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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길진균 논설위원입니다.

leon@donga.com

취재분야

2024-10-23~2024-11-22
칼럼100%
  • [횡설수설/길진균]포털뉴스 댓글 폐지·제한… ‘좌표 찍기’ ‘악플 테러’ 사라질까

    포털의 연예와 스포츠면 기사에는 댓글 기능이 없다. 2019년 배우 설리 씨, 2020년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 씨가 숨진 이후 생겨난 변화다. 대다수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그리고 팬들은 댓글 폐지를 반겼다. ‘악플러’들의 무차별적인 혐오와 악의를 오랫동안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치와 사회, 특히 유명 사건·사고 관련자들을 겨냥한 악성 댓글 문제는 그대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는 방송에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고 답했다. ▷포털은 ‘인터넷의 양방향성’ 등을 앞세워 댓글 규제에 부정적이었다. 이는 수익과도 연관이 있다. 이용자들이 댓글을 쓰거나 읽게 되면 포털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는 다른 콘텐츠로의 유입과 새로운 광고 수익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댓글 폐지 여론에 따라 카카오가 연예·스포츠 기사에 이어 정치·사회 등 일반 뉴스 기사에서도 댓글 기능을 없앴다. 댓글 창을 만 하루가 지나면 내용이 사라지는 실시간 채팅 방식의 대화방으로 바꿨다. 네이버는 댓글 창 자체를 없애진 않고, 악플러들의 프로필에 ‘이용 제한’ 꼬리표를 붙여 다른 이용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포털의 댓글이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포털이 뉴스 전달의 주요 매개체가 되면서 각 언론사의 기사는 댓글과 함께 소비되기 시작했다. 댓글 창 상단에 노출된 ‘베스트 댓글’은 여론의 수렴을 거친 다수의 의견이며, 이 같은 댓글 시스템이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숙의의 장을 열었다는 섣부른 주장과 함께 ‘댓글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성균관대 이재국 교수팀이 2021년 8월 1일부터 2022년 3월 8일까지 대선 관련 뉴스 댓글 3639만 건을 분석한 결과, 댓글 80%를 유권자의 0.25%가 작성했다. 앞서 왜곡을 넘어 조작도 적발됐다. 조직적인 ‘좌표 찍기’도 공론의 장을 오염시켰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특정 세력들은 조직과 매크로 프로그램을 은밀히 가동해 댓글 창 상단에 노출되는 ‘베스트 댓글’의 순위와 내용을 만들어냈다. 관련자들은 선거 이후 형사 처벌을 받았다. ▷BBC방송 등 글로벌 언론은 뉴스 댓글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이용자가 올린 댓글을 바로 공개하지 않고 커뮤니티팀이 비방, 사적 공격, 비속어 등이 담긴 댓글을 걸러낸 뒤 게시한다. 구글은 아웃링크 방식을 통해 뉴스 댓글 관리를 각 언론사에 일임한다. 포털의 댓글이 무차별적인 혐오 확산과 정치 양극화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악성 댓글의 확산을 막는 더 높은 ‘방파제’가 필요한 때가 됐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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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통 ‘돈’ 의혹 巨野, 몰락 막을 역량 있을까[오늘과 내일/길진균]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반등할 수 있을까. 올 초까지 야권 인사들은 내년 총선 이후에도 민주당이 강한 제1야당의 위상을 굳건히 유지할 것이라 자신했다. 정상 궤도에서 번번이 이탈하는 민주당을 보면서도 많은 정치권 인사들은 “민주당이 과반에 가까운 총선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 위기, 혼란스러운 여권 등 주변 환경을 거론했다. 이념·세대·지역을 국민의힘과 양분하고 있는 민주당이 무너지기 힘든 구조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설득력을 더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만난 야권 인사들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근본 원인은 ‘민주당에 대한 신뢰’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그간 민주당이 보수당에 비해 실력은 몰라도 도덕성만큼은 우위에 있다고 여겼다. 2017년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혐오와 비판 속에 대안으로 탄생한 정권이 문재인 정부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을 둘러싼 문제는 온통 ‘돈’과 얽혀 있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사업 관련 의혹’,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전당대회 의혹’,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 등이 그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과거 기득권층에서 벌어졌던 권력형 비리와 다를 게 없는 의혹들이다. 이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모습도 한몫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두 차례의 집권과 직전 5년 집권기를 거치면서 친민주당 인사들은 사회의 주류가 됐다. 공공기관, 학계, 미디어, 시민단체 등 사회 시스템 곳곳엔 지금도 친민주당 인사들이 상당수 자리 잡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큰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스스로 ‘약자’라고 주장한다. 온갖 ‘돈’ 문제를 ‘야당 탄압’이라고 강변하며, 보수 진영을 싸잡아 무능한 기득권으로 몰아갔다. 민주당의 이 같은 이중적 태도가 젊은층과 중도층에 얼마나 경멸적으로 보이는지 민주당 인사들은 모르는 듯하다.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공식 의원총회 석상에서 제시되는 게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은 반성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를 ‘수박’으로 비하하며 권력싸움에 집중한다. 이를 바로잡아야 할 당 지도부는 무기력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은 30∼40대, 화이트칼라, 진보, 호남이다. 불공정에 민감한 젊은 세대와 화이트칼라는 도덕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한국갤럽의 16∼18일 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민주당에 줄곧 30∼40%대의 지지를 보냈던 30대의 지지율은 25%로 하락했다. 1월 첫 주 국민의힘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높았던 지지율이 국민의힘(32%)에 오히려 7%포인트 뒤지는 하락 추세가 나타났다. 호남 역시 무당층 24%, ‘지지 정당 없음’ 22%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있다. 여론조사가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민주당이 지금 어느 방향으로 힘을 쏟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게 해준다. 여론의 주문을 요약하면 민주당은 먼저 처절하게 반성하고, 집권 5년의 경험을 살려 정부 여당의 실책을 막는 제1야당의 제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매일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는 민주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 요구와 엇나가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살피며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속내만 노출하고 있다. 세계 정당사를 연구한 정치학자들은 거대 정당이 몰락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뽑는다. 시대 변화에 대한 부적응과 내부 분열이다. 몰락을 앞둔 모든 조직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공멸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이 순간에도 앞다퉈 그 길로 달려가는 민주당이 놀랍기만 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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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상찮은 정권견제론… 중도층이 흔들리고 있다 [수요논점]

    《SBS가 8,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4·10총선에서 ‘국정안정을 위해 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36.9%, ‘정권견제를 위해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49.9%로 나타났다. 정권견제론이 국정안정론에 비해 13.0%포인트 높게 나온 것이다. 특히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층에서 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60.8%로, 여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 28.2%의 두 배 이상에 달했다. 정부 여당에 실망하는 중도층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0.8%, 국민의힘 28.0%였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층은 34.7%로 3분의 1에 달했다. 특히 20대 이하 청년층의 경우 국민의힘 10.1%, 민주당 24.0%에 그쳤다. 여권에 부정적이거나 비판적 침묵으로 돌아선 중도층이 정권견제론에 힘을 실으면서도, 제1야당인 민주당 지지로 바로 이동하진 않고 있는 것이다(넥스트리서치 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거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중도층 민심이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약 1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되짚어 봤다.》● 53%→24%→31%…요동친 尹 지지도 취임 후 윤 대통령 지지율은 3, 4차례 변곡점을 겪었다. 그때마다 중도층이 무게추 역할을 했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5월 13일 조사에서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52%였다(이하 한국갤럽 조사). 중도층의 긍정평가 비율이 45%로 부정평가(39%)를 앞섰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6·1지방선거 직후 53%로 최고점을 찍었다. 연이은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에 보수 진영의 지지는 물론이고 중도층의 기대감이 결합된 ‘승자(챔피언) 효과’라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순항할 듯했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지난해 8월 초와 9월 말 취임 후 최저점인 24%로 주저앉았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퇴진을 둘러싼 당내 갈등과 미국 방문 때 벌어진 ‘비속어 발언’ 파문 때다. 강성 지지층은 결집했지만 중도층과 20대의 이반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9월 27∼29일 조사에서 나타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 24%, 부정 65%였는데, 중도층에서는 18%, 73%로 그 격차가 벌어졌다. 20대의 긍정평가는 9%로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이슈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던 국정 지지도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과 건설 노조 등에 강경 대응하면서 반등하기 시작했고, 30% 중반대를 회복했다. 올해 고점인 37%를 기록한 2월 21∼23일 조사에서도 직무수행 긍정평가 이유로 ‘노조 대응’(24%)이 가장 많이 꼽혔다. 특히 중도층과 20대에서 노조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에 대한 긍정평가가 높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진영 논리에 얽매이지 않는 중도층은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 이슈와 합리성에 민감하다”며 “정부의 원칙적 대응은 중도층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공정과 상식’이 반영된 결과로 인식됐고, 대통령 지지율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이후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안 혼선과 일본 강제징용 해법 논란 등이 겹치면서 중도층과 청년층 지지율이 빠지며 30∼31%까지 하락한 것이다. ● 전대 후 오히려 지지율 하락한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3·8전당대회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율 침체에 빠졌다. 한국갤럽의 4∼6일 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는 민주당 33%, 국민의힘 32%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 떨어졌지만, 민주당은 전주와 같은 지지도를 유지하면서 1, 2위가 뒤바뀌었다. 국민의힘 전대 3주 전인 2월 14∼16일 조사에서 중도층의 선택은 국민의힘 29%, 민주당 23%였지만 이번 조사에선 국민의힘은 23%로, 민주당 34%에 11%포인트 뒤졌다. 장윤진 한국갤럽 차장은 “어느 정당이나 지지율 상승은 중도층으로 지지세의 확장이 뚜렷할 때 나타난다”며 “최근 국민의힘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의 친윤 일색 지도부에 대해 보수층은 안도했지만 중도층은 앞으로 혁신이 가능한 정당으로 변모할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이하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2%로 민주당 25%에 뒤진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51%로 절반을 넘겨 전 연령대에서 무당층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배 소장은 “중도층은 이념적 색채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진보의 고정 지지층과 달리 언제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며 “진영 대결이 첨예해질수록 국민의힘으로선 2030세대와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도, 총선 승리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가 보수층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권 초 여당의 지지도는 대통령과 연동되는 경우가 많다. 내년 총선이 ‘정권견제론’ 속에서 치러지느냐, 아니면 ‘국정안정론’ 속에서 치러지느냐는 결국 윤 대통령 지지율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서도 중도층의 지지가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원칙적인 대응은 중도층을 포함한 다수 국민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개혁 달성의 전제 조건은 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지지”라고 말했다.● 반사이익 얻지 못하는 민주당 대선 이후 좀처럼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지 못했던 민주당은 최근 국민의힘을 앞선 여론조사 결과에 내심 고무된 분위기다. 3월 21∼23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35%, 국민의힘은 34%로 나타났다. 이어 4월 첫째 주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주목되는 건 여당 지지율이 빠지는 만큼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중도층이 포함된 무당층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갤럽이 진행한 최근 조사의 경우 무당층은 28%에 달했다. 지난해 6·1지방선거 직후 조사에선 국민의힘 45%, 민주당 32%, 무당층 18% 등이었다. 10개월 새 국민의힘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떨어졌지만 민주당 지지율은 별 변동이 없고, 무당층은 10%포인트 늘어났다. ‘친윤’이 득세하고 ‘개딸’ 등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는 거대 양당이 중도층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뜻이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민주당이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연이어 패배한 것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밀어붙이기와 ‘검수완박’ 등 입법 폭주로 인한 중도층 이반 현상의 영향이 컸다. 고정 지지층만 붙잡고 반사이익에 기대는 정치는 국정 운영에서도, 선거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누가 중도층의 신뢰를 다시 얻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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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영 전사’로 퇴보하는 비례 의원, 이대로 늘린들 뭐 하나[수요논점]

    《22대 총선(4월 10일)을 1년 남짓 남긴 여의도 정치권에서 각 당의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한 이슈, 복잡하고 난해한 수많은 방정식으로 얽혀 있는 이슈가 선거제 개편이다. 개편의 핵심 명분은 비례성과 대표성 확대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균형을 해소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비례대표 정수 확대도 주요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를 위해 국회는 30일부터 2주간 5차례 전원위원회 회의를 열고 새 선거제를 논의한다. 전원위는 국회의장을 제외한 의원 299명이 모두 참여해 특정 안건에 대해 토론하는 기구다. 여기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제시한 3개 안을 압축해 단일안을 도출하고 이 안을 다시 정개특위, 법사위, 본회의 순으로 의결해 최종 통과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위에서 의원들 다수가 지지하는 개편안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 직전까지 선거제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될 수도 있다.》●전원위서 ‘단일안’ 합의 처리하겠다지만 전원위에 상정된 안건은 ①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③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세 가지다. ①안은 서울 및 수도권 등 대도시에는 3∼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농어촌에선 지금의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일부 지역구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해당 지역구 의원에겐 상대 당뿐 아니라 같은 당 의원 역시 경쟁자다. 특히 당 지도부 혹은 실세 의원과 인접한 의원들에겐 위협적이다. 국민의힘이 ①안을 제안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 121석 중 104석을 차지하는 등 득표율 대비 의석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나머지 2개 안은 민주당과 정의당이 제안했다. ②안은 한 선거구당 4∼7명을 뽑는 대선거구제로 지역구 선거를 치르고 개방형명부를 도입하는 게 골자다. ③안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대선거구제를 채택한 ②안은 정의당 등 제3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준다. 다만 전체 지역구 253석 중 40%를 차지하는 수도권 의석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내부에선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득이란 의견이 많다. 민주당이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제만 손보는 ③안을 함께 낸 배경이다.●비례대표 확대가 답? 비례성 강화를 위한 비례대표 확대 여부도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의 왜곡 현상을 동반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민주화 후 12대부터 21대 총선까지 평균을 내보면 사표 비율이 무려 49.98%”라며 “50%의 의사는 투표 결과에서 죽어버리기 때문에 ‘우리 진영만 잘 규합하면 이긴다’는 왜곡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원의 비중을 늘리면 과다대표, 과소대표 현상을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다양성이 중시되면서 단순다수제에서 비례대표제로 전환 또는 혼합하는 추세를 보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22년도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00%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스웨덴·네덜란드 등 17개다. 한국, 일본, 독일 등 8개국은 다수대표·비례대표 혼합제를 실시하고 있다.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는 영국,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5곳(하원 기준)이다. 비례대표 의원 수도 상대적으로 한국이 적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하고 있는 일본 참의원(하원)은 지역구(289명)와 비례대표(176명)의 비율이 1.64 대 1이다. 그러나 한국은 5.38 대 1이다. 독일 이탈리아 등의 하원은 비례대표 의원 수가 지역구보다 많다. 정개특위 관계자는 “사표를 줄이고,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비례대표 확대”라며 “전원위에 제출된 3가지 안이 비례대표 확대를 명시적으로 담고 있지 않지만, 전원위 논의 과정에서 이를 포함한 대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정치 양극화 첨병 된 비례대표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동안 공천헌금, 밀실거래 등 여러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비례대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최근 부각되는 논거 중 하나가 이른바 ‘진영 전사론’이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입법에 반영하기 위해 뽑은 비례대표 의원들이 반대로 양극화 정치를 부추기는 각 당의 첨병, 저격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인 2표 정당명부식의 현행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국회부터 비례대표 의원의 80%가량이 재선을 노리고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의 공천을 받은 의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에서 각각 10명이 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출사표를 냈지만 공천을 받은 의원은 각각 5명과 4명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지역구를 노리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더 정쟁에 앞장서는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서울대 한규섭 교수는 “17∼20대 국회에서 처리된 약 300만 건의 표결 기록을 분석한 결과 각 당의 비례대표 의원들이 지역구 의원들에 비해 극단적인 표결 경향을 보였다”며 “비례대표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친위대’ 성격이 강한 것이 수치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역구 출마를 겨냥한 과한 의정 활동이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격한 언사 등으로 논란을 빚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비례대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도 충분히 전문성,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며 “직능을 대표한 입법 활동에 이렇다 할 성과를 낸 비례대표가 얼마나 되나. 비례대표는 결국 지역구 공천을 위한 발판일 뿐”이라고 말했다.●“공천 시스템 투명하게… 정당 개혁 선행돼야” 이번 전원위에서는 비례대표 정수 확대부터 비례대표제 폐지, 공천과 선출 방식을 둘러싼 갖가지 방안이 충돌할 것이다. 각 당별, 의원별 이해관계가 다 다르다는 점에서 19년 만에 열린 전원위에서도 단일안이 도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정계와 학계에선 양극단의 혐오 정치를 바꿀 대안으로 비례대표 확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비례성과 대표성을 기계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금의 비례대표제를 그대로 확대한다면 ‘정책적 대표성’은 축소되고 ‘진영 전사’ 양성 루트만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행 ‘폐쇄형 명부제’는 유권자는 지지하는 정당만 선택하고 당선 순번은 각 당이 정한다. 이를 유권자가 지지 후보까지 선택하고 득표순으로 비례대표를 뽑는 ‘개방형 명부제’로 바꾸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다.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공천 과정 투명화와 구체적인 공천 기준 및 방법 제시 등 정당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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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태 “상대 악마화로 거저먹으려 해… 6共 정치체제 수술해야”[파워인터뷰]

    《국민의힘이 대선 승리 1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 ‘직할 체제’를 완성했다. 당정 일체의 기치 아래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개혁’ 이행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이들 개혁 과제는 세대와 계층 그리고 여야 간에 첨예한 갈등이 불가피한 사안이 대부분이다. “관철하겠다”는 여당과 “막겠다”는 야당은 각각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며 세 싸움에 돌입했다. 대화와 타협, 협치에 대한 기대는 요원하다. 오히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 한 해 여야 관계는 더욱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해 온 유인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75)은 이 같은 극단적 대립 정치에 대해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며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의원들이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민주당 3선 의원을 지낸 유 전 의원을 만나 정치 양극화와 팬덤 정치의 문제점, 그리고 그가 구상하는 해법을 들었다.》●“대통령 일일이 개입하면 협치 멀어져”―국민의힘이 ‘윤석열 당’으로 재탄생했다는 평가다. 여당 전대 어떻게 봤나. “21세기 들어와서 이런 전대는 처음 봤다. 대통령실이 나서서 경쟁 후보들 주저앉히고 억지 춘향으로 만든 당 대표가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엇박자를 내고 반대로 가는 여당은 없다. 여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만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대통령실이 국회와 당의 사안에 대해 일일이 판단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참모 중 누가 더 정치를 잘 알겠나. 여야가 합의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개입하는 순간 협치가 깨진다. 그럼 국회는 있으나 마나 한 것 아닌가.” ―국정 성과를 위해 당정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지 않나. “5년 임기 대통령제에서 집권 2년 반이 지나면 새로운 동력이 안 생긴다. 윤 대통령에게는 지금이 국정 성과를 내기 위한 황금기다. ‘3대 개혁’ 얘기하는데, 국회와 민심의 협조 없이는 하나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한 것이다. 설령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해 과반 의석을 가져간다고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민주당도 그랬다. 민심이라는 게 있다.”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을 얻을 수 있을까. “민주당은 윤 대통령만 믿고 있다. 지금처럼 하면 국민의힘은 어렵다. 강성 지지층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다양성이 보장되는 정당이 건강한 정당이다. 국민의힘이 잘되려면, 개혁보수도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 그들의 의견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얘기 하면 쫓아내고, 내부 총질로 규정하는 정당은 잘될 수 없다.”●“이재명 대표 리더십이 근본 문제”―민주당도 위기 아닌가.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나. “역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다. 대선 패배 직후 당 안팎의 만류에도 인천에서 출마하고, 불체포특권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뒤 말을 바꿨다. 리더십이 생길 수가 없다. 비명계도 검찰이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친명계가 ‘오랑캐가 쳐들어온다’며 모두가 단합해서 싸워야 한다고만 주장할 건 아니다. 유능한 검사들이 저렇게 오래 수사하고도 아직 기소를 못 하고 있다. 법리적으로 따져볼 만한 부분이 꽤 있다. (체포동의안이 또 들어오면)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 약간 모험을 하더라도 사법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도 생기는 것 아니냐. 설령 구속되더라도 지금 처지보다는 명분이 있을 것이다.” ―개딸 등 극단적 지지층에 민주당이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 아닌가. “강성 팬덤의 폐해가 극에 달했다. 극단적 목소리에 당이 이끌려 가면 필패다. 국민의힘도 황교안 대표 때 태극기부대에 당이 끌려갔기 때문에 어려워졌다. 민주당이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등 소장파 의원 모임)를 수용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무서운 정당이 됐을 것이다.” ―친명과 비명 계파 갈등이 심각하다. 해법은 없을까. “개딸도, 수박으로 찍힌 그룹도 헤어질 결심하고 각자 깃발 들고 민심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각자 당을 하면 된다. 지금은 기호 1, 2번 공천을 받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우니까 공천받겠다고, 주도권 쥐겠다고 서로 싸우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유승민 전 의원, 이준석 전 대표와 소위 태극기부대와 영합하는 사람들하고 같은 당 동지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유 전 의원, ‘조금박해’ 같은 의원들이 당을 달리해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이 안 돼도 당을 나가 독자세력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어렵다고 본다. 지금은 당에서 벗어나는 순간 생존이 안 된다. 그래서 다당제로 갈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중도 친화적인 인사들과, 개딸로 통칭되는 강성 인사들과 각각 의석을 나눌 수 있다. 국민의힘의 개혁적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정치 생태계를 먼저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 개편 없으면 나라 미래 없어”―다당제가 되면 정치 문화가 바뀐다는 근거가 있나. “1990년 3당 합당 이전 노태우 정부 때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합의 처리가 많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협치가 이뤄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이 정치적으로는 경합했지만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첨예한 국민적 갈등을 국회가 앞장서서 해결했다. 5공 청문회가 대표적인 예다. 국회에 대한 열화와 같은 국민의 지지가 있었다. 국민이 국회를 혐오하는 지금과는 달랐다. 의원들이 거리에 나가면 사인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같은 제도인데 왜 이렇게 달라졌나. “1987년 이후 36년이 지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윤 대통령까지 8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그사이에 소선거구제와 양당제의 폐해가 쌓였다. 정치 혐오가 낳은 포퓰리즘인 반(反)정치주의에 진보와 보수 모두 찌들어 있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아침마다 하는 회의 공개 발언도 거칠고 저질스럽기 그지없다. 각자 잘하기 경쟁을 해야 하는데 상대를 망가뜨리고 악마화해서 거저먹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비해 의원 개인들의 수준은 높아졌는데 정치 불신은 더 심해졌다. 국회는 국민의 갈등과 갈증을 풀어주고 해법을 도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경제가 잘되더라도 정치가 안 되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 수 있겠나.” ―선거제도가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까. “근본 원인은 선거제도다. 제도가 바뀌면 ‘정치 교체’가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됐는데, 정치는 여전히 4류다. 다당제가 대통령 중심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6공화국 정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할 때가 온 거다. 윤 대통령도 현행 소선거구제는 답이 아니라고 했다. 국회를 다당제로 바꾸는 정치 개혁을 이뤄낸다면 윤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다.” ―중대선거구제가 양당의 기득권을 고착시킬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꼭 중대선거구제로 못 박을 필요는 없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로 들자면 서울을 4개 권역으로 나눠서 의석 일부는 중대선거구제로, 나머지는 소선거구제로 뽑자는 의견도 있다. 경우의 수는 수백 가지가 나올 수 있다. 다당제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지역구가 없어지는 의원들이 생긴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결국 국회의원들이 결심할 수밖에 없다.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선거제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가 구성되고 27일부터 전원위가 열린다. 다수가 선택한 안에 따르겠다는 선언을 하고,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한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어느 때보다 좋은 기회가 왔다. 선거제도 개혁에 국회가 사활을 걸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의원들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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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역사상 최강 야당의 ‘정신 승리’ 정치

    최근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답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헛발질로 계속 점수를 까먹고 있는데 민주당이 그걸 못 받아먹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둘러싼 친윤·반윤 논란,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 윤 대통령의 잇단 설화 등을 보면 그의 말이 아주 터무니없게 들리진 않는다. ‘가마니 전략’을 쓰자는 민주당 내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만히 앉아 정부 여당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자는 주장이다. 이대로 쭉 가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에서도 쉽게 이겨서 정권을 탈환할 수 있다고 내심 기대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인사들이 모이면 등장하는 화두가 “5년 금방 간다” “윤석열 정부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이른바 ‘윤 정부 필패론’이다. 여러 논리가 동원되지만 딱히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당위와 기대, 희망이 강하게 담겨 있을 뿐이다. 당 전체가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라는 정신승리론 또는 운명론에 빠진 듯하다. 지금 정치 현실은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초와 비슷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미국산 쇠고기 파동’으로 크게 흔들렸다. 민주당은 이를 계기로 강경 노선을 고집했다. 의원들은 한미 FTA를 반대한다며 해머를 들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진입했다. 그것이 ‘야당의 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정부 여당에 대한 야당의 동반자 관계는 사라졌고, 여당은 일방통행의 길로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강경 노선을 통해 지지층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핵심 지지층을 강하게 결집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진 2012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은 “팍팍해진 살림살이” “여당의 무능과 독주” 등을 앞세워 ‘정권 심판론’을 외쳤다.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은 “이런 세력에 국회를 맡길 수 없다”는 ‘야당 과반 견제론’을 주장했다. 친이·친박 갈등, 정권 말 피로감 등으로 인해 당시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불리한 선거구도”라고 했다. 결과는 새누리당 152석 과반 의석, 민주당 127석이었다. 투쟁으로 일관한 야당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불안과 불신이 선거구도의 유리함보다 더 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08만여 표 차이로 패했다. 정부 여당 견제는 야당의 책무다. 야당에 대한 존중을 외면하는 집권 세력의 진영 정치도 문제다. 그렇지만 민주당에 더 중요한 것은 169석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아먹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민심이 민주당에 요구한 건 거여(巨與) 민주당에 대한 반성과 변화였다. 권한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던 전 정부 때 의정활동에 대한 결과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대선에서 0.73%포인트의 근소한 차이로 졌다는 점에 안주한 민주당은 반성 모드를 어물쩍 건너뛰고 곧바로 ‘야당 스탠스’로 전환했다. 여당 시절 벌어진, 국민 상당수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의혹들에 대해서도 일단 ‘야당 탄압’ ‘정치 보복’이라고 외치며 장외로 뛰어나갈 태세다. 올해는 전국 단위의 선거가 없는 해다. 노동, 연금, 교육개혁 등의 의제를 정치권이 함께 제시하고 고통스럽지만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하는 시기다. 민주당은 여전히 169석을 가진 제1당이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반대하면 대통령과 정부의 어떤 정책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무조건 비토를 요구하는 극단적 지지층의 논리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거여에서 거야로 바뀐 민주당이 ‘믿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세력인지’ 국민에게 답할 때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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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 저마다 동상이몽[수요논점]

    《선거제도는 정치 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거대 양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양분하는 정치 현실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3당과 4당에게도 당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생 정당,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높아지면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정치 문화가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거대 정당 중진들을 위한 제도로 전락할 것”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 등 반론도 적지 않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둘러싼 쟁점과 도입 가능성을 살펴본다.》● 민주화의 산물 소선거구제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그해 3월 ‘국회의원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지만 당시엔 반대로 중대선거구제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유신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 때까지 9∼12대 총선에서 실시된 중대선거구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당의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위해 도입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함께 ‘87년 체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13대 총선부터 부활한 소선거구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30년 넘게 유지되면서 소선거구제도 폐해가 쌓였다. 승자독식으로 유권자의 표심이 국회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대표성 문제가 제기됐고, 지역감정과 진영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많다. 실제 2020년 21대 총선에 참여한 2874만여 명의 유권자 10명 중 4명(43.7%·1256만7432표)이 던진 표는 ‘사표’가 됐다. 국민의힘은 영남지역에서 55.9%를 득표하고도 영남 65석 가운데 56석(86.2%)을 차지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68.5% 득표율로 호남 28석 가운데 27석(96.4%)을 쓸어 담았다.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니면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 됐다. ‘공천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퍼지며 각 당에선 공천을 좌우하는 몇몇 실세나 극단적 지지층의 눈치만 살피는 기류가 확산됐다. 일각에선 그 근원적 요인으로 소선거구제를 지목하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두 거대 정당이 차지하는 비율이 이번 국회에선 95%까지 갔다. 정당이 양극화되면서 사회도 양극화됐다”며 “중대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양당제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중대선거구제라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선거구제가 모범답안? 2012년 19대 총선에서 전북 전주을에 출마한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정운천 후보는 35.8%를 얻고 민주통합당(민주당의 전신) 이상직 후보(47.0%)에게 밀려 낙선했다. 20대 총선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지역주의에 부담을 느낀 그는 2020년 21대 총선에선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가정이지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현재 3개의 소선거구로 나눠져 있는 전주를 3인 중대선거구제로 개편했다면 민주당의 ‘텃밭’에서도 보수정당 의원이 다시 배출됐을 수 있다. 이처럼 중대선거구제는 △사표 방지 △지역주의 타파 △다양성 보장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중대선거구제가 선거제도의 ‘모범답안’이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안착한 다수의 국가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1928년 중의원 선거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했던 일본도 1996년 소선거구제로 전환했다. 거대 정당의 복수 공천으로 같은 당 후보자 사이에 경쟁이 과열되며 파벌정치, 계파정치, 정치권 부정부패 등의 원인 중 하나로 중대선거구제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또 현행 지역구 2∼5개를 하나로 합치게 되면 필연적으로 선거구 면적이 넓어지고, 유권자 수가 많아진다. 벽보, 공보물, 유세차량 등 더 많은 선거비용이 필요하다. 유권자들 입장에선 후보자 수가 크게 늘면서 후보들의 면면을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인지도가 높은 유명 정치인, 조직을 동원하고 유지할 역량이 있는 중진 또는 거대 양당 후보에게 더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선거구제로 치르는 기초의원 선거 결과를 봐도 지역 구도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실시된 6·1지방선거에서는 기초의원 지역구 1030개 가운데 30개 선거구에서 3∼5인 중대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했다. 기존 2∼4인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가 다양성과 정치적 대표성 확대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30개 구에서 당선된 109명 가운데 국민의힘과 민주당 소속 당선자가 105명으로 96.3%를 차지했다. 소수 정당 소속은 4명에 불과했다. 복수 공천된 거대 양당 후보들을 향한 몰표 때문이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중대선거구제는 양당 독식 체제를 타파하기는커녕 양당의 동반 부패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오히려 의회로 진입한 소수의 극단적 정치세력이 연정을 구실로 큰 정당을 좌지우지하면서 정국을 혼미에 빠뜨릴 수 있다”고 했다. 또 “지금 한국 정치의 당면 과제는 제도 개혁보다 인적 쇄신”이라고 말했다.● 與野 “선거제 개혁” 원론적 동의만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 초 “선거가 너무 치열해져 진영이 양극화되고 갈등이 깊어졌다”며 그 대안으로 중대선거구제를 언급했지만 여당의 반응조차 미온적이다.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있지만 중대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며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여당 내에선 “중대선거구제 논의는 지금 시작하되 도입은 23대 총선부터 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촉발시킨 중대선거구제 논의에 대해 신중론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제3의 선택이 가능한 정치 시스템이 바람직하고 그 방식이 중대선거구제여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22대 총선은 내년 4월 10일 실시된다. 현행법상 선거 1년 전인 4월 10일까지 선거구 획정 등 게임의 룰을 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 모두 현역 의원들의 이해관계와 선거제 개편에 따른 득실 계산이 엇갈리면서 논의는 “정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동의한다”는 원론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선거제도를 크게 흔들 경우 자신의 선거구가 통합되거나 사라지는 현역 의원들이 대거 나오게 된다. 결국 핵심은 현 제도의 수혜자인 현역 의원들의 동의 여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다들 동상이몽이기 때문이다. 현행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위성정당 논란을 빚었던 대목을 수정하는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양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 개편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소선거구제냐 중대선거구제냐의 찬반 논란만 벌이는 것은 2차원적이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과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지방의 대표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행정구역과의 일치 문제는 어떻게 조정할지, 갈수록 심해지는 세대 및 계층 갈등 문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수렴할지 등 보다 입체적이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선거법에 규정된 선거구획정위원회처럼 선거제도 개편 작업을 의원들이 아닌 외부 위원회에 위임하자는 의견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고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제안한 법안에 대해 의원들은 찬반 표결권만 행사하게 하자는 것. 분명한 건 그 정도로 국회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게 선거제도 개편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이다.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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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새 정치 아이콘→직장인으로 바뀐 초선들

    “요즘 초선들은 꼭 직장인 같다.” 최근 만난 한 원로 정치인의 탄식이다. 그는 “초선과 다선의 말과 역할이 뒤바뀐 지금 정당은 건강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 주류 또는 지도부에 대한 심기 경호와 공천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여야 초선 의원들의 행태를 생계에 목매어 승진만 바라보는 직장인에 비유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초선들은 기득권 정치에 맞서는 희망이자 기대주였다. 초선 그룹은 각종 개혁 이슈를 주도하고 당내 쓴소리를 불사하면서 새 정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다. 보수 정당의 경우 2000년 16대 국회의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을 시작으로 17대 수요모임, 18대 민본21 등이 초선 및 소장파 그룹의 명맥을 이어갔다. 민본21엔 권영진 권택기 김성식 김영우 신성범 정태근 주광덕 황영철 의원 등 친이·친박·중립 성향의 의원들이 골고루 참여했고,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여당 내 야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권의 한 인사는 “쟁점 사안에서 당이 보수적 노선을 선택하더라도 초선들이 건전한 비판과 개혁적 목소리를 냈고, 보수의 외연도 확장할 수 있었다”며 “언젠가부터 초선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 전체 의원 115명 중 절반이 넘는 63명(55%)이 초선으로 채워졌다. ‘초선이 최대 계파’로 등극하면서 초선들이 새로운 보수 정치를 이끌 아이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기대했던 존재감은 찾기 어렵다. 오히려 상당수 초선들은 주류 세력의 호위대를 자처하고 있다. 지난달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장에서 김은혜 홍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을 퇴장시킨 이후 주 원내대표 면전에서 불만을 드러낸 것도 초선들이다. 두 수석은 이태원 참사로 158명의 국민과 외국인이 희생된 상황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웃기고 있네’라는 농담 섞인 필담을 주고받았다. 주 원내대표는 두 수석의 동의를 받아 이들을 퇴장시켰다. 당연한 조치였다. 그렇지만 충성 경쟁에 몰입한 일부 초선들은 이를 문제 삼았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사실상 받들고 사는 여당 초선들 못지않게 야당 초선들은 극성 지지층과 당 지도부 눈치만 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지만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초선은 없다. 중진들이 간혹 쓴소리를 낼 뿐이다. 민주당이 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은 물론이고 김민석 전 의원 등도 지금은 기득권이 됐지만 초선 땐 남다른 개혁성과 참신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초선들은 말한다. “정치는 현실이다” “눈 밖에 나면 공천을 받을 수 없다” “쓴소리는 3선쯤 돼서 하면 된다” 등이다. 이해는 간다. 그러나 지독한 이기주의다. 새 정치인을 선택한 유권자의 기대와 달리 공천권자, 극성 지지층의 의중만 살피는 초선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더욱 키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내부에서 자정 기능을 담당했던 초선의 역할이 사라진 각 정당은 대화와 협치는커녕 확증 편향으로 상대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워 간다. 양 진영 지지층의 충돌도 격화된다. 국회 본회의장에 처음 선 초선들은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한다”는 의원 선서와 함께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초선이 자기 목소리를 잃는 순간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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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尹의 오랜 ‘스푸트니크 모멘트’ 구상

    “10년 후인 2032년 달에 착륙하여 자원 채굴을 시작할 것입니다. 2045년에는 화성에 태극기를 꽂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미래 우주경제 로드맵’에서 제시한 대한민국의 미래다. 이 발표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미 의회에서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던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냉전 시기, 소련이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에 이어 1961년 최초의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발사까지 잇따라 성공시키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이에 케네디 대통령은 10년을 내다보고 미국의 국방, 산업, 과학, 연구, 교육 등 국가 역량을 집중해 유인우주선을 개발하는 ‘아폴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키는 쾌거를 이룩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진보에 치우쳤던 학교 현장의 교육사조(思潮), 교육사상의 흐름까지 확 바꿨고 이는 미국 번영의 새로운 밑거름이 됐다. 위기를 드라마틱한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킨 사례를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부르는 이유다. 윤 대통령의 우주경제 구상은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다. 2020년 10월 검찰총장 재직 당시 그는 대구고검·지검 직원 간담회에 참석했을 때 “예전에는 ‘평등한 교육’이 교육 개혁이었다면, 소련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이후에는 ‘과학영재 육성’이 교육 개혁이 됐다”고 말하며 ‘스푸트니크 모멘트’를 언급했다.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한국판 NASA 설립’을 발표했을 때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우주개발을 통한 한국의 산업, 연구, 교육 시스템 개혁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것이다. 대선 전,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은 그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치고 나가는 데 타고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시대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능력과 이를 추진할 리더십을 갖췄다는 얘기였다. 기대에 부응하듯 윤석열 정부는 인수위 때와 출범 초 연금 개혁, 입학연령 5세 하향 등 미래 지향적 정책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나 발표와 동시에 사실상 폐기되거나, 동력을 얻지 못하고 일회성 발표에 그치는 경우가 잦았다. 정교한 계획과 사전 준비 부족 탓이었다. 이번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대통령의 오랜 구상을 참모들은 어떻게 현실화시켰을지 궁금했다. 비슷했다. 10년 후 달 착륙, 23년 후 화성 착륙까지 어떤 프로세스를 밟아 나가겠다는 건지, 그 과정에서 산업과 교육, 연구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찾기 힘들었다. 보도자료를 샅샅이 살펴봐도 화성 착륙까지 왜 23년이 걸리는지에 대한 근거는 “2045년이 광복 100주년”이라는 정치적 레토릭뿐이었다. 국가의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23년간 우주개발 사업’을 발표하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야당과 국민을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임기 초 윤석열 정부는 대단히 불운한 환경에 처해 있다. 야당이 국회를 지배하고 있고, 나라 안팎으로 경제 환경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각 분야에서 개혁에 대한 저항도 거세다. 그렇지만 ‘스푸트니크 모멘트’의 핵심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다. ‘아폴로 계획’의 달성은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과 그를 뒷받침하는 참모들의 정교한 실행계획, 국민의 전폭적 신뢰라는 3박자가 맞춰진 합작품이었다. 여권 모두 더 절박해져야 한다. 정부 출범 6개월 남짓 지났지만 12월이 지나면 ‘2년 차 정권’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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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예산 공포, ‘예고된 참사’ 다가가는 與野 [오늘과 내일/길진균]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보이콧으로 시작된 2023년 예산안 심사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한두 해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역대 최악이다. 국회와 정부 안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에 해당하는 준예산 사태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 제동 걸기에 본격 돌입했다. 10일 각 상임위를 통해 대통령실 신축 관련 직접적, 부수적 예산을 최대한 삭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예산도 전액 삭감하기로 했다. 반면 새 정부 들어 축소된 지역화폐, 노인 일자리, 소상공인 지원 관련 예산은 되살리겠다고 했다. ‘윤석열표’ 예산안을 폐기하겠다는 정부 여당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예산 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협상용 엄포로 치부하기엔 상황이 예년과 사뭇 다르다. 2014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 규정에 따라 11월 30일까지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12월 1일엔 정부가 국회로 제출한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그대로 부의된다. 야당으로선 자칫 손 한번 못 대고 정부안을 그대로 통과시켜 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엔 야당도 데드라인 직전이면 마지막 타협안을 내놓곤 했다. 올해는 다르다. 정부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169석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를 단독으로 부결시킬 수 있다. 만약 정부안이 상정됐다가 부결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부결된 안건은 회기 중 다시 제출되지 않는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정부는 새로 예산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여야 대치 속에 연말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내년 1월 1일부터는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발생한다. 헌법은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뒀다. 다만 헌법 제54조 3항은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 및 운영’, ‘법률상 지출 의무의 이행’ 등 예외적 항목에 대해서만 준예산 집행을 허용한다. 내년 예산안은 639조 원 규모다. 국회 예결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40%가 전년도에 준해서 집행할 수 없는 재량 예산이다. 정부가 준비한 위기극복 예산이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예산, 상당수 약자 보호를 위한 복지 예산은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공무원 인건비 등 최소 경비만으로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 그동안 한 번도 준예산을 편성한 적이 없어 참고할 선례도 없다. 각종 긴급 예산을 집행하려고 해도 법적 책임을 둘러싸고 일선 부처에서 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검토한 듯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중앙정부의 준예산에 관해서는 집행 방식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경고했다. 내년 예산은 다가올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마중물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판이다. 그런데도 해법을 도출해야 할 여야는 “누가 이기는지 보자”며 나라 살림을 볼모로 붙잡고 있다. ‘예견된 참사’ 앞에서도 정치적 셈법만 앞세운다. 두 눈 뜨고 참사와 부딪칠 위기다. 데드라인까지는 3주도 채 남지 않았다.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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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곳으로 급증한 여론조사기관과 ‘정치의 위기’[오늘과 내일/길진균]

    여론은 존재할까? 아니면 만들어질까? 독일 나치의 선동가인 괴벨스는 “여론조사라는 것은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고도 했다. 1세기 전 그는 이미 여론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21일 현재 선관위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등록된 여론조사 기관(회사)은 92개다. 올해 들어 12곳이 신규 등록했고 4곳이 취소됐다. 선거 등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공표하는 회사가 그 대상이다. 등록제도가 시행된 2017년(60개)에 비해 5년 만에 53%나 늘었다. 여론조사 회사가 급증한 일차적 이유는 정치와 행정에서 그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선거와 경선 과정에서 여론조사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절차가 됐다. 행정부도 정책 입안 단계에서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명분으로 여론조사를 수시로 실시한다. 이같은 흐름속에 14일 방송인 김어준 씨가 대표인 ‘여론조사꽃’이 여심위에 등록했다. 김 씨의 여론조사 회사 설립이 논란이 된 것은 정치권에서 여론조사가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보화 기술과 통계학의 발달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모든 응답자는 복잡한 정치 또는 정책 현안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확실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응답자는 진심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 침묵의 나선이론이다. 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가 ‘밴드왜건(편승) 효과’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밴드왜건 효과는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대세를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 현상이다. 현실 정치에서 여론조사의 폐해는 여기서 발생한다. 밴드왜건 효과는 특히 무게추 역할을 하는 중도·무당층 유권자들의 선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여론조사 자체가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각 정당 또는 정파는 주장하고 싶은 이슈에 대해 계속 여론조사를 돌리고, 일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 내용을 확산시킨다. 여심위가 있지만 각 정당 및 후보 지지율이 아닌 정책 이슈에 대한 설문과 공표의 경우엔 감독 및 심의, 제재 대상이 아니다. 양곡관리법 같은 첨예한 갈등이 뒤따르는 이슈에 대해서 대놓고 본인이 속한 진영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선택적으로 발표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잘못된 여론조사는 국가적 위기와 연결될 수 있다. 20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사임으로 영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근본적인 이유가 브렉시트(Brexit)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여론조사는 다수의 영국민이 유럽연합(EU) 잔류를 원한다는 전망이 많았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국민투표라는 승부수를 던졌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역시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캐머런 총리의 완전한 오판이었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파악하고, 이를 국정의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첨예한 이슈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되고, SNS상에서 확대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학자, 전문가, 정치인들은 국내의 여론조사와 공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론조사가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 등 새로운 해법을 도출할 때가 됐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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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대통령 “3축 체계, 우려 평가 많지만 유효한 방어체계”

    “3축 체계는 유효한 방어 체계다.” 윤석열 대통령은 14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전통적으로 준비해온 3축 체계라는 것이 언론에선 굉장히 무기력해졌다 평가도 하는데 그건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발생한 우리 군의 현무-2C 탄도미사일 낙탄 사고, 에이태큼스(ATACMS) 전술지대지미사일 추적 실패 등 군의 잇단 미사일 발사 작전 실패로 허점이 노출된 3축 체계에 대한 윤 대통령이 직접 방어하고 나선 것. 윤 대통령은 또 “어느 나라도 적이 선제공격하면 완벽하게 사전 대응하거나 100% 요격할 수는 없다. 먼저 공격하면 맞을 수밖에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면서 “그러나 그건 참혹한 결과를 각오하고 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대량 응징 보복이라고 하는 3축 체계의 마지막 단계도 사전에 전쟁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상당한 심리적 사회적 억제 수단이 된다”고 했다.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한국형 3축 체계는 선제 타격을 의미하는 ‘킬체인(Kill Chain)’, 북한이 쏜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고위력 탄도미사일을 대량으로 발사해 북한을 응징하는 ‘대량 응징 보복(KMPR)’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한미 연합군의 탐지와 요격이 어려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새로운 전술핵 투발 수단을 속속 개발한데 이어 킬체인의 핵심 전력인 현무-2C와 에이태큼스 발사 과정에서 허점까지 드러나면서 3축 체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12일 발사한 장거리순항미사일과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은 “레이더망으로 얼마든지 적발이 가능하고 (북한의 순항미사일은) 비행기 정도의 느린 속도이기 때문에 요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도미사일에 비해선 위협과 위험성이 조금 떨어진다”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는 순항미사일을 쏜 것은 발표 자체를 안 한다”고 설명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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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李의 입법 독주와 불붙은 거부권 릴레이

    대선 이후 ‘시행령 통치’ 등을 둘러싸고 지속되던 행정부와 입법부의 신경전이 정기국회 한복판에서 정면충돌했다. 169석 과반 의석을 앞세워 입법 독주를 이어오던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통과되는 순간 국민의 뜻을 각각 위임받은 대통령과 국회의 양보할 수 없는 전쟁으로 비화한다. 여당의 반대도 크지만, 그 후폭풍과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발의는 종종 있었지만 과거 ‘여소야대’ 지형에서도 야당은 강행 처리에 신중을 기했다. 이번을 제외하고 현행 헌법(1987년) 체제 35년 동안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것이 3번밖에 없었던 한 배경이다. 새 정부 출범 4개월 남짓 만에 민주당이 해임건의안을 불쑥 통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거부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법률안을 대상으로 한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나 예산안은 그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의 ‘공식 건의’를 대통령이 거부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성격을 띤다. 정국 경색을 피해 가기 어렵다. 당장 정부와 여당은 “입법권 남용”, 야당은 “국민 무시”라며 맞섰다. 당분간 여야 협치나 소통은 물 건너간 셈이다. 이번 해임건의안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주요 입법 과제로 꼽고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초과 생산된 쌀의 시장격리 의무화를 규정한 양곡관리법도 마찬가지다. 극한 대치 상황에서 첫 물꼬가 터진 만큼 다른 현안에서 ‘야당 강행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 수순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폭탄이 있다. 민주당이 당론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이다. 시행령 통치를 막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도 있다. 민주당이 이들 법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정치권을 향해 타협, 소통, 협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대통령실 생각은 다르다. 민주당도 오히려 여당이 받기 힘든 입법안을 며칠에 한 건씩 추가로 내놓으며 윤 대통령과 여당을 압박하고 있다. 여권은 민주당의 강공 드라이브에 의도가 있다고 의심한다. 한 여권 인사는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정치적 타협을 명분 삼아 윤 대통령과의 ‘딜’을 염두에 두고 무리한 입법안을 계속 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개별 회담이나 물밑 협상은 없다는 취지다. 민주당 역시 “22대 민생 주요 입법 과제들을 차근차근 추진하겠다”며 연일 강공을 다짐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현행 헌법체제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13대 국회 당시 7건이다. 노태우 정부 때다. ‘여소야대’ 상황이었던 당시 정부와 국회의 극한 대치는 3당 합당이라는 정계 개편의 불씨가 됐다. 노 대통령은 정국 주도권을 상실했고,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그나마 그때 경제는 호황이었다. 지금은 고물가, 주가 하락, 기업투자 축소 등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모두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나서야 하지 않을까. 경고등은 이미 곳곳에서 번쩍이고 있다.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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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똑같은 ‘오만의 위기’가 아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에게 531만 표 차이로 압승했다. 이어진 2008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153석)과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등 범보수 세력은 국회 185석을 차지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여권은 ‘고소영’ 인사,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등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 25개 구청장 중 4곳만을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민심이 가장 싫어하는 게 오만이다. 역대 대선과 정권 5년을 보면, 오만한 태도 때문에 대선에 승리하고도 짧은 시간 만에 집권세력이 스스로 미래를 걷어차는 일이 반복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폐족(廢族)’이라고 했던 친노(친노무현) 진영은 10년 만에 문 대통령 당선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그냥 집권한 게 아니라 557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승리했다. 이어진 2020년 총선에서도 대승했다. 내부에서 ‘20년 집권’이라는 오만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캠코더’ 인사, 임대차 3법 통과 등 독주가 이어졌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기로에 섰다.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다짐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지만 취임 100일 만에 민심은 등을 돌리려 하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 민생 살리기, 미래를 다시 세우는 정책 수립을 위해 온 나라가 힘을 모아도 불안한 시기에 집권세력이 염치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탓이 크다. 급기야 직전 여당 대표는 대통령을 향해 공개 비난을 시작했고, 자당과의 법적 투쟁에 돌입했다. 대통령실의 인사 참사와 정책 혼선도 반복되고 있다. 윤 대통령을 선택했던 지지자들조차 “이런 사람들을 계속 믿어도 되나” 하는 신뢰의 위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늘 요동치는 게 민심이라지만 윤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 때와 크게 다르다. 이명박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후 압도적 총선 승리로 여의도 세력을 대거 물갈이 시킬 수 있었다. 정적(政敵)과 비토 세력이 힘을 잃었고, 새로 공천을 받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단단한 다수파 친위세력을 구축했다. 불통 속 정책 추진과 무리한 인사를 감행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그런 정치적 조건이기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지지층 구조도 다르다. 이념적 지역적 성향이 강했던 과거 정부와 달리 서울 출신인 윤 대통령을 선택한 유권자들 가운데에는 비판적 지지가 상대적으로 많다. 지지층 이동이 쉽다는 뜻이다. 하루빨리 민심을 되찾지 못할 경우 어느 순간 정권 중반부터 고립무원에 처할 수 있다. 여의도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뜻을 배제한 정계 개편, 개헌 등에 나서지 말라는 법도 없다. 현실화될 경우 윤 대통령의 집권 하반기 국정 장악 능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내는 것은 정치인의 숙명이다. 집권 초 불안정한 민심을 반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국민은 그래도 최소 연말까지, 적어도 1년은 지켜볼 것이다. 연말 전당대회를 통해 당을 정비하고, 대통령실과 내각을 보강하면서 낮은 자세로 소통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치는 단순하다. 민심을 잡고 지지 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이제 윤 대통령 자신에게 달렸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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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문제는 경제’, 기로에 선 민심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30년 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등장했던 슬로건이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된다. 1992년 미국 대선, 걸프전 승리에 안주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을 앞세운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배하며 재선에 실패했다. 3월 대선 승리와 6월 지방선거 완승을 이끌어낸 윤석열 대통령도 경제 위기 속에선 민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뒤따른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사방에서 먹고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넘쳐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를 기록했다. 전기요금 억제, 유류세 할인 등 그동안 억눌러온 물가 정책을 고려할 때 앞으로 더 오를 일만 남았다. 여기에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금융위기 때처럼 돈을 풀어 대처하기도 어렵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오히려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할 판이다. 우리 경제가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에 민심은 요동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경제 위기 수습책을 제시하면서 비상경제정부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연일 민생 현장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경제 위기 극복의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대응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공개적인 다짐과 그들의 행태가 딴판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제 위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대책을 세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 경제 위기는 상수(常數)다. 변수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이끄는 대통령과 여권의 리더십, 즉 정치다. 그런데 여권은 넋이 나간 듯하다. 인사 파문에 이어 이준석 당 대표 ‘궐위’, 대통령과 원내대표 간 문자메시지 논란까지 국민은 여권의 어이없는 행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 사이 국정동력을 뒷받침하는 대통령 지지율도 악화 일로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80일 만에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한국갤럽).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윤 대통령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하락한 사례는 없었다. 위기 상황일수록 지도자는 국민에게 자신을 믿고 따르면 무난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지금의 혼란은 일시적인 상황이고, 위기는 함께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윤석열 정부를 바라보는 민심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여당은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국민이 화가 난 것은 위기 속에서도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는 대통령과 여당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다. 매끄럽지 않은 해명으로 잡음이 이어지곤 했다.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국민과의 허니문 기간을 갖지 않은 정권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제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이다. 지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적 채용 논란, 메시지 관리 미흡, 여당 내분 등 정치의 위기는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따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마침 여당은 새 리더십 구축에 나섰다. 대통령도 필요하다면 도어스테핑이 아닌 정식 기자회견을 열어야 한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더 절박한 자세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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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윤석열 대통령의 가위바위보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이나 각종 회의에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볼 때면 발언 못지않게 그의 손을 주시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대화할 때 동작을 많이 쓰는 편이다. 감정에 따라 손 모양이 달라지곤 한다. 5일 오전 출근길엔 ‘가위’ 손동작이 등장했다. 연이은 장관 후보자 인선 논란과 관련해 ‘사전에 검증 가능한 부분들이 많지 않았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자 그는 엄지와 검지를 편 가위 모양의 손을 치켜세우며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면서 날을 세워 반문했다.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불편한 심경, 역정이 드러났다”는 언론과 야당의 비판이 이어졌다. 한 여권 인사는 “언론을 향해 ‘바위’가 아니라 ‘가위’를 내서 그나마 다행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윤 대통령이 발언에 강한 분노나 다짐이 담겼을 때 등장하는 손동작은 주먹이다. 지난달 23일 출근길, 경찰의 치안감 인사 정정 사태 때 그는 취재진의 질의에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며 “중대한 국기문란”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어이없는 과오” 등 원색적인 표현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김창룡 경찰청장은 임기 한 달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교체됐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나의 메시지다. 국정을 책임진 막중한 역할과 권한 때문이다. 대통령실 직원들은 매일 아침 도어스테핑 때 나타나는 그의 손동작을 ‘대통령의 가위바위보’라고 부르며 해당하는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추정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처음 겪는 새로운 정치실험이다. 이를 둘러싼 논란도 크다. 여권 내부에서는 날것에 가까운 대통령의 거친 메시지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통령실로 전달되기도 했다. 대통령과 취재진 사이에 1분 안팎의 짧은 시간 동안 오고 가는 단문 단답은 분명히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주요 안건과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답변이 장관의 존재감을 흐리고 있다거나, 언론플레이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소통에 목말랐던 국민에게 윤 대통령의 적극적 소통은 반길 일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둘러싼 핵관(핵심 관계자) 또는 측근들의 ‘전언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실험이기도 하다. 특히 불편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특유의 진솔한 화법으로 대답을 회피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8일 재개됐다. 사흘 만에 출근길에 취재진 앞에 선 윤 대통령은 한결 유연했다. 외가 쪽 친척의 대통령실 근무 논란에 대해서는 “동지”라는 설명과 함께 손바닥을 편 채로 손을 내미는 ‘보’ 손동작도 선보였다. 대통령의 손동작 하나가 백 마디 말을 대신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자신의 소통 스타일을 만들어 내면 된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지는, 새로운 한국의 정치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이 소통에서도, 그 결과에서도 제대로 해내면 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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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장 없는 제헌절 고민하는 국회[오늘과 내일/길진균]

    국회 사무처는 한 달 후로 다가온 다음 달 17일 제헌절까지 국회의장이 선출되지 않을 경우 경축사를 누가 할지에 대해 최근 내부 검토를 했다. 국회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박병석 전 의장 또는 최다선 의원 중 한 명이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사무처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과거 사례를 일단 살펴본 것”이라고 했다. 의장단도 상임위원장단도 상임위원도 없는 국회가 오늘로 벌써 19일째를 맞고 있다. 사실상 대화마저 단절된 여야의 힘겨루기 속에 국회 안에선 제헌절 기념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국회의장 없이 제헌절 행사가 진행된 사례는 헌정사상 딱 한 차례 있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김종필 국무총리 서리 인준 문제 등으로 여야 간 냉전이 이어졌던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때다. 당시엔 직전 국회의장인 김수한 한나라당 의원이 대신 경축사를 했다. 15대 후반기 박준규 의장은 그해 8월 3일에야 선출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비슷한 시점에 시작한 21대 후반기 국회 역시 시작부터 ‘입법부 공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의장으로 김진표 의원을 낙점했지만, 의장 선출이 원 구성 협상과 결부되면서 좀처럼 돌파구가 열리지 않고 있다. 상임위가 배정되지 않은 의원들은 역할이 없는 무임소(無任所) 상태다. 국회 정상화의 시급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복합위기에 빠진 경제는 거의 모든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비상경제대응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각종 대응책을 입법으로 현실화시켜야 할 여야는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물가 안정과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인세 인하, 고유가 수습 방안인 유류세 인하, 화물연대 파업 종결에 따른 후속 조치인 안전운임제 관련법 개정 등은 국회의 입법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를 논의하고 처리할 상임위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강행해도 이를 보고하고 논의할 국방위, 정보위도 없다. 지금의 갈등 상황은 민주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20대 국회까지 ‘원내 1당 국회의장, 2당 법사위원장’이란 관례가 이어져 오며 자연스레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다수당의 입법 폭주를 막고, 협치를 통해 입법부를 운영하기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전엔 의장과 법사위원장을 같은 당 출신이 맡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76석을 차지한 뒤 국회의장과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해 버렸다. 이후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쥔 민주당은 검수완박 등 이른바 강성 지지층이 원하는 법들을 힘으로 통과시켰다.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거대 의석만 믿고 지난 2년간 입법 독주를 했기 때문에 3월 대선에서 지고, 6월 지방선거에서도 연이어 참패했다고 불 수 있다. 대선 때 민주당은 1600만 명이 넘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선 지지자의 40%가 투표를 포기하거나 다른 후보를 지지했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본 정치로 인해 지지 기반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 패배 이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운명이 바뀔 것이다. 말로만 하는 반성이 아닌 행동을 보여줄 때가 됐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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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3860명, 우리가 뽑는 지방의원 알고 계십니까

    3750명. 4년 전인 2018년 6월 13일 우리가 뽑은 민선 7기 지방의원 수다.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이 각각 824명, 2926명이다. 직접 투표로 선출된 지역 일꾼들이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곳의 지방의원이 누구인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심지어 투표는 했지만 그 결과조차 모르는 유권자가 상당수다. 4년 전 선거에서 서울시의회는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110석 가운데 102석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92.7%를 가져간 셈이다. 야당은 자유한국당 6석, 바른미래당 1석, 정의당 1석에 불과했다. 경기도의원 142석 가운데 민주당 소속은 135명이 뽑혔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시의회 의장, 부의장 2명은 물론이고 11개 상임위원장 모두를 민주당이 독식했다. 민주당 의원들로만 구성된 상임위도 생겼다. 야당은 의석수 부족으로 협상을 위한 교섭단체조차 꾸리지 못했다. 모든 의사 진행과 의결이 사실상 ‘민주당 원하는 대로’ 이뤄졌다. 경기도의회도 사정이 비슷했다. 지방의회의 ‘1당 독주’ 문제는 막연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서울시의회만 보면 110명의 시의원이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을 합쳐 한 해 44조 원에 이르는 살림을 심의 및 감시한다. 1인당 평균 4000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셈이다. ‘감시와 견제’라는 의회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렵다. 지방의회 선거에 대한 무관심 속에 유권자들이 첫 번째 투표용지부터 끝까지 내리 ‘줄투표’로 선택해 낳은 결과다. 2008년 출범한 민선 4기 때도 한나라당이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모두 석권하고 시의회 106석 중 102석을 차지한 사례가 있다. ‘1당 독주’ 속에선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벌어지곤 한다.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의장 또는 위원장이 시장의 발언 중지와 퇴장을 명할 수 있고, 사과 뒤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시의회 기본 조례’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로 비유하자면 국무총리가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과 언쟁을 벌였을 때 국회의장이 총리에게 퇴장을 명할 수 있고, 이후 ‘공개사과’를 한 뒤에야 다시 국회에 나올 수 있게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시정질문 도중 오세훈 서울시장이 중도 퇴장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오 시장은 민주당 소속 이경선 시의원이 사회주택 문제와 관련해 ‘오세훈TV’ 내용을 지적하면서도 자신에게는 발언 기회를 주지 않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퇴장했다. 시의회의 ‘오세훈 길들이기’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이 조례안이 상임위를 통과한 것은 90%가 넘는 절대 다수를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 조례안은 ‘시의회의 과도한 입법권 남용’ 비판에 휩싸였고, 올해 2월 ‘사과 명령’ 조항은 삭제된 채로 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선 4기 때는 한나라당 소속 서울시의원 28명이 후반기 의장 선거에서 뇌물수수 혐의로 무더기로 기소되는 등 ‘1당 독주’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기 일쑤였다. 해법은 있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주민들의 자질에 달렸다”고 했다. 선거를 앞두고 각 가정에 배달되는 선거공보물이나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경력·재산·병역·납세·전과기록 등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살펴보며 도덕적 흠결은 없는지, 공복(公僕)으로서의 준비는 돼 있는지 꼼꼼히 따져 부적격 후보를 가려내면 된다. 3860명. 6월 1일 우리가 새로 뽑는 민선 8기 지방의원 수다. 좀 더 나은 인물, 좀 더 나은 지방자치의 출발은 유권자들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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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커지는 핵광기, 김정은·푸틴의 전술핵 사용 위협

    러시아군은 4일 발트해 인근 칼리닌그라드에서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이스칸데르 단거리탄도미사일 공격 시뮬레이션 훈련을 처음 실시했다. 우리 군과 정보 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핵전쟁 발발 가능성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제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과 우크라이나 당국도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핵은 한동안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간주됐다. 도시 또는 국가를 소멸시킬 수 있는 전략핵무기 사용은 상대 국가 또는 상대 진영의 보복 핵공격을 불러온다. ‘공포의 균형’이 이뤄졌다. 이 같은 국제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발표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본 핵전쟁의 문턱’ 보고서에서 “핵전쟁 가능성은 요원한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76년간 유지돼 온 핵 금기마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썼다. ‘전술핵’이 핵심이다. 전술핵은 공멸을 감수해야 하는 전략핵보다 파괴력이 낮지만 핵무기 사용 조건을 완화시켰다. 핵을 사용 가능한 무기로 만든 셈이다. 작다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 히로시마 원폭의 폭발력 절반에 해당하는 전술핵미사일이 대도시에서 터지면 수십만 명이 죽는다. 사용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해 국제사회는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실제 핵미사일을 쏜다고 가정했을 때, 뚜렷한 대비책도 없다. 이때다 싶었는지 북한 김정은은 푸틴을 따라 하듯 연일 레드라인을 넘나들며 핵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핵심은 역시 전술핵이다. 지난달 25일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북한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국가 근본 이익 침탈 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핵 사용 조건을 확장했다.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눈길이 쏠렸지만, 이날 열병식 무대에 등장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은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미사일이다. 김정은은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현대전에서 작전임무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 계획을 밝혔다. 이후 북한은 전술핵을 장착할 수 있는 단거리탄도미사일, 방사포 등 다양한 투발 수단을 시험 발사했다. 모두 남한을 겨냥한 무기 체계다. 북한은 또 이달 중순 7차 핵실험을 통해 ‘핵 소형화’를 거친 전술핵탄두의 무기화를 최종 검증할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예상하고 있다. 전술핵의 전력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전술핵은 침공 억제를 위한 보복 위협용이 아니다. 실전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실제 운용이 가능한 전술핵무기를 배치 완료한 북한이 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을 꺼냈을 때 우리는 적절한 대응 방안이 있을까. 북한의 오랜 공갈 협박에 우리 사회엔 “설마 쏘겠어”라는 내성이 쌓인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 핵 비확산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실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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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길진균]“폼 잡지 않겠다” 했던 MB의 다짐

    “5년이 금방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괜히 폼 잡다가 망치지 않도록 하겠다.” 2007년 12월 27일. 대선 승리 직후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이 다니던 소망교회에서 열린 당선 축하 예배에 참석했다. 이 당선인은 “국민을 섬기며 잘해 보이겠다”며 이같이 다짐했다. 겸손한 그의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냈다. 그 다짐대로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일하는 인수위’, ‘섬기는 인수위’를 표방했다. 이 당선인은 국민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1월 1일에도 출근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청계천 신화를 이뤄낸 추진력답게 쾌도난마식 행보가 돋보였다. 전남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가 그의 언급 이틀 만에 뽑혔다. 사회 곳곳을 틀어막고 있는 난제들이 확 뚫릴 것 같았다. 새 권력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 그의 시원시원한 행보에 호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고교 영어 몰입교육 등 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뜬금없는 ‘혁신안’이 이어지면서 국민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실력이 검증된 전문가 그룹을 추구했던 그의 첫 내각은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논란에 휩싸였다. 이 당선인 스스로 키운 위기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센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당선인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때때로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내곤 한다. 의견 충돌로 청와대를 스스로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수위에선 누구도 당선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섣부른 조언 한마디 때문에 한 달 후면 갈 수 있는 장관, 차관, 청와대 참모 자리를 걷어찰 순 없기 때문이다. 인수위 기간 동안 당선인 주변에서 합리적 토론, 민주적 소통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MB의 시원시원한 결단이 독단으로 비치기 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 만인 2008년 4월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미국산 쇠고기 자체보다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정교한 정책수립 과정이 생략된 것이 문제였다. “내가 미국에서 많이 먹어봐서 잘 안다”는 식으로 내려진 정책결정은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렀다. 문재인 정부 역시 4년 내내 “우리는 옳다”는 독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뿌듯해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낳은 현실은 부동산값 폭등이었고, ‘벼락거지’의 양산으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청년, 중산층, 서민들은 한순간에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 후인 2008년 10월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국민과의 소통에 목이 말랐다”고 했다. 그는 임기 5년 중 109번의 라디오 연설을 했지만 한번 ‘불통’으로 짜인 프레임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변화의 의욕이 넘쳐 주변을 보지 않고 과속하게 되면 순식간에 독주·독선이라는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된다. 지난달 18일 출범한 윤석열 인수위는 이제 절반의 시간이 지나갔을 뿐이다. 5월 10일 출발점 앞에 서기 전에 다시 한번 제대로 점검을 해야 한다. 5년 금방 간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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