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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위에 탑을 쌓은 독특한 형태로 유명한 충남 공주시 마곡사 오층석탑(사진)이 국보가 된다. 국가유산청은 보물인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을 국보로 승격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이 석탑은 고려 후기인 14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 몸체 위에 ‘풍마동(風磨銅)’이라고 불리는 1.8m 길이의 금동보탑을 올렸다. 이처럼 ‘탑 위에 탑’이라는 양식으로 지어진 석탑은 국내에서 마곡사 오층석탑이 유일하다. 금동보탑은 중국 원나라 등에서 유행한 불탑 양식을 재현한 것이다. 2중으로 만들어진 석탑 기단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백제계 석탑 양식이다. 지대석에는 게의 눈과 유사한 곡선 모양의 ‘해목형 안상(蟹目形 眼象)’이 새겨져 있다. 국가유산청은 “현존하는 석탑에서 해목형 안상이 새겨진 게 처음 발견된 사례로 석탑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가유산청은 보물인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 삼불회도’도 국보로 승격 예고했다. 영산회상도는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석가여래는 크게 부각하고 나머지 도상은 밑에서 위로 갈수록 작게 그렸다. 석가여래 삼불회도는 3개 화폭에 수많은 등장인물을 섬세하고 유려한 필치로 그려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옆구리에 낫을 꽂은 한 남성이 호랑이를 타고 있다. 갓을 쓰고 초록 관복을 입은 표정이 제법 근엄하다. 망자가 타는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 ‘꼭두’ 중 하나다. 이 ‘호위무사 꼭두’(사진)는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할 뿐 아니라 각종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을 상징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3일부터 기획전시실1에서 특별전 ‘꼭두’를 열고 있다. 김옥랑 꼭두박물관장이 지난해 민속박물관에 기증한 꼭두 1100여 점 중 250여 점을 소개한다. 김 관장은 20대 때 한 골동품 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목각 인형을 본 뒤 매력에 빠졌고, 그 후 50여 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꼭두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1부 ‘낯섦, 마주하다’에서는 사람들이 지붕에 올라 죽은 이의 옷을 흔들어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 의례를 재현하고, 망자를 곁에서 보살피는 ‘시종 꼭두’를 배치했다. 신선과 선녀, 부처, 승려 등 망자를 위로하는 다양한 꼭두도 함께 볼 수 있다. 2부 ‘이별, 받아들이다’에서는 죽음을 영원한 세계로 가는 여행으로 여길 수 있도록 돕는 ‘광대 꼭두’ 등을 배치했다. 광대 꼭두들은 망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악기를 연주하고, 재주를 부린다. 3부 ‘여행, 떠나보내다’에서는 호위무사 꼭두와 실제로 장례에 사용됐던 상여를 함께 배치해 망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처럼 전시장을 꾸몄다. ‘꼭두와 떠나는 여행’이라는 이름의 ‘에필로그’ 공간에서는 마침내 저승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 망자의 이야기를 담은 실감형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다. 민속박물관 임세경 학예연구사는 “전시장에 가득한 다양한 꼭두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좋은 죽음’의 심오함을 음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일본 지바현에서만 30여 년을 살아온 저자는 방구석에서 루마니아어를 마스터했다. 온라인 문예지에 루마니아어로 된 엽편 소설도 발표했다. 이 책은 저자가 독학으로 생소한 동유럽 국가의 언어를 익히고,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에세이집이다. 4년간의 대학 생활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보낸 데다 취업까지 실패한 저자의 낙은 영화 보기. 그중에서도 루마니아 영화 ‘경찰, 형용사’를 접한 그는 루마니아어에 홀딱 매료돼 버린다. 곧장 ‘오타쿠 기질’을 발휘해 루마니아어 독학에 도전한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는 나, 완전 힙해….” 학습의 동력은 그저 약간의 자의식 과잉. 저자는 페이스북 프로필에 “루마니아를 좋아하는 일본인”이라고 적어놓고, 루마니아인 3000명에게 무작정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다. 일종의 ‘루마니아 메타버스’를 만든 것. 그 결과 일본어를 좋아하는 루마니아인 ‘야미’ 등 다양한 친구들과 교류했다. 나아가 루마니아어로 쓴 소설을 ‘페친’들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한 온라인 문예지의 편집장이 글을 읽고 호기심을 보인 끝에 그의 글은 2019년 4월 온라인 문예지에 게재됐다. 유머러스한 문체에 자연스레 녹아든 루마니아어에 대한 지식이 책의 흥미를 더한다. 저자는 2021년 크론병에 걸렸지만, 현재는 몰타어와 룩셈부르크어도 공부하고 있다. 좌충우돌 용감한 도전기를 읽다 보면 당장이라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진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이하 예술위)는 1973년부터 문화예술 분야, 특히 기초 예술에 중점을 두고 예술 생태계 전반에 걸쳐 다양한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우수 작품과 작가를 지원하는 ‘창작기금’ △‘해외 레지던시’ 등의 직접 지원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이 발표·유통되는 ‘문예지 발간 지원’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위한 ‘집필 공간’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온라인 문학 플랫폼인 ‘문학광장’ △매년 가을 작가들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독자를 만나는 ‘문학주간’ △작가가 문학 시설에 상주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학상주작가’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한강 작가의 경우 그가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한 청년 작가 시절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20여 년간 다각적 지원을 이어왔다. 첫 지원은 1998년 당시 문예진흥원(예술위 전신)의 지원으로 미국 아이오와대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터키의 오르한 파묵(2006년 노벨 문학상), 중국 모옌(2012년 노벨 문학상) 외에도 올해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알려졌던 찬쉐가 참여한 바 있다. 국내 작가로는 문정희(현 국립한국문학관장) 시인, 김사인 시인, 강영숙 소설가, 박찬순 소설가, 은희경 소설가가 대표적으로 예술위는 매년 공모를 통해 참여 작가를 선발해 지원하고 있다. 이후 한강 작가는 2000년 신진 문학가 지원과 2005년 ‘몽고반점’으로 예술창작 지원에 선정됐으며 예술위의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활동도 이어 갔다. 2005년부터 약 2년 동안 작가가 직접 만드는 라디오 방송인 ‘문장의 소리’ DJ로 활동했으며 2008년에는 3개월간 문학 전문 웹진인 ‘문장웹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예술위의 위 문학 플랫폼은 작가들이 직접 DJ, 구성작가, PD, 편집위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 전문성과 기획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들과 함께 소통하고 다양한 감각으로 문학을 향유할 수 있다. 한강 작가는 이후 예술위에서 주요 해외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작가를 파견하는 지정형 레지던시를 통해 해외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2014년 폴란드 바르샤바대 작가 파견 사업을 통해 바르샤바에 체류하는 4개월간 시·소설 ‘흰’을 구상해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창작에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폴란드에서의 시간을 회고했다. ‘흰’이 발간된 후 ‘문학주간 2022’에 참여해 이햇빛 피아니스트의 즉흥연주와 함께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예술위 정병국 위원장은 “문화예술 지원은 즉각적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예술가를 응원하고 뒤에서 묵묵히 돕는 일”이라며 “한강 작가가 글을 써온 지 30년 만에 노벨 문학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듯이 작가들이 지치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위는 ‘포스트 한강’의 탄생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한국문학 생태계를 건강하게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도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도록’ 작가들이 작품을 쓰고 활동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이어 나갈 방침이다. 또한, 문학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원 기관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관심도 필수적이기에 일상 속에서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하고 깊이 있게 사유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수한 작가와 작품을 조명해 나갈 계획이다.한강 장편소설 ‘흰’ 작가의 말 중에서첫 달의 적응 기간이 지나자 서울에서 살던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걷는 것, 또 걷는 것- 돌아보면 바르샤바에서 내가 한 일은 그것이 거의 전부였다. 틈이 날 때마다 아파트 주변의 고요한 천변을 산책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로 나가 골목들을 배회했다. 그보다 더 가까운 와지엔키 공원의 숲길을 목적 없이 걸었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부터 쓰고 싶었던 『흰』이란 책에 대해, 그렇게 걸으며 생각했다. (중략) 기억한다. 아파트의 열쇠가 하나뿐이어서,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다섯시에서 다섯시 반까지는 어김없이 집으로 먼저 돌아와 있어야 했다. 그 시간까지 거리를 걸으며 이 책을 생각했다. 무엇인가 떠오르면 길에 선 채로 수첩에 몇 줄씩 적기도 했다. 하나뿐인 침실에서 아이가 곤히 잠든 밤이면 식탁 앞에 앉아, 혹은 거실의 소파침대에 담요를 쓰고 웅크려 앉아 한 줄씩 이어 적어갔다. (중략) 그렇게 그 도시에서 이 책의 1장과 2장을 쓰고, 서울로 돌아와 3장을 마저 썼다. 그다음 일 년 동안은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다듬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2007년 출간된 소설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육식을 거부하는 주인공 ‘영혜’의 이야기를 다룬다. 2004∼2005년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등에 연재한 소설 3편을 엮었다. 1부 ‘채식주의자’, 2부 ‘몽고반점’, 3부 ‘나무 불꽃’은 각각 영혜를 바라보는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을 담았다. 소설 내 영혜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영혜는 가족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부장적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채식이라는 ‘식물적 상상력’을 발휘한다.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며 한강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소설. 당시 심사위원장인 영국 인디펜던트지 문학선임기자 보이드 턴킨은 “잊히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소설은 채식주의자가 되는 영혜의 모습을 섬뜩하면서도 괴이하게 그려낸다. 설정이 다소 충격적이고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한강도 맨부커상 수상 소감에서 “채식주의자를 쓰는 것은 인간에 대해 내게 끝없이 질문하는 과정이었다”며 “그것은 종종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최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다”고 밝혔다. 작가의 질문을 상상하면서 독서하면 표면적인 묘사 속에 숨겨진 책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1부 ‘채식주의자’는 영혜가 ‘특별하지 않아서’ 좋았다는 남편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영혜가 갑작스런 채식으로 특별한 사람이 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불편함을 유발하는 존재가 됐다. 남편에게 영혜는 그저 좋아하는 고기반찬을 해주지 않는 이기적인 여자다. “다진 생강과 물엿으로 미리 재워 향긋하고 달콤하게 튀긴 삼겹살, 샤브샤브용 쇠고기를 후추와 죽염, 참기름으로 간하고 찹쌀가루를 앞뒤로 입힌 뒤 구워 마치 떡이나 전 같던 그녀만의 특별식.” 자신의 아내를 볼 때보다 자세하고 관능적인 묘사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지만 이에 대해 남편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늘 무관심하고 관조적인 남편의 시선은 영혜가 그동안 순응해 온 가부장적 질서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남편은 처가 식구들을 동원해 영혜의 채식을 말리려 한다. 영혜의 언니 인혜의 집들이에서 영혜가 육식을 또 거부하자 영혜의 아버지가 억지로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 한다. 탕수육을 그녀의 입안에 억지로 욱여넣으려다 되지 않자 영혜의 뺨부터 치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모습은 억압적인 사회 규범을 상징한다. “한 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영혜는 저항하기 위해 칼을 들어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이는 가수 김창완이 한강과 함께한 방송에서 “안 읽겠다. 뒤로 가면 너무 끔찍하다”고 미간을 찌푸린 장면이기도 하다. 한강은 “이 장면이 끔찍하고 불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 개의 장에 이뤄진 소설에서 각자 화자의 관점에서 다시 나올 만큼 중요한 장면”이라고 했다.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 관점에서 진행된다. 아내 인혜에게서 영혜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형부는 영혜의 몸을 욕망하게 된다. 자신의 아내는 특유의 쾌활한 성격과 예쁘장한 얼굴로 화장품 가게를 하면서 아이들도 살뜰히 돌보는 ‘슈퍼맘’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내보다 무기력한 얼굴로 나뭇가지 같은 몸매를 가진 처제 영혜에게 끌리게 된다. 결국 형부는 영혜를 찾아가 비디오 작품의 모델이 돼 달라고 청한다.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몽고반점 이야기를 들은 뒤 떠올린 영감대로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영혜와 교합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 작품으로 촬영한다. 다음 날 벌거벗은 두 사람의 모습을 아내가 발견한다. 아마 채식주의자를 읽기 힘들단 반응이 나오는 것도 몽고반점의 영향이 커 보인다. 형부가 처제에게 욕망을 품는다는 파격적 설정과 외설적인 묘사 때문일 것이다. 2005년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문단의 선배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도 등장인물 중 몸에 페인트칠을 하는 형부에 ‘꽂혀’ 여러 심사평을 남겼다고. 그때 한강은 “저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무관심한 남편, 폭력을 자행하는 아버지와 방식만 다를 뿐 영혜에게 성적 접근을 시도하는 점에서 형부도 영혜를 옭아매는 가부장제의 한 요소다.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영혜의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자극적으로만 읽히던 작품이 달리 보인다. 3부 ‘나무 불꽃’은 가족들 모두 등 돌린 영혜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인혜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인혜는 식음을 전폐하고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아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영혜를 만나고, 영혜는 자신이 이제 곧 나무가 될 거라고 말한다.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는 동생을 보며 인혜는 내면의 변화를 맞는다. 어린 시절 각인된 폭력의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뒤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무해한 존재를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한강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스웨덴 한림원은 채식주의자에 대해 “혐오, 성적 매혹, 질투 등 주변 인물들의 다채로운 반응을 그린다. 이는 가족에게 수치심을 안겨줬다는 죄책감을 인정하지 않고 묵묵히 저항하는 영혜의 태도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고 평가했다. 또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와 직업주의, 때로는 폭압적인 사회 규범과 관습에 대한 날카로운 자화상을 엿볼 수 있다”고 짚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안중근 의사(1879∼1910)는 1910년 2월 처형 직전 뤼순감옥에서 ‘獨立(독립)’이라고 쓴 친필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사진)을 남겼다. 글씨 왼쪽에는 약지가 절단된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다. 뤼순감옥 간수였던 시타라 마사오(設樂正雄)가 안 의사에게 받았는데, 현재는 일본 류코쿠대가 이를 소장하고 있다. 이 유묵을 비롯해 류코쿠대에 있는 안 의사의 유묵 4점이 15년 만에 국내를 다시 찾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4일부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5주년을 기념하는 ‘안중근 書(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일본에서 온 유묵과 국내에 있는 유묵을 합해 안 의사가 순국 직전 쓴 유묵 18점(보물 1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유묵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독립 유묵’은 전시실의 중심 공간에 배치돼 눈길을 끈다. 간결하게 쓰인 두 글자의 필체에서 힘이 느껴진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고 쓴 유묵은 안 의사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보여준다.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황금이 백만 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 유묵은 교육을 중시한 안 의사의 철학이 담겼다. 안 의사는 1906년 평안남도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은 대한제국 의병으로 거사를 결행한 안 의사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인을 이룬다)’ 역시 자신을 희생해 큰 뜻을 이루겠다는 안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글씨 외에도 안 의사의 삶을 보여주는 자료 50여 점을 함께 전시해 국권 회복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번 전시가 애국계몽운동에서 하얼빈 의거까지 안 의사의 행보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 3월 31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안중근 의사(1879∼1910)는 1910년 2월 처형 직전 뤼순감옥에서 ‘獨立(독립)’이라고 쓴 친필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을 남겼다. 글씨 왼쪽에는 약지가 절단된 안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다. 뤼순감옥 간수였던 시타라 마사오(設樂正雄)가 안 의사에게 받았는데, 현재는 일본 류코쿠대가 이를 소장하고 있다. 이 유묵을 비롯해 일본 류코쿠대에 있는 안 의사의 유묵 4점이 15년 만에 국내를 다시 찾는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4일부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5주년을 기념하는 ‘안중근 書(서)’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는 일본에서 온 유묵과 국내에 있는 유묵을 합해 안 의사가 순국 직전 쓴 유묵 18점(보물 13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유정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안 의사의 어린 시절 이름인 ‘응칠’(應七)에서 착안해 애국, 평화 등 7가지 이야기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유묵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독립 유묵’은 전시실의 중심 공간에 배치돼 눈길을 끈다. 간결하게 쓰인 두 글자의 필체에서 힘이 느껴진다. ‘國家安危 勞心焦思(국가안위 노심초사‧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고 쓴 유묵은 안 의사의 국가관과 애국심을 보여준다.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황금이 백만 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 유묵은 교육을 중시한 안 의사의 철학이 담겼다. 안 의사는 1906년 평남 진남포에 삼흥학교를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 힘을 쏟았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은 대한제국 의병으로 거사를 결행한 안 의사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志士仁人 殺身成仁(지사인인 살신성인‧지사와 어진 사람은 자신을 희생해 인을 이룬다)’ 역시 자신을 희생해 큰 뜻을 이루겠다는 안 의사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그 마음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 구름 같도다)’은 안 의사의 장부로서의 비장함과 의사로서의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글씨 외에도 안 의사의 삶을 보여주는 50여 점의 자료를 함께 전시해 국권회복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번 전시가 애국계몽운동에서 하얼빈 의거까지 안중근 의사의 행보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 3월 31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의료와 교육 봉사를 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태석 신부(1962∼2010)를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의 후속작이 공개된다. 사단법인 이태석재단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Synod) 기간인 24일 오전 10시 반(현지 시간) 바티칸 시노드홀 2층에서 영화 ‘부활’(사진)을 상영한다고 22일 밝혔다. ‘부활’은 이 신부의 숭고한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톤즈’의 후속작으로 이 신부가 생전 각별히 보살폈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울지마 톤즈’가 2011년 한국 영화 최초로 바티칸에서 상영된 데 이어 후속편도 가톨릭 성지에서 상영되게 됐다. 이번 상영회의 의미는 남다르다. 앞서 ‘울지마 톤즈’가 교황청의 공식 기자회견장인 바티칸 성 비오 10세 홀에서 교황청 고위 인사 등 제한된 관객을 대상으로 상영된 것에 비해 ‘부활’은 바티칸에 모인 전 세계 주교 시노드 참석자를 대상으로 상영된다. 시노드는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회의로, 이번 주교 시노드에는 전 세계 110여 개국에서 총 368명의 대의원이 참가한다. 이태석재단은 바티칸 상영에 맞춰 영어 더빙 작업을 마쳤고, 영화 팸플릿 500부도 제작했다. 전작과 이번 후속작을 통해 이 신부의 삶을 각 나라에 전파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바다 속에 어규(漁虯·뿔 없는 용)가 사는데, 꼬리가 솔개를 닮았다. (어규가 꼬리로) 거센 파도를 일으키면 비가 내린다. 그 상을 만들어 지붕 위에 올리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 중국 북송대 건축서인 ‘영조법식(營造法式)’에 나오는 내용이다. 옛사람들이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화려한 ‘치미(鴟尾·솔개의 꼬리를 닮은 장식용 기와)’를 지붕 용마루 양쪽 끝에 올렸음을 알 수 있다. 궁궐이나 대형 사찰과 같은 격조 있는 건물에 올린 치미는 버선코 같은 독특한 꼬리와 우아하게 떨어지는 곡선이 돋보인다.백제 사찰 미륵사지의 치미를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특별전 ‘미륵사지 출토 치미―제작, 폐기, 복원의 기록’이 국립익산박물관에서 22일부터 열린다. 7세기 백제 무왕(재위 600∼641)대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 규모의 사찰로, 이곳에서 치미 조각 990여 점이 출토됐다. 완전한 모양이 아닌 조각들이지만, 왕실 사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총 3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을 붙여 복원한 치미 원형을 비롯해 총 185건을 선보인다. 이 중 압권은 동쪽 승방 터에서 발견된 약 1.4m 높이의 대형 치미로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26개의 조각을 합쳐 완형을 복원했다. 치미의 상부를 운반하는 데 성인 남성 3명 이상이 동원됐다고 한다. 강건우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치미 중 가장 큰 것으로, 미륵사지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중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미륵사지는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초까지 존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치미는 백제 것보다 색상이 더 어둡고, 몸체에 클로버 무늬가 있는 등의 차이가 있다. 전시에선 이 밖에 높이 99cm의 치미, 연못 터에서 발견된 높이 53.5cm의 치미 하부도 볼 수 있다. 전시 1부에서는 치미의 내부 구조와 제작 방법을 보여준다. 이물질 제거부터 색맞춤에 이르기까지 치미의 보존 처리 과정을 담은 영상물도 볼 수 있다. 특히 제작 기법을 보여주는 코너에서는 새가 앉지 못하도록 치미 날개에 꽂는 금속 막대 ‘거작(拒鵲)’ 실물을 공개한다. 2부에서는 연못 터와 회랑 터, 배수로 등에서 나온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치미 조각을 조명한다. 수장고에선 눕혀서 보관하는 치미 조각들을 이번에는 설치 미술처럼 세워서 전시한다. 머리와 허리, 등, 꼬리, 깃 등 치미의 각 부분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조각에 새겨진 용·덩굴식물·연꽃 무늬는 일러스트를 첨부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강 연구사는 “지금까지 수장고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치미 조각들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줄 수 있게 배치했다”고 말했다. 치미를 주제로 한 강연과 스탬프 투어 등 관련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54)은 17일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노벨 문학상 시상식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을 끝내고 (노벨상) 수락 연설문 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 통상 3∼5분 정도 진행되는 수상 연설을 통해 감사 인사와 함께 본인만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시상식은 매년 상의 설립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18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은 평소에는 클래식 공연 등이 열리지만 노벨상 시상식 때는 푸른 카펫이 깔리며 시상식 장소로 바뀐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리는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의 수상자들은 이곳에서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에게 메달과 상장을 받는다.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슬로에서 상을 받았는데 한강은 이와 다른 곳에서 노벨상을 받는다. 한강은 금으로 된 노벨상 메달을 받는다. 무게는 175g, 지름은 6.6cm. 1980년까지 200g가량이었지만 이후 줄었다. 18K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은 24K로 도금한다. 메달 앞면에는 노벨의 상반신 초상과 라틴어로 쓰인 출생 및 사망연도가 새겨져 있다. 뒷면 가운데에는 월계수 아래에서 뮤즈의 노래를 받아적는 청년이, 아래쪽에는 수상자의 이름이 들어간다. ‘발명은 예술로 아름다워진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도 들어간다. 수상 분야에 따라 메달에 새겨진 세부 문양이 조금씩 다르다. 시상식 직후엔 인근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축하 만찬이 이어진다. 만찬에는 노벨상 수상자와 가족, 스웨덴 왕실, 정부 및 국회 대표를 비롯해 학생 250명 등 약 1300명이 참석할 예정. 메뉴는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당일 오후 7시 이후 공개된다. 블루홀은 실제로는 푸른색이 아닌 붉은색 벽돌로 둘러싸여 있다. 건축가 라그나 오스트베리가 붉은 벽돌 빛깔에 반해 파란색을 입히기로 한 당초 계획을 포기했다고 한다. 홀 앞쪽 벽에는 파이프가 1만2000개에 달하는 거대한 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노벨상 시상식은 드레스코드도 엄격하다. 남성은 연미복, 여성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는 것이 원칙. 하지만 한복 같은 각 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는 것도 허용된다. 196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일본 전통 복식인 와후쿠(和服)를 입고 상을 받기도 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이 소감을 밝히는 ‘수락 연설문’은 ‘귀로 듣는 문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언어의 정수를 담는다. 1968년 예순아홉 살의 가와바타는 하얀 머리칼을 반짝이며 노벨상 시상식에 섰다. 연설은 선배 시인 료칸의 절명시를 인용하면서 시작됐다. “내 삶의 기념으로서/무엇을 남길 건가/봄에 피는 꽃/산에 우는 뻐꾸기/가을은 단풍 잎새.” 그의 수상 소감은 ‘동양의 미학’이라는 짙은 여운을 각인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수상자들은 관례에 따라 강연에도 나선다. 시상 후 6개월 내에 공개 강연에 나서야 한다.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의 강연도 오래 회자된다. “옛날 옛적에 눈이 멀고, 현명한 노파가 살고 있었습니다”란 구절로 시작하는 연설은 언어의 중요성과 문학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아 청중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냈다. 한강은 노벨상 선정 발표 후 부친을 통해 “전쟁에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냐”고 밝힌 만큼 수상 소감과 강연 등을 통해 ‘반전(反戰) 메시지’가 나올지에 관심이 쏠린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우리 언어로 창작된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겁니다.” 소설가 이문열(76)은 1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노벨 문학상은 세계 문학에 진입을 공식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학의 고급화’를 상징하는 봉우리 같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황석영, 고은 등과 더불어 오랫동안 한국의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그이기에 수상 직후 언론사들이 앞다퉈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건강 악화로 칩거 중인 그와 통화가 이뤄진 건 수상 발표일로부터 나흘이 지난 14일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를 들 참이었다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강 수상은) 누가 들어도 기뻐할 일이다. 흐뭇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해마다 기다려왔고, 그런데 ‘올해는 누구다’ 이런 일들이 반복됐잖아요. 우리가 받으니까 다른 데(다른 나라) 간 것보다 기쁜 거죠. 그저 담담하게 우리가 받았다는 것에 반가워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그는 한강을 “주로 해외에서 많이 봤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한승원 선배 딸이니까 모를 리가 없죠.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영국 런던 등 해외 도서전에서 함께 활동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문열과 한강은 2014년 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에서 시인 김혜순, 소설가 황석영 등과 더불어 한국 대표 문인 10인으로 초청돼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의 첫 노벨 문학상이 후배에게 돌아갔다.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나는 노벨 문학상에 맞는 인물이 아닌 건 알지 않나. 책을 많이 팔아서 잘사는 작가는 안 된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같이 문학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다고 해서 뭐 경쟁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 이문열은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요 작품의 개정판을 손보고 있다. 귀향의 꿈을 안고 경북 영양에 지은 집이 2022년 불탄 뒤 그는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에 머물고 있다. 건강을 염려하자 그는 “많이 좋아졌다. 산책도 하고 가드닝도 하고 있다”면서 “오늘도 나무 가지치기를 했다”고 했다. 이문열은 2004년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새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 광대’가 특이한 충격을 줬듯, ‘채식주의자’도 특이하고 개성 있는 작품으로 봤다”고 했다.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1922년 펴낸 ‘단식 광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특기로 단식을 선보이는 광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엔 열광하던 관중의 반응이 시들해져도 단식을 계속하던 광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자리는 표범으로 대체된다. 이에 비해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육식을 끊으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무관심한 남편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강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이문열은 “말을 쓰는 방식과 보는 시각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것에 대한 혐오’를 다루는 작품은 잘 없었다”면서 “우리한테 흔히 있는 타입은 아니라서 새로워 보였다”고 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채식주의자’가 (남인도에서 쓰이는) 타밀어, 말라얄람어로 번역된 것을 보고 흥미로웠습니다. 언젠가는 힌디어로도 볼 수 있을까요?”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는 지난해 7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위키피디아에 올라온 한강 작품의 번역 현황을 캡처해 올리며 이렇게 썼다. 한강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해외에 한강을 알려온 그마저 ‘채식주의자’가 생소한 언어로 여럿 번역된 상황을 알고 깜짝 놀란 것이다. 한강이 10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비결 중 하나로 ‘문학적 확장성’이 꼽히고 있다. 일각에선 난해하다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한강의 작품이 폭력이라는 인류 보편적 문제를 건드려 울림이 크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세계 독자에게 공감을 얻었다는 것. 이런 문학적 확장성이 한림원의 수상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두드러지는 작품은 ‘채식주의자’다. 이 작품은 국내에 2007년 출간된 뒤 일본, 중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꾸준히 번역 출간됐다. 특히 노벨 문학상, 공쿠르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당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2016년 수상하며 다른 언어 출간에 가속이 붙었다. 주요 언어뿐 아니라 아이슬란드어, 갈리시아어 등으로 확장돼 지금까지 총 31개 언어로 번역된 것. ‘소년이 온다’는 몽골어와 아제르바이잔어 등 23개, ‘흰’은 카탈루냐어 등 16개 언어로 번역됐을 정도로 한강의 작품이 지구 곳곳에 소개됐다. 다채로운 출간본 표지도 해외 독자의 눈길을 끄는 요소다. 예를 들면 ‘채식주의자’ 이스라엘 출간본엔 나체의 여성이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담겼다. 꽃 속에서 뒹구는 사람이 그려진 대만 출간본, 여성 등 뒤에 커다란 꽃이 그려진 중국 출간본도 눈길이 간다. 브라질 출간본은 그로테스크한 무늬 속에 여성이 갇혀 있고, 세르비아 출간본은 머리가 6개인 여성이 자신의 얼굴 3개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각국 특유의 감성을 담아내면서도 폭력에 저항하는 ‘채식주의자’의 의도를 잘 전달했다는 평가다. 해외에 소개된 대부분 작품이 스미스의 영역본을 ‘중역’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과거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 오역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부커상과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치며 한강과 긴밀히 소통한 그의 작업 방식이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결국 전 세계의 문학은 영역본을 중역하는 방식으로 퍼져 간다”며 “결국 대부분의 소수 언어 번역가들은 한강과 데버라 스미스의 공동 작업 결과물인 영역본을 보고 번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을 수여하는 한림원이 위치한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강 작품이 다수인 점도 수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현재 스웨덴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등 총 4권이 번역됐다. 특히 올해 3월 스웨덴에서 열린 한강의 사인회엔 1000명 넘는 독자들이 몰렸다. 이들이 1시간 넘게 줄 서서 사인을 받아 갈 정도로 한강에 대한 현지 관심이 높다. 특히 올해 스웨덴어로 출간된 ‘작별하지 않는다’가 노벨 문학상 심사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있다. 한강 작품을 스웨덴어로 번역한 안데르스 칼손 영국 런던대 교수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스웨덴 출판계에서 한국 문학 작품의 판권을 사려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971년 화순 대곡리에서 한 주민이 배수로 작업을 하다가 청동기 유물 11점을 발견했다. 이 중에는 직선을 이용한 기하학적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진 잔무늬 거울 2점이 포함돼 있었다. 거친무늬 거울에서 발전한 잔무늬 거울은 선사시대 청동기 제작 기술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거울을 포함한 유물들은 발견 이듬해인 1972년 국보로 지정됐다. 국립나주박물관은 이달 8일부터 특별전 ‘빛, 고대 거울의 속삭임’을 선보이고 있다. 화순 대곡리 출토 거울과 무령왕릉 출토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 등 국보 2점을 비롯해 삼한∼삼국시대 전시품 270여 점을 선보인다.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청동거울의 제작 과정 △고대 거울을 소유했던 사람들 △거울로 본 동북아시아 교류 등을 소개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함평 엄다리 제동고분과 경주 사라리 출토 거울 조각 등 최근에 출토된 거울들을 한자리에 모아 최초로 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청동거울의 제작 과정과 생활 곳곳에서 이뤄진 거울 관련 의례들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고대인들은 죽은 이를 애도하기 위해 거울을 깨뜨리는 등 성, 집터, 제사터 등에서 다양한 의례에 거울을 활용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던 거친무늬 거울을 비롯해 청동기 제작 기술의 정수인 잔무늬 거울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거울은 최고 권력자들이 주로 향유했던 의례용 사치품이었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된 무령왕릉 출토 의자손수대경이 대표적이다. 바깥 면에는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돌기 9개가 섬세하게 솟아 있다. 우리나라와 거울 교류가 활발했던 일본과 중국의 거울 문화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복을 기원하는 길하고 상서로운 무늬가 새겨져 있는 거울에서는 고대인들의 내세관을 짐작할 수 있다. 청동거울을 만든 이들은 거울 한쪽 면을 장식하고 소망을 새기곤 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거울은 오랜 기간 우리 곁에 있었기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녹슨 청동거울 안에 감춰진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강의 작품은 소설이지만 그 안에 ‘시’, ‘그림’, ‘영화’가 보인다.”(미국 번역가 페이지 아니야 모리스 씨) “언제나 아픔과 회복을 주제로 하는 한강의 작품에는 신비한 힘이 있다.”(일본 번역가 사이토 마리코·齋藤眞理子 씨) “올해 3월 스웨덴어로 출간했을 때 독자 반응이 정말 좋았다.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스웨덴 번역가 안데르스 칼손 씨) 번역가들은 세계의 문 앞에 선 한국 문학을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안내를 통해 한국의 이야기가 각 문화권으로 전해진다.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각 미국, 일본, 스웨덴으로 데려간 번역가들은 모두 “한강의 작품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며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품도 세계에 더 많이 소개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번역해 한강과 ‘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던 영국인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 씨(36)는 13일(현지 시간) 별다른 설명 없이 ‘전쟁인데 무슨 잔치’라는 한강의 기존 발언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한강의 취지에 공감하며 본인도 당장은 외부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 모리스, “어두운 역사와 내면 다룰 때도 아름다워” “처음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준 친구가 ‘이제 너 명예 (한국)시민이 될 수 있어!’라고 카톡을 보냈어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보내준 링크를 보고 알았죠. 친구의 농담에서 노벨상이 얼마나 한국에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어요.” 영어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성균관대에서 비교문화학 박사과정 중인 모리스 씨는 11일 본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쁨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한강의 특징은 어두운 역사나 내면의 갈등을 다룰 때조차 아름다운 순간을 정교하게 담아낸다는 것”이라며 “번역할 때도 한글로 된 원문을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을 영어권 독자들도 최대한 비슷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데 가장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박경리, 장강명, 서장원 작가의 작품도 영어권에 소개한 그는 “한강은 굉장히 꼼꼼한 예술가”라며 “늘 이메일로 소통해 오해를 피하고 의도한 바를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밝혔다.● 사이토, “역사 흐름 속에서 나온 뛰어난 작가” 일본에서 ‘작별하지 않는다’, ‘흰’, ‘희랍어 시간’ 등 한강 작품 5편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이토 씨는 1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에는 마음 깊은 속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사이토 씨는 2014년 박민규의 ‘카스테라’로 번역계에 데뷔했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번역해 일본에서 한국 문학 붐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그는 여러 한국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의 아픈 역사에 주목했다. 한강에 대해서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나온 뛰어난 작가이지, 결코 고립된 천재가 아니다”라며 “아픈 역사를 겪은 단단함과 그 위에 펼쳐지는 섬세함이 한국 문학의 매력”이라고 평가했다.● 칼손, “끔찍한 사건 묘사하는 부드러운 언어가 특징”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시상한다. 그런 만큼, 스웨덴어로 된 현지 출간이 문학상 수상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한강의 책은 ‘작별하지 않는다’, ‘흰’,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등 4권이 스웨덴어로 번역됐다. 칼손 씨는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을 아내 박옥경 씨와 공동 번역했다. 칼손 씨가 대산문화재단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그는 대학생 때 헌책방에서 김지하의 시집 영어판을 접한 뒤 한국 문학에 매료됐다.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교수인 그는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작품을 번역할 땐 끔찍한 사건과 사건을 묘사하는 부드러운 언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54)은 평소 20대 음악가인 아들과 각별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날 저녁에 차를 한잔하면서 수상의 기쁨을 나눈 것도 아들이고, 2114년 공개될 한강의 마지막 작품 또한 아들 관련 얘기일 정도. 한강은 아들과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공통의 관심사인 피아노 얘기도 많이 한다고 한다. 한강에게 아들은 문학적 영감의 한 원천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셈이다. 13일 문학계에 따르면 한강 모자는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독립서점 ‘책방 오늘’을 열었다. 앞서 2018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운영하다가 장소를 옮긴 것. 한강은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독립서점을 세웠는데 아들은 낭독회 행사 등을 돕고 있다. 한강은 장기간 해외에 머물 때도 아들과 종종 동행한다. 이때 아들이 해외에서도 음악 연습을 지속할 수 있도록 숙소에 악기를 들여놓기도 했다.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 전화를 받았을 때도 한강은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였고, 한강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오늘 밤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했다. 앞서 한강은 2019년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에 2114년에 출간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전달했는데, 그 제목이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다. 한강은 당시 “내가 죽어 사라진 지 오래고, 아무리 수명을 길게 잡는다 해도 내 아이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강이 당초 출산 의사가 없다가 마음을 바꾼 계기가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0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자전 소설 ‘침묵’에서 여성 주인공은 “잔혹한 현실의 일들을 볼 때면 고민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며 출산을 망설인다. 하지만 “여름엔 수박이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다. 그런 것 다 맛보게 해 주고 싶지 않냐”는 남편의 설득에 출산을 결심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들이 이젠 한강 문학의 일부분이 됐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54)은 평소 20대 음악가인 아들과 각별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날 저녁에 차를 한잔하면서 수상의 기쁨을 나눈 것도 아들이고, 2114년 공개될 한강의 마지막 작품 또한 아들 관련 얘기일 정도. 한강은 아들과 함께 책방을 운영하고 공통의 관심사인 피아노 얘기도 많이 한다고 한다. 한강에게 아들은 문학적 영감의 한 원천이자 예술적 동반자인 셈이다. 13일 문학계에 따르면 한강 모자는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독립서점 ‘책방 오늘’을 열었다. 앞서 2018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운영하다가 장소를 옮긴 것. 한강은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면 좋겠다는 마음에 독립서점을 세웠는데 아들은 낭독회 행사 등을 돕고 있다. 한강은 장기간 해외에 머물 때도 아들과 종종 동행한다. 이때 아들이 해외에서도 음악 연습을 지속할 수 있도록 숙소에 악기를 들여놓기도 했다고. 10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수상 전화를 받았을 때도 한강은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였고, 한강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오늘 밤 아들과 차를 마시며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했다. 앞서 한강은 2019년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에 2114년에 출간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전달했는데, 그 제목이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다. 한강은 당시 “내가 죽어 사라진 지 오래고, 아무리 수명을 길게 잡는다 해도 내 아이 역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강이 당초 출산 의사가 없다가 마음을 바꾼 계기가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0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자전 소설 ‘침묵’에서 여성 주인공은 “잔혹한 현실의 일들을 볼 때면 고민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며 출산을 망설인다. 하지만 “여름엔 수박이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다. 그런 것 다 맛보게 해 주고 싶지 않냐”는 남편의 설득에 출산을 결심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들이 이젠 한강 문학의 일부분이 됐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황석영(81)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중 한 명이자 노벨 문학상에 근접한 작가로 평가받아 왔다. 그는 2016년 한강(54)이 수상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에서 올해 4월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후배 소설가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다음 날인 11일 오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황석영은 “놀랐다. 그리고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다음은 황석영이 한강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보내준 글의 전문.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한강 신드롬’이 몰아치고 있다. 국내 서점가는 모처럼 특수를 누리며 아침부터 ‘오픈런’과 ‘품절 대란’이 벌어졌고, 영상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강 책 인증 챌린지’ 행렬을 이어갔다. 외신들이 한강에 대해 “한국의 (프란츠) 카프카”라는 극찬을 쏟아내면서 일본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서점가에도 ‘한강 돌풍’이 불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을 발표한 10일 저녁부터 11일까지 한강의 책들은 교보문고, 예스24 등 국내 주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싹쓸이하며 3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11일 교보문고 홈페이지 베스트셀러 1∼9위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 모두 한강의 작품이었고, 예스24의 순위 1∼11위도 모두 한강 작품이 꿰찼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오전에 책이 품절돼 광화문 매장으로 긴급하게 물량을 보냈고, 그마저 다 떨어져 다음 주 월요일 추가 입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온라인 서점에선 한강의 책 대부분에 ‘예약 판매’ 딱지가 붙었다. 쿠팡에서도 10일 오후 9시경 ‘채식주의자’ 등 주요 작품의 재고가 동나 사전 예약한 작품은 다음 달 1일에야 받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강의 작품이 많게는 3000배 이상 판매가 폭주하고 있다”며 “온·오프라인 서점들이 책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돌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외 온라인 서점가에서도 ‘한강 돌풍’이 불고 있다. 미국 도서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한 아마존에선 ‘채식주의자’가 문학 1위, 종합 10위에 올랐고, 중국 최대 온라인 서점인 당당왕(當當網)과 독일·프랑스 아마존 사이트에서도 채식주의자는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로 등극했다. 독일 아마존에선 해당 순위에서 1위부터 8위까지 모두 한강의 작품들로 채워졌다. 한강의 부친인 소설가 한승원은 11일 오전 전남 장흥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딸이)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더라”고 전했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기자회견은 갖지 않기로 했으며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자세한 소감을 밝히겠다고 했다. 한강은 같은 날 오후 10시경 출판사를 통해 이런 입장을 전하며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면서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 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채식주의자’ 美-獨-佛-中 판매 1위… SNS선 ‘한강 책 인증’ 열풍글로벌 ‘한강 신드롬’국내 베스트셀러 1~10위 휩쓸어… 초판 소장하려 중고서점까지 발길日 최대 서점선 특별판매대 마련… 팬 인증 등 MZ세대 ‘챌린지’ 행렬“한강 작가의 책 1권만이라도 구하러 경기 하남에서 왔습니다.” 대학생 김원준 씨(24)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서점은 점심시간을 틈타 한강의 책을 사러 온 직장인들로 이미 인산인해였다. 전날 매진돼 비어 있던 매대에 한강의 책 꾸러미가 배송돼 놓이자 노끈이 풀리기도 전에 매대 옆으로 15m가량 긴 줄이 생겼다. 하지만 새로 진열된 ‘소년이 온다’ ‘흰’ 등 200여 권의 책이 30분도 되지 않아 동나면서 김 씨 등 상당수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초판’ 소장하러 중고 서점까지 헌책방으로 발걸음을 돌린 독자들도 많았다. 특히 한강의 ‘초판’ 책을 소장하기 위해 중고 서점을 찾는 시민도 있었다. 대학원생 강혜진 씨(23)는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개정판’이 나오기 전 구판을 확보하려고 왔다”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증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11일 서점가에 따르면 10, 11일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에서 한강의 책은 30만 부 넘게 판매됐다. 10일 오후 8시부터 11일 오후까지 교보문고에선 10만3000여 부, 예스24에선 11만8000여 부, 알라딘에선 7만 부 이상이 팔렸다. 세 서점의 시장 점유율은 90% 정도 된다.해외 독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일본 도쿄 최대 규모의 기노쿠니야 서점 신주쿠 본점에는 ‘축 노벨 문학상 수상 한강’이라고 적힌 홍보 문구가 내걸린 특별 판매대가 마련됐다. 이날 오전에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대표작 번역본은 대부분 팔렸고, 일부 영어 번역본 위주로 남았다. 일부 고객들은 특별 코너를 찾았다가 책을 구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요시노 유지(吉野祐司) 기노쿠니야 서점 부점장은 “한국 문학은 원래도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라 다른 노벨 문학상 발표 때와 비교해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 스트랜드 서점은 한강의 책들을 전시한 특별 매대를 설치하고 이를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소개하기도 했다.● ‘한강 책 인증’ SNS 챌린지도한강의 모교인 연세대는 축제 분위기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캠퍼스에는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도서관에선 학생들의 신청이 몰려 한강의 책 예약이 마감되는 등 ‘대출 경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전국의 인문계열 학생들은 ‘문과생의 쾌거’라며 자축하기도 했다. SNS에는 그가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인문학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금일부로 ‘문송합니다’ 사용 금지”, “문과는 승리한다”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로, 인문계 학생들이 취업난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한강에 대한 ‘팬심’이나 한강의 책을 사진으로 찍어 인증하는 ‘SNS 챌린지’ 행렬도 이어졌다. 대학생 이윤재 씨(22)는 “한강의 작품을 누가 더 많이 읽나 SNS로 내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과거 한강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에서도 노벨 문학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 온라인 글에는 ‘성지 순례하러 왔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한강의 소설 내용 중 본인이 좋아하는 대목을 필사해 SNS에 올리는 독자들도 많았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54)의 가장 마지막 작품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다. 내용도, 분량도 비밀에 부쳐진 이 작품은 90년 뒤인 2114년에야 공개되기 때문이다. 11일 출판계에 따르면 한강은 2019년 5월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에 2114년에 출간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전달했다. 미래도서관은 2014년부터 100년간 매년 작가 1명의 미공개 작품을 받아 2114년에 100편을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2014년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를 시작으로 튀르키예 작가 엘리프 샤파크,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네우스고르 등이 참여했다. 한강은 다섯 번째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한강의 미공개작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 분량이나 소재, 내용은 모두 알려지지 않은 채 현재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한강은 원고 전달식 당시 “나의 원고가 이 숲과 결혼을 하는 것 같기도,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장례식 같기도,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긴 잠을 위한 자장가 같기도 하다”고 했다. 당시 원고는 흰 천에 싸인 채 전달됐다. 한강은 “한국에서 신생아를 위한 배냇저고리, 소복, 홑청으로 흰 천을 사용하기에 원고도 흰 천으로 감쌌다”고 밝혔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8회 인촌상 시상식이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11일 열렸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이어 나가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진강)와 동아일보사는 인촌 선생의 탄생일인 10월 11일에 맞춰 매년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날 수상자는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교육) △박정자 연극배우(언론·문화)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인문·사회) △권인소 한국과학기술원 전기및전자공학부 KAIST 교수(과학·기술)로 각각 상장과 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수상자 공적은 본보 9월 9일자 A8면 참조 이진강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인촌상은 인촌 선생의 나라 사랑을 되새기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밝게 만드는 노력을 공유하기 위함”이라며 “올해 수상자들의 모습에서 민족을 위해 조용히 헌신하셨던 인촌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밝혔다. 김도연 인촌상 운영위원장은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운영위원회는 외부 심사위원 16명을 위촉하고 후보군을 추린 뒤 6∼8월 수차례 회의를 열고 최종 수상자를 확정했다.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82)은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교육과 지원사업을 이끌어 왔다. 특히 장애인 학교와 지역사회의 상생과 통합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남서울은혜교회의 원로목사로 1996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밀알학교를 설립했다. 지체 장애를 가진 스무 살 터울 막내 여동생이 취업에 실패하는 모습을 보며 장애인들을 돕기로 했다. 유치원 등 총 13학급으로 출발한 밀알학교는 현재 초중고교, 직업 훈련 과정인 드림대학까지 총 31학급 규모다. 재학생은 총 196명. 재단에서 운영하는 굿윌스토어(기증품 판매점)는 33호점까지 확장했고 장애인 직원만 약 400명이다. 홍 이사장은 “민족의 스승들 같은 역대 인촌상 수상자의 뒤를 이어 큰 상을 받는 건 두렵다”면서도 “마지막까지 밀알 정신으로 겸허히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정자 연극배우(82)는 1962년 연극 ‘페드라’ 이후 올해까지 62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오르면서 일생을 연극에 헌신했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철학으로 160여 편의 작품에 주연, 조연, 앙상블(주·조연 제외한 배역)로 출연했다. ‘나의 종교는 연극’이라는 말로 삶의 지표를 표현했다. 1986년 연극 ‘위기의 여자’로 여성 관객들을 대거 문화 현장으로 불러내는 트렌드도 만들었으며 연극인 복지 향상에도 힘썼다. 박 배우는 시상식에서 “인촌상이 연극배우에게 처음 주어지는데 앞으로 후배에게 빗장이 열린 것 같아 더욱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신조가 담긴 시라며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를 낭독했다. 안대회 교수(63)는 한문학 연구 권위자로 고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8, 19세기 문집을 집중 연구해 조선시대의 생생한 삶을 보여주는 미시사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 ‘학술 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일’이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한문 자료들을 번역해 왔다. ‘택리지’ 이본을 수집해 정본을 확정하고, 주석을 붙여 번역 출간하는 등 조선 후기 풍속사와 문화예술사 연구의 기반을 구축했다. 안 교수는 “수많은 옛 문헌의 숲을 뒤져 연구하고 대중화한 30여 년의 끈기와 수고를 인정해주신 인촌기념회에 감사하다”며 “인촌상이 제 어깨를 누르며 더 진중하게 학문에 열중하라고 요구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권인소 교수(66)는 1980년대 국내 불모지였던 로보틱스·컴퓨터비전 분야에 도전해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내놨다. 1세대 컴퓨터비전 연구자로 200여 명의 제자를 양성했고 인공지능(AI) 컴퓨터비전 분야의 기틀을 닦았다. 최근 인간의 주의 집중을 모사한 ‘어텐션’ 모델을 컴퓨터비전으로 확장했다. 영상 인식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인 ‘CBAM’ 알고리즘을 개발했고, 관련 논문은 2만 회가 넘는 압도적인 인용 횟수를 기록했다. 권 교수는 “대학 때부터 존경한 인촌 선생의 유지를 기리는 상을 받아 영광”이라며 “상금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돕고 AI 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엔 오명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안병영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장석영 대한언론인회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축하 공연은 박정자 배우의 후배인 뮤지컬 배우 김호영, 루나와 ‘오페라의 유령’ 주연 배우 브래드 리틀이 펼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