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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오가는 고물가 시대다. 그 여파는 문화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뮤지컬 업계에선 티켓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렸던 ‘VIP석=15만 원’ 공식이 깨졌다. 카카오M이 인수한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11월 개막하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VIP석 가격을 16만 원으로 책정한 것. 팬들은 “커플이 뮤지컬을 보려면 30만 원 넘게 필요하다”, “연말에 4인 가족 관람은 어려울 것 같다”는 원성을 쏟아냈다. 최근 4년간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은 7만(A석)∼15만 원(VIP석)을 유지했다. 작품별로 제작비가 달라도 경쟁작들이 내건 티켓 가격대를 맞췄다. ‘시장의 통상 가격’을 따른 셈이다. 쇼노트의 행보에 다른 제작사들도 티켓가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한 제작자는 “욕을 먹을까 봐 선뜻 티켓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많은 제작사들이 VIP석 16만 원 책정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팬들의 아우성에 제작사들은 “물가가 다 올랐지 않느냐”며 억울해한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들여다보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작품을 로열티를 내고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오거나 대본과 음악, 의상, 무대세트, 자잘한 소품까지 해외 프로덕션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레플리카 작품이 상당수다. 1400원대를 향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과 제작비 인플레이션으로 티켓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제작사의 아우성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뮤지컬 티켓 가격은 크게 제작비(대관료+배우 개런티+인건비 등), 공제비용(로열티+티켓 수수료 등), 제작사 수입의 3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적정 티켓가는 정해져 있고 작품별 제작비는 다르다 보니 제작사는 손익분기점을 정한 뒤 VIP석, R석, S석, A석 등 좌석의 비율로 수익을 맞춰 왔다. 극장 1층 전체를 VIP석으로 정한 공연도 있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VIP석 비율을 높여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게 제작자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1인당 16만 원의 티켓 가격은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다. 간만에 문화생활을 해볼까 마음먹었다가도 통장 잔액을 보며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임에 틀림없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는 티켓 가격을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한다. 관객이 많으면 값을 올리고, 적으면 할인하는 ‘가격 탄력제’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 공연 시작 2시간 전 추첨을 통해 남은 VIP석을 할인하는 로터리 티켓 제도와 최대 75% 할인가에 즐기는 입석 티켓 제도도 운영한다. 주중 티켓 가격은 주말보다 저렴하다. 1000석 이상 대극장용 공연이면 천편일률적으로 ‘VIP석=15만 원’을 적용하는 한국에선 흥행 작품은 수익을 내지만, 흥행 실패작은 좌석을 채우지 못해 손해를 보기 일쑤다. 이참에 한국 뮤지컬 시장에 가격 탄력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수익을 맞춰야 하는 제작사에도 유리하고, 관객에겐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서우는 뭐든 조금 느린 아이다. 친구들은 서우를 ‘북이’라고 부른다. ‘거북이’에서 따온 별명이다. 학교에서 반별 계주대회가 열렸다. 서우네 반은 내내 1등으로 달렸지만, 서우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면서 꼴찌로 결승선에 들어온다. 친구들은 화가 나 “우리 반이 이길 수 있었는데, 북이만 아니었어도…”라고 투덜댄다. 서우는 미안함과 속상한 마음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집으로 향한다. ‘달빛 수족관’이란 가게 앞에서 서우는 수조 한 귀퉁이에 홀로 떨어져 있는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서우는 거북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집에 오자마자 제일 자신 있는 종이접기로 거북이를 만든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비워 바다로 꾸민 뒤 종이 거북이를 풀어줬다. 갑자기 마법처럼 바다가 생겨나고 거북이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조금 느리고 서툰 서우와 거북이가 바닷속에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메시지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엄마가 안아 주니깐 힘이 나.” 매번 엄마가 음식을 먹여주고, 옷을 직접 입혀줘야 하는 작고 소중한 아이. 그런 아이가 몇 년 후 혼자서도 음식을 먹고 스스로 옷을 챙겨 입을 정도로 자랐다. 하루는 아이가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며 단추가 달린 카디건을 스스로 입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래, 네가 한번 해보렴”이라고 응원해준다. 작은 손으로 단추를 구멍 사이에 끼워 넣지만, 짝을 못 맞춰 단추 하나가 남는다. 아이는 다시 도전해 단추 끼우기에 성공하지만 의기소침해진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그래도 끝까지 혼자 입었잖아. 그게 더 대단한 거야”라고 다독여 준다. 엄마는 아이에게 앞으로 커가면서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배울 것이고, 처음엔 서툴고 어렵더라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힘들 땐 엄마 아빠에게 상의해 함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다양한 조언과 응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새삼 ‘엄마’라는 단단한 울타리의 존재를 생각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1세대 한복 디자이너의 전통 한복부터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의 한복 디자이너들이 손수 만든 생활한복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D2홀에서 25∼2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한복 박람회 ‘2022년 한복상점’이 열린다. 올해 5회를 맞는 한복상점에서는 1세대 한복 디자이너인 서영희 디자이너(사진)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기획전시도 열린다. 블랙핑크가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입어 화제가 된 한복을 디자인한 김단하 씨(32), 2018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BTS 멤버 지민이 입은 한복을 만든 황이슬 씨(35) 등 주목받는 젊은 한복 디자이너 10명도 한복상점에 참여한다. 서영희 예술감독은 24일 “한복 박람회지만 단순히 한복을 구입하는 단계를 넘어 한복의 아름다움과 최신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기획전시관에 들어서면 김진이 작가의 동양화가 담긴 병풍을 배경으로 곳곳에 전통한복부터 생활한복을 입은 마네킹들이 즐비해 있다. 시대를 달리하는 복장이지만 색깔은 ‘쪽빛’으로 통일했다. 서 예술감독은 “한복의 시대별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복홍보대사인 가수 송가인이 직접 만든 한복 장신구 20여 점도 전시된다. 올해 한복상점에는 총 74개 한복업체가 참여한다. 각 업체들은 한복과 장신구 등을 정상 판매가의 평균 30%, 최대 8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올해 한복상점 박람회는 사전등록자만 6000명을 넘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며 “한복상점을 통해 한복업계가 새로운 유통 판로를 개척하고 한복을 즐기는 문화가 더욱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신진 디자이너 육성을 위한 한복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과 한복 디자인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라며 “공모전 수상작과 함께 새롭게 디자인된 한복 교복 및 근무복 등을 한복상점에서 만나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복을 입었거나 사전 등록을 마친 관람객은 한복상점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사전 등록은 28일까지 한복상점 누리집에서 하면 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전북 부안에서 나고 자란 저는 아홉 살 때 ‘꿈의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처음 바이올린을 접했어요. 10년 뒤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만나 지도받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하며 음대 진학을 준비하는 박은수 씨(19)가 말했다. 세계 22개국에서 온 18∼27세 연주자 100여 명이 지난달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모였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41)이 이끄는 두다멜재단과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엔쿠엔트로스’에 참가한 것.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꿈의 오케스트라’ 졸업 단원인 박 씨는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엔쿠엔트로스에 한국인이 참여한 건 처음이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그는 “2주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LA필하모닉 단원들에게 연주 지도를 받았다”며 “이달 2일과 4일엔 LA의 대규모 야외 음악당인 할리우드볼과 UC버클리 허스트 그릭시어터에서 두다멜의 지휘로 두 차례 열린 공연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두다멜은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낳은 스타 지휘자다. “두다멜이 ‘평범한 길을 걷던 우리가 악기를 지니면 무한한 힘을 갖게 된다. 음악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말했어요. 감동받았죠. 제가 음악을 해온 이유이기도 하거든요. 두다멜을 만난 뒤 음악을 통해 느낀 행복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박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꿈의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부모님이 다섯 남매 중 셋째인 그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권유했다. 악기를 선택하는 날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우연히 듣게 됐고 이에 매료돼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그리고 10년간의 오케스트라 활동은 그에게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심어줬다. 박 씨는 “‘꿈의 오케스트라’는 시골에서 평범하게 지내던 저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줬다”며 “고등학교 진학 후 진로를 고민하다 연주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걸 깨닫고 음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2010년부터 운영 중인 ‘꿈의 오케스트라’는 전국 청소년이 일상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접하고 연주도 할 수 있게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현재 51개 지역에서 2900여 명이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 씨는 “요즘 진학 준비로 바쁘지만 ‘꿈의 오케스트라’의 멘토로 활동하며 단원들과 여러 무대에 함께 서고 싶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쓰레기가 점령해 버린 세상. 바닷속엔 물고기 등 생명체가 살지 않고 온통 쓰레기뿐이다. 수난과 카이 자매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섬 ‘수나카이’에 산다. 수나카이는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쌓여 생긴 섬이다. 두 자매는 바닷속 쓰레기 중 쓸 만한 물건을 찾아 상인들에게 팔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카이는 평소처럼 바닷속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중 금시계를 발견한다. 하지만 상인이 들고 온 딱 하나 남은 노란 물고기에게 마음을 빼앗겨 바꾼다. 물고기는 며칠 뒤 죽고,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려던 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바닷속 아주 깊은 곳의 생명체가 죽은 물고기를 품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 것. 이후 그간 죽은 줄만 알았던 바다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해양쓰레기와 생명체가 살지 않는 바다의 모습은 자연 앞에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 전반부와 후반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바다의 삽화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2007년에 에투알(수석무용수)로 임명돼 1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대. 2014년생 딸을 둔 마흔 살 워킹맘이기도 해. 대단하지 않아?”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파리오페라 발레 2022 에투알 갈라’ 공연에서 단연 눈에 띈 건 파리오페라발레단(BOP)의 에투알 도로테 질베르였다. 현대 발레 ‘아모베오’의 파드되(2인무) 공연을 펼친 그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듯 유려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춤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왜 그의 이름 앞에 ‘BOP의 자존심’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지 실력으로 납득시켰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그녀가 2014년생 딸을 둔 워킹맘이란 점이었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딸의 모습을 종종 공개해 온 그는 한국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엄마’ 정체성을 대중에게 드러내곤 했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국내 최정상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주목받았던 한국의 발레리나들이 떠올랐다. 그중 아이를 갖기 위해 발레단에서 은퇴한 경우도 있고, 은퇴 후 육아에 매진하는 무용수도 있다. 이들을 보면 마치 발레리나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은퇴의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미혼이지만 젊은 발레리나를 선호하는 대중의 시선을 고민하던 발레리나도 있었다.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인 김주원은 서른일곱이던 2014년 한 방송에 출연해 “한국 사회는 나이가 있는 발레리나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며 마흔을 앞둔 발레리나로서의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외국은 어떨까. 도로테 질베르 외에도 2015년 BOP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각각 은퇴한 스타 발레리나 오렐리 뒤퐁과 줄리 켄트는 모두 마지막 무대에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한 것으로 유명한 ‘워킹맘 발레리나’였다. 특히 줄리 켄트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여러 작품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마이야 플리세츠카야는 볼쇼이 발레단에서 65세까지 무용수로 활동했다. 한국에선 왜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려울까. 한 무용 평론가는 “발레는 무용수가 미세한 근육까지 관리해야 해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은퇴 선고로 여겨진 부분이 있다”며 “특히 발레리나의 이미지 중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국내 관객의 기대치가 높다 보니 20대 발레리나 위주로 활약했다”고 분석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국내에서도 소수의 ‘워킹맘 발레리나’가 등장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가 2019년 딸을 출산하고 100일 만에 복귀한 것.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발레리나들은 결혼과 출산을 했던 사례가 거의 없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김리회의 복귀는 국립발레단 내 또 다른 워킹맘 무용수를 낳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솔리스트 한나래 역시 지난해 출산 후 발레단에 복귀했다. 은퇴의 잣대로 나이와 출산이 아닌 기량이 우선시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적어도 10년 뒤엔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 엄마는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숲에도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두더지는 땅파기 연습에만 몰두하던 따분한 일상을 뒤로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리고 잠시 머문 나무 그늘 아래서 처음 만난 거북이와 금세 친구가 된다. “거북이는 바다에 사는데…. 길을 잃어버렸나 봐. 거북아! 나랑 같이 바다에 갈래?” 붙임성 좋은 두더지는 바다로 향하는 내내 조잘거린다. 반면 거북이는 말이 없다. 밤이 되자 숲은 어두워졌고, 두더지와 거북이는 들짐승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파며 길을 만든다. 바다로 가는 도중 뜻하지 않게 워터파크, 야외 결혼식장도 가게 된다. 좌충우돌 여정이지만, 매사 즐겁다. 드디어 도착한 바다. 두더지는 거북이와 이제야 좀 친해졌는데 곧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슬퍼진다. 그때 드디어 입을 연 거북이의 한마디…. 예상치 못한 깜찍한 반전에 웃음이 터진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서툴지만 진한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따뜻한 문체로 그렸다. 쨍한 색감의 그림은 여름빛을 머금은 듯 싱그럽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비 내리는 일요일, 할아버지 집을 찾은 루이와 리즈는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TV도 없는 데다 비가 와서 놀이터에서 놀 수도 없기 때문이다. 두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내 비밀 통로를 찾아보렴. 두고 봐라. 아주 신기할 테니.” 둘은 집 곳곳에 숨겨진 통로를 찾기 위해 안방과 화장실, 지하실, 욕실 등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다가 증조할머니의 보석과 에밀 아저씨의 오래된 그림 등을 발견한다. 둘은 마치 탐험가가 된 듯 비밀통로 찾기에 집중한다. 과연 아이들은 진짜 비밀 통로를 찾을 수 있을까? 한참 뒤 외출하고 돌아온 할머니가 알려준 ‘비밀통로’의 존재는 반전 그 자체다. 2D 애니메이션 같은 생생한 그림은 주인공들과 함께 탐험에 나서는 느낌을 준다. 벽돌 통로를 표현한 그림책 표지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너머엔 마치 구멍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루이와 리즈가 있다. 종이책의 물성을 적극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배우 오영수 씨(78)가 ‘한국 공연관광 홍보대사’로 25일 위촉됐다. 안무가 모니카(신정우·36) 씨는 공연 관광 축제 ‘2022 웰컴 대학로’의 홍보대사가 됐다. 오 씨는 1967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입단해 55년간 대학로를 중심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로 유명해진 그는 올해 초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tvN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모니카 씨는 댄스팀 ‘프라우드먼’을 이끌고 있다. ‘2022 웰컴 대학로’는 9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평화로운 바다에 험버트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등장한다. 시종일관 허풍과 거짓말로 바닷속 친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험버트. “이건, 아주 중요한 소식이니깐, 얼른 친구들에게 알려야 해”라는 말로 친구들에게 접근한 험버트는 바위 너머에 물고기 친구들을 위협하는 못된 물고기 떼가 있다는 등 거짓말을 일삼는다. 무지개 물고기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은 험버트에게 속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가 허풍을 떨기 시작하면 모두들 웃어대는 식이다. “험버트는 그냥 우스운 이야기꾼일 뿐이야. 그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결국 외톨이가 된 험버트는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은 결국 그를 돕기로 맘먹고, 험버트의 재주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6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3000만 부 이상 판매된 ‘무지개 물고기’ 출간 30주년을 기념한 신작이다. 한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험버트를 변화시킨 물고기 친구들의 선함이 마음 깊이 다가온다. 다양한 색과 반짝이는 은박을 곳곳에 활용한 그림도 인상적이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74년 만에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가 미술관으로 거듭난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 609점을 비롯해 ‘이건희 컬렉션’ 등 국내외 유명 작품을 유치해 상설 및 기획 전시를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 5월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된 후 구체적인 활용방안이 처음 나왔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활용방안을 포함해 5대 핵심 과제를 밝혔다. 청와대 본관·관저·영빈관·춘추관은 ‘프리미엄 근·현대미술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본관은 1층의 로비를 포함해 세종실(335m²), 충무실(355m²), 인왕실(216m²)을 미술품 상설 전시장으로 운영한다. 단, 본관 2층의 집무실과 회의실 등은 원형을 유지한다. 관저는 본채 거실과 별채 식당, 춘추관은 2층 기자회견장(450m²)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다. 특히 춘추관 2층 전시공간은 민간에 대관할 예정이다. 주요 외빈을 위한 행사장으로 이용된 영빈관(496m²)은 10m 높이의 내부 홀 층고를 활용해 특별 기획전시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박 장관은 “영빈관에서는 609점의 청와대 소장품으로 구성한 기획전을 비롯해 ‘이건희 컬렉션’ 등 국내외 최고 작품을 유치해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올가을 ‘청와대 컬렉션 특별전’이 개최된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 609점 가운데 김기창 장우성 허백련 서세옥 등 한국화 거장 24인의 작품 30여 점을 추려 첫 공개전시를 연다. 박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기증받은 당대 최고의 한국화 작품이 나올 것”이라며 “오랜 세월 소수의 권력자만 즐겼던 고품격 작품을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서는 다음 달 장애인 미술 특별전이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집무실과 사저에 작품을 걸어 유명해진 발달 장애화가 김현우 씨를 비롯해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된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 씨의 작품 등 회화 50여 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녹지원 등 청와대 야외공간은 조각공원, 수목원으로 재단장한다. 청와대 내 수령 740년이 넘는 최고령 주목을 비롯해 180여 종 5만여 그루의 나무를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본관 앞 대정원은 종합 공연예술 무대로 활용한다. 본관과 관저, 1993년 철거된 구 본관 터를 중심으로 대통령 역사문화공간도 조성한다. 이를 위해 역대 대통령 유가족과 대통령학 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목표가 없어지잖아요. 근데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에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74세의 나이로 한국 배우 사상 첫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 그의 오랜 지인이자 미국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타이밍 디렉터로 일하는 김정자 씨(68)가 tvN ‘뜻밖의 여정’에 출연해 한 말이다. 김 씨 역시 2018년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배우 윤여정이 열어준 ‘가능성’에 희망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배우 오영수는 78세에 한국인 사상 첫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작고한 ‘최고령 MC’ 송해는 은퇴 나이로 언급되는 61세에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이는 윤여정 오영수 송해 외에도 2011년 작고한 작가 박완서가 대표적이다. 나이 마흔에 자식을 다섯이나 둔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던 그는 19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등단했다. 이후 여든까지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백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인물들이다. 유명한 사람들이라 노년에 빛을 본 것 아니냐고 단정하기엔 이들이 달려온 과정 군데군데 눈여겨볼 부분이 상당하다. 윤여정은 신념이 확고하다. 일제강점기 고향을 떠난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 역을 맡은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영어로 써내려간 이면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라 잘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한 걸그룹의 멤버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긴또깡?”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오버랩되며 한국 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고 인터뷰에 임하는 윤여정의 태도가 남달라 보였다. 그런 신념과 변치 않는 노력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게 아닐까. ‘죽기 전까지 마이크를 잡고 싶다’던 송해는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단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는 프로였다. 녹화 30분 전엔 무대에 올라 묵상하고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리허설을 진행했다. 후배 이상벽과의 생전 인터뷰에선 “각 동네만의 정서를 읽어내야 하기에 준비를 꼭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34년간 사회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그의 이름값이 아닌 ‘노력’ 덕분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말년까지 창작욕을 불태웠다. 생전 인터뷰에서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어요. 돈 욕심은 사라졌는데 아직 남아있는 욕심이 있다면 ‘이런 거 하나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들의 행보를 되짚어 보며 ‘사회적 활동의 종착점이라 여긴 만 60세는 어쩌면 예쁘게 피운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시작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윤여정 송해 오영수 박완서가 앞서 보여줬듯 말이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숲속 마을에 줄넘기 대회가 열렸다. 돼지가 토끼에게 물었다. “넌 왜 이 대회에 참가 안 하니?” 토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줄넘기는 나한테 너무 쉬워서 시시해”라고 답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꽃 우승 트로피를 본 순간 마음이 확 달라졌다. “내년엔 꼭 줄넘기 대회에 나갈 거야.” 토끼는 대회에서 사용할 줄넘기를 찾고자 호숫가, 은사시나무숲 등 마을의 다양한 곳을 누빈다. 그 과정에서 질기고 얇은 줄을 한 땀 한 땀 수놓는 거미 할머니와 뱀 허물을 추천한 여왕개미와 일개미 등을 만난다. 동물들이 추천한 도구로 줄넘기에 도전하지만, 토끼는 생각보다 쉽게 줄에 걸려 넘어진다. 토끼는 줄넘기 장비 탓만 하며 불평한다. 그러던 중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어느 청개구리를 만난 뒤 토끼에게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성취와 노력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발랄하게 그려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다소 자만하던 토끼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읽는 맛을 더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토요일 아침. 엄마는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외출한다. 아이는 아빠와 놀이를 할 생각에 신이 났지만 아빠는 소파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그때 뉴스를 검색해 보던 아빠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는다. 결국 아이는 집 밖으로 나와 놀다가 길가에서 하얀 민들레 씨앗을 만난다. 아빠처럼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더니 하얀 씨앗이 여기저기로 날아간다. 이번엔 나무를 향해 “후우∼” 하고 바람을 부니 나뭇잎이 ‘휘잉∼’ 소리를 내며 흩날린다. 아이는 하늘 위 구름을 바라보며 “후우∼” 힘껏 숨을 내쉰다. 아이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간다. 도중에 바람괴물을 만났지만 아이는 당황하지 않고 힘차게 “후우후우∼” 하고 숨을 뱉었다. 바람괴물을 이기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아빠에게 말한다. “아빠의 걱정도 후우∼ 날려줄게요.” 걱정이 단박에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가족 간의 소통과 교감을 사랑스럽게 그렸다. 가정에서 겪어봤을 법한 상황에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는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폐로 숨을 쉬는 포유류 고래. 고래들이 바다에서 걸어 나왔을 때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생선을 잔뜩 사가는 고래를 보며 생선가게 주인도 기뻐했다. 하지만 자전거 대여점의 직원은 고래가 자전거를 탈 때마다 바퀴에 공기를 채우고 또 채워야 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고래가 내놓는 쓰레기에 지친 사람들도 하나둘 늘었다. 고래들이 지나다닌 도로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고래는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고래와 함께 살 수 없다.” 고래를 탓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그때 ‘프리다’라는 아이가 고래에게 물었다. “고래야, 왜 바다를 떠나 땅에서 살기로 한 거야?” 고래가 답했다. “바다가 온통 쓰레기로 가득 찼거든. 쓰레기만 없다면 우린 바다로 돌아갈 거야.” 사람들은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위해 바다 쓰레기를 치우고 또 치웠다. 결국 고래는 바다로 돌아갔다.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정갈한 그림도 눈길을 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수지의 할머니는 시골 언덕 위 빨간 지붕 집에 산다. 할머니 집엔 강아지 바둑이가 살고, 부엌 수납장에는 수지를 위한 사탕도 놓여 있다. 할머니는 텃밭에서 기른 채소와 시장에서 사온 생선으로 수지에게 맛난 저녁을 만들어주곤 했다. 수지는 자신의 그림을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스케치북에 여러 그림을 그리던 중, “수지야. 수지야”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마당엔 할머니의 물건이 산처럼 쌓여 있다. “수지야…. 이제 우리 할머니 보내드리자….” 할머니는 이제 세상에 없다. 수지의 추억 속엔 언제나 방긋 웃어주는 할머니지만, 엄마 아빠는 이제 할머니를 보내드려야 한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신발, 옷, 할머니가 텃밭에서 기른 채소, 그리고 수지가 그린 할머니 그림까지. 할머니의 물건들이 연기가 돼 하늘 높이 올라간다. 할머니를 향한 수지의 순수한 사랑과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아픈 반전이 이어진다. 따뜻한 색감의 그림으로 가족의 사랑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뮤지컬 시장이 시끄럽다.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공연에서 초연부터 엘리자벳의 흥행을 이끈 배우 옥주현과 그의 제자인 이지혜가 주인공 엘리자벳에 더블 캐스팅된 소식이 알려졌다. 이후 뮤지컬 배우 김호영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과 옥장판, 공연장 좌석배치도 사진을 올렸다. 주어는 없었지만, 뮤지컬 팬들은 “김호영이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캐스팅 발표 후 옥주현을 저격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관련 기사도 쏟아졌다. ‘엘리자벳’ 공연 제작사인 EMK가 나서 “강도 높은 단계별 오디션을 거쳐 원작사의 최종 승인까지 받아 뽑힌 배우들”이라고 해명했지만 ‘친분 캐스팅’ 논란은 커져 갔다. 결국 옥주현은 20일 경찰에 김호영과 악플러 2명에 대해 명예훼손 고소장을 제출했다. 친분 캐스팅에 대한 사실 여부를 떠나, 캐스팅 권한은 오롯이 민간 제작사인 EMK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민간 공연 제작사인 EMK가 자사 공연 사업을 위해 어떤 이유로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든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불거진 배경에는 뮤지컬 시장에 10여 년간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티켓 파워’ 스타 마케팅 시스템과 제작사들이 그간 보여준 행태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수년 전 한 대형 뮤지컬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은 두 배우가 포스터에 누구 이름을 먼저 넣느냐를 놓고 기 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결국 제작사는 두 배우 사이에서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한 명이 하차하며 사안이 마무리됐다. 하차한 배우의 공연을 기다렸던 팬들은 황당하단 반응을 쏟아냈다. 대형 뮤지컬 작품을 선보인 또 다른 제작사는 취재진에게 공개하는 프레스콜 행사 몇 시간 전, 주연 배우들의 불참을 급하게 알린 경우도 있었다. 당시 제작사 및 매니지먼트사는 “주연 배우 둘이 서로 탐내는 넘버(곡)가 있었는데, 쇼케이스와 프레스콜 때 서로 번갈아 부르기로 약속한 상태에서 배우들 간 갈등이 불거져 한 배우가 컨디션 등을 이유로 프레스콜 당일 참석 불가 입장을 밝혀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제작사는 중간에서 눈치만 보는 황당한 상황이었다. 옥주현-김호영 사태가 고소전으로까지 이어지자 1세대 뮤지컬 배우 최정원 박칼린 남경주가 직접 나서 22일 업계 내 불공정을 자정하자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중 눈길을 끄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배우는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 “스태프는 배우들의 소리를 듣되 몇몇 배우의 편의를 위해 작품이 흘러가지 않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지금의 이 사태는 이러한 정도(正道)가 깨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방관해 온 선배들의 책임을 통감한다.” 1세대 뮤지컬 배우들의 호소문엔 이번 사태를 초래한 갈등을 풀어낼 답이 명확히 명시돼 있다. 정도. 불필요한 오해와 논란을 낳지 않을 근본적 해답이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네 식구가 기차를 타고 바다에 가는 날. 기차가 출발하자 창밖 풍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 언제 내려?” 맞은편에 앉은 동생이 몇 번이나 묻는다. “아직 멀었을걸? 한참 가야 한대.” 잠든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소녀가 답했다. “언니, (기차가) 빨리 가면 좋겠어.” 소녀의 마음도 동생과 같다. 그러다 두 자매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흔들리는 통로를 걷기 시작한다. 갑자기 창밖이 깜깜해졌고, 동생은 겁에 질려 소녀의 품에 안겼다. “기차가 터널을 지나서 그래. 산을 뻥 뚫어서 만든 터널이거든. 지금 우리는 숲을 달리고 있단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알려준 덕분에 둘은 긴장을 풀고 재미난 상상놀이를 시작한다. “기차 안이 숲이라면?” 동생의 한마디에 기차 안은 다양한 동식물로 가득해진다. “기차 안이 도서관이면 어때?” 언니의 이야기에 둘은 도서관으로 변신한 기차를 상상한다. 다채로운 상상으로 가득한 기차 여행은 두 소녀를 미소 짓게 한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그림은 흥겨움을 선사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활달한 소녀 도나. 앞집에 사는 소녀 루카스의 성격은 정반대다. 루카스가 처음 도나의 앞집으로 이사 온 날, 도나는 루카스에게 “안녕”이라고 스무 번이나 인사했지만 루카스는 도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모든 게 정반대인 도나와 루카스. 도나는 비를 좋아하지만 루카스는 비를 싫어하고, 도나는 공놀이를 좋아하지만 루카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어느 날 루카스가 자기네 집 마당과 도나의 집 마당 사이에 종이상자로 벽을 쌓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도나는 벽 너머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루카스를 보게 된다. 그림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도나. 사다리에 걸린 종이 벽이 무너지는 것을 계기로 둘은 단짝 친구가 된다. 서로 다른 아이들이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좋은 관계를 맺는 과정을 보여준다. 색색의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은 앙증맞고 유쾌하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