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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운산 작은도서관’. 손을 맞잡은 노부부가 출입구 근처에 붙은 특강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 도서관은 이날 개관을 기념해 성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만들기 강의를 준비했다. 인근 주민 신순분 씨(68·여)는 “책을 좋아하는데 주변에 도서관이 없어서 매번 사다 보니 집에 책이 1000권 넘게 쌓여 있다. 우리 동네에 책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니 황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문화체육관광부와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는 ‘작은 도서관’이 100번째 개관을 맞았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 도서관이 전국 곳곳을 채워온 것이다. 운산 작은도서관은 서산소방서 의용소방대가 사무실로 쓰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1층에 3600여 권의 책이 비치됐고 2층에는 열람실이 들어섰다. 강연 등 각종 문화행사를 여는 프로그램실과 어린이들을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다. 도서관을 찾은 윤효림 양(8)은 “그동안 아빠가 사주신 책만 볼 수 있어서 아쉬웠는데 여기는 만화책뿐 아니라 역사책, 동화책까지 볼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윤빛나 양(8)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엄마,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하면 귀찮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린이실에서 친구, 동생들과 놀면서 책을 읽으니 이제는 재밌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곳은 학교 도서관을 빼면 운산면에서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동안 학생이 아닌 일반 주민들은 책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작은도서관을 둘러본 장찬순 씨(55)는 “운산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도서관이 들어선 건 처음 본다”며 “아이들이 책을 보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지역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데 만족해했다. 조무성 씨(53)는 “50, 60대 이웃들이 일을 마치고 함께 어울릴 만한 곳이 식당, 술집밖에 없어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 도서관에 자주 들를 생각”이라며 반겼다. 운산 작은도서관 주변에는 초등학교 2곳, 중고교 각 1곳이 자리 잡고 있어 학생들에게도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운산초교 학생들과 도서관에 온 장명숙 운산초 돌봄전담사는 “앞으로 돌봄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종종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할 때는 100번째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책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독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작은도서관 사업을 담당하는 김진영 국민은행 브랜드 ESG그룹 대표는 “101호 도서관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00호까지 달리겠다”고 말했다.서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5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의 ‘운산작은도서관’. 손을 꼭 붙잡고 이곳을 찾은 한 노부부가 출입구 인근에 세워진 도서관 특강 안내문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날 문을 연 운산작은도서관은 개관을 기념해 성인을 위한 인문학 강의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만들기 강의를 마련했다. 인문학 강의에 참석할 생각이라는 주민 신순분 씨(68·여) “책을 좋아하지만 주변에 도서관이 없어서 매번 구매하다 보니 책이 집에 1000권 넘게 쌓였다. 우리면에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니 황홀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100번째 작은도서관을 개관했다. 운산작은도서관은 이 법인과 운산면이 주관하고 KB국민은행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김 대표는 “처음 작은도서관을 짓기 시작할 때는 100호 정도가 마지막이 될 줄 알았는데 소중한 일을 오랫동안 하게 돼 기쁘다”며 “책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국민 독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도서관 건립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진영 KB국민은행 브랜드 ESG그룹 대표는 “물질과 정신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게 우리의 포부”라며 “101호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1000호점까지 달리겠다”고 했다. 도서관은 과거 서산소방서 의용소방대 사무실로 이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단장했다. 1층에 3600여 권의 책이 비치됐고 2층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이 있다. 2층에는 강연 등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실과, 어린이들만을 위한 독서와 놀이공간도 마련됐다. 개관을 맞아 이곳을 찾은 윤효림 양(8)은 “그동안 아빠가 집에 사 오신 책만 봐야 해서 아쉬웠는데 여기에는 만화책뿐 아니라 역사책과 동화책까지 다양한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며 웃었다. 윤빛나 양(8)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엄마, 아빠가 책을 읽으라고 하시면 귀찮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린이실에서 친구, 동생들과 놀며 책을 읽다 보니 책이 재밌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 곳은 학교 도서관을 빼면 운산면의 유일한 도서관이다. 그동안 학생이 아닌 일반 주민들이 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날 도서관을 찾은 주민 장찬순 씨(55)는 “운산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도서관이 들어선 것은 처음 본다”며 “자녀들도 책을 보려면 30분 이상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 책을 사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점에서도 도서관을 반겼다. 주민 조무성 씨(53)는 “그 동안 50, 60대들이 퇴근하고 함께 어울릴만한 곳이 식당이나 술집 밖에 없어서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시간을 보낼 곳이 없었다. 앞으로 퇴근 후에 자주 들를 생각”이라고 했다. 운산작은도서관 인근에는 초등학교 2곳,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각각 1곳씩 위치해 학생들에게도 좋은 놀이터가 될 전망이다. 운산초 학생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장명숙 운산초 돌봄전담사는 “둘러보니 공간이 안전하고 알차게 단장돼 있어 돌봄 시간에 종종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서산=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함께 요리를 하세요. 완성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훨씬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개인, 기업의 영향력 증대와 친밀감 형성 방법을 컨설팅하는 존 리비 인플루언서스 대표(41)는 “우리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하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질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게 친밀감 형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저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국어판 출간(천그루숲)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26일 만났다. “13년 전 우연히 서로 모르는 4명의 친구를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만 모두를 알고 있을 뿐 각각은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식사를 마칠 때쯤엔 마치 서로 몇 년간 알았던 사이처럼 친해졌죠.” ‘당신을…’은 그가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쓴 책이다. 이 식사 이후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상황에 기반을 두고 단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 방식을 고안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초대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를 것, 그리고 그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제안할 것. 영국 작가 맬컴 글래드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밴드 ‘마룬5’의 제스 카마이클까지 각계각층의 인사가 찾는 ‘인플루언서 디너’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플루언서 디너는 현재까지 240회 이상 진행됐다. 그는 인플루언서들을 불러놓고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에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마쳐 달라는 제안을 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는 “친밀감, 소속감 형성의 중요한 원천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에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고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방식으로는 고객이 소비자로서 기업과 함께한다고 느끼게 만들 수 없다. 그는 “마케팅 담당자와 고객이 만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는 팬데믹 상황과 관련해 “친밀감 형성에는 대면 상황이 훨씬 유리하지만 비대면 시대에도 친밀감 형성의 원칙을 잊지 않으면 충분히 소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대신 함께 요리를 하세요. 완성된 음식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훨씬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행동과학을 바탕으로 개인, 기업의 영향력 증대와 친밀감 형성 방법을 컨설팅하는 존 리비 인플루언서스 대표(41)가 “우리가 친밀감을 형성하는 방법이라 알고 있는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하면 누군가와 깊이 친해질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게 친밀감 형성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까? 저서 ‘당신을 초대합니다’(천그루숲)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26일 동아일보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3년 전 우연히 서로 알지 못하는 4명의 친구들을 저희 집에 초대해 식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만 모두를 알고 있을 뿐 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는데도 식사를 마칠 때쯤엔 마치 서로 몇 년 간 알았던 사이처럼 친해졌죠.” ‘당신을…’은 그가 무엇이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기업을 연결하는지에 대해 쓴 자기계발서다. 이 식사 이후 사람이 친밀감을 느끼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당시 상황에 기반을 두고 단시간에 깊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만남 방식을 고안했다. 그가 세운 원칙은 초대자들이 서로의 직업을 모를 것, 그리고 그들에게 새롭고 참신한 무언가를 제안할 것. 영국 작가 말콤 글래드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밴드 마룬5의 제스 카마이클까지 각계 각층의 인사가 찾는 ‘인플루언서 디너’가 이렇게 시작됐다. 인플루언서 디너는 현재까지 240회 이상 진행됐다. 그는 이 인플루언서들을 불러 놓고 훌륭한 식사를 제공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하고 뒷정리까지 마쳐달라는 제안을 했다. 초대받은 이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호스트의 집에서 식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동의 ‘미션’을 공유하며 자연스레 친밀감이 형성된다. 그는 “친밀감, 소속감 형성의 중요한 원천은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 등 글로벌 기업에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을 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주고 제품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으로는 고객이 소비자로서 기업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는 “마케팅 담당자와 고객이 서로 만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한 비대면 상황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친밀감 형성에 활용할 수 있다. 화상회의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은 취하되, 이 가운데에서도 팀을 나눠 공동의 목표를 준다면 팀원들끼리의 친밀감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 “친밀감을 형성하기에는 대면 상황이 훨씬 유리하지만 비대면 시대인 지금도 우리에게는 소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친밀감 형성의 원칙을 잊지 않는다면 충분히 연대와 소통의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직장인의 고달픔을 절절하게 노래한 시를 읽고 가슴을 움켜쥔 적이 있다. 하지만 ‘고상한 시인께서 뭘 알겠어. 누구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로 썼겠지’ 하며 이내 콧방귀를 뀌었다. 구태여 포털 사이트로 시인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가 전업 작가임을 확인한 후에는 시를 읽기 전보다 더 쓸쓸한 표정을 지어봤다. 그 냉소적 직장인의 얼어붙은 마음은 이 책에서 풀렸다. 체지방을 걱정하는 척하다 어느새 막걸리에 손을 뻗는 모양새에서 먼저 동질감이 느껴졌다. ‘집값’ ‘비규제 주담대’ ‘중도금 대출 무이자’ 등 어깨가 무거워지는 어휘도 자주 나온다. 알고 보니 저자는 10년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성실한 직장인. 이 책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로 잘 알려진 저자가 직장인의 마음으로 쓴 에세이다. ‘먹고사니즘’(먹고 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는 태도)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면서도 낭만과 예술을 그리워하는 게 평범한 이들의 모습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이 어떤 순간 시인이 되는지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살이 찐 동료들과 “팬데믹만 지나면 운동을 시작해 지방을 빼겠다”는 대화를 나누다 문득 인생에도 빼야 할 지방이 있다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죄가 인생의 찌꺼기라면 이를 덜어냈을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까. 그렇지 않다면 인생에서 무얼 빼야 할까. 누구든 한번쯤 품었을 법한 고민이다. 때로는 내 고통을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어느 날 지하철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저자는 은퇴와 인생 2막에 대한 상상에 빠진 후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서울은 꿈도 못 꿔 산간벽지의 분양 정보부터 알아보는 상황,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매매’가 싱거운 상상에 그치는 모습은 남일 같지 않다. “가족끼리 단란하게 살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건 하나도 평범하지 않으며, 모두가 무언가를 애원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 어떤 절절한 시보다도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인 저희 병원으로 오신 할머니가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여러 유형 중 어떤 치매 진단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꽃 같은 치매’라고.” 10년째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1)는 몇 년 전 이 환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대답은 치매라는 질병을 대하는 장 씨의 태도를 완전히 바꿔 놨다고 한다.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는 우울할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질병을 대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장 씨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평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살아온 분이었다. 치매라는 진단 너머에 있는 할머니의 인생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출간한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사진)에 그간의 치매 환자 치료기를 담았다. 그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치매의 증상을 흔히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로 분류하곤 합니다. 저희 정신의학과에서는 주로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착한 치매로 유도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두죠.” 기억을 잃어갈 뿐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한다면 망상과 우울로 주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나쁜 치매라고 부른다. 정신의학과는 치매 환자의 적대적 행동 기저에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치료하는 데 주력한다. 기억력이나 언어능력 저하 같은 인지 증상을 다루는 신경외과 외에 정신의학적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장 씨는 “한국은 치매 치료 선진국에 비해 정신의학적 접근이 더 활성화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치매 환자의 정신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보다 치매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치매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그저 ‘치매 환자’가 된다. 이들을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가 자꾸 집 밖으로 나가 배회한다”며 힘들어하지만,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산책을 나서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배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것.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치매와 사회의 화해가 시작된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 시스템 구축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좀 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 전문 병원인 저희 병원으로 오신 할머니 환자가 있었어요.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등 여러 유형 중 어떤 치매 진단을 받으셨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시더라고요. ‘꽃 같은 치매’라고.” 10년 째 치매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장기중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1)는 몇 년 전 이 환자를 처음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의 대답은 장 전문의가 치매라는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영원히 바꿔 놨다고 한다. 평생을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로 살아온 환자의 지난 인생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신의 질병이 꽃 같다는 할머니의 답이 이해가 갔다. 그는 “치매라는 진단 너머에 있는 할머니의 인생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8일 출간한 에세이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웅진지식하우스)에 그간의 치매 환자 치료기를 담았다. 그를 2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치매의 증상을 흔히 ‘착한 치매’와 ‘나쁜 치매’로 분류하곤 합니다. 저희 정신의학과에서는 주로 나쁜 치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착한 치매로 유도하는 것을 1차적 목표로 두죠.” 기억을 잃어갈 뿐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의 치매를 착한 치매라고 한다면 망상과 우울로 주변인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나쁜 치매라고 부른다. 정신의학과는 적대적인 행동의 기저에 우울증, 불안증 등 정신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보고 이를 치료하는데 주력한다. 기억력 저하, 언어 능력 저하 등 인지 증상의 완화를 다루는 신경외과 외에 정신의학적 측면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한국은 아직 치매 치료 선진국에 비해 정신의학적 접근이 더 활성화 돼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적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환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가 보다 치매 친화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는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치매에 걸리면 그때부터는 그저 ‘치매 환자’가 된다. 이들을 모두 개별적인 인간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환자가 자꾸 집 밖을 나서 배회한다”는 토로를 하지만, 고민이 많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산책을 나서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배회가 아니라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라는 것. 이 불안감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치매와 사회의 화해가 시작된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실시됐지만 아직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료 시스템 구축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치매 환자를 좀더 자주 마주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서만 읽을 수 있는 글이 서울 곳곳에 숨어 있다면 어떨까요? 서울이 표지가 되고, 글을 찾아 걷는 행위가 읽기 경험이 되는 거죠.” 출판인 모임 ‘편않’(편집자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의 정지윤 편집자(33)는 “종이책이 점점 덜 읽히는 시대에 출판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매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편않은 기존 출판계 관행에 의문을 갖고 새로운 장을 열어보자는 취지로 편집자 5명이 2016년 결성했다. 2018년 1월부터 반년마다 같은 이름의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무료로 배포하는 이 잡지는 출판계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에게도 관심을 끌며 발행부수가 400부(1호)에서 900부(7호)대로 늘었다. 이들은 잡지의 인터뷰 내용을 갈무리한 단행본 ‘격자시공’을 펴내기도 했다. 정 씨와 지다율(활동명·36) 편집자, 기경란 디자이너(38)를 최근 서울 동대문구 편않 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않이 제시하는 비전이 허무맹랑하게 들릴지 몰라도 저희 잡지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균열이라고 생각해요. 잡지를 무료로 발행한 건 독자들이 활자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어요.”(지다율) 잡지 편않은 독자들이 “이렇게 공들인 게 왜 무료냐”고 물을 정도로 탄탄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편집자’(1호) ‘디자이너’(2호) 등 특정 출판직군을 비롯해 출판계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다룬 시리즈(4∼6호)를 내놓았다. 멤버들이 매달 갹출해 운영비를 대고 있다. 지 씨는 “단행본 출간에 돈이 많이 들어 최근에는 3차 추경까지 했다”며 웃었다. 외부 지원이 없다는 건 제작환경이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 디자이너는 기존 책들과 차별화된 표지 디자인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이번 단행본은 종이 질감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어 표지에 흔히들 하는 코팅 처리를 거치지 않고 비닐로 포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찢고 붙이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오감만족의 책’을 꿈꾼다고 했다. 각자 소속된 출판사를 욕하다 결성된 모임이라는 농담 뒤에 숨은 이들의 진의는 무엇일까. 이들은 “출판계에 답답한 일들이 너무 많다”며 사비까지 털어 출판계를 위한 잡지를 만드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사랑하는 제 모습에서 출판의 미래를 봅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테니까요. 이 마음이 다할 때까지 새로운 독자들을 출판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한 상상력과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국보 1호 서울 숭례문’이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표기가 바뀐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등록문화재를 표기할 때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등에 부여됐던 지정번호는 쓰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물 1호 서울 흥인지문’은 ‘보물 서울 흥인지문’으로 표기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1962년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순서에 따라 번호가 부여됐다. 하지만 지정번호는 지정 순서가 아닌 가치 순으로 오인돼 문화재 서열화 논란이 불거졌고, 문화재청은 지정번호를 삭제하기로 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CJ ENM이 영화 ‘라라랜드’ 제작사로 유명한 미국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사인 인데버 콘텐트(Endeavor Content)를 인수한다. CJ ENM은 19일 이사회를 열고 인데버 콘텐트의 지분 약 80%를 7억7500만 달러(약 9200억 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의결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이 최근 11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서며 4대 미래성장 엔진을 중심으로 3년간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지 보름여 만에 내놓은 공격적인 투자행보다. 인데버 콘텐트는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인데버그룹홀딩스 산하의 제작 스튜디오로 영화 ‘라라랜드’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국 BBC 인기 드라마 ‘킬링 이브’ ‘더 나이트 매니저’ 등 작품성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투자·제작·유통하는 걸로 유명하다. 세계 18개국에 거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업계는 CJ ENM이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 중심지인 미국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콘텐츠 기획·제작 역량은 물론 콘텐츠 유통 네트워크까지 단숨에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는 각국의 주요 플랫폼·미디어기업들 사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4일 CJ그룹의 4대 미래성장 엔진으로 제시한 컬처(문화)와 플랫폼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CJ ENM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CJ ENM이 영화와 드라마, K팝을 아우르는 글로벌 콘텐츠 제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현재 인데버 콘텐트가 제작을 앞두거나 기획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만 300건이 넘는다. CJ ENM의 디지털 플랫폼 티빙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서 향후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동서양 문화권을 포괄하는 글로벌 톱 스튜디오로 도약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가 한국 콘텐츠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백인 일변도의 할리우드에 한국 콘텐츠를 많이 선보인다면 글로벌 관객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 것”이라고 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봉준호 박찬욱 등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린 유명 감독들의 향후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늘어났다’는 문장은 반쯤은 거짓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실제로 늘어난 것은 ‘노년’이며, 이 때문에 전체 수명이 덩달아 늘어난 것뿐이기 때문이다. 생애주기의 특정 시절만 비약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은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요구했다. 이 책은 그리하여 등장한, 전에 없던 세대에 관한 이야기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면서 나머지 인구보다 가진 것이 많은 ‘시니어’. 인생에도 클리셰가 있다. 청년은 도전적이야 하고 중년은 묵직해야 하며 노년은 지혜로워야 한다는 인식은 우리에게 몹시 익숙하다. 지상의 즐거움을 탐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명상에 몰두하고 지혜에서 우러나온 잠언을 생산하며 저승길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노년에게 흔히 요구되는 ‘바람직하고 올바른’ 모습이다. 그러나 저자는 “행복한 노년의 비결은 정확히 이와 반대되는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길어진 노년을 버티기 위해서는 나이는 먹되 마음이 늙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혼과 마음을 젊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욕망’이라는 것. 지금껏 노년의 욕망을 부정해 온 세상에 시니어들이 반기를 들기를 저자는 바란다. 낭만과 주름살의 화해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아서 저자의 이 같은 의견은 일견 진부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롭고 개방적인 프랑스인답게 그가 그리는 청사진은 우리의 상상력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손주 볼 나이인 75세의 남성이 아이를 하나 더 갖고, 형제라 해도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가 쉰 살이 날 수도 있다. 고모나 삼촌이 조카보다 마흔 살 어리고, 어머니가 자기 딸과 사위의 대리모가 되어 주는 것도 가능하다. 노인이면서 운동선수일 수 있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수도 있다. 책의 첫 번째 챕터 제목은 전체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다. “포기를 포기하라.” 다수의 철학자와 소설가들이 인생에 관해 남긴 말들이 현대적으로 잘 번역돼 녹아 있다는 점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프랑스 사상가 미셸 몽테뉴(1533∼1592)는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생각을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의 지평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로 변주한다. 과거에 비해 죽음이 훨씬 더 미뤄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염두에 둔 채 삶을 배우는, 보다 고차원적인 고뇌가 필요해졌다.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남긴 “인생은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은 그대로 되새겨도 무리가 없다. 인간은 끝끝내 완전히 숙련되거나 지혜로워지지 않으며, 그럼에도 인생이라는 협주곡은 무사히 완성된다. 늙은이가 어리석다고 해서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부모나 조부모의 얼굴에 문득 아이의 표정이 스치는 순간을 누구나 목격한 적이 있을 테다. 그래서 우리는 ‘50, 60, 70세가 넘어도 겉보기에나 진중할 뿐 알맹이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고백이 허위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 나이에서 불필요한 부담이나 장식을 벗겨 내자. 유머와 멋으로 무장한 시니어들이 가득한 세상은 분명 훨씬 더 유쾌할 것 같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CJ ENM이 영화 ‘라라랜드’ 제작사로 유명한 미국 할리우드 콘텐츠 제작사인 인데버콘텐트(Endeavor Content)를 인수한다. CJ ENM은 19일 이사회를 열고 인데버콘텐트의 지분 약 80%를 7억7500만 달러(약 9200억 원)에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의결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최근 11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서며 4대 미래성장 엔진을 중심으로 3년간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지 보름여 만에 내놓은 공격적인 투자행보다. 인데버콘텐트는 글로벌 스포츠·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인데버그룹홀딩스 산하의 제작 스튜디오로 영화 ‘라라랜드’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국 BBC 인기 드라마 ‘킬링 이브’ ‘더 나이트 매니저’ 등 작품성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투자·제작·유통하는 걸로 유명하다. 세계 18개국에 거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업계는 CJ ENM이 이번 인수를 통해 글로벌 대중문화 중심지인 미국에 전초기지 세우고 콘텐츠 기획·제작 역량은 물론 콘텐츠 유통 네트워크까지 단숨에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번 인수는 각국의 주요 플랫폼·미디어기업들 사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4일 CJ그룹의 4대 미래성장 엔진으로 제시한 컬처(문화)와 플랫폼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CJ ENM이 SM엔터테인먼트 인수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CJ ENM이 영화와 드라마, K팝을 아우르는 글로벌 콘텐츠 제국으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데버콘텐트는 2017년 설립 후 HBO, BBC 등 주요 방송 채널과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다양한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빠르게 성장해왔다. 현재 제작을 앞두거나 기획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만 300건이 넘는다. CJ ENM의 디지털 플랫폼 티빙이 글로벌 OTT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서 향후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동서양 문화권을 포괄하는 글로벌 톱 스튜디오로 도약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인수가 한국 콘텐츠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백인 일변도의 할리우드에 한국 콘텐츠를 많이 선보인다면 글로벌 관객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 것”이라고 했다. 조정준 영화사 불 대표는 “봉준호 박찬욱 등 글로벌 시장에 이름을 알린 유명 감독들의 향후 작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국보 1호 서울 숭례문’이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표기가 바뀐다.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등록문화재를 표기할 때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내용을 담은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19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등에 부여됐던 지정번호는 쓰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보물 1호 서울 흥인지문’은 ‘보물 서울 흥인지문’으로 표기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1962년 공포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순서에 따라 번호가 부여됐다. 하지만 지정번호는 지정 순서가 아닌 가치 순으로 오인돼 문화재 서열화 논란이 불거졌고, 문화재청은 지정번호를 삭제하기로 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021 여초서예대전을 개최하는 인제군문화재단이 30일까지 출품작 접수를 한다. 이 대회는 인제군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여초서예관이 주관하며 동아일보사가 후원한다. 여초서예대전은 근현대 한국의 서예 대가인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의 서법 정신을 기리는 서화 예술경연대회다. 서예 연구단체 동방연서회와 동아일보사가 1961년 국내 최초 휘호(揮毫) 대회인 ‘전국 남녀 초중고등학교 학생휘호대회’를 개최한 게 시초다. 1966년 대학부가 증설돼 ‘전국학생휘호대회’로 자리 잡았다. 2000년 40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가 2015년 ‘여초선생 추모 전국휘호대회’를 신설한 여초서예관이 2018년 전국학생휘호대회를 부활시켜 해마다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제7회 여초전국휘호대회(성인부, 기로부), 제44회 전국학생휘호대회(학생부), 제1회 하늘내린 캘리그래피 휘호대회(성인부)까지 총 3개 세부 대회로 구성된다. 성인부는 20세 이상, 기로부는 70세 이상(성인부로도 지원 가능), 학생부는 8∼19세가 대상자다. 여초전국휘호대회와 전국학생휘호대회에는 한글 한문 문인화 전각을, 캘리그래피 휘호대회에는 캘리그래피를 출품하면 된다. 자유 주제로 작품을 내면 1차 심사로 본선 진출자를 선정하고, 본선 진출자는 추후 공지하는 대회장에 모여 주최 측이 제시하는 주제로 작품을 완성해 2차 심사를 받는다. 성인부 대상 500만 원을 비롯해 680여 명에게 총 32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자세한 내용은 여초서예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화창한 올 5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박미소 씨(38)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방에서 술과 술잔을 꺼냈다.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지각 있는 애주가’가 아닌 알코올중독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박 씨는 그 길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다. 퇴직 이후 전업주부의 삶을 산 지 꼭 5년 만이었다. 최근 에세이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반비)에 자신의 알코올중독 극복기를 담은 그를 15일 만났다. “혼자 주방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주부를 ‘키친 드링커’라고 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자 저도 어느새 키친 드링커의 길로 빠지게 됐죠.” 박 씨는 10년간 잡지와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2016년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주부가 됐다. 직업 특성상 자주 술을 접했던 그는 일을 그만둔 뒤에도 스트레스를 술로 풀게 됐다. “자신의 알코올 의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시간대로 가늠할 수 있어요. 저도 술을 야식에 곁들이는 수준에서 저녁 반주, 낮술, 급기야 아침에 술을 마시게 됐거든요.” 그는 한때 사회생활을 하다 전업주부가 된 경력 단절 여성들은 알코올중독의 유혹에 더욱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소위 ‘능력 있는 여성’은 으레 남성 직원들을 능가하는 주당으로 그려지기 마련이어서 술은 잘 마시고 보는 게 미덕이라는 학습을 하게 되기 때문. 그는 “나 역시도 술자리에서 여성이 술을 거절하면 ‘여자라 안 마시고 뺀다’는 비난이 날아오는 환경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 알코올중독자’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은 키친 드링커들로 하여금 술을 숨어서 마시게 한다. 그리고 이는 중독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을 지체시킨다. 박 씨는 알코올중독은 우울증 증세의 하나인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이 부끄러운 병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되는 질병인 것처럼 알코올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에 술을 몇 번 마시냐’는 건강 검진 문진표의 질문이 양심에 찔리시나요? 그때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해야 할 시기입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와, 여기 책장 안에서도 책 볼 수 있어!” “나랑 젠가 할 사람?” 11일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개관한 ‘금성면 작은도서관’이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오후 3시가 넘어가자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나둘 이곳을 찾아 들어온 것. 아이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출입문을 열자마자 맞은편에 보이는 ‘키즈존’이었다. 편하고 아늑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빈백 소파와 책장 속 독서 공간이 마련된 이곳에서 아이들은 책을 읽고 보드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도서관은 지역 주민도 이용할 수 있는 금성면의 유일한 도서관이다. 학교 도서관 외에는 도서관이 없어서 그동안 주민들은 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읽으려면 금성면 이외의 지역으로 책을 사러 나가든지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해야 했다. 도서관을 찾은 조명희 씨(62·여)는 “금성면은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해도 3, 4일이 걸린다. 도서관 덕에 책과 훨씬 친해질 수 있겠다”고 했다. 우준범 군(10)은 “마을에 도서관이 생긴 게 진짜 신기하다. 도서관이 학교보다도 더 가까워서 자주 놀러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금성면 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과 의성군이 주관하고 KB국민은행과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과거 금성면 농업경영인협회 사무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협회가 이전하며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연면적 114m²(약 34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금성면 중심에 자리해 접근성이 뛰어나다. 이금란 씨(60·여)는 “주민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도서관이 생겨서 오며 가며 자주 들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서관에는 벌써 2582권의 책이 채워졌다. 도서관이 주안점을 둔 독자는 어린이와 어르신이다. 사서 김정미 씨는 “어린이 인구가 많지 않지만 금성면에 어린이를 위한 복합 문화 공간이 없어서 동화책과 그림책을 마련하고 어린이 공간을 조성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박지우 양(11)은 “처음 도서관에 들어왔을 때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무엇보다 친구들이랑 같이 엎드린 채 얘기하며 책을 읽을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금성면은 노인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해 어르신을 위해 큰 글씨 책을 꽂은 책장도 마련했다. 전체 책의 20∼30%가 큰 글씨 책으로, 이는 다른 도서관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비율이다. 주민들이 오래 도서관을 잘 사용할 수 있게 고급 목재로 책장과 책상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60년 이상 살았다는 신원호 씨(72)는 “금성면에 사는 동안 도서관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제 도서관이 우리 지역의 문화 수준을 올려줄 것 같다. 종종 들러 시집을 빌려다 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의성=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사용자 경험 개선, 데이터 분석, 타 사이트, 앱, 뉴스레터 등에서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를 설치하는 데 동의하십니까?’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불쑥불쑥 뜨는 이 문구에 많은 이들이 ‘동의’ 메뉴를 클릭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가 제공되는지 알 수 없어도 해당 웹사이트를 이용하려면 이에 동의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그러나 무심결에 응한 선택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 책에 따르면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 접속한 이용자가 동의를 선택한 순간 추적기 소프트웨어 21개가 일제히 실행된다. 추적기란 이용자가 어떤 웹사이트에 방문하고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지를 감시하는 컴퓨터 코드를 말한다. CNN 사이트의 추적기는 28개,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더선을 통해 깔리는 추적기는 35개에 달한다. 추적기가 수집한 이용자 데이터는 수천 개의 광고회사로 팔려나간다. 이에 따라 이용자는 호기심에 한두 번 검색해 본 신발이나 옷 광고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른 웹사이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의 호기심이 소비로 이어지면 동의 버튼에서 비롯된 추적기 임무는 성공한 셈이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활용한 사업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은 2018년 4분기에 393억 달러(약 46조 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 중 이용자 정보를 통한 광고수입이 326억 달러(약 83%)를 차지했다. 페이스북도 2018년 4분기 매출액 169억 달러 중 166억 달러(약 98%)를 광고로 벌어들였다. 저자는 “21세기는 아마존이 신용카드이고 페이스북이 신분증인 시대”라고 지적한다. 인터넷 시대에 한발 앞서 진출한 사업자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저자는 “인터넷 이용자가 실제로 어느 회사에 어떤 개인정보가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동의 메뉴를 선택하는 걸 거대 인터넷 기업과 광고회사도 알고 있다. 이는 기만”이라고 비판한다. 이용자가 정보제공에 동의하는 순간 자신의 집 주소까지 수천 군데로 전송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활발한 정보수집이 이뤄질 수 없을 거라는 얘기다. 이는 거대 인터넷 기업의 독점이라는 폐해로 이어진다. 수십억 명의 이용자 데이터를 확보한 거대 기업들은 이를 무기로 다른 기업들의 시장 진입을 막고 기존 산업 생태계를 파괴한다. 국내에서도 최근 카카오, 네이버, 쿠팡 등 플랫폼 기업들의 무차별적 시장 진출이 논란이 되고 있다. 택시, 대리운전, 꽃배달 서비스 등에 이어 온갖 업종과 상권을 플랫폼 기업들이 장악할 여지가 커지고 있다는 것. 인터넷 사회에 도사린 독점과 감시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캠핑 떠날 때 도마와 접시를 각각 챙기지 않아요. 도마도 접시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최근 에세이 ‘작은 캠핑, 다녀오겠습니다’(휴머니스트)를 펴낸 이수현 여행작가(36)는 지난달 1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등이 배기지 말라고 들어있는 배낭용 등판매트는 추운 캠핑장에서는 훌륭한 방석이 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경우 캠핑에 빠져들수록 짐은 점점 줄었다고 한다. 9년 전 캠핑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배낭에 짐을 잔뜩 챙긴 백 패킹(캠핑 장비를 넣고 다니며 숙박과 음식을 해결하는 것)을 즐겼다. 그때는 가방을 싸는 데만 3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은 30분이면 충분하다. 그는 그동안 익힌 ‘작은 캠핑’의 노하우를 신간에 담았다. “캠핑의 목적이 휴식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짐을 싸고 푸는 시간, 캠핑장에서 세팅하고 철수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자연 속에서 쉬는 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요.” 요즘도 주말마다 곳곳으로 캠핑을 떠나는 그는 캠핑을 막 다니기 시작한 이들이 어마어마한 용품에 질리는 상황이 안타까웠단다. 캠핑용품이 많아지면 이를 늘어놓거나 다시 챙기는 데 드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캠핑장에 가보면 우리 부부가 짐을 모두 풀고 한참 쉬고 있을 때까지 장비를 세팅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물론 어떤 캠핑용품은 꼭 필요하고 어떤 건 버려야 한다는 식의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는 캠핑족들의 선택지를 늘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개 텐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해먹이나 그늘막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음식 재료도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짐이다. 그는 캠핑 요리도 가볍고 손이 덜 가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산속에서 즐기는 바비큐 파티도 좋지만 작은 프라이팬에 재료를 올리고 가열만 하면 되는 미니 피자나 브리치즈 구이를 최고로 친다. 그는 “일상에서 벗어난 경험을 하는 게 캠핑의 묘미다. 김치찌개나 삼겹살을 먹는 것보다는, 간단하지만 이색적인 메뉴를 해먹는 게 더 즐겁더라”며 웃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저는 캠핑을 떠날 때 도마와 접시를 따로 챙기지 않아요. 도마도 접시의 기능을 할 수 있거든요. 등이 베기지 말라고 들어 있는 배낭 등판의 푹신한 매트는 추운 캠핑장에서 훌륭한 방석이 될 수 있답니다.” 여행작가 이수현 씨(36)가 캠핑을 떠나기 위해 싸는 짐은 그가 캠핑을 사랑하면 할수록 점점 더 가벼워졌다. 그는 9년 전 처음 캠핑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배낭 안에 모든 짐을 넣어 떠나는 백패킹(배낭안에 캠핑에 필요한 장비를 넣고 다니며 숙박 및 음식을 해결하는 캠핑 방식)을 즐겼다. 초보 시절엔 가방 싸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면 지금은 30분이면 컴팩트한 배낭 완성이다. 이 씨는 최근 출간한 에세이 ‘작은 캠핑, 다녀오겠습니다’(휴머니스트)에 그 동안 쌓인 ‘작은 캠핑’ 노하우를 꾹꾹 눌러 담았다. 19일 그를 전화로 인터뷰 했다. “캠핑의 목적이 휴식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짐을 싸고 푸는 시간, 캠핑장에서 세팅하고 철수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자연 속에서 쉬는 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어요.” 요즘도 매주 주말마다 이곳저곳으로 캠핑을 떠나는 이 씨는 막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캠핑 용품 탓에 쉽게 질려버리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캠핑 용품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세팅과 철수 시간도 길어진다. 이 씨는 “캠핑장에 가 보면 저희 부부가 짐을 다 풀고 한참 쉬고 있을 때까지 세팅하고 있는 분도 많다”고 했다. 물론 어떤 용품은 꼭 필요하고, 어떤 용품은 버려야 한다는 등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씨는 선택지를 늘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텐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해먹이나 그늘막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침낭도 이불로 대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음식 재료도 많아지면 짐이다. 이 씨는 캠핑 요리도 무엇보다 가볍고 손이 덜 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산속에서 즐기는 바비큐 파티도 좋지만 작은 프라이팬에 재료를 올리고 가열만 하면 되는 미니피자나 브리 치즈 구이 등이 이 씨가 꼽은 가장 사랑하는 메뉴다. 그는 “일상을 벗어나 비일상적인 경험을 한다는 점 또한 캠핑의 묘미다. 김치찌개나 삼겹살을 먹는 것보다는 간단하지만 이색적인 메뉴를 먹는 게 경험 상 더 즐거웠다”며 웃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평생 유일하게 계속해온 것은 책읽기뿐입니다.”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살아온, 그래서 여성 최초의 대법관과 국민권익위원장이 된 김영란 전 대법관(65). 이런 타이틀 너머로 만난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독서광’이었다. 몸에 밴 특유의 독서 습관이 있다는 것부터 스마트폰이나 넷플릭스에 책 읽는 시간을 빼앗기는 데 슬픔을 느끼는 것까지 독서 애호가들의 마음과 꼭 닮아 있었다.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독서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시절의 독서’(창비)를 최근 펴낸 그를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이방인’을 초등학교 때 읽었어요. 그때는 책이 귀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닥치는 대로 읽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책장에 꽂힌 세계문학전집을 읽느라 노는 것도 잊을 정도였어요.” 김 전 대법관의 책에 대한 사랑은 판사 시절에도 사그라지지 않아 주변의 의아함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는 “너는 판사인데 왜 소설을 읽느냐”는 동료 판사들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길 판사가 재판하는 건 독자가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재판 당사자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작업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이해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이번 책에서 그는 영국 소설가 도리스 레싱(1919∼2013)의 ‘금색공책’ ‘생존자의 회고록’ 등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주의적 시선을 엿볼 수 있었다고 밝힌다.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성’을 관료주의 세계에 대한 암울한 예측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영상 매체를 통해 남이 상상한 세계를 구경하는 것도 분명 즐거운 경험이지만 책을 통해 나만의 상상력을 펼쳐보는 것도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 줄 겁니다.”수원=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