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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7년간 이 동네에서 우리 애들 키운 건 3할이 어린이집, 3할이 우리 부부, 또 3할은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네.” 얼마 전 이사를 준비하다 아내에게 한 말이다. 아이 이마가 펄펄 끓을 때, 기침이 자지러질 때마다 단골 소아과에 달려가곤 했다. 원장은 다리에 깁스를 한 날도 출근해 진료를 했다. 이사 후 보름이 지난 20일 내년도 의대 대학별 정원이 발표됐다. 일각에선 “수능 2등급도 의대에 입학할 판”이라며 호들갑이다. 2등급이면 수능 상위 5∼11%다. 서울 주요 상위권 이공계에 갈 성적이다. 의대 교수와 의대생들은 “수업이나 잘 따라올지 모르겠다”며 혀를 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전국 의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이공계보다 높은 게 의대 공부가 이공계보다 어려워서가 아니다. 수요와 공급 탓이 더 크다. 취업난과 경기 둔화로 ‘평생 고소득’ 면허에 수험생이 몰린 탓이다. 그러면 좋은 의사와 수능 1등급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의대 공부의 특징은 암기량이다. 뼈, 혈관은 물론이고 회충 학명까지 달달 외운다. 환자 앞에서 지식이 기계처럼 튀어나와야 한다. 반면 이공계는 암기할 정보는 의대보다 적지만 미지의 답을 머리로 찾아 나아가야 한다. 양자와 우주, 수(數)의 세계에서 수많은 가설을 세웠다 허무는 고도의 창의력과 사고력이 필요하다. 어느 공부가 더 어렵냐고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 알파고를 이긴 바둑기사 이세돌,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생을 동일선상에 놓을 순 없다. 분야가 다르니 필요한 지적 능력도 다를 뿐이다. 그런데 현실은 사고력이 뛰어나든, 암기를 잘하든 모두 의대가 빨아들인다. 의대에 가려면 수능 미적분이나 기하 점수가 높아야 하는데 정작 의대 공부에는 이 과목들이 별 쓸모가 없다. 대학은 굳이 이런 모순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수능 만점자가 우리 의대에 왔다’ ‘우리 의대 커트라인이 높다’는 타이틀을 포기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제주대가 내놓은 ‘무(無) 수능 선발’ 구상은 주목할 만하다. 수능 등급이 아니라 정말 의사의 인성과 자질을 갖춘, 지역 의료를 지탱할 학생을 뽑겠다는 결단이다. 서울의 유명 대학들도 못 한 결정이다. 2020년 의료 파업 당시 논란이 된 의사단체 홍보물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할 진단을 받을 때 ‘전교 1등 출신 의사’와 ‘성적 낮은 공공의대 의사’ 중 누구를 선택하겠냐는 내용이었다. 지금 되묻는다. 사직서를 던지고 병원을 뛰쳐나간 의사와 동료의 비난을 참으며 병동을 지키는 의사 중 국민들은 누구에게 몸을 맡기겠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합리적 판단,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의사란 직업의 특별함을 아는 소명의식. 이런 자질을 갖췄다면 수능 2등급이건 3등급이건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딸들이 아플 때 돌봐줬던 그 의사가 어느 의대를 나왔는지, 수능 몇 등급이었는지는 모른다. 사실 관심도 없다. 그 대신 수많은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는 와중에 변함없이 홍제동 상가 5층 진료실을 지키며 아이들을 돌봐줬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는다. 환자에겐 그런 의사가 최고의 의사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정부가 전국 의대 40곳의 2025학년도 대학별 입학 정원을 20일 발표했다. 총정원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어난 가운데 비수도권 의대(27곳)는 정원이 현재보다 1639명, 경기·인천 지역 의대(5곳)는 361명 늘었다. 서울 지역 의대는 1명도 늘지 않았다. 의사단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정부가 서둘러 대학별 정원을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의 쐐기를 박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증원분) 2000명 중 비수도권 대학에 82%에 해당하는 1639명을 배정했고, 지역인재전형을 적극 활용해 지역 정주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서울과 경인 지역 간 과도한 편차 극복을 위해 서울에는 신규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국 지방 거점 국립대 중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 7곳은 정원이 일괄적으로 200명으로 늘면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정원을 보유한 ‘매머드급 의대’가 됐다. 특히 충북대의 경우 현재 49명인 정원이 200명으로 308%나 늘었다. 또 정원 50명 미만이던 ‘미니 의대’들은 80∼100명으로 늘었다. 비수도권 중규모 의대들은 정원이 100∼150명 사이가 됐다. 교육부는 배정 기준으로 “비수도권 집중 배정, 소규모 의대 역량 강화, 지방 및 비필수 의료 지원 등 3대 기준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이 몰려 있는 서울 소재 의대 8곳에는 증원분이 전혀 배정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몇 명이라도 배정할 방침이었는데 지역균형 원칙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배경을 전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서울 3.61명, 인천 1.89명, 경기 1.80명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2000명 증원은 의사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이다. 정치적 손익에 따른 적당한 타협은 결국 국민의 피해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일제히 반발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오늘(20일)부터 14만 의사들은 의지를 모아 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며 “필요하면 정치권과도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3개 단체는 이날 화상회의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의대 증원]“지방의료 붕괴 막겠다” 82% 배정… 지방거점 국립대, 3~4배로 늘려성균관대-아주대, 40→120명… ‘미니의대’ 80명 이상으로 증원당장 내년부터 시설 확충해야… 교수 확보 등 여건 개선 쉽지않아“해부시신 1구로 40명씩 실습 우려” 20일 발표된 의대 정원 배분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요 지역 거점 국립대 정원을 200명으로 대폭 늘린 것과 당초 “조금이라도 배분하겠다”는 방침을 바꿔 서울 지역에 인원을 전혀 배정하지 않은 것이다. 정부 안팎에선 ‘의대 증원’이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의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대국민 담화문에서 “의료개혁의 가장 절박한 분야는 지역 의료 강화”라고 강조했다.● ‘빅7’ 국립대 의대 출현 이날 의대 정원 배분 결과에 따르면 경북대, 경상국립대, 부산대, 전북대, 전남대, 충북대, 충남대 등 지역 거점 국립대 의대 7곳은 정원이 58∼151명씩 늘어 200명의 ‘매머드 의대’로 거듭나게 됐다. 특히 충북대 의대는 49명에서 200명으로 4배 이상으로 늘었고, 경상국립대 의대도 76명에서 200명으로 163% 늘었다. 200명 미만을 신청한 강원대와 제주대만 ‘신청 범위 내에서 배정한다’는 방침에 따라 각각 132명, 100명이 배정됐다. 지금까지 단일 의대 기준으로 정원이 가장 많은 대학은 전북대(142명), 2위는 서울대(135명)였다. 하지만 이번 조정으로 서울대는 지방 국립대 ‘빅7’은 물론이고 조선대 원광대 순천향대(각각 150명)보다도 적은 11위가 됐다. 지금까지는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을 산하에 둔 울산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가톨릭대 의대가 톱5 의대로 꼽혔는데 판도가 바뀔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경기·인천 지역은 정원이 40∼49명이었던 ‘미니 의대’ 5곳의 정원이 80∼130명으로 총 361명 늘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성균관대와 아주대의 경우 의대 정원이 각각 40명에서 120명으로 3배가 됐고, 인천에 있는 가천대의 경우 40명에서 130명으로 더 크게 늘었다. 이들 대학은 모두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전혀 증원되지 않은 고려대(106명), 연세대(110명) 등보다 규모가 커졌다. 정부는 예고한 대로 정원 50명 미만이었던 미니 의대 17곳의 정원을 최소 80명 이상으로 늘렸다. 미니 의대는 1980년대 정부의 ‘미니 의대 다수 설립’ 정책에 따라 설립됐지만 정원이 적은 탓에 규모의 교육을 수행하기 어렵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도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의대 정원이 49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난 동아대 관계자는 “학교 병원이 1000병상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증원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영남대 계명대 등 비수도권 중규모 의대의 경우 100∼150명 수준이 됐다.● 단기간 대폭 증원 ‘겉핥기 실습’ 우려 정부가 비수도권에 증원분을 집중 배정한 것은 장기적으로 지방에 정착해 지방 의료 붕괴를 막을 의사를 키워내기 위한 것이다. 비수도권 의대를 졸업하고, 해당 지역에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수련 과정을 마칠 경우 절반 이상이 해당 지역에 정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배정에 참고했다고 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대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높이고 지역병원 수련을 확대하는 등 전 주기에 걸친 지역 의사 확보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정원이 많게는 4배로 늘어나는 만큼 교육의 질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의대는 이르면 예과 2학년부터 인체 해부를 배우기 위해 6∼8명으로 조를 짜고 커대버(해부용 시신) 실습을 한다. 그런데 실습용 시신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재학생만 늘면 커대버 한 구당 학생 30∼40명이 실습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의대의 경우 실험과 실습 위주로 운영되는 만큼 커대버 외에도 단기간에 실습 시설 확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 국립대 의대 관계자는 “겉핥기 실습으로 양질의 의사를 길러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내년도 입학생이 예과 2년을 거쳐 본과에 들어가는 2027년까지는 교육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늘어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2027년까지 거점 국립대 교수 1000명을 확충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료계에선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의 한 국립대 의대 교수는 “정부는 기금 교수를 전임 교수로 채용하겠다고 하는데 명찰만 바꾸는 조삼모사”라며 “석사 이상의 학위와 교육 및 연구 경험이 있는 신규 교수 후보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미니 의대의 경우 평균 임상의학 교수 수는 학교당 162.7명으로 일반 의대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지역의 한 의대 교수는 “미니 의대는 정원이 2, 3배로 늘어난 만큼 단기간에 교수를 대거 충원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평가를 통과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정부는 “의학교육 여건 개선을 위해 교육부와 복지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이 협력하며 교원 확보, 시설·기자재 확충을 적극 지원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이은택 nabi@donga.com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명문대를 나온 고(高)스펙 졸업자는 대기업 공채로 직장을 시작하지만, 반대편에는 박봉의 비정규직으로 출발하는 이들이 있다. 상부와 하부 노동자 사이의 갭이 큰,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다. 전문직의 경우 지식과 기술, 감수하는 위험의 크기가 연봉에 비례해 올라간다. 그런데 위아래가 뒤집힌 신기한 분야가 있다. 의대를 나와 의사고시에 갓 합격하면 일반의 자격증을 딴다. 보통 6년인 전공의 수련 과정을 안 밟아도 미용 시술을 익혀 개원하면 월 소득 1000만 원을 거뜬히 버는 이른바 ‘무천도사’, ‘월천도사’가 된다. 응급도 없고, 소송 위험도 크지 않다. 그 정점이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개원의’다. 심지어 안과에서 비급여 무릎연골주사로 돈을 번다. 반면 대학병원에 남으면 1만 원 남짓한 시급을 받고 주당 80∼100시간씩 일하는 전공의가 된다. 시스템의 밑바닥에서 갈려 나가다가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병원에 남으면 과로와 소송, 고소득 개원의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전임의(펠로)가 된다.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붕괴된 필수의료를 살리려면 넘치는 개원가를 눌러줄 정책도 필요하다. 수술실을 지키는 필수의료 의사들이 개원을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아주대병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중증외상 권위자 이국종 교수(현 국군대전병원장)는 마음만 먹으면 병원을 열어 떼돈을 벌 수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국종들’이 소명 의식으로 버티고 있다. 의료 개혁에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모든 국민이 지금처럼 적은 부담으로 필수의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심장 수술비가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는 나라는 우리가 지향하는 국가가 아니다. 힘들게 고난도 필수의료 치료를 하는 의사는 많은 보상을, 그렇지 않은 의사는 적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서울대 의대 수석 졸업생의 종착지가 동네 피부과 개원인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국민이 지출할 수 있는 의료비에는 한계가 있다. 건강보험 덕분에 필수의료를 적은 부담으로 누릴 수 있다 보니, 여윳돈으로 미용 등 비필수 비급여 의료에 돈을 낼 여력이 생긴다. 진료비를 시장 논리에 맡기면 필수의료 의사들은 떼돈을 벌고 미용 개원가는 쪼그라들 것이다. 사람이 살고 봐야 피부도 가꾸고 턱도 깎기 때문이다. 개원가는 건보 시스템의 반사이익으로 고소득을 누린 측면이 있다. 결국 결론은 비필수 개원가의 수익을 필수 분야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과 법, 조세 제도에 기반한 ‘부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의사들 입에서 “피부과 개원은 편한데 돈은 안 돼”, “중증외상은 힘들어도 많이 벌어”라는 말이 나와야 문제가 풀린다. 이를 제일 잘 알았던 의사들이 먼저 문제를 바로잡으려 노력했다면 지금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지난달 입학식 축사에서 “이웃과 사회의 안녕을 도외시하며 이뤄진 개인의 성취는 사회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행복하기 어렵다. 내 삶의 계획이 시대적 요청과 조화를 이루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을 향한 죽비(竹篦) 소리처럼 들렸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학령 인구 절벽’과 ‘지방 소멸 위기’가 겹치며 고사 위기에 놓인 지방대를 살리고 고등교육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글로컬대학’ 사업 1차 선정 대학이 발표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선정 대학에는 한 곳당 1년에 200억 원씩 5년간 총 1000억 원이 지원된다. 전체 규모 3조 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 대학 사업’이라고 불리는데 지난해 11월 10곳을 선정한 데 이어, 올해와 내년에도 10곳씩을 선정해 총 30곳이 지원 대상이 될 예정이다. 》지난해 선정된 10곳 중 4곳은 통합을 전제로 공동 신청한 대학들이다. 강원대-강릉원주대, 부산대-부산교대, 안동대-경북도립대, 충북대-한국교통대 등이다. ‘지방대 간 통합을 장려해 학생 감소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정부 기조에 따른 것이다. 선정 당시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대학 상당수에선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의 반발이 쏟아졌다.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통합 내건 대학들, 학생 간 장벽 없애기 노력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역사와 전통, 학풍을 가진 대학이 하나가 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부산대와 부산교대의 경우 사업에 지원할 당시부터 재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1946년 9월 개교한 부산대는 ‘영남 최고의 대학’이란 자부심이 있었다. 1946년 설립된 부산사범학교가 모태인 부산교대 역시 ‘초등교사 양성 기관’이라는 프라이드가 높았다. 그럼에도 두 대학은 글로컬대 사업에 함께 지원하면서 학교를 통합해 신입생 감소와 지역 여건 악화, 재정난을 타개하겠다는 구상을 제출해 지원이 결정됐다. 부산대와 부산교대는 학생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양 대학의 학생 대표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간담회를 시작했다. 물리적 통합 전 학생부터 서로 소통하고 벽을 허물어보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12월 4일 부산대에 모인 부산대 및 부산교대 학생 대표자 83명과 교직원 18명은 교육, 문화, 복지, 자치 등의 분야에서 유대를 쌓을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학생 대표자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서로 상대방 학교의 수업을 수강한 뒤 소감을 나누고, 양 대학 학생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기존 부산대에서 해온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부산교대 학생도 팀을 꾸려 참여하고, 각자 대학 신입생을 상대방 대학에 데려가 캠퍼스 투어를 시키자는 제안도 있었다. 일부 아이디어는 추진이 결정됐고 일부는 검토 중이지만, 학생 대표들이 거듭 만나면서 초반보다는 반발이 한층 줄었다는 평가다. 글로컬대 사업을 계기로 학교가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곳도 있다. 포스텍(포항공대)은 올 1월 30일 이사회에서 ‘포스텍 2.0’이란 명칭으로 ‘제2의 건학’ 추진안을 의결했다. 글로컬대 선정으로 지원받는 교육부 예산 1000억 원에 법인 추가 투자금 등을 더해 총 1조2000억 원을 2033년까지 포스텍 2.0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그중 3160억 원은 교원 및 연구 혁신에, 1180억 원은 학생 및 교육 혁신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추진안에는 재학생이 소속 학과와 무관하게 다양한 전공을 이수해 학과 간 경계를 없앨 수 있는 ‘오픈 커리큘럼’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 주도의 대학 지원 사업이 대학 자체의 대규모 투자로 이어진 것이다.● 올해는 전문대도 뛰어들어 지난해 글로컬대 선정에 실패한 대학들은 올해 ‘재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 지난해의 경우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전문대들도 뛰어들며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부산 지역의 경남정보대, 대동대, 동의과학대, 부산과학기술대, 부산경상대, 부산보건대, 부산여대, 부산예술대 등 8곳은 올해 글로컬대 사업에 전문대 연합대학 형태로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4년제 대학 없이 전문대만으로 글로컬대 컨소시엄이 꾸려진 것은 처음이다. 이들 부산 8개 전문대 연합을 모두 더하면 총 신입생 정원 7700여 명, 재학생 2만4000여 명에 달한다. 이런 연합이 가능했던 건 지난해 ‘단독대학’과 ‘통합대학’ 유형만 응모할 수 있게 한 교육부가 올해부터는 ‘연합대학’ 유형도 지원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국립대와 비교하면 사립대는 각자 재단이 있기 때문에 학교끼리 통합이 쉽지 않다. 대학을 통합하려면 재단이나 사학 법인도 통합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글로컬대 사업에선 통합을 내건 국립대들이 대거 선정됐는데, 이후 사립대를 중심으로 “통합까진 어렵지만 그래도 복수의 사립대가 함께 글로컬대 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신유형을 신설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다만 교육부는 통합대학과 연합대학 유형에는 지원금에서 차이를 두기로 했다. 글로컬대는 기본적으로 선정된 대학 한 곳당 5년간 총 1000억 원을 지원하는데, 두 곳 이상이 함께 응모한 통합대학 유형에는 평균 1500억 원을 준다. 반면 연합대학은 참여 대학 수에 관계없이 총 1000억 원을 지원해 공동으로 신청한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나누도록 했다. 예를 들어 부산 8개 전문대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낸다면 이들이 1000억 원을 내부적으로 배분해 사업을 수행하는 식이다. 전문대 컨소시엄은 학생들의 취업과 직업 교육에 강점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4년제 대학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학 8곳이 통합 직업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지역 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광역지자체인 부산시의 지원까지 더해지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역 사회에서 나온다.● 지자체도 사활… ‘속도 조절’ 필요 지적도 교육부의 대학 사업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지방자치단체들도 ‘글로컬대 수주전’에는 사활을 걸고 있다. 지원금 규모가 크다 보니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올 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충남도청에서 만나 “대전과 세종, 충남은 인구가 400만 명에 달하는 만큼 한 곳 정도는 선정됐어야 했다”며 지난해 선정 결과에 불만을 드러냈다. “우리는 다들 화가 많이 나 있다”고까지 했다. 김 지사는 이후 도내 대학 총장들을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뼈를 깎는 대학 혁신을 추진하고 올해 글로컬대 공모에 재도전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글로컬대 사업이 내실 있게 추진되기 위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부설 고등교육연구소는 지난달 발간한 ‘2023 고등교육 현안 정책 자문·분석 자료집’에서 “최근 통합 추진 대학이 글로컬대 선정에 유리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업 기간 내 통합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는 기준이 성급하고 불완전한 통합을 촉진할 수 있어 우려된다”며 “대학 통합이 개별 대학과 고등교육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정부가 명확히 이해하고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적 접근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미국 대통령은 취임 때 왼손을 성경에 얹고 선서를 한다.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한 뒤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라고 끝맺는다. 한국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로 시작해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로 끝나는 선서를 한다. 선서를 하는 다른 직업도 있다. 간호대 학생들은 임상 실습에 나서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촛불과 휘장이 갖춰진 가운데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라고 맹세한다. 소방관에게는 복무 신조처럼 내려오는 ‘소방관의 기도’가 있다.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쓴 시(詩)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방화 현장에서 순직한 고 김철호 소방관의 책상에 이 기도문이 남아 있었다. 선서를 하는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뛰어넘는 희생과 헌신,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그 자리와 업무를 감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국가 공동체 유지에 없어선 안 되는 일. 그래서 이들의 선서는 때론 비장하고 뭉클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직무 선서는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데 보통 의과대학 본과 3학년 학생들이 임상 실습을 앞두고 한다. 교수와 학부모까지 모여 의사 가운을 입혀 주는 ‘화이트 코트 세리머니’를 한 후 청진기를 수여하고 선서문을 읽는다. 청진기를 주는 이유는 환자의 고통과 절망을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어제(20일)부터 전국 병원 전공의 중 상당수가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에 항의하는 의미로 진료를 중단하고 환자 곁을 떠났다. 폐암 앓는 어머니를 둔 아들, 신장 이식 대기자, 제왕절개 날짜를 받아 놓은 임신부 등은 날벼락 같은 수술 연기 통보를 받았다. 환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나는 아직 연락을 못 받았는데, 어디 병원인가요’ 등의 절박한 대화가 오가고 있다. 선서를 읊던 의대생과 환자를 외면하고 사직서를 던진 전공의,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7일 의사 집회 중 단상에 오른 내과 1년 차 전공의는 말했다. “중요한 본질은 내 밥그릇을 위한 것이다. 제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라고 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밥그릇 선서로 수정돼야 마땅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의사들이 잘했다고 박수 치는 사람이 없다. 국민이 왜 싸늘하고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전공의들은 성찰해야 한다. 병원을 뛰쳐나간 전공의 중에서 혹시 하얀 가운의 본질이 ‘하얀 밥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여전히 환자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 당신의 가장 강력한 우군, 바로 당신의 의술에 생명을 맡겼던 환자들이 그곳에 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확대’ 방침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한국갤럽은 13∼15일 전국 성인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 증원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6%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답했다.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답변은 16%에 불과했다. 의대 증원에 긍정적인 점이 많다는 답변은 연령대와 지역,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부정적인 점이 더 많다는 답변의 2배 이상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자의 81%,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73%가 의대 증원에 긍정적으로 답변하는 등 여야 지지자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거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한 응답자 중에도 7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특히 의사 부족 문제가 심각한 대구·경북 지역과 대전·세종·충청 지역에선 긍정 응답 비율이 80%를 넘었고, 광주·전라 지역도 긍정 응답 비율이 79%에 달했다. 의대 증원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는 ‘의사 수 부족과 공급 확대 필요’를 꼽은 응답자가 40%로 가장 많았다. 국민 편의 증대와 의료 서비스 개선(17%), 지방 의료 부족과 대도시 편중(15%), 특정 과목의 전문의 부족과 기피 문제 해소(4%)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11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발표한 성인 1000명 대상 설문에서도 82.7%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 바 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현재 513만 명인 초중고교 학생 수가 2년 후 400만 명대로 떨어지고, 5년 후에는 427만 명까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005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 수만 400만 명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학령인구 절벽’ 현상이 이미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12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2024∼2029년 학생 수 추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중고생은 모두 513만1218명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2026년에는 483만3026명으로 줄며 500만 명 선이 깨지고, 2029년에는 현재보다 20% 가까이 줄어든 427만5022명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학교별로는 초등생, 중학생, 고교생 순으로 감소 폭이 클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 결과다. 2005년까지만 해도 400만 명이 넘었던 초등생은 올해 248만1248명으로 줄었다. 또 2029년에는 172만9805명으로 30%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133만6387명에서 123만6400명으로 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교생은 131만3583명에서 130만8817명으로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초등생 중에서도 저학년이 줄어드는 폭이 고학년보다 컸다. 초3은 37%, 초2는 33%, 초4는 32%, 초1은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가르칠 학생이 줄면서 교사 수도 줄고 있다. 정부는 최근 공립 초중고교 교원 정원을 4296명 감축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 정원 관련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공립초 교원 정원은 14만8683명에서 14만6559명으로 2124명(1.4%) 줄어든다. 공립 중고교 교원도 14만881명에서 13만8709명으로 1.5% 줄어든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교원 정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2022년에는 교원 정원을 1089명 줄였고, 지난해도 3401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줄면서 향후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문을 닫는 학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현재 513만 명인 초중고교 학생 수가 2년 후 400만 명대로 떨어지고, 5년 후에는 427만 명까지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2005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 수만 400만 명이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학령인구 절벽’ 현상이 이미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12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발표한 ‘2024~2029년 학생 수 추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중고생은 모두 513만1218명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2026년에는 483만3026명으로 줄며 500만 명 선이 깨지고, 2029년에는 현재보다 20% 가까이 줄어든 427만5022명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학교별로는 초등생, 중학생, 고교생 순으로 감소폭이 클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 결과다. 2005년까지만 해도 400만 명이 넘었던 초등생은 올해 248만1248명으로 줄었다. 또 2029년에는 172만9805명으로 30%가량 더 줄어들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133만6387명에서 123만6400명으로 7%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고교생은 131만3583명에서 130만8817명으로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초등생 중에서도 저학년이 줄어드는 폭이 고학년보다 컸다. 초3 감소폭은 37%, 초2는 33%, 초4는 32%, 초1은 3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가르칠 학생이 줄면서 교사 수도 줄고 있다. 정부는 최근 공립 초중고교 교원 정원을 4296명 감축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 정원 관련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공립초 교원 정원은 14만8683명에서 14만6559명으로 2124명(1.4%) 줄어든다. 공립 중고교 교원도 14만881명에서 13만8709명으로 1.5% 줄어든다.정부는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교원 정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2022년에는 교원 정원을 1089명 줄였고, 지난해도 3401명을 추가로 감축했다. 학생과 교사가 동시에 줄면서 향후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문을 닫는 학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입시와 관련해 “미국 하버드대 같은 경우 면접을 1시간 이상씩 하면서 학생의 종합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본다. 우리도 전체적인 방향은 하버드대처럼 가는 게 아닌가 싶다”며 향후 면접 전형을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시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것이냐는 질문에는 “입학본부의 학업 성취도 연구 결과를 반영해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2028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이과 과목 구분을 없애고 심화 수학을 배제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입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능 위주인 정시에서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일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유 총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서울대 운영 방향과 함께 무전공 선발 확대 등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2월 1일 취임한 유 총장은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교육부의 수능 개편과 관련해 서울대도 정시에서 내신 비중을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서울대 입학본부에서 입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어떤 전형으로 들어와 대학에서 어떤 성취를 이뤘고, 졸업 후 어떤 진로를 택했는지 등을 스터디하고 있다. 그 결과가 데이터로 나오면 이에 근거해 개선할 것이다. 입학본부에선 충실한 학업 성취와 교과 과정 평가를 반영하는 전형을 종합적으로 연구 중이다.” ―서울대 입학생을 보면 여전히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출신이 많다. “우리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교과 성적만 보는 건 아니고 학생의 전반적 활동과 생활기록부 등을 다 본다. 또 성적만 가지고 뽑지 않기 위해 면접을 통해 학생의 태도, 품성적 자질 등을 본다. 미국 하버드대는 학생을 뽑을 때 면접 시간만 1시간이 넘는다. 학생의 종합적 역량이나 잠재력을 다 살펴보는 것이다. 현재 우리 입시는 수능 성적, 내신 등급 같은 점수화된 정량적인 지표로 이뤄지고 있는데, 결국 우리도 전체적인 방향은 그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반고의 학력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일반고의 학력을 더 높이겠다면 학교와 학교 간의 경쟁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을 교육 당국에 드리고 싶다. 미국 공립학교들은 모든 학업 성취도를 공개한다. 학교 간 성취도 비교가 가능하고 학부모도 이를 알기 때문에 사립고가 아닌 공립고 사이에서도 잘하는 학교로 학생과 학부모가 쏠린다. 이 같은 공개 및 경쟁 시스템을 통해 교사들의 노력을 독려할 수 있고 학생들의 학업 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 확대 방침이 논란이 됐다. “사회적으로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 다만 대학들이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학교에 개입하지 말고 대신 지원을 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영국 교육을 개혁할 때 정부가 교과에 개입하지 않고 교사 급여를 두 배로 올렸다. 훌륭한 교사, 훌륭한 인력이 있어야 훌륭한 교육도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훌륭한 교사들이 학교로 올 수 있게 인센티브 시스템을 마련한 게 교육 개혁이었다.” ―무전공 선발이 확대되면 비인기 학과는 폐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에서 도입한 ‘팀 티칭’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싶다.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이란 과목에 수의대 교수와 인문대 교수가 함께 들어가 토론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2명 이상의 교수가 한 강의실에 동시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학생들 앞에서 토론도 한다. 과목에 따라 교수 3∼5명이 한 강의실에 들어갈 때도 있다. 다른 대학들도 충분히 이런 방식의 수업이 가능하다. 서울대는 2025학년도부터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학부대학’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다. 1학년이나 1, 2학년 재학생을 본래 소속된 과·계열과 별도로 학부대학으로 묶어 다양한 학문, 전공을 공부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한 분야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먼저 모든 분야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폭넓은 교양을 갖춘 인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에 막상 들어와 보니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 복수전공과 부전공 같은 다전공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서울대의 경우 다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 30%가 넘는다.” ―의대 열풍 때문에 서울대 이공계에서도 학생이 이탈하고 있다. “의대 열풍은 대학의 자체 노력이나 입시 제도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인센티브 구조의 문제다. 학생 개인이 열망, 적성, 선호에 따라 의대에 가겠다는데 대학이 가두리 양식장처럼 막을 순 없다. 이공계 인재들이 의사처럼 평생의 커리어가 보장되지 않으면 ‘평생 면허’를 따기 위해 의대로 쏠리는 현상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 이공계 분야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는 만큼 국가 정책 차원에서 이공계에 대한 교육 연구 지원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도 이공계 수요가 높을 때 병역특례 같은 인센티브를 확대했는데 그런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초등학생을 겨냥한 학원의 ‘의대 준비반’도 있다. “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과 직접 개입하는 건 다르다. 인간은 틀에 맞춰 일하는 기계가 아닌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기계처럼 보는 것 같다. 규격화와 통제 시스템에서 일찍부터 ‘의대’라는 틀에 맞춰 찍어내려는 것이다. 이 같은 개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부모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의 진로 및 진학의 기본 틀을 짠다. 학생의 잠재력과 능력을 가장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저희 부모님은 교육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정치학과 진학을 선택한 것도 개인적 선택이었다. ‘성적이 좋으니 법대에 가라’ 같은 얘기도 일절 안 하셨다(웃음).” ―최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과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CES)에 참석했다. 외국에서 어떤 걸 느꼈나.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은 대학이 정부, 사회, 기업과 한 몸처럼 움직이면서 차원이 다른 투자가 이뤄지고 있었다. 정부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학에 투자하고, 사회는 대규모 기부로 재정을 키워주고, 기업은 산학 협력 연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다. 반면 한국은 대학과 정부, 기업이 서로 단절돼 대립하는 구도다. 국민들도 자녀가 초중고교에 다닐 때까지는 관심이 높지만 대학 합격 후에는 대학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다. 국가의 중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다. 대학도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혁신 노력을 해야 하지만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고등연구 생태계가 서서히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취임 1년간 어떤 분야에 주력했나. “그동안 서울대가 내부 구성원이나 사회가 봤을 때 충분히 개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는가, 미래를 준비하려는 노력을 했는가 하는 차원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2025년은 관악캠퍼스를 중심으로 대학 종합화가 이뤄진 지 50주년 되는 해다. 또 2026년은 개교 80주년이다. 또 지금은 세계적으로 공급망 위기, 복합 안보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등 국가적 도전 과제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서울대는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집단지성을 발휘하며 국가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 또 고등교육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서울대의 역할이다. 이런 과제를 해내지 못하면 서울대에 대한 신뢰는 없어질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이런 관점에서 제도 혁신과 재정 확충 등을 위한 여러 노력을 해 왔다. 또 관료주의적인 기존의 서울대를 네트워크형 대학, 플랫폼 대학으로 바꿔 나가려고 노력했다.” ―어떤 분야의 연구개발(R&D)에 주력하려 하나. “먼저 서울대는 양자기술의 허브가 되려고 한다. 서울대 양자연구단은 8, 9월경 시카고대 및 도쿄대와 공동 심포지엄 개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11월 3개 대학 연구진 총 30명이 온라인 회의로 각 대학의 양자 연구 상황을 공유했고, 4∼5월경 구체적인 공동 연구 주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7월에는 시카고대 양자과학기술 여름캠프에 양자 분야를 연구하는 이공계 학부생들을 보낸다. 지난달 18일 다보스포럼에서 세 대학이 양자 협력 의향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양자기술뿐만 아니라 탄소 중립, 기후 테크놀로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도 서울대가 연구개발의 허브 역할을 할 것이다.”유홍림 서울대 총장(63)서울대 정치학과 졸업미국 럿거스대 정치학 박사서울대 정치학과 교수한국정치사상학회장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서울대 28대 총장(2023년 2월~)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종종 부부 싸움의 발단이 된다. 7세와 5세인 두 딸은 두어 살 즈음부터 ‘엉뚱발랄 콩순이’로 시작해 ‘시크릿 쥬쥬 별의 여신’, ‘캐치티니핑’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밟았고 최근에는 ‘미라큘러스’, ‘슈퍼히어로걸스’ 등 외국 애니메이션을 섭렵 중이다. 조작법을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몰래 부모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가져가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해 만화를 튼다. 윽박과 체념을 오가다가 “보게 놔두자”, “그만 틀어주자” 하며 결국 아내와 싸우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교육부가 디지털 인공지능(AI) 교과서 도입을 준비하는 걸 보면 기분이 착잡하다. 교육계에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에듀테크(교육+기술) 열사’로 통한다. 이 부총리의 역점 사업으로 내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일부 과목에 디지털 교과서가 사용된다. 학생들은 종이 교과서 대신 태블릿PC를 들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옹호하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면서 첨단 기술을 일찍 접할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건 장점이다. 수업에 필요한 태블릿PC를 정부가 모든 학생에게 나눠주기 때문에 가정 형편의 격차가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기기 접근성의 차이)로 이어지는 걸 완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잃는 건 없을까. 연필과 종이책의 감촉,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습관, 교과서와 문제집 한 권을 마치면서 느끼는 성취감과 책거리, 필기구와 노트를 고르는 취향, 엄마 아빠와 서점에서 참고서 등을 고를 때의 망설임과 설렘. 이런 것들은 디지털 교과서가 줄 수 없는 경험이고 자극이다. 게다가 학교 수업은 지식 전달을 넘어 일생에 중요한 기억이자 추억이다. 선생님의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옆 친구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고, 친구의 가방 속과 노트 필기를 관찰하며 사람은 다르다는 걸 배우고 서로 소통하게 된다. 그런데 머잖아 아이들은 똑같은 태블릿PC만 뚫어져라 보며 수업을 하게 된다. 초등학생이 시험도 필기도 숙제도 태블릿PC로 하게 될 것이다. 반면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은 지난해부터 종이책과 필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 연구소는 “디지털 기기가 학습 능력을 손상시킨다는 명백한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도 수업 중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과 수학 점수가 반비례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어차피 성인이 되면 원치 않아도 사방에서 ‘까톡!’거리는 디지털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한 살이라도 일찍 디지털로 내몰아야 할지, 종이와 연필의 아날로그 경험을 지켜줘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지막으로 에듀테크 열사 이 부총리에게 소설가 김훈의 글을 하나 전하고 싶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김훈 ‘연필로 쓰기’)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KAIST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원장 엄지용)과 벤처투자기업 인비저닝 파트너스(대표 제현주 김용현)는 22일 기후테크 생태계 구축과 탄소중립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앞으로 양 기관은 △기후테크의 도약 생태계 구축과 글로벌 확장 △탄소중립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인재 양성을 위한 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 교육 고도화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창업 보육 및 육성 △기후위기 대응 관련 지식 공유 및 확산 등에 협력할 계획이다.엄 대학원장은 “기후테크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를 세계로 확장하는데 인비저닝 파트너스와의 협력이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지난해 9월 2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기자실에서 입 모아 말했다. “임금체불 근절이야말로 노사법치 확립의 핵심이다.” 그로부터 네 달이 지났다. 상황은 좀 나아졌을까. 고용부 등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봐도 소규모 금형·부품 공장이 밀집한 경기 부천시에선 지난해부터 임금체불 피해를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50, 60대 여성들이 2∼6개월 치 임금을 못 받는 사례가 많다. 지역 노동상담가는 “하루 10건 정도 상담이 들어온다”고 했다. 피해자 대다수가 저소득 근로자인 임금체불은 일상생활의 토대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생활비를 빌려야 하고, 대출을 못 갚고, 아이들 학원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근로자와 가족이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은 임금체불을 ‘임금 절도(Wage theft)’라고 표현한다. 미국 미네소타주가 상습 임금체불의 경우 최대 징역 20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법적 처벌도 강한 편이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임금체불액 규모는 1억5615만 달러(약 2059억 원), 피해자는 13만5067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1조7000억 원 이상이며 피해자는 30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경제 규모(GDP·국내총생산)는 미국의 15분의 1인데 체불액은 8배가량이나 된다.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임금체불은 사법경찰 권한을 가진 근로감독관이 수사한다. 그런데 범죄로 보기보다 개인 채무 관계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한 노동상담가는 “사업주가 도망가 행방을 모르겠다고 사건을 종결하거나, 체불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는데도 ‘처벌불원서를 쓰고 사장과 합의하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2021년 보고서에서 “2007년 반의사불벌조항 도입 이후 체불이 증가했다”며 “근로감독관의 과도한 합의 종용을 줄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체불은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판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고, 재판으로 가더라도 실제 처벌은 평균 200만 원가량의 벌금에 그친다. 못 받은 임금은 민사 소송을 내서 받아야 하는데 당장 내일 생계가 막막한 저임금 근로자들이 장기간 소송전에 매달리긴 쉽지 않다. 감독관은 수사 의지가 없고 벌금은 체불임금보다 훨씬 적으니 가해자는 도망가거나 버티는 게 이익인 구조다. 4개월 전 발언 때문에 제 발 저린 탓인지 고용부는 최근 “장관이 임금체불 근절에 나섰다”는 자료를 수시로 낸다. 지난해 1월에도 고용부는 “설 명절 대비 집중지도기간 운영으로 체불임금이 신속하게 해결됐다”며 자화자찬했다. 올해도 집중지도기간이 끝나면 비슷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는 동안 현장에선 임금체불로 나락에 빠지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근로자가 중대재해로 다치거나 숨졌을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예정대로 근로자 50인 미만(5∼49인) 영세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대비할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음에도 여야의 개정안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9일 본회의 처리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2년 추가 유예안 본회의 통과 실패 중대재해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는데 소규모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감안해 5∼49인 사업장에는 2년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이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야는 법 확대 적용 시점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6단체에서 “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법사위에 계류된 채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공식 사과 등 ‘3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들 “사장 구속되면 폐업해야” 2022년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이달 1일까지 사업주 총 12명이 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처벌 사례가 나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들은 안전관리자를 임명하고 현장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제대로 대비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는 상황이다. 경영계에선 중대재해법 유예가 최종 무산될 경우 사업주가 구속 또는 처벌되면서 경영 공백으로 폐업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적잖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회사는 내가 구속되면 20년 넘게 운영해 온 사업을 한순간에 접어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중소기업은 일반 직원도 구하기 어려운데 안전 관리 인력 채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임시방편으로 기존 인력을 교육시켜 안전관리자로 임명하겠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 관련 자격증이 없는 경우 법적으로는 안전관리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9일 입장문을 내고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27일 법 시행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다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날 관계 부처 합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정부와 경제단체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적극적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법 전면 시행 전까지 적극적인 개정안 논의와 신속한 입법 처리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반면 노동계는 추가 유예 없이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그동안 정부와 경제 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한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근로자가 중대재해로 다치거나 숨졌을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달 27일부터 예정대로 근로자 50인 미만(5~49인) 영세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대비할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음에도 여야의 개정안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9일 본회의 처리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2년 추가 유예안 본회의 통과 실패중대재해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는데 소규모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감안해 5~49인 사업장에는 1년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이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야는 법 확대 적용 시점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6단체에서 “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법사위에 계류된 채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공식 사과 △산업현장 안전 확보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제시 △더이상 추가 유예 요구를 하지 않을 것 등 ‘3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들 “사장 구속되면 폐업해야” 2022년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이달 1일까지 사업주 총 12명이 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처벌 사례가 나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들은 안전관리자를 임명하고 현장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제대로 대비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는 상황이다.경영계에선 중대재해법 유예가 최종 무산될 경우 사업주가 구속 또는 처벌되면서 경영 공백으로 폐업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적잖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회사는 내가 구속되면 20년 넘게 운영해온 사업을 한 순간에 접어야 한다”고 했다.수도권에서 의류 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중소기업은 일반 직원도 구하기 어려운데 안전 관리 인력 채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임시방편으로 기존 인력을 교육시켜 안전관리자로 임명하겠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 관련 자격증이 없는 경우 법적으로 안전관리자로 인정받기 어렵다.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9일 입장문을 내고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83만이 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27일 법 시행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다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정부도 이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정부와 경제단체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적극적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현장의 절박한 호소를 고려해 법 전면시행 전까지 적극적인 개정안 논의와 신속한 입법 처리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반면 노동계는 추가 유예 없이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그동안 정부와 경제 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한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기상청은 1일 오후 4시 10분 00초에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 북쪽 90km 해역에서 규모 7.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일본 북서부 해안 일대에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기상청은 강릉에 오후 6시 29분 높이 0.2m, 양양에 오후 6시 32분 0.2m, 강원 고성에 오후 6시 48분 0.3m, 포항에 오후 7시 17분 0.3m 높이 파도가 일 것으로 예상했다.기상청은 “강원 일부 해안에선 지진해일로 해수면 변동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해안가 안전에 주의하기 바란다“며 ”지진해일의 높이는 조석의 차이를 포함하지 않으며 최초도달 이후 점차 높아질 수 있으므로 유의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대한적십자사가 청렴한 내부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공모 받아 우수작을 선정하면서 “부하 직원이 약자라는 것을 내세워 상사를 괴롭히진 않는지 ‘을(乙)질’ 자가진단을 해보자”는 제안을 우수작으로 선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달 적십자사는 ‘청렴제안대회 결과’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직원들이 제출한 아이디어 중 우수한 것들을 선정해 조직문화 정책에 반영하자는 취지다.그런데 선정된 우수작에 ‘을질 자가진단’이 있었다. 여기에는 “MZ(밀레니얼+Z세대) 사원들이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갑질로 허위 신고하는 을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적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보직자를 제외한 직원들이 이런 ‘을질’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자가진단을 해보자는 제안도 함께 있었다.이 아이디어는 총 228건의 제출 작품들 중 2등으로 뽑혀 회장 표창을 받았다.그러자 적십자사 내부 직원 익명 게시판에는 “시대에 역행한다”, “내일도 팀장에게 을질하러 가야겠다” 등의 비판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이에 대해 적십자사는 처음에는 “담당 직원들이 심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적십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획조정실장, 법무지원팀장 등이 심사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자 “고위직이 심사한 것이 맞다”고 말을 바꿨다. 적십자사는 “이 아이디어는 실제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3월 28일 적십자사는 과거 ‘직장 내 괴롭힘’ 2차 가해자로 지목된 한 지방 혈액원 원장을 서울 동부 혈액원장으로 인사 발령 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어느 날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에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삼성전자, 현대차는 스마트폰과 신차 가격 동결에 동참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동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고 지원금도 줄인다면. “여기가 평양이냐”는 힐난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 자유시장경제 원칙이 당연한 듯 배제되어 온 분야가 있다. 대학 등록금이다. 26일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내년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을 5.64%로 발표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등록금 동결에 동참해 달라”고 밝혔다. 말은 당부인데, 당사자에게는 협박으로 들린다. 10년 넘게 되풀이 중이다. 땅도 자원도 빈약한 한국은 교육과 똑똑한 인재들 덕분에 이만큼 발전했다. 그런데 그 교육이 대학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대학 관계자는 현실을 털어놨다. “학부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공계조차 무너졌다. 입학하자마자 반수 시작해서 제주대 약대라도 가려 한다. 메디컬(의약학 계열) 빼고는 초토화됐다. 대학원은 정원도 못 채우고 고도의 학문 연구 기능은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외 인재를 모셔 오고 싶어도 희망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 대학은 교육 기관이지만 다른 기능도 해야 한다. 최정상급 인재를 교수나 연구자로 흡수해서 지식을 재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창업에 뛰어들어 기존에 없던 부와 가치를 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제품 개발에 쓸 원천 기술, 기초 과학 기술도 결국 최초 생산자는 대학이다. 한 국가의 지식과 가치 창출의 핵심이 대학이어야 하는데, 이는 규모의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대학경영협회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 기금은 494억 달러(약 63조9927억 원), 스탠퍼드대가 353억 달러(약 45조7029억 원)다. 한국 최상위권 사립대 작년 수입이 6000억∼9000억 원 수준(이월금 포함)이다. 적립금은 5000억∼7500억 원 수준이다. 영유아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 학비가 연 2000만 원을 넘는데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이 그 절반도 안 되는 757만3700원이다. 등록금 싸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 연방교육부가 등록금 상한을 정하진 않는다. 대신 장학금 확대, 학비 대출 지원에 주력하고 소비자(학생)가 좋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덕분에 미국 대학은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최강 기술 강대국의 원천이다. 우리 교육부는 어떤가. ‘표(票) 떨어질 일’이라며 10년 넘게 대학 재정을 묶어놓고, 얼마 안 되는 재정사업으로 대학을 쥐고 있다. 그 결과 모든 한국 대학이 자생력을 잃고 교육부가 꽂아놓은 ‘지원금 링거’로 연명 중이다. 한국 고등교육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교육부 권한을 유치원 및 초중고교와 국공립대 범위로 축소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감사, 감독 권한 정도만 남겨야 한다. 등록금이 가계 부담이라면 조(兆) 단위 대학사업을 장학금으로 돌려 직접 학생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교육부가 권한을 놔야 ‘돈값’ 못 하는 대학은 자연스레 퇴출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대학은 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다. 가장 시급한 교육 개혁은 ‘교육부 개혁’이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유래: 서경(書經)과 맹자(孟子)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서경에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아뢰기를 “임금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자리를 어렵게 여겨야 하며, 신하도 자신의 위치를 어렵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은 덕을 숭상하려고 힘쓸 것입니다”라고 하자 순임금이 대답하기를 “그렇소. 그렇게 하면 충언이 받아들여지고 어진 사람이 등용되어 온 나라가 다 평안하게 될 것이오. 나를 버리고 남을 좇으며(舍己從人), 의지할 곳 없는 이를 학대하지 않고 곤궁한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는 일들은 오직 임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오”라고 하였으며, 맹자(孟子)에서도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 주면 기뻐하였고, 우임금은 옳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으며, 위대한 순임금께서는 착한 일은 남들과 함께하고, 선하지 않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으며(舍己從人) 남에게 착한 것을 취하여 행하기를 즐겼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거리: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라. 천하의 의리는 끝이 없는데 어찌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질문이 있으면 하찮은 말이라도 반드시 생각하여 대답하고,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데서 퇴계 선생의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상조 전 청담고 교사}
연말 시릴 때마다 떠오릅니다. 보온도시락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자 보였던 시퍼런 새벽하늘. 근심을 삼킨 채 “잘 다녀와” 손 흔들던 부모님. 버스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영어 단어장을 최후까지 곱씹던 시간. 이해찬 세대, 최악의 불수능. 2001년 11월 7일, 21세기 첫 수능을 치른 우리 2002학번을 규정한 말들이었습니다. 그때 수능을 마친 교실은 볼만했습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집을 당당하게 푸는 친구도 있었지요. 하교하면 게임방으로 몰려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에 접속했습니다. 그래도 수능 전의 일상을 크게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세상을 끝낼 듯 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닥치니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2024학년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어제 8일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정부는 한사코 ‘킬러(killer) 문항’이 없었다는데 사상자는 즐비합니다. 오징어 게임 최후 관문 같았던 수학 22번에서는 응시생 99%가 좌절했습니다. 전국 유일한 만점자는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이라며 세무조사와 압수수색을 벌인 바로 그 강남 대형 학원에서 나왔습니다. 이쯤이면 사교육의 필요성을 정부가 수능으로 증명해준 셈입니다. 어찌 됐든 시험은 끝났습니다. 수능을 본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봤습니다. “어제는 배추전 여섯 장, 오늘은 배추 볶음에 가까운 떡볶이, 저녁은 배추 된장국이래요.” 김장철이죠. 공부하느라 소화 불량에 시달렸을 텐데 배추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답니다. “그냥 내 실력이 처참했다”, “약을 먹어도 먹어도 속이 답답함.” 12년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했는데 자책이 앞섭니다. “학벌을 따기 위해 재수한 이유. (나를) 구차한 말 없이 한 단어로 증명할 수 있어서. 그것 말고는 없다.” 대학명이, 좀 지나면 직장명이, 연봉이, 보유한 아파트 이름이 나를 규정하는 세상을 우리는 대물림하고 있네요. 마음 쓰이는 글이 있었습니다. “매몰 비용이 너무 아쉬움. ㄹㅇ(레알·‘정말(real)’).” 매몰 비용은 이미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합니다.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말도 있는데, 실패했거나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시간, 노력, 돈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잠을 줄여가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12년이 시험 점수 낮다고 매몰 취급당한다면 얼마나 허탈할까요. 그래도 말입니다. 지금은 소진한 시간이 매몰 비용 같지만 훗날 돌아보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요. 2점짜리 문제를 풀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붉은 소낙비로 점철된 시험지를 물러서지 않고 마주하면서, 그대들은 단단해졌을 겁니다. 그것은 매몰이 아니라 퇴적입니다. 좌절과 실패, 노력한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인고(忍苦)의 지층을 구축하고 있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의 삶이 흔들릴 때, 누가 뭐래도 단단하게 붙잡아줄 화강암층. 끝으로 좋아하는 글을 빌려 위로와 응원을 전합니다. 수험생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뜨겁게 지져봐라/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살아남는 나, 나는 다이아.’(웹툰 ‘이태원 클라쓰’ 중)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양대노총이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재정 규모와 조합원 수 등을 공개했다. 지난해 수입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392억 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246억 원이었다. 30일 고용노동부의 회계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노총의 수입은 392억5718만원이었다. 전년도 이월금이 229억 원, 조합비 59억9000만원, 수익사업 수입 56억2000만원, 보조금 수입 39만8000만원이었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은 “수입 항목으로 잡혀있는 금액 중 212억 원은 임대보증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여의도 본부 건물은 한국노총 소유인데 그 안에 들어와있는 다른 업체들의 임대 보증금이라는 뜻. 이는 매년 새로 들어오는 돈이 아니고, 언젠가 업체들이 나가면 반환해야 할 돈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입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설명이다. 이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작년 수입은 180억 미만으로 추산된다. 작년 지출 내역에서는 인건비가 42억9000만 원이었다. 기타 운영비 30억3000만 원, 조직사업비로 4억5000만 원, 교육·홍보사업비 4억3000만 원이었다. 나머지 240억 원은 다음 년도로 이월했다.한국노총 조합원은 132만882명, 자산 총계는 약 523억 원이었다.민노총은 작년 수입이 246억3300만 원(전년도 이월금 46억 원 포함)이었다. 민노총은 조합비 대신 하부조직 부과금(180억9000만원)으로 수입을 집계했다. 보조금과 수익사업 수입은 별도로 기재하지 않았다.작년 지출 내역은 인건비가 90억6000만 원, 하부조직 교부금이 46억3000만 원이었다. 43억8000만 원은 다음 회계로 이월했다.조합원은 112만199명, 자산 총계는 87억7000만 원이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