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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사진)이 1월 취임 콘서트에서 지휘한 말러 교향곡 1번 연주가 18일 애플뮤직 클래시컬에서 음원으로 공개됐다.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과 4, 5월 같은 장소에서 추가 녹음한 연주를 편집했다. 츠베덴 감독은 “서울시향과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하겠다”는 계획을 밝혀온 바 있다. 서울시향은 2011년 정명훈 당시 음악감독 지휘로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같은 곡을 음반으로 발매한 바 있다. 츠베덴 감독은 “나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하는 공연에서도 이 곡을 지휘했다. 나는 이 곡과 성장해 왔다”며 “이 작품은 청년 말러의 고뇌와 방황, 극복을 담고 있다. 말러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오케스트라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다”라고 말했다.음원으로 듣는 이 곡에서 츠베덴은 다양한 색채의 음향과 정밀한 표현력을 이끌어낸다. 첫 악장에서 새벽의 신비를 표현하는 서주부를 지나 주선율로 들어서는 동안 첼로의 주제에 다른 성부들이 가세하면서 각 파트의 조화가 편안히 잡혀 나갔다. 모서리마다 빛이 살아 있는, 서로를 듣는 유기적인 표정이다. 츠베덴은 적당한 부분마다 개성 있는 악센트를 부여하면서 단조로움을 피해 나갔다. 목관 주자들이 선보인, 때론 나른하고 때론 생동하는 음색들이 악장의 회화성을 살렸다. 3악장의 유대인의 ‘클레츠머’ 음악을 흉내 낸 악구에서는 현이 진한 색깔과 큰 볼륨으로 애절한 표정을 이끌어 냈다. ‘길가에 보리수 서 있었다’ 주제도 템포를 당겨 잡고 또렷한 윤곽이 드러나도록 했다. 4악장의 지시어는 ‘폭풍처럼 움직이며’다. 츠베덴 감독은 굉음처럼 몰아치는 합주 가운데서도 밸런스를 놓치지 않았다. 시작부의 혼돈이 가라앉아 가는 순간에 금관의 흐트러짐 없는 합주가 돋보였다. 마지막 종결부에서 템포는 한껏 당겨졌다. 고음현이 질풍같은 분산화음을 수놓는 가운데 관이 쉬는 박자에서는 자칫 음향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쉽지만 츠베덴이 당겨 잡은 박자가 그런 ‘빈’ 느낌을 해소해 주었다. 서울시향과 애플뮤직 클래시컬은 23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애플명동에서 ‘투데이 앳 애플 세션 쇼케이스: 공간 음향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1번에 흠뻑 빠져보기’를 진행한다. 츠베덴 감독과 웨인 린 서울시향 부악장, 이번 녹음을 진행한 최진 톤마이스터가 대담에 나선다. 서울시향은 2025년에 말러 교향곡 2번과 7번을 녹음하며 순차적으로 말러 교향곡 전체 녹음을 완성할 계획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 1월 취임 콘서트에서 지휘한 말러 교향곡 1번 연주가 18일 애플뮤직 클래시컬에서 음원으로 공개됐다.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콘서트 실황과 4, 5월 같은 장소에서 추가 녹음한 연주를 편집했다. 츠베덴 감독은 “서울시향과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하겠다”는 계획을 밝혀온 바 있다. 서울시향은 2011년 정명훈 당시 음악감독 지휘로 도이체 그라모폰(DG)에서 같은 곡을 음반으로 발매한 바 있다. 츠베덴 감독은 “나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처음지휘하는 공연에서도 이 곡을 지휘했다. 나는 이 곡과 성장해왔다”며 “이 작품은 청년 말러의 고뇌와 방황, 극복을 담고 있다. 말러의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오케스트라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다”라고 말했다. 음원으로 듣는 이 곡에서 츠베덴은 다양한 색채의 음향과 정밀한 표현력을 이끌어낸다. 첫 악장에서 새벽의 신비를 표현하는 서주부를 지나 주선율로 들어서는 동안 첼로의 주제에 다른 성부들이 가세하면서 각 파트의 조화가 편안히 잡혀나갔다. 모서리마다 빛이 살아있는, 서로를 듣는 유기적인 표정이다. 츠베덴은 적당한 부분마다 개성있는 액센트를 부여하면서 단조로움을 피해나갔다. 목관 주자들이 선보인, 때로 나른하고 때로 생동하는 음색들이 악장의 회화성을 살렸다. 3악장의 유대인의 ‘클레츠머’ 음악을 흉내 낸 악구에서는 현이 진한 색깔과 큰 볼륨으로 애절한 표정을 이끌어냈다. ‘길가에 보리수 서있었다’ 주제도 템포를 당겨 잡고 또렷한 윤곽이 드러나도록 했다. 4악장의 지시어는 ‘폭풍처럼 움직이며’다. 츠베덴 감독은 굉음처럼 몰아치는 합주 가운데서도 밸런스를 놓치지 않았다. 시작부의 혼돈이 가라앉아가는 순간에 금관의 흐트러짐 없는 합주가 돋보였다. 마지막 종결부에서 템포는 한껏 당겨졌다. 고음현이 질풍같은 분산화음을 수놓는 가운데 관이 쉬는 박자에서는 자칫 음향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쉽지만 츠베덴이 당겨 잡은 박자가 그런 ‘빈’ 느낌을 해소해 주었다. 서울시향과 애플뮤직 클래시컬은 23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애플명동에서 ‘투데이 앳 애플 세션 쇼케이스: 공간 음향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1번에 흠뻑 빠져보기’를 진행한다. 츠베덴 감독과 웨인 린 서울시향 부악장, 이번 녹음을 진행한 최진 톤마이스터가 대담에 나선다. 서울시향은 2025년에 말러 교향곡 2번과 7번을 녹음하며 순차적으로 말러 교향곡 전체 녹음을 완성할 계획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탈리아 피아노계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31)가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7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내한 공연이 취소됐던 아쉬움을 달랠 이번 무대에서 그는 멘델스존 ‘무언가’ 발췌와 브람스 소나타 2번,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라 발스’를 들려준다. 라나는 2011년 18세로 몬트리올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년 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준우승과 청중상을 차지했다. 그의 위상은 오늘날 음반계에서 더 빛난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쇼팽 연습곡집, 프로코피예프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등 워너 레이블로 발매하는 음반마다 그래머폰, 프레스토 등 음반 전문지의 주목과 상찬을 받으면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불처럼 타오르는 소리를 만들어 낸다”고, 뉴욕타임스는 “음악적 야성과 지성을 함께 갖췄다”고 그의 연주를 평했다. 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라나는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역사, 기회로 가득 찬 일”이라며 “악보에 쓰이지 않은 것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고 그 해석의 과정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중기 낭만주의 멘델스존의 곡과 후기 낭만주의의 브람스, 근대 작곡가 라벨의 곡을 연주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청중이 집중했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을까요. “이번 공연의 주제는 ‘환상’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혁신적이죠. 멘델스존은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으로 작품을 엮어 내는데, 그의 곡들은 짧은 시간 안에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브람스 소나타 2번은 실제로는 그가 작곡한 첫 피아노 소나타이자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삶에 대한 갈망의 에너지로 가득찬 곡이죠. 라벨 ‘밤의 가스파르’는 공포소설과 같은 작품이고, ‘라 발스’는 낭만주의의 환상을 마지막에 무너뜨리는 작품입니다.” ―연주가들은 악보가 규정하는 것과 자신의 독창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나갑니다. 그 ‘적절함’이란 어떤 것일까요. “제 개성이 작곡가의 개성을 압도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작품을 압도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곡가는 악보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주어지는 거죠. 이 여지가 연주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탐구하고 싶은 작곡가가 있다면…. “슈베르트 작품을 무대에서 연주한 경험이 없어요. 슈베르트는 앞으로 탐구해 나갈 첫 번째 작곡가입니다.” ―유년기를 보낸 이탈리아 동남부의 레체에 대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레체는 바로크 양식의 예술적인 도시로서 ‘남부의 피렌체’라고 불립니다. 도시 전체가 빛에 차 있는 느낌을 줍니다. 제 할아버지는 교외에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아름다운 자연의 환경이 제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이탈리아 피아노계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베아트리체 라나(31)가 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7년 만의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2021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내한 공연이 취소됐던 아쉬움을 달랠 이번 무대에서 그는 멘델스존 ‘무언가’ 발췌와 브람스 소나타 2번,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라 발스’를 들려준다.라나는 2011년 18세로 몬트리올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했고 2년 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준우승과 청중상을 차지했다. 그의 위상은 오늘날 음반계에서 더 빛난다.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쇼팽 연습곡집, 프로코피예프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 등 워너 레이블로 발매하는 음반마다 그라머폰과 프레스토 등 음반 전문지의 주목과 상찬을 받으면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독일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불처럼 타오르는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뉴욕타임스는 “음악적 야성과 지성을 함께 갖췄다”고 그의 연주를 평했다.동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라나는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은 다양한 아이디어와 역사, 기회로 가득 찬 일”이라며 “악보에 쓰이지 않은 것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고 그 해석의 과정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밝혔다.―중기 낭만주의 멘델스존의 곡과 후기 낭만주의의 브람스, 근대 작곡가 라벨의 곡을 연주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청중이 집중했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을까요.“이번 공연의 주제는 ‘환상’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혁신적이죠. 멘델스존은 아름다운 선율과 화성으로 작품을 엮어내는데, 그의 곡들은 짧은 시간 안에 시각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브람스 소나타 2번은 실제로는 그가 작곡한 첫 피아노 소나타이자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삶에 대한 갈망의 에너지로 가득찬 곡이죠. 라벨 ‘밤의 가스파르’는 공포소설과 같은 작품이고, ‘라 발스’는 낭만주의의 환상을 마지막에 무너뜨리는 작품입니다.”―연주가들은 악보가 규정하는 것과 자신의 독창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나갑니다. 그 ‘적절함’이란 어떤 것일까요.“제 개성이 작곡가의 개성을 압도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 작품을 압도할 자신감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곡가는 악보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주어지는 거죠. 이 여지가 연주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앞으로 탐구하고 싶은 작곡가가 있다면.“슈베르트 작품을 무대에서 연주한 경험이 없어요. 슈베르트는 앞으로 탐구해 나갈 첫 번째 작곡가입니다.”―유년기를 보낸 이탈리아 동남부의 레체에 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레체는 바로크 양식의 예술적인 도시로서 ‘남부의 피렌체’라고 불립니다. 도시 전체가 빛에 차있는 느낌을 줍니다. 제 할아버지는 교외에서 포도주를 만드셨는데, 아름다운 자연의 환경이 제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2막.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는 큰 홀이다. 1930년대 사무원 복장의 여성들이 타이프라이터를 치며 자료를 정리하고, 히틀러유겐트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청소년들도 서 있다. 조카 엘리자베트의 손을 잡은 영주는 어딘가 탐욕스러워 보인다. 원작에서는 1막에만 등장하는 욕정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돌아다닌다. 카메라맨이 무대 위에서 그의 표정을 찍고 그 영상은 무대 뒷면에 투사된다. 베누스의 표정은 진정한 사랑을 잃고 고뇌에 빠진 여인을 연상시킨다. 17∼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15일 리허설 현장이다. 국립오페라단이 바그너가 32세 때의 중기 대작 오페라 ‘탄호이저’를 1979년 한국 초연 이후 45년 만에 무대에 올린다. 연출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해 온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이 맡는다. 그는 2015년 국립오페라단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와 202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 한국 청중과 만난 바 있다. 프로그램북에 게재한 연출가 노트에서 요나 김은 “이 오페라는 에로스와 헌신적 여성을 모두 갈구한 바그너의 자기모순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베누스는 사랑에 충실했던 정열적인 여자일 수도, 엘리자베트는 이타적 사랑을 강요당한 희생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누스는 악, 여주인공 엘리자베트는 선이라는 이분법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다. 원작에 나타난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를 균등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는 바그너가 이 작품을 위해 내놓은 여러 버전을 섞었다. 1막에는 베누스의 비중이 크고 그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파리 버전을 택하는 한편 장식성이 강조된 발레 장면은 뺐다. 2막과 3막에서는 ‘생생함이 살아있는’ 초연 드레스덴 버전을 사용한다. 리허설에서 구원의 여인 엘리자베트 역을 맡은 소프라노 레나 쿠츠너는 이 역을 위해 도면을 그리고 잘라낸 가수 같았다. 순수하고 투과력 강하며 볼륨이 큰 소리가 객석 뒤편까지 선명히 뻗어나갔다. 탄호이저 역의 테너 하이코 뵈르너도 반세기 전 독일의 전형적 헬덴(영웅적) 테너들의 특징적인 소리를 선보였다. 흥미로운 출연자는 경건한 기사 볼프람 역의 톰 에릭 리였다. 비브라토가 강하고 여러 결의 소리가 합성된 듯한 개성적인 음색이었으며 힘들이지 않고 소리를 냈다. 그가 노래하는 ‘저녁별의 노래’는 그 어떤 가수와도 달랐다. 쿠츠너와 뵈르너, 리는 17일과 19일에 출연한다. 베누스 역은 메조 소프라노 쥘리 로바르장드르, 영주 헤르만 역은 베이스 최웅조가 맡는다. 18, 20일 공연은 탄호이저 역 애런 코울리와 엘리자베트 역 문수진, 베누스역 양송미, 볼프람 역 김태현, 헤르만 역 하성현이 출연한다. 2016년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 필립 오갱이 지휘를 맡았다.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노이오페라코러스가 출연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2막. 노래자랑 대회가 열리는 큰 홀이다. 1930년대 사무원 복장의 여성들이 타이프라이터를 치며 자료를 정리하고, 히틀러유겐트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청소년들도 서있다. 조카 엘리자베트의 손을 잡은 영주는 어딘가 탐욕스러워 보인다. 원작에서는 1막에만 등장하는 욕정의 여신 베누스(비너스)가 돌아다닌다. 카메라맨이 무대 위에서 그의 표정을 찍고 그 영상은 무대 뒷면에 투사된다. 베누스의 표정은 진정한 사랑을 잃고 고뇌에 빠진 여인을 연상시킨다. 17~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15일 리허설 현장이다. 국립오페라단이 바그너 32세 때의 중기 대작 오페라 ‘탄호이저’를 1979년 한국 초연 이후 45년 만에 무대에 올린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해 온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이 연출을 맡는다. 그는 2015년 국립오페라단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와 2022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니벨룽의 반지’를 통해 한국 청중과 만난 바 있다. 프로그램북에 게재한 연출가 노트에서 요나 김은 “이 오페라는 에로스와 헌신적 여성을 모두 갈구한 바그너의 자기모순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베누스는 사랑에 충실했던 정열적인 여자일 수도, 엘리자베트는 이타적 사랑을 강요당한 희생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베누스는 악, 여주인공 엘리자베트는 선이라는 이분법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다. 원작에 나타난 금욕주의와 쾌락주의를 균등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는 바그너가 이 작품을 위해 내놓은 여러 버전을 섞었다. 1막에는 베누스의 비중이 크고 그의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표현되는 파리 버전을 택하는 한편 장식성이 강조된 발레 장면은 뺐다. 2막과 3막에서는 ‘생생함이 살아있는’ 초연 드레스덴 버전을 사용한다. 리허설에서 구원의 여인 엘리자베트 역을 맡은 소프라노 레나 쿠츠너는 이 역을 위해 도면을 그리고 잘라낸 가수 같았다. 순수하고 투과력 강하며 볼륨이 큰 소리가 객석 뒤편까지 선명히 뻗어나갔다. 탄호이저 역의 테너 하이코 뵈르너도 반세기 전 독일의 전형적 헬덴(영웅적) 테너들의 특징적인 소리를 선보였다. 흥미로운 출연자는 경건한 기사 볼프람 역의 톰 에릭 리였다. 비브라토가 강하고 여러 결의 소리가 합성된 듯한 개성적인 음색이었으며 힘들이지 않고 소리를 냈다. 그가 노래하는 ‘저녁별의 노래’는 그 어떤 가수와도 달랐다. 쿠츠너와 뵈르너, 리는 17일과 19일에 출연한다. 베누스 역은 메조 소프라노 쥘리 로바르장드르, 영주 헤르만 역은 베이스 최웅조가 맡는다. 18, 20일 공연은 탄호이저 역 애런 코울리와 엘리자베트 역 문수진, 베누스역 양송미, 볼프람 역 김태현, 헤르만 역 하성현이 출연한다. 2016년 국립오페라단 ‘로엔그린’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 필립 오갱이 지휘를 맡았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합창단, 노이오페라코러스가 출연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노 신동 출신의 러시아 피아노 거장 예브게니 키신(53)이 11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리사이틀을 연다. 3년 만의 내한인 이번 공연에서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7번, 쇼팽 녹턴 Op.48-2, 환상곡 Op.49, 브람스 4개의 발라드와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2번을 연주한다. 키신은 12세에 모스크바에서 리사이틀을 열며 주목을 받았고 6년 뒤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올라 신들린 연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지휘자 카라얀의 딸 아라벨은 “내 생에 딱 한 번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보았다. 음반 발매를 위한 키신 오디션 뒤였다”고 회상했다. 이번 공연 주최사 크레디아는 “2006년 이후 키신의 내한 공연은 예외없이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30회 넘는 커튼콜과 1시간에 걸친 10곡의 앙코르 등 늘 화제를 남겼다”고 전했다. 키신은 1990년부터 해외에 거주해 왔으며 영국과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있다. 2021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 요구 운동에 참여했고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 비난했다. 올해 7월에는 러시아 법무부가 그를 스파이에 해당하는 개념인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했다. 러시아는 작가 보리스 아쿠닌 등 정부를 비판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같은 명목으로 통제해 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한국 오페라 초기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의미 깊은 자료들을 만난다.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KOHM)은 첫 기획전 ‘한국오페라 첫 15년의 궤적 1948-1962’를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1층에서 개막했다. 1948년 공연된 첫 국내 오페라 ‘춘희’(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프로그램북을 비롯해 오페라 한글 번역 대본 등 문서 자료와 모형, 영상 등 47점을 선보인다. 2022년 설립된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은 원로 성악가 박수길(전 국립오페라단장)과 오페라 애호가인 성규동 이오테크닉스 회장이 공동대표를 맡아 2022년 설립했다. 변두리 고서점까지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한편 오페라 관련 인사와 가족 등의 기증도 받아 지금까지 1000여 점의 자료를 수집했다. 2027년 경기 과천시에 박물관 건물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이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는 경기 안양시 이오테크닉스 사옥에 보관하고 있다.이번 전시에서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보관만 하고 있던 ‘춘희’와 카르멘 한국 초연(1950년) 프로그램북, 국내 첫 창작 오페라인 현제명 ‘춘향전’(1950년)의 1951년 피란지 대구 프로그램북도 사본으로 공개됐다. 전시 개막일인 10일 오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박물관 사무총장인 손수연 단국대 교수(문화예술학)는 “‘춘희’와 ‘카르멘’ 프로그램북은 당시 공연 제작을 맡은 테너 이인선의 유족들이 기증해 확보했다”며 “원로 오페라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료들이 사라지고 있어 국가 차원의 아카이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길 공동대표는 “앞으로 더 많은 자료가 모이기를 기대한다. 예술가들이 나서서 박물관 건립을 해야겠지만 경제적 뒷받침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라며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이 전시는 내년 3월 30일까지 열리며 다음 달 28일에는 연계 세미나 ‘한국 오페라의 여명과 태동’을 개최한다. 서울시립대 박물관은 8일부터 내년 8월 11일까지 개관 40주년 기념 특별전 ‘클래식 서울’을 개최한다. 소프라노 이금봉(1917∼2004)의 가족이 기증한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북 등을 통해 광복 직후 한국 음악계의 동향 및 한국 음악가의 해외 진출과 해외 연주가의 내한 등 1970년대까지 클래식 음악계의 성장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 속 전시’로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140년의 아리아’ 특별전도 열린다.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세티가 촬영한 1900년대 초 서울 사진과 미공개 연구 자료를 볼 수 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나를 멸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품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사랑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사랑이 되었다.”(슈베르트의 산문 ‘나의 꿈’)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가 먼 길을 여행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31세라는 짧은 삶 속에서 그가 다닌 지역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일대 및 그가 살았던 빈에서 가까운 슬로바키아 일부 정도다. 그렇지만 ‘방랑’은 그의 예술이 가진 핵심 키워드다.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가 방랑하는 젊은이를 다뤘고, 가곡 ‘방랑자’는 같은 제목의 피아노 환상곡이 됐다. 가사가 있는 그의 곡만 방랑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더 그레이트’는 네 악장 모두 저벅저벅 걷는 듯한 변화 없는 속도가 끝없는 여정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교향곡 8번 ‘미완성’의 첫 악장에 대해서도 ‘눈물지으며 달려가는 듯한’ 느낌을 얘기하는 이가 많다.슈베르트와 거의 같은 시대에 역시 짧은 삶을 살았던 시인 빌헬름 뮐러(1794∼1827)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에 프로이센 군인으로 참전해 여러 전투를 치렀으며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로마 여행기를 남겼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가 선율을 만들 수 있다면 내 노래(시)는 훨씬 많은 즐거움을 줄 텐데. 기운을 내자! 이 시 뒤에 숨은 곡조를 듣고 이를 돌려줄 비슷한 영혼이 분명 있을 테니까.” 뮐러가 염두에 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곡집 ‘겨울 나그네’가 된 시들을 아들 막스 뮐러(소설 ‘독일인의 사랑’ 작가)의 대부(代父)인 오페라 ‘마탄의 사수’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에게 헌정했던 것이다. 베버는 그 후 오래잖아 세상을 떠났고 뮐러가 소망한 ‘비슷한 영혼’은 그가 만나본 적 없는 슈베르트에게 돌아갔다. 뮐러도 슈베르트가 이 시들에 곡을 붙인 1827년 세상을 떠났으므로 이 가곡집의 선율들을 들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글도 가곡집 ‘겨울 나그네’의 공연 소식들을 전하기 위해 뮐러나 그의 주인공처럼 먼 길을 돌아왔다. 겨울 방랑자가 가을부터 곳곳의 공연장을 채운다. 25일 영국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가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와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겨울 나그네’를 노래한다. ‘중부 유럽 여행’이 주제인 올해 서울국제음악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다음 날인 26일엔 독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르스와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무대에 이 곡을 올린다. 두 해외 명인의 무대 뒤에 국내 연주가들의 리사이틀이 따른다. 11월 1일 경기 안양 평촌아트홀에서는 베이스바리톤 한혜열과 피아니스트 윤호근이 ‘겨울 나그네’를 협연한다. 음악학자 김정미가 해설을 맡는다. 11월 28일엔 ‘고귀한 목소리’ 테너 김세일이 피아니스트 김수연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다. 12월 17일에는 음악 칼럼니스트 유혁준이 해설하는 김세일의 ‘겨울 나그네’가 서울 강남구 포니정홀에서 열린다. 그러고 나서 달력은 실제 겨울로 접어든다. 12월 4일엔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베이스 연광철이 피아니스트 박은식 반주로 ‘겨울 나그네’를 노래한다. 마포아트센터 M클래식축제의 M연가곡 시리즈 중 한 무대다. 올해 M클래식축제는 ‘보헤미아의 숲에서’가 주제다. 우연이지만 서울국제음악제의 주제 ‘중부 유럽 여행’과 결이 비슷하다. ‘보헤미안’은 예술혼을 지닌 방랑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흔히 보기 힘든 무대들도 마련된다. 12월 3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소극장에서는 소프라노 김은형이 노래하는 ‘겨울 나그네’를 들을 수 있다. 이 곡 가사에는 주인공을 떠난 연인이 ‘그녀(sie)’로 표기되어 있으며 19세기에 여성 혼자 방랑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주로 남자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12월 13일에는 첼리스트 박유신이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피아니스트 플로리안 울리히 반주로 ‘가사 없는’ 겨울 나그네 전곡을 연주한다. 이 곡의 음반도 곧 발매 예정이며 리사이틀에선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전곡도 연주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페라는 수백 명에서 천 수백 명의 관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400년 이상 진화된 장르다. 관객 1만 명을 넘보거나 이를 넘는 대형 공간에서 공연되는 오페라가 20세기에 개발됐지만 이 경우 음악과 무대의 디테일을 일부 희생하고 규모가 주는 압도감으로 감동을 대신하는 일이 흔하다. 12일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개막한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베로나 디 오리지널’은 이런 평범한 생각을 뒤집었다. 고 프랑코 체피렐리가 설계한 무대는 눈에 띄지 않는 군중 한 사람까지 시종일관 숨 쉬듯 움직이게 만들었다. 밀도 높은 조명부터 화려한 무용과 의상까지 볼거리가 넘쳤다. 40년 동안 이탈리아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에서 지휘해온 지휘자 다니엘 오렌도 이에 상응하듯 푸치니 음악의 세부까지 완벽히 장악했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오렌의 지휘 동작은 열 개 손가락으로 오디오 믹싱 장치를 조종하는 듯했다. ‘푸치니가 가진 색감을 중간 정도만 연주한다면 그의 음악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그의 자신감은 과장이 아니었다. 그는 템포를 약간 당겨 잡고 선이 굵은 ‘투란도트’를 이끌어 냈다. 1막, 조명이 켜지기 전부터 무대 위 ‘베이징의 백성들’은 바쁘게, 한가롭게, 무심하게 각자 다른 거동으로 움직여 다녔다. 합창단에 일부 무용단이 가세한 이 ‘백성들’은 음악이 시작되면서 유기적인 표정을 갖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호수 위에 바람이 물결을 만들 듯 이들은 칼라프 왕자의 도전을 응원하고, 관리들의 폭력에 한숨을 내뱉고, 때로는 지배자의 폭력에 영합해 희생자를 겁박하는 수많은 ‘익명’들에게 적절한 밑바탕을 제공했다. 주역 가수들은 공연 일자에 따라 세 개의 팀으로 나뉜다. 개막일 공연에서 가장 큰 갈채를 끌어낸 주인공은 시녀 류 역의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였다. 1막 아리아 ‘주인님 들으소서’에서부터 그의 호소력 있는 음색과 여린 탄원의 피아니시모는 객석을 사로잡았다. 극 초반의 이 아리아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갈채가 터졌다. 그의 탁월한 음성 연기는 류가 자신을 희생하는 3막 아리아 ‘얼음의 마음을 지닌 공주여’에서 깊이 가라앉는 비극적 분위기를 넘어 다시 한 번 큰 갈채를 이끌어 냈다. 공연 뒤의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사람도 류 역의 시칠리아였다. 목숨을 건 수수께끼에 도전해 사랑을 쟁취하는 칼라프 왕자 역은 독일 테너 마르틴 뮐레가 맡았다. 노래의 프레이즈(분절)를 자신에게 편한 호흡에 맞춰 빠르게 끌고 가는 인상이 있었지만 서정적인 표현과 칼칼한 표정을 함께 갖춘 결을 가진 그의 영웅적 음색은 이 ‘막무가내 도전자’ 역에 제격이었다. 2막의 ‘공주여, 그대의 열렬한 사랑을 원할 뿐이오’ 장면에서 그는 남녀 영웅의 팽팽한 대결에 걸맞은 강렬한 높은 C(도)음을 뽑아냈다. 이날의 투란도트인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의 ‘현실적’인 음색은 초월적인 투란도트 공주와 결이 다른 면이 있었다. 칼라프의 부왕(父王)인 티무르 역 베이스 페루초 푸를라네토는 약하고 탄식만 하는 노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티무르의 모습을 선보였다.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은 큰 갈채를 받을 만했다. 오렌의 지휘가 세부까지 빛을 발한 데는 그 섬세함에 치밀하게 반응한 이들의 공이 컸다.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베로나 디 오리지널’은 19일까지 이어진다(14일 공연 없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난 24시간 동안 무엇을 먹었습니까?” 옆의 주방에서 조리된 음식이면 오케이. 포장을 벗겨 그대로 또는 가열만 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어진 음식이라면 포장을 살펴보자.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씌운, ‘공장 냄새’가 느껴지는가. 성분표에 유화제, 향미증진제, 식용색소, 변성전분처럼 부엌에서 보기 힘든 성분이 표시돼 있는가. 그렇다면 십중팔구 초가공식품을 먹은 것이다. “알았어, 당분과 포화지방이 많고 열량이 높으니 몸에 좋을 리 없다는 거지….” 저자가 말하려는 주장의 핵심은 아니다. “설탕과 지방을 같은 양으로 제한해도 비(非)가공 식단을 양껏 먹은 사람들은 체중이 줄었다. 어떤 성분이 많아서가 아니라 가공 방식 때문에 초가공식품이 해로운 것이다.” 영국의 의사인 저자는 일란성 쌍둥이로 역시 의사인 잰드와 함께 TV 다큐멘터리나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왔다. 유전자가 같기 때문에 동일한 기간 다른 음식을 먹는 등 ‘생체실험’에 동원되는 일이 많다. 주로 저자 크리스가 ‘착하게’, 잰드가 ‘잘못’ 먹는 쪽을 맡는다. 이 책에도 둘이 함께 진행한 식이(食餌) 실험이 반영됐다. 왜 초가공이 문제인가. 이런 식품들은 자연의 식재료를 정제유, 단백질, 전분 등의 성분들로 분해한 뒤 열이나 화학처리로 변성시킨 다음 성형이나 압출 기술을 이용해 생산해낸다. 어떤 공산품 못잖은 공업 기술의 산물이다. 오랜 인류 역사에 걸쳐서 ‘공장에서 생산한 음식’은 낯선 개념이었다. 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 석탄에서 나온 파라핀으로 먹을 수 있는 기름을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그 뒤 수많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물질들이 식품 속에 투하됐다. 마트에 가보자. 주방에서 조리할 수 있는 식재료보다 바로 가져가서 데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훨씬 넓은 코너를 차지한다. 인간의 뇌에서 ‘그만 먹으라’고 알려주는 시스템은 초가공식품처럼 부드럽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감당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저자에 의하면 이 음식들은 ‘미리 씹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빠른 속도로 집어 먹게 되고 빨리 흡수되며 칼로리 밀도가 높아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급속히 치솟게 만든다. 물론 성분 자체도 문제가 많다. 초가공식품에 들어 있는 팜핵유나 유화제, 변성전분은 우유, 크림, 계란 같은 비싼 재료들을 흉내만 내거나 대체한다. 이런 음식에 첨가된 향미료는 맛과 영양을 연관 짓는 감각 시스템을 망가뜨린다. 뇌에 폭식을 유도하는 합성식품일수록 더 잘 팔리고 시장을 지배한다. 유화제나 방부제 같은 첨가물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먹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것은 당신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식품인가, 아니면 당신의 건강을 희생시켜 누군가의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생산된 식품인가?” 매번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많은 간편식과 간식이 예전처럼 ‘달짝지근’하지 않을 것이다. 원제 ‘Ultra-Processed People(초가공된 인간·2023)’.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삶이 부조리하다고 해도 인간은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 선택을 하죠. 그런 ‘선택’의 관점에서 운명을 바라보고자 합니다.”오페라 연출가 이회수가 대전예술의전당이 제작한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연출에 나선다. 10월 16~19일 공연되는 이 작품은 베르디가 완숙기인 49세 때(1862년) 발표한 오페라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휘말린 세 남녀의 비극을 그렸다. 이회수는 이탈리아 로마 국립예술원에서 무대디자인과 연출을 전공했고 한국과 유럽에서 수십 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2013년 대한민국 오페라대상에서 창작부분 ‘손양원’으로 작품대상과 연출대상을 최연소 수상했다.“이 작품을 의뢰받고 나서 ‘과연 나는 운명을 믿나’라고 자문해봤어요. 저는 운명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짜여진 운명을 믿고 그대로만 살아간다면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오페라에서 여주인공 레오노라의 연인인 돈 알바로는 바닥에 떨어뜨린 권총에서 총알이 발사되는 바람에 레오노라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다.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는 복수를 위해 돈 알바로를 찾아다니다가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우연히 위기에 처한 돈 카를로를 구해주게 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는데….“운명에 대해 생각하던 중 신화 속의 시지프스가 생각났어요. 신의 노여움을 사서 계속 바위를 굴려 올리지만 다시 굴러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하죠. 작가 카뮈도 ‘시지프스의 선택’에서 부조리 속의 반항을 표현했지만 우리도 부조리 속에서 어떤 선택이라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기쁘게 자신만의 방향성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운명의 힘’의 이탈리아어 원제는 ‘La forza del destino’다. “영어로 ‘운명’을 표현할 때 ‘fate’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 ‘destiny’는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한 운명에 가깝죠. 저는 방향성을 가진 ‘destiny’로 운명을 표현하고자 합니다.”처음 작품을 바라볼 때는 극에 묘사된 인물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알바로는 ‘이건 운명이다’라며 피해 다니기만 했을까. 왜 카를로는 다른 일에 앞서 원수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자기 동생까지 죽이게 될까. 레오노라도 왜 알바로를 잊지 못하고 수녀원에 들어갔을까. 어떤 면에서는 한심하게 보였죠. 연습을 시작하면서 강조하는 부분이 ‘주인공들이 한심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세심하게 표현해 이들의 행동이 관객에게 합리적으로 느껴지도록 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운명에 대해 나름대로 방향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하는 주인공들은 구체적으로 무대 위에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까. 그는 극이 대략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고 말했다. 시지프스적인 부분, 인간이 신의 뜻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종교적인 부분(교회), 전쟁 부분이다. “견고한 듯하면서 무너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했지만, 인간이 가장 소중하고 빛나게 가져온 것이 신앙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표현한 교회는 온전하지 않은, 허물어진 모습이에요. 하지만 회전 무대를 돌렸을 때 교회안의 모습은 빛나고 화려한 모습이 되죠.”오페라 ‘운명의 힘’에서 가장 알려진 부분은 극적 긴박감이 넘치는 서곡과 레오노라가 신에게 간구하는 아리아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다. 극의 하이라이트와는 엇갈린다. 연출 면에서 어떻게 음악과 함께 극의 긴장을 쌓아나가게 될까.“이 오페라는 길죠. 끊임없이 재미를 주는 부분들이 이어지기 보다는 주인공들이 구구절절 자기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알바로의 아리아를 통해서는 자신의 혈통에 대한 부분을 감성적인 면으로 집중시켜 긴장감을 만들려 해요. 카를로의 경우는 자신의 원수를 알 수 있는 상자를 열어보기 전에 ‘이 속에 내 운명이 있다’는 아리아를 부릅니다. 열지 말지 오랜 시간 고민을 하는 거죠. 전쟁터라는 특수한 상황, 상대가 동료 아니면 적이 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믿음을 주거나 돌아서야 하는 감정을 잘 표현해보려 합니다.”그는 특정 부분을 하이라이트로 강조하기 보다는 중창이 표현하는 대립 등 각각의 부분을 잘 연결시킬 때 이 오페라가 힘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곡은 사람이 숨 쉴 시간을 많이 주지 않아요. 오케스트라가 전체 합주로 휘몰아치는 부분은 삶의 역경을 표현하는 것 같고, 아리아들을 보면 그 속에서 인간이 한없이 작아 보이고 그들의 좌절이 연약하게 드러나지만 좌절 속에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들을 베르디가 잘 그려냈기에 그 모두를 다 잘 표현해내려 하고 있습니다.”연출가 이회수 자신에 대한 부분으로 질문을 옮겨보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이탈리아에 성악 전공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연출로 삶의 방향을 옮겼다. 운명의 힘이었을까. ‘기쁘게 방향성을 가지고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일찍 유학을 갔고 조급한 마음에 ‘빨리 큰 성악가가 될 거야’만 생각했죠.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고, 지쳤던 것 같아요. 오페라를 자주 보면서 조금씩 시야가 넓어지는 시간이 있었죠. 무대 디자인도 전공했거든요. 조금씩 무대 위부터 아래, 옆까지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고, ‘저기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라며 관심을 가지게 됐던 것 같아요.” 그는 “연출가가 되는 과정에 드라마 같은 일은 없었다”며 웃음을 지었다.그를 괴롭힐만한 질문을 던져봤다. 그가 연출한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이회수표 연출 특징’ 같은 것이 있을까.“저는 뭔가 이론이나 사상, 관념을 작품에 대입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관념을 상징화해서 무대에 입혀야 하죠. 조명 같은 걸 쓰는 데는 겁이 없는 것 같아요. 전환을 길게 끌어가기 보다는 빨리 컬러를 변화시키고, 얼마간 뮤지컬스럽기도 한 것 같고. 어쩌면 ‘과감한 조명과 상징적인 무대’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계획 중인 일을 묻자 그는 치마로사의 오페라 ‘교회 지휘자’를 직접 번안 각색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술 교육에 관심이 많아요. 어린이들이 예술 작품에 많이 노출되어야 한다고 늘 얘기하죠. 큰 작품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교육 사업으로 뿌리를 내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대전예술의전당이 제작해 10월 16~19일 공연하는 베르디 ‘운명의 힘’은 여주인공 레오노라 역에 소프라노 조선형 정소영, 그의 연인 돈 알바로 역에 테너 국윤종 박성규, 그의 원수이자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 역에 바리톤 길경호 김광현이 출연한다. 홍석원 부산시향 예술감독이 지휘하고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레나 디 베로나는 세상에서 가장 마법 같은 장소입니다. 그 마법을 한국에 가져오게 되어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대형 오페라 공연의 대명사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음악감독을 2019년부터 맡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다니엘 오렌(69)은 자신의 지휘로 12∼19일 서울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선보이게 된 것에 대해 이렇게 감회를 밝혔다. 6일 입국한 그를 7일 숙소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호텔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1984년 푸치니 ‘토스카’로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처음 지휘하신 지 40년이 흘렀고 그동안 이곳에서 500회 넘는 공연을 지휘했습니다. 이런 대형 오페라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큰 공간에서는 훨씬 큰 스케일의 연출이 가능합니다. 실내에서 불가능한 온갖 일이 가능하죠. 이 점을 가장 잘 다룰 줄 알았던 사람이 이번 공연의 오리지널 연출을 맡았던 거장 프랑코 체피렐리였습니다. 그는 특히 군중 장면을 다루는 방식이 남달랐습니다. 많은 연출가들이 군중을 단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게만 하지만 그는 군중으로 출연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외우며 각각을 중요한 인물처럼 취급했죠.” ―대형 오페라 지휘에는 어려운 점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2005년 베로나에서 만났을 때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템포로 무대를 강력히 끌어가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셨는데…. “아레나 디 베로나의 경우 가수와 지휘자 사이의 거리는 30m가 넘고 때로 50m가 될 때도 있습니다. 합창단과 성악진, 오케스트라 사이의 색깔을 맞추는 게 매우 복잡해집니다. 하루아침에 지휘대에 올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나는 큰 공간에서 음악으로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며 지휘합니다.” ―열세 살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자신의 곡 ‘치체스터 시편’에서 솔로로 노래했는데…. “제 어머니는 음악을 인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아들을 원하셨죠. 제가 열 살이 되자 노래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치체스터 시편’의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나이 때문에 거부됐지만 어머니는 번스타인과의 오디션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죠.” ―그 7년 뒤인 1975년 제1회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까지 한 번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본 일이 없었죠.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비교한다면, 번스타인은 리허설 중 휴식시간에도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가족에 관한 일들까지 물어봤습니다. 큰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죠. 반면 카라얀은 차가운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매혹적인 음색을 가진 훌륭한 음악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의 오페라가 해외에서 공연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까. “아레나 디 베로나가 한국의 음악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점이 기쁩니다. 어제 처음 연습에 임했습니다만, 한국의 음악가들은 정말로 뛰어난 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나라는 세계의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KSPO돔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 ‘투란도트’ 공연은 소프라노 올가 마슬로바, 옥사나 디카, 전여진이 타이틀롤인 투란도트 공주 역을, 테너 마르틴 뮐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스가 칼라프 왕자 역을 노래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아레나 디 베로나는 세상에서 가장 마법 같은 장소입니다. 그 마법을 한국에 가져오게 되어 큰 기쁨과 자부심을 느낍니다.”대형 오페라 공연의 대명사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음악감독을 2019년부터 맡고 있는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다니엘 오렌(69)은 자신의 지휘로 12~19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의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선보이게 된 것에 대해 이렇게 감회를 밝혔다. 6일 입국한 그를 7일 숙소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호텔에서 만났다.오렌 감독은 “거장 프랑코 체피렐리 감독이 형상화한 작품 속 ‘군중’을 통해 특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1984년 푸치니 ‘토스카’로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처음 지휘하신 지 40년이 흘렀고 그동안 이곳에서 500회 넘는 공연을 지휘하며 아레나 디 베로나의 ‘얼굴’로 활약해 오셨습니다. 이런 대형 오페라의 장점은 무엇입니까.“큰 공간에서는 훨씬 더 큰 스케일의 연출이 가능합니다. 실내에서 불가능한 온갖 놀라운 일이 가능하죠. 이 점을 가장 잘 다룰 둘 알았던 사람이 이번 공연의 오리지널 연출을 맡았던 거장 프랑코 체피렐리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아레나 디 베로나에 오지 않으려 했지만, 우리는 결국 그를 설득했습니다.체피렐리는 베로나에서 비제 ‘카르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등 수많은 작품을 연출했는데 특히 군중 장면을 다루는 방식이 남달랐습니다. 많은 연출가들이 군중을 단지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게만 하지만 그는 군중으로 출연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외우며 각각을 중요한 인물처럼 취급했죠. ‘투란도트’에서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이미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체피렐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투란도트’를 연출했지만 이런 느낌은 큰 공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대형 오페라 지휘에는 어려운 점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2005년 베로나에서 만났을 때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한 템포로 무대를 강력히 끌어가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고 하셨는데.“아레나 디 베로나의 경우 가수와 지휘자 사이의 거리는 30m가 넘고 때로 50m가 될 때도 있습니다. 대형 공간의 오페라는 합창단과 성악진, 오케스트라 사이의 색깔을 맞추는 게 매우 복잡해집니다. 경험이 필요하죠. 하루아침에 지휘대에 올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나는 큰 공간에서 음악으로 놀이를 한다고 생각하며 지휘합니다.예전 나폴리 부근의 큰 야외 공간에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베르디 ‘레퀴엠’을 공연했던 때 기억이 납니다. 파바로티는 공연 분위기에 감동한 나머지 ‘오늘 개런티는 받지 않겠다. 극장장이 좋은 일에 쓰세요’라고 했죠. 나는 로마 올림픽 경기장에서 ‘투란도트’와 베르디 ‘아이다’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는데 그때도 정말 멋졌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하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공연하느냐가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 더 중요합니다.”―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푸치니의 오페라가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푸치니는 일본(나비부인)이나 캘리포니아(서부의 아가씨), 중국(투란도트)을 방문하지 않고도 그곳 사람들의 정신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꿈꾸는 듯한 무대를 상정합니다. ‘투란도트’에서 우리는 얼음 같은 공주를 만나게 되자만 그 차가운 세상에서도 우리는 푸치니의 방식으로 사랑을 꿈꾸게 됩니다. 이게 푸치니의 위대한 점입니다.내가 처음 지휘한 오페라는 푸치니 ‘마농 레스코’였습니다. 그때 푸치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집에 와서도 이 오페라의 모든 부분을 미친 사람처럼 불렀습니다.푸치니는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악보에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오페라를 지휘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음악은 모든 박자마다 변화가 있습니다. 그의 음악이 가진 수많은 색감을 중간 정도로만 연주한다면 그것은 그의 음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개인적인 부분을 여쭤보겠습니다. 열세 살 때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한 자신의 곡 ‘치체스터 시편’에서 솔로로 노래했는데….“어머니는 저를 낳은 뒤 제가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며 이를 신께 기도하셨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음악을 인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아들을 원하셨죠. 그 바람은 실현된 것 같습니다. 열 살이 되자 어머니는 제가 노래 공부를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치체스터 시편’의 오디션을 보러갔는데 관계자들은 나이가 어리다며 저를 막았지만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고 번스타인과의 오디션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죠.”―그 7년 뒤인 1975년 제1회 카라얀 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너는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엔 맞지 않는다,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고 정해주신 분도, 불과 20살에 카라얀 콩쿠르에 나가야 한다고 하신 분도 어머니였습니다. 당시까지 한 번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본 일이 없었죠.카라얀과 번스타인을 비교한다면, 번스타인은 발끝부터 얼굴표정까지 온몸으로 음악을 지시했습니다. 리허설 중 휴식시간에도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가족에 관한 일들까지 물어봤습니다. 커다란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죠. 반면 카라얀은 차가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만나려면 비서들을 먼저 만나면서 방 네 개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물론 카라얀은 매우 매혹적인 음색을 가진 훌륭한 음악들을 만들어 냈습니다.”―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의 오페라가 해외에서 공연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까.“이탈리아인들과 함께 오페라를 만드는 것은 오페라의 역사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레나 디 베로나가 한국의 음악적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점이 기쁩니다. 어제 처음 연습에 임했습니다만, 한국의 음악가들은 정말로 뛰어난 소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나라는 세계의 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KSPO돔 아레나 디 베로나 프로덕션 ‘투란도트’ 공연은 소프라노 올가 마슬로바, 옥사나 디카, 전여진이 타이틀롤인 투란도트 공주 역을, 테너 마르틴 뮐레와 아르투로 차콘 크루스가 칼라프 왕자 역을 노래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류재준 감독님의 협주곡은 화성을 혁신적으로 사용하는데도 신기하게 귀에는 편하게 들립니다. 악기에 대한 작곡가의 깊은 이해가 들어 있죠.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8)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SIMF) 폐막 연주회에서 작곡가 류재준(54·SIMF 예술감독)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만프레드 호네크가 지휘하는 SIMF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세계 초연한다. 김한이 류재준의 클라리넷 곡 초연에 참여하는 것은 2013년 클라리넷 소나타, 2015년 클라리넷 5중주곡에 이어 세 번째이자 9년 만이다. 류재준은 김한의 5촌 외당숙(어머니의 4촌)이다. 핀란드 헬싱키 방송교향악단 클라리넷 부수석을 거쳐 올해부터 파리 오페라 클라리넷 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김한을 전화로 만났다. 그는 작곡가 당숙을 ‘감독님’으로 불렀다. “처음 클라리넷 소나타를 연주하고 12년이 흐르는 동안 감독님의 스타일도 바뀌었어요. 바뀌지 않는 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을 관객이 더 편하게 들을 수 있게 잘 풀어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죠.” 그는 과거 연주한 류재준의 작품들이 화음의 변화를 많이 준 작품이라면 요즘은 조(調)가 없는데도 조성음악처럼 편하게 들리는 음악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특징이라면 선율이 굉장히 길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선율의 흐름을 잘 살리는 데 신경 쓰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올해 시작된 파리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예술의 도시인 만큼 예술적으로 받는 영감이 많아요. 준공무원 신분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보낼 선택지가 많아 만족합니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은 무대 앞의 낮은 ‘피트’에 들어가 관객의 시선을 받지 못한 채 연주한다. 섭섭하지 않을까. “음악적으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아요. 성악가의 선율을 함께 연주하거나 성악가와 2중창처럼 연주할 때도 많거든요. 리허설 횟수도 많아서 한 가지 음악을 깊이 탐구할 수 있어요.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낍니다.” 그에게 오페라는 어린 시절부터 친숙한 세계다. 그의 할머니가 원로 소프라노 박노경(89·서울대 명예교수)이다. 그의 집안은 이름난 클래식 명문가다. 클라리넷도 그가 리코더를 잘 부는 걸 눈여겨본 큰아버지 김승근(서울대 국악과 교수)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통화를 마친 후 작곡가 류재준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김한은 작품의 호흡을 굉장히 잘 읽어내는 연주가다. 그에게 연주를 맡기면 안정된 느낌이 들어서 편하다”고 말했다. 2024 서울국제음악제는 18일 개막 음악회 ‘바르샤바의 가을’로 시작해 19일 ‘비엔나의 여름’, 20일 ‘프라하의 봄’, 21일 ‘서울의 정경’, 23일 ‘부다페스트의 겨울’, 25일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의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26일 폐막 음악회로 이어진다. 폐막 음악회와 서울 용산구 일신홀에서 열리는 ‘서울의 정경’ 이외 연주회는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김한은 폐막 연주회 외 19일 콘서트 쇤베르크 ‘정화된 밤’ 연주와 한국 창작곡이 연주되는 21일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폐막 연주회는 류재준의 클라리넷 협주곡에 이어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이 연주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류 감독님의 협주곡은 화성을 혁신적으로 사용하는데도 신기하게 귀에는 편하게 들립니다. 악기에 대한 작곡가의 깊은 이해가 들어 있죠. 관객들이 쉽게 공감하실 것 같습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8)이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SIMF) 폐막연주회에서 작곡가 류재준(54//SIMF 예술감독)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만프레드 호네크 지휘 SIMF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세계 초연한다. 김한이 류재준의 클라리넷 곡 초연에 참여하는 것은 2013년 클라리넷 소나타, 2015년 클라리넷 5중주곡에 이어 세 번째이자 9년 만이다. 류재준은 김한의 5촌 외당숙(어머니의 4촌)이다. 핀란드 헬싱키 방송교향악단 클라리넷 부수석을 거쳐 올해부터 파리 오페라 클라리넷 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김한을 전화로 만났다. 그는 작곡가 당숙을 ‘감독님’으로 불렀다. “처음 클라리넷 소나타를 연주하고 12년이 흐르는 동안 감독님의 스타일도 바뀌었어요. 바뀌지 않는 것은 자신이 의도한 것을 관객이 더 편하게 들을 수 있게 잘 풀어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죠.” 그는 과거 연주한 류재준의 작품들이 화음의 변화를 많이 준 작품이라면 요즘은 조(調)가 없는데도 조성음악처럼 편하게 들리는 음악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특징이라면 선율이 굉장히 길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선율의 흐름을 잘 살리는 데 신경 쓰며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올해 시작된 파리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예술의 도시인만큼 예술적으로 받는 영감이 많아요. 준공무원 신분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거든요.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보낼 선택지가 많아 만족합니다.”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은 무대 앞의 낮은 ‘피트’에 들어가 관객의 시선을 받지 못한 채 연주한다. 섭섭하지 않을까. “음악적으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더 많은 것 같아요. 성악가의 선율을 함께 연주하거나 성악가와 2중창처럼 연주할 때도 많거든요. 리허설 횟수도 많아서 한 가지 음악을 깊이 탐구할 수 있어요. 오히려 더 큰 재미를 느낍니다.” 그에게 오페라는 어린 시절부터 친숙한 세계다. 그의 할머니가 원로 소프라노 박노경(89·서울대 명예교수)다. 그의 집안은 이름난 클래식 명문가다. 클라리넷도 그가 리코더를 잘 부는 걸 눈여겨본 큰아버지 김승근(서울대 국악과 교수)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통화를 마친 후 작곡가 류재준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김한은 작품의 호흡을 굉장히 잘 읽어내는 연주가다. 그에게 연주를 맡기면 안정된 느낌이 들어서 편하다”고 말했다. 2024 서울국제음악제는 18일 개막음악회 ‘바르샤바의 가을’로 시작해 19일 ‘비엔나의 여름’, 20일 ‘프라하의 봄’, 21일 ‘서울의 정경’, 23일 ‘부다페스트의 겨울’, 25일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의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26일 폐막음악회로 이어진다. 폐막음악회와 서울 용산구 일신홀에서 열리는 ‘서울의 정경’ 이외 연주회는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 김한은 폐막연주회 외 19일 콘서트 쇤베르크 ‘정화된 밤’ 연주와 한국 창작곡이 연주되는 21일 콘서트에도 참여한다. 폐막 연주회는 류재준의 클라리넷 협주곡에 이어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이 연주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2일 저녁(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래머폰 클래식 음악상(그래머폰상) 시상식에서 피아노 부문상과 젊은 예술가상 등 2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 피아니스트가 그래머폰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며 한국인이 그래머폰상 두 개 부문을 동시 수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머폰상은 영국 클래식 음반 전문지 그래머폰이 1977년부터 매년 시상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반상 중 세계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현재 피아노, 피아노 외 기악, 관현악, 오페라 등 11개 부문을 시상한다. 피아노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3개 음반 중 임윤찬은 쇼팽 연습곡집 음반으로 상을 받았으며 이 외 임윤찬이 연주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집도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래머폰상에서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두 개 음반을 최종 후보에 올린 것 역시 임윤찬이 처음이다. 쇼팽 연습곡집은 초절기교 연습곡집을 한 표 차로 앞서 이 부문은 상위 두 앨범이 임윤찬에게 돌아갔다. 최종 후보에 오른 다른 한 장은 피오트르 안데르셰프스키가 연주한 버르토크, 야나체크, 시마노프스키 피아노 작품집이다. 역대 그래머폰상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1990년 정경화가 레스피기 등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으로 실내악 부문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 장영주(사라 장)가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1994년 정경화가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으로 협주곡 부문상을 받아 두 번째 그래머폰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 장한나가 프로코피예프의 합주협주곡 음반으로 협주곡 부문상을 받은 바 있다. 2일 시상식에서 임윤찬은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해 큰 갈채를 받았다. 온라인으로 공개된 피아노 부문상 심사평에서 평론가 롭 코언은 “임윤찬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연주자이지만 폴리니의 기교, 코르토의 말하는 듯한 톤 등 선배들이 가진 최고의 특징들을 갖추고 있다. 이 곡의 다른 녹음이 더 많은 것을 줄 수는 없다”고 극찬했다. ‘젊은 예술가상’ 심사평에서 평론가 팀 패리는 “임윤찬은 테크닉뿐 아니라 상상력과 풍부한 터치, 그것을 표현할 완벽한 수단을 갖춘 피아니스트”라고 평했다. 시상식 후 임윤찬은 “부모님의 말투부터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고 배운 모든 것이 내 음악에 녹아 있다. 나와 내 음악은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그래머폰상 대상 격인 올해의 음반상은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연주한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이 받았다. 이 앨범은 그래머폰상 기악부문상도 받았다. 임윤찬은 12월 17∼22일 다섯 차례 열리는 파보 예르비 지휘 도이체 카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2일 저녁(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라머폰 클래식 음악상(이하 그라머폰상) 시상식에서 피아노 부문상과 젊은 예술가상 등 두개 부분을 수상했다. 한국 피아니스트가 그라머폰 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며 한국인이 그라머폰상 두 개 부분을 동시 수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라머폰상은 영국 클래식 음반 전문지 그라머폰이 1977년부터 매년 시상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반상 중 세계 최고 권위의 음반상으로 꼽힌다. 현재 피아노, 피아노 외 기악, 관현악, 오페라 등 11개 부문을 시상한다. 피아노 부분 최종 후보에 오른 3개 음반 중 임윤찬은 쇼팽 연습곡집 음반으로 상을 받았으며 이외 임윤찬이 연주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집도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라머폰상에서 피아니스트 한 사람이 두 개 음반을 최종 후보에 올린 것 역시 임윤찬이 처음이다. 쇼팽 연습곡집은 초절기교 연습곡집을 한 표 차로 앞서 이 부문은 상위 두 앨범이 임윤찬에게 돌아갔다. 최종 후보에 오른 다른 한 장은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가 연주한 버르토크, 야나체크, 시마노프스키 피아노 작품집이다. 역대 그라머폰상 수상자 중 한국인으로는 1990년 정경화가 레스피기 등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으로 실내악 부문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 장영주(사라 장)가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1994년 정경화가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으로 협주곡 부문상을 받아 두 번째 그라머폰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 장한나가 프로코피예프의 합주협주곡 음반으로 협주곡 부문상을 받은 바 있다. 2일 시상식에서 임윤찬은 리스트의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을 연주해 큰 갈채를 받았다. 온라인으로 공개된 피아노 부문상 심사평에서 평론가 롭 코원은 “임윤찬은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연주자이지만 폴리니의 기교, 코르토의 말하는 듯한 톤 등 선배들이 가진 최고의 특징들을 갖추고 있다. 이 곡의 다른 녹음이 더 많은 것을 줄 수는 없다”고 극찬했다. ‘젊은 예술가상’ 심사평에서 평론가 팀 패리는 “임윤찬은 테크닉 뿐 아니라 상상력과 풍부한 터치, 그것을 표현할 완벽한 수단을 갖춘 피아니스트”라고 평했다. 시상식 후 임윤찬은 “부모님의 말투부터 내가 눈으로 보고 느끼고 배운 모든 것이 내 음악에 녹아있다. 나와 내 음악은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감사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그라머폰상 대상 격인 올해의 음반상은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연주한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앨범이 받았다. 이 앨범은 그라머폰상 기악부문 상도 받았다.임윤찬은 12월 17~22일 다섯 차례 열리는 파보 예르비 지휘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할 예정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연주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널찍한 녹음실 전체에 퍼져 앉았습니다. 마스크도 쓸 수 없는 관악 연주자들이 가장 멀리 앉았는데, 소리가 늦게 전달되는 게 느껴질 정도였죠.” 피아니스트 겸 오르가니스트, 하프시코드 연주자인 조재혁이 9월 내놓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23번 앨범은 코로나19 시대의 산물이다. 오키드 레이블로 나온 이 앨범의 녹음은 대역병의 거친 기세가 유럽을 한 차례 휩쓴 뒤 조금 잦아든 2020년 8월 런던의 헨리 우드 홀에서 이뤄졌다. 그와 오래 호흡을 맞춰 온 지휘자 한스 그라프와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했다. “저와 오케스트라 모두 프로 음악가니까 어떻게든 적응해야 했죠. 다음 날이라도 녹음이 취소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모두 서로의 소리에 비상하게 집중하며 녹음을 마쳤습니다. 바그너가 말했던 뜻과는 조금 다르지만 ‘종합예술’이란 말이 떠올랐어요.” 다행히 여러 차례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앨범 프로듀서 애나 배리와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현장에 함께했다. 결과물인 앨범에서 악기 사이의 소리 지연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대신 악조건을 극복하고자 하는 집중력이 앨범에 담긴 시공간을 채운다. 조재혁에게 올해는 ‘모차르트의 해’다. 7월 6일을 시작으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네 차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곡 전곡을 연주한다. 11월 1, 2일 두 차례가 남았다.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그는 “아름답고 옅은 색채로 연주하는 게 정석이었던 모차르트 피아노 음악의 테두리를 넘어 오페라처럼 강렬하고 어두울 수 있는 모차르트 음악을 표현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번 앨범에도 그는 때로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강렬함과 어두움을 담아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중 유난히 깊고 어두운 20번 D단조 협주곡 1악장 전개부에서 긴 프레이즈(악절의 연결)로 무거운 화음의 층을 쌓아 올리거나 큰 강약의 대조를 선보인다. 지휘자 그라프와의 호흡은 이런 색깔에 대한 모차르트 전문가의 ‘추인’처럼 느껴진다. 그라프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대 지휘과 교수와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지냈다. 현 싱가포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인 그는 러시아 국립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3번(2021년),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1번(2022년) 앨범 등에서 조재혁과 호흡을 맞췄다. 조재혁은 피아노 녹음 외에도 2019년 바흐, 리스트, 비도르의 오르간 작품집 앨범을 발매하는 등 활발한 앨범 활동을 펼쳐 왔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바흐의 교회음악을 대표하는 명곡인 ‘마태 수난곡’ 전곡 연주가 2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연동교회 본당에서 열린다. 앙상블 원 리더인 장미경이 피아노와 해설을 맡고 복음사가 역을 테너 계봉원, 예수 역을 바리톤 이문기가 노래한다. 소프라노 송영옥, 메조 소프라노 최미란, 바리톤 이정희가 출연한다.마태 수난곡은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을 바탕으로 예수의 수난을 그린 곡이며 바흐가 1729년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한 뒤 잊혔다가 멘델스존이 100년 만인 1829년 재발견 연주에 성공한 뒤 바로크 미학을 대표하는 교회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