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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물가상승률이 8%대 중반으로 올라서면서 글로벌 경제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지정학적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쇼크로 인해 197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최근 미국의 물가 급등세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원유 등 에너지 가격 상승, 중국의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중국 주요 도시 봉쇄, 미 근로자 임금 상승, 구인난 등의 요인이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경제수도인 상하이가 대규모 봉쇄 조치에 들어가면서 지난해 내내 글로벌 경제를 괴롭혔던 공급망 위기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직면한 인플레이션 상황을 “퍼펙트 스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미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도 계속 악화되고 있다. 뉴욕연방은행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1년 동안 기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예상치)은 올해 3월 6.6%로 전달 6%보다 높았다. 2013년 조사 개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게 형성되면 소비자들이 미래의 가격 상승에 대비해 현재의 소비를 더 늘려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미국의 물가상승세가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연준이 긴축의 고삐를 바짝 당길 것이라는 전망도 향후 경기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2년 만에 ‘제로 금리’에서 벗어난 연준은 다음 달 초로 예정된 통화정책회의에서 한 번에 0.5%포인트를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할 공산이 크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계속 악화될 경우 추가 금리 인상과 양적 긴축(보유자산 축소) 등 다양한 ‘긴축 카드’를 쏟아낼 방침이다. 물가 급등에 따른 미국 중앙은행의 긴축 가능성 등의 우려로 전날 미국 증시는 급락했다. 11일 뉴욕 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2.18% 내렸고 다른 주요 지수도 1% 이상 하락세를 보였다. 또 중국의 대규모 봉쇄가 경제 활동 감소와 원유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4% 급락한 배럴당 94.2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이 최근 범죄에 자주 쓰이는 유령총(Ghost Gun) 규제에 나선다. 유령총은 사용자가 인터넷 등에서 부품을 따로 사서 조립해 만드는 총기로 규제가 허술해 범죄에 많이 악용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1일(현지 시간)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유령총은 많은 범죄자가 사용하는 무기”라며 “앞으로 유령총으로 범죄를 저지르면 연방정부가 기소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일부 온라인몰에서는 총기 제작기계와 부품 키트가 버젓이 팔린다. 이 부품들은 현행 법상 총기로 간주되지 않아 완성총에 부여되는 고유 일련번호도 없고, 구매자 신원 확인도 않는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부품을 구입해 유튜브 조립법 영상 등을 보며 총을 만들 수 있다어 전과자, 정신질환자 등 총기 소지가 제한된 사람이 범죄에 많이 이용하고 있다.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유령총은 약 2만 정으로 최근 5년 새 10배가량 늘었다. 백악관은 유령총 제작틀이나 부품에 일련번호를 부여하고, 부품 판매상도 총기 판매자처럼 연방정부 허가를 받도록 했다. 유령총 판매자는 구매자 신원을 반드시 확인하고 판매 기록을 보관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2만726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유령총은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가 돼 지난해 6월 해외에서 총기 부품을 들여와 총을 제작한 현역 군인들이 경찰에 적발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상대로 원유 수입 규제를 할지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다만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크고 EU 회원국들 간에 이해관계가 엇갈려 조속히 합의안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U 외교장관들이 11일 룩셈부르크에서 만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관련 규제 방안을 논의한다고 보도했다. EU 집행부는 전면적인 금수 조치 대신 각국 경제에 충격을 줄일 만한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이거나 원유에 관세를 매기는 방안, 원유 수입대금을 러시아 정부에 직접 지불하지 않고 별도 계좌에 예치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산 원유는 현재 EU 전체 원유 수입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EU는 이미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장기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막대한 민간인 희생 등 러시아군의 참혹성이 재확인되면서 더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그러나 러시아 에너지 제재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러시아산 원유 공급을 막을 경우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유권자 반발이 예상돼 각국 정부로선 정치적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독일은 다른 회원국들의 압박에도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에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결선투표를 앞둔 프랑스 대통령 선거도 변수다. 일부 EU 당국자들은 원유 수입 금지 조치가 프랑스 대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논의를 연기하자는 입장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최근 러시아의 외화표시채권 등급을 기존 ‘CC’에서 ‘SD’(선택적 디폴트)로 하향 조정했다. SD는 채무자가 전체 채무 가운데 일부를 상환하지 못할 때 적용되는 등급이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대 재학 중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인 로저 스트링햄 씨(93·사진)가 전쟁 당시 한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 50여 점이 70년 만에 뒤늦게 공개됐다.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은 9일(현지 시간) 그의 그림 및 인터뷰를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1951∼1952년 강원도에서 복무했던 그는 처절한 전투, 병사들의 모습, 마을 풍경 등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 1929년 미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난 스트링햄 씨는 한 미술대학을 다니던 중 1950년 말 징집됐다. 이듬해부터 강원 미 육군 보병사단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그는 재능을 살려 쉬는 시간마다 그림을 그렸다. 전쟁 중이라 그림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재료를 구할 수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그는 맥주, 담배, 치약 보급품 상자 등에서 뜯어낸 종이와 연필 가루를 사용했다. 한국의 산세와 마을 풍경을 담은 그림은 물론 전투기 탱크 트럭 등 군사 장비, 전투에 임하는 동료, 야간 순찰 등 전쟁의 급박한 순간을 묘사한 그림도 많다. 그는 그림을 완성하는 족족 안부도 전할 겸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보냈다. 현재 거주 중인 하와이에서 2월 한종우 유업재단 이사장을 만나면서 그림 공개를 결심했다. 2012년부터 참전용사를 만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작업을 하던 한 이사장은 스트링햄 씨를 만나 그림 얘기를 들었고 이를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이 재단은 각국 참전용사의 증언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다. 스트링햄 씨는 전쟁 이후 진로를 바꿔 핵물리학자로 활동했고 한국에도 수차례 방문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마천루와 고속도로, 교통 체계 등을 보면서 발전 모습에 엄청나게 감탄했다”고 밝혔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한국의 경제규모 대비 양육비 부담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9일(현지 시간) CNN방송과 글로벌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제퍼리스 그룹(JEF)은 중국 베이징의 유와인구연구소 데이터를 활용해 이 같이 분석했다. 연구 결과 출생 후 18세까지 아이를 기르는 비용은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로 가장 높았다. 이어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은 2019년 기준 18세까지 아이를 키우는 비용이 48만5000위안(약 9360만 원)으로 1인당 GDP의 6.9배였다. 영국은 GDP 대비 양육비가 5.25배였고 미국은 4.11배, 독일은 3.64배였다. 다만 가처분소득 대비 양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계산하면 중국이 14개 분석 대상국가 중 가장 높았다. 그러나 절대 금액만 놓고 보면 중국은 양육비가 가장 적게 드는 나라로 분석됐다.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양육비 부담이 큰 이유는 교육 및 보육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 꼽혔다. 중국의 경우 18세까지 자녀를 키우는 데 7만5000만 달러 이상이 들고 대학까지 보내려면 2만2000달러가 추가로 소요된다. 미국의 대학 학비는 중국보다 훨씬 비싸지만 미국은 학자금 대출의 부담을 부모가 아닌 자녀가 지게 된다는 점에서 부모의 양육비 부담은 덜하다고 JEF는 설명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 미술대학 출신의 참전용사가 한국전쟁에 투입됐을 당시 그렸던 스케치화와 수채화들이 뒤늦게 세상에 공개됐다. 그의 그림에는 1951~1952년 자신이 복무한 강원도 시골에서 벌어졌던 처절한 전투와 임무 수행 모습, 마을 풍경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한국전쟁유업재단은 9일(현지 시간) 미국인 로저 스트링햄 씨(93)가 당시 그렸던 그림 50여 점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했다. 유업재단은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세계 각국의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해 이들의 증언을 수집,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192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태어난 스트링햄 씨는 한 미술대학을 다니던 중 1950년 말 징집돼 이듬해부터 강원도 미 육군 보병사단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부대 인근 야간 순찰을 돌고 보급품의 수송 과정을 지키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화된 그는 자신의 그림 재능을 살려 쉬는 시간마다 스스로 본 것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전쟁 중이라 마땅한 그림 재료를 구할 수 없어 맥주나 담배, 치약 보급품 상자에서 뜯어낸 종이나 연필 가루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링햄 씨는 그림을 그리는 대로 이들을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할 겸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보냈다. 예술가인 어머니는 아들의 그림을 모아 1952년 샌프란시스코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그의 청년 시절 작품들은 전투기나 탱크, 트럭, 전투에 임하는 동료, 야간 순찰 장면 같은 전쟁 도중 급박했던 순간들을 묘사한 그림들이 많지만, 단순히 한국의 자연이나 마을 풍경을 담은 그림도 많다. 한국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일본에서 잠시 복무했을 때는 그림물감과 종이를 사서 한국에서의 시절을 과거 기억을 되살려가며 수채화로 그리기도 했다. 그가 이후 70년 간 자기 집에서만 간직해 왔던 그림들을 세상에 공개하게 된 것은 올 2월 현재 살고 있는 하와이에서 한종우 유업재단 이사장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2012년부터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만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작업을 하던 한 이사장은 그에게 우연히 그림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이를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재단을 통해 공개하자는 제안을 하게 됐다. 한 이사장은 “스트링햄 씨가 그림들을 어디에 보관할까 고민하고 있길래 이를 우리에게 맡겨서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게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며 “앞으로도 참전용사의 이야기를 통해 각국의 후손들에게 한국전쟁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교육자료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링햄 씨는 한국전쟁 이후에는 자신의 진로를 바꿔서 핵물리학자로 커리어를 쌓았다. 그동안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던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한국의 마천루와 고속도로, 교통시스템들을 보면서 발전상에 엄청나게 감탄했다”고 말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점점 고립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 참상이 드러나면서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 무대에서도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 7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긴급 특별 회의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 결의안이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통과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엔 산하기구에서 ‘쫓겨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이다. 이번 결의안을 공동 제안한 58개국에 이름을 올린 한국을 비롯해 미국 등 주요 7개국(G7) 등이 찬성표를 던졌다. 러시아를 비롯해 북한 중국 쿠바 이란 벨라루스 시리아 등 주로 인권 유린 의혹을 받는 국가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은 ‘러시아 고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권이사회에 이어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 상원은 이날 조 바이든 행정부가 WTO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제재 법안을 통과시켰다. 러시아의 최혜국 대우를 박탈해 고율의 관세를 매기도록 하는 내용도 담은 이 법안은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뒀다. 앞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6일 러시아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다면 미국은 보이콧하겠다고 밝히며 개최국인 인도네시아와 러시아를 압박했다. 유럽연합(EU)은 7일 러시아 석탄 수입 금지에 최종 합의했다. 전체 석탄 수입의 45%를 러시아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동안 꺼리던 에너지 제재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앞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더 나아가 “조만간 러시아 석유와 천연가스도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의 러시아 외교관 추방도 잇따른다. 일본이 8일 러시아 외교관 8명을 추방한다고 밝히는 등 이날까지 미국과 독일 영국 등 EU 회원국은 러시아 외교관 400명 이상을 추방했다. 민간 차원의 ‘러시아 보이콧’ 역시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는 해외 기업을 집계하는 미 예일대 경영대학원은 이날 ‘600개 넘는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했다’고 밝혔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파리=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로 7일(현지 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된 러시아는 외교 무대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는 올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유엔 총회 규탄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산하 기구 퇴출은 처음이다. 인권이사회 퇴출은 2011년 반정부 시위를 무력 진압한 리비아 이후 두 번째다. 그만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낸 인권 유린과 잔학성에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친러 국가 반대에도 압도적 표차 퇴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 정지 결의안은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 학살 증거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이날 결의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 사례를 열거했다. 세르히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대사는 표결 전 연설을 통해 “우리 배는 안개속에서 치명적인 빙산을 향해 나가고 있다. 이 배를 인권이사회가 아닌 타이태닉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인권이사회를 침몰에서 구하려면 행동해야 한다”고 결의안 찬성을 호소했다. 반면 겐나디 쿠지민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오늘 결의안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인권 상황과 관련이 없다”며 민간인 집단 학살을 거듭 부인했다. 장쥔 중국대사는 “양쪽으로 갈라 선택을 강요하는 이런 성급한 행동은 유엔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김성 북한대사도 결의안을 “정치적 책략”이라고 비난하는 등 친러시아 성향 회원국들은 반대했다. 하지만 결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24표라는 넉넉한 표차로 가결됐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인권 침해국은 유엔 인권기구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140개국 이상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 2건에 비해 후퇴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美, WTO-G20서도 러 ‘배제’ 압박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 박탈을 요구했다. 하지만 유엔 규정상 러시아가 스스로 제명하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은 다른 주요 국제기구에서 러시아 고립을 시도하고 있다. 7일 미 상원을 통과한 러시아 제재 법안은 미 정부가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퇴출을 추진하도록 규정했다. WTO는 회원국 4분의 3인 148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회원국을 퇴출시킬 수 있다. 현재 WTO 회원이 아닌 국가는 북한과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등에 불과하다. 퇴출된다면 러시아로서는 치욕적이다. 미국은 7월과 11월 의장국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러시아가 참석하면 보이콧하겠다고도 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질서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러시아의 국제통화기금(IMF) 퇴출도 요구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때가 되면 (입장을) 대중에게 알리겠다”며 고심 중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8일 러시아 외교관 8명 추방을 밝힌 일본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EU) 등 세계 36개국에서 약 400명이 추방됐다. 루이비통 샤넬 프라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 맥도널드 코카콜라 같은 식음료업체, 폭스바겐 벤츠를 비롯한 자동차업체 등 수십 개 업종의 세계적 기업 600곳 이상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거나 생산을 중단했다.○ EU, 첫 러시아 에너지 제재전체 석탄 수입의 45%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EU가 7일 합의한 석탄 금수(禁輸) 조치는 유럽의 첫 번째 러시아 에너지 제재다. 원유 25%, 천연가스 40%도 러시아에 의존하는 EU는 에너지 제재를 꺼리다 7일 우크라이나 보로s카에서 민간인 시신 26구가 발견되는 등 참상이 더 드러나자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 이번 조치는 회원국이 대체 공급처를 찾도록 120일 유예기간을 둔 뒤 8월 발효된다. 러시아 석유, 천연가스 수입 금지는 회원국 간 이견으로 합의가 불발됐지만 관련 제재 논의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7개국(G7)도 7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 주요 경제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를 금지하고 러시아에 대한 수출 금지를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8일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단계적으로 줄여 최종적으로 금지하는 제재 조치 등을 다음 주 시행한다. 지난달 비축유 442만 배럴 방출에 동의한 한국 정부도 723만 배럴을 추가 방출한다고 밝혔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을 저질러 7일(현지 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사실상 쫓겨난 러시아는 외교 무대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됐다. 러시아는 올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유엔 총회에서 규탄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국제기구에서 퇴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보인 인권 유린과 잔학성에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친러 국가들 반대에도 압도적 표차 퇴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 정지 결의안은 최근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 학살 증거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유엔 규정에 따르면 중대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저지른 나라는 유엔 총회 표결을 통해 인권이사회 자격이 정지될 수 있다. 이날 결의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 사례를 열거했다. 세르히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는 표결 전 연설을 통해 유엔을 타이타닉호에 비유하며 결의안에 찬성해줄 것을 호소했다. 키슬리차 대사는 “우리 배는 안개 속에서 치명적인 빙산을 향해 나가고 있다. 이 배를 인권이사회가 아닌 타이타닉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인권이사회를 침몰에서 구하려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겐나디 쿠즈민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오늘 결의안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인권 상황과 관련이 없다”며 민간인 집단 학살을 거듭 부인했다. 장쥔 중국 대사도 “양쪽으로 갈라 선택을 강요하는 이런 성급한 행동은 유엔 회원국 간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며 결의안에 반대했다. 김성 북한 대사도 결의안을 “정치적 책략”이라고 비난하는 등 친러시아 성향 회원국들은 반대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24표라는 넉넉한 표차로 가결됐다. 다만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140개국 이상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 2건에 비하면 후퇴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체 193개 회원국 중 100개국이 반대나 기권,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가 표결 전 다른 회원국에게 결의안 반대를 요청 또는 압박한 영향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권침해국이 여전히 이사국 지위 유지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세계 각국 인권 상황을 감시, 해결하는 유엔 대표 기구다. 1946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인권위원회로 출범해 2006년 지금의 이사회로 승격됐다. 3년 임기인 이사국은 현재 47개로 투표를 통해 순차적으로 선출, 교체된다. 인권이사회 결정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북한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매년 채택하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이사회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많은 인권침해국이 이사국으로 활동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회기에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과 베네수엘라 수단 에리트레아 등 인권 유린 의혹이 있는 나라들이 이사국이다. 이 국가들은 자국 인권 상황을 미화하고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이사국 지위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날 결의안 통과 후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인권 침해국은 유엔 인권기구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향후 매월 950억 달러(약 115조7000억 원)씩 보유자산을 줄여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는 긴축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강도 높은 긴축 정책 예고에 6일(현지 시간) 미 증시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7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 증시 역시 일제히 떨어졌다. 이날 한국의 코스피 역시 전일 대비 1.43%(39.17포인트) 내린 2,695.86으로 마쳐 13거래일 만에 2,700 선이 무너졌다. 연준은 6일 공개한 지난달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참석자들은 매월 미 국채 600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 350억 달러를 줄여나가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2017∼2019년 양적 긴축 당시 월 최대 500억 달러씩 자산을 줄였던 연준이 2배가량 빠른 속도로 긴축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유자산 축소는 5월 FOMC에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참석자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한 번 혹은 그 이상의 0.5%포인트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당초 3월 FOMC에서도 0.5%포인트 인상을 추진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0.25%포인트만 올린 점도 드러났다. 시장은 5월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리 선물(先物)을 통해 통화 정책을 점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5월 FOMC에서 금리가 0.5%포인트 오를 확률을 80%로 보고 있다. 한 달 전 30%대 내외였던 것과 큰 차이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5, 6월 FOMC에서 2회 연속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준 고위 인사 역시 긴축 선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6일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아서 우려스럽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연속 금리 인상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연준 2인자로 그간 통화 긴축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조차 5일 “이르면 다음 달 양적 긴축에 돌입하고 속도도 이전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로 6일 미 나스닥지수는 2.22% 하락해 이틀 연속 2% 이상 급락했다. 7일 일본 닛케이평균주가(―1.69%),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42%), 홍콩 H지수(―1.49%) 등도 하락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엔 산하기구에서 쫓겨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이다. 유엔 총회는 7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연 긴급 특별 회의에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정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로 통과시켰다. 압도적인 표차였다. 반대는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북한 이란 시리아 쿠바 벨라루스 등이었다. 이들은 표결 전 발언을 신청해 “부차 학살 의혹은 조작됐다”, “이번 결의안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은 찬성했다. 19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된 이번 표결에서는 기권·불참국을 제외한 나라들 중 3분의 2가 찬성하면 통과되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인권이사회에서 퇴출됐던 나라는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던 리비아가 유일했다. 특히 5개 상임이사국 중에는 인권이사회를 비롯한 모든 유엔 산하기구에서 자격을 박탈당한 나라가 한 번도 없었다. 이번 표결로 러시아는 중국 북한 등 일부 ‘우호국’을 제외하면 국제적으로 사실상 고립 상태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러시아를 규탄하는 내용의 유엔 총회 결의안 2건 역시 모두 140개국 이상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바 있다. 이날 표결에 앞서 러시아는 다른 회원국들에게 “이번 결의안에 반대해 달라”며 압박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메모에 따르면 주유엔 러시아 대표부는 다른 나라들에 “결의안 찬성 뿐 아니라 기권이나 불참도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적인 태도로 간주할 것”이라고 협박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향후 매월 950억 달러(약 115조7000억 원)씩 보유 자산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강도 높은 긴축 정책 예고에 6일(현지 시간) 미 증시는 큰 폭 하락했다. 7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국 증시 역시 일제히 떨어졌다. 연준은 6일 공개한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참석자들은 매월 미 국채 600억 달러와 주택저당증권(MBS) 350억 달러를 줄여나가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2017~2019년 양적 긴축 당시 월 최대 500억 달러씩 자산을 줄였던 연준이 약 2배 가량 빠른 속도로 긴축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보유자산 축소는 5월 FOMC에서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록에 따르면 다수의 참석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한 번 혹은 그 이상의 0.5%포인트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당초 3월 FOMC에서도 0.5%포인트 인상을 추진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0.25%포인트 인상을 한 사실도 드러났다. 시장은 5월 0.5%포인트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리 선물(先物)을 통해 통화 정책을 점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5월 FOMC에 금리가 0.5%포인트 오를 확률을 80%로 보고 있다. 한 달 전 30%대 내외였던 것과 큰 차이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5, 6월 FOMC에서 2회 연속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준 고위 인사 역시 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준 총재는 6일 “물가상승률이 너무 높아서 우려스럽다.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연속 금리인상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연준 2인자로 그간 통화 긴축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조차 5일 “이르면 다음달 양적긴축에 돌입하고 속도도 이전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이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로 6일 미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각각 전일보다 0.42%, 0.97% 떨어졌다. 특히 금리 변동에 민감한 나스닥 지수는 2.22% 하락해 이틀 연속 2% 이상 급락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이 유엔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실태를 상세히 공개하면서 러시아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공개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가 자국의 침략 행위에 대한 (안보리) 결정을 막을 수 없도록 상임이사국에서 몰아내야 한다. 유엔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다른 대안이 없으면 여러분들(유엔)은 모두 해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계속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유엔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인 집단학살을 극단주의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비유했다. 그는 “(국민들이) 수류탄 폭발로 아파트와 집에서 살해당했고 러시아군은 순전히 재미로 차 안에 있던 민간인들을 탱크로 깔아뭉갰다”며 “이런 행동은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자) 같은 테러리스트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죄 명령을 내린 사람과 이 명령을 수행해 우리 국민을 살해한 모든 이들을 뉘른베르크 법정과 유사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뉘른베르크 법정은 194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열었던 곳이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개혁에 대한 질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것에 느끼는 좌절감을 우리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살 참상’ 80초 영상에 안보리 탄식-한숨 젤렌스키, 안보리 화상연설러, 학살 계속 부인… 中은 러 두둔 5일(현지 시간) 미국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에서는 약 80초 분량의 동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에 있는 부차와 이르핀, 마리우폴 등지에서 러시아군에 참혹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아이 울음소리 등이 배경으로 깔린 이 영상이 ‘러시아의 공격을 멈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종료되자 안보리 회의실에는 탄식과 한숨이 교차하며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영상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준비한 것이다. 국방색 셔츠 차림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상태로 연설을 시작한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었다. 여성들은 그들의 자녀가 보는 앞에서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했다”며 유엔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그는 “유엔 헌장 1조(침략 및 파괴 행위 진압)도 지키지 못하는 유엔이 무슨 존재 의미가 있는가.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것인가. 국제법의 시대는 끝났나”라며 “그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즉각 행동해야 한다. 안보리가 보장하는 안보는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유엔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부터 이달 4일까지 최소 1480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2195명이 다쳤다고 보고했다. 지난달 17일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날 영상과 연설에도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러시아군이 부차를 장악했을 때 단 한 명의 민간인도 폭력을 당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부차 영상은 끔찍하다”면서도 “성급한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 검증이 필요하다”고 러시아를 두둔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5일(현지 시간) 미국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에서는 약 80초 분량의 동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됐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에 있는 부차와 이르핀, 마리우폴 등지에서 러시아군에 참혹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시신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에는 불에 타거나 뒤에 손이 묶인 채 길거리에 버려진 어린이 등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시신 사진이 여러 장 담겨 있었다. 아이 울음소리 등이 배경으로 깔린 이 영상이 ‘러시아의 공격을 멈추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종료되자 안보리 회의실에는 탄식과 한숨이 교차하며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영상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준비한 것이다. 국방색 셔츠 차림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한 채 연설을 시작한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목을 베었다. 여성들은 그들의 자녀가 보는 앞에서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했다“며 유엔에 실효성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그는 “유엔 헌장 1조(침략·파괴 행위 진압)도 지키지 못하는 유엔이 무슨 존재 의미가 있는가.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것인가. 국제법의 시대는 끝났나”라며 “그게 아니라면 여러분은 즉각 행동해야 한다. 안보리가 보장하는 안보는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유엔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부터 이달 4일까지 최소 1480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했고 2195명이 다쳤다고 보고했다. 지난달 17일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날 영상과 연설에도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군이 부차를 장악했을 때 단 한 명의 민간인도 폭력을 당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장쥔 주유엔 중국 대사는 “부차 영상은 끔찍하다”면서도 “성급한 비난을 자제해야 한다. 검증이 필요하다”고 러시아를 두둔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실태를 상세히 공개하면서 러시아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공개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가 자국 침략에 대한 (안보리) 결정을 막을 수 없도록 상임이사국에서 몰아내야 한다. 유엔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다른 대안이 없으면 여러분들(유엔)은 모두 해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계속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유엔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인 집단학살을 극단주의 테러집단인 이슬람국가(IS)에 비유했다. 그는 “(국민들이) 수류탄 폭발로 아파트와 집에서 살해당했고 러시아군은 순전히 재미로 차 안에 있던 민간인들을 탱크로 깔아 뭉겠다”며 “이런 행동은 다에시(IS의 아랍어 약자) 같은 테러리스트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죄 명령을 내린 사람과 이 명령을 수행해 우리 국민을 살해한 모든 이들을 뉘른베르크 법정과 유사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뉘른베르크 법정은 194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이 나치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열었던 곳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개혁에 대한 질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것에 느끼는 좌절감을 우리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러시아에 전쟁 범죄 책임을 묻는 데서 유엔을 통하지 않고 다른 국제기관을 통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미국 중앙은행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통화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이 나왔다. 이에 증시는 또 충격을 받았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에 지명된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는 “이르면 다음달에 연준 대차대조표 축소(양적긴축)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5일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행사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내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체계적으로 통화 긴축을 지속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일련의 금리인상을 하고 이르면 5월 회의 때 대차대조표 축소에 빠르게 돌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등 경기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그동안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돈을 풀어 왔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연준이 매입한 자산은 무려 9조 달러에 이른다. 연준은 앞으로 보유 자산 규모를 줄여 나가면서 대차대조표를 축소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 과정이 빠르게 진행될 경우 시중 유동성이 급격히 흡수되면서 시장이 느끼는 긴축의 강도가 더 세질 수 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이날 연준의 직전 긴축 시기였던 2017~2019년에 비해 보유자산 축소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7~2019년 연준은 매월 500억 달러 규모의 보유 채권을 시장에 재투자하지 않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흡수해왔는데 이번 양적긴축 때는 그 규모가 당시의 두 배인 매월 10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시장은 보고 있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현재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고 더 높아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향후 물가 지표에 따라 FOMC는 더 강한 행동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그의 발언이 시장에 충격을 준 것은 브레이너드 이사가 연준 내에서 가장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 인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마저 긴축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향후 연준이 당초 예상보다 더 매파적인 성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이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2.3% 급락한 채 장을 마쳤다. 역시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이날 한 행사에서 “현재 인플레이션은 일자리가 없는 것만큼 해롭다”면서 “여러분이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내일 물가가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러시아를 상대로 국제사회가 일제히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박탈을 추진하고 미 은행을 통한 러시아 국채의 달러이자 상환을 불허해 러시아의 국가 부도를 부추기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철강, 사치품, 항공유 수출입 금지 등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논의에 들어갔다고 CNBC방송이 전했다. 또 유럽 각국은 4일(현지 시간)부터 이틀간 최소 148명의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4일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참여는 웃음거리이자 잘못된 일”이라며 “유엔 총회가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주 안에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이사회 이사국의 자격을 박탈하려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129개국)이 찬성해야 한다. 러시아가 침공 후 줄곧 전쟁 범죄를 저지르며 전 세계의 공분을 산 만큼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이 박탈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실리 네벤자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독일은 수도 베를린의 러시아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 40명을 추방하기로 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교장관은 이날 러시아대사관 구성원의 상당수를 ‘외교기피 인물’(페르소나 논그라타)로 지정하고 이들이 독일 사회의 자유와 화합에 반하는 활동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또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며 “우리의 안보와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해 왔다”고 가세했다. 리투아니아는 자국 주재 러시아대사를 추방하고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격하하겠다고 밝혔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 중 처음으로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러시아를 규탄했다. 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 정부의 거래은행인 미 JP모건의 계좌를 통해 지불된 러시아 국채의 달러이자 결제를 승인하지 않았다. 재무부 측은 이날부터 미 금융권에서 러시아 정부 계좌에서 이뤄지는 달러 부채에 대한 상환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러시아를 상대로 국제 사회가 일제히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 박탈을 추진하고 미 은행을 통한 러시아 국채의 달러 이자 상환을 불허해 러시아의 국가 부도를 부추기기로 했다. 유럽 각국은 러시아 외교관을 속속 추방하고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4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참여는 웃음거리이자 잘못된 일”이라며 “유엔 총회가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 투표를 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주 안에 투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이사회 이사국의 자격을 박탈하려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129개국)이 찬성해야 한다. 러시아가 침공 후 줄곧 전쟁 범죄를 저지르며 전 세계의 공분을 산만큼 인권이사회 이사국 박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은 수도 베를린의 러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40명의 외교관을 추방하기로 했다. 안나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대사관 구성원의 상당수를 ‘외교기피 인물’(페르소나 논그라타)로 지정하고 이들이 독일 사회의 자유와 화합에 반하는 활동을 해왔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또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며 “우리의 안보와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해 왔다”고 가세했다. 리투아니아는 자국 주재 러시아 대사를 추방하고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격하하겠다고 밝혔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 중 처음으로 ‘집단 학살’(제노사이드)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러시아를 규탄했다. 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날 러시아 정부의 거래은행인 미 JP모건의 계좌를 통해 지불된 러시아 국채의 달러 이자 결제를 승인하지 않았다. 재무부 측은 이날부터 미 금융권에서 러시아 정부 계좌에서 이뤄지는 달러 부채에 대한 상환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는 민간인 집단학살이 조작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며 인권이사회 축출 시도에 반발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이날 미 뉴욕 유엔본부에서 조작이라는 점을 입증할 많은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사회 축출 시도를 두고 “유엔 역사에 전례가 없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 협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뉴욕 브루클린 남부에 ‘리틀 오데사’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20세기 초부터 구소련과 동유럽계 이민자들이 자리 잡은 곳으로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이름을 딴 별칭이다. 이 동네 식료품점 ‘테이스트 오브 러시아’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바실리 대성당을 묘사한 간판이 유명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명물이 사라지고 ‘인터내셔널 푸드’라는 다소 밋밋한 상호가 대신 내걸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는 일부 시민들이 “가게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하겠다”는 위협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업주는 “푸틴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오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붉은 차양과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인 맨해튼 레스토랑 ‘러시안 티 룸’. 약 100년 전 러시아 제국의 발레단원이 차렸지만 이후 여러 손바뀜을 거쳐 지금은 미국의 한 금융회사가 소유하고 있고 크렘린궁과도 아무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이름에 ‘러시아’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이 식당은 뉴요커들에게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손님이 줄어든 것 정도는 다행인 축에 속한다. 우크라이나계가 운영하는 한 러시아 식당은 요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 러시아”라는 식의 욕설, 협박 전화를 받고 있다. 온라인에서 ‘별점 테러’를 받거나 가게 유리창이 깨지는 공격을 당하는 곳도 있다. 문화계에서도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가 퍼지고 있다. 지난달 뉴욕 카네기홀에서는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 친(親)푸틴 음악가들을 대신해 유럽에 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급히 날아와 공연했다.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로 사실상 그와 ‘운명 공동체’인 이들을 무대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데 ‘선을 넘는’ 일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영국의 오케스트라는 차이콥스키의 곡을 연주하지 않기로 했고 유럽 최대 음악 축제는 러시아인의 참가를 막았다. 이탈리아의 한 대학도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대한 수업을 중단하고 말았다. 전쟁 반대를 이유로 러시아의 모든 것을 싸잡아 배척하는 태도도 문제지만, 평소 푸틴과 별 관련이 없는 이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강요하는 것 역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아무리 평화를 향한 신념이 있어도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푸틴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려면, 이들에겐 조국과 가족을 버릴 각오가 필요할 수 있다. 최근 뉴욕에서 만난 작곡가 진은숙은 “푸틴과는 관련이 없는데도 러시아 국적, 음악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대에 세우면 안 된다는 주장들이 있다”면서 “이런 것도 파시즘이다. 나치 때문에 베토벤 연주를 안 할 건가”라고 반문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전쟁이나 테러에 책임이 있는 자와, 그들과 뿌리나 국적이 같을 뿐인 사람들을 제대로 가리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계 시민들을 모두 잠재적 스파이로 간주해 수용소에 잡아 가뒀고, 9·11테러가 터졌을 때는 미국에 사는 무슬림이 혐오 대상이 됐다. 이번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지만, 자기 의사에 반해 전장에 투입되고 증오의 표적이 된 러시아 군인, 국민들도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전쟁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최고 권력층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희생시키며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이 모순된 상황을 바로잡으려면 무엇이 진정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될지를 우리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러시아산 에너지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산유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국제 유가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향후 6개월간 매일 100만 배럴씩 총 1억8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SPR·Strategic Petroleum Reserves)를 풀기로 했다. 고유가로 인한 반사이익을 누리며 전쟁을 지속하려는 러시아를 압박하고 40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미 소비자물가 급등세 또한 진정시키려는 의도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사려면 반드시 루블화로 결제하라. 아니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며 에너지를 무기화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독일 등 서방 주요국은 즉각 “계약 위반”이라며 계속 미 달러화나 유로화로 지불하겠다고 맞섰다.○ 최대 규모 방출로 유가 안정-푸틴 자금줄 차단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비축유 방출을 발표하며 “푸틴의 전쟁 때문에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미 에너지 업계에 강도 높은 증산 계획 또한 주문했다.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긴급회의를 열고 국제사회의 비축유 방출 동참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월 집권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올해 2월에 이어 이번까지 최근 4개월간 세 차례 비축유 방출을 발표했다. 특히 1억8000만 배럴의 이번 방출 규모는 사상 최대로 꼽힌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걸프전 때 1730만 배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당시 2080만 배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사망으로 원유 공급망이 무너졌을 때 3064만 배럴의 방출을 각각 지시했다. 역대급 방출 계획으로 치솟던 국제 유가는 일단 하락했다. 지난달 31일 미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일 대비 7% 하락한 배럴당 100.28달러에 마쳤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 최대 반도체 생산 업체 미크론 등 러시아 21개 기관 및 개인 13명도 추가 제재했다.○ 푸틴 “러 가스는 반드시 루블 결제” vs 유럽 “협박 말라”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연설에서 “비우호적 국가가 4월 1일부터 러시아 천연가스를 사려면 러시아 은행에서 루블화 계좌를 열어야 한다. 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지정한 ‘비우호국’에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회원국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강경책의 배경으로 루블화 급락이 꼽힌다. 루블 가치는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달러당 75루블대였으나 침공 직후 110루블대로 치솟았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 등으로 1일 현재 83루블대를 기록하고 있으나 서방의 초강경 제재가 이어지고 있어 다시 루블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푸틴 정권이 루블 가치를 지지하고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주요국이 스스로 제재를 위반하는 상황에 놓이도록 하기 위해 특단의 카드를 꺼냈다는 의미다. 지난해 천연가스 수입의 55%를 러시아산으로 충당한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이 조건에 동의할 수 없다며 “계속 유로화나 달러화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 역시 “받아들일 수 없는 계약 위반이자 협박”이라고 가세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 또한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한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끊을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