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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의 기쁨에 들이키는 샴페인이 무척 달게 보였다. 잠시 후 캐디 백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냈다. 멀리 대서양 건너에 있는 남편, 22개월 된 딸과 짧은 화상통화를 마친 그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레이디스 스코틀랜드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엄마 골퍼’ 스테이시 루이스(35·미국). 루이스는 17일 영국 스코틀랜드 노스 버윅의 르네상스 클럽(파71·6453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2개, 더블보기 1개로 1타를 잃었다. 합계 5언더파로 에밀리 페데르센(덴마크), 샤이엔 나이트(미국), 아사아라 무뇨스(스페인)와 동타를 이룬 뒤 18번 홀(파4)에서 열린 연장전에서 7.2m 버디 퍼트를 넣어 승리를 결정지었다.LPGA투어 통산 13승을 올린 루이스에게는 이번 우승은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2018년 10월 첫 딸 체스니를 낳은 뒤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기 때문이다. 휴스턴대 골프 코치인 제러드 채드윌과 2016년 결혼한 루이스는 출산 후 2019년 1월 복귀했다. 2017년 9월 캄비아 포틀랜드 클래식 이후 약 2년 11개월 만에 우승하며 상금 22만5000달러(약 2억6000만원)를 받았다. 한때 세계 랭킹 1위를 질주한 루이스는 앞선 치른 3차례 연장전에서 모두 패했다. 하지만 엄마가 된 뒤 처음 치른 연장전에서, 그것도 자신을 포함해 4명이나 나선 연장전에서 유일하게 버디를 낚으며 달라진 면모를 보였다. 루이스 자신도 “체스니가 내게 많은 인내심을 가르쳤다. 힘든 상황에서도 난관을 극복하고 참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LPGA투어에서 플레이로 빠르기로 유명한 루이스는 이날 마지막 조에서 동반자들의 플레이가 더뎌 후반 9홀에서는 경기위원의 시간 측정까지 받아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뚜껑이 열려 스스로 무너질 뻔 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루이스는 캐디 트래비스 윌슨에게 “경기 진행에는 불만을 갖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신 딸이 좋아하는 인기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히트곡인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에 나오는 “멈출 수 없어. 다 잘 될 거야” 등을 흥얼거리며 감정을 다스렸다. 우승 후 루이스는 “너무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체스니가 세상에 나온 날부터 트로피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내 목표였다. 체스니를 통해 내 골프 인생의 2막이 시작됐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그는 또 “여기서 같이 사진을 같이 찍지 못해 아쉽다. ”내가 그 연장전에서 우승을 노린 퍼트를 했을 때 체스니가 플라스틱 골프채로 TV 화면을 때리고 있었다고 남편이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호주 등 전 세계를 돌며 대회를 치르는 LPGA투어에서는 선수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다. 루이스는 11세 때 허리뼈가 휘는 척추측만증 증세가 나타나 대학 때 5개의 티타늄 철심을 척추에 받는 수술까지 받은 인간승리의 주인공. 그런 루이스에게도 ‘두 토끼 잡기’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루이스는 ”아기가 6,8개월 정도 됐을 때 정말 힘들고 지쳤다. 잠도 잘 못잤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차츰 프로골퍼와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에 적응하게 됐다는 게 그의 얘기. ”점점 체스니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 지 뭘 원하는지 보이더라. 남편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LPGA투어는 1993년부터 보육 센터를 운영하며 소속 선수나 직원들에게 탁아 서비스를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투어에 따르면 지난해 엄마 선수는 14명이며 자녀수는 19명에 이른다. 보육 센터 운영 시간은 오전 5시~오후 9시다. 이른 시간 티오프하고 경기 후 부족한 운동까지 해야 하는 선수들을 배려한 것이다. LPGA투어는 또 출산 휴가가 최대 2년이며 복귀하면 휴가 전 갖고 있던 신분에 따라 출전 대회수도 보장해 준다. 올해 딸을 낳은 미셸 위도 필드 복귀를 노리고 있다. 미셸 위는 출산 후 10일 만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채 골프 연습하는 사진을 공개하기도 햇다. 반면 국내 필드에선 아직도 ‘결혼 또는 출산=은퇴’의 등식이 여전해 보인다. 2020시즌 KLPGA투어에서 엄마 선수는 서예선, 안시현, 허윤경, 홍진주 네 명에 불과하다. 기혼 선수 가운데는 운동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출산을 미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KLPGA투어가 외형적으로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투어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탁아 시설 등 선수 복지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루이스는 20일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에서 개막하는 메이저대회인 AIG여자오픈에 출전한다. LPGA투어에서 출산 후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선수는 낸시 로페즈, 줄리 잉크스터(이상 미국), 카트리오나 매슈(스코틀랜드) 뿐이다. 루이스의 도전은 계속된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IV-XXVII-XIV’ 암호처럼 보이는 로마숫자는 리디아 고(23)가 오른 손목에 새긴 문신이다. 프로 데뷔 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처음 우승한 날짜(2014년 4월 27일)를 의미한다. 당시 17세.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리디아 고는 요즘 ‘아 옛날이여’를 떠올리며 그 시절을 그리워할지 모르겠다. 세상 두려운 줄 모르고 질주하던 10대 때와 달리 20대 들어선 가시밭의 연속이다. 며칠 전 그는 마라톤 클래식에서 최종 라운드 막판 6홀을 남기고 5타 차 선두로 나서 2년 4개월 만에 우승하는 듯했다. 하지만 보기 2개에 마지막 홀에선 ‘냉탕온탕’을 오간 끝에 더블보기를 해 대니엘 강에게 패했다. 리디아 고의 이름 앞에는 늘 최연소, 최초라는 단어가 붙어 다녔다. 2015년 2월 18세 나이로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남녀 통틀어 최연소. 15세 때인 2012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LPGA투어 첫 승을 올린 뒤 10대에만 14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스윙, 클럽, 코치, 캐디 교체에 체중까지 빼며(8kg) 새 출발을 했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43개 대회에서 무관에 그치다 2018년 4월 15승 고지를 밟으며 눈물을 쏟은 뒤 다시 정상에서 멀어졌다.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다 자신의 모든 걸 태워버려 더 이상 뭔가를 할 육체적, 정신적 의욕이 사라진 ‘번아웃(Burnout·소진)’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올해 코로나19로 5개월 쉬는 동안 그는 이를 깨물었다. 집에 실내자전거 같은 운동기구를 들여놓고 근육을 3kg 불리며 하체도 강화했다. 새 코치를 영입했고, 훈련량도 늘렸다. 이번에 1∼3라운드를 모두 1위로 마쳐 생애 첫 대회 4라운드 내내 선두를 지키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의 기대감까지 키웠다. 그랬기에 역전패의 충격이 무척 컸으리라. 일본, 미국투어 신인왕 한희원 해설위원은 “준비를 많이 했는데 부담감을 못 이긴 것 같다.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니엘 강, 고진영 등 동료들은 ‘힘내라’며 위로를 보냈다. 리디아 고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 자신감을 얻었다”는 글을 남겼다. 지난 주말 경주에선 박인비가 주관한 챔피언스트로피 대회가 열렸다. 해외 연합팀에는 박인비, 신지애, 김하늘, 이보미, 최나연 등 1988년생 동갑내기 5명이 출전했다. 이들이 합작한 우승 횟수만도 133승. 초등학교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30대에 접어들어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전히 필드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도 컸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에서 선수 수명은 퍽 짧다. 2016년 이후 KLPGA투어 129개 대회에서 30대 챔피언은 6명뿐이다. 그나마 박인비, 전미정, 유소연을 뺀 순수 국내파는 3명. 우승자 평균 연령은 23.1세다. 이번 시즌 KLPGA투어 상금 랭킹 톱5 중 3명이 20세 이하다. 반면 장수하는 선수는 드물다. 어릴 때부터 오로지 운동만 하다 보니 부상이나 슬럼프에 쉽게 노출되지만 극복은 쉽지 않다. 롱런하려면 일과 생활의 균형도 중요하다. 흔들릴 때 잡아주는 가족, 친구의 존재도 소중하다. “골프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몸과 마음이 받쳐줘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야 오래 뛸 수 있다.” 박인비의 조언이다. 리디아 고가 아쉬운 결과를 얻은 대회는 미국 정유회사 마라톤이 타이틀 스폰서다. 1930년 제정된 이 회사 슬로건은 ‘장거리에서 최고(Best in the long run)’. 첫 우승의 짜릿한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골프화 끈을 조였으면 좋겠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리디아 고뿐 아니라 다른 청춘에게도.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위챗’의 퇴출 의지를 누누이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5일 기자회견에서 “틱톡이나 위챗 같은 앱은 중국 공산의 콘텐츠 검열 수단이자 미국인의 개인 정보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챗의 모회사 텐센트,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와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미국 행정부의 ‘청정 네트워크’ 방침에 된서리를 맞은 위챗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스포트라이트를 활짝 받았다. 위챗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한 리하오퉁(25·중국)이 2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마쳤기 때문이다. 리하오퉁의 돌풍 속에 그의 모자 정면에 새겨진 ‘위챗(WeChat)’이라는 로고가 전세계에 집중적으로 노출됐다.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TPC 하딩 파크(파70)에서 열린 2라운드에서 리하오퉁은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기록해 중간합계 8언더파로 리더보드 맨 꼭대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중국 남자 골프선수가 메이저 대회 라운드 종료 시점에 단독 또는 공동 선두에 오른 것은 이날 리하오퉁이 처음이다. 중국 선수의 남자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한 번도 없었으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챔피언도 배출한 적이 없다. 전체 4라운드 가운데 ‘전반’만 마쳤을 뿐이지만 리하오퉁이 새 역사를 쓸 수 있을지 주목받기에 충분하다.뜨거운 관심을 받은 리하오퉁은 2018년 4월 마스터스 직전부터 위챗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인기 스포츠인 골프를 통해 중국 브랜드의 가치를 해외 소비자에게 알릴 목적이었는 데 이번에 제대로 효과를 보게 된 것. 2라운드 종료 후 리하오퉁은 위챗 퇴출 관련 질문까지 받고는 황당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잘 모르겠다”며 한 발 뺐다. 현지 언론은 골프광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최근 격화된 미중 갈등 속에 위챗을 앞세운 리하오퉁의 활약은 달갑지 않을 것 같다는 식의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미국 언론 샌디에이고 유니언 트리뷴은 “전세계 17개 골프장을 소유하고 재임기간 282번 골프를 친 트럼프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로 이번 대회를 안 볼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중국 골프의 선두 주자로 준수한 외모로도 유명한 리하오퉁은 2017년 브리티시오픈에서 3위에 오른 적이 있다. 이 성적은 역대 중국 선수가 올린 역대 PGA투어 최고 기록이다. 당시 리하오퉁은 미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나이키 모자를 쓰고 출전했다. 유러피언 투어에서 통산 2승을 거둔 그의 세계 랭킹은 현재 114위. 리하오퉁 사례를 보며 ‘달걀 골퍼’ 김해림이 떠올랐다. 김해림은 2017년 중국 하이난 섬에서 열린 KLPGA투어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우승했지만 그의 경기 장면은 중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한 뒤 환호할 때도 중계 카메라는 김해림을 멀찌감치 잡거나 뒷모습만 보여줬다. 대회 주관 방송사인 중국 CCTV 5+가 김해림의 모자 정면에 새겨져 있는 메인 스폰서인 롯데 로고가 노출되지 않도록 했기 때문.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부지로 제공한데 따른 보복 조치의 일환이었다. 당시 공동 3위로 마친 이소영도 롯데 소속이라 TV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롯데 골프단의 한 관계자는 “김해림 프로가 대회 첫날 중국 TV 화면에 자주 나온 뒤 중국 당국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며 모종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해림의 시상식 모습도 방영되지 않았다. 프로골퍼의 모자 정면은 걸어 다니는 광고판으로 불린다. 어떤 기업의 로고를 장식하느냐에 따라 해당 선수의 클래스가 결정되기도 한다. 정치적인 입김이나 역학 관계에 휘말리기도 하는 걸 보면 골퍼의 얼굴이나 자존심으로도 부를 만 하다. 암튼 올해 PGA챔피언십은 코로나19 사태로 관중 없이 치러지고 있다. 하지만 리하오퉁이 화제를 뿌리면서 특히 미국과 중국 골프팬들의 장외 응원대결이 더욱 치열하게 됐다. 한편 9일 3라운드에서 리하오퉁은 3타를 잃어 중간합계 5언더파로 김시우 등과 공동 13위로 밀렸다. 더스틴 존슨(미국)이 9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나선 가운데 대회 3연패를 노리는 브룩스 켑카(미국)는 2타차 공동 4위로 역전 우승을 노리게 됐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공동 59위(2오버파).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 선수가 된 소년은 1년 후 모험을 시도한다. 오른손으로 던지고 오른쪽에서 타격하는 우투우타에서 오른손으로 던지고 왼쪽에서 타격하는 우투좌타로 전향했다. “칠 때는 왼손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바꾸더라.” 그의 어머니가 전한 사연이다. 메이저리그(MLB) 탬파베이 최지만(29)이다. 왼손타자는 타격 후 1루로 달려가는 거리가 1m가량 짧고 우투수의 공을 오래 볼 수 있어 오른손타자보다 유리하다. 왼손잡이는 전 세계 인구의 10% 정도. MLB에서 왼손타자는 40% 가까이 돼 왼손투수(28%)보다 그 비율이 높다. 미국프로농구(NBA) 왼손선수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왼손쿼터백은 모두 7% 정도다. 야구에선 왼손잡이가 장점이 더 많다는 방증이다. 야구 스타를 꿈꾼 어린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최지만이 빅 리그에서 살아남은 걸 보면 어릴 적 선택도 주효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또 다른 벽에 부딪쳤다. 왼손투수에 약점을 드러냈다. 지난 시즌 우투수에게는 타율 0.274(393타석), 17홈런, 57타점을 기록했지만 좌투수를 만나면 타율 0.210(94타석), 2홈런, 6타점으로 고개를 숙였다. 플래툰 시스템(같은 포지션에 두 명의 선수를 번갈아 기용)에 묶여 좌투수가 나오는 날에는 더그아웃을 지키기 일쑤. 반쪽 선수 취급 속에서 최지만은 며칠 전 토론토와의 경기에서 좌투수를 맞아 평소와 달리 오른쪽 타석에 들어서 홈런까지 날렸다. 빅 리그 5년 차인 최지만이 우타석에서 친 첫 홈런이다. 전날까지 빅 리그 통산 860타석을 모두 좌타자로 나섰던 그였다. 어쩌다 걸린 행운의 ‘한 방’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지만은 코로나19로 개막이 늦어지면서 스위치 타자 가능성을 타진했다. 전천후 출격할 수 있도록 변신을 꾀한 것이다. 최지만은 18세 때인 2009년 시애틀 입단 후 볼티모어, LA 에인절스, 뉴욕 양키스, 밀워키를 거쳤다. 반복되는 유랑 생활에도 포기는 없었다.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는 건 나를 인정해준다는 의미”라는 긍정 마인드로 버텼다. “고단한 일상에도 꼭 성공해야 된다는 열정과 자기관리가 남달랐다. 늘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지만을 오래 지켜본 허구연 해설위원 얘기다. 박세리가 활약할 때 그 영향으로 골프에 매달린 10대들이 쏟아졌다. 저마다 체형이 다른데도 박세리를 빼닮은 붕어빵 스윙이 유행했다. 몇 년 전 방한한 타이거 우즈가 국내 주니어 골퍼 대상의 레슨 행사에서 “더는 가르칠 게 없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정형화된 어린 선수들의 스윙에 뭐라 해줄 말이 궁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세리 키즈 가운데 박인비는 달랐다. 선천적으로 손목이 안 좋아 훈련을 많이 할 수 없는 형편. 그래서 코킹(손목 꺾음)을 하지 않는 독특한 스윙과 자신만의 리듬을 갖게 됐다. 특이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남다른 집중력과 정교한 퍼팅을 경쟁력으로 ‘골프 여제’가 됐다. 박지성은 작은 체격에 평발이라는 약점을 지녔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에 양발을 두루 쓰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런 그도 자서전에서 “강한 팀이 되려면 양발을 모두 쓰는 멀티 플레이어뿐 아니라 한 발을 월등히 잘 쓰는 스페셜리스트도 필요하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조금씩 할 줄 아는 선수를 강요하면서 확실한 ‘기술자’가 실종된 한국 축구의 답답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세상은 개성과 창의성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스위치 타자든, 스페셜리스트이든 나만의 강점을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일찍부터 한계를 뛰어넘는 변화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유소년 레벨 지도자의 역량이 특히 중요한 이유다. 남과 같아선 발전할 수 없는 게 비단 스포츠뿐은 아닐 것이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수원시청과 문경시청이 제58회 대통령기 전국소프트테니스(정구)대회에서 나란히 6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임교성 감독이 이끄는 수원시청은 31일 전북 순창공설운동장 소프트테니스장에서 열린 남자일반부 단체전 결승에서 간판스타 김진웅의 활약을 앞세워 창녕군청을 2-0으로 눌렀다. 이로써 수원시청은 2014년 제52회 대회 이후 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올 들어 6월 한국실업춘계연맹전에 이은 시즌 2관왕이 됐다. 준결승에서 달성군청을 제압한 수원시청은 이날 결승에서 제1복식에 나선 정영만과 김보훈이 이긴 뒤 제1단식에서 김진웅이 상대 에이스 김태민을 제압해 승리를 결정지었다. 김진웅은 “첫 대회에 이어 연속 우승이라 너무 좋다. 다같이 고생한 선,후배에게 고맙고 감독님과 코치님에게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수원시청은 8월말 경기 안성시에서 열리는 실업연맹전에서 시즌 3번째 우승을 노린다. 문경시청은 여자일반부 단체전 결승에서 NH농협은행을 2-0으로 제압했다. 문경시청 주인식 감독은 “첫번째 복식 이지선과 단식 김유진이 잘해줬다. 앞으로 국가대표로도 기대가 되는 재목이다”며 “2복식1단식의 단체전에서 첫 번째 복식에서 패해도 선수들이 팀워크를 발휘해 나머지 경기를 모두 이기면서 좋은 결과를 엮어냈다”고 말했다. 여자 일반부 개인전 단식에서는 이민선(NH농협은행)이 챔피언이 됐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13일은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의 창립 100주년 기념일이었다. 1920년 한국 스포츠가 첫발을 뗀 역사적인 날을 맞아 대한체육회는 6개월 넘게 행사를 준비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600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이벤트를 계획했다. 하지만 철인3종 고(故) 최숙현 선수 사건으로 행사를 나흘 앞두고 전격 취소됐다. 그 대신 ‘스포츠 폭력 근절다짐 결의대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가 이마저도 비공개 비상대책회의로 대체했다. 입에 담기조차 힘든 감독, 팀 닥터, 선배 선수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린 최 선수는 절박하게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6개 관계기관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 22세 꽃다운 나이의 그가 내린 극단적인 선택 앞에 어떤 결의가 의미를 가질 것인가. 한 맺힌 절규를 차갑게 외면한 어른들은 여전히 면피성 쇼에만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 스포츠가 거둔 성과를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척박한 불모지에서 출발해 스포츠 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떨쳤다.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했다. 아시아경기, 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축구 등 성공 개최로 한강의 기적을 넘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선 위상도 과시했다. 한국은 올림픽에서 4회 연속 세계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화려한 성적표의 이면에는 피눈물도 있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이 불의한 디딤돌이 됐다. 메달, 진학, 취업을 위해 과정은 무시되기도 했다. ‘빠따’로 상징되는 구타는 정신력 강화의 수단으로 포장됐다. 헝그리 정신, 스파르타식 훈련이 불굴의 투혼으로 미화됐다. 필자가 스포츠 기자로 지켜본 지난 세월만 되돌아봐도 참담한 순간은 많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우던 한 유도 대표선수는 5일 동안 굶으며 13kg을 무리하게 빼다 국가시설인 태릉선수촌 사우나에서 오전 2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당시 22세였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등은 수습에 부산을 떨었을 뿐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한 대학농구팀 감독은 프로팀과 연습경기를 하다 자신이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실수한 선수를 때렸다. 그것도 부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래도 우리 감독님이 애들 프로팀에 잘 보내세요.” 사랑의 매로 받아들였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고개를 숙인 채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눈물을 흘렸다. 그 옆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외국 선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하고 있었다. 구타, (성)폭행 등 반인륜적 행태와 패악은 상당 부분 개선됐다는 게 스포츠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 또한 고통의 산물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독버섯은 여전히 존재한다. 오히려 더 은밀하고 잔인하게 자행되고 있음을 최 선수가 다시 한번 세상에 알렸다. 한국 스포츠의 백년대계라는 거창한 표현은 공허해 보인다. 지도자 면허제,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 상시 설문조사 실시, 일벌백계…. 그동안 숱한 대책이 쏟아졌고 이번에 다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도 늘 반복되는 불행한 현실은 어쩌면 불통의 산물인지 모른다. 악습을 근절하고 상처를 치유하려면 제대로 작동하는 소통의 통로가 절실하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도 눈 감고, 귀 닫으면 무용지물이다.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낸 피해자의 한마디를 내 가족의 얘기처럼 경청해야 한다. 한 세기 전 조선체육회는 창립취지서에 이런 글을 남겼다. “강건한 신체를 양육해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며 개인의 행복을 바랄진대 그 길은 오직 하늘이 주신 생명을 신체에 창달케 함에 있으니 운동을 장려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노라.” 행복 추구가 한국 스포츠 새로운 100년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아주 죽겠어, 살아 있는 게 기적인 거 같아.” 고희를 넘긴 프로야구 감독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몇 년 전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김응용 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79)이다. 당시 김 회장이 지휘봉을 잡은 한화는 일찌감치 꼴찌를 예약한 상태였다. 3할대 승률로 김 회장의 통산 24시즌 가운데 최악. 한국시리즈(KS) 10회 우승의 대기록을 세운 ‘코끼리 감독’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화를 삭이는 방법을 털어놓았다. “등산이 취미야. 산에 가면 혼자 소리를 질러. 김태균(한화 4번 타자) 이 ××, 이렇게 퍼붓기도 해.” 오죽 답답하면 자식뻘 되는 선수까지 입에 올렸을까. 김 회장을 떠올린 건 며칠 전 프로야구 SK 염경엽 감독(52)이 경기 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2개월 절대 안정 소견을 받아서다. 지략이 뛰어나 ‘염갈량’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였지만 성적 부진에 식사는 거의 못 하고 줄담배만 피웠다. 프로야구 감독은 ‘지도자의 꽃’이라 부른다. 미국에서 야구 감독만은 매니저라고 한다. 다른 스포츠 감독은 모두 헤드코치다. 야구 감독이 경영자나 관리자의 역할까지 온갖 업무를 처리했던 데서 유래했다. 그만큼 대우도 해준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3년 동안 28억 원을 받는다. 염 감독의 계약 조건은 3년 25억 원. KBO에 따르면 이번 시즌 국내 감독이 받는 보수는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연평균 4억2000만 원이다. 국내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조사한 매출 상위 300대 기업의 미등기 임원 평균 보수(2018년 기준)는 2억6670만 원. 엄청난 부와 권한이 따르지만 지도자의 고뇌와 중압감은 상상 초월이다. 프로야구 감독은 흔히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된다. 두산의 오랜 팬으로 20년 넘게 지휘를 하고 있는 정치용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은 “야구단과 오케스트라는 포지션에 따른 역할에 충실하면서 얼마나 팀워크와 기량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프로야구 감독과 지휘자의 역할은 무척 닮았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니 카라얀이 ‘못하는 단원들을 다 묶어서 물에 빠뜨리고 싶다’고 하더라.” 정 감독이 전한 얘기다.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이 명장 김응용 회장과 동병상련이었던 모양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까지 생긴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카라얀은 원하는 사운드를 만드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프로야구 감독은 2, 3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 중도 사퇴하는 경우도 많다. 바늘방석에 앉은 감독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다 보니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5년 연속 KS에 올라 3번 우승한 김태형 감독은 통풍과 게실염에 걸려 병원 신세를 졌다. 가끔 골프를 치거나 친동생에게 위탁해 키우는 몸무게 100kg에 이르는 대형견 2마리와 시간을 보내는 게 낙이다. 리더는 심신이 지쳐도 고단한 내색 한번 하기 쉽지 않다. 김태형 감독은 선수나 코치 앞에선 절대로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힘들다고 하면 피부에 와닿을까요. 후배들도 꿈이 감독 아니겠습니까.” 어디 야구 감독뿐이랴. 각자 삶의 매니저인 우리 모두에게 힘겨웠던 2020년의 절반도 어느새 끝났다. 야구에서 5회말이 끝나면 4분의 클리닝 타임을 갖는다. 운동장에서 흙을 고르는 동안 감독과 선수들, 심판진도 숨을 고른다. 스트레스는 라틴어 ‘stringere’에서 파생됐다. ‘꽉 조인다’는 의미. 잘 풀어야 오래 달릴 수 있다. 올해의 후반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잠시 내려놓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 산에라도 가보면 어떨까. 사람 없는 숲에 가서 소리라도 질러 보자.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기록은 깨지지 않았네.” 야구에 별 관심이 없던 딸이 한화 얘기를 꺼냈다. 며칠 전 밥상머리에서였다. 한화의 연패 행진에 대한 관심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6월 태양처럼 뜨거웠다. 한화는 1985년 삼미 이후 35년 만에 역대 최다 타이인 18연패를 찍었다. 아시아 최다 연패의 수모가 아른거렸다. 스물다섯 노태형이 9회말 2사 후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때려 23일 만에 눈물겨운 승리를 안긴 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가슴 찡한 스토리도 전해졌다. 6년 전 신인 드래프트 당시 꼴찌에서 두 번째인 104번째로 뽑혀 프로 입단, 2군을 전전하다 강원 홍천 육군 11사단 복무(주특기 유탄발사기 사수), 올해 최저 연봉 2700만 원…. 그렇다고 신데렐라가 하루아침에 탄생한 건 아니다. 그는 천안 북일고 2학년 때인 2012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멤버다. 장충고와의 결승에서 1루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에 도루도 했고, 희생번트로 득점에 기여했다. “강습 타구를 잡아 병살로 만들며 위기 상황을 넘겼고, 그 이후 분위기가 넘어오면서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다. 큰 무대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결승 경기를 치러봤기에 프로 1군에 처음 나섰을 때나, 고비에서 긴장감을 줄일 수 있었다.” 8년 전 북일고의 결승에 나섰던 11명의 선수 가운데 이번 시즌 프로 1군에 등록된 선수는 노태형과 김인태(두산) 둘뿐이다. 매년 한 팀에서 10∼15명이 유니폼을 벗는다. 노태형은 프로 입단 후 오랜 무명 세월을 보내면서 시즌 종료 후 정리 대상 명단 발표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그래서 군에 자원입대한 뒤 짬날 때마다 캐치볼을 하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절박하게 운동에 매달렸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힘들 땐 고교 시절 영광도 떠올렸을 것이다. 마침 노태형이 잊지 못하는 황금사자기(제74회) 전국고교야구대회가 11일 막을 올려 22일까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무관중이지만 시즌 첫 대회를 기다려온 선수들의 열정은 뜨겁기만 하다. 올해 등록된 전국 고교야구팀은 81개에 이른다. 1997년 50개였던 팀 수는 2014년 62개로 늘었고 불과 5년 만인 지난해 80개가 됐다. 등록 팀만 176개인 리틀야구 저변 확대가 중고교 팀 창단으로도 연결됐다. KBO의 지원금도 창단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한국 야구 현실은 여전히 프로에 집중돼 있다. 고교야구 발전을 위한 노력은 부족하기만 하다. 팀 확대로 오히려 하향 평준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인 플레이를 위한 코칭 강화, 프로 선수가 아니더라도 야구와 연관된 다양한 진로를 모색해 주는 교육 프로그램도 절실하다. 신문, 방송, 유튜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콘텐츠 접근성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해졌다. 40년 가까이 중계를 하고 있는 허구연 해설위원은 “중고교 야구부 선수 생활이 일생을 좌우한다. 기량, 학업, 인성에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시기다. 성적보다도 좋은 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몇 년간 프로야구 관중 감소와 경기력 저하는 그 뿌리가 부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고교야구도 과거처럼 스타를 키워야 한다. “고교야구는 프로야구의 내일을 책임질 파이프라인이다. 산업적 가치뿐 아니라 팬들에게 ‘발견의 기쁨’도 줄 수 있다.” 최준서 한양대 교수의 얘기다. 진짜 야구팬이라면 내가 응원하는 프로팀 연고지 고교 팀에도 애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앞으로도 노태형과 같은 희망의 메시지가 쏟아질 수 있다. 누군가의 꿈에 주목하고 동행할 때 그 꿈은 더 커진다. 야구도, 나라도.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박성현(27)과 전인지(26)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투어를 평정한 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도 성공 시대를 열었다. 인기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팬클럽 회원수만 봐도 전인지는 어느새 1만 명을 돌파했고, 박성현은 9000명을 웃돈다. 두 선수의 이례적인 팬덤은 해외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다. 특히 두 선수는 모두 국내 최고 권위의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한국여자오픈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첫 승을 신고하며 대형 스타 탄생을 알렸다. 코로나19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가 올스톱되면서 박성현과 전인지 모두 국내에 머물고 있는 상태. 많은 골프팬들은 18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개막하는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에 박성현과 전인지의 동반 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도 있었기에 최고의 흥행카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출전 선수 명단에서 이름을 찾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커 보인다. 회사원 A 씨는 “두 선수가 언제 나올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느라 디스크에 걸릴 정도”라고 말했다. 세계 랭킹 55위 전인지는 현재 KLPGA투어 출전권이 없는 상태. KLPGA투어 대회에는 초청 선수로만 나설 수 있지만 한국여자오픈은 역대 우승자 자격에 따라 10년 출전권을 갖고 있어 자력으로 얼마든지 참가할 수 있었다. 전인지 측근에 따르면 “코로나19 때문에 클럽엔 손을 안 대고 체력훈련만 하면서 정신적 재충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지난달 KLPGA챔피언십에 출전했다가 2라운드 합계 6오버파로 컷 탈락한 박성현은 5월 24일 고진영과 이벤트 대회에 참가한 게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박성현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세마 스포츠마케팅은 “연습하면서 지낸다. KLPGA 출전 계획은 현재로선 없고, LPGA투어 대회 스케줄에 따라 플랜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현은 어깨가 아주 완전한 상태가 아니어서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고 훈련량을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성현, 전인지와 달리 같은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김효주, 김세영, 이정은, 고진영, 유소연 등이 번갈아 국내 무대와 나서고 있어 대비된다. 내년으로 연기된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다투는 선수 입장에선 대회 참가가 경기 감각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세계 상위 랭킹 선수들이 다수 출전할 경우 대회 비중이 높아져 랭킹 포인트 확보에도 유리할 수 있다. 박성현과 전인지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어서 무리한 대회 출전으로 자칫 부상이 재발할 우려가 있거나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는 데 따른 성적 부담도 불참 결정으로 연결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파 선수들의 가세로 KLPGA투어는 비록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있지만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평소 흔치 않던 국내파와 해외파의 대결 구도는 선수들의 기량 향상을 이끌고, 선수들에게 동기부여와 자극이 되는 계기도 되고 있다. 한 KLPGA투어 프로는 “LPGA투어 선수들의 차별화된 쇼트게임이나 코스 공략을 배울 수 있었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키워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골프 전문가는 “대회 출전이 물론 의무는 아니다. 개인 사정에 따라 불참할 수도 있다. 다만 한국여자오픈의 경우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대회이고, 이 대회를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만큼 출전했더라면 팬들의 성원에도 보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선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대회 출전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인지는 루키 때인 2013년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자신의 KLPGA투어 첫 우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했다. 한국여자오픈에서 신인 선수가 우승한 것은 1996년 김미현(은퇴), 2004년 송보배, 2005년 이지영, 2006년 신지애, 2011년 정연주에 이어 여섯 번째였다. 1월 LPGA투어 2개 대회에 출전해 공동 24위와 공동 45위의 성적을 거둔 전인지는 2018년 10월 KEB하나은행챔피언십 이후 우승이 없다. 세계 랭킹 3위 박성현은 2015년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메르스 여파에도 2만3000여 명의 갤러리를 몰고 다니며 생애 첫 승을 장식해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우승 상금은 2억 원에 5000만 원이 넘는 기아 카니발 하이 리무진을 부상으로 받았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한 유명 스포츠 스타가 있다. 지도자를 거쳐 지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같은 인기가 아예 없을 뻔했다. 과거 음주운전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신 해선 안 될 일이다. 운이 좋았다. 다행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리기사도, 콜택시도 드물던 시절이었다. 득남을 축하하러 온 친구들과 집에서 소주를 마신 뒤 택시 정류장까지 데려다주려고 차를 몰다 음주단속에 걸리기도 했다. 이제 그는 성인이 된 자녀에게 절주를 강조한다. 며칠 전 그를 만난 한 후배는 “형이 식사 후 대리운전까지 챙겨주더라”고 전했다. 술 마신 다음 날 새벽 골프라도 있으면 그는 꼭 택시를 탄다. 이처럼 다시 찾아온 인생의 황금기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대단하다. 법규와 처벌이 강화되고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지는 여론의 시선이 따가워진 요즘 술 먹고 핸들을 잡는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지난해 한 프로야구 스타는 회식 다음 날 아침 자녀를 등교시키고 귀가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숙취운전’ 사실이 드러나 19년 프로생활을 하루아침에 마감했다. 성실한 이미지를 가진 그였지만 모든 걸 잃었다. 음주운전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마이클 무어는 ‘멍청한 백인들’이란 책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건 자신의 삶만 망치는 데 그칠 수 있지만 음주운전은 남의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다’고 썼다. 저자는 음주운전자에게 당한 교통사고로 오른팔을 곧게 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음주운전을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 한 이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습은 되풀이된다. 마약중독보다 음주운전 재범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스포츠 무대에서도 음주운전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KBO에 따르면 2012년 이후 해마다 음주 관련 징계가 나왔다. 단속 기준과 처벌 수위를 한층 높인 ‘윤창호법’이 시행된 지난해 역대 최다인 4건에 이르렀다. ‘주량=운동 실력’으로 간주하거나 술에 관대한 문화가 여전한 탓이다. 명장 김인식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17년 프로사령탑 재직 기간 연초 시무식마다 빼놓지 않은 말이 있다. “음주운전 절대로 해선 안 된다.” 피, 땀, 눈물 흘려가며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어서다. 김 전 감독은 “강한 훈련으로 몸이 기억해야 경기를 이기듯 반복교육만이 음주운전을 근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연맹이나 구단들은 신인뿐 아니라 모든 선수를 대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 음주운전을 안 하겠다는 단체 서약이라도 받으면 어떨까. 음주운전은 당사자뿐 아니라 동료, 감독, 구단도 공동 책임이 있다는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한영관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음주운전이 평생 죄악이라는 걸 어려서부터 심어줘야 한다. 조기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젠가 유튜브로 벌들의 세계를 다룬 BBC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다. 어떤 일벌은 꿀을 수집하러 갔다 발효된 수액을 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정신을 가누기 힘들게 된다. 비틀거리며 집을 찾은 벌들은 경비 벌들에게 출입이 통제되거나 심하면 다리가 모두 절단되는 형벌을 받는다. 벌들도 음주비행을 죽음의 키스로 여기는 듯하다. 음주운전으로 삼진 아웃된 강정호가 국내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1년 자격정지가 솜방망이라거나,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등 논란이 거세다. 5일 귀국한 그의 거취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아닐지 모른다. ‘제2의 강정호’가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음주운전에 ‘멀리건’은 없어야 한다. 공동체 운명과 직결되는 개인의 책임 있는 행동이 코로나19로 더욱 절실해지지 않았나.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여자 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은 며칠 전 TV를 보다 눈시울을 붉혔다. 박현경(20)이 KLPGA 챔피언십에서 처음 투어 정상에 오른 뒤 우는 걸 보고 나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후배 우승에 울컥한 건 처음이다. 루키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았다”고 답했다. 두 선수는 지난겨울 처음으로 미국에서 한 달 넘게 같이 훈련하며 가까워졌다. 박현경은 아마추어 시절 또래 가운데 선두주자였다. 지난해 KLPGA투어에 데뷔해 기대를 모았지만 무관에 그쳤다. 반면 동기 조아연이 2승에 신인왕을 차지했고, 친구 임희정은 3승을 거뒀다.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프로골퍼 출신 아버지와 처음 떨어져 동계훈련을 했다. 고진영에게 많은 걸 물어봤다. 고진영도 동갑인 김효주, 백규정, 김민선 등과 경쟁하며 마음고생을 했기에 자신을 보는 듯했다. “진영 언니가 너무 고맙다. 결과적으로 경쟁자들이 좋은 영향을 끼쳤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해줬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런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첫 승의 꿈을 이룬 박현경의 소감은 남자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의 성공 스토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경력은 특이하다. 삼성화재에서 11년간 선수로 뛰다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현대캐피탈로 이적해 선수, 감독으로 10년을 보내고 있다. 최 감독처럼 삼성과 현대를 두루 거친 이력은 드물다. “내가 첫 케이스여서 현대로 옮겼을 때 2주 동안 아무 생각이 안 났다. 하지만 서로 다른 두 조직 문화를 통해 성장했다.” “삼성은 절제된 틀에서 체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방 안의 물건들을 쓴 뒤 꼭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 식이다. 현대는 다르다. 똑같이 사용은 하게 해도 정리보다는 활용만 잘하면 그뿐이다.” 유일하게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 감독의 리더십은 관리와 자율이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듣는다. 삼성과 현대는 스포츠에서도 최대 라이벌이다. 1978년 나란히 농구단을 창단하면서 스카우트 전쟁에 불이 붙었다. “삼성에서 이동균이란 선수를 뽑기 위해 제주에 피신시켰는데 현대가 경비행기까지 띄워 데려갔다. 그가 울산 현대영빈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삼성이 다시 빼돌려 서울로 데려갔다.” 당시 삼성 스카우트담당이던 김운용 전 나인브릿지골프장 대표에게 들은 후일담이다. 현대는 삼성행이 유력했던 이충희를 잡기 위해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와 현금 등을 쏟아부었다. 삼성은 문경은을 영입하려고 그의 부모를 괌까지 데리고 갔다. 현대의 접촉을 차단할 의도였다. 첩보전 같은 스토리에 팬들은 열광했다. 삼성과 현대의 양강 체제는 농구를 최고 겨울스포츠로 올려놓는 원동력이 됐다. 이충희, 김현준 등 스타들은 화려한 플레이와 투지로 코트를 뜨겁게 달궜다. 후일 기아, 연세대가 아성을 깨뜨리는 과정도 극적이었다. 배구 역시 1995년 삼성화재 창단 후 현대와 삼성의 자존심 대결이 흥행 열기로 이어졌다. 최근 농구의 추락은 맞수 개념이 희석된 것도 원인이다. 한양대 최준서 교수는 “라이벌 구도로 리그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수익 또는 팬 수요를 늘려 그걸 다시 배분하면서 파이를 키울 수 있다. 다만 특정 팀이 독식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연맹, 팀, 미디어는 라이벌의 순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라이벌 없는 리그는 망한다. 라이벌의 어원은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다. ‘남과 같은 하천을 물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 치열하게 맞붙은 뒤 승패가 갈리면 악수하는 모습이 비단 스포츠에서만 아름다운 장면은 아닐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라이벌끼리도 손을 잡아야 발전하고 공존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더욱 그런 세상이 됐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24년째 마이크 앞에 서고 있는 국내 최장수 골프 해설위원은 마치 처음 카메라 앞에 나설 때만큼 가슴이 설레 보였다. 코로나19를 뚫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가 마침내 재개됐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김재열 골프 해설위원(60)이다. 김재열 위원은 14일 경기 양주시 레이크우드CC(파72)에서 개막한 제42회 KLPGA 챔피언십에서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와 함께 해설을 맡았다. 1라운드 중계에 앞서 그는 이날 오전 3시에 눈을 뜬 뒤 오전 5시 골프장에 도착해 적막이 흐르는 18홀을 돌며 코스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린에서는 공을 직접 굴려보며 스피드와 브레이크를 체크했고, 핀 위치에 따라 남은 거리와 그린 경사를 꼼꼼하게 메모해 뒀다. 발품에서 비롯된 생생한 정보는 그의 해설이 가진 차별화된 장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김재열 위원은 “그동안 1000라운드 넘게 생중계를 했지만 늘 새로운 기분으로 준비했다. 오늘은 더욱 특별한 느낌이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때문에 대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 세계 골프 투어가 올스톱됐지만 다행히 세계가 인정한 방역시스템 덕분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KLPGA투어가 열리게 된 데 자부심을 느낀다. 아무 탈 없이 투어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올 시즌 KLPGA투어 판도에 대해서 “2019년에 이어 최혜진의 강세가 예상된다. 그 독주를 누가 막느냐가 흥미로울 것 같다. 지난 시즌 신인 때 뛰어난 활약을 펼친 조아연, 임희정, 이소미 등도 2년차를 맞아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기대를 모은다”고 말했다. 주목할 선수로는 강심장으로 유명한 이다연을 꼽았다. 미국 유학 시절 골프와 인연을 맺은 김 위원은 미국 켄터키 주의 미니투어에서 선수로 활동하며 우승 경험도 했다. 생애 베스트 스코어는 9언더파 63타. 켄터키 주에서 골프 교습가로 활동하다가 귀국 후 1997년 한국스포츠TV에서 골프 중계를 시작한 뒤 줄곧 한 우물을 파고 있다.필드에서 숱한 명승부의 현장을 지킨 김 위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 순간으로 네 가지 장면을 언급했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 투혼 끝에 우승한 US여자오픈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박인비 금메달, 2007년 금강산에서 열린 KPGA투어 NH농협오픈, 2015년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프레지던츠컵이다. 박세리는 어려운 외환 위기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숱한 ‘세리 키즈’를 배출한 한국 골프의 전설이다. ‘골프 여제’ 박인비는 골프가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한 리우에서 세계 정상에 서며 한국의 저력을 만방에 알렸다. 금강산 골프 대회는 KPGA 사상 첫 북한에서 열리면서 평화의 의미를 더했다. 미국과 인터내셔널(유럽 제외) 팀의 대결인 프레지던츠컵은 국내 골프 대회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대회 하나하나가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에 김 위원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골프 역사와 호흡을 함께 한 셈이다. 명인 열전이라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를 1997년부터 해마다 중계하고 있는 것도 남다른 경력이다. 올해 마스터스는 코로나19로 4월에서 11월 개최로 연기됐다. 봄꽃이 만발한 예년과는 달라질 대회 분위기가 그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다가갈 것 같다. 김 위원은 “골프나 해설이나 흐름이 중요하다. 그 부분을 유지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더욱 묘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당초 7월로 예정된 도쿄올림픽 골프 해설을 위해 김 위원은 일찌감치 경기 장소인 일본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CC를 방문해 코스 답사를 하기도 했다. 올림픽 연기가 그에게도 아쉽기만 하다. 김재열 위원은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더욱 긴 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철저하게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4년 전 리우 때처럼 현장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울컥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 준비하겠다”고 말했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한국 골프의 간판스타 최경주(50)는 군 생활 경험을 소중하게 여긴다. 고향이 전남 완도인 그는 1990~1992년 육군 31사단 단기사병(방위)으로 해안 초소에서 근무를 했다. 경계병과 취사병 등으로 복무한 그는 “퇴근 후 골프 연습도 하고, 레슨도 하면서 돈도 벌었다. 고참 지시로 골프 스윙하듯 소총으로 솔방울을 치다 간부에게 걸려 영창 갈 뻔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조직 문화와 시간 활용의 중요성 등을 터득하며 군대에서 철들었다는 게 그의 얘기. ‘탱크’라는 별명도 맘에 들어 한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앞으로만 전진 하는 자신의 스타일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수도방위사령부 탱크 부대를 방문해 진짜 탱크에 탑승한 적도 있다. 당시 탱크에 올라탄 소감에 대해 “탱크를 타보니 묵직한 무게감이 지면에 착 달라붙어 가는 느낌이 좋다. 탱크의 강한 추진력이 내 이미지와 일치하는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부대에서 받은 기념품도 탱크였다. 육군 홍보대사로도 활동한 최경주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모자나 신발, 캐디백 등에 태극기를 달고 출전하기도 했다. 낯선 이역만리에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의미와 함께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줬다고 한다. 그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이어 내년으로 연기된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한국 남자골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후배들에게도 군대부터 빨리 다녀와서 운동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자주 한다. 배상문이 입대 시기를 놓고 논란이 될 때 최경주는 “버릴 수 있는 것은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버티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남자 골프 선수에게 병역은 그 또래 다른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중요한 문제다. 아시아경기 금메달로 면제를 받은 김경태, 강성훈 등의 케이스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한국 골프의 새로운 에이스로 떠오른 임성재, 김시우 등도 언젠가 입대를 해야 한다. 이런 선수들에게도 최경주의 조언도 과거와 똑같을 것 같다. 최경주는 18일 경북 포항에 있는 해병대 신병훈련소 격인 교육훈련단을 찾는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살고 있던 큰 아들 호준 군(23)이 해병대에 입대하기 때문이다. 2016년 미국 대학에 입학한 호준 군이 해병대 입대 의사를 밝히자 최경주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앞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환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남 1녀를 둔 최경주는 가족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호준 군이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할 때는 아들에게 아빠가 필요한 시기라며 투어 생활을 한동안 중단한 채 가정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골프를 하는 아들을 위해 캐디를 나서기도 했다. 아들의 입대 날짜에 맞춰 지난달 귀국한 최경주는 며칠 전 2주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자가격리조치를 마쳤다. 올여름 챔피언스 투어 데뷔를 앞둔 최경주는 “입소식을 본 뒤 다음날 출국할 계획이다”고 말했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파란 하늘 아래 펄럭이는 만국기,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줄다리기와 계주…. 5월이면 열리는 학창 시절 운동회(체육대회) 풍경이다. 누구나 추억 하나쯤은 떠오를 게다. 하지만 올해는 그 모습을 보기 힘들게 됐다. 코로나19가 앗아간 소중한 일상에는 체육대회도 포함됐다. 당장 취소보다는 연기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많다. 구멍 난 수업일수를 채워야 할 형편이니 쉽지 않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체육대회는 비용이나 학사일정에 밀려 천덕꾸러기 대접 아니었나. 경기와 응원 등 준비 과정에서 교육 효과가 큰데도. 어디 체육대회뿐이랴. 학교체육은 입시 위주 교육 심화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수업은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한 중학교 3학년 사례를 보자. 2분짜리 국민체조 동영상과 6분짜리 여자 배구 한일전 하이라이트 시청, 약식 퀴즈로 진행됐다. 10분여 만에 수업을 셀프 종료한 학생들은 수학, 영어 학원 숙제에 매달렸다. 모든 온라인 체육수업이 맹탕은 아닐 것이다. 공들인 준비물로 학생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교사들도 있다. 하지만 대면지도가 필수인 체육 과목은 온라인 수업도 남다른 노력 없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평소에도 뒷전으로 밀릴 때가 많은 체육수업이 코로나19 직격탄 속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신세가 된 듯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10대의 체육참여율(일주일에 1회 이상)은 50.1%로 전 연령에서 가장 낮게 조사됐다. 지난해 11월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146개국 11∼17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하루 신체활동량 조사에서 한국은 1시간 미만이 94.2%로 전체 1위였다.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대 연구에 따르면 중고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어떤 조직에 속해 스포츠를 계속해 온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비만도와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현저하게 낮고 성인이 돼서도 스포츠에 계속 참여할 확률이 높다.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 출신은 백발이 돼도 야구장을 찾기 마련이다. “어릴 적 땀으로 얻은 성취감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다. 어른이 되었을 때 다시 살아나 평생에 걸쳐 운동을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해준다.” 이기광 국민대 교수의 말이다. 13일부터는 등교 개학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당분간 코로나19 재확산을 우려해 실내공간에서의 체육수업은 피하도록 했다. 마스크도 필수다. 당연한 조치다. 다만 무조건 ‘체육=자습’이 돼선 곤란하다. 체육은 면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므로 대면 수업을 하되 거리를 두고 개인별 운동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성봉주 박사는 “활동 자체를 꺼리는 위축된 자세보다는 안전을 보장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노력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온라인과의 병행 수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콘텐츠 개발이 절실하다. 관계당국도 스포츠클럽 활성화, 운동시설 확충 등 정책 마련과 실행이 더욱 요구된다. 약 100년 전 동아일보는 ‘민족 신체의 개조는 위생과 체육에 의해야 한다. 그중 적극적 효력을 가진 것은 체육이다. 특히 내 세대의 주인인 청소년, 남녀 학생의 체육이다. 지금보다 더욱 학생체육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근래에 소학생과 여학생 중에도 체육이 왕성한 경향이 있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환호할 현상이다’라는 기사를 1면 톱으로 실었다. ‘체육과 경기’라는 1923년 10월 이 글은 요즘도 여전히 가슴에 와닿는다. 코로나19 사태는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나가고 있다. 학교체육도 아이디어와 혁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어야 사회도 건강해진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정상급 프로골퍼나 주말골퍼가 똑같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 있다. 첫 홀 티샷을 할 때다. 그날 처음 날리는 샷이니만큼 첫 단추를 꿰듯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진다. 어떤 톱 골퍼들은 드라이빙 레인지에 가면 웨지가 아니라 드라이버 샷부터 연습을 시작하기도 한다. 1번 홀 티샷을 가정한 것이다. 체계적으로 위밍업을 하는 프로들과 달리 아마추어 골퍼들은 허겁지겁 티박스로 나와 몸도 제대로 풀지 않은 채 급하게 스윙을 하다 보니 미스샷이 나오기 일쑤다. 첫 홀 멀리건을 용인하는 경우도 많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건 늘 어렵고 힘들지 모른다. 2020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도 그렇게 보인다. 지난해 12월 베트남에서 효성챔피언십으로 개막전을 치른 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대만여자오픈이 취소된데 이어 국내에서는 아직 막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개막전은 사실상 KLPGA투어의 본격 레이스를 알리는 중요한 무대다. 하지만 4월 예정된 롯데렌터카여자오픈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5월 15일 개막하려던 NH투자증권 레이디스챔피언십과 5월 20일로 잡혔던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도 무산됐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KLPGA투어가 연쇄적으로 취소되는 데는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이다. 선수, 갤러리, 운영 요원 등의 건강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그래도 국내 골프장은 코로나19 사태에도 무풍지대로 불린다. 골프가 야외 스포츠인데다 다른 운동과 달리 신체 접촉이 없고 각자 장비를 사용하는 만큼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적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 만큼 무관중으로 KLPGA투어를 진행할만한 시기가 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프로야구는 5월 5일, 프로축구는 5월 8일 시즌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도 KLPGA 대회 취소 발표는 줄을 잇고 있어도 열겠다는 발표는 찾기 힘들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한 데다 그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는 기업 입장에서는 대회 개최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개막전 타이틀 스폰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 골프 매니지먼트 업체 대표는 “첫 대회는 아무래도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자칫 불상사라도 나온다면 큰 타격이 될 수 있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불황의 그늘이 짙어진 것도 대회 취소로 직결되고 있다. 한 골프 마케팅 전문가는 “회사 경영이 힘들어져 적자 규모가 커지고 정부 지원에 구조조정, 무급휴직 등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골프 대회를 개최했다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 대회 개최 목적으로는 프로암대회 등을 통한 네트워크 강화나 우수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도 큰 데 최근 가라앉은 국내 여건과는 맞지 않다는 여론도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국내 개막전으로 5월 14일부터 양주 레이크우드CC에서 제42회 KLPGA챔피언십을 개최하기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누구도 선뜻 첫 대회라는 ‘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가운데 KLPGA가 결자해지에 나섰다는 얘기다. 일단 시동을 걸었어도 KLPGA투어가 정상 궤도에 오를지는 불투명하다. KLPGA챔피언십 다음 대회로 잡힌 E1 채리티 챔피언십(5월 29~31일·사우스스프링스)도 당초 취소하려고 했다. 하지만 KLPGA 측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방침을 바꿔 대회 개최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골프 해설위원은 “E1은 회사 최고위층이 KLPGA투어 회장 출신이어서 어려운 여건에도 대회를 개최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 같다”고 전했다. 6월 12일 개막 예정인 에쓰오일 챔피언십도 불투명해 보인다. 에쓰오일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제품 소비 감소와 국제 유가 급락의 영향으로 올해 1분기(1~3월) 영업 손실이 1조73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한골프협회가 주최하는 기아자동차 제34회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6월 18~21일·베어즈베스트청라)는 5월 초 연휴 끝나고 대회 개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사태 추이와 함께 자동차 업계도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만큼 대회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다. 7월 10일 중국 웨이하이포인트에서 개막하는 아시아나항공오픈은 국내 개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개최할 경우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 조치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정상 개최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선수들의 국내 입국도 난항이 예상돼 성사될 경우 KLPGA투어 선수 위주로 치를 전망이다. 다만 항공업계가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도 대회 개최의 주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대회가 열린다면 장소는 아시아나 또는 오크밸리가 유력하게 떠올랐다. 10년 넘게 고속질주한 KLPGA투어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위기를 극복한다면 더욱 단단해진 무대 위에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 일단은 스타트와 초반 페이스가 중요해 보인다. 한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는 시즌 재개 시점을 7월로 잡았다. 6월 예정됐던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은 10월로 연기됐다. 6월 19~21일 예정됐던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을 시작으로 시즌을 재개할 계획이었던 LPGA투어는 재개 시점을 7월 15~18일 예정된 다우 그레이트 레이크스 베이 인비테이셔널로 더 늦췄다. 8월말 국가 대항전 UL 인터내셔널 크라운은 올해 개최하지 않는다. 한 차례 연기됐던 볼빅 파운더스컵, 롯데 챔피언십, 휴젤-에어프레미아 LA오픈, 메디힐 챔피언십 등도 올해는 열지 않는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코로나19 사태로 이번 시즌 프로농구가 조기 종료되면서 현대모비스 양동근(39)은 은퇴를 선언했다.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갖고 있지만 체력에 부담을 느끼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양동근이 신인 시절부터 줄곧 호흡을 맞춘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57)은 며칠 전 3년 재계약을 했다. 이로써 한 팀에서만 20년을 보내게 됐다. 유 감독은 35세이던 1998년 역대 최연소로 감독을 맡아 줄곧 지휘봉을 쥐고 있다. 감독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는 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보기 드문 장수(長壽)다. 유 감독은 숫자 ‘6’을 분신처럼 여긴다. 처음 농구공을 잡은 1972년 서울 상명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등번호로 썼다. 연세대와 기아, 대표팀에서 명가드로 활약할 때도 백넘버는 그대로였다. 유 감독이 2004년 처음 현대모비스에 부임했을 때 가드 양동근이 입단했다. 막내는 등번호를 놓고 고심했다. 형들이 먼저 정하고 남은 번호는 3, 6 두 개뿐. 새 유니폼에 6이 새겨졌다. “유 감독님이 이걸로 하라고 하시더라. 나중에 사연을 듣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16년 동안 황금기를 보냈다. 둘이 합작한 챔피언결정전 6회 우승은 감독으로도, 선수로도 모두 국내 최다 기록. 현대모비스는 6번을 영구 결번한다. 현대모비스 전신인 기아 창단 멤버였던 유 감독은 “내게도 큰 영광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무릎 부상으로 27세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양동근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건재를 과시했다. 출전 시간이나 부상 관리 등 유 감독의 배려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장수다. 전략이 많아 ‘만수(萬手)’로 불리는 유 감독. 그 바탕은 현미경 같은 세밀한 훈련이다. “수비할 때 50cm만 더 나가” “(그 선수는) 왼쪽을 파는 게 90%이니 그쪽을 막아”라는 식이다. 양동근은 유 감독의 지적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숙소 방에 수십 장의 메모지를 붙여뒀다. 국내 최장수 사령탑은 지도자로 새 인생을 시작할 양동근에게 무엇부터 강조할까. 유 감독은 지난주 양동근을 만나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낮은 자세를 가져라. 주위의 마음을 얻는 게 기술보다 먼저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선수 은퇴 후 첫 직장이던 연세대 코치 시절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했다고 소개했다. “유망주 스카우트를 위해 전국을 돌며 고교 감독, 코치 가방까지 대신 들어줬다. 담배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 비우는 게 일상이었다. 학부모와 식사 후에는 먼저 나와 신발도 (신기 편하게) 돌려 놔줬다.” 오랜 세월 젖어있던 스타 의식을 걷어내면서 새롭게 세상에 눈을 떴다는 게 그의 얘기. 그러면서 배려와 소통, 관리의 중요성을 터득하게 됐다. 유 감독은 국내 스포츠의 병폐로 꼽히는 학연, 지연 등에 따른 지나친 연고주의를 멀리했다. 조기 은퇴 배경으로 파벌 싸움에 휘말린 영향도 있다. 주전과 후보,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감독으로 역대 최다인 8회 우승을 기록한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찬바람을 맞아봐야 눈과 귀가 열린다. 그래야 팀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고 말했다. 골프에서도 힘을 빼야 굿샷이 나온다. 어디 스포츠뿐일까. 꽃길만 걷던 엘리트가 뛰어난 리더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완장 찼다고 군림하려다 패가망신할 수 있다. 15년 전 양동근은 평생 한 번뿐인 신인상을 수상한 뒤 감사 선물로 주위에 꽹과리를 돌렸다. 스타 탄생을 알리는 특이한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꽹과리는 사물놀이에선 장구, 북, 징과 조화를 이뤄야 신명나게 그 흥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다. 혼자 튀어선 좋은 연주가도, 좋은 지도자도 결코 될 수 없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집콕’ 하던 지난 주말 TV 스포츠 채널을 틀었더니 재방송 일색이었다. ‘다시 보는’, ‘명장면’…. 타이틀은 달라도 모두 철 지난 내용. 예년 같았으면 막 시즌을 개막한 야구, 축구, 골프 생중계 보는 재미가 쏠쏠했을 터.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국내외 스포츠도 올스톱된 지 오래다. “시청률이 거의 0%”라며 한숨짓던 스포츠 PD 후배가 아른거렸다.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예전 영화 한 편이 떠올라 VOD로 시청했다. ‘그들만의 리그’(1992년)다. 톰 행크스(64)가 1940년대 여자 야구팀 감독으로 등장한다. 두주불사인 거포 출신 사령탑 역할을 위해 14kg을 한 번에 찌웠다. 급격한 체중 변화 후유증으로 당뇨를 앓았던 그는 지난달 연예인 아내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격리 조치됐다. 최초의 할리우드 스타 감염자가 되면서 은막 밖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다시 안방극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는 1943∼1954년 열린 미국 여자 프로야구가 배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야구 선수들도 징집 대상이었다. 선수 부족으로 리그가 휘청거리면서 여자 프로야구를 도입해 새 활력소로 삼았다. 영화에서는 팝스타 마돈나가 댄서 출신 날라리 외야수로 눈길을 끈다. 세계대전의 참화에도 미국에선 프로야구가 지속됐다. 그 배경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후 야구 중단론이 거세게 일었다. 메이저리그 커미셔너 케니소 M 랜디스는 1942년 1월 ‘야구를 해도 되겠느냐’는 서신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이에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회신했다. ‘야구를 계속하는 게 국가를 위해 최선이다.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야구는 최고의 여가 활동이 될 수 있다….’ 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린 라이트 레터’다. 랜디스는 대통령의 주문대로 야간경기까지 더 늘려 노동자들이 일과 후 관전하도록 했다. 골수 공화당원 랜디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을 혐오했다. 하지만 야구 앞에 진영은 없었다. 메이저리그가 국민 스포츠로 성장한 데는 전쟁 중에도 지친 삶에 비타민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루스벨트 대통령이 살아서 최근 그런 편지를 받았다면 뭐라 했을까. 바이러스의 공포는 전쟁과 차원이 다르다. 언제 사라질지 아무도 모르는 암담한 현실. 로봇이 야구를 하면 모를까, 선수와 관중의 건강 보장 없이 ‘플레이 볼’을 외칠 수 없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도 기약 없는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생중계까지 되는 팀 자체 청백전 열기는 실전 못지않게 뜨겁다. SNS, 인터넷 등을 통한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팬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에 제한이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연간 500억 원 안팎인 야구단 예산 가운데 모기업 지원금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불황으로 돈줄이 되는 계열사가 휘청거린다면 야구단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한시적으로라도 구장 사용료 인하나 시즌 개막 후 입장권 구입에 대한 소득공제 등 지원이 절실해 보인다. 도서 구입, 문화공연 등에선 같은 혜택이 이미 주어지고 있다. 야구 선수들도 기부, 고통 분담에 더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생이 중요하다. 영화에서 감독 행크스는 “야구에 눈물은 없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어이없는 실수로 자신에게 혼난 선수가 울먹이자 던진 말이다. 운다고 문제가 풀리진 않으니 훈련이든 뭐든 하라는 의미. 행크스는 확진 판정 때 이 대사를 소환했다. “이 상황을 헤쳐 나가려면 전문가 조언을 따르고, 건강에 신경 쓰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 기억하자. 야구에서 울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야구에 눈물은 없다지만 야구가 눈물을 닦아주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마치 피난이라도 떠난 듯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한국 골프 유망주 전영인(20·메디힐) 얘기다. 전영인은 최근 유명 골프 교습가인 아버지 전욱휴 프로와 급하게 이사를 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 게인스빌에서 500km 넘게 떨어진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거처를 옮겼다.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먼 거리를 부랴부랴 이동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불안감 증폭과 함께 훈련 장소를 잡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일 현재 플로리다 주의 확진자는 7495명이고 조지아 주는 4748 명이다. 게인스빌은 인구 13만 명 정도의 소도시인 반면 애틀랜타는 인구가 50만 명에 이르고 한국 교민도 많다. 전욱휴 프로는 “플로리다에는 나이가 드신 분들이 많이 살고 골프장도 은퇴자 위주로 운영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골프장이 대부분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래도 대도시 생활이 나을 것 같다고 봤다”고 말했다. LPGA투어는 2월 16일 끝난 호주여자오픈 이후 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중단됐다. 언제 투어가 재개될 지 아무 기약이 없다. 그래도 전영인은 투어에 복귀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훈련에만 매달리고 있다. 애틀랜타 지역에서도 영업을 하고 있는 골프장은 손으로 꼽을 정도. 전영인은 회원제 골프장인 TPC 슈가로프CC에서 연습 라운드와 샷 점검에 구슬땀을 쏟고 있다. 이 골프장도 주 당국의 지시에 따라 프로숍은 문을 닫았다. 골프장 레스토랑도 영업을 중단해 식사도 할 수 없다. 접촉에 따른 감염을 피하기 위해 1인 1카트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나마 코스는 야외여서 폐쇄되지 않았다. 전영인은 “일상이 무척 단조로워졌다. 눈 떠 있는 시간과 자는 시간으로 나뉜 것 같다”며 “하루 종일 연습하다 오후 6시에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는다”고 일상을 소개했다. 통행 제한 조치에 따라 오후 9시 이후에는 집 밖을 돌아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2000년에 태어난 전영인은 LPGA투어의 연령 제한(만 18세) 규정에 특별 예외를 인정받아 18세 때인 2018년부터 2부인 시메투라 투어에서 뛰었다. 지난해 부푼 기대를 안고 LPGA투어에 데뷔했으나 18개 대회에서 10위 이내 진입은 한 번도 없었다. 상금 랭킹 126위에 처져 퀄리파잉(Q) 시리즈를 거쳐 LPGA투어 카드를 되찾았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며 낮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 탓이다. 비록 쓴 잔을 마셨어도 지난 연말 메디힐과 메인스폰서 계약을 하며 안정된 투어 환경을 마련했다. 그의 성장 가능성이 좋은 평가를 받은 덕분이었다. 지난 겨울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소화한 전영인은 우승이라는 부푼 목표를 품은 채 아버지와 함께 새 시즌 대비에 전념했다. 그린적중률을 80%까지 높이려고 아이언 샷 정확도 향상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뜻하지 않는 직격탄을 맞아 언제 실전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를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됐다. 전영인은 ”대회가 계속 연기되고 있어서 아무런 계획도 잡을 수 없는 상태라 답답하다. 하지만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LPGA투어는 6월초까지 예정된 모든 대회 일정을 취소 또는 연기했다. 6월 4일 개막할 예정이던 US여자오픈은 12월 11일로 옮겨졌다. 지난해 ‘핫식스’ 이정은이 우승했던 대회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피겨 여왕’ 김연아가 빙판 밖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특별연사로 나섰을 때다. 이 회의는 평창 올림픽 개막 7일 전부터 패럴림픽 폐막 7일 후까지 모든 적대행위 중단을 촉구하는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하는 자리였다. 진녹색 정장을 입은 김연아는 3분 40초 동안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영어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당시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했던 데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김연아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올림픽 정신은 특정 종교나 세대뿐 아니라 국가, 지역, 믿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올림픽의 목적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과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스포츠라는 아름답고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낼 것이라 강하게 믿는다.’ 올림픽 휴전 결의는 1993년 시작된 뒤 여름, 겨울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 유엔총회에서 채택해 왔다.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도 지난해 12월 이뤄졌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보이지 않는 적 앞에 협정은 무용지물이 된 듯하다. 7월 24일 개막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은 1년 연기됐다. 올림픽 연기는 124년 사상 처음이다. 과거 3차례 올림픽이 취소된 적이 있는데 모두 전쟁이 그 사유였다. 이번 올림픽 연기도 넓게 보면 바이러스를 상대로 한 전쟁 때문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확진자와 사망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 대공황의 공포감이 감돈다. 각국 정상들은 현 상황을 세계대전 같은 전시로 간주하고 있다. 이동 금지, 배급, 군수물자 조달 등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다급한 모습은 TV만 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올림픽 강행을 고집하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은 대회 보이콧까지도 불사하겠다는 국제적인 반대 여론에 백기를 들었다. 도쿄 올림픽 연기는 올림픽 휴전의 전통을 되돌아보게 한다.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무기를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그리스어)로 불리는 올림픽 휴전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776년부터 393년까지 1200년 가까이 지속된 고대 올림픽은 전쟁에 자주 시달렸다. 그래도 대회 기간만큼은 출전 선수와 여행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그리스 전역에 휴전이 선포됐다. 이를 어기는 도시국가는 중징계를 받았다. 스파르타는 무력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양 20만 마리에 해당하는 금액을 벌금으로 내고, 대회 출전이 금지됐다는 기록도 나온다. 심지어 재판이 중단되고 사형도 연기됐다. 고대 올림픽에는 평화와 풍요에 대한 그리스인의 염원이 담겨 있었기에 대회 기간만이라도 창칼뿐 아니라 적대감도 내려놓자는 의도였다. 고대 올림픽은 전쟁과 함께 전염병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로 황금기를 구가하던 아테네의 쇠락 원인으로는 스파르타와 27년간 치른 펠로폰네소스전쟁과 전염병이 꼽힌다. 아테네대 연구에 따르면 장티푸스가 만연해 전쟁보다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았다. 아테네 시민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체대 조준호 교수는 “종교 의식의 성향이 강했던 고대 올림픽은 역경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기원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수천 년 세월이 흘렀어도 올림픽을 둘러싼 위협은 여전하다. 전쟁과 전염병뿐 아니라 정치적 야심과 상업주의가 가세하면서 올림픽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인류의 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스포츠의 힘과 잠재력을 강조했다. 처음으로 홀수 해에 열리는 도쿄 올림픽이 진정한 평화와 치유의 무대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바이러스 격멸이 먼저겠지만.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당당 세계 2위. 동경(東京)에 감격의 첫 태극기. 한국 레슬링 사상 최초의 은메달. 선수단과 동포 함께 울어.’ 동아일보 1964년 10월 15일자 호외 1면에는 이런 제목과 함께 환하게 웃는 한 선수 사진이 크게 실렸다. 주인공은 도쿄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딴 당시 21세 청년 장창선(77)이다. 반세기 전 장창선의 쾌거는 도쿄가 올 7월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누군가의 꿈이 되는 삶을 살았던 그는 몇 년째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지난해 건강 악화로 80일간 입원했다. 아들 장유진 씨는 “노환으로 현재 인천의 한 요양원에 계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면회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장창선은 선수 시절 159cm의 키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서구 선수들을 연이어 제압했다. 가슴 졸이면서 지글거리는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던 국민들은 올림픽 결승에서 장창선이 일본 요시다 요시카쓰에게 당한 패배에 땅을 쳤지만 당당한 세계 2위였다. 4대 독자인 장창선은 6·25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진 뒤 어머니 밑에서 컸다. 어머니는 인천 신포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며 어렵게 3남매를 키웠다. 어머니 몰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동아일보 등 신문 배달을 한 장창선은 학창 시절 여름에는 아이스케이크, 겨울에는 찹쌀떡을 팔았다. 그래도 그는 “신문, 아이스케이크통을 들고 산동네를 달리다 보니 하체가 단련됐다”고 밝혔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긍정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는 선진 기술을 배우겠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정부 지원으로 석 달 동안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1966년 세계선수권에서 딴 금메달은 모든 종목을 통틀어 한국 최초였다. 건강을 잃기 전까지 그는 스포츠 행정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태릉선수촌장으로 후배 뒷바라지에 앞장섰다.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도 선정됐다. 아들 장 씨는 “아버지가 올해 도쿄 올림픽을 누구보다 반겼을 텐데…. 쾌차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초였던 1964년 도쿄 올림픽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됐다. 장창선의 은메달을 계기로 태릉선수촌이 마련됐다. 스포츠 과학도 싹을 틔웠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한 뒤 한국이 올림픽 ‘톱10’에 진입하는 데도 초석이 됐다는 평가다. 올여름 도쿄 올림픽도 기대감이 컸다. 엘리트와 생활 체육 통합 시대를 맞아 한국 스포츠에 새 좌표가 제시되리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대회 연기,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100개 넘는 국가에서 한국인 입국 금지 및 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대표 선수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도, 탁구, 레슬링 등은 올림픽 본선 티켓이 걸린 국제대회 출전조차 쉽지 않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시달리던 선수들에게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은 모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지만 이번엔 찬바람이 분다. 장창선은 과거 인터뷰에서 “내게는 고생, 역경을 딛고 일어선 끈기와 노력이 중요했다. 후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 국민 성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공교롭게도 장창선이 도쿄에서 은메달을 딴 날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최연소(35세)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킹 목사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별을 볼 수 있다.’ 오래도록 땀 흘리며 준비한 선수들이 무사히 올림픽 무대에 서면 좋겠다. 설사 좌절되더라도 꿈의 가치만큼은 지켜지기를 바란다. 터널의 끝은 올 것이다. 그때 더 환한 세상이 펼쳐졌으면. 병상의 장창선도 바랄 것 같다. 세상 사람들처럼.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