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란

한애란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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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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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2024-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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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급과잉 中철강, 저가 밀어내기… 세계시장 휘청[딥다이브]

    중국의 철강 공급 과잉이 전 세계를 덮쳤다. 저가 중국산 수출 공세에 남미 제철소가 문을 닫고, 철광석 가격 급락으로 원자재 시장마저 흔들린다. 2015∼2016년 ‘중국발 철강 쇼크’가 재연될 조짐이지만, 중국 부동산 경기가 수렁에 빠져 해결은 난망이다.● 중국 철강가격 7년 만에 최저“철강 가격이 배춧값으로 떨어졌다.” 최근 중국 내 철근 값이 t당 3000위안 수준까지 떨어지자 현지 언론에서 나오는 한탄이다. 배추 도매가격(kg당 약 3위안)과 맞먹기 때문이다. 중국 철강제품 가격은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 최고점(2021년 5월)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났고, 올해 들어서만 25% 하락했다. 이달 초 중국 시장조사업체 마이스틸 조사에서 중국 철강사 99%는 “수익성이 없다”고 보고했다. 중국 철강산업 침체는 3년째. 2021년 말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의 채무불이행 선언을 시작으로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진 게 원인이다. 새 건물이 올라가야 철강 수요가 생기는데, 자금난에 빠진 건설사가 새로 지어 올릴 여력이 없다. 쌓여 있는 막대한 미분양 물량을 터는 데만 몇 년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중국 신규 건설 착공은 2021년의 절반으로 줄었고, 올 상반기엔 24% 더 감소했다. 과거 철강산업의 공급과잉 위기를 해소한 건 중국의 대대적인 부동산 부양정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위기의 진앙인 터라 철강 수요를 끌어올릴 마땅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공급을 줄여야 할 텐데, 중국 철강사는 생산량 감축에 소극적이다. 상반기 중국 조강 생산량은 5억3000만 t. 전년보다 고작 1.1% 감소에 그쳤다.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공장이 많은 데다 과거 경험상 경쟁사가 문 닫을 때까지 버티는 게 상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쌓인 중국산 철강제품이 바다 건너 해외 시장을 강타했다.● 관세 장벽 뚫는 저가 공습7086만 t. 올해 1∼8월 중국이 해외로 수출한 철강제품 규모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6% 늘었고, 올해 말까지 1억 t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철강 수출이 1억 t을 넘어서는 건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저가 중국산 철강의 공습이 시작되자 위기를 느낀 각국은 관세 장벽을 쌓기 바쁘다. 올해 들어 미국뿐 아니라 멕시코, 칠레, 브라질, 캐나다도 중국산 철강 관세를 대폭 올렸다. 베트남과 튀르키예 정부는 반덤핑 관세 부과를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도 현대제철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한 상황이다. 하지만 관세로도 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중국 내 철강 가격이 워낙 낮고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위안화 약세가 이어지는 것도 중국 수출 경쟁력엔 유리하게 작용한다. 예컨대 열연 제품 가격은 중국에서 t당 3153위안(약 59만 원)으로 떨어졌지만 한국은 80만 원, 미국 690달러(약 92만 원), 일본은 10만7000엔(약 101만 원)으로 차이가 크다.세계 2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중국의 공격적인 수출”을 지적하며 “유럽과 미국 철강 가격이 모두 한계비용보다 낮아졌다”고 밝혔다. 칠레 철강기업 CAP는 1950년 설립된 칠레 최대 규모의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이달 16일 폐쇄한다. 칠레 당국이 올해 4월 중국산 철강에 최대 33% 관세 적용을 결정했지만, 여전히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심상찮은 철광석 가격 급락 암울한 건 광산 업계도 마찬가지다. 10일 싱가포르거래소의 철광석 선물 가격은 t당 90.62달러. 올해 들어 30% 넘게 하락했고, 2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남미 제철소 문닫고… 철광석 가격 급락해 원자재 시장도 흔들세계 덮친 저가 中철강 올 상반기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고로 가동을 멈추지 않은 중국 고객사가 철광석 주문을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제철소가 적자에 시달리면서 항구에 쌓인 철광석 재고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강력한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을 줄 알았던 7월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 전회)는 소득 없이 끝났다. 중국 철강 소비의 3분의 1을 떠받치는 부동산 시장이 되살아날 거란 희망이 사라지면서 철광석 가격도 가파르게 떨어진다. 중국선물유한공사 장샤오다 애널리스트는 “철강 수요 개선의 조짐이 없어 철광석 가격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며 t당 600위안(약 84달러)을 내다봤다.철광석 최대 수출국 호주는 비상이다. 지난달 짐 차머스 호주 재무장관은 철광석 가격이 장기적으로 t당 60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며 “연방 재정에 30억 호주달러(약 2조7000억 원)의 타격이 올 수 있다”고 밝혔다.세계 최대 철강기업 바오우그룹의 후왕밍 회장의 발언도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싣는다. 그는 지난달 “혹독한 겨울은 우리 예상보다 더 길고, 더 춥고, 더 어려울 수 있다”며 “2008년, 2015년에 겪은 충격보다 더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5년엔 중국 철강제품 가격이 t당 1800위안대까지 떨어졌고 철광석 가격은 37달러를 찍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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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폰과 EUV 놓쳤던 인텔…‘파운드리 부활’ 꿈도 물거품 되나[딥다이브]

    칩질라(Chipzilla)라는 말을 아시나요. 칩(반도체)+고질라의 결합어이죠. 고질라처럼 거대한 반도체 회사, 어디를 부르는 말일까요. 삼성전자? TSMC? 엔비디아? 바로 주인공은 ‘인텔(Intel)’입니다.인텔.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회사이지만 이제 시가총액으론 엔비디아의 30분의 1, TSMC 8분의 1, 삼성전자의 4분의 1짜리 기업입니다. 한동안 부활의 시동을 거는 듯했었지만, 최근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악재뿐이죠. 56년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절을 겪고 있는데요. 오늘은 반도체 거인 인텔의 추락을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창사 이래 가장 큰 위기2분기 실적은 재앙에 가까웠습니다(16억 달러 손실). 이후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했고요(직원의 최대 15% 해고). 핵심 임원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고(반도체 전문가 립부탄의 이사 사임), 고객사와의 협력은 불발됐습니다(소프트뱅크와의 AI칩 생산 논의 결렬). 주가는 불과 두 달 만에 반토막 나면서, 10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 이달 중순엔 추가 구조조정 계획이 또 발표될 계획이라고 하죠. 자율주행 자회사 모빌아이와 일부 사업부도 내다 팔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심지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파운드리 사업부 분할 가능성까지 제기되죠. 정말 어떻게 이렇게 최악일까 싶을 정도로 지금 인텔엔 악재가 가득합니다.3년 전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인텔 위기설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2021년 2월 인텔의 베테랑 엔지니어 팻 겔싱어가 12년 만에 새 CEO로 돌아오며 변혁을 약속했었죠. 차세대 제조설비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의 강자로 재탄생하겠다는 상당히 파격적인 계획이었습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명실상부한 2위 자리에 올라 ‘TSMC의 대안’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 게 목표였습니다(지금도 인텔 내부 매출까지 합치면 삼성전자를 제치고 2위라고 주장 중).인텔은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까지 다 하는 ‘통합장치제조업체(IDM)’입니다.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의 가장 큰 고객은 인텔이죠. 그런데 앞으론 엔비디아도, 애플도 반도체 생산을 인텔 파운드리에 맡기게 만들겠다는 게 겔싱어 CEO가 내세운 청사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인텔이 돌아왔다(Intel is back)’며 환호했고요.미국 정부 역시 2022년 반도체 육성법을 통해 밀어줬습니다. 미국에 공장을 짓는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많은 지원금(85억 달러 보조금 +110억 달러 대출)을 받는 건 (당연히) 인텔이니까요.그동안 인텔은 최신의 최고급 장비(ASML의 하이(High) NA EUV)를 세계 최초로 들여와 오리건 공장을 업그레이드했고요. 오하이오, 애리조나주에도 새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또 경쟁사도 못 한 1나노미터(㎚)대 초미세공정인 18A(1.8㎚) 공정을 개발해, 내년에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한마디로 최신 공정 개발과 제조역량 업그레이드에 무지막지한 투자비를 쏟아붓고 있습니다.아니,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리고 내년이면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왜 시장은 기다려주지 못하고 벌써 인텔이 끝난 것처럼 난리일까요. 막대한 투자비를 잡아먹는 인텔의 변혁 프로젝트가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뒤처져 있는 제조역량을 끌어올린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 모른다고 보는 거죠. 구세주인 줄 알았던 겔싱어 CEO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는 건데요.과거 인텔은 한발 앞서가는 기술력으로 명망 높았던 회사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기술 혁신에 취약하고 시장 적응력이 떨어지는 조직으로 평가절하되고 있을까요. 그 이유를 찾으려면 먼저 20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합니다.아이폰을 놓쳤다인텔의 현재를 설명하는 두 가지 경영상의 실책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2005년 아이폰용 칩을 만들어달라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제안을 거부한 거죠.지금 보면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이라고 여기겠지만, 2005년은 아직 아이폰이라는 게 세상에 없었을 때입니다(2007년 1월 첫 공개). 당시 인텔의 폴 오텔리니 CEO(2005~2013년 재임)는 아이폰이 ‘틈새 상품’일 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돈 되는 PC용 CPU(중앙처리장치) 사업이 있는데 굳이 모바일 칩에 역량을 쏟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죠.훗날 오텔리니 CEO는 이렇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합니다. “만약 우리가 (아이폰 칩 생산을) 해냈다면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들(애플)은 관심 보였던 칩에 특정 가격을 지불하고 싶어 했고, 그 가격은 우리가 예상한 비용보다 낮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예상 비용은 틀렸고 물량은 생각보다 100배나 많았습니다.”2010년대 들어서자 PC 시장의 성장은 정점을 지나가고 모바일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애플이 2014년부터 아이폰용 반도체 물량을 몰아준 기업은 대만 TSMC. 이를 통해 TSMC가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절대 강자 지위를 굳히게 됩니다. EUV도 놓쳤다CPU 같은 프로세서(처리장치)는 트랜지스터가 많을수록 더 빨라지죠. 1971년 인텔의 첫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 4004는 약 2000개의 트랜지스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프로세서 하나에 수십억개 트랜지스터가 장착되죠.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더 작게 만드느냐가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그리고 그것(더 작게 만들기)을 가장 잘하는 회사가 한때는 인텔이었습니다. 2년마다 새로운(=더 작은) 공정으로 칩을 출시하고, 출시 다음 해엔 설계와 기술을 개선하기를 반복했죠. ‘기술의 혁신(틱)-개선(톡)’을 쉬지 않고 반복해서 ‘틱톡 모델’이라고 불렀습니다.그런데 2014년 브라이언 크르자니치 CEO(2013~2018년)는 개발비가 많이 드는 이 틱톡 모델을 포기합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16년에 10나노미터(㎚) 공정이 출시돼야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 기존 14㎚ 공정을 몇 년 더 유지하기로 한 거죠. ‘틱톡틱톡’ 대신 ‘틱톡톡톡…’이 된 겁니다.동시에 최악의 결정도 내립니다. 웨이퍼에 빛으로 미세한 전자회로를 그려주는 최신 장비-극자외선(EUV) 노광장치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을 ‘반도체 슈퍼을’로 불리게 만든, 모든 초미세공정에는 필수라는 그 장비 말이죠.사실 인텔은 1990년대부터 ASML에 막대한 투자를 해 EUV 기술 개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기업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여곡절 끝에 EUV가 출시된 2014년엔 고객리스트에서 빠졌죠. ‘굳이 값비싼 EUV가 꼭 필요한가. 우리 기술로도 10㎚ 공정은 충분히 할 수 있겠는데’라는 안일한 판단이었습니다. “문제 중 일부는 우리가 성공에 대해 폐쇄적이고 오만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인텔의 베테랑 엔지니어 마크 필립스).하지만 경쟁사는 달랐죠. TSMC와 삼성전자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장비인 EUV를 적극적으로 도입했고요. 두 회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7㎚(2018년)→5㎚(2020년)→3㎚(2022년) 칩 양산에 착착 성공합니다. 인텔이 EUV를 처음 적용해 7㎚급을 양산하기 시작한 건 한참 뒤늦은 2023년. 한때 ‘실리콘 밸리’의 대명사였던 인텔은 그렇게 혁신을 잃었고, 제조 공정에서 뒤쫓아가기 바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성공 확률은 1%?한번 뒤처진 반도체 제조 기술을 다시 끌어올려 업계 선두 주자를 따라잡는 건 과연 가능할까요. 적어도 2021년 인텔 CEO에 오른 팻 겔싱어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인텔의 기술 저력은 여전히 남아있고, 수백억 달러의 투자를 쏟아붓는다면 TSMC도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4년 만에 5개 공정을 출시한다’는 미친 속도전 계획을 내놨죠. 기술 개발 속도를 2배로 끌어올려 2025년엔 다시 기술 선두를 되찾겠단 야심 찬 목표였습니다.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마땅한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인텔의 살길은 파운드리 사업에 있다고 봤으니까요. ‘미국의 칩 제조 챔피언’으로 다시 우뚝 서서, 엔비디아·애플·퀄컴 같은 기업의 반도체 제조를 아웃소싱하는 공장이 된다면 잃었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단 구상이었습니다.그리고 3년 반이 지났습니다. 인텔은 계획대로 기술 혁신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을까요? 글쎄요. 그게 좀 이상합니다. 공식 발표자료만 봐서는 인텔의 속도전은 그럭저럭 순항 중입니다. 올해 6월 3㎚급인 ‘인텔3’ 공정 양산을 시작했고요. 올해로 계획했던 2㎚급(20A)은 건너뛰고, 내년에 바로 1.8㎚ 반도체(이름은 ‘18A‘) 양산에 돌입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이어집니다. 지금 인텔이 개발하는 차세대 공정, 정말 돈이 되는 거 맞을까요? 대규모 양산을 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수율, 보장되는 거 맞나요?반도체 제조 기술은 원래 중간단계를 뛰어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실제 생산라인에서 새 기술을 대규모로 구현해 보면서 수율을 높여 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기술적으로 3㎚ 칩을 만드는 것과 3㎚ 칩을 수익성 있게 대량생산하는 건 다른 문제인 겁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만약 인텔이 3㎚ 칩 대량생산 능력을 갖췄다면, 도대체 왜 인텔은 왜 차세대 PC 프로세서(루나 레이크) 생산을 TSMC에 맡긴 거죠?인텔의 야심작 18A(1.8㎚ 칩) 개발도 의문투성이입니다. 18A는 인텔 파운드리의 미래가 달린 비장의 무기이자 마지막 희망 같은 기술이죠. 그런데 최근 로이터는 인텔 18A가 브로드컴(Broadcom) 초기테스트에서 “실패했다”고 전합니다. 18A 공정이 ‘아직 대량생산으로 전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거죠. 앞서 지난달 FT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AI 칩 생산을 위해 인텔과 벌인 협상도 비슷한 이유로 결렬됐다고 전했습니다. ‘인텔이 양과 속도에 대한 요구사항을 충족할 능력이 없다’고 소프트뱅크는 주장합니다. 겔싱어 CEO는 그동안 18A 수율이 엄청 높다고 큰소리쳐 왔는데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내년에 생산에 들어간다면서 현재까지 발표된 고객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 한 곳뿐인데, 그래도 괜찮을까요.그리고 걱정스러운 건 대량생산 기술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파운드리 사업 성공에선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습니다. 바로 고객별 제각각인 요구사항을 제품에 반영해 맞춤화하는 ‘고객 서비스 능력’이죠. 그리고 이건 인텔이 이전엔 해본 적 없는(할 필요 없었던) 가장 취약한 부분입니다.“인텔의 파운드리 성공 확률은 1%입니다.” 전 TSMC R&D 부문장으로, 인텔의 기술자문을 맡았던 양광레이 대만국립대학 교수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냉정하게 말합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텔의 공정 기술은 꽤 좋지만, 이를 이용할 고객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텔의 첫 번째 본질적인 문제는 “고객 중심 엔지니어링 사고방식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죠. “고객에게 서비스를 지원하려는 마음가짐”이 없는 게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겔싱어 CEO는 그동안 2027년엔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이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얘기해 왔습니다. 달리 얘기하면 그때까진 막대한 투자비와 그로 인한 적자, 구조조정과 주가 하락 같은 폭풍에 계속 시달릴 거란 뜻이죠. 시장은 이미 인내심을 잃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이 될 거란 전망에 투자자들이 냉정하게 돌아서고 있죠.“나쁜 회사는 위기에 파괴되고, 좋은 회사는 위기를 견뎌내고, 위대한 회사는 위기를 통해 발전한다.” 1980년대 인텔을 구한 전설적인 CEO 앤디 그로브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약 40년 전 메모리 반도체를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만 집중하기로 했던 그의 과감한 결정은 인텔을 침몰 직전에 구한 전환점이 됐었는데요. 인텔은 그때처럼 회사의 명운이 걸린 도박 같은 이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미 너무 늦은 걸까요. By.딥다이브인텔의 스토리는 역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보잉이 비행기가 추락하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등 요란하게 몰락을 알린 것과 달리, 인텔은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침식되고 있었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인텔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부활을 위해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투자에 나선 지 3년. 하지만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적자에 빠지면서, 이 도박 같은 투자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집니다. -인텔의 추락은 그동안 쌓인 경영상 실책의 결과물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용 칩 제조 제안을 거절해 모바일 시장을 놓쳤고, ASML의 EUV 장비를 도입하지 않으면서 기술에서 뒤처지기 시작했죠. -팻 겔싱어 CEO는 이제라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투자비는 너무 많이 들고 기술 진전은 속도가 붙지 않습니다. 고객사가 없는 파운드리 사업이 무슨 소용일까요. ‘성공확률은 1%’라는 냉정한 평가가 이어집니다.*이 기사는 1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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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엔 못 팔아”…US스틸 매각, 어쩌다 이렇게 뜨거워졌나[딥다이브]

    US스틸이란 미국 철강회사를 아시나요.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젠 철강업계에서 존재감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세계 24위) 123년 역사의 기업이죠. 미국 제조업의 영광과 쇠락을 모두 상징하는 기업이랄까요.지난해 12월 US스틸을 일본 철강기업 일본제철이 149억 달러(약 20조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요. 이제 그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이어집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조만간 이 거래를 차단할 거라고 하죠. 이를 두고 ‘가장 멍청한 경제 아이디어(the Dumbest Economic Idea)’라는 한탄(월스트리트저널 사설)이 터져 나오는데요. 경제적으로 멍청할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똑똑한 선택, US스틸 매각 반대를 들여다봅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철의 도시’의 과거와 현재오랫동안 ‘철의 도시(Steel city)’로 불려 온 이 도시 사람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제철소에서 일했고, 미식축구팀 ‘스틸러스(Steelers)’를 응원해 왔습니다. 도시 남쪽으로 흐르는 모노가헬라강 옆엔 1875년부터 지금까지 가동 중인 에드가 톰슨 제철소가 자리 잡았죠. US스틸 본사가 있는 피츠버그입니다.US스틸, 한때는 참 어마어마했죠. 세계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를 돌파한 가장 큰 기업(1901년 설립 당시),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를 세계 최고 부자로 만든 기업. ‘미국 산업화의 상징’이란 수식어가 과장이 아닙니다.그럼, 지금은 어떠냐. 조강생산량 기준 세계 24위. 현대제철(18위)보다 작은 철강회사입니다. 미국에서도 뉴코아(Nucor), 클리블랜드 클리프스(Cleveland-Cliffs)에 이어 3위. 1970년대(세계 2위, 연 4000만t 생산)와 비교하면, 미국 내 생산량은 4분의 1 토막 났습니다. 일본·한국·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새로운 기술 투자에 소홀했던 결과죠. 무엇보다 더 이상 제조업이 중심이 아닌 미국 경제에서 그 효용을 잃어갔습니다. “US스틸의 위상은 1916년에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최고 생산량은 1970년대였죠. 수십 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찰스 브래드퍼드 애널리스트의 CNN 인터뷰)모노가헬라강 기슭에 늘어섰던 제철소들이 줄줄이 문 닫던 1980년대. 피츠버그는 다른 러스트벨트(Rust Belt)처럼 침체에 빠졌죠. 실업률은 치솟고, 젊은이는 도시를 떠났습니다. 한때 30만명이던 US스틸 미국 내 직원 수는 이제 1만5000명 수준. 그중 피츠버그에서 일하는 건 3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지금 피츠버그는 좌절에 찬 블루칼라 노동자로 가득한 쇠락한 도시일까요?전혀요. 이제 피츠버그는 의료와 교육, 로봇의 도시로 통합니다. 제철소 대신 병원과 대학이 주요 고용주이죠. 하이테크 산업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층이 몰려드는 지역으로 거듭났습니다. 도시는 다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US뉴스앤월드리포트는 피츠버그를 미국 150대 도시 중 살기 좋은 도시 36위로 선정했습니다. 여행지로 인기 있는 포틀랜드(41위)나 수도 워싱턴DC(44위)보다 높은 겁니다.“일본에 못 판다”피츠버그는 펜실베이니아주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이죠. 펜실베이니아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판세를 좌우하는 경합주입니다. 7개 경합주 중 가장 많은 19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최대 격전지이죠.누구든 펜실베이니아를 잡아야만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은 한 게 바로 펜실베이니아입니다. 2020년 대선엔 바이든에 승리를 안겨준 곳이고요. 트럼프와 해리스, 양당 대선후보들이 펜실베이니아 잡기에 안간힘인 이유입니다.두 후보는 펜실베이니아를 찾아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70년 전 미국의 가장 위대한 회사가 바로 US스틸입니다. 일본이 US스틸을 사지 못하도록 막겠습니다.”(8월 19일 트럼프 공화당 후보)“US스틸은 미국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기업으로 남아야 합니다. 언제나 미국 철강 노동자를 지키겠습니다.”(9월 2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그리고 이제 바이든 대통령이 나섭니다. 조만간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를 공식 발표할 거란 소식이 전해지죠. 불허의 이유는 아마 ‘국가 안보’가 될 겁니다. 철강 생산은 국가 안보에 꼭 필요한데(무기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중요한 산업을 함부로 다른 나라에 넘길 순 없다는 논리죠(하지만 군사적으로 필요한 철강은 미국 생산량의 3%뿐입니다).도대체 어쩌다 US스틸이 대선을 앞두고 큰 이슈로 떠올랐을까요. 먼저 지난 스토리를 간단히 설명드리자면.오랜 경영난에 시달리던 US스틸은 지난해 매물로 나왔고, 작년 12월 세계 4위의 철강회사 일본제철이 경쟁 입찰 끝에 인수자로 선정됩니다. 기존 주가보다 40%나 높은 가격(주당 55달러)에 사겠다는 제안에 US스틸 주주들도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를 통과시켰죠. 하지만 산별노조인 미국철강노조(United Steelworkers)는 곧바로 들고 일어났습니다. ‘해고나 공장 폐쇄를 하지 않고, 노조가 있는 공장에 투자한다’는 일본제철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이죠. 이 지역 정치인들도 노조와 한목소리입니다. ‘대통령이 이 인수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죠.US스틸은 이 좋은 거래를 왜 막느냐고 펄쩍 뜁니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 뒤 노후화한 제철소에 약 3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인데요. 거래가 무산되면 투자는커녕, 피츠버그 제철소의 문 닫게 될 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일자리마저 사라질 수 있단 뜻이죠. 데이비드 버릿 CEO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 그 공장(피츠버그)이 다음 10년 동안 버틸 수 없다면, 우리가 왜 거기에 머물러야 하죠?”‘US스틸’이란 이름의 의미기업이 팔려나갈 때 노조가 일자리나 근로조건 축소를 우려해서 반대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좀 어리둥절합니다. 이게 정말 대통령과 양당 대선 후보가 모두 나서서 저지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일인가요.일단 이번 거래로 미국이 손해를 보는 게 무엇인지가 애매하고요(국가 안보?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 아닌가요?). 또 펜실베이니아주에서 US스틸 또는 그 관련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아야 1만명 남짓이라는데요(펜실베이니아주 인구는 약 1300만명). 왜 US스틸을 일본에 넘기지 않는 게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를 잡는데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더 이상 제철소에서 일하지 않고, 철강산업에 별 관심도 없는(오히려 환경오염에 더 민감한) 대다수 유권자들에게 왜 이 이슈가 어필할까요. 거의 모든 미국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이 이 거래를 막는 건 경제적으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한목소리로 외치는 데 말이죠.그 이유는 바로 ‘감정’에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향수 내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요.레딧에 있는 반응을 보시죠.‘이건(US스틸 매각은) 미국 철강산업의 관에 못을 박는 일입니다. 제 두 할아버지는 모두 US스틸에서 일했고, 그들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할아버지들이 무덤에서 일어나실 거예요.’‘US스틸은 (포드의) 모델T와 (보잉의) B-17만큼 상징적이기 때문에 외국인 손에 넘어가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한 80대 US스틸 은퇴자 반응도 비슷합니다. “이 아름다운 역사를 잃을 순 없어요. 제철소는 가족 같은 존재이죠. (인수하는 곳이) 일본인지 아닌지는 관계없어요. 미국인지 미국이 아닌지가 중요하죠.”합리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사람들은 US스틸이 더 이상 US(미국) 기업이 아닌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1900년대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부터 1970년대 미식축구스타 테리 브래드쇼까지, 그 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화려했던 시절의 US스틸은 이제 어디에도 없고, 돌아올 수도 없는데도 말이죠.그리고 이것이 논리가 아닌 감정의 문제인 한, 굳이 이를 거스르려는 정치인은 없을 겁니다. 그것도 대선을 두 달 앞두고는 말이죠. 이 지역 시의원인 샘 데마르코(공화당)는 배런스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US스틸’로 불립니다. 뉴코아 같은 다른 이름이었다면 달랐을 겁니다. 사람들은 마치 워싱턴 기념탑이 팔리는 것처럼 보고 있습니다.”뉴욕타임스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있군요. “그들이 변호사 비용의 10분의 1만 써서 US스틸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리브랜딩했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매각 무산)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웃고 있을 한 사람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을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2위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줄여서 클리프스)의 CEO 로렌코 곤칼베스입니다. 클리프스는 지난해 8월 US스틸을 주당 35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죠. 이후 일본제철이 인수자로 결정됐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비판을 이어갑니다. 주로 일본제철이 인수하는 게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였죠. “일본은 미국의 친구가 아니다”라는 다소 놀라운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요.(일본이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라는 건 상식으로 통합니다.)지금 상황은 딱 그가 주장했던 그 논리대로 흘러갑니다. 일찌감치 그는 미국철강노조의 지지도 확보해 놓은 상황(철강노조는 클리프스의 US스틸 인수를 지난해 8월부터 지지함). 아니, 이대로 가면 일본제철 인수가 불허되고 클리프스에 다시 기회가 돌아가려나요? 실제 곤칼베스 CEO는 얼마 전 애널리스트가 US스틸 인수에 아직도 관심 있냐고 묻자 “(주당) 20달러대에 거래가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일본제철이 제시한 인수가격(55달러)의 약 절반으로 후려칠 수 있을 거란 계산인 거죠. 역시나 ‘철강업계 일론 머스크’라는 별명대로 포기를 모르는 집요한 인물입니다.주식시장에선 이미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습니다. 4일 US스틸 주가는 17% 급락했죠. 주가가 지난해 12월 인수전 전으로 다시 돌아간 겁니다.개방적이고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한다던 미국 정부의 약속, 미국과 일본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걸까요. 아마 미국 정치권은 그 모든 문제를 11월 대선 이후로 미뤄두지 않을까 싶은데요. 로펌 스캐든에서 국제투자심사위원회(CFIUS)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마이클 라이터는 CNN에 이렇게 말합니다. “미일 동맹과 일본제철의 역사, 미국 철강산업의 약점을 고려할 때 합병 반대를 정당화하는 국가안보 위험을 식별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위험을 식별하는 건 훨씬 더 쉽죠.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바로 그 미적분이 이 이슈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반대하는 미국 내 움직임을 두고 ‘보호무역주의’라고 흔히 표현하는데요. ‘도대체 뭘 보호하는 거지?’가 의문이었습니다. 실제로는 보호되는 이익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제 알겠습니다. 미국 국민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거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미국 산업화의 상징이던 US스틸 매각을 두고 양당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반대에 나섰습니다. 일본 기업엔 팔 수 없다는 거죠. 바이든 대통령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매각을 중단시킬 거라고 합니다. -수십년 째 쇠락 중인 기업인데, 투자받아서 되살리는 게 나은 일 아닐까요. 다른 나라도 아니고 동맹국에 파는 걸 두고 국가 안보 운운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데요. 매각 반대는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비판도 이어집니다.-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건 논리가 아닌 감정의 문제이죠. 미국 제조업의 좋은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US스틸은 남다른 상징입니다. 펜실베이니아 표심을 잡아야 할 정치인들에게 이 문제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입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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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세븐일레븐 외국자본에 팔리나… 엔저 부메랑에 日충격[딥다이브]

    일본을 대표하는 편의점 브랜드 세븐일레븐이 캐나다로 넘어가게 될까. 캐나다 유통기업 알리멘타시옹 쿠시타르(쿠시타르)가 지난달 세븐일레븐 모기업 세븐앤드아이홀딩스에 인수를 제안했다. 시장은 거래가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일본 기업이 주주가치 제고에 소홀했던 데다, 엔저로 주식이 바겐세일 중이기 때문이다.● 캐나다 경쟁사의 인수 제안 ‘회사는 쿠시타르로부터 모든 발행 주식을 인수하겠다는 구속력 없는 비밀 예비 제안을 받았음을 확인한다.’ 지난달 19일 세븐일레븐 모회사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쿠시타르는 캐나다 유통 대기업. 편의점 브랜드 ‘서클K’ 운영사이다. 세븐일레븐은 전 세계 최대 편의점 브랜드. 점포 수(약 8만5000개)가 서클K(약 1만6700개)의 5배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에서도 세븐앤드아이홀딩스(약 105조 원)가 쿠시타르(96조 원)를 앞선다. 세븐일레븐은 일본에서 ‘생활 필수품’으로 불릴 정도로 사랑받는 브랜드이다. 싸고 질 좋은 식품을 판매할 뿐 아니라 금융·행정 업무와 각종 고지서 수납까지 해결하는 만능 점포이기 때문이다. 지진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세븐일레븐은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생명줄’ 역할까지 담당한다. 그런데도 쿠시타르가 이를 사겠다고 나설 수 있는 건 세븐일레븐의 업계 위상에 비해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주가가 너무 싸기 때문이다. 인수 제안이 알려진 뒤 주가가 25% 넘게 급등했는데도 시가총액은 5조7000억 엔(약 52조 원)에 그친다. 쿠시타르 시총(711억 캐나다달러·약 70조 원)에 한참 못 미친다. 주가가 낮은 데는 이유가 있다. 편의점 사업은 알짜이지만, 다른 자회사가 수익성을 갉아먹는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2022년 말 백화점(세이부)을 팔고, 대형마트(이토요카도) 사업을 축소해 왔지만 주가를 띄우진 못했다. 레스토랑, 은행, 통신판매, 보험대리점 등 너무 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것도 주가엔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 현실화한 엔저 리스크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주가가 유독 저렴해 보이는 데는 엔저 영향도 크다. 한때 달러당 160엔을 찍었던 엔화 가치가 최근엔 140엔대로 올랐지만 여전히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해외 투자자 입장에선 우량한 일본 기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다. 엔저 바겐세일은 모든 일본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현상이다. 쿠시타르의 세븐일레븐 인수 시도가 일본 경제에 충격을 준 이유다. 이제 시작일 뿐, 다른 기업에도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업계 1위여도 일본 기업과 해외 기업 간 시가총액에 큰 차이가 있고 엔저 추세가 이를 부추긴다”며 “일본의 어떤 대기업이든 (해외 기업에) 인수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35년 전인 1989년 엔고를 기회 삼아 일본 소니가 미국 영화사 컬럼비아픽처스를 인수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 아무리 우량 기업이라 해도 외국인투자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 제2 세븐일레븐은 어디 세븐앤드아이홀딩스는 아직 인수 제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쿠시타르가 얼마의 가격을 제시했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만약 거래가 성사된다면 해외로 팔린 일본 기업 중 최대 규모가 될 건 확실하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18년 2조 엔에 한미일 연합에 팔린 도시바 메모리(현 키옥시아)였다. 과거 일본 기업은 인수 제안이 와도 이를 묵살하곤 했다. 주주가치보다는 경영진 이익이 우선시됐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 자본에 멀쩡한 회사를 통째로 넘기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역시 19년 전인 2005년에도 쿠시타르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 이토 마사토시 회장이 이를 바로 거절한 적 있다. 그러나 지난해 일본 정부가 인수합병(M&A) 지침을 바꾸며 시장의 규칙이 달라졌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도록 의무화했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도 이 지침에 따라 독립적인 사외이사에게 판단을 맡겼다. 시장에선 일본 사회 정서를 고려했을 때 쿠시타르의 제안은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사외이사 9명 중 5명은 일본인이다. 일본 소비자는 세븐일레븐이 캐나다로 넘어가면 음식의 맛과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우려한다. 하지만 외국인 주주 입장은 다르다. 이 회사 주식에 투자 중인 미국 자산운용사 아티잔파트너스는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제안을 기각한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기준으로 삼으라는 주장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번 건은 일본 M&A 시장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쿠시타르 선례를 본떠 일본 기업 인수에 뛰어들 해외 투자자가 늘 수 있어서다. 이미 투자업계에선 ‘제2의 세븐일레븐’이 될 만한 일본 기업이 어디인지 찾기 바쁘다. 주가가 저렴하면서도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가 탄탄한 소비재 기업이 유력한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라면으로 유명한 닛신식품홀딩스,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 제과회사 칼비, 운동화 브랜드 아식스, 맥주회사 삿포로 등이 꼽힌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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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갭이 돌아올까…한물간 브랜드의 부활 도전기[딥다이브]

    혹시 갭(GAP)을 아시나요. 꽤나 역사가 깊은(1969년 설립) 미국 패션 브랜드이죠. 아마 이제 중년이 된 X세대라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GAP’ 세글자가 큼지막하게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후드티 한 벌쯤은 옷장에 있었을 법합니다. 왜 추억의 브랜드 이야기를 꺼내냐고요? 망해가는 줄로 알았던 갭이 부활의 스토리를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죠. 최근 1년 주가 상승률은 무려 96%. 추락했던 실적도 눈에 띄게 반등 중입니다. 한물간 소비재 브랜드가 다시 힙하게 되살아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요. 오늘은 갭의 반전 스토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때 미국 문화였던 브랜드‘맥도날드만큼 널리 퍼져 있고, 미키마우스만큼 미국적인.’ 1992년 뉴욕타임스 기사 속 표현대로 갭은 한때 ‘미국 스타일’을 정의하는 국민 브랜드였습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과 좋은 품질, 단순한 디자인과 대담한 색상의 결합은 ‘눈에 띄진 않으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보이고 싶은’ 중산층 베이비붐 세대에 어필했죠. 미국 교외 곳곳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마다 가장 크고 좋은 자리엔 갭 매장이 있었습니다.갭을 입는다는 건 ‘남과 똑같은 옷을 입으면서도 멋지다’는 쿨함의 표현이었죠. 1992년 보그 100주년 기념호 표지를 채운 건 갭의 흰색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슈퍼모델이었습니다. 199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배우 샤론 스톤은 26달러짜리 갭의 검은색 반팔 터틀넥을 입었고요. 갭 광고 출연은 유명함의 상징이 됐고, 광고에 쓰인 노래는 단숨에 히트곡이 됐습니다. 그 시절 갭은 패션인 동시에 문화 브랜드였습니다. 1992년 30억 달러였던 갭 그룹(Gap Inc.) 매출은 2000년 137억 달러로 수직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5달러 안팎이던 주가는 2000년 2월 52.88달러를 찍었죠.그리고 거기까지였습니다. 2000년 H&M이 뉴욕에 첫 매장을 냅니다. 싸고 빠른 패스트패션의 공습이 시작됐죠. 갈수록 부의 불평등이 커지며 양극화하는 시장에서 ‘중산층’을 타깃으로 한 브랜드는 점점 설 자리가 좁아졌습니다. 갭은 형제 브랜드인 올드 네이비에 추월당했죠.무엇보다 갭 매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랐습니다. 새로 여는 매장이 기존 매장 매출을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매장을 빠르게 늘려가며 실적을 쭉쭉 끌어올리던 확장의 시대가 저물고 온라인 쇼핑 시대가 도래했습니다.리더십 대혼란과 무너진 정체성 미키 드렉슬러 전 갭 그룹 CEO는 무려 20년 가까이(1983~2002년) 독재자처럼 회사를 좌지우지한 인물입니다. ‘패션 머천다이징의 왕자’로 불리던 업계 대표 스타 CEO였지만, 2002년 실적이 급락하자 바로 쫓겨납니다. (이후 제이크루로 가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듯했지만, 결국 실패)이후 20년 동안 갭 그룹은 리더십의 대혼란에서 허우적거립니다. 새 CEO가 선임됐다 몇 년 만에 잘리기를 반복했죠. 전직 월트 디즈니 임원(폴 프레슬러), 캐나다 약국체인 책임자(글렌 머피), 경영 컨설턴트 출신(아트 펙),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관리 전문가(소니아 신갈)까지. 4명 모두 공통적으로 패션이나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습니다.이들은 ‘데이터 분석’을 도입해 시장을 예측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려고 애썼죠. 하지만 패션 트렌드라는 게 그렇게 숫자로 딱딱 나올 리 없습니다. 리더도 명확한 비전이 없으니, 결과적으로 브랜드는 오락가락합니다. 어느 해엔 패스트패션과 경쟁하기 위해 저렴한 옷을 판매하다가, 그다음 해엔 수백달러짜리 가죽재킷을 파는 식이었죠. 점점 더 갭이 무엇을 대표하는 브랜드인지 정체성은 모호해지기만 합니다. 그 결과 이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가끔 엄청나게 할인하는 스웨터를 살 수 있는 그런 브랜드쯤으로 여겨지게 됐죠.갭이 어떻게든 부활하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있었던 대표 실패 사례로는 힙합 뮤지션 칸예 웨스트(지금은 ‘예’로 불림)와의 협업이 있습니다. 2020년 양측이 손잡고 이지 갭(Yeezy Gap) 브랜드를 만든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만 해도 시장 반응은 열광적이었죠. 5년 뒤엔 연 매출 10억 달러 브랜드가 될 거란 전망에 힘입어, 갭 주가는 단숨에 30% 넘게 뛰었습니다. 실제 출시된 후드티는 웃돈이 붙어 팔릴 정도로 팬들에게 인기를 끌었고요.하지만 이 협업은 도통 속도가 나지 않았고(18개월 동안 제품 단 2개 출시), 칸예는 2년 만에 계약해지를 통보합니다. 갭에는 굴욕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는데요. 브랜드 정체성은 스스로 시간을 들여 구축해야지, 다른 데서 빌려오거나 무임승차할 순 없다는 교훈만 남깁니다.구원투수 딕슨의 등판CEO 자리는 1년 가까이 공석이고, 매출은 계속 줄고, 주가는 바닥을 치고, 직원 1800명 정리해고까지. 암울한 몰락의 길을 걷던 2023년 8월, 갭이 새 CEO를 영입합니다. 리처드 딕슨, 마텔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죠. 마텔은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79년 된 미국의 장난감 기업입니다.“사람들은 내가 이직했을 때 ‘미쳤어’라고 생각했어요.” 딕슨 말대로 그는 당시 커리어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2014년 매출이 급락하던 마텔로 다시 돌아와 바비 브랜드의 변혁을 이끈 장본인이었고요. 그가 오랫동안 꿈꿨던 영화 ‘바비’가 드디어 성공적으로 개봉한 직후였죠. 전 세계가 ‘바비의 마법’에 주목하던 때, 그는 침몰하던 갭에 올라탑니다. 그럼 딕슨은 어떻게 ‘왠지 내 딸에게 사주긴 꺼림칙한’ 장난감으로 이미지가 전락했던 바비 인형을 되살렸을까요. 많은 설명이 있지만, 그의 이 말에 주목할 만합니다. “바비에 대한 마케팅을 독백에서 대화로 바꿨습니다.”보통 소매브랜드는 ‘우리는 이런 멋진 브랜드’라고 정한 뒤, 일방적으로 이를 떠들기 바쁘죠. 하지만 그는 글로벌 조사를 통해 소녀와 그 부모들이 바비의 어떤 점을 싫어하는지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피드백은 바비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닮지 않았다는 겁니다. 소비자와의 대화에서 우리는 ‘인형의 얼굴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인형의 피부톤, 머리 색깔과 질감, 키, 다리 길이, 체형 등. 모든 걸 재설계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26가지 민족의 바비와 함께 휠체어를 타거나 의족을 착용한 바비, 수의사, 로봇공학자 등 각종 직업의 바비도 등장했죠. ‘놀이로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극한다’라는 브랜드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다시 돌아간 겁니다.그가 갭에 와서 한 작업도 비슷합니다. 먼저 브랜드의 ‘목적’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텔에서 던졌던 그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왜 우리는 여기 있는가?” “처음에 우리를 위대하게 만든 건 무엇인가?”그가 찾은 답은 ‘클래식’입니다. “사람들은 클래식을 위해 우리에게 옵니다. 면바지, 데님, 흰색 티셔츠. 이런 것을 특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놀라운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사람들과 함께요.”딕슨이 CEO로 취임한 지는 이제 겨우 1년 남짓. 그동안 그는 이런 일을 했습니다.-패션 디자이너 잭 포슨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며 변화를 알립니다. 레드카펫 드레스로 유명한 포슨은 갭에서 158달러짜리 흰색 셔츠 드레스를 디자인합니다. 이를 앤 해서웨이에게 입혔고, 그 결과 드레스는 바로 완판됐죠. 이제 패션지가 다시 갭을 주목합니다.-‘50% 할인’을 요란하게 알리던 배너를 홈페이지 저 구석으로 밀어냅니다. 할인에 의존하면서 갭은 점점 “실제로 무엇을 판매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객이 프로모션에 압도당하지 않고 제품에 끌리길” 원했습니다.-이제 홈페이지에 접속한 고객이 가장 먼저 보는 건 할인 배너가 아닌 춤추는 모델들이 등장하는 감각적인 영상입니다. 올봄에는 린넨 바지와 셔츠, 이번 가을엔 헐렁한 데님룩이 메인 테마입니다. 영상의 중심엔 팝스타 타일라, 트로이 시반 같은 Z세대에 핫한 유명인을 내세웠습니다. 그는 “패션은 엔터테인먼트”라고 주장합니다.-오프라인 매장에선 재고를 크게 줄입니다. 할인매장처럼 어수선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죠. 매장에서 흘러나오던 졸린 음악은 이제 더 경쾌한 음악으로 바뀌었습니다.-8월 22일 공식적으로 주식거래 기호(티커)를 ‘GPS’에서 ‘GAP’로 변경했습니다. 1976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뒤 48년 만이죠. 상징적이지만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신호입니다.되살아난 매출, 부활의 시작?어떤가요? 종합하자면 딕슨 본인 설명대로 “더 강력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올인 중입니다. 트렌드에 맞는 제품과 스토리텔링에 집중하죠. 그게 정말 효과가 있냐고요? 글쎄요.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리겠죠. 그리고 당연히 시니컬한 반응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마케팅 시대에 타일라가 춤추는 화려한 광고 영상이 무슨 소용이지? 아직도 1990년대인 줄 아나’라는 식이죠.하지만 현재까지의 실적은 훨씬 더 긍정적인 반응을 드러냅니다. 그룹 매출은 하락세를 멈췄고 올 1분기엔 3%, 2분기엔 5% 성장했죠. “모든 소득계층에서 매출이 성장 중”이라고 딕슨 CEO는 설명하는데요. 2분기 순이익은 1년 전보다 거의 두 배로 증가했고, 회사 측은 최근 연간 이익 전망을 상향 조정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쳐다보지 않던 애널리스트들이 이제 투자등급을 상향 조정하거나, 목표가를 올려잡기 시작했죠. 어쩌면 ‘회복의 초기 단계’에 와있는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물론 갈 길은 멉니다. 업계에선 지난 20여년 동안 인내심 없이 CEO를 갈아치워 온 오너 일가(창업자의 아들)와 변혁을 동참하기엔 무기력한 갭의 조직 분위기를 걸림돌로 꼽죠. 무엇보다 위대한 순간이 지나가버린 한물간 브랜드를 되살리기란 원래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아닐 겁니다. 아베크롬비앤드피치(Abercrombie & Fitch)를 보세요. 남성 모델 웃통을 벗기고, 인종 차별과 외모 차별을 일삼는 브랜드라며 손가락질당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요(관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가 2022년 나왔을 정도). 2017년 프랜 호로비츠 CEO가 취임한 뒤, 어두컴컴하던 매장을 환하게 밝히고, 플러스 사이즈 또는 유색인종 모델을 쓰고, 섹시 컨셉 대신 깔끔한 직장인 룩을 추구하면서 환골탈태. 지금은 매출이 두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고, 지난 1년 주가 상승률(169%)이 엔비디아(145.8%)를 웃돕니다. 132년 된 기업 아베크롬비가 해냈는데 이제 겨우 55살인 갭이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을까요. 반전과 부활의 스토리는 언제나 환영받는 이야기입니다. By.딥다이브신문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올드한 브랜드를 되살리는 방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과연 낡은 것이 다시 힙해지는 건 가능한 일일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한때는 미국 문화 그 자체였던 패션 브랜드, 갭. 하지만 2000년 정점 이후 기업은 리더십 혼란에 빠지고 브랜드는 그 정체성을 잃어갔습니다. -몰락하던 브랜드가 지난해 영입한 새 CEO는 리처드 딕슨. 쇠퇴한 아이콘 바비를 되살렸던 그 재능에 주목한 건데요. ‘무엇이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에서 그가 찾은 답은 ‘클래식’입니다. -어수선한 홈페이지와 매장이 정리되고, 린넨과 데님을 앞세운 감각적인 광고 영상이 새로운 갭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아직 초기이지만 매출이 되살아나면서 희망이 보이려 하는데요. 아베크롬비만큼 극적인 반전을 기대해도 될까요.*이 기사는 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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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븐일레븐, 캐나다에 팔릴까?…‘엔저 리스크’란 이런 것[딥다이브]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한국 기업. 어디인가요? 글쎄요. 솔직히 선뜻 떠오르는 곳이 없는데요. 일본에서는 아마 이 기업이 꼽힐 겁니다. 세븐일레븐.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큰 편의점 브랜드이죠.50년 동안 일본인 삶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세븐일레븐이 최근 캐나다 기업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는 소식에 일본 여론이 술렁입니다. M&A가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어쩌다 세븐일레븐이’라는 한탄이 터져 나오는데요. 35년 전과는 정반대 입장이 된 일본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랄까요. 오늘은 세븐일레븐 인수 제안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세븐, 팔면 안 돼요”‘회사는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로부터 회사의 모든 발행 주식을 인수하겠다는 구속력 없는 비밀 예비 제안을 받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이사회는 이 제안을 검토하기 위해 독립적인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19일 세븐일레븐의 모회사 세븐앤아이홀딩스가 이런 성명을 발표합니다.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줄여서 쿠쉬타르)는 캐나다 퀘벡에 본사를 둔 유통 대기업. 세계적인 편의점 브랜드 ‘서클K’의 운영사입니다.전 세계 편의점 점포 수로 비교하면 서클K(1만6700개)는 세븐일레븐(8만5000개)의 5분의 1 수준. 그런데 세븐일레븐이 서클K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게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세븐앤아이홀딩스 주가는 19일 23% 급등, 다음날 10% 하락.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데요.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외국기업이 일본기업을 인수하기론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건 확실합니다. 쿠쉬타르가 얼마를 제안했는지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세븐앤아이홀딩스의 현재 시가총액이 5.25조엔(약 48조원)에 달하니까요.주가만 대혼란이 아닙니다. 일본 소비자들 충격은 상상 이상인데요. ‘일본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해외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는 소식에 SNS엔 격한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이런 식이죠.‘내가 좋아하는 세븐이 아니게 되어 정말 슬퍼요. 매일 이용하는데… 살 수가 없네요.’‘세븐은 일본의 인프라니까 팔면 안 돼요.’‘나라를 일으켜서 막아주세요. 절대로 안 돼요.’일부 소비자의 과장 섞인 반응이 아닙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칼럼엔 이런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제 일본의 편의점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와 함께 일본 ‘소프트 컬처’의 대표이다. (중략) 세븐일레븐 매각은 간판이 바뀌는 데 그치지 않고 50년간 길러온 ‘소프트파워’가 유지되느냐의 문제다.’편의점이 그 정도로 소중한가, 라고 신기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요. 일본에서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합니다. 세븐일레븐은 일본 전국 모든 현에 총 2만개 넘는 점포가 있습니다. 매장을 찾는 고객은 매일 약 2000만명. 100엔대 신선한 커피부터 유명 파티세리의 디저트까지, 없는 게 없는 매장은 현지인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필수코스로 통하죠. 돈 뽑는 ATM기기는 물론이고, 세금·전기요금 수납과 복사·인쇄, 소포 발송 서비스까지 제공합니다. 가게들이 사라져가는 시골에선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심지어 지진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음식과 물을 제공하는 ‘생명줄’이 됩니다.세계 1위인데 48조원, 싸다?이렇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우량기업이 어쩌다 M&A 타깃이 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싸니까요.세븐앤아이홀딩스 시가총액을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361억 달러(약 48조원)인데요. 편의점 점포 수나 매출 면에서 뒤지는 쿠쉬타르는 575억 달러(약 77조원)가 넘습니다. 동종업계에서도 세븐앤아이홀딩스 주가는 유독 저평가돼 있죠.그럼 왜 주가가 낮을까. 일단 회사 내부 원인이 있습니다. 세븐앤아이홀딩스는 그동안 대형마트(이토요카도)와 백화점(세이부) 사업 부진으로 고전해 왔죠. 최근 들어 백화점을 팔고(2022년 말), 마트 규모를 줄이는 등 돈 되는 편의점 쪽에 집중하고 있지만 주가는 영 신통찮았습니다. 인수제안 발표 직전(16일) 주가를 기준으로 보면 1년 전과 비교한 주가 상승률이 -12%. 같은 기간 니케이225 지수가 20%가량 오른 것과 비교하면 성적이 형편없죠. 그만큼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소홀했단 뜻입니다.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데는 당연히 엔저도 크게 작용합니다. 엔화 가치가 최근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역사적인 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히 낮죠. 해외 기업 입장에선 엔화 약세로 우량 일본 기업을 싸게 인수할 기회가 열린 겁니다.쿠쉬타르가 인수를 제안한 시점도 절묘합니다. 일본증시가 폭락했던 블랙먼데이(5일),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주가도 52주 최저로 떨어졌는데요.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들어왔으니까요.쿠쉬타르 공동창립자인 알랭 부샤르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2005년에 이토 마사토시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창립자에게 인수를 제안했다고 밝혔었죠. 당시 이토 회장은 이를 거부하면서 두 회사 모두 합병을 검토하기 전에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는데요. 그리고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 이토 회장은 지난해 사망했고, 쿠쉬타르는 다시 치고 나왔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세븐일레븐은 1만3000개, 서클K는 9000개의 편의점을 운영 중이죠. 합치면 미국 시장에서도 경쟁사인 캐시스제너럴스토어(1만7000개)를 가뿐히 제칠 겁니다.35년 전 일본의 할리우드 침공원래 통화가치는 곧 국력입니다. 통화가치가 뚝 떨어졌을 때 기업들이 해외 투자자의 먹잇감이 되는 사례는 많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건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1989년 일본 소니의 미국 영화사 컬럼비아픽처스 인수.1980년대 들어 일본산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밀려들며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렸던 미국이 찾은 답은 환율 조정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인데요. 250엔이던 달러-엔 환율을 120엔으로 끌어내립니다. 갑자기 미국 달러화 가치가 엔화 대비 절반으로 뚝 떨어진 거죠. 미국으로선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막대한 무역적자를 줄일 묘책이었습니다.거품경제의 절정이던 1980년대 말, 돈이 흘러넘쳤던 일본 기업과 자산가들은 이 엔고를 이용해 미국 부동산과 기업을 잇달아 사들입니다. 일본 자본의 공세에 대한 두려움이 미국인들 사이에 자리 잡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 1989년 9월, 소니가 컬럼비아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합니다. 여론은 폭발했죠.‘일본이 할리우드를 침공하다(Japan invades Hollywood)’. 미국 뉴스위크지는 이런 제목의 표지를 실었습니다. ‘컬럼비아를 사는 건 미국의 영혼을 사는 짓’이라고 비평가들은 말했죠. 많은 미국인들이 국가적 정체성을 흔드는 위협적인 일이라며 분노했습니다. 소니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 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 미국 기자는 “컬럼비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히로히토 천황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느냐”라고 따져 물었죠(참고로 모리타 회장은 ‘우린 이의 없다’고 답변).물론 이걸 지켜보는 일본인도 심기가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거론하며 이렇게 꼬집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에서 베짱이를 봅니다. 미국은 번 것보다 더 많이 지출했고 적자가 누적되고 통화가 약화되었으며 이제 외국인 투자자들의 맹공에 직면해 있습니다.”일본 경제학자 타케우치 노부오의 당시 발언도 인상적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습니다. 자국 통화를 짓밟기로 선택하면 외국기업이 달러 약세를 이용해 미국 기업을 사들일 거라고 예상해야 합니다.”35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통화 약세의 주인공이 미국이 아닌 일본이란 게 달라졌죠. 지금의 베짱이는 누구인가요.다음 인수 대상은 어디?다시 세븐일레븐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인수 제안이 실제로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거라는 게 대다수 의견입니다. 보수적인 일본 기업 정서상 멀쩡한 회사를 외국 자본에 통째로 넘기는 건 상상하기 어렵죠. 세븐앤아이홀딩스 이사회가 판단을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에게 맡겼다고 하지만, 그 9명 중 5명이 일본인입니다. 일본 사회의 상식에 맞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이죠. 쿠쉬타르가 인수가격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써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경우만 아니라면요.하지만 설사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이번 인수 제안은 일본 경제에 한 방을 먹였습니다. ‘아무리 우량기업이더라도 이대로 가면 외국 기업에 먹힐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줬죠. 그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엔화 약세의 큰 리스크입니다.벌써부터 다음엔 어느 기업이 인수제안을 받을까에 대한 전망이 이어지는데요. 아마도 글로벌, 또는 아시아 시장에서 활발히 사업을 확장하는 일본 기업이 타깃이 될 겁니다. 일본 경제주간지 동양경제는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시총 1.4조엔), 스키야와 하마스시 등 외식 체인을 운영하는 젠쇼(1.1조엔), 라면회사 닛신식품홀딩스(1.2조엔)를 꼽았고요. 해외 헤지펀드들은 이미 닌텐도, 올림푸스 같은 종목을 매수 중입니다. ‘제2의 세븐일레븐’은 과연 어디가 될까요. 일본 자본시장에 긴장감이 더해집니다. By.딥다이브소니의 컬럼비아픽처스는 사전 준비 없이 무리한 탓에 실패한 M&A 사례로 남았죠. 지금 일본에선 쿠쉬타르가 설사 세븐일레븐을 인수하더라도 깐깐한 일본 소비자 탓에 성공하기 어려울 거란 분석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일본인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브랜드, 세븐일레븐이 캐나다 기업 알리멘타시옹 쿠쉬타르로부터 모든 발행주식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회사 측 입장은 현재 논의 중인 상황. 일본 소비자들에겐 큰 충격입니다. -성장 둔화와 주가 하락, 그리고 엔저까지 겹치면서 M&A의 타깃이 됐습니다. 해외 기업 입장에선 엔저가 우량 일본 기업을 싸게 살 기회이죠. 35년 전 소니가 미국 컬럼비아픽처스를 인수했던, 당시 상황과는 정반대입니다. -세븐일레븐이 인수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또 다른 일본 기업이 비슷한 제안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그동안 대체로 ‘구매자’ 입장이었던 일본 기업이지만,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매물’이 될 리스크가 커졌습니다.*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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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철강 쓰나미가 전 세계를 덮쳤다[딥다이브]

    칠레 철강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호주 정부는 세수 감소 경고등을 켰습니다. 미국과 EU부터 중남미와 동남아시아까지. 전 세계 철강업계와 광산업계를 동시에 뒤흔드는 이슈. 바로 중국 철강 과잉생산 때문입니다.중국산 철강이 남아도는 거야 주기적으로 있는 일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고요. 그런데 이전 위기(2008년, 2015년)와 달라진 게 있습니다. 이 불을 꺼야 할 소방서(=중국 경기)에 가장 큰불이 났단 점이죠. 이 혼란이 생각보다 오래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인데요. 전 세계 덮친 중국의 철강 과잉 공급을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세계 1위의 ‘엄동’ 경고“철강의 ‘혹독한 겨울’은 우리 예상보다 더 길고, 더 추우며,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중국 바오우그룹 후왕밍 회장이 최근 반기 업무회의에서 한 이 말. 전 세계 철강업계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바오우그룹은 전 세계 철강의 약 7%를 생산하는 압도적 1위 기업이기 때문이죠.중국은 전 세계 철강 공급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죠. 이런 중국 철강업계에 ‘추위’와 ‘겨울’ 같은 단어가 다시 등장한 건 2022년부터. 팬데믹 직후의 반짝 호황이 지나고, 2021년 말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의 디폴트 선언과 함께 중국 부동산 경기가 확 고꾸라진 시점입니다.중국 내 철강제품 가격은 뚝뚝 떨어지고, 철강회사 이익은 급락 중입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철강기업 중 40%가량(2314개)은 적자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지난달 말 건설용 철근 가격은 여러 지역에서 2017년 이후 처음으로 t당 3000위안을 밑돌아, 업계를 놀라게 했죠(‘아이고, 내 생애 다시 2자를 보게 될 줄이야!’라는 분위기). 7월 말엔 중국 건설용 철강 1위 업체 동링그룹이 부도를 맞아 긴장을 고조시켰고요. 이번 달 중국 시장조사업체 마이스틸 설문조사에서 ‘수익성이 있다’고 보고한 중국 철강업체는 5%에 불과했습니다.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3년 연속 혹한이 지속되면 이제 줄줄이 나가떨어질 법도 한데. 철강생산량은 생각보다 그리 팍팍 줄지 않습니다. 상반기 생산량은 5억3000만t. 전년보다 고작 1.1% 줄어드는 데 그쳤죠. 다들 여전히 너무 열심히 공장을 돌립니다.이유가 뭘까요. 업계에선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합니다. 업계 전체를 보면 다 같이 생산량을 줄이는 게 최선이겠죠. 하지만 각 기업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다른 회사가 죽고 자기만 살아남아서 호황기에 승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현금이 남아 있는 한, 계속 고로를 가동하려고 하죠. 학습효과도 있습니다. 2015년 철강 가격이 t당 1800위안 아래로 떨어졌던 그 암흑기를 버텨낸 기업들은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으니까요.중국산 관세에도 못 버틴 칠레 제철소정작 비상이 걸린 건 다른 나라의 철강기업입니다. 중국 안에서 팔리지 않고 남는 철강 제품이 바다 건너로 밀려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발 저가 철강의 공습입니다. 올해 중국의 철강 수출은 2016년 이후 오랜만에 1억t을 돌파할 전망입니다.세계 2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은 지난 1일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며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공격적인 수출”을 원인으로 지적했죠. “유럽과 미국의 강철 가격이 모두 한계비용보다 낮아졌다”면서 “현재 시장상황은 지속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겁니다.독일 철강기업 잘츠기터는 이달 초 발표한 상반기 실적에서 적자로 전환해, 애널리스트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역시 같은 이야기-과잉 생산능력과 중국의 수출-를 내놨습니다. 독일철강협회의 마틴 토이링거 회장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의) 과잉생산능력이 산업의 수익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중국산 철강의 쓰나미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U와 미국처럼 중국산 철강에 관세 장벽을 쌓으면 피할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칠레의 철강회사 CAP는 1950년 설립된 칠레 최대 규모의 우아치파토 제철소를 폐쇄한다고 이달 초 발표했습니다. 칠레 당국이 지난 4월 중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를 33%로 높였지만, 그걸로도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의 가격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이 회사의 2500명 근로자를 포함한 2만명 넘는 지역민이 일자리를 잃을 판입니다. 중국산 철강의 밀어내기 공세가 지구 반대편의 유서 깊은 경쟁사를 녹다운시킨 겁니다.철광석 가격 붕괴의 시작일까울고 싶은 건 철강기업만이 아닙니다. 이제 광산회사까지 울상입니다. 철의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급락하기 때문이죠. 15일 철광석 선물 가격은 93.37달러(싱가포르거래소 기준). 올해 초의 고점(130달러)보다 28%나 빠졌습니다. 중국에 철광석을 주로 수출하는 건 호주(리오틴토, BHP, 포테스큐)와 브라질(발레)의 대형 광산기업이죠. 이 4대 기업은 중국 철강시장이 암흑에 뒤덮였던 상반기에도 상황이 나쁘진 않았습니다. 일단 중국 고객사가 고로 가동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으로의 철광석 수출이 줄긴커녕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었고요. 무엇보다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 시장의 악재를 떨쳐내 줄 강력한 한방을 조만간 내놓을 거란 기대였습니다. 바로 부동산 부양책이죠.그래서 7월 초만 해도 철광석 가격이 하반기엔 반등할 거란 전망이 파다했습니다. 실제 당시 좀 오르기도 했고요. 하지만 7월 15~18일 중국공산당의 ‘3중 전회’가 별 소득 없이 끝나버렸죠. 부동산 부양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철광석 가격이 t당 100달러 밑으로 떨어집니다. 한때는 연말 120달러 전망도 있었는데(모건스탠리) 이제 다들 전망치를 낮춰잡기 바쁩니다. 호주 웨스트팩의 상품전략책임자인 로버트 레니는 현지 언론에 이렇게 말합니다. “철광석 가격이 왜 여전히 100달러 수준을 유지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철강 시장의 엄청난 혼란을 감안할 때 철광석 가격은 80달러 중후반에나 있게 될 겁니다.”물론 철광석 가격이 80달러보다 낮게 떨어진다고 해서, 대형 광산기업들까지 망하거나 적자 수렁에 빠지는 건 전혀 아닙니다. 메이저 기업의 철광석 손익분기점은 t당 40~60달러 수준으로 매우 낮으니까요. 다만 쏠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철광석이 힘을 못 쓰면 실적에 타격이 상당하겠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런 우려 때문에 4대 광산기업 시가총액에선 올해 들어 1000억 달러가 사라졌습니다. 사실 정말 생존의 위기에 놓이는 건 대형 광산기업보다는 철광석 생산비용이 높은 중소형 광산업체-중국·말레이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규모 기업-일 겁니다.어찌 됐든 철광석 가격의 심상찮은 하락세는 광산업계를 긴장케 합니다. 2015년 철강시장 붕괴로 철광석 가격이 2년 만에 3분의 1토막(최저 37달러) 났던 악몽이 되살아나기 때문이죠. 이에 호주 정부는 18일 상당히 비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철광석 가격이 더 떨어져서 t당 60달러가 되고, 이로 인해 4년 동안 30억 호주달러(2조7000억원)의 연방 세수입이 사라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망치를 발표한 겁니다. t당 60달러라니?! 아무리 보수적인 추정치라고는 하지만 너무 낮긴 한데요. 그만큼 호주 경제에 철광석 가격이 중요하단 뜻이겠죠. 최근의 호주달러 가치 하락도 철광석 가격 급락 탓이라는군요.너무 큰 중국 부동산의 빈자리중국 철강시장은 이미 두차례의 심각한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5년 중국 증시 버블 붕괴 때인데요. 두 번 모두 해법은 같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부양책이었죠.특히 2015년 위기 직후 중국 정부가 집중해서 효과를 본 건 부동산 시장이었습니다. 금리를 내리고 돈과 규제를 왕창 풀어서 ‘빚내서 집 사라’고 부추기는 데 집중했죠. 1~2선 대도시뿐 아니라 3~4선 도시까지 부동산 투기 붐이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결과를 낳았는데요. 그래서 현재는? 다들 아시는 지금의 상황입니다. 커질 대로 커진 부동산 버블이 결국 터지고, 전국에 짓다 만 아파트가 넘쳐나죠.자, 그래서 의문입니다. 또다시 닥친 이 철강 위기는 무슨 수로 돌파할 수 있을까요. 일단 부동산 시장엔 기대기 어렵습니다. 부동산 산업의 철강소비량은 건설 중인 바닥 면적이 비례하기 마련인데요. 이제 중국에선 새 건물이 올라가는 걸 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신규 건설 착공은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보다 24%나 줄었습니다. 미분양 물량이 넘치는 상황에서 자금을 조달할 길 없는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무슨 수로 새 아파트를 지어 올리겠어요. 대신 막대한 재고를 정리하기 바쁘죠. 아마도 이거 정리하는 데만 몇 년 걸릴 겁니다.중국은 전 세계 철강을 50% 이상 쓰는, 가장 큰 소비국이고요. 그중 31%가 부동산에 들어갑니다(지난해 기준). 하지만 이제 20년 동안 이어진 중국 건설 붐은 끝났고, 건설 착공 면적과 철강수요는 빠르게 줄어갑니다. 과연 이 넓은 빈자리를 누가 채울 수 있을까요.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중국보다 더 빨리 경제가 성장하는 다른 나라… 아마도 인도?하지만 브라질 투자은행 방코마스터의 파울로 갈라 이코노미스트는 인도를 포함해 어떤 국가도 이 빈자리를 메울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건 연간 4조 달러 규모의 중국 제조업과 연간 4000억 달러의 산업생산(인도)을 비교해 얘기하는 겁니다.”게다가 인도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다고요.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철강 생산능력을 3억t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는데요(지난해 1억4000만t). 인도 최대 철강회사 타타스틸이 이미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최근 2조8000억원 투자 계획 발표). 지금 상황에선 인도가 철강시장의 공급 과잉을 더 부추기지나 않으면 다행일 겁니다. 흔히 ‘철강업은 사이클’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중국 언론에서는 “철강업계가 L자형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이어집니다. 도대체 언제나 바닥을 칠지 알 수 없다는 뜻인데요. 끝이 보이지 않는 중국발 철강위기. 당분간 세계 경제엔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중국 철강의 덤핑 공세,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에 대한 이야기, 지난해부터 꾸준히 나왔는데요. ‘너무 싸다’고 걱정했던 중국산 철강 가격이 최근 들어 더 빠르게 떨어지는 데다, 원재료 철광석 가격까지 급락하면서 갈수록 태산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세계 최대 철강기업 바오우그룹 회장이 “혹독한 겨울이 더 길고 추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중국의 경기침체로 공급과잉에 빠진 중국 철강 업계는 수익성 악화에 시달립니다. 중국산 철강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저가 중국 철강의 공습을 막기 위해 관세 장벽을 높이는 나라가 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칠레의 최대 규모 제철소는 33%의 관세 부과에도 무기한 운영 정지를 결정했습니다.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도 올해 들어 30%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현재 t당 90달러대인 철광석 가격이 6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는데요. 설마 2015년 같은 붕괴 상황이 오는 걸까요. 중국 부동산 시장을 단기간에 되살릴 방법이 마땅찮다 보니, 해법도 뚜렷하지 않습니다.*이 기사는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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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잭슨홀에서 ‘초록불’ 나올까…S&P500, 나스닥 8일 연속 상승 [딥다이브]

    뉴욕증시가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19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58%, S&P500 0.97%, 나스닥지수는 1.39%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는데요. S&P500과 나스닥은 8거래일 연속 상승한 겁니다. 올해 들어 가장 긴 상승세이지요. 탄탄한 소비, 고용시장의 완만한 둔화, 2%대 CPI 상승률. 지난주 나온 경제 지표는 불안했던 시장을 진정시키고 경기침체 우려를 날려버렸습니다. 미국 경제의 ‘소프트랜딩’과 다가올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죠.이번 주 금요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와이오밍 잭슨홀에서 열리는 중앙은행 심포지엄에서 연설할 예정인데요. 9월 금리 인하에 대해 그가 어떤 신호를 보낼지에 투자자 관심이 집중됩니다. 르네상스매크로리서치의 닐 두타 이코노미스트는 “파월 의장이 ‘빅 무브’에 그린라이트를 켜진 않겠지만, 그 아이디어를 완전히 폐기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전설적인 ‘파월 풋’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파월 의장의 적극적인 대응이 증시하락을 방어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 거죠.이날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반도체기업 AMD입니다. AI 데이터센터 장비 설계업체인 ZT시스템스를 49억 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주가가 4.52% 급등했죠. ZT시스템스는 고객사 맞춤형으로 AI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기업인데요.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습니다. 리사 수 AMD CEO는 FT에 “이번 인수를 통해 최신 AI 인프라를 가능한 한 빨리 데이터센터에서 구동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ZT시스템스가 AMD의 AI 칩 채택을 늘리면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엔비디아 GPU 라인과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될 거란 구상인 겁니다. AMD의 데이터센터 매출은 2분기에 28억 달러로 늘었지만, 여전히 엔비디아와 비교하면 9분의 1 수준에 그칩니다. 엔비디아는 이달 28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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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어진 심해채굴 공방… “자원 고갈 해법” vs “바다 생태계 파괴”[딥다이브]

    자원 고갈의 유일한 해법인가, 바다 생태계에 대한 치명적 위협인가. 심해채굴을 둘러싼 찬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그 결정권을 가진 유엔 산하 기구의 새로운 수장이 선출됐다. 심해채굴에 적극적으로 나서 온 한국 입장에선 계획이 흔들릴 수 있다. ● 바닷속 희귀금속, 육지의 몇 배 깊은 바닷속은 희귀광물의 보고다. 하와이 동남쪽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 바닥에 널려 있는 망간단괴가 그 예다. 감자처럼 생긴 이 광석은 니켈, 망간, 구리, 코발트로 구성된다. 전기차 배터리와 풍력 터빈, 태양광 패널에 쓰이는 중요한 금속자원이다. 추정에 따르면 이 해역엔 약 75억 t의 망간, 3억4000만 t의 니켈, 7800t의 코발트, 2억7500만 t의 구리가 포함돼 있다. 전 세계 육상 매장량과 비교하면 망간은 5배, 니켈 3배, 코발트 9배, 구리는 8분의 1에 해당한다. 이런 노다지가 바다엔 한두 곳이 아니다. 코발트·바나듐·백금이 풍부한 ‘고코발트 망간각’, 구리·아연·금·은이 섞인 ‘해저열수광상’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인류는 1960년대부터 해저자원의 잠재력에 눈뜨고 탐사를 벌여왔다. 하지만 아직 상업적 채굴이 이뤄진 곳은 한 곳도 없다. 심해채굴 산업이 열리느냐는 그 승인 권한을 가진 국제해저기구(ISA)에 달려 있다. ISA는 상업적 심해채굴을 위한 절차와 규칙을 마련 중이다. 목표는 2025년 7월까지 규칙 정비를 끝내는 것. 이르면 내년부터 바닷속 광물을 캐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168개 ISA 회원국은 심해채굴을 서두르자는 찬성파와 채굴을 금지 또는 유예해야 한다는 반대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여왔다. 2일 열린 ISA 사무총장 선거에서 양측이 세를 겨뤘다. 결과는 반대파가 미는 브라질 여성 해양생태학자 레치시아 카르발류 후보의 승리. 채굴 승인 절차 마련에 앞장서온 마이클 로지 현 사무총장과 달리, 그는 심해 생태계를 위해 상업적 채굴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카르발류 당선자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서 현재로선 마감일까지 이 일(규칙·절차 마련)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한국은 탐사광구 3곳 확보 심해채굴 찬성파의 대표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ISA에 가장 많은 자금을 제공하고, ISA와 가장 많은 탐사 계약(5건)을 체결한 나라다. 수입에 의존하는 망간, 코발트, 니켈 같은 필수 금속을 심해채굴을 이용해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도 일찌감치 심해채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0년대부터 인도양과 태평양에 총 3개의 탐사광구를 확보했다. 중국 다음으로 많고, 러시아와 같은 수준이다. 이미 ISA와 탐사계약 2건을 체결한 인도는 올해 초 두 곳을 추가로 신청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ISA 미가입국이지만, 하원 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심해채굴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금속을 둘러싼 글로벌 자원 전쟁이 바다 밑으로 확대된다. 해저 광물에 관심이 쏠리는 건 육지에서 광물을 얻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고품질 광석 매장지가 빠르게 줄어, 더 깊은 지하나 외딴곳으로 들어가야 해 생산성이 떨어진다. 또 육지 광산 개발은 삼림 파괴와 식수원 오염 때문에 주민 반발에 부닥친다. 급증하는 광물 수요를 채우려면 결국 바다가 답이라는 게 개발론자 주장이다. 로지 현 ISA 사무총장은 CNBC 인터뷰에서 “심해채굴은 육지와 같거나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많은 양의 광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32개국은 채굴 금지·유예 주장 심해채굴에 반대하는 세력은 결집 중이다. 현재까지 심해채굴 금지 또는 유예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국가는 32곳에 달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덴마크 같은 유럽 국가뿐 아니라 팔라우, 피지, 사모아 같은 남태평양 섬나라도 동참했다. 심해는 아직 5%도 탐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과학자들은 해저에 수백만 년 묻혀 있던 광석을 꺼내 올리면 해저 생물 서식지가 파괴될 거라고 우려한다. 해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확인하기 전까진 채굴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엔 심해저 암흑산소 생산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영국·독일 공동연구팀이 클라리온클리퍼턴 해역에 깔린 망간단괴가 전기분해를 통해 상당량의 산소를 생성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심해채굴을 하기 전에 산소 생산이 일어나는 지역인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저 동식물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면, 심해채굴 허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무총장 교체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까지. 분위기가 불리하게 돌아가지만, 한국은 심해채굴 규칙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환경 보호와 계약자 권리를 균형적으로 반영한 합리적인 개발 규칙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논의에 지속적으로 참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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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리카 Z세대, 들고 일어나다…케냐가 촉발한 시위 물결[딥다이브]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케냐에서 Z세대가 주도한 시위가 증세 철회라는 성과를 거두자, 이에 자극받은 나이지리아와 우간다 젊은이들도 거리로 뛰쳐나왔죠.나라마다 시위를 촉발한 요인은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죠. 먹고 살기 힘든 젊은이들이 신뢰를 잃은 지도자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는 겁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번지고 있는 이 시위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요. 오늘은 불붙는 아프리카 Z세대 시위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빵세’에 폭발한 케냐 Z세대2024년 6월 25일, 케냐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Z세대(1997~2010년생) 시위대가 수도 나이로비에서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해 국회의사당을 습격했습니다. 세금 인상을 골자로 한 재정법안이 국회에서 막 과반 찬성을 받아 통과된 직후였죠. 국회의원들은 비밀 터널을 통해 도망쳤습니다. 의회당 창문이 깨지고, 의자가 나뒹굴고, 건물에 불이 붙었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고, 이날만 14명이 사망했습니다.케냐 Z세대를 각성케 한 건 지난 5월 케냐 정부가 발표한 재정법안입니다. 그동안 세금이 붙지 않았던 빵과 금융서비스에 16%, 식용유에 25%의 소비세를 새롭게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죠. 과자·연료·휴대전화·통신요금 등에 붙는 각종 세금도 대폭 올리기로 했습니다. 생리대·기저귀 세금 인상도 예고됐고요.사실 케냐 정부로선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일반 정부부채가 GDP의 73%까지 불어나면서, 이제 연간 정부 수입 중 무려 60%가 이자 갚는 데 들어갑니다. 교육이나 건강을 위해 써야 할 돈이 이자로 사라지고 있는 겁니다. 저금리였던 이전 정부 시절, 인프라를 건설한다며 중국과 국제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약 800억 달러)을 빌려왔던 게 재정 파탄을 초래했죠. 이대로 가면 나라가 채무불이행에 빠질 판. 윌리엄 루토 대통령은 증세를 통해 연간 20억 달러 세금을 더 걷어, 빚을 갚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는 올해 1월 9억 달러 대출 추가제공을 결정한 IMF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죠.청년들은 서민증세안에 즉각 분노했습니다. 케냐는 전체 실업률은 12.7%이지만 청년층(15~34세) 실업률은 무려 67%에 달하죠. 일자리가 없어 생계비 위기에 내몰린 이들은 빵과 식용유 값 인상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재정법안 반대를 요구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X와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RejectFinanceBill2024’ 해시태그를 공유한 이들이 모였습니다. AI 기술을 이용해 만든 이미지·노래·영상이 시위를 알리는 데 활용됐고요. 자발적인 청년들의 결집이 6월 중순 전국적인 시위 물결을 만들어냅니다.시위 초반 경찰의 강경진압과 시위 참가자 사망 소식은 시위를 더욱 과격하게 만듭니다. 6월 25일엔 전국 35개 주에서 수천 명이 거리로 나섰죠. 루토 대통령의 고향에선 그의 측근들 재산이 공격받았습니다. 나이로비 의회 점거 사건 이틀 뒤, 결국 루토 대통령은 양보안을 내놓습니다. 재정법안은 철회하고 거의 모든 장관을 해임했죠.하지만 한번 거대해진 불길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시위대의 구호는 ‘루토 대통령 사임’으로 바뀌었죠. 새 내각 선서식이 열린 8월 8일에도 반정부 시위대는 ‘나네나네(88)’ 시위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또다시 최루탄을 발사했고요. 케냐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두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시위에서 총 60명이 사망했습니다.세금 인상 철회에도 시위가 멈추지 않는 건 그만큼 케냐 젊은이의 좌절과 분노가 크단 뜻입니다. 어찌 보면 증세안은 낙타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였을 뿐이죠. 지긋지긋한 가난과 불평등, 만연한 부패와 무능한 지도층에 지친 케냐 청년들은 지금 당장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이는 그 이웃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3배로 뛴 쌀값, 배고파 못 살겠다아프리카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동시에 가장 젊은 대륙입니다. 인구의 70%가 30세 미만이죠. 하지만 아프리카 대통령의 평균 연령은 62세입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나이 든 리더는 아프리카 Z세대를 좌절시키는 요인이기도 합니다.아프리카 최대 인구대국(인구 2억1850만명) 나이지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나이지리아 청년들은 악명높은 경찰 특수강도수사대(SARS)의 해체를 요구하는 ‘#EndSARS‘ 시위를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정권은 바뀌지 않았고, 2023년 대선에선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 볼라 티누부가 승리했죠.하지만 증세안 철회에 성공한 이번 케냐 시위는 나이지리아 청년들에게 영감을 줬습니다. 8월 1~10일 전국적으로 열린 나이지리아 시위의 슬로건은 ‘나쁜 정부 종식(#EndBadGovernance)’. 수십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배고프다”라는 외침이 이어졌습니다. 소외된 북부 지역에선 폭력시위와 함께 러시아 국기가 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보안군의 총에 사망한 시위 참가자만 최소 13명에 달한다죠.“굶어 죽는 것보다는 거리에서 시위하며 죽는 게 낫습니다.” 한 시위자는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이 나라 물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합니다. 6월 물가상승률은 34%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죠. 쌀 가격은 6개월 만에 3배가 됐고, 콩과 옥수수 가격은 1년 전의 5배입니다.전 세계 인플레이션이 둔화한 지금 나이지리아 물가만 거꾸로 가는 이유는 정부 정책에 있습니다. 티누부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하자마자 과감한 경제개혁 정책을 잇달아 시행합니다. 외환시장을 자유화하고, 50년 넘게 이어져 온 연료 보조금을 폐지했죠. 외국인 투자자나 세계은행·IMF가 환영하는 시장 친화적 정책이었습니다.하지만 정부가 기대한 정책 효과(외국인 투자자 귀환)를 기다릴 새 없이, 정책의 충격이 가난한 사람들을 덮쳤습니다. 외환시장 자유화로 통화 가치가 1년 만에 71% 폭락하면서, 밀·비료 같은 수입품 가격이 무섭게 치솟았고요. 보조금 폐지로 휘발유 가격이 1년 동안 223% 폭등하자 현지에서 생산된 야채 가격도 덩달아 급등합니다. 이 나라에 사는 1억 명 넘는 빈곤층엔 재앙입니다.정부는 지난달 최저임금을 월 3만 나이라(2만5000원)에서 7만 나이라(5만9000원)로 올리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쌀 50㎏ 한 가마니 값(9만 나이라)에도 못 미치니 말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은 기억합니다. 지난해 11월 티누부 대통령은 대통령용 항공기와 요트, 국회의원용 SUV에 3800만 달러의 추가 예산을 승인했습니다. 시위는 일단락됐지만, 아직 해결된 문제는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깊은 좌절과 리더십의 붕괴를 확인해 줬을 뿐이죠. 그래서 이번 ‘배고픔의 시위(hunger protest)’는 어쩌면 아직 끝이 아닐지 모릅니다.우간다·가나에도 퍼진 물결나이지리아뿐만이 아닙니다. 7월 23일 우간다 젊은이들은 38년 동안 집권한 무세베니 정부의 부패에 항의해 수도 캄팔라를 행진했습니다. 경제 비상 상황인 가나에선 지난달 말 청년층이 계획한 대규모 시위를 고등법원이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케냐 시위가 만들어낸 새로운 물결이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 퍼지고 있습니다.나이지리아의 정책 분석가 요아킴 맥에봉은 세마포 인터뷰에서 아프리카 청년들이 “남아프리카에서 모로코까지” 좌절을 공유했다고 말합니다. “케냐, 우간다, 나이지리아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르지만 광범위한 동인은 같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엔 15~35세 사이 청년층이 4억명 이상 있습니다. 이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제한된 취업기회와 생활비 상승으로 좌절합니다. 부패하고 억압적인 정부는 ‘기다리라’고 하지만 이미 그런 인내심도, 신뢰도 잃었습니다. 분노한 이들에게 소셜미디어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이제 이들은 좀 더 과감해졌습니다.나이로비 케냐타대학교의 자비에 이차니 박사는 이런 움직임이 “아프리카 정부에 대한 경종”이라고 말합니다. “정부가 신속하게 움직여 국민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중이 일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물론 아프리카의 청년 시위가 과거 아랍의 봄이나 최근 방글라데시 시위처럼 정권 교체 혁명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에 그동안 누려온 권한을 일부 내려놓고 한발짝 양보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는 효과를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 대륙 아프리카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합니다. By.딥다이브방글라데시 반정부 시위, 영국 극우세력의 반이민 폭력 시위, 베네수엘라의 대선 불복 시위 등. 요즘 전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대규모 시위가 참 많습니다. 각각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중요한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왠지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가 가장 끌리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지난 6월 케냐에서 세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은 가운데, 빵에 16%의 세금을 매긴다는 소식에 Z세대가 분노했습니다. 루토 대통령은 증세안을 철회했지만, 이제 시위대는 대통령 사임을 요구합니다. -케냐 시위의 성과는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살인적인 물가 급등에 시달리는 나이지리아에서는 8월 1~10일 전국적인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굶주린 청년들은 정치인의 약속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시위가 우간다, 가나로도 번지면서 아프리카 정부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청년 실업난과 불평등,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라는 공통점이 아프리카 Z세대를 뭉치게 만듭니다. 이 시위가 변화의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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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PI 앞둔 뉴욕증시는 관망…엔비디아 4%↑[딥다이브]

    뉴욕증시가 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소비자물가지수 발표를 앞두고 신중한 모습이죠. 12일(현지시간) 다우지수 0.36% 하락, 나스닥지수는 0.21% 상승했고요. S&P500은 제자리(+0.00%)를 유지했습니다. 7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4일(현지시간) 발표됩니다. 이는 미국 경제의 방향에 대한 신호를 줄 텐데요. 변동성이 커진 불안한 증시가 이에 예민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있죠. UBS 글로벌 웰스매니지먼트의 솔리타 마르첼리는 “이번 주에 변동성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으면 미국이 경기침체로 향한다는 우려가 커질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으면 연준이 충분히 빨리 금리를 인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거고요.”이날 상승세가 두드러진 종목은 엔비디아입니다. 주가가 4% 넘게 뛰었는데요. 그라소글로벌의 스티브 그라소 CEO는 “이것(엔비디아)은 확실히 모멘텀 주식”이라며 “생각보다 일찍 120달러를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단, 광범위한 시장이 오른다면 말이죠. 이날 엔비디아 종가는 109.02달러였습니다.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스타벅스도 이날 주가가 2.58% 상승으로 마감했습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스타보드 밸류가 스타벅스 지분을 취득하고 주가 부양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미국의 대표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역시 지난달 스타벅스 지분 20억 달러어치를 확보하고 지배구조 개선을 주문했죠. 스타벅스는 미국과 중국시장 매출 하락으로 올해에만 주가가 19% 하락했는데요. 라스만 나라시만 CEO가 맞서야 하는 건 헤지펀드의 공세만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현 경영진을 비판하는 하워드 슐츠 전 CEO(현 명예회장)의 압박까지 헤쳐 나가야 하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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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휩쓰는 K웨이브…관건은 건물주 할아버지?[딥다이브]

    ‘한국 브랜드의 기세가 대단하다.’ ‘한국 패션이 일본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요즘 일본에서 이런 기사가 연이어 쏟아집니다. 올해 3월 젠틀몬스터와 탬버린즈가 도쿄 아오야마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면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기 때문이죠. MZ에 핫한 패션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는 6월 도쿄 다이칸야마역 인근에 단독 매장을 열었고요. 4월 도쿄 시부야의 예전 맥도날드 자리엔 맘스터치가, 5월 오사카 난바 마루이 1층엔 할리스가 1호점을 오픈했습니다. 무신사는 올 하반기 롯데면세점 도큐플라자 긴자점에 첫 일본 오프라인 매장을 낼 계획입니다. 중저가 커피 브랜드 매머드커피, 화장품 브랜드 논픽션도 현지 정규 매장 오픈을 준비 중이죠. 팝업스토어를 열어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확인한 브랜드는 너무나 많고요.이게 어찌 된 일이죠. 일본의 K컬처 열풍, 좋으면서도 얼떨떨합니다. 중요한 건 아직 시작일 뿐이라는 거죠. 앞으로 더 가속화될 한국 브랜드의 일본 진출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양승한 크로스보더팀 이사와 남신구 리테일임차자문팀 이사입니다.*이 기사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해외 진출 1순위, 일본-올해 들어 패션·뷰티는 물론 토종 식음료 브랜드까지 연이어 일본에 1호점을 내며 진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지금 일본인 걸까요?양승한 이사=“해외 진출할 때 일차적으로 보는 게 보통 이웃나라잖아요. 시차도 작고 문화적으로 가까우니까요. 불과 10년 전엔 해외 진출은 대부분 중국이었죠. 아모레퍼시픽을 시작으로, 이랜드 같은 패션브랜드들도 중국에 많이 진출했었는데요. 이제 중국에 들어가서 많은 돈 버는 시대가 지났습니다. 지금은 중국으로 나가겠단 브랜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죠. 홍콩조차 중국으로 보기 때문에, 들어가려는 신규 브랜드가 없고요. 대신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까운 일본이 해외 진출의 1순위로 떠올랐습니다. 인구가 1억2000만명이기 때문에 매우 큰 시장이에요.”남신구 이사=“해외 진출에 대한 문의가 전보다 정말 많이 늘었는데요. 70~80%가 일본 진출입니다. 패션의 경우, 동남아시아는 계절 이슈가 있어요. 우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옷을 계속 만드는데, 동남아는 매출 높은 겨울옷 판매가 적잖아요. 중국은 지난 10년 동안 리스크가 확인된 거고요. 유럽이나 미국으로 나가자니 물류 문제가 있고요. 한국 시장은 너무 작으니까 해외로 나가야 하겠다고 판단했을 때, 현재로선 일본이 가깝고 소비력도 좋고 여러모로 한국과 비슷하니까 관심도가 올라가고 있죠.”양승한=“최근 1~2년 동안 급격하게 일본 진출이 늘어난 데는 당연히 엔저 영향도 있어요. 일본에서 매장 하나 오픈하는 데 4000만엔이 드는 경우, 과거 엔화가 비쌀 땐 5억원이었지만, 지금은 3억원대에 가능하니까요. 또 한국이 이제 일본과 소득수준이 똑같이 올라왔어요(2023년 1인당 GNI 한국 3만6194달러, 일본 3만5793달러). 20년 전 한국이 국민소득 1만 달러대이던 땐 일본 가면 모든 게 너무 비쌌지만, 지금은 그 반대잖아요. 우리나라가 물가도, 국민소득도 다 올라왔단 말이죠. 일본에 진출하는 게 훨씬 부담이 없어졌어요.”-일본이 이젠 비싼 선진국이란 느낌이 더는 아니로군요.양승한=“게다가 일본엔 외국인 관광객이 밀려오고 있죠. 엔저뿐 아니라 소비세 10% 환급까지 해주니 웬만한 물건은 일본이 확실히 싸거든요. 관광객 쇼핑이 급증하니까 한국뿐 아니라 다른 외국 브랜드도 일본에 추가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진출 비용이 전보다 낮아진 데다, 일본에 와서 볼 때마다 사람에 치일 정도로 쇼핑객이 많으니까요. 일본은 전통적으로 온라인 리테일보다는 오프라인 중심이거든요. 코로나 때도 일본 오프라인 리테일은 견조했어요.”OTT발 4차 한류붐-지금 상황을 일본의 ‘4차 한류 붐’으로 설명하기도 하더군요.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OTT 시대가 열리면서 일본에서 새로운 한류 붐이 일고 있다는 거죠.남신구=“예전에 면세점 쇼핑하고 명동 가던 관광객들 패턴이 달라졌어요. 본인이 열광하는 K컬처나 K팝 흐름을 따라가죠. 지난해부터 성수와 한남의 한국 패션·뷰티브랜드 매장에서 관광객 매출이 엄청나게 터지고 있거든요. 그 결과 한국 브랜드들이 ‘우리가 일본에 먹히는구나’라고 깨닫고 일본 진출을 생각하게 됐고요. 또 일본 유통사도 일본 젊은 세대가 한국 브랜드를 너무 좋아하니까, 지난해 여름부터 ‘같이 나가는 게 어떻겠니’라고 제안하기 시작했어요. 양쪽 니즈가 맞아떨어졌고, 먼저 ‘팝업스토어’로 즉각적으로 테스트하는 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죠.”-그래서 여의도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는군요. 뜨는 한국 브랜드들이 거기 모여 있어서.남신구=“마뗑킴,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같은 유의 브랜드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MZ세대에 인기를 끌다가 오프라인 비즈니스에서도 터지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다 터졌으니 일본으로 가는 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점을) 진행하는 거예요. 이건 처음 보는 패턴인 것 같아요. 전 세계적으로 지금 콘텐츠가 부족하기는 해요. 옛날엔 해외를 안 나간 브랜드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유통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한국에 들어올 게 또 뭐 있어요?’였는데요. 이제 들어올 만한 브랜드 수가 줄어들었어요.”-이미 들어올 브랜드는 다 들어왔군요.남신구=“어느 나라이건 MD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찾기 마련인데, 마침 한국이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너도나도 이걸 받아들이고 싶어 하죠.”-잘 실감이 안 나요.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을 ‘힙하다’고 생각한다더라고요.양승한=“과거엔 한국이 일본 트렌드를 따라갔지만, 이제 완전히 역전됐죠. K팝과 함께 넷플릭스 같은 OTT 영향이 큽니다.”남신구=“넷플릭스를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먹는 거, 저거 뭐야?’라고 식음료가 떴고요. 또 ‘한국 여자들 피부 왜 이렇게 좋아’라면서 한국 피부과에 가서 주사를 싹 맞고 가죠. 예전에 1000원짜리 마스크팩을 사던 것에서 바뀐 겁니다.”일본 건물주를 설득하라-일본이라고 하면 왠지 느낌상 보수적이고 깐깐할 것 같고, 일본 자국 브랜드를 더 선호할 것만 같은데요.양승한=“지금 일본은 극단적인 임대인 우위의 시장입니다. 즉, 아예 자리가 없어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 일본에 들어오려고 하니까요. 원래도 핵심 상권엔 물건이 별로 없었는데, 코로나로 좀 나왔던 게 2022년 말부터 2023년까지 거의 다 소진됐어요.젠틀몬스터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가격대 좀 있고 감도 높은 브랜드들이 일본 진출을 위해 지난해부터 열심히 매장 자리를 찾았는데요. 괜찮은 게 나와도 본인들이 계약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보통 한 자리를 놓고 의향서가 4~5개가 들어와서 경쟁을 펼쳐야 해요. 임대인님 간택을 받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하는 거죠.”-그럼 단지 임대료를 높게 부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브랜드인지를 어필해야 하나요?양승한=“일본 진출에서 가장 어려운 게 그 점이에요. 그런 건물의 주인은 법인 또는 자산가들이잖아요. 일본 자산가들은 나이가 많습니다. 보통 70~80대이죠. 그래서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일단 해외 브랜드보다는 일본에서 오래 영업하고 안정적인 자국 브랜드를 훨씬 선호하고요. 또 여전히 한국이 자기네보다 못 산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엄청 잘 나가고 유명한 브랜드라고? 나는 모르겠어’라는 거죠. 그런 식으로 고배를 마신 적이 여러 번 있어요.지금 일본에 진출하는 브랜드 중에도 한국에서 정말 잘 나가고 자금력 좋은 여러 기업이 있는데요. 일본에는 첫 진출이란 말이죠. 첫 진출이면 우리 쪽이 증명해야 하는 게 매우 많아요. 임대인 입장에선 임대료가 높은 것도 좋지만 들어와서 안정적으로 쭉 운영하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죠. 그래서 시스템이 갖춰진 기업이 아니면 대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성수동에서 핫한 그런 한국 패션브랜드들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았고, 대기업도 아니니까요?양승한=“그래서 보통 그런 브랜드는 팝업 스토어로 처음엔 많이 시작하죠. 팝업으로 반응을 보고,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게 일반적인 루트이긴 합니다.”-도쿄 시부야에 1호점을 낸 맘스터치도 그 전에 팝업스토어로 인기를 끌었죠.양승한=“맘스터치는 좀 의외이긴 했어요. 1호점을 낸 그 시부야 자리가 굉장히 비싼 자리거든요. 일본은 30~40년 된 오래된 건물이 많다 보니 식음료 매장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 별로 없어요. 임대인들이 식음료 브랜드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요.”-냄새난다고 싫어하나요?양승한=“임대인들은 조리 시설 필요 없고 깔끔한 소매점을 더 선호하죠. 그런 점에서 맘스터치 자리는 귀한 자리인데요. 임대료도 상당히 비쌀 텐데, 1호점에 과감하게 투자한 거죠. 그렇게 터뜨려서 화제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일본에 가맹점을 쫙 오픈하는 게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저희가 할리스의 오사카 난바 1호점 출점을 지원했는데요. 일본 진출은 ‘한국의 그냥 커피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하게 나가는 커피 브랜드다’라는 인상을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가 일본, 그 중에서도 오사카니까요.”아오야마가 뜨는 이유-사실 지금 일본 소비시장을 떠받치는 건 외국인 관광객이죠. 과연 이런 현상이 계속 이어질까요?양승한=“물론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일본과의 금리 차이가 줄어들 거고, 그럼 엔화 가치가 오를 수 있죠. 다만 그렇다 해도 (100엔당) 1000원 이상으로 올라가진 않을 거라는 게 중론인데요. 엔화 환율이 900원대라고 해서 관광객 물결이 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트렌디한 패션 브랜드라면 일본에서도 어느 상권을 눈여겨봐야 할까요?양승한=“감도가 높은 브랜드라면 예나 지금이나 오모테산도 지역일 텐데요. 오모테산도 길은 명품 매장이 늘어서서 좀 무겁죠. 임대료가 긴자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역입니다. 1층 기준으로 평당 500만원쯤 하죠.그 길 남쪽 끝으로 가면 거기가 아오야마인데요. 한국으로 치면 한남동 같은 느낌이죠.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으면서도 너무 번잡하지 않달까요. 특히 젠틀몬스터가 그 아오야마에 오픈했으니, 그게 기준이 돼서 한국 브랜드는 다 거기만 보고 있죠. 그래서 거기도 저희가 작년부터 열심히 찾아봤는데, 없습니다.”-매장 낼 자리가 없어요?양승한=“자리가 나와서 시도하면 이미 건물주가 4~5개 제안 들어온 걸 검토 중이죠. 다 난다긴다하는 브랜드들이요. 또는 좀 괜찮은 자리는 이제 재개발 시작해서 건물 부수고 땅 파는, 2~3년 뒤에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죠.”-앞으로 곧 일본에 진출한 예정인 브랜드는 뭐가 있나요?남신구=“진짜 많은데, 아직 공개한 곳은 많지 않아요. 일본에서 팝업스토어를 했던 브랜드는 대부분이 정식 진출을 검토 중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그럼 내년쯤에 도쿄에 가면 여기도 한국 브랜드, 저기도 한국 브랜드, 이렇게 될까요?남신구=“많이 모이고 있고요. 더 빠르게 늘어날 겁니다.” By.딥다이브이제 일본에서 한국 브랜드는 최신 트렌드를 상징합니다. 한국에서 유행한 것이 일본으로 넘어가서 Z세대 인기를 끈다는데요(예-MBTI).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지난해 하반기 팝업스토어를 시작으로, 올해 초부터 한국 브랜드의 일본 정규매장 1호점 진출이 줄을 잇습니다. 해외진출의 1순위로 가깝고 문화적 공통점이 많은 일본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K팝과 OTT발 4차 한류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유입니다.-일본 리테일 부동산은 극단적인 임대인 우위의 시장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데다, 보수적이고 깐깐한 일본 임대인의 간택을 받기란 쉽진 않습니다.-팝업스토어로 이미 일본 내 인기를 확인한 브랜드의 현지 진출이 앞으로 줄을 이을 겁니다. 더 큰 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 브랜드를 응원합니다.*이 기사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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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침체 우려 덜었다…뉴욕증시 급반등[딥다이브]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시장이로군요.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완화하면서 뉴욕증시가 급반등했습니다. 8일(현지시간) S&P500이 2.30% 급등해, 2022년 11월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했고요. 다우지수는 1.76%, 나스닥지수는 2.87%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시장을 반색하게 만든 건 고용 데이터였습니다. 미국 노동부는 주당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23만3000건으로, 전주보다 1만7000건 감소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소식이 지난주 7월 고용보고서가 촉발했던 경기침체 불안감을 잠재웠습니다.또 다른 시장 반등 요인은 일본 엔화가 약세를 보인 겁니다. 블랙 먼데이를 촉발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약해질 거라는 안도감을 불러왔죠. 미국 금융회사 소파이의 투자전략책임자인 리즈 영 토마스는 “이것이 사람들이 기다리던 반등”이라고 말합니다. “반등 자체를 위한 반등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고 랠리가 지속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려면 좋은 소식이 더 필요합니다.” 시장이 데이터에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변동성이 커질 위험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입니다.반도체·AI 관련주 주가는 크게 올랐습니다. 엔비디아가 6.13%, AMD 5.95%, 퀄컴 5.66% 상승을 기록했죠. 2분기 실적발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깜짝 실적을 발표한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9.48% 급등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당뇨별 치료제 마운자로와 체중감량 주사제 제프바운드의 매출이 급증하면서, 연간 매출 전망치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일라이릴리 CEO 데이비드 릭스는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믿을 수 없는 수요를 보았다”고 말하는데요. 복용이 더 편리한 체중감량 알약도 개발 중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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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시장 왜 이래? 이유나 좀 알아보자[딥다이브]

    무더위에도 등골이 오싹해진 월요일이었습니다. 코스피 -8.77%, 코스닥 -11.3%, 니케이 225 -12.4%, 대만 자취안 -8.35%. 5일 아시아 주식시장은 ‘최악의 날’이란 표현이 맞아떨어졌죠. 전쟁이나 대공황이라도 일어난 것 같은 패닉장이었는데요. 한국 경제나 증시 자체엔 뚜렷한 악재가 보이진 않는다는 점에서 이 주가 폭락이 더욱 당혹스러웠죠. 도대체 주식시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블랙 먼데이를 설명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들여다봤습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샴의 법칙과 R의 공포골디락스(Goldilocks). 미국 경제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라며 환호하던 월가가 즐겨 쓰던 용어이죠. 그런데 별안간 골디락스는 간데없고 경기침체(Recession)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자기 말이죠.그럼, 무엇이 그 패닉버튼을 눌렀냐. 바로 2일 발표된 4.3%의 미국 7월 실업률입니다. 전달보다 0.2%포인트 올랐을 뿐 아니라, 전문가 전망치(4.1%)를 웃돌았죠. 2021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습니다.4.3%란 수치가 유독 실망스러운 이유는 ‘샴의 법칙(Sahm Rule)’을 발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실업률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 경기침체에 빠진다’라는 유명한 법칙인데요.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지난 12개월의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오르느냐가 기준점이죠. 그리고 4.3%의 미국 실업률은 이 차이가 0.53%포인트가 됐다는 의미입니다.샴의 법칙 발동에 시장이 화들짝 놀란 건 그 예측의 정확성 때문입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나타나듯 1960년 이후 최근까지 샴의 법칙 발동은 100% 확률로 경기침체로 이어졌습니다. 무려 9번이나 말이죠. 일반적으로 샴의 법칙은 경기침체 정점보다 약 3개월 앞서 나타납니다.하지만 정작 이 법칙을 만든 전 연준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샴 박사는 이번엔 규칙이 깨질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민으로 인해 노동력이 풍부해진 지금은 임계점이 0.5%포인트가 아니라 더 높아져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죠. 그는 “올해 실업률이 더 오를 것”이라면서도 “9월이나 10월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봤는데요.그의 전망이 들어맞기를 바라지만, 일단 한번 버튼이 눌려버린 시장이 다시 아무일 없었던 듯 평정을 되찾긴 쉽지 않죠. 악사인베스트먼트매니저의 질 모엑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미국 경제가 경착륙이든 연착륙이든 결코 착륙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했던 이상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이는 언젠가는 깨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잊혔던 수익률 곡선 역전의 끝증시가 지표 하나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줄이야. 사실 좀 놀랍습니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예측력 높은 경기침체 신호를 과감히 무시해 왔거든요. 가장 대표적인 게 장단기 수익률 곡선 역전, 즉 만기가 짧은 국채(2년물) 금리가 만기가 긴 국채(10년물)를 앞서는 현상입니다.원래 채권은 만기가 길면 금리가 높아지는 게 맞죠. 채권자 입장에서 장기간 돈이 묶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드물게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데요. 이런 현상은 보통 미국 경기침체에 7개월~2년 선행해서 나타나곤 했죠. 지난 8차례의 경기침체에 모두 나타난 매우 신뢰할 만한 지표였습니다.이번엔 어떨까요? 지금 미국 국채의 장단기 수익률 역전은 2022년 7월부터 무려 25개월째 이어져 왔습니다. 역대 최장기이죠. 너무 오래 이 상태가 이어지다 보니, 이제 다들 그 의미(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 무덤덤해졌었는데요.드디어 그 역전의 끝이 보입니다. 이 글을 쓰는 5일 장 초반 한때(현지시간) 미 국채 2년 물 금리가 10년 물 금리를 살짝 앞섰습니다. 2년 여만에 처음으로 말이죠. 투자자들이 증시의 ‘떨어지는 칼’을 피해 안전자산인 단기 국채로 몰리면서 2년물 금리가 잠시 급락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후 다시 2년물 금리가 앞서감)역전됐던 수익률 곡선이 다시 반전된다는 건 주식시장엔 어떤 의미일까요. 얼핏 보면 시장이 정상화된다는 좋은 소식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요. 실제 의미는 그 반대일지 모릅니다. 과거 경기침체는 역전됐던 수익률 곡선이 다시 반전된 다음에야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죠(아래 그래픽 참조).로젠버그리서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익률 곡선이 플러스 기울기로 전환될 거란 전망에 모두 흥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장기간 역전 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실제론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신호라는 겁니다.” 즉, ‘경기침체 임박했으니까 연준은 금리를 과감히 내릴 수밖에 없다’는 매우 강한 시그널인 셈입니다.신얼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시장이 각국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5일 채권시장의 움직임은 “연준이 연내에 3회 금리인하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내에 100bp(1%포인트) 인하까지 반영한다”는 설명입니다. 한 번에 금리를 0.5%포인트를 내리는 ‘빅스텝’, 과연 나올까요.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는 분명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 만한 불씨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정도 폭발력을 갖진 못하죠. 5일 아시아 증시 대폭락의 진앙지는 바로 일본, 특히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있었습니다.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저렴하게 빌려 다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이죠. 호주 달러화와 멕시코 페소화는 물론, 미국 빅테크 주식도 주요 투자처였습니다. 정확한 엔 캐리 트레이드 자산 규모는 집계되지 않지만, 최대 20조 달러(약 2경6700조원)에 달할 거란 추정이 나오죠.그런데 일본은행이 지난달 31일 기준금리를 0~0.1%에서 0.25%로 인상했죠. 게임의 규칙이 이제 바뀐 겁니다. 여기에 엔화가 강세로 돌아선 것도 분위기를 180도 바꿨습니다.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미 연준이 금리를 크게 내린다면 ‘슈퍼엔저’가 끝날 가능성이 크잖아요. 투자자 입장에선 환차손을 피하려면, 얼른 해외 자산을 청산하고 돈을 일본으로 다시 가져오는 게 나은 겁니다.그리고 이 흐름이 시작됐습니다. ‘와타나베 부인’으로 대표되는 일본 투자자들이 캐리 트레이드에서 빠르게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나타나는 멕시코와 호주 통화가치의 급락, 미국 기술주의 폭락이 모두 이와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소시에테제네랄의 외환전략가 키트 저크스는 이를 두고 “세계 최대 규모의 캐리 트레이드는 몇몇의 시장이 깨지지 않고서는 청산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은 엔화 강세를 더 부추기게 됩니다. 다른 자산을 팔아 엔화를 사려는 수요가 급증하니까요. 7월 4일 달러당 161.9엔까지 떨어졌던 엔화가치가 5일 장중 141엔까지 치솟은 이유인데요.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런런 상황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그게 또다른 청산을 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졌다”라고 설명합니다.그동안 기업실적을 떠받쳐온 엔저 효과가 사라지자 일본 증시는 무너졌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이탈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증시에 연쇄 타격을 미쳤죠. 연쇄 쓰나미에 휩싸인 세계 증시는 이제 일본은행에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감당하지도 못할 금리 인상을 왜 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느냐는 비판이죠.이와 관련해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기어로이드 레이디의 칼럼 한토막을 소개합니다. 일본은행 입장에선 굴욕스러운 지적인데요. “(샴의 법칙처럼) ‘일본은행 인상의 법칙’을 고려해야 합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역사는 세계 경제가 불황에 접어드는 정확히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조치를 취한 일관된 역사입니다.” By.딥다이브안정적이고 아늑했던 강세장에 갑자기 폭풍이 들이닥쳤습니다. 이럴 때 떠올려야 할 워런 버핏의 조언이 있죠. “주식시장에서 변동성은 친구다. 나는 변동성을 사랑한다.”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애플 주식을 절반 팔고 현금 보유량을 최대로 늘렸다니. 이번에도 또 승리자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평온하던 글로벌 증시에 갑자기 경기침체 버튼이 눌렸습니다. 미국 실업률이 4.3%를 기록하며 ‘샴의 법칙’이 발동했기 때문인데요. 경기침체가 실제 오든, 안 오든 ‘경제가 착륙을 앞두고 있다’는 건 분명해보입니다.-국채 시장에서도 신호가 나옵니다. 5일 한때 미국 2년물 국채금리가 10년물 금리를 2년 여 만에 다시 추월했습니다. 이 역시 경기침체 임박의 시그널입니다. -경기침체라는 불씨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는 대형 폭탄에 불을 붙였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내리면 엔화 강세가 올 거란 전망에 전 세계에 풀렸던 엔 캐리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일단 시작되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가 필요해보입니다.*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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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욕증시, 2년 만에 최대폭 급락…엔비디아 6.4%↓[딥다이브]

    아시아 증시를 휩쓴 폭풍이 미국 뉴욕증시까지 상륙했습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장 후반으로 가면서 그 강도가 다소 약해졌다는 건데요. 5일 다우지수는 2.60%, S&P500 3.00%, 나스닥 지수는 3.43% 급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다우지수와 S&P500은 2년 만에 최대폭으로 하락한 겁니다. 이날 최악의 성과를 보인 건 기술주였습니다. 장 초반 주가가 15%나 빠졌던 엔비디아는 이날 6.4%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52주 최고치와 비교하면 주가가 29%나 빠진 겁니다. 애플 주가는 4.8%나 빠졌는데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애플 지분을 절반으로 줄였다는 소식이 타격을 미쳤습니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흔히 알려진 변동성 지수(VIX)는 이날 오후 38을 기록했습니다. 자기 평균인 20보다 훨씬 높은, 2020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인데요. 그래도 이날 뉴욕증시 개장 전 65까지 올랐다가 그나마 많이 내려온 거긴 합니다.이대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게 되는 걸까요. 이제 시장은 모두 연준을 바라봅니다. 경제 둔화 징후에 너무 느리게 대응해 온 연준이 이제라도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올해 남은 3차례의 회의에서 연준이 1%포인트 넘게 인하할 거란 전망이 힘을 얻는데요. 즉, 1~2차례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스텝에 나설 거라고 보는 겁니다.JP모건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프리야 미스라는 지금 상황을 “시장의 발작”이라고 말합니다. “연준이 움직일 조짐을 보일 때까지 시장은 계속 패닉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죠.심지어 9월은 너무 늦고, 그 전에 연준이 긴급 금리 인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걸 명예교수가 그 대표적인 인물인데요. 그는 CNBC 인터뷰에서 연준이 다음 달 중순에 0.75%포인트 긴급 금리인하에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시장의 급격한 둔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거죠.하지만 이런 긴급조치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신중론이 아직은 더 주를 이룹니다. 경기침체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현실화하는 패닉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죠. 브랜디와인 글로벌의 존 맥클레인은 정례회의 전 인하가 “붐비는 극장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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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금의 종말, 괜찮을까… 다시 ‘현금 쓸 권리’를 말한다[딥다이브]

    현금, 얼마나 자주 이용하나요. 현금 꺼냈는데 ‘카드 결제만 됩니다’란 얘기 들으신 적 있으신가요. 이제 현금을 환영하는 곳보다 현금을 거부하는 곳이 더 많아진 듯합니다. 스타벅스가 ‘현금 없는 매장’을 도입하고(2018년) 서울시가 ‘현금 없는 버스’ 운행을 시작한 지(2021년)도 이미 몇 년 지났으니까요. 그런데 현금 없는 사회, 편리하긴 한데 정말 더 안전할까요. 우리보다 앞서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나아갔던 나라들은 왜 다시 ‘현금 사용 권리’을 이야기할까요. 오늘은 현금 없는 사회를 들여다보겠습니다.*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망할 뻔한 호주 현금 운송회사은행의 현금지급기(ATM)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2018년과 비교하면 1만4000개 넘게 사라졌다는데요. ATM 이용이 급감하면서 수수료 수익이 너무 쪼그라들었기 때문입니다. 은행 입장에선 운영 비용도 건지기 어려운 애물단지가 된 거죠.현금 이용이 줄면 타격을 입는 건 ATM 수수료만이 아닙니다. 은행 지점과 ATM으로 현금을 옮겨주는 운송회사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나라보다도 현금 결제 비율이 낮은(오프라인 결제 기준 한국 10%, 호주 7%) 호주에선 현금 운송회사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사실상 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아마가드(Armaguard)가 파산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죠.현금을 덜 쓴다는 건 아마가드 운송 트럭에 실리는 지폐와 동전량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현금 운송은 차량에 무장한 경비원이 탑승해야 하는 데다, 호주 국토가 워낙 광활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이죠. 적자 수렁에 빠진 아마가드는 지난해 말 ‘현금 운송 사업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선언합니다. 이대로 가면 곧 문 닫게 될 거란 경고 내지 협박이었죠.운송회사가 망해서 지폐가 인쇄된 공장에서 은행과 ATM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 반강제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판이었는데요. 호주 정부와 중앙은행, 민간은행, 대형 소매점들이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수십차례 회의 끝에 주요 은행과 대형마트 등 8개 고객사가 아마가드에 5000억 호주달러(약 446억원)를 긴급 투입하기로 지난 6월 결정했죠.이 돈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기간은 12개월이라고 합니다. 1년 안에 현금운송 사업의 수익성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지 못하면 위기가 반복될 수도 있는 건데요. 호주 컨설팅 기업 아말감 스트레티직의 앤드류 에델은 이 문제가 공공정책의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그다지 많이 사용되지 않는 네트워크 부분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문제는 누가 지급하고, 그 금액을 어떻게 계산합니까?” 호주 중앙은행에 따르면 현금을 쓰지 못하면 큰 불편에 처할 인구는 전체의 약 4%, 100만명으로 추정됩니다.현금과 디지털, 무엇이 더 위험할까현금은 인프라 유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 고액 현금은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 점이 스웨덴이 일찌감치 무현금 국가로 나아간 이유 중 하나인데요.2000년대 중반 스웨덴에선 은행·상점에 대한 강도 사건이 급증했습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보고된 강도 건수가 9398건에 달했다고 하죠. 이 때문에 ‘현금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강도에 시달리는 은행, 버스 노조는 현금에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벌였죠.특히 2009년 9월 일어난 헬리콥터 강도사건은 그 정점이었습니다. 헬리콥터를 탄 도둑들이 스톡홀름 보안업체 지붕에 착륙했고요. 30분 만에 3900만 크로나(약 50억원)를 훔쳐, 헬리콥터를 타고 달아났죠. 이후 범인들은 잡혔지만, 도난당한 현금 대부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위험한 현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던 2012년 12월. 스웨덴 지급결제 시장의 혁명을 가져온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는데요. 바로 6개 은행이 공동으로 출시한 스위시(Swish)입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수수료 없이 돈을 보낼 수 있는 모바일 지불 서비스이죠. 오프라인 상점에선 QR코드 스캔을 통해 스위시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 스위시 이용자는 800만명(스웨덴 인구는 1045만), 하루 평균 2회 이상 쓸 정도로 인기 있습니다.디지털 혁명은 스웨덴 결제 환경을 빠르게 변화시켰습니다. 스웨덴에서 버스·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이제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 많은 상점, 박물관, 레스토랑도 카드나 모바일 결제만 허용하죠. 심지어 대부분 은행 지점도 현금 취급을 중단했습니다. 현금을 싸 들고 은행 창구를 찾아가도 계좌에 입금할 수 없단 뜻이죠. 어느 나라가 무현금 국가에 가장 가깝냐고 묻는다면 이제 누구나 스웨덴을 가리킬 겁니다. 참고로 스웨덴은 성인 인구 10만명당 ATM 수가 28개로 유럽에서 가장 적습니다(2020년 기준. 한국은 259개로 세계 2위).현금에서 멀어진 스웨덴은 정말 더 안전해졌을까요? 일단 강도사건 신고건수는 2019년 이후 크게 줄어드는 추세입니다(2023년 6402건). 가게나 은행의 현금 취급이 확 줄어든 게 영향을 미쳤을 거란 분석이 나오죠.하지만 범죄가 강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사기 같은 디지털 범죄 사건은 2년 만에 두배로 증가했습니다(2021년 하반기 4억5900만 크로네→2023년 하반기 11억 크로네). 앞서 말씀드린 모바일 결제 앱 스위시를 쓰려면 휴대전화에 뱅크ID라는 디지털아이디가 깔려있어야 하는데요. 바로 이 뱅크ID를 탈취해 계좌에서 돈을 빼내는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겁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지폐를 버리기 위한 스웨덴의 움직임이 범죄자들의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지적하는데요. 스웨덴 금융시장부의 니클라스 와이크만 장관은 은행의 보안 강화를 촉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디지털화를 겪어왔고, 은행은 그 발전 덕분에 많은 돈을 벌고 있습니다. 이제 현실이 이를 따라잡았고, 시스템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현금 소멸은 막자는 움직임현금 없는 사회는 편리합니다. 지갑을 꺼내고, 지폐와 동전을 세고, 거스름돈을 챙기는 그 복잡한 과정을 핸드폰 터치 몇 번으로 줄여주니까요. 가게도 잔돈 준비 같은 번거로움이 줄어들고요. 일단 디지털 결제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어렵습니다. 예전처럼 ‘현금이 왕’인 시대는 끝났고, 오히려 현금이 역차별받기 일쑤죠.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건 아닐까요. 현금 사용이 줄어서→ATM 같은 인프라가 사라지고→돈 뽑기 어려우니→현금 사용은 더 줄어드는 상황인데요.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보니 현금 유통 인프라가 유지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만약 이대로 인프라가 무너지고 현금이 사라진다면, 은행계좌가 없거나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서툰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극소수라고 해서 무시해도 괜찮은 걸까요.그래서 유럽에선 현금 지키기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현금 이용을 다시 늘리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멸종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이죠. 현금 결제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3%)로 꼽히는 노르웨이가 그중 하나입니다. 노르웨이는 최근 금융계약법을 개정해 소비자의 현금 지불 권리를 대폭 강화했는데요. 자동판매기나 무인 가게가 아닌 모든 판매점은 현금을 받도록 의무화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도 만들었죠.이전에도 노르웨이엔 ‘항상 현금으로 결제할 권리가 있다’는 법조항이 있긴 했는데요. 그런데 이 ‘항상’이라는 게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오히려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랄까요(한국은행법 48조에 ‘한국은행이 발행한 한국은행권은 법화로서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 법률은 사문화됐고, 노르웨이 식당·상점·미용실 곳곳이 ‘현금을 받지 않는다’고 써 붙여 놨는데요. 그래서 이번 개정안에선 현금을 받아야 하는 곳과 아닌 곳을 확실히 구분했습니다. 처벌규정도 추가했고요.아일랜드 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법안도 의미 있습니다. 현금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안인데요. 아일랜드 3대 상업은행의 ATM 수를 얼마로 유지할지를 재무부 장관이 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은행이 함부로 ATM을 폐쇄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상당히 과감한 조치입니다.한국도 북유럽만큼은 아니지만 현금 이용률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상황이죠. 한국에서도 현금 쓸 권리를 이야기할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현금 인프라는 공공재라는 논리, 여러분은 동의하실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비용은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할까요. By.딥다이브 “다음 세대 아이들은 돈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 것이다.” 2015년 팀 쿡 애플 CEO가 애플페이를 소개하며 했던 말이죠. 그 얘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현금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현금 사용량이 줄면서 현금 운송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긴급 구제를 받았지만, 현금 인프라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걸 보여줍니다.-현금이 없으면 더 안전할까요? 가장 빠르게 무현금 국가로 나아가는 스웨덴에선 강도사건이 최근 몇년새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대신 온라인 금융사기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취약계층을 위해서라도 현금이 완전히 멸종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노르웨이는 ‘현금 사용 권리’를 법제화했고, 아일랜드는 ATM 수를 정부가 정하는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까요.*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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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침체 우려에 뉴욕증시 급락…인텔, 1.5만명 정리해고 발표[딥다이브]

    뉴욕증시가 급락했습니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잇따라 나왔기 때문인데요. 1일(현지시간) 나스닥은 2.3%, S&P500 1.37%, 다우지수 1.21%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뜨거웠던 미국 고용시장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신규 실업수당 신청 건수는 2003년 8월 이후 가장 크게 증가했죠. 제조업 공장 가동률도 떨어졌습니다. ISM 제조업 지수는 46.8로 예상(48.7)보다 낮았습니다.연준은 9월에나 금리를 내릴 텐데, 혹시 너무 늦는 게 아닐까요. 투자자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포워드본즈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크리스 러프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준이 올해 3차례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고, 10년 국채 금리가 4.00% 아래로 떨어지고 있지만, 경기침체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쳐서 주식시장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요.”전날 반등했던 기술주 주가는 대체로 이날 급락했습니다. 테슬라 주가는 6.55%, 엔비디아는 6.67%나 빠졌는데요. 전날 긍정적인 실적을 발표했던 메타플랫폼은 예외로, 주가가 4.82% 급등했습니다.이날은 장 마감 뒤 애플, 아마존, 인텔이 실적을 발표했죠. 애플은 분기 매출이 예상보다 빠른 5% 성장을 기록하면서 판매 침체에서 벗어났는데요. 컨퍼런스콜에서 루카 마에스트리 CFO는 9월 분기에도 이와 비슷한 수준(5%)의 매출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월가 예상치를 웃도는 겁니다. 다만 중화권(중국·대만·홍콩) 매출이 6%나 감소한 게 눈에 띄었는데요. 중국 본토 시장에서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애플 주가는 시간 외 거래에서 소폭 상승을 기록 중입니다.아마존은 이날 예상보다 약한 2분기 실적을 보고했습니다. 이날 공개한 3분기 실적 추정치도 애널리스트 예상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는데요. 아마존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8% 가까이 하락했습니다. 특히 브라이언 올사브스키 CFO는 아마존이 상반기에 데이터센터 같은 자본 지출에 350억 달러를 지출했고, 하반기엔 그 금액을 더 늘릴 거라고 밝혔는데요. AI 인프라 구축엔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간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부진한 실적을 내놓은 인텔은 이날 직원 1만5000명을 정리해고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전 직원의 15%를 감축하겠다는 거죠. 또 4분기부터는 주주에 대한 배당금 지급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인텔은 1992년부터 배당금을 지급해왔죠. 팻 겔싱어 CEO는 직원에게 보내는 메모에서 “우리는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 비용은 너무 높고 마진은 너무 낮다”고 설명했는데요. 인텔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19% 가까이 폭락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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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한애란]현금 없는 사회, 괜찮겠습니까

    “카드만 됩니다.” 주차비 정산을 위해 지갑을 꺼내 지폐를 세자 돌아온 답이다. 낡은 건물 주차장이지만 결제만은 요즘 방식이었다. 하긴 ‘현금만 받아요’라는 말보다 ‘현금 안 받아요’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 시대다. 서울 시내버스 4대 중 1대는 ‘현금 없는 버스’로 운행된다. 스타벅스가 2018년 도입한 ‘현금 없는 매장’은 이제 다른 커피전문점에서도 표준이 됐다. 그래서 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가 점점 사라진다. 이용자가 줄어 수수료 수입이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2018년 이후 사라진 ATM은 1만4426대. 얼마 전 대구의 한 은행이 ATM 철수를 알리기 위해 붙인 안내문엔 주민들의 손글씨가 빼곡했다. ‘제발 있어 주세요’, ‘가지 마세요’. 현실로 다가온 현금 소멸 위험 현금을 뽑기도, 현금을 쓰기도 어려워진 시대. 이대로 현금은 멸종할 것인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현금 시대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주는 지난 몇 달 동안 현금 운송회사 아마가드의 파산 위기로 시끄러웠다. 현금 사용량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아마가드 트럭에 실리는 현금량이 급감했고,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물 화폐 운송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아마가드가 현금운송 사업이 지속 불가능하다고 경고한 게 지난해 말. 운송 트럭이 멈추면 은행과 ATM 어디에서도 현금을 구할 수 없게 된다. 반강제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할 판이었다. 결국 호주 주요 은행과 대형마트가 5000만 호주달러를 아마가드에 긴급 지원해 간신히 급한 불을 껐다. 현금은 발행과 운송에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거슬러주기에 불편하기도 하다. 디지털 결제의 편리함은 현금을 빠른 속도로 밀어낸다. 스웨덴은 모바일 결제 서비스 ‘스위시(Swish)’가 널리 보급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나라다. 버스는 현금을 받지 않은 지 오래고, 많은 상점에선 카드나 모바일 결제만 된다. 심지어 현금을 취급하지 않는 은행 지점도 많아서, 은행 계좌가 있어도 창구에선 현금으로 입금하기 어렵다. ‘현금이 왕’이란 말은 옛날얘기가 됐다.현금 쓸 권리 지키기 나선 국가 그런데 현금의 종말을 막기 위해 나선 나라도 있다. 현금 결제 비율이 고작 3%밖에 되지 않는 노르웨이가 대표적이다. 최근 금융계약법을 개정해 소비자의 현금 지불 권리를 명문화했다. 자동판매기나 무인가게가 아닌 모든 판매점은 현금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위반하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도 만들었다. 한때 ‘2030년 무현금 국가’를 외쳤던 노르웨이는 왜 정책 방향을 틀었을까. 아무리 디지털 결제가 일반화됐다고 해도 여전히 현금이 아니면 결제가 어려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은행 계좌에 접근할 수 없거나 디지털 기기 사용이 서툰 취약계층이다. 전력망, 통신망이 멈추는 긴급 상황에서 통하는 건 현금뿐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모바일 결제 보급률에선 세계 최고인 중국도 현금에 다시 관심을 쏟는다. 현금 쓰기 어려운 환경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 런민은행은 올해 들어 현금 거부 매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현금 사용 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나선 건데, ‘현금 없는 사회’를 강조하던 이전과는 딴판이다. 한국에도 현금 지불 권리에 대한 법 조항이 있다. 한국은행법 48조는 ‘한국은행권은 모든 거래에 무제한 통용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위반해도 처벌 규정이 없으니 선언에 그친다. 현금을 공공재로 보고 유지 비용이 들더라도 지킬 것인가. 이제 우리도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haru@donga.com}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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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 138만원 기본소득을 줬다…미국에서 3년 실험해보니[딥다이브]

    돈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basic income). 여러분은 어떤 입장인가요. 한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데요.미국에서 기본소득과 관련해 3년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실험의 결과가 최근 공개됐습니다. 기본소득 지지자인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지원한 오픈리서치(OpenResearch)의 연구인데요. 막연했던 기본소득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외인 점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할 부분도 있을 겁니다.*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조건 없이 월 1000달러 지급여기 미국 텍사스와 일리노이에 거주하는 21~40세의 미국인 3000명이 있습니다. 2019년 기준 가계소득이 연방 빈곤선의 300%(1인 가구 3만7370달러, 4인 가구 7만7250달러) 이내인 중·저소득층이죠. 비영리 연구기관인 오픈리서치는 이 중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약 138만원)를 조건 없이 현금으로 지급했습니다(실험군). 나머지 2000명엔 매달 50달러(약 7만원)를 나눠줬고요(대조군). 그렇게 3년(2020년 11월~2023년 10월) 동안 실험이 진행됐고, 그 결과가 이달부터 차례대로 발표됩니다. 자,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은 이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을까요.이들은 식료품과 교통비에 쓰는 돈을 늘리고(월간 지출 총액이 평균 310달러 증가), 더 나은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놀라운 일 아니죠. 부모님이나 친구 같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지원해 주는 비율이 크게 늘어난 점. 이것도 당연해 보입니다.다음의 두 가지 결과는 좀 더 주목할 만합니다. 기본소득 덕분에 사람들은 더 건강해졌을까요?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일을 덜 하게 만들까요?답을 먼저 얘기하자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 두 번째는 ‘네’입니다.건강에 미치는 영향-없음소득이 낮을수록 스트레스가 크다는 건 상식으로 통합니다. 그럼, 월 138만원의 소득이 갑자기 더 생기면 당연히 스트레스가 크게 줄어들어야 할 것만 같은데요. 연구 결과는 의외의 사실을 보여줍니다.기본소득을 받기 시작한 첫해엔 실험참가자의 스트레스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2번째 해부터 사라졌고요. 3년 차가 되자 오히려 실험군의 스트레스가 대조군보다 더 높게 나타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본소득은 수면과 운동을 늘려주지도 못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기본소득이 건강을 증진시켜 병원 치료 횟수를 줄일 거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병원 입원이 26% 늘고, 응급실 방문 확률이 10% 증가했습니다. 연구진은 혈액 검사를 통해 신체 건강의 변화도 비교했지만, 유의미한 향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논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이 실험의 결과는 현금지급으로 빈곤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것이 건강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시사합니다. 현금지급의 매력은 수혜자가 돈 쓸 곳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주는 겁니다. 이런 특성상 건강 개선에 있어서는 무딘 도구가 됩니다. 건강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책 입안자들은 (기본소득보다) 건강을 직접적으로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건강보험 자격 확대, 처방약 가격 인하 등-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합니다.”기본소득과 일을 덜 할 권리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일을 안 하고 게을러질 거란 겁니다. 자립을 중시하는 우파, 노동자연대를 강조하는 좌파 모두에서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인데요. 그래서 실험 결과는?기본소득 받은 사람들은 대조군과 비교해 근로시간이 주당 약 1.3시간 줄었습니다. 1년에 8일을 적게 일하는 거죠. 덜 일하는 걸 택하면서 실험참가자들의 근로소득 역시 월 125달러 줄었고요. 물론 1000달러의 기본소득을 더하면, 전체 소득은 더 많이 늘었지만요.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요? 그런데 조금 더 깊이 파고들면 다른 점이 보입니다. 일을 덜 하는 효과는 20대 청년층과 한부모 가정에서 특히 뚜렷했습니다. 청년은 일 대신 대학 교육에, 한부모 가정은 일 대신 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거죠. 아이를 혼자 돌보는 엄마나 아빠가 일을 덜 하게 만드는 건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과연 기본소득이 근로시간을 얼마나 줄일까’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럼 남는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입니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쪽에선 이 추가 시간 덕분에 사람들이 고용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죠. 교육에 투자하고, 기술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직장을 구하거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될 거란 겁니다.하지만 실험에서 연구진은 기본소득으로 인해 일자리 질이나 인적 자본이 개선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20대와는 달리, 30대 실험 참가자에게선 교육이나 기술훈련을 추구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죠. ‘창업하고 싶다’는 응답이 약간 높아지긴 했지만, 실제 창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그래서 줄어든 근로시간을 어디에 썼는지를 따져보면 여가(돌봄+휴식)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폐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홈스쿨링을 한 엄마, 주 50시간이던 근무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아들과 낚시·사냥을 다니는 아빠 사례가 등장하죠.기본소득 지지자의 기대엔 어긋나는 결과이지만, 자본주의에선 ‘돈=선택권’이란 점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로도 보입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완전 무조건적인 현금지급은 노동공급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가적인 여가에 높은 가치를 두기 때문입니다. 노동시장 참여 감소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막대한 재원은 어떻게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의 마법 같은 효과는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현금을 주는 것은 그들의 삶을 일부 개선하고 약간의 휴식을 더해주는 건 분명하지만, 생각만큼 단기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훨씬 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했을 기본소득 지지자들에겐 실망스러운 소식인데요.이 연구는 기본소득 논쟁의 가장 큰 이슈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바로 기본소득에 필요한 막대한 재원을 어디서 확보하느냐입니다. 3년 동안 고작 1000명에 월 1000달러를 주는 이 연구에 총 6000만 달러(약 829억원)의 연구비가 들었습니다. 아주 비싼 실험이었죠. 참고로 이 연구비는 샘 올트먼 개인의 1400만 달러 후원을 포함해, 오픈AI 법인과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만든 기금으로 채워졌습니다.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 건 뻔하죠. 만약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지금 예산 한도 내에서 전 국민 기본소득을 실시한다면 과연 1인당 최대 얼마나 돌아갈 수 있을까요. 다소 극단적인 가정을 가지고 계산해 봤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기업 등이 제공하는 모든 사회지출(현금·현물·세금감면을 통한 지출, 건강 관련은 제외)을 다 없애고 그 예산을 모조리 기본소득 지급에 사용하는 경우이죠. 그 수치는 OECD가 집계한 국민 1인당 연간 사회지출 금액(2019년)을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한국은 연간 1인당 5116.7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8만원. 월 59만원꼴입니다. 4인 가구이면 월 236만원이 되겠군요. 기초생활보장 급여, 장애연금, 출산휴가 급여, 노인 대상 교통요금 감면, 저소득층 전기요금 감면 등등.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지원을 다 없애고 이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했을 때 국민 1인당 돌아가는 금액입니다.너무 적다고요? 그래서 OECD는 2017년 연구에서 “기본소득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세수 변화가 필요하다. 그 결과 대부분 사람의 세금부담이 증가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 기본소득이 빈곤을 줄이는 효과적인 도구가 되지 못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죠. 가장 가난한 계층 입장에선 기본소득보다는 현재 방식의 복지 제도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대기업이 세금 더 내라?기본소득 재원과 관련한 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샘 올트먼이 2021년 3월 ‘모든 것에 대한 무어의 법칙’이란 글에서 밝힌 주장인데요. AI 기업과 토지 소유자에 세금을 매기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AI 기업 시장가치의 2.5%, 사적으로 소유된 모든 토지 가치의 2.5%를 매년 세금으로 부과해 기금을 만들자는 거죠. 그리고 이 돈을 18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게 매해 나눠주는 겁니다.물론 시장 부침에 따라 연간 분배금은 오르락내리락하겠죠. 하지만 미국 경제의 탄탄한 성장세를 생각하면 10년 뒤엔 미국 성인 2억5000만명이 매년 1만3500달러(1869만원, 월 155만원꼴)를 받게 될 거라는 게 샘 올트먼의 추정치였습니다.어떤가요.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성이 없어 보이나요? 그런데 최근 이와 거의 같은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지역이 있습니다. 미국 오리건주인데요. 오리건에서 거둔 매출이 2500만 달러 이상인 대기업에 매출의 3%(이익의 3%가 아니라)를 세금을 부과해, 이를 모든 오리건 주민에게 나눠주자(1인당 연간 약 750달러 예상)는 주민 청원이 제기된 겁니다. 이 청원은 무려 16만8000명의 서명을 받아, 11월 주민투표에 안건으로 올라가기 위한 기준선(10만명)을 훌쩍 넘겼는데요.기업 부담을 늘려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시행한다는 이 아이디어가 과연 다른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통할 수 있을까요. 만약 현실화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실험은 계속됩니다. By.딥다이브기본소득제의 역사는 길게 잡으면 수백 년이나 됩니다. 그만큼 철학적으로나 정치경제학적으로나 꽤나 핫하고 논쟁적인 주제인데요. 여러 연구결과가 있지만, 가장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미국에서 3년간 진행된 월 1000달러 기본소득 실험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단 기본소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용에 있어서는 근로시간과 근로소득을 모두 유의미하게 줄였습니다. 일자리의 질이 높아지거나, 창업이 늘어나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현금지급 방식의 복지는 개인의 선택권을 키워줍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더 많은 휴식을 택했습니다. 대학 교육을 받으려는 청년층이나, 육아에 시간을 써야 하는 한부모 가정에서 근로시간 감소폭이 컸던 이유입니다.-생각보다는 기본소득 도입의 효과가 미미해 보이는데요. 모든 국민에 도입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드는 기본소득제. 정말 도입할 수 있긴 할까요. 재원 마련과 관련한 파격적인 제안(대기업의 매출 3%를 과세)이 나오지만, 현실화될지는 두고 봐야 겠습니다.*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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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MC 앞둔 뉴욕증시 보합…테슬라 주가 5.6% 급등[딥다이브]

    뉴욕증시가 보합으로 마감했습니다. 이번 주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와 빅테크 실적 발표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어 신중한 움직임입니다. 29일(현지시간) 다우지수는 0.12% 하락했고, S&P500은 0.08%, 나스닥은 0.07% 상승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미 연준은 수요일 FOMC 이후 정책성명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번달은 기준금리는 동결이 거의 확실시되지만, 시장에선 9월 금리인하 가능성에 대한 좀 더 명확한 단서를 찾으려 할 겁니다. CME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이제 시장 참가자들은 9월에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이상 인하될 확률을 100%로 보고 있습니다.이번 주는 실적 슈퍼위크이기도 합니다. 30일 마이크로소프트, 31일 메타플랫폼, 8월 1일 애플과 아마존이 분기 실적을 발표하죠. AMD, 퀄컴, 인텔 같은 주요 반도체 기업 실적도 나옵니다. 한동안 주춤했던 기술주가 다시 달릴 수 있을까요. 머피&실베스트 웰스매니지먼트의 시장전략가 폴 놀트는 “높은 성장률에 대한 투자자 기대가 타당한지에 대해 빅테크가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봅니다.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테슬라입니다. 모건스탠리가 테슬라를 자동차 주식 중 톱픽으로 꼽으면서 주가가 5.6%나 급등했죠. 모건스탠리 아담 요나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의 비용절감과 리스크 관리 노력을 언급하며 톱픽을 포드에서 테슬라로 교체했는데요. 고객에게 보낸 메모에서 그는 이렇게 밝힙니다. “테슬라는 여전히 차를 만들지만, 우리는 테슬라가 공격적으로 자원, 기술, 인력, 자본을 자동차 부문에서 멀리 재배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포드 경영진이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테슬라보다 전기차 논의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날 포드 주가는 1.61% 하락했습니다.반도체 설계기업 암 홀딩스(Arm Holdings)는 이날 주가가 5% 넘게 하락했습니다. 이날 HSBC가 투자의견을 보유에서 매도로 하향조정한 게 영향을 미쳤는데요. 프랭크 리 애널리스트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모멘텀의 잠재적 둔화와 AI PC 경쟁의 심화를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 수익이 하락할 위험이 있다”면서 목표주가 105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지난주 금요일 종가 대비 주가가 약 30% 하락할 거란 전망입니다. ARM은 수요일 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30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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