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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사우디아라비아가 3월 설립한 항공사 ‘리야드에어(Riyadh Air)’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2025년부터 정식 운항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이미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리야드에어는 설립 직후 보잉에 B787 항공기 39대를 발주했다. 앞으로도 대규모 추가 항공기 구매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지난달 10일에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명문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식 메인 스폰서가 돼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와 함께 스페인 3대 명문 프로축구팀으로 꼽히는 ‘빅클럽’이다.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국영 항공사 에티하드(Etihad)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냈고 현재 리야드에어를 이끌고 있는 토니 더글라스 CEO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과 의 인터뷰에서 “(리야드에어는) 아주 공격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환승이 아닌) 사우디 방문이 목적인 탑승객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이를 위해 리야드에어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전세계 100곳 이상의 도시를 잇는 직항 노선을 마련할 계획이다.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에미레이트항공(Emirates), 에티하드, 카타르항공(Qatar Airways), 터키항공(Turkish Airlines)이 주도해온 중동 항공사 경쟁에 사우디도 본격적으로 가세하는 상황”이라며 “사우디가 계속 리야드에어에 투자한다면 중동은 물론이고 세계 항공 시장에도 적잖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리야드에어, UAE와 카타르 항공사의 성공 전략 벤치마킹리야드에어는 사우디 국영 항공사로 1945년 설립된 사우디아(Saudia)와는 별개 회사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주요 의사 결정에 직접 관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리야드에어의 소유주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리야드에어의 경영에도 깊이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원은 리야드에어가 설립한 뒤 처음 진행된 대형 스포츠 마케팅 활동이었다. 또 에미리트항공, 에티하드, 카타르항공의 스포츠 마케팅을 연상시킨다. 세 회사 모두 세계 항공업계에서 후발 주자로 여겨진다. 가장 ‘선배’인 에미레이트항공이 1985년에 설립됐다. 카타르항공과 에티하드는 각각 1993년과 2003년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 항공사들은 자국의 막대한 ‘오일머니(석유와 천연가스 판매 수입)’ 덕분에 단기간에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이 항공사들이 역사가 짧은 기업임에도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파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이 꼽힌다. 세 회사 모두 리야드에어처럼 유럽 프로축구 리그의 빅클럽 후원에 공을 들여 왔다.()에미레이트항공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을 후원 중이다. 에티하드는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시티FC를 후원한다. 맨체스터시티FC의 구단주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은 UAE 아부다비 왕실 구성원이다. 카타르항공은 자국 투자청이 소유 중인 프랑스 리그1의 파리생제르맹을 후원한다. 과거에는 FC바르셀로나,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세리에A의 AS로마 등 다양한 명문 축구팀을 후원했다.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리야드에어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후원은 UAE와 카타르 항공사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한 전략”이라며 “유럽 빅리그의 명문팀 후원은 해당 팀이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건 물론이고 소속 선수들의 국적도 다양하고 이들이 월드컵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에 효과가 매우 큰 스포츠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 항공사 육성, 탈석유 전략과 산업 다각화에 필요 사우디가 새로운 항공사를 설립해 가며 항공사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일단,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7년 왕세자 자리에 오른 뒤 본격 가동 중인 탈석유 전략과 개혁‧개방과 맞물려 있다. 현재 사우디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와 ‘석유 판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나라’란 기존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대적인 체질 개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비전 2030’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다양한 산업 구조를 갖춘 나라로 변화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콘텐츠 △관광 등과 관련된 산업 육성에 관심이 많다. 이를 위해, 해외 기업, 투자자, 관광객을 안정적으로 유치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한국, 이탈리아와 유치 경쟁 중인 ‘2030 엑스포’를 비롯해 △네옴 프로젝트(사우디 북서부와 홍해 일대에 서울의 44배 크기의 대형 국제도시를 개발하는 사업) △성지순례가 아닌 일반 관광 허용 △글로벌 기업의 중동지역본부 유치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 등 다수의 중‧장기 프로젝트도 가동 중이다. 하나 같이 해외에서 많은 인력이 사우디를 방문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향후 사우디 관련 항공 여행 수요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항공사는 사우디가 중동의 대표 국가, 나아가 세계적인 경제 중심지로 성장하려면 꼭 갖춰야 하는 인프라”라며 “산유국이라 항공사 운영 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를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사우디가 파격적으로 항공사 육성에 뛰어든 이유”라고 말했다.UAE나 카타르도 산유국이란 특성이 자국 항공사를 단기간에 국제적인 수준으로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사우디는 향후 네옴항공도 운영할 계획이다. 사우디아, 리야드에어의 뒤를 잇는 제3의 국영 항공사인 셈이다. 이름에 걸맞게 네옴항공은 사우디가 서북부와 홍해 일대를 중심으로 운항하게 된다.● 리야드에어에선 술이 허용될까사우디 안팎에선 향후 사우디아와 리야드에어 간 역할 분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리야드에어는 출장 또는 관광 목적으로 사우디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주고객으로 삼을 예정이다. 또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성장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한다. 분명한 ‘상업 항공사’의 길을 걷겠다는 뜻이다.반면 사우디는 향후 사우디아를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 방문을 위해 사우디를 찾는 ‘무슬림 성지 순례자’ 운송에 중심을 둔 항공사로 운영할 계획이다.일각에선 이런 항공사 간 역할 분담을 통해 리야드에어에선 ‘주류’ 서비스가 허용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사우디아는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원칙아래 모든 노선에서 주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사우디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들도 원칙적으로 사우디 영공을 벗어난 뒤부터 술을 제공할 수 있다. 사우디아 항공기에선 이륙 전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는 쿠란(이슬람 경전) 구절이 기내 방송으로 나온다. 또 메카와 메디나 상공을 비행할 땐 ‘신의 축복’을 기원하는 기장의 안내 방송도 나온다. 말 그대로,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는 항공사인 것.항공사는 국가 브랜드나 이미지에 적잖은 영향을 준다. 그런 점에서, 성지순례자가 아닌 출장자와 관광객을 주고객으로 삼는 리야드에어에선 ‘사우디아와는 다른 서비스(주류 제공)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도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리야드에어 설립을 결정했을 무함마드 왕세자가 개혁‧개방을 강조해왔단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사우디가 네옴 프로젝트를 통해 홍해 일대에 대규모 관광지를 개발한다고 2017년 밝혔을 때도 향후 일부 지역에선 외국인에게 제한적으로 술이 허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다. 물론 현재까지 사우디 정부는 자국내 주류 허용과 관련해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다. 리야드에어가 향후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느냐는 사우디의 개혁‧개방 속도와 강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도 여겨질 수 있다. ● UAE와의 갈등 심해지나 리야드에어가 본격적인 운항에 들어가면 바로 옆 나라인 UAE, 카타르와 ‘묘한 신경전’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가뜩이나 치열한 ‘중동 항공사 대전(大戰)’에 또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뛰어드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리야드에어는 ‘환승객 적극 유치 전략’을 택했던 에미레이트항공, 카타르항공, 터키항공과 달리 ‘직항 중심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더글라스 CEO도 “카타르, UAE와는 다른 전략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또 사우디는 내년부터 자국에 중동지역본부를 두지 않은 외국 기업에게는 정부와 공공기관 사업 입찰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장기적으로는 UAE가 두바이를 중심으로 펼쳐온 ‘중동 경제 허브 전략’을 약화시킬 수 있는 조치다. 사우디는 아랍권에서 인구와 시장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한다. 대형 개발 프로젝트도 많다. 때문에 사우디가 자국 내 중동지역본부를 둔 외국 기업만을 대상으로 입찰 기회를 허용하는 정책을 고집한다면 ‘UAE를 떠나 사우디로 향하는 기업’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사우디와 UAE는 아랍권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 두 나라는 정치 체제(왕정), 경제 구조(산유국), 종파(이슬람 수니파)가 같다. 6개 아랍 산유국(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이 결성한 정치‧경제협력체 걸프협력회의(GCC)에서도 사우디와 UAE는 유독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멘 내전(사우디는 계속 개입 중이지만 UAE는 사실상 철수 상태) △카타르 단교사태(사우디는 화해에 적극적이었지만 UAE는 부정적이었음) △석유 증산(사우디는 소극적, UAE는 적극적) 등에서 입장이 달랐다. 무함마드 왕세자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아부다비 국왕)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소문도 많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월 UAE에서 열린 중동 국가 정상 회의 때 무함마드 왕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12월 사우디에서 열린 중국·아랍 정상 회의 때는 무함마드 대통령이 불참했다. 원래 두 사람은 멘토(무함마드 대통령)와 멘티(무함마드 왕세자) 사이란 말이 돌 정도로 가까웠다. 특히 올해 62세인 무함마드 대통령이 38세인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개혁‧개방과 안보 이슈에 대한 조언을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국내 한 중동 전문가는 “두 나라 관계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그동안 UAE가 주도해온 중동의 경제 허브 자리를 사우디가 많이 장악해 간다면 사이는 더욱 소원해 질 것”이라며 “항공사 간 경쟁도 두 나라 간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루홀라 호메이니 이란 초대 국가 최고 지도자(1902~1989년)는 재임 시절(1979년 12월~1989년 6월) 미국을 ‘큰 사탄’으로 불렀다.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2001년 1월~2009년 1월 재임)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라크와 함께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비판했다.큰 사탄과 악의 축은 지금도 미국과 이란의 적대적인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미국과 이란은 한 번도 전쟁을 치른 적이 없다. 하지만 두 나라는 1979년 2월 이란의 이슬람 성직자들이 중심이 돼 친미,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 혁명’을 계기로 단교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향해 강한 반감이 담긴 메시지를 쏟아냈다. 큰 사탄과 악의 축은 이란과 미국이 서로를 얼마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레토릭.이런 미국과 이란 관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최근 두 나라는 자국에 수감돼 있는 상대방 국적자를 맞교환하기로 했다. 또 미국은 대이란 경제제재 때문에 한국에 동결돼 있던 70억 달러(약 9조3100억 원) 규모의 이란 원유 결제 대금의 이체를 허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란은 핵무기 개발에서 핵심 과정인 우라늄 농축 작업 속도도 늦추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과연 미국과 이란 사이에 불고 있는 훈풍은 계속될 수 있을까.● 뿌리 깊은 앙숙 관계 – 이란의 도발문제는 간단치 않다. 미국과 이란 간 불신은 뿌리가 깊다. 또 쉽게 치유되기도 힘들다. 두 나라 간 갈등은 4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이란 혁명 세력은 자신들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팔레비 왕의 소환 요청을 미국에 했다. 하지만 미국은 거부했다. 미-이란 갈등의 본격적인 시발점이다.이 과정에서 1979년 11월 혁명 세력을 지지하는 과격파 시위대가 ‘팔레비 왕의 송환’을 외치며 반미 시위를 벌이던 중 테헤란의 주이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다. 그리고 이란에 거주 중이던 미국 외교관과 국민 52명은 대사관 건물에 억류됐다. 이들은 1981년 1월에서야 풀려났다. 444일간 이란 혁명 세력이 미국인 집단으로 억류한 것이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 명의 미국인을 이렇게 긴 기간 동안 억류한 나라나 조직은 없다. 지금도 이란은 테헤란의 구 미국 대사관 건물을 ‘외세에 대항했던 역사’를 자랑하는 기념관으로 활용 중이다.이란 전문가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당시 이란 혁명 세력의 조치는 미국의 뿌리 깊은 ‘이란 트라우마’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며 “직접적인 무력 충돌이 없었는데도 미국이 이란을 극도로 불편하게 생각하는 데는 444일 간의 자국민 억류 사건이 결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1983년에는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헤즈볼라가 수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사령부 건물을 공격했다. 미군 241명이 숨졌다. 이란이 직접 감행한 공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은 다시 한번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다. 또 이란에 대한 반감을 더욱 키우게 됐다.● 뿌리 깊은 앙숙 관계 – 미국의 압박미국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이란 혁명 세력이 신정공화정을 출범시킨 뒤 다양한 직‧간접 경제제재로 이란을 압박했다. 1980년부터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는 친미 아랍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이라크를 지원했다. 최악의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2017년 1월~2021년 1월) 시절이었다.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2009년 1월~2017년 1월) 잠시 개선됐던 이란과의 관계를 다시 냉각시켰다. 오바마 행정부가 최대 성과 중 하나로 내세웠던 이란과의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 계획·2015년 7월 타결·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무기 관련 작업을 중단하면 단계적으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를 2018년 5월 백지화한 것.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중국 등 이른바 국제사회의 주요국이 이란과 맺은 합의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이다. 세부 내용이 지나치게 이란에 유리하고, 이란이 실제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는지 검증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당연히 이란은 반발했다. 국제사회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산 원유의 수입을 금지했다. 나아가,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며 최고지도자의 친위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IRGC)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2020년 1월에는 혁명수비대 내 최고 엘리트 부대로 해외 작전과 특수전, 나아가 이란 인근 국가를 대상으로 한 비공식 외교 업무도 담당하는 쿠드스군의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무인기(드론)로 사살했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이스라엘의 언어)다. 쿠드스군에는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지지부진한 핵 협상현재도 미-이란 관계 개선의 확실한 돌파구가 될 수 있을 만한 모멘텀은 약하다. 일단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월 취임한 뒤 재개된 미-이란 핵 협상이 답보 상태다. 양측은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유의미한 진전은 없었다. 최근에는 물밑 접촉도 거의 안 이뤄지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에는 미-이란 핵 협상이 비교적 활발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현재는 중단된 상태로 봐야 한다”며 “재개된다는 시그널도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경제제재를 풀어야 하는 만큼 핵 합의를 다시 이뤄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때 갑자기 핵 합의가 엎어진 트라우마가 있다. 어설픈 복원으로는 국내 보수파를 설득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핵 합의 복원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요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확실한 이행 보장을 기대한다. 트럼프가 내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고, 실제 당선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미국 입장에서도 이란의 강화된 요구는 부담되고 당연히 검토해야할 사항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협상이 다시 시작돼도 입장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 합의가 타결될 때와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것도 악재다. 당시에는 주요국 간 공조가 비교적 잘 이뤄졌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거칠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와 서방 간 갈등도 심각하다. 또 이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핵 합의를 파기한 뒤 러시아,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란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도 여전미국과 다른 중동 나라들이 우려하는 이란의 근본적인 외교안보 전략도 여전하다.아직 이란은 핵무기가 없다. 하지만 올해 5월 기준 핵폭탄 2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고농축 우라늄(약 114kg)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사정거리 2000km 수준의 탄도미사일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 군사용 드론 기술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가 수입해 사용할 정도로 우수하다.무엇보다, 시아파 종주국인 것을 앞세워 △헤즈볼라(레바논) △카타입헤즈볼라(이라크) △후티 반군(예멘)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중동 내 친이란, 시아파(하마스는 수니파이지만 이란과 가까움) 무장 정치단체들을 활용한 무력 도발과 내부 정치 개입을 추진하는 ‘시아벨트 전략’도 여전하다. 시아벨트 전략은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해당 나라에서 유리한 정책과 전략이 추진하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그리고 무장 정치단체들을 이용해 이스라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적대국’을 공격한다.‘아랍의 맹주’이며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와 UAE는 이란의 드론에 원유 생산 시설과 공항이 공격받는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도발을 계속 경험해 왔다. 다만, 올해 3월 중국 중재로 이란과 사우디는 7년 만에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로 인해 이란의 시아벨트 전략이 이전보다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당시 사우디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사우디와 이란은 2년간 이번 협상을 진행했고, 이란의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 등에 대한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이란 간의 협상 때 시아벨트 문제가 비중 있게 거론됐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하지만 이란이 시아벨트 전략을 크게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건 힘들다. 핵무기와 달리 이미 완성됐고, 성과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 연구교수는 “이란은 시아벨트를 자국 안보의 핵심으로 생각한다”며 “이를 포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란 특수’도 아직 먼 이야기결론적으로 미-이란 관계가 언제, 어떻게 본격적으로 개선될지는 불투명하다. 또 뚜렷한 개선 모멘텀도 없다.물론 미국 대통령 선거(2024년), 이란의 총선(2024년)과 대통령 선거(2025년)가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누구도 쉽게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한국 입장에서는 ‘기대되는 거대한 시장, 이란’이 언제, 어떻게 열릴 지도 아직 미지수인 것.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이란 인구는 약 8855만 명. 중동에서 이집트(약 1억1100만 명) 다음으로 많다. 중동권에서 인력 수준도 가장 우수한 편이라는 평가가 많다.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각각 세계 3위와 2위다. 다른 중동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규모 식량 생산이 가능한 비옥한 토지도 많다. 2015년 7월 핵 합의가 타결됐을 때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이란을 주목했던 이유다.한국의 경우 전통적으로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큰 성과를 냈다. 특히 이란에서는 드라마를 중심으로 K콘텐츠의 인기가 상당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란에서 강세를 보여왔다.하지만 미국의 경제제재가 확실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란은 리스크가 너무 큰 시장이다. 미국, 나아가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활동하는 기업들에게는 이란 진출은 언제든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 ‘미국 수출’과 ‘미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자유로운 곳은 많지 않다. 삼성전자 중동지역 법인장(상무) 출신으로 테헤란 근무 경험도 있는 이창섭 전경련 자문위원은 “최근 미-이란 관계에 다소 변화가 있지만 이란 시장만 바라보는 기업이 아닌 이상 여전히 이란 진출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며 “한국 기업들의 본격적인 이란 진출은 결국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결되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중동에서 ‘기름 전쟁’이 터졌다. 정확히는 ‘기름 확보 전쟁’이 한창이다. 갑작스러운 기름 생산 부족으로 기름을 확보하려는 나라 간 경쟁이 치열하다. 상대적으로 기름이 넉넉해 이를 수출하려는 나라들은 외화를 벌기 좋은 기회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소비용 기름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폭등하는 것을 우려한다. 이 기름은 석유가 아니다. 중동과 남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초록색과 검정색 나무 열매에서 추출하는 ‘식용 기름’이다. 이 지역에선 요리할 때 ‘필수품’으로 쓰인다. 또 주식인 빵을 찍어 먹을 때도 자주 쓰인다. 열매 절임은 중동과 남유럽에선 기본 반찬으로 여겨진다. 다른 야채를 절일 때도 이 기름을 많이 사용한다. 말 그대로 ‘국민 먹거리’이며 ‘필수 요리 재료’다. 바로 올리브유다.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더위와 가뭄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주요 국가의 올리브 수확에 비상이 걸렸다. 심한 가뭄으로 올리브 생산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도 크게 줄었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MEE)와 미들이스트모니터(MEMO),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 등에 따르면 올리브유 생산에 ‘빨간불’이 켜진 남유럽 국가들이 올리브유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가뭄 피해가 적은 중동 국가들로 눈을 돌리고 있다. ● 스페인 식품업계, 튀니지와 레바논 올리브유 싹쓸이 중올리브 수확이 줄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는 스페인. 이 나라는 세계 1위 올리브유 생산국이다. 국제올리브협회(IOC)도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본부를 두고 있다. 스페인은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62만t의 올리브유를 생산했다. 이는 같은 기간 중 통상 150만t의 올리브유를 생산했던 예년과 비교할 때 반토막에도 못 미치는 양이다. 비상이 걸린 스페인 식품 업계는 최근 중동에서 부족한 올리브유를 확보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는 튀니지다. 그동안 아랍권에서 가장 많은 올리브유를 생산해온 나라다. 스페인을 중심으로 남유럽 국가 식품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올리브유를 구입해 튀니지의 올리브유 수출량은 예년보다 30% 늘었다. 튀니지는 가뭄으로 피해를 입은 올리브 나무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현지 올리브 수출업자인 파하드 벤 아메르는 MEE에 “튀니지의 올리브 나무들이 스페인산보다 가뭄에 강했다”고 말했다.레바논도 유럽 식품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나라다. 레바논은 전체 농경지의 23% 정도가 올리브 나무 경작지. 최근 스페인 식품 기업들은 레바논 현지 생산업자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올리브유를 대거 구입 중이다. 레바논에선 ‘도매상들이 보유 중인 올리브유를 사실상 모두 스페인 식품 기업들이 사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워낙 유럽 식품 기업들이 활발히 올리브유를 구입하다 보니 레바논에선 향후 자국 소비용 올리브유가 부족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또 레바논 식품 기업들이 자체 브랜드로 생산하는 올리브유가 부족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레바논 역시 올리브 나무들이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덜 입었다. 현지에서 4대째 올리브 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아사드 사아데흐는 “레바논의 올리브 나무 품종은 강하고 기후변화에도 잘 적응했다”고 말했다.올리브유 품질은 좋지만 그동안 국내 판매에 집중했던 요르단의 식품 기업들도 최근 유럽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다.● 튀르키예, 올리브유 수출 늘었지만 ‘수출 규제’ 마련올리브 농업이 발달한 튀르키예도 유럽발 올리브유 특수를 누렸다. IOC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지난해와 올해 올리브유 생산은 예년보다 약 62% 늘었다. 튀르키예 무역부는 지난해 11월부터 7월까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수출된 올리브유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배와 44배 늘었다고 밝혔다.튀르키예 이즈미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게해 올리브와 올리브유 수출협회’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올해 올리브유 수출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3100억 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사상 최대치다. 외화 벌이 측면에서는 분명한 호재다. 지난 20년 간 튀르키예에서 재배되는 올리브 나무 규모가 9900만 그루에서 1억8900만 그루로 두 배 가까이 늘은 덕을 톡톡히 본 결과다.하지만 지난달 튀르키예 정부는 11월까지 약 3달간 올리브유 수출과 관련된 긴급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올리브유 가격이 급등하며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무역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이 나라의 올리브유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02%나 올랐다. 올리브 수확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82%), 그리스(72%), 이탈리아(58%)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튀르키예 정부는 자국 내 올리브유 부족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 식품업계가 국내 시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해외로 수출되는 올리브유에 1kg당 0.2달러(약 262원)의 추가 세금을 매기기로 결정했다. 또 튀르키예 정부는 올리브유 생산 및 가격 변화에 따라 추가 수출 규제를 마련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일단 11월까지를 규제 적용 기간으로 삼은 건 이 시기에 올리브 수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대보다 올리브 수확이 적을 경우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올리브유 가격 오름 현상은 튀르키예뿐 아니라 레바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DW)에 따르면 최근 레바논에선 1리터 당 5달러(약 6540원) 정도하던 도매상 판매 올리브유가 10달러(1만3080원)로 두 배나 올랐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레바논에서 생활필수품인 올리브유 가격 상승은 더욱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최근에는 올리브유보다 저렴한 식용유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올리브유 생산이 많고, 품질도 좋은 것으로 유명한 레바논에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현지에서 컨설팅업을 하는 한 레바논인은 “올리브유 가격이 계속 빠르게 오르고 있고, 이제는 매우 비싸다”며 “레바논에서 올리브유가 비싸다고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올리브유 등 생필품 부족은 민심 폭발시키는 계기 될 수 있어‘올리브유 확보 전쟁’과 ‘올리브유 가격 상승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올리브유 가격 상승은 남유럽 국가들의 올리브유 생산에 문제가 없었더라도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피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지금처럼 올리브유 생산이 불안정하고, 인플레이션도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 레바논처럼 정국이 불안한 나라는 더욱 그렇다. 이슬람교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 간 종교 갈등이 심한 레바논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970달러(약 650만원‧2021년 세계은행 기준) 밖에 안 된다.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기후변화와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중동 비산유국의 경제 사정은 더욱 안 좋아졌고, 국민 생활도 계속 어려워지고 있다”며 “올리브유를 비롯해 빵과 양고기 같은 생활필수품 부족 혹은 가격 폭등 현상은 정부에 대한 극심한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 리비아, 예멘, 시리아로 확산됐던 ‘아랍의 봄(아랍권의 민주화 운동)’도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면서 민심이 폭발한 게 원인이었다. 당분간 ‘중동의 올리브유 문제’가 많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이라크 정부가 20일(현지 시간)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추방했다. 같은 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가 주이라크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위대는 대사관에 난입해 불을 지르기도 했다. 또 이라크 정부는 스웨덴의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인 에릭슨의 자국내 영업 허가를 취소했다. 모하메드 시아 알 수다니 이라크 총리는 “스웨덴과의 외교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튀르키예,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은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불러 엄중한 항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란은 자국의 신임 주스웨덴 대사 파견도 당분간 보류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무슬림 인구가 많은 파키스탄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발생했고, 의회에선 스웨덴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했다. 무슬림이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세계 57개국으로 구성된 국제기구 이슬람협력기구(OIC)도 스웨덴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스웨덴에서 계속된 ‘쿠란 소각’ 시위스웨덴이 이슬람권 국가들의 집중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바로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는 이라크 출신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살완 모미카가 모스크(이슬람 사원)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며 쿠란과 이라크 국기를 소각했다. 그는 이슬람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로 만든 베이컨 조각을 쿠란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 20일에도 모미카는 스톡홀름에 위치한 주스웨덴 이라크 대사관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때는 쿠란을 소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쿠란을 발로 밟고 걷어찼다. 불과 한 달 정도 사이에 반복적인 쿠란 모욕 시위가 스웨덴에서 발생한 것. 하지만 스웨덴에서 쿠란 소각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1월에는 덴마크 극우정당인 ‘강경노선’의 라스무스 팔루단 대표가 주스웨덴 튀르키예 대사관 앞에서 쿠란을 소각하는 시위를 벌였다. 당시 팔루단 대표는 ‘스웨덴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이슬람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국 내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는 쿠르드족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팔루단 대표는 지난해 4월에도 스웨덴 곳곳에서 반이슬람, 반이민을 주제로 시위를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도 쿠란을 소각해 물의를 일으켰다.결국 이슬람권 국가들은 스웨덴에서 쿠란을 소각하는 ‘이슬람 모욕 시위’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스웨덴 당국이 사실상 이를 제지하지 않고 있는 것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이슬람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 메디나)이 있어 ‘성지 수호 국가’, ‘이슬람 종주국’으로 일컬어지는 사우디 외교부는 20일 “스웨덴 당국의 반복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은 일부 극단주의들에게 성스러운 쿠란을 태우고, 훼손해도 되는 공식적인 허가증을 준 것이다”라고 밝혔다. 반면 스웨덴은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쿠란 소각이 이뤄지는 시위에 그동안 특별한 조치를 취해 오지 않았다. 모미카가 벌인 시위에 대해서도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이를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식의 자세는 취하지 않고 있다. ● 쿠란, 이슬람의 상징물…이번 소각 시위는 이슬람 명절에 발생무슬림들에게 쿠란은 ‘신의 말씀’을 적은 책이다. 말 그대로 성스러운 책이다. 함부로 훼손하는 건 당연히 안 된다. 만질 때도 손을 씻은 뒤, 오른 손으로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는 게 원칙이다. 또 쿠란을 읽을 때는 조용하고 깨끗한 장소에서 반듯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 일상 생활에서 쿠란을 호칭할 때도 ‘성스러운 쿠란(Holy Quran)’ 혹은 ‘성스러운 책(Holy Book)’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심지어 집이나 사무실의 책장에 꽂을 때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잘 정돈된 책장에 가급적 별도의 칸에 꽂아 둬야 한다. 세속적이거나 가벼운 내용의 대중서 근처에 꽂는 건 적절하지 않다. 김종도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장은 “무슬림들은 쿠란은 가급적 이슬람과 관련된 책들과 함께 책장의 별도 칸에 따로 정갈하게 꽂아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말했다.오래돼 사용할 수 없다고 그냥 버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낡은 쿠란은 보통 모스크에 준다. 개인이 직접 처리할 땐, 조용하고 깔끔한 곳에 묻는 경우도 많다. 런던에 거주하는 한 이라크계 영국인은 “너무 낡아서 사용하기 힘든 쿠란을 소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는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엄숙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쿠란을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밟는 건 평범한 무슬림들에게도 용납되기 힘든 행동이다. 반대로 가장 쉽게 이슬람을 모욕할 수 있는 행위가 쿠란을 불태우거나 밟는 것이다. 이슬람은 신이나 선지자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 사실상 가장 작은 크기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징물이 쿠란인 셈.특히 이번에 발생한 쿠란 소각 시위는 무슬림들의 생활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 근처에서 발생했다. 또 이슬람의 중요한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가 시작된 첫 날에 발생했다. 이드 알 아드하는 무슬림들이 선조로 꼽는 이브라힘이 아들 이스마엘을 신의 명령에 따라 제물로 바치려다 (이브라힘의) 깊은 믿음을 확인한 신이 ‘아들 대신 염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다시 명령했다는 이야기를 기념하는 명절이다.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이번 쿠란 소각 사건은 한 마디로 ‘레드라인’을 완전히 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이른바 국민 정서에도 큰 상처를 줬다”며 “주요 이슬람 국가들이 앞 다퉈서 비판 메시지를 발표하는 이유다”고 말했다.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앙숙인 이란은 모미카가 이스라엘 정보부인 ‘모사드’와 연관 있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란 국영통신사인 IRNA에 따르면 이란 정보부는 모미카가 2019년부터 모사드와 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보부는 모사드가 지난달 3~4일 20년 만에 이스라엘군이 서안지구(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서 감행한 대규모 군사 작전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쿠란 소각 시위를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에선 종교 지도자도 나서서 스웨덴 비판이번 쿠란 소각 사태 뒤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이라크의 경우 현지 유명 시아파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목소리를 높인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알 사드르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시아파 고위 성직자를 지낸 명문가 출신으로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종교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과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이로 인해 사담 후세인 정권(1979년 7월~2003년 4월까지 대통령 역임‧미국의 침공 뒤 도피 중이다 2003년 12월 미군에 붙잡혔고 2006년 12월 사형 당했다)이 무너진 뒤 이라크 정국이 혼란스러울 때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산하에 무장단체도 두고 있을 정도다.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한 뒤, 이라크 안정을 위해 물밑에서 적극 접촉했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 사드르는 최근 “이라크 정부는 스웨덴과 외교 관계를 끊어야 한다. 스웨덴은 이슬람에게 적대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라크인들이 대거 반스웨덴 시위에 참여하고, 주이라크 스웨덴 대사관에 불을 지르는 과격한 행위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 영향을 줬다.● 테러에도 영향 준 이슬람 풍자 행위 중동 이민자들이 많은 유럽에서는 쿠란 소각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이슬람 모욕과 풍자(희화화) 행위가 이어져왔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왔고, 무슬림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 문제를 많이 겪은 유럽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로 인한 테러도 발생했다. 프랑스에서는 2015년 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무슬림과 무함마드(이슬람의 선지자)를 풍자하는 만평을 자주 실어 테러 대상이 됐다. 당시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에서 형체를 표현해서는 안 되는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렸고, 이를 희화하는 만평을 잡지에 게재했다. 이를 이슬람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프랑스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샤를리 에브도의 사무실을 찾아가 편집장을 비롯해 10명을 총으로 살해했다. 2020년에 10월에는 샤를리 에브도의 무함마드 만평을 수업 시간 자료로 활용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를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살해했다.2005년 9월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테러범으로 표현한 만평을 그렸던 덴마크 만평가 쿠르트 베스테르고르는 2021년 7월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베스테르고르는 동료 만평가 12명과 함께 무함마드를 폭탄 모양의 터번을 쓴 사람으로 묘사했었다. 2008년 주파키스탄 덴마크 대사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8명이 숨졌는데, 가장 큰 이유는 베스테르고르의 만평에 대한 불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 책임연구원은 “무슬림 이민자가 늘어나는 나라의 중앙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가장 우려하는 건 이슬람에서 금기시 하는 행위가 부각되는 시위”라며 “이 경우 극단주의자는 물론이고 평범한 무슬림들도 자극하고 더 큰 과격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작전 기간 2일, 사망자 수 13명(팔레스타인 12명, 이스라엘 1명), 부상자 120명 이상(팔레스타인 보건부 발표)… 3~4일(현지 시간) 진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내 제닌 난민촌에 대한 군사작전 결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이‧팔 분쟁)은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도 대표적인 갈등으로 꼽힌다. 역사도 길다. 1940년대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둘러싼 충돌은 계속돼 왔다. 그러다 보니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기 전에는 큰 주목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제닌 사태’도 사상자 수로만 볼 때는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제닌 사태에는 전세계적인 관심이 모아졌다. 언론의 대규모 취재가 이뤄졌고, 중동 외교가의 시선도 집중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에서 중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교수(한국이스라엘학회장)는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일종의 변곡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온건파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에 20년 만에 대규모 공습무엇보다, 이스라엘이 2000년대 초반 대대적으로 발생했던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무장봉기)’ 이후 처음으로 서안지구에서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쳤다는 게 큰 특징이다. 비록 사상자는 적었지만 이스라엘은 최첨단 드론을 동원해 공습을 감행했고, 1000여 명의 지상군을 제닌 일대에 투입했다. 서안지구는 대이스라엘 무력 투쟁을 강조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 ‘하마스가’ 관할하는 가자지구와 달리 비교적 온건한 성향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많다. 서안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하마스와 달리 이스라엘과의 대화와 협력을 강조해 왔다. 그 결과, 지난 20여 년 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은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가자지구에서는 2008년, 2012년, 2014년, 2021년, 지난해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대규모 충돌이 발생해 수백, 수천 명이 사망했다. 가자지구에서의 대규모 충돌은 이집트, 요르단, 미국 같은 ‘제3자’가 중재를 나서야 해결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격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제닌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수백 명의 무장 팔레스타인인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6개월간 이스라엘을 겨냥한 50건 이상의 총격이 제닌 지역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제닌에는 다른 서안지구 내 지역에 비해 전통적으로 하마스 지지자가 많다. 2021년에 ‘제닌 여단(Jenin Brigade)’이란 무장단체도 탄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제닌 지역은 수십 년 간 이스라엘에 맞서 무장투쟁을 해온 역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 초강경 보수 이스라엘 내각의 ‘전선 확대’인가 하지만 ‘제닌 지역의 위험’ 못지 않게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초강경 보수 성향이 그동안 주된 군사작전 대상이 아니었던 서안지구도 공격 대상으로 포함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강경 보수파로 분류된다. 그는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로 지난해 12월 세 번째(첫 번째 임기 1996년 6월~1999년 7월, 두 번째 임기 2009년 3월~2021년 6월) 임기를 시작했다. 그의 정치적 성공 배경에는 ‘안보 제일주의’, 좀더 구체적으로는 ‘강경한 대팔레스타인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특히 이번 네타냐후 내각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 성향이 강한 정당들 간의 연정을 통해 수립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물론이고 강경 극우 성향을 보이는 인사들이 대거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반대하는 이들이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는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유대인 정착촌’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유대인 정착촌 정책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유대인들의 집단 정착을 장려하는 게 목적이다.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영토 늘리기다. 팔레스타인 진영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조치다.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불법 행위로 간주하지만 이스라엘은 꾸준히 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극우 정당 ‘오츠마 예후디트(이스라엘의 힘)’ 소속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1월3일 이슬람교의 성지인 알아끄사 모스크(사원)가 있는 동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ain)을 방문해 물의를 빚었다. 현재 요르단이 관리 중인 알아끄사 모스크는 누구나 방문 가능하지만 예배는 무슬림만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 관계자들은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동예루살렘 특히 성전산 일대 방문을 자제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안보 정책을 담당하는 벤그비르 장관의 성전산 방문은 메시지가 명확하다. ‘노골적인 도발이다’, ‘점령자인 것을 과시하는 행동이다’는 비판이 나왔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인적 구성을 감안할 때 ‘서안지구의 반이스라엘 무장 행위에도 가자지구에서처럼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전략이 수립되는 건 시간문제였다”며 “앞으로 이스라엘 군의 서안지구 내 작전이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군사작전 못지않게 유대인 정착촌 확장 조치에도 힘을 기울일 전망이다. 유대인 정착촌 확장은 네타냐후 정권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말 취임 선서를 하면서도 정착촌 확장 의지를 밝혔다. 유대인 정착촌은 서안지구 쪽에 집중돼 있다. 제닌 사태 이전에도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둘러싼 서안지구 내 이·팔 갈등은 고조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말에도 서안지구 내 정착촌에 5700여 채의 주택 추가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아랍국가의 대사급 외교관은 “장기적으로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서 최대한 이스라엘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제닌처럼 강한 반발이 나타나는 지역은 봉쇄하는 식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반발 커지며 가자지구처럼 변하는 서안지구 민심 향후에는 ‘대규모 유대인 정착촌 확장 움직임→팔레스타인의 강한 반발과 무력 투쟁→이전보다 많아지고 강경해지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대규모 사상자 발생’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서안지구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서안지구에서 제2, 제3의 제닌 사태도 발생할 수 있는 것. 또 서안지구가 가자지구처럼 바뀌는 이른바 ‘가자지구화(化)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서안지구의 전반적인 성향이 급격히 강경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무능과 부패로 서안지구 내 민심이 이미 오래전부터 변화하고 있었다는 평가도 많다. 온건파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지지가 줄어들면 강경파인 하마스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가 서안지구에서 강했던 지역인 제닌 일대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했다. 지역 경비를 담당하는 팔레스타인 보안군도 제닌 일대에선 활동하지 않았다. 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제닌 사태 중에도 이스라엘과 협상하거나, 팔레스타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중단한다’는 발표가 사실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보여준 유일한 대응이었다. 성 교수는 “서안지구에서는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도대체 이스라엘과 대화하면서 무엇을 얻었느냐’는 반발감이 이미 커지고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제닌 공격 같은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계속된다면 서안지구의 가자지구화는 피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의 제닌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서도 서안지구 내 민심 이탈 현상은 제대로 확인됐다. 이스라엘 영자지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제닌 사태 중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부 관계자들의 장례식 참석을 막았던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계자들이 장례식 참석을 거부당하는 동영상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점령자(이스라엘)에게 협력했다’는 식의 메시지가 퍼져나가고 있다. ● 서안지구로 전선 확대는 막 시작된 ‘아랍권과 해빙’에 악영향 “지금은 작전을 종료하지만 제닌에 대한 광범위한 조치는 일회성이 아니다. 우리는 제닌이 테러리즘의 안식처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4일 제닌 작전의 지휘를 담당한 기지를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분명한 서안지구로의 전선 확대 의지를 표명한 것. 네타냐후 총리는 국익이나 정치적 지향점 못지않게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그는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법부 무력화 법안(의회 과반 이상이 동의하면 대법원의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 포함)’을 추진하다 대규모 시위 사태가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 압박 정책을 통해 지지 세력의 결집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서안지구로의 전선 확대에는 치명적인 부작용도 있다. 무엇보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최대 공적 중 하나로 내세우는 일부 아랍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두 번째 총리 임기 중이던 2020년 9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외교 정상화)’에 참여해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과의 외교 정상화를 이끌어냈다. 현재 이스라엘은 모로코와 수단과도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다. 궁극적으로 아랍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수교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도 이스라엘은 사우디를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확대되고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질 경우 아랍권의 반발 역시 거세질 수밖에 없다. 모로코는 최근 이스라엘과의 회담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또 아브라함 협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권 국민들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카타르의 싱크탱크인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이 지난해 14개 아랍국가의 3만3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84%가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8%에 그쳤다. 또 76%가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 전체의 문제다’라고 답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네타냐후 총리와 현 이스라엘 내각의 강경한 팔레스타인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도 변수다. 바이든 행정부는 꾸준히 유대인 정착촌 확장에 반대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집권한지 반년이 넘었지만 아직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도 못했다.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집권 뒤 반년이 지났는데도 진행되지 않은 건 이스라엘 총리에게 이례적인 일. 바이든 행정부와 네타냐후 정권 간의 거리감이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서안지구에서 더욱 과감한 압박 정책을 펼치고 싶겠지만 아랍권과 미국과의 관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내년 미국 대선 결과도 이스라엘의 향후 서안지구 관련 정책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혁·개방 성과 알리는 이벤트UAE, 카타르보다 뒤늦게 뛰어든 ‘국제 이벤트’ 유치 경쟁에서 성과 내야 사회문제는 더욱 논란되고 부각될 수도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함께 내일을 향해.’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놓고 한국(부산), 이탈리아(로마)와 경쟁 중인 사우디아라비아(리야드)의 엑스포 테마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인근 이시레물리노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2차 총회의 2030 엑스포 유치를 위한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사우디는 왕실 구성원인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부 장관(왕자)와 리마 빈트 반다르 알 사우드 주미 사우디 대사(공주)를 중심으로 이브라힘 알 술탄 리야드 시장, 칼리드 알 팔레 투자부 장관 등이 발표자로 나섰다. 사우디 정부에서 영향력과 글로벌 감각을 갖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출동한 셈이다.이들은 PT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총리)가 취임한 뒤 달라지고 있는 사우디의 모습을 강조했다. 리야드에 개발될 예정인 세계 최대 도시공원(킹 살만 공원), 복합 문화 지구인 ‘뉴 무라바(새로운 광장) 프로젝트’, 최첨단 도심 철도망 구축 등이 소개됐다. 칼리드 장관은 공격적인 ‘오일머니’ 투입 계획도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는 2030년까지 3조3000억 달러(약 4314조750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인데, 이 중 30% 이상이 리야드에, 엑스포에는 78억 달러(약 10조 20924억 원)가 투자될 것”이라고 밝혔다. BIE 행사장 밖에서도 사우디의 공격적인 홍보가 주목을 받았다. 사우디는 19일 명품 브랜드의 전시회와 상품 발표 행사 등이 자주 열리는 장소로 유명한 건축물로 에펠탑 근처에 있는 ‘그랑팔레’에서 BIE 회원국 대표단 초청 행사를 열었다. 파리 택시에도 리야드 엑스포 관련 광고를 부착시켰다. 말 그대로 엑스포에 ‘올인’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일단 앞서 나가는 사우디…프랑스, 중국, 튀르키예, 이스라엘 지지 확보 현재 사우디는 2030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우디 최대 영자지인 아랍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179개 BIE 회원국 중 60개국 이상이 공식적으로 사우디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프랑스, 튀르키예, 중국도 포함돼 있다. BIE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프랑스가 이웃 나라이며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에서 오랫동안 협력해온 이탈리아 대신 사우디 지지를 공개 선언한 건 이례적이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모니터에 따르면 아랍의 ‘주적’ 이스라엘도 사우디를 지지하고 있다.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다. 이스라엘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9월 주도한 ‘아브라함 협정(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관계 정상화)’을 계기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사우디가 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선전하고 있는 배경에는 당연히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 엑스포 유치 역시 무함마드 왕세자가 직접 지휘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처럼 직접 PT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BIE 총회 기간 중 파리를 찾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나는 등 이른바 행사장 밖에서의 ‘고공 플레이’에 집중했다.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2030 엑스포 유치는 자신이 기획한 국가 중장기 발전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자신이 추구해 온 사우디의 개혁‧개방 성과를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88)의 나이를 감안할 때, (사우디가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엑스포를 국왕의 신분으로 맞이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등장과 성장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사우디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아직 유치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사우디가 유치에 성공한 대규모 국제 이벤트는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네옴시티)과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 정도다. 2030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사실상 사우디 건국이래 처음으로 현지에서 열리는 전세계적인 이벤트인 셈이다. 사우디가 2030 엑스포 유치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로서는 엑스포 유치를 국가 위상 제고, 관광 자원 개발, 투자 유치, 국민의 자부심 고취 등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회로 생각할 것”이라며 “한국의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와 유사한 효과를 노린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국제 이벤트 ‘아랍 최초 유치’를 UAE, 카타르에게 내준 아쉬움 ‘국가 자존심’ 차원에서도 사우디는 2030 엑스포를 특별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이른바 이슬람권과 아랍권의 맹주다. 이슬람교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2곳(메카, 메디나)를 보유하고 있다. ‘성지 수호국’이다. 사우디 국왕의 공식 명칭에는 ‘두 성지의 수호자’란 표현도 들어간다. 특히 사우디는 같은 종파(이슬람 수니파), 언어‧문화(아랍), 정치체제(왕정), 경제구조(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지리(아라비아반도와 걸프만)를 공유하는 국가들(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사이에서의 중심국이다. 사우디는 이 나라들과 함께 1981년 5월 정치경제협력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역과 종교 면에서 ‘중심 국가’의 면모를 확실히 갖췄고, 국제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영향력이 큰 나라지만 국가 브랜드를 높이고 전세계적 주목을 받는 국제 이벤트를 유치하지 못했다는 건 사우디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특히 이웃나라인 UAE와 카타르가 각각 2020 엑스포(코로나19로 실제로는 2021년 10월~2022년 3월에 열렸다)와 2022 월드컵을 유치한 건 사우디의 아쉬움을 더욱 키운다. 아랍, 나아가 중동 문화에서 부족(집안 혹은 왕실) 간 경쟁 의식은 상당하다. 가령, ‘마즐리스(Majlis‧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가족행사를 여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를 화려하고, 독특하게 꾸미는 문화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강하다. 엑스포를 포함한 국제 이벤트 유치에서도 이런 경쟁 문화가 발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UAE나 카타르처럼 ‘작은 나라’가 아랍과 중동의 대표처럼 문화산업에서 주목을 받는 건 사우디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삼성물산, 삼성전자, KOTRA에서 근무하며 사우디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윤여봉 중동경제통상포럼 대표는 “GCC 국가들 간에도 경쟁 의식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카타르에게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아랍 최초 개최’를, UAE에게 ‘아랍 최초 엑스포 개최’를 빼앗긴 만큼 사우디로서는 2030 엑스포를 유치해 파격적인 규모와 성과를 보여주려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내부 인권문제 등 더욱 부각될 수도 사우디는 엑스포 유치를 통한 비석유 산업의 육성과 해외 투자 유치 같은 경제 효과도 기대한다. 또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대한 관심 역시 크다. 하지만 ‘사우디가 정말 개방적으로 변화하고 있느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기업 환경을 갖추고 있느냐’는 면에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적잖다. 사우디는 중동지역본부를 자국에 둔 기업만 정부와 공공부문 사업 입찰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정책을 2021년 초에 밝혀 큰 논란을 빚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를 전세계적인 인물로 부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네옴 프로젝트’ 역시 세부 전략이나 계획에서 잦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국제PR)는 “중·장기적으로 한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요소에는 정책과 제도의 안정성도 포함된다”며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산유국들은 인프라나 이벤트 같은 하드웨어적 홍보 수단 못지않게 정책과 제도의 안정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우디가 2030년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여성과 외국인 노동자 등과 관련된 인권문제가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타르도 2022 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큰 논란이 됐었다. 이 교수는 “사우디가 최종적으로 엑스포를 유치한다면 인권문제는 물론이고 다른 사회문제들도 꾸준히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축구, 골프, F1…스포츠 산업 향한 전방위 투자 아랍 젊은 리더들, ‘자기 성과 만들기’에 관심 커 ‘스포츠 워싱’과 ‘보여주기 이벤트’란 지적도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케이스 #1 지난해 12월 19일(현지 시간)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킬리앙 음바페의 프랑스가 맞붙은 이날 경기에서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은 또다른 승자였다. 당시 메시와 음바페의 소속돼 있던 프랑스 리그앙(리그1)의 최고 명문팀 파리생제르맹의 소유주가 카타르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카타르투자청(QIA) 산하 스포츠 투자전문회사인 카타르스포츠인베스트먼트가 파리생제르맹을 소유하고 있다. 타밈 국왕으로서는 자국에서 열린 ‘중동 첫 월드컵’에서 사실상 자신이 구단주인 팀의 ‘월드 스타’ 두 명이 결승에서 경쟁하는 ‘흐뭇한 상황’을 보게 된 것. 카타르는 스페인 명문 FC바르셀로나에 대한 후원도 카타르재단(카타르 정부가 설립한 교육·문화·과학 분야 지원 비영리재단)과 카타르항공(국영항공사)을 통해 오랜 기간 진행해 온 ‘국제 축구계의 큰 손’이다. 케이스 #2 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가 지원하는 LIV 인비테이셔널 골프(LIV)와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DD월드투어(옛 유러피안투어)가 ‘통합’을 발표했다. 세 단체는 통합을 발표하며 “골프란 종목을 전 세계적으로 통합하기 위해 획기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원래 LIV골프와 PGA투어는 앙숙이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LIV골프가 ‘오일머니’를 앞세워 더스틴 존슨, 필 미컬슨, 브룩스 켑카 같은 유명 선수를 PGA투어에서 빼갔기 때문. PGA투어는 LIV골프로 넘어간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했다. 또 LIV골프는 PGA투어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극심한 갈등 관계였던 LIV골프와 PGA투어가 통합한다고 하자 미국이 최근 소원해진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사우디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합 발표가 있던 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했다. PIF가 새로운 통합 골프 단체의 독점적 투자자란 점도 ‘미국의 사우디 배려’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다.● 오일머니에 술렁이는 글로벌 스포츠 산업아랍 왕정 산유국들의 글로벌 스포츠 산업을 향한 진격이 거세다. 현재는 사우디와 카타르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돋보인다. 하지만 막대한 오일머니를 보유한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도 언제든지 경쟁에 뛰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사우디는 ‘미스터 에브리싱’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실권을 잡으면서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2018년부터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E’를 열고 있고, 2019년에는 ‘사막의 혈투’로 불린 WBA·IBF·WBO·IBO 복싱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도 유치했다. 역사는 짧지만 두둑한 상금으로 유명 테니스 선수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디리야 테니스컵’도 사우디가 무대다. 디리야는 수도 리야드에 위치한 사우디 왕가의 발상지로 현지에선 주요 역사 유적지로 통한다. 축구에도 관심이 많다. PIF를 통해 202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뉴캐슬유나이티드에도 3억 파운드(약 4882억 원)를 투자했다. PIF가 뉴캐슬의 최대 주주가 된 뒤 우수 선수대거 영입 등 파격적인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 2021~2022 시즌 11위에 그쳤던 뉴캐슬은 최근 끝난 2022~2023 시즌에서는 단번에 4위에 올랐다. 사우디는 은퇴를 앞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과 카림 벤제마(프랑스) 같은 월드 스타를 자국 프로축구팀에 영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우디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도 시동을 걸었다. 이미 2034년 아시안게임(리야드)과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네옴시티)을 유치했다. 사우디 건국 이래 자국에서 열리는 최대 스포츠 행사가 될 전망이다. 2036년 올림픽 유치를 통해 ‘중동 최초의 올림픽’ 타이틀을 획득한다는 목표도 있다. 최근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사우디와 달리 카타르는 이미 1990년대부터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카타르는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의 ‘중동 최초 유치’란 타이틀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건 2022년 월드컵이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도 2019년에 중동 최초로 개최했다. 카타르는 아랍권에서는 처음, 중동권에서는 두 번째로 2006년에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나라다. 그리고 2030년 아시안게임을 다시 유치했다.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두 번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나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 경기도와 비슷한 크기의 작은 나라가 ‘국제 스포츠 이벤트 허브’란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은퇴를 앞둔 유명 축구 선수를 자국 프로리그에 영입하는 것도 중동에서는 카타르가 원조다. 스페인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사비 에르난데스(FC 바르셀로나 감독)와 가비 페르난데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코치)가 선수 시절의 말년을 카타르에서 보냈다. ● 젊은 리더의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 작업사우디와 카타르가 유독 스포츠 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이유로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 꼽힌다. 교육 수준이 높고, 외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젊은 리더들이 나라를 이끌면서 본격적으로 소프트파워 역량 키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 무함마드 왕세자와 타밈 국왕은 각각 38세, 43세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 나아가 문화콘텐츠 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성장한 세대다. 또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자국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의지도 분명하다. 이형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국제PR)는 “아랍 산유국의 젊은 지도자들은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집중했던 기성세대 지도자들과 구별되는 성과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 중 하나로 국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삼았을 수 있다”며 “그동안 국가 차원의 관심이 많지 않았던 분야인 만큼, 새로운 리더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의 경우 결과가 쉽게 확인되고, 국내외에서 동시에 관심을 받는 것도 용이해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적절한 도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사우디와 카타르 같은 아랍 산유국들은 오일머니로 큰 부를 축적했지만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 △여성 차별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 강조 △극단주의 성향의 무장단체 지원 의혹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천문학적인 돈을 스포츠 산업에 투자할 때마다 전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만 동시에 ‘스포츠워싱(스포츠를 이용한 부정적인 이미지 세탁)’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자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저임금, 위험한 근무 환경, 열악한 거주시절 등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심층 탐사보도를 통해 “2010년부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이주 노동자 6500여 명이 카타르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보여주기식 이벤트? 경제 성장 위한 전략?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의 중‧장기 종합발전 계획인 ‘비전 2030‘을 통해 △탈석유(산업 다각화) △네옴시티 개발 △과학기술 역량 강화뿐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콘텐츠 산업의 육성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석유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사우디 경제의 체질 개선을 지향하고, 이 과정에서 스포츠 산업도 키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우디를 포함해 아랍 산유국들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여전히 ‘유명 대회나 선수 유치’ 식의 보여주기 조치에 머물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 유치와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관련 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거의 없다. 예산 및 재정 타당성 분석과 인력 양성 계획도 마찬가지다.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아직까지 아랍 산유국들의 스포츠 산업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국가 홍보 프로젝트 성격에 머물고 있다”며 “지속적인 경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와 카타르 모두 글로벌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국부펀드를 많이 이용한다. 보통 국부펀드는 안정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성과가 나는 투자를 지향한다. 또 체계적인 투자 전략을 강조한다. 하지만 PIF나 QIA가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는 지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아랍 산유국 국부펀드와 교류해본 경험이 있는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은 “과거보다 투자전략이나 의사결정 구조가 많이 체계화됐지만 여전히 아랍 산유국 국부펀드들은 왕실이나 정부의 주요 프로젝트에는 세밀한 검토 없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며 “스포츠 산업도 수익성과 성장 가치보다는 왕실과 정부의 관심 사업이라 파격적으로 투자하는 성향이 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아랍 산유국들이 경제 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해외 기업과 투자 유치를 위해 스포츠 산업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사우디와 카타르 같은 아랍 산유국으로선 개혁‧개방 의지와 소프트파워 역량을 꾸준히 보여줘야 유명 글로벌 기업과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며 “일회성 대회 유치나 이벤트 참여가 아니라 지속적인 스포츠 산업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 구조를 바꾸고, 수준을 높이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가 28일(현지 시간) 치러진다. 경제만 놓고 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14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이미 패배했어야 한다. 살인적인 물가 폭등, 국민소득 추락, 대지진 뒤 더딘 복구 작업,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금리를 낮추는 이상한 통화정책 등 에르도안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올해 2월 튀르키예 남부 시리아와의 접경 지역에서 규모 7.8의 강진으로 5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때는 상당수 사람들이 ‘에르도안 정권은 끝났다’고 예상했다. “이렇게 큰 재난에는 준비가 돼 있기 불가능하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과 1999년 서부 해안 도시 이즈미르에서의 대지진 발생한 뒤 지진 대비 목적으로 걷기 시작한 ‘지진세’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제대로 설명 못하는 정부의 모습에 튀르키예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대선 결과는 달랐다.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진 못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49.52%의 득표율을 얻어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는 44.88%의 득표율에 그쳤다. 그리고 1차 투표에서 5.17%의 득표율로 3위에 오른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는 ‘에르도안 지지’를 선언했다. 이변이 없으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결선 투표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내각책임제 시절 총리에 오르면서 튀르키예의 최고 권력자가 됐다. 2014년 총리 퇴임 직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17년에는 대통령제 도입을 담은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결선 투표에서도 승리하면 2033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진다. 30년간 최고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에르도안 대통령 집권기 튀르키예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는 주변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가 꼽힌다. 다양한 이유, 특히 국익을 내세웠다. 그리고 지향점과 메시지는 분명했다. 바로 ‘강한 튀르키예’, 좀더 노골적으로는 ‘오스만 제국 재건’이었다. 말 그대로 화려한 과거를 상기시키며 ‘국뽕’을 자극한 것이다. 이전의 세속주의와 친서구 성향 튀르키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경제난이 심각하지만 튀르키예 사회 전반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 10년 간 내세워 온 민족주의, 지역 패권 정책, 이슬람주의가 잘 먹히고 있다는 뜻”이라며 “특히 지역 패권 정책은 민족주의, 오스만 제국 시절 영광의 회복, 이슬람주의 등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전략이라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면 더욱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쿠르드족 독립 막는다며 시리아 북부 사실상 점령시리아는 튀르키예의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 움직임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곳으로 꼽힌다. 튀르키예 남부와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는 ‘아랍의 봄(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2011년 내전에 휩싸였다. 10년 간의 전쟁 끝에 세습 독재자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반군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던 때 튀르키예는 반군 편에서 시리아 내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특히 2019년 10월 미군이 시리아 철수를 발표하자 곧바로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집단 거주 지역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튀르키예는 자국민의(약 8500만 명) 20% 정도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이 시리아, 이라크 등 주변국 거주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것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여긴다. 이번 대선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 견제를 강조했다. 당시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에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했고 민간인 거주 지역에도 공격을 자행했다. 또 시리아 북부(튀르키예 기준으로는 남부)에 길이 444km, 폭 30km 지역을 ‘안전지대(완충지대)’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군대도 주둔시켰다. 사실상의 영토 확장 조치였다. 중동 외교가 관계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중동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며 “미국과 유럽의 강도 높은 비난에도 튀르키예가 노골적으로 쿠르드족 공격, 나아가 시리아내 군사를 주둔시키는 모습에 에르도안의 튀르키예는 이전의 튀르키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 북아프리카 자원부국 리비아에선 ‘아랍 맹주’ 사우디와 대리전 중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많은 리비아에서도 튀르키예의 존재감은 크다. 리비아 역시 아랍의 봄의 여파로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권좌에서 쫓겨났고 내전에 휩싸였다. 현재 리비아에선 수도 트리폴리와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조하는 통합정부(GNA)와 동부 유전지대를 장악한 세속주의 군벌 리비아국민군(LNA)가 충돌 중이다. 튀르키예는 GNA, 사우디는 LNA의 핵심 지원국이다. ‘아랍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실상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2017년 6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집트가 카타르의 친이란 외교 등을 문제 삼으며 터진 ‘카타르 단교 사태(외교 관계를 비롯해 무역, 교통, 관광 등 모든 교류를 일시에 중단)’ 때도 튀르키예는 사우디에 맞서 카타르 편에 섰다. 당시 튀르키예는 카타르 정부의 요청에 따라 군대를 카타르에 파병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면서 아라비아반도에서 철수했던 튀르키예 군대의 공식적인 첫 귀환이었다. 또 주요 식량의 80% 정도를 사우디로부터 수입해 오던 카타르가 일시적인 식량 부족 사태를 겪을 때는 이를 적극 지원했다. 장 센터장은 “사우디로서는 이미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적극적이었던 이란에 이어 튀르키예까지 자국 바로 앞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사우디의 튀르키예에 대한 감정은 나쁘다.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모니터에 따르면 사우디에서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오스만 제국 시절 점령군이 저질렀던 범죄 등 튀르키예 관련 부정적인 내용을 대거 늘리고 있다. 사우디에 주재했던 교민에 따르면 현지 매체에서 “튀르키예에 가급적 여행을 가지 말라”는 기사도 자주 게재됐다. 2020년 9~10월 튀르키예와 민족, 종교,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운 나라인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벌였다. 아제르바이잔은 중동과 동유럽에선 ‘튀르키예의 동생 국가’로 불릴 정도로 튀르키예와 가깝다. 반면 아르메니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세기 초에 발생한 오스만 제국의 대학살로 인한 피해를 강조해왔다.전쟁에서 단기간에 아제르바이잔이 승리하는 데 튀르키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제르바이잔이 성능이 우수한 튀르키예산 무인기(드론)를 앞세워 아르메니아의 지상군 전력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영토 일부를 아제르바이잔에 넘겨줘야 했다. ● 재집권하면 지역 패권 전략을 ‘성공 키워드’로 인식해 더 집중할 수도에르도안 대통령이 대선 결선 투표에서 최종 승리하게 된다면 더욱 강도 높은 지역 패권 전략을 수립할 가능성이 높다. 최장 2033년까지 집권 가능하게 됐고, 국내 경제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확실히 표를 주는 이른바 ‘튀르키예 보수층의 결집’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지역 패권 전략이 성공 키워드인 셈이다. 향후 튀르키예는 중동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도 영향력 확장에 나설 수 있다. 그 대상으로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가 꼽힌다. 과거 오스만 제국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했고,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도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튀르키예는 2021년 11월 튀르크어 계열 언어를 쓰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튀르크어 사용국가 기구(Organization of Turkic States·OTS)’도 결성했다. 정식 회원국은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헝가리는 참관국이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은 “OTS 결성은 에르도안 정부가 전방위적 지역 영향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며 “다만 튀르키예와 우호 관계인 러시아와 중국이 중·장기적으로는 튀르키예의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움직임에 민감하게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 분열과 반미 전선 확대 차원에서 튀르키예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보여 왔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 모두 ‘제국의 경험’을 지닌 튀르키예가 자신들의 앞마당 격인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특히 이 지역 무슬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와 현재까지는 큰 갈등이 없지만 이란에도 아제르바이잔계 인구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튀르키예의 지역 영향력 행사 전략이 계속되면 중동의 또다른 맹주인 이란과도 불편한 관계가 생길 수 있다.● 경제는 어디에?경제난 속에서도 경제 어젠다가 딱히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한 튀르키예 대선.에르도안 대통령도 선거 기간 중 내세운 경제 정책이 있다. 하지만 가정용 가스 무상 공급 확대, 최저 임금 인상, 학생들에 대한 무료 인터넷 데이터 제공, 연금 수급 개시 연령 폐지 등 다분히 포퓰리즘 성격이 강한 정책들이다. 당연히 튀르키예 안팎에서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우려도 크다. 튀르키예에서 귀화한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씨는 “에르도안 정부의 경제 정책은 매우 포퓰리즘적이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해도 경제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세습 독재자’, ‘시리아의 도살자’, ‘북한 김정은과 가까운 정상’….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설명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2000년 아버지로부터(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 권력을 물려받은 알 아사드는 2011년 내전에 휩싸인 시리아에서 반대 진영에 속하는 자국민을 잔혹하게 학살한 것으로 전세계적 유명세를 탔다.알 아사드는 그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을 숨지게 했다. 반정부 인사에 대한 납치, 고문, 암살, 반군 장악 지역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은 더 이상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아랍 국가(22개)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아랍판 유엔’으로도 불리는 아랍연맹(Arab League)이 2011년 11월 시리아를 퇴출시킨 이유다. 유엔 등에 따르면 내전 발발 뒤 시리아 인구 약 2200만 명 중 약 50만 명이 사망했다. 시리아를 떠나 이른바 ‘전쟁 난민’이 된 사람은 550만 명이 넘는다.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화학무기 공격이 꼽힌다. 알 아사드 정권은 2013년 여름 화학무기로 반군 장악 지역을 공격해 민간인 1400여 명을 숨지게 했다. 2017년과 2018년에도 화학무기로 반군 지역을 수차례 공격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은 “인권 감수성이 높다고 볼 수 없는 아랍 국가들도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알 아사드 정권의 만행에 경악했고 시리아에 대한 제재에 적극 동참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알 아사드는 살아남았다. 아니 건재하다. 그는 러시아와 이란의 도움으로 지난 10년 동안 반대 세력을 제압했다. 그리고 7일(현지 시간) 아랍연맹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회의 때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결정했다. 알 아사드가 이끄는 시리아의 국제무대 복귀가 시작된 것이다.●사우디, 시리아의 아랍연맹 퇴출 주도했지만 알 아사드가 ‘승자’란 현실 인정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주도한 건 ‘아랍의 맹주’, ‘아랍의 큰 형’ 격인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19일 자국 제다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리아를 복귀시키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펼쳐왔다.2월 튀르키예(터키) 남서부와 시리아 북서부에서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우디는 시리아를 도왔다. 시리아 내전 발발 뒤 사우디가 시리아를 지원한 건 처음이었다. 지난달에는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과 파이살 메크다드 시리아 외교장관이 각각 12년 만에 양국을 서로 방문해 외교 관계 정상화와 항공 운항 재개를 논의했다.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가 결정되고 이틀 뒤 두 나라는 대사관을 11년 만에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현재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알 아사드가 이번 아랍연맹 정상회의 때 참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중동 외교가에선 최근 시리아를 향한 사우디의 행보를 이례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사우디는 2011년 시리아의 아랍연맹 퇴출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또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뒤에는 반군을 지원했다. 반군의 중심 세력이 같은 종파인 수니파였고, 알 아사드는 시아파(이란이 중심국인 종파)의 분파인 알라위파란 게 큰 이유였다. 미국이 알 아사드 정권에 극도로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우디가 반군 편에 섰던 이유다.이처럼 사우디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시리아 내전의 최종 승자가 결국 알 아사드란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3월 중국 중재 아래 베이징에서 7년 간 단교 상태였던 지역 라이벌 이란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결정하는 등 ‘광폭 외교’에 나서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 왕세자의 또다른 파격 조치란 평가도 나온다.●사우디, 이란, 튀르키예 ‘중동 빅3’, 시리아의 지정학적 가치 포기 못해무엇보다 사우디로서는 시리아를 더 이상 불안정한 상태, 특히 ‘앙숙’, ‘라이벌’ 이란의 영향력 아래 두는 건 곤란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비록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사우디-이란 관계는 정치체제(사우디는 왕정, 이란은 신정공화정)와 종파 차이로 결코 편안할 수 없다).알 아사드 정권은 2011년 내전이 발발하자 ‘반미 국가’이며 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이란과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란과 러시아는 튀르키예, 이라크,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시에 지중해도 접하고 있는 시리아의 지정학적 가치에 매료됐다. 이란과 러시아가 알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배경이다. 두 나라 모두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교두보로 시리아를 본 것.이란과 러시아의 군사 지원 덕에 알 아사드는 반군을 물리쳤다. 러시아는 공군력을 중심으로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주도했다. 러시아군의 공습 중 많은 수는 민간인과 군인을 구별하지 않는 이른바 ‘융단폭격’이었다. 이란은 국가 최고지도자(시아파 최고 성직자)가 직접 관리하는 정예부대로 이란 사회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인식되는 혁명수비대(IRGC)의 특수부대를 시리아에 파견했다. 혁명수비대는 시리아의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하며 지상군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이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시리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과 달리 시리아에 계속 공을 들여왔다. 이란에게 시리아는 이라크에서 시작돼 레바논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 전략’의 중간 지점이다.이처럼 지정학적 가치가 높고 같은 아랍 국가인 시리아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10여 년 간 계속 커져온 게 사우디로서는 당연히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우디로서는 반군을 지원했던 과거가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알 아사드 정권과 화해를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그러나 이란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란 데탕트(긴장 완화) 무드는 지난 12년 간 엉망이었던 시리아와의 관계 복원에 나설 수 있는 기회였다. ‘이란과도 화해를 지향하는 데, 시리아와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아프리카‧중동연구부장(교수)은 “사우디로서는 시리아에 대한 전략을 자연스럽게 바꿀 수 있는 명분과 모멘텀이 생긴 것”이라며 “경제 지원을 통해 시리아 재건 사업을 돕고, 이란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계기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반면 이란은 최근 사우디의 움직임과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가 반갑지 않다. 물론 이란이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3일과 4일 이란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에브라힘 라이시가 시리아를 방문한 건 예사롭지 않다. 이란 역시 변화하는 시리아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시리아 내전에서 역시 반군을 지원했고, 사우디와 이란과 중동 지역 패권을 놓고 경쟁 중인 튀르키예도 바빠졌다. 튀르키예는 1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외교장관 회의 때 시리아와 별도 회담을 가졌다.튀르키예는 자국 국민의 약 20%를 차지하는 쿠르드족의 분리 독립 운동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시리아를 예의주시한다. 시리아 북부 지역에도 반튀르키예 성향,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쿠르드족이 대거 거주하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2019년 10월 시리아 북부 지역 쿠르드족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진행했고 군대를 시리아에 주둔시키고 있다.●알 아사드의 아랍연맹 복귀 미국도 못 막아결과적으로, 알 아사드로서는 중동 나아가 이슬람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세 나라를 상대로 외교적 지렛대를 활용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정확히는, 독재자였던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뒤 잔인하게 자국민을 탄압하며 아랍권에서조차 고립됐던 알 아사드에게 중동의 강대국들이 먼저 다가서고 적극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리고 알 아사드는 자연스럽게 국제무대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알 아사드의 복귀는 미국에게도 당혹스럽다.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를 주도했었다. 아랍연맹 복귀 결정에도 노골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시리아는 아랍연맹에 복귀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중동 주요 국가들이 미국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한 중동 외교 소식통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아랍 주요 국가들이 미국의 석유 증산과 중국, 러시아와의 거리두기 같은 요청을 따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미국과의 관계를 포기하진 않겠지만 과거처럼 미국에 의존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아랍권, 마약과 난민 문제 해결 위해서도 시리아 복귀시켜야 한다고 판단사우디 등 아랍 국가들이 마약과 난민 같은 자국 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에 적극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뉴욕타임스(NYT)와 알자지라방송 등에 따르면 사우디는 시리아에서 생산돼 중동 주요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마약인 ‘캡타곤’의 확산을 막는 데 관심이 많다. 캡타곤은 2014~2017년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 국가 수립을 선포했던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전투요원들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대량 생산한 마약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 마약’, ‘IS 마약’, ‘지하드(이슬람에서 성전을 의미) 마약’ 등으로 불리는 데 가격이 저렴해 중동 전역에 퍼지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이 캡타곤의 생산과 유통을 눈감아 주고 있고, 오히려 배후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스라엘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요엘 구잔스키 수석연구위원과 카르밋 발렌시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중동의 데탕트 시대 : 재개된 사우디와 시리아 관계’ 보고서에서 “캡타곤 확산은 이란에 대한 위협처럼 아랍권 전체가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문제”라며 “사우디가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은 자국에 대규모로 넘어온 시리아 난민들을 다시 돌려보내는 데 관심이 많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데 시리아 난민들까지 지속적으로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들로 인한 일자리 부족과 범죄 증가도 심각한 문제다.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아랍 국가들이 마약,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선 시리아가 고립돼 있는 것보다는 아랍연맹이란 국제무대에 정식으로 복귀한 뒤 본격적으로 세부 협상에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며 “시리아에게 복귀를 명분으로 캡타곤과 난민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북한과 가장 가까운 나라, 정상들 간 친분도 두터워…한국과는 미수교 상태중동 정세와 직접 연관된 건 아니다. 하지만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를 계기로 북한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궁금해진다. 북한과 시리아의 ‘특수관계’ 때문이다.일단 두 나라 사이에는 세습 독재, 비참한 국민들의 상황, 국제사회의 불신 등 공통점이 많다. 정상들 간의 개인적 친분도 특별하다. 알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는 살아 있을 때 김일성 주석과 가까웠고 북한을 방문한 적도 있다. 북한은 1967년과 1973년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를 때 시리아와 이집트에 공군 조종사 등 군인들을 보냈다. 전쟁을 같이 경험한 ‘혈맹’인 셈. 1990년대, 2000년대 들어서는 미사일 개발 등에서도 서로를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랍연맹 소속 22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수교를 안 한 나라가 시리아다(시리아를 제외하면 쿠바와 코소보가 아직 한국과 수교를 안 했다). 중동 외교가에선 북한과의 친분 때문에 시리아가 한국과의 수교에 특별한 관심이 없다는 게 정설로 여겨진다. 이집트의 경우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1928~2020년‧1981년~2011년 대통령 재임)은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는 한국과 수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자 이듬해 한국과 수교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알 아사드는 자주 서한을 주고받는 사이다. 2월 대지진 때도 김정은은 시리아에 위로 서한을 보냈다. 북한의 ‘태양절(김일성 생일)’과 시리아의 독립 기념일 같은 때도 두 정상은 축전을 주고받는다. 만약 알 아사드가 19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리는 아랍연맹 정상회의에 참석한다면 김정은은 그의 ‘국제무대 복귀’를 환영 및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은 서한을 전달할까.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한국 국민이 우리 국민이다(Your people are our people).” 무력 분쟁에 휩싸인 수단에서 한국 교민 28명을 철수시킬 때 칼둔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보낸 메시지다. UAE는 23(현지 시간‧수단 수도 하르툼 출발)~25일(경기 성남 서울공항 도착) 진행된 수단 내 한국 교민 구출을 위한 ‘프로미스(Promise‧약속) 작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UAE는 시시각각 변하는 수단 정세 정보를 한국에 제공했다. 하르툼에서 한국 공군의 C-130J 수송기가 도착한 홍해의 항구도시 포트수단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것을 제안한 것도 UAE였다. 한국 교민들은 하르툼을 탈출하기 전 현지 UAE 대사관저로 이동해 잠시 머물기도 했다. 또 UAE는 탈출에 필요한 차량 섭외와 경호에도 도움을 줬다. 특히 UAE는 현재 무력 충돌 중인 수단 정부군과 반군(신속지원군·RSF) 측에 모두 ‘한국 교민의 이동을 막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일려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싱크탱크인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UAE는 수단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라며 “한국으로서는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을 만큼 가까운 우방국(UAE)의 도움을 받는 게 적절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최근 뉴욕타임스(NYT)는 UAE,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같은 나라들이 안보, 경제 측면에서 수단에 관심이 많고 이중 수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UAE라고 전했다. UAE는 어떤 이유에서 수단 내 영향력 키우기에 공을 들였을까. 또 UAE가 수단에서 영향력이 큰 이유는 무엇일까. ● ‘식량 안보’ 차원서 일찌감치 수단에 주목 UAE의 수단에 대한 관심은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수단을 통치했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국토가 사실상 사막이며 면적도 한국의 약 83.4%에 불과한 UAE는 원유와 천연가스는 풍부하지만 대규모 식량 생산은 불가능하다. 주요 식량 대부분을 미국, 호주, 유럽, 인도 등으로부터 수입해왔다. 가까운 지역에서 직접 안정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UAE는 같은 아랍권이며 동아프리카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꼽히는 수단에 주목했다(UAE는 한국과의 경제 협력에서 스마트팜 등 식량 생산 관련 기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 수단은 다른 아랍 국가와 달리 대규모 식량 생산과 목축이 가능한 땅을 보유하고 있다. 아랍권에서 가장 농업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로 꼽힌다. 국제사회에서 아랍 국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아랍판 유엔’으로 불리는 아랍연맹(AL·Arab League) 산하 아랍농업개발기구(AOAD·Arab Organization for Agricultural Development)의 본부가 하르툼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수단에서 아랍 언어와 문화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종도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장은 “수단은 농지나 목초지로 활용 가능한 땅이 풍부할 뿐 아니라 토양도 우수해 작물의 생산성이 높다”며 “1980년, 1990년대 현지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캐나다와 일본 기업들이 수단 농업의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다양한 연구조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극심한 정세 불안만 아니었으면 글로벌 농업, 식량 기업들의 수단에 대한 투자도 계속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UAE가 지원 줄이자 30년 수단 독재 정권도 붕괴 알 바시르 집권 시절 UAE는 수단에 재정 지원과 함께 원유와 비료 등을 공급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비록 알 바시르가 UAE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무슬림형제단(근본주의 이슬람 사상을 강조하며 왕정에 부정적인 정치단체)과 이란과도 가까운 관계였지만 UAE는 수단에 대해 우호적인 스탠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7년 6월 UAE가 사우디와 함께 주도한 ‘카타르 단교사태’ 때 수단이 중립을 취하면서 UAE와 알 바시르 정권 관계는 악화된다. 카타르 단교는 카타르가 이란과 무슬림형제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UAE, 사우디, 바레인, 이집트가 카타르와의 경제‧외교 관계를 일시에 중단한 사태로 2021년 1월까지 이어졌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중동정치프로젝트(POMEPS)가 최근 발행한 ‘수단에서 UAE와 사우디가 벌이는 거대한 게임’에 따르면 수단은 카타르 단교사태로 인한 갈등이 한창이던 2018년 3월 UAE와 카타르로부터 동시에 재정 지원을 받는다. 알 바시르의 노골적인 ‘양다리 외교’에 분노한 UAE는 수단에 대한 원유 공급 등 각종 지원을 중단했고, 수단 경제는 급격히 악화됐다.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확산된다. 그리고 2019년 4월 알 바시르는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UAE의 경제 지원 중단이 독재자 알 바시르의 30년 독재를 무너뜨린 것이다. ● 부르한과 다갈로 진영에 모두 지원 알 바시르가 쫓겨난 뒤, 현재 무력 충돌 중인 수단 정부군 지도자 압델 팟타흐 부르한과 RSF의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가 권력의 중심에 오른다.UAE는 공식적으로는 중립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상 다갈로 진영을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RSF는 군인들을 사우디와 UAE가 주도한 예멘 전쟁에 지상군으로 파견했다. 사실상 용병이었고, 군인들의 월급 등 각종 파병 비용은 UAE가 부담했다. 또 다갈로는 수단의 주요 금광을 장악하고 UAE에 금을 수출해 왔다. 다갈로와 측근들이 UAE에 개인 자산을 옮겨놓았다는 의혹도 있다. 하지만 UAE가 부르한 진영을 모른 척한 것도 아니다. 부르한 진영에도 재정 지원을 했다. 또 UAE는 부르한이 수단 주권위원회 의장으로 사실상의 국가수반 역할을 할 때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수단은 2020년 10월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고 부르한은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기도 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UAE는 수단 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갈로와 부르한 진영에 모두에 보험을 들었고, 두 진영 역시 생존하기 위해선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다갈로와 부르한 진영 모두 UAE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길 희망하고, UAE의 요청에는 긍정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주변국서 반왕정 세력 영향력 커지는 것에 민감 군사, 안보 측면에서도 UAE는 수단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다. 앞으로도 수단 내 정치 상황에 대한 UAE의 관심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UAE는 부족 갈등과 군벌 간 충돌이 자주 발생해 정세가 불안한 수단에 무슬림형제단 같은 반왕정 성향의 정부나 무장 정치단체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아라비아반도의 아랍 왕정 산유국들은 1979년 이슬람교 시아파 지도자들이 중심이 돼 왕정을 붕괴시키고 신정공화정 체제를 수립한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을 극도로 경계한다. 정확히는 이란의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혁명 메시지 수출 전략’을 경계한다. UAE 입장에선 아라비아반도 동쪽(이란)에 이어 서쪽(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왕정에 위협적인 세력이 영향력을 키우는 건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것.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중동학)은 “중동의 허브 역할을 하며 정치, 경제 영향력을 키워나가길 희망하는 UAE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왕실과 지역 정세의 안정”이라며 “UAE가 막대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정세 불안을 겪는 주변국의 내부 정치에 개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UAE가 후티 반군(시아파 계열로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음)과 내전을 치르고 있는 예멘 정부군(수니파)을 2015년부터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도 반왕정, 반수니파 세력이 자리 잡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예멘은 UAE의 핵심 우방국인 사우디와 긴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국경선을 맞대고 있진 않지만 UAE와도 지리적으로 가깝다. 한 외교 소식통은 “UAE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아라비아반도 북부의 나라들에서 이란의 정치, 군사 영향력이 커진 것만으로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UAE 입장에선 서쪽의 수단, 남쪽의 예멘에서도 왕정에 부정적이거나 이란의 우호적인 세력이 힘을 키우는 것을 그냥 둘 수 없다”고 말했다. UAE는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아랍국가에서의 독재 반대 운동)의 영향으로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축출한 뒤 내전에 휩싸인 리비아에도 적극 개입해 왔다. 수도 트리폴리와 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통합정부(GNA)와 동부 지역을 장악한 세속주의 군벌 리비아국민군(LNA) 사이의 갈등에서 UAE는 LNA를 지원하고 있다. 사우디도 LNA를 지원 중이다. 반대로 이란과 더불어 사우디의 핵심 라이벌 국가로 꼽히는 튀르키예는 GNA를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정세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주변국에 적극 개입하는 UAE의 전략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장 센터장은 “UAE가 오일달러와 외교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자국 이익을 보호하고 지역 내 영향력을 키운다는 이유 아래 주변국 개입에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이런 전략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부담은 커지고, 적대적 진영의 테러 등 안보 리스크도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의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이슬람교의 성월(聖月) ‘라마단’이 23일(현지 시간‧종료일은 다음 달 21일) 시작됐다. 라마단은 아랍어로 ‘더운 달’이라는 뜻이다. 또 이슬람력 9번째 달을 의미한다. 창시자 무함마드가 신에게서 ‘쿠란(이슬람교 경전)’의 계시를 받은 신성한 시기로 여겨진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중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철저히 금식(물 마시기와 흡연도 금지)과 금욕을 해야 한다. 라마단 때 금식은 무슬림의 5대 의무 중 하나다. 해가 진 뒤에는 마음껏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주변 사람과의 다투거나, 시기, 질투, 음란한 생각 등을 해서는 안 된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너그러움, 나아가 화해, 용서, 평화를 강조한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때는 전쟁도 중단하는 게 옳다”고 입을 모은다.● 극우 네타냐후 총리 재집권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 고조돼…예루살렘은 라마단 시작에 ‘초긴장’하지만 이슬람교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하나이며 동시에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란 뜻인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는 라마단을 맞아 긴장이 감돈다.‘극우 성향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1996년 6월~1999년 7월, 2009년 3월~2021년 6월에도 총리로 재임‧역대 이스라엘 총리 중 가장 길게 재임)가 지난해 12월 말 1년 반 만에 총리직에 복귀한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이 고조돼 왔기 때문이다. 라마단 시작 일에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툴캄 여단의 지도자로 알려진 20대 남성을 사살해 긴장은 더욱 고조된 상황.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89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했다. 이스라엘 정부도 팔레스타인인의 공격으로 14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국민 다수가 믿는 유대교의 성지이기도 하다(기독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동시에 예루살렘의 동부(동예루살렘으로 주로 불림)는 주민 다수가 무슬림이며 아랍계인 팔레스타인의 자치 지역이다. 두 진영 간 충돌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불안 지대’인 것. 특히 올해 라마단은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대교(이스라엘의 국민 다수가 유대교)의 명절 ‘유월절(다음달 5~22일)’과 겹친다. 두 진영을 중재해 온 미국, 이집트, 요르단이 주도해 20일 이집트 홍해의 유명 휴양 도시 샤름엘셰이크에서 평화 중재 회의가 열린 것도 현재 예루살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 나라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라마단과 유월절을 앞두고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가 ‘지켜지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 팔레스타인 영토 줄이는 ‘정착촌 확장’에 대한 분노 커 무엇보다 네타냐후 정부가 다시 출범한 뒤 팔레스타인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 움직임이 강도 높게 진행돼 왔다. 이스라엘 보수 진영이 적극 지지하는 유대인 정착촌 확장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유대인들의 집단 정착을 장려 및 지원하는 정책이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이며 동시에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줄이기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물론이고 하마스 같은 무장 정치단체들도 가장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의 도발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도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을 불법으로 규정짓고 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정착촌 확장을 주요 정책 중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 총리 취임 선서 때도 정착촌 확장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최근까지도 이스라엘 정부와 의회는 그동안 폐쇄됐거나 중단됐던 정착촌을 다시 개발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이런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라마단 이틀 전인 21일 마이클 헤르초크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나타냈다.그러나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됐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법부 무력화 법안(의회 과반 이상이 동의하면 대법원의 확정 판결도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 포함)’을 추진하다 심각한 반대에 직면한 네타냐후 총리가 정착촌 확장이란 ‘돌파구’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라마단 전날인 22일에도 성명을 통해 “사마리아(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식 표현) 북부에 유대인 거주를 막아온 차별적이며 굴욕적 법안에 마침표를 찍었다”며 정착촌 확장 의지를 다시 한번 나타냈다. 성일광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한국이스라엘학회장)는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정착촌 확장 정책에 계속 힘을 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라마단 기간 중 팔레스타인과 충돌이 발생하면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강경한 대응으로 관심을 돌리려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팔레스타인을 자극하는 ‘망언’도 계속되고 있다. 네타냐후 정부의 핵심 인사로 역시 극우 성향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부 장관은 20일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CNN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를 방문 중인 스모트리히 장관은 한 행사에서 “누가 팔레스타인의 첫 번째 왕이었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언어는 무엇인가? 팔레스타인 화폐라는 게 있었나? 팔레스타인 역사와 문화가 있나?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 같은 건 아예 없다”고 말했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지난달 서안지구 후와라 지역에서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충돌하자 “팔레스타인 마을을 없애야 한다”는 발언으로 이미 국제적으로도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스모트리히 장관은 재무부를 이끌며 정착촌 건설 업무도 담당한다. 당연히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 2018년과 2021년 라마단 때도 대규모 유혈사태 경험 라마단 기간 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하는 배경에는 ‘과거의 경험’도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2018년과 2021년 라마단 때 대규모 유혈사태가 있었다. 2018년에는 라마단 시작 이틀 전인 5월14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조치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중심지인 텔아비브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한국도 그렇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에서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려는 취지다. 당시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관 이전은 이스라엘 건국일(5월15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은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적국의 건국일과 자신들의 최대 명절인 라마단 직전에 벌어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란 뜻이며 이스라엘 건국을 이슬람권에서는 자주 이렇게 표현)’였다. 실제로 하마스의 활동 중심지인 가자지구에서는 이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스라엘군에 의해 40명이 넘게 사망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라마단 직전에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건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권 전체를 자극하는 조치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1년 라마단 때는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일명 템플마운튼)를 방문하려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 당국이 막으며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한편, 이번 라마단을 맞아 긴장이 감도는 지역은 예루살렘 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지난달 큰 지진으로 5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튀르키예와 시리아,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레바논, 이집트, 이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일각에선 라마단을 계기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나 지도자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저녁 시간 때 모스크(이슬람교 회당)와 가정에서 대규모 모임이 이어지는 라마단의 특성을 감안할 때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세계의 화약고’ 중동이 시끄럽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때문이다. 다행히, 전쟁 혹은 충돌은 아니다. 두 나라의 화해 소식으로 중동이 들썩이고 있다.중동의 대표적인 강국으로 다양한 부문에서 충돌해 온 사우디와 이란은 10일(현지 시간) 7년 만에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주요 외신들과 사우디와 이란 매체들에 따르면 두 나라는 6~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의 중재 아래 대화를 나눴고 2016년 1월 단절됐던 외교 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또 두 달 안에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2016년 1월 사우디가 자국 내 시아파 고위 지도자들을 대거 체포하고, 일부에 대해선 사형을 집행하자 이란 내 보수 시아파 세력이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과 총영사관을 공격하며 ‘단교 사태’를 맞이했다. 그 뒤 두 나라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를 비난해 왔다. 서로를 겨냥한 안보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중동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두 나라가 외교 관계를 회복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국제사회는 ‘환영 메시지’를 내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이 정말 갈등을 접고 정상적인 이웃 국가로 자리매김할지에 대해선 적잖은 의문이 남는다. 두 나라 간의 갈등이 구조적으로 워낙 깊고, 쉽게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 수니파와 시아파, 왕정과 신정공화정…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먼 두 나라 사우디와 이란은 중동에서 ‘앙숙’, ‘라이벌’, ‘불편한 이웃’으로 통한다. 걸프만(이란에서는 페르시아만, 사우디 등 아랍권에서는 아라비아만으로 호칭)이란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두 나라는 여러 측면에서 앙숙이 되기 좋은 조건을 지녔다.일단 종교에서부터 사우디는 이슬람교 수니파(무슬림의 85~90%가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이다. 이른바 수니파와 시아파 간 심각한 갈등이 벌어질 때 두 나라는 일정 부분 자동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또 사우디는 아랍의 중심국이지만 이란은 페르시아의 후예로 인종, 언어, 문화가 다르다. 사우디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가까웠던 반면 이란은 북한과 더불어 대표적인 반미국가로 꼽힌다. 지금도 이란은 러시아와 중국 등 반미 성향 국가들과 더 가깝다.가장 큰 차이는 정치체제에서 나타난다. 사우디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왕정, 이란은 시아파 최고지도자(알라의 증거라는 의미를 지닌 아야톨라로 호칭)와 대통령이 중심이 되는 신정공화정 체제다. 중요한 건 이란도 원래는 왕정 국가였다는 점이다. 하지만 1979년 시아파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중심이 돼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렸다. 사우디로서는 이란이 종파, 문화, 외교안보 전략에서 자신들과 다르다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부패하고 무능했던 왕정을 무너뜨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가장 두렵다. 특히 이란이 자신들의 ‘혁명 경험’을 시아파 인구가 많고, 정세가 불안한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같은 사우디 인근 나라의 현지 시아파 무장 정치단체, 언론사, 종교지도자 등을 지원하며 전파해 왔다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1981년 5월 사우디가 주도해 같은 정치(왕정), 경제(석유와 천연가스 중심), 종파(수니파) 체제를 지닌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과 정치‧경제 연합체인 걸프협력회의(GCC)를 구성한 것도 이란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또 2017년 6월 카타르에 대해 사우디, UAE, 바레인이 외교관 추방, 영토와 영공 폐쇄, 무역 중단 등을 결정하는 ‘단교 조치’를 취한 핵심 이유 중 하나도 카타르가 이란과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걸프만의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전을 이란과 공유하기 때문에 이란과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사우디와 이란은 현재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예멘에서 사실상의 대리전도 치르고 있다. 사우디는 예멘 정부군을, 이란은 시아파 계열인 후티 반군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사우디, 석유시설 밀집한 동부 지역에 대한 이란의 도발이 두려워사우디 자체도 이란의 혁명 사상 전파 지역 중 하나다. 이란은 사우디에서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고, 이란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부 지역을 집중 공략 대상으로 여겨왔다. 소수파로서 차별받는 사우디 시아파들을 자극하는 건 이란으로서는 앙숙인 사우디를 흔드는 좋은 전략이다. 사우디 정부는 자국 내 시아파들의 대규모 시위 등이 벌어질 때마다 배후가 이란 정부라고 주장해 왔다.사우디의 동부 지역은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본사, 연구 및 생산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 사우디의 담수화 시설과 전력 생산 시설도 동부에 대거 자리 잡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자국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사우디와 이란 간의 대규모 군사 충돌이 벌어지면 이란의 미사일이 대거 사우디 동부를 강타할 수 있고, 이 경우 사우디의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담수화와 전력 시설이 공격받을 경우 국가 운영과 국민 생활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사우디는 2019년 9월 동부 지역이 이란으로부터 공격 받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경험했다. 후티 반군이 이란으로부터 지원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로 아람코의 아브까이끄의 원유 탈황·정제 시설을 공격해 사우디의 일일 원유 생산량이 정상 수준의 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사우디 안팎에선 비교적 소규모 공격이었는데도 석유 생산에 큰 차질이 벌어졌다는 것에 주목했다. 또 현지에선 “여름이었던 상황을 감안할 때 담수화(물)와 전력(전기와 냉방) 시설까지 공격당했다면 공포감이 더욱 컸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 중국, ‘투자’ 앞세워 두 나라 중재 했나그렇다면 갈등 속에서도 두 나라가 극적으로 외교 관계 회복이란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두 나라 모두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러 갈등 심화 같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주변국과의 심각한 갈등을 계속 가져가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는 “이란은 미국이 주도 중인 경제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고, 사우디는 네옴시티 등의 개발을 위해 투자 유치와 안보 챙기기가 동시에 필요하다”며 “이런 현실 때문에 두 나라가 일단 ‘차가운 평화’를 도모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특히 중국이 두 나라 간 대화를 베이징에서 중재했다는 점을 놓고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에게 모두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경우 두 나라의 경제적 니즈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배경을 갖추고 있다.이란은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제재를 이겨내려면 서방의 제재를 따르지 않으며 경제대국인 중국만큼 든든한 파트너도 없다. 사우디도 네옴시티 개발 등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국가 핵심 프로젝트’들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대규모 투자 여력과 개발 노하우가 있는 중국이 매력적인 협력 대상이다. 당연히 미국은 중국이 중재를 주도한 이번 합의가 못 마땅하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 간 이번 합의에 대해 긴장 완화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식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은 전화 브리핑을 통해 “(이번 합의에 대해) 지켜봐야 한다. 이란 정권은 자기 말을 지키는 정권이 아니다”고 말했다. ● 상대국에 대한 도발 불씨 여전해두 나라가 현재 민감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도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관계 악화’의 불씨로 여겨진다.무엇보다 사우디가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이란의 미사일과 핵개발, 주변국에 대한 영향력 행사 전략이 대폭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특히 이란의 시아파 무장정치 단체들을 활용한 주변국에 대한 무력도발이나 정치 개입은 이미 오래전부터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이란의 안보 자산이다. 그런 만큼 이란으로서는 포기하기 어렵다.사우디 킹파이잘 이슬람연구센터의 조셉 케시시안 수석연구위원은 “사우디와 이란은 2년간 이번 협상을 진행했고, 이란의 헤즈볼라(레바논의 친이란 무장 정치단체)와 후티 반군 등에 대한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향후 두 달(양국에 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기 전까지) 간 가장 예의주시해서 살펴봐야 할 사항”이라고 말했다.2020년 9월부터 사우디의 사실상 동의아래 ‘형제국’인 UAE와 바레인 등이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란의 주적인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 했고, 점점 경제와 안보 협력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것도 변수다. 이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공작으로 여러 차례 자국 핵과 미사일 관련 개발 시설이 대거 공격 당한 경험이 있다. 반대로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단체인 하마스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도 하고 있다.이런 ‘이란-이스라엘 갈등’ 속에서 UAE와 바레인 등이 묵인하거나 간접적으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사우디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UAE와 바레인은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결정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강경한 조치에도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는 것.중동 외교가 관계자는 “사우디와 이란 관계는 과거에도 안정적이다가 종파 갈등, 주변국에 대한 개입 등으로 급격히 악화된 경우가 많다”며 “이번 합의가 지속가능할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노벨상 수상은 과학의 목표가 아닙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바탕인 연구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중동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해 큰 주목을 받았던 세계적 화학자 아다 요나트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82)는 동아일보와의 신년 서면 인터뷰에서 “과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분야를 탐구할 수 있는 열정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포의 단백질 공장’으로 불리는 리보솜 구조를 밝혀낸 성과로 2009년 2명의 남성과학자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에 앞서 울프 화학상, 로스차일드 생명과학상, 아인슈타인 세계과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지만 상을 목표로 연구한 적은 없다고 거듭 밝혔다. 매년 노벨 과학상 발표 때 전전긍긍하는 한국 과학계에 대한 쓴소리로 들렸다. 1939년 예루살렘에서 유대교 성직자(랍비)의 딸로 태어난 그는 단백질 합성 및 유전자 전달에 관여하는 세포 내 소기관 ‘리보솜’ 연구의 선구자다. X선 결정학 기술로 리보솜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낸 공로로 마리 퀴리(1911년·프랑스), 퀴리의 딸 이렌 졸리오퀴리(1935년·프랑스), 도러시 호지킨(1964년·미국)에 이어 여성으로는 네 번째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요나트 교수는 젊은 과학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냐는 질문에 “조언을 구하지 말라. 스스로 고민하고 관심과 열정이 이끄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당신 자신의 롤모델은 바로 당신이라는 의미였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리보솜, 항생제, 슈퍼 박테리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그는 이스라엘 전반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다. 과거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당국이 억류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대원의 조건 없는 석방을 촉구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세계적 과학자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질문에는 줄곧 “내가 아는 부분만 답하는 게 적절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은 과학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적극적으로 과학 교육에 투자했고 일정 부분 성과를 냈지만 아쉽게도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과학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보다는 호기심이 바탕이 된 연구를 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이미 많은 한국 연구자들이 훌륭하게 활동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한국 과학자와 여러 차례 아주 유익한 교류를 했다. 한국의 젊은 과학자가 계속 열정과 호기심이 뒷받침된 연구를 진행하면 노벨상도 수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언한다면…. “한국의 과학 교육에 대해 잘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분야를 탐구할 수 있는 열정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호기심과 열정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중요한 건 질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가 부모에게 질문을 할 때 두려움이 없이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학교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학교와 집에서 관심이 생기는 것에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아이의 질문이 부모나 선생님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도 괜찮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호기심과 열정을 키우는 데 질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요나트 교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리보솜 연구 또한 ‘세포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인생은 호기심과 실험의 연속이었다며 어린 시절 집 난간의 높이를 측정하려다 발코니에서 뜰로 떨어지는 바람에 팔이 부러진 적도 있다고 밝혔다. 끝없는 호기심이야말로 대담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창조적 연료라는 것을 많은 과학자가 증명해 왔다고도 강조했다. ―인공지능(AI)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에 대한 관심이 과학교육의 미래 또한 바꿀까. “AI 관련 기술을 포함해 새로운 기술들이 대거 등장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과학 교육의 핵심 요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현재도 미래도 과학 교육의 핵심은 호기심과 열정을 키워주는 일이다.” 요나트 교수는 과거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과학은 그 발전 방향을 예견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공통 토대가 화학, 물리, 수학 같은 기초과학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기초가 튼튼해야 더 깊고 풍부한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신이 평생을 매진한 리보솜 연구 또한 초기에는 주목받고 각광받는 분야가 아니었지만 재미와 열정으로 연구를 계속한 덕에 오늘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그의 성공에는 이스라엘 기초과학의 산실로 꼽히는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역할도 컸다. 초대 대통령 겸 아세톤을 만든 유명 화학자인 하임 바이츠만(1874∼1952)의 이름을 붙여 만든 이 연구소는 이스라엘이 세계적 생명과학 강국으로 거듭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대인 부호 키멜만가(家)가 요나트 교수의 연구를 적극 지원해 돈 걱정 없이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퀴리에 대한 책을 읽으며 화학자의 꿈을 키웠고, ‘이스라엘의 퀴리’ ‘중동의 퀴리’로 불린다고 알고 있다. 전 분야를 통틀어 중동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 또한 유명한데 여성 과학자가 남성 과학자와 다른 점이 있다고 보는가. “퀴리 박사의 지적인 모습, 연구에 대한 헌신에 크게 감명 받았다. 하지만 과학을 연구하는 데 있어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성 연구자가 특별한 장점을 지니거나 단점을 보유했다고도 보지 않는다. 다만 사회 전반에서 여성 과학자를 대우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 더 많은 훌륭한 여성 과학자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여성 과학자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 “(다른 과학자에게) 너무 많은 조언을 구하지 말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다. 또 구체적으로 지향하는 바와 경험하는 어려움 역시 다르다. 스스로 고민하고 관심과 열정이 끌리는 데로 나아가는 게 가장 좋은 길이다. ‘특별한 조언을 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젊은 남성 과학자에게도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말이다.” ―외동딸이 의사라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 “딸 하지트는 이스라엘 최대 종합병원 셰바메디컬센터에서 내과의사로 재직하고 있다. 서로의 연구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딸과 협력해 연구를 진행한 적도 있다. 외손녀 또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손녀와도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요즘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나 “여전히 리보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주로 리보솜에 의한 단백질 유전자 코드의 변환 과정, 여러 항생제가 왜 이 과정을 마비시키거나 저항성을 갖게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 외에 부작용이 적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대한 연구, 암 빈혈 등 리보솜의 돌연변이와 생명의 근원과의 연관성을 발견하는 연구 또한 진행하고 있다.” 요나트 교수는 일반 항생제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슈퍼 박테리아를 이길 수 있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도 오랜 기간 연구를 진행해 왔다. 노벨상을 수상했고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연구에 열심이라니 놀랍다고 하자 “당연히 연구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바이러스 대란이 앞으로 또 나타날 것으로 보나. “화학자로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관심이 많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이제 꽤 이해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전자 코드 전달 역할을 수행하는 리보솜을 이용하는 방법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이해하게 됐다는 의미다. 다만 내가 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닌 만큼 백신이나 코로나19 등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아다 요나트1939년 이스라엘 예루살렘 출생1962년 히브리대 화학과 졸업1964년 히브리대 생화학과 석사1968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엑스레이 결정학 박사1970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연구원1984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교수1989년 바이츠만과학연구소 키멜만 생체분자센터장2006년 울프화학상, 로스차일드 생명과학상2008년 아인슈타인 세계과학상2009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향을 방문하거나 가족과 만나기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해 영국의 한 회사가 ‘고향의 공기’를 병에 담은 상품을 내놨다. 22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CNN 등에 따르면 영국의 화물 배달 회사인 ‘마이 배기지’는 코로나19 마케팅의 일환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등 주요 지역의 공기를 담은 ‘공기 병’ 상품을 출시했다. 폴 스튜어트 마이 배기지 이사는 “후각은 감정적인 기억과 관련이 있고,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거주 영국인들이 예전보다 덜 귀국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해줄 새로운 것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상품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도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공기는 500mL 용량의 병에 담겨 병당 25파운드(약 3만7125원)에 판매된다. 특정 도시나 마을 같은 세부 지역의 공기를 담은 형태로도 판매되고 있다. 런던의 지하철과 피시 앤드 칩스(영국 전통요리) 음식점의 공기를 담은 한정판 상품도 있다. 또 맞춤형 상품도 제작한다. 웨일스 출신으로 해외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웨일스 북서부 스노도니아 지역의 산 공기를 원한다”면 요청대로 상품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 거주하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상품은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를 앞두고 이색 상품으로도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공기 판매’ 사업은 캐나다와 스위스같이 청정 자연을 보유한 나라들에서는 예전에도 있었다. 캐나다의 바이탈리티에어와 스위스의 스위스브리즈는 각각 로키산맥과 유럽 산악 지역의 신선한 공기를 병에 넣어 판매한 바 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고향 방문과 가족 만남이 어려워진 사람들을 위해 영국의 한 회사가 ‘고향의 공기’를 병에 담은 상품을 개발해 화제다. 22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CNN 등에 따르면 영국의 화물 배달 회사인 ‘마이 배기지(My Baggage)’는 코로나19 마케팅의 일환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 등 주요 지역의 공기를 담은 ‘공기 병’ 상품을 출시했다. 폴 스튜어트 마이 배기지 이사는 “후각은 감정적인 기억과 관련이 있고,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거주 영국인들이 예전보다 덜 귀국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해줄 새로운 것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상품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봉쇄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도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공기는 500ml 용량 병에 담겨 병당 25파운드(약 3만7125원)에 판매된다. 특정 도시나 마을 같은 세부 지역의 공기를 담은 형태로도 판매되고 있다. 특히 런던의 지하철과 피시 앤드 칩스(영국 전통요리) 음식점의 공기를 담은 한정판 상품도 있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 상품은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를 앞두고 이색 상품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충분히 확보한 캐나다와 뉴질랜드가 다른 나라에 백신을 나눠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각각 3800만 명과 482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두 나라는 자국민 전체에게 여러 번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확보했다. 캐나다 CTV 등에 따르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20일(현지 시간) 방송 예정인 인터뷰에서 “캐나다에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백신이 있으면 꼭 세계와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미 화이자 등으로부터 3억58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는 “가난한 나라에 돌아가야 할 백신을 지나치게 많이 확보했다”고 밝혔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역시 17일 “이웃 나라가 원하면 백신을 무료로 공급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사모아, 통가, 투발루 등 가난한 태평양 섬나라의 현실을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뉴질랜드는 화이자와 얀센 백신을 각각 74만 명, 500만 명분씩 확보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380만 명, 미 노바백스와도 536만 명의 접종분을 계약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양측이 대만해협에서 하루 차이로 구축함과 항공모함을 동원하며 무력시위를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당국도 중국군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해군과 공군을 대거 출동시키면서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20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국방부는 18일 미국 구축함인 ‘마스틴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중국군 동부전구의 장춘후이(張春暉) 대변인은 “중국군 동부전구 해군과 공군이 이 군함의 이동 과정을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 일본, 호주 등이 함께 참여하는 ‘쿼드’ 고위 관료 회의가 열린 가운데 나와 더욱 주목받았다. 이에 중국은 자체 제작한 항공모함인 산둥(山東)함을 대만해협에 파견했다. 산둥함은 호위함 4척을 거느린 채 17일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항을 출발해 19일 대만해협에 진입한 뒤 20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산둥함 항해에 위협을 느낀 대만은 6척의 군함과 8대의 군용기를 투입해 산둥함의 이동 경로와 활동을 감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언론은 중국 항모가 대만 북쪽 해역에 진입하자 대만 군 지휘부가 전쟁 발발 시 군을 지휘하는 장소인 타이베이 다즈(大直)의 헝산(衡山)지휘소로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재래식 디젤 엔진을 갖춘 산둥함은 최대 속도 31노트로, 만재 배수량은 7만 t이며 젠(殲)-15 함재기를 40여 대 탑재하고 있다. 산둥함의 대만해협 통과는 미국의 군사 활동에 대한 반발이며 동시에 노골적으로 친미 행보를 보이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에 대한 경고라는 분석이 나온다. 차이 총통은 집권 기간 내내 미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펼쳤고, 미국산 무기 구입 등에도 적극 나섰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2018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잔혹성을 생생히 묘사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뉴욕타임스(NYT) 팟캐스트 내용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당시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보디상을 수상했던 NYT는 상을 반납할 뜻을 밝혔다. 18일 NYT는 2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칼리프 국가’에 등장해 IS 잔혹성을 고발한 파키스탄계 캐나다 남성 셰로즈 초드리(26)의 진술 대부분이 날조됐다며 사과했다. 스스로를 전직 IS 대원이라고 주장한 초드리는 방송에서 “사람 머리에 총을 쏘거나 심장을 칼로 찔렀다”고 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당국은 초드리의 여행 및 금융기록,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을 분석한 결과 그가 잔혹 범죄를 저지르기는커녕 IS에 가입한 적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토론토 교외에 거주하는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경찰은 올해 9월 초드리를 테러 관련 거짓말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 NYT는 초드리의 진술에 대한 검증이 부족했고 IS 및 테러에 정통한 편집자를 배치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밝혔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2018년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잔혹성을 생생히 묘사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뉴욕타임스(NYT) 팟캐스트 내용이 거짓임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당시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바디상을 수상했던 NYT는 상을 반납할 뜻을 밝혔다. 18일 NYT는 2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칼리프 국가’에 등장해 IS 잔혹성을 고발한 파키스탄계 캐나다 남성 셰흐로즈 초드리(26)의 진술 대부분이 날조됐다며 사과했다. 스스로를 전직 IS 대원이라고 주장한 초드리는 방송에서 “사람 머리에 총을 쏘거나 심장을 칼로 찔렀다”고 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당국은 초드리의 여행 및 금융기록, 소셜미디어 게시글 등을 분석한 결과 그가 잔혹 범죄를 저지르기는커녕 IS에 가입한 적도 없다고 결론내렸다. 토론토 교외에 거주하는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야기를 꾸며낸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경찰은 올해 9월 초드리를 테러 관련 거짓말을 한 혐의로 체포했다. NYT는 초드리의 진술에 대한 검증이 부족했고 IS 및 테러에 정통한 편집자를 배치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밝혔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공동 개발한 독일 의료기업 바이오엔테크의 창업자 부부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16일(현지 시간) FT는 바이오엔테크의 공동 설립자인 남편 우우르 샤힌 박사(55)와 아내 외즐렘 튀레지 박사(53)가 “새 바이러스가 발견된 지 1년도 안 되는 시간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이 접종될 수 있도록 기여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들이 개발한 백신은 18세기 말 영국에서 우두 백신이 개발된 후 가장 단기간에 만들어졌다. 샤힌 박사는 “우리는 많이 긴장한 상태다. 실험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는 건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터키에서 독일로 온 이민자 가정 출신인 부부는 각각 의대를 졸업한 뒤 연구원 신분으로 일하다 만났다. 결혼식을 실험실에서 가운을 입고 했을 정도로 워커홀릭이며 백신 개발 후에도 여전히 바빠 이달 8일 영국의 91세 노인 마거릿 키넌 씨가 세계 최초로 자신들이 개발한 백신을 접종받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둘은 2008년 독일 마인츠에서 바이오엔테크를 설립했고 항암 면역치료를 주로 연구했다. 흑색종, 전립샘암, 난소암 백신 등을 개발하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창궐하자 발 빠르게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하기 전부터 백신 개발에 착수해 결실을 거뒀다. 튀레지 박사는 “미래 예측에 대한 남편의 적중률이 상당히 높다”면서도 처음에는 코로나19 대확산을 예상하는 그의 우울한 주장이 조금 짜증 났다고 털어놨다. 백신 개발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동시에 얻었지만 샤힌 박사는 “우리의 배경보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모교 쾰른대의 교훈이자 어린이책 작가 에리히 카스트너의 책 속 구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를 언급했다. 최근 블룸버그가 둘의 자산이 51억 달러를 기록해 세계 500대 부호 안에 포함됐다고 보도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자전거로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