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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법보종찰 해인사(주지 혜일 스님)가 150여 년 만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의 직접 인경(印經)에 나섰다. 인경은 인쇄경(印刷經)의 준말로 경판에 먹을 입혀 한지에 인쇄하는 전통 기술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연구원(연구원장 경암 스님)에 따르면 팔만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 간행된 이후 여러 차례 인경돼 전국 사찰 등에 봉안됐다. 하지만 많은 인경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1383년 본(고려 우왕 9년 인경·일본 교토 오타니대 소장)’ ‘1458년 본(조선 세조)’ ‘1865년 본(해인사 인경)’ ‘1899년 본’ ‘1915년 본’ ‘1968년 본’ 등 6종만 남아있다. 이 중 국가나 왕실의 후원 없이 해인사가 직접 인경한 것은 159년 전인 고종 2년 해명장웅 스님 주도로 간행한 ‘1865년 본’뿐이다. 그나마 6종 모두 일부 경전이 없거나, 경전 중 권 또는 장이 없는 등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없는 상태다. 인경이 중요한 것은 경판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 하지만 팔만대장경 인경은 비용과 인력, 기술 등에서 막대한 공력이 필요한 대불사다. 연구원은 “팔만대장경 인경은 현대의 일반 종이가 아닌 특수제작한 한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지 값만 20억여 원이 넘게 드는 대불사”라며 “이 때문에 고려, 조선 시대에 인경을 해도 대량으로 만들기 힘들었고, 왕실이 후원한‘세조 본’도 50질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인경에 필요한 인쇄술을 가르치고 마렵(馬鬣) 등 인경 도구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마렵은 조선 시대 사용한 말갈기로 만든 인쇄용 솔로, 먹을 바른 경판에 종이를 올려놓고 먹이 묻어나도록 문지르는 도구다. 연구원은 “경판 인경 작업은 대부분 스님들이 맡았는데, 현대에 들어 새로운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전통 방식의 인경 기술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150여 년 만의 해인사 직접 인경을 위해 사찰 내에 인경 학교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 조성과 인경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뤄져 왔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 지금 팔만대장경 인경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기원할 것”이라고 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찌 ‘때로는’일 뿐일까. 내가 잘났건 못났건, 성격이 좋든 나쁘든, 돈을 잘 벌든 못 벌든 아무런 상관없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를 보면 말이다. 일도 잘 안 풀리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한없이 우울할 때 반려동물을 껴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어느 틈엔가 ‘애완동물’이란 말 대신 ‘반려동물’이 완전히 자리 잡은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지금처럼 반려동물 1500만 시대는 아니지만 수백 년 전 조상들도 개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국문학 교수인 저자가 옛 선인들의 저작을 통해 옛사람들의 개에 관한 생각을 들여다봤다. 개의 품성을 빗대 인간을 꾸짖은 대목이 많지만, 오늘날 우리가 반려동물을 대할 때 느끼는 감정도 상당수. 저자는 반려동물이란 개념이 아직 없었고, 또 글을 남길 수 있는 지식층이 소수였음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개를 단순한 동물로 치부하지 않고 정과 사랑을 공유하는 대상으로 여겼을 거라고 말한다. ‘경성 진고개 불복장리에 눈먼 아이가 있었는데, 부모가 모두 역병에 걸려 죽고 아이만 흰 개 한 마리와 같이 살았다. 아이가 개 꼬리를 잡고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밥을 주었는데 개는 먼저 혀를 대지 않았다. 아이가 목마르다고 하면 개가 인도하여 우물에 가서 물을 마시게 하고 다시 인도하여 돌아왔다.’(5장 ‘눈먼 아이의 반려견’ 중) 고려사에 소개된 작자 미상의 글에 나오는 이 개는 마치 지금의 장애인 안내견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자신은 개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보다 나은 개를 위해 한 권의 책은 남길 필요는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사람답지 못한 처신이 없는지 돌아보길 권한다. 그 옛날 선조들이 글을 남긴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개를 대했을까’ 하는 호기심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갈등 조정자가 돼야 할 교회가 오히려 조장자, 유발자가 되면 되겠습니까.” 5일 경기 고양 드림하우스에서 만난 ‘나부터 캠페인’ 대표 류영모 목사(전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한소망교회 담임목사)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나부터’ 국민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먼저 이 말부터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이념, 지역, 사회, 세대, 성별 등으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나부터 캠페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2017년 한국 교회의 캠페인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초기 준비 부족과 코로나19 등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다가 올해 류 목사가 대표로 취임하면서 두 차례의 세미나를 열며 새출발을 시작했다. 류 목사는 “남에게만 자성을 요구한다면 그건 ‘너부터 캠페인’”이라며 “국민 운동을 제안한 교계가 먼저 자성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했다. 캠페인에는 이영훈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대표총회장, 손달익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 총회장,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 전 총회장,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 배광식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 총회장 등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류 목사는 “한국 교회가 으리으리한 교회와 수십, 수백만 신도를 추구하는 과거 성장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종교 시대에 신규 유입은 물론이고,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신자’(‘안나가’ 신자란 뜻의 조어)가 급증하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성장 패러다임의 문제 중 하나는 이것이 세 과시로 이어져 또 하나의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 “주장을 대규모 집회란 세 과시로 표현하면 또 다른 갈등만 낳는다고 봐요. 집회 참석자들이 반대편을 마귀로 몰면 반대편도 마찬가지겠지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갈라치기의 장이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교회가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와 공생하고, 교단은 지역 정치 성향에 편승하며, 교회 세습 등으로 오히려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현실도 안타까워했다. 류 목사는 “현실적인 문제, 또는 자신들의 성향 때문에 교회가 정권과 결탁하는 것은 타락”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판할 때 비판하지 못하면 죽은 교회가 된다”고 말했다. 12월 은퇴를 앞둔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목사인 사위에게 물려주지 않고 위원회를 구성해 20여 명의 후보를 추린 뒤 논의와 투표를 거쳐 지난해 3월 일찌감치 후임을 정했다. 류 목사는 “우리 사회에는 교회라면 일반 기업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고, 저는 교회가 설립자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캠페인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과거 ‘내 탓이오’ 운동처럼 반짝하고 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교회가 무슨 능력이 있어 그 많은 사회적 갈등을 다 치료하고 감당하겠습니까. 하지만 교회와 목사는 소리칠 힘은 있지요.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책임 있는 집단이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면 메시지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그 소리에 힘이 실리려면 우리 목자들부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되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갈등 조정자가 돼야 할 교회가 오히려 조장자, 유발자가 되면 되겠습니까.” 5일 경기 고양 드림하우스에서 만난 ‘나부터 캠페인’ 대표 류영모 목사(전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한소망교회 담임목사)는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나부터’ 국민 운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먼저 이 말부터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이념, 지역, 사회, 세대, 성별 등으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 ‘나부터 캠페인’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2017년 한국 교회의 캠페인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초기 준비 부족과 코로나19 등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다가 올해 류 목사가 대표로 취임하면서 두 차례의 세미나를 열며 새출발을 시작했다. 류 목사는 “남에게만 자성을 요구한다면 그건 ‘너부터 캠페인’”이라며 “국민 운동을 제안한 교계가 먼저 자성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라고 했다. 캠페인에는 이영훈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대표총회장, 손달익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전 총회장,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 전 총회장,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 배광식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 총회장 등 대표적인 교계 지도자들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류 목사는 “한국 교회가 으리으리한 교회와 수십, 수백만 신도를 추구하는 과거 성장 패러다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종교 시대에 신규 유입은 물론이고,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신자(안나가 신자란 뜻의 조어)’가 급증하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성장 패러다임의 문제 중 하나는 이것이 세 과시로 이어져 또 하나의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 “주장을 대규모 집회란 세 과시로 표현하면 또 다른 갈등만 낳는다고 봐요. 집회 참석자들이 반대편을 마귀로 몰면 반대편도 마찬가지겠지요.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갈라치기의 장이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교회가 이해관계 때문에 정치와 공생하고, 교단은 지역 정치 성향에 편승하며, 교회 세습 등으로 오히려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현실도 안타까워했다. 류 목사는 “현실적인, 또는 자신들의 성향 때문에 교회가 정권과 결탁하는 것은 타락”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판할 때 비판하지 못하면 죽은 교회가 된다”라고 말했다. 12월 은퇴를 앞둔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목사인 사위에게 물려주지 않고 위원회를 구성해 20여 명의 후보를 추린 뒤 논의와 투표를 거쳐 지난해 3월 일찌감치 후임을 정했다. 류 목사는 “우리 사회에는 교회라면 일반 기업과는 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고, 저는 교회가 설립자의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캠페인의 취지는 좋지만, 실제로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과거 ‘내 탓이요’ 운동처럼 반짝하고 마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교회가 무슨 능력이 있어 그 많은 사회적 갈등을 다 치료하고 감당하겠습니까. 하지만 교회와 목사는 소리칠 힘은 있지요. 사회가 위기에 빠졌을 때 책임 있는 집단이 이를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면 메시지를 분명히 내야 합니다. 그 소리에 힘이 실리려면 우리 목자들부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만나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해야 하겠지요. 그렇게 노력하면 반드시 되지 않겠습니까.”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증조할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1858∼1902)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올 7월에 와이오밍주에 있는 사촌 집에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증조할아버지의 편지와 글이 많이 발견됐는데, 한국 기독교와 근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내년은 188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미국 북장로회)가 국내(인천항)에 처음 발을 디딘 지 꼭 140주년 되는 해. 이를 기념해 한국교회미래재단(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지난달 27일∼이달 2일 미 동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에 있는 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Allen·1858∼1932), 마펫(Moffett·1864∼1939), 전킨(Junkin·1865∼1908) 등 한국에 기독교를 알리고 개척한 선교사들의 고향과 학교, 생가 및 자료가 보관 중인 선교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 뉴저지주 매디슨에 있는 ‘드루 신학교’에서 만난 실라 플랫(76) 여사는 기자단에게 아펜젤러의 미공개 자료들이 최근 발견된 사실을 알리며 “나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아펜젤러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장남(헨리 도지 아펜젤러)의 막내딸이 플랫 여사의 어머니. 아펜젤러 선교사는 드루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조선 선교를 결심했다. 드루 신학교 연합감리회 역사 고문서실은 아펜젤러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와 편지, 자료 등을 포함해 감리교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보낸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연구 중이다.교정을 온통 뒤덮은 노란 단풍이 인상적인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신학교’는 뉴욕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던 언더우드가 1881년 이곳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꿈을 키운 곳. 매크리어리 총장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 출신 선교사는 언더우드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훌륭한 선교사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조선에서 그가 보인 역할과 모습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언더우드 컬렉션’이 있다. 학교가 배출한 수많은 선교사 중 개인 컬렉션 홀은 언더우드가 유일하다고 한다. 언더우드의 묘지는 28일 방문한 뉴저지주 노스버겐 ‘그로브 개혁교회’에 있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묘비만 남기고 유해는 1999년 서울 양화진으로 이장했다.“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지난달 30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역사협회(PHS)’ 지하 자료보관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문자들을 압도시켰다. 빼곡히 늘어선 양측 서가 사이로 난 좁은 복도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 이곳은 1852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단 기록보관소로 전 세계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 보고서,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담은 함만 3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선교사들의 눈으로 본 조선’ 등의 제목으로 보았던 사진 상당수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 아직도 연구·조사하지 못한 게 더 많다고 한다. 소강석 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은 “주요한 몇몇 분의 활동과 업적은 잘 알려졌지만, 다른 많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활동은 조사·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며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큼 이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뉴저지·펜실베이니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증조할아버지 아펜젤러(1858~1902) 선교사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굉장히 유머러스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올 7월에 와이오밍주에 있는 사촌 집에서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증조할아버지의 편지와 글이 많이 발견됐는데, 한국 기독교와 근대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은 1885년 4월 아펜젤러 선교사(미국 북감리회)와 언더우드 선교사(미국 북장로회)가 국내(인천항)에 처음 발을 디딘 지 꼭 140주년 되는 해. 이를 기념해 한국교회미래재단(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은 지난달 27일~2일 미 동부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등에 있는 아펜젤러, 언더우드(1859~1916), 알렌(Allen·1858~1932), 마펫(Moffett·1864~1939), 전킨(Junkin·1865~1908) 등 한국에 기독교를 알리고 개척한 선교사들의 고향과 학교, 생가 및 자료가 보관 중인 선교유적지 탐방에 나섰다.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 뉴저지주 메디슨에 있는 ‘드류 신학교’(Drew Theological School)에서 만난 쉴라 플랫(Sheila Platt·76) 여사는 기자단에게 아펜젤러의 미공개 자료들이 최근 발견된 사실을 알리며 “나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아펜젤러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펜젤러 선교사 장남(헨리 도지 아펜젤러)의 막내딸이 플랫 여사의 어머니. 아펜젤러 선교사는 드류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조선 선교를 결심했다. 드류신학교 연합감리회 역사 고문서실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보낸 보고서와 편지, 자료 등을 포함해 감리교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보낸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보관·연구 중이다. 교정을 온통 뒤덮은 노란 단풍이 인상적인 뉴저지주 ‘뉴브런즈윅 신학교(New Brunswick Theological Seminary)’는 뉴욕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던 언더우드가 1881년 이곳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사의 꿈을 키운 곳. 맥크리어리(McCreary) 총장은 “학생들이 ‘우리 학교 출신 선교사는 언더우드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라며 “훌륭한 선교사가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조선에서 그가 보인 역할과 모습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도서관에는 그의 흉상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언더우드 컬렉션’이 있다. 학교가 배출한 수많은 선교사 중 개인 컬렉션 홀은 언더우드가 유일하다고 한다. 언더우드의 묘지는 28일 방문한 뉴저지주 노스버겐 ‘그로브 개혁교회’에 있었지만, 그의 유지에 따라 묘비만 남기고 유해는 1999년 서울 양화진으로 이장했다. “와, 끝이 보이지 않는데?” 30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역사협회(PHS)’ 지하 자료보관소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방문자들을 압도시켰다. 빼곡히 늘어선 양측 서가 사이로 난 좁은 복도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 이곳은 1852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단 기록보관소로 전 세계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 보고서, 사진 등 각종 자료를 담은 함만 3만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선교사들의 눈으로 본 조선’ 등의 제목으로 보았던 사진 상당수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자료가 너무 방대해 아직도 연구·조사하지 못 한 게 더 많다고 한다.소강석 한국교회미래재단 이사장은 “주요한 몇몇 분의 활동과 업적은 잘 알려졌지만, 다른 많은 선교사와 가족들의 활동은 조사·연구가 아직 부족한 상태”라며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와 독립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만큼 이들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라고 말했다.뉴저지·펜실베니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기자님이 보육원에서만 살다가 열여덟 살에 사회에 나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21일 서울 광진구 화평교회에서 만난 유제중 목사(46·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사진)는 10년이 넘게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 청소년 쉼터 등에 있다가 보호가 종료되는 18세에 사회로 나오는 청소년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약간의 자립 지원금과 생활비, 숙소 등의 지원을 받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로 10여 년간 사역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임한 뒤 2019년 화평교회를 개척했다. 유 목사는 “어릴 적부터 보육시설에 살았다고 하면 자립심, 독립심, 자기 의지 등이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 부모가 달래고 야단도 쳐서 억지로라도 보내니까 ‘힘들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지만 보육시설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 10년 넘게 하기 싫고 힘든 것은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시간을 살다 보니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유 목사는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도 중간에 그만두거나 취업을 해도 한 달도 안 돼 나오기도 한다”며 “회사 면접에 보내기 위해 전날 함께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의지력이 약하게 살다 보니 면접 날 아침에 ‘가기 싫어’란 생각이 들면 안 가는 거죠. ‘내가 되겠어?’란 생각도 있고요. 몇 번을 그러기에 아예 전날 함께 자고 아침에 깨워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다행히 자립에 성공했는데, 한번 성취감을 느껴보더니 지금은 다른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게 꿈이 됐습니다.” 유 목사는 광진구 화평교회(반석 성전)를 포함해 서울, 경기 등에 12곳의 교회를 개척했고 2곳을 더 준비 중이다. 신자는 교회마다 40∼50명인데, 이 중 자립 준비 청년은 7∼10명 정도씩이라고 한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들뿐만 아니라 노숙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며 “신자가 더 많으면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가족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작은 교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성인이 됐는데도 자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의지 부족 탓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20kg 역기를 들라고 하면 주저앉겠지요.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가 함께 들어주고 격려하며 드는 힘을 키워 가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요. 주저앉은 기억만 갖고 사회에 나온 아이들에게 ‘성인이 왜 그렇게 의지력이 없냐’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유 목사는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들 중에는 고시원 등에서 은둔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며 “물질적 지원 외에도 자립하면서 부닥치는 삶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기자님이 보육원에서만 살다가 18살에 사회에 나왔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21일 서울 광진구 화평교회에서 만난 유제중 목사(46·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는 10여 년이 넘게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반문했다. 자립 준비 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 청소년 쉼터 등에 있다가 보호가 종료되는 18세에 사회로 나오는 청소년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약간의 자립 지원금과 생활비, 숙소 등의 지원을 받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들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부목사로 10여 년간 사역하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사임한 뒤 2019년 화평교회를 개척했다. 유 목사는 “어릴 적부터 보육시설에 살았다고 하면 자립심, 독립심, 자기 의지 등이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아이가 늦잠을 자거나 학교에 가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 부모가 달래고 야단도 쳐서 억지로라도 보내면서 ‘힘들어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지만 보육시설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 10여 년 넘게 하기 싫고 힘든 것은 아예 시도하지 않거나 중도에 그만둬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시간을 살다 보니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유 목사는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가도 중간에 그만두거나 취업을 해도 한 달도 안 돼 나오기도 한다”며 “회사 면접에 보내기 위해 전날 함께 잔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워낙 오랜 세월을 의지력이 약하게 살다 보니 면접 날 아침에 ‘가기 싫어’란 생각이 들면 안 가는 거죠. ‘내가 되겠어’란 생각도 있고요. 몇 번을 그러기에 아예 전날 함께 자고 아침에 깨워서 보냈어요. 그 친구는 다행히 자립에 성공했는데, 한 번 성취감을 느껴보더니 지금은 다른 자립 준비 청년들을 돕는 게 꿈이 됐습니다.” 유 목사는 광진구 화평교회(반석 성전)를 포함해 서울, 경기 등에 12곳의 교회를 개척했고 2곳을 더 준비 중이다. 신자는 교회마다 약 40~50여 명인데, 이 중 자립 준비 청년은 7~10명 정도씩이라고 한다. 그는 “자립 준비 청년들뿐만 아니라 노숙자 등 소외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가족 같은 공동체”라며 “신자가 더 많으면 도움이 되는 면도 있겠지만 가족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작은 교회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목사는 성인이 됐음에도 자립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의지 부족 탓으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20kg 역기를 들라고 하면 주저앉겠지요. 일반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가 함께 들어주고 격려하며 드는 힘을 키워 가지만 이 아이들은 그런 기회가 거의 없어요. 주저앉은 기억만 갖고 사회에 나온 아이들에게 ‘성인이 왜 그렇게 의지력이 없냐’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유 목사는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보니 이들 중에는 고시원 등에서 은둔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다”며 “물질적 지원 외에도 자립하면서 부닥치는 삶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금은 사라진 학교 풍경이 됐지만 1970, 80년대 초중고교생들에게 채변봉투는 참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직접 자신의 변을 채취하는 것도 낯선 경험인 데다 등교 시간은 다가오는데 ‘신호’가 없으면 더욱 초조해지기 마련. 더 난처한 것은 며칠 뒤다. 선생님이 몇몇 아이를 직접 호명해 약을 나눠준 것. 따로 몰래 줘도 됐을 텐데 당시 선생님들은 왜 그러셨을까. 여하튼 기생충 하면 안 좋은 기억부터 떠오르는 것은 이런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이런 관점을 조금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해만 끼치는 존재’라는 우리의 인식과 달리 생물학 교수이자 기생충학자인 저자들은 기생충이 숙주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에 기생충과 숙주는 운명공동체이고, 오히려 환경 변화로 혼란하고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 숙주가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계를 자극해 낯선 미생물을 물리치거나, 숙주가 먹은 낯선 먹이가 에너지로 전환되도록 돕는 등 숙주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오늘날의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로 연구는 물론이고 식별도 되지 않는 수많은 기생충 종이 멸종되고 있는데, 이는 제목과 내용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책이 가득한 도서관에 불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기생충은 사실상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인데 아쉽게도 그들의 다양성과 진화, 생태 등에 대해서는 연구된 것이 적기 때문. 인간 등 숙주의 생존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기생충에 관한 연구는 곧 지구상의 모든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군집이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가혹한 환경 변화에 우리가 적응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준다고 말한다. 원제 Parasites: The Inside Stroy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수행 자체가 일이자 놀이인 성파의 선예에는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는 고정된 실체나 형상이 없습니다. 물성(物性·물질이 가진 성질) 그 자체가 원하는 대로 붓이 갈 뿐이죠. 급기야 성파 자신마저도 없는 대자유의 물(物)의 유희만 남습니다.”(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전 예술의전당 수석 큐레이터)내달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사진)의 ‘성파 선예(禪藝) 특별전―COSMOS’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그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성파 대종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도자. 또 예술가로서 불교미술과 서예, 한국화, 도자, 염색,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화업을 펼쳐온 불교예술의 대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태초(太初), 유동(流動), 꿈(夢), 조물(造物), 궤적(軌跡), 물속의 달 등 6개 부문으로 구성된 이번 특별전은 그가 1980년대 선보였던 금니사경과 최신 작품은 물론이고 옻칠 회화와 설치 작품을 중심으로 평생의 화업을 총망라한 120여 점이 전시됐다. 기조 발제를 한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지금까지 옻은 공예의 도구이자 재료였지만, 성파는 옻이라는 물질을 객체가 아닌 주체와 목적으로, 동시에 옻의 물성을 자신의 본성과 일체화시키면서 예술로 도약시켜 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성파의 예술에서 ‘옻’이라는 물성의 통찰을 빼놓고는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고 말했다. 버지니아 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카운티 미술관 큐레이터는 “옻칠을 겹겹이 하면 쉽게 구조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성파 스님의 옻칠 회화는 일종의 ‘회화 위의 회화’”라며 “성파 스님은 옻칠을 통해 불교적 기원을 상징하고 이를 불교미술에 다시 연결함으로써 옻칠이 불교에서 지닌 중요성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성파의 생과 미술을 연계한 분석도 나왔다. 마엘 벨레크 프랑스 체르누스키 미술관 중국 및 한국 미술 큐레이터는 “미술가의 생애와 승려로서의 생애가 얽힌 성파 스님의 작품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지혜의 통달과 선수행(禪修行)의 득도 경지, 그 직관이 함축된 자비심의 발로가 있다”고 했다. 정종미 전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한국화가)는 “성파의 예술은 전통, 현대, 첨단 미술 등 거의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고 어떤 틀이나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데, 이는 그의 예술이 자연과 생명주의 불교,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출발한 수행일 따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불교진각종은 24일 제32대 통리원장에 서울 행원심인당 주교 능원 정사(사진)가 선출됐다고 밝혔다. 통리원장은 교단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로 능원 정사는 통리원 총무부장, 통리원장 직무대행, 서울교구청장 등을 역임했다. 임기는 4년.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적극적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특히 신음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다음 달 3일 취임하는 원불교 왕산 성도종 신임 종법사(74·사진)는 22일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자리에 앉아 오는 손님만 맞이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시선을 놓치면 대중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원불교 종법사는 교단을 대표하는 최고 지도자로, 그는 지난달 16대 종법사로 선출됐다. 성 종법사는 “모든 종교는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태어난 만큼 자신들만 잘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집단이 돼선 안 된다”며 “원불교도 100년이 넘다 보니 왜 원불교가 세상에 나오게 됐는지 근본 정신을 잊어가는 면이 있어 본연의 정신을 회복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도권화된 종교의 부정적인 면 때문에 종교를 기피하고 이탈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종교의 순기능도 분명히 큰 만큼 종교가 이익과 내부 문제에 매몰돼 온 것을 반성하고 본래 목적에 충실하다면 떠난 사람도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등 의료 단체들이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대표의장 진우 스님)에 의료대란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를 요청했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회장 등 의료 단체 대표들은 22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 종교 지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의료계는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하고 싶다. 종교계가 정부와 중재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다면 의료계도 더 이상 국민이 걱정하시지 않게 의료 정상화를 할 의향이 있다”라고 밝혔다. 대한의학회 이진우 회장은 “정부 정책이 의료 현장과 지속적, 합리적으로 논의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됐다면 이런 상태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수련과 의대 교육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종지협 대표 의장인 진우 스님은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협의할 수 있도록 우리가 중재를 해보겠다. 의료계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말해달라”라고 답했다. 이용훈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은 “천주교주교회의에서도 의료 공백 사태와 관련 국민 생명과 불편, 필수 의료, 의료 수가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라며 “의료계도 직역별로 의견이 달라 아쉽고, 정부가 조금 더 신중하게 대처했으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진우 스님, 이용훈 의장 외에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 유교 최종수 성균관장, 천도교 윤석산 교령,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장,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 박평재 교수 등이 참석했다. 종지협은 이날 의료 단체들이 제안한 안을 토대로 중재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안할 예정이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조선 왕실의 최대 불교 의식이자 불교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주지 법해 스님) 국행수륙재가 19∼20일 회향식(回向式·자신이 닦은 공덕을 다른 이들에게도 돌리는 의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수륙재는 시방세계 모든 불보살성중(佛菩薩聖衆)과 외로운 영혼을 도량에 모셔 장엄한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최고의 불교 의식.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실과 나라의 안녕을 발원하며 시작된 진관사 수륙재는 올해 626주년을 맞았으며, 2013년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49일간 7일에 한 번씩 재를 지내는 수륙재는 올해는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독립유공자, 전쟁 희생자 등을 위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달 1일 입재 법회에서는 혜국 스님이 ‘나라의 별이 되신 분들을 위한 축원 기도’를 올렸고, 19일 낮재와 20일 밤재로 나눠 봉행한 마지막 칠재에서는 헌향·헌다·헌화 의식에 이어 경찰관, 소방관, 국군장병, 국가정보원 요원, 국가공무원 등을 위한 위패가 봉안됐다. 법해 스님(진관사 수륙재보존회 이사장)은 “진관사 국행수륙재 정신은 종교와 인종 그리고 이념을 넘어 대립과 분쟁에서 벗어나는 소통과 화합의 진정한 가치 실현에 있다”라며 “나라를 위해 안타깝게 순국하신 소방, 경찰, 군인, 공무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극락왕생을 축원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수륙재에는 종정 성파 대종사, 총무원장 진우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 주호영 국회부의장,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김우영 의원,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와 주한 외국 대사가 참석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여성 목사는 안 된다니요? 남녀 차별이 설마 하나님의 뜻일 리가 있겠습니까.” 1990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공동대표 강현미 신혜진)가 창간한 ‘한국여성신학’이 12월 100호 발간을 맞는다. 한국여성신학은 열악한 처지에서도 30여 년간 사회와 교회 안의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 소리친 여성 신학자들의 목소리. 50여 쪽의 격월지로 시작한 한국여성신학은 현재 1년에 두 차례 200쪽의 책자로 발간되고 있다. 강현미 공동대표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신협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군대에서도 여성이 별을 다는 세상에 국내 대형 교단 중에는 아직도 여성에게는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곳이 있다”며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가 지금은 일반 사회보다 인식이 뒤떨어진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장 평등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사회보다 더 여성을 차별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일부 대형 교단의 여성 목사 불허겠지요. 여성 목사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린도전서 14장 34, 35절)라는 사도 바울의 편지 등 성경 구절을 이유로 듭니다. 핑계죠. 바울의 글 앞뒤 맥락이나 당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장만 그대로 따와서 근거로 대는 건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핑계라고요? “당시 고린도교회는 영지주의(靈知主義) 영향으로 무분별한 열광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영지주의는 계시와 현몽에 의한 초자연적인 지식을 소유할 때 구원받는다는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초대 교회에 침투해 교회의 참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그런 특별한 상황에 놓인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보내진 거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해선 안 된다는 게 아니고요. 진짜 성경 구절대로만 행동해야 한다면, 이사야 66장 17절에 돼지고기를 먹는 이들은 망할 것이라고 했는데 삼겹살, 돈까스는 왜 먹습니까.” ―교회 안의 여성 차별은 목사 안수뿐만이 아닌 것 같던데요. “일반 작은 교회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주일에 교회 부엌에서 밥을 짓는 것은 여성 신도들 몫이에요. 남성들은 와서 먹기만 하지요. 마치 명절 때 모습처럼요. 교회 운영이나 의사결정도 대부분 남성 몫이고요. 여성 장로는 여성 목사보다도 아마 더 적을 겁니다. 여성은 거의 집사, 권사까지지요.” ―신도의 60%가 여성이라는데 개선을 요구하면 되지 않습니까. “너무 오랜 세월 가부장적인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렇게 순종적으로 사는 것을 신앙 안의 믿음으로 여기는 면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허드렛일하고, 식사 준비하고, 대표 기도도 못 하고, 남자는 목사고 여자는 전도사인 것을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 온 거죠. 이런 잘못된 문화를 개선하는 교육을 교회 안에서 해야 하는데, 많은 교회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불편하니까요.” ―종교를 가리지 않고 신자는 물론이고 목사, 출가자 급감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요즘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이 보기에 일반 사회보다 여성 차별이 심한 곳에 가고 싶겠습니까. 여자는 승진시키지 않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교회가 사회를 선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못한 면이 많다면 사람이 주는 것은 당연하겠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여성 목사는 안된다니요? 남녀 차별이 설마 하나님의 뜻일 리가 있겠습니까.” 1990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공동대표 강현미 신혜진)가 창간한 ‘한국여성신학’이 12월 100호 발간을 맞는다. 한국여성신학은 열악한 처지에서도 30여년간 사회와 교회 안의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 소리친 여성 신학자들의 목소리. 50여 쪽의 격월지로 시작한 한국여성신학은 현재 1년에 두 차례 200쪽의 책자로 발간되고 있다. 강현미 공동대표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신협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군대에서도 여성이 별을 다는 세상에 국내 대형 교단 중에는 아직도 여성에게는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곳이 있다”며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가 지금은 일반 사회보다 인식이 뒤떨어진 부분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가장 평등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사회보다 더 여성을 차별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대표적인 게 일부 대형 교단의 여성 목사 불허겠지요. 여성 목사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린도전서 14장 34, 35절)라는 사도 바울의 편지 등 성경 구절을 이유로 듭니다. 핑계죠. 바울의 글 앞뒤 맥락이나 당시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문장만 그대로 따와서 근거로 대는 건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핑계라고요.“당시 고린도교회는 영지주의(靈知主義) 영향으로 무분별한 열광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영지주의는 계시와 현몽에 의한 초자연적인 지식을 소유할 때 구원받는다는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초대 교회에 침투해 교회의 참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그런 특별한 상황에 놓인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보내진 거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해선 안된다는 게 아니고요. 진짜 성경 구절대로만 행동해야 한다면, 이사야 66장 17절에 돼지고기를 먹는 이들은 망할 것이라고 했는데 삼겹살, 돈까스는 왜 먹습니까?”―교회 안의 여성 차별은 목사 안수뿐만이 아닌 것 같던데요.“일반 작은 교회 안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요. 주일에 교회 부엌에서 밥을 짓는 것은 여성 신도들 몫이에요. 남성들은 와서 먹기만 하지요. 마치 명절 때 모습처럼요. 교회 운영이나 의사결정도 대부분 남성 몫이고요. 여성 장로는 여성 목사보다도 아마 더 적을 겁니다. 여성은 거의 집사, 권사까지지요.”―신도의 60%가 여성이라는데 개선을 요구하면 되지 않습니까.“너무 오랜 세월 가부장적인 교회 안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렇게 순종적으로 사는 것을 신앙 안의 믿음으로 여기는 면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허드렛일하고, 식사 준비하고, 대표 기도도 못 하고, 남자는 목사고 여자는 전도사인 것을 당연한 관행으로 여겨 온 거죠. 이런 잘못된 문화를 개선하는 교육을 교회 안에서 해야 하는데, 많은 교회에서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불편하니까요.”―종교를 가리지 않고 신자는 물론이고 목사, 출가자 급감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만.“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요즘 젊은 세대, 특히 젊은 여성들이 보기에 일반 사회보다 여성 차별이 심한 곳에 가고 싶겠습니까. 여자는 승진시키지 않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교회가 사회를 선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못한 면이 많다면 사람이 주는 것은 당연하겠지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책을 받자마자, 1983년 발매된 U2의 싱글이자 3집 ‘워(War)’의 수록곡인 ‘일요일 핏빛의 일요일(Sunday Bloody Sunday)’부터 찾았다.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곡이자 아일랜드 출신 4인조 밴드인 U2를 세계적인 록 그룹으로 만든 곡. 일요일인 1972년 1월 30일 북아일랜드에서 시위 중이던 시민들에게 영국군이 발포해 14명의 사망자와 13명의 중상자를 낸 끔찍한 사건을 다룬 이 곡은 무서우리만큼 차가운 스네어 드럼으로 시작된다. ‘모든 악기는 사랑과 설득에 쓸모가 있다. 하지만 전쟁에는 단 하나의 악기만 있으면 된다. 북. 북은 빈 통에다가 얇은 가죽을 팽팽하게 당겨 씌워 만들어진다. … 이 스네어 드럼에는 모종의 특별한 폭력성이 내재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Sunday Bloody Sunday’의 도입부에서 필요했던 것은 바로 스네어 드럼을 연달아 때리는 소리, 열병식에서 들을 수 있는 종류의 드럼 소리였다.’(12장 ‘Sunday Bloody Sunday’ 중) 이 책은 U2의 리드 보컬 보노(본명 폴 휴슨)가 직접 고른 대표적인 40곡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 그룹 결성 뒷이야기와 최고의 앨범을 내기 위해 시도했던 노력과 도전 등 U2 40년의 음악 생활과 사회 참여 활동을 담은 것이다. 보노는 U2 음악의 의미, 청중과 공연에 관한 생각뿐 아니라 왜 사회 참여 메시지를 지속해 내고 지구적 차원의 비폭력, 빈곤 및 에이즈 퇴치 운동을 이끌고 참여해 왔는지를 회고한다. 보노는 “1982년 이후 우리 네 사람은 우리 밖의 세상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한다. 히트곡을 만드는 것보다 더욱 절박한 필요가 가득한 세상을 외면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노래에서 찾았다. 아프리카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노래한 ‘이름 없는 거리에서(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 인권과 인종 문제를 다룬 ‘프라이드(Pride, In the Name of Love)’ 등은 그런 노력의 결과다. U2가 왜 역사상 가장 사회적·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그룹으로 꼽히는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U2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SURRENDER(항복)’란 책 제목은 언뜻 당혹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노래한 것이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복수의 감정이 아니라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데 있는 걸 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정말로 승리를 거두는 유일의 진리는 바로 항복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서로에게, 사랑에게, 더 상위의 권능에게.’(38장 ‘Moment of Surrender’ 중) 그냥 젊었을 적 좋아했던 그룹과 노래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담겨 있을 줄 미처 몰랐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여 년 전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울산에서 사건 취재가 끝나고 형사와 고래고기를 먹는데, 그가 “이 고기도 아마 익사당한 고래일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어민들이 친 그물에 고래가 종종 걸리는데 발견하면 풀어주지 않고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온다는 것이다. 고래 포획은 불법이지만 죽은 고래를 건지는 것은 상관없기 때문. 한 마리에 보통 8000만 원, 상태가 좋으면 1억 원도 넘기에 그물에 걸린 걸 보고도 풀어주는 어민은 없다고 했다. 시중에서 먹는 고래고기는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공급된 것이라는 것이다. 환경저널리스트인 저자가 고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인류의 미래에 관해 기술했다. 선사시대 포경 장면이 그려진 울산 반구대암각화를 남긴 수수께끼 부족 이야기, 한국 포경의 역사, 2010년대 전개된 제돌이 등 돌고래 해방운동, 일본·아이슬란드·캐나다 세일리시해 등의 수족관 돌고래 상황과 야생 고래 서식지 등에서 벌어지는 일 등을 20년 가까이 취재한 결과를 통해 낱낱이 파헤쳤다. ‘지구의 대기, 바다, 땅 그리고 다양한 생물종이 맺는 역학 관계가 교란되면서,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다. 리벳 하나가 비행기를 추락시킨다. 점점 더 많은 볼트와 너트, 리벳이 녹슬어 빠져나가고 있다. 재앙을 부르는 작은 것, 사건의 중심에 고래가 있다.’(13장 ‘기후변화와 싸우는 고래’ 중) 저자는 기후 위기 시대에 고래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려주는 리트머스시험지라고 말한다. 그 예로 인공적으로 탄소를 포집해 해저에 저장하느라 엄청난 비용을 쓰는 것보다, 지구의 안정적인 탄소 순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고래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 제안한다. 우리에게 닥친 기후 위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각성시킨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의 탄생지인 충남 당진시 솔뫼성지가 한국 천주교 중심 성지로 거듭났다. 기존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대대적인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지난달 재개관하고, 대성전에 ‘김대건 신부 집안 기념관’을 조성한 것. 리모델링된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는 대전·충남 지역의 천주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전교구 역사관도 들어섰다. 김대건 신부 집안은 증조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아버지 김제준, 당고모 김 데레사, 김대건 신부 등 4대에 걸쳐 10명이 넘는 순교자를 배출했다. 이 때문에 솔뫼(소나무가 뫼를 이루고 있다는 뜻)성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이자 요람으로 자리 잡았지만 김대건 신부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 이를 현양하고자 4개 단상에, 4대에 걸친 김대건 신부 집안의 순교자 이름을 하나하나 조형물로 장식하고, 가계도로 설명해 놓았다.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가 스승 르그레즈 신부, 리브와 신부, 페레올 주교, 조선 교우 등에게 보낸 20여 편의 한문·한글 서한, 1845년 잠시 서울에 머물렀을 때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당시 상황을 정리한 비망록, 입국 당시 그린 조선 전도 등이 전시됐다. 이 밖에 우리 천주교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대전교구의 발자취도 볼 수 있다. 솔뫼성지 허권범 프란치스코 보좌신부는 “김대건 신부는 누구보다 현양받는 성인이지만 그만큼 존경받아야 할 신부님 집안에 대한 현양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며 “솔뫼성지를 찾아온 많은 순례자가 신부님뿐만 아니라, 그 집안의 순교자도 함께 기억하며 공동체적 신앙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나부터 캠페인’(대표 류영모 한국교회총연합 전 대표회장)이 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갈등에서 통합으로-건강한 사회로 가는 마중물’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한다. ‘나부터 캠페인’ 박명철 실행위원은 “이념, 계층, 세대, 노사, 빈부, 지역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만큼 사회 갈등의 심각성이 더해가고 있다”라며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이슈를 분석해 대안을 찾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는 황해국 전 서울장신대 총장이 개인 심리적 관점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구조적 거시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갈등을 분석하고 해법을 찾는 주제 발제를 한다. 이어 류영모 대표 등 참석자들이 종합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갈등 해소와 통합의 가치와 문화를 확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길을 모색한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