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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초저출산 시대라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한 해 수십만 명의 아이가 태어난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약 40%가 출산 순위 둘째 이상 아이다. 물론 출생아도 줄고 둘째 이상 아이들의 비율도 크게 떨어졌다. 1981년 59.0%였지만, 2001년 52.3%, 2011년 49.1%에서 지난해 2023년 39.8%까지 줄었다. 정부는 결국 지난해 다자녀 지원 혜택의 기준을 두 자녀 이상으로 하향했다. 그 수가 현격히 줄고 있다지만 아직 적잖은 수가 둘째 이상 아이를 낳고 또 낳을까 고민하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에도 7만여 명의 둘째와 1만여 명의 셋째 이상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 이상의 아이를 낳은 부모들은 어떤 생각으로 둘째를 낳았을까. 또 둘째를 낳고픈 청년들은 어떤 마음일까. ● 두 자녀 육아휴직父, “고통 49%, 행복은 51%…그래도 출산·육휴 잘했다 생각”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는 A 씨(45)는 지난해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외벌이인데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하기로 한 것. 팀 내 중간관리자라는 중요한 위치였지만, 그는 “(가정을) 이대로 두면 큰일 날 것 같았다”며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A 씨는 첫째와 둘째 모두 마흔 살 넘어 낳았다. “늦게 결혼했으니 마냥 여유 있을 수 없어서 1년 정도 저희 시간 보내고 그 뒤로 바로 아기를 낳았어요.” 둘째를 갖게 된 이유를 묻자 “첫째가 외롭지 않게 자연스레 둘째 계획도 가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A 씨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짬짬이 프리랜서 강사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와 둘은 정말 큰 차이입니다. 하나가 돌아가도 다른 하나가 안 돌아갈 때가 많으니까…제가 육아를 계속 해 오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갑자기 몇 시간이라도 혼자 둘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솔직히 불안해요. 사고 터지면 어떡하나. 근데 와이프가 ‘나간 김에 그럼 언니 좀 만나서 좀 수다 좀 떨고 올게’ 하면 몇 시간이 지나고…그래도 그걸 뭐랄 수는 없는 게 일종의 보상 심리라고 생각하거든요. ‘너 없는 동안 나 고생했는데 이제 네가 대신 해줘’ 이런.” A 씨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아내는 사실상 독박육아를 했다. 유급 휴직기간은 최대 1년이지만 A 씨는 휴직을 몇 개월만 쓰기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비용 부담도 있다. “이번에 육아휴직급여 올라서 한 달에 200만 원 받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그건 둘이 육아휴직 해야만 받는 거예요. 외벌이인 저희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거였습니다.” 정부는 아빠 육아휴직을 장려하기 위해 남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올려주는 ‘3+3 육아휴직제’를 시행하고 있다. A 씨는 “외벌이든 맞벌이든 (아빠) 육아휴직 혜택이 공평하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정신없고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과 후회의 비율을 따진다면 “51대 49”라고 한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육아는 51% 행복, 49% 고통이라고. 둘째 낳고 육아 휴직한 거 힘들지만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보람도 느낍니다.” ● 네 아들 워킹맘, “나만 여자라 특별” 웃음…“인프라 중요, 희망 가질 수 있는 사회 필요”부부가 서울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B 씨(41)는 회사는 물론 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다자녀 맘이다. 초등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 아들만 넷이기 때문이다. 아이 넷은 남편의 오랜 바람이었다. “남편이 외동이에요. 외로운 게 싫었던 거야. 결혼하기 전부터 넷 낳고 싶다고 했어요. 이름까지 다 지어놨다니까요.” 딸이 없는 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 B 씨는 가족 중 ‘유일한 여자로서 특혜를 누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집 화장실 2개 중 1개 저 혼자 써요. 하하하.”C 씨는 여러 직장을 거쳐 현재 유연근로가 가능한 대기업에 자리 잡았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을 터다. “(베이비)시터가 안 구해지는 거예요. 아들 넷인 집에 어떤 시터가 와요? 그래서 시터 2명도 써봤거든요. 아침, 저녁으로. 근데 두 분이 자매였는데도 싸우시더라고요.” 돌봄 공백에 ‘일을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일명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동네 중 한 곳으로 이사했다. 이유가 인상적이다. “‘시터 안 쓰는 환경을 만들어 보자’ 해서 찾아보니까 강남은 다들 영어유치원 보내니까 구립 어린이집이 대기가 없더라고요. 선생님도 너무 좋고. 동네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해요. 학교 방과후에서 최상위 수학도 배우고.” 아이들이 많이 살다 보니 아이들 공공인프라가 잘돼있어 되레 교육비용이 덜 든다는 것이다. B 씨는 말했다. “공교육도 양질을 잘 찾으면 되는데, 부모들이 안 믿고 이용하지 않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아들 넷 워킹맘으로서 애로도, 불만도 많을 듯한데 B 씨는 부정적이기보다는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다. “인프라 너무 중요하고…근로 시간이 유연해져야…남녀 가르는 거, 아이 모든 걸 부모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 안 돼요.…회사 다니며 10년을 꼬박 모았는데 집을 사는 건 꿈도 못 꾸잖아요. 사람이 목표와 희망을 갖고 장기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해주면 아이 낳지 않을까요?”● 20대女, “아직은 자녀 낳고픈 마음 70%”…잘 키우는 가족서 해법 찾아보면 어떨까직장인 C 씨(26)는 동료들 사이에서 ‘요즘 청년 같지 않은 청년’으로 유명하다. 결혼도 출산도 하고 싶은 20대 여성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이 제 인생에 (우선순위) 1번이라고 한다면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건 0번이에요.” C 씨의 말이다. 그가 기자를 만나기 전 간략히 보내온 질의응답엔 이런 말이 들어가 있었다. ‘왜 결혼하고 싶나?…희망을 가지고 싶은 것일 수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누구나 이상형 연인과 이상적 직업이 있듯이 C 씨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때마다 부정적 답변이 많아 자신감이 줄어든다. “얼마 전 동종업계 기혼자들을 만났는데 저출산 얘기 나오니까 다들 ‘애 낳는 것 자체가 자살이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좋은 세상을 주고 싶은데…두려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에요.” C 씨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낳고 싶은 마음 70%, 두려운 마음 30%”라고 한다. 일도 잘하고 싶을 텐데 육아휴직 할 수 있겠냐고 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미래의) 남편이 할 수도 있죠.” 사회가 초저출산으로 치닫고 있다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둘째를 낳고 두 자녀 이상을 꿈꾼다. 둘째 이상 가족과 둘은 낳고픈 청년을 만나 보니 ‘100명에게 100가지 낳지 않는 이유’가 있듯이, 아이를 낳는 사람들에게도 ‘100가지 이유’ 혹은 ‘100가지 육아 노하우’가 있는 것 같았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두 아이 아빠 D 씨(41), 미대 교수를 꿈꿨지만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두 아이 엄마 E 씨(45)도 바쁜 삶 혹은 빠듯한 경제 상황 속에서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가족에 “만족한다”,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 같이 두 자녀 이상 낳아서 키우는 사람들 케이스를 많이 듣고 조사하다 보면 (저출산 해법의) 답도 좀 보이지 않을까요?” E 씨의 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 애들이 다 한 집 자식이오?”주말을 맞아 네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르는데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께서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하니 “참 다복하고 좋아 보이네” 하시며 한참 시선을 거두지 못하셨다. 80대에 가까워 보이는 그 어르신도 아마 다자녀 부모일 것이다. 1960, 1970년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4~6명이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 모습에서 과거 본인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보고 계셨을지 모르겠다. 언젠가 그 어르신처럼 아이들을 ‘추억’해야 하는 날에 이를 것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한 대학 선배는 자녀들이 이미 장성했는데 “퇴근 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아빠’하고 달려와 와락 안기던 그때가 아직도 엊그제 같다”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억만금이라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했는데, 부모가 되어 아이들이 나날이 커가는 걸 보니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넷이라 더욱 왁자지껄한 우리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휑뎅그렁해질 집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헛헛하다. 기쁨이자 행복이었던 아이들이 없는 미래는 감히 상상이 안된다. ● 최초 0.6명대 출산율…청년들 “출산 무섭고 육아 부담”얼마 전 통계청이 2023년 출생·사망통계를 발표했다. 단연 눈길을 끈 건 출생통계였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 0.6명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간 합계출산율도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그냥 꼴찌가 아니라 2위에 큰 차이가 나는 압도적 꼴찌다.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동기간 출산율이 0.7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은 가히 전쟁과 비견될 만한 저출산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사실 결과는 진작에 예견됐다. 코로나19 탓에 2021년과 2022년 혼인 건수가 19만 건 아래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해 출산율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런 초저출산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거라는 게 문제다. 청년세대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출산과 육아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지다. 그것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선택지다. 근래 만난 2030 세대 청년들은 하나 같이 출산과 육아에 부정적이었다. 한 후배는 “출산하고 나면 내 일상, 지금까지 이뤄온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질 것 같아 무섭다”고 했고, 또 다른 후배는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데 아이까지 건사하는 건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남들 육아 이야기 들으면 도저히 키울 엄두가 안 난다”, “아이 키울 여력이 안 되고 언제 여력이 될지 기약도 없다” 등. 청년마다 사정은 달라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아이는 부담스럽고 육아는 고된 일이라는 인식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TV를 봐도 아이나 육아 관련 긍정적인 콘텐츠를 찾기 힘들다. 과거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고 흐뭇한 육아는 비주류로 밀려난 지 오래다. 아이 키우기 힘들어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는 뉴스나 힘든 양육 과정을 조명하는 상담 프로그램, 부모에게 이것저것 준비하고 공부시켜야 한다고 압박을 주는 프로그램들만 가득하다. ● 잃는 만큼 얻는 게 많은 육아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육아가 쉬웠던 적이 있을까. 그럼에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인식이 있었다. 먼저 자녀가 주는 기쁨과 행복, 사랑은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 종종 ‘인생의 낙이 아이뿐’이라며 한숨 쉬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불행한 게 아니라 부러움을 살 일이다. 아이가 줄 수 있는 낙은 친구나 회사가 줄 수 있는 낙과 차원이 다른 큰 기쁨이다. 그런 낙이 있다니, 없는 사람들에겐 부러울 일 아닌가. 아이를 키우면 무한한 사랑도 경험할 수 있다. 누군가 그랬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조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있다면 그건 부모와 자식 간”이라고. 아이를 낳고 알았다. 누군가를 이렇게 깊고 넓게,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부모가 주는 헌신적인 사랑은 알겠는데, 자녀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은 뭘까? 어릴 때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뭐 주는 것 없어도 ‘부모 바라기’다. 혼이 나도, 잔소리를 들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하고 와서 안기는 게 아이들이다. 크면서 부모와 다투기도 하고 남남이 되는 자녀도 있지만, 그런 자녀라도 마음 한구석엔 부모에 대한 조건 없는 애정을 품고 있다. 효자든 불효자든 부모에 대한 모욕을 들으면 발끈하는 이유다. 육아는 부모에게도 많은 걸 가르쳐준다. 옛말에 ‘아이 키워 봐야 어른 된다’고 했는데 아이를 키워 보니 알 것 같았다.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기 위해 좀 더 바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회·경제적으로도 책임 있는 존재가 되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단단하고 보다 번듯한 사람으로 거듭난다.물론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지 않기로 했다면 강요는 할 수 없다.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나 비혼주의자처럼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저 부담과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기엔 자녀를 키우며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 누가 성공한 삶을 정의할 수 있을까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출산과 육아가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음을 안다. 특히 한국처럼 정형화된 성공 답안이 있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작금의 한국에서 성공한 삶이란 수도권에 살고,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며, 번듯한 집과 차가 있는 삶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런 삶에 오를 기회는 적고 경쟁은 치열하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아이를 낳아서 회사에서 뒤처지고 돈도 못 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너무 바쁘게 사느라 함께 기쁨을 나눌 배우자도, 자식도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년배 가운데 큰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보면 당연히 부럽다. 하지만 ‘대신 당신한텐 이렇게 당신만 바라봐 주는 예쁜 아이 넷은 없잖아’라고 생각한다면? 무얼 성공한 인생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개개인이 인식을 바꿔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는 말은 아니다. 통계청 ‘2022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발표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평균은 286만 원으로 대기업 근로자 평균 소득 59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대기업 일자리는 전체 일자리의 14%에 불과하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여성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어렵게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출산과 육아 후 경력 단절에 내몰린다. 여성들의 경력단절과 일·육아 병행으로 인한 성별 임금 격차는 OECD 국가 가운데 최악 수준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성차별, 그밖에 구조적 문제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 해소해야 한다. 다만 그와 함께 출산, 육아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했으면 한다. 육아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리는 청년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3년 전 생일 기자는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니 아이들 넷이 고사리 손으로 접은 쪽지를 전했다. ‘XX방으로 가서 하얀 종이를 찾으세요.’ 쪽지를 따라가자 또 다른 쪽지가, 다시 또 다른 쪽지가 이어졌다. 엄마 생일을 위해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아이들 넷이 준비한 깜짝 보물찾기 이벤트였다. 마지막 선물에 이르렀을 때 주책맞게 울고 말았다. 쇼핑백엔 ‘엄마는 건강해야 하니까 무가당 크래커, 화장 안 해도 입술은 꼭 바르니까 빨간 립글로스를 샀다’는 메시지와 함께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첫째, 둘째의 2주치 용돈을 털어 고심 끝에 준비한 과자와 화장품 선물이 들어있었다. 그날 기자는 네 아이를 키운 노력에 대한 모든 보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것도 내 아이들로부터. 2명이 만나 0.65명을 낳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되돌린대도, 4명을 낳을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요 며칠 한 기업의 출산 혜택 소식이 화제다. 재계 순위 20위권인 이 기업의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해 앞으로 출산하는 모든 직원에게 출산장려금 1억 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초유의 저출산 위기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한 사기업 회장님의 ‘통 큰’ 출산 지원은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곳곳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지급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고, 급기야 대통령이 콕 집어 ‘지원방안을 적극 고려하라’고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기업의 화끈한 출산 지원과 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 정책의 맹점도 개선할 기회를 얻었으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통 큰 지원이라고 마냥 반기기엔 어딘가 씁쓸함이 남는다. ‘부익부 빈익빈’ 때문이다. ● 대기업 ‘육아휴직 2년, 수천만 원 지원’…중소기업엔 그림의 떡 몇 달 전 직원 십여 명의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한 사업가와 함께 식사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여성 직원들의 잦은 휴가와 퇴사”였다. 직원도 적은데 업종 특성상 여성이 절대다수라, 출산·육아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다른 회사보다 배로 크다고 했다. 특히 그는 최근 아끼던 직원에게 “뒤통수를 맞”은 일을 거론했다. 일 잘하는 친구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에 어렵게 대체인력을 구해 육아휴직까지 내주었는데, 복직하기 직전 ‘그만두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는 것. 휴가, 단축근로 같은 것이 쉽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그 친구도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을 것임을 알면서도 솔직히 서운하고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도 육아휴직, 단축 근로, 지원 혜택 다 주고 싶어요. 근데 그럴 여력이 없잖아요.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나 참고하고 싶어도 기사에 나오는 혜택 좋은 기업들은 죄다 대기업이고…. 우리로선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얘기들뿐이에요.” 지인의 말이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곧장 기사를 검색해 봤다. 저출산 해법을 모색한 기획 기사들을 보니, 여느 보육 선진국 부럽지 않은 우수 기업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직원 자녀 출산 시 500만 원 지급, 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3년간 교육비 총 1800만 원 지원’, ‘출산 시 제휴 호텔, 리조트, 숙박, 식사 제공’, ‘여성 직원 자동육아휴직제, 휴직 기간 2년’, ‘일반 휴직과 별개의 자녀돌봄 휴직 6개월’ 등. 하지만 모두 회사명 들으면 아는 대기업의 사례였다. 지인 말처럼 아무리 봐도 작은 사업체에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니었다. 괜히 보면 볼수록 배만 아프고 상대적 박탈감만 커지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마 최근 ‘출산장려금 1억 원’ 소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국내 사업체 99.9%가 중소기업, 직원 평균 10명 내외문제는 이런 사업체가 비단 지인 업체뿐이 아니라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1년 기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기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중소기업 수는 771만4000개였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무려 ‘99.9%’다. 종사자 수는 1849만3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0.9%에 달했다. 흔히 직장과 직장인 하면 이름이 잘 알려진 대기업과 공장들을 떠올리지만, 사실상 우리나라 기업과 근로자의 절대다수는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라는 의미다. 이들 기업의 규모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기준이 되는 상시 근로자 수를 300인 미만이라 하는데, 2022년 중기부의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이들 기업 평균 고용인원은 제조업 14.1명, 서비스업 9.0명으로 10명 내외에 불과했다. 지인의 사업체처럼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다. 사람 한 명 들고 나는 것의 체감도가 클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가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507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육아휴직 제도를 전혀 사용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업체에 이유를 물었더니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25.2%), ‘추가인력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23.3%),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서’(19.7%)와 같이 매우 현실적인 답변들이 나왔다. 교육·휴양비 지원이나 출산장려금 1억 원 같은 것도 중소기업에선 당연히 언감생심이다. 한 중소기업체 대표는 “요새 가장 큰 고민이 인력 확보다. 우리도 사내 복지 혜택을 강화해 좋은 직원들을 끌어들이고 싶다”며 “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업처럼 할 여력은 없는 걸 알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 휴직 대신 단축근로, 전면재택…일·가정 양립 노력그렇다고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마냥 감내하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정책포럼에 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업 규모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용률에 대한 발표였는데,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활용하는 비율이 각각 29.1%, 22.0%로 300인 이상 대기업 활용률(32.9%) 못지않게 높았다. 50~300인 중규모 사업체의 경우 10%도 안 된 것과 비교해 큰 차이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란 만 8세(초등학교 2학년, 올 하반기 만 12세로 확대 예정) 이하 자녀가 있는 근로자가 최대 1년간(육아휴직 합치면 2년) 주당 15~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여 일할 수 있는 제도다. 어째서 중규모 기업보다 소규모 기업에서 제도 활용률이 더 높았을까. 발표자는 ‘소규모 사업체에서 단축근로를 육아휴직의 대체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육아휴직의 타격이 큰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직원들에게 휴직 대신 단축근로를 적극 권장함으로써 직원 손실을 최소화하고 사내 복지도 강화하는 기제로 이용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업체 규모가 작다고 해서 일·가정 양립 지원에 방법이 없는 건 아님을 시사한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제품을 판매하는 아기띠 제조업체 ‘코니바이에린’은 주로 워킹맘으로 구성된 직원 55명을 채용하고 있다. 이들을 계속 고용하기 위해 회사는 전 직원 재택근무를 실현했다. 현재 코니의 직원들은 4개국 24개 도시에서 흩어져 일한다. 매일 아침이면 일명 ‘홈오피스’라 부르는 자택에서 회사망에 접속해 각자의 업무를 하고, 화상회의를 통해 협업한다. 필요하다면 일과 중 육아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울 수도 있다(배려시간제). 일반적으로 전면 재택근무라 하면 “말이 안 된다”거나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것”이라 하는데, 이 회사는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책을 만들었고 7년째 별문제 없이 재택 시스템을 운용해 오고 있다.● “중소기업 롤 모델도 제시해줬으면”그러나 이렇게 근무 형태에 맞는 일·가정 양립 방안을 도입한 중소기업은 극소수다. 여전히 절대다수 중소기업의 현실은 열악하다. 한 중소 규모 업체 대표는 “우리도 능력 있는 젊은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지원책을 운용하고 싶은데 좋은 사례라고 해서 찾아보면 대기업 사무직에 적용할 법한 것들뿐이고 중소기업의 롤모델이 없다”며 “정부나 언론에서 잘하고 있는 중소기업 사례도 발굴해 업종별로 레퍼런스를 제시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중소기업 지원도 더 강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육아휴직을 부여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최대 200만 원을 주고, 인건비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대체인력뱅크’를 통해 채용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하나 나는 것만 못 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 탓에 젊은 세대 다수가 대기업 취업 혹은 이직을 꿈꾸며 늦은 나이까지 경쟁에 매진한다. 소수의 대기업이 블랙홀처럼 인재를 빨아들이면서 중소 규모 기업의 인재, 인력난은 더 심해진다. 이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화되고 경쟁과 격차가 커지면서 저출산도 심화한다. 악순환이다.출산지원금 1억 원을 주는 큰 회사들이 느는 것도 좋지만, 자칫 1억 원 주는 회사 들어가기 위해 대기업 입사 경쟁만 더 심각해지는 꼴이 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시장의 부익부 빈익빈이 육아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바뀐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국가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하고 심의하는 컨트롤 타워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기구다. 부위원장만 해도 장관급인데, 현재는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지난해 1월 임명돼 임기 2년 중 절반이 남은 상태다. 김 부위원장이 정말 그만두는지, 사유는 무엇인지 대통령실이 명확히 밝힌 건 하나도 없다. 다만 후임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거론되고 딱히 반박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교체 시점까지 거의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달 저고위 상임위원과 민간위원이 잇따라 사표를 던진 것, 눈에 띄는 정책은 없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진 것을 두고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현역 시절 별칭이 ‘불도저’였을 정도로 강한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지닌 경제관료가 바통을 이어받게 된다는 것이다. ● 사람 문제인가…타부처 질의해도 ‘읽씹’ 일쑤, 실권 없는 저고위문제가 있다면 교체하는 게 맞다. 하지만 저고위의 문제는 사람이 아니다. 저고위는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닌 조직이다. 관련 정책이 여러 부처에 걸쳐있어 한 부처가 관할할 수 없고 여러 부처와 조율이 필요할 때 만드는 게 정부위원회다. 그러나 그만큼 부처의 입지가 모호하고 실권이 없다. 저고위가 그렇다. 사무국에는 30명의 상임 직원들이 있지만, 각 부처 파견 인력으로 1년~1년 반 근무하고 나면 본래 부처로 돌아가야 하는 ‘뜨내기 직원’이라 전문성이 없고 업무 연속성이 떨어진다. 사무국 자체 예산은 0원이다. 저출산 예산이 수십조 원이라지만 모두 각 사업 담당 부처에 있는 것이지, 저고위가 가진 게 아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신생아 특례대출’ 예산은 국토교통부, 육아휴직 예산은 고용노동부(고용보험 기금)에 있는 식이다. 저출산 사업을 발굴하지만, 각 부처에 사업을 지시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컨트롤 타워란 외양만 그럴듯할 뿐 제대로 된 조직도, 돈도, 실행력도 없는 곳이 현재 저고위다.내부에 자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각계 최고 전문가들을 모아 놓았지만 획기적인 안을 내고 합의를 이루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는 전문가들은 한 번 모이기도 어렵다. 각자 생각이 달라 의견 모으기도 쉽지 않다. 이런 지적이 하루 이틀 나온 게 아니다. 그렇기에 현 김 부위원장이 지명됐을 때부터 안팎으로 우려가 컸다. 그나마 그동안은 ‘실권 없는 조직’이라도 ‘실권 있는 부위원장’이 있어 영이 섰는데, 이제 일개 대학교수로 부처와 전문가들에게 말발이 서겠느냐는 것이다. 앞서 3명의 부위원장은 모두 여당 유력 정치인이었다. 1대 김상희 부위원장은 여당 4선 국회의원, 2대 서형수 부위원장은 대통령 측근, 3대 나경원 부위원장도 4선에 여권 중진이다. 한 내부 관계자는 “기재부(기획재정부)에 사업 예산 관련 질의를 하면 ‘안 된다’, ‘어렵다’는커녕 답조차 주지 않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시쳇말로 ‘읽씹(문자를 읽었지만 무시하고 답하지 않는 것) 당했다’는 건데,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 ‘이슈 메이킹’ 하라지만 논란, 뭇매만 지난해 가을 대통령실에서 저고위 핵심 관계자들을 불렀다. 이 자리에서 호통이라 할 수준의 매서운 질책이 있었다고 한다. 저고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며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른 것인지 지난해 말부터 저고위는 비교적 적극적인 대언론 행보를 보였다. 구상 중인 정책을 어필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토론회, 자문위도 열고, 취임 후 한동안 몸을 사리던 김 부위원장도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슈 메이킹을 하자 이번에는 또 ‘상의도 없이 논의 중인 정책을 공개했다’며 부처의 불만이 쏟아졌다. 출산 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즉각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자동육아휴직제’나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다자녀 전용차로 이용’ 같은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저고위는 온전히 뭇매를 감수해야 했다. 한 내부 관계자는 당시 이야기를 하며 “생각해 보면 전임 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으로 3개월 만에 옷을 벗었는데 (현 부위원장이) 이슈 메이킹이라니, 될 일이 아니었다. 힘 있는 여권 중진도 그렇게 된 판에 무슨 이슈 메이킹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임이었던 나경원 부위원장은 2022년 10월 부임했지만 3개월 만인 이듬해 1월 사퇴했다. 기자간담회에서 ‘출산가정에 대해 전세자금 대출 원금까지 탕감해 준다’는 이른바 ‘헝가리식 제도’ 도입을 살펴보고 있다고 언급했다가 논란이 커진 탓이었다. 당시 대통령실은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 방향이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고, 나 부위원장의 독단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듯한 입장을 취해 사실상 자진사퇴를 종용한 셈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 조사·연구 또 주문…“원인 몰라 해결 못 했나”얼마 전 저고위에서도 나 전 부위원장 사퇴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며칠 전 김 부위원장이 한 언론에 나가 인터뷰를 하며 ‘2월 말이나 3월 초 중 중장기 전략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다음 날 위원회가 다시 ‘확정된 내용이 아님’이라며 보도설명자료를 낸 것이다. 단순한 말실수도 아니고, 기관에서 수장 인터뷰의 주요 내용을 부정하는 해명자료를 낸 희한한 상황이었다. 보통 기관장급 공식 인터뷰는 질문지를 미리 받아 각 부서와의 조율을 거쳐 답안을 완성한다. 즉 기관장의 답변은 본인 개인 생각이 아니라 기관의 입장이다. 그런데 기관이 기관 스스로 작성한 답변을 부정한 것이다. 정황상 내부 판단이라기보다 외부의 판단이 개입된 듯한 모습이었다.조용할 때는 조용해서, 적극 나설 때는 나서서 문제였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쯤 되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아니, 우리가 춤을 춰도 되는 건 맞아요?” 사실 저고위 부위원장이 아무리 기막힌 장단을 준비해 춤을 춰봐야 ○○○이 없으면 소용없다. 각 부처가 저고위를 조율 기구로 인정하고 경청하는 건 부위원장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위원장인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난 1년여 저고위 활동에서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주문하고 하다못해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라며 호통까지 쳤다는데, 막상 이슈 될 만한 정책이 다른 부처와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 ‘손절(손절매·자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발을 빼는 행위)’이었다. 그러더니 지난달 초 돌연 ‘저고위가 제대로 역할 하기 위해 데이터와 수치에 근거해 저출산 원인과 정책 효과를 설명할 전문가를 찾아보라’며 인적 쇄신을 예고했다. 당시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데이터와 수치가 없고, 전문성이 없어 저출산 원인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결정권자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라 위원장인 대통령이 저고위 회의를 한 번밖에 주재하지 않았다거나 심지어 지난 정부에선 임기 내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대통령의 관심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실제 회의 참석 여부가 아니다. 저고위가 하는 일에 대한 실질적 관심과 지원이다. 대통령이 한 번 언급하고 사인만 줬어도, 기재부가 저고위 질의를 읽씹하는 일이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다.이런 안팎의 지적에도 변화가 없는 걸 보며 일각에서는 “일부 자문위원들이 주장했듯 정부가 저출산 ‘극복’에서 ‘적응’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온다. 더 이상 획기적인 정책으로 저출산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가 ‘연착륙’으로 기조를 틀었고, 그래서 내부 관료, 그것도 경제관료 출신을 부위원장으로 앉힌다는 분석이다.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런 회의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 자체가 저고위와 저출산 정책에 좋을 것이 없다. 저출산이 정말 국가적 과제고 1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 여긴다면 해법은 간단하다. 대통령이 저고위 전면에 서라. 사람 바꾸고 부처로 간판 바꿔서 다는 지난한 방법을 택하기에 앞서 한 번만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고 적극 지원하는 저고위를 만들어 보자. 저고위가 발굴하고 조율한 정책을 직접 보고 받고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이라. 불도저가 아니라 탱크를 끌고 온다고 해도 혼자 공사하고 혼자 전쟁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다. 지휘관이 나서야 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약속한 듯 한 날에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18일 국민의 힘 공약개발본부는 ‘1호 공약: 일·가족 모두행복’을,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양당이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정책이 인구정책이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양당의 발표엔 일부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주로 방점을 찍은 곳은 달랐다. 과연 어느 당의 대책이 더 나았을까? 기자인 동시에 네 아이 엄마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려 본다. ● 與 “육아기 유연근무 의무화”, 가족친화 일터 위해 긍정적 국민의힘 대책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육아기 유연근무 확대’다. 육아기 유연근무란 어린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 시차근무(다른 직원들과 시차를 두고 근무하는 것), 재택근무, 단축 근로와 같은 유연한 근무를 허용하는 것이다. 흔히 일터에서 필요한 육아 관련 제도라고 하면 ‘육아휴직’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육아휴직보다 더 먼저 권장돼야 하는 것이 육아기 유연근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우선 고려가 돼야 하고 그게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육아하는 부모를 휴직시켜 일터에서 배제시키는 반면, 육아기 유연근무는 육아하는 부모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일터에 가족 친화적인 근로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시행되고 있다. 만 8세 이하 부모가 육아를 이유로 단축 근로를 신청하면 사업주는 최대 1년까지 이를 허용해야 한다. 여당은 이런 단축 근로를 유연근무 전체로 확대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부터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소기업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근로자뿐 아니라 기업 지원책도 함께 내놓은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대기업의 몇 배, 몇십 배로 크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률을 높이려면 기업에 인센티브를 높게 주어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당은 중소기업이 직원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대체인력을 채용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기업에 대체인력지원금도 2배 높이겠다고 밝혔다. 남은 동료들을 위한 동료수당도 신설할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육아휴직자를 위한 ‘워라밸 프리미엄 급여(50만 원)’를 제시했지만,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밝히지 않았다. ● 아동수당·아이돌봄지원…양육부담 커지는 학령기 지원 확대 바람직민주당 대책에서 특기하고 싶은 것은 아동수당 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하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책을 개선하는 등 만 8세 이후 학령기 가정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나온 점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주로 임신·출산 전후에 집중됐다. 출산을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전후로 많은 혜택이 쏠린 것이다. 정작 많은 돈이 들어가는 학령기가 되면 지원이 급감해 양육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아동수당의 경우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법적 아동 기한인 만 18세까지 준다. 심지어 25세까지 주는 나라도 있다. 최근 일본도 중학생까지 주던 아동수당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은? 만 7세까지만 준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아동수당이 아니라 사실상 ‘영유아수당’에 가까운 수준이다. 민주당은 8세부터 17세까지 아동 1명당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을 카드로 지급하는 ‘우리아이 키움카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8세 이후 매월 10만 원씩 정부가 입금하고 부모도 매월 10만 원 입금할 수 있는 ‘우리아이 자립펀드’도 만들겠다고 했다. 만 12세 이하 아이가 있는 가정에 아이돌보미 인력을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도 소득에 상관없이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소득이 어느 이상이면 정부 지원이 없어 모든 금액을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아이돌봄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부모 가정조차 2인 가구 소득 기준을 넘으면 한 푼도 지원받을 수 없다. 많은 저출산 대책이 이처럼 소득 요건을 두고 있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만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산층이라 해서 육아 부담이 없는 건 아니기에, 특히 지금 같은 초저출산 상황에서는 정책의 보편성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환영할 만한 제안이다. 다만 재원 마련은 숙제다. 여당이 ‘저출생대응특별회계’ 신설을 공약한 데 반해 민주당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아동수당 예산이 지금의 배 이상 늘어나고 아이돌봄서비스도 이용료가 인하되면 이용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에 예산 마련 방안이 꼭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도 매년 아이돌봄 지원 확대안을 냈지만, 예산이 없단 이유로 번번이 추진에 실패했다. ● 육아휴직 의무화보다 근로문화 개선 우선돼야양당 모두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여당은 아빠의 1개월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고 임신 중 육아휴직 사용을 배우자에게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결혼·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독박육아’가 꼽히고 있는 만큼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이들 대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고 유명무실한 사후지급금은 없애겠다고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사후지급금은 육아휴직급여 중 25%를 떼어놓았다가 복직 후 6개월 넘게 일하면 돌려주는 돈이다. 복직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복직 효과는 크지 않고 육아휴직 기간 급여액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민주당은 육아휴직 대상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육아휴직급여가 고용보험에서 나가는 탓에 현재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육아휴직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형평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고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임금근로자 77%이며, 비정규직의 경우 54.2%에 불과하다. 육아휴직 개선안 대부분 공감할 만한 내용이지만, 양당 모두 제시한 육아휴직 자동 개시 제도는 개인적으로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현재도 출산 직후 육아휴직은 여성에 극히 편중돼 있다. 의무화까지 해버리면 육아휴직자 중 여성 비율이 더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복지가 잘 자리 잡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의 직장 내 인사 불이익, 도태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의무화를 추진했다가 되레 근로 현장에서 여성과 엄마를 더 배제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휴직 강제보다는 일을 하며 아이 키우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 아닐까. ● 다자녀 주거지원은 ‘빛 좋은 개살구’ 아닌지 따져봐야다자녀 가정에 분양전환 공공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언뜻 큰 혜택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그동안 정부도 특공, 대출 혜택 등 다양한 주거 혜택을 내놓았는데, 네 자녀인 기자조차 한 번도 그 혜택을 본 일이 없다. 원하는 장소, 넓이가 아니거나 유주택자라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제한이 많다. 실제 이런 주거대책으로 얼마나 수혜를 보았는지, 저출산 해소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조사된 자료도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전반적으로 일·가정 양립에, 민주당은 현금성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좀 더 실현 가능한 구체적 대책을 내놨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인 만큼 정부에서 실제 진행 중인 정책을 많이 참고했을 테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인 홍석철 공약 총괄본부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코칭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수당, 아이돌봄 지원 확대 같은 민주당의 공약도 양육기 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더불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양당이 정책이 ‘누가 더 낫다’ 경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여 더 나은 정책으로 실제 구현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기자이기에 앞서, 엄마로서.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정초에 지인으로부터 ‘축하 문자’가 당도했다. 올해부터 아이돌봄 사업 지원 혜택이 늘어난다며 잘되었다고 관련 기사 링크를 보내온 것이었다. 기자는 각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돌봄 인력(아이돌보미)을 제공하는 아이돌봄 서비스를 10년째 이용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지만, 곧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자녀 둘 이상이면 아이돌봄 이용료를 추가로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소득이 어느 수준 이하여야만 혜택 대상이 됐다. 비슷한 일이 지난해에도 있었다. 셋째 이상만 전액 받을 수 있던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을 이제 첫째, 둘째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대통령실의 발표가 나온 날이었다. 본래 세 자녀 이상인 가구에서 셋째 이상만 등록금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 그 대상이 첫째와 둘째로 확대돼 수혜 가정에서 대상자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몇몇 지인들이 ‘좋겠다’며 문자를 보내왔는데, 사실 기자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에도 소득 제한이 있어 애초 기자는 등록금 지원 대상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 맞벌이, 소득 높아 지원 못 받는 아이러니지난해 말 인천시가 파격적인 발표로 눈길을 끌었다. ‘아이 낳으면 무조건 1억 원.’ 인천에서 자라는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총 1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1억 플러스 아이드림’ 사업을 시작한다는 발표였다.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가 그 첫 대상자도 나왔다. 1억 원을 단번에 주는 건 아니고 생애 단계에 걸쳐 나눠 지원하는 것이긴 했지만, 인천에 거주한다면 누구나 ‘천사 지원금’과 ‘아이꿈수당’을 포함해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상황과 무관하게 그저 해당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 지원받을 수 있는 것, 즉 출산과 육아라는 행위만으로 온전히 혜택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다. 반면 정부의 저출산 대책 가운데는 조건이 따라붙는 게 많다. 특히 출산과 육아를 지원한다면서, 특정 소득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식이다. 아이돌보미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이집, 유치원 같은 기관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정부가 돌봄 인력, 아이돌보미를 제공하는 아이돌봄 사업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가 지원하는 폭이 다르다. 한데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150%를 넘는 가구라면 전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아이돌봄에 들어가는 비용을 온전히 자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맞벌이의 경우 기준을 적용할 때 가구소득의 25%를 공제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선 중산층 가구 가운데는 기준을 넘는 가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중위소득 150%를 초과하는 인구는 전체 4분의 1에 달한다. 맞벌이 가구야말로 아이돌봄 인력이 가장 필요한 가구이고 애초 아이돌봄 사업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여성의 경력 단절 부담을 줄이는 것인데(아이돌봄 사업 주관부처도 여성가족부다), 정작 맞벌이를 하면 소득이 좀 많단 이유로 지원에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아이돌봄 자부담 비용은 가파르게 상승해 2024년 기준 아이돌봄 영아종일제(월 200시간)를 이용한다면 월 230만 원 넘는 돈을 내야 하게 됐다. 중위소득 150%를 초과하는 가구라 해도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 다자녀 가구도 못 받는 저출산 지원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은 어떨까. 현재 대학 등록금 지원 기준은 소득 구간 10구간 중 8구간 이하다.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한 언론사가 분석한 기사가 있다.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기반으로 5인 이상 가구 보유 평균 실물자산, 금융자산, 부채, 평균 소득(차량 소유 가정)을 가지고 대학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는데, 그 결과 ‘평범한 5인 가구’라면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소득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등록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인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그 중간값인 ‘중앙값’으로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말해 다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은 평균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집이어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식으로 소득이 어느 수준 이상 되는 가구라면 누릴 수 없는 저출산 지원책이 적지 않다. 그럼 그런 정책을 저출산 지원책이라 해야 할까, 저소득층 지원책이라 해야 할까? 특정 계층을 위한 저출산 지원책인 걸까?출산과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은 웬만한 중산층 가구에도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다. 아이 돌봄 이용, 대학 등록금은 중산층 가구에서도 1인 월 소득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큰 금액인데 ‘받을 줄 알았다가 못 받으면’ 그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다. 비대상자의 출산 의지를 도리어 꺾어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키울 수 있다. 종종 자녀를 셋 이상 가진 맞벌이 부모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 셋 이상이면 나라에서 지원 많이 받을 거라 부러워하는데, 실상 받지 못하는 혜택이 많아 답답하고 화가 난다”는 말이다. 아이들 모임을 통해 알게 돼 친하게 지냈던 워킹맘이 있다. 그와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부부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그들 역시 각종 소득 제한에 걸려 큰 혜택들을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맞벌이하니 본의 아니게 가구소득이 높아져 아이가 셋인데도 받을 수 있는 건 전기, 수도, 공공주차장 같은 요금 할인뿐”이라며 “다자녀 혜택이라고 허울만 좋고 실속은 없다. 역시 우리 정부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고 덧붙였다. ● 출산율 1.3명 日도 조건 없이 지원하는데…지난달 발표된 일본의 저출산 대책이 발표됐다. 한국에서 화제가 된 것은 대학 등록금 관련 지원책이었다. 일본 정부는 소득에 상관 없이 자녀 세 명 이상 가구에 2025학년도부터 대학과 고등전문학교 등록금, 입학금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국공립대 연간 약 54만 엔(약 490만 원), 사립대 약 70만 엔(약 630만 원) 등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1.26명이었다. 반면 같은 해 출산율 0.78명을 기록한 우린 어떤가. “올해는 정말 통과될 줄 알았거든요. 대통령실, 정부, 여야 할 것 없이 저출산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하니까. 그런데 최종에 가선 또 예산 등을 이유로 깎이고 축소되더라고요.” 최근 통화한 모 부처 공무원의 말이다. 해당 부처는 저출산 관련한 어떤 정책의 소득 제한을 완화하고 대상자를 확대하기 위해 몇 년째 개선안을 제출해왔지만 번번이 가로막혔다. 올해만큼은 모두가 취지에 공감하고 저출산이 어느 때보다 큰 이슈라 개선안이 통과될 듯 보였으나, 결국에는 예산 등을 이유로 대상자 확대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저출산 정책은 말 그대로 출산을 지원해 출산율을 높이는 게 목적인 정책이다. 복지 정책과 다르다. 만약 소득 등 각종 제한조건을 둘 거라면 정책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금액 지원으로 인한 출산율 제고가 확연했는데 중산층 이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식의 분석 말이다. 그저 예산이 부족해 상대적 저소득층부터 지원한다고 하면 복지 정책과 다를 게 무엇인가.4일 발표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저출산이 심각한 가운데 지난해 충북에서 유일하게 출생신고가 늘었다. 자녀 수에 상관없이 출생아에 1000만 원을 지급하고, 난임시술비 소득 기준 폐지, 임산부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 이용료 감면 등이 견인차가 됐을 것이라 한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조건 없는’ 지원이다. 1억 원, 1000만 원 등 저출산을 타개할 파격적인 새 대책도 좋다. 하지만 아직 기존 정책의 혜택에서도 소외된 사람이 많다. 그들부터 살펴볼 일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영화 ‘서울의 봄’이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서울의 봄은 1979년 12·12 사태를 그린 영화다. 픽션을 표방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만 조금 다르게 바꿔놨을 뿐 사실상 역사에 충실한 논픽션 작품이다. 영화를 계기로 ‘전두광’의 실제 인물인 전두환과 제5공화국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전두환은 평생 논란을 몰고 다닌 대통령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그에 대해 일말의 사과나 반성도 없어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퇴임 후 재판을 통해 재임 기간 벌인 각종 비리가 드러나 수천억 원을 추징당했는데, ‘전 재산은 계좌에 든 29만 원뿐’이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기며 납부를 거부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런 그가 재임 기간 중 한 큰 실책이 하나 더 있었으니, 다름 아닌 인구 정책이다. 사실 한국의 저출산은 그의 5공화국 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전후로 둔화한 출산율 감소, 조급해진 정부 지난번 1960~1990년 사이 한국의 인구 억제 정책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소개했는데, 주변에 정보가 됐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영화를 계기로 2탄을 준비해 보았다. 이번에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절 인구 정책 이야기다. 지금은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을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6·25 전쟁 직후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 낳은 자녀 수, 합계출산율은 예닐곱 명에 달했고 인구 증가율이 3%에 가깝게 높았다. 1961년 억제 정책 일환으로 ‘가족계획 사업’이 시작됐고 성과는 눈부셨다. 20여 년간 합계출산율은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비슷한 시기 인도 등 몇몇 나라가 우리와 같은 인구 억제 정책을 시행했는데 우리만큼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곳은 없었다. 인구 증가율을 0%로 만드는 합계출산율, 즉 인구가 다음 세대에도 현 세대와 똑같게끔 만드는 출산율을 ‘대체 수준 출산율’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영아사망률이 낮은 선진국에서 이 대체 수준 출산율은 2.1명 정도다. 1980년을 전후해 한국의 출산율은 이 수치에 근접한다. 1981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57명이었다. 하지만 출산율이 떨어지니 자연히 감소 폭이 둔화하고 가족계획 사업 분위기도 다소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체 수준 출산율 달성을 눈앞에 두고 마음이 조급해진 공무원과 전문가들에겐 당연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계획 사업 방식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동안의 가족계획 사업이 높은 성과를 보일 수 있었던 건 인구 정책에 무지했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계몽 교육과 피임 지원, 지역별 전담 요원들이 가가호호 방문해 집중관리하는 ‘도어 투 도어’ 사업 방식 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면 이미 많은 국민들이 가족계획의 필요성을 깨달아 더 이상 ‘덮어놓고 낳아봐야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계몽할 사람도 없었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과거처럼 도어 투 도어 방식 관리도 어려워졌다.● 2050년 인구 6000만 전망…전두환 “인구문제, 5공 역점사업” 여기에 잘못된 전망까지 기름을 부었다. 1981년 정부가 낸 ‘장기 인구 전망’은 당시 속도대로 출산율이 떨어질 때 2000년에야 겨우 출산율이 2.1명에 이르고 이후 출산율이 계속 정체해 2050년 인구가 6000만 명을 넘는다고 예측했다. 기존 인구 정책에 따른 예기치 않은 부작용까지 감지됐는데, 바로 남녀 성비 불균형이었다. 정부의 지원 혹은 묵인하에 피임과 임신중절이 늘면서 자녀 수는 2~3명으로 줄었지만, 그 안에서 남아선호사상에 따른 성비 불균형이 극심해졌다. 태어나는 여아 100명에 대한 남아 수를 일컫는 출생성비는 자연 상태에서 105명 전후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1975년 출생성비는 112.4명, 1978년 111.3명으로 남아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이런 기울어진 성비는 장기적으로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결국 당시 정부는 억제 정책을 더욱 보완·강화하고 그 방식을 개선하는 대대적인 전환에 들어간다. 사실 집권 초만 해도 인구 정책에 큰 관심이 없었던 전 대통령은 뒤늦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문제가 심각하다”며 그 자리에서 책상을 탁 치더니 “인구 문제를 제5공화국의 역점사업으로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지방에 초도순시를 다닐 때도 인구 억제를 강조하며 본인이 군대에 있을 때 정관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1960, 1970년대 가족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군부대 의무시설에서 희망자에 한해 정관수술을 지원했다), 상대방에게 ‘당신도 했느냐’고 묻곤 했다는데, 이 때문에 눈치를 보던 청와대 비서관이 마지못해 정관수술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 “셋 이상 낳으면 보조금, 수당 안줘” 인구억제 강화 대통령이(그것도 전두환 대통령이) 이처럼 관심을 갖는데 정책이 신속히 준비되지 않을 리 없었다. 제5차 경제사회발전5개년계획(1982~1986) 발표와 함께 대거 보강된 ‘인구증가억제정책’이 공개됐다. 목표는 정책의 대국민 접근성을 높이고 인구 증가율을 1%대로 떨어뜨린다는 것. 총 49개 시책으로 이뤄졌는데, 피임 시술 지원 확대, 산아제한 가구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다자녀 가구에 대한 불이익 확대, 남녀차별 개선 등 전방위적이고 과거보다 한층 고도화된 정책들이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나열해 본다.―의료보험 급여 대상에 피임 시술 포함, 시술 지원비 인상―의료보험 분만급여 지급 대상을 둘째까지로 제한 ―셋째부터 자녀 교육비 보조금 비과세(면세) 혜택 박탈―셋 이상 다자녀 공무원 가구에 자녀 학비 보조수당, 가족수당 미지급―영세민 생계비, 자녀 수따라 차등 지급(한 자녀 30만 원, 세 자녀 3만 원)―생업자금, 복지주택자금 융자 시 두 자녀 불임수용 가구 우선―두 자녀 불임수용 가구에 공공주택 입주 우선권, 0~5세 자녀 1차 무료 진료―호주제, 상속제에 여성 차별 조항 개선―여성 취업 금지 직종 30→6종―육아휴직제 제도화―학교 인구 교육 보완, 강화 정책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도시에 살든 농촌에 살든, 재산이 많든 적든 아이를 많이 낳으면 불이익을 주고 적게 낳으면 혜택을 주겠다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해 필요한 사회적 시스템을 모두 정비하겠다는 것이었다. 캠페인도 더 강화된다. 1960년대까지는 ‘3·3·35 운동(’3‘명의 자녀를 ’3‘년 터울로 낳아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캠페인)’에서 보듯 권장 자녀 수가 3명까지였고,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둘 낳기 운동이 등장한다. 1980년대 들어서면 이마저도 한 자녀를 권하는 표어들로 바뀐다.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승자의 저주’…역사의 교훈 이런 정책의 결과 우리나라의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바다. 전 대통령 재임기간은 우리나라 인구정책사를 통틀어 피임 보급 실적이 가장 높았던 시기다. 피임수용 여성의 연령과 현존 자녀 수도 크게 감소했다. 불임시술도 직전 같은 기간 대비 거의 2배가량 늘었다. 2000년이나 돼야 달성한다던 대체 수준 출산율 2.1명은 그 전망이 나온 지 단 2년 만인 1983년 달성되었다. 인구 감소 속도는 다시 빨라져 1984년 합계출산율 2명 선이 붕괴했고, 2018년에는 1명 선마저 무너진다. 1980년대 인구는 멈추는 자동차가 아니라 막 비탈길에 들어선 자동차였던 셈이다. 5공 정부는 어차피 굴러갈 자동차에서 가속기를 밟고 말았다. 80년대 중반, 전망이 현격히 어긋난 걸 알았을 때 슬슬 브레이크를 밟았어야 했다. 사실 이미 우리보다 앞선 길을 갔던 선진국은 저출산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었고, 국내서도 향후 고령인구 증가, 노동력 부족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인구 정책 목표 달성에 취한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승자의 저주’였다.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더라면 지금의 저출산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역사에 가정법이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당시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세계 최저 출산율이란 불명예 타이틀은 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억제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과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 사이에서 10년이 더 허비되었고, 최종적으로 정부가 인구 억제 정책을 폐기한 것은 1995년에 이르러서였다. 역사를 되돌릴 순 없어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순 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판단, 필요할 때 과감한 정책 전환.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은 쿠데타가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고 말한다. 12·12는 잠시 혁명이었는지 몰라도 결국엔 반란으로 기록됐다. 당시 성공이라 자축했던 5공의 인구 정책도 이제 보니 재앙의 씨앗이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용띠 해가 다가온다. 한때 한국은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렸다. 식민지라는 암울한 과거를 딛고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은 많은 개발도상국의 전범이 됐고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었다. 한데 이제 한국은 전혀 다른 소재로 새로이 연구 대상이 될 판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섯은 ‘한국은 소멸하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은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인구 감소의 놀라운 사례연구 대상’이라고 썼다. 그는 한국의 인구가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유럽의 인구 감소보다 더 많은 감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 자녀 6, 7명 불과 한 세대 전…가족계획 시작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꼴찌’다. 그것도 그냥 꼴찌가 아니라 ‘압도적 꼴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합계출산율(fertility rate) 가장 최신 자료(2021년)에서 한국의 출산율은 0.81명으로 전체 54개 조사국 중 가장 적었고, 2위인 말타(1.13명), 3위 중국(1.16명)과도 큰 차이가 났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의 평균을 의미한다. 지난 60여 년간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에서 사람들은 왜 아이를 안 낳게 됐을까.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산아제한정책이 있었다. 합계출산율이 예닐곱 명이었던 시절도 멀지 않다. 현재 가임기인 30, 40대의 불과 부모님 세대 일이다. 1950~60년대 합계출산율은 6~7명이었다. 나의 양가 부모님도 형제가 5~6명이고, 시할머니의 경우 무려 9명의 자식을 낳으셨다. 한국의 ‘베이비붐’ 시기인 1955년부터 1963년 태어난 출생아는 줄잡아 710만 명에 이른다. 한 해 거의 100만 명 가까운 아이들이 태어난 셈이다. 본래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영아사망률과 모성사망률이 높아 ‘자식 농사는 반타작’이었고, 그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았다.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노동력이기도 한 만큼 대체로 자녀 5~10명을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현대 들어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졌고, 무엇보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한국의 상황은 많은 인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전쟁으로 모든 게 파괴됐고 안 그래도 좁은 땅덩어리에 자원도 없는데, 인구 대다수는 가난했다. 나라 살림이 거덜 난 상황에서 인구, 그것도 가난한 인구의 증가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인구 억제 필요성이 대두됐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가족계획 사업’이라는 타이틀 아래 전 국민 ‘계몽 사업’을 시작한다. ● 캠페인, 피임시술, 인센티브까지…전방위 산아제한정책 국민 대부분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만 해봤지, 피임이란 것은 해본 적이 없었다. 교육과 홍보가 시작됐다. 당시 나온 직관적이고도 입에 착 붙는 공익광고 문구들은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3-3-35 운동’이라는 것도 있었다. ‘세 자녀(3)를 세 살 터울(3)로 낳아 서른다섯에 단산하자(35)’는 의미의 전국적 캠페인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당시엔 국가가 직접 나서 피임 시술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 보건소와 가족계획 시범진료소를 설치해 무료 피임 시술을 시행했다. 임신중절은 합법이었고, 월경 조정술도 보급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전두환 정권은 출산 억제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등 이제는 셋, 둘도 아니라 하나만 낳으라는 표어들이 등장했다. ‘인센티브 방식’도 널리 활용된다. 불임시술을 받으면 공공주택 우선 입주권을 받을 수 있었고, 예비군 훈련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셋째를 출산하면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다. 공무원 사회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면 인사고과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기존에 가족계획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불리던 정책이 산아제한정책이라는 보다 명징한, 목표지향적 이름으로 바뀐 것도 이때였다. ● 출산율 2명 아래 떨어졌는데…정부의 오판하지만 정부가 인구 제한에 이렇게 한 번 더 속도를 냈던 1980년대 초 이미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시작되고 있었다. 1980년 전후 합계출산율은 2명대로 떨어졌다. 단 20년 만에 한 여성이 낳는 아이 수가 3분의 1 이상 급락한 것이다. 출산율 2명대는 여자와 남자 2명이 만나 평균 두 아이 낳는다는 뜻이니, 인구가 현상 유지 상태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출산율이 이보다 더 떨어진다면 그것은 인구 감소였다. 그런데 정부는 인구 정책을 선회하지 않았고, 산아제한을 계속했다. 결국 합계출산율은 떨어지던 속도 그대로 더 떨어져 1984년 2명선이 붕괴했다. 정부가 출산율 수치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왜 출산율이 2명대에 이른 시점에 인구 억제에 더 속도를 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산아제한 수요가 높았다는 점, 맬서스 이론(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내용)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언제든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다고 봤다. 실제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늘고 여러 보육 여건이 개선되면서, 각 가정이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출산율과 관계없이 출생아 수가 많았던 점도 정부가 상황을 안일하게 보고 오판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출산율이 짧은 기간 3분의 1 수준으로 가파르게 떨어졌는데도 1980, 1981년 한 해 출생아 수는 여전히 80만 명대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 세대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수백만 명씩 태어났던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이때 출생아들은 베이비붐의 메아리란 의미로 ‘에코 세대라 불렸다. 이들의 ’인해전술‘로 인해 출산율 급감 문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전히 많은 출생아로 인해 ’정책 효과가 충분치 않은가‘ 고민하는 관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저출산 타계…산아제한 때만큼 애쓰고 있나생각해보면 그때가 초저출산 위기를 초기 진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이후 출산율은 계속해서 떨어져서 정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출생아 수까지 붕괴하기 시작했고, 1990년 출생아 수는 60만 명대로 주저앉았다. 정부는 뒤늦게 피임 사업을 중단하고 산아제한정책도 철회하는 등 정책을 급선회했다. 하지만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흐름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미래는 저출산이 지금보다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 출생한 아이들은 20, 30년 뒤 부모가 된다. 즉 출생아 감소는 ‘미래의 부모’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엄마, 아빠의 수가 줄면 합계출산율이 증가한대도 정작 출생아 수는 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마치 부모 세대 수가 많아서 출산율이 떨어져도 출생아 수가 많았던 과거처럼 말이다. 실제 출산율이 1.18명이던 2002년 출생아 수는 49만6911명이었는데, 출산율이 1.3명으로 더 높아진 2012년 출생아 수는 48만4550명으로 더 줄었다. 그래도 역사를 통해 한 가지 희망적으로 배울 수 있는 점은 정부 정책의 힘이다. 물론 인구 감소는 국제적인 흐름이었지만 우리 정부의 각종 계몽 사업과 적극적인 지원, 인센티브 정책은 다른 나라보다 인구를 훨씬 빠르게 급감시켰다. 반대로 인구 증가에도 그만한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백약이 무효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자조가 아니라 자만이라 생각한다. 계층, 직업, 학력 등 상황별로 어떤 청년들이 아이를 더 낳고 덜 낳는지, 집과 일자리의 문제라는데 과연 그것이 주어진 전후 출산율에 차이가 있는지, 주요 저출산 정책 수혜자들의 출산에 변화가 있는지 등 기본적인 조사조차 안 되어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일·가정 양립의 기본인 유연한 근로 시간조차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사실상 민간으로 책임을 떠넘겼고, 학교 시간을 늘리자는 논의 등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사안들은 누구도 골치 아파 꺼내지 않는 분위기다. 과연 정부는 그동안 ‘백 가지 약’을 썼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올 초 독일에 출장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일 직장인들의 일하는 방식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곳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여느 일반 사무직 회사였는데, 사원들은 하루 8시간(점심시간 1시간 제외) 내에서 본인의 근무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해 일할 수 있었다. 팀원들 간에 회의하거나 업무를 교류해야 할 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교집합인 ‘코어 시간(약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을 어느 정도 걸쳐야 하는 것 말고 다른 제약은 없었다. 누군가는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3시에 퇴근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전 10시 출근해 오후 7시에 퇴근하는 게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주로 일찍 퇴근하다 보니 자연히 가정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직원은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더욱 놀랐다. 알고 보니 기자가 독일에서 보고 놀란 그 근로시간제도를 이미 많은 기업들이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IT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한두 곳 그런 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꽤 보편적이었다. 매일 고정된 시각에 출근하고, 퇴근 시각을 내가 정할 수 없는 직장만 다녀온 기자에게는 그저 신세계였다. ● 일하면서 아이 키울 수 있었다면…‘아이를 키울 돈이 아니라 시간을 달라.’ 요즘 많이 나오는 이야기다. 장시간 근로, 경직된 근로 형태가 일반화된 한국에서 아이 키우며 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산휴가 뒤 바로 육아휴직이 시작되는 ‘자동 육아휴직제’를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육아휴직을 쓰기 어렵다는 직장이 많다 보니 아예 육아휴직을 출산휴가처럼 의무화하도록 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엄마, 아빠 모두 육아휴직을 쓴 부부에 대해 현재 1년인 유급휴직 기간을 1년 6개월로 늘려주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시행 예정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육아휴직을 내기 쉬워진다니 바람직한 방향 같다. 하지만 과연 좋기만 할까?기자는 네 아이를 낳고 총 네 번의 육아휴직을 했다. 육아휴직 기간만 4년이다. 육아휴직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알기에, 기자는 큰 복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실제 덕분에 네 아이들을 잘 키웠고, 평생 못 잊을 많은 추억을 쌓았다.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가도 휴직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육아가 좋았대도 경력 단절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내가 휴직하는 새 누군가는 좋은 기사를 쓰고 세상을 바꾸는 걸 보면서 울적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일과 국내 IT 기업들의 근로 시스템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구나.’● ‘육아기 단축 근로’ 이용, 육아휴직의 15% 수준한국에도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업주는 만 8세 혹은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근로자(곧 12세 이하로 확대 예정)가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 이때 근로 시간은 주당 15시간 이상, 35시간 이하다. 단축 기간은 1년으로 제한되지만, 만약 육아휴직 중 안 쓰고 남은 기간이 있다면 단축 근로기간에 가산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고용노동부가 올 초 발표한 2022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이용자 수는 1만9466명이다. 같은 해 출생아 수가 24만9000명, 육아휴직자 수가 13만1087명임을 감안하면 육아휴직자의 15%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그나마 이용자의 90%(1만7465명)가 여성이었다. 육아휴직의 경우 그래도 남성 사용자가 30%에 가까운 점(3만7885명)을 감안하면 단축 근로 이용은 여성 편중이 심한 편이다. 왜 이런 수치가 나타날까.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물었다. 교육 관련 회사에 다니는 한 지인은 “휴직하면 회사 사람들을 안 보지만, 단축 근로를 이용하면 매일 회사 사람들을 만나 일하다 혼자만 일찍 퇴근해야 한다. 눈치 보여서 퇴근할 수 있겠느냐”며 “만약 꼭 써야 한다면 정말 불가피한 엄마들만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지인은 “우리나라 직장처럼 장시간 근로와 야근이 일상화된 곳에서 매일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제대로 된 단축 근로가 구현되지 않을 듯해 결국 휴직을 택할 것 같다”고 했다. 쉽게 말해 대부분 직장에서 실질적인 단축 근로가 쉽지 않을 거라, 꼭 필요한 여성들만 이용하거나 아니면 그냥 휴직해버리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었다.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 말고도 시차출퇴근제, 근무시간 선택제와 같이 유연근무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독일과 한국 IT 기업들에서 구현하고 있는 제도들이다. 하지만 유연근무제는 회사가 이런 근무제를 운용해야만 근로자들이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활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유연근로를 하고 있다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5.6%로 예닐곱 명 중 한 명꼴이었다. ● 육아휴직, 독박육아·경력단절 위험도‘육아휴직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인데, 그냥 쉬면서 아이 키우면 안 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누군가 휴직해서 육아를 전담하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가정 내 가사와 육아 분담 균형을 깨뜨린다는 점. 누구든 휴직하면 육아는 독박으로 그의 차지가 된다. 복직 후에도 육아 주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휴직 후 몇 년 못 가 경력 단절로 빠지는 여성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첫째가 학교 들어가고 처음으로 반 학부모 모임이라는 걸 한다기에 가본 적이 있는데 두 가지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째, 모임에 참석한 학부모 중 아빠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과, 둘째 참석한 엄마 중 절반이 전업주부이거나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30, 40대 여성 고용률이 갈수록 오른다는데, 경력 단절 여성이 여전히 이렇게나 많다니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자녀가 태어났을 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직장을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비취업 기혼여성 2명 중 1명이 경력 단절 여성이었고, 사유는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 등 자녀 관련이 70% 이상이었다.육아휴직을 권장하는 건 육아 친화적인 근무 환경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근로 현장에서 어린아이 키우는 사람들을 배제해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사람이 많아야 육아 친화적인 문화도 빨리 도입될 터다. 기업 입장에서도 휴직자가 느는 것보다는 기존 경력 직원이 계속 회사에 남아 일을 해주는 게 이득일 수 있다. ● 휴직해야만 육아 vs 일하면서도 육아…뭐가 더 낫나이미 우리나라 육아휴직 제도는 세계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거나 열악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한다. 올 초 취재차 유럽의 고용노동부 장관 격인 니콜라스 슈미트 EU 일자리·사회권 집행위원을 만났을 때 한국의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설명했더니 그는 “한국도 유럽만큼 (모성보호제도가) 잘 되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라떼파파’의 국가, 보육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육아휴직이 16개월이다. 한국도 출산휴가에 유급 육아휴직 기간을 합치면 15개월이다. 육아휴직급여의 경우 스웨덴은 급여의 80%, 한국은 통상임금의 80%다. 물론 한국에서는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이 낮고, 여전히 육아휴직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계속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그것과 별개로 육아휴직이 일·가정 양립의 가장 좋은 ‘만능 해법’인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만큼은 재고했으면 한다. 스웨덴이 보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건 모두가 육아휴직을 길게 쓰기 때문이 아니라 일하면서 육아하기 수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마냥 늘려서 오래 쉬도록 하는 게 과연 일·가정 양립을 위하는 길일까.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어린아이들로부터 배울 때가 있다. 최근 일 중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다회용 물통’에 관한 것이다. 기자의 아이들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개인 다회용 물통을 가지고 다녔다. 학교에서도 내내 썼으니 초등학교 고학년인 10대인 첫째는 10년 넘게 개인 물통을 쓰고 있는 셈이다. 요새 어린이집, 학교 같은 기관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개인 물통을 사용한다. 물통 들고 다니는 게 익숙해졌는지 아이들은 학교 갈 때뿐 아니라 학원, 나들이, 심지어 친구 집 갈 때도 개인 물통을 가지고 간다. 엄마 눈엔 아직 아기 같은 셋째가 제 팔뚝만 한 물통을 들고 나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귀찮겠다. 엄마가 돈 줄게, 그냥 음료수 사 먹어”라고 했더니, 아이는 되레 시큰둥하게 “이게 뭐가 귀찮아?” 했다.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이 에피소드가 다시 떠오른 건 일회용품 관련해 한 환경운동가를 취재하면서다. 인터뷰 며칠 전 강의 요청을 받아 한 초등학교에 갔다 왔다는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이 다회용기 쓰기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학교 가니까 그 조그만 애들이 다 다회용 물통 들고 다니더라고요. 애들도 다 들고 다니는데 왜 어른이 못해요?”● 다회용기 유도한다더니…종이컵·빨대 규제 철회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후 기자도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휴대하기 좋은 접이식 실리콘 텀블러다. 솔직히 처음 가방에 넣을 때는 ‘며칠이나 들고 다닐까’ 했다. 하지만 막상 가지고 다녀 보니 환경단체 인사의 말처럼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물론 사용 후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다회용기 이용을 유도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라 텀블러 할인을 해주는 곳이 많아서 10%가량 싸게 음료를 구입할 수 있었고, 더불어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 그 정도 노동은 별로 수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일회용품 사용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불편해지면, 기자처럼 다회용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제법 늘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많은 사람이 다회용기보다 일회용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회용품을 쓰는 게 지금보다 불편해지고 비용까지 든다면? 최근 몇 년간 정부가 추진해 온 일회용품 대책의 핵심 방향이었다. 일회용품 사용을 불편하고 수고스럽게 하는 것. 일회용품을 사용하면 음료값을 더 비싸게 물리고(일회용 컵 보증금제), 식당 안에 있을 거면 플라스틱은 물론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까지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편의점에서는 비닐봉지를 주지 않는 식이다.그런데 지난 7일 또 한 번 뒤통수를 때리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부가 이달 내 본격 시행하기로 했던 플라스틱 빨대, 종이컵 매장 내 사용 제한, 비닐봉지 판매 금지 조치를 무기한 연기 혹은 철회한다고 밝힌 것이다. 1년 계도기간을 거쳐 고작 시행을 보름여 앞둔 시점이었다. ● ‘컵 보증금 유예 시즌2?’ 꼭 닮은 두 제도전국 시행을 유예하더니 갑자기 세종, 제주에서만 축소 시행하게 된 ‘반의 반쪽짜리’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떠오른 건 비단 기자만이 아니었을 거다. 2020년 정부는 2008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다시 부활시킨다고 밝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란 일회용 컵 사용 시 일정 금액을 더 내고, 나중에 컵을 반환하면 그 돈을 돌려주는 제도다. 보증금을 부과함으로써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수거율도 높일 수 있다. 준비 기간을 거쳐 2022년 6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정부가 바뀌고 얼마 안 된 2022년 5월 돌연 시행을 12월로 미뤘다. 그리고 그해 9월, 이번엔 세종과 제주에서만 ‘우선 시행’한다고 말을 바꿨다. 차차 전국으로 확산할 것이라더니 그 시점은 ‘최소 1년 이후’라는 먼 미래로 못 박았다. 1년여 지난 지금? 여전히 세종, 제주 외에 이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없다.얼마 전 번복된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마치 ‘일회용 컵 보증금제 시즌2’를 보는 느낌이다. 식당 안에서 플라스틱 컵뿐 아니라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고, 마트·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유·무상 모두 제공할 수 없게 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2021년 공포됐다. 본래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하려 했지만, 소상공인들의 부담과 준비 기간을 이유로 1년 유예했다. 돌아오는 11월 24일이 시행일자였다. 그런데 7일 종이컵을 사용 제한 품목에서 제외하고,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는 계도기간을 연장해 시행을 유예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빨대와 비닐봉지의 경우 ‘유예’이지만 또 구체적인 시점을 박지 않은 무기한 유예였다. 사실상 정책 철회나 다름없었다. 컵 보증금 때나 지금이나 소상공인들의 부담이 이유다. 하지만 업계의 반대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왜 이렇게 닥쳐서 철회한 것일까. 별다른 이슈나 사건 없이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데 대해 내년 초로 다가온 ‘총선용 선심성’이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불과 1년 전 대책을 유예할 때까지만 해도 환경부는 ‘(계도기간이라도) 금지 사항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거나 ‘계도를 통해 제도를 안착시킬 계획’이라는 등 강한 시행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컵 보증금 축소 시행 때도 당시 낮은 대통령 지지율 때문이라는 해석이 돌았다. ● 소매업장 관리 중요한데…사실 식당과 같은 소매업종 일회용품 관리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음식점, 편의점 등 소매업종 일회용품 쓰레기는 전체 쓰레기에서 미미한 비중을 차지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커피 전문점 15개 브랜드와 패스트푸드점 5개 브랜드에서 사용한 일회용 컵은 10억3590만 개.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량은 2019년 기준 9억8900만 개로 추산된다. 언뜻 엄청난 양 같지만, 지난 4월 발표된 2021~2022년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생활폐기물 중 일회용품 쓰레기의 비중은 3.9%, 그중에서도 시장상가, 업무시설, 음식점 등 소규모 사업장에서 버리는 일회용품은 전체 일회용품의 62.4%였다. 음식업종과 마트·편의점 한두 업종에서 쓰는 일회용품으로 한정하면 그 비중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저감 효과 대비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소매업종 규제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실생활에 맞닿아있는 공간에 대한 규제인 만큼 그 규제의 체감도가 높고 시민들의 생활과 인식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는 점이다. 매장 내 플라스틱 컵 규제의 경우 근래 그 어떤 정책보다도 더 일회용 플라스틱 문제를 환기하는 데 기여했고, 전 국민에 일회용품 저감 필요성을 각인시켰다.실생활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은 미래의 저감으로도 이어진다. 앞서 물통 사례가 그 예다. 어려서부터 일회용품이 없는 삶에 익숙해지면 커서도 자연스레 일회용품을 덜 찾을 수밖에 없다. ● 매장서 일회용품 안 보이니 사용량 10~40%↓지난해 기자는 서울 시내 한 카페를 섭외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하루 동안 매장 안에서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홀더를 모조리 치워버렸다. 키오스크로 일회용 컵 주문도 할 수 없게 했다. 일회용 컵,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홀더를 쓰고 싶으면 반드시 매장 직원에게 요청해야 한다고 안내문을 붙였다. 쉽게 말해 일회용품을 쓰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자 단 하루 새 이들 일회용품 사용량이 10~40% 뚝 떨어졌다. 요청하면 준다고 안내했음에도 많은 손님이 그냥 다회용 컵으로,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홀더 없이 음료를 마셨다. 몇몇 시민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더라”, “딱히 필요 없는데 평소 습관적으로 집어 갔던 것 같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일회용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매장의 일회용품 사용 문화가 사람들의 사용 습관에 긴밀하게 영향을 미침을 볼 수 있는 실험이었다. ● 실생활 작은 변화가 큰 저감 이끌어낼 수도소매업종을 대상으로 한 일회용품 규제는 강제적이든 자율적이든 계속돼야 한다. 실효성 못지않게 캠페인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책에서, 정부는 마치 한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규제 합리화’라는 정부의 해명도 사실 미덥지 않다. 정부 설명대로 ‘감량 정책을 포기한 게 아니라 규제를 합리화’한 것이라면 종이컵 재활용률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플라스틱 빨대 규제는 언제까지 유예할지, 다회용기 활용 증진 방안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규제 대안을 함께 제시했어야 했다. 계도기간 1년, 시행규칙이 개정된 이후로 2년, 법안 준비 기간까지 합치면 수년의 시간이 있었다. 관련업종들과 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추후 논의’, ‘시스템 마련’, ‘노력을 배가’와 같은 두루뭉술한 단어들로 점철된 보도자료를 냈다는 것은 정부가 안일했거나, 제도가 추진 동력을 잃었거나, 그도 아니면 세간의 의혹처럼 제도를 막판에 급선회한 것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부 방침에 따라 계도기간에도 이를 철저히 지킨 업장만 피해를 보게 된 점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제 업계에는 ‘버티면 된다’, ‘규제 잘 지키는 사람만 손해’ 같은 인식이 확산할 것이다. 부디 정부가 구상하는 ‘자발적 참여 감량’, ‘재활용률 개선’이 실현되길 기원한다. 앞서 카페 실험에서 인터뷰한 한 손님은 “눈에 일회용품이 안 보이니 잘 안 쓰게 되더라”고 말했다. 일회용품을 줄이고 우리의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작은 변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저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쓰라니까, 개인 물통을 쓰는 게 당연해진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따라 텀블러를 들고 다니게 된 엄마처럼.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진)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대륙과 바다에서 찾은 우리 역사’ 출판을 기념한 저자 특강을 13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연다. 특강 주제는 ‘한국인은 누구이고,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윤 교수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드국립대 고고학부 교수, 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2023년 2월 예일대 동아시아연구원 초청으로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강의한 바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정부가 돌연 의과대학 정원을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 더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격화됐다. 당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였던 탓에 매일 관련 기사를 크고 자세히 다뤄야 했다. 안 그래도 코로나19 취재로 일이 많던 상황에서 의대 정원 기사까지 더해지니 몸이 부서질 판이었다. “의사가 중요한 직군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을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기자가 볼멘소리하자 선배 기자는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이 혀를 차며 답했다. “의대 정원 증원은 단순히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야. 의대 입학이 지상과제인 우리나라 모든 학생과 그 학부모들의 문제라고.”● 정원 증원 소식에 몰아친 ‘의대 광풍’정부가 3년 만에 다시 의대 정원 증원에 나섰다. 2020년에는 의료계의 격렬한 반대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막혀 포기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10월 26일 보건복지부는 ‘지역 및 필수 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의사 인력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증원 숫자를 의료계 등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확정하고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부터 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아직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공개된 정보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계획안을 볼 때 의대 정원은 적어도 수백 명에서 1000명 이상 증원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국 의대 정원이 3058명이고, 그 숫자가 20년 넘게 동결돼 있었던 걸 감안하면 유례없이 큰 폭의 증원이다. 역시나 3년 전 선배의 말처럼 의대 정원은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의 발표 전후로 입시와 수험생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등급 학생도 의대 간다…대치동이 들썩인다’, ‘초등 의대반 문의 쇄도’, ‘파격 확대에 수험생들도 들썩…N수생 크게 늘 것’ 등등. 제목만 봐도 무시무시한데 내용은 더했다. 초등 의대 준비반은 말 그대로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초등학생을 선발해 가르치는 반인데, 빠르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하고 중·고등학교 과목을 선행학습하는 곳이라 했다. ‘서울대 진학반’보다 진도가 빠르다니 선행학습의 ‘끝판왕’이라 할 만했다. 국내 이공계열 가운데 최고라 할 수 있는 서울대 자연대, 공과대 학생들도 의대 진학 목적 등으로 최근 5년간 수백 명씩 자퇴했다는 내용, 직장인들 커뮤니티에서 ‘서른 언더(아래)면 수학 교재를 펴야 한다’며 이미 취업했음에도 일을 관두고 의대 진학을 위해 다시 입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글이 공공연히 나돈다는 내용의 기사도 여럿 보였다. 말 그대로 ‘의대 광풍’이었다.● 의사 고소득, 지금 같지 않을 수도…의사가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된 건 근래 새로운 일이 아니다. 기자가 고등학생이었던 20여 년 전에도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에 가기 위해 줄을 섰다. 인기의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무(無)정년에 안정적인 고용 형태, 사회적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고소득 직종이라는 인식이다. 고소득 직업의 예를 들 때 의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실제 의사들의 평균 소득은 일반 직장인보다 높고, 일부 잘 나가는 미용시술 위주 병원 의사들의 경우 1년에 수십억 원을 쓸어 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의사 정원을 늘리고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지금과 같을까. 의사들을 대변하는 직군 단체 대한의사협회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대 정원 증원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여러 공익적인 이유를 들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수익 때문일 터다. 어느 직업군이든 동일 직업인이 갑자기 급증하는 걸 반길 집단은 없다. 특히 자격증이 필요한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더욱 그렇다. 시장이라는 파이가 함께 커지지 않는 이상 같은 크기 파이를 쪼개 나눠야 할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의사 정원이 지금보다 1000명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경쟁은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30% 이상 심해질 것이다. 그만큼 파이도 쪼개야 하고 말이다.특히 서울 등 의료진이 몰릴 수도권은 더 말할 것 없다. 현재도 우리나라 전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서울의 경우 3.47명으로 OECD 기준에 가깝다. 최근 한병도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21년 의료업 사업소득 신고 현황에 따르면 의료인 평균 사업소득은 서울이 3억 4700만 원, 경기 3억 300만 원, 울산 3억 8200만 원, 충남 3억 8100만 원으로 지방이 더 높았다고 한다. 전국 4만1192개 병·의원 사업장 중 수도권에만 2만 2545개가 몰려있는 탓이다. ● 고령인구 증가, IT기술 발전도 변수더구나 의료시장의 소비자가 될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낸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2022년 5200만 명에서 2070년 3800만 명으로 줄어든다. ‘슈링코노미’, 소비자 10명 중 3명이 향후 40여 년 새 사라지는 셈이다. 정부는 인구가 줄어도 고령인구가 빠르게 증가해 의료수요는 되레 늘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현재 17.5%에서 2070년 46.4%로 급증하긴 한다. 전체 인구가 줄어도 노인은 늘어나는 구조다. 정부 말처럼 고령층에 의한 의료수요는 늘 수 있다. 하지만 고령인구가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미용 등 소위 ‘돈이 되는’ 고비용 진료보다 필수적인 진료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고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병원들은 대부분 미용 관련 시술을 하는 곳들인데, 미래에는 지금만큼 ‘돈을 쓸어 담기’가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의료 관련 과학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것도 변수다. 전문가들은 의사 대신 집에 있는 헬스 기기가 매일 아침 주인의 혈압, 혈당 등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맞춤 식단과 치료법을 소개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아직은 여러 규제에 막혀 논의가 지지부진하지만, IT기술 진화로 원격진료나 처방, 약 배달 등 의료시스템에 대한 변화 요구도 점차 본격화할 것이다. 이런 기술들이 하나둘 일상화되면 의사나 병원 수요는 생각만큼 커지지 않을 수 있다. ● 의사가 좋다니까…‘아묻따’ 의대 열풍 여기에 더해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건보 재정까지, 미래 의료시장에 대한 불안 요소는 넘쳐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부나방처럼 달려들고 있는 이들이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찰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원 증원을 추진한 주요 이유가 지방, 필수 의료, 의과학 인력 부족인 만큼 늘어난 의사 정원 중 대부분은 이들 분야로 분배될 텐데 이 역시도 감안했을까. 등용문이 넓어진다니 이참에 의사가 되어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방으로, 손이 모자란 응급의료로, 의과학 분야로 가서 일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라면 박수 치며 응원하겠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중·고등학교 교과 선행학습을 시킨다는 초등 의대 입시반에 들어가는 아이와 그 부모들이 그런 미래를 생각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요는 ‘의대 광풍’에 동참하는 게 기대만큼 큰 실익 없이 과도한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따라서 이를 충분히 생각한 뒤 뛰어들어야지 남들이 좋다니까, 현재 의사들이 좋아 보여서 그저 ‘아묻따(아무 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로 도전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이야기를 나눈 한 40대 의사는 기자에게 “요즘 우리끼리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면 세 가지 걱정으로로 귀결돼요. 첫째, ‘우리야 상관없지만 지금 뛰어드는 후배들은 나중에 어려울 텐데 어쩌나’, 둘째, ‘건보 재정은 어떡하지’, 셋째, ‘나라 미래는 괜찮은 건가’예요”라고 전하기도 했다. ● 과도한 학습에 일찍부터 내몰리는 아이들이런 상황인데 어린아이들이 멋모르고 지나친 경쟁에 너무 일찍부터 내몰리는 걸 보면 안타깝다. 한국청소년연구원이 초·중·고 학생 29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어린이의 하루 중 학습 시간은 9시간 38분에 달했다. 고등학생에서 중학생, 초등학생까지 평균한 값이 이 정도다. 여가 시간은 6시간 14분으로 학습 시간보다 3시간 적었는데, 그나마도 1시간 26분은 게임, 2시간 7분은 친구와 떠드는 시간이었다. 아마 의대반 같은 곳을 다니는 아이들은 그런 시간조차 쉬이 내기 어려울 터다. 요즘 하교 후 놀이터를 보면 어느 동네 할 것 없이 썰렁하다. 어릴 때만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경험, 그리고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가치들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 자유롭게 만들고 그림 그리는 시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노는 시간 없이 하루 몇 시간씩 영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그리고 막상 그렇게 힘겹게 올라간 고지가 생각과는 다른 곳이었을 때 느낄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개인 입장에서도 안타깝고, 사회적으로는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어른들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현명하게 숙고해주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말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좋아서, 의학 연구가 좋아서 의대에 가려는 아이들도 많이 발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조지 레이코프는 미국의 유명한 인지언어학자다. 국내에서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의 표지에는 검은 실루엣이 그려져 있는데, 제목을 본 뒤 이 그림을 보면 누구나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래도!” 해봐야 소용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이미 코끼리를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이게 언어의 ‘프레임’이라고 설명한다. 말이 인식의 틀(프레임)을 정해버린다는 것이다.● “저출산이라는 말, 사회에 만연”이런 언어의 프레임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레이코프는 ‘지구 온난화’라는 말이 그 부정적인 뉘앙스를 싫어하는 기업들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기후 변화’라는 중립적인 말로 대체됐다고 주장했다. 올 초 우리 정부가 노동 개혁의 일환으로 야심 차게 들고나왔던 근로 시간 개편안 역시 발표 직후 ‘69시간제’라는 별칭이 붙으면서 개편안 취지와 여러 순기능은 제대로 꺼내보지도 못한 채 69시간이냐 아니냐는 공방만 하다 원점 재검토에 들어갔다. 내년 22대 총선을 6개월 앞둔 가운데 정치권은 각자 프레임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에 골몰하고 있다. 얼마 전 국내 인구 정책에 정통한 한 전문가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여러 유익한 이야기가 오고 간 가운데 인구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던 그가 갑자기 저출산이란 단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는 ‘저출산’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요.” 저출산이라는 말이 너무 만연해서 오히려 인구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갈수록 저출산이라는 용어에 오히려 갇힌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전문가는 2006년부터 5년에 한 번 발표되고 있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라 명명된 인구계획을 설계한 학자 중 한 명이다.● 저출산의 홍수…무감해진 사람들저출산이라는 시사 용어는 어느덧 한국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들을 수 있는 일상 용어가 됐다. 언제부터 통용되기 시작했을까.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에서 저출산을 검색하면 1992년 처음으로 ‘저출산력시대’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저출산은 ‘1년에 한두 번 검색될까 말까’한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다 2000년대 이후 그 사용량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요즘 온라인에서 저출산을 검색하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새 게시물이 검색된다. 말 그대로 저출산 콘텐츠의 홍수다.저출산 상황이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심각해졌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1980년대 초반 80만 명대에서 지난해 24만9000명으로 40년 새 반의 반토막이 났다. 한 여성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를 계산한 합계출산율은 2018년 처음 1명 미만을 기록한 이래 계속 떨어져 지난해는 0.78명을 기록했다. OECD 선진국들은 물론 합계출산율을 발표하는 나라들을 통틀어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출산 뉴스가 넘치다 보니 오히려 과거보다 저출산 소식에 무덤덤해진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방영된 한 저출산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교수가 한국 합계출산율 수치를 듣고 머리를 감싸 쥐며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놀라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참고). 하지만 정작 한국 사람들은 발표 당시 그 정도로 충격받지 않았다. 전년부터 출산율 감소가 예고되기도 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출산율이 곤두박질치는 데 익숙해진 탓이 컸다. 얼마 전에도 지난달 출생신고 건수가 1만7926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별달리 회자되지 않았다. 지인에게 이야기하니 역시나 심드렁한 반응이 돌아왔다. “계속 줄어온 거 아니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뭘.”● ‘저출산 경고’ 반복, 되레 체념 강화코끼리를 상상하지 말라고 하면 되레 코끼리에 대한 온갖 의심이 머릿속을 채운다. ‘코끼리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왜 콕 집어 코끼리지? 혹시 사실은 진짜 코끼리인 거 아니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저출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외치면 오히려 현재 처한 저출산 상황이 더 강하게 인식될 수 있다. 최근 며칠간 갓 입사한 젊은 기자 후배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 30대 초반인 이들 1990년대생 후배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다들 저출산이라는데 ‘나는 꼭 결혼할 것’이라 말하는 친구가 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심각하다, 심각하다, 계속 듣다 보니 과연 해결 방법이 있나 의문이다. 솔직히 ‘내가 뭘 해본들 바뀌겠느냐’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하는 후배들에게서 이제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삶이 주류’이고, ‘그것을 쉬이 바꾸기 어렵다’는 단단한 체념이 읽혔다. 어렸을 때부터 저출산이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탓이었다.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해 경각심을 고취한 말들이 되레 저출산을 보편적인 상황, 바꾸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어버린 아이러니였다. 그런데 갈수록 미디어에는 ‘저출산 콘텐츠’들이 늘어간다. 결혼, 육아로 경력 단절되는 여성, 여전히 육아휴직이 어렵다는 아빠, 결혼은 지옥이라는 부부, 줄어드는 산후조리원과 어린이집, 늘어나는 사교육비로 한국 양육비 세계 1위라는 뉴스, 또 최저치라는 출생아 수 발표 등. 이런 저출산 디스토피아를 매일 접하는데 과연 누가 시대를 역행하는 용자가 될 수 있을까.● ‘저출산’을 축출하라한국에 앞서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졌던 나라가 있다. 바로 이웃 나라 대만이다. 대만의 출산율은 2010년대 0.9명대로 떨어졌다. 이때 대만 정부가 취한 태도는 온 사회에 저출산 ‘적색경보’를 울리는 게 아니라 대책은 마련하되 ‘출산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끄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대만의 출산율은 소폭이나마 반등해 다시 1명대로 돌아갔다. 반면 한국은? 1981년 86만 명대였던 출생아 수가 절반인 43만 명대로 떨어지는 데 32년이 걸렸는데(2013년 43만6455명), 이후 전 사회적인 저출산 경보가 시작됐음에도 최근 9년간 출생아 수는 24만 명대로 다시 절반 가까이 폭락했다. 저출산 속도가 오히려 더 가속화된 셈이다. 지금과 같이 온 국민을 대상으로 ‘위험하다, 일단 뛰어야 해’하고 겁을 주는 것이 과연 현명한 방법일까 돌이켜 볼 시점이다. 저출산 용어에 문제를 제기한 인구 정책 전문가는 그날 기자에게 “초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은 전 국민에게 ‘겁을 주는’ 정책이었다”며 “이제 그런 정책의 유효기간은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저출산 겁주기도 하지 말고, 저출산 정책이라는 말도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낫다. 출산·육아 지원은 저출산 정책이라는 말 없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대만의 출산율 반등이 언어 프레임 때문만은 아니었을 테다. 저출산은 복잡다단한 문제가 얽힌 결과다. 하지만 분명 그의 말에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 스스로 저출산이란 말을 반복 재생산해가며 현실 인식을 고착화시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참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인구위원회’나 다른 미래지향적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면 어떨까 싶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다. 반면 우리가 ‘저출산’, ‘고령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누구든 자꾸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장면 1. 영숙 씨는 외동딸이다. 어렸을 때는 큰아버지 댁에 가서 차례도 치르고 차례도 지냈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딸이란 이유로 ‘차례 필참인원’에서 제외됐다. 이제 명절에 하는 일이라곤 부모님 댁에 가서 식사하고 하루 자고 오는 것뿐이다. 영숙 씨는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명절엔 뭘 하지? 내가 차례라도 지내야 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장면 2. 영수 씨는 추석 연휴 전 주말에 부모님을 찾아뵀다. 연휴 기간에는 아내, 자녀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성묘는 부모님만 따로 다녀오실 예정이다. 사실 분가한 뒤로 성묘에 따라간 건 결혼 첫해가 전부다. 장면 3. 영철, 영미 씨는 결혼 10년 차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다. 명절 때마다 ‘언제 손주 안겨줄 거냐’고 물으시던 양가 부모님들도 언제부턴가 포기하신 것 같다. 올 추석에는 각자 부모님을 모시고 따로 성묘 겸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위 사례들은 최근 추석을 앞두고 기자가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이들이 영 황당하거나 신기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요즘 주변에서 적잖이 벌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6년 새 혼인 반 토막… 모일 사람 사라진 명절음력 8월 15일 팔월대보름 날인 추석은 한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세시명절이다. 한가위, 가배라고도 불린다. 중국이 중추절이라는 비슷한 명절을 쇠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래했을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작물 수확을 기념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해도 추석은 엄연히 우리 고유 유래를 갖는 명절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제3대 왕인 유리이사금(재위 24~57년)이 ‘6부(部)를 정한 뒤 패를 갈라 길쌈 승부를 한 데서 가배가 시작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오히려 중국의 중추절이 신라의 가배에서 유래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렇듯 유서 깊은 우리 고유의 명절, 대표 명절 추석이 근래 큰 변화를 맞고 있다. 핵가족화에 이어 저출산으로 1인 가구가 급속히 늘면서 ‘가족이 모여 여러 행사를 즐기는’ 명절의 의미 자체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올 3월 발표한 ‘2022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 2000건으로 1970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 1996년만 해도 혼인 건수가 43만 5000건에 이르렀는데 채 26년 만에 56% 급감했다. 결혼을 안 하니 출생아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같은 기간 출생아 수는 70만 명에서 20만 명대로 뚝 떨어졌다.만혼, 혹은 비혼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전체 15.5%에서 지난해 34.5%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4인 가구의 비율은 31.1%에서 13.8%로 줄었다. 1인 가구와 4인 가구가 20여 년 새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모여야 할 가족구성원이 줄고 가족 사이에 기쁨이자 끈이 되었던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명절의 입지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위축됐다. 여기에 성차별, 뭇 어르신들의 무례한 질문 등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 세대분별적인 기존 명절 문화가 명절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다.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변화에 기름을 부었다. 감염 위험을 이유로 정부가 ‘비대면 명절’을 장려하자 안 그래도 명절 관례가 불편했던 다수 시민들이 적극 부응하며 전통 명절의 모습은 더욱 희미해졌다. 리서치 전문기업 KPRG한국정책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20대 이상 성인 1117명에게 ‘코로나19 전후 (설) 명절 맞이하는 인식과 방식의 변화’에 대해 설문했더니 79.4%가 명절에 대한 인식과 방식이 코로나19 전과 달라졌다고 답했다. ●외동딸, 딩크… 차례상 차릴 사람 과연 있을까이런 명절의 변화는 갈수록 가속화될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수준의 합계출산율 0.84명만 유지해도 2020년 전체 인구 15.7%였던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30년 25.5%, 2050년 41.5%, 2070년 50.2%로 폭증한다. 그만큼 청·장년, 유소년 인구는 줄어든다. 과거 집안 어르신을 중심으로 가지처럼 뻗어있는 가족이 모이는 게 명절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가지처럼 많은 어르신들 아래 모여야 할 자손은 한둘뿐인 ‘부담스러운’ 명절이 되는 셈이다.실제 갈수록 출생아 중 첫째의 비율이 늘고 있다. 한 해 전체 출생아 중 첫째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둘째, 셋째를 낳는 집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첫째가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 첫째 비율이 62.7%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앞으로 앞서 제시한 영숙 씨 사례처럼 자녀가 외동딸뿐인 집도 늘어날 터다. 자연성비는 5:5인만큼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면 그 절반은 딸일 테니 말이다. 기존 명절 풍습에서 딸과 아들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었고 상대적으로 아들의 역할이 컸던 만큼, 영숙 씨네 같은 가족들은 각자 명절 문화를 새롭게 구축해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영숙 씨가 고민한 것처럼 차례를 딸이 지내야 할 수 있다. 차례가 아닌 새로운 추모 방식을 찾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영미, 영철 씨네처럼 손이 끊기는 가족도 늘어날 터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미혼 남성은 12.9%, 여성은 4%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사회복지연구회 설문조사, 2021). 이는 핏줄, 혈통, 조상과 같이 명절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을 흔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전과 밀과, 유병 등을 제외하고 훨씬 간소하게 만든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과연 다음 세대 이런 차례상이라도 차릴 집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지금도 벌써 많은 가구가 명절 연휴 영수 씨네처럼 성묘 대신 여행을 가거나 개인 일을 본다. 올해 추석에 기자의 부모님도 친가 식구들과 모이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실 예정이라고 한다. 할머니께서 병환으로 요양원에 계시고, 형제들은 각자 따로 성묘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명절 당일 모이지 않는 것은 부모님 결혼하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 한해 마무리하던 추석, 옛 의미 되살리면 돼갈수록 옛 모습을 잃고 옛 의미마저도 잃어가는 명절이 과연 계속 명절일 수 있을까. 그나마 설날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라도 있는데, 추석은 가족 간의 만남이라는 의미는 물론 풍성한 수확을 축하한다는 의미도 진작에 퇴색된 지 오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석 수확을 기뻐해야 할 농가인구는 지난해 기준 216만 명, 전체 인구의 5%에도 못 미친다. 다른 취재 섭외를 위해 이곳저곳 연락을 돌리다가 세시풍속에 대해 오래 연구한 한 민속학 전문가와 통화를 하게 됐다. 통화가 닿은 김에 그에게 미래에 추석이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물었다. 그는 “추석의 본뜻만 살린다면 충분히 미래에도 의미 있는 명절로서 역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농경사회에서 수확은 한 해의 마무리를 의미했다. 즉 추석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이었다”며 “현대의 추석도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돌아본다는 취지를 살린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명절로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면 문화도 관습도 시대에 맞게 변한다. 명절도 마찬가지일 터다. 고려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제사, 차례 문화가 없었고 현재의 복잡한 제사상 규칙도 오래된 것이 아니라 대체로 1969년 군사독재 시절 발표된 가정의례준칙 이후 정례화된 것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족이 만나고, 한해를 돌아보며 서로 격려하고, 무엇이 됐든 풍성한 음식을 나눠 먹는 기본 뼈대만 변하지 않는다면 형식이나 모습이야 어떤 형태로 변한대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외동딸의 추석이 됐든, 딩크의 추석이 됐든, 가족의 ‘가을 바캉스’ 추석이 됐든 말이다. 20년, 50년 뒤 추석이 감히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만큼은 퇴색하지 않고 그대로이기를 기원해 본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얼마 전 학교 앞에서 아이가 상급생들로부터 불편한 상황을 겪는 일이 있었다. 관련해 학교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어 교무실로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했다.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새 악성 민원으로 떠들썩한데, 전화했다가 괜히 나도 극성 엄마로 찍히는 거 아닐까?’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교권 추락 이슈가 두 달째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 괴롭힘당한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더불어 ‘왕의 DNA를 가진 아이’, ‘내 아들 손이 친구 뺨에 맞았다’ 등, 기상천외(!)한 학부모 사례가 일파만파 퍼지며 일명 ‘진상맘’으로 대표되는 극성스러운 부모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이런 부모들이 학교뿐 아니라 학원, 기업, 심지어는 군대까지 민원을 넣는다는 보도가 줄이었다. 급기야 분노한 시민들이 교사 사망사건에 연루된 부모들에게 사적 응징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평상시 같았으면 당연히 건의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학교에 전화하는 게 눈치 보일 수밖에 없었다. ● 교권 추락 원흉이 된 부모들작고한 교사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이번 사태로 뒤늦게나마 극성 부모들의 존재와 심각한 행태가 드러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응답자 2390명 중 2370명(99.2%)이 ‘교권 침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그 중 ‘학부모 악성 민원’(49%)이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했다. 일련의 사태와 이런 조사들에 힘입어,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해제’ 처분 등을 받지 않도록 하는 아동학대처벌특레법 개정안을 포함한 이른바 ‘교권 회복 4법’이 국회에 상정됐다. 오는 21일 국회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하지만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교사의 99%, 49%가 교권을 침해당하거나 악성 민원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해서, 학부모의 99%, 49%가 그런 행위를 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설문은 교사의 업무 기간을 통틀어 교권 침해 경험을 조사한 것이다. 한 학부모가 여러 학년에 걸쳐 십수 명의 교사에게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있다.한데 최근 분위기를 보면 학부모 전체가 ‘진상맘, 극성맘’ 혹은 ‘잠재적 진상맘, 극성맘’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학부모는 무너진 교권의 가장 큰 원흉이 되었다.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뜨면 누구나 ‘학부모 민원이 있었겠거니’ 하고, 경찰 수사가 진행된 것도 아닌데 사망의 주요인처럼 확정돼버렸다. 기사 댓글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 부모들에 대한 비난이 넘쳐난다. ‘요즘 부모’는 무슨 일이 터지면 남은 안중에도 없이 제 새끼 감싸기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모든 부모가 ‘극성 부모’는 아니다기자도 네 명의 아이 중 세 명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다. 어느덧 부모 12년 차라 직간접적으로 접한 학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요즘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 수업에 방해되니 교사의 결혼식을 미루라고 주문’했다거나 ‘내 직업이 뭔지 아느냐고 호통’을 치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폭행’하는 정도의 ‘진상 부모’는 아직까지 직접 보거나 사례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생각 외로 교사를 어려워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느껴왔다. 일례로 1~2년 전만 해도 반마다 부모들의 ‘단체톡방’이 있었는데, 선생님 알림장 공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톡방에서 학부모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교무실에 전화해서 선생님께 직접 문의하면 될 것을 왜 서로 토론하는 걸까’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학교 선생님께 고작 이런 일로 전화를 걸어도 되나’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은 것 같은데 교사에게 대놓고 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학부모들도 많이 봤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졌고, 몇 년 새 알림장 앱이나 별도 메신저 등 소통 창구가 늘면서 불만이나 궁금한 점을 교사에게 직접 전달하는 부모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누구나 뉴스에 나오는 극성 부모들처럼 문지방 넘듯 쉽게 과도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건 아니다. ● 비방·혐오, 문제 해결에 도움 안돼그럼에도 극성맘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일반적인 양 치부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더구나 최근 부모들을 향한 일부의 비판은 건강한 비판을 넘어 과거 ‘맘충’이나 ‘노키즈존’ 논란 때 같은 혐오를 방불케 한다. 교권 관련 기사 댓글만 봐도 부모란 존재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원색적 비난과 욕설이 적지 않다. 도를 넘은 사적 보복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런 분위기는 되레 학교와 학부모 간 건강한 소통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아까 기자가 학교에 전화하기를 머뭇거린 것과 마찬가지다. 교사의 훈육에 대한 오해, 다툼은 학부모와 교사 간 ‘불통’에서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논란이 됐던 한 유명인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발달장애아 자녀를 둔 이 유명인은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몰래 수업을 녹음하고 이를 빌미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해당 교사는 직위해제 됐다. 논란이 커진 뒤 낸 입장문에서 그 유명인은 ‘(교사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재판에 들어가고 나서야 상대 교사의 입장을 언론보도를 통해 보았다’, ‘막연히 이렇게 고소를 하게 되면 중재가 이루어지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었다’고 밝혔다. 교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에 앞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녹취하고 곧장 법정에 가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건전한 질문이나 민원조차 제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과도한 ‘부모 탓’은 이런 오해의 골만 깊게 할 수 있다. ● 교권 추락 기저엔 공교육 붕괴사실 교권 붕괴의 기저에는 공교육 붕괴가 있다. 학교가 설 자리를 잃고 만만해지면서 교사들의 권위도 덩달아 떨어진 측면이 크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졸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학원에서 저녁 늦게까지 ‘열공’하는 게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된 지 오래다. 학원 수업은 하루 빠지는 것도 아쉬워 보강을 챙겨 듣는다는데, 되레 학교를 개근하면 ‘체험학습(결석하고 체험, 여행 등 자유 활동을 하는 것) 한 번 못 한 개근거지’라는 말을 듣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이렇게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에서 교사의 교권인들 제대로 섰을 리 없다.(만만해진 학교, 만만해진 교사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이를 등한시하고 부모 탓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일부 극단적인 부모들의 잘못된 행태는 시정하고 처벌도 해야 한다. 하지만 교권 추락 현상은 복합적으로 발생한 문제다. 부모들의 아동학대 신고를 어렵게 하고, 교사 처벌의 허들을 높이면 당장 곤란한 상황에 처할 교사들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궁극적인 교권 회복을 이뤄내긴 어렵다. 최근 정신과병원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교사 환자와 상담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데, 집회 나가면 다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한참을 울다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며 “어렵게 만들어진 변화의 기회인데 집회 내내 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나 싶어서 조금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주말부터 교사들의 집회가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질서 있는 단체행동으로 사회에 결기를 보여주었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공교육 현장의 변화,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화두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교권 추락 이슈가 그저 교사와 학부모 간 대결 구도, 한쪽의 다른 쪽을 향한 원망으로 단순화되지 않길 바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Korea is so screwed. Wow!)”외국인 여성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이 말을 읊는 장면이 하나의 ‘밈(meme)’처럼 인터넷에 돌고 있다. 영상 속 여성은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다. 최근 한 방송사가 방영한 저출산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윌리엄스 교수가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 한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이라고 한다. 이처럼 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수치에, 정작 한국인들은 갈수록 둔감해지는 것 같다. 얼마 전 통계청이 올해 2분기(4~6월) 합계출산율을 0.7명으로 발표했다. 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다. 통상 연초 출산율이 높고 연말로 갈수록 낮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였던 지난해 기록을 갈아치우고 사상 최초 0.6명대를 찍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그러나 윌리엄스 교수처럼 충격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럴 줄 알았다’거나 ‘늘 최저 아니었어?’하며 되레 시큰둥한 모습이다. 저출산과 관련한 잇따른 발표와 경고, 엄포에 이제 사람들에게 ‘저출산 내성’이 생겨버린 듯한 느낌이다. ● 1명 미만 출산율, 전 세계 전무후무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이었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한 해 숫자만 들어서는 잘 감이 안 올 수 있다. 기자는 1980년대생인데 통계청에 따르면 1981년 출생아 수는 86만7409명이었다. 사망자 수는 23만7481명으로, 출생아 수가 사망자보다 4배 가까이 더 많았다.하지만 41년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출생아 수는 1981년에서 반의 반토막이 났다. 사망자는 37만2800명으로 출생아 수를 훌쩍 뛰어넘었다. 인구 ‘순감’ 사회가 된 것이다. 최근 학교에 가보면 이런 현실을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기자가 학교에 다닐 때 한 반 학생 수는 적게는 40명, 많게는 50명이었다. 맨 뒷자리 책상에 앉으면 거리도 거리지만 앞에 앉은 애들 머리 때문에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연방 내뽑아야 했다. 반면 현재 초등학생인 기자의 자녀 학급당 학생 수는 많아야 25명, 적으면 20명이다. 41년이라는 터울이 다소 크다면 최근 10년만으로 한정해 보자. 2012년 출생아 수만 해도 48만4550명이었다. 지난해의 2배다. ‘여성 한 명이 평생 출산하는 아이 수의 평균’, 즉 합계출산율은 어떨까.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81년 2.57명이었다가 1996년 1.57명, 2005년 1.09명으로 줄었고, 2018년 0.98명으로 처음 1명 아래로 떨어진 이후에도 계속 하락 추세다. 출생아 수 감소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 급감했고, 더구나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진 국가는 한국 외에 전무후무하다. 저출산을 겪고 있다는 서구 선진국들의 출산율은 대부분 1.5명 전후다. 윌리엄스 교수가 한국 수치에 머리를 쥐며 놀랄만하다.● 14년간 215만 명↓…엄마도 줄고 있다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신문이나 뉴스를 많이 접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라 역시 시큰둥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떠한가.출생아가 줄어든다는 것은 당장 당대 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재생산인력, 즉 향후 아이를 낳을 사람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5세에서 49세까지 가임기간이 정해져 있는 여성을 중심으로 보자. 통계청 주민등록인구 조사에서 이들 가임기 여성은 2008년 1350만6636명이었다. 하지만 2014년에는 1294만5991명, 2020년에는 1182만4861명 등 12년간 12.5% 줄어든다. 쉽게 말해 아이뿐 아니라 ‘엄마’도 줄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저출산의 여파다. 앞으로 엄마는 더 가파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저출산이 전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이제 그때 태어난 ‘저출산 키즈’들이 점차 엄마의 나이대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본 수치에서도 처음 6년간은 가임기 여성 수가 56만 명 감소했는데, 최근 6년 동안에는 110만 명이 감소해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엄마가 줄고, 남은 엄마들마저 전보다 아이를 덜 낳는다면, 다시 그 다음 세대의 엄마가 줄면서 출생아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저출산의 악순환’이다. 아주 단순하게 계산해봐도 2008년 당시 1350만 명의 가임군 여성이 그때 출산율(1.19명)로 낳을 수 있는 아이 수와 지난해 가임군 1135만 명이 출산율 0.78명으로 낳을 수 있는 아이 수 간에는 약 1500만 명 이상 차이가 난다. ● ‘저출산 악순환’ 시작…대책 시급실제 출산율이 1.18명이던 2002년 출생아 수는 49만6911명이었는데, 출산율이 1.3명으로 더 높아진 2012년 출생아 수는 48만4550명으로 더 줄었다. 이런 ‘출산율의 역설’ 역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모 세대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자연히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 적은 것처럼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별 출생아 수는 2015년 12월 이후 동기 대비 91개월째 감소 중이다. 지난달 28일 통계청이 공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지난해 19~34세 청년 가운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답한 이는 3명 중 1명 수준(36.4%)으로 10년 전 조사보다 20% 포인트 넘게 줄었다. 2명 중 1명(53.5%)은 결혼해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짐은 물론 이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다. 종종 온라인으로 유(有)자녀, 다자녀 가구 지원책을 논한 기사를 보다 보면 이런 댓글을 볼 수 있다. ‘아이는 자기들이 낳고 싶어서 낳았는데 왜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데?’ 저출산 대책이 특정 계층을 위한 지원, 편향된 복지인 것처럼 잘못 인식하는 상황이다. 저출산 대책은 유자녀 가구를 돕기 위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이런 가구들이 아이를 더 낳아주지 않으면 그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국가의 ‘자구책’이다.지금까지 출생아 수가 80만 명이든, 20만 명이든, 국가라는 기차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태어난 20만 명이 부모가 되어 0.7명의 아이를 낳는 순간이 되어도 그럴까.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던 기차가 절벽으로 들어서고 있는데, 기차에 탄 사람들은 ‘늘 떨어지고 있었는데 뭘’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이 기차를 멈추거나 최소한 속도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이제 웬만한 대책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정치권과 시민들 모두 상기했으면 한다. 시간이 없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이제 두 자녀부터 다자녀라니 좀 고까운 생각 들지 않아?”정부가 다자녀 혜택 기준을 세 자녀 이상에서 두 자녀 이상으로 통일하겠다고 발표한 16일, 몇몇 사람들로부터 이런 취지의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기자와 같이 자녀 셋 이상인 가구만 누릴 수 있던 독점적 혜택을 이제 자녀가 둘뿐(!)인 가구와 나눠야 한다니,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냐는 이야기였다.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그러워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기존에 대단한 걸 누리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자녀 혜택 대상 확대한다는데…16일 정부는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다자녀 가구 지원 정책 추진 현황 및 개선 방향을 발표했다. 다자녀 가구의 기준은 중앙부처, 지자체, 교육청 통틀어 ‘두 자녀 이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주요 핵심 영역에서 두 자녀 이상 기준을 점차 확대, 반영해나갈 것이라 덧붙였다.특히 정부는 공공분양주택 다자녀 특별공급 혜택 대상을 두 자녀까지 확대하고 민영 주택도 완화할 수 있도록 검토할 것이라 밝혔다. 일명 ‘다자녀 특공’ 대상이 세 자녀 이상 가구에서 두 자녀 이상 가구로 바뀌는 것이다. 자동차 취득세 면제·감면 대상도 두 자녀 가구까지 확대한다. 이 밖에 문화시설 다자녀 기준 통일, 초등돌봄교실·아이돌봄서비스 등 추가 지원 계획 등이 발표됐다.다자녀 특공과 자동차 취득세 면제·감면은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던 다자녀 가구 혜택이다. 아이가 넷인 기자는 모두 누렸을까. 두 가지 혜택 중 자동차 취득세 면제·감면 혜택만 받아봤다. 8년 전, 셋째를 낳고 9인승 차량을 처음 장만했을 때 단 한 번이다. 이후 지금까지 차를 바꾸지 않으면서 혜택을 더는 누리지 못했다.다자녀 특공 혜택은? 시도조차 못 해봤다. 무주택자여야 대상이 되는데, 작은 집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팔아 무주택자가 되면서까지 도전해볼 일은 아니었다. 아이 넷을 포함해 6인 가족이 살만한 집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혹시 혜택을 이용할 수 있을까 해서 알아보았지만, 특공에 나오는 집들은 그 넓이가 대부분 59~84㎡로 6인 가족이 살기에 턱없이 좁았다. 결국 있으나 마나 한 혜택이었다.● 지금도 체감 어려운 다자녀 혜택흔히 다자녀 가구라고 하면 정부에서 대단한 혜택을 받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상 따져 보면 그렇지도 않다. 크게 체감할 수 없는 혜택이 많고 소득 기준과 같이 제한을 걸어둔 혜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문화시설의 경우 어차피 자주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 비용도 크지 않은 편이라 크게 체감이 가는 혜택이 아니다. 공공요금 다자녀 감면 역시 마찬가지다. 기자는 전기, 도시가스, 상하수도 요금 등을 통틀어 한 달에 2만 원 정도 할인을 받고 있을 걸로 추산된다. 적지 않은 돈 같지만, 6인 가족이라 애초 남들보다 전기, 가스, 물을 많이 쓰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큰 혜택이라 보기 어렵다.다자녀 혜택 하면 ‘세 자녀 이상 가구에 자녀 대학 등록금을 국가장학금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마저 기자는 대상이 아니다. 가구소득 상한 기준에 걸려 탈락이다. 여성가족부의 아이돌보미 이용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그런데 이런 혜택의 대상자를 더 확대한다고 한다. 아마 ‘기대할 만한 효과가 나타날까’ 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자녀 가구만 혜택 준다고 볼멘소리했던 사람들도 이제 경험해보라지!’ 하고 외려 반기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두 자녀 이상 57.6%…‘통큰’ 지원 불가물론 수혜자가 아니거나 혜택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 혜택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다자녀 특공이나 대학 등록금 지원, 공공요금 할인을 요긴하게 이용한 가구도 많다. 이에 정부 발표에 분개하는 다자녀 가구도 적지 않다. 발표 다음 날인 17일 다자녀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 의견이 줄을 잇고 있었다. 다자녀 가구의 육아 부담과 사회에 대한 기여도, 저출산 시대의 상징성 등을 도외시했다는 지탄이었다.그러면 새로 혜택을 받게 된 두 자녀 가구는 환영할 일일까? 마냥 그럴 일은 아닌 듯하다.혜택을 받는 대상이 늘면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공을 예로 들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8세 이하 자녀가 있는 가구 가운데 두 자녀 이상 가구 비중은 전체의 57.6%다. 둘째 낳는 집이 줄고 있다지만 사실상 아직은 ‘절대다수’다. 반면 세 자녀 이상 가구는 9.7%다. 가구 비율이 곧 특공 지원 대상 비율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9.7%와 57.6%의 차이를 보면 앞으로 특공 지원 대상이 크게 증가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세 자녀 기준이던 때에는 미성년 포함 가구 10가구 중 1가구만 다자녀 특공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2가구 중 1가구가 대상이 되는 식이다.이렇게 되면 과연 특공을 더 이상 ‘특별’한 혜택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좋은 지역 주택에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릴 테고, 과거보다 훨씬 많은 다자녀 대상자가 몰리면 결국 그 안에서도 붙고 떨어지는 경쟁이 발생할 터다.이는 비단 특공에서만 발생할 문제가 아니다. 대학 등록금 지원, 공공요금, 문화시설 이용료 감면도 앞으로 다자녀에 한해 ‘통 크게’ 지원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엔 그 대상자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등록금처럼 많은 비용이 드는 지원 정책은 소득 기준을 강화해 대상을 축소하거나 지원범위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정부도 16일 발표에서 “두 자녀 가구 수를 고려할 때 기계적인 요건 완화는 막대한 재정 소요가 불가피”하다며 “단계적·전략적 확대가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다자녀 대상을 야심 차게 확대해놓고, 정작 그 때문에 혜택은 조금씩 눈치를 봐가며 늘릴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 셈이다. ‘예산은 예산대로 들었는데, 개개인이 느끼는 효과는 미미했던’ 과거 저출산 정책의 실패를 답습할 것 같은 우려가 드는 지점이다.● “한 자녀만 ‘왕따’”…이분법 탈피 필요해혜택에서 소외된 가구가 어떻게 느낄지도 따져 볼 문제다. 유치원생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지인은 이번 다자녀 가구 지원방안을 두고 “국가가 대놓고 한 자녀 가구를 ‘왕따’ 만든 느낌”이라며 “둘째를 갖게 할 만한 대단한 유인은 없고, 괜히 한 자녀 가구에 상대적 박탈감만 안긴 악수(惡手)”라고 비판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또 다른 지인은 “하나 낳는 것도 엄두가 안 나는데 이제 하나는 혜택에서 소외된다니 ‘이렇게 된 거 낳지 말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 것 같다”고 전했다.물론 정부는 억울할 것이다. 다자녀 기준으로 모든 혜택을 나누는 것은 아니고 어떤 것은 보편적으로, 어떤 것은 더 세분화해서 적용하기도 할 것이라고 말이다.하지만 큰 틀이 다자녀와 비다자녀의 구분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세부 내용과 무관하게 이번 ‘다자녀 가구 지원 정책’이 사회적으로 던진 메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정책은 아이를 키우는 가구 간에 선을 그었다. 기존 다자녀 가구는 물론 새롭게 비다자녀 가구가 된 한 자녀 가구에 박탈감을 안겨줬다. 머지않아 두 자녀 가구에는 허망함을 안길 것이다. 실질적인 득이 크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언제까지 다자녀와 비다자녀로 나눠야 할까. 우리가 전범으로 삼는 저출산 극복 국가들은 대부분 아이 수 혹은 가구 상황에 따른 차등적 혜택을 제공하지, 다자녀이냐 아니냐로 혜택을 나누지 않는다. 어설픈 이분법 복지는 수혜를 입는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소외된 축에는 반감만 안긴다. 기존에 기관, 지자체별로 그 사정에 맞게 다양한 기준과 혜택을 구사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이번 다자녀 기준 완화가 고깝진 않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이유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2018년 여름은 아직도 기자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국내 기상 관측사상, 아니 단군 이래 가장 더웠다던 그 해 기자는 기상청을 담당했다. 연일 날씨 스케치, 예보를 포함한 폭염 기사를 썼다. 당시 서울의 한낮 기온은 체감기온이 아니라 실제 기온이 39.6도에 이르렀다. 강원 홍천의 한낮 기온은 41.0도를 기록해 국내 최고기온 기록을 111년 만에 갈아치웠다. 일명 ‘대프리카’라 불리던 대구 한낮 기온도 매일 39도를 넘나들어 당시 넷째를 임신 중이었던 기자가 직접 ‘폭염 체험’을 다녀오기도 했다.역대급 폭염에 지구 온난화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온실가스를 지금처럼 배출할 경우 30년 뒤 한반도의 여름은 4월에서 10월까지 5달가량 지속될 것이라는 등 폭염과 관련한 섬뜩한 경고가 담겼다. 정부와 정치권은 폭염을 재난으로 규정하고 각종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을 줄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저감해야 한다는 등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제언들도 이어졌다. 기록적인 폭염에 식겁한 시민들도 공감했다. 5년이 지난 올해, 또 다시 고온에 태풍이 몰고 온 고습도가 더해진 무더위가 전국을 덮쳤다. 연일 35를 넘나드는 기온에 온열질환자가 전년 동기 대비 3배 늘면서 2018년 여름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역대 최초로 폭염 대응을 위한 2단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다시 온난화를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사람들도 “정말 문제”라며 혀를 찬다. 2018년 이후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 돼버린 걸까?● 목표에 못 미치는 온실가스 감축량2018년 이후 우리 기후 대응에는 여러 진전이 있었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계획이 수립됐고, 플라스틱 등 폐자원 순환 정책도 대거 정비됐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따라 2030년까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국제사회와 약속한 것이다. 이른바 국가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다.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런 감축은 국내법으로도 의무화됐다. 국가 전체적으로 짧은 시간 내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여야 하기에 NDC 달성은 분명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만 이런 부담을 떠안은 것은 아니다. 2030년까지 유럽연합(EU)은 1990년 대비 55%, 미국은 2005년 대비 50~52%, 일본은 2013년 대비 46% 감축하기로 했다. 최근 유럽은 이 목표치 상향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지구의 온난화 속도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준연도인 2018년으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성적표는 어떨까? 솔직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2018년 7억270만t(CO2-eq)으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7억129만t(전년 대비 3.5% 감소), 2020년 6억5620만t(전년비 6.4% 감소)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보면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2020년 감소폭은 코로나19로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든 영향이 컸고, 2019년 감소폭도 목표치에 못 미쳤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2021년 배출량은 6억7810만t(전년 대비 3.3% 증가)으로 오히려 늘었다. 2022년에 다시 6억5450만t으로 전년보다 3.5% 줄었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다.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30년까지 NDC 달성을 위해 매년 온실가스를 전년 대비 5.4%씩 감축해야 한다. ● 여름철 ‘반짝’ 관심…기업 온실가스 감축분 되레 줄여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큰 위기감을 찾아보긴 어렵다. 사실 2018년과 올해뿐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재앙은 매 여름 화두였다. 2018년 정도는 아니지만 여름이 되면 짧게라도 극한의 무더위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더위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에는 ‘극한호우’와 ‘초대형 태풍’이 이슈가 됐다. 이 역시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영향이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 다시 기후변화와 관련한 위기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한때다. 여름철 ‘반짝’ 관심에 그쳤다. 여전히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화력발전소의 국내 가동기수는 59기에 이른다. 전체 전력 생산량 중 화력 의존율이 30%다. 재생에너지 기여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이번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서 산업 부문 감축 목표치까지 기존 계획 대비 3.1%포인트 낮췄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즉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계획 때보다 810만t가량 덜 줄여도 된다. 대신 정부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에서 녹색사업을 벌여 그를 통한 감축분으로 산업계 감축 감소분을 상쇄하겠다고 밝혔다. 감축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따지는 것은 워낙 복잡한 일인데다 전문가들 간에도 이견이 크기 때문에 기자가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걱정되는 점은 정부의 계획의 변경이 전 사회적으로 줬을 메시지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해외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만 100% 사용하겠다는 ‘RE100’ 선언을 자발적으로 하는 등 탄소 저감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극히 일부 기업만 RE100을 선언하거나 선언할 계획임을 밝혔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터전을 깔고 독려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화력 위주 발전을 운용하면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여주는 분위기하에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물론 정부나 기업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미세먼지가 한창 이슈였던 2017년 환경부 출입 기자로 연일 미세먼지 기사를 쓰며 가장 답답했던 것이 있는데 바로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높아진 미세먼지 농도가 중국 탓, 발전소 탓, 기업 탓이라고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은 일회용품 쓰레기를 줄이거나 전기를 절약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이 내뿜는 매연이 다 한국으로 날아와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며 거세게 비판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정작 본인은 매일 내연기관차를 몰고 출근했다. 고농도 시 미세먼지 기여율 50%가 중국 등 해외라면 나머지 50%는 국내 발생이다. 남의 나라 사람들이 내뿜는 매연을 비난하려면 적어도 본인은 덜 뿜으면서 비난해야 하는 게 아닌가.기후변화도 마찬가지다. 매 여름마다 극한의 무더위, 강수 피해를 겪으며 사람들은 온난화가 문제라며 혀를 끌끌 찬다. 하지만 정작 온난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작은 실천부터 하자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상점 출입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거나, 냉방병이 우려될 정도로 사무실 온도를 낮추고, 쓰지도 않는 전자기기의 전원을 켜놓은 채 외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기자는 최근 일본의 간사이 지방을 방문했는데, 한낮 기온이 38, 39도에 이르러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도 거리에 수십 대의 자전거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직장인은 물론 아이 엄마, 학생, 어르신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했다. 물론 그들이 온실가스 배출 저감만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더운 날씨에도 큰 불만 없이 자전거를 타는 모습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흔히 불편하다고, 남들도 다 안 한다고 노력을 등한시 하기 쉬운데, 막상 해보면 큰 불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위 속 자전거 이용처럼 말이다.기술을 이용하면 불편함 없이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도 있다. 몇 달 전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직접 가정 내 온실가스 배출량 컨설팅을 받아본 적이 있다.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마트 콘센트만 활용해도 대기전력을 없애 온실가스 배출량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콘센트를 별도로 사야 했지만, 향후 절약할 수 있는 전기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효과를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이득이었다. 컨설팅 후 기자는 집안 내 오래된 콘센트들을 다수 교체했다. 현재 기자의 자택 베란다에는 작은 태양광판도 설치돼있다. 정부의 소규모 태양광 발전 지원제도에 따라 지자체에서 설치 금액 대부분을 지원받아 설치한 것이다. 6인 가족이라 전기 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직접 생산한 친환경적인 전기로 이를 일부 상쇄하고 있다. ● 국제사회와 후대에 부끄럽지 않으려면전북 새만금에서 개최되고 있는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일 체감온도 40도를 넘나드는 고온, 고습도의 무더위에 대회 첫날부터 400여 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하면서 외신에서도 보도되는 등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류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큰 기대를 품고 왔을 청소년들이 실망했을 생각에 미안하고 국제적으로도 민망한 일임은 맞다. 하지만 이곳 한국에 사는 국민들은 이런 더위를 매년 겪고 있다. 한 번 배출된 온실가스는 100년가량 공기 중에 잔존하기 때문에 우리 후대는 더 심한 더위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국민들과 후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이런 여름과 호우를 물려주는 것은 부끄럽지 않은가.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지구 온난화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상기후 때만 반짝 쏟아지는 기후변화 경고는 이제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온난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늦추고 개선할 수 있는 현상이다. 국제사회와 약속한 NDC 기한이 7년 남았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한국이 감당해야 할 국제적 망신, 우리 아이들이 당할 피해는 잼버리 대회 수준이 아닐 것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넌 학교 선생님들 문제는 취재 안 해? 요새 병원 찾아오는 교사들이 엄청 많은데.”정신과 의사인 지인과 식사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게 몇 주 전이었다. 그는 “교사들을 상담해 보니 최근 학교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고 했다. 각자 상황은 달랐지만,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만큼은 너나없이 동일하게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교감 선생님이라는 분까지 찾아왔는데, 문제를 일으킨 아이의 학부모가 교사에게 계속 민원을 넣고 학부모회까지 참석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통에 결국 교사들이 몇 그만뒀고 본인도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아 병원을 찾았대.” 지인이 말했다.그렇게 식사 시간 환담 소재로 듣고 지나쳤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며칠 전 두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고 나서다.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남학생이 담임인 여성 교사의 얼굴 등을 여러 차례 가격하고 바닥에 넘어뜨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또 다른 서울 초등학교 교내에서 20대 담임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동료 교사들은 고인이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증언했다. ● 교권 침해 경험 58% “부모·학생으로부터”실제 고인이 학생과 학부모 일로 정신적 고통을 받아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는 향후 수사를 통해 밝힐 일이다. 하지만 진위와 관계없이 연달아 발생한 두 사건으로 그동안 쌓였던 교사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인의 빈소와 근무지 학교에는 교사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20일 학교를 방문했던 교육부 차관은 교사들과 유족 항의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라는 스승의 날 노래 가사나 선생‘님’, 스승‘님’ 같은 호칭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교사는 영예로운 직업이고, 공경의 대상이었다. 기자의 부모님도 모두 학교에서 근무하셨다.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엄마의 학교에 가면 한참 큰 언니, 오빠들이 엄마를 향해 90도에 가까운 깍듯한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그냥 하는 인사가 아니라 경외하는 존재를 향한 정중한 인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승의 날이면 제자들이 쓴 정성 어린 손 편지들이 한 아름 답지했다.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스승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학창 시절 기자의 장래 희망은 늘 교사 아니면 교수였다. 하지만 요새 교사들의 처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총에 접수되는 교권 침해 관련 상담 건수가 매년 400~500건에 이르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것이 학부모에 의한 침해다. 지난해 접수된 상담 520건 중 46.3%가 학부모 교권 침해 사례였다. 학생으로 인한 침해도 12.3%로 3위를 차지했다. 올 1월에는 설문 조사로 학부모 교권 침해 사례를 살펴봤는데 다음과 같았다. ‘다른 교사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학생을 지도했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 ‘음료수 먹으면 살찐다고 말한 것이 아동학대라며 사과 요구’, ‘팔 다친 학생에게 상태가 앉아있으라고 했더니 정서적 아동학대라고 항의’, ‘학생에게 눈을 흘겼다는 이유로 아동학대 신고’ 등이다. 직능단체가 과한 사례만 수집한 건 아닐까 했는데, 기자의 지인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함께 대학원 수업을 듣는 사람이 교사인데, 받아쓰기 시험을 쳤다는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아이에게 무안을 줬으니 아동학대’라는 취지의 지적을 받았다더라,” “본인 카카오톡 프로필에 남자친구 사진을 올렸다고 학교 측에 ‘담임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한다.” ● 공교육 불신·‘개근 거지’…만만해진 학교어쩌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던 선생님이 이처럼 ‘만만한’ 존재가 돼버렸을까. 사실 생각해 보면 만만해진 것이 비단 선생님만은 아니다. 학교 교육도 만만해진 지 오래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집중하지 않고 엎드려 자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학교가 끝난 뒤 학원에 가서야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어느덧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 돼버렸다. 학교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공교육 괄시, 불신은 사교육 시장을 계속 키우고 있다. 18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생이 쓴 학원·과외·인터넷강의 수강료 등 사교육비 총액이 26조 원에 이르렀다. 전년 대비 2조5000억 원(10.8%) 더 늘었다. 사교육 참여율도 78.3%, 528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자의 주변만 봐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는 부모를 찾기 어렵다. 영유아도 예외가 아니다. 지인 중에는 7살 자녀를 총 10개 학원에 보내는 이도 있다. 오죽하면 공교육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조차 공교육 과정에는 없고 학원에서만 배울 수 있는 ‘킬러 문항’이라는 것이 출제돼왔을까. 교육뿐이랴. 학교 출석의 의미도 가벼워졌다. 기자는 ‘죽을 듯이 아파서 못 갈 정도가 아니라면 학교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던 시대를 살았다. 한데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친구들은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결석한다고 한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감염 예방 차원에서 나라가 나서 이런 결석을 권장하긴 했지만, 아마 옛날이었다면 몸이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학교에 나왔을 것이다. 요즘은 오히려 학교에 개근하는 아이들을 가리켜 ‘개근 거지’라는 말까지 돈다. 학교 다니는 동안 외국어 연수, 외부 활동, 여행 등으로 체험학습 결석 한 번 하지 않는 아이는 ‘개근하는 거지’라는 말이다. 어느새 학교 출석은 외국어 연수나 외부 활동, 여행보다 가벼운 의미가 됐다. ● 공교육 붕괴, 교권에 영향교권이 추락하게 된 원인에 학생 인권 중시, 저출산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렇듯 공교육과 학교 전반에 대한 인식 변화 역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를 상기해본다. 지인이 사는 동네의 한 보습학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이들 실력을 잘 끌어 올려주기로 유명해서 학부모들이 줄을 서서 아이를 넣으려는 곳이라 한다. 지인도 대기 끝에 겨우 아이를 입소시켰는데, 막상 수강해보니 그곳 강사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과제를 내주고 이를 제대로 해 오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위협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아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럼 강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학원을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니냐”고 기자가 묻자 지인은 “아이 공부만큼은 확실히 시켜주는 강사인데 그렇게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든 생각은 ‘만약 그 강사의 행동이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일어났으면 부모들의 반응이 어땠을까’하는 것이었다. ‘아이 공부만큼은 확실히 시켜주는 교사이기에 그런 행동은 용인할 수 있다’고 똑같이 생각했을까. 학교와 교사는 만만해지고, 사교육 같은 공적 영역 외 영역을 더 신뢰하는 사회. 이런 본말(本末)’이 전도된 사회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공교육이 빠르게 붕괴할 것이고, 양질의 인재들은 사교육 시장으로 몰려들어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질 것이다. 지위는 대물림되고, 사회는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 교권 추락을 단순히 교육 현장에서의 지도 편달 체계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심각하게 인지하고 해결책을 논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생의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가서 1년 정도 산 경험이 있다. 2000년이었으니 지금처럼 외국 1년살이나 여행이 흔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가기 전 미국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접한 미국 생활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과 달랐다.● 충격·공포…그렇지만 수업다웠던 美 고교 수업 특히 가장 생경했던 것은 ‘읽고 토론하는’ 학교 수업 문화였다. 지금은 그리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지만 당시 기자에겐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였다. 영어(거기서는 국어) 시간에는 늘 그날 배울 소설이나 글을 읽고 와야 했다. 읽어온 내용으로 선생님,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지리나 역사 같은 사회 교과 시간에는 조를 나눠 토론하기 일쑤였다. ‘수학은 좀 낫겠지’하고 기대했지만 오산이었다. 수학 수업도 발표의 연속이었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진도가 월등히 빠른 탓에 본의 아니게 ‘수학 우등생’이 된 기자는 거의 매 수업마다 칠판 앞으로 불려 나가 “식을 그리고 설명해 달라”는 선생님의 주문을 소화해야 했다. 처음 한두 달은 ‘오늘도 발표시키면 어떡하나,’ ‘토론 내 차례가 되면 뭐라 이야기하지’ 하는 걱정에 긴장해 수업 시간을 앞두고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한국처럼 고개 숙이고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 활동과 발표가 일상적인 수업 특성상 내내 고개 숙이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기자가 적응해야 했다. ‘입시지옥’도 뚫는다는 불굴의 한국 고등학생 아닌가. 수험생 자세로 특훈에 돌입했다. 수업에 앞서 소설책을 두세 번씩 읽었다. 내 인생을 통틀어 단기간 그렇게 많은 영어책을 읽은 적은 없을 것이다. 토론 수업에 앞서서는 상대방이 낼 의견까지 미리 생각해 마치 연극 연습하듯 대사를 짜고 외웠다. 다행히 당시 미국엔 학원, 과외도 없어서 방과 후 자습할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몇 달 하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말문이 조금 트이고 나서 보니 토론이란 게 별 게 아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게 무슨 대단한 고견을 기대하는 게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한다는 게 다를 뿐 토론은 그냥 대화의 연장선상 같은 것이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남의 생각을 듣고, 거기에 내 생각을 첨언하고. 미국식 교육이 꼭 더 낫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상기해 보면 적어도 그곳에서의 수업은 정말 ‘수업을 위한 수업, 수업 같은 수업’이었다. 프란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배우는 시간에는 정말 소설을 읽고 와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회 과목 시간에는 주로 찬반 토론을 했는데, 토론을 하려면 예습이 필수이다 보니 자연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한다거나 다른 공부를 꺼내놓고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 대입 중심 한국 교육, 변화 시도 있었지만… 갑자기 20여 년 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수능을 위시한 교육 개혁을 보면서 그때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수업은 ‘대학입시를 위한, 대입에 의한, 대입용’ 수업이었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소설을 배운다고 하면 그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이 소설 문제가 어떻게 출제되는지’를 배우는 걸 뜻했다. 사회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는 수능에 올인하는 고교 교육을 정상화한다며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무시험 대학 전형’을 도입한다고 했다. 야간자율학습(야자)이 강제에서 자율로 바꾸고 아이들 수능 줄 세우기를 부채질하는 모의고사도 없앴다. 기자가 미국에 가기 전 이런 정책이 발표되었는데, 돌아와 보니 정말 야자가 자율로 바뀌고 모의고사도 사라져있었다. 이 정책의 대상이 된 학생들을 당시 교육부 장관 이름을 붙여 ‘이해찬 세대’라 부르는데 기자도 바로 그 이해찬 세대 중 한 명이다. 미국에서 야자도, 모의고사도 없고 SAT(미국 대입 자격시험)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학교생활을 경험해보았기에 정부의 개혁 방향에 큰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 복귀하고 나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십수 년간 특기를 키울 기회 없이 자란 한국 학생들은 대입에 들이밀 특기가 없었다. 단 1, 2년 남은 입시까지 믿을 건 내신과 성적 관련한 수상 기록뿐이었다. 결국 절대다수의 학생들이 다시 학교 시험과 수능 준비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자율로 바뀐 야자엔 학원을 갈 여력이 없는 친구나 소위 ‘날라리’라고 하는 친구들만 남았다. 스스로 공부해 본 경험이 없는 대다수 친구들은 학원으로 달려갔다. 당시 개혁의 결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에 따라 학생들 점수가 폭락하면서 이해찬 세대들에게는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오명만 남았다. 그때 정부의 개혁이 잘못된 것이냐 묻는다면 꼭 그렇게 생각진 않는다. 개혁의 취지는 대입 준비기관으로 전락한 학교를 정상화하고, ‘시험 기계’ 아이들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키우자는 것이었다. 분명 성과는 있었다. 이후 대입 방식이 다변화했고, 학교에서도 다양한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하지만 20년 이상 지난 지금 다시 수능 개혁이 이슈가 되는 걸 보면 교육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중·고등학교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의대 진학반을 이제는 초등학교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영유아들조차 교과 사교육에 내몰린다. ● ‘정말 도움이 되는 공부일까’ 부모들도 자문해봐야 대학이란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무작정 달려온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실질적인 진로 고민을 시작한다. 이미 중·고교 때부터 직업 교육을 받고 대학 졸업 전 취업할 곳이 정해진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한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20대 청년 여러 명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대학을 점수 맞춰 선택했다”거나 “전공과 관계없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취업을 위해 대학 졸업 후 전혀 새로운 분야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는 청년들이 정말 많았다. 20년 전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얼마 전 기사에서 한 명문대 교수가 “내가 기업인이라면 한국 대학생들은 뽑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 걸 봤다. 명문대 입시에 목을 매는 한국 학생들을 보면 전문성도 없고 그저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싶을 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자기 의견도 없기 때문이란다. 학창시절 스스로 공부하고 탐색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은 급변했는데, 우리의 교육은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큰 틀의 개혁은 정부가 이끌어가야겠지만, 부모들도 자문해봤으면 좋겠다. ‘과연 이것이 정말 아이 미래에 도움이 되는 공부인가?’ 기자는 아이들이 소설에 대해 겉핥기 지식만 배우는 게 아니라 실제 책을 많이 읽고, 사회 문제를 그저 외우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문제를 자연스레 익히는 그런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 갈수록 노동시장에서도 그런 인재가 필요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왜 20년 넘게 제자리인가.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