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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서남부 발레주에 있는 체르마트는 해발고도 1620m에 있는 산골 리조트마을이다. 마을 주변에는 4000m급 알프스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계절 눈덮인 마터호른(4478m)이 거인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을이 오는 알프스를 트레킹할 수 있는 최적의 출발 장소이자 베이스캠프다. ●수네가 5대호수 트레킹 스위스 알프스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레킹이다. 천천히 걸으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의 워낭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알프스 산에서는 방목하는 소들이 어디로 가는지 쉽게 알기 위해 방울을 채운다. 가을이 되면 눈이 내리기 전에 산 위에서 방목했던 소들이 산에서 내려오고, 체르마트 마을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수고했던 목동들을 위로하는 ‘목동축제(Shepherd Festival)’가 열린다. 알프스 등반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체르마트 마을에는 가을을 맞아 클래식 음악회와 축제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체르마트에서 유명한 트레킹 코스는 3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해발 3883m)인 ‘마테호른 빙하 파라다이스’에 올라가 빙하 트레일을 즐기거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리펠호수까지 걷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기 있는 코스는 수네가 전망대로 올라가 5개 산정호수를 찾아다니는 트레킹이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로 쓰인 마테호른 봉우리가 수정처럼 맑은 호수에 비친 모습은 알프스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체르마트 5대 호수 트레킹(5 lakes Trekking)을 위해 케이블 철도를 탔다. 땅속 터널을 45도 각도로 상승하는 철도를 타니 10분 만에 ‘수네가 파라다이스’(2288m)역에 도착했다. 마테호른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테라스다. 그런데…. 비와 구름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민을 했다. 비오는 날씨에 트레킹을 해? 말어? 옆에서 감자칩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네덜란드 여행객이 어제 맑은 날씨에 트레킹한 사진을 보여준다. 순간 부러움이 부글부글. 그래 일단 출발하자! 마테호른을 볼 수 없다하더라도, 대자연의 품에 안겨 걷는 것만으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리라. 다시 곤돌라를 타고 블라우헤르트(2571m)까지 올라간다. 길목마다 5개 호수 트레킹을 알리는 노란색 표지판이 있어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첫 번째 호수인 슈텔리제(Stellisee)가 나타났다. 수많은 초콜릿 광고에서 마테호른을 비추는 포토제닉한 사진으로 유명한 전설의 호수다. 그런데 구름낀 날씨 탓에 하늘도 호수도 모두 곰탕이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렸을가. 아무래도 구름이 열리지 않을 것 같아 다음 호수로 출발했다. 알프스 3000~4000미터급 준봉들 사이로 쉴새 없이 흘러가는 구름이들이 폭포수처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눈 앞에서 살아움직이는 듯한 장면이다. 제색도의 ‘제(霽)’는 비나 눈이 그친 후 날씨가 쾌청해진다는 뜻. 온종일 비가 내린 후 습기 머금은 산이 더욱 청명해보이는 느낌이다. 한참 걷고 있는데 드디어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이어서 거인같은 마테호른이 두둥! ‘마터호른제색도’가 진짜로 눈 앞에 펼쳐졌다. 언젠가 백두산 천지에 갔을 때도 그랬다. 잔뜩 내려앉은 비구름에 싸여 천지는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고, 기도하길 30분이 지났을까. 그 정성에 감동을 받았는지, 구름이 서서히 열리고 천지가 개벽했다. 처음부터 맑은 날씨에 만나는 천지보다, 구름 속에서 한꺼풀씩 벗겨지며 나타나는 천지는 더 신비스러운 모습이었다. 알프스에서구름을 뚫고 신선처럼 나타난 마터호른은 좌선하고 있는 미륵불처럼 보였다. 마터호른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나났다. 슈텔리제로 돌아가자! 호수에 비친 마테호른을 찍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언제 다시 구름에 갇힐지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해발 2500미터 가량의 산길에서 오르막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공기 중 산소가 부족해 숨이 턱턱 차올랐다. 호수로 돌아오니 드디어 보였다. 크리스탈처럼 맑은 호수에 마터호른이 장엄하게 담겨 있었다. 거의 2시간을 기다린 끝의 만남. 날이 흐려 흑백사진같은 느낌이 깊은 침묵에 빠져들게 했다. 야생화가 피어 있는 알프스의 구름 속을 부지런히 걷다보니 그린지 호수(2334m), 그륀호수(2300m), 에머랄드빛 모스예 호수(2148m)가 나타났다. 마지막 호수 라이호수(2232m)에 도착해 바위에 걸터 앉아 쉬었다. 수네가 파라다이스 전망대 바로 아래에 있는 이 호수에서도 마테호른이 비치지 않는가. 굳이 3시간을 걷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지만, 알프스 구름 속의 산책의 경험은 다시 얻기 어려우리라. 마테호른은 알프스 4000m급 고봉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등정됐을 만큼 난공불락의 봉우리였다고 한다. 8년 동안 15개 팀이 마테호른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865년 7월14일. 영국 등반가 에드워드 윔퍼의 등반팀이 마테호른을 세계 최초로 정복하면서 체르마트는 알프스 등반의 베이스캠프 리조트 마을로 유명해졌다. 체르마트 시내 생모리스 교구 주교좌 성당 앞에는 마테호른 박물관이 있다. 마테호른 등반과 관련된 수많은 컬렉션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윔퍼 등반팀이 사용했던 끊어진 로프다. 당시 등반대는 하신길에 낙석에 맞아 7명을 묶은 로프가 끊어지면서, 4명이 1000m 아래 빙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던 슬픈 사연을 담은 유물이다. 알프스 환경보호를 위해 체르마트에는 자동차가 처음 발명된 1885년 이래 자동차의 진입이 허락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신 1988년 최초의 마을 내 공공 전기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그래서 체르마트에 방문할 경우 렌터카는 5km 떨어진 아랫마을 태쉬(Täsch)에 주차를 하고, 12분이 소요되는 산악열차를 타고 와야 한다. 체르마트 숙소에서 머물 때 가장 매력적인 곳은 바로 베란다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4478m급 마테호른 봉우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해질녘 베란다에 앉아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체르마트 맥주(Zermatt Bier)를 한잔했다. 해가 저물며 빛에 따라, 바람과 구름에 따라 변화하는 마테호른의 모습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야구 축구 생중계보다도 더 흥미진진했다. ●골든패스 산악열차타고 빙하 트레킹 알프스를 즐기는 또하나의 방법은 산악열차 여행이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열차는 지붕까지 이어지는 넓은 유리창을 갖췄다. 열차가 달리면 알프스의 봉우리와 호수, 초록빛 들판, 전나무 숲 속에 지어진 샬레(스위스 전통가옥)가 3D 입체화면으로 다가온다. 몽트뢰에서 인터라켄 오스트까지 이어지는 3시간 여 구간의 ‘골든패스(GoldenPass)’ 파노라마 열차. 레만호부터 베르네제 알프스의 황금빛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산악기차 여행이다. 열차를 타면서 한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스위스 산 속의 초원은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보일까? 우리나라 같으면 잡초도 우거지고, 억새가 흔들리고, 잡목과 넝쿨도 우거져 있을텐데. 스위스 산 속 들판은 잔디를 심어놓은 골프장의 페어웨이처럼 산뜻하다. 소가 풀을 다 뜯어먹어서일까? 그렇다고 저렇게 깔끔할 수 있을까. 자세히 보니 커다란 풀깎는 기계가 경사진 산비탈을 다니고 있었다. 깎은 풀더미는 겨울철 소들의 사료로 쓰기 위해 트럭에 실려 보관창고로 가는 모습도 보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스위스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은, 절대로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스위스의 경관을 중요시하는 농업은, 주민과 공무원의 철저한 관리 속에 이뤄지는 ‘관광인프라’이기도 하다. 몽트뢰에서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를 타고 약 2시간. 그슈타트역에서 내렸다. 콜 뒤 피용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글래시어(Glacier) 3000’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레만호 지역에 있는 알프스 산으로 빙하 위를 트레킹할 수 있는 명소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니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역에 도착한다. 그는 국내에서도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 지은 ‘남양성모성지대성당’을 설계한 것으로 친숙한 건축가다. 케이블카 역 뒷편 계단을 오르면 두개의 산봉우리를 잇는 강철 현수교인 ‘티쏘 피크 워크(Peak Walk by Tissot)’가 있다. 길이 107m, 너비 80cm의 출렁다리를 걷다보면, 알프산를 넘어오는 바람에 온 몸이 흔들린다. 거센 바람에 날아갈까봐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힘들다.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서니 눈 덮인 24개 이상의 4000m급 알프스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이거, 융프라우, 마테호른, 그랑 콩뱅은 물론 저 멀리 프랑스 몽블랑까지…. 전망대 아래쪽 평원에는 빙하가 펼쳐진다. 푸른 하늘색과 하얀 빙하가 어우러지는 색다른 트레킹 코스다. 이 곳 빙하에는 크레바스가 없어서 안전하다. 5월부터 9월까지 ‘알파인 코스터(총 1km)’가 운행되기도 한다. 최대 시속 40km로 질주하며, 520° 회전과 급커브와 웨이브, 6m나 솟구치기도 해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빙하 속 놀이기구다. 실제로 걸어본 빙하 평원의 곳곳에는 얼음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도랑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수천만년 동안 녹지 않는 빙하지대로 유명했던 ‘글래시어 3000’의 얼음도 기후변화로 거의 다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빙하 끝까지 다녀오는 2시간 코스를 완주하려면 방수가 되는 튼튼한 등산화가 필요했다. 산 정상 케이블카 역에는 르 카르노제 카페가 있다. 알프스 연봉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위에서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한잔은 빙하 바람에 떨었던 몸을 녹여주는 특효약이다. 체르마트(스위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위스 서남부 발레주에 있는 체어마트(체르마트)는 4000m급 알프스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골 리조트 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사계절 눈 덮인 마터호른(4478m)이 거인처럼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 알프스를 트레킹할 수 있는 최적의 출발지이자 베이스캠프다. ● 수네가 5대 호수 트레킹 알프스를 속속들이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트레킹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의 워낭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평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목동들은 방목하는 소들이 어디로 가는지 쉽게 알기 위해 커다란 방울을 채운다. 가을이 되면 산 위에서 방목했던 소들이 마을로 내려오고, 체어마트 마을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수고했던 목동들을 위한 ‘목동 축제(Shepherd Festival)’를 벌인다. 체어마트의 중심가인 반호프 슈트라세에는 축제와 음악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다.체어마트에서 출발하는 트레킹 코스는 3곳이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 ‘마터호른 빙하 파라다이스’(3883m)에 올라가 빙하 트레일을 즐기거나,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리펠호수까지 걷는 코스다. 수네가 지역 5개 산정호수를 찾아다니는 트레킹 코스도 인기가 뜨겁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로고로 쓰인 마터호른 봉우리가 크리스털처럼 맑은 호수에 비친 비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체어마트 시내에서 땅속 터널을 45도 각도로 상승하는 철도를 타니 3분 만에 수네가 파라다이스역(2288m)에 도착했다. 마터호른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테라스다. 그런데 비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카페에서 고민을 했다. 비 오는 날씨에 트레킹을 해? 말아? 옆에서 감자칩에 맥주를 마시고 있던 네덜란드 여행객이 어제 맑은 날씨에 트레킹한 사진을 보여준다. 순간 부러움이 부글부글. 그래, 일단 출발하자! 마터호른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대자연의 품에 안겨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다시 곤돌라를 타고 블라우헤르트(2571m)까지 올라간다. 5개 호수 트레킹을 알리는 노란색 표지판만 따라가면 쉽게 트레킹을 할 수 있다. 드디어 첫 번째 호수인 슈텔리호수(슈텔리제)가 나타났다. 수많은 초콜릿 광고에 나온 전설의 호수! 마터호른이 비친다는 포토제닉한 스폿이다. 그런데…. 하늘도 호수도 모두 곰탕이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도 구름은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다음 호수로 출발했다. 3000∼4000m급 준봉들 사이로 쉴 새 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폭포수처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제색도의 ‘제(霽)’는 비나 눈이 그친 후 날씨가 쾌청해진다는 뜻. 온종일 비가 내린 후 습기 머금은 산이 더욱 청명해 보일 때 쓰는 글자다. 좀 더 걷다 보니 드디어 구름이 걷히면서 마터호른이 두둥! ‘마터호른제색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언젠가 백두산 천지에 갔을 때도 그랬다. 잔뜩 내려앉은 비구름에 싸여 천지는 보이지 않았다. 천지 전망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기도하길 30분이 지났을까. 그 정성에 감동을 받았는지, 드디어 천지가 개벽했다. 처음부터 맑은 날씨에 만나는 천지보다 구름을 헤치고 서서히 드러나는 천지는 더욱 신비로웠다. 구름을 뚫고 나타난 마터호른도 좌선하고 있는 미륵불처럼 신성해 보였다. 마터호른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나났다. 슈텔리호수로 돌아가자! 호수에 비친 마터호른을 찍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언제 다시 구름에 갇힐지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해발 2500m 산길에서 오르막길을 되돌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공기 중 산소가 부족해 숨이 턱턱 차올랐다. 기어코 호수로 돌아오니, 크리스털처럼 맑은 호수에 마터호른이 장엄하게 담겨 있었다. 거의 2시간을 기다린 끝의 만남. 날이 흐려 흑백사진 같은 느낌의 호수는 깊은 침묵에 빠져들게 했다. 야생화가 피어 있는 구름 속을 부지런히 걷다 보니 숲속에 숨어 있는 그린지호수(2334m), 그륀호수(2300m), 에메랄드빛 모스예호수(2148m)를 만났다. 마지막 라이호수(2232m)는 수네가 파라다이스 전망대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이 호수에도 마터호른이 비치지 않는가. 굳이 3시간을 걷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알프스의 품속에 안겼던 순간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이 됐다. 마터호른은 알프스 4000m급 고봉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등정됐을 만큼 난공불락의 봉우리였다. 1865년 7월 14일. 영국 에드워드 휨퍼의 등반팀이 마터호른을 처음 정복하면서 체어마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체어마트 시내 성당 앞에는 마터호른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휨퍼 등반대의 끊어진 로프도 전시돼 있다. 당시 등반대는 하산길에 7명을 묶은 로프가 낙석에 맞아 끊어지면서, 4명이 1000m 아래 빙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체어마트 숙소에서 머물 때 가장 매력적인 곳은 바로 베란다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4478m 마터호른 봉우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해 질 녘 베란다에 앉아서 지역 특산품인 체어마트 맥주를 마셨다. 해가 저물며 빛에 따라, 바람과 구름에 따라 변화하는 마터호른의 모습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 생중계보다도 더 흥미진진했다.● 골든패스 산악열차 타고 빙하 트레킹알프스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은 산악열차 여행이다. 몽트뢰에서 인터라켄 오스트까지 이어지는 3시간여 구간의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 레망호수(제네바호수)부터 베르네제 알프스의 황금빛 가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산악기차 여행이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열차는 지붕까지 이어지는 넓은 유리창을 갖췄다. 열차가 달리면 알프스의 봉우리와 호수, 초록빛 들판, 전나무 숲속에 지어진 샬레(스위스 전통가옥)가 3차원(3D) 입체 화면으로 다가온다. 열차를 타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스위스 산속의 초원은 어떻게 그렇게 깨끗해 보일까? 다른 나라 같으면 잡목도 있고, 억새와 넝쿨, 잡초도 우거져 있을 텐데. 알프스 산속 들판은 골프장의 페어웨이처럼 산뜻하다. 소가 풀을 다 뜯어 먹어서일까? 자세히 보니 커다란 풀 깎는 기계가 경사진 산비탈을 다니고 있었다. 깎인 풀더미는 겨울철 건초 사료로 쓰기 위해 트럭에 실려 보관창고로 간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스위스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은 절대로 자연적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스위스의 경관 농업은 주민과 공무원의 철저한 관리 속에 이뤄지는 ‘관광 인프라’였다. 몽트뢰에서 골든패스 파노라마 열차를 타고 약 1시간 반. 그슈타트역에서 내렸다. 콜뒤피용에 있는 케이블카를 타고 ‘글레이셔 3000’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니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역에 도착한다. 뒤편 계단을 오르면 두 개의 산봉우리를 잇는 강철 현수교인 ‘티소 피크 워크’가 있다. 길이 107m, 너비 80cm의 출렁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서니 눈 덮인 24개 이상의 4000m급 알프스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이거, 융프라우, 마터호른, 그랑콩뱅은 물론이고 저 멀리 프랑스 몽블랑까지…. 전망대 아래쪽 평원에는 빙하가 펼쳐진다. 푸른 하늘색과 하얀 빙하가 어우러지는 색다른 트레킹 코스다. 이곳 빙하에는 크레바스가 없어서 안전하다. 그러나 빙하 평원의 곳곳에는 얼음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도랑물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수천만 년 동안 녹지 않는 빙하지대로 유명했던 ‘글레이셔 3000’의 얼음도 기후변화로 거의 다 녹아내리기 직전이다. 빙하 끝까지 다녀오는 2시간 코스를 완주하려면 방수가 되는 튼튼한 등산화가 필요했다. 산 정상 케이블카 역에는 르카르노체 카페가 있다. 알프스 연봉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산 위에서 마시는 핫초코 한잔은 빙하 바람에 떨었던 몸을 녹여 주는 특효약이다.글·사진 체어마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위스에는 호수가 많다. 산이 높으니 물도 많기 때문이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은 물이 곳곳에 강으로 흐르고, 호수를 만들어낸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호수는 스위스 남서부 프랑스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레만호‘다. 알프스산으로 둘러싸인 스위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데도, 지중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레만호 덕분에 탁 트인 전망과 낭만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발길을 모은다.●프레디머큐리가 사랑했던 몽트뢰알프스의 빙하가 흘러내린 레만호의 물은 엄청 깨끗하고 맑다. 햇빛에 비친 윤슬이 반짝거리는 에머랄드빛 호수에 가까이 가보면 물고기들을 물론, 호수 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길이가 72km, 너비가 14km의 초승달 모양의 레만호는 알프스 산지 최대의 호수. 둘레(195km)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데만 8시간이 걸린다.스위스인들은 레만호에서 수영을 즐긴다. 너무도 거대한 호수이다 보니 바다처럼 보인다. 레만호에서 흘러나온 물은 프랑스의 남쪽을 흐르며 론강이 된다. 레만호의 서쪽 끝에는 제네바가 국제기구가 몰려 있는 금융도시라면, 동쪽 끝에 있는 몽트뢰는 프랑스의 니스나 칸에 못지 않은 국제적인 휴양도시다.제네바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명물은 레만호에서 약 140m 높이로 연중무휴 물을 뿜어내고 있는 ’제네바 대분수(Le Jet d‘eau de Genève)다. 제네바 대분수는 불과 10cm 밖에 되지 않는 노즐을 통해 초당 500리터의 물이 시속 200km의 속도로 뿜어져 나온다.그런가하면 몽트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은 영국 록그룹 퀸(Queen)의 전설적인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이 마침 프레디 머큐리의 생일(9월5일)이 있는 9월 첫 주말.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을 번쩍 들고 있는 프레디의 동상에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팬들이 가져온 색색의 꽃으로 장식돼 있었다. 동상 옆에는 사람들이 머큐리의 포즈를 따라하며 사진을 찍고, 마르셰 광장에서는 팬들이 모여 퀸의 노래에 맞춰 댄스를 추었다.마르셰 광장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몽트뢰 카지노가 나온다. 카지노 건물 안에 프레디 머큐리가 음반녹음을 했던 스튜디오가 있다. 인구 2만5000명의 소도시 몽트뢰는 1967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 스튜디오 덕분에 몽트뢰는 ‘퀸의 도시’가 됐다.퀸의 멤버들은 1978년 ‘재즈(Jazz)’ 음반 녹음을 위해 몽트뢰 스튜디오를 찾았다가 호숫가의 수려한 풍광과 첨단 녹음 시설에 반했다고 한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나왔듯이 거듭된 녹음 작업을 통해서 세련된 사운드를 얻어내는 퀸 멤버들에게는 최적의 장소였다. 이듬해 이 스튜디오가 매물로 나오자 퀸은 아예 구입했다. 1980~1990년대 퀸의 음반뿐 아니라 멤버들의 독집도 여기서 녹음했다. 머큐리가 죽고 난 뒤 만들어진 퀸의 마지막 앨범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의 재킷 사진도 몽트뢰에 세워진 머큐리의 동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머큐리는 “몽트뢰는 나에게 제2의 고향. 영혼의 평화를 원한다면 몽트뢰로 오라”고 할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했다고 한다. 생전에 그가 즐겨 식사하고 산책하고 곡 작업을 했던 단골집과 장소들은 지금도 ‘프레디 머큐리 투어’로 불리며 답사 코스로 인기가 높다.현재 이 스튜디오는 머큐리가 공연 때 입었던 의상, 퀸의 멤버들이 사용했던 악기 등이 전시된 ‘퀸 박물관(Queen: The Studio Experience)’이 됐다. 머큐리가 1991년 숨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작사했던 종이도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팬들이 남기고간 레터와 엽서가 가득히 붙어 있고, 프레디의 생일을 맞아 트레이드마크 복장인 흰색 러닝셔츠와 콧수염을 달고 찾아온 남성팬도 있었다.박물관에는 프레디 머큐리가 마지막 녹음 때 사용했던 슈어 SM-85 마이크와 퀸 공연에 라이브로 연주되던 야마하 DX-7 신디사이저,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가 수제로 직접 제작해 연주하던 ‘레드 스페셜’ 일렉기타,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쓰던 ‘뮤직맨 스팅레이(Music Man STINGRAY)’ 베이스,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치던 ‘Ludwig Crome 드럼’ 등 멤버들이 즐겨사용하던 악기도 전시돼 있다. 시옹성과 라보 포도밭한국의 성은 대부분 산성(山城)이다. 유럽이나 중국, 일본에는 주로 평지에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를 판 성이 있다. 그런데 스위스 레만호 몽트뢰에는 호숫가에 그림처럼 떠 있는 시옹성(Château de Chillon)이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 공주가 사랑한 에릭 왕자가 사는 성의 모티브가 된 곳일 정도로 낭만적인 풍광이다.시옹 성은 9세기에 처음 세워져 강을 오가는 배와 상선을 상대로 통행세를 징수하는 관문이었다. 그리고 12세기부터 16세기경까지 4세기 동안 사보이 왕가의 거주지이자 무기고,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호숫가에 세워진 성이기 때문에 따로 해자를 팔 필요없이, 레만호의 물이 천연의 해자 역할을 하도록 돼 있다. 매표소에서는 한글로 된 팸플릿도 나눠준다. 성의 각 공간을 번호를 새겨 순서에 따라 관광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자세히 설명돼 있는 팸플렛이다.입구로 들어가면 자그미한 뜰이 나오고, 정면에 지하 동굴로 가는 길이 있다. 무기고, 감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이 곳에서는 종교개혁 운동가인 프랑수아 보니바르가 1530~36년까지 6년간 기둥에 쇠사슬이 묶인채 투옥됐던 감옥이었다. 영국 출신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1778~1824)의 그의 삶을 주제로 서사시 ‘시옹성의 죄수’를 썼다. “쇠사슬에도 묶일 수 없는 영원한 정신, 자유여! 너는 지하감옥에서도 환히 밝도다”라는 시 구절로 시옹성은 세계인들에게 문학의 성지로 더 널리 알려졌다.시옹성의 지하에는 바이런이 시로 노래했던 프랑수아 보니바르가 갇혀 있던 지하 동굴이 있다. 동굴 천장에는 고딕양식의 아치와 기둥이 있다. 창살 밖으로 비치는 레만호의 에머랄드 빛 물결,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이 동굴 천장이 비치는 모습을 어둠 속에 갇힌 죄수들이 바라봤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지하동굴에는 시옹성이 세워졌던 암반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하고, 천정에 죄수를 처형하던 올가미도 있다.지하동굴에는 와인을 저장하는 40여개의 오크통이 보관돼 있기도 하다. 시옹성에서 ‘클로 드 시옹(Clos de Chillon)’ 자체 레이블을 단 와인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옹성은 레만호 언덕 위에 있는 라보(Lavaux)에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어 화이트 와인(샤슬라 품종), 레드와인(피노 누아, 가메이)을 생산하고 있다.라보포도밭은 2007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관광명소다. 몽트뢰에서 로잔까지 이어져 있는 레만호 북쪽 호숫가를 따라 약 30km에 걸쳐 있는 계단식 포도밭의 총 면적은 약 830헥타르에 이른다. 800년 전 수도사들이 계단식으로 밭을 조성해 포도를 심기 시작해 현재 스위스 와인 생산의 중심지가 된 곳이다.라보 지구의 포도밭은 스위스 관광청에서 추천하는 13개 하이킹 코스 중에 하나일 정도로 트레킹으로 유명하다. 포도원 동쪽 뤼트리에서 서쪽 생 사포랭까지 3~4시간 정도 포도원 트레킹을 하면 레만호를 배경으로 한 포도밭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스위스 와인은 알프스 산맥의 청정 환경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포도를 자연발효하는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하는 세계적인 명품 와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땅이 좁아 와인 생산량도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스위스 내에서 소비해 외국으로 수출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와인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다. 스위스 와인은 약 250종에 이르는 포도로 만들어지는데, 그 중 40종 이상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토착 희귀종 포도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현지에서 꼭 맛봐야할 것이 스위스 와인이다. 라보 지구의 포도밭을 걷다가 도멘 보비(Domaine Bovy)와 비노라마(Vinorama) 등의 와이너리에 들러 스위스 와인을 시음해 보았다. 라보지구는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다. 스위스에서만 재배되는 ‘Plant Robert’ 품종의 레드와인도 고급 부르고뉴 와인처럼 맑고 투명하면서도, 묵직한 바디감과 향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로잔에서 유람선타고 에비앙으로스위스에는 국제기구가 많다. 제네바에는 유엔제네바사무소를 비롯해 세계무역기구(WH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노동기구(ILO), 유엔난민기구(UNHCR),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등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있다.그런가하면 제네바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로잔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있다. 이 곳 레만호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올림픽 박물관(Olympic Museum)도 찾아가볼만 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올림픽 경기의 역사를 생생하게 알게해주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는데, 올해 7~8월에 치러진 2024 파리올림픽에도 올림픽 기념물 수집팀를 파견했다고 한다.로잔올림픽 박물관에서 대한민국의 흔적을 찾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다. 입구에서 오르는 계단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성화봉송 최종주자였던 정선만, 김원탁, 손미정 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새겨진 계단에는 김연아의 이름이 선명하다. 또한 88서울올림픽 당시 색동마크와 오륜기가 그려진 티셔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여자하키 남북한 단일팀 유니폼도 전시돼 있다.로잔 올림픽박물관은 레만호의 멋진 뷰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스팟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웨딩사진 촬영장소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호숫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박물관 관 앞 마당에는 올림픽 경기를 테마로 한 다양한 조각상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축구선수들(Les Footballers)’이다. 풍만한 신체에 원색의 페인트를 쓰는 조각작품을 만드는 여류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 움직이는 조각 분수로 유명하다.올림픽 박물관 꼭대기 층에 자리잡은 톰 카페(Tom Cafe)의 야외 테이블은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로잔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라스 석으로 꼽히는 핫 플레이스다. 레만호와 알프스의 화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어 언제나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박물관 티켓이 없어도 들어올 수 있는 톰 카페에서는 브런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레만호는 유람선을 타고 다양한 도시를 다니며 호수를 즐기기도 한다. 북쪽 면은 스위스에서, 남쪽 면은 프랑스에 속해 있는 호수이기 때문에, 140년 전통을 가진 유람선은 국경을 넘나들기도 한다. 로잔의 우쉬(Ouchy) 선착장에서 유람선(CGN)을 타고 30분 만에 프랑스 에비앙에 다녀오는 코스도 인기다. 유람선을 타면 레만호의 맑은 물과 백조, 라보 지구의 포도밭, 저멀리 알프스의 만년설까지 수려한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에비앙 선착장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에비앙 생수가 흘러나오는 ‘수원지(Source)’ 를 찾아갈 수 있다. 분홍빛 타일로 장식된 ‘카샤의 샘물(Cachat Spring)’은 18세기 후반 이 곳에 정원을 소유하고 있던 가브리엘 까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1790년 프랑스 대혁명을 피해 오베르뉴에서 온 한 귀족이 가브리엘 까샤의 집에 2년간 머물면서 이 샘물을 매일 마셨다고 한다. 그는 신장 결석으로 몇년간 고생을 했는데, 이 샘물을 마시자 빠르게 병이 고쳐졌다고 한다. 의사들이 이 물이 신장과 방광의 질병에 효능이 있다고 보고, 이 샘물을 약으로 처방하자 소문이 퍼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카쌰는 1826년 샘터에 수치료 센터를 세웠고, 훗날 제네바와 파리의 투자자들이 기업을 만들어 샘물을 상품화한 것이 에비앙 생수라고 한다.가브리엘 까샤가 수치료 시설 겸 호텔로 지은 건물은 현재 에비앙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 곳에서는 생수병 라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에비앙 생수를 기념품(2유로)으로 살 수 있다. 나도 우리집 반려견 이름(Borii)을 새겨넣었다. 비록 반려견을 스위스에 데려오진 못했지만, 알프스와 레만호 여행지 곳곳에서 생수병과 함께 인증샷을 찍으며 보리와 함께 했음을 기억했다. 초콜릿의 나라 스위스스위스는 초콜릿의 나라다. 스위스의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2021년 기준)은 11.6kg으로 세계 1위다. 2위 미국(9kg)과 격차가 꽤 크다. 유럽에서 초콜릿은 스위스와 함께 벨기에도 유명하다. 벨기에 초콜릿이 코코아 함양이 높은 ‘다크 초콜릿’이 주라면, 스위스 초콜릿은 ‘밀크 초콜릿’이 유명하다.치즈로 유명한 그뤼에르 옆 브록(Broc)에는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밀크 초콜릿을 만든 ‘라 메종 까이에(La Maison Cailler)’를 방문할 수 있다. 박물관 투어를 통해 알아보니 유럽에 코코아를 처음 들여온 건 스페인의 정복자들이었다고 한다. 까이에는 1875년 세계 최초로 우유와 초콜릿을 결합시켜 밀크 초콜릿을 개발했다. 쌉싸름한 초콜릿에 우유와 섞어 부드러운 맛을 내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우유의 수분 때문에 발생하는 곰팡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가루형 분유를 개발한 네슬레의 기술이 합쳐지면서 밀크초콜릿을 개발할 수 있었다. 스위스에서 소비되는 초콜릿의 80%는 밀크 초콜릿이라고 한다. 알프스의 넓은 초원에서 신선하게 짜낸 우유가 스위스 초콜릿을 부드럽고도 크리미하게 만든다고 한다. 라 메종 까이에에서는 직접 초콜릿을 만드는 워크숍에 참여할 수도 있고, 초콜릿도 맘껏 시식할 수 있다.몽트뢰, 로잔(스위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스위스에는 호수가 많다. 알프스의 빙하가 녹은 물이 곳곳에 강으로 흐르고, 호수를 만들어 낸다. 스위스 남서부 프랑스와의 국경 인근의 ‘레만호’는 알프스 산지 최대 호수다. 스위스는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인데도 레만호 덕분에 지중해 못지않은 청량감 넘치는 풍경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룹 퀸이 사랑했던 몽트뢰알프스의 빙하가 흘러내린 레만호의 물은 엄청 깨끗하고 맑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길이 72km, 너비 14km인 초승달 모양의 레만호 둘레는 180km. 자전거로 쉬지 않고 한 바퀴 도는 데 12시간이 걸린다.바다처럼 보이는 레만호에서 흘러나온 물은 프랑스의 남쪽으로 흐르며 론강이 된다. 레만호의 서쪽 끝 제네바가 국제기구가 몰려 있는 금융도시라면, 동쪽 끝에 있는 몽트뢰는 프랑스의 니스나 칸 못지않은 국제적 휴양도시다. 제네바의 명물은 레만호에서 약 140m 높이로 연중무휴 물을 뿜어내고 있는 제네바 대분수(Jet d‘eau de Geneve)다. 몽트뢰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마르셰 광장의 프레디 머큐리 동상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마침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생일(9월 5일)이 있는 9월 첫째 주말. 왼손에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을 번쩍 들고 있는 머큐리의 동상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팬들이 가져온 꽃으로 장식돼 있었다. 머큐리의 트레이드마크 복장인 흰색 러닝셔츠에 콧수염을 달고 찾아온 남성 팬도 있었고, 광장에서는 여성 팬들이 모여 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마르셰 광장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의 몽트뢰 카지노에는 퀸의 음반을 녹음했던 스튜디오가 있다. 몽트뢰는 1967년부터 매년 여름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했는데, 이 스튜디오 덕분에 ‘퀸의 도시’가 됐다. 머큐리는 “몽트뢰는 나에게 제2의 고향. 영혼의 평화를 원한다면 몽트뢰로 오라”고 할 정도로 이 도시를 사랑했다. 생전에 그가 즐겨 식사하고 산책하고 곡 작업을 했던 단골집들은 지금도 ‘프레디 머큐리 투어’ 코스로 불리며 인기가 높다. 퀸의 멤버들은 1978년 음반 녹음을 위해 몽트뢰 스튜디오를 찾았다가 호숫가의 수려한 풍광과 첨단 녹음 시설에 반했다고 한다. 이듬해 이 스튜디오가 매물로 나오자 퀸은 아예 구입했다. 현재 이 스튜디오는 ‘퀸 박물관(Queen: The Studio Experience)’이 됐다. 머큐리가 1991년 숨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작사했던 종이와 멤버들이 연주하던 기타와 드럼, 키보드 등이 전시돼 있다. 프레디 동상에서 호숫가를 따라 약 40분 걸어가면 레만 호반에 그림처럼 떠 있는 시용성(城)이 나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에서 공주가 사랑한 에릭 왕자가 사는 성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시용성은 12∼16세기 사보이아 왕가의 무기고 겸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다. 지하 동굴에는 종교개혁 운동가인 프랑수아 보니바르가 1530년부터 6년간 쇠사슬로 기둥에 묶인 채 투옥되기도 했다. 영국 출신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1778∼1824)은 서사시 ‘시용성의 죄수’에서 “쇠사슬에도 묶일 수 없는 영원한 정신, 자유여! 너는 지하 감옥에서도 환히 밝도다”라고 노래했다. 바이런의 시 덕분에 시용성은 세계인들에게 문학의 성지로 더 널리 알려졌다. 지하 동굴에는 와인을 저장하는 40여 개의 오크통이 보관돼 있다. 레반호 언덕 위에 있는 라보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를 이용해 ‘클로 드 시용(Clos de Chillon)’ 자체 레이블을 단 와인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보 지구는 몽트뢰에서 로잔까지 레만호 북쪽 호숫가를 따라서 약 30km에 걸쳐 있는 계단식 포도밭이다. 총면적은 약 830ha(헥타르)에 이른다. 2007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스위스 관광청에서 추천하는 13개 하이킹 코스 중 하나로 꼽힌 트레킹 성지다. 동쪽 뤼트리에서 서쪽 생사포랭까지 3∼4시간 걷다 보면 레만호를 배경으로 한 포도밭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알프스 산맥의 청정 환경에서 생산되는 스위스 와인은 세계적 명품 와인으로 꼽히지만,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땅이 좁아 와인 생산량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스위스 내에서 소비해 수출하지 않기 때문. 그래서 스위스를 여행할 때는 현지에서 꼭 맛봐야 할 것이 스위스 와인이다. 라보 지구의 포도밭을 걷다가 도멘 보비와 비노라마 등의 와이너리에 들러 와인을 시음해 보았다. 이 지역은 화이트 와인이 유명한데, 스위스에서만 재배되는 ‘플랜트 로버트’ 품종 같은 레드와인은 부르고뉴 와인처럼 맑고 깨끗하면서도 묵직한 보디감과 향을 느낄 수 있다.● 로잔에서 유람선 타고 에비앙으로국제기구가 많은 제네바에서 승용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로잔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올림픽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올림픽 경기의 역사를 알게 해주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올해 여름 2024 파리 올림픽에도 올림픽 기념물 수집팀을 파견했다고 한다. 올림픽 박물관에서 대한민국의 흔적을 찾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다. 입구에서 오르는 계단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성화 봉송 최종 주자였던 정선만, 김원탁, 손미정 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새겨진 계단에는 김연아의 이름이 선명하다. 또한 서울 올림픽 당시 색동마크와 오륜기가 그려진 티셔츠, 평창 겨울올림픽 당시 여자 하키 남북한 단일팀 유니폼도 눈길을 끈다. 로잔 올림픽 박물관은 레만호의 멋진 뷰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현지인들의 웨딩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특히 박물관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톰 카페’는 로잔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라스 석으로 꼽힌다. 레만호와 알프스의 화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브런치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레만호는 유람선을 타고 곳곳을 여행할 수도 있다. 로잔의 우시 선착장에서 유람선(CGN)을 타고 30분 만에 프랑스 에비앙레뱅에 다녀오는 코스도 그중 하나. 에비앙 선착장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에비앙 생수의 수원지를 찾아갈 수 있다. 분홍빛 타일로 장식된 ‘카샤의 샘물(Cachat Spring)’이다. 18세기 후반 이곳에 정원을 소유하고 있던 가브리엘 카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1790년 프랑스 대혁명을 피해 오베르뉴에서 온 라이제르 후작이 카샤의 집에 2년간 머물면서 이 샘물을 매일 마셨다고 한다. 그는 신장과 간이 안 좋았는데, 이 샘물을 마시자 병이 나았다고 한다.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카샤는 1826년 샘터에 수치료 센터를 세웠고, 훗날 에비앙 생수 회사가 됐다. 카샤가 수치료 시설 겸 호텔로 지은 건물은 현재 에비앙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선 에비앙 생수병 라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생수를 기념품(2유로)으로 살 수 있다. ● 초콜릿의 나라 스위스 스위스는 초콜릿의 나라다. 스위스의 1인당 연간 초콜릿 소비량(2021년 기준)은 11.6kg으로 세계 1위다. 2위 미국(9kg)과 격차가 꽤 크다. 벨기에 초콜릿이 코코아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이 주라면, 스위스 초콜릿은 밀크 초콜릿이 유명하다. 알프스의 넓은 초원에서 신선하게 짜낸 우유가 스위스 초콜릿을 부드럽고 크리미하게 만든다고 한다.치즈의 고장으로 유명한 그뤼에르 옆 브로크에서는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밀크 초콜릿을 만든 ‘라 메종 카예(La Maison Cailler)’를 방문할 수 있다. 카예는 1875년 세계 최초로 우유와 초콜릿을 결합시켜 밀크 초콜릿을 개발했다. 쌉싸름한 초콜릿에 우유를 섞어 부드러운 맛을 내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우유의 수분 때문에 발생하는 곰팡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가루형 분유를 개발해 신생아들을 살린 네슬레의 기술이 합쳐지면서 밀크 초콜릿을 개발할 수 있었다. 라 메종 카예에서는 직접 초콜릿을 만드는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고, 초콜릿도 맘껏 시식할 수 있다.글·사진 몽트뢰·로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담양군문화재단(이사장 이병노)은 6~7일 담빛 음악당에서 ‘담빛 파크콘서트’를 개최한다. ‘담빛 파크콘서트’는 휴식과 힐링,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접목한 복합문화 행사. 가평의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 평창의 ‘계촌 클래식 축제’와 같은 지역 기반의 대형 야외 음악 축제를 추진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프로젝트다. 담양군의 야외 공연 시설인 담빛 음악당에서 오후 3시부터 먹거리 부스와 체험부스, 이벤트 존이 열리며 전남도립대, 60만 구독자 유튜버 ‘와인 강’도 참가한다. 힐링 요가, 사진 촬영 이벤트와 공연 관람에 필요한 캠핑의자는 사전 예약을 통해 받을 수 있다. 공연은 저녁 7시 반에 시작해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첫날 6일(금)에는 ‘프렐류드’의 재즈 베이시스트 최진배가 주도하고 18명의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하는 ‘최진배 재즈 빅밴드’가 스윙재즈의 사운드로 담빛 음악당을 가득 채운다. 리더 최진배는 버클리 음악대학 학사, 뉴욕대학교 석사 출신으로 2005년 프렐류드 1집 Croissant을 시작으로 국악인 이희문과 ‘한국남자 1·2집’ 앨범을 냈다. 또한 ‘메리고라운드’의 보컬 남예지, 쿠마파크의 색소폰 연주자 한승민, 그리고 ‘라 벤타나’의 아코디언 연주자 정태호 등 유명 재즈 연주자들도 참여한다. 둘째 날 7일(토) 공연에는 가수 김광석이 함께 활동했던 그룹 ‘동물원’이 추억과 낭만을 노래한다. 동물원은 1988년 데뷔 직후 ‘거리에서’‘변해가네’ 등 명곡을 탄생시켰으며, 동물원 1집과 2집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선정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응답하라 1988에서 ‘혜화동’,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가 드라마 삽입곡으로 나오면서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동물원의 음악을 대규모 밴드·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가운데 ‘담양 담빛 현악 앙상블’학생 단원들도 바이올린·베이스를 들고 동물원과 함께 무대에 올라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춘다. 담양군문화재단 관계자는 “힐링을 주제로 한 이번 행사가 지역 거점 야외 음악 페스티벌로 발전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류 드라마, K팝, 영화 등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잖아요. 한류의 바탕에 바로 우리 전통문화 원형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원형으로 정면 승부해 보기로 했습니다.” 7월 25일∼8월 11일 파리 올림픽 기간 ‘코리아하우스(메종 드 라 시미)’에서 열린 ‘댓츠 코리아: 시간의 형태’ 전시를 총괄했던 김민경 예술감독을 만났다. 그는 코리아하우스 메인 중앙홀을 비롯한 3개의 공간에서 원형,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한 전시를 펼쳤다. 첫 번째 방인 메인 로비에서는 ‘형태의 시작’을 주제로 한 전시를 선보였다. 한복과 달항아리, 궁중채화 등으로 한국 전통의 원형을 담아냈다. 한국의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달항아리와 밀랍을 빚어 만든 궁중채화로 한국적 미(美)의 조화로움을 표현했다. 달항아리 뒤쪽 벽에는 ‘답호’와 ‘당의’, ‘원삼 혼례복’이 원색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나인 화협옹주(1733∼1752) 묘에서 출토된 화장품을 재현한 전통 화장품도 전시됐다.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전시 공간인 ‘원형의 미래’였다. 국가무형유산 누비장 고(故) 김해자 장인의 ‘손누비 장옷’을 전시한 방이다. 장옷과 함께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한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를 통해 전통 길쌈 방식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했다. 김해자 장인은 파리 전시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병석에서 제자와 가족들에게 “우리나라 누비옷이 세계에 알려지고, 글로벌 명품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고 한다. 김 장인의 누비옷은 안팎을 얇게 붙인 천을 0.3cm 간격으로 촘촘하고 세밀하게 바느질하는 ‘세(細)누비’다. “어두운 전시장에 김해자 선생의 마지막 유작인 손누비 장옷이 걸려 있고, 100개가 넘는 조명과 음악, 실이 싱크를 맞춰 연주를 합니다. 누비를 만드는 실처럼 해금, 가야금 같은 우리나라 현악기의 줄도 모두 실입니다. 이 방에 들어온 외국인 관람객들도 굉장히 몽환적인 느낌인가 봐요. 러닝타임이 4분이 좀 넘는데, 대부분 서너 번씩 보고 나가곤 했습니다.” 서울대 국악과(작곡 전공)를 졸업한 김 감독은 세종문화회관 삼청각에서 국악공연 전문위원을 맡는 등 국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장, 해외문화홍보원 문화예술국제교류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아 한복과 한식, 음악과 전시 등 해외에 한국의 미를 알려왔다. 숭실대에서 미디어아트로 박사 과정을 수료한 미디어아트 전문가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릴 때 음악, 미술, 태권도 등 한 분야만 따로 하기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장인의 손길로 정성껏 다듬은 세밀한 작품이 많습니다. 세밀함은 왕처럼 귀한 것이지요. 평생 갈고닦은 장인 솜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한국 문화의 정수를 해외에 알리고 싶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류 드라마, K팝, 영화 등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잖아요. 한류의 바탕에 바로 우리 전통문화 원형의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원형으로 정면승부해보기로 했습니다.”지난 7월25~8월11일 파리올림픽 기간 중에는 한국문화를 알리는 ‘코리아하우스(메종 드 라 시미)’도 운영됐다. 장소는 올림픽 양궁 경기장이 펼쳐졌던 앵발리드 경기장 인근 파리 7구에 있는 ‘메종 들라 시미(Maison de la Chimie)’. 주요 경기 응원전이 펼쳐졌고, 15개 기관이 주최하는 다양한 한국문화 홍보 행사가 펼쳐졌다.그 중에서 1층 메인홀 로비 등 3개의 공간에서 펼쳐진 메인 전시 ‘댓츠 코리아: 시간의 형태’는 한복, 한식, 한지를 주제로 세련된 한국의 아름다움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코리아하우스를 방문한 관람객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앙홀.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부터 현대 작가까지 총 17명이 참가한 전시였다. 이 전시를 총괄했던 김민경 예술감독은 “문화는 일방적인 전파가 아니고, 상호간의 교류라고 생각한다”며 “프랑스식 샹들리에가 있는 공간이라 그 나라 문화도 존중을 하면서, 스며들듯이 조화롭게 보여지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김 감독은 각기 다른 3개의 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 3장으로 구성했다. 골드와 연한 파랑, 어두운 각기 다른 3개의 공간 색깔에 맞춰 먹색과 흰색 가구 위에 자개를 입히고 한국식 가구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뒤 각 방을 ‘원형-원형과 현재-원형의 미래’ 순으로 배열했다.첫번째 방인 메인로비에서는 ‘형태의 시작’이란 주제로 한복과 달항아리, 궁중채화 등으로 한국 전통의 원형을 담아냈다. 한국의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달항아리와 밀랍을 빚어 만든 궁중채화로 한국적 미(美)의 조화로움을 표현했다.“예전에 궁궐에서 연회를 할 때는 항상 꽃이 있었어요. 그러나 겨울에는 꽃이 없기 때문에 채화를 만들었지요. 이번에 전시된 채화는 꿀벌의 벌집에서 채취한 밀랍으로 만들어 채색을 했어요. 그랬더니 작품을 설치하는 날 거짓말처럼 진짜 벌이 날아오더군요. 문을 다 열어놓으니까 벌들이 진짜 꽃인줄 알고 왔어요.”달항아리 뒷쪽 벽에는 전통한복인 ‘답호’와 ‘당의’, ‘원삼 혼례복’이 원색의 전통 한복 그대로 아름다움을 뽐냈다. 답호는 사대부들이 겉옷 위에 덧입는 민소매 또는 반팔 옷. 옆이 틔워져 있기 때문에 남자들이 걷거나 말을 타거나할 때도 불편함이 없다. 김 감독은 “측면 디자인도 너무 예뻐 요즘 디자인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남자 옷”이라고 소개했다. 원삼도 예전 혼례복 그대로의 원형인데, 색깔만 황금색 공간에 맞게 보라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요즘 전시나 공연 작품을 보면 대부분 디지털 형태가 많습니다. 해외에서 전시하는 경우 원형 그대로 가져가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그러나 저는 한국에는 있고, 프랑스에는 없는 ‘원형’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골드빛 공간에 한복이 세 벌 밖에 전시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 파스텔톤 한복은 묻혀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간에 어울리면서도 한복이 도드라질 수 있는 원색의 컬러로 한복으로 제작했지요.”김 감독은 “한복의 마지막 완성은 장신구”라고 말했다. 전시장엔 한복에 어울리는 산호, 비취, 호박, 진주, 칠보 등 원석의 보석으로 만든 전통 노리개와 장신구, 화협옹주(1733~1752) 묘에서 출토된 화장품을 재현한 전통 화장품도 선보였다.조선 21대 임금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인 화협옹주는 스무살에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2016년 경기 남양주 화협옹주묘 발굴 과정에서 빗, 거울, 눈썹먹 등 화장도구와 갈색고체 크림류, 적색가루, 액체류 등 화장품, 그리고 화장품이 담겨 있던 소형 도자기가 한묶음으로 발견됐다.한국전통문화대학교 미술공예학과 이정용 교수팀이 청화백자 문양과 형태를 살린 화장품 용기를 디자인했고, 화장품 제조회사 코스맥스가 동백나무씨기름, 당호박씨기름 등을 활용한 ‘화협옹주 도자에디션’ 전통화장품을 복원해낸 것.“화협옹주 화장품은 270여 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작품이예요. 자개로 장식한 쇼케이스 위에 장신구와 함께 전통 화장품을 전시했어요. 한국 여성이 한복을 입고, 화장을 하고, 원석 보석으로 만든 떨잠(조선시대 왕비나 상류계층 부인이 의식 때 큰머리나 어여머리에 꽂았던 ‘떨리는 비녀’ 머리 장식품) 족두리와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파리로 여행을 온다는 느낌의 스토리로 준비를 한 전시였죠.”두번째 방 ‘오늘의 형상’은 소반과 한지를 이용한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소개했다. 전통 나주 소반과 함께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적용한 오렌지색 투명 현대식 소반(하지훈 작가), 전통 한지로 연출한 ‘한지꽃’, 한지에 옻칠과 금속 프레임을 활용한 현대적 ‘한지 조명’을 선보였다.이번 전시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전시공간인 ‘원형의 미래’였다. 국가무형유산 누비장 고(故) 김해자 장인의 ‘손누비 장옷’을 전시하는 방. 장옷과 함께 현대 과학기술을 접목한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을 통해 전통 길쌈 방식을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했다.“우연히 창덕궁에서 열린 한복 전시회를 갔다가 김해자 장인의 누비옷을 처음 봤어요. 낙선재 방 안에 전시된 누비 한복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소름이 쫙 돋는 거예요. 이 옷을 꼭 한번 메인 무대에 세우고 싶다는 생각에 선생님을 찾아갔죠.”김 감독은 전시 전 파리 현장 답사를 가기 전에 경주에 계신 김해자 선생을 찾아뵙고 간곡히 부탁드렸다고 한다. “잘 다녀오라”고 하시던 장인은 그러나 김 감독이 파리에서 돌아오기 전에 돌아가셨다. 김해자 장인은 병석에서 제자와 가족들에게 마지막 소원을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 누비옷이 세계에 알려지고, 글로벌 명품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소망이었다.‘누비’는 보온성과 옷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고 맞붙이는 전통 바느질 기법이다. 누비의 간격은 0.3cm부터 20cm까지 다양하다. 두꺼운 솜옷은 간격이 넓고, 바느질도 성글게 돼 있다. 김해자 장인의 누비옷은 옷감 사이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얇게 붙인 천을 0.3cm 간격으로 촘촘하고 세밀하게 바느질하는 ‘세(細)누비’다.“가느다란 바늘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선생님의 마지막 유작인 ‘손누비 장옷’을 보면 소름이 돋고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조선 백자처럼 단아한 모습이 딱 선생님의 풍모를 닮았습니다. 와인색 고름 색깔도 너무 기가 막혀요. 전시장에 걸려 있는 누비옷을 보니, 돌아가신 선생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김 감독은 김해자 장인이 작업실에서 바느질하던 도구까지 챙겨 파리 전시장 한 켠에 장식해놨다. 그리고 이러한 미래의 원형이 되는 작업의 형태와 시간을 미디어아트 그룹 사일로랩의 ‘키네틱 조명 설치작품(Kinetic Lighting Installtion)’을 통해 한국 음악에 맞춰 조명과 움직임을 이용한 미디어아트로 형상화했다.“어두운 전시장에 김해자 선생의 손누비 장옷이 걸려 있고, 100개가 넘는 조명이랑 음악, 실이 싱크를 맞춰 연주를 합니다. 누비도 실로 옷을 짓고, 해금, 가야금과 같은 우리나라 현악기의 줄도 모두 실입니다. 이 방에 들어온 외국 관람객들도 굉장히 몽환적이고 묘한 느낌인가 봐요. 미디어아트 러닝타임이 4분이 좀 넘는데, 한 번만 보고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줄 서서 들어오면 거의 세번, 네번까지 듣고 나가곤 했죠.”- 프랑스 관람객들 반응은.“올림픽 기간 중 18일 동안 전시를 하면서 매일 4000명 가까운 인원이 줄을 서서 입장을 하더군요. K팝, K드라마로 한국문화에 친숙해진 외국 관람객들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세련미에 놀라워하면서도 너무 좋아하더군요.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세번째 김해자 선생님 ‘누비옷’ 미디어아트 전시실은 프랑스 친구가 안내를 담당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더군요. 자기가 설명하는데 다들 너무 진지하고, 잘 받아들여주는 데 감동적이라 하나도 안 피곤하다고 말했습니다. 관람객들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음악에 이끌려 이 공간에 들어왔다가 너무 충격적인 작업을 관람하게 됐다’는 반응을 하기도 했습니다.”서울대 국악과(작곡 전공)를 졸업한 김 감독은 세종문화회관 삼청각에서 국악공연 전문위원을 맡는 등 국악 작곡과 공연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 그런가 하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 한복진흥센터장, 해외문화홍보원 문화예술국제교류 프로젝트 총감독을 맡아 한복과 한식, 음악과 전시 등 해외에 한국의 세련된 미(美)를 알리는 해외홍보프로젝트 전문가이기도 하다. 또한 숭실대에서 미디어아트로 박사학위를 수료한 뒤 국악과 컴퓨터, 미디어아트 분야를 대학에서 가르치고 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해왔다.- 국악 작곡을 전공하셨는데, 미디어아트 전문가가 되신 이유는.“대학에서 국악을 교양수업을 가르치는 데 학생들이 모두 잠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너무 외면하고, 지루해하길래 좀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전통이랑 미디어아트를 붙여서 소개하는 작업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립민속박물관하고 김홍도, 신윤복 그림 속 인물들이 실제로 춤을 추고, 국악을 연주하는 미디어아트를 처음 시도했어요. 독일 박람회에서도 우리 소리와 음악, 그림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소개해주는 작업을 하니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제가 전시 미디어아트를 7년 정도 했는데, 단 원칙이 있었어요. 거의 대부분 박물관과 협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에는 원형이 있으니까. 원형이 최소한 70~80%가 있는 상태에서 미디어아트가 들어가야 전시가 조화롭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사람들이 지루해하니까 좀더 잘 소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미디어아트를 선택한거죠. 그런데 요즘은 미디어아트가 너무 ‘투 머치(Too much)’한 경우가 많아요. 돈 주고 산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뿌린다고 해서 작품이 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몇 십년 동안 묵힌 장맛과 편의점에서 파는 된장 맛하고 똑같지는 않잖아요. 수십년 동안 장인으로서 노력해온 사람에게서 밀당과 향기가 나오는 거지, 돈주고 쉽게 사는 작업에서는 화려하지만 향기를 느낄 수 없어요. 미디어아트도 화려한 기술보다는 원형과의 조화가 핵심이라고 봅니다.“-화협옹주의 화장품을 전시한 의미는.“올해 초에 덕수궁에서 화협옹주 화장품 전시를 보고 참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K뷰티만 있는 게 아니라 K공예도 같이 들어가고, 역사적인 스토리가 있으니까요. 270년 만에 무덤에서 나온 전통 화장품을 복원하고, 용기를 디자인하고, 도자기로 만들고 하는 작업은 모두 오리지널이 있는 거잖아요. 원형을 갖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장신구는 아마존에서 판매하는 데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대륙별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다른데, 사극 드라마를 본 미국, 인도 등의 시청자들이 한국의 전통 장신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어요.”김 감독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해외문화홍보원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해외문화홍보 프로젝트 예술감독을 꾸준히 맡아왔다. 유럽은 물론 중동, 남미 등 전세계를 돌며 수교기념 행사와 순방행사, 한국문화원 개원 축하행사 등을 통해 한복, 한식, 국악, 문학, 태권도 등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펼쳐왔다.“해외에 한국문화 홍보 공연이나 전시를 할 때는 판소리, 가야금 같은 국악만 하지 않아요. 성악이나 오페라도 있고, 태권도와 비보이 공연도 해야하고, 한식과 한복, 공예 전시도 해야 합니다. 공연이랑 전시, 미디어아트까지 모두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곡을 하면서 공간을 채우는 다양한 악기소리를 분석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공간을 채우는 전시 기획도 음악과 다르지 않습니다.”-공연, 전시 전문가를 하다가 한복진흥센터장을 맡았던 이유는.“제가 한류 문화 확산에 대한 전문가로 일을 해오다 보니까, 한복도 이렇게 알리고 키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게 됐습니다. 제가 한복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국악 공연계에 오래 있으면서 한복은 늘 친숙했습니다. 특히 해외공연을 가면 전통 한복의 퀄리티를 늘 생각했죠.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현대미술관 개관식에는 소수의 VIP만 초청돼 국악공연을 하는데, 연주자들에게 정말 작품같은 전통한복을 입히곤 했습니다. 국악계도 그동안 사람들이 소외받은 분야인데, 한복을 만드는 장인들은 더욱 더 그런 상황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앞으로의 계획은.“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릴 때 한 분야만 따로 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함께 어우러져 조화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흔히 동양의 미를 여백의 미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정말 장인의 손길로 정성껏 다듬은 세밀한 작품이 많습니다. 세밀함은 왕처럼 귀한 것이지요. 평생 갈고 닦은 장인의 솜씨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한국문화의 정수를 담은 기획을 하고 싶습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남동부 최대 도시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는 대자연 속에서 걷고, 야생동물을 만나고, 와인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여행지다. 멜버른에서 동쪽으로 뉴사우스웨일스(NSW) 주경계까지 542km 뻗어 있는 ‘깁스랜드(Gippsland)’는 대표적인 와인산지이자 미식 여행지. 바다를 바라보는 윌슨스 곶과 흑조가 헤엄치는 광활한 호수, 공룡이 살던 고사리숲이 우거진 타라불가 국립공원에서 경이로운 자연을 만났다. ● 공룡들이 거닐던 숲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 사시사철 울창한 숲이 우거진 정글을 ‘우림(雨林·Rainforest)‘이라고 한다. 보통은 적도 부근에 ’열대우림‘이 많이 발달해있다. 그런데 지구상 일부 지역에는 ’냉온대 우림(Cool-temperate Rainforest)이 형성돼 있는 곳도 있다. 열대우림 보다는 인간의 생존환경에 알맞기 때문에 일찍부터 숲이 개간당해 사라져 쉽게 볼 수 없을 뿐이다. 그런데 호주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사우스 깁슬랜드에 있는 ‘타라불가 국립공원(Tarra-Bulga National Park)은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온대우림을 만나볼 수 있다. 양치류로 뒤덮인 울창한 숲에는 최상위 층에 유칼립투스와 거대한 마가목, 머틀너도밤나무가 지붕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 숲에는 나무고사리와 버섯, 이끼 등이 자라고 있다. 타라불가 국립공원의 여러 트레킹 코스 중에 ’코리건 현수교(Corrigan‘s Suspension Bridge)는 30분 정도 걸으면 열대우림과 양치류가 뒤덮고 있는 계곡을 감상하는 유명한 코스다. 입구에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로얄 유칼립투스 나무는 키가 약 74m로, 영국인들이 호주에 도착한 1840년에도 있었기 때문에 200살이 넘은 나이로 추정된다고 한다. 코리건 현수교에서 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면 거대한 고사리들이 우산을 펼친 듯 가득 메우고 있다. 우리나라 땅에서는 고사리가 풀처럼 자라는데, 이 곳에는 야자수처럼 쭉쭉 뻗는 ‘나무 고사리(Tree Fern)’다. 공룡들이 걸어다녔던 중생대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는 숲이다. 현수교를 건너 계곡 밑으로 내려가면 고대 곤드와나 대륙에 번성했다는 너도밤나무가 거대한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곤드와나 대륙은 약 3억 년 전인 고생대 후기부터 1억 년 전인 중생대 중반까지 남반구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초대륙이다. 약 2000만년 전에 호주 남동부 전역에 번성했던 광활한 너도밤나무 숲의 후손이 국립공원에 일부 남아 있는 것이다. 숲 속 바닥에는 이끼와 버섯이 자라고 있다. 트레킹을 하고 나오는 길에 호주의 토종새인 ‘금조(Superb Lyrebird)’를 만났다. 미니 공작새처럼 날개를 펼치면 아름다운 새다. 호주 10센트 동전 뒷면에 새겨진 금조는 다양한 성대모사를 하는 새로 유명하다. 수컷이 암컷을 구애할 때 다양한 새소리를 따라하기도 하고, 도시에 사는 금조는 전기 드릴, 망치질, 카메라 셔터 소리, 아기 울음 소리까지 정확하게 따라해 유명해진 새다. 깁스랜드에는 윌슨스 곶 주변에 커다란 호수가 발달해 있다. 깁스랜드 호수에 있는 레이몬드섬에선 호주의 대표적인 유대류 동물인 야생 코알라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길이가 약 6km, 너비가 2km의 작은 섬. 해안에서 불과 200m 떨어져 있어 페인즈빌 마을에서 페리를 타면 5분이면 섬에 도착한다. 레이몬드 섬에는 1953년에 코알라 몇 마리를 들여왔는데, 그 이후에 코알라가 번식해 퍼졌다고 한다. 이 섬에는 다리를 놓지 않고 1889년부터 페리를 운항해왔기 때문에 섬은 빠른 개발로부터 보호될 수 있었다.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무 한 그루마다 한 마리씩 평화롭게 살고 있는 그야말로 ‘코알라 천국’을 이루고 있다. 레이몬드 섬에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코알라 트레일’을 즐길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 밑을 지날 때는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쳐다봐야 한다. 나무 위에 커다란 인형같은 코알라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코알라는 잠을 자거나,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있고, 운이 좋으면 손을 뻗어 가지를 붙잡고 느릿느릿 움직이거나, 요가를 하고 있는 코알라를 만날 수도 있다. 이 섬에는 캥거루와 바늘두더지, 새 등 다른 야생동물도 많다. 캥거루들이 개인주택의 울타리까지 넘어서 집 안마당까지 들어와 놀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레이몬드 섬에서 나와 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을이 지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호수에는 검은색 새들이 많이 떠 있다. 모양은 영락없는 백조인데, 색깔이 검다. 말로만 듣던 블랙스완(Black Swan), 흑조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서는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그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했던 1인 2역 변신 장면이다. 경제 용어로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흑조는 호주에만 살고 있는 특산종인데, 유럽인들이 호주에 와서 검은 백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미텅 온천의 포썸호주 빅토리아주 깁슬랜드 호수 지역에는 지하 500미터에서 솟아나는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도 있다. ‘미텅 온천(Metung Hot Spring)’에서 하이라이트는 광활한 깁스랜드 호수가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노을지는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노천에 있는 참나무로 만든 와인숙성용 오크통 안에 들어가 온천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온천을 커다란 탕 속에서 여럿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주인들은 각자의 오크통 안에서 하는 것을 즐긴다. 오크통 안에는 섭씨 38~40도 가량의 온천수가 솟아나는데, 통 안으로 몸을 집어 넣으면 부피만큼 물이 넘쳐난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통 안에서 ‘유레카’하면서 부피의 원리를 깨달았던 순간을 재현하는 체험이다. 개인용 오크통 온천 뿐 아니라 옆에는 여러명이 함께 들어갈 수 있는 노천탕도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는 1997년 모닝턴 반도에 개장한 페닌슐라 온천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찰스와 리처드 데이비슨 형제가 일본에 머물면서 수십개의 온천을 경험하고 난 뒤 ‘왜 호주에도 온천이 있는데, 이런 시설을 갖춘 관광지가 없을까?’하며 최신 시설을 갖춘 노천온천을 개발했다. 페닌슐라 온천그룹이 깁스랜드에도 새롭게 미텅온천을 개발해 호주인들도 한해 온천 관광객이 5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온천을 즐기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미텅온천에는 호숫가에 럭셔리한 시설을 갖춘 글램핑 숙소가 있는데, 천막 한켠 테라스에는 노천에 있는 것과 똑같은 개인용 오크통 온천시설이 있어 숙소에서 프라이빗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미텅온천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또다른 유대류 동물인 주머니 여우 ‘포썸(Possum)’을 만났다. 긴꼬리를 흔들며 후다닥 소리를 내며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로 고양이와 미어캣를 합쳐놓은 생김새다. 얼굴은 쥐처럼 생겼고, 맑은 눈동자와 분홍색 코가 정말 귀여운 동물. 그런데 크기는 고양이 정도로 크다. 한참 사람들을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살짝 다가서자 꼬리를 흔들며 빠르게 사라졌다. ●와인과 미식 여행깁슬랜드 미첼강 계곡 위에 자리잡고 있는 라이트풋(Lightfoot) 와이너리는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포도밭 풍경이 압권이다. 풍부한 붉은 토양을 가진 고대 석회암 능선에는 머틀 포인트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와이너리 안에서는 피노 누아, 시라즈, 샤르도네 등 다양한 품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주변 농장에서 생산되는 치즈, 올리브와 함께 와인을 마신다. 호주 와인은 1800년대 중후반 유럽에서 온 개척자들이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호주 건국(1901년) 이전부터 생산된 셈이다. 호주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은 ‘시라즈’다. 호주에서 자라는 포도나무 세 그루 중 한 그루가 시라즈 품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론 북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품종인 시라(Syrah)가 호주로 건너가 ‘시라즈(Shiraz)’라고 불리게 됐다. 같은 품종이지만 땅에 따라 확연히 다른 맛을 낸다. 프랑스 론 북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시라가 주로 붉은 베리, 후추 등 드라이하고 강인한 맛이라면, 호주의 시라즈는 말린 베리, 초콜릿, 흙 향이 뒤섞인 부드럽고 농밀한 맛이 특징이다. 그러나 호주 와인에 시라즈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으로 유명한 피노 누아(Pinot Noir)도 많이 재배한다. 빅토리아주 모닝턴페닌슐라, 야라밸리, 깁스랜드 등에서는 좀더 화려한 풍미의 과일향이 나는 피노 누아가 생산된다. 깁스랜드의 윌슨스 곶의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거니스 사이다(Gurney‘s Cider)’는 영국 정통 제조방식의 사과주(Cider)를 생산하는 양조장이다. 사이다는 사과쥬를 발효해서 만드는 술. 거니스 사이다 농장에는 프랑스, 영국, 미국,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5000여 그루의 사과주용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양조장에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사이다 셀러(저장고)’라고 주장(?)하는 사과주 저장고가 있다. 지하 저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사과주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알콜도수 16도 짜리 사이다, 사과주를 증류한 41도짜리 브랜디를 시음할 수 있다. 양조장 아래쪽에는 폐선로를 개조해 만든 자전거길인 ‘그레이트 서던 레일 트레일(Great Southern Rail Trail)‘이 지나가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호주 빅토리아주 그레이트 오션로드로 가는 헬리콥터 안에서 비가 갠 후 둥그런 원형 모양의 무지개를 만났다. 지상에서 보면 무지개는 반원으로 보이지만, 하늘에서 보면 무지개가 원형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그레이트 오션로드의 한 가운데에 있는 아폴로베이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투어‘(Wildlife Wonders)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이 곳에서 타조를 닮은 야생 조류인 ‘에뮤(Emu)’를 만났다. 에뮤는 호주의 국조(國鳥)로, 전세계에서 호주에서만 살고 있는 대형 주조류(走鳥類)다. 몸 길이 1.8m, 몸무게 35~54kg 정도 나가는 큰 새다. 이 곳에서 파는 스폿티드 에일(Spotted Ale) 맥주병의 라벨에는 점이 박혀 있는 귀여운 야생동물이 그려져 있다. ‘주머니 고양이’로 불리는 Tiger Quoll(타이거 퀄)이다. 옆에는 ‘이 맥주를 마시면 수익금 100%를 멸종 위기에 처한 타이거 퀄 보호를 위해 쓰인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세상에 호주 밖에 없는 신기한 유대류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노력을 하고자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셨다. 깁슬랜드(호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호주 남동부 멜버른이 주도인 빅토리아주는 대자연 속에서 트레킹하며 야생동물을 만나고, 와인과 미식을 즐길 수 있는 힐링 여행지다. 멜버른에서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경계까지 동쪽으로 542km가량 뻗어 있는 ‘깁슬랜드(Gippsland)’ 지역은 호주의 떠오르는 와인 미식 투어 여행지. 바다를 바라보는 윌슨스 곶과 흑조가 헤엄치는 광활한 호수, 공룡이 살던 고사리 숲이 우거진 타라불가 국립공원(Tarra-Bulga National Park)에서 경이로운 자연과 신기한 야생동물을 만났다. ● 공룡들이 거닐던 온대우림강수량이 많은 지역에 사시사철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정글을 우림(雨林·Rainforest)이라고 한다. 보통은 적도 부근에 열대우림이 발달해 있다. 그런데 지구상 일부 지역에는 냉온대 우림(Cool-temperate Rainforest)이 형성돼 있다. 열대우림보다는 인류의 생존 환경에 맞기 때문에 일찍이 숲이 개간당해 쉽게 볼 수 없을 뿐이다. 호주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사우스 깁슬랜드의 타라불가 국립공원에는 잘 보전된 원시 온대우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양치류로 뒤덮인 울창한 숲에는 키 큰 유칼립투스와 거대한 마가목, 너도밤나무가 최상위층에서 지붕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에는 나무고사리와 버섯, 이끼 등이 자라고 있다. 타라불가 국립공원의 여러 트레킹 코스 중 양치류로 덮인 열대우림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코리건 현수교(Corrigan’s Suspension Bridge)까지 약 30분을 걸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로열 유칼립투스 나무가 관광객을 맞는다. 키는 약 74m로, 유럽인들이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에도 존재해 수령(樹齡)이 200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수교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니 거대한 고사리 나무(Fern Tree)들이 우산을 펼친 듯 빼곡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사리가 풀처럼 자라는데, 이곳에선 야자수처럼 쭉쭉 뻗는 나무로 자란다. 공룡들이 걸어다녔던 중생대 쥐라기의 풍경이 그대로 살아 있는 숲이다. 계곡 밑으로 내려가면 너도밤나무가 거대한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뿌리를 드러내고 있고, 숲속 바닥에는 이끼와 버섯이 자라고 있다. 초록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온대우림 숲을 트레킹하고 나오는 길에 호주의 토종새인 금조(琴鳥)를 만났다. 거문고 금(琴)자를 쓰는 이 새의 화려한 꼬리는 리라를 닮았다. 꼬리를 펼치면 공작새처럼 아름다운 새다. 깁슬랜드에는 바다 주변에 광활한 호수가 발달해 있다. 호수 중간에는 길이 약 6km, 너비 2km의 ‘미니섬’인 레이먼드섬이 떠 있다. 해안에서 불과 200m 거리라 페인즈빌 마을에서 페리를 타고 5분이면 도착한다. 레이먼드섬에는 1953년에 코알라 몇 마리를 들여온 뒤로 코알라가 번식해 퍼졌다고 한다. 코알라가 유칼립투스 나무마다 거의 한 마리씩 살고 있는 그야말로 ‘코알라 천국’이다. 이 섬에서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코알라 트레일’을 즐길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고개를 들어 위를 봐야 한다. 나무 위에 솜 인형 같은 코알라가 한 마리씩 앉아 있다. 섬에서 나와 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노을이 지고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호수에는 검은색 새들이 떠 있다. 모양은 영락없는 백조인데, 색깔이 검다. 말로만 듣던 블랙 스완(Black Swan), 흑조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 3막에서는 백조 오데트로 변장한 흑조 ‘오딜’이 지크프리트 왕자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내털리 포트먼이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어 했던 1인 2역 변신 장면이다. ‘블랙 스완’은 금융시장 용어로는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흑조는 호주에만 살고 있는 특산종인데, 유럽인들이 호주에 와서 검은 백조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가 가는 용어다. ● 미텅 온천의 포섬 깁슬랜드 호수 인근에는 지하 500m에서 솟아나는 미네랄이 풍부한 미텅 온천(Metung Hot Spring)도 있다. 호수가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선셋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참나무로 만든 와인 숙성용 오크통 안에 들어가 즐기는 노천온천은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우리나라는 온천을 커다란 탕 속에서 여럿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주인들은 1인용 오크통 안에서 하는 것을 즐긴다. 오크통 안에는 섭씨 38∼40도가량의 온천수가 솟아나는데, 통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면 부피만큼 물이 넘쳐난다. 호주 빅토리아주에는 1997년 모닝턴 반도에 개장한 페닌슐라 온천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찰스와 리처드 데이비슨 형제가 일본에 머물면서 수십 개의 온천을 경험하고 난 뒤 ‘왜 호주에는 이런 온천 관광지가 없을까?’ 하며 최신 시설을 갖춘 노천온천을 개발했다. 이들이 페닌슐라 온천에 이어 깁슬랜드에 미텅 온천을 두 번째로 개발한 것. 호주도 온천을 즐기는 인구가 한 해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텅 온천에는 호숫가에 글램핑 숙소가 있는데, 천막 한쪽 테라스에도 개인용 오크통 온천이 있어 숙소에서 프라이빗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미텅 온천 글램핑장 부근에서 저녁에 또 다른 유대류 동물인 주머니여우 포섬(Possum)을 만났다. 긴 꼬리를 흔들며 빠르게 움직이는 동물로 고양이와 미어캣을 합쳐놓은 생김새다. 크기는 고양이만 한데 얼굴은 쥐처럼 생겼고, 맑은 눈동자와 분홍색 코가 귀여운 동물. 한참 사람들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살짝 다가서자 꼬리를 흔들며 빠르게 사라졌다. ● 깁슬랜드 와인과 미식 여행 깁슬랜드 미첼강 계곡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라이트풋(Lightfoot) 와이너리는 테라스에서 바라보이는 드넓은 포도밭 풍경이 압권이다. 풍부한 붉은 토양을 가진 고대 석회암 능선에는 머틀 포인트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호주 와인은 1800년대 중후반 유럽에서 온 개척자들이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시작됐다. 호주 건국(1901년) 이전부터 생산된 셈이다. 호주 와인을 대표하는 품종은 ‘시라즈’. 프랑스 론 북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품종인 시라(Syrah)가 호주로 건너가 ‘시라즈(Shiraz)’라고 불리게 됐다. 호주의 시라즈는 말린 베리, 초콜릿, 흙 향이 뒤섞인 부드럽고 농밀한 맛이 특징이다. 빅토리아주 깁슬랜드, 야라밸리, 모닝턴페닌슐라 등에서는 화려한 풍미의 과일향이 나는 피노 누아르(Pinot noir)도 많이 생산된다. 깁슬랜드 윌슨스 곶의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거니스 사이다(Gurney’s Cider)는 영국 정통 제조 방식의 사과주(Cider)를 생산하는 양조장이다. 농장에는 프랑스, 영국, 미국, 아일랜드에서 가져온 5000여 그루의 사과주용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하 저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크통에서 숙성 중인 사과주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사이다(알코올 도수 16도)와 사과주 증류주인 브랜디(41도)를 시음할 수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 그레이트오션로드로 가는 헬리콥터 안에서 비가 갠 후 둥그런 원형 모양의 무지개를 만났다. 지상에서 보면 무지개는 반원으로 보이지만, 하늘에서 보면 무지개가 원형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폴로베이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투어(Wildlife Wonders)도 진행된다. 타조를 닮은 호주의 국조인 에뮤(Emu)의 당당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의 수제맥주인 스포티드 에일(Spotted Ale) 병 라벨에는 점이 박혀 있는 야생동물이 그려져 있다. ‘주머니고양이’로 불리는 Tiger Quoll(타이거 퀄)이다. ‘이 맥주를 마시면 수익금 100%를 멸종 위기에 처한 타이거 퀄 보호를 위해 쓰인다’는 문구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셨다. 글·사진 깁슬랜드(호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출산 고령화는 우리나라만의 고민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심각한 인구감소, 인구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일본의 대표적 폭설지대인 니가타현이다. 한겨울엔 눈이 2~3m씩 쌓이고, 힘겨운 농사일까지 겹쳐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두메산골. 그런데 요즘 이 곳이 일본의 30대가 가장 좋아하는 세련된 원풍경으로 각광받고 있다. 20년 전부터 산과 호수, 들판, 논두렁에서 시작된 ‘에치고츠마리 대지(大地)예술제’는 한적한 농촌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설국의 대지(大地)예술제“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1968년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구절이다. ‘국경의 긴 터널’에서 ‘국경’이란 일반적으로 나라 간의 경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지역 간의 경계란 의미로도 쓴다. 설국의 배경은 바로 니가타현이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1시간20분. 산맥의 긴 터널을 지나면 니가타현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니가타현은 동해를 건너온 습한 구름이 반대편에 높은 에치고(越後) 산맥에 막혀 엄청난 양의 폭설을 토해내는 곳이다.그런데 한 여름에 찾아간 니가타현에는 또다른 ‘국경의 터널’이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도카마치시 기요쓰 협곡(清津峡渓谷)에 있는 ‘빛의 터널(Tunnel of Light)’. 750m 어두운 터널을 30분 걸어가자, V자 협곡이 나타났다. 주상절리 바위 사이로 급류가 흐르는 터널의 밑바닥이 반짝거렸다. 터널 끝 전망대인 ‘파노라마 스테이션’ 바닥에 있는 얕은 물웅덩이에 협곡의 경치와 사람들이 데칼코마니처럼 반사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V자 협곡 인생샷이 펼쳐졌다’라고 해야할까. 1996년 만들어진 기요쓰 협곡의 터널은 2000년대 ‘에치고쓰마리 대지의 예술제’의 작품으로 재탄생해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니가타의 명소로 떠올랐다. 니가타현은 예부터 ‘흰 눈, 흰 쌀, 투명한 사케’로 유명한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일본의 명품쌀 고시히카리가 바로 니가타현의 특산품이다. 쌀맛이 좋다보니 쿠보타(久保田), 코시노간바이(越乃寒梅), 핫카이산(八海山) 등 일본 3대 전통주가 모두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고, 100여 개의 양조장이 있다. 명품 쌀은 산 속 계단식 논에서도 재배된다. 도카마치에 있는 ‘호시토게의 계단식 논(星峠の棚田)’엔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논이 경사면에 펼쳐져 있다. 산 속 눈 녹은 물을 먹고 자라는 니가타 쌀은 진주처럼 뽀얀 빛깔과 깊은 풍미로 유명하다. 계단식 논에는 봄에 물이 가득차 있을 때 새벽의 운해를 찍으러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산골의 힘든 농사일은 젊은이들을 도시로 떠나게 했다. 마을엔 노인만 남았고, 인구 감소로 폐교가 늘어났다. 2000년에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 지역(760㎢) 6개 소도시가 쇠락해가는 마을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임스 터렐, 쿠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여하는 ‘에치고츠마리 대지예술제’였다. 논두렁, 호숫가 등에 전시된 현대미술을 보기 위해 1회 때는 16만3000명이 몰려들었고, 6회째인 2015년에는 50만명을 넘었다. 1회 때 예산은 3억8000만 엔. 그러나 경제효과는 128억 엔이나 됐다. 이후 매년 2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3년에 한번씩 트리엔날레가 열리는 행사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13일부터 11월10일까지 총 87일 동안 대지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과 함께 찾아가 본 산골마을 전시장에 20~30대 젊은 관람객들로 가득차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 중심에는 폐교를 활용한 미술관이 있다. 도카마치(十日町)에 있는 ‘그림책과 나무열매 미술관’은 2005년 폐교할 때까지 다녔던 3명의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학교는 결코 문을 닫지 않는다’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타시마 세이조 작가는 이즈반도 해변과 동해에서 수집한 유목과 나무열매 등에 물감을 칠해 학생과 선생님, 요괴와 귀신까지 유머러스하게 재현해놨다. 마쓰노야마(松之山) 지역의 폐교인 구 히가시카와(東川) 초등학교에는 프랑스 작가의 ’마지막 교실(The last Classroom)‘ 작품이 있다.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복도를 걷다보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지만, 관객들은 색다른 공간에서 짜릿한 체험을 즐긴다. 마쓰다이에 있는 ‘노부타이’는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가 설계한 ‘설국농경문화(雪國農耕文化) 센터’. 약 2km의 산에 약 40점의 작품이 산재해 있는 필드뮤지엄이다. 이 곳에는 쿠사마 야요이의 ‘꽃피는 츠마리’가 관람객을 모으고 있고, 계단식 논에 농부들이 계절별로 모내기, 김매기, 수확을 하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은 대지예술제를 상징하는 작품이다.나카고 그린파크는 넓은 잔디밭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의 공간이다. 햇빛이 비치면 물 속에 있는 거울이 프리즘 역할을 하면서 천장에 무지개가 떠오르는 작품도 있다. ‘에치고쓰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MonET)’은 중앙의 수영장 물이 건물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는 구조로, 입구에 투명한 물풍선 작품이 하늘빛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도카마치의 얕은 언덕에는 ‘미인림(美人林·비진바야시)’이 있다. 수령 약 100년 된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숲이 아름다워 연간 10만 명이 찾는 곳이다. 이 곳엔 1920년대 목탄으로 만들기 위해 너도밤나무를 모두 벌채해 민둥산이 됐는데, 연못가에 자연적으로 다시 복원된 숲이다. 줄기 굵기가 가지런하고, 늘씬한 너도밤나무숲은 자연과 마을재생의 상징이다.대지예술제는 곳곳에서 숙박체험도 할 수있다. ‘류곤(Ryugon)’은 에도시대 전통 민가(古民家)를 온천 료칸으로 개조한 곳. 온천 뿐 아니라 ‘로맨틱 유키구니(Yukiguni, 雪國)’라는 폭설지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눈에 띈다. 로비에는 화롯불 앞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있고, 벽에는 눈 올 때 쓰던 도롱이와 설피가 걸려 있다. ‘설국의 아침’ 조식에 나오는 하얀 눈사람을 형상화한 젓가락 받침대는 앙증맞기 그지 없다.●쿠사츠 온천 ’유모미(물마사지)‘ 공연니가타 옆 동네인 군마현의 구사쓰(草津) 온천은 기후현의 ‘게로온천(下呂溫泉)’, 효고현의 ’아리마온천(有馬溫泉)‘과 함께 일본 3대 명천으로 꼽히는 온천이다. 해발 1200여m 고지대에 있는 구사쓰온천에서는 분당 3만2300리터 이상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하루에 드럼통 약 23만개 분량의 온천이 솟아나는 셈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을 한가운데 온천밭이라는 뜻의 ‘유바다케(湯畑)’ 온천이 샘솟고 있다. 강산성(PH 2.05) 온천으로 신경통, 피로회복 등 온천요법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천수의 평균온도가 70℃의 고온으로 찬물을 섞어 식히면 약효가 떨어지기 때문에, 에도시대부터 자연적으로 온천수를 식히는 방법이 발달했다. 우선 마을 중심에는 긴 나무통으로 된 수로를 계단식 논처럼 만들어놓았다. 온천수는 수로를 따라 층층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식혀진다. 각 온천에서도 온천욕하기 좋은 40℃ 내외로 식히기 위해, 배를 노로 젓듯 폭 30cm, 길이 180cm의 적송(赤松) 널빤지로 온천수를 저으며 식히는 ‘유모미(湯もみ, 온천수 마사지)’를 한다. 유바다케 앞에 있는 ‘네쓰노유’에서도 50년전부터 시작된 ‘초이나~초이나~’하는 노동요를 부르며 하는 유모미 공연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여성들이 하지만, 한달에 2번은 J2리그에서 뛰고 있는 ‘자스파쿠사츠(The Spa Kusatsu) 군마‘ 팀 소속 선수들이 온천마을 축구팀을 홍보하기 위한 유모미 공연을 한다. 주민 사카타리에(坂田利恵) 씨는 “처음엔 시어머니와 함께 유모미 공연을 시작했었다”며 “23년 동안 공연을 해오신 마을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저출산 고령화는 우리나라만의 고민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심각한 인구 감소,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일본의 대표적 폭설 지대인 니가타현이다. 한겨울엔 눈이 2∼3m씩 쌓이고, 고된 농사일까지 겹쳐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난 두메산골. 그런데 요즘 이곳이 일본의 30대가 가장 좋아하는 세련된 원풍경으로 각광받고 있다. 20년 전부터 산과 호수, 들판, 논두렁에서 시작된 ‘에치고쓰마리 대지(大地) 예술제’는 한적한 농촌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설국의 대지 예술제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1968년 일본 최초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첫 구절이다. ‘국경의 긴 터널’에서 ‘국경’이란 일반적으로 나라 간의 경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지역 간의 경계란 의미로도 쓴다. 설국의 배경은 바로 니가타현이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1시간 20분. 산맥의 긴 터널을 지나면 니가타현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동해안과 마주 보고 있는 니가타현은 동해를 건너온 습한 구름이 반대편의 높은 에치고(越後)산맥에 막혀 엄청난 양의 폭설을 토해 내는 곳이다. 그런데 한여름에 찾아간 니가타현에는 또 다른 ‘국경의 터널’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도카마치시 기요쓰(清津峡) 협곡에 있는 ‘빛의 터널(Tunnel of Light)’. 750m 어두운 터널을 30분 걸어가자 V자 협곡이 나타났다. 주상절리 바위 사이로 급류가 흐르는 터널의 밑바닥이 반짝거렸다. 터널 끝 전망대인 ‘파노라마 스테이션’ 바닥에 있는 얕은 물웅덩이에 협곡의 경치와 사람들이 데칼코마니처럼 반사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V자 협곡 인생샷이 펼쳐졌다’라고 해야 할까. 1996년 만들어진 기요쓰 협곡의 터널은 2000년대 ‘에치고쓰마리 대지 예술제’의 작품으로 재탄생해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니가타의 명소로 떠올랐다. 니가타현은 예부터 ‘흰 눈, 흰 쌀, 투명한 사케’로 유명한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일본의 명품 쌀 고시히카리가 바로 니가타현의 특산품이다. 쌀맛이 좋다 보니 구보타(久保田), 고시노간바이(越乃寒梅), 핫카이산(八海山) 등 일본 3대 전통주가 모두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고, 100여 개의 양조장이 있다. 명품 쌀은 산속 계단식 논에서도 재배된다. 도카마치에 있는 ‘호시토게의 계단식 논(星峠の棚田)’엔 마치 물고기 비늘처럼 논이 경사면에 펼쳐져 있다. 산속 눈 녹은 물을 먹고 자라는 니가타 쌀은 진주처럼 뽀얀 빛깔과 깊은 풍미로 유명하다. 계단식 논에는 봄에 물이 가득 차 있을 때 새벽의 운해를 찍으러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산골 힘든 농사일은 젊은이들을 도시로 떠나게 했다. 마을엔 노인만 남았고, 인구 감소로 폐교가 늘어났다. 2000년에 에치고쓰마리 지역(760㎢) 6개 소도시가 쇠락해 가는 마을 되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제임스 터렐, 구사마 야요이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여하는 에치고쓰마리 대지 예술제였다. 논두렁, 호숫가 등에 전시된 현대 미술을 보기 위해 1회 때는 16만3000명이 몰려들었고, 6회째인 2015년에는 50만 명을 넘었다. 1회 때 예산은 3억8000만 엔. 그러나 경제 효과는 128억 엔이나 됐다. 이후 매년 2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고, 3년에 한 번씩 트리엔날레가 열리는 행사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지난달 13일부터 11월 10일까지 총 87일 동안 대지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과 함께 찾아가 본 산골마을 전시장이 20, 30대 젊은 관람객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 중심에는 폐교를 활용한 미술관이 있다. 도카마치(十日町)에 있는 ‘그림책과 나무열매 미술관’은 2005년 폐교할 때까지 다녔던 3명의 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 ‘학교는 결코 문을 닫지 않는다’가 설치돼 있다. 다시마 세이조 작가는 이즈반도 해변과 동해에서 수집한 유목과 나무열매 등에 물감을 칠해 학생과 선생님, 요괴와 귀신까지 유머러스하게 재현해 놨다. 마쓰노야마(松之山) 지역의 폐교인 구 히가시카와(東川) 초등학교에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 ‘마지막 교실(The last Classroom)’이 있다.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는 어두운 복도를 걷다보면 으스스한 기분이 들지만, 관객들은 색다른 공간에서 짜릿한 체험을 즐긴다. 마쓰다이에 있는 ‘노부타이’는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가 설계한 ‘설국농경문화(雪國農耕文化) 센터’. 2km의 산자락에 40점가량의 작품이 산재해 있는 필드뮤지엄이다. 이곳에는 구사마 야요이의 ‘꽃피는 쓰마리’가 관람객을 모으고 있고, 계단식 논에 농부들이 계절별로 모내기, 김매기, 수확을 하고 있는 모습의 조각상은 대지예술제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속에 있는 거울이 프리즘 역할을 하면서 천장에 무지개가 떠오르는 작품도 있다. ‘에치고쓰마리 사토야마 현대미술관(MonET)’은 중앙의 수영장 물이 건물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는 구조로, 입구에 투명한 물풍선 작품이 하늘빛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도카마치의 얕은 언덕에는 ‘미인림(美人林·비진바야시)’이 있다. 수령 약 100년 된 너도밤나무가 우거진 숲이 아름다워 연간 10만 명이 찾는 곳이다. 이곳은 1920년대 목탄을 만들기 위해 너도밤나무를 모두 벌채해 민둥산이 됐는데, 연못가에 자연적으로 다시 복원된 숲이다. 줄기 굵기가 가지런하고, 늘씬한 너도밤나무숲은 자연과 마을 재생의 상징이다. 대지예술제는 곳곳에서 숙박 체험도 할 수 있다. ‘류곤(Ryugon)’은 에도시대 전통 민가(古民家)를 온천 료칸으로 개조한 곳. 온천뿐 아니라 ‘로맨틱 유키구니(Yukiguni·雪國)’라는 폭설지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눈에 띈다. 로비에는 화롯불 앞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 있고, 벽에는 눈 올 때 쓰던 도롱이와 설피가 걸려 있다. ‘설국의 아침’ 조식에 나오는 하얀 눈사람을 형상화한 젓가락 받침대는 앙증맞기 그지없다.● 구사쓰 온천 ‘유모미(물 마사지)’ 공연 니가타 옆 동네인 군마현의 구사쓰(草津) 온천은 기후현의 ‘게로(下呂) 온천’, 효고현의 ‘아리마(有馬) 온천’과 함께 일본 3대 명천으로 꼽히는 온천이다. 해발 1200여 m 고지대에 있는 구사쓰 온천에서는 분당 3만2300L 이상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하루에 드럼통 약 23만 개 분량의 온천수가 솟아나는 셈이다.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유황 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을 한가운데 온천밭이라는 뜻의 ‘유바다케(湯畑)’ 온천이 샘솟고 있다. 강산성(PH 2.05) 온천으로 신경통, 피로 해소 등 온천 요법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천수의 평균온도가 70도의 고온으로 찬물을 섞어 식히면 약효가 떨어지기 때문에, 에도 시대부터 자연적으로 온천수를 식히는 방법이 발달했다. 우선 마을 중심에는 긴 나무통으로 된 수로를 계단식 논처럼 만들어 놓았다. 온천수는 수로를 따라 층층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식혀진다. 각 온천에서도 온천욕하기 좋은 40도 내외로 식히기 위해, 배를 노로 젓듯 폭 30cm, 길이 180cm의 적송(赤松) 널빤지로 온천수를 저으며 식히는 ‘유모미(湯もみ·온천수 마사지)’를 한다. 유바다케 앞에 있는 ‘네쓰노유’에서도 50년 전부터 시작된 ‘초이나∼초이나∼’ 하는 노동요를 부르며 하는 유모미 공연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여성들이 하지만, 한 달에 2번은 J2리그에서 뛰고 있는 ‘자스파쿠사쓰(The Spa Kusatsu) 군마’ 팀 소속 선수들이 온천마을 축구팀을 홍보하기 위한 유모미 공연을 한다. 주민 사카타리에(坂田利恵) 씨는 “처음엔 시어머니와 함께 유모미 공연을 시작했었다”며 “23년 동안 공연을 해오신 마을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니가타=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붉은 태양이 바닷 속으로 빠져드는 변산해수욕장. 온 세상을 벌겋게 물들이는 석양의 변산해변에 오렌지색보다 더 어울리는 색깔이 있을까. 변산해수욕장에 ‘제2회 부안무빙 팝업시네마’를 알리는 오렌지빛 포스터가 우뚝섰다. 갈매기가 앉아 있는 포스터는 해풍에도 끄덕없는 철제로 만들어졌다. 포스코스틸리온과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부안무빙을 상징하는 바닷가 조형물이다. 지난해 제1회 부안무빙 팝업시네마에서는 해변의 한쪽에 도예가 이능호 작가의 커다란 몽돌모양의 도예작품 30점이 전시돼 해변을 갤러리로 만들었다. 올해는 도자기가 아닌 철로 새로운 설치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청량한 바다와 붉게 물든 노을, 로맨틱한 영화가 함께하는 ‘제2회 팝업 시네마: 부안무빙’(Pop-Up Cinema: Buan Moving)이 15일~17일 사흘간 전북 부안군 변산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린다. 부안무빙은 국내 최초로 팝업 스토어 개념을 영화제에 도입한 새로운 콘셉트의 영화 축제로, 매해 새로운 테마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정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로맨틱한 경험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이번에 공개된 제 2 회 부안무빙 공식 포스터는 석양 노을을 연상시키는 오렌지 색감의 붓터치로 변산의 넘실대는 바닷물결을 표현하여 ‘팝업 시네마: 부안무빙’의 정체성을 드러낸다.예술총감독을 맡은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London East Asia Film Festival) 집행위원장은 “낭만적인 추억을 만들어 줄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니, 사랑하는 가족·친구·연인·애완 동물과 변산 바다 앞 노을로 달려오시길 희망한다”면서 “이번 행사가 부안의 대표적 영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 영화와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는 글로컬 도시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부안무빙이 선정한 올해의 주제는 ‘사랑’이다. ‘변산 비치 시네마’라는 타이틀로 펼쳐지는 제 2 회 팝업 시네마: 부안무빙에는 ‘사랑’을 테마로 내건 3 편의 영화와 다양한 기획전이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특히, 배우 박정민과 신은수를 비롯해 엄태화, 조근식, 송해성 감독,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등이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석해 특별한 토크로 자리를 빛낸다. 오프닝 행사는 탱고밴드 ‘라벤타나’의 정태호와 재즈보컬 유사랑이 들려주는 영화음악 콘서트로 시작한다.개막작은 강동원·신은수 주연의 판타지 멜로 ‘가려진 시간’(2016)으로 오는 15일 오후 6시 30분 개막식과 함께 상영한다. 상영 후에는 엄태화 감독과 신은수가 무대에 올라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이 모더레이터로 나선다.16일 오후 7시에는 이병헌·수애 주연의 ‘그해 여름’(2006)이 여름 바다를 배경으로 상영된다. 섬세한 연출로 주목받은 조근식 감독이 참석해 이화정 영화 저널리스트와 영화에 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행사 마지막 날에도 풍성한 행사가 기다린다. 17일 오후 3시에는 ‘명장면으로 보는 한국 영화 걸작선’ 필름 토크가 워케이션센터에서 열린다.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 원장과 영화 ‘변산’으로 변산과 인연이 깊은 배우 박정민,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가 자리해 한국 영화의 빛나는 순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박정민이 연출한 단편 영화 ‘반장선거’(2021)도 같은 날 오후 6시 관객을 만난다. 야외 상영 후, 박정민이 무대에 올라 관객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17일 오후 7시 ‘변산 비치 시네마’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한국 대표 멜로로 손꼽히는 ‘파이란’(2001)이다. 주성철 편집장이 모더레이터로 참석해 송해성 감독과 ‘파이란’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이 외에도 2024 부안무빙 ‘변산 비치 시네마’는 포스코스틸리온의 작품 전시와 축하 공연, 부안네컷 등 부대행사가 더해진다. 교통편이 불편한 서울 관객을 위해 개막식과 폐막식 당일, 강남과 부안을 오가는 무료 고속버스도 선착순 예약으로 운행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북 남원에 있는 지리산 뱀사골 계곡은 반야봉에서 산내면 반선마을까지 지리산 북사면을 흘러내리는 총연장 약 14km 골짜기다. 봄엔 철쭉이 피고, 여름엔 짙은 녹음 사이로 삼복더위를 얼어붙게 하는 냉기가 감돈다. 뱀사골 가을 단풍은 피아골 단풍과 쌍벽을 이룬다.● 지리산 뱀사골 신선길 트레킹 뱀사골에는 ‘신선길’이라는 계곡 트레킹 길이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분소에서부터 화개재까지 8.7km 구간이다. 중간 갈림길에서 와운(臥雲)마을 ‘지리산 천년송’까지 왕복해서 짧게 다녀오는 코스(2.5km)도 인기다. 절경을 압축해서 감상하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왜 신선길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1300년 전 반선마을에는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해마다 백중(百中)날 승려를 뽑아 신선바위에서 기도하는 의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면 기도를 한 스님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마을 사람들은 신선이 돼 하늘로 올라갔다고 믿었다. 어느 해 이를 이상히 여긴 한 승려가 기도자로 뽑힌 승려의 옷에 독을 묻혀 놓았다. 이튿날 연못 뱀소 근처에 큰 이무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이후 이 계곡을 이무기(뱀)가 죽은(死) 골짜기라는 뜻으로 뱀사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절반쯤 신선이 됐다는 의미로 계곡 앞마을은 반선(半仙)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선이 될 수 있는 뱀사골 트레킹은 시작부터 1.3km 구간에는 나무 덱으로 만든 무(無)장애 탐방로로 조성돼 노약자나 임산부도 쉽게 걸을 수 있다. 탐방로 중간중간에 계곡으로 내려가 잠깐 발을 담그고 신선놀음을 할 수도 있다. 계곡에는 빨치산들이 전단이나 자료를 등사하던 석실, 멧돼지들이 목욕했다는 연못 돗소,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했다는 요룡대 같은 기암괴석과 에메랄드빛 물이 어우러진 명소가 잇따른다. 화개재와 와운마을 갈림길에서 가파른 산길을 택하면 지리산 천년송이 있는 와운마을로 통한다. 해발 800m에 자리 잡은 1300년 된 마을.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구름도 누워서 간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다. 마을 뒤편 언덕에는 우람한 지리산 천년송이 시원하게 서 있다. 하늘을 향해 꿈틀대며 솟아오르는 자태하며, 천년 세월 두꺼운 용비늘 모양까지. 과연 우리나라 최고 소나무(천연기념물 424호)로 불릴 만하다. 이름은 천년송이지만 실제 수령은 500년 정도라고 한다. 500년이든, 1000년이든 아득한 세월을 지켜온 소나무에 경외감이 느껴진다. 이 천년송은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는데 20m 더 올라가면 할아버지 소나무도 있다. 화려하고 우람한 할머니 소나무와 달리 할아버지 소나무는 ‘S’자 모양의 맵시 있는 몸매를 자랑한다.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정월 10일에 할아버지 소나무 앞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당산제를 지낸다. 두 그루 노송 덕에 와운마을은 신선이 살 만한 이상향으로 소문 났다. 천년송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천년송 가는 길 펜션 & 식당’이 있다. KBS 다큐 ‘지리산 와운골, 아버지의 산’에 나온 공안수 씨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다. 4대째 와운골에 터를 잡은 이 가족은 해발 1500m가 넘는 험준한 지리산을 오르내리면서 송이버섯과 노루궁뎅이버섯을 캐며 살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을 들이켰다. 한여름 무더위가 싹 가셨다. 꼭 찾아가 볼 곳이 또 있다. 폭포다. 우리나라 폭포 대부분은 건폭(乾瀑)으로 봄가을에는 물이 마른다. 비가 많은 한여름엔 물줄기가 장쾌하게 쏟아지는 귀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남원 주천면 덕치리에 있는 구룡계곡에도 약 30m 길이의 구룡폭포가 있다. 오래전부터 남원 소리꾼들이 ‘산공부’를 하던 곳이다. 남원 출신 오지윤 명창은 어릴 적부터 이 폭포 아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를 들으며 목청을 틔웠다고 한다. 구룡폭포를 가려면 주차장에서 나무계단을 약 350m 내려가야 한다. 구룡폭포는 지리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두 갈래 폭포를 이루고, 각 폭포 밑에 자그마한 못을 이뤄 다시 떨어지는 형상이다. 연못에서 용 두 마리가 어울리며 꿈틀거리는 듯하다 하여 ‘교룡담(交龍潭)’이라 불린다. 구룡폭포에서 산공부하는 소리꾼은 만나지 못했으나 시원한 물소리를 들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지리산 자락 숨은 명소 지리산 자락에는 명소가 많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미술 작품뿐 아니라 지리산 산세를 감상하고 고요하게 사색하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북 완주 ‘아원고택’은 전해갑 건축가가 디렉팅한 미술관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갤러리 곳곳에는 잠시 쉬며 ‘숲멍’(숲을 바라보며 잡념을 떨치고 멍하게 있기)을 할 수 있는 통창이 있다. 소나무 숲과 멀리 보이는 지리산 능선 그리고 하늘의 조화가 무척 아름다운 창이다. 지역 출신 작가 작품을 주로 소개하는 이 미술관에선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 초기작 ‘바보 예수’부터 근작인 ‘풍죽’ ‘송화분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술관을 지을 당시 김병종 작가는 미술관이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잘 녹아들면서, 납작 엎드린 듯한 모양새의 ‘겸손한 미술관’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김 작가는 우리나라 산수화, 문인화 전통에 기반을 두고 현대적인 감각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가 최근에 선보인 ‘생명의 노래―풍죽(風竹)’ 앞에 서면 이른 새벽 푸르스름한 대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김 작가는 ‘화첩기행’을 비롯한 많은 저서를 펴내 글 쓰는 화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미술관에는 에세이, 시나리오, 희곡 같은 그의 육필 원고도 전시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전북지사는 올해 ‘강소형 잠재 관광지’로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을 선정했다. 강소형 잠재 관광지는 알려지지 않은 지역 유망 관광지를 선정해서 한국관광공사와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합쳐 육성해 나가는 사업이다. 남원 산내면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실상사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이다.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연봉들이 마치 연꽃잎처럼 실상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실상사는 그 한가운데 꽃밥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일까. 실상사 천왕문 밖 연못에는 하얀색, 분홍색 연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실상사 안으로 들어가 보면 텅 빈 고요와 피안의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 역할을 하는 보광전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보광전 앞 쌍둥이 3층 석탑과 석등은 창건될 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석등 앞에는 작은 돌계단이 놓여 있다. 석등에 불을 켤 때 올라가던 계단이라고 한다. 약사전에는 지리산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철불(약사여래철제좌상·보물 제41호)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실상사는 조선 세조 때인 1468년 원인 모를 큰불이 난 데 이어 정유재란 중에 전소됐다고 한다. 숙종 때인 1680년 중건(重建)되기까지 200년 이상을 폐허가 된 빈터에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철불이다. 그런데 철불의 손만 매끈한 나무로 돼 있어 이상하다. 약사여래철불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양손을 절단했다는 이야기가 구전돼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2013년 3월 철불 보존 처리를 하는 도중 잘린 손이 철불 몸 안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철제 수인(手印)은 현재 약사전 유리상자 속에 전시해 놨고 철불 손은 나무로 복원해 놨다.● 가볼 만한 곳=지리산 운봉 아래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에 있는 ‘지리산 허브밸리’는 남원 자생 허브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농원이다. 허브밸리 바로 옆에는 카페 ‘Atina’가 있다. 카페 옥상에는 그리스 산토리니섬 풍광을 재현한 듯한 비경이 펼쳐진다. 에게해 하늘색 물빛과 흰색 담벼락, 둥근 아치가 이국적이다. 저 멀리 안개 속에 펼쳐진 지리산 연봉은 에게해에 떠 있는 섬 같다. 글·사진 남원=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에어뉴질랜드는 인천-오클랜드 직항 노선의 동계 운항을 오는 10월 28일부터 재개한고 밝혔다.직항 노선은 매주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 주 3회 운항하며, 인천에서 오후 9시 10분에 출발해 오클랜드에 12시 25분에 도착한다.에어뉴질랜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오는 22일부터 9월 2일까지 6주 동안 뉴질랜드 국내 주요 도시 왕복 항공료를 할인 판매할 예정이다.에어뉴질랜드는 일반석 3열을 결합해 평평한 소파 베드로 변형할 수 있는 ‘이코노미석 스카이 카우치 좌석’에 대한 할인도 5일 동안(22~26일) 진행한다.가족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스카이카우치는 일반석 3열을 결합해 평평한 소파 베드로 변형할 수 있는 좌석으로, 이 기간 동안 신규 항공권을 구매한 뒤 2만 원의 추가요금을 내면 이용할 수 있다. 에어뉴질랜드특가 판매도 벌인다. 이달 22일부터 9월 2일까지 6주 동안 뉴질랜드 국내 주요 도시 왕복 항공료를 특가로 구매할 수 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이코노미 최저 102만 원부터, 프리미엄 이코노미 최저 218만 원, 비즈니스석은 최저 373만 원부터 예약할 수 있다.특가 운임은 세금과 유류할증료를 포함한 금액으로, 오클랜드를 비롯한 뉴질랜드 인기 도시 퀸스타운, 크라이스트처치, 웰링턴도 동일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또 19일부터 9월 2일까지 에어뉴질랜드 카카오 채널 친구추가 이벤트에 참여하는 고객 중 추첨을 통해 프리미엄 이코노미 항공권 2매를 제공한다. 에어뉴질랜드 카카오 채널을 추가한 뒤 받는 웰컴 메시지의 링크를 통해 이벤트 참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하면 된다. 에어뉴질랜드 관계자는 “오클랜드 직항 노선의 동계 운항 재개를 100일 앞두고 그동안 직항편을 기다려온 고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뉴질랜드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특가와 프로모션을 준비했다”며 기대를 바랐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이 정착하기 시작해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100년 넘게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의 향기가 아직도 짙게 남아 있다. 분홍색, 노란색 파스텔톤의 바로크풍 건물이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고, 포르투갈의 해산물 요리와 매운 고추, 인도 향신료가 섞인 매케니즈(macanese) 요리가 한국인들의 입맛을 돋군다. ‘동양의 유럽’으로 불리는 마카오는 코로나 이후 대거 오픈한 메가 리조트에 공연장, 전시장,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춰 가족여행과 젊은 세대의 호캉스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 성바오로 성당과 역사지구 마카오의 면적(30㎢)은 서울의 자치구인 송파구(34㎢)보다 작다. 그러나 포르투갈 식민시대부터의 오랜 유적지가 몰려 있는 역사지구를 비롯해 럭셔리 호텔이 새롭게 들어선 코타이 스트립, 한적한 콜로안 섬까지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한 골목길 탐험이 흥미를 자아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25개의 광장과 건축물로 이뤄진 역사지구의 출발점은 성바오로(St.Paul) 성당 유적지다. 계단이 펼쳐진 언덕 위에 바로크 양식 성당의 석조 파사드(전면 부분)가 우뚝 솟은 모습은 유럽의 한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성당의 앞면에 새겨진 조각상에는 창세기와 신약성서 내용 뿐 아니라 ‘귀시유인위악(鬼是誘人爲惡·악마가 사람을 유혹해 죄를 짓게 한다)’ 등의 한자가 적혀 있고, 성모상 주변엔 중국과 일본을 상징하는 모란과 국화 문양도 새겨져 있다. 그런가 하면 성당 옆에는 빨간색 현판이 새겨져 있는 도교사원 ‘나차 사원’이 함께 있고, 성당 앞쪽으로는 멀리 황금색 불꽃모양의 그랜드 리스보아 카지노 호텔이 보인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동서양의 문화, 성스러운 종교와 자본주의가 어우러진 마카오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엔 원래 예수회가 세운 동아시아 최초의 서양식 대학과 마터 데이 성당이 있었다. 동아시아 가톨릭 선교의 중심대학으로 1562년 목조로 지었다가 화재가 나서 1637년에 전면부만 석조로 재건했는데, 1835년 화재로 또 소실돼 현재는 성당의 전면부와 지하실, 일부 벽면과 계단만 남아 있다. 대항해시대 아프리카와 인도를 거쳐 중국에 도착한 포르투갈 상인들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상륙해 조총과 고추를 전하게 된다. 일본은 포르투갈에게 배운 조총을 이용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전래된 고추는 조선인들이 붉은색 배추 김치를 먹게 된 계기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2022년 개봉한 영화 ‘탄생’에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이 마카오로 유학을 왔던 장면이 나온다. 18살 청년이었던 김대건 등 3명의 유학생은 걸어서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중국을 거쳐 1837년 약 7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이 마카오에 도착했을 때 성바오로 대학은 2년 전에 불타 버린 후였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며 기도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대건 일행은 성 바오로 성당에서 멀지 않은 성 안토니오 성당 부설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꽃의 성당’으로 불리는 성 안토니오 성당 내부에는 두루마리를 입은 김대건 신부의 목상이 서 있다. 또한 인근의 카모예스 공원에도 그의 입상이 세워져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성바오로 성당 계단을 내려오면 마카오의 명물인 육포 거리가 이어진다. 길을 걷다보면 가게마다 큼직하게 육포를 썰어서 나눠준다. 상점과 주거 건물이 빼곡이 들어찬 마카오의 골목은 홍콩의 뒷골목 못지 않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다가 마주친 예쁜 골목! 색색의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집들이 있는 골목 끝 담벼락 위로 성 바오로 성당이 보이는 곳이다. 포르투갈어로는 ‘트라베사 다 파이샹(Travessa da Paixao)’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는 ‘연애항(戀愛巷·연애골목)‘으로 불리는 길이다. 1920년대 만들어진 약 50m의 짧은 골목이지만 데이트, 웨딩촬영,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해진 골목이다. 포르투갈어로는 ‘파이샹’(사랑, 격정)은 원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뜻하는 단어였으나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연애골목’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이 곳에서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인생샷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다. 마카오 역사지구는 세나도 광장까지 이어진다. 어묵 골목에서는 1889년에 지어진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로우 카우 저택도 구경할 수 있다. 청회색 벽돌로 지은 이층집 내부에는 서양식 스테인드 글라스와 동양화 문양, 대나무가 심어진 정원 등 동서양이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포르투갈 식민시절 당시 총독 사무실과 시의회가 있던 세나도 광장은 물결무늬 타일이 깔려 있다. 포르투갈 상선이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같은 상품을 싣고 가기 위해 빈 배로 왔는데, 배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고 왔던 돌을 활용해 광장의 바닥을 깔았다고 한다. 성도미니크 성당 옆 2층에 있는 ‘포국생활체험관’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 한결 시원하고 여유롭게 세나도 광장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가족여행과 호캉스의 도시“마카오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에 그냥 잠자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호텔과 시설을 새롭게 오프닝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마리아 헬레나 드 세나 페르난데스 마카오관광청장은 코로나 이후 마카오의 관광전략과 준비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마카오에는 팬데믹 이후 안다즈, 런더너, 래플스,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칼라거펠트, 팔라초 베르사체 등 수많은 호텔들이 오픈했다. 또한 기존 호텔도 ‘초대형 복합리조트(IR)’를 표방해 숙박과 함께 미식, 쇼핑, 엔터테인먼트, 국제회의, 전시 등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여행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이전인 2020년에 마카오 내 호텔은 총 132개였는데, 올해 2월에는 148개로 늘었고 호텔객실도 7000개 가량 늘어났다. 올해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모히건 인스파이어 리조트에서는 천정 LED화면에 대형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마카오의 럭셔리 호텔인 MGM코타이 호텔 로비에서도 매시간 돌고래 쇼가 펼쳐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감을 가졌다. 그런데 돌고래쇼가 시작되자 예상 외로 은박지 풍선으로 된 돌고래 나타나 관람객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관람객들은 어린 아이는 물론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돌고래를 잡으러 쫓아다니며 웃음을 지었다. 자세히 보니 돌고래 지느러미에 자그마한 프로펠러가 달려 있고, 단상 위에는 리모컨으로 조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멀티미디어 영상의 시대에 아날로그 풍선으로 된 ‘돌고래 드론쇼’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로비에는 또한 청나라 시대 자수 카페트, 설탕 조각품을 비롯한 300여 점의 아트 컬렉션이 있어 무료 감상을 할 수 있다. 마카오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버스 야경투어. 한화 약 2만5000원 정도면 2층 버스 지붕 위 좌석에서 3D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압도적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베네시안(Venetian)과 파리지앵(Parisien) 호텔에는 실제 크기의 2분의1 크기로 정교하게 세운 에펠탑과 개선문, 리얄토 다리와 두칼레 궁전이 화려하게 빛난다. 그 맞은편에 지난해 5월 오픈한 런더너(The Londoner) 호텔에는 실제와 똑같은 높이(96m)로 재현된 빅벤을 비롯해 웨스트민스터 궁전(국회의사당)이 황금빛 조명을 발해 유럽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시다발적 야경이 펼쳐진다. 또한 검은색과 붉은색, 서치라이트로 장식된 스튜디오 시티(Studio City) 호텔은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모티브로 한 이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윈팰리스(Wynn Palace) 호텔에서는 15분마다 한번씩 분수쇼 ‘퍼포먼스 레이크’가 펼쳐지는데, 호텔 앞 호수를 가로지르는 ‘스카이 캡 케이블카’(무료)에 탑승하면 공중에 분수쇼를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MZ세대를 겨냥한 엔터테인먼트 공간도 가족 여행객들을 불러모은다. 런더너 호텔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 상품인 ‘해리포터 전시장’이 지난해 오픈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법지팡이를 나눠주고,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에 등록하고 각종 마법을 배우는 게임을 하면서 영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전시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란 20~30대 관람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하는 공간이다. 베네시안 리조트에는 3차원의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팁랩 슈퍼네이처’가 문을 열었는데, 어두운 방에서 마시는 녹차 찻잔 위로 디지털 조명으로 만든 꽃잎과 나비가 날아드는 다도 체험은 특별했다. 1954년부터 마카오의 시내 도로에서 열리는 F3 자동차 경주와 오토바이 경주인 ‘마카오 그랑프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박물관에서는 역대 우승자들의 밀랍인형도 볼 수 있다. 갤럭시 리조트의 안다즈(Andaz) 호텔은 마카오가 기업회의, 컨벤션, 전시를 뜻하는 ‘마이스(MICE) 산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준다. 지난해 개장한 이 호텔에는 4만㎡ 규모 전시와 회의시설을 갖춘 ‘갤럭시 인터내셔널 컨벤션 센터(GICC)’와 1만6000석 규모의 공연장 시설인 ‘갤럭시 아레나(Galaxy Arena)’도 있다. 이 곳에선 지난해 5월 블랙핑크의 아시아 투어가 열렸고, 올해 10월 26-27일에는 여자아이들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미식의 도시 오랜 기간 포르투갈의 교역항이었던 마카오의 독특한 식문화를 ‘매케니즈(Macanese Cuisine)’라고 한다. 매케니즈에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인도, 넓게는 중국, 동남아 등의 다양한 식문화가 포함돼 있다. 리토랄 레스토랑은 대표적인 매케니즈 식당. 조개찜 등 포르투갈식 해산물 요리가 있는 이 곳에는 ‘아프리카 치킨’이라는 이색메뉴도 있다. 마카오에서 웬 아프리카? 포르투갈식 닭구이에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나는 매운 고추에 여러 향신료를 섞은 ‘피리피리 소스’를 사용하는 치킨요리다. 여기엔 인도에서 가져온 코코넛 밀크와 커리 향신료도 들어가기 때문에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이 거쳐갔던 나라의 향기가 모두 담긴 요리인 셈이다. 콜로안 빌리지는 마카오 사람들이 주말에 놀러가는 한적한 교외 분위기 나는 곳이 어촌마을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을 촬영한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성당 앞 광장 노천식당 등 예쁜 카페가 많아 여유있게 산책하기에 좋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으면 당장 ‘콜리단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 같은 분위기다. 이 곳은 또한 마카오의 유명한 간식인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는 원조 가게인 ‘로드 스토우 베이커리와 카페’가 있다. ● 마카오 가는 방법=대한항공이 지난 1일부터 인천~마카오 노선을 첫 취행했다. 대한항공은 이 노선을 주 7회 일정으로 매일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약 3시간 40분. 그간 마카오는 에어마카오(FSC)와 저비용항공사(LCC) 노선만 있었다. 마카오에서 버스를 타고 세계 최장(55km) 해상교량인 강주아오 대교(홍콩~중국 주하이~마카오를 잇는 다리)를 건너면 40분이면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해 홍콩을 관광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마카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인이 정착하기 시작해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100년 넘게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마카오. 파스텔톤 바로크풍 건물이 곳곳에 있고, 동서양 맛이 섞인 마커니즈(macanese·마카오의) 요리가 입맛을 돋운다. 마카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가신 이후 공연장, 전시장,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갖춘 복합 리조트가 대거 확충되면서 이를 즐기는 가족여행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성바오로 성당과 역사지구 마카오 면적(약 30km²)은 서울 송파구(약 34km²)보다 작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부터 있던 25개 광장과 건축물로 구성된 역사지구는 걷기만 해도 흥미로운 골목길 탐험이 펼쳐진다. 대표적 출발점은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 언덕 위에 바로크 양식의 석조 파사드(전면 부분)가 우뚝 솟은 모습은 유럽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파사드에는 기독교 구약성경 창세기와 신약성경 내용뿐 아니라 한자와 모란, 국화, 포르투갈 상선 문양도 새겨져 있다. 성당 옆에는 도교 사원(나차 사원)이 있어 동서양 종교가 혼재하는 마카오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바오로 성당 유적지엔 원래 예수회가 세운 동아시아 최초의 서양식 대학과 마테르 데이 성당이 있었다. 1562년 목조로 지었다가 화재가 나서 1637년 전면부만 석조로 재건했다. 그런데 1835년 화재로 또 소실돼 현재는 전면부와 지하실, 일부 벽면과 계단만 남아 있다. 2022년 개봉한 영화 ‘탄생’에는 한국 최초 천주교 사제 성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로 유학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대건 등 유학생 3명은 1837년 만주와 중국을 거쳐 약 7개월 만에 걸어서 마카오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바오로 성당은 2년 전 불타 버린 후였다. 그들은 인근의 성안토니오 성당 부설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꽃의 성당’으로 불리는 성안토니오 성당 내부와 인근 카몽이스 공원에는 두루마기를 입은 김대건 신부 성상(聖像)이 세워져 있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성바오로 성당 계단을 내려오면 마카오 명물 육포 거리가 이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가게마다 큼직하게 썬 육포를 나눠준다. 그러다가 마주친 예쁜 골목! 색색의 파스텔톤으로 칠한 골목 끝 담벼락 위로 성바오로 성당이 살짝 보인다. 포르투갈어로는 ‘트라베사 다 파이샹’이라고 하는데, 중국어로는 연애항(戀愛巷·연애 골목)으로 불린다. 길이 약 50m의 짧은 골목이지만 데이트와 드라마 촬영으로 유명해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인생 샷’을 찍는 관광객도 많다. 역사지구는 세나두 광장까지 이어진다. 어묵 골목에서는 1889년 지은 중국의 부유한 사업가 루카우 저택도 구경할 수 있다. 청회색 벽돌집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와 대나무가 심긴 정원 등 동서양이 어우러진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시의회가 있던 세나두 광장은 물결무늬 타일이 깔려 있다. 포르투갈 상선이 중국 비단과 도자기 같은 상품을 싣고 가기 위해 빈 배로 올 때 배의 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싣고 왔던 돌로 광장 바닥을 깔았다고 한다. ● 가족여행과 ‘호캉스’ 도시 마카오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안다즈, 런더너, 래플스, 그랜드 리스보아 팰리스, 카를라거펠트, 팔라초 베르사체 같은 새로운 호텔이 많이 문을 열었다. 또 기존 카지노 호텔도 미식, 쇼핑, 엔터테인먼트, 국제회의, 전시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초대형 복합 리조트(IR)로 탈바꿈하고 있다. 실제 팬데믹 이전인 2020년에 132개이던 마카오 호텔은 올 2월에는 148개로 많아졌고 객실도 7000개가량 늘어났다. 올해 인천 영종도에 문을 연 모히건 인스파이어 리조트는 천장 발광다이오드(LED) 화면에 대형 고래가 헤엄치는 영상으로 화제를 모았다. 마카오 MGM코타이 호텔 로비에서도 매시간 돌고래 쇼가 펼쳐진다. 화려한 디지털 영상 대신 은박지로 된 돌고래 풍선에 프로펠러를 달고 사람이 조종하는 ‘돌고래 드론 쇼’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나이 지긋한 사람까지도 동심으로 돌아간 듯 돌고래를 잡으러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웃음을 지었다. 로비에는 자수를 놓은 청나라 시대 카펫을 비롯한 300여 점의 아트 컬렉션이 있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마카오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버스 야경 투어. 2만5000원 정도면 2층버스 지붕 위 좌석에서 3차원(3D)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듯한 압도적인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베니션 호텔과 파리지앵 호텔에는 실제 크기 2분의 1로 정교하게 세운 에펠탑과 개선문, 리알토 다리와 두칼레 궁전이 화려하게 빛난다. 그 맞은편에 지난해 5월 개장한 런더너 호텔에는 실제와 똑같은 높이(96m)로 재현된 빅벤을 비롯해 영국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황금빛 조명을 발한다. 유럽 현지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시다발적 야경이다.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모티브로 한 ‘스튜디오 시티’는 검은색과 붉은색 조명, 푸른색 서치라이트로 이색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윈팰리스 호텔에서는 15분마다 한 번씩 분수 쇼 ‘퍼포먼스 레이크’가 펼쳐진다. 호텔 앞 호수를 가로지르는 ‘스카이캡 케이블카’(무료)에 탑승하면 공중에서 분수 쇼를 내려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런더너 호텔에는 영국 대표적인 문화 상품 ‘해리포터 전시장’이 문을 열었다. 입구에서 나눠 주는 마법지팡이를 받고 호그와트 마법학교 기숙사에 등록한 뒤 각종 마법을 배우는 게임을 하는 몰입형 전시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란 20, 30대 관람객들은 촛불이 떠다니는 대연회장 등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정도로 좋아한다. 베니션 리조트에는 ‘팁랩 슈퍼 네이처’가 문을 열었는데, 디지털 조명으로 만든 꽃잎과 나비가 녹차 찻잔 위로 날아드는 다도 체험은 특별했다. 1954년부터 마카오 시내 도로에서 열리는 F3 자동차 경주와 오토바이 경주인 ‘마카오 그랑프리’ 역사를 한눈에 보여 주는 박물관에서는 역대 우승자들의 밀랍인형도 볼 수 있다. 갤럭시 리조트의 안다즈 호텔은 마카오가 국제회의, 포상 관광, 컨벤션, 전시를 뜻하는 마이스(MICE) 산업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보여 준다. 지난해 개장한 이 호텔에는 전시와 회의 시설을 갖춘 4만 m² 규모의 갤럭시 인터내셔널 컨벤션 센터(GICC)와 1만6000석 규모의 공연장 갤럭시 아레나가 있다. 갤럭시 아레나에선 지난해 5월 블랙핑크 아시아 투어 공연이 열렸고 올해 10월 26, 27일에는 (여자)아이들 공연이 펼쳐진다.● 미식의 도시 마카오의 독특한 마커니즈 요리에는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인도, 넓게는 중국, 동남아의 다양한 식문화가 포함돼 있다. 마커니즈 전문 식당 ‘리토랄 레스토랑’에서는 ‘아프리카 치킨’이라는 이색 메뉴가 있다. 포르투갈식 닭구이에 모잠비크에서 나는 매운 피리피리 고추와 인도 코코넛 밀크 그리고 커리 향신료를 넣은 요리다. 대항해시대 포르투갈이 거쳐 간 나라의 향기가 모두 담긴 셈이다. 콜로아느 빌리지는 한적한 교외 분위기가 나는 어촌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둑들’을 촬영한 성프란시스코 사비에르 성당 앞 광장 노천식당을 비롯해 예쁜 카페와 음식점이 많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으면 당장 ‘콜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마카오의 유명한 간식 에그타르트를 맛볼 수 있는 원조 가게 ‘로드 스토 베이커리와 카페’가 있다.● 마카오 가는 법=대한항공이 1일부터 인천∼마카오 노선(주 7회·매일 한 차례)을 취항했다. 비행시간은 약 3시간 40분. 그동안은 저비용항공사(LCC)만 운항했다. 마카오에서 버스를 타고 세계 최장(55km) 해상 교량인 강주아오 대교(홍콩∼중국 주하이∼마카오)를 건너면 40분 만에 홍콩에 도착해 관광한 뒤 홍콩국제공항에서 돌아올 수도 있다. 글·사진 마카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최대 도시 로스앤젤레스(LA)는 박찬호, 류현진이 뛰었던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와 한인타운으로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 ‘라라랜드’의 감동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LA에선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2027년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 슈퍼볼, 2028년 올림픽 같은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가 잇따라 열린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세계 엔터테인먼트 수도이자 미술관과 박물관의 도시 LA를 찾아가 보았다.● 꿈꾸는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는 2016년에 개봉했지만 LA를 찾는 사람에겐 영원한 현재다. 누구나 스타가 되기를 꿈꾸는 ‘별들의 도시(City of Star)’에서 아련한 옛사랑을 되새길 수 있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LA에서 라라랜드 속 배경을 찾아가는 첫 번째 코스는 허모사 비치다. LA 도심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인 이 해변은 해 질 녘 하늘이 분홍빛과 보랏빛으로 물들 때 찾아야 한다. 스페인어로 허모사는 ‘아름답다’라는 뜻. 해변에서 바다로 길쭉하게 뻗은 잔교(棧橋)를 걸으며 남자 주인공 서배스천(라이언 고슬링)이 노래 ‘City of Star’를 부른다. 해변에서 벗어나면 바로 앞에 ‘더 라이트하우스’ 카페가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 서배스천이 배우 지망생 미아(에마 스톤)와 첫 데이트를 한 곳이다. 서배스천은 미아에게 재즈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 하죠. 저 친구들을 보세요. 방금 곡을 가로채서 멋대로 가지고 놀잖아요. 매번 새로워요. 매일 밤이 초연이에요.” 1940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전설적 뮤지션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도 연주했을 만큼 유명한 재즈클럽. 지금도 매일 밤 재즈 피아노와 밴드 공연이 펼쳐진다. 음악을 들으며 바에서 칵테일이나 맥주 한잔하기에 좋다. 다음 발걸음은 두 사람이 탭댄스를 추던 언덕이다. LA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와 캐시스 코너가 있다. 1935년 개관한 그리피스 천문대에는 테슬라 코일, 태양계 행성 모형을 비롯해 천문학 등에 관한 다양한 전시품이 있다. 천문대 앞에는 배우 제임스 딘(1931∼1955) 동상도 서 있다. 그가 주연한 영화 ‘이유없는 반항’(1955년)에도 이곳에서 촬영한 장면이 나온다. 커다란 ‘할리우드(Hollywood) 사인’이 세워져 있는 산 너머로 주홍빛 노을이 검붉게 짙어질 즈음, LA 다운타운의 쭉쭉 뻗은 도로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진다. LA가 별들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노을을 배경으로 서배스천과 미아가 노란색 드레스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탭댄스를 춘 곳은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약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있는 캐시스 코너다. 둘은 그리피스 천문대 ‘푸코의 진자’ 앞에서도, 천체투영관에서도 하늘로 떠올라 별 속에서 춤춘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만난 두 사람. 사랑에 빠지면서도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이 영화가 다른 멜로영화와 달랐던 점은 엔딩 장면.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꿈을 향해 가고 결국 성공한다. 그러나 사랑은 깨져버린 후다. 사랑하면서도 꿈을 포기할 수 없는, 21세기 젊은이의 사랑법이다. 밤하늘 별처럼 빛나는 도심의 무수한 불빛을 바라보며 영화 속 불안한 미래의 젊은 연인들 대사를 떠올린다. “우리 지금 어디쯤 있는 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 올림픽 3번 치르는 경기장 LA 시내 엑스포지션 공원에 있는 LA 메모리얼 콜리시엄은 세계 최초로 올림픽 개막식이 3번이나 열리게 되는 경기장이다. 1932년과 1984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쓰였고 2028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도 쓰일 예정이다. 올 5월 3∼7일 열린 미국 최대 여행박람회 ‘2023 IPW’ 개막 파티도 여기서 열렸다. 저녁이 되면 메모리얼 콜리시엄은 분홍빛과 푸른빛 파스텔톤 조명으로 빛난다. 1923년 고대 로마 콜로세움을 본떠 디자인한 이 경기장 입구 기둥에는 실제로 콜로세움에서 가져온 돌이 전시돼 있다. 항공사 유나이티드항공(UA)이 후원을 하고 있어 ‘UA 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메모리얼 콜리시엄에서 운동경기만 열린 것은 아니다. 1960년 7월 존 F 케네디가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했고, 1990년 6월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반대하며 27년간 수감됐다 풀려난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 투사 넬슨 만델라가 찾았다. 1987년 9월에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세계적 명사들 얼굴은 동판으로 만들어져 입구에 걸려 있다. IPW2024 개막 파티에서는 경기장 주변에 유럽 한국 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됐는데 ‘코리안 바비큐’가 단연 인기였다. 커다란 그릴을 걸어놓고 고추장 양념을 한 고기를 구워줬다. ‘Bulgogi(불고기)’ ‘Samgyepsal Gui(삼겹살 구이)’ ‘Banchan(반찬)’이라고 쓴 간판 앞에 밤늦도록 몰려든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을 보고 한식의 인기를 실감하게 됐다. LA는 약 300억 달러(약 41조 원)를 들여 LA국제공항(LAX)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 호텔 객실을 크게 늘리고 새로운 미술관 및 전시장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내년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조지 루커스 감독을 기리는 ‘루커스 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박물관과 미술관 도시 미 동부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면 서부에는 LA 게티 센터가 대표적인 미술관이다. 게티 센터는 미국 최대 석유 재벌이던 진 폴 게티(1892∼1976)가 평생 모은 미술품을 전시한다. 샌타모니카산 해발 270m 지점에 있는 게티 센터는 주차장에서 노면전차 트램을 타고 5분 정도 오르면 그 위용을 드러낸다.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설계한 것으로 웅장한 요새를 방불케 한다. 무료로 개방되는 게티 센터는 한 해 2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게티 센터에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를 비롯해 모네, 마네, 고야를 비롯한 세계적 화가의 명작이 즐비하다. 이달 21일까지는 카미유 클로델(1864∼1943) 특별전이 열린다. 유명한 조각가 오퀴스트 로댕의 조수이자 모델, 연인이던 클로델의 ‘왈츠’ ‘샤쿤달라’ 같은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영화 ‘카미유 클로델’(1988년)에서 로댕과의 스캔들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작품 ‘성숙의 시기(중년)’는 시간과 죽음, 노화와 청춘을 생각케 한다. 누군가 먼 곳으로 데려가려는 늙어가는 남자를 벌거벗은 젊은 여인이 두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고 하는 이 작품은 감동적이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또 다른 정원 속 미술관 게티 빌라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에트루리아 유물이 소장돼 있다. 할리우드에 문을 연 아카데미영화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매년 아카데미영화제를 주최하는 영화예술아카데미(AMPAS)가 2021년 문을 연 최신 박물관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유리돔 천장 아래 5층 테라스에 서면 할리우드 언덕이 바라다보이는 탁트인 전망이 기막히다. 박물관에는 영화 ‘대부’(1972년) 촬영 세트, ‘죠스’(1975년)의 상어 같은 흥미로운 전시가 펼쳐진다. 아카데미영화제 시상식 무대를 재현한 공간에서는 2020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카데미영화박물관 옆 LA카운티미술관(LACMA) 앞마당에는 조형물 ‘어반 라이트(Urban Light·도시의 빛)’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글렌데일과 애너하임을 비롯해 남부 캘리포니아 거리에 있던 실제 가로등 202개를 복원해 숲처럼 꾸며 놓은 크리스 버든의 작품이다. 야자수 사이로 클래식한 가로등들이 밤거리를 따뜻하게 밝혀준다. 글·사진 로스앤젤레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하는 과정이 노동이고,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지를 자르고, 붙이고 하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저는 의식(儀式)이라고 말합니다. 노동으로 의식을 진행하면서, 명상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서정민 작가(63·사진) 작품을 사진으로만 봤다면 단순한 추상 회화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눈으로 그의 작품을 직접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디지털 시대에 손끝으로 전달되는 아날로그식 노동과 땀의 흔적이 마음을 뒤흔든다. 미국 뉴욕에서 ‘한지(韓紙) 콜라주’ 작품 전시를 하는 등 해외에서 각광받는 서 작가. 최근 경기 남양주 서호미술관과 전북 전주 교동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물감을 재료로 하는 평면 회화를 버리고, 한지 토막을 활용한 입체적 추상 작품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서예가들이 습작한 서지(書紙)를 수집한 뒤, 고유의 두루마리 기법을 응용해 한지를 말고 자르고, 붙이고, 쪼개는 행위를 반복해 한지 토막을 만든다. 이런 종이 뭉치 수천 개를 콜라주 기법으로 수없이 이어 붙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다시 조각칼로 깎고 덜어 낸다. 한 작품을 완성하려면 5, 6개월간 10여 단계 공정을 거쳐야 하는 노동의 결과물이다. “한지는 섬유질이 들어 있어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종이입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갈아 만든 나무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1000년을 가지요. 특히 한지에 쓴 글씨는 필법과 운율이 기운생동(氣韻生動·천지 만물이 지니는 생생한 느낌)을 자아내고 소통을 상징합니다.” 경기 파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 선반에는 서예가들이 연습한 서지가 쌓여 있다. 또 자신이 직접 고안하고 만든 목공기계들이 가득해 목수의 작업실을 방불케 한다. 그의 작품 화두는 ‘선’이다. 그는 글씨가 쓰인 한지를 먹빛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로 재탄생시킨다. 그에게 선은 불교 수행을 뜻하는 선(禪)으로, 또는 청나라 화가 석도(石濤·1641∼1720)의 ‘일획론(一劃論)’에서 한 번 그음을 의미하는 선(線)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작품 ‘선(Line) 39’는 무수히 많은 별이 궤도를 돌고 있는 선의 궤적처럼 보인다.검은색 둥근 원 가운데에는 한 줄기 흰색 물감이 물방울처럼 떨어진다. “태초에 우주가 시작될 때 지구는 불덩어리였다고 합니다. 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 내리는 한 줄기 빛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하죠. 우리 회화에서 근원점이 되는 빛줄기가 무엇인지, 현대 미술의 길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노동으로 시작된 명상과 수행”서정민 작가의 작품을 사진으로만 보았다면 단순한 추상회화로 봤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그의 작품을 보게 되는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가 작가노트에 쓴 ‘예술은 노동’이라는 말이 실감나기 때문이다. ‘감히 신성한 예술을 땀냄새 나는 노동에 비유하다니…’ 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싹 사라진다. 디지털 시대라서 그럴까. 손끝으로 전달되는 아날로그식 노동과 땀의 흔적이 마음을 뒤흔든다. 지난해 뉴욕에서 ‘한지 콜라주’ 작품 전시를 하는 등 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서정민(63) 작가의 파주에 있는 작업실을 찾았다. 그는 7월7일까지 남양주 서호미술관 본전시장 및 서호서숙 한옥 별관에서 개인전 ‘선과 선을 잇는 사유의 여백-존재의 유속’을 열고 있다. 서양화 유화를 전공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물감을 재료로 하는 평면 회화를 버렸다. 그리고 동서양 회화의 기본인 선 긋기에서 다시 출발했다. 연필과 칼, 쇠 등 수많은 도구로 선을 그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한지였다. 한지를 감는 작업을 하다가 선(線)을 발견했다. 그는 서예가들의 습작 서지를 수집한 뒤, 우리 고유의 두루마리 기법을 응용해 한지를 말고 자르고, 붙이고, 쪼개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한지 토막’들로 입체적인 작품을 만들어낸다. 한지 토막들의 단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지의 글들은 형상이 바뀌어 먹빛을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만 남게 된다. ‘글’이 ‘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 조각들을 콜라주 기법으로 화면 위에 쌓고 붙인다. 그리고 다시 조각칼로 깎아내고 덜어낸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5~6개월간 총 10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노동의 결과물’이다.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기 전, 창고에 먼저 들어가보았다. 창고 한 가득 쌓여 있는 종이냄새가 밀려왔다. 선반 위에는 서예가들이 연습하면서 먹물로 쓴 글씨가 선명한 ‘서지(書紙)’가 쌓여 있었다. “먹으로 글씨를 쓴 한지는 쭈글쭈글, 울퉁불퉁해집니다. 서예가들은 보통 연습한 종이를 손으로 구기기도 하고, 접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의 서지는 한 장 한 장 펴서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고, 그늘에 말립니다. 빨래집게로 고정시켜 줄에 걸고 선풍기를 틀어 놓기도 하죠. 그러면 글씨를 쓴 화선지가 다시 평평하게 펴집니다.”그는 이렇게 말린 서지를 2cm 정도 넓이로 칼로 잘게 자른다. 그리고 두루마리처럼 둥그렇게 말아간다. 원은 점점 커지고 보름달 모양이 된다. 100호, 200호짜리 캔버스에 가득찬 크기가 된다. 빽빽하게 붙여진 화선지는 어느덧 다시 나무처럼 딱딱해진다. 그 안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지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충분히 딱딱해진 한지 위에 날카로운 조각칼로 무늬를 새긴다. 그의 작품은 둥그런 원으로 표현돼 있지만, 먹물로 쓴 글씨가 안에 있기 때문인지 무수히 많은 별들이 궤도를 돌고 있는 듯한 선의 궤적만 보인다. 검은색 둥근 원의 가운데에는 한줄기 흰색물감이 물방울처럼 떨어진다. 그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기껏 한지를 말아서 둥글게 만든 보름달 모양의 원을 칼로 반으로 잘라냈다. 마치 보름달이 기울어 반달이 된 듯한 모습이다. 서 작가는 “둥그렇게 말린 종이는 우주가 원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이는 것은 반원이지만, 태양계든, 지구든, 자기장이든 모두 둥그렇게 돌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서 작가의 설명에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은, 지난달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근처에 있는 그레이트오션 로드에 갔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비가 간간히 뿌리는 날씨에 헬리콥터를 탔는데 무수히 많은 무지개를 보게 됐다.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무지개가 둥그런 원의 모습이 아닌가.무지개는 원래 둥그런 원 모양으로 생기는 것인데, 사람이 지평선에 있다보니 반원만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완벽하게 둥그렇게 생기는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2층 작업실로 올라가자 둥글게 말아놓은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벌집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자신이 직접 고안하고, 만들어낸 목공 기계들이 가득해 마치 목수의 작업실을 방불케 한다. 종이를 압축해 책을 만들어내는 수제 고서 작업실에서나 볼 수 있는 선반 기계도 있다. 그는 두꺼운 종이도 쉽게 자를 수 있도록 커다란 쇳덩이에 커터칼을 붙였다. 또한 조각칼을 연결한 쇠막대 끝에는 손으로 잘 쥐고 힘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가죽 야구공이나 지팡이 손잡이를 붙어놓기도 했다. 하나하나가 작가가 직접 발명해낸 작업도구다.그는 글씨가 쓰여진 화선지를 돌돌말아 압축한 뒤, 칼로 사선으로 잘라내 작은 총알을 만들어낸다. 이런 뾰족뾰족하거나, 네모형태로 깎아난 종이뭉치 수천개를 접착제로 수없이 이어붙여 추상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글씨를 쓴 화선지를 말아서 작업을 하는 이유는.“울퉁불퉁하게 튀어나와 있는 종이, 빽빽하게 말려 있는 종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언어가 새겨져 있습니다. 글이라는 매체는 오래전부터 소통의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인쇄된 글씨보다 직접 쓴 글씨는 필법과 운율, 리듬과 필력이 기운생동(氣韻生動)을 자아냅니다. 화면 위에 부조처럼 쌓인 글과 글들의 집합체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움직이는 듯한 형상이 됩나. 인간과 자연이 소통으로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하죠.” ― 한 작품 하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처음엔 약 2m 짜리 큰 작품하는데 8개월 쯤 걸렸어요. 지금은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 완성하는 과정이 바로 노동이고,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지를 자르고, 붙이고하는 작업 하나하나의 과정을 저는 ‘의식(儀式)’이라고 말합니다. 노동으로 의식을 진행하면서, 명상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현대 서양화가 중에서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마크 로스코나 잭슨 폴록도 명상을 이야기합니다.“ ―한지를 재료로 하게 된 이유는.“현대 회화에서 새롭게 구축해야할 지평이 어떤 것인가 고민하게 됐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탐구를 하던 중, 우리의 정서와 민족성이 담긴 한지(韓紙)라는 재료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한지에는 섬유질이 들어 있어서 가장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종이입니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을 갈아서, 물에 띄운 것을 건져내 붙여서 만듭니다. 특별하게 가공을 한 것이 아니라, 나무 그 자체입니다. 한지는 천년을 갑니다. 서양물감은 150~200년 정도면 부식이 될 수 밖에 없어 복원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먹은 식물성이라 더 오래갑니다. 먹은 나무 껍질을 태운 재에 아교를 섞은 것입니다. 한지에 아교로 딱 붙어 있으니까 먹물은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아요. 한지를 빽빽하게 말아서 만든 제 작품은 거의 나무 수준으로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조각칼로 깎아낼 수도 있어요. 흙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로 됐다가, 다시 또 나무로 환원되는 순환과정을 따라가는 게 제 작품입니다.“― 글씨 쓴 한지로 작업하는데, 정작 그림 속에서는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제가 하는 작업은 글씨를 모으는 과정입니다. 직접 글을 쓴 한지는 기운이 담겨 있어요. 인쇄된 종이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나 제 작품에서는 글씨는 보이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회화하고 서예하고 다른 점입니다. 글씨는 본질입니다. 본질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죠. 저는 외형적인 이미지만 구축한 것입니다. 고전시대 회화는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줬지만, 현대 회화는 본질적인 내용,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숨깁니다. 제 작품 속에 글씨는 안보여도, 그 기운은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입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고생하는 노동을 할 필요도 없지요. 조선시대 선비들이 상소문을 쓸 때 글을 쓴 다음에 접고, 밀봉합니다. 이걸 전달한 사람은 무슨 글을 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상소문은 임금만 보는 것이지, 아무나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밀봉한 문서라 읽을 수는 없지만, 상소문을 갖고 가는 사람은 이게 글이라는 것은 알지요. 제 작품은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겁니다.“― 검은색에 흰 빛줄기가 내리는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인가요. “ 태초에 우주가 시작될 때 지구는 불덩어리였다고 합니다. 서서히 식으면서 지구가 만들어진거죠. 모든 것이 타버린 우주 덩어리에서도, 뭔가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제 검은색 작품은 까맣게 잿더미가 된 우주 덩어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 잿더미 속에서 내리는 한줄기 빛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나도 우리 회화에서 근원점을 찾아보자. 첫 빛줄기가 무엇었는지 찾아보자. 우리 회화에서의 정체성에서 현대 미술의 길을 찾아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그의 작품의 화두는 ‘선‘이다. 그는 노동으로 서체를 변화시켜, 먹빛을 머금은 가느다란 선들로 만들어낸다. 그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선을 불교의 수행적 의미를 가진 ‘선(禪)’으로, 또는 석도의 ‘일획론(一劃論)’에서 ‘한번 그음’을 의미하는 ‘선(線)’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 명말 청초의 화가 석도(石濤, 1642~1707)는 ‘화어록(畵語錄)’에서 예술의 창의성에 대해 논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은 한번 긋는 선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일획론’이죠. 우주도 한 선이 그어지면서 시작됐다는 설명입니다. 내가 한번 긋지 않으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선을 그을 때 보통은 연필로 긋는데, 저는 칼로 긋습니다. 연필로 선을 그으면 의도가 담기는 반면, 칼로 그을 때는 칼이 가는 그대로 선이 나옵니다. 제가 칼을 따라가는 거지, 칼이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거든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겁니다. 모든 것이 한번 금을 긋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그냥 긋는 게 아니라 수행하듯이 그어야 합니다. 선과 선이 만나면, 큰 획과 흐름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석도는 창의성이란 과거의 법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내 법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내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태초부터 법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 법에 얽매이니까 그 틀에 맞춰 항상 맞춰 사니까, 내 법을 내가 만들어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서지를 붙여나간 후에 다시 깎고, 파내는 이유는.“깎는 것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쭉 쌓아만 왔습니다. 덜어내게 된 지는 몇 년 안됐습니다. 그동안 충분히 쌓아봤으니, 이제는 덜어 보겠다는 겁니다. 내가 어디까지 덜어낼 수 있을까. 비우고, 덜어내는 과정들의 연속입니다. 단순히 깎아내는 게 아니라 색깔도 비워냅니다. 그동안 많이 썼던 색깔들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고 들어내서, 내 색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으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5년, 10년, 60년과 같은 주기로 삶과 예술에 변화를 줍니다. 마지막으로 비울 때 무엇이 보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거죠. 그래서 선 수행으로 작업을 하고, 노동으로 땀을 흘리면서 비워내는 작업을 합니다.“―깎아낸 모양이 나뭇결같기도 하고, 물결 같기도 합니다.“네, 한지는 나무로 시작했잖아요. 종이의 본질을 나무입니다. 나무를 깎는 것이나, 종이를 깎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깎을 때 여러가지 실험을 해봤습니다. 처음엔 대패로도 밀어보고, 칼로도 깎아봤어요. 조각도가 제일 낳은 것 같아요. 조각도도 둥근칼, 세모칼, 편칼 등 다양합니다. 칼날에 따라 느낌이 또 달라지지요. 깎아내고 비워내는 방법도 부드럽게 할 것인가, 날카롭게 할 것인가, 거칠게 할 것인가. 뭘 표현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전엔 평면 회화와 조각의 영역이 나눠졌는데, 이제는 그 경계가 다 무너졌습니다. 석도는 ‘나의 법은 법이기도 하고, 법이 아니기도 하다’고 했어요. 법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뜻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우리 생활의 편리와 지식추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상상조차 어려울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AI가 만든 가짜 영상은 각종 범죄 행위에 이용되고, 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한 가짜뉴스는 디지털 세상에서 공론장의 역할과 기능을 붕괴시킬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미디어 패러다임과 윤리’를 주제로 한 제24회 가톨릭포럼이 27일 오후 2시반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서울대교구 매스컴위원회가 주최하고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가톨릭 포럼에서는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와 미래 미디어 산업의 전망을 살펴본다. 또한 가톨릭 교회의 관점에서 AI 기술의 윤리적 측면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논의할 예정이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재봉 성균관대 부총장의 ‘AI 대변혁, 그 혁신적 패러다임 변화’ △오세욱 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의 ‘AI와 미디어의 랑데부-현황과 미래’ △강정수 블루닷 AI 연구센터장의 ‘AI가 바꿀 미디어 세상…축복인가 재앙인가’를 주제로 한 발표가 진행된다. 토론에는 서강대 메타버스 대학원장 현대원 교수, 성바오로수도회 양상위원장 한창현 신부가 패털로 참여하며, 사회는 양영은 KBS 앵커가 맡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