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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기증’이란 말은 국내에선 아직 낯선 개념이다. 사후 심장이나 신장, 안구를 떼어내 새 생명에게 전하거나 의학 연구에 기증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뇌 기증을 했다는 사례를 봤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후 기증 방식이라고 해도 머리에서 뇌를 꺼낸다는 상상만으로도 일반인에겐 두려움을 준다. 지난달 26일 서울 신촌 연세대 의대에서 만난 김세훈 연세대 병리학교실 교수(사진)는 “뇌 기증이야말로 인류의 난제인 파킨슨병과 치매, 자폐증과 우울증 같은 뇌 질환을 정복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에게 뇌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을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연구 재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병의 원인이 어떻게 되고 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밝히는 병리학자다. 1994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신경병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연세대 의대 교수로 부임했다. 여러 질병 중에서도 특히 뇌 신경 질환 쪽에 집중해 왔다. 이런 연구 경력을 인정받아 올해 1월 제4대 한국뇌은행장에 선임됐다. 한국뇌은행은 인간 뇌 자원을 확보하고 관리해 이를 필요로 하는 연구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2014년 한국뇌연구원 내에 설립된 기구다.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기증된 사례는 151건에 불과하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뇌 기증을 3건밖에 받지 못했다. 뇌 기증의 중요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 막연한 두려움이 커서 기증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탓이다. 전임 뇌은행장들처럼 김 교수 역시 뇌 기증에 대한 편견과의 싸움은 큰 숙제로 남아 있다. 김 교수는 “사회 지도층,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역할이 크다”며 미국과 유럽에서 이어지는 유명인들의 뇌 기증 릴레이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뇌 연구 초창기 미국과 유럽 등 현재의 뇌 연구 선진국에서도 뇌 기증은 정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뇌 연구의 취지에 공감한 유명인들이 기증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2009년 공영방송 BBC의 유명 TV쇼 진행자 제러미 팩스먼과 여배우 제인 애셔가 방송에 나와 파킨슨병 연구를 위해 뇌 기증을 약속하면서 여론의 관심을 모았다. 미국에서도 대표팀 출신의 여자 축구 선수와 프로미식축구 선수들이 꾸준히 뇌 기증을 약속하며 실제 사망 후 기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교수는 “유명인의 뇌 기증은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 유럽의 인간 뇌 프로젝트 등 국가적 뇌 연구 정책과 맞물리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의 뇌 연구가 선도적 역할을 하는 데 밑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뇌 조직은 코로나19 환자가 겪는 ‘브레인 포그’ 증상에 대한 비밀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됐다. 브레인 포그는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코로나19 후유증 중 하나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은 기증받은 코로나19 환자의 뇌 조직을 부검해 뇌혈관에서 혈류를 막는 거대세포들이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미국의사협회저널(JAMA) 신경학 2월 12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세포들이 코로나19 감염에 반응해 염증을 일으키며 거대해졌다고 결론지었다. 김 교수는 뇌 기증의 확산과 함께 뇌은행의 역할을 좀 더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부검과 분석 기능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미국 과학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를 지금의 진단검사용 면봉보다 10배 높은 민감도로 잡아내는 새 기술을 개발했다. 실제 감염됐는데도 바이러스 양이 부족해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는 ‘위음성’ 문제를 해결할 기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징웨이 셰 미국 네브래스카대 의료센터 교수팀은 일반 의료용 면봉보다 흡수력이 뛰어난 초흡수성 나노섬유 면봉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나노레터스’에 1월 27일(이하 현지 시간) 소개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은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자를 더 빠르게 확인하는 진단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의 진단검사는 면봉을 코, 목구멍 안에 깊숙이 넣어 검체를 채취한 뒤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방식을 이용해 감염 여부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감염 초기 환자의 경우 바이러스의 양이 적어 면봉에 묻어 나오지 않아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는 ‘위음성’이 종종 발생한다. 스위스 베른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영국 퀸메리대 등 공동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 진단검사의 위음성률이 2∼3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셰 교수팀은 바이러스를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나노섬유 면봉을 개발했다. 전기장에서 섬유를 길고 가늘게 뽑는 기술인 ‘전기방사법’을 이용해 젤리 등에 사용하는 투명한 단백질인 ‘젤라틴’으로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굵기의 가는 나노섬유를 뽑았다. 그런 다음 진단검사용 면봉 솜과 유사한 가로 0.5cm, 세로 1cm로 나노섬유를 쌓아 올려 플라스틱 막대에 부착했다. 나노섬유 면봉은 기존 면봉보다 단백질이나 세포, 박테리아, DNA, 바이러스 흡수율이 10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종전보다 10분의 1 농도에서도 검출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셰 교수는 “나노섬유 면봉은 검사의 민감도를 끌어올려 잠재적으로 많은 질병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하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또 바이러스를 더 많이 묻히기 위해 면봉을 코나 목 깊숙이 넣을 필요가 없어 검사를 받는 사람의 불쾌감을 줄일 것으로 보인다. 면봉 외에도 코로나19 진단 속도를 끌어올릴 신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제시 조커스트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24일 마스크 착용자의 호흡이나 타액을 통해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판별하는 마스크 부착형 스티커를 공개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몸속에서 형성되는 프로테아제 단백질을 스티커가 감지하면 색깔이 변하는 원리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다음 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드디어 국내에 도입된다. 국내 첫 접종은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가 공급하는 미국 제약사 화이자 백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 등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나라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어 백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처음 접종되는 백신이라는 점에서 일부 부작용은 불가피하지만 현재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접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백신 부작용은 항체 생성 위한 통과 의례” 코로나19 백신에서는 공통적인 부작용이 나타난다. 모더나와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임상 3상 결과를 보면 접종 부위에 통증이나 부기는 물론이고 피부가 붉어지는 발적이 발생한다. 몸 전체 중 어느 한 곳에 증상이 나타나는 국소 부작용이다. 오한이나 근육통, 피곤함, 두통 등 전신 부작용도 나타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런 부작용이 접종 하루나 이틀 이내에 시작돼 2, 3일 후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부작용은 1∼4단계로 나뉘는데 코로나19 백신은 대부분 1, 2단계의 부작용을 보인다”고 말했다. 1단계는 불편하지만 일상적으로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 증상, 2단계는 조금 불편한 정도다. 김 교수는 “부작용이 없는 백신은 없다”며 “열나고 붓는 것은 일종의 면역반응으로 몸 안에 항체가 만들어지기 위한 통과 의례”라고 말했다. 아주 드물게 3, 4단계의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3단계는 고열로 약 처방이 필요한 정도, 4단계는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아나필락시스 반응 등으로 병원 입원이 필요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다. 아나필락시스 반응은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전신 알레르기 면역 반응이다. CDC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3일 기준 화이자 백신으로 인한 아나필락시스 부작용은 189만3360회 접종 중 21건이 발생했다. 100만 회당 11.1건 발생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이 결국 체질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들에게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두드러기가 나거나 아토피가 생기는 등 중증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들은 의사와 충분히 상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점안액이나 화장품 용매, 세포실험 시약, 의료용 약품 등으로 쓰이는 화합물인 PEG나 계면활성제 폴리소르베이트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들도 백신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CDC는 이 성분에 대한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이력이 있는 사람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백신 1차 접종 후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면 2차 접종을 삼가야 한다고도 권고한다. 다만 CDC는 아나필락시스 반응 병력이 있어도 치료를 위한 에피네프린 구비 등 예방 조치가 충분하다면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음식이나 반려동물, 라텍스와 관련된 알레르기 등 백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알레르기 반응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접종을 권한다. 영국 의약품 규제 당국인 국민보건서비스(NHS)도 동일한 권고를 내놓고 있다.○ 제조사별 부작용 다를 수도 노르웨이나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됐다. 각국 보건당국은 사례를 분석한 결과 백신과 사망 간 상관관계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추가 조사는 불가피하다. 스테이나르 마센 노르웨이 의약품국 의료책임자는 “나이가 너무 많거나 특정 질환을 심하게 앓고 있을 경우 가벼운 백신 부작용도 심각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부작용이 제조사나 백신 종류별로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황인환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는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은 바이러스 단백질(항체)을 만들 수 있는 유전물질(mRNA)을 지질로 된 작은 주머니에 감싸 인체에 주입하는 핵산 백신”이라며 “같은 종류라도 백신에 들어가는 조성물이 다를 수 있어 부작용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국내 도입을 언급한 2000만 명분의 노바백스 백신은 재조합 단백질, 600만 명분이 확보된 얀센 백신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아직 임상 3상 중간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다. 황 교수는 “백신 종류에 따라서도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며 “제조사나 백신 종류별로 각각의 조성물을 알게 되면 부작용도 예측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10가지를 꼽으며 그중 하나로 ‘백신 접종 기피’를 들었다. 김우주 교수는 “백신 접종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리 의료진이나 국민에게 백신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려주는 것”이라며 “백신이 어떤 성분이고 어떤 부작용을 가졌는지 백신 접종 전 알려줘야 불안감도 해소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6일 서울 노원구 한국원자력의학원 지상주차장에 구축된 ‘이동형 음압병동’ 입구. 전신에 흰 보호복을 입고 마스크와 고글을 착용한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실린 이송 장치를 맞았다. ‘MCM(Mobile Clinic Module)’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이동형 음압병동은 남택진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연구진이 6개월간 개발했다. 의료진을 따라 음압병동 내부로 들어갔다. 음압병동은 병실 내부 바이러스가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음압 장치가 설치된 병동이다. 병동 내부 공기압을 낮춰 바깥 공기만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내부 공기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MCM은 가로 15m, 세로 30m 크기로 약 450m² 규모다. 음압시설을 갖춘 중환자 케어용 전실과 4개의 음압병실, 간호스테이션, 탈의실, 의료장비 보관실로 꾸며졌다. 전실은 병실과 복도 사이의 공간으로 환자가 병실에 들어가기 전 1차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음압 환경을 구현해 놓은 곳이다. 전실에는 ―6.7파스칼(Pa), 병실에는 ―8.3Pa 수준의 음압이 유지되고 있었다. 남 교수는 “음압 장치는 ―15∼20Pa까지 유지가 가능하다”며 “장치 1대로 병실과 전실의 음압을 모두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남 교수가 개발한 MCM이 주목받는 것은 코로나19로 위급한 중환자들에게 신속하게 음압병실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할 때마다 음압병실 부족 사태를 겪어 왔다. 5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병실 배정을 기다리다 사망한 사람 수가 10명이다. 지난달 17일 기준 확진 판정 후 하루 이상 병실을 기다리던 수도권 확진자만 548명에 이른다. 하지만 설치 비용과 기간 때문에 적시에 공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음압병실 1개 구축에 3억5000만 원이 소요되고, 병원을 새로 짓지 않는 한 설치공간을 찾기도 마땅치 않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컨테이너 등을 활용한 조립식 병동이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전선이나 배관 설계 전문가가 다수 투입돼야 하고 고가의 음압 장치도 별도로 마련해야 하는 등 시간이나 인력,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이와 달리 원자력병원에 설치된 MCM은 에어텐트와 음압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음압 프레임’을 모듈형 구조로 접목해 안정적인 음압병동을 구축할 수 있다. 연구진이 독자 개발한 음압 프레임이 에어텐트에 바로 모듈식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음압 프레임은 양방향으로 압력을 조절해 전실과 병실을 효과적으로 음압화한다. 병실 1개당 설치 비용이 약 7500만 원에 불과하다. 설치와 해체 작업 시간도 짧다. 병실 20개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모듈을 제작하는 데 14일이면 끝난다. 설치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5일 이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중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컨테이너 병동의 경우 구조를 만드는 데만 최소 1주일 이상 소요되는 것에 비해 신속하게 의료장비와 음압 시설을 한꺼번에 갖춘 음압병동을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남 교수는 “컨테이너 병동에 비해 부지 형태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조립이 가능하며 병원 내 기존 병상들에 에어텐트와 음압 장치를 설치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감염병 사태 이후 보관이 어려운 기존 조립식 병동과는 달리 부피를 70% 이상 줄인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감염병이 유행할 때 빠르게 도입해 설치할 수 있는 것이다. 빠르고 쉽게 공급하지만 단순한 임시 시설이 아니라 중환자 치료에 필요한 모든 설비를 갖추고 있다. 병상 주변에는 혈압과 체온 등 환자의 생체 신호를 측정할 장비들이 설치돼 있었다. 만에 하나 중환자와 초중증 환자가 들어올 긴급 상황에 대비한 산소호흡기와 기도삽관 도구들도 눈에 띄었다.남 교수팀은 지난해 7월 연구를 시작해 개발을 완료하고 지난달 28일부터 한국원자력의학원에 4개 병실을 갖춘 병동을 설치한 후 의료진과 일반인 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실증에 들어갔다. 함께 개발에 참여한 조민수 원자력의학원 비상진료부장은 “기존 병원에 연계해 이동형 음압 병동을 설치할 수 있어 시설이나 전산망, 진단검사의학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환자 진료에 최적화된 상태로 운영이 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에어텐트나 음압장치 설치는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다. 다만 전기나 배관 설비 설치에는 관련 전문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남 교수는 “관련 전문가 없이도 의료진이 직접 설비를 조립할 수 있도록 설비를 발전시킬 계획”이라며 “수요가 있다면 2, 3월에도 현재의 모델로 당장 상용화는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감염병 진단은 감염자를 빠르게 가려내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방역의 핵심 역할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정책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것도 신속한 진단검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일(현지 시간) 영국에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승인하며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검사 기술은 여전히 중요하다. 백신 생산과 구매계약, 유통 등의 절차를 거치려면 수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코로나19 검사법인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은 환자의 타액이나 코, 목구멍 등에서 검체를 채취한 후 바이러스 DNA를 수차례 복제해 바이러스를 특정 하는 유전자를 대규모로 늘린 뒤 실제로 바이러스 유전자가 늘어나면 환자가 감염된 것으로 판정한다. 정확도는 약 97% 수준이지만 검사에 6시간이나 소요되는 게 단점이다. 과학자들은 검사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안하고 있다. 노경태 국군의무사령부 국군의학연구소 책임연구원팀은 ‘역전사고리매개등온증폭법(RT-LAMP)’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RT-LAMP는 RT-PCR와 비슷하게 환자의 타액이나 코, 목구멍 등에서 검체를 채취한 후 특정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식별해 감염 여부를 판별한다. 다만 RT-PCR가 가열과 냉각의 온도 변화를 통해 유전자를 증폭시키는 것과 달리 RT-LAMP는 섭씨 55∼72도 사이의 동일한 온도에서 유전자를 증폭시켜 1시간 내 진단이 가능하다. 이 기술은 코로나19 관련 1호 특허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지난달에는 파라과이 공항의 현장 진단법으로 채택됐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법도 등장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생명체의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서 유전질환을 유발하는 특정한 부위의 염기를 잘라내 교정하는 기술이다. 찰스 치우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진단검사의학과 교수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식별할 경우 이 유전자를 절단하도록 하는 동시에 형광분자 신호를 생성하도록 만들어 감염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지난달 12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5분 만에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법을 개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진단법은 고가의 실험장비 없이 집에서도 편하게 검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플라스틱 튜브에 뱉은 침으로 감염 여부를 가리는 타액진단법도 미국에서 도입됐다. 기존 검사법과 달리 감염 의심자가 의료진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4월 이 진단법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여러 명의 검체를 묶어 함께 검사하는 취합검사법과 혈액을 이용해 10여 분 안에 간편하게 결과를 알 수 있는 항체검사법, X선으로 폐를 촬영해 무증상 확진자를 잡아내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법 등도 있다. 진단검사법이 진화하면서 관련 시장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세계 코로나19 진단검사 도구 시장 규모가 올해 33억 달러(약 3조6531억 원)에서 연평균 17.3% 성장해 2026년 85억 달러(약 9조4095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한국천문연구원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9월 태양의 주변에서 나타나는 코로나(태양풍)를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코로나는 태양 대기의 가장 바깥층을 구성하고 있는 엷은 가스층으로 온도는 100만∼500만 도에 이른다. 온도가 왜 이렇게 높은지,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아 과학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한미 공동연구팀은 코로나그래프라는 관측 장비를 개발했지만 지구 대기가 코로나의 빛을 대부분 차단하기 때문에 지상에선 관측이 어려웠다.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성층권 풍선이다.○40km 상공 올라가는 대형 풍선 성층권 풍선은 지구 상공 10∼50km의 성층권까지 올라가는 대형 풍선이다. 폭 140m, 높이 216m로 축구장 크기만 하다. 풍선 안에는 산소보다 가벼운 헬륨이나 수소 가스가 들어간다. 풍선에 이들 기체를 채우면 시속 20km 정도의 속도로 수직으로 올라간다. 연구팀은 성층권 풍선에 코로나그래프를 달아 지구 대기가 희박한 약 40km 상공에 띄운 뒤 코로나의 온도와 방출 속도를 동시에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성층권 풍선은 이전부터 다양한 목적의 과학 관측 장비로 활용돼 왔다. 날씨와 대기, 기후를 관측하는 것은 물론 우주 관측, 미세 운석 입자 수집, 우주 광선 연구, 자기장 관측 등 용도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NASA는 컬럼비아과학풍선시설(CSBF)을 1961년 설립해 성층권 풍선 발사 서비스를 과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도 성층권 풍선을 과학 연구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성층권 풍선을 과학 관측에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운용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인공위성 비용의 100분의 1에서 10분의 1 수준이다. 크기에 제한이 있는 인공위성과 달리 성층권 풍선은 지상에서 사용하는 장비를 그대로 띄울 수도 있다. 언제든 회수하거나 반복해 재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사용할 각종 과학 장비를 사전 검증하는 데 성층권 풍선을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그래프 연구에 참여했던 조경석 천문연 책임연구원은 “성능 검증을 마치는 대로 코로나그래프를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설치할 예정”이라며 “성층권 풍선 덕분에 장비를 우주로 쏘아 올리기 전에 기술 검증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구글도 인터넷 서비스 위해 성층권 풍선에 관심 성층권 풍선은 별도 추진 장치가 없어 자세와 위치를 제어하기 쉽지 않다. 성층권에는 공기의 상하 이동이 비교적 덜하고 구름이 없지만 거친 바람이 부는 영역이 있다. 고도 12km 부근에서 바람이 가장 강하고 고도 18∼20km에서 가장 약하게 분다. 지상국에서 풍선제어시스템을 통해 제어를 시도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에는 대응이 어렵다. 구글 브레인팀은 성층권의 거친 바람에 대응하는 인공지능(AI) 풍선 자율제어시스템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3일 공개했다. ‘스테이션시커’라 부르는 이 시스템은 심층강화학습이라는 AI 기술을 적용했다. 과거 바람 기록, 일기 예보, 현재 바람 형태 등을 참조해 다양한 높이에서의 풍속과 방향을 예측하고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연구팀이 스테이션시커로 성층권 풍선을 제어한 결과 최대 312일 동안 제자리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이전까지는 223일이 최대였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추진하는 성층권인터넷서비스 ‘프로젝트 룬’의 풍선에 적용했다. 프로젝트 룬은 성층권에 풍선을 띄워 전 지구에 인터넷을 공급하는 계획으로 7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과학 관측이 아닌 상업 서비스에 성층권 풍선이 사용된 사례다. ○성층권에서 가상 우주여행 상품 등장 성층권 풍선을 이용한 우주여행 체험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성층권 풍선은 로켓처럼 고도 급상승에 따른 위험과 고통이 훨씬 덜하다. 우주비행사들처럼 특별한 체력을 갖추거나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 과학적 활용도 역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성층권에 대형 망원경을 올려 우주를 관측하는 데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앨런 코구트 NASA 고더드우주비행센터 연구원팀은 대형 망원경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보온 장치를 개발했다고 1일 공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보온 장치는 음료 캔 만큼 얇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절대영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하지만 성층권 풍선은 날씨와 장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한계도 있다. 조 책임연구원은 “성층권 풍선을 띄울 수 있는 기간은 1년에 두 달 정도이고 풍선이 바람에 휘청거리다 지상에 추락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도시 주변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NASA는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미국 뉴멕시코와 남극에서 성층권 풍선 실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땅이 좁고 기상 변화가 심한 한국에선 성층권 풍선 관련 연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8년 이관중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팀이 ‘스누볼’이라는 과학실험용 성층권 풍선을 개발하고 비행과 해상회수 시험에 성공했지만 이후에는 국내에서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장애인 선수가 일종의 사이보그가 돼 기록을 겨루는 사이배슬론 대회에서 김병욱 이주현 선수가 착용형(웨어러블) 로봇 부문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KAIST는 13, 14일 KAIST 대전 본원에서 열린 대회에서 공경철 기계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팀 엔젤로보틱스 소속의 두 선수가 수상했다고 15일 밝혔다. 사이배슬론은 장애인 선수가 로봇 기술을 활용해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국제 경기로 ‘아이언맨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인조인간’을 뜻하는 사이보그(cyborg)와 ‘경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애슬론(athlon)의 합성어다. 20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음 시작됐고 이번이 두 번째 대회다. KAIST 엔젤로보틱스 팀은 외골격 로봇을 착용하고 경쟁하는 ‘엑소(EXO)’ 종목에 출전했다. 이 종목에서는 소파에서 일어나 컵 쌓기, 장애물 지그재그 통과하기, 험지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경사로 및 문 통과하기 등 6개 임무를 수행한다. 선수당 3번 도전해 최고 기록을 따진다. 올해 대회에서는 8개국에서 12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김 선수는 3분 47초, 이 선수는 5분 51초 만에 임무를 수행하며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김 선수는 “공 교수와 여러 연구진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과가 가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선수는 “순위권에 들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성과를 거둬 기쁘다”고 했다. 이들이 착용한 외골격 로봇 ‘워크온슈트4’는 최고 시속 2.4km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공 교수 연구팀과 착용형 로봇 개발회사 엔젤로보틱스, 세브란스 재활병원, 최정수 영남대 로봇기계공학과 교수팀 등이 공동으로 개발에 참여했다. 공 교수팀은 4년 전 대회에서도 같은 종목에 참여해 동메달을 차지했는데, 이번에 금메달과 동메달을 동시에 수상하며 지난 대회의 아쉬움을 덜게 됐다. 신동준 중앙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은 ‘비어게인’ 팀을 꾸려 로봇 자전거로 레이스를 펼치는 ‘기능적 전기자극(FES·Functional electrical stimulation)’ 경주에 나섰다. FES는 하반신 마비 환자가 다리 근육에 가해지는 전기자극을 이용해 다리를 움직여 페달을 밟으면서 트랙을 도는 종목이다. FES 종목에 한국팀이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첫 출전임에도 5위를 차지해 가능성을 보였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게놈(genome)이라고 하면 영어권 과학자들은 못 알아듣습니다.” “뼈모세포는 한글인 ‘뼈’와 한자인 ‘모(母)’가 합쳐진 국적 불명의 단어입니다. 뼈생성세포로 부르는 게 더 적합합니다.” 일반인들에게 과학 자체만큼이나 과학 용어도 생소하고 어렵다. 동아사이언스와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이달 9일 한글날을 맞아 쉬운 의과학용어 찾아 쓰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생명과학 용어 가운데 개선이 시급한 사례를 조사했다.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포스텍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브릭) 회원 1193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브릭은 생명과학자와 의학자들로 이뤄진 국내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로 2005년 황우석 사태 폭로의 진원지로도 유명하다. ○‘게놈’보단 ‘유전체’가 적절 생명과학자들은 과학 서적이나 미디어에서 흔히 접하는 용어인 ‘게놈’을 가장 시급히 바꿔야 할 단어로 지목했다. 게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를 뜻하는 영어단어 두 개를 합친 말이다. 영어 발음으론 ‘지놈’으로 읽어야 하지만 소개 과정에서 ‘게놈’으로 잘못 굳어졌다. 1990년 미국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과학자들은 인간의 DNA에 있는 30억 개에 이르는 염기쌍을 모두 읽어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휴먼지놈프로젝트(HGP)’에 착수했다. 인체를 세포보다 작은 DNA 수준에서 분석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생명과학 연구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국내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유전자 지도작성계획(인간게놈사업)’ ‘인간게놈프로젝트’ 등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생명과학자들은 게놈보다는 영어 발음을 살려 ‘지놈’으로 표기하거나, 그보다는 이해하기 쉽게 ‘유전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응답자는 “게놈은 독일(Germany)을 ‘저머니’가 아니라 ‘게르마니’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며 “게놈 대신 우리말인 유전체를 사용하자”고 했다.○‘아밀라아제’는 일본식 표기 잔재 일본식 잔재도 서둘러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효소인 아밀라아제(amylase)와 리파아제(lypase)가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교과서를 통해 소개됐는데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영어가 아닌 독일어 발음을 따른 표기다. 현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영어식으로 아밀레이스와 라이페이스로 바꿔 쓰고 있다. 하지만 식품과 환경 분야 등 일부 응용 분야의 학계에선 옛 발음을 따르고 있어 과학기술계 내에서도 용어가 통일되지 않아 혼선을 주고 있다. 표기법이 개정됐는데도 혼용되는 단어는 더 있다. 화학 원소가 대표적이다. 2005년 국가기술표준원은 독일어 및 일본어 식으로 사용해 온 화학 용어를 국제 기준에 맞는 표기법으로 고치고 KS 규격으로 제정했다. 이에 따라 요오드(I)는 아이오딘으로, 게르마늄(Ge)은 저마늄으로, 나트륨(Na)과 칼륨(K)은 각각 소듐과 포타슘으로 써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원소를 포함해 과학 용어는 과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인 만큼 통일된 단어를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편견 낳는 ‘우성-열성’ 표현 비유나 번역 과정에서 오해를 낳는 단어도 있다. 가령 유전자에서 특정 염기를 잘라내고 원하는 유전자로 교체하는 기술은 흔히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데, 이 때문에 실제로 유전자를 자르는 가위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다. 우성과 열성은 유전자의 특징이 겉으로 잘 드러나는지, 감춰질 수 있는지를 표시하는데 우성은 우수하고 열성은 열등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한 응답자는 “일본 유전학계는 우성과 열성 대신 각각 현성(顯性·잡종 제1대에서 반드시 겉으로 나타나는 형질)과 잠성(潛性·잡종 제1대에는 나타나지 않는 형질)으로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부 자극에 신체 기관이 반응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학술 용어인 ‘센서티비티(sensitivity)’가 ‘감수성’으로 직역돼 감상적인 단어로 뜻이 잘못 전달되기도 한다. 인슐린에 대한 체내 반응이 정상보다 떨어지는 경우를 나타내는 ‘인슐린 저항성’도 인슐린이 스스로 저항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인체 면역세포의 한 종류인 T살해세포(killer cell)도 T세포를 죽인다는 뜻으로 오해받기 쉬운 만큼 ‘세포독성 T세포’나 ‘킬러 T세포’로 쓰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왔다.○어려운 단어는 쉽게 풀어 써야 응답자들은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를 풀어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많이 등장하는 PCR의 경우 영어를 직역해 ‘중합효소연쇄반응’이라고 표기하는데, ‘유전자 증폭’처럼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바꾸자는 것이다. 감염 환자 한 명이 감염시키는 사람 수를 뜻하는 재생산지수(reproduction number)도 ‘전파지수’로 바꾼다거나, ‘사이토카인 폭풍’ 대신 ‘염증물질 과다활성’으로 표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 교수는 “세계적으로 ‘코비드(COVID)-19’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만 ‘코로나19’라고 한다”며 “용어를 새롭게 정할 때는 미래 세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국제적인 흐름을 따를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이현경 uneasy75@donga.com·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1912년 4월 14일 오후 11시 40분. 세계 최대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충돌했다. 타이타닉호는 그로부터 약 3시간 만에 북대서양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고 1514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학자들은 당시 최고 운항 기술을 가진 타이타닉호가 어째서 빙산을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는지 원인을 찾아왔다. 그리고 비극의 원인이 지구 외부, 우주에 있다는 근거를 잇달아 찾아냈다. 과학매체 피즈오아르지(phys.org)는 22일(현지 시간) 미국의 민간 기상학자인 밀라 진코바 연구원이 타이타닉호 사고 당시 태양 표면의 폭발 활동 때문에 발생한 지자기폭풍이 침몰에 일조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고 전했다. 진코바 연구원은 2000년부터 타이타닉호 관련 논문을 4차례 발표했으며, 이번 연구도 영국왕립기상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기상’ 8월 4일자에 실렸다. 진코바 연구원이 침몰을 유발한 원인으로 지목한 지자기폭풍은 전기를 띤 태양 입자가 대량으로 지구 대기권 밖을 강타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태양은 매초 100만 t의 물질을 우주 공간에 내뿜는데 평상시에는 지구 자기장이 막아주기 때문에 별다른 피해가 없다. 하지만 태양 입자가 빠르게 분출되는 코로나질량방출(CME) 등이 발생하면 우주궤도 인공위성과 지상의 전자·통신장비에 오작동을 일으키고 심하면 정전을 유발하기도 한다. 진코바 연구원에 따르면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던 날 하늘에선 오로라가 아주 밝게 빛났다는 기록이 있다. 오로라는 방출된 태양 입자 중 전기를 띤 하전 입자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공기 분자와 충돌하며 빛을 내는 현상이다. 태양에서 방출된 녹색과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의 색깔을 내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이런 오로라가 만들어졌다는 건 아주 강한 지자기폭풍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고 당일 타이타닉호의 조난 신호를 듣고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간 여객선 카파시아호의 제임스 비싯 항해장은 일지에 “달은 없었고, 오로라가 달빛처럼 북쪽 지평선에 걸쳐 있었다”며 “타이타닉호에 가까워졌을 때도 오로라가 뿜어내는 녹색빛은 여전했다”고 적었다. 타이타닉호의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구명정에서 오로라를 봤다고 설명했다. 진코바 연구원은 이처럼 강하고 황홀한 오로라를 만들어낸 강력한 지자기폭풍이 타이타닉호의 항해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켰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먼저 타이타닉호에 설치된 나침반이 기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진코바 연구원은 “나침반이 정상 항로에서 0.5도라도 오차가 생기면 배는 안전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자기폭풍이 다른 배들과의 통신을 방해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하고 약 30분 후 근처의 배들에 긴급 구조요청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기록과 증언을 보면 쉽사리 연락이 닿지 않았던 정황이 나타난다. 신호를 보낸 지 약 10분이 지나서야 주변의 선박 하나가 응답을 했고, 신호를 최초로 수신한 독일 선박 프랑크푸르트호도 첫 번째 신호 이후 약 20분간 다른 배들과 타이타닉호의 통신 내용을 수신하지 못했다. 구조에 나섰던 영국 선박 발틱호의 항해사도 “통신이 이상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타이타닉호의 침몰 원인을 천문 현상에서 찾는 연구는 2012년에도 있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 천문학과 연구팀은 2012년 태양과 지구, 달이 일렬로 늘어서는 ‘한사리’ 현상으로 해수면 높이 차를 일으키는 기조력이 증폭되면서 빙산이 그린란드에서 대서양까지 떠내려 와 타이타닉호와 충돌을 일으켰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천문학 잡지 ‘스카이 앤드 텔레스코프’에 소개하기도 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유례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30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100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만 이런 끔찍한 감염병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인간처럼 무리를 지어 사회를 이루는 동물들도 감염병에 시달린다. 당장 주변에서 쉽게 보는 개미만 해도 수백만 마리의 개체가 군집을 이뤄 감염병이 쉽게 퍼질 수 있는 조건을 가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에 허둥대는 인간과 다르게 효과적인 방역체계를 갖췄다. 청다이펑(程代鳳) 중국 화난농업대 곤충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달 10일 개미가 냄새를 통해 감염병에 대처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병원체’지에 소개했다. 개미 사회에 감염병 사태를 일으킬 병원체는 토양에 널려 있다. 예를 들어 동충하초 균류는 개미 몸으로 들어가 숙주를 조종한다. 균류가 침입한 개미는 비틀거리며 식물의 나뭇잎 뒷면으로 이동한다. 나뭇잎에 붙어 개미의 양분을 모조리 빨아먹고 나면 병원체 포자를 땅바닥으로 방출한다. 이렇게 땅에 떨어진 병원체는 또 다른 개미를 감염시킨다. 이런 식으로 개미 사회를 무너뜨릴 만큼 위협적인 병원체들은 자연에 널려 있다. 연구팀은 붉은 불개미들을 대상으로 개미들이 병원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봤다. 우선 불개미들이 많이 모여 사는 땅과 그렇지 않은 땅을 비교했더니 개미들이 번성한 땅에는 방선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선균은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의 일종으로 병원체의 생장을 억제한다. 방선균은 ‘지오스민’과 ‘엠아이비(MIB)’라는 화합물을 생성한다. 우리가 비 오는 날 흔히 느끼는 냄새가 이 화합물에서 나온다. 연구팀은 개미들이 이 냄새를 맡아 방선균이 많이 함유된 땅을 찾아 이동하고 둥지를 튼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개미는 다른 곤충들과 비교해 후각이 좋다. 나방은 52개, 초파리는 61개의 냄새 수용체를 가진 반면 개미는 400개를 가졌다. 사람과 비슷한 수준이다. 개미는 감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실천한다. 로랑 켈러 스위스 로잔대 생태진화학과 교수팀은 2018년 정원개미 2266마리에게 움직임을 추적하는 장치를 붙이고 병원체를 퍼뜨린 뒤 0.5초 간격으로 관찰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개미 무리에 병원체 포자 11종을 퍼뜨리자 개미들의 접촉 횟수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둥지 밖에서 먹이를 구해 오는 병원체를 가지고 올 가능성이 높은 일개미들은 둥지에 들어가지 않고 둥지 바깥에 머물며 둥지 내 개미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줄였다. 둥지 안에 있던 개미들도 둥지의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연구팀이 4일 후 관찰한 결과 초기 병원체에 감염된 개미들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나머지 개미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동물 사회가 질병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 조직운영 방식을 능동적이고 민첩하게 바꾼다는 사실을 확인한 최초의 과학적 연구였다. 개미 사회에서는 병원체에 감염돼 아픈 동료를 빠르게 치료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1월 실비아 크레머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소 교수팀은 아르헨티나 개미들이 스스로 제거하기 힘든 몸통 뒤에 달린 곰팡이를 서로 제거해준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생태학 레터스에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개미들이 해당 곰팡이에 대한 항체를 가지게 된 것도 확인됐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청바지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의류다. 질기고 튼튼함을 장점으로 내세운 청바지는 데님이라는 면으로 만든 천을 쓴다. 원래 천막을 만들던 소재였는데, 미국인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1870년 광부들이 입은 해진 바지를 보고 튼튼한 데님으로 만든 바지를 처음 내놓은 것이 시초가 됐다. 그런데 청바지 데님 소재가 최근 수년 새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 북극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수천에서 수만 km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입다 버린 작은 청바지 조각이 미세 플라스틱과 함께 이제는 전 세계 바다 환경을 위협하는 오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도시에서 수천 km 떨어진 북극제도에서 섬유조각 발견 미리암 다이아몬드 캐나다 토론토대 지구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청바지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 섬유가 오대호 호수와 북극 퇴적물에서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기술회보에 2일 공개했다. 미세 섬유는 보통 지름이 수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에 해당하는 길쭉한 형태의 섬유다. 적혈구의 지름이 약 5μm, 사람의 머리카락이 약 50μm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옷을 한 번 세탁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미세 섬유가 발생한다. 다이아몬드 교수 연구팀은 이런 미세 섬유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추적해 보기로 했다. 먼저 캐나다 오대호와 토론토 근처 휴론 호수, 캐나다 북극해 제도에서 퇴적물 샘플을 수집했다. 그런 다음 물질에 빛을 쏘였을 때 나타나는 고유한 진동으로 성분의 정체를 파악하는 라만 분광기와 현미경을 이용해 샘플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오대호 퇴적물에서 발견된 미세 섬유의 23%가 데님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토 외곽의 휴론 호수(12%), 북극해제도(20%)에서도 미세 섬유 중 데님 성분이 상당 부분 확인됐다. 데님에서 나온 미세 섬유는 수심 1500m의 깊이에서도 발견됐다. 연구팀은 “북극에서까지 데님 미세 섬유가 발견되는 것은 인간의 영향이 점점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12억 벌 이상의 청바지가 판매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세 섬유 포함된 합성염료도 오염 가중연구팀은 청바지를 한 벌 세탁할 때마다 약 5만 개의 데님 미세 섬유가 떨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세 섬유 거름막이 설치된 폐수처리장 두 곳에서 나오는 폐수도 분석했는데, 이 두 곳에서만 하루 10억 개의 데님 미세 섬유가 자연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바지의 염료로 사용되는 인디고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인디고는 기원전 2500년 전부터 아시아와 이집트, 그리스에서 사용된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염료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요를 맞추지 못해 화학적으로 합성되고 있다. 연구팀은 “오대호에서 수집한 바다빙어 중 65%의 내장에 데님 미세 섬유가 들어 있었다”며 “화학 처리된 미세 섬유가 생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모른다”고 경고했다.○500년 유지되는 합성 미세 섬유 배출 심각 천연성분인 데님 외에도 합성 섬유에서 나오는 미세 섬유의 양도 상당하다. 연구팀이 분석한 샘플에서 나온 합성 섬유 양의 최소 21%에서 최대 51%까지 차지했다. 폴리에스터는 대표적인 합성 섬유로 가격이 저렴하고 내구성이 높아 스웨터와 운동복 등에 흔히 쓰인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옷감 중 약 60%를 차지한다. 하지만 폴리에스터는 분해에 최소 500년이 걸리고 태울 경우 발암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배출된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미세 섬유 규제 법안이 통과됐다. 의류 제조업체가 자연으로 배출되는 미세 섬유 양을 줄이고 관련 여과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모든 공공기관에 내년 1월까지 여과 시스템을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코네티컷과 뉴욕도 2018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고, 영국도 미세 섬유 규제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경우 화장품 관련 미세 플라스틱 규제만 있을 뿐 미세 섬유 관련 규제는 없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지난달 10일 중앙아시아 국가인 카자흐스탄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새롭게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치명률이 훨씬 높은 새로운 감염병이라는 것이다. 국제 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코로나19보다 지독한 감염병이 등장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현장에 파견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관들의 분석 결과 이 폐렴의 정체는 코로나19로 드러났다. 카자흐스탄 정부 당국이 흔히 사용하는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활용해 진행한 검사에선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끝내 양성 판정이 나오지 않았다. 폐렴의 정체를 밝힌 건 가장 정확한 진단키트로 손꼽히는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같은 첨단 진단키트가 아니었다. 올해로 125년이 된, 병원에서 흔히 사용하는 X선 영상이다.○인류의 재산으로 탄생한 X선, 미국 대통령을 구하다 독일의 물리학자인 빌헬름 뢴트겐은 1895년 암실에서 유리관에 저압의 가스를 넣어두고 전류가 어떻게 통과하는지 관찰하다 두꺼운 책이나 나무판자까지 투과하는 이 빛을 발견했다. 목재나 옷은 물론이고 심지어 물건을 든 자신의 손뼈까지 통과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뢴트겐은 수학에서 모르는 수를 X라 표현하듯이 정체불명의 이 빛에 X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X선 관련 논문을 발표했고, 1901년 이 논문으로 제1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뢴트겐은 X선이 전 인류의 재산이라 생각해 특허 출원을 하지 않았다. X선은 현대 과학에 큰 기여를 했다. X선을 통해 이전에 볼 수 없던 분자 구조를 관찰할 수 있게 됐고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는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천문학자들은 먼 우주의 별과 은하, 중성자별, 블랙홀에서 쏟아낸 X선을 탐지해 우주 구조를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류는 가장 큰 수혜자나 다름없다. X선을 이용해 몸속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정확하고 빠른 진단이 가능해졌고 그만큼 많은 생명을 구했다. X선은 미국 대통령의 목숨도 구했다. 제임스 가필드 미국 대통령은 1881년 괴한의 저격으로 두 발의 총탄을 맞았다. 당시 의료진은 총알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고 결국 가필드 대통령은 숨을 거뒀다. 반면 그로부터 딱 100년 뒤인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가슴에 총상을 입었지만 의료진이 X선 영상을 보고 몇 분 만에 총알을 찾아내 목숨을 건졌다. 미국 진단영상 학계에선 X선 등장의 의미를 설명하는 대표적 사례로 지금도 꼽고 있다.○결핵 잡던 X선 코로나19도 잡는다 X선은 지금도 해마다 1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핵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활용되고 있다. 폐의 결핵균 활동성 여부를 빠르게 진단해 조기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이다. X선 영상장치는 코로나19 사태가 나자 가장 정확한 진단키트도 잡지 못하는 확진자들을 잡아내는 효율적인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들은 무증상 환자를 제외하고는 폐렴 증상을 보인다. 이런 환자 흉부를 X선으로 찍어보면 폐에 반투명 유리 같은 옅은 음영이 나타나는 증상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는 진단키트보다 감염 사실을 더 확실히 뒷받침하는 ‘스모킹건’이다.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거나 예후를 확인하는 데도 X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촘촘하게 쏴 3차원(3D)으로 촬영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 활용되고 있다. 배리스 터크베이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분자이미징프로그램 연구원은 “RT-PCR와 CT를 함께 사용하는 게 코로나19 진단에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AI)과 결합하면서 진단 정확도가 더 올라가고 있다. 예종철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팀은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86%의 정확도로 판별하는 AI 기술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5월 발행한 ‘영상기반 코로나19 진단 AI’ 특집호에 발표했다. 리옌 중국 화중과기대 연구원팀도 2월 RT-PCR가 음성인 경우에도 CT를 통해 코로나19 환자를 97%의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방사선학’에 발표했다. X선 진단장비는 탄생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세계 의료용 X선 진단기기 시장은 지난해 28억 달러(약 3조3194억 원)에서 2024년 38억 달러(약 4조5056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텔레다인달사 등 미국 기업과 후지필름홀딩스 등 일본 기업, 지멘스헬시니어스 등 독일 기업 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뷰웍스와 레이언스 등 한국 기업들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이달 4일 중국 윈난(雲南)성 임업초원국은 올 들어 푸얼과 훙허 등 관내 4개 지역에서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피해 면적만 103.8km²로, 서울 서초구 면적(47.1km²)의 2배를 넘는다. 메뚜기 떼는 전통적으로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 자주 출몰했지만 최근 들어 중국에서도 메뚜기 떼 습격이 늘면서 식량부족 문제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캉러(康樂) 중국과학원 동물학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동물이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화학 성분인 페로몬을 이용해 메뚜기 떼를 소탕하는 방법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12일자에 발표했다. 메뚜기는 다른 동물처럼 페로몬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페로몬은 일종의 체취로, 일단 한 마리에게서 분비가 시작되면 주변에 모인 메뚜기들에게서 분비가 되고 결국 떼를 이룬다. 연구팀은 ‘4-바이닐아니솔(4-VA)’라는 달콤한 냄새를 내는 유기 화합물이 다른 메뚜기를 유인하는 데 활용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화합물을 접한 메뚜기들은 수명과 성별에 상관없이 강력하게 이끌리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팀은 4-VA 물질로 메뚜기 떼를 함정으로 유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풀밭에 설치한 끈끈이 덫에 4-VA를 바르고 메뚜기 떼를 관찰한 결과 바르지 않은 덫보다 더 많은 메뚜기가 달라붙는 것을 확인했다. 4-VA 페로몬을 아예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페로몬은 일반적으로 메뚜기의 더듬이에 있는 ‘추상감각자’라는 감각세포를 통해 감지된다. 이 감각세포에는 페로몬과 결합하는 OR35라 불리는 수용체가 있는데 이 수용체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뿌리는 방법이다. 캉 교수는 “이런 방법을 통해 메뚜기가 모여서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실제로 가능한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면도날은 부식에 강한 강철 합금인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다. 날 끝을 아주 날카롭게 갈아낸 다음 다이아몬드와 유사한 구조의 탄소막을 씌워 단단함을 더한다. 하지만 면도날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무뎌진다. 얼굴에 난 수염이 그보다 50배나 강도가 높은 강철을 갈아내고 있는 셈이다. 6일 세말 셈 타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재료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부드러운 털이 어떻게 면도날을 무뎌지게 하는지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균일하지 않은 면도날 구조를 원인으로 꼽았다. 면도날의 미세구조가 균일하지 않을 경우 보통 그 사이에 틈이 생긴다. 벌어진 틈 사이로 털이 파고들면서 날 구조가 더욱 허술해지고 이가 빠지는 현상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고가 면도날보다 미세구조가 균일하지 않은 일회용 면도기의 날이 더 빨리 이가 빠지는 이유다. 면도날의 가장자리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뚜렷하게 관찰됐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털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미세구조의 틈으로 쉽게 파고들어 갔다. 한 번 날에 이가 빠지면 그 다음부터는 더 쉽고 크게 이가 빠졌다. 옷에 구멍이 한 번 뚫리면 이후 구멍이 쉽게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으로 면도날이 실제 털을 깎는 모습을 관찰했다. 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면도날이 무뎌지는 조건을 추가로 유추했다. 그 결과 면도날이 털에 비스듬히 닿거나 면도날이 너무 여러 성분으로 제작됐을 때 쉽게 이가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연구 결과를 활용해 무뎌지지 않는 궁극의 면도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강철을 더 균일한 형태로 벼리는 날 제조 공정에 관한 특허도 출원했다. 타산 교수는 “털 한 가닥이라도 면도날의 이를 빠지게 할 수도 있다”며 “현재의 면도날 제작 기술을 개선해 일회용 면도기의 수명을 늘리고 환경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최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는 13kt(킬로톤)의 폭발력을 보였다.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떨어진 두 번째 원자폭탄 ‘팻맨’은 폭발력이 21kt에 이르렀다. 각각 TNT 폭약 1만3000t과 2만1000t을 터뜨린 것과 맞먹는 규모다. 1996년 유엔은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채택해 현재 184개국이 서명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핵실험은 조용히 계속 진행되고 있다. 직접 대규모 폭발을 일으키지 않을 뿐이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 핵실험이다. 핵심 설비는 슈퍼컴퓨터다. 노후화된 핵무기를 필요에 따라 다시 개조하는 과정에서 물성 및 효율을 분석하는 역할을 맡는다. 시간이 지나면 핵탄두에 장착된 원료인 플루토늄도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도 슈퍼컴퓨터가 쓰인다. 이렇게 예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핵무기의 성능과 안정성을 점검한다. 핵융합 시설도 중요한 설비로 꼽힌다. 레이저를 이용해 핵융합을 일으키는 기술을 활용하면 핵무기가 폭발하는 순간의 환경을 재연할 수 있다. 미국은 1995년부터 매년 40억 달러(약 4조7560억 원)의 연구비를 투자해 핵무기 관리프로그램(SSP)이라는 가상 핵실험을 진행해 왔다. 핵무기의 성능과 신뢰성, 안정성을 검증하는 게 목적이다. 미국은 1992년 9월부터 모든 핵실험을 중단했지만, 이미 보유한 핵무기를 보수하고 신뢰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핵안보국(NNSA) 산하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샌디아국립연구소는 미국의 핵실험을 이끄는 핵심 연구기관이다. 이들 연구소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탄탄한 지원을 받고 있다. 올해 예산은 198억 달러(약 23조5323억 원)로 지난해보다 약 20% 늘었다. 현재 1위 슈퍼컴퓨터보다 7.5배 빠른 엑사급 슈퍼컴퓨터 ‘엘 카피탄’ 도입도 결정했다. 2022년 도입되면 핵실험 관련 3차원(3D) 시뮬레이션 역할을 본격적으로 맡게 된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1만 개를 웃도는 핵무기를 관리하다 2000년대 중반 4000여 개로 줄였다. 하지만 관리프로그램을 통해 잠수함 ‘트라이던트2 D5’의 탄도미사일 탄두를 개량 탄두인 ‘W76-2’로 교체하는 등 미국 핵전력을 가다듬고 있다. 러시아도 핵실험을 중단한 1990년 이후부터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핵실험을 하고 있다. 2012년 러시아 국방부 당국자는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 성능을 확인하고 전략적 핵전력을 향상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해 핵무기에 장착된 핵탄두를 대량으로 교체했다. 6월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 등 9개 핵보유국이 가지고 있는 핵탄두 수는 지난해보다 전체적으로 줄고 있지만 한편으론 핵 현대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의 핵 현대화가 두드러져 지상발사와 잠수함발사, 전략핵폭격기 등 3대 핵전력 모두에서 현대화를 이루고 있다”며 “전체 핵탄두 중 배치돼 있는 것은 약 3720기이며, 특히 1800기 가까이는 ‘고도의 작전경계태세’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지난달 28일 한미 양국은 한국의 우주발사체(로켓)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하는 내용을 담은 새 미사일 지침에 합의했다. 한국이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백곰’ 개발에 성공한 이듬해인 1979년 지침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 41년 만에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풀린 것이다. 우주 전문가들은 앞으로 고체연료를 사용한 다양한 우주발사체 개발과 생산이 가능해져 한국에서도 스페이스X와 로켓랩 같은 민간 우주기업이 등장할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고체로켓, 제작 간단하고 효율도 좋아 우주발사체는 인공위성이나 우주망원경, 탐사선을 우주 궤도에 실어 나르는 유일한 운송수단이다. 발사체의 추진 엔진만 따로 로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로켓 엔진은 지구 대기권과 우주를 비행하는 추진력을 내는 발사체의 핵심 기술이다. 연료와 산화제를 엔진 내부에서 태울 때 나오는 고온 고압의 가스가 분출하는 힘으로 몇백 kg에서 몇 t에 달하는 탑재체를 우주로 실어 나른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 우주개발 선진국이 개발한 우주발사체는 연료 종류에 따라 액체로켓과 고체로켓으로 나뉜다. 고체로켓은 액체로켓보다 구조가 간단해 제작하기 쉽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저렴하다. 강경인 한국연구재단 우주기술단장은 “고체로켓은 액체로켓보다 연료 공급장치와 발사대 지상설비가 단순하고 선체가 가볍기 때문에 효율이 좋다”며 “제작 비용도 액체로켓의 10분의 1 정도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발사 과정이 단순하다는 점도 고체로켓의 장점이다. 액체로켓은 산화제인 액체산소와 연료를 쓰는데 극저온 상태를 유지한 채 발사 수일 전부터 주입해야 한다. 연료 주입에 시간이 걸려 첩보위성의 눈을 피하기 어려워 군사용으로는 사용하기 어렵다. 반면 고체로켓은 언제든 발사가 가능해 군용 미사일 기술로 많이 사용돼 왔다. 강 단장은 “고체로켓은 연료를 넣은 상태로 보관이 가능하다”며 “발사 대기 시간이 짧다”고 설명했다. 물론 액체로켓도 장점이 많다. 필요할 때 엔진을 켜고 끌 수 있어 로켓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지궤도 위성이나 달 궤도선을 쏘아 올릴 때 사용하는 대형 우주발사체의 경우 제어가 쉬운 액체로켓을 주로 쓰고 고체로켓을 부스터(보조용 로켓)나 상단의 추력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대다수 국가들은 혼합형 발사체를 활용한다. 1단과 3단은 고체로켓, 2단과 4단은 액체로켓을 쓰는 인도 발사체 PSLV가 대표적이다. 유럽우주국(ESA)의 우주발사체 ‘아리안’, 일본의 ‘H2’도 고체로켓을 부스터로 활용한다. ○ 민간 우주발사체 연구개발 활성화 기대 그동안 세 차례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고체로켓의 사거리와 탑재체 중량은 늘어났지만 총추력은 100만 파운드·초로 줄곧 제한됐다. 1파운드·초는 1파운드(약 450g)짜리 물체를 1초 동안 추진할 수 있는 힘으로, 100만 파운드·초는 500kg 무게의 물체를 고도 300km까지 운반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13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한국 최초 발사체인 나로호 상단에도 고체로켓을 사용했지만 미사일 지침에 따라 초당 8t급 추력을 내는 데 그쳤다. 2017년에 이뤄진 개정에서도 고체로켓의 사거리를 800km로 정했으나 우주발사체용 추력 개정은 없었다. 이번 지침 개정으로 고체로켓을 이용해 지상감시·통신용 소형 발사체 연구개발(R&D)은 물론이고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 단장은 “우주 분야 스타트업 기업이나 고체연료를 활용한 연구용 발사체를 개발하는 연구자에게는 연구 기회가 확대됐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제작이 단순하고 저렴한 고체로켓의 민간 개발이 활발하다. 중국의 경우 국영기업인 항톈과학공업그룹에서 분사한 스타트업 아이스페이스와 엑스페이스, 갤럭틱에너지가 개발에 뛰어들었다. 미국 스타트업 아드라노스는 발사 시 나오는 유해 성분을 줄인 고체로켓을 개발해 올해 2월 100만 달러(약 12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다만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한국에서는 100km 이하 사거리를 가진 연구용 과학로켓(사운딩로켓)을 발사하는 데도 발사 부지, 공역 사용 등의 수많은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간 스타트업으로 국내 첫 소형 우주로켓 발사를 준비 중인 신동윤 페리지항공우주 대표는 “민간 기업의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며 “인허가 규제 등을 재검토하는 논의도 촉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재원 jawon1212@donga.com·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2017년 북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수심 4947m 심해저에서 햄 깡통이 발견됐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원격조종 잠수정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하다 우연히 이 깡통을 발견했다. 앞서 이 잠수정은 수심 3780m 지점에서 맥주 깡통을 찾아냈다. 해양 쓰레기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까지 흘러갔다는 소식은 큰 충격을 줬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바다는 여전히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계 각국 과학자들과 환경단체들은 점점 지구의 쓰레기 처리장이 되고 있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네덜란드 비영리단체 ‘오션클린업’은 최근 쓰레기를 집어삼키는 무인 바지선 ‘인터셉터’를 공개했다. 인터셉터는 물 위를 떠다니며 컨베이어벨트로 쓰레기를 빨아들인다. 컨베이어벨트 끝에는 쓰레기통이 있다. 쓰레기통은 담당자가 다른 배를 타고 가 주기적으로 교체해준다. 태양열로 구동돼 환경오염 우려도 적다. 이 바지선은 이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성능 검증을 마쳤다. 오션클린업은 인터셉터가 하루 최대 50t의 쓰레기를 수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양 쓰레기는 바다를 떠다니는 부유 쓰레기와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침적 쓰레기로 나뉜다. 플라스틱 등 부유 쓰레기가 깡통 등 침적 쓰레기보다 상대적으로 수거하기가 쉽다. 다만 수거효율을 높여야 한다. 해류의 흐름을 분석하는 방법이 최근 부유 쓰레기 수거에 시도되고 있다. NOAA가 운영 중인 ‘오스커스’는 북태평양 전 지역의 해류를 90km 간격으로 측정한다. 측정한 해류 정보와 기상 정보를 통해 쓰레기의 향후 경로를 예측한다. 1992년 미 알래스카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화물선에 실린 목욕용 장난감 2만9000개도 오스커스를 활용해 회수했다. 침적 쓰레기를 회수하는 방법으로는 갈고리 등 수거장비를 로프로 매달아 바닥을 끌며 수거하는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무게가 더 나가는 것은 크레인으로 직접 인양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수거 방법은 한계가 있다. 침적 쓰레기 1t당 약 250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침적 쓰레기 인양 과정에 해저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바다의 어느 지점에 침적 쓰레기가 쌓여 있는지를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 현재는 수중 로봇을 이용해 물체 탐지기로 침적 쓰레기를 찾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쓰레기를 판별하는 정확도가 떨어진다. 김경련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일정 면적의 해역을 지정하고 거기에서 해양 쓰레기가 얼마나 나오는지를 확인한 뒤 전체 해역의 해양 쓰레기를 추정한다”며 “해양 쓰레기 수거 예산보다 찾는 데 드는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런 이유로 선제적으로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쓰레기들을 원천 차단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그레이트 버블 배리어’는 지난해 11월 공기 방울로 쓰레기가 바다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제시했다. 바다와 이어진 강바닥에 공기 방울을 뿜어내는 파이프를 설치해 쓰레기가 통과하지 못하도록 일종의 에어커튼을 치는 원리다. 강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위로 끌어올려 수거를 용이하게 하는 한편 쓰레기가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게 한다. 암스테르담 베스테르독 운하에서 테스트 해본 결과 공기 장벽이 흘러가는 쓰레기의 86%를 차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중 산소량을 높여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녹조 현상도 막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수거 전용 선박이나 휴어기에 놀고 있는 어선을 활용해 직접 수거하고 있다. 해마다 7∼9월에는 해양 쓰레기 수거 사업이 집중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미국 과학자들이 곤충이 보는 시각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는 곤충용 초소형 고프로(액션캠)를 개발했다. 곤충이 등에 배낭처럼 둘러메는 이 카메라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공개된 동영상 카메라 가운데 가장 가볍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는 이달 15일(현지 시간) 시암 골라코타 미국 워싱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팀이 기어 다니는 곤충의 등에 설치하는 배낭형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곤충은 높은 이동성을 가진 동물이다. 땅바닥의 돌 같은 각종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고 물 표면을 걸어 다니기도 한다. 연구팀은 곤충의 이런 이동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곤충에 매달 수 있는 작은 액션 카메라를 개발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곤충용 액션캠은 가로 1.6cm, 세로 2cm, 두께 2cm에 무게는 250mg에 불과하다. 어른 손바닥만 한 가장 큰 딱정벌레가 짊어질 만한 크기에 포커 카드 한 장의 10분의 1 수준 무게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카메라의 경량화를 위해 파리의 눈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파리는 눈의 특정 부위만 높은 해상도를 갖고 머리를 돌려가며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며 “파리의 이런 눈 구조와 행동은 화각을 좁히는 대신 시각 처리에 쓰이는 에너지를 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카메라에는 기계식 팔이 달려 있다. 파리가 머리 방향을 바꾸며 보듯 카메라 방향을 최대 60도까지 바꿀 수 있다. 이 카메라는 초당 1∼5장의 영상을 찍는데 최대 녹화시간은 약 6시간에 이른다. 컬러보다 이미지 처리에 전력이 적게 들어가는 흑백 영상으로 촬영한다. 카메라와 기계식 팔은 스마트폰 블루투스로 조작이 가능하다. 최대 120m 떨어진 곳에서도 카메라를 조작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제 딱정벌레 두 마리에 카메라를 달아 촬영 테스트까지 마쳤다. 이 딱정벌레들은 카메라 무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실험에 사용된 딱정벌레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확인한 결과 1년 뒤에도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지난달 23일부터 전북 군산시 선유도해수욕장 인근 갯벌에서 대규모 이주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멸종위기종 흰발농게 약 4만 마리를 250m 떨어진 다른 갯벌로 옮기는 작업이다. 작업 방식은 간단하다. 돼지비계를 미끼로 삼아 흰발농게를 포획한 뒤 다른 갯벌로 옮기거나 사람을 투입해 직접 잡는다. 흰발농게가 싫어하는 진동을 일으켜 스스로 옮겨가도록 하는 방법도 동원되고 있다. 흰발농게는 달랑겟과 갑각류로 한반도 남해안과 서해안에 살고 있다. 모래와 펄이 적절히 섞인 혼합 갯벌에 주로 산다. 수컷의 집게다리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 눈에 띄게 커서 ‘주먹대장’으로도 불린다. 암컷의 집게다리는 둘 다 작고 크기가 비슷하다. 국내에서 흰발농게는 2012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됐다. 갯벌 매립 등 해안가 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번 흰발농게의 대규모 이주 작전도 해안 개발 때문에 이뤄졌다. 흰발농게가 서식하는 약 1만7000m²의 갯벌에는 서울 만남의 광장 휴게소 크기와 비슷한 넓이의 주차장과 편의시설, 도로가 들어선다. 원래 계획은 선유도 일대 16만 m²에 걸쳐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흰발농게 집단 서식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나마 계획이 축소된 것이다. 군산시가 용역을 줘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이 일대에 서식하는 흰발농개는 63만 마리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흰발농게 서식지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군산시는 선유도 흰발농게 이주를 이달 중순까지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번 흰발농게 이주를 두고 시와 환경단체들 사이에선 논란이 일고 있다. 흰발농게의 서식지를 빼앗는 것은 물론이고 강제로 옮긴 새 서식지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흰발농게 약 4만 마리를 포획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군산 지역 시민환경단체 10곳은 이달 2일 “갯벌 파괴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흰발농게 이주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사업을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군산시는 강제 이주지가 이미 흰발농게가 서식하는 지역이라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내에서는 멸종위기 동물인 수달, 산양, 맹꽁이, 금개구리, 수원청개구리 등의 이주가 시도된 적은 있다. 하지만 이주 후 환경 적응에 관한 광범위한 평가는 사실상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흰발농게처럼 대규모 집단 이주 경험도 없는 실정이다. 서식지 파괴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할지 모르는 동물들은 점점 늘고 있다. 제임스 왓슨 야생동물보호협회(WCS) 연구원과 제임스 앨런 호주 퀸즐랜드대 지구환경과학과 연구원팀은 지난해 3월 조류와 포유류, 양서류 등 전 세계 척추동물 5457종 중 1237종이 서식지의 약 90%에서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플로스 생물학’에 발표했다. 동물이 스스로 적응할 환경을 찾아 옮겨가는 이동조차 제한받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 세계 24개국 99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2018년 영장류와 포유류 57종 총 803마리에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부착해 두 달간의 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간의 영향을 받는 지역의 경우 동물들의 이동 거리가 야생보다 2∼3배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개발이 예정된 인천 영종2지구에서도 흰발농게 서식지가 발견돼 보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서식지 보전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하다면 이주 후 적응이 잘 이뤄지는지 꾸준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동물마다 서식하는 특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주를 시켰다면 이들이 잘 적응하는지 꾸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사상 최초로 태양 남극과 북극을 동시에 관측할 우주탐사선 ‘솔라 오비터’가 15일 처음으로 이 탐사선의 현재 궤도에서 가장 태양과 가까운 근일점에 도착했다. 솔라 오비터는 앞으로 약 3년에 걸쳐 궤도를 수정하며 태양에 더욱 가까이 접근할 예정이다. 유럽우주국(ESA)은 15일 낮 12시 35분(한국시간) 솔라 오비터가 태양 표면과의 거리를 7700만 km 이내로 좁혔다고 발표했다. 솔라 오비터는 태양에서 가까운 주변 궤도를 돌며 태양 표면과 방출 물질을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플레어’로 대표되는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발 활동과 자기장 변화, 표면 폭발 과정에서 생성되는 전자와 이온 등 입자를 관측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ESA가 함께 개발한 이 탐사선은 올 2월 초 미국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아틀라스5 로켓에 실려 우주로 향했다. 솔라 오비터는 여러 차례 행성의 중력도움(플라이바이)을 받아 궤도를 수정하며 목표한 임무 궤도에 접근하고 있다. 2021년 11월까지 금성을 두 차례, 지구를 한 차례 스쳐 지나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보다 안쪽 궤도인 4200만 km까지 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태양과 수성 간 거리의 4분의 3이자 태양 지름의 약 60배 거리에 해당한다. 솔라 오비터는 2030년까지 7년간 태양을 관측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기간에 7차례의 플라이바이를 더 거치며 태양 적도면과 최대 33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태양을 관측한다. 과학자들은 솔라 오비터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면 태양 북극과 남극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들 지역을 관측하면 11년으로 알려진 태양의 활동 주기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성 교란이나 통신에 영향을 주는 태양풍 및 태양 입자도 분석해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펄펄 끓는 태양계 안쪽 깊숙이 들어간 태양 탐사선은 5개 이른다. NASA와 독일 우주국은 1967년 헬리오스 1호를, 1974년엔 헬리오스 2호를 각각 쏘아 올렸다. NASA는 별도로 1973년 매리너 10호를 발사한 데 이어 2004년 수성 탐사선 메신저를 보냈다. NASA는 또 2018년에는 파커 솔라 프로브를 쏘아 올렸다. 파커 솔라 프로브는 태양 지름의 10배에 해당하는 거리까지 접근할 예정인데 이는 인류가 만든 물체 가운데 가장 태양 가까이 접근한 것이다. 솔라 오비터는 그보다 멀리 떨어져 태양을 관측하지만 태양 방출 입자가 만드는 ‘태양풍’과 자기장, 입자를 관측하는 각종 최신 과학장비 10가지가 실려 있다. 태양 코로나(태양 바깥쪽 대기에 있는 가스층)를 관측하기 위한 영상 촬영 장치와 극자외선 및 엑스선 촬영 장비 등 영상 장비도 실려 있다. 솔라 오비터에는 또 파커 솔라 프로브에는 없는 초고해상도 망원경이 달려 있다. 태양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을 막는 열 차폐 기술이 적용돼 태양을 직접 촬영할 수 있다. 대니얼 뮬러 ESA 솔라 오비터 프로젝트 책임자는 “솔라 오비터 망원경은 NASA의 태양활동관측위성(SDO)과 함께 최고 수준의 해상도를 자랑한다”며 “지구 근처 궤도에서 찍는 것보다 해상도가 2배 더 높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솔라 오비터는 실제로 이날 근일점에 도착해 태양을 처음으로 촬영했다. 뮬러 책임자는 “이 사진은 인류 역사상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촬영한 사진”이라며 “이미지 전송과 보정 과정을 거쳐 7월 중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솔라 오비터는 내년 초 다음 근일점에 접근하고 같은 해 11월부터 정식 관측에 들어갈 예정이다.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