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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갖게 하고 정서적으로 행복감을 얻을 수 있어 정말 중요합니다.”(발레리나 김주원) 이달 21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회의실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박은실)의 주관으로 김주원 발레리나, 학교 관계자와 MZ세대 학부모가 참여하는 ‘모든 아동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에서는 이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이기도 한 ‘늘봄학교’ 등과 연계해 모든 아동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하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늘봄학교는 학교 안팎의 다양한 교육 자원을 활용해 희망하는 초등학생에게 정규수업 전후로 제공하는 교육·돌봄 통합 서비스로, 올해 214개 학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다. 지난해 문체부가 지원한 ‘꿈의 댄스팀’ 앰배서더로 활동했던 김주원 발레리나는 좌담회에서 전국 늘봄학교에서 양질의 예술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무용(발레)교육 가이드’ 개발 계획을 밝혔다. 다양한 공교육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발레교육 과정과 콘텐츠를 제작하고, 늘봄학교 교사 및 강사 대상 워크숍을 통해 발레교육 가이드의 현장 활용 방안을 안내할 예정이다. 또한 그는 늘봄학교 학생들에게 특별한 예술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찾아가는 마스터클래스’를 직접 진행할 예정이다.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출신인 김 씨는 “꿈의 댄스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영유아기·아동기의 문화예술교육이 정서적으로 행복감을 주고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걸 느꼈다”며 “누구나 공평하게 사각지대 없이 문화예술교육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늘봄학교를 통해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보급하는 데 애쓰겠다”고 강조했다. 문체부에서 추진한 ‘2022 국민문화예술교육 조사’ 연구의 학부모 문화예술교육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자녀를 문화예술교육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의향은 매우 높았으며, 음악·미술 다음으로 무용교육(43.5%)을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간 1인 강사, 장르 중심의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보다 발전된 형태의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학부모 박소희 씨는 “딸아이가 지난해 ‘꿈의 댄스팀’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로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꾸게 되었고, 학교 수업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표하는 어린이가 됐다”며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게 꿈과 자신감, 행복감을 준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부모 장현아 씨는 “김주원 발레교실처럼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유명 예술가와의 만남이 공교육 안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늘봄학교가 단순히 ‘돌봄’을 넘어서 질 높은 예술교육의 경험으로 이어질 것 같아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경기 양평군 용문면 조현초등학교는 문체부의 대표적인 학교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인 ‘예술꽃 씨앗학교’ 14기로 선정됐으며, 늘봄학교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 학교 이동준 교감은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가치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며 “약자들을 감싸주고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힘”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관계자는 “문체부와 교육진흥원은 김주원 발레리나의 무용교육 가이드 개발을 시작으로 저명 예술가를 통한 양질의 문화예술교육을 학교에 선제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며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꿈의 오케스트라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전국 모든 아이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교육 실행 기반 조성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본사 앞에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구사마 야요이(93)의 대형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구사마가 붓을 들고 특유의 알록달록한 물방울무늬를 건물 벽체에 그리는 모습이다. 루이비통은 올해 201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구사마와 컬래버레이션한 제품을 출시했다.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루이비통 매장 쇼윈도에도 검은색 물방울무늬가 찍힌 호박 가발을 뒤집어쓴 구사마 모습의 로봇이 세워져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김동환 ‘봄의 오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이원수 ‘고향의 봄’),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는 우리나라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수많은 시와 동요, 가곡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박힌 꽃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는 이른 봄에 피지만,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는 지금이 제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참꽃 축제’가 열린 대구 비슬산에 다녀왔다. ●참꽃을 먹고 즐기는 화전놀이 대구·경북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먹을 수 있는 진짜 꽃’이란 의미다. 철쭉을 ‘개꽃’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철쭉은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봄이 오면 음력 삼월 삼짇날에 경치 좋은 곳에서 진달래꽃을 찹쌀가루에 반죽해서 부쳐 먹는 ‘화전(花煎)놀이’를 즐겼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비슬산은 99만여 ㎡(약 30만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참꽃 군락지다. 비슬산은 해발 1000m 고지대여서 진달래가 늦게 핀다. 산 아래쪽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에는 벌써 철쭉이 피어나고 있지만, 산 정상 부근에는 진달래꽃이 주단을 펼쳐 놓은 듯 장엄하게 피었다. 14, 15일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참꽃문화제가 열렸다.그러나 참꽃 군락지에 가까이 가서 보니 군데군데 꽃이 시들어 말라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올해 꽃이 만개하기 직전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일부 진달래가 꽃봉오리째 얼어버리는 동해(凍害)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견사에서 대견봉에 이르는 능선 전체를 뒤덮은 꽃대궐 속에서 사진을 찍는 상춘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비슬산은 ‘비파 비(琵)’에 ‘큰 거문고 슬(瑟)’자를 써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불린다.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이 산 정상의 바위 모양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비슬산 정상 부근에 대견사(大見寺)가 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의 사찰 이름이다. 대견사 주변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비슬산 암괴류’가 여러 갈래 물결처럼 흘러내린다. 부처 모양의 바위와 3층 석탑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끝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온 우주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대견보궁 왼쪽에는 산신각과 암굴이 있는데, 암굴에 새겨진 작은 마애불의 미소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암굴 옆에 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대견사 뒷마당에 본격적인 꽃대궐이 펼쳐진다. 비슬산을 오르려면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주차장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휴일에는 1시간 이상 탑승을 기다려야 한다. 등산이나 트레킹을 원한다면 유가사 쪽에서 대견사로 향하는 길을 추천한다. ●삼국유사의 땅 비슬산은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서기 810년) 때 보당암(寶幢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일연은 22세 때 승과에 합격한 뒤 22년 동안 보당암(대견사), 묘문암, 무주암 그리고 인흥사와 용천사를 거쳤는데 이 모두가 비슬산에 있다. 비슬산은 일연의 득도처이자, 삼국유사가 구상되고 집필된 곳이다. 일연은 중국과 국내의 고전 역사서, 비문(碑文)과 옛 문서까지 총망라하고 전국의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이야기를 채집해서 삼국유사를 썼다.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의 저자인 한양대 고운기 교수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연대별 사건 서술에 주력한 반면,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며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는 지배층의 정치사뿐 아니라 당시 고려 백성의 염원과 신화, 전설을 폭넓게 담아 한민족의 정서와 세계관을 집대성한 역사서”라며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연극과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라고 설명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흥사’는 현재 3층 석탑이 있는 절터로만 남아 있다. 인흥사지는 고려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던 문익점(1329~1398)의 18대손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남평 문씨 세거지가 되었다. 인흥마을에 주차하면 가장 먼저 문익점 동상이 눈에 들어오고, 뒤편에는 목화밭이 조성돼 있다. 지난가을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눈처럼 하얀 목화솜이 가득한 밭이 인상적이다. 인흥마을의 첫머리에 있는 수백당(守白堂)은 봄이면 매화와 산수유, 여름에는 능소화가 멋들어지게 피어나는 집이다. 요즘 마당의 담장 밑에는 모란꽃이 활짝 폈다. 김영랑이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오월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노래했는데, 사월에 이미 활짝 폈다. 수백당 오른쪽의 협문을 통과하면 약 2만 권의 서책과 책판이 보관돼 있는 ‘인수문고(仁壽文庫)’가 있다. 수백당 담장을 끼고 오른쪽에 있는 광거당(廣居堂) 안에도 1만 권의 책을 비치한 ‘만권당’이 설치돼 전국의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토론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광거당 누마루에는 추사가 적은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연못이 메워지고 없지만, 광거당 앞에 분홍빛 꽃을 피운 모과나무가 드리우는 그늘만으로도 운치가 넘친다. 올해 9월 대구시에 편입될 예정인 경북 군위군은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불린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삶을 마무리한 인각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각사 주변 해발 800m 정상에 자리 잡은 화산마을의 행정구역 이름도 군위군 ‘삼국유사면’이다. 마을에는 1709년 조선 숙종 때 병마절도사 윤숙이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고자 쌓기 시작한 화산산성 일부가 남아 있다. 고랭지 채소 재배로 살아가는 이 농촌 마을은 요즘 군위댐과 풍력발전소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동화 속 풍경처럼 빨간색 지붕의 풍차가 세워져 있는가 하면, 캠핑장에는 일출과 일몰, 운무와 새벽하늘 별빛이 이루는 장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군위 한밤마을은 돌담이 쌓인 골목길 산책을 하기에 좋다. 제주가 현무암 돌담이라면, 한밤마을의 돌담은 화강암에 낀 이끼가 고색창연한 빛을 발한다. 부림 홍씨(缶林洪氏)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은 남천고택(南川古宅)이다. 고택 옆에 있는 정면 5칸, 옆면 2칸짜리 ‘대율리 대청’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다. ●맛집=대구는 ‘교촌치킨’ ‘멕시칸치킨’ ‘페리카나치킨’ ‘처갓집 양념통닭’ 등이 탄생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메카이다. 또한 막창, 납작만두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막창 가게는 대구 남구 대명동 ‘안지랑 곱창거리’에 몰려 있다. 앞산의 수려한 경치를 함께하고 있는 대구의 대표 곱창거리다. 치즈곱창, 매운불곱창, 막창, 염통, 볼살 등 다양하게 개발된 메뉴를 가게마다 차별화된 비법 소스에 찍어 먹는다. ‘막창에 소주’는 옛말이다. 이 거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한 맛의 수제맥주 ‘안지랑이’는 화끈한 불곱창 맛과 잘 어울린다.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대구의 또 다른 명물은 ‘납작만두’다. 분식으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서문시장 칼국수와 떡볶이가 인기였다. 대구가 다음으로 찾아낸 메뉴는 대구 사람들이 ‘납딱만두’라고 부르는 음식. 밀가루만 얇게 부치거나, 당면과 부추를 최소한으로 넣어 얇게 부친 만두다. ‘대구판 또띠야(토르티야)’ ‘대구판 월남쌈’처럼 만두피처럼 얇은 만두에 떡볶이를 싸 먹거나, 빨갛게 양념을 한 회무침, 오징어무침을 싸 먹기도 한다. 대구, 군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김동환 ‘봄이 오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이원수 ‘고향의 봄’),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는 우리나라 봄을 대표하는 꽃이다. 수많은 시와 동요, 가곡에서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박힌 꽃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는 이른 봄에 피지만,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는 지금이 제철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참꽃 축제’가 열린 대구 비슬산에 다녀왔다.》 ●참꽃을 먹고 즐기는 화전놀이대구·경북에서는 진달래보다 ‘참꽃’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먹을 수 있는 진짜 꽃’이란 의미다. 철쭉을 ‘개꽃’이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되는 이름이다. 철쭉은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봄이 오면 음력 삼월 삼짇날에 경치 좋은 곳에서 진달래꽃을 찹쌀가루에 반죽해서 부쳐 먹는 ‘화전(花煎)놀이’를 즐겼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비슬산은 99만여 ㎡(약 30만 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참꽃 군락지다. 비슬산은 해발 1000m 고지대여서 진달래가 늦게 핀다. 산 아래쪽 비슬산자연휴양림 입구에는 벌써 철쭉이 피어나고 있지만, 산 정상 부근에는 진달래꽃이 주단을 펼쳐 놓은 듯 장엄하게 피었다. 14, 15일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참꽃문화제가 열렸다. 그러나 참꽃 군락지에 가까이 가서 보니 군데군데 꽃이 시들어 말라 있는 모습도 보였다. 올해 꽃이 만개하기 직전에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일부 진달래가 꽃봉오리째 얼어버리는 동해(凍害)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견사에서 대견봉에 이르는 능선 전체를 뒤덮은 꽃대궐 속에서 사진을 찍는 상춘객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비슬산은 ‘비파 비(琵)’에 ‘큰 거문고 슬(瑟)’자를 써서 ‘비슬산(琵瑟山)’이라고 불린다. 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비슬산 정상 부근에 대견사(大見寺)가 있다.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친다’는 뜻의 사찰 이름이다. 대견사 주변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만들어진 ‘비슬산 암괴류’가 여러 갈래 물결처럼 흘러내린다. 부처 모양의 바위와 3층 석탑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끝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온 우주를 품고 있는 형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대견보궁 왼쪽에는 산신각과 암굴이 있는데, 암굴에 새겨진 작은 마애불의 미소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암굴 옆에 난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대견사 뒷마당에 본격적인 꽃대궐이 펼쳐진다. 비슬산을 오르려면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주차장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휴일에는 1시간 이상 탑승을 기다려야 한다. 등산이나 트레킹을 원한다면 유가사 쪽에서 대견사로 향하는 길을 추천한다. ●삼국유사의 땅비슬산은 ‘삼국유사’를 쓴 일연 스님과도 인연이 깊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810년) 보당암(寶幢庵)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됐다. 일연은 22세 때 승과에 합격한 뒤 22년 동안 보당암(대견사), 묘문암, 무주암 그리고 인흥사와 용천사를 거쳤는데 이 모두가 비슬산에 있다. 비슬산은 일연의 득도처이자, 삼국유사가 구상되고 집필된 곳이다. 일연은 중국과 국내의 고전 역사서, 비문(碑文)과 옛 문서까지 총망라하고 전국의 역사 현장을 답사하고 이야기를 채집해서 삼국유사를 썼다.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의 저자인 한양대 고운기 교수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연대별 사건 서술에 주력한 반면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며 삼국유사를 ‘길 위의 책’이라고 평가했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는 지배층의 정치사뿐 아니라 당시 고려 백성의 염원과 신화, 전설을 폭넓게 담아 한민족의 정서와 세계관을 집대성한 역사서”라며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연극과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라고 설명했다.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흥사’는 현재 3층 석탑이 있는 절터로만 남아 있다. 인흥사지는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던 문익점(1329∼1398)의 18대손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남평 문씨 세거지가 되었다. 인흥마을에 주차하면 가장 먼저 문익점 동상이 눈에 들어오고, 뒤편에는 목화밭이 조성돼 있다. 지난가을 열매를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눈처럼 하얀 목화솜이 가득한 밭이 인상적이다. 인흥마을의 첫머리에 있는 수백당(守白堂)은 봄이면 매화와 산수유, 여름에는 능소화가 멋들어지게 피어나는 집이다. 요즘 마당의 담장 밑에는 모란꽃이 활짝 폈다. 김영랑이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오월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노래했는데, 사월에 이미 활짝 폈다. 수백당 오른쪽의 협문을 통과하면 약 2만 권의 서책과 책판이 보관돼 있는 ‘인수문고(仁壽文庫)’가 있다. 수백당 담장을 끼고 오른쪽에 있는 광거당(廣居堂) 안에도 1만 권의 책을 비치한 ‘만권당’이 설치돼 전국의 수많은 문인, 학자들이 토론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광거당 누마루에는 추사가 적은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수석과 묵은 이끼와 연못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연못이 메워지고 없지만, 광거당 앞에 분홍빛 꽃을 피운 모과나무가 드리우는 그늘만으로도 운치가 넘친다. 올해 9월 대구시에 편입될 예정인 경북 군위군은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불린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완성하고 삶을 마무리한 인각사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각사 주변 해발 800m 정상에 자리 잡은 화산마을의 행정구역 이름도 군위군 ‘삼국유사면’이다. 마을에는 1709년 조선 숙종 때 병마절도사 윤숙이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고자 쌓기 시작한 화산산성 일부가 남아 있다. 고랭지 채소 재배로 살아가는 이 농촌 마을은 요즘 군위댐과 풍력발전소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동화 속 풍경처럼 빨간색 지붕의 풍차가 세워져 있는가 하면, 캠핑장에는 일출과 일몰, 운무와 새벽하늘 별빛이 이루는 장관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군위 한밤마을은 돌담이 쌓인 골목길 산책을 하기에 좋다. 제주가 현무암 돌담이라면, 한밤마을의 돌담은 화강암에 낀 이끼가 고색창연한 빛을 발한다. 부림씨(缶林) 홍씨의 집성촌인 한밤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은 남천고택(南川古宅)이다. 고택 옆에 있는 정면 5칸, 옆면 2칸짜리 ‘대율리 대청’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쉬어 가기에 좋은 곳이다. 맛집=대구는 ‘교촌치킨’ ‘멕시칸치킨’ ‘페리카나치킨’ ‘처갓집 양념통닭’ 등이 탄생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메카이다. 또한 막창, 납작만두도 요즘 젊은 세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막창 가게는 대구 남구 대명동 ‘안지랑 곱창거리’에 몰려 있다. 앞산의 수려한 경치를 함께하고 있는 대구의 대표 곱창거리다. 치즈곱창, 매운불곱창, 막창, 염통, 볼살 등 다양하게 개발된 메뉴를 가게마다 차별화된 비법 소스에 찍어 먹는다. ‘막창에 소주’는 옛말이다. 이 거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한 맛의 수제맥주 ‘안지랑이’는 화끈한 불곱창 맛과 잘 어울린다. 요즘 MZ세대들이 열광하는 대구의 또 다른 명물은 ‘납작만두’다. 분식으로 유명한 대구에서는 서문시장 칼국수와 떡볶이가 인기였다. 대구가 다음으로 찾아낸 메뉴는 대구 사람들이 ‘납딱만두’라고 부르는 음식. 밀가루만 얇게 부치거나, 당면과 부추를 최소한으로 넣어 얇게 부친 만두다. ‘대구판 또띠야(토르티야)’ ‘대구판 월남쌈’처럼 만두피처럼 얇은 만두에 떡볶이를 싸 먹거나 빨갛게 양념을 한 회무침, 오징어무침을 싸 먹기도 한다. 글·사진 대구·군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수백당에 모란꽃이 활짝 폈다.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남평문씨 인흥 세거지다. 김영랑 시인이 ‘모란이 피기까지’에서 모란이 피는 오월을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고 노래했는데, 4월에 벌써 폈다. 꽃 모양이 비슷한 작약은 풀이고, 모란은 나무다. 모란은 풍요로움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꽃이라 신부의 예복인 원삼, 활옷에 수놓았고, 궁중 장식화와 민화로도 많이 그려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오페라 극장과 튈르리 정원 사이에 있는 방돔광장(Place de Vendôme)의 한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대포 133개를 녹여 만든 44m 높이의 청동 기둥에는 나폴레옹의 승리를 묘사한 76개의 부조가 새겨졌다. 방돔광장 주변에는 명품 보석 부티크 매장이 즐비하다. 쇼메 매장이 있는 12번지 아파트 1층은 피아니스트 쇼팽(1810∼1849)이 39세에 숨을 거둔 곳이라 클래식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캐세이퍼시픽항공(사진)은 호주관광청과의 협업을 통해 14일까지 멜버른 등 호주 전 노선에 대한 할인 프로모션을 실시한다. 캐세이퍼시픽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되는 이번 프로모션에서는 호주의 주요 도시인 멜버른, 시드니, 퍼스 등 3개의 인기 도시 노선의 전 좌석 5% 특별 할인을 진행한다. 프로모션 기간 중 판매되는 티켓의 여행 일정은 출발일을 기준으로 10월 31일까지이다. 멜버른 인, 퍼스 아웃 등 3개의 도시 중 도착과 출발지를 다르게 선택해 예약해도 비행기 티켓 값을 깎아준다. 홍콩에서 호주까지는 8시간 걸린다. 홍콩국제공항엔 캐세이퍼시픽 럭셔리 라운지가 △더윙(The Wing) 일등석·비즈니스석 △더피어(The Pier) 일등석·비즈니스석 △더 덱(The Deck) 등 다섯 곳 있다. 라운지에서는 휴식을 취하거나 비즈니스 업무 처리를 할 수 있으며, 요가 및 명상, 샤워실도 이용할 수 있다. 한편 캐세이퍼시픽항공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홍콩 여행 캠페인 ‘헬로 홍콩’이 3월부터 시작돼 무료 항공권, 여행 할인권을 배포한다. 홍콩 민관은 20억 홍콩달러(약 3117억 원) 규모의 프로모션을 통해 무료 항공권을 50만 장을 배포해 한국민의 홍콩 방문을 독려할 예정이다. 무료 항공권은 ‘원 플러스 원’이나 행운권 추첨, 게임 대회, 프로모션 패키지 등의 형태로 배포된다. 캐세이퍼시픽은 또한 자매 항공사인 홍콩익스프레스를 통해 부산∼홍콩, 제주∼홍콩 노선의 코드셰어 운항을 지난달 28일부터 시작했다. 이로써 인천뿐만 아니라 부산과 제주에서도 캐세이퍼시픽이 취항해 편리하게 연결이 가능해졌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해남 달마산(489m)의 기암괴석 끝자락. 작은 암자가 새집처럼 매달려 있다. 하늘 끝 신비로운 암자인 도솔암이다. 암자 마당은 어른 몇 명이 서면 꽉 찰 정도다. 그러나 전망만큼은 최고다. 땅끝마을과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달마산 둘레길로 조성된 ‘달마고도’엔 요즘 진달래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봄꽃을 감상하는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길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층엔 동백꽃, 2층엔 벚꽃 터널. 지난 주말(3월 26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도로변에는 나무들이 본격적인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제주 동백꽃은 늦가을부터 피어나기 시작해 한겨울에 절정기를 맞지만, 보길도 선운사 등 남도의 동백꽃은 늦겨울과 초봄에 피어 4월 중순까지 오랫동안 지속된다. 붉은 잎과 노란색 꽃밥 수술을 가진 동백꽃은 한복을 입은 여인처럼 단아한 모습이다. 동백꽃은 땅밑에도 통째로 떨어져 있어 보길도의 길가엔 온통 붉은 융단이 깔렸다. 길을 가는 아주머니는 차마 꽃을 밟지 못하고 조심조심 걸어간다.● 자연의 무대 연출가 윤선도 전남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8.3km 떨어진 보길도(甫吉島)는 땅끝 해남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노화도 선착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홀딱 반해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꾸미고 늙어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섬이다. 고산은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하던 중 인조가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에 은거하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보길도를 발견하고 터를 잡게 된다. 1637년(인조 15년)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해발 435m)에 오른 고산은 ‘물외가경(物外佳境)’이라 감탄했다고 한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절경이란 뜻이다. 그는 “하늘이 나를 기다린 것이니 이곳에 머무는 것이 족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산은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을 짓고, 낙서재와 세연정, 동천석실 등의 건물을 지었다. 이후 두 차례 귀양과 벼슬을 하면서 85세까지 이 섬에서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보길도에서 살면서 이름 붙인 경승대 명칭은 모두 25개소에 이른다. 낙서재에 머물렀던 윤선도는 아침이면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후학을 가르치고, 날씨가 좋으면 수레를 타고 악공을 거느려 세연정이나 동천석실에 가서 자연을 벗 삼아 즐겼다고 한다. 밤에 낙서재에 돌아오면 달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낙서재 앞마당에는 고산이 달을 감상할 때 앉았던 거북 모양의 평평한 바위인 ‘귀암(龜巖)’이 놓여 있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등 시조 75수를 지었다. 사대부의 주류 문화였던 한시(漢詩)에 비해 홀대당하고 있는 시조에 우리말의 감성과 서정성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단골 출제된다. 고산은 부용동의 본래 있던 물과 바위 등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최소한의 인위적인 개입만으로 주변 대자연을 모두 품은 장대한 원림을 만들어냈다.그가 꿈꾼 이상향의 건축적 주제는 바로 시조 ‘오우가(五友歌)’에 나오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이라는 다섯 친구들이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그 중 으뜸은 물이다. 조선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세연정’은 바로 ‘물의 정원’이다. 세연(洗然)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 담양 소쇄원에 있는 ‘제월당’ ‘광풍각’이 ‘비가 그친 후 맑게 갠 하늘에 뜬 달과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수양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은 정원이다. 세연지는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만든 인공연못이다. 물을 막는 ‘판석보(板石洑)’는 가뭄 때는 돌다리가 되고, 비가 많이 올 때는 폭포로 변신해 수량을 조절한다. 윤선도의 심미안과 과학적 지식이 돋보이는 장치다. 세연지에는 7개의 바위가 용틀임하며 놓여 있고, 정자 주변에는 거대한 소나무가 심어졌다. 고산은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연밥을 따기도 하며 물을 즐겼다.고산 윤선도는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다.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고산은 연못과 정자, 축대와 절벽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자연의 대극장을 만들어냈다. 정자 위에서 관현악 연주에 맞춰 ‘어부사시사’를 부르면 물길 너머 돌로 쌓은 무대인 동대와 서대에서 무희들이 군무를 추었다고 한다.또한 서쪽 산 중턱에 있는 바위인 옥소대 위에서도 군무를 추었는데, 세연지 연못 위로 춤사위가 비쳤다고 한다.정자는 자연의 종합예술을 감상하는 최고의 객석이다. 정자는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뤄져 있는데, 사면을 둘러싼 ‘들어열개문’을 모두 올리면 기둥 사이로 액자 속의 명화 같은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조선의 정원건축 원리인 ‘차경(借景)’이다. 정자는 작지만 사방으로 물소리와 바람 소리, 음악과 새소리, 달빛이 흐르며 무한히 넓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보길도는 극심한 봄철 가뭄으로 세연정의 물도 메말라 커다란 바위가 밑동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자연은 위기에서 더욱 강해진다고 했던가. 세연정의 동백꽃은 더욱 붉게 피었다. 얕은 연못 위로 떨어진 붉은 동백꽃 잎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고산이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바위 절벽에 지은 동천석실의 주제는 ‘돌’이다.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한 칸 정자 주변엔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 등 자연석으로 만든 연못과 돌다리 등이 있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었다. 동천이란 하늘로 통하는 곳, 신선이 사는 곳이다. 석실은 책을 보존해둔 곳이니, 하늘 공부방인 셈이다. 고산에게 동천석실인란 서책을 즐기며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였다.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어 음식을 올려서 먹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 있다. 차바위와 승룡대에서 바라보니 격자봉 아래 연꽃모양이라는 부용동 전체 모습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낙서재 건너편 ‘곡수당(曲水堂)’에는 개울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다. 곡수당 옆 계곡에는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즐길 수 있는 바위가 있다. 맑은 물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같다고 하여 낭음계(朗吟溪)라고 불렀다. 물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사랑한 윤선도의 풍류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섬 동쪽 끝자락 백도리 해안 절벽에 있는 ‘송시열 글씐 바위’다.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서인 송시열과 맞서다가 수차례 삭탈관직되고 유배를 떠나야 했다. 윤선도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 후인 1689년. 우암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풍랑으로 보길도에 기착한다. 우암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왕을 그리워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보길도 끝 암벽에 새겨놓았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이 보길도에서 남긴 흔적을 보면서 권력과 풍류,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 공룡알해변과 뾰족산보길도의 서남쪽 끝에 있는 보옥리 공룡알해변은 한적하게 하룻밤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보길도에서 가장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에는 매끈하고 작은 몽돌이 있는 반면 공룡알해변에 있는 둥글둥글한 차돌은 아기 머리통만큼 커다랗다. 파도가 칠 때마다 ‘촤르르’ 하며 돌 굴러가는 소리가 이채롭다.공룡알해변 옆으로는 ‘뾰족산(보죽산)’이 그야말로 원뿔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보옥민박은 정원이 아름다운 바닷가 민박이다. 1인당 1만 원이면 저녁 식사로 ‘보길도 어촌 백반’을 내준다. 그날 잡힌 물고기로 찌개를 끓이고, 싱싱한 바다 내음이 살아 있는 파래와 톳, 젓갈과 돌김까지 소박하지만 음식 솜씨가 대단한 주인장의 밥상을 마주할 수 있다. 아침에 주는 전복죽에도 보길도 특산품인 전복이 가득 들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7시에 뾰족산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키우는 흰둥이 개가 등산로 입구로 달려오더니 앞장서 길을 인도한다. 뾰족산은 온통 동백나무가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이다. 흰둥이가 인도하는 등산로에는 선홍색 동백꽃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마치 누군가 ‘꽃길만 걷게 해줄게’ 하면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 같다. 아침의 동백나무 숲속에서는 수많은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울어댄다. 뾰족산은 해발 195m에 불과해 30~4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바닷가 산이라 해가 떠오르는 공룡알해변과 보옥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은 일등급이다. 하산길에 흰둥이가 먼저 온 다른 등산객과 함께 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약간 서운한 마음에 올라온 것처럼 동백꽃이 떨어진 길을 따라 하산했다. 그런데 아뿔싸. 동백꽃만 따라갔는데 어느샌가 등산로가 사라졌다. 눈을 들어보니 등산로뿐만 아니라 온 산이 동백꽃 세상이 아닌가. 원시림과 덤불, 바위를 헤치고 겨우 마을로 내려왔다. 야트막한 동네 산이라 꽃에 취해 한 번쯤 길을 잃어도 좋은 봄날의 시간이었다.글-사진 보길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층엔 동백꽃, 2층엔 벚꽃 터널. 지난 주말(3월 26일) 전남 완도군 보길도의 도로변에는 나무들이 본격적인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제주 동백꽃은 늦가을부터 피어나기 시작해 한겨울에 절정기를 맞지만, 보길도 선운사 등 남도의 동백꽃은 늦겨울과 초봄에 피어 4월 중순까지 오랫동안 지속된다. 붉은 잎과 노란색 꽃밥 수술을 가진 동백꽃은 한복을 입은 여인처럼 단아한 모습이다. 동백꽃은 땅밑에도 통째로 떨어져 있어 보길도의 길가엔 온통 붉은 융단이 깔렸다. 길을 가는 아주머니는 차마 꽃을 밟지 못하고 조심조심 걸어간다.》●자연의 무대 연출가 윤선도 전남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8.3km 떨어진 보길도(甫吉島)는 땅끝 해남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노화도 선착장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1587∼1671)가 홀딱 반해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꾸미고 늙어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섬이다. 고산은 병자호란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강화도로 향하던 중 인조가 이미 남한산성에서 적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에 은거하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보길도를 발견하고 터를 잡게 된다. 고산은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을 짓고, 낙서재와 세연정, 동천석실 등의 건물을 지었다. 이후 두 차례 귀양과 벼슬을 하면서 85세까지 이 섬에서 은둔하며 살았다. 낙서재에 머물렀던 윤선도는 아침이면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나서 후학을 가르치고, 날씨가 좋으면 수레를 타고 악공을 거느려 세연정이나 동천석실에 가서 자연을 벗 삼아 즐겼다고 한다. 밤에 낙서재에 돌아오면 달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그는 보길도에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 등 시조 75수를 지었다. 사대부의 주류 문화였던 한시(漢詩)에 비해 홀대당하고 있는 시조에 우리말의 감성과 서정성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도 단골 출제될 정도로 국문학사에서 최고봉에 위치해 있다. 고산은 부용동의 본래 있던 자연에 최소한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자연을 품은 장대한 원림을 만들어냈다. 그가 꿈꾼 이상향의 건축적 주제는 바로 시조 ‘오우가(五友歌)’에 나오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달’이라는 다섯 벗이다. 먼저 조선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세연정’은 바로 물의 정원이다. 세연(洗然)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해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 담양 소쇄원에 있는 ‘제월당’ ‘광풍각’이 ‘비가 그친 후 맑게 갠 하늘에 뜬 달과 청량한 바람’을 뜻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수양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담은 정원이다. 세연지는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만든 인공연못이다. 물을 막는 ‘판석보(板石洑)’는 가뭄 때는 돌다리가 되고, 비가 많이 올 때는 폭포로 변신해 수량을 조절한다. 윤선도의 심미안과 과학적 지식이 돋보이는 장치다. 세연지에는 7개의 바위가 용틀임하며 놓여 있고, 정자 주변에는 거대한 소나무가 심어졌다. 고산은 연못에 작은 배를 띄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연밥을 따기도 하며 물을 즐겼다. 고산 윤선도는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다. “하루도 음악이 없으면 성정을 수양하며 세간의 걱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한 고산은 연못과 정자, 축대와 절벽을 입체적으로 활용한 자연의 대극장을 만들어냈다. 정자 위에서 관현악 연주에 맞춰 ‘어부사시사’를 부르면 물길 너머 돌로 쌓은 무대인 동대와 서대에서 무희들이 군무를 추었다고 한다. 또한 서쪽 산 중턱에 있는 바위인 옥소대 위에서도 군무를 추었는데, 세연지 연못 위로 춤사위가 비쳤다고 한다. 정자는 자연의 종합예술을 감상하는 최고의 객석이다. 정자는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뤄져 있는데, 사면을 둘러싼 ‘들어열개문’을 모두 올리면 기둥 사이로 액자 속의 명화 같은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조선의 정원건축 원리인 ‘차경(借景)’이다. 정자는 작지만 사방으로 물소리와 바람 소리, 음악과 새소리, 달빛이 흐르며 무한히 넓어지는 공간이다. 고산이 낙서재에서 마주 보이는 앞산 바위 절벽에 지은 동천석실의 주제는 ‘돌’이다.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한 칸 정자 주변엔 석문, 석담, 석천, 석폭, 석전 등 자연석으로 만든 연못과 돌다리 등이 있다.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어 음식을 올려서 먹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 있다. 낙서재 앞마당에도 고산이 달을 감상할 때 앉았던 거북 모양의 평평한 바위인 ‘귀암(龜巖)’이 있고, 건너편 ‘곡수당(曲水堂)’에는 개울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현재 보길도는 극심한 봄철 가뭄으로 세연정의 물도 메말라 커다란 바위가 밑동까지 드러났다. 그러나 자연은 위기에서 더욱 강해진다고 했던가. 세연정의 동백꽃은 더욱 붉게 피었다. 얕은 연못 위로 떨어진 붉은 동백꽃 잎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 주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섬 동쪽 끝자락 백도리 해안 절벽에 있는 ‘송시열 글씐 바위’다. 남인이었던 윤선도는 서인 송시열과 맞서다가 수차례 삭탈관직되고 유배를 떠나야 했다. 윤선도가 세상을 떠난 지 18년 후인 1689년. 우암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 풍랑으로 보길도에 기착한다. 우암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왕을 그리워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보길도 끝 암벽에 새겨놓았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이 보길도에서 남긴 흔적을 보면서 권력과 풍류, 인생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공룡알해변과 뾰족산보길도의 서남쪽 끝에 있는 보옥리 공룡알해변은 한적하게 하룻밤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보길도에서 가장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에는 매끈하고 작은 몽돌이 있는 반면 공룡알해변에 있는 둥글둥글한 차돌은 아기 머리통만큼 커다랗다. 파도가 칠 때마다 ‘촤르르’ 하며 돌 굴러가는 소리가 이채롭다. 공룡알해변 옆으로는 ‘뾰족산(보죽산)’이 그야말로 원뿔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보옥민박은 정원이 아름다운 바닷가 민박이다. 1인당 1만 원이면 저녁 식사로 ‘보길도 어촌 백반’을 내준다. 그날 잡힌 물고기로 찌개를 끓이고, 싱싱한 바다 내음이 살아 있는 파래와 톳, 젓갈과 돌김까지 소박하지만 음식 솜씨가 대단한 주인장의 밥상을 마주할 수 있다. 아침에 주는 전복죽에도 보길도 특산품인 전복이 가득 들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7시에 뾰족산 산행을 시작했다. 동네에서 키우는 흰둥이 개가 등산로 입구로 달려오더니 앞장서 길을 인도한다. 뾰족산은 온통 동백나무가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이다. 흰둥이가 인도하는 등산로에는 선홍색 동백꽃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마치 누군가 ‘꽃길만 걷게 해줄게’ 하면서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것 같다. 아침의 동백나무 숲속에서는 수많은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울어댄다. 뾰족산은 해발 195m에 불과해 30∼40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바닷가 산이라 해가 떠오르는 공룡알해변과 보옥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탁 트인 전망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하산길에 흰둥이가 먼저 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약간 서운한 마음에 올라올 때처럼 동백꽃이 떨어진 길을 따라 하산했다. 그런데 아뿔싸. 동백꽃만 따라갔는데 어느샌가 등산로가 사라졌다. 눈을 들어보니 등산로뿐만 아니라 온 산이 동백꽃 세상이 아닌가. 원시림과 덤불, 바위를 헤치고 겨우 마을로 내려왔다. 야트막한 동네 산이라 꽃에 취해 한 번쯤 길을 잃어도 좋은 봄날의 시간이었다.글·사진 보길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경남 고성군 상족암에 가면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던 공룡 발자국 화석을 볼 수 있다. 1982년에 발견된 공룡 발자국은 약 250개로 1999년 천연기념물 411호로 지정됐다. 1억5000만 년 전 새겨진 공룡 발자국을 따라 상족암 해안 산책길을 걷다 보면 아름다운 남해안 한려수도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암벽 깊숙이 미로 같은 굴이 뚫려 있다. 간조 시간 전후로 1시간 반 정도 상족암에 방문하면 해식동굴에서 멋진 동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은 ‘남반구의 런던’이라고 불린다. 멜버른 인근에서 1850년대 금광이 발견돼 전세계에서 이민자들이 찾아오는 골드러시로 일약 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른 도시였기 때문이다. 시내에는 영국 빅토리아풍의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아케이드에는 세계 각국의 미식(美食)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맛집이 가득하다. 문화도시 멜버른의 미술관과 광장, 시장에서는 이벤트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 최첨단 도시에서 즐기는 슬로우 여행 멜버른 도시는 시내를 관통하는 야라(Yarra)강을 주변으로 마천루의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 번쩍인다. 그 중 남반구 최대인 89층 높이의 ‘유레카 타워’에 올라가면 멜버른 도심과 바다까지 360도 전망을 볼 수 있다. 노천카페가 즐비한 야라강가에는 이른 새벽부터 젊은이들이 노를 젓는 날렵한 조정 경기정들이 떠다니는데, 밤이 되면 크라운 카지노 앞에서 불꽃쇼가 펼쳐지는 등 아름다운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최첨단 마천루 빌딩에서 살짝 비껴나면 영국 빅토리야 양식의 중후한 건물들을 배경으로 낡은 트램열차(무료)가 천천히 다니는 시티 지역이 나온다. 마치 중세 런던을 지구 반대편에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 그래서 비와 구름, 햇빛이 오락가락하는 날씨마저 변화무쌍한 멜버른은 ‘남반구의 런던’이라고 불린다. 그래피티로 유명한 호시어 레인(Hosier Lane) 골목길은 ‘미사 거리’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소지섭, 임수정이 주연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촬영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류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외국인들도 이 곳에서 인증샷을 남기느라 골목길은 늘 북적인다. 1870년에 문을 연 ‘로열 아케이드(Royal Arcade)’는 1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로 고전적인 건축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호주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아케이드로서, 기다란 통로 양옆으로 초콜릿, 아이스크림, 양말, 커피 등을 파는 우아한 상점이 주욱 늘어선 회랑이다. 로얄 아케이드와 함께 멜번의 역사적인 건축물로 등록돼 있는 블록 아케이드 내부에는 3대째 운영되는 애프터눈 티 카페 ‘홉툰티룸(Hopetoun Tea Room)’이 있다. 딸기 케익, 바닐라 슬라이스, 초콜릿 타르트 등 디저트와 함께 커피와 차를 마시기 위한 손님들이 긴 줄을 서는 곳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와 빅토리아 스트리트의 모퉁이에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가장 활기찬 멜버른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일 새벽에 문을 여는 이 곳은 과일과 식료품 뿐 아니라 의류와 잡화까지 다 판다. 심지어 캥거루 고기, 악어 고기, 타조알도 구할 수 있다. 이탈리아, 그리스, 인도네시아, 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상인으로 일하고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은 그야말로 다문화의 용광로다. 여름철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야시장(Night Market)에서는 지구촌 먹거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야시장에서는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는 ‘회오리 감자’ 코너에도 긴 줄이 섰다. 이러한 멜버른의 도심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열기구를 타고 도심의 하늘을 나는 것이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이집트 룩소르처럼 한적한 초원이나 사막 위에서 풍선을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도심의 최첨단 마천루 빌딩 위를 날으면서 일출을 감상하는 체험이다. 드론 비행도 통제하는 서울 하늘에서는 상상도 못할. 새벽 5시50분.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으로 ‘글로벌 벌루닝(Global Ballooning)’이란 이름이 새겨진 승합차가 왔다. 트레일러에는 대형풍선이 실려 있었다. 조종사가 건넨 브로슈어에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대도시 열기구 체험”이라고 씌여 있었다.차량은 멜버른 서쪽 야라강 하구 뉴포트 파크에 멈춰섰다. 함께 떠오를 대형풍선 5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풍선의 입구를 붙잡은 뒤 바람을 밀어넣고, 가스 불꽃을 만들어내니 풍선이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차량에 연결된 밧줄을 풀자 승객들이 탄 바구니는 그야말로 사뿐하게 떠오른다. 점차 시야에 들어오는 항구의 컨테이너, 정박돼 있는 크루즈선, 그리고 저멀리 도심의 마천루와 바다…. 남서풍을 타고 날아가는 열기구는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기계적 동력장치가 아니라 순수하게 바람에 온 몸을 맡기는 체험이다. 요트를 타고 갈 때 엔진소리 없이 산들산들 전진하는 것처럼, 풍선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고요하게 바람에 실려갔다. 그러면서도 드론 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광활한 뷰가 눈 앞에 펼쳐졌다. ‘시네마 모드’로 촬영할 때처럼 천천히 시야가 확대돼가는 감동 말이다. 저 멀리 멜버른 도심의 빌딩 너머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꺼운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붉은 햇살이 마치 ‘지구 종말의 날’을 그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비롭다. 도심의 빌딩의 유리창에 붉은 아침 노을이 반사돼 반짝거렸다. 열기구는 유레카 타워를 비롯해 70~80층 건물이 즐비한 멜버른 도심을 관통하며 야라강 상공 위를 날아간다. 아침부터 강물 위에서 조정 훈련을 하고 있는 선수들, 다리 위로 분주하게 오가는 차량들, 트램과 열차…. 간 밤에 기자가 묵었던 호텔의 간판까지 하늘 위에서 확인하니 더욱 반가웠다. 열기구를 운전하는 호주의 베테랑 조종사는 주택가 수영장이 다 보일 정도로 낮게 날다가도, 빌딩이 가까워지면 가스불을 켜서 열기구를 상승시켰다. 풍선의 천장을 막고 있는 구멍을 열어 열기를 빼내면 풍선은 내려앉았고, 줄을 당기면 풍선이 회전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종사는 단순히 열기구를 올리고 내리고, 제자리 회전을 할 수는 있지만 바람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날의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서 착륙지점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조종사는 열기구의 줄에 매단 고프로 카메라를 이용해 바구니에 탑승한 사람들을 위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고층빌딩 위를 날아가는 대형풍선과 함께 찍힌 탑승객의 모습은 합성사진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약 1시간의 비행을 마친 풍선은 멜버른 시내 동북쪽 외곽의 크리켓 경기장 잔디밭 위로 착륙했다. 조종사는 열기구가 땅에 닿는 앞부분을 살짝 들어올려 소프트랜딩(연착륙)에 성공했다. 반면 다음에 내린 또다른 풍선은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바구니가 몇 미터나 끌려가는 경착륙으로 잔디밭에 심하게 긁힌 자국을 남겨두었다. 하차한 뒤 모든 탑승객들이 힘을 합쳐 풍선에 가득한 바람을 빼고, 접어서 차에 싣는 것을 도왔다. 21세기 인공지능(AI) 기술의 시대에 즐기는 아날로그 체험은 멜버른 외곽 단데농 국립공원의 퍼핑빌리에서도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토마스 기차’와 똑같이 생긴 증기기관차가 우거진 원시림 사이를 구불구불 달려간다. 기관실에는 실제로 화부가 석탄을 삽으로 퍼붓고, 굴뚝에서는 하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퍼핑빌리 계곡에는 100년이 훨씬 넘은 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목재 다리 위로 증기기관차가 지나간다. 창틀에 앉은 승객들은 창밖으로 다리를 내놓고 활짝 웃고 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호주 와인과 온천 호주는 칠레, 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적인 와인 생산국이다. 청정자연에서 생산된 자연포도로 만든 와인은 깊고 부드럽다. 멜버른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빅토리아주의 야라밸리는 호주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와인산지다. 호주 최고의 피노누아와 스파클링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야라밸리에는 50여 개의 와이너리, 40개 이상의 와인 저장고가 마련돼 있다. 빅토리아주의 모닝턴반도에 있는 몬탈토(Montalto) 와이너리는 포도원과 레스토랑, 카페, 야외조각과 습지대 등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피노누아와 시라즈, 사르도네 와인을 테이스팅할 수 있고, 포도원 투어와 점심식사도 즐길 수 있다.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은 자연의 숲 속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의 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대규모 욕탕같은 온천이 아니라 우거진 숲 속에 10명 미만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노천 온천이 그림처럼 놓여 있다. 수영복 차림에 하얀색 가운만 걸치면 온천을 즐기면서 숲 속을 걷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힐탑 온천. 가장 높은 언덕 끝까지 올라가면 광활한 호주의 초원을 360도로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갖춘 노천탕이 나온다. 멜버른의 초록색 자연이 온 몸으로 들어오는 이 곳은 인생샷 명소이기도 하다. 글·사진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은 ‘남반구의 런던’이라고 불린다. 멜버른 인근에서 1850년대 금광이 발견돼 전 세계에서 이민자들이 찾아오는 골드러시로 일약 금융의 중심지로 떠오른 도시였기 때문이다. 시내에는 영국 빅토리아풍의 건물이 곳곳에 남아 있고, 고풍스러운 아케이드에는 세계 각국의 미식(美食)과 커피, 차를 즐길 수 있는 맛집이 가득하다. 그런가 하면 도심 외곽으로 1, 2시간만 벗어나면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호주에서만 살고 있는 희귀 야생동물을 길거리에서 만나는 진귀한 체험이다.》멜버른 시내 89층 높이의 ‘유레카 타워’에 올라가면 도심 마천루 빌딩부터 바다까지 360도 전망이 가능하다. 시내를 관통하는 야라강 가에는 이른 새벽부터 젊은이들이 노를 젓는 조정 경기정들이 떠다닌다. 그런가 하면 빅토리아 양식의 기차역과 아케이드가 있는 시티 지역에는 무료로 탑승할 수 있는 트램(노면 전차)이 다닌다.●최첨단 도시에서 즐기는 슬로 여행그라피티로 유명한 호저레인 골목길은 ‘미사 거리’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소지섭, 임수정 주연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촬영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1868년 개장한 퀸 빅토리아 마켓은 가장 활기찬 멜버른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매일 오전 6시에 문을 여는 이곳은 과일과 해산물, 의류와 잡화까지 다 판다. 심지어 캥거루 고기, 악어 고기도 구할 수 있다. 이러한 멜버른의 도심을 감상할 수 있는 더욱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열기구를 타고 도심의 하늘을 나는 것.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 이집트 룩소르처럼 한적한 초원이나 사막 위로 나는 풍선이 아니라 마천루 빌딩 위를 비행하며 일출을 보는 풍선이다. 오전 5시 50분.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앞으로 ‘글로벌 벌루닝(Global Ballooning)’이란 이름이 새겨진 승합차가 왔다. 차량은 멜버른 서쪽 야라강 하구 뉴포트파크에 멈춰 섰다. 풍선의 입구에 바람을 밀어넣고, 가스 불꽃을 뿜어대니 풍선이 똑바로 서기 시작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점차 시야에 들어오는 항구의 컨테이너, 크루즈선, 도심의 빌딩 숲, 그리고 바다…. 남서풍에 실려 가는 풍선은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기계적 동력장치가 아니라 순수하게 바람에 온몸을 맡기는 체험이다. 요트를 탈 때 엔진 소리 없이 산들산들 미끄러져 가는 것처럼, 풍선도 조용히 바람에 실려 갔다. 도심의 빌딩 너머로 해가 떠오르자 구름 사이로 붉은 햇살이 내비친다. 열기구는 70∼80층 건물이 즐비한 멜버른 도심 위를 날아 약 1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멜버른 동북쪽 크리켓 경기장 잔디밭 위로 착륙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즐기는 아날로그 체험은 멜버른 외곽 단데농 국립공원의 퍼핑빌리 열차에서도 할 수 있다. 12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증기기관차가 원시림 사이를 구불구불 달려 나간다.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의 모태가 됐다는 증기기관차의 기관실에서는 실제로 화부가 땀 흘리며 삽으로 석탄을 퍼붓고 있다. 열차를 탄 후 야라밸리의 몬탈토 와이너리를 방문하거나,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의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멜버른의 초록색 자연을 한층 더 깊게 느낄 수 있다.●필립섬에서 만난 펭귄과 블랙스완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40분 거리의 ‘필립아일랜드’는 자연이 잘 보전된 섬이다. 이곳에서는 펭귄과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흑조, 가시두더쥐 등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동물을 야생에서 만날 수 있다. 필립섬의 대표적인 명물은 바로 ‘리틀펭귄’. 키 30cm, 몸무게는 약 1kg. 지구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으로, 별칭은 ‘페어리(요정) 펭귄’이다. 서멀랜드비치에 가면 매일 평균 2000여 마리의 펭귄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2박 3일간 바다에서 먹이활동 후 일몰 시간대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바닷물 속에서 리더 펭귄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면, 수십 마리의 펭귄이 뭍으로 올라온다. 이후 적게는 5∼10마리씩 뒤뚱뒤뚱 집을 찾아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바닷가 근처에 굴을 파놓은 펭귄은 금세 집을 찾아가지만, 산비탈을 넘어가는 펭귄은 멀게는 2km나 걸어서 집으로 간다. 배가 불룩한 펭귄 2마리가 고갯길에서 힘겨웠는지 배를 깔고 엎드려 쉬어 간다. 집에 있는 어린 자식을 먹이려고 배 속에 물고기를 가득 채워 놨을까. 직장인 엄마, 아빠의 고단한 퇴근길이 떠올라 울컥한 장면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가족을 부르는 소리에 고요하던 필립섬은 펭귄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필립섬 백조의 호수(Swan Lake)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호수 위에는 S자로 굽은 긴 목을 가진 새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모양은 영락없는 백조인데 몸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말로만 듣던 ‘블랙 스완’, 흑조였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서는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했던 1인 2역 변신 장면이다. 경제 용어로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 유럽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 특산종인 검은 백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스완레이크에 있는 조그만 통나무 집에 들어가면 완벽하게 숨어서 새들을 구경할 수 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망원경도 필요 없다. 호숫가 주변 풀밭에는 왈라비가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왈라비는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유대류인데, 몸집이 좀 작고 털 색깔이 짙다. 또 길쭉한 주둥이에 등에 뾰족한 바늘이 촘촘히 박힌 ‘가시두더지’도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통나무집에서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힐링의 호숫가였다.●그레이트오션로드 호주 멜버른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오션로드’는 총 241km에 이르는 해안도로다. 주변에는 도보 트레일 코스인 ‘그레이트오션워크(Walk)’도 있다. 빅토리아주 어촌 마을인 아폴로베이에서 시작되는 100km 구간으로, 해안 절벽과 숲, 바위를 통과하며 바닷가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트레일의 마지막 목적지는 ‘12사도 바위(Twelve Apostles)’다. 구불구불한 해안 절벽을 따라 서 있는 12사도 바위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전 세계 50곳’에 늘 거론되는 곳이다. 파도의 침식으로 석회암 12사도상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트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런던아치(런던브리지)’에 가보니 파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아치는 1990년 1월 육지와 연결된 곶이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아치가 무너져 내려 섬이 됐다. 그레이트오션로드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다. 12사도 바위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는 헬기를 타면 약 16분 동안 45km를 날아서 로크아드 협곡, 런던아치, 코끼리바위 등을 돌아볼 수 있다. 1919년에 시작된 그레이트오션로드 건설은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귀향한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사업으로 시작됐다. 총 3000여 명의 참전 군인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건설에 참여했는데, 그들을 위한 기념비도 서 있다. 멜버른 현지 여행 가이드인 대니얼 서 씨는 “그레이트오션로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물”이라고 말했다. 여행 정보=한국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하면 인천∼홍콩 3시간, 홍콩∼멜버른 8시간 걸린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인천∼홍콩 노선을 주 24회 운항하며, 홍콩에선 호주 3개 도시(시드니, 멜버른, 퍼스)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16분 동안 진행되는 12사도상 헬기 투어는 165호주달러(약 14만 원), 열기구 체험은 495호주달러(약 43만 원), 퍼핑빌리 증기기관차는 왕복 61호주달러(약 5만 원)다. 글·사진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멜버른 남쪽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총 241km에 이르는 해안도로다. 도로 곳곳에 차를 멈추고 해변으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나 전망대가 있다. 커다란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해변과 절벽의 뷰를 볼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해안 관광도로 중 하나다. 호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그레이트 오션로드에서 가장 으뜸인 절경은 ‘12사도(Twelve Apostles)’다. 구불구불한 해안 절벽을 따라 거대한 석회암 바위들이 바닷 물 위로 우뚝 솟아 있는 곳이다. ‘12사도’라는 이름은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는 매우 성스러운 이름이 아닐 수 없다. 12사도 중 한 명인 성(聖)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가는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도보 순례길이 됐다. 12사도 바위가 잇달아 서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도 해안선을 따라 100km 구간의 도보 트레일 코스가 있다. 바다와 산을 넘나드는 트레일 코스에는 커다란 배낭에 텐트까지 짊어지고 걷는 젊은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바닷 속으로 사라지는 12사도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에 즐겨 뽑히는 곳이다. 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연약한 석회암으로 이뤄진 바위가 해안의 파도의 침식과 바람, 태풍 등의 영향으로 하나 둘씩 무너져 바닷 속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애초에 12사도 바위가 ‘파도와 바람의 예술품’으로 태어난 것과도 관계가 깊다. 원래 구불구불한 해안선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거센 파도가 약한 부분을 무너지게 하고, 바다 위에 남은 절벽은 섬이 되는 것이다. 이 섬마저도 파도에 의해 밑부분이 파이고, 균열이 간 바위 틈새로 소금기 머금은 빗물이 들어가 쪼개지면서 결국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12사도 바위는 현재 8개만 남은 상태다. 실제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런던 브릿지’ 바위에 가보니 무시무시한 파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곶이었는데, 아랫부분에 파도의 침식으로 두개의 아치가 생겼다. 그런데 1990년 1월 오후 7시45분 쯤 2명의 관광객이 있는 상태에서 굉음과 함께 한쪽 아치가 갑자기 무너져내렸다. 육지와 연결된 윗부분의 무거운 돌 무게를 얇아진 아치가 지탱을 하지 못한 것. 졸지에 섬이 된 곳에 고립돼 있던 관광객 2명은 3시간 뒤에 경찰 헬기에 의해 구조됐다고 한다. 이 곳에 있는 안내판에는 ‘파도의 침식에 의해 언젠가는 두 번째 아치도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두개의 새로운 사도 바위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바위도 침식돼 결국 바닷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씌여 있었다. 포트 캠벨 국립공원에 있는 ‘레이저백(Razorback)’ 바위는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바위들이 이어진다. 14초에 한 번씩 치는 파도가 절벽 아랫부분에 기다란 홈을 만들어내고, 바위가 침식으로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표면이 형성되는 것이다. ‘로크 아드 협곡(Loch Ard Gorge)’은 1878년 5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좌초한 선박의 이름을 따 명명한 협곡이다. 해변에 서면 바다 위로 우뚝 솟은 양쪽 절벽 사이로 거센 파도와 물결이 들어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뷰 포인트로 가다보면 로크 아드 호 침몰에서 살아 남은 두 명의 생존자 ‘톰과 에바’의 이야기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계단을 타고 해변가로 내려가면, 기이한 형태의 석순과 종유석이 자란 침식 동굴도 구경할 수 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구경하는 특별한 방법은 헬리콥터를 타는 것이다. 12사도 바위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는 헬리콥터(12 Apostles helicopters)를 타고 약 16분 동안 45km를 날아서 12사도 바위와 로크 아드 협곡, 런던브릿지, 코끼리바위 등을 보고 돌아올 수 있다. (비용은 1인당 165호주달러·약 14만4000원) 헬리콥터 유리창 때문에 생각보다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늘 위에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스펙터클한 기암괴석과 파도, 에머랄드 빛 바다를 눈으로, 가슴으로 맘껏 담아올 수 있는 기회였다. ●세계 최대의 전쟁기념물그레이트 오션로드 건설은 1차 세계대전(1914~1918) 참전 후 귀향한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사업으로 시작됐다. 호주는 1차 세계대전에 총 33만 명의 군인이 유럽, 터키, 중동에서 전투에 참가했다. 총 6만 명이 전사하고, 16만 명이 부상당했다. 참전군인 중 희생자 비율은 64%가 넘었는데, 참전국 중 희생자 비율이 가장 높았다. 영국의 요청으로 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터키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했던 호주와 뉴질랜드군이 수많은 사상자를 냈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군인들의 손실은 인구 500만 명에 불과했던 호주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돌아온 군인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 건설 사업이 제안됐던 것이다. 1919년 9월19일 시작된 공사에는 총 3000여 명의 1차 대전 참전군인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일했다. 참전군인들은 요리사와 피아노가 갖춰진 캠프에서 머물면서 도로 건설 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1936년 이 도로가 정부에 인수되기 전까지 통행료를 받던 톨게이트가 있던 자리인 ‘이스턴 뷰(Eastern View)’에는 1차대전 참전 군인들을 위한 기념비와 동상이 서 있다. 호주 멜버른의 현지 여행가이드인 대니얼 서 씨는 “이 기념비 뿐 아니라 ‘그레이트 오션 로드’ 전 구간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전쟁기념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멜버른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에도 전쟁 기념관(Shrine of Remembrance)이 세워져 있어 관광객들을 맞는다.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아버지와 아들이 군복을 입고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동상을 만난다. 이 부자(父子)는 1차 세계대전(1914~18)에서 전사한 아버지와 2차 세계대전(1939~45)에서 전사한 아들의 모습이다. 전시장에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호주군의 깃발과 사진 등을 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6.25전쟁 당시 호주군은 총 1만8000여 명이 참전해 339명이 전사하고 1200여 명이 부상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영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웅장한 전쟁기념관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중앙에 있는 성소다. 1차 대전 종전일인 매년 11월11일 오전 11시에는 천장의 틈으로 한줄기 자연 햇빛이 들어와 대리석으로 만든 ‘기억의 돌’ 위를 비춘다. 성소의 가운데에 놓여 있는 기억의 돌에는 ‘LOVE(사랑)’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전쟁기념관 꼭대기에 있는 발코니에서는 정원에 심어진 250그루의 나무를 비롯해 멜버른 도심의 고층빌딩과 야라강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치지는 전망을 볼 수 있다. 기념관 주변에는 13헥타르에 이르는 정원에 ‘무명용사를 추모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비롯한 수많은 조각품, 기념비 사이로 산책을 할 수 있다. 글-사진 멜버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남부에 있는 멜버른은 시드니에 이어 2번째 큰 도시다. 지구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80~90층짜리 마천루 빌딩이 몰려 있는 도심 뿐 아니라 야생의 자연과 스펙터클한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대륙인 호주에는 다른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동물이 야생에서 뛰어논다. 호주의 동물들은 대부분 순한 초식동물들로, 주머니에 새끼를 넣어서 기르는 유대류다. 반면 육식을 하는 대형 맹수는 찾기 어렵다. 멜버른 남동쪽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필립 아일랜드’는 야생의 자연이 잘 보전된 섬이다. 이 곳엔 펭귄과 캥거루, 코알라, 왈라비, 흑조, 가시두더쥐 등 희귀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펭귄이다. 남극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펭귄이 왜 호주 멜버른 바닷가에 살고 있는 것일까? ●필립 섬에서 만난 펭귄 필립섬에 가면 밤마다 요정들이 뛰어다닌다. 어른 팔뚝만한 30cm 정도의 키에 몸무게도 1kg 남짓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펭귄이다. 학명은 ‘쇠푸른펭귄’인지만 ‘리틀 펭귄’이라고 부른다. ‘요정 펭귄’ ‘페어리 펭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귀여움의 극치다. 남극 대륙에 살고 있는 황제펭귄은 평균 1m22cm 키에 몸무게도 20~40kg나 나가는 것에 비교하면 매우 작다. 일반적으로 큰 펭귄은 추운 곳에 서식하고, 작은 펭귄은 따뜻한 곳에 산다고 한다. 덩치가 작은 멜버른의 펭귄은 남극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후가 온화한 호주에 정착한 것으로 추측된다. 펭귄이 호주에 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대륙 이동설이다. 호주대륙은 원래 남극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과 붙어 있다가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호주 남부 멜버른, 태즈매니아 섬이나 남미 칠레, 아르헨티나 남부에도 펭귄이 살고 있는 것이다. 호주 남부에 있는 멜버른 앞바다는 남극해라고 불린다. 물이 차가워 여름에도 해수욕을 하기 힘들다. 대신 파도가 거세 매년 세계적인 립컬(Rip Curl) 서핑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어제 귀가한 펭귄 수 : 2222마리’ 기자가 지난달 필립섬 펭귄 퍼레이드 센터에 찾아갔을 때 입구에 쓰여져 있던 숫자다. 아침에 바다로 나간 펭귄 떼들은 2박3일 간 바다에서 먹이 사냥을 마치고, 해가 질 무렵 해안가로 돌아와 집을 찾아간다. 필립섬 서머랜드 비치에 해질녘에 찾아가면 수천 마리의 펭귄들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온 섬이 떠들썩해질 정도로 장관을 이루는 ‘펭귄 퍼레이드’다. 펭귄퍼레이드 센터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로비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캥거루보다 약간 작은 유대류 동물인 왈라비가 뛰어다니는 모습도 신기하다. 오후 8시반 쯤. 해가 지기 시작해 바다로 나갔다. 벌써 해안가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펭귄이 나오는 길목을 차지하고 기다리고 있다. 리틀 펭귄이 해가 진 후 바다에서 나오는 이유는 천적들로부터 가장 안전한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펭귄은 육지 위 풀숲에 땅을 파고 굴 모양의 집을 짓고 사는데, 뒤뚱거리며 바다까지 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붉은 여우나 야생고양이 같은 천적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펭귄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해뜨기 전에 바다에 나갔다가, 다시 어두워졌을 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해가 지자 갑자기 바닷물 속에서 리더 펭귄 한 마리가 고개를 쑥 내밀고 해안 주변 동태를 살핀다.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는지 그를 따르는 수십마리의 펭귄들도 따라 올라온다. 뭍에 오른 펭귄들은 바위 위에서 수십마리씩 떼를 지어서 한참 동안 서 있다. 날개를 쫙 펴서 털을 말리는 놈도 있고, 주변을 둘러보며 떠들어대는 놈도 있다. 부부인 듯한 커플 펭귄은 목주변의 가려운 곳을 서로 부리로 긁어주고 있다. 자기 부리로 자기 목의 가려운 곳을 긁기는 힘들 것이다. 사랑하는 커플끼리 서로의 목주변을 긁어주는 것이다. 몸이 어느 정도 마르고 나면 적게는 5마리, 많게는 20여 마리의 펭귄이 무리를 지어 집을 찾아간다. 넘어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그런데 무리에 따라서 사는 곳이 다르다. 바닷가 근처에 굴을 파고 사는 녀석들은 여유를 부린다. 그런데 높은 산 위로 고갯길을 넘어서 힘겹게 올라가는 놈들도 있다. 또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산비탈을 넘공, 풀밭을 건너 멀게는 2km나 걸어서 가는 녀석들도 있다고 한다. 젊은 펭귄 무리들은 채널A ‘강철부대’의 부대원들이 행군하듯 날씬한 몸으로 펄쩍 펄쩍 용수철처럼 뛰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배가 불룩한 펭귄들은 술에 취한 듯 힘겨운 갈짓자 걸음을 한다. 아마도 집에 돌아가 어린 자식에게 먹일 물고기를 뱃 속에 가득 담은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저러다 넘어지고 말지! 하는 순간. 비탈길을 오르던 펭귄이 배를 깔고 그대로 주저 앉는다. 통통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소파나 물침대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한참이나 엎어져서 가지 않으면, 옆에 있는 동료 펭귄이 흔들어 깨운다. ‘야, 집에 가자!’ 그러면 다시 일어나 뒤뚱뒤뚱 걷는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 엄마, 아빠의 퇴근길이 떠올라 울컥한 장면.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는 가족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에 고요하던 필립 섬은 펭귄 울음소리로 가득 찬다. 어릴 적 동네 골목길에서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놀 때, 엄마가 대문을 열고 ‘저녁밥 먹어야지’라며 나를 부르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까이에서 본 펭귄은 발가락에 물갈퀴가 보였다. 날개는 지느러미처럼 작았다. 부리는 새부리처럼 날카롭고 끝이 아래로 휘어져 있다. 동그란 눈은 귀엽기만 하다. 땅 위에서는 느린 리틀 펭귄이지만 바닷속에서는 최대 초속 1.7m(시속 6.4km)로 헤엄친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재빠른 수영실력을 자랑한다. 또한 위성추적장치를 달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리틀 펭귄은 하루 평균 15~50km를 헤엄치며, 평균 200~1300번을 잠수해 10~30m 깊이에서 멸치나 오징어 등을 잡아 먹는다고 한다. 유럽인들이 필립 섬에 정착하기 전에는 이곳에 10개나 되는 리틀 펭귄 군락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와 건물이 생기고, 사람들을 따라 야생고양이나 여우 등이 들어오면서 9개 군락지가 살아지고, 서머랜드 만에 하나의 군락지만 남게 됐다. 이에 1985년 빅토리아주 정부에서는 리틀 펭귄을 보호하기 위한 30년 계획을 세우고, 서머랜드 만의 집과 땅을 모두 다시 사들여 펭귄 서식지를 만들었다. 이같은 노력으로 필립섬에 2007년 2만6000마리였던 펭귄이 현재 3만2000마리로 늘어났다고 한다. ●‘흑조’의 호수 필립아일랜드에는 코알라 보호센터도 있다. 그런데 교통체증 때문에 시간이 늦어서 코알라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멜버른 현지 가이드인 대니얼 서 씨는 대신 “현지인들만 알고 있는 힐링장소인 백조의 호수(Swan Lake)를 소개해드리겠다”고 말했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을 지나자 한적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숫가 풀밭에서는 왈라비가 조용히 풀을 뜯고 있다가, 사람이 다가서면 깡충깡충 뛰어 달아났다. 왈라비는 캥거루와 비슷하게 생긴 유대류인데, 몸집이 좀 작고 털색깔이 짙다. 호수 위에는 수많은 새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우아한 모습의 커다란 새가 눈에 들어왔다. S자로 굽은 긴 목을 물에 담갔다가 빼는 실루엣이 영락없는 백조였다. 그런데 몸이 흰색이 아니라 검은색이 아닌가. 말로만 듣던 ‘블랙 스완(Black Swan)’, 흑조였다. 세상에 흑조가 진짜 있다니! 놀라웠다. 흑조는 온 몸에서 부리만 빨간색이었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는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했던 1인2역 변신 장면이다. 블랙 스완은 동화나 영화에서 흑화한 주인공에 대한 상징적 은유인줄 알았는데, 멜버른의 호숫가에서 진짜 흑조가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경제용어로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전 세계의 경제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위기를 맞을 때 사용하는 용어다. 흑조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특산종이라고 한다. 서구 유럽인들이 호주에서 백조와 똑같은 흑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스완 레이크에는 조그만 통나무 집에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눈높이에 일자로 뚫린 창문으로 호수 위에 떠다니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새들이 바로 앞까지 헤엄쳐 다가오기 때문에 망원경도 필요없다. 눈 앞에서 이렇게 평화롭고 고요한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침묵 속에 경탄하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며칠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 힐링의 호숫가였다. 호숫가에서 돌아오는 데 길섶에 등에 뾰족한 바늘이 촘촘히 박힌 생물체가 땅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처음엔 고슴도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동물은 다음날 그레이트 오션 로드 해변 풀숲에서 또다시 만났다. 이번엔 얼굴을 들고 네발로 어기적 어기적 걸었는데, 길쭉한 주둥이가 있어 고슴도치와 달랐다. 찾아보니 ‘가시 두더지’ 또는 ‘바늘 두더지’라고 불리는 놈이었다. 개미핥기처럼 길쭉한 주둥이로 개미나 벌레, 곤충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호주의 특산종인 ‘오리 너구리’처럼 가시 두더지는 포유류인데 알을 낳는 특이한 동물이었다. 알에서 태어난 새끼를 배에 있는 주머니에 넣고 키우는 유대류이기도 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레이어57 전시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이어졌다. 손에 와인잔과 생수병을 든 MZ세대 젊은이들이었다. 3년 만에 열리는 ‘살롱오(Saloln O)’의 스탠딩 파티에서 최신 유행의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살롱오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 6개국에서 40여 명의 와인메이커가 자신이 만든 내추럴 와인을 직접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생수로 입을 헹구어 가며 화이트, 레드, 로제 와인을 번갈아 한 모금씩 마시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와인 에이전시 최영선 비노필 대표(55·사진). 2017년 처음 내추럴 와인 살롱을 개최하면서 국내 식음료(F&B)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인물이다.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살롱오가 서울과 부산에서 3년 만에 다시 열리자 와인 마니아들이 1200명 가까이 몰려온 것이다. “내추럴 와인은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로 만드는데, 양조 과정에서도 화학적 첨가제 없이 발효시켜 만든 와인입니다. 유럽 와인의 최신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혁명적인 와인이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최 씨는 2004년 잘나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36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와인 유학을 떠났다. 디종에서 와인 비즈니스 석사(MBA)를 졸업한 그는 2008년 와인 에이전시 비노필을 차렸다. 최 씨는 보르도, 부르고뉴, 론 등 프랑스 각 지역의 와인 맛을 열정적인 강의로 풀어내는 명강사였다. 그런데 2014년 초쯤 그녀가 갑자기 “이제부터 내추럴 와인만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랑그도크루시용 지역에서 와이너리를 하는 친구 베로니크가 파리에 올라와 함께 새벽까지 와인을 마셨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고 말짱한 거예요. 그날 유일하게 달랐던 점은 내추럴 와인만 마셨다는 사실이었죠.” 내추럴 와인이 기존의 컨벤셔널 와인과 다른 점은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황(SO2)을 거의 넣지 않는다는 것. 이산화황은 와인을 병입할 때 산화방지제 역할을 하는 첨가물이다. 이산화황은 와인을 상온에서도 비교적 쉽게 보관할 수 있게 하지만, 숙취와 두통을 가져온다. 반면 내추럴 와인은 신선한 과일향이 넘쳐나지만 냉장 보관해야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최 대표는 프랑스 내추럴 와인의 선구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해 ‘내추럴 와인메이커스 1, 2’(한스미디어)라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2020년에 나온 1권은 내추럴 와인 혁명을 이끈 전설적인 1세대 생산자 15명에 관한 이야기이고, 올해 초에 나온 2권은 현재의 내추럴 와인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43명의 스토리를 담았다. 그는 “내추럴 와인은 패션이 아니라 자연을 살리고, 포도의 원래 맛으로 돌아가기 위한 농부의 철학”이라며 “화학비료와 제초제는 포도가 발효하는 데 필요한 천연이스트까지 다 죽게 한다. 연구결과 토양을 원래 자연대로 90∼95% 회복시키는 데는 7∼8년이 걸리지만, 100% 회복되는 데는 30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레이어57 전시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섰다. 손에는 와인잔과 생수병을 든 MZ세대 젊은이들이었다. 3년 만에 열리는 ‘살롱오(Saloln O)’의 와인 페어에서 최신 유행의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생수로 입을 헹구어가며 화이트, 레드, 로제 와인을 번갈아 한모금씩 마시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이날 살롱오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 6개국에서 40여 명의 와인메이커들이 직접 자신들이 양조한 내츄럴 와인을 가져와 와인제조법과 맛, 향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손에 와인잔을 든 젊은 와인 마니아와 외식업계 종사자들은 책이나 영상에서만 보던 유럽의 스타 와인메이커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즐겼다. ●살롱 오 축제에서 만난 젊은이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와인 에이전시 최영선(55) 비노필 대표. 2017년 국내에 처음으로 내츄럴 와인을 소개하는 살롱오를 개최한 이후 국내 내츄럴 와인시장 저변확대에 큰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살롱오가 3년 만에 다시 열리자 와인 마니아들이 몰려 온 것이다. “내츄럴 와인은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포도,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로 만듭니다. 여기까지는 유기농(Bio) 와인으로 말할 수 있는데, 와인을 만드는 양조과정에서도 어떠한 화학적 첨가제 없이 발효시켜 만든 와인이 내추럴 와인입니다. 유럽에서 최신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혁명적인 와인이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10여년 간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최 씨는 2004년 잘 나가는 직장을 가만두고 36세의 나이에 프랑스로 와인유학을 떠났다. ‘와인을 마실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현 듯 떠난 것이다. 디종에서 와인 비즈니스 석사(MBA)를 졸업한 그는 2008년 와인 에이전시 비노필을 차렸다. 기자가 파리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2013~2016년) 최 씨는 보르도, 부르고뉴, 론 등 프랑스의 각 지역의 와인의 맛을 열정적인 강의로 풀어내는 명강사였다. 그런데 2014년 초쯤. 그녀가 갑자기 “이제부터 내추럴 와인만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랑그독 루시용 지역의 도멘 마탕 칼므(Domaine Matin Calme)의 안주인이자 공동 양조자였던 베로니크와 저녁을 함께할 자리가 있었어요. 한국인 입양아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에 오랜기간 친구로 지냈는데, 파리에 왔으니 함께 새벽까지 와인을 마셨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고 말짱한 거예요. 주량을 훨씬 넘게 마셔 당연히 숙취 공포에 떨었는데 말이예요. 그날 유일하게 달랐던 점은 내츄럴 와인만 마시는 베로니크를 따라서 저도 내추럴 와인만 마셨다는 사실이었죠.” 내츄럴 와인이 기존의 컨벤셔널 와인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황(SO2)를 아예 넣지 않거나, 거의 넣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산화황은 와인을 병입할 때 산화방지제 역할을 하는 첨가물이다. 이산화황은 와인을 상온에서도 비교적 쉽게 보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와인을 개봉했을 때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산소와 쉽게 결합하는 특성 때문에 숙취와 두통을 가져온다. 반면 이산화황을 넣지 않은 내츄럴 와인은 신선하고 활력있는 과일향이 넘쳐난다. 반면 냉장고에 잘 보관하지 않으면 급격한 산화가 일어나 썩은 사과나 마굿간 냄새가 날 수 있다. 최 대표는 “내추럴 와인에는 ‘이산화황’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와인들은 지역에서 정한 특유의 와인의 빛깔이나 맛, 향을 맞추기 위해 넣는 천연색소나 감미료 등을 넣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지역의 전통을 무시하고 소규모 경작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포도를 그대로 발효해서 만드는 내추럴 와인은 지역 특유의 색깔과 맛, 향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의 와인을 입증하는 A.O.C 등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독립영화’처럼 와인계에도 자신의 신념과 방식대로 만들어내는 와인인 셈이다. 그래서 어떤 젊은 내추럴와인메이커는 자신이 만든 와인에 ‘표현의 자유’(Liberte d’expression) ‘반역자’(Rebelle)이라는 라벨을 붙이기도 한다. 파리의 힙스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생마르탱 운하나 바스티유 광장 주변에는 이러한 신선하고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내추럴 와인바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파리 11구에서 내추럴 와인바 ‘랭쥬 뱅’을 운영했던 와인 메이커 장 피에르 호비노 씨는 “다른 와인을 접하지 않고 곧바로 내추럴 와인을 접한 요즘 젊은이들은, 내추럴 와인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기성세대보다 월등히 빠르다”고 말했다. 기성 와인의 맛과 향, 색깔에 익숙한 사람들은 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영선 대표는 현지 생산자들과 국내 수입사들을 연결해 2014년 처음 내추럴와인을 한국에 들여왔으며, 2017년부터 매년 내추럴와인 축제 ‘살롱오’를 개최하면서 국내 식음료(F&B) 업계의 풍경을 크게 변화시켜온 주인공이다. ●내추럴 와인 메이커스 최 대표는 스스로 내추럴와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1980~90년대부터 어떤 첨가물도 없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선구적인 와인메이커들을 찾아갔다. 이 인터뷰는 ‘내추럴 와인메이커스1,2’(한스미디어)라는 두 권의 책에 담겼다. 2020년에 나온 첫 책은 내추럴 와인 혁명을 이끈 전설적인 1세대 와인 생산자 15명에 관한 이야기고, 올해 초에 나온 두 번째 책은 현재의 내추럴 와인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보다 젊은 내추럴 와인 생산자 43인을 찾아간 스토리를 담았다. 그가 쓴 책에서는 국내에 수입되자마자 품절 현상을 빚을 정도로 유명한 내추럴 와인과 생산자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두 번째 책은 프랑스의 주요 와인 생산지를 따라 여행하듯 챕터를 구성했다. 아르데슈에서 시작한 책은 오베르뉴, 루아르, 알자스, 보르도, 부르고뉴, 쥐라&사부아, 랑그독 루시용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 와인 산지를 두루 거치며 끝을 맺는다. 현장감이 넘치면서도 아름다운 사진들, 생산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포도와 와인, 양조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의 책에 따르면 내추럴 와인의 1세대 개척자로 불리는 쥘 쇼베(1907~1989)는 당대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화학자였다. 양조가였던 그는 처음으로 이산화황을 넣지 않고도 완성도 높은 와인을 제조하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1951년 수확한 포도로 두 개의 다른 와인을 만들었다. 하나는 이산화황을 넣은 와인, 다른 하나는 넣지 않은 포도였다. 그리고 시음 후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기록을 남겼다. ‘이산화황 미사용 와인 : 섬세하고 은은한 꽃 향이 미묘하고 풍부함.’ ‘이산화황 사용 와인 : 둔탁하며 다양한 향이 사라짐.’ ―화학적 첨가물이 포도와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화학무기를 제조하던 사람들이 화학비료와 제초제, 살충제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런 것이 땅과 농업을 망쳤습니다. 와인이 발효할 때 필요한 것이 이스트입니다. 화학 제초제, 살충제를 쓰면 병충해 뿐 아니라 천연이스트까지 다 죽게 됩니다. 이스트가 죽으니까 배양 효모를 넣게 됩니다. 배양 효모를 넣는 순간 발효가 급격하게 일어나겠지만, 그건 더 이상 자연이 아닌 겁니다. 내추럴 와인 장인들은 와인은 건강한 포도를 키우는 농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자각한 사람들입니다. 도미니크 드랭은 30년 전 기라성 같은 유명 와이너리가 빼곡한 프랑스 최고의 와인산지인 부르고뉴에서 내추럴 와인을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어릴 적 할아버지가 가꾸던 포도밭의 상쾌한 환경이 그리웠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쾌적하고 향기롭던 그 분위기. 난 그저 투명하고 솔직하게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보르도에서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샤토 르 퓌(Chateau Le Pyu)의 장 피에르 아모로도 “화학 비료를 사용한 포도밭은 겉보기에는 포도알의 크기는 비슷하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영양분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토양의 90~95%가 회복되는 데는 7~8년이 걸리겠지만, 100퍼센트 회복되는 데는 300년이 걸린다고 했지요.” ―산화방지를 위해 넣는 ‘이산화황(SO2)’은 어떤 것인가요. “내추럴 와인은 처음엔 ‘상 수프르(Sans Soufre) 와인’이라고 불렸어요. Soufre(황, 유황)를 넣지 않은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만들 때 황이 사용됐어요. 그런데 그건 화산 주변의 돌에서 추출하는 내추럴 황이었습니다. 로마시대 때도 와인을 만들 때 소독하는 과정에서 황을 썼습니다. 그런데 천연 광석물에서 얻는 황은 너무 비싸니까 화학적으로 만든 이산화황(SO2)을 넣기 시작하면서 몸에 나빠지기 시작한 겁니다. 요즘 내추럴 와인을 만들 때에도 병입할 때나 양조과정에서 ‘아주 조금’ 황을 넣기도 합니다. 그것까지는 ‘톨레랑스(tolerance)’로 인정해주기도 하는거죠.”―내추럴 와인은 정해진 레서피가 있는가. “장 피에르 호비노는 프랑스 루아르 지역에서 내추럴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장인입니다. 그는 ‘내추럴 와인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했어요. 내추럴 와인은 컨벤셔널 와인 양조처럼 정해진 레서피가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예를 들어 보르도 프리미에 와인같은 경우에는 얼마간 발효하고, 숙성시키고, 언제 병입을 하는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내추럴 와인은 그 해 효모가 스스로 결정하는 속도를 사람이 그냥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효모가 약 1년, 2년 동안 발효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그걸 따라가야죠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추럴 와인은 테크닉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쥐라의 살아 있는 전설인 와인 메이커 피에르 오베르누아는 ‘내추럴 와인은 그저 포도주스를 단순히 발효시킨 것이니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라고 경고합니다. 내추럴 와인은 수정이 가능한 물질을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 단 한가지의 실수가 고스란히 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필립 장봉)입니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 ‘힙스터의 술’, ‘패션 아이템’으로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 “에르미타주 지역의 내추럴 와인 선구자 ‘DARD & RIBO)의 르네-장 다르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을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웃기는 소리다. 우리는 농부일 뿐이다’라고 말했어요. 저는 이 말이 제일 좋아요. 이게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의 철학입니다. 제가 만난 내추럴 와인 메이커들은 수십년 동안 ’좌파, 히피, 아나키스트, 게으름뱅이(첨가물을 넣지 않는다는 의미)‘ 등으로 비웃음과 핍박을 받아 오면서도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서 스타가 된 멋진 사람들입니다. 결국 와인은 마시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평가해주는거죠. 르네-장 다르는 ’내추럴 와인과 컨벤셔널 와인을 섞어 놓고 마시면, 다들 처음에는 컨벤셔널 와인이 더 맛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끝에 가면 내추럴 와인은 거의 다 마시고 없는데, 컨벤셔널 와인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하죠. 실제로 저도 파리에서 외교관들이 행사를 할 때 시음할 와인 5병이 있으면 그 중에 한 병은 내추럴 와인을 끼워놓습니다. 처음엔 아무 말도 안해도 내추럴 와인이 가장 먼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목넘김이 깨끗하니까 마시면 또 마시고 싶어지거든요.”―내추럴 와인은 지역별 고급와인에 붙이는 A.O.C(원산지 통제명칭 와인) 등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클라쎄 등 A.O.C 등급에 연연하지 않아요. 대부분 ’뱅 드 프랑스‘(Vin de France)나 ’뱅 드 따블‘(Vin de Table) 같은 일상와인 등급을 받아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요. 내추럴 와인이 그 지역 고유의 색깔과 맛, 향과 다르다고 하는데 그것이 원래 맛입니다. A.O.C 제도가 생긴게 얼마 안됐잖아요. 화학적 첨가물이 생기고 난 다음에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등급조건에 맞추기 위해 생산하는 와인이 아니라 진짜 원래의 테루아(Terroir, 와인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는 기후, 토양, 강수량, 바람, 태양, 포도재배법 등의 총칭)의 맛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와인을 공부하는 대신 맛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왜 와인을 공부해야 하죠? 이젠 무슨 냄새, 무슨 빛깔로 구분하는 와인 강의도 바뀌어야 합니다. 알자스의 수퍼스타 와인 메이커인 브뤼노 슐레흐는 ‘와인은 마시러고 만드는 것이지, 전시용이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내추럴 와인은 쉽게 상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내추럴 와인도 적정한 온도에 냉장보관만 잘하면 수십년이 지나도 괜찮습니다. 온도를 맞췄을 때는 오히려 더 맛있게 숙성이 되지요. 자연적으로 살아 있는 음식은 보관 상태가 좋지 않으면 상하게 돼 있습니다. 자연상태에서 상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겁니다. 화학적 방부제가 들어간 것이란 뜻이죠. 땅에 살아 있는 미생물을 생각하며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드는 내추럴와인 생산자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들은 단순한 양조가가 아니었습니다. 땅을 사랑하는 농부이자, 야생 효모를 끊임없이 연구하는 발효 과학자이자, 다수가 가지 않은 길을 힘겹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철학자였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포르투갈의 유서 깊은 항구인 포르투는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해양 무역의 거점 도시다. 성당이나 기차역 등 포르투의 유적지 건축물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안팎으로 푸른빛이 도는 세라믹 벽면인 ‘아줄레주(Azulejo)’로 장식돼 있다. 5세기 넘게 계속 이어진 아줄레주는 그림을 그려 만든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로 벽면을 장식하는 스타일이다. 아줄레주의 흔적은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 등 옛 포르투갈, 스페인 식민지에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에 있는 채석강 해식동굴은 자연이 빚은 천연 포토존이다. 퇴적암층이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절벽에 바닷물이 침식해 만든 동굴이다. 이곳이 유명한 건 독특하게 나타나는 실루엣 때문이다. 동굴 안쪽에서 역광으로 촬영하면 각도에 따라 동굴이 유니콘 모양, 한반도 모양으로 찍힌다. 특히 해가 질 무렵 수평선 주위가 주홍빛으로 물들 때 매혹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밀물 때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물때표를 잘 보고 찾아가야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에서 배우 이영애가 연기했던 은수가 살았던 아파트는 강원 동해시 묵호항 주변에 있는 삼본아파트다. 묵호항 주변은 항구를 따라 전통시장과 산비탈 논골담길, 도째비골스카이밸리, 추암해변과 무릉계곡 등 봄날의 햇살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여행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관광객들이 꼭 가볼 만한 국내의 대표 관광지 100곳을 모아 발표한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새롭게 포함되기도 했다. 특히 일출로 유명한 동해 해변마을인데도, 야경까지 아름다운 곳이다. ●동해 묵호에서 즐기는 도깨비 불빛 여행 강원 동해 묵호항 인근에 있는 도째비골.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면 푸른빛들이 보여 ‘도깨비불’이라 여긴 사람들에게 도째비(도깨비의 방언)골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도깨비불에 홀린 듯 시시각각 변하는 화려한 조명 탓일까. 밤에 보는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현실세계를 벗어나 어디선가 외눈박이 도깨비가 방방이를 들고 나타날 듯한 환상의 세계다. 세방향으로 이어지는 다리로 구성된 스카이밸리는 밤에 보면 푸르스름한 동해바다 묵호항에 내려 앉은 우주선을 연상케 한다. 급경사지인 묵호항 도째비골은 재해위험지역이라 폐허로 방치되던 곳이었다. 동해시에서 이곳을 안전하게 정비하고 2021년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해발 59m)와 도깨비놀이 시설을 만들었다. ‘하늘산책로(스카이워크)’, ‘스카이사이클(와이어를 따라 공중을 달리는 자전거)’, ‘자이언트슬라이드(대형미끄럼틀)’ 등으로 구성돼 있어 낮에는 스릴 넘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밤에는 화려한 조명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카이밸리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도깨비 방망이’ 모양의 해상교량 해랑전망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해랑전망대는 유리바닥으로 돼 있는 길이 85m의 바다위에 만들어진 스카이워크다. 발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 너울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다리 위로 해가지면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이 더해지며 밤바다의 풍경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해랑전망대에서 인생사진을 찍다보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국의 산토리니’ 논골담마을이다. 묵호항 뒷편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은 논골담 마을은 1960~70년대 동해에서 명태와 오징어잡이가 호황을 이룰 때 형성됐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들자 주거 공간이 부족해 묵호항 맞은편 오학산의 비탈진 경사면에 작은 집이 빼곡히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생선을 말리기 위해 소나무로 만든 작은 덕장도 곳곳에 세워졌다. ‘논골’은 오징어를 지게에 얹어 언덕 위까지 나르다 흘린 물로 길이 질퍽거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명태의 고갈로 과거 동해의 호황은 사라졌지만, 이 마을 담벼락에는 ‘묵호’의 이야기들이 벽화로 알록달록 피어나 있다. 하얀 자태가 아름다운 묵호등대는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올라가 360도로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개방돼 있다. 등대 전망층에서는 멀리 백두대간의 두타산과 청옥산, 동해의 풍경까지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묵호등대 앞에는 1968년 작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묵호등대는 역시 밤이면 형형색색의 LED 조명등이 켜지며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등대에서 바라보는 묵호항 밤바다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불빛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파도가 종소리처럼 들리는 추암 능파대 동해를 따라 이어진 기찻길을 달리다 만나는 추암역 앞 바닷가에는 일출 명소로 유명한 촛대바위가 있다. 과거 TV 방송시간 규제가 있던 시절 애국가 첫 소절과 함께 촛대바위의 일출 장면이 나오면서 유명세를 탄 곳이다. 그런데 추암은 일출 뿐 아니라 요즘은 야경 명소로도 뜨고 있다. 지난 2019년에 놓인 해상출렁다리(길이 72m)가 야경 명소로 떠올랐다. 출렁다리는 바다를 건너는 짜릿한 스릴을 맛보면서 낮에는 푸른 동해바다와 기암괴석을 감상하고, 해가지면 조명에 비친 밤바다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포토존이 되고 있다. 추암에는 해안을 따라 촛대바위를 비롯해 다양한 모양을 한 바위가 숲을 이룬 능파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주차장을 지나면 가장 먼저 해암정이라는 고풍스러운 정자가 눈에 띈다. 해암정은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벼슬을 물리고 내려와 처음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중종 25년(1530)에 심언관에 의해 다시 지어진 것을 정조 때 보수한 것이다. 가운데 현판의 ‘해암정(海巖亭)’이란 글씨는 우암 송시열, 오른쪽 ‘석종함(石鐘檻)’이란 글씨는 송강 정철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석종은 해암정 뒤쪽을 울타리처럼 에워싼 바위들을 돌로 된 종으로 비유한 것이다. 바위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다는 의미다. ●무릉계곡 별유천지 동해시 무릉계곡은 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1977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됐다. 삼화사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 등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동해시에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와 함께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 아래 용추폭포에서 호암소까지 이르는 약 4km 길이의 계곡을 말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만나는 신선교에서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검은 선이 보인다. 이것을 용오름 길이라고 하는데 무릉계곡을 따라 용추폭포까지 길이가 6km에 이른다. 용오름 길은 용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것이다. 서역에서 온 세 명의 선인이 용을 타고 계곡을 오르던 중 각각 흑련과 청련, 금련을 가지고 내린 자리에 절이 생겼는데 그중 흑련을 가지고 내린 곳이 삼화사다. 신선교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금란정’이란 이름의 정자와 함께 무릉반석을 만난다. 무릉반석은 천명이 앉아도 너끈할 만큼 큰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그 넓이가 1500평에 이른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곳곳에는 한자로 85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주로 삼척부사 등 관리들의 이름이며 금난계(친구끼리 친목을 위해서 모은 계) 같은 계원의 이름도 있다. 무릉반석을 유명하게 만든 암각서 12자도 발견할 수 있다. 꿈틀대듯 힘 있는 초서체로 쓰인 무릉선원(武陵仙源) 중대천석(中臺泉石) 두타동천(頭陀洞天)은 ‘신선이 노니는 이곳에 돌과 물이 어우러져 잉태한 대자연 앞에 나도 세속의 번뇌를 내려놓고 신선이 될까 하노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해시 삼화동 ‘무릉별유천지’는 125m 상공에서 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스카이글라이더와 알파인코스터, 오프로드 루지,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두르미전망대는 가족과 함께 즐기기 좋은 체험시설이다. 이 곳은 원래 2017년까지 쌍용시멘트회사가 석회석을 채굴하던 곳이었다. 40년간 속살이 파헤쳐진 산에는 거대한 웅덩이 두 개가 생겼고 절개지 곳곳은 채굴에 따른 상흔이 그대로 남았다. 회사는 더는 원석이 나지 않는 광산 부지를 동해시에 기부했다. 이후 깊게 파인 웅덩이는 호수로 꾸며져 청옥호와 금곡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주변에 라벤더 꽃밭과 힐링을 위한 휴식의 공간이 생겨났다. 과거 커다란 돌덩이를 부수던 쇄석장은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내부에는 돌덩이를 부숴 가루로 만드는 과정과 시멘트를 만드는 과정, 과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다. 4층에는 전망대를 겸한 카페가 있다. 무릉별유천지 입장객은 무료로 운행하는 무릉별열차를 이용해 드넓은 부지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동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