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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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황인찬 부장입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4-09-20~2024-10-20
칼럼78%
문화 일반10%
문학/출판3%
일본3%
사회일반3%
사설/칼럼3%
  • [횡설수설/황인찬]스가의 1년 천하

    ‘스가루(추る).’ ‘기대다, 의지하다’는 뜻의 이 일본어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를 지칭하는 현지 유행어다. 자신의 소신을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관철시키기보다는 전문가 등 주변 의견에 기대거나 결정을 미루는 스가 총리의 소극적인 스타일을 빗댄 말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뒤를 이었던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실정 등의 책임을 지고 ‘1년짜리 단임 총리’에 그치며 물러난다. ▷스가 총리는 3일 자민당의 차기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며 총리 연임 도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지자 떠밀리듯 물러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달 스가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후보가 요코하마 시장 선거에서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패배한 충격이 컸다. 스가 총리가 중의원 8년 등을 보낸 정치적 텃밭마저 그에게 등을 돌린 것. 그의 사퇴 소식이 전해지자 ‘당연하다’(57%)는 여론이 ‘반대한다’(35%)를 훌쩍 앞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물(魔物)’에 지고 말았다.” 결국 코로나19가 스가 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여행을 가면 경비를 지원해주는 ‘고 투 트래블’ 정책으로 엇박자 방역 논란을 빚은 것이 시작이었다. 백신 확보도 늦고 시스템도 미비해 접종률도 지지부진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쿄 올림픽 강행이란 승부수를 띄웠지만 흥행은 참패했고, 코로나는 재확산됐다. 스가 총리는 방역에 집중하겠다며 총재 도전을 포기한다고 했다. 하지만 총재 선거에서 심판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꼼수란 비판이 많다. ▷스가 총리는 부모의 후광, 파벌, 학맥이 없는 ‘3무(無)’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행보가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의 ‘구로코(黑子)’ 역할 같다는 말도 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채 극의 진행을 돕는 구로코의 보조 역할처럼 그는 아베 정권 시절 8년 가까이 관방장관을 맡는 등 2인자 역할에 익숙한 인물이었다. 총리가 돼서도 한일 과거사 같은 민감한 문제에서 그만의 철학이나 정책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베 노선 계승’만을 되풀이하며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스가 총리의 퇴임 효과는 즉각 나타나고 있다. 총리 연임 도전을 포기한 뒤 4, 5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율은 지난달보다 6.5%포인트 뛰어올라 46%가 됐다. 일본 증시도 반색했다. 스가의 퇴임 의사가 전해진 당일 닛케이평균주가는 2.05% 오른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지난해 아베가 사퇴를 밝혔을 때 2.7% 급락했던 것과 대비되는 반응이다. 스가 총리의 급작스러운 퇴장 선언으로 인한 혼란보다는 새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일본이다. 30일 임기를 마치는 스가 총리의 마지막이 이래저래 초라해지는 것 같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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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아프간 여성의 눈물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는 역사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겠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앳된 아프간 소녀가 연신 눈물을 흘렸다.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감이 가득했다. 한 인권운동가는 13일 트위터에 신원을 밝히지 않은 소녀의 영상을 올려 아프간의 절박한 상황을 알렸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한 지 하루 만인 16일, 광고판에서는 여성 모델들이 가려지고 있고 거리에는 외출한 여성이 없어 흉흉하다. ▷탈레반은 1996년 집권 후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으로 여성 인권을 억눌렀다. 초등학교조차 못 다니게 했고, 취업도 금지했다. 외출할 때는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혔고, 탈레반 대원과 강제결혼도 시켰다. 이를 어기면 몽둥이질이고 심하면 생명을 앗아갔다. 카불의 유일한 종합운동장인 가지 스타디움에는 매일 기도시간인 오후 3시 반 교수대와 투석대가 설치됐다. 율법을 어긴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오후만 되면 끊이질 않는 참혹한 시기였다. ▷20년 전 탈레반이 물러간 이후 아프간의 여성 인권은 빠르게 개선됐다. 지금은 여성이 대학생 가운데 3분의 1, 성인 취업인구 중 5분의 1로 늘었다. 여전히 서방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지만 그래도 여성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미군 철수가 시작된 5월 이후 25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80%는 여성과 아이들이라는 게 유엔의 집계다. 이들은 탈레반에 쫓겨 주로 카불로 향했는데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 국무부는 16일 탈레반이 여성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테러리스트를 숨기지 않아야만 정부로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혼란과 무질서가 커지는 것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을 의식한 발언일 것이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도 6월 아프간 여성과 소녀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계속될 것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탈레반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프간 여성들이 나약하지만은 않다. 탈레반이 주요 도시를 점령해 나가자 지난달 여성들은 직접 총을 들고 항전에 나서기도 했다. 과거의 인권 암흑기로 돌아가지는 않겠다는 각오였다. 대통령이 나라를 버리고 줄행랑을 쳤지만 아프간 최초의 여성 교육부 장관인 랑기나 하미디(45)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던 날 평상시처럼 출근해 자리를 지켰다. 열한 살짜리 딸이 있다는 그는 “나도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만약 살아남는다면 수백만 소녀들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이제 아프간 여성들은 목숨을 건다. 그들의 용기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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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78년 만의 유해 봉환

    구한말 강원도와 함경남도 개마고원 등에서 신출귀몰하던 홍범도의 항일 의병대는 일본군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일제는 토벌 작전이 번번이 실패하자 급기야 1908년 가족을 동원한 회유에 나섰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의 부인은 “내가 설혹 (회유)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라며 버티다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숨졌다. 홍범도는 맏아들이 일제가 쓴 부인의 가짜 귀순 권유 편지를 들고 오자 엄하게 꾸짖으며 총까지 쐈다. 총알이 귀를 스쳐 생명을 건진 아들은 의병이 됐고, 바로 그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만 16세의 어린 희생이었다. ▷1868년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머슴, 식객승, 포수를 전전하며 천대와 멸시 속에 살았던 홍범도. 그러나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의병의 길에 투신했다. 간도로 건너간 선생은 1920년 우리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을 처음 꺾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대승도 견인했다.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구사하는 장군’ ‘호랑이 장군’으로도 불렸다. 일제에게는 공포였지만, 고국의 민초들에게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해방이 되자 장군은 남북에서 모두 외면당했다. 남한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고 레닌에게 자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 낙인을 찍었다. 북한은 ‘비호(飛虎) 장군’이라 부르기도 했지만, 김일성과 비교된다는 이유로 부각시키지는 않았다. 앞서 선생은 1937년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로 이주했다. 병원 경비,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 광복을 두 해 앞둔 1943년 세상을 떴다. “독립을 최후까지 외치다가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항일 전사의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카자흐스탄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제76주년 광복절인 15일 한국으로 봉환된다.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간 지 100년, 서거한 지 78년 만에 조국 땅을 밟는다. 앞서 김영삼 정부 때 유해 봉환이 시도됐지만 북한의 조직적인 반대와 카자흐스탄의 미온적인 태도로 미뤄지다가 이제야 결실을 맺었다. 유해는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 ▷일제가 만든 ‘조선폭도토벌지’에 따르면 1906년부터 1911년까지 항일 의병 1만7779명이 순국했다. 일제강점기 전부를 더하면 피해는 더 클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수많은 이름 모를 의병의 희생과 헌신 위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 장군을 기리는 독립된 추모공원과 추모비는 카자흐스탄에는 있지만 국내엔 아직 없다. 후손 될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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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올림픽 포상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얻는다는 말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인도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육상 종목에서 우승한 투창 선수는 무려 12억 원의 포상금을 쥐게 됐다. 금 2, 은 4, 동메달 6개로 역대 최고 성적을 내고 귀국한 대만 대표팀도 금메달리스트가 8억2000만 원을 받는 등 돈방석에 올랐다. 이들의 귀국행에 대만 정부는 전투기 4대를 발진시켜 에스코트하는 최고의 영예를 제공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포상금이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와 싱가포르로 약 8억5000만 원이었다. 대만 다음으로 홍콩(약 7억4000만 원), 인도네시아(약 4억 원)가 뒤를 이었다. 반면 미국(약 4300만 원) 독일(약 2500만 원) 등은 상대적으로 적다. 올림픽에서 50∼100개가량의 메달을 휩쓰는 스포츠 강국일수록 억대 포상금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국가가 지급하는 포상금만 따지면 금메달 6300만 원으로 특별히 많은 금액은 아니다. 매달 주는 연금도 2000년에 금메달 기준(연금 점수 90점)으로 100만 원으로 오른 뒤 21년째 묶여 있다. 연금은 1975년부터 지급됐는데 당시 금메달리스트에게 2급 공무원인 이사관급 월급인 10만 원을 준 게 시작이었다. 1970년대 당시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10원이었고, 현재 1300원으로 130배 오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올림픽 연금은 삭감돼 왔던 셈이다. ▷이런 부분을 보완해주는 것이 종목별 협회가 지급하는 억대 포상금이다. 양궁협회는 리우 때 개인전 2억 원, 단체전 1억5000만 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규모를 지급할 것으로 보인다. 배구협회는 4위를 차지한 여자배구팀에 1억 원 이상의 보상금을 약속했고, 금메달을 획득한 체조, 펜싱 협회도 억대 포상금을 내줄 예정이다. 반면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며 4위에 오른 우상혁은 2000만 원, 수영에서 아시아와 한국 신기록을 세웠지만 메달 획득에 실패한 황선우는 1000만 원의 포상금에 그친다고 한다. 협회의 예산 상황이 다른 데다 신기록 달성보다는 메달 획득 여부에 포상금 기준이 우선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흘린 땀에 대한 보상 기준을 메달 여부로 정하면 간편할 수는 있겠지만 개인이나 단체, 기록이나 격투 경기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또 프로 스포츠가 발전한 인기 종목과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4년을 달려온 비인기 종목에 대한 보상을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게 맞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무엇보다 몇몇 종목에 치우친 우리 올림픽 메달의 저변을 넓히려면 보상 체계를 시대 변화에 맞춰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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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오사카와 하치무라

    일본은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혼혈 선수를 국가대표로 적극 선발했다. 전체 대표선수 583명 중 혼혈 선수와 귀화 선수가 35명이나 된다. 23일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일본의 테니스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24)가 성화 최종 점화자로 깜짝 등장했고,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는 하치무라 루이(23)가 일본 대표팀의 남자 기수로 나섰다. 일본을 대표하는 혼혈 선수들을 ‘얼굴’로 내세워 다양성과 조화를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오사카와 하치무라는 피부가 검은 ‘하푸(Half·일본인과 외국인의 피가 반반씩 섞인 이를 뜻하는 일본식 표현)’로 불린다. 오사카와 하치무라의 아버지는 각각 중남미 아이티와 서아프리카 소국 베냉 출신으로 1990년대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이들을 낳았다. 1980, 90년대 ‘재퍼니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이민자의 후손들이 오늘날 일본 스포츠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한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순혈주의가 오랫동안 지배해 온 나라에서 인종과 정체성에 대한 태도가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력 감소 현상이 심각해지자 외국인에 대한 문을 서서히 열고 있다. 10년 전 200만 명 수준이던 일본 거주 외국인은 오늘날 300만 명까지 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태어난 신생아 135명 중 1명이 다문화가정 출신이었지만 최근에는 50명당 1명꼴이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나라에서 다문화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혈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 개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서 오사카는 한 후원업체가 자신의 얼굴을 하얗게 그린 애니메이션 광고를 하자 “내 피부는 누가 봐도 갈색”이라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치무라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거의 매일 혐오 발언 메시지를 받고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재일동포 차별도 여전하다. 재일조선장학회가 올 초 재일동포 장학생 149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가 헤이트 스피치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다. ▷순혈주의는 이미 스포츠에서는 경계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런 추세는 경제, 교육 등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다. 차별 논란은 여전하지만 일본이 이번에 다양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강조한 것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우리도 일본과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국내에 살고 있는 19세 이하 다문화가정 2세들이 26만 명을 넘겼다. 우리 사회에서도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오사카와 하치무라’가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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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아이폰 뚫은 페가수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우리는 10년 넘게 사생활(보호)에 집중해 왔다. 이것은 기본적인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사용자 동의 없는 정보추적을 제한하며 아이폰 보안 기능을 강화한 배경을 설명한 것이다. 그런 아이폰이 해킹된 것이 드러나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이스라엘 민간보안업체 NSO그룹이 개발한 스파이웨어(해킹용 프로그램) ‘페가수스(Pegasus)’를 사용한 대규모 사찰 정황이 드러났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와 프랑스 비영리단체 ‘포비든 스토리스’ 등은 페가수스 사찰과 관련된 전화번호 5만 개를 확보했다고 폭로했다. 이들이 실제 검증한 휴대전화 67대 중 37대에서 페가수스 감염과 침투 정황이 발견됐는데 이 중 34대(92%)가 아이폰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광고와 달리 아이폰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페가수스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를 받아 세계 40개국 60개 정보기관에 수출도 했다. 테러리스트와 범죄자 감시 목적으로 허용됐다. 그런데 페가수스가 반정부 시민단체나 언론인 사찰에 쓰였다는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 의심 명단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 3명, 총리 10명, 국왕 1명도 포함됐다고 한다. 각국 지도자들이 호주머니 안에 스파이를 넣고 다닌 셈이다. ▷페가수스와 같은 스파이웨어는 정교해지고 있다. 악성 링크를 클릭하거나 특정한 앱을 깔도록 유도하는 것은 고전적 수법이다. 이번에 아이폰의 피해가 컸던 것은 사용자의 승인이 없어도 낯선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을 수 있는 ‘아이메시지(iMessage)’ 앱을 통해 침투했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실수로 클릭한 적도 없는 이른바 ‘제로 클릭’ 해킹이다. 페가수스는 휴대전화가 재부팅되면 삭제돼 추적도 어렵다. ▷NSO그룹은 안드로이드폰을 해킹하기 위한 페가수스 버전도 만들었는데 이것은 ‘크리사오르(Chrysaor)’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과 메두사 사이에서 태어난 천마(天馬) 페가수스와 황금 칼을 든 용사인 크리사오르가 오늘날 해킹 전쟁에 소환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안드로이드폰 피해가 크게 드러나지 않은 것은 해킹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 위한 정보 자체가 기기 내에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판단 재료가 충분치 않다는 것이지 안드로이드폰은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청은 해킹 피해를 막기 위해 백신 프로그램을 최소 2개 이상 설치하고, 모르는 앱이 설치돼 있지 않은지 정기적으로 살펴볼 것을 권고한다. 휴대전화의 쓰임이 커져 편리해질수록 보안 관리가 귀찮아지는 것쯤은 감수해야 할 것 같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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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BTS 누른 BTS

    ‘희망을 주는 특별한 퍼포먼스가 없을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에서 나오는 ‘수어(手語) 안무’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해 탄생됐다. “나나나나∼”란 흥겨운 후렴구에서 ‘즐겁다’ ‘춤추다’ ‘평화’란 뜻의 국제 수어들이 안무에 담겼다. 청각장애인들은 “BTS가 나에게 춤을 추라고 한다”며 기뻐하며 직접 따라 한 안무 영상 등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청각장애인이 음악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보청기나 인공와우 기기를 사용해 음악을 즐긴다. 청력을 거의 잃으면 볼륨을 높여 진동의 길이와 세기를 통해서 음악을 느낀다. 이렇게 진동으로 음악을 즐긴다는 청각장애인이자 웹툰 작가인 라일라는 영국 록그룹 ‘퀸’의 팬임을 밝히기도 했다. 국내 청력장애인은 약 30만 명이고, 전 세계에는 청력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약 15억 명 있다. BTS가 이들에게 장애는 음악에 걸림돌이 될 수 없다며 손을 내민 것이다. ▷“춤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다”는 가사가 반복되는 이번 댄스곡은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의 우울한 기분을 끌어올리는 응원가와 같다. 이 곡은 19일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 100’에 1위로 신규 진입했다. 앞서 7주 연속 1위를 유지했던 본인들의 ‘버터’와 정상에서 바통 터치했다. 이로써 BTS는 10개월 2주 만에 5곡이 정상을 차지한 기록도 썼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5곡을 정상에 올리는 데 걸린 기간(9개월 2주)보다 한 달 더 걸린 기록이다. ▷BTS의 고공 행진은 열성적인 팬덤 문화가 있기에 가능했다. BTS와 팬클럽인 아미(ARMY)는 ‘사랑해’를 ‘보라해(I purple you)’란 은어로 바꿔 말한다. 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보라색 뒤에는 다른 색이 없는 만큼 ‘변치 말고 사랑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다양한 인종의 아미들은 유튜브를 통해 함께 열광하고, 기부에도 적극적이다. BTS가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팬이 있기에 가능했다.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에서는 다양한 직업, 인종, 세대의 출연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가 마지막에 함께 마스크를 벗고 춤을 춘다. 팬데믹에 지친 세계인들에게 언젠가 일상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는 동시에 특정 인종을 향한 증오가 아닌 공존의 정신으로 위기를 넘기자는 뜻일 것이다.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에는 2022년 코로나가 종식되고 BTS 콘서트 개최를 알리는 내용도 담겼다. 잠시 설렌 팬도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발열 체크도, 인원 제한도, 거리 두기도 없는 ‘퍼미션 투 콘서트’가 현실화되기를 바라본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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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군함도 역사왜곡

    독일 에센시의 촐페라인(Zollverein) 광산은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후 버려졌던 폐광촌에서 관광지로 변신했다. 독일은 한때 세계 최대 석탄 생산지였던 이곳을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곳으로 소개하는 것과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과 전쟁포로들이 끌려와 강제노역을 했던 현장으로 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박물관의 ‘전쟁과 폭력’ 전시실에는 나치로부터 학대당한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강제노역자(Zwangsarbeiter)’라는 설명이 있다. ▷일본은 2015년 일본 군함도(端島·하시마) 탄광 등 메이지 시대의 산업유산 시설 23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독일과 같은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치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며 제대로 역사를 알리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문을 연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민족차별도, 강제노동도 없었다”는 거짓 증언만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도쿄 올림픽 개막을 열하루 앞둔 12일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지적하며 ‘강한 유감(strongly regret)’을 밝혔다. 실사단이 지난달 일본을 찾아 강제노역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 전시가 부족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전시물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이런 입장을 내놨다. 일본은 그동안 우리 정부의 항의에도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는데 이번에 국제기구가 군함도의 역사왜곡 사실을 공식화한 셈이다. ▷“갱도 안에서 일하고, 위에서 내려주는 밥 먹고, 다시 일하고 반복했어. 밥이라고 해도 콩깻묵 한 덩어리가 전부였고, 탄가루가 다 묻어 있었지. 그거 먹고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일하고 말 그대로 지옥 같았지.” 군함도에서 생환한 최장섭 씨는 2018년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에 이렇게 당시 고통을 회고했다. 군함도로 끌려간 한국인 약 800명 가운데 134명이 혹사와 배고픔 속에 숨졌다. 일본은 근대 산업화의 문을 연 곳으로 군함도를 띄우고 있지만, 강제노역자에게 갱도의 문은 지옥문일 뿐이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13일 “지금까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와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 왔다”고 억지 주장을 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밝힌 올림픽 정신의 3가지는 탁월함 우정 존중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도 하지 않으면서, 억지까지 부리는 일본이 올림픽 정신을 제대로 살리는 대회를 열 수 있을지 의문이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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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北 금기어 ‘오빠’

    북한 경제가 장기간 침체하면서 남편은 실업자가 되고, 아내가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해서 가계를 꾸려나가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 ‘낮 전등’ ‘풍경화’ ‘자물쇠’ 등 집에 있는 남편을 가리키는 은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낮에 아무 쓸모도 없는 전등, 하는 일 없이 벽에 걸려만 있는 그림, 집만 지키고 있는 자물쇠와 같다는 의미다. 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을 뜻하는, 남한의 ‘삼식이’와 같은 표현이다. ▷연애에서도 북한은 남한을 닮아가고 있다. 북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당의 허락을 받아야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중매결혼이 대세가 됐고, 지금은 연애결혼이 보편화됐다. 북한 여성들은 지금까지는 애인을 동지나 동무, 남편을 여보라고 불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애인이나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에 익숙해지면서 나타난 변화다. 북한 당국은 이런 변화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애인이나 남편에 대한 오빠 호칭을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단속에 걸리면 처벌까지 한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속속 들어선 장마당 등을 통해 남한의 드라마, 영화, 가요가 북한 주민에게 퍼진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카세트, 비디오테이프에 담겼던 한류 콘텐츠는 이제 CD, DVD를 넘어 USB에 담겨 퍼져 나간다. 밤새 영상을 보는 바람에 퀭해진 눈을 일컫는 은어, ‘너구리 눈’이 생겨났을 정도다. 북한 당국은 그동안 “남조선이 공화국을 모략하려 경제발전상을 꾸며낸 조작 영상을 만든다”는 식으로 한류 콘텐츠 확산을 통제해 왔지만 MZ세대에게 통할 리가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한류에 개방적인 모습을 노출한 적이 있다. 2018년 걸그룹 레드벨벳의 ‘빨간 맛’의 평양 공연을 보고 박수까지 쳤다. 부인 리설주는 그해 평양에 간 한국 특사단 앞에서 김정은을 ‘원수님’이 아닌 ‘남편’이라고 불렀다. 부부 관계가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리설주가 김정은의 팔짱을 끼고 공개 석상에 나선 이후 북한 거리에서는 팔짱을 낀 연인들의 모습이 늘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오빠와 같은 친숙한 호칭의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말은 사람들이 평소 갖고 있는 생각을 반영한다. 북한에서 남한식 표현이 널리 퍼진 것은 남한의 언어와 문화를 의심하거나 신기해하는 것을 넘어 의식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북한 당국이 겉으로 드러나는 주민들의 남한식 말투는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까지 바꾸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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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투 엄연한 의료행위” vs “불법처벌 한국이 유일”[수요논점/황인찬]

    《이번에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을까. 21대 국회에서 타투(문신)업의 법제화 논의가 활발하다. 지금은 법적으로 의료인만 타투 시술을 할 수 있는데 비의료인에게도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민의힘 엄태영,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비슷한 논의는 예전에도 있었다. 대법원이 1992년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한 이후 타투 업계는 시술 허용을 요구해왔다. 17대 국회부터 타투 합법화 법안도 발의돼 왔지만 의료계 반대로 번번이 통과되지 않았다. 하지만 불법 규정에 단속과 처벌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도 타투 시장 규모는 1조20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K타투’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커지면서 이번에 합법화해야 한다는 타투 업계의 목소리가 크다. 반면 의료계는 “수차례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그동안 허용되지 않았던 것은 결국 국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며 반대하고 있다.》법원 “질병 전염 우려 있어” 타투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법은 현재까지 없는 실정이다. 다만 대법원은 1992년 판례를 통해 “피부 진피(眞皮)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있고, 문신용 침으로 인해 질병 전염의 우려가 있다”며 타투를 의료행위로 판단했다. 이에 비의료인이 타투를 하다간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는다. 의료법 제87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거나,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부정의료업자의 처벌)에 의해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1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등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단속을 당한 타투이스트는 징역형과 벌금형을 받아 전과자가 되고 있다. 의료계는 합법화를 통해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이 늘어날 경우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시술 과정에서 각종 감염, 염색 잉크 등에 의한 이물반응, 그리고 과민반응 등이 빈번한데 비의료인은 이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법원은 타투보다 침습성이 적거나 유사하다고 보이는 벌침, 쑥뜸, 찜질에 대해서도 면허 없이 할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하고 있다”며 법적 형평성 논란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타투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나 예술 장르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다른 미용 시술보다 위험하다는 주장도 있다. 황지환 의협 의무자문위원은 “필러만 해도 6개월이나 1년이면 약품이 피부 내에서 사라지지만 타투 염료는 남는다”며 “일부 타투 염료에는 금속이 들어있어 자기공명영상(MRI)을 못 찍게 될 수도 있고, (염료가) 림프샘을 타고 들어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의료인이 대부분 시술 하지만 타투 업계는 의료계의 요구가 타투 시장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인이 타투 시술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고, 비의료인을 통한 시술이 대부분인 만큼 결국 이를 제도화해 관리에 나서야 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문신 시술 실태조사 및 안전관리 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타투 고객 171명을 조사한 결과 1명(0.6%)만이 의사에게 시술 받았다. 나머지는 문신 전문숍(66.3%), 미용시설(24.3%), 오피스텔(6.6%) 등에서 비의료인에게 받은 것이었다. 타투 업체들은 시술 자체가 불법인 탓에 간판도 제대로 달지 않고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건 당국의 위생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시술 후 부작용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20.6%에 달했다. 또 타투이스트 17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초음파 세척기, 건열멸균 소독기, 고압증기 멸균기의 보유 비율은 각각 32.6%, 21.7%, 12.5%에 그쳤다. 이렇게 보건 상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타투 협회가 직접 회원들을 상대로 위생 및 감염 관리의 지침을 배포하고, 관련 교육에 나서는 상황이다. 김도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타투유니온지회장은 “정부가 정기적으로 위생관리 등을 교육하고 이수증을 주면 좋겠다”면서 “(합법화 이후) 시술자의 잘못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넓은 의견 수렴해야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와 국회가 타투업의 법제화를 미루는 사이 타투 시장은 급성장했다. 한국의 타투 인구는 1300만 명가량이다. 눈썹과 아이라인을 그리는 반영구 화장이 1000만 명, 신체에 문자나 그림을 새긴 타투 고객은 300만 명으로 늘었다. 타투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제 제도권 편입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2015년 타투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타투이스트를 시장 육성 및 확산이 필요한 신(新)직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정부와 국회가 의료계와 타투 업계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타투이스트의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하고, 타투 고객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후속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하지만 타투는 한 번 새기면 완전히 지우기 어려운 만큼 양성화를 두고 보다 폭넓은 고려가 필요하단 의견도 있다. 벌써부터 교육계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타투 시술은 법으로 금지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경찰 등 공무원과 의료계 종사자에 대한 타투 허용 여부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타투 합법화 여부를 논의하면서 함께 살펴봐야 할 문제들이다. 美-英, 위생교육 이수하면 시술 허용 “한국은 타투(문신)를 불법으로 막는 세계 유일의 국가다.” 타투 업계는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을 금지하는 현행 제도와 관련해 이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실제로 주요 국가들은 면허제도 등을 운영하면서 타투 시술을 비의료인에게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각 주에서 위생과 혈액매개 감염에 대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타투 시술 면허를 발급하고 있다. 또 인체에 직접 주입하는 타투용 염료는 공업용이 아닌 화장품으로 취급해 안전성을 관리하고 있다. 영국 또한 정부가 위촉한 기관에서 위생과 안전 관련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타투 시술 자격을 주고 있다. 타투 업소를 열기 위해서는 시설과 장비, 고용인의 경력 등에 대한 지방정부 환경보건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며, 이후에도 해마다 심사 평가가 이어진다. 프랑스는 21시간의 위생교육을 받으면 시술이 가능하고,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타투를 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호주도 위생교육을 이수하면 시술을 할 수 있고, 2년마다 면허를 갱신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1987년부터 타투, 그리고 1990년부터 영구 화장 시술을 면허제로 운영하고 있다. 과거 타투에 부정적인 인식이 컸던 아시아에서도 합법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2002년부터 타투를 합법화해 자격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도 한국처럼 비의료인의 타투 시술이 불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최고재판소(대법원)가 “고객에게 문신을 새기는 행위는 의료행위가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비의료인에게 시술을 허용하는 법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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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럼즈펠드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로마 신화에서 불(火)과 대장장이의 신인 ‘불카누스(Vulcanus)’로 불렸다. 대선 캠프에 있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자신의 고향인 철강도시 버밍햄의 불카누스 동상을 떠올려 특별 참모그룹을 이렇게 부르자고 제안했다. ‘힘의 우위를 통해 악(惡)을 응징한다’는 이들의 정책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간전쟁 발발로 이어졌다. 이들 전쟁을 이끌었던 불카누스의 좌장격인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1932∼2021)이 지난달 30일 다발성 골수종으로 사망했다. ▷제럴드 포드 행정부 때 최연소(43세) 국방장관에 올랐고, 부시 행정부에서 다시 최고령(74세) 국방장관을 지낸 그는 스스로 설계한 전쟁에 결국 발목이 잡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에서 아프간과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을 처형시킨 전과도 있었다. 그러나 침공의 이유로 밝혔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현지 수용소의 수감자 학대 사실까지 불거졌다. 명분도 과정도 부적절했다는 비난 속에 그는 옷을 벗었다. ▷럼즈펠드는 동맹에도 ‘강경’했다. 무임승차는 없다는 게 지론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도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에서 이라크 파병 논란이 큰 것에 대해선 ‘역사적 기억상실증(historical amnesia)’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2003년 방한해 ‘왜 한국 젊은이들이 이라크에 가서 죽고 다쳐야 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50년 전 미국이 자국 젊은이들을 한국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답하며 기자회견장 밖 서울의 야경과 고층 빌딩 스카이라인을 가리켰던 그였다. ▷그는 대북 강경론자이기도 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신념이었다. 쿠데타를 유도해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는 것까지 구상했다. 그는 200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대포동 2호를 발사했을 때 발사궤도가 미국을 향하면 요격할 계획이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히기도 했다. 즉시 발사할 수 있는 요격미사일을 10기 이상 준비했지만 북한 미사일이 발사 42초 뒤 북한 영해에 떨어져 작전을 멈췄다고 한다. ▷럼즈펠드는 집무실 책상 유리 아래에 남한은 환하고, 북한은 어두운 한반도의 야경 위성사진을 넣고 업무를 봤다. 이라크와 아프간처럼 북한도 언젠가는 회복해야 할 자유민주주의의 땅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는 생전 “북한을 설득하거나 억제하기 위해 한국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일방적으로 대화 구애를 할 것이 아니라 대북 억제력을 제대로 갖췄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조언인 것이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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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황인찬]김정은, 그보다 한 살 어린 이준석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장점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3년 전 “김일성, 김정일과 다른 김정은의 한 가지 장점은 전범(戰犯)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답방하는 문제도 그렇고, 자유롭게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평양공동선언 후에 김정은의 서울 답방 논란이 불거졌을 때 나왔다. ‘6·25전쟁의 전범이 아니기 때문에 답방도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은 보수 진영의 반발을 부를 법도 했지만 별다른 이슈는 되지 못했다. 소수 야당인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으로 발언의 무게감이 덜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보수의 중심에 서며 뉴스메이커가 됐다. 36세인 이준석은 김정은보다 한 살 어리다. 둘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란 공통점도 있다. 10년 전 김정은이 김정일의 사망으로, 이준석이 박근혜의 발탁으로 중앙 정치무대에 나온 시점도 비슷하다. 이제 6·25전쟁이 멈춘 지 30년도 지나 태어난 이들이 북한 노동당과 남한 제1야당의 지도자가 됐다. 남북 관계에도 세대교체가 본격화되는 듯하다. 자신보다 어린 남측 보수 정당 대표를 보는 것은 김정은에게 낯설다. 김정일 사망 이후 10년 동안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문패가 바뀌었고, 이준석 전까지 20명이 당 대표(비대위원장 포함)를 거쳐 갔다. 대부분 김정은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이었다. 김정은으로서도 자기 또래의 보수당 대표가 궁금할지 모른다. 이준석은 당 대표가 되고 난 뒤 아직 직접적인 대북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이준석 신드롬’ 얘기가 나올 정도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그의 대북 인식에 대한 평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방송 패널로 나올 때와 지금 당 대표의 입장이 차이 날 수도 있다. 그가 2019년 펴낸 ‘공정한 경쟁’에서 밝힌 대북 입장은 이렇다. “통일의 방법이 체제 우위를 통한 흡수통일 외에 어떤 방법이 있겠나” “북한 정권이 남한에서 쌀이 왔다는 것을 밝히고 배분한다면 지원할 용의가 있지만, 밝히지 않는다면 지원할 수 없다” 등이다. 이런 발언이 부각되자 그를 강경한 대북관을 지닌 젊은 보수 정도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준석은 보다 유연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난 것에 대해 “(신용불량 상태인) 북한이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 보증을 서야 하는데 그 역할을 대통령이 자처한 것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며 대화에 긍정적이었던 그다. 지난해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개성공단을 뛰어넘어 파주 지역에 첨단산업단지를 세워 북한 노동자들이 휴전선을 넘어와서 일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 이준석 또래의 MZ세대는 진보와 보수란 이념에 매몰되기보다는 그때그때 실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특성을 보인다. 대화를 통해 평화를 구축하자는 진보나 군사력 증강을 통해 압박하고 견제하자는 보수의 정형화된 대북정책에 갇혀 있지도 않다. 평소 능력주의와 성과를 강조해 왔던 이준석이 진보보다 더 진보적인 경협안을 내비친 것도 이런 배경일 것이다. 젊은 지도자들이 남북관계의 진전에 기여하면 좋겠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스위스 유학파인 김정은에 대해 좀 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여태껏 북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이준석 또한 개인 입장이 아닌 당 대표로서 보수당의 대북정책에 얼마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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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한일 약식정상회담 무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합병해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인 2014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러 정상이 깜짝 조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이 모인 방으로 몇 분 늦게 들어서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먼저 손을 들어 인사를 한 것. 푸틴 대통령이 다가가면서 두 정상은 7, 8분간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양국 관계가 껄끄러운 만큼 비공적인 ‘풀어사이드 미팅(pull-aside meeting)’으로 격을 낮춘 대화가 이뤄진 것이다. ▷풀어사이드는 ‘(대화를 위해) 불러낸다’는 뜻으로 보통 다자회의 중간에 회담장 한편이나 회담장 밖에서 열리는 비공식 약식 회담을 말한다. 국기 설치 등 격식을 차리지 않고, 수행자도 1, 2명에 그치거나 통역만 배석하기도 한다. 시간도 통상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일본어로는 ‘다치바나시(立ち話·서서 이야기함)’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정확한 표현이 없어 풀어사이드 형식의 약식 회담 정도로 풀어서 설명한다.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처음 대면했다. 12일 정상회의장에서 양 정상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어 같은 날 만찬장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를 손짓으로 불러 함께 스가 총리 부부에게 먼저 다가가 1분 동안 대화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문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였지만 한일 정상 간 약식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회담장에 도착하자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 권해 돌발 회담을 이끌어냈다. 영어 통역관만 있어 아베 총리 발언이 영어로 옮겨지면 이를 다시 한국어로 바꿔 전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마련된 자리였다. 11분간 격식 없는 대화는 다음 달 두 정상의 정식 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과거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당시엔 한일 정상이 직접 만나서 문제를 풀어보자는 의지를 보여준 때였다. ▷약식 회담은 혈맹 간에 이뤄지면 홀대 논란이 나오기도 하지만 경색된 국가 사이에서는 관계 유지나 개선의 표시로 보통 해석된다. 이번에 한일 약식 회담도 열리지 않은 것은 답답한 양국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일 정상은 이번에 10분의 약식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기대했던 한미일 약식 회담도 없었으며, 한미는 외교장관 회담에 그쳤다.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일 관계 개선에 있어 한국과 미일 간에 온도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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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황인찬]6·25 전사자 추모의 벽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과 유엔군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名碑)가 있다. 6·25전쟁의 전사자는 국군 13만7899명, 유엔군 3만7902명. 명비에 이름을 새겨 수많은 희생을 후대에서도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비에는 1994년 국군의 이름이 먼저 새겨지고 6년 뒤인 2000년에야 유엔군의 이름이 더해졌다. 정부가 아니라 한 방산업체가 제작해서 기증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는 여태껏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명비가 없다. 앞서 6·25전쟁 행사 때 생존한 전우들이 전사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명비의 건설을 촉구한 적도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노력이 뒤늦게 결실을 본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574명, 한국군 카투사 7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 착공식이 21일 열린다.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내달 6·25전쟁은 7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추모의 벽 건설도 생존한 용사들이 앞장서서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한 한미의 민간단체들이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았지만 약 250억 원인 건설비 마련에 힘이 부쳤다.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한국 정부는 뒤늦게 지원에 나섰다. ▷추모의 벽은 내년까지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연못’ 주변에 설치된다. 화강암 판에 전사자들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새겨진다. 가장 첫 줄에는 존 에런 주니어(John Aaron Jr.) 육군 이등병이 자리 잡는다. 그는 1950년 7월 27일 하동 전투에서 사망한 300여 명의 미군 중 한 명으로 당시 22세였다. 미 8군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던 월턴 워커 장군의 이름도 새겨질 것이다. 그는 당시 “지키지 못하면 죽음뿐이다(Stand or die)”라고 소리치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은 178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제 생존자는 50만 명 남짓이고, 하루 600명 정도가 세상을 뜨고 있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에게 예우를 갖추고,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시간마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추모의 벽이 마련되는 것은 다행이다. 미국의 보훈단체들은 ‘더 이상 잊혀지지 않는 전쟁(No Longer the Forgotten War)’이라며 6·25전쟁 되새기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국가의 부름에 목숨을 내놓고, 명비에 한 줄 이름을 남기고 떠난 수많은 청춘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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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요논점/황인찬]인구 절벽으로 병력 수급 위기… “징병제 대안 논의할 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모병제 도입 논란이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이남자(20대 남성)’의 표심 얻기에 실패했던 여당의 잠룡들이 모병제 도입 가능성을 내비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거들고 나섰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7일 모병제에 대해 “대선 국면에서 논의될 텐데 정확한 실정을 여야 모두 알고 대안을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로 인해 현재의 징병제로는 병력 수급에 한계가 있는 만큼 모병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핵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병력 감축 가능성이 큰 모병제의 도입은 시기상조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병력 수급 절벽, 모병제 필요 모병제 도입 검토는 2000년대 이후 선거철 때마다 거론됐지만 ‘반짝 관심’에 그칠 뿐이었다. 이런 사이 출생률 하락으로 인한 병력 감소 위기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우리 군의 57만여 병력 중 병사는 30여만 명 수준이다.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했을 때 매년 20만 명은 충원돼야 현원이 유지되는 구조다. 그런데 안석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20년 29만 명이었던 현역 입영 대상자 수가 2025∼2030년에는 20만∼22만 명 수준으로 떨어진다. 2038년 이후로는 15만 명 이하로 감소한다. 이런 까닭에 2020년 중반부터 병력 수급에 차질이 예상되고, 2030년대 후반이 되면 징병 대상자 모두를 군에 보내도 현재의 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다. 모병제 도입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부가 아닌 사병도 직업 군인으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병력을 수급하고, 새로운 청년 일자리도 공급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모병제 도입에 따른 추가 재정 소요’ 자료에 따르면 모병제로 병사 20만 명을 모집하는 경우 2021∼2025년 필요한 비용은 29조1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같은 기간 징병제를 유지하면 15조8000억 원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모병제 도입 시 매년 약 2조7000억 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모병제로 인한 사회적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상목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교수는 2017년 징병제로 인해 학력 단절 등으로 놓치는 병사들의 기회비용이 1인당 4169만 원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모병제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며 “미래 안보 전략 차원에서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여전한데 병력 감축 우려 모병제가 도입되면 병력 감축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은 예산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모병제가 되면 우리 병력은 30만 명 내외로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병력 규모로 정규군만 130만 명이 넘고, 핵까지 가진 북한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모병제가 되면 국방비 가운데 인력비의 비중이 증가해 첨단 무기 도입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모병제가 되면 병역 기피나 젠더 갈등은 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군 생활이나 급여를 비롯한 보상의 수준이 향상되지 않으면 저소득, 저학력의 청년들이 주로 군에 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흙수저 입대’ 논란이다. 게다가 모병제가 돼도 충분한 병력을 충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병 계급의 직업 군인에 대한 선호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병으로 입대한 이후 부사관이나 장교로 가는 길을 터주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럴 경우 군대가 역피라미드형으로 변해 기존의 지휘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인구 절벽이 문제지만 그렇다고 안보 불안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모병제가 되면 병력 감축은 불가피해서 결국 북핵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제2창군’ 각오로 해법 찾아야 무엇보다 모병제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졸속 추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안보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래 안보 상황을 고려해 향후 필요한 병력 규모가 먼저 산출돼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징병제를 유지할지, 모병제를 도입할지, 아니면 둘을 혼용할지가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병력 수급 방안은 향후 군 조직의 변화나 무기 체계 도입과 맞물려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것이어서 군이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크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모병제로 가는 것은 제2의 창군에 비할 정도로 군에는 큰 변화”라면서 “군이 적정한 병력을 산출하기 전에 모병제를 도입하자는 것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군은 정치권의 활발한 모병제 논의와 달리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여군을 비롯한 간부 확대, 현역병 기준 완화 등으로 병력 규모 유지에 매달리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되긴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이제라도 군이 나서서 병력 수급의 어려움을 밝히고, 합리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美-英-獨-日등 103개국이 모병제 시행전 세계적으로 징병제보다 모병제를 택한 나라가 많다. 첨단무기 중심으로 군이 현대화되면서 전문적인 직업 군인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모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103개국으로 유엔 회원국(192개국)의 57.4%에 이른다. 반면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스위스 터키 이스라엘 등 66개국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을 거치며 반전 여론과 함께 징병제 폐지 목소리가 커지자 1973년 모병제로 전환했다. 전환 초기 저학력자와 빈곤층이 대거 입대하며 병력의 질적 저하 우려가 컸으나 훈련병 엄선 작업과 지속적인 훈련으로 이를 보완했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1963년 모병제 전환을 처음 실시했고, 2001년 프랑스, 2004년 이탈리아, 2011년 독일이 모병제로 바꿨다. 하지만 스웨덴은 2010년 모병제로 전환한 뒤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되자 2018년 징병제로 다시 전환했고, 비슷한 이유로 노르웨이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등도 징병제로 환원했다. 중국의 안보 위협 아래 있는 대만은 모병제를 논의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곳이다. 대만은 1990년대까지 40만 명의 군대를 징병제로 유지했지만 2000년부터 모병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했고, 2018년 완전히 전환했다. 하지만 모병제 전환 이후 지원율이 떨어지고, 예산 부담으로 병력이 20만 명으로 줄며 국방력 약화의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상목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교수는 “대만은 모병제가 사실상 실패했지만 영국은 모병제를 통해 만든 20만 군대로 강군이라 평가받는다. 모병제 도입 못지않게 어떻게 안착시킬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징병제::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가가 병역의 의무를 강제하는 것. 저비용으로 다수의 병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인력 자원의 비효율적 활용,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됨.::모병제::개인이 국가와 계약해 직업군인이 되는 제도. 병역 기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나 예산이 많이 들며 병력의 질적 저하가 우려됨.}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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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사용료 부과법[횡설수설/황인찬]

    페이스북은 최근 호주 정부가 언론사에 뉴스 사용료를 내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뉴스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호주 국민 중 40%가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봤기 때문에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컸다. 일개 기업이 정보통제권을 휘두른다는 비판 또한 커졌다. 마크 맥가원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총리는 “페이스북이 북한 독재자처럼 군다”고 일갈했다. ▷호주 의회가 25일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플랫폼 기업에 뉴스 사용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그동안 구글 등은 개별적으로 일부 언론사와 뉴스 사용 계약을 맺어 왔는데 법으로 사용료 지급을 명시한 것은 세계 최초다. 구글은 검색, 페이스북은 뉴스 서비스 중단을 꺼내며 법안 추진에 반대해 왔지만, 법안 통과 직전에 최근 호주 정부와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았다. 정부가 뉴스 사용료를 강제적으로 조정하기 전에 플랫폼과 언론사 간 자율적인 협상을 장려하는 쪽으로 법안이 수정됐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사용료 협상에 합의하면 법 적용에서 예외가 되기 때문에 구글 등은 호주 언론사와의 뉴스 사용료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호주가 관련법을 마련한 것은 플랫폼 기업들이 뉴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도 언론사에 적절한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아, 시장 왜곡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장규제기구인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디지털 광고에 100달러가 투입된다면 이 가운데 구글이 53달러를, 페이스북이 28달러를 가져가고 있다. 그럼에도 뉴스 사용료는 제대로 내지 않아 호주 언론사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개별 언론사가 거대 플랫폼 기업을 상대로 문제를 바로잡기에도 한계가 있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등도 호주와 비슷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EU는 ‘디지털 서비스법’ 등에 플랫폼 기업의 뉴스 사용료 지불을 명문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캐나다도 수개월 안에 뉴스 사용료 부과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플랫폼 기업이 정당한 뉴스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글로벌 기준에 맞게 거대 플랫폼과 국내 언론사 간 제대로 된 뉴스 사용료 부과 모델을 마련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구글, 페이스북 등은 국내에서 뉴스 서비스를 하면서도 ‘아웃링크’(플랫폼에서 클릭하면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것) 방식이라며 사용료를 내지 않아 왔다. 한국 정치권과 정부도 구글 등이 해외에서는 뉴스 사용료를 내면서도 한국에서는 갖은 이유를 대가며 어물쩍 넘어가는 상황을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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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폭행’ 드파르디외[횡설수설/황인찬]

    “나의 사랑 팽조, 당신과 함께 있으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27세 연하 연인인 안 팽조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1962년 처음 만나 죽기 전까지 보낸 1218통의 러브레터 중 하나였다. 그는 부인 다니엘과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상태였다. 팽조는 미테랑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과 함께 미테랑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첫 공개 석상에 나왔다. 34년간의 밀회가 끝난 뒤였다. ▷프랑스 대통령의 스캔들은 낯설지 않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일본 여성과의 혼외 정사설이 나왔고,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전 대통령은 밀회 상대의 집에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부인과 결혼을 유지하며 모델 카를라 브루니와 동거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은 한밤중 여배우인 연인 집에 가려고 스쿠터를 몰고 파리 거리를 달렸다. 성에 개방적인 프랑스여서 가능한 일이다. ▷17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73)가 2018년 8월 파리 자택에서 20대 여자 배우를 두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재조사를 통해 지난해 12월 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프랑스 대배우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가해자가 되자 비난 여론도 뜨겁다. ▷드파르디외는 2014년 영화 ‘웰컴 투 뉴욕’에서 성범죄 가해자 역할을 맡았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유력 경제인이 미국 뉴욕에서 수많은 여성들과 환락을 즐기고, 호텔방을 청소하러 온 흑인 객실 청소 직원에게 성폭행을 시도해 몰락하는 얘기다. 이 영화는 프랑스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스트로스칸 전 총재의 국제적 망신 이후 프랑스 내 각성의 목소리가 높았고 관련 영화까지 나온 것이다. 그런데 드파르디외의 인생이 그 영화를 닮아가는 상황이다. ▷프랑스에서는 관대했던 성 인식이 권력과 연결되면 왜곡되고, 심지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미투 열풍’과 맞물려 커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인 ‘동의(Le consentement)’를 통해 프랑스 문단 내 남성 원로 작가의 성폭력을 고발한 바네사 스프링고라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대를 증언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성폭행 의혹을 받거나 ‘미투’를 폄훼한 장관 2명을 임명하자 거센 비난이 이는 등 프랑스의 성 인식은 엄격해지고 있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성폭력 가해자까지 감싸고도는 우리 정치권의 행태도 뿌리 뽑을 때가 됐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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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차르’[횡설수설/황인찬]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 발언으로 외교가를 뒤집어놓았다. 김정일은 이로부터 22개월 뒤 사망해 ‘캠벨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2009년 8월 북한에 억류된 여기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방북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에 응급의학 전문의가 있었고 그의 김정일 근접 관찰이 판단에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캠벨이 그런 예측을 왜 공개했는지는 의문이다. 당시 김정일 사망에 따른 급변사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을 감안하면 주변국에 경고음을 울리기 위한 의도였을 수 있다. 캠벨은 김정일 사망 후 한국 일본 중국과 연쇄 회동했고, 아버지를 잃은 김정은에겐 대화를 촉구하며 북한 상황의 관리에 나섰다. 이런 대북통 캠벨이 조 바이든 새 행정부의 ‘아시아 차르’로 합류한다. ▷차르(Tsar)는 원래 러시아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다. 미국 관가에선 공식 직함은 아니고, 정책을 조율하는 백악관 특별고문이나 조정관을 이렇게 부른다. 바이든 당선인은 중요 사안에 차르를 임명했다. ‘기후 차르’ ‘코로나19 차르’에 이어 ‘아시아 차르’ 신설은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주로 중동과 유럽 전문가로 채워졌고, 그나마 대북통인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도 멀리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대북정책조정관을 맡았기 때문에 현안엔 낯설다는 우려도 있었다. 김정일-김정은 정권교체기(2009∼2013년)에 북한을 상대한 캠벨의 귀환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북한도 당장 ‘캠벨 효과’ 분석에 들어갈 것이다.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당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내려갔지만 대남 독설 성명을 내며 건재를 알렸는데, 그가 신설이 예상되는 북한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북한 전문가의 관측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향후 임명될 대북정책특별대표와 함께 캠벨이 김여정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상대할 수 있다. 김정은-바이든 대좌가 성사된다면 그 밑돌을 놓는 것도 이들 몫이다. ▷캠벨의 등장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감도 나온다. 과거 북핵 6자회담을 하면서도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캠벨이다. 하지만 그는 오바마 행정부 때 중국 견제를 위한 아시아 집중 전략인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를 설계했으며 이번에도 대중 견제에 집중할 것 같다. 그는 취임 전 기고를 통해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동맹들의 ‘맞춤형 연합체’도 꺼냈다. 미중 간 선택의 압박에 놓인 한국에 구체적인 차르의 압박이 밀려오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그를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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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전사들[횡설수설/황인찬]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나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 두기 강화 조치로 집에서 조촐히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의료진에게는 이마저도 언감생심이다. 겹겹이 방호복을 입고 야외 임시진료소에서 지난여름 폭염에 시달렸던 그들은 이번엔 갑작스레 찾아온 맹추위에 핫팩으로 몸을 녹여 가며 코로나 전장(戰場)을 지키고 있다. ▷중국이 우한시에서 원인 불명의 집단 폐렴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한 지 31일로 딱 1년이다. 그동안 세계 확진자는 8200만 명, 사망자는 179만 명을 넘겼다. 백신 개발 성공과 각국의 접종 소식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에겐 아직 먼 얘기다. 게다가 집단면역 형성까지는 적잖은 시간도 걸린다. 여기에 각종 변이 바이러스마저 확산되며 의료진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가 최근 올해 주목한 과학계 인사 10명을 선정했는데 대부분 코로나19와 싸웠던 의료진과 전문가였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이끌고 있는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앤서니 파우치 소장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오르며 ‘K방역’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 청장은 전문성에 근거한 일관되고 솔직한 브리핑으로 국민들의 코로나19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무엇보다 의료진을 향한 국민의 진심 어린 응원이 가득했던 한 해였다. 코로나 전사들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 참여자는 5만 명을 넘겼다. ▷하지만 의료진의 남모를 고통이 컸던 한 해이기도 했다. 10월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된 국내 의료진은 159명에 달했다. 의료진은 안전장비를 착용한다고 해도 확진자와 밀접 접촉하는 만큼 항상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4월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다가 감염돼 숨진 허영구 원장에 대한 추모 열기도 뜨거웠다. 정치권은 고인의 의사자 지정에 나섰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에 대한 안전 보장과 적절한 보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WHO가 9월 “의료진에게 안전한 근무 여건과 교육, 급여를 제공하라”며 각국에 촉구했지만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된 정부의 연말연시 특별방역기간은 내년 1월 3일에야 종료된다. 확산세 반전을 위한 총력전 기간이기도 하다. 많은 의료진이 가족과 함께 집에 있기보다는 동료, 환자들과 병원에서 새해를 맞을 것이다. 그들이 외롭거나 지치지 않게 연말연시 응원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도 당신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절망보다 희망을 믿고 있다고.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 20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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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 강조하는 트윗 공세에 나선 블링컨[글로벌 이슈/황인찬]

    각국의 관심에 비해 그는 요즘 너무 말이 없다. 인터뷰도 하지 않고, 최근 한 달여 동안 트위터에 올라온 글도 10개 남짓.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토니 블링컨(58) 얘기다. 활발한 트윗 행보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트윗들을 읽다 보니 어느 정도 ‘일관성’이 보인다. 최근 벌어진 국제 인권 이슈에 대해서는 짧게나마 잊지 않고 입장을 밝힌 것. 대부분 인권 경시 국가에 대한 경고와 비판이다. 지난달 이집트 인권단체가 외국 대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자국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자 이집트 당국은 단체 회원 3명을 테러 혐의 등으로 체포했다. 이러자 블링컨은 “외국 대사를 만나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고 트윗했다. 같은 달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반군을 향한 군사작전에 나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피난길에 오르며 지역 정세가 요동치자 “에티오피아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그는 경고했다. 이달 이란 정부가 반정부 언론인 루홀라 잠을 전격 처형하자 그는 관련 보도를 트위터에 링크하면서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다만 북한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행보다. 국무장관 지명 이후 그의 대북 메시지는 전무하다. 북한도 바이든 당선이나 블링컨 지명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하지만 블링컨의 대북 인식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대선을 앞둔 9월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최악의 폭군(worst tyrants) 중 한 명’으로 불렀다. 바꿔 말하면 그에게 북한은 폭군이 폭정을 행사하는 최악의 인권 유린국 중 한 곳이다. 이런 인식은 과거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그는 2015년엔 북한의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서울사무소 설립을 지지했다. 이듬해엔 북한과의 관계 개선의 조건 중 하나로 인권 침해 행위 중단을 거론하기도 했다. 블링컨이 인권 이슈에 꾸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성장 배경과도 관계가 있다. 그의 선대는 인권 침해 피해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 국무장관 지명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런 가족사를 상세히 소개했다. 할아버지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할머니는 헝가리의 공산치하를 피해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자신이 초등학생일 때 이혼한 어머니가 다시 만난 의붓아버지는 폴란드 비알리스토크에서 학살된 어린이 900명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고 소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달 트위터에 이런 가족사를 다시 언급한 동영상을 올리며 “내 가족사가 나를 공직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국무장관에 오른다면 인권 문제를 간과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도 읽혔다. 블링컨은 바이든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 불린다. 바이든이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연을 맺어 20년을 동고동락했고, 주요 정책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블링컨이 김 위원장을 폭군으로 부른 것처럼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폭력배(thug)’라고 불렀다. 북한에 대한 인식도 비슷한 셈이다. 이에 북한이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인권 등을 문제 삼아 추가 제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폐기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의 강조를 예고한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예정된 수순으로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강행처리한 대북전단금지법이 국제적 인권 이슈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국제인권단체뿐 아니라 미국 정부와 의회, 영국 의회까지 가세하며 한국 정부의 인권 수호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내달 출범하면 대북전단금지법이 한미 간 더욱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북인권단체가 전단 살포를 시도하고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실제 적용하기 시작하면 국제사회의 인권 침해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내정간섭이라고 일축하고, 법 시행을 강행하는 것은 갈등과 혼란만 키우는 일이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 지적은 수용해야 마땅하다. 황인찬 국제부 차장 hic@donga.com}

    •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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