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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평인 논설위원입니다.

pisong@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칼럼94%
사설/칼럼3%
문학/출판3%
  • [송평인 칼럼]미션 임파서블 ‘서 일병 구하기’

    대학으로는 나와 같은 학번인 셈인 육사 43기 친구와 통화했다. 사병의 휴가 관리가 내가 군 복무하던 30여 년 전과 많이 달라졌나 궁금했는데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는 휴가 복귀 당일 미귀(未歸) 보고를 집에서 하는 휴가자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불가피하게 늦게 되면 귀대하면서 여기가 어디인데 여차여차한 이유로 늦는다고 보고를 한다. 게다가 요새 군대는 친절해져서 지휘관이 하루 이틀 전 전화를 걸어 복귀 여부를 확인한다. 예정에 없는 미복귀는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사후에 휴가명령서가 작성되는 것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병이 불가피하게 전화로 휴가 연장을 신청한다 해도 사전에 해야 하고 사전에 휴가명령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었는데 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중요한 걸 한 가지 잊었다며 전화로 휴가를 연장할 경우 사유가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에 지휘관이 반드시 그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고 했다. 혹시 카투사는 다른 걸까. 미국 국적으로 주한미군에서 장성급으로 일했던 지인과 통화했다. 그는 미군과 카투사의 관계를 미군이 카투사를 한국군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관계로 설명했다. 카투사 사병은 작전에서만 미군에 배속돼 미군의 지휘를 받을 뿐 인사 관리는 한국군의 지휘를 받는다는 말이다. 카투사에 복무해 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어서 새삼 거론한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마침 조카가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모 씨와 상당 기간 겹쳐서 같은 카투사 지역대(Area 1)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그와도 통화했다. 서 씨는 2017년 6월 23일 금요일이 2차 병가로부터 복귀하도록 예정된 날이었으나 복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미귀 사실은 6월 25일 일요일 저녁 점호 때 가서야 당직사병에 의해 발견됐다. 일부에서는 카투사 사병들이 대부분 외박을 나가는 금·토요일의 점호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으나 조카의 말은 다르다. 카투사 사병들이 한 숙소(barrack)에 9명 정도가 묵는다면 6, 7명 정도는 금요일 근무가 끝난 후 패스(외박허가)를 얻어 외박을 나갔다가 일요일 저녁 점호시간에 맞춰 들어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2, 3명은 주말에도 남아있고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인원 확인이 이뤄진다. 조카가 중요한 말을 하나 했다. 당직사병은 육군 인트라넷으로 전날 보고된 인원 상황을 확인하고 당일 점호 후의 인원 상황을 육군본부에 보고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처리된 휴가인데도 당직사병이 모르는 휴가는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육본 컴퓨터의 기록을 뒤져보면 금·토요일에 이미 서 씨 휴가가 연장 처리됐는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정상적으로 처리되지 않았으니 일요일 당직사병이 미귀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카투사에서 지원반을 부사관이 맡을 때는 지원반장이라고 부르고 장교가 맡을 때는 지원대장이라고 부른다. 서 씨가 속한 지원반은 상사가 관리하지만 병가 중이어서 다른 지원반을 맡은 대위가 대신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6월 25일 당직사병이 서 씨의 미귀를 발견했을 때 뒤늦게 나타나 휴가 처리를 지시한 사람은 지원반장도 지원대장도 아니고 지역대 본부와 육본을 연결하는 업무를 담당한 김모 대위였다. 서 씨 측은 6월 21일 2차 병가 관련 진단서를 이메일로 제출하면서 휴가 연장을 문의했다고 주장한다. 그때도 김 대위와 보좌관이 통화했다. 보좌관은 김 대위의 ‘개인 연가를 쓰라’는 말을 구두 승인으로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휴가 승인은 지원반장(혹은 지원대장)-지역대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참모인 김 대위의 승인이 아니라 부대장의 승인이 있었는지는 휴가명령서를 통해 확인될 수 있다. 부대장의 승인이 있었다면 6월 21일에서 23일 사이 휴가명령서가 만들어질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휴가명령서는 당직사병이 서 씨의 미귀 사실을 발견한 후에야 부랴부랴 만들어졌다. 부대장이 승인하지 않고 미적댔다는 뜻이다. 조카가 복무할 때 이미 서 씨 엄마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서 씨 구하기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는 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 엄마만 아직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있는 듯하다. 서 씨 구하기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멋진 액션 드라마가 아니라 역겨운 정치 드라마가 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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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속 방치된 아이들[횡설수설/송평인]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 2층에서 10세와 8세 형제가 엄마 없는 집에서 끼니를 때우려 라면을 끓이다 불을 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에 당황했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평소에도 엄마 대신 동생을 돌보던 형인지라 어린 나이에도 책임감이 몸에 배었던 모양이다. 동생을 책상 아래 좁은 공간으로 피하게 하고 자신은 연기를 피해 침대 위 텐트 속에 있다 쓰러진 듯 형은 상반신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지만 동생은 다리에 1도 화상을 입는 데 그쳤다. ▷아빠 없는 집에서 엄마는 화재 전날부터 오랜 시간 집을 비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라면 말고는 먹을 게 없어서였는지, 라면이 먹고 싶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보통 중학생은 돼야 불을 다룰 만한 인지능력을 갖춘다. 초등학생은 불과 화재 사이의 인과관계는 이해하지만 작은 불이 얼마나 빨리 큰불로 번질 수 있는지까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 어린 형제가 엄마 대신 불을 다뤄야 했던 상황 자체가 마음 아프다. 이번이 아니었더라도 사고는 언제든지 날 수 있었다. ▷두 형제의 엄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매달 수급비와 자활 근로비 등으로 160만 원 정도를 받아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에서 2.5단계로 격상돼 지난달 25일 자활 근로사업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매일 시간제 자활 근로에 나갔다고 하니 두 형제는 오래전부터 엄마 없는 집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는 데 익숙했을 것이다. ▷‘만약 코로나가 없었다면’ 하고 생각해 봤다. 사고는 월요일인 14일 오전 11시 10분경 발생했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그날 그 시간에 두 형제는 학교에 있었을 테지만 코로나로 인해 등교하지 않고 비대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선진국의 교육행정가들은 불우한 환경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학교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며 코로나에서도 등교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방역의 성과에만 초점을 두는 우리의 교육행정은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가정의 초등학생도 따로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엄마와 아빠가 모두 출근하는 오전 8시나 9시부터 온종일 집에 방치되는 실정이다. ▷두 형제의 엄마는 겨우 서른 살이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두 형제가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이라는 인상을 주는 가운데서도 형은 동생을 꼭 데리고 다니고 동생은 형의 말을 잘 들었다고 한다. 형은 아직도 위중한 상태이고 동생은 호전되는 듯하다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두 형제가 건강하게 회복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면 코로나로 인한 우울함이 조금은 걷힐 듯하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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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진보적 판결 아니라 수준 미달 판결

    판결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는 일단 그 논리가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고 나서 따질 일이다. 김명수 대법원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위법 판결은 진보적 판결이 아니라 그냥 수준 미달의 판결일 뿐이다.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할 때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노동조합법 시행령은 이런 경우 ‘노조로 보지 않음’을 통보할 수 있도록 했다. 모법과 시행령의 연관관계는 너무 직접적이고 단순해서 그 뜻을 달리 새길 여지가 없어 보인다. 대법원은 자연스러운 법령 해석을 거부하고 ‘형성적 처분’ 운운하며 미리 정해 놓은 주문(主文)에 맞춘 듯한 기교(技巧)적 개념을 구사했는데 그마저도 솜씨가 서툴러 위법 판결에 찬성한 대법관들 사이에서조차 내분이 일었다. 대법원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에 시비를 건다면 노동조합법 조항 자체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침해한다고 시비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전교조가 이 조항에 대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헌재와 달리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할 권한이 없다. 그러자 법률 아래 명령에 해당하는 시행령이 위헌이라고 시비를 거는 졸렬한 방식을 택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전교조 조합원이 6만 명이나 되는데 겨우 9명의 해직 교사가 있다고 해서 노조를 법외(法外)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그러나 반대로 고작 9명의 해직 교사, 그것도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 해직된 교사를 지키느라 6만 명이나 되는 조합원의 권리를 포기하느냐는 비판도 가능하다. 해직자의 가입을 허용할지 말지는 노조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라고 하더라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헌은 아니라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허용할지 말지는 국회의 입법에 맡길 일이다. 헌재의 결정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헌재의 헌법 해석을 넘어선 ‘그들만의 정의’에 기초해 법률의 명백한 규정에 반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월권이자 법치주의에 반한다. 정상적 국회라면 탄핵해야 할 사안이다. 김명수 대법원의 이재명 경기지사 무죄 판결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판결의 요지는 적극적인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면 선거법상의 허위 사실 공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논리대로 이 지사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KBS 방송 선거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시킨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한 것은 적극적인 사실 표명이 아니어서 허위 사실 공표가 아니라고 치자. 이런 논리라면 이 지사가 이후 MBC 방송 선거토론회에 나와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친형을 강제입원시킨 적 없다’고 한 것은 허위 사실 공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려야 한다. 대법원은 비겁하게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내세운 논리에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판결에서 가장 납득하기 힘든 대목은 ‘선거토론은 발언 순서, 발언 시간 등 형식이 엄격하게 규제돼 있어 제한된 시간에 공방이 이뤄지면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이 지사의 답변은 ‘그런 적이 없다’가 아니라 ‘그런 적이 있다. 그러나 직권을 남용해서 그런 적은 없다’가 됐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정도 답변에 발언 순서나 발언 시간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이 지사가 친형의 강제입원에 대한 사실을 공개할 법적 의무를 부담하고 있지 않다고 봤다. 그러나 친형의 강제입원 여부는 친형 쪽에서 반발을 해서 외부에 알려졌다. 반발은 불법이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유권자는 이에 대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 사생활로 보호받아야 할 여배우와의 스캔들과는 다른 사안이다. 대법원의 봐주기 판결 때문에 선거토론에서 최소한의 진실성 보장마저 불가능해졌다. 법관이라면 불법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강제입원 사실을 부인했다는 사실만으로 지사를 파면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을 허위 사실 공표 금지와 조화시키려면 더 정치한 논리를 펼쳤어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에는 편향성과 무능력의 문제가 섞여 있다. 대법관 감도 못 되는 이들이 특정 성향만으로 발탁돼 임명권자의 뜻을 알아서 헤아린 판결문을 쓰다 보니 능력도 안 돼 억지 논리를 펼치면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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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팝의 정상 BTS[횡설수설/송평인]

    미국 대중음악 빌보드 순위는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과 싱글차트인 ‘빌보드 핫 100’으로 양분된다. 싱글차트는 앨범이 아니라 곡별 집계다. 일반인들은 앨범이 아니라 곡을 기억하기 때문에 싱글차트야말로 대중의 인기를 가장 잘 반영한다. BTS는 2018년부터 4장의 앨범이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면서 계속 싱글차트에도 도전했으나 올 2월 4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에 ‘다이너마이트’로 1위를 차지한 것은 명실공히 팝의 정상에 오른 것을 뜻한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의 의미는 40대 중반 이상의 중장년층이 더 잘 알 수도 있다. 이들이 청소년이던 시절 라디오로 미국 팝송을 틀어주는 프로그램과 이종환 박원웅 황인용 김광한 김기덕 같은 DJ들의 인기가 높았다. 그들이 소개한 곡이 주로 빌보드 싱글차트의 곡이다. 멀고 높게만 느껴지던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우리 가수의 곡이 오르는 건 그때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부터는 한국에도 젊은 감각의 대중음악곡이 많아져 굳이 미국 팝송을 찾아 들을 필요가 없어지고 빌보드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한국 음악이 더 이상 우리끼리 듣고 마는 음악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K팝이 되면서 다시 반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우리가 주체로서 빌보드에 접근했다. 2009년 원더걸스의 ‘노바디’가 76위를 기록하며 처음 싱글차트에 들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위까지 올랐다. 지금도 BTS 외에 블랙핑크가 계속 차트에 곡을 올리고 있다. ▷영국 뮤지션 에릭 클랩턴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청소년이던 1960년 무렵 당대 인기 있던 자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더 영 원(The Young One)’ 같은 노래를 듣다가 TV가 보급되면서 방영되기 시작한 미국 대중음악 프로그램에 매료되는 얘기가 나온다. 비틀스는 클랩턴과 동 세대의 영국인 그룹이다. 비틀스는 무려 20곡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올려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선두에 섰다. 미국 대중음악을 부러워하며 자란 세대들에 의해 미국 시장으로의 대침공이 이뤄진 것이다. ▷BTS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았다. 코리안 인베이전(Korean Invasion)이다. BTS는 온라인 중심으로 형성된 아미(ARMY)라는 세계적 팬덤의 기반 위에서 서구의 적잖은 팝가수들이 보여준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이미지와 달리 자기계발의 모범으로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정의감을 북돋우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BTS는 어쩌면 디지털시대의 비틀스일지도 모른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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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화의 우선순위[횡설수설/송평인]

    외교에서 예스(yes)라고 명백히 말하지 않으면 노(no)라고 본다. 외교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 대개 에둘러 말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그제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주(駐)뉴질랜드 대사관에서 벌어진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논란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아직은 사과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뉴질랜드 쪽 피해자는 즉각 “역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외교장관이 함부로 사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련한 외교장관이라면 아예 ‘사과’라는 말이 들어가는 표현을 피했을 것이다. ▷강 장관 발언의 부적절성이 크게 부각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사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에 대한 불만 표시와 겹치면서다. 강 장관은 지난달 29일 아던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에서 성추행 의제를 불쑥 꺼내 문 대통령을 불편하게 한 데 대해 대통령과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 발언은 그 자체로 외교적 언사가 아닌 데다 성추행이라는 사안의 본질보다 변죽에 더 신경 쓰는 모습으로 비쳤다. ▷강 장관은 문 대통령이 각별히 아껴 대통령 임기 말까지 함께할 장관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온다. 많은 사람이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강 장관은 세련된 이미지에 통역사 출신이라 영어 능력도 출중하다. 그러나 외교는 외모나 영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노련한 경험과 뛰어난 지혜로 대통령을 설득하고 이끌 만한 어른스러움이 있어야 하는데 강 장관은 여전히 청와대에 의해 보호받는 이미지에 머물고 있다. ▷1972년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외교를 관장하는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프랑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저우 총리는 이미 200년 가까이 지난 프랑스 혁명을 두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답했다. 부르주아 혁명을 넘어 사회주의에도 영향을 미친 프랑스 혁명에 대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혁명이라 말하는 학자도 있다. 미중(美中) 수교라는 외교적 대전환을 이룬 외교 수장들답게 현대사를 규정하는 그 정도로 크고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었고 그 정도로 깊은 숙고가 담긴 답변을 할 수 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어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재선 후보로 뽑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직자는 공무 중에 정치활동을 못 하도록 한 해치법을 어겨가며 트럼프 지지 연설을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사임했을 때 백악관에 어른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한미 양국의 외교 수장 둘 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지만 그냥 딱 거기까지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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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민주적 방역과 독재적 방역

    방역만 떼어 놓고 보면 효율성에서 공산주의를 따라갈 체제가 없다. 소련은 1930년 아제르바이잔의 한 지역에서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군대를 투입해 주민들을 소개하고 지역 전체를 불태운 뒤 농약 클로로피크린을 뿌렸다. 클로로피크린의 독성이 워낙 높아 3년간 그 땅에서 채소 재배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소련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몇 개월 전 코로나19의 발상지인 우한에서 중국 공산당은 서방 국가는 꿈도 꿀 수 없는 감시와 통제로 인구 1000만 도시를 76일간이나 봉쇄한 끝에 최근 한 워터파크에서 수천 명이 빼곡히 모인 파티를 열어 성과를 과시했다. 방역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권리와 조화시키는 나라에서나 어려운 것이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권리보다 앞세우는 나라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성공적인 방역을 했다. 한국은 약 1만80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310명이 사망했다. 인구가 한국의 두 배인 베트남은 확진자 약 1000명, 사망자 27명이다. 인구가 비슷한 태국은 확진자 약 3400명, 사망자 58명이다. 인구가 절반인 대만은 확진자 약 500명, 사망자 4명이다. 한국은 오히려 성적이 처지는 편이다. 다만 일본(확진자 약 6만3000명, 사망자 1181명)에 비하면 성공적이며, 일본 역시 서방 국가에 비하면 성공적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방에 비해 성공적 방역을 하는 요인이 수수께끼 같아서 ‘팩터(factor) X’로 불리기도 한다. 동아시아인이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이 적고 뺨 키스 등의 습관이 적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더 있으니 동아시아 국가들의 권위주의적 성격이다. K방역에는 신속한 대량 진단 능력만이 아니라 철저한 감염자 동선 추적이 포함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역학조사에 부여된 막강한 권한이다. 한국은 역학조사 시 그 조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 방해, 회피하는 행위 외에도 거짓말을 하거나 고의로 사실을 누락, 은폐하는 행위까지 처벌한다. 뒷부분은 2015년 감염병관리법 개정 때 도입됐다. 범죄자라도 스스로에 대해 거짓말을 할 권리가 있는데 역학조사의 대상이 되는 국민은 그럴 권리도 없다.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처벌된다. 이것이 K방역의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일본만 해도 사전에 피해보상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영업정지 명령을 함부로 내리지 못한다. 우리나라도 피해 보상 규정이 있다. 하지만 걸핏하면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지는 노래방 PC방 등에 현실적인 피해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감염병 환자의 경우 국가 비용으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여권은 가능한 한 감염 책임을 국민에게 돌리며 구상권을 행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초기 언론은 신천지를 옹호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침묵하는 사이 이재명 경기지사 등 대선 주자를 꿈꾸는 여권 지자체장들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경쟁을 벌이면서 방역 행정은 점점 더 고압적이 됐다. 결국 밥 먹을 때와 차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우한에나 있을 법한 괴기한 행정명령까지 내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를 겨냥해 현행범 체포 운운하면서 “공권력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라”고 했다. 섬뜩한 표현인데 그마저도 공정하지 못하다. 이 표현은 수시로 관공서를 점거하는 등 공권력을 무시해온 민노총을 향해 먼저 사용했어야 하는 말이다.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편향성과 반대자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서방 국가보다 방역을 잘했다고 우쭐할 것도 없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보다 방역을 못했다고 의기소침할 것도 없다. 권위적일수록 방역의 효율이 높아지는 법칙이 통하고 있을 뿐이다. K방역에 대단한 비법이 있었던 양 착각해서 목표 확진자 수를 비현실적으로 낮게 잡고 그 목표에 매달리다가 방역 독재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신천지는 코로나 위기 초기라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사랑제일교회와 광화문 집회의 경솔함은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혼나야 한다. 다만 대통령 자신도 경솔해서 짜파구리 파티를 벌이며 파안대소하던 때를 잊지 말라. 그래야 권력의 절제된 사용이 가능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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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실험[횡설수설]

    독일의 확진자 수는 하루 2000명대다. 우리는 최근 급격히 늘었다고 하지만 300명대다. 독일 인구가 우리나라의 약 1.6배인 점을 고려해도 독일이 훨씬 많다. 이런 독일에서 최근 코로나 콘서트 실험 공연이 열렸다. 대규모 실내 행사에서 바이러스가 얼마나 빨리 확산되는지 과학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다. 할레 의과대학이 주도했고 18∼50세의 건강한 지원자 2200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조건을 달리해 세 차례 콘서트를 열었다. 첫 번째 콘서트는 거리 두기 조치 없이 코로나19 확산 이전처럼 열었다. 두 번째는 그룹을 나눠 각 그룹별로 지정된 통로로만 드나들고 홀 내부에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했다. 세 번째는 입장객 수를 절반으로 줄여 사방으로 1.5m 간격을 두고 앉도록 했다. 다만 실험 대상 전원이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고 발열 체크를 하고 입장한 뒤 실험 내내 마스크를 착용한 점은 동일했다. 실험 결과는 6주 후쯤 나온다. ▷스웨덴은 대부분 유럽 국가가 엄격한 봉쇄를 하는 동안에도 국민이 제약 없이 식당을 방문하고 쇼핑하고 체육관에 다니도록 했다. 휴교령도 내리지 않았다. 이 같은 ‘집단 면역’ 실험은 사망자 5000명을 넘기며 일단 실패로 평가받고 있다. 스웨덴의 하루 확진자 수가 200명대로 떨어졌지만 하락 추세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다만 안데르스 텡넬 공공보건청장은 봉쇄 조치를 취한 나라들은 하반기 제2차 대유행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 반면 스웨덴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위 있는 면역학자로 영국 정부 연구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크 월포트 박사가 BBC 인터뷰에서 “코로나를 종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독감 예방접종을 매년 하듯 코로나는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정기적으로 반복해서 맞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독감이 그랬듯 코로나19도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으로 들린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대응은 올해 말 혹은 내년 초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만 최대한 억누르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가 독감처럼 연례화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 스웨덴의 집단 면역 실험은 사람의 목숨을 건 지나친 것이라 하더라도 독일처럼 코로나 속에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과학적 실험은 의미가 없지 않다. 봉쇄 아니면 완화의 이항(二項) 선택, 혹은 막연히 몇 명 이상 모임 금지 식의 접근을 넘어, 함께 모여 즐기고 싶은 인간의 본성과 방역의 불가피성 사이에서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는 과학적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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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윈데믹 우려[횡설수설/송평인]

    지구의 북반부가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코로나19에 독감 유행까지 겹칠지 모른다는 트윈데믹(twindemic) 우려가 나온다. 감염증이 한 차례 유행한 뒤 수그러드는 듯했으나 다시 유행하는 2차 대유행과는 또 다른 우려다. 감염증이 확산되는 가운데 또 다른 감염증이 겹치는 것을 더블 엔데믹(double endemic)이라고 한다. 지난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에볼라와 동시에 홍역이 유행한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러나 독감과 코로나19는 둘 다 호흡기 감염 질환으로 열 두통 기침 인후통 근육통 피로 등 증상이 비슷하다.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해서 트윈데믹이라고 부른다. ▷쌍둥이처럼 구별이 쉽지 않다는 데에 트윈데믹 대응의 어려움이 있다. 독감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알고 병원을 찾을 수 있고 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독감에 걸린 것으로 알고 병원을 찾을 수 있다. 작은 병원은 아예 독감 환자를 받지 않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독감 환자까지 큰 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지만 큰 병원 역시 검사를 해보기 전까지 두 환자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결국 독감 환자와 코로나19 환자가 겹치면서 서로가 서로를 감염시키는 대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병원 가기를 꺼리고 있어 방치하면 독감 예방주사 접종률이 예년보다 떨어지고 독감이 더 유행할 수 있다. 반면 병원은 코로나19 대응에 이미 많은 의사 간호사 병상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예년과 같은 수준으로만 독감이 유행해도 대응력은 예년에 미치지 못한다. 독감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져 일반인보다 코로나19에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인다. 독감과 코로나19가 겹치면 양쪽의 치사율이 더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가 일상화돼 감기 환자는 크게 줄어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지난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시작된 데다 단순한 감기와 독감은 다르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코로나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RNA 바이러스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가 코로나19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그럼에도 코로나19는 전파된다. 독감은 코로나19보다 치사율은 낮은 대신 전파력은 더 강하다. ▷긴 장마 뒤에 폭염이 막 시작됐지만 닷새 뒤인 23일은 여름이 끝난다는 처서(處暑)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세 자리 숫자로 크게 늘었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독감 예방 조치만이 트윈데믹을 막을 수 있다. 다른 해는 몰라도 올해만은 대대적인 독감 예방주사 접종이 이뤄지도록 국민과 정부 모두 노력해야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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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조국과 서울대의 비양심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조국 로스쿨 교수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위반의 정도는 경미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논평을 잠시 망설인 이유는 조 씨가 언론 보도에 잇달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혁명 수준으로 진행되는 형사사법 체계의 파괴, 수습 불가 상태로 가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 같은 큰 현안을 놔두고 곁가지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조 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해온 사람 중 하나로서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위원회 결정은 2013년 결정보다는 진전된 것이다. 당시 이준구 경제학과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제보 내용이 진실하지 않다”며 보지도 않고 기각해버렸다. 조 씨의 연구부정행위를 알아내기 위해 거창한 조사까지 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연구부정행위를 인정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 조국 사태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울대 연구윤리지침은 표절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연구부적절행위와 연구부정행위라는 말을 사용한다. 연구부적절행위는 ‘연구상 중대하지 않은 과실’을, 연구부정행위는 ‘고의나 연구상 중대한 과실’을 의미한다고 돼 있다. 조 씨의 표절은 연구부정행위인데도 경미하다는 것이다. 요령부득이다. 위원회는 조 씨의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은 127군데에서 인용표시 없는 인용이 있었다고 밝혔으나 박사학위 논문은 몇 군데서 그런 인용이 있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건성으로 조사했음이 드러난다. 조 씨 논문에는 마이클 잰더라는 학자의 글이 10군데나 인용표시 없이 인용돼 있는데 이런 사례들이 통째로 빠졌다. 부정행위가 인정된 7편의 논문에 대해서도 인용표시 없는 인용이 몇 군데씩 누락돼 있다. 위원회는 연구부정행위가 대부분 타인 저술이나 외국 판례의 요약정리와 관련돼 있으며 연구의 주요 결과에 미치는 정도가 미미하다고 봤다. 위원회는 인문·사회과학 논문에서 독자적인 요약정리의 중요성과 조 씨의 요약정리 차용이 지닌 비양심적 맥락에 눈을 감았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책은 영어로 쓰여 있지만 단어는 평이해도 그가 쓰는 특유한 의미가 있어 해독이 어려운 영어다. 그래서 벤담은 벤담 전공자가 아닌 한 벤담 전공자가 요약정리한 책으로 읽고 인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굳이 벤담을 직접 읽고 인용한 것처럼 쓴 것은 비영어권 박사과정 학생이 영어로의 요약정리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벤담에 대한 기초적인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에서 거짓을 시도한 것이다. 조 씨는 논문에서 독일어 논문을 12편 인용하는데 9편이 페이지 수 표시 없이 통째로 인용돼 있다. 그는 영어 논문을 인용할 때는 빠짐없이 페이지 수를 써준다. 독일어 논문을 실제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자체가 인용표시 없는 인용을 넘어서는 심각한 부정행위다. 그의 논문 속에 어처구니없는 독일어 표기 실수가 너무나 많은 것은 독일어를 읽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실력으로 독일어 판례는 당연히 읽지 못했을 것이며 그러니 다른 학자가 영어로 정리해놓은 요약을 자신이 직접 독일어 판례를 읽은 것처럼 갖다 쓴 것이다. 이런 논문이 어떻게 미국에서도 일류로 통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취재해봤더니 조 씨의 지도교수이자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장이 필립 존슨 교수였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는 그가 지적 디자인(Intellectual Design) 운동의 창시자 중 하나로 사이비과학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쓰여 있다. 로스쿨 교수가 관심이 딴 데 가 있는 정도를 넘어 학문적 사이비로 빠졌던 것이다. 조 씨는 지난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끝내자마자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리라는 예상 속에서도 서울대에 복직 신청을 했다. 서울대 법학 교수는 장관 자리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학자적 양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은 박정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였다. 그는 현 정부에서 경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재심 청구가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에 위원장을 바꿔 재심할 것을 권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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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와 큰 바위 얼굴[횡설수설/송평인]

    미국의 랜드마크 중 하나가 ‘큰 바위 얼굴’을 조각해 놓은 러시모어산이다. 중서부 사우스다코타주에 있다. 러시모어산은 이 조각이 없었으면 자동차를 타고 가다 무심코 지나쳤을 도로가의 볼품없는 바위산이다.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산에 조각해 관광객을 끌어모은다는 아이디어는 주의 한 역사학자가 냈다. 자연 속에 조각한다는 아이디어는 참신한 듯하지만 실은 조지아주 스톤산의 조각에서 베껴 왔다. ▷자연 조각의 아이디어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선정된 4명의 미국 대통령이다. 조각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에서 우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세 사람이 차례로, 약간 떨어져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새겨졌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미국의 탄생, 루이지애나를 매입한 제퍼슨은 미국의 확대, 루스벨트는 유럽을 제친 미국의 발전을 상징한다. 링컨이 루스벨트보다 시기적으로 앞섬에도 그를 맨 오른쪽에 두고 거리를 벌린 것은 남북전쟁을 극복해 미국의 지속을 가능케 한 점을 미국의 성장과는 별도로 중요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러시모어산에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을 추가로 새기는 절차에 대해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실에 문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 보도했다. 백악관은 NYT 보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2018년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트럼프와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러시모어산 조각에 대해 이야기한 일이 있으며 당시 자신은 농담인 줄 알고 웃었지만 트럼프는 웃지 않고 진지했다고 한다. ▷트럼프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모어산에 자기 얼굴이 영원히 새겨지는 꿈을 꿀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임기 중에 아니 임기 후에라도 외부에 표현하고 추진하는 일은 겸연쩍어서라도 하지 못할 일이다. 2018년 북한 김정은과의 회담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도 자신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했다며 노벨 평화상 수상을 추진했던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너새니얼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소설 속의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산의 얼굴 형상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게 된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겸손하고 진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채 오랜 세월이 흘러 평범한 농부였던 어니스트는 사랑을 설파하는 설교자가 된다. 어느 날 그의 설교를 듣던 한 시인이 어니스트를 보고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트럼프가 꼭 읽어봐야 할 소설인 듯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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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 원피스’ 류호정[횡설수설/송평인]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입은 ‘분홍 원피스’에 대한 반응은 옹호든 비난이든 하나같이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는 “뭘 입든 무슨 상관?”이라고 했지만 허벅지 일부가 노출되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나 복부 혹은 어깨가 노출되는 옷을 입었더라도 ‘뭘 입든 무슨 상관?’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드레스 코드를 어떻게 할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어디에나 드레스 코드라는 건 엄연히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은 17년 전 유시민 의원의 ‘백바지’ 논란을 상기시키면서 류 의원의 ‘분홍 원피스’ 논란에 대해 ‘쉰내 나는 반응’이라고 했지만 사실 둘은 다르다. 유 의원의 ‘백바지’ 논란이 ‘어울리지 않음’에 대한 반응이었다면 류 의원의 ‘분홍 원피스’ 논란은 ‘너무 잘 어울림’에 대한 반응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류 의원 복장 논란에 “갑자기 원피스가 입고 싶어지는 아침”이라고 했는데 열띤 반응이 원피스 자체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봤다면 착각이다. ▷류 의원의 ‘분홍 원피스’는 28세라는 나이에 어울리는 복장이고 요즘 그 정도의 노출이 거리에서라면 특별할 것도 없다. 그것이 눈에 뜨인 것은 어두운 색 정장을 차려입은 중장년 남성 중심의 국회에 류 의원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류 의원에 대해 ‘오빠라고 불러보라’ 등 성희롱성 글을 쏟아놓은 것은 대개 박원순 조문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류 의원에게 반감을 가진 친문 누리꾼들이다. 정작 류 의원을 지켜본 남성 의원들은 침묵하거나 류 의원 편을 들었다. ▷류 의원의 ‘분홍 원피스’ 차림은 일부 2040 의원들 모임에서 50대 중년 남성 중심 국회의 분위기를 깨보자고 의기투합한 기획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그것은 어느 옛 영화의 한 장면에서처럼 도회에서 온 젊은 아가씨가 차려입고 시골장터를 지나갈 때 그곳 사람들의 시선을 100% 의식하며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시골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유쾌한 도발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도회 아가씨가 걸어갈 때 불편을 느끼는 쪽은 주로 장터의 아주머니들이다. 국회의 중장년들이 류 의원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성이나 선입견이 깨지고 도전받는 불편함을 겪어야 효과가 있는 건데 과연 그랬을까. 결국 ‘분홍 원피스’는 20대 여성 의원의 희소성에 힘입어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낸 퍼포먼스에 그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미 8년 전 당시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이 32세의 나이로 보라색 미니스커트 입은 모습을 뽐낸 적이 있다. 옷차림보다는 법안으로 진짜 유쾌한 도발을 했으면 한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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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KAIST총장 무혐의… 과학자가 정권 눈치 보게 하는 나라 미래없다

    국가연구비를 횡령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고발한 신성철 KAIST 총장에 대해 최근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8년 11월 과기부가 신 총장을 고발할 당시 정치적 이유로 국내 최고 과학 분야 대학의 총장을 몰아내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영문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당시 신 총장에 대한 고발을 ‘정치적 숙청’이라고 언급했다. 신 총장이 KAIST 이사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된 것은 문재인 정부 집권 2개월 전이다. 정권이 바뀌자 신 총장에 대한 적폐몰이가 시작됐다. 과기부는 신 총장에 대한 표적 감사를 벌여 그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으로 재직하던 2012년 미국 로런스버클리 연구소에 불필요한 장비 사용료를 지불하는 등 22억 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과기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KAIST 이사회에 신 총장 직무 정지 안건을 올렸다. 그러나 신 총장이 오히려 저렴하게 장비를 이용한 사실을 아는 과학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KAIST 교수 247명 등 과학계 관계자 727명이 총장 직무정지 거부 성명서에 서명했다. KAIST 총동문회도 “신 총장 직무정지는 KAIST 경쟁력을 추락시킬 것이 자명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과기부의 직무 정지 안건은 이사회 이사들조차 설득하지 못해 보류되는 등 논란을 거듭하더니 결국 이번에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신 총장에게 ‘죄’가 있다면 정부의 퇴진 압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임기를 남기고 중도에 사퇴한 과학 분야 기관장이 10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과기부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부터 사임을 종용받고 그만두거나 사임을 거부했다가 표적감사를 받은 뒤에 사퇴한 경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가 관리하거나 출연하는 기관의 장(長)이 바뀌는 사태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지적돼 왔다. 그래도 최소한 과학계에 대해서만큼은 개입을 삼가는 전통이 지켜져 왔는데 현 정부 들어 그 전통이 깨졌다. 과학은 자율적인 풍토 속에서만 발전할 수 있다. 과학자들마저 정권 눈치를 보게 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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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카 중독[횡설수설/송평인]

    자기가 자기 모습을 찍은 사진을 우리나라에서는 ‘셀카’라고 하고 영어로는 셀피(selfie)라고 한다. 과거에는 화가만이 스스로를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이래 알브레히트 뒤러부터 반 고흐까지 많은 화가들이 자화상을 남겼다. 19세기 사진이 발명된 이후로는 타인이나 풍경만이 아니라 자신을 찍는 시도도 시작됐다. 처음에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다가 나중에는 삼각대와 타이머를 이용해 직접 찍었다. ▷셀카의 기점은 흔히 2010년 전면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잡는다. 휴대전화에 장착한 카메라는 그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셀카는 자기가 자기 모습을 찍는다는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포된다는 특징이 추가돼야 한다. 간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포하기 위해 사진을 찍게 되면서 사진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으며 이미지로 소통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2014년을 ‘셀카의 해’라고 한다. 셀카가 보편적이 됐다는 긍정적인 의미 외에 부정적인 의미도 함께 갖고 있는데 그해 셀카를 찍다가 죽은 사건이 처음 언론에 보도됐다. 2015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셀카를 찍다가 죽은 사람이 12명으로 상어에게 물려 죽은 사람 8명을 넘어섰다. 빙하나 절벽 위에서 찍다가 미끄러져 추락사하고 총기를 들고 찍다 오발로 죽기도 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셀카를 찍다가 사망한 사람이 259명이라는 통계가 지난해 나왔다. 평균연령은 23세였으며 남성이 72.5%로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죽음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아찔하게 위험한 순간은 많다. 지난달에는 멕시코의 한 생태공원에서 야생 곰이 두 발로 서서 산책하던 여성의 냄새를 맡는 순간 이 여성이 자신과 곰을 찍은 셀카가 공개돼 화제가 됐다. 본인에게는 ‘인생샷’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무모하다는 비난을 샀다. 이탈리아의 한 박물관에서는 지난달 31일 관광객이 212년 된 조각상에 올라가 셀카를 찍다가 조각상 발가락 2개를 부러뜨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셀카로 인해 모두들 조금씩은 좀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셀카는 자기애의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에 대한 긍정이다. 그러나 실상의 자신은 흔히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에 자괴감의 원인이기도 하다. 남들이 실상의 자신보다 더 좋아할 가상의 자신에 실상의 자신을 맞추기 위해 사진을 조작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점잖게 포토샵이라고 부른다. 지나친 자기애는 심지어 자기 파멸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포토샵으로도 만족할 수 없어 죽음과 바꾼 사진 한 장이 그런 것일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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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책임윤리 심정윤리, 그리고 사악함

    1919년 독일에서 대학자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유명한 뮌헨대 강연을 통해 심정윤리(Gesinnungsethik)와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를 구별했다. 심정윤리는 사람의 의도만을 따져 윤리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책임윤리는 의도치 않은 결과의 발생까지 고려해서 의도한 결과를 이루려 할 때 윤리적이라고 판단한다. 베버는 카를 마르크스가 창시자 중 하나인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가까운 지식인이었다. 베버의 강연은 2년 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SPD에서 갈라져 나와 독일공산당(KPD)을 조직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죽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는 로자가 심정윤리로는 윤리적이었지만 책임윤리로는 윤리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베버의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구별은 SPD의 급진화를 막고 책임정당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베버가 강연을 하던 해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임시정부는 출범 때부터 신채호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심정윤리적 공격에 시달려 해체 위기까지 갔다. 임시정부 말기 좌우합작 시기에는 무정부주의적 의열단원으로 시작해 저우언라이 등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정치세력화한 김원봉의 권력 찬탈 시도를 견제해야 했다. 이들에 맞서 임시정부의 명맥을 이어간 책임윤리의 계보는 이승만-안창호-김구였다. 해방정국에서 김구는 1948년 초까지만 해도 유엔 감시하의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불가피하다고 여길 정도로 현실적인 사고를 견지했다. 그러다 돌변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어쨌든 그는 죽더라도 38선을 베고 죽겠다고 나옴으로써 김일성에게 이용당하고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재촉했다.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부르지 않는 건 자유다. 그러나 국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승만일 수밖에 없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유라시아를 덮은 붉은 물결 끝자락에 보일 듯 말 듯 남은 작고 푸른 점은 없었다. 이승만을 국부로 삼기 싫다면 그냥 국부는 없는 것이다. 이승만 대신 김구를 국부로 삼는다는 것은 정(正)이 될 수 없는 반(反)을, 정과의 통합을 통해 합(合)으로만 간직될 수 있는 반을 정이라고 부르는 빈약한 논리이고 역사인식이다. 우리가 심정윤리적 정치인들에게 갖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여전히 김구를 존경한다. 독일에서 로자의 인기는 높다. 그것은 역사에서 심정윤리적으로 행동하다가 불가피한 패배를 당한 사람을 향한 배려와 같은 것이다. 베버는 로자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려 했지만 그 전에 레닌 같은 음모적이고 당파적인 공산주의자로부터 로자를 구별했다. 김구에 대한 존경은 김구였다면 더 성공한 역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분단이라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진행에 대한 아쉬움을 그를 통해 표현하면서 미래를 향해 더 큰 분발을 다짐하고 촉구하는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으로 역사를 배운 ‘86 운동권’ 정치인들은 사실 김구를 국부로 여기지도 않는다. 심정윤리의 영웅을 내세우는 것은 음모적이고 당파적인 정치인들의 흔한 수법이다. 주사파는 김일성이라는 볼드모트의 이름을 댈 수 없으니 그 대용으로 김구를 둘러대는 것이고 주사파임을 부인하는 자는 여운형이든 박헌영이든 김구이든, 이승만만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는 것이다. 심정윤리든 책임윤리든 둘 다 윤리적 동기가 그 속에 들어 있다. 그 반대편에 당파성이 자리 잡고 있다. 윤리는 공정에 바탕을 둔다. 당파성은 공정이라는 최소한의 윤리적 보편성을 무시한다. 조국 박원순 사태가 보여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울산시장 선거공작 수사에 이어 윤미향 정의연 수사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내로남불은 가십의 용어가 아니라 이 정권의 본질을 표현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정치가 심정윤리에서 책임윤리로 발전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사악한 당파성으로 퇴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신계급이 탄생할 것이다. 반대로 정권의 반대자는 사소한 트집을 잡혀 이미 감옥에 가고 있다. 곧 출범할 공수처는 레닌의 체카(KGB의 전신)가 될 것이다. 추미애는 정상적인 형사사법 체계를 파괴하면서 그 길을 예비하고 있다. 이것이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전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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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자살을 속죄로 보는 죽음의 문화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인성(人性)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아홉 구비로 이뤄져 있다. 처음 다섯 구비는 애욕 탐욕 분노 등 무절제에서 비롯된 죄를 다룬다. 성추행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상층 지옥을 형성하는 이 다섯 구비를 돌아내려 가면 더 심각한 죄를 다루는 하층 지옥이 나온다. 7번째 구비는 폭력이다. 폭력에는 남에 대한 폭력과 자기에 대한 폭력이 있다. 단테는 남을 살해하는 죄와 자신을 살해하는 죄를 똑같이 7번째 지옥에 할당했다. 형법의 태도가 단테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 형법은 살인의 죄라는 항목에서 살인과 자살을 동시에 다룬다. 방조(幇助)는 돕는다는 뜻이다. 방조죄가 성립하려면 도움받는 행위가 범죄여야 한다. 즉 살인방조죄가 성립하려면 살인이 먼저 범죄여야 한다. 자살죄는 없다. 자살한 사람이 죽어버려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살방조죄는 있다. 자살은 처벌할 수는 없지만 범죄라는 사고를 보여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까지 범죄 혐의를 받던 저명 정치인의 자살이 사회에 끼치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자살을 속죄(贖罪)로 보는 인식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살은 속죄가 아니라 범죄다. 다만 처벌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원천적인 ‘공소권 없음’의 범죄일 뿐이다.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누명을 벗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가 벗어날 길이 없자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대개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장문의 유서를 남긴다. 이런 자살도 옳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억울하면 자살까지 했겠는가 하는 동정심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시장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자살이 오히려 그들에게 씌워진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부인 권양숙 씨가 100만 달러, 딸이 40만 달러, 아들과 조카사위가 500만 달러를 받은 경위에 대해 수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박 전 시장은 전 비서가 성추행 혐의로 그를 고소해 경찰 수사가 이뤄진 바로 다음 날 자살했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했다. 박 전 시장은 유서에서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며 “죄송하다”고 유서에 적었다.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시장은 둘 다 혐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부인도 시인도 아닌 회피다. 그렇다고 노 전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시장보다 더 솔직했다느니 하는 식의 평가를 하고 싶지 않다. 자살 자체가 나쁜 것인데 더 솔직했느니 덜 솔직했느니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구별이다. CCTV에 잡힌 박 전 시장의 마지막 모습은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 무슨 바쁜 일이 있다고 저리 서둘러 걸어가는가 안타까웠다. 택시를 타고 와룡공원에서 내린 뒤 숙정문으로 올라가는 길이나 혹은 숙정문에서 삼청공원으로 내려오는 길 어디선가 어두운 숲속으로 내려설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내가 그 숲속에 들어서는 양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살은 용기 있는 태도도 아니고 인간적인 태도도 아니다. 죄를 지었으면 살아서 그 죄에 합당한 수치를 당하고 죗값을 치르는 것이 진짜 용기 있는 태도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큰 수치를 당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잘못했다고 말하고 수감돼 죗값을 치르고 있다. 죄를 인정할 수 없다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면서 법적 투쟁이라도 해야 한다. 그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다. 부엉이바위 위에 선 노 전 대통령보다는 “우리가 받은 돈은 너희들의 10분의 1도 안 된다”고 항변하던 노 전 대통령이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자살을 속죄로 보는 것은 죽음의 문화다. 명확히 잘못했다고 말하지도 않고 자살해버린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감옥에 갇혀 죗값을 치르는 사람보다 더 추앙받는 분위기는 죽음의 문화에 속한다. 죽음의 문화를 부추긴 자가 생각하듯이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인 것이 아니다. 삶은 자연의 전부이고 삶의 부재(不在)가 죽음일 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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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니오 모리코네[횡설수설/송평인]

    왜 지금은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작곡가가 없는가 자문해본 사람은 위대한 영화음악가들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영화음악은 19세기의 교향곡, 20세기 전후의 교향시에 이어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사랑받는 관현악 분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1896년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음악의 전조였으니 실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에 사용됐다. 교향시가 콘서트홀을 위한 음악만을 고집할 때 구스타프 말러의 제자인 막스 슈타이너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년)의 음악을 맡으며 스크린을 위한 음악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관현악으로 작곡된 영화음악의 시작이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이탈리아 최고의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나온 뛰어난 작곡가였지만 먹고살기 쉽지 않아 1952년 한 라디오방송의 음악 어레인저로 일을 시작했다. 그가 어릴 적 학교 친구 세르조 레오네 감독을 만나 우연히 영화음악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6년)에서의 휘파람 테마,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년)에서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1989년)에서의 ‘사랑의 테마’ 등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작품이 탄생했다. ▷모리코네는 스크린만이 아니라 콘서트홀을 위한 음악도 100곡가량 작곡했다. 9·11테러를 다룬 ‘침묵으로부터의 소리’는 2007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유엔총회장에서 초연됐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위한 미사’란 곡은 예수회 재건 2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모리코네는 2016년에야 ‘헤이트풀8’란 영화로 뒤늦게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받았다. 비슷한 연배인 존 윌리엄스는 물론이고 아들뻘인 한스 치머마저 이미 이 상을 받았으나 아카데미는 이 이탈리아 작곡가에게 쉽게 상을 주지 않았다. 외국인들의 영화는 ‘외국인영화상’ 하나에 묶어두는 아카데미의 ‘미국 우선주의’는 올해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에 와서야 완벽히 깨졌다. ▷시네마 천국의 ‘사랑의 테마’나 미션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련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할리우드의 상업적 요구에 의해 2시간짜리로 잘못 편집돼 영화도 흥행도 엉망이 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년)는 4시간짜리 감독 컷으로 봐야 아리아와 찬송가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데버라의 테마’가 얼마나 우아한지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은 갔지만 음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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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의 추억’의 끝[횡설수설/송평인]

    영구 미제로 끝날 것 같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전모는 우연한 계기로 밝혀졌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지난해 7월 부임하기 전 경찰청 수사국장을 지낼 때 제보 하나를 받았다. 화성 연쇄살인범이 교도소에 수감 중이라는 제보였다. 지목된 사람은 나중에 진범으로 밝혀진 이춘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증거물들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다시 분석을 의뢰한 것은 바로 그 제보 덕분이다. ▷피해자들의 유류품을 범죄 공소시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존해 둔 것이 의도치 않은 신의 한 수였다. 그렇지만 30년이 지났는데 DNA가 분석되리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분석을 맡긴 지 약 한 달 뒤 9차 피해자의 유류품에서 분석 결과가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유류품은 비닐이 아니라 종이봉투에 담겨 보관됐는데 자동적으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면서 보존 상태가 뜻밖에 양호했던 것이다. 분석 결과를 수감 중인 범죄자들의 DNA와 비교해 보니 별도의 처제 살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춘재의 것으로 나왔다. 경찰의 추궁 결과 화성 연쇄살인은 지금까지의 10건에서 14건으로 늘었다. ▷이춘재는 성욕을 참지 못하고 길을 배회하며 대상자를 물색하는 타입이었다. 비가 올 때는 더했다. 당시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가려면 긴 시골 논길을 걸어야 했던 경기 화성 지역은 그의 범행에 취약한 환경이었다. 2004∼2006년 서울 서남부와 경기 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한 정남규도 비만 오면 지하철을 타고 아무 역에서나 내려 대상자를 물색했다. 이들의 범죄 대상은 일관되게 연약한 여성이었다. 성폭행으로 시작했으나 피해 여성의 반항을 제압하다가 살인으로 이어졌고 이후 더 가학적인 성욕을 드러냈다. ▷범죄의 전모가 드러나자 수사의 민낯도 드러났다. 이춘재는 이전에 세 번이나 용의선상에 올라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음모(陰毛) 때문에 한 농기계 가게 종업원은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그를 검거한 순경은 경장으로 특진했으나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라는 증거가 나왔다고 했으나 이춘재는 O형이었다. 진흙 속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245mm 신발의 발자국이 발견됐다고 했으나 그의 발 크기는 265mm인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가들은 아직도 19세기 산업화 단계 영국 런던의 연쇄살인범 잭 리퍼를 연구한다. 이춘재의 화성 연쇄살인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하지 못하다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싶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전모가 밝혀졌으니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낳은 성장 배경과 범죄 환경을 철저히 연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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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수사심의위 시민들이 검사보다 옳다

    법원은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란 이름으로 형사사건에 재판배심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형사배심결정은 영미권에서와는 달리 권고적 효력을 가질 뿐이지만 판사들은 그 권고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강제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다는 미묘한 효력에 힘입어 재판배심은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서도 큰 무리 없이 정착되고 있다. 재판 이전에 기소 여부가 재판 이상으로 피의자의 이해를 좌우한다. 법원의 재판배심 도입에 맞춰 검찰도 기소배심을 도입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2018년에 와서야 수사심의위원회라는 이름으로 기소배심에 접근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검찰의 편의(便宜)적 불기소는 법원에 하는 재정신청으로 통제할 수 있었으나 검찰의 편의적 기소를 통제하는 장치는 수사심의위에 의해 처음으로 마련됐다. 법원의 판결마저도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세상이다. 나는 이를 정치적 감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보며 굳이 부정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적 시비에서 벗어날 대안을 찾지 않으면 사법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그 대안이 형사배심제도를 확대해 시민을 재판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검찰의 기소나 불기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훨씬 오래전부터 숱한 시비가 일었다. 2년 전 수사심의위의 도입은 오히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다. 진정한 검찰개혁은 공수처 같은 제2의 검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사심의위 같은 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경찰이 검경수사권 조정에 앞서 경찰 수사개혁 방안으로 제시한 것 중에는 수사배심제가 들어 있다. 권은희 의원의 공수처법안은 백혜련 안에 밀려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공수처의 기소 여부를 심사하는 기소심의위를 두고 있다. 재판만이 아니라 기소에도 시민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최근 8번째 수사심의위가 소집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대한 검찰 수사의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합병 과정이란 게 워낙 복잡해서 그 과정을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친여적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 검찰이 수사를 하고 그 수사 내용을 친여적 매체가 피의사실 유포에 가까울 정도로 보도하는 방식으로 불법이 있는 듯한 예단을 조성한다는 인상은 받았다. 검찰과 삼성 측의 견해를 고루 듣고 내린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그 예단이 틀렸다는 것이다. 여권에서 즉각 수사심의위 결정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왔다. 박주민 의원과 박용진 의원은 다짜고짜 “검찰이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리도 없다. 재벌이니까 불기소는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노웅래 의원은 “수사심의위의 첫 번째 수혜자가 이재용 부회장이 돼선 안 된다”고 했다. 팩트도 틀렸다. 앞서 7번의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 권고로 무혐의 처분 혜택을 받은 피의자들이 있다. 홍익표 의원은 수사심의위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걸 문제 삼았다. 트집이다. 수사심의위 명단이 공개되고 신상털이가 일어날 우려가 생기면 공정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검찰이 기소를 하지 않으면 부실 수사의 책임을 지워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겠다는 이상한 방향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수사심의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것이다. 2018년 당시 박상기 법무장관이 문 대통령에게 검찰개혁의 한 방안으로 보고하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시행했다. 여당도 입만 열면 검찰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소하면 이쪽에서 매도당하고 불기소하면 저쪽에서 매도당할 바에야 차라리 시민 전문가들로 구성된 기구를 만들어 판단을 맡겨 보자고 도입한 것이 수사심의위다. 여당의 반발에 굴복해 검찰이 기소한다면 그거야말로 수사심의위 도입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사심의위 결정은 권고적 효력밖에 없다. 하지만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힘으로 작용한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하려면 유죄를 받아낼 더 높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 법원의 판단을 한번 받아보겠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무려 1년 7개월이나 수사했으니 면피성 기소라도 해야겠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다. 1년 7개월 수사를 하고도 접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시민을 존중하는 태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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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평인 칼럼]민주당, 박영선 법사위원장 시절 몽니 기억하나

    국회 역사상 가장 몽니를 많이 부린 법제사법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박영선 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아닐까 싶다. 2014년 새해 벽두에 이런 기사가 신문을 장식했다. 박 당시 위원장이 2013년 말 여야 지도부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이 법만큼은 내 손으로 상정할 수 없다”면서 심야까지 버티는 바람에 새해 예산안이 연말까지도 처리되지 못하고 새해로 넘어왔다는 내용이다. 당시 같은 당의 정세균 전 대표, 김진표 박지원 전 원내대표, 김한길 당시 대표까지 나서 그를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듣지 못한 황당한 일이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통상 법사위원장은 법안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국회법은 ‘각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친 모든 법률안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모든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만 본회의로 올라갈 수 있다. 이 규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 규정은 이미 2대 국회 때부터 있었다. 법률안의 위헌성과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 등을 심사함으로써 법률의 합헌성, 체계정당성, 조화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그 취지다. 박 당시 위원장의 몽니는 체계·자구 심사권과도 관련이 없었다. 사실 그는 비(非)법조인 출신이어서 체계·자구를 심사할 능력도 부족했다. 단지 자신의 소신에 맞지 않는다고 아예 상정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어느 자리인지도 모르고 떼쓰는 아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13대 국회 때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이 되면서 여당이 독식하던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나눠 갖고, 15대 국회 후반부터 법사위원장 자리가 야당 몫으로 넘어가면서 법사위의 월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의 민주당 쪽이 야당이던 18대와 19대 국회에서부터다. 18대 국회에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154석을 차지했다. 당시는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과반 의석을 가진 정당은 현 21대 국회에서 180석을 가진 정당과 똑같은 힘을 가졌다. 거기에 다른 보수정당인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를 합하면 의석이 184석에 이르러 세력이 지금의 범여권 못지않았다. 이때부터 법사위원장을 맡은 민주당의 몽니가 심해졌다. 19대 국회에서는 국회선진화법까지 이용하면서 월권의 강도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18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은 우윤근 의원이 맡고 박영선 의원이 같은 당 간사를 했다. 2010년 소관 상임위인 외교통일위원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의 법사위 상정이 민주당 쪽 반대로 1년 넘게 저지되다가 여야 대표 합의로 간신히 상정돼 통과됐다. 19대 국회 전반기 박영선 위원장 때와 19대 국회 후반기 이상민 위원장 때는 ‘해외 파병에 대한 일반사항에 대한 법률’이 2012년 소관 상임위인 국방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사위에서 4년 내내 단 한 번의 체계·자구 심사도 하지 않아 아예 폐기되는 일도 벌어졌다. 체계·자구 심사를 핑계로 법안을 일시적으로 지연 또는 보류시키는 정도를 넘어 그 기간을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늘려 폐기시킨 것으로, 있어도 없는 것만 못한 법사위로 만들어버렸다. 과거 국회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를 이용해 몽니를 부릴 대로 부린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돌려온 관행을 깨고 결국 법사위원장 자리까지 가져갔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개인으로 보면 양심이 없는 짓이고 조직 간의 관계로 보면 신사협정을 깬 것이다.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는 국회의 관행이 폐해가 있다 하더라도 여야의 합의로 만든 이상 그것을 바꿀 때도 여야의 합의로 바꿔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우후죽순 신(新)독재가 확산되는 가운데 새삼 강조되는 민주주의 정신이 권력의 절제된 사용이다. 18대와 19대 국회에서 통합당 쪽은 민주당 쪽으로부터 법사위원장 자리를 뺏을 수도 있었지만 뺏지 않았다. 소수파일 때는 관행의 혜택을 최대한으로까지 누리고 다수파가 돼서는 이런 관행을 싹 무시하고 소수파를 짓밟는 태도는 볼셰비키 등 레닌주의 정당에서 익히 보던 수법이다. 민주당의 김태년스러움이 몰고 올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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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G의 퇴장[횡설수설/송평인]

    무선전화는 유선전화에 비해 뒤늦게 등장했지만 단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G부터 5G까지의 G는 제너레이션(Generation·세대)의 이니셜로 단계마다 큰 발전이 있었음을 뜻한다. 1980년대 후반 등장한 1G폰은 카폰의 형태로 주로 보급됐다. 벽돌만큼 커서 차에 달고 다니며 충전하는 게 일반적이었고 가격도 비싸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요즘같이 어디서나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전화는 2G폰부터라고 할 수 있다. ▷2G폰은 음성을 전달하는 것 외에도 최대 40∼80자가량의 문자 텍스트를 전달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문자메시지의 시작이다. 나중에 저장용량이 커지면서 전화기에 MP3, 사진기 등의 기능이 첨가됐다. 유선전화기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전화기로 남아있는 반면에 무선전화기는 그때부터 종합단말기로 변해갔다. ▷1998년 크리스마스 때 퀄컴의 최고경영자(CEO)인 폴 제이컵스가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pdQ 1900이라는 무선단말기를 사용해 알타비스타 검색엔진에서 ‘마우이 스시(Maui Sushi)’라는 단어를 입력한 뒤 찾아 들어가는 데 성공한 게 스마트폰의 기원이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고 2G폰의 쇠락이 시작됐다. 인터넷에 연결된 이후는 3G폰이든, 동영상에 적합한 LTE급 4G폰이든, 사물인터넷을 수용할 5G폰이든 모두 스마트폰으로 불린다. ▷2G폰은 FM 무선주파수를 이용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1G폰과 달리 디지털 방식이었다는 데 그 혁신성이 있다. 디지털 무선 방식의 세계 표준을 놓고 유럽은 TDMA 방식을 고집한 반면에 미국은 CDMA 방식을 들고나왔다. 당시 스타트업 휴대전화 업체였던 퀄컴은 CDMA 방식을 개발하고 그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데 1996년 한국이 2G폰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CDMA 방식을 채용한 것이 퀄컴에 큰 힘이 돼 결국 TDMA 방식을 눌렀다. 우수한 CDMA 방식이 채택됐기에 3G 시대에 스마트폰으로의 혁신이 가능했다. ▷KT가 2012년 2G 서비스를 종료한 데 이어 SK텔레콤도 곧 서비스를 종료한다. 통신3사 중 2G 서비스를 유지하는 곳은 LG유플러스만 남는다. 6월 현재 2G 서비스 가입자가 SK텔레콤에는 38만 명, LG유플러스에는 47만 명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 스마트폰 시대에는 없는 2G폰에 대한 향수와 20년 넘게 사용한 2G폰 고유번호에 대한 애착이 그 원인일 것이지만 2G폰을 과거의 유물로 밀어내는 압력을 얼마나 더 버텨낼지 모르겠다. 그래서 모바일 혁명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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