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은 ‘비운의 황태자’로 불렸다. 어머니 성혜림은 김정일과 만날 당시 이미 월북작가 리기영의 아들과 결혼한 상태였다. 김정남은 이 ‘잘못된 만남’으로 1971년 태어났다. 9세에 북한을 떠나 일생 동안 해외를 전전했다. 북한으로 돌아간 건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되고 나서였다. 사후 한 달 반이 지나 비닐과 끈에 겹겹이 싸인 채 암살 용의자들과 함께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16일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시티 아이샤(26), 도안티흐엉(30)에게 유죄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범행 당일 두 여성은 2분 33초 만에 김정남을 붙잡고 치명적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랐다. 암살에 관여했던 북한인 8명은 모두 말레이시아를 떠났고 “리얼리티 쇼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는 여성 2명만 법의 단죄를 받게 됐다. 당시 국정원은 김정남 암살이 실행될 때까지 유효한 명령을 뜻하는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라고 했다. ▷김정남에 대한 김정일의 부정은 각별했으나 이복동생이 후계자로 지목되고선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2012년 4월 김정은에게 편지를 보내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 주기 바란다. 피할 곳도 없고, 도망갈 곳은 자살뿐”이라고 애걸하는 처지였다. 젊은 독재자는 ‘유일영도체제’ 아래서 백두혈통 김정남의 존재 자체만으로 불편했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의 한국 내 주가가 치솟았다. 김정은을 만나 악수한 뒤 “너무너무 영광”이라고 말한 걸그룹도 있다. “자유스럽고 호탕했다. 다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우리나라에서 큰 기업의 2, 3세 경영자들 가운데 김정은만 한 사람이 있느냐”(유시민 작가) 등 호평도 쏟아졌다. 하지만 그가 이복형 김정남을 잔인하게 죽이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탄압해온 어두운 면이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1년 6개월 전 김정남 피살 사건은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까지 거론됐으나 지금은 다 잊은 듯하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남자들은 각처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는데… 무지몽매하고 신체가 허약한 여자의 일단(一團)이나 같은 국민, 같은 양심의 소유자이므로 주저함 없이… 동포여, 빨리 분기하자.’ 1919년 3·1독립선언서보다 한 달 앞서 썼다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다. 중국 서간도에서 활동하던 애국부인회가 여성들의 독립투쟁을 독려하기 위해 쓴 격문이었다. ▷3·1운동은 남녀 구분 없이 온 국민이 단결했던 민족운동이었다. 여성으로는 주로 유관순 열사만 기억되지만 17세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했다 옥중 순국한 동풍신 열사도 있다. 이듬해 이를 재연했다 옥고를 치른 배화여학교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소은명 안옥자 안희경 등 ‘제2 유관순’도 적지 않았다. 1920년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했던 안경신 열사처럼 작고 연약한 몸으로 항일 무장투쟁에도 참여한 ‘무명’의 여성도 많다. ▷독립운동가 남편을 둔 아내의 희생과 의연함은 끈질긴 독립운동의 밑거름이자 무기였다.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선생의 아내인 이은숙 여사는 양반가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타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밥해 먹이고 삯바느질로 군자금을 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쪽지 한 장 남길 수 없었던 당시 독립운동가의 숨결을 세세히 기록한 ‘서간도 시종기’라는 회고록도 썼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내인 이혜련 지사는 자녀 5명을 홀로 키우다시피 했다. 아내, 엄마로 고달픈 나날이었지만 미국에서 대한여자애국단을 구성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해 조국을 도왔다. ▷1909년 3월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며 사형을 앞둔 안중근 의사와의 면회는 끝내 하지 않았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 안 의사 사후에도 임시정부 뒷바라지를 했던 어머니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그럼에도 여성 독립운동은 잊혀진 역사다. 나라 잃은 설움에 가부장제 속박까지 여성의 삶은 이중 삼중으로 가혹했을 터다. 나라는 되찾았지만 이름은 찾지 못한 여성 독립운동가가 많다. 더 늦기 전에 치열했지만 가려진 삶이 온전히 빛을 보기를 바란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번 강○○ 군’ ‘51번 김○○ 양’처럼 출석번호를 남학생부터 매기는 것은 성차별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가 9일 판단 내렸다. 올 초 서울 A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엄마가 “출석번호가 여학생을 차별한다”고 이의를 제기한 결과다. 인권위는 “남학생에게 앞번호, 여학생에게 뒷번호를 부여하면 남성을 여성보다 우선시한다는 차별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받아든 A초교 교장은 다소 억울할 것 같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을 한 것이 아니라 새 학년을 맞기 전에 4∼6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 전원에게 설문조사까지 해서 붙인 번호여서다. 학부모들은 ‘남녀 구분 없이 가나다순으로 정하자’는 응답(49.6%)이 많았던 반면에 정작 학생들은 ‘남학생 1번부터, 여학생 51번부터 하자’(53.9%)고 선택한 점도 흥미롭다.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선 갑론을박이 오갔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남자는 1·3번, 여자는 2·4번으로 시작하는 것도 성차별 아니냐, 가나다순으로 부여하면 ‘ㅎ’ 성을 가진 학생을 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14년 전엔 주민등록번호에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진정이 접수됐다. 인권위는 전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제도라 개별적인 사건으로 다룰 게 아니라는 취지로 각하했다. 사회 시스템 전반을 손질해야 하는 혼란을 우려했을 게다. ▷출석번호 같은 형식적인 성평등보다 실질적인 성평등이 중요한 시대다. 인권위가 인권 문제를 간과한 점도 아쉽다. 학생에게 번호를 매기는 관행 자체가 인권과 거리가 멀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선 학생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22.3명이다. 학생들이 빽빽이 앉은 ‘콩나물 교실’이라 이름 외우기 힘든 시절이 아니다. 번호로 불리면서 교련 수업을 받던 시절도 아니다. 굳이 출석번호를 매기는 것이 교사들의 편의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여 가나다순 출석번호를 권고한다고 한다. 이참에 출석번호를 없애는 것은 어떨까.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는 끝나가는가. 2분기 실적 발표가 있던 지난주 페이스북과 트위터 주가가 각각 20% 폭락했다. 연이은 SNS 기업 주가 폭락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를 연상시킨다. 이들 기업의 성장동력은 이용자 수다. 많은 이용자를 연결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광고를 유치하고 돈을 번다. 그런데 이용자가 감소할지 모른다는 신호가 감지되자 너도나도 주식을 던져버렸다. ▷세계 인구 절반이 SNS를 한다. 이렇듯 SNS 이용자가 늘어난 데에는 가짜 뉴스들이 한몫했다. ‘좋아요’ ‘리트윗’ 버튼을 타고 자극적인 이슈들이 퍼져 나갔다. 이들 기업은 돈이 되는 가짜 뉴스의 유통을 방치해 왔다. 국내 SNS 기업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보여주듯 네이버 카카오 등 SNS가 가짜 뉴스에 오염된 지 오래다. 이용자들은 공공성을 상실한 SNS 플랫폼을 떠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SNS는 올드미디어를 대체할 뉴미디어로 떠올랐다. 그러나 신뢰의 위기에 봉착한 뉴미디어는 오히려 올드미디어 흉내를 낸다. 최근 페이스북은 독립적인 팩트체크 기관을 통해 거짓 게시물을 분류하고, 이 게시물에는 관련 뉴스들을 배치해 검증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페이스북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고백했듯이 개인정보 보호와 가짜뉴스 모니터링은 비용을 수반한다. 이윤 추구를 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9일(현지 시간) “가짜 뉴스가 어떻게 ‘국민의 적’이란 문구로 바뀌었는지 대화했다”며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NYT 발행인과의 만남을 트윗으로 공개했다. 설즈버거는 “가짜 뉴스란 용어가 거짓이라고 지적했고, 대통령이 언론인을 ‘국민의 적’으로 낙인찍은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며 품격 있게 받아쳤다. 그러면서 “나는 대통령에게 NYT에 대한 공격을 멈춰달라는 게 아니라 언론에 대한 공격을 재고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언론 공격은 결국 미국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맞짱 뜨기’. 언론에 대한 신념을 지닌 뉴욕타임스 발행인은 할 수 있되 뉴미디어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중국의 부모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영·유아 수십만 명이 접종한 DPT(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백신 등이 ‘가짜 백신’으로 판명됐다. 창춘창성(長春長生)바이오테크놀로지가 가짜 백신을 제조한 사실을 보건당국이 알고도 쉬쉬했던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분노한 민심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공산당으로 향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던 시 주석이 “끝까지 조사해 책임을 물으라”며 직접 수습에 나섰지만 민심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소리(VOA)는 중국 각지 어린이병원에서 “독(毒)제도 독정부, 중국 공산당을 전복하자”는 낙서가 발견됐다고 24일 전했다. 주중 미국대사관 웨이보에는 “중국 안에 미국산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접종소를 설치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과감히 칼을 뽑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나선 시 주석으로선 굴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신 파동이 일파만파로 퍼진 배경에는 지난 40년간 급속히 성장한 중국 중산층이 있다. 개혁·개방의 혜택을 본 이들은 3월 시 주석이 장기집권의 길을 닦고 공산당 독재를 강화한 개헌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경제가 침체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꾹꾹 참던 민심의 뇌관을 건드린 것은 ‘내 아이의 안전’이었다. 백신을 맞힌 부모부터가 바로 1979년 한 자녀 갖기 운동 이후 태어난 ‘소황제’가 아니던가. 정부를 향한 분노의 수위가 10년 전 멜라민 분유 파동 때와는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유능한 관료가 국가를 이끈다는 현능주의(meritocracy)가 서구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자부심이 유난히 강한 중국이었다. 그러나 이번 백신 파동으로 국민에게 책임지지 않는 현능주의의 허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데이비드 런시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저서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서 경제, 전쟁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민주주의는 유연성과 다양성을 발휘해 극복했다고 분석했다. 비록 혼란이 뒤따를지라도 소수의 결정에 의존하는 전체주의보다 적응력이 뛰어났다는 설명이다. 과연 ‘시진핑 체제’는 이번 위기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초상화에서 검은 먹물이 흘러내린다. 이를 배경으로 29세 여성 둥야오충(董瑤瓊)은 “시진핑 독재 폭정에 반대한다”고 외친다. 최근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된 중국 상하이(上海) 시내에 걸린 ‘중국몽’ 선전물 먹물 투척 사건이다. 인터넷상에선 시 주석 먹물 낙서를 모방한 사건이 잇달아 숨어 있는 중국 민심을 보여줬다. 2018년 3월 시 주석이 개헌으로 장기 집권의 길을 닦고 ‘시황제’로 등극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다. ▷선거로 선출되지 않는 중국 공산당의 집권 정당성은 경제에서 찾을 수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연간 10% 안팎의 고도성장을 해왔다. 지난해 10월 시 주석이 ‘2050년까지 미국을 뛰어넘는 사회주의 강대국을 실현하겠다’고 장담한 배경이다. 개혁·개방 이후 40년간 역사를 되돌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민주주의와의 경쟁에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1990년대 근대화이론은 경제 성장을 민주주의 이행의 전제로 봤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야 개인의 권리를 자각하고 민주주의로 나아가게 된다는 논리다. 활발한 논쟁이 벌어졌던 근대화이론이 퇴조한 데에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 중국인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5000달러를 넘어도 사회주의 체제는 굳건했다. 이른바 ‘차이나 모델’을 보라면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 훈수를 두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이번 먹물 투척 사건이 ‘시진핑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시 주석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이 6.7%를 기록하며 성장세가 둔화됐고, 미국발 관세폭탄을 맞은 첨단기업을 중심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폭락을 막고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우외환(內憂外患) 경제 위기를 헤치고 시 주석은 계속 황제로 남을 수 있을까. 문제는 경제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직접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게임을 시연하는 유튜브 동영상에 푹 빠진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매일 (동영상 속) 그 형처럼 게임만 하는 백수가 되고 싶니?”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이 형, 백수 아니야. 유튜브 크리에이터란 말이에요”라고 반박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나도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거야”라고 덧붙였다. ▷초등생이 선망하는 직업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꼽힌다. 장난감을 리뷰하는 ‘마이린 TV’ 진행자 최린 군(12) 같은 초등생 유튜브 크리에이터도 등장했다. 궁금한 게 생기면 포털 검색이 아니라 유튜브로 바로 영상을 찾는다. 지금 초등생들은 아장아장 걷기도 전에 동영상을 보고 자란 신인류다. 10대 동영상 이용 시간은 20∼50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다. 하지만 뇌의 발달이 아직 끝나지 않은 유아와 아동기 때 동영상을 오래 시청하면 위험하다는 경고음도 계속 울리고 있다. ▷2011년 데이비드 레비 미 워싱턴대 교수는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이를 설명했다. 온라인에 익숙해진 뇌는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할 뿐 진짜 현실에는 무감각해진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학교 가기, 숙제하기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바로 앞에 있는 엄마의 화난 얼굴에서도 감정을 읽지 못해 현실 적응력이 떨어진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이런 경고는 반복되곤 했다. 1970∼1980년대 TV는 바보상자로 불렸다. TV를 끼고 살던 세대들이 지금 정보기술(IT) 혁명을 이뤄냈듯이 지금의 동영상 세대도 뭔가 대단한 혁명을 해낼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곧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한다. 사고력과 창의력, 소통 및 협업 능력이 AI와 구별되는 인간의 능력으로 중시될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깊게 생각하긴 싫어하고 남의 감정을 읽을 줄 모른 채로 자라난다면…. 팝콘 브레인이 되지 않으려면 온라인 접속을 스스로 제한하고, 그것도 힘들면 창밖을 바라보거나 친구와 전화라도 하라고 레비 교수는 조언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1977년 출간된 ‘이갈리아의 딸들’은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이다.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텐베르그가 썼다. 남녀 역할을 바꾼 미러링(mirroring) 방식으로 뿌리 깊은 성차별을 비틀어 보여준다. 가모장제(家母長制) 유토피아로 묘사되는 상상의 나라 ‘이갈리아’. 움(Wom·여성)은 맨움(Manwom·남성)을 지배한다. 맨움인 주인공 페트로니우스가 움에게 강간을 당하자 엄마 브램 장관은 “모두 잊자. 더럽혀진 맨움을 누가 원하겠니? 이제 해가 진 다음 바닷가에 가선 안 돼”라고 달랜다. 페트로니우스는 맨움 해방운동에 투신한다. ▷여성우월주의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Womad)’도 여성혐오를 성별을 바꿔 재현하는 ‘미러링’을 표방했다. 여성을 ‘김치녀’로 부르면, 이들은 남성을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으로 부르는 식이다. 당초 여성혐오 문화를 바꿔 보자는 의도였겠으나 최근 과격한 일탈이 계속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천주교 성체(聖體) 훼손 사진과 꾸란 소각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온 데 이어 성당을 불태우겠다는 글까지 나왔다. ▷12일 남성우월주의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한 회원이 “워마드에 꾸란 소각 사진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이슬람 테러단체에 알렸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슬람 단체와 접촉한 것은 테러방지법에 저촉되는 일이 아니냐”며 ‘빠른 처리’를 청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인터넷상 남녀 전쟁은 익명성에 기대 혐오가 혐오를 재생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런 혐오 발언과 행위들로 ‘미투 바람’을 타고 모처럼 관심을 모은 여성운동에 역풍이 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페미니즘 진영에선 여성혐오가 사라지면 미러링도, 남성혐오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혐오는 결코 놀이가 될 수 없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없으면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미러링의 목적도 빛이 바랜다. ‘결국 세상은 우리에 의해 바뀔 것이다.’ 혜화역 시위에 등장한 피켓이다. 양성평등을 원하는 다수 남성과 여성의 공감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동력이 될 수 있다.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동아일보가 오늘부터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자에 ‘나눔의 행복’을 배달합니다. 봉사와 기부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지면인 ‘행복나눔 면’을 신설합니다.》 “대장! 대장, 언제 왔어요?” 22일 학교 수업을 마친 은지(가명·10)가 서울 A아동복지시설로 뛰어 들어가며 ‘대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김광현 WE모두나눔봉사단장(47)과 눈이 마주친 은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대장’은 아이들이 매달 한 번 A아동복지시설을 찾는 김 씨를 부르는 별명이다. 이곳엔 부모를 잃거나, 부모가 떠나 혼자가 된 아이들 70명이 모여 산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한 아이들은 누구를 만나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김 씨를 ‘대장’이라고 부르며 경계를 푼 건 최근 들어서다. 김 씨는 동료 배우들과 함께 이곳에서 2016년 6월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를 ‘무명 배우’라고 불렀다. ‘아는 여자’ ‘범죄도시’ 등 영화에서 단역 배우로 활동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다. 학창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한 김 씨는 1994년 OB베어스 포수로 프로에 데뷔했다. 이후 삼성 등에서 활동하다 2000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 출범 사태로 사실상 방출됐다. 20년간 야구밖에 몰랐던 김 씨는 그 뒤 사업에 손을 댔지만 실패했다.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은 아픔이 ‘무명 배우’라는 단어에서 묻어났다.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심해졌어요. 그 순간 저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봉사였어요. 나처럼 혼자 버려진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나,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죠.” 프로야구 선수 시절 구단 차원에서 1년에 한두 차례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인을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한 김 씨는 2014년 무명 영화·연극배우들을 모아 WE모두나눔봉사단을 만들었다. 김 씨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경기 여주시 밀알선교장애인쉼터였다.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인데, 여주시가 전국 1위라고 하더라고요. 홀몸노인, 장애인 등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래요.” 매달 한 번씩 쉼터를 찾아 건물 보수, 청소 및 미용 봉사를 했다. 단원들이 직접 삼계탕을 끓여 장애인들과 나눠 먹었다. 계속된 단원들의 봉사에 이곳에 머물던 장애인이 20여 명에서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사연을 알게 된 여주시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쉼터 형편도 나아졌다. 봉사단은 2016년부터 아이들도 돌보기 시작했다. 이날 A아동복지시설 마당에 머리를 감고, 자를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미용버스가 도착했다. 머리를 맡긴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봉사단원인 미용사 한은진 씨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진다. 아이들에게 인생을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미용봉사를 돕던 한상원 씨는 “우리를 보면 ‘고생한다’ ‘수고한다’ 하는데 봉사를 안 해본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행복이 있다”며 “주는 기쁨은 받는 기쁨에 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씨는 영화 촬영장에서 배우들에게 승마를 가르치면서 WE모두나눔봉사단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 WE모두나눔봉사단이 출범했을 때 회비는 3만 원이었다. 회비를 모아 삼계탕도 끓이고, 집수리도 했다. 무명 배우의 벌이가 변변치 않다 보니 단장인 김 씨조차 회비가 밀리곤 했다. 지금은 정식 회원이 60명으로 늘어났고 회원들의 처지를 고려해 회비를 1만 원으로 내렸다. 다행히 후원금 또는 물품으로 도와주는 분들도 생겼다. 김 씨는 나눔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로 ‘사회에 진출한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고 밝혔다. 마땅히 기댈 곳 없이 사회로 나간 아이들은 홀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달랑 500만 원 갖고 사회에 나간다는데 얼마나 힘들겠어요. 배우가 되고 싶으면 연기를 가르치고, 미용사가 되고 싶으면 기술을 가르치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 미용버스 곁에서 바비큐 파티를 위해 고기를 굽는 김 씨와 단원들 주위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마당이 금세 ‘깔깔’ 웃는 소리로 가득 찼다. “이름도 없고, 돈도 없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어른이 되려고요. 외롭지 않도록요.”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후원·봉사 문의 WE모두나눔봉사단}
《손우성(가명·9) 군은 세 살 때부터 할아버지(76)와 산다. 5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손 군이 거의 매일 먹는 저녁 밥상은 백미밥, 소시지볶음, 김치, 된장찌개. 과일과 채소는 학교 급식 때나 간신히 먹는다. 지난해 빈곤, 가족해체, 부모 실직 등으로 보호자가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은 31만7234명이었다. 전체 아동(848만447명) 100명 가운데 4명은 하루 세 끼 ‘먹거리 기본권’이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아동기 결식과 영양불균형은 성인이 되어서도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빈곤 대물림’이 될 수 있다.》아빠는 아파서 몇 년째 병원에 있고 엄마는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손우성(가명·9) 군이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이유다. 할아버지는 “공부는 꼭 해야 한다”며 기초노령연금으로 꼬박꼬박 손 군의 학원비를 낸다. 그런데 식생활은 할아버지의 돌봄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그냥 내 먹는 대로 같이 먹는 거요.” 21일 손 군의 저녁 식단은 흰쌀밥, 소시지, 된장찌개, 김치였다. 점심으로 먹은 학교급식은 그나마 균형 잡힌 식단이다. 이날 손 군은 간식은 따로 먹지 않았다. 평소에는 보습학원을 다녀와서 김치볶음밥 등 밥을 간식으로 먹고 태권도학원에 간다. 22일 아침 식단은 흰쌀밥, 소시지, 김치찌개, 감자볶음, 매실장아찌였다. 과일은 거의 먹지 않는다. “과일은 학교에서만 먹어요. 어제 급식에는 수박 한 조각이 나왔어요. 체리를 좋아해요. 2학년 때 체리가 급식으로 나왔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 제사에나 사과, 배를 산다. 평소에는 거의 못 사 준다”고 했다. TV 한 편에 놓인 꼬깃꼬깃한 마트 영수증에는 소시지 등 7800원이 적혀 있었다. 고기와 생선 섭취량도 부족했다. 손 군은 “집에서 고기 구워 먹은 기억이 없어요. 고기보다 고등어가 더 먹고 싶어요”라고 했다. 우유는 학교 급식으로 매일 먹고 있다. 손 군은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돼 급식카드를 지급받을 수 있다. “급식카드를 쓰시면 한 끼는 편하게 드실 수 있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안 쓴다”고 했다. 하루는 급식카드를 가지고 짬뽕을 먹으러 갔는데 사용을 거절당했다. 할아버지는 현금을 지불했고 이후 꼬박 하루 세 끼 밥상을 차린다. 소득에 따라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동아일보는 중고교생 6만여 명이 참여한 2017년 ‘청소년건강행태온라인조사’ 원자료를 분석했다. 스스로 건강 상태를 평가하도록 했더니 자신이 소득 ‘상’에 속한다고 한 집단의 47.8%가 건강 상태를 ‘매우 좋다’고 평가했다. 소득 ‘하’ 집단(21.3%)보다 2.24배로 많았다. 반면 소득 ‘하’ 집단 3.3%가 건강 상태를 ‘매우 나쁘다’라고 평가했는데 소득 ‘상’ 집단의 5.5배였다. 일주일간 과일 섭취 빈도, 채소 섭취 빈도도 소득에 따라 차이가 컸다. 아동기 식습관이 중요한 이유는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영양 불균형이 계속되면 이런 식습관과 대사과정을 몸이 기억하고 생애 전반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손 군과 김성민(가명·8) 군의 하루 식단을 분석해 보면 열량은 비슷하지만 김 군이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고 있다. 필수영양소인 단백질을 섭취한 식품을 비교하면 김 군은 계란 쇠고기 콩 멸치 등 끼니마다 다른 식품을 먹었지만 손 군이 섭취한 식품은 소시지, 탕수육이었다. 초등생은 우유나 유제품을 하루 2개 이상 섭취하도록 권장한다. 김 군은 이날 우유, 요구르트, 치즈를 골고루 먹었지만 손 군이 먹는 건 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우유뿐이었다. 서울대병원 김원경 급식영양과 파트장은 “(손 군의 식단을 보면) 채소나 과일, 유제품 섭취가 부족하다. 만약 이런 식단이 계속된다면 비타민 A, C, B2와 칼슘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어른이 됐을 때 나타날 건강상 문제였다. 그는 “어릴 때 채소를 안 먹다 보면 성인이 되어도 이런 식품을 멀리한다”며 “당장 눈에 보이진 않아도 (다양성이 부족한 식단을 지속하면) 성인이 돼서 만성질환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균형 잡힌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돌봄 환경이 정서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도 나온다. 급식카드를 사용하는 아동들은 혼자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소희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어린 시절 애착관계가 불안한 경우 정서 불안, 학습 부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가 소득에 따른 초등생 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저소득 가정 아동은 비만율, 우울감을 느끼거나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비율도 높았다. 김은정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빈곤과 돌봄 공백으로 인한 아동의 건강 불평등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건강에서도 나타난다”며 “이제는 단순 끼니 해결을 넘어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 관심을 가질 때다. 돌봄 공백에 놓인 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호경 kimhk@donga.com·우경임 기자}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 미세먼지(PM10) 농도를 측정한 결과, 교실 안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학교는 경기 양주시 효촌초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강남구 서울청담초가 가장 높았다. 다만 학교 보건법의 적용을 받는 학교 실내 미세먼지 농도 기준치는 m³당 100μg으로 전국 초중고교 가운데 이를 초과한 학교는 없었다. 24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공개한 ‘2017년도 전국 초중고교 1만7198곳 미세먼지 측정결과’ 자료에 따르면 교실 안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았던 경기 양주시 효촌초는 m³당 100μg을 기록했다. 이어 전북 군산시 군산바다유치원(병설유치원)이 m³당 99.7μg △서울 강남구 서울청담초 m³당 99.5μg △서울 노원구 한천중 m³당 99.4μg △서울 강동구 신암중, 세종시 글벗중이 각각 m³당 99.3μg이었다. m³당 90μg 이상의 미세먼지 농도를 기록한 학교는 전국 719곳이다. 주로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 상위 5개 학교가 교실 안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경기 양주시 효촌초 관계자는 “통계자료 입력과정에서 실제 검사수치와 다르게 m³당 100μg이 입력됐다”며 “지난해 11월 검사 결과 기준치의 절반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청담초 관계자는 “학교가 도로에서 먼 주택가에 위치해 있고, 이번에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한 교실은 일주일에 3회 청소용역업체가 와서 청소를 하고 있다”며 “올해 측정 결과(m³당 47.3μg)와도 차이가 커 수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실 안 초미세먼지 농도는 외부 공기 영향이 크다. 반면 미세먼지 농도는 문을 닫고 뛴다거나, 운동장 먼지를 털지 않고 교실에 들어오거나 하면 자체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원인 분석과 함께 공기질 농도가 심각한 지역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기정화장치를 설치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현 중3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정시 선발 비율이 확대되고 수능 상대평가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8월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하고 10개월간 논의를 이어왔지만 현행 대입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셈이다. 대입 개편안 논의가 원점에서 맴돌면서 ‘교육부 책임론’이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는 20일 공론화에 부칠 대입개편 4개 모형을 발표했다. 4개 모형은 16, 17일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 35명이 참석한 시나리오 워크숍에서 △학생부(수시)-수능위주전형(정시) 간 비율 △수능 절대·상대평가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 등 3가지 쟁점을 조합해 도출됐다. ○ 정시 확대-수능 상대평가 무게 실려 4개 모형 중 3개는 정시 선발비율이 늘어나도록 설계됐다. 모형①과 모형④는 수능위주전형 확대를 못 박았다. 모형①은 수능위주전형을 45% 이상 선발하도록 했고, 모형④는 수능위주전형을 확대하되 수시모집에서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의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두 모형 모두 수능은 상대평가를 전제하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대학 자율에 맡겼다. 모형①은 기존 수시-정시 비율 1 대 1 안, 모형④는 수능-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 비율 1 대 1 대 1 안과 비슷하다. 모형③은 현행 대입제도와 가장 유사하다. 수시와 정시 비율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수능 상대평가를 유지해 정시 확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모형②는 수시-정시 비율을 대학 자율에 맡기고 수능은 절대평가로 치른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치러지면 변별력이 약화돼 정시 확대는 어려워진다. 다만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활용할 때 등급을 높이거나 반영하는 과목을 늘리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주요 사립대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왔다. 이를 현행보다 강화할 수 없도록 하면 정시 대신 학종 확대도 어려워진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완화하면 응시자가 크게 늘어나 대학의 입학사정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영덕 대성학력연구소장은 “상위권 대학은 학생부교과전형을, 중·하위권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을 늘릴 가능성이 큰 방안”이라고 내다봤다. ○ 현행 대입에서 큰 변화 없을 듯 이번 4개 모형 가운데 모형②만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이 포함됐다. 현행 수능은 영어와 한국사 등 2과목만 절대평가가 적용된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연구소장은 “3개 모형은 정시 확대-수능 상대평가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에서 유일한 절대평가안인 모형②에 표가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론화위는 4개 모형을 두고 단순히 ‘4지선다형’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공론화 과정에서 나타난 의견을 종합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학린 공론화위원은 “국민 의견의 중심에 있는 내용을 뽑아내야 공정하지, 시나리오 4개를 단순 다수결에 부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결정 방식은) 조금 더 설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개 모형 안에서 각각 찬성 의견이 많은 쟁점들을 다시 조합해 또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학마다 사정이 다른데 정시 비율을 45%로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모형①이나 수능 절대평가로 변별력이 약화되는데 특정 전형에 쏠리지 않도록 권고한 모형②는 당장 적용하기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능 상대평가를 바탕으로 정시 비율을 늘릴 가능성이 있는 모형③과 모형④가 가장 현실성이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8월 교육부의 수능 개편 시안 발표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진보교육단체들은 “2022학년도 대입개편은 최소화하고 2025학년도 대입개편안에서 근본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가 2016년 3월 수능개선위원회를 구성하면서부터 숱한 여론수렴 과정을 반복했기 때문에 사실상 대입개편안 정답은 나와 있다”며 “대입개편 원칙과 방향을 설득하는 대신에 400명에게 결정을 떠넘긴 교육부의 ‘책임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재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폐지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조 교육감은 1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당선 기자간담회에서 “당장 내년부터 자사고·외고의 지정 취소 여부를 결정할 5년 주기 운영성과 평가가 진행된다”며 “교육부와 협의를 통해 엄정한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는 학교들은 일반학교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에는 자사고 13곳, 2020년에는 자사고 10곳, 외고 6곳이 재지정을 위한 평가를 받게 된다. 우수학생을 선점하는 자사고의 선발효과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조 교육감은 법령 개정(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필요성도 시사했다. 조 교육감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감에게 자사고·외고 지정 취소 권한을 부여하거나 추첨제를 도입해 달라는 뜻이다. 현재는 교육감이 자사고·외고를 취소하려면 교육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조 교육감은 현재 법외노조 상태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노조 전임자 휴직 허가 방침을 고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2월 교사 5명이 전교조 전임자 활동을 위해 휴직을 신청하자 이를 허가했고 교육부의 허가 취소도 거부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17개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진영이 4년 전에 이어 다시 압승을 거뒀다. 후보도 모르고, 공약도 모르는 ‘깜깜이 선거’ 속에서 인지도와 조직 표심이 당락을 갈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오전 1시 현재 진보 후보는 13명(서울 부산 인천 광주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남)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당선자는 2010년 6명, 2014년 13명이었다. 보수 후보는 대구 대전 경북 3곳에서 당선이 유력시된다. 제주에서는 보수·진보 후보가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전통적인 ‘보수 텃밭’인 울산에선 이변이 발생했다. 진보 후보가 교육감에 당선된 적이 없었던 울산에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울산지부장을 지낸 노옥희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 보수 후보가 사분오열된 상황에서 전교조 표심이 승부를 가른 것으로 분석된다. 2010년 이후 처음 탄생한 여성 교육감인 노 후보는 특히 진보 진영 첫 여성 교육감 당선자다. 이번 선거에서 단일화 효과는 크지 않았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은 ‘단일화 파워’로 17개 시도에서 13곳을 석권했다. 당시 학습효과로 이번 교육감 선거에선 보수 진영도 단일화에 공을 들여왔다. 보수 진영이 단일화에 성공한 지역은 서울 대구 부산 충북 제주 강원 등 6곳이다. 이 중 현직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고 진보가 분열된 대구에서만 강은희 후보자의 당선이 유력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강 후보자가 문재인 정부에서 교육감으로 부활한다면 ‘보수 신데렐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로 치러진 이날 교육감 선거에선 현직 교육감 출신과 전교조 출신 후보자가 대거 당선됐다. 현직 교육감 12명 중 10명은 재선·3선에 성공하고, 나머지 2명은 접전을 벌이고 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 선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떨어지면서 ‘아는 사람을 찍는다’는 경향이 나타난 현직 프리미엄이 극대화됐다”고 말했다. 전교조 출신 후보 11명 중 8명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경합 지역까지 포함하면 전교조 출신 교육감은 최대 1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2014년(8명)을 웃돌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 등 대형 이슈에 묻힌 데다 진보와 보수 후보 간 공약의 차별성이 사라진 이번 교육감 선거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책 이슈가 사라진 사이 여당 압승 분위기에 교육감 선거도 진보가 우세한 ‘동조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교육정책에 대한 낮은 지지도 변수가 되지 못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보수 표심’이 결집할 만한 계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이 교육 권력을 다시 한 번 거머쥐면서 여론 ‘눈치 보기’로 주춤했던 △자사고·외국어고 폐지 △고교학점제 도입 △혁신학교 확대 등 문재인 정부의 공약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우경임 woohaha@donga.com·조유라 기자}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최측근인 송현석 정책보좌관이 최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송 보좌관은 최근 국·과장급 이하 실무 공무원 징계로 논란이 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송 보좌관 주도로 교육개혁 및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잇따른 잡음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올해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논란, 대입정책 혼선 등 잇따른 헛발질로 비난을 받아 왔다. 송 보좌관은 김 부총리 인사청문회 당시부터 2004∼2006년 ‘불법 이적단체’로 분류됐던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정책위원장을 지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 단체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고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송 보좌관은 김 부총리가 경기도교육감을 지낼 때 정책비서를, 김 부총리가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을 지낼 때는 비서실장을 맡는 등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교육부 실세로 김 부총리의 ‘문고리 권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등 과거 정부 적폐청산에 앞장섰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조사로 교육부 안팎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8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와 관련해 교육부 실무자를 포함한 17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해 논란을 빚었다. 송 보좌관의 사표는 인사혁신처에서 수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급 이상 고위공무원은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에서 비위 유무를 확인해 이상이 없으면 사표가 수리된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교직원 복지기관인 한국교직원공제회 문용린 이사장이 임기 9개월을 앞두고 최근 교육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교육부 산하기관장들이 잇달아 사의를 표명하면서 6·13지방선거 이후 ‘2차 물갈이’가 예상된다. 문 이사장은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2년 동안 할 역할을 다 했다. 곧 후임 이사장 공모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사회적 분위기가 바뀐 만큼 덕망 있는 교육계 인사가 후임으로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 이사장은 8일 “고심 끝에 명예롭게 퇴진할 때라고 판단했다”며 “지난해 국정감사 이후 직원들이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용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은 문 이사장과 안 이사장 등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을 지낸 문 이사장은 임기를 채울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또 안 이사장은 6·13 지방선거 출마설을 부인하고 임기를 마치겠다고 밝혀왔다.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에 대해 문 이사장과 안 이사장 모두 “사퇴 압력은 없었다”고 밝혔다. 두 이사장의 사퇴에 대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등 교육계 ‘적폐청산’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가면서 6·13 지방선거 이후 교육부 산하기관장 2차 물갈이 신호탄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김영수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김재춘 전 한국교육개발원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이들을 대신해 지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에는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 한국교육개발원장에는 반상진 전북대 교수가 각각 임명됐다. 이들은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 출신이다. 김혜천 전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의 임기 만료 뒤에는 17대 열린우리당·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지낸 지병문 전 의원이 5월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교육부 최대 산하기관으로 꼽히는 두 기관장 교체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후임 인선도 주목된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등은 벌써 노무현 정부 사람이 거론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보은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7일 전국 고교 2054곳과 지정학원 420곳에서 치러졌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6월 모의평가는 올해 11월 15일 수능의 출제방향과 난이도를 파악할 수 있는 시험이다. 이번 평가에서 국어 수학은 다소 쉬웠고 영어는 어려웠다는 평가다. 이번 모의평가에 지원한 수험생은 59만2374명으로 지난해 6월 응시 인원보다 4585명(0.8%포인트)이 늘었다. 출산율이 깜짝 반등했던 2000년생인 ‘밀레니엄 베이비’가 올해 수능을 치르면서 응시인원이 늘어났다. 재학생(51만6411명)과 졸업생(7만5963명)은 각각 4497명, 88명 증가했다. 올해 수능은 재수생을 포함한 ‘N수생’이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019학년도 대입에서 주요 10개 대학(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가다나순)이 정시 선발 인원을 1314명(14.2%) 늘리며 N수생들의 도전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대학진학률이 2017년보다 떨어진 서울 강남구, 대구 수성구 등 교육특구에서 재수생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처음 10%를 돌파한 수능 결시율(10.5%)도 변수다. 결시율에 따라 등급이 출렁거려 모의평가와 수능 등급 간 괴리를 키운다. 지난해 6월 수능 모의평가에는 재학생 51만7789명이 응시했으나 실제 수능에는 44만4874명만 응시해 6만여 명이나 차이가 났다. 반면 재수생을 포함한 N수생은 6월 수능 모의평가에는 7만5875명만 응시했으나, 11월 수능에는 13만7532명이 응시해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평가원은 “수험생 부담을 줄이고 학교 교육 내실화를 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전년과 같은 출제 기조를 유지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입시업체들은 모의평가에서 국어와 수학 가, 나형은 평이한 수준으로 출제됐고, 영어는 다소 어려워진 것으로 분석했다. 대성학원은 “수학영역은 지난해 수능과 전반적으로 비슷했다. 대체적으로 수학적 정의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항이 출제됐다”고 분석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은 “영어영역은 전반적으로 지문 길이가 길고 내용도 추상적이거나 생소했다”며 1등급 비율이 5.4% 정도였던 지난해 9월 모의평가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번 모의평가 정답 확정일은 19일이고, 채점 결과는 28일까지 수험생에게 통보된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13일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17개 시도교육감은 앞으로 4년간 예산 60조 원의 사용처를 정하고, 교사 38만 명의 인사권을 행사한다. 초중고 교육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감을 뽑는 선거가 세 번째 치러지지만 유권자의 관심은 여전히 시들하다. 1인당 7표씩 행사하는데 직접적인 교육정책 수요자가 아닌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감 후보자들은 조직화된 교사단체나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표심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동아일보가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후보 59명의 공약을 전수조사한 결과 31명(52.5%)이 교사 또는 교육공무직 증원을 공약했다. 교육부문 추가 고용은 나랏돈으로 장기간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와도 역행해 무상공약보다 더한 선심성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후보 많은 지역일수록 “교직원 증원” 국가공무원인 교사 정원 결정은 교육감 권한 밖이다. 이 때문에 교육감 후보들은 학습보조교사, 학습 및 진로상담교사 등 정원에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 교사를 늘리거나 교사 행정 업무를 줄이기 위한 행정 업무 담당 교육공무직 확충을 약속했다. 이들이 많아지면 정규직 교사들은 업무가 한결 편해진다. 교사 증원 공약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경기다. 경기도교육감 후보 5명 중 4명이 교사 증원을 약속했다. 배종수 후보는 △교사안식년제 확대 △학생 정신건강 전문상담사 배치 △자유학기제 독서·논술 초빙교사 채용, 송주명 후보는 △초등 저학년 1수업 2교사 배치 △학습 카운슬러 교사제 도입 △수석·진로·보건교사의 정원 외 관리로 전체 정원 증대 등을 공약했다. 이재정 후보는 △모든 초중고 학교폭력 상담교사 배치 △모든 학교에 사서와 교육복지사 배치 △행정인력 보강 등을 약속했다. 보수 진영인 임해규 후보도 △모든 유치원 행정실무사 지원 및 증원 △초등 6학년 사춘기 전문 상담교사 배치 △모든 중학교 학교폭력 상담교사 배치를 공약했다. 경기도 교육계 관계자는 “경기에서 후보가 난립하면서 교사 업무 경감, 교사 1인당 학생 수 감축 등 교사단체 요구를 앞다퉈 수용했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후보(7명)가 등록한 울산에서도 경쟁적으로 교직원 증원 공약을 내놓았다. 장평규 후보, 구광렬 후보, 정찬모 후보가 각각 행정업무 직원 추가 고용을 약속했다. 박흥수 후보는 수학시간에 교사 2명이 팀으로 가르치고, 김석기 후보는 다문화보조교사, 보건교사를 늘리겠다고 했다. 지난해 교사 과잉공급으로 ‘임용절벽’ 사태를 겪었던 서울은 직접적인 증원 공약은 없었다. 조희연 후보는 유급안식년제, 박선영 후보는 유급연구학기제 도입으로 사실상 교사 선발인원 증대 효과를 노렸다. 조영달 후보는 배움이 느린 학생을 대상으로 ‘함께하는 교사’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수도권보다 학령인구 감소세가 가파른 강원 충북 충남 전북 경북 경남에서도 후보자 21명 중 10명이 교직원 증원을 공약했다. 학생 이탈로 문 닫는 학교가 늘어나는 이들 지역에서 교직원 증원은 무책임한 공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리대부터 교복까지 ‘무상 공약’ 급증 기존 무상급식에 머물던 무상공약은 이번 선거에서 무상지원 대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교복, 체육복, 수학여행, 입학금, 수업료, 체험학습, 교과서비 등 무상교육 공약은 교육감 후보 59명 중 49명(83%)이 내놓았다. 재정확충방안이나 우선순위를 따지지 않는 ‘퍼주기 대결’로 정작 학교수업이나 시설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곳간’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현직 교육감들조차 무상 경쟁에 뛰어들었다. 전북도교육감 후보인 김승환 현 교육감은 생리대 무상보급을 약속했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고등학교 여학생 전원에게 생리대를 지원할 경우 7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김 후보 측은 예상했다. 최교진 현 세종시교육감은 무상교복·무상체험학습비·무상고교교육 등 ‘공교육비 제로’ 공약을 내걸었다. 김지철 현 충남도교육감은 고교 무상교육과 무상급식, 중학교 신입생 무상교복을, 장휘국 현 광주시교육감은 고교 무상교육, 교과서 대금 지원, 수학여행비 지원을 약속했다. 민병희 현 강원도교육감 역시 중고교 교복비, 통학비, 고교수업료를 없애겠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혁신학교 확대나 자사고·외국어고 폐지 등 이념적인 색깔이 뚜렷한 교육정책에 염증을 느끼면서 ‘생활밀착형 공약’을 앞세우는 후보도 늘었다. 학부모들이 미세먼지 라돈 등 학교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59명 중 39명(66.1%)이 공기청정기 설치, 먼지저감형 바닥재 교체 등 미세먼지 대책을 공약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조유라 기자}
‘모든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만류해도 저는 도전합니다.’ ‘교육생산자가 제공하는 물건을 받는 교육이 아니라 교육소비자가 물건을 공급하는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박효석 부산시교육감 후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5대 대표 공약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공약은 제시하지 않았다. 박 후보는 교육정책과 관련해 구체적인 공약이 하나도 없는 유일한 후보자였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거나 실현 가능성이 낮은 ‘황당 공약’을 내세운 후보자들도 눈에 띄었다. 최태호 세종시교육감 후보는 대표 공약 5개 중 2개가 직업체험 테마파크와 청소년 멀티플렉스 건립이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전용 직업체험관과 가상현실(VR)센터, 수영장, 영화관, 연극무대 등 청소년 멀티플렉스를 짓겠다고 공약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후보는 스포츠 공간과 VR 공간을 합친 문화놀이공간 건립을 약속했다. 1곳당 20억 원이 소요돼 ‘비싼 대형 오락실’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송명석 세종시교육감 후보는 중고교 학생들에게 해외여행비를 주고, 세종시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이들에겐 대학 학비와 기숙사비까지 내준다고 공약했다. 국립대인 한국교원대 학부를 충북 청주시에서 세종시로 이전하고 한국교원대 부속 고교를 신설하겠다고도 했다. 국립대 이전은 교육감 권한 밖의 일인 데다 한국교원대부설고교는 이미 청주시에 있다. 홍덕률 대구시교육감 후보는 시교육청에 비정규직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노동특보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작 학생은 뒷전이고 노동계에만 선심을 쓰겠다는 것이다. 우경임 woohaha@donga.com·김호경 기자}
6·13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 59명 중 31명(52.5%)이 교사나 교사 행정업무를 보조하는 교육공무직 등 교직원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6일 후보자 59명의 공약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이는 가파른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역행하는 공약이다. 유권자들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 ‘깜깜이’ 교육감 선거가 예상되는 가운데 후보자들은 정치세력으로 조직화된 교사 및 교육공무직 표심 잡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무상복지보다 더한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중장기 교원수급계획’을 마련하면서 추계한 연도별 학생 수 예측에 따르면 초등생은 올해 271만 명에서 이번 교육감 선거 당선자 임기인 2022년 255만 명으로 16만 명 줄어든다. 중고교생은 올해 288만 명에서 2022년 249만 명으로 39만 명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범정부적 차원에서 매년 교사를 줄여나가 2030년까지는 2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정부는 교사 수를 줄인다는데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은 교육계 표를 얻기 위해 교직원 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교사 수는 약 38만 명, 교육공무직 수는 약 14만 명이다. 교육감 선거의 낮은 득표율을 감안할 때 이들 조직의 표심에 따라 당락이 좌우될 수도 있다. 임용시험에 합격한 정교사를 증원하는 것은 행정안전부와 교육부가 결정하게 돼 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청에서는 국가공무원인 교사 수를 늘릴 권한이 없다. 지금 공약대로라면 비정규직 교사, 비정규직 교육공무직만 양산하게 된다”며 “학교 현장에서 정규직 교사와 비정규직 교사, 공무원과 공무원이 아닌 교육공무직 간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보·보수 후보 가릴 것 없이 ‘무상복지’ 공약도 쏟아졌다. 교육감 선거 후보자 59명 중 49명(83%)이 ‘공짜’를 약속했다. 어린이집 ‘무상보육’처럼 유치원 ‘무상교육’을 도입하겠다고 하거나 무상교복, 무상체험학습, 무상수학여행, 무상생리대 등 일회성 퍼주기 공약도 남발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제시한 후보는 드물었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임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