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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꿨다고 죽는 건 아니잖아!”뉴욕타임스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현장을 그린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제4계급(the Fourth Estate)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저녁 잠자리에서 악몽을 꾼 아이가 무섭다며 회사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엄마는 뉴욕타임스에서 백악관 취재를 담당하는 매기 하버만 기자(48). 정신없이 기사를 쓰던 하버만 기자는 아이가 계속 보채자 전화기에 대고 화를 냅니다. ’매정한 엄마‘라는 비판보다 일-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직장여성의 고충을 대변한다고 해서 2018년 영화 개봉 때 하버만 기자에게 동정론이 일었습니다.여러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이 다큐에는 여러 명의 뉴욕타임스 기자가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하버만 기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짜뉴스‘ 공세에 대항한 언론의 진실 추구 노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미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스타 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버만 기자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 거미줄처럼 빈틈없는 취재망을 쳐놓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비리와 정책상의 문제점에 대한 수많은 특종 기사를 터뜨렸습니다. ’백악관 관리들이 소셜미디어 상에서 가장 많이 팔로우하는 기자‘라는 타이틀에서 그녀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버만 기자는 러시아의 미 대선 불법 개입 의혹을 조사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의 ’러시아 스캔들‘ 보고서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언급된 기자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외교정책의 근간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것도 그녀입니다. 그런 하버만 기자가 최근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취재의 기본도 모른다” “돈만 밝힌다” “유명해지더니 변했다” 등의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그녀가 출간할 예정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 관한 책 때문입니다. 제목은 ’사기꾼(Confidence Man).‘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이 담길지 짐작이 간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올해 9,10월쯤 발간을 목표로 지금 하버만 기자는 열심히 집필 중입니다.이미 서점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다룬 책 50여종이 쫙 깔려있습니다. 대부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관찰한 기자나 전직 관리들이 쓴 책들입니다. 트럼프 친척들까지 저술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시장은 포화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하버만 기자의 책이 발간도 되기 전부터 예정 소식만으로 큰 화제가 되는 것은 그녀의 탄탄한 취재 실력과 폭넓은 정보망을 바탕으로 다른 트럼프 관련 저서들과는 차별화된 깊이 있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뉴욕타임스 동료 기자들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버만이 쓰면 다를 것” “벌써부터 기대된다” 등의 격려사를 남기며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록물 훼손 사건이 불거지면서 하버만 기자의 신간이 논란으로 떠올랐습니다. 기록물 훼손 사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대통령기록법을 무시하고 자신이 읽은 문건들을 찢어버리거나 숨기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는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15상자 분량의 대통령 기록물이 발견돼 국립문서관리청이 회수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미 하원 정부개혁감독위원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기록물 훼손 논란 속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중요한 문서들을 너무 많이 찢어서 백악관 사저의 화장실 변기에 버리는 통에 변기가 막히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도한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하버만 기자가 집필 중인 책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다고 밝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계속 연락을 이어왔다고 주변에 말했다는 사실도 하버만의 책에 담길 예정이라고 악시오스는 전했습니다. CNN 분석가로도 활동 중인 하버만 기자는 CNN에 출연해 보도 내용이 맞다고 확인했습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악시오스의 기사 링크와 함께 “곧 나올 나의 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라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미있는 뒷얘기들이 책에 포함됐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의도였겠죠.하지만 ’화장실 변기‘ 사건은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가 기자의 취재 윤리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버만 기자가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취재 중에 얻은 중요한 정보를 즉시 기사화해 대중에게 알리지 않고 나중에 자신의 책에 쓸 목적으로 묻어뒀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록물 훼손 습관에 관한 정보를 좀더 일찍 공개했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조치들이 마련됐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비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 킬러‘로 이름을 날린 하버만 기자였기에 대중의 실망감은 더욱 컸습니다. 군사매체 ’스타즈 앤 스타라입스‘의 얼 스티븐스 편집장은 “책 발간을 염두에 두고 정보를 늑장공개하는 기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매기 하버만, 뉴욕타임스, 그리고 그 망할 놈의 책에 대해 듣는 것도 이제 지겹다”고 비판했습니다. “책 장사가 그렇게 중요했나요, 매기?” “귀중한 정보를 깔아뭉갠 매기, 축하해요” 등의 조롱이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논란은 하버만 기자가 처음이 아닙니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장은 2020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했을 때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확보하고도 자신의 책 ’격노(Rage)‘가 출간되는 9월까지 이를 공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습니다. 우드워드 기자가 일찍 이런 사실을 공개했다면 코로나19 대응 방침이 달라지고 사망자도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가열되자 하버만 기자는 반박에 나섰습니다. CNN에 다시 출연해 “문제가 된 정보들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입수해 묻어둔 것이 아니라 최근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후속 취재를 하면서 알아낸 것들”이라며 “나는 결코 정보를 아껴두는 기자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하버만 기자와 뉴욕타임스가 신간 홍보에 쏟은 노력으로 볼 때 이런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버만 기자는 신뢰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책의 화제성은 더욱 커졌다는 데서 위안을 찾을 듯 합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정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조류인플루엔자(AI) 등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강화된 방역시설을 설치하고 검사 및 소독 강도를 높여나가는 방역대책을 추진한다고 지난달 21일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야생 멧돼지 ASF 양성 개체 검출 지역은 경기 강원 충북에 이어 경북 지역까지 남하했으며 전북과 경남으로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3월부터 영농 활동과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 오염원이 농장에 유입될 위험은 커지게 된다. ASF 확산을 가정할 경우 살처분 등으로 인한 농가 손실액은 1조6000억∼2조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농식품부는 1월 28일부터 ASF가 발생한 충북 보은, 경북 상주 울진과 인접 시군에 ASF 위험주의보를 발령했고 위험 지역 양돈농장을 긴급 점검했다. 4월까지 전국 양돈농장 총 5485호에 울타리, 전실, 방역실 등 중요 방역시설이 설치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농가를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자율방역 수준을 높이기 위해 차단 방역을 철저히 하는 농가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 제외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또 방역시설 설치를 완료한 농가에 살처분 보상금을 더 많이 지급하는 등의 인센티브도 줄 방침이다. 이와 함께 AI 방역 관리도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8일 이후 가금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된 사례는 44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6% 감소했다. 하지만 겨울 철새의 북상이 완료되는 3월까지는 추가 확산 우려가 남아 있다. 이에 정부는 동진강, 삽교호 등 서해안 지역의 철새 도래지와 농장 진입로 등에서 소독을 강도 높게 시행할 계획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보는 “ASF는 1년 내내 엄중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으므로 전국 모든 양돈농장은 강화된 방역시설을 갖추고 방역수칙을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고병원성 AI 방역을 위해 농장 관계자는 출입 차량과 사람을 최소화하고 소독을 강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지구촌 어디에서나 최대 관심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총회에서 정치인들은 일제히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수장(首長)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58) 발언도 주목 받았습니다. CPAC 행사 첫째 날 연단에 오른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무능력한 대응에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바이든 대통령과 비교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력은 정말 뛰어났다. 이란 공습에서부터 북한 억류 미국인 인질 석방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힘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줬다.” 그런데 폼페이오 전 장관의 CPAC 연설이 화제가 된 것은 우크라이나 때문도, 잠깐 언급된 북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몰라보게 달라진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넉넉한 몸집’으로 유명했던 폼페이오 전 장관은 홀쭉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최대 잔치라 할 수 있는 CPAC 행사는 체중 감량 ‘애프터’ 폼페이오가 관객들 앞에서 선 가장 큰 무대였습니다. 외모적 변화에 쏠린 관심을 의식한 그는 체중 문제를 언급하면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그 많은 살을 뺐느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 체중 감소는 정말 힘든 일이다. 앞으로도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폼페이오 전 장관은 최근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등과의 인터뷰에서 “2021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에 걸쳐 90파운드(41kg)를 줄였다”고 밝혔습니다. 살을 빼기로 결심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6월 12일 체중계에 올랐을 때 눈금이 300파운드(136kg) 부근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몸무게가 300파운드 언저리까지 간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부인 수전 여사 앞에서 선언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Today is the day).”곧바로 체중 감량 작전에 돌입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이 세운 원칙은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한다’입니다. 지하실에 아령과 유산소 운동 기구 몇 가지를 갖춘 간단한 운동실을 마련해 놓고 하루 30분 이상 땀을 흘렸습니다. 짧게 하더라도 거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일주일에 5,6회 운동실을 찾았습니다. 운동 시작 3,4주 후부터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셔츠의 목둘레가 헐거워지는 것을 볼 때의 기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식사 조절을 위해서는 탄수화물 음식을 끊고, 1회 식사량을 줄였습니다. 체중 감량 전 그는 치즈버거 애호가였습니다. 전임 국무장관들이 해외순방 때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 스타일이었던 것과는 달리 그는 호텔 룸서비스를 통해 치즈버거를 몇 개씩 주문해 놓고 밤새도록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습관 때문에 체중은 날로 불어 300파운드 중 100파운드는 최근 몇 년 새 늘어난 것이라 합니다. 다이어트에 돌입하면서 치즈버거를 끊었고, 감자튀김도 지난해 6월 이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의 체중 감량 스토리는 별로 새로울 게 없습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는 체중 감량의 일반적 과정을 거쳤습니다. 본인도 인터뷰에서 밝혔듯 “체중 감량의 승패는 개인의 결심 차이일 뿐”이라고 합니다. “전문가나 운동 트레이너, 영양사의 도움 없이 나에게 맞는 방법을 연구해 얻은 결과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비법’이 별로 새로울 게 없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전 장관처럼 운동하고 식사를 조절한다고 해도 월 평균 15파운드(6.8kg)씩 몸무게를 줄인다는 것은 “믿기 힘든 결과”라고 의문을 나타냅니다. 나잇살이 붙게 되는 중장년 연령대를 고려할 때 특별한 지병 때문이 아니고야 파격적인 체중 감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는 헬스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이 같은 회의적 시선은 특히 진보 진영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회의론자들은 “2024년 대권 도전을 목표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체중 감량 동기와 과정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외과적 수술, 극도의 단식, 다이어트 보조제 등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죠. 진보 성향 매체 가디언은 “폼페이오의 체중 감량은 미심쩍은 측면이 있다”면서 “누구나 다 자신처럼 노력하면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관련 사설을 쓴 신문도 있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의 정치적 고향인 캔자스 주의 유력 매체인 ‘캔자스시티스타’는 ‘이봐 친구, 진실을 말해 줘: 폼페이오가 90파운드를 뺀 것은 자신이 주장하는 방식 덕분이 아니다’라는 긴 제목의 사설에서 “(살을 뺀 뒤) 해쓱한 모습은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며 “짧은 기간에 많은 몸무게를 줄인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이전에도 체중 감량으로 화제가 된 정치인은 여러 명 있습니다. 145kg까지 나갔던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는 위에 실리콘 밴드를 삽입하는 수술로 폼페이오 전 장관과 비슷하게 40kg을 줄였습니다. 그는 2013년 위 수술을 받은 직후 수술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2008년, 2016년 두 차례 대선에 도전했던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가 체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에 충격을 받고 다이어트를 선언해 130kg에서 80kg으로 줄였습니다. 그는 마라톤과 식이요법으로 성공했습니다.인구의 4분의 3이 비만 또는 초고도비만으로 분류되는 미국에서는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지출이 막대하고 체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지대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공인들은 몸무게를 포함한 외모에 대한 지나친 사회적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호소합니다. 허커비 전 주지사는 “내 몸무게가 (정치) 메시지를 가렸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폼페이오 전 장관 역시 한동안 질투 섞인 호기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 오리건 주 대법원이 주지사 도전을 선언한 니콜러스 크리스토프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62)에 대해 “출마 자격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로 37년 동안 뉴욕타임스 기자 및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크리스토프의 첫 공직 출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주 이름 ‘오리건(Oregon)’에 빗대 크리스토프의 정치가 변신의 꿈이 “오리-건(Ore-Gone·사라져버렸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옵니다. 지난해 10월 크리스토프는 ‘희망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다’라는 마지막 칼럼을 쓴 뒤 민주당 소속으로 오리건 주지사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올해 11월 선출되는 오리건 주지사에 출마하기 위해 1월 주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퇴짜를 맞았습니다. 거주 요건 미달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오리건 주 선거법에 따르면 주요 공직에 출마하려는 후보는 선거일 이전에 최소 3년간 주에서 거주해야 합니다. 크리스토프는 뉴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 오리건에 주택을 보유해왔다”며 법원에 항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주 대법원이 “출마 자격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법원은 크리스토프가 2020년 대선 때 뉴욕 주 유권자로 등록해 투표한 점, 자동차 운전면허증 주소가 뉴욕으로 돼있는 점, 세금납부 서류상 주소가 뉴욕인 점 등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유세 때마다 “오리건은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지만 10대 성장기 시절을 오리건에서 보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12세쯤 오리건으로 이사해 북부의 작은 도시 얌힐에서 자랐고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모는 모두 오리건 주 포틀랜드대 교수를 지냈습니다. 이후 오리건을 떠나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한 뒤 뉴욕타임스에 입사했습니다.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최고의 언론 뉴욕타임스는 유명 기자와 칼럼니스트를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토머스 프리드먼, 폴 크루그먼, 모린 다우드 등 다른 칼럼니스트들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이들과 함께 1990~2000년대 뉴욕타임스 칼럼 황금시대를 이끈 인물 중 한명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무실 책상에서 글을 쓰기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해 ‘현장 칼럼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1990년 베이징 특파원 시절 천안문 사태를 생생히 전해 퓰리처상 국제보도 부문을 수상했고, 2006년 수단 다르푸르 인종학살 현장을 심층 보도해 코멘터리(의견비평) 부문에서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는 국제 이슈보다 국내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기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느라 국민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놓치고 있다”면서 언론의 반성을 촉구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토프가 뉴욕타임스에 사표를 쓰고 공직 출마를 선언했을 때 회의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즉흥적 일면을 가진 성격에서 나온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은 결정인 듯 하다”는 분석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진로를 바꾼 사례는 상당히 많습니다. 대부분 중앙 언론보다는 지역 매체 출신이며, 정치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경험 축적 차원에서 언론을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늦지 않은 30~40대 나이에 커리어 전환이 이뤄집니다. 언론인 출신 정치인의 성공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앨 고어 전 부통령,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패트릭 뷰캐넌 전 백악관 공보국장 등은 지역 매체의 기자나 앵커 출신이며 40대가 되기 전에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치잡지 ‘내셔널리뷰’ 발행인 윌리엄 버클리, 소비자 보호 관련 글을 많이 쓴 랠프 네이더, 작가 고어 비달 등은 언론인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뒤 대통령이나 다른 공직에 도전한 적이 있지만 정치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알리고 이목을 끌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 성격이 강했습니다.크리스토프 본인이 각종 인터뷰를 통해 밝힌 출마 동기는 2020년 출간된 저서 ‘타이트로프: 희망을 찾는 미국인들’에 있습니다. 책은 미국 소도시들이 높은 실업률, 청소년 탈선, 마약, 노숙자 등의 문제로 인해 몰락되는 과정을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고향인 오리건 주 얌힐을 사례로 들어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그의 얌힐 고교 동창생 4명 중 1명이 이미 사망했다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CNN에서 크리스토프가 진행을 맡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습니다. ‘타이트로프’는 미국 소도시까지 침투한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을 ‘고장난 정치 시스템’에서 찾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서 직접 뛰어들어 시스템을 고쳐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민주당의 다른 경쟁 후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액수인 260만 달러(31억원)의 선거자금을 모았습니다. 빌 게이츠(5만 달러), 링크트인 설립자(10만 달러), 위워크 설립자(5만 달러) 등 언론인 시절 크리스토프와 친한 기업가들이 선뜻 정치자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졌습니다. 특히 오리건 주민들은 “우리 지역은 책에서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 끔찍한 곳이 아니다”면서 반감을 표출했습니다.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고향의 부정적인 단면을 과대포장했다는 것입니다. 주 선관위가 크리스토프의 출마 자격을 문제 삼은 것도 지역 민심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년 거주 요건의 오리건 주 선거법이 지나치게 구식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를 무시하고 출마하려다가 무산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원의 출마 불가 판결 후 크리스토프는 지역방송 인터뷰를 통해 “나의 주장을 계속 펼쳐나갈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출마할지, 언론계로 돌아올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은 듯 합니다. 향후 어떤 진로를 택하던지 ‘비호감’ 이미지만 낳은 이번 도전에 대해 “뉴욕타임스 명칼럼스니스트도 별수 없다”는 뒷얘기가 무성합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지적대로 크리스토프의 정치 도전기는 “자신이 애써 쌓아온 브랜드만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하이트진로가 ‘청정라거-테라’의 홈술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청정 콘셉트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도 준비 중이다. 하이트진로는 7일 집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청정라거-테라의 캔 라인업을 확대했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국내 시장 분위기에 성장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번에 출시한 새 용량은 400mL와 463mL이다. 캔 맥주 선택에 있어 소비자들이 용량과 가격을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것에 착안해 6개월간의 소비자 조사를 통해 최근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최적의 용량 400mL와 463mL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테라 캔은 250mL, 355mL, 400mL, 463mL, 500mL 등 총 5종의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이번에 출시한 테라 캔은 파격적으로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 중이다. 355mL 캔에 비해 mL당 단가가 400mL 캔은 14.5%, 463mL 캔은 18.5% 저렴하다. 전국의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에서 8캔들이로 구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하이트진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테라의 청정 가치를 담은 브랜드 활동을 이어간다. 지난달 하이트진로는 국내 대표 업사이클링 전문 브랜드 ‘큐클리프(CUECLYP)’와 친환경 활동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이트진로는 그동안 테라, 진로 등 주요 제품의 환경성적표지인증을 획득하고, 지난해 올바른 자원순환 문화의 확산을 위한 ‘청정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친환경 경영 활동에 앞장서 왔다. 하이트진로는 큐클리프와 함께 청정라거-테라의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자재를 친환경 공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지닌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제작해 소비자들을 위해 활용할 예정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4월부터 청정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감축해 환경에 기여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청정 리사이클 캠페인은 분리배출을 독려해 재활용 확대 등 소비자에게 올바른 자원순환의 경험을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글로벌 재활용 컨설팅 전문기업 ‘테라사이클’과 협업하고 ‘BGF리테일(CU편의점)’ ‘요기요’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이트진로 마케팅실 오성택 상무는 “도전과 혁신을 지속해 나가고 침체된 시장 분위기에 성장과 활력을 불어넣고자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는 신규 캔을 출시했다”며 “테라의 본질이자 핵심 가치인 ‘청정’에 중점을 둔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업사이클링 등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게 웬 미친 짓이냐. 정부는 마약 파이프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당장 집어치워라.” “ 어제는 ‘범죄와의 전쟁’을 외치더니 오늘은 마약 파이프 지원?” “마약 파이프라는 선물로 흑인 역사의 달(2월)을 축하하려는 것이냐.” 마약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최근 마약 파이프 때문에 여론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지난해 말 조 바이든 행정부는 사회복지 단체들이 마약 중독자를 위한 치료용 의료기구를 갖출 수 있도록 총3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제공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7일은 신청 마감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흡입 파이프처럼 마약 사용을 부추길 수 있는 기구 마련 용도로 지원금을 신청한 단체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정부는 마약 파이프에 지원금을 줄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보건부도 성명을 통해 “지원금은 마약 파이프 용도로 절대 쓰이지 않을 것”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습니다. 원래 정부가 제시한 치료기구 사례로는 과다남용 억제제, 주사기 처분용기, 응급약품 등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마약 파이프를 치료기구의 범주에 넣어 지원금을 신청한 단체들은 “중독자가 깨끗한 파이프를 쓰면 과다사용으로 인한 사망을 줄일 수 있어 마약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코카인, 메타암페타민 각성제 등 흡입용 마약 사용자들이 더러운 파이프를 재사용해 오남용과 치사율을 높인다는 문제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지적돼왔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을 포함한 국민적 여론은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중독자들이 침침한 방 안에서 마약 파이프에 불을 붙이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게 자라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프에 정부 돈을 대주는 것은 마약을 장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글들이 소셜미디어에 속속 올라왔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마약 문제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 다른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약 사용과 거래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밀고 나갔다면 바이든 정책의 초점은 ‘피해 감소(harm reduction)’에 맞춰져 있습니다. 안전한 사용과 신속한 응급조치로 마약 사망사고를 줄이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정책의 청사진을 마련한 사람은 백악관 산하 국가마약통제정책국(ONDCP)을 이끄는 라훌 굽타 국장입니다. 인도 태생으로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건너온 그는 지난해 11월 ONDCP 국장에 임명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인이나 전문 관료들이 도맡아온 ONDCP 수장 자리에 의학박사로는 처음 오른 것이어서 임명 당시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ONDCP는 ‘통제정책국’이라는 기관명에서 풍기듯이 지금까지 공급망 규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하지만 지역의료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굽타 국장은 출발점부터 달랐습니다. 그는 취임 직후 미국-멕시코 국경지대를 방문했습니다. 마약이 유입되는 국경지대는 신임 ONDCP 국장들의 단골 방문 코스입니다. 하지만 굽타 국장은 “응급실의 비극” “중독 지원 시스템” 등의 단어들을 입에 올렸습니다. 취임 일성으로 “카르텔 차단” “강력 처벌” 등 사법정의 실현에 중점을 뒀던 전임자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굽타’ 성(姓)을 가진 또 다른 유명인인 산제이 굽타 CNN 의학전문 기자와의 취임 기념 인터뷰에서 마약 문제를 “법이 아닌 의학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의 영향으로 마약 사용은 급속히 늘고 있습니다. 최근 미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심리적 폐쇄감 등으로 인해 2020년 4월부터 2021년 5월까지 10만 명의 미국인이 마약 남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간 수치로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간단하게 오피오이드 등의 아편계 진통제를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마약 소탕이라는 도달하기 힘든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안전한 사용으로 사망자를 줄여나가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 굽타 국장의 소신입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굽타 국장이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웨스트버지니아 주 공중보건국장 시절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인구도 적고 경제수준도 낮은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뉴욕 등 대도시를 제치고 마약 사망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힙니다. 2016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52명으로 미국 전체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습니다. 굽타 국장이 2014년 웨스트버지니아 주 보건국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마약 사망자 887명 전원에 대한 상세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성별, 가족상황, 마약 구매 동기는 물론 응급실에 몇 차례 실려 갔는지 등 치료 과정에 대한 데이터도 구축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피오이드 등 마약 과다사용으로 인해 호흡곤란 등의 독성이 나타날 경우 이를 상쇄하는 아편성 길항제 날록손을 몇 분 내에 투여하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굽타 국장의 지휘 아래 마약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학교, 도서관, 직장 등에 날록손을 무료로 비치해놓고, 이동 치료소도 곳곳에 문을 열었습니다. 공공기관에 마약성 치료제를 공개적으로 비치해 놓는다는 점, 1회 투여당 40달러에 달하는 고가(高價)의 치료제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 등 때문에 논란이 됐지만 덕분에 응급구조대 출동율과 사망률은 30~40%씩 낮아졌습니다.굽타 국장은 마약 파이프 논란이 불거진 뒤 “정부 기금이 파이프 마련 용도로 쓰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는 반대 여론 때문에 한발 물러선 것일 뿐 웨스트버지니아 시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지지하는 쪽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굽타 국장이 앞으로 내놓을 아이디어로 마약 안전 투여소 설치가 거론됩니다. 깨끗한 주사기로 위험하지 않을 정도의 분량을 투여할 수 있는 시설은 필요성이 인정되고 캐나다 유럽 등에서도 운영 중이지만 “마약 소굴을 마련해주는 꼴”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마약 문제는 심각하지만 여론은 상당히 보수적인 미국에서 “안전한 사용”을 외치는 굽타 국장의 대책들이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우유 값 산정 방식 개편을 추진하는 정부가 낙농업계의 요구 사항을 반영한 수정안을 내놨다.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물량을 단계적으로 조정하고 낙농진흥회 이사회에 가격 결정 업무를 담당하는 소위원회를 두는 내용을 담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8일 “지난해 말 발표한 ‘낙농산업 제도개선 방안’에 대해 생산자단체의 주장, 유가공 업계와의 실무협의 결과 올해 원유(原乳) 생산 전망 등을 반영해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우유 가격 상승세를 꺾기 위해 지난해 말 개선안을 통해 원유를 음용유(마시는 우유)와 가공유(치즈 아이스크림 등 가공 유제품용)로 나누고, 음용유 값은 현 수준을 유지하되 가공유는 더 싸게 거래하도록 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추진해왔다. 국산 원유 자급률은 2001년 77.3%에서 2020년 48.1%로 낮아졌다. 자급률 하락은 현재의 낙농산업 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제도가 소비구조의 변화에 맞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지금까지 국내 원유 가격에 적용돼온 ‘생산비 연동제’는 수요에 관계없이 생산비가 오르면 가격도 오르는 구조여서 시장원리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해 말 발표된 개선안은 유업체가 낙농가로부터 원유를 구매할 때 음용유 187만 t은 L당 1100원, 가공유 31만 t은 L당 800∼900원으로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차등가격제가 적용될 경우 가공유 납품가 하락으로 유업체가 원하는 물량이 늘어나 낙농가로서는 손해를 보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산자단체들은 유업체들이 가공유를 더 많이 사들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데다 단기간 내 원유를 증산할 여력도 없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이에 농식품부는 “차등가격제에서 가공유가 차지하는 부분을 연도별로 단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양보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도입 첫해에는 음용유 대 가공유 비중을 190만 t-20만 t, 이듬해 185만 t-30만 t, 그다음 해 180만 t-40만 t으로 조정하는 식이다. 농식품부는 “수정안이 도입되면 첫해 농가소득은 현 제도를 유지할 때보다 1500억 원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다른 관심사인 낙농진흥회 이사회 구성에 대해서는 원유 구매 물량과 가격을 결정하는 소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내놓았다. 현재 15명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생산자 측 대표가 7명이어서 이사의 3분의 2 이상이 출석해야 하는 회의 개최 조건에 생산자 측이 참석하지 않으면 논의를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점이 지적돼왔다. 개선안에서 정부와 학계, 소비자 측 인원을 늘리고 개의(開議) 조건을 삭제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생산자단체들은 “교섭권 무력화”라며 반발했다. 정부는 수정안을 통해 생산자·유업체 측 각 3명, 정부·학계·낙농진흥회 측 각 1명으로 이뤄진 소위원회를 두고 원유 가격과 거래량은 소위원회의 결정을 토대로 이사회에서 확정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농식품부는 “무엇보다 당사자인 낙농가와 유업체의 이해가 중요하다”며 “향후 온라인 설명회 등을 통해 생산자단체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스티븐 브라이어 미국 연방 대법관이 은퇴 의사를 밝히는 자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모처럼 활짝 웃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브라이어 대법관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서서 “댕큐 댕큐”를 연발하며 그의 업적을 칭송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브라이어 대법관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손자와 함께 백악관에 놀러오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의 속은 타들어갑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올 11월 중간선거, 나아가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의 쓴맛을 볼 것이라는 기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브라이어 대법관이 ‘반강제적으로’ 은퇴를 선택한 것도 이런 위기감을 반영합니다.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4명이 선출 대상인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모두 잃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처럼 물가가 안정된 나라에서 수십 년 만에 나타난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 번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중점법안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감으로 이어지는 외교 불안 등 바이든 행정부에 악재는 갈수록 늘어갑니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석 지위를 잃을 경우 브라이어 대법관의 후임으로 진보 인사가 자리를 잇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공화당이 상원을 지배하게 되면 진보 대법관 지명을 막기 위한 로비를 하거나 과반수가 필요한 인준 표결 때 반대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방해 공작’을 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화당이 아닌 브라이어 대법관을 지지해온 민주당 쪽에서 그에게 은퇴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정치 판도가 바뀔지 모르는 중간선거 전에 빨리 젊은 진보 대법관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계산 때문입니다. 브라이어 대법관의 은퇴 결정은 바이든 행정부에게 위기감 해소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소식임에 분명합니다. 종신직인 연방 대법관이 은퇴를 선언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후임자 지명권자인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중 흑인 여성 가운데 후임자를 지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후임 물색 작업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맡겼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 상원 법사위원회 소속 의원 등 법조 분야에서 쟁쟁한 이력서를 가진 해리스 부통령이 적임자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커탄지 브라운 잭슨 연방항소법원 판사, 레온드라 크루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 대법관 등이 물망에 오르는데 최근 한 명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바로 해리스 부통령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임자 물색 작업을 지휘하라고 맡긴 해리스 부통령을 민주당 일각에서 아예 후임 대법관으로 미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해리스를 대법원으로(Harris to Supreme Court)’ 움직임은 일선 의원들 사이에서 단순한 희망 사항으로 거론되던 것에서 점차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폭스뉴스 등 보수 성향 매체들이 해리스 대법관 가능성을 띄우기 시작했지만, 민주당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동조하는 20~30명의 의원들은 브라이어 대법관 은퇴 발표가 나오자마자 소셜미디어에 “해리스 대법관은 어떨까” 등의 메시지를 공유하며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해리스 대법관 행(行) 지지자들은 일거양득론을 펼칩니다. 부통령이 된 뒤 뚜렷한 업적이 없는 해리스 부통령이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법률가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 검찰총장을 지낼 때 강력 범죄 소탕, 소수 인종 차별 금지 등에서 업적을 쌓으며 상원의원으로 가는 발판을 삼았습니다. 상원의원이 된 뒤에는 법사위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2018년 성추문 의혹에 휩싸인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 때 그녀가 던진 날카로운 질문들은 지금도 ‘레전드’로 회자(膾炙)됩니다. 부통령의 빈 자리에 좀 더 나은 인물을 데려와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일거양득 셈법은 완성됩니다. 고령의 바이든 대통령이 불시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가능성에 대비해 국정 수행 능력을 갖춘 부통령이 승계 작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은 당 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지난달 여론조사기관 레거의 조사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긍정 평가는 42%인 반면 부정 평가는 56%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입니다.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리 인기 없는 부통령이지만 부담스러운 짐을 덜어버리는 식으로 대법관으로 보낼 경우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을 삼가는 분위기입니다. 학계에서도 “부통령 교체에 따른 법적 절차를 연구해야 한다”면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CNN은 “가능성과 정당성이 크지 않다”면서 “이번 기회에 부통령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백악관은 인사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현 부통령은 2024년 대선 때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백악관은 후임 대법관을 논의하는 회의 개최 사실을 알리며 회의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상석에 앉아 회의를 하는 장면입니다. 해리스 대법관 불가 방침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언론 브리핑에서 거론될 정도면 정치권에서 상당한 논의가 진전됐고, 대통령도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하되 대통령을 가려서는 안 된다.” 부통령의 역할에 대한 유명한 격언입니다. CNN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평가하는 유능한 부통령으로는 딕 체니(2001~2009), 앨 고어(1993~2001), 조지 HW 부시(1981~1989), 린든 존슨(1961~1963) 등이 꼽힙니다. 정치 경력은 부족하지만 국민적 인기가 높은 ‘워싱턴 아웃사이더’ 대통령과 ‘인사이더’로서 협상 경험이 풍부한 부통령 체제가 좋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베스트’까지는 아니어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합(合)이 좋았던 부통령(2009~2017)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탄탄한 부통령 경력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 자신이 부통령 거취 문제로 분란을 경험하게 될 줄은 아마 몰랐을 것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동영상이 화제입니다. 유튜브나 CNN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어 원(Year One)’ 제목의 동영상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위원회가 제작했습니다. 미국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중환자실 간호사 등 일반 국민들이 출연해 바이든 행정부의 업적을 알리고 “대통령을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동영상을 제작한 것은 최근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는 것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정치 전문매체 엑시오스에 따르면 지지율을 올려볼 목적으로 에미상 수상 경력의 전문 제작진을 고용해 수백만 달러를 투입한 비디오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그런데 바이든 홍보 동영상에서 정작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더 부각된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바로 진행자 겸 나레이터 역할을 배우 톰 행크스(62)입니다. 미 언론 기사들도 행크스 출연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해진 공식대로 흘러가는 업적 홍보 동영상에서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할리우드 A급 스타 행크스이기 때문입니다. 4분 30분초짜리 동영상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4분 10초 쯤 너무 늦게 출연해 “나오는 줄도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동영상 초반부터 나오는 행크스는 “우리는 강하다, 용기 있다, 쓰러지지 않는다, 용감한 국민들의 나라 미국이다”라고 힘줘 말합니다.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가진 행크스가 양복도 아닌 캐주얼 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미래를 낙관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해 “신뢰가 간다”는 호평 일색입니다. “바이든보다 더 대통령답다” “이참에 당신이 대선에 나가라”는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행크스에게 대선 출마 얘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할리우드에서 그만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국민배우도 드뭅니다. 친(親) 민주당 연예인으로 유명한 그는 이전 대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바이든 등 민주당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했고 정치자금을 기부했습니다. 대선 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중요한 이슈들이 주민투표에 부쳐질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사회 문제에도 눈을 돌릴 줄 압니다. 행크스는 자신이 믿는 이슈라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할리우드 A급 스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높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배경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에 출연했던 것이 인연이 돼서 고(故) 로버트 돌 상원의원 등 공화당 정치인들이 주축이 됐던 ‘숨겨진 영웅(Hidden Heroes)’ 캠페인에 참여했습니다. 워싱턴에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념비를 세우고, 한국전 베트남전 2차 세계대전 등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위한 복지기금을 모으는 이 캠페인을 위해 행크스는 보수 운동가들과 나란히 의회 증언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행크스는 권력의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을 당부하며 백악관 기자단에게 선물을 건넨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2004년 백악관을 구경 갔을 때 기자단이 미국의 웬만한 사무실이라면 모두 갖추고 있는 커피머신도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커피머신을 선물했습니다. 2010년, 2017년에도 선물했습니다. 선물한 커피머신의 종류도 아메리카노만 만들 수 있는 기계에서 에스프레소 기능을 갖춘 모델로 진화했습니다. 2017년 선물 때는 기자들이 행크스가 동봉한 메모를 보고 “감동했다”며 속속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진실, 정의, 미국의 정신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 달라. 특히 ‘진실 부분’을 위해”라는 메모였습니다. “런, 포레스트, 런(run, Forrest, run)”은 공식 연설 무대에 오르는 행크스에게 청중들이 외치는 단골 구호입니다. 2018년 행크스가 선거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우리 모두 선거합시다(We All Vote)’ 행사에 연사로 나섰을 때도 관중의 열띤 함성 때문에 제대로 연설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구호는 행크스의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영화인 ‘포레스트 검프’(1994년)에서 어린 시절 약한 다리 때문에 지지대에 의존해야 했던 검프가 지지대를 떨쳐버리고 달릴 때 친구가 응원하는 대사입니다. 빠른 주력 때문에 대학 미식축구팀에 들어간 검프가 공을 들고 달릴 때도 이 대사가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달려라”는 의미지만 연설 무대의 행크스에게 보내는 “런”은 “출마하라”는 뜻이겠죠. 바이든 홍보 동영상 댓글 중에도 행크스를 응원하는 이 구호가 등장합니다. 미국인들이 원하는 할리우드 스타 출마자 명단에 행크스의 이름은 빠지지 않습니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피플즈세이가 전국 성인 3만 138명을 대상으로 ‘대선에 출마했으면 하는 연예인은 누구인가’를 조사한 결과 행크스(20%)는 안젤리나 졸리(30%), 오프라 윈프리(27%)에 이어 3위에 올랐습니다. 남성 연예인 중에는 1위였습니다. 남성 중에서 윌 스미스, 조지 클루니,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화씨 9/11’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행크스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고 밝혔습니다. 2018년 무어 감독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행크스처럼 널리 사랑받는 인물이 출마한다면 찍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에게 ‘내가 부통령 후보가 돼서 잡일은 다 해줄 테니 당신은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두 번이나 권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 모두 행크스가 사양했다고 하죠.만약 행크스가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정치 전문가들은 그의 정치적 행동력, 유머감각, 여배우 리타 윌슨과 40년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점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바른생활 사나이’ 행크스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자녀 문제입니다. 둘째 아들 체스터는 약물중독, 인종차별 발언, 음주운전 등 각종 사건사고를 일으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요즘은 백신 접종 반대 운동을 벌여 2020년 영화 촬영차 호주에 갔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는 행크스 부부의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행크스의 아들 문제에 대해 “‘자식에게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사례”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페이스오프: 레티샤 대 이방카” “레티샤-이방카 대결의 승자는 누구?” 최근 레티샤 제임스 미국 뉴욕주 검찰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법정 출두를 요청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자녀 이방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은 뉴욕주 검찰로부터 3년 넘게 세금 및 보험 사기 의혹 등으로 조사를 받아왔습니다. 법정에서 선서하고 증언을 해달라는 요청은 트럼프 그룹에 대한 조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미국 언론은 이번 사태를 두 여성 간의 대결 구도로 압축시켜 보도하고 있습니다. 산전수전 겪으며 바닥부터 올라간 흑인 여성 검찰총장이 백인 상류사회 출신의 이방카 트럼프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은 인종과 계급, ‘강 대 강’ 여성 대결 차원에서 흥미 유발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임 때부터 각종 의혹 때문에 의회, 법무부 특별검사팀, 각종 위원회 등으로부터 많은 조사를 받아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뉴욕 검찰 조사가 가장 무섭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뉴욕주 검찰의 뛰어난 수사력에 대한 반증입니다. 이 조직을 이끄는 여걸(女傑)이 올해 62세의 제임스 총장입니다. 뉴욕주 검찰총장은 700명의 검사와 1800명의 수사관 등을 통솔합니다. 급여 수준도 전국 검찰총장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각 주 정부마다 있는 검찰총장이라는 직책은 주의 모든 법률문제를 총괄하는 법무장관에 해당합니다. 모든 것의 중심지인 뉴욕주의 검찰총장은 다른 주의 검찰총장과는 위상 자체가 다르며 연방 법무장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실제로 뉴욕주 검찰총장의 상당수는 이후 주지사에 당선되는 출세 코스를 밟았고, 대통령의 야망까지 불태운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시키는 영리한 정치 감각까지 갖춘 제임스 총장은 현재 미국 법조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슈메이커’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제임스 총장이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난해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밝혀낸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수사 결과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제임스 총장은 1시간여 동안 독립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가 11명의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4개월간의 조사 결과가 담긴 165쪽짜리 보고서도 공개했습니다. 한국계인 준 김 전 뉴욕 남부지검장 대행 등과 함께 연단에 올라 수사 결과를 논리정연하게 밝히는 제임스 총장의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조사위 권한을 제임스 총장에게 주지 않기 위해 갖가지 묘책을 강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에게 권한을 부여할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쿠오모 주지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제임스 총장의 의중대로 꾸려진 조사위는 성추행 의혹을 사실로 입증했습니다. CNN은 쿠오모 주지사 아래에 있지만 독립적인 수사권을 고수한 제임스 총장에 대해 “‘화이트 보이 클럽(white boys’ club)‘에 속한 전임 총장들과는 태생부터 다르다”고 분석했습니다. 2019년 취임한 제임스 총장은 여러 면에서 “처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습니다. 뉴욕 주 최초의 흑인이자 여성 검찰총장입니다. 또한 검찰 조직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전임 총장들과 달리 그녀는 법률구조협회(LAS)라는 시민단체의 관선변호인 출신입니다. 학교도 워싱턴의 전통적인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 출신으로,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이나 뉴욕 주내에 있는 대학을 졸업한 전임 총장들과 차이가 납니다. 수사력을 집중하는 사건도 차이가 있습니다. 전임 총장들이 주로 월가의 부정행위 조사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제임스 총장은 취임 후 일성으로 내놓은 것은 전미총기협회(NRA)에 대한 조사였습니다. “부정부패와 공금 오남용 투성이라는 증거를 확보했다”며 NRA 해체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공화당의 ’돈줄‘이자 최대 로비단체인 NRA가 실제로 해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제임스 총장은 그동안 그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NRA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NRA가 포위됐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역대 뉴욕주 검찰총장들은 화려한 업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정치역정이 순조롭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뉴욕주 검찰총장 시절(2007~2010년) 미국 대학들의 학자금 대출 관행을 바꿔놓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던 대학 학자금 부실 대출 조사를 지휘했습니다. 쿠오모에 이어 자리에 오른 에릭 슈나이더만 전 총장(2011~2018년)은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수사를 이끌며 주목받았지만 정작 본인이 4명의 여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자진 사퇴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엘리엇 스피처 전 총장(1999~2006년)입니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 패밀리를 기소해 일약 스타 검사가 됐습니다. 검찰총장이 된 뒤에는 금융기관들의 불공정 관행을 적발하는 성역 없는 수사로 “월가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기세를 몰아 주지사에 당선됐지만 ’엠퍼러스 VIP 클럽‘이라는 고급 매춘조직의 상습 이용자인 것이 드러나면서 당선 1년 2개월 만에 물러났습니다. 스피처 총장의 부인 실다 여사가 슬픈 표정으로 옆에 서서 “남편을 용서한다”고 밝힌 기자회견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전임 총장들과 비교할 때 제임스 총장은 출신 배경과 수사 집중 분야 등이 많이 다릅니다. 뉴욕에서 경제환경이 열악한 브롱크스 출신인 그녀는 기득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수사로 주민들 사이에 인기도 높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여서 독선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해 보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을 암살한 범인의 가석방이 거부됐습니다. 최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케네디 전 의원 암살범인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민자 시르한 비샤라 시르한(77)의 가석방 권고를 거부했다고 밝혔습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월드가 이미 사망한 것과 달리 케네디 전 의원을 암살한 시르한은 생존해 캘리포니아 주 교도소에서 53년째 수감 중입니다. 1968년 42세 나이에 대선에 출마한 케네디 전 의원은 캘리포니아 주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뒤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열린 축하행사 현장에서 시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5년 후 비슷한 방식으로 동생이 암살됐다는 점,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2개월 후 터진 암살 사건이라는 점 등 때문에 케네디 전 의원 사망이 던진 충격파는 컸습니다. 1960년대 리버럴리즘(자유주의)을 상징하는 두 형제가 몇 년 간격으로 암살되면서 “카멜롯(태평성대) 시대의 종언” “케네디 가문의 저주” 등의 유행어가 생겨났습니다. 시르한은 체포된 뒤 법정 진술에서 “케네디의 친(親)이스라엘 정책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언론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내 손에 총을 든 기억이 없다”고 주장하는 등 범행 여부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석방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청문회에서 “더 이상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서 시르한에 대한 가석방 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16번째 심사 만에 처음 나온 권고 결정이었습니다. 앞선 심사 때마다 반대 의견을 냈던 캘리포니아 주 검찰도 지난해 8월 심사에서는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으면서 암묵적인 동의 의사를 표했습니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가 일정 기간 형량을 마친 장기 수감자를 더 이상 감옥에 두지 않고 사회 복귀를 유도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가석방 허용 분위기에 불을 지폈습니다. 하지만 가석방 시도가 최종 문턱에서 주지사에 의해 좌절되자 시르한 변호인단은 크게 반발했고, 법조계와 언론에서는 “의외의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역시 케네디”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뉴섬 주지사는 이례적으로 9장에 걸친 보도자료를 통해 가석방 권고를 거부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왜 나는 시르한 시르한을 가석방하지 않기로 했나”라는 제목의 기고문도 게재했습니다. 시르한이 아직 자신의 범행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지금 출소하면 여전히 공공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 등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주지사는 “시르한은 과거 자신이 내렸던 위험하고 파괴적인 결정들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그는 아직 해야 할(뉘우칠) 일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는 “형제애를 나눈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상처를 봉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케네디 전 의원의 발언을 인용하며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문을 끝맺었습니다. 주지사의 적극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케네디 전 의원이 생전에 추구했던 사법 정신에 비춰볼 때 이번 결정은 “지나치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존 F 케네디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케네디 전 의원은 재소자 인권 향상과 사법당국의 과잉 형량을 줄이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1963년 흉악범을 수용하는 감옥으로 사용됐던 앨커트래즈 교도소 폐쇄 결정을 내린 것도 당시 법무장관이던 케네디 전 의원이었습니다. 시르한 변호팀은 “가석방 거부 결정을 내리면서 교정 개혁을 중시했던 로버트 케네디를 거론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주지사의 이번 결정이 정치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낙마 위기를 극복한 주지사가 케네디 가문의 영향력을 계산에 넣지 않고 이번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전했습니다. 시르한 변호팀 역시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코로나19 봉쇄정책에 대한 주민 반발이 거세지면서 지난해 9월 소환투표에 회부됐던 뉴섬 주지사는 민주당의 지지를 발판으로 주지사직 사수에 성공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캘리포니아를 찾아 주지사 지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케네디 가문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섬 주지사는 평소 케네디 전 의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왔습니다. 자신의 사무실 책상 위에 케네디 전 의원과 캘리포니아 주 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케네디 가문은 시르한 가석방 가능성이 제기되자 전방위적으로 반대 로비를 펼쳐왔습니다. 케네디 전 의원의 부인인 올해 94세의 에델 여사와 자녀 6명은 가석방 권고 결정이 나오자마자 뉴섬 주지사에게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막내딸인 로리 케네디 영화감독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시르한은 가석방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장남인 조 케네디 2세 전 하원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 자녀들은 아빠를 그리워하며 자랐다”면서 “그 어떤 서류도, 법적인 결정도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셋째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와 열째인 더글러스 케네디 폭스뉴스 기자는 가해자를 용서한다며 가석방을 허용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케네디 전 의원은 에델 여사와의 사이에 11명의 자녀를 낳았고, 이중 2명이 사망했습니다. ‘케네디’라는 이름은 미국인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유발합니다. 동경의 대상인 반면 자주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동안 사회적 윤리와 법적 테두리를 넘는 각종 스캔들을 일으켜 비판의 대상이 됐다면 이번 시르한 가석방 거부 결정은 케네디 가문을 모처럼 피해자의 앵글에서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노인으로 변한 시르한이 지금 가석방된다고 하더라도 공공의 위협이 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지만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는 힘든 단어임에 분명합니다. 2023년에 있을 다음 가석방 심사 때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주목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미국에서 사람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했습니다. 이번 수술에 대해 “breakthrough(돌파구)” “watershed(분수령)” “incredible achievement(믿기 힘든 업적)” 등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술을 성공시킨 메릴랜드대 의대 연구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술에 얽힌 뒷얘기를 공개했습니다. △“Well, will I oink?” 수술 전 의료진은 환자에게 “돼지 심장을 이식받겠느냐”고 물은 뒤 반응을 살폈다고 합니다. 돼지 심장 이식은 첫 시도이고, 돼지의 의료적 사용이 주는 이미지가 좋지 않아 환자가 거절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상외로 대답은 “음, (수술을 받게 되면) 내가 꿀꿀 소리를 내게 되는 건가요?”였다고 합니다. 환자는 이런 농담으로 수술대에 오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죠. 동물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는 한국어와 영어에서 크게 다릅니다. 돼지의 ‘꿀꿀’ 소리는 영어로 ‘오잉크(oink)’라고 합니다. 개의 ‘멍멍’은 ‘우프(woof)’라고 하죠. △“The organ transplant list will probably increase by orders of magnitude.” 이번 수술에는 재생의료기업 리비비코어에서 사육한 유전자 교정 돼지가 사용됐습니다. 이 회사 연구팀은 “(수술 성공으로) 장기 이식 희망자 명단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기뻐했습니다. ‘크기의 순서’로 번역되는 ‘order of magnitude’는 원래 수학적 개념으로 ‘10배 비율의 자릿수’를 뜻합니다. 경제 관련 기사에 ‘increase by two orders of magnitude’라고 나오면 ‘10배 비율의 자릿수 두 개, 즉 100배 증가’를 의미하죠. 일반적인 대화에서 “order of magnitude”라고 하면 복잡하게 수학적으로 따질 것 없이 “크게, 많이” 정도의 의미로 보면 됩니다. △“We are thrilled, but we don′t know what tomorrow will bring us.” 이번 수술을 이끈 바틀리 그리피스 박사는 “흥분된다(기쁘다), 하지만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우리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수술의 완전한 성공을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미겠죠. ‘미래의 불확실성’을 영어로는 ‘내일이 가져다주는 것(what tomorrow brings)’이라고 합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에서는 지난해 1월 6일 벌어진 워싱턴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기억하자는 움직임이 한창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의사당 현장을 찾아 “민주주의의 목전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지난해 7월 출범한 하원의 ‘1·6 조사 특별위원회’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고위인사 50여명의 증언을 듣기 위해 소환을 통보했지만 대부분의 측근들은 증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 전까지 특위의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입니다. 당시 체포된 700여명의 시위 가담자 가운데 현재까지 70~80명이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새삼 주목받는 인물이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인 앤디 김 의원(40)입니다. 뉴저지를 지역구로 둔 민주당 소속의 김 의원은 시위가 벌어진 다음날 이른 새벽 의사당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잔해들을 청소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주인공입니다. 경비대원들과 함께 빈 물병과 박스 등을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는 김 의원의 모습을 당시 우연하게 현장에 있던 AP통신 기자가 카메라에 담으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의사당 난입 사태가 낳은 스타인 김 의원은 ‘그 날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최근 두 가지 활동상을 공개했습니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모습입니다. 김 의원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 밀려 시위대 비판 대열에 참가했던 친(親) 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정치인들의 발언 내용을 찾아서 1주년 당일인 지난 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당시 공화당 상원 원내 사령탑인 미치 매코널 의원은 “더 이상 질문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 당신이 책임지시오”라고 했습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내 정치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라며 “오늘 나는 최악의 미국을 봤다”고 한탄했습니다. 트럼프 절친으로 알려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원인이다”고 했습니다. 이밖에 정치인 30여명의 트럼프 비판 발언이 김 의원 트위터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들의 발언을 모두 공개한 뒤 김 의원은 한마디의 글을 올렸습니다. “공화당 리더들이 기억상실증에 걸리기 전”이라는 한 줄입니다. 김 의원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치인들의 1년 전 발언을 추적한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당시 트럼프 비판에 앞장섰던 이들의 대부분은 다시 트럼프 지지 대열에 합류하고 당시 폭력 사태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1·6 조사 특위의 소환 요구에 불응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엄 의원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난입 사태 1주년 기념 연설을 가리켜 “이 얼마나 당시 상황을 뻔뻔하게 정치화하는 것이냐”며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김 의원의 두 번째 1주년 기억법은 좀 더 개인적인 차원입니다. 그는 6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의사당 벽에 걸린 명판 사진 한 장을 찍어 올렸습니다. ‘로툰다’로 불리는 의사당 1층 원형홀의 한쪽 벽면에 걸린 명판입니다. 의사당을 찾는 수많은 외부 방문객들은 이 명판을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기자 역시 워싱턴 특파원 시절 의사당에 자주 출입했지만 한번도 명판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본 적이 없습니다. 황금색 명판에는 ‘이 아래쪽에 1793년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놓은 미합중국 의사당의 주춧돌이 놓여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명판은 1893년 의사당 착공 100주년을 맞아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등 3부 요인이 설치한 것입니다. 김 의원은 명판 사진과 함께 “의사당 쓰레기를 치우던 날 이 명판을 봤다”는 글을 올렸습니다.김 의원은 6일 보도된 N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명판에 대한 뒷얘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놓았습니다. 그는 “바닥만 보며 열심히 쓰레기를 치우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의사당 벽에 걸려있는 명판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일손을 멈추고 이 건물의 역사를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NBC 인터뷰에서 의사당에 얽힌 어머니와의 추억도 소개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민 온 뒤 어린 두 자녀의 손을 잡고 처음 워싱턴 관광길에 오른 어머니는 의사당 계단을 밟으면서 “우리도 당당하게 이곳을 걸을 수 있다”고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아메리칸 드림’이었던 자존감과 품위를 지키는 삶이 1년 전 의사당을 점거한 시위대에 의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한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경비대원들에게 ‘나에게도 비닐봉지를 달라’고 해서 같이 치우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김 의원은 “명판을 보며 ‘치유(healing)’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명판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마음속에는 극렬 시위대에 대한 분노, 의사당이 난장판이 된 것에 대한 허탈감 등이 더 컸던 듯 합니다. 하지만 명판을 보며 “이 건물을 세우고 지키는 일에 수많은 세대의 노력이 거쳐 갔고 앞으로도 많은 세대가 그 일을 해나갈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1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부글부글 끓는 내전 상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성인 1100명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의사당 난입 사태의 책임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있다”고 보는 비율은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 92%에 달한 반면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27%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정당한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양쪽 진영 사이에 메우기 힘든 격차가 존재합니다. 치유와 용서가 목적 지점인 것은 확실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너무 험난해 보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귀농 초기 변변한 소득이 없어 아내와 자식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때 받은 지원금은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웠습니다.”(A 씨) “지원금 덕분에 농외소득 활동을 줄이고 본업인 농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입니다.”(B 씨)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에 선정된 농부들은 지원금을 받기로 결심한 이유도 다르고, 지원금을 받아 사용한 용도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동의하는 한 가지가 있다.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도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신청 시즌이 돌아왔다. 27일 접수가 시작돼 내년 1월 28일까지 신청을 받는다. 이 사업은 창업자금, 기술 경영 교육과 컨설팅, 농지은행 매입비축 농지 임대 및 농지 매매를 연계 지원해 건실한 경영체로 성장을 유도하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특히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 후계농에게 최장 3년간 월 최대 100만 원의 영농정착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현금 성격의 지원금을 주는 프로그램은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 유일하다. 2022년도 사업의 특징은 선발 인원이 늘었다는 것이다. 전년에 비해 200명 늘어난 2000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018년 사업 시작 후 2020년까지 3년 동안 연 1600명씩 선발했고, 2021년 1800명으로 늘었고 이번에 2000명으로 추가 확대됐다. 본보 등을 통해 우수사례가 집중적으로 소개되면서 관심을 갖는 농부들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총사업비로는 556억9100만 원(국비 388억9100만 원, 지방비 169억9200만 원)이 투입된다. 지원금액은 1년 차 월 100만 원, 2년 차 월 90만 원, 3 년차 월 80만 원이 지급된다. 농가 경영비와 일반 가계자금 등으로 사용 가능하다. 유흥, 사치품 구매, 일반 가계자금의 범위를 넘어선 과소비 용도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지급 방법은 ‘농협 청년농업희망카드’를 발급하여 바우처 방식으로 금액이 지급된다. 현금 인출이나 계좌이체는 불가능하며 신용·체크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 신청 자격은 만 18세 이상부터 만 40세 미만. 2022년도 사업의 경우 신청 가능 연령은 1982년 1월 1일부터 2004년 12월 31일까지의 출생자다. 영농 경력이 독립경영 3년 이하여야 신청할 수 있다. 신청에 관련된 정보는 웹사이트 ‘농림사업정보시스템(Agrix)’ 또는 1670-0255로 전화하면 된다. 서류(신청서, 영농계획서 및 증빙서류) 신청은 Agrix 시스템을 통해 할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 경쟁률은 2∼3 대 1에서 계속 높아지는 추세”라며 “이번 신청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청년농부들은 오늘도 꿈을 개척하기 위해 땀을 흘린다. 땀이 결실을 맺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다. 최근 마무리된 ‘2021년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우수사례 수기공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례 두 명을 소개한다.》화분 패키지-밀키트 등 분야 다양… “사업가치 극대화”군산 ‘딸기로움’ 농장 강정구 대표 각광받는 석유화학회사 근무, 연봉 7000만 원 이상, 주임에서 주무로 순조롭게 진급, 2, 3년 후 팀장이 될 수 있다는 비전. 지난해 전북 군산에서 ‘딸기로움’이라는 농장을 경영하는 강정구 대표(39)가 좋은 조건의 회사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농사에 뛰어들었을 때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말렸다. 강 대표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농장에 데리고 와서 직접 흙을 만져가며 딸기 모종과 작물을 보여줬다”며 “미래가 불안정한 회사원보다 농부라는 경영주가 훨씬 장래성이 있다는 점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실습과 경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경험을 쌓는다면 창농에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판단하에 군산시 스마트팜 임차인 모집 공고에 지원서를 제출했고, 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500평 3년 임대 자격을 얻었다. 강 대표는 ‘아이디어 공장’이다. 스마트팜에서 생산되는 딸기 생과 판매 외에 동결건조 딸기, 딸기농장 수확체험, 딸기 화분 패키지 판매, 딸기 잎차 가공 등을 이미 사업화했거나 출시 계획을 갖고 있다. 딸기 찹쌀떡 밀키트 제작까지 착수했다. 다양한 사업 계획을 현실화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 올해 선정된 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 사업이다.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창농 초기이다 보니 소득이 불안정했습니다. 매달 고정수입이 생기니 다양한 시도를 할 여유가 생긴 것이죠.” 스마트팜 임대에서 벗어나 내년부터 자가 경영에 도전하기 위해 이미 1500평 토지를 구입했고, 현재 설계도가 완성 단계다. 토지구매 대금을 마련하고 취득세를 납부할 때도 영농정착 지원사업이 도움이 됐다. 강 대표의 ‘딸기로움’은 다양한 소득원 덕분에 올해 6700만 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그는 “2년 차 농부로서 기대 이상의 성적표”라며 웃었다. 그는 “농부가 흙을 만지는 것에 만족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농업을 창업으로 접근해 비즈니스 가치를 최대한 높여볼 생각입니다.”볼펜-컵-엽서 등 굿즈 개발 … “농업과 문화를 결합”진주 ‘힙토’ 농장 박지현 대표 10월 경남 진주의 한 문화공간에서 ‘힙토 농업문화전시회’가 열렸다. ‘농업과 문화를 더하다’를 주제로 열린 이 행사에는 토마토를 주제로 한 11점의 포스터와 허수아비, 끌개 등 농기구들이 전시됐다. 직접 대추방울토마토 모종을 심어보는 체험행사도 마련됐다. 이 행사를 기획한 주인공은 이 지역에서 ‘힙토’라는 농장을 경영하는 여성 농부 박지현 대표((27)다. “도시인들에게 ‘농업으로 오세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부는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도 하고, 기획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도시와 농촌 간의 문화적 괴리감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2020년 귀농해 ‘힙토’ 사업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취업을 걱정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것. ‘힙토’는 ‘세련된’이라는 의미의 ‘힙(Hip)’과 ‘토마토’의 합성어이다. 전시회 개최뿐 아니라 토마토를 형상화한 캐릭터와 굿즈(상품) 제작 사업도 벌이고 있다. 포털사이트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유료 판매되는 ‘힙토’ 굿즈는 휴대전화 거치대, 에어팟 케이스, 키링, 라이터, 볼펜, 컵, 엽서 등이 있다. 본업인 농사를 게을리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박 대표는 “효율적인 시간 관리가 필수”라고 말했다. “낮에는 500평 규모의 농장에서 대추방울토마토 농사를 짓고 온라인, 도매상 등을 통해 판로를 개척합니다. 저녁에는 캐릭터 굿즈 아이디어 개발에 투자합니다.” 지난해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에 선정된 그녀는 “정말 고마운 프로그램”이라며 “매달 받는 지원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힙토’를 통한 저의 꿈은 젊은 농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농업에 문화를 더해 농업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청년 농업인이 많아진다면 농사도 언젠가는 힙한 업종이 되겠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파티’에 진심인 미국인들. 파티가 삶의 일부분입니다. 어떤 파티에 초대되느냐로 자신의 사회적 인기를 가늠하고, 주말 파티를 기다리며 일주일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각자 챙겨야하는 가족, 친구, 회사 단위의 파티 외에 세인트패트릭스 데이(초록색 옷을 입는 그리스도교 명절·3월) 부활절(4월), 독립기념일(7월), 할러윈(10월), 추수감사절(11월), 하누카(유대교 명절·12월) 등 철마다 파티 명절들도 수두룩합니다. 파티 캘린더의 정점을 찍는 것이 크리스마스에서 연말 연초로 이어지는 지금 같은 때입니다. 최근 백악관의 연말 파티 시즌이 마무리됐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습니다. 올해 백악관의 연말 파티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덜 흥겨운(less merry)’이라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팬데믹’ 때문입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경험에 비춰보면 백악관은 낮과 밤이 다른 곳입니다. 낮에는 넥타이 차림의 관리들이 서류를 끼고 총총 바쁜 걸음을 옮기는 삭막한 사무실이지만 밤이 되면 흥겨운 음악에 각종 뷔페 테이블이 펼쳐지고 샴페인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파티 호스트인 대통령 부부는 손님들 사이를 옮겨 다니며 대화를 주도하고, 손님들은 대통령과 한 컷 사진을 찍으려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입니다. 백악관은 이런 행사들을 “파티”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볼(Ball)” “갈라(Gala)” “리셉션” 등으로 부릅니다. 매년 12월 백악관은 50여개의 각종 볼, 갈라 등이 개최합니다. 바쁠 때는 하루에 2개씩 파티가 열리는 날도 있습니다. 올해는 이런 파티가 “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줄었다”는 것이 CNN의 분석입니다. 통상적으로 백악관의 12월 파티에 초대되는 인사들은 1000명이 넘습니다. 올해는 100명 정도라고 합니다. 백악관 파티의 총책임자는 전통적으로 퍼스트레이디입니다. 파티 수와 인원 감소는 질 바이든 여사가 내린 결정입니다. 올해는 파티의 형태도 바뀌었습니다. 음식 대접? 없었습니다. 주류 제공? 없었습니다. 대통령 부부 참석? 없었습니다. 파티 시간? 통상 2시간에서 올해는 30분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참석 전 48시간 이내 코로나19 검사는 필수. 참석자들 간의 거리두기 규칙도 지켜졌습니다. 전 사키 대변인도 변한 파티 분위기가 미안했던지 “올해는 ‘오픈 하우스’ 스타일이었다”며 차별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분양 아파트 오픈하우스처럼 미국의 오픈 하우스 행사는 한번 쭉 둘러보는 ‘집들이’ 성격이 강합니다. 참석자들은 백악관의 각종 룸들을 투어하며 질 여사를 비롯한 1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몇 달 동안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연말 장식들을 구경한 뒤 퇴장했습니다. 미국 파티 특유의 ‘밍글(mingle·삼삼오오 어울리는)’ 문화가 사라졌습니다. 미국인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는 5개의 백악관 파티가 있습니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1962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부부가 당시 각각 5세, 2세였던 자녀 캐롤라인과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위해 마련한 생일 파티입니다. 당시까지는 주로 정치외교 행사 성격의 점잖은 파티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반해 케네디 대통령이 ‘퍼스트 패밀리’라는 가족 컨셉을 강조한 파티를 처음 열어 화제가 됐습니다. 캐롤라인과 존-존(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애칭)의 친구 30명이 초대됐습니다. 백악관 곳곳이 풍선으로 장식되고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여사가 직접 꼬마 손님들의 손을 잡고 입장했습니다. 해군 군악대 밴드도 동원됐습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맏딸 패트리샤의 야외 결혼식을 열었습니다. 하객 400여명이 초대된 행사에 닉슨 대통령은 딸을 손을 잡고 입장했습니다. 식후 리셉션은 실내 이스트룸으로 옮겨 진행됐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딸의 손을 잡고 춤을 췄습니다. 1975년 백악관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딸 수전의 ‘프롬(고교 졸업반 파티)’의 무대가 됐습니다.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백악관 프롬’입니다. “백악관에서 국민 돈으로 프롬까지 열어주느냐”는 비판이 나오자 수전을 비롯한 메릴랜드의 홀튼 여고 학생 75명이 당시 액수로 총1300달러(154만원 정도)에 달하는 행사 비용을 지불했고 백악관은 장소만 제공했습니다. 각자 파트너를 데리고 온 학생들은 미트볼로 식사를 하고 출장 록밴드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인근 포토맥 강에 나가 요트도 탔습니다. 파티 하면 역시 화려한 할리우드 스타일이 제격이죠. 할리우드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2개의 유명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1981년 퍼스트레이디 낸시 여사는 레이건 대통령의 70세 생일을 맞아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이미 파티 개최를 알고 있던 레이건 대통령이 “서프라이즈”라는 환호성에 애써 놀란 척 하는 연기를 한 것이 우스웠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가수 겸 배우이자 레이건 대통령의 친구인 프랭크 시나트라 등이 초대됐습니다. 또다른 레이건 파티는 1985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미국 방문에 맞춰 국빈 만찬을 열었던 것입니다. 당시 결혼 4년째인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미국에서도 상당한 셀러브리티였기 때문에 그녀의 일거수일수족은 큰 화제였습니다. 배우 존 트라볼타가 검정색 이브닝드레스의 다이애나비의 손을 잡고 춤은 춘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사건’입니다. 백악관 파티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은 꿈의 이벤트입니다. 한번이라도 참석해본 사람들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파티의 흔적’을 남기며 자랑하기 바쁩니다. 미국인들은 내년에는 백악관 파티가 제대로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야 화려한 파티 드레스를 구경하는 재미라도 있을 테니 말이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얼마 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 전 주일 미국대사(64)가 주호주 대사로 지명됐다는 소식에 호주 소셜미디어는 하루 종일 환영 메시지로 와글와글했습니다. 호주의 대표 신문인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캐롤라인 케네디는 이상적인(ideal) 대사”라며 치켜세웠습니다. 조 하키 전 주미 호주대사는 “호주에 대한 미국의 찬사(compliment)”라고 했습니다. 호주의 유력 매체 브리즈번타임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대사 임명이 늦어지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요한 나라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을 보낸다는 것”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름 하나로 아이콘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캐롤라인 케네디가 그런 사람입니다. 케네디의 후광이 캐롤라인이라는 이름에 녹아있습니다. 대사 지명을 계기로 호주 인기팝송 차트에 소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닐 다이아몬드의 1969년 노래 ‘스윗 캐롤라인’은 후렴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랑스런 캐롤라인, 옛날에는 좋더라도 이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았고, 내게는 이렇게 멋진 날들이 절대 없을 거라고 믿었어요.” 이 곡에 얽힌 뒷얘기를 하자면 주인공이 캐롤라인 케네디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다가 2007년 다이아몬드가 방송 인터뷰에서 “말을 타고 있는 어린 캐롤라인의 잡지 표지 사진을 보고 노래를 지었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캐롤라인 케네디의 50세 생일 축하 파티에서 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사 내용에 함축된 성적(性的) 메시지 때문에 논란이 일자 2014년 다이아몬드는 “사실 아내인 마샤를 모델로 한 노래이며, 멜로디 상으로 세 개의 음절이 필요해 ‘캐-롤-라인’으로 했다”고 정정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스윗 캐롤라인’ 속 캐롤라인의 정체는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일한 직계 가족인 캐롤라인 케네디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과 관심입니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초반에 저조한 인기로 고민하던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캐롤라인 케네디의 지지를 얻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았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당시 보잉사 이사로 있던 그녀의 지지 성명을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쳤고, 캐롤라인 케네디는 보스턴글로브 기고(2020년 2월)를 통해 공식 지지를 밝혔습니다, “그(바이든 후보)는 미국의 낙관주의와 관대함을 대변한다. 그는 언제나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할 것이며,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그는 상대국에게 고언을 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고언은 사적인 채널을 통해 기술적으로, 그리고 상대에 존경심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기고는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케네디 전 대통령 시대의 글로벌 리더십의 비전이 고스란히 배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판에 박힌 정치인 지지 성명이 아니라 자신보다 15세나 많은 정치 대선배인 바이든 후보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언어들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캐롤라인 케네디의 바이든 지지에 열 받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그녀의 주일 미국대사 경력을 깎아내리며 “일본은 케네디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조롱했습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외교 경력이 없는 그녀를 주일대사로 임명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캐롤라인 케네디를 가리켜 “일본 전문가도 아니요, 국제문제 전문가도 아니다. 외교관 경력은 물론 공직을 가져본 경험조차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그녀가 주일대사에서 물러났을 때 평가는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하와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동서문화센터는 “양국 외교 관계를 밀착시키고 일본에서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녀의 이임을 아쉬워하며 ‘대사관의 영역을 벗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대사’라는 제목의 장문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캐롤라인 케네디는 대사 경력은 짧지만 미국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자산입니다. 흔히 외교가에서는 “대통령과 직통전화 라인(direct line)을 가진 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롤라인 케네디 대사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최고 결정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됩니다. 주일대사 시절부터 그녀를 알고 지내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다른 나라들은 대사가 ‘노(No)’라고 해도 그 윗선(대통령)을 설득하면 ‘예스(Yes)’로 바뀔 수 있는데 반해 캐롤라인 케네디가 ‘노’라고 하면 진짜 ‘노’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막강한 발언권으로 2016년 오바마 전 대통령을 설득해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평화공원 방문을 성사시켰습니다. 전문가들은 캐롤라인 케네디의 강점에 대해 케네디이기 때문에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긍정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함이라고 분석합니다. 다른 케네디 후손들이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과 달리 모범적인 사생활을 유지해왔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힙니다. 캐롤라인 케네디 다음으로 유명한 케네디가 후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반대 운동가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다가 소셜미디어 계정이 차단됐습니다. 한국은 캐롤라인 케네디라는 ‘대어(大魚)’를 낚은 호주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이웃국가 일본 중국에는 이미 미국대사가 지명된 것과는 달리 주한 미대사는 11개월째 공석입니다. NBC방송은 미 의회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인들이 아직 주한 미대사가 임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례를 볼 때 한국에는 캐롤라인 케네디 같은 셀러브리티급 미대사가 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스타 정치인이든, 실무형 외교관이든 미 대사가 없다는 것은 임기 말 외교 과제가 산적한 우리 정부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 외교가에서 나오는 말대로 한반도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면 한국 외교당국은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얼마 전 미국의 존경받는 정치인 밥 돌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별세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정계에 진출해 세 차례 대선에 출마하기도 했던 그의 별세 소식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Let’s be honest. Bob Dole was always honest sometimes to a fault.” 조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20여 분에 걸쳐 매우 긴 추모사를 낭독했습니다. 함께 의회를 누비며 우정을 쌓아온 오랜 정치 지기의 별세 소식에 침통한 모습이었습니다. 추모사 중에서 조문객들의 웃음을 자아낸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밥 돌은 언제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사람의 좋은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 뒤에 붙은 ‘to a fault’는 ‘결점이 될 때까지’, 즉 과한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돌 전 의원의 솔직함에 대해 흉을 보려는 의도가 아니라 매우 고결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죠. △“Speak straight, even when it gets you in trouble.”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열린 공식 추모식에 영화배우 톰 행크스가 참석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돌 전 의원이 이끌었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 건립 운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추모사에서 돌 전 의원이 들려준 삶의 교훈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바르게 말하라, 그것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라도”라는 교훈이었다고 합니다. ‘get into trouble’은 ‘곤경이나 위험에 부딪히다’는 뜻입니다. △“We cannot let political differences stand in the way of that common good.” 돌 전 의원은 별세 2주일 전쯤 언론에 기고문을 남겼습니다. 그는 힘겹게 종이에 한 글자씩 쓰며 1개월 이상 걸려 기고문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미 일간지 USA투데이에 게재된 기고문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 ‘stand in the way’는 ‘길 가운데 서 있다’, 즉 ‘진로를 가로막다’는 뜻입니다. 분열의 정치를 염려하며 “타협(compromise)은 결코 더러운 단어가 아니다”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노(老)정객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수입 농산물의 불법 유통 및 원산지 둔갑 차단 등 효율적인 유통 관리를 위해 내년 1월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유통이력 관리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현재까지는 통관부터 유통 단계에 해당하는 유통이력 업무는 관세청이 담당하고, 유통부터 소비 단계인 원산지 표시·단속 업무는 농식품부가 담당했던 것을 내년부터 통관부터 소비까지 농식품부가 일원화해서 관리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고 의무자인 수입자 및 유통업자는 수입 농산물의 유통신고(수입 농산물 유통관리 시스템)를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해야 한다. 2009년부터 관세청은 통관 후 소매 단계까지 사회 안전 또는 국민 보건을 해칠 우려가 현저한 수입 농산물을 지정해 유통이력을 관리해오고 있다. 현재 김치, 콩 등 14개 수입 농산물이 대상 품목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한편 농식품부는 1995년부터 수입 농산물의 유통(도소매업체) 및 소비(음식점 등) 과정에서 원산지 표시를 관리·단속 중이다. 원산지 표시 대상 업체는 156만4000개이며 대상 품목은 농산물·가공품 651개, 음식점 9개다. 이 같은 이원화 시스템으로 원산지 단속이 이뤄지면서 신속한 유통이력 정보의 활용에 한계가 있고, 유통이력 신고와 원산지 표시 대상 업체가 대부분 중복된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제기돼 왔다. 관세청도 지정 품목 확대와 수입물 증가에 따라 관리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8년 농식품부와 유통이력관리제 이관 논의를 시작해 2019년 6월 합의에 도달했다. 내년부터 일괄적으로 관리를 맡게 된 농식품부는 소비자 관심이 높거나 부정 유통이 많은 품목으로 유통이력 관리 대상 품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김치 고추 콩 양파 등 14개인 대상 품목을 2023년 20개, 2025년 30개로 늘릴 계획이다. 유통이력 관리 품목 확대와 함께 수입 농산물 부정 유통 예방을 위한 수입 농산물 유통이력 시스템도 구축된다. 수입자 및 일련번호로 이뤄진 현행 관리체계를 품목 연도 국가 및 일련번호로 보강해 ‘유통이력관리번호’만으로도 품목 원산지 등을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평소에 직접 요리를 하십니까?”(진행자 지미 팰런)“아니요. 질(와이프)이 합니다.”(조 바이든 대통령)“요즘 지지율이 낮은 것에 신경이 쓰이십니까?”(팰런)“(난처한 듯 얼굴을 긁적이며) 더 이상 신경 안 써요.”(바이든)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TV 심야토크쇼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했습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심야토크쇼에 나온 것입니다. 최근 대통령의 대형 말실수 사건이 몇 건 있었던지라 재치 있는 입담이 중요한 심야토크쇼 출연이 적절한가를 두고 출연 전부터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이번 출연은 처음부터 생생한 현장감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초대 손님인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해 팰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에서 화상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또한 5분 정도 진행된 인터뷰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같은 구조적인 한계에서 진행된 심야토크쇼 출연은 우려했던 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보여준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제에서 벗어나기, 용두사미식 결론, 과거 이야기에 초점 맞추기, 산만한 대화 분위기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본인도 이를 의식했는지 팰런과의 대화 중에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결론은” 등의 표현을 자주 쓰며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팰런이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대통령이 말할 때마다 너무 크게 웃는 리액션을 보인 것이 부자연스러웠다는 평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와 정치 풍토가 다른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심야토크쇼에 종종 출연합니다. 심야토크쇼에서 초대 손님과 진행자 간의 대화는 전반부 농담과 후반부 본론으로 구성됩니다. 전반부에서 개그성 대화로 관심을 끈 뒤 후반부에서 출연한 진짜 이유를 설명합니다. 연예인 초대 손님의 경우에는 신작 영화나 노래 소개가 후반부 본론에 해당합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달라진 일상 생활에 대한 소소한 잡담으로 시작해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 선거법 개정, 코로나19 대응 등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심야토크쇼 출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는 전반부 개그성 대화에서 재미있는 농담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비교적 대화를 잘 이끌어갔지만 이런 정책 설명이야 굳이 심야토크쇼가 아니더라도 기자회견이나 다른 연설 무대에서 하는 것이 더 빛이 났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미국에서는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성공적인 대통령의 심야토크쇼 출연 사례가 7개 정도 있습니다. 첫 사례는 1960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잭 파’에 출연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 시작합니다. 케네디는 심야토크쇼에 처음 출연한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그는 뛰어난 개그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미국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대문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명언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부터 대통령의 토크쇼 출연은 ‘장기 자랑’으로 흘러갑니다. 1963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15명의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선보였습니다. 1992년 ‘아세니오 홀 쇼’에 출연한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했습니다. 1994년 ‘아버지 부시’로 통하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정치풍자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에 출연해 자신을 흉내 내는 코미디언을 향해 “전혀 나와 닮지 않았다”며 떼를 쓰는 코미디를 선보였습니다. 2000년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선 후보는 ‘더 레이트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에 출연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을 이렇게 바꾸겠다’ 톱 텐(Top 10) 목록을 발표했습니다. 목록은 ‘러시모어 조각상에 어머니(바버라 부시 여사) 얼굴 새겨 넣기’ ‘동생(젭 부시 플로리다 전 주지사)을 백악관 세차 요원으로 고용하기’ 등 재미있는 내용으로 꾸며졌죠. 2016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대머리 의혹 해소를 위해 진행자 팰런에게 자신의 머리가 가발이 아니라며 직접 만져보라고 했습니다. 2016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을 랩송으로 만들어 노래했습니다. 심야토크쇼에 출연하는 미국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체면과 격식은 버리고 철저히 오락에 주력합니다. 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심야토크쇼는 시청자가 하루의 짐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즐긴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머 코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준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심야토크쇼 출연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과거 심야토크쇼에 출연해 히트를 쳤던 적이 있습니다. 2016년 부통령 시절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입니다. 당시 그는 방송 스튜디오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두 가지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파격적인 장면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힐러리 클린턴-트럼프 대선후보 TV 토론을 평가해달라는 팰런의 요청에 난데없이 삼위일체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더니 “세상에나, 그렇게 지식이 딸리는 사람(트럼프)은 처음 봤다”는 농담으로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출마 부담감이 없는 임기 말 부통령 자격으로 출연했던 5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번 심야토크쇼 출연으로 최대 목적이었던 지지율 만회는 힘들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옵니다. 그나마 대형사고 급 말실수가 없었던 것을 최대 성과로 꼽아야 할 듯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