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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현 씨(37)는 올해 7월 첫딸을 출산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일단 나이가 많은 고령 임신인 데다 이미 당뇨병이 있었고, 자궁내막암 진단까지 받았다. 임신한 후로 고혈압, 비만, 갑상샘기능저하증, 자궁경관무력증 등 여러 병이 추가로 생겼다. 전형적인 고위험 산모다. 임신중독증도 나타났다. 임신중독증은 고혈압이 원인이 돼서 나타난다. 초기에는 단순히 혈압만 오르지만 더 진행되면 부종, 두통, 시야장애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로는 경련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임신중독증이 심하면 태반이나 태아로 혈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태아 성장이 멈추거나 사망하는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서 씨는 역경을 이겨내고 아기를 출산했다. 비록 27주 만에 조산했지만, 아기는 별 탈 없이 잘 자랐다. 12일에는 기다리던 퇴원도 했다. 서 씨의 진료를 담당한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러 차례 어려움이 닥쳤는데, 그때마다 모두 이겨낸 사례”라고 말했다. ● 자궁내막암과의 싸움 2021년 11월이었다. 주기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월경이 시작됐다. 다만 월경 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출혈량도 급격하게 늘었다. 서 씨는 “피가 막 쏟아진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런 증세가 금방 사라질 줄 알았지만 무려 2주 동안 계속됐다. 서 씨는 혹시나 해서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조직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소견서를 써주며 상태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서 씨는 암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크게 겁먹지는 않았다. 빨리 치료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서 씨는 “펑펑 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나. 정신 차리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 씨는 삼성서울병원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자궁내막암이었다. 암 크기는 약 1.2cm. 병기는 1기로 진단됐다. 암이 확실하기에 수술을 지체할 수 없었다. 외래 진료를 받고 3일 후에 곧바로 이정원 산부인과 교수가 수술에 돌입했다. 자궁내막에서 암을 긁어내는, 일명 자궁소파술을 시행했다. 가임기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궁을 완전히 들어내는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임신 가능성을 보고 자궁을 보존하기 위해 암 조직만 긁어내는 수술을 한다. 서 씨 또한 출산 계획이 있어 자궁소파술을 시행했다. 가임기 여성들은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호르몬 요법을 시행한다. 서 씨도 그랬다. 호르몬 요법을 시행하면서 3개월마다 조직검사를 통해 암 추가 발생 여부를 확인했다. 보통은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일단 치료된 것으로 보고 임신을 허용한다. 하지만 서 씨는 그러지 못했다. 6개월이 지난 후 암이 다시 발견됐다. 아직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서 씨는 6개월 전과 똑같은 치료를 반복해서 받아야 했다. 2022년 12월, 조직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의료진은 1차 치료를 종결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치료를 1년 동안 진행해서 좋아지지 않으면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하게 된다. ● 자연 임신에 성공했지만 서 씨 부부는 아기를 원했다.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보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년의 치료를 견뎌내니 비로소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당장 아기가 들어서지는 않았다. 서 씨 부부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까도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2024년 1월 자연 임신이 됐다. 세상이 그렇게 밝아 보일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서 씨는 오 교수의 진료를 받게 됐다. 오 교수에 따르면 서 씨는 고위험 산모에 해당한다. 일단 35세 이후인 데다 초산이다. 자궁내막암 1차 치료를 끝냈지만, 완치까지는 3년 이상의 기간이 남았다. 여전히 암 환자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암에 걸리기 2년 전에는 당뇨병 진단까지 받았다. 임신하고 난 후에는 몸 상태가 더 나빠졌다. 갑상샘기능저하증이 먼저 생겼다. 혈압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체중도 늘어났다. 혈당도 높아졌다. 임신중독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급기야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임신 18주째였던 올해 5월, 서 씨는 처음 입원했다. 자궁경관무력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경부가 약해져 열리는 병이다. 열린 자궁 입구를 통해 양막이 보이거나 일부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자칫 유산이나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 교수는 자궁경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거의 매달 병원에 가야 했다. 6월에도 배에 통증이 나타나서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똑같은 병이었다. 7월에도 그랬다. 이런 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몸 상태는 임신 25주째부터 급격하게 나빠졌다. 수축기 혈압을 기준으로 140mmHg를 넘어서면 고혈압으로 보는데, 서 씨의 혈압은 180mmHg까지 올라갔다. 임신하면 없던 당뇨병도 생긴다. 이를 임신성 당뇨라고 한다. 서 씨의 경우 이 무렵 혈당이 dL당 230mm까지 올랐다. 보통 식전 혈당이 dL당 126mm를 넘으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또 온몸이 부어올랐다. 몸이 부어오르면서 체중은 일주일 사이에 20kg이 늘었다. 살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종이 심했다.● 27주 만에 조산서 씨가 네 번째 입원하고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 교수는 조기 진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됐다. 임신 27주째를 맞아 새벽에 진통이 시작됐다. 서 씨는 자연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오 교수는 “혈압과 당뇨 등 여러 합병증이 있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면 산모의 회복이 매우 더딜 수 있었는데, 아기의 머리가 아래쪽을 향한 덕분에 자연분만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기의 체중은 800g이었다. 보통 27주 정도면 체중이 1kg은 돼야 한다. 태아의 발육 상태가 다소 지연된 것. 신생아 중환자실(NICU)에서 아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기가 정상적으로 나오면 울음을 터뜨린다. 호흡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폐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아기 스스로 호흡하지 못한다. 이 경우 기도삽관이나 산소치료 등 여러 방법으로 호흡을 돕는다. 서 씨 아기의 경우 폐의 기능이 70∼80% 정도 작동했다. 곧바로 산소치료를 시작했다. 아기의 생명력은 강했다. 놀랍게도, 단 하루 만에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몸무게도 쑥쑥 늘어 어느덧 2kg에 육박했다.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 병실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우유와 모유를 모두 잘 먹었다. 스스로 젖병을 빠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 교수는 “조산으로 태어났지만, 정상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했다. 서 씨의 아기는 12일, 마침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 남편의 지지가 정말 중요서 씨는 요즘도 자궁내막암, 당뇨 등 질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2, 3개월마다 병원을 찾는다. 몸은 많이 건강해졌다. 부종은 거의 다 빠졌다. 체중도 임신 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달라진 점도 있다. 예전에는 운동이라곤 해 본 적이 없었다. 병을 얻고 힘겹게 출산 과정을 겪고 나서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요즘에는 매일 30분씩 걷는다. 덕분에 혈당과 혈압도 떨어지고 있다. 오 교수와 서 씨 모두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과는 해피 엔딩”이라며 웃었다. 오 교수는 “서 씨의 밝은 성격이 역경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임상에서 많은 고위험 산모를 접하는데, 덜 걱정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려는 환자일수록 결과가 좋을 때가 많다. 물론 태아에게도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친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 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서 씨는 “힘들 때 찡그리거나 꽁하고 있으면 몸이 더 아프더라. 일부러 웃고 떠들며, 안 좋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더니 다 좋아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남편의 역할도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오 교수는 “고위험 산모들은 모든 고통을 모성애로 견딘다. 그럴 때 남편의 지지가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서승현 씨(37)는 올해 7월 첫딸을 출산했다. 과정은 험난했다. 일단 나이가 많은 고령 임신인 데다 이미 당뇨병이 있었고, 자궁내막암 진단까지 받았다. 임신한 후로 고혈압, 비만, 갑상샘기능저하증, 자궁경관무력증 등 여러 병이 추가로 생겼다. 전형적인 고위험 산모다. 임신중독증도 나타났다. 임신중독증은 고혈압이 원인이 돼서 나타난다. 초기에는 단순히 혈압만 오르지만, 더 진행되면 부종, 두통, 시야장애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때로는 경련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임신중독증이 심하면 태반이나 태아로 혈류가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아 태아 성장이 멈추거나 사망하는 치명적인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서 씨는 역경을 이겨내고 아기를 출산했다. 비록 27주 만에 조산했지만, 아기는 별 탈 없이 잘 자랐다. 지난 12일에는 기다리던 퇴원도 했다. 서 씨의 진료를 담당한 오수영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러 차례 어려움이 닥쳤는데, 그때마다 모두 이겨낸 사례”라고 말했다. ●자궁내막암과의 싸움2021년 11월이었다. 주기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월경이 시작됐다. 다만 월경 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졌다. 출혈량도 급격하게 늘었다. 서 씨는 “피가 막 쏟아진다고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런 증세가 금방 사라질 줄 알았지만 무려 2주 동안 계속됐다. 서 씨는 혹시나 해서 동네 산부인과에 갔다. 조직검사를 받았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소견서를 써주며 상태가 좋지 않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서 씨는 암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크게 겁먹지는 않았다. 빨리 치료하면 될 거로 생각했다. 서 씨는 “펑펑 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나. 정신 차리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 씨는 삼성서울병원에 갔다. 예상했던 대로 자궁내막암이었다. 암 크기는 약 1.2㎝. 병기는 1기로 진단됐다. 암이 확실하기에 수술을 지체할 수 없었다. 외래 진료를 받고 3일 후에 곧바로 이정원 산부인과 교수가 수술에 돌입했다. 자궁내막에서 암을 긁어내는, 일명 자궁소파술을 시행했다. 가임기 여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궁을 완전히 들어내는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임신 가능성을 보고 자궁을 보존하기 위해 암 조직만 긁어내는 수술을 한다. 서 씨 또한 출산 계획이 있어 자궁소파술을 시행했다. 가임기 여성들은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호르몬 요법을 시행한다. 서 씨도 그랬다. 호르몬 요법을 시행하면서 3개월마다 조직검사를 통해 암 추가 발생 여부를 확인했다. 보통은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일단 치료된 것으로 보고 임신을 허용한다. 하지만 서 씨는 그러지 못했다. 6개월이 지난 후 암이 다시 발견됐다. 아직 완전하게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서 씨는 6개월 전과 똑같은 치료를 반복해서 받아야 했다. 2022년 12월, 조직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모든 게 정상이었다. 의료진은 1차 치료를 종결했다. 일반적으로 이런 치료를 1년 동안 진행해서 좋아지지 않으면 자궁을 절제하는 수술을 검토하게 된다. ●자연 임신에 성공했지만서 씨 부부는 아기를 원했다.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보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년의 치료를 견뎌내니 비로소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당장 아기가 들어서지는 않았다. 서 씨 부부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을까도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2024년 1월 자연 임신이 됐다. 세상이 그렇게 밝아 보일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서 씨는 오 교수의 진료를 받게 됐다. 오 교수에 따르면 서 씨는 고위험 산모에 해당한다. 일단 35세 이후인 데다 초산이다. 자궁내막암 1차 치료를 끝냈지만, 완치까지는 3년 이상의 기간이 남았다. 여전히 암 환자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암에 걸리기 2년 전에는 당뇨병 진단까지 받았다. 임신하고 난 후에는 몸 상태가 더 나빠졌다. 갑상샘기능저하증이 먼저 생겼다. 혈압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체중도 늘어났다. 혈당도 높아졌다. 임신중독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급기야 입원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임신 18주째였던 올해 5월, 서 씨는 처음 입원했다. 자궁경관무력증 진단을 받았다. 자궁경부가 약해져 열리는 병이다. 열린 자궁 입구를 통해 양막이 보이거나 일부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자칫 유산이나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 교수는 자궁경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거의 매달 병원에 가야 했다. 6월에도 배에 통증이 나타나서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똑같은 병이었다. 7월에도 그랬다. 이런 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몸 상태는 임신 25주째부터 급격하게 나빠졌다. 수축기 혈압을 기준으로 140㎜Hg를 넘어서면 고혈압으로 보는데, 서 씨의 혈압은 180㎜Hg까지 올라갔다. 임신하면 없던 당뇨병도 생긴다. 이를 임신성 당뇨라고 한다. 서 씨의 경우 이 무렵 혈당이 230㎜/dL까지 올랐다. 보통 식전 혈당이 126㎜/dL을 넘으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또 온몸이 부어올랐다. 몸이 부어오르면서 체중은 일주일 사이에 20㎏이 늘었다. 살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부종이 심했다.● 27주 만에 조산서 씨가 네 번째 입원하고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오 교수는 조기 진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됐다. 임신 27주째를 맞아 새벽에 진통이 시작됐다. 서 씨는 자연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오 교수는 “혈압과 당뇨 등 여러 합병증이 있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면 산모의 회복이 매우 더딜 수 있었는데, 아기의 머리가 아래쪽을 향한 덕분에 자연분만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아기의 체중은 850g이었다. 보통 27주 정도면 체중이 1㎏은 돼야 한다. 태아의 발육 상태가 다소 지연된 것. 신생아 중환자실(NICU)에서 아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기가 정상적으로 나오면 울음을 터뜨린다. 호흡이 되고 있다는 증거다. 폐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아기 스스로 호흡하지 못한다. 이 경우 기도삽관이나 산소치료 등 여러 방법으로 호흡을 돕는다. 서 씨 아기의 경우 폐의 기능이 70~80% 정도 작동했다. 곧바로 산소치료를 시작했다. 아기의 생명력은 강했다. 놀랍게도, 단 하루 만에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호흡하기 시작했다. 몸무게도 쑥쑥 늘어, 어느덧 2㎏에 육박했다. 중환자실을 나와 일반 병실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우유와 모유를 모두 잘 먹었다. 스스로 젖병을 빠는 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 교수는 “조산으로 태어났지만, 정상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했다. 서 씨의 아기는 지난 12일, 마침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남편의 지지가 정말 중요서 씨는 요즘도 자궁내막암, 당뇨 등 질병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2, 3개월마다 병원을 찾는다. 몸은 많이 건강해졌다. 부종은 거의 다 빠졌다. 체중도 임신 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달라진 점도 있다. 예전에는 운동이라곤 해 본 적이 없었다. 병을 얻고 힘겹게 출산 과정을 겪고 나서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요즘에는 매일 30분씩 걷는다. 덕분에 혈당과 혈압도 떨어지고 있다. 오 교수와 서 씨 모두 “과정이 힘들었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라며 웃었다. 오 교수는 “서 씨의 밝은 성격이 역경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임상에서 많은 고위험 산모를 접하는데, 덜 걱정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려는 환자일수록 결과가 좋을 때가 많다. 물론 태아에게도 훨씬 좋은 영향을 미친다.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 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서 씨는 “힘들 때 찡그리거나 꽁하고 있으면 몸이 더 아프더라. 일부러 웃고 떠들며, 안 좋은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랬더니 다 좋아진 거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남편의 역할도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오 교수는 “고위험 산모들은 모든 고통을 모성애로 견딘다. 그럴 때 남편의 지지가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위험 출산 서승현 씨의 투병-분만 일지>2019년 당뇨병 진단. 특이 증세는 없었음2021년 11월 월경 기간이 길어지고 출혈량이 극도로 많아짐, 자궁내막암 의심 소견2021년 12월 자궁내막암 확진 및 수술2022년 6월 자궁내막암 추가 발생 및 수술2024년 1월 자연 임신 성공2024년 5~7월 자궁경관무력증, 임신중독증 등으로 4회 입원2024년 7월 27주째에 딸 조산(체중 800g) 이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관리2024년 9월 딸 건강하게 퇴원2024년 현재 서 씨 자궁내막암 재발 징후 보이지 않음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40대 초반 여성 이미현(가명) 씨는 목뼈와 등뼈 주변 통증으로 한동안 고생했다. 처음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주변에 있는 의원을 찾아갔다. 물리치료를 비롯해 이런저런 치료를 꽤 많이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고, 통증이 다시 도졌다. 이런 식으로 2년 가까이 호전과 악화가 반복됐다. 이 씨는 결국 도종걸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를 찾았다. 도 교수는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한 검사부터 했다. 목뼈가 역C자형으로 휘어진 것 말고는 특별히 심각한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 도 교수는 이런 사실을 이 씨에게 알려줬다. 통증이 심하니 당장 모든 약을 끊을 수는 없었다. 다만 의원에서 받았던 그 밖의 치료는 모두 중단했다. 약을 먹으면서 따뜻한 샤워, 명상, 자세 교정 등의 행동요법을 병행했다. 동시에 유산소 운동을 했다. 2개월 정도가 지나자 이 씨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도 교수에게 진료받기 전 통증의 강도가 10점 만점에 8점이었는데, 이 점수가 3점으로 뚝 떨어진 것. 도 교수는 “목뼈 변형만 제대로 고친다면 불필요한 진료를 모두 없애도 통증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성인 60%가 갖고 있는 목뼈 변형 척추 맨 윗부분을 목뼈(경추)라고 한다. 목뼈는 전방으로 살짝 튀어나온 게 정상적이다. 완만한 C자 형태다. 도 교수는 “목뼈가 C자형이어야 머리 무게를 효과적으로 분산한다”며 “목뼈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고, 목과 어깨의 움직임도 원활해져 통증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잘못된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해 이 목뼈의 모양새가 달라질 수 있다. 처음에는 C자가 펴지면서 일자형이 된다. 이른바 ‘일자목’이다. 여기에서 더 나빠지면 머리가 앞으로 툭 튀어나오는 ‘거북목’이 되거나, 목뼈의 끝부분만 역C자형으로 구부러지는 ‘역C자목’이 된다. 도 교수는 “목뼈 변형 자체가 질병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내 성인의 60% 정도가 이로 인해 큰 불편을 겪는다”고 말했다. 대표적 증세가 목이나 어깻죽지 통증이다. 목뼈가 변형되면 목에 가해지는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면서, 목 주변 근육과 인대가 더 긴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가령 거북목의 경우 머리가 3cm 전방으로 돌출할 때마다 5kg 정도의 무게가 더 가해진다. 그대로 두면 목 통증은 만성화한다. 등과 허리로 통증이 확산할 수 있다. 더 심해지면 추간판탈출증(디스크)이나 어깨를 움직이기 어려운 어깨충돌증후군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도 교수는 “목뼈 변형이 시작됐다면 일단 목뼈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곧바로 자세 교정을 포함해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세 교육하며 서서히 치료 도 교수는 목뼈 변형에 대해 “열심히 살다 보니 40대와 50대에 이르러 받게 된 ‘삶의 훈장’ 같은 것”이라고 했다. 격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에 찌들면서 이 무렵에 환자들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은퇴한 60대 이후로는 환자 발생률이 낮아진다. 다만 거북목의 경우에는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는 중학생 때 많이 발생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생긴 목뼈 변형이라도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통증을 줄이는 약물을 사용하면서 자세 교육을 시행하면 된다. 다만 한두 차례의 치료만으로 좋아질 수는 없다. 짧은 시간에 회복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환자 본인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 교수는 “물리치료, 약물치료, 근육주사, 신경 차단술 등으로 통증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치료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며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완치’하려면 장기적으로 자세를 교정하고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 통증이 나타난다고 해서 무조건 주사부터 맞거나 ‘첨단 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 이 경우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증세만 악화시킬 수 있다. 이 씨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도 교수는 “목뼈 변형으로 근육통이 생겼다면 목뼈를 정상으로 되돌려야 치료가 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생활 습관부터 고쳐라 목뼈 변형의 치료법은 예방법과 마찬가지다. 잘못된 자세부터 고쳐야 한다. 우선 목뼈 상태부터 확인하자. 정면을 응시한 상태로 옆모습을 촬영한다. 사진 속 귀의 중앙부와 어깨선을 연결한 직선이 수직을 이루는 게 좋다. 만약 귀 중앙 부위가 앞쪽으로 나와 있다면 거북목일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벽에 등과 엉덩이를 대고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린다. 정면을 응시한 상태로 머리를 벽에 댄다. 이때 벽에 머리가 닿지 않으면 거북목이라고 봐야 한다.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면 머리를 앞으로 내밀게 된다. 거북목으로 악화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도 핸들을 꽉 잡고 상체를 내민다면 거북목이 생길 수 있다. 무거운 가방을 메면 머리만 앞으로 튀어나오게 돼 거북목이 생길 확률을 크게 높인다. 고개를 숙여 휴대전화를 보면 일자목이나 역C자목이 되기 쉽다. 하나씩 고쳐야 한다.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모니터를 눈높이로 맞춘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운전석 상단에 뒷머리를 붙인다. 무거운 가방은 앞으로 메거나 중량을 줄인다. 휴대전화를 볼 때는 고개를 숙일 게 아니라 팔을 들어 전화기를 눈앞까지 올려야 한다. 도 교수는 절대 휴대전화를 침실에 갖고 들어가지 말라고 강조했다. 침실에서는 어떤 자세로 휴대전화를 보든 목뼈 변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파 팔걸이 부분에 목을 대고 누워 자거나 그 상태로 TV를 보는 습관도 목뼈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예방과 치료를 위한 운동 변형된 목뼈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도 교수와 안현주 물리치료사가 함께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운동법(안내 사진 참고)을 제시했다. 이 운동은 목뼈 변형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가 좋다. 모든 운동은 통증이 없는 범위 내에서 시행해야 한다. 모든 동작은 천천히, 정확하게 해야 한다. 호흡은 평상시처럼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틈날 때마다 자주 하는 게 좋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민병미 씨(62)는 2022년 10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를 모두 마치고 현재는 항호르몬제를 매일 먹고 있다. 완치까지는 갈 길이 멀다. 민 씨 치료를 맡은 차치환 한양대병원 외과 교수는 “유방암은 다른 암보다 복잡하다. 수술 후 10년은 지나야 완치 판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8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여전히 ‘암 환자’인 셈이다. 그래도 차 교수와 민 씨 모두 긍정적이다. 지금처럼만 관리하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 교수는 “민 씨는 가장 모범적으로 암 투병을 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민 씨의 투병기를 들어봤다.● 스트레스가 암 유발? 2022년 5월이었다. 왼쪽 허벅지에 통증이 나타났다. 민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한쪽에 쌓인 짐을 다리로 툭 밀 때 문제가 생겼다. 무릎에서 ‘찡’ 소리가 난 것 같았다. 이후 수시로 무릎이 아팠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면 좋아졌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아팠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초, 여름휴가를 해외로 떠났다. 현지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막 내리려는데 다리가 부어올랐다. 통증이 밀려왔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패키지 여행이라 돌아오지도 못하고 6박 7일 일정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귀국하자마자 정형외과 의원에 갔다. 염증 완화 주사를 맞았다. 증세가 사그라드는 것 같더니 일주일이 지나자 다시 통증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왼쪽 다리만 아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른쪽 다리까지 붓고 아팠다. 잘 움직이지 못하다 보니 체중도 부쩍 늘었다.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졌다. 류머티즘 질환 진단까지 받았는데 왜 병을 고치지 못하는지 화가 났다. 자꾸 씩씩거렸고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화내다 보면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민 씨는 “하루 종일 다리 문제로 신경이 곤두섰다. 평생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때였다”라고 말했다. 8월 말, 샤워하던 도중에 오른쪽 가슴 아래쪽에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졌다. 어떤 날에는 멍울이 있는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후 한양대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차 교수는 “가슴에서 딱딱한 멍울이 만져지는 건 유방암의 전형적인 신호다. 멍울이 만져진다면 민 씨처럼 지체하지 말고 검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 씨는 “류머티즘 질환으로 받은 스트레스가 유방암이 생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정말 그럴까. 차 교수는 “민 씨처럼 유방암 발병 직전에 극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환자 사례가 꽤 많다”고 했다. 이어 “급격한 체중 증가도 유방암이 생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폐경 이후 여성에게 급격한 체중 증가는 유방암 발생의 큰 원인에 든다.● 2cm 암 덩어리… 투병 시작 암 덩어리는 다행히 1개뿐이었다. 크기는 약 2cm. 1기와 2기 사이였다. 암 덩어리가 조금 크기는 했지만 피부와 가까운 지점에 있었다. 만약 암이 더 깊은 곳에 생겼다면 처음부터 딱딱한 멍울이 만져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유방암에는 치료 경과가 좋지 않은 이른바 악성 암이 여럿 있는데, 민 씨는 비교적 치료가 잘 듣는 ‘순한’ 암이었다. 차 교수는 “암에 걸리기는 했지만 그나마 여러 면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암 덩어리가 있는 부위 4cm 정도를 절제하고 암을 제거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암 전이를 예방하기 위해 겨드랑이를 통해 임파선을 제거하는 수술도 진행했다. 만성 염증이 있는 담낭도 제거했다. 수술에는 총 3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은 잘 끝났다. 암 덩어리가 1개인 데다 완벽하게 제거했기에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차 교수는 항암 치료를 결정했다. 차 교수는 “일단 암 크기가 2cm로 작지 않았고, 재발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나이였기 때문에 항암 치료를 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항암 치료는 2023년 1월부터 시작했다. 민 씨가 류머티즘 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항암 치료에 더 신중해야 했다. 항암 치료로 인해 심장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박 3일 동안 입원해 몸 상태를 살피면서 주사 맞는 방식으로 치료했다. 3주 간격으로 4회 진행했다.● 현재도 암 극복 중 항암 치료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구역질이 나오고 머리가 빠졌다. 입맛은 사라졌다. 너무 입맛이 없어 암 환자라면 먹지 말아야 할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발효식품을 먹었다가 설사하기도 했다. 차 교수는 “암 환자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에 취약하다. 발효식품을 먹었다가 장염에 걸릴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옳다”고 했다. 그래도 암과 싸우기 위해 억지로 먹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열 끼를 먹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16kg이나 늘었다. 이번에는 체중을 줄여야 했다. 이를 위해 민 씨는 일에 더 매진했다. 민 씨는 의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오래 일하면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지만 일을 관두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 힘들어서 자꾸 눕게 됐습니다. 그러면 운동도 거의 못 했죠.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더 열심히 일한 것이죠.” 차 교수는 “암 환자에게는 운동을 권장하는데,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항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그해 4월 곧바로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입원하지 않고 매일 병원을 방문해 20분씩 받았다. 정해진 방사선량을 초과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치료한 것. 총 30회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방사선 치료와 동시에 항호르몬 치료도 시작했다. 민 씨의 유방암은 여성호르몬 수용체가 강한 유형이었다. 이 경우 여성호르몬이 암세포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호르몬을 낮춰주는 항호르몬제를 최소한 5년 동안은 먹어야 한다. 항호르몬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류머티즘 질환이 있으면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무릎이 아프게 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래도 민 씨는 매일 항호르몬제를 먹는다. 삶은 윤택해졌다. 민 씨는 10여 년 전 대한민국예술대전(국전) 서예 부문에서 입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동안 글씨를 쓰지 못했다. 암과 투병하면서 다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단다. 올 4월, 다시 붓을 들었다.● 슬기롭게 암 투병해야 민 씨는 6개월마다 재발 여부를 살피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수술을 받고 5년이 지날 때까지는 6개월마다, 그 후에는 1년마다 병원을 찾게 된다. 재발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차 교수는 “수술 후 10년이 지나 완치를 선언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때까지 암이 재발할 확률은 10∼20%”라고 말했다. 이어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고 식단을 관리하며 항호르몬제를 빠지지 않고 복용한다면 재발 확률은 더 낮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암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발이다. 민 씨 또한 “재발이 가장 걱정된다. 외래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재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공동체 등의 격려가 두려움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차 교수는 ‘슬기로운 투병’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환자의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차 교수는 “민 씨의 경우 주변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 정도로 유쾌하고 긍정적이다. 암 투병에 큰 도움이 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또 질병에 대해 환자 스스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가 병에 대해 많이 알수록 의사와 환자의 소통이 수월해집니다. 이 경우 최적의 치료법을 찾을 가능성도 커지죠.” 민 씨는 투병에 필요한 요소로 의료진에 대한 신뢰를 꼽았다. 의사를 무한 신뢰하는 순간부터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 민 씨는 “차 교수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수술이 끝난 후에는 휴일인데도 입원실까지 찾아와 손을 잡아 줬다”며 “이런 배려가 투병 의지를 높여 줬다”고 설명했다. 권위적이지 않은 의사일수록 암 환자와의 소통이 원활해진다는 뜻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안상현(가명·55) 씨는 평소 건강에 자신 있었다. 운동도 자주 했다. 나이 들어 시력이 약간 떨어지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해외여행 중에 눈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해가 떠오르는 찰나 갑자기 풍경이 휘어져 보였다. 귀국하자마자 병원을 찾았다. 곧바로 정밀 검사가 이뤄졌다. 양쪽 눈 모두 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오른쪽 눈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떨어져 있었다. 왼쪽 눈도 이미 병이 꽤 진행돼 있었다. 안 씨의 치료를 담당한 박규형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안 씨의 오른쪽 눈 시력은 0.1이 되지 않았고, 왼쪽 눈도 0.5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안 씨는 거의 실명 상태다. 박 교수는 “만약 더 일찍 병을 발견했더라면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시력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 황반변성 알아두자 안구의 안쪽에 얇고 투명한 막이 있다. 망막이다. 안구 안으로 들어온 빛 정보를 전기 정보로 전환해 뇌로 전달한다. 이 망막의 중심부에 있는 것이 황반이다. 녹황색 색소가 있어 노랗게 보이기 때문에 황반이란 이름이 붙었다. 황반변성은 드루젠이란 노폐물이 황반에 쌓이면서 시작된다. 노폐물 수가 많아지고 덩어리가 커지면서 황반에 밀집된 시세포들이 죽는다. 시세포는 빛을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시세포가 죽기 시작하면 시력이 크게 떨어진다. 치료하지 않고 시간이 더 흐르면 황반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새로 생기기 시작한다. 이 혈관이 터져 출혈이 일어나고 흉터가 생긴다. 비정상적인 혈관이 생기기 전 단계를 건성 황반변성, 이후 단계를 습성 황반변성으로 구분한다. 대개는 건성에서 습성으로 악화한다. 습성 황반변성이 진행되면 실명의 위험도 커진다. 황반변성은 녹내장, 당뇨병성 망막증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이다. 황반변성의 경우 시야의 중심부를 보는 ‘중심 시력’이 0.1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주변부만 희미하게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되는 것. 황반변성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노화다. 최근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황반변성 유병률은 50대가 11%, 60대가 20%, 70대 이상이 31% 정도다.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도 높아진다. 70대의 경우 10명 중 3명 이상이 황반변성 환자다. 박 교수는 “황반변성 환자 증가 속도가 무척 빠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약 2배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40대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박 교수는 “40대 황반변성 환자 유병률은 10년 전 1%였는데, 최근 3.6%로 늘었다”고 했다. 원인이 뭘까. 박 교수는 “심혈관질환처럼 황반변성도 전신질환이다”며 “서구화된 식습관, 운동 부족, 비만, 고혈압, 흡연 등이 모두 황반변성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다”고 설명했다. 간혹 청소년이나 20대 혹은 30대에서도 황반변성이 나타난다. 이는 노화와 관계가 없다. 이런 경우 대체로 고도 근시이거나 유전적 문제가 원인이다. ● 초기엔 증세 거의 못 느껴 박 교수는 안 씨와 같은 사례를 황반변성 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고 했다. 황반변성에 걸려도 초기 증세가 거의 없어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박 교수는 “한쪽 눈에서 황반변성이 진행되고 있어도 다른 쪽 눈의 시력이 살아있다면 병을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건성 황반변성일 때는 증세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 병을 자각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심지어 초기에는 시력 자체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따로 검사하지 않는 한 병을 발견하기 어렵다. 시력은, 노폐물이 심하게 쌓이면서 망막이 위축되는 말기에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 정도까지 병이 악화하면 시력을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습성 황반변성일 때는 당장 증세가 나타난다. 황반에 비정상적인 혈관이 터져 흉터가 생기면서 황반 자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당연히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증세가 약하면 가운데 부분이 찌그러지거나 구부러져 보인다. 여기에서 더 악화하면 중심부가 아예 보지 못할 정도로 까맣게 나타난다. 박 교수는 “이 정도 증세가 나타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며 “증세가 악화하기 전에 병원을 찾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자가 진단이 가능하다. 박 교수는 ‘암슬러 격자 검사’를 권했다. 건성 황반변성 중기 이전에 병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바둑판처럼 생긴 검사지를 눈높이 정도의 냉장고나 벽에 붙인다. 조명은 밝게 한다.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쓴다면 착용한 상태로 검사한다. 약 33cm 정도 거리에서 한쪽 눈을 가리고 검사지의 정중앙을 쳐다본다. 양쪽 눈을 번갈아 검사한다. 바둑판 모양이 직선으로 보인다면 정상이다. 하지만 휘어지고 검게 보이는 부분이 있거나 끊어져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황반변성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게 좋다. 박 교수는 “이 검사는 안과 의사들도 직접 해 볼 정도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니 가급적 자주 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 단계별로 치료법 달라 치료법은 황반변성의 진행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건성 황반변성이면 전문의약품은 없다.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주된 치료다. 꾸준한 관리를 통해서 병의 악화를 막는 것. 우선 금연과 선글라스 착용은 필수다. 담배와 자외선이 병의 진행 속도를 당길 수 있다. 이와 함께 베타카로틴, 루테인, 안토시아닌 등 눈에 좋은 성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지중해 식단도 도움이 된다. 박 교수는 “다만 베타카로틴의 경우 흡연자는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고용량의 항산화비타민을 먹는 것이다. 박 교수는 “여러 차례 임상시험 결과 고용량 비타민이 건성 황반변성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다만 시중에서 파는 일반 비타민제와는 다르니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습성 황반변성으로 악화했다면 시력을 보존하기 위한 적극적 치료가 필요하다. 우선 혈관의 파열을 막아 흉터가 덜 생기고, 황반이 덜 손상되는 치료를 해야만 한다. 안구에 항체 주사를 놓아 혈관의 활동성을 약화시키는 치료가 중점적으로 이뤄진다. 보통 발병 첫해에 6회 주사를 맞는다. 매달 혹은 두 달 간격으로 주사를 맞는다. 이후로도 필요하다면 평균 2∼4개월 간격으로 주사를 맞는다. 다만 환자에 따라 주사 횟수와 간격은 달라질 수 있다. 박 교수는 “좀 좋아졌다고 해서 주사를 끊으면 혈관의 활동성이 다시 강해지면서 시력을 잃을 수도 있어 환자에 따라서는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 금연하고 정기 검진 필수 황반변성의 위험 요소를 압축하자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노화, 둘째가 유전적 요인, 셋째가 환경적 요인이다. 박 교수는 “노화와 유전적 요인은 피할 수 없더라도 환경적 요인만 잘 관리하면 병의 예방과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첫째, 금연해야 한다. 박 교수는 “흡연만으로도 황반변성 발생 확률이 2, 3배 높아진다”며 “따라서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둘째,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등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황반에 쌓이는 노폐물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규칙적인 운동도 필수다. 셋째, 건강한 식습관도 필수다. 등 푸른 생선이나 녹황색 채소를 자주 먹는 게 좋다. 박 교수는 추가로 녹차를 추천했다. 박 교수는 “환자들의 식습관을 분석한 적이 있는데, 매주 2회 이상 녹차를 마시는 경우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넷째,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야 한다. 다섯째, 50세가 넘으면 정기적으로 눈 검진을 해야 한다. 박 교수는 “안저검사 하나만 해도 황반변성, 녹내장,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심 소견이 나오면 그 후 매년 검사를 하면서 진행 상태를 살펴야 악화를 막을 수 있다. 박 교수는 “황반변성을 노안으로 여기면서 무시하지 말고 적극 대처해야 실명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갑상샘(갑상선)은 목 앞쪽 중앙 부위에 있는 내분비기관이다. 양쪽으로 나비 날개를 펼친 모양새다. 갑상샘 호르몬을 만드는 게 주 역할이다. 갑상샘 호르몬은 체온을 유지하고 신체 대사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한다. 과다하게 분비되면 갑상샘 기능 항진증, 부족하게 분비되면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된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일 때 나타나는 증세는 다양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이 가시지 않거나,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체중이 감소하기도 한다. 더위를 특히 참지 못한다.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기도 한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수도 있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정훈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갑상샘 기능 항진증의 증세가 너무 다양해 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증세를 키우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병을 방치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신속하게 병을 진단하고 성실하게 치료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김혜정 씨(59)의 투병 사례를 들려줬다. ● 갑자기 체중 쭉쭉 빠져 2021년 초였다. 좀처럼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졌다. 초조함과 불안 증세도 나타났다. 심장 박동수도 빨라지는 것 같았다. 과격하게 운동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닌데 3개월 사이에 8㎏이 빠졌다. 김 씨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김 씨는 수십 년째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 무렵은 팀장을 맡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컸다. 그래도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었다. 특히 단기간에 체중이 확 빠진 게 걱정됐다. 그해 4월 김 씨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이 검진을 통해 병의 정체를 알았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이었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혈액검사를 통해 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확인한다. 김 씨의 경우 갑상샘 호르몬이 정상치의 3배를 넘었다. 김 씨는 하 교수를 찾아갔다. 하 교수는 “김 씨에게 나타난 증세들은 갑상샘 기능 항진증으로 생기는 전형적인 것들이다”고 말했다. 가령 심장이 빨리 뛰기 때문에 심박수가 빨라졌다. 대사 작용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니까 체중도 빠졌다. 동시에 땀이 나거나 예민해지고 불안과 초조감도 느껴야만 했다. 하 교수는 “김 씨는 겪지 않았지만, 위장과 대장 운동이 지나치게 활발해지면서 허기를 느낀다거나 설사를 자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호르몬 조절 약물 사용 김 씨는 호르몬 생성을 차단하는 약물을 처방받았다. 하 교수는 “호르몬 상태를 확인하면서 약의 용량을 제대로 조절하는 게 치료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필요량 이상으로 용량을 늘리면 오히려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드물게는 영구적으로 갑상샘 기능에 손상이 생길 수도 있다. 김 씨의 경우 처음에는 5mg 정도를 투입했다. 약은 이틀마다 투입했다. 2주가 지나자 약효가 나타났다. 하 교수는 “혈액검사에서 호르몬 수치가 확 떨어졌다”고 말했다. 더불어 몸에 나타나던 증세도 조금씩 개선됐다. 쭉쭉 빠지던 체중도 더 이상 빠지지 않았다. 김 씨는 “무엇보다 체력이 다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2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약효가 없는 것 같았다. 하 교수는 용량을 7.5mg으로 늘렸다. 다시 호르몬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 다시 용량을 줄였다. 나중에는 2.5mg까지 줄였다. 투입 횟수도 2일에서 3일에 한 번으로 조정했다. 김 씨는 이런 방법으로 2023년 초까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러다 2월에는 더 이상 약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약물을 끊었다. 이어 10월, 김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사실 이 병은 재발이 비교적 잘 되는 병이다. 이 때문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 김 씨는 자신도 그런 과정을 밟을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2년여 만에 약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 교수는 “보통 1년∼1년 6개월 동안 약물을 쓰면 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가 되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 충분한 기간(2∼3년)에 걸쳐 약을 쓴다”고 말했다. 김 씨의 투병기를 들여다보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 교수는 “갑상샘 기능 항진증 치료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스트레스”라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야 치료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 퇴사 후 못했던 일 도전… 활력 되찾아 갑상샘 기능 항진증 진단을 받고 4개월 후인 2021년 8월, 김 씨는 희망퇴직을 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김 씨는 “나로서는 큰 결단이었다”며 “3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김 씨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에 열정을 쏟았다. 평소 책 읽기 좋아하고 메모하고 일기 쓰는 습관이 있었던 터라 간호사 생활 35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책 집필에 도전했다. 1년 6개월 동안 원고를 정리했고, 마침내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열망이 강했는데, 그 꿈도 이뤘다. 2개 대학에서 간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게 됐다. 활기가 조금씩 살아났다. 김 씨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 좋아하는데 잘 하지 못했던 분야, 바로 운동에 도전한 것. 김 씨는 물 공포증 때문에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었는데 용기를 냈다. 공포를 이겨내니 수영이 즐거워졌다. 어렵다는 접영까지 다 배웠다. 탁구도 잘하고 싶었다. 동네 탁구장에 자주 갔다. 덕분에 동네 친구들이 많아졌다. 작년에는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매주 두세 번은 자전거를 탔다. 한 번 자전거를 타면 50㎞는 보통이고, 많게는 하루에 100㎞ 이상까지 달렸다. 국내 웬만한 곳은 다 누비고 다녔다. 얼마 전에는 일본 홋카이도까지 가서 9일 동안 자전거를 타기도 했다. 김 씨는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줬기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미쳐 봤다”며 “그랬더니 어느새 증세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하 교수도 “여건이 허락한다면 갑상샘 기능 항진증 환자의 경우 당분간이라도 일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게 아주 좋은 치료법이 된다”고 말했다. ● 요오드 섭취, 신중히 해야 김 씨는 단 한 번도 약 복용을 빠뜨린 적이 없다. 하 교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의외로 중간에 치료를 관두는 환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보통 2주 정도 약을 먹고 나면 증세가 좋아지는데, 이 상황을 ‘완치’로 지레짐작하고는 약을 끊는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그런 환자들은 대부분 재발해서 다시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치료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병원 진료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며 “혈액검사도 정기적으로 꼭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 씨는 3개월마다 혈액검사를 받았다. 하 교수는 요오드 섭취에 신중할 것을 강조했다. 갑상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요오드가 많이 들어간 다시마 환이나 김과 같은 음식을 과도하게 먹지 말라는 것. 하 교수는 “그랬다가는 갑상샘 호르몬이 제 기능을 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 교수는 “갑상샘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김이나 다시마 환 같은 것을 무조건 먹지 말고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갑상샘 기능 항진증 치료를 끝냈는데 재발할 확률은 낮지 않다. 만약 재발한다면 종전의 증세가 똑같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재발은 약 복용을 중단하고 치료를 끝낼 때부터 3∼6개월 사이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런 점 때문에 김 씨는 6개월 혹은 1년마다 재발 여부를 확인한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부터 현재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40대 여성 이진아(가명) 씨는 언젠가부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를 많이 써서 그러나 보다 했다. 하지만 어깨 통증은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후부터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전에 없던 수면장애가 생긴 것. 숙면하지 못하니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그러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팔다리에도 통증이 나타났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통증이 계속되니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포함해 온갖 검사를 다 했는데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씨는 다른 병원, 다른 진료과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원인은 못 찾았다. 의사들은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심리적 이유에서 통증이 심해지는 것일 수 있다 싶어 정신건강의학과까지 갔다. 하지만 역시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씨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한양대병원이다. 최찬범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섬유근통을 의심했다. 실제로 이 씨는 섬유근통 진단을 받았다. 원인을 찾자 치료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 씨는 약물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을 병행했고, 증세가 훨씬 나아졌다.● 삭신이 쑤신다는 병 섬유근통은 몸 여러 부위에서 다발적으로 만성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주로 근육, 관절, 힘줄, 인대 같은 연부(軟部) 조직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류머티스 질환의 일종이다. 다만 섬유근통으로 인해 관절이나 근육, 장기 등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신체 여러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하지만 염증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혈액검사에서도 정상으로 나온다. 다른 검사를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 때문에 꾀병이나 건강염려증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섬유근통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호르몬 분비량 변화, 뇌에서의 통증 유발 물질 증가, 자율신경계 기능 이상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강직성 척추염 또는 루푸스 같은 류머티스 질환이 있을 때도 섬유근통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국민 2∼4%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정확하게 병을 진단하지 못해 실제 환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이나 청소년 환자도 있지만 여성 환자가 훨씬 많다. 최 교수는 “임상적으로 보면 10명 중 9명 정도가 여성 환자”라고 말했다. 40대와 50대에서 특히 많다. 통증에 이어 수면장애나 피로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기억력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신체 증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증세가 한꺼번에 나타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 교수는 “실제로 섬유근통 환자 상당수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 통증 양상 잘 살펴야 의학적으로 통증은 몸이 손상됐다는 신호를 보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어딘가에 부상이 있다면 통증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섬유근통에 걸리면 다친 곳이 전혀 없는데도 이곳저곳에 통증이 나타난다. 신경이 예민해졌거나 이상 감각 현상을 일으키면서 다치지 않았는데도 만성통증을 호소하는 것. 실제로 섬유근통 환자들은 “옷깃만 스쳐도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세는 전신통증이다. 운동을 격하게 했거나 다친 적도 없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통증이 서서히 심해진다. 최 교수는 “이런 통증이 3개월 이상 이어졌을 때 섬유근통을 의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증은 한 부위에만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환자에 따라서는 여러 부위에서 동시에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통증이 나타나는 곳을 눌렀을 때 더 아프다는 특징이 있다. 이 압통점은 주로 목, 어깨 주변에 많다. 통증 양상은 다양하다.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들다가 은근히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깊은 지점까지 아플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증세가 더 심한 편이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하루 종일 증세가 지속될 수도 있다. 섬유근통은 X레이나 혈액검사, 조직검사 같은 방법으로는 진단하지 못한다. 최 교수는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증세와 신체 검진 데이터 등을 토대로 진단한다”고 말했다. 이 병이 의심될 경우 확진을 위해서 다른 질병이 있는지를 검사한다. 만약 관절과 근육에 문제가 있거나 감염, 면역질환 등이 발견된다면 해당 질병을 치료한다. 이 경우 섬유근통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수면 품질 개선부터 섬유근통 진단을 받으면 약물로 치료한다. 증세를 완화하는 약물을 쓴다. 일반적으로 통증 조절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항우울제나 근이완제 등을 쓴다. 근육 부위 통증이 심하면 진통소염제를 쓰기도 한다. 사실 섬유근통은 심리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병이기도 하다. 진단만 제대로 받아도 증세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최 교수는 “심각한 병인 줄 알고 있다가 병의 정체를 알면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예민했던 신경이 완화돼 증세가 개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수면 품질을 개선하는 치료를 한다. 최 교수는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신경에 쌓였던 자극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이 경우 신경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통증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면 수면장애 치료법을 활용한다. 다만 수면제는 가급적 쓰지 않고 항우울제로 대신한다.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을 자주 하도록 처방한다. 단, 근력 운동은 신경 민감도를 높이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 햇볕을 자주 쬐는 것도 처방의 일부다. 비타민D가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활습관을 실행했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인지행동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시행한다. 환자가 느끼는 상태가 실제 상태와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게 해 주고,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치료법이다. 이렇게 하면 완치에 이를 수 있을까. 최 교수는 “의학 교과서에 따르면 2년 치료할 때 40% 정도 좋아진다고 돼 있다. 완치 개념이 없는 병”이라고 했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란 뜻이다. 최 교수는 “너무 당연하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고 충분히 숙면하며 적절히 운동하는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이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비법”이라고 말했다. ● 3단계로 자가 진단 최 교수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활용해 섬유근통 유무를 어느 정도 자가 진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방법으로 자가 진단을 해 보자. 자가 진단은 3단계로 진행한다. 1단계에서는 통증이 나타나는 부위와 지점을 살핀다. 몸을 크게 △왼쪽 상체 △오른쪽 상체 △왼쪽 하체 △오른쪽 하체 △중앙부 등 다섯 부위로 나눈다. 이어 세부 지점 19곳 중 눌렀을 때 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지점을 확인한다. 2단계에서는 통증 외 나머지 증세가 심한 정도를 평가한다. △피곤한 정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쾌한 정도 △인지장애가 나타나는 정도 △두통 여부 △하복부 통증 여부 △우울 증세 여부를 측정해 각각 점수를 매긴다. 3단계에서는 섬유근통 여부를 최종 가늠해 보는 단계다. 1단계에서 5개 부위 중 4개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나고, 이런 증세가 3개월 이상 지속됐다면 섬유근통을 의심할 수 있다. 특정 부위에서만 통증이 나타난다면 섬유근통이 아닐 확률이 높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20년 12월, 대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정윤재 씨(71)는 겁이 났다. 그래도 심각한 질병은 아닐 거라며 놀란 마음을 달랬다. 정 씨는 치루가 재발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여 년 전에 치루 진단을 받았었다. 치루가 악화해 지금 피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동네 병원에서 치루 수술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다음 날 오전에 터졌다. 수술이 끝났는데도 항문에서 피가 나왔다. 의사는 대장 내시경 검사를 시행했다. 직장 부위에서 혹 같은 것이 보였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정 씨는 인근 A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 치루인 줄 알았는데 암 A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받았다. 우려가 현실이 돼 버렸다. 직장암 2기였다. 림프절 전이도 의심된다고 했다. 전이됐다면 직장암 3기로도 볼 수 있는 상황. 암은 직장 안쪽 3분의 2를 막았다. 추가 검사에서 신장 혹이 발견됐다. 예전부터 물혹 같은 것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혹이 어느새 커져 있었다. 조직검사를 했는데, 이 혹 또한 암으로 판명 났다. 직장암이 전이된 것이 아니라 신장 자체에서 새로 암이 발생한 것이다. 두 가지 암을 동시에 진단받은 것. 두 암을 동시에 제거해야 했다. 2021년 2월, 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 시간만 10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직장과 신장의 암은 모두 제거됐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미세한 암세포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될 수도 있다. 의료진은 예방적 항암치료를 시행하기로 했다. 2021년 3월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2주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항암치료는 총 12회 일정으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순탄하게 끝나지는 않았다. 첫 3회까지는 밥맛이 좀 떨어지는 정도의 부작용이 있었지만 견딜 만했다. 동네를 세 바퀴 걷고 집으로 돌아올 정도로 기력도 좋았다. 하지만 4회째 항암치료를 받을 때부터 기력이 크게 떨어졌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버티는 심정으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8회 치료를 끝낸 후에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의료진과 상의한 끝에 치료를 2주 정도 중단했다. 이후 다시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여전히 몸에 힘이 없고 입맛이 없었다. 제대로 식사하지도 못했다. 이를 악물고 12회 항암치료를 모두 끝냈다.● 간으로 전이, 수술 불가 판정 수술에 항암치료까지 모두 끝냈으니 더 이상 암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기를 기대했다. 암의 전이와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적 관찰 검사를 할 때마다 두근거렸다. 약 1년이 지났다. 2023년 3월, 간에서 암 2개가 발견됐다. 직장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 전이된 간암 치료는 쉽지 않아 보였다. 일단 암이 혈관 가까운 쪽에 있어 방사선 치료를 시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간 기능도 아주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섣불리 수술을 시도했다가는 간부전이 올 수도 있었다. 의료진은 일단 항암치료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12회 일정이었다. 부작용은 1차 때보다 더 심했다. 거의 걸을 수조차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에 부쳤다. 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다. 머리카락이 완전히 빠져 버렸다. 도저히 암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 씨는 “모든 치료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항암치료는 끝내지 못했지만 수술이 좀 가능해졌을까 싶어 2023년 9월 수술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수술을 앞두고 시행한 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이 나왔다. 가족들은 충격에 빠졌다. 더 이상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앞길이 막막했다. 다른 치료법이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정 씨의 아들 석일 씨(44)는 “정 안 되면 해외로 가서라도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양성자 치료가 전이된 간암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성자 치료는 삼성서울병원과 국립암센터, 두 곳에서 시행 중이라 했다.● 양성자 치료로 암에서 벗어나 지난해 10월, 정 씨는 기대 반 걱정 반 심정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찾았다. 그때 김나리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수술이 어렵거나 항암치료가 어려울 때 선택할 수 있는 치료법이다. 정 씨가 딱 그랬다. 암을 눈에 띄게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양성자 치료가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양성자 치료에 앞서 양성자 빔이 제대로 주입되도록 호흡 훈련을 했다. 이 훈련을 비롯해 준비 작업에 약 1주일이 걸렸다. 치료 예정일이 됐다. 양성자 빔을 월∼금요일 매일 30분씩 맞았다. 이것으로 양성자 치료는 끝났다. 김 교수는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연속적으로 양성자 빔을 쏜 후부터는 경과를 관찰한다”고 설명했다. 정 씨도 그 후 정기적으로 관찰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간에 있던 두 개의 암 중 하나는 흔적만 남았다. 나머지 하나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기대 이상의 치료 효과였다. 하지만 암이 다시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 김 교수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완치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 물론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직장과 신장 상태는 지방 A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 정 씨는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삶을 보내고 있다. 몸이 급속도로 좋아졌다.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의사가 먹지 말라고 금지한 음식 외에는 모든 음식을 제대로, 잘 먹는다. 걷기 운동도 재개했다. 산을 좋아해서 산에 자주 간다. 매일 두 시간씩은 걷는다. 정 씨는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라며 웃었다. 투병하는 동안 가족이 힘들었다.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때마다 석일 씨가 많이 노력했다. 석일 씨는 수시로 집에 들러 아버지를 살폈다. 병원에 갈 때도 늘 동행했다. 양성자 암 치료법도 석일 씨가 물색했다. 석일 씨는 “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니다. 아들이 나를 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암세포 다시 자랄 확률 크지 않아” 양성자 암 치료법은 주로 간암이나 폐암, 전이된 간암이나 폐암, 두경부암, 소아암일 때 많이 활용한다. 방사선 치료의 한 종류다. 양성자 빔을 쏘면 암세포를 골라서 파괴한다. 방사선 치료보다 더 정밀하고 적은 횟수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방사선은 닿는 부위가 넓다. 이 때문에 병든 조직뿐 아니라 주변 건강한 장기까지 파괴한다. 반면 양성자는 목표 지점에 정확히 닿기 때문에 주변 장기나 조직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김 교수는 “일반 방사선 치료는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10∼30회는 해야 한다. 반면 양성자 치료는 길어도 10∼15회로 끝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양성자 치료는 매일 이어서 하는 게 원칙이다. 이유가 있다. 종양 세포는 치료해도 다시 자라기 때문에 가급적 자주 억제해 주면 좋다. 하지만 하루에 2회 이상 양성자 빔을 쏠 경우 정상 장기들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매일 1회 시행하되 며칠 동안 이어서 하는 것이다. 양성자 치료 이후 사라지거나 줄어든 암세포가 다시 자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김 교수는 “크지 않다”고 했다. 보통 양성자 치료를 끝내고 5년 정도 지날 때까지 암이 자라지 않을 확률이 80∼90%에 이른다는 것. 다만 다른 부위로 암이 전이될 수는 있기에 정기적으로 관찰할 필요는 있다. 보통은 치료 후 1년 이내는 3개월마다, 그 후로는 6개월마다 정기 검사를 통해 확인한다. 최근 국내 대학병원에도 ‘꿈의 암 치료기’라고 불리는 중입자 치료기가 도입됐다. 중입자 치료기는 치료율이 높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진료비가 수천만 원이라는 단점이 있다. 반면 양성자 치료는 전립샘암과 유방암을 빼고 대부분 암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전립선(전립샘)은 남성에게만 있는 생식기관이다. 정액의 일부 성분을 만든다. 젊을 때는 병을 별로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다가 40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것이 전립선염, 전립선비대증이다. 간혹 전립선암에 걸릴 수도 있다. 배웅진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모든 전립선 질환에서 소변 볼 때 어려움을 겪는 배뇨장애가 공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배뇨장애는 방광이나 요도에 문제가 있을 때도 발생한다. 따라서 배뇨장애만으로 전립선 질환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전립선염과 전립선비대증을 동시에 앓는 환자도 많다. 따라서 증세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배 교수는 “일단 배뇨장애가 나타나면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 전립선 질환, 알아 두자 50대가 되지 않은 청년과 중년층에서 가장 흔한 전립선 질환은 전립선염이다. 배 교수는 “남성의 절반 정도는 평생에 한 번 이상은 전립선염 증세를 경험한다”고 했다. 전립선염은 급성과 만성으로 나누기도 하고, 세균성과 비세균성으로 나누기도 한다. 배뇨장애는 똑같이 나타나지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세는 약간씩 다르다. 가령 급성 전립선염이라면 열이 나고 오한이 느껴질 때도 있다. 소변이 자주 마려울 수도 있으며 때로는 소변을 참기 어려운 절박뇨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갑자기 소변이 막히는 급성 요폐 증세가 동반될 수도 있다. 전립선염일 때는 대체로 다른 전립선 질환보다 통증을 더 느끼는 경향이 강하다. 주로 소변을 볼 때 고환이나 음경 등에 통증이 나타나지만 허리에도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50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남성 호르몬 균형이 깨지며 전립선비대증이 늘어난다. 50대 남성의 절반 정도에서 전립선비대증이 발견된다. 이후 환자 비율은 더욱 늘어 60대는 60%, 70대는 70%까지 올라간다. 전립선비대증일 때도 다양한 증세가 나타난다. 일단 소변 줄기가 가늘고 힘이 없어진다. 중간에 소변 줄기가 끊어지기도 한다. 소변이 나올 때까지 한참 시간이 걸리거나 잔뜩 힘을 주어야 소변이 나올 수도 있다. 소변을 보고 나서도 시원하거나 개운한 느낌이 없을 때도 많다. 이 밖에도 소변이 자주 마려울 수도 있고, 갑자기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절박뇨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밤에 잠을 자다가 꼭 소변을 보러 일어난다. 배 교수는 “이런 증세 가운데 빈뇨와 야간뇨가 전립선비대증 초기 때부터 자주 나타나는 증세”라고 설명했다. 전립선암은 최근 고령자에서 특히 증가하는 암이다. 전립선암은 대체로 전립선 바깥쪽에 처음 생길 때가 많다. 따라서 암이 커지기 전에는 요도를 누르지 않아 아무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전립선특이항원 검사 등을 통해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게 좋다. ●“만성전립선염, 골반 통증 나타날 수도” 전립선염이든 전립선비대증이든 일단 증세를 봐야 한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면, 그 증세를 해결하기 위한 약물(알파차단제)을 우선 쓴다. 다만 질병에 따라 치료 우선 순위는 달라진다. 전립선염일 때는 세균성 여부를 따진다. 세균성 전립선염이라면 항생제 치료를 한다. 치료 기간은 다소 길어질 수 있다. 방광이나 다른 장기에 비해 전립선에 항생제가 침투하기 어렵기 때문. 보통은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 항생제를 써야 할 수도 있다. 세균과 관계없는 염증이 오래 지속된 만성 전립선염의 경우 골반에 통증이 나타나기 쉽다. 이를 만성골반통증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치료가 쉽지 않다. 보통은 8주 이상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 근육 이완제나 물리치료, 통증 치료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전립선에 직접 저강도 체외충격파를 줘 항염증 효과를 얻어 치유하는 방법도 쓰이고 있다. 배 교수는 “전립선염은 증세가 다양해서 때로는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중간에 관두지 않고 끈기를 갖고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립선비대증일 때는 약물 치료를 하면서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소변이 막히는 증세가 반복되거나 요로감염과 방광결석, 콩팥 기능 저하 같은 합병증이 나타난다면 신속하게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수술이 약물 치료보다는 효과가 좋다. 재발 확률도 낮다. 다만 약물 치료를 할지, 수술할지는 의사와 상의한 후 결정하는 게 좋다. 배 교수는 “간혹 특정 방법이 좋다며 고집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환자 상태에 따라 방법을 정하는 게 옳다”고 덧붙였다. ● 의자에 오래 앉는 습관 피해야 전립선 질환은 원칙적으로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다. 노화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기에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배 교수는 “10년 전에 치료했던 전립선염이 최근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을 많이 쓰면서 재발한 환자도 많다”며 “재발과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평소 생활 습관부터 개선하는 게 좋다. 우선 의자에 오래 앉는 습관은 피해야 한다. 전립선과 주변이 자극받아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1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면 일어나서 몸을 풀어 주는 게 좋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게 좋다. 자전거를 오래 타면 회음부 주변이 안장에 눌려 뻐근할 때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자전거 타기가 전립선 건강에 해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배 교수는 “일시적으로 회음부 신경이 눌려 나타나는 현상일 뿐, 전립선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 자전거 타기는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자전거 타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 급성 세균성 전립선염 환자는 전립선에 가해지는 자극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딱딱한 안장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쿠션을 안장 위에 얹어 자전거를 타도록 한다. 가급적 치료 기간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이다. 밤에 자기 전에 5∼10분 동안 온수로 좌욕을 하는 것도 전립선 질환 예방과 재발 방지에 도움을 준다. 하반신 좌욕을 해 주면 골반 주변 근육과 신경을 이완시켜 준다. 만성적으로 골반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 특히 좌욕이 좋다. 카페인이나 술같이 배뇨 증세를 악화시키는 것은 먹지 않는 게 좋다.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해서는 안 돼” 홈쇼핑 채널에서 가장 많이 판매하는 건강기능식품에 드는 것이 전립선 관련 제품이다. 이런 건강기능식품이 실제 전립선 건강에 도움이 될까. 배 교수는 “건강기능식품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식품이란 뜻이다. 그 자체로 치료 효과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건강기능식품이 질병을 직접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건강기능식품 성분의 치료 효과를 연구한 논문이 여럿 있는데, 대부분 치료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 교수는 “기능성을 인정받은 이런 식품은 전립선 질병 조짐이 있거나 불편감이 느껴지는 아주 초기 상황에서 약간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다만 일단 질병 진단을 받은 후에는 약을 먹어야지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의사와 상담한 후에 약과 건강기능식품을 병행 복용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전립선 건강과 관련해 식약처 승인을 받은 건강기능식품은 현재 4종류뿐이다. 가장 먼저 승인받은 제품은 소팔메토 열매 추출물 같은 복합물이다. 이어 최근 3년 동안 사군자 추출 분말, 홍삼 오일, 녹용 당귀를 비롯한 복합추출물이 추가로 승인 받았다. 하지만 모든 회사 제품이 건강기능식품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기에 구매할 때는 승인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게 좋다. 이 밖에 토마토나 콩 등을 원료로 한 식품이 전립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토마토의 라이코펜 성분이 항산화, 항염증 작용을 해서 전립선 질환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 콩에 든 이소플라본이 남성 갱년기와 전립선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배 교수는 “의학적인 근거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서구화된 식사와 육식이 원인 중 하나이므로 채소 섭취를 늘리면 어느 정도 예방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배에 있는 혈관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복부대동맥이다. 이 동맥을 통해 배와 골반, 다리로 혈액이 공급된다. 건강한 상태라면 복부대동맥 굵기는 2∼2.5cm다. 하지만 혈관 벽이 약해지면 점점 굵어지다가 나중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수 있다. 복부대동맥류다. 일반적으로는 정상 굵기에서 50% 이상 늘었거나 3cm 이상으로 커지면 복부대동맥류로 진단한다. 복부대동맥류 크기가 작다면 당장은 아무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혹 같은 것이 만져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복부대동맥류가 파열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응급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박정성 씨(52)는 복부대동맥류 환자였다. 박 씨 또한 대부분 환자가 그랬듯 아무런 증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복부대동맥류가 파열된 후 병을 발견했다. 여러 차례 시술과 수술을 거듭해야 했다. ●“시작은 작은 혹” 지방에서 파견 업무를 하던 2019년의 어느 날이었다. 왼쪽 아랫배에서 아주 작은 혹이 느껴졌다. 살짝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기도 했다. 다만 통증이 없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곧 괜찮아지겠거니 하고는 잊었다. 혹이 만져질 정도로 커졌다. 그 후로도 혹은 점점 자랐다. 대략 3cm는 될 것 같았다. 이후로 통증이 나타났다. 약국에 갔다. 약사는 약을 주면서 병원에 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어느 진료과에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시간만 흘려보냈다. 3개월 정도 지나면서부터는 혹 부위 통증이 심해졌다. 바늘로 연신 찔러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응급 차량을 불러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복부대동맥류 같다고 했다. 그 의사는 박 씨를 수술이나 시술이 가능한 인근 A병원으로 보냈다. A병원에서 정밀 검사한 결과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복부대동맥류는 이미 터져 있었다. 의사는 “왜 이제야 왔느냐. 수술이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제야 지난 3개월 새 병을 키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터진 복부대동맥류는 막아야 한다. 터진 부위를 봉합하고 약해진 다른 혈관 부위에 스텐트를 삽입하는 복강경 시술을 하기로 했다. 2019년 10월 시술이 이뤄졌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당시 의사가 “시술이 잘됐다”고 말했다는 정도만 박 씨 기억에 남아 있다.●“시술 후 감염 못 잡아” 시술이나 수술을 하면 몸 안에 체액이 쌓인다. 이 체액을 그대로 두면 감염이 되거나 염증이 심해질 수 있다. 따라서 체액을 일부러라도 몸 밖으로 빼내야 한다. 이를 위해 가느다란 호스인 배액관(排液管)을 몸에 부착한다. 배액관을 통해 빠져나온 체액은 몸 밖에 단 주머니에 담긴다. 박 씨도 그랬다. 체액이 담긴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았지만 그래도 시술이 잘됐다니 다행이라 여기며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며칠 만에 박 씨는 중환자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겼다. 다만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몸에서 체액이 그만 나올 때도 됐는데 주머니는 항상 가득 찼다. 의사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결국 일주일 만에 다시 배를 열고 수술을 진행했다. 박 씨는 “당시 어떤 문제가 생긴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료 기록을 확인해 보니 덩어리진 혈액이 고여 있고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자칫 대형 감염으로 악화할 수 있어 부득이하게 개복(開腹) 수술을 한 것이다. 위기를 넘겼나 싶었는데 그해 11월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수술 부위에 혈액이 고였고 감염이 발생했다. A병원 의료진은 박 씨 배를 열고 두 번째 수술을 했지만 감염은 잡히지 않았다. A병원 의료진은 서울아산병원으로 박 씨를 보냈다. 나중에 박 씨 재수술을 맡은 권준교 서울아산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감염을 막지 못하면 완치는 둘째치고 환자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그 때문에 대형 병원으로 보낸 것 같다”고 추정했다. 박 씨는 체액 주머니를 달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갔다. 입원한 뒤 12일 동안 집중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하는 감염 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감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비로소 복부대동맥류 투병도 끝났다고 여겼다.●“인조혈관으로 대체하는 수술” 이후 박 씨는 매년 복부대동맥 검사를 받았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지난해 8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됐다. 복부대동맥류 크기를 재 보니 종전 77mm에서 87mm로, 무려 10mm가 굵어져 있던 것. 권 교수는 “커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당장 수술해야 할 상황이었다”고 했다. 권 교수는 “일종의 시술 합병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씨가 A병원에서 받은 시술은 주로 70세 이후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많이 시행한다는 것. 시술 위험성은 크지 않지만, 10∼20년 후 재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박 씨의 경우 3년여 만에 재수술 위기를 맞은 셈이다. 권 교수는 “시술받은 환자의 10% 정도에서 복부대동맥류가 다시 커진다. 매달 한 명 정도는 재수술 환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재수술이다 보니 수술 부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가슴에서부터 골반 치골까지 다 열어야 했다. 심장에 무리가 갈 수도 있는 상황. 권 교수는 심장내과와 다학제 협진을 통해 수술을 진행할 수 있는지 살폈다. 무방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10월, 박 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권 교수는 A병원 의료진이 시술 당시 삽입한 스텐트를 제거하고 봉합한 대동맥 일부도 절개한 뒤 인조혈관을 삽입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 후 한동안 통증이 무척 심했다. 퇴원을 앞두고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몸도 퉁퉁 부었다. 박 씨처럼 수술 후 이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권 교수는 “환자마다 통증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다. 수술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얼마 후 이런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건강관리에 신경 쓴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났다. 이제 재발 가능성은 없을까. 권 교수는 “복부대동맥류가 다시 커지거나 터질 확률은 거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시술과 달리 수술은 영구적으로 상태를 보존할 수 있다는 것. 이런 권 교수의 확신이 박 씨는 반갑다.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 시술을 받고 감염 문제로 고생하다 결국에는 재발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재발하기까지 3년이 걸렸으니, 이번에도 3년은 지나 봐야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복부대동맥류 투병 과정에서 박 씨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했다. 무엇보다 건강관리에 신경을 쓴단다. 박 씨는 스무 살 때 협심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딱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혈관이 막혀 스텐트 시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고 난 후에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처방받은 약을 먹지 않았고, 이후 추적 검사를 받지도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이후 32년 동안 심근경색이 발병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이가 들면서 간 건강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간 수치가 정상 범위를 크게 넘어섰다. 이제는 간 독성을 유발하는 음식을 일일이 가려 먹는다. 간 수치를 떨어뜨리는 약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 먹는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이럴 때 권 교수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권 교수는 박 씨에게 적절한 운동을 반드시 병행할 것을 권했다. 박 씨는 평생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원래 운동을 싫어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싫더라도 운동을 반드시 합니다.” 박 씨는 “전문가인 의사가 보기에 그게 꼭 필요하다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그는 경남 거창에 살고 있다. 주변에 야트막한 산이 많다. 매일 산을 찾아 2시간씩 걷는다.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박 씨는 “병에 맞서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더 병을 키우지 않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대 후반 남성 이명훈(가명) 씨는 새벽 조깅을 즐긴다. 언젠가부터 숨이 조금 차는 느낌이 들더니, 이윽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앓고 있던 알레르기 비염이 원인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따로 조치하지는 않았다. 기침이 더 심해졌다. 게다가 기침할 때 약간 쌕쌕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이 씨는 강노을 삼성서울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를 찾았다. 강 교수는 천식을 의심했다. 폐 기능 검사와 기관지 확장제 반응 검사 등을 시행했다. 그 결과 천식으로 진단됐다. 이 사실도 모르고 이 씨는 오랫동안 비염 치료만 했던 것이다. 이 씨는 천식 흡입제를 처방받아 사용했고 얼마 후 기침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 강 교수는 “이 씨처럼 만성기침의 원인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치료하다가 증세를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만성기침에 대해 알아두자 의학적으로 기침 그 자체는 질병이 아니다. 외부에서 해로운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폐와 기관지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 몸이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기침을 통해 이물질을 배출하는 것. 강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기침이 1, 2주 이어진다고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기침을 급성기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질병과 무관하다. 질병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침은 8주 이상 지속되는 만성기침이다. 외부 자극이나 이물질이 침투하지 않았는데도, 혹은 기침이 발생할 요인이 없는데도 기침이 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성인 100명 중 3∼10명 비율로 만성기침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성기침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비염이 원인이 된 만성기침(상기도기침증후군)이 있는가 하면 위식도역류질환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폐질환이 있을 때, 혹은 흡연을 오래 했을 때도 만성기침이 나온다. 백일해같이 어렸을 때 앓았던 호흡기 감염증 후유증으로 드물게 만성기침을 얻기도 한다. 아주 드물게는 약물 부작용으로도 만성기침이 생길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기침도 있다. 이를 비특이적 만성기침이라고 한다. 이런 환자는 대부분 ‘기침 과민성’이 높다. 목과 기관지에 있는 기침과 관련된 신경이 과도하게 예민한 상태라는 뜻이다. 이 경우 △온도 변화 △자세 변화 △음식 섭취 △향수 △먼지 △말하기 같은 사소한 자극만 받아도 기침 충동을 느끼고, 실제로 기침을 많이 하게 된다.● 원인에 맞춰 정확한 치료 필요 60세 여성 박정순(가명) 씨는 기침이 심해 요실금 증세까지 생겼다. 기침 때문에 밤에 잠에서 깰 때도 많았다. 박 씨는 비염 증세도 없고 흡연도 하지 않았다. 천식 검사도 했지만 음성이었다. 그런데 왜 기침을 심하게 하는 걸까. 강 교수는 기침이 나는 상황에 주목했다. 교회 지하에서 성가대 일을 할 때마다 기침이 나왔다. 지하철역에 들어갈 때도 기침했다. 이처럼 지하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는 하루 종일 기침을 해 댔다. 일단 기침을 하면 발작적으로 하기도 했다. 강 교수는 비특이적 만성기침으로 진단했다. 특정 상황에서 기침 과민성이 높아지는 유형으로 판단했다. 비특이적 만성기침일 때는 ‘기침 센서’가 뇌로 보내는 신호를 차단하는 약물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성분명 코데인)나 우울증 계열 약물을 쓴다. 박 씨 또한 이 약물을 썼고, 그 결과 증세가 좋아졌다. 강 교수는 “약물을 장기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효과가 나타나면 중단했다가 만성기침이 재발하면 다시 쓴다”고 했다. 40대 남성 강정훈(가명) 씨도 만성기침 때문에 강 교수를 찾았다. 강 씨는 주로 밤에 기침이 심했다. 숨이 차기도 했고, 쌕쌕거리는 느낌도 들었다. 강 교수는 강 씨에 대해서도 천식을 의심했고, 관련 검사를 진행한 결과 천식 양성 판정이 나왔다. 강 교수는 천식 흡입제를 처방했다. 이 약물은 직접 폐로 전달돼 부작용을 줄이면서 증세를 완화해 준다. 실제로 강 씨 또한 흡입제를 사용한 뒤 1주일 만에 기침 증세가 크게 줄어들었다. 강 교수는 “일반적으로 천식 약물을 쓰면 3주째 정도부터 약효가 나타나며 4주 차 정도가 되면 뚜렷하게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증세가 좋아졌다고 해서 무조건 약물을 끊으면 천식 증세가 악화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약물을 잘못 쓴다면 기침은 사라지지 않는다. 50대 남성 김정현(가명) 씨가 그런 사례다. 김 씨는 동네 의원에서 천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오랫동안 흡입제를 처방받아 썼다. 그런데 기침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목에 이물감도 느껴졌다. 강 교수가 김 씨를 진단한 결과는 달랐다. 김 씨는 비특이적 만성기침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기침이 멎지 않았으며 이물감 같은 증세는 흡입제 부작용이었던 것이다. 강 교수는 흡입제를 끊게 하고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했다. 김 씨는 기침이 잦아들었고 다른 부작용도 사라졌다. ● 천식과는 어떻게 다른가 천식에 의한 기침인지, 비특이적 만성기침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다. 다만 기침의 양상을 세심하게 관찰하면 일반인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천식에 의한 기침이라면 숨이 차고 쌕쌕거리는 느낌이 강하게 나타난다. 다만 숨 차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다른 점을 더 살펴야 한다. 주로 환절기나 야간에 기침이 더 심해진다는 점을 알아두자. 감기에 걸린 후 천식 기침이 생겨날 수 있다. 만약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한 달 이상 기침이 지속된다면 천식 기침이 시작됐다고 의심해야 한다. 천식 환자는 기도 점막이 취약하다.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기도 염증이 더 증가하고 예민해진다. 이 경우 천식 흡입제를 빨리 써야 기침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위식도역류질환이 원인이라면 만성기침과 함께 속쓰림 증세가 나타난다. 좀 심할 경우 식도가 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비염이 원인이라면 코에 알레르기 증세가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비특이적 만성기침은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일단 시간적, 계절적 관련성이 없다. 하루 종일 기침이 나올 수도 있고, 며칠 동안 기침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기침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목이 간질간질하다가 기침이 시작된다. 발작적으로 기침이 나올 때가 많다. 한번 기침이 시작되면 잘 멈추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한 시간 넘게 기침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침이 심해지면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한다. 일반 동네 의원에서는 천식 여부를 정밀하게 진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증세만 가지고 흡입제를 처방하기도 한다. 강 교수는 “일주일 정도 흡입제를 처방받아 써 본 다음에도 효과가 없다면 상급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 민감한 목, 이렇게 관리하자 만성기침은 원인에 따라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일단 기침 과민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첫째, 기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강 교수는 “폐질환 때문에 가래가 있는 기침이 아니라면 억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에 이물감이 느껴지더라도 헛기침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둘째, 입술을 오므리고 숨을 쉰다. 이와 함께 복식호흡을 하는 것도 과민성을 막는 방법이다. 평소에 자주 물을 마셔 주는 것도 좋다. 셋째, 외부의 민감한 자극 자체를 피하려고 해야 한다. 흡연은 물론이고 간접흡연도 피하는 게 좋다. 멘톨처럼 목에 화끈한 느낌이 들면서 건조하게 하는 것은 먹지 않도록 한다. 다만 단 성분이 있는 사탕은 기침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 먹어도 무방하다. 평소 이같이 노력해도 목이 가려우면서 기침 충동이 생길 수 있다. 이때도 기침을 하지 않으려는 2차 노력이 필요하다. 일단 기침이 나올 것 같으면 팔로 입을 막는다. 그 상태에서 침을 삼키거나 물을 마신다. 숨을 5∼10초 동안 참는다. 다음에는 최소한 30초 동안 코로 천천히 숨을 쉬도록 한다. 기침하지 않을 거라 믿으면서 팔에서 입을 떼고 코로 부드럽게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호흡한다. 만약 기침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면 이 과정을 2회 이상 반복하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18년 12월이었다. 갈빗집을 운영 중인 권영국 씨(68)는 연말 장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갑자기 피로감이 심해졌다. 단체 손님이 많아서 그런 것이려니 했다. 다음 날에도 피곤했지만 다른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밥도 잘 먹었고 잠도 잘 잤다. 그러니 피곤해서 그런 것일 뿐이라 여겼다. 첫 증세가 나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면서 피로도는 더 커졌다. 손님 두 명이 세 명으로 보이는, 이른바 복시(複視) 증세도 나타났다. 12월 27일이 됐다. 왼손으로 고기를 잡고 오른손으로 칼질을 하는데, 툭툭 끊어질 뿐 반듯하게 썰리지 않았다. 고기를 잡은 왼팔에서 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직원이 “사장님, 이상하다”고 했지만 권 씨는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뇌경색(허혈성 뇌졸중) 증세였다. 하지만 당시 권 씨는 뇌혈관이 막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좀 쉬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권 씨는 가게 뒷정리를 아내에게 맡기고 1시간 일찍 퇴근했다.● 한밤중 뇌경색 응급 시술 권 씨는 귀가한 후에도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축축 처지는 기분이 들면서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씻어야 한다는 생각만 간절할 뿐, 일어설 수가 없었다. 뒤늦게 식당 정리를 마치고 들어온 아내의 성화에 겨우 얼굴만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오전 2시경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다. 하지만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특히 몸 왼쪽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한쪽 마비가 온 것이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고려대 구로병원으로 가는 응급차에서 아내는 펑펑 울었다. 권 씨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두려웠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병명이 확인됐다. 뇌경색이었다. 권 씨를 시술한 김치경 고려대 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당시 바로 조치하지 않았다면 평생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 심한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일단 대뇌로 가는 오른쪽 경동맥이 심하게 좁아져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대뇌동맥에서 약 3mm 크기의 혈전이 발견됐다. 혈전은 대뇌동맥 절반 정도를 막고 있었다. 김 교수는 우선 스텐트를 설치해 경동맥 협착을 해결했다. 이어 대뇌동맥을 따라 들어가면서 혈전을 제거했다. 야간에 이런 응급 시술을 하려면 최소한 서너 시간이 소요된다. 시술에 투입될 의료진이 모두 모이는 데만 꽤 많이 걸린다. 권 씨는 운이 좋았다. 김 교수팀이 막 다른 환자 시술을 끝낸 시점에 응급실에 갔던 것. 덕분에 곧바로 시술을 시작할 수 있었고 2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었다.● “고혈압이 뇌경색 유발했을 것” 진단 권 씨가 일할 때 몸 한쪽이 마비된 거나 복시가 나타난 것은 뇌혈관이 막히면서 나타난 증세였다. 반면 통증이나 어지러움증 같은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작은 뇌혈관이 막히면 증세가 나타났다가 사라질 수도 있어 자칫 환자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병원에 가야 할지, 안 가도 될지 환자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얼굴 마비, 팔다리 마비, 언어 장애 등 세 가지 증세에서 한 가지만 나타나더라도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시기를 놓쳐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 발생하면 의식을 잃거나 호흡 곤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혹은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권 씨는 어쩌다 뇌경색에 걸리게 된 걸까. 그는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다. 갈빗집을 운영하지만 기름진 음식을 별로 먹지도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산악자전거와 테니스는 10년 넘게 지속할 정도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권 씨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가족 중에 뇌경색 환자도 없었다. 친구들도 권 씨가 쓰러지자 ‘불가사의’라 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원인이 보인다. 권 씨는 고혈압 환자였다. 중증까지는 아니지만 5년 넘게 고혈압 약을 먹고 있었다. 권 씨는 또,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일을 진행할 때는 빨리 끝내야 마음이 놓인다. 김 교수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뇌경색을 유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실제로 고혈압은 당뇨, 고지혈증과 함께 뇌경색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 병들로 인해 동맥경화증이 발생하고, 그 결과 혈류가 막히는 것이다. 조급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권 씨 성격은 직접적으로 뇌경색을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혈압을 높이는 데 간접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 6개월간 힘겨운 병원 재활치료 막힌 혈관을 뚫었다고 해서 건강한 몸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 후유증을 피할 수 없다. 김 교수는 “뇌 손상이 발생한 부위는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주변 기능을 강화해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깨나 무릎 등 근골격계 통증 같은 후유증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시술 후 최소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한다. 권 씨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팔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등 뒤로 팔을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왼쪽 다리에도 힘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매주 2회 병원을 찾았다. 팔을 비틀고 동작 범위를 넓히는 재활치료는 뭐라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권 씨는 “평생 열심히 일해 이제 살 만해졌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빨리 회복해서 삶을 즐기고 싶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6개월 재활치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전보다 훨씬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불편했다. 김 교수는 “병원 재활치료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환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스스로 재활훈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몸 상태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권 씨의 경우 팔다리에 힘이 덜 느껴졌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식당 일을 다시 할 정도로 건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을 때마다 발이 바깥쪽으로 돌아 나가려 했다. 팔에는 꽤 힘이 들어갔지만 그나마 세수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약간이라도 무게가 있는 물건은 들 수 없었다. 권 씨는 이를 악물고 자신만의 재활훈련에 돌입했다. ● 3년 만의 업무 복귀, 달라진 삶 병원 재활치료를 받는 중에도 야외에서 걷기를 했다. 2020년 들어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한 해 동안 눈만 뜨면 동네 안양천 공원으로 갔다. 매일 2시간씩, 1만5000보 정도를 걸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걷다가 점차 속도를 올렸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1년 동안 그렇게 걸었더니 체력이 좀 붙었다. 하지만 근력은 전과 같지 않았다. 2021년, 운동 장소를 헬스클럽으로 바꿨다. 한쪽 마비 후유증 때문에 벤치프레스를 해도 역기가 왼쪽으로 기울었다. 권 씨는 전문 트레이너에게 주 3회, 40분씩 어깨, 가슴, 등, 다리를 비롯해 모든 부위 근육을 키우는 교육을 받았다. 트레이너와의 교육시간이 끝나면 추가로 1시간 동안 근력 운동을 복습했다. 이와 별도로 1시간씩 트레드밀 위에서 걸었다. 2022년에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이어 갔다. 3년 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운동에 매진했다. 마침내 팔과 다리에 힘이 붙었다. 권 씨는 “3년째가 되니까 힘이 떨어지거나 약한 마비 같은 증세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몸이 좋아지자 다시 식당에 나갔다. 3년 만의 출근이었다. 권 씨는 “손님을 다시 볼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했다. 이제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옛 골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도 끼워 달라고 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골프를 자주 즐긴다. 물론 골프장에서도 카트를 타지 않고 내내 걷는다. 이 경우 1만6000보를 걷게 된다. 요즘에도 권 씨는 주 5일 이상 헬스클럽에서 2시간씩 운동한다. 이제 운동을 적당히 해도 되지 않을까. 권 씨는 “아니다”라고 힘줘 말했다. 가끔 여행을 가서 운동을 못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다시 팔과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는 것이다. 권 씨는 “재활훈련은 끝났지만, 평생 운동을 해야 뇌경색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사실 지금도 약간 후유증이 남아 있다. 마비됐던 왼쪽 팔 힘이 여전히 약한 것. 김 교수는 “100% 회복하는 경우는 솔직히 드물다. 마비 증세가 없고, 80% 이상의 힘을 되찾았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라고 평가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항산화제 영양제만 꾸준히 먹는다고 해서 치매를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특정 운동을 하거나 인지 훈련 프로그램을 받아도 치매를 막을 수는 없죠. 진짜 예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치매 예방법에 대한 박지은 서울대병원 뇌 건강 클리닉 교수(정신건강의학과)의 대답이다. 박 교수는 “최근 30여 년간 각종 치매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그 결과, 한 가지 영양소나 활동만으로는 장기적인 치매 예방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세계적으로 다중요인(multi-domain) 치매 예방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으며 임상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치매를 유발하는 혈관성 위험, 식단, 운동, 인지 활동, 사회 활동, 우울증 같은 다양한 요인을 전방위로 관리하는 것이다. 박 교수 또한 9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 2월 임상시험이 끝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적 특성에 맞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다. 그는 “치매는 노화 과정에서 다양한 기전(機轉·발생 원리·mechanism)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이 모든 요인을 반영한 예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40대 때부터 치매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하라고 권했다. ● 중년 고혈압, 치매의 가장 큰 위협 어떤 사람이 노년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을까. 40대 이후 중년이라면 고혈압, 비만, 과음이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입증됐다. 최근 국제적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는 이것 말고도 외상성 뇌 손상 경험과 청력 저하를 치매 발병률을 높일 수 있는 중년의 새로운 위험으로 꼽은 논문이 실려 시선을 끌었다. 이 중에서도 고혈압에 특히 신경 쓸 것을 박 교수는 당부했다. 젊었을 때 고혈압이 생긴 후 수십 년 방치하면 혈관이 딱딱하게 변형될 수 있다. 이 경우 혈관성 질환 위험이 커지면서 치매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노년기로 접어든 후 단기간에 생긴 고혈압은 치매와는 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노년기에는 저혈압이 치매 위험을 더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얼마나 오래 혈관 건강을 방치했느냐가 핵심이다. 마찬가지로 30대도 고혈압을 반드시 잡아야 나중에 치매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만이나 음주도 비슷한 원리로 각종 중증질환을 유발하면서 노년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 최근 노년 치매를 높이는 원인으로 밝혀진 청각 저하도 미리 대처해야 한다. 박 교수는 “청각 저하가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청각 저하로 인해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면서 치매 위험을 높인다고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40대 이후에는 이어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소음을 멀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을 당부했다. 외상성 뇌 손상의 경우 애초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유전적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여러 연구 결과 부모 중에 치매 환자가 있으면 그 자식이 치매에 걸릴 위험성이 2배로 커진다. 치매 가족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치매에 경각심을 갖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매 예방 식단 시도해야 치매 예방 식단을 보통은 마인드(MIND) 식단이라고 한다. 지중해식 식단과 심혈관 질환 예방 식단을 활용해 뇌 건강에 가장 잘 맞도록 고안한 식이요법이다. 박 교수는 이를 한국인의 식생활에 반영해 수정한 뒤 환자들에게 시행하고 있다. 총 12개의 항목으로 지켜야 할 것 9개와 피해야 할 것 3개로 구성돼 있다. 지켜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루에 한 끼 이상은 현미, 보리, 귀리, 조, 퀴노아, 렌틸콩 등을 섞은 잡곡밥을 먹는다. 둘째, 매일 김치를 제외하고도 채소 반찬을 두 가지 이상 먹는다. 셋째, 매일 1회 이상 쌈이나 샐러드같이 익히지 않은 녹색 채소를 먹는다. 넷째, 좋은 단백질 원천인 콩은 거의 매일 먹는다. 검정콩, 강낭콩, 완두콩, 렌틸콩 혹은 콩으로 만든 두부나 두유는 매주 4회 이상 먹는다. 다섯째, 땅콩, 호두, 아몬드, 잣, 브라질너트, 마카다미아,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를 간식으로 먹는다. 뇌세포를 이루고 있는 지질 성분을 좋은 지방으로 채울 수 있다. 여섯째, 매주 1회 이상은 생선을 먹는다. 등 푸른 생선은 일주일에 한두 번만 먹어도 오메가3를 따로 챙길 필요가 없다. 일곱째,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붉은 고기보다는 닭고기 오리고기같이 흰 살코기를 먹는다. 여덟째, 당뇨가 없다면 과일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먹는다. 너무 달지 않은 사과, 배, 감귤류, 딸기, 블루베리 등이 좋다. 아홉째, 나트륨 함량이 높은 국, 찌개, 젓갈류와 과자, 분식 같은 음식은 피하고 싱겁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피해야 할 3가지도 알아두자. 첫째, 달콤한 빵, 케이크, 과자, 파이 같은 디저트류는 주 3회 이하로 줄인다. 당이 첨가된 주스, 탄산음료는 가급적 마시지 않는다. 둘째, 포화지방이 많은 튀김류는 주 1회 이하로 줄인다. 셋째,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붉은 고기는 먹더라도 주 2회 이내로 줄인다. 박 교수는 “우선은 자신의 식단에 나오는 음식 목록을 일주일 정도 작성해 본 뒤, 마인드 식이 지침에 따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또 “당장 싹 바꾸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씩 시도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 치매 막는 운동법 알아두자 박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는 활동 중에서 효과가 가장 잘 입증된 것이 운동”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운동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달리기, 수영,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이 많이 추천된다. 노년기로 접어들면 근(筋) 손실이 커지기 때문에 중년부터 미리미리 근력 운동과 유연성 운동을 해 두는 게 좋다. 한국인이 많이 하는 걷기 운동은 어떨까. 박 교수는 “중등도(中等度) 이상 강도라야 한다”고 했다. 천천히 걷는 산책 정도라면 치매 예방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 호흡이 약간 가쁘고 심장 박동이 최대심박수의 50∼70%여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이른바 ‘파워 워킹’ 수준으로 빨리 걸어야 한다. 운동은 매일 30분씩 혹은 일주일에 150분 이상 해야 한다. 나눠서 하든 몰아서 하든 운동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박 교수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해 하루 8000보 이상 걸을 것을 추천했다. 빨리 연속으로 걷는다면 50∼60분에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치매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운동할 여력이 없다면 일상생활에서라도 운동할 기회를 찾으려 해야 한다. 가령 출퇴근할 때 한두 정거장 전에서 내려 빨리 걸으면 큰 도움이 된다. 또 평소 걸음 수를 측정한 뒤 8000보에 맞춰 서서히 목표치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뇌 ‘인지 보유고’를 늘려야 박 교수는 치매 예방을 위해 ‘인지(認知) 보유고’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창고가 크면 보관하는 물건도 많아지고, 설령 한두 개 물건이 빠져나가더라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며 “이와 마찬가지로 뇌의 인지 창고를 키워 놓으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말했다. 인지 보유고를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박 교수는 다양한 활동을 제안했다.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늘리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인지 기능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통은 나중에 치매 위험을 높이는 중년 우울증도 예방할 수 있다. 소모임을 자주 갖는 게 이상적이지만 40대 이후 중년기는 가장 바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려 하기보다는 기존 활동에 더 시간을 쏟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가령 동창 모임에 나간다면, 추가로 동창 모임을 기획하는 역할을 맡는 식이다. 아울러 은퇴 이후 인간관계를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인 중에서 누구를 지속적으로 만날 것인지, 무엇을 공유할 것인지 등의 고민과 함께 사회적 관계망 구축에 신경을 써야 한다. 뇌를 충분히 쉬게 해 줘야 한다. 수면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깊은 단계 수면은 알츠하이머병의 직접적 원인 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을 못 자는 원인을 하나씩 교정하는 게 좋다. 이를테면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실제 자는 시간과 최대한 일치시키고 △낮 동안 햇빛을 보며 충분한 신체 활동을 하되 낮잠은 20분 이상 연속해서 자지 않으며 △커피, 녹차, 초콜릿 같은 카페인 함유 음식은 줄이거나 오전에만 먹고 △자기 전에 휴대전화나 TV를 시청하지 않는 식의 ‘수면 위생’을 지키라는 얘기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극심한 가뭄과 홍수 같은 기후위기가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이상기후에 대비하는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한 개발도상국 주민과 아동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동북부를 일컫는 ‘뿔 지역’에서는 4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가뭄과 홍수로 3190만 명 이상이 극심한 식량 불안과 건강 위험 등을 겪고 있다. 이에 지속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비영리기구(NGO)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글로벌 아동 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는 개발도상국 주민들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도록 하고, 국내외에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및 에티오피아 정부와 함께 농가 피해가 큰 데베소 지역에서 ‘기후변화 대응력 강화 사업’을 벌였다. 45일 동안 산림위원회와 주민 1797명과 함께 나무 6만5000여 그루를 심었다. 지속 가능한 산림을 유지하기 위해 땔감을 조금 넣어도 화력이 좋은 고효율 스토브 340개를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또한 지역에 양묘장(養苗場)을 설치한 데 이어 가뭄을 이겨낼 수 있는 묘목을 지급하고 지역 여성 중심의 양묘장 생산조합을 운영해 여성의 사회, 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우간다 오부텟 지역에서는 ‘주민 주도 숲 복원 및 관리 사업’을 펼쳤다. 주민 6007명을 대상으로 환경 보호 인식을 높이는 캠페인을 4회 진행했다. 양묘장 4개를 세우고 학교와 가정 등에 묘목 6만5210그루를 나눠줘 주민이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오부텟 주민 오켈로 찰스 씨(46)는 “굿네이버스와 함께하는 묘목 사업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양묘장은 지역사회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 숲 조성 사업은 베트남 까마우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함께 ‘아이오닉 포레스트 베트남 맹그로브 숲 조성 사업’ 업무협약을 맺었다. 맹그로브나무는 수질 정화력과 탄소 흡수력이 높아 탄소량을 낮추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 지역 맹그로브 숲은 새우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벌목돼 훼손된 상태다. 굿네이버스는 올해 말까지 맹그로브나무 약 12만 그루를 심는 데 이어 2026년까지 숲을 더 늘려 나갈 예정이다. 지역 주민에게는 산림 친화 양식장 운영을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나만의 탄소발자국 줄이기’ 실천 활동인 기후위기 대응 대국민 캠페인 ‘지구여행(지구를 구하는 나만의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카페 할아버지 공장’에서 7일까지 열리는 ‘지구여행 사진전’에서 굿네이버스 기후변화 대응 사업이 소개되고 배우 신혜선이 참여하는 오디오 도슨트, 스탬프 투어, 포토존 같은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김중곤 굿네이버스 사무총장은 “굿네이버스는 개발도상국의 기후위기 피해를 최소화하고 아동 생존과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한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현대인은 하루 중 80∼90%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고 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는 실내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밖에 나가지 않고 창문을 닫은 채 에어컨을 오래 켜는 공간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실내 공기 질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내가 일상생활 대부분을 하는 곳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 어떤 유해물질은 없는지, 이산화탄소가 기준보다 많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궁금해한다.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는 공기 질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공기청정기를 틀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환기(換氣)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내 공기를 신선하게 유지하는 방법과 환기의 중요성에 대해 전문가 2명의 설명을 들었다.》120만 명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 이낙준 이비인후과 전문의(사진)는 “실내 공기 속 미세먼지, 유해물질, 고농도 이산화탄소(CO₂)는 호흡기 질환을 비롯한 각종 감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실내 공기 질 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건강에 좋은 실내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면서 무엇보다 환기를 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실내 공기 질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실내 공기 속 미세먼지와 유해물질, 고농도 이산화탄소는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실내로 유입되거나 요리, 청소를 하다 생기는 미세먼지는 천식이나 알레르기 질환, 감기,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 발병 확률을 높인다. 톨루엔, 포름알데히드 같은 유해물질은 백내장 발생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성 상기도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물질로 꼽힌다. 사람이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불쾌해지면서 졸음이 오거나 두통, 어깨 결림,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임신부에게는 조산이나 아기 발달장애 원인이 될 수 있어 실내 CO₂ 농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내 공기 속 오염 물질이 독감과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나. “감염성 호흡기 질환이 연중 증가하는 이유에는 실내 공기 질 저하도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감염은 바이러스나 세균 한 개체가 일으키지 않는다. 병원균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개체가 필요하다. 실내 공기 질을 관리해 병원균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개체 수를 줄여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실내 공기에서 미세먼지나 유해물질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도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미세먼지 때문에 염증이 생긴 호흡기는 병원균에 감염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실내 공기를 개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공기청정기와 환기다. 공기청정기도 중요하지만 실내 공기 질 악화를 예방하는 가장 강력한 활동은 여전히 환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적절한 환기를 하지 않는다면 실외보다 실내 공기 오염이 최대 100배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적절한 환기를 위해서는 아침 점심 저녁 한 번씩, 매 30분간 창문을 열어줄 것을 추천한다. 특히 요리나 청소 후에는 반드시 환기하는 것이 좋다. 장마철에는 실내 습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주 환기를 해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창문을 마음껏 열어 놓기도 힘들다. “그렇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0%가량 가구에서 미세먼지 탓에 환기 시간을 줄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세먼지 경보나 황사주의보가 발령된 경우 지나친 환기는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외 미세먼지나 황사는 실내 발생 미세먼지와 성분이 크게 달라 호흡기 질환뿐 아니라 암이나 뇌 질환, 심장 질환을 일으킬 확률도 더 높다.” ―그렇다면 추천하는 해결 방법은 무엇인가. “환기를 아예 하지 않는다면 위험하다.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공기청정기로는 낮출 수 없다. 필터가 장착된 환기 설비 이용이 최선이다. 필터가 있는 환기 설비로는 외부 미세먼지나 황사가 유입돼도 적절히 환기할 수 있다. 이 같은 환기 설비가 없다면 하루 한두 번, 매 3분 이내 환기가 안전하다. 창문을 열어 환기한 뒤 물걸레질을 해서 방이나 거실 바닥에 붙은 먼지를 제거해야 한다.”뿌연 바깥공기 창문 못 열면… 연중 가동 환기 시스템 필수 팬만 도는 환풍기와 완전히 달라미세먼지-오염물질 거의 걸러내밀폐 공간-다중이용시설엔 필수 환기는 실내 공기 질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미세먼지 같은 적대적인 외부 환경은 창문을 열기 어렵게 만든다. 필터를 활용해 미세먼지 같은 외부 공기 속 오염물질을 거르고, 밖으로 나가는 공기에서 열을 회수해 쾌적하고 신선한 공기를 유입하는 열회수(熱回收) 환기 시스템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 같은 환기 시스템은 계절에 상관없이 연중 사용 가능하고 에너지 소비량도 상대적으로 적은 환기 장치다. 홍희기 경희대 기계공학과 교수(사진)에게서 환기 시스템이란 무엇이고, 그 효용은 어떤 것이며 관리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창문 환기 대안으로 환기 시스템이 거론된다. “오염된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안으로 들이는 것이 환기다. 하지만 창문을 열어서 하는 환기는 바깥 공기가 깨끗하고 온도와 습도가 적당할 때만 가능하다. 환기 시스템은 단순히 팬(날개)만 돌아가는 환풍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특히 봄가을과 달리 여름이나 겨울에 창문을 열기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에너지 낭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열회수 환기 시스템은 실내 미세먼지, 새집증후군 유발 물질, 포름알데히드 등 오염물질과 CO₂ 농도를 바깥 공기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도 버려지는 열을 회수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다. 실내외 공기 상태를 살펴보면서 자동으로 움직여 연중 24시간 쓸 수 있다. 버려지는 공기에서 열을 회수하고, 봄가을 황사나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필터 기능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밀폐되기 쉽거나 다수가 이용하는 실내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기 시스템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창문 환기가 어려울 때 공기청정기만 트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환기와 공기 청정은 다른 개념이다. 공기청정기는 실내 공기를 재순환시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데 호흡, 취사에서 발생하는 CO₂는 없애지 못한다. 공기청정기만 가동한 교실에서 CO₂ 농도가 1000ppm(1ppm은 100만분의 1·0.0001%)을 넘어 집중력이 저하돼 학습 효과가 현격히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환기 시스템을 설치해 바깥 공기를 유입시켜 CO₂ 농도를 떨어뜨리고 새집증후군 유발 물질이나 미세먼지 농도를 낮춰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환기 시스템을 찾아볼 수 있나. “환기 시스템은 밀폐되기 쉽거나 다수가 이용하는 실내 공간에는 필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건물은 고(高)단열, 고기밀화 경향으로 문틈이나 창틈으로 바깥 공기가 거의 들어오지 못하는 구조다. 현재 우리나라는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 제11조에 따라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이나 지하철역, 판매 및 교육 시설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은 의무적으로 환기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다만 일정 면적 이상일 때만 설치가 의무화돼 있어 보완이 시급하다. 2006년 이후 지은 아파트에는 대부분 환기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만 기능이 떨어지는 저가(低價) 제품이 많고 관리 방법을 알려 주지도 않아 아예 설치 사실을 모르기도 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환기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덕트나 제품 내부에 먼지가 쌓여 있어 정비하지 않은 채 작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초창기 제품은 소음이 큰 데다 성능도 떨어졌을 확률이 높아 확인이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주부 최은영 씨(50)는 중학생 시절 신(腎)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단백뇨가 나오고 몸이 부으며 저(低)알부민혈증이 발생하는 병이다. 당시 최 씨의 체중은 62kg이었다. 의사는 체중부터 빼라고 했다. 이뇨제를 먹어 가면서 일주일 새 10kg을 뺐다. 그 덕분이었을까. 몸이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최 씨는 ‘조심’이란 단어를 늘 새기며 일상생활을 해 나갔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너무 바빠진 데다 개인적 사정으로 병원에 갈 수 없게 됐다. 그 대신 이뇨제를 먹으면서 스스로 관리했다. 다행히 이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는 건강한 상태로 대학을 졸업했다. 이대로 신장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준비로 힘든 거라 여겼는데… 24세이던 1998년, 최 씨는 결혼식을 치렀다. 신혼여행지에서 살짝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 아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강도가 더 심해졌다. 최 씨는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만성신부전증 진단이 떨어졌다. 당장 처치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료진은 최 씨를 입원시킨 뒤 곧바로 신장 투석을 진행했다. 이후 의료진은 최 씨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최 씨 진료를 맡았다. 양 교수는 “최 씨뿐 아니라 만성신부전증 환자 상당수가 숨이 차고 어지러운 원인이 신장 질환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노폐물이 제때 배출되지 못해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요독증이 발생한다. 하지만 숨이 찬 증세 때문에 심장 질환으로 오해한다는 것. 양 교수는 “일단 요독증이 나타나면 신장 기능은 5∼10%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만약 소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신장 기능은 5%도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혈액 투석을 하는 중에도 신장 기능은 떨어졌다. 신장 이식 외에는 해법이 없는 상태. 뇌사자 장기 이식을 기다리며 버텼다. 얼마 후 최 씨와 조직 적합도가 높은 뇌사자 신장이 나왔다. 1999년 10월, 최 씨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최 씨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만 해도 뇌사자를 발굴한 병원에 장기 이식 우선순위가 주어졌다. 서울성모병원이 발굴한 뇌사자였으니 이 병원 환자인 최 씨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최 씨는 아직 20대로 젊었고 신장 이식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뇌사자 신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첫아이 출산 후 신장 다시 나빠져 장기 이식 거부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는 다시 건강해졌다. 그러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하지만 임신이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양 교수는 “신장을 이식받았다면 임신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임신중독이 생길 위험도 커진다”고 말했다. 이 경우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식한 신장까지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최 씨 부부는 아이를 진정으로 원했다. 양 교수는 최 씨가 임신할 수 있는 상태인지 살폈다. 일단 거부 반응은 없는 상황. 단백뇨가 나오거나 혈압이 높지도 않았다. 양 교수는 잘 관리하면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말 이 판단대로 됐다. 2003년, 최 씨 부부는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가졌다. 2004년 6월에는 남자 아기를 무사히 출산했다. 하지만 출산의 기쁨도 잠시. 최 씨 건강이 악화했다. 출산이 임박할 때부터 신장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출산 후 급속도로 나빠졌다. 검사해 보니 신장의 30% 정도가 망가져 있었다. 약물 복용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장기를 이식하면 12시간 단위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복용 시간이 이르거나 늦춰지면 농도가 달라져 면역 거부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최 씨의 경우 출산한 후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약 복용 시간을 가끔 지키지 못했다. 최 씨의 신장 기능은 갈수록 떨어졌다. 양 교수는 “출산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빠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점점 나빠지더니 다시 투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최 씨는 출산하고 약 2년이 지난 2006년 4월, 다시 혈액 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 투석하며 둘째 출산 최 씨는 그 후 매주 세 번씩 병원을 찾아 투석 치료를 받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흘렀다. 그렇게 힘겨운 투석 치료를 7년째 이어가던 2012년 말, 최 씨는 샤워하다가 배 안에서 아기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둘째 아이 임신이었다. 검사해 보니 이미 임신 5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입덧이 없어서 최 씨가 임신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두 번째 임신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오랫동안 투석 치료를 받았기에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영양 상태는 썩 좋지 않았고 호르몬 균형도 깨져 있었다. 임신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양 교수도 놀랐다. 양 교수는 “투석 치료 중에 임신은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임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10개월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 유산한다. 출산한다면 그 자체가 의학계에 보고될 만한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씨는 둘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출산을 결심했다. 양 교수가 보니 태아는 이미 상당히 성숙했고 발육 상태가 좋았다. 산모인 최 씨는 임신중독 징후가 없었다. 양 교수도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양 교수는 해외 치료 사례를 수집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뒤 치료법을 재점검했다. 우선 투석 치료 일정부터 조정했다. 그전에는 매주 3회, 각 4시간씩 투석을 했다. 이를 주 6회로 늘리는 대신 투석 시간을 3시간으로 줄였다. 태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폐물을 조금씩 자주 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 씨 혈압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했고, 조혈호르몬 투여량을 늘려 빈혈을 없앴다. 체중도 다른 산모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늘렸다. 산모와 의료진 모두가 힘을 합쳤다. 2013년 3월, 최 씨는 39세에 둘째 공주를 무사히 출산했다.● 의사와 환자, 평생 동반자 보통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포르(rapport·친밀함)가 좋을 때 치료 효과도 좋다는 말이 있다. 최 씨와 양 교수가 그렇다. 최 씨는 양 교수를 무한 신뢰했고 그런 최 씨를 양 교수는 가족처럼 대했다. 양 교수는 “의사와 환자로 만난 지 2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최 씨가 24세로 보인다”며 웃었다. 양 교수는 “의사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환자의 노력이 보태질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최 씨가 26년 동안 혈액 투석을 해 왔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최 씨 자신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실제로 둘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최 씨는 7년째 투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힘든 시기였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투석하지 않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에어로빅도 열심히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투석 치료를 오래 하다 보면 요독이 쌓이면서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최 씨는 그런 증세가 덜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삶에 대한 욕구도 더 강해졌다. 이 모든 점이 최 씨가 투석을 극복하고 아기까지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올해 1월 최 씨에게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뇌사자 신장 재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 현재까지 거부 반응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양 교수는 “1년 이내에 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10년 이상 장기가 유지될 확률이 90%를 넘는다.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물론 최 씨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날음식은 절대 먹지 않고 채소도 익혀 먹는다. 운동도 빠뜨리지 않는다. 매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매일 5000보 이상 걷는다. 살이 찌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다 보면 식욕이 당기는데, 이때 무작정 먹었다가 살이 찌면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최 씨는 “몇몇 제약이 있긴 하지만 지금 아주 평화롭다. 이대로만 잘 유지할 계획”이라며 웃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주부 최은영 씨(50)가 중학생이었을 때다. 우연한 기회에 병원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장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신증후군 진단이 떨어졌다. 단백뇨가 나오고, 몸이 부으며, 저알부민혈증이 발생하는 병이다. 당시 최 씨 체중은 62㎏이었다. 의사는 체중부터 빼라고 했다. 이뇨제를 먹어가면서 일주일 사이에 10㎏을 뺐다. 그 덕분이었을까. 몸이 조금은 좋아진 것 같았다. 그 후로도 최 씨는 ‘조심’이란 단어를 늘 새기며 일상생활을 해 나갔다. 병원에도 정기적으로 다녔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로 바빠졌다. 게다가 개인사정으로 인해 병원에 자주 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결국 나중에는 아예 병원을 가지 않게 됐다. 그 대신 이뇨제를 먹으면서 스스로 관리했다. 다행히 이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인지, 몸이 나아져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최 씨는 건강한 상태로 대학을 졸업했다. 이대로 신장 질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혼 준비로 힘든 거라 여겼는데…25세가 되던 1998년, 최 씨는 결혼식을 치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몸에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신혼여행지에서 살짝 숨이 차고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것이려니 생각했다.아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도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도가 더 심해졌다. 최 씨는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검사 결과 최 씨는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당장 처치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의료진은 최 씨를 입원시킨 뒤 곧바로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논의 끝에 최 씨를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후 양철우 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가 최 씨의 진료를 맡았다. 양 교수는 “최 씨뿐 아니라 만성신부전증 환자 상당수가 숨이 차고 어지러운 원인이 신장 질환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면 노폐물이 제때 배출되지 못해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요독증이 발생한다. 하지만 숨이 찬 증세 때문에 심장 질환으로 오해한다는 것. 양 교수는 “멀쩡한 것 같아도 일단 요독증이 나타나면 신장 기능은 5~10%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만약 소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면 신장 기능은 5% 정도도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혈액 투석을 하는 중에도 신장 기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신장 이식 외에는 해법이 없는 상태. 뇌사자의 장기 이식을 기다리며 버텼다. 얼마 후 최 씨와 조직 적합도가 높은 뇌사자 신장이 나왔다. 1999년 10월, 최 씨는 뇌사자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사실 최 씨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당시만 해도 뇌사자를 발굴한 병원에 장기 이식 우선순위가 주어졌었다. 서울성모병원이 발굴한 뇌사자였으니 이 병원 환자인 최 씨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최 씨는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였고, 신장 이식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뇌사자 신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첫 아이 출산 후 신장 다시 나빠져시간이 흘렀다. 장기 이식 거부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최 씨는 다시 건강해졌다. 그러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열망이 커졌다. 하지만 임신이 마냥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양 교수는 “신장을 이식받았다면 임신 고위험군에 해당한다. 임신중독이 생길 위험도 커진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식한 신장까지 손상될 수 있다. 하지만 최 씨 부부는 아이를 진정으로 원했다. 양 교수는 최 씨가 임신할 수 있는 상태인지 살폈다. 일단 거부 반응은 없는 상황. 단백뇨가 나오거나 혈압이 높지도 않았다. 양 교수는 잘 관리하면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말로 이 판단대로 됐다. 2003년, 최 씨 부부는 그토록 원하던 아기를 임신했다. 이어 2004년 6월에는 남자 아기를 무사히 출산했다. 아기는 2.57㎏의 저체중아로 태어났지만,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최 씨의 건강이 악화했다. 출산이 임박할 때부터 신장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출산 후 급속도로 나빠졌다. 검사해 보니 신장의 30% 정도가 망가져 있었다. 약물 복용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장기를 이식하면 12시간 단위로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복용 시간이 이르거나 늦춰지면 농도가 달라지면서 면역 거부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최 씨의 경우 출산한 후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약 복용 시간을 가끔 지키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양 교수는 “최 씨는 그나마 약을 꼬박꼬박 먹은 편이다. 가끔 10대와 20대 환자 중에서는 아예 약을 먹지 않았다가 신장이 다 망가진 후 병원을 찾는 사례도 더러 있다”라고 말했다. 최 씨의 신장 기능은 갈수록 떨어졌다. 양 교수는 “출산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빠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점점 나빠지더니 다시 투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최 씨는 아기를 출산하고 약 2년이 지난 2006년 4월, 다시 혈액 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투석하며 둘째 출산 성공투석해 본 환자들은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안다. 최 씨는 그 후로 매주 세 번씩 병원을 찾아 투석 치료를 받았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흘렀다. 그렇게 힘겨운 투석 치료를 5년째 이어가고 있었다. 2011년 말, 최 씨는 샤워하다가 배속에서 아기가 꿈틀대는 걸 느꼈다. 둘째 아이 임신이었다. 검사해 보니 이미 임신 5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다만 입덧이 없어서 최 씨가 임신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실 임신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오랫동안 투석 치료를 받았기에 몸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영양상태는 썩 좋지 않았고, 호르몬 균형도 깨져 있었다. 임신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란 뜻이다. 양 교수도 놀랐다. 양 교수는 “투석 치료 중에 임신이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임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10개월을 유지하지 못하고 자연 유산한다. 출산한다면 그 자체가 의학계에 보고될 만한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씨는 둘째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출산을 결심했다. 양 교수가 보니 태아는 이미 상당히 성숙했고 발육 상태가 좋았다. 산모인 최 씨는 임신중독의 징후가 없었다. 양 교수도 임신을 유지하고 출산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양 교수는 해외 치료 사례를 수집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뒤 치료법을 재점검했다. 우선 투석 치료 일정부터 조정했다. 그전에는 매주 3회, 각각 4시간씩 투석을 했다. 이를 주 6회로 늘리는 대신 투석 시간을 각각 3시간으로 줄였다. 태아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폐물을 조금씩 자주 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조 씨의 혈압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했고, 조혈호르몬 투여량을 늘려 빈혈을 없앴다. 체중도 다른 산모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늘렸다.산모와 의료진 모두가 힘을 합쳤다. 그 결과 2012년 3월, 최 씨는 둘째 아이를 무사히 출산했다. 40세의 나이에 투석 치료를 견뎌내면서 얻은 공주였다. 첫째 아이 출산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아이는 2.6㎏의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신장 이식을 한 경우 대부분 저체중아가 태어난다”라고 덧붙였다. 둘째 아이 또한 첫째 아이와 마찬가지로 건강했다. ●의사와 환자, 평생 동반자보통 의사와 환자 사이의 ‘라뽀’가 좋을 때 치료 효과도 좋다는 말이 있다. 라뽀는 친밀한 유대관계를 뜻한다. 최 씨와 양 교수의 라뽀는 상당히 좋다. 최 씨는 양 교수를 무한 신뢰했고, 그런 최 씨를 양 교수는 가족처럼 대했다. 양 교수는 “의사와 환자로 만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최 씨가 25세로 보인다”라며 웃었다. 양 교수는 최 씨의 둘째 출산을 높이 평가했다. 양 교수는 “투석하면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세계 여러 나라를 보더라도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의사는 환자가 건강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환자의 노력이 보태질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라고 덧붙였다. 최 씨가 25년 동안 혈액 투석을 해 왔지만, 꿋꿋하게 버텨왔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최 씨 본인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실제로 둘째 아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최 씨는 이미 6년째 투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힘든 시기였다. 투석하는 날은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음식은 먹을 수 없었고, 되레 토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투석하지 않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병을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였다. 이와 별도로 에어로빅을 열심히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투석 치료를 오래 하다 보면 요독이 쌓이면서 여러 증세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최 씨는 그런 증세가 덜했다. 게다가 아기를 키우면서 삶에 대한 욕구도 더 강해졌다. 이 모든 점이 최 씨가 투석을 극복하고, 아기까지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올해 1월, 최 씨에게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뇌사자 신장 재이식 수술을 받게 된 것. 최 씨는 이번만큼은 평생 신장을 다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수술하고 3개월이 지났을 때 검사해 봤더니 이식 거부 반응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기자와의 인터뷰가 예정된 이날, 다시 검사했는데, 역시 모든 게 정상 수준이었다. 양 교수는 “1년 이내에 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10년 이상 장기가 갈 확률이 90%를 넘는다.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이어 “그 투석을 다 견디고 25년째 만성신부전증을 극복하며 살았는데, 앞으로 더 건강하게 살 거라고 확신한다”라며 웃었다. 물론 최 씨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날 음식은 절대 먹지 않고, 채소도 익혀 먹는다. 운동도 빠뜨리지 않는다. 매주 2회 필라테스를 하고, 매일 5000보 이상 걷는다. 살을 찌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다 보면 식욕이 당기는데, 이때 무작정 먹었다가 살이 찌면 콩팥에 악영향을 미친다. 체중 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최 씨는 “몇몇 제약이 있긴 하지만 지금 아주 평화롭다. 이대로만 잘 유지할 계획”이라며 웃었다.〈최은영 씨 만성신부전증 투병 및 출산 일지〉1980년대 후반 중학생 때 신증후군 진단1998년 만성신부전증 진단 및 투석 시작1999년 뇌사자 신장 이식 수술2003년 첫째 아기 임신 성공2004년 첫째 남자 아기 출산2006년 신장 나빠져 혈액 투석 재개2012년 혈액 투석 6년째 둘째 아이 임신 투석 횟수 늘리고 시간 줄이는 등 ‘비상 체제’ 가동2013년 정상분만으로 둘째 아기 출산 성공 (투석 도중 출산은 드문 사례임)2024년 1월 두 번째 뇌사자 신장 이식 수술 2024년 5월(현재) 장기 거부 반응 없으며 잘 적응 중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너무 자주 소변을 보는데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문제를 고칠 수는 없을까. 소변을 다 봤는데도 남은 소변 방울이 흘러 속옷을 적시는 게 혹시 병일까. 기침만 해도 소변이 새어 나오는 건 어찌해야 할까. 50대 이후가 되면 많이 생기는 배뇨 장애다. 장인호 중앙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50대 이후 배뇨 장애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많다. 감추지 말고 드러내 치료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 하루 8회 이상 소변보면 빈뇨 배뇨 장애는 크게 △소변을 저장할 때 △소변을 볼 때 △소변을 본 후 장애로 나눈다. 이와 별도로 요실금과 야뇨증도 배뇨 장애로 구분한다. 소변 저장 장애 중 가장 흔한 것이 빈뇨다. 빈뇨는 모든 배뇨 장애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보통 성인은 하루 대여섯 번, 매회 300mL가량 소변을 본다. 이 배뇨 횟수가 하루 8회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빈뇨로 볼 수 있다. 밤잠을 자다 발생하는 야간뇨, 갑자기 요의를 느끼는 절박뇨, 소변볼 때 요도나 방광 주변에 통증을 느끼는 배뇨통도 소변 저장 장애에 해당한다. 소변볼 때 장애는 방광이 막혔을 때 주로 발생한다. 전립샘 비대증이나 요도 협착이 원인일 때가 많다. 따라서 요도가 짧은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변 줄기가 가늘어졌거나 △몇 초가 지나서야 소변이 나오거나 △소변 줄기가 끊어졌다가 다시 나오거나 △배에 힘을 잔뜩 줘야 소변을 볼 수 있거나 △소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해당한다. 소변 줄기가 가늘어진 세뇨증은 전체 배뇨 장애의 30% 정도로 빈뇨에 이어 두 번째로 환자가 많다. 소변을 본 후 잔뇨감이 있거나 오줌 방울이 새며, 곧바로 다시 요의가 생기는 경우는 배뇨 후 장애다. 장 교수는 “이 중 오줌 방울이 새는 현상이 중년 남자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병이라기보다는 노화에 더 가까우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고환과 고환 사이를 손가락으로 눌러주면 요도에 남은 소변이 배출된다. 요실금은 방광에 있던 오줌이 흘러나오는 병을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배의 압력(복압)이 올라가면 소변이 나오는 복압성 요실금 환자가 많아진다. 갑작스럽게 소변이 흘러나오는 절박성 요실금 환자도 적잖다. 잠자다가 요실금이 생기면 야뇨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과민성 방광, 약물 치료하면 증세 개선” 배뇨 장애 원인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빈뇨만 하더라도 당뇨병이나 과도한 수분 섭취가 원인일 수 있다. 낮에는 빈뇨가 없는데 밤에 야간뇨가 생긴다면 심부전증 조짐일 수도 있다. 또 절박뇨 증세가 급격하게 심해졌다면 방광염이 원인일 수도 있다. 40대 이전에 배뇨 장애가 나타났다면 방광결석이나 요로결석도 의심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과민성 방광(여성)이나 전립샘 비대증(남성)이 원인일 때가 많다. 빈뇨의 예를 들어보자. 원래 방광은 소변이 차야 넓어진다. 소변이 차지 않을 때는 요의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방광의 탄력성이 줄어들면 예민해지면서 약간만 차도 ‘다 찼다’고 인식한다. 이 때문에 소변이 자주 마려워진다. 남성은 조금 다르다. 일단 전립샘이 비대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커진 전립샘이 방광을 자극하고 그 결과 방광이 예민해지면서 요의를 느끼는 것. 요실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민성 방광이다. 정상적이라면 방광에 소변이 차더라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수십 분을 참은 뒤 소변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방광이 이 통제를 벗어나는 바람에 소변이 나와 버린다. 방광을 튼튼하게 해야 배뇨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과민성 방광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약물 치료 목적은 증세 개선에 있다. 이 때문에 약물은 복용할 때만 효과가 나타난다. 먹다가 끊으면 증세는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장 교수는 “고혈압 약처럼 평생 먹는다는 생각으로 약물 치료를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약물 치료 효과는 보통 2주째부터 나타난다. 또 6개월 이상 지속하면 만족스러운 치료 효과를 얻는다.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과민성 방광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꾸준히 약물 치료한 환자의 하루 평균 배뇨 횟수는 11.7회에서 8.3회로 줄었다. 절박뇨는 8.2회에서 2.2회로, 절박성 요실금 또한 2.2회에서 0.1회로 크게 줄었다. 장 교수는 “약물이 많이 좋아져서 수술이나 시술까지 가지 않아도 증세 개선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배뇨 습관 만들기 약물 복용만으로는 근본적 치료가 되지 않는다. 장 교수는 “약물 치료를 하면서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발표한 7대 건강 수칙을 따를 것을 추천했다. 첫째,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걷기 같은 운동이 추천된다. 운동을 하면 골반을 지탱하는 근육이 발달하면서 방광을 튼튼하게 한다. 반대로 과체중은 방광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둘째, 알코올이나 카페인은 삼간다.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이런 물질들은 모두 방광을 자극한다. 셋째, 매일 물을 6∼8잔 마시는 등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 변비는 잦은 소변을 유발한다. 따라서 배변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섬유질을 섭취한다. 넷째, 배뇨 일지를 작성한다. 얼마나 소변을 보는지, 소변량은 어느 정도인지, 불편함은 없는지를 일기처럼 적다 보면 빈뇨, 야간뇨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소변을 참기 어렵다면 평소 방광 훈련을 한다. 소변이 마렵다고 여겨지면 일정 시간 동안 소변을 참는 것. 처음에는 짧은 간격으로 시작해 점점 시간을 늘리면 소변을 더 잘 참을 수 있고, 규칙적인 배뇨에 도움이 된다. 여섯째, 골반 근육 체조(케겔 운동)를 한다. 양쪽 다리를 벌리고 앉아 방귀를 참는다는 생각으로 항문을 당겨 조여준다. 1부터 5까지 세고 나서 힘을 풀어준다. 수축할 때 숨을 참지 말아야 하며 아랫배에 손을 대고 힘이 들어가는지 확인한다. 일곱째, 배뇨 장애와 관련된 증세가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한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그만큼 효과가 빨라진다.● 소변 상태를 보면 병이 보인다? 소변 상태로 개략적으로나마 비뇨기계 질환을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소변에서 악취가 난다면 방광염이나 요로감염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 다만 냄새를 세밀하게 구별하기 쉽지 않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냄새보다는 소변 색깔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이 낫다. 소변은 투명한 노란색을 띠어야 정상이다. 이 색깔이 미세하게 달라졌을 때는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 가령 소변이 많이 탁하다면 방광염에 걸렸을 수도 있다. 소변이 약한 갈색을 띨 때도 있다. 주로 오랫동안 운동하거나 일했을 경우,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침에 그럴 때가 많다. 장 교수는 “색깔이 탁한 것은 탈수 증세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소변 색깔이 변한다는 것. 혹은 과격한 운동 때문에 근육 세포 일부가 파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장 교수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며 물을 섭취하고 쉬면 좋아진다”고 했다. 소변이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면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황달이 심해지면서 소변도 진한 노란색을 띠는 것이다. 이 경우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혈뇨는 위험 신호다. 혈뇨는 누구나 구별할 수 있다. 좌변기 안쪽, 오목하게 파인 부위에 빨간색 물이 고인다. 혈뇨는 방광암, 신장암, 전립샘 질환, 급성 방광염 등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40대 이하라면 또 다른 질병이 원인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곧바로 병원에 가는 게 좋다. 소변에 거품이 있을 때는 거품의 양과 지속된 날을 따져 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거품이 많다면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양의 거품이 나온다면 단백뇨를 의심해야 한다.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오는 것.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너무 자주 소변을 보는 데,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로 달려가야 하는 문제를 고칠 수는 없을까. 소변을 다 봤는데도 남은 소변 방울이 흘러 나와 속옷을 적시는 게 혹시 병일까. 기침만 해도 소변이 새어 나오는 요실금을 어찌해야 할까.50대 이후가 되면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고민이다. 하지만 민망스럽거나 수치스럽다는 생각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비뇨기계 질환이 있는 환자 중에 병원을 꺼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에 대해 장인호 중앙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50대 이후의 배뇨 장애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많다. 감추지 말고 드러내 치료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루 8회 이상 소변보면 빈뇨배뇨 장애는 소변을 배출하는 여러 단계에서 발생한다. 크게 △소변 저장할 때 △소변볼 때 △소변본 후 장애로 나눈다. 이와 별도로 요실금과 야뇨증도 배뇨 장애로 구분한다. 소변 저장에 문제가 생긴 장애 중 가장 흔한 것이 빈뇨다. 빈뇨는 모든 배뇨 장애의 4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환자가 많다. 보통 성인은 하루 5,6회, 매회 300mL의 소변을 본다. 이 배뇨 횟수가 하루 8회 이상으로 늘어난다면 빈뇨로 볼 수 있다. 이밖에 밤잠을 자던 중 발생하는 야간뇨, 갑자기 요의를 느끼는 절박뇨, 소변을 볼 때 요도나 방광 주변에 통증을 느끼는 배뇨통도 소변 저장 장애에 해당한다. 소변볼 때의 장애는 방광이 막혔을 때 주로 발생한다. 전립샘 비대증이나 요도 협착이 원인일 때가 많다. 따라서 요도가 짧은 여성보다는 남성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대체로 △소변 줄기가 가늘어졌거나 △소변을 보려고 해도 몇 초가 지나서야 소변이 나오거나 △소변 줄기가 1회 이상 끊어졌다가 다시 나오거나 △배에 힘을 잔뜩 줘야 소변을 볼 수 있거나 △아예 소변이 막혀 볼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중 소변 줄기가 가늘어진 세뇨증은 전체 배뇨 장애의 30% 정도로, 빈뇨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소변을 본 후 잔뇨감이 있거나, 오줌 방울이 새며, 곧바로 다시 요의가 생기는 경우는 배뇨 후의 장애다. 장 교수는 “이중 오줌 방울이 새는 현상이 중년 남자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병이라기보다는 노화에 더 가까우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고환과 고환 사이를 손가락으로 눌러주면 요도에 남아있던 소변이 배출되면서 문제가 해결된다. 요실금은 방광에 있던 오줌이 흘러나오는 병을 말한다. 요실금의 유형도 다양하다. 나이가 들면서는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배의 압력(복압)이 올라가면 찔끔하고 소변이 나오는 복압성 요실금 환자가 많아진다. 또는 절박뇨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소변이 흘러나오는 절박성 요실금 환자도 적잖다. 잠을 자는 도중에 요실금이 생기면 야뇨증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과민성 방광, 어떻게 치료할까배뇨 장애의 원인을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가령 빈뇨만 하더라도 당뇨병이나 과도한 수분 섭취가 원인일 수 있다. 낮에는 빈뇨가 없는데, 밤에 야간뇨가 생긴다면 심부전증의 조짐일 수도 있다. 또 절박뇨 증세가 오래 지속된 것이 아니라 최근에 급격하게 심해졌다면 방광염이 원인일 수도 있다. 40대 이전에 배뇨 장애가 나타났다면 방광결석이나 요로결석을 의심해야 한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는 과민성 방광(여성)이나 전립샘 비대증(남성)이 원인일 때가 많다. 빈뇨의 예를 들어보자. 원래 방광은 소변이 차야 넓어진다. 소변이 차지 않을 때는 요의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방광의 탄력성이 줄어들면 예민해지면서 약간만 차도 ‘다 찼다’라고 인식하게 된다. 예민해진 방광 탓에 소변이 마렵다고 생각하고,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 조금 다르다. 일단 전립샘이 비대해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커진 전립샘이 방광을 자극하고, 그 결과 방광이 예민해지면서 요의를 느끼는 것. 요실금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민성 방광이다. 정상적이라면 방광에 소변이 차더라도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 수십 분을 참고 난 후 소변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방광이 이 통제를 벗어나는 바람에 소변이 나와 버린다. 결국 방광을 튼튼하게 해야 이런 증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가능할까. 장 교수는 “이는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완치는 불가능하다. 최대한 증세를 완화하기 위한 치료를 한다”라고 했다. 과민성 방광이 왜 생기는지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약물 치료를 하더라도 완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약물 치료의 목적은 증세를 개선하는데 있다. 가령 과민성 방광으로 인해 빈뇨가 나타나면 치료제는 빈뇨 증세를 없애기 위해 먹는 것이지, 과민성 방광 자체를 개선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 이런 점 때문에 이런 약물은 복용할 때만 효과가 나타난다. 먹다가 끊으면 증세는 다시 악화할 수 있다. 장 교수는 “고혈압 약처럼 평생 먹는다는 생각으로 약물치료를 하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약들은 24시간 지속형이기 때문에 하루 1회만 복용하면 된다. 다만 약물을 복용할 경우 증세는 확실히 좋아진다. 보통은 2주째부터 효과가 나타난다. 또 6개월 이상 지속하면 만족스러운 치료 효과를 얻는다. 실제로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과민성 방광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 꾸준히 약물치료를 한 환자들의 하루 평균 배뇨 횟수는 11.7회에서 8.3회로 줄었다. 절박뇨는 8.2회에서 2.2회로 줄었고. 절박성 요실금 횟수 또한 2.2회에서 0.1회로 크게 줄었다. 장 교수는 “요즘 약물이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수술이나 시술까지 가지 않아도 증세 개선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과민성 방광 자가 진단법>-하루에 소변을 8회 이상 본다.-소변이 일단 마려우면 참지 못한다.-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화장실 위치부터 알아둔다.-화장실이 없을 것 같은 장소에는 잘 가지 않는다.-화장실에서 옷을 내리기 전 소변이 나와 옷을 버리는 경우가 있다. -소변이 샐지 몰라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화장실을 너무 자주 다녀 일하는 데 방해가 된다.-패드나 기저귀를 착용한다.-밤에 잠을 자다 2회 이상 화장실에 간다.※9개 증세 중 1개 이상만 나타나도 과민성 방광 가능성 큼. 자료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건강한 배뇨 습관 만들기약물 복용만으로는 근본적 치료가 되지 않는다. 장 교수는 “약물 치료를 하면서 생활 습관을 교정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평소 방광을 튼튼하게 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 교수도 “노화에 따른 질환이기 때문에 완치하려 하기보다는 평소에 예방하고 증세를 완화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가 발표한 7대 건강 수칙을 따를 것을 추천했다. 첫째,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 걷기와 같은 운동이 추천된다. 운동을 하면 골반을 지탱하는 근육이 발달하면서 방광을 튼튼하게 한다. 반대로 과체중은 방광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둘째, 알코올이나 카페인은 삼간다. 또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 이런 물질들은 모두 방광을 자극한다. 특히 과음과 흡연은 요실금, 야간뇨 등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셋째, 매일 6~8잔의 물을 마시는 등 충분한 수분을 섭취한다. 배변 활동을 촉진하고 변비를 막기 위해 섬유질을 섭취한다. 변비는 복통 등의 증세 외에도 잦은 소변을 유발하기 때문에 예방하는 게 좋다. 넷째, 배뇨 습관을 체크하면서 배뇨 일지를 작성한다. 얼마나 소변을 보는지, 소변량은 어느 정도인지, 불편함은 없는지를 일기처럼 적는 것. 이렇게 하면 빈뇨, 야간뇨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소변을 참기 어렵다면 평소 방광 훈련을 한다. 소변이 마렵다고 여겨지면 일정시간 동안 소변을 참는 것. 처음에는 짧은 간격으로 시작해 점점 시간을 늘리면 소변을 더 잘 참고 규칙적인 배뇨에 도움이 된다. 여섯째, 골반 근육 체조(케겔 운동)를 한다. 양쪽 다리를 벌린 채로 앉아서 방귀를 참는다는 생각으로 항문을 당겨 조여준다. 5까지 세고 나서 힘을 풀어준다. 수축할 때 숨을 참지 말아야 하며 아랫배에 손을 대고 힘이 들어가는지 확인하도록 하자. 일곱째, 배뇨 장애와 관련된 증세가 있다면 전문가와 상의한다. 이를 통해 조기에 별을 발견해 치료하면 그만큼 효과가 빨라진다. <방광 건강을 위한 7대 건강 수칙>①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자신에게 맞는 체중을 유지한다.②카페인 섭취량을 줄이고 흡연 및 알코올 섭취를 삼간다.③적절한 수분 및 섬유질을 섭취하여 변비를 예방한다.④배뇨 일지 작성을 통해 자신의 배뇨 습관을 점검한다.⑤소변을 참기 어렵거나 화장실을 자주 간다면, 방광 훈련을 시행한다.⑥골반 근육 체조로 방광 및 골반을 강화한다.⑦배뇨 관련 증세가 발생하면 조기에 전문의와 상담하고 치료한다.※자료 : 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소변 상태를 보면 병이 보인다?소변 상태로 개략적으로나마 비뇨기계 질환을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소변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면 방광염이나 요로감염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해 보는 게 좋다. 다만, 세밀한 냄새를 일반인이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냄새보다는 소변 색깔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이 낫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질환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소변은 투명한 노란색이나 황색 빛을 띠는 게 정상이다. 이 색깔이 미세하게 달라져 있을 때는 질병을 의심해야 한다. 가령 소변이 많이 탁하다면 방광염에 걸렸을 수도 있다. 소변이 약한 갈색을 띨 때도 있다. 주로 오랫동안 운동하거나 일했을 경우, 잠자리에서 일어난 아침에 그럴 때가 많다. 이와 관련해 장 교수는 “색깔이 탁한 것은 탈수 증세와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소변 색깔이 변한다는 것. 혹은 과격한 운동 때문에 근육 세포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나타난 현상일 수도 있다. 장 교수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며 물을 섭취하고 쉬면 된다”라고 말했다. 소변이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었다면 간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황달이 심해지면서 소변도 진한 노란색을 띠는 것이다. 이 경우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혈뇨는 위험 신호다. 혈뇨는 누구나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 좌변기 안쪽에 오목하게 파인 부위에 빨간색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혈뇨는 방광암, 신장암, 전립샘 질환, 급성방광염 등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40대 이하의 젊은 층이라면 또 다른 질병이 원인일 수 있다. 그 어떤 경우든 혈뇨가 나오면 곧바로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소변에 거품이 있을 때는 거품의 양과 지속된 날을 따져 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거품이 많다면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양의 거품이 나온다면 단백뇨를 의심해야 한다.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오는 것.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추가검사가 필요하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언젠가부터 잇몸이 붓기 시작했다. 흔한 잇몸 염증이려니 생각했다. 염증약을 먹는 것으로 치료를 끝냈다. 예상과 달리 잇몸 염증은 날이 갈수록 악화했다. 동네 치과에 갔다. 의사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의사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제야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형 치과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입안에 피부암의 일종인 악성 흑색종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17년 7월 이야기다. 당시 50대 후반이던 김희상 씨(65)의 구강암 투병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신장암 극복했는데 다시 구강암 김 씨가 암 판정을 받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아버지 산소에 갔을 때였다. 소변이 마려워 급히 볼일을 봤는데 쌀알만큼 피가 섞여 나왔다. 다음 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장암이라고 했다. 당시 김 씨보다 먼저 그 소식을 들은 아내는 펑펑 울었더랬다. 김 씨도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그래도 절망하지는 않았다. 암 덩어리가 커서 신장암 병기(病期)는 3기에 가까웠지만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곧바로 수술대에 올랐다. 암이 있는 왼쪽 신장을 통째로 절제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항암치료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2015년 김 씨는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암에서 해방되고 2년 만에 김 씨는 두 번째 암 진단을 받았다. 바로 구강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는 “이 암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아내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김 씨가 충격을 받은 이유가 있다. 일단 병기가 4기였다. 입안 상태는 처참했다. 잇몸과 입천장에 암 덩어리가 붙어 있었고 잇몸뼈는 위쪽 전체가 거의 파괴돼 있었다. 암세포는 림프샘으로 전이된 상황. 대형 병원 의사조차도 “암이 너무 진행돼 수술은 어려우니 항암치료부터 시도해 보자”고 할 정도였다. 당시 의사는 면역 항암치료를 제안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치료비만 약 1억5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그러고도 완치 확률은 20% 미만. 김 씨는 당시 운영하던 회사가 쓰러지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면역 항암치료는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친구 믿고 오른 수술대 김 씨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고등학교 동문들에게 퍼져 나갔다. 어느 날 친구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그 친구는 “우리 동창 중에 태경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있다. 태 교수가 잘한다니 가 보자”며 김 씨를 설득했다. 김 씨는 친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친구가 그를 강제로 끌다시피 해서 태 교수에게 데리고 갔다. 태 교수는 “만약 목 밑까지 암이 전이됐다면 이비인후과 진료 영역을 넘어서기 때문에 내가 수술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수술에 도전해 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 구강암 진단을 받고 2개월이 흐르는 동안 암 덩어리는 7cm 크기까지 자랐다. 림프샘으로 전이된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다행인 점은 폐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는 것. 태 교수는 수술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태 교수는 “악성 흑색종은 수술이 최고 치료법이다. 다만 친구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수술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김 씨는 누가 집도하느냐고 물었다. 태 교수는 자신이 직접 집도할 것이라 했다. 김 씨는 “그렇다면 믿고 수술대에 오르겠다”고 했다. 고난도 수술이 시작됐다. 태 교수는 먼저 구강암 제거 수술에 돌입했다. 코 옆 선을 따라 인중 부위까지 10cm를 절개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를 없애기 위해 안쪽 뼈와 입천장은 모두 들어냈다. 이어 성형외과 의료진이 텅 비어 버린 입안을 채우기 위한 2차 수술을 시작했다. 의료진은 김 씨 허벅지에서 살을 떼어내 입안에 이식했다. 이 모든 수술에 꼬박 12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이 끝난 후 조직 검사를 진행했다. 미세한 암세포도 보이지 않았다. 태 교수는 “그 순간 수술 성공과 완치를 확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김 씨는 항암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았다.●10년 만에 재발한 신장암 의학적으로 수술 후 5년이 지나도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김 씨는 2015년 신장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같은 방식으로 2022년이 되면 구강암도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았다.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했는데 암세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2년만 더 있으면 완치 판정을 받을 거라 여겼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2020년 폐에서 암이 발생했다. 태 교수와 김 씨 모두 가슴이 철렁했다. 구강암이 폐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태 교수는 “구강암이 원래 폐로 전이가 잘된다. 특히 악성 흑색종은 재발하는 일도 잦다. 이런 상황이면 생존율은 30%가 안 된다”고 했다. 조직 검사 결과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미 완치 판정을 받은 신장암과 조직이 같았다. 신장암이 10년 만에 폐로 전이됐다는 뜻이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한양대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폐 일부를 절제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후인 2022년 12월, 제거했던 신장 부위에 암이 재발했다. 김 씨는 다시 수술대에 올라 해당 부위 림프샘을 제거하는, 네 번째 암 수술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구강암은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았고, 이 무렵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7월, 멀쩡하던 오른쪽 신장에서 암이 발견됐다. 신장암이 재발한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수술까지 가지는 않았다. 김 씨를 진료하고 있는 박성열 한양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암세포가 자라지 않는 등 면역 항암 효과가 잘 유지되고 있어 추적 검사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신장암의 경우 10∼20년 후에도 재발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다만 대부분 김 씨처럼 무증상이기 때문에 매년 추적 검사만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니까 신장암에 걸린 상태이긴 하지만 관리만 잘하면 수술이나 다른 치료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긍정적 자세로 의사와 소통하라” 몇 번 위기를 넘겼지만 김 씨는 되레 여유로워졌다. 10년 만에 신장암이 전이되고 재발했는데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단다. 김 씨는 “짓궂은 친구 하나가 다시 찾아온 거라 생각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병과 싸우면서 여유를 되찾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씨는 “수술 세 번을 무난히 견뎌냈고, 네 번째 면역 항암치료도 잘 이겨내고 있는데 무엇이든 못할까, 그런 생각을 했다. 게다가 든든한 의사 친구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웃었다. 암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고, 의사 말을 충실히 따르면서 치료에 전념하는 것만으로 이미 최선을 다했다는 것. 다음은 하늘의 뜻이란다. 태 교수는 “이 친구는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매사에 긍정적이다”라며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이다. 긍정적인 환자가 의사와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치료가 그만큼 더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내 주치의가 고교 동창이라 그런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또 비뇨의학과 진료를 받을 때도 그러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김 씨는 “의사 말을 듣지 않고 이상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경우가 주변에 더러 있는데, 쓸데없을 뿐 아니라 시간도 버리고 몸도 악화시킬 거라 생각한다. 그런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이제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쓴다. 매일 1만 보 이상 걷는다. 물론 암에 걸리기 전에는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이제는 운동하지 않고서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 매사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술을 마시던 사람이 거의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김 씨는 “오히려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