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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중에서 시각장애인의 자살률이 1위라고 합니다.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거죠. 저도 시각장애인(6급)인데,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려 합니다.” 대한민국 대표 ‘상남자’이자 ‘의리의 아이콘’인 배우 김보성(58)이 또 한번 자기 몸을 던져 누군가를 구하고자 한다. 8년 전 그는 소아암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격투기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상대로 종합격투기 전적만 60회가 넘는 베테랑 파이터 일본의 곤도 데쓰오가 섭외됐다. 망신당할 수도 있었다. 예고편이 더 긴, 짧은 웃음거리 이벤트가 될 뻔도 했다. 걱정이 큰 만큼 그는 더 철저히 준비했고, 정면 대결로 맞섰다. 결과는 패. 상대의 펀치에 제대로 맞아 오른쪽 안와 골절상을 입었다. 그렇지만 사는 의미를 느껴 눈을 못 뜨고도 웃었다. 감동받은 소아암 어린이들은 그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대전료와 입장 수익, 또 조그만 후원금을 받아 어린이들의 치료비와 수술비로 기부할 수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 주변은 여전히 조금 함몰돼 있다. 당시 수술을 했다가는 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어 그냥 뒀다. 김보성은 오래전 위험에 처한 친구를 구하려다 왼쪽 눈을 다쳤다. 그때 시각장애 6급 판정을 받았었다. 그러고는 또 남을 도우려다 ‘핸디캡’ 하나를 더 붙인 것이다. 그런 그가 8년 만에 다시 격투기 무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중증 시각장애인들을 돕기로 했다. 개안 수술을 해야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 의리가 발동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곤도다. 12일 서울 강남구 섬유센터에서 리벤지 매치를 한다. 김보성보다 두 살 어린 곤도는 올해도 실전 대회에 계속 나섰다. 1차전보다 더 힘든 경기다. 김보성은 “곤도의 올해 경기를 보니 마음 같아서는 경기를 취소하고 싶다. 길게 끌면 국민들에게 망신당할 수 있다”면서도 “곤도에게 패배한 직후엔 액션 영화 섭외가 안 들어왔다. 복싱 준비를 잘해서 1라운드 1분 안에 왼손 훅으로 이기겠다”고 결의를 보였다. 극구 반대하는 아내에게 오른쪽 눈을 안 다치겠다고 약속한 뒤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상대의 오른쪽 주먹에 걸리지 않기 위해 동작을 ‘사우스포(왼손잡이)’로 바꿨다. 하루 4시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3t 화물트럭이 자신의 차 뒤를 받는 사고가 나서 무릎을 다쳤다. 그래도 시각장애인들의 어려움을 널리 알리고, 그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포기는 절대 없다. 김보성은 “곤도는 나를 기절시키거나 죽이거나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에도 들어오는 돈부터 내 주머니까지 다 털어 남김없이 시각장애인들의 수술비로 쓸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술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6개 업체가 스폰서로 동참한다. 김보성을 후원하는 안과에서 개안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곤도 역시 대전료를 마다했다. 못 말리는 의리인 건 알겠는데 본인이 다치면서까지 남을 돕는 이유가 뭘까. “같은 처지인 김보성도 저렇게 열심히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저는 지금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윤회’를 믿습니다. 김보성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김보성의 의리가 경지에 이르겠죠. 하하. 의∼리!∼입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기업가 스스로가 혁신을 위해서는 인생 평행선을 꺾어 들어 올리는 지점이 필요하다’ INI 하버드 최고 경영자 프로그램( INI Lecture Series and Executive Education by Harvard Business School and MIT Sloan Professors) 제 2기가 출범했다. 하버드 경영대 교수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인사이트넥서스연구원(INI, Insight Nexus Institute)은 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제2기 원우 오프닝 세레머니 행사를 열고 프로그램 시작을 알렸다. INI에서 넥서스는 연결, 융합이라는 뜻이다. 기업가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통찰력을 갖고 서로 연결, 연합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버드 최고 경영자 프로그램을 도입한 INI 윤태근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각자의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오래 달려왔던 인생 평행선이 꺾어지는 지점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며 “이를 통해 각자의 영역에서 새로운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2기생들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기와 마찬가지로 2기 과정의 프로그램의 연구 주제도 거대 변혁 시대(Mega Transformation Age)다. 1기 프로그램에는 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관련 전현직 공무원,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2기 원우들도 인공지능(AI),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성공 사례,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 전략 등과 같은 수업에 참여한다. 하버드 경영대의 로리 맥도날드, 조지 세라핌, 카림 라카니 교수를 비롯해 MIT 공대 경영대학원의 조지 웨스트먼, 르네 고슬린 교수가 강의에 나선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INI 고문단 위원장 자격으로 2기 원우들을 일일이 격려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고문단 위원이다. 황 전 총리도 행사에 참석해 “프로그램을 인생 교재로, 자산으로 삼았으면 한다”며 “관계를 계속 이어가면서 인생을 재충전하라”고 당부했다. 정 전 총리도 “이제 AI가 만드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며 “원우들이 대전환 시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소중한 단초가 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을 전화위복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1기 과정을 차석으로 수료한 SA POWER(에스에이 파워) 손보영 대표는 “수업과 과제가 진행될수록 이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것은 모범답안이 아닌 사고의 깊이와 글로벌 리더로서의 책임감이었다”며 “글로벌 공통 아젠다와 우리의 경영 현장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게 됐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2기 과정 강의는 12일부터 시작해 11월 28일까지 매주 목요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FKI타워 컨퍼런스센터 3층 에메랄드룸에서 열린다. 참가자에게는 국제 리더스 네트워크 참여, 미국 보스턴 하버드 경영대 캠퍼스 최종 강의 참석, 수료식 및 저녁파티(12월 9∼15일, 하버드 강의 교수진 참석), 하버드 경영대 수료증, INI 주최 하버드 경영대 국제회의, 포럼 등에 참여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글로벌 숙명으로 도약하겠다.” 숙명여자대학교가 문시연 제21대 총장 취임에 맞춰 21세기 글로벌 여성대학으로 나아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2026년에 숙명 창학 120주년을 맞는 것을 계기로 제3 창학을 선포하고, 글로벌 숙명으로 나아가겠다는 게 핵심이다. 문 총장은 ”20세기가 여성 차별에 맞선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여성의 가치가 중심이 되고 주도하는 시대”라며 ”1906년 구국애족의 정신에서 시작한 숙명이 이제는 세계 여성 문제와 성장을 돕고 협력하는 여성교육 롤모델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도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은 숙명의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한류 중심 글로벌 대학 구축이다. ’숙명이 세계로, 세계가 숙명으로’라는 구호 아래 한류 문화와 산업기술 교육·연구의 메카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숙명 한류 썸머스쿨’ 개최해 유학생·교환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재학생들의 글로벌 탐방 확대 등을 통해 세계 유수 대학과의 협력을 강화할 예정이다. 두 번째는 인공지능(AI)을 교육 과정에 창의적으로 접목하는 ’(가칭)숙명 AI 교육센터’ 설립이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소통 능력,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개념 중심, 문제해결 중심의 교육을 실현한다는 취지다. 문 총장은 ”생각하고, 질문하고, 배려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통섭과 수요자 중심의 교과과정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아웃씽킹(Out-thinking)의 힘을 키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산학협력 강화다. 다양한 산학협력 교육과 플랫폼을 개척해 숙명여대가 한국 사회와 대학교육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학협력단 산하 산학공유·협업센터에 대기업뿐만 아니라 성장 가능성이 유망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문 총장은 ”창학 120주년은 숙명의 잠재력과 찬란한 가능성을 활짝 꽃피우는 새로운 모멘텀이자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120년간 지켜온 ’민족 최초의 여성사학’ 숙명의 정체성과 가치를 기반으로 글로벌 여성대학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숙명여대는 2025학년도부터 ’무전공 제도’(전공자율선택제)를 도입해 학생 중심의 유연한 학사제도를 구축한다. 급변하는 사회 수요에 대응하고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다. 정시 모집에서 전체 모집인원(예체능, 사범, 보건의료 계열 제외)의 22.3%인 381명을 무전공 제도로 선발한다. 이중 303명을 모집하는 자유전공학부는 2학년 때에 인문, 사회, 자연, 공학 계열 중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 78명 규모의 첨단공학부는 숙명여대가 자랑하는 첨단학과 5곳(인공지능공학부, 지능형전자시스템전공, 신소재물리전공, 컴퓨터과학전공, 데이터사이언스전공) 중에서 전공을 선택한다. 각 학과 정원의 150% 내에서 자유롭게 전공을 고를 수 있어 빅데이터, AI 등 첨단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인천 경제자유구역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국제 캠퍼스로 올해 문을 연 지 10년이 된다. 그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며 글로벌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트시티에 있는 홈 캠퍼스의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과 송도의 국제적 입지를 결합함으로써, 국내외 학생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캠퍼스는 2014년 9월 유타대의 첫 해외 확장형 캠퍼스로 개교했다. 당시 개설 학과는 4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는 게임학, 도시계획학, 심리학, 영화영상학, 전기공학, 정보시스템학, 커뮤니케이션학, 컴퓨터공학, 회계학 등 9개 학부 전공과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과정을 운영 중에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의 요구와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빠르게 몸집을 키운 결과이다. 10년간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변정수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입학처장은 “개교 첫 학기에 입학생이 13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매 학기 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캠퍼스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는 국내외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전공과 우수한 연구 인프라, 활발한 산학협력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미국 홈 캠퍼스와 동일한 교육 과정을 제공하면서도 현지화된 교육 콘텐츠를 통해 학생들이 글로벌 환경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업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최재훈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국내 입학팀장은 “영어 때문에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국내 학생은 없다”며 “특히 일반고 출신 학생들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지원을 통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단순한 물리적 확장을 넘어 교육 혁신에 집중했다. 이러한 노력은 미국 홈 캠퍼스의 교육적 우수성과 혁신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타대는 세계 랭킹 83위에 위치하며 세계 상위 100위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Center for World University Ranking 2018). 또한 미국 내 최고 가치 교육기관 11위 (Wall Street Journal / Times Higher Education 2019), 혁신적인 대학 30위 (Reuters, T University Rankings 2018)로 각각 선정됐다. 이러한 성과는 아시아캠퍼스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실리콘 슬로프’ 유타대의 혁신과 유산 유타대는 노벨상과 미국 국가 과학자상 수상자를 비롯한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한편 다양한 연구와 기술 개발을 통해 학계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유타대 졸업생들은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정·재계, 학계, 예술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어도비의 공동 창업자 존 워녹(수학 및 철학 학사, 수학 석사, 전기공학 박사),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공동 창업자이자 픽사 및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회장 에드윈 캣멀(컴퓨터과학 및 물리학 학사, 컴퓨터과학 박사),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경영학 학사)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한국 1호 화학 박사이자 장영실, 허준과 함께 한국을 빛낸 과학 기술인으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세계적인 석학 이태규 박사는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유타대 교수로 재직했다. 유타 지역은 샌프란시스코가 ‘실리콘 밸리’로 불린 것처럼 ‘실리콘 슬로프(Silicon Slopes)’로 불린다. 수많은 기술 새싹기업(스타트업)과 정보기술(IT) 기업이 모여 있어 붙여진 별명이다. 유타대는 가장 많은 창업 기업을 배출한 대학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이어가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혁신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교육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왔다. 대표적으로 미국 대학 의료센터 서비스 품질에서 1위를 차지한 유타대 의료혁신센터(CMI· Center for Medical Innovation)가 2020년 아시아캠퍼스에 도입됐다. 센터는 인천 송도의 바이오산업과 시너지를 내며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또 유타대에서 도입해 빠르게 안착시킨 게임학 전공을 아시아캠퍼스는 작년 가을학기에 신설했다. 이에 맞춰 캠퍼스 내에 최첨단 게임 스트리밍 룸과 게임 랩, 게임 라운지를 새롭게 마련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적 지식을 실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 있다.그레고리 힐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대표는 “우리는 학생들이 이론과 실무를 결합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며 “게임학 전공 학생들은 실제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영화영상학 전공 학생들은 교내 영화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는 기회를 얻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러한 경험은 학생들이 글로벌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인천 지역 사회와의 상생아시아캠퍼스는 개교 이래로 인천 지역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유타대 CMI 아시아는 인천 지역 내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제품의 글로벌화를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캠퍼스 커리어센터는 재학생들에게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천관광공사 등 인천지역에 위치한 국제기구 및 지역 공공기관과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실무 경험을 제공하고 학생들의 역량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 포스코이앤씨, 해양경찰청, 인천항만공사, 국제바이오제약전시회 등과 협력하고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역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다양한 예술 공연, 전시회, 워크숍을 무료로 개최해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도 제공하고 있다. 유타대 발레 교수진이 이끄는 세계 유명 발레단의 공연이나 유타대 여자 체조팀 ‘레드락스’의 체조 공연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적인 사회공헌 차원에서 인천 지역 내 중,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수 강의와 외국인 유학생들과의 멘토링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운영 중이다.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과 협력하는 ‘유타대 세계시민캠퍼스’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학사 및 석사 과정 강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생 모델은 대학과 지역 사회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개척하자’(Connecting Our World, Forging Our Future)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Connecting Our World, Forging Our Future’라는 구호 아래 앞으로도 혁신적인 교육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전공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할 예정이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과 같은 최신 트렌드도 교육 과정에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은 유타대의 ‘전략(Strategy) 2030’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Strategy 2030’ 비전은 유타대가 2030년까지 미국 내 상위 10위권 공립대학교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학 커뮤니티를 넘어 유타주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유타대는 졸업생의 90%가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연구 자금을 10억 달러로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아시아캠퍼스는 2030년까지 학생 수를 3000명까지 늘리고, 외국인 재학생의 비중을 40%까지 확대해 보다 강화된 글로벌 학습 환경과 학생 서비스, 지원 프로그램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랜디 맥크릴리스 유타대 국제 업무 수석 책임자는 “아시아캠퍼스 개교 10주년은 유타대가 글로벌 진출을 더욱 확대하고 매진하는 중요한 시기이자 우리 대학 역사상 매우 흥미롭고 중대한 순간”이라며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의 모든 국제 전략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고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지난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단기적으로는 학생수 확대에 중점을 두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선도적인 국제 캠퍼스로 키워나가겠다.” 테일러 랜들 유타대 총장은 올해로 개교한 지 10년을 맞는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서면인터뷰에서 “그동안 보여준 놀라운 성장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유타대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으로, 1850년 설립된 유타주에서 가장 오래된 고등 교육 기관이다. 2024 서부 최고의 공립대학교(Public College in the West)로 선정됐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랜들 총장은 2021년 유타대 출신으로는 50년 만에 총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그의 조부와 부친이 유타대 교수로 재직했고, 그 역시도 총장 임명 전 12년간 유타대 경영대학원(데이비드 에클스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근무해 뼛속까지 ‘유타대 패밀리’로 불린다. 그는 총장 취임 후 “학교를 미국 내 상위 10위 공립대학으로 도약시키고, 미국 사회에서 좀 더 영향력을 지난 교육기관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과 혁신적인 비전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에서 아시아캠퍼스가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공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국내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본인 소개를 해줄 수 있나? “저는 유타대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50년 만에 유타대 출신으로 총장에 임명됐습니다. 게다가 제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유타대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에 헌신하셨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유타대는 저와 제 가족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 역시도 총장으로 임명되기 전에는 12년간 데이비드 에클스 경영대학원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학교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 유타대 총장으로서 목표는?“총장으로서 제 비전은 유타대를 미국 내 상위 10위 공립대학으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문적 성과와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유타대가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분야가 있는가? “유타대는 학생들의 학업 성공을 지원하고, 연구 역량을 강화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확대하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모든 학생이 고품질의 교육과 필수적인 자원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고, 학문 간 협력과 연구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의 국제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성과로 이어졌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첫 번째로, 아시아캠퍼스의 설립과 확장을 통한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실행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게임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 프로그램의 도입과 다양한 파트너십을 통해 아시아캠퍼스의 역할을 강화해왔습니다. 두 번째로, 학생 성공과 경험을 중시하는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도입했습니다. 특히 2014년에 선보인 라슨드 스튜디오(Lassonde Studios)는 학생들이 ‘거주하고(Live), 창조하고(Create),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Launch)’ 혁신적인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미래형 캠퍼스 생활 학습 공동체의 모델이 됐습니다. 세 번째로, 최근 4년간 기록적인 입학률을 기록했으며 올해 가을에는 5800명 이상의 신입생을 맞이했습니다. 또 2019년에는 유타대가 미국대학협회(AAU)에 초청을 받아 회원 자격을 획득했고, 연구 및 교육 분야에서 높은 수준을 인정받았습니다. 네 번째로, 국제 무대에서도 꾸준히 존재감을 나타냈습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부터 2024년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또 2034년 동계 올림픽에서는 다시 올림픽 빌리지와 개·폐막식 장소로 선정됐습니다. 이는 유타대의 글로벌 위상을 한층 높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의 10주년이 갖는 의미는? “유타대 아시아캠퍼스의 10주년은 매우 의미 있는 이정표입니다. 아시아캠퍼스는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캠퍼스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활기찬 학문 공동체를 형성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 역할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인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아시아캠퍼스는 솔트레이크시티 홈 캠퍼스와 동일한 학문적 기준과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이 두 캠퍼스에서 모두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글로벌 경제에 필요한 기술과 문화적 역량, 그리고 국제적 인식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현지 산업과의 파트너십은 학생들이 실질적인 경험을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0주년 기념 구호로 결정된 ‘Connecting Our World, Forging Our Future(세상을 연결하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기념 구호는 유타대가 학문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협력과 이해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상징합니다. 학교가 학생들이 글로벌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각 분야에서 리더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뜻도 포함한 것입니다.”●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이나 계획이 있다면…. “우선 미국 홈 캠퍼스와 인천 송도 아시아캠퍼스 간의 학생 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학습 옵션을 제공하고, 두 지역의 산업 및 정부와의 협력도 강화할 생각입니다. 또한 연구 협력과 공동 학문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아시아캠퍼스의 미래가 궁금하다. 단기, 중기, 장기 목표가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학문 프로그램 확대와 학생 등록 인원을 늘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다음 아시아 지역에서 연구 역량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학생 및 교수 교류 프로그램을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캠퍼스를 유타대의 글로벌 전략에 완벽히 통합된 선도적인 국제 캠퍼스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글로벌화 못지 않게 로컬화도 중요하다. 인천 지역사회와 어떤 식으로 협력하고 기여할 계획인가? “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역 기업, 정부 기관, 그리고 교육 기관들과 협력해 커뮤니티 아웃리치 프로그램과 문화 교류 이니셔티브를 통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번영하는 것이 저희의 중요한 목표입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이런 인연은 드물 거다. 24년 전, 지금까지도 최고 역작으로 회자되는 대하 드라마에서 160회가량 함께 등장했다. 극 중 같은 주군을 모신 둘은 늘 화면에 같이 잡혔다. 한 사람이 대사를 하면 다른 한 사람의 대사가 이어졌다. 밥도 같이, 잠도 같이, 촬영도 같이, 늘 붙어 다녔다. 주말 2회 방영하는 드라마였으니 준비 기간을 더해 3년 가까이 같은 인생 궤도를 돌았다.드라마 인기 덕에 지금도 마주치는 사람들은 둘을 극 중 역할로 부른다. 한 명을 얘기하면 “또 한 명은 어디 갔느냐”고 묻는다. 기분 좋다. 더군다나 둘의 배역은 주군을 위해 몸 바치며 의리와 우정의 대명사가 됐다. ‘인생 배역’이어서 그렇게 살려고 했고 살아 왔다. 친형제간도 싸워서 안 보는 경우도 많다는데 의형제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배우 김학철(65)과 김형일(64)의 관계가 이렇다. 2000년 시작돼 200회 방송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둘은 고려 태조 왕건의 최측근이자 개국 1등 공신인 박술희와 신숭겸 장군 역할을 각각 맡아 드라마 인기에 한몫했다.‘성질이 용감하고 과감했다.’역사책 ‘고려사’는 박술희를 이렇게 표현했다. 김학철도 호탕하고 통이 크며 대담하다. 신숭겸은 건장하고 힘이 좋으면서도 매사 침착하고 진중했다는데 김형일도 몸집 좋고 배포 있으며 중후하고 울림이 큰 중저음에 사람을 보듬는 여유까지 갖췄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 캐스팅이다.“형일 씨. 여기에요.”“학철 씨.”11일 둘은 서울 지하철5호선 마포역 1번 출구에서 만났다. 먼저 도착한 김학철이 김형일을 마중 나왔다. 그런데 서로 존대말을 쓴다. 김학철이 한 살 많은 데다 연예계 데뷔도 조금 빨랐으니 반말을 해도 괜찮을 텐데 20년 넘게 만났으면서도 서로 존대한다.“형일 씨는 연예인의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에요. 허세라는 게 없어요. 모범생이죠. 이런 형일 씨를 지켜주고 싶어서죠. 동생이라고 ‘야야’ 하면 빈정 상할 수 있어요. 서로 존대해야 오래 갈 수 있다고 봅니다.”(김학철) ● 잊지 못할 캔맥주 두 캔서울예대 연극과 출신 김학철은 1978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김형일은 1987년 CBS 성우 15기로 연예계에 들어섰고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가 됐다. 1990년 임권택 감독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신마적 역할로 세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서로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마주친 적은 없던 둘은 ‘태조 왕건’에서 처음 만났다. 신숭겸 역할 후보는 몇 명 있었는데 감독이 김형일을 보고 바로 오케이를 했다.“그냥 적역이었죠. ‘삼국지’ 속 인물에 어울리는 연기자 설문조사에서 김형일은 부동의 관우였으니까요. 장비는 저와 몇 명이 경합이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형일 씨는 (방송사) 공채를 두 번이나 합격했네. 부럽다.”(김학철)“괜히 시험봤나 봐요. 그때는 어떻게든 바닥부터 올라가려고 했으니까. 바로 연기할 수 있었는데 왜 시험을 봤을까, 참 나.”(김형일)큰 웃음이 터진다.드라마 초반 왕건이 송악에서 처음으로 박술희, 능산(후에 신숭겸)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왕건은 이들의 무예 실력에 놀란다. 둘은 왕건의 반듯함에 끌려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말한다. 극에서는 신숭겸이 박술희보다 나이가 많다. 왕건은 “천하 용장과 호걸을 얻었다. 하늘이 내리신 선물”이라며 의형제를 맺는다. 의리의 시작이다. “그 장면이 나오는 회가 방송될 때 서울 남대문시장에 가봤어요. 난리가 났더라고. 삼겹살을 구워 드시던 시장 상인들이 같이 먹자고 저를 잡아 끄시더라고요. 박술희가 변 사부(왕건의 무예 스승)와 대결하는 장면에서 누가 이겼냐고 여기저기서 물어보시고, 궁금해서 잠이 안 온다고 하실 정도였죠. 대단했습니다.”(김학철)“대본이 나왔는데 그 다음 대본이 궁금할 정도인 거예요. 광고도 많이 찍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2박 3일간 촬영을 해도 힘들지 않았어요.”(김형일)두 사람한테도 의미가 큰 촬영이었다.“형일 씨 기억나요? 그 장면 찍고 (경북) 문경 세트에서 형일 씨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를 내가 같이 타고 올라올 때에요. 저는 매니저가 없었으니까. 형일 씨가 ‘목 마르지 않아요?’ 하더니 구멍가게에서 맥주 두 캔을 사 갖고 온 거야. 야, 그 장면 찍고 나서 마셨는데 너무 맛있는 거죠.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마셨어요. 인생 맥주라니까.”(김학철)“진짜 맛있었어. 진짜.”(김형일)“캔맥주 원샷. 완전 엊그제 같아요. 형일 씨가 ‘학철씨, 이거 마셔 봐요’라고 해서 정말 고마웠거든요. 캔에서 입을 못 떼겠더라고. 촬영하면서 땀을 너무 많이 흘렸잖아. 그때 그 맥주로 우린 완전히 친해진 것 같아. 정말 의형제가 된 계기죠.”(김학철)● “신숭겸 죽었을 때 흘린 눈물은 연기가 아니었다오”고려 첫 황제가 된 왕건에게 후백제 견훤과 벌인 공산(현 대구) 전투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직접 전투를 지휘했지만 대패했다. 목숨만 살았다. 아끼던 장수 8명을 잃었다.대구 팔공산은 왕건을 살리고 장렬히 전사한 이 8명을 기린다고 한다. 그중 신숭겸이 있다. 신숭겸은 사방으로 포위된 왕건을 탈출시키기 위해 황제의 갑옷을 입고 황제의 백마를 타고 적을 유인하고는 끝내 숨졌다. ‘태조 왕건’ 161회다. 후백제군은 왕건의 수급을 취해 견훤(서인석 역)에게 보낸다. 견훤은 왕건이 아니라 신숭겸임을 확인하고 그의 충성심에 탄복한다. -신숭겸이 황제 복장을 하고 왕건 앞에 나타나 눈물로 ‘형님 폐하’의 대업을 바란 뒤 적지로 향하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시청률도 대단했어요. 왕건 역할 최수종은 “아우야, 아니 된다” 하면서 눈물, 콧물, 침까지 흘리는 오열 연기를 펼쳤어요. “왕건과 신숭겸의 마지막 신은 무조건 한 번에 오케이 됐어요. 감정을 완전히 몰입했기 때문에 다시 찍을 수도 없었죠. 어떻게 남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제가 생각해도 신숭겸이 대단해요. (최)수종이도 저하고 헤어질 때 울었는데 나도 마찬가지였죠. 정이 엄청 든 데다 서운함까지 담겼다고 봐요. 참, 공산 전투 마지막 촬영하고 제가 ‘군에서 제대한 것 같았다’고 했어요. 문경에서 거의 3년을 있었으니 말이죠.”(김형일)“맞아요. 우리는 소위 ‘문경지리부도’를 꿰고 있었던 거야. 순대국집이 어디고, 세탁소가 어디고…. 그 지역에 태조 왕건 상호 딴 집도 많아. ‘왕건식당’부터 해서.”(김학철)“학철 씨도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 알려 드릴까요?”김형일 눈이 반짝거린다.“제가 죽고 나서 후백제가 신숭겸 수급을 견훤에게 가져갑니다. 견훤이 그 수급을 바라볼 때 화면에 눈 뜨고 죽은 신숭겸 얼굴이 잡혀요. 그런데 그 얼굴이 만든 게 아니에요. 제가 실제로 틀 밑에서 머리를 집어 넣고 진짜 눈 뜨고 있던 거예요. (전부 폭소) 만들 시간이 없었으니까.”(김형일)“와, 그게 가짜가 아니고 진짜였구나. 전혀 몰랐다. 하하하”(김학철) -신숭겸이 전사한 뒤 왕건이 겨우 살아 돌아왔을 때 박술희가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박술희는 공산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그 순간은 연기하는 현실을 벗어났다고 할까. 정말 의형제를 잃은 것처럼 빙의가 된 거지. 어떻게 연기를 해야겠다가 아니라 그냥 의도하지 않은 목소리를 내고 집중한 거예요.계산한 연기가 아니고 기운이죠. 신숭겸의 죽음은 극 전체의 하이라이트라고 봐요. 인간은 죽음에 대해 열등감과 두려움을 느끼거든. 안 죽어 봤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아닌 주군을 위해서 죽어?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컸을 거예요.”(김학철)-신숭겸 역할이 사라지면서 혼자 촬영하게 됐는데 외롭지 않았습니까.“희한한 게 드라마 내내 진짜 형제가 만나는 것 같았어요. 서로 연기하면서도 좋아하는 농도가 달라요. 시청자들도 그렇게 보셨다고 해요. 당연히 형일 씨가 빠지니 텅 빈 느낌이었죠. 그런데 신숭겸의 평산 신씨 가문 사람들이 촬영 현장이든 다른 곳이든 응원을 해 주더라고요.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올 정도였으니.”(김학철) ● 면천 박 씨 박술희가 평산 신 씨 시조급 대우 받다 신숭겸 원래 이름은 능산이다. 왕건이 황제가 되고 황해도 지역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능산의 활쏨씨에 감탄해 그 자리에서 신숭겸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그래서 신숭겸은 황해도 평산 신 씨 시조가 됐다. 신숭겸이 묻힌 곳은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근처에 유명한 ‘박사 마을’이 있는데 평산 신 씨 후손들이 많이 산다. 드라마 덕에 의성 김 씨 김형일은 평산 신 씨 VIP가 됐다. 드라마에서도 신숭겸이 죽고 이례적으로 신 씨 가문 이력을 내레이션으로 오래 설명했다.“한번은 신 씨 가문 시제를 지내는데 저를 초대했어요. 그쪽 요청으로 신숭겸 갑옷을 입고 참석한 적도 있어요. 제일 상석에 가문 어르신이 앉고 그 다음 자리에 제가 앉았어요. 뿌듯한데 일단 정신이 없죠. 하하하. 아래를 보니까 한참 어르신들이 계시더라고요. 이 집안과 인연이 큽니다. 드라마 ‘징비록’에서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으로 나왔잖아요. 신 장군도 평산 신 씨입니다. 보통 인연이 아닌 겁니다.”(김형일)“고려 개국공신 박술희는 후에 면천부원군으로 봉해져서 면천 박 씨 시조가 됐거든. 그런데 박술희가 현실에서는 평산 신 씨 ‘준(準)시조’가 됐다니까. 하하. 자기 선조하고 의형제를 맺었다고 이유없이 좋아해주는 거예요.”(김학철) -공산 전투에 나서지 않은 박술희가 만약 위기에 처한 황제를 신숭겸과 같이 모시고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겠죠. 당시 역사는 신숭겸을 선택한 거예요. 드라마로도 내가 있으면 시선이 분산됐을 거예요. 공산 전투 포커스는 신숭겸이었어요. 대신 나는 상주 아자개성(城)에서 성주와 ‘술희! 왔어?’, ‘머루주 한잔 올리겠습니다. 상부 어른’ 하면서 주목과 사랑을 받았잖아요. 의형제끼리 나눠 가져야지. 하하.”(김학철) ● 서로 부러운 게 많아 존경하는 ‘결의형제’둘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만나려고 한다. 만나서 둘만 아는 얘기를 하는 게 낙이다. 한 얘기 또 해도 좋고, 그러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땡 잡은’ 거다. 인생 묘미다. 술 안주, 밥 반찬이다. 너 잘 나고, 나 못났니 타령하면서도 기분 상하지 않는다. 내가 못 가진 것 그대가 가져 좋고, 한 번쯤 장난으로 질투 삼아 염장을 질러 본다. 사는 얘기하다 다시 ‘태조 왕건’ 추억으로 튼다. “박술희는 대주도금(아자개의 딸) 낭자라도 있었죠. 신숭겸은 가족도 여자도 없이 주군한테 충성만 다했어. 하하”(김형일) “그렇구나. 그런데 신숭겸은 워낙 존재감이 크니까 곁가지가 필요 없는 거지. 나는 짝사랑이잖아요. 한 번은 (김)갑수 형이 그러더라고. ‘너는 로맨스가 있어서 좋겠다’. 하하. 그 형은 스님 종간 역이었잖아요. 나는 머리를 빡빡 밀었는데 신숭겸은 머리도 길게 따고 아주 멋있었어요. 또 생각나네. 내가 대주도금 낭자에게 푹 빠져서 헤맬 때 신숭겸이 와서 구해줬잖아. 신숭겸이 ‘오늘 왜 그리 덤벙되는가’라면서 근엄하고 멋있게 꾸짖어요. 그래도 박술희는 바보처럼 ‘형님, 저 꾀꼬리 같은 목소리, 선녀가 하강한 것 같지 않소이까?’라고 하지. 그러다 군사 절반을 잃고는 왕건한테 불려 가서 된통 혼이 난 거야. 이어지는 장면이 나도 너무 서운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최수종한테 엄청 삐치셨어요. 왕건이 박술희한테 그러는 거야. ‘그 얼굴에도 여자를 생각하는가.’ (모두 포복절도) 와, 그 장면을 우리 어머니가 보시다 난리가 난 거예요. 최수종 가만 안 둔다고. ‘우리 아들이 어째서. 장동건보다 낫지’ 하시는데…. 말리지를 못하겠는 거야. 그렇게 ‘극대노’하는 거 처음 봤어요.”(김학철)“그래도 부럽더라. 하하.”(김형일)-연말 KBS 연기대상 조연상은 김학철만 받았습니다. “상복은 정말 더럽게 없어요.(모두 웃음)”(김형일) “신숭겸이 ‘러브 라인’을 탔으면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김학철)김학철은 연극 ‘청부’로1990년 제27회 동아일보 동아연극상 연기상(남자)을 수상했다.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서는 영화 ‘본투킬’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KBS 연기대상까지 상복이 제법 있다. 김형일은 바닥에 깔리는 저음으로 “요즘이었다면 신숭겸과 박술희 공동 수상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애매모호해진 분위기를 정리한다. 김학철은 “형일 씨한테 부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 잘 타는 게 제일 부러웠다. 형일 씨는 목줄을 한손으로 잡고 질주한다”며 의형제를 다시 치켜세운다. -박술희는 말 타는 게 특별했다면서요. “왕건하고 장군들 하고 말을 타면 내 말만 샛길로 빠져 혼자 가요. 하하. 그 때 신숭겸이 제일 통쾌하게 웃긴 했어요. 촬영하다 말한테 ‘어디 가니, 어디 가’를 한두 번 한 게 아니라니까. 미쳐 돌아버렸죠. 나중에는 말 한 필 내어 달라고 해서 혼자 연습했다니까요.”(김학철)“원래 내 몸을 말 걸음하고 리듬을 맞추면서 타야 하거든요. 그런데 박술희는 엉덩이와 박자가 따로 노는 게 보여. 하하. 뒤에서 보면 통통통통 튀면서 타는 거지. 다행히 대머리라서 철모가 안 보이니까 다행인 거죠.”(김형일)“하하. ‘통아저씨’ 허리 튕기는 것 있잖아요. 그런 거지. 형일 씨가 부드럽게 얘기한 건데 스태프들한테는 엄청 구박을 받았어요. 최수종 씨 잘 타지, 형일 씨는 한 손으로 타지. 왕건과 우리 둘이 삼각편대인데, 제가 못 타면 안 되잖아요. 형일 씨가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죽기 살기로 배웠어요. 극에서 신숭겸이 나를 구하러 왔잖아요. 그때 나는 역사와 현실을 혼동했어요. 진짜 ‘나를 구하러 왔구나’ 생각했어. 형일 씨는 모를 거예요. 그래서 지금도 만나는 겁니다.”(김학철)“말이 영리하게 사람을 가리거든요. 올라가서 어리버리하면 말이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하하. 학철 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수종이는 말 타고 돌격하라고만 했지, 말등에서 칼질은 우리가 다 했어요. 하하.”(김형일) ● 인생 부(副) 캐릭터도 가진 ‘우리’ 가수라면 히트곡 하나 얻기 쉽지 않은데 둘은 인생 최고 캐릭터 말고도 크게 각인된 부(副) 캐릭터가 있다. 김형일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열연했다. 몇 회 나오지는 않았지만 강렬했다. 김재규 역할은 세간의 관심을 온통 받는다. 이 역을 맡은 배우들끼리도 비교 된다. 준비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촬영 현장에서도 동선을 완전히 숙지하고 몰입해야 한다.김학철은 시청률 ‘대박’이던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조병옥 박사를 맡아 한 번 더 화제가 됐다. 외모와 말투가 판박이어서 조 박사를 아는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둘 다 연기력만으로 ‘태조 왕건’의 의형제를 잠시 잊게 했다.“당시 전두환 역할을 맡은 (이)덕화 형님이 ‘중요한 배역이 있다. 짧고 굵게 한 번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역할이 김재규였어요. 딱 드는 생각은 ‘하면서도 욕먹을 수 있지 않을까’였죠.”(김형일)-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조병옥 박사 연기에 감동해 직접 연락을 했다면서요.“이 전 의장님 얘기로는 제가 조 박사하고 똑같다는 거예요. 한참 ‘야인시대’ 할 때 63빌딩 중식당에서 저녁을 하자고 하세요. 의장님이 저를 식당에서 보시더니 대뜸 ‘조 박사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하시는 거야.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조 박사로 빙의했죠. ‘이봐, 만섭이. 의원 되고, 국회의장까지 되어 있구만’이라고 받아쳤죠. 의장 비서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의장님은 한참 웃으시면서 좋아하셨어요. 의장님 말씀이, 조 박사가 말년에 미국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할 무렵 전화를 주셨대요. ‘만섭이, 수술 잘 끝났어. 돌아가면 ‘용금옥’에서 한잔 하지.’ 그러고 얼마 안 지나서 돌아가셨다고요. 통곡하셨답니다.”(김학철)서로가 공유한 지난날을 돌아보니 계속 만나길 잘했다. 안 만났으면 그날들은 묻혔을 테고, 기억을 잃을 뻔했다. 추억마저 남지 않았을 수도.“진짜 행운이에요. 그런 드라마에서 만났다는 건. 드라마 100~200편 한 것보다 ‘태조 왕건’에서 형일 씨 만난 게 최고야. 우리는 평생 갈 거예요. 돈이 조금 있어도 쓸 친구가 없다면 슬픈 인생인데 저는 형일 씨 덕분에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요.”(김학철)“현실에서도 나를 1순위로 늘 대접해주는 박술희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화답하는 김형일.아직 6공화국이 끝나지 않아 ‘제6공화국’이라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들이 어떤 역을 맡을지도 기대된다. 어느 역에 어울릴까, 상상도 재밌다. 둘의 말이다. 앞으로도 둘은 보물처럼 서로를 아낄 것이다.-김형일에게 김학철이란?“경쟁자이자 친구죠. 전혀 다른 연기를 하니까 배울 것도 많고, 가져오고 싶은 것도 많아요. 나름대로 내 것을 한다고 하는데 학철 씨 것이 부러워요. 강조하지만 경쟁이라는 말은 내가 배울 게 많다는 의미에요.”-김학철에게 김형일이란?“저는 달라요. 경쟁자로 안 느껴요. 영원한 내 편이에요. 만나면 든든해요.”맞다. 확실하게. 캐릭터가 다르다. 그런데 잘 맞아 시너지가 난다.“‘태조 왕건’ 할 때 찍은 에어컨 광고가 기억나요. 내가 박술희 대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시원하겠구만’ 했어요.”(김형일)“맞아. 우리가 편하게 (에어콘) 회사가 좋아할 명장면을 만든 거예요. 그 장면이 예비 컷이었다가 메인이 됐지. 이런 거죠. 우리 사이가.”지금의 기억을 남기고 싶어 김학철이 구독자 10만을 자랑하는 자신의 유튜브 ‘김학철 TV’ 라이브를 연결하니 2만 명 넘는 유저들이 들어왔다. 김형일이 비치니 더 몰려들었다.인터뷰를 마무리하려는데 둘은 조건반사적으로 다시 ‘태조 왕건’으로 매일 만날 이유를 찾는다.“‘태조 왕건’을 ‘전원일기’처럼 10년, 20년 했으면 좋겠어요. 전국 돌아다니면서….”(김형일)“아니 시즌제로 해버리자.”(김학철)전국을 돌아다니니 지방과 농촌 살리기도 될 수 있을뿐더러 장군복을 벗은 신숭겸과 박술희가 어느 음식점에 가고 퇴근 후 생활은 어떤지 사는 재미를 다 보여줄 수 있겠다는 별의별 아이디어가 나온다. 신숭겸의 중후한 목소리를 흉내내는 병사도 나올 수 있고, 박술희가 무신에서 문신으로 옮겨 궁궐에서 적응 못하는 에피소드까지…. 기상천외한 김형일의 발상에 김학철은 웃다 지쳐 바닥에 쓰러졌다. 이러니 둘의 우정은 요지부동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천년 하드웨어에 미래지향적인 소프트웨어를 채운다.’천년고찰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진관사의 진면목을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어우러진 음악을 통해 다시 느끼고 들여다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행사다. 서울문화재단(이사장 박상원)과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는 21일 오후 6시 30분 진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음악회 ‘진관미학’을 개최한다. 올해로 20번째인데, 인기 탤런트 박상원 이사장이 예술감독을 맡아 공연을 총지휘했다. 박 이사장은 “고려 8대 왕 현종이 지은 진관사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로 이어지는 삼각산(북한산)의 품 안에 있다”며 “서울 시내에 이렇게 사계절 멋있는 사찰이 드물다”고 소개했다. 이어 “진관사의 기와, 단청, 계곡 물소리, 그리고 그 안에 역사…. 놓친 것들을 다시 확인하자는 음악회라 미학적이다”며 “이런 의미를 담아 이번 음악회 테마를 ‘진관미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덧붙였다.출연 가수 구성도 박 이사장이 짰다. 방송인 안현모가 사회를 맡고 재즈 보컬리스트 루카 마이너, 서민아와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 등이 나선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정가(가곡, 가사, 시조 등) 보컬리스트 ‘풍류대장’ 최여완, 가야금 아티스트 주보라, 이화여대 국악관 현악단 등도 출연해 평소 경험할 수 없는 음악세계를 보여준다. 박 이사장은 “전도유망한 젊은 실력파 뮤지션들을 엄선했다”며 “이들의 재즈, 클래식 기타, 가야금 소리 등은 사찰을 흔들지 않고 진관사 역사에 관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악회에는 30개국의 주한 외교대사들도 참석한다.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박 이사장은 “스토리가 있는 서울의 역사적 공간에서 앞으로도 미래형 공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천년 하드웨어에 미래지향적인 소프트웨어를 채운다.’ 천년고찰 서울 진관사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린다. 진관사의 진면목을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조화된 음악을 통해 다시 느끼고 들여다보자는 행사다. 서울문화재단(이사장 박상원)과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 주최로 21일 오후 6시 30분 진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음악회 ‘진관미학’이 열린다. 올해 20번째다. 인기 탤런트인 박상원 이사장이 공연 연출을 총지휘했다. 박 이사장은 “고려 8대 왕 현종이 지은 진관사는 백운대-인수봉-만경대로 이어지는 삼각산(북한산)의 품 안에 있다. 서울 시내에 이렇게 사계절 멋있는 사찰이 드물다. 진관사의 기와, 단청, 계곡 물소리, 그리고 그 안에 역사…. 놓친 것들을 다시 확인하자는 음악회라 미학적이다. 그래서 ‘진관미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라고 했다. 출연 가수 ‘라인업’도 박 이사장이 짰다. 전체적으로 음악회지만 연극적인 테마를 갖고 간다. 박 이사장은 “전도유망한 젊은 실력파 뮤지션들을 엄선했다. 이들의 재즈, 클래식 기타, 가야금 소리 등은 사찰을 흔들지 않고 진관사 역사에 관통할 것”이라고 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루카 마이너, 서민아와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이 나선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정가(가곡, 가사, 시조 등) 보컬리스트 ‘풍류대장’ 최여완, 가야금 아티스트 주보라 등도 색다름을 선사한다. 누구든지 참석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없다. 박 이사장은 “스토리가 있는 서울의 역사적 공간에서 계속 미래형 공연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한라대(총장 김응권)는 6일 대학 인공지능(AI) 역량 강화 목표를 비전으로 선포했다.이날 선포식에서 미래형 자동차 기술융합혁신인재양성 사업단(단장 고국원 미래모빌리티공학과 교수)은 AI 교육 혁신과 학생 역량 강화를 위해 산학(産學) 공동인증제도 및 장학금 체계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참여 학과는 미래모빌리티공학과, 컴퓨터공학과, AI정보보안학과, IT소프트웨어학과다. AI 리터러시부터 AI 개발자 양성까지 단계별로 교육한다는 것.● 산학공동인증제도-AI 학습 서버 도입사업단은 구글과 엔비디아 AI 인증 제도 등을 기반으로 AI 산학공동인증을 시행해 학생 AI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학생들은 기본부터 심화 과정 교육을 통해 실무에서 요구하는 AI 능력을 기른다.AI 기술을 실제 적용하고 활용 능력을 기르도록 AI 학습 서버와 AIOT(AI사물인터넷), 엣지 AI 임베디드 같은 시스템 실습 장비를 도입했다. 또 올해 신입생들은 엔비디아 AI 대사 초빙 교원에서 기초 AI 교육을 받고 젯슨 나노 자격증을 취득할 기회를 받는다. 2, 3학년생은 AI 활용 프로젝트와 자격증 취득을 통해 실무 능력을 높인다. 3, 4학년생들은 구글 기계학습 라이브러리인 텐서플로 개발자 자격증을 취득해 AI 알고리즘 개발자로 성장하게 된다.● 미래 모빌리티 특성화 교육 전국 5위권 진입 목표한라대는 학습 의욕을 높이고 실무 중심 AI 역량 제고에 더 집중하도록 AI 산학공동인증 취득 학생에게 장학금 40만 원을 지급한다. 김선옥 IT소프트웨어학과장은 “최근 AI 활용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AI 리터러시는 필수 역량이 됐다”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장학제도를 통한 학생 AI 역량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연 AI정보보안학과장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AI 기술 및 역량을 강화해 정보 보안과 데이터 분석 실무 능력을 높이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했다.한라대는 미래 모빌리티 특성화 교육 부문 전국 5위 내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AI 교육 모델은 산업 환경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경쟁력을 갖춰 성공 경로를 찾아가는 혁신 교육 발판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한라대는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동명대의 ‘오픈캠퍼스 진로진학박람회’가 지난달 31일 부산 남구 동명대 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 8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전호환 동명대 총장은 개막식에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걸 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동명대에 개설된 특별한 학과를 일일이 소개했다. 또 도전·실천·체험이 핵심 가치인 Do-ing(두잉)교육의 중요성과 경상국립대 동물병원, 펫파크, 캠퍼스 기반 은퇴자 시설 등 앞으로 캠퍼스에 들어설 주요시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반려동물대학, Z세대 관심 높아 이날 오전 10~오후 5시까지 열린 박람회에는 △전공 체험 △1:1 입학 상담 △캠퍼스 투어 등이 진행됐다. 특히 학생들은 이날 오전 10시, 오후 1시30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전공 체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수진 반려동물대학 학장은 “Z세대의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많은 학생이 찾아왔다”고 소개했다. 교사 11명과 동명대 입학사정관 5명이 나선 1:1 대입 상담에도 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렸다. 상담에 나선 조국희 부경고 교사는 “수시 원서 접수가 임박해 자신의 점수가 지원하려는 학과에 맞는지에 대한 따른 상담이 주를 이뤘다”고 전했다.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고소득과 사회봉사 가능 학생들은 간호학과나 작업치료학과, 언어치료청각재활학과, 스포츠 재활학과 등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할 수 있는 보건 계열의 학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곽옥금 동명대 입학홍보처장은 “두잉(Do-ing)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전통과 실용이 어우러진 학과들이 동명대에 많이 있다”며 “3회째 이어지는 오픈캠퍼스가 동명대의 진면목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동명대는 이달 9~13일까지 진행되는 2025학년도 수시 모집에서 1392명을 모집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대학의 창의적 지식, 연구 기술 자산이 세상에 기여하는 가치로 확실하게 전환됐다.’ 28일 서울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주최 ‘대학 창의적 자산 실용화 지원(BRIDGE · 브릿지) 사업 10주년 포럼’ 행사는 활기가 넘쳤다. 대학의 지식과 연구가 다양하게 사업화되고 창업으로 연계된 지난 10년간의 성과를 조명하고 향후 10년 사업의 비전을 알리는 포럼이다. 이날 브릿지 사업을 주관한 교육부,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해 대학 연구 인력, 브릿지 사업단 관계자, 민간 투자자 45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대학 자산의 개방과 공유를 기반으로 혁신적인 기술 산업 생태계가 형성된 것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대학과 기업-산업 사이의 다리가 제대로 놓였다며 성과를 호평했다.● “지역 발전에 기여하도록 방향 전환” 브릿지 사업은 소위 대학에서 썩고 있는 각종 성과물들을 살리자는 거다. 성과물 중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발굴하고 이전해 경제적 가치를 높이고, 창출된 수익을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2015년부터 시작됐다. 교육부 윤소영 지역인재정책관(국장)은 행사 시작부터 인사말 시간을 이례적으로 길게 할애해 브릿지 사업의 의미와 시작 배경을 되짚었다. “교육부의 대학 지원 사업 중 가장 특별한 사업”이라고 한 윤 정책관은 “브릿지 사업은 교육과 연구를 통해 얻어진, 대학의 창의적 자산으로 명명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 생활 편의,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대학과 세상을 연결하는 큰 의미가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윤 정책관은 브릿지 사업을 대학 경쟁력 강화 기반 사업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윤 정책관은 “내년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 라이즈) 도입에 발맞춰 브릿지 사업도 대학에서 빚어내는 원석이 지역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주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이광복 이사장도 “대학과 기업, 정부가 아주 긴밀히 협력한 모범 사례”라며 “지난 10년간 대학 자산을 죽이지 않고, 개방적 협력을 통해 민간 기술 혁신을 가져오게 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유기적인 브릿지가 국가 기술 혁신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대학과 지역 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맞춤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연구재단과 한국특허전략개발원, 한국엔젤투자협회 3자 간의 업무협약 체결식도 열렸다. “구글, 퀄컴 같은 회사의 공통점은 대학 실험실 기반의 창업 기업이라는 것”이라며 브릿지 사업의 10년 성과를 평가한 한국특허전략개발원 이재우 원장은 “치열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환경은 연구개발 추진체들에게 더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 발굴한 핵심 전략 기술에 대해 우수 특허를 창출하고, 그 특허가 우리 기업들에 잘 이전될 수 있도록 적극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국엔젤투자협회 김채광 부회장도 “이제 세계 경제는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 기업들이 이끌 것”이라며 “브릿지 사업을 통해 대학과 소통이 되는 많은 우수 기업이 나오고 있다. 대학이 창업의 요람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돕겠다”고 말했다.● ‘죽음의 계곡’ 문턱서 대학 살려내다 브릿지 사업은 1∼3기 사업을 통해 ‘흙 속의 진주’를 발견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의 1기 사업에서는 20개 대학을 지원했다. 2기(브릿지 플러스 · 2018∼2022년)에서의 24개교를 거쳐 3기(브릿지 3.0 · 2023∼2025년)에서는 24개교를 신규 선정하고 총 3년간 지원하고 있다. 올 6월 6개 대학을 추가로 선정했다. 3기 브릿지 3.0 사업에서는 588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10년 사업 경과를 설명한 가천대 이현애 브릿지사업단 기술이전센터장은 2014년 9월 23일 한국장학재단 24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교육부 정책 간담회를 언급했다. 이 간담회에서 브릿지 사업의 씨앗이 피었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우수한 성과를 내고도 사업화 자금 부족 등으로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대학을 꼭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1, 2기 사업을 통해 대학의 창의적 자산 실용화 기능 고도화로 국가 신산업 창출 기반이 확대되고, 대학의 사회적 기여가 활성화됐다. 지역 사회와의 동반 성장 모색과 기술 사업화의 질적 향상이라는 목표를 설정한 3기 사업에서는 참여 대학의 건당 기술 이전 수입료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브릿지 사업으로 잠재 기술의 활용도를 끌어올리는 기술 이전 사업화 프로세스가 완전히 정착되면서 대학이 결국 죽음의 계곡을 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학의 기술 이전 수입은 브릿지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14년 521억 원 수준이었으나 2023년에는 1005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기술 이전 건수도 같은 기간 3247건에서 5774건으로 늘어났다. 2022년 한양대와 LG화학은 수백억 원대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 세종대는 표준 특허 풀(Pool) 가입을 통해 매년 안정적인 기술 이전 수입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수사례 발표에서는 중대형 기술 이전 사업화 성공 사례와 관련 성과가 다수 소개됐다. 연세대는 1기 사업에서 기술 실용화 생태계를 조성했고, 2기에서는 창업 지원을 통해 자회사의 상장을 이끌어냈다. 3기에서는 대학 기술을 활용한 오픈이노베이션 기반을 마련해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이후 지분을 팔아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에피바이오텍(구 스템모어)’이 대표 사례다. 연세대와의 브릿지 사업을 통해 창업한 바이오 기업이다. 탈모 연구를 한 약대 교수로부터 시작됐다. 1기에서 탈모 치료 기술을 발굴하고 검증 과정을 거쳐 창업을 했다. 2기에서는 자금과 기술 지원을 강화했다. 비즈니스 모델도 조정했다. 이어 벤처캐피털 투자를 유치했다. 3기 사업 기간인 지난해 7월 코넥스(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설립 초기 회사는 탈모 방지, 모발 성장 촉진용 조성 기술만 있었다. 자본금 1억 원, 인력은 3명. 현재는 탈모 세포 치료제, 항체 치료제, 합성 의약품 영역까지 기술력을 넓혔다. 자본금은 11억5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직원도 21명이다. 2015년 1월 기업 가치는 1억 원이었는데 2022년 12월에는 572억 원이 됐다. 투자자에게 일부 지분을 매각했는데 이 돈을 대학에 재투자했다. 세종대의 경우는 브릿지 사업 이전인 2014년 교원 창업이 7곳에 불과했다. 그런데 현재는 28곳으로 증가했다. 창업 매출액이 같은 기간 30억 원에서 110억 원으로 늘어났다. 해외 특허 등록도 6건에서 61건으로 늘었다. 기술 이전료는 3억 원에서 이제 연간 149억 원에 달한다. 특히 동영상 표준 특허 수익화 부문에서 발군이다. 세종대는 브릿지 사업으로 영상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기술인 동영상 코덱 표준 특허를 창출해 높은 시장성을 확보했다. 로열티만 약 200억 원이다. VVC(Versatile Video Codec)에 이어 AV1(AOMedia Video 1)까지 표준 특허풀에 가입했다. 세종대 홍서경 최고비즈니스책임자(CBO)는 “향후 10년 동안 지속적인 로열티 수익을 기대한다. 후속 기술에 대한 표준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고부가가치 기술 이전 사업을 통해 성과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브릿지된 대학-기업, 브랜드로 키워야 이날 행사에서는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작가(전 바이브컴퍼니 부사장)가 기념 강연자로 참석자들의 의지를 끌어올렸다. 송 작가는 자기 삶의 주체적 의사 결정을 잘하는 사람의 힘이 커지고, 조직의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핵개인 시대’를 자신의 저서(‘시대예보’)에서 예고했다. 이 키워드에서 대학과 기업이 가야 할 길을 소개해 호평을 받았다. 송 작가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사회, 또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대학과 기업의 최초 시도와 도전, 그리고 ‘크리티컬 싱킹(Critical Thinking·어떤 사안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강조했다. 송 작가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더라도 구글에 넣고 검색해서 단어가 나오면 뭔가 하려는 생각은 접어라”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날은 또 대학이 보유한 특허, 기술 등을 이전받아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에 대한 IR 피칭과 민간투자자와 일대일로 소통하는 ‘Meetup’ 행사도 진행됐다. IR 피칭에는 35개사가 참여했다. 민간투자사 심사역 65명, 에인절 투자자 45명 등 110명이 ‘Meetup’에 참여했다. 기업들에는 투자자들과 연계망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최종 투자 협약 체결은 11월 부산에서 개최 예정인 ‘산학연 협력 엑스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패널 토론에서는 앞으로 브릿지 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손수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브릿지 사업의 향후 10년에는 브랜드화, 전문화 등이 필요하다. 독창적이고 강력한 브랜드로 키워 나가는 고민이 필요하다. 대학은 자체 펀드, 네트워크를 구축해 자생력을 더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계명문화대(총장 박승호)이 글로컬 직업교육의 선도대학으로 나서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계명문화대는 62년이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다져진 체계적이고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통해 지금까지 9만 7000명이 넘는 전문 직업인을 배출하면서 국내 직업교육을 선도해왔다. 그 결과, 교육부로부터 교육 품질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1주기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2019년∼2021년)과 2주기 전문대학 혁신지원사업(2022년∼2024년), 지방 전문대학 활성화 사업 운영학교에 잇따라 선정된 것이다. 글로벌 교육역량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9년 전문대학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파란사다리사업 주관 대학에 선정된 이후 올해까지 6년 연속 자격을 이어가고 있다. 또 2019년 전문대학으로는 유일하게 한국 국제협력단(KOICA) 고등교육분야 민관협력사업(2019년∼2024년)에도 선정됐다. 최근에는 대구지역 전문대학으로는 유일하게 ‘2024년 아세안 TVET( 직업기술교육훈련) 학생교류사업’ 운영기관에 선정됐다. 해외취업지원 프로그램인 K-Move스쿨 운영기관에도 10년 연속 선정됐다. 학생들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2023년 1월 영국 런던에 해외 거점센터인 ‘계명컬처센터’를 열고, 대학 국제화 기반시설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올해 여름방학 때에는 미국, 영국, 호주 등 7개 나라에 154명의 학생들에게 파견하면서 1인 당 최대 1110만 원(평균 약 680만 원)까지 지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건국대학교 창업지원단 KU창업클럽 소속 ‘인액터스 건국’이 지난 7월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된 인액터스 코리아 국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인액터스(Enactus)는 대학생들이 비즈니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업가정신과 사회적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글로벌 리더십 단체이다. 한국에서도 다수의 대학 내에 관련 학생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올해 한국 대회는 지난 7월 19∼20일까지 24개 대학팀이 참여해 진행됐다. 예선전과 준결승을 거쳐 건국대와 서울대, 서울여대, 연세대가 결승에 진출했고, 최종적으로 건국대 학생들로 구성된 인액터스 건국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건국대 팀의 프로젝트 ‘토버스(TOWBUS)’는 제주 바다의 골칫거리가 된 괭생이모자반으로 비누 등의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고 제주 해녀들에게 추가 소득 기회를 제공한 성과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결과를 토대로 토버스 팀은 최근 개최된 글로벌 임팩트 벤처 대회인 ‘헐트 프라이즈 방콕 써밋’에서도 한국팀으로는 유일하게 TOP 8 에 선정되는 성과를 올렸다. 인액터스 건국은 10월 2일부터 카자흐스탄에서 개최될 인액터스 세계 대회(Enactus World Cup)에 한국 대표 자격으로 참가해 전세계 32개 팀과 겨룰 예정이다. 인액터스 건국의 회장 박하민 학생(화장품공학과)은 “카자흐스탄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둬 건국대의 위상을 높이고 토버스의 성장과 비즈니스 활성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025학년도 대학 신입생 선발을 위한 수시모집이 다음달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최상위권 ‘N수생’의 유입 정도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의대 모집정원 확대에 따라 상위권 N수생이 대거 내년 대입에 응시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고3 수험생과 N수생간 수능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연계 합격선의 변화, 무전공 선발 등도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될 것으로 전망됐다. 종로학원은 지난 7월 12∼20일까지 전국의 수험생 2016명을 대상으로 ‘2025학년도 수시 지원 성향’에 대한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28일 발표했다. ● 수시 ‘상향 3-적정 3-하향 0’ 조합 가장 많아 종로학원에 따르면 6차례에 가능한 수시지원의 활용방안에 대한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7.2%에 상향지원을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반면 하향지원은 14.2%에 불과했다. 의대 모집정원 확대와 상위권 성적 수험생의 이과 쏠림 등으로 지난해보다 합격선이 다소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에 상향지원 의사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됐다. 수시 6회 지원에 대한 지원 조합은 ‘상향 3회·적정 3회·하향 0회’가 20.7%로 가장 많았다. 이어 ‘상향 2회·적정 2회·하향 2회’(19.1%)가 2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상향 3회·적정 2회·하향 1회’(15.0%), ‘상향 2회·적정 3회·하향 1회’(13.5%)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응답자들이 대체적으로 상향지원에 기본을 둔 응시 전략을 짜고 있음을 보여준다. ● 지방대 의대가 서울대 이공계보다 많아 이번 조사에서 최상위권 수험생들의 의대 선호 현상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지방권 의대와 서울대 이공계를 동시에 합격했을 때 최종 선택을 묻는 질문에 지방권 의대 선택이 56.5%, 서울대 이공계 선택이 43.5%이었다. 또 수도권 의대와 서울대 이공계를 동시에 합격했을 때에는 수도권 의대가 69.6%, 서울대 이공계가 30.4%로 나타났다. 특히 취업이 보장된 반도체, 첨단학과 등 대기업 계약학과와 의대를 동시에 합격했을 때에도 의대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67.5%나 됐다. 종로학원은 이에 대해 “금년도에도 서울대를 제외한 반도체, 첨단학과 합격선이 의대 수준을 밑돌 것으로 보여진다”며 “모집정원이 늘어난 의대와 중복합격으로 인한 수시 추가합격자가 지난해보다 상당히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편 무전공 학과 수시 지원은 특정 학과 지원의사가 67.6%, 문이과 계열내 통합선발인 유형2가 18.0%, 문이과 통합선발하는 유형1이 14.5%로 나타났다. 합격선은 학과별 지원이 가장 높을 것(58.2%)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유형1이 25.8%, 유형 2가 16.0%였다. 수험생들이 특정 학과에서 승부를 걸고 싶어 한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서울은 학생부종합전형 VS 경인·비수도권은 교과 전형 2025학년도 수시 선발 규모는 지역별로 차이를 보였다. 서울권에서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최대 승부처이고, 경인권과 지방권에서는 학생부 교과전형이 최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권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53.1%로 절반을 넘겼고, 교과전형 25.6%, 논술전형 13.0%, 실기/실적 전형 8.3%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경인권은 학생부 교과전형이 45.7%으로 가장 많았고, 종합전형 32.9%, 실기/실적 전형 10.7%, 논술전형 10.6%였다. 서울권에 비해서는 교과전형 비중이 대단히 높았다. 비수도권도 교과전형이 68.1%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어 종합전형 23.6%, 실기/실적전형 7.4%, 논술전형 0.9%의 순이었다. ● 학생부 종합전형, 학생부 교과전형보다 0.4∼0.7등급 낮아 최근 3년간 학생부 교과전형 합격선은 인문계열의 경우, 서울권은 2022학년도 2.45등급, 2023학년도 2.34등급, 2024학년도 2.57등급이었다. 대체적으로 2등급 중반대가 내신 평균 합격선이다. 자연계열에서는 2022학년도 2.22등급, 2023학년도 2.15등급, 2024학년도 2.13등급으로 2등급 초반대였다. 자연계열 합격선이 인문계열보다 0.2∼0.4등급 정도 높게 형성돼 눈길을 끈다. 무전공 선발에서 문이과가 동시에 지원할 수 있는 대학들에서는 문이과에 따라 유불리가 나타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내신 고득점은 이과 학생이 문과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서울권은 인문계열의 경우, 2022학년도 3.11등급, 2023학년도 3.00등급, 2024학년도 3.08등급으로 3등급 초반대였다. 반면 자연계열은 2022학년도 2.76등급, 2023학년도 2.64등급, 2024학년도 2.83등급으로 2등급 후반대. 학생부 종합전형의 서울권 합격선은 학생부 교과전형보다 0.4∼0.7등급 정도 낮았다. 0.4∼0.7등급 정도에서는 서류 심사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학년도 경인권 학생부 교과전형 인문이 3.76등급, 자연이 3.36등급이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인문 4.21등급, 자연 3.82등급이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합격선이 0.5등급 정도 낮게 형성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방권은 학생부 교과, 종합전형 모두 4등급 중후반대였다.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전형 모두 최근 3년간 추세로 봤을 때, 일정한 등급 합격선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등급에 계량적 지표가 서류심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 2025학년 N수생은 17만 8000명 내외로 추정 수능 통계 자료나 연도별 학생수 변화 추이 등을 고려할 때 2025학년도 N수생은 17만 8000명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4학년도의 경우 17만 7942명(접수자 기준)으로 20년 만에 최고치였다. 예상대로 17만 8000명이 넘어선다면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우는 셈이다. 서연고 자연계 일반학과 학생들이 N수생 대열에 합류할 경우 합격 가능권 학과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2024학년도 전국 의대 정시 합격점수 최저선과 2025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이 늘어난 점을 감안한 분석 결과이다. 서연고 이공계 일반학과에서 의대 합격점수로 진입되는 학과는 2024학년도 서연고 111개 자연계 일반학과 중 46개 학과, 41.4%였다. 내년 의대 모집정원 확대 조치가 적용되면 90개 학과, 81.1%가 의대 합격 가능권이 된다. 종로학원은 “단순 N수생 증감 여부 보다 상위권 N수생이 얼마나 유입되느냐가 2025학년도 수시 모집에서 큰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수시에서 수능 최저, 정시 합격선에 결정적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대구보건대(총장 남성희)가 보건·의료 계열 국가고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방사선사를 비롯해 치기공사와 임상병리사 국가시험에서 전국 1등을 잇달아 배출했다. 보건 특성화 대학 53년 노하우와 우수한 교육 환경이 어우러진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올 1월 합격자를 발표한 제51회 방사선사(放射線士) 국가시험에서 방사선학과 신동운 씨(23·올해 졸업)가 전국 수석을 차지했다. 250점 만점에 247점(98.8점/100점 환산 기준)을 받아 응시자 2738명 중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1972년 생긴 방사선학과는 전국 관련 학과 가운데 가장 많은 현역 방사선사를 배출했다. 치기공학과 졸업생 김창식 씨(26)는 2022년 치러진 제50회 치과기공사 국가고시에서 305점 만점에 299점을 맞아 응시자 1057명 중 수석이었다. 임상병리학과 졸업생 김명희 씨(24)도 같은 해 제50회 임상병리사 국가고시에서 280점 만점을 얻어 응시생 2917명 중 1등을 맛봤다. 만점자는 사상 처음이다. 대구보건대는 2005년 이후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주관 국가고시 전국 수석을 20명이나 배출했다. 또 작업치료학과는 작업치료사 시험에서 7년 연속 합격률 100%를 기록했다. 보건의료정보관리사(보건행정학과) 합격률은 82.8%, 물리치료사(물리치료학과) 합격률은 95.3%로 전국 평균 합격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치위생사 합격률은 94.5%나 됐다. 뛰어난 성적의 바탕에는 대한심폐소생협회와 미국심장협회(AHA) 심폐소생술 교육기관 인증을 받은 대구임상시뮬레이션센터를 비롯해 우수한 실습실과 기자재가 있다. 대구보건대 학과 실습실 대부분이 국가고시 실기시험장으로 쓰이고 있을 정도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몸집이 작아 교실 앞에 앉아 있지만 구김이 전혀 없던 친구, 몸집이 큰 친구들이 짖궂게 장난쳐도 늘 웃는 얼굴로 받아주던 친구, 계란말이에 소시지 반찬을 뺏어 먹으려 달려드는 아이들을 밀어내기는커녕 반찬뚜껑을 열고 먹으라고 내밀어주던 친구. 남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애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남들이 못하고 안 하는 재주를 두루 갖췄고, 티를 내지 않았지만 늘 조용하게 앞서가는 친구. 마음이 따뜻해 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던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친구.1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국 가요계의 ‘작은 거인’ 김수철(67)이 딱 그런 사람이다. 그를 학창시절 알고 지냈을 이들은 대부분 그가 나중에 분야가 어떻게 됐던 ‘작은 거인’으로서 큰 족적을 남길 것으로 믿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못다 핀 꽃 한송이〉로 이름을 알리고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1984년 가수왕이 됐다. 이어 〈정신차려〉로 화룡점정을 찍으며 국민가수 반열에 올랐다. 지금도 〈젊은 그대〉나 〈정신차려〉는 대학축제 등에서 지정곡처럼 불리며, 노래하는 이들과 관객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국민가요다. 우정을 다룬 김수철의 몇몇 노래는 사람 관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말로만 하는’ 우정과 사랑을 꼬집는다. 여기에는 그의 기질이 반영돼 있다. 그는 선천적으로 외로움을 경계하고 싫어한다. 따뜻하게 엮이는 인연과 그 관계 사이에서 샘솟는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물질과 돈을 따라 그 관계가 끊어지는 상황을 여러 차례 경험한다. 그런 과정이 너무 안타까워 노래로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여전히 정이 많은 시절로 여겨지던 1980년대에 그는 벌써 우정이 사라지고, 친구와 사람들 간 소통이 막히는 사회를 걱정한 것이다. 그만큼 그는 세상을 앞서 간 천재였다. 그에게 “당신의 깐부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만남을 수락했다. 하지만 정작 만남 장소에 그는 혼자 왔다. 배우 정준호에 이어 두 번째였다. 처음에는 ‘나홀로 깐부자랑’을 하겠다는 그가 의아했다.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정준호는 특정 친구를 깐부라고 소개하기엔 챙겨야할 절친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김수철은 그런 유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기를 들으면서 이해가 됐다. 그는 살면서 떠나간 친구들을 음악으로 다시 부르고 싶다고 했다. 특히 우정을 후순위로 미뤄놓은 사람들에게 각성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데뷔 45주년 기념작이자 33년 만에 낸 앨범 이야기와 함께 그의 깐부론에 귀가 쫑긋해졌다. ● 떠난 친구들을 40여년째 찾고 찾는 중 너는 어디에(2024)가난해도 꿈은 내 곁에 있었지힘이 들고 지쳐서 쓰러졌어도다시 일어나서 너에게로 달려갔었지우리 어렸을 땐 그렇게 살았지서로를 안아주고 다독거렸지세상 부러움이 하나도 없이 행복했었지그러던 어느 날 서로 남이 되어서괴로움을 알게 되었고우리의 흔적을 기억에서 꺼내어너를 찾아 해매었지만내 앞에 보이는 것은 하염없는 눈물 뿐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떠난 지 언제인데 잊었나그 시절로 돌아가고파너는 나에게서 나는 너에게서서로에게서 태어났잖아지금은 알 수 없는 세월만 흘려 보내고 있네너는 어디에너는 어디에- 타이틀 곡이 ‘너는 어디에’ 다. 이번 곡이나 예전 가사를 보면 정말 시대를 넘나든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던 마음인데 대신 노래로 시원하게 한풀이 해주는 것 같다. 나도 멀어진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나? “제가 정신적인 성숙이 덜 돼 보이잖아요. 하하. 성숙이 안 됐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우정이 저에겐 전부였어요.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20살 시절에 만난 친구 송승환, 양희은 누나, 이성미 누나하고 지금까지 가족처럼 지낼 수가 없었겠죠. 가사를 정말 ‘세상 걱정 같이 했던 친구들은 다 어디갔냐’하면서 썼어요.”- 담담하게 불렀지만 애절하게 들린다….“커가면서 사회도 알고, 돈도 알고, 그러면서 가는 길이 달라지는데… 그래요, 좋아요. 누구나 겪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한, 두 명은 우정을 고수할 줄 알았는데 그마저 어디 갔냐는 거죠. 지금 나는 아직도 우정을 지키고 살고 있는데, 그렇게 안 사는 주변 사람들이 외로워 보였어요. 돈 자랑을 좋다고 하는데 한계가 있죠. ‘우정이 1순위가 아니면 너한테 중요한 건 정말 뭐니?’라고 다시 묻고 있는 겁니다.”- ‘서로 남이 되어서 괴로움을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우정을 삶의 근본으로 삼고 사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더라고요. 남이 됐다는 건 ‘차이’가 생겼다는 거죠. 만나봐야 서로 다른 얘기하고, 금전적으로 이익을 서로 주고 받거나 필요가 없으면 만나지도 않고요. 그러니 괴로운 거죠. 돈을 많이 벌더라도 우정을 잃지 않는 친구들이 있어요. 우정을 삶의 근본으로 삼는 친구들은 변함이 없어요. 이들에게는 우정이 곧 이해심이에요. 그들은 겸손하고요, 조심하고요. 없는 사람들 앞에서 돈 자랑하지 않아요. ‘이런 근본을 알고 있던 친구, 한 두 놈이라도 찾고 싶다, 예전에 얘기를 했는데 너희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느냐’는 거죠. 그런 아쉬움을 극대화시킨 괴로움일까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노래와 가사에는 일관성이 있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감정의 연결이 된다. 시대 흐름을 초월한 우정의 가치가 담겨 있어서다.1985년 내놓은 솔로 3집의 수록곡 〈생각나는 사람〉이 떠오른다. 많이 알려진 노래는 아니다. 김수철 본인이 가장 아끼는 곡이라고 한다. 〈너는 어디에〉에서 보고 싶은 사람은 39년 전에 노래로 찾았던 〈생각나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번 노래가 ‘시즌 2’ 성격의 곡이라고 해도 될까. 〈생각나는 사람〉에서 친구는 언젠가 돌아올 존재라고 봤다면 〈너는 어디에〉의 친구는 노력을 더 하고 재촉해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나는 사람(1985)생각나는 사람 조용한 사람그리운 사람 언제쯤일까무엇을 하고 싶다나지막이 얘기 하던 사람오솔길 걸으며 산과 바다와함께 살고 싶다던 사람눈물이 마르기 전에 떠나간 사람눈물이 마르기 전에 떠나간 사람- 저 나름대로 내린 해석입니다. 어떻게 들리시나요?“와, 이런 분석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내가 작곡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은 다 망했어. 하하. 어쨌든 공감해요. 〈생각나는 사람〉을 작곡가 조동진(2017년 작고)형 집에서 새벽에 나오다가 쓴 곡이거든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다 같은 맥락이에요. 노래마다 사람의 가지를 친 거죠.” 〈생각나는 사람〉에서나 〈너는 어디에〉에서 말한 ‘떠난 사람’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열 받아서 ‘경고’를 했다. 돈을 찾으니 외로워지고, 그러면 사람과 사랑이 안 보인다고. 정신 차려(1989)모르겠네 정말 난 모르겠어도대체 무슨 생각하는지여기저기 거기 둘러봐도아무런 것도 하나 없는데왜 찾으려고 하니왜 떠나려고 하니자꾸 그럴수록 슬퍼져요혼자 살아가야 하니까말로만 그래놓고 또 또또다시 그러면 어떻하니자꾸 자꾸 그럴수록 사람사람이 사랑이 안보이잖아아 여보게 정신차려이 친구야 ● 출세, 돈, 권력 욕심을 지우는 나의 우정 DNA- 노래로 한 말 또 한 거다. 이번에는 결이 다른 노래를 하고 싶지 않았나요?“어떤 노래를 해야하는지 고민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우정 노래를 하고, 돈을 쫒지 않는 게 내 DNA에요. 누가 돈 준다고 하면 편하게 노래할 수 있죠. 그런데 내 일이 아닌 것 같으면 거절해요. 저는. 돈으로 안 되는 게 있고, 못 사는 게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니가 잘 돼도 옆에 있고, 못 돼도 옆에 있는 게 우정인데 그게 ‘어디로 갔냐’고 말하고 싶었어요. 친구가 잘 됐는데 내 옆에 없으면 우정 아니죠. 저는 ‘출세냐, 돈이냐, 권력이 우선이냐’라고 누가 묻는다면 무조건 우정을 택할 겁니다.” - 음악과 우정은 일치한다고 봐야 겠네요. 김수철 안에서는…. “음악은 내 영원한 친구죠. 할 줄 아는 게 음악 밖에 없어요. ‘딴따라’라고 반대하신 부모님 때문에 힘들었는데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음악을 계속했어요.” 다양한 히트곡에다 드라마 OST, 영화 사운드트랙, 방송 CM송, 애니메이션 주제가, 숱한 국제 행사의 음악까지 그의 손을 거친 곡들이 적잖다. 김수철 전곡의 권리를 100억 원대에 사겠다는 대단한 ‘분’도 있었다. 그런 자산에 창고에 쌓인 앨범도 몇 십장은 된다. 미 발표곡도 1000곡이라는데.그래도 김수철은 큰 돈을 벌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에다가 우정을 제대로 알라고 외치지만 정작 세속적인 의미에서 실속은 못 챙긴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돈이 되는 빌딩은 몰라도 음악 빌딩은 많다고 자랑한다. - 왜 그러셨을까요?“저는 애시당초 노래하는 것보다는 작곡하고 연주를 좋아했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스스로 내가 노래 잘 한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단지 내가 작곡을 해서 ‘필링(느낌)’은 잘 낸다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의도하지 않게 노래가 히트가 되고 돈을 벌었는데, 다시 꿈을 꿔야 하잖아요. 번 돈으로 꿈을 찾아서 간 거죠. 그러니까 빌딩이고 뭐고 안 샀죠. 작곡이 재밌고 꿈이었죠. 그래서 돈 벌면 음악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그런데 음악 장르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니까 영화 음악하다보면 클래식도 공부해야 하고, 국악도 연구해야하고요. 그러다 제안을 받아서 국가 행사 음악도 한 거고요.”그는 이런 식으로 살아온 그의 삶을 우정의 실천으로 정의한다. ‘돈이 되든, 안 되든’이라는 금전적인 이익은 생각조차 안 했다고. 김수철은 “우리 같은 직업은 어디서 불러줘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 같아도 드라마, 영화 일이 들어왔는데 하나라도 삐끗했으면 ‘김수철, 나이가 들어서 맛이 갔다’라고 소문이 퍼졌을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작업을 했고, 운이 좋게 다른 일들이 이어져 온 것”이라고 했다. - 그러면 이번 노래는 우정을 제대로 실천한 건가요? “돈 안 되는 음악만 했다가 이번에 돈 되는 음악을 한 거다. 하하. 가요를 제대로 해 본 거죠. 33년 만에. 기대보다는 오랜만에 기타치고 노래하니까 재밌었어요. 작년에 동, 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한 게 잘 안 됐으면 또 무거운 클래식 음악을 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잘 돼서 대중들이 관심 가져주실 때 얼른 가요 한 번 해봐야겠다고 한 거예요. 재밌게 곡은 썼는데 다음은 모르겠어요. 대중들에게 맡겨야지. 지금도 일은 들어오면 ‘고맙습니다’라면서 해요. 계획 이런 것 없고 들어오면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일단 반응은 좋아요. 가사가 들린다고(웃음). 그런데 나처럼 돈 안 되는 음악을 오래 한 사람은 잘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구나’라고 생각해요. 안 되면 또 빨리 다른 걸로 넘어가야죠. 하하.” ● 〈젊은 그대〉들이 다시 찾는 〈젊은 그대〉되기 위한 시도- 한창 활발하게 곡을 내던 시절과 비교하면 현재는 세대 차이에 따른 갈등이나 빈부 격차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이 적잖다. 각박해진 사회에서 노래가 예전처럼 소통 부재의 심각성을 알리는 창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기성 세대들은 흙을 만지다가, 콘크리트-아스팔트 시대를 살다가 갑자기 디지털 시대를 맞이했잖아요. 급변에 힘들어했던 사람들이라고요. 그런데 현 세대들은 디지털과 호흡하면서 태어났잖아요. 장착과 옵션이 달라요. 당연히 갈등이 생기고 있죠. 그런데 사람은 어쨌든 외로운 건 마찬가지잖아요. 내가 외로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결국 친구죠. 이번 앨범에서 나무의 메시지를 주려 했어요. 조건없이 주는 참사랑 말이죠.” -〈젊은 그대〉에서 ‘언덕을 같이 넘어 가자, 달려 가자’라고 했던 가사가 오버랩되기도 합니다….“함께 최선을 다해보자는 거죠. 뭔가 ‘계산한 것을 넘어가면 얼마의 이득이 있다’고 얘기하면 너무 이기적이고 이상하잖아요. 그것보다는 최선을 다해 한계를 넘어가면 희망과 꿈이 있다고 하는 게 좋잖아요. 그런데 넘어갔는데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면 보람이 생겨요. 나중에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힘도요. 저는 한 사람의 인생이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평가받야야 한다고 봐요. 결과를 자꾸 따지니까 서로 계산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기다려주고 이해해줘야 하는 과정을 함께 해보자, 나무처럼 말이죠.”그는 끊어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또 새 친구가 될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육체와 정신을 가다듬었다. 한 때는 손꼽히던 두주불사였고, 골초였지만 40살에 모두 끊었다. - 한 때 대단한 끽연가에 애주가셨지만 모두 끊었다고 들었다. 아직도 금주, 금연중 인가요? “술은 몇 병 마시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담배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3갑씩 피웠어요. 당연히 잠도 3~4시간 정도 밖에 못 잤지. 낮에 노래하고 오후에 작곡하고, 밤에 국악 배우러 다니면서 술, 담배 다 했으니 얼마나 몸이 힘들었겠냐고요. 그런데 기타도 힘이 있어야 치고, 작곡도 앉아서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해요. 죽기 살기로 술, 담배를 끊었죠. 먼저 담배를 끊고 술도 한 달 후에 끊었죠. 허벅지 꼬집고 팔뚝 비틀고 해가면서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보니 재미가 없잖아, 연락도 안 해요. 담배하고 술을 완전히 끊으니까 친구의 80%가 사라졌어요.양희은 누나, 송승환하고 녹음 관계자 등 몇 사람 안 남았어요. 그러니까 할 일이 없잖아? 그러니 음악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그리고 술을 안 마시니까 실수를 안 해요. 술을 끊으니까 내가 실수한 것만 생각이 나요. 술을 마시면 평상시 참았던 얘기를 공격적으로 하기도 했고, 후배들을 가르치려고도 했잖아요. 이제는 듣기만 하고 비판 안 해요. 대신 격려를 하게 됐죠. 사람들의 입장을 더 이해하게도 됐죠. 요즘 후배들이 제 연주하는 것을 아직도 부러워해요. 그러면 웃으면서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럴려면 연주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져라’고 해줘요. 지금 이 나이에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좋아요. ”- 들어온 일 하느라 좀 오래 팬들과 떨어져 있었다. 이제 국민 가요로, 국민 ‘작은 거인’으로 그동안 못한 세상 친구 찾기에 다시 나선만큼 신곡이 잘 떠서 많은 사람들이 불러줬으면 좋겠다. 새 우정 노래도 나오고 채비도 끝난 것처럼 보인다. 대학 축제마다 다녀서 〈젊은 그대〉를 부르면 대박일 듯 싶은데….“불러줘야 가죠. 섭외가 한 번도 없어요.”모두 그의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부르면 간다.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최고의 응원곡의 원곡자를 불러주는 학교가 없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섭섭하지 않은가?“국민 가요라고 하는데, 〈아파트〉는 아이들이 못 부르는 노래잖아요. 하하. 김수희 누나의 〈남행열차〉도 만날 수 없는데 사랑한다는 얘기라… 아이들 앞에서 조심해야 되는 노래고. 하하. 반면에 〈젊은 그대〉, 〈정신 차려〉는 모든 세대들을 넘나들고 아우르는 노래잖아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통합하고, 어려울 때 손잡고 가자는 노래죠. 김수철의 우정 노래에는 앞으로 반전은 없습니다. 그래서 김수철과 멀어질 일도 없고요.”여러 모로 순수하고 아직 꼬마 같은 음악 청년 ‘김수철’은 모두에게 존경받을만한 ‘젊은 그대’가 되기에 여전히 충분하다. 이미 ‘젊은 그대’들에게 ‘정신 차려’라고 해본 적이 있으니, 거만하지 않게 젊은이들을 동기부여하는 음악을 또 만들테고, 그렇다면 앞으로 친구가 늘었으면 늘었지 줄진 않을 것 같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인천국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발리행 비행기를 탔다. 쌍쌍의 신혼부부들로 한가득이다. 결혼식을 준비하고 치르느라 피곤했을 만도 하지만 모두 기대에 들뜬 모습이다. 더운 여름에 굳이 발리를 찾아야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적도 바로 남쪽에 있는 발리는 요즘 서늘한 건기다. 시차가 한 시간 빠른 한국보다 오히려 시원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관광과 휴양, 액티비티, 힐링, 쇼핑 등 거의 모든 테마의 여행이 가능하다. 숙소에 있는 시간이 늘 아깝게 느껴질 정도다. ● ‘헤드코치 미스터 신’ 하면 깎아주는 쿠타 발리의 관문 응우라라이 공항이 위치한 덴파사르는 발리의 상업과 행정 중심지다. 낮 시간 이곳 인근 바다에서는 익사이팅한 모험이나 액티비티 체험 코스를 즐길 수 있다. 저녁에는 공항에서 조금 벗어난 쿠타 비치 인근이 좋다. 고급 호텔과 카페, 라운지, 레스토랑 등이 밀집돼 있고, 어디를 가든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쇼핑을 즐기기에도 좋다. 쇼핑몰이 많고, 가격도 저렴하다. 폴로 셔츠 한 장이 30만 루피아다. 한화로 2만7000원 정도. 한국(약 10만 원)의 4분의 1 가격이다. 메인 도로와 비치 진입로 구석구석에 즐비한 핸드메이드 제품 상점들도 둘러볼 만하다. 호객을 위해 사람을 붙잡는 일도 없다. 선물용으로 동그란 라탄 가방이 눈에 띄었다. 개당 15만 루피아(약 1만4000원)라는 점원에게 “디스카운트”라고 하자 “안 돼”라는 한국말이 돌아왔다. 여행지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물건값 흥정이다. 몇 차례 물건값을 깎아 달라 졸랐지만 요지부동이다. 궁리 끝에 신태용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의 이름을 꺼냈다. 그는 2019년부터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팀을 동남아 최강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 공로로 현지에선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신 전 감독의 이름을 듣자 상인은 태도를 바꿨다. 결국 가방 3개를 30만 루피아에 살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현지인 가이드가 한국어로 “잘하셨습니다. 여기, 사람들. ‘미스터 신’ 너무너무 좋아합니다”라며 엄지 척을 해준다. ● ‘발리의 청담동’ 세미냑 이튿날 아침 발리 남부에 위치한 파당파당 비치를 찾았다. 숙소에서 승용차로 50분 거리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인천공항에서 같은 비행기를 탔던 신혼부부들이 적잖게 눈에 띈다. 파도가 높고 거칠어 서퍼들에게는 천국이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도 1시간 정도 수업만 받으면 서핑을 즐길 수 있다. 파도 속을 누비며 서핑을 즐기는 이들의 상당수는 호주인들이다. 그들은 서핑을 위해 이곳에서 한 달 이상 머무는 경우가 많다. 선베드를 펼쳐 놓고 그냥 누워 있는 것도 좋다. 한국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풍광이 주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바로 옆 술루반 비치를 찾았다. 바다 동굴을 배경 삼아 셀카를 찍고, 비치 위 카페에서 발리 맥주 ‘빈탕’으로 숨을 돌린다. 이어 발리의 7대 명소 가운데 하나인 울루와투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귀한 절벽’이란 뜻을 가진 울루와투 역시 아름다운 풍광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인도양 바다와 사원들을 사진에 담아 지인들에게 전송하자, ‘대박’이라며 문자가 쏟아졌다. ‘본전을 다 뽑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시 승용차를 타고 숙소가 위치한 쿠타 비치 위쪽에 위치한 세미냑을 찾았다. ‘발리의 청담동’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고급스러운 편집숍과 부티크가 즐비하고 카페와 라운지, 클럽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포크립과 스테이크가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맛본다. 이름값 그대로였다. 고기가 질기지 않고, 소스가 입안에서 기분 좋게 맴돌았다. 저녁을 먹으며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길거리 행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름신’을 경계하며 ‘아이 쇼핑’을 즐겼다. 발리에서만 살 수 있는 선물용 상품도 제법 눈에 띈다.● 7500원으로 누리는 명품 낙조 동남아 여행에서 골프는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삼일째 이른 아침, 파당파당 비치 인근에 위치한 ‘뉴 쿠타 골프클럽’을 찾았다. 아이언 클럽이 페어웨이 잔디를 쓸고 지나가는 감이 정말 부드럽다. 캐디 둘을 태우고 카트를 직접 몰면서 마시는 아침 공기는 시원한 얼음 생수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청량했다. 특히 14번홀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린 뒤로 바다가 펼쳐졌고, 그 바닷바람에 골프공은 깃털처럼 흔들렸다. 골프공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았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만으로 버디를 친 것 같았다. 이곳을 즐기기 위해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옷과 신발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상의는 폴로 셔츠 스타일로 입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다. 돈을 주고 빌려야 한다. 골프화도 대여할 수 있지만 세탁이 잘 안 돼 있어 신기에 찝찝할 수 있다. 골프장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발리 최고의 석양 포인트가 있다. 아야나이다. 오후 5시 무렵, 이곳에서 펼쳐지는 ‘해넘이’ 풍경은 세계적인 관광 상품이다. 이를 즐기려 가격이 제법 비싼 아야나 리조트를 찾는 신혼부부도 많다. 당일 리조트 시설 이용 예약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리조트 옆 레스토랑 테라스를 찾았다. 7500원짜리 레몬 주스에 민트 시럽 을 넣은 음료를 주문한 뒤 노을이 지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바다 위로 강렬한 붉은 빛을 내뿜으며 해가 떨어지자 장관이 펼쳐졌다.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연인이 서로 고개를 맞대고 있었다.● 발리 육개장 맛에 눈이 번쩍 나흘째가 넘어가면서 쌓인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숙소에서 지내는 일정을 짰다. 아침 식사 후 수영, 맥주와 간식을 즐기다 수영, 낮잠을 즐기다 다시 수영, 저녁 식사로 이어지는 일종의 ‘베짱이 콘셉트’였다. 이를 위해선 발리 남동쪽에 위치한 휴양 코스, 누사두아 지역의 물리아 빌라나 리조트가 안성맞춤이다. 리조트는 전용 해변까지 갖고 있다. 버기카를 타고 리조트 전체를 천천히 돌아다니다 라운지 바를 즐길 수도 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한국인이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아이템도 있다. 물리아 풀빌라 레스토랑의 아침 식사 메뉴에 포함된 육개장이다. 한국인 주방장이 아니면 흉내내기 어려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숙성된 김치까지 넣고 잘 끓여서인지 국내에서보다 더 칼칼하고, 속이 뻥 뚫리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빌라 근처 한국 식당에서 먹는 삼겹살도 별미였다. 한국인 사장님이 직접 만든 김치와 깍두기, 감자조림 반찬도 제대로였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방문지는 덴파사르 광역권 북부에 있는 우붓이다. 발리의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다. 원숭이숲(몽키포레스트)을 보고 거리 상점과 재래시장을 둘러봤다. 공항으로 가는 길. 우붓 도로 주변으로 대문을 생화로 장식해 놓은 집들이 여럿 보인다. 발리에서는 남자의 집에서 결혼식이 치러지는데, 생화는 결혼식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신혼부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상징물이다. 한국행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익숙한 신혼부부들이 눈에 띈다. 발리에서 쌓은 추억들로 모두 행복한 모습들이다. 발리 여행팁1. 필터가 내장된 샤워기 헤드는 필수품이다. 5성급 호텔이라도 물이 좋지 않다. 이를 닦을 때도 수돗물보다는 생수를 쓰는 게 좋다.2. 풀빌라에서 다이빙은 절대 금지다. 수심이 얕다. 최근 한국 신혼여행객 가운데 다이빙을 하다가 목을 크게 다친 경우도 있다.3. 호텔 침대 시트를 깨끗이 사용하라. 수박 물이 약간 묻었어도 세탁 요금으로 75만 루피아(약 6만8000원)를 요구한다.4. 호텔 내 흡연도 해선 안 된다. 객실에서 흡연을 했다가 200만 루피아(약 18만 원)를 낸 사람도 있다. 글·사진 발리=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물 들어올 때 정말 노를 빨리 잘 젓는다. 감탄스럽다. 경쟁력에서 한국을 크게 추월했다고 보는데 차이를 더 벌리려 한다. 일본 농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세계 정상급에 올라선 여자 농구를 차치하도 일본 남자 농구만 보자. 적극적인 투자와 체계적인 발전 계획에 따른 실행으로 지난해 FIBA(국제농구연맹) 월드컵에서 세계 상위 팀들과 대등하게 맞섰다. 그 덕에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2024 파리올림픽 남자 농구 본선에 나갈 수 있었다.FIBA 랭킹을 26위까지 올려 나간 파리올림픽에서도 조별 리그 2차전에서 세계 9위인 유럽의 강호이자 개최국 프랑스에 종료 직전까지 앞섰다. 대어를 잡아낼 뻔 했다. 연장전까지 가서 아깝게 90-94로 졌지만 세계 농구 팬들이 충격을 받았다.빅터 웸반야마(20 · 223cm· 샌안토니오) 등 NBA(미국프로농구)에서 활약 중인 멤버가 다수인 프랑스가 망신을 당할 뻔 했다. 172cm의 단신 가드 카와무라 유키는 29점, 7리바운드, 6어시스트로 날아 다녔다.한국 남자 농구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이후 본선 무대에는 근처도 못 가봤다. 현재는 아시아에서도 상위권 진입이 쉽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농구와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을 느껴온 국내 농구 관계자나 팬들은 이번에 확실하게 차이를 느꼈을 것이라고 본다.그런데 일본농구협회(JBA)가 이 기세를 멈추지 않고 올림픽 기간 중에 일본 농구 대표팀 전력을 지금보다 더 강화하는 세부 계획을 담은 2024년도 사업 방침을 최근 내놨다.매년 관례적으로 하는 발표이기는 하다. 그래도 올해는 올림픽이 끝나고 나름의 분석 등을 하고 정리를 한 뒤 내놓을 줄 알았다. 내심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고, 올림픽 분위기를 제대로 타고 실현해보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을 것으로 보인다.계획은 예상 이상이다. JBA는 아예 ‘농구로 일본을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대표팀 성적을 집중적으로 끌어 올리는 도전을 통해 농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저출산이라는 환경에서 ‘농구 패밀리’ 유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나아가 일본에서 야구와 축구가 가진 위상에 범접하겠다는 거다.당장 가능성 있는 젊은 선수들을 가장 높은 레벨의 대표팀 선수로 끌어 올리는 발굴-육성 연동 체계를 더 세밀하게 가다듬는 것과 더불어 일본 국적을 가진 해외 선수 발굴과 귀화 허가 신청에 관한 정비 활동도 강화하겠다고 한다.자국 리그와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팀 경기에 자주 나설 수 있도록 사전에 평가전 횟수 등도 충분히 확보하기로 했다. 특히 파트너십 제휴를 맺은 독일(3위) 호주(5위) 대표팀과의 평가전 등을 성사시키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또 FIBA, FIBA 아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FIBA가 주최하는 ‘대규모’ 국제대회 일본 개최에 더 적극 나서겠다고도 했다. 세계적인 팀과의 대결로 전력을 끌어올리고 국가적 농구 붐을 조성하는데는 국제대회 유치만한 게 없다. 한국은 1995년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현 아시아컵)을 유치하고는 통합 메이저 대회를 유치한 적이 없다.일본 농구의 빠른 추진력에 한국 농구는 알고도 반응을 못했다. 따라가는 시늉도 못한 건 사실이다. 그동안 양국 협회 행정력과 운영 능력의 차이를 받아들이기만 했을 뿐, 보유한 예산이나 자원을 가지고 무언가 시도하려는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지난 3월 농구협회의 새 상근부회장이 선임되면서 경쟁력 강화 등의 조짐이 있긴 하다.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까지 농구 등록 선수 100만 명 발굴, 남자 대표팀 올림픽 8강, 여자 4강 진출 등을 장기 비전으로 세운 게 대표적이다. 2030년 아시아경기 농구 금메달도 목표로 제시했다.안준호 남자 농구 대표팀 감독도 젊으면서 절실하고 헌신적으로 팀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 위주로 팀을 개편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대표팀 차출에 오락가락했던 국내외 스타급 주력 선수들에게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분명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귀화 선수 영입도 추진한다고 한다.관건은 세팅과 실행이다. 목표를 잡았지만 있는 쓸 수 있는 예산부터 궁금하다. 얼마나 대표팀 경기력 강화, 저변 확대 등에 과감하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계속 하는 얘기지만 뭐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예산을 확보하는 일도 숙제다. 일본은 일단 7월부터 내년 6월까지 경기력 강화 육성 활동 비용 만으로 9억 3100만 엔(약 85억 7000만 원)을 쓰겠다고 밝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은어, 속어죠. 제아무리 모든 것을 갖춘 인생도 건전한 교감을 나누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만능 연기자 겸 가수 김성환(74)은 연예계에서 바르고, 성실하고, 자상하고, 의리가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재주도 많다. 우선 본업인 연기력이 일품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 우리네 삶과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어 공감이 간다. 청국장 같이 구수하고, 향기도 오래간다. 입담도 탁월해 앉은 자리에서 좌중을 압도하기 일쑤다. 약장수, 뱀장수 흉내라도 내면 모두 자지러진다.그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잘 섞이고, 둥글게 둥글게 “남에게 옥 먹을 짓을 하지 말자”며 구김 없이 살아온 덕에 55년차 연예인이지만 조그만 구설수 하나 없다. 덕분에 연예계에서 그는 위 아래로 모두 통한다. 선배들은 그의 연락을 마다하지 않고, 후배들은 줄을 서서 그를 기다린다. ‘연예인의 연예인’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에게 유난히 아프고, 애지중지 다루는 손가락이 하나 있다. 트로트 가수 진성(64)이다. 40년 가까이 지켜본 동생이자 무명시절 수많은 곡절을 겪었던 동생이다. 그가 어려울 때마다 같이 아파하고 돌봐주고 살펴주었다.그런데 지금 진성은 국내 트로트계에서 BTS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무명의 설움을 딛고 최정상에 선 동생의 행보는 감탄을 넘어 존경의 경지다. 지난달 25일 두 사람이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 만났다. 점심을 같이 하며 지난 시간을 되짚는 두 사람에게서 형제 이상의 우애와 사랑이 느껴졌다. 둘의 대화는 동생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했다. “진성이, 이 놈이 초등학교만 나와서 그렇지 대학을 나왔으면 최하 장관이에요. 얼마나 머리가 비상한지 몰라요. 초등학교를 2년인가 다니다 말았는데 참 진성이가 말을 맛있게 잘해요. 똑똑해요.” 김성환이 진성을 만나면 자판기처럼 내뱉는 말이다. 진성이 계속 힘든 삶을 살았다면 꺼내기 어려운 얘기다. 그런 김성환을 보며 진성도 잊고 싶었던 과거를 소중한 추억처럼 기억하고, 스스럼없이 꺼낸다. ● “형님의 밤무대 포스터는 내 인생 길라잡이”1980년대 초중반 연예계에서 김성환은 ‘밤무대의 황제’로 불렸다. 현재 2040세대가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잘 나가는 탤런트가 굳이 야간업소에 나간다는 게 믿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방송 출연 말고 수입원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무엇보다 밤무대에 서는 일이 당시 연예인들에게는 최고의 돈벌이 수단이었다. 김성환은 1970년 TBC(동양방송) 10기 탤런트 출신으로 주말드라마 주인공까지 맡았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회사가 사라지면서 출연 횟수가 점점 줄었고 수입도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그는 8남매의 장남이었다. 처음 야간업소에서 파격적인 출연료를 앞세워 무대에 서줄 것을 요청했을 때만 해도 김성환은 거절했다.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으로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연할 드라마가 줄어들고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지면서 생각을 바꿨다. 처음 찾은 곳은 서울 중구 무교동 ‘엠파이어’ 클럽이었다. 직접 찾아가 염치 불구하고 출연을 사정했다. 하지만 “무작정 무대에 올릴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클럽 실무자 연예부장과 실랑이 끝에 며칠만 일하는 조건으로 무대에 올랐다. 김성환은 전라도에서 상경한 사람으로 변신하기로 했다. 하얀 바지 저고리에 고무신을 신고 구수한 사투리로 창도 하고 노래를 부르면, 손님들의 시선을 끌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내가 시방 전라도에서 올라왔는디, 나도 노래 한 자리 하세. 내가 이래봬도 우리 동네에서 남진이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고 소문난 놈이여. 전국노래자랑 나가가꼬, 내가 최우수상을 받을 뻔 했는데 어떤 놈이 빽을 써가꼬, 장려상으로 밀려버렸어.”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에 가요 메들리로 이어지는 그의 퍼포먼스는 대박을 쳤다. 이후 ‘김성환의 원맨쇼’로 서울지역 업소들을 접수했다. 한창 때는 하루에 16개 업소 무대를 소화했을 정도다. 이때 그와 진성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3살 때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부모 없이 홀로 자란 진성은 상경한 뒤 안 해본 일 없이 고생하다 야간업소 가수로서 성공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다. -밤 무대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고 들었다. 이 무렵에 동생(진성)은 어떻게 지냈나?“17살 때는 자장면 배달을 하고, 리어커를 끌면서 과일도 팔았죠. 18, 19살 때는 부잣집만 있다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님 댁에 벨을 누르고 변중석 여사님께 과일도 팔았습니다. 장사 초기에는 동네 시끄럽게 한다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과일만 들고 팔았어요. 나중에는 동네 어머니들을 전부 단골로 만들었죠. 몇 년씩 장사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6개월 만에 동네를 평정했어요. 목소리 깔고 ‘자, 과일이~ 왔어요’ 하면 전부 나왔어요. 그러다 1979년에 처음으로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습니다. 처음 간 곳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거리에 있는 ‘서울 카바레’였어요. 강남 영동호텔이 생기기 전이에요. 거기 밴드 마스터가 배우 정한용 선생의 동생이었어요.제가 당시 19살이었요. 미성년자라 출입할 수 없잖아요. 나이를 올려 들어갔죠. 거기서 성환 형님을 만난 거예요. 당시 형님은 무조건 100만 원 이상을 받았고, 저는 한 달에 30번을 찍어야만 30만 원을 받았어요.”-무명가수가 김성환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그렇죠. 하늘 같은 선배이기도 하고, 저는 업소 한 곳도 제대로 서기 어려울 때였어요. 당시에는 형님이 메인으로 나온 홍보 포스터가 곳곳에 도배되다시피 붙어 있을 때였어요. 부러운 존재였고 벽이 느껴졌죠. 그런데 처음 마주친 형님은 인간미가 있으셨어요. 보통 유명세가 있는 연예인과는 달리 포근한 눈빛과 말로 대해주셨습니다. 무대에서는 대단하셨습니다. 서민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기가 막히게 돌려 놔요. 주특기에요. 노래도, 입담도 재주가 많으셔서 너무 부러웠어요.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저렇게 형님처럼 살아야겠구나’, ‘나이를 먹어도 형님과 같은 삶을 살자’하는 생각도 갖게 됐고요.” 그에게 인사를 하는 진성에게 김성환은 처음부터 눈길이 갔다. 무명생활의 설움을 겪어봤기에 진성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그에게 진성이 전북 부안 출신이라는 점도 정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이곳저곳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를 소개하고, 부탁했다. 전국 각지의 행사에서 설운도, 태진아, 현철 등 당시 유명 가수의 ‘땜방 가수’로 그를 불러주기도 했다. “땜방가수는 유명 가수들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못 나올 것을 대비해 준비하는 가수를 말합니다. 그런데 해당가수가 나오지 않아야 돈을 받는 구조에요. 당시 진성이가 대기를 했지만 해당가수가 출연하는 바람에 돈을 받지 못한 적도 많았어요.” -‘땜방가수’ 자리도 형님이 주는 콩고물이라며 고마워 했다고 하던데….“만약 그 때 진성이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했다면 가수로서의 길은 끝났을 거예요. 아쉬움과 절망감을 이겨내고 노래를 계속했기에 오늘의 진성이 있는거죠.” 1994년 진성은 〈님의 등불〉로 인생 첫 음반을 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다른 가수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만 엮어 부르는 메들리만 했던 무명가수였다. 김성환은 그에게서 무명이라는 타이틀을 지워주고 싶었다. -〈님의 등불〉이 나올 때 형님이 해준 말이 있나? “당시에는 디스코풍의 트로트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이 출시되던 때였어요. 저는 뭔가 특이하게 만들고 싶어서 펑키 리듬으로 스타일을 잡고 불렀죠. 형님이 들어보시더니 ‘이 노래 괜찮다. 민요 같기도 하고, 창 같기도 하고, 너하고 색깔이 잘 맞는다’고 자신감을 주시더라고요. 그 뒤로 행사장에 가면 저하고 〈천년바위〉를 부른 박정식을 같이 불러 밥도 사주셨어요. 나중에는 본인에게 들어온 행사에 저희 둘을 묶어 한 팀으로 출연도 시켜줬어요. ‘돈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일단 무대에서 서야할 것 아니냐’며 많이 끌어주셨죠.”김성환은 1992년부터 진행하던 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9595쇼’에도 진성의 노래를 많이 틀었다. 음반을 내고도 인기를 얻지 못해 실의에 빠졌던 진성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 형님이 진성 씨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사실 형님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MC지만 노래를 선택하고 방송할 권한은 없거든요. 편파 논란이 나올 수도 있어서 PD에게 부탁하기도 어렵죠. 대신 PD들에게 제 노래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고 해요. 저에게도 힘이 될 얘기를 많이 해주셨고요. ‘한우물을 파면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다’ 라고. 성환 형님 얘기를 듣고 남진 선생님도 ‘언젠가는 너한테 기회가 와야. 너는 노래를 잘해버리니께 일단 버텨버려라’고 격려를 세게 해주셨죠. 남진 선생님은 연말 디너쇼 행사 할 때도 저를 무대에 세워주셨어요.”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마침내 진성은 2005년 발표곡 〈태클을 걸지마〉로 무명에서 탈출하게 됐다. 이어 2008년 내놓은 〈안동역〉이 4년 후 역주행하면서 빅히트를 쳤다. 그 덕에 반지하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성이 부친의 산소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다 번쩍 든 아이디어로 만든 〈태클의 걸지마〉의 탄생 스토리는 〈안동역〉이 인기를 얻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성환도 당시를 떠올리며 감동을 떠올렸다. “야~그 노래가 그렇게 뜰 줄을 몰랐어. 〈안동역〉이 뜰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안 했지. 진성이 돈 벌어서 지하 방 벗어났다는 얘기 듣고는 정말 기뻤어야.”진성도 맞장구를 쳤다. “형님 보고 인생을 따라간 덕이죠. ‘김성환’은 진짜 이 진성의 ‘길라잡이’십니다.” ● 〈묻지 마세요〉를 진짜 묻지 않고 형에게 준 동생이렇게 맺어진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에 내리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생의 지극한 형님 받들기도 있었다. “절대 가수들이나 작곡가가 자기 노래를 누구한테 쉽게 주는 법이 없어요. 안 부르고 썩고 있어도 안 줘요. 그런데 진성이는 자기가 정말 애착을 갖고 부르려고 했던 곡을 줬어요.”배우이면서 노래 실력이 출중한 김성환은 동생 덕에 2014년, 만 64세 나이로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그 전에도 김성환은 각설이 타령, 품바 등과 같은 앨범을 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제대로 된 히트곡 하나를 갖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진성이 그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녹음까지 마친 곡 〈묻지 마세요〉를 준 것이다. 〈묻지 마세요〉묻지 마세요묻지 마세요 물어보지 마세요내 나이 묻지 마세요흘러간 내 청춘 잘한 것도 없는데요놈의 숫자가 따라 오네요여기까지 왔는데앞만 보고 왔는데지나가는 세월에 서러운 눈물서산 넘어가는 청춘너 가는 줄 몰랐구나세월아 가지를 말어라-노래를 준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제가 직접 만든 노래에 대한 애착이 다른 가수보다 제가 참 많아요. 〈묻지 마세요〉도 〈안동역〉에 이어 히트하겠다고 생각하고 녹음까지 마친 곡입니다. 그런데 형님이 들어보시고 ‘야, 노래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선뜻 드렸지요. 그런데 노래가 ‘빵’ 터졌어요. 형님이 노래 잘하는 배우에서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세우셨어요.” -인기는 있었나?“이 노래는 ‘준히트’ 정도는 했어. 진성아. 진짜 가수는 노래 한 곡이 터지는 게 중요하더라고. 정말 고마운 노래야.”실제로 이 노래는 2016년 6월 대한노래지도자협회가 선정한 성인가요/트로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동생이 형님에게 진 빚을 갚은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고맙죠. 형님에게 주는 건 아깝지가 않습니다.”“아니야. 〈묻지 마세요〉가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찾게 된 계기가 됐어.”-두 사람에게 두고두고 안주거리로 삼을만한 인생 스토리가 생긴 것 같다?“정말 그래요. 형님이나 저나 이 스토리를 갖고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게 됐어요. 어디 나가서 그래요. ‘원래 형님한테 〈묻지 마세요〉는 4년만 쓰고 돌려달라고 했는데, 아직도 형님이 돌려주지 않고 있다’고 농담을 해요.그러면 팬들이 재밌어 하세요. 그래서 거기서 한 발 더 나갔죠. 이 문제를 형사사건으로 해결할지, 민사소송으로 풀지. 하하. 어떻게든 반환 청구 소송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하면 관객분들이 ‘소송하지 마세요’라고 해요. 제가 소송을 걸면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분명 들을 것이고요. 아직 형님하고 합의는 안 됐는데, 요것 때문에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하하.”● 값진 훈계로 동생의 초심을 보호하는 형지금 돌이켜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 일도 있었다. 40년의 지긋지긋한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스타 탄생의 문턱에 섰던 진성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진 것이다. 당시 김성환은 동생을 빨리 데려가려는 하늘이 무심하다 싶어 원망했다. 그 일은 진성이 〈안동역〉에 이어 〈보릿고개〉로 트로트계가 인정하는 대형 스타 가수로 자리매김하려던 2016년 혈액암 선고를 받은 것이다. 평생 고생만 해 슬픔과 한을 되새김질하는 노래만 했던 동생이었는데, 하늘이 또다시 시련과 고난을 주는 건가 싶었다. “암이 게 얼마나 무서운 병입니까. 제가 당시에 이 병원, 저 병원 알아봐주고 했는데 제일 안타까운 건 심장판막증까지 함께 발견된 겁니다. 수술을 해야하는데 마취를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생살을 뜯어내고 수술을 한다? 게다가 몇 번씩 기절을 했다는데 정말 내가 겁나고 힘들더라고요. 항암 주사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데, 내가 누워 있는 것 같았어요. 일찍 사고로 세상 떠난 내 친동생 생각도 떠올랐고….”“림프종 혈액암과 심장판막증이 한꺼번에 왔을 당시 저는 마음 속으로 생을 포기했습니다. 심각했죠. 대학병원을 예약해놨는데 형님이 거기보다는 다른 병원이 낫지 않겠냐며 신경을 써주셨어요.” 이후 기적적으로 항암 치료가 잘 돼 진성은 퇴원을 했고, 김성환은 그에게 두둑한 용돈을 쾌척했다. 병마를 이겨낸 모습이 대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형님한테, 그 전에도 크게 해드린 건 없지만 만날 때마다 어떤 식으로든 작게나마 성의 표시를 하려고 해요. 형님한테는 뭘 드려도 아깝지가 않아요. 친형 이상으로 형님한테 제 마음을 드리는 거죠.”김성환은 그 당시 삶의 끈을 놓지 않은 동생을 존경한다. 그래서 어렵게 얻은 지금의 인기와 명예를 꼭 지켜주고 싶다. 동생 진성은 이제 한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걸출한 스타이기 때문이다. 만날 때마다 동생에게 초심을 강조하는 이유다. 진성 역시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항상 무명 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세요. ‘변하면 안 된다’, 딱 그러세요. 이제 돈벌이가 되니까 제가 조금 비싼 시계 같은 것 살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비싼 물건을 그렇게 쉽게 사는 것 아니다. 그런 시계 찬다고 사람들이 너를 위대하게 보는 것 아니다. 시종일관 니가 어렵고 힘들었던 때의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야 인기도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훈계처럼 말씀해주세요. 살다보면 이런 점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그 때마다 가르침을 주시는거죠. 시련과 고난이 나에게는 축복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형님 때문입니다.” ● 숙성된 달인들의 크로스오버, 악극에 도전하는 형제 두 사람은 10살 터울이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챙길 수 있는 관계가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복 받았다고 말해주고 싶고, 잘 참고 잘 살았다, 버텨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주고 싶은 사이다. “동생이 형한테 잘하니 오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지.”“형님을 오래 보고, 배우고, 형님 편에 서서 거리감을 좁히다보니 이제 형님과 ‘레벨’을 맞출 수 있게 됐지라.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죠.”바쁜 스케줄로 연락은 자주 하지만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만나면 주변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우정을 뽐낸다. 둘만 있으면 오랜 밤무대 활동에서 다져진 둘만의 노래와 입담, 온갖 재치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가 척하면 나머지가 툭하고 받는다. 이러자고 약속한 적이 없는 데도 바로바로 가능하다. 그래서 더 재밌고, 의미가 크다. “어제도 형님하고 통닭집에서 재밌는 쇼를 하고 왔어요. 통닭집에서 우리한테 CF를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분위기를 만들어줬어요.”“통닭집에서 팬사인회를 하고 왔는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 순간 진성이한테 자연스럽게 ‘야, 안동역 잘 부르고 왔냐? 피곤해 보이네. 수고했다. 몸 보신하러 가자’라고 멘트를 쳤잖아. 그리고 진성이하고 뭔가를 뜯고 있는 데 그게 통닭인거지. 하하.”두 사람의 화학적 반응에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둘이 만나 편하고 좋은데, 이를 즐기는 팬들도 기뻐하니 일석이조다. 주변에서도 두 사람의 능력을 합쳐지면 좋은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성환은 좌중을 압도하는 입담의 달인으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그 덕에 방송 MC나 라디오 DJ도 숱하게 맡았다. 〈전국노래자랑〉 MC 제의도 여러 번 받았다. 진성은 진정성 있는 노랫말로 대중과 교감이 제일 잘 되는 특급 트로트 가수로 손꼽힌다. 두 사람도 이런 사실을 안다. 그래서 둘의 능력을 합해 인생과 생활속 연기, 노래로서 팬들과 호흡하는 악극을 계획 중에 있다. “진성이가 능글능글하게 말을 잘하거든요. 저하고 연습한 것도 아닌데 평소에도 말 궁합이 잘 맞아요. 진성이도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싶어하고, 저는 노래를 더 하고 싶고요.”“저는 가수라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해야지만, 추가로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을 보여드리고 싶어요.”두 사람의 미래 계획을 들으며 국내 연예계에서 듣도 보도 못한 초유의 ‘콤비’가 탄생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됐다. 얘기 중간중간 두 사람이 서로을 바로 보는 눈빛에서 앞으로 우정이 더 단단해질 수 있겠다는 강한 느낌도 전해졌다. 평생 깐부로서 함께 무대에도 서고 싶다는 김성환과 진성. 대한민국 연예계를 강타할 두 사람의 브로맨스가 그려낼 미래는 그래서 ‘묻지마세요’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국립 순천대(총장 이병운)가 최근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관하는 ‘2024년 고교 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 의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 2018년 이후 6년 만이다. 입학 전형 개선 노력과 고교 교육 연계 프로그램의 성과를 인정 받았다. 순천대는 향후 우수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한 지역 초·중·고교와 대학 간 연계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인적·물적 인프라 공유 순천대는 사업자 선정 이전에도 지자체와 연계한 ‘순천시 지역 인재 육성사업’을 통해 지역 고교생 대상 고교-대학 연계 사업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고교 교육 기여 대학 지원 사업’ 재진입을 통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고교-대학 간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한다. 또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지역 고교와 연계한 자율형 공립고 2.0 사업 등도 함께 추진하는 등 대학의 인적·물적 인프라 공유를 적극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 계획에 따르면 순천대는 전체 모집인원 1683명 중 687명, 약 40.8%에 해당하는 인원을 지역 인재 전형으로 선발한다. 전국 국·공립대 중 최고 수준에 해당한다. 단순히 프로그램 운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대학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초·중등과 고등 교육 연결 고리 확대 순천대는 지난해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글로컬대학 30’사업에 최종 선정돼 큰 주목을 받았다. 사업 2년 차에 접어든 현재에는 단과대학 폐지와 학과 통폐합을 통해 학문·전공 간의 벽을 허물고, 강소지역 기업 육성을 주도하는 혁신적인 3대 특화분야를 기반으로 하는 스쿨 체제(그린스마트팜, 애니메이션·문화콘텐츠, 우주항공·첨단소재)를 도입하는 등 지·산·학 협력 거점대학으로서의 역할 정립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이라는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지역 우수 인재의 이탈을 최소화하는 ‘정주형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자 초·중·고교와 대학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초·중·고 협의체 운영, △초·중·고 연계 교육과정 및 진로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컬대학 30’사업을 통해 초·중등 교육과 고등 교육 간의 연결고리를 확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교 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실제 대입정보 제공과 전형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거시적 목표를 확립한 것이다. 강희순 순천대 입학처장은 “‘고교 교육 기여대학 지원 사업’과 ‘글로컬대학 30’에는 우리 대학이 담고 있는 초·중·고교와 대학 간 연계 강화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가 담겨있다”며 “지·산·학 협력 거점대학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이 좋은 여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반드시 구축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라남도교육청이 발표한 ‘전남교육통계 분석자료집’에 따르면 2023년 전남 지역 유·초·중등 전체 학생 수는 19만 5876명으로, 2013년 당시 25만 9240명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무려 24.4%가 감소했다. ‘정주형 지역 인재’ 양성이라는 야심찬 청사진을 그려낸 순천대의 행보가 기대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