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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인 (사)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전문 역술인으로 가입한 회원수만 20만 명(2018년 기준)을 넘어선 지 오래고, 현재도 역술인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대학교를 중심으로 명리학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학부 과정이 개설되는가 하면, 전문 역술인사이에서는 유투브 등을 통해 ‘명리학 제자 양성 교육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역술인의 증가가 사회 불안 심리를 반영한다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 않지만,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는 시대적 욕구와 흐름을 같이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역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특히 은퇴를 앞두고 제2의 삶을 모색하는 586세대 뿐만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며 개인의 적성 및 자질을 중시하는 MZ세대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같은 사회적 흐름을 반영해 이 달 26일 오후 2시 한양대박물관(2층 강성희 세미나실)에서는 ‘명리학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동양학대토론회가 열린다. 한양대 융합산업대학원 동양문화학과(박정해 교수)가 주관하는 이 토론회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때를 기준으로 타고난 운명과 자질을 특징 짓는 명리학를 놓고서 미래지향적인 긍정적 측면과 미신적 요소가 섞인 부정적 측면이 함께 제시될 예정이다. 이 토론회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참가비는 무료다.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충북 청주는 조선의 왕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 휴식을 위해 찾은 곳이다. 도시 이름답게 맑은(청·淸) 물빛과 물맛이 통치자들의 주목을 끌었던 듯하다. 세종대왕은 이곳 약수에 반해 아예 행궁을 지었고,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풍광이 빼어난 대청호반의 청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창의력을 상징하는 물(水)기운 덕분일까. 한글 반포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 정책들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청남대 개방 20주년을 맞은 올해 9월부터는 일반인들도 대통령 숙소에서 잠을 자볼 수 있게 됐고, 곱게 단장된 초정행궁에서는 약수와 함께 한옥스테이를 즐길 수 있다.● 대통령 숙소에서 하룻밤 보내기 정확히 40년 전인 1983년에 건립된 청남대(청주시 상당구 문의면)는 대청호반에 자리 잡고 있는 대통령 별장이다. 한때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영춘재(迎春齋)’로 불리다가, 1986년 7월 ‘남쪽의 청와대’란 뜻의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5명이 총 88회(471일) 이곳을 찾아와 휴식과 함께 정국 구상을 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청남대는 2003년 4월 1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충북도로 소유권을 넘기면서 민간에 개방됐다. 이후 이곳은 지속적으로 변신한 결과 한 바퀴 돌아보는 데만 반나절 정도 걸리는 대규모 공원(184만4843㎡)이 됐다. 청남대는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공원이기도 하다. 124종, 11만6000여 그루의 조경수 및 143여 종의 야생화가 철마다 제 모습을 바꿔 가며 공원을 수놓고 있다. 때 묻지 않은 숲속과 호수에는 멧돼지, 고라니, 삵, 너구리, 수달, 날다람쥐 등이 서식하고 있다. 청남대의 매력은 짧지만, 특징적인 길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청남대로 진입하는 도로부터가 환상적이다. 대청호를 따라 청남대 정문 매표소까지 쭉 늘어선 가로수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매표소를 지나 대통령기념관(체험관)과 본관을 연결하는 길에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기다리고 있다. 음악분수와 양어장을 옆에 두고서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하게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한여름의 무더위마저 잊게 한다. 대통령의 휴식 공간인 본관 앞으로는 반송 길이 눈길을 끈다. 수령 80년 이상의 반송들이 길 양쪽으로 사열하듯 늘어서 있는 게 장관이다. 또 대통령 전용 골프장(현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 근처의 낙우송 가로수 길은 김영삼 대통령의 조깅 코스로 유명하다. 이 길은 호반을 낀 풍경이 아름다워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본관 근처 오각정과 봉황탑으로 오르는 길은 빼놓을 수 없는 산책로다. 특히 전망대인 봉황탑으로 오르는 길은 ‘봉황의 숲’이라고 불린다. 봉황의 먹이인 대나무와 보금자리인 오동나무로 치장된 길이 이채롭다. 옛 군부대 진지에 조성된 봉황탑은 22m 높이의 나선형 구조를 하고 있는데, 청남대 일대를 360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봉황은 태평성대와 성군(聖君)의 출현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다. 청남대 잔디광장에 봉황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뭐니 뭐니 해도 청남대의 하이라이트는 본관 건물이다. 본관은 5명의 대통령이 가족 또는 친지들과 머물면서 휴식을 취한 은밀한 장소였다. 2층에 있는 대통령 침실에서는 천기(天氣)가 하강함으로써 생성된 명당 기운을 체감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머물면서 좋은 에너지를 누릴 만한 공간으로, 서울 북악산 자락 옛 청와대 관저보다 훨씬 빼어난 기운이라고 할 수 있다. 본관 내부에는 대통령 침실(전시용 공간) 외에 1, 2층을 합쳐 가족과 손님, 경호원들이 머무르던 침실 10개가 더 있다. 바로 이곳 침실들이 9월부터 일반인들에게도 체험형 공간으로 제공된다. 대통령이 잠자던 곳에서 누구나 자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청남대의 이 같은 역사와 입지 조건은 충북 관광의 훌륭한 자원이 되고 있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바다가 없는 내륙 도시 충북에서 충주호와 대청호는 국민의 생명수일 뿐만 아니라 충북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중심”이라면서 “민선 8기 도정의 비전인 레이크파크(호수공원) 르네상스 사업에서 청남대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대왕 쉼터에서 족욕과 멍때리기지금으로부터 약 580년 전인 1444년, 조선의 4대 국왕 세종은 청주 초정리로 행차했다. 이곳의 약수로 지병인 눈병과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곳의 약수를 ‘초수(椒水)’라고 소개하면서 “그 맛이 후추 같으면서 차고, 그 물에 목욕하면 병이 낫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후추처럼 톡 쏘는 탄산수인 초수가 나는 우물이 바로 초정약수인 것이다. 세종은 이곳에 행궁을 지어 봄과 가을 두 차례 총 121일간 머물렀다. 행궁에서 질병 치료를 하면서 한글 반포 마무리 작업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세종이 오랜 기간 머물렀던 것은 약수의 약효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세계광천학회가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로 꼽은 초정약수는 탄산과 마그네슘 등 인체 유익 성분을 다량 함유해 질환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탕 안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온몸이 따끔거리는 탄산 목욕을 즐기기 위해 지금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현 초정행궁(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은 1448년 방화로 소실된 것을 2020년 청주시가 복원한 것이다. 이곳에는 원래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3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했다는 상탕,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마셨다는 원탕, 목욕이 가능한 노천탕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탄산수 우물 한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초정행궁 야외에는 무료로 노천탕을 재현해 초정약수로 족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의 족욕용 물은 차가운 것이 특징이다. 발을 담근 채 무더위를 달래거나 한가로이 멍때리기를 즐길 수 있다. 초정행궁 외관은 전통적이지만 내부 시설은 현대적이다. 왕이 자던 침전은 조선시대 밤하늘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관으로 꾸며졌고, 왕의 업무 공간인 편전은 천문과학관으로 활용 중이다. 초정행궁 뜨락에는 측우기, 앙부일귀, 혼천의 등 조선의 천문과학기기가 전시돼 있다. 한편 총 6개동 12개실 규모로 지어진 초정행궁 한옥체험관에서는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다. 현 초정행궁은 재현 공사 당시 행궁의 유구가 발견되지 않아 원터인지 확인되지는 않으나, 초정약수가 나는 것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명당 터다.● 청주의 명물, 압각수와 쫄쫄호떡 조선시대 청주읍성이 있던 청주 시내 중앙공원 일대에서는 잔잔한 스토리 여행을 즐기는 맛이 있다. 이곳에는 수령 900여 년의 은행나무(충북도 기념물)와 목조 2층 누각인 병마절도사 영문(충북도 유형문화재), 대원군 척화비(충북도 기념물) 등 유적이 적잖다. 이 중 나뭇잎이 오리발처럼 생겨서 압각수(鴨脚樹)라고 불리는 은행나무(높이 30m, 밑 둘레 8m)는 흥미로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고려 말인 공양왕 때 이색, 권근 등 10여 명이 이성계 일파에게 맞서다 청주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1390년 여름 청주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성내 대부분 집들이 물에 쓸려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색 등은 감옥 옆에 있던 은행나무로 올라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공양왕은 “이는 곧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라며 이색 등을 풀어줬다고 한다. 생명을 구한 나무답게 은행나무는 청주 사람들 사이에서 “어르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나무 주변은 생기(生氣) 에너지가 충만하다. 이 은행나무 바로 뒤편으로는 청주의 명물인 ‘쫄쫄호떡’ 집이 있다. 은행나무 벤치에 앉아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쫄깃한 ‘쫄쫄호떡’을 맛보면 기운이 절로 충전되는 듯하다. 원래 은행나무가 있는 이곳 중앙공원 터는 충북도청이 있던 곳이다. 현재의 도청은 이곳에서 7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는데, 최근 도청 남서쪽 코너에 자리 잡고 있는 충북산업장려관(물산장려관)도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인 충북산업장려관(1936년 건립)은 독특한 출입구 외양과 예술적인 쉼터 공간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차 한잔의 여유와 근현대의 문화를 체험하는 맛도 남다르다.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8월의 제주도에서 무더위를 피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휴양지를 찾아가보자.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남쪽 권역에는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는 힐링 명소들이 적잖다. 특히 천연의 기(氣) 스폿 지점은 허해진 기력(氣力) 을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보양 명당이기도 하다. ● 천년의 향기 비자나무 숲 한라산이 빚어낸 제주의 숲에는 치유의 힘이 배어 있다. 한라산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산소 및 수분 섭취와 배설을 원활하게 해주는 ‘삼초(三焦)의 기’가 강한 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연히 한라산의 자손뻘인 제주의 오름과 숲 또한 건강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나무 숲이다. 한라산 동쪽 44만8000여㎡의 면적에서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비자나무 단일 수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피톤치드 향기가 가득한, 그야말로 생기(生氣) 넘쳐나는 비자림이다.현재 이 숲은 천연기념물(제374호)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실 비자나무는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마치 아몬드처럼 생긴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로 사용돼 왔다. 목재는 탄력성이 뛰어나고 습기에도 강해 고려 및 조선에 걸쳐 궁중 진상품에서 빠지지 않았다. 특히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돌을 놓을 때 나는 음향과 감촉이 남달라 부르는 게 값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매표소를 거쳐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한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한여름 무더위까지 비켜갈 정도로 그늘져 있다. 이곳 안내 간판에는 “피로를 해소하고 인체 리듬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녹음이 짙고 울창한 비자나무 숲을 많이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천천히 숲에서 발산하는 향과 기를 음미하며 거니는 동안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비자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먼저 매표소에서 가까운 곳에 ‘벼락 맞은 비자나무’가 있다. 약 100여년 전 벼락을 맞은 후 지금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붙어 있는 상태가 됐다고 한다. 당시 오른쪽 수나무 일부가 불에 탔으나 다행히 암나무로는 불이 번지지 않아 두 나무가 공생하면서 수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거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금슬 좋은 부부’라고 하면서 신령스런 나무로 대접하고 있다. 숲 안쪽으로 더 진입하면 ‘새천년 비자나무’와 ‘비자나무 사랑나무’라는 간판을 단 비자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이곳 비자림에서 가장 굵고 웅장한 나무다. 높이 15m, 가슴 둘레가 6m에 달하는 신목(神木)이다. 고려 명종 29년(1189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1일 당시 21세기 제주의 무사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됐다. 이곳 비자림이 ‘천년의 숲’이란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다. 비자림을 지키는 터줏대감답게 한눈에 보아도 명당 터에 자리잡은 게 인상적이다. 무더위를 식힐 겸 나무 주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잠시 쉬거나 가벼운 명상에 잠기면 좋은 에너지가 몸속으로 스며듦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근처에는 두 나무가 서로 맞닿아 한 나무가 된 연리목 비자나무가 있다. 연리목이 형성되는 과정이 마치 부부가 만나 한몸이 되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사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안내판에는 영원한 사랑을 빌어보라는 권유 글이 씌어져 있는데, 좋은 기운까지 갖추고 있어서 금상첨화라 하겠다. 비자나무 숲길 탐방을 한 뒤 조선시대 비자림을 지키던 산감(山監)이 마시던 물로 목을 축이면 비자나무 숲의 정기를 오롯이 ‘섭취’한 셈이 된다. ● 우도의 멍때리기 성지 서귀포시 성산항에서 우도행 배를 탄다. 우도에 다가갈수록 양파 모양의 돔들이 인상적인 건축물이 눈길을 확 끈다. 친환경 건축물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 파크’다.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이자 친환경 건축가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사상을 테마로 삼은 예술 공원이다. 이곳은 우도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채색 건축물로 유명하거니와, 편안하게 쉬면서 기를 충전할 수 있는 명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곳이 ‘훈데르트 윈즈’라는 이름의 카페 공간이다. 성산 일출봉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명소이자, 카페 스스로 ‘멍 때리안을 위한 성지(聖地)’임을 표방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곳이다. 이처럼 심신이 편안해지는 느낌은 명당 터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우도는 섬 자체가 이름처럼 ‘누워 있는 소(와우·臥牛)’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남동쪽의 우도봉(126.8m)은 소의 머리라고 해서 ‘쇠머리오름’이라고 불리고, 섬의 중간 지역은 소의 등처럼 약간 돌출된 지형이고 , 북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면서 소의꼬리 부분을 이룬다. 이런 지형에서는 서남쪽 훈데르트바서파크가 들어선 천진항 일대 및 서빈백사해수욕장 일대가 소의 배 즉, 젖 부위에 해당한다. 풍수적으로 소의 젖에 해당하는 공간은 풍요로움과 안정감을 상징한다. 포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훈데르트 윈즈에서 멍 때리기를 하다가 깜빡 존 듯 했는데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곳에서 최고 속력 30km인 3륜 전기차를 이용해 해안도로를 따라 2km 가량 떨어진 서빈백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서빈백사(西濱白沙)는 흰 모래사장이란 뜻이다. 거무튀튀한 해변 일색인 제주도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백사장이다. 마치 소의 젖에서 나오는 우유 같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햇빛 아래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백사장은 아열대성 해조류의 일종인 홍조류가 만들어놓은 홍조단괴라고 한다. 살아 있을 때 붉은색이던 홍조류가 죽어서서는색소가 사라져 흰색으로 변한 채 파도에 떠밀려온 덩어리라는 것이다. 홍조단괴가 팝콘처럼 동글동글한 흰색이어서 ‘팝콘 해수욕장’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드문 홍조단괴 해변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에메랄드 빛 바다와 흑색 현무암, 그리고 백색 홍조단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우도의 좋은 기운을 만끽해본다. ● 천연암반수와 바다가 만나는 쇠소깍제주에는 전통 나룻배 모양의 카약을 탈 수 있는 곳이 있다. 서귀포시 효돈마을의 쇠소깍이다. 쇠소깍은 한라산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해안가에서 바닷물과 만나면서 생긴 깊은 웅덩이를 가라킨다. 이곳 역시 우도처럼 소와 연관이 깊다. 효돈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라 해서 ‘쇠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쇠소깍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효돈마을을 가리키는 ‘쇠’, 웅덩이를 의미하는 ‘소’, 끝을 의미하는 ‘깍’을 합친 제주도 말이라고 한다. 이곳은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계곡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아름다워 제주 올레길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비경 뿐만 아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원래 상업이 발달하기 마련인데, 풍수적으로는 풍요와 부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평가한다. 특히 쇠소깍에서는 민물과 바닷물의 기운을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카약 혹은 단체용 뗏목을 타고 쇠소깍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서 제주의 수(水) 기운을 흠뻑 쐴 수 있다.이외에 쇠소깍 인근의 소정방폭포(서귀포시 토평동)와 소천지(서귀포시 보목동)도 기 스폿 지점에 해당한다. 소정방폭포는 정방폭포와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높이는 7m 정도로 낮지만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만큼은 크고 웅장하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 소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일 년 내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어 물맞이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또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현무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소천지 자체가 명당 터다. 잔잔한 소천지 안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기력 충전용 여름나기로는 제주도 천연의 명소들이 제격인 듯 싶다. 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8월의 제주에서는 무더위를 피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휴양지를 찾아가 보자. 한라산을 기준으로 동남쪽 권역에는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는 힐링 명소들이 적잖다. 특히 천연의 기(氣) 스폿은 허해진 기력(氣力) 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양 명당이기도 하다. ● 천년의 향기 비자나무 숲 한라산이 빚어낸 제주의 숲에는 치유의 힘이 배어 있다. 한라산은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산소 및 수분 섭취와 배설을 원활하게 해주는 ‘삼초(三焦)의 기’가 강한 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당연히 한라산의 자손뻘인 제주의 오름과 숲 또한 건강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비자나무 숲이다. 한라산 동쪽 44만8000여 ㎡의 면적에서 500∼800년생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곳이다. 비자나무 단일 수종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피톤치드 향기가 가득한, 그야말로 생기(生氣) 넘쳐나는 비자림이다. 현재 이 숲은 천연기념물(제374호)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사실 비자나무는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마치 아몬드처럼 생긴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로 사용돼 왔다. 목재는 탄력성이 뛰어나고 습기에도 강해 고려 및 조선에 걸쳐 궁중 진상품에서 빠지지 않았다. 특히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돌을 놓을 때 나는 음향과 감촉이 남달라 부르는 게 값이었을 정도라고 한다. 매표소를 거쳐 하늘을 가릴 듯 웅장한 숲을 이루고 있는 비자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한여름 무더위까지 비켜갈 정도로 그늘져 있다. 이곳 안내 간판에는 “피로를 해소하고 인체 리듬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녹음이 짙고 울창한 비자나무 숲을 많이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천천히 숲에서 발산하는 향과 기를 음미하며 거니는 동안 특별한 스토리를 지닌 비자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먼저 매표소에서 가까운 곳에 ‘벼락 맞은 비자나무’가 있다. 약 100년 전 벼락을 맞은 후 지금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붙어 있는 상태가 됐다고 한다. 당시 오른쪽 수나무 일부가 불에 탔으나 다행히 암나무로는 불이 번지지 않아 두 나무가 공생하면서 수명을 이어오고 있다는 거다. 이곳 마을 사람들은 ‘금실 좋은 부부’라고 하면서 신령스러운 나무로 대접하고 있다. 숲 안쪽으로 더 진입하면 ‘새천년 비자나무’와 ‘비자나무 사랑나무’라는 간판을 단 비자나무가 기다리고 있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이곳 비자림에서 가장 굵고 웅장한 나무다. 높이 15m, 둘레가 6m에 달하는 신목(神木)이다. 고려 명종 때인 1189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나무는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 1월 1일 당시 21세기 제주의 무사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새천년 비자나무’로 지정됐다. 이곳 비자림이 ‘천년의 숲’이란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이다. 비자림을 지키는 터줏대감답게 한눈에 보아도 명당 터에 자리 잡은 게 인상적이다. 무더위를 식힐 겸 나무 주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잠시 쉬거나 가벼운 명상에 잠기면 좋은 에너지가 몸속으로 스며듦을 느낄 수 있다. 바로 근처에는 두 나무가 서로 맞닿아 한 나무가 된 연리목 비자나무가 있다. 연리목이 형성되는 과정이 마치 부부가 만나 한몸이 되는 것과 닮았다고 해서 사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안내판에는 영원한 사랑을 빌어보라는 권유 글이 씌어 있는데, 좋은 기운까지 갖추고 있어서 금상첨화라 하겠다. 비자나무 숲길을 탐방한 뒤 조선시대 비자림을 지키던 산감(山監)이 마시던 물로 목을 축이면 비자나무 숲의 정기를 오롯이 ‘섭취’한 셈이 된다. ● 우도의 멍때리기 성지서귀포시 성산항에서 우도행 배를 탄다. 우도에 다가갈수록 양파 모양의 돔들이 인상적인 건축물이 눈길을 확 끈다. 친환경 건축물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 파크’다.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이자 친환경 건축가로 유명한 훈데르트바서의 작품과 사상을 테마로 삼은 예술 공원이다. 이곳은 우도의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아름다운 채색 건축물로 유명하거니와, 편안하게 쉬면서 기를 충전할 수 있는 명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곳이 ‘훈데르트 윈즈’라는 이름의 카페 공간이다. 성산 일출봉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명소이자, 카페 스스로 ‘멍때리안을 위한 성지(聖地)’임을 표방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이완되는 곳이다. 이처럼 심신이 편안해지는 느낌은 명당 터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실제로 우도는 섬 자체가 이름처럼 ‘누워 있는 소(와우·臥牛)’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섬에서 가장 높은 남동쪽의 우도봉(126.8m)은 소의 머리라고 해서 ‘쇠머리오름’이라 불리고, 섬의 중간 지역은 소의 등처럼 약간 돌출된 지형이고, 북서쪽으로 갈수록 지대가 낮아지면서 소의 꼬리 부분을 이룬다. 이런 지형에서는 서남쪽 훈데르트바서 파크가 들어선 천진항 일대 및 서빈백사해수욕장 일대가 소의 배, 즉 젖 부위에 해당한다. 풍수적으로 소의 젖에 해당하는 공간은 풍요로움과 안정감을 상징한다. 포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훈데르트 윈즈에서 멍때리기를 하다가 깜빡 존 듯했는데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곳에서 최고 속력 30km인 3륜 전기차를 이용해 해안도로를 따라 2km가량 떨어진 서빈백사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서빈백사(西濱白沙)는 흰 모래사장이란 뜻이다. 거무튀튀한 해변 일색인 제주도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백사장이다. 마치 소의 젖에서 나오는 우유 같다는 느낌도 든다. 사실 햇빛 아래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백사장은 아열대성 해조류의 일종인 홍조류가 만들어놓은 홍조단괴라고 한다. 살아 있을 때 붉은색이던 홍조류가 죽어서는 색소가 사라져 흰색으로 변한 채 파도에 떠밀려온 덩어리라는 것이다. 홍조단괴가 팝콘처럼 동글동글한 흰색이어서 ‘팝콘 해수욕장’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할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드문 홍조단괴 해변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흑색 현무암, 그리고 백색 홍조단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하면서 우도의 좋은 기운을 만끽해 본다. ● 천연 암반수와 바다가 만나는 쇠소깍제주에는 전통 나룻배 모양의 카약을 탈 수 있는 곳이 있다. 서귀포시 효돈마을의 쇠소깍이다. 쇠소깍은 한라산에서 발원한 효돈천이 해안가에서 바닷물과 만나면서 생긴 깊은 웅덩이를 가라킨다. 이곳 역시 우도처럼 소와 연관이 깊다. 효돈마을이 소가 누워 있는 형태라 해서 ‘쇠둔’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쇠소깍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효돈마을을 가리키는 ‘쇠’, 웅덩이를 의미하는 ‘소’, 끝을 의미하는 ‘깍’을 합친 제주도 말이라고 한다. 이곳은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형성된 계곡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아름다워 제주 올레길 탐방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비경뿐만 아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원래 상업이 발달하기 마련인데, 풍수적으로는 풍요와 부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평가한다. 특히 쇠소깍에서는 민물과 바닷물의 기운을 몸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카약 혹은 단체용 뗏목을 타고 쇠소깍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면서 제주의 수(水) 기운을 흠뻑 쐴 수 있다. 이 외에 쇠소깍 인근의 소정방폭포(서귀포시 토평동)와 소천지(서귀포시 보목동)도 기 스폿에 해당한다. 소정방폭포는 정방폭포와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높이는 7m 정도로 낮지만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만큼은 크고 웅장하다. 백중날(음력 7월 15일)에 소정방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면 일 년 내내 건강하다는 속설이 있어 물맞이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또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현무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소천지 자체가 명당 터다. 잔잔한 소천지 안에서 스노클링을 하는 재미도 남다르다. 기력 충전용 여름 나기로는 제주도 천연의 명소들이 제격인 듯싶다.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데스티네이션 호텔(Destination hotel)’ 이 동남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데스티네이션 호텔은 고급스러운 시설과 서비스 등을 누리는 공간인 호텔이 여행의 중심이 되고, 부수적으로 주변 관광 명소를 즐기는 트렌드를 가리킨다. 특히 국가보다 는 특정 테마를 내세운 해외 호텔을 더 선호하는 현상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태국의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은 예술 및 문화 여행을 테마로 내세운 데스티네이션 호텔로 유명하다. 방콕 시내 중심가 수쿰윗에 있는 호텔로 들어서니 로비 한쪽 벽면에 전시된 대형 그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해와 달, 연꽃 및 랏차프륵(태국 국화)을 연상시키는 화초들, 창(태국 코끼리) 등 신령스런 동물을 묘사한 그림은 마치 한국의 십장생도를 보는 듯하다. ‘상서로운 길(Auspicious Path)’이라는 제목의 이 대형 그림은 2014년에 태국의 ‘국가 예술가’로 선정된 빠냐 위친타나산의 작품이다. 우주의 순환과 영속성,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호텔 투어를 안내하는 직원들의 유니폼에도 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 예술을 강조하는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137 Pillars Suites & Residences Bangkok, 이하 137 필라스)’을 상징하는 듯하다. 호텔 로비 뿐만 아니다. 태국 현지 예술가들의 그림과 조각품 등이 호텔 내 이곳저곳에 전시돼 있다. 이처럼 호텔을 태국 작가들의 전시 공간처럼 꾸민 데는 이유가 있다. 137 필라스의 총지배인인 웡판렛(30)는 “예술을 통한 감정 정화 및 건강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투숙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민관협력 사업으로 호텔 주도의 ‘방콕 아트투어’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먹고 자는 데만 그치던 호텔이 진화해 예술과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트투어는 오전 10시~오후 4시, 137 필라스의 의전 차량 ‘루이’를 타고 진행된다. 온통 파란색으로 무장한 ‘루이’는 빈티지 런던캡(택시)을 연상시킨다. 방콕 시내 여행에 빈티지 ‘런던캡 투어’가 등장한 것에는 사연이 있다. 137 필라스의 원조 호텔은 태국 북부 지역의 치앙마이에 있다. 1800년대 후반 치앙마이에 있던 영국인 소유의 한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137 필라스 호텔이 시작된 것이다. 137 필라스란 이름도 이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이 137개라는 것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 건물의 원래 주인은 영화 ‘왕과 나’의 실제 모델인 영국인 가정교사 애나 레오노웬스의 아들 루이스다. 2017년에 개장한 방콕의 137 필라스 투어 차량이 영국인 이름이 붙은 런덥캡으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캡을 이용한 시내 투어인 만큼 커플 또는 가족 단위의 소수 인원(최대 4명)으로만 진행된다. 태국 문화 예술 전문 가이드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 투어 주제(미술, 문화, 미식, 웰빙, 카페 등)를 정한 후 직접 현장을 안내한다. 민관협력으로 진행되는 아트투어이기에 호텔 고객이 아닌 일반 여행자도 신청을 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다음은 루이를 이용한 아트투어 명소들이다.●방콕 현대미술에서 태국인을 읽다방콕은 현재 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지속가능한 국제 관광지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예술과 문화가 필수라는 인식에서다. 2008년 방콕시의 주도로 시암 스퀘어(Siam Square)에 설치한 방콕예술문화센터(Bangkok Arts and Culture Centre, BACC)가 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미술, 음악, 디자인, 영화, 사진 등 태국의 현대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1년 내내 열린다. 특히 이곳의 얼리 이어스 프로젝트(Early Years Project)는 태국 청년 아티스트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인데, 그들의 예술적 도전 정신을 감상할 수 있다. 태국인들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은 현대 태국인들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원기둥형 자연채광 구조로 조성된 센터 내부에는 전시 공간 외에 카페 및 레스토랑, 디자인 숍, 예술 도서관 등 부대 시설도 마련돼 있다. 예술인들에게는 아지트로서,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쉬어가면서 현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방콕예술문화센터와 함께 대표적 예술문화 공간인 짐 톰프슨 하우스 뮤지엄(Jim Thompson House Museum)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태국 문화에 심취해 태국 실크 산업을 전 세계에 알린 컬렉터이자 건축가인 짐 톰프슨(1906~1967년 실종)을 기리는 박물관이기도 하다.이곳은 도심이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열대우림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우거진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1959년에 완공된 짐 톰프슨 하우스는 태국 전통인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어진 지붕과 붉은색 건물 외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짐 톰프슨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태국의 전통적인 종교의식을 그대로 행했고 심지어 길일을 점쳐 입주하는 등 태국의 고유 풍속을 지켰다. 또한 그는 완공 이후 자신의 집과 함께 동남아 전역에서 수집한 예술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한 뒤,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을 태국내 자선단체 및 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등 선행을 했다. 박물관 바로 옆으로는 ‘짐 톰프슨 아트 센터(JTAC)’가 있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소개하는 동시에 다양한 현대미술 전시회 및 워크숍이 열리는 공간이다.● 태국 전통 문화의 산실, 왓포 사원태국의 전통 문화에서 불교는 깊숙한 뿌리 쯤에 해당한다. 이러한 태국 불교문화를 상징하는 명소 중 하나가 왓포(Wat Pho) 사원이다. 왕궁 뒤편에 자리한 이 사원은 방콕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오래된 왕실 사원이다.이 사원은 16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가 버마의 침략으로 무너진 후 태국의 현 왕조인 짜끄리 왕조의 창시자 라마 1세(1737~1809)에 의해 복원됐다고 전해진다. 1832년에는 라마 3세가 이곳에 거대한 와불상을 설치하면서 왕실 사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부처가 열반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와불상은 길이 46m, 높이 15m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불상의 발바닥은 자개로 정교하게 세공돼 있고, 발바닥 중앙에는 차크라를 상징하는 문양이 인상적이다. 와불이 워낙 크다 보니 발바닥 쪽에서 머리 쪽을 바라보아야만 거대한 와불상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불상 옆에는 인간이 겪는 108번뇌를 의미하는 108개의 청동 그릇이 놓여 있다. 여기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전해진다.왓포 사원은 라마 1세가 태국에서 최초로 지은 공공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전통 타이 마사지가 시작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한데, 현재는 전통의학센터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사원 동쪽 끝 별관에 있는 전통 마사지 스쿨은 예약 표를 받고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한편 왓포 사원 경내에는 퀸 시리낏 섬유 박물관도 있다. 이곳에는 태국 전 국왕(라마 9세)의 아내이자 현 국왕 마하의 어머니인 시리낏 여왕(91)이 대외 행사 때 입고 다녔던 드레스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빼어난 미모로도 인기를 끌었던 시리낏 여왕은 태국 전통 옷감에 관심을 기울여온 패션 예술가이기도 하다.● 맛으로 무장한 호텔 미식문화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런던캡 ‘루이 투어’를 마친 후 137 필라스에서 고급스런 호텔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호텔은 34개 객실 모두가 최상층부에 위치한 스위트룸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 도심의 특급호텔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럭셔리와 아트에 초점을 맞춘 인테리어, 응접실과 널찍한 발코니 등을 갖춘 공간, 그리고 방콕 도심을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루프톱 인피니티풀 등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텔에서는 맛 문화도 최고급으로 즐길 수 있다. 이 호텔의 대표적인 미식 요리코너인 ‘반 보르네오클럽(Baan Borneo Club)’, 칵테일 만들기 체험과 페어링 음식을 제공하는 ‘잭 베인스 바(Jack Bain’s Bar)’, 제철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 ‘니미트르(Nimitr)’ 등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호텔이 아닌 방콕의 전통 맛집 프로그램도 호텔측에서 준비하고 있으니 먹거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이외에도 호텔에서는 음악, 휴양과 휴식, 역사 유적, 클럼 옹앙(옹앙 운하) 같은 환경과 자연을 아우르는 명소 등 다양한 주제의 아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콕 호텔의 실험적인 프로그램은 관광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여행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은 것같다.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데스티네이션 호텔(Destination hotel)’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데스티네이션 호텔은 고급스러운 시설과 서비스 등을 누리는 공간인 호텔이 여행의 중심이 되고, 부수적으로 주변 관광 명소를 즐기는 트렌드를 가리킨다. 특히 국가보다는 특정 테마를 내세운 해외 호텔을 더 선호하는 현상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태국의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은 예술 및 문화 여행을 테마로 내세운 데스티네이션 호텔로 유명하다.》 방콕 시내 중심가 수쿰윗에 있는 호텔로 들어서니 로비 한쪽 벽면에 전시된 대형 그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해와 달, 연꽃 및 랏차프륵(태국 국화)을 연상시키는 화초들, 창(태국 코끼리) 등 신령스러운 동물을 묘사한 그림은 마치 한국의 십장생도를 보는 듯하다. ‘상서로운 길(Auspicious Path)’이라는 제목의 이 대형 그림은 2014년에 태국의 ‘국가 예술가’로 선정된 빠냐 위친타나산의 작품이다. 우주의 순환과 영속성,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호텔 투어를 안내하는 직원들의 유니폼에도 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 예술을 강조하는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을 상징하는 듯하다. 호텔 로비뿐만 아니다. 태국 현지 예술가들의 그림과 조각품 등이 호텔 내 이곳저곳에 걸려 있다. 이처럼 호텔을 태국 작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처럼 꾸민 데는 이유가 있다. 호텔의 총지배인인 니다 웡판렛(30)은 “예술을 통한 감정 정화 및 건강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투숙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민관 협력 사업으로 호텔 주도의 ‘방콕 아트투어’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먹고 자는 데만 그치던 호텔이 진화해 예술과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트투어는 오전 10시∼오후 4시, 호텔의 의전 차량 ‘루이’를 타고 진행된다. 온통 파란색으로 무장한 ‘루이’는 빈티지 런던캡(택시)을 연상시킨다. 캡을 이용한 시내 투어인 만큼 커플 또는 가족 단위의 소수 인원(최대 4명)으로만 진행된다. 태국 문화 예술 전문 가이드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 투어 주제(미술, 문화, 미식, 웰빙, 카페 등)를 정한 후 직접 현장을 안내한다. 민관 협력으로 진행되는 아트투어이기에 호텔 고객이 아닌 일반 여행자도 신청을 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다음은 루이를 이용한 아트투어 명소들이다.●방콕 현대미술에서 태국인을 읽다방콕은 현재 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국제 관광지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예술과 문화가 필수라는 인식에서다. 2008년 방콕시의 주도로 시암스퀘어에 설치한 ‘방콕예술문화센터(BACC)’가 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미술, 음악, 디자인, 영화, 사진 등 태국의 현대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1년 내내 열린다. 특히 이곳의 얼리 이어스 프로젝트(Early Years Project)는 태국 청년 아티스트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인데, 그들의 예술적 도전 정신을 감상할 수 있다. 태국인들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은 현대 태국인들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원기둥형 자연채광 구조로 조성된 센터 내부에는 전시 공간 외에 카페 및 레스토랑, 디자인 숍, 예술 도서관 등 부대 시설도 마련돼 있다. 예술인들에게는 아지트로,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쉬어가면서 현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방콕예술문화센터와 함께 대표적 예술 문화 공간인 ‘짐 톰프슨 하우스 뮤지엄’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태국 문화에 심취해 태국 실크 산업을 전 세계에 알린 컬렉터이자 건축가인 짐 톰프슨(1906∼1967·실종)을 기리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곳은 도심이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열대우림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우거진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1959년에 완공된 짐 톰프슨 하우스는 태국 전통인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어진 지붕과 붉은색 건물 외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톰프슨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태국의 전통적인 종교의식을 그대로 행했고 심지어 길일을 점쳐 입주하는 등 태국의 고유 풍속을 지켰다. 또한 그는 완공 이후 자신의 집과 함께 동남아 전역에서 수집한 예술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한 뒤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을 태국 내 자선단체 및 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등 선행을 했다. 박물관 바로 옆으로는 ‘짐 톰프슨 아트 센터(JTAC)’가 있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소개하는 동시에 다양한 현대미술 전시회 및 워크숍이 열리는 공간이다. ●태국 전통문화의 산실, 왓포 사원태국의 전통문화에서 불교는 깊숙한 뿌리쯤에 해당한다. 이러한 태국 불교 문화를 상징하는 명소 중 하나가 ‘왓포 사원’이다. 왕궁 뒤편에 자리한 이 사원은 방콕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오래된 왕실 사원이다. 이 사원은 16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가 버마의 침략으로 무너진 후 태국의 현 왕조인 짜끄리 왕조의 창시자 라마 1세(1737∼1809)에 의해 복원됐다고 전해진다. 1832년에는 라마 3세가 이곳에 거대한 와불상을 설치하면서 왕실 사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부처가 열반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와불상은 길이 46m, 높이 15m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불상의 발바닥은 자개로 정교하게 세공돼 있고, 발바닥 중앙에는 차크라를 상징하는 문양이 인상적이다. 와불이 워낙 크다 보니 발바닥 쪽에서 머리 쪽을 바라보아야만 거대한 와불상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불상 옆에는 인간이 겪는 108번뇌를 의미하는 108개의 청동 그릇이 놓여 있다. 여기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왓포 사원은 라마 1세가 태국에서 최초로 지은 공공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전통 타이 마사지가 시작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한데, 현재는 전통의학센터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사원 동쪽 끝 별관에 있는 전통 마사지 스쿨은 예약 표를 받고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한편 왓포 사원 경내에는 퀸 시리낏 섬유 박물관도 있다. 이곳은 태국 전 국왕(라마 9세)의 아내이자 현 국왕 마하의 어머니인 시리낏 여왕(91)이 대외 행사 때 입고 다녔던 드레스들이 전시된 곳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빼어난 미모로도 인기를 끌었던 시리낏 여왕은 태국 전통 옷감에 관심을 기울여온 패션 예술가이기도 하다.●맛으로 무장한 호텔 미식 문화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루이 투어’를 마친 후 137 필라스에서 고급스러운 호텔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호텔은 34개 객실 모두가 최상층부에 위치한 스위트룸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 도심의 특급호텔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럭셔리와 아트에 초점을 맞춘 인테리어, 응접실과 널찍한 발코니 등을 갖춘 공간, 그리고 방콕 도심을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루프톱 인피니티풀 등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텔에서는 맛 문화도 최고급으로 즐길 수 있다. 이 호텔의 대표적인 미식 요리 코너인 ‘반 보르네오 클럽’, 칵테일 만들기 체험과 페어링 음식을 제공하는 ‘잭 베인스 바’, 제철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 ‘니미트르’ 등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호텔이 아닌 방콕의 전통 맛집 프로그램도 호텔 측에서 준비하고 있으니 먹거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 외에도 호텔에서는 음악, 휴양과 휴식, 역사 유적, 클롱옹앙(옹앙 운하) 같은 환경과 자연을 아우르는 명소 등 다양한 주제의 아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콕 호텔의 야심찬 아트투어는 관광 여행업계에도 새 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광활한 천수만 너머로 대나무 섬인 죽도와 더 멀리 안면도가 병풍처럼 바라보이는 곳. 석양이 잔잔한 수면을 붉게 물들이며 신선계의 황홀경을 연출하는 곳. 가을 대하, 겨울 새조개 등 사시사철 해양 먹거리로 입맛까지 돋워주는 곳. 바로 충남 홍성군의 남당항이다. 명품 해양 경관과 식도락 관광지로 주목받아 온 남당항이 최근 새롭게 변신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물놀이형 음악분수, 네트 어드벤처를 갖춘 오감 만족 해양공원이 항구에 들어섰다.》 바다 매립지에 5만5000㎡ 규모로 조성된 남당항 해양공원은 홍성군이 여름 피서지 및 휴양지로 야심 차게 선보인 대표 관광 브랜드다. 해양공원은 물놀이 체험형 음악분수, 트릭아트 존, 네트 어드벤처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추고 있다. 해양공원의 중심 무대인 물놀이 체험형 음악분수는 6600㎡ 규모로 국내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음악과 분수 쇼를 즐길수 있는 음악분수 무대는 거울못(면적 1960㎡, 중앙 깊이 25cm), 바닥분수 및 안개분수, 야간 경관 조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거울못은 가장 깊은 곳이 성인 무릎 높이 정도여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과 함께 뿜어나오는 분수 사이를 누비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주무대였던 예전 남당항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재 음악분수 쇼는 주말마다 운영되고 있는데,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모들이 많이 찾는다. 으레 여름철이면 비수기로 접어들어 한산하던 남당항 분위기도 달라졌다. 차박 혹은 캠핑 등을 통해 남당항의 다양한 즐길거리를 누리는 피서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음악분수 바로 옆으로는 길이 170m, 폭 3∼9m 규모의 트릭아트 존이 있다. MZ세대의 관광 트렌드를 반영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 무대다. 트릭아트는 빛의 반사와 굴절, 음영과 원근을 이용해 그림을 입체적이고 실감 나게 표현한 미술기법이다. 황금빛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초대형 대하, 바다거북과 바다 여행, 상어의 위협, 대형 문어의 습격 등 총 12개 트릭아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연출과 포즈로 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들의 모습도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될 정도다. 또 해안 지역에서는 처음인 초대형 네트 어드벤처(Net Adventure)도 곧 공개될 예정이다. 네트 어드벤처는 원래 산림 레포츠로 알려진 그물망 체험 시설인데, 홍성군이 총사업비 11억 원을 들여 남당항의 대표적 놀이기구로 준비했다. 그물망 위에서 방방 뛰어놀며 천수만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까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고안했다고 한다. ●물멍과 놀멍, 그리고 달멍 남당항에서는 천수만의 잔잔한 바다와 갯벌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는 ‘물멍’과 함께 서해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감상하는 ‘놀멍’을 즐길 수 있다. 남당항에서 북쪽 어사어항 방향으로 1km 남짓 바닷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남당노을전망대’가 있다. 바다 쪽으로 100여 m쯤 곡선을 그리며 돌출된 덱 해상 전망대다. 해가 질 무렵이면 바다와 갯벌이 붉게 물들면서 빨간색 전망대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망대 아래로는 모래사장을 갖춘 해변이 펼쳐진다. 원래 홍성은 모래사장이 발달되지 않아 변변한 해수욕장이 없었다. 그러다 4년 전 폭 30∼40m, 길이 980m 규모의 모래를 쏟아부어 인공 백사장을 만들었다. 유실될 수도 있다는 걱정과는 달리 모래사장은 자연미까지 갖추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멍과 달멍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노을전망대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속동전망대도 낙조 명소다. 이곳에는 배 모양의 포토존이 설치돼 있는데,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연출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속동전망대 인근에는 높이 65m의 홍성스카이타워(2024년 1월 오픈 예정)도 선보인다. 홍성에는 일몰과 함께 일출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천수만 내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인 죽도다. 남당항에서 죽도로 들어가는 배편이 있다. 배를 타고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섬 주위에 ‘시누대’라고 하는 가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竹島)라 불린다. 홍성군의 유일한 유인도이지만, 섬이 워낙 작다 보니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다니지 않는다. 전력도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생산되니 그야말로 오염원이 없는 청정무구한 섬이다. 30여 가구, 60여 명이 살고 있는 죽도는 올망졸망한 10여 개의 섬이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죽도는 썰물 때 4개 섬이 이어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홍성 12경 중 하나로 꼽힌다. 죽도는 2시간 정도 섬을 둘러보는 둘레길 코스가 잘 조성돼 있다. 홍성 출신 3명의 역사 인물(만해 한용운, 최영 장군, 백야 김좌진) 조형물을 설치한 3곳의 전망 쉼터가 둘레길을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다. 둘레길은 목재 덱과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제1 전망 쉼터 길은 솔숲과 대나무 숲 사이를 걸으며 천연의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제2 전망 쉼터 길에는 홍성의 역사와 유적지 등을 소개하는 갤러리 공간이 있다. 남당항, 대장간, 홍주아문, 홍화문 등의 설명도 곁들여져 있어서 홍성 역사 여행의 미리보기 체험이 가능하다. 제3 전망 쉼터 쪽에는 죽도 야영장 및 낚시공원, 매점 등이 있다.●근대 민족주의 발상지에서 홍성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충(忠)과 의(義)를 상징하는 인물을 다수 배출한 ‘절의(節義)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고려의 명장 최영(1316∼1388),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1418∼1456),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1879∼1944),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1889∼1930)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흥미롭게도 최영과 성삼문은 10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최영 장군의 출생지로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1316년 홍북읍 노은리에서 태어났다는 게 정설이다. 최영은 이성계의 쿠데타에 반대하며 고려를 지키려 한 충신이다. 인근 닭제산에는 최영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사당(기봉사)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성삼문이 태어난 성삼문 유허지가 있다. 성삼문은 세종 때 집현전 학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하였고, 세조의 단종 폐위에 반대하며 굳은 절개를 지켜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노은리 같은 마을에서 최영과 성삼문이 태어난 것처럼, 걸출한 독립운동가인 김좌진과 한용운도 서로 이웃한 곳에서 태어났다. 한반도가 격동의 시기로 접어든 19세기 후반, 한용운과 김좌진은 10년의 차이를 두고 같은 시대, 같은 삶을 살아갔다. 현재 김좌진의 생가가 있는 갈산면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인 결성면에 한용운의 생가가 있다. 행정구역상 면을 달리할 뿐이지, 사실상 두 생가는 이웃 사이다. 두 생가는 역사 유적지로 유명하거니와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어서 들러볼 만한 곳이다. 한편 김좌진과 한용운 생가 근처에는 우리겨레박물관(갈산면 취생리)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 부지에 세워진 이 박물관은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개관한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 개관에 앞장서 온 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 교수는 이곳에 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로 “항일운동에 앞장서 온 홍주의병, 김좌진과 한용운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한 한국 근대민족주의의 발상지”인 점을 꼽았다. 박물관은 고조선 시기부터 근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9개 공간이 꾸며져 있다. 박물관에서 가장 특이하면서 관심을 끄는 곳은 ‘반역자의 공간’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것과 다름없는 행위를 한 고려시대 최탄과 홍복원, 조선시대 이완용과 배정자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홍성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박물관답다.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광활한 천수만 너머로 대나무 섬인 죽도와 더 멀리 안면도가 병풍처럼 바라보이는 곳. 석양이 잔잔한 수면을 붉게 물들이며 신선계의 황홀경을 연출하는 곳. 가을 대하 겨울 새조개 등 사시사철 해양 먹거리로 입맛까지 북돋워주는 곳. 바로 충남 홍성군의 남당항이다. 명품 해양 경관과 식도락 관광지로 주목받아온 남당항이 최근 새롭게 변신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물놀이형 음악분수, 네트 어드벤처를 갖춘 오감만족 해양공원이 항구에 들어섰다. 바다 매립지에 5만5000㎡ 규모로 조성된 남당항 해양공원은 홍성군이 여름 피서지 및 휴양지로 야심차게 선보인 대표 관광 브랜드다. 해양공원은 물놀이 체험형 음악분수, 트릭아트 존, 네트 어드벤처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갖추고 있다. 해양공원의 중심 무대인 물놀이 체험형 음악분수는 6600㎡ 규모로 국내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음악과 분수 쇼를 즐길수 있는 음악분수 무대는 거울못(면적 1960㎡, 중앙 깊이 25cm), 바닥분수 및 안개분수, 야간 경관 조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거울못은 가장 깊은 곳이 성인 무릎 정도여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음악과 함께 뿜어나오는 분수 사이를 누비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의 주무대였던 예전 남당항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재 음악 분수 쇼는 주말마다 운영되고 있는데,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모들이 많이 찾는다. 으레 여름철이면 비수기로 접어들어 한산하던 남당항 분위기도 달라졌다. 차박 혹은 캠핑 등을 통해 남당항의 다양한 즐길거리를 누리는 피서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음악분수 바로 옆으로는 길이 170m, 폭 3∼9m 규모의 트릭아트 존이 있다. MZ세대의 관광 트렌드를 반영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 무대다. 트릭아트는 빛의 반사와 굴절, 음영과 원근을 이용해 그림을 입체적이고 실감나게 표현한 미술기법이다. 황금빛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초대형 대하, 바다거북과 바다 여행, 상어의 위협, 대형문어의 습격 등 총 12개 트릭아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연출과 포즈로 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들의 모습도 또다른 구경거리가 될 정도다. 또 해안지역 에서는 처음인 초대형 네트 어드벤처(Net Adventure)도 곧 공개될 예정이다. 네트 어드벤처는 원래 산림 레포츠로 알려진 그물망 체험 시설인데, 홍성군이 총 사업비 11억원을 들여 남당항의 대표적 놀이기구로 준비했다. 그물망 위에서 방방 뛰어놀며 천수만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까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고안했다고 한다. 물멍과 놀멍, 그리고 달멍 남당항에서는 천수만의 잔잔한 바다와 갯벌을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바라보는 ‘물멍’과 함께 서해로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감상하는 ‘놀멍’을 즐길 수 있다. 남당항에서 북쪽 어사리항 방향으로 1km 남짓 바닷가 길을 따라가다보면 ‘남당항노을전망대’가 있다. 바다 쪽으로 100여m쯤 곡선을 그리며 돌출된 데크 해상 전망대다. 해가 질 무렵이면 바다와 갯벌이 붉게 물들여지면서 빨간색 전망대와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망대 아래로는 모래사장을 갖춘 해변이 펼쳐진다. 원래 홍성은 모래사장이 발달되지 않아 변변한 해수욕장이 없었다. 그러다 4년전 폭 30~40m, 길이 980m 규모의 모래를 쏟아부어 인공 백사장을 만들었다. 유실될 수도 있다는 걱정과는 달리 모래사장은 자연미까지 갖추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멍과 달멍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노을전망대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속동 전망대도 낙조 명소다. 이곳에는 배 모양의 포토존이 설치돼 있는데,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을 연출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속동 전망대 인근에는 높이 65m의 홍성스카이타워(2024년 1월 오픈 예정)도 선보인다. 홍성스카이타워는 천수만의 명품 낙조와 리아스식 해안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는 곳이다. 홍성에는 일몰과 함께 일출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다. 천수만 내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인 죽도다. 남당항에서 죽도로 들어가는 배편이 있다. 배를 타고 약 15분 정도면 도착한다. 섬주위에 ‘시누대’라고 하는 가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竹島)라 불린다. 홍성군의 유일한 유인도이지만, 섬이 워낙 작다보니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다니지 않는다. 전력도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생산되니 그야말로 오염원이 없는 청정무구한 섬이다.30여 가구, 60여 명이 살고 있는 죽도는 올망졸망한 10여 개의 섬이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죽도는 썰물 때 4개 섬이 이어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홍성 12경 중 하나로 꼽힌다. 죽도는 2시간 정도 섬을 둘러보는 둘레길 코스가 잘 조성돼 있다. 홍성 출신 3명의 역사 인물(만해 한용운, 최영 장군, 백야 김좌진) 조형물을 설치한 3곳의 전망 쉼터가 둘레길을 통해 하나로 연결돼 있다. 둘레길은 목재 데크와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제1전망 쉼터 길은 솔숲과 대나무 숲 사이를 걸으며 천연의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제 2 전망 쉼터 길에는 홍성의 역사와 유적지 등을 소개하는 갤러리 공간이 있다. 남당항, 대장간, 홍주아문, 홍화문 등의 설명도 곁들여 있어서 홍성 역사여행의 미리보기 체험이 가능하다. 제3 전망 쉼터 쪽에는 죽도 야영장 및 낚시공원, 매점 등이 있다.근대 민족주의 발상지에서 홍성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충(忠)과 의(義)를 상징하는 인물들을 다수 배출한 ‘절의(節義)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고려의 명장 최영(1316~1388년),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1418~1456년), 독립 운동가이자 시인인 한용운(1879~1944년),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1889~1930년) 등이 홍성을 고향으로 두고 있다. 흥미롭게도 최영과 성상문은 10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최영 장군의 출생지로는 여러 설이 제기되고 있으나 1316년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났다는 게 정설이다. 최영은 이성계의 쿠데타에 반대하며 고려를 지키려 한 충신이다. 인근 닭제산에는 최영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사당(기봉사)이 있다. 바로 이곳에서 2.3km 떨어진 곳에 성삼문이 태어난 성삼문 유허지가 있다. 성삼문은 세종 때 집현전 학자로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하였고, 세조의 단종 폐위에 반대하며 굳은 절개를 지켜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노은리 같은 마을에서 최영과 성삼문이 태어난 것처럼, 걸출한 독립운동가인 김좌진과 한용운도 서로 이웃한 곳에서 태어났다. 한반도가 격동의 시기로 접어든 19세기 후반, 한용운과 김좌진은 10살의 터울을 두고 같은 시대, 같은 삶을 살아갔다. 현재 김좌진의 생가가 있는 갈산면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인 결성면에는 한용운의 생가가 있다. 행정구역상 면을 달리할 뿐이지, 사실상 두 생가는 이웃 사이다. 두 생가는 역사 유적지로 유명하거니와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어서 들러볼 만한 곳이다. 한편 김좌진과 한용운 생가 근처에는 우리겨례박물관(갈산면 취생리 )이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 부지에 세워진 이 박물관은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개관한 역사박물관이다. 박물관 개관에 앞장서온 복기대 인하대 융합고고학 교수는 이곳에 박물관을 건립한 이유로 “항일운동에 앞장 서온 홍주의병, 김좌진과 한용운 등의 독립운동가 들을 배출하는 한국 근대민족주의의 발상지”인 점을 꼽았다. 박물관은 고조선 시기부터 근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9개 공간이 꾸며져 있다. 박물관에서 가장 특이하면서 관심을 끄는 곳은 ‘반역자의 공간’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것과 다름없는 행위를 한 고려시대 최탄과 홍복원, 조선시대 이완용과 배정자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홍성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박물관답다.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자연과의 교감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빼어난 풍경, 생동(生動)하는 기운이 있는 곳에서는 최소 하룻밤 정도는 묵는다는 것이다. 인체는 잠잘 때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외부의 좋은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가까운 충남 아산시의 외암민속마을이나 유서 깊은 도고 보양온천 등에서 굳이 1박 2일 여행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풍요 기운 넘실대는 외암마을 돌담길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입구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널따란 석각(石刻)이 있다. 마을 진입로인 돌다리(반석교) 아래쪽 암반에 새겨진 ‘외암동천(巍巖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씨다. 외암동천은 외암마을이 신선들이 사는 별세계임을 뜻하고, 동화수석 역시 물과 돌이 어우러져 선계(仙界)처럼 아름다운 공간임을 의미한다. 도교 용어인 ‘동천’ ‘동화’는 보통 세속과 떨어진 채 아름다운 산수가 펼쳐지는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외암마을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공간을 버젓이 ‘동천’이라고 내걸고 있다. 신선이 머물 정도로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외암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인 조선 중기에 형성된 후 현재도 60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전형적인 양반 고택과 전통 정원, 5.3km에 달하는 돌담길, 볏짚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 등 조선시대 향촌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 마을은 입지 조건부터 범상치 않다. 우선 마을 입구 반석교 밑으로는 반계(磐溪)라고 불리는 개천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있다. 반계천은 또 마을 뒷산인 설화산 쪽에서 발원해 마을의 동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과 합류해 더욱 튼튼하게 마을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선계인 외암마을을 속계(俗界)로부터 차단하는 결계(結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모자랐던지 두 개의 자연 하천 외에 인공(人工)을 가미한 물길도 있다. 마을 상부 쪽에서 내려오는 수로를 정비해 마을 내부를 통과하게끔 유도한 다음 반계천으로 흘러내리도록 한 물길이다. 이 물길은 생활용수, 정원수 등으로 마을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이처럼 이중삼중으로 물길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에서는 부자들을 배출하는 기운이 강하다고 본다. 풍수에서 물길은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마을을 대표하는 양반가인 건재고택(영암군수댁), 송화댁, 교수댁 등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사랑 마당에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고 살 정도로 부잣집들이었다. 마을 가운데 안길과 그 좌우로 뻗어 나간 샛길은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돌담길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정감 넘치는 초가를 구경하며 천천히 거닐다 보면 풍요의 기운이 몸안에 스며드는 듯하다. 5km가 넘는 돌담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무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전통 식혜와 차, 조청 등으로 주전부리를 할 수도 있다. ●“나는 조선의 유민이다!” 외암마을은 예부터 삼다(三多)의 마을로도 유명했다. 삼다는 돌·말·양반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마을 길이 전부 돌담길이듯 돌이 많고, 말(글 읽는 소리)이 많고, 양반이 많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반가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참판댁(중요민속자료 제195호)이다. 대한제국 시기 규장각 직학사, 궁내부 특진관(참판급 벼슬로 현재의 차관급) 등을 지냈낸 퇴호 이정렬(1868∼1950)의 고택이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야욕을 저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수십 번이나 올렸지만 효과가 없자, 고종이 참석한 아침 조회에 등불을 들고서 말을 거꾸로 탄 채 출근하는 시위를 벌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목숨을 건 시위에 대해 “나라가 그믐 밤중처럼 깜깜해 등불을 들었고, 왕실 호위 군사들이 칼로 내리칠 때 무의식적으로 몸이 피하지 않도록 거꾸로 말을 탔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낙향해 칠은계(七隱契)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는 등 충남지역 항일운동을 이끌었고, 사망할 때까지 일제에 굴종하지 않는 ‘조선의 유민’으로 살았다. 같은 마을의 예안 이씨 일가인 이성열(교수댁)도 뜻을 같이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다. 건재고택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고택 사랑 마당 내에 자리한 연못과 정자, 인공 수로 등은 신선 세상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재고택은 추사 김정희의 두 번째 부인(이간의 증손녀)의 친정이기도 하다. 가옥에는 추사 서체의 편액들이 눈에 띈다. 건재고택은 개방 시각이 정해져 있으므로 탐방 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외암마을에서는 감찰댁 등 전통 한옥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거리도 준비돼 있다. 전통의상 체험을 비롯해 전통한지 및 한지부채 만들기, 떡메 치기, 엿과 강정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외암마을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왕들의 보양 휴양지 충남의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외암마을의 상징적 인물인 외암 이간(1677∼1727)은 ‘외암기’에서 아산(과거 온양)이 번성한 까닭을 산천(山川)과 함께 온천이라는 영천(靈泉)에서 찾았다. 아산은 온양온천, 아산온천, 도고온천 등 3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온양온천은 백제시대에 탕정(湯井·끓는 우물)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정도로 오래된 곳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이곳으로 행차해 안질을 치료한 후 온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도고온천 역시 삼국시대 신라 왕이 백제와의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치료한 곳으로 전해지는 영험한 온천이다. 동양의 4대 유황온천 중 하나로 꼽히는 도고온천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곳이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다. 2008년 재개장한 후 ‘충청도 1호 보양온천’이란 타이틀을 거머쥐며 웰니스 관광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인증하는 보양온천의 조건은 까다롭다. 온천수 온도가 35도 이상을 유지하거나, 25도 이상이면서 유황·탄산 등 인체 유익 성분을 L당 1000mg 이상 함유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건강 및 숙박시설 보유, 쾌적한 환경, 의료기관 제휴 등까지 갖춰야 한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관계자는 “최근 45억 원을 들여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면서 “다양한 온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사상체질(태양, 태음, 소양, 소음)에 맞는 탕에서 몸을 보양하거나,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아쿠아 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온천수가 출렁이는 파도풀과 실외 유수풀 등에서 물놀이 등을 즐길 수 있다. 온천수를 활용한 스파와 물놀이 시설은 젊은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확실히 예전의 온천욕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이곳에서는 야외 캠핑장의 카라반에서 숙박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스탠더드 30대, 디럭스 20대 등 총 50대의 카라반이 준비돼 있다. 카라반마다 더블침대와 아이들을 위한 2층 벙커침대, TV, 조리시설, 화장실, 에어컨 등을 갖추고 있다.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천수 워터파크에서 놀다가 저녁 무렵에는 카라반 앞 야외 테이블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등 글램핑을 만끽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인근에는 아산의 명소들이 있으므로 산책하듯 다녀보는 것도 좋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 및 그 둘레길, 곡교천변의 은행나무길, 봉수산 자락의 봉곡사 숲길 등은 느긋하게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 주는 ‘건강 보양길’이다.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자연과의 교감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빼어난 풍경, 생동(生動)하는 기운이 있는 곳에서는 최소 하룻밤 정도는 묵어본다는 것이다. 인체는 잠잘 때 몸과 마음이 이완되면서 외부의 좋은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서울·수도권과 가까운 충남 아산시의 외암민속마을이나 유서 깊은 도고 보양온천 등에서 굳이 1박 2일 여행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풍요 기운 넘실대는 외암마을 돌담길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마을 입구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널따란 석각(石刻)이 있다. 마을 진입로인 돌다리(반석교) 아래쪽 암반에 새겨진 ‘외암동천(巍巖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글씨다. 외암동천은 외암마을이 신선들이 사는 별세계임을 뜻하고, 동화수석 역시 물과 돌이 어우러져 선계(仙界)처럼 아름다운 공간임을 의미한다. 도교 용어인 ‘동천’ ‘동화’는 보통 세속과 떨어진 채 아름다운 산수가 펼쳐지는 곳을 가리킨다. 그런데 외암마을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공간을 버젓이 ‘동천’이라고 내걸고 있다. 신선이 머물 정도로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외암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인 조선 중기에 형성된 후 현재도 60여 가구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전형적인 양반 고택과 전통 정원, 5.3km에 달하는 돌담길, 볏짚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 등 조선시대 향촌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 마을은 입지 조건부터 범상치 않다. 우선 마을 입구 반석교 밑으로는 반계(磐溪)라고 불리는 개천이 마을을 휘감아 흐르고 있다. 반계천은 또 마을 뒷산인 설화산 쪽에서 발원해 마을의 동남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과 합류해 더욱 튼튼하게 마을을 보호하는 모양새다. 선계인 외암마을을 속계(俗界)로부터 차단하는 결계(結界)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도 모자랐던지 두 개의 자연 하천 외에 인공(人工)을 가미한 물길도 있다. 마을 상부 쪽에서 내려오는 수로를 정비해 마을 내부를 통과하게끔 유도한 다음 반계천으로 흘러내리도록 한 물길이다. 이 물길은 생활용수, 정원수 등으로 마을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이처럼 이중삼중으로 물길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곳에서는 부자들을 배출하는 기운이 강하다고 본다. 풍수에서 물길은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마을을 대표하는 양반가인 건재고택(영암군수댁), 송화댁, 교수댁 등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사랑 마당에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놓고 살 정도로 부잣집들이었다. 마을을 보호하는 풍수적 장치들도 곳곳에서 보인다. 3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 즉 반석교 아래 천연의 암반 지대는 수구사(水口砂)라고 하여 풍수에서는 매우 귀하게 여긴다. 암반이 물길을 막아 유속(流速)을 느리게 하는 작용을 하는데, 이는 풍성한 재물 기운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마을의 소나무숲은 방풍림의 역할과 함께 수구막이(마을의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 기능도 하고 있다. 이로 보면 외암마을 사람들은 풍수에 매우 밝았음을 알 수 있다. 마을 가운데 안길과 그 좌우로 뻗어 나간 샛길은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돌담길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정감 넘치는 초가를 구경하며 천천히 거닐다 보면 풍요의 기운이 몸안에 스며드는 듯하다. 5km가 넘는 돌담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무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전통 식혜와 차, 조청 등으로 주전부리를 할 수도 있다. ● “나는 조선의 유민이다!” 외암마을은 예부터 삼다(三多)의 마을로도 유명했다. 삼다는 돌·말·양반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마을 길이 전부 돌담길이듯 돌이 많고, 말(글 읽는 소리)이 많고, 양반이 많은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반가 중에서 대표적인 곳이 참판댁(중요민속자료 제195호)이다. 대한제국 시기 규장각 직학사, 궁내부 특진관(참판급 벼슬로 현재의 차관급) 등을 지냈낸 퇴호 이정렬(1868~1950)의 고택이다. 그는 일제의 침략 야욕을 저지해야 한다는 상소를 수십 번이나 올렸지만 효과가 없자, 고종이 참석한 아침 조회에 등불을 들고서 말을 거꾸로 탄 채 출근하는 시위를 벌인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목숨을 건 시위에 대해 “나라가 그믐 밤중처럼 깜깜해 등불을 들었고, 왕실 호위 군사들이 칼로 내리칠 때 무의식적으로 몸이 피하지 않도록 거꾸로 말을 탔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낙향해 칠은계(七隱契)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는 등 충남지역 항일운동을 이끌었고, 사망할 때까지 일제에 굴종하지 않는 ‘조선의 유민’으로 살았다. 같은 마을의 예안 이씨 일가인 이성열(교수댁)도 뜻을 같이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했다.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1848~1897)이 지은 건재고택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고택 사랑 마당 내에 자리한 연못과 정자, 인공 수로 등은 신선 세상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건재고택은 추사 김정희의 두 번째 부인(이간의 증손녀)의 친정이기도 하다. 가옥에는 추사 서체의 편액들이 눈에 띈다. 건재고택은 개방 시각이 정해져 있으므로 탐방 시 미리 확인해야 한다. 외암마을에서는 감찰댁 등 전통 한옥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체험거리도 준비돼 있다. 전통의상 체험을 비롯해 전통한지 및 한지부채 만들기, 떡메 치기, 엿과 강정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외암마을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 왕들의 보양 휴양지 충남의 대표적 성리학자이자 외암마을의 상징적 인물인 외암 이간(1677~1727)은 ‘외암기’에서 아산(과거 온양)이 번성한 까닭을 산천(山川)과 함께 온천이라는 영천(靈泉)에서 찾았다. 아산은 온양온천, 아산온천, 도고온천 등 3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온양온천은 백제시대에 탕정(湯井·끓는 우물)이란 이름으로 불렸을 정도로 오래된 곳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이곳으로 행차해 안질을 치료한 후 온양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도고온천 역시 삼국시대 신라 왕이 백제와의 전투 중 부상을 당해 치료한 곳으로 전해지는 영험한 온천이다. 동양의 4대 유황온천 중 하나로 꼽히는 도고온천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최근 인기를 끄는 곳이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다. 2008년 재개장한 후 ‘충청도 1호 보양온천’이란 타이틀을 거머쥐며 웰니스 관광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인증하는 보양온천의 조건은 까다롭다. 온천수 온도가 35도 이상을 유지하거나, 25도 이상이면서 유황·탄산 등 인체 유익 성분을 L당 1000mg 이상 함유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건강 및 숙박시설 보유, 쾌적한 환경, 의료기관 제휴 등까지 갖춰야 한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는 관계자는 “최근 45억 원을 들여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했다”면서 “다양한 온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사상체질(태양, 태음, 소양, 소음)에 맞는 탕에 골라 들어가거나 몸을 보양하거나,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차가운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아쿠아 바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온천수가 출렁이는 파도풀과 실외 유수풀 에서 수영과 스노클링 등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온천수를 활용한 스파와 물놀이 시설은 젊은층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확실히 예전의 온천욕 이미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이곳에서는 야외 캠핑장의 카라반에서 숙박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스탠더드 30대, 디럭스 20대 등 총 50대의 카라반이 준비돼 있다. 카라반마다 더블침대와 아이들을 위한 2층 벙커침대, TV, 조리시설, 화장실, 에어컨 등을 갖추고 있다. 낮에는 아이들과 함께 온천수 워터파크에서 놀다가 밤에는 카라반 앞 야외 테이블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등 글램핑을 할 수 있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인근에는 아산의 명소들이 있으므로 산책하듯 다녀보는 것도 좋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 및 그 둘레길, 곡교천변의 은행나무길, 봉수산 자락의 봉곡사 숲길 등은 느긋하게 몸과 마음을 충전시켜 주는 ‘건강 보양길’이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태국 남부 끄라비(Krabi)주의 란따섬(코란따). 수도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 다시 차로 1시간, 또 배로 1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은 곳인 만큼 때묻지 않은 원시 자연과 천상의 신들이 공들여 빚어놓은 듯한 비경이 펼쳐진다. 1990년 주변 여러 섬을 합친 134㎢ 면적이 국립 해양공원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해양생태계의 보물 단지이기도 하다. 란따섬의 주요 휴양지인 삐말라이 촌에서는 휴식과 액티비티가 적절히 배합된 파라다이스 체험을 할 수 있다.》 ‘섬에서 4일이나 보내야 한다고?’ 육지와 떨어진 외딴섬 한 곳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별로 익숙지 않은 해외여행 코스다. 그런데 끄라비의 코끌랑(Koh Klang) 지역 제티선착장에서 삐말라이행 쾌속선에 오르고 나서는 무료감과 갑갑증 같은 선입견은 지워지고 말았다. 두 눈 땡그랗게 생긴 원숭이바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닭바위, 거북바위 등 기기묘묘하게 생긴 석회암계 바위산들이 선객(船客)을 반겨주고, 울창한 열대 숲으로 치장한 섬과 코발트빛 바다는 남국의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마치 중국 구이린(桂林)이나 베트남 할롱베이에 온 듯한 기분도 들게 했다. 절경을 담으려 욕심껏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배는 어느덧 삐말라이 촌에 도착했다. 삐말라이는 태국어로 ‘낙원’을 뜻한다. 그 이름답게 삐말라이 촌은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 점점이 박힌 보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삐말라이 리조트(Pimalai Resort & Spa)라는 현대식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친환경 빌라촌으로 유명하다. 태국은 물론이고 동남아 전체에서 최고의 리조트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고급스러운 휴양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한 몸처럼 어울린다. 여기에는 이곳 ‘촌장(村長)’ 격인 차린띱 띠야폰(Charintip Tiyaphorn) 삐말라이 리조트 대표의 소신이 담겨 있다. 그는 “삐말라이는 무코란따 국립공원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을 보존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해안 청소를 하고, 모터로 움직이는 수상 스포츠를 운영하지 않으며, 생태계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피크닉만 허용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삐말라이에서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는 전량 가공해 천연비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음료수 빨대 하나도 플라스틱 대신 레몬그라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삐말라이의 촌민은 란따섬(코란따)의 현지 직원들과 리조트에 머무는 투숙객들인 셈이다. 100에이커(12만2000여 평) 부지에 900m 길이의 백사장을 가진 삐말라이 촌은 120여 채의 집에서 다양한 국적 출신 사람들이 1주일 살기에서 길게는 1년 살기 등으로 낙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삐말라이에서 인기를 끄는 숙소는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 자리 잡은 39채의 프라이빗 풀빌라(Pool Villa)다. 풀장은 산속에 사는 원숭이들도 가끔씩 쉬어가는 공간이다. 투숙객이 객실을 비웠을 때 원숭이들이 찾아와 풀장에서 더위를 식히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했을 경우 객실 내 먹을거리는 원숭이들 차지가 되고 만다. 사람과 동물이 동거하는 셈이다. 삐말라이 촌 중심부에 있는 메인 레스토랑(Seven Seas·세븐 시스) 한쪽에 있는 오래된 고목도 인상 깊다. 수령이 100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목(神木)에게 바치는 소박한 제물도 차려져 있다. 한국의 시골마을을 지키는 서낭당 나무를 보는 듯했다. 차린띱 띠야폰 촌장 역시 이 나무가 삐말라이를 보호해주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데, 나무의 기운이 미치는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 명당 기운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리모’와 만나는 스노클링, 바다 호수의 카약 란따섬 삐말라이에서 이른 저녁을 먹으며 누리는 호사 중 하나가 장엄한 일몰 광경이다. 삐말라이에서 서쪽 안다만 바다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 ‘코하’(Koh Haa·‘코’는 섬, ‘하’는 숫자 5를 의미)로 내려앉는 태양은 주변을 온통 불그레한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이 때문에 코하는 태양이 지는 섬이라고 해서 선셋 아일랜드로 불린다. 리조트 내에서 아로마 테라피, 요가 세션 , 태국 전통 요리 교실, 무아이타이 레슨 등을 즐기다가 바깥 바람을 쐬고 싶다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된다. 코하, 코록(Koh Rok·록섬), 코딸라벵(Koh Talabeng) 등 근처 섬들이 모두 해양 액티비티 공간이다. 먼저 ‘5섬’인 코하는 실제로는 6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태국의 오륙도’라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우뚝 솟은 절벽 바위들로 구성된 곳인데, 섬과 섬 사이의 수심이 얕은 곳은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어서 스노클링의 성지 중 하나로 꼽힌다. 물은 맑고도 따뜻하며 물속에서 산호와 흰동가리(애칭 ‘니모’), 거북 등을 만날 수 있다. 코하에서 남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진 코록에서는 스노클링 외에 베이비파우더처럼 보드랍고 흰 빛깔의 해변 모래길 산책, 외줄 그네 타며 멍때리기 등 아기자기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또 란따섬 동편의 코딸라벵은 호수처럼 잔잔한 물살로 인해 카약 명소로 유명하다. 2인 1조 혹은 홀로 카약을 저어 바위섬의 절경과 석회암 동굴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해양 액티비티의 하이라이트는 코묵(Koh Mook·묵섬)의 바다동굴인 모라콧 케이브(Morakhot Cave)이다. 에메랄드 동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마치 천국에 들어선 듯한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80m 길이의 이 동굴은 아무 때나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파도가 잔잔한 썰물 때나 바다에서만 접근이 가능한 해양 동굴이기 때문이다. 일단 보트를 타고 동굴 입구에 도착하면 능숙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긴 밧줄을 꼭 거머쥐고 사람들이 일렬로 동굴 속으로 헤엄쳐 간다. 구명조끼를 걸치고 머리에는 헤드랜턴을 밝힌 채 수십 명이 인간띠를 이룬 모습 자체가 구경거리다. 한 줌 빛도 들어오지 않는 동굴 내부를 랜턴에 의지해 들어가다 보면 어둠의 끝 쪽에서 희미한 자연의 빛줄기가 나타난다. 이윽고 동굴 끝까지 도착하면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진다. 동굴 내부가 아담한 에메랄드빛 해변과 함께 울창한 바위절벽 숲으로 치장돼 있다. 동굴 위로는 하늘로 통하는 또 다른 구멍이 뚫려 있다. 카르스트 지형의 침식 작용 결과라고 한다. 이곳이 일반에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중국계 동남아인들이 요리 재료용인 제비 둥지를 가져가기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더 오래전엔 해적들이 약탈한 물건을 잠시 숨겨 놓았다가 가져가는 보관소로도 이용됐다고 한다.●바다 집시들이 직접 잡아 파는 해산물삐말라이가 자리한 란따섬 자체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사실 란따섬은 1980년대 백패커(backpacker·식량과 등산 장비 등을 담은 백팩만 메고서 자연을 누비는 이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기 전만 해도 해양 피란민인 바다 집시들의 근거지였다. ‘차오 레이’로 불리는 바다 집시들은 500년 넘게 배 위에서 생활하다가, 점차 해안을 따라 지은 수상 가옥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들은 문자나 기록이 없어 그 기원이 알려진 바가 없고, 맨몸으로 바닷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해 생활한다고 한다. 란따섬 동쪽의 올드 타운(Old Town)에서는 차오 레이들이 잡아온 신선한 해산물들을 파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이곳에서는 아주 저렴한 값으로 랍스터, 새우, 조개 등을 맛볼 수 있다. 즉석에서 살아 있는 랍스터를 꺼내 무게를 단 후 쪄내는 모습은 한국 해산물 식당과도 비슷하다. 이처럼 4일간의 섬 생활만으로도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곳이 바로 란따섬이다. 현재 란따섬은 10월 14일까지 해양국립공원 보호 기간이다. 이 때문에 일부 액티비티 프로그램은 구간별, 시기별로 통제될 수 있으므로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다. 삐말라이 촌 차린띱 띠야폰 대표는 “에메랄드 동굴은 9월에만 문을 닫고, 란따섬의 여러 탐방 코스는 일 년 내내 열려 있으므로 항상 즐길 것들이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 끄라비는 한국과의 비행기 직항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글·사진 태국=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태국 남부 끄라비(Krabi)주의 란따섬(코란따). 수도 방콕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 다시 차로 1시간, 또 배로 1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찾아가기가 만만치 않은 곳인 만큼 때묻지 않은 원시 자연과 천상의 신들이 공들여 빚어놓은 듯한 비경이 펼쳐진다. 1990년 주변 여러 섬을 합친 134㎢ 면적이 국립 해양공원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해양생태계의 보물 단지이기도 하다. 란따섬의 주요 휴양지인 삐말라이 촌에서는 휴식과 액티비티가 적절히 배합된 파라다이스 체험을 할 수 있다. ‘섬에서 4일이나 보내야 한다고?’ 육지와 떨어진 외딴섬 한 곳에서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건 별로 익숙지 않은 해외여행 코스다. 그런데 끄라비의 코끌랑(Koh Klang) 지역 제티선착장에서 삐말라이행 쾌속선에 오르고 나서는 무료감과 갑갑증 같은 선입견은 지워지고 말았다. 두 눈 땡그랗게 생긴 원숭이바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닭바위, 거북바위 등 기기묘묘하게 생긴 석회암계 바위산들이 선객(船客)을 반겨주고, 울창한 열대 숲으로 치장한 섬과 코발트빛 바다는 남국의 독특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마치 중국 구이린(桂林)이나 베트남 할롱베이에 온 듯한 기분도 들게 했다. 절경을 담으려 욕심껏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동안 배는 어느덧 삐말라이 촌에 도착했다. 삐말라이는 태국어로 ‘낙원’을 뜻한다. 그 이름답게 삐말라이 촌은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 점점이 박힌 보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삐말라이 리조트(Pimalai Resort & Spa)라는 현대식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친환경 빌라촌으로 유명하다. 태국은 물론 동남아 전체에서 최고의 리조트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고급스러운 휴양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한 몸처럼 어울린다.여기에는 이곳 ‘촌장(村長)’ 격인 차린띱 띠야폰(Charintip Tiyaphorn) 삐말라이 리조트 대표의 소신이 담겨 있다. 그는 “삐말라이는 무코란따 국립공원과 깊은 유대를 맺고 있고,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을 보존해야 할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해안 청소를 하고, 모터로 움직이는 수상 스포츠를 운영하지 않으며, 생태계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피크닉만 허용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삐말라이에서 배출되는 음식물쓰레기는 전량 가공해 천연비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음료수 빨대 하나도 플라스틱 대신 레몬그라스를 이용한다고 한다.삐말라이의 촌민은 란따섬(코란따)의 현지 직원들과 리조트에 머무는 투숙객들인 셈이다. 100에이커(12만2000여 평) 부지에 900m 길이의 백사장을 가진 삐말라이 촌은 120여 채의 집에서 다양한 국적 출신 사람들이 1주일 살기에서 길게는 1년 살기 등으로 낙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삐말라이에서 인기를 끄는 숙소는 울창한 열대우림 속에 자리 잡은 39채의 프라이빗 풀빌라(Pool Villa)다. 풀장은 산속에 사는 원숭이들도 가끔씩 쉬어가는 공간이다. 투숙객이 객실을 비웠을 때 원숭이들이 찾아와 풀장에서 더위를 식히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했을 경우 객실 내 먹을거리는 원숭이들 차지가 되고 만다. 사람과 동물이 동거하는 셈이다.삐말라이 촌 중심부에 있는 메인 레스토랑(Seven Seas·세븐 시스) 한쪽에 있는 오래된 고목도 인상 깊다. 수령이 100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목(神木)에게 바치는 소박한 제물도 차려져 있다. 한국의 시골마을을 지키는 서낭당 나무를 보는 듯했다. 차린띱 띠야폰 촌장 역시 이 나무가 삐말라이를 보호해주는 존재라고 믿고 있는데, 나무의 기운이 미치는 레스토랑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면 명당 기운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리모’와 만나는 스노클링, 바다 호수의 카약란따섬 삐말라이에서 이른 저녁을 먹으며 누리는 호사 중 하나가 장엄한 일몰 광경이다. 삐말라이에서 서쪽 안다만 바다로 30분 거리에 있는 섬 ‘코하’(Koh Haa·‘코’는 섬, ‘하’는 숫자 5를 의미)로 내려앉는 태양은 주변을 온통 불그레한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이 때문에 코하는 태양이 지는 섬이라고 해서 선셋 아일랜드로 불린다.리조트 내에서 아로마 테라피, 요가 세션 , 태국 전통 요리 교실, 무아이타이 레슨 등을 즐기다가 바깥 바람을 쐬고 싶다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된다. 코하, 코록(Koh Rok·록섬), 코딸라벵(Koh Talabeng) 등 근처 섬들이 모두 해양 액티비티 공간이다.먼저 ‘5섬’인 코하는 실제로는 6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태국의 오륙도’라고 할 수 있다. 바다에서 우뚝 솟은 절벽 바위들로 구성된 곳인데, 섬과 섬 사이의 수심이 얕은 곳은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어서 스노클링의 성지 중 하나로 꼽힌다. 묽은 맑고도 따뜻하며 물속에서 산호와 흰동가리(애칭 ‘니모’), 거북 등을 만날 수 있다.코하에서 남서쪽으로 더 멀리 떨어진 코록에서는 스노클링 외에 베이비 파우더처럼 보드랍고 흰 빛깔의 해변 모래길 산책, 외줄 그네 타며 멍때리기 등 아기자기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또 란따섬 동편의 코딸라벵은 호수처럼 잔잔한 물살로 인해 카약 명소로 유명하다. 2인 1조 혹은 홀로 카약을 저어 바위섬의 절경과 석회암 동굴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해양 액티비티의 하이라이트는 코묵(Koh Mook·묵섬)의 바다동굴인 모라콧 케이브(Morakhot Cave)이다. 에메랄드 동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마치 천국에 들어선 듯한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80m 길이의 이 동굴은 아무 때나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 파도가 잔잔한 썰물 때나 바다에서만 접근이 가능한 해양 동굴이기 때문이다. 일단 보트를 타고 동굴 입구에 도착하면 능숙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긴 밧줄을 꼭 거머쥐고 사람들이 일렬로 동굴 속으로 헤엄쳐 간다. 구명조끼를 걸치고 머리에는 헤드랜턴을 밝힌 채 수십 명이 인간띠를 이룬 모습 자체가 구경거리다.한 줌 빛도 들어오지 않는 동굴 내부를 랜턴에 의지해 들어가다 보면 어둠의 끝 쪽에서 희미한 자연의 빛줄기가 나타난다. 이윽고 동굴 끝까지 도착하면 놀라운 신세계가 펼쳐진다. 동굴 내부가 아담한 에메랄드빛 해변과 함께 울창한 바위절벽 숲으로 치장돼 있다. 동굴 위로는 하늘로 통하는 또 다른 구멍이 뚫려 있다. 카르스트 지형의 침식 작용 결과라고 한다.이곳이 일반에게 알려지기 전까지는 중국계 동남아인들이 요리 재료용인 제비 둥지를 가져가기 위해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더 오래 전엔 해적들이 약탈한 물건을 잠시 숨겨 놓았다가 가져가는 보관소로도 이용됐다고 한다.바다 집시들이 직접 잡아 파는 해산물삐말라이가 자리한 란따섬 자체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사실 란따섬은 1980년대 백패커(backpacker·식량과 등산 장비 등을 담은 백팩만 메고서 자연을 누비는 이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기 전만 해도 해양 피란민인 바다 집시들의 근거지였다. ‘차오 레이’로 불리는 바다 집시들은 500년 넘게 배 위에서 생활하다가, 점차 해안을 따라 지은 수상 가옥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들은 문자나 기록이 없어 그 기원이 알려진 바가 없고, 맨몸으로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해 생활한다고 한다.란따섬 동쪽의 올드 타운(Old Town)에서는 차오 레이들이 잡아온 신선한 해산물들을 파는 식당들이 여럿 있다. 이곳에서는 아주 저렴한 값으로 랍스터, 새우, 조개 등을 맛볼 수 있다. 즉석에서 살아 있는 랍스터를 꺼내 무게를 단 후 쪄내는 모습은 한국 해산물 식당과도 비슷하다. 이처럼 4일간의 섬 생활만으로도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는 곳이 바로 란따섬이다.현재 란따섬은 10월 14일까지 해양국립공원 보호 기간이다. 이 때문에 일부 액티비티 프로그램은 구간별, 시기별로 통제될 수 있으므로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다. 삐말라이 촌 차린띱 띠야폰 대표는 “에메랄드 동굴은 9월에만 문을 닫고, 란따섬의 여러 탐방 코스는 일 년 내내 열려 있으므로 항상 즐길 것들이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 끄라비는 한국과의 비행기 직항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민족시인 심훈이 조국광복을 열망하며 지은 시 ‘그날이 오면’의 첫구절이다. 광복의 그날이 오면 종각의 종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릴 것이며, 설령 두개골이 부서져 죽더라도 기뻐하겠다는 시인의 결기가 담긴 시다. 이 시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났다. 바로 서울 지하철 9호선 흑석역 근처 효사정(孝思亭)에서다. 한강 변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정자인 효사정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그날이 오면’ 시비(詩碑)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효사정 인근의 동작구 흑석동 성당이 심훈이 태어난 생가터였다. 관할구청이 이를 기념하고자 이곳에다 시비를 세운 것으로 보였다. 막상 효사정에 오르고나니 삼각산과 한강을 표현한 심훈의 시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효사정은 바로 밑으로 거대한 한강이 서해로 빠져나가고, 강 건너 북쪽 건물군 너머로는 북한산(옛 명칭은 삼각산)이 멀찌감치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그날(광복)이 오면’ 숨죽이고 있던 북한산 지맥(地脈)이 되살아나 더덩실 춤을 출 것이고, 또 일제에 의해 더럽혀진 우리 땅을 한강 물이 치솟아올라 깨끗하게 해줄 것이라고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효사정은 서울을 풍수적 감각으로 표현한 시인의 감성이 느껴지는 곳이다. 효사정은 600여 년 전 한성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노한(1376∼1443)이 세운 건축물이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살이를 한 뒤 묘지 북쪽 바위 언덕 위에 조성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이곳에 수시로 올라 모친을 그리워했고, 멀리 북쪽 개성에 묻힌 아버지를 추모했다. 이러한 노한의 효성을 기리는 의미로 효사정이라는 이름도 붙여졌다. 효사정은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중국에까지 소문났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을 찾을 때마다 필수 관람코스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옛 효사정은 사라졌고, 현재의 정자는 1994년 옛 문헌을 참고해 지금의 자리에 신축한 것이다. 효사정의 현판 글씨는 노한의 17대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이 터가 원래의 효사정 자리인지 논란은 있으나, 오래 전부터 명당으로 소문났었다. 대일항쟁기에 일제는 이곳에 한강신사(漢江神社)를 건립했다. 한강신사 건립 유래기에는 “이 지역은 예로부터 영산(靈山; 신령스러운 산)으로서 조선인들이 숭배하던 곳”으로 소개돼 있다. 일제는 그렇게 우리나라 방방곡곡 신령스런 명당 터에 신사를 세웠다. 실제로 효사정 터는 풍수 길지(吉地)로 판단된다. 동작동 국립묘지 쪽 서달산에서 내려온 한 지맥이 한줄기 끈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져 내려와 불끈 솟아오른 곳이 바로 효사정이다.효사정만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인근의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 동작구 본동)도 그렇다. 효사정에서 불과 1km 남짓한 거리로, 한강대교 남단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조선 22대 정조 임금과도 인연이 깊다. 원래는 영의정을 지낸 이양원 소유의 정자였고, 서해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해정(望海亭)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정조가 이 정자를 매입한 후 이름이 바뀌었다. 정조는 “북쪽의 우뚝한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대고 봉황이 훨훨 나는 것 같다”고 하여 용양봉저정이라고 고쳐 지었다. 심훈이 묘사한, ‘더덩실 춤추는 삼각산과 용솟음치는 한강’ 표현과도 사뭇 유사하다.1791년에 준공된 용양봉저정은 명당일 뿐만 아니라 한강 조망이 매우 빼어난 곳으로 유명했다. 정조는 수원 화성으로 행차할 때 한강을 건넌 후 쉬어가던 행궁(임금의 나들이 때 머물던 별궁)의 중심 건물로 사용됐다. 이처럼 조선의 지배계급은 정자를 지을 때도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좋은 기운이 서린 터를 골랐다. 이는 정자가 단순히 풍류를 즐기는 공간으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속에서 좋은 기를 받아들이며 심신을 함양하는 수양 장소로도 활용됐음을 의미한다. ● 풍수로 본 한강 변 누정조선시대 한강변에는 약 75개의 누정(樓亭; 누각과 정자를 합친 것)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사회에서 사대부들은 산천 경계가 아름다운 곳에다 정자를 지어 즐기는 게 커다란 로망이었다. 개인 소유의 정자를 가졌다는 것으로 자신의 신분을 한껏 과시할 수 있던 시대였다. 특히 한양도성과 가까운 한강변에 자리한 정자는 아무나 소유할 수 없었다. 권문세족 등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다. 여기에 더해 누정이 얼마나 풍수적 가치가 있는 곳인가에 따라 서열과 위상이 평가되기도 했다. 즉 누정은 아름다운 경관이라는 외적 환경 뿐만 아니라 명당 길지라는 무형적 기운까지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이와 관련, 한강변에 지은 조선시대 누정들을 풍수적으로 본격 해석한 논문 ‘풍수경관으로 본 한강 누정의 입지 연구’(김미정)가 최근 발표돼 주목을 끈다. 논문은 “한강 변에 위치한 누정은 경치가 아름다우면서도 대부분 풍수적 길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면서 “경치 좋은 곳에서의 휴식조차도 풍수적 길지에서 해야 한다는 조선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논문은 구체적으로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온 용양봉저정과 효사정, 망원정(마포구 합정동), 소악루(강서구 가양동) 등 복원된 후 문화재로 등록된 누정에 대해 풍수적 진단을 했다. 흥미롭게도 이들 누정이 대부분 돌혈(突穴; 종이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처럼 볼록하게 솟아오른 곳)이나 와혈(窩穴; 소쿠리나 쟁반처럼 오목하게 생긴 곳) 명당에 세워져 있으며, 누정 주변의 한강 물길이 대부분 토성수(土星水; 물길이 터를 각지게 안고 돌아가는 모양새로서 풍요와 부를 상징함)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이 대대손손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염원이 한강변 누정 문화에서도 엿보인다. 조선 사대부들이 풍수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강변 길지에 누정을 세워 자신들의 세도를 자랑하고 싶어했던 심리는 오늘날에도 통한다. 현재의 서울 사람들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를 부의 상징으로 여기고 그곳에서 살고 싶어한다. 누정이 자리했던 한강변 대부분이 지금은 아파트 숲으로 변화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한편 ‘누정 풍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19일 한국건축역사학회의 춘계학술대회(수원전통문화관 예절교육관, 14:20∼16:00)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풍수경관으로 본 한강누정의 입지 연구’ 논문을 비롯해, ‘상량식을 통한 건축과정과 전통사상의 관계연구’(김혜련),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풍수환경 연구’(배영한), ‘심곡서원의 풍수환경 연구’(최덕수), 중국 성도(成都) 도시공간의 변황와 풍수지리 상관관계’(왕이청) 등 다양한 풍수 연구 논문들도 발표된다. 참가비는 없으며 누구나 참관이 가능하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지리산 남쪽 자락의 경남 하동이 차(茶) 축제로 야단법석이다.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가 한달간(5월4일~6월3일) 열리는 가운데,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일대에서는 ‘천년의 차, 천년의 문학’을 주제로 ‘2023토지문학제’(5~7일)가 개최된다. 차 문화와 인연 깊은 칠불사에서는 성불(成佛)한 가야 7왕자를 비롯해 김수로왕과 허왕후 가족을 묘사한 ‘칠불괘불탱화’ 점안식(5월7일 오후 1시)도 공개된다. 1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차대전(茶大戰) 섬진강변 화개장터로 유명한 하동군의 지리산 자락은 지금 온통 초록빛깔로 덮여 있다. 화개동천의 깊은 골짜기, 경사진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지는 녹색의 야생차밭 때문이다. 뭉텅뭉텅 구름 모양으로 자란 야생 차나무가 목가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하동은 ‘야생차의 본향(本鄕)’이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동네다. 우리 역사 기록도 차 문화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린다. ‘삼국사기’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는데, 왕이 지리산에 이를 심게 하였다고 기록했다. 이로써 소수 특권층에서만 향유되던 차 문화가 널리 성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삼국사기’가 전했던 하동군 화개면 일대 지리산자락의 차 문화는 이후 대물림으로 이어졌다. 대일항쟁기에 차 개량종이 전국으로 퍼져나갈 때도 ‘하동 차쟁이’들은 토종 야생차만 고집해왔다. 그렇게 잘 보존돼온 야생차는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4월 말 하동을 찾았을 때, 오랜 차 역사를 가진 고장답게 곳곳에서 진한 다향(茶香)을 느낄 수 있었다. 1년에 단 한 차례 치른 ‘차대전(茶大戰)’의 여운이기도 했다. 개인 야생차밭을 운영하고 있는 하동의 차쟁이들은 매년 곡우(4월20일) 이전에 따는 우전차를 시작으로 세작(細雀;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 품평을 하며 한 해 차 농사를 승부짓는다. 품평회 참여자는 지리산 곳곳 전통 사찰의 스님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다인(茶人)들이다. 물론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감지한 차의 향과 맛은 입소문을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차 판매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건 하동 차쟁이들 사이에서 올해 햇차가 유달리 뛰어나다고 자평한다는 점이다. 다우제다(다우찻집)의 이승관 대표는 “33년 전 녹차에 매료돼 직장을 때려치우고 하동 화개동에 들어왔을 때 맛본 차맛을 올해 드디어 찾아냈다”며 감격했다. 이 대표는 차의 품질을 결정짓는 데 절대적인 기술인 ‘전통 덖음’의 달인으로 통한다. 350~400도의 가마솥에서 오직 면장갑을 낀 양 손만을 사용해 어린 잎을 덖어내는 방법인데, 자칫 가마솥에 손을 데기가 십상인 고난도 기술이다. 이렇게 손만 사용해서 적절한 시간을 맞추어 찻잎을 덖어내야만 차맛을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게 30여 년 전 스승으로부터 배운 이 대표의 지론이다. “올해 우전차에서 야생차 본연의 참맛을 찾았다. 밤나무 냄새 비슷한 율향(栗香), 떡에서 나는 콩고물향, 어린아이의 배냇향 정도만 나와도 상급 차로 치는데, 올해 차에서는 그 윗단계인 청향(淸香)과 난향(蘭香)까지 나왔다.” ‘청향’은 몸과 마음이 맑아지면서 환희심이 생기고 양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차맛이다. ‘난향’ 역시 향이 있는 듯 없는 듯 차원이 다른 경지를 맛보게 하는데, 단전 밑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가슴을 뻥 뚫고 머리 위로 뻗어가면서 마치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게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난향과 청향은 신선급이 마시는 귀한 차로 대접받는다. 지리산자락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 대표 역시 이런 차향이 지리산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차문화와 가야 불교의 산실 지금 하동에서는 지리산 차쟁이들이 우려낸 차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중이다.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가 바로 그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다가 올해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차엑스포는 하동스포츠파크와 하동야생차박물관, 하동 야생차마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동 차농사꾼들의 솜씨가 담긴 여러 종류의 야생차 제품은 물론, 차 관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담은 콘텐츠, 차 문화의 기원과 전승 과정, 차 관련 도구와 공예품 등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으로 ‘자연의 향기, 건강한 미래, 차’라는 모토에 맞추어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하동 햇차를 왕에게 진상하는 ‘왕의 차 진상식’, 차를 활용한 음식인 ‘세계 티푸드 경연대회’, 오랜 차 역사와 문화를 가진 세계 5개국 명차를 마셔보는 ‘찻잔 들고 세계여행’, 야생 차밭에서 차와 함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티 캠핑’, 다원과 야생차밭을 거닐어보는 ‘천년다향 힐링길’ 등이다. 이중 하동 지리산자락의 비경과 차향을 느낄 수 있는 힐링길 프로그램은 두 코스로 준비돼 있다. 한 코스는 하동 차시배지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쌍계초등학교∼목압마을∼조태연가∼모암마을∼만수제다 전통차밭∼관아다원 전통차밭으로 이어지는 4km 거리이고, 다른 한 코스는 차시배지에서 출발해 남쪽으로 혜림농원∼신촌마을차밭·도심다원∼유로제다∼정금차밭∼차유통센터까지로 이어지는 4km 거리다. 차밭을 걷다가 하동 명품 햇차를 직접 맛보고 싶으면 다원에 들러 다담(茶談, 티토크)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다원 주인이 내주는 햇차를 마시며 차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우리 차에 대해 더 관심이 당긴다면 야생차마을에서 산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자리한 칠불사를 찾아가볼 일이다. 칠불사는 가락국(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이 이곳에서 동시 성불(成佛)한 7왕자를 기념하여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하동 차쟁이들은 일곱 왕자가 칠불사에서 수도를 할 때, 그 어머니인 허왕후가 지리산으로 찾아와 차를 공양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차 씨앗을 가져왔다는 얘기(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도 그 근거로 들이댄다. 굳이 허왕후와 7왕자의 차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칠불사는 차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 차문화의 중흥조로 받들어지는 초의선사가 이곳 칠불사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동안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기 때문이다. 칠불사는 한국다도사에 있어서 중요한 현장이다. 마침 칠불사에서는 7일 오후 1시 ‘칠불괘불탱화’ 점안식이 열릴 예정이다. ‘일곱 부처님 나투시다’라는 이름의 칠불괘불탱화 점안식은 지리산 7불(가야 7왕자)이 역사상 처음으로 모셔지는 행사다. 3년여에 걸쳐 완성된 탱화에는 가야의 건국 스토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리산 칠불’이 중앙에 묘사돼 있고, 작품 상단 오른쪽에는 가야 건국주인 김수로왕과 허왕후, 장유선사(허왕후의 오빠)가 있고, 왼쪽에는 가야 제2대 왕인 거등태자 및 허씨 성을 이어받은 2명의 왕자가 묘사돼 있다. 그러니까 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난 가족 그림인 셈이다. 칠불괘불탱화 조성 주역인 칠불사 주지 도응 스님은 “지리산에서 득도한 7부처를 기려 지어진 칠불사에서 처음으로 일곱 부처를 모시게 돼 마침내 절 이름값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점안식을 미루다가 마침 하동차엑스포가 열리는 때에 점안식을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리산에서 만난 모녀 반달곰 하동엔 ‘박경리 문학관’과 박경리의 대표작 ‘토지’를 드라마로 제작할 때 지어진 ‘최참판댁’도 있다. 차와 문학이 함께 어우러지는 ‘2023토지문학제가 5일에서 7일까지 바로 이곳에서 열린다. 최참판댁은 소설에 등장하는 묘사를 따라 재현해낸 고택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옛 양반가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를 보여주는 이곳은 한옥 고택 장면 촬영을 위해 방송국과 영화제작사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 ‘구르미 그린 달빛’, ‘육룡이 나르샤’ 등 여러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최참판댁 바로 옆의 박경리문학관 앞에서는 동정호와 악양평야가 굽어다보인다. 소설 속의 그 모습이다. 위대한 작품이 마을의 구조까지 바꾸어놓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라면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을 만나볼 일이다. 지리산자락 의신마을에는 야생에서 적응하지 못한 반달곰을 마을주민들이 거두어 키우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의신 베어빌리지라는 생태학습장이다. 이곳에서는 엄마 반달곰인 ‘산이’와 그 딸인 ‘강이’가 살고 있다. 경사진 바위 지대에 지어진 통나무집, 동굴, 연못 등이 자연스럽게 배치돼 있는데, 관람객들은 마을 해설사와 함께 공중 통로에서 간식을 던져주며 반달곰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하루 2회 40분씩 개방하고 예약자에 한해 한 회당 30명으로 제약한다. 이곳을 관리하는 마을주민 최다희씨는 “산에서 반달곰을 만나더라도 절대 먹을 것을 주거나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곰의 야생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의신마을에서는 캠핑과 숙박이 가능하다. 펜션과 민박형 숙소 등 다양한데, 차엑스포와 함께 묶어 여행하기에도 좋다. 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지리산 남쪽 자락의 경남 하동이 차(茶) 축제로 야단법석이다. ‘2023 하동 세계 차 엑스포’가 한 달간(5월 4일∼6월 3일) 열리는 가운데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일대에서는 ‘천년의 차, 천년의 문학’을 주제로 토지문학제가 개최된다. 차 문화와 인연 깊은 칠불사에서는 성불(成佛)한 가야 7왕자를 비롯해 김수로왕과 허왕후 가족을 묘사한 ‘칠불괘불탱화’ 점안식도 공개된다.》 섬진강변 화개장터로 유명한 하동군의 지리산 자락은 지금 온통 초록빛깔로 덮여 있다. 화개동천의 깊은 골짜기, 경사진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지는 야생차밭 때문이다. 뭉텅뭉텅 구름 모양으로 자란 야생 차나무는 목가적이면서도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하동은 ‘야생차의 본향(本鄕)’이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동네다. 우리 역사 기록도 차 문화가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린다. ‘삼국사기’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사신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는데, 왕이 지리산에 이를 심게 했다고 기록했다. 이로써 소수 특권층에서만 향유되던 차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삼국사기’가 전했던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 자락의 차 문화는 이후 대물림으로 이어졌다. 대일항쟁기에 차 개량종이 전국으로 퍼져 나갈 때도 ‘하동 차쟁이’들은 토종 야생차만 고집해 왔다. 그렇게 잘 보존돼온 야생차는 2017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로부터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4월 말 하동을 찾았을 때, 오랜 차 역사를 가진 고장답게 곳곳에서 진한 다향(茶香)을 느낄 수 있었다. 1년에 단 한 차례 치른 ‘차대전(茶大戰)’의 여운이기도 했다. 개인 야생차밭을 운영하고 있는 하동의 차쟁이들은 매년 곡우(4월 20일) 이전에 따는 우전차를 시작으로 세작(細雀·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 품평을 하며 한 해 차 농사를 승부짓는다. 품평회 참여자는 지리산 곳곳 전통 사찰의 스님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다인(茶人)들이다. 물론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감지한 차의 향과 맛은 입소문을 타고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차 판매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흥미로운 건 하동 차쟁이들 사이에서 올해 해차가 유달리 뛰어나다고 자평한다는 점이다. 다우제다(다우찻집)의 이승관 대표는 “33년 전 녹차에 매료돼 직장을 때려치우고 하동 화개에 들어왔을 때 맛본 차맛을 올해 드디어 찾아냈다”며 감격했다. 이 대표는 차의 품질을 결정짓는 데 절대적인 기술인 ‘전통 덖음’의 달인으로 통한다. 350∼400도의 가마솥에서 오직 면장갑을 낀 양손만을 사용해 어린 잎을 덖어내는 방법인데, 자칫 가마솥에 손을 데기가 십상인 고난도 기술이다. 이렇게 손만 사용해서 적절한 시간을 맞추어 찻잎을 덖어내야만 차맛을 제대로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게 30여 년 전 스승으로부터 배운 이 대표의 지론이다. “올해 우전차에서 야생차 본연의 참맛을 찾았다. 밤나무 냄새 비슷한 율향(栗香), 떡에서 나는 콩고물향, 어린아이의 배냇향 정도만 나와도 상급 차로 치는데 올해 차에서는 그 윗단계인 청향(淸香)과 난향(蘭香)까지 나왔다.” ‘청향’은 몸과 마음이 맑아지면서 환희심이 생기고 양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차맛이다. 난향 역시 향이 있는 듯 없는 듯 차원이 다른 경지를 맛보게 하는데, 단전 밑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가슴을 뻥 뚫고 머리 위로 뻗어가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게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난향과 청향은 신선급이 마시는 귀한 차로 대접받는다. 지리산 자락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 대표는 이런 차향이 지리산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차 문화와 가야 불교의 산실 지금 하동에서는 지리산 차쟁이들이 우려낸 차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2023 하동 세계 차 엑스포’가 그것이다. 코로나19로 연기됐다가 올해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이 엑스포는 하동스포츠파크와 하동야생차박물관, 하동 야생차마을을 중심으로 열리고 있다. 하동 차 농사꾼들의 솜씨가 담긴 여러 종류의 야생차 제품은 물론이고 차 관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담은 콘텐츠, 차 문화의 기원과 전승 과정, 차 관련 도구와 공예품 등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으로 ‘자연의 향기, 건강한 미래, 차’라는 모토에 맞추어 세계 5개국 명차를 마셔 보는 ‘찻잔 들고 세계여행’, 야생차밭에서 차와 함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티 캠핑’, 다원과 야생차밭을 거니는 ‘천년다향 힐링길’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하동 지리산 자락의 비경과 차향을 느껴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힐링길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하동 차나무 시배지에서 출발해 북상하거나 남하하는 두 코스로 준비돼 있다. 북상 코스는 시배지에서 출발해 쌍계초등학교∼목압마을∼조태연가∼모암마을∼만수제다 전통차밭∼관아다원 전통차밭으로 이어지는 4km 거리이고, 남하 코스는 시배지에서 출발해 혜림농원∼신촌마을차밭·도심다원∼유로제다∼정금차밭∼차유통센터로 이어지는 4km 거리다. 차밭을 걷다가 하동 명품 해차를 직접 맛보고 싶으면 다원에 들러 다담(茶談·티토크)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주인이 내주는 해차를 마시며 차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우리 차 문화에 깊은 관심이 있다면 야생차마을에서 산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자리한 칠불사를 찾아가 볼 일이다. 칠불사는 가락국(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이 이곳에서 동시 성불한 7왕자를 기념하여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하동 차쟁이들은 일곱 왕자가 칠불사에서 수도를 할 때 그 어머니인 허왕후가 이곳으로 찾아와 차를 공양했다는 전설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수로왕비인 허씨가 인도에서 차 씨앗을 가져왔다는 얘기(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도 그 근거로 들이댄다. 굳이 허왕후와 7왕자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칠불사는 차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 차 문화의 중흥조로 받들어지는 초의선사가 이곳 칠불사 아자방에서 참선하는 동안 다신전(茶神傳)을 초록했기 때문이다. 칠불사는 한국 다도사에 있어서 중요한 현장이다. 마침 칠불사에서는 7일 오후 1시 ‘칠불괘불탱화’ 점안식이 열릴 예정이다. ‘일곱 부처님 나투시다’라는 이름의 칠불괘불탱화 점안식은 지리산 7불(가야 7왕자)이 역사상 처음으로 모셔지는 행사다. 3년여에 걸쳐 완성된 탱화에는 가야의 건국 스토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지리산 칠불’이 중앙에 묘사돼 있고, 작품 상단 오른쪽에는 가야 건국주인 김수로왕과 허왕후, 장유선사(허왕후의 오빠)가, 왼쪽에는 가야 제2대 왕인 거등태자 및 허씨 성을 이어받은 2명의 왕자가 묘사돼 있다. 그러니까 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 난 가족 그림인 셈이다. 칠불괘불탱화 조성 주역인 칠불사 주지 도응 스님은 “지리산에서 득도한 7부처를 기려 지어진 칠불사에서 처음으로 일곱 부처를 모시게 돼 마침내 절 이름값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또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점안식을 미루다가 마침 하동 차 엑스포가 열리는 때에 점안식을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리산의 모녀 반달곰차와 문학이 함께 어우러지는 ‘2023 토지문학제’(5∼7일)도 놓치기에는 아쉽다. 이 행사는 박경리문학관과 박경리의 대표작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악양면 평사리) 일대에서 진행된다. 최참판댁은 소설에 등장하는 묘사를 따라 재현해낸 고택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옛 양반가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를 보여주는 이곳은 한옥 고택 장면 촬영을 위해 방송국과 영화 제작사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라면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을 만나볼 일이다. 의신마을의 베어빌리지라는 생태학습장이다. 야생에서 적응하지 못한 반달곰을 마을 주민들이 거두어 키우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엄마 반달곰인 ‘산이’와 그 딸인 ‘강이’가 살고 있다. 마을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공중 통로에서 간식을 던져주며 반달곰의 재롱을 볼 수 있다. 하루 2회 40분씩 개방하고 예약자에 한해 한 회당 30명만 관람할 수 있어 미리 확인해야 한다. 의신마을에서는 캠핑과 숙박이 가능하다. 펜션과 민박형 숙소 등 다양한데, 차 엑스포와 함께 묶어 여행하기에도 좋다.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전 세계적으로 체험형 관광이 인기를 끌고 있다. 빼어난 절경과 예술미 뛰어난 건축물로 유명한 호주 시드니에서도 오감체험형 여행이 대세다. 134m 꼭대기까지 오르는 하버브리지 클라이밍, 맹그로브 습지를 헤쳐 나가는 카약과 야생 돌고래와의 만남, 그리고 바닷속에서 남태평양의 싱싱한 굴을 맛보는 체험 등은 시드니의 또 다른 매력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의 주도(州都)인 시드니 시내에는 주말마다 장이 선다. 호주 특산물은 물론이고 각종 수공예품과 기념품, 세계 각국의 먹거리, 길거리 공연으로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록스마켓(Rocks Market)이다. 이 전통시장 거리가 시드니를 상징하는 곳임을 알려주는 증표도 있다. 거리 한쪽에 우뚝 서 있는 대형 조각상이다. 3면으로 이뤄져 입체감이 강조된 이 조각상은 각 면마다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람이 새겨져 있다. 장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 발에 쇠고랑을 찬 죄수, 그리고 자유 정착민 가족의 모습이다. ‘퍼스트 임프레션(First Impression·첫 흔적)’이라는 제목의 이 조각상은 백인들에 의한 호주 개척사를 상징한다. 1788년 죄수 및 군인, 정착민 등 1000여 명의 영국인을 태운 11척의 배가 시드니만에 도착하면서 영국령 호주의 역사는 시작된다. 선장이자 호주 최초 총독인 아서 필립은 조각상이 세워진 이곳 록스 거리에서 최초의 정착촌을 건설했다. 필립은 시드니만을 세계 최고의 항구라고 격찬했다. 만으로 흘러드는 강을 통해 신선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데다 1000여 척의 배도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 항구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시드니는 이탈리아 나폴리 항,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항과 함께 세계 3대 미항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로 부상했다. 230여 년의 호주 개척사를 품고 있는 록스 지역은 좌우 양쪽으로 시드니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을 거느리고 있다. 왼쪽으로는 시드니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하버브리지가 있다. 최고 높이 134m, 총길이 1149m인 이 다리는 세계에서 6번째로 긴 아치교로 기록된다. 1932년에 완공된 이 철교는 멀리서 보면 옷걸이 모양을 하고 있어서 ‘낡은 옷걸이’라는 별명과 함께, 사용된 철강만 3만8390t으로 ‘강철 심포니(Symphony of steel)’라는 다른 애칭도 갖고 있다. 록스 오른쪽으로는 1973년에 개관한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하버브리지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새해맞이 불꽃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오페라하우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20세기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힌다. 날렵한 곡선미가 강조된 지붕은 요트의 하얀 돛 혹은 조개껍데기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정작 설계자인 덴마크 건축가 예른 웃손은 오렌지 껍질을 까다가 이런 디자인을 고안했다고 한다. 여유만 된다면 이곳에서 오페라 한 편을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별미다. 한국인 해설사가 설명해 주는 투어 프로그램도 있다.●하늘과 바다에서 시드니 즐겨“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를 보면 시드니 구경은 다한 것”이라는 너스레가 나올 정도로 시드니 여행은 이 두 건축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두 건물을 한꺼번에 즐길 방법이 있다. 헬기를 타고서 시드니 상공에서 내려다보거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조망하는 것이다. 여행자의 도시답게 이런 관광 상품도 마련돼 있다. 먼저 ‘시드니 헬리투어’(sydneyhelitours.com.au)는 3, 4명이 한 조를 이뤄 헬리콥터를 타고 약 20분간 시드니 해안 일대를 둘러보는 코스다(1인당 240호주달러). 시드니 공항 헬기장에서 이륙한 헬기는 바다로 나가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선회하는데, 시드니의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빼앗길 정도다. 헬기에서 내려다보면 록스의 옛 사암 절벽도 보이고,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도 눈에 들어온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하얀 분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해안 절벽 위에 들어선 고급 주택가, 둥그런 해안선을 따라 바다에 점점이 박혀 있는 하얀 요트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장면도 헬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한편으로 록스스퀘어, 달링하버, 서큘러키 등 관광 명소들이 들어선 시드니만은 풍수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명당 터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처럼 뻗어 나간 지맥(地脈)이 이곳을 이중삼중으로 감싸주고 있어서, 남태평양의 거친 파도로부터 완벽히 보호받고 있는 모습이다. 또 육지의 좋은 기운이 바다를 통해 새나가지 못하도록 바다 가운데 조그만 섬들이 수구막이 역할도 하고 있다. 명당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풍요로움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시드니는 태생부터 풍요로움을 보장하는 땅인 셈이다. 바다에서 시드니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달링하버에서 유람선을 이용하면 된다. 하늘에서와는 달리 보다 가까이에서 시드니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달링하버에서 출발한 유람선은 하버브리지 아래를 통과한 다음 오페라하우스를 거쳐 시드니만 외곽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온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한꺼번에 포착되는 지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선상에서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토스트와 맥주, 포도주 등 간단한 먹을거리이지만 바다 위에서 즐기는 색다른 맛이다. 유람선을 통째로 이용해야 하는 규정상 개인보다는 단체 여행객들에게 적합한 상품이다. 시드니에서 인생 샷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하버브리지 등정’에 도전해볼 일이다. 하버브리지 아치 꼭대기(134m)까지 걸어서 왕복해 보는 체험인데, 철로 이루어진 인공의 다리를 등반 상품으로 이용하는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안전복을 착용한 후 안전줄에 고리를 끼우고 수직 계단을 오르는 등 오금이 저리는 ‘등산’을 하게 되지만 정상인 아치 상부에 오르면 성취감과 희열감이 자못 크다. 숙련된 현지 가이드가 아치 이곳저곳에서 한 사람씩 기념사진을 찍어준다. 안전상 이유로 개인 휴대전화나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하버브리지 등정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대안이 있다. 다리 중간쯤에 있는 철탑 전망대(Pylon lookout)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치 옆 4개 교각 중 하나를 전망대로 조성해 놓은 곳인데, 200계단 정도를 걸어서 올라가면 사방으로 시드니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입장료로 19호주달러를 내면 마음껏 풍경을 촬영할 수 있다.●앵무새, 가오리와 함께 카약 즐겨시드니 시내에서 뉴사우스웨일스 해안선을 따라 외곽으로 2∼3시간 정도 빠져나가면 다양한 해양 익스트림 레저를 즐길 수 있다. 먼저 시드니 남쪽 저비스베이의 허스키슨에서는 카약 체험과 돌고래 크루즈가 유명하다. 카약 체험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구명복 착용과 함께 간단하게 노 젓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2인승 카약을 직접 물가로 끌고 나가 몸을 싣는다. 활처럼 굽어진 저비스베이의 안쪽 깊숙한 지역(Currambene Creek)이다 보니, 바닷물이 잔잔하고 맑아 초보자들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다. 맹그로브 숲 사이를 요령껏 헤쳐가다 보면 어느새 카약 실력이 부쩍 늘게 된다. 화려한 색깔의 앵무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고, 얕은 물 밑으로는 숭어 등 고기 떼도 보인다. 가끔 너비가 1m를 훌쩍 넘는 가오리가 쑥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한편 저비스베이는 100마리 이상의 돌고래가 서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돌고래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야생 돌고래 떼를 관찰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고래, 바다표범 등도 볼 수 있다. 자연 상태에서 돌고래들이 노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선상의 명당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눈치 싸움도 벌어진다. 누군가 “돌핀!” 하고 외치면 우르르 몰려가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그 외에 눈부시게 하얀 모래가 펼쳐지는 하이암스 비치도 저비스베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시드니 시내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무니무니의 호크스버리강 어귀에서는 이색적인 굴 양식장 체험을 할 수 있다. ‘시드니 굴 농장 투어(Sydney Oyster Farm Tours)’라는 이 프로그램은 보트를 타고 나가서 바다의 굴 양식장을 방문해 단단한 굴 껍데기를 칼로 까는 법을 배우고, 실제로 가슴장화를 입고서 바다로 들어가 남태평양산 싱싱한 굴을 직접 먹어 보는 코스로 이뤄진다. 배까지 차오르는 바닷물로 들어가 테이블에서 와인 한 잔과 함께 직접 굴을 까서 먹는 맛은 남다르다.취재 협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관광청글·사진 시드니=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고구려는 수도가 세 군데 있었다. 중국 당나라때 편찬된 ‘북사(北史)’는 고구려가 수도인 평양성 외에 국내성과 한성에도 별도로 도읍을 두었으며, 이를 삼경(三京)이라고 부른다고 기록했다. 또 고구려 왕은 한 수도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세 곳을 돌면서 나라를 다스렸다고도 했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자부하는 고려 역시 삼경제(三京制)를 따랐다. 고려 숙종(재위 1095~1105년) 때의 인물인 김위제는 ‘도선기’라는 예언서를 근거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려 땅에는 세 곳의 서울이 있습니다. 11, 12, 1, 2월에는 중경(中京·개성)에서 지내고 3, 4, 5, 6월은 남경(南京·한양)에서 지내며 7, 8, 9, 10월을 서경(西京·평양)에서 지내면 36개국이 와서 조공할 것입니다.” 고려 왕이 4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세 곳 수도에 머물러야 나라가 융성해진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고려 숙종은 김위제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양에 남경 궁궐을 건설한 다음 때때로 머물기도 했다. 이러한 삼경제는 중국 역대 나라의 도읍체제와는 확연히 달랐다. 중국의 경우 주(周)나라 이후 수도를 두 곳에 두는 양경제(兩京制)를 주로 운영해왔다. 그래서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삼경제는 단군조선(고조선)의 삼한관경제(마한,진한,변한) 통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왜 삼경제를 채택했을까. 이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 최고의 천문 관측 수준을 자랑했던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고분벽화에 정밀하게 새겨 두었다. 이중 고구려 무용총(춤무덤), 각저총(씨름무덤)의 별자리 그림에는 북쪽 하늘의 북두칠성 옆에 ‘북극삼성(北極三星)’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별이 강조돼 있다. 북극삼성은 3개의 북극성을 가리킨다. 이는 지구 세차운동에 의해 북극성의 위치가 달라짐으로써 발생하는 현상이다. 현재는 작은곰자리의 폴라리스가 북극성이지만, 2000년 전인 기원 전후 시기에는 작은곰자리의 코카브가, 기원전 3000년 경에는 용자리의 알파별(투반)이 북극성이었다. 고구려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따르는 천손족(天孫族)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따라서 하늘의 뜻이 표현된 별자리를 매우 중요시했고,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는 3개의 북극성을 고분에 새겨 놓았던 것이다. 북극3성은 가운데 별이 북극대성으로 매우 밝은 2등성 별이다. 하늘의 최고 주재자인 태일신(太一神)이 상주한다고 하여 천제성(天帝星)으로 받들어진다. 북극대성 왼쪽의 별은 천제의 적자인 태자(太子)로 불리고, 그 오른쪽 별은 서자(庶子)라고 불린다. 고구려 사람들은 세 별을 ‘의도적으로’ 선으로 연결시켜 놓음으로써 서로 깊은 관계가 있음을 표시했다. 이러한 북극삼성은 지상에서 3개의 도읍으로 구현된다. 가운데 중심 별은 주도(主都)로 표현되고, 나머지 2개 별은 부도(副都)로 삼았다. 즉 고구려인들이 3곳의 수도를 운영한 것은 ‘하늘의 뜻’을 받든 것이었다. 자미원 기운 담긴 경복궁의 자미당 조선에 들어와서는 북극3성 대신 하늘의 3원을 염두에 두었다. 3원은 북쪽 하늘에서 1년 내내 보이는 주극성(週極星)들을 자미원(紫微垣), 천시원(天市垣), 태미원(太微垣)의 3원(垣·담장)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조선은 3원 중에서도 가장 으뜸 별자리인 자미원 기운을 한양 도성에 끌어들였다. 그 증거가 자미당(紫薇堂)이라는 건물이다. 경복궁 내 교태전과 자경전 사이에 있던 자미당은 세종대왕 당시 침소로 이용됐고, 고종 때는 왕과 신하가 정사를 논하는 장소로 사용됐다. 자미당은 일제때 훼손된 이후 지금 한창 복원작업이 진행중이다. 이처럼 경복궁 일대가 자미원 권역이 됨으로써 서울 광진구 일대는 자연스럽게 천시원 영역, 은평구 일대는 태미원 영역으로 설정됐다. 조선 세조 때 지관인 문맹검의 천문풍수론에 이같은 내용이 자세히 언급돼 있다(조선왕조실록 참조). 그런데 천시원과 태미원에도 제좌(帝座·임금 자리) 등 통치자를 상징하는 제왕의 별이 하나씩 배치돼 있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는 천시원의 낙천정(광진구 자양2동)과 태미원의 영서역(은평구 역촌동 일대)에 각각 별궁인 이궁(離宮)을 세우는 구상을 했다. 실제로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천시원 터에 별궁을 짓고 지내기도 했었다. 3경제 체제의 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구려와 고려의 삼경제나 조선의 3원체제 등은 사실상 풍수 원리이기도 하다. 원래 풍수는 하늘의 별 기운과 지상의 땅 기운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보아 ‘감여(堪輿)’라고 불렸다. 즉 하늘의 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光)과 기(氣)가 지상에 내려옴으로써 비로소 명당의 기운인 정기(精氣)가 생긴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를 알아야만 땅의 이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게 풍수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실제로 하늘의 3수 이치에 의해 지상에서 명당 터로 상징되는 진혈(眞穴) 역시 3개 혹은 3의 배수로 형성된다. 고려 이전 시기에 지어진 고찰이나 유적들을 보면 대체로 이런 3수 명당 혈의 구성 원리를 따라 배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현재 한반도는 서울과 평양이라는 2개의 수도가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1394년 한양이 수도 기능을 한 이후 620여 년에 만에 통치권자의 집무실이 한양도성을 빠져나오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의 집무 공간 이전을 두고 아직도 설왕설래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수도의 변천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래 통일 한국이라는 거시적 시각으로 보자면 다시 삼경제의 부활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세종시와 계룡시를 포함한 범대전권이 주도(主都) 역할을 하면서, 서울과 평양 혹은 다른 도시들이 부도 역할을 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서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만도 아니다. 현재 땅의 수용 능력을 넘어선 서울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장기적으로 서울이 더 오래도록 발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던 남녀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알아보았다. 미리 서로의 꿈에서 천상배필로 나타났던 솔메이트였다. 남자는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 여자는 바다 저 멀리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다. 아유타국은 ‘아요디아(Ayodhya)’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현재 인도 북부 갠지스강 유역의 아요디아 혹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의 아요디아로 추정된다. 그러니 2000년 전 한반도 김해에 나타난 16세 공주 허황옥은 피부가 다소 까무잡잡한 남방 계열 미인으로 상상된다. 수로왕이 신하의 딸들을 왕비로 삼으라는 주위의 독촉을 7년이나 버티면서 기다려왔던 여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으로 기록되는 두 사람의 만남은 시끌벅적했다. ‘삼국유사·가락국기’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놓고 있다. 기원 후 48년 붉은색 돛을 단 화려한 배가 김해 앞바다에 나타난다. 어서 빨리 궁으로 들어오길 바라는 수로왕의 마음과는 달리 공주 허황옥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육지에 상륙한 뒤 높은 언덕에 올라서더니 입고 있던 비단바지를 벗어 산신령에게 폐백으로 바쳤다. 하는 수 없이 수로왕은 궐 바깥으로 나와 임시 행궁을 설치하고 왕비를 맞아들이는 혼례를 치렀다. 두 사람은 2박 3일간 궁궐 바깥에서 밀월을 나누었다. 고대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이국적인 혼례 풍습이다. 이제 두 사람의 흔적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김해시 어방동의 가야테마파크는 신비로운 금관가야의 역사를 키워드로 삼아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는 관광지다. 드라마 ‘김수로’의 세트장이었던 가야테마파크에 들어서면 6개의 황금알과 거북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가야 건국 설화에 따른 배치물이다. 설화는 가야 지역 9개 마을의 우두머리들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 구지가를 부르니 하늘로부터 황금알 6개가 내려왔으며, 그중 가장 먼저 깨어난 이가 수로(首露)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즉, 황금알 6개는 6가야를 의미하며, 수로왕은 6가야의 맹주라는 뜻이다. 거북 조형물은 난생(卵生) 설화의 배경인 구지봉의 정기를 받았다고 해서 ‘소원거북이’라는 명패를 달아 놓았다. 소원거북이 등 껍질에 올라 거북 머리를 꼭 안은 채 즐거워하는 어린이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김수로와 허황옥의 본격적인 러브스토리는 가야 왕궁의 중심 건물인 ‘태극전’에서 펼쳐진다. 2층 높이 웅장한 규모가 마치 진짜 가야 유적처럼 고풍스럽다. 실내로 들어서니 수로왕 탄생 신화를 생생히 느껴볼 수 있는 증강현실(AR) 체험과 함께 가야 철제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김해는 ‘쇠바다(金海)’로 불릴 정도로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술인 ‘탄소 제련법’을 통해 고급 철기를 대량 생산해 냈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허황옥이 가야로 오기 전부터, 철제품 교역을 통해 국제적 교류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측한다. 태극전을 빠져나오면 가야시대 의복 등이 전시된 가락정전, 허황옥스토리관인 왕후전 등이 기다리고 있다. 허황옥스토리관에서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출발해 해풍과 별빛을 읽어가며 가야로 항해한 코스를 상징하듯,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빛으로 꾸며놓은 ‘거울의 방’이 눈길을 끈다. 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 이야기를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화려한 색채와 음악, 입체 영상으로 표현한 논버벌 퍼포먼스 ‘페인터즈 가야왕국’도 시간 맞춰 구경할 만하다. 해가 진 뒤에는 3D 미디어 쇼가 펼쳐진다. 이 밖에도 가야테마파크엔 가야 무사의 기상을 배우는 가야무사 어드벤처, 익사이팅 사이클과 익사이팅 타워 등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익사이팅 사이클은 높이 22m 와이어로프를 따라 자전거로 왕복 500m를 오가는 체험놀이인데, 아슬아슬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김해 만리장성에서 만난 왕후의 노을 인공미 짙은 가야문화 체험에 이어 실제 역사의 무대를 즐겨볼 차례다. 가야테마파크가 들어선 분성산(382m) 정상부에는 띠를 두르듯 돌을 쌓아 올린 분산성(사적 제66호)이 있다. 낙동강이 흘러가는 김해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허왕후가 고향 아유타국을 그리워하며 거닐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성벽이 유려한 곡선 모양으로 산을 휘감고 있어서 ‘김해의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이곳은 노을 뷰가 아름답다. 최근에는 ‘왕후(허황옥)의 노을’이란 이름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김해시 생림면 낙동강철교 전망대의 ‘왕(김수로)의 노을’과도 남북으로 마주해 서로 짝을 이룬다는 점이 흥미롭다. 분산성 안에는 ‘가야의 하늘길’이라고 불리는 산책 코스가 펼쳐진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곳저곳 아기자기한 역사 유적을 만나게 된다. 산 정상에 있는 해은사는 허왕후와 장유화상이 무사히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용왕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창건한 절이다. 다른 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왕전’이라는 전각도 있다. 대왕은 수로왕을 뜻하는데, 전각 내부에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이 외에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인 고인돌, 분산성을 보수한 내력과 성을 지킨 업적 등을 새긴 4기의 비석을 보존한 충의각, ‘만장대(萬丈臺)’라는 흥선대원군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거대한 자연 암벽, 왜군의 침입을 연기로 알리던 봉수대 등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봉수대를 지키듯 웅장하게 서 있는 팽나무도 내력이 있다. ‘하늘은 만장대를 만들었고, 나는 천년수(千年樹)를 심노라’라는 각석(刻石)은 19세기 후반 정씨 성의 인물이 팽나무를 식재하면서 석벽에 호기롭게 새긴 글이다. 그렇다 보니 팽나무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소원수 역할도 하게 됐다고 전해진다. ●‘마음의 풍랑’을 진정시키는 파사석탑수로왕과 허왕후의 러브 스토리는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 능을 순례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김수로왕이 영면한 수로왕릉은 김해시의 중심 서상동에 있다. 높이 5m의 원형 봉토 무덤인데, 납릉(納陵)이라고 불린다. 납릉 정문의 처마 밑 나무판에는 하얀색 석탑을 가운데 두고 두 마리의 물고기가 마주 보는 그림(쌍어문 혹은 신어상)이 새겨져 있다. 쌍어문(雙魚紋)은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한다. 수로왕릉 뒤편으로는 산책로가 있는데, 이곳에서 두 기의 고인돌을 만났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김해부내지도(金海府內地圖)에도 표시돼 있는 고인돌이다. 이 중 하트 모양으로 생긴 한 기의 고인돌은 사진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인돌은 거의 대부분 좋은 기운이 서린 터에 조성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수로왕릉 일대가 명당임을 증명해준다. 그런데 김해에서 첫 번째로 꼽을 명당은 구산동의 수로왕비릉이다. 수로왕릉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언덕배기에 조성돼 있는데, 가야 건국 설화의 무대인 구지봉과 바로 인접한 곳이다. 허왕후가 잠든 왕비릉은 원래 수로왕이 영면(199년 사망)할 터였지만 왕비가 10년 먼저 세상을 떠나자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명당 터를 내주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수로왕비릉 앞의 파사각에는 허황옥이 바다에서 두 달간 항해하면서 싣고 온 파사석탑이 있다. 험한 파도를 잠재워주었다는 영험한 석탑이다. 석탑의 돌을 분석해 보았더니 인도, 베트남, 일본 등지에서만 발견되는 암석이란 결과가 나왔다. 김수로와 허황옥의 국제적 러브 스토리가 상상이나 허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석탑은 돌덩어리를 여러 겹 쌓아놓은 듯한 형태인데, 신령한 기운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래 탑을 깨 돌 조각을 가져가는 바람에 원래 모습에서 변형됐다고 한다. 석탑을 가만히 보노라니 걱정과 근심, 분노와 불안 등 세파에 시달리던 마음의 격정을 진정시키는 듯 부드러운 파동이 밀려오는 듯하다. 어쩌면 파사석탑이 ‘마음의 풍랑’까지 잠재우는 성석(聖石)일 수도 있겠다. 허왕후와 수로왕은 그렇게 가야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면서 140여 년간 가야왕국을 다스려 왔으리라.글·사진 김해=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경남 밀양에는 조선 성리학의 거두이자 문장가인 점필재 김종직(1431~1492년)의 생가가 있다. ‘추원재(追遠齋)’라 불리는 이 집은 1389년 그의 부친이자 유학자인 김숙자가 지었다. 김종직은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일생을 마쳤다. 현재의 고택은 여러 차례 전란 등으로 허물어지고 낡은 집을 1800년에 새로 개축한 것이라고 한다. 명당 터인 추원재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곳은 대문이다. 집 안쪽에서 활짝 열어젖힌 대문으로 시선을 옮기면 대문 사이로 삼각형 모양의 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서예를 할 때 쓰이는 붓처럼 생긴 산이라고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라고 부른다. 이 고택은 대문을 통해 문필봉 기운이 온전히 들어오도록 ‘문필봉 뷰(view)’를 강조한 배치가 특징으로 꼽힌다. 풍수에서는 명당 터에서 ‘잘생긴’ 문필봉이 보일 경우 과거 급제, 문장가나 대학자 출현 등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니 이 집은 후손 중 뛰어난 인물의 출현을 기대하는 염원이 담겨 있고, 실제로 김종직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됐다. 이런 배치는 조선 사대부들의 집에서 매우 유행했던 듯하다. 김종직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개실마을(경북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의 점필재 종택(1800년경 건립, 1878년 중수) 역시 대문 사이로 문필봉이 뚜렷이 비친다. 마치 한 마리 학이 집으로 날아드는 것처럼 문필봉의 기운이 대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하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풍수학을 강의하는 박정해 교수는 김종직의 종택을 두고 청학귀소(靑鶴歸巢·청학이 둥지로 날아옴)형 명당이라고 규정했다. 양반들의 문필봉 사랑은 안동 하회마을의 양진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풍산 류씨 대종가인 양진당 사랑채에서 대문을 바라보면 홀봉(笏峰)이라 불리는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각형 모양의 문필봉을 굳이 ‘홀봉’으로 표현한 데서 풍산 류씨들의 관직 진출 의지가 매우 높았음을 읽을 수 있다. 홀(笏)은 조선시대에 관리가 임금을 만날 때 손에 들던 패를 가리키는 것으로, 벼슬을 상징한다. 곧 홀봉은 ‘벼슬 산’을 의미한다. 홀봉의 기운이 작동했는지, 풍산 류씨가 하회마을에 터를 잡은 이래 100명에 달하는 과거 급제자들을 배출했다. ● 타워 뷰에서 고궁 뷰까지 흥미롭게도 이러한 ‘문필봉 뷰’는 첨단 건축물이 들어선 도시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서울 잠실의 123층, 555m 높이의 롯데월드타워는 문필봉 역할을 하는 ‘인공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롯데월드타워는 붓끝처럼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건물이 모이는 외형을 갖추고 있어서 문필봉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자연 속 아름다운 문필봉이 시선을 끌 듯, 인공의 문필봉인 롯데월드타워 역시 도시인들의 시선을 충분히 끌고 있다. 서울 강남 쪽에서 부동산을 거래할 때 롯데월드타워 조망을 확보한 아파트나 사무실은 가치를 좀 더 쳐준다고 한다. 일종의 ‘타워 뷰’ 프리미엄인 셈이다.그렇다면 롯데월드타워가 문필봉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따르는 경우 가능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문필봉(롯데월드타워)이 보이는 당사자의 거주지가 명당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문필봉 기운과 명당 기운이 서로 감응(感應)을 한다는 게 풍수 원리다. 달리 말해 문필봉이 보이는 곳이라고 해서 아무 곳이나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 문필봉이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본다. 한국에서 최고 높은 롯데월드타워가 시선을 압도할 정도로 가까이 있을 경우 오히려 그 기운에 치이게 돼 해로움을 입을 수 있다. 한편으로 롯데월드타워를 자세히 살펴보면 최정상부가 두 가닥으로 갈라진 형태다. 이 때문에 바라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건물이 붓처럼 보이거나 불꽃처럼 보인다. 붓은 음양오행상 목(木)의 기운으로 보아 학문, 교육, 성장 등을 상징하는 반면 불꽃은 화(火)의 기운으로 보아 예술, 종교, 우주, 확산, 분열 등을 상징한다. 풍수에서는 대상물이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해석을 달리한다. 만약 롯데월드타워가 불꽃처럼 보이는 곳에 있을 경우 문필봉과는 달리 불기운의 작용으로 읽어야 한다. 현재의 롯데월드타워는 문필봉 기능보다는 심리적 풍요로움을 안겨주는 역할을 더 크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세계 마천루 순위 6위를 기록하고 있는 롯데월드타워는 서울 강남의 부(富)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이다. 따라서 집의 베란다 혹은 건물 창문을 통해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는 것은 강남의 부와 연결돼 있다는 심리적 성취감, 혹은 자부심 등을 거주자에게 부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롯데월드타워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몇 해 전 롯데월드타워 내 레지던스를 분양할 당시 ‘한강 뷰’를 확보한 북향 구조가 더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롯데월드타워에서 북향 구조물일 경우 한강 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남향의 장점인 햇빛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강이 보이는 북향을 선호하는 것은 물을 풍요와 재물의 상징으로 보는 풍수 때문이다. 그런데 물이 보인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한강처럼 큰 강이나 바다는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거나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리가 풍수에서도 작동한다.사실상 도시에서 풍수적으로 좋은 뷰는 오히려 ‘고궁 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에서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등 고궁이 내려다보이는 건물은 아름다운 뜰과 정원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고, 오랜 세월 고궁 명당에 쌓인 상스러운 기운을 덤으로 누리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시각으로 접하는 외부 환경도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활용해볼 만하다.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챗GPT와 인공지능 등이 사람 일을 빠르게 대체해가는 세상에서도 복고풍 레트로 감성과 설화 같은 스토리를 그리워하는 이도 늘고 있다. 너무 빨리 변화하는 사회에서 한숨 돌리거나 쉬어가고 싶은 마음일 게다. 충남 당진시 면천면은 충남 내포문화권의 중심지이면서도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감성 충만’ 여행지다. ‘심청전’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효녀 스토리를 담고 있는 면천읍성, 삼국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사적 장치’들이 펼쳐진다.》 ●‘영랑 설화’의 무대 면천읍성 고려 건국공신인 아버지가 병이 들어 고향으로 낙향했다. 휴양을 하는데도 병은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효심이 깊은 딸은 인근 아미산에 올라 지극정성으로 백일 기도를 드렸다. 기도 마지막 날, 딸의 효성에 감응해 신선이 나타났다. “아미산에 핀 진달래꽃(두견화)과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을 사용하고 100일 후에 아버지께 마시게 하라. 뜰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 정성을 들여라.” 신선은 자세히 계시했다. 딸이 시킨 대로 했더니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우리나라 효녀 설화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여주는 스토리다. 그런데 이 설화는 매우 구체적이다. 설화가 탄생한 시대는 900년대 전반인 고려 초기, 무대는 충남 당진시 면천읍성 내 마을이다. 무대의 주인공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복지겸 장군의 딸이다. ‘영랑’이라고 불리는 효녀가 아버지를 위해 100일 기도를 했던 아미산(해발 349m)도 바로 면천면에 있다. 지금 진달래꽃과 철쭉이 활짝 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아름다운 산이다. 복지겸 장군의 직계 후손인 복기대 교수(인하대 융합고고학과)와 함께 설화의 배경인 면천읍성을 수토(搜討)했다. 면천읍성은 조선 초기인 세종 21년(1439년)에 지어진 성이다. 조선 고종 9년에 제작된 면천군 지도에 따르면 면천읍성의 규모는 둘레 1200m로 동서남북 사대문을 갖춘 평지성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 일부가 훼손됐으나 2007년 이후 당진시가 내포문화권 활성화 사업 중 하나로 읍성 복원을 진행해오고 있다. 현재 서편 성곽과 남문(원기루), 옹성을 비롯해 성내 시설인 객사(客舍) 등이 복원된 상태다. 면천은 읍성이 관광문화 상품으로 주목받기 전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인근에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과는 불과 7.5km 떨어진 거리임에도 스치듯 지나가던 길목 정도로 취급됐다. 그러나 옛날에는 달랐다. 복 교수는 “면천읍성이 들어선 이곳은 현재 서해대교가 있는 당진 앞바다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했다”고 하면서 “백제 때 건립된 서산마애삼존불상도 옛 면천 땅을 바라보고 있는데, 사실상 서해안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면천에서 대대로 살아온 복지겸 가문도 이곳 바다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해상 호족 세력으로 추정되고 있다. ●천년 은행나무의 무병장수 기운읍성 내 성안마을을 조망해보기 위해 원기루 누각에 올랐다. 주위로 반원형의 성곽이 펼쳐지는 가운데, 마을 중심 쪽으로는 최근 복원된 객사 건물(조종관)과 함께 유난히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효녀 설화가 사실임을 ‘증거하는’ 나무다. 면천 명물로 꼽히는 이 은행나무는 대일항쟁기 백로가 날아와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면천 은행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 두 나무 모두 20m를 훌쩍 넘길 정도로 높고, 성인 남성 6명이 양팔을 뻗어야 나무 둘레를 감쌀 수 있을 정도로 굵다. 1100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몇 차례 벼락을 맞아 줄기 안쪽이 찢겨 나가기도 했지만, 지금도 튼실한 은행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고 한다. 면천읍성보다 오래된 이 은행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으로 대접받고 있다. 지역민들로 구성된 면천은행나무사랑회가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에 목신제를 지내고 있다. 제사를 지낼 때는 면천 복씨의 후손이 직접 참여하며, 마을의 안녕과 번창을 기원한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후손의 번창과 무병장수의 염원이 담긴 나무다. 복지겸의 효녀 설화에서 은행나무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게다. 설화에 따르면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이곳은 복지겸이 살았던 옛집 터일 것이고, 근방에는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을 때 사용한 샘터도 있어야 한다. 과연 은행나무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100m 남짓한 거리에 ‘안샘’이라고 불리는 우물이 있다. 지금도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복지겸의 딸 이름을 따와 ‘영랑효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은 1719년 복지겸의 후손 복지구가 중수한 정자인 군자정도 아름답다. 연못에 둘러싸인 군자정에 앉아 역사와 설화가 교묘히 엮인 스토리를 즐기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한편 복지겸의 딸이 아버지 병환을 치료하기 위해 담근 두견주는 중요문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의 만찬주로 선정되면서 유명해졌다. 면천두견주전수교육관에서는 직접 두견주 빚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읍성 내 아담한 성안 마을은 옛 건물들이 감성을 한껏 돋워준다고 해서 ‘면천레트로거리’로도 불린다. 옛 우체국 건물과 양곡창고 등을 개조한 카페와 미술관이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만남을 강조하듯 서 있다. 건물 내·외관을 옛 모습 그대로 남겨둔 게 인상적이다.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은 성 밖에도 있다. 면천읍성에서 동쪽으로 나오면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 1797년 면천군수로 부임하면서 만든 연못인 골정지와 ‘건곤일초정’이라는 이름의 정자가 보인다. ‘주역’에 밝았던 박지원이 면천의 주산인 몽산(蒙山)을 본 후, 산 밑에 샘이 솟아남을 뜻하는 산수몽(山水蒙) 괘(卦)와 어울린다고 보아 연못을 조성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즉, 골정지는 어리고 몽매한 이들을 잘 가르치고 기른다는 주역의 의미가 담긴 곳이다. 골정지 정자는 당시 향교 유생들이 찾아와 시를 읊고 학문을 익히는 장소로 널리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골정쉼터 둘레길’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연꽃 탐방 명소가 됐다. ●20만 당나라군 무찌른 기벌포 해전 골정저수지에서 빠져나와 바다 쪽으로 이동했다. 몽산 등 면천면 일대 산에서 흘러내린 내들은 남원천으로 모여든 뒤 서해로 빠져나간다. 가로수가 온통 왕매실나무로 치장된 남원천 둑방길인 왕매실길(당진시 순성면)을 지나면 서해 아산만으로 이어진다. 고대에는 면천면 등 이 일대가 모두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랫동안 고대 지리학을 연구해 온 복 교수는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와 국가의 명운이 걸린 전투인 ‘기벌포 해전’ 역시 바로 이곳에서 벌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기벌포 해전은 676년에 벌어진 마지막 나당(羅唐)전쟁이다. 당시 20만 해군을 데리고 온 당나라 장수 설인귀와 신라 해군을 지휘한 6두품 출신 시득은 20여 차례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신라는 당나라에 비해 엄청난 열세에도 불구하고 당군 4000명의 목을 베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이 해전은 기원전 480년 거대 해군력을 동원한 페르시아와 열세였던 그리스 함대가 지중해에서 맞붙은 살라미스 해전에 비유될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복 교수는 “기벌포 전쟁에서 신라에 원한이 맺힌 고구려나 백제인들이 당나라를 도와 신라군을 무찌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신라가 이길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이 전쟁으로 신라는 당나라와 단교를 하고, 마침내 3국 통일을 이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벌포는 대체로 충남 서천의 금강하구로 추정돼 왔다. 당나라군이 백제의 수도 부여와 가까운 금강 하구에 상륙해 공격했을 것이므로 그곳을 기벌포라고 추정한 것이다. 그런데 20만 당나라군을 태운 대규모 함선들이 한꺼번에 상류에 정박하기에는 금강 하구가 너무나 좁을뿐더러 안전상의 문제가 커서 적절치 않다. 그 대신 당나라 관료 가탐이 지은 지리지인 ‘도리기’에서는 기벌포가 당진항임을 암시한다. 가탐은 산둥반도 등주(펑라이의 옛 이름)에서 출발해 해안을 끼고 돌아 한반도 장구진(長口鎭)에서 내리면 신라 왕성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장구진, 즉 아가리가 긴 폭이 넓은 항구가 한반도 상륙 지점으로 지금의 당진항을 가리킨다. 신라가 후에 당나라와 국교를 재개할 때도 아산만의 당진항을 이용했고,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군도 이 루트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한국과 중국 간 중요 해상 교통로였던 것이다. 기벌포 해전의 현장 중 하나인 왜목항에서 수토 여정을 마쳤다. 서해에서 동해처럼 일출을 볼 수 있는 명소로 알고 있던 왜목항이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왜목항의 상징인 왜가리 조형물 저 너머로 경기 화성시 궁평항이 보이는데, 그 사이 바다로 수많은 국제선들이 들락거리는 장면을 3차원(3D) 입체영상을 보듯 상상해 보았다.글·사진 당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