습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은 다시 5%대로 뛰었고요. 한국에서도 많이 투자한 ‘아이셰어스 만기 20년 이상 국채 ETF(티커 TLT)’ 가격이 2.71%나 급락하며 충격을 받았는데요. 블룸버그는 이날 기사에서 “일년 내내 세계 최대의 국채 ETF(TLT)에 기록적인 금액을 쏟아부은 월스트리트 전문가들이 약 1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올해 들어 TLT에 들어온 투자금액은 무려 176억 달러라는데요. 금리가 이미 정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금리하락(채권 가격 상승)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ETF 애널리스트 에릭 발쿠나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TLT는 연준과 맞서 싸우는 후예입니다. 연준이 경제를 무너뜨리고 금리를 낮추게 될 거라고 장담하죠. TLT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전문가이지 할머니가 아닙니다.” 블룸버그는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가정 때문에 여전히 장기 국채에 대한 낙관론은 커지는 추세라고 설명합니다. 주식시장의 약세를 상쇄하는 헤지수단이 될 거라고 보기 때문이라는군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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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투기 ‘심장’ 개발 나선 한국… “20년간 부가가치 최소 9조” [딥다이브]

    한 대를 팔면 중형차 1000대 수출을 뛰어넘는 부가가치를 낸다는 전투기. 하지만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는다. 수십 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이 독점해 오던 항공엔진 분야에 중국이 가세한 상황. 최근 인도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를 뒤쫓기 시작했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 양산을 눈앞에 둔 한국은 이제 전투기 엔진 국산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다.● 전투기 심장 얻은 중국·인도 올 6월 미국과 인도의 정상회담 직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F414 전투기 엔진을 인도에서 공동 생산하고 핵심 기술을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항공엔진 기술 이전을 철저히 막아온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이례적으로 인도의 손을 잡은 것이다. 20년 넘는 도전 끝에 2013년 항공엔진 자체 개발을 포기했던 인도는 단숨에 최신 기술을 얻게 됐다. 이에 중국은 개발 중인 신형 엔진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며 응수했다. 중국이 자랑하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J-20’이 신형 ‘WS-15’ 엔진을 장착한 채 시험비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중국 언론은 ‘중국 전투기가 드디어 중국 심장을 얻었다’며 환호했다. 중국은 2001년 ‘WS-10’ 엔진을 개발했지만, 성능 미달로 인해 최신형 전투기 J-20엔 러시아산 엔진을 수입해 써왔다. 현재 개발 중인 WS-15 엔진의 경우, 성능이 미 공군 F22 전투기에 장착된 프랫 앤드 휘트니(P&W) F119 엔진과 맞먹는다는 게 중국 측 주장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2000년 전후에 신형 엔진 개발을 시작한 중국은 그동안 최소 9000억 위안(약 164조 원)을 투입했다. 다만 아직 시험비행 단계로, 양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한국은 ‘2037년 개발’ 로드맵 전투기 엔진 기술은 이제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최초의 국산 전투기 ‘KF-21’이 내년이면 양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달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에서 KF-21 마케팅에 나섰다. KF-21을 수출 상품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하지만 KF-21의 엔진은 미국산이다. GE의 F414 엔진의 설계 도면과 핵심 부품을 받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공장에서 면허생산 방식으로 조립해 만든다. 따라서 KF-21을 수출하려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이 거부하면 수출이 불가능하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고도 독일의 엔진 수출 금지 때문에 수출이 무산됐던 것과 비슷한 일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항공엔진 국산화를 위해 정부도 나서기 시작했다. 방위사업청은 6월 발간한 ‘2023-2037 국방기술기획서’에서 항공기용 대형 터보팬 엔진 개발의 로드맵을 담았다. 유·무인 전투기에 쓸 수 있는 추력 1만5000파운드급 엔진을 2037년 정도까지 자체 개발하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 단계는 아니다. 내년 중 사업타당성 조사를 거쳐 예산이 편성돼야 본사업에 들어갈 수 있다.● 항공엔진 개발 역량은 있나 항공엔진은 모든 엔진 중 개발 난도가 가장 높다. 엔진이 내뿜는 1500도 넘는 고온을 견디는 소재 기술부터 난관이다. 수천, 수만 시간 작동할 수 있는 내구성도 갖춰야 한다. 비행에 적합한지를 검증하는 180개 항목의 감항인증 통과도 필수다. 고장 나도 추락하진 않는 자동차 엔진이나, 한 번 쏘면 끝인 로켓 엔진과는 차원이 다르다. 달 탐사선도 만든 중국과 인도가 항공엔진 개발에선 고전해 온 이유다. 하지만 조형희 연세대 항공우주전략연구원장(기계공학부 교수)은 “한국의 개발 역량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국 기업의 설계도면을 받아 오긴 했지만 항공엔진 면허생산의 오랜 경험이 축적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은 기존 엔진을 뜯어보는 ‘역설계’부터 하다 보니 실패를 거듭했지만, 우리는 조립기술이 있으니 더 높은 단계에서 시작한다”며 “부품 협력업체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다는 것도 큰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김원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엔진연구센터장 역시 “지난 40여 년간 1만 대에 육박하는 다양한 항공엔진을 생산하며 종합적인 개발 역량을 키워 왔다”며 “첨단 항공엔진을 개발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해외 협력사 없이 독자적으로 전투기급 엔진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3∼14년, 소요 예산은 총 5조 원 정도로 예상된다. 엄청난 비용이지만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경제적 가치는 상당하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항공엔진 개발 이후 20년 동안 올릴 부가가치를 최소 9조4000억 원으로 추정했다. 항공엔진 시장 점유율 1%를 차지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수치다. 만약 전투기급 엔진을 개발해 신뢰성을 확보한다면, 이를 민항기용 엔진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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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권금리는 700년 동안 하락해왔다. 그럼 앞으로는?[딥다이브]

    금융시장 관심이 온통 ‘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까’에 쏠려있습니다. ‘이제 고금리가 뉴노멀(New normal)’이란 기사도, “금리 7%대 시대가 온다”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의 경고도 부쩍 자주 보이는데요.4.8%를 넘어선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말까지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가 투자자들의 최대 관심거리인 상황. 그래서 오늘 금리 방향에 대한 이야기 좀 해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궁금한 앞으로 몇 달, 또는 몇 년의 전망이 주제가 아닙니다. 좀 많이 오랜 기간, 즉 지난 700여 년에 걸친 채권금리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0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711년에 걸친 실질금리 하락채권금리는 1311년부터 꾸준히 하락해왔습니다. 그것도 아주 규칙적으로.오늘 소개해드리려는 논문 ‘장기채 실질금리의 장기 추세(Long run trends in long maturity real rates)’의 결론입니다. 지난해 첫 발간 뒤 개정을 거쳐 올해 7월 다시 나온 따끈한 논문인데요.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바바라 로시 바르셀로나경제대학 교수, 폴 슈멜징 보스턴대학 교수의 공저입니다.무려 1311년부터 2022년까지 711년 동안 선진국 8개국(미국·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프랑스·독일·스페인·일본)의 장기채 금리와 인플레이션을 조사해 실질금리(=명목금리-인플레이션율)를 알아봤더니 완만한, 하지만 뚜렷한 하락추세에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매년 평균 0.017%포인트, 그러니까 100년에 1.7%포인트씩 하락하는 기울기를 보였는데요. 즉, 저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트렌드가 아닙니다. 수 세기에 걸쳐 줄곧 있어왔던 일종의 법칙 같은 겁니다. 아니, 그 긴 시간 동안 전쟁과 경제위기, 각종 사건 사고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 ‘일관된 추세’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요. 잘 와닿지가 않는데요.논문에 따르면 700년이 넘는 조사 기간 동안 이 직선에 가까운 장기 궤적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벗어난 사건은 딱 두가지뿐이라고 합니다. 하나는 14세기 중반(1346~1353년) 유럽 전역을 휩쓸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사라지게 만든 페스트(흑사병). 다른 하나는 1550년대 후반 유럽을 뒤흔들었던 프랑스·스페인·영국의 잇따른 국가 부도(디폴트) 사태입니다. 이밖의 다른 사건의 경우(예-나폴레옹 전쟁)엔 단기적인 이탈은 있었지만 곧 실질금리가 추세선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중앙은행의 도입(1914년 미국 연방준비제도 설립)과 정교해진 통화정책 도구의 발명(1981년 폴 볼커 시대). 현대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런 변수들은 실질금리 추세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앙은행과 경제학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결과가 아닐 수 없죠.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어떻게 쓰든, 돈을 풀든 조이든 어차피 장기 실질금리 추세는 고정돼 있다는 얘기가 되니까요.이 논문의 기본적인 데이터는 폴 슈멜징 교수가 2019년 발표한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장기 실질금리와 안전자산 트렌드, 1311-2018’)에서 나왔습니다.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각국 기록보관소에 잠들어있던 라틴어로 된 자료까지 파헤쳐서 데이터를 모았는데요. 경제학 컨퍼런스에서 1970년대 이후 고작 40여 년의 데이터를 가지고 ‘금리의 역사’를 논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얘기합니다. 금리의 역사를 다시 제대로 쓴 거죠. 금리는 평균으로 돌아간다이 논문에 따르면 1300년대 10%대였던 장기채 실질금리는 꾸준히 하락해, 최근 100여 년 동안은 1% 안팎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장기 추세 기준으로 실질금리 제로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죠. 시장금리가 무섭게 뛰고 있는 지금 시점에 이 논문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일단 미국 10년 만기 국채를 기준으로 실질금리를 따져 봅시다. 지난해 내내, 그리고 올해 상반기까지도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였죠. 국채금리 3% 안팎인데 기대 인플레이션이 5%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10년물 금리가 4.8%대인데, 기대 인플레는 3.2%로 내려와 있습니다. 몇 달 전만 해도 마이너스였던 실질금리가 단숨에 1.6%로 치솟았죠. 그리고 시장에선 금리가 더 크게 뛸 거라며 패닉에 빠져있고요.마치 이런 상황이 닥칠 걸 예견이라도 한 듯 논문 저자들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실질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와 팬데믹(2020년)이 유발한 급격한 하락에서 평균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역사적 추세로는 글로벌 금리의 하락이 지속됩니다. 즉, 금융위기 이전의 값이 아니라 그보다 완만하게 하락한 추세로 복귀가 이뤄질 겁니다.”실질금리가 다시 올라서 마이너스를 탈출하는 건 당연한데(평균 회귀), 그렇다고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되돌아가진 않을 거란 뜻입니다. 예컨대 다이먼이 언급한 7% 금리 시대 같은 건 웬만큼 인플레이션율이 치솟지 않고서는 어렵단 얘기이죠. RBC(캐나다왕립은행) 자산운용의 수석 전략가 토마스 가레트슨 역시 이 논문 내용을 인용하며 이렇게 해석합니다. “미국과 전 세계의 기준금리가 역사적으로 높은 현재 상황은 금융위기 이후 시대에서 벗어났다기보다는(새로운 ‘뉴노멀’이라기보다는) 일탈일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생산성 좋아지면 금리는 오를까 내릴까이쯤에서 당연히 의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실질금리가 700년 넘게 하락하기만 할까요?그 답은 아직 잘 모릅니다. 연구자들은 구조적 추세가 있다는 건 확인했지만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는데요. 유동성 증가와 채무불이행 위험의 감소, 두 가지를 유력한 이유로 짐작하고 있다고만 합니다.다소 맥 빠지시나요? 대신 중요한 발견이 있습니다. 경제학계에서 정설로 받아지는 것과 달리 ‘생산성 향상’이 실질금리를 끌어올리지 못하더라는 거죠. 오히려 과거 데이터에 따르면 생산성(실질 총생산 증가율)과 실질금리는 반대로 움직여 왔습니다. 생산성은 지난 700년 동안 꾸준히 향상됐는데, 실질금리는 계속 떨어져 온 거죠.이 연구결과가 특히 눈에 띄는 건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고금리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꽤 많은 경제학자들이 올해 들어 ‘AI 기술 발전과 정부 지출 급증(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구조적 고금리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죠. 이른바 ‘실질 중립금리 상승론’인데요. 적어도 이 주장이 과거 700년의 데이터로는 근거가 없는 겁니다. 폴 슈멜징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 적 있죠. “영국의 GDP 대비 공공지출은 18세기 초엔 8%에서 20세기 후반엔 35%로 높아졌습니다. 실질금리가 하락하는 동안 선진국의 재정지출은 크게 증가했왔죠.”현대 경제학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주장(생산성 향상→실질금리 상승)이지만 역사적 데이터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금리·통화정책·경제성장에 대한 기존 이론을 뒤흔드는 역사적 증거의 발견.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로 연결될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이자율 데이터는 그리스·로마시대는 물론 심지어 바빌로니아 시대 기록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다만 중세시대 자료가 텅 비어있어 연속적인 데이터를 구하기 어려울 뿐이라는데요. 방대한 역사 속 금리 기록의 조각을 한데 모아 퍼즐을 맞춰보니 의외로 단순한 답이 나오더라는 연구 결과가 흥미로워서 소개해드렸습니다. 이래서 역사를 알아야 하는 건가 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면-1311년부터 2022년까지 8개 선진국의 장기채 실질금리를 집계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실질금리(=명목금리-기대인플레이션율)의 뚜렷한 장기 하락 추세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1년에 0.017%포인트씩, 그러니까 100년에 1.7%포인트 하락합니다.-웬만해선 이 장기추세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잠시 일탈할 순 있어도 다시 평균으로 회귀하죠. 중앙은행의 출현과 세계대전, 현대적 통화정책 도구의 발명도 통계적으로 추세를 바꾸지 못했습니다.-팬데믹으로 추세보다 더 많이 떨어졌던 실질금리가 다시 평균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다시 돌아갈 ‘평균’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실질금리는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올라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떨어질 뿐이죠. 정부지출 확대와 AI 기술 발전이 실질 중립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거란 주장을 역사 데이터는 정면으로 부정합니다.*이 기사는 10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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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산주 뛰고 항공주 급락…공식대로 움직인 뉴욕증시[딥다이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소식에 주식시장은 반사적인 반응을 내놨습니다. 9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방산주 주가는 오르고, 항공주 주가는 급락했는데요. 전쟁이 더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유가는 급등했습니다. 다우지수 +0.59%, S&P500 +0.63%, 나스닥지수 +0.39%. 이날 주요 주가지수는 장 초반 하락세를 보였지만 이스라엘군이 하마스로부터 남부 도시의 통제권을 탈환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반등했습니다. 특히 대표 방산주인 록히드마틴은 8.93%, 노스럽 그러먼 11.43%, 제너럴 다이내믹 코퍼레이션은 8.43% 상승했는데요. 반면 항공사들이 이스라엘행 항공편을 대거 취소하면서 항공주 주가는 크게 떨어졌습니다. 아메리칸항공(-4.08%)과 유나이티드항공(-4.88%), 델타항공(-4.65%) 모두 4%대 하락을 기록했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전쟁이 확대되느냐입니다. 특히 하마스 공격의 배후로 지목된 이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유생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양측 충돌이 원유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못하죠. 대신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거나, 미국이 이란 수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나선다면 원유시장에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란 산유량이 하루 10만 배럴씩 줄어들 때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달러 넘게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습니다.더 큰 걱정은 전쟁 확대로 이란이 전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다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면 어쩌나 하는 건데요. 이날 국제유가가 급등한 건 이런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4.3% 오른 86.38달러, 북해산 브렌트유는 4.2% 오른 88.15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에 따라 뉴욕증시에서 에너지주 주가도 일제히 상승했습니다. 마라톤오일이 6.63%, 코노코필립스 5.63%, 옥시덴털페트롤리움은 4.53% 올랐습니다. 이번 사태가 원유시장이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은 다양합니다. 커먼웰스은행의 비벡 다르 이사는 “분쟁이 석유시장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석유 공급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역사에서 보듯이 유가 상승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죠. 모건스탠리 역시 “현재로선 다른 국가로의 파급효과가 예상되지 않는다”며 원유의 장기적 가격엔 별 영향이 없을 걸로 봤는데요. 반면 소시에테 제네랄은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면 원유가격에 5~10달러의 위험 프리미엄이 추가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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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성비 VS 짝퉁천국’ 논란의 중국 쇼핑앱, 조용히 한국 상륙[딥다이브]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핑앱이 무엇일까요. 아마존이나 월마트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출시 뒤 돌풍을 일으킨 ‘테무(Temu)’이죠. 이 테무가 유럽과 일본을 거쳐 올해 7월 한국까지 진출했습니다. 이미 국내 사용자 수 51만명(8월 기준)을 기록하며 조용히, 하지만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데요.테무는 중국 3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拼多多)가 운영하는 글로벌 시장용 플랫폼이죠. 중국산 싸구려 제품, 그거 한국 소비자가 얼마나 찾겠냐고요? 그렇게 방심할 일이 아닙니다. 핀둬둬는 ‘미친 가성비’로 중국 시장을 뒤흔들었고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넘보고 있죠. 논란거리도 많은 기업, 핀둬둬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지금 가장 잘나가는 쇼핑몰중국 3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Alibaba)와 징둥닷컴(JD.com), 핀둬둬가 지난 8월 나란히 2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알리바바는 전년 동기보다 13.9%, 징둥닷컴은 7.6%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죠.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이었습니다.그리고 핀둬둬는? 매출(523억 위안, 약 9조6400억원)은 66.3%, 순이익(131억 위안, 약 2조4200억원)은 47.4%나 성장했습니다. 가히 압도적인 성과이죠.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어디인지를 확실히 보여줬습니다.핀둬둬는 설립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업계 후발주자입니다. 1980년생 구글 엔지니어 출신 황정(黃崢, Colin Huang)이 2015년 창업했죠. 중국 이커머스 시장을 알리바바와 징둥닷컴이란 두 거인이 장악한 상황에서 뒤늦게 뛰어든 건데요. 온라인쇼핑 시장의 급성장기가 끝나간다고 다들 여겼던 시점이죠. 하지만 황정은 광활한 미개척지로 눈을 돌렸습니다. 중국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수많은 저소득층이었죠. 중국 전체 인구의 약 70%가 이에 해당합니다.더 빠른 배송과 더 다양한 제품. 다른 온라인쇼핑몰은 이런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힘을 쏟았지만 핀둬둬는 달랐습니다. 오직 한 가지에 집중했죠. 바로 가격. 더 싼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갈망은 끝이 없기 때문에 “항상 소비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가성비로 승부한다는 전략이었는데요. 황정은 과거에 쓴 글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미 부유하지만 식료품이나 휴지를 살 때 여전히 1~2위안 차이를 신경 씁니다. 핀둬둬의 사명은 소비자가 싸게 물건을 사는 과정에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보다 저렴하게 만드는 겁니다.”기대 이상으로 싸게 파는 법싸게 팔면 좋은 거야 누가 모르나요. 그게 어려우니까 못하는 거죠. 도대체 핀둬둬는 어떻게 남들보다 물건값을 더 낮출 수 있을까요.일단 핀둬둬는 판매할 때 떼는 수수료가 거의 없습니다. 거래 수수료율이 0.6%이죠. 그마저 이를 거의 다 결제플랫폼(위챗페이, 알리페이)이 가져가기 때문에 사실상 핀둬둬 입장에선 남는 게 없죠. 그럼 핀둬둬는 뭐로 돈을 버냐고요? 이는 뒤에 다시 설명해 드리겠고요.핀둬둬 가성비의 또 다른 비결은 공급망 혁신입니다. C2M(Customer-to-Manufacturer), 즉 소비자와 제조업체(공장)를 직접 연결한 모델을 도입했는데요. 중간 유통단계를 줄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애 버린 겁니다.이 대표 사례가 중국 제지업체 커신로(Kexinrou, 可心柔)입니다. ‘핀둬둬를 키운 건 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핀둬둬 성장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브랜드인데요.커신로는 원래 20년 넘게 OEM으로 미용티슈를 생산하던 공장이었죠. 2016년부터 핀둬둬와 손잡고 자체 브랜드 상품을 C2M으로 판매합니다. 커신로는 핀둬둬 측 조언대로 제품 종류를 줄이고 인기 제품에 집중해 최대한 싸게 내놨는데요. 2018년 ‘대나무 펄프’ 티슈 28팩을 29.9위안에 판매해 엄청난 히트를 칩니다. 다른 브랜드의 반값도 안 되는, 1팩에 1.067위안(약 197원)이란 가격에 소비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출시 당일에만 300만 위안(약 5억5000만원)어치가 팔렸는데요. 언론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가격인가’ 취재하러 공장에 찾아왔을 정도였죠. 당시 커신로가 티슈 1팩을 팔아 손에 쥔 이익은 고작 0.03위안(5.5원). 진정한 ‘박리다매’였는데요. 그 결과 핀둬둬는 입소문으로 고객 유치에 성공하고, 커신로는 단숨에 인지도 높은 브랜드가 됐으니 윈윈이라 하겠습니다.핀둬둬는 이런 식으로 1500개 넘는 기업과 손잡고 맞춤형 제품을 4000개 넘게 출시했습니다. 핀둬둬에서 팔리는 인기제품 가격이 다른 어느 플랫폼보다 더 싼 이유도 C2M에 있습니다.모바일 쇼핑은 검색 대신 추천“친구가 시작한 그룹 초대에 참여하고 네이블오렌지 10개를 19.9위안으로 구매하겠습니까?”산둥성에 사는 전업주부 샤오메이를 핀둬둬 쇼핑에 빠지게 만든 건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친구가 보내온 이 공동구매 제안 메시지였습니다. SNS를 활용한 ‘소셜 커머스’는 핀둬둬를 키운 또 다른 원동력인데요.소셜커머스? 그거 한국에선 2010년 쿠팡·위메프·티몬이 하다가 접은 지 오래됐죠. 한물간 사업모델이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2010년대 초반과 지금은 달라진 게 있죠. 이제 PC가 아닌 모바일 시대이고, 강력한 모바일 메신저 덕분에 사람을 쉽고 빠르게 모을 수 있는 겁니다. 위챗으로 공동구매 메시지를 보낸 건 자기 친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엽니다. 게다가 가격까지 무지 싸기 때문에 충동구매로 이어지기 쉽죠. 한 조사에 따르면 핀둬둬 공동구매 이용자의 40.9%는 “원래 살 마음이 없었는데, 저렴한 가격을 보고 괜찮은 딜이라고 생각해서 일단 사뒀다”고 답했습니다.소비자의 탐욕을 채워주는 충동적이고 무작위적인 쇼핑. 이것이 가성비로 무장한 핀둬둬가 공략하는 핵심 지점입니다. 해외용 플랫폼 ‘테무’가 내건 슬로건도 이를 잘 드러내 주죠.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Shop like a billionaire)’. (단, 테무엔 아직 공동구매 기능은 없음.)바로 이 점이 핀둬둬가 기존 전자상거래 업체들, 알리바바는 물론 아마존이나 쿠팡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입니다. 사람이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검색 중심의 PC 시대 쇼핑), 상품이 사람을 찾는 거죠(=추천 중심의 모바일 시대 쇼핑). 마치 틱톡이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알아서 인기 있는 숏폼 영상을 띄워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입니다.핀둬둬 앱 맨 위엔 다른 쇼핑몰과 달리 검색창이 없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작은 검색 버튼이 있죠. 철저히 ‘검색 아닌 추천’ 중심인데요. 창업자 황정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모바일 소비자는 PC시대 소비자와 다르게 행동합니다. PC보다 휴대폰에선 타이핑하는 게 번거롭죠. 이런 변화는 미미해 보이지만 실제론 소비자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컨대 검색을 예전보다 훨씬 덜하게 되죠. 소비 상황이 바뀌면서 새 모델이 요구되고 있고, 우리는 우연히 이 방향에 맞게 만들었습니다.”참고로 해외용인 ‘테무’ 앱 맨 위엔 핀둬둬와 달리 검색창이 있긴 한데요. 대신 첫 화면에 소비자가 관심 있을 만한 상품을 알아서 척척 띄워줍니다. 무엇보다 그 화면을 아래로 넘기면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끝도 없이 새로운 제품이 계속 나옵니다. 화면을 마냥 넘기다 보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추천 상품의 늪’에 빠진 기분입니다.짝퉁은 가짜가 아니다?극강의 가성비를 기반으로 한 중독성 있는 상품 추천. 이를 원동력으로 핀둬둬는 중국 내 활성 고객 수 9억명을 넘기며(지난해 9억800만명) 무섭게 커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2021년 4분기부터 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섰죠.(참고로 쿠팡은 2022년 3분기부터 흑자 전환)거래 수수료가 고작 0.6%인데다 거기서 남기는 것도 없다면서 뭐로 돈을 버나 싶을 텐데요. 전체 매출의 72%가 온라인 마케팅, 즉 광고에서 나옵니다. 판매자가 핀둬둬 앱에서 더 잘 노출될 수 있게 광고해주면서 돈을 받는 거죠.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소비자 데이터를 판매업체에 파는 것. 이게 진짜 핀둬둬의 수익모델입니다. 요즘엔 아마존을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이 점점 광고플랫폼이 되어가고 있죠. 이런 트렌드에서 가장 선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여기까지 보면 참 똑똑하고 트렌드를 앞서가는 기업으로 보이는데요. ‘그럼 나도 한번 테무에서 쇼핑해볼까’라고 생각하셨다면, 잠깐. 꼭 알아두셔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핀둬둬가 가짜 불량 상품으로 악명이 높다는 겁니다.핀둬둬 초기엔 온갖 가짜 브랜드 상품이 판을 쳤는데요. 삼성의 영문 로고를 따라 한 ‘SHAASUIVG’ TV, 코카콜라(可口可乐) 중국 로고를 본뜬 ‘可日可乐’ 콜라는 애교 수준입니다. 심지어 유통기한이 지난 분유를 한 캔에 7.5위안(약 1380원)에 팔아서 소비자들을 분노케 했죠.이에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창업자 황정이 2018년 핀둬둬의 나스닥 상장 직후 기자회견에서 두 시간 가까이 이 문제를 해명해야 했는데요. 이때 그의 이 발언이 두고두고 화제가 됐습니다. “모방품은 가짜가 아니다(山寨不是假货).”유통기한 지난 분유나 가짜 배터리는 건강과 안전에 문제가 있으니 큰일이지만, 짝퉁 브랜드 TV 같은 건 소비자가 알면서도 싸게 사는 거니까 문제 없지 않냐는 식이었죠. 그는 되레 기자들에게 이렇게 되물었죠. “빅브랜드가 뭡니까? 왜 중국에서 만든 지 30년이 된 것도 여전히 카피캣(모방품)이라고 부를까요? 왜 중국 제품은 빅브랜드라고 할 수 없나요?”나스닥 상장사 오너의 공식 발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인데요. 다만 이후 핀둬둬가 모방품 단속을 강화하면서 지금은 예전처럼 노골적인 짝퉁은 많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명품 로고를 베낀 가방, 지갑이나 ‘SHIERP TV’ 같은 전자제품(SHARP가 아님 주의)은 있다는군요.핀둬둬가 또 악명 높은 건 혹독한 근무환경입니다. 핀둬둬는 경쟁업체보다 30~50%나 높은 연봉을 줘서 중국 IT업계에서도 가장 급여가 센 회사인데요. 대신 996(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이 당연하고, 일부 부서는 007(0시부터 다음날 0시까지 24시간 주 7일 근무)이란 말까지 나옵니다. 상하이 본사의 월평균 근로시간이 300시간이 넘는다고 하죠. 2020년 12월엔 새벽 1시에 퇴근하던 1998년생 여직원이 영하 20도의 길에서 쓰러져 사망하는 일이 있었고요. 또 상하이 본사 1개 층에 남자직원이 800명인데, 화장실이 8칸밖에 없다(즉 변기 1개당 100명)는 사실이 알려져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출근할 때 1분을 지각하면 1시간분 임금을 깎는다는데요. 그나마 예전엔 3시간분을 깎았는데, 많이 완화된 거라고 합니다.참 상식과 어긋나는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테무’ 앱의 글로벌 이용자 수는 아주 무서운 속도로 급증하고 있습니다(3월 3700만명→7월 1억700만명). 미·중 갈등? 중국산 편견? 가치 소비? 다 어디 갔나요. 알고 보니 글로벌 소비자들에겐 그저 가성비가 최고의 가치였군요.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요즘, 오히려 테무는 더 잘 나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다른 중국 브랜드보다 테무의 한국 진출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초저가 울트라 패스트 패션으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중국 패션 브랜드 ‘쉬인’을 소개해드린 적 있죠(). 핀둬둬가 ‘테무’ 앱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면서 쉬인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습니다. 같은 제품이면 테무가 쉬인보다 더 싸게 판다고 하죠. 지금 두 업체는 미국에서 서로 소송을 걸며 다투고 있는데요. 정작 중국 의류 중소기업은 쉬인과 테무 덕에 수출이 늘어 신났다는 보도도 나옵니다. 초저가 유통시장에선 역시 중국을 당해낼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한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면-중국 이커머스 시장의 후발주자, 핀둬둬의 성장세가 놀랍습니다. 2분기에도 66% 매출 성장을 기록했죠.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전자상거래 업체입니다. 올 7월엔 한국에도 진출했습니다.-핀둬둬는 소비자 기대를 뛰어넘는 극강의 가성비로 승부합니다. 제조 공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C2M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죠.-소셜커머스라는 고전적인 마케팅 방식도 통했습니다. PC가 아닌 모바일 시대 쇼핑은 검색보다는 추천이란 점을 간파한 건데요. 싼 제품을 충동적으로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절묘한 알고리즘도 한몫 합니다.-짝퉁 천국이란 불명예와 비인간적인 근무환경까지. 논란 많은 기업이지만, 이미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성비 플랫폼의 진격은 당분간 계속될 겁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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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용보고서가 증시 방향 정한다…나스닥 약보합세[딥다이브]

    주식시장 관심이 온통 6일(현지시간) 나올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에 쏠려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약보합세로 거래를 마쳤죠. 다우지수 –0.03%, S&P500 –0.13%, 나스닥 –0.12%. 요즘 미국 증시는 고용 데이터 하나하나에 아주 예민합니다. 11월 FOMC에서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를 올리냐 마느냐가 노동시장에 달려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따라서 고용시장의 열기가 제발 식어간다는 지표가 나오기를(실업률이 치솟고 신규고용이 확 줄기를) 투자자들은 바라고 있는데요. 일단 5일 나온 9월 마지막 주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0만7000건으로 전주보다 2000건 증가했습니다. 월가 추정치 21만건에 못 미쳤죠. 투자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노동시장은 아직 꽤 탄탄해 보입니다. 이제 시장의 변수로 남은 건 한국시간으로 6일 밤 발표되는 노동부의 비농업 고용보고서인데요. 전문가들은 9월 비농업 고용이 17만명 증가해 전달(18만7000명)보다 둔화할 거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지표가 예상보다 너무 양호하게 나온다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 모두에 타격을 주게 되겠죠(블룸버그 “채권 금리가 다시 뛰고,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금요일 나올 고용보고서는 올해 중 가장 중요한 보고서가 될 것”(톰 에세이 세븐리포트리서치 사장)이란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고용시장이 너무 뜨거워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5%에 근접하게 오르면, S&P500 지수가 200일 이동 평균선 아래로 떨어질 거라고 보기 때문이죠. 이럴 경우엔 지수 하락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전략가 케네스 브록스는 “금요일 급여 데이터와 다음 주의 CPI 수치가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5%까지 올라가느냐, 4.5%로 내려가느냐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만약 일자리 증가 규모가 예상보다 크게 나온다면 “달러 매입과 채권 매도의 또 다른 물결”을 촉발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한편 금리인상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는 이틀 연속 하락했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날 2.2% 하락해 배럴당 82달러 선, 브렌트유는 2% 가까이 떨어져 배럴당 84달러 선을 기록했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에 다가가던 게 9월 말이었는데요. 약 열흘 만에 배럴당 10달러 넘게 급락한 겁니다. 금리 급등으로 경제가 압력을 받으면 석유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커진 영향이죠. 다만 지금의 유가의 하락 속도가 너무 빨라서 투자자들이 놀랄 정도인데요. 컨설팅회사 크플러의 애널리스트 매트 스미스는 FT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WTI에 쌓인 투기적 매수세가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몇 가지 약세 트리거로 인해 가격이 급격하게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세를 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데요. 골드만삭스는 5일 낸 메모에서 “탄탄한 수요와 높아진 가격결정력으로 인해 OPEC이 브렌트유 가격을 배럴당 80~105달러 범위로 유지할 수 있다”면서 “내년 봄까지 브렌트유를 배럴당 100달러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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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투기의 심장, 엔진은 왜 우리가 만들 수 없을까[딥다이브]

    전투기 1대 수출이 국산 중형자동차 1000대 수출과 맞먹는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그만큼 무기체계 중에서도 전투기의 부가가치가 크다는 뜻인데요. 마침 최초의 국산 전투기 KF-21의 양산단계 진입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집니다.그런데 KF-21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은 누구 것일까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F414’ 엔진 설계도를 받아 한국에서 라이선스 생산합니다. 사실상 심장은 미국산이나 마찬가지이죠. 항공엔진 개발 기술을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 6개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중국)뿐이기 때문인데요. 모든 나라가 탐내는, 하지만 좀처럼 닿을 수 없는 항공엔진의 세계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전투기 심장을 직접 만든다는 것“중국 전투기가 드디어 중국 심장을 얻었다!”지난 7월 노란색 ‘J(젠·殲)-20’ 전투기의 시험비행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자 중국 국방 전문가들은 이렇게 환호했습니다. 전투기에 장착된 엔진이 중국이 독자개발한 ‘WS-15’ 터보팬 엔진이었기 때문이죠.J-20은 중국이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하지만 그동안 엔진은 러시아산 AL-31을 써야 했습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1년 ‘WS-10’ 엔진을 완성했는데요. WS-10은 엔진출력 미달로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자국 최신 전투기에도 쓰이지 못한 겁니다. 이 때문에 J-20 전투기는 외신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조롱을 받아왔죠.그런데 중국의 신형 항공엔진 WS-15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국 측 주장으로는 미국 프랫 앤 휘트니(Pratt&Whitney)사의 ‘F119’ 엔진(F-22에 들어감)과 유사한 성능이라고 하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2000년 전후로 신형 엔진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최소 9000억 위안(약 164조원)을 투입했다는 보도 내용이 눈에 띄는데요. 20년 넘는 긴 세월과 천문학적 비용을 들인 끝에, 이제야 개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양산 단계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엔진 독자개발은 왜 어려울까항공엔진 개발은 왜 이리 어려운 일일까요. 기본적으로 개발 난이도가 모든 엔진 중 가장 높습니다. 자동차 엔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죠. 항공엔진은 수 톤에 달하는 항공기 기체를 하늘로 띄우고 음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비행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요. 엔진이 내뿜는 1500도 이상 고온을 견디는 소재기술 개발부터 난관입니다. 또 수천~수만 시간(전투기 엔진은 6000시간, 여객기는 3만 시간 이상)을 작동할 수 있는 내구성도 갖춰야 하고요.무엇보다 까다로운 180개 항목의 감항인증(비행에 적합한지를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자동차 엔진이야 도중에 멈추면 자동차가 도로에 서게 되지만, 항공엔진은 멈추면 바로 추락이니까요. 로켓엔진은 한번 쏘면 끝이지만 항공엔진은 몇십년을 날 수 있어야 합니다. 항공 분야에서 엔진기술은 가장 가치 있는 기술이지만, 감히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기술이죠. 심지어 미국 P&W조차 F119 엔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데 12년, F-22 장착 이후 테스트에 14년이 걸렸을 정도입니다.게다가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들이 당연히 절대 기술을 내놓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8년이 됐지만, 여전히 중국을 제외하곤 2차 대전 승전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만 기술을 보유한 이유입니다. 특히 시장성이 크고 난이도가 높은 민항기용 엔진 시장은 미국과 영국의 톱3 기업(GE·P&W·롤스로이스)이 다 잡고 있고요.그런데 이런 구도에 약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난 6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인도 모디 총리의 정상회담 직후, 미국 GE가 F414 전투기 엔진을 인도에서 공동생산하고 핵심 기술도 이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인도는 1989년부터 항공엔진을 자체 개발하려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2013년 개발을 중단했는데요. 그런 인도가 한방에 세계 최고의 미국 기술을 이전 받게 되다니. 전 세계 방산업계가 깜짝 놀랐습니다.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인도가 파격적으로 손을 잡은 겁니다. 2020년 중국·인도 국경 지역 라다크에서 양국 군이 충돌했을 때, 중국 공군은 서북부에 J-20 전투기를 배치하며 위협했죠. 인도 언론은 이번 미국과의 엔진 협력을 두고 “GE의 F414 엔진 공동생산으로 중국 제트엔진(WS-10) 성능을 단숨에 능가하게 됐다”며 기뻐했습니다. 중국에 이어 인도까지 가세하면서 항공엔진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우리도 전투기 엔진을 국산화하자고?여기까지 보시고 ‘중국 놀랍네, 인도 좋겠다’라고 생각하셨나요? 이게 단순히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닙니다. 한국도 이제 국산 전투기를 수출해야 하는 나라이니까요.앞서 언급한 대로 국산 전투기 KF-21이나 경공격기 FA-50 엔진은 모두 미국 GE 겁니다. 따라서 KF-21과 FA-50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려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No’ 하면 엔진을 구할 수 없으니 수출이 불가능하죠.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고도 독일의 엔진 수출 금지 때문에 결국 수출을 못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일종의 심장마비-이 생길 수도 있는 겁니다. 즉, 항공엔진 개발은 자주국방의 문제만이 아니라 K방산의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우리한테도 미국이 항공엔진 기술을 이전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행운을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죠. 정부도 ‘항공엔진 국산화’를 위해 이미 나섰습니다. 무인항공기(드론)에 쓰일 터보팬 엔진(5500파운드급) 개발을 진행 중이죠.하지만 전투기급 엔진은 이것과는 또 다른 레벨의 얘기입니다. 전투기에 들어가는 엔진은 추력이 1만5000파운드 이상이어야 하는데요. 방위사업청이 지난 2월 ‘드론 쇼 코리아 2023년 컨퍼런스’에서 “1만5000파운드급 신형 터보팬 엔진을 2037년까지 개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 엔진이면 연소기까지 장착할 경우 KF-21에 탑재된 F414 엔진(최대 추력 2만2000파운드)과 맞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단, 아직은 구체적 계획이라기보다는 선언적인 수준입니다.만약 정말 항공엔진을 국산화할 수 있다면? 아직 먼 얘기이지만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지난해 보고서(‘첨단 항공엔진 국내개발을 위한 제언’)에 따르면 개발 후 20년 동안(2037~2057년) 올릴 부가가치가 최소 9조4000억원이란 추정치가 나와 있습니다(터보팬 항공엔진 시장 점유율 1%를 가정). 일단 전투기급 엔진이 개발되면 더 나아가 민항기용 엔진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웅장한 기운마저 느끼게 됩니다.그래서 정말 할 수 있나하지만 좀 냉정히 따져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개발의 필요성 알겠고 파급효과 큰 것도 이해하는데요. 그런데 정말 개발할 수 있나요?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인도도 실패했고, 중국은 100조원 넘게 쏟아붓고도 아직 미완성이라는데?우선 현재 전투기 엔진을 면허생산 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김원욱 항공엔진연구센터장에게 질문했습니다.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센터장은 이렇게 답했죠.“대한민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0여년간 1만대에 육박하는 다양한 항공엔진을 생산했고, 항공엔진 라인업의 개발·관리는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왔습니다. 항공엔진의 설계·해석뿐 아니라 소재, 제조, 시험평가,감항인증 기술을 종합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첨단항공엔진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예상대로 당연히 역량이 충분하다는 답이 돌아왔는데요. 추가로 이 분야 전문가인 조형희 연세대 항공우주전략연구원장(기계공학부 교수)과도 25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국산 전투기급 엔진 개발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이야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로 보이는데요?“저도 ‘정말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을 본 게 이미 우리 기업이 항공엔진 면허생산을 상당히 했다는 점입니다. 설계도면을 받아오긴 했지만,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는 기술은 이미 갖고 있죠. 원래 자동차엔진도, 로켓엔진도 처음 개발할 땐 기존 것을 뜯어보고 ‘역설계’를 해야 하는데요. 우리는 조립을 해봤으니 그보다는 높은 단계에서 시작하는 겁니다.중국의 실패 사례도 찾아봤는데요. 자료에 따르면 중국도 월남전에서 추락한 미국 전투기 엔진을 가져가서 역설계로 시작했더라고요.”-중국은 설계도면도 없이 기존 엔진을 뜯어보면서 배운 거군요.“네. 그러니까 실패를 거듭했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면허생산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보다 운이 좋고요.또 항공엔진은 공급망의 협력업체가 1000개 가까이 구축돼야 국산화가 가능한데요. 면허생산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그게 어느 정도 구축돼 있습니다. 이 역시 상당히 큰 자산이죠.물론 감항인증과 소재기술 면에서 우리나라가 아직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KF-21 전투기 동체를 우리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엔진 수요가 생겼거든요. 또 2030년 중후반이 되면 전 세계가 유·무인 복합 전투기 체계로 갈 텐데, 무인기 엔진은 수출 규제 때문에 우리가 사 오기 힘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적기라고 봅니다.”-방위사업청이 2037년 개발 완료를 얘기한 적 있습니다. 만약 전투기 엔진 개발을 시작한다면 실제로는 얼마나 걸릴까요?“해외 사례를 보면 플랫폼, 즉 기존 엔진 모델이 있으면 8년이 걸리고요. 플랫폼 없이 처음부터 하면 13~14년 걸리더라고요. 우리는 플랫폼이 없으니까, 그 정도 걸린다면 2037년쯤이 되는 거고요. 만약 해외 협력사를 구한다면 그보다 4~5년 단축할 수도 있을 겁니다.”-아직은 첨단 항공엔진을 개발하겠다는 선언만 있지 예산이 편성되거나 하는 단계는 아닌데요.“과기부와 국방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방위사업청에 이를 담당하는 파트도 생겼고요. 선행연구를 거쳐 내년에 ‘사업타당성조사’ 작업을 통과한다면 그땐 예산이 편성돼 정말 사업이 시작될 겁니다.”-개발하는 데 돈은 얼마나 들까요?“해외 협력사의 플랫폼이 있다면 한 3조원, 부품을 다 국산화한다면 5조원을 전망합니다. 상당히 커 보이지만 10년으로 나누면 연 3000억원 정도이죠.”-사실 KF-21 사업도 그게 되겠냐는 회의론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되지 않았습니까. 전투기 엔진개발도 쉬운 길은 아닐 것 같은데요.“KF-21은 하기로 결정하고서도 엔진을 쌍발로 하느냐 단발로 하느냐를 가지고 2~3년 싸웠다 더라고요. 그게 다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긴 한데요. 사실 옛날 우리나라가 자동차 엔진 개발할 때 비교하면 지금은 여건도, 인력도 훨씬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우리나라의 역량은 크게 걱정 안 합니다. 역량을 잘 모아서 가느냐가 더 중요하죠. 거꾸로 우리나라가 이것도 개발 못 할 정도라며 의심하는 게 저는 더 이상하다고 봅니다.” By.딥다이브 전투기 엔진 국산화라니. 밀덕이라면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일 텐데요. ‘우리나라가 우주 발사체도 만들었는데!’라는 희망에 부풀다가도 ‘정말 13년, 3조원으로 그게 될까’라며 주춤해지기도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전투기의 심장인 엔진. 하지만 항공엔진 기술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만 보유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이 수십년의 투자 끝에 업그레이드된 신형 엔진을 선보이며 추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자체 개발을 포기했던 인도는 미국으로부터 항공엔진 기술이전을 받기로 했습니다. 글로벌 지정학 위기의 덕을 보게 된 겁니다. -한국은 국산 전투기 KF-21 양산을 앞두고 있지만 엔진 기술은 미국에 의존하는 상태. 자주 국방뿐 아니라 K방산의 미래를 위해서도 전투기 엔진 국산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지금은 막연하게 ‘2037년 개발 완료’라는 선언 정도가 나온 단계인데요. 과연 전투기급 엔진을 우리 손으로 개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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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채금리 악재 뚫고 뉴욕증시 반등 성공[딥다이브]

    미국 뉴욕증시가 모처럼 상승세로 마감했습니다. 국채 금리가 급등했지만 반발매수세가 유입된 덕분입니다. 25일 다우지수는 0.13%, S&P500 0.4%, 나스닥지수는 0.45% 상승을 기록했죠. 이날 국채 시장은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10년물 금리가 전 거래일보다 0.1%포인트 올라 4.54%로 치솟았죠. 심리적 저항선인 4.5%를 돌파했을 뿐 아니라, 2007년 4.57% 이후 최고치입니다. 고금리가 장기화될 거란 우려가 채권시장을 흔들고 있는 겁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10년물 금리가 4.75%까지 상승한 뒤 연말에 하락할 거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나흘 연속 하락세를 보였던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소폭이나마 상승세로의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모처럼 대형기술주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기 때문이죠. 아마존이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에 최대 4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마존(1.67%)과 엔비디아(1.47%) 주가가 비교적 크게 뛰었습니다. 기업공개(IPO)한 다음날부터 주가가 계속 내리막을 탔던 ARM 주가도 이날은 6.08% 급등했죠. 인프라캐피털 어드바이저스의 제이 해트필드 CEO는 CNBC에 “S&P500 지수 4300선에서 시장에 대한 지지가 있다”면서 “투자자들은 AI 붐으로 돌아갈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분석했습니다.증시가 반등에 성공하긴 했지만 앞에 놓인 악재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중 하나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우려입니다. 미 의회는 이달 말까지 내년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데요. 만약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국방과 치안 같은 필수 인원을 뺀 연방정부 근로자 약 80만명이 강제 무급휴가에 들어가야 합니다. 무디스는 이날 “셧다운이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3대 신용평가사 중 무디스만 유일하게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Aaa)으로 유지 중인데요. 이마저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미국의 학자금 융자 상환이 다음 달 재개되면서 소비가 타격을 받을 거란 우려도 커졌습니다. 투자은행 제프리스는 나이키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보유(중립)로 하향조정하고 목표주가도 140달러에서 100달러로 낮췄습니다. “조사 결과 미국 소비자들이 앞으로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크고, 의류와 신발 소비가 가장 많이 줄어들 분야”라는 이유입니다. 미국의 대학 학자금 융자는 팬데믹 때문에 상환이 중단됐었는데요. 이후 바이든 행정부가 1인당 최대 2만 달러까지 학자금 대출을 탕감해주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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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 곳이 없다”…임대주택 시장 붕괴한 호주에서 생긴 일[딥다이브]

    요즘 한국 부동산 시장의 이슈 중 하나가 주택공급 급감입니다. 주택 인허가·착공 물량이 모두 크게 줄어서 2~3년 뒤 주택공급 대란이 닥칠 거란 걱정인데요. 정부가 조만간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주택시장에 ‘공급 절벽’이 생기면 무슨 일이 나타날까요. 전·월세 매물 급감으로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저소득층이 임대시장에서 밀려나고 자칫 노숙자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요. 너무 극단적인 상상 아니냐고요? 실제 이런 일이 호주에선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장이 무너졌다’고 할 정도로 호주 사회가 극심한 임대주택난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요. 오늘은 호주의 ‘임대 위기’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까딱하면 노숙자 될 판호주 멜버른에 사는 세 자녀의 엄마 새미 클라크는 요즘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룹니다. 지금 사는 집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새 셋집을 구하기 위해 스무 군데를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서비스업 정규직인 그의 급여 수준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이유였는데요. 부동산 중개인은 그에게 “보증인을 구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죠. 클라크는 분통을 터뜨립니다. “저는 47세이고 15년 동안 집세를 혼자 내왔는데 왜 보증인이 필요하죠?”(더시드니모닝헤럴드 기사 인용)호주 시드니 아파트에서 2년간 살았던 제임스 역시 새집 구하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셋집을 보러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면서 “시드니 임대시장은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침실 1개짜리 집에 주당 450달러를 지불할 순 없어요. 내 월급으론 감당할 수 없다고요.” 지게차 운전기사인 그의 수입은 많아야 주당 900 호주 달러(약 77만원) 정도입니다. 얼마 전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계약 만료된 아파트는 자물쇠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후 2주 동안 그는 공원에서 잠을 자야 했죠. 그는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해놨지만, 언제까지 대기해야 할지는 모릅니다.(가디언 기사 인용)호주 사회가 전례 없는 ‘임대주택 대란’으로 아우성입니다.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살 곳을 구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는데요. SQM리서치가 집계한 호주 주요 도시의 평균 주당 임대료는 779달러(약 67만원). 2021년 초(551달러, 약 47만원)와 비교하면 44% 급등했습니다. 이제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30.8%에 달합니다. 버는 돈의 거의 3분의 1을 집세로 내야 하는 거죠. 집 없는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커집니다.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거나 돈을 벌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호주 자선단체의 노숙자 서비스엔 갈수록 대기줄이 길어집니다. 시설이 꽉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갈 곳이 없어 자동차나 텐트에서 잠을 자는 사람 수가 3년 전보다 103% 늘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입니다.‘임대 위기’라는 표현이 과장 아닌 현실입니다. 지금 호주 임대 시장은 수요와 공급 균형이 완전히 깨진 상태입니다.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회복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이것은 공급의 문제 : 살 집이 없다호주 임대시장의 공급 부족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공실률인데요. 전국 주택 임대시장의 공실률은 1.2%로, 역대급으로 낮습니다. 과거 10년 평균 공실률 2.9%의 반도 안 되죠(참고로 미국은 임대주택 공실률이 6.3%). 보통 임대주택 시장은 공실률이 2% 정도이면 균형 잡힌 시장이라고 보는데요. 일부 지역은 더 심각해서, 애들레이드는 공실률이 고작 0.5%, 퍼스는 0.4%입니다. 사실상 빌릴 집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죠. 부동산 조사업체 코어로직에 따르면 호주의 임대 매물 건수는 3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왜 이렇게 집이 부족할까요. 이를 알려면 호주의 임대인(집주인)이 누구인지를 봐야 합니다. 호주는 한국보다도 공공임대 주택 비율이 낮죠(호주 4.4%, 한국 8.9%). 즉, 임대인 대부분이 사는 집 외에 집 한 채를 더 사서 세를 놓아 생활비에 보태려는 평범한 개인입니다.그런데 이런 임대인들의 투자 의욕이 확 사그라들었습니다. 투자 수익률이 예전 같지 않아서죠. 대출 금리가 오르자 대출받아 집 사서 세 놔봤자 별로 남는 게 없게 됐는데요. 게다가 집값 거품까지 빠르게 빠지면서(지난해 호주 주택가격 5.3% 하락) 그냥 집을 팔고 임대시장에서 철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호주의 가계대출이 꾸준히 줄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집주인의 임대 의욕 상실엔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도 한몫했습니다. 에어비앤비로 여행객에게 집을 빌려주는 게 장기 임대계약을 맺는 것보다 훨씬 쏠쏠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시드니 패딩턴에 가구가 딸린 침실 2개짜리 아파트를 6개월 동안 임대해주면 주당 1500달러를 받지만, 에어비앤비에서 일주일 빌려주면 3500달러입니다. 멜버른 외곽 포인트쿡에선 방 3개짜리 집의 장기 임대료는 주당 460달러이지만 에어비앤비에선 하루 317달러에 올라와 있죠. 집주인 입장에선 일주일에 2~3일만 에어비앤비로 집을 빌려줘도 6개월 장기 임대계약보다 수익률이 높은 겁니다. 호주 전역에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휴가용 부동산은 약 30만 곳에 달합니다.이런저런 이유로 기존 임대인들이 시장을 떠났으니, 남은 방법은 새집을 더 많이 짓는 거겠죠.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재비·인건비·공사비가 무섭게 뛰었기 때문입니다. 건설비용이 팬데믹 이전보다 30% 뛰었다는데요. 이미 공사를 시작한 주택 건설은 계속 지연되고 있고, 신축 승인도 확 줄었죠. 건설경기가 가라앉아 7, 8월 두 달 동안 560개 건설회사가 파산신청을 했을 정도입니다. ANZ은행의 애드레이드 팀브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주저한다”면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싶어 하지 않고, 이것이 우리를 악순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수요의 문제: 인구 폭발주택공급난은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곧 닥칠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호주 임대시장을 대혼란으로 몰아넣은 또 다른 한 축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바로 인구가 크게 늘면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점이죠.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3월 말 기준으로 호주 인구는 직전 12개월 동안 56만3200명 증가해 265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연 2%가 넘는 매우 가파른 증가세인데요. 이 중 81%인 45만4400명이 이민자였습니다. 지난해 초 다시 이민을 받기 시작하면서 팬데믹 기간 0이었던 이민자 수가 역대 최대로 급증한 겁니다. 하루에 1200명 넘는 이민자가 호주에 정착하러 온다는 뜻이죠. 호주가 광산에서 일할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였던 2008년의 기록을 이미 깼다는군요.다시 말해 연간 수십만 채의 주택 수요가 이민자로 인해 추가되고 있는 겁니다. 호주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서 집을 찾기 위해 해외에서 이뤄진 검색 건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데요. 아마도 이민자들은 바로 집을 사기보다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주택을 임차할 가능성이 크겠죠. 그럼 이들은 도대체 다 어디서 살아야 할까요?이 틈을 타서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는 세력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호주 극우정당 원네이션(One Nation)이 대표적인데요. 호주 의회는 이달 14일 수개월의 논의 끝에 100억 달러(약 8조5700억원)를 투자해 5년 동안 3만 채의 저렴한 주택(이 중 2만 채는 공공임대주택, 1만 채는 저렴한 주택)을 짓는 내용의 정부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두고 원네이션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하죠. “정부는 지난 30일 만에 이 나라에 6만명의 사람들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 나라는 향후 5년 동안 지을 예정인 집을 증발시켰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어도) 호주인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겁니다.”물론 대부분 호주인에게 ‘이민자=경제의 필수인력’은 상식으로 통합니다. 워낙 근로 인력이 부족한 나라라서 이민자 없인 경제가 돌아갈 수 없죠. 하지만 그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미 문제투성이였던 임대시장이 이로 인해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고요. 정부가 나서야 한다…어떻게?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정부에 비판의 화살이 쏠립니다.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임대시장을 망가뜨렸다는 건데요. 그중에서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줄인 게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힙니다. 1980년대엔 호주에서 건축 승인을 받은 주택 10채 중 1채가 정부 소유 공공주택이었지만, 지금은 2%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던 거죠. 뉴사우스웨일스 세입자연합의 레오 패터슨 로스 대표는 호주가 공공 주택 부문을 늘리지 못한 건 “수십 년 동안 두 집권 정당 모두를 대표하는 정말 나쁜 실수”라고 지적하고요. 호주부동산연구소의 헤이든 그로브스 회장은 “우리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엄마 아빠 투자자들(개인 임대사업자)에게만 의존하는 걸 멈춰야 한다”고 말합니다.앞에서 언급한 대로 호주 정부가 앞으로 공공주택을 늘리겠다고 나서긴 했는데요. ‘100억 달러 기금으로 5년 3만 채 건설’이란 목표를 두고 냉소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지금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저소득층만 이미 6만명이거든요. 임대시장에서 밀려나 노숙자가 될 처지에 놓인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요.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공공주택이 실제로 부지를 찾고 건설돼서 입주하기까지엔 수년이 걸리겠죠. 이미 폭발 일보 직전인 임대차 시장을 떠받치기엔 역부족입니다.이에 좀 더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각종 정책이 나오거나 제안되는데요. 호주 빅토리아주는 이달 20일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공유 플랫폼 이용자에 2025년부터 ‘단기 숙박 부과금’ 7.5%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늘어난 에어비앤비 호스팅이 임대위기의 원흉이라고 보고 손보려 나선 겁니다.에어비앤비 고객에게 세금을 매기는 건 호주에선 처음인데요. 당연히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7.5%가 다른 나라 사례(보통 3~5%의 숙박세 또는 관광세 부과)보다 너무 높다는 거죠.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다니엘 앤드루스 빅토리아주지사는 이를 지적한 기자에게 이렇게 반박합니다. “내가 100번도 말할 수 있는데, 그것(7.5%)은 적당한 요금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살 곳이 필요합니다!”야당인 녹색당은 좀 더 과격한 정책을 주장합니다. 바로 ‘2년간 임대료 동결(two-year rent freeze)’과 ‘국가적 임대료 상한제 도입’입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정책처럼 보이는데요. “기록적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가족들이 텐트나 자동차에서 살아야 할 상황이다. 정부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임대료 동결이 쉬운 방법”이라는 게 녹색당 측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호주 세입자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죠.가격 통제는 확실한 방법이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는 거, 다들 아실 겁니다. 이미 주택임대가 돈이 안 된다며 손 털고 있는 임대사업자들을 더 몰아내는 결과가 될 게 뻔하죠. 민간 임대주택 시장이 붕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멸해버릴지도 모릅니다.정공법(공급 확대)을 쓰자니 몇 년이나 걸릴지 모르고, 화끈한 미봉책(임대료 동결)은 후폭풍이 거세겠고. 답이 안 보이는 가운데, 임대 위기가 호주의 부동산 투자자들에겐 기회가 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지금은 집값이 안정세이지만, 이렇게 임대위기가 길어지면(그리고 금리까지 인하되면) 집값이 결국 다시 뛰지 않겠냐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은 집 없이 떠도는데 가진 자들에겐 오히려 투자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니. 씁쓸한 전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호주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몇 안 되는 국가이죠(스위스 1위, 호주 2위, 한국 3위). 최근 한국과 달리 호주는 가계부채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그게 좋은 신호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임대주택 시장이 붕괴하고 있다는 증거였죠. 참 부동산 시장은 복잡하고도 거대해서 다루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호주가 심각한 임대주택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임대 위기입니다. -공급이 너무 부족합니다.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자 임대인들이 집을 팔고 시장을 떠납니다. 차라리 에어비앤비를 선택하는 게 더 합리적 선택입니다. 건설비용 급등으로 새집도 지어지지 않습니다.-수요는 대폭발 중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유입된 순이민자수는 44만명으로 역대 최대였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정부는 부랴부랴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대폭 늘리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일부 주정부는 에어비앤비에 7.5%의 지방세를 매기겠다고 나섰고요. 하지만 이미 망가진 임대시장을 고치기엔 역부족으로 보이는데요. ‘임대료 동결’을 외치는 야당의 목소리도 커집니다.*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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