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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창고에 보관해 둔 현금 68억 원이 사라졌는데, 경찰에 붙잡힌 절도범은 ‘창고 관리자’였다. 이 관리자가 “40억 원만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경찰은 나머지 28억 원의 행방과 고액의 현금이 창고에 보관된 경위 등을 수사 중이다. 10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근처의 한 무인 임대형 창고에 침입해 다른 사람의 창고에 보관돼 있던 현금 최소 40억 원을 훔친 40대 남성을 야간방실침입절도 등 혐의로 체포해 구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는 해당 창고업체의 중간 관리자로, 거액의 현금이 보관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는 지난달 12일 오후 7시 4분경부터 13일 오전 1시 21분경까지 돈을 빼낸 뒤 같은 층에 있던 자기 아내 명의의 다른 창고에 보관했다가 15일 여러 차례에 걸쳐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한 건물 창고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는 이 과정에서 범행을 감추기 위해 창고 폐쇄회로(CC)TV 하드디스크도 훼손했다. 경찰은 범행 2주 뒤인 지난달 27일 피해자로부터 “캐리어 6개에 나눠 창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 약 68억 원을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금이 들어 있던 캐리어 안에는 A4용지가 채워져 있었고 ‘내가 누군지 알아도 모른 척하라. 그러면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란 메모도 들어 있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약 3주 만인 2일 경기 수원시의 한 거리에서 피의자를 붙잡았다. 부천의 건물 창고에서는 피해 금액 중 39억2500만 원을 발견해 압수했다. 경찰은 이 돈 외에도 피의자가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 훔친 돈 중 9200만 원을 지인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 중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절도 금액은 총 40억1700만 원으로, 애초 피해자가 주장한 ‘68억 원’과는 차이가 크다. 경찰은 창고에 거액의 현금이 보관된 경위도 함께 수사 중이다. 68억 원이라는 큰돈을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자신의 집 금고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쓰는 무인 창고에 보관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본인을 자영업자라고 밝힌 가운데 현금 출처를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금 출처가 확인돼야 돈을 피해자에게 돌려줄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금이 범죄 수익금인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과 관련된 피의자의 어머니 등 여성 2명을 추가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40대 남성을 12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경찰이 ‘즉석복권 인쇄 오류’ 사건과 관련해 이숙연 대법관의 배우자인 조형섭 전 동행복권 대표를 검찰에 재송치했다. 10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복권 및 복권기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조 전 대표를 이달 초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조 전 대표는 2021년 9월 즉석복권 ‘스피또1000’ 제58회 복권 6장의 육안상 당첨 결과와 판매점 시스템상 당첨 결과가 일치하지 않자 오류로 보이는 복권 20만 장을 회수하기 위해 복권 정보를 이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시 동행복권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복권을 추려 회수하는 과정에서 해당 회차의 당첨 복권 정보와 유통 정보를 이용한 것을 복권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두 정보를 모두 파악하면 당첨 복권이 어디서 판매됐는지 알 수 있는데, 복권법 제5조의 2는 직무상 알게 된 복권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누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6월 제보자 고발로 수사에 착수한 뒤 5월 31일 조 전 대표 등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서울중앙지검은 보완 수사를 요구했다. 이 대법관은 후보자였던 7월 경찰 수사에 대해 “(남편의) 4개 형사사건 모두 복권사업 입찰 탈락자 등에 의해 고소·고발이 이뤄졌지만, 이 중 3건은 이미 무혐의 등 불기소로 확정됐다”고 해명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무인 창고에서 남이 보관해 둔 현금 40억 원을 훔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10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근처의 한 무인 임대형 창고에 침입해 다른 사람의 창고에 보관돼있던 현금 40억 원을 훔친 40대 남성을 야간방실침입절도 등 혐의로 체포해 구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는 해당 창고업체의 중간 관리자로, 거액의 현금이 보관된 사실을 우연히 알게됐다. 그는 지난달 12일 오후 7시 4분경부터 13일 오전 1시 21분경까지 돈을 빼낸 뒤 다른 칸 창고에 보관했다가 15일 여러 차례에 걸쳐 경기 부천시의 한 건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범행 2주 뒤인 지난달 27일 피해자로부터 “캐리어 6개에 나눠 창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 약 68억 원을 도난당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현금이 들어있던 캐리어 안에는 A4용지가 채워져 있었고 ‘내가 누군지 알아도 모른 척 하라. 그러면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란 메모도 들어 있었다.경찰은 사건 발생 약 3주 만인 2일 경기 수원시에서 피의자를 붙잡았다. 부천의 건물에서는 피해 금액 중 40억1700만 원을 발견해 압수했다.피해자는 68억 원을 도난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발견된 것은 40여 억 원 뿐이다. 나머지 28억 원의 행방은 오리 무중이다. 경찰은 사건과 관련된 2명을 추가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12일 피의자를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길 예정이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초등학생 딸이 ‘스웨덴 젤리’를 사달라길래 봤더니 해외 직구로 6만 원이나 하더라고요. 어떤 성분이 들었는지 알 수 없으니 걱정이 됐죠.”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정모 씨(42)는 최근 초등학생 1, 3학년 두 딸이 사달라고 한 간식을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450g당 6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제품이었던 것. 정 씨는 “아이들이 유독 유튜브 영향을 많이 받는데 (유튜버들이) 신뢰할 수 없는 제품을 구매하도록 부추기는 게 아닌가 싶다”며 걱정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스웨덴 젤리’, ‘두바이 초콜릿’ 등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는 해외 간식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판매자로부터 직접 제품을 받는 해외 직구 식품은 정식 수입이 아닌 탓에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내에 들어온 해외 직구 식품 10개 중 1개꼴로 위해물질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젤리 열풍… 직구 간식 안전성 우려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스웨덴 젤리’는 마시멜로와 껌이 섞인 식감이라며 유튜브와 틱톡 등을 통해 유명해졌다. 실제 해당 제품을 구매해 후기를 남긴 한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7일 기준 148만 회를 넘겼다. 앞서 SNS에서 화제였던 아랍에미리트(UAE)산 ‘두바이 초콜릿’과 이란산 ‘라바샤크(라바삭)’ 등의 후기 영상들도 조회수 100만 회를 넘기며 여전히 관심을 끌고 있다. 이러한 해외 직구 간식은 국산 대비 20∼30배 비싼 가격이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탓에 정 씨처럼 구매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경기 수원시에 사는 이모 씨(45)는 “초등학생 4학년 딸이 ‘스웨덴 젤리’에 꽂혀 있는데 못 사주겠다고 하니 용돈으로라도 사 먹겠다고 한다”며 “가격이 과할 뿐 아니라 성분을 신뢰할 수 없어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가소비용으로 국내에 반입하는 식품은 판매용 수입 식품과 달리 안전성 검사 의무가 없다. 구매자가 해외 판매자로부터 직접 제품을 받아 섭취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부정 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식품을 국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해 안전성 검사를 하고 있다. 식약처의 검사에선 적지 않은 불량 식품이 적발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해외 직구 식품 1만2030건 중 1123건(9.3%)에서 식품 사용 불가 원료 등이 검출됐다.● 원재료 직구해 만들어 파는 2차 시장도 성행해외 직구 간식들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 없는 원재료를 해외 직구로 들여와 간식을 직접 만들어 파는 사례까지 있다. 7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 등을 살펴본 결과 “오리지널 카다이프(튀르키예식 얇은 면)를 사용해서 만든 ‘두바이 초콜릿’ 한정 판매한다”는 글이 상당수였다. 당근마켓에서는 직접 제조한 무허가 식품 등의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제품들은 2만∼7만 원대에 거래되며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올해 8월 식약처에는 직구한 카다이프로 두바이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업체가 있다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식품위생법 제4조 6항에 따라 직구한 식품이나 식재료는 개인이 섭취할 목적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안전성을 검증받지 않았기 때문에 영업용으로 쓰면 불법이다. 해외 직구한 새 제품을 되파는 것도 안 된다. 관세법상 본인이 사용할 목적으로 150달러 이하의 물품을 직구로 들여올 경우 면세를 받게 되는데, 이를 국내에서 재판매할 경우 관세법상 처벌받을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해외 직구 식품은 성분 표시 등 국내 기준을 지키지 않는 제품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며 “유행을 따라가려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의를 주거나 불법 업체를 적발하는 등 다방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최원영 기자 o0@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정부 차원의 첨단 기술 인재 확보 및 유출 방지 대책이 시급한 가운데 외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인재들은 현재 한국의 인재 정책에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주로 지원 절차 미흡, 비자 문제, 배타적 문화 등이 장벽으로 꼽혔다. 중국의 ‘첸런(千人·천인)계획’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국만의 인재 확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3년 12월 인도에서 한국에 건너온 나노의학 분야 연구자 강가라주 게다 중앙대 연구교수(40)는 한국의 배타적인 연구 문화와 소통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 동료들은 내가 다른 나라 사람이라서 그런지 연구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며 “서로 유대감을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또 연구 예산을 받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고민 끝에 한국 정착을 포기하고 2026년에 가족이 있는 인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통계유전학 분야 전문가인 이승근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근무하다 2020년 3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연구 지원을 받기 위한 절차가 너무 까다롭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0년 5월 정부의 해외 우수과학자 유치 사업인 ‘브레인풀(BP)·브레인풀 플러스(BP+)’ 사업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이 교수는 “모든 단계가 대학 행정실을 거쳐야 할 만큼 절차가 복잡하다”며 “실제 대학이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기와 연구비 등 지원 시기가 엇박자였다”고 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최인호 영남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8년간 가르친 인도인 박사후과정생인 아마드 씨를 정규직 교수로 채용하려 했지만 계약이 불발됐다. 최 교수는 “아마드 씨는 영주권을 얻어 정착하고 싶어 했지만 영주권 획득 조건이 까다로웠던 걸로 안다”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높은 월급과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집 등 더 좋은 제안을 하니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연구비자(E-3)는 한 번 발급받으면 최대 5년까지 체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1년 단위로 갱신해야 하는 사례가 많다. 고용 계약에 따라 체류 기간이 정해지는데, 대학이나 연구소가 계약을 주로 1년 단위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연구 실적과 연 수입 등을 평가해 일정 점수를 3년 이상 넘기면 무기한 체류를 허용한다. 대만은 거주 취업 및 재입국 관련 4가지 허가증을 하나로 묶어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인재를 유치한다. 최근 정부는 특별비자와 정주 지원 프로그램을 패키지로 지원하는 ‘K-테크 패스’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진달래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외국 인재 친화적인 방식으로 비자 및 국적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며 “유학생을 양성해 정착하게 할 수 있는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 제도’를 강화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손준영 기자 hand@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동부지법 형사법정 304호. 한국의 한 대형병원 산하 연구소에서 일했던 중국인 남성 A 씨가 법정에 섰다. 그는 연구소의 첨단 의료 로봇 기술을 중국에 빼돌린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2015∼2018년 해당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 연구소 컴퓨터의 ‘캐드(CAD)’라는 폴더에서 파일들을 외부 저장 장치에 담아 반출했다. 캐드는 컴퓨터를 이용해 도면을 만드는 설계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A 씨가 빼낸 파일에는 이 연구소가 개발 중인 로봇 관련 자료들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 씨가 빼낸 기술로 ‘첸런(千人·천인)계획’과 유사한 중국 연구 지원 사업에 응모한 것으로 의심하고 지난해 말 기소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을 만난 연구소 관계자는 “우리가 10년 넘게 준비해 온 기술을 A 씨 본인이 개발한 것처럼 (중국에 넘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이구이 10명, 서울대 등에서 첨단 기술 연구중국은 해외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다 자국으로 돌아오는 중국인 유학생, 연구원들을 ‘하이구이(海歸)’라고 부른다. 직역하면 ‘바다를 건너 돌아오다’라는 뜻이다. A 씨 역시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뒤 연구 자료를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가려 한 하이구이에 해당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010년 이후 한국에서 일정 기간 연구한 뒤 중국에 복귀해 첸런계획에 참여한 하이구이 10명의 명단을 파악해 분석했다. 현재는 폐쇄된 과거 첸런계획 홈페이지의 데이터, 첸런계획 후보자 명단, 한국 연구기관 연구자 현황 등을 종합해 명단을 추려냈다. 분석 결과 하이구이들은 한국에 체류할 당시 서울대, KAIST, 포스텍,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과학연구원(IBS),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최정상급 이공계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분야는 인공지능(AI), 나노 복합체, 나노 의학, 원자 단위 소재, 광섬유 레이저 등 다양했다. 대부분 각국이 경쟁 중인 첨단 기술 분야였다. 하이구이 10명 중에는 수년 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주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발표한 이들도 있었다. 중국인 링모 박사(39)는 서울대와 IBS를 거친 뒤 중국에 돌아가 2013년경 첸런계획에 선발됐고, 상하이교통대 석좌교수 및 같은 대학 산하 고급진단시약연구센터 부소장에 임명됐다. 그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복귀한 뒤 ‘네이처’ 등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수십 편 게재했다. 중국인 왕모 교수(43)는 2009년 포스텍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 2013년경 첸런계획에 선발됐다. 이후 6년간 30편 이상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썼고 2018년 중국공산당 지역 우수당원에 선정됐다. 한 학계 관계자는 “하이구이들이 중국에서 연구개발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국에서 습득한 기술이나 지식, 정보들이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 상황을 방치하면 한국은 중국에 무방비로 첨단 기술 정보를 계속 내어 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학계에선 ‘기술 유출’ 경계심 확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학계에서도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KAIST에서 신소재공학 분야를 연구하는 B 교수는 최근 3, 4년 사이 자신의 연구실에서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며 중국에서 온 중국인 유학생들이 연구실에서 각종 지식을 배운 뒤 돌연 귀국하는 사례가 잇따랐던 것. 부족한 연구 인력을 유학생으로 채우고 있었는데, 연구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떠나 버리니 난감했다. 한 중국인 박사는 “남자 친구가 중국으로 돌아가서 나도 같이 귀국해야 한다”는 문자메시지만 남긴 뒤 사라졌다. B 교수는 “신소재공학 분야는 1, 2년 공부해선 핵심 기술을 습득하기 어려워 다행이지만, 기계나 전자 등의 분야는 설계도 등 연구 자료 유출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로 중국은 이런 과정을 거쳐 자국에 돌아온 하이구이들을 ‘애국자’로 치켜세우며 환대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에 따르면 지난달 19, 20일 중국 후난성 창사시에서 하이구이들을 환영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공산당 간부들은 하이구이들에게 “애국주의를 견지하고 조국에 봉사하며 야망을 키우라”, “유학생들은 조국의 부름에 응답해 귀국하여 중화민족의 부흥과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혜와 힘을 바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2009년부터 7년간 한국 고등과학원(KIAS)과 일본 도쿄대 등을 오간 뒤 2016년 쑨원대로 복귀한 하이구이 리모 교수(43)는 동아일보에 자신이 한국을 떠난 이유에 대해 “한국은 중국처럼 청년 인재들에게 좋은 대우와 정책 지원을 해주지 못했고, 연구 안정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연구 출입국 등 관리 감독 필요” 정부가 이 같은 상황에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천인계획 연구’ 논문을 쓴 구자억 전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최근 발전시킨 기술 대부분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간 하이구이 연구원들의 공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올 8월까지 연구 비자(E-3)를 받은 중국인은 249명이다.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E-3 비자 소지 중국인은 330∼340명 규모다. 이주형 창원대 중국학과 교수는 “많은 국내 대학이 중국인 유학생을 대량으로 받아들였다”며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연구 활동, 출입국, 취업에 대해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링크트인’ 등 글로벌 구인구직 플랫폼에는 우리나라 대기업 연구원들이 스스로 ‘반도체 전문가’ 등으로 소개하고 취업을 물색 중이다. 일부는 ‘중국어 능통’ 스펙을 적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인재 포섭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링크트인을 살펴본 결과, 국가핵심기술로 분류된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이용자들이 상당수였다. 한 SK하이닉스 연구원은 자신을 “차세대 반도체 기술(1b DDR5)을 연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당 기술은 현존하는 D램 반도체 기술 중 가장 미세화된 10나노급 기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다른 삼성전자 연구원은 중국 이직을 염두에 둔 듯 “한국어, 중국어, 영어 모두 능통하다”며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 반도체 연구 이력을 중국어로 기재했다. 이렇게 드러난 정보를 통해 중국 당국이 은밀하게 접근하기도 한다. 한국의 한 반도체 대기업에서 일하는 연구원은 3년 전 본인을 ‘중국 교수’라고 소개한 중국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는 연구원에게 “중국에서 유명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포럼이 열리는데 참석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무슨 포럼인지 추가 설명을 요구하자 “우선 오면 자세히 알 수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중국이 인재를 빼내간 사례도 있다. 2018년 10월 미국에서는 경제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중국 정보요원이 링크트인을 통한 접근으로 제너럴일렉트릭(GE) 항공 분야 엔지니어를 포섭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해 프랑스 정보당국도 중국 요원들이 링크트인을 위주로 프랑스인 4000명에게 접근을 시도한 사실을 밝혀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중국 당국은 첸런(千人·천인)계획을 2019년경 표면적으로는 중단했지만 비슷한 해외 인재 포섭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 중이다. 첸런계획은 ‘해외 고급인재 도입계획’ 등으로 통합됐고 인재 유치 계획은 ‘치밍(啓明·계명)’ 등 더 음지화된 형태로 진행 중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중국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본 중국의 ‘2024 해외 고급인재 신고 공정’ 모집 공고에서는 과거 첸런계획과 똑같은 선발 조건들이 내걸려 있었다. ‘청년 인재’와 ‘창신 인재’ 두 트랙으로 모집 중이었는데, 각각 40세 이하 박사학위 취득자와 75세 미만 박사학위 취득자를 지원받고 있었다. 한 전문가는 “나이 조건을 보면 아직 연구 경력을 쌓지 못한 신진학자, 그리고 더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있을 은퇴 과학자를 포섭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통합된 중국의 인재 유치 프로그램은 중국에 입국할 때까지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진행된다. 공고는 ‘지원자의 자격 심사와 기관 매칭 등 모든 절차는 기밀로 유지된다’고 적시했다. 한 전문가는 “미국이 중국의 인재 유치 프로그램에 지원한 학자들에게 제재를 가해 섭외가 무산되는 사례가 많아지자 이를 막기 위한 중국의 조치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급여는 일회성 보조금과 월급, 연구비, 주택·생활 보조금 등을 합쳐 1인당 연 24억 원 수준으로 첸런계획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로이터통신은 2019∼2023년에 걸친 500건 이상의 정부 문서 등을 인용해 ‘치밍’이라는 중국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지난해 보도했다. ‘이 역시 첸런계획과 선발 조건, 지원 규모가 비슷했고, 선발된 사람 대부분은 미국 명문대에서 공부한 박사급 인재였다. 치밍은 반도체처럼 민감하거나 기밀의 영역을 포함하는 과학 및 기술 분야의 외국인 전문가를 모집하고 채용 대상자를 어떤 경로로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식 플랫폼 ‘지후’와 링크트인 등에서는 ‘치밍 지원자’를 찾는 10여 개의 광고도 발견됐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첸런(千人·천인) 계획’에 한국 교수·연구원 등 학자 최소 13명이 참여해 중국으로 건너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일본, 호주 등 각국은 자국 인재를 중국이 빼내 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국가 기술 안보 차원에서 대응 중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정부 차원의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간 한국도 상당수 인재들이 첸런계획에 참가했을 것이란 추측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수치와 경력, 인적 사항 등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동아일보 취재팀은 올해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간 과거 중국 정부가 운영한 첸런계획 관련 온라인 홈페이지, 중국 학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첸런계획에 참여한 한국인 교수와 연구원 등 13명의 명단을 찾아내 그중 6명을 인터뷰했다. 첸런계획 홈페이지는 현재 사라졌지만 온라인에서 삭제된 자료를 보관해 놓는 데이터베이스를 취재팀이 발견해 분석했다. 취재를 종합해 보면, 첸런계획에 참여한 한국 학자들은 주로 2011∼2018년 선발돼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서울대, 포스텍, KAIST 등 이공계 명문대 교수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중국 칭화대, 푸단대, 시안전자과기대 등으로 소속을 옮겼다. 이들 중에는 한국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도, 글로벌 학술기업 엘스비어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선정한 세계 상위 2% 과학자 명단에 포함된 학자도 있었다. 연구 분야는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딥러닝, 반도체 등 국가 핵심·전략 기술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첸런계획에 참여한 김호정(가명·56) 교수는 1995년부터 21년간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6년경 중국 장쑤성의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는 2018년경 첸런계획 ‘외국인 전문가’로 선발돼 연구비를 지원받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3곳 이상에서 책임자급으로 일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으로서 첸런계획을 연구했던 구자억 서경대 혁신부총장은 “인재 유출을 못 막으면 한국은 중국의 ‘과학기술 속국’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中, 백지수표 내밀듯 급여 계속 높여 유혹”… 배우자 취업도 지원[中에 포섭당한 한국 인재들]〈상〉 中 ‘첸런계획’ 인재 포섭10억 연구비에 고급 아파트 제시… 총장 직인 계약서 보내 “사인만 해라”中으로 첨단기술 쉽게 유출 우려… 일부 “양심 가책” 중도 포기하기도27일 오전 중국 베이징시 하이뎬구 중관춘 소프트웨어파크(中關村軟件園).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에 공학 연구소가 하나 있었다. 입구는 보안이 삼엄했다. 기자가 접근하자 곧바로 경비원들이 다가왔다. 이곳에는 중국 ‘첸런(千人)계획’에 참여한 한국인 학자 신영민(가명) 교수가 소속돼 있다. 신 교수는 고압물리 분야 전문가로, 2017년 중국 첸런계획에 선발됐다. 이날 “한국인 박사를 찾아왔다”는 기자의 말에 달려나온 직원들은 처음에 “한국인은 근무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조금 뒤 “신 교수는 상하이 사무실에 근무 중이고 종종 여기에 온다”고 말을 바꿨다. 첸런계획은 공산당 산하 중앙조직부가 수립한 인재 확보 계획이다.● 10억 원 넘는 지원금에 고급 아파트로 ‘유혹’취재팀이 만난 첸런계획 참여 한국인 교수·연구원들은 대부분 “연구비 생활비 등을 부족함 없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 장쑤성 첸런계획에 참여한 윤민철(가명) 교수는 신소재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였지만 한국에선 당시 연구 과제를 따내지 못했고 연구실 운영도 어려웠다. 윤 교수는 연구실 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중국 대학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그의 밑에서 학위를 받은 유학생들이 윤 교수에게 첸런계획 참여를 제안해 왔다. 그는 “중국에서 항공권, 생활비, 연구비를 부족함 없이 지원받았다”고 했다.중국의 각종 인재 유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자들은 “중국이 마치 백지수표처럼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난징시의 한 대학에서 임용 제의를 받는 한영호(가명) 교수는 중국 측의 8개월에 걸친 설득에 못 이겨 중국행을 택했다. 한 교수는 “대학에서 이메일 수십 통을 보내면서 급여 제안액을 계속 높였다”며 “마지막엔 총장 직인까지 찍힌 계약서를 보내와 ‘사인만 하면 끝난다’고 설득했다”고 전했다.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의 ‘해외 고급인재 유치 규정’ 등에 따르면 첸런계획에 참여한 외국인 학자들은 인당 100만 위안(약 1억9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최대 500만 위안(약 9억5000만 원)의 연구비도 제공된다. 첸런계획 하부 프로그램인 ‘청년 첸런계획’에 선정되면 3년간 매년 생활 보조금 50만 위안(약 9400만 원), 과학연구 보조금 100만∼300만 위안(1억8800만∼5억6400만 원) 씩을 지원받는다. 50평대 고급 아파트, 배우자 취업 등도 지원된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인 정상진(가명·75) 교수는 백두산 생물자원 연구 등을 위해 중국 연변대와 교류했다. 그는 2010년경 첸런계획 참여 제안을 받았고, 논문과 수상 실적을 보낸 뒤 선발됐다. 정 교수는 “연변대 총장보다 높은 급여, 대형 실험실, 필요한 연구 장비를 모두 지원받았다”고 했다.컴퓨터 분야 전문가 강종혁(가명·56) 교수는 2014년 캐나다에서 공동 연구를 했던 중국인 교수에게 첸런계획을 들었다. 강 교수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당신 이름을 빌려서 연구 프로그램에 지원해도 되겠느냐 정도의 제안이었다”고 했다. 강 교수가 허락하자 이력서 작성 등 모든 절차를 중국인 교수 측에서 알아서 진행했다.● “양심 가책” 도중 중단도… “기술 유출 우려”일각에서는 이 같은 인재 유출이 결국 기술 유출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 대학, 기업, 연구소에서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국에 취업하면 결국에는 중국의 기술 연구개발, 상품 개발에 자신의 노하우를 투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국내 대학 교수들이 중국으로 건너간 경우에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중국의 연구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 국내 연구원이 중국 기업으로 이직한 경우에는 당장 경쟁 제품 개발에서 한국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실제 2017년 7월에는 KAIST 교수가 첸런계획 계약에 따라 자율주행차량 관련 연구 자료를 중국에 넘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양심의 가책 때문에 첸런계획 참여를 중도 포기한 한국 학자들도 있었다. 국내 약학 분야 권위자인 박철우(가명·66) 교수는 2013년 첸런계획에 선발됐으나 중국 측에서 “연구 관련 특허를 중국에 넘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고민 끝에 6개월 만에 참여 활동을 중단했다. 그러자 중국 측은 모든 지원을 끊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최근 경기 고양시의 도로에서 60대 노인이 폐지 수집 손수레를 끌고 가다가 차에 치여 숨진 사건을 계기로 안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7월 기준 국내의 폐지 수집 노인은 1만4831명으로 집계된 가운데 5명 중 1명꼴로 부상을 입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너비 1m가 넘는 손수레를 ‘차’로 분류하기 때문에 폐지 수집 노인들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선 차도로만 통행할 수 있다.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도중 부상을 경험한 노인은 전체의 22%였다. 교통사고를 경험한 비율은 전체의 6.3%였는데 그중 77.2%는 차량과의 사고였다. 손수레를 끌고 인도로 다니면 적발 시 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는다.동아일보 취재팀은 22일 서울 시내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과 동행해 봤다. 취재 내내 도로에서 위험한 상황에 자주 직면했다. 서울 강서구에서 1년째 빈 병 등을 줍는 김모 씨(70)는 차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인도에 바짝 붙어 다니다가 세 차례 넘어졌다. 김 씨는 “아는 언니는 리어카(손수레)를 끌고 다니다가 사고로 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고 전했다. 다른 주택가에서 만난 홀몸노인 김모 씨(80)는 차도에서 손수레를 끌고 가는 내내 주변 차량들이 옆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김 씨는 “박스를 주우러 간 사이 차가 내 리어카를 들이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폐지 수집이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하루 평균 5.4시간, 주 6일 일한다. 한 달 평균 수입은 15만9000원이었다. 폐지를 줍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 노인의 84.1%는 “경제적 사유”라고 답했다. 앞서 20일 고양시에서 숨진 60대 여성도 폐지 값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아 먼 길을 가다가 변을 당했다. 주변 지인 등에 따르면 그의 주거지 10분 거리에 고물상이 있었지만 폐지 1kg당 50원을 더 주는 다른 고물상으로 40분 이상 거리를 걸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전문가들은 도로교통법의 예외 규칙 등을 마련해 교통사고 위험을 줄여야 된다고 지적한다. 제20대 국회에선 ‘손수레’를 ‘보행자’에 포함시켜 인도 통행을 가능하게 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리어카는 속도 등 여러 면에서 차를 따라갈 수 없는데 차도로 다니는 건 위험하다”며 “게다가 주로 새벽에 다니는 경우가 많아 운전자가 식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대체 일자리 및 보조금 등을 늘려야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노인인력개발연구원은 “지자체 폐지 수집 노인 지원 조례를 제정 혹은 개정할 수 있도록 표준 조례안을 마련해 체계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고양=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최근 유명 배달 기사가 신호 위반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배달 기사는 사건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머리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사고 당시 머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일명 ‘반모 헬멧’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오토바이 배달 기사 상당수가 머리 전체를 보호하는 ‘전면 헬멧’ 대신 반모 헬멧을 쓴 채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현행법에는 헬멧 형태에 관한 규정이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달 기사 절반은 ‘반모’ 헬멧오토바이 헬멧은 형태와 보호 범위에 따라 하프(half)형, 제트형, 풀페이스(full face·전면)형 등으로 나뉜다. 턱을 포함해 얼굴 대부분을 보호해 주는 풀페이스형을 제외한 유형들은 일명 ‘반모 헬멧’으로 불린다. 제트형은 귀까지만 가리는 헬멧이다. 바가지처럼 생긴 하프형은 눈썹 윗부분만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사고 시 충격 완화 효과가 거의 없다. 유명 배달 기사 역시 차량에 치일 당시 하프형 헬멧을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배달업 종사자는 48만5000여 명이다. 상당수 배달 기사들은 제대로 된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도로를 누비고 있었다. 취재팀은 18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3시간 동안 서울 강남구 역삼동, 관악구 신림동 일대 도로에서 배달 기사들의 헬멧 착용 상태를 사진으로 촬영하며 관찰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림동은 서울 내 배달 서비스 이용 횟수 1위, 역삼동은 3위 지역이다. 1인 가구 밀집 지역들이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1시경 신림역교차로에서는 오토바이 배달 기사 8명이 정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전면 헬멧을 쓴 기사는 1명뿐이었다. 반모 헬멧을 쓰고 있던 한 기사는 땀이 많이 났는지 헬멧을 벗고 땀을 닦다가 신호가 바뀌자 급히 헬멧을 머리에 얹고 턱끈도 채우지 않은 채 출발했다. 오후 4시 반에는 역삼역교차로 배달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충돌할 뻔했다. 배달 기사는 반모 헬멧을 썼지만 턱끈은 채우지 않은 상태였다. 3시간 동안 취재팀이 지켜본 배달 기사 178명 중 95명(53%)은 반모 헬멧 차림이었다. 그 외 1명은 자전거용 헬멧을 썼고, 다른 1명은 아예 헬멧을 안 썼다. 나머지 81명(46%)만이 전면 헬멧을 쓰고 있었다. 취재팀이 만난 배달 기사들은 더위와 불편함 탓에 전면 헬멧 대신 반모 헬멧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경력 10년 배달 기사인 이모 씨(58)는 “전면 헬멧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덥고 불편하다”며 “단속이 강화되다 보니 이를 피하려고 그나마 형식적으로나마 반모 헬멧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헬멧 턱끈을 안 채우고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서 다쳤다고 했다.● 관련 규정 모호… “구체 기준 마련해야”오토바이를 탈 때 어떤 형태의 헬멧 등 보호장구를 갖춰야 하는지 관련 법 규정도 모호하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32조는 오토바이 헬멧이 ‘충분한 시야’를 확보해야 하고 ‘충격 흡수성과 내관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기준만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얼굴의 어느 부위까지 어떻게 가려야 하는지는 정해 놓지 않았다. 김상철 충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오토바이 사고로 온 환자들을 보면 전면 헬멧이 아닌 경우 헬멧이 머리에서 벗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전면 헬멧은 머리와 경추 보호 효과가 있는 등 헬멧에 따라 예방 효과가 다른 만큼 착용 의무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사실상 반모 헬멧은 사고 상황에서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시속 몇 km 이상 도로에서는 어떤 헬멧을 써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올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최현석(가명·17) 군은 중3 때 처음 온라인 도박을 시작했다. “바카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주변에서 돈을 빌려 도박을 했고 빚은 1500만 원까지 불었다. 현재 최 군은 한국도박문제치유원을 찾아 도박 중독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이 실시한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 설문조사 결과 학생 10명 중 1명꼴로 주변에서 도박을 하는 친구를 봤다는 답변이 나왔다. 도박 청소년의 절반가량은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도박을 시작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는 도박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수사기관은 도박 사이트의 계좌를 빠르게 동결하는 등의 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10명 중 1명 “주변에 도박하는 친구 있다”11일 서울경찰청은 5월 17일부터 3개월간 서울 지역 초중고교생 및 학교 밖 청소년 1만685명이 참여한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청소년 온라인 도박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벌인 것은 처음이다. 응답자 중 157명(1.5%)은 “도박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 중 1069명(10.0%)은 “친구가 도박을 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등 때문에 도박을 해봤다고 답변한 학생은 적었을 것”이라며 “실제로는 이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도박에 빠진 청소년 대부분은 중학교 때 처음 도박을 시작했다. 도박 중독 청소년 중 78명(49.7%)은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는 응답자는 35명(22.3%), 초등학교 5, 6학년 때 시작한 이들은 23명(14.6%)이다. 초 1∼4학년 때 시작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친구의 권유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본 뒤 도박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단기간에 소액의 도박 자금을 빌려주고 나중에 20∼50%의 이자를 뜯어내는 이른바 ‘대리입금’ 사례들도 있었다. 대리입금 방식으로 직접 도박 자금을 빌렸다는 청소년은 응답자 중 65명이었다. 대리입금 경험자(총 65명) 중 24명(37%)은 “과도한 이자를 요구받았다”고 했다. 학생증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받은 경우는 19명(29%), 돈을 갚지 못해 폭행 협박 등 불법 추심을 당한 경우도 8명(12%)이나 있었다. 그 외 응답자 중 236명은 “친구가 도박을 하려고 돈을 빌리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강도 등 2차 범죄도… “처벌과 교육 강화해야”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올해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시리즈에서 청소년 도박 문제를 연속 보도했다. 취재 결과 단순 도박을 넘어 불법 사채에 손대거나 도박 사이트를 만드는 청소년도 적지 않았다. 도박이 청소년들의 2차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서울경찰청 조사에서도 “금품 갈취나 중고거래 사기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했다”는 청소년이 7명 있었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와 예방 교육의 ‘투 트랙’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도박 사이트는 처음엔 마치 게임처럼 가상 머니를 주고 청소년을 유인한다”며 “게임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중독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도박 조직에 대한 처벌 강화와 더불어 청소년 교육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무홍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불법 도박사이트 의심 계좌는 신고만 해도 빨리 동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수사 당국이나 학교가 부모에게 자녀의 도박 사실을 알리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도박 문제가 학교 폭력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경우 해당 학생을 엄벌할 계획”이라며 “학생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상담기관 등에 바로 연계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7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갑자기 돌진하는 사고로 12일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부산에서는 가해 차량이 7월에 있었던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당시처럼 빠른 속도로 인도를 덮친 뒤 행인들을 치었다. 두 고령 운전자들은 두 달 전 벌어진 시청역 사고 가해 운전자처럼 “급발진”을 주장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12분경 부산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구청 인근 일방통행 차로에서 70대 운전자가 몰던 벤츠 승용차가 인도를 향해 돌진했다. 가해 차량은 오른편 도로변에 정차 중이던 트럭 뒷부분을 들이받은 뒤 행인 2명을 치었다. 이후 인근 점포로 돌진한 뒤에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70대 여성 행인이 현장에서 숨졌고 60대 남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장 인근 상인들은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펑 하는 굉음이 울렸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차량은 송정해수욕장 방향 해운대로를 달리다가 해운대구청 어귀삼거리에서 우회전해 120m를 더 가던 중 사고를 냈다. 주변 폐쇄회로(CC)TV에는 가해 차량이 도로를 벗어나 인도 위에서 10m가량 질주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 차가 들이받은 트럭이 충격에 튕겨 나가는 모습도 담겼다. 해당 인도에는 사고를 막기 위한 보행울타리(가드레일)가 없었다. 가해 운전자는 사고 직후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후 5시 10분경 서울 성동구 성동세무서 앞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70대 남성이 몰던 벤츠 차량이 총 7대의 차량을 연쇄적으로 들이받았다. 가해 운전자를 포함해 9명이 다쳤고 그중 3명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대부분 경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 운전자는 사고 뒤 차에서 내려 역시 “급발진”을 주장했다. 사고 여파로 성동세무서 앞 도로는 한동안 전면 통제됐다. 앞서 7월 1일 서울에서는 68세 운전자 차모 씨의 운전 미숙 탓에 차량이 역주행 질주했고, 인도를 걷던 시민 등 9명이 숨졌다. 차 씨는 사고 직후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 차 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없었고 대신 가속 페달을 여러 번 밟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 치 급발진 의심 사고 현황’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 6월까지 접수된 총 364건의 급발진 의심 사고 중 88.2%(321건)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 원인이었다. 이 경우 사고 운전자의 평균 나이는 64세였다. 나머지 11.8%는 차량이 완전히 부서져 사고 원인을 판명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올해 고등학교를 자퇴한 최현석 군(가명·17)은 중3 때 처음 온라인 도박을 시작했다. “바카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급기야는 주변에서 돈을 빌려 도박을 했고 빚은 1500만 원까지 불었다. 현재 최 군은 한국도박문제치유원을 찾아 도박 중독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경찰이 실시한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 설문조사 결과 학생 10명 중 1명꼴로 주변에서 도박을 하는 친구를 봤다는 답변이 나왔다. 도박 청소년의 절반가량은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으며,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도박을 시작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서는 도박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수사기관은 도박 사이트의 계좌를 빠르게 동결하는 등의 대책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10명 중 1명 “주변에 도박하는 친구 있다”11일 서울경찰청은 5월 17일부터 3개월간 서울 지역 초중고교생 및 학교 밖 청소년 1만685명이 참여한 청소년 온라인 도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이 청소년 온라인 도박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벌인 것은 처음이다.응답자 중 157명(1.5%)은 “도박을 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 중 1069명(10.0%)은 “친구가 도박을 하는 걸 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 등 때문에 도박을 해봤다고 답변한 학생은 적었을 것”이라며 “실제로는 이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도박에 빠진 청소년 대부분은 중학교 때 처음 도박을 시작했다. 도박 중독 청소년 중 78명(49.7%)은 중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때 처음 시작했다는 응답자는 35명(22.3%), 초등학교 5, 6학년 때 시작한 이들은 23명(14.6%)이다. 초1~4학년 때 시작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친구의 권유나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본 뒤 도박을 시작했다고 답했다.단기간에 소액의 도박 자금을 빌려주고 나중에 20∼50%의 이자를 뜯어내는 이른바 ‘대리입금’ 사례들도 있었다. 대리입금 방식으로 직접 도박 자금을 빌렸다는 청소년은 응답자 중 65명이었다. 대리입금 경험자(총 65명) 중 24명(37%)은 “과도한 이자를 요구받았다”고 했다. 신분증 등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받은 경우는 19명(29%), 돈을 갚지 못해 폭행 협박 등 불법 추심을 당한 경우도 8명(12%)이나 있었다. 그외 응답자 중 236명은 “친구가 도박을 하려고 돈을 빌리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강도 등 2차 범죄도… 전문가 “처벌과 교육 강화해야”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올해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온라인 도박, 교문을 넘다’ 시리즈에서 청소년 도박 문제를 연속 보도했다. 취재 결과 단순 도박을 넘어 불법 사채에 손대거나 도박 사이트를 만드는 청소년도 적지 않았다. 도박이 청소년들의 2차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번 서울경찰청 조사에서도 “금품 갈취나 중고거래 사기 등 불법적인 방식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했다”는 청소년이 7명 있었다.전문가들은 처벌 강화와 예방 교육의 ‘투 트랙’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호 한국중독전문가협회장은 “도박 사이트는 처음엔 마치 게임처럼 가상 머니를 주고 청소년을 유인한다”며 “게임인 줄 알고 시작했다가 중독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도박 조직에 대한 처벌 강화와 더불어 청소년 교육 강화가 모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민무홍 성균관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불법 도박사이트 의심 계좌는 신고만 해도 빨리 동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수사 당국이나 학교가 부모에게 자녀의 도박 사실을 알리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도박 문제가 학교 폭력 등 2차 범죄로 이어질 경우 해당 학생을 엄벌할 계획”며 “학생의 도박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상담기관 등에 바로 연계하는 방안 등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임신 36주 낙태 브이로그’ 사건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해당 병원장이 아니라 다른 의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해당 의사를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12일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사건 당시 낙태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전문의 1명을 지난달 말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원장이 (수술을) 집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제 집도의가 별도로 있어 특정하고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고 말했다. 해당 집도의는 다른 병원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인 것으로 드러났다. 집도의도 자신이 직접 낙태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경찰에 시인했다.집도의가 뒤늦게 확인된 이유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최초에 관계자들이 거짓 진술을 했다”며 “의료진에 대해 전원 조사했으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엇갈리는 내용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집도의가 새롭게 파악되면서 낙태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은 기존 5명에서 6명으로 늘었다. 병원장과 집도의는 살인 혐의를, 마취의 1명과 보조 의료진 3명은 살인 방조 혐의를 받는다. 병원장은 병원 내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의료법 위반 혐의도 받는다.자신의 낙태 과정을 브이로그에 올렸던 여성은 앞서 살인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경찰은 온라인상에서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홍보한 브로커 1명도 의료법 위반 혐의로 추가 입건했다. 이 브로커는 인터넷 블로그 등에 낙태 수술 관련 광고를 올려 환자를 알선하고 그 대가로 병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낙태한 여성은 지인이 브로커가 올린 광고를 보고 산부인과 정보를 알려준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영상을 올린 여성과 의료진 6명, 브로커 1명 등 총 8명을 입건했다. 경찰은 휴대전화와 태블릿 PC 등 13점과 진료기록부 등 자료 18점 등 총 31점을 압수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또 종합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자문업체를 통해 분만 당시 태아가 이미 숨져 있었는지 등의 의료 감정도 진행 중이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올해 추석을 일주일 앞둔 10일 경기 고양시에 있는 고 김기현 씨(23)의 집에는 생전에 쓰던 책상 위에 기현 씨의 유골함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기현 씨의 아버지 김모 씨(54)와 어머니 이모 씨(52)가 쓴 편지가 있었다. ‘착하고 예쁜 내 아들아, 다음 생에도 우리 아들로 와 줘.’ 외아들인 기현 씨는 지난달 1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전기에 감전돼 숨졌다. 원래 그가 맡았던 일은 기계를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장비의 전원을 직접 끄라’는 지시를 받고 작업을 하다 고압 전류에 감전됐다. 현장에서 기현 씨가 사고를 당한 것을 인지한 건 1시간 30분 뒤, 병원에 도착한 건 그 이후로도 1시간 뒤였다. 사건 당일, 일한 지 8개월째였던 기현 씨는 휴일이었지만 출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늦게까지 자서 기분도 좋고, 친한 삼촌 부탁이라 얼른 다녀올게요.” 기현 씨는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그게 부모가 본 살아 있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기현 씨가 숨진 지 12일이 지난 지난달 24일 하청업체 책임자들이 김 씨와 이 씨를 찾아왔다. 그들이 내민 것은 처벌불원서였다. ‘유족은 하청과 원청 모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아파트 공사가 조속히 재개되길 원한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불과 6일 전 아들의 장례를 마친 김 씨는 그때까지 ‘원청 사람’을 본 적도 없었다. 김 씨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들의 장례가 끝난 뒤에도 김 씨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원래 리모컨 조작 작업만 하기로 했던 아들이 왜 감전사를 했는지. 왜 동료도 없이 혼자였는지. 쓰러진 뒤 왜 1시간 반 동안 방치됐는지. 그 후에도 왜 1시간이나 지나서야 병원에 도착했는지. 김 씨는 사고 당시 아들의 최후 모습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들의 죽음은 여전히 미궁 속이었다. 김 씨와 이 씨는 5일에 걸쳐 아들의 장례를 치렀다. 다음 날 찾아간 ‘그 아파트’ 현장은 다시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엘리베이터와 인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이 죽은 현장만 작업이 멈춰 있었다. 이 씨는 왜 아직 아들을 봉안당에 보내지 못했느냐는 물음에 “추석에 아이가 봉안당에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아직 보내지 못했어요”라며 “집에서 마지막으로 추석을 같이 보내려고 해요”라고 했다. 부모는 추석을 보내고 22일 유골함을 봉안할 계획이다.고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고등학교 1학년인 김수민(가명·16) 양은 2년 전(당시 중학교 2학년) 한 친구로부터 “네 사진이 음란물 사이트에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넘겼지만 “네 음란물을 봤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이 점점 늘었다. 가장 믿고 의지했던 친구까지도 “너랑 똑같이 생긴 사진이 텔레그램에 돌아다닌다. 그런데 전신 누드 사진이다”라고 알려줬다. 그제야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착취물이 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김 양의 일상은 무너졌다. 2년이 흐른 지금도 김 양은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초조하게 음란물 사이트, 텔레그램 대화방들을 뒤진다. ‘혹시 내 사진이 더 퍼지진 않았을까.’ 그러다 어느 날은 한 성인 콘텐츠 사이트에서 자신을 사칭해 딥페이크 사진을 파는 온라인 계정을 발견했다. 김 양은 아직까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동아일보 취재팀을 만나 “지옥 같은 2년이었다. 이 사실을 말하면 어른들이 내 잘못이라고만 할 것 같다”며 “그 사진 속 여자가 내가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고 누가 이런 걸 만드는지 알 수도 없다”며 답답해했다.● N번방 뒤 나온 대책들, 빛도 못 보고 폐기 딥페이크 성착취 영상이나 사진은 복제와 유포가 매우 쉽다. 그에 반해 정부는 텔레그램, 유튜브 등 해외 온라인 플랫폼에 콘텐츠 삭제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2021년 일명 ‘N번방’ 사건 뒤 국회와 정부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대책들이 쏟아졌다. 의원들은 앞다퉈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법무부는 산하에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으나, 현재 시행 중인 것들은 전무했다. 국회에서는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영상물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이 이를 즉시 삭제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해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징역형 상한을 올리는 법안, 디지털 성착취물을 수사기관이 압수 및 보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그러나 모두 여야의 무관심 속에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년 전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대응 TF가 내놓은 권고안에도 관련 대책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불법 영상물 삭제 및 차단 관련 응급 조치 △양형 조건 개정 △성착취물 압수 및 몰수 절차 개선 △피해 영상물 재유포 방지 대책 등이었다. 응급 조치는 수사기관이 직접 인터넷 사업자에게 삭제 차단을 요청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텔레그램에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발견되면 우리나라 인터넷 사업자에게 접근 차단을 명령하는 식이다. 하지만 TF가 해산되면서 이 권고안들도 흐지부지됐다. ● 26만 건 넘게 아직 삭제 안 돼 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여가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접수된 불법 촬영물 삭제 요청 건수는 총 94만 건이다. 이 중 28.8%(26만9917건)는 아직 삭제되지 않았다. 삭제할 강제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부산에서 유명 연예인과 아동의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어 판 10대 청소년 3명이 검거되는 등 관련 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추진된 대책들이 시행됐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범죄 전문 장윤미 변호사는 “딥페이크 범죄 피해자 입장에선 사진 삭제 등 응급 조치가 절실하다”며 “특히 미성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대책 시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유포, 판매뿐 아니라 단순 제작부터 범죄로 규정해 처벌해야 한다”며 “범죄 수익이 적다거나 결과물의 질이 조악하다는 등의 이유로 지금처럼 형을 깎아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교통 좋은 무주군에 내려가 임업을 하고 싶은데 임야는 어떻게 구입할 수 있나요? 준보존산지와 보존산지 중에선 어떤 땅이 더 좋을까요?” 30일 ‘2024 에이팜쇼’ 제1전시장의 ‘귀농·귀촌관’을 찾은 강기정 씨(55)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스에서 무주군의 임야와 주변 환경, 경영 가능 여부 등에 대해 세세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무주군 관계자가 10여 분에 걸쳐 종이에 임야별 특징을 써 내려가며 장단점을 설명했다. 강 씨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 뒤 두 달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다음 달 10일 무주로 내려가 직접 임야를 살펴보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전원주택 물색하려 3년 연속 찾아” 2016년부터 귀농·귀촌 정보를 수집해 왔다는 강 씨는 “떠도는 정보는 많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정확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며 “(이번 에이팜쇼는) 농촌에서 ‘내 밥벌이를 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66곳이 80개의 부스를 마련한 귀농·귀촌관에는 강 씨처럼 꼭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귀농·귀촌 지망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기 과천시에서 온 원모 씨(61)는 이날 사과로 유명한 경북 청송군 부스에서 상담을 받으며 “청송에서 기를 수 있는 사과의 종류가 뭐냐” “귀농 체험 신청은 어떻게 하면 되냐”며 연신 질문을 던졌다. 청송군 관계자는 ‘청송 황금사과’로 유명한 시나노골드 품종을 추천하면서 재배한 사과가 잘 팔리지 않을 경우 청송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 씨는 “퇴직 후 노후에 대해 고민이 컸는데 귀농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며 “다양한 지자체의 귀농 정보를 한 장소에서 자세히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경기 여주시 부스에서 귀촌 상담을 받은 이돌 씨(74·경기 용인시)도 “수도권 내 조용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 만한 곳을 알아보려고 에이팜쇼를 3년째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농촌유학으로 아토피 안심학교 찾아오세요” 제2전시장에 처음으로 마련된 농촌유학관에는 감성과 창의력을 길러 줄 수 있는 농촌학교 유학에 궁금증을 가진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6세 된 아들과 함께 전남도교육청 부스를 찾은 설은희 씨(41·여)는 “농촌 유학에 관심이 있지만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며 “교과 과정 대신에 농업을 주로 공부하느냐”란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정다정 전남도교육청 주무관은 “일반 교과 과정과 지역 특성에 맞는 생태 프로그램이 함께 진행된다”며 “섬진강과 지리산을 끼고 있는 구례군이라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과 강을 느껴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에이팜쇼에는 전북과 서울도 농촌 유학관을 마련했다. 전북은 특화형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앞세웠고, 서울은 전남 전북 강원과 연계해 경비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북도교육청 관계자는 “진안군 조림초등학교의 아토피 안심학교 프로그램처럼 자연, 생태, 사회, 역사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특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재작년 에이팜쇼에서도 버섯을 구매했는데 만족도가 높았어요. 전국 각지에서 온 신선하고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만나 볼 수 있어 올해도 오게 됐습니다.” 30일 서울 서초구 ‘2024 에이팜쇼’ 현장을 찾은 임수진 씨(38)는 어깨에 멘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안에는 버섯과 육포, 오징어채 등 ‘에이팜 마켓관’에서 판매하는 농산물과 지역 특산품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이날 에이팜쇼 ‘에이팜 마켓’에는 추석을 앞두고 농특산물과 이색 전통주 등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들로 붐볐다. 쌀과 누룩, 남해산 유자만으로 빚은 유자막걸리(다랭이팜), 꿀을 발효해 만든 꿀술 미드(부즈앤버즈) 등 이색 전통주들도 인기를 끌었다. 이랜드 킴스클럽의 부스에는 가루쌀 피자를 시식하기 위해 10여 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청년농이 재배한 토마토로 만든 ‘토마토 고추장’ 역시 킴스클럽 부스에서 소개됐다. 김인성 토마토 아뜰리에 대표(41)는 “고추장에 밀가루나 찹쌀가루 대신 토마토 발효액을 넣어 글루텐을 전혀 쓰지 않는 동시에 염도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에이팜 마켓에서 판매된 과일, 과채주스 등은 네이버쇼핑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중계·판매됐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K푸드 기업의 제품도 호응을 얻었다. 이날 CJ제일제당 측에서 준비한 경품 600개 중 절반인 300개가 1시간 반 만에 소진됐다. 신세계푸드는 국산 가루쌀과 현미유 등 식물성 원료만 써서 만든 대체 우유 ‘라이스 베이스드’를 소개했다. 다양한 행사도 준비됐다. 오후 1시 ‘에이팜 골든벨’이 열리는 무대 곳곳에서는 탄성 소리가 들렸다. 달래의 제철이 가을인지를 묻는 OX 퀴즈에서 O를 적어내 탈락한 참가자들이 내는 소리였다. 에이팜 골든벨에 참가해 경품을 타간 양준환 군(18)은 “전북 전주시에서 왔다. 가업을 이어받아 고구마를 재배할 생각인데 스마트팜 기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딥페이크(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합성) 성착취물을 만들어 유통시키는 가해자들이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중학생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팔아 돈을 벌다가 경찰에 붙잡힌 사례도 확인됐다. 당국의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결제가 이뤄지는 탓에 딥페이크 범죄가 음지에서 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유통 중인 대화방 10곳에 잠입해 거래 현황을 살펴봤다. 이 대화방에서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해 음란물을 사고파는 거래가 이뤄졌다. 취재팀이 성착취물 구매를 희망하는 것처럼 가장해 결제를 시도하자 ‘46종의 가상화폐로 이용 가능하다’는 안내가 나왔다. 대화방에서는 ‘더 적나라한 성착취물을 구입하고 싶으면 좀 더 큰 금액을 지불하라’는 취지의 안내도 이어졌다. 딥페이크 범죄를 실제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중학생이 경찰에 검거된 사례도 확인됐다. 2021년 7월 경북 구미의 중학교 3학년 A 군은 한 성착취물 제작자에게 15세 여학생 2명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달라고 의뢰했다. A 군은 이후 직접 딥페이크물 제작 방법을 터득한 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비롯해 총 177건의 딥페이크물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성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팔았다. 나아가 합성 사진을 당사자인 피해 여성에게 전송한 뒤 “알몸 영상을 찍어 보내라”고 협박했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A 군은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한다. 일부 범죄 조직들은 몇천 원만 내면 성착취물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일명 ‘딥페이크 봇(bot)’으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성착취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래 구조가 유지되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화폐가 불법 음란물 유통의 핵심 도구로 이용 중”이라며 “더 큰 금액을 지불할수록 더 높은 강도의 음란물을 받을 수 있다 보니 범인들이 떼돈을 버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코인 받고 ‘딥페이크 성착취물’ 다단계 거래… 추적 어려워 [돈벌이 된 딥페이크 성범죄]퍼트릴수록 돈 더 버는 구조… ‘봇’ 통해 거래, 판매자 정체 몰라텔레그램은 광고수익탓 방치… 전문가 “범죄수익 몰수대책 필요”딥페이크 성착취물 범죄의 정점에는 ‘딥페이크봇’을 만들어 굴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자동으로 가짜 이미지를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뒤 텔레그램 대화방을 운영한다. 그 아래는 이들에게 구입한 성착취물을 다단계식으로 되파는 일당들이 있다. 말단에는 잠재적 구매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미끼’처럼 무차별적으로 성착취물을 퍼뜨리는 텔레그램 대화방 참여자들이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거래가 모두 ‘가상화폐’로 이뤄지고 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퍼뜨릴수록 돈을 버는 구조 탓에 관련 범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돈 더 내면 더 수위 높은 사진 구입’ 유도 28일 동아일보 취재팀은 텔레그램봇으로 운영되는 한 대화방을 확인했다. 이 대화방은 실제 참가자들은 없고, 딥페이크봇 프로그램이 마치 운영자처럼 상주한다. 취재팀이 이 방에 접속하자 ‘여성의 사진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여기서 다이아몬드란, 일종의 가상 거래 수단인데 보통 ‘1다이아몬드=약 500원’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취재팀이 확인한 10개 이상의 텔레그램봇 방은 개당 이용자가 20만∼30만 명 정도였다. 이들 모두 비슷한 가상화폐 결제 방식을 쓰고 있었다. 취재팀이 접촉한 텔레그램봇들은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하면 더 수위가 높은 성착취물을 구입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들은 “당신만의 사진을 가져보세요. VIP의 특권임. 워터마크(일종의 표식) 없음” “더 나은 디테일을 경험하세요” “더 진짜 같은 사진” 등의 홍보성 문구를 계속 쏟아냈다. 구매자로 하여금 더 적나라한 성착취물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구매자들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딥페이크봇을 통해 거래하기 때문에 내 돈이 누구한테 건너갔는지는 알 수 없다. 판매자의 진짜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팀이 관찰한 결과 이렇게 제작된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일명 ‘지인능욕방’ ‘겹지인방’ 등으로 확산, 유통됐다. 일종의 ‘공급자→도매시장→소매시장→소비자’로 연결되는 구조다. ● 범죄 수익 높아지면 텔레그램도 수익 증가 이 같은 구조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가상화폐로 거래한 경우에는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텔레그램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범죄 구조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착취물을 거래하는 봇, 대화방, 결제창 등에는 상업 광고가 내걸려 있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텔레그램이 광고 수익을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다. 마치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높아질수록 영상 제작자와 유튜브 측이 함께 수익을 올리는 것과 같은 셈이다. 올해 4월 텔레그램은 1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텔레그램봇’ 제작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절반을 가상화폐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취재팀이 확인한 딥페이크봇들은 20만∼30만 명 규모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봇들을 통한 성착취물 거래가 늘어나고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텔레그램과 봇 제작자들의 수익은 커진다. 게다가 텔레그램이 발행하는 가상화폐가 주요 거래 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텔레그램이 얻는 이익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수익 연결고리 깨야…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이들의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범죄로 수익을 거두는 구조를 깨뜨려야 성착취물의 제작, 배포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학장은 “딥페이크 성착취물 거래는 가상화폐를 이용하기 때문에 기존 은행 등 금융기관 시스템으로는 확인이 어렵다”며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도 “딥페이크는 성폭력처벌특례법 제14조의 2에 따라 반포와 판매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구매자를 처벌할 수 없다. 구매자들도 강력하게 처벌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도박에 쓰인 가상자산을 범죄 수익으로 몰수할 수 있다는 2018년도 대법원 판례를 참고할 만하다”며 “딥페이크 범죄에 쓰인 가상자산도 충분히 몰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다만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 몰수하기 위한 수단이나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준영 기자 hand@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