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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대낮에 대전의 은행 지하주차장에서 현금 수송차가 습격당했다. 복면강도 2명은 3억 원이 든 현금 가방을 빼앗고, 저항하던 은행 직원에게 실탄까지 쐈다. 3중 선팅 된 검은색 차로 폐쇄회로(CC)TV가 없던 인근 지하주차장으로 이동한 이들은 하얀색 차로 갈아탄 뒤 사라졌다. 버려진 차에는 지문까지 닦여 있었다. 경찰은 은행 강도 영화를 빌려 본 사람들까지 1만 명 넘게 조사했지만 좀처럼 증거를 찾지 못했다. ▷16년 뒤 경찰은 압수물 창고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차량 속 손수건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 기존 수사 때는 범인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혈액형과 지문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국과수가 얼마 뒤 손수건에서 유전자(DNA) 정보를 찾아냈다. 범행 당시 얼굴을 가리던 용도로 쓰인 손수건에 땀이나 침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보관 중이던 수십만 명의 범죄자 DNA 정보와는 일치하지 않았다. ▷수사팀은 손수건 속 DNA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재수사에 나섰다. “최소 5년은 잡고 가자. 우리가 못하면 우리 자식을 경찰 시켜서라도 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수개월 전 경찰은 50대 초반의 용의자 A 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A 씨가 버린 담배꽁초를 입수했다. 담배꽁초와 손수건의 DNA 정보는 똑같았다. 경찰은 범행 21년 만인 27일 A 씨와 공범 B 씨를 동시에 구속 수감했다.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연장되지 않았다면 강도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당초 범행 15년 뒤인 2016년 12월까지였다. 2007년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났지만 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은행 강도 살인 사건은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 시행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남아 있던 2000년 8월 1일 이후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무기한으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살인 미제 사건 수사가 속도를 냈다. ▷3년 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가 33년 만에 붙잡혔던 것은 피해자 속옷의 미세한 땀방울까지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DNA 분석 기법이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없앤 것은 피해자 유족의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한 것이다. 은행 강도 살인 사건처럼 경찰이 추적 중인 미제 사건이 아직 279건이 더 있다고 한다. 경찰은 ‘완전 범죄는 없다’는 집념을 갖고, 조그마한 단서라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21일 오후 경기 수원시의 다세대주택 1층에서 60대 여성 A 씨와 40대 두 딸이 숨진 지 한참 뒤에 발견됐다. A 씨는 암 투병 중이었고, 두 딸은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남편은 지병으로 이미 사망했고, 손을 내밀 친인척도 없었다. 병원비 부담으로 보험금마저 채권자에게 넘어갔다. 경찰은 세 모녀가 생활고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 씨가 다세대주택으로 이사 온 것은 2년 전이었지만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주소지를 둔 경기 화성시는 복지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을 통해 A 씨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 지 한참 됐다”는 A 씨 지인 말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다. A 씨가 복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적도 없어 수원시와 화성시 모두 세 모녀가 숨진 뒤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한다. 같은 광역단체라도 기초단체만 다르면 사각지대 발굴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가장을 잃은 다세대주택 거주자인 수원 세 모녀의 비극적인 사연은 8년이라는 시차가 믿기지 않을 만큼 송파 세 모녀 사건과 놀랄 만큼 닮았다. 다세대주택 지하 1층에 거주하던 60대 여성 B 씨는 2014년 2월 두 딸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식당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한 달 전 몸을 다치면서 갑자기 수입이 끊겼다. 건강이 좋지 못했던 두 딸이 있었지만 이들이 근로능력이 있는 30대라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A 씨처럼 B 씨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극한 상황에 몰려서도 월세에 마음을 쓰던 모습도 비슷하다. A 씨는 집주인에게 “이번 달 월세(42만 원)를 내기 어렵다”는 휴대전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지병과 빚으로 더 이상 살기 힘들다’는 취지의 유서도 남겼다. 월세를 한 번도 미루지 않았던 B 씨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 위에 ‘주인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복지 혜택의 문턱이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조금 낮아졌다. 기초생활지원 대상자의 급여 기준을 최저생계비가 아닌 상대적 빈곤 개념의 중위 소득으로 높였다. 연체와 단수 등 각종 지표를 활용해 위기 가구를 찾아내는 시각지대 발굴시스템도 도입됐다. 하지만 대상자가 먼저 신청하지 않으면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데다 빈곤 비율(16%)에 비해 인구 대비 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4%)이 너무 낮은 것에 대한 허점이 여전히 메워지지 않고 있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해보겠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순호 행안부 초대 경찰국장의 파견을 취소할 계획은 없느냐’는 야당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야당은 김 국장이 대학 시절 노동운동단체인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서 활동하다가 동료들을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별 채용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윤 후보자는 “그런 부분까지 알고 추천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경찰청의 전신 내무부 치안본부가 인노회를 본격 수사한 건 1989년 2월이었다. 노태우 정부 출범 후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구성 혐의를 적용한 첫 사건이었다. 당시 관련자 15명이 구속됐다. 같은 해 4월 구속된 김 국장의 대학 1년 선배는 이듬해 출소 뒤 극단적 선택을 했고, 유족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인노회가 이적단체라는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찰의 영장이 한 번 기각된 적이 있는데, 2년 전 대법원은 재심 사건에서 인노회가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 1년 전 김 국장은 인노회에 가입했지만 이듬해 갑자기 동료들과 연락이 끊겼다. 동료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던 같은 해 8월 김 국장은 경찰에 특채됐다. 이후 대공 분실에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검거 표창을 받아 4년 8개월 만에 경장에서 경위로 초고속 승진했다. 김 국장은 동료 밀고 의혹에 대해 “소설 같은 얘기”라며 부인했다. 반면 옛 동료들은 김 국장이 신군부를 위해 운동권의 정보 수집 업무를 한 프락치였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김 국장이 특채 전 만난 인노회 사건의 수사 책임자 이력과 시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대공3부장이던 홍모 전 경감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보고서의 최초 작성자로 알려져 있다. 홍 전 경감은 4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인노회 사건에서 (김 국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고 특채로 받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홍 전 경감이 특채했다는 주장에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김 국장은 1989년 7월경 경찰을 찾아갔다고 했지만 홍 전 경감은 수사 전인 “그해 초”라고 했다. ▷인노회 수사를 전후해 경찰은 완전히 바뀌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은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 축소 사건의 재발을 막자며 경찰 중립 법안을 제출했다. 당시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것이 치안본부 폐지와 경찰청 분리였다. 31년 만에 부활한 경찰국의 상징인 경찰국장이 고문 수사와 프락치 의혹이라는 경찰의 흑역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김 국장이 사실 관계를 상세히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로22’ ‘국민의집’ 등 대통령실 명칭 후보군이 모두 마음에 안 든다고 하자 한 참석자가 우스갯소리로 “용산에 있으니 ‘용궁’ 어떠냐”고 했다. “궁이 들어가면 다 중국집 이름 같다”는 윤 대통령 답변을 다들 웃어넘겼다. 나흘 뒤 대통령실은 옛 청와대를 대체할 집무실 이름을 정하지 않고 당분간 ‘용산 대통령실’로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요즘 국회와 정부 부처 공무원은 용산 대통령실을 풀네임으로 부르기 쉽지 않자 용궁으로 짧게 줄여 부른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너무 길고, 국방부 청사가 있는 용산으로 줄이면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상징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프랑스의 엘리제궁, 러시아의 크렘린궁처럼 해외에서도 대통령 집무실을 궁으로 부르는 사례도 있다. 영문 약칭은 Dragon Palace의 이니셜 DP가 아닌 용산을 영어로 번역한 Dragon Mountain의 이니셜 DM이 자주 쓰인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18일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의혹을 비판하며 “국민의힘 보좌진과 기자들은 대통령실을 용궁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용궁의 의미에 대해 그는 “용산에 있는 궁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그들만의 리그라는 뜻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대통령실을 용궁으로 불렀다. 야당이 대통령실을 비판하기 위해 왕조시대와 신분사회를 연상시키는 궁(宮)이라는 단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당초 대통령실 명칭 5개 후보에 대한 국민선호도 조사에선 대통령실의 도로명 주소인 ‘이태원로22’가 1위였다. 권력기관 이름을 인위적으로 짓지 말고,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 10번가’처럼 자연스럽게 주소로 부르자는 것이다. ‘이태원로22’는 대통령 집무실의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집무실 주변 도로명을 먼저 바꾸고, 거기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1번지를 달면 어떨까. 미국 백악관 남쪽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도로명도 뒤늦게 ‘헌법로’ ‘독립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고,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집권 2개월 만에 의도와 달리 집무실 명칭이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서두르지 않고 국민과 소통을 넓혀가면서 합당한 집무실 이름을 짓겠다고 했는데, 왜 용궁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는지 자문(自問)해 봐야 할 것 같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스탠딩 오더’라는 것이 있다.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북한 최고 지도자의 명령을 말한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에 대한 암살 명령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정보기관장인 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서도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이 김정은을 겨냥해 북한에 침투시킨 공작 요원들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엔 이 전 원장에게 경호팀이 붙었을 만큼 긴박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 전 원장에 대한 경호가 필요 없다.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가 해제된 게 아니라 이 전 원장이 수감 중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2년 동안 국정원 특수활동비 21억 원을 상납한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원장은 구속과 석방을 되풀이하다가 징역 3년 6개월의 대법원 확정 판결로 지난해 7월 재수감됐다. 이런 와중에도 그는 “북한군에 끌려가서 손톱, 발톱 다 뽑히는 것보다는 대한민국의 감옥에 있는 게 더 낫지 않으냐”고 주변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한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은 영어 교관으로 군에서 복무하다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국정원 해외 파트에서 40년 넘게 근무했다. 은퇴했다가 75세 때 국정원장에 취임한 이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를 전범 삼아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관행을 뿌리 뽑으려고 했다. 대표적인 대북 매파인 그는 “선진국 어느 나라 정보기관도 권력기관으로 불리지 않는다”며 국내 정치가 아닌 대북 관련 첩보 수집과 공작을 강조했다. 국내 정치를 멀리하려고 했던 이 전 원장도 퇴임 뒤 특활비 상납 관행에 발목을 잡혔다. 구속 직후 충격을 받은 그는 면회 온 지인 앞에서 눈물을 한참 동안 흘렸다고 한다. 이 전 원장을 포함해 보수 성향의 박근혜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장 5명이 모두 특활비 문제로 기소됐다. 진보 성향 정부의 전직 국정원장도 도청과 대북송금 등으로 수사를 받았다. 특히 과거 정부의 비정상적 운영을 바로잡겠다며 국정원 쇄신에 나섰던 문재인 정부의 서훈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최근 국정원에 의해 고발됐다. 정보기관이 1999년 국정원으로 간판을 바꿔 단 뒤 전직 원장 14명 중 11명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검찰 수사의 반작용으로 국정원은 국내 파트의 역할을 조금씩 축소하다가 결국 국내 담당 차장까지 없애면서 대북과 해외 정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요즘은 북핵 등 현안이 생길 때마다 해외 정보기관과의 협조 없이는 진상 파악이 쉽지 않아 무게중심이 앞으로 해외 쪽으로 더 기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5년 전 적폐청산 수사로 국정원 서버를 통째로 열어젖히면서 다른 나라 정보기관의 협조에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에야 어느 정도 원상 복구가 됐다고 한다. 해외 정보기관의 협조 내역이 혹시라도 공개되는 것 아니냐며 정보 공유를 꺼렸다는 것이다. 교훈도 일부 얻었지만 잃은 것도 그만큼 컸던 국정원의 과거 청산이라고 할 수 있다. 조그마한 정보라도 얻기 위해 수시로 이합 집산하는 정보 전쟁에서 다른 나라에 주는 것 없이 일방적으로 받을 수만은 없다. 국정원장 수사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면 정보 전쟁에서 앞서가지 못하고, 뒤처질 수밖에 없다. 국정원에 대한 검찰 수사는 국정원을 바로잡을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임계점까지만 유용하다. 정보기관에도, 국가 안보에도 도움이 되는 검찰의 신속하고 절제된 수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적대적인 관계인 것처럼 일반에게 비치는 건 양자 모두에게 이롭다고 할 수 없다.” 민법학자 출신의 양창수 전 대법관은 2014년 퇴임식 때 대법원과 헌재의 해묵은 갈등 얘기를 꺼냈다. 그는 “두 기관의 관계는 호양(互讓·서로 양보함)적 관행으로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관계를 벗어났다”면서 국회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달 30일 헌재가 일부 위헌 취지의 헌재 판단을 법원이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의 뇌물죄 확정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했다. 헌재의 대법원 판결 취소는 1997년 이후 25년 만이다. 대법원은 6일 입장문을 내 “법률의 해석과 적용 권한은 법원에 전속하는 것”이라며 “다른 국가 기관이 간섭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된 권력 분립 구조의 기본 원리와 사법권 독립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헌법을 근거로 헌재 결정을 비판한 것이다. ▷1988년 설립 당시 헌재 위상은 대법원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웠다. 설립 2년 만에 헌재가 법무사 시험을 규제하는 대법원 규칙이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결정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선고 연기 요청을 헌재가 거부하자 대법원은 “재판관 대부분이 과거 법관 시절 크게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이고, 법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며 헌재의 실력을 폄훼했다. 헌재도 “수십 년간 정권 눈치나 봐 온 사람들이, 대법원이 국민 기본권을 보호한 적이 있느냐”고 맞섰다. 위헌심사권이 헌재에 있다는 걸 알린 계기였다. ▷헌재는 처음엔 위헌과 합헌 중 하나만을 선택했다. 그러나 1991년 독일 헌재처럼 ‘법조문을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식의 다양한 결정 방식을 도입했다. 독일은 한국처럼 대법원과 헌재가 있다. 대법원은 “독일과 달리 한국은 재판이 위헌 소송 대상이 아닌데도 이런 결정을 하는 건 재판권 침해”라고 반격했다. 1996년 헌재의 법률 해석에 대한 견해는 대법원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듬해 헌재는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하는 첫 결정을 했다. 2003, 2009, 2012, 2016년에도 유사한 공방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컸을 때 헌재가 생겼다. 헌재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맡게 된 것도 있지만 기본권 보호에 앞장서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재판관보다 대법관을 더 선호하던 관행이 바뀔 정도로 이제는 양측이 대등한 관계가 됐다. 최고 법률기관의 자존심 싸움에 기본권을 구제받아야 하는 국민들만 양 기관을 오가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되는 공방을 언제까지 할 건가.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60년간의 X파일이 모두 서버에 있다. 전체가 다 있다.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꺼냈다. 그는 2020년 7월부터 올 5월까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을 지냈다. 그는 “국회에서 의원들에게 ‘이것을 공개하면 의원님들 이혼당한다’고 말하기도 했다”면서 “특정인의 자료를 공개했을 때 얼마나 큰 파장이 오겠느냐”고도 했다. ▷박 전 원장이 언급한 X파일은 존안(存案) 파일이다. 존안은 ‘없애지 않고 보존한다’는 뜻이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이후 60년 넘게 중정과 국가안전기획부, 국정원은 주요 인사를 A, B, C 등급별로 분류해서 파일을 축적했다. 개인정보에 정보담당관(IO·Intelligence Officer)이 주요 인사와 나눈 대화 등도 시간대별로 보관했다. A급 정치인은 수백 쪽으로 금세 자료가 쌓였다. 사생활 등 취약 정보를 보고하면 고과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정보를 검찰이 수사 자료로 쓴 적도 있다. ▷정보기관은 처음엔 존안 파일을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문서 창고에 보관했다. 지금은 전산화돼서 서버에 저장되어 있다. 검색을 통해 누가, 언제 작성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정원 서버와 분리된 이른바 ‘멍텅컴(멍텅구리컴퓨터)’에 보관된 자료도 있다고 한다. 주로 불법적으로 생산한 것인데, 이런 자료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국정원이 갖고 있지만 공식적으론 없는, 유령 같은 자료인 셈이다. ▷X파일의 원조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다. 한국의 정보기관은 창설 때 미국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을 지향해 중정의 영문명이 KCIA였다. 하지만 해외나 대북정보 수집보다 FBI처럼 국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했다. 1924년부터 72년까지 48년 동안 FBI 국장을 지내며, 8명의 대통령을 막후조종한 존 에드거 후버는 도청으로 정치인의 약점을 모았다. 한국 정보기관도 도청 등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정치 공작을 기획하기도 했다. 지금은 국내 정치 개입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박 전 원장은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 (X파일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기록물인 국정원 파일을 함부로 폐기할 수 없어 입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국정원 재직 때 얻은 정보는 누설해선 안 되는데, 전직 국정원장이 X파일을 본 것처럼 퇴임 뒤 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 국회가 X파일 폐기법을 만들면 국정원 서버를 열어 젖혀 부적절한 파일 분류 작업부터 해야 하는데, 그게 논란이 될 수 있다. X파일을 누구도 악용할 수 없도록 봉쇄하는 게 먼저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최근 5년간 근무지에서의 업무 능력과 동료 관계 등 세평(世評)을 수집해 1, 2일 안으로 보고하라.’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 후보군에 대한 인사검증을 하기 위해 청와대는 경찰에 이런 협조 공문을 보냈다. 경찰은 시도경찰청에 사발통문을 보내 보고서를 받았고, 남녀 관계와 같은 사생활 관련 의혹은 구두로 전달받았다고 한다. 검사장 승진 인사를 앞두고 한꺼번에 180명 이상의 검증 지시가 내려가 경찰에 비상이 걸린 적도 있다. 검찰은 경찰이 중심이 된 인사검증에 상당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의 인사검증을 담당할 법무부 산하 인사정보관리단이 7일 출범한다. 민정수석실에서 법무부로 관할이 바뀐 인사검증 시스템의 첫 적용 대상자는 검찰과 경찰의 총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총장은 한 달 전부터 공석이고, 김창룡 경찰청장의 임기는 다음 달 23일까지여서 곧 후임이 지명될 예정이다. 검경 총수는 외부인사로 구성된 추천위원회 1차 관문이 있어 개인적 흠결 못지않게 편향 시비에 오르지 않을 후보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인사검증단에는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직원이 파견된다. 인사검증단은 5급 이상 각 부처와 공공기관 공무원에 대한 정보수집 권한이 있는데, 권력기관의 중간간부 이상에 대한 세세한 정보가 법무부에 축적되는 것이다. 다른 권력기관이 이를 반길 리가 없고,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권력기관 간 알력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 인사검증 사령탑을 맡게 될 비권력기관 출신의 국장급 공무원이 이처럼 복잡한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율할 수 있을까. ▷과거 청와대에서는 국정원 존안 및 신원조회 자료, 경찰의 세평, 법무부의 범죄 수사 및 첩보 등이 도착하면 이를 비교 분석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음해성 정보나 과장된 내용을 걸러내기 위한 자리다. 따로 동시에 진행해서 수집한 모든 정보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 절차다. 대통령실로 보고하는 통로가 법무부로만 제한되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 ▷법무부는 새 검증시스템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처럼 인사검증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FBI 국장은 임기가 10년으로 미국 내 어떤 기관장보다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는다. 정치적인 이유로 언제든지 경질될 수 있는 법무장관과는 다르다. 출발 전부터 법무부 산하에 두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의 대상이 된 데다 구성원들 간에 미묘한 갈등 요인까지 안고 있는 인사검증단이 순항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FBI를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갈 길이 멀어 보인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올 2월 17일 취임 전에 살던 경남 양산시 매곡동 사저를 26억1700만 원에 팔았다. 중개업자를 통하지 않은 직거래였고, 소유권 이전이 미뤄져 90일 넘게 사저 매입자가 누군지 베일에 가려 있었다. 25일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통해 매입자가 처음 드러났는데, 홍성열 마리오아울렛 회장(67)이었다. ▷홍 회장은 지난해 11월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저를 111억 원에 공매로 낙찰 받았다. MB가 1978년부터 40년 넘게 살던 곳이다. 2017년 4월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남구 삼성동 사저를 67억 원에 사들였다. 박 전 대통령은 1990년부터 23년간 이 사저에 머물렀다. 생존 중인 전직 대통령 3명이 청와대로 가기 전까지 살던 사저 3곳을 홍 회장이 총 205억 원에 모두 수집한 것이다. ‘대통령 사저 컬렉터’라 할 만하다. ▷1980년 구로공단에서 200만 원을 갖고 의류 사업을 시작한 홍 회장은 2001년 마리오아울렛을 열면서 지금은 연매출 3000억 원으로 사업을 키웠다. 전직 대통령과의 구체적인 친분 관계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업계에선 사저를 매입한 이유를 부동산 비즈니스로 추정한다. 박 전 대통령 사저를 매입했을 때 홍 회장이 “값이 싸게 나오고, 위치가 좋아서 샀다”고 해명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 소유의 경기 연천 허브빌리지를 118억 원에 매입하면서 부동산 리조트 사업에도 진출했다. 업계에선 “사업성이 낮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것 같다”는 분석도 한다. ▷미납 추징금 납부를 위해 검찰이 매각한 MB 사저를 제외하면 박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당선 전에 살던 사저가 경호 문제로 퇴임 후에는 머물기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사저를 신축해야 했다. 막대한 토지 매입과 건축 비용을 대기 위해 기존 사저를 매각했다. 퇴임 대통령의 사저 문제는 정치적 논란을 불렀고, 수사로 이어지는 불행한 일도 있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고향에 ‘퇴임 후 집무실’로 쓸 수 있는 기념도서관을 지을 수 있는 법안이 1955년 의회에서 통과됐다. 부족한 건축 비용을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충당하고, 건물이 완공되면 연방정부가 기증받아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이화장,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당동 가옥 등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다른 대통령들의 사저도 앞으로 문화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어느 시점에든 이를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법무부 내에 분명한 ‘차이니스 월(Chinese Wall)’을 쳐서 인사검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법무부는 25일 공직자 검증 업무를 담당할 인사정보관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장관은 결과만 보고받고, 장관을 포함한 법무부의 누구도 검증 과정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검증 정보를 수사 첩보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차이니스 월은 원래 금융권 용어다. 중국 만리장성이 유목 지역과 농경 지역을 갈라놓듯 금융회사의 부서 간 또는 계열사 간 미공개 정보의 교류를 차단하는 것을 뜻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메릴린치에서 처음 도입했고, 1980년대에 내부자 거래를 통한 금융스캔들을 막기 위한 법률로 격상됐다. 미국 금융 기법에 대한 수사 경험이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금융권 용어로 비판 여론에 ‘방어 장벽’을 친 셈이다. ▷법률상 모든 공직 후보자의 정보 관리는 인사혁신처장의 권한이다. 대통령 임명직에 한해 인사혁신처장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검증 업무를 위탁한다. 옛 민정수석실이 검증을 했던 근거다. 법무부 장관도 검증 업무를 위탁받게 대통령령을 고치면 된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비서실장과 달리 법무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검증 권한이 없다. 민정수석실 검증을 국정 협조 차원에서 법무부, 경찰이 도왔던 것도 위법 시비가 있었다. 법무부 지침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는 1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검증 대상은 주로 공무원이지만 민간인도 포함된다. 통상 3∼5배수 검증을 하면 최대 5만 명의 개인정보가 수집된다. 부동산과 납세, 금융, 수사 자료에 국가정보원의 존안(存案), 경찰의 세평(世評) 파일까지 추가된다. 법무부 검증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어서 음지의 업무를 양지로 끌어낸 것이라고 법무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민간인 사찰 논란과 같은 불행한 일이 재발할 위험이 있다. ▷법무부가 행정부 내 검증의 유일한 축이 되면 교차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국회에서 ‘인사검증법’ 제정 논의가 있었을 때도 정부 부처 한 곳이 일괄적으로 검증 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여러 부처의 공무원을 파견 받는 종합 업무의 성격이 강하고, 기밀 유지를 위해 사무실도 제3의 장소에 둔다는데 굳이 국무총리가 아닌 법무부 장관 직속이어야 하나. 검찰 출신인 ‘인사비서관→법무부 장관→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이어지는 검증을 위한 제도 개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제도적으로는 가능한데, 현실적으로는 수사 역량과 수사 의지가 있어야 한다.”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정부에서 검찰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유보적으로 답했다. 앞서 김진욱 공수처장이 16일 “권력기관 견제라는 공수처 설립의 대의명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한 것과도 비교된다. 지난해 1월 출범한 뒤 약 1년 만에 존폐 논란마저 일고 있는 공수처는 수사기관 개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 우수자원 유입할 제도 먼저 필요―공수처 출범 1년을 평가한다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라는 게 단서가 있어야 한다. 공수처는 소규모에 전국 조직이 아니어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수사기관이 아니다. 정치적인 싸움인 고소 고발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사 역량도 검찰만큼 갖춰져 있지 않다. 지금 공수처에선 사건이 유야무야 묻힐 위험이 있다.” ―앞으로 공수처는 어떤 수사를 해야 하나. “현재 조직으로 법에 규정된 모든 고위공직자를 효과적으로 수사하기는 어렵다. 공수처는 다른 조직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검사 수사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에서 제일 문제됐던 것이 뭐였나. 경찰이 검찰 관련자를 수사하면 검사가 경찰 수사를 막는 ‘제 식구 감싸기’ 아니었나. 검사 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공수처에 꼭 필요한 기능이고,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공수처에 적격이다. 나머지 부패범죄 등은 다른 기관이 수사해도 상관없다. 검사 수사를 경찰이 하면 싸우는 꼴이 된다. 형사사법기관은 전문성을 합쳐서 범죄에 대응해야 된다.” ―공수처장은 증원을 요구했다. “증원도 일리는 있다. 증원보다는 우수한 자원이 공수처에 오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인원이 적은 문제는, 전체적으로 일을 줄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면 해결할 수 있다. 고소 고발 수천 건을 다 할 수 없으니 핵심 사건에 한정해서 알맞은 인원으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적으로 누구도 공수처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 “공수처 조직을 만드는 데 이해관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가 직접 관여했다. 그것은 공수처를 정치적으로 취약하게 할 수 있다. 개선이 필요하다.” 중수청 신설돼도 수사력 담보돼야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이 논의되고 있다. “이상적으로 된다면 수사 역량이 있는 사람이 중수청에 가서 수사를 하고, 중수청의 수사를 검찰이 감독하는 식으로 짜면 될 것 같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직접 수사보다는 현장에서 수사하는 경찰이나 중수청을 감독하는 쪽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중수청의 수사 역량에 대한 담보가 있어야 하고, 신설 기관이 안착될 때까지는 수사가 제대로 안 될 리스크는 있다.” ―수사와 기소 분리가 선진국 추세 아닌가. “그 환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권한이 커지고 남용의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사는 기소할지 불기소할지 판단하기 위한 것이고, 수사의 결과 이루어지는 기소와 불기소는 동전의 양면이다. ‘수사는 (형벌을 받아서가 아니라) 수사 그 자체가 고통이다’라는 말이 있다. 수사와 기소로 나눈들, 나아가 수사를 또 세분해서 수사 개시와 진행과 종결로 나눈다 한들 수사받는 사람 입장에선 (세부 분야를 맡은 수사기관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절대적 권력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수사를 담당하는 A에 대해 B가 리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조직 내 검토는 한계가 있다. 경찰은 검찰, 검찰은 외부기관 그러니까 제3의 기관에서 수사 타당성과 적법성을 리뷰 받아야 한다.” ―수사심의위원회 등을 말하나. “김오수 전 검찰총장은 대배심 제도를 얘기했다. 하지만 대배심은 수사 전문가는 아니다. 수사심의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일정한 기능은 하겠지만, 수사 전문가도 아니고 보고를 듣고 단시간 회의에서 판단하는 것이어서 효과적 감독이나 해결책은 아니다. 적법성과 타당성을 감독하는 다른 기구가 있어야 한다.” ―사상 첫 검찰 출신 대통령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검찰 수사권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워낙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게 부당한 면이 많으니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대통령의 공약 중에 검찰의 예산권 독립은 재고해야 한다. 사법부의 예산 독립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찰의 예산독립 공약 재고해야―검찰의 과도한 수사에 대한 우려도 있다. “수사건 입법이건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니까 상대방 진영에서 반발한 것이다. 수사도 비례의 원칙을 지켰으면 한다. 과도한 수사를 할 가능성도 있는데 감시가 필요하다.” ―최근 검찰 개혁은 어떤 의미가 있나. “일제강점기 경찰사법이 광복 이후 검찰로 이동했지만 경찰의 힘도 상당했다. 검찰이 전면에 나선 게 유신 때인 1973년 형사소송법 개정이었다. 형사사법 제도 핵심을 검사로 만들었다. 이게 뒤바뀐 게 1995년 영장심사 제도였다. 피의자가 판사 앞에서 항변할 기회를 제공했다. 2007년 공판중심주의 도입으로 본안 재판에서 판사가 검찰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 약해졌다. 독재 국가일수록 경찰이 힘이 세고, 민주사회로 갈수록 공개된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한다. 우리나라가 경찰사법에서 검찰사법, 법원사법으로 잘 발전해 온 것이다. 2020년부터 경찰사법으로 몸을 틀었다. 역사 발전 방향에서는 반동이고, 거꾸로 된 전도된 개혁이다.” ―가장 잘못된 부분은 뭔가. “결정적인 하자는 검찰 비판의 핵심은 특수사건인데, 엉뚱하게 형사사건의 검찰 수사지휘권을 폐지한 것이다. 2020년엔 오른팔이 아픈 환자의 다리를 자르고, 최근엔 오른팔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또 목을 자른 꼴이다. 검찰 수사를 없애면 그 수사를 경찰이 하게 되는데, 그러면 경찰이 직접수사를 했을 때 검찰과 같은 문제가 안 생길 것인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됐다.” ―경찰에 시간을 주면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경찰은 치안을 담당하는 일종의 시원(始原)적 권력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권을 수사하려면 경찰이 아닌, 다른 데서 수사할 필요가 있다. 외국,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정치인이 연루된 것들은 경찰이 아닌 곳에서 수사한다. 경찰이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사건들이 있다.” ―민주당은 왜 검수완박법을 추진했나. “노무현 정부 때는 정치가 검찰에 영향을 안 미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제도보다는 운영에 의해, 가급적이면 검찰 수사에 개입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유죄를 받으면서 민주당에선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하는 것을 막아야겠다, 그래서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국민 권익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국민을 추상적으로 보면, 권력자의 자기 이익수단이 된다. 추상적 국민이 아닌 구체적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첫 번째는 피해자인데, 범인이 잡히고 피해가 복구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억울한 피의자로 몰리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 인권이나 수사 절차의 적법성도 지켜줘야 한다. 세 번째는 일반인이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개정안은 세 분야의 국민 어느 곳도 행복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에서 논란이 될 부분은…. “검사라는 제도를 왜 만들었나. 경찰 수사에 대한 인권 옹호 기관이 검사의 본질적 책무다. 영장 청구권도 인권 옹호에 관한 것이다. 법률이 아닌 헌법에 영장 청구권을 명시했고, 국무회의 의결사항에도 검찰총장 임명권이 있다. 검찰이라는 조직을 헌법이 규정한 것이다. 인권 옹호 기관으로서의 검찰이 헌법적 결단이라면, 수사 감독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은 이에 반한다. ” ―노무현 정부 형사소송법 개정은 어땠나.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 땐 논의 자료를 인터넷에 올리는 등 논의 과정이 투명했다. 당시 검찰 권력이 약해졌지만 검찰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형사사법 제도처럼 국가의 근간을 바꾸는 것은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부작용이 있는지, 기대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이상원 교수는 ::1992∼2008년 법관 생활을 하면서 서울지법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헌법재판소 파견 근무를 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전직한 뒤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대검찰청과 경찰청 인권위원 등을 역임했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검찰총장 공백 상태에서 첫 검찰 간부 인사가 났다.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가까웠던 고검장 1명과 검사장 3명을 일선 검찰청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내보냈다. 당시 법무부는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거 중요 사건의 부적정 처리 등 문제가 제기되었던 검사들을 수사지휘 보직에서 배제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적폐 검사’를 좌천시킨 것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 다음 날인 18일 검찰총장 부재중에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 간부 인사가 단행됐다. 이성윤 고검장과 이정수 심재철 이정현 이종근 검사장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모두 추미애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때 잘나가던 검찰 간부들이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때 징계를 주도했거나 가족 관련 수사를 지휘한 악연이 있다. 좌천 대상만 바뀌었을 뿐 5년 전 인사가 데칼코마니처럼 되풀이된 것이다. ▷법무연수원이 좌천 검사들의 집합소가 된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7월부터였다.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우 전 수석 등 사법연수원 19기 검사 6명을 이례적으로 연구위원으로 발령 냈다. 동기 중 최선두라고 생각하던 우 전 수석은 당시 자신의 처지를 ‘상처받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호랑이’에 빗댄 적이 있다. 이 인사의 실무를 검찰과 검사였던 한 장관이 담당했다. 조국 전 장관 수사 이후 4차례 좌천된 한 장관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받자 “보복을 견디는 것도 검사의 일”이라는 입장을 냈다. ▷처음부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한직은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때 ‘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 전 의원은 검사들도 없는 서울지검 특수부장이라는 보직을 갖고 2, 3년 청와대로 출근했다. 1986년 11월 박 전 의원은 4단계를 건너뛰면서 혼자 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는데, 인사 직전 법무연수원에 검사장급 연구위원직이 급조됐다. 정권 실세를 챙겨주기 위한 전형적인 위인설관(爲人設官)인 셈이다. 그는 연구위원 발령을 받고도 국가안전기획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나중에 사표를 냈다. ▷관용차가 나오는 일선 검찰청과 달리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받으면 고위 간부들은 자가용으로 첫 출근을 할 때부터 척박한 환경을 실감한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내는 일도 많다. 정권 교체 이후 연구위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좌천 인사를 하는 건 결국 검찰 인사가 정치적 외풍에 따라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인사를 남발하지 말고, 연구위원의 직책에 맞는 검사에게 보직을 맡겨야 진짜 검찰 인사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겠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이른바 ‘검수완박법’인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제안 취지에는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속기록에 따르면’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가 오랜 시대 과제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전체 속기록을 찾아 보면 이런 문구를 왜 사용한 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 초안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4월경 나왔다. 초안을 마련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피란 중에 밤에 불이 없으면 머리로 숙려 고찰하고, 불이 있으면 외국 서적과 나의 생각을 비교했다”고 할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법을 빨리 만들기보다 제대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부가 1953년 1월 법안을 제출하자 국회가 약 1년 뒤 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공청회에서 법사위 소속 의원은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권을 옹호하려면 범죄수사와 형사재판이 편리하게 되지 않는다. 범죄수사의 정확성을 기하려면 신속할 수 없고, 신속을 기하려면 정확할 수 없다. 네 개의 원리를 대각선으로 그려 놓고 조화점을 어디에 두느냐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되, 국가형벌권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을 찾아 달라는 취지였다. 형사재판과 범죄수사의 당사자인 대법관, 검찰총장이 공청회에 나와 각각 의견을 냈다. 국회에서 정부안을 일부 고친 법안이 1954년 2월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이 정부안과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같은 해 3월 국회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원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6개월 뒤에 공포됨으로써 첫 형사소송법이 시행된 것이다. 정부안과 국회 수정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 재의 과정을 보면 대각선의 균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벤치마킹 대상이던 세 종류의 해외 사례는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이나 그때나 큰 차이가 없다. 경찰과 검사가 대등하게 수사권을 갖거나, 검사의 지휘를 받아 경찰이 수사하거나, 수사는 경찰에, 기소는 검사에게 맡기는 방안이다. 정부안은 당시 일부 경찰의 횡포에 대한 반발 심리로 검찰이 경찰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회는 정부안을 토대로 하되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하면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할 수 있도록 검찰 수사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했다. 대통령은 경찰 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 신속한 수사에 방해가 된다며 국회에 재의를 요청했다. 정부와 국회, 대통령이 절차를 지키면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 뒤 탄생한 제정 형사소송법은 그 이후 70년 가까이 기본 틀이 유지됐다.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은 어땠나. 한마디로 이상한 대각선이 그려졌다. 검찰의 수사권을 일시적으로 경찰에 넘기고, 최종적으로 어떤 수사 기관에 넘길지를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된 경찰에 대한 통제 방안은 논의하지 않았다. 정권 교체가 되면 대통령 거부권 때문에 법안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이유로 국가의 형사사법제도를 속전속결로 바꾼 것부터 잘못됐다. 검찰 권한을 어디로 넘길지, 수사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를 공청회와 상임위에서 치열하게 토론해 법안의 완결성을 높여야 했다. 정치세력이 재편되면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법안으로는 검찰개혁이라는 시대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주한 미군들은 한국어 지명을 발음하기 쉽게 영어식으로 자주 바꾼다. 미 보병 2사단 부대가 있던 동두천(Tong Du Cheon)은 이니셜만 따서 TDC라고 한다. 용산(龍山)은 지명의 뜻을 영어로 옮겨 ‘드래건힐(Dragon Hill)’로 부른다. 남산은 산(mountain)보다 언덕(hill)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용산 미군 기지의 사우스포스트엔 드래건힐 호텔이 있다. 한국에 배속된 미군이 자대에 배치되기 직전 머무는 곳이어서 미군은 드래건힐이라는 지명에 꽤 익숙하다. ▷다음 달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겨간다. 드래건힐 호텔에서 직선거리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은 기존 청와대(Blue House)의 약칭인 ‘BH’를 대신해 요즘 ‘DH’라는 말을 자주 쓴다고 한다. 용산 시대를 상징하는 임시 용어인 셈이다. 인수위 측은 다음 달 15일까지 공모를 거쳐 올 6월 초쯤에 대통령실의 공식 명칭을 발표할 예정이다. 영어 약칭도 발표할 수 있다. ▷용산 대통령실의 모델은 미국 백악관이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취임 2년 뒤인 1792년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그의 사후인 1800년에 완공됐다. 공식 명칭은 ‘대통령의 집(President‘s House)’이었다. 이름처럼 대통령 집무실 겸 숙소였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 때 하얀 건물이 새까맣게 불에 탄 적이 있는데, 그해 신문에서 백악관(White House)이라는 말을 처음 썼다. 1901년 리모델링을 끝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백악관을 공식 명칭으로 채택했다. ▷청와대 경내에는 숙소동과 집무동이 모두 있지만 용산 대통령실엔 집무동만 있다. 미군 기지가 추가로 반환되면 집무동 인근에 관저를 신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 당분간은 차로 3∼5분 거리인 한남동 합참의장 공관이 대통령 숙소가 된다. 일본은 총리가 집무를 보는 관저(官邸)와 숙소인 공저(公邸)가 각각 있다. 영국의 다우닝가 10번지, 프랑스의 엘리제궁 등 유럽은 대부분 관저와 집무실이 한곳에 있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이화장에서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로 옮겼을 때 1층은 집무실, 2층은 숙소였다. 용산 시대는 74년 만에 대통령이 일하는 곳이 곧 대통령의 집인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주의 시절을 거치며 청와대에는 구중궁궐 속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겼고, 민주화 이후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을 시도했다. 찬반 논란 속에 용산 이전을 고집한 윤 당선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용산 시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1949년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강도치사 사건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증거 조사에서 절차상의 하자가 있으니 다시 판결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하급심의 판결에는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하급심은 최고재판소가 형사소송법 전면 개정 등 다소 예외적인 상황에 대비해 만들어 놓은 형사소송법 시행 규칙을 근거로 재판을 했던 것이다. 최고재판소의 실수이긴 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다지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다. 사건의 실체적 내용이나 피고인의 형량과는 전혀 관계없는 절차적 문제를 둘러싼 설왕설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일본 법조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이듬해 해당 판결을 한 최고재판소 판사들에 대한 징계 여론이 비등했고, 의회가 나서서 탄핵을 추진하는 단계까지 갔다. 2019년 5월 노정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았던 군형법 사건이 대법원에서 고등군사법원으로 파기 환송됐다. 육군 훈련장에서 대대장이 부사관을 폭행한 사건인데, 대법원은 “폭행죄는 피해자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 기각을 하라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형법은 폭행 혐의가 반의사불벌죄이지만 군형법은 아닌데, 대법원이 법리를 오인한 것이다. 고등군사법원이 대법원 판결을 치받았고, 대법원도 뒤늦게 실수를 인정했다. 대법원의 잘못으로 하마터면 가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판결이 나올 뻔했다. 최고재판소 오판 사건과 비교하기 어려운 치명적 오류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은 징계 얘기조차 없다. 오히려 노 대법관은 2020년 10월 헌법기관장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으로 영전했다. 대법관이 겸직하는 중앙선관위원장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데, 청와대와 협의한다고 한다. 대법관으로서 자격 미달인 노 대법관이 선관위원장으로서 적격이라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오판 사건 이전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노 대법관의 자질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원 내부에선 대법원장의 인사가 아닌 청와대의 인사 아니었겠느냐고 의심하고 있다. 일부 법관들은 노 대법관의 가족이 노무현 정부 때 고위 관료를 지냈다는 이력까지 거론한다고 한다. 노 대법관의 파격적인 발탁은 이런 의심을 키웠다. 선관위원장은 법원장을 지낸 선임 대법관들이 주로 맡았다. 지명 당시 임기가 1년 미만 남아 있던 대법관 2명을 빼면 노 대법관은 11명의 대법관 중 서열 8위였다. 첫 여성 헌법기관장을 원했더라도 노 대법관과 같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서열 5위였던 박정화 대법관이 있었다. 그런데 2024년 8월까지 재임할 수 있는, 법원장 경력이 없는 노 대법관이 선택 받았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2024년 총선까지 4년간 선거 관리를 맡긴 것도 이례적이었다. 선관위원장은 통상 1, 2년 정도 맡는다. 이른바 ‘소쿠리 대선’ 파문으로 선관위 내부의 사퇴 압박에도 노 대법관은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법원 내부에선 “선관위원장직을 사퇴해도 대법관직은 유지하는데, 왜 안 물러나느냐”며 의아해하고 있다. 노 대법관의 책임 회피로 그를 헌법기관장에 발탁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발탁 배경에 대한 진상 규명 요구를 대법원이 계속 모르는 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길 수 없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올 2월 퇴직 경찰 모임인 경우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면 경찰청장의 직급 상향을 반드시 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경찰청은 차관급인 경찰청장의 직급을 장관급으로 올리는 방안을 보고했다. 대통령령에 정해진 경찰청장 보수규정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방향만 정해지면 쉽게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 경찰청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찰청장이 지금의 직위를 갖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와 역사가 있다. ▷제헌의회가 헌법 제정에 이어 통과시킨 ‘1호 법률’은 정부조직법이다. 내무부 산하 치안국이 경찰 업무를 맡는 것이 원안이었다. 그런데 제헌의원 198명 중 40명이 내무부와 별도로 치안부를 두고, 치안부장을 장관급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냈다. 격론 끝에 원안이 채택됐다. 광복 직후 일부 경찰의 횡포에 대한 반감이 컸는데, 경찰의 위상을 키우면 자칫 ‘경찰국가’가 될지 모른다는 경계론이 의원들에게 있었다. ▷미군정 3년 동안 경찰총수는 경무부장이었다. 현재 법무부 장관이 사법부장이었다는 점과 비교한다면 사실상 장관급이었다. 정부 수립과 함께 경찰총수의 지위가 이사관급인 내무부 치안국장으로 내려갔다. 유신 때인 1974년 치안국장을 치안본부장으로 승격시키면서 경찰총수는 차관급이 됐다. 1991년 경찰청 설립 때 야당은 경찰청장을 국회 인준을 받아 임명하되 직급을 장관급으로 높이자고 제안했지만 여당이 거부했다. ▷이승만 정부 때 경찰총수 아래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 경사 순경 등 6개의 계급이 있었다. 당시 순경에서 경무관으로 진급한 곽영주는 ‘부부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박정희 정부 때인 1969년엔 경찰총수의 계급이 치안총감으로 바뀌고, 치안감과 경정, 경장이 신설됐다. 1980년 치안정감이 추가되면서 현재와 같은 11계급 구조가 만들어졌다. 군사 독재 시절 권력에 충성한 경찰은 그 반대급부로 5000명이던 경찰 조직을 현재 13만 명으로 늘렸다. ▷전체 경찰의 85%인 비간부는 3계급, 15%인 간부는 8계급 구조다. 경찰청장 직급을 올리면 간부가 9계급이 된다. 과거 경감과 총경 보직이던 경찰서장은 현재 경정과 총경, 경무관 등 3계급이 맡을 수 있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부터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경찰청장의 직급을 올리면 차관급 제복조직의 수장인 소방청장, 해양경찰청장과의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으로 장관급인 검찰총장과의 대등한 관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찰 6명 중 1명 정도만 수사 업무를 맡고 있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수사기관장이지만 차관급이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왕복 버스와 시험장 인근 리조트 숙박, 식사가 포함된 10만 원 상당의 1박 2일 패키지.’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한창이던 2010년대 초반 원정 시험을 치르는 지방 수험생을 위한 이런 서비스가 성업했다. 평소 주말엔 오전 6시 25분에 출발하는 부산발 서울행 KTX 열차가 시험 당일엔 오전 4시 50분으로 앞당겨졌다. KTX를 이용하기 불편한 곳에선 시험 당일 새벽에 출발하는 전용 심야버스도 생겼다. 공무원시험 열기가 만든 진풍경인데,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2일 실시된 올해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29.2 대 1로 집계됐다. 응시율은 77%로 실질 경쟁률은 22.5 대 1이었다. 1992년의 19 대 1 이후 30년 만의 최저 경쟁률이다. 9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은 1990년대 중반까진 40 대 1 정도였다. 경제 위기마다 경쟁률이 치솟았다가 이후 하락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80 대 1,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인 2011년엔 역대 최대인 93 대 1이었다. 지금보다 3배 정도 경쟁률이 높았다. ▷시험을 주관하는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연금 개혁과 시험 과목 변경 등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공무원연금제도가 바뀌면서 2016년 이후 입직한 공무원은 국민연금과 비교해 납부액 대비 수령액에서 이점이 사라졌다. 이후 전체 퇴직 공무원 중 5년 이하 재직한 젊은 공무원의 퇴직 비율이 급증했다. 직무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고교 과목을 줄이고 그 대신 행정법 같은 직렬별 전공과목을 추가하는 쪽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시험이 어려워지면서 ‘허수 지원자’가 감소해 경쟁률 거품이 꺼졌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로 장기적으로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더 시들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3∼34세가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공무원이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2006년 이후 15년 만이다. 행정안전부가 1980∼2000년생 주니어 공무원을 대상으로 2년 전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중 6명이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보고서만 적어 내라는 조직문화, 성과가 아닌 서열 위주의 보상체계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과거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취업준비생 10명 중 3명은 여전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公試族)이다. 이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시험 준비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연간 17조 원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젊은층이 좀 더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민간 일자리를 늘리고 공직사회 채용 구조를 시대에 맞게 바꾸는 일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민주화 이후 정권 교체가 가능해지면서 문서 파기를 둘러싼 신구 정부 간의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여야 간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된 김대중 정부 출범 직전이 가장 정도가 심했다. 당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새 대통령 취임 전 2, 3개월 동안 문제가 될 만한 서류를 태우느라 국정원 청사 주변 하늘이 새까만 연기에 뒤덮였다는 풍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전자·종이 문서와 보고서 등을 무단으로 파기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국정원과 각 정부 부처, 위원회 등에 보냈다. 업무용 컴퓨터나 하드 교체, 자료 무단 삭제도 금지했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과 관련한 방침 자료마저 지우지 말라고 했다. 인수위는 “적폐청산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전형적인 점령군의 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요즘 정부 부처는 거의 100% 전자문서로 결재한다. 문서 파일과 작성 주체, 보고 라인, 파기 여부 등도 서버에 남는다. 그렇다고 문서 삭제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앞둔 2019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청와대(BH) 보고 문건을 덮어쓰기 형태로 삭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서버를 통째로 바꾸거나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것도 전자문서를 파기하는 방법 중 하나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국정원 내부에선 정권교체 전에 내부 서버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국정원장이 결재를 하지 않아 이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일주일 뒤인 같은 해 5월 16일 당시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국정원 등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문서 무단 파쇄나 유출, 삭제 금지’를 지시했다. 곧 외부 인사가 참여한 국정원 적폐청산TF는 내부 서버에 있는 문서를 근거로 감찰을 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작성한 문서를 캐비닛에서 찾았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대통령기록물법이 제정돼 대통령의 정책 결정 과정을 알 수 있는 주요 기록물에 대한 공식 이관 절차가 생겼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 정부가 남긴 자료 중에 쓸 만한 게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가져간 이지원(e-知園)을 회수해 갔고, 거기에 남아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내용을 놓고 신구 권력이 충돌했다. 후진적인 문서 파기 논란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어차피 복원될 문서를 어설프게 삭제하는 공무원이 더 나와선 안 될 것이다. 새 정부도 필요 이상으로 현 정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지난해 20세 이상 한국인의 평균 키는 남성 172.5cm, 여성 159.6cm로 조사됐다고 국가기술표준원이 30일 밝혔다. 40년 전보다 남성은 6.4cm, 여성은 5.3cm 커졌다. 특히 키에서 하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이른바 ‘서구형 롱다리’로 신체 구조가 바뀌는 추세다. 20∼40대 남성은 키가 커지는 것보다 살이 찌는 속도가 더 빨랐다. 복부비만의 지표가 되는 허리둘레가 40년 전보다 연령대별로 적게는 10.8cm, 많게는 13.9cm 늘었다. 여성은 2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에서 허리둘레가 줄어들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는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책에서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고 적었다. 동시대 한일 양국의 유골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한국 남성의 키가 평균 161cm로 일본 남성보다 6cm가량 컸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는 한일 양쪽의 키가 비슷해졌고, 한국의 산업화 이후 한국인의 키가 일본인을 다시 앞질렀다. 산업화로 인한 식습관 변화가 신체 성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은 ‘요리유신’ ‘음식혁명’으로도 불린다. 당시 일왕은 소와 닭 등을 죽이지도 먹지도 말라는 육식금지령을 1200년 만에 해제했다. 육식으로 체형을 서구처럼 크게 바꾸는 것이 탈아입구(脫亞入歐), 즉 서구화의 지름길이라고 본 것이다. 육식 장려 등으로 이후 일본인의 신체 구조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화됐다. ▷한국 남성의 키는 일본 남성보다 1∼2cm 정도 커 우열을 논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이에 비해 북한 남성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북한 남성의 평균 키는 158cm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남성보다 무려 15cm 정도가 작다. 특히 1990년대 대기근을 겪은 북한은 영양실조 등으로 젊은층의 신체 성장이 더뎌졌다. 군 입대 신장 하한선이 그 이전 150cm였다가 현재는 137cm까지 내렸다고 한다. ▷세계 최장신 국가는 남성 기준으로 키가 182cm가 넘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에 가면 옷 치수와 생활용품의 크기가 한국과 너무 달라서 불편을 겪은 사례가 많다. 국가기술표준원이 40년 동안 신체 지수를 꾸준히 측정해 온 이유는 한국인의 몸에 맞는 제품 설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데이터를 반영해 45년째 그대로이던 지하철의 좌석 크기를 5년 전 키운 적도 있다. 그런데 다른 인종인 네덜란드와 한국의 신체 지수 격차보다 동족인 남북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산업화 이전의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것과 같은 북한의 허약한 신체 지수를 지켜보는 것은 씁쓸하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경찰이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대장동 개발업자 화천대유의 횡령과 배임 의심 자료를 처음 받은 것은 작년 4월이었다.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하지 않는 등 경찰의 수사 미진이 드러난 같은 해 9월 “왜 검찰이 나서지 않느냐”는 질문에 검찰은 “직접 수사 범위가 아니다”고 했다. 횡령과 배임은 5억 원 이상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데 당시엔 액수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패 혐의로 고발장이 접수된 뒤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대장동 의혹은 지금까지 검경이 각각 수사 중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형사소송법의 핵심은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범죄 외에는 검사가 인지 수사를 못 하도록 막은 것이다. 하위 법령으로 4급 이상의 공무원, 3000만 원 이상의 뇌물 등 검사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더욱 세분화했다. 흔히 ‘수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는데,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수사가 끝나면 확정되는 죄명과 액수에 따라 수사 착수 기관을 미리 정한 것이다. ▷개정 형소법 시행 첫해인 작년 검찰이 3385건의 인지 사건을 처분했다고 대검찰청이 7일 밝혔다. 이는 전년도(6388건) 대비 절반가량 줄어든 것이다. 10년 전엔 1만6000여 건이었는데 검찰개혁 움직임이 커지면서 검찰의 인지 수사 총량은 급감했다. 규정상 수출입 관련만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마약 관련 범죄는 1년 새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미제 사건 처리를 위해 야근을 하던 검사들은 요즘 ‘칼퇴근’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반면 경찰에선 “업무량이 몇 배로 늘었다”는 고충이 제기되는 등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다 보니 고소 고발된 사건 중 경찰이 골치 아픈 것들을 다른 경찰서나 검찰 등으로 보내는 이른바 ‘사건 쇼핑’ 현상이 생겼다는 불만이 변호사단체로부터 나왔다. 경찰이 처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를 하면서 사건 처리 시간도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시행 초기엔 사건 종결 이유서를 길게 썼던 경찰이 최근 한두 줄로 축소하자 “종결된 이유를 모르겠다”는 민원인들의 불만이 있다. ▷검경을 협력 관계로 바꾼 수사권 조정은 1954년 형소법 제정 이후 가장 큰 변화였다. 이제 와서 과거로 되돌리면 더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검경 모두 보완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함께 각 수사기관이 상호 견제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대장동 의혹과 같은 대형 사건의 경우 수사 관할 신경전 등으로 신속한 수사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수사 공백과 허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