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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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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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수는 다시 분당에 출마할 수 있을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이번 전당대회의 진짜 패자를 꼽자면 안철수와 이준석이다.” 한 여당 의원은 김기현 대표의 승리로 끝난 국민의힘 3·8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46만여 명의 당원이 참여한 투표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갈렸지만, 정말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건 안철수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라는 것. 정계 입문 이후 처음으로 집권 여당 당권 경선에 도전했던 안 의원은 1위인 김 대표(52.9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23.3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향후 행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초 안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대선 후보 단일화에 이어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을 택한 건 다분히 차기 대권을 노린 포석이었다. 집권 여당의 당권을 쥐고, 이후 내년 총선의 승리를 발판으로 차기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시작부터 차질을 빚게 된 것. 23.37%라는 안 의원 득표율에 대해 “안 의원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 그러나 여권 내에서는 “단기필마로 뛴 안 의원이 20%가 넘는 당원들의 지지를 받은 건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다는 의미”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연 안 의원의 정치적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혼선 극명하게 보여준 3월 3일 安의 행보 전당대회에 도전하며 안 의원이 처음 꺼내 든 전략은 윤 대통령과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구분이었다. 대선 후보 단일화 등을 앞세워 친윤(친윤석열) 표심에 호소하면서도, 윤핵관을 비판하며 친윤 핵심 인사들의 거친 행보에 불만을 갖고 있는 당원들의 마음도 동시에 얻겠다는 포석이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시작부터 제동이 걸렸다.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는 시나리오는 당초 안 의원의 선거 전략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안 의원 간 연대를 뜻하는 ‘윤-안 연대’라는 표현은 물론이고 윤핵관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문제 삼았다. “대통령실의 전당대회 개입”이라는 반발도 일었지만 대통령실은 개의치 않았다. 한 여권 관계자의 말. “안 의원의 스텝이 꼬인 건 이 시점부터였다. 친윤에 이어 대통령실의 대대적인 공세가 펼쳐질 때 안 의원은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쉽게 말하면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윤 표심이 안 의원에게 쏠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안 의원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실제로 컷오프(예비경선)를 통과한 다른 당권 주자들은 자신의 지향점을 명확히 했다. 친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김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호흡을 가장 강조했다. 반면 천하람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은 윤핵관은 물론이고 대통령실까지 성토하며 ‘반윤(반윤석열)’ 색채를 분명히 했다. 두 사람의 위치 선점으로 안 의원이 중간에 낀 신세가 된 것. 여기에 황교안 전 대표는 김 대표 개인을 집중 공격하는 제3의 방향을 택했다. 전당대회 막판까지 김 대표를 괴롭혔던 울산 땅 투기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도 황 전 대표였다. 더더욱 안 의원이 설 지점은 좁아졌다. 그런데 전당대회 막바지 대통령실 행정관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안 의원은 전략을 바꾼다. 고발 카드까지 꺼내 들며 대통령실과 명확하게 대립각을 세운 것. 이런 안 의원의 애매한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건 3일이었다. 이날 오전 안 의원은 ‘대선 후보 단일화 1주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자신이 공헌했다는 점을 알려 친윤 표심을 붙잡겠다는 의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일 오후에는 안 의원 캠프의 김영우 선거대책위원장이 나서 대통령실 행정관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을 강하게 성토했다. 김 위원장은 “안철수 선대위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제의한다. 책임져야 하는 인사들에 대해 무겁게 책임을 묻고 필요하다면 직접 수사 의뢰를 하더라도 모든 걸 털고 가길 바란다. 이게 공정 상식 법치를 주장하는 윤석열 정부다운 조치다”라고 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차라리 처음부터 대통령실과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모르겠는데, 선거 막판 뒤늦게 태세 전환을 한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친윤, 비윤 표심을 다 잡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둘 다 놓친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의 이런 행보를 두고 여권에서는 “애초부터 대통령실과 윤 대통령의 뜻을 잘못 읽었던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 의원은 단일화에 대한 고마움 등으로 대통령실이 자신을 최소한 비토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작 대통령실은 김 대표 지원에 노골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안 의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에 대해 지난해 대선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이렇게 전했다.“지난해 6·1지방선거와 함께 열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이준석 당시 대표는 안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맞붙이려 했다. 이재명 대표가 택한 인천 계양을에 안 의원을 투입해 ‘빅 매치’를 만들어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안 의원에게 경기 성남 분당을 공천을 주자는 분위기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에 이어 분당을 공천으로 윤 대통령은 안 의원에게 진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安의 다음 출마 놓고 이미 부산, 전남 등 거론 전당대회에서 패한 안 의원의 입각 가능성도 나오지만 친윤 진영에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하는 건 이런 윤 대통령의 인식 때문이다. 한 친윤 의원은 “안 의원이 장관을 하고 싶었다면 첫 조각 당시 장관 제안을 받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안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현재 지역구인 분당갑에 다시 출마하기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안 의원이 전당대회 선거운동 과정에서 여러 차례 “당이 원하면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지역구였던 분당을은 2016년 20대 총선을 제외하면 국민의힘 후보가 계속 당선된 여당의 텃밭이다. 김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안 의원 정도의 체급이면 안전한 곳이 아닌 험지로 가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안 의원이 이를 거부하며 분당을 출마를 고집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이에 따라 여권 내에서는 이미 안 의원의 차기 총선 출마 지역을 둘러싼 설왕설래가 시작됐다. 한 여권 인사는 “안 의원의 고향인 부산을 꼽는 사람도 있다. 현재 부산에 민주당 의원이 3명인데, 그중 전재수 의원 지역구(북-강서갑)가 여당에 가장 힘든 곳이다. 아니면 당 지도부가 전략적으로 안 의원을 호남에 공천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의 호남 석권을 진두지휘했던 안 의원에게 여당의 호남 공략을 맡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안 의원의 처가는 전남 여수다. ● 실책은 있어도 실정은 없었던 安이번 전당대회 패배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한 안 의원이지만, 만약 내년 총선에서 험지 출마 후 생환한다면 안 의원을 둘러싼 평가는 또 한번 급변할 가능성도 있다. 정계 입문 이후 안 의원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이번에는…’ 기대가 또 떠오를 수 있는 것. 이처럼 대체 왜 안 의원에게 항상 가능성이 따라붙는걸까. 이유는 하나, 안 의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입지 때문이다. 바로 ‘정치적 실책(失策)은 했어도 실정(失政)은 없었다는 점’이다. 실정을 하려면 일단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안 의원은 정계 입문 이후 아직까지 권력을 잡은 적이 없다. 대권은 물론이고 제1야당의 내부 권력조차 잡지 못했다. 대선에 패하고도 제1야당의 대표가 돼 당을 장악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보면 제1야당의 내부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안 의원은 2014년 당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의 대표를 맡긴 했지만, 그 기간은 4개월여에 불과했다. 이후 안 의원은 제3지대에 머물렀다. 과거 안 의원과 함께 일했던 정치권 인사는 “긴 정치 기간 동안 정치적 책임을 물을 만한 행보와 업적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안 의원에게 항상 ‘가능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고, 동시에 대중의 일정한 관심과 지지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안 의원은 현대 정치사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험을 했다. 세 번의 국회의원 선거 당선, 대선 낙선 및 후보 단일화, 서울시장 낙선 및 후보 단일화, 창당, 합당, 분당, 무소속 등을 모두 경험한 건 안 의원밖에 없다. 단 한 번의 선거에서 반짝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정치권의 주목할 만한 인사로 활동했기에 가능했던 행보다. 이런 곡절을 거친 안 의원은 앞으로도 쉽게 꺾이지 않을 태세다. 그의 표현대로 “10년 넘게 단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일 전당대회 캠프 해단식에서 안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저는 편견 없고 그런 사람입니다. 낙관적인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우리나라를 더 좋은 나라로 바꿀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 정치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반드시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처음 정치에 뛰어들 때의 신념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결국 이 흐름대로라면, 안 의원은 2027년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짚어봐야 할 점 하나. 대한민국 건국 이후 주요 정당 후보 중 대선에 네 번 도전한 사람은 단 한 명, 김대중(DJ) 전 대통령뿐이다. DJ는 1971년, 1987년, 1992년, 1997년 대선에 도전했고 사실상 생애 마지막 도전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반면 1997년, 2002년, 2007년 등 3연속 대선에 도전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연이은 도전에도 끝내 대권을 잡지 못했다. 만약 안 의원이 2027년 대선에 도전한다면 4번째 대권 도전이 된다. 그런데, 정식 후보 등록을 기준으로 한다면 2017년 대선부터 3연속 도전이다(그는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과연 안 의원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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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산업의 먹구름을 지켜만 보는 국회 [광화문에서/한상준]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292억 달러(약 168조 원) 규모로, 전체 수출액 중 18%에 달한다. 이처럼 수출의 근간인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미중 갈등 등으로 대(對)중국 수출이 줄면서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42.5% 줄었다. 여기에 반도체 패권 장악 욕심을 감추지 않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 등을 무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보조금 지원의 조건으로 초과 수익 반납과 생산 기밀 공개를 내걸었다. 여기에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한국도 포함시킬 기세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3일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말로만 영업사원 1호라고 하지 말고 반도체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부터 걷어내십시오”라고 했다. 수출 확대와 주력 산업 육성은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먹구름을 없애기 위해 국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나.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 대책을 논의하는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2일 닻을 올렸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도 국가전략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거창한 취지와 달리 정작 첨단산업특위는 입법권, 즉 법을 만들 권한이 없다. 특위는 여야 합의로 입법권 부여를 결정하는데, 여야는 첨단산업특위를 꾸리며 입법권을 주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특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여야 의원들도 한목소리로 “입법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위가) 보고서 하나 내고 끝난다”고 했지만 첨단산업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기 위한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첨단산업을 대하는 국회의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K칩스법’의 하나인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은 통과될 기미가 없다. 조특법 개정안은 반도체, 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현재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는 내용이다. 미국과 대만은 이미 설비투자,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해 큰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을 시행 중이다. 조특법 개정안에 대해 민주당 내에선 “전략산업과 관련해 많은 지원 해도 된다, 세제 혜택 많이 줘도 된다”(김태년 의원)는 목소리도 있지만 “왜 이렇게 득달같이 이 정부는 지원을 못 해서 안달복달이냐”(양경숙 의원)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재개정 지시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을 총력으로 설득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책을 집행하는 건 행정부, 그리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몫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의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드는 건 입법부인 국회만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먹구름이 정말 걱정된다면 국회가 나서면 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내부 권력투쟁을 향한 열정의 반의반만큼이라도 국가 경제에 쏟을 수는 없나.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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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도체 산업의 먹구름, 지켜만 보는 국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대한민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대한민국의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1292억 달러(약 168조 원) 규모로, 전체 수출액 중 18%에 달한다. 이처럼 수출의 근간인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1년 전과 비교해 7.5% 줄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5개월 연속 감소세다. 수출 부진은 반도체의 부진 때문이다. 2월 반도체 수출액은 59억6000만 달러로 1년 전에 비해 42.5% 줄었다. 여기에 반도체 패권 장악 시도에 나선 미국은 노골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박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따라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390억 달러(약 50조 원), 연구개발(R&D) 분야에 132억 달러(약 17조 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단, 보조금을 받는 조건으로 일정 기준 이상 초과 수익은 반납해야 하고 반도체 생산 및 연구기술을 미 정부에 공개할 경우 보조금을 우선 지원한다. 쉽게 말해 반도체 생산 기밀을 공개하는 등 미국 뜻대로 움직여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3일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말로만 영업사원 1호라고 하지 말고 반도체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부터 걷어내십시오”라고 했다. 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반도체 산업까지 위기 상황으로 내몰린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라고 성토했다. 수출 확대와 주력 산업 육성은 정부의 중요한 과제다. 다만 반도체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을 없애기 위해 과연 국회는 뭘 하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입법권 없는 국회 첨단산업특위 “첨단산업 기술력은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넘어 미래 경제, 안보 패권에 대한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첫 회의. 위원장을 맡은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은 첨단산업특위가 꾸려진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첨단산업특위는 반도체, 2차 전지 등 국가 첨단산업에 대한 체계적 지원과 육성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졌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도 한국 경제의 현재이자 미래인 첨단산업을 입법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다.그러나 첨단산업특위는 닻을 올리기도 전 잡음이 일었다. 18명의 위원 중 그간 국회에서 반도체 관련 입법을 주도해 온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반도체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양 의원은 특위 신청서를 냈지만 빠졌고, 그 자리에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들어갔다. 광주 광산구청장,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낸 민 의원의 반도체 관련 경력은 없다. 이런 인선을 두고 여권 관계자는 “국회의장실은 상임위 안배 균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은 민주당의 ‘정치적인 뒤끝’ 때문이라는 걸 야당 의원들도 알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민주당이 주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 입법 독주에서 당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양 의원이 민주당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당시 양 의원은 검수완박 입법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민주당은 부랴부랴 민 의원을 ‘위장 탈당’ 시켜 양 의원 대신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 배치했다. 결국 민 의원이 검수완박 입법에 찬성을 표하면서 안건조정위는 무력화됐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대한민국의 존망을 다투는 산업들을 우리가 만들어내지 못하면, 육성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한 첨단산업특위에 정파적인 고려가 개입된 것. 게다가 첨단산업특위의 가장 큰 문제는 입법권, 즉 법을 만들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며 부랴부랴 특위는 만들었지만, 정작 여야가 핵심적인 권한인 입법권은 특위에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첫 회의에서 “실제로 입법권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특위가) 그냥 보고서 하나 내고 끝나버리고, 상임위로 올라가서 저희가 낸 보고서가 제대로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라고 우려를 표했고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도 “특위 입법권에 대해서는 (이 의원과) 같은 입장이다”라고 했다. ‘무늬만 특위’가 될 수 있다는 여야 의원들의 우려에 유의동 위원장은 “입법권 확보 문제는 각 당 원내지도부에 의견을 구해서 대표 간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첨단산업특위에 입법권을 부여하기 위한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다. 첨단 산업을 대하는 국회의 안일한 인식을 보여주는 장면은 또 있다. ● 1월도, 2월도 넘긴 ‘K칩스법’“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먹고 잘 살고, 가장 돈을 많이 벌고 망할 가능성도 없는 기업에 대해서 왜 이렇게 득달같이 이 정부는 지원을 못 해서 안달복달입니까?”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이같이 추궁했다. 이날 회의에서 추 부총리는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과 관련해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지만 돌아온 건 “대기업에 왜 특혜를 주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날 선 공세였다. 조특법 개정안은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기술의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은 현재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높이자는 내용이다. 앞서 기재부와 여야는 지난해 12월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6%에서 8%로 늘리기로 뜻을 모았고,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미국, 대만 등 반도체 경쟁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공제율”이라는 반도체 업계의 반발과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로 지금과 같은 개정안이 만들어진 것.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 설비투자 비용의 25%를 세금에서 깎아준다. 삼성전자의 경쟁자인 TSMC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대만 정부는 연구개발(R&D)비용의 25%, 설비투자 비용의 5% 세액공제를 적용하고 있다. 두 나라가 이런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건 경제와 안보가 뒤섞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낸 조특법 개정안은 1월도, 2월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3월 국회가 여야 간 대치로 파행할 가능성이 커 3월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물론 민주당의 지적처럼 지난해 입법 과정에서 세수(稅收)만 생각하고 안일하게 세액공제율을 줄인 기재부도 문제다. 하지만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부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도 “의석수가 적다”는 핑계만 댈 게 아니라 야당이 원하는 걸 내주면서라도 협상에 임해야 한다. 민주당 역시 반도체 산업 지원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만을 위한 거라는 단편적 사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건 행정부, 그리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몫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의 근거가 되는 법을 만드는 건 오로지 입법부인 국회만 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먹구름이 정녕 걱정된다면 국회가 나서면 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내부 권력 투쟁을 향한 열정의 반의 반만 국가 경제에 쏟을 수는 없는 걸까.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 202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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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아용인’의 최종 성적은? 예측 불허 與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1부 리그’ 격이 당 대표 선거라면, ‘2부 리그’는 최고위원 선거다. 언론의 관심은 김기현 안철수 천하람 황교안 후보가 극한의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1부 리그에 집중되고 있지만, 2부 리그 역시 당 대표 선거 못지않게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특히 최고위원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이른바 ‘천아용인’이라고 불리는 ‘이준석 사단’의 성적표다.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 중 당 대표 선거에는 천 후보가, 최고위원 선거에는 허은아 김용태 후보, 그리고 청년최고위원 선거에는 이기인 후보가 참전했다. 친이준석계는 네 후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 ‘천아용인’이라는 명칭으로 공동 선거 운동을 펼치고 있다.● “1인 2표+후보 난립, 최고위원 선거 예측 불허” “이번 전당대회에서 가장 예측하기 힘든 게 최고위원 선거 결과다.” 최근 만난 한 여권 인사는 전당대회를 둘러싼 혼전 양상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최고위원 선거는 당 대표 선거와 달리 후보도 많고, 투표 방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네 명의 후보가 뛰어든 당 대표 선거는 약 84만 명의 당원이 한 표 씩을 행사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승리한다. 만약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그러나 최고위원 선거는 다르다. 8명의 후보가 본경선을 치르는 최고위원 선거는 당원 1인당 2표를 행사해 상위 득표자 4명을 추린다. 다만 당선자 4명 중 한 명은 여성 후보의 몫이다. 만약 상위 득표자 4명이 모두 남성일 경우 여성 후보자 중 최다 득표자가 최고위원이 되는 셈이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는 남성 후보가 5명, 여성 후보가 3명이다. 여기에 청년최고위원 선거가 별도로 있다. 결국 전당대회 투표에 나서는 당원은 당 대표 선거 1표, 최고위원 선거 2표, 청년최고위원 선거 1표 등 총 4표를 행사하게 된다. 최고위원 선거가 혼전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1인 2표라는 제도 때문이다. 8명의 최고위원 후보 중 김병민 김재원 민영삼 조수진 태영호(가나다순) 후보는 범친윤(친윤석열)계로, 허은아 김용태 후보는 비윤(비윤석열)계로 꼽힌다. 정미경 후보는 스스로 친윤, 비윤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이라고 밝히고 있다. 친윤 진영은 4명의 최고위원을 모두 친윤 후보로 채우겠다는 목표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 녹록치가 않다는 점이다. 한 여당 의원은 “가까운 당원들에게 ‘친윤 최고위원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어도 특정 후보 한 명, 한 명을 지정해 찍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반면 이 전 대표 측은 이런 점을 노리고 2명의 최고위원 후보만 내보낸 것”이라고 했다. 친윤 후보 5명이 저마다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과 달리 이 전 대표 측은 “2표를 각각 허은아, 김용태 후보에게 찍어달라”고 호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허 후보의 경우 전체 순위와 상관 없이 같은 여성인 조 후보와 정 후보만 제친다면 지도부 입성이 가능하다. 최고위원 선거가 혼전이라는 건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리얼미터가 21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성인 남녀 1004명(국민의힘 지지자4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 선호도 조사 결과 민영삼(14.8%), 김재원(13.6%), 조수진(13.1%), 태영호(9.2%), 김병민(9.1%), 김용태(8.7%), 허은아(6.4%), 정미경(6.0%) 후보 순으로 집계됐다. 1위와 8위의 격차가 8.8%포인트인 상황에서 후보들 간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 ‘천아용인’ 성적에 따라 與 지도부도 요동 가능성 최고위원 선거가 주목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이준석 사단’의 천 후보가 결선투표 진출 뒤 역전을 노리는 건, 단 한 명만을 뽑는 당 대표 선거에서 2위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천 후보가 2위를 차지한다 해도 “어려운 도전으로 성과를 거뒀다”는 정치적 평가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향후 당 지도부에서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최고위원 선거는 다르다. 청년최고위원까지 더해 5명의 최고위원 당선자 중 비윤 진영 후보가 포진할 경우 당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는 요동을 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비윤 진영이 단 한 명의 최고위원도 배출하지 못한다면 비윤 진영 자체가 소멸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최고위는 사무총장 등 당직자 임명, 국회의원 후보자 등 공직후보자 의결 등의 기능을 갖는다. 결국 친윤 진영이 당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까지 석권을 노리는 건 내년 총선 공천 과정 등에서 당 지도부 간 이견을 최소화 하겠다는 의도다. 반면 비윤 진영은 최고위원을 배출해 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최고위에 담아 내겠다는 목표다. 여권 관계자는 “당원들의 성향에 따라 최고위원 투표를 친윤과 비윤 후보에게 각각 1장씩 하는 경우도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최종 집계를 열어봐야 안다”고 했다. 최고위원을 포함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투표는 다음달 4일부터 5일까지 휴대전화 모바일 투표로 실시된다. 이어 모바일 미투표자를 대상으로 6일부터 7일까지 자동응답전화(ARS) 투표가 진행된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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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의 끝은 2·8의 끝과 다를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원래 집안싸움이 더 치열한 법이다.”여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여권 내부 갈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각 정당의 대표적인 내전 두 가지는 대선 후보 경선과 당대표 선거다. 한배를 탄 식구끼리의 경쟁인 탓에 이념적, 정책적 차이가 작아 격렬한 네거티브 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친윤(친윤석열) 진영이 유승민 전 의원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지난 대선 후보 경선의 앙금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 간 갈등의 근원은 결국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가 맞붙었던 대선 후보 경선이다. 치열한 내전의 끝이 파국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의 2015년 2·8 전당대회다. ● 끝내 분열로 이어졌던 2·8 전대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거쳐 2015년 2월 새 지도부를 뽑기 위한 전당대회를 열었다. 당시 당대표 선거에는 민주당을 지탱하는 세 주축 세력이 모두 뛰어들었다.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호남과 옛 동교동 세력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이인영 의원을 각각 내세웠다.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등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쌓이고 쌓인 세 세력의 감정은 전당대회에서 폭발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를 겨냥해 실시됐던 대북송금 특검, 호남 홀대론 등을 두고 박 전 원장과 문 전 대통령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두 사람이 박빙의 선두 경쟁을 벌이면서 친노 진영은 전당대회 전날까지도 지역 대의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지지를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친노 진영이 지방의 86그룹 인사들까지 끌어들여 이 의원 측이 “정말 해도 너무 한다”고 격분하기도 했다.문 전 대통령 측과 박 전 원장 측 모두 “이제는 저쪽과 다시 못 볼 사이가 됐다”고 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은 결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1위인 문 전 대통령과 2위 박 전 원장의 격차는 불과 3.5%포인트. 박 전 원장 측은 당대표 선거에서 졌지만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자신들이 민 주승용 전 의원을 1위로 올려놓았다. 천신만고 끝에 ‘문재인호’는 출범했지만, 치열했던 경쟁의 후유증은 이어졌다. 친노 진영과 비노(비노무현) 진영은 사사건건 충돌했고, 최고위원회는 매번 시끄러웠다. 결국 전당대회가 끝난 지 10개월이 지난 2015년 12월, 당이 깨졌다. 호남이 주축이 된 비노 의원들은 대거 탈당해 국민의당을 새로 만들었다. 전당대회의 갈등이 결국 파국으로 이어졌고, 야권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다. ● 난타전 수위 높아지는 국민의힘 3·8 전대 국민의힘 3·8 전당대회는 집권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전당대회다. 국민의힘은 5년 만에 여당이 됐지만 이준석 전 대표 사태 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제대로 된 당 지도부를 갖추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모두가 지켜본 것처럼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공식 레이스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시끄러웠다.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건 바로 친윤(친윤석열) 진영이다.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친윤 친영의 대대적인 공세를 두고 당내에서조차 “학폭”, “집단 린치”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친윤 진영은 개의치 않고 안철수 후보를 다음 타깃으로 정했다.친윤 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선 후보 단일화를 했던 안 후보의 ‘사상 검증’에도 나섰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공격할 때 썼던 ‘종북’이 내부를 향한 공격의 소재로 쓰이는 상황이 벌어진 것. 대통령실이 안 후보 공세에 공개적으로 나선 것 역시 이례적이었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래도 되나”라는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후보 간 공방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김기현 후보는 16일 호남 합동연설회에서 안 후보를 향해 “민주당식 못된 DNA”라고 공격했고, 안 후보는 김 후보의 KTX 울산 역세권 부동산 투기 의혹 문제를 꺼내 들었다. 당 선거관리위원회까지 공개 경고에 나섰지만, 두 후보 간 난타전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천하람 후보의 선전은 친윤 진영에 부정적인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권 교체를 위해 일단 하나의 깃발 아래 모였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완전한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이번 전당대회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 ‘불안’은 분열의 씨앗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에 나서는 건, 결국 불안 때문이다. 공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이 당 소속으로는 당선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이다. 2·8 전당대회 과정과 그 이후 국면에서 호남의 비노 의원들이 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 진영과 갈등을 빚었던 것도 바로 이 이유다. 당시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향했던 한 의원은 “당시 호남에서 새정치연합은 물론 문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다. ‘이대로 있어도 되나’라는 불안감이 생겼던 건 당연하다”고 회상했다.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친노 진영은 이 불안을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친노 패권주의’라는 우려는 더 커졌다. 결국 친노 인사에 밀려 공천을 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설령 공천을 받더라도 당선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호남 의원들은 탈당과 신당 창당을 택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호남에서는 참패했다. 반면 국민의당은 호남에서의 선전을 기반으로 38석을 얻었다. 그렇다면 3·8 전당대회 이후 국민의힘은 어떻게 될까. 이미 분열의 기운은 감지됐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통령의 탈당과 신당 창당 가능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친윤과 비윤(비윤석열) 진영의 갈등은 여권에서조차 “봉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친윤과 비윤 사이 중간 지대에 있는 의원들도 이미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경원 전 의원을 규탄하는 초선 의원들의 연판장은 당초 43명이 이름을 올렸지만, 종국에는 50명까지 늘어났다. 이름을 올리지 못하면 비윤으로 낙인찍힐까 봐 “내 이름도 포함시켜 달라”는 의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의 분열을 막는 구심력은 이런 불안과 공포를 없애는 데서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계파에 상관없이 공정한 경선과 공천이 이뤄지고, 당이 하나로 뭉쳐 선거를 치르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누가 당을 뛰쳐나가겠느냐”고 했다. 반대로 특정 계파를 중심으로 한 공천 가능성이 커지고, 당의 총선 승리가 불투명하다면 분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새로 뽑히는 여당의 선장이 과연 불안을 없앨 것인가, 아니면 더 키울 것인가. 그 결과에 여권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 202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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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한상준]여야의 ‘퇴행 경쟁’, 갈 곳 잃은 중도층

    1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2%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37%,더불어민주당이 31%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지지율 4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건 중도층이 셋 모두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 성향의 응답자 중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은 42%에 달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중도층이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거대 양당의 한심한 모습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특징을 정리하면 ‘쳐내기 전대’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중심이 돼 김기현 후보를 제외한 다른 당권 도전자들을 하나씩 쳐내고 있다. “친윤(친윤석열)만 남고 다 나가라”는 식이다. 친윤 핵심 인사들에 초선 의원까지 가세해 나경원 전 의원을 결국 주저앉혔고, 이어 안철수 후보에게도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여기에 대통령실까지 뛰어들었다. ‘나경원 사태’ 당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입장문을 내고 친윤의 공세에 가세했다. ‘안철수 때리기’ 국면에선 공무원으로 당적(黨籍)이 없는 이진복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공개 경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례 없는 장면이 펼쳐지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4일 민주당은 6년여 만에 장외집회를 열었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의 말대로 “장외투쟁은 소수당이 국회 내에서 문제 해결 방법이 전혀 없을 때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169석의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원내 제1당이다. 대선 패배로 행정부는 내줬지만, 입법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의 몫이다. 민주당은 이번 장외투쟁의 명칭을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 국민보고대회’라고 정했다. 이를 두고 한 야당 의원은 “진짜 민생파탄이 문제라면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하면 될 일인데…”라고 했다. 실제로 헌정사 최초의 국무위원 탄핵이 보여준 것처럼 여당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결심만 하면 국회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결국 민주당이 국회 밖으로 나간 진짜 이유는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일할 때 벌어진 문제들이다. 검찰의 수사가 이 대표가 제1야당의 수장이 된 뒤 시작된 것도 아니다. 친명(친이재명)계에서도 “이 대표 개인의 문제와 당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모습에 중도 무당층은 계속 늘고 있다. 1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34%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이 응답은 지난주 42%까지 올라갔다. 그간 선거에서 중도층 유권자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정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야는 안주도, 변화도 아닌 퇴행을 선보이고 있다. 과연 누가 먼저 이 ‘퇴행 경쟁’을 끝내느냐에 내년 총선의 승패가 달려 있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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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른쪽엔 윤핵관, 왼쪽엔 이재명…시선 둘 곳 없는 중도층[한상준의 정치인사이드]

    1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32%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37%, 더불어민주당이 31%다. 한 자릿수 이내의 격차로 비슷한 수준이다.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지지율 4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건 중도층이 셋 모두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 가운데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2%에 그쳤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0%에 달했다. 정당 지지도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중도 성향의 응답자 중 25%는 국민의힘을, 30%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은 42%에 달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대선, 총선 등 전국 선거가 닥치면 각 정당이 가장 신경 쓰는 지점은 바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심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 30% 안팎으로 결집하는 상황에서 중도층의 마음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1년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중도층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거대 양당의 현재 상황을 보면 당연한 일이다. ● “尹 대통령, 與 전당대회 개입” 70.4%현재 진행 중인 국민의힘 3·8 전당대회의 특징을 정리하면 ‘쳐내기 전대’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중심이 돼 김기현 후보를 제외한 다른 당권 도전자들을 하나씩 쳐내고 있다. “친윤(친윤석열)만 남고 다 나가라”는 식이다.전당대회는 각 후보들이 내세우는 당의 운영 계획과 가치를 당원들이 선택하는 자리다. 그러나 84만 명의 당원들이 선택에 나서기도 전, 친윤 진영은 무력 행동으로 당권 주자를 주저앉혔다. 친윤 핵심 인사들이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해 “반윤(반윤석열) 우두머리”라고 공격하자 친윤 성향의 초선 의원 50명은 연판장으로 거들었다. 결국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택하며 친윤의 뜻대로 되나 싶었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김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전하자, 태도를 바꿔 갑자기 ‘나경원 구애’에 나선 것.그런데 그 과정도 이상했다. 연판장에 이름을 올렸던 초선 의원 10명은 6일 나 전 의원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집단 압력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자리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일 터. 하지만 방문 목적에 대해 이용 의원은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해서 죄송하고 미안했다, 용서해 달라, 그런 차원이 아니다. (중략) 나 전 의원의 심경이 어떤지, 그런 차원으로 갔을 뿐”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권 주자인 천하람 후보는 “학교폭력 가해자 행태를 멈추라”고 했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때리고, 고데기로 지진 것도 모자라 피해자가 살고 있는 여인숙까지 쳐들어간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가해자들에 빗댄 표현이다. 더 이상한 장면은 대통령실의 참전이다. 대통령실의 ‘핵관(핵심 관계자) 중 핵관’인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나섰다. ‘나경원 사태’ 당시 대통령실의 2인자인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서면 입장문을 내고 친윤의 나 전 의원 압박에 가세했다. 이어진 ‘안철수 압박’ 국면에서는 대통령실의 최선임 수석인 이진복 정무수석비서관이 아예 작심하고 언론 앞에 섰다. 모두 이례적인 일이다.이 수석은 5일 윤핵관을 비판한 안철수 후보를 향해 “대통령실 참모들을 간신배로 모는 것은 굉장히 부당한 이야기”라고 성토했다. 대통령실 참모들도 이날 “국정운영의 적”이라는 말을 언론에 전했다. 사흘 뒤인 8일, 또 한 번 카메라 앞에 선 이 수석은 안 후보를 향해 “아무 말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현직 공무원으로 당적(黨籍)이 없는 정무수석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공개 경고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 대통령실의 이런 행보에 한 여당 의원은 “청와대 시절 철저히 물밑에서 청와대가 특정 당권 주자를 미는 경우는 있었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서는 건 나도 처음 본다”고 했다.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론조사 기관 미디어토마토가 6일부터 8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는 응답은 70.4%로 나왔다.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19.2%, ‘개입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6.8%였다. ● “李 대표 체포동의안 통과시켜야” 55.9%전례 없는 장면이 펼쳐지는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4일 민주당은 서울 숭례문 앞에서 6년여 만에 장외집회를 열었다. 사실 야당의 장외투쟁은 낯선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이던 2013년과 2015년 장외투쟁을 벌였고,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도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삭발과 단식까지 병행한 국회 밖 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과거 야당들과 체급이 다르다. “장외투쟁은 소수당이 국회 내에서 문제 해결 방법이 전혀 없을 때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의 말처럼, 그간 장외투쟁은 의석수 부족으로 국회에서 여권의 독주를 막아낼 여력이 없을 때 야당이 쓰는 최후의 카드였다. 하지만 169석의 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원내 제1당이다. 대선 패배로 행정부는 내줬지만, 입법 권력은 여전히 민주당의 몫이다. 국민의힘보다 54석이 많은 민주당은 이번 장외투쟁의 명칭을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 국민보고대회’라고 정했다.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방탄 논란을 의식해 ‘검사독재’보다 ‘민생파탄’을 앞세운 것. 이를 두고 한 야당 의원은 “진짜 민생파탄이 문제라면 국회에서 입법으로 해결하면 될 일인데…”라고 했다. 실제로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해냈다. 헌정사 최초의 국무위원 탄핵이 보여준 것처럼 여당의 극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결심만 하면 국회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다. 위장 탈당, 무소속 의원 동원 등 다수당의 폭주를 막기 위한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각종 꼼수를 감행할 정도로 창의력과 실행력도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6년 만에 국회 밖으로 나간 진짜 이유는 결국 검찰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대표를 향한 검찰의 수사다. 문제는, 야권 내에서조차 “이 대표 개인의 문제에 과연 당이 총동원되는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현재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일할 때 벌어진 문제들이다. 당시 이 대표는 별다른 당직이 없었고, 자연히 민주당과 직결된 문제들도 아니다. “이 대표를 겨냥한 수사”라고 성토할 수는 있어도 “민주당을 겨냥한 수사”라고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검찰의 수사가 지난해 8월 이 대표가 제1야당의 수장이 된 뒤 시작된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수사는 시작됐다. 친명(친이재명)계에서도 “이 대표 개인의 문제와 당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여기에 검찰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민주당은 또 한 번 격랑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상정된다면 부결시킨다는 계획이다. 체포동의안 처리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 필요해,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부결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론조사 기관 넥스트리서치가 6, 7일 이틀 동안 실시한 조사에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응답은 55.9%, ‘통과시켜선 안 된다’는 응답은 34.6%였다. ● 42%의 중도 무당층은 어디로이런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모습에 중도층은 두 당을 모두 외면하고 있다. 1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중도층의 34%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이 응답은 지난주 42%까지 올라갔다. 또 자신을 중도 성향이라고 답한 응답자 중 윤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22%에 그쳤다. 2016년 20대 총선 직전이던 2015년의 여야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누가 더 못하나’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진영 간 극심한 투쟁이 벌어졌다.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역시 당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결국 분당이라는 파국을 맞았다.다만 후속 행보는 달랐다. 민주당은 당명을 바꾸고, 당시 문재인 대표가 삼고초려 끝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해 총선 공천의 전권을 넘겼다. 김 위원장은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좌장인 이해찬 전 대표와 최고위원을 지낸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공천 배제)시키는 등 거침없이 칼을 휘둘렀다. 당시 당의 주류였던 친노,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총선에서 이기려면 당이 바뀌어야 한다”는 명분 앞에 수긍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변화가 없었다. “진짜 친박을 구분한다”는 뜻의 ‘진박 감별사’라는 말이 등장했고, 계파 갈등은 총선 직전까지 이어졌다. 초유의 ‘옥새 파동’까지 벌어졌다. 선거 결과는 1석 차 민주당의 승리.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2020년 총선까지 이어졌던 민주당 전국 선거 4연승의 시작이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악몽과도 같았다”고 표현하는 연전연패의 서막이다.선거 때마다 ‘캐스팅 보터’로 꼽히는 중도층 유권자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정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여야는 안주도, 변화도 아닌 퇴행을 선보이고 있다. 어떤 정당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무당층이 늘어나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과연 국민의힘과 민주당 중 누가 먼저 이 ‘퇴행 경쟁’을 끝내느냐에 내년 총선의 승패가 달려 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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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현號’와 ‘안철수號’ 어떤 모습일까? 패자의 정치행보는… [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지난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뛰어든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집권 여당 당권 경쟁을 분석했다. 이번 주는 두 사람의 미래와 관련한 분석이다. 특히 1주일 사이에 친윤(친윤석열) 진영은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안 의원을 향한 공세에 나서면서 전당대회의 열기는 더 높아졌다.▶[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與 전당대회 분석① 보기③ ‘김기현號’와 ‘안철수號’의 모습은? ‘김기현 당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과 ‘안철수 당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어떨까. 우선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 모두 “당의 안정”을 앞세우고 있다. 지난해 ‘이준석 사태’와 같은 극심한 내부 갈등은 없을 거란 약속이다.하지만 누가 당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집권 여당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김기현의 국민의힘’과 ‘안철수의 국민의힘’ 모습을 예상하기 전, 사무총장이라는 직책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무총장은 대표, 원내대표와 함께 당의 핵심 보직이다. 대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당의 1인자,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院內), 즉 국회 상임위 등 입법과 관련한 사안을 총괄하는 원내 사령탑이다. 사무총장은 당의 모든 사무를 총괄한다. 당의 재정, 인사 등이 모두 사무총장의 몫이다. 특히 사무총장이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건 선거 때다. 수백억 원에 달하는 선거 비용 집행은 사무총장이 결정해야 가능하다. 여기에 공천 실무도 사무총장의 역할이다. 후보자 심사, 전략 공천 및 경선 실시 여부 등은 모두 사무총장의 손을 거쳐야 한다. 총선의 경우, 선거를 앞두고 사무총장이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각 정당은 보통 사무총장은 일찌감치 공천을 확정시켜 준다. 자신의 지역구에 신경을 덜 쓰고, 당의 선거 준비에 매진하라는 취지다. 이런 면에서 여권 내에서는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친윤 인사가 사무총장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 의원이 친윤 진영의 대대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전당대회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 의원은 지난달 3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사무총장 등 당직 인선에 대해 “내정한 바도 없고 누구에게 제안한 바도 없다. 인선을 구상하는 단계가 아니다”고 했다. 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사무총장으로 유력했던 친윤 핵심 장제원 의원도 “차기 당 지도부에서는 어떠한 임명직 당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친윤 진영이 당을 접수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영남 지역의 3선, 재선 의원 등의 이름이 꾸준히 거론되며 ‘친윤 사무총장’ 예측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친윤 인사가 사무총장을 맡을 경우 내년 총선 공천에서 친윤 진영이 약진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결국 김 의원이 이끄는 국민의힘이 나아갈 방향은 사무총장 인선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안 의원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당직 인선과 관련해 “(구상을) 조금씩 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친윤 색채가 상대적으로 약한 중진 의원들의 당직 임명을 고려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당초 안 의원이 파격적으로 친윤 핵심 인사들에게 사무총장을 맡길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후보 등록일인 2일부터 시작된 친윤 진영의 대대적인 파상 공세로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 또 안 의원이 집권 여당의 선장이 될 경우 대통령실과의 관계 설정도 관심사다. 5일 대통령실의 선임 수석인 이진복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직접 나서 친윤 진영의 ‘안철수 때리기’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의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 참모들은 안 의원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 안 의원 캠프는 대통령실의 파상 공세가 계속될 경우 결국 ‘반윤(반윤석열) 후보’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을 고심하고 있다.여기에 친윤 진영에서 “안 의원이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당을 떠날 수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도 변수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2003년 11월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지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떠나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결국 안 의원이 대표가 된다면 윤 대통령과의 첫 회동 시점 및 형식이 정국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중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차기 원내대표 선거전도 영향을 받게 된다. 원내대표의 임기는 1년. 그러나 지난해 9월 당선된 주호영 원내대표는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잔여 임기만 수행하겠다”고 밝힌 상태라 국민의힘은 4월 새 원내 사령탑을 뽑아야 한다.만약 영남을 지역구로 둔 김 의원이 대표가 된다면 차기 원내대표는 수도권 출신이 될 가능성이 있고, 경기 성남이 지역구인 안 의원이 승리한다면 당의 텃밭인 영남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의원들이 영남 출신 원내대표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다.④ 만약 패배한다면… 경쟁의 승자는 한 명뿐이다. 김 의원과 안 의원, 두 사람 중 한 명은 반드시 패자가 된다. 만약 패배한다면 두 사람의 향후 정치 행보는 어떻게 될까. 당 대변인, 정책위의장, 원내대표까지 거친 김 의원에게 남은 고지는 단 하나, 당 대표뿐이다. 게다가 당의 주류인 친윤 진영의 대대적인 지원은 물론이고 대통령실까지 나서 김 의원을 지원 사격하는 상황. 한 여권 인사는 “이런 전폭적인 지원 속에도 패한다면 사실상 김 의원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며 “친윤 인사들을 향한 당원들의 반감 때문에 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친윤 인사들은 김 의원의 개인 역량 부족을 탓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 의원이 노리는 전국구 정치인으로서의 부상 역시 제동이 걸리는 건 자명한 일이다. 다만 입각을 통해 김 의원이 다시 한 번 도약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 친윤 의원은 “김 의원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장관이나 국무총리로 발탁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전했다. 안 의원은 이번 도전에서 패한다면 당분간 정치적 휴지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에 안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안 의원을 따르는 별도의 계파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전당대회 경쟁 과정에서 친윤 진영과 확실한 대척점에 서게 됐다는 점도 향후 안 의원 행보의 제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안 의원이 수도권, 중도 표심에 소구력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할 경우 내년 4월 총선에서 역할이 주어질 수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내년 총선은 결국 수도권 승부가 관건일 텐데 이 과정에서 안 의원이 또 한 번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⑤ 추가 질문 : 이번 전당대회의 관전 포인트는? 대통령실까지 참전하는 초유의 상황이 펼쳐지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김 의원과 안 의원이 펼치는 승부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10일 컷오프(예비경선) 결과 발표. 국민의힘은 8, 9일 동안 전국 당원 6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로 다음 달 8일 본선에 진출할 후보를 가린다. 당원만을 상대로 한 첫 여론조사다. 양강인 김 의원과 안 의원이 사실 컷오프에서 탈락할 걱정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이 관심을 갖는 건 ‘1위를 차지하느냐 마느냐’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후보별 지지율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여권에서는 “1위를 차지한 후보 측에서는 어떻게든 결과를 알리고 싶어 할 것”이라는 분위기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두 후보의 향후 전략도 변할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 포인트는 15일부터 펼쳐지는 TV 토론이다. 지금까지는 언론을 통해 공방을 벌여온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맞붙는다. 극한의 신경전이 펼쳐지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두 사람이 서로 덕담만 주고받으며 토론을 끝낼 가능성은 낮다. 누가, 어떤 메시지로 당원들의 표심을 잡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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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인터뷰]“징용문제 풀 마지막 기회… 尹방일 맞추려 서둘러선 안돼”

    《“현재 한일 강제징용 배상 문제 논의는, 영어로 말하면 ‘Now or Never moment’다. 이번에 풀지 못하면 앞으로 절대 풀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기회가 더 중요하다.” 한일 관계 전문가로 꼽히는 신각수 전 주일 대사(사진)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다만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시점을 정하고 이를 맞추기 위해 협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윤 대통령의 방일을 포함한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는 강제징용 협상 타결과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1일 서울 종로구 신 전 대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제징용 협상 타결, 尹 대통령 訪日에 맞출 필요 없어”―정부가 강제징용 협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고, 2012년 대법원에서 피해자 승소 판결이 났다. 다만 배상 판결을 받은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일부 자산 현금화가 지금은 멈춰 선 상태다. 잠시 시간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해결을 해야 한다. 현금화가 이뤄진다면 강제징용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의 속도를 내고 있다.“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한일 관계의 진전을 이루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한 의지가 일본 측에도 전달이 됐고, 일본도 상당히 자세를 바꿨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의견을 교환한 것도 이런 여건 개선이 영향을 미쳤다.” ―한일이 강제징용 문제를 고위급에서 논의하기로 했는지.“국장급 회의는 실무선이니 당연히 논의를 다 끝낼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에서 일본의 협조가 필요한데, 지금 일본이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일본이 협조를 해 줘야 피해자 등을 설득할 텐데 그게 지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 소극적인 배경이 있다면….“우선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을 봐야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았다면 해결이 더 쉬웠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구심점이 없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이끄는 그룹은 자민당 내에서 (규모로) 네 번째 정도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서명한 당사자인데….“그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본다면, 외상으로 일하면서 어렵게 이끌어 낸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산되는 걸 봤다. 기시다 총리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윤 대통령 방일에 맞춰 강제징용 협상의 결론을 내야 하나.“외교라는 건, 시점을 정해놓고 하는 쪽이 지는 거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건 그 일정대로 하고, 협상은 협상대로 해야 한다. 협상 타결과 윤 대통령의 방일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신 전 대사는 “강제징용 협상과 상관없이 한일 셔틀외교는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 때문에 과거사 이외의 협력 사안을 늦춘다는 건 한일 간 상호 상실의 게임이 된다. 그래서 한일 간에 협력이 가능한 것부터 협력하면 양국 간 분위기가 개선되고, 신뢰가 생겨 문제를 푸는 게 쉬워진다”고 말했다.●“야당도 한일 과거사 문제에 나서야”―강제동원 해법에서 일본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피고 기업은 참여를 해야 한다. 대신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2012년 처음 판결이 나왔을 때 미쓰비시는 기금을 내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막았다. 그때와 지금이 똑같은 상황이니 (피고 기업이) 참여하면 된다.” ―일본의 사죄와 관련해 1995년 현직 일본 총리가 최초로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의견도 오간다.“무라야마 담화를 되풀이한다, 확인한다는 식은 아닌 것 같다. 이 사안에 맞게끔 새로운 문안을 만들어야지. 강제동원 문제에 맞는 내용을 담은 문안을 못 만들 것도 없다.” ―일본은 수출 규제 완화를 강제징용 합의의 상응 조치로 검토하는 것 같다.“상응 조치라고 하지 말고, 먼저 일본이 수출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는 강제동원 문제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니다. 그러니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일본이 먼저 규제를 풀면 된다. 그럼 우리 정부는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복원한다고 발표하면 된다. 강제동원과 수출 규제 완화 등을 묶어서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으로 할 사안이 아니다.”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직접 접촉하겠다고 나섰다.“정부가 나서서 그렇게 해야 한다. 정부가 피해자 및 피해자 지원 단체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설령 그분들이 만족을 못 하더라도 정부가 하고 있는 것들을 잘 설명해야 한다. 그럼 여론도 반응하게 될 것이고, 강제징용 문제를 푸는 큰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 이어 신 전 대사는 “정부 여당이 야당과도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에도 문희상 박병석 전 국회의장, 강창일 전 주일 대사 등 (이 문제에) 중립적인 분들이 있다. 정부와 여당이 야당 인사들과 만나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과거사 문제만큼은 초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北이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담대한 구상’도 작동”―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상당 기간 한일 관계가 어려움을 겪었다.“인접 국가로 자유민주주의 법치 질서를 따르는 한일은 자연스러운 전략적 파트너다. 미중 갈등 시대에 우리가 중국과 세력 균형을 맞추려면 미국이 계속 동아시아에 관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일이 협력해야 한다. 한미일에 이어 한국-일본-호주, 한국-일본-인도 등 계속해서 네트워킹을 넓혀 가야 한다. 또 한국이 일본의 발전 경로를 상당 부분 비슷하게 밟아가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많다.” ―윤석열 정부만의 대북 정책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조정된, 실용적 접근’이라는 대북 기조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비슷하다. 결국 북한을 비핵화 논의 테이블에 앉게 하기 위해 한미일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고, 유럽이 동참하는 구도를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정부가 생각하는 ‘담대한 구상’도 작동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문제도 더 심각해지는데….“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임기를 3기에서 끝내지 않을 거라 본다. 5년 후 4기까지 가려면 분명한 업적이 필요해 대만 통일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도 한미 동맹에 입각해 유사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미리 짚어 봐야 한다. 일본은 이미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워 게임’을 여러 번 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방향은 잘 설정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중 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우리가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구체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는 향후 외교 정책과 관련해 소규모 경비정, 7600t급 세종대왕함과 같은 구축함 등 군함을 예로 들었다. 신 전 대사는 “우리나라가 예전엔 경비정급이었다면 (국력 신장으로) 지금은 구축함급이 됐다”며 “문제는 방향 전환을 급하게 하면 구축함은 경비정보다 더 진폭이 크다”고 했다.“단숨에 방향 전환을 하려 하면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에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신각수 전 주일대사는…△충북 영동(68)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법학 석사·국제법학 박사 △1975년 제9회 외무고시 합격 △외교부 조약국장 △주유엔대표부 차석 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외교부 1·2차관△주일본 대사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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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현 “당 대통합 이끌어 내년 총선서 승리”… 안철수 “수도권-중도-2030 공략, 과반 확보”

    집권 여당의 새 당대표를 뽑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2일 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공식 선거전에 돌입한다. 나경원 유승민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권 경쟁은 사실상 김기현 안철수 의원의 양자 대결로 압축된 상황. 두 사람은 상대방을 향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며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김 의원은 3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등을 다 거치면서 당과 함께 해왔다”며 “1인 정당, 미니 정당을 이끌었던 사람과 경험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잦은 당적 변경을 거쳐 지난해 국민의힘에 합류한 안 의원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는 또 “당이 쪼개지는 순간 내년 4월 총선에서 수도권은 참패다. 당을 대통합으로 이끌어 총선에서 승리하겠다. 총선 전까지 당 지지율을 55%로 올리겠다”고 했다. 반면 안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출정식에) 8000명 모아 놓고 과시하는 건 그야말로 20세기 선거다. 누가 누가 연대한다고 총선에서 표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친윤(친윤석열) 진영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연일 세 과시를 하고 있는 김 의원에 대한 성토다. 안 의원은 “수도권 3선 출신으로서 수도권, 중도층, 2030세대의 표를 얻어 총선에서 170석을 얻겠다”고 했다. 유승민 “때 기다릴것” 불출마 선언 한편 비윤(비윤석열) 진영의 유 전 의원은 이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리겠다. 오직 민심만 보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겠다”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201/117681532/1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201/117681539/1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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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승리가 진정한 정권교체… 수도권 사령관이 당 이끌어야”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김기현, 안철수 의원은 서로 상반된 전략을 내세웠다. 김 의원은 “당을 대통합으로 이끌어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안 의원은 “누가 수도권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보탤 수 있는지 당원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두 사람은 나란히 “결선투표 없이 과반 득표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3월 8일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전쟁을 치를 때 사령관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핵심 지역인 수도권에서 사령관이 나와야 한다. 수도권 한 지역구 사거리에서 김기현 의원이 유세하면 과연 사람들이 김 의원을 알겠나. 표가 오겠느냐.”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선 안철수 의원(61·사진)은 내년 총선을 지휘할 새 당 대표와 관련해 이 같이 강조했다. 영남에서만 당선됐던 김 의원으로는 총선 승부처인 수도권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안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지면 (다음) 대권도 없다.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는 게 진정한 정권교체”라고 했다. 인터뷰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왜 안철수가 당 대표가 돼야 하나.“나는 수도권에서만 3번 당선됐다. 나는 항상 수도권, 중도층, 2030세대 유권자의 고정표가 있다. 한 표라도 더 받을 수 있고, 수도권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킬 수 있는 사람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경쟁 후보들보다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우선 실적이 있다. ‘3김(金)' 이후 현재 정치인 중에 교섭단체(20석) 이상의 당을 만들어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지명도도 보면 나는 누구나 안다. 새 당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도 인지도 낮으면 총선에서 이기기 힘들다.”―왜 수도권이 중요한가“20대 총선도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져서 참패했다. 게다가 대구, 경북 등 영남 당원들이 '우리가 밀어주는 이유는 수도권에서 이기라고 밀어주는 것'이라고 하시더라.―지난해 6·1 지방선거 때 지원 유세 많이 나섰는데….“후보 입장에서는 누가 지원 유세를 오느냐가 중요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수도권 후보들이 정신 없이 지원 유세를 요청해왔다. 13일 동안 50회 지원 유세했다. 내 선거 유세보다 지원 유세를 더 많이 했다. 그래서 많이 당선시켰다.”―당 대표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시작했다. 그런데 국회에 와 보니 대선이 끝나지 않았더라. 여소야대로 반쪽 교체였다. 결국 정권교체의 시작도 내가 했으니, 그 마무리인 총선 승리도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최근 여론조사에서 선전하고 있는데….“가식적인게 아니라, 여론조사에 일희일비 안한다. 안랩 상장시켰을 때, 주가가 쉴새 없이 바뀌더라. 그걸 보다가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었다. 주가가 무슨 소용이냐. 오히려 기업 가치를 올리는게 중요하지. 정치권 오니 여론조사가 그렇던데, 옛날 경험이 있어서인지 무감각하다. 여론조사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꾸준하게 열심히 해서 결국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니까.”―일각에선 대권 주자가 당권을 잡으면 안된다고 하는데….“내년 총선에서 지면 대권도 없다. 오히려 정권교체가 또 될 것이다. 모든 가용한 병력을 다 동원해서 총선에서 이겨야만 대권이 있다. 그리고 다음 대선은 3년 넘게 남았다. 대선 후보는 자동으로 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하는 건) 대선을 직접 안 치러봐서 그렇다.”―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계파가 없다는 말인데, 그러니 정말 공정하게 공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오히려 장점이다. 게다가 내가 대표가 되면 유권자들은 국민의힘이 크게 변화했다고 느낄 것이다. 유권자들은 항상 변화하는 정당에 표를 준다.”―대표가 되면 내년 총선 공천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계량화해서 평가할 것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의정 활동이나 사회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등을 평가하는거다. 계량적으로 압도적이면 단수공천이고 경쟁자가 있으면 경선 하면 된다. 경선 이긴 사람이 공천 받으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안 의원이 아직 당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그런 이야기 하는 분 못봤는데? 게다가 나는 (2016년 총선부터) 문재인 정권과 싸운 지 7년 됐다. 국민의당에서 국민의힘과 같은 야당으로 민주당을 상대로 싸웠다. 2020년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을 한 명도 안냈다. 표를 분산시켜 민주당에 어부지리를 줄까봐 그런거다.―친윤(친윤석열) 후보 논란에 대한 견해는?“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파는 후보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는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는 ‘윤힘’ 후보가 되겠다. 그리고 후보 단일화를 통한 정권교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치며 ‘윤-안 연대’를 보여줬다. 총선 승리로 3번째 연대도 성공시키겠다.”―윤 대통령과 관계는?“윤 대통령과 가장 문제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장으로 증명했다. 나는 인수위원장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내 정치적인 욕심을 채우는 게 아니라 윤 대통령이 주인공이 돼야 하니까. 윤 대통령과 나의 조합은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 케인 조합처럼 승리의 조합이다.”―당 대표가 된다면 무엇을 중점적으로 추진할건가“첫번째는 유능한 정책정당이 되는 것, 두번째는 여의도연구원 개편, 세번째는 정당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사무총장 등 당직 관련 구상은 하고 있는지?“조금씩 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 할 단계는 아니다.”―민주당이 주말에 장외투쟁에 나서는데….“남아 있는 대선 불복 심리에 더해 사법 불복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경우처럼 법원의 판결에도 승복 안 하는 것이다.”안 의원은 “더 우려되는 건 이러다 미국, 브라질처럼 의회까지 점령되는 불행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며 “결국 대선 불복, 사법 불복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총선 압승 뿐”이라고 했다.―안 의원이 대표가 되면 당이 분열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오히려 나는 안랩 창업, 서울대 대학원 원장 등 조직 관리를 오래 했다. 그리고 당 대표만 4번 했다.”―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다 함께 같이 가야 한다. 만약 나가서 또 신당을 만든다면 굉장히 좋지 않다. 지금은 전당대회 중이라 연락 하지 않고 있다. 마지노선은 분열, 분당 사태는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향후 ‘안철수 정치’의 지향점은“미중 기술 패권시대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살아남느냐, 이거다. 처음 정치 시작할 때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치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운명이 걸린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걸 큰 정당인 국민의힘에서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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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선 지면 대통령-與 모두 끝… 중도 공략할 전진캠프 차릴것”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한 김기현, 안철수 의원은 서로 상반된 전략을 내세웠다. 김 의원은 “당을 대통합으로 이끌어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안 의원은 “누가 수도권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보탤 수 있는지 당원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두 사람은 나란히 “결선투표 없이 과반 득표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3월 8일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후보가 결선투표를 치른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이 분열하는 순간 수도권 참패다. 그래서 ‘수도권 지역구 출신 대표’는 허상 같은 이야기다. 중요한 건 당을 대통합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대표가 돼야 한다. 그런데 어떤 분이 대표가 되면, 당이 시끄럽지 않겠나.”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나선 김기현 의원(64·사진)은 새 대표의 조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안철수 의원이 대표가 되면 당이 또 내분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 김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모두 끝”이라며 “총선 전 당 지지율을 55%까지 만들겠다”고 했다. 인터뷰는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왜 김기현이 당 대표가 돼야 하나.“나는 정통 보수를 지켜온 사람이다. 또 원내대표를 하면서 대선을 지휘해 이겼다. 경쟁 후보 중에는 선거에서 지거나, 중간에 그만두거나 한 사람이 있다. 중요한 내년 총선에는 승리를 경험해 본 리더십이 필요하다.”―경쟁 후보들보다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나.“나는 판사 출신으로 입법, 사법, 행정을 다 해본 사람이다. 울산광역시장으로 행정 경험도 있다. 여당 대표는 정국을 이끌고, 행정부를 주도하는 역량을 가져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내가 적임자다.”―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안 의원도 전당대회에 도전했는데….“당장 총선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 판에 거기에 미래 계획을 녹이는 것 자체가 과욕이다. 총선에서 이기든 지든 이걸 발판 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 양손에 떡을 들고서는 절체절명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을 넘을 수 없다.”―안 의원이 ‘체육관 선거’ 등의 비판을 하고 있는데…“지지를 못 받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추대 형태의 당 대표에 익숙했던 문화와 우리 큰 정당의 문화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안 의원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지난해 3월 대선 승리 이후 당이 쭉 시끄러웠는데…“당의 리더십 혼란 때문에 집권 초기 가장 중요한 1년을 허비해버렸다. 지난해 여름 당 지도부의 혼란을 보면서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당 대표 출마를 결심했다. 이번에 뽑는 당 대표는 절대로 그런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인지도가 낮다는 지적도 있는데…“전당대회를 치르면서 호감도가 굉장히 많이 높아졌다. 이제는 유권자들도 먼저 알아봐 주신다. 변화가 피부로 느껴진다.”―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친윤(친윤석열) 진영 입김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친윤이 나쁜 건가? 집권 여당이 친윤 안 하고 반윤(반윤석열), 비윤(비윤석열) 해야 되나? 대통령의 성공을 위하는 우리는 운명 공동체다. 당연히 누구든지 다 친윤이 돼야지. 그래서 ‘친윤 입김’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건 더불어민주당의 프레임이다.”―김 의원이 대표가 되면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을 거란 관측도 있다.“사무총장은 사전에 내정한 바도 없고, 누구에게 제안한 바도 없다. 일단은 이기는 데 집중하고 있어 다른 인선을 구상하는 단계가 아니다.”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유승민 전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김 의원은 “며칠 전 ‘유승민계’ 핵심이라는 의원도 나를 지지하겠다고 연락해왔다”며 “절대로 내년 총선에서 4당 체제는 안 만들 것”이라고 했다.―당 대표가 된 뒤 대통령실을 향해 쓴소리도 할 생각인지.“총선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다 해야지 못 할 게 뭐가 있나. 총선에서 지면 윤 대통령도, 국민의힘도 끝이다. 당이 해산 위기에 직면할 거다.”―내년 총선 공천은 어떻게 준비할 건가.“당이 가진 공천 기준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잘못됐기에 문제가 생겼던 거다. 당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노하우 없이 외부 사람에게만 의존하면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3년 전 총선도 당 대표가 사람을 잘 모르니 리더십 발휘에 실패한 탓이다.”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시절 정치 신인이었던 황교안 대표가 2019년 당 대표를 맡아 1년 뒤 총선을 치르면서 공천 파동을 겪었던 사례를 거론하며 당 내부 기반이 약한 안 의원을 겨냥한 것.―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집중할 분야는 무엇인가.“당연히 먹고 사는 문제, 민생이다. 경제가 핵심 화두다. 문재인 정권이 결국 집권 연장에 실패한 결정적 원인 역시 경제 문제였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부동산과 세금이 폭등해 국민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줬다. 거꾸로 우리에게도 경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당심(黨心)에만 집중해 중도층 표심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총선이라는 산을 정복하려면 일단 베이스캠프를 차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올라가면서 전진 캠프를 하나씩 차리는 거다. 전당대회는 베이스캠프를 강화할 때다. 그 뒤에 우파, 중도, 심지어 민주당 계열에 있는 인사들도 영입해서 전진 캠프를 계속 쳐서 이기면 되는 거다.”―당심과 일반 국민 여론이 동떨어진 거라고 보나.“일반 국민이란 개념이 민주당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동떨어져야 한다. 민주당과 우리 당 여론이 같으면 정당이 필요 없는 거다. 당심이 민심에 동떨어졌다는 주장은 논리 자체가 궤변이다. 당의 정체성도 세우지 않고 산토끼만 잡으러 가서야 되겠느냐.”―민주당이 쪼개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없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 당이 쪼개지면 안 된다. 분열은 필패다. 나는 당이 절대로 갈라지지 않게 할 자신이 있다.”―당 대표가 되면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만날 생각인가.“매일 아침 만날 수도 있다. 다만 이 대표는 내가 미울 것이다. ‘위리안치(圍籬安置·중죄인을 외딴 곳으로 유배 보내는 것)’까지 시켰으니.”지난 대선 전인 2021년 9월 이 대표가 자신을 향한 공세를 이어가던 김 의원에게 “남극에 있는 섬에 위리안치시키겠다”고 한 걸 꼬집은 것.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울산시장이던) 나를 겨냥해 영장 신청을 39번 했다. 그래도 나는 안 죽고 살아 있다”고 했다.―당시 민주당으로부터 고초를 당했는데….”그렇게 당한 사람이 나 밖에 없다. 대선 과정에서도 고소, 고발 7번 당했다. 아마 단 한 번도 당하지 않고 우아하게 지낸 사람도 있을거다. (이른바 ‘조국 반대 집회’ 당시) 광화문에서 나는 앞장서서 싸웠지만 광화문에 얼굴 한 번 안 비춘 사람도 있다. 열심히 싸운 동지는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당 대표를 노리고) 옆에서 들어온다?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나 전 의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매우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당의 소중한 자산이니 내년 총선에서 역할이 있을 것이다.”―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도 마찬가지인가.“그건 지금 말하기가…. (두 사람과) 충분히 이야기를 못 나눠봤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조동주 기자 djc@donga.com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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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현 “울산선 다 아는데…” 안철수 “내 이름 모르는 사람 없는데…”[한상준의 정치인사이드]

    나경원 전 의원이 국민의힘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당의 당권 경쟁은 사실상 김기현, 안철수 의원의 양자 대결로 정해졌다. 국민의힘 당 대표를 노리는 두 사람의 속내와 향후 정치적 미래 등을 두 차례에 걸쳐 4가지 질문을 통해 짚어본다.① 두 사람은 왜 당 대표에 도전하나당권에 도전하는 두 사람의 목표는 같다. ‘안정적인 당 운영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돕고 내년 총선의 승리를 이끈다’는 것.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목표일 뿐, 두 사람이 당권 도전에 나선 개인적인 이유는 다르다. 각자의 이유는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보면 유추할 수 있다.먼저 김 의원. 1959년생인 김 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 생활을 했다. 이후 변호사를 거쳐 2003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부대변인을 맡으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고향인 울산(울산 남을)에서 당선되면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18, 19대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한 뒤 기세를 몰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울산광역시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됐다.2018년 울산시장 재선에 도전 했지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오랜 친구 송철호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그러나 선거 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이 울산시장 선거에 관여했다는 이른바 ‘선거개입 논란’이 불거졌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정계 입문 이후 첫 선거 패배를 겪었지만 그는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다시 여의도로 복귀했다. 동료 의원들조차 “흠 잡을데 없는 완벽한 커리어”라고 할 정도다.그러나 20년 동안의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 김 의원의 고민이다.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등 여권 주류로 활동한 적도 없다. 지난해 대선 때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았지만, 언론과 유권자의 관심은 당시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에게 쏠렸다. 여권 관계자는 “울산에서는 김기현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중앙 무대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결국 김 의원이 이번 전당대회에 도전하는 목적은 ‘전국구 정치인’으로의 부상이다. ‘울산의 김기현’을 뛰어 넘어 보수 진영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것.김 의원과 겨루는 안 의원은 1962년생으로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1995년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세웠다. 순수 국산 백신 프로그램 ‘V3’를 개발한 안 의원은 이미 정계 입문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IT(정보통신) 전문가였던 그는 2011년부터 정치인으로 변모한다.이어 2012년, 2017년, 2022년 세 차례의 대선에 연거푸 도전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야당 인사들조차 “대한민국에 안철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인정할 정도다. 그러나 세 번의 도전 중 완주한 건 2017년 단 한 차례 뿐. 이마저도 3위에 그쳤다. 제3지대에 적(籍)을 두고 도전한 탓에 번번이 거대 양당의 벽에 가로막혔던 것.2013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문한 그는 3차례의 지역구 선거 승리 선거를 모두 수도권(서울 노원, 경기 성남 분당)에서 거뒀다. 다만 그 사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등 당적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지난해 대선 직전 윤 대통령과 단일화를 했던 그는 대선 이후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이 합당하면서 국민의힘 소속이 됐다.정계 입문 10년여 만에 처음으로 당내 경선을 치르는 안 의원의 궁극적인 목표는 2027년 대선 승리다. 당 대표가 돼 국민의힘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이를 통해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나서겠다는 것. ‘전당대회 승리→총선 승리→대선 승리’라는 정치 행보 로드맵의 1단계를 시작한 셈이다.②두 사람의 승리 전략은?정치인의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각 선거 캠프가 정한 슬로건과 전략은 후보가 부각시키고 싶어 하는 강점과, 감추고 싶어하는 약점을 모두 고려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전혀 다른 정치 역정을 거친 김 의원과 안 의원의 선거 전략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김기현 캠프는 “정통 보수를 지키는 이기는 후보 김기현”을 전면에 내걸었다. 2003년 정계 입문 이후 단 한 차례도 당을 떠나지 않고 보수 진영을 지켜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잦은 당적 변화를 겪었던 안 의원과 자연스럽게 차별화 하겠다는 것. 여기에 이번 전당대회가 ‘100% 당원 투표’로 치러진다는 점도 ‘정통 보수’를 강조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여기에 김 의원은 세 과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캠프 개소식에는 40여 명의 의원들이 몰렸고, 28일에는 지지자 8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수도권 출정식까지 열었다. 안 의원이 “무조건 사람들만 많이 모아놓고 행사하는게 이번 전당대회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견제에 나섰지만 김 의원 측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바로 ‘대세론 구축’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친윤(친윤석열) 진영의 지원에 더해 오랜 당 경험을 바탕으로 당심(黨心)을 확실히 선점해 승리하겠다는 것. 한 여당 의원은 “‘어차피 당 대표는 김기현’이라는 점을 앞세워 지지층을 모으고, 반대로 안 의원 지지층의 투표를 접게 하려는 전략”이라며 “이번 전당대회에는 일반 여론조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도 안 의원에 비해 대중 인지도가 낮은 김 의원에게 유리한 지점”이라고 했다.다만 김 의원이 전당대회 레이스 초반 ‘김장 연대’를 앞세우다 ‘연포탕 정치’로 돌아선 건 친윤 진영을 향한 불편한 시선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당초 김 의원은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과의 연대를 뜻하는 ‘김장 연대’를 적극 앞세웠다.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뜻)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앞세워 1위 주자를 차지하겠다는 의도였다.그러나 나 전 의원과 친윤 진영의 격렬한 갈등이 펼쳐진 뒤부터는 연대, 포용, 탕평을 뜻하는 ‘연포탕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연포탕 정치’라는 말은 김 의원이 직접 낸 아이디어다.이에 맞서는 안 의원 캠프의 이름은 ‘170V 캠프’다. 내년 총선에서 170석을 얻어 승리(Victory)하겠다는 것. 당원들에게 “윤석열 정부의 명운이 달린 내년 총선의 승리를 이끌 적임자는 안철수”라는 점을 각인시키겠다는 의도다. 특히 안 의원은 총선의 승부처로 꼽히는 수도권·중도 표심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이는 곧 김 의원의 약점을 겨냥한 캠페인이다. 한 여권 인사는 “결국 안 의원이 당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도권 선거를 한 번도 치러보지 않았고, 오로지 보수만 강조하고 있는 영남 중진 김 의원에게 내년 총선의 진두지휘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점”이라고 했다. 게다가 안 의원은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의 간판으로 38석을 얻어낸 경험이 있다.안 의원 측이 불출마를 선언한 나 전 의원 지지층의 움직임과 관련해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안 의원은 30일 나 전 의원 지지층과 관련해 “당원들께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시는 것 같다. 다음 총선은 수도권이 중요한데 누가 수도권에서 한 표라도 더 받고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걸 위주로 판단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다만 안 의원 측도 고민이 있다. 김 의원이 “우리 당 현역 의원 중 안 의원을 지지한다는 사람은 제가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공격할 정도로 약한 당내 세력이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은 “여러 의원분들이 (자신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현하셨다”고 응수했다.동시에 안 의원 측은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당원이 83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규모 당원 가입으로 현역 의원이 특정 후보 투표를 지시하는 ‘오더 정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거라는 것. 국민의힘 관계자도 “현재 당원 비율을 보면 수도권 당원이 37% 정도로 영남권 당원의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당원이 8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치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이번 결과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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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한상준]국회만 외면하고 있는 ‘기술 안보’의 시대

    지난해 5월 20일 취임 이후 최초로 아시아 방문길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첫 방문지로 경기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택했다. 이어 지난해 8월 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대만을 방문해 반도체 기업 TSMC의 전·현직 회장을 만났다. 미 권력 서열 1위와 3위의 아시아 방문 키워드가 ‘반도체’였던 것. 미중 패권 갈등에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노골적으로 겨냥했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당시 일본이 택한 3개의 수출 규제 품목도 명백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노린 공세였다. 반도체는 이제 산업을 뛰어넘어 외교 안보의 핵심이 됐다. 현재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다. TSMC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선두 주자다. 문제는 인공지능(AI) 산업 확대 등으로 수많은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커지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으로 인해 분기별 매출에서 TSMC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앞질렀다. 게다가 반도체를 ‘호국신기(護國神器·나라를 지키는 신의 무기)’로 부르는 대만은 TSMC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했다. 우리의 국회 격인 대만 입법원은 7일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대만판 반도체법’을 처리했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반도체는 국가 안보의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이른바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이 마련됐다. 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에 담긴 세액공제율은 8%에 그쳤다. 세수(稅收) 위축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축소안을 여야 모두 별 고민 없이 수용해 버린 것. 반도체 산업은 원가에서 설비 투자가 차지하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높다. 단 1년여의 기술 격차는 원가의 20∼30% 차이로 이어진다.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이런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K칩스법’을 두고 야당 일각에서는 “대기업 특혜법”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하지만 증착 장비 제조, 세정 설비 등 반도체 공정의 전 분야에서 수많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뛰고 있다. 시늉만 낸 ‘K칩스법’이 통과되자, 윤 대통령은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제야 기재부는 세액공제율을 최대 25%까지 높인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알 수 없다. 여야 모두 다급한 기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 막 통과된 법을 또 손봐야 하나”라는 반발 기류도 감지된다. 기술이 산업 분야를 뛰어넘어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는 ‘기술 안보’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국회만 외면하고 있다.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 20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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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지부진 ‘K칩스법’과 新 애치슨 라인[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지난해 5월 20일 한국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곧바로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취임 이후 최초로 아시아 방문길에 나선 바이든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의 첫 방문지로 한국의 반도체 현장을 택한 것. 그로부터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은 지난해 8월 초, 낸시 팰로시 미 하원의장은 전격적으로 대만을 방문했다.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국가서열 3위인 팰로시 의장은 대만 방문 이틀째 날, 대만의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TSMC의 전·현직 회장을 만났다. 미국 최고위층의 해외 방문은 철저한 계산 속에 이뤄진다. 바이든 대통령과 팰로시 의장의 아시아 방문이 겨냥한 것은 중국. 그리고 두 사람의 행보에 담긴 공통된 키워드는 반도체였다. 1950년 1월 미국은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발표한다. 소련과 중국에 맞서 미국이 정한 극동(極東) 방위선인 ‘애치슨 라인’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필리핀을 잇는 선이다. 당시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 바깥에 있었다. 그로부터 73년이 지난 지금, 미국 서열 1위와 3위의 아시아 방문이 끝난 뒤 경제계와 외교가에서는 ‘신(新) 애치슨 라인’이라는 말이 회자 된다. 반도체 전문가인 김정호 KAIST 교수가 ‘반도체 애치슨 라인’이라고 부르기도 한 이 라인은 한반도의 경기 이천과 평택, 대만 타이베이 등을 품는 새로운 선이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이 고려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방어선이다. 이천과 평택에는 각각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있고, 대만 타이베이 북부의 신주과학단지는 TSMC의 무대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은 전 세계에 반도체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당시 일본이 택한 3개의 수출 규제 품목은 명백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노린 공세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석유보다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 반도체는 이제 경제, 산업을 뛰어넘어 외교안보의 핵심이 된 것. 2018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반도체 칩은 사람의 심장과도 같다”며 ‘반도체 굴기(崛起)’를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 등으로 인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고전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 중 하나는 양안(兩岸) 통일 시 대만의 TSMC를 중국의 영향력 안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대만은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지켜주는 건 미국의 무기가 아니라 반도체 공장들”이라고 할 정도다. 반도체가 만들어낸 ‘신 애치슨 라인’에 대한 믿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믿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다. TSMC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선두 주자다. 문제는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수많은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건 이유다. 날로 커지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으로 인해 분기별 매출에서 TSMC는 지난해 3분기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앞질렀다. 게다가 반도체를 ‘호국신기(護國神器·나라를 지키는 신의 무기)’로 부르는 대만은 TSMC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한층 더 강화했다. 우리의 국회 격인 대만 입법원은 7일 반도체, 5세대(5G) 이동통신 등 첨단 산업 기업에 대해 연구개발(R&D) 비용의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고 새 장비 구매 투자도 5%의 세액공제를 추가하는 ‘대만판 반도체법’을 처리했다. 발의 두 달여 만이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대만반도체제조공사)’라는 TSMC의 정식 명칭이 말해주듯 대만 정부와 TSMC는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국회는 어떤가. 윤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반도체는 국가 안보의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이른바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이 마련됐다.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공을 넘겨 받은 국민의힘 반도체특별위원회는 세액공제를 20%(대기업 기준)까지 높이는 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3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에 담긴 세액공제율은 8%. 세수(稅收) 위축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축소안을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별 고민 없이 수용해버린 것. 지금 시점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라도 투자, 생산 전략에서 조금만 삐끗하면 경쟁의 무대에서 사라져버리는 반도체 시장의 현실을 모르고 있고, 알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원가에서 설비 투자가 차지하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단 1년여의 기술 격차는 원가의 20~30% 차이로 이어진다. 이런 반도체 산업의 특성에 대해 반도체 전문가인 정인성 박사는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최고의 성능과 가장 싼 원가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 것. 이런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K칩스법’을 두고 야당 일각에서는 “대기업 특혜법”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국내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증착 장비 제조, 세정 설비, 검사 등의 반도체 공정의 전 분야에서 수많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뛰고 있다는 걸 이들은 모르고 있다. 반도체 인력 양성 역시 마찬가지다. 만성적인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학과 정원을 확대하자는 제안은 “수도권 집중을 부추겨 국토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좌초됐다. 사막이 펼쳐진 미국 애리조나에 TSMC와 인텔이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건 애리조나주립대, 애리조나대, 노던 애리조나주립대 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것. 말 그대로 시늉만 낸 ‘K칩스법’이 통과되자, 윤 대통령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제서야 기재부는 부랴부랴 세액공제율을 최대 25%까지 높인 조특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조특법 개정안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미지수다. 여야 모두 다급한 기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2월 기재부가 개정안을 낸다 해도 국회에서 어떤 논의가 펼쳐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기술이 산업 분야를 뛰어넘어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는 ‘기술 안보’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걸, 국회만 모르고 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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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하는 제1야당, 과연 尹 정부에게 마냥 좋은 일인가[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지하에는 오로지 ‘뱃지’들만 입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기자들은 물론 보좌진, 국회 직원도 갈 수 없는 그 곳은 다름 아닌 건강관리실이다. 각종 운동기구가 있고, 한 편엔 목욕탕도 있다. 각종 조찬 모임과 회의 등으로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국회의원들 중엔 출근과 동시에 체력단련실로 직행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운동도 하고, 개인 정비도 하기위해서다. 보는 눈이 없고 편한 분위기에서 여야 의원들이 한 데 모이다 보니, 이곳에서는 소속 정당과 정파를 떠나 흉금을 터놓는 솔직한 대화가 자주 이뤄진다는 게 의원들의 말이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 A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B 의원과 이곳에서 만나 나눈 대화 한 토막. “우리 대표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B 의원)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내부에서 정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A 의원) “내려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렇지….”(B 의원) 이 대화를 전하며 A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겉으로는 ‘단일대오’를 외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한 것 같더라”며 “이재명 대표가 계속 대표직을 지키는 게 우리(국민의힘)에겐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매일 같이 이 대표에 대한 십자포화로 아침을 열면 된다는 의미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을 만나면 당의 미래와 이 대표의 거취에 대해 복잡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야권 인사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보여주듯이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며 “그런데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 때문에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묻히고,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1대 1 구도’가 잘 안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대통령과 맞서 문제점도 지적해야 하고 야당이 생각하는 국정 운영의 방향도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노무현 정부 시절,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보수 진영의 지도자라는 입지를 굳혀갔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뒤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반대편에 섰다. 2015년 2·8전당대회에서 야당 대표가 된 문 전 대통령의 첫 일성(一聲)은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이었다. 이 대표도 12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폭력적인 국정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뒤이은 질의응답에서 나온 첫 질문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내용이었다.이 대표가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한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회동도 마찬가지다. 날선 반응을 면전에서 들어야 하는 제1야당 대표와의 회동은 대통령에게 달가울 리 없는 자리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실에는 이 회동을 피할 결정적인 핑계가 있다. “본인의 사법적 문제부터 다 처리한 다음에 하는 게 맞다”(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것. 여기에 민주당의 또 다른 고민은 “전선(戰線)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친문(친문재인) 진영 의원의 말이다. “지금 검찰의 수사를 보면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성남FC 등 이 대표 개인과 관련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 정책에 관한 것이다. 정책적인 판단이 수사 대상이 맞는지는 분명히 다퉈볼만한 이슈다. 그런데 우리가 검찰을 성토하면 ‘이 대표에 대한 수사 때문에 야당이 반발하고 있다’는 시선에 막히게 된다.” 이런 민주당의 고민은 결국 “대안 세력이자, 수권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로 귀결된다. 다음 선거를 통해 집권 세력의 자리를 충분히 꿰찰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고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실제로 1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5%였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은 이보다 낮은 34%를 기록했다.제1야당이 집권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여론의 지지에서 나온다. 제1야당의 주장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이 많다면, 대통령실도 무작정 야당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은 지금, 민주당은 아직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만 ‘경청투어’일 뿐 사실상 대선 선거 운동을 다시 하는 행보를 이어간다고 과연 민심이 돌아올까. 친이(친이재명)계 의원들조차도 “이 대표가 ‘당은 당이고, ‘사법리스크’는 내 문제‘라고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 이유를 민주당은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가적으로 봐도 제1야당이 이런 내부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 건 결코 좋지 않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견제와 균형이다. 이를 위해서는국정 운영의 한 축인 야당이 정권을 견제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윤석열정권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국정 운영의 파트너인 민주당과건강한 경쟁을 가져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지리멸렬한 야당이 견제 능력을 상실하고, 그로 인해 여권이 폭주를 거듭하며 오만과 독선을 버리지 못한 결과를 문재인 정부를 통해 지켜봤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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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뒤에 또 펼쳐질 ‘번갯불에 콩 볶는 쇼’ [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국회를 누비는 기자들이 총선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몇 장면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전화 통화다. 그토록 전화를 안받던 취재원들이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을 때 느낀다. 아, 공천이 얼마 안 남았구나! 할 말이 없어서, 불편해서, 아는 게 없어서, 말 하기 싫어서 등등 저마다의 이유로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던 국회의원들이 공천을 앞두고는 180도 달라진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뭐가 궁금해요?” 질문을 마치고 통화를 끊으려는 찰나에, 전화를 받은 진짜 이유가 드러난다. “그런데 요새 뭐 들은 거 없어요?” 공천 관련한 작은 정보라도 궁금하다는 의미다. 이 무렵이 되면, 각 정당이 공통적으로 띄우는 조직이 있다. 인재영입위원회다. 총선을 앞두고 “우리가 이처럼 참신한 새 인물을 영입했습니다!”라고 홍보하기 위해 인재 물색에 나서는 조직이다. 인재영입위원회가 출범하고 나면, 신규 인사 영입 발표가 이어진다. 경제 전문가, 워킹맘, 청년 정치인, IT(정보통신) 전문가, 벤처 기업가 등등…. 아예 ‘인재 영입 1호, 2호, 3호’ 식으로 릴레이 영입 발표에 나서기도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영입 축하 꽃다발이 시들기도 전, 일부 영입 인사들의 문제점이 속속 드러난다. 논문 표절, 부적절한 발언, 재산 문제, 범죄 전과…. 정치권의 새 인물이라며 영입한 인사들의 문제적 과거가 드러날 때 마다 정당들이 내놓은 해명은 똑같다. “다소 급하게 영입 작업을 진행하느라 제대로 된 검증 작업을 하지 못했다.”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마 정상적인 조직은 이런 결론을 내릴 것이다. “닥쳐서 급하게 준비하지 말고, 미리 미리 준비하자.” 총선은 정확히 4년마다 돌아온다. 총선이라는 ‘D-데이’에 맞춰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각 정당이 정말 참신한 인물들을 발굴해 정치권을 제대로 바꿔보겠다는 목적이라면 지금쯤 인재 영입을 준비해야만 한다. 22대 총선은 2024년 4월 10일 치러지고, 총선 공천은 그보다 앞선 2월 무렵이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는 현재 준비에 나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왜일까.첫 번째 이유는 인재 영입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정당의 공천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정치인의 말이다. “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이 높기 때문에 총선이 임박하면 ‘얼마나 새로운 사람을 공천했나’에 관심이 쏠린다. 결국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깜짝 인사’를 많이 앞세우는 게 총선 득표에 도움이 된다. 1년 전부터 영입해 놓으면 정작 총선을 앞둔 시점에는 새 인물이 아닌 ‘헌 인물’이 되어 버린다.” 새 피 수혈을 통한 정치 문화 개선이 목적이 아니라, 총선 득표전에 도움이 되는 ‘깜짝 쇼’가 진짜 목적이라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엊그제까지 A 정당의 입당을 타진했던 인사가 하루 아침에 B 정당에 입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고인 물’들의 견제다. 총선은 300개(21대 국회 기준)의 의석을 두고 현역 의원들과 원외(院外) 인사들이 뒤섞여 벌이는 싸움이다. 지금 전국 각 지역구에서는 이미 싸움이 시작됐다. 이런 상황에서 현역 의원을 포함한 출마 준비자들이 경쟁자가 늘어나는 걸 달가워 할리 없다. “내 지역구는 건드리지 말라”는 현역 의원들의 반발 때문에 매번 총선 때마다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개편이 지각 확정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영입 인사로 정치권에 발을 디뎌 당선에 성공한 한 현역 의원의 경험. “입당 환영식이 끝나고 당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그래서 어디로 출마할거냐’는 거였다. 쉽게 말해 ‘내가 출마를 준비 중인 지역구로는 오지 말라’는 의미다. 게다가 현실 정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 정작 내가 어디로 가야 하고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더라. 그러니 영입 인사라 해도 전략공천을 받거나, 확실한 연고가 있는 지역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정작 공천조차 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놓치기 싫어하는 정치권의 구태가 바로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인재 영입 쇼’를 만들어 내는 셈이다. 아마 내년 총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총선까지 1년 3개월여가 남은 시점에서 각 정당의 관심은 오로지 “누가 공천을 행사할 것인가”에만 쏠려 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새 인물의 투입을 준비하는 움직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1년 뒤에는 또 한 번 번갯불에 콩 볶듯이 사람을 찾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한상준기자 alwaysj@donga.com}

    •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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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 국조특위 첫 청문회…증인들, 기존 진술 반복하며 진실공방 벌여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가 4일 연 첫 청문회에서 여야는 경찰의 부실 대응을 강하게 질타했지만 참사의 실질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이날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기존에 나왔던 진술을 반복하며 진실공방을 벌였다. 이태원 참사의 핵심 피의자인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증인으로 출석해 서울경찰청에 인파 관리를 위한 기동대를 요청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제가 (용산서 직원에게) 기동대 요청 지시를 했던 많은 흔적들이 어느 순간 다 사라지니 저도 참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바로 옆에 앉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교통기동대 1개 제대 요청 외에는 요청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청문회에서 지난해 10월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일 충북 제천에서 술을 마셨다고 인정하면서 경찰 지휘부 책임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윤 청장은 “그날 음주를 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의 질문에 “음주했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하지만 윤 청장은 “주말 저녁이면 저도 음주를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동석자를 묻는 질문에는 “그런 것까지 밝혀야 하나”고 했다. 그는 “자리에서 물러날 용의가 없느냐”는 질문에 “취지를 충분히 고민하겠다”고 했다. 6일 두 번째 청문회를 갖는 국조특위는 7일로 활동기간이 끝난다. 다만 당초 여야가 세 차례 청문회 개최에 합의했기 때문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국조특위 연장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이날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여당은 일주일 가량 연장해야 한다는 태도지만 야당은 “최소 열흘은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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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한상준]집권 여당의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일까

    과거 청와대, 현재 용산 대통령실의 구성원들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소속 정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순간 당원 자격을 내려놓고 탈당해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은 예외다. 바로 대통령이다. 정당법 제22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없지만 대통령은 제외다. 문제는, 소속 정당을 대하는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정당의 수장은 당 대표다. 하지만 평당원 신분인 현직 대통령은 집권 여당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 왔고, 당 대표를 뛰어넘는 힘을 과시하려 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예 ‘새 집 짓기’에 직접 나섰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됐던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을 주도했다. 새천년민주당 소속 후보로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여당의 개편에 나선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또 열린우리당이라는 새 집을 지은 것. 진보 정권의 두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창당을 주도했다면, 보수 정권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위 그룹이 전면에 나섰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의 등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총선 공천은 ‘친박 공천 대학살’로 불린다. 친이계의 주도로 친박 인사들이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한 것. 그러나 친이계의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4년 뒤인 2012년 공천에서는 친박계의 복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박의 기세는 더 등등해졌지만, 그 끝은 다르지 않았다. 2014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서청원 의원을 밀었지만 패배하고 만다. 이쯤에서 멈췄어야 했지만, 친박계는 2016년 총선 공천에서 또다시 실력 행사에 나선다. 2023년 새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똑같은 시도가 또 펼쳐질 분위기다. 그 첫 무대는 3월 8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18년 만의 규칙 개정에 나섰다. 일반국민 여론조사를 없애고 ‘당원 투표 100%’로 고쳤고, 결선투표도 도입했다. 무조건 친윤(친윤석열) 진영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의도다. 자연히 전당대회는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경쟁이 됐다. 대통령 관저에서 누가, 몇 번이나 밥을 먹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우리는 윤석열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과거 청와대가 있던 시절, ‘건강한 당청 관계’라는 말이 있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합심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갈 경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권은 여당이 청와대 뜻대로 움직이는 ‘수직적 당청 관계’를 택했고,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집권 2년 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 202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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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권 여당의 대표는 대통령의 부하일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청와대와 여당, 야당을 모두 거쳤고 2023년 현재 국회를 출입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말 뒤에 가려진 진짜 속내와 의미를 찾아내고, 문제를 짚어보려 노력 중입니다. 과거 청와대, 현재 용산 대통령실의 구성원들은 당적(黨籍)을 가질 수 없다. 소속 정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더라도 공무원이 되는 순간 당원 자격을 내려놓고 탈당해야 한다. 다만 한 사람은 예외다. 바로 대통령이다. 정당법 제22조에는 당원 자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해놓고 있다.이 조항에 따라 현재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공무원 중 국민의힘 당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건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다. 역대 대통령들도 당적을 유지한 채 청와대에 입성했었다. 문제는, 소속 정당을 대하는 대통령들의 모습이다. 정당의 수장은 당 대표다. 하지만 평(平)당원 신분인 현직 대통령은 집권 여당에 끊임 없는 관심을 보여 왔고, 당 대표를 뛰어 넘는 힘을 과시하려 들기도 했다.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총재를 맡았던 군사 정권 시절이 지난 뒤에도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여당을 향한 관심을 뛰어 넘어 아예 ‘새 집 짓기’에 직접 나섰다. 1997년 대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당선됐던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의 창당을 주도한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1월 열린 새천년민주당 창당대회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힘을 보탰지만, 그해 4·13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새천년민주당은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에게 원내 제1당 자리를 내준다. 새천년민주당 소속 후보로 김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집권 여당의 개편에 나선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또 새 집을 지은 것.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2월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까지 했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헌정사 첫 탄핵을 겪게 된다.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기세등등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정 운영 실패로 열린우리당도 노무현 정부와 함께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결국 2007년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된다. 정권 재창출 역시 실패. 진보 정권의 두 대통령이 공통적으로 창당을 주도했다면, 보수 정권에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위 그룹이 전면에 나섰다.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의 등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총선 공천은 ‘친박 공천 대학살’로 불린다. 친이계의 주도로 친박 인사들이 무더기로 공천에서 탈락한 것. 그러나 친이계의 전성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4년 뒤인 2012년 공천에서는 친박계의 복수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박의 기세는 더 등등해졌지만, 그 끝은 다르지 않았다. 2014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는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서청원 의원을 밀었지만 패배하고 만다. 이쯤에서 멈췄어야 했지만, 친박계는 2016년 총선 공천에서 또 다시 실력 행사에 나선다. ‘진박(진짜 친박) 감별’과 ‘옥새 파동’이란 말로 회자되는 2016년 총선의 승자는 결국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었다. 2023년 새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똑같은 시도가 또 펼쳐질 분위기다. 그 첫 무대는 3월 8일 열리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18년 만의 규칙 개정에 나섰다. 일반 국민여론조사를 없애고 ‘당원 투표 100%’로 고쳤고, 결선투표도 도입했다. 무조건 친윤(친윤석열) 진영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의도다. 당권 주자들의 관심 역시 오로지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뿐이다. 그렇다보니 대통령 관저에서 누가, 몇 번이나 밥을 먹었는지에 관심이 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우리는 윤석열을 위해 존재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밑에 만난 한 여권 인사는 “이런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엔 뭐가 펼쳐질지 뻔히 보이니 더 걱정”이라고 했다. 두 번째 무대인 2024년 총선에서는 ‘친윤 공천’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과거 청와대가 있던 시절, 정치권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 중에 ‘건강한 당청 관계’라는 말이 있었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합심하면서도, 잘못된 길을 갈 경우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권은 여당이 청와대 뜻대로 움직이는 ‘수직적 당청 관계’를 택했고,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과연 집권 2년차를 맞는 윤석열 정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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