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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국무회의에서 “간병 부담은 ‘간병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국민의 간병 부담을 하루빨리 덜어드릴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가 관계 부처와 함께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밝혔다. 올해 국내 65세 이상 인구가 950만 명에 달하는 등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간병 부담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간병비 급여화’ 등 정책 마련에 나섰다.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서 환자와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다. 정부 내부에서는 간병비 급여화가 시행되면 매년 최소 15조 원 이상의 건보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계했다. 1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연구원 추계 결과 국내 요양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을 때 매년 최소 15조 원 이상의 건보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 환자의 중증도를 5단계로 분류해서 가장 심한 1단계부터 3단계 환자까지의 간병비에 건보를 적용했다고 가정한 결과다. 간병비는 현재 간병인 없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돌보는 간호간병통합병동(통합병동) 환자 등 일부를 제외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루 간병비가 12만∼15만 원에 달해 월 수백만 원이 든다. 연간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47만5949명(2020년 기준)이다. 정치권까지 간병비 경감을 주요 의제로 삼은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최근 총선 공약 1호로 간병비 급여화를 제시했다. 하지만 재정 등을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보 재정은 현행 보험료율(7.09%) 유지 시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28년이면 적립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간병비 급여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제도를 위해서는 현재 요양병원 구조에 대한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증 환자들이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 건 고질적 문제로 꼽혀왔는데, 간병비 급여화 전면 도입은 자칫 이 같은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통합병동도 손보기로 했다. 의료기관들은 통합병동을 운영할 때 일반병동보다 수가(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주는 진료비)를 더 많이 받는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중증 환자일수록 통합병동에서 받아주지 않는 등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임신 25주 만에 태어나 비수도권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미숙아 기쁨이(가명)는 생후 3개월 차인 6월 망막에 출혈이 생겼다. 치료시기를 놓치면 영영 시력을 잃을 수 있는 ‘미숙아망막증’이 의심됐지만, 병원에 이 병을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기쁨이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200km 이상 떨어진 서울 소재 대학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 했다.안과는 흔히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재영(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인기 전공과목 중 하나다. 매년 새내기 의사들이 이들 전공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정작 이들 과목에서도 소아 진료나 중증·응급 질환 진료 인력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의료 회복을 위해선 단순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비인기 과목에 대한 지원만 늘릴 게 아니라 ‘풍요 속 빈곤’에 빠진 인기과목에 대한 정교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사 부족에 미숙아망막증 ‘서울 쏠림’ 심각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의원(국민의힘)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숙아망막증을 진단받은 신생아는 총 1만1999명이다. 지난해 전체 출생아 20명 중 1명(4.8%)은 이 병으로 치료를 받은 셈이다. 하지만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미숙아망막증 진료 인프라가 붕괴된 상태다. 대전의 경우 2013년엔 미숙아망막증 환자 379명을 진료했지만 지난해엔 44명밖에 보지 못했다. 울산 경북 전남 등은 지난해 미숙아망막증 진료 건수가 20건 안팎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기쁨이처럼 ‘원정 진료’를 받는 신생아가 매년 수천 명에 이른다. 지난해 서울 소재 병원에서 진료한 미숙아망막증 환자는 총 5313명이었는데, 주소지가 서울인 미숙아망막증 환자는 2068명에 불과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원정을 온 미숙아망막증 환자만 3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실제로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을 운영하면서도 미숙아망막증을 볼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는 병원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교수 1명이 여러 병원의 NICU를 돌며 미숙아망막증을 진료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김상진 삼성서울병원 안과 교수는 “소아 안과 분야는 고가의 특수 장비가 필요하고, 인력도 성인 환자를 볼 때보다 두세 배로 필요한데 책정된 진료비는 낮아 병원들도 투자를 꺼린다”고 말했다. ● 의사 부족해 시술로 충분한 환자 수술하기도다른 인기 과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판독하는 영상의학과는 대표적인 인기 과목이지만, 영상 ‘인터벤션(중재)’ 분야는 인력난에 허덕인다. 인터벤션은 피부를 절개하는 대신 혈관 등에 가느다란 기구를 넣어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면서 뇌혈관 질환 등을 치료하는 시술이다. 하지만 영상의학과 내 다른 분야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고 당직이 잦아 신규 전임의(펠로)가 2019년 25명에서 올해 12명으로 급감했다. 수도권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영상 인터벤션을 할 의사가 없어 간단한 시술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수술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정형외과 전문의도 도수치료나 동결건(이른바 ‘오십견’) 등 개원가 수요가 높은 탓에 소아나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를 찾기 어렵다. 특히 골격 기형을 가진 아이를 수술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는 전국에 20여 명에 불과하다. 올해 61세인 조태준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정형외과 교수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 가운데 상당수는 5년 안에 은퇴한다”라며 “이대로 방치하면 가물에 콩 나듯 지원자가 나타나도 가르칠 사람이 없어서 포기해야 한다”고 경고했다.성형외과도 마찬가지다. 안면 외상이나 기형 환자를 상대로 재건 수술을 하는 의사는 대표적인 ‘3D 직종’이다. 특히 뇌종양 제거 후 재건 수술은 난도가 높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의사의 부담이 크다. 정지혁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성형외과 교수는 “국내 최고라는 우리 병원도 소아성형외과만 다루는 펠로를 구하지 못해 다른 분야와 순환근무를 시켜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과목 아닌 질병 따라 필수의료 재정의해야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9월 기준 국내에서 활동 중인 ‘피안성’ 전문의 8577명 중 가장 중증인 환자들이 가는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830명(9.7%)뿐이다. 최근 5년 새 ‘피안성’ 전문의는 1158명 늘었는데, 늘어난 의사 중 95%(1100명)가 동네 의원에서 근무한다. 소아·중증·응급 분야에서 일하면 업무 부담은 큰데 보상은 적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안과를 예로 들면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문의의 소득(약 1억5000만 원)은 동네 의원 의사의 3분의 1 수준이다.정부는 필수의료 회복을 위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비인기 과목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왔다. 그 사이 인기 과목 내에서 소아나 중증·응급 진료를 보는 하위 분과들은 오히려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어떤 과목을 전공했는지가 아닌 ‘어떤 질환을 진료하는가’로 필수의료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이 낮지만 생명이 오가는 진료를 하는 의사에 대해선 전공에 관계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병원 현장에서 나타나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는 게 정부가 할 역할이란 지적도 나온다. 소아 사시 환자를 진료하는 김응수 중앙대 광명병원 안과 교수는 “병원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은 환자를 보지만 병원에 가져다 주는 수익은 하위권”이라며 “이런 구조가 개선돼야 소아·중증 진료 인프라가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종헌 의원은 “단순히 일부 과목에 대한 투자만 늘릴 게 아니라 국민 생명에 꼭 필요한 진료 분야들을 꼼꼼하게 따져 세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의대 정원 일부를 의대 정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의 타당성을 18일 국회가 처음으로 논의한다.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도 이런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는 18일 제2법안심사소위원회(2소위)에서 ‘지역의사제 관련 법안 제·개정 반대 및 한의대 정원을 이용한 의사 확충 재고에 관한 청원안’을 회부한다고 밝혔다. 이 청원안은 2020년 8월 노모 씨가 국회 청원 시스템인 ‘국민동의청원’에 올려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에 접수됐는데, 복지위에 회부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청원안의 쟁점은 2개다. 의대 정원 일부를 별도로 선발하되 일정 기간 의료 취약지에서 의무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의 도입과 한의대 12곳의 정원(약 800명) 중 일부를 의대 정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이다. 이 청원안은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의사 단체 반발에 밀려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보류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2소위는 이날 지역의사제 도입 법안도 함께 논의한다. 특히 한의대 정원을 줄이고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은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가 지난달 1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부에 정식 제안했고, 대한의사협회(의협) 일각에서 동의하고 있어 3년 전과 분위기가 다르다. 한의계는 신규 한의사 배출을 줄여 동종업 경쟁을 낮출 수 있고, 의사들도 의대 정원 확대를 저지할 수 없다면 그나마 경쟁 관계인 한의사 수라도 줄이는 게 낫기 때문에 양측 모두 긍정적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도 이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내년 초 의대 정원 증원의 규모와 방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의대 정원 감축을 함께 발표할 가능성은 낮다. 정부가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를 합치는 이른바 ‘의·한 일원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의사 단체가 강하게 반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17일 강모 씨(36)는 한 살 난 아이가 콧물이 점점 심해지자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했다. 일요일에 문 연 의원을 찾아 영하 10도의 한파를 헤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근 의원과 영상 통화로 진료를 받은 것까지는 순조로웠지만 약을 타는 게 문제였다. 주말에 문을 연 몇 안 되는 약국들이 모두 비대면 처방전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강 씨는 직접 의원에 가서 종이 처방전을 받은 뒤 약국으로 가서 약을 타야 했다. 보건복지부는 15일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대상과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16, 17일은 새 지침이 적용된 첫 주말이었다. 기존엔 주말을 포함한 휴일과 야간에도 비대면 초진은 18세 미만 소아청소년 대상 상담만 가능했지만, 15일부터는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나 약 처방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평일 초진을 허용하는 대상 지역도 섬·벽지에서 ‘응급의료 취약지’ 98개 시군구로 넓어졌다. 비대면 재진 허용 대상도 ‘30일 안에 같은 질병으로 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에서 ‘6개월 안에 무슨 질병이든 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로 완화됐다. 하지만 강 씨 사례처럼 약을 받는 단계가 여전히 걸림돌이다. 대한약사회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약 배송은 불가능해졌고, 특히 주말이나 야간에는 비대면으로 받은 처방전을 팩스나 전산으로 접수하는 약국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회에는 임시방편 격인 시범사업이 아니라 비대면 진료를 정식으로 법제화하는 법안이 5건 계류돼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에 반발해 17일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강행했다. 하지만 주최 측 예상 인원의 절반도 모이지 않은 데다, 전 회원을 상대로 실시한 총파업(집단 휴진) 찬반투표도 참여가 저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정부 투쟁을 주장해온 의협 내 강경파도 이날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구성에 실패하면서 향후 의협이 집단 행동보다는 정부와의 협상에 적극 임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경찰 추산 1000명 참석… “득보다 실 많아” 의협 등 의사단체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제1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을 규탄했다. 이날 집회엔 경찰 추산 1000여 명이 참가했다. 당초 주최 측이 경찰에 신고한 인원 7000명의 약 15% 남짓한 규모다. 한 의사단체 관계자는 “일부 지역 의사회가 한파 등의 영향으로 참가를 포기했고, 전공의(레지던트) 시험일과 겹쳐 젊은 의사 중 상당수가 참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날 “약 8000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한낮 최고기온이 영하 6도인 강추위 속에서 이들은 덕수궁 대한문 방향 세종대로 편도 3개 차로를 점거하고 “의대 정원 졸속 확대 의료체계 붕괴된다”,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후 3시경 집회를 마친 이들은 서울역까지 행진했다. 원래 용산 대통령실까지 가두 행진을 벌이려 했지만 추운 날씨 탓에 일부 인원이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축소했다. 주최 측은 오후 4시경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문을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이번 집회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판 여론을 무릅쓰고 집단 행동에 나섰지만 얻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파업 투표 참여율 저조, 결과 공개 않기로 의협은 11일부터 이날 0시까지 실시한 회원 대상 총파업 찬반투표의 결과도 공개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의협 고위 관계자는 “17일 현재까지 투표율이 2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참여가 저조해 결과를 공개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7월 의협이 문재인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 휴진했을 당시 투표율이 약 23%에 그쳐 “저조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때 의협 지도부는 집단 휴진을 강행했지만 실제 휴진한 개원의는 약 10%였다. 의협은 17일 집회에 앞서 임시대의원회를 열고 대정부 강경파를 주축으로 비대위를 구성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표결 끝에 무산됐다. 이에 따라 의협은 향후 강경 투쟁보다는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 나서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똑같이 심장이 멎어서 쓰러져도 전남에선 살아날 가능성이 서울의 절반도 안 된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런 지역 격차는 최근 2년 새 더욱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비수도권 농촌 지역에서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지역 응급의료 인력을 보강하는 것 못지않게 고령자들이 심폐소생술(CPR)을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전남 심정지 생존율 격차, 2년 새 1.5배→2.2배14일 질병관리청과 소방청이 국가손상정보포털에 공개한 ‘2022 급성심장정지조사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9구급대가 이송한 급성 심정지 환자는 총 3만5018명이었다. 2018년 3만539명보다 14.7% 늘었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심장병 등 기저질환자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인구 10만 명당 급성 심정지 환자 수가 서울 49.5명, 전남 99.7명 등으로 차이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수도권보다 지방의 고령층 비율이 높다.주목할 점은 노인 비율 등 인구 구성을 감안해 결과를 보정해도 지역에 따라 급성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이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령 표준화 생존율은 전국 평균이 9.5%였다. 그중 서울(12.8%), 인천(12.1%) 등 도시 지역은 생존율이 10%가 넘었지만 전남(5.7%)과 경북(7.1%), 전북(7.6%) 등 농촌은 전국 평균에 못 미쳤다. 17개 시도 중 1위 서울과 최하위 전남의 심정지 생존율이 2020년엔 각각 12.0%와 7.8%로 1.5배 차이 났는데, 그 격차가 2년 만에 2.2배로 벌어졌다.이는 심정지 후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뇌 기능이 회복된 환자의 비율인 ‘뇌기능 회복률’에서도 비슷했다. 제주(10.8%)와 세종(9.3%), 서울(9.1%) 등 상위 지역과 전남(4.3%), 충남(4.6%), 울산(5.2%) 등 하위 지역의 격차가 컸다.● “농촌 노인들에 CPR 교육 실시해야”이런 지역 격차엔 응급의료 인프라의 차이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소도시나 농촌은 119안전센터나 응급실을 갖춘 병원이 대도시만큼 밀집해 있지 않아 이송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응급실을 1시간 내 이용한 비율은 서울(90.3%)과 인천(86.7%), 경기(77.6%) 등 수도권에 비해 전남(51.7%)과 경북(53.4%), 강원(55.8%)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심정지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더 결정적인 요인은 ‘일반인 CPR 실시율’이다. 지난해 119구급대 도착 전에 CPR을 받지 않은 경우엔 생존율이 5.9%에 그쳤지만, 목격자가 CPR을 했을 땐 12.2%로 치솟았다. 실제로 일반인 CPR 실시율이 높은 대구(45.6%)와 서울(44.9%), 세종(39.7%) 등에선 환자 생존율이 비례해서 높았던 반면, 전남(13.1%), 충남(15.0%), 울산(16.0%) 등은 생존율이 낮았다.이는 학교나 군대에서 CPR을 배운 젊은층과 달리 농촌 노인들은 그럴 기회가 적고,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별도 교육을 위한 예산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농촌 노인 대상으로 CPR 교육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제주 지역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제주는 인구 10만 명당 급성 심정지 환자가 104.2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데 종합병원은 6곳밖에 없다. 그런데 급성 심정지 생존율이 12.5%로 서울에 버금간다. 갈 병원이 몇 곳 없으니 역설적으로 환자가 ‘표류’하지 않고 곧장 이송돼서 목숨을 구했다는 뜻으로, 명확한 이송 체계가 중요하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3년 전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후 6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대학생이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공과대학장실에서 故 김도원 씨(사망 당시 21세)에게 명예졸업증서가 수여됐다고 14일 밝혔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김 씨는 2020년 4월 지인을 만나고 귀가하다가 낙상 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급히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 상태가 됐다. 2019년 연세대 공과대학에 입학한 김 씨는 어릴 때부터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았고 학생 시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학습 기부를 해왔다고 한다. 유족은 김 씨가 마지막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도우려 했을 거라고 판단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김 씨의 심장과 폐, 간장, 양 콩팥, 췌장은 장기 기증을 기다리던 환자 6명에게 각각 이식됐다. 김 씨의 아버지는 “언젠가 노래방에서 네 엄마에게 불러줬던 노래 ‘여행’(볼빨간사춘기) 가사처럼,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롭게 날아가렴”이라고 인사했다. 한편 유족은 김 씨가 당한 사고의 책임을 두고 30개월이 넘는 소송을 벌인 결과 2심 재판부로부터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시설물 설치와 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받아내, 지역 안전 강화와 비슷한 사고 방지를 위한 의미 있는 판례를 남겼다고 전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저는 그냥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인 것 같아요. 내가 무능하고 그냥 (사회에서) 필요가 없으니까… 죽고 싶어도 (부모님께) 불효하는 것 같아서 죽지도 못하겠어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로 불리는 한 고립·은둔 청년이 올 7, 8월 정부의 온라인 실태조사에서 남긴 심경이다. 국내 고립·은둔 청년 가운데 이 청년처럼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4명 중 3명꼴로 나타났다. 상당수는 사회 복귀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전의 고립된 상태로 되돌아갔다. 정부는 내년에 1341억 원을 투입해 고립·은둔 청년의 조기 발견과 심리상담, 취업 지원을 도울 예정이다.● 절반은 일상 복귀 실패 후 다시 고립보건복지부는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고립·은둔 청년은 제한된 공간에서만 생활하는 등 사회활동이 거의 없거나 위급할 때 기댈 사람이 없는 이들을 뜻한다. 정부가 이들에게 초점을 두고 조사를 벌이거나 범부처 지원책을 마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고립·은둔 청년은 약 54만 명이고,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복지부 추산 연간 약 7조 원으로 추정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7, 8월 고립·은둔 경험이 있는 만 19∼39세 8874명을 조사한 결과 6360명(75.4%)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일반 청년 조사에서 ‘자살 생각’ 응답률이 2.3%였던 것에 비하면 약 33배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나이대는 20대(60.5%)와 10대(23.8%)가 가장 많았고, 주된 이유는 취업 실패(24.1%)와 대인관계 어려움(23.5%)이었다. 한 청년은 “휴대전화가 울리면 받기가 무섭다”고 했다. 응답자 중 80.8%는 현재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했고, 67.2%는 실제로 일상 복귀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45.6%는 일상 복귀에 실패하고 다시 사회와 단절됐다.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정보가 없고, 도움을 청할 경제적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였다. 한 응답자는 “상담이든 뭐든 받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보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조사를 맡은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립·은둔 시간이 길수록 정신 건강이 악화하고 사회 단절이 심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대면 자가 진단 이후 상담-취업 등 원스톱 지원정부는 내년 하반기(7∼12월) 중 고립·은둔 청년이 언제든 비대면으로 자가 진단과 도움 요청을 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고위험군을 선별해 서울을 포함한 4개 지역에 시범 설치하는 ‘청년미래센터’로 연결하기로 했다. 청년미래센터에서는 ‘3끼 먹기 챌린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자조 모임과 방문 심리상담, 탈(脫)고립·은둔 성공 청년과의 멘토링, 가족관계 회복 등을 지원한다. 고립·은둔 청년 상당수가 도움 청할 곳을 찾는 것부터 어려워하는 점을 고려했다. 이번 실태조사에서 파악된 고위험군 1903명이 우선 지원 대상이 된다.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고립·은둔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청년 카페를 만드는 등 10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 성장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집 밖으로 나오게 유도하는 전략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고립·은둔 청년이 일상을 회복하면 다양한 사회문제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며 “다양한 복지정책으로 이들을 폭넓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후년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소득과 무관하게 본인부담금을 내고 가사 지원 등 정부의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12일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2024∼2028년)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각 부처에 흩어진 사회서비스 제도를 아울러 추진 방향과 실행 계획을 담은 것으로, 지난해 3월 제정된 사회서비스원법에 따라 처음 수립됐다. 눈에 띄는 건 일부 복지 서비스의 소득 기준을 완화해 중산층도 자기 돈을 내고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점이다. 대표적인 게 만 65세 이상 거동 불편 노인에게 월 40시간 이내에서 가사 등을 지원하는 ‘노인맞춤돌봄’이다. 지금은 본인 부담 없이 소득 하위 70% 노인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2025년부터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되, 이용료 중 본인 부담의 비율을 기초생활 수급자는 0%로 유지하고 중위소득(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앙값) 160% 이상인 가구에는 100% 부과하는 식으로 차등을 둔다.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의 경우 보호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자택에서 나이 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재편한다. 이를 위해 시설 내 주야간 보호뿐 아니라 자택 방문요양 등을 모두 제공하는 통합 재가 서비스 기관을 현행 50곳에서 2027년 전국 1400곳으로 대폭 늘린다. 재택의료센터도 38곳에서 전국 250곳으로 확대한다. 그간 사회서비스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던 청장년층으로도 사업이 확대된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때 식사나 병원 방문 등을 돕는 ‘긴급돌봄’은 현재 중위소득 120% 이하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만 이용할 수 있지만, 내년부터 나이나 소득 제한 없이 갑작스럽게 질병을 앓거나 부상당한 경우 등으로 확대한다. 가족돌봄청년이나 중장년 1인 가구 등만 받을 수 있었던 청소 등 ‘일상돌봄’은 내년부터 대상자를 청년 1인 가구로 넓히고 시행 지역도 현행 51곳에서 100곳으로 늘린다. 가족돌봄청년에겐 연 200만 원의 자기돌봄비를 지급한다. 복지부는 이 같은 사회서비스 제공 기관에 ‘품질 인증제’를 도입해 이용자 만족도 등 평가 결과를 일반에 공개하고 우수 기관엔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에 반발하며 11일부터 총파업(집단 휴진)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진료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환자들의 우려에, 정부는 비상대응반을 구성했다. ● 3년 전 총파업 이끈 강경 인사 앞세워이날 의협은 회원 13만 명에게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강행했을 때 의료계가 총파업을 진행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문항이 담긴 온라인 설문조사 주소를 배포했다. 의협은 17일까지 투표를 시행한 뒤 서울 광화문에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열 방침이다. 의협은 문재인 정부 당시 2020년 의료계 총파업을 이끈 최대집 전 의협 회장을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 수석부위원장 겸 투쟁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최 전 회장은 3일 범대위 회의에서 “(의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될 각오로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번 투표에선 집단 휴진에 찬성하는 응답이 우세할 가능성이 높다. 10월 서울시의사회가 벌인 설문에서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회원 응답률이 76.8%로 높았고, 의협 회원 다수를 차지하는 개원의 사이에서 ‘의사 인력 증가로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다만 찬성표가 많다고 해서 곧장 집단 휴진에 돌입하는 건 아니다. 정부와의 협의에서 증원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압박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의협 측은 설문 결과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정부가 향후 증원 규모를 ‘통보’하듯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에 대비해 회원들의 투쟁 의사를 미리 확인해 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익 없다” 의료계 내에서도 동력 약해의사 단체가 마지막으로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해 집단 휴진을 벌인 건 2020년 8월이다. 당시 중증·응급환자 진료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전공의(레지던트)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에 차질이 생기자 정부가 “증원을 강행하지 않겠다”라며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엔 3년 전보다 의사 단체의 동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3년 전 대정부 투쟁의 선봉에 섰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파업에 신중한 입장이다. 대전협은 지난달 22일 “(정부가) 독단적인 결정을 강행하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낸 후로 구체적인 행동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2020년 집단 휴진 당시 개원가의 참여율이 10%대에 그치면서 전공의 사이에서 ‘총알받이가 됐다’는 실망이 나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의료계 내에서도 집단 휴진의 실익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의협 내에서도 강경 발언이 힘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라리 정부와 협상을 통해 지역·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한 보상책 등을 얻어내는 게 유리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는 것. 정부와 여당은 의협의 집단 행동에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건강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이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10일 보건의료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비상대응반을 구성해 의료계 집단 휴진에 대한 진료 대책을 점검하기로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민 생명과 건강에 위협이 되면 법에 따라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대한의사협회의(의협)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11일부터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하는 가운데 정부가 보건의료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보건복지부는 10일 조규홍 장관 주재로 자체 위기평가 회의를 열고 의료계 상황 등을 고려해 보건의료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비상대응반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관심’은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라 보건의료 관련 단체의 파업·휴진 등에 대비해 진료 대책을 점검하고 유관기관과 협조체계 등을 구축하는 단계다. 정부가 이 단계를 발령한 것은 올 6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의료서비스 공급 차질이 예상될 경우 위기 경보를 관심→주의→경계→심각 등 단계별로 내릴 수 있다. 복지부는 비상대응반 내 전담팀에서 비상진료대책을 수립하고 진료체계를 점검해 의료 현장에 혼란이나 불편이 없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의료계와의 대화를 충실히 이어가되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반대하며 전 회원을 대상으로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를 11일부터 7일간 진행하고, 17일엔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총궐기대회를 열기로 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응급환자가 병상을 못 찾아 ‘표류’하지 않도록 병원끼리 협력해 해결책을 찾는 등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지역에 정부가 총 1500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19일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살리겠다”며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지역 의료 네트워크 강화’를 주요 전략으로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나온 첫 번째 대책이다. 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울산시에서 열린 ‘제1차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을 위한 지역 순회 간담회’에서 “지역 간 필수의료 격차 완화를 위해 내년 하반기(7∼12월)부터 3개 권역에 3년간 각각 최대 500억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자하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권역 책임의료기관이 각 지역 내에서 취약한 필수의료 분야를 선정해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사업계획을 내면 심의를 거쳐 3개 권역을 선정한다. 이후 의료진 신규 채용이나 네트워크 구축에 드는 비용 등을 공공정책수가로 정부가 지원한다. 복지부는 우선 ‘중증·응급 심뇌혈관 진료 강화’에 5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출혈 등을 치료할 의료진을 충분히 확보하고, 인근 병원과 협력 체계를 구성해 환자 ‘표류’를 해소하는 지역을 우선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심뇌혈관 질환은 골든타임이 짧은 반면 수술 의사가 부족해, 지역 내 가용 인력과 장비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암 등 중증 질환을 치료할 의사가 부족한 취약지 중에서 의료 인력을 공동으로 운영해 대처하는 지역,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이나 분만 소아 진료 등 필수의료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지역도 선정해 각각 500억 원을 투자한다.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을 경증이나 비응급 질환보다는 중증·응급 분야에 더 많이 투입하는 방식으로 체계를 개혁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의료행위의 ‘상대가치’ 산정 기준을 바꿔 위험성, 시급성, 치료 난이도, 24시간 대기 비용 등을 수가에 충분히 반영할 예정이다. 상대가치 점수는 2001년 도입된 건강보험 수가 체계의 바탕인데, 현재는 경증 환자 여러 명을 보는 게 중증 환자 1명을 보는 것보다 유리하게 짜여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부가 앞으로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질환 예방부터 상담, 입원치료, 재활까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관리한다. 정신질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거나 퇴원 후 방치되는 ‘치료 절벽’ 문제, 서현역 흉기 난동과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 같은 정신질환 관련 범죄 등을 막기 위해서다.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자살률도 10년 내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5일 윤석열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대회’에서 “정부는 국민 신체에서 정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강을 지켜야 하는 책무가 있다”며 “정신건강을 더 이상 개인 문제로 두지 않고 주요 국정 어젠다(의제)로 삼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예방과 치료, 회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의 지원체계를 재설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내년 3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발족할 계획이다. 앞으로 정부는 고위험 환자가 퇴원하면 각 지방자치단체 및 기초자치단체 산하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이들을 ‘집중 관리군’으로 등록하고 매주 만나 상담한다. ‘낮 병동’ 등 재활치료 서비스도 늘린다. 환자가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많고, 그 부담을 가족이 떠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본보 11월 28일자 A1·10면 참조) 때문이다.중증 정신질환자 퇴원땐, 병원-지자체가 정보 공유해 추적 관찰 정부 “정신질환 통합관리” 위험 환자, 지자체 ‘집중 관리군’ 등록… 치료 중단땐 치료 명령-강제 입원청년 정신건강검진 주기 10년→2년… ‘우울증 환자 30%’ 노인대책은 빠져 정부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고 범부처 차원에서 정신건강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정신건강 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우울증 환자 100만 명’으로 대표된다. 올 8월에는 분당 서현역에서 중증 정신질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졌고 12명이 다쳤다. 정신질환자 관리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국가적 문제로 급부상하자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 대책에는 상담, 예방, 입원 치료, 퇴원 뒤 사후관리, 회복 등 모든 과정을 망라하는 내용이 담겼다. ● 위험한 정신질환자 정보, 병원-지자체 공유 타인을 해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해를 할 위험이 있는 입원환자는 퇴원 후 관리가 강화된다. 병원은 환자 본인이 동의하지 않아도 시군구 산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이들의 정보를 전달하고 ‘집중 사례관리군’으로 등록한다. 지역사회가 환자 정보를 쥐는 셈. 그러면 센터는 퇴원 환자를 찾아가 상담을 하고 약을 제대로 복용하는지 확인한다. 만약 환자가 마음대로 치료를 중단하면 강제외래치료 명령, 강제입원 명령 절차에 돌입한다. 지금까지는 시군구에 거주하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이런 조치를 시행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치료가 시급한 정신질환자가 병상을 못 찾아 ‘표류’하는 일이 없도록 내년 1월부터 집중치료와 격리보호 의료수가를 95% 인상한다. 병원이 수지타산이 안 맞아 병상을 줄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또 정신응급 출동팀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응급입원 병상도 모든 시군구에 최소 1개씩 확보한다. 가용 병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플랫폼도 구축한다. 올 3월 대구에서는 외상과 정서적 어려움을 동반한 17세 여학생이 병상을 찾지 못해 숨졌다. 이 같은 응급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도 확충한다.● 청년 대책 집중… 검진 강화, 상담 지원 윤석열 대통령은 5일 “직장인은 회사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도 쉽게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일상적 마음 돌봄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에는 학생, 청년, 직장인 대상 검진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신질환은 대개 청년기에 발병하는데 방치돼 악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만 20∼34세 청년은 현재 10년마다 받는 국가 정신건강 검진을 2년마다 받을 수 있게 된다. 대상 질환도 우울증에서 앞으로 조현병, 조울증 등까지 확대된다. 일선 초중고교에서는 정서 불안 등 위기군 학생을 선별하기 위해 현재 3년마다 실시하는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를 ‘마음 EASY검사’로 개편해 언제든 받을 수 있게 한다. 직장인은 2년마다 받는 일반검진 항목에 정신건강 영역이 추가되고, 실직자는 고용센터에서 스트레스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위험군’으로 선별된 사람은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에 따라 8차례 심리상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대상은 내년 8만 명에서 2027년 50만 명까지 점차 확대한다. 4년간 총 7800억 원이 투입돼 100만 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통해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25.2명이었던 자살률을 10년 내 OECD 평균(10.6명)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사법 입원제-노인 우울증 대책은 빠져 윤 대통령은 “선진국은 정신질환을 국가적인 문제로 접근하기 시작한 지 이미 60년이 넘었다”며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도자의 의지’와 ‘정부의 실행력’ 중 하나가 갖춰졌으니, 앞으로 남은 건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입원을 명령하는 ‘사법입원제도’는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 침해 논란, 법원 인력 부족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지속 치료를 위한 보상 강화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은 점도 문제다. 병원 의료진이 환자의 퇴원 후 치료계획을 짜주는 병원 기반 사례 관리 사업은 지금도 수가가 낮아 병원 참여율이 10.1%에 불과하다. 우울증 환자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노인 우울증 대책이 빠진 점도 문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전문인력 부재로 인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소아응급실) 진료 불가능.” 4일 오전 8시 충남 천안시 순천향대 천안병원이 지역 소방당국 등에 메시지 한 통을 발송했다. 이 병원 소아응급실을 지키던 의사 7명 중 3명이 줄줄이 그만두거나 사의를 밝히자 ‘앞으로 월요일, 화요일에는 환자를 받을 수 없다’며 환자 수용 불가, 일명 ‘바이패스(Bypass)’를 통보한 것. 이 병원은 2010년 전국 최초로 소아응급실로 지정된 뒤 반경 100km 내 중증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책임지는 지역의 중추적인 의료기관이었다. 하지만 필수 의료 인력난을 피해 가지 못하면서 지역 의료 공백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경 100km 응급 공백 우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4일부터 당분간 주 2일(월·화요일)은 소아응급실에 새 환자를 받지 않는다고 알렸다. 지난달 말 이 병원 소아응급실 소속 의사 총 7명 중 1명이 그만뒀다. 이어 다른 2명이 장기 휴가를 내거나 사의를 밝혔다. 진료 가능 의사는 4명만 남았다. 병원 관계자는 “그나마 환자가 몰리는 주말에 진료 공백을 피하려 휴진일을 평일로 정했다”고 전했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2010년 9월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전국 1호 소아응급실 운영 기관으로 지정됐다. 소아 환자 전용 병상과 수유실 등을 갖추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24시간 상주 진료한다. 이후 13년간 중단 없이 365일 진료를 이어 왔다. 현재 소아응급실은 전국에 10곳이다. 순천향대 천안병원은 소아 진료가 가능한 일반 응급실이 부족한 충청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주 2일 휴진만으로도 지역 내 응급체계에 파장이 있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천안시에는 야간 진료가 가능한 달빛어린이병원이 2곳 있지만 모두 오후 11시에 문을 닫는다. 중앙응급의료센터 관계자는 “순천향대 천안병원 소아응급실은 그간 서쪽으로는 태안군부터 동쪽으로는 충북 충주시까지 반경 100km 내 중증 소아 응급환자를 책임져 왔다”며 “응급 대응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상 적고 위험 큰 소청과, 잇단 의사 이탈 의료계에선 이번 사태를 ‘상대적 보상은 적은데 소송 위험은 큰’ 소아응급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어린 환자는 성인보다 치료도 복잡하고 투입되는 인력도 많지만 수입이 충분치 않고 의료분쟁에 휘말리면 합의금이나 보상액도 크다. 환자의 여생에 비례해 손해액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소아응급실 전문의 1명당 인건비 지원액을 현행 1억 원에서 1억4400만 원으로 올리려 했지만 관련 예산은 삭감됐다. 최근 응급의료 관련 법령이 엄격해지자 의사들이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복지부는 일손이나 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응급환자를 수용하지 않으면 의사를 처벌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검토 중이다. 한 소아응급 전문의는 “지난달 20일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개정 의료법이 시행되자 ‘거리에 나앉느니 개원하는 게 낫겠다’며 그만두는 동료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결국 소아응급 등 필수 의료 의사의 이탈을 막으려면 정부가 나서서 보상을 높이고 응급 상황에서 법적 책임을 덜어 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특정 병원에 응급환자가 쏠리지 않게 조율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해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진희(가명·59) 씨는 넉 달 전 그때를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시간’으로 기억한다. 시작은 8월 25일 오후 2시경 걸려 온 전화 한 통이었다. 전날 실종된 아들(31)이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맨발로 배회하고 있다는 경찰의 연락이었다. 아들은 중증 정신질환자다. 2014년 환각에 시달리다 아파트에 불을 질러 2년간 치료감호를 받았다. 남편이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홀로 아들을 돌보며 수차례 비슷한 일을 겪은 김 씨는 아들이 빨리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태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방화 전력 있는데… 병원들은 입원 거부경찰은 가까운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 김 씨와 아들을 데려다줬다. 하지만 의료진은 “의사가 없다”며 입원을 거부했다. 송파구의 다른 병원도 “기존에 우리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만 받을 수 있다”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김 씨 일행을 태운 경찰차가 병원과 병원 사이를 ‘표류’하는 동안 경찰들이 정신병원 리스트를 들고 수십 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 데서도 오라고 답하지 않았다. 김 씨는 하는 수 없이 사설 구급차를 불러서 아들과 귀가했다. 그날 밤 아들은 다시 실종됐다. 아들이 발견된 것은 다음 날 오전 7시경 경기 양평군의 한 기차역이었다. 아들은 선로 위에 서 있다가 열차가 급정지한 덕에 목숨을 건졌다. 이후 김 씨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병원에 간신히 아들을 입원시켰다. 김 씨는 “국가가 해준 건 ‘철로를 무단 통행했으니 과태료를 내라’며 고지서를 보낸 것뿐”이라며 “아들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빈 병상 찾아 병원 43곳에 전화 중증 정신질환자가 갑자기 환각이나 망상 등 극심한 증상을 보일 때 가장 중요한 건 빠르고 안전하게 병원에 데려가 집중 입원 치료하는 것이다. 그게 안 돼서 벌어진 게 2019년 4월 ‘안인득 방화·살인 사건’이었다. 이후 정부는 전국 병원 10곳에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를 설치하고 시도마다 정신응급 이송 체계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여전히 급성기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병상과 의료진이 부족하다. 최근 입원 병상을 찾기 위해 병원 43곳에 전화해야 했던 A 군(16)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 군은 지난달 25일 오전 6시 반 공격적인 이상 행동을 보여 서울의료원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다. 입원 후 관찰이 필요했지만 폐쇄병동은 만실이었다. 의료진이 오전 11시부터 수도권 다른 병원의 수용 가능한 병상을 찾아 전화했지만 전부 “병상이 없다”, “청소년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A 군은 다음 날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경기 안산시의 한 병원에서 ‘수용 가능’ 통보를 받았다. 박근홍 서울의료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급성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자를 받아주는 병상과 의사가 부족한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환자 가족들은 관련 모임에서 알게 된 인맥으로 알음알음 병원을 수소문한다. 유지현(가명·67) 씨는 올 1월 29세 조현병 아들이 실종 후 일본에서 발견됐을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들은 조현병 환자였지만 항공권 발권과 출국 수속을 모두 통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아들을 찾아 귀국시켰지만, 병원들은 “사흘 후에나 입원할 수 있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유 씨는 환자 가족 모임 추천으로 어렵사리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유 씨는 “정신질환자와 가족에게는 모든 게 ‘각자도생’이다”라고 말했다.● “수지타산 안 맞아” 병상 줄이고, 의사들은 개원 쏠림 급성기 병상이 부족한 근본 원인은 ‘수지가 맞지 않아서’다. 최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켜 집중치료하면 하루 25만134원을 받는데, 다른 진료과 평균의 39% 수준이다. 일본(약 50만 원)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특히 단기간 집중 관리가 필요한 급성기 환자와, 장기 입원 중인 만성 환자의 입원료에 별 차이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병상 운영 기준까지 강화되면서 많은 병원이 정신건강의학과 병상을 줄이고 있다. 증상의 정도와 무관하게 의사 1명당 입원한 정신질환자 60명을 볼 수 있도록 한 인력 기준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과 대만은 의사 1명당 환자 수를 증상에 따라 차등화해 운영한다. 빈 병상은 있는데 환자를 돌볼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병원도 적지 않다. 경기 지역의 한 정신병원장은 “하룻밤 당직비로 50만 원을 줘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의대에서 대표적인 인기 과목이다. 올해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170.1%로 성형외과(160.3%)나 피부과(158.6%)보다 높았다. 그런데도 의사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정부는 2018년 7월 정신질환 상담을 장려하기 위해 관련 수가를 올렸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마음 건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자 정신건강 전문의들이 너도나도 ‘병원 차리기’에 나섰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동네의원 근무 인원은 2016년 1215명에서 올 9월 2224명으로 늘었다. 반면 병원급 이상 근무자는 2026명에서 1882명으로 줄었다. 동네에서 가벼운 우울증 등 경증 환자들을 상대로 외래 진료만 보는 의사들은 늘었고, 대형 병원에서 중증 정신질환 환자들을 입원 치료할 의사는 줄었다는 뜻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전공의를 마치고 전임의(펠로)로 병원에 남아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에 대해 더 배우려는 의사를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부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발표한다. 한 개인이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인생의 각 단계를 거치면서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을 때 국가가 이를 맞춤형으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2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5일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혁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담당해 온 정신건강 관련 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하는 것과,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관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반적인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바꾸는 개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 10년→2년지금까지는 ‘치료’에 집중됐던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예방·조기 발견→치료→재활·일상 회복’이라는 전 과정으로 확대해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대표적인 대책은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검사 대상 질환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수록 예후가 좋고, 중증·만성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현재 국가 정신건강 검진은 만 20세부터 10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2년으로 단축할 방침이다. 검진 대상 질환도 지금은 우울증에 한정되지만, 여기에 조현병과 조울증 등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 검진을 할 때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시기별 맞춤형 검진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검사를 통해 정신질환 위험군으로 판별되면 무료 상담 기회를 제공해 치료 문턱도 낮출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고위험군 8만 명에게 정신건강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에 내년도 예산 539억 원을 책정했고, 2027년에는 지원 대상을 50만~100만 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환자별 맞춤 관리 계획 수립이번 정신건강 혁신 방안에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중등도 이상 우울장애 등을 앓는 이로, 2021년 기준 국내에 65만 명에 달한다.퇴원 이후에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재활 치료에 참여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 퇴원을 한 환자와 가족 앞에 펼쳐지는 건 ‘치료 절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본보 11월 28일자 A1·10면 참조).정부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경우 약 처방이나 상담뿐 아니라 ‘집중관리군’ 등록을 통해 회복과 재활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환자별 ‘케어 플랜’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증상이 완화됐다고 느껴 스스로 약을 끊고 병세가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정부는 퇴원 환자의 직업 재활과 동료 지원, 후속 검사뿐 아니라 돌봄에 지친 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정부는 또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과 교육에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이 분야 예산은 올해 2억 원이었지만 복지부는 내년도에 31억 원을 책정했다.●“국민 정신건강 관리에 큰 힘 쏟을 것”정부가 이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내놓기로 한 건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올해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처럼 치료를 중단한 뒤 증상이 악화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잇달아 범죄를 저지르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의 허점도 드러났다.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는 데 비해 정책적 뒷받침과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자문기구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올해 4월 펴낸 보고서에서 “고소득 국가의 경우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1% 정도”라며 “한국의 경제 수준은 고소득 국가에 해당하지만 정신건강 예산 비중은 2.6%(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정부 관계자는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에 큰 힘을 쏟겠다는 메시지와 비전도 함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 당일에는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의료계, 정신질환 환자·가족 단체 등도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 시기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었던 청년이 본인의 경험을 직접 발표하는 일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국내 정신과 진료환자, 12년새 2배로… 의사 수는 OECD 절반 미달국내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사람이 한 해 4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정신질환이나 정신과적 문제 때문에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는 405만8855명이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200만 명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여 년 새 2배가 됐다. 하지만 이들을 진료하기 위한 의사 수는 해외 주요국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진 부족 때문에 국내 정신질환자의 ‘치료 절벽’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만 명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수는 0.8명이다. 관련 통계가 수집된 OECD 29개국 평균인 1.8명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29개국 중 한국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적은 나라는 멕시코(0.1명) 콜롬비아(0.2명) 튀르키예(0.6명)뿐이었다.절대적인 의사 부족보다 더 큰 문제는 가장 치료가 시급한 중증 환자를 진료할 인력이 더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전국에 5곳 있는 국립정신병원의 전문의 충원율은 올해 8월 기준으로 41%에 불과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 발생 시 정신건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립정신건강센터도 전문의 충원율이 38%에 불과했다.민간 대학병원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큰 병원에 남는 것보단 개인병원을 차리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까닭에 대학병원을 떠나는 의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를 보면 2020년 기준 정신건강의학과 개원의는 연 소득이 2억4000만 원에 이르는 데 반해,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경우 1억3000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서울시내 정신건강의학과 개인병원은 534곳으로, 5년 전에 비해 77% 급증했다”고 밝혔다.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중증 정신질환 진료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OECD가 최근 펴낸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으로 정신질환자가 퇴원 후 1년 안에 자살하는 비율이 0.7%에 이른다. 이는 OECD 평균 0.38% 대비 1.8배에 해당한다. 또한 2021년 기준으로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진단을 받은 국내 환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망할 확률이 4.2배였다. OECD 평균(2.3배)에 비해 83% 높은 수치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정부가 전 국민의 생애주기별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내용을 담은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발표한다. 29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5일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방안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혁신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담당해 온 정신건강 관련 대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하는 것과,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관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정신건강 혁신 방안은 한 개인이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인생의 각 단계를 거치면서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을 때 국가가 이를 맞춤형으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지금까지는 ‘치료’에 집중됐던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예방·조기 발견→치료→재활·일상 회복’이라는 전 과정으로 확대해 지원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중단해 증상이 악화되고,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반적인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바꾸는 개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 당일에는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의료계, 정신질환 환자·가족 단체 등도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 시기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었던 청년이 본인의 경험을 직접 발표하는 일정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가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에 큰 힘을 쏟겠다는 메시지와 비전도 함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정신건강 검진 2년마다 실시… 4년내 무료상담 100만명 확대정부가 이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정신건강 혁신 방안을 내놓기로 한 건 우리 국민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기준 국내 우울증 환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올해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등처럼 치료를 중단한 뒤 증상이 악화된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잇달아 범죄를 저지르면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의 허점도 드러났다.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내 임기 동안 국민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하게 만들겠다”며 관련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전 국민 정신건강 혁신 방안’에는 그간 산발적으로 추진해 온 관련 대책을 종합한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 10년→2년이번 혁신 방안의 핵심은 정신질환을 사전에 예방하고, 이미 발병했다면 최대한 빨리 발견해 치료하고, 치료를 마친 뒤에는 재활을 거쳐 다시 안정적으로 일상 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전 과정을 탄탄히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대책은 국가 정신건강 검진 주기를 단축하고 검사 대상 질환을 확대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할수록 예후가 좋고, 중증·만성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현재 국가 정신건강 검진은 만 20세부터 10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2년으로 단축할 방침이다. 검진 대상 질환도 지금은 우울증에 한정되지만, 여기에 조현병과 조울증 등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 검진을 할 때 청소년기(학업), 청년기(취업 및 출산 양육), 중장년기(은퇴), 노년기(노후) 등 시기별 맞춤형 검진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추진한다.검사를 통해 정신질환 위험군으로 판별되면 무료 상담 기회를 제공해 치료 문턱도 낮출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고위험군 8만 명에게 정신건강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에 내년도 예산 539억 원을 책정했고, 2027년에는 지원 대상을 50만~100만 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환자별 맞춤 관리 계획 수립이번 정신건강 혁신 방안에는 조현병, 조울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중등도 이상 우울장애 등을 앓는 이들로, 2021년 기준 국내에 65만 명에 달한다.퇴원 이후에도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재활 치료에 참여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다. 퇴원을 한 환자와 가족 앞에 펼쳐지는 건 ‘치료 절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본보 11월 28일자 A1·10면 참조).정부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경우 약 처방이나 상담뿐 아니라 ‘집중관리군’ 등록을 통해 회복과 재활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환자별 ‘케어 플랜’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증상이 완화됐다고 느껴 스스로 약을 끊고 병세가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정부는 퇴원 환자의 직업 재활과 동료 지원, 후속 검사뿐 아니라 돌봄에 지친 환자 가족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정부는 또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과 교육에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이 분야 예산은 올해 2억 원이었지만 복지부는 내년도에 31억 원을 책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편견이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英, 정신건강 체계 개혁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어나는 데 비해 정책적 뒷받침과 투자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자문기구인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올해 4월 펴낸 보고서에서 “고소득 국가의 경우 전체 보건 예산 중 정신건강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5.1% 정도”라며 “한국의 경제 수준은 고소득 국가에 해당하지만 정신건강 예산 비중은 2.6%(2023년 기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해외에서는 이미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개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1977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위원회를 설립했고, 대선 때마다 후보자들이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설계를 공개하며 정책 경쟁을 벌인다.지난해 바이든 정부도 정신건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 22개를 발표했다. 지역사회정신건강센터를 확대하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영국은 6년 전인 2017년 테리사 메이 당시 총리가 정신건강을 빈곤, 인종차별, 청년 실업 등과 함께 영국 사회에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로 규정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 이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국내 1인 가구 절반가량은 빈곤층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인 노인 가구는 연금을 제외하면 연소득이 436만 원에 불과했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받는 청년은 노인 수급자보다도 형편이 더 어려웠다. 28일 보건복지부는 통계행정데이터 전문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2020년 기준 1인 가구 사회보장 수급 실태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1인 가구는 국내 모든 가구 중 31.8%로 비중이 가장 크다. 관련 자료가 11개 부처 등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었는데, 포괄적으로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 결과 1인 가구의 연평균 시장소득은 1860만 원으로, 전체 가구의 1인 평균(2873만 원)보다 1013만 원 적었다. 시장소득은 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을 제외한 근로·사업·재산소득 등을 뜻한다. 특히 1인 노인 가구는 연평균 시장소득이 436만 원에 불과했다. 1인 가구는 자산이 1분위(하위 20%)인 비율도 43.6%나 됐다. 버는 돈도, 모은 돈도 적었던 것이다. 이런 탓에 1인 가구의 빈곤율(가처분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비율)은 47.8%로 전체 가구(30%)보다 높았다. 특히 노인 1인 가구는 빈곤율이 70.3%였다. 다만 노인 1인 가구는 국가 개입을 통한 빈곤 감소 효과가 18.6%포인트로 다른 연령대보다 컸다. 중위소득 30% 이하 가구에 지급하는 생계급여의 수급률은 1인 가구(6.5%)가 전체 가구(3.2%)의 2배가 넘었다. 특히 청년 1인 수급자는 평균 61만6000원을 받아, 중장년(51만5000원)이나 노인(24만5000원)보다 수급액이 많았다. 청년 수급자가 노인 수급자보다 형편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1인 가구 노인의 월평균 기초연금 수령액은 28만2000원으로, 전체 노인 평균(25만2000원)보다 높았다. 반면 국민연금 수령액은 전체 평균보다 적었다. 안정된 직장에서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된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올해 78세인 이진숙(가명) 씨는 지나온 세월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 같다고 생각한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었던 시간들. 20여 년 전, 딸(41)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그때부터 고통은 시작됐다. 서른일곱에 얻은 외동딸이었다. 평범했던 딸은 고3 무렵부터 조금씩 변했다. 부쩍 말수가 없어지더니, 수능 날에는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질 않아 겨우 달래 시험장에 보냈다. 밥도 먹지 않아 입맛을 돋울 만한 온갖 음식을 먹여 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키가 160cm 조금 안 되는 딸은 그 무렵 몸무게가 33kg이었다. 딸은 더 이상 이 씨가 알던 아이가 아니었다. 딸은 소파, 옷장, 침대를 내다 버리라고 했다. 장판부터 벽시계, 액자, 화장실 환풍구까지 뜯어 버리려 했다. 이 모든 게 중증 정신질환 발병 전 주로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딸이 스무 살이 된 해,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입원시키고 퇴원하는 날. 이 씨는 이제 치료를 받았으니 괜찮아질 거라 믿었지만 그 믿음은 곧 깨졌다. 퇴원 후에 약을 잘 먹겠다고 약속했던 딸은 약을 입에 털어 넣지 않았다. 결국 병세가 나빠져 2번이나 더 입·퇴원을 반복했다. “제발 약 먹자.” “싫어!” 이 입씨름이 20년을 넘었다. 그저 간절히 바란다. ‘제발 누구든 우리 딸이 약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딸은 “돈을 벌고 싶다”고 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좋으니 남들처럼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것. 하지만 긴 치료 탓에 기본적인 사회생활 능력을 갖추지 못한 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 씨는 딸을 데리고 연고 없는 시골로 내려가 구멍가게를 하나 차렸다. 작게 장사를 하면서 먹고살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었지만 오히려 딸에게 ‘원하지도 않는 일을 시켰다’는 원망만 들었다. 이 씨에게는 이제 시간이 없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던 그 삶마저 끝나는 날, 홀로 남겨질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그는 말했다. “누가 우리 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 좀 가르쳐주세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씨의 딸처럼 조현병, 조울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는 2018년 59만9956명에서 2021년 65만1813명으로 증가했다. 퇴원 이후에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재활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치료와 재활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한 ‘치료 절벽’ 앞에서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정신질환자, 퇴원후 관리할 병원 태부족… 가족이 부담 떠안아 〈상〉 병원 밖은 ‘치료절벽’‘최대 6개월 관리’ 참여 병원 10%… 낮 재활치료하는 곳은 3% 그쳐“수가 낮아 인건비도 안나와” 기피…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포함시켜야” 김진영(가명·49) 씨의 세 살 위 오빠는 환청과 망상 증상에 시달리는 중증 정신질환자다. 김 씨가 오빠 집에 갈 때면 종종 먹지 않고 남겨둔 약들이 눈에 띄었다. ‘왜 약이 이렇게 많이 남았냐’고 물으면 얼버무리던 오빠는 결국 병세가 악화돼 일주일 전 병원에 입원했다. 벌써 네 번째 입원이다. 입원 당시 오빠는 치료를 받아야 할 치아만 15개에 달했다. 폭식을 반복하면서 키 175cm에 몸무게가 140kg까지 불어났다. 김 씨는 “오빠는 완전히 방치됐다. 오전에는 집에 혼자 있다가 점심 시간이 지나면 ‘할 게 없다’며 그냥 길거리를 헤매곤 했다”고 말했다. ● 퇴원 환자 관리하는 병원 턱없이 부족중증 정신질환자는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중등도 이상 우울장애 등을 앓는 이들을 뜻한다.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의 핵심은 입원 치료뿐 아니라 퇴원 후에도 외래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증상을 관리하는 것이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병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경우도 많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에 정부가 2020년부터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병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중 하나가 ‘병원 기반 사례 관리 시범사업’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팀을 꾸려 환자와 가족을 면담하고 퇴원 후 최대 6개월 동안의 관리 계획을 짠다. 복약 여부를 확인하고 증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등도 살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참여 가능 의료기관 368곳 중 실제로 참여하는 건 37곳(10.1%)뿐이다. ‘낮병동 관리료 시범사업’도 마찬가지다. 낮병동이란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낮 시간 동안 재활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의 병동이다. 이곳에서 대인관계 및 사회적응 훈련, 취업교육 등도 함께 이뤄진다. 예를 들어 조현병은 대부분 10대 때 처음 발병하기 때문에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회에 적응하고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참여 가능 의료기관 2102곳 중 실제 참여하는 건 64곳(3.0%)에 불과하다. 현장 의료진들은 낮은 수가(건강보험에서 병원에 주는 진료비)를 참여율이 낮은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서영수 부산다움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낮병동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만 수가를 청구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지금 수가로는 의료진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 환자 관리할 지역 센터는 만성 인력난현행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의료기관은 환자가 퇴원할 때 본인의 동의를 받아 퇴원 사실을 지역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해야 한다. 퇴원 후에도 환자가 꾸준히 전문가에게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는 센터는 이들에 대한 사례 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씨는 “센터 담당자가 너무 바빠 보인다. 가족 입장에서 궁금한 것도 많은데 한 번도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복지부의 ‘국가 정신건강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조현병, 분열형 및 망상장애 환자 중 13%(2021년 말 기준)만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지역사회에서 정부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 관리자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는 무려 26.6명에 달했다. 이해우 서울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센터에서 재난심리 등 모든 정신건강 업무를 도맡고 있기 때문에 중증 정신질환자를 관리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도 ‘필수의료’”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필수의료 분야로 꼽히는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뿐만 아니라 급성기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 역시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신건강의학과가 전공의 지원율이 높은 인기 과로 보이지만, 정작 급성기 중증환자들을 치료하고 이들의 재활까지 담당할 인력 및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본에서는 퇴원 전후로 의료진이 중증 정신질환자의 집에 찾아가 가족들에게 환자와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주거 환경까지 살핀다. 이에 대한 수가가 별도로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퇴원한 중증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체계를 탄탄하게 만들어 모든 부담을 환자와 가족들에게 떠넘기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남상민(가명·34) 씨는 과거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다. 2010년 처음 진단된 우울장애 때문이었다. 치료제를 먹다가도 증상이 나아지면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사고’를 쳐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증상은 점점 나빠졌다. 그랬던 그가 최근 수년간은 꾸준히 치료받으며 큰 탈 없이 생활하고 있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소개해 준 정신질환재활센터에 다니며 ‘지속 치료’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 씨는 “퇴원 후 믿을 수 있는 재활시설로 안내받았더라면 치료를 중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올 8월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벌인 최원종(22)은 3년 전 조현병 전 단계로 진단됐지만 치료를 스스로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이 치료를 중단한 이유를 깊이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적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의 도움을 얻어 조현병과 우울장애 등 중증 정신질환 환자 20명을 최근 심층 설문한 이유다. 설문 결과 이 중 16명은 “치료를 중단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치료 중단을 막기 위해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응답자 가운데 11명은 치료를 중단한 이유로 ‘치료 효과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2016년 조현병으로 진단된 A 씨(28)는 “더는 치료받지 않아도 문제없다고 착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증 정신질환자 B 씨(44)는 “효과는 별로 없고 졸음만 오는 것 같아서 약을 끊었다”고 했다. 환자가 병식(病識·스스로 아프다는 인식)이 부족한 건 그 자체가 증상의 일종이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꾸준한 치료의 필요성을 안내하는 사회적·제도적 도움이 부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합쳐지면 치료 거부로 이어진다. 응답자 중 5명은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압박이 치료 중단 이유였다고 했다. 환자 돌봄을 고스란히 떠안은 가족이 지치다 못해 환자를 입원시키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환자가 치료를 기피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임미현(가명·40) 씨는 “부모님은 생계를 이어야 하는데 주변에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보니 나를 입원시켰다. 그 후로 치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결국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중단 없이 치료받기 위해서는 지속 치료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상담 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치료 기관, 나아가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줄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은 “치료를 망설이는 환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꾸준히 치료받아 증상을 잘 관리하는 동료 환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