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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文의 나라’가 사실상 끝났다. 임기는 두 달여가 남아 있지만 16일 뒤면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 5년을 겪어내면서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이 정권에 놀란 적이 많았다. 그래도 중국에 대해 이 정도까지 친중(親中), 아니 사대(事大)일 줄은 몰랐다. 친북(親北)인 건 같은 진보좌파 정권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같았다. 하지만 김·노 정부는 대통령 자신이 ‘높은 산봉우리’(중국) ‘작은 나라’(한국)라는 표현을 써가며 고개를 숙일 정도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안보 주권의 일부를 내준 ‘3불(사드 추가배치 불가, 美 미사일방어체계 불참, 한미일 삼각동맹 불가) 약속’은 더 이상 한중이 대등한 관계가 아님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도무지 ‘1’도 닮지 않을 것 같은 급진 운동권 정권과 조선 후기 주자학 교조주의가 통한다는 점도 놀랄 일이었다. 그들 주자학자는 친명(親明) 사대도 모자라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명의 연호를 쓰고, 명 황제를 모시는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까지 만들어 대대로 예를 올렸다. 만동은 중국 천자(天子)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나온 말이다. 일본과 중국 같은 주변국에 서구 문물이 유입되는 시기에 대륙의 실체인 청(淸)을 부정하고 없어진 명나라의 맥을 이었다는, 기이한 정신 승리를 구가하던 사람들이 좌지우지했던 조선. 그런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 그 만절필동이란 말은 문재인 정권 초대 주중대사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다시 등장한다. 이런 정신세계의 사람들이 집권했으니 정권 초부터 ‘중국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 정권과 당시 주자학 세력을 꿰는 실은 교조주의다. 우리가 항상 옳다, 그러니 비판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는. 용납하지 않는 걸 넘어 반대자들에게 ‘적폐청산’이나 ‘사문난적(斯文亂賊)의 굴레를 씌워 제거하는 것도 닮았다. 대한민국 번영을 지켜준 한미동맹을 경시하고, 북한이라는 환상에 빠져 중국에 기울어진 반(反)외교적인 외치(外治), 현실에 안 맞는 편 가르기 정책을 밀어붙이다 번번이 실패한 내치(內治), 그러면서도 정치도 경제도 방역도 잘했다는 정신 승리에 빠진 이 정권은 조선 후기의 아픈 역사를 소환한다. 그래도 이 정권 사람들이 확연하게 다른 게 있다. 내로남불이다. 이제 조국-윤미향-추미애로 이어지는 위선의 ‘거룩한 계보’에 김원웅 전 광복회장도 추가해야 하나. 물론 이 내로남불 정권의 뒷배는 문 대통령 자신이다.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대놓고 정치 보복을 하고도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일을 겪고도 우리 정치문화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남 얘기하는 듯한 멘털에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므로 3·9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은 자명하다. 이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 ‘대한민국 정상화’다. 뻔히 보이는 그 길을 가는 게 과반수 국민의 염원이다. 그런데 그 국민을 태운 쌍두마차가 어기적대고 있다. 두 마리 말이 각자 다른 길로 가려 한다면 마차와 승객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어제 단일화 제안을 철회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다. 애초 안철수의 ‘여론조사 단일화’ 제의도 최후통첩은 아니었다. 유권자의 역선택을 노려 대선주자 지지율이 세 배도 넘는 윤석열에게 여론조사 단일화를 제안했다면 시쳇말로 ‘도둑× 심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안철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험한 정치판에 발을 들여 신고(辛苦)를 겪고도 반듯함을 유지하려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단일화 제의는 물론 철회마저도 윤석열 본인의 분명한 응답을 촉구하는 메시지일 수 있다. 안철수의 설명대로 윤석열이 ‘단일화 제의 이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면 교만의 늪에 빠진 것이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빠진 그 늪이다. 오차범위 넘게 이재명 여당 대선후보를 이기는 여론조사 결과와 단일화로 지분 상실을 우려하는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 등의 속삭임이 교만을 부추겼을 것이다. 그 교만으로 윤석열 개인이야 얼마든지 모험을 해도 좋다. 하지만 그 모험주의로 과반수 국민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정권교체 없이 윤석열은 없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미국의 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2012년 9월 정치를 시작하면서 이 말을 인용했고, 자신의 저서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의 서문도 이 말로 시작한다. 그만큼 ‘미래’는 안철수의 인생을 관통하는 화두(話頭)다.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 유럽 각국을 돌아보고 펴낸 이 책에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내가 과거부터 꿈꿔왔던 미래는 이미 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국민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에서는 바깥은 쳐다보지 않고 안쪽만 바라보고, 서로 분열과 갈등만 반복하면서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와 같은 중요한 미래 담론은 실종됐다”고 우려했다. 맞다. 국가의 미래를 논해야 할 큰 장(場)인 대통령 선거에서도 미래 담론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왜 이 모양이 됐을까. 이는 팔 할이 미래보다 과거를 헤집는 데 국정(國政) 에너지를 소진한 문재인 정권의 유산 탓이라고 본다. 밖으로는 왕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친중 사대(事大)와 구시대적 반일(反日) 선동, 안으로는 이전 정권 지우기를 겨냥한 ‘적폐청산’과 건국 이후 다져진 나라의 토양을 갈아엎는 역사 뒤집기와 주류세력 교체까지…. 이런 정권이 연장돼서는 대한민국이 결코 미래로 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안 후보가 절감할 것이다. 그러려면 야권의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도 모를 안 후보가 아니다. 그런데도 ‘안일화’ 같은 안일한 소리를 해댄다. 어쩌면 이는 ‘문제의 키는 내가 쥐고 있지 않다, 답(答)을 가져올 사람은 윤석열이다’라는 메시지의 또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 그렇다. 먼저 손 내밀 쪽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다. 그냥 손만 내밀어선 안철수가 잡을 리 없다. 안 후보의 ‘철수 트라우마’를 해소할 카드가 필요하다. 그 카드엔 역시 ‘안철수 책임총리’만 한 것이 없다. 안철수 국무총리가 경제 분야 장관의 인사권을 사실상 보유하고, 모든 장관과 중앙행정기관장의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는 책임총리가 되는 것. 안철수 총리가 나라의 미래를 열 경제 분야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공동정부 형태다. 윤석열 후보로선 손해나는 장사가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명분이 선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로 제왕적 권력을 건드렸다가 좌천된 윤석열. 문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다시 ‘산 권력’에 손을 대 신산(辛酸)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제1 야당 대선후보에 오른 인물.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롤러코스터처럼 겪은 그가 ‘나부터 권력을 나누겠다’고 나서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에도 응답하는 길이다. 권력 분산을 솔선하는 건 윤석열이 집권하면 부인 김건희 씨 등 처가가 막후 권력을 휘두를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안 후보가 책임총리 제의를 거절한다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윤석열은 정권교체의 대의(大義)를 구현하려 애쓴 후보로 남고, 이후 윤 후보로의 표 결집 현상은 가속화할 것이다. 안철수로서도 손해 볼 장사가 아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어차피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안철수로 단일화가 돼도 승산은 있겠으나, 명백한 야권 1위 후보를 제치고 ‘안일화’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포기하고 그대로 ‘고’ 한다면 막판 표 결집 현상 때문에 지지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뻔히 보이는 정권교체의 길을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하다가 정권 연장의 문을 열어준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윤석열이 안철수와 손잡으려면 ‘자강론’ 운운하며 ‘잔칫집’에서 한자리를 노리는 당내 세력들의 저항에 직면할 터. 그걸 극복하는 정치력을 보이는 게 검사 출신 윤석열이 국정 수임의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안철수는 위의 책에서 “(정치 투신 후) 7년이 지난 지금, 실패와 패배, 실망과 비난,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함께 희망을 가졌던 분들께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더 큰 회한(悔恨)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선 투표일까지 30일. 아직 시간은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이러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민심을 누그러뜨리려 사과했을 때는 오히려 지지율이 급락하고, 치부(恥部)가 까발려진 듯한 녹취록 폭로엔 지지율이 반등하는 패러독스. 요 한 달 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가장 큰 변수는 부인 김건희 씨. 여러모로 희한한 대선이다. 역대 대선에서 부인 변수로 유력 후보의 지지율이 급등락한 건 윤 후보가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건희의 사과에서 ‘예쁜 체하는 가식’을, 녹취록에선 ‘날것 그대로의 솔직함’을 읽었다고 했다. 특히 녹취록을 접한 사람들 중에는 ‘생각보다는 머리가 좋은 여자’라고 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건희 씨의 머리가 더 좋았다면 기자인지, 기사인지 모를 ‘듣도 보도 못한’ 인사와 50번 넘게 통화하며 8시간 가까운 녹취록을 남겼을까. 대선 후보도 아니면서 “내가 정권을 잡으면…” 운운한 건 가소롭기까지 하다. 분명한 건 이런 캐릭터의 김 씨가 진짜로 청와대에 입성하면 과연 뒷짐 지고 가만히 있을까, 하는 깊은 우려를 남겼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오는 대로 말해버린 김건희 녹취록에도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심이 있었고 희생하신 분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여기저기 신하 뒤에 숨은 분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國政) 5년을 시정(市井)의 언어로 잘 압축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40%를 넘나드는 국정 지지도는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의 지지율을 뛰어넘는다. 대통령이 국정을 잘해서? 그게 아니라는 건 다 안다. 문 대통령처럼 임기가 끝나는 이 시점에 국정의 단 한 분야라도 잘한 걸 찾기 어려운 대통령이 있었을까. 아니, 문 대통령처럼 임기 내내 국정의 각 분야를 돌아가면서 망가뜨린 분은 없었다고 해야 하나. 오늘의 문 대통령을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은 20%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본인의 이념 과잉 탓이 컸지만 내 편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밀어붙이면서 집토끼도 산토끼도 다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은 그래도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 지도자로 남았다. 문 대통령은 어떤가. 그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비결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지지층이 싫어할 일은 안 한다 ②책임은 ‘신하’에게 미루고, 공은 자신에게 돌린다 ③잘못해도 사과 안 하고, 사과해도 남 얘기하듯 한다 ④누가 뭐래도 줄기차게 ‘국정 성과’를 주장한다. 이러니 지지자들에겐 잘못한 것 하나 없는 대통령이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유체이탈 국정’이다. 그런들 어떠랴. 북한이 남한 전역 타격을 상정한 가공할 미사일 도발 시리즈를 펼치고, 오미크론 위기가 닥쳤어도 대통령 부부는 임기 끝나기 전 밀린 숙제라도 하듯 ‘외유성 순방’을 멈추지 않는다. 문재인 5년은 우리 대통령사(史)에서 책임윤리를 저버린 국정이 먹힌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유체이탈 국정의 끝은 예상대로 관권선거다. 문 정권이 뒤집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5년 가까이 이룩한 좌파 생계공동체의 운명이, 심지어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安危)가 3·9대선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선거관리 부처인 법무 행정안전부 장관에다 중앙선거관리위원 8명 중 7명을 친여 일색으로 해놓고도 못 미더워 무리수를 두다 벌어진 중앙선관위 파동을 보라. 임기 말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대통령은 없었다. 이렇듯 정권 연장에 목숨을 건 여권과는 달리 야당 쪽을 돌아보면 여전히 한가하다. 선거 캠프 합류 여부를 가르는 첫 만남에서 공천권을 요구한 홍준표 의원이나 단둘이 나눈 밀담을 흘린 윤 후보 측이나 지질하긴 마찬가지다. 뭐라 명분을 갖다대든 속내는 웰빙 보수 특유의 지겨운 자리다툼이다. 무엇보다 최근 윤석열의 지지율 등락에서 보듯 ‘김건희 리스크’는 윤 후보에게 벌써 현실이 됐다. 더 우려되는 건 부인 말고 장모와 처남을 둘러싸고도 이런저런 구설이 나온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대선 성패는 물론 설혹 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의 정치적 명운(命運)이 처가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염두에 둔 국민들은 그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참고 있다. 그 인내가 폭발하지 않도록 하는 건 전적으로 윤석열의 몫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대장동은 가고 김건희만 남았다. 대권 경쟁 보려 했더니, 야당의 지저분한 권력투쟁만 봤다. 최근 대통령 선거 판을 들여다본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이러니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추락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 잘못만은 아니다. 상대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보여주는 신공(神功)이 놀랍다. 역대 유력 대선후보 가운데 이렇게 숱한 허물과 전비(前非)를 지닌 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런 잘못에 대처하는 이 후보의 방식이 너무도 신속 태연하며, 심지어 당당하다. 그러니 보는 사람이 더 헷갈린다. 그 과정에서 아전인수와 적반하장, 남 탓과 궤변 등 많은 ‘기술’이 동원되지만, 아들 문제에서 보듯 필요하다면 사과도 빠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을 인정 안 하고, 뒤늦게 사과하면서도 남 얘기 하는 듯한 유체이탈 화법으로 복장을 터지게 했다면 이재명은 대응의 타이밍을 놓치는 법이 거의 없다. 정책 뒤집기도 여반장(如反掌)이다. ‘모(毛)퓰리즘’ 논란에서 보듯, 표가 되면 뭐든 ‘이재명은 합니다’. 대장동 게이트에서 봤듯, 가까웠던 사람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캐릭터다. 그런 점들이 오히려 한 번 정하면 바꿀 줄 모르는 교조주의에 빠져 집권 4년 반 자기들끼리 해먹은 문 정권에 질린 사람들에게 신선감마저 주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편리한, 그래서 위험한 이재명식 실용주의다. 국가 정책의 제1 요건인 일관성을 흔들 뿐 아니라, 막상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준다. 문 대통령과 친문 세력도 이 후보가 집권하면 토사구팽(토死狗烹)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윤석열 후보는 그 반대다. 가까운 사람은 끝까지 지키려 한다. 시중에 돌아가는 민심도 모르고, 본인 표현대로 ‘제 처’ 김건희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이쯤 되면 김건희 씨가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속죄의 봉사 활동이라도 꾸준히 해야 하건만, ‘요양’ 운운하며 아내의 건강을 걱정한다. 좋은 남편이겠으나 훌륭한 지도자감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김종인과 ‘윤핵관’들을 내치고 선거대책위를 슬림화한다면서 중용하는 사람이 또 권영세 원희룡 같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다. 너무 쉽게 가려 한다. 아직도 ‘검사스러운’ 골목대장 리더십을 버리지 못했다. 이번 개편 때 윤희숙 전 의원 같은 사람을 선대본부장으로 전격 중용했다면 뭔가 달라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이런 윤석열의 결점을 보완하기는커녕 도리어 대량 실점을 유발하는 게 그의 주변에 몰려든 ‘대선 한탕주의자’들이다. 대표 선수는 역시 김종인. 긴 말이 필요 없다. 그쯤 했으면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만족함을 알고 멈추기를 바람)’하고 말을 줄이시라. 보수는 품격인데, 이준석 대표를 비롯해 윤 후보 주변 사람들이 웰빙 보수 특유의 ‘집권하면 대박, 아니면 말고’ 식 기회주의 속성을 드러내 피로감을 준다. ‘참을 수 없는 보수의 가벼움’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을 보고 윤석열을 지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정권교체라는 대의(大義)를 구현할 도구로 그가 가장 적합해 보였기에 그 당에 올라탄 윤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가 대다수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선거에 생존을 걸고, 대선 때만 되면 집 나갔던 사람들도 돌아와 뭉치는 진보좌파 진영, 그런 생리에 힘입어 연일 정책 행보를 펼치는 이재명 후보 측과 너무 대비된다. ‘김건희 리스크’만 해도 버거운 터에 주변도 그 모양이니, 정권교체 도구로서 윤석열의 매력지수는 떨어졌다. 아울러 정권교체의 대의마저 흔들리는 위기 상황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있다. 이번 대선에선 사상 처음 누굴 뽑느냐가 아니라 누굴 안 뽑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이다. 동맹을 흔들며 북-중(北中)과 밀착해 안보를 위협하고, 내일이 없는 포퓰리즘 돈 풀기로 나라와 청년의 미래에 암운(暗雲)을 드리우며, 무엇보다 법치와 상식은 물론 언어까지 파괴한 문 정권의 시즌2를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라를 걱정하는 유권자들은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이런 대의와 견주면 윤석열이나 그 주변의 문제는 어쩌면 사소하다. 그리하여 윤석열이 됐든 안철수가 됐든, 야당 대선후보 이름은 바로 이 네 글자다. 정권교체.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23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사실이 동아일보 취재진에 포착된 날이. 공교롭게도 그 날짜 신문들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사진이 실렸다. 대지 800평에 신축 중인 사저가 내년 4월 준공되면 5월 퇴임하는 대통령이 내려가 살게 된다. 바로 그 대지를 두고 ‘9개월 만에 농지→대지’ 형질 변경 논란이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대지를 두고 형질 변경 논란을 벌인 것은 문 대통령 표현대로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다. 다만 대통령 자신이 분을 못 참고 기어이 그런 논평을 한 것 자체가 더 민망하다. 어쨌거나 공사 가림막 뒤로 보이는 파스텔 톤의 사저 외관은 꽤 아늑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데 31일 풀려날 박 전 대통령은 돌아갈 사저가 없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들어가 살 집이야 동생 지만 씨가 여유도 있고 해서 어떻게든 마련될 것이다. 하지만 4년 9개월 수형 생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70세 여성 전직 대통령이 돌아갈 사저조차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문 대통령의 박근혜 사면은 안 한 것보다는 낫다. 다만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 발표가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박근혜 수형 기간에 맞먹는 4년 7개월여 임기 내내 과거에 매몰돼 ‘적폐청산’ 친일몰이 역사바꾸기 등을 밀어붙이고, 통합과 화합은커녕 민주화 이후 최악의 편 가르기를 한 정권의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었다. 청와대는 박근혜 사면을 대통령의 결단처럼 포장했지만, 그렇게 훌륭한 일이라면 왜 진작 못 했나. 박 전 대통령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천문학적 비자금을 챙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두 배도 넘는 기간을 감방에 놔둔 건 도무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국격(國格)에도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문 대통령을 두고 내 편에는 한없이 따뜻해도 ‘네 편’의 아픔이나 고통에는 공감능력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사면 배경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 건강이 심각해 자칫 수감 중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가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을 우려한 대통령이 결심을 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만 사면했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지만, 나도 박수를 쳤을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복권, 이석기 가석방 끼워 넣기는 뭔가. 더구나 제주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기지 반대 시위, 불법 노동 집회를 주도한 민노총 지도부와 시민단체 관련자들도 대거 사면·복권해 줬다. 이러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계의 환심을 사고, 진보좌파를 결집시키며, 박근혜 사면 카드로 보수우파를 흔들려는 선거용 정치 사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이번 사면의 정신을 ‘통합과 화합’이라고 말해도 많은 국민에겐 ‘편 가르기와 내 편 봐주기’로 들리는 것이다. 그나마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상에서도 빠졌다. 그의 사면 제외를 보고 문 대통령의 ‘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은 2018년 1월 자신을 향한 사법의 올가미가 조여 오자 ‘노무현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을 입에 올렸다. 이에 문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답지 않게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개인감정을 드러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군사반란죄 내란죄를 범하고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챙긴 전·노 씨보다 오래 형을 살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든, 국격 차원에서든 풀어줘야 마땅하다. 4개월여 남은 대통령의 임기, 국민은 주시할 것이다. 문재인의 ‘아픈 손가락’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할지, 이명박 사면을 김경수 사면의 물타기용으로 쓸지, 이명박만 사면할지를. 닷새 뒤면 임인(壬寅)년 새해가 밝는다. 그 67일 뒤엔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다. 그 선거를 앞두고 이 나라가 얼마나 두 동강 나 분열의 굿판을 벌일지 벌써부터 아스라하다. 그러니 이재명 윤석열 후보 진영은 치열하게 경쟁하되, 모질게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문 정권의 우(愚)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약속을 마지막에라도 지키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주도한 소위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을 비롯해 4명이 비극적 선택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진실이 드러나는 법. 이제 우리는 안다. 적폐청산 수사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무리한 수사였음을.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고 했는데, 칼을 비트는 무리한 수사 기법도 동원됐음을. 당시 윤 지검장이 적폐청산이라 쓰고 ‘보수 정권 죽이기’로 읽은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를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 정권의 ‘잘 드는 칼’ 노릇을 한 것이다. 그 칼이 조국이라는 ‘산 권력’ 앞에서 무뎌지거나 칼끝이 휘었다면 오늘의 윤석열은 없었다. 그랬다면 또 다른 김오수(검찰총장)나 김진욱(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으로 끝났을 것이다. 현 검찰이나 공수처는 여권(與圈)에는 장난감 칼이나 다름없다. 차이가 있다면 검찰은 수사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고, 공수처는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점. ‘잠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나 여당 대선 후보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하는 척만 하는 검찰과 공수처를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진짜 수사를 할 리 없다. 이들과의 차이가 윤석열을 대권 후보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검사 윤석열이 아무리 산 권력에 칼을 겨눴다고 해도 그가 주도한 무리한 적폐청산 수사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검찰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던 검사. 사법시험 9수를 해서라도 검사가 될 정도로 ‘대한민국 검사’에 대한 자긍심이 남달랐다. 윤 검사를 유명하게 만든 말.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여주지청장이던 그가 이 말을 하면서 덧붙인 언급이 있다.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 결국 윤석열 검사의 충성 대상은 사람은 아니지만, 검찰 조직이 아니었던가. 그런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검찰공화국이 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 사회는 조직에 충성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검사들이 빚은 무서운 결과들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이런 마당에 조직에 충성하던 검찰주의자, 수사 성과를 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검사 윤석열에게 과연 검찰권보다 더 큰 권력을 맡겨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 후보는 아직도 이런 우려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본인부터 ‘검사스러운’ 티를 벗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 주변에 최측근인 권성동 사무총장을 비롯해 검사 출신들이 너무 많다. 뒤에서 윤 후보를 돕거나 조언하는 그룹들도 검사 출신이 다수다. 그가 평생을 검사로 살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다. 검사 개개인이 대체로 유능하고 조직도 효율적이다. 하지만 유능하고 효율적인 이 집단의 실패가 결국 검찰개혁을 불렀다. 사회의 갖은 목소리를 담아야 할 정치의 세계에서 똑똑한 집단이 꼭 성공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주류였던 이회창 대선 후보의 사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만약 윤 후보가 집권해 검사 출신들이 사회 요직을 꿰찬다면 말 그대로 검찰공화국이다. 벌써부터 항간에는 그가 집권하면 특정 인사가 검찰총장이 될 거란 얘기가 돈다. 유능하지만 거칠게 수사한다는 이 인사가 총장이 돼 문 정권에 ‘복수혈전’을 펼쳐 주기를 바라는 시각도 보수 일각에 엄존한다. 하지만 그런 길은 과거보다 미래로 나아가야 할 21세기 대한민국이 갈 길은 아니다. 그렇기에 윤 후보가 문 정권류의 가짜 아닌 진짜 검찰개혁을 원한다면 ‘검찰과의 거리 두기’부터 실천해야 마땅하다. 정치인 윤석열의 충성 대상이 ‘조직’이 아니라 ‘국민’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검사 대통령’의 탄생에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윤 후보의 공식 슬로건(잠정)은 ‘국민이 불러낸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러낸 건 맞지만, 현직 검찰총장이 대통령 감으로 적합해서가 아니다. 무도한 정권을 끝낼 다른 대안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이를 겸허히 새기고, 정권교체의 대의(大義)에 걸리적거린다면 검사복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대낮 서울 한복판에 나타난 지옥의 사자. 무참히 사람을 죽이고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빠진 시민들에게 신흥 종교단체 지도자가 전하는 신(神)의 메시지. “너희는 더 정의로워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신의 메시지였을까, 아니면 신을 가장한 이 단체 지도자의 목소리였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의 모티브지만, 중·근세 역사를 돌아보면 신의 메시지를 ‘독점’한 자들이 되레 지옥을 펼친 사례는 많다. “신이 그것을 바란다”는 교황의 선동으로 시작돼 200년 동안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참화를 불러온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중세의 종교재판과 근세까지 이어진 마녀재판이 그랬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한 그들은 지상에 신국(神國)을 세운다며 지옥을 펼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는 그런 신의 메시지가 신처럼 군림한 독재자의 이상주의(理想主義) 통치 형태로 나타났다. 독일의 유럽 정복을 꿈꾸다 결국 독일은 물론 세계를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히틀러의 ‘게르만 우월주의’, 빈자도 부자도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했으나 종국에 빈곤과 공포만 남아 망한 구(舊)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문화(文化)’를 앞세웠지만 야만적인 사형(私刑)과 숙청, 권력투쟁만 남긴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멀리 갈 것도 없다. 오죽 불행하면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구호까지 내걸었으나 오직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만 행복하고, 아직까지도 인민들에게는 지옥도를 펼치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보라. 하나같이 지상에 낙원을 건설한다는 이상주의가 펼친 지옥이다. 여기서 드라마 지옥의 모티브를 차용하면, 그런 독재자들이 앞세운 이상은 과연 신념이었을까, 권력욕이었을까. 정치에서 이상주의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이기심이라는 인간 본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기심과 공동체의 이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정치다.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한다며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그게 바로 독재다. 20세기 들어 그런 이상주의 정치 실험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실패한 이상주의의 망령이 세계 10위권 이상 선진국 가운데는 유일하게 이 나라의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혁명이 아닌 촛불시위를 끝까지 ‘촛불혁명’이라고 우긴 문재인 정권이 그 망령을 불러들였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혁명을 내세운 이유는 자명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류의 이상주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현실의 기반을 갈아엎을 명분이 필요했던 거다. 허나, 이제 우리는 모두 안다. 문 정부의 이상주의 국정(國政)이 거의 다 실패로 끝났고, 아름다웠던 대통령 취임사의 약속들은 공수표였음을.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무지한 운동권 집권세력이 워낙 무능하기도 했지만, ‘북-미 중재자론’을 필두로 탈원전과 소득주도성장, 비정규직 제로 등 그들이 내건 이상주의 정책이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탓도 컸다. “평생 살 집 걱정 없는 대한민국”처럼 꿈같은 목표를 내세우더니, 정책이란 정책은 내놓는 족족 실패해 ‘벼락거지’를 양산한 부동산 정책. 사람은, 특히 청년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데, 그 희망이 없는 땅이 지옥 아니고 뭔가. 그러고는 ‘너희 2% 때문에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듯이 보복적인 종부세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정권 말의 풍경이다. 이만큼으로도 대한민국은 곪을 대로 곪고, 나라의 곳간은 거덜 날 지경인데 이번에는 더 센 분이 나타났다.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모두가 평등한 대동(大同)세상을 만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다. 이 지구의 역사에 대동세상이 구현된 나라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 소득도, 주택도, 대출까지도 ‘기본’으로 제공되는 나라. 그런 낙원이 있다면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누구보다 풍파를 겪고 그 자리까지 간 분이 그러니 또다시 묻게 된다. 이 후보가 내건 이상주의 기치는 과연 신념인가, 대권욕인가. 위기의 대한민국, 지금 필요한 지도자는 이루고 싶은 이상과 이룰 수 있는 현실 사이에 균형을 잡고, 무엇보다 이 나라 청년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이다. 이상주의는 매혹적이지만 허망하다. 유토피아(Utopia·이상향)의 그리스어 어원을 풀어보면 ‘세상에 없는 곳’이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딸이 1년 가까이 청와대 관저에 거주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첫 느낌은 부끄러움이었다. 도대체 나를 비롯한 한국의 기자들은 그 1년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건가. 국가 최고의 공인(公人)이자 권력자의 딸이 다른 곳도 아닌 청와대에 거주했다는데 권력 감시자인 언론이 몰랐다는 건 변명이 안 된다. 만에 하나, 아는 언론인이 있었는데 보도를 안 했다면 직무유기다. 사실 문 대통령의 딸 문제는 언론으로서도 ‘아픈 손가락’이다. 현직 대통령의 딸과 가족이 취임 1년여 만에 태국으로 이주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음에도 왜 갔는지, 가서 어떻게 사는지 제대로 규명하고 보도하지 못했다. 과거 같으면 주요 언론들이 현지 취재라도 보냈을 법하건만, 취임 초반 대통령의 서슬 퍼런 권력을 의식해서든, 극성 문빠들의 공격이 부담스러워서든, 둘 다이든 간에 그러질 못했다. 하지만 진실, 특히 권력 주변의 진실이 그대로 묻히는 법은 거의 없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가족을 보호한다고 쳐올린 높은 장막이 퇴임 후에는 대통령과 가족에게 되레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이다. 대통령 자신은 ‘잊혀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지금쯤은 본인도 잘 알지 않을까. 그래도 청와대나 대통령 측근이란 사람이 “법령을 위반하거나 부적절한 사항은 없다”고 해명하거나 “딸이 친정에 와 있는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지 않았다면, 부끄러운 척이라도 했다면 본란(本欄)에서까지 딸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야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청와대 관저는 친정이 아니다. 그것이 이 나라 최고 권력자와 그 가족이 짊어져야 할 업(業)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구속당하는 비운(悲運)을 맛봤다. 그래도 검찰에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민주화 거인들이 보여준 최소한의 선공후사(先公後私)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도 가족의 금품수수에 대한 공적 수치심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부터 공사 구분이 흔들려 그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종종 ‘패밀리 비즈니스’로 흘렀다. 대통령의 가족이었으나 자신은 가족이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가족인 줄 알았던 최순실(본명 최서원) 앞에서 공사 구분이 무너졌다. 반대 진영에 담을 높이 쌓은 문 대통령. 자기 진영엔 늘 따뜻하고,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그러니 공사 구분도 무너지기 일쑤. ‘대통령의 친구’ 송철호를 울산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대통령과 울산시장의 임기가 다 끝나가는 이제야 재판이 시작됐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대통령 아들이 국내에서만, 그것도 아버지의 재임 시에 억대가 넘는 지원금을 받았다. 강원 양구군,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지원 단체도 다양하다. 이런 지적이 나올 때마다 발끈하는 아들은 그렇다 치고, 아버지인 대통령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 자식은 맘대로 안 된다지만, 적어도 자신이 최고 권력자로 재임하는 동안이라도 지원금을 안 받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염치이자 경우다. 아무리 예술가라도 현직 대통령 아들의 세금 지원은 퇴임 후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국적 대통령제 풍토에서 가족 문제는 참으로 민감하고 미묘하다. 그래도 분명한 건 대통령 가족이라고 끝까지 봐주고 넘어가는 일은 없다는 거다. 현재로선 대통령 자리에 가까이 가 있는 여야의 이재명 윤석열 후보의 가족 문제 또한 남다르다. 단, 미래에 터질 문제의 인화성(引火性)으로 볼 때 윤석열의 가족 문제가 더 악성이다. 유력 대선 후보의 장모가 선거 전에 구속된 건 한국 정치사에 희한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래도 윤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지 않은 건 그만큼 보수 유권자의 정권교체 열망이 컸던 터. 그런 보수 일각에서도 ‘대통령 윤석열은 봐도, 영부인 김건희는 못 본다’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 문제에 대한 윤 후보의 대응과 부인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역대 대통령의 가족사가 보여주듯, 대통령 자리와 가족의 행복은 양립(兩立)하기 어렵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는 자와 그 가족의 업(業)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궁금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들은 과연 이 후보의 욕설 녹취를 들어봤을까? 들었다면 그 이후에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마음에 변화가 없었을까. 조사하기도 민망한 일이지만, 이 후보 지지자들 가운데는 의외로 욕설 녹취를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도저히 일국(一國)의 대통령 후보 입에서 나올 거라곤 상상할 수 없는 말을 듣고도 지지를 거두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이재명 측이 주장하는 ‘욕설 이유’를 100% 수긍했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내가 지지하는데, 욕설 따위가 대수냐’는 일종의 저항 심리가 작동한 건 아닐까. 지지자들 중에는 일부러 욕설 녹취를 찾아서 듣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떤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파’로 가기 위한 통과의례로 봐야 하나. 이런 열혈 지지자들에게 이재명의 종북 조폭 연루, ‘공짜 불륜’ 의혹 등은 ‘신념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일 뿐이다. 그나마 이 후보 지지 심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대장동 의혹이다. 지지자 입장에서 다른 의혹들은 나와 큰 관계없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렸지만, 대장동 게이트는 우리네 삶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재명은 아직도 30% 안팎의 단단한 지지율을 지탱하고 있다. 대장동 게이트가 이재명과 관련 없다고 믿고 싶어 하는 지지자들에게 그의 다른 의혹들처럼 ‘먼 나라 얘기’로 들리게 하는 신공(神功)을 이 후보가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 게이트에는 벌써 3개의 녹취록이 등장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에 걸쳐서 녹음된 것들이다. 그들의 대화가 얼마나 어둡고 추악했으면 이렇게 ‘보험용’ 녹취록까지 생산됐을까. 그렇다면 ‘대장동 키맨’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녹취록도 없으란 법이 없다. 만일 유동규의 녹취록이 있다면 그건 ‘윗분들’과 관련된 것일 공산이 크다. 여태 공개된 녹취록에서 드러난 충격적인 내용만으로도 대장동 사업의 최고 책임자였던 이재명은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특유의 음모론과 적반하장, 야당과 언론 탓, 강변과 궤변으로 비판자들을 도리어 조소(嘲笑)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지지자라도 흔들릴 법하건만, 오히려 이재명의 화법에 동화(同化)되고 있으니 걱정스럽다. 그런데 이런 무비판적인 지지의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5년 가까이 질리도록 봐온 소위 ‘대깨문’이 꼭 이랬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지도자, 내가 지지하니까 무조건 옳다는 지지자, ‘머리가 깨져도 끝까지 간다’는 극렬함, 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수록 더 똘똘 뭉치는 저항 심리까지…. 아직 댓글 공격까지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 또한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까지 출현한다면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돌아보면 민주당 쪽에서 정치적 지지 차원을 넘는 팬덤을 가졌던 정치인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정도다. 김대중은 본인이 받은 박해와 지역차별 정서가 어우러져 호남 출신을 중심으로 살아생전에 ‘선생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화해와 용서, 국민화합 행보를 솔선해 비교적 건강한 팬덤을 남기고 떠났다. 노무현의 노사모도 고인의 대통령 재임 시에는 비판적 지지를 유지했던 ‘깨시민’이 주류였다. 노사모가 열혈로 바뀐 건 그의 비극적 선택 뒤였다. 그래도 노사모는 조직적으로 반대자를 공격하는,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짓은 벌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깨문은 반대자를 적으로 돌리는 지도자에게 영향 받아 상대를 배척하고 공격했다. 대깨문에 이어 대깨명이 나타난다면 더 두렵다. 이 후보는 반대자를 배척하는 문재인 대통령보다 한술 더 떠 반대자를 겁박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측 윤석열 홍준표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는 어떤가. 아직은 두 사람이 좋아서라기보다 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정권 승계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큰 소극적 팬덤이다. 그만큼 지지 기반이 물렁하다. 하지만 노사모가 대깨문을 낳고 대깨문이 대깨명을 낳을 조짐을 보이듯,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되면 ‘대깨윤’ ‘대깨홍’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바닥에 상대에 대한 증오가 깔린 팬덤은 또 다른 증오의 팬덤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런 증오와 분열의 정치가 갈 길은 오직 하나, 망국(亡國)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은 뭡니까?” 시대정신? 아, 그런 게 있었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전이 치러지고 있지만, 시대정신은커녕 시대착오적 막장 드라마만 펼쳐지고 있다.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의 한 번도 경험 못한 대선이다. 그래도 역대 대선엔 시대정신이란 게 있었다. 노태우 당선 때는 오랜 군부독재의 사슬을 끊고 직선 대통령을 뽑는다는 민주화의 열망, 김영삼 당선 때는 비로소 문민통치의 시대가 열린다는 희망, 김대중 때는 지역감정의 뿌리였던 호남의 응어리를 푼다는 해원(解寃), 노무현 때는 정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던 권력을 시민사회로 하방(下放)한다는 기대, 이명박 때는 이념 과잉을 벗어나 실용(實用)으로 나가자는 컨센서스가 있었다. 비록 둘 다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지만, 박근혜 당선 때는 무너져 내리는 우리 사회의 원칙을 다시 세워줄 거란 바람이, 문재인 때는 궁중통치로 망가진 정치를 복원하고 나라를 정상화해 달라는 비원(悲願)이 시대정신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뭔가. ‘공정과 상식의 복원’이나 ‘비정상의 정상화’ 같은 아름다운 말들은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에서 ‘단군 이래 최대 뇌물 사건’으로 변질된 대장동의 문(게이트)에서 불어오는 광풍에 흩어져 버렸다. 야당은 야당대로 유력 주자의 ‘고발 사주’ 의혹에 난데없는 ‘王’자 손바닥, 미신 막말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정책·비전 경쟁을 말아먹고 있다. 도무지 어디 눈 둘 곳 없는 대선이다. 압권은 역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까도 까도 의혹덩어리 ‘양파남(男)’이다. ‘친일세력과 미(美)점령군의 지배’ 운운으로 대한민국 부정(否定)은 기본이요, 종북 경기동부연합 연루설, 녹음으로 확인된 패륜 발언에 ‘공짜 불륜’과 조폭 연루 의혹까지…. 이번에는 ‘대장동 그분’의 태풍까지 몰아닥쳤다. 이 후보가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다소 거칠게 살아온 점이 있다 해도 이건 너무 과하다. 과거야 그렇다 쳐도 더 심각한 건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야당·기득권 세력의 음모’라는 편 가르기, ‘국민의힘 게이트’라는 적반하장, ‘가짜뉴스’(뉴스는 가짜가 아니므로 ‘가짜소식’이 맞는 말)라는 언론 탓, 패륜을 묻는데 ‘친인척 비리는 없지 않느냐’는 둘러치기, ‘한전 직원 뇌물에 대통령이 사퇴하느냐’는 궤변,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인터뷰를 끊어버리는 발끈함…. 그의 과거보다 이런 대응 방식이 이 후보가 권력을 잡았을 때를 걱정하게 만든다. 이재명 후보가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솔하게 반성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느낌 아닌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 윤미향으로 상징되는 이 정권 사람들의 대응 방식이 꼭 이랬다. 사실 문 정권이 상식과 언어, 정의와 역사 관념 등을 파괴하면서 국민의 도덕의식을 무디게 하지 않았다면 이재명 대선 후보의 탄생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다소 기이하지만,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이 정권에 빚지고 있다. 문 대통령 등 집권세력도 지상과제인 ‘퇴임 후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이 후보의 도덕성 따위에는 눈을 감아버렸다. 일종의 공생관계다. 이런 공생의 사슬을 끊으려면 야당이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경선이 진행될수록 윤석열은 거듭되는 말실수와 검사스러운 태도, 고발 사주와 가족 의혹 등이 겹쳐지면서 특유의 ‘권력과 맞짱’ 이미지가 변색하고 있다. 여기에 야당인지 여당인지 모를 홍준표의 윤석열 때리기와 막말 행진, 갑자기 독해져서 뜬금없는 유승민의 언행까지 겹쳐 보수 야당의 기득권 본색(本色)에 저질 페인트까지 덧칠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번 대선도 두 편으로 갈라져 40 대 40의 진영 대결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20의 중도와 2030세대를 잡는 쪽이 승자일 텐데, 국민의힘 주자들은 이들을 위해 무슨 정책과 비전을 보여준 게 있나. 야당이 이런 짝이라면 문 정권 시즌2인 ‘두 번 경험해선 안 될 나라’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도 선거까지는 140여 일. 내년 3월 10일 아침, 이번 대선에도 시대정신이 있었다는 뒤늦은 자각(自覺)이 오기를 소망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상화’였다고.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당신은 뭐 했어?” 참으로 민망하게도 ‘화천대유 게이트’에 1000배 이상 대박을 친 기자들이 등장하자 적잖은 친구와 지인들이 이렇게 농(弄)을 건다. “그러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런 기자로 살지는 않았다고 자위(自慰)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헛헛한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로또 벼락을 맞은 것도, 신기술 벤처로 잭팟을 터뜨린 것도 아닌데 1000배, 아니 배당수익에 분양수익을 합치면 2000배가량을 벌어들인 희대의 사건. 지금이 무슨 개발연대도 아니고 그런 수익률이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그 가공할 수익률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의외로 간단하다. 공권력이다. 국민들에게 난데없이 주역의 괘까지 알려준 화천대유(火天大有)-천화동인(天火同人)이 벌인 사업이 소위 시행. 이 사업의 3박자가 ①토지 매입 ②인허가 ③분양이다. 이 3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면 시행업자는 큰돈을 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①의 과정이 길어져서 매입가가 오르거나 행여 ‘알박기’ 하는 사람들이라도 나오면 낭패다. ②에서도 공무원들이 절차를 내세워 ‘미뤄 조지기’라도 하면 사업기간이 길어져 비용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① ②를 겨우 마쳐도 ③이 안 되면 사업은 실패한다. 그래서 시행업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대장동 개발사업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시장으로 있던 성남시의 공권력이 개입해 ① ②의 리스크를 모두 없애줬다. 토지는 수용(收用)하면 되니까 땅주인들과 줄다리기를 벌일 필요도 없고, 이 시장의 역점 사업이니 인허가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③도 대장동이 그 좋다는 판교 바로 남쪽이어서 아파트 이름이 ‘판교∼’로 시작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민간 시행사업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면 이 경우는 리스크를 이재명의 성남시가 없애줬다. 결국 ‘하이 리턴’만 남게 된 것. 그렇다고 1000배 이상의 기상천외한 수익을 얻는 건 불가능하다. 공영개발로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지분 7%에 불과한 화천대유-천화동인에 배당수익을 몰아주고 별도의 분양수익까지 올릴 수 있도록 한 ‘설계’가 신의 한 수였다. 이 지사는 당초 ‘설계는 내가 한 것’이라고 했다가 대장동 의혹으로 코너에 몰리자 지난 주말 ‘마귀와의 거래’라는 극단적 비유까지 들었다. 아무리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 해도 관(官)과 합작하는 민간업자 혹은 민간업자의 돈을 마귀로 비유한 건 지나치다. 말꼬리를 잡고 싶지는 않지만, ‘마귀’라는 섬뜩한 용어까지 들먹인 것이 집권당 유력 대선후보의 격(格)에 맞는지도 돌아봐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이 지사는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다. 진상이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겠지만, 그에 따라 합당한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언명(言明)하는 것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을 하겠다는 분의 언어여야 하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만약 대장동 사업이 화천대유-천화동인에 수천 배가 아닌 수십 배 정도의 이익만 안겨줬어도 이 사달이 났을까. 수천 배의 돈 잔치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 시기와 질투 등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뒤엉키면서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게 돼 있다. 그 흥청망청 돈 잔치에 대법관과 검사장, 특검과 국회의원, 기자와 업자, 피고와 변호인, 아들과 딸들까지 엮여 아수라의 복마전(伏魔殿)을 펼친 것이다. 한마디로 나라가 창피하다. 말로는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정권 들어 유독 국민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 취급하며 필부필부(匹夫匹婦)와 그 자식들의 박탈감에 깊은 상처를 주는 일이 빈발하더니, 정권이 끝날 무렵엔 이 정권을 잇겠다는 유력 대선후보가 자랑하던 사업에 소위 잘난 분들과 그 자식들까지 빨대를 꽂아 꿀을 빤 사실이 드러나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린다. 오늘도 억 소리 나게 오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어 결혼도 포기한 채 눈이 빠지게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공연히 부모 눈치를 보는 이 땅의 젊은이들. 되레 그런 자식들의 눈치를 살피며 안쓰러움과 함께 괜한 자격지심에 움츠러드는 이 나라의 부모들…. 하여, 절로 이런 탄식이 나오는 것이다. “화천대유 못 해서 아빠가 미안해.”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시작은 청원게시판이었다. 어느 날 이런 요지의 글이 올라왔다.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을 당하고 있다. 조치를 취해 달라.’ 그런데 다음 날부터 ‘나도 당했다’며 청원에 동의하는 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수십∼수백 개 수준이던 동의가 인터넷에서 ‘기분 나쁘게 쳐다보기 반대 운동’으로 화제가 되면서 기하급수로 늘기 시작했다. 불과 열흘 만에 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35만 명. 가만히 있을 거대 여당이 아니었다. 발 빠른 입법에 들어가 “‘고의 또는 중과실’로 기분 나쁘게 쳐다본 자는 ‘피해액의 5배’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법안을 만들어냈다. 황당한 법이었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이 많았다. 여론조사 문항이 ‘반복적이고 보복적으로 기분 나쁘게 쳐다봐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준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찬성하느냐’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기분 나쁘게 쳐다보기 금지법’의 탄생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고의·중과실로 기분 나쁘게 쳐다본 건지, 그냥 쳐다본 건데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는지가 잘 구분되지 않았던 것. 그러자 거대 여당은 이런 조항을 삽입했다. ‘고의·중과실로 기분 나쁘게 쳐다본 건지, 그냥 쳐다본 건지는 쳐다본 사람이 입증해야 한다.’ 이번에는 ‘나는 그냥 쳐다봤는데 기분 나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왜 기분 나쁜지 입증해야지, 내가 어떻게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역시 여당은 신속했다. 방법은 기상천외했지만. ‘전년도 가구 수입 1억 원 이상인 자만 배상 책임을 진다’는 단서 조항을 넣은 것. 그러자 반대 여론도 쑥 들어갔다. 80%쯤 되는 국민은 기분 나쁘게 쳐다보든, 그냥 쳐다보든 배상 책임을 질 일이 없었다. 여당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다. 어느새 차기 대통령 선거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때. 그 전 몇 번의 선거에서 ‘빈부(貧富) 갈라치기’로 재미를 본 여당이었다. 이 법이 시행되자 거리의 풍경이 확 바뀌었다. 이상하게 눈을 내리깔고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 오는 날에도 선글라스를 끼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다. 하지만 이 법은 시작에 불과했다. 거대 여당은 후속 법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2호는 ‘기분 나쁜데 말 걸기 금지법’이었다. 이런 우화(寓話) 같은 일이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질 줄은 몰랐다. 법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법이 넘어서는 안 될 ‘레드 라인’을 그은 헌법을 마구 뛰어넘는다. 다수 의석의 완장을 차고 겁 없이 ‘입법 완력’을 휘두르는 꼴이 과거 군국(軍國) 일본의 집단주의를 자조한 “빨간 신호등도 모두 함께 건너면 괜찮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피의자 피고인이 자신을 보호하고 비판 언론을 겁박하는 법을 발의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 그 틈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던 ‘윤미향 보호법’이 철회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멋대로, 맘대로 법을 찍어내는 입법 만능이 되레 무법(無法) 시대를 불러온 듯하다. 위의 우화에선 우연처럼 그렸지만, ‘언론 징벌법’은 문재인 정권 출범 때부터 사실상 기획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2016년 12월 국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가대청소 6대 과제’를 발표했다. △비리 부패 관련 공범자 청산 △사유화한 공권력 바로잡기 △재벌 개혁 △권력기관 개조 △언론 개혁 △세월호 진실 규명이 그것. 이 로드맵에 따라 문 정권은 소위 ‘적폐청산’의 칼바람을 일으키고, ‘검찰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검찰 장악을 밀어붙였으며, 사법부 헌법재판소 경찰 등 권력기관을 ‘개조’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신설했으며, 무리한 수사로 재벌을 옥죄고, 이른바 ‘세월호 진상 규명’을 5년 정권이 끝날 때까지 끌어오고 있다. 6대 과제 중 남은 건 ‘언론 개혁’이라는 이름의 언론 장악뿐이다. 4년 반 만에 이 많은 걸 해치운 정권이 놀랍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이 모든 게 가능했을까. 평등 공정 정의 같은 선(善)한 목적을 이룬다며 이 정권이 동원한 불법 탈법 편법 비상식 등은 훗날 문 정권을 청산하는 데 쓰일 치부책에 오롯이 기록되고 있다. 권력이 선한 목적을 이룬다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독재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딱 두 달 전인 6월 23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실정법에 따라서 간첩을 잡는 것이 국정원의 일이다. 국정원이 유관기관과 공조해서 간첩을 잡지 않는다면 국민이 과연 용인하겠는가.”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의 수장으로서 당연히 할 말이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일이 너무 자주 벌어지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원장이 느닷없이 간첩 얘기를 하다니…. 더구나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미션’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박 원장이 왜? 궁금증은 머지않아 풀렸다. 이달 5일 문 정부 들어 모처럼 ‘간첩’이라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간첩죄로 불리는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혐의’ 등으로 구속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이 물 위로 떠오른 것. 박 원장은 이 사건이 부각될 줄 알고 복선을 깐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조성된 친북 환경으로 이들의 운신 폭은 넓어진 터. 간첩 혐의에 대한 증거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박 원장도 수사 지시를 안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를 방기했다간 정권이 교체될 경우 국가보안법상 특수직무유기 혐의 등을 받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임명권자의 뜻에 반해 국정원이 간첩 수사에 적극 나선다는 인상을 줄 수도 없고…. 그러니 정치 9단까지는 아니어도, 처세 9단쯤은 되는 박지원이 ‘실정법에 따라’ ‘국민이 용인하겠는가’ 등의 안전장치를 달아 미리 가스를 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간첩 사건이 터진 뒤, 공교롭게도 박 원장의 신변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얘기들이 흘러나와 여운을 남긴다.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이 간첩을 잡는다는 얘기가 되레 이상하게 들리는 나라, 그 이상한 일에 이미 무덤덤해져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이 나라, 과연 정상인가. 간첩이 진짜 없는 것이 아니라 안 잡아서 없는 대한민국, 참 평화로운 나라다. 그렇다. 우리는 코로나19 백신이 없어도 남부러울 것 없는 나라다. 지난 주말 루마니아가 한국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모더나 백신 45만 회분을 기부한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외교부는 “무상 제공이 아니라 스와프”라고 부인했다. 백신 부족국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마음이 좀 그렇다. 한국의 백신 정책은 문 대통령이 이 말 한마디를 안 해서 실패하고 망가졌다. “백신을 미리 확보하지 못해 죄송하다.” 이 사과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가. 대통령이 이 말을 안 하려다 보니 백신과 접종 정책이 꼬이고 헝클어졌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백신 부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어도 ‘우리에겐 K방역이 있으니 미리 준비할 필요 없다’더니 우려가 현실화되자 ‘백신을 개발한 나라에서 먼저 접종하는 건 불가피하다’는 현실 인정론에, ‘백신 안전성 문제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굉장히 다행스럽다’는 기막힌 정신승리법까지 등장했다. 잘못을 인정 않으려 하니 올 4월에는 ‘백신이 급하지 않다’ ‘화이자 모더나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낫다’는, 전문성 떨어지는 발언을 한 사람을 청와대가 신설한 방역기획관에 임명했다. 그래서 그 방역기획관은 지금 어디에 있나. 백신 부족에 대한 국민 불만을 무마하려 1차 접종률을 높이다 보니 2차 접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이제는 ‘10월 말까지 전 국민 70% 2차 접종 완료’ ‘내년 백신 국산화’ 같은 희망고문을 들이민다. 이 모든 게 현 위기 상황에서 누가 봐도 백신 수급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죄송하다’는 한마디를 회피하고 국무총리나 장관 등이 대타로 사과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탓이다. 이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과정과 닮아도 너무 닮지 않았나. 문제의 핵심을 피하려고 백신에 대한 말을 요리 뒤집고, 조리 비트는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도 안쓰럽고, 거기에 일말의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국민은 더 안쓰럽다. 하기야 그래도 문제 될 것 없는 우리나라다. 권력이 비판 언론의, 아니 지지 언론까지도 ‘입틀막’(입을 틀어막음)할 재갈을 씌우는 언론징벌법 등 일련의 폭주 입법을, 그것도 야당이 앉아야 할 안건조정소위 자리에 여당2중대 의원을 앉히는 독재 수법으로 해치워도 그리 놀랍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세상이 됐다. 이제는 나라보다 자라나는 아이들 교육이 더 걱정되건만, 그럼에도 대통령 지지율은 40%를 넘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돈은 많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은 벌었다. 가정도 그럭저럭 꾸려 큰 걱정은 없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하다. 내 인생은 왜 이거밖에 안 됐을까. 더 큰 사람이 될 수는 없었나. 어느 날 그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나라 탓이다.” “반칙과 특권이 지배해온 이 나라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듣고 보니 귀가 확 열리는 말이다. 나보다 잘난 거 하나 없는 인간들이 잘 먹고 잘산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된 건 다 이 나라 탓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인생에 크고 작은 불만이 있다. 필자도 그렇다. 그렇다고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답도 없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란 분이 정상에서 외쳤다. ‘당신은 잘못 없다. 나라가 잘못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누구보다 큰 스피커를 가진 대통령의 외침은 사람들의 불만을 숙주 삼아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나라 탓’ 바이러스다. 노무현의 뒤를 이은 문재인과 운동권 좌파세력은 나라 탓 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 노릇을 했다. 툭하면 나라 탓, ‘이명박근혜’ 탓을 우려먹었다. 세월호 나라 탓은 무려 7년간 9번이나 진상조사가 이뤄질 정도. 정점은 국정농단 사태 때 나온 ‘이게 나라냐’. 정권을 잡은 문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나라가 다 해줄 것처럼 했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나라’가 열릴 것처럼. 그 결과가 어떤가. 참담함은 이루 나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문(反問)한다. 툭하면 나라 탓하더니 5년이 다 되도록 만든 나라가 이거냐고. 어느 진보좌파 지식인의 표현대로 ‘제대로 공부한 적 없고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민주 건달들’은 국가를 운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평생 남 탓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그렇게 무능한지는 몰랐을 터. 문 정권이 남긴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걸핏하면 ‘나라 탓’을 입에 담는 정치인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나라 탓’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변이 바이러스가 있다. 우리가 집권하면 다 해준다는 ‘나라 만능’ 바이러스다. 그런데 국가가 어떻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나. 불가능한 목표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당신의 불만이나 분노를 불쏘시개 삼아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려는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다. 단적으로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보라. 인간 본성에 역주행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 해도 될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 중국의 부동산 빈부격차는 한국보다 심각하다. 북한에서조차 평양 아파트는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 본성과 시장 논리에 맞는 정책으로 한정된 부동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국정담당자의 실력이다. 그런데 무능한 권력일수록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데다 오만하다. 그러니 가장 손쉬운 ‘나랏돈 빼먹기’로 실정(失政)을 분식(粉飾)하려 든다. 그러다 10조 원이 넘는 고용보험기금을 4년 만에 거덜 내고, 북한이 두려워하는 첨단전투기 F-35A의 도입 등을 위한 국방예산까지 손대는 것이다. 이 시점에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F-35A 도입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과연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이쯤 되면 문 정부의 무능과 실정 시리즈에 국민들이 넌더리를 낼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 탓’ ‘국가 만능’ 바이러스가 코로나보다 질기고, 그만큼 달콤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고금(古今)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당대에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40%가 넘는다는 문 대통령 지지율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 나선 주자들도 ‘기본소득’ ‘기본주택’이니 ‘토지공개념 개헌’ ‘택지소유 상한제’ ‘반의 반값 아파트’ 같은 나라 만능 바이러스를 유포하고 나선다. 이런 바이러스는 개인의 자유 의지와 시민정신을 좀먹어 자유시민을 국가 의존형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국가 이성은 마비되고, 사회적 담론은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 작금의 쥴리 논란 등이 그 조짐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국민이 이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되면 권력자에게 국가주의, 포퓰리즘 독재의 길을 터준다. 역사상 많은 나라가 이렇게 패망했다. 대한민국이 그 기로에 섰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내가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말라.’ 오래 몸담은 회사나 조직을 떠난 뒤 욕하는 걸 삼가라는 경구(警句)다. 더구나 누가 봐도 적잖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돌아서자마자 욕하는 모습은 보기에 안 좋다. ‘남이 먹는 우물에 침 뱉지 말라’는 말도 있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생계를 꾸리는 직(職)이나 업(業)에 대놓고 타박하지 말란 뜻이다. 하지만 그 우물물이 국민 세금에서 나온 것이라면? 예컨대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거대한 우물을 만들어 가뭄에 대비하려 했다면? 또 마을을 지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려 했다면 어떨까. 그 우물물이 공정하게 배분되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 마을에 문모 씨가 이장이 된 뒤에 ‘한 번도 경험 못 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장 가족과 측근은 물론 친한 사람들에게 원 없이 퍼주기를 한 것이다. 역대 이장들은 마을 사람들 눈치라도 봤다. 그러나 문 이장은 우물 감시인들마저 자기 수하로 바꿔버린 뒤 노골적으로 퍼줬다. 게다가 마을 운영위원 선거 때만 되면 퍼주기로 표를 사려 했다. 마구 퍼주다가 물이 모자라면 이웃 마을에서 꿔 오기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탄탄하던 마을 살림은 어느새 빚더미. 그래도 못사는 북쪽 마을엔 퍼주지 못해서 안달했다. 마침내 이장 임기 끝날 때가 되자 신세 진 사람들의 물 창고를 가득 채워주는 ‘알박기 퍼주기’도 감행한다. 후임 이장에 자기편을 뽑아 달라며 우물 바닥까지 긁어 퍼주는 ‘마지막 대방출’까지 기획하고 있다. 최근 이루어지는 일련의 정권 말 알박기 인사와 정책을 보면서 나라의 우물물을 이렇게까지 탈탈 털어먹을 수 있을까, 놀랍다는 생각마저 든다. 단적인 예로 문재인 대통령이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앉히려는 정연주 씨를 보라. 그의 편파성과 도덕적 흠결, 내로남불은 다 아는 터라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정 씨가 대체 언제 적 사람인가. 전 정권, 전전 정권도 아니고 전전전 정권 때인 18년 전 낙하산을 타고 KBS 사장 자리에 착륙해 부실경영 인사전횡 편파보도와 두 아들 병역 문제 등 갖은 오욕(汚辱)을 뒤집어쓰면서도 기록적으로 5년 넘게 자리를 지킨 ‘버티기의 화신’이다. 정권이 바뀌어 퇴진 압력에 시달리자 노조 간부를 만나 ‘회사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사장이 되레 노조를 협박하기도 했다. 13년 전에 KBS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을 기어이 정권 말에 알박기 하려는 대통령도 놀랍지만,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마다치 않는 그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방송에 무슨 일을 벌일지 걱정이 앞선다. 문 정권은 자신들이 차지한 우물을 지키기 위해 지난해 총선과 올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고(國庫) 대방출’ 같은 신종 관권선거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도 그 우물을 사수하려 할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5년간 3300여 개 시민단체에 7100억여 원을 지원한 데서도 드러나듯, 집권을 해야 우물을 지키고, 우물물을 퍼줘야 좌파 생태계가 온존(溫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좌파 단체들도 선거 승리에 사활을 건다. 선거 승패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 구체적으로 생계와 직결돼 있다는 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현 집권세력과 여기에 빌붙은 좌파 지식인, 민노총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 노동단체, 산재한 좌파 시민·사회·환경 단체 등은 정치·경제·사회적 이익 추구를 위해 뭉친 거대한 이익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이 공동체가 재집권해야 ‘위안부 할머니 장사’를 했다는 윤미향 같은 사람도 금배지를 달고, 사태가 터진 뒤 14개월이 넘도록 버젓이 국회에 등원할 수 있다. 그래야만 ‘듣보잡 3류’들도 장차관 공공기관장을 꿰차고, 흘러간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는 분들이 요직을 차지하며, 수많은 좌파 단체의 화양연화(花樣年華)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이익공동체가 몸집을 더 키우려는 데 있다. 공무원과 세금 알바를 늘리고, 사실상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뿌리며, 집 없는 사람을 양산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우물물에 의존하게끔 만들려 한다. 이런 이익공동체가 커지면 선거엔 이길지 몰라도 국민은 정권에 끌려다니고, 나라는 패망의 길을 갈 것이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참으로 징글징글하다. 벌써 햇수로 20년. 대통령이란 사람이 자신을 뽑아준 이 나라의 정통성을 부정(否定)한 뒤 ‘대한민국 부정’은 좌파들이 배턴을 이어받는 스포츠가 됐다. 최근 여권의 지지율 1위 대선주자도 ‘미(美) 점령군과 친일세력의 합작’ 운운하며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려먹어도 너무 우려먹는다. 취임 일성부터 “반칙과 특권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며 대한민국을 ‘반칙과 특권의 역사’로 규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 국가를 대표하는 분이 둑을 허문 뒤 대한민국 부정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역시 최고봉은 문재인 대통령. ‘친일파와 보수가 득세해온 이 땅의 주류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기 내내 집요한 ‘세상 바꾸기’를 벌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재명 경기지사 차례인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정통성을 인정하는 북한도 아닌 이 나라에 악착같이 붙어산다. 그러면서 변호사도 되고 교수도 되고 장관·공공기관장, 심지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좋은 아파트 살고 자식은 해외 유학, 그것도 자기들이 증오한다는 미국으로 보낸다. 이 나라를 욕하면서도 혜택은 누릴 대로 누린다. 원조 격인 노무현 전 대통령만 해도 그가 ‘반칙과 특권 종식’을 부르짖는 사이 가족과 친인척, 측근이 거액을 수수하는 반칙과 특권을 누렸다. 노무현의 비극적인 선택으로 가족이 받은 수십억 원의 금품은 환수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주류세력 교체’를 외치며 무서운 적폐청산을 밀고 나가는 동안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은 감히 손대기 어려운 신(新)특권계급으로 자리 잡았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역사 인식은 대체로 이렇다. 친일세력→반공·산업화세력→보수세력이 화장만 바꿔가며 한국 사회를 계속 지배해 왔다는 것. 이런 나라보다 확실하게 친일 청산을 이룬 북한 정권에 한반도의 정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류의 운동권 시각이 그 연원(淵源)이다. 귀를 틀어막은 사람들에게 논박하자면 입만 아프다. 다만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내각이 대통령을 비롯해 항일투사 일변도였던 반면 김일성 정권 초기 지도부엔 일제의 헌병보조원 군(軍)출신 중추원참의 군수 검사 도의원 국장 등 친일파가 다수 포진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40년이 넘도록 무리하고 편협한 역사관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대학 이후 역사 공부를 안 했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둘 다일 것이다. 분명한 건 사회 지도층 인사가 이런 주장을 계속하는 데는 정치적 저의가 있다는 점. 민중의 분노를 확대재생산하려는 좌파 특유의 ‘편 가르기’ 전술이다. 그런 분노에 올라타 자신들의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려고 시도 때도 없이 ‘약을 파는’ 것이다. 이런 철 지난 선동에 놀아나는 국민이 있는 한 이들은 분노의 약 장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좌파 선동가들이 대한민국 부정을 들먹일 때 똑똑히 보아야 한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혜택을 누려 왔고, 누리고 있는지를.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를. 무엇보다 오늘의 2030세대에는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5060세대는 부모들이 일제강점기와 독립, 해방공간과 6·25전쟁을 거치며 간접적으로나마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 과정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 이후에 태어난 2030들에게 대한민국 정통성 어쩌고는 더 이상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이들의 관심은 대한민국의 과거가 아니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공정경쟁, 사회안전망의 토대 위에 펼쳐질 자신들의 미래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구한말의 패망과 일제 강점의 질곡(桎梏)을 딛고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고 제헌헌법을 제정했다. 그로부터 73년, 한국은 유엔 기구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됐다.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사례다.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도 만들고, 명분 없이 벌인 전쟁도 미화하면서까지 국민적 자긍심을 키우려는 터. 엄연한 역사마저 왜곡해 자랑스러운 나라를 폄훼하는 자학 개그는 그만하라. 그것도 못 하겠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비하하면서, 그런 나라의 권력을 잡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이중적 행태라도 멈추라. 1948년 오늘은 제헌국회가 헌법 제정을 의결한 날이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나는 윤리적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돌연 내게 던진 질문이다. 최근 유럽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가톨릭의 가치가 평생 내 삶의 바탕을 이루었고,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높은 윤리의식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가. 솔직히 윤리적이다, 아니다 답하기가 두렵다.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나는 윤리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런 실존적 질문을 받고 나면 대다수는 나와 비슷한 고민에 빠질 듯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냥 윤리의식도 아니고 ‘높은 윤리의식을 지켰다’고 공언했다. 대통령의 강철 멘털에 놀랄 때가 많았지만, 또 한 번 ‘졌다’. ‘높은 윤리의식을 지켰다’고 자랑하는 것 자체가 그렇지 않다는 뜻 아닌가. 이젠 공정 개혁 정의 법치에 이어 윤리까지 내로남불인가. 그가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 높은 윤리는커녕 그냥 윤리도 지키지 못했다는 걸 한 페이지쯤 쓸 수 있다. 가깝게는 지난 주말의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보라. 조국 추미애 박범계로 이어지는 비상식적인 법무부 장관들을 동원해 검찰총장을 비롯한 수뇌부를 친정권 인사로 물갈이한 데 이어 권력 근처라도 건드린 수사팀장들은 모조리 바꿔버렸다. 그러면서 정권에 아양을 떤 검사들에겐 떡고물을 안긴 게 이번 인사다. 민주화 이후 역대 다른 대통령들도 당연히 친정권 검찰을 원했다. 그래도 이만큼 대놓고 갈아엎진 못했다. 그건 대통령으로서의 윤리를 따지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염치가 걸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윤리의식을 비판하는 건 헛심을 빼는 일이다. 누가 뭐라든, 자기 생각을 바꿀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은 조국 추미애류의 인사들보다 강타자다. 조국 추미애 같은 사람들은 ‘내가 옳다’를 강변하기 위해 수많은 전선에서, 수많은 전쟁을 벌인다. 그러면 자신들에게도 피가 튀고, 얼룩이 묻는다. 그런데 대통령은 남이 뭐라든, 대꾸도 않고 내가 옳다고 생각(착각)하는 일을 벌인다. 세계가 뭐라든 김정은을 칭송한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높은 윤리의식’ 속에 살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대체로 문 대통령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이런 분들이 요란하게 여기저기 전선을 넓히는 사람들보다 더 무섭다.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기에, 아니 아예 모르기에 누구보다 멘털이 강한 탓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스타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에 살면 남에게 별 피해를 안 주겠지만, 혹시라도 큰 자리를 맡으면 특유의 불통(不通)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고 일을 망칠 인사들이다. 그렇기에 검증이 중요한 것이다. 큰 자리에 가선 안 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못 가도록 하는 절차다. 문 대통령에 대한 검증은 촛불의 소용돌이에 휩쓸려갔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 ‘대토론회 개최’ ‘직접 언론에 브리핑’ ‘퇴근길 격의 없는 대화’를 외친 분이 이토록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내달릴 줄은 몰랐다. 내일이면 지지율 1위의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검증대에 올라선다. 박근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뼈아픈 검증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남을 검증하던 검사 윤석열도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검증인 만큼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다만 X파일류의 ‘지라시 검증’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한 생태탕 총공세의 실패에서 보듯, 더 이상 ‘카더라 통신’에 좌우될 유권자들이 아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증은 본인보다 아내와 장모 문제에 집중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명한 유권자들은 그의 결혼 전 문제인지, 결혼 이후 문제인지, 또 문 대통령 딸 아들 문제처럼 집권 후에도 불거질 일인지를 구분해서 볼 것이다. 그럼에도 검증은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가 대한민국을 경영할 능력이 있는가, 소통과 탕평으로 세계 10위권 국가를 미래로 이끌 드림팀을 구성할 준비가 돼 있느냐에 집중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검증 결과 자격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어떨까? 대다수 중도·보수 유권자들은 이미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선택에 나섰다. 그 절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대안 찾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 출마선언을 하는 윤석열이 겸허하고, 또 겸허해야 하는 이유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자, 이제 우리는 모두 안다. 한국사회의 지반(地盤) 아래 뭔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걸. 지난 주말 헌정사 첫 30대 제1야당 대표의 탄생은 한 개의 분화구로 그 마그마가 분출한 것이다. ‘더는 안 된다, 이젠 바꿔야 한다’는 민심의 마그마가. 바꾸라는 민심은 정권교체를 정조준하고 있다. 하지만 꼭 정권교체에 국한해서 볼 필요는 없다. 국민들은 여(與)든 야(野)든, 우파든 좌파든 정권을 잡기만 하면 지들끼리 다 해먹는 데 넌더리 났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정치의 토양을 밑바닥부터 갈아엎어야 한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윤석열 이재명 이준석 등 여의도 경험 없는 ‘0선’들이 정치판을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그런 민의(民意)를 웅변한다. 물론 민심의 마그마가 끓어 폭발 직전에 이른 것은 팔 할이 문재인 정권 탓이다. 아니, 이로써 한국정치가 확 바뀐다면 문 정권 덕이라고 해야 하나. 이 정권은 국정(國政)과 권력을 사유화한 박근혜 정권에 분노한 촛불 민심을 업고 집권했다. 그래놓고 국정과 권력을 넘어 역사와 법치, 공정과 정의마저 사유화하려 했다. 보수 정권보다 더 위선적이고, 훨씬 무능하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로남불이었다. 무엇보다 이 정권은 국가의 존재 이유마저 부정하려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존재 이유는 부국강병과 국민 보호에 있다. 즉 국방력을 키워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며 잘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 집권세력은 북한이란 망집(妄執)에 빠져 안보의 근간을 흔들고, 자국민보다 김정은 일파의 안위를 더 걱정했으며, 국민도 함께 못살면 괜찮다는 식의 정책을 펴왔다.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박 전 대통령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더 큰 절망감을 안겨줬다. 그 절망이 이제 더는 기득권 정치를 믿을 수 없다는 각성으로, 낡아빠진 정치를 바꾸려면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윤석열 이준석 현상은 그런 민심의 마그마가 분출된 것이다. 그러니 윤석열 이준석은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무슨 불세출(不世出)의 지도자라서 그 위치에 오른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경험 못한 폭정’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낡은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민심의 강물이 띄운 배에 때마침 올라탄 것이다. 두 사람이 그런 거대한 변화를 끌어가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면 강물은 얼마든지 배를 뒤집고 다른 이를 배에 태울 수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인기가 친문의 기대와 달리 사그라지지 않는 데서도 비슷한 민심의 코드는 읽힌다. 정권을 ‘저쪽’으로 넘겨줄 순 없지만 ‘문재인 시즌2’는 안 된다는 민심 말이다. ‘나를 밟고 가라’는 조국의 말을 믿고 진짜 밟았다가는 되레 내가 밟히는, 위선의 조국이 어느새 금기가 돼버린 문재인 나라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라더니, 대놓고 ‘내 편이 먼저’를 챙긴 대통령. 그리하여 이 정권 4년여 동안 ‘친문 귀족’과 ‘운동권 부자’를 양산한 그들만의 공정(公正)을 끝내 달라는 생각이 이재명 지지 심리에도 담겨 있다. 결국 여든, 야든 이번 대선의 킹메이커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작정한 국민이 될 것이다. 그러니 김종인류의 올드한 킹메이커의 시대는 갔다. 정치 상황을 읽어내고 단순화해서 풀어내는 김종인의 능력은 인정한다. 그래도 자신이 사실상 대표로 몸담았던 당을 떠나자마자 욕하고, 안철수는 자신에게 밉보였다고, 윤석열은 자신을 불러주지 않았다고 험구(險口)를 퍼붓는 모습은 어른답지 못하다. 세상은 세대교체를 넘어 정치까지 교체해 달라는데, 아직도 전통적인 킹메이커십에 빠져 정치가, 선거가 ‘내 손안에 있소이다’는 식의 구태는 피로감을 준다. 김종인은 “(공정은) 시대정신으로 꺼내들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라고 했다. 동의한다. 한국쯤 되는 선진국권(圈)의 어떤 나라가 공정을 시대의 가치로 내세우겠나. 그런데 문 정권 4년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공정은 한 사회가 딛고 있는 땅과 같아서 이게 흔들리면 발을 앞으로, 미래로 내딛기가 어렵다. 그런 세상에서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2030 청년들이, 내 자식들은 그런 세상에 살아선 안 된다는 부모들의 마음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가득 실은 변화의 열차가 내년 3월 9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잘한 건 잘했다고 하자. 한미 정상회담 말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 드물게, 아니 거의 유일하게 잘한 일 아닌가 싶다. 공동성명 내용 가운데 중국이 반발하는 ‘대만해협·남중국해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 중요성 인식’ 등은 레토릭(수사·修辭)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미 미사일 지침의 해제로 ‘미사일 주권’을 확보한 건 현찰이다. 이제 우리도 북한처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이 ‘미사일 족쇄’를 완전히 풀어준 건 다분히 패권경쟁 중인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성과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외교는 타국의 ‘니즈’를 지렛대 삼아 자국의 국익을 확대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거둔 외교 성과를 보면서 2004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자이툰 부대 방문이 떠올랐다. 취임 이후 찬반 여론을 몰고 다닌 노 대통령에게 여와 야, 보수와 진보 할 것 없이 찬사를 쏟아낸 사실상 첫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그의 편 가르기는 가시지 않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밀어붙이며 진영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달라진 면모를 보인 문 대통령은 어떨까. 남은 11개월여 임기 동안만이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하지만 별다른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전(前)과 동(同)’이다. 한미 기동 연합훈련에 손사래를 치고, 경제를 망친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설계자를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앉혔으며, 정치적 중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회주의자에 전관특혜 얼룩까지 묻은 사람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려 한다. 안보를 경시하고, 내 편은 끝까지 챙기며, 검찰 장악으로 ‘퇴임 후 안전’을 꾀하는 문재인 스타일 그대로다. 변수가 있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 대통령으로선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라도 변신할 자세가 돼 있는 듯하다. 대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스스로 표현한 대로 ‘작은 나라(한국)’가 ‘높은 산봉우리(중국)’를 전에 없이 자극하는 한미 공동성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중국 앞에만 가면 눈부터 내리까는 대통령이 키운 반중(反中) 정서가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청와대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이번 회담을 통해 문 대통령이 이것만은 깨닫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해본다. 미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북한에 다가갈 수 없고, 미국과 멀어지면 중국의 변방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 국민적 자존심이 상하지만, 아직은 그게 국제정치에서 우리의 좌표다. 간단없는 자강 노력을 통해 미국 없이 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지, 서둘러 전시작전통제권만 가져온다고 자주 국방이 가능한 게 아니다. 공산 혁명을 거치고도 뼛속까지 중화(中華)사상에 젖어 있는 중국.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주변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는 나라다. 이런 성향은 최강 패권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장기 집권 이데올로기로 삼은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이후 훨씬 강해졌다. 그런 중국에 맞서 자존(自存)을 유지하려면 일본처럼 무시할 수 없는 국력이 있든지, 베트남처럼 건드리면 무서운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그나마 중국이 이만큼이라도 인정하는 건 경제력 말고도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북한에 미국은 국가와 정권의 존망(存亡)이 걸린 나라다. 김일성 3대가 반미(反美)를 독재정권의 생존 이데올로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그런 이데올로기를 물려받은 김정은에게 아무리 문 대통령이 구애(求愛)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더구나 김정은은 노무현 정권 말 정상회담을 했다가 부도수표를 맞은 아버지의 아픈 기억까지 물려받았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 임기 말 정상회담에 끌릴 수 없는 이유다. 북한은 오로지 미국이다. 미국 없는 한국은 김정은 정권의 별 관심 대상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현금을 갖다 바치지 않는 한. 하지만 그것도 미국 주도 세계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임기 내내 북한에 올인(다걸기)한 문 대통령의 집착은 안쓰럽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때도 됐다. 그러니 이제 그쯤 했으면 한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대통령 집권 4년의 가장 큰 잘못은 뭘까? 실정(失政)을 열거하자면 입이 아프지만, 나보고 딱 하나만 꼽으라면 이거다. 언어 파괴. 그 4년 동안 공정 정의 법치 개혁 상식 도덕 같은 사회 규범 언어의 어의(語義)가 훼손되고 변질됐다. 잘못된 정책이야 이 정권이 정신을 차리거나(가능성은 낮지만)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파괴된 언어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흔적을 남겨 국민화합을 해치고, 국가경쟁력을 좀먹는다. 이를 바로잡는 일 또한 지난(至難)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이 정권 사람들이 ‘개혁’을 말하면 덜컥 두려운 생각부터 든다. 개혁=장악, 즉 ‘우리 편 만들기’라는 뜻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설사 내년에 정권교체가 돼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도 개혁을 외친다면 또 무슨 저의는 없나, 의심부터 할 것 같다. 언어 습관이란 게 그만큼 무섭다. 문 정권 들어서 가장 크게 망가진 단어는 ‘공정’일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란 대통령 취임사의 화두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식 공정임이 드러났다. 즉 ‘모든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공정하다.’ 이 같은 ‘그들만의 공정’에 청년들이 분노하는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이제 이런 ‘문재인 어학사전’에 ‘균형감각’이란 낱말도 추가해야 할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시대정신과 함께해야 하고, 균형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대정신’이야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난데없는 균형감각(Sense of proportion)이라니…. 역대 대통령 가운데 균형감각과는 가장 거리 먼 사람 중 한 분이 그 말을 입에 올리니 당황스럽다. 취임하자마자 적폐몰이로 이전 정권 사람들을 초토화시키고, 철저한 ‘편 가르기’ 통치로 조국 윤미향 추미애 사태를 조장했으며, 무능한 운동권식 국정 운영으로 안보와 경제, 인사(人事)와 코로나 백신 정책을 망치고도 4주년 회견에서조차 잘못한 게 없다는 대통령. 자신의 균형감이 부족하니, 다음 대통령이 갖췄으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다시는 이런 말씀은 안 했으면 한다. 그날 회견을 보면서 대통령의 강한 멘털에 놀랐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볼수록 잘못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아예 잘못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나는 잘했는데, 야당과 일부 언론의 폄훼로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국가 지도자라면 잘못을 알고 부인하는 것보다 잘못 자체를 모르는 게 더 위험한 터. 최고 권력자부터 이러니, 4년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은 잘못한 윗분들이 더 당당한 나라, 잘못한 자들이 도리어 성내는 이상한 나라가 돼버렸다. 잘못을 지적하면 문빠(이하 ‘문파’로 순화)들은 ‘이명박 박근혜 때는 더했다’는 기이한 논리로 반박한다. 그때 결코 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는 잘못이 들통나면 부끄러워할 줄은 알고, 인사 조치했었다. 설령 그때 그랬다 한들, 그때도 잘못했으니 지금 잘못해도 된다는 논리가 말이 되나. 임기 4년이 지나면서 이것만은 분명해졌다. ‘성품이 착한 문 대통령이 주위에 포진한 86 운동권 세력에 끌려다니거나 강성 문파에 휘둘린다’는 임기 초반 관측은 틀렸다는 사실. 이번 부적격 장관 인사를 두고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도 드러나듯, 운동권 출신 여권 인사들보다 문 대통령이 더 강성이다. 한국정치 수준을 떨어뜨리는 문자폭탄에 대해서도 ‘양념’이라느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느니 하며 문파의 집단행동을 사실상 조장해온 사람도 대통령이다. 국민통합의 책무를 지닌 대통령답게 ‘문자폭탄은 민주적 여론 형성을 저해한다’고 손사래를 쳤어도 문파가 지금처럼 기승을 부릴까. 대통령은 회견에서 다중(多衆)이 쏟아붓는 문자폭탄에는 ‘정치하는 분들이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정작 자신을 향한 시민 1명의 모욕에는 ‘여유 있는 마음’을 잃고 고소한 뒤 2년이 다 돼서야 취하했다. 상대 진영 사람을 적대시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문파의 행태와 닮지 않았나. 이제 ‘대통령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문’에 대한 ‘빠’는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다. 대통령부터 여유 있는 마음을 되찾고 문파를 놓아주면 문파도 대통령을 놔줄 것이다.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