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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가 2004년 내놓은 ‘투모로우’는 제법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재난영화다. 지구온난화로 남북극 빙하가 녹으면 주변 바다의 염도가 떨어진다. 찬물이 깊은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표면에 머물면 적도의 따뜻한 물을 고위도로 옮기는 멕시코 만류 등 해류가 막히게 된다. 결국 열을 전달받지 못한 북반구 지역이 온통 빙하로 뒤덮인다. 실제 빙하기 끝 무렵인 1만2000년 전쯤의 ‘영거 드라이아스 기’가 모티브가 됐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영화적 상상이 더해졌다. 수십 년에 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과정을 단 6주 만에 일어난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덕분에 스토리는 긴박했고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관객들의 뇌리에도 기후변화의 ‘악몽’이 선명하게 각인됐다. 재미없는 과학적 사실에만 충실했다면 얻을 수 없었던 결과다. 관객들도 이를 진실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영화야 태생부터 픽션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 않나. 문제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현실에서도 과학적 사실을 비과학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목격된다는 점이다. 판단의 잣대로 삼은 과학을 믿지 못하면 결국 사회적 혼란만 커질 뿐이라는 걸 여러 차례 실감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는 의학적 사실에 과장과 거짓이 보태져 온 나라를 혼돈에 빠트렸다.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미국 소 영상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말을 삼켜 버릴 만큼 충격적이었다. 공포심이 극대화됐을 때 과학은 설 자리가 없었다. 2017년 표출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적대감은 국가 에너지정책을 후퇴시킨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 원전 기술을 가진 한 기업을 통째로 날릴 뻔했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쟁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영역이고 사회적 영향이 큰 이슈지만 판단의 기준은 과학이다. 그런데도 과학계 목소리, 특히 정치적으로 불리한 설명에 대해서는 철저히 귀를 닫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단언컨대 과학계는 분열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신뢰도가 곧 생명인 과학자들이 과학적 팩트를 놓고 거짓을 말하진 않는다”며 “일부 학자가 비전문 영역에 대해 무책임하게 발언한 것이 확산되고 부풀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적 환경운동가 마이클 셸런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2021년)에서도 그런 사례가 다수 언급된다. 방대한 양의 과학 논문 등을 근거로 한 책이다. 참고문헌 리스트만 80쪽에 달한다. 셸런버거는 서문에서 “환경 문제를 과장하고, 잘못된 경고를 남발하고, 극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조장하는 이들은 긍정적이고, 휴머니즘적이며, 이상적인 환경주의의 적이다”라고 썼다. 그러곤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이나 브라질 아마존 등에서의 사례를 들며 극단적 환경주의자들의 선동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조목조목 비판한다. ‘환경’이 아닌 ‘환경운동’을 목적으로 삼았기에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거나 악용하는 이들에 대한 고발이다. 지금 일부 한국 정치인들의 목적은 ‘국민건강’일까, ‘국민건강을 담보로 한 정치’일까. 정치인이 정치활동을 하는 걸 말릴 수 있겠냐마는 결국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건 그들이 아닌 국민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지부(현대차 노조)가 12일 5년 만에 파업을 강행했다. 부분파업이라지만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분명한 불법이었다. 임금 및 단체협상 교섭에서 난항을 겪고 있어서가 아니다. 올해 교섭은 11일까지 7차례 진행됐을 뿐이다. 노사 대표가 상견례를 하고 교섭 테이블에 앉아 노조 요구안을 읽어내려가는 단계다. 보통 20차례 안팎의 교섭이 진행됐을 때 노조 요구안 읽기가 두 번 정도 끝난다고 한다. 이때부터 노사 양측은 본격 협상에 들어간다. 노조도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 파업(쟁의)을 위한 절차를 밟는다. 아직은 파업 운운할 때가 아니었단 얘기다. 현대차 노조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파업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도 2019년부터 4년 연속 무파업으로 임협 또는 임·단협을 타결했던 좋은 기억을 뒤로한 채 말이다. 첫째는 금속노조의 압박을 꼽는 이가 많다. 형제 단체인 기아 노조는 5월 31일 민노총 총파업 당시 부분파업으로 동참했다. 기아의 노사 간 임·단협이 이달 3일에야 시작됐으니 당연히 쟁의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파업이었다. 당시 현대차 노조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5월 총파업 때 기아와 달리 현대차가 빠지면서 이번엔 금속노조로부터 현대차지부에 강한 압박이 들어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반대로 기아는 이번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금속노조 입장에서는 대표 사업장인 현대차와 기아가 한 번씩은 상급단체의 뜻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둘째는 불법 파업을 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18년 5월 현대차 노조가, 같은 해 11월에는 현대차 및 기아 노조가 불법 파업을 했다. 3건 모두 회사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기소유예였다. 검찰이 불법파업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나아가 야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은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인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은 노조원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파업은 단체행동인데, 개인별로 손해액을 발라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다. 재계에서 “손해배상 청구는 불법 파업을 막을 마지막 카드인데, 이를 무력화시키는 법”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요약하자면 현대차 노조는 결국 상급단체의 정치파업에 들러리를 서려는데, 불법이라고 해도 딱히 책임을 묻지도 않으니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게 된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노총의 총파업이라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파업 행태”라며 “현대차 경영진이 정권 퇴진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반대를 위해 무얼 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명백히, 정치 파업은 적법한 파업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민노총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의지에 맞서 3일부터 산별노조가 돌아가며 순환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리에 나서 확성기를 든 그들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개혁 대상’임을 스스로 입증해 내고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프랑스 르노그룹이 최근 부산에 연간 생산 20만 대 규모의 전기자동차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귀도 하크 르노그룹 부회장이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 밝힌 내용이다. 투자 금액은 1조 원 이상으로 예상되고, 양산 시점은 2026년 이후다. 기아가 4월 경기 화성시에서 전기 베이스의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용 공장 착공식을 열었고, 현대자동차는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 착공을 4분기(10∼12월)로 확정했다. 현대차그룹의 외로운 투자 행보에 르노가 가세하면서 국내 전기차 생태계도 활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르노의 계획이 현실화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지근거리에서 안정적으로 납품해줄 배터리 공장이 지어져야 한다. 미국, 유럽의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이 한국이나 중국 배터리업체들과 앞다퉈 자신들의 안방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짓는 이유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배터리 기업을 3곳이나 보유하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도 국내 배터리 3사는 모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배터리업체 한 관계자는 “현재 해외에 짓기로 한 합작 공장에만 집중해도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북미의 경우 한국 배터리 3사가 가동 중이거나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은 단독과 합작 공장을 포함해 모두 15곳, 생산 규모로는 560GWh(기가와트시)에 달한다. 국내 기업인 현대차그룹과의 합작 공장이 지어질 곳도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와 미국이다. 국내 공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플랜트는 18GWh, SK온의 서산공장은 5GWh 규모다. LG가 향후 33GWh로 확대할 계획이라지만 해외 투자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정호 르노코리아 상무는 22일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배터리산업 간담회에서 “한국 전기차 공장 투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배터리 생산 부족으로 투자 결정에 불리한 상황”이라고 했다. 배터리 때문에 전기차 공장 투자가 엎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무사히 투자로 이어져도 K배터리의 안방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 할지도 모른다. 배터리 기업들의 국내 투자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투자의 실익이 없어서다. SK온과 미국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공장 3개를 지으면서 미 에너지부로부터 최대 92억 달러(약 12조 원)의 정책자금을 저리로 빌릴 수 있게 됐다. SK온이 현대차와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배터리 공장은 7억 달러의 보조금을 챙길 예정이다. 삼성SDI와 제너럴모터스(GM)의 미국 인디애나주 합작 공장도 15년간 세금을 면제받는다. 한국에선 기대하기 힘든 조건들이다. 무역협회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현 SK온 팀장은 “국내에선 경쟁국 대비 지원 규모가 미흡하다”며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지방투자촉진 보조금도 기업당 최대 지원 한도가 국비 100억 원으로 제한돼 아쉽다”고 했다. 자유경쟁시장에서 기업 유치의 가장 큰 명분은 돈이다. 유치 조건이 적어도 경쟁국들보다 모자라진 않아야 한다. 자칫 방심했다간 배터리를 수입에만 의존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기원하기 위해 부산에서 열린 국내 최대 K팝 행사 ‘제29회 드림콘서트’(사진)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콘서트를 후원한 HD현대는 28일 부산 연제구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전날 열린 드림콘서트가 관객 3만여 명이 찾은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부산엑스포 유치 열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드림콘서트가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열렸다. ITZY, 비투비, NMIXX, 오마이걸 등 전 세계에서 팬덤을 가진 K팝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번 콘서트는 25∼2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기후산업국제박람회’의 공식 폐막공연 역할을 겸했다. 태평양 도서국 정상들을 포함한 3만여 명의 관객은 엑스포 유치 후보지인 부산 북항 일원의 변화된 모습을 감상했다. 관객들은 이날 공연 중 엑스포 유치 응원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HD현대 관계자는 “이번 드림콘서트를 통해 부산 엑스포 유치를 향한 우리 국민의 열정을 확인했다”며 “공연장을 찾아준 각국 정상들을 포함한 세계 K팝 팬들에게 이 열기가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툭 터놓고 얘기해서, 아침 출근 시간부터 욕설 섞인 확성기 소릴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인근의 한 기업 직원이 한 말이다.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에선 10년째 집회·시위가 이뤄지고 있다. 기아의 지방 한 대리점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한 자동차 판매업자 A 씨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사옥 옆 염곡사거리에는 동서남북 방향을 가리지 않고 A 씨가 내건 현수막 수십 개가 걸려 있다. ‘기아차 판매 내부고발 해고자 ○○○ 공동대책위원회’에서도 몇 명씩 나와 시위를 거들곤 한다. 현대차그룹 직원은 물론 인근 기업 직원들과 염곡사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은 원하지 않아도 A 씨 등의 주장을 보고, 들어야 한다. 그것도 정제되지 않은 비방과 욕설이 섞인 채로. 비단 A 씨 사례만일까. 삼성전자 서초사옥이나 KT 광화문사옥 등의 주변은 다양한 이유를 내건 시위대가 접수한 지 오래다. 대기업 총수 자택도 시위꾼들에겐 좋은 타깃이 돼 왔다. 헌법 제 21조는 1항에서 언론·출판의 자유와 함께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2항에서는 ‘허가제’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자유를 확실하게 못 박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펼 수 있고, 다수인이 공동의 목적을 갖고 회합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한 것이다. 거리로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이 권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시위를 하면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 언급하는 이들은 없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시위대가 타깃으로 삼은 기업이나 기관은 잘못이 있건 없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피해를 보면 고소, 고발을 통해서라도 적극적인 문제 해결에 나설 동기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연관도 없는 시민들까지 듣고 싶지 않은 걸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걸 봐야 한다. 한두 번 지나칠 땐 그러려니 하겠지만, 주변 주택에 살거나 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피할 수 없는 ‘시위 공해’가 된다. 일부에선 헌법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환경권을 거론하기도 한다. ‘환경’에는 물, 공기, 토양 등 자연 환경 외에도 미관과 소리 등 사회적 환경도 포함하고 있다는 해석에서다. 20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는 ‘전교조 34주년 결의대회’와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전국 행동의 날’ 집회, 시민단체 촛불승리전환행동의 ‘제40차 촛불대행진’ 등이 잇달아 열리면서 수만 명이 운집했다. 일부 차로가 통제된 광화문 일대는 극심한 교통 정체를 빚었다. 청계천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은 갑작스레 맞닥뜨린 대규모 시위에 당황해하며 자리를 떴고, 인근 예식장을 향하던 하객들 중에는 발만 동동 구르다 운전대를 돌린 이들도 있었다. 세상에 의무가 배제된 권리란 없다. 헌법에 보장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때도 타인의 권리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침해하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 1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의 김지용 신소재사업실장(현 미래기술연구원장)의 방 한쪽 벽면은 대형 인쇄지 여러 장을 이어 붙인 로드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깨알같이 쓰여 있던 글자들을 세세히 기억하진 못한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와 양극재 사업을 어떻게 키워갈지 세부 단계별로 촘촘하게 정리해놓은 걸 보고 감탄했던 장면은 머리에 남아 있다. 김 실장은 그 로드맵을 가리키면서 ‘소재보국(素材保國)’이란 단어를 썼었다. 포스코가 조선, 자동차, 가전 등 국가 핵심산업에 안정적으로 철을 공급했던 걸 ‘제철보국(製鐵保國)’이라 부르는 것처럼 미래 신산업에 필요한 소재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소재 사업은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10년은 걸린다”고 했다. 포스코가 소재 사업을 본격화한 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8월 포스코켐텍이 LS엠트론의 이차전지 음극재사업부(옛 카보닉스)를 인수했고, 2012년 3월에는 휘닉스소재와 지분 절반씩을 투자해 양극재 전문업체 포스코ESM을 세웠다. 이들은 이후 다른 소재회사들과 합쳐져 지금의 포스코퓨처엠이 됐다. 김 실장이 얘기했던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그룹 내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 전체로 봐도 가장 ‘핫’한 기업이 됐다. 이 회사는 3일 중국 화유코발트와 경북 포항시에 1조7000억 원을 투자해 배터리용 양극재에 필요한 중간 소재와 음극재 생산라인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4일 역시 포항에 6000억 원대 양극재 공장을 짓겠다고 공시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연이은 투자는 넘쳐나는 일감을 감당해내기 위해서다. 포스코퓨처엠은 올 들어서만 삼성SDI와 40조 원(10년간), LG에너지솔루션과 30조 원(7년간)어치 소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양극재 누적 계약액만 92조 원에 달한다. 포스코그룹은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공정자산 기준 재계 순위에서 처음 5위에 올랐다. 소재를 철강에 이은 새로운 사업 축으로 결정하고 오랜 기간 투자해온 결과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전기차로 옮아가면서 포스코퓨처엠은 특수를 누릴 수 있게 됐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한국산 배터리, 특히 한국산 소재의 몸값을 이렇게 높여준 것도 어쩌면 행운에 가깝다. 하지만 이 모든 게 10년 전 벽면을 가득 채웠던 그 로드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국 경제 전체로 봐도 해묵은 과제가 있다. 수출 상대국으로는 중국에, 품목으로는 반도체에 지나치게 쏠린 산업구조다. 지난달까지 14개월째 이어진 무역적자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정 국가와 상품에 대한 의존증이 기초 체력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포스코퓨처엠 같은 신사업 분야 기업이 하나씩 나와야 한국 경제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기업들이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정부의 몫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국내 기업들이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함께 도입하려는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울진군에서 추진된다. 울진군과 GS에너지는 4일 서울 강남구 GS에너지 본사에서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내 뉴스케일파워의 SMR 도입 타당성 검토,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전기 및 열 공급, 협력기업의 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참여 등이 포함됐다. SMR을 통해 국가산단 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손병복 울진군수는 “이번 MOU로 울진군에서 추진 중인‘울진 원자력 수소 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SMR은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불릴 정도로 각광받는 미래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GS에너지는 지난해 4월 삼성물산, 두산에너빌리티 등과 함께 뉴스케일파워와 전 세계 SMR 발전소 건설 및 운영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 위한 MOU를 맺었다. 뉴스케일파워는 SMR 설계, GS에너지는 발전소 운영, 삼성물산은 발전소 시공, 두산에너빌리티는 발전 기자재 공급을 각각 맡는 식이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대우조선해양의 사업은 크게 ‘상선’과 ‘해양 및 특수선’으로 나뉜다. 지난해 기준 매출 비중은 상선 부문이 83.9%, 해양 및 특수선 부문은 14.5%다. 해양 및 특수선에는 잠수함과 수상함 등 ‘방산 분야’가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작년 초 HD현대와 대우조선 간 합병을 불허했을 때는 상선을 문제 삼았다.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지만 EU는 한국 조선사가 덩치를 키우는 걸 탐탁지 않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치열하게 가격 경쟁을 하던 HD현대,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3곳 중 둘만 남게 되면 유럽 선사들이 아무래도 더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거란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는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딜이다. 상선 부문에서 한국의 ‘빅3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EU 경쟁당국은 당초 예정(이달 18일)보다 한참 앞선 지난달 말 ‘승인 도장’을 찍어줬다.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려 본 뒤 다른 누구도 아닌 자국 기업들을 위해 내린 결정이다. 정작 문제는 안방에서 불거졌다. 모든 나라에서 승인된 한화-대우조선 합병을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방산 부문 수직결합이 공정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한화나 대우조선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대우조선은 이미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만 1조6136억 원의 적자를 냈다. 2021년의 1조7547억 원 영업손실까지 합하면 2년간 영업활동으로 까먹은 돈만 3조3683억 원이다. 부채 비율은 2021년 말 380%에서 작년 말 1540%로 뛰었다. 정상적인 회사라고는 보기 힘들 만큼 처참한 수치다. 인수합병(M&A)은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중요한 경영활동이다. 한화가 이런 부실기업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투자한 만큼의 사업적 시너지가 예상되니 2조 원을 선뜻 내기로 한 것이다. 내수에만 머물던 방산을 글로벌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때마침 한국 방산기업들의 해외 수출 계약이 잇따르던 터였다. 일부에서는 공정위가 승인을 내주되 여러 조건을 붙일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같은 정부 기관인 KDB산업은행마저도 고개를 젓고 있다. 산업은행은 측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화와 대우조선의 방산업체 매매 승인을 이미 완료했다”면서 “방산시장의 구조적 특성상 공정위가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함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폄하할 만한 논리는 아니다. 작년 1분기(1∼3월) 42억 달러어치를 수주했던 대우조선은 올해 같은 기간 8억 달러 수주에 그쳤다. 그나마 훈풍이 불고 있다는 조선업에서 대우조선은 차디찬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회생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거란 지적도 심심찮게 나온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22년 만에 찾아온 공적자금 회수의 기회다. 공정위가 걱정하는 바가 있다면, 승인 후 불공정 행위를 더 철저히 감시하면 될 일이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주 69시간제.’ 정부가 이달 6일 발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대부분 이렇게 부른다. 사실 정부 자료에는 ‘69’라는 숫자가 없는데도 말이다. 공식 보도자료는 물론이고 보도 참고자료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편안의 직접 당사자들인 기업과 노동자의 뇌리에는 69시간이 주는 ‘과로의 이미지’만 남았을 뿐이다. 정부 발표 후 MZ(밀레니얼+Z세대)노조 등이 크게 반발하자 개편안 추진에는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재검토 지시에도 뾰족한 수가 금방 튀어나오길 기대하긴 어렵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개편안은 사실상 무산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21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부인하지만 사실상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다. 결국 근로시간제 개편안은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리려다가 60시간 미만으로 후퇴한 셈이 됐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은 유연화와 자율성 확대를 통한 생산성 증대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57%, 독일의 63%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해고가 어렵다거나 주 52시간제처럼 획일화된 기준이 경영현장에 적용됐기 때문으로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생산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했던 것 같다. 대통령부터 노동개혁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뒤이어 나온 정부 정책들의 방향성은 예외 없이 노동유연성 확보를 향하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손보기로 한 것도 ‘52시간’이라는 상한선이 기업 현장에서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본다. 법으로 강제하는 범위를 줄이고 노사가 자율권을 더 갖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MZ노조를 비롯한 근로자들의 반대는 사용자인 기업들이 지금보다 일을 더 시킨 뒤 정작 휴식권은 보장하지 않을 것이란 의심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개편안에는 이런 반발을 잠재울 장치가 가득 담겨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기업들이 근로시간과 관련해 보다 큰 자율성을 가진다면 노동자들도 그에 상응하는 휴식과 보상을 챙길 수 있어야 한다. ‘노사 합의’ 또는 ‘근로자대표와의 합의’ 등의 조건을 달았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일부 힘 있는 대기업 노조를 제외하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겐 해당사항이 없을 수 있어서다. 일부에서는 개편안의 목적이 ‘유연성’에 있다면 업종별, 직무별 특성도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보기술(IT) 기업과 제조업체, 사무직과 생산직이 똑같은 근무형태를 가져야 할 이유는 없기에 그렇다. “현장에서는 정부 의도대로 제도가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다. 노동자들에게도 안전장치 역할을 할 제도가 선행돼야 반감도 덜할 거다.” 대통령이 귀를 기울이라고 했던 MZ노조 측 의견이다. 오랜 시간 묵혀둔 노동시장의 문제점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다소 천천히 가더라도 꼼꼼하게 설계된 정책만이 노사 양측을 설득할 수 있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현대자동차가 기술직(생산직) 신입사원 채용 지원서 접수를 마감했다. 10년 만에 진행된 이번 채용에는 400명 모집에 18만여 명이 지원했다는 설까지 돌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날 오후 9시까지 기술직 신입사원 채용에 대한 지원서를 받았다. 서류접수 첫날인 2일 이미 수만 명이 채용 홈페이지 접속을 시도하는 등 이른바 ‘킹산직’(생산직 중 가장 좋은 일자리라는 뜻)이란 별명에 걸맞은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 측은 이번 지원 경쟁률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채용에 과도한 관심이 모인 만큼 지원자 수 공개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침이 내려진 것 같다”고 전했다. 현대차의 직전 생산직 채용이었던 2013년에는 160대 1의 경쟁률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지난해 기아가 100명 채용공고를 냈을 때 5만 명 가까운 지원자가 몰려든 바 있다. 업계에서는 때문에 400명을 뽑는 이번 현대차 채용에도 10만 명 이상 지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는 내년에도 300명의 생산직을 추가로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생산직 채용이 이처럼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것은 우선 현대차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1억 원(2021년 기준 9600만 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생산직 연봉은 평균보다 다소 낮을 수 있지만, 확실한 정년보장과 자사 차량 최대 30% 할인 등의 혜택까지 고려한다면 쉽게 찾기 힘든 일자리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현대차는 서류전형을 진행한 뒤 이달 말 서류 합격자를 발표한다. 이어 두 차수로 나눠 1, 2차 면접을 진행하고 7월 중 최종합격자를 선발할 예정이다. 이들은 8월과 9월 약 4주간의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배치된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2010년대 중반 막 사회에 진출한 ‘밀레니얼세대’는 탐구의 대상이었다. 이전 세대들과 사고방식, 행동양식, 언어가 모두 달랐다. 불과 몇 년 뒤 유튜브를 비롯한 웹 콘텐츠 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10대가 ‘Z세대’라는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 한데 묶어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출판물이 넘쳐났고, 기업교육 시장에서는 ‘MZ세대’를 키워드로 한 속성 과정들이 우후죽순으로 출현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MZ세대가 ‘현재’가 아니라 ‘미래’라고 선을 그었다. 50, 60대 최고경영자(CEO)나 고위 임원들이 보기에 그들은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했으니까. 어쩌면 자신들이 못다 이해한 MZ세대가 이미 회사의 주축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현실은 어떤가. 밀레니얼세대는 이미 기업의 허리 라인을 장악했다. 일부는 중간관리자로서 조직 내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Z세대들도 점차 사회로 진출하면서 ‘엄마찬스’ 없이도 스스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MZ세대가 누구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만 그쳐선 곤란해질 수 있다. MZ세대가 기업과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또 어떻게 바꿔나가려 하는지 객관적으로 마주할 때가 온 것이다. 본보가 MZ세대에 속하는 ‘20∼39세’를 대상으로 기업인식 조사를 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기업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대략 이랬다. 기업에 호감을 가진 응답자가 비(非)호감이라 답한 이들의 세 배나 됐고, 본인이나 자신의 진로로는 ‘대기업 취업’을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보다도 많이 선택했다. 기업·기업인에 대한 신뢰도의 경우 비록 ‘신뢰한다’는 답이 ‘신뢰하지 않는다’보다 적었지만, 정부·공무원이나 국회·정치인에 비해선 높은 편이었다. MZ들은 또 “소개팅에서 회계사보다 삼전(삼성전자)이 더 먹힌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창출이지만 매출에만 초점을 맞춰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들은 (정치인들과 달리) 잘못한 게 드러나면 바로 고개 숙여 사과는 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 이들의 생각이 모두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오류투성이다. 그래서 MZ의 시각을 반영하는 게 기업 생존을 위한 ‘충분조건’이라 말하긴 힘들다. 다만 ‘필요조건’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한 대기업 임원은 본보 기사를 보고 “지금까지는 MZ세대를 관찰하기 바빴다. 이제 기업문화든 사업전략이든 그들의 말과 행동을 반영해야겠다고 새삼 느낀다”고 전해왔다. 사실 기업보다 더 급한 쪽은 노조다. 노조는 노조원들의 바람을 현실화하는 조직이다. MZ들은 자신이 일한 만큼 공정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MZ들에게 “한반도에 평화적 분위기가 확장돼 군비를 감축하면 남는 재원을 복지, 노동자 예산으로 쓸 수 있다”(양경수 민노총 위원장) 같은 발언은 상식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근로자들 중 MZ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 노조는 존재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노조에도 생존을 위한 선택의 시간이 왔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소비자가 물건을 사려는데 3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비자들은 기다림에 지쳐 구매를 포기하거나 대체품을 찾을 테니까. 유명 맛집 앞에서 한두 시간 줄을 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그런데 서너 달 전까지 자동차 시장이 실제 그랬다. 현대자동차 대리점을 찾아가 일부 인기 모델을 문의하면 “당장 계약해도 이 차는 2년 반, 저 차는 1년 반”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자동차 회사들에도 피치 못할 사정은 있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통째 흔들렸다. 2021년 보복 수요가 살아나자 공급망 위기로 인한 생산 차질은 더 크게 부각됐다. 한국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소비자들은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일각에선 자동차 회사들이 공급난 위기를 명분으로 이른바 ‘배짱 영업’을 한다는 의심도 있었다. 차 가격을 슬금슬금 올려도 “빨리만 받게 해 달라”는 고객들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 했으니 말이다. 차량 인도가 늦어지는 건 다른 나라 전쟁 탓으로 돌리면 그만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지난해 하반기(7∼12월)부터다. 우선 무너졌던 공급망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신차 대기자들 중 계약 포기자가 속출했다. 공급이 늘고 수요가 줄어든 만큼 대기 기간은 짧아졌다. 위에서 언급한 ‘30개월’의 주인공인 제네시스 ‘GV80’은 지금 계약하면 10개월 만에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전기차 ‘아이오닉6’ 역시 지난해 말 계약 시 18개월에서 현재 계약자의 경우 13개월로 대기 기간이 줄었다. 제네시스 차량을 취급하는 딜러와 통화해보니 “지금 추세로 가면 대기 기간이 조금은 더 짧아질 것 같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시장이 정상화되는 게 당연히 반갑다. 기업들로서는 바이러스나 전쟁을 출고 지연의 핑계로 삼기가 어려워졌다. 오롯이 생산경쟁력으로 승부해야 그나마 남은 신차 대기자들을 지켜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 자동차 기업, 더 정확히 한국 내 자동차 공장은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시간당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려면 노조 허락부터 구해야 한다. 잘 안 팔리는 차량의 생산을 줄이고 일부 근로자를 인기 모델 생산라인으로 전환 배치하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생산 과정 일부를 떼어내 용역을 줬다고 불법 파견 판단을 받기도 한다. 경직된 노동환경은 낮은 생산성과 직결된다. 자동차 얘기를 했지만 이는 한국 경제 전체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1시간 근로당 국내총생산(GDP) 창출가치는 42.9달러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미국(74.8달러), 독일(68.3달러), 프랑스(66.7달러) 등의 노동생산성은 모두 한국의 1.5배가 넘는다. ‘11개월 연속 무역적자’와 ‘8개월 연속 수출 역성장’이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바닥까지 떨어진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 당장 한 부위를 치료해야 한다면 그건 노동시장이 돼야 하는 이유다.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최근 본보와 인터뷰한 최고경영자(CEO)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가 있다. 정홍근 티웨이항공 대표다. 그가 전한 핵심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되면서 리스료가 매우 저렴해졌는데 그때가 도입 적기라고 봤다”는 말에 있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초 중장거리 항공기 ‘A330-300’을 도입했다. LCC가 대규모 자금을 들여 대형 항공기를 들여온 것 자체도 과감한 결정이지만, 글로벌 팬데믹으로 여행 산업 자체가 완전히 망가져 있던 시기였기에 더 주목받았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 대표의 말을 간단히 해석하면 가장 필요한 물건을 가장 쌀 때 산 셈이다. 위기를 버텨낼 체력이 전제돼야겠지만 이보다 좋은 전략이 어디 있겠는가. 우연인지, A330-300을 만든 에어버스 역시 경기 침체 시절의 투자로 쏠쏠한 재미를 본 기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항공사들의 실적 추락 속에 에어버스 같은 항공기 제조사들도 역성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위기대응 전략 맨 윗줄에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플랜이 자리했다. 그러나 에어버스는 우주, 방위사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병행했다. ‘A320 NEO’라는 유류 효율이 높은 신규 모델도 개발했다. 현재 에어버스의 먹거리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란 평가가 많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경기 침체의 충격이 예상보다 더 크다. 대한민국 1위 기업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70% 가까이 빠졌다. LG전자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90% 넘게 줄었다. SK하이닉스는 아예 10년 만의 분기 적자가 예상된다. 올 1분기(1∼3월)엔 실적이 더 가라앉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 침체의 골이 얼마나 깊어질지, 또 얼마나 지속될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김도균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테나를 걷어선 안 된다”고 했다. 불황기에는 비교적 건실한 기업들도 일시적 유동성 문제에 빠져 매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김 파트너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이미 좋은 기업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중”이라며 “당장 대규모 자금 확보가 부담된다면 타깃 기업의 일부 지분만이라도 사는 ‘마이너리티 투자’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실제 경기 침체 시의 기업 인수합병(M&A)이 2∼4배 수익으로 되돌아왔다는 자체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김 파트너는 지금 같은 시기엔 기존 사업의 덩치를 키우는 ‘스케일 딜(Scale deal)’보다 새로운 사업영역 진출을 살피는 ‘스코프 딜(Scope deal)’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불황이라서 투자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 ‘불황이니까 생존이 우선 과제다’는 명제만이 반드시 정답일 순 없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불황에도 불구하고’가 더 자주 언급될 필요가 있다. 첨단 산업 진출을 노리는 기업들, 사업 구조 재편이 절실한 기업들에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에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재단법인 티앤씨재단이 27일까지 온라인 공감 콘퍼런스 ‘인디아더 존스(In the other zones)’를 개최한다. 2020년부터 공감 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열고 있는 ‘APoV(Another Point of View) 콘퍼런스’로, 19일 개막한 올해 콘퍼런스 주제는 ‘다양성’이다. 티앤씨재단 측은 매일(주말 제외) 강연 혹은 토론 영상 한 편씩을 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21일에는 9월 서울대에서 가천대 창업대학장으로 자리를 옮긴 장대익 교수가 ‘행복과 다양성의 관계’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인류가 다양성을 수용하도록 진화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경쟁 환경 속에서도 다양성을 확대할 방안을 제안했다. 장 교수는 27일 인구학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와 ‘생존의 필수조건: 다양성’에 대한 대담도 가질 예정이다. 성탄절 직후인 26일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와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가 ‘우리사회의 인종주의와 낙인’을 주제로 토론한다. 이 밖에 22일 민영 고려대 미디어학 교수, 23일 김학철 연세대 종교학 교수 등의 강연도 예정돼 있다.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는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를 해소하고 융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올해만 탱크로리(유조차) 기사들 운임을 30% 정도 올려줬어요. 그런데 안전운임제 품목에 자기들도 들어가겠다고 전부 파업을 하더라고요. 얼마를 더 받아야 한다는 거죠?” 최근까지 지방에서 주유소 영업을 담당했던 한 정유회사 직원이 반문했다. 물론 그는 답을 알고 있었다. ‘얼마’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가 9일 파업을 멈췄다. 총파업 16일째였다. 기업들은 창고가 포화돼 공장을 멈춰야 할까 봐 발을 동동 굴렀고, 몇만 원을 벌겠다고 오토바이 주유를 하려던 배달기사는 헛걸음만 했다. 화물연대는 정부가 자신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말로 일몰을 맞는 안전운임제가 없어지면 도로 위 사고가 많아질 거란 ‘반협박’과 함께 말이다. 그들은 파업 철회 하루 만인 10일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안전운임제는 2018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되면서 2020∼2022년 3년 시한으로 시행됐다. 배경은 이렇다. 화물차의 과속이나 졸음운전으로 도로 위 대형 교통사고가 잇따랐는데, ‘운임’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사고를 낸 화물차주들이 지갑만 두둑했다면 과속 따윈 하지 않았을 거란 논리다.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선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다고 수입까지 줄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는 이걸 들어줬다. 최저임금제와는 분명 다르다. 화물 차주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억대 대출을 받아 화물차를 구매하라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허가제로 운영해 과당 경쟁으로부터도 기존 차주들을 보호하고 있다. 안전운임제는 현재 컨테이너와 시멘트 화물 차량에 한해 적용되고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시행 후 시멘트 과적 경험이 30%에서 10%로 줄었다고 밝힌다. 컨테이너와 시멘트 차량의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은 각각 29%에서 1.4%, 50%에서 27%로 줄었다고 한다. 모두 사실이라 해도 문제는 도로가 전혀 안전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정보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직전인 2019년 사업용 화물차로 인한 교통사고는 6085건, 사망자는 177명이었다. 제도 시행 2년 차인 지난해 사고 건수는 6013건으로 72건(1.2%) 줄었지만 사망자는 28명(15.8%)이나 늘어난 205명이다. ‘안전’이란 제도 이름이 무색하다. 또 한국교통연구원 조사 결과 일반화물 차량들의 일평균 운행 거리는 2019년 378.1km에서 지난해 390.9km로 늘어났다. 일평균 운행 속도는 시속 46.2km에서 48.6km로 빨라졌다. 운임 단가가 높아지니 차주들은 더 긴 거리를 더 빨리 오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해 일반화물 차주의 월평균 순수입(유가보조금 포함)은 378만 원으로, 2019년 289만 원에 비해 89만 원(30.8%)이나 올랐다. 결국 3년간의 안전운임제 시행은 차주들의 주머니만 불려준 셈이다. 안전을 부르짖었던 이들이 파업 기간 중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운행 중인 동료 차량에 망설임 없이 던진 ‘쇠구슬’이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
전기자동차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관련 소재 업체들의 몸값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미래’로 불리는 포스코케미칼이 대표적이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소재 사업의 ‘탈중국’ 바람이 불면서 양극재 및 음극재 사업은 날개를 달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포스코케미칼 매출은 1조533억 원으로 첫 분기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작년 3분기의 5050억 원과 비교하면 100% 이상 성장한 수치다. 주가도 급상승세다. 2일 종가는 21만4500원으로 올해 첫 거래일인 1월 3일의 14만4000원보다 49.0% 상승했다.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11조1547억 원에서 16조6159억 원으로 올랐다. 2019년 12월 말의 3조37억 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시총이 5.6배로 껑충 뛴 것이다. 포스코케미칼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와 음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캐나다에 양극재 합작사를 설립했다. 음극재 역시 북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은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사인 얼티엄셀스와 5월과 7월 각각 8조389억 원, 13조7696억 원의 양극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총 22조 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계약이다. 포스코그룹 내 소재 사업은 원래 포스코ESM(양극재)과 포스코켐텍(음극재)으로 나눠져 있었다. 2018년 7월 취임한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사진)은 이듬해 4월 두 회사를 통합해 포스코케미칼을 출범시켰다. 포스코케미칼은 지난해 1월 1조2735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해 투자 재원도 확보했다.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의 증자다. 공급망 측면에서도 그룹 차원의 원자재 투자가 뒷받침되고 있다. 2018년 아르헨티나 살타주의 옴브레무에르토 염호를 인수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을 확보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 흑연 광산을 사들인 데 이어 호주 니켈 제련업체 레이븐소프에 30%의 지분을 투자함으로써 핵심 광물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최정우 회장이 2차전지 소재 사업을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삼으면서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며 “IRA와 같은 변수가 포스코케미칼에는 더 큰 기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은 계속 진화 중이다. 핵심은 기업별 ‘특기’를 살려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는 점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행복 추구’라는 경영철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순수 사회공헌활동도 회사와 회사 구성원은 물론이고 협력사, 고객사 및 고객 등 주변 이해관계자들의 상황을 모두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민간 최대의 사회적가치(SV) 플랫폼인 SOVAC 운영이 대표적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커뮤니티 등을 활용한 시민 헌혈 이벤트에는 SK 협력업체와 사회적기업 직원 등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SK는 대당 3억 원 정도인 헌혈버스 2대와 SK텔레콤이 개발한 헌혈 애플리케이션(앱) ‘레드 커넥트’를 대한적십자사에 기증함으로써 인프라 확대부터 지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에는 서울 중구 명동 및 회현동의 중소 음식점들에서 도시락을 주문해 공급했다. 사회공헌활동을 하면서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의지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10월 정부 등과 ‘자동차산업 상생 및 미래차 시대 경쟁력 강화 지원’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었다. 새로운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발표에 모두 5조2000억 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협력사 어려움을 분담하기 위해 원자재 납품대금 인상분 약 3조 원을 확보했고, 협력사 경영 상황 등을 감안해 4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또 ‘사업 다각화 지원 펀드’를 도입해 친환경차 부품 개발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는 내연기관차 부품 협력사가 시중에서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게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완성차, 부품업계, 정부, 유관기관이 하나의 팀이 되어 유기적 협업 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미래차 시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부품업계에 대한 상생과 지원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LG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문화, 혁신, 예술 분야의 인프라를 구축하며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개장한 ‘LG아트센터 서울’은 서울 강서구 마곡동을 문화예술의 허브로 육성하는 데 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LG아트센터 서울에는 미취학 아동부터 직장인, 시니어 고객까지 다양한 세대를 대상으로 한 발레, 음악, 연극 등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과 예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강의형 프로그램, 공연장 스태프의 가이드로 볼 수 있는 백 스테이지 투어가 마련돼 있다. LG아트센터 서울과 튜브를 통해 연결되는 LG디스커버리랩에서는 청소년 대상 인공지능(AI) 교육도 이뤄진다. 10월 13일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런던 심포니 협연으로 장식한 개관 공연은 티켓 구매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40초 만에 전석 매진됐다. 연말까지 이어지는 개관 공연들도 이미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들은 개관 전부터 입소문을 탔다. 안도는 ‘튜브(TUBE)’, ‘게이트 아크(GATE ARC)’, ‘스텝 아트리움(STEP ATRIUM)’ 등 3가지 건축 요소를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롯데는 사회 구성원의 마음이 닿아 공감을 만든다는 ‘마음이 마음에게’ 슬로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나눔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롯데는 연말을 앞두고 ‘재난재해 회복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 3월과 8월 발생한 산불, 집중호우로 지금까지도 불편을 겪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롯데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정된 서울, 경기, 강원, 충남, 경북 지역 내 재난위기가정에 농촌사랑상품권, 구호키트 등 약 10억 원 규모에 달하는 물품을 지원한다. 지원 물품은 사전 신청 및 심사를 통해 선정된 3200명에게 24일부터 순차적으로 지급됐다. 롯데는 재난재해 발생 시 신속한 현장 지원을 위해 세면도구, 마스크, 충전기, 통조림 등으로 구성된 구호키트와 재난구호상품권을 확보해 두고 있다. 롯데는 올해 산불과 집중호우 피해 지역에 복구 성금 10억 원과 함께 구호키트를 전달한 바 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내리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용이 각각 2.7%, 4.0%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법인세 감세의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법인세 인하 효과가 이같이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보고서는 전경련의 의뢰를 받아 황상현 상명대 교수가 작성했다. 보고서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외부감사대상 기업(금융업 제외)의 재무지표와 법인세 명목 최고세율(지방세 포함) 데이터를 기반으로 법인세율 변화에 따른 영향을 추정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면 기업 총자산 대비 투자율은 5.7%포인트 늘어났고, 고용도 3.5%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법인세 최고세율이 낮아져도 기업의 법인세 비용은 오히려 3.2% 늘어난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감세로 인한 기업 성장 촉진에 따라 정부가 걷는 세수가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투자는 대기업, 고용은 중소기업에 대해 법인세 인하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하할 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총 자산 대비 투자 비중은 각각 6.6%포인트, 3.3%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조건에서 고용 증가율은 대기업 2.7%, 중소기업 4.0%로 추정됐다. 전경련은 이를 근거로 “최고세율 인하 효과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나타나기 때문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부자 감세’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자동차 가격이 끝없이 치솟으면서 ‘합리적 가격’을 내세웠던 기존의 베스트셀링 카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구안’이 대표적. 4000만 원대에 수입 준중형 SUV를 살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매력 포인트다. 작년 7월 2세대 부분변경 모델이 나온 티구안은 올해 1∼10월 2691대가 팔렸다. 2008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뒤 누적 판매량은 5만9532대로 연내 6만 대 돌파 여부도 주목된다. 신차 대기에 지친 국내 소비자로서는 ‘빠른 출고’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티구안 공급이 대폭 개선되면서 일부 트림은 즉시 출고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폭스바겐코리아 측은 밝혔다. 기존 티구안 오너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역시 ‘경제성’이다. 2.0 TDI 모델의 복합연료소비효율은 L당 15.6km(도심 L당 14.2km, 고속 L당 17.6km), 2.0 TDI 4모션의 복합연비는 L당 13.4km(도심 L당 12.3km, 고속 L당 15.0km)이다. 여기에 ‘5년, 15만 km 무상 보증 연장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공식 서비스센터에서는 사고차량 보험 수리 시 자기부담금을 총 5회까지 무상으로 지원하는 ‘사고 수리 토털케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최초 1년, 사고 1회당 50만 원 한도라는 조건은 있지만 차량 유지·보수 비용에 대한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는 서비스다. 티구안의 첨단 안전 및 편의 사양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전 트림에 기본 적용된 ‘트래블 어시스트’는 출발부터 시속 210km에 이르는 주행 속도 구간에서 앞차와의 거리를 고려해 속도와 차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17일은 중동 모래바람이 거셌던 날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는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가 회담 및 오찬을, 국내 기업인 8명을 자신의 숙소로 불러서는 차담회를 가졌다. ‘미스터 에브리싱’이 국내에 머문 20시간 남짓 동안 온 나라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했다. 그날 빈 살만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귀빈들이 있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 페터르 베닝크 ASML 회장이다. 윤 대통령은 국내 반도체 ‘투톱’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초대해 양국 정상과 반도체 기업인들 간 차담회를 가졌다. ASML은 반도체 생산라인에 필요한 첨단장비를 만들어 공급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이 장비 하나가 2000억∼3000억 원 수준으로 대형 선박 하나 값이다. 더구나 1년에 겨우 40∼50대밖에 만들지 못한다. ASML이 고객사를 찾아다니면서 “우리 장비를 써 달라”며 영업할 일은 없다. 반도체 기업들이 “제발 우리 것부터 만들어 달라”고 알아서 찾아오니까. 비즈니스 관계에서 통상적으로 돈을 주면 ‘갑’, 받으면 ‘을’이라 한다. ASML은 돈을 받는 쪽이지만 돈을 주는 쪽보다 결정권이 훨씬 센 이른바 ‘슈퍼 을’이다. ASML의 진가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과 반도체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속에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첨단 기술을 한 발이라도 앞서 상용화하려면 ASML 같은 장비업체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이어서다. 이재용 회장이 6월 친히 유럽으로 건너가 베닝크 ASML 회장을 만난 것도, 윤 대통령이 친히 차담회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본의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화낙도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하는 ‘슈퍼 을’이다. 전 세계적 스마트공장 확산 속에서 화낙의 로봇들을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 대만 TSMC도 같은 부류다. 삼성전자가 추격에 나서고는 있지만 TSMC의 위상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국내에도 ‘슈퍼 을’을 향해 가고 있는 기업이 여럿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배터리 3사가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가파르게 늘어나니 안정적 배터리 수급은 완성차 업체들의 가장 큰 미션이 됐다. 업계에서는 “몇 년 전만 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젠 확실히 배터리가 ‘갑 같은 을’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9월 미국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을 만난 것도 같은 맥락이란 해석이다. 생산능력 기준 글로벌 1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DMO)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강력한 을이 될 자질을 갖췄다. 미국 애플의 전략폰에 카메라모듈을 거의 독점 공급하다시피 하는 LG이노텍도 다크호스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누군가에겐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수십 년간의 꾸준한 투자로 경쟁력을 키워온 한국산 ‘슈퍼 을’ 후보들이 제대로 잠재력을 터트릴 때가 오고 있다. 김창덕 산업1부 차장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