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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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5-02-14~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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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 K루트, ‘미래의 땅’ 개척 첫걸음”[더 퓨처스]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을 흔히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새 길을 내는 사람이 있다. 극지연구소 미답지연구단 전성준 선임기술원(39). 2017년부터 대한민국이 수행 중인 K루트(코리안루트·남극 내륙 연구를 위한 육상루트) 탐사에 매년 참여하고 지난해 10월∼올해 4월에는 K루트 탐사대의 역대 최연소 대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이 탐사대가 총 길이 1740km의 K루트를 개척하면서 한국은 남극 내륙 진출로를 확보한 세계 7번째 나라가 됐다. 남극은 1819년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젊은 대륙이다. 원주민도, 주인도 없는 무한한 미래와 가능성의 미개척 땅이다. K루트 탐사대는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빙원 위에 길을 낸다. 인류의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는 가운데 2060년부터는 남극의 해빙 속도가 북극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남극은 기후변화의 위기에 맞설 세상의 끝이다. 20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K루트를 내는 이유는…. “남극의 오래된 빙하는 기후 정보, 운석은 인류와 지구의 기원을 담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가 2000m인 내륙의 돔C 지역은 100만 년 전 빙하가 존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각국의 과학계가 주목한다. 3000m급 심부빙하 시추, 빙하에서 과거 온실가스 농도를 복원할 수 있는 블루 아이스 연구, 천문·우주 관측 등 내륙 기반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다.” 탐사대는 남극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손과 발’이다. 탐사대가 운석과 빙하를 남극에서 가져오면 극지연구소와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진이 구성 물질과 연대 등을 분석한다. 남극에는 30여 개국이 운영하는 80여 개 과학기지가 있다. 한국은 세종과학기지(1988년)와 장보고과학기지(2014년)가 있다. 전 선임기술원이 이끄는 탐사대는 지난해 11월 장보고과학기지를 출발해 37일 만에 돔C 지역의 콩코르디아 기지에 도착했다. ―남극에 처음 갔을 때 느낌은…. “공기가 깨끗해 난생처음 탄산수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모든 지형이 또렷하게 보였다.” ―얼음 낭떠러지가 위험해 보이는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아리랑 5호의 인공위성 사진을 받아 탐사에 활용하지만 숨겨진 크레바스(crevasse·빙하가 깨져 생기는 틈)가 많다. 크레바스를 만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에 선 기분이다. 설상차를 몰다가 크레바스에 빠지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올해 탐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 탐사대장으로서 힘들었다. 그동안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3월 기온은 영하 10도 아래였는데 올해는 영상 8.8도까지 올랐다. 기지에서 3월에 영상 온도가 확인된 건 처음이었다. 장보고기지로부터 100km 구간에 특히 크레바스가 많다. 탐사대의 안전팀은 ‘빙하가 녹아 위험하니 차량 등 장비를 장보고기지 100km 전에 남겨두고 사람만 비행기로 돌아가자’고 했다. 중장비팀은 ‘어떻게 장비를 빙원 위에 두고 오느냐’고 반대했고.” ―극지의 MZ세대 대장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나. “최종 결정은 현장 지휘관이 내릴 수밖에 없다. 며칠간 잠 못 이루며 고민하다가 대원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목표 지점이었던 돔C가 아니라 우리의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이라고, 장비는 고장 날 수 있어도 사람은 다치면 안 된다고. ‘형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대원들과 개별 면담도 진행해 이견을 조정할 수 있었다.” ―남극에서의 카라반 생활은 우주선 생활과 비슷할 것 같다. “그렇다. 한 모듈에 2층 침대를 두고 4명씩 잔다. 눈 녹인 물을 발전시켜 샤워를 하고 배변은 태운다. 식사는 즉석식품을 끓인 물에 데워 먹는다. 백야 때 암막 커튼을 치고 자지만 불면증이 올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든 일인데 보람을 느끼나. “‘국뽕’(맹목적인 국가 찬양)이나 ‘애국 페이’(애국심으로 노동력 착취)는 결코 아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남극에서는 우리 인류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구에 어떤 역사와 미래를 남겨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남극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대상이다.”인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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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에 길을 내며 지구의 미래를 생각한다”[더 퓨처스]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을 흔히 새로운 길을 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새 길을 내는 사람이 있다. 극지연구소 미답지연구단 전성준 선임기술원(39). 2017년부터 대한민국이 수행 중인 K루트(코리안루트·남극 내륙 연구를 위한 육상루트) 탐사에 매년 참여하고 지난해 10월~올해 4월에는 K루트 탐사대의 역대 최연소 대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12월 이 탐사대가 총 길이 1740km의 K루트를 개척하면서 한국은 남극 내륙 진출로를 확보한 세계 7번째 나라가 됐다. 남극은 1819년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젊은 대륙이다. 원주민도, 주인도 없는 무한한 미래와 가능성의 미개척 땅이다. K루트 탐사대는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빙원 위에 길을 낸다. 인류의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는 가운데 2060년부터는 남극의 해빙 속도가 북극을 앞설 전망이다. 남극은 기후변화의 위기에 맞설 세상의 끝이다. 20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극지연구소에서 그를 만났다. ―K루트를 내는 이유는?“남극의 오래된 빙하는 기후정보, 운석은 인류와 지구의 기원을 담고 있다. 평균 해발고도 가 2000m인 내륙의 돔C 지역은 100만 년 전의 빙하가 존재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각국의 과학계가 주목한다. 3000m급 심부빙하 시추, 빙하에서 과거 온실가스 농도를 복원할 수 있는 블루 아이스 연구, 천문·우주 관측 등 내륙 기반의 연구를 하기 위해서다.” 남극은 가장 건조하면서 추운 지역이라 운석이 오래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탐사대가 운석을 가져오면 극지연구소와 한국천문연구원의 연구진이 구성물질 등을 분석한다. 남극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손과 발’이 K루트 탐사대다. 남극에는 30여 개국이 운영하는 80여 개의 과학기지가 있다. 한국은 세종과학기지(1988년)와 장보고과학기지(2014년)가 있다. 전 선임기술원이 이끄는 탐사대는 지난해 11월 장보고과학기지를 출발해 37일 만에 돔C 지역의 콩코르디아 기지에 도착했다. ―남극에 처음 갔을 때 느낌은?“공기가 깨끗해 난생 처음 탄산수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모든 지형이 또렷하게 보였다.” ―빙원 사이사이의 얼음 낭떠러지가 위험해 보이는데…“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부터 아리랑 5호의 인공위성 사진을 받아 탐사에 활용하지만 숨겨진 크레바스(crevasse·빙하가 깨어져 생기는 틈)가 많다. 크레바스를 만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에 선 기분이다. 설상차를 몰다가 크레바스에 빠지기도 한다.” ―기후변화로 남극의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는데….“그것 때문에 올해 탐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 탐사대장으로서 힘들었다. 그동안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3월 기온은 영하 10도 아래였는데 올해는 영상 8.8도까지 올랐다. 기지에서 3월에 영상 온도가 확인된 건 처음이었다. 장보고기지로부터 100km 구간에 특히 크레바스가 많다. 탐사대의 안전팀은 ‘빙하가 녹아 위험하니 차량 등 장비를 장보고기지 100km 전에 남겨두고 사람만 비행기로 돌아가자’고 했다. 중장비팀은 ‘어떻게 장비를 빙원 위에 두고 오느냐’고 반대했고.” ―극지의 MZ세대 대장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나?“최종 결정은 현장 지휘관이 내릴 수밖에 없다. 며칠간 잠 못 이루며 고민하다가 대원들에게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목표 지점이었던 돔C가 아니라 우리의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이라고, 장비는 고장 날 수 있어도 사람은 다치면 안 된다고. ‘형님’ ‘선생님’이라 부르며 대원들 개별 면담도 진행해 이견을 조정할 수 있었다.” ―남극에서의 카라반 생활은 우주선 생활과 비슷할 것 같다.“그렇다. 한 모듈에 2층 침대를 두고 4명씩 잔다. 눈 녹인 물을 발전시켜 샤워를 하고 배변은 태운다. 식사는 즉석식품을 끓인 물에 데워 먹는다. 백야 때 암막커튼을 치고 자지만 불면증이 올 때가 많다. 그럴 땐 남극 대륙을 바라보며 가족 생각을 한다.” ―그렇게 힘든 일인데 보람을 느끼나?“‘국뽕’(맹목적인 국가 찬양)이나 ‘애국 페이’(애국심으로 노동력 착취)는 결코 아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남극에서는 우리 인류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구에 어떤 역사와 미래를 남겨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남극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하는 대상이다.”인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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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이들에 문화예술 알리자” 10억 투자받은 스타트업

    2018년 ‘널 위한 문화예술’이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매체가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 동영상을 올렸다. 백남준 아티스트의 미디어아트 ‘다다익선’의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였다. 다다익선은 TV 수상기 1003대로 만든 높이 18.5m의 비디오 타워로, 노후에 따른 화재 위험 등의 문제로 상영이 중단되자 복원 방향을 두고 논쟁이 일었다. 이 영상은 국립현대미술관 보존팀장,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백남준 작가와 함께 다다익선을 설계했던 김원 건축가 등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사회·문화적 이슈를 알기 쉽게 영상으로 보여줘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게 입소문을 탔다. 국내 문화예술 스타트업 ‘널 위한 문화예술’은 말 그대로 ‘널 위해’ 영상으로 설명해주는 젊고 친절한 매체다. 최근 10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면서 “젊은 세대의 다양한 콘텐츠 소비 욕구에 맞춘 새로운 매체의 시장성이 검증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널 위한 문화예술이 각종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300여 편의 누적 조회수는 3000만 회. 현재 구독자 수가 65만 명인 국내 시각예술 콘텐츠 플랫폼 1위다. 사실 스타트업의 투자유치 과정에서 프리 시리즈 A는 그야말로 시작 단계다. 업계에서는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업체 10곳 중 한 곳만이 평균적으로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문화예술계와 스타트업 업계가 이번 투자에 관심을 갖는 건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시각예술 온라인 콘텐츠의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오대우 널 위한 문화예술 대표(30·사진)는 “국내 미술시장 환경이 젊은 분위기로 재편되는 흐름을 잘 타고 싶다”고 했다. 뉴미디어 전문가인 김경달 네오터치포인트 대표는 “널 위한 문화예술은 학교에서 숙제로 활용하기에도 좋고, 기업이 메세나 활동으로 젊은층에게 다가가기에도 좋으니 소비자가 환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4년 전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메디아티’를 무턱대고 찾아가 창업 초기자금 투자를 요청했던 오 대표가 받았던 질문은 “그래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느냐”였다. 당시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해 5개월간 경영수업(인큐베이팅)을 받고 4000만 원의 시드머니를 투자받아 창업했다. 오 대표는 그 질문의 답을 ‘신뢰 자본을 쌓는 것’에서 찾았다. 유익한 아트 콘텐츠로 새로운 소비자를 온라인에 모은 후 오프라인 전시회 티켓을 팔며 매진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널 위한 문화예술은 2030뿐 아니라 40대 이상 직장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브랜드 충성도가 막강하다”, “예술 수요는 점차 커지는데 다른 경쟁 플레이어가 없는 틈새시장을 장악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무엇보다 ‘그들만의 리그’에 있던 미술을 젊은 세대의 열린 영역으로 끄집어냈다는 분석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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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 위한 문화예술’이 10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기까지[스테파니]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스타트업계의 현황과 이슈에 대해 인사이트를 담아 소개하겠습니다. 문화예술 스타트업 ‘널 위한 문화예술’이 최근 10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번 투자에는 크립톤, KST-신한캐피탈이 참여했습니다.이번 투자 유치 소식은 문화예술계에 반갑고도 신선한 뉴스였습니다. 서강대에서 심리학과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한 오대우 대표가 2018년 친구, 후배와 함께 차린 스타트업이 이렇게 성장할 줄은 당시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현재 구독자 65만 명인 널 위한 문화예술은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에 올린 300여 편의 영상이 누적 조회 수 3000만 회를 기록한 국내 시각예술 콘텐츠 플랫폼 1위입니다. 오 대표는 1992년에 태어난, 이제 서른 살인 MZ세대입니다. 대학교 4학년이던 2017년, 스브스뉴스에서 인턴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방송사 시사교양 PD가 되고 싶었는데 정작 당시 방송사들은 인터넷을 잡으려고 안달이더라고요. 주변 친구들도 집에 TV를 두지 않고 보고 싶은 콘텐츠를 온라인과 모바일로 봤어요. 굳이 방송사에 입사할 필요가 없겠다, 내 콘텐츠와 내 미디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최근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에 있는 널 위한 문화예술 사무실에서 오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이 스타트업을 어떻게 키워낸 걸까요.“나 같은 사람이 재밌어 하는 문화예술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어떤 계기로 문화예술 미디어 플랫폼을 생각하게 됐나.“서강대에 다닐 때 학교 메리홀 대극장의 무대를 만들고 음향 효과를 내는 기술 조교생활을 했다. 그곳에 각종 문화예술 잡지가 비치돼 있었는데 칼럼과 정보가 지나치게 정제된 언어로 쓰여 있어 내겐 재미가 없었다. 제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지,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을 타깃으로 하는 문화예술 콘텐츠와 미디어’를 만들고 싶었다.”-창업하려면 초기 자금이 필요한데….“당시 미디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메디아티’에 콜드 메일(cold mail·모르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일)을 보냈다. 저희는 이런 팀인데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페이스북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미투 이슈, 젠트리피케이션 대안 등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있다, 임팩트를 낼 수 있는 팀이니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페이스북에 올린 초기 영상들의 반응이 좋았나보다.“문화예술 공연장이 부족하다는 영상을 만들어 올렸더니 ‘좋아요’가 1000개 찍혔다. 그걸 보고 문화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니즈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콘텐츠 제작 감각에 자부심을 갖는 계기도 됐다.” -영상 제작은 어디에서 배웠나.“스브스뉴스에서 배웠다. 처음엔 카드뉴스를 만들었는데 제 큰 몸집을 보고 ‘카메라 잘 들게 생겼으니 영상을 배우라’고 해서 익히게 됐다.” -메디아티에서 바로 투자를 받았나.“이 미디어로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사업체를 꾸릴 것인가 질문을 받았는데 미처 생각 못했던 질문이었다. 콘텐츠를 잘 만들기만 하면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당시엔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시리즈’ 등의 스타트업 업계 용어도 몰랐다. 그렇게 탈탈 멘탈 털려 집에 왔는데 바로 다음날 메디아티에서 연락이 왔다. 인큐베이팅(어엿한 회사로 키워주는 일)을 먼저 하자고. 그날로부터 5, 6개월 메디아티가 경영 공부를 시켜줬다.”-경영 공부는 어떻게. “1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비즈니스 구조를 세워가는 과정을 말씀드리면 피드백을 주고 그에 맞는 레퍼런스를 알려주셨다. 배우러 갔다기보다는 피드백을 받으러 갔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런 걸 공부해봐라, 이런 식은 어떠냐. 진짜 유치원처럼 차근차근 배운 후 메디아티로부터 4000만 원을 투자 받아 창업했다.”창업 넉 달 만에 시드머니 거의 다 쓰고 조직 재설계오 대표는 메디아티로부터 투자받은 4000만 원을 4개월 만에 거의 다 썼다고 합니다. 신규 인원 뽑고 제작비와 홍보비를 쓰다보니 창업 5개월째에 딱 한 달치 월급만 남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때에도 소셜미디어에서는 계속 저희가 20대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었어요. 비즈니스 매출은 0원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섭취할만한’ 콘텐츠는 잘 만들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콘텐츠는 문제가 없는데 여전히 돈 버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어요.”-그 다음에 한 일은.“한 문화예술계 인플루언서에게 찾아가 말했다. ‘우리 팀이 한 달 치 월급밖에 안 남았지만 꼭 모시고 싶다. 한 달 이후 어떻게 될 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우린 분명히 문화예술계에서 잘 될 것이다’라고 했다.”-그렇게 얘기하니 합류하던가.“당시 20대 중심으로 입소문이 많이 났다. 저희 매체가 재밌어 보이니까 참여를 결심하더라. 신기한 것은 그렇게 새 인물들이 들어오자마자 브랜디드 콘텐츠(창작자가 후원을 받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언급하거나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내용을 담은 콘텐츠)를 진행하게 됐고 월간 손익분기점도 넘겼다.” ‘티핑 포인트’가 된 ‘백남준 다다익선’ 영상 -어떻게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게 됐나.“소셜미디어를 통해 매체력이 커지면서 좀 더 고도화된 기획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 아티스트의 ‘다다익선’의 가동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다익선’은 TV 수상기 1003대로 만든 높이 18.5m의 비디오 타워인데 노후에 따른 화재 위험 등의 문제로 상영이 중단됐다. 그 후 복원 방향을 두고 논쟁이 있어 국립현대미술관 보존팀장,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백남준 작가와 다다익선을 함께 설계했던 김원 건축가 등을 찾아가 인터뷰했다. 영상을 만들어 내보냈더니 페이스북에서 5만5000건의 조회수가 나왔다.”-영상은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나.“3주 정도 걸렸다. 처음에 백남준 자서전에 나오는 분들에게 연락했는데 거의 다 이미 고인이 되셨더라. 거의 마지막에 김원 건축가님이 백남준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던 걸 알게 됐는데 알고 보니 저희 사무실 근처에서 일하고 계셨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던 백남준 선생님의 생전 생각을 전하는 김 건축가님의 인터뷰가 차별화된 콘텐츠가 됐다.” -결국 그 영상이 ‘티핑 포인트’(작은 변화들이 기간을 두고 쌓여 작은 변화가 하나만 더 일어나도 폭발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건가.“그렇다. 미술계 ‘고인물’들에겐 일상적인 뉴스일 수 있었지만 이 내용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흥미를 느낄 포인트가 많았다. 포맷이 중요한가, 콘텐츠가 중요한가. 어떻게 국가의 예술관을 보여줄 것인가 등 여러 질문과 답을 담기에 좋은 주제라 생각했다. 그 전까지는 문화예술 전반을 다뤘는데 이 영상이 터지면서 미술 분야에 집중하게 됐다.” “세 명 뽑으려고 공고 냈더니 420명 몰려”널 위한 문화예술은 동아일보와도 인연이 있습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 아티스트 다니엘 뷔렌을 초대해 작업한 동아미디어센터 미디어아트 ‘한국의 색-인 시튜 작업’(2019~2021년)을 널 위한 문화예술이 영상으로 소개한 것이죠. 당시 해외 유명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한 것은 널 위한 문화예술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저희에겐 큰 기회였다. 창업한 지 1년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사옥을 지나칠 때마다 좋은 기억이 난다.”-회사 경영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은 어땠나.“극장이나 공연장에 비해 미술관과 갤러리는 동선이 자유로운 측면이 있어 코로나에 대한 방어율이 있는 셈이었다. 해외여행도 못 가는데 미술관에 가자, 는 분위기도 있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커진 것도 큰 변화였다.”-현재 널 위한 문화예술 구성은.“7명이 일하고 있다. 요즘엔 콘텐츠 기획만 하고 제작은 외부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만든다. 최근 투자 유치를 받고 세 명을 새로 뽑으려고 공고를 냈더니 420명이 지원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절실히 느낀다.”-널 위한 문화예술은 유튜브에서 ‘널 위한 문화예술’과 ‘예술의 이유’ 두 가지 계정을 따로 운영한다. 예술의 이유는 ‘모네는 왜 수련을 그렸을까’ ‘폴 고갱이 왜 타히티로 떠났을까’ 같은 주제를 다룬다. 이렇게 따로 운영하는 이유는.“‘예술의 이유’의 숏폼 영상이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유튜브 쇼츠에서 1주일 만에 400만 건이 넘는 조회를 올리더니 인스타 릴스, 틱톡, 카카오 오늘의 숏 등 여러 숏폼 플랫폼에서도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덕분에 각 채널 유입 숫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 관점, 사용자 관점에서 미술의 세계를 알리고 싶다.”-연계해 전시 티켓도 팔던데.“저희 콘텐츠를 보러 오는 사용자는 결국 각종 전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창작자가 제아무리 작품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없으면 괴리가 생긴다. 예전에는 갤러리들이 이 정보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요즘에는 개인 인스타그램만도 못한 매체력을 갖는 경우도 있다. 컬렉터들의 정보 교환 자체가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 격차를 줄여나가면 우리는 새로운 채널이 될 수 있다는 가설로 접근했다. 티켓을 한정 수량 판매하면 수익을 온전히 갖게 된다.” 널 위한 문화예술의 성공 요인, 결국엔 콘텐츠의 힘-앞으로 계획하는 비즈니스 모델은.“미디어 플랫폼은 신뢰자본을 쌓는 게 우선이다. 사람들은 어떤 미디어가 믿을만한가, 진짜로 유익한가를 따지고 그에 대한 충분한 컨센서스가 이뤄졌을 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처음부터 저희 채널을 통해 전시 티켓을 팔았으면 지금과 같은 판매력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해외의 ‘아트시’나 ‘아트넷’처럼 컬렉터 또는 예비 컬렉터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 1차적으로 찾아오게 만들고 그들이 믿을 만한 작품을 소개해 판매로 연계시키려 한다.”-널 위한 문화예술은 어떻게 수익을 내게 되나.“수수료 비즈니스다. 다만 현재는 갤러리와 작가가 주로 반반씩 나눈다. 갤러리들이 작가 발굴과 관리, 작품 유지 관리까지 하기 때문이다. 저희는 작가 스튜디오에서 소비자로 직송 되는 시스템을 계획하기 때문에 그런 비용이 들지 않게 될 것이다.” 업계에서는 널 위한 문화예술의 성공요인으로 콘텐츠의 힘을 꼽습니다. 하나의 이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이용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끌어내는 콘텐츠의 힘이 통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용자들의 시청 지속시간 데이터를 분석해 섬네일, 제목의 적합성, 문장길이, 영상의 색감 등을 세밀하게 평가하는 것도 콘텐츠의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현대카드, 폭스바겐그룹코리아, 네이버문화재단 등 다른 기업 및 기관의 협업도 활발합니다.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고 플랫폼을 다양화하는 전략도 돋보입니다. 결국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예술에 접근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널 위한 문화예술의 도전과 도약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시각예술 콘텐츠가 독자적 분야로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것인지 문화예술계와 미디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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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SA는 인문학자-예술가 원해… 미래 상상엔 스토리텔링 중요” [더 퓨처스]

    《인공지능, 우주경제, 융합연구, 기술창업, 신소재…. 동아일보는 ‘더 퓨처스(The Futures)’를 통해 다음 세대를 위해 미래를 여는 인물과 현장을 소개한다.》‘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태양계 시스템 홍보대사.’ 폴 윤 미국 엘카미노 칼리지 수학과 교수(52)의 NASA ID카드에 쓰인 문구다. NASA의 홍보대사는 약 1000명. 2012년부터 이 역할을 맡고 있는 그를 5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교수 안식년을 맞아 지난달부터 올해 말까지 한국에 머무는 그의 스케줄러는 각종 강연 활동으로 빼곡 차 있었다. 정부 부처와 연구기관, 스타트업, 대학과 박물관….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격인 SAT와 GRE 수학문제 출제위원을 10년간 지내고 현재는 하버드대 입학사정관이기도 한 그는 ‘미래 인재’를 찾아내고 길러내는 전문가다. 한국 정부는 ‘신(新) 과학영재 발굴 육성 종합계획’에 대한 조언을 그에게 구하고 있다. ○ “NASA는 인문학자와 예술가를 원한다”―어떤 계기로 NASA 홍보대사가 됐나. “고등학생 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했던 부모님을 미국의 친척이 초청했다. 나는 ‘한국판 톰 소여’였다. 의정부 시냇가에서 물고기 잡고 썰매 만들며 놀았다. 어릴 땐 수학을 못했지만 나중에 흥미를 붙이니 수학과 교수가 됐다. 어느 날, 우주 탐사를 동경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무보수 자원봉사인 NASA 홍보대사에 지원했다.” ―NASA와 수학의 연관성은…. “수학은 우주 탐사의 ‘악보’다. 우주는 가장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악일 것이다.” ―NASA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인문학자, 심리학자, 예술가를 갈수록 원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정체가 규명되지 않은 암흑물질에 대해 철학자들은 합당한 논리를 따져볼 수 있다.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이 촬영한 데이터를 사진으로 만들 때에는 예술가의 ‘손길’이 필수적이다. 우주는 과학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스누피, 토이스토리, 마션… NASA의 스토리텔링―NASA는 우주복 입은 스누피 인형(사진)을 제작해 미국의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 계획의 우주선에 태워 보내려 한다. 왜 그렇게 하는 건가. “NASA의 홍보 전략은 대중과 소통하는 것, 특히 미래 세대와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2012년에는 우주인 우주복을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 버즈라이트이어의 우주복과 매우 유사하게 제작했다. 버즈라이트이어의 모델이 아폴로 11호의 조종사였던 버즈 올드린(92)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매년 5월 4일을 ‘스타워즈의 날’로 기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타워즈의 명대사 ‘포스가 함께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과 발음이 비슷한 5월 4일(May the Fourth)은 미래 세대의 꿈을 키운다.” ―SF 영화 ‘마션’의 원작자인 앤디 위어와 기념 촬영한 걸 봤다. NASA가 이 영화 제작에 관여했나. “NASA가 아낌없이 기술적 지원을 했다. 미래를 상상하는 데에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NASA는 화성 탐사로버의 명칭도 대국민 콘테스트로 정한다. 지난해 화성에 착륙한 ‘퍼시비어런스’는 중학생이 이름 붙인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화성에 가겠다는 불굴의 인내를 나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높게 평가했다.”○ “과일나무를 심었으면 열매 맺기를 기다려야”―우주경제는 어느 정도 실감나는 미래인가. “미국에서 강연할 때엔 늘 놀란다.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우주에서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느냐’다. 평범한 미국인들조차 우주에 가서 사는 걸 상정하고 있다.” ―NASA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는가. “앞으로 10년 동안 할 일을 정해 준비한다. 요즘에는 우주의 심해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고 있다. 우주 탐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와 협업해 온 문홍규 박사(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는 “윤 교수는 금쪽같은 안식년에 한국에 왔다. 다음 세대에게 더 밝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다. 선한 생각을 몸소 실천하는 그 모습은 늘 감동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윤 교수는 어떤 미래를 열고 싶은 걸까.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갇힌 교육 체계를 힘들어했다.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오랫동안 생각해 역사적 난제를 풀었다. 과일나무를 심었으면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급하게 다그쳐 미래 세대의 열정을 사그라뜨리면 안 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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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판 NASA’ 성공하려면 국가 최고 리더십 발휘돼야 [광화문에서/김선미]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모델로 한 우주항공청을 설립하겠다”고 한 뒤 어수선한 분위기다. 일단 경남 사천에 만들겠다고 국정과제에서 밝혔던 ‘항공우주청’이 우주항공청으로 명칭의 순서가 바뀌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다음 달 우주산업클러스터 사업지로 전남(발사체)과 경남(인공위성)을 최종 확정하려던 차에 대통령이 “대전 전남 경남의 3각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하니 해당 지역들은 술렁인다. 그런데 과학기술계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NASA를 모델로 하겠다고? NASA의 무엇을?” NASA는 유관기관들이 미 전역에 흩어져 있다. 미국의 유인 우주계획을 총괄하는 존슨 우주센터는 텍사스, 로켓을 발사하는 케네디 센터는 플로리다에 있다. 미 동부를 대표하는 고다드 우주비행센터는 메릴랜드, 서부를 대표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에 있다. 아마도 NASA의 이런 지역 분산 입지를 택하겠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신설 우주항공청은 과기부 산하 외청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정말로 NASA를 모델로 하겠다면 이 틀부터 바꿔야 한다. NASA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워싱턴에 본부가 있다. 정규직 1만7000여 명은 주로 전문직 공무원. NASA의 수장(首長)인 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급이고 예산은 백악관이 수립한다. 한국에도 국가우주위원회가 있지만 우주개발 정책을 심의·의결하는 비상설 회의체라 정책과 예산 결정 권한이 없다. “우주개발은 국력의 한 축이다. 과학, 산업, 국방, 외교가 섞여 정치적 결정이 필요하다. 우주항공청이 대통령 직속이 돼야 하는 이유다.”(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 발사(1992년) 때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에게 우주항공청에 대한 의견을 구해 봤다. 그도 최고 통치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은 하고 싶은 과학기술을 다 시도할 수 있는 나라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은 재원이나 인력 측면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없다. 그게 국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최고 통치자가 가장 먼저 우주개발의 비전을 밝히고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기술 자체가 목표여선 안 된다. 그 기술로 국익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식량과 에너지 자급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우주개발을 통해 생명자원의 주권을 회복하자고 할 수도 있다.” 워싱턴에 있는 NASA 본부의 이름은 ‘메리 W 잭슨 본부’다.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공학자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우리도 우주항공청 건물에 한국 과학기술인의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과학자 공무원들이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어 미 정부기관 중 가장 직업 만족도가 높은 NASA처럼 될 수 있을까.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가려내 밀어줄 수 있을까. 그런데 요즘 국내 전문가들은 의아해한다. “미래 대계를 짜는 ‘국가대표’ 우주항공청을 만들겠다면서 정부 측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어요. 누구 의견을 듣는지 모르겠어요.”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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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세대 글쓰기 돕는 방법? 질문 주고받는 ‘초거대 AI’서 길 찾아

    점이 모여 선이 된다는 것을, 작은 경험들이 축적돼 삶의 방향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이세영 뤼튼테크놀로지스 대표(26)를 통해 알게 됐다. 어려서부터 ‘학술 연구’에 몰입했던 이 대표는 고교 2학년이던 2013년 설립한 교내 학술동아리를 페이스북 등을 통해 100여 개 학교가 모인 연합동아리로 키웠다. 이 동아리가 2014년 시작한 학생 소논문 발표대회가 한국청소년학술대회(KSCY)다. 이제는 13개국에서 3000여 명이 참가하는 아시아 최대 청소년 콘퍼런스다. 이 대표가 연세대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해서도 계속 이어온 이 대회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될 상황에 처했다. 이 대표는 이 오프라인 대회를 온라인 글쓰기 강의로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Z세대의 글쓰기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 학부모, 심지어 학생 본인보다 학생을 더 잘 이해하는 존재가 글쓰기를 도울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을 파고들다가 초거대 인공지능(AI)에서 답을 찾았다.○ “초거대 AI로 교육 격차 해소하고 싶다”이 대표는 오프라인의 한계를 온라인으로 극복했지만 이내 사람의 한계에 부닥쳤다. 이 대표 등 5명이 한 명당 학생 20팀(3∼4명으로 구성)에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피드백에 힘이 부쳤기 때문이다. 이 무렵 세상에 등장한 게 ‘GPT-3’다. 일론 머스크가 인류에 우호적인 AI를 개발하기 위해 세운 비영리연구소인 오픈AI의 초거대 AI 언어모델 제품이다. 종래의 언어처리 인공신경망보다 100배 넘게 크기를 키운 이 AI는 ‘무서울 정도로 글을 잘 쓴다’는 평을 듣는다. 초창기에 일부 기관들에만 사용이 허용되자 이 대표는 오픈AI 측에 요청했다. “GPT-3를 활용해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양질의 교육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GPT-3는 영어 기반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4월 ‘뤼튼테크놀로지스’를 설립하고 네이버의 초거대 한국어 AI인 하이퍼클로바와 협업해 서비스를 개발했다. 그렇게 지난달 세상에 나와 학생들의 글쓰기 구조를 잡아주고 있는 서비스가 ‘뤼튼 트레이닝’이다.○ “글을 잘 쓰려면 질문을 잘해야”이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뤼튼 트레이닝’ 항목을 눌러봤다.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이라는 ‘오늘의 추천 글쓰기 주제’뿐 아니라 ‘정시 비중 확대’ ‘자율주행 자동차의 사고 책임’ 등이 글쓰기 주제로 예시돼 있었다. “텅 빈 종이 위에 뭘 써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 대표는 학생들이 주제를 정하고 나면 주장→이유→사례→결론의 순으로 항목을 채우도록 설계했다. AI가 추천하는 정책 자료나 신문 기사를 참고해 항목들을 채우면 어느덧 한 편의 짧은 글이 완성된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질문’이다. 이 대표는 AI를 학습시켜 ‘질문하는 AI’를 개발했다. ‘AI가 가져온 교육의 변화’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면 이 초거대 AI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AI 시대에는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생겨날까요?’ ‘인공지능이 교사를 대체할 수 있는지 적어보면 어떨까요?’…. 질문의 힘을 가르쳐준 건 그의 부모다. 이 대표가 어렸을 때부터 쏟아내는 각종 질문을 귀찮게 여기지 않고 일일이 답해주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에게 ‘여소야대’의 뜻을 여쭤봤어요. 그때부터 적어도 1시간은 묻고 답한 거죠.(웃음)” 그는 어휘력이 떨어지는 Z세대를 위한 ‘뤼튼 트레이닝’에 이어 18일에는 소상공인 대상의 ‘뤼튼 카피라이팅’을 선보인다. 마케팅 홍보문구 등 글쓰기가 필요하지만 이를 두려워하는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글쓰기를 돕는 서비스는 결국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들이 세상에 더 표현될 수 있도록 기술로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 #도전! K-스타트업: 국내 최대 규모 부처 합동 창업경진대회.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지난해 이 대회 최우수상을 수상. 스타트업 창업가 선배들과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추’. #삼성전자 C랩 아웃사이드: 삼성전자가 사내벤처 육성책을 2018년부터 외부로도 확대한 제도.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올해 4기로 선정돼 1억 원의 사업지원금, 1년간 사무실 무료 임대와 삼시세끼 무료 식사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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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땀 흘려 실적내는 우주 연구인력이 상실감 느껴서야”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는 고 최순달(1931~2014) KAIST 교수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는 1989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를 설립해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 2, 3호를 발사했다. 1987년 말 제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방송통신위성 보유가 공약으로 제정되고 같은 해 항공우주산업개발촉진법이 제정됐다. 1989년 2월 체신부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국내위성확보계획을 보고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체신부 장관(1982~1983년)을 지냈던 최 교수는 이 계획을 듣고 체신부를 방문해 이렇게 설득했다고 한다. “수천 억 원짜리 위성을 아무런 준비도 없이 발사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그 전에 인공위성 분야의 인력을 양성하고 초보적인 기술을 축적하기 위해 소형 과학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좋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가 설립되고, 인공위성을 직접 제작하는 영국 서리대로 연간 5명의 학생을 유학 보내게 됐다. 1989년 처음으로 선발된 유학생 5명 중 한 명이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55)이다. 박 전 의장이 전하는 당시 최 교수의 주문은 자못 비장하다.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너희 손으로 만들고, 너희가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개척자가 된다는 책임감을 항상 간직해라. 이준 열사가 네덜란드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알리려다 그 뜻이 꺾이자 자결했던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하기 바란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면 영국 도버해협에 빠져 돌아오지 마라.” 우리별 1호 발사 30주년을 사흘 앞둔 9일 박 전 의장을 만나러 찾아간 그의 사무실은 대덕 연구단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대전 유성구 엑스포타워에 있었다. 그는 우리별 3호 발사를 마친 1999년, 쎄트렉아이라는 국내 첫 인공위성 개발업체를 세워 경영하다가 2021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투자를 유치한 뒤 비상임 고문으로만 활동 중이다.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쳤던 KAIST 인공위성센터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작부터 회사에서 은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오래 전에 대표이사를 후배에게 물려줬지만 제가 최대주주였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참 어렵더라고요. 우물쭈물하던 중에 한화로부터 투자 제의가 왔고, 우주산업에 대한 한화의 비전을 확인해 받아들였습니다. 회사가 지속가능하려면 대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0년 전 위성기술을 배우러 유학을 떠날 때 ‘이런 척박한 현실을 후배들에게는 절대로 물려주지 말자’는 다짐은 지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궁금해진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던 KAIST 인공위성센터를 나와 왜 그는 쎄트렉아이를 따로 차려야했을까. “과학기술처와 항공우주연구소는 우리별 1, 2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양성된 인력을 항공우주연구소로 보내 다목적 실용위성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KAIST 인공위성센터에 요구했어요. 정부 요구에 응하지 않자 1993년 10월 과학기술처 국정감사 때 최 교수님이 불려 다녔어요. 정부 입장에서는 역량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겠지만 저희 연구소 입장에서는 사실상 센터를 없애라는 요구와 다름없었어요. 1999년 5월 저희가 우리별 3호를 발사할 때에는 정부의 아리랑 1호 위성 발사시점(그 해 12월)보다 늦추라고도 요구했어요. 정부가 연구비 지원까지 끊었기 때문에 따로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최 교수는 세상을 떴지만 우리별 1호를 만든 주역들은 지금 학계와 기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박 전 의장을 비롯해 김성헌 미 코넬대 의대 교수, 김형신 충남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장현석 에스아이디텍션 대표, 최경일 KT샛(SAT) 최고기술총괄 등 1989년 영국 유학을 떠났던 1기 5명은 유학 30주년을 맞은 2019년 영국 서리대로 여행을 떠났다. 이 때 찍은 사진을 박 전 의장이 보여줬다. 1989년 서리대 캠퍼스에서 최 교수와 찍었던 일렬 배치 그대로 2019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세상을 뜬 스승의 자리를 가운데 비어두고 사진을 찍은 제자들의 마음과 다짐이 전해졌다. 박 전 의장의 말을 빌리면 “당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들이 배워온 인공위성 기술이 지금 대한민국 우주기술의 초석이 됐다. 당시 거의 모두가 불가능하게 여겼던 한국의 인공위성 발사를 한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해냈다.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연구개발 예산을 조달받아야하는 정부출연연구소보다 민첩하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를 제대로 하려면 과거처럼 정부보다 앞선 곳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이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우주에서 어떤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하나. “결국 비전이죠.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어떤 모습이 됐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그걸 시각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봅니다. 전문성과 비전 없는 리더나 공무원들이 위원회 꾸려 책임을 미루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정말로 과학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과학기술의 인사이트와 비전을 갖고 아니면 아니라고, 최소한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강단 있는 사람을 불러 모아 일해야 합니다.” 박 전 의장은 우주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출연연구소의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정부출연연구소는 축구 국가대표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항공우주연구원은 항공우주의 국가대표, 화학연구원은 화학에 관해 국가대표인 셈이죠. 그런데 이들 국가대표들이 과연 지금 자긍심을 갖고 일하고 있나요. 국가대표팀에서는 소위 퍼포먼스를 내야 국가대표를 유지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팀에서 교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정부출연연구소는 지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로켓에 불붙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밤새서 연구하는 게 즐거운 사람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아야 해요. 연구소도 책임 연구원쯤 되면 연구자 트랙과 관리자 트랙을 분리하면 좋겠습니다. 연구자 트랙을 택해 국가대표 선수로서 성능을 낼 수 있으면 정년과 무관하게 일을 계속 하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는 우리의 우주 미래는 ‘남들이 안 하는 것’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미 눈에 보이는 시장은 경쟁력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는 힘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 인천국제공항 만든다고 했을 때 저는 반대 의견을 갖고 있었어요. 제 경험의 울타리 안에서는 인천공항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그 때 공항건립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 우주에 대해서도 이 사람 저 사람 얘기할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리더의 비전, 진짜 인사이트를 가진 전문가의 역할입니다.” 박 전 의장은 우리별 1호 발사 30주년인 11일 ‘쎄트렉아이 러시’(위즈덤하우스)라는 책을 펴냈다. 평소 기록차원에서 다이어리에 적어두던 경험과 사건들을 코로나19를 맞아 정리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우리별 개발 스토리, 쎄트렉아이를 경영하며 느낀 소회와 미래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자신만의 기억과 노트에서 이제 나와야 합니다. 후배들이 참고할 만한 책이 많이 없더라고요. 해외의 경우 일론 머스크를 다룬 책들만 해도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사안들을 조명합니다. 그런 책이 많아져야 과학강국이 아닐까요. 특정 인물, 특정 분야에 대해 파고드는 책이 많아질수록 미래세대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것입니다.” 우리별 1호는 2004년말까지 교신이 가능했다. 지금은 작동하지 않지만 여전히 궤도를 돌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우리나라의 우주시대를 처음 열어준 우리별 1호가 영원히 우주 쓰레기로 남아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한다. 우리별과 아리랑 위성이 개발된 지 벌써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나 우주개발 1세대가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시점이다. 리더십, 프로젝트관리, 시스템 엔지니어링 등을 주도할 전문 인력 양성이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지, 기술과 경험이 세대 간에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우주개발 1세대를 만나 인상 깊었던 것은 대덕연구단지를 내려다보는 그의 사무실 창가에 펼쳐져있던 성경과 논어 필사본이었다. 쎄트렉아이 고문으로 물러나 찾고 있다는 “앞으로 20년 간 지속할 의미 있는 일”에 기대를 갖게 된다.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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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개발 후발주자 한국, 상상 못할걸 해야”

    9일 찾아간 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55)의 사무실은 KAIST 교정이 내려다보이는 대전 유성구 엑스포타워에 있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개발 주역 중 한 명이다. 1992년 8월 11일 프랑스령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우리별 1호가 발사된 지 올해로 30년. 박 전 의장은 “우주 개발의 후발주자인 한국은 (앞으로)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별 1호도 당시로서는 남들이 상상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KAIST 초대 학장과 체신부 장관을 지낸 고 최순달 교수(1931∼2014)가 1989년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현 인공위성연구소)를 세워 박 전 의장을 비롯한 제자 5명을 영국 서리대로 유학 보낼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인공위성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별 3호(1999년)까지 우주로 쏘아 보내며 한국 우주 개발의 초석을 놓았다. 우리별 1호의 주역은 박 전 의장을 비롯해 김성헌 미국 코넬대 의대 교수, 김형신 충남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장현석 에스아이디텍션 대표, 최경일 KT샛(SAT) 최고기술총괄 등 5명. 박 전 의장은 1999년 국내 최초 인공위성 개발업체 쎄트렉아이를 세워 운영하다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 회사에 약 1090억 원을 투자해 지분 약 30%를 확보했다. ― KAIST 인공위성연구소는 요즘 말로 대학교수 창업 스타트업 같다. “인공위성 만들자고 학교 게시판에 공고를 낸 최순달 교수님도, 그걸 보고 모인 학생들도 도전정신이 강했다. 시장 할머니 전대에서도 나온 국민 세금으로 공부하는 것이니 실패하면 도버해협에 빠져 돌아오지 말라던 교수님 말씀이 책임감을 갖게 했다. 모든 기업이 그렇지만 특히 스타트업 리더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조직을 일깨워야 한다.” ― 연구소를 나와 1999년 쎄트렉아이를 차린 이유는…. “민간이 앞서 나가자 눈엣가시로 보는 시각이 그땐 있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정부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편입시키려 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 연구소 직원 중 절반은 연구기관의 학력 조건에 미치지 못했다. 우리는 학력보다는 ‘인공위성에 미친’ 직원을 뽑았으니까. 이들과 함께하려면 따로 회사를 차려야 했다.” ― 최근 누리호에 이어 다누리 발사 성공으로 한국이 7대 우주강국이 됐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과 격차가 크기 때문에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요즘 이공계 인력은 정부연구기관보다 연구의 자율성이 높은 대학과 기업을 선호한다.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연구기관은 연구자와 관리자 트랙을 분리해 연구의 질을 높여야 한다. 성공과 실패가 거름이 되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순리가 도입돼야 한다.” ― 진정한 우주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나라 우주 개발이 10년, 20년, 30년 후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구체적으로 그리는 게 포인트다. 전문성과 비전 없는 리더나 공무원들이 위원회 꾸려 책임을 미루던 방식으로는 미래가 없다.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우리의 강점인 정보통신기술과 인공지능을 접목하고 국방 안보의 우주 수요에 대처해야 한다. 이미 눈에 보이는 시장은 경쟁력이 없을 수 있다. 보이는 것 너머를 상상하는 힘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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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 헤다 잠들고 싶다[광화문에서/김선미]

    “어디에 가면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을까요.” 올해 초 페이스북에 이런 질문을 남겼다. 별 보기가 꿈이라고 하자 친구들이 성심껏 ‘별 성지’들을 추천했다. 하지만 어디든 자동차 불빛이 몰리면 허사라고 했다. 최근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이 보여준 135억 년 전 별들의 사진을 보다가 다시 그 꿈이 꿈틀댔다. “제 꿈은요”라고 말하자, 어느 천문 전문가가 경북 영양반딧불이천문대를 알려줬다. “남한에서 가장 어두운 곳이라 별 보기 좋을 겁니다. 다만 달 없는 그믐, 산신령 감읍하사 맑은 날 주셔야….” 그믐이 며칠 남았고, 구름도 예정돼 있었지만 직장인은 주말을 노릴 수밖에 없다. 단,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진짜로 별을 본다면 그건 기적’이라고 마음먹었다. 서울에서부터 200km 넘게 달려간 천문대는 국제밤하늘협회(IDA)가 아시아 최초로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한 영양반딧불이생태공원에 있었다. 빛 공해가 없어 온통 칠흑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기적이 일어났다. 구름이 잠시 걷히더니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이 사방에 총총. 크고 작은 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났다. 대표적인 과학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저자인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과 그의 아내 앤 드리앤(73)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라고 했다. 으스댈 것도, 기죽을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들이 코스모스를 공동 저술하던 1980년, 다정하게 마주 보며 걷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면 천생 영혼의 동지다. 세이건은 책의 서문에 썼다. ‘광대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함을 기뻐하며.’ 둘을 맺어준 것은 우주였다. 1974년 영화감독 노라 에프론이 마련한 파티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1977년 우주탐사선 보이저호의 골든디스크 작업을 함께 했다. 지구의 소리를 담아 혹시 존재할지 모르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 보내겠다는 세이건의 상상력을 드리앤이 구현했다. 녹음하기 가장 어려웠다는 인간의 키스 소리까지도…. 드리앤은 말했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유는 우리의 영혼과 마음, 호기심이 정확히 같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들의 인류애는 위대한 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 세이건은 떠났지만 드리앤은 과학 저술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를 이끈다. 코스모스 출간 40년 만인 2020년 속편으로 내놓은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에서는 미래의 재앙을 경고하는 동시에 희망을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의 장기적 관점으로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화면에서 눈을 떼어 별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디지털 세상은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를 얼마나 편협한 시각에 가두던가. 어느 날 문득 한숨이 깊어진다면 별을 만나러 가시기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영혼의 동지별을 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세이건과 드리앤은 한 사람이 건전한 시민으로 성숙하려면 효율적인 과학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쏟아지는 별을 헤다 잠든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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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수학의 아름다움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5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자 세드리크 빌라니를 만난 적이 있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2010년 받았던 그가 진행을 맡은 강연에서였다. 카르티에 미술관 정원에서 열린 이 강연의 주제는 ‘속도의 밤’. 유럽우주국(ESA) 소속 우주항공사, 철학자, 작가, 싱어송라이터 등이 차례로 나와 속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주에서 겪은 무중력의 시간, 무성 영화의 속도…. ‘아, 수(數)의 세계가 이렇게 미학적이구나.’ 빌라니도 말했다. “수학자와 예술가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풍부한 감정, 상상, 깊은 생각, 그리고 좌절까지….” 그는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도와 프랑스 인공지능 정책의 밑그림도 그렸다. 학계도 활발한 융합이 이뤄지는 시대다. 어제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완전히 다른 두 수학 분야인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연결해 수학계의 난제를 풀었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방식도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였다. 한국의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조카 손자인 그는 시(詩) 쓰기에 빠져 고교를 자퇴했고, 과학 이야기를 쓰려고 검정고시를 치러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가 복수전공으로 수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한 수학자는 “조합론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분야”라며 “허 교수가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아 ‘나만의 생각 근육’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학파가 음악에서 수학적 원리를 발견했듯 현대 수학자들도 음악에서 조화와 질서를 찾는다. “수학은 예술의 한 분야”라는 허 교수는 중학생 때부터 직접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 91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 서울대 석좌교수(1970년 필즈상 수상)도 음악 애호가였다.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친구인 히로나카 교수를 이렇게 평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토록 음악을 사랑하며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갖췄는지 늘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중학교 시절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몰두하다가 음악에 쏟았던 정열의 방향을 바꿔 수학자가 되었다. 그가 음악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자기만의 방식, 즉 자신의 세계를 정립한 게 내게는 흥미로웠다.” 가설과 공리(다른 명제를 증명하는 데 전제가 되는 원리)를 기반으로 나만의 이론을 만들어 가는 수학의 세계는 논리적으로 명쾌해야 하면서도 상상력을 요구한다. 수학자들이 수학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들은 서로의 연구에 대해 “아름답다”는 말로 칭찬을 한다. 하지만 모든 배움이 입시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는 수학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가 유독 크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논했다가는 ‘괴짜’ 소리를 들을 공산이 크다. 최근 한국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원주율(π·파이)을 피아노로 친 곡이 화제가 됐다. 음계의 ‘도’를 1로 삼아 ‘3.141592…’로 이어지는 원주율을 ‘미도파도솔레레…’ 식으로 연주한 이 음악은 이 땅의 많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수학적 사고의 우아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2-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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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인프라-인재-창업정신 충만… 세계 스타트업 투자가들에 매력적”

    “이곳에 다시 라면 냄새가 날 것을 상상하니 기쁩니다. 저희 공간에 입주하는 스타트업 직원들은 밤늦게까지 라면을 끓여 먹으며 일할 때가 많거든요. 한국은 인프라, 인재, 창업정신이 그 어느 나라보다 충만한 곳입니다. 투자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고 해도 한국의 스타트업은 세계의 투자가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29일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오토웨이타워 지하 2층에 구글스타트업캠퍼스(약 2000m²)가 다시 문을 열었다. 코로나19로 문 닫은 지 2년 만이다. 마이크 김 구글스타트업캠퍼스 아태지역 및 한국 총괄은 “재택근무 등 코로나 이후 창업 생태계가 확 바뀌었기 때문에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식도 유연해져야 한다”며 “이번에 새로 만든 최첨단 영상·녹음시설인 크리에이터 스튜디오는 누구나 신청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세대의 창업을 돕는 구글구글은 10년 전 ‘구글 포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두 명의 창업가가 창고에서 세웠던 구글에는 ‘다음 세대의 창업가를 돕자’는 조직원들의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 6곳이 있는 ‘구글스타트업캠퍼스’도 그중 하나다. 창업가들이 임차료 걱정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창업 지원 공간이다. 수면방, 수다방, 샤워실 등을 통해 ‘집같이 편안한 일터’를 표방한다. 서울 캠퍼스는 세계에서 세 번째,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2015년 문을 열었다. 김 총괄은 “2012년 가장 먼저 문을 열었던 영국 런던 캠퍼스는 지난해 문을 아예 닫았다”며 “개인적 성향이 강한 영국인과 달리 한국인은 직접 얼굴을 보고 일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재개관한 캠퍼스에서는 비즈니스 영어 등 실용적인 교육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구글 스타트업 프로그램이 갖는 경쟁력은 구글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한 해외 진출 연결이다. 김 총괄은 “해외로 나가려면 영어가 중요하다”며 “해외 투자가를 만났을 때 자신 있게 사업 비전과 계획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 리더십,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지원구글은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서 지금까지 100곳 이상의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지난해 말까지 누적 투자 유치금액은 5129억 원, 창출한 일자리는 3300여 개다. 주요 교육 분야는 마케팅, 머신러닝, 세일즈, 리더십 등. 일례로 비대면 모바일 세탁 스타트업 ‘런드리고’는 사업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 캠퍼스의 10주짜리 클라우드 아카데미 교육을 받았다. 핀테크 스타트업 ‘핀다’는 해외 투자자를 소개받고 해외 콘퍼런스에서 패널 토크할 수 있었다. 김 총괄은 “최근에는 여성 창업가와 구글 여성 임원들의 일대일 멘토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코로나 이후 기술자와 대화하는 방법 등 리더십 교육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캠퍼스 재개관을 통해 새롭게 입주하게 된 스타트업은 세 곳이다. 명품 가격 메타서치 플랫폼 ‘리얼리’, 인공지능 에듀테크 ‘프로키언’, 스포츠 블록체인 스타트업 ‘위디드’다. 설립 1∼2년 된, 직원 5명 규모의 스타트업들이 6개월 동안 이 공간을 ‘공짜로’ 사용하게 됐다. 김 총괄은 “나라마다 ‘뜨는’ 분야가 다른데 한국은 지금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이 주목받고 있다”며 “6개월만 지나도 입주 스타트업들이 빠르게 성장해 이 캠퍼스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더라”며 웃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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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형발사체 도전 ‘로켓 덕후’… “우주 탐사는 미래위한 투자”

    신동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대표(25)를 만나기 전, 그 회사 임원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어떤 분인가요?” 돌아온 답은 이랬다. “로켓에 진심이십니다.” 대전 서구 대덕대로에 있는 이 회사 사무실에서 신 대표를 만나자마자 당시의 대화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름 밑에는 ‘비히클(운송수단) 엔지니어’, 회사 주소는 행정구역이 아닌 지구상의 위도 경도(36.3724○N, 127.4146○E, Earth)가 쓰여 있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넥스트 누리호’ 시대를 맞는 우주 스타트업들에 기대가 모아진다. 소형 발사체(로켓)를 만드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신 대표는 “국가에서 발사체를 만들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 우리 같은 민간기업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발사 성공 압박이 큰 한국항공우주연구원분들에게 그동안 같이 개발하자고 말하기 어려웠거든요. 이제 선배 엔지니어들을 찾아가 배우고 싶어요.” ○ ‘이상한 사람들’이 이끈 ‘로켓 덕후’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 중인 소형 발사체 ‘블루 웨일’(‘푸른 고래’라는 뜻)은 길이 8.8m, 무게는 2t 미만이다. 2024년까지 50kg 이내의 인공위성을 탑재해 500km 태양동기궤도로 ‘운송’시키겠다는 목표의 ‘우주 모빌리티’다. 소형 발사체는 대형 발사체보다 발사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제작 기간도 짧다. 글로벌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소형 발사체 시장 규모는 올해 13억2200만 달러(약 1조7200억 원)에서 2032년 46억2400만 달러(약 6조 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 대표는 “이상한 사람들이 제 인생을 로켓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이상한 사람’은 그의 할아버지였다. 국수 공장을 운영하다 은퇴한 할아버지는 ‘우주 덕후’였다. 2004년 화성에 착륙한 로버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소식 등의 신문기사들을 오려 손자에게 읽어보라고 건넸다. TV 다큐멘터리 ‘신화창조의 비밀’을 함께 보면서는 “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너도 저런 기술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이상한 사람들은 부모였다. “어머니 권유로 어린이천문대로 별을 보러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어요. 각종 실험도구를 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발열 반응을 연구했고요. 매미와 잠자리의 날개를 붙여둔 종합장은 아직도 갖고 있어요. 부모님은 ‘하고 싶은 걸 해라, 하기 싫은 건 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세 번째는 선생님들. 중3 때이던 2012년 금성이 태양면을 통과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마추어 로켓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신 대표는 자신의 망원경을 학교 과학 선생님들의 용인하에 교문 앞에 갖다놓고 거의 모든 전교생이 이 현상을 지켜보도록 했다. 로켓단체와 인터넷 천문 동아리에서 의기투합했던 ‘이상한’ 친구들이 훗날 창업의 동지들이 됐다.○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신 대표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외환위기 시절 해체된 국내 대기업을 다녔던 아버지가 이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워털루대에 입학해 두 달 다닌 뒤 그만뒀다. 고교 때 한국의 친구들과 원격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그램을 개발해 2억 원 넘게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로켓 개발이었다. “가만히 있는데 돈이 들어오는 건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전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한 달에 두 번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와서 로켓 개발을 점검했다. 결국 홀로 귀국해 친구들이 봐둔 대전의 작업실에서 1년 동안 먹고 자며 매달려 2016년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를 설립했다. ‘고졸보다는 대학을 다녀보는 게 어떨까’ 생각하다가 KAIST에 들어갔다. 신 대표처럼 다양한 도전 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을 통해서다. 트럼펫 연주가 취미인 '이상한 교수님'인 권세진 KAIST 인공위성연구소장은 학생 사업가인 신 대표에게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주역인 박성동 쎄트랙아이 의장도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지금까지 27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사람도, 국가도 비전이 있어야 한다”신 대표는 누리호 2차 발사 이전 레벨센서 문제가 발견된 것에 대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며 “로켓의 복잡성을 눈으로 확인하면 발사체 성공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우주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 대표는 “뜬구름 잡는 소리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비전이 무엇인지 선포해야 해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달에 가겠다’고 했던 건, 기술력이 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죠.” 신 대표는 ‘탁월한 뇌뮬레이션(두뇌로 시뮬레이션) 성능을 갖춘 분’, ‘밥 먹을 때 과학 다큐를 보는 분’, ‘구름 사이 별들을 보며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돌연변이’ 엔지니어를 채용한다. 단, 그 상상력만큼은 뜬구름 잡는 게 아니다.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 자신의 선택에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왜 이 일이 하고 싶은가”도 집요하게 묻는다. “주변에 살아갈 이유를 못 찾아 ‘현타’(현실자각 타임)인 사람들이 많아요.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으면 지구는 참 아름다운 곳이에요. 남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 대표는 스페이스X가 팰컨 로켓을 쏠 때 미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 간 적이 있다. 미 전역에서 온 스쿨버스가 해변가에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아버지의 목말을 타고 로켓 발사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어요. 우주 탐사는 절대로 돈 낭비가 아니에요.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이죠.” 그는 ‘왜 소형 발사체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멋진 일”이라며 “큰 걸 하겠다고 실패만 하는 것도 무모한 일이기 때문에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유인 우주선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명에 담긴 ‘페리지’의 의미: 달·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 ‘우리가 우주의 초입’, ‘가장 가까운 별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의미들을 담았다. #신 대표가 꼽는 최고의 SF물: 1960년대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옛날 그래픽이지만 우주를 탐사하는 진취적 기상이 눈물나게 멋있다”고.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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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회사를 옮겨 다니는 ‘요즘 직원’들의 속사정

    국내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사무실에는 자리마다 팻말이 있다. 직원의 영어 이름과 성격유형지표(MBTI), 자신을 규정한 단어들이 쓰여 있다. 예를 들어 이 회사 장지호 대표(25)의 MBTI는 외향적 리더 유형인 ‘ENTJ’이고, 자기소개는 ‘#디테일 집착 #사용성 #워커러버(worker lover)’다.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MBTI를 MZ세대는 혈액형 검사만큼이나 친숙하게 여긴다. 결과를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왜 MBTI를 써 붙였을까. “경력 입사자가 많아 서로에게 말을 걸고 상대를 존중하는 계기가 필요했어요.”(장 대표) ‘추앙’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TV드라마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성적인 사람은 그냥 내성적일 수 있게 편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나?” 직원들의 MBTI를 써 붙인 회사라면 내성적인 직원을 억지로 직장 동호회에 가입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국내 기업계의 화두는 단연 인재 확보다. 턱없이 부족한 정보기술(IT) 개발자를 ‘모시는’ 일이 기업 생존의 기본 조건이 됐다. 코로나19는 인재 전쟁에 불을 붙였다. 재택근무 덕택에 회사 눈치 보지 않고 이직(移職) 면접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연한 근무형태를 찾아 대기업을 떠나 스타트업으로 옮기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기업들은 조직문화 정비에 바쁘다. 고된 출근길을 뚫고 회사에 온 직원들을 환대해야 한다.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밥을 주는 스타트업 문화의 영향을 받아 대기업들도 ‘식(食) 복지’를 늘리고 있다. 한 대기업은 간식을 워낙 후하게 제공해 직원들이 집에 싸 갈 정도다. “물가가 무섭게 오르니 회사에서 준 구운 계란으로 장조림 만들어 먹어요.” 일부 개발자들이 회사를 옮길 때마다 몸값이 ‘억’ 소리 나게 치솟으면서 ‘돈을 좇는 메뚜기’라고 비난하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가려진 ‘달의 뒷면’이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집값을 다락같이 올려놓아 MZ세대를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게 했다”고 말한다. ‘밝을 때 퇴근했는데 집에 도착하면 밤이 되는’ 고단한 청춘들에게는 미래의 꿈보다 지금의 돈이 시급하다. 대출이자는 오르고 월세 내기도 힘겨운데 당장 연봉을 올려준다면 이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들 눈에는 한 직장을 충성스럽게 다닌 선배보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몸값을 불린 선배가 능력자로 비친다. 많이 배우고 많이 일하지만 적게 버는 미국 밀레니얼세대를 다룬 ‘요즘 애들’이란 책은 번아웃(burnout·소진)이 우리 시대의 상태라고 한다. ‘노오력’해도 벽을 넘을 수 없어 ‘공정’에 매달렸던 한국의 MZ세대는 그나마 자신이 협상할 수 있는 몸값으로 스스로를 ‘추앙’하며 버텨내는 중이다. 그러니 회사가 원격근무 한다며 감시의 눈을 들이대면 그냥 싫다. “지쳤어요. 나갈래요.” 서울 강남에 집 가진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은 돈을 밝히느라 엉덩이가 가볍다”고 탄식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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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트업은 청년만 하나? 정년 앞두고 디지털치료제 도전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전시회(CES)에서 청바지와 후드티 차림으로 내내 부스를 지키며 열띠게 설명하는 ‘시니어’ 창업가가 있었다. 디지털치료제 스타트업 ‘히포티앤씨’ 대표인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64)였다. 디지털 제품으로 치료 효과를 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이 회사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헬스/웰니스 분야에서 두 개의 혁신상을 받았다. 국내 정보보호 학계의 대가로 내년에 교수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스타트업은 청년만 해야 하나’란 질문을 품고 2020년 4월 스타트업을 차렸다. “은퇴하면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을 쓸 데가 없다. 그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살려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 ○ 디지털 게임으로 ‘마음의 병’ 치료 최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산학협력관에 자리 잡은 히포티앤씨를 찾아가자 정 대표는 VR 기기를 써보라고 건넸다. 눈앞에 책상과 문방구 이미지가 펼쳐졌다. 가상현실에서 가방 안에 가위와 펜 등을 집어넣도록 음성 안내가 나왔다. 이 일을 얼마나 정교하고 빠르게 해내는지를 18개 척도로 측정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한다. 그는 “국내 ADHD 환자가 150만 명이 넘는데 병원에서는 대부분 약물치료를 권한다”며 “게임으로 행동 치료를 하면 부작용도 없고 언제 어디서나 치료할 수 있어 의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디지털치료제는 아직 생소하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치료제는 미국 페어테라퓨틱스사(社)의 마약류 중독치료 앱인 ‘리셋’으로 2017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FDA 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제가 아직 20여 개에 불과하다. 최근엔 미국 아킬리사가 만든 ADHD 치료용 게임이 최초로 판매 승인을 받았다. 한국은 이제야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막 태동한 시장이다.” ―왜 이 시장에 뛰어들었나. “알고 지내던 의사가 함께 운동을 하다가 디지털치료제 얘기를 하기에 창업하기 전에 1년여 공부해봤다. 나의 정보기술(IT) 경험을 총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동안 정보보호 분야에서 숱하게 사업 제의를 받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디지털치료사업은 직접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에 시장 규모가 10조 원이 넘는다는 전망을 접하고 더욱 도전의식이 들었다.” ―디지털치료제의 효능은…. “ADHD뿐 아니라 코로나를 거치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마음에 병이 들면 만사가 귀찮아져 움직이지 않게 된다. 명상 산책 심호흡 운동 소통만 해도 우울감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를 인공지능(AI) 모델로 분석해 개인별 맞춤형 치료를 제공한다.”○ “경력을 살려 미리 창업을 준비하라”인터뷰 사진을 촬영할 때, 정 대표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찍어도 되겠느냐고 했다. “스타트업은 대표 혼자 잘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경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전략을 짜고, 젊은 사람들이 실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히포티앤씨의 인적 구성은 신구(新舊)가 조화를 이룬다. 최연소 직원이 스무 살인데 비해 김문현 개발실장은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원장을 지내고 은퇴한 AI 전문가다. 의학 자문은 삼성서울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진, 경영 자문은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신경공학 박사 출신인 윤송이 엔씨소프트 사장 등이 포진해 있다. ―‘인맥 부자’라서 가능한 직원 구성 같다. “그동안 일하면서 만났던 인연들이다. 오래 전부터 알아온 윤 사장이 히포티앤씨의 미국 진출을 알아봐주고 있다.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사회에 되갚을지 고민이다.” ―시니어 전문가들은 풀타임 직원인가. “은퇴한 전문가들은 급여를 덜 받고 주 2, 3회만 일해도 인생의 보람을 느낀다.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여성들의 경력을 단절시키면 안 된다. 일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도록 기업도 정부도 도와야 한다.” ―창업이 두려운 50, 6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많은 시니어들이 창업을 한다. 통닭 가게도 창업이지 않나. 자신의 경력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을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산에 올랐다가 내려와 막걸리 마시며 소일하게 된다. 창업가는 청년 노년 구분할 것이 아닌, 그냥 창업가다. 인생은 넓은 우주에 점을 찍는 일 아닌가. 자신이 만족하는 점을 찍어야 한다.” 그는 20년 전, 시니어 시민기자들이 만드는 인터넷미디어 ‘실버넷뉴스’를 창간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실버들을 위한 고민이 한 걸음씩 쌓인 것 같다”는 그는 생애 전 주기에 걸친 디지털치료제 개발로 ‘인생의 점찍는 일’의 궤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정 대표의 꿈: 미 CES의 키노트 연설자가 되는 것,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 #AI에 대한 견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더 좋은 전문가 역할을 하는 것.”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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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김선미]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달에서 지구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1961년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던 소련의 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우주는 매우 검지만 지구는 푸르스름했다”고 했다.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지난해 9월, 우주 비행사가 아닌 네 명의 민간인이 우주에서 지구를 봤다.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설립한 민간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의 우주선을 타고 고도 585km까지 날아올라 사흘간 지구 궤도를 돈 것이다. 그들은 지구의 가족들에게 화상통화로 근황을 전했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 창문으로 지구를 본다니까.” 인상적이었던 건 우주선 탑승객을 선정한 과정이다. 자수성가한 젊은 테크 기업가가 ‘인스피레이션 4’라는 이름의 이 우주비행 프로젝트에 지원해 동승자 세 명의 비용까지 댔다. 가족과 친구를 태운 게 아니다. ‘리더십, 희망, 관용, 번영’이라는 기준으로 함께 우주에 갈 동료를 선발했다. 이 중에는 소아암으로 다리에 보철을 넣은 여성 간호사도 있었다. 이들은 미 워싱턴주의 눈 덮인 레이니어산을 함께 오르며 ‘한 팀이 되어 성취를 이루는 것’을 훈련했다. 기업가는 앞이 보이지 않고 공기가 희박해져 힘겨워하는 동료들을 독려했다.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 해낼 수 있어요.” 그들은 정말 해냈다. 앞서 머스크에게도 ‘당신은 해낼 수 있다’고 믿어준 존재가 있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미국항공우주국(NASA)이다. 머스크는 ‘인류가 다(多)행성 종족이 되는 것’을 꿈꿨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고 별을 향한 인류의 의식을 확장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인류를 다른 행성에 이주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매달린 그는 지구와 환경이 유사한 화성을 목적지로 삼고 ‘완전한 재사용이 가능한 로켓’에서 우주여행의 답을 찾았다.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에 실패를 거듭해 곤경에 빠졌다. 하지만 머스크는 “실패는 개발의 과정이며, 모든 발사는 발전의 기회”라며 사재를 쏟아부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광대이자 천재이며 관종, 선지자, 기업가, 쇼맨’이라 일컬은 머스크는 머스크여서 그렇다 치자. 주목할 점은 미 정부가 기업의 가능성을 보고 ‘실패의 기간’을 버텨낼 수 있도록 공공사업 발주를 통해 개발 자금을 댄 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민간 기업의 주도와 정부의 파트너십으로 미국의 우주 탐사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일 윤석열 정부 인선에서 “굳이 만들 시점이 아니다”라며 과학교육수석을 신설하지 않았다. 과학기술부총리 신설 여부도 오리무중이다.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지만 돌다리도 두드려야 하는 국내 대기업들은 머스크처럼 경영하기 어렵다. 어제 인수위가 핵심 국정 목표로 내세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실현하려면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과학정책 컨트롤타워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2-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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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영양 불균형 해법은? 순식물성 대체식품서 ‘길’ 찾다

    경기 안양시에 있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더플랜잇’ 사무실에 들어섰다. 양재식 대표(36)를 비롯한 직원들이 모여 이 회사가 최근 내놓은 식물성 대체우유 ‘씰크(XILK)’를 시음하고 있었다. 양 대표는 “우유와 동일한 성분을 갖고 있는 콩과 해바라기씨 등의 원료를 배합해 만들었다”며 “우유를 잘 소화하지 못하는 분들도 마실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2017년 설립한 이 회사는 계란을 넣지 않은 마요네즈와 크래커, 대체육(육류를 대체하는 단백질원)을 넣은 비빔밥 간편식 등 다양한 대체식품을 선보여 왔다. 왜 이 시장에 뛰어든 걸까. 양 대표는 “글로벌 영양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라는 질문을 풀기 위해서라고 했다.○ “육류가 과도하게 소비된다”양 대표가 글로벌 영양 불균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동대 생명과학과에 다니며 저개발 국가들을 돕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다. 수업 시간에는 당뇨와 비만 등 주로 선진국에서 ‘많이 먹어 생기는 문제’들을 연구했지만 동아리에서는 ‘못사는 나라’ 사람들의 영양실조를 고민했다. 사료 농사에 치중하느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량 자원의 다양성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다. ‘왜 같은 지구에 살면서 이토록 다른 영양 문제로 고민해야 할까.’ 그는 자본의 원리에 의해 인간의 식습관이 변하고 있다고 봤다. 사업적으로 ‘돈이 되는’ 육류가 과도하게 생산되고 판매되면서 과도한 섭취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원, ㈜이롬의 생명과학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박사 과정을 밟던 그는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를 내가 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창업에 나섰다고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한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도 큰 영향을 미쳤다. ○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맛”더플랜잇이 순식물성 대체식품을 만드는 작업은 철저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이 회사는 식품에 포함된 성분 데이터를 지금까지 110만 개 축적했다. 이 데이터들을 배합해 대체식품을 개발한다. 원료의 분자 구조를 분석하면 우유와 비슷한 성분은 치즈나 버터보다 맥주에 더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양 대표는 “우리가 사는 지구를 위해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고 싶은 것이지 채식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고기를 먹는다고 비난하거나 먹지 말라는 게 아니라 고기를 먹지 않는 다른 선택지를 주고 싶다고 한다. 소비자 중에는 꺼리는 쪽도 있다. 대체식품의 맛과 향, 외형과 식감 등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다. 예로부터 ‘고기는 귀하고 좋은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대체육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찮다. 그래서 더플랜잇은 대체육을 토마토소스나 비빔밥 고추장에 넣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는 “대체식품은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다른 맛일 뿐”이라며 “지구와 건강을 위해 일부러 먹는 것이 아니라 맛있어서 먹고 보니 지구와 건강에도 좋은 대체식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 고객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양 대표가 지은 회사 이름은 ‘더플랜잇(ThePlantEat)’. 발음상 우리가 사는 행성(Planet)도 되면서 ‘지구를 위해 식물을 더 먹자’는 염원도 담았다. ‘씰크(XILK)’ 이름도 직접 지었다. ‘우유를 대체한다’는 의미로 우유(MILK)의 ‘M’ 위에 ‘X’를 그은 형태다. 전문 네이밍 회사의 도움을 받았냐고 묻자 그는 “스타트업은 가진 게 별로 없어 스스로 해야 하는 게 많다. 소비자가 한 번에 뭔지 알아볼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을 것,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말했다. 씰크는 이번 주부터 이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회사 측은 이 음료를 넣어 만든 아이스라테를 내왔다. 마셔 보니 두유 맛이 많이 났다. 양 대표는 “당초 이 음료는 카페라테 제조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는데 바리스타들로부터 두유 맛이 강하다는 피드백이 있어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며 “해바라기씨 대신 귀리, 콩의 단점을 보완하는 곡물 등을 넣어 개선된 버전을 다음 달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양 대표가 말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의 강점은 이처럼 고객의 반응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은 한 번에 완벽하게 제품을 내놓아야 하지만 스타트업은 시장이 필요로 하는 걸 확인한 뒤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이 회사 마요네즈도 초기보다 소비자 입맛을 반영해 고소한 맛이 강화됐다. 그는 “현재 20조 원 규모인 글로벌 대체우유 시장은 반드시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 ‘대체’로 여겨지는 먹을거리가 ‘기본’이 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다. #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는 것=“하고 싶은 한 가지를 하기 위해 하기 싫은 99가지를 해야 하는 것.” #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스타트업의 규모를 키우기에 앞서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일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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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와 나무를 관찰하는 ‘시민 과학자’들의 연대[광화문에서/김선미]

    화창했던 사월의 어느 날, 전남 구례의 화엄사 홍매화 앞에 섰다. ‘화엄사 홍매화 보기’라는 인생 버킷리스트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소원은 언제부터 왜 갖게 된 걸까. 구례에서 하동까지의 여정이 펼쳐지는 윤대녕의 단편소설 ‘3월의 전설’을 읽어서였을까. 마음의 행방을 쫓다보니 작은 단초들이 나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듣는 새 소리와 이름 모를 꽃들…. 그들이 자연을 향한 관심을 차곡차곡 쌓게 한 것 같았다. 두 달 전 ‘서울의 새(Birds Seoul)’라는 이름의 탐조(探鳥) 모임에 나간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며 계절에 따라 꽃과 나무가 변하는 걸 지켜보다가 새들이 눈에 들어왔고, 새 이름을 찾다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이 모임을 발견했다. 서울에 서식하는 새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 과학자’(과학에 관심 많은 일반 시민)들의 자발적 탐구활동이었다. 이들을 만나 어린이대공원에서 오색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드러밍(drumming)’ 소리를 들었다.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뱁새가 그토록 귀엽게 생긴 줄도 처음 알았다. 혼자라면 ‘몰라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것들’을 동행한 시민 과학자들이 쌍안경을 빌려주며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한 대학생은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펴냈던 조류도감 ‘한국의 새’를 들고 새를 볼 때마다 찾아봤다. 이진아 씨(53)는 10여 년 전 당시 초등학생 딸이 새에 관심을 갖자 딸과 함께 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동네의 보라매공원에서 본 검은딱새와 큰부리밀화부리는 알고 보니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보고 싶어 하는 새들이었다. 새에 대한 관심을 나누고 싶어 2018년 시작한 게 ‘서울의 새’다. “관심이 중요한 것 같아요.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겠죠.” 저술과 강연을 통해 알음알음 알려진 시민 과학자들도 있다. 도시 생태에 관한 책을 지속적으로 펴내는 최성용 작가, 뒷산의 새를 그리는 이우만 화가…. ‘한국의 아름다운 노거수(老巨樹)’라는 책을 펴낸 김대수 씨(72)도 시민 과학자다. 호텔리어 생활을 은퇴한 후 전국의 노거수를 찾아다니며 관찰하고 기록했더니 한 권의 책이 됐다. 문화재청이나 산림청 홈페이지를 찾아야 알 수 있는 나무 정보들을 계절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나무는 씨앗이 떨어진 장소를 불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잖아요. 군데군데 구멍이 나고 가지가 부러지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오랫동안 버텨온 나무들에 존경심이 듭니다.” 천년고찰 화엄사를 오가는 길에는 삼백 살 넘은 홍매화뿐 아니라 천년 된 산수유나무, 꽃송이가 눈처럼 날리는 섬진강변의 벚꽃, ‘눈물처럼 후두둑’ 지고도 남은 동백꽃도 있었다. 올해 쌀쌀한 봄 날씨로 꽃이 늦게 피느라 의외의 꽃 대궐을 볼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에 매달리느라 비 내리는 3월에 억지로 찾아갔더라면 없었을 풍경이다. 꽃만 그럴까. 대전제를 세우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소중한 것들을 놓칠 때가 있다. 작은 씨앗이 자라 노거수가 되고, 작은 소통과 참여가 모여 대의(大義)가 된다. 그걸 봄의 자연이 가르쳐준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 2022-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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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은 왜 배달 안될까? 비대면 진료 앱으로 환자도 의사도 만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병원과 약국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속출했다. 이런 의료 공백을 보완해준 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다. 닥터나우는 2020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310만 명이 이용했다. 휴대전화에 앱을 깔아 증상을 선택하면 전화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진료 후에는 모바일 처방전을 발급받아 약을 배달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25)는 한양대 의대를 휴학하고 창업의 길에 나섰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가 가졌던 질문은 “왜 약은 배달을 받을 수 없나”였다.○ 고교 때부터 품었던 비대면 진료의 꿈그가 “장지호라고 합니다”라며 허리를 깊게 구부려 인사했다. 앳된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했다. 국내 의료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인 원격의료 산업을 이끄는 그의 첫인상이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공유오피스 일부를 사용하는 닥터나우 사무실에서 장 대표의 자리는 일반 직원들 옆자리였다. ―비대면 진료를 생각한 계기는…. “대전이 고향인데, 고등학생 때 대전역 앞에 있는 노숙인 의료봉사센터에서 1000시간 동안 의료봉사를 하면서 의사의 역할을 지켜봤다. 그때 장애인 노숙인들에게 약을 배달하고 전화로 진료도 하다가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환자도, 의사도, 함께 봉사하는 약사도 만족하는 걸 봤다.” ―원격진료를 하려고 의대에 갔는가. “몇몇 의대 면접을 볼 때 교수들이 ‘자네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물었다. ‘원격진료를 하고 싶다’고 답했는데 나중에 보니 원격진료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금기어였다(웃음). 대학 1학년 때부터 미국의 최대 원격진료 회사인 텔라닥과 스탠퍼드대 병원 등에 메일을 보내고 찾아갔다. 2015년부터 의사와 환자 사이의 원격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한 일본에 가보고서는 ‘한국에도 곧 그 시장이 열린다’는 생각을 했다. 청강으로 코딩과 디자인을 배운 게 창업에 실질적 도움이 됐다.” 원격진료는 코로나 사태로 정부가 ‘한시적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비대면 진료로 불리고 있다. 장 대표가 2019년 9월 닥터나우의 전신인 ‘닥터가이드’를 설립해 약 배달 서비스를 고민할 때만 해도 이 영역은 불법이었다. 1964년 개정된 약사법은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한시적 허용 이후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선보인 건가. “그렇다. 제 나이보다 두 배 이상 오래된 법 규제가 발목을 잡던 중 2020년 3월 대구에 살던 누나가 전화를 걸어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갈 수 없는데 약을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창업 멤버들과 2주일 동안 밤을 새워서 ‘배달약국’ 앱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했다. 만든 지 24시간 만에 6000명이 앱을 설치하는 걸 보고 신기했다. 배달약국을 전국적으로 확장시킨 게 지금의 ‘닥터나우’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장 대표는 2020년 12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시작하면서 이미 알려진 ‘배달약국’ 대신 ‘닥터나우’라는 명칭을 썼다. ‘의사를 지금 만날 수 있다’는 뜻을 담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약사법은 개설 등록된 약국이 아니면 약국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의약계가 비대면 진료를 반대하는 이유는…. “오진(誤診)과 의료사고 등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닥터나우 이용자들은 만족도가 높다. 저희 부모님은 혈압 약, 할머니는 당뇨 약을 배달받아 드신다. 직장인도 병원에 가려고 반차를 내지 않고도 만성질환 약을 받아볼 수 있다. 비대면 진료에서 의사가 더 자세히 증상을 물어봐 준다는 평가도 많다. 대형병원으로 쏠릴 것이란 당초 우려들과 달리 비대면 진료의 80%가 1차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가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니라 병원 안 가고 약 안 먹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연 측면도 있다.” ―어떻게 제휴 병원과 약국을 모았나. “닥터나우는 전국 700여 개 의료기관과 제휴를 맺고 있다. 처음에는 의대 동아리 명부를 보고 선배 의사들을 찾아가 참여를 부탁했다. 약국은 ‘오늘은 광화문, 내일은 선릉역’ 이런 식으로 무작정 방문해 설명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며 투자해 준 게 큰 도움이 됐다(지금까지 투자액 120억 원). 이제는 비대면 진료 메타버스 사업도 시작하려 한다.” ―닥터나우는 진료과목이 아닌 증상별로 의사를 선택하도록 돼 있더라. “진료과목은 공급자 중심 마인드라고 생각했다. 증상으로 해야 환자 중심이다.”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은 정부의 한시적 허용 방침 속에 지금 ‘시한부 인생’이다. 닥터나우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회 공동 회장 사이다. 장 대표는 “지금이야말로 원격의료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라며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만들어야 한다.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바퀴를 굴려 굴러가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수상= 의대 다닐 때 배운 디자인 실력으로 2019년 미국 IDEA 디자인어워드, 2021년 독일 iF 디자인어워드를 수상했다. “이런 대회에 나가면 유능한 개발자를 만나 모실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했다고 한다. 실제 닥터나우의 ‘1호 개발자’를 수상자 모임에서 만났다. #창업 후 좌절했던 순간= “단 한순간도 없다. 아직까지는 매일매일이 떨린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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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맞춤형 콘텐츠, 패션엔 어떻게 쓸까? 맞는 옷 추천 Z세대 사로잡아

    요즘 국내 10, 20대에게 강력한 패션 인플루언서가 있다. 올해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의 스타트업) 진입이 예상되는 패션 쇼핑앱 ‘에이블리(ABLY)’다. 교복 위에 입는 후드 티, 놀이공원 갈 때 입는 반바지 등을 1만∼2만 원대에 살 수 있다. 페이스북에는 4만3000여 명이 멤버로 활동하는 ‘에이블리 진심녀들’이라는 그룹도 있다. 상황에 맞는 옷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또래들의 댓글이 달린다. 이 앱을 만든 에이블리코퍼레이션의 강석훈 대표(38)는 국내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인 ‘왓챠’를 공동창업했던 인물이다. 왓챠처럼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패션산업에 구현할 수는 없을까. 강 대표가 2018년 에이블리를 시작하며 품었던 질문이다.○ “‘패알못’이라 선입견 없었다” 서울 강남교보타워에 있는 에이블리 사무실에서 강 대표를 만났다. ‘발렌시아가’ 운동화가 먼저 눈에 띄었다. 모자와 맨투맨, 바지는 검은색이었다. 입은 옷의 브랜드를 물었더니 “PPL(간접광고)이 될까 조심스럽다”면서 “옷은 ‘준지’, 모자는 ‘우영미 파리’”라고 답했다. ―스스로를 ‘패알못(패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던데. “워낙 안 꾸미니까 ‘회사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완벽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패알못이었던 것 맞다. 그랬기 때문에 선입견 없이 다양한 사용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강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 중퇴다. 4학년 1학기를 끝내고 공익근무를 마치던 시기에 친구들과 시작한 “왓챠에 미쳐” 휴학 학기가 다 찬 것도 모른 채 제적당했다. 이후 “20대 공동창업자들과 동아리처럼 회사를 운영하다가” 왓챠를 나왔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에 가는 건 생각 안 해봤나. “경기 수원 외곽지역에서 자랐는데 시내의 학교를 다니려면 새벽 6시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 시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폐지 줍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불평등한 구조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티브 잡스의 앱스토어를 보면서 누구나 개발할 줄 알면 도전해 재능을 성취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왓챠의 경험이 에이블리로 이어졌나. “왓챠를 할 때 가졌던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블록버스터만 주로 본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다양한 좋은 콘텐츠가 많기 때문에 그걸 추천해주자는 생각을 했다. 에이블리도 같은 발상이었다. 패션을 콘텐츠로 접근해 각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 “‘넥스트 커머스’ 생태계 통해 창업 도울 것” 유튜브에 ‘에이블리’를 치면 ‘억대 매출 달성한 에이블리 학생사장 브이로그’ ‘열여덟 살에 쇼핑몰 창업하기’ 등이 뜬다. ‘에이블리 입점’이란 검색어를 입력하면 수많은 후기가 나온다. 에이블리는 입점 조건만 맞추면 누구나 옷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현재 3만 명의 ‘셀러(판매자)’가 에이블리를 통해 상품을 팔고 하루 112만 명이 이 앱을 이용한다. 그런데 강 대표는 에이블리를 패션 쇼핑앱 회사라고 일컫지 않는다. ‘넥스트 커머스’라는 생태계를 만드는 회사라고 강조한다. 다른 경쟁회사들이 ‘있는 브랜드를 모아 보여주는 곳’이라면 에이블리는 ‘창업을 돕고 취향을 찾도록 도와주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에이블리에 10대가 많이 모이는 이유는…. “에이블리는 1인 판매자를 돕는 플랫폼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기성 브랜드보다 저렴한 상품이 많았다. 값싸고 다양한 스타일로 소비하려는 사용자들이 모이다 보니 그중에 10대가 많았다. 지금은 10대뿐 아니라 20∼40대도 동일한 비중으로 에이블리를 이용한다.” ―에이블리에서 보여주는 옷들이 10대가 입기엔 성숙한 것들도 있다. 미래 세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는가. “패션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10대 문화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게 될 거야, 이게 안 될 거야’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도 부모 세대는 모르는 또래 문화가 있었는데 이게 양지로 떠오른 게 아닐까. 요즘 10대는 유행보다 자신의 취향을 따르고 남의 취향도 존중한다. 브랜드의 설명보다 또래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궁금해한다. 더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왔다.” ―에이블리가 옷값에 거품을 뺀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옷값은 브랜드 등 여러 요소로 매겨지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에이블리가 과도한 유통망을 줄이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걸러내는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에이블리 화면은 개개인의 쇼핑 패턴에 따라 다르게 노출된다. “한국인의 취향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강 대표는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서비스를 만들 것이라고 한다. #사람을 보는 관점을 키운 책들=①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커뮤니티의 성장과 구조에 대한 고민) ②나관중의 ‘삼국지’(각 인물에 자신을 투영해 수양) ③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인간 정신의 위대함) ④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내 삶과 선택의 주체가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늘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⑤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다음 회에는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장지호 대표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 기업과 창업가에 대한 질문이 있으면 startup@donga.com으로 보내주세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2-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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