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민동용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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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동용 기자입니다.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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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5~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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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AI, 인간의 일을 어디까지 빼앗을 거니

    “우리는 이상주의를 현실주의로 누그러뜨려야 한다.” 5년 전 ‘4차 산업혁명의 시대, 전문직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기술 혁신이 20세기 내내 굳건했던 전문직의 종말을 부를 것이라 예측했던 저자. 그가 이번 책에서는 기술 발전이 경제적 파이를 키워 인간 노동의 새로운 수요, 즉 새 일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은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무도가(武道家)가 ‘도장(道場) 깨기’ 하듯 기술 발전과 노동 수요 발생의 연관성을 낙관한 경제학설을 하나씩 논파하면서.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네 배 넘게 늘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은행 창구 직원은 20% 증가했다. 계좌에 돈을 넣고 빼는 단순 업무에서 벗어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자 고객이 늘었고, 기술 혁신이 경제를 끌어올려 소득이 늘어나자 은행을 찾는 수요가 증가했으며, 더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게 된 결과다. 책은 이런 과정을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인간을 보완하는 유익한 힘의 싸움에서 언제나 후자가 이겼다.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충분히 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래 기술이 인간을 보완하던 힘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책은 말한다. 당초 ‘틀에 박힌 업무’만 대신하리라던 기술 발전은 인간만의 것으로 여겼던 공감 판단 창의성의 영역까지 넘어왔다. 그것도 인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기술이 인간의 업무를 끊임없이 잠식해 절대적으로 일이 줄어드는 세상이 수십 년 내에 오리라 장담한다. 그 세상은 지독한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영향력까지 키운 ‘기술 대기업’, 찾기 힘든 삶의 의미로 구성된다. 저자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조건적 기본소득과 삶의 의미를 만드는 ‘큰 정부’를 제시한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고 무엇보다 현실적이던 논지가 정부에 대한 ‘무한 신뢰’로 귀결되는 것은 아쉽다. 저자는 정부가 살아야 하는 의미까지 제공하는 유토피아와 정부가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사이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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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언제쯤 우주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1939년 미국 뉴욕 세계박람회 개막식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한 이 말을 이 책의 저자 앤 드루얀과 그의 남편 칼 세이건(1934∼1996)만큼 실천한 과학자는 드물 것이다. 칼 세이건은 1980년 독보적인 과학서적 ‘코스모스’와 동명의 TV 다큐멘터리로 과학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당시 그의 곁에서 천문학자 스티븐 소터와 함께 다큐멘터리의 시나리오를 썼던 앤 드루얀은 2014년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라는 속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코스모스 출간 40주년을 맞는 올해 이 책을 펴냈다. 코스모스가 ‘우주를 이해하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칼 세이건의 큰 메시지를 서사시처럼 내보였다면, 앤 드루얀의 이 책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소속된 더 큰 자연을 이해하는 일은 끝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는 겸손을 바탕으로 지난 40년간의 과학적 성과를 포개어 우주와 생명,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인류가 미래를 위해 농업을 발명한 이야기’에서부터 ‘생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고난들을 이겨낸 이야기’, ‘과학 덕분에 스스로 중심이고 싶어 했던 유치한 희망을 덜어낸 이야기’, ‘다른 생명체에게도 의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야기’, ‘마침내 우주의 망망대해로 진출한 이야기’ 등이 13개 장에 담겼다. 유리 콘드라튜크, 카를 폰 프리슈, 니콜라이 바빌로프같이 잘 모르던 과학자의 이야기가 가미돼 논픽션 같은 흥미를 준다. 저자는 ‘수조 개의 다른 세계 중 하나에 불과한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인류가 지금은 그 지구에 대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과학의 선의(善意)를 하나의 신념 체계로 내면화해 후세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다면 희망은 있다고 강조한다. 정확한 설명과 함께 적재적소에 배치된 200장에 이르는 사진 그림 상상도를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책 한 권을 읽은 듯한 충만감을 준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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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쪽 팔 잃고도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1919년 1월 동제사의 밀명이 각 지역 요원들에게 전달된다. “우리 동포는 각지에서 독립을 선언하여 운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중국 상하이에 기반을 둔 동제사는 국내외에 연결된 조직망을 중심으로 해외 정보를 수집하고 고국에 유포하면서 세력을 규합하는 독립운동을 해온 터였다. 밀명에 적힌 ‘운동’의 시기는 구체적이었다. “도쿄에서의 운동은 2월 초순에, 경성에서의 운동은 3월 초순에 실행하기로 돼 있으니….” 전국을 뒤흔든 만세운동이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은 3·1운동을 예고한 동제사의 지령으로 시작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신문에 연재한 독립만세운동의 대장정을 엮었다. 3년여에 걸쳐 국내외 80여 곳의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고 지역 자료들을 찾아봤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지역 주민들의 증언을 채록해 100년 전 만세운동의 현장을 생생히 살려냈다.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는 연재에 대해 “1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평했다. 1권에서는 일본 도쿄 유학생 대표들의 2·8선언, 북만주 대한독립의군부의 독립선언서 선포 등 3·1운동 직전 해외 단체들의 활동 현장을 찾고, 중앙학교가 중심이 되고 각계각층이 참여한 국내 독립선언운동의 준비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이후 남쪽 제주도에서 북쪽 함경도까지 전국 곳곳에서 울려 퍼진 독립만세의 함성을 전한다.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의협심이 강했던’ 주민 박영묵이 규합한 경남 하동의 비밀결사 ‘일신단’, 석유램프에 숨겨온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당진 도호의숙의 유생들, 일본군의 추격에도 굴하지 않고 배를 띄워 선상 만세시위를 벌인 경기 고양의 어부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평범한 주민들이 앞장서서 전개한 시위 현장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독자적인 만세운동을 벌인 경기 수원의 기생들, 헌병의 칼에 한쪽 팔을 잃고도 만세의 외침을 그치지 않은 광주의 윤형숙 등 그동안 크게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도 비중 있게 다뤘다. 당시 전국 13도 220개 군 가운데 만세운동에 참여한 곳은 211개 군(95.9%)으로 거의 대부분이다. 일제의 진압 과정에서 살해된 사람은 7500여 명, 부상한 사람은 1만6000여 명이다. 책에서는 숫자로만 알려졌던 사람들의 주도면밀한 시위 계획 장면, 태극기와 만세의 함성으로 분출된 독립의 열망과 죽음을 불사하고 일제에 맞선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은 그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무저항운동 등 세계 각국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는 동아일보 역시 3·1운동의 결과물이다. 취재팀은 “책을 통해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들려지는 동시에, 갈등의 골이 메워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 통합의 3·1운동 정신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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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중국엔 국가만이 존재… 코로나 정보통제가 증명”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등의 소설로 중국 사회의 ‘은폐된 진실’을 다뤄온 작가 옌롄커(閻連科·62)가 중국 고도성장의 이면을 이야기한 ‘작렬지(炸裂誌)’(자음과모음·사진)로 돌아왔다. 그동안의 작품이 과거의 ‘희미한’ 기억에 상상력을 더해 문학적 진실에 도달했다면 이 소설은 ‘익숙한’ 현실을 투시하고 분석해 현재를 뚜렷하게 보는 데 집중했다. 13일 ‘딩씨 마을의 꿈’의 옮긴이 김태성 씨의 번역으로 e메일로 만난 옌롄커는 “작렬지가 현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1949년(중국 건국) 이후 모든 과거는 현재가 되고 있고, 모든 현재는 과거의 번역”이라고 말했다. 대기근과 문화대혁명, 공산당 1당 체제, 마오사상 등을 다룬 이전 작품들이 드러낸 ‘어둡고 잊혀진’ 진실은 번영을 구가하는 현재에도 반복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작렬지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책력(冊曆)이 “숙명을 상징한다”며 “중국 역사는 항상 숙명과 윤회 속에 있다”고도 했다. 작렬지는 1980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중국의 ‘자례’(작렬·炸裂의 중국식 발음)라는 마을이 촌(村)→진(鎭)→현(縣)→시(市)→성(省)으로 커가는 과정을 쿵씨, 주씨 집안의 대립, 두 집안 남녀의 갈등, 쿵씨 4형제 간의 혼란으로 엮어냈다. 그 성장의 그늘에서 인간의 사랑, 욕망과 음란함, 사악함이 배금주의 집단주의 관료주의 군국주의와 적나라하게 교차한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허망함’이 짙게 배어난다. “그 허망함이 오늘날 중국과 중국인의 정신적 상태이자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현대의 땅과 미래의 도로 위를 날아다니는 껍데기가 되어 있어요.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몽유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몽유 상태의 중국인을 상징하듯 소설에서 주인공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매우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중국에는 개인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사람은 반드시 집단과 국가 안에 존재해야 합니다. 개인의 생명과 운명은 집단과 국가의 의지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최대한 사상, 언론, 행동을 통일해야 하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의 과정에서 보듯 개인(人)은 인민이 되고, 인민은 추상적 개념이 됩니다. 개인의 생명이 이탈하고 은폐돼 인간의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게 됩니다.” 중국 일부 독자가 “현대 사회 발전 과정에서의 도둑과 창녀들을 썼다”고 우스갯소리를 할만큼 이 작품에서 여성은 성(性)을 무기로 삼는 전형성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성은 팜파탈도 요부도 아니다. 인간의 소외와 소외됨, 왜곡과 왜곡됨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소설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왜곡되거나 소외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가 인식하는 (중국의) 삶의 현실, 삶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능청스러운 허풍과 극도의 과장, 반어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교감한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문학적 실험이자 문학적 사유(思惟)인 ‘신실(神實)주의’에서 기인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리얼리즘을 포함한 기존의 어떤 문학적 관념도 진정으로 중국인과 중국의 현실을 표현해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고 깊고 부조리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실 밑에 감춰진 진실’ ‘미처 발생하지 않은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실주의는 쉽게 체감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면적 진실보다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내재적 진실’을 더 중시하지요. 생활의 현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정신 혹은 영혼의 진실입니다.” 현실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진 이 세 가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신실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달 초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과 정보 통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글을 국내 계간지에 실었던 옌롄커는 10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우한을 방문해 사실상 ‘승리’를 선언한 것에 대해 “승리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재난 앞에서 인류는 영원히 승리를 얘기할 수 없어요. 역병이 물러간 뒤에는 어떻게 해야 거대한 재난이 중국과 인류를 또다시 습격하지 못하게 할지 반성하고 성찰하고, 고민하고 사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중국의 번영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깨어 있어 뭔가를 냉철하게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문학의 의무”라고 강조했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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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집콕’에 지친 당신, 햇빛 쬐러 가세요

    인류의 여명기서부터 괜히 태양을 숭배한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도 절대자 같은 존재였지만 실제 삶에서도 태양은 매일 되풀이되는 빛과 어둠의 24시간 주기를 통해 우리의 몸과 세계에 대한 경험을 통제해왔다. 우리 대다수는 본능적으로 햇빛에 끌리는 것이다. 과학전문지 기자 출신의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태양이, 햇빛이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햇빛이 만들어낸 몸의 하루 주기 리듬을 통해 인간은 시간을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는 능력을 갖게 됐다. 그런 리듬이 깨질 때, 빛을 스마트폰의 청색광이 대신할 때, 쬐어야 할 아침 햇빛을 덜 받게 될 때 초래되는 몸의 불균형은 무엇이며 이를 치유할 방법은 무엇인지 책은 상세히 알려준다. 자의보다는 타의로 홀로 실내에 머물 시간이 많아진 요즘 집 주변 공원 벤치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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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타이거 맘’이 되고 싶진 않은데…

    ‘우리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초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라면 공부 문제를 놓고 아마도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일 것이다. 자녀교육에 대한 선택의 종류는 부모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아졌다. 무엇이 어떻게 변했기에 이렇게 됐을까.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으로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두 저자는 ‘아이가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바랄 뿐인 부모가 ‘타이거 맘’이나 ‘헬리콥터 부모’가 되는 이유를 경제적 요인으로 설명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불평등이 증가하고 승자독식(獨食)의 문화가 퍼지며 계층이동성에 제약이 생긴다. 그럴수록 학업 성취가 장래 아이의 삶에서 갖는 중요성은 커지고 자녀교육에 투자할수록 고수익(좋은 직장, 사회적 지위 등)이 보장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사회에서 돈과 능력과 시간이 있는 부모라면 자녀 일상에 시시콜콜 개입하는 양육법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자녀에 대한 욕망과 애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얘기다. 두 저자는 사회적, 경제적 계층 간의 양육 격차가 개미지옥처럼 헤어나지 못할 지경에 처하지 않으려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외부성을 해소하는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슷한 복지국가로 보이는 스웨덴과 스위스의 양육 방식이 다르고, 같은 사회라도 1970년대와 1980년대가 다른 이유 등 흥미로운 내용을 딱딱하지 않게 풀어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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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의 핵심은 ‘우리’… 내편 네편 나누는 현실 안타까워”

    “너하고 내가 하나일 때 우리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말하자면 노장(老莊)사상의 가장 이상적인 낱말입니다. 조선시대 백성의 두레도 우리랑 같은 거예요.” 84세의 학자는 내 편, 네 편 나뉘어 서로 눈을 흘겨대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운 듯했다. 30년 넘게 노자 장자 공자 맹자 같은 동양사상의 대중화에 힘써온 윤재근 한양대 명예교수가 올 초 ‘노자81장’(동학사)을 펴낸 까닭에는 이 같은 답답함도 들어 있다. 16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윤 교수는 “요새 우리가 사는 게 힘든 이유가 뭐냐 하면 다 상쟁(相爭·서로 다툼)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상해(相害·서로 해침)하는 것이다. 나 잘살려면 남이 못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잠재된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이) 왜 불쌍한 줄 아세요? 머릿속에 상쟁밖에 없어요.” 불교 경전 속, 머리는 두 개지만 몸뚱이는 하나인 새 ‘공명(共命)’의 한쪽 머리가 다른 머리를 시기해 독을 먹고 함께 죽는 우화를 떠올리게 하는 현실. 이에 대한 해법을 노학자는 ‘노자’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다만 남이 떠주는 것이 아니라 노자라는 우물에서 독자 스스로 샘물을 길어 올리길 바란다. 1, 2권 합쳐 2100페이지에 이르는 ‘벽돌책’이지만 각 장, 구문(句文)마다 독자가 스스로 새겨 의미를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해독(解讀)에 더 도움이 될까 싶어 영문법까지 동원했다. 책 두께에 지레 겁먹지 않는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성인(聖人)은 모든 사람을 할아버지가 손자 보듯 해요.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하는 말인데 노자나 공자가 어렵게 말했을 리가 없어요.” 윤 교수는 화전민촌보다 더 깊고 높은 산중 산인촌(山人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채약(採藥·약초나 약재를 캐는 일)하는 사람인 산인은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단 7가구가 살았지만 마을에 서당이 있었다. 윤 교수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이래 노자 장자 공자 맹자를 읽으면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1990년 54세가 돼서야 100만 부 이상 판매한 ‘학의 다리가 길어도 자르지 말라’를 출간한 데에는 이렇게 편하고 쉬운 노장사상을 어렵게만 느껴지게 하는 기존 학계에 질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부디 문학하는 분들은 노자 2장을 꼭 읽어 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미추(美醜), 선악(善惡)을 대립적인 것으로 양변(兩邊)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그럼 상쟁은 어떻게 해소할까. 그는 81번째 장 ‘불해부쟁(不害不爭)’을 꼽았다. 서로 해치지 말고 다투지 말라, 그러면 네 마음이 제 길을 간다는 것. 이는 만족할 줄 아는 것(知足)이다. 온갖 욕망을 내려놓고 한순간만이라도 내가 나를 마주해 보라는 얘기다.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 꾀를 부리는 짓’인 작위(作爲), 그것이 없는 무위(無爲)의 궁극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무위는 영어로 ‘last freedom’, 더할 바 없는 자유라는 뜻”이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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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의 파워’는 왜 예전 같지 않나

    1987∼2006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정치 에디터와 함께 쓴 이 책은 미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위대한 기업가들에게 바치는 송가(頌歌)다. 만신전(萬神殿)에 모신 신들을 찬양할 때는 현재가 불만스럽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경제대통령으로 불린 그린스펀이 기업인들의 영웅담을 소환한 까닭도 장기 정체에 발목 잡혀 사회주의마저 거론되는 21세기 미국의 현실에 위기의식을 느껴서일 테다. 이 책은 미국의 최대 경쟁우위는 창조적 파괴를 이루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설파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낸 영웅들이 바로 모험적이며 혁신적이고 조직적인 기업가, 창업가라는 것이다. 건국 초기, 산업적 근대화를 추구하는 알렉산더 해밀턴 진영과 농업사회를 밀어붙인 토머스 제퍼슨 진영의 대결에서 해밀턴이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의 승리였다고 책은 풀이한다. 미국의 성장동력으로 선택된 자본주의는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인 1914년까지 고도로 발전했다. 1830년대 몇 년 차이로 태어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 부호 존 D 록펠러, 은행가 J P 모건 등이 창조적 파괴의 전성기를 이뤘다. “이들은 진정한 거인들이었다. 과거의 왕이나 장군 말고는 누구보다 많은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 시저, 나폴레옹과 비교할 만한 소수의 사업가들이다.” 이 거인들은 “모든 평형 상태를 깨뜨리고 모든 조합을 해체하는 창조적 파괴의 힘”을 보였다. 그린스펀은 창조적 파괴의 영웅들이 ‘기업 왕국’을 건설하고 방어하기 위해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의 삶까지 희생시키는, 영혼의 제국주의라 부를 만한 죄를 범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결함 있는 영웅’을 대량생산했기 때문에 미국이 성공했다고 역설한다. “파괴는 창조와 함께 변화를 구성한다. 불가피하게 기존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기존의 공장을 폐쇄시킨다. 중대한 혁신은 산업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산업계를 지배한 이들의 창조적 파괴는 역사상 최고로 생활수준이 향상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바가지 가격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저렴한 상품을 시장에 내놔 부를 쌓았다고 옹호한다. 이 책을 쓴 이유는 말미에 등장한다. 창조적 파괴의 역동성이 미국에서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동성이 쇠퇴하는 이유는 생산성을 억누르는 복지제도와 기업인의 혁신을 제한하는 규제의 증가에 있다고 그린스펀은 분석한다. ‘FANG’ ‘MAGA’ 같은 정보기술 거대 기업의 존재를 생각하면 그린스펀의 지적은 엄살 같기도 하다. 창조적 파괴에 대한 신봉도 만만찮은 반론을 부를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위기에 처한 세계경제에 모험적인 기업가정신이 필요치 않을 이유는 없다. 원제 ‘Capitalism In America: A History’.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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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의 ‘전쟁’은 현실의 축소판”

    책의 띠지에는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 밀리언셀러 작가”라고 적혀 있다. 황선미 작가(57)는 “밀리언셀러라는 문구는 정말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100만 부 넘게 읽힌 그에게 ‘밀리언셀러 작가’라는 표현은 어색하지 않다. 황 작가가 최근 ‘아무도 지지 않았어’(주니어김영사)라는 그림책을 냈다. 1999년 그의 단편동화 ‘전쟁놀이’에 백두리 작가가 그림을 그린, 새로운 시도다. 10일 서울 종로구 한 출판사의 고즈넉한 3층 한옥 서가에서 만난 그는 “실제 둘째 아들이 어렸을 때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며 웃었다. 지금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오전·오후반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생긴 약 20년 전의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전쟁’에 돌입한다. 친구를 핍박하는, 한 살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동급생 무리와 한판 붙기로 했다. 색종이에 바둑알을 넣은 ‘바둑알 폭탄’, 은박지에 얼음을 넣어 만든 ‘얼음폭탄’도 준비했다. 무더운 결전의 날. 승부는 아이들의 전의(戰意)와는 무관하게 결정된다. “얼음 얼리고 하는 걸 보니 우스웠는데 결전에 임하는 애들한테는 현실이고 세계였지요. 자기의 전부인 친구를 어떤 녀석이 괴롭힌다면 싸워야 하는 것이고요. 애들 눈으로 봐야 하는 거였어요.” 그는 이 ‘사건’의 전말이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전쟁이 싸울 사람도, 이유도 없어져 어그러지는 것을 보며 ‘애들이 우리에게 주는 게 많네’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전쟁도 결국 어른들이 이익을 놓고 다투는 일종의 장난 아닌가, 싶었던 것. 그 축소판을 아이들에게서 봤다. 2020년 현재 현실과는 다르다. 유튜브와 스마트폰, 학원의 쳇바퀴 속 아이들에게 이 책은 상상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황 작가는 “현실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문학은 아니잖나. ‘서로를 이해하는 데 문제 해소의 길이 있다’는 제안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아동문학은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맞은 이래 하향세다. 황 작가도 ‘누가 읽는다고 글을 쓰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삶의 환기라는 기본 원칙, 현실을 다시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책의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1만2800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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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이 ‘없다’는 느낌을 ‘있다’로 바꿔보세요”

    일곱 살 때 할머니가 정해준 길을 34년째 걷고 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안 하려면 안 할 수도 있었지만 재미있어 보여 선택한 그 길은 ‘운명 컨설턴트’. 수많은 사람의 미래를 조언해 행운을 끌어오는 법을 알려준 이서윤 씨(41)가 최근 ‘The Having(더 해빙·사진)’ (수오서재)이라는 책을 펴냈다.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지만 내용은 단도직입, ‘부자 되는 법’이다. 그런데 돈이 ‘없다’는 느낌을 ‘있다’는 느낌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너무 간단해서 함정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 이 씨를 9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 생각하면 돼요. 50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5000원 나갔네’가 아니라 ‘나에게 5000원이 있었네’라고 생각하고 그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 그게 시작이에요.” 대부분 돈이라고 하면 ‘없다’는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있다’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연결시키라는 주문이다. 이 씨는 ‘재운(財運)이 없다’거나 ‘타고나기를 거지 팔자’라는 말은 잘못됐다고 잘라 말한다. 이 책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30억∼100억 원을 벌 수 있는 재운을 타고난다고 얘기한다. 다만 그 그릇을 다 못 채울 뿐인데 이유는 ‘없다’는 감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단돈 100원이라도 내 호주머니 속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일이 중요해요. 내게 얼마나 ‘없느냐’에 집중하면 점점 더 가난해집니다. 누구에게나 재운은 있으니 돈이 흘러들어오게 할 수 있지만 돈에 대해 ‘우연처럼 좋은 일은 내게 생기지 않아’라고 생각해서 아예 ‘있다’는 느낌을 막고 있으면 못 누리는 거죠.” 그 ‘있다’는 느낌이 운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운이라는 것은 흔히 운명론이 그렇듯 피동적(결정론적)이지 않다. 팔을 뻗어서 운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있다’는 감정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긍정적으로 사고하라’ ‘자신의 것에 만족하라’는 심리학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안분지족하라는 얘기는 전혀 아니에요. 부자가 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돈이 나에게는 ‘있네’ 하고 느끼는 식으로 시작하라는 거죠. ‘있다’는 감정을 계속 느끼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좋은 일’, 행운이 자꾸 생겨요.” 행운이 자꾸 생기는 흐름에 올라타려면 가장 먼저 내 호주머니에 돈이 ‘있다’고 느끼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없다’에 집중하는 만큼 시선이 대부분 밖을 향해 있어요. ‘있다’라는 감정은 시선을 점점 나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지요. 그러다 보면 상대적 박탈감도 줄어듭니다.” 그는 종교에서 말하는 욕망 내려놓기, 그에 따른 마음의 평화가 과연 옳은 일인지 생각한다고 했다. 70세, 80세가 되어도 좋은 운은 계속 들어올 수 있는데 왜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하느냐는 뜻이다. “마음의 평화는 운을 불러오는 과정일 뿐이지 지향하는 바는 아니에요. 내 운을 좋게 만드는 것을 지향하고 그것을 좋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해빙(the having)입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이 씨는 그동안 10만 명의 ‘차트’(사주를 바탕으로 한 운세)를 모았다. 자신에게 “1조 원을 벌고 싶다”고 말하는 부자도 적잖게 만났다. 이들을 만나고 차트를 공부하며 직관적으로 느꼈던 해빙의 방법을 귀납적으로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 책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로스쿨을 다닐 때 그의 자질을 알아보고 책 출간을 이끈 미국 유명 출판 에이전시를 통해 지난해 미국을 비롯해 21개국에서 먼저 출간됐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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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한민족 탄압책 소개하며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평화헌법 개정을 추구하는 등 일본의 극우파적 정책 회귀의 징후가 노골화하는 가운데 지난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책 ‘반일종족주의’는 사회적, 학술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 징용, 식량 수탈 등 일제강점기 주요 쟁점에 대해 학계 인식 및 일반 상식에 반론을 제기한 이 책에 대해 기존 학계는 “식민지근대화론의 악몽이 재연됐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9일 펴낸 ‘일제의 한국민족말살·황국신민화 정책의 진실’(문학과지성사·사진)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일본 극우세력의 역사수정주의와 입장을 같이한다’고 논박하며 일제 식민통치의 3대 특징은 사회경제적 수탈, 한국민족 말살, 식민지 무단통치라고 규정한다. 이 책은 이 중 한국민족 말살을 위해 일제가 자행한 각종 정책과 탄압책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의 허점을 짚어낸다. 1만5000원.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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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사랑했네

    이별을 마주한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대부분의 이별이 내 선택의 영역 밖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더 그럴 테다.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은 작가 함정임(56)의 새 소설집 ‘사랑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새겨지고 파기되고 지워지는 방식’, 이별을 얘기하고 있다. 사랑이 새겨지고 파기되고 지워지는지조차 모르게 선험적인 듯 자리하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껴안게 되거나(‘용인’), ‘…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머물 수도 없는 날이 온다는 것’을 엄마의 부음으로 깨닫게 되고(‘스페인 여행’), 자신의 남자와의 엇갈린 사랑을 알게 되며 ‘한 사람의 생을 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생각한다(‘영도’). 이별은 죽음이라는 형태로 다가올 때 감당하기 어렵다. 그 죽음이 기억 속에 아무런 자취 없이 열병으로만 남아있을 때는 더하다. ‘용인’에서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때 K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찾는다. 17년 전 네 살배기 K는 아버지가 묻힌 묘지를 철모르고 뛰어다닌 뒤 사흘간 고열에 시달린다. 그 어렴풋한 기억의 끝자락을 쥐고 어머니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K. 그는 기억의 시원을 좇아가며 ‘자신의 삶을 복원하거나 완성해가는 과정’을 겪고 아버지의 ‘죽음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스페인 여행’에서 내가 프랑스 파리의 사라진 극장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기억의 복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되었던 극장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고 ‘단숨에 쥐시외거리로 달려갔다. 29번지. 그런데 극장은커녕 그저 그런 아파트에 불과한 건물만이 싱겁게 서’ 있는 것이다. 작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별은 출구 없는 어둠의 길 같겠지만 ‘한 사람을 사랑했다’는 그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별은 마주할 만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삶과 소설이/앞서거니 뒤서거니/오롯이/한 세상이다/나는 다만, 빌려/썼을 뿐’이라는 작가의 말을 따른다면 이 책을 읽으며 생전의 한 젊은 소설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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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SF, 이제 변방이 아닌 ‘또 다른 천하’입니다”

    작가 배명훈(42)의 첫 에세이집 ‘SF 작가입니다’(문학과지성사)는 한국SF(과학소설)의 독립선언서다. 지난달 말 출간된 이 책은 ‘안과 밖’에서 SF 장르의 홀로서기를 공언한다. 안으로는 순문학 중심의 기성 문단이 SF를 주류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자신감이고, 밖으로는 미국 중심의 ‘SF 세계’에서 한국 SF를 변방이 아닌 또 다른 ‘천하’로 정립하겠다는 의지다. 2005년 SF 공모전으로 등단해 2009년 674층짜리 거대 건물에 50만 명이 사는 도시국가 이야기를 담은 연작소설 ‘타워’로 문단에 충격을 던진 이래 국내 SF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그를 2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근 몇 년간 국내 SF의 폭발적 성장 배경을 물었다. 성장이 있어야 자신감과 의지가 생겨난다. “원인은 많은데 정설이 뭔지는…. 다만 SF가 써도 되는 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등단했으면 가서는 안 되는 길이 암묵적으로 있는데 SF는 (이제) 해도 되는 거예요. 주류의 ‘사인’에 민감한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SF의 길이 열린 거죠.” 2020년 한국사회의 과학기술 수준도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분야의 선진기술을 체감하다 보면 SF에 더 가깝게 된다는 의미다. ‘타워’의 한 편인 ‘타클라마칸 배달사고’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중화되기 전인 2009년에 이미 그 도래와 사용법의 일단을 제시했다. 가까운 미래를 겨냥한 SF를 독자는 ‘지금 여기의 현실’로 읽었다. 반면 순문학 속 현실은 ‘오래된 현대’의 느낌이다. 미국 SF로부터의 자립도 쉽지는 않다. 일반 독자는 SF라고 하면 거대 구조물과 우주선을 떠올린다. “그런 건 60, 70년 전에 나온 거예요. 현대 SF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효과, 영향, 성찰을 다루죠. 인간에 대한 고찰, 문명에 대한 상상을 다루는 게 정상인데 사람들 머릿속 SF는 옛날 SF인 거죠.” SF의 오랜 팬들은 좋은 한국 SF를 ‘수준이 미국만큼 올라왔네’ ‘미국 SF에서 봤던 거야’ 같은 식으로 찾는다. 이렇다면 ‘인류의 운명을 걸고 외계인과 담판에 나서는 미국 백인 주인공’이라는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 주인공 자리를 최근 중국 SF가 넘보고 있다. “중국은 국력이 커지고 국제정치의 중심에 서면서 SF도 올라왔어요. 한국 SF도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어요.” 그가 보기에 우리 문화 콘텐츠 속 세계 인식은 한국의 실제 위상에 비해 뒤처져 있다. 그가 생각하는 SF의 효과에는 “우리가 세상의 변화의 중심에 서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도 들어 있다. 데뷔 후 십 몇 년간 장편 5편에 소설집 6권을 냈지만 평단의 대접은 박하다. 비평은 쌓이지 않고 ‘배명훈 작가론’은 언감생심이다. 10년 전 주요 문예지로 ‘등단’도 했지만 여전히 “장르적인 것과 순문학적인 것의 중간에 있는 작가”라는 평가가 대세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쓰겠다”며 “잘 쓸 수 있는 것만이 아니고 안 써본 것도 쓰고 훈련을 하면서 영역을 더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인물보다 세계에 집중하는 그에게 SF를 재미있게 읽는 법을 물었다. “SF가 현실의 무엇을 비유, 상징, 의미하는지 찾기보다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세요. 작품 속에 구축된 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등장인물에 이입하며 작품 안의 공기를 호흡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꾸 현실 세계의 공기가 유입되면 방해가 될 겁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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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공 티투바는 나의 분신… 흑인여성 편견 깨고 싶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겪은 아프리카 출신에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라니, 흔치 않은 흥미로운 조합 아닌가요?” 최근 e메일로 인터뷰한 작가 마리즈 콩데(83)는 중남미 카리브해의 프랑스 해외 행정구역 과들루프 출신이다. 콩데는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흑인, 여성, 피식민지배자를 주제로 1970년대 중반부터 작품 활동을 펼쳤다. 스웨덴 한림원이 내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문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2018년, 스웨덴 문화계 인사들은 그에게 대안 노벨문학상인 뉴아카데미상을 수여했다. 지난해 말 그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출간된 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은행나무·사진) 역시 그의 주제의식을 관통한다. 1692년 영국 식민지인 미국 매사추세츠의 세일럼 마을에서 벌어진 광기의 ‘마녀재판’에서 실제 고초를 겪은 흑인 여성 노예 티투바의 일대기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티투바는 여성과 흑인 노예라는 이중의 억압을 받지만 자신의 성적 욕망을 숨기지 않는 ‘자유인’이다. 콩데는 “내 분신이기도 한 티투바라는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는 1953년 자신의 작품 ‘시련’에서 티투바를 성적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늙은이로 묘사하죠. 이런 이미지를 뒤집고 흑인 여성도 얼마든지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 속 티투바는 마녀재판에서 풀려나 고향 바베이도스로 돌아가서 탈주 노예들의 반란을 돕다 처형된다. 티투바는 감옥에서 헤스터라는 여성과 만나 교감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 ‘주홍글씨’의 그 헤스터다. 작가는 “서양인들이 (여성주의의) 정전(正典)으로 꼽는 주홍글씨의 등장인물을 끌어들여 여성주의에 대한 재미있는 패러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뛰어넘는 여성의 연대는 쉽지 않다는 취지로 말한다. “여성이라고 모두 동일하지는 않아요. 몇 년 전 케냐에서 여성주의자 대회가 열렸는데 사회와 출신에 따라 모두 생각이 달랐죠. 물론 어느 사회에서든지 여성은 억압의 대상이고 성폭력 피해자더군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는 낙관적이다. 스스로를 “본래 긍정적”이라고 한 콩데는 “‘언젠가 지구는 둥글어질 테고’라는 노래 가사처럼 흑인은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저도 과들루프에서 태어난 평범한 여성에 불과했지만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에서 가르쳤고 ‘대안 노벨문학상’을 받았죠. 의지만 있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12세 때 ‘폭풍의 언덕’을 읽고 작가의 꿈을 가졌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뒤 39세에야 소설을 썼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볼테르, 알베르 카뮈, 프란츠 파농처럼 우리 정신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 변화를 이끄는 작가들은 있다”고 믿는다. 1986년에 쓴 이 소설에서 미국은 ‘영들이 잉태시키는 것이라고는 악뿐인 곳’으로 묘사된다. 34년이 지난 지금 미국 사회는 변했다고 생각할까. “천만에요. 현재 미국 대통령의 행보를 보세요.” 노작가는 시니컬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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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그냥 주저앉을 건가요? 갈 길이 많이 남았잖아요”

    품 안의 자식으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제 엄마에게 지청구를 하고 눈을 흘기는 본새에 기가 턱 막히는 순간이 있다. 말이 가닿은 줄 알았는데 닿기는커녕 귓바퀴 언저리에서 튕겨 나왔나 보다. 부모 자식 간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진심을 꿰뚫지 못하고 버려지는지. 소설가 권여선의 신작 소설집 ‘아직 멀었다는 말’은 단절된 관계에서 소통하지 못하는 말에 천착한 단편들을 모았다. 이들 작품에서 인물들은 ‘측량할 수 없는 거리만이 절박한 실재’로 남아 ‘머나먼 타인처럼’ 느껴진다.(‘희박한 마음’) 그들은 부재하는 엄마(아내)로 인해 반목하는 부녀(‘모르는 영역’)이거나, 언니의 저금과 대출받은 돈을 들고 도망간 엄마 때문에 갈라진 이부(異父) 자매(‘손톱’)이거나,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반신불수 엄마를 위해 직장에서의 부조리함을 참아내는 기간제 교사인 딸(‘너머’)이다. 그 말은 ‘상의 한마디 없이’ 내리꽂히는 그 무엇이어서 ‘상의도 아니고 대화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끼게 된다. 말의 일방통행 속에서 인물들은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이라며 악을 쓰기도 하지만 결국 ‘대꾸하려다 말았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돼버린다. 하지만 허공에서 부유하는 말들의 배경은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다. 가난과 신분의 부당함이 짓누른다. ‘대출받은 옥탑방 보증금, 이자가 제일 센 그 오백만 원부터 갚아야’ 하는 쇼핑테마파크 점원(‘손톱’)은 청양고추가 들어갔다고 500원 더 비싼 짬뽕을 포기한다. ‘정규 비정규의 경계도 아니고 비정규 내에 추가로 설정된 라인’이라는 ‘새로운 가름선’에 기간제 교사는 ‘이 따위, 이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라며 눈물을 쏟는다.(‘너머’) 저자는 소설가 김애란이 표사(表辭)에서 말하듯 ‘비정해서 공정한 눈’으로 인물들을 훑는다. 희망은 희미할 뿐이다. ‘아직 멀었다’는 말을 ‘바닥을 쳤지만 진흙바닥이었군’이라는 자조로 받아들일지,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의지로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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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F라기보다 근미래 한 소년의 성장담”

    소설가 김영하가 신작 장편 ‘작별 인사’(밀리의 서재)를 내놨다. 2013년 ‘살인자의 기억법’을 펴낸 뒤 7년 만이다. 그동안 방송인으로서 ‘숨은’ 진가를 드러냈던 그는 문단 귀환 작품으로 공상과학소설(SF)을 택했다. 20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한 말을 빌리면 “지금까지 써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도전, 모험”이다. 소설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통일 한국의 도시 평양이다. 주인공인 ‘소년’ 철이는 자신이 인간인지, 인간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인지 정체성을 고민하는 실존적 위기에 처한다. 이후 펼쳐지는 모험에서 철이는 인간, 클론(복제인간), 단순한 로봇에서부터 인간처럼 먹고 소화하고 배변하는 ‘똥싸개’ 휴머노이드까지 만난다. 고교 시절 영어반 동아리 선생님을 통해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걸작 ‘파운데이션’을 읽게 됐다는 김영하는 이번 작품에 로봇이 등장하는 SF의 중심 주제들을 거의 망라했다. ‘로봇 3원칙’의 변주, 휴머노이드의 정체성, 클론의 생명윤리, 기억과 인식만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인간, 인간과 로봇의 대결…. 원고지 400장 분량의 경(輕)장편이 다루기에 이런 심오한 이슈들은 약간 버거워 보인다. 완결된 소설이라기보다 향후의 SF 대서사시를 준비하는 한 편의 시놉시스 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작가는 “SF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근미래 한 소년의 성장담(成長談)으로 읽어 달라”면서 “독자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비유로 이 소설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든 외국인이든 사회에서 타자화되는 이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를 상징한다는 얘기다. ‘작별 인사’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 플랫폼인 밀리의 서재에 월 1만5900원의 구독료를 내면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볼 수 있다. 몇몇 동네서점에서도 구할 수 있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는 3개월 후에 다른 출판사에서 공급한다. 작가는 “책은 형태가 고정돼 있지 않다.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하던 대로 하고, 살던 대로 사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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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에 밟히고… 북 리커버 손에 잡히고…

    “내용이야 이미 갖고 있는 몇 권과 똑같지만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좋아 자꾸 기분이 좋아져서 틈나면 손에 들고 팔랑팔랑 넘겨보게 된다.” (수필집 ‘장수 고양이의 비밀’ 중에서)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미국의 서점에서 멋진 디자인의 ‘위대한 개츠비’ 양장본을 구한 뒤 털어놓은 고백이다. 최근 몇 년째 출판사와 서점에 부는 리커버 바람의 배경을 하루키의 이 말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이미 출간된 책의 표지를 바꿔서 다시 내는 리커버는 ‘손에 잡히는 느낌이 좋다’를 오감(五感)으로 추구한다. 안지미 알마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책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의 책이 내용의 간접경험에 치중했다면 리커버는 질감, 촉감, 부피감, 향, 종이와 폰트 사이의 여백까지 책의 물성(物性)에 대한 직접경험에 집중한다. 굳이 종이책을 택하는 충성도 높은 독자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대상은 주로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고전같이 독자가 익히 알고 있는 책이다. 책 내용정보를 더 제공할 필요가 없기에 디자인이 강조된다. 그만큼 디자이너의 부담은 크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리커버는 보통 이슈와 시즌에 맞춰 발간한다. 책 출간 100년, 저자 탄생 100주년, 세계문학전집 통권 100권, 봄꽃 특집, 바캉스 에디션 등 다양하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이 출판사에 특정 책의 리커버를 제안해 해당 서점에서만 팔기도 한다.  통상 한정판으로 2000부를 찍는다.  자연스럽게 책 판매의 돌파구 역할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큼 예쁘고 감각적인 리커버는 평소 책에 신경을 쓰지 않던 독자들을 창출하는 기능을 한다. 스테디셀러를 많이 보유하고, 출중한 디자인팀이 있는 큰 출판사에 유리해 출판 산업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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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美대륙에 유럽을 ‘이식’… 세계화도 불평등도 시작됐다

    1610년대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인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의 부두는 런던에서 온 배들로 가득했다. 이들이 싣고 갈 것은 길이 120cm, 지름 76cm의 담뱃잎 두루마리들. 당시 런던에만 타바코 하우스가 7000개를 넘을 정도로 담배는 대히트 상품이었다. 담뱃잎 두루마리를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 대부분 흙더미와 자갈돌인 바닥짐은 배 밖으로 내던져졌다. 영국의 흙과 버지니아 담배를 맞바꾼 셈이다. 단지 흙뿐이었을까. 아니, 흙 속의 지렁이가 있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라졌던 지렁이는 식민개척자들과 함께 북아메리카 생태계 변화의 분수령이었다. 역으로 담배는 구대륙(유럽) 경제와 사회를 뒤흔든 상품이 됐다.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1493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은 ‘콜럼버스적 대전환’이 빚어낸 세계화의 역사다. 1492년 12월 25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이후 구대륙과 신대륙 간에 미생물 씨앗 가축 그리고 노예(인간)가 서로 옮겨지며 이뤄낸 ‘새로운 세상’의 발생사를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살펴본다. 새로운 세상의 특징은 균질화, 동질화를 뜻하는 호모제노센(Homogenocene)이라는 말로 압축된다. 이질적이던 구대륙과 신대륙의 생태계가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알게 모르게 가져간 세균 동물 식물이 만들어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메리카에 유럽의 식생을 이식한 셈이다. 하지만 호모제노센의 세상은 쌍방향이다.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건너간 감자와 고구마가 각각 아일랜드와 중국 명나라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아마존강 유역에서 자라던 히비어 브라질리엔시스(고무나무)가 영국으로 밀수돼 140년 뒤 라오스와 중국 국경 인근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 책은 꼼꼼하게 설명한다. 또 세계화는 경제적 이득이라는 편익과 생태적, 사회적 혼돈이라는 비용을 동시에 치른다. 감자는 1840년대 대기근으로 아일랜드인들을 무참히 굶겨 죽였지만 17세기 아시아보다 훨씬 낙후됐던 많은 유럽인의 삶의 질을 높였다. 말라리아는 아메리카 원주민 80%를 사라지게 했지만 미국 독립과 노예해방을 앞당겼을 확률이 매우 높다. 책은 400년 전 세계화가 태동할 무렵부터 당시 사회가 맞닥뜨린 첨예한 이슈들은 오늘날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살충제의 발명에 ‘맞서’ 바이러스가 염기서열 하나를 변형시켜 스스로 진화해 인류를 위협했던 것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에 시달리는 지금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저자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처럼 세계화의 불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거나 환경운동가처럼 맹목적으로 생태 보호를 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계화의 시작이 중국과의 교역이라는 부(富)를 좇던 유럽인의 집착에 가까운 욕심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농업 생태학 등 전문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인물들을 앞세워 쉽고 재미있게 풀어가는 저자의 능력은 부러울 정도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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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위대한 리더는 말했다 “직원이 나보다 더 빛나길”

    재즈를 즐겨 듣지는 않지만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를 빼놓고는 20세기 재즈 역사를 논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러나 괴팍하고 예민했던 마일스 데이비스가 슈퍼보스인 줄은 몰랐다. 슈퍼보스(superboss)는 리더십 전문가이자 미국 다트머스대 턱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가 10년간 다양한 업계의 리더들을 연구해 발견한 공통된 패턴을 지칭하는 말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세계 경영학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부른 ‘싱커스 50(Thinkers 50)’ 순위에 지난해까지 4회 연속 이름을 올린 그는 슈퍼보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리더가 조직원을 이끌고 위대한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이라면 슈퍼보스는 거기에 더해 조직원들이 스스로 위대한 리더가 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찬란한 성과가 자신을 끝으로 소멸되지 않고 세대를 이어 사회에 퍼지도록 인재를 키워내는 리더라는 얘기다. 따라서 슈퍼보스는 조직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재를 포착해 가르쳐 발전시킨 뒤 배출하면서 거대한 왕조를 형성한다. 슈퍼보스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최고 지향형의 목표는 승리뿐이다. 부하 직원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때로 이기적이고 무정하며 불쾌하다. 영어 원문에는 ‘영광스러운 개자식(Glorious Bastards)’ 유형으로 돼 있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해 최고의 인재를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행한다.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대표적이다. 양육형은 직원의 성공에 깊은 관심을 쏟으며 이들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행동파 리더다. 1980년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슈퍼볼 3회 우승을 거둔 빌 월시 감독이 선두주자다. 그의 휘하에서 NFL 32개 팀 가운데 감독이 26명이나 나왔다. 올해 슈퍼볼 우승팀인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앤디 리드 감독도 그중 한 명이다. 마지막으로 전통파괴형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과 열망, 비전에만 몰두한다. 창의적인 예술가에게 많은 유형이다. 의식적으로 인재를 모으지 않지만 인재들이 그들 주위로 알아서 몰린다. 그 속에서 발굴된 인재들이 성공해 스타가 되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다른 스타의 출연에 개의치 않는 자신감으로 충만하다. 존 콜트레인, 캐넌볼 애덜리, 빌 에번스, 허비 행콕, 웨인 쇼터, 칙 코리아 같은 준령들을 빚어낸 마일스 데이비스가 슈퍼보스인 것은 당연하다. 저자는 2016년 2월에 펴낸 이 책에서 한 사람을 ‘기술이나 재능에서 자신과 견줄 만한 사람은 누구든 용납하지 못하며 … 자신이 받을 관심을 가로챌 듯한 사람과 같이 일한다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오만불손형 보스라고 혹평한다. 하지만 9개월 뒤 그 사람,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됐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이라는 선거의 격언 앞에서 슈퍼보스는 발 디딜 곳이 없었던 것일까.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가 더 걱정된다.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 20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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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 실망 드려 죄송”…문학사상사, ‘이상문학상 사태’ 공식 사과

    ‘저작권 3년 양도’ 수상 조건 논란으로 일부 작가가 수상을 거부한 이상문학상 사태에 대해 문학사상사가 4일 공식 사과하고 문제가 된 조항을 삭제하는 등 개선책을 발표했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 발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는 이날 회사 페이스북에 임지현 대표이사 이름으로 공식 입장을 올리고 “제44회 이상문학상 진행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와 그와 관련해 벌어진 모든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임 대표는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윤이형 작가를 비롯해 이번 사태로 상처 입으신 모든 문인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큰 실망을 드린 점 역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학사상사는 논란이 된 우수상 수상 조건은 모두 없애기로 했다. 대상 수상작의 ‘저작권 3년 양도’ 조항은 ‘출판권 1년 설정’으로 바꾸고 ‘(3년간) 작가 개인 작품집에 표제작으로 실을 수 없다’는 내용도 상을 받은 뒤 1년 후부터 해제하는 것으로 바꾼다. 문학사상사 측은 정정한 수상 조건을 소급 적용하겠다고 밝히며 “(그동안) 규정을 지켜주신 수상자분들께는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했다. 당초 지난달 6일 이상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려 했지만 우수상 수상자인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작가가 수상을 거부하면서 무기 연기됐다. 이어 지난해 대상 수상자인 윤이영 작가가 이 같은 조건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절필을 선언하고 동료 작가 수십 명이 ‘문학사상사 업무와 청탁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파문이 커졌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20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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