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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흑서’의 공동 저자인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만큼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인물은 드물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는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진 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으로 이 비극적 인물을 조명한다. 온갖 악덕, 타락, 사치, 방탕…. 그녀는 증오의 표적이었다. 물론 작가는 그녀의 경박하고 어리석은 짓에 대한 역사적 죄과도 분명히 지적했다. 사람들을 믿게 만든 ‘거짓의 탑’은 그냥 쌓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권당의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제3자 논평하듯 느닷없이 비극적 인물을 공개 소환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두 여성을 오버랩시켜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여사의 디올 백 사건이 감성의 문제라는 지적 자체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용산은 이 사건의 본질은 함정 몰카, 정치 공작이라고 한다. 최근엔 문제의 목사가 김 여사 부친과의 친분을 내세워 접근했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총선용 공작 냄새는 풀풀 난다. 그게 아니라면 왜 몰카 영상을 찍은 뒤 1년 이상 쥐고 있다가 총선 몇 개월도 안 남긴 시점에 ‘김건희 특검법’ 처리를 앞두고 폭로했겠나. 문제는 교묘하고 음험한 총선용 공작이라 해서 “근데 그걸 왜 받았느냐”는 일반인들의 의문이 해소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과거 대통령 전용기 타고 인도 타지마할에 간 것과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타지마할 전용기에 혀를 끌끌 찬 이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디올 백 문제가 희석되진 않는다. 디올 백 사건은 엎질러진 물이다. 여야 진영에 얽매이지 않는 일반인들은 대통령 부부가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닦아낼지를 눈여겨봐 왔다. 용산은 처음엔 아무런 대응을 안 보이다 백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대통령실 선물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 초 ‘김건희 특검’ 거부권 행사 때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제2부속실 설치, 특별감찰관 임명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뿐이었다. 제2부속실 설치 등은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여전히 격화소양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정작 사건의 당사자가 한 달 이상 관저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아무런 메시지도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그게 함정 몰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자괴감 때문인지, 또 다른 건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사과를 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야권은 “대통령 물러나라”고 공세를 이어갈 것이므로 절대 사과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어느 쪽이든 명품백 이슈를 만든 이른바 작전세력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듯하다. 여권이 우왕좌왕하다 지나치게 방어에만 급급하며 점점 수렁에 빠져드는 꼴이란 얘기다. 조부, 증조부의 족보까지 파헤치고 낯 뜨거운 야담(野談)까지 끄집어내는 게 선거의 생리다.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이번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필자에겐 부차적인 이슈다. 최고 권력자 부부의 공적 처신과 책무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란 얘기다. 영부인의 사적(私的) 행동이 촉발한 사건에 공적(公的) 역량이 얼마나 헛되이 소진되느냐의 문제다. 총선을 앞두고 가다듬을 정책, 국민에게 물어봐야 할 국가적 의제가 얼마나 많은가.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더 크라운’ 마지막 편에는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비 사망 배후 의혹에 대해 수사관의 직접 신문을 받고 불편한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성격은 다르지만 명품백 문제에도 그런 식의 원칙과 법의 잣대를 적용할 순 없나. 당사자가 육성으로 정직하게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당한 처분을 받겠다고 하면 될 일 아닌가. 명품백 사건은 통치의 문제도 아니고 대통령 배우자의 사려 깊지 못한 행위, 보좌 기능 마비의 문제다. 이 단순한 문제 하나 풀지 못하고 ‘국민 걱정’을 언급한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용산이 정면충돌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는 게 총선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되느냐는 식의 접근은 여의도 문법일 뿐 일반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경구가 새삼 떠오른다. 나아가 국가의 최고 리더는 팩트 못지않게 좋든 싫든 ‘국민 시선’에도 응대하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게 국민 신뢰를 얻고 국정의 힘을 확보하는 길이다. 공작에 당했다는 억울한 점이 있다 해도 자기 주변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모습, 국민은 그런 ‘의연한 태도’를 기대하고 있는데…. 그리 어려운 건가.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흉기 피습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18년 전 박근혜 커터칼 테러를 떠올렸을 것이다. 당시엔 별로 부각되지 않았던 일화 한 토막이 최근 회자됐다. 박 전 대통령이 60바늘을 꿰매는 대수술 끝에 내놓은 첫마디가 흔히 기억하는 “대전은요?”가 아니라 “오버하지 마세요”였다는 것이다. 직접 들은 사람이 몇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발언들의 진위를 일일이 따질 일은 아니지만 “오버 말라”는 언급 자체는 이 대표 사건과 맞물려 흥미를 끌게 한다. 맥락은 다를 수 있지만 이 대표 사건 직후 여야 지도부가 “과잉 대응 말자”며 절제된 모습을 보이려 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피의자의) 당적 여부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한 민주당 원내대표 발언은 의미 있게 들렸다. 범인이 민주당 당원이라면 민주당의 자작극, 국민의힘 당원이라면 국민의힘 배후설 같은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피습당한 것처럼 생각해 달라”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여야 모두 섣불리 문제적 발언을 내놓았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듯 보인다. 그래서일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양 진영에서 각종 음모론과 배후설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야 지도층이 지지자들을 향해 강력하고 묵직한 제어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고 있다. 여든 야든 짐짓 점잖은 척하며 내심 여론 지형이 유리하게 흐르길 기대하는 눈치 아닌가.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轉院) 논란도 그중 하나다. 부산대병원이 국내 최고의 권역외상센터라는 사실, 119 헬기 이용 적절성, 5시간 만의 수술 등을 놓고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 의사회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있다. 의사들의 이런 반응에 무슨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환자가 위중했다면 당연히 부산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았다면 헬기가 아닌 일반 운송 편으로 이동했어야 했다” 등의 의료계 측 논리 역시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래도 이는 의료계 차원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이지 정치적 소재로 삼는 걸 지켜보는 것은 불편하다. 목 부위는 급소 중의 급소다. 백주에 자신의 목 부위를 괴한의 칼에 기습적으로 찔렸다고 상상해 보라. 생사의 문제다. 응급환자였던 만큼 부산대병원의 1차 판단에 맡겼어야 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총탄을 맞고 수술대에 올라 의사들에게 “당신들이 공화당원이길 바란다”는 조크를 건넸다는 에피소드도 떠오른다. 결과론적 얘기다. 급박했던 순간 전원 결정은 이 대표만 할 수 있었고, 담대하지 못했느니 하는 세간의 평가도 이 대표의 몫일 게다. 서울대병원 전원을 두고 ‘충청도 핫바지론’처럼 부산 민심이 출렁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총선 전 1심이 나올 것으로 전망됐던 ‘검사사칭 위증교사’ 사건의 재판이 미뤄지며 이 대표에겐 호재라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의 처신이 적절했는지, 내로남불인지 등을 떠나 현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어느 쪽에 플러스가 되고 마이너스가 될지 정치공학 차원에서 주판알을 두드리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저 총선 시계가 잠시 멈췄을 뿐이고 곧 재개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피의자의 당적도 아니고 서울대병원 전원도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저주의 언어가 판을 치고, 그 사이 자신만의 허구에 빠져 살의(殺意)까지 품게 된 어느 외로운 늑대의 문제다. 토론과 비판은 실종되고 폭력까지 써가며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갈수록 극단화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문제다. 공통체의 가치를 결집하는 논의의 품격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 대표 측도 경찰도 병원도 훨씬 투명할 필요가 있다. 수사 상황, 치료 상황에 대한 비밀주의는 제2, 제3의 음모론만 부추길 뿐이다. 머지않아 퇴원할 이 대표가 무슨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궁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테러는 민주주의 적(敵)”이라고 했다. 국가 질서 유지자로서 좀 더 구체적이고 강력한 메시지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대표는 피해자로서 총선 득실을 염두에 둔 메시지를 내놓을까, 자기 성찰이 담긴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내놓을까. 정치권이든 유권자든 ‘지나침’을 경계해야 할 때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지팡이를 짚고 ‘강서 압승’의 축배를 들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어깨가 축 처진 느낌이다. 통상 6개월 이상 이어진다는 단식 후유증 탓만은 아닌 것 같다. TV 영상을 통해 비치는 표정을 보면 우선 지쳐 보인다. 주 2, 3회 법정에 직접 출석하는 본인 재판은 물론이고 측근들의 재판 진행 상황까지 챙겨야 하니 정신적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사법 리스크 대응에 소진되고 있을 것이다. 혁신과 통합을 요구하는 당내 비주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대응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낙연 전 총리는 “DJ도 2선 후퇴 여러 번 했다. 사법 문제가 없어도 그랬다”고 했다. DJ는 사법 리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2선 후퇴가 가능했던 것이고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2선 후퇴가 어려운 것 아닐까. 이 대표 스스로도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50년 형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수사가 무리하단 항변이지만, 방탄 철갑이 뚫리면 천 길 나락이 현실화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그러니 수비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개딸들로 방어벽을 치고 공천권으로 단일대오를 유지하며 잔뜩 웅크린 자세다. 비례대표 방식을 놓고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란 말에도 지금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에 원칙과 명분 내세울 때냐는 심리가 깔려 있다. 여권의 헛발질, 명품 백 같은 영부인 리스크 등 상대방의 자책골이 이어지면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대안세력으로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사이익만 기대하는 정치가 공감을 얻을 순 없다. 강서 승리 이후 친명 측의 당권 굳히기 시도, 이에 대한 비주류의 반발 뉴스만 들릴 뿐 이 대표나 민주당이 정국을 긍정적으로 주도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180석이네 200석이네 하는 근거 없는 낙관론, “암컷들이 설치고…” 등의 막말이 횡행했을 뿐이다. 이쯤이면 강서 압승은 결국 야당에 독(毒)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훈 등판이란 변수가 발생했다. 야권 안팎에선 정청래류의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 주장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의 엄습을 경계하는 기류도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이르지만, 분명한 건 내년 총선이 ‘윤석열 대 이재명’의 구도가 아닌 ‘한동훈 대 이재명’의 구도로 재편되는 양상이란 점이다. 내년 대통령 초청 신년인사회 때 언론의 투샷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아니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이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다. 정치 경험이 없는 X세대, 술을 안 마시는 초엘리트 검사 출신, 검은 안경테에 옷 잘 입는 패셔니스타. 그에 비해 여러모로 대척점에 있는 아홉 살 위의 이 대표. 영상으로 보여지는 둘의 이미지, 호감도를 비교 평가하려는 건 아니다. 한 전 장관은 난전도 마다 않는 ‘공격형’의 면모를 보일 것이고, 이 대표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지만 그 또한 그들의 게임이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이 대표가 지난 1년 이상 민주당을 자신의 서바이벌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는 사실이다. 제1야당은 공화제의 바탕이 되는 국가 시스템의 중요한 축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권도 문제지만 공당(公黨)의 역할을 혼동하고 존재 가치를 훼손한 이 대표의 책임도 크다. 이러니 민주당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으로 1년 넘게 38%를 넘지 못하고, 정권견제론이 정권안정론보다 훨씬 높지만 민주당을 찍을 이유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달 전 칼럼에서 여권을 향해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가야 하나…. ‘윤석열 당’이 아닌 미래 대권 주자들이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대통령은 뒤로 한발 물러서란 얘기였는데 한동훈 ‘원톱’으로 귀결됐다. 선택도 결과도 현 여권의 몫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한마디 해야겠다. “‘이재명 당’, 개딸 당, 색이 바랠 대로 바랜 86 운동권 당이 아닌, 미국 민주당 정도의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 대표가 보신(保身) 리더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민주당이 상식적인 중도 진보의 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을까. 진정한 여야 혁신 경쟁으로 내년 총선이 의회정치 복원의 변곡점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데 이 대표가 총선 후 당 대표 선거에 또 나설 것이란 얘기까지 들리니…. 난망한 일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국물 맛은 한두 술만 떠먹어 보면 아는 법이다. 국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드러난 몇몇 사안을 보면 권부(權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후 처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전 오판, 대통령이 “진작 상황을 알려주지 그랬느냐”고 했다는 강서구청장 보선 판세 오판 등이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걸까. 누가 어떻게 요리를 하기에 한번 왔던 손님도 발길을 돌리게 하는 맵고 짠 국물을 만드는가. 주방장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란 식당의 주방장은 대통령비서실장이다. 헌법상 국무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도록 돼 있지만 엄연한 대통령제하에서 실질적 국정 2인자는 따로 있다. 장관을 포함한 주요 인사, 정책 조율 등이 대통령실에서 이뤄진다. 물론 현 정부에선 누가 ‘V2’인지를 놓고 세간의 평가가 다르긴 하지만….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 군주’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비서실장은 거칠게 말하면 왕명 출납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그러나 단순히 대통령의 뜻만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다. 승지이자 왕사(王師)이고, 국정의 막후 조율자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확한 정보와 냉철한 조언으로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비서실장을 ‘게이트키퍼(The Gatekeeper)’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윤 대통령은 자기 확신이 강한 직진 스타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오랜 검사 경험 때문인 듯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관도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정(情)에 약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보좌하기 힘든 리더 유형이란 평가가 적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가 처한 작금의 상황은 “비서실장도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눙치고 넘어갈 단계를 넘었다. 오판은 또 다른 오판을 부른다. 그래서 궁금하다. 대통령의 재계 총수 떡볶이 먹방 이벤트는 누가 기획한 건가. 생사의 전쟁을 치르는 재벌 총수들을 해외 순방 때마다 수행하게 하고, 엑스포 유치 지원에 투입하는 것을 두고 관폐 논란이 일고 있음을 진짜 몰랐던 건지, 알고도 뭉갠 건지…. “지금 떡볶이 이벤트 할 때 아니다”라는 고언을 아무도 하지 않은 건지, 안 된다고 했는데도 밀어붙인 건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하고, 흥이 나면 나이 어린 재벌 총수에겐 존칭 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가 이런 자리를 주선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인사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대사는 외교부 차관으로 승진한 지 4개월여 만에 경제 부처 장관에 발탁됐다. 대통령이 형으로 불렀다는 선배 검사는 국민권익위원장 반년 만에 업무 연관 경력이 없는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지명됐다. 소년가장, 섞박지 얘기까지 곁들여서. 장관으로 옮긴 지 석 달도 채 안 된 사람을 총선에 내보내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심과 동떨어진 여러 일들이 반복되는 걸 보면 국정 게이트키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게이트키퍼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수도 있고, 활짝 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종 인사, 정책 조율, 메시지 관리 등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몇 년 전 칼럼에서 비서실장의 덕목으로 의회를 전략적으로 다룰 능력, 대통령에게 사실을 가감 없이 보고하고 때론 ‘노’를 할 수 있는 정직함,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 등이라고 쓴 적이 있다. 지금 세 가지 덕목 중에서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세이 노(NO)’라고 본다.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김대기 실장은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내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어떤 성적표를 얻을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가의 역량이 쇠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제 집권 3분의 1도 안 지났는데 일류 인재들이 국정 참여를 꺼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벌써 인재난을 걱정한다는 건 심각한 징후다. 국정의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육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R&D 개혁 등 거창하게 선언은 했는데 실제 이뤄진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이 늘 옳다”며 변화의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더니 결국 용산도 당도 달라진 것이 없다. 변할것 같지 않은 수직적 리더십, 심기경호에 바쁜 참모들. 이러다 게도 구럭도 다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준석 신당 관련 뉴스가 좀 시들해진 느낌이다. 병력도 실탄도 없이 입으로만 ‘반윤(反尹) 신당’의 깃발을 휘날리기엔 힘에 부치는 듯하다. 여기에 한동훈 법무장관의 ‘시의적절(?)’한 정치 행보가 신당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 인요한 혁신위가 ‘김장(김기현+장제원) 연대’의 강력한 저항으로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한 장관의 행보가 더 부각된 측면도 있다. 사실 현직 장관, 다른 곳도 아닌 검찰을 포함한 국가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의 수장이 이런 식으로 ‘대중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정부 출범 1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임명직 장관이 팬덤까지 형성하며 대선주자급 행보를 보이는 것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 역린을 거스르려 작정한 게 아니라면 최고 권력자의 묵인, 혹은 독려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늘 “법무장관 본분에 충실하겠다”고 하지만 한 장관의 정치 커밍아웃은 점점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그가 보수층 일각에서 차기 주자로 본격 회자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 강연인 것 같다. ‘법무부 장관이 말하는 경제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유튜브 채널 ‘법무부TV’에 40분 분량의 동영상으로 올라 있는 이 강연은 현재 121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70년 전 이승만 정부가 단행한 농지개혁이 한국의 빠른 경제발전에 디딤돌이 됐다는 점을 남미와 비교해 설명한 뒤 우리나라가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요인으로 인구 문제를 꼽고, 출산율 회복 정책만으로는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을 수 없으며, 이민 정책에 해답이 있다는 논리 전개였다. 이 강연을 들은 한 보수 원로는 “칼 잘 쓰는 검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식견이 생각보다 깊더라”고 했다. 제주포럼 강연이나 야당의 공격을 받아치는 언변, 기자들과의 단편적인 문답 정도로 그의 정치 그릇을 가늠하긴 어렵다. 농지개혁에 상응하는 이민정책 개혁이 시급하다는 제주포럼 강연 내용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법무장관으로서 자신의 영역과 관련된 의제를 과하게 꿰맞추려 한 것 아닌가 싶다. 아무튼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훨씬 예민한 정치 이슈, 복잡한 국가 현안에 대해 보다 긴 답을 내놔야 할 때가 많게 된다. 그걸 통해 정치인 한동훈의 함량(含量)이 드러날 것이다. 한 장관이 이준석류와는 다른 ‘스마트 우파’의 아이콘으로 우뚝 설지, 그저 그런 인물 중의 하나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윤석열 아바타’로 규정하고 정권심판론 프레임으로 엮으려 할 것이 뻔한 만큼 이를 어떻게 넘어설지, 윤 대통령과 어떻게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분명한 건 한 장관의 정치비전, 정치력은 누구 말대로 ‘긁지 않은 복권’이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장관의 진로는 여당 혁신 문제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보수 일각에선 이미 한동훈 띄우기가 한창이지만 한 장관의 총선 투입 시기, 총선 지휘 여부 등에 혁신 논의가 파묻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여당이 용산 출장소 비아냥을 듣게 된 것은 ‘당정대 혼연일체’의 도그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를 허물고 다양성을 복원하는 게 여당 혁신의 큰 줄기가 돼야 한다. 자칫 어느 의원 지적대로 ‘태자당’ 논란에 휩싸이면 여당 혁신 논의는 산으로 갈 것이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긍정 30∼35%, 부정 55∼60%로 거의 굳어진 형국이다. 1년 반 가까이 이어져온 이 흐름이 몇 달 만에 바뀔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선,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 총선까지 또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가야 하나. 대통령의 국정 기조와 리더십이 달라져야 한다고 한다. 이를 구현할 엄청난 비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길이다. 대통령이 당에 대한 그립을 풀고, 자율권을 줘 차기 대권 주자들이 다 같이 뛰게 하는 것이다. ‘윤석열 당’이 아닌 미래 대권 주자들이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오픈 정당’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한 장관이나 원희룡 장관 등 내각 인사뿐 아니라 안철수 유승민 등 다른 대권 주자들도 다 뛸 수 있는 큰 울타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정에만 전념하면 된다. 용산 비서실 개편, 그리고 당 리더십 전환이 담대하게 이뤄져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누구 험지 출마 정도의 ‘애드 혹(Ad-hoc)’ 해법만으론 판을 바꿀 수 없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준석 신당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희미한데도 언론의 큰 관심을 끄는 현상 자체가 기이할 정도다. 이준석 신당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주장에서부터 실제 창당에 나설 경우 여권에 의미 있는 타격을 입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관측이 분분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런 예측을 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창당 가능성 55%” 운운하며 12월 27일을 결심의 날로 정했다지만 실제 창당에 나설지조차 분명치 않다. 아마 그 자신도 모를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참 특이한, 기존 정치 문법으론 잘 해독이 안 되는 정치인이다. 26세 때 비대위원을 했고, 최고위원을 거쳐 당 대표까지 지냈으면서도 정작 지역구에선 3번 출마해 3번 낙선한 ‘가분수’ 경력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12년 동안 정치를 하면서 치밀한 언론 플레이, 결코 지지 않으려는 자극적인 언사 등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권력게임에 능할 뿐 무슨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는지, 무슨 가치를 지향하는지 알 수 없다. 늘 “내가 옳다”는 식이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말은 들은 기억도 없다. 그럼에도 메시지 전달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띄우는 신당도 마찬가지다. 정당은 지향하는 가치,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신당은 둘 다 빈약하다. 최근 그를 만난 정치권의 한 인사가 “국민의힘에 대한 복수 정당의 성격이 강했다”고 했다. 딱 맞는 진단이다. 복수(復讐) 심리로 누구를 망하게 하겠다는 식의 정당 깃발이 제대로 휘날릴 수 있겠나.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노회찬 정신의 정의당 등등 함께할 수 있는 대상을 툭툭 던졌지만 다들 선을 긋는다. 물론 이 전 대표의 최대 무기는 나이다. 실패해도 또 기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도 곧 40대에 접어든다. 그 점에서 문제의 본질은 이준석 신당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목소리가 주목을 받는 현재의 정치 지형이다. 정권견제론이 정권안정론을 10%포인트 안팎 상회하는 상황이 거의 굳어진 형국이다. 연원을 따져 보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한 뒤 잠시나마 50%를 넘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30%대로 급락한 것은 지난해 7월 초다. 인사 잡음 등 다른 요인도 많지만 이 전 대표를 쫓아낸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섣부른 당권 장악 시도로 스스로 무덤을 판 탓도 있지만 ‘이준석 제거’는 1차로 그가 대변했던 20, 30대 남성의 이반으로 이어졌다. 당정 혼연일체론과 윤핵관 등 신실세의 부상은 ‘배제의 정치’로 읽히며 우군 이탈을 낳았다. 10·11 강서구청장 보선 참패 후 한 달이 지났다. 그나마 인요한 효과로 참패 직후의 초상집 분위기에선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 변화는 아니다. 외과 수술은 이뤄진 게 없다. 그 사이 용산 참모진 개편 하마평에서 보듯 “이러다 폭망”의 위기감은 슬슬 사그라지고 정책 이슈 등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안일함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수석을 비롯한 용산 참모들 상당수가 인 위원장이 말하는 ‘험지 도전’의 자세는커녕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 낙점을 기대하는 듯한 모습이다. 당의 호가호위 세력들은 불똥이 튈라 바짝 엎드려 있는 형국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본질 대 본질’의 싸움이 곧 다가온다. 담대한 중도 보수 진영 재편과 결집을 이뤄내지 못하고 집토끼에만 매달리다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윤 대통령에겐 어떤 쓰나미가 몰려올지 알 수 없다. 만일 100석 이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화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건 현 정권이 아무 개혁 성과도 내지 못하고 5년 임기를 허송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현 여권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인적 청산, 청년 정치인 대거 당선 안정권 투입 등 일반 국민의 상상을 뛰어넘는 국정 대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그 연장선에서 이 전 대표를 향한 해원(解寃)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미스터 린턴’ 설화에도 궤변으로 넘어가려는 태도까지 겹치며 “이젠 손절하라”는 보수 내 여론도 거세다. 그럼에도 ‘썩은 사과’ 취급하며 도려내는 게 능사일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선 지지층 복원과 관련된 이슈이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을 보면 이질적인 당 안팎의 세력을 어떻게 한데 묶어내느냐가 승패를 가르곤 했다. 회군의 명분과 조건은 만들기 나름일 텐데…. 물론 그쪽으로 갈 가능성이 낮다는 게 문제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세운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현실 정치인이기도 했다. 1774년 무역항 브리스틀에서 어느 급진주의자에 이어 2위로 하원의원에 선출된 그의 당선 연설이 잘 알려진 ‘브리스틀의 유권자에게 드리는 말씀’이다. “의회는 나라 전체의 이익을 심사숙고하는 모임이다. … 유권자 여러분은 의원을 선택한다. 그러나 일단 여러분이 의원을 뽑고 나면 그 의원은 브리스틀 소속이 아니라 의회 소속이다.” 무려 250년 전의 연설인데도 울림이 크다. 탁월한 버크 평전으로 꼽히는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제시 노먼)에는 이 밖에도 자존심 강하고 때로 독선적인, 어쩌면 매버릭(maverick) 정치인으로 볼 수도 있는 숱한 일화가 나온다. 6년 임기 중 브리스틀 지역구를 겨우 2번밖에 찾지 않았다니 요즘으로선 상상조차 어렵다. 당수의 뜻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치적 양떼’가 되길 거부하려 했던 버크의 정치 생애를 짧게나마 거론하는 이유는 집권 여당의 혁신 논의를 보면서 드는 공허함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낙동강 하류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의미가 있고, 김기현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게 들린다. 정계 개편이니 한동훈 차출이니 하는 시나리오도 난무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총선 전술(戰術) 차원의 진단과 해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다. 내년 총선은 ‘정권 심판론’ 대 ‘거야 심판론’의 대결이란 측면이 강하지만, 또 다른 한 축은 ‘국회 심판론’이 될 것으로 본다. 국익보다는 당리당략, 지역구에만 목매는 4류 정치에 대한 심판이다. 각종 민생 법안은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 1년이 되도록 ‘주최자 없는 자발적 행사’에 적용할 인파 사고 예방 매뉴얼조차 여야 정쟁 탓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심판이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 대우, 특권을 누리고 있으니 가성비 최악 집단이란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문득 75년 전 제헌의회 때 세비나 대우는 어땠을까 궁금했다. 한 제헌의원 회고다. “영국에선 의원 봉급이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 부처 사무관 봉급 수준이라고 해서 그 정도로 했다.” 제헌의회 속기록을 찾아보니 의원들 살림살이 문제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었다. “민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때 (국회의원) 후생부 설치를 논하는 게…” “지금 굶어서 배를 쥐고 지내는 동포가 있으니 만치, 한 푼이라도 경제해서 샐 틈 없이…” “사무원들도 될 수 있는 대로 줄여서 이틀에 할 일을 하루에 하도록 수요를 줄이고…” 등등. 요즘 국회의원은 연봉 1억5000여만 원에 의정활동 지원비로 1억1200여만 원을 추가로 받는다. 그 밖의 지원도 숱하다. 제헌의원들이 하늘에서 본다면 까무러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국가 미래에 대한 보편적 이익에 충실한가. 그렇게 누리면서 하는 일은 점점 지방자치단체장들과 다를 게 없다. 국립 의대 유치전에서 보듯 지역구 이해가 걸린 현안이라면 삭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버크 얘기도, 세비 얘기도 고리타분할 순 있지만 왜 국회가 불신의 온상이 됐는지 되새길 시점이다. 버크가 강조했듯 국회의원은 지역 주민을 대표해 국가의 이익을 심사숙고해 제안하고, 대통령은 이를 집행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기업으로 치면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국민은 주주(株主), 국회는 주주를 대신한 정책 제언자이자 감시자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대선보다 총선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쯤 이상적이긴 하나 버크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는 있지 않을까. 국민의힘은 최고 권력자의 눈치만 살피는 ‘양떼 정당’이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존재론적 반성문을 쓰는 것에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국가의 보편적 이익을 고민하고 추구하거나, 적어도 국익과 지역구 이해관계의 조화를 모색할 정도의 자세는 돼 있는 인물을 어떻게 얼마나 공천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먼저 나와야 한다. 영남권 다선 의원들의 험지 출마나 용퇴 요구 등은 그다음 수순의 얘기다. 그게 용산 권력자와의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의 가장 큰 덕목은 ‘공익(公益)’에 대한 판단력과 실행 의지이지 정쟁에 앞장서는 전사(戰士)가 아니다. 내년 총선은 승패를 넘어 입법부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느냐가 판가름 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선제적으로 특권 혁파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밥값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뚜렷한 방향 없이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수준의 혁신 시늉으론 국민 마음을 얻기 힘들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지팡이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승패를 가른 상징적 소품이었다. 선거 이틀 전 지원 유세에서 염색하지 않은 헤어스타일로 단상에 오른 이 대표는 지팡이를 짚은 채 “마음은 똑바로 서 있는데 몸이 못 버텨 죄송하다”고 했다. 추석 전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는 지팡이를 짚고 휘청대는 모습도 보였다. 참 지능적인 동정 유발 연출이란 평이 나왔다. 반면 ‘빨간 점퍼’ 차림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힘 있는 여당 후보,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는 후보”를 외쳤다. 결과는 17%포인트 차의 여당 참패. 이 대표의 약자 코스프레가 먹혔고 윤석열 마케팅은 통하지 않았다. 선거 패인을 놓고 중도층 이반, 높은 정권견제론 등 여러 진단이 나온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은 ‘오만한 강자’보다 ‘모자란 약자’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 약자의 문제점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변덕스러운 인간의 속성이다. 민주당은 사실 약자가 아니다. 윤 정부는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거대 야당의 벽에 부딪혀 사사건건 휘둘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권력의 반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절대 다수의 국회 의석을 가진 민주당은 약자, 여권은 강자처럼 비치고 있다. 이는 프레임 싸움에서 밀린 탓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이 대표의 ‘지팡이 전략’이 뻔하게 보이면서도 일부 중도층까지 잠식할 수 있었던 건 그 대척점에 ‘군림’ 이미지의 통치자가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비겁함을 싫어하는 성정이라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면서도 남들이 이루지 못한 성공의 역사를 써 왔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승부사적 기질이란 측면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른 건 ‘말(言)’이다. 설득과 공감보다는 “나를 따르라”는 식의 스타일. 이게 인사나 정책 추진에서 하나둘 쌓이며 정치가 아닌 통치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보선 열세에 대해 “왜 진작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는 얘기가 들린다. 사실이라면 의아하다. 보궐선거 귀책 사유자 사면 복권으로 사실상 공천을 하라는 지침을 준 것도, 당정일체의 직할 체제를 만든 것도 용산 아닌가. 그런 점에서 “강서가 원래 험지” “선거 방식의 문제” 등의 패인 분석은 맞지도 않고 곁가지일 뿐이다. 진단이 정치공학적 차원이면 교훈과 해법도 그 수준을 맴돌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이번 선거의 함의를 큰 눈으로 인식하고 변화의 계기로 삼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차분함’에 방점이 있는 건지, ‘변화’에 방점이 있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결국 여권은 ‘차분한 수습’의 길을 택한 듯하다. 일각에선 비대위 전환, 나아가 연말 신당 추진 등 해법과 로드맵을 내놓고 있지만 다들 조심스러운 눈치다. 총선 공천장이 급한 당내 인사들이 김기현 체제의 결단을 대놓고 입에 올리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결국 ‘창조적 전환’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창조적 전환은 당의 문제만일 수 없다. 이번 선거의 ‘교훈’을 지엽적인 선거 전략 분석, 패인 분석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다. 용산의 성찰이 핵심이다. 왜 설득과 소통이 부족한 강자로 비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코피 터져가며 국정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정의 대부분은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대통령의 개인기와 지시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수많은 약자들이 쏟아졌다. 이들은 새 대통령이 자신들의 삶을 보살펴주길 기대했다. 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며 민생 대신 ‘이념’을 내세우는 듯한 대통령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대통령 메시지에서 민심을 받들겠다는 얘기를 듣기 힘들다.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 뉴스만 쏟아진다. 바로 그 틈을 이 대표의 지팡이가 파고든 것이다. 내년 총선,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중 누가 더 절박하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절박함은 국민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다. 승리의 열기도 있지만 ‘패배의 분기(憤氣)’도 있다. 패배의 분기는 그냥 사그라들 수도 있고, 판세를 바꾸는 동인(動因)이 될 수도 있다. 저자세와 낮은 자세는 다르다. 저자세는 굴욕이지만 낮은 자세는 국민과 진심으로 교감하는 길이다. 오동잎은 이미 떨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더 처절하게 낮은 자세로 내년 봄을 준비할까. 역사의 미소는 공짜가 아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 돌입을 앞두고 한때 ‘양평거사’ 김부겸 대안론이 심심찮게 회자됐다. 호사가들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 대표 측으로선 가벼이 흘려들을 수 없는 기류였다. 김 전 국무총리는 정치활동을 자제해 왔지만 호남에선 광주 출마론이 제기된 적도 있다. 물론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잘랐는데 활동 재개에 대한 여지까지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자칫 호랑이를 키울 수도 있는 김부겸 대안론, 이번 단식으로 일단 잦아들었다. 첫 일주일, 느닷없는 단식 카드에 비명 측은 허를 찔린 듯 당황했다. 2주 차 때부터는 당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다고 한다. 비명 핵심 몇몇을 제외하곤 상당수 의원과 총선 공천을 노리는 예비 후보들의 ‘알현(?)’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회복식을 만들어주겠다”며 눈물을 흘린 모습은 19일째로 접어든 단식 과정을 통틀어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대선 때 ‘이대남’에 맞설 ‘이대녀’의 선봉장으로 영입됐다가 반명으로 돌아서고 개딸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27세의 젊은 정치인이 단식 12일 차 되던 날 이 대표를 찾을 때의 번민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장의 옥새를 쥐는 건가, 하는 판단 말이다. 이 대표가 당내 반대파를 제압했다고 단정하긴 이르나 ‘방탄 단식’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기사회생의 발판은 마련한 것 같다. 언제 어떻게 무슨 명분으로 끝낼 것이냐는 출구 전략이 뭔 의미가 있겠나. 19일 서울에 올라올 수 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단식장을 찾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친문으로선 이 대표 단식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걸로 비칠까 우려하지 않을까. 윤석열 대 이재명의 싸움으로 끌고 가야 하는 이 대표도 최근 부쩍 정치 현안에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훈수 정치’에 기대려 할까.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명분 없는 부결’의 딜레마에 빠진 민주당 의원들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20일 가까이 굶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가결을 주장하기도 어렵게 됐다. 부결 당론을 하네, 체포동의안 보이콧을 하네 하는 등의 말들이 오가는 이유다. 보이콧이든, 부결 당론이든 이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장면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럴 거면 단식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다. 아마 이 대표 측은 일단 구속 리스크를 면하고 당을 급속히 총선 체제로 재편하는 로드맵을 구상 중이지 않을까. 10월 중순이면 총선 D-6개월이니 당 대표가 맡는 인재영입위를 띄우고, 총선기획단을 꾸리고, 현역 의원 평가 작업도 시작하고…. 그러다 공천 살생부 논란이 터지고 탈당 분당 등의 내홍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재명의 민주당 체제로 총선을 치른다면 쇄신과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못해 국민의힘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사정도 도긴개긴이니 현재로선 그런 분석은 별 의미가 없다. 이 대표가 지금 떼밀려 물러나진 않으나 내년 총선 한두 달을 앞두고 좀 더 주도적인 위치에서 비대위 전환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 역시 시나리오일 뿐이다. 이 대표는 일단 자신이 살기 위한 생명 연장의 수(手)를 뒀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 대통령 직선제 요구, 지방자치제 도입 등 큰 명분을 내세우고 단식을 감행했던 YS, DJ의 단식과는 달리 이 대표의 단식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 게 사실이다. 단식의 목적, 즉 국가적 의제 없이 셀프 구명의 사적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단식으로 죽은 정치인은 없다고 한다. 단식을 직접 해 본 적도 없고, 그 힘듦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사골 국물’식의 조롱엔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무엇을 위한 단식이었느냐”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요 8개국(G8) 진입 운운하는 2023년 대한민국에서 단식이란 후진적 행태를 봐야 하는 정국 상황이 답답하다. 정치는 비정하고 갈수록 더 막장이다. 이 대목에서 ‘단식 그 후’를 상상해본다. 만일 이 대표가 단식 종료와 함께 체포동의안을 당론으로 가결시켜 달라고 공개 호소한다면? 그토록 “증거가 하나도 없다”며 검찰 조작이라고 반발했으니 당당히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면? 영장 발부 여부를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제3의 명분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 이번 단식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신의 꼼수’가 될지, 그 선택은 오로지 이 대표의 몫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삼균주의’ 조소앙 선생이 남긴 문집 중에 ‘유방집’이 있다. 독립운동가 82명에 대한 평전을 모은 책으로 1933년 중국 난징에서 펴냈다. ‘유방(遺芳)’은 꽃다운 이름을 후대에 남긴다는 의미다. 선생 자신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록을 남겨 놓지 않으면 자칫 잊혀질까 염려해 썼다고 한다. 일제에 분연히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거나 자결한 분들을 고루 다뤘는데, 그중에 ‘홍범도전(傳)’이 있다. 대부분 ‘죽은 열사’인데 이례적으로 생존자인 홍 장군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기개가 높았으며, 글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성품은 의협심이 강해 어려운 사람 돕는 걸 급선무로 여겨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1907년 공(公)은 북청 후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의 장교 미야베가 이끄는 중대를 섬멸하였다.” “1920년 의용단장이 되어 (봉오동 전투 때) 공이 군대에 명하여 숲속에서 발포하도록 하고 군호(軍號)를 보내니, 마침내 하늘에서 빗발치듯 총알이 쏟아졌다. 우리 군이 추격하여 크게 격파하였으니 이때 적군의 사상자는 138명이었다.”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장이었지만 요즘으로 치면 국가정보원장 역할도 겸했다. 당시는 ‘밀정의 시대’였다. 정확한 정세 판단을 위한 정보 유통과 수집의 사령탑 역할까지 한 셈이다. 1921년 벌어진 자유시 참변은 독립군 세력을 약화시킨 최악의 흑역사로 임정이 몰랐을 리 없는 사건이다. 일단 선생이 쓴 홍범도전에는 자유시 참변 얘기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홍범도란 이름은 유방집의 ‘김좌진전’에서도 언급된다. “백야(김좌진의 호)는 5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홍범도 장군과 함께 청산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유방집 말고도 선생이 소련 타스통신 주중 특파원에게 서신을 보낸 자료가 남아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한다. “현재 정치적으로 귀국의 의사와 맞지 않아서 구금되어 있는 한국 혁명가로 하단에 기록된 인원들이 있으므로 우리 한국의 임시정부가 그들을 인수하여 우리 해방투쟁의 전선으로 나아가려는 것입니다.” 57명이 적힌 ‘석방 촉구’ 명단을 첨부했는데, 홍범도가 세 번째로 적혀 있다. 선생은 ‘대한민국’ 국호를 정하는 데도 기여한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임정의 기록자였다. 선생의 기록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독립운동사의 귀중한 기초 자료임에 틀림없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을 때 공적 내용을 보면 ‘1907년 북청에서 일본군 1개 중대 섬멸’ ‘1920년 만주 간도에서 일병 섬멸’ 등 소앙 선생의 ‘홍범도전’에 근거했음을 알 수 있다. 홍범도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건 문재인 정부다. 문 대통령은 6·25전쟁 때 김일성 정권에서 훈장을 받은 김원봉까지 국군의 뿌리로 내세우려다 반발이 일자 그에 대체되는 상징적 인물로 홍범도 띄우기에 나섰다. 육사 내 흉상 설치, 공군 전투기 6대가 호위한 유해 봉환, 추가 서훈이 착착 진행됐다.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문 정부에서 폄훼된 것과 대조됐다. “봉오동 전투의 성과가 과장됐다” “공산당에 가입했다” 등의 주장과 자료가 우파 일각에서 본격 제기된 것도 그 무렵이다. 윤석열 정부가 백선엽 장군의 업적을 대대적으로 조명하고 육사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뿌리 깊은 정체성 대결, 역사전쟁의 연장선에 있음은 물론이다. 자유시 참변 당시 홍범도의 역할을 놓고는 학자들의 견해가 분분해 상세히 옮기기 힘들 정도다. 레닌의 권총을 선물로 받고 말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한 건 사실이나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긴 어려운 국제적 시대적 상황이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북한 김일성 정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됐고 1943년 75세로 사망했다. 문 정부의 홍범도 띄우기는 과했다. 그렇다 해도 현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 방식도 자연스럽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권력에 의한 역사의 이념화, 진영화는 위험하다. 홍범도 문제는 6·25전쟁 당시 북한 군가였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멈춤의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홍 장군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과 더불어 일제에 무력으로 맞서 싸운 1세대, 백선엽 장군 등은 북한 공산세력에 맞서 싸운 2세대로 함께 인정할 순 없나. 소앙 선생이 혼을 담아 전하려 했던 ‘유방의 뜻’이 후대에서 갈가리 찢기고 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8·15를 기해 올해도 ‘건국’ 논쟁이 벌어졌다. 광화문 사거리엔 ‘8·15 대한민국 건국절’이란 어느 우파 군소 정당의 플래카드가 지금도 걸려 있다. 일부 우파 종교인도 “8월 15일 건국절로 정해 국가 정통성을 세우자”고 촉구하고 나섰다. “도둑같이 온 45년 해방보다 48년의 건국이 훨씬 값지다”는 어느 교수의 글에 이종찬 광복회장이 “해방은 도둑처럼 오지 않았다. 1945년 8·15와 1948년 8·15를 대립시키는 프레임은 옳지 않다”고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광복 78주년, 건국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는 알면 알수록 뭐라 정의하기가 어렵다. 해방 공간의 복잡한 역사는 더더욱 그렇다. 특정 사관으로, 특정 사건이나 인물만 내세우면 자칫 ‘외눈박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쓰기도 무척 조심스럽지만 건국 논쟁, 아니 건국 ‘시점’ 논쟁의 쟁점 정리 차원에서 몇 가지 역사적 기록을 살펴볼 필요는 있다. 제헌 헌법 전문(前文)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돼 있지만, 주목할 것은 유진오 초안에는 ‘기미 혁명의 정신을 계승’으로만 돼 있었다는 점이다. 독회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선포’라는 표현을 넣자고 처음 제의한 사람은 국회의장이던 이승만이었다. 그 대한민국 정부가 1919년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선출한 한성정부를 말하는 건지,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탄핵을 당한 대한임정인지 명기되지 않아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김구 세력과의 역학관계가 반영된 게 아닐까 한다. 그러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표현이 전문에 들어간 것은 40년 가까이 지난 1987년 개헌 때다. 당시 여당 측 헌법개정 대표위원이던 이종찬 의원(현 광복회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연호를 둘러싼 논란도 간단치 않다. 이승만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다. 정부의 관보 1호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돼 있다. 1919년을 기점으로 본 것이다. 이를 근거로 광복회장은 “올해는 대한민국 105년”이라고 한다. 이승만이 대한민국 연호를 쓰려 했던 건 북한과의 체제 경쟁, 역사적 정통성 경쟁을 염두에 둔 정치적 맥락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당시 기록을 보면 제헌국회는 단기를 사용했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쓰는 연호가 달랐던 것이다. 이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됐다. 민족정기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헌국회는 표결을 거쳐 단기로 쓰기로 결정했다. 현재의 서기로 통일된 건 5·16 이후다. 한정된 지면에 해방 3년의 정치적 혼란이 정리돼 가는 과정을 담아내긴 어렵다. 분명한 건 공산세력에 맞설 민주공화정 수립에 앞장선 이승만과 “빨갱이든 김일성이든 다 우리와 같은 조상의 피와 뼈를 가졌다”는 이른바 ‘단군자손론’을 앞세운 김구의 길은 달랐지만 둘 다 박헌영 여운형 등 좌파와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야욕을 꿰뚫어 보았던 이승만은 물론이고 김구도 강력한 반탁 운동을 통해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정부다. 그러나 3·1운동을 통해 왕정으로의 복귀가 아닌 ‘민국(民國)’으로의 전환을 선포한 정신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그 정신을 토대로 광복을 이루고 정부 수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해방 후 혼란을 딛고 국제적으로 공인된 근대국가를 세우고 세계적인 중추국가로 성장해 나가는 중대한 시발점이 1948년 정부 수립이라는 사실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1919년 ‘선언적 건국’으로 시작해 1948년 ‘실효적 건국’으로 이어진 긴 흐름으로 볼 필요가 있다. ‘광복절 대 건국절’ ‘김구 대 이승만’의 역사 내전을 벌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절하된 상황에서 ‘1948년 건국론’이 나온 것이나, 이에 맞서 ‘1919년 건국론’이 제기된 과정을 새삼 장황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역사의 정치화’다. 어느 정권은 ‘건국 60주년’을, 어느 정권은 ‘건국 100년’을 내세운다. 정권이나 통치자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역사를 재단하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승만만 추앙(推仰)할 것도, 김구만 존숭(尊崇)할 일도 아니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하면서 큰 물줄기로 이승만과 김구를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로 묶어내야 한다. 역사는 모노레일이 아니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지난 주말에도 광화문 일대는 ‘검은 물결’을 이뤘다. 좀 떨어진 곳에선 교사 수만 명이 운집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한 집회였다. 너무도 질서정연해 ‘집회의 품격’을 먼저 떠올리게 했다. 땡볕 아스팔트로 몰려 나온 선생님들은 좌절감, 무력감을 호소하며 “다시 뜨거운 열정으로 가르칠 환경을 만들어 달라”며 ‘교육권’ 보장을 숨죽여 외쳤다. 어느 10년 차 초등학교 교사에게 뭐가 문제의 핵심인지 물어봤다. ‘악성 민원’이라고 했다. 담임 맡기가 두렵다고 했다. 함께 임용된 가까운 교사 6명 중 4명이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다고 했다. 교장 교감은 문제가 터져도 뒤로 빠지고 오롯이 담임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했다. 그 사연이 구구절절해 지면에 옮기기 힘들 정도다. 악성 민원의 본질은 “내 자식만은…”의 이기주의다. 그 배타적 이기심은 학벌 콤플렉스의 발현일 수도 있고 “내가 이렇게 성공했는데” 하는 선민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다. 사실 교육 문제만큼 ‘이중성’을 띠는 영역도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얘기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겉으론 근사한 보편성과 도덕성을 내세우는 이들도 자식 교육 문제, 입시 문제가 얽히면 ‘내 아이는 예외’ 심리가 작동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그렇다 해도 남의 자식 제치고 짓밟고서라도 우리 아이만 올라서면 된다는 식의 천박한 인식은 심각한 사회병리라 할 만하다. 그점에서 작금의 사태를 ‘교권’ 문제로만 보는 것은 협소하고 근시안적이다. 마치 교권을 내세워 과거 권위주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엉뚱한 얘기로 흐를 수 있어서다. 젊은 교사들이 학생의 배울 권리를 포함한 ‘교육권’ 보장을 들고나온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서울시 진보교육감이 내놓은 교사 면담 사전예약, 민원실 CCTV 설치, 챗봇 활용 등의 대책이 교사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테크니컬한 대책일 뿐 우리 교육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한나(해나) 아렌트는 “교육은 반드시 가르침과 동시에 일어난다”고 했다. 가르침 없이 배울 수도 있지만 그건 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움은 혼자서도 이룰 수 있지만 가르침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 안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이 세계 속에 진정한 한 인간 존재로 탄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박은주 ‘한나 아렌트, 교육의 위기를 말하다’). 생물학적 탄생이 아닌 ‘사회적 탄생’을 돕는 것이 교육이고, 아이들을 세상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아렌트의 눈으로 보자면 우리 교육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 남에 대한 배려, 사회 기본 룰에 대한 존중, 인내심 같은 기본적인 소양, 사회화 등에 대한 가르침과 배움이 없는 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생들 앞에서 잘한 학생을 칭찬하는 것도, 잘못한 학생을 야단치는 것도 차별이고 인권 침해라고 하니 교육은 설 자리가 없다. 일부 학부모는 비싼 학원비 또는 과외비를 지출해서인지 학비가 없는 공교육은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는 것 같다. 그걸 보며 자란 ‘내 아이’는 과연 올바른 사회인이 될까. 이렇게 공교육에서는 악성 민원, 툭하면 벌어지는 인권 침해, 학대 논란 등으로 난리이지만 지금까지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을 고발하였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다. 금전적 계약관계니 그렇다 치더라도 공교육과 사교육을 대하는 희한한 이중심리가 작동하는 건 아닐까. 최근 사태로 악성 민원이 잠시 주춤할지 모르나 상황이 본질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교권 대 학생 인권의 대립’ 운운하는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뭘 가르칠 건지, 학교는 훈육이 가능한 곳인지 등 큰 원칙과 방향을 깊이 논의해야 한다. 학교를 이념의 진지로 만들고 인권 운운하며 정상적인 학생들의 인권까지 침해하는 교실 분위기를 만든 정치 교육감들은 제발 뒤로 물러나고…. 생명의 탄생은 부모의 몫이지만 사회로의 ‘재탄생’은 교육의 몫이고, 공동체의 몫이다. 지금은 ‘가르침’의 역할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다. 가르침은 돌봄이 아니다. CCTV 설치 등의 차원이 아니라 “가르치고 싶다”는 절규를 담아낸 교육 비전이 나와야 한다. 당장은 아동학대 면책권 보장이 핵심 이슈지만 더 중요한 건 왜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다. 이는 특정 정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의 문제다. 그래서 얼핏 궁금하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무위(無爲). 잘 알려진 대로 노자 ‘도덕경’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다. 중국 자금성 교태전에 이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60년 넘게 중국을 통치한 청나라 강희제가 직접 썼다고 한다. 강희제는 재임 기간 ‘무위지치(無爲之治)’의 리더십을 보인 걸로 평가된다. 노자 도덕경은 심오하다. 이 글에서 함부로 논할 정도의 식견을 갖추진 못했지만, 도덕경을 읽고 난 뒤 분명히 느꼈던 건 ‘군주론’과 대비되는 수준 높은 제왕학, 통치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었다. 노자는 국가를 신기(神器), 즉 신묘한 그릇으로 봤다. 한마디로 세상은 복잡다단하고 다양한 측면이 혼재돼 돌아가기 때문에 단선적인 기준이나 가치로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나라 다스리는 일을 작은 생선을 굽듯 조심하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정치 현실에 비춰 보면 자신만의 선악 기준, 신념이나 좁은 식견에 빠져 단순하게, 또 함부로 국정을 펼치면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문재인 정권 때 마구 헤집어놓은 부동산 정책이나 탈원전 정책, 소득주도성장 등이 빚은 각종 폐해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요컨대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고고하게 자연을 즐기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움에 반해 억지로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시시콜콜한 직접 통치, 만기친람이 아니다. 잘 경청하고, 신중하되 과감하게 결정하고,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것이다. 자율적인 통치 시스템이다. 그런 점에서 무위의 정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한 번쯤 새겨볼 만한 고도의 통치 철학이 아닐까. 스스로 일하게 하는 리더십, 이를 끊임없이 살피는 리더십, 위임하되 위임하지 않는 리더십…. 무위에 입각한 권한 위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무위의 정치를 새삼 언급하는 이유는 현 정권이 출범한 지 만 1년도 한참 지난 상황에서 문 정권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작위(作爲)의 정치’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아서다. 유튜브 등 SNS를 통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평가되는 디지털 직접 민주주의 세상이다. 최고 통치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주목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통치자도 지지층이든 반대층이든 실시간 여론을 파악하며 국정의 주도권을 쥐려 한다. 이건 세계적인 현상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 못지않게 강한 그립을 쥐는 스타일이다. 수능 킬러 문항 논란에서 보듯 때론 구체적인 지침과 가이드라인까지 준다. 강도 높은 질책이 있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전해온다. 그런데도 국정은 원하는 대로 착착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급기야 용산 비서관들을 내각에 차관으로 대거 내려보내는 일이 벌어졌다. 국정이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경직되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참모는 할 말 하고 대통령이 경청하고 결론을 내리면 정제된 집행 절차를 밟는 게 순리 아닌가. 어공이든 늘공이든 최고 통치자의 생각이 뭔지만 쫓는 듯한 분위기는 곤란하다. 명품 쇼핑 논란이 비근한 예다. 누군가 신중해야 한다는 직언도 하지 않았고, 언론 보도로 논란이 벌어졌는데도 ‘호객’이네 ‘문화 탐방’이네 하는 변명과 옹호로 일을 더 키웠다. 수해 때 우크라이나행도 마찬가지다. 깊이 고민했고 다각도로 검토했지만 국익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쿨하게 설명했으면 될 일을 “서울로 달려간다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열차가 출발한 상태였다”는 등 즉자적 방어에만 급급하니 답답한 것이다. 수해가 아닌 더 큰 안보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면 어쩔 건가. 게다가 대통령 순방 중 여당 대표도 거의 동시에 미국을 방문하는 일이 벌어졌고, 대통령 부재 시 국내 상황을 책임져야 할 국무총리는 존재감을 보이지도 못했다. 툭툭 터져 나오는 이런 상황에 국민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대통령 원맨쇼로는 곤란하다. 지금, 한 번쯤 ‘무위의 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온갖 현안을 놓고 가짜뉴스, 괴담이 판을 친다. 유튜브 등 SNS 공간은 사실상 내전(內戰) 상태다. 그렇다 해도 우파 유튜버 전사에게만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높은 수준으로 품격 있게 대응하는 의연함을 보이는 게 민심을 얻는 길일 수 있다. 필자가 해석하는 무위의 치는 권력의 두려움, 정치의 무게감을 직시하는 것이다. 꼭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무위의 지혜’를 보고 싶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노자와 장자에 대한 고유한 해석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요즘 ‘반(半)정치인’이 됐다. 한 대선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더니 얼마 전부터 무소속 양향자 의원과 함께 ‘한국의 희망’이라는 신당 창당에 나섰다. 그의 행보를 놓고 평가가 분분하다. “철학자가 글이나 쓰고 강연이나 다니지” 등 폄훼하는 이도 없지 않다. 많은 저서들과 강연을 접한 필자는 좀 다른 관점으로 본다. 그의 현실 정치 참여는 일관된 지적 사유의 연장선에 있다는 얘기다. 시대의 병을 함께 아파하고 고치려고 현장에 뛰어들겠다는…. 그는 “철학에 살과 근육이 붙으면 정치가 되고 정치에서 살과 근육이 빠지면 철학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신당이 몇 석이나 얻겠느냐는 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다만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그것이 나의 임무”라고 돈키호테가 말했듯 닿지 않는 별을 잡기 위한 모험이라도 도전 자체는 의미가 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은 지금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경계에 서 있다”며 절박감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신뢰 잃고 염치가 사라진 정치를 바꿔 ‘추격 국가’에서 ‘선도 국가’로 건너가야 한다”고 외친다.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신당의 꿈일지 모르지만, 그 꿈이 작금의 정치판에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는 새겨볼 만하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권은 ‘이게 나라냐’로 탄핵됐다. 문재인 정권은 ‘이건 나라냐’로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윤석열 정권은 ‘어떤 나라’를 꿈꾸는 것일까. 문 정권 때 우리는 심각한 국가 정체성 위기를 맞았다. 6·25 때 대한민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김원봉과 그의 조선의용대에 대해 “술 한잔 바치고 싶다” “국군 창설의 뿌리” 운운했다. 국가 정체성을 바로잡으려는 윤 정권의 노력은 의미 있다. 한미, 한미일 관계 복원에서도 나름대로 ‘뚝심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희한한 것은 집권 2년 차를 맞은 현 정권의 이런 노력들이나 성과에 박수 치는 국민이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 지지율은 30%대 중반에서 오르락내리락한다.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찍었던 이들의 상당수조차 마음을 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이른바 ‘이권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뭔 한가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최 교수의 외침대로 결국 국정 철학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등 곳곳이 전선(戰線)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럴수록 국정의 비전과 목표의 수준은 높고 넓어야 한다. 그래야 권력을 폭넓게 쓸 수 있고 인재를 두루 등용하고 다양성과 유연성으로 많은 국민의 지지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의 정체성을 ‘반(反)카르텔 정부’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에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건 그 때문이다. ‘법조 카르텔’은 왜 말하지 않느냐는 차원의 지적을 하려는 게 아니다. 반카르텔 정부는 너무 협소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거다. 보다 상위 개념의 비전이 제시되고, 그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로드맵 차원에서 카르텔 문제가 나와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수능 킬러 문항과 사교육 카르텔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사교육 문제가 망국병 수준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다만 윤 정부 5년의 교육대계에 대한 밑그림을 먼저 제시하는 게 순서다. 그런 것 없이 대통령이 디테일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평가원장이 물러나는 식의 일련의 국정 행태가 자연스러워 보일 리 없다. 일부 식자층에서 “다른 국정 영역도 이런 식으로 돌아가나”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국가 경영이 공권력을 동원한 법률적 레벨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위험하다. 건폭으로 대표되는 민노총, 보조금 떼어 먹는 시민단체, 혈세 빼먹는 태양광 업자들에서 사교육 부추기는 일타 강사들, 이자 장사하는 금융권, 대북지원부 같은 통일부 관료 등 카르텔의 대상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너무 광범위하지 않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상사를 카르텔이란 하나의 잣대로만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현 정부는 다시 한 번 국정 비전, 국정 운영 방식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윤 정부가 움켜쥐려는 ‘시대의 옷자락’은 무엇인가. 집권 5년 내내 강고한 이익공동체, 먹이사슬을 구축한 전 정권의 병폐를 바로잡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바로잡고 검은돈이 얽힌 비리의 급소(急所)를 정확히 타격해야 한다. 중요한 건 ‘과거’의 사법적 재단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카르텔과의 전쟁이 미래 담론까지 삼켜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일본 후쿠시마를 ‘쟁지(爭地)’로 삼은 듯한 태세다. 병법의 대가인 손자가 말하는 쟁지는 ‘내 쪽에서 차지하면 유리하고, 상대가 차지하면 상대에게 유리한 땅’을 말한다. 요컨대 전쟁에서 반드시 얻으려고 다투는 ‘전략적 고지’라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후쿠시마, 즉 오염수 문제는 이 대표로선 반드시 쟁취해야 할 ‘정치적 쟁지’가 된 것 같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형세가 그리 불리하지 않다고 이 대표는 판단하고 있는 듯 보인다. 10여 일 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한일 언론사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83.8%가 반대하는 걸로 나타났다. 일본은 60%가 찬성했다. 한일 국민의 인식이 크게 엇갈렸다. 그 무렵 천일염 사재기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각종 악재로 위기에 몰린 이 대표의 촉(觸)이 후쿠시마 오염수에 꽂힌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패착이 될 것이다. “핵폐수” “방사능 테러” 등 온갖 자극적 표현들을 동원해 이슈화에 나서고 “우물에 독극물을 퍼 넣는 것”이란 말까지 쏟아냈지만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각종 사법리스크, 전당대회 돈봉투 논란, 김남국 의원 코인 의혹 등 자신에게 쏟아지는 숱한 화살을 피하고 ‘반일 반핵’ 논리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음을…. 100년 전 간토대학살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를 연상케 하는 독극물 발언은 많은 국민의 뇌리에 박혔지만 이 역시 정치적 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반대하는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의 실체는 “찜찜하다” “께름칙하다”는 정도이지 공포 수준은 아니다. 일부 사재기 현상이 있긴 하지만 광풍 분위기가 없는 게 이를 방증한다. 이는 10년간의 학습효과가 작동하고 있어서다. 광우병으로 대표되는 ‘괴담 정치’의 반복되는 버전에 식상해하는 것이다. 반핵 단체 등은 후쿠시마 방류에 반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그게 존재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권을 잡겠다는 공당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일반 소비자들이야 수산물을 안 사먹으면 그만이지만 그 많은 횟집들은 어쩔 건가. 2008년 ‘뇌숭숭 구멍탁’ 광우병 파동 때도 당시 사회 전체적으로 2조 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입은 피해액은 6000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당시 혹독한 시기를 겪은 끝에 문을 닫은 고깃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어느덧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국 1위가 됐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고, 자영업자들만 쫄딱 망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 대표가 부산 인천 강릉을 돌며 장외집회를 하고 있지만 현지 호응은 그리 높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자갈치시장 상인 등은 “우리를 다 죽이려 하냐”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민폐를 끼쳐놓고 민주당 의원들은 원전 오염수 방류로 피해 본 어민과 지역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했다. 불안감을 한껏 부추겨 횟집 발길을 끊어놓고 보상 특별법을 만든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과 공기는 과학의 영역이다. 당장은 횟집 파동이 문제지만 더 넓게는 지성의 문제다. 물론 과학이 100%를 담보하진 못한다. “과학은 특정 순간의 산물”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뭔가 찜찜하다”는 정서의 문제가 있더라도 그 또한 해법을 찾으려면 방대한 데이터와 과학적 논리로 따지는 게 옳다. 오염수 방류에 대해 필자도 정서적으로 환영하진 않지만 국가 대 국가의 이슈인 만큼 미국 캐나다 러시아 등은 왜 조용한지 국제적, 보편적 기준에 근거해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오염수 방류 타당성 보고서에서 특별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일본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다. 광우병은 미국과 얽힌 국내 문제라면 오염수는 일본과 얽힌 국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은 IAEA 결과가 나오더라도 즉각 방류를 강행하기보다는 주변국에 그 내용을 직접 설명하고, 방류 안전 부분을 다시 점검하고, 단속을 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길 바란다. 정부도 일본을 옹호하거나 대변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곰곰이 성찰할 것은 과학과 이념과 정치가 뒤범벅이 돼선 국가 미래를 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대표로선 당장은 후쿠시마 이슈가 지지층 결집의 단기적 수단으로 유효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이 뒷받침되지 않은 선동의 칼날은 이젠 먹히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 효과로 불신의 구업(口業)만 쌓일 뿐이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북한 사리원 농업대학을 졸업했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이 한 해 50명씩 서로 학생들을 보내자고 합의한 데 따른 교환 프로그램으로 북한에서 유학을 했다고 한다. 평양의 김일성대가 아닌 인구 30만 명의 지방 소재 농대에서 공부한 경위는 알려진 게 없다. 싱 대사는 굳이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다. 처음엔 평양 말투를 썼지만 몇 차례 한국 근무를 거치며 서울 말투로 자연스레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잘한다는 등 이유로 3년 전 부임 때 친한파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보단 ‘한반도통’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그가 한국어를 잘한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이번에 온 국민이 알게 됐다. 한국어로 10여 분간 “중국 패배 베팅은 잘못”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시진핑 주석의 지도하에 위대한 중국몽(中國夢) 진행” 등의 도를 넘는 발언을 쏟아내는 걸 방송으로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중국어로 했다면 듣는 기분이라도 좀 달랐을지 모른다. 한국어라 더 임팩트가 컸던 것 같다. 싱 대사는 관저 행사가 잦다고 한다. 당연한 업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초청은 의례적인 행사는 아니었을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과 ‘워싱턴 선언’, 한미일 공조 강화 등 일련의 ‘중국 포위’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다분히 전략적으로 추진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알고 있을 이 대표가 생중계 형식을 택한 이유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사법 리스크는 물론이고 최근 임명 9시간 만의 혁신위원장 사퇴 파동으로 더 위기에 몰리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미국 편중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도 있으니 임박한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를 고리로 중국과 손잡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주면 분위기 반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을까. 관저 회동 유튜브 공개는 싱 대사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싱 대사의 오만과 무례를 일일이 따져봐야 뭔 의미가 있을까 싶다.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거쳐 이젠 국제무대에서 대놓고 근육 자랑을 일삼고 있는 중화 본색이 발현된 한 사례일 뿐이다. 상대가 자기들보다 강한 나라든 약한 나라든 늑대의 발톱을 대놓고 드러내기로 작정한 마당에 뭘 말하겠나. 우리 정부는 ‘비공개 초치’로 항의를 했지만 싱 대사는 자기 입장에선 할 말을 한 것이고 전랑외교의 모범전사로 훈장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니 “국장급이 감히…” 등의 반응도 우습고, 차라리 무대응 전략이 더 당당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대표는 “마땅치 않아도 협조하는 게 외교”라며 논란을 피하려 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발언보다 형식이다. 특정국 대사에게 그런 훈시와 으름장의 자리를 깔아 준 것, ‘대국의 칙사’인 양 구는 듯한 모습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모습 자체가 주는 불편함이다. 단지 조급함의 문제인가, 아니면 중국을 뒷배 삼아 정치 활로를 찾으려 했던 건가.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둘의 ‘유튜브 작당’에 적지 않은 국민들의 자존심이 뭉개졌다는 점이다. 여권에선 “삼전도의 굴욕” “현대판 위안스카이” 등 비난이 쏟아진다. 구한말 30세 안팎의 나이에 무려 12년 동안이나 상왕 노릇을 했던 위안스카이에 싱 대사를 빗대는 등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다만 국가 존망의 위기를 똘똘 뭉쳐 헤쳐나가지 못하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외세(外勢)를 끌어들였던 굴욕의 기억이 소환됐던 건 사실이다. 이 대표가 뭔지 모를 ‘소국(小國) 의식’을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고 불쾌하단 얘기다. 국제 관계에서 하나의 해법, 하나의 만병통치약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더라도 ‘7 대 3’ ‘8 대 2’의 영리한 중국 안배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의 갈등 증폭은 피하는 게 좋다. 그렇다고 현 단계에서 대화를 서두를 건 없다. 중국의 이간질에 놀아나는 것도, 만만하게 보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번 헛발질은 위태위태한 한중 관계에 도움은커녕 돌덩이를 던진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몇 가지 궁금증이 머리를 맴돈다. 이 대표는 성남시와 경기도의 지도가 아니라 한반도 지도, 동북아 지도를 펼쳐놓고 국가 대(大)전략을 깊이 사색하고 성찰하는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을까. 툭하면 “굴욕 외교” 운운하며 외교 이슈의 국내 정치화를 시도해 왔던 친명 세력들은 이번 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선거와 국민투표의 관리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정당에 관한 사무가 불공정하게 처리되는 경우에는 선거와 국민투표는 그 본래의 민주 정치적 기능을 나타내지 못하고 하나의 장식적 기능밖에 못 하게 된다.” 헌법학계 원로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가 1995년 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위와 권한’에 나오는 대목이다. 최근 ‘아빠 찬스’ 의혹 등으로 사무총장과 차장 등 투톱이 동시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선관위. 한때 국민이 신뢰하는 국가기관 1위 평가를 받기도 했던 선관위가 어쩌다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이처럼 추락하게 됐을까. 단지 폐쇄된 조직 문화, 외부 감시 체계 미흡 등의 문제로만 보기엔 허망하다. 선관위는 민주적 정당성과 관련된 필수적 헌법기관으로 권력의 하수인이 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던 허 교수의 28년 전 논문을 모두에 길게 인용한 이유다. 올해 60돌을 맞은 선관위는 살아 있는 권력과 갖은 곡절을 겪으며 한때 해외에서도 부러워하는 위상을 확보해 왔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의 중앙선관위 방문을 거절했다는 일화, 민정당 총재를 겸하던 현직 대통령에게 경고 서한을 보낸 일화 등이 지금도 회자된다. 1992년 대선을 관리했던 윤관 위원장은 정치인과 일체의 접촉을 삼가며 선관위 위상을 한 차원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된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듯한 발언을 수시로 내놨던 노무현 대통령과도 재임 기간 내내 긴장 관계의 연속이었다. 정권마다 청와대 검찰 경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이 선관위에 무형의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선관위는 국민 여론을 든든한 방패막이로 삼고 난관을 뚫어 갔다. 적어도 여야 모두에 어느 한쪽으로 확 치우치는 듯한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관위의 정치적 오염, 도덕적 오염은 문재인 정권 들어 본격화했다고 본다. 그 중요한 계기가 된 게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건이었다. 김 원장의 정치 후원금 셀프 기부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실세인 임종석 비서실장은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그때 ‘위법’ 해석을 단호히 관철시킨 이가 고졸 출신으로 선관위에서 잔뼈가 굵은 김대년 사무총장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이 역설적으로 선관위가 권력에 예속되는 하나의 분수령이 된 것이다. 정권은 그의 선관위원 임용을 반대하는 등 뒤끝을 보였다. 이후 상황은 길게 쓰지 않겠다. 문재인 캠프에서 특보로 활동한 인물이 상임위원으로 임명되고, 대법관 서열 10위이고 시도 선관위원장 경험도 전무하지만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김명수 대법원장과 코드가 맞았던 인사가 선관위원으로 지명돼 5부 요인 자리에 앉기도 했다. 공교롭게 선관위 고위직들의 일탈도 그 무렵이다. 정치 권력엔 대등하게 맞서며 민주주의의 꽃을 책임지고 관리한다는 사명감과 자존감은 온데간데없고, 고작 자식 채용 등에만 눈독을 들인 것이다. 참담한 상황이다. 지금 선관위는 비대위라도 구성해야 할 판이다. 투톱 사퇴는 이제 선관위 개혁 논의로 불붙을 것이다. 그 전제는 선관위 위상부터 다시 정립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여야 모두에 불편하고 골치 아프고 못마땅한 존재가 바로 선관위의 정치적 포지션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제도적 보완책에 대한 공론화도 필요하다. 선관위원장은 대법관이 맡는 게 관례로 돼 있지만 독립된 헌법기관의 장을 다른 헌법기관의 구성원이 겸직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상임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법조인이 필요하다면 보수와 진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인물, 대법원장 등 다른 자리를 탐하지 않을 인물, 마지막 공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인물이 맡는 게 옳다. 상임위원도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 추천 인물 중 여야 합의로 선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어떤 이슈에 대해 어떤 발언이 나왔는지 회의록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말한 이는 스탈린이었다. 선거 관리, 선거 결과에 대한 시비와 불복 논란은 갈수록 첨예화할 것이다. 북한이나 중국의 해킹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AI)을 동원한 선거 개입 우려도 크다. 선관위 고위직 일탈, 특혜 채용 의혹은 외부 감사든 수사든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다만 이게 새로운 권력에 의한 또 다른 선관위 장악 시도로 이어져선 곤란하다. 선관위가 권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가 되면 대의민주주의가 기초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국민은 물론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까지 호명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 다시 보니 생경함이 덜했다. 취임사준비위원회가 준비한 7, 8개 버전의 원고를 물리치고 10여 분간 거의 구술하다시피 불러주며 다시 썼다는 그 연설문이다. 당시 에피소드 하나. 대통령은 연설문 회의에서 성문종합영어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존 F 케네디 취임사 있잖아요.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그런 연설문으로 가야죠”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취임 연설문에서 수차례 등장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은 잘 알려져 있듯 60여 년 전 케네디의 “나의 동지 세계 시민 여러분(My fellow citizens of the world)”에서 따온 것이다. “세계 시민” “자유” “연대” 등을 핵심 키워드로 한 지난 1년 윤 대통령의 주요 연설은 케네디나 ‘자유론’ 등에서 1차 영감을 받아 나름대로 가다듬은 취임 연설문의 변주(變奏)라는 점에서 메시지의 일관성이 있다.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연설, 올 4월 미 의회 연설, 특히 국빈 방미 기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했던 ‘자유를 향한 여정’ 연설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연설 내용에 얼마나 동의하는지와는 별개로 우리 대통령이 정치 철학과 지향하고 있는 가치에 대해 설파하는 모습 자체를 본 기억이 아득하기 때문이다. 1년 전 취임 연설문부터 최근 방미 기간 메시지까지 짧게나마 되짚어본 이유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 및 연대와 현실적 상황의 간극, 괴리에서 오는 딜레마 때문이다. 대통령이 하버드대 연설에서 강조한 대로 현재 국제사회는 자유와 민주주의 세력 대 독재와 전체주의 세력의 첨예한 대결 구도로 가고 있다. 그러나 미중은 금방 ‘전부 아니면 전무’의 극단적 게임에 돌입할 것처럼 으르렁대다가도 전략대화의 끈을 완전히 끊어내진 않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 시민으로까지 시야를 넓힌 자유의 가치가 내치 분야에선 국정 전반이나 정치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한 채 겉돌거나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공정하고 엄정한 ‘법의 지배’가 자유를 보장하는 핵심 기제이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자유는 다양성 포용성 개방성을 품고 있어야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자유의 가치가 집권 세력의 독점적 배타적 전유물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좌파와의 이념투쟁 도구로 협소화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년, 검사와 같은 특정 직역을 중용하거나 ‘내부의 적(?)’을 거친 방법으로 걷어내고 당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임 대통령과는 또 다른 느낌의 권위적 이미지가 형성된 측면이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결과가 지속적으로 좋지 않게 나오는 흐름을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그 틈에 정권 교체 심판을 받은 전직 대통령은 책방 문을 열어 사람들을 모으고 내로남불의 상징적 인물도 공개 행보에 나섰다. 이들이 기지개를 켤 수 있는 여건을 누가 만들어줬나. 무엇보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의 가치를 어떻게 정책기조에 구체화하겠다는 건지, 3∼4년 뒤 대한민국 모습에 대한 중간 목표가 무엇인지, 실현 방법은 뭔지 명확하지가 않으니 정권 교체에 표를 줬던 이들도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이다. 영어 발음이 좋고 ‘아메리칸 파이’를 잘 불렀다는 것은 잠시 화제가 되고 관심을 환기시킬 수는 있지만 본질적 리더십의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은 주변에 “집토끼부터 잡아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고 들었다. 보수 기반을 확고히 세운 뒤 중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우파 진지전’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좌파 진지와 우파 진지의 협소한 대치를 뛰어넘는 리더십과 통치술을 보일 때 정권 교체에 힘을 실어줬던 중도층의 마음도 움직일 것이다. 산토끼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제든 호랑이로 돌변할 수도 있다. 집권 1년을 넘기면서 대통령의 ‘스타일’에 큰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적잖게 들린다. 최고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균형감이고, 밸런스를 취하려 노력하는 모습 자체가 신뢰를 얻는 길이다.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 등 훌륭한 말을 인용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처한 딜레마, 고민과 비전, 해법, 그 이유에 대한 친절하고 소상한 설명이 필요하다. “행복은 자유에 달려 있고, 자유는 용기에 달려 있다”며 일찌감치 자유를 강조한 사람은 아테네를 부흥시킨 페리클레스다. 그는 “식견은 있으나 그것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생각이 아예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슈퍼갑’이 아닌 ‘슈퍼을’의 자세, 가장(家長)의 마음으로 소통할 필요가 있다. 최고의 홍보맨 역시 대통령 자신이니까.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2015년 톈안먼 망루에 올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은 30년을 넘긴 한중 수교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또 어색했던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중국 공산주의 국가의 시작을 알린 전승절 70주년 행사임과 동시에 최대 패권국 미국을 겨냥한 ‘군사 굴기’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한 사상 최대의 열병식 자리였다. 여기에 시진핑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선 것이다. 불과 8년도 안 지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했나 싶다.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은 게 분명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톈안먼 행사 참석을 막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 한국을 찾았던 오바마 행정부 당국자의 비공식 설명 한 토막이다. “탐탁지 않았지만 한국 뜻을 들어주면 일본과의 화해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한중 관계 개선을 계기로 한중일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아베 총리의 방한,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등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사드와 위안부 합의 번복 등으로 한중 한일 관계는 일거에 뒤집혔지만…. 미국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과 전략대화의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을 “친구이자 적”, 즉 ‘프레너미(frenemy)’로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중국의 국력이 날로 커지곤 있지만 미국의 유일 패권 아성에 도전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 안에서 관리가 가능하다고 착각한 것이다. 톈안먼 망루에 오를 때는 적어도 한국 외교에 활동 공간은 있었던 셈이다. 미국은 경쟁국이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어서면 패권 도전국으로 본다고 한다. 즉, 60%를 넘어서는 순간 짓밟기에 나서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중국 GDP가 미국의 60%를 넘은 게 바로 2015년이다. 그제서야 미국은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오바마 행정부 말 미국에선 “미국의 세기는 끝났다”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간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2016년 트럼프가 승리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도 중국을 더 거칠게 다룰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을 직접 찾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우고, 시 주석의 ‘중국몽’에 대해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에 트럼프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래도 트럼프는 문 전 대통령의 중재로 김정은과 북핵 담판에 나서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글쎄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담판에 나선 것은 문 전 대통령의 중재 노력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중국 포위 전략에 김정은을 활용할 여지가 있는지 타진하려는 계산이 더 강했을 것이다. ‘혼밥’ 굴욕, 북핵 해결 실패 등을 겪은 문 전 대통령이 뒤늦게 한미 동맹 강화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임기 말인 2021년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기조는 이런 미중 패권 구도의 변화 속에서 봐야 할 것이다. 미중 ‘30년 패권 전쟁’은 본격화했다. 중국 GDP는 이미 미국의 80% 수준이다. 중국은 인공지능(AI)과 6G, 우주 경쟁 등에서 미국 턱밑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30년 뒤의 승자가 누구일지 어찌 알겠나. 분명한 건 바이든도 트럼프 못지않게 거칠고 집요하다는 점이다. 동맹국에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모호한 줄타기 전략을 취하기 어렵게 됐다. 톈안먼 망루로 오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제로섬 국면이 펼쳐진 상황에서 윤 정부의 운신의 폭은 아주 좁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의 반대편에 절반의 베팅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 정부의 ‘미국 중시’ 전략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중국과도 호혜” 운운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윤 대통령의 대만 언급에 부용치훼(不容置喙), 즉 “입 닥치라” 같은 막말을 하고 “불장난을 하면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이런 중국에 당당히 할 말은 해야 한다. 다만 중국에 크게 의지해온 우리 경제에 악영향은 없을지,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괜찮은 건지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중국을 앞장서 자극할 필요는 없지 않나. 윤 대통령은 ‘가치동맹’을 내세운다. 자유의 가치는 소중하나 그 가치동맹이 어떻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건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생존의 길이라는 건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 국빈 방미가 끝난 지금, 정교하고 세련된 대중 전략은 있는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
어느 전직 외교 수장과 미국 정보기관의 감청 의혹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재미있는 영어 표현을 들었다. ‘클라이언타이티스(clientitis)’라는, 필자에겐 생소한 단어였다. 외교 당국자나 현지 주재원 등이 본분을 망각하고 클라이언트, 즉 ‘고객’인 상대국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방어하는 경향을 보일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협상 상대국 과신(過信), 의존국 과신 증후군 등으로 번역될 수 있겠다. 미 기밀문서 유출 사건으로 용산에 대한 감청 의혹이 불거졌을 때 우리 대통령실이 보인 대응 방식이 딱 그랬던 것 아니었나 싶다. 정작 미국은 ‘진본’이 유출됐다는 점을 인식하고 유감을 표시하며 색출 작업에 나섰는데, 무슨 연유인지 우리 대통령실은 “상당수 위조됐다는 데 한미 평가가 일치한다” “악의적 도청 정황은 없다” 등 실드 치는 데만 급급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밀 유출의 용의자는 21세 하급 병사로 밝혀졌다. 빨간 반바지 차림으로 잔뜩 겁을 먹은 채 장갑차와 소총 등으로 중무장한 FBI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니 허탈함마저 들었다. 정부 정책에 분노한 내부 고발자도 아니고, 러시아 등 제3국의 개입도 아니고, 고작 자기 과시욕이 강한 일개 병사의 ‘철부지 일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코미디 같은 사건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진 것도 황당하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우리 정부의 ‘조심조심’ 대응 방식이다. 용산에 대한 감청이 실제 이뤄졌는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등에 대한 테크니컬한 측면의 진상 규명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사건을 다루는 현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 동맹의 가치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아일보 창간 여론조사에서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가 84%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7%, ‘한미 연합훈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88.8%에 달했다. “반미면 어때” 했던 말이 먹히던 시절이 불과 20년 전 일이니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지난 정부의 친중 노선에 대한 반작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 바탕엔 높아진 국가 위상에 대한 자존감이 깔려 있다고 본다. 이번 사건에서 친미-반미의 진영에 얽매이지 않은 보통의 국민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깊은 논의가 오가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부(權府)가 진짜 뚫렸는지, 방어 태세에 허점은 없는지,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도 뚫리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을 걱정했다. “용산 이전 때문”이라는 식의 정치 공세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우려다. 정보전의 세계,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도 다 하는 활동임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문제가 드러난 이상 응분의 해명과 조치를 요구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정상회담 불똥만 의식한 듯 “사과 요구 않겠다” 등의 반응만 나오니 의아했던 것이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기해 훼손됐던 동맹 복원의 기틀을 잡고 또 다른 미래를 열어가는 것은 중차대한 과제다. 그러나 지나친 동맹 의존이나 동맹 과신의 심리나 태도는 독(毒)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경계해야 한다. 70년 전 “강대국은 믿어선 안 된다”고 했던 이는 다름 아닌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듬해인 1954년 미국을 방문한 그는 환영 행사에서 휴전에 대해 “미국이 겁을 먹어서”라고 일갈한 데 이어 의회 연설에서도 “나약하다는 것은 노예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등 미국을 대놓고 질타했다. 당시 국제 정세에 맞는 발언인지 여부를 떠나 적어도 결기는 있었다. 바야흐로 천하 양분의 시대라고 한다. 미국도 중국도 전 세계를 상대로 줄 세우기 압박에 나서고 있다. 고난도 외교일수록 당당함이 깔려 있어야 한다. 이번 건만 해도 미국 당국자들이 먼저 굉장히 곤혹스러워하고 미안해해서 “고맙다”고 했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밥 먹을 때 매너’와 ‘공식 석상의 매너’는 달라야 한다. 한미 동맹의 본질적 가치, 상호 신뢰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단호히 하는 모습을 보일 때 동맹도 더 견고해진다. 곧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다. 국빈이란 형식이 아니라 국익을 깐깐히, 또 담대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일 때 흔들리는 지지율도 반등할 수 있다. 그래서 궁금하다. 대체 어느 단계에서 “상당수 위조” “한미 견해 일치” 등의 정부 메시지를 정했던 건지…. 흐지부지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