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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미컬슨은 2인자다. 메이저 6승 포함 45승(역대 9위)을 거두고도 세계 랭킹 1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5살 연하인 타이거 우즈와 전성기가 겹친 탓이다. 우즈는 미컬슨이 세계 2위에 처음 오른 1996년 데뷔해 통산 683주(약 13년1개월)를 집권했다. 참고로 1986년부터 집계된 골프 세계 랭킹에 현재까지 25명이 1위에 올랐다. 라파엘 나달은 한술 더 뜬다. 테니스 그랜드슬램 22승에 92개의 단식 타이틀을 따냈다. 통산 승률 0.833과 메이저 우승 횟수는 역대 최고다. 연말 기준으로 다섯 해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5살 위인 로저 페더러와 1살 아래인 노박 조코비치의 그늘에 가려 대를 이은 2인자로 불린다. 현재 랭킹도 17살 아래인 같은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스(19)에 이어 2위다. ‘흙신’으로 불리지만 하드코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탓이다. 이들에게 굳이 예후를 하자면 세계 2인자 중 1인자라 할 만하다.●메이저리그 순수 홈런왕 애런 저지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이들과 비견될 만한 레전드급 2인자의 탄생이 예고돼 있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이들은 나란히 전설 베이브 루스를 뛰어넘었다. 하필이면 같은 아메리칸리그 소속이어서 다음 달 중순 발표되는 MVP 투표에서 한 명은 고배를 마셔야 한다. 201cm, 128kg의 거구인 저지는 62홈런을 날려 아메리칸리그 신기록을 세웠다. 1927년 루스의 60홈런을 34년 만에 경신한 로저 매리스(1961년 61개)를 61년 만에 넘어섰다. 이들 세 명은 모두 양키스 소속이다. 내셔널리그에선 배리 본즈(73개)와 마크 맥과이어(70개·65개), 새미 소사(66개·64개·63개)가 있었지만 모두 금지약물을 복용한 전과자다. 저지는 시즌 막판 페이스가 떨어지는 바람에 62홈런에 그쳤고 타격 트리플 크라운도 이루지 못했지만, 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성적을 남겼다. 홈런, 타점(131개), 득점(133개), 출루율(0.425), 장타율(0.686)에서 압도적인 1위로 5관왕에 올랐다. 타율은 0.311로 2위, 안타는 177개로 5위. 시상은 하지 않지만 더 중요한 지표인 bWAR(승리기여도)가 10.59로 2위인 오타니(9.57·투수 6.14)를 제쳤다. 1957년 이후 본즈와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제외하면 저지보다 높은 bWAR를 기록한 선수는 없다. OPS(출루율+장타율)는 1.111로 요르단 알바레즈(휴스턴)와 1푼 가까이 차이가 난다.●베이브 루스의 환생 오타니 쇼헤이투타 겸업을 하는 오타니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MVP에 도전한다. 올해 역시 한 개의 타이틀도 없지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다. 타자로선 올스타급, 투수로선 사이영상급 활약을 펼쳤다. 34홈런 95타점에 15승 평균 자책 2.33의 성적을 남겼다. 지난해 46홈런 100타점, 9승 평균 자책 3.18보다 방망이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투수로선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더구나 메이저리그 최초로 규정 타석과 이닝을 동시에 채운 선수가 됐으며, 15승-30홈런-200탈삼진을 한꺼번에 달성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저지와 오타니는 누가 돼도 역대급 MVP라 할 만하다. 저지가 타율까지 1위에 올라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다면, 또는 오타니가 한 개의 타이틀이라도 따냈다면 추가 기울었을 것이다. 현재 여론은 저지가 약간 앞선 듯하다. 오타니는 지난해 30명의 야구기자단으로부터 1위 표를 싹쓸이해 사상 11번째 만장일치 MVP에 올랐지만 뒷말이 나왔다.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오른 홈런왕 블라디미르 게레로(토론토)가 29명으로부터 만장일치급 2위에 올랐던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일각에선 게레로가 아시아 마켓에 MVP를 도둑맞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올해 저지는 게레로보다 강력하다. 이에 게레로는 “올해 MVP는 당연히 저지”라고 주장한다. 저지는 신인왕과 홈런왕을 동시에 차지한 2017년 호세 알투베(휴스턴)에게 MVP를 아쉽게 놓친 동정표도 보유하고 있다. 당시 휴스턴은 전자기기를 사용한 사인 훔치기 의혹을 받았다.●기자단 투표의 맹점투표는 아무래도 주관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야구기자 전원이 참여하는 국내 MVP 투표는 초창기 억울한 2위를 양산했다. 1983년 재일교포 장명부는 30승을 거두고도 홈런 타점 2관왕 이만수에게 졌다. 반대로 이만수는 이듬해 타율까지 1위를 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27승의 최동원(롯데)에게 영광을 내줘야 했다. 당시 기자단은 한국시리즈 MVP를 7차전 결승 홈런의 주인공 유두열에게 주는 대신 혼자 4승을 따낸 최동원에겐 정규시즌 MVP를 헌정했다. 한국시리즈 결과가 정규시즌 MVP를 결정한 셈이었다. 1985년에는 김성한이 전후기 통합우승을 이끈 삼성 F4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 김일융을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제쳤다. 표가 분산된 탓도 있지만 최소한 이들 중 한 명이 MVP가 됐어야 했다. 1998년에는 타이론 우즈가 김용수와 사상 첫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외국인 선수로는 처음 MVP를 차지했다. 그러나 1루수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에게 뺏기는 촌극이 발생했다. 장명부와 우즈의 경우는 잘못된 ‘국뽕’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은 4명의 외국인 선수가 MVP로 배출됐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MVP 논쟁은 2001년이었다. 이치로는 미국 진출 첫 해인 2001년 타격, 안타왕에 올라 제이슨 지암비를 제치고 영광을 안았다. OPS는 지암비가 1.137(1위), 이치로는 0.838(27위)로 무려 3푼이나 차이가 났다. 지암비는 올해 저지보다 OPS가 높았다.●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박성광이란 개그맨의 유행어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올림픽 금메달은 황영조가 땄지만 이봉주는 국민 마라토너란 칭호를 얻었다. 프로게이머 홍진호는 임요환에 막혀 준우승을 밥 먹듯이 했지만 오히려 그 브랜드를 이용해 예능에 진출했다. 영원한 국수(國手) 서봉수는 조훈현에 버금가는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토마스 에디슨보다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니콜라 테슬라였다. 소사는 맥과이어에 가렸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60홈런 이상을 세 번이나 친 유일한 타자로 기록됐다. 국내에선 심정수가 비슷한 경우다. 그는 53홈런 142타점의 외계인급 활약을 하고도 타이틀 홀더가 못됐지만 투수들은 이승엽보다 심정수가 상대하기 더 어렵다고 했다. 미컬슨은 52세가 된 올해 세계 스포츠스타 중 가장 많은 돈을 벌 게 확실시된다. LIV 골프로부터 받는 이적료 2억 달러(약 2880억 원)가 입금되면 상금과 후원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정상에 오르는 데 문제될 게 없다. 지난해 1위는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로 1억3000만 달러였다. 36세인 나달은 특유의 꾸준함으로 팬덤을 보유하면서 꾸준히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페더러가 은퇴해 앞으로 그가 걷는 길이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가 된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이제 프로야구에선 사장과 단장도 유명세를 치른다. 어떤 이들은 감독과 선수 못지않은 팬덤을 자랑한다. 물론 잘해야 칭찬 한 스푼, 못하면 비난 한 바가지이긴 하다. 1년 내내 돌아가는 프로 리그가 정착되면서 선수단을 지원하는 프런트의 중요성이 부각된 결과다. 그럼에도 이들이 주인공인 역사는 찾기 힘들다. 언제나 최고 선수와 우승 감독이 앞 페이지를 장식한다. 깊이 반성하는 의미에서 이들의 얘기를 다뤄본다.● 파격 송정규 vs 임은주 프런트 스토리의 마중물로는 역시 이들이 제격이다. 롯데 열성 팬에서 1991년 단장으로 일약 덕후의 꿈을 이룬 송정규 씨(등장인물 과다 주의·이하 경칭 생략). 얼마 전 ‘롯데의 30년 저주’를 썼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그는 기자의 외모와 말투까지 기억했다. 선장 출신으로 훗날 한국도선사협회 회장까지 지낸 그는 ‘필승전략 롯데 자이언츠 톱 시크리트’라는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신준호 당시 구단주가 직접 스카우트했는데, 워낙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의 책은 롯데의 개선책을 제시했다는 평과 비전문가의 일반론이라는 평이 대립했다. 어찌됐든 프로는 성적으로 말하는 법. 하위권을 맴돌던 롯데는 1991년 4위에 오른 뒤 1992년 우승컵을 안았다. 그는 이듬해 사장 승진설까지 나왔지만 해임됐고, 롯데는 이후 가장 오랜 기간 우승 못한 팀이 됐다. 임은주는 하키 선수에서 축구 심판으로 변신한 뒤 강원FC 사장(2013~15년)과 안양FC 단장(2017~18년)을 역임한 여성 스포츠계의 기린아다. 여기까지만 해도 파격의 화신인 그가 2019년 초 키움 단장이 됐다. 야구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결국 키움은 여론에 밀려 열흘 만에 단장을 교체했다. 기자는 그의 남다른 카리스마와 추진력을 알기에 ‘키움이 기왕에 사고를 쳤으니 끝까지 밀어붙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1세대 박용민 vs 조광식 vs 노진호 프로 초창기엔 언론인 출신 창단 단장이 많았다. OB 박용민, MBC 조광식, 삼성 노진호까지 6개 팀 중 절반이나 됐다. 이들은 낙하산은 아니었다.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모기업 직원으로서 파견됐다. 두산그룹 총수 일가이기도 한 박용민은 합동통신, 조광식은 동아일보를 거쳐 MBC, 노진호는 중앙일보 기자였다. 단장의 역할에 대해 모르던 시절에 구단 홍보에 신경을 쓴 결과일 것이다. 조광식은 1990년 MBC를 인수한 LG의 창단 단장도 맡았다. 노진호는 1984년 중앙일보로 돌아갔다가 이듬해 빙그레가 창단 작업을 할 때 단장으로 다시 이직했다. 이들은 관리형 프런트로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우승 단장 박용민은 로열패밀리란 선입견을 깨고 1991년 사장으로 그만둘 때까지 최고의 성과를 보여줬다. 이후 언론인 출신으로는 두산 경창호(합동통신), 롯데 장병수(동아일보), NC 이태일 사장과 김종문 단장(이상 중앙일보)이 있다.●2세대 김용휘 vs 최종준1990년대 들어 비로소 메이저리그식 단장 야구에 근접한 프런트가 나왔다. 투톱은 현대 김용휘, LG 최종준이었다. 김용휘는 20대 때부터 현대그룹의 스포츠단 실무를 맡은 준비된 프런트였다. 농구단 시절 이충희를 영입하는 성과를 냈던 그는 1996년 42세의 김재박을 창단 감독으로 발탁했고, 전준호 임선동 박종호 조규제 박경완을 스카우트해 최단 기간에 현대왕국을 건설했다. 현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4번이나 우승했다. 이는 해태 전성기에 단장, 사장을 맡은 노주관의 5회 우승에 이은 두 번째 기록이다. 단장 취임 동기인 최종준은 LG 야구단에 이어 축구 배구 씨름단 단장을 거쳤고, 2003년에는 SK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개 팀 단장은 그가 유일하다. 이후 대구FC 단장까지 했으니 직업이 단장이란 말이 나올 만했다. 그러나 그는 야구단에서 준우승만 3번 했지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3세대 김재하 vs 김승영삼성 김재하와 두산 김승영은 위의 두 사람과 나이는 큰 차이가 안 나지만 젊은 시절부터 야구단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세대가 구분된다. 2000년 취임한 김재하는 해태 김응용과 선동열을 영입해 삼성의 오랜 암흑기를 깨고 3번이나 우승컵을 안았다. 김응용은 2005년 감독 출신으로는 처음 사장에 올랐다. 김승영은 2004년부터 17년까지 최장수 단장~사장 기록을 세웠다. 원만한 성품만큼이나 오랜 기다림 끝에 2015년부터 시작되는 두산 왕조를 열었다.● 구단주 이장석 vs 정용진 키움의 최대 주주인 이장석은 유일하게 재벌 출신이 아닌 구단주였다.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과 비유돼 ‘빌리 장석’으로 불린다. 김용휘에 이어 프런트 야구를 가장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의 대표이면서 사실상 스카우트와 운영팀장을 겸직했다. 하지만 억척스러운 마케팅과 스타 선수 팔기는 명암이 엇갈린다. 각종 재판에 시달리며 현재는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 SSG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야구 열정과 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으로 유명하다. 이제 정용진이란 이름 자체가 구단의 브랜드가 됐다. 연예인 동반 경기 관람은 물론이고 시구에 SNS 홍보까지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정성 덕분인지 SSG은 창단 2년째인 올해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4세대 김태룡 vs 민경삼 프로선수 출신이 단장에 오른 것은 2008년 히어로즈 박노준이 최초다. 그러나 그는 구단과 갈등 끝에 1년 만에 사퇴했다. 이후 SK 민경삼이 2010년, 두산 김태룡이 2011년 취임했다. 이들은 각각 SK와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며 선수 출신 프런트 시대를 열었다. 취임 첫 해 우승컵을 안은 민경삼은 선수 출신 최초로 사장에 오른 SSG에서 우승하면 프런트로선 두 팀에서 우승하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된다. 올해로 12년째 최장수 단장 기록을 세운 김태룡은 두산의 3회 우승 영광을 누렸다. 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단장이 된 삼성 송삼봉은 첫 해인 2011년부터 신임 류중일 감독과 호흡을 맞춰 4년 연속 우승을 하고도 건강 문제로 2014년 시즌 중 사퇴해 아쉬움을 남겼다. 주위에선 이름처럼 삼봉은 했지만 사봉은 실패했다는 농담이 나왔다.● 5세대 선수 출신 전성시대 선수 출신 단장은 현장과 구단 운영을 모두 경험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올해 10개 구단 단장은 6명이 선수 출신이다. 2020년에는 7명이나 됐다.염경엽 박종훈 장정석은 감독과 단장을 모두 거쳤다. 현대 선수 출신으로 김용휘의 애제자였던 염경엽은 넥센 감독을 하다가 SK 단장으로 옮긴 뒤 다시 감독으로 보직을 바꾸는 이색 경력을 자랑한다. 이제 국내 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처럼 프런트 야구 전성시대가 왔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역사상 최고의 메이저리거는 누구일까. 골프에 타이거 우즈가 있다면 야구엔 베이브 루스(1895~1948)가 있다. 1914년 보스턴에 입단한 루스는 평균자책왕, 10연속 완봉승을 따내는 등 아메리칸리그 최고의 왼손 투수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그가 타석에 선 경기와 그렇지 않은 경기의 팀 공격력이 크게 차이 나자 1918년 본격적으로 투타 겸업을 하게 된다. 그해 루스는 13승을 거두며 154경기 중 95경기만 타석에 서고도 홈런왕(11개)에 오른다. 공의 반발력이 워낙 낮은 데드볼 시대였다.●루스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메이저리그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루스는 이듬해 29홈런 신기록(2위 12개)을 세우더니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해 타격에 전념하자 54홈런(2위 19개)을 날린다. 1921년에는 59홈런, 1927년에는 60홈런으로 다시 이정표를 세운다. 코르크 심을 넣은 라이브볼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그러나 루스의 위대함은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홈런 2위와의 차이가 더블스코어 이상 났다. 60홈런을 쳤을 때는 리그 어떤 팀도 그보다 많은 홈런을 치지 못했다. 팀 홈런 2위인 필라델피아가 56개, 밤비노의 저주에 걸린 보스턴은 28개에 불과했다. 루스 이전엔 디트로이트의 타이 콥(1886~1961)이 있었다. 4할 타율 3번에 입단 첫 해인 1905년을 제외하고 23년 연속 3할 달성. 영원히 깨지지 않을 통산 타율(0.367)과 타격왕 12회(이상 MLB.com 기준)에 빛나는 콥은 데드볼 시대가 낳은 영웅이었다. 콥은 라이브볼 시대가 열린 뒤에도 방망이를 여전히 짧게 잡고 홈런을 노리지 않았다. 24년간 117홈런으로 시즌 평균 홈런은 4.88개. 루스가 60홈런을 쳤을 때 그의 홈런은 4개였다.●최고를 가리는 기준루스는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2년간 714홈런을 날리면서 삼진은 1330개를 당했다. 앙숙이었던 콥이 헛스윙 삼진을 당한 그에게 “4할도 못 치는 애송이(베이브·스페인어로 밤비노)”라고 놀리자 “내가 홈런을 노리지 않았다면 6할은 쳤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럴 만도 한 게 루스의 통산 타율은 0.342(역대 6위)다. 요즘으로 치면 오타니 쇼헤이와는 레벨이 다르게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배리 본즈를 합친 것 같은 루스가 연일 시원하게 방망이를 휘둘러대자 동료 타자들은 점점 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진정한 라이브볼 시대가 열렸고, 메이저리그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됐다. 이처럼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는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공수주를 모두 갖춘 전지전능한 콥은 1909년 사상 유일한 타격 8관왕(홈런 9개)에 올랐고, 9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했지만 루스의 그늘에 가렸다. 무엇보다 콥은 데드볼 시대에 머문 체제 수호자였다. 반면 루스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대에 혼자 유리 천장을 깨고 나와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훗날 행크 아론(755개)과 본즈(762개)가 그의 기록을 깼지만 2할 타자도 홈런을 노리던 시절이었다. 루스가 데뷔한 데드볼 시대에 평생 100홈런을 넘긴 타자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루스는 또 음주, 흡연, 사생활 문제가 있었지만 본즈처럼 금지 약물을 복용하지는 않았다.●유리 천장 뚫었지만 저평가된 국내 선수KBO리그도 메이저리그처럼 투고타저에서 타고투저로 변해왔다. 1982년부터 1996년까지가 투수들의 시대(1기)였다면 1997년~2009년은 타고투저 전환기(2기), 2010년~2018년은 타자들의 천국(3기)이었다. 이 기간에 팀 타율은 2푼, 평균 자책은 1점이나 상승했다. 2019년에야 공인구를 도입(4기)해 반발력을 낮췄고, 특히 올해는 투고타저로 복귀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 기준에 따르면 주머니 속의 송곳(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시대를 거스르며 튀어나온 선수는 최소한 최동원 선동열(이상 1기) 이승엽(2기) 이대호(2.5기)는 아니었다. 대신 백인천 장효조 장종훈(이상 1기) 이종범(1.5기) 류현진(2.5기) 이정후(4기)가 눈에 띈다. 우선 원년 4할 타자 백인천은 건너뛰자. 그는 당시 불혹의 나이였지만 일본 퍼시픽리그 타격왕 출신의 어나더 레벨이었다. 감독 겸 선수로 상대 투수를 골라 타석에 섰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 장종훈은 투고타저인 1992년 처음으로 40홈런 시대를 열며 연습생 신화를 완성했다. 류현진은 타고투저가 극성을 부리던 2010년 마지막 1점대 평균 자책을 기록했다.●장효조 vs 이종범 부자장효조는 콥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유일한 국내 타자다. 전무후무한 3년 연속 타격왕(통산 4회)인 그는 올해 4월 이정후(0.341)가 3000타석을 채우기 전까지 40년간 통산 타율 1위(0.331)를 지켰다. 이 부문 순위를 보면 20위까지 1기 시대에 잠깐이라도 뛴 선수는 장효조를 빼면 양준혁(0.316·8위)이 유일하다. 지난해 타격왕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을 넘어설 거란 평가를 받을 만하다. 프로 6년차로 공인구 시대에 주로 뛴 그는 놀랍게도 데뷔 첫 해인 2017년 0.324가 가장 낮은 타율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높은 타율을 유지하려면 한 해만 슬럼프가 와도 위험하다. 이종범은 일본 진출 직전인 데뷔 5년간 타율 0.332로 장효조를 앞섰다. 이 기간 홈런도 2위를 달렸다. 그러나 주니치에서 부상을 당하고 복귀한 뒤 타고투저의 시대였음에도 통산 타율을 0.296까지 까먹고 말았다.●최동원 선동열 이전 데드볼 시대프로야구 출범 이전엔 실업야구가 있었다. 이때는 메이저리그로 치면 데드볼 시대였다. 제대로 된 기록은 없지만 원로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선동열조차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영웅담이 등장한다. 김영덕은 일본 난카이에서 1959년부터 1963년까지 7승9패 평균자책 3.57의 그저 그런 성적을 남겼지만 당시로 치면 메이저리거였다. 그는 한국으로 건너온 첫 시즌인 1964년 33경기에 나가 255이닝 동안 9실점(평균자책 0.32)만 하며 리그를 압살했다. 1967년에는 17승1패에 0.49를 기록하는 등 통산 평균 자책이 0점대라고 한다. 일본 사회인리그에서 뛴 신용균은 1963년 서울 아시아선수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 일본을 상대로 예선전 완투승, 결승전 완봉승을 거두며 한국 야구가 사상 처음 일본을 이기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 역시 실업리그에서 한 시즌 24승과 0점대 평균 자책을 남겼다고 한다. 반면 타자들은 10개 안팎에서 홈런왕이 결정됐다. 박영길은 타격왕을 6번이나 수상했지만 김응용에게 번번이 한두 개 차로 밀려 홈런왕을 차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통산 100홈런을 넘긴 실업선수는 이들과 박현식 김우열 4명뿐이었다. 김영덕 신용균이 있다고 해서 라이브볼 시대의 최동원 선동열을 폄하해선 안 된다. 선동열은 통산 평균 자책 1.20으로 2위인 최동원(2.46)을 더블스코어 차로 앞질렀다. 최동원은 공격적인 투구와 무쇠팔 어깨로 리그를 지배했다. KBO리그가 반세기를 맞는 10년 후 최고 선수는 누구로 돼 있을지 궁금하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출범 40주년을 맞아 프로야구를 빛낸 레전드 40명을 선정해 4명씩 10주에 걸쳐 발표하고 있다. KBO 경기운영위원과 단장, 감독, 선수, 기자 등 162명의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를 합산해 뽑았다. 현역 선수는 후보에서 제외돼 류현진 오승환 이대호 등은 은퇴 후를 기약해야 한다. KBO리그 성적만 대상이어서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등은 177명 후보군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반면 유일한 외국인 100승 투수 더스틴 니퍼트는 최종 33위에 랭크됐다. 29일까지 28명이 발표된 40주년 레전드 기획은 나름 신선하다. 새로운 시도로 팬들의 관심을 모을 만하다. 별도 제작한 홈페이지 초기 화면은 텍스트 설명은 부족해도 시원한 동영상과 그래픽으로 채워져 보기 좋다. 1위부터 40위까지 순위가 매겨져 있으니 수포츠 애독자에겐 좋은 안주거리다.● 선동열이냐, 최동원이냐야구팬의 단골 화두인 역대 최고 투수와 타자 논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마침 최다 득표 4인방은 1위 선동열, 2위 최동원, 3위 이종범, 4위 이승엽으로 투수 2명, 타자 2명이다. 전문가 점수에서 최동원이 80점 만점을 받아 선동열(79.49점)을 앞선 게 눈길을 끈다. 그러나 팬 점수에서 9.99점 대 11.56점으로 제법 차이가 나 순위가 역전됐다. 이승엽도 전문가 점수에선 76.41점으로 이종범과 타이를 이뤘지만 팬 점수에서 10.14점 대 10.90점으로 뒤져 4위로 밀렸다. 팬 점수만 보면 11년 전 고인이 된 최동원은 4명 중 꼴찌다. 팬 투표야 현재의 인기도를 반영하는 것이니 넘어가자. 그러나 전문가 점수는 유감이다. 최동원은 선동열보다 나이로는 5년, 학번으로는 3년 선배다. 최동원이 1년 늦게, 선동열이 1년 빨리 대학에 진학했다. 그럼에도 둘은 거의 동시대에 활약했다. 비교할 때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적다는 뜻이다. ‘국보 투수’ 선동열은 통산 평균 자책(1.20), 완봉승(29), 이닝 당 출루 허용률(WHIP·0.80)에서 압도적 1위다. 1993년 평균 자책 0.78을 기록하는 등 누구도 해보지 못한 0점대 평균 자책을 3번이나 기록했다. 146승(40패)만 한 게 아니라 132세이브도 했다. 정규시즌 MVP 3번에 골든글러브를 6번 수상했다. ‘무쇠팔’ 최동원은 통산 평균 자책 2위(2.46)이지만 선동열과는 더블스코어 차이다. 완투(81) 2위, WHIP(1.15) 3위.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을 합해 31승을 거뒀는데,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는 그 해에 딱 한 번 받았다. 103승(74패)에 26세이브.이런 최동원이 선동열을 제치고 전문가로부터 만점을 받은 것은 경기 외적인 요소가 고려된 듯하다. 조지 오웰처럼 1984년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다. 공격 일변도의 투구 스타일과 화려한 경기 매너가 강점이다. 당시로선 쇠퇴기에 접어드는 20대 후반에 프로에 입문했다. 최고 연봉 선수로서 선수협의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반면 선동열은 최동원처럼 5년 연속 규정이닝 두 배 이상의 투구를 하지는 않았다. 포스트시즌에선 이름값에 못 미쳤다. 20세기 최강팀 해태의 에이스였다. 그럼에도 선동열은 기량과 성적만 따지면 불세출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선수란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이번 투표는 전문가의 평가를 팬들이 뒤집어 양쪽의 손을 다 들어주는 절묘한 균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이종범이냐, 이승엽이냐이종범은 대졸이고, 이승엽은 고졸이니 6살 차이라도 거의 동시대에 뛰었다. 이종범은 공수주를 모두 갖춘 유격수이고, 이승엽은 거포 1루수이니 절대 비교는 어렵다. 타격 성적만 보면 ‘국민타자’ 이승엽이 훨씬 앞선다. 이승엽은 통산 홈런(467), 타점(1498), 득점(1355), 루타(4077), 장타율(0.572), 출루율+장타율(OPS·0.961) 모두 1위다. 2003년에는 시즌 최다 홈런(56) 신기록을 세웠다. 통산 타율(0.302)도 이종범(0.298)보다 높다. 정규시즌 MVP 5회, 한국시리즈 MVP 1회, 골든글러브 10회 수상을 했다. 수상 경력은 선동열을 앞선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최동원처럼 통산 성적 1위는 없다. 도루(510) 2위, 1994년 역대 시즌 타율(0.393) 2위가 고작이다. 정규시즌 MVP 1회, 한국시리즈 MVP 2회, 골든글러브 6회. 감독 입장에서 한 명만 고르라면 이종범과 야구를 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승엽이 뒷자리에 밀리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최고 투수와 타자 논쟁은 앞으로 KBO가 해외파와 현역 선수를 포함한 한국 야구 레전드를 뽑게 되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투수는 선동열 최동원에 박찬호 류현진이 가세한다. 단일 시즌의 임팩트만 놓고 보면 1983년 30승 장명부와 1982년 22연승 박철순을 빼놓을 수 없다. 타자는 이종범 이승엽에 추신수 이대호, 그리고 ‘바람의 손자’인 이정후가 후보가 될 수도 있겠다.● 데드볼에서 라이브볼 시대로이제부터 심화 과정이다. 진정한 최고를 가리려면 시간, 장소, 상대는 물론 역사·문화적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게 야구공의 반발계수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홈런 수는 주식시장처럼 100여 년간 꾸준히 우상향을 해왔다. 베이브 루스 시절인 1920년대에 납을 넣어 비거리가 나지 않아 죽은 공이라 불렸던 데드볼의 심이 코르크로 대체되면서 공격야구로 바뀌기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KBO리그도 메이저리그와 비슷하다. 국내에는 최근까지 공인구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구단이 스포츠용품 업체와 제각각 계약을 맺고 다른 공을 사용하다가 2016년이 돼서야 스카이라인 공인구로 통일했다. 그럼에도 1982년 원년부터 타율, 평균 자책 추이를 보면 꾸준히 우상향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86년 리그 전체 평균 자책은 3.08인데 이는 2014년 평균 자책 1위 밴덴헐크(3.18)를 능가한다. 1984년 OB의 팀 평균 자책은 2.53으로 최동원급이었다. 반대로 2017년 KIA의 팀 타율은 0.302로 1989년 타격왕 고원부(0.327)를 위협한다. 2016년에는 리그 전체 타율이 0.290에 이르렀고, 1980~90년대 3점대이던 리그 평균자책은 5.17까지 치솟았다. 대체로 20세기는 투고타저, 21세기는 타고투저 시대다. 앞의 4인방은 시대의 도움을 받았다. 바꿔 말하면 옛날 타자와 요즘 투수에게 가산점을 줘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 회에는 이런 점들을 감안해 레전드 40인에 대한 본격 품평을 해보려고 한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골프는 대표적인 자본주의 스포츠다. 시장의 반응은 돈과 직결된다. 테니스와 달리 남녀 대회 상금은 크게 차이가 난다.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는 필 미컬슨을 비롯한 최상위 경쟁자 10명 몫을 벌었다. 골프 장비와 의상, 액세서리, 레슨 등은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했다. 프로스포츠 중 몇 안 되는 개인 경기이기도 하다. 국가대항전과 단체전이 있지만 대부분 이벤트 대회다. 무엇보다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다. 법치보다 소중한 보수의 최고 가치인 양심을 지향한다. 이런 골프가 우리나라에선 귀족 스포츠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렀다.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렸다. 접대, 뇌물, 사기, 도박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경주, 박세리가 등장하면서 제 자리를 찾았다. 이제 MZ세대들도 즐기는 국민 스포츠가 됐다. 그럼에도 엘리트 골프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이 주도한다. 아시아는 변방이다. 시장 규모와 전통, 경기력, 슈퍼스타 탄생 등에서 비교가 안 된다. 한국 여자골프는 21세기 들어 세계 최강이지만 고진영이 우즈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가 올해 출범하면서 세계 골프계는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6000억 달러(약 800조원)에 이르는 중동의 오일머니가 서구의 양대 기득권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파격적인 대회 방식과 상금 규모LIV 시리즈는 5개월간 8개 대회를 치른다. 6월 중순 영국 런던 개막전을 시작으로 3개 대회가 이미 열렸다. 48명의 초청 선수가 18개 홀에서 샷건 방식으로 동시 출발해 컷오프 없이 3라운드 54홀 대회를 치른다. LIV는 로마자로 숫자 54를 상징한다. 전체 경기 시간은 5시간 이내로 줄었다. 모든 홀에 카메라를 설치해 선수들의 샷 장면과 순위 변동을 F1 레이스처럼 실시간 종합적으로 보여준다. ‘눈을 깜빡거리지도 마라(Don’t Blink)‘가 슬로건이다. 7차 대회까지 매 대회에 2500만 달러가 걸려 있다. 4명이 한 팀을 이뤄 개인전과 단체전을 동시 시상하는데, 개인전은 2000만 달러(우승 400만 달러), 단체전은 500만 달러(우승 300만 달러)다. 한 선수가 최대 475만 달러를 벌 수 있다. 꼴찌도 12만 달러를 챙긴다. 마지막 8차 대회는 5000만 달러를 놓고 팀 매치플레이를 벌인다. 이뿐만 아니다. 7차 대회까지 개인전 포인트 상위 3명은 3000만 달러(우승 1800만 달러)를 나눠 갖는다. PGA 페덱스컵 최종전 우승 보너스(1500만 달러)보다 많다. 시즌 총 상금은 2억5500만 달러로 대회당 평균 상금은 3187만 달러(약 425억 원)에 이른다. 47개 대회에서 1027만 달러인 미국프로골프(PGA)의 3배다. 메이저대회인 US오픈(1750만 달러)과 디오픈(1400만 달러)을 합친 것보다 많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시즌 총상금은 8570만 달러로 LIV 시리즈 3개 대회보다 적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는 305억 원으로 1개 대회보다 적다.● 우즈와 미컬슨의 30년 전쟁 2라운드둘은 서로 다른 외모와 경기 스타일만큼이나 불편한 사이다. 1996년 말 데뷔한 우즈는 683주 동안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햇수로 13년이 넘는다. 지난해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역대 최고령(51세) 우승을 차지하는 등 통산 45승을 거두고도 영원한 2인자인 미클슨은 우즈를 제외한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세계 1위는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LIV골프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인 그레그 노먼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우즈를 모셔오기 위해 앞자리가 높은 9자리 숫자의 금액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최고 10억 달러(약 1조3300억 원) 설이 제기됐다. 그동안 우즈가 벌어들인 총수입은 통산 상금 1억2000만 달러의 15배 수준인 약 18억 달러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이혼 위자료로 7억5000만 달러를 지급한 그로선 욕심이 날 법도 했지만 천문학적 돈보다 아직 세워야 할 기록이 남아 있는 PGA 잔류를 택했다. 반면 미컬슨은 “내가 원하는 곳에서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선수 시절부터 “투어가 선수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였다. 미컬슨은 이적료로 2억 달러(더스틴 존슨, 브라이슨 디셈보, 브룩스 켑카는 1억 달러 추정)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연간 4000만 달러의 스폰서 수입을 날린 데다 집중 비난의 표적이 됐으니 수지맞는 장사는 아니었다. 우승 확률 절반이 넘던 시니어투어도 포기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잭 니클러스의 그늘에 가려 역시 2인자였던 노먼의 뒤를 잇는 커미셔너가 아닐까.● 세계 각 투어의 복잡한 셈법PGA가 LIV에 반기를 든 첫째 이유는 미국 내 각종 테러 연루 의혹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란 점이다. 이는 미국인들의 반대 여론을 조성하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실제 이유는 세계 1위 투어로서 누려온 막대한 스폰서십과 중계권료 등에 차질을 빚을 것을 걱정한 때문이다. 사실 우즈도 그동안 중동은 물론 인권 탄압 국가로 평가받는 중국 대회에 자주 나가지 않았던가. 이 관점에서 보면 유럽프로골프(DP월드투어)가 PGA와 보조를 맞추면서도 비교적 LIV에 관대했던 게 이해가 간다. 영국은 20세기 중반 골프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갈 때 굴욕을 겪었다. 적의 적은 동료라고 하지 않았던가. LIV 시리즈 첫 대회가 유럽의 심장인 런던에서 열릴 수 있었던 숨은 이유다. 유럽여자프로골프(LET)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후원하는 아람코 팀 시리즈 6개 대회의 후원을 이미 받고 있다. LET의 지분 50%를 갖고 있는 LPGA의 마쿠 서만 몰리 커미셔너는 “노먼이 대화를 원하면 전화를 받겠다”고 밝혔다. 남자에 비해 턱없이 불리한 시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LIV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넬리 코다는 LPGA에 머물 생각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매주 1000만 달러의 상금이 나온다면 거부할 선수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메이저 대회를 주최하는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실골프협회(R&A)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오히려 진정한 오픈대회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과 아시아엔 최고의 기회LIV는 아시아투어와 10년간 해마다 10개 대회에 총 3억 달러 규모의 장기 후원 계약을 마친 상태다. 마침 21일 제주에서 끝난 시즌 4번째 인터내셔널시리즈(총상금 150만 달러)에서 옥태훈이 우승해 국내 상금의 2배에 이르는 27만 달러(약 3억6000만 원)를 받는 수혜자가 됐다. LIV가 아시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LIV는 세계골프랭킹(OWGR) 산정과 PGA 플레이오프 출전 금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LIV는 내년엔 14개 대회를 치르면서 몸집을 계속 불려나갈 예정이다. 총상금은 PGA와 맞먹는 수준이 된다. 이번 주 PGA 페덱스컵 최종전이 끝나는 대로 7명의 선수 영입을 발표할 예정이다. 디오픈 챔피언 캐머런 스미스와 캐머런 영, 마크 레시먼 등이 거론된다. 슈퍼스타의 시니어투어란 비판을 받았지만 젊은 피가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 우군을 만들면서 PGA를 압박해가고 있는 LIV의 도전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야구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선동열이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예전 호남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히 심야 시간에는 더 그랬다. 딱지를 떼려던 경찰이 그를 보자 한 말. “아니 당신 공보다 빨리 달리면 어떻게 해. 앞으로는 조심해.” 웃자고 꺼낸 말이다. 선동열이 왜 심야에 과속을 했는지, 훈방한 경찰이 직무유기를 한 것은 아닌지 따지지 말자. 증거 불충분에 공소 시효도 지났다. 그때 그 경찰의 머릿속엔 이 단어가 맴돌았을 것이다. 시속 150km.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스피드다. 올림픽 모토에도 맨 먼저 나온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올림픽 3대 메이저인 육상 수영 빙상의 대부분은 스피드를 측정하는 기록 경기다. 달리기에서 가장 느린 마라톤도 결국은 시간으로 순위를 결정한다. 쇼트트랙은 순위 경기지만 세계 기록은 인정한다. 멀리뛰기와 높이뛰기도 속도가 승부를 좌우한다. 반면 스키는 기록은 재지만 순위로만 승부를 가린다. 과속을 부추기지 않기 위해서다. 스피드와 관련된 여러 썰을 풀어본다.가장 빠른 구기종목은?수포츠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다시 정리해보자. 뉴턴의 제2법칙인 F=ma. 힘(F)은 질량(m)과 가속도(a)에 비례한다. 이를 구기종목에 적용시키면 힘이 같을 경우 공이 가볍고 적을수록 빠르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경기 중 낼 수 있는 평균 볼 스피드는 대체로 배드민턴 골프 스쿼시 테니스 아이스하키 야구 축구 탁구 배구 수구 럭비 순이다. 배드민턴과 탁구를 빼면 거의 일치한다. 배드민턴은 구기 종목이지만 공이 아닌 셔틀콕을 사용한다. 셔틀콕은 길이 6.7cm에 무게는 5g 안팎이다. 그래도 탁구공(4cm, 2.7g)보다는 크다. 그럼에도 1위에 오른 것은 라켓의 탄성(F)이 탁구채보다 훨씬 좋기 때문이다. 매즈필러 콜딩이란 선수가 2017년 시속 426km로 최고를 찍었다고 한다. 셔틀콕은 날아갈 땐 16개의 깃털이 오므라들면서 공기 저항을 줄인 뒤 네트를 넘어가선 원래대로 펴지면서 급감속해 수직 낙하한다. 탁구는 시속 250km까지 나왔다는 설이 있지만 비공인 기록인 것 같다.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평균 시속은 120km이고, 세계 최고는 140km 수준이다.논란이 많은 구기종목 볼 스피드골프도 OB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장타 대회에선 더 빠른 속도가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왔던 팀 버크란 장타전문 선수는 최고 시속 356km로 500야드를 넘나드는 드라이버 비거리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평균 타수는 3오버파인 75타다. 2019년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는데 2라운드 31오버파로 처참하게 컷 탈락했다. 프로 최장타자인 브라이슨 디셈보는 2020~21시즌 내내 평균 볼 스피드만으로도 306km이었다. 연습장에선 340km까지 나왔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인체의 힘만 이용해서 내는 가장 빠른 볼 스피드는 2011년 왼손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의 170km로 보면 된다. 축구는 2006년 로니 헤베르송이 프리킥으로 211km를 찍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보통은 120km 안팎이고, 최고는 150km 수준이다. 최고 기록과의 편차가 너무 크다. 배구는 130km, 수구는 95km, 럭비는 75km 안팎. 참고로 야구에서 타자가 방망이로 친 공은 2018년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197km가 최고 기록. 오타니 쇼헤이가 2016년 일본 대표팀 평가전에서 223km를 기록했다고 돼 있으나 비공인이다. 이렇게 여러 기록이 난무하는 이유는 스피드건을 이용해 시즌 내내 볼 스피드를 공식 측정하는 종목과 항목은 몇 개 안 되기 때문이다.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기록 경기의 스피드 서열기록 경기는 말 그 대로 한 치 오차 없이 스피드가 산출된다. ‘인간 탄환’ 우사인 볼트의 스피드는 100m(9초58)가 시속 37.58km, 200m(19초19)가 37.52km이다. 200m가 100m보다 빠른 게 정상이지만 볼트가 은퇴했으니 기록 단축의 꿈도 날아갔다. 볼트의 100m 순간 최고 속도(65m 지점)는 44.7km.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이 치타(120km)가 아닌 토끼(48km)보다 느리다. 마라톤은 엘리우드 킵초게가 2018년 베를린에서 세운 2시간01분39초가 세계 기록이다. 시속으로 치면 20.81km. 그래도 다람쥐(20km)보다는 빠르다. 100m를 평균 17초3에 달렸으니 중년 아저씨는 1km가 아니라 100m를 따라가기도 벅차다. 수영은 자유형 50m 세계 기록이 20초91이니 시속 8.6km가 인간이 물속에서 내는 최고 스피드다. 생쥐(13km)보다 느리다. 자유형 접영 배영 평영 순으로 배영이 평영보다 빠르다. 스피드스케이팅은 1000m 세계 기록(1분06초42)이 500m(34초03)보다 빠르다. 시속으로 치면 54.2km이다. 링크가 작은 쇼트트랙은 당연히 이보다 느리다. 스키는 세계 기록을 내지 않는다. 대회마다 날짜마다 슬로프 상태 등 자연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한 클라레가 2013년 월드컵에서 41세의 나이에 순간 최고 시속 162km를 기록해 100마일 벽을 처음 깼다는 보도가 있긴 하다.도구나 동력을 이용한 종목의 스피드봅슬레이는 2019년 라트비아 4인승 대표팀이 기록한 시속 153km, 루지는 139km 기록이 있다. 사고 방지를 위해 봅슬레이는 남자 4인승 기준 최대 630kg의 중량 제한을 둔다. 뉴턴의 제2법칙을 뒤집어보면 같은 속도라면 무거워질수록 힘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루지는 상한 속도가 135km가 넘지 않게 코스를 설계한다. 진종오가 쓰는 공기권총은 시속 540km, 화약권총은 970km 안팎의 속도를 낸다. 양궁은 230km. F1은 2016년 유럽 그랑프리 예선에서 발테리 보타스가 378km를 낸 게 순간 최고 기록이다. KTX(300km)보다 빠르다. F1은 대형사고 위험이 있어 편안하게 관전할 수 있는 대회를 모토로 2017년부터 차폭과 타이어 면적을 넓혀 이제 이런 기록은 나오기 힘들다. 모터사이클은 263km.느림의 미학볼트는 은퇴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이 꿈이었지만 호주 A리그에서 프리시즌 때 몇 경기 뛴 게 전부였다. 한 경기 2골 기록도 있지만 이벤트성 몰아주기였다. 1980년대 롯데는 100m 한국기록 보유자 서말구를 대주자용으로 영입했지만, 그는 1군 무대에 서보지도 못했다. 반면 그렉 매덕스는 135km의 구속으로도 역사상 최고의 메이저리그 투수로 꼽힌다. 100승 투수 유희관도 있다. BBC가 만든 걸작 다큐멘터리 ‘인간 포유류, 인간 사냥꾼’을 보면 아프리카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의 초기 인류는 자신보다 몇 배는 빠른 영양을 사냥하는데 뾰족한 수단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냄새와 흔적을 따라 영양을 며칠이든 끝없이 추적했다. 마침내 탈진한 영양이 눈만 끔뻑끔뻑하며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 인간이 여느 포유류와 다른 점이자 마라톤의 진정한 시초였다. 결국 스피드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닌 셈이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무보수 명예직이다. 행정 지원비와 회의 참석 수당으로 연간 2000만원 안팎을 받지만 이들에게 큰돈은 아닐 것이다. 대신 이들은 IOC의 대표로서 전 세계 회원국에서 국빈급 대우를 받는다. 공무일 경우 교통과 숙박비가 무상 지원된다. 비자 없이 입국하며, 전용차와 안내 요원이 배정된다. 머무는 호텔과 탑승하는 차량에는 국기가 게양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올림픽 개최지 선정 등 IOC의 여러 현안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리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과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이 IOC 위원으로 활약 중이다. 문제는 이들의 임기가 2년 안팎이면 만료된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2016년 같은 암흑기가 재연될 수도 있다.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투병 중이었고, 문대성 위원은 직무정지를 당한 상태였다. IOC 위원과 관련된 궁금증을 문답으로 풀이해본다.▶IOC 위원 구성은? 개인 자격은 70명, 국가올림픽위원회(NOC)와 국제경기연맹(IF) 대표, 선수위원은 각 15명으로 최대 정원은 115명이다. 현재 숫자는 102명. 정년은 1999년 이전에 선출된 20명은 80세, 이후는 70세다. 임기는 8년으로 선수위원은 단임이지만 나머지는 연장이 가능하다. 위원장은 8년 후 4년을 더 할 수 있다. 1991년 위원이 된 뒤 2013년 당선된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해 2025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다. IOC 위원을 3명 이상 보유한 국가는 프랑스(4명), 중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이상 3명) 5개국에 불과하다. 2명인 우리나라는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른 게 있다면 1999년 이전 선출된, 사실상 종신직 위원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오래 한 만큼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전체 102명의 위원 중 71명은 취임 10년 이내이다. IOC가 복마전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신호이다.▶역대 한국 IOC 위원은? IOC 위원을 배출하려면 회원국이 먼저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1년 전인 1947년 6월 IOC에 가입했다. 1948년 7월 런던 올림픽에는 아직 미군정 중이었지만 독립국가로 첫 출전했다. 이를 주도한 이가 2대 IOC 위원인 이상백이다.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그는 손기정보다 4년 먼저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한 농구선수 출신이자 학자였다. 일본농구협회 부회장과 일본체육회 전무이사를 역임했으니 어떤 이들의 눈엔 친일파로 비춰질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5대까지 위원은 정치인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6대 김운용, 7대 이건희 위원이 동시에 활약할 때가 스포츠 외교의 황금기였다. 김운용 위원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성공 개최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 남북 공동입장을 이끌었다. IOC 수석 부위원장까지 올라간 그는 2001년에는 유색인종 최초의 위원장에 도전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건희 위원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주역이었고, 삼성그룹은 올림픽 공식 스폰서이다. 8대 박용성 위원은 국제유도연맹 회장 자격으로, 9대 문대성 위원과 10대 유승민 위원은 선수위원으로, 11대 이기흥 위원은 대한체육회장 자격으로 IOC에 입성했다.▶포스트 유승민은 누가? 유승민 위원은 2024년 8월 파리 올림픽 때 8년 임기가 끝난다. 이기흥 위원은 2025년 1월이면 만 70세가 된다. 마침 체육회장 임기도 이때까지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문대성 유승민에 이은 세 번째 선수위원을 파리에서 배출하는 것이다. 선수위원 출마 자격은 국가당 1명으로 직전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까지로 제한돼 있다. 출전 선수들의 투표로만 진행돼 이변이 연출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스타는 아니었던 문대성(태권도)은 1위, 유승민(탁구)은 2위로 당선됐다.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진종오(사격)는 2016년 후보 경쟁에서 유승민에 밀렸지만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해 자격을 갖췄다. 구본길(펜싱)과 박인비(골프)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파리에서 안 될 경우 2026년 밀라노 겨울올림픽이 대안이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가 가능성이 있다. 김연아(피겨스케이팅)와 장미란(역도)은 출마 자격은 없지만 IOC 위원장이 갖고 있는 지명직 선수위원 3명(지역, 성별, 종목 균형)의 빈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2024년 뉴질랜드의 사라 워커(사이클)가, 2026년 중국의 장홍(스피드스케이팅)이 임기가 끝난다.▶한국 스포츠 외교를 이끌 차기 리더는? 이기흥 회장에 이어 취임한 대한체육회장이 바로 IOC 위원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선수위원과는 달리 형평성을 고려할 IOC 총회 투표로 최종 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은 6월 취임한 김재열 국제빙상경기연맹 회장이 IF 대표 자격으로 IOC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IF 회장 겸임 위원은 13명으로 2명의 쿼터가 남아 있다.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회장인 이탈리아의 이보 페리아니만이 겨울종목 수장이다. 빙상과 스키는 여름으로 치면 육상과 수영에 비교되는 메이저 종목이다. 삼성이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스폰서십을 연장한 것도 강점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무려 40년째다. 다만 김 회장은 이제 갓 취임해 관례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도 IOC 위원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올림픽을 공식 후원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아시아양궁연맹 회장을, 최태원 회장은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누가 되든 한국 스포츠 외교력은 급상승할 게 분명하다.▶앞으로 과제는? IOC를 움직이는 힘은 국력, 스폰서십, IOC 위원의 역량이다. 국가와 기업이 손을 맞춰 적극 지원하는 것은 언제든 하면 된다. 그러나 IOC 위원의 역량을 키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전화 한 통화로 상대를 움직일 수 있는 친화력과 협상력, 그리고 전문성이 요구된다. IOC 통용 언어인 영어 프랑스어 등에 능통하면 금상첨화다. 굳이 IOC 위원 혼자서 모든 것을 갖출 필요는 없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면 된다. 김운용 위원은 원맨쇼를 했지만 이건희 위원은 팀으로 움직였다. 그러려면 스포츠 외교전문가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 선수 출신이면 더욱 좋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최고의 IOC 전문가인 윤강로 국제스포츠연구원장은 “스포츠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IOC가 변화를 추구하는 만큼 우리도 이에 맞춰 과거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서 벗어나 체계화된 스포츠 외교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먼저 독자들께 사과 말씀부터 드린다. 명색이 수포츠인데 무릎을 탁 칠만한 의미 있는 숫자는 없다. 정부와 대한체육회 통계를 찾다가 시간만 낭비했다. 재미도 없을 듯하다. 체육정책 이야기다. 우리나라 체육정책의 당면 과제는 엘리트와 생활체육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국가발전 동력으로 스포츠산업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니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은 험난하다.● 스포츠도 시류를 탄다. 보기와 달리 꽤나 정치적이다. 지난 대선 때 체육계는 여야로 나뉘었다. 여기저기서 지지 선언이 나왔다. 체육인의 정치 참여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동안 너무 미미해 아쉬움이 들 정도다. 그러나 이번처럼 심한 편 가르기는 처음 봤다. 체육계도 우리 사회처럼 둘로 쪼개져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체육정책은 정권에 따라 바뀌어왔다. 많은 체육인들은 5공 시절을 그리워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체육계는 양적으로 급성장했다. 정부 예산을 맘껏 끌어올 체육부가 독립, 신설됐다. 야구 축구 등 프로 스포츠가 출범했다. 독재에 대한 국민 불만을 회유하려는 우민(愚民)정책이란 비난은 40년이 지난 지금 보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1960년대 진영 논리와 비슷하다. 다만 그때 스포츠를 볼거리와 국위 선양의 도구로만 생각했던 근시안이 아쉽다. 6공 때는 대선을 앞두고 전국 단위 거대 조직인 국민생활체육협의회가 급조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주춤했던 체육계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치르면서 반등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치러진 국제대회는 판정 논란, 재정 낭비 등 비판이 있었지만 이를 계기로 스포츠도 산업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예전과 달리 기업들의 자발적 투자가 시작됐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이어졌다. 선거 조직이란 의심을 받던 생체협도 정치색이 빠지면서 순수 스포츠 단체로 탈바꿈했다. 물론 현재까지도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스포츠의 질적 성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체육정책은 방향을 잃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때 나온 학교체육진흥법의 뼈대는 △운동선수를 위한 학습권 보장 △최저학력제 적용 △주말리그제 시행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취지야 누구나 공감하는 옳은 말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올림픽 톱10에 들만큼 성장했지만 학교체육과 생활체육은 부실한 역피라미드 구조에서 자칫하면 엘리트 스포츠마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생활체육만 고집하다가 지난 20여 년간 엘리트 스포츠 암흑기에 든 전례도 있다. 성적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박태환 김연아 손흥민 같은 슈퍼스타가 앞에서 끌고, 생활체육이 뒤에서 미는 투 트랙이 완성돼야 기차는 굴러간다. 당시 기자는 이 법이 시행되려 할 때 1%의 운동 기계보다는 99%의 공부 기계를 위한 운동권 보장과 최저체력제 적용, 주중리그제 시행이 더 시급하다는 패러디 칼럼을 썼다. 실제로 공부 못하는 선수보다 운동 못하는 학생이 훨씬 큰 국가 손실이 아닌가. 수학을 모르는 선수는 문제인 반면 역시 셈법에 약할 수 있는 문화 예술인이나 저질 체력의 대학 진학자는 괜찮다고 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의 주장은 체육인들로부터는 박수를 받았지만 입시 지옥을 겪는 교육계가 받아들이기엔 턱도 없는 일이었다.● 이후 체육계 폭력과 미투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박근혜 정부 때는 체육정상화 방안이, 문재인 정부 때는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 등이 나왔다.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렸던 체육계를 되돌아보는 조치였다. 물론 뼈대는 이명박 정부 때 버전에서 업그레이드 된 게 없었다. 문제는 이런 조치들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근본적인 치유책을 찾기보다는 체육계 문화를 죄악시하고 체육인을 폄하하는 아주 질 나쁜 시선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체육계의 자율적 결정과 자정 작용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마치 군대에선 성폭력이 만연한 것처럼 과장하고, 무슨 일만 터지면 특별법이나 규제를 만들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측면도 있다. 과도하게 마녀 사냥을 당한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소송을 통해 하나둘 혐의를 벗고 있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체육계 다수 의견을 받아들여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을 재검토하는 등 체육정책을 대폭 손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4개월, 취임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았다. 시급하지만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성 때도,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 임명 때도 체육 전문가는 보이지 않았다. 110개에 이르는 국정과제 발표 때도 체육과 관련된 것은 ‘모두를 위한 스포츠, 촘촘한 스포츠 복지 실현’이란 어설픈 문구 하나밖에 없었다. 아직 온기가 식지도 않은 대선공약 가운데 체육시설 이용료 소득공제가 무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체육시설은 종류가 너무 다양해 분류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도서구입비, 공연 영화관람료 등은 소득공제에 포함될 것으로 보여 형평성 논란이 예상된다.● 스포츠는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어쩌다 보니 체육행정가가 된 사람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은퇴 이후 살아갈 전문성은 없다고 폄하해 온 선수 출신들에게 한두 푼 쥐어주는 복지정책이나 만들면 예산만 낭비하는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스포츠는 국가발전 동력이다. 산업이고, 보건이고, 교육이고, 문화다. 우리나라 스포츠산업 매출은 해마다 가파르게 성장해 100조 원에 이르렀다는 조사도 있다. 국민총생산(GNP)의 4% 수준이다. 놀랍지 않은가. 국민들은 경제 상황만 뒷받침된다면 건강이나 여가를 위해 지갑을 열 준비가 됐다. 그런 점에서 체육시설 이용료 소득공제는 딱 맞는 정책이다. 마찬가지로 은퇴 선수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행산업 규제를 풀어 불법 도박 시장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e스포츠 등 우리가 강점을 가진 스포츠산업을 키워야 한다. 국민 의료비 지출은 의료보험 최강국답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보다 한참 아래이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급증하는 추세다. 현재도 GNP의 9%에 육박한다. 205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만도 390조 원에 이를 것이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전망이 있다. 이 가운데 일부만 아낄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든든한 재원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은 당장에 바꾸기 힘들다면 최소한 엘리트 선수의 운동을 방해하지는 않아야 한다. 탁구선수 신유빈은 고교 진학을 미루고 대한항공에 입단했다. 김나영은 중학교 졸업 후 포스코에너지에 입단하면서 방송통신고에 진학했다. 충분히 격려 받을 만한 일이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다른 스포츠에선 고졸 스타가 대세다. 타이거 우즈도 스탠퍼드대를 중퇴했다. 운동선수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학습권 못지않게 훈련권과 대회 출전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출산율 저하로 이제 엘리트 스포츠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얼마 전 폭우가 내리는 날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프로야구단 OB(현 두산)의 OB 모임. 전·현직 프런트와 왕년의 출입기자들이 가끔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두산이 김태형 감독 취임 후 7년 만에 위기를 맞았어.” “요즘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올해 계약이 끝나는 김 감독이 내년에도 두산에 있을까.” 현직이 듣기엔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우리끼리야 무슨 말을 못하겠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역시나 그의 근황이 나왔다. “영감이 올해는 오히려 승격을 했대. 감독 고문이라나.” “그뿐이겠어. 유니폼 입고 더그아웃에도 나온대.” “장 국장, 이제 영감 기사는 그만 써.” 김성근 감독(80·일본 소프트뱅크 감독 고문) 얘기였다. 스포츠마케팅 연구와 국내 야구기록 전산화에 큰 역할을 한 정희윤 전 스포츠산업경제연구소장의 취중 발언으로 화제는 바뀌었다. 모임의 맏형인 그는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1998년까지 OB에서 기획, 홍보, 운영팀장을 거치며 80년대에 김 감독을 근거리 보좌했다. 기자가 오랫동안 믿고 따르는 형님이긴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니 불현듯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걸 어쩌나.영웅이냐 독선이냐…극단적으로 엇갈리는 평가기자는 김성근 영웅 만들기의 초기 집필자 중 한 명이다. 태평양 감독 시절 만나 그가 왼손으로 깨알같이 적은 히라가나 수첩을 통해 야구를 배웠다. 처음엔 참 다가가기 힘든 괴팍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여니 딴 사람이었다. 오로지 야구 얘기뿐이었다. 열정과 진심이 느껴졌다. 이후 30여년이 지났지만 여태 그런 이를 본 적이 없었다. 기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었다. 그게 더 좋았다. 짧은 선수 생활과 재일교포의 핸디캡을 안은 채 지도자로 출발한 그가 한국 야구의 영웅이 돼가는 과정을 그래서 때로는 좀 더 부풀려 기록해왔다. 그러나 야구계에서 그만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야신(野神·야구의 신)으로 불리며 강력한 팬덤을 보유했지만 독선, 폭압, 혹사, 벌떼, 승리지상주의 등 온갖 비난을 안고 살았다. 마치 요즘 대통령들 여론조사 결과와 흡사하다. 매우 잘하거나 못한다는 의견이 대체로 잘하거나 못한다는 의견을 압도한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옳고 그름을 따져보기보다는 서로 패거리를 나눠 좋고 싫음을 쏟아내는 패턴이다. 독자들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나무위키를 보면 그야말로 방대한 사료와 일화가 나오는데 같은 사안을 두고도 상반된 의견이 혼재한다.7개 구단 감독으로 23시즌 보내이럴 때는 주장보다는 객관적 자료를 찾아보는 게 상책이다. 우선 김성근은 20대 중반인 1969년 마산상고 감독 취임 이후 기업은행, 충암고, 신일고까지 해임은 됐어도 쉬어본 기간은 거의 없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OB 코치에 이어 사상 최다인 7개 구단 감독으로 23시즌을 보냈다. 김응용의 24시즌(3개 구단)에 이은 2위 기록이다. 나머지 18시즌동안은 투수코치, 2군 감독이나 독립리그 고양 원더스 감독,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인스트럭터 등을 맡았다. 한 순간도 그라운드를 떠난 적이 없다. 한화 마지막 해인 2017년은 국내 최고령 감독(75세)이었다. 생소한 직책인 코치 고문에서 감독의 멘토라는 감독 고문으로 승격된 올해 역시 소프트뱅크의 정식 코치로서 일본 최고령 지도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김성근이 처세술이 좋아서 이렇게 많은 구단의 부름을 받았을까. KIA 2군 감독까지 포함하면 김성근이 활약한 당시 9개 지역 연고 구단 중 그가 입어보지 않은 유니폼은 부산의 롯데가 유일하다.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결정된다. 그를 필요로 하니 모셔갔을 것이다.‘김성근의 저주’?‘김성근의 저주’란 말이 있다. 재임기간 선수들의 능력을 쥐어짜내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소모품으로 전락한 선수들은 혹사당해 그가 떠난 팀은 하위권으로 급락한다는 것.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LG의 경우다. LG는 2002년 정규시즌 4위를 했지만 현대와 KIA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올라 한참 위 전력으로 평가받던 김응용의 삼성에 아쉽게 졌다. 결과는 2승 4패였지만 누가 이길지 모르는 살얼음판 승부였다. ‘야신’이란 별명은 이때 김응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어준 것이다. 그러나 김성근은 팬들의 환호와는 달리 연말에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동안 누적된 구단과의 갈등이 문제였다. 이후 LG는 그 유명한 ‘6-6-6-8-5-8-7-6-6-7’의 10년 암흑기를 헤맸다. 이 저주는 김성근 팬들에겐 반격의 카드로 활용되기도 했다. 거 봐라, 김 감독을 자르고 나니 예전으로 돌아갔지 않나. 감독을 2년도 채 못했는데 10년간 부진했다면 다른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나. 그러면서 김성근의 저주가 아니라 그를 내친 LG 구단의 저주로 바꿔 불렀다. 그렇다면 김성근이 거쳐 간 나머지 팀의 성적은 어땠을까. 신기하게도 OB-태평양-삼성-쌍방울-LG-SK-한화 가운데 순위가 떨어진 팀은 LG가 유일하다. 수치로만 따지면 김성근의 혹사 의혹은 증명할 수 없는 셈이다.‘마리한화’ 열풍 이끌었지만…반대로 순위가 급등한 팀은 2018년 한화가 유일한데 기자는 이게 오히려 의미가 있어 보인다. 김성근은 2년 연속 꼴찌 한화를 맡아 2015년 와일드카드 턱밑인 6위로 끌어올리며 ‘마리한화’ 열풍을 이끌었지만 이후 7위, 8위로 주춤하면서 중도 해임됐다. 한화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에서 김성근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김성근이 7위 이하의 성적표를 받은 것은 쌍방울 해체 직전 중도 해임된 1999년 8위 이후 처음이다. 한화는 2018년 한용덕이 지휘봉을 이어받자 3위로 반짝했다. 굳이 변명을 붙이자면 김성근에 앞서 2013~14년 꼴찌 사령탑은 V10에 빛나는 김응용이었다. 2009년 이후 최악의 팀 한화는 천하의 두 김 감독에게도 무덤이었던 셈이다. 물론 김응용은 김성근만큼 융단폭격을 당하지는 않았다. 김성근이 지휘봉을 잡은 첫 해에 성적이 오르지 않은 팀도 유일한데 바로 삼성이다. OB는 1984년 한국시리즈엔 오르지 못했지만 전후기 통합 승률로는 1위에 올랐다. 만년 꼴찌 쌍방울은 1996년 정규시즌 2위로 점프했다. 6위였던 SK는 2007년 곧바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컵을 안았다. LG와 한화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다. 항상 우승후보지만 독선과 폭압의 아이콘이란 김성근조차 장악하지 못한 삼성은 분명 그의 실패작이었다. 삼성은 10년이 지나 김응용이 취임한 이듬해인 2002년에야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처음 안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상대는 김성근의 LG였다.한화를 거치면서 요즘 여론은 안티가 훨씬 많아진 것 같다. 나무위키도 비난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최소한 김성근이 이끌었던 선수들은 대부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엔 심각한 부상을 당했거나 2군을 들락거렸던 선수들도 있다. 사람의 평가는 조직 내부의 것이 가장 정확하다. 선수들은 그가 야구를 하는 의미를 알게 해줬다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김성근에 대한 악담을 하는 선수도 있긴 하다. 김성근이 감독으로 돌아오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비 오는 날 뜬금없이 생각난, 김성근에 대한 알쓸변(알고 보면 쓸데없는 변명)이었다. 안티 팬들은 부디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신한금융그룹이 추구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세계무대에서도 인정받고 있다.지난해 11월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2015년 발표된 파리협약에 대한 각국의 약속을 확인하는 ‘글래스고 기후합의’를 이끌어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총회는 블루존과 그린존으로 구성돼 있다. 블루존은 각국 정상들이 기조연설을 하는 등 정부대표단의 공식 행사가 이뤄지는 곳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이곳에서 열린 공식 행사에 아시아 민간 금융회사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았다.공식 행사에는 유엔기후특사 마크 카니, 유엔환경계획(UNEP)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과 함께 알리안츠, HSBC, AXA 등 글로벌 탄소중립을 선도하고 있는 세계 주요 금융기관 대표들이 참석했다. 신한금융그룹 조용병 회장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사인 APG의 대표 등과 금융 부문의 저탄소 전환을 주제로 토론했다. 조 회장은 신한금융그룹이 동아시아 금융회사 최초로 선언한 ‘제로 카본 드라이브(탄소배출 제로 전략)’를 소개했다. 또 그룹이 실행 중인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량 측정 방법과 감축 목표 등에 대해 설명하고 발전,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은 산업 분야를 적극 지원해 저탄소 전환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동아시아 금융회사 최초 탄소중립 선언 ‘제로 카본 드라이브’신한금융지주는 2020년 11월 제로 카본 드라이브를 선언하며 친환경 금융의 선도적 입지를 마련했다. 2018년 발표한 ‘에코 트랜스포메이션 20·20(온실가스 20% 감축, 20조 원 지원)’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제로 카본 드라이브는 2030년까지 친환경 금융 실현을 위해 30조 원을 지원하고 2050년까지 그룹 자체 탄소 배출량뿐만 아니라 그룹이 보유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량까지 제로로 만든다는 내용이다.신한금융그룹은 이를 통해 앞으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위기와 기회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탄소중립 금융을 위해서는 금융사의 자체 배출량뿐 아니라 대출과 투자를 한 기업 고객의 금융 배출량도 같이 관리해야 한다. 금융 배출량에 대한 객관성 확보를 위해 2020년 11월 글로벌 환경 관련 이니셔티브 참여를 추진했다. 금융 배출량 측정을 위한 PCAF(탄소회계금융협회)와 감축 목표 관리를 위한 SBTi(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과학에 기반을 둔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탄소 배출량 측정 모형을 고도화했다.이 결과 지난해 탄소 배출량 측정 동참 업체는 기존 1042개에서 8만6300개로 급증했다. 파리협약에 부합하는 SBTi 방법론을 활용해 그룹 자체의 탄소 배출량은 2030년 42%, 2040년 84%까지 감축할 예정이다. 그룹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량은 2030년 33.7%, 2040년 59.5%까지 감축하기로 했다.신한금융그룹은 핵심 사업에서 ESG 경영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축 성과의 정확한 측정을 위해 3월에는 국내 금융그룹 최초로 금융 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다. 5월에는 역시 국내 금융그룹 최초로 ESG 평가 모형을 개발해 기업의 ESG 투자 수준을 평가하는 ‘신한 ESG 모형’과 해당 투자에 따른 영향과 지속 가능 수준을 평가하는 ‘신한 지속가능 모형’을 개발해 ESG를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접목했다.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 활동도 활발하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5월 ‘제로 카본, 제로 퓨얼(Zero Carbon·Zero Fuel)’을 선언했다. 탄소 배출량의 실질적 감축을 위해선 업무용 차량에 대한 친환경 전환이 필수다. 2030년까지 그룹 업무용 차량 6만2843대를 전기차와 수소차 같은 무공해차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도 제로 페이퍼(Zero Paper·전자통장, 전자문서 활성화), 제로 라이트(Zero Light·4월 22일 지구의 날 소등행사), 제로 카본 숲 조성 등 고객과 직원들이 참여하는 캠페인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유엔환경계획 FI 리더십위원회 멤버로 아시아 유일 선출UNEP FI(금융 이니셔티브)는 환경 활동 협력을 위한 금융 부문 간 국제 파트너십이다. 은행, 보험, 투자회사 등 460여 글로벌 금융기관이 기후변화 대응과 ESG 확대를 목표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5대 금융그룹을 중심으로 18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UNEP FI의 글로벌 운영위원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은행 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조용병 회장은 유엔 공식 파트너십 기구이자 최고위원회인 리더십위원회의 아시아 유일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리더십위원회는 UNEP 잉거 안데르센 사무총장이 의장을 맡고 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멤버로 선출된 조 회장을 비롯해 알리안츠, AXA, BNP 파리바그룹, BBVA, Westpac 등 19개 글로벌 금융사 대표가 멤버다.신한금융그룹은 “우리가 진출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도 탄소중립 전략을 전파하며 ESG 트렌드를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며 “멋진 세상을 향한 올바른 실천(Do The Right Thing for a Wonderful World)이라는 그룹의 ESG 슬로건처럼 파트너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ESG 경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골프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발간한 레저백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지난해 사상 최고인 564만 명을 찍었다. 1년 전보다 49만 명, 2년 전보다 94만 명이 늘었다. 해마다 약 10%씩 증가했다. 15세 이상 국민 8명 중 1명이 골프장을 찾았다는 얘기다. 연간 골프장 평균 이용횟수는 8.8회로 총 내장객은 전체 인구에 맞먹는 5000만 명에 육박한다. 일본의 골프 인구는 2020년 520만 명이다. 이제 우리가 역전했다. 일본은 1992년 1480만 명으로 최고를 기록한 뒤 전후 베이비부머인 단카이(團塊) 세대의 은퇴와 함께 계속 감소세다. 세계 골프장의 절반 가까이를 보유한 미국에선 지난해 한 번이라도 골프장을 이용한 사람은 251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인 셈이다.●푹푹 찌는 날씨에 복잡한 통계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또 서론이 길어졌다. 이번 칼럼에선 골프를 치든, 안 치든 누구나 가볍게 감상할 수 있는 골프 진기록을 살펴보자. 먼저 홀인원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홀인원을 몇 번 했을까. 답은 20번이다. 물론 비공식 라운드 포함 기록이다. 8세 때 첫 홀인원을 한 그는 24세인 1999년까지 19개를 했지만 2000년대 들어 홀인원 가뭄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2018년 11월 24일 추수감사절 때 아들 찰리, 역시 골프의 전설인 프레드 커플스와 라운드를 하다가 210야드 2번 홀에서 한 5번 아이언 샷이 바로 홀컵에 들어갔다. PGA(미국프로골프) 투어에서 우즈는 1996년, 97년, 98년 각 한 차례 홀인원을 했다. PGA 최다 홀인원은 할 서튼과 로버트 앨런비가 동시에 갖고 있는 10개. EPGA(유럽프로골프) 투어에선 미구엘 앙헬 히메네스가 역시 10개로 동률을 이뤘다. 히메네스는 2015년 기록을 세운 뒤 “내 아이언은 다트와 같다”는 말을 남겼다.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투어에선 1962년부터 85년까지 88승을 거둔 캐시 휘트워스가 11개의 에이스를 기록했다.●눈이 휘둥그레지고 우즈도 넘볼 수 없는 기록은 이제부터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2홀 연속 홀인원은 20번 이상 있었는데 그 중 노먼 맨리란 아마추어는 1964년 파4 330야드와 파4 290야드 홀에서 연속 홀인원을 해 더블 알바트로스를 기록했다. 최장거리 홀인원은 숀 리치가 1995년 기록한 496야드. 기네스북에 파4인지 파5인지는 나와 있지 않은데 휘어진 도그레그 홀이라고만 기록돼 있다. 직선 홀에선 로버트 미테라가 1965년 기록한 파4 447야드가 최고 기록이다. 핸디캡 2의 실력자인 그는 시속 80km의 강풍을 이용해 비거리 290야드의 드라이버 샷을 날렸는데 공이 150야드 이상을 굴러가 홀인했다. PGA 최장 홀인원은 2001년 피닉스오픈 1라운드 파4 17번 홀에서 앤드류 매지가 기록한 332야드. 최연소 홀인원은 1999년 크리스찬 카펜터(4세 195일), 최고령 홀인원은 1985년 오토 버처(99세 244일)가 했다. 2018년 11월 대만여자골프 모바일 레이디스오픈에선 148야드 파3 16번 홀에서 이틀간 4명의 선수가 홀인원하기도 했다.●홀인원은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도 있지만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와 퍼트, 스코어 메이킹 능력은 넘사벽이다. 비거리를 레이저로 측정한 2003년 이후 PGA에서 가장 멀리 친 드라이버는 476야드다. 데이비스 러브 3세가 2004년 하와이 카팔루아 플렌테이션코스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 메르세데스 챔피언십 파5 18번 홀(663야드)에서 기록했다. 더스틴 존슨은 2018년 델 테크놀로지 매치플레이에서 489야드를 날렸지만 매치플레이 통계는 비공식으로 처리돼 인정되지 않았다.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브라이슨 디셈보가 2019~20시즌 322.1야드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진정한 장타왕은 누가 뭐래도 존 댈리다. 그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2년간 1994년을 제외하고 11개의 비거리 타이틀을 차지했다. 사상 처음으로 300야드 고지를 밟은 그는 2002년 최고인 306.8야드를 기록했다. 골프 장비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동시대라면 디셈보를 능가했을 것이란 평가다.●PGA에서 성공한 가장 긴 퍼트는 크레이그 발로우가 2008년 뷰익오픈에서 달성한 34m다. 그는 당시 로브 웨지를 사용했지만 그린에서의 모든 샷은 사용한 클럽에 관계없이 퍼트로 분류돼 진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비공식 기록으로는 브레트 스탠포드가 호주 포인트 월터 골프코스에서 세운 120.6m이다. 설명이 없지만 아마 이 기록은 그린 밖에서 퍼트를 사용한 것으로 골프 룰에 의하면 퍼트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라운드 최저 퍼트는 18개로 모두 12명의 선수가 기록했다. 보통 아마추어 평균 퍼트가 30대 중반이니 그린에서만 15타 이상 차이가 난 셈이다. PGA 한 라운드 최저 스코어는 짐 퓨릭이 2016년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기록한 58타(파70)이다. 그는 3번 홀 이글에 이어 6번 홀부터 12번 홀까지 7개 연속을 포함해 10개의 버디를 잡았다. 2013년 BMW 챔피언십에서 59타를 기록한 그는 투어에서 2번의 서브 60타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가 됐다. 1개의 클럽만 사용한 18홀 최저 스코어는 태드 데이버가 1987년 클럽대회에서 6번 아이언만 사용해 달성한 2언더파 70타다.●한국 선수들도 의외로 진기록 보유자가 많다. 김세영은 2018년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에서 보기 없이 버디 31개를 잡으며 나흘간 63-65-64-65타(합계 257타)를 쳤다. 버디 31개와 31언더는 모두 LPGA 신기록이다. 2001년 애니카 소렌스탐의 27언더를 4타나 경신했다. PGA 기록은 2001년 마크 캘커베키아의 버디 32개와 올해 카메룬 스미스의 34언더. 고진영은 2019년 8월 3일부터 29일까지 114홀 연속 보기 이하를 하지 않아 2000년 우즈가 세운 110홀 연속 기록을 깼다. 그는 이 기간 41언더를 기록하며 한 달 전 처음 오른 여자 세계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세계 투어에서 연속 버디는 9개로 남녀 7명의 선수가 달성했는데 이 가운데는 2015년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달성한 양희영이 있다. 한국계로는 리디아 고가 남녀 통틀어 최연소 우승과 세계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2012년 8월 26일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우승(15세 124일)했고, 2015년 2월 2일 세계 1위(17세 284일)에 올랐다.●케빈 나와 김시우는 불명예 기록 보유자다. 케빈 나는 2011년 텍사스오픈 파4 9번 홀에서 티샷 OB에 이어 숲속에서 2벌타를 받는 등 무려 16타 만에 홀아웃했다. 그는 다음 홀로 이동하면서 “손에 감각이 없을 지경이다”고 말했다. PGA에서 최다 타수 기록은 따로 집계하고 있지 않다. 레인 아이슬리는 1938년 19타, 댈리가 1998년 18타를 친 게 파4 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김시우는 지난해 세인트 주드 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 파3 11번 홀에서 13타 만에 홀아웃했다. 티샷에 이어 드롭존에서 친 2~5번째 샷을 모두 연못에 빠뜨렸다. 김시우는 경기 후 인스타그램에 “오늘 파3홀 최다 타수 신기록을 세웠다”며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리는 사진을 올렸다. 옆에서 케빈 나는 손가락 4개를 치켜세웠다. 세계 최대 골프연습장은 2005년 9월 300개의 타석을 갖춘 SKY72 골프클럽 드림골프연습장이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원형 연습장으로 지름이 392야드에 이른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프로야구는 김 감독 천하다. 1982년 원년부터 지난해까지 40시즌동안 김 씨 성을 가진 사령탑이 우승한 횟수는 25회에 이른다. 우승 확률은 62.5%다. 우리나라 성(姓) 가운데 김 씨는 21.51%로 가장 많긴 하다. 김 감독들은 그 세 배에 가까운 우승컵을 가져갔다. 표본수가 적지만 누가 봐도 의미 있는 수치다. 두 번째로 많은 이 씨(14.70%)는 4번 우승(10%)해 그런대로 수지를 맞췄다. 2020년 이동욱(NC), 2021년 이강철(KT) 감독이 잇달아 우승한 결과다. 반면 3~5대 성 씨인 박(8.43%), 최(4.70%), 정(4.33%) 씨 성을 가진 감독은 아직 무관이다.● 김 감독 우승 확률은 62.5%수포츠에서 난데없이 성명학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프로야구가 김 감독들의 발자취로 채워져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김영덕(2회), 김응용(10회), 김성근(3회)의 초창기 3김을 비롯해 김인식(2회), 김재박(4회)과 현역인 김태형(3회·두산)까지 6명의 김 감독은 KBO리그를 지배했다. 그동안 한 번이라도 우승 축배를 든 사령탑은 17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멀티 우승을 한 감독은 9명이다. 우승 경험이 있는 김 감독은 2017년 김기태(KIA)까지 7명밖에 안 되지만 앞에서 말한 6명이 24승을 합작했다. 감독의 역량이 팀 전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제로에 가깝거나, 팀을 망쳐놓지만 않으면 다행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3~10승, 또는 그 이상이라고 한다. 정해진 답은 없다. 하지만 위의 통계를 보면 분명 연관성은 있어 보인다. 그게 플러스이든 마이너스이든. 올해 현역 감독들의 관전 포인트를 수포츠로 살펴보자.● 김태형 한국시리즈 8회 연속 진출?프로야구는 대략 5개의 왕조시대로 분류된다. 김응용의 해태는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우승컵 9개를 휩쓸며 장기 집권했다. 특이한 것은 준우승이 없다. 한국시리즈에 올라가기만 하면 100% 우승을 거둔 결과다. 김재박의 현대는 창단 첫 해인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우승 4회, 준우승 1회를 이뤘다. 오랜 감독 생활에도 23년간 무관이었던 김성근의 SK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시리즈에 6회 연속 진출(마지막 해는 이만수 감독)해 우승 3회, 준우승 3회를 기록했다. 류중일의 삼성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역시 6회 연속 한국시리즈에 나가 우승 4회, 준우승 2회(첫 해는 선동열 감독)의 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현재는 제5대 왕조 두산의 시대다. 김태형은 감독 데뷔 첫 해인 2015년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 신기록을 세웠다. 우승 3회, 준우승 4회로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올해 두산은 27일 현재 김 감독 취임 후 최저인 7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포스트시즌 진출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김종국 데뷔 첫 해 우승?프로야구에서 감독 데뷔 첫 해에 우승한 사령탑은 5명이다. 이 가운데 1983년 김응용(해태), 1984년 강병철(롯데)은 이미 그 전에 실업팀 감독을 지냈다. 초보 사령탑으로 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2005년 선동열(삼성)이 사실상 1호이다. 선 감독은 2006년까지 2년 연속 우승을 이끌며 선수뿐만 아니라 사령탑으로서도 전성기를 누렸다. 역시 스타 출신인 류중일(삼성)은 감독 첫 해인 2011년부터 4년 연속 우승을 거두는 신기록을 세웠다. 김응용(1986~89년)에 이은 타이기록. 김태형(두산)도 2015년부터 2년 연속 우승했다. 김종국(KIA)은 올해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한 신인 감독이다. KIA는 4월까지만 해도 7위에 머물렀지만 이후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4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만한 전력이란 평가다.● 김원형 누가 뭐래도 결론은 김 감독?김종국 김태형이 있지만 올해 강력한 우승 후보는 김원형(SSG)이다. SSG은 개막 10연승을 비롯해 시즌 첫 날부터 단 하루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평균자책 1, 2위에 올라 있는 김광현-윌머 폰트의 원투펀치에 김택형 서진용의 불펜, 최정 한유섬이 이끄는 타선까지 탄탄한 전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우승한 이강철(KT)은 자칫하면 불명예 기록을 세울 뻔했다. KT는 4월 15일 꼴찌인 10위로 추락했고, 이달 초까지만 해도 8위에 머물렀다. 현재 성적은 반등에 성공해 포스트시즌 데드라인인 5위. 우승팀이 다음해 꼴찌로 추락한 것은 1996년 OB(8위·김인식)가 유일하다. 반대로 꼴찌팀이 바로 우승한 것은 1984년 롯데(강병철)가 역시 유일하다. 롯데는 1983년 전후기 통합 승률 최하위인 6위였다.● 외국인 감독의 성적표는?프로야구에 용병으로 불린 외국인 선수가 들어온 것은 1998년. 당시 구단들은 외야수나 1루수 거포와 선발투수 위주로 영입했다. 이유는 의사소통 문제 때문. 내야 키스톤 콤비나 그라운드의 안방마님인 포수는 금기였다. 이후 2004년 앙헬 페냐(한화)를 시작으로 5명의 포수가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예상대로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인 사령탑은 달랐다. 1호인 제리 로이스터는 암흑기 롯데의 한 줄기 빛이었다. 2008년 취임한 로이스터는 롯데를 3년 연속 가을야구(3-4-4위)로 이끌며 구도 부산을 뜨겁게 달궜다. 트레이 힐만(SK)은 취임 첫 해인 2017년 5위에 이어 2018년에는 외국인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정상에 올랐다. 힐만은 일본에서도 2006년 니혼햄 시절 우승 축배를 들었다. 두 감독은 재임기간 내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외국인 감독의 성적표는 하한가다. 지난해에는 3명의 외국인 감독이 동시에 지휘봉을 잡았는데 래리 서튼(롯데)이 8위, 매트 윌리엄스(KIA)가 9위, 카를로스 수베로(한화)가 10위였다. 메이저리그 홈런·타점왕 출신 윌리엄스는 첫 해인 2020년 6위, 2021년 9위에 그친 뒤 짐을 샀다. 9위는 KIA의 역대 최저 순위다. 지난해 취임한 서튼과 수베로는 올해도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롯데가 8위, 한화가 10위로 지난해 순위와 판박이다. 과연 이들은 하반기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까.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8-8-3-7-10-7-8-8. 프로야구 10구단 체제가 완성된 2015년부터 올해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8년간 팀 순위다. 야구도시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는 최고 인기구단 중 하나다. 야구 실력만 빼곤 모든 것을 갖췄다. 올해 롯데는 시즌 개막 후 한 달여간 SSG에 이어 2위를 질주했다. 팬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4월 승률 0.609를 자랑하며 지난달 6일까지 단독 2위였지만 이달 초 8위까지 추락한 뒤 회생 기미가 없다. 5월 이후 승률은 반 토막인 0.343이다. 어느 해보다 강렬하면서 허무한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롯데의 블랙아웃 롯데는 현 10개 구단은 물론 그동안 생겼다 사라진 수많은 구단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지 못했다. 최동원이 4승을 혼자 따낸 1984년, 염종석을 앞세운 1992년 두 번 챔피언이 됐지만 이후 29년간 우승을 못했다. 1992년생 아기는 30세가 됐고, 서른이던 청년은 환갑을 맞이했다. LG가 1994년 이후 27년간, 한화가 1999년 이후 22년간 팬들의 갈증을 풀지 못한 채 뒤를 잇고 있다. 롯데 LG 한화 팬이 다른 팬에 비해 좀 더 역동적이란 것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2000년대 들어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화에 진 게 최근 일이다. 이 불명예 순위도 LG(2002년), 한화(2006년)가 뒤를 잇고 있다. 롯데는 40년간 단일 리그 기준 정규시즌 1위를 한 번도 차지 못한 팀이기도 하다. 반면 최다 우승 1위 KIA(11회)는 김응룡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해태 시절인 1986~89년, 2위인 삼성(8회)은 류중일 감독이 이끈 2011~14년 4년 연속 우승컵을 안았다. 3위인 두산(6회)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3회 우승)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김태형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첫 해부터 일어난 일이다.●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 야구는 물론 스포츠에는 수많은 저주 시리즈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미국 메이저리그의 4대 저주이다. 우리나라보다 100년 이상 역사가 오랜 만큼 저주의 기간도 비교 불가다. 보스턴은 원조 이도류(二刀流·양 손에 칼 또는 검을 든 검법)인 투타의 신 베이브 루스를 1920년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하면서 1918년 이후 2004년까지 86년간 우승을 못하는 밤비노(루스의 애칭)의 저주에 시달렸다.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 3대 도시인 시카고의 컵스는 염소의 저주(108년), 화이트삭스는 블랙삭스의 저주(88년)를 푸는데 1세기가 걸렸다. 73년 된 클리블랜드 와후 추장의 저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0%인 6개 구단은 창단 후 여태 우승을 못했다. 텍사스는 1961년부터 51년간, 밀워키는 1968년부터 44년간, 샌디에이고는 1969년부터 43년간 무관이다. 최근에 휴스턴(1962년 창단)이 55년만인 2017년, 워싱턴(1969년 창단)이 50년만인 2019년 첫 우승반지를 꼈다. 국내에선 키움이 2008년 창단 후 13년간 우승 못한 게 최장 기록이다. 쌍방울(1991~99년)은 9년간 무관이었지만 대를 잇는 기업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산 스포츠의 동반 몰락 다시 롯데로 돌아가 보자.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해설위원 시절 LG 롯데 KIA(엘롯기)를 편애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허 총재의 설명은 간단명료하다. 팬이 많은 구단이 잘해야 야구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허 총재 취임 첫 해인 올 시즌 성적표는 괜찮은 편이다. LG가 3위, KIA가 4위에 올라 포스트시즌 진출 사정권에 있다. 문제는 역시 롯데다. 롯데 탓인지 부산의 다른 프로 스포츠도 암흑기를 맞고 있다. 프로축구단 부산 아이파크는 2020년 시즌 후 1부 리그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됐다. 지난해 여기에서도 5위에 머물더니 올해는 꼴찌 바로 위인 10위(3승 5무 11패)다. 부산 축구는 대우 로얄즈 시절인 1984년, 87년, 91년, 97년 4회나 정규리그에서 우승했지만 이후 무관이다. 남자 농구와 남녀 배구팀은 아예 없다. 남자 농구는 KT가 KTF 시절인 2003년부터 부산에 뿌리를 내렸지만 지난해 수원으로 이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 팬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입장문을 냈지만 차 떠난 뒤 손 흔든 셈이었다. 부산 농구는 프로 원년인 1997년 KIA가 우승하면서 전성기를 맞았지만 한때였다. 프로농구는 구단의 잦은 연고지 이전이 흥행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그나마 부산은행이 2019년 창단한 여자농구단 BNK 썸이 지난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 오른 게 위안거리. 정규시즌 성적 12승 18패로 6팀 중 4위로 턱걸이해 아직 갈 길이 멀다.● 윌리엄 펜의 저주 미국 6대 도시 필라델피아는 부산과 닮았다. 필라델피아는 펜실베이니아 주를 건설한 윌리엄 펜을 기려 1871년 신축한, 당시로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청 건물(167m) 꼭대기에 11m 크기의 동상을 세웠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1987년 이보다 높은 288m 고층 빌딩이 들어서자 공교롭게도 이때부터 필리스(야구), 이글스(미식축구), 세븐티식서스(농구), 플라이어스(아이스하키) 등 연고 프로구단이 21년간 우승을 못하는 동반 부진을 겪었다. 팬들은 저주를 깨기 위해 2007년 신축한 297m 빌딩 옥상에 펜의 인형을 갖다 놓았다. 희한하게도 필리스는 2008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고, 2018년에는 이글스가 창단 85년 만에 슈퍼볼 우승컵을 안았다.● 롯데의 무관 징크스는 언제 풀릴까 롯데는 올해도 우승하지 못하면 30년을 꽉 채우게 된다. 부산은 축구와 남자농구에서도 지난해까지 24년간 축배를 들지 못했다. 이쯤 되면 필라델피아처럼 살풀이할 대상이라도 찾아야 할 판이다. 다행히 하나 있긴 하다. 롯데는 1992년 우승 후 실업 최강 롯데 시절부터 써왔던 엠블렘을 교체했다. 영문 이니셜 L(롯데)과 G(자이언츠)가 겹쳐진 이 엠블렘은 1990년 LG가 MBC를 인수한 뒤 더 이상 쓰는 것을 고집하기 힘들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격이지만 하도 답답하니 롯데 팬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돈 얘기는 늘 흥미롭다. 수(數)포츠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손흥민(토트넘)이 아시아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돈방석에 앉은 서른 살의 그가 앞으로 얼마나 벌지 관심사다. 국내외 스포츠 스타의 몸값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보자.●40년 전으로 돌아가 국내에 프로야구가 탄생한 1982년. 야구는 국내에서 가장 먼저 탄생한 프로 스포츠답게 프로화 역시 가장 잘 진행됐다. 프로화라는 게 좋게 말하면 시장경제이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규제였다. 두 개의 상반된 가치가 공존했다. 최저연봉제(600만원)를 도입하는 등 실업팀 연봉의 몇 배를 지급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선 멸종된 지 오래인 연봉상한선(2400만원)과 인상상한선(25%) 등 몸값 폭등을 막을 암묵적 보완책을 마련했다. 타자는 실업 홈런왕 김봉연(해태), 투수는 미국 마이너리그 밀워키에서 맹활약하고 돌아온 박철순(OB)이 기준점이었다. 모든 선수는 둘의 연봉 아래에 포진했다. 당시 2400만원이면 강남 30평형 아파트를 사고도 남았다. 부동산 가치가 요즘보다 낮을 때 얘기다.●이후 프로야구는 최동원(83년·롯데), 선동열(85년·해태)이란 불세출의 투수가 입단하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백신을 맞게 된다. 최동원은 1981년 토론토로부터 당시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과 비슷한 18만5000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억3000만원)를 제시받았다. 선동열은 1984년에 LA다저스로부터 50만 달러(당시 약 4억원) 제안을 받았다. 선동열의 경우는 외신 기사가 없고, 몇 년간 몸값인지 확실치 않긴 하다. 어찌됐든 둘은 이 기준을 가지고 소속 구단과 끝없는 연봉 투쟁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구단들은 전두환 정권이 만든 병역특례자 5년간 국가대표 봉사 규정을 앞세워 매년 방어에 성공했다. 지나치게 뛰어났던 둘은 결국 모든 선수들의 연봉 전봇대가 되는 역설을 낳았다.●프로야구는 1991년에야 선동열에게 첫 1억 연봉을 안겼다. 혹사의 아이콘이었던 최동원은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직전에 은퇴했다. 선동열은 국내에서 활약한 1985년부터 1995년까지 11년간 10억2250만원을 버는 데 그쳤다(물론 인센티브, 보너스, 그리고 이면계약은 있었을 거다). 일본 진출 첫 해인 1996년 주니치에서 받은 1년 소득인 1억5000만엔(계약금 5000만엔 포함)에도 못 미쳤다. 그가 주니치에서 4년간 번 금액은 무려 7억엔(당시 약 80억원). 지나친 규제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994년 박찬호(LA다저스)를 시작으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붐을 이루면서 국내 프로야구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선수들의 연봉 대박을 불러온 자유계약선수 제도가 1999년 초에야 도입됐지만 그해 최고 연봉 선수인 정명원(현대)의 몸값은 1억5400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음에도 강남 30평형 아파트를 사기엔 많이 부족한 금액이었다.●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국내 프로 스포츠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는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축구계가 급성장한 계기가 됐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최초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하는 등 축구 선수의 해외 입단은 이때 봇물을 이뤘다. 선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구단들도 만성적자가 모기업의 마케팅 비용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연봉이 사실상 공개돼 있고 잘 정리돼 있는 프로야구를 예로 들면 올해 1군 선수 527명의 평균 연봉은 역대 최고인 1억5259만원이다. 1982년 1215만원의 13배 수준이다. 최고 연봉 선수는 김광현(SSG)으로 4년 총액 151억원(인센티브 20억원 포함)에 계약했는데 내년 도입될 샐러리캡(구단 연봉총액상한제)을 피하기 위해 올해 보장연봉만 81억원을 당겨 받았다. 사상 최고액으로 팀 선배 추신수(27억원)의 기록을 훌쩍 깨버렸다. 81억원은 LG KIA KT 롯데 키움 한화의 선수단 연봉보다 많다. SSG은 외야수 한유섬에게도 지난해보다 1233% 인상된 24억원(4위)을 안겨 연봉 총액은 146억원, 평균 연봉은 2억7044만원에 이른다.●프로축구는 지난해 세징야(대구)가 14억8500만원으로 전체 1위, 김보경(전북)이 13억원으로 국내선수 1위를 차지했다. 프로농구 최고 연봉은 송교창(KCC)의 7억5000만원(인센티브 2억2500만원). 프로배구 역시 한선수(대한항공)의 7억5000만원. 여자 선수로는 골프의 박민지(NH투자증권)가 지난해 상금으로만 15억2137만원을 벌어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 프로축구는 시즌이 끝난 뒤 출전수당과 보너스 등을 합쳐 연봉을 발표한다. 농구는 인센티브가 포함된 금액. 남자 배구는 야구와 같이 순수 연봉이다. 한편 리그 오브 레전드(LOL·일명 롤) 세계 최강자인 프로게이머 페이커(본명 이상혁·T1)는 놀랍게도 대략 40억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롤은 올해 항저우 아시아경기 정식 종목이다.●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전체 소득은 보통 연봉과 기타 수입으로 나뉘는데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19일 발표한 세계 스포츠 스타 소득 랭킹을 보면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파리 생제르맹)가 1억3000만 달러(약 1630억원)로 톱을 차지했다. 메시는 연봉을 포함한 경기 관련 수입으로 7500만 달러, 스폰서십과 광고 출연 등으로 5500만 달러를 벌었다. 2위는 미국프로농구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로 1억2120만 달러(약 1520억원). 경기 수입은 4120만 달러에 그쳤지만 8000만 달러를 외부에서 벌었다. 둘은 일당으로 4억원이 넘었다. 포브스가 발표한 지난해 소득왕은 격투기 선수 코너 맥그리거로 1억8000만 달러(약 2250억원). 타이거 우즈, 필 미켈슨 등 골프 선수가 최근 들어 리더보드에서 빠진 게 눈길을 끈다.●손흥민에 포커스를 맞춰보면 그는 지난해 7월 주급 20만 파운드에 2025년까지 재계약했다. 연봉으로 약 165억원이다. 계약 당시엔 리그 공동 8위였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15위권이다. 역대 한국 선수 가운데는 4위에 해당한다. 추신수가 2020년 텍사스에서 2100만 달러(약 263억원), 류현진(LA다저스)이 올해 2000만 달러(약 250억원), 박찬호가 2006년 샌디에이고에서 1550만 달러(약 195억원)를 받았다. 손흥민은 골든 부츠를 안았지만 계약에 묶여 있어 당분간 연봉 인상이 힘들다. 하지만 경기장 밖 소득까지 합하면 위의 세 선수를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손흥민은 득점왕이 되기도 전인 2020년 말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경제적 파급효과 2조원이라는 평가를 받아 방탄소년단, 임영웅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제 기업의 러브콜이 더 쇄도할 것이다. 정규리그는 물론 챔피언스리그, FA컵 등 출전 수당과 상금 보너스도 기다리고 있다. 바야흐로 손흥민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올해 국민 평균 연령은 43.9세다. 2000년(33.1세)보다 10.8세가 높아졌다. 1970년(23.6세)에 비하면 거의 두 배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국민 건강이 증진된 덕분일까. 스포츠계에도 40대 바람이 분다. 프로야구에선 이대호(롯데), 추신수(SSG), 오승환(삼성)의 불혹 삼총사가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운동선수 마흔은 일반인 환갑 나이. 하지만 이들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스포츠계에는 동기생 스타가 유난히 몰려 있는 황금세대가 있다. 같이 학교를 다녔거나, 대회에 나갔거나,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면서 서로 경쟁한 세대다. 야구에선 1958년 개띠가 원조다. 최동원 김시진 김용남은 올드 팬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국보투수 삼총사. 이만수는 프로 첫 타격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다. 김성한은 유일하게 프로 홈런왕과 10승 투수를 겸했다. 이들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우승 주역이다. 다양한 포지션과 물량에선 81학번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선동열이 있다. 이순철 정상흠 이종두 박흥식 박동수 한영준 윤덕규 김용국 구천서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상군 이강돈 강정길은 한 학번 아래지만 동갑내기인 한희민과 함께 1986년 빙그레 창단 멤버로서 단기간에 팀을 강팀으로 탈바꿈시켰다. 선동열은 고려대 2학년 때인 1982년 서울 세계선수권 MVP에 올랐다. 이들은 야구가 처음 올림픽 무대에 등장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주축이었다.●야구에선 이후 약 10년 주기로 황금세대가 등장한다. 92학번은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다.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의 투수 트로이카는 각각 미국 일본 국내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손경수 차명주 손혁 전병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뛰어든 동기생 정민철 염종석 안병원까지 가히 투수왕국이라 할 만하다. 타자로는 박재홍을 필두로 박종호 송지만 이영우 최기문 김종국 홍원기 등이 있다. 김종국은 KIA, 홍원기는 키움 감독이다. 이들은 1994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 준우승 주역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불혹 트리오가 속한 프로야구 원년둥이들이 있다. 1982년 개띠인 이들은 에드먼턴 키즈로도 불린다. 이대호 추신수 김태균 클린업 트리오와 정근우 이동현 정상호 등은 고교 3학년 때인 2000년 캐나다 에드먼턴 세계청소년선수권을 제패하면서 급성장했다. 대표팀은 아니었지만 역대 마무리 투톱인 오승환 손승락과 김강민 채태인 등도 동기생이다.●82년생 가운데 이대호 추신수 오승환과 김강민(SSG)은 아직 현역이다. 이대호는 올해 활약만 놓고 봐도 리그 최정상급이다. 23일 현재 타격 2위(0.369), 안타 2위(58개), 홈런 10위(6개), 출루율 4위(0.409), 장타율 10위(0.510). 7관왕 출신인 그가 아닌 다른 선수라면 몬스터 시즌이라 할 만하다. 사상 첫 40대 타격왕이 먼 꿈은 아니다. 그는 시즌 개막 직전 은퇴 선언을 일찌감치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도록 주위에서 놔둘지 흥미롭다. 오승환은 11세이브(2승 무패)로 이 부문 4위다. 19일 대전 한화전에선 사상 첫 통산 350세이브를 달성했다. 평균자책 2.33으로 예전에 비해 높지만 공의 위력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국내 400세이브와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미국 42, 일본 80세이브)에 도전하는데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시간만이 변수일 뿐이다.●추신수는 드러난 성적만 놓고 보면 의문부호가 붙는다. 지난해 최고령 20홈런-20도루 기록을 세웠지만 올해 타율은 0.224로 떨어지고, 4홈런-4도루로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출루머신이란 별명답게 출루율 9위(0.401)에 올라 있다. 타율이 0.125가 높은 이대호와 출루율에선 0.008 차이밖에 안 난다. 올해 선두를 질주 중인 SSG은 추신수의 영향 때문인지 상대 투수가 가장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구단 중 하나가 됐다. 김원형 감독은 올해 그를 붙박이 1번 타순에 배치했다. 추신수의 팀 동료인 김강민은 풀타임은 아니지만 타율 0.295에 여전히 최고 수준의 외야수비로 밥값을 해내고 있다.●프로야구에선 40세 이후에도 1군 경기를 뛴 선수가 25명 남짓 된다. 이 가운데 이대호 오승환 추신수처럼 풀타임 활약을 한 선수는 송진우 최영필 이승엽밖에 없다. 이승엽은 불혹인 2016년에도 홈런 27개(8위)를 치고, 타점 118개(6위)를 올렸다. 투수 최고령 기록을 싹쓸이하고 있는 송진우는 선발로서, 최영필은 중간계투로서 제몫을 했다. 국내에선 야구를 제외하면 40대 프로 선수가 맹활약한 경우는 찾기 힘들다. 비교적 선수 생명이 긴 골프에선 최경주가 41세이던 2011년 제5의 메이저대회라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스컵에서 우승한 게 눈길이 간다. 미국프로골프 통산 상금 3268만 달러로 29위에 올라 있는 그는 51세이던 지난해에는 시니어 대회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한국인으로 첫 우승했다. 이봉주는 39세이던 2009년 은퇴 경기인 전국체전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41번째 풀코스 완주를 화려하게 장식했다.●해외에서 40대 선수 활약은 이제 기사거리도 아니다. 천재 쿼터백 톰 브래디는 44세이던 지난해 만년 하위팀 탬파베이를 미국프로풋볼 정상으로 이끌며 통산 5번째 슈퍼볼 MVP에 올랐다. 타이거 우즈 역시 44세이던 2019년 미국프로골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15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데러는 41세인 올해 여전히 세계 정상급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역시 41세인 올해 AC 밀란이 이탈리아 세리에A 2021~22시즌 우승컵을 11년 만에 차지하는데 주역으로 활약했다.●황금세대로 다시 돌아가면 농구에는 82학번 스타가 많다. 전창진 유재학는 현역 사령탑이며 정덕화 추일승 한기범 이상윤 등이 있다. 유재학은 전창진과 초등학교-중학교 동창, 정덕화와는 대학-실업 동료다. 86학번은 강동희 유도훈 강양택 김광 임근배 등이 있다. 연세대 트리오인 유도훈 강양택 김광은 4학년이던 1989년 전국대회 4관왕을 차지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 세대로 불리는 92학번은 우지원 전희철 김병철 김훈 석주일 박준영 등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골프에선 세리 키즈가 유명하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한 것을 보고 자란 이들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여자골프의 세계 정복을 이뤄냈다. 87년생 최나연 박희영과 88년생 신지애 박인비 김인경, 89년생 양희영, 90년 유소연 등이 있다. 현 세계랭킹 1위 고진영과 전 1위 박성현 등은 신지애가 1년에 10승씩 올리는 것을 보고 꿈을 키운 지애 키즈라고 부를 수 있다. 빙속 삼총사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는 한국체대 07학번 동기생이다. 이승훈은 4번의 올림픽에서 금 2개, 은 3개, 동메달 1개를 따내 한국 선수 최다 메달 타이를 이뤘다. 이상화는 500m 2연패로 금 2개, 은 1개를 획득했고 모태범은 금 1개, 은 1개를 차지했다. 이들 삼총사가 따낸 올림픽 메달은 금 5개, 은 5개, 동 1개에 이른다. 황금세대는 프로화가 정착되면서 사라졌다. 선수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들면서 동기생 개념이 없어진 탓이다. 그러나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이제 선수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경쟁한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프로야구가 완연한 회복세다. 2008년 이후 경기당 평균 관중 1만 명을 넘겼던 프로야구는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 456명, 지난해 1706명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면서 16일 현재 8108명으로 치솟았다. SSG LG 두산의 수도권 3팀과 부산 롯데가 4강에 오르면서 흥행을 이끌고 있다. LG는 1만211명, 롯데는 9680명으로 선두권이다. 기록도 눈 여겨 볼만하다. 시즌의 26%만 소화했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김광현(SSG)이 꿈의 0점대 평균자책(0.60)을 기록 중이다. 1993년 선동열(해태)의 역대 최고 기록(0.78)을 앞선다. 호세 피렐라(삼성)는 타율 0.395로 원년인 1982년 백인천(MBC·0412) 이후 41년만의 4할 타율을 넘보고 있다. 1994년 이종범(해태·0.393)을 앞선 2위 기록이다. 은퇴를 앞둔 41세의 이대호(롯데)는 0.370으로 시즌 2위를 달리고 있다. 윌머 (SSG)는 지난달 2일 NC와의 개막전에서 9회까지 삼진 9개를 잡고 안타와 볼넷 없이 무실점으로 막아 최초의 정규 이닝 퍼펙트 투구를 달성했다. 그러나 9회까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상태에서 교체돼 퍼펙트게임은 인정받지 못했다. SSG이 연장 10회 4-0으로 승리하며 첫 10이닝 팀 노히트 승리 기록은 작성됐다. 프로야구가 42주년을 맞은 올해 불멸의 기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대기록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를 살펴본다.●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落ち葉は秋風を恨まない) 재일교포 장명부는 일본에서도 대단한 선수였다. 히로시마에서 1978년과 80년 15승을 올렸고, 80년에는 승률왕도 차지했다. 그가 삼미에서 뛴 1983년엔 당시 투수 나이로는 환갑을 넘긴 33세였지만 괴물이 따로 없었다. 팀의 100경기 중 60경기(선발 44경기)에 등판했고, 427과 3분의 1이닝을 던져 30승 16패 6세이브(선발 28승)를 거뒀다. 36경기를 완투(26승)했고, 6완봉승, 8경기 연속 완투승의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400이닝 이상 투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1908년 에드 월시, 일본에선 1955년 김경홍(가네다 마사이치) 이후 맥이 끊긴 상태. 삼미는 그해 52승 47패 1무(승률 0.525)로 3위에 올랐는데, 장명부의 승률만 따지면 0.652로 선두 MBC(0.561)를 능가했다. 다승 탈삼진 1위에 평균자책 2위인 장명부가 홈런 타점 1위 이만수(삼성)에게 밀려 MVP를 수상하지 못한 건 말이 안 되는 ‘국뽕’이었다. 장명부는 1984년에도 45경기 25선발 15완투에 261과 3분의 2이닝을 던졌고, 85년에는 45경기 35선발 10완투에 246이닝을 기록했다. 지나친 혹사 탓에 빙그레로 이적한 86년에는 1승 18패 평균자책 4.98로 무너졌다. 은퇴 후 그는 이혼과 마약으로 인한 구속 등을 겪으며 쇠락했고, 힘든 말년을 보내던 2005년 55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혼자 숨진 채 발견됐다. 벽에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한국시리즈 4승+시즌 27승=31승투수 분업이란 말이 생소했던 프로 초창기 시절 또 다른 혹사의 아이콘이었던 최동원은 입단 이듬해인 1984년 롯데에서 284와 3분의 2이닝(역대 2위)을 던져 27승 13패 6세이브를 기록했다. 탈삼진 223개는 지난해 아리엘 미란다(두산·225개)가 경신할 때까지 37년간 깨지지 않았다. 최동원은 그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선 7경기 중 5경기(선발 4경기)에 나가 4승(1구원승)을 혼자 거두는 세계 기록을 달성했다. 메이저리그에선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기록이며 일본에선 1958년 이나오 카즈히사, 59년 스기우라 타다시가 2년 연속 기록한 게 전부다. 최동원은 한국시리즈 4승을 합쳐 31승으로 비공식 다승에선 장명부를 앞섰다.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이만수는 이번엔 거꾸로 MVP를 내줬다.●세계 야구사에 유례가 없는 다승 구원왕 석권 한 시즌에 한 선수가 다승과 구원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국내에선 세 번이나 나왔다. 1992년 송진우(빙그레), 1996년 구대성(한화), 2001년 신윤호(LG). 요즘은 세이브왕이지만 예전엔 구원승과 세이브를 합친 세이브 포인트로 구원왕 타이틀을 줬다. 순수하게 세이브만으로도 1위를 차지하면서 다승왕까지 거머쥔 선수는 송진우가 유일하다. 송진우는 48경기에 나가 19승 17세이브를 거두며 대기록을 달성했다.●타격 7관왕+9경기 연속 홈런 이대호는 동기생 추신수(SSG), 은퇴한 이승엽(삼성)과 함께 역대 최고의 타자로 꼽힌다. 그는 2010년 도루를 제외하고 방망이로 하는 타격 전 부문 타이틀을 싹쓸이했다. 메이저리그에선 타이 콥이 1909년 도루까지 곁들여 8관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 도루를 뺀 7관왕은 3차례 나왔는데 1967년 칼 야스터젬스키가 최근 기록했다. 일본은 타율 홈런 타점만 순위를 매겨 확인이 불가하다. 이대호는 그해 9경기 연속 홈런의 세계 신기록도 세웠다. 그러나 롯데의 성적은 8개 구단 중 4위에 그쳤다.●0점대 평균자책과 4할 타율 0점대 평균자책은 선동열(해태)에게만 허용된 기록이었다. 선동열은 입단 이듬해인 1986년 0.99를 시작으로 87년 0.89에 이어 93년 0.78로 정점을 찍었다. 선발과 구원을 겸한 1995년엔 규정 투구이닝에 16과 3분의 2이닝이 모자랐지만 0.49를 찍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선 1914년 더치 레너드가 20세기 이후 유일하다. 일본은 이팔용(후지모토 히데오)이 1943년 무려 432이닝을 던졌음에도 0.73을 기록했다. 그는 62이닝 무실점 기록도 동시에 세웠다. 4할 타율은 1982년 MBC 감독 겸 선수였던 일본 퍼시픽리그 타격왕 출신 백인천이 0.412로 유일하게 기록했다. 프로 초창기인데다 팀 80경기 중 71경기에만 나가 타율 관리를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메이저리그는 1941년 테드 윌리엄스(0.406) 이후 명맥이 끊겼고, 일본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퍼펙트게임과 손흥민 퍼펙트게임은 미국이 23번, 일본이 16번 나왔지만 희한하게 국내에선 아직 없다. 일본은 지난달 10일 사사키 로키(지바 롯데)가 오릭스와 홈경기에서 28년만의 대기록을 세웠다. 20세 5개월로 최연소이며 탈삼진 19개는 타이, 13타자 연속 탈삼진은 신기록. 최고 구속은 시속 164km로 세계가 주목하는 괴물 투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국내에선 이용훈(롯데)이 2011년 퍼펙트게임을 달성했지만 2군 경기였다. 무4사구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투수 중에 1997년 정민철(한화)은 스트라이크 낫아웃 때문에, 1988년 이동석(빙그레)은 실책 2개 때문에 퍼펙트게임에는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따라서 의 퍼펙트게임 무산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김원형 감독은 “투구수가 104개여서 교체했다”고 설명하며 왕년의 선배 감독들과는 선을 그었다. 비슷한 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손흥민(토트넘)은 21호 골을 터뜨린 13일 아스널과의 홈경기에서 0-0으로 맞선 전반 21분 페널티킥을 유도했지만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해리 케인을 키커로 내세웠다. 콘테 감독이 케인을 전담 키커로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페널티킥을 가장 잘 차는 선수이기 때문. 케인은 통산 30번의 페널티킥 중 27번을 성공시켰고 대표팀에선 14골을 넣어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반면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는 손흥민은 통산 91골 중 페널티킥은 지난해 1개가 유일하다. 모하메드 살라(22골·리버풀)와 막판 득점왕 경쟁에서 한 골이 아쉬운 그로선 섭섭할 만도 했다. 이에 팬들은 두 감독의 결정을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감독의 결정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고유 권한이며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게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그래도 경우에 따라선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반대파의 주장이다. 왕년에 어떤 감독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비난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스포츠의 세계화는 말이 좋아서 그렇지 아시아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험난한 100년 도전의 역사였다. 대부분 올림픽 종목과 프로 스포츠는 ‘메이드 인 서양’이다. 신체조건이 좋은 백인과 흑인에게 절대 유리하다. 그렇다고 세계의 천장을 뚫고 나온 송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궁과 쇼트트랙은 태극군단이 천하를 통일한 지 오래됐다. 기자는 두 종목의 초창기 지도자와 후원사에 체육훈장 청룡장이 아니라 무궁화 대훈장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는 잘못에 비해 과도한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 메달이 가장 많은 육상과 수영은 중국과 일본이 스포츠과학과 생활체육을 접목시키며 신흥 강호로 등장했다. 여기에 태권도 유도 등에서 스포츠 외교력이 더해지면서 이제 한중일 삼국은 누구도 무시 못 할 올림픽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는 여자 골프를 제외하곤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자 골프는 신지애, 박인비, 리디아 고, 유소연, 박성현, 고진영까지 한국계 선수가 6명이나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태국 일본 중국의 상승세도 만만찮다. 반면 농구 배구 테니스 아이스하키 등의 세계화는 요원하다. 그나마 야구의 투수 부문은 경쟁력이 꽤 있다는 평가. 아시아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르긴 했지만 아직은 16강 진출이 최대 목표다.아시아 축구 역사를 연일 새로 쓰는 손흥민손흥민(30·토트넘)이 아시아 축구 역사를 연일 바꿔가고 있다. 8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선두 리버풀과의 원정경기(1-1 무승부)에서 20호 골을 터뜨리며 유럽 5대 리그(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1, 이탈리아 세리에A)를 통틀어 아시아 선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을 경신했다. 차범근이 레버쿠젠 소속이던 1985~86시즌 분데스리가에서 작성한 기록(17골)은 이미 넘어섰다. 유럽 전체 리그 아시아 선수 최다 골은 이란의 알리레자 자한바크시가 2017~18시즌 네덜란드 득점왕에 오를 때 넣은 21골. 현재 리그 득점 2위인 손흥민은 남은 3경기에서 모하메드 살라(22골·리버풀)를 넘어 최고의 영예에 도전한다. 손흥민은 국내 언론조차 놓치고 있지만 필드 골에선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필드 골이란 전체 골에서 페널티 킥(PK)으로 넣은 골을 제외한 수치. 그는 이번 시즌 1개의 PK(통산 90골 중 1골)도 없어 살라(17골+PK 5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15골+3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디오고 조타(15골+0골·리버풀), 사디오 마네(14골+0골·리버풀), 해리 케인(11골+2골·토트넘)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어시스트에서도 맹활약해 공동 10위(7개), 크로스 성공은 5위(182개), 손흥민은 부문별 기록에서도 프리미어리그 7시즌 가운데 커리어 하이를 기록 중이다. 32경기에 출전해 20골을 넣어 경기당 0.63골로 통산 0.39골을 크게 앞선다. 슛을 남발하지 않는 스타일인 그는 75개(11위)의 슛을 날렸고, 유효슛은 55%인 41개였다. 이 가운데 49%인 20골을 넣어 가성비 갑이었다. 통산 유효슛 성공률은 45%이며 이 중 40%가 네트를 흔들었다. 양 발을 모두 잘 쓰긴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 오른발 슛 성골률이 61%로 비중이 높았던 손흥민은 이번 시즌에는 왼발(12골·60%)을 더 많이 활용해 상대 수비수를 괴롭혔다. 경기당 패스 성공도 29개로 통산(25개)을 상회했다.손흥민 전에는 차범근이 있었다이로써 손흥민은 차범근과의 아시아 최고 공격수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서가는 느낌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사이에 두고 두 선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최소한 각종 기록에선 그렇다. 손흥민은 유럽 리그 통산 13시즌 동안 총 488경기에 출전해 177골 83어시스트를 기록, 차범근(11시즌 372경기 121골)을 능가했다. 차범근의 어시스트 기록은 당시 집계에선 찾기 힘들어 제외했다. 경기당 골은 손흥민이 0.36개, 차범근이 0.33개.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시즌 최다 골을 비롯해 70m 드리블로 만들어낸 아시아 선수 최초 올해의 골(2019~20시즌), 이달의 선수상 수상(3회)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차범근은 손흥민이 없는 우승 반지가 2개나 있다. 차범근은 정규 리그는 아니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컵대회에서 2번이나 우승했다. 1980년 결승 2차전에선 최고 수훈 선수에 선정됐다. 국가대표팀간 A매치에는 136경기에 나가 58골(공인은 130경기 56골)을 넣어 난공불락의 1위를 기록 중이다. 차범근은 국내에 프로 리그가 없던 시절 대학과 실업을 거쳐 26세인 1979년에야 독일에 진출했다. 손흥민에 비하면 기록을 쌓을 기회가 절대 부족했다. 차범근은 뛰어난 신체조건을 앞세워 전차군단으로 불리는 독일 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돌파력과 스피드를 자랑했다. 손흥민은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뛰어난 순발력과 전천후 공격수의 자질을 갖췄다. 두 선수가 소속된 리그는 당시와 현재 나란히 세계 최고 무대다. 또 한 명 주목해야 할 선수인 박지성은 미드필더로서 공격 포인트는 낮지만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 동안 중원을 지휘하는 사령관 역할을 했다. 해묵은 손·차·박 논쟁이 다시 나올 만하다.야구-男골프에선 日 선수 돋보여축구와는 달리 야구와 남자 골프에선 일본 선수의 약진이 돋보인다. 스즈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시애틀 입단 첫 해인 2001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상과 MVP를 석권했다. 2004년에는 262안타로 역대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골드글러브 10회 수상을 한 선수이기도 하다. 꽈배기 투구 폼이 트레이드 마크인 노모 히데오는 탈삼진왕 2회, 노히트노런 2회를 달성했다. 마쓰이 히데키는 명문 뉴욕 양키스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 4번 타자를 맡았다. 2009년에는 월드시리즈 MVP에 올랐다. 현역인 오타니 쇼헤이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 타자와 투수를 겸업하며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국내에는 박찬호, 김병현, 추신수, 류현진 등이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들만큼 전국구는 아니었다. 남자 골프는 최경주가 마쓰야마 히데키와 함께 8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 통산 최다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최경주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 랭킹 5위까지 올랐다. 마쓰야마의 최고 랭킹은 2위다. 일본계 미국 선수로는 콜린 모리카와가 현재 3위로 내려왔지만 한때 1위 문턱까지 갔다. 임성재는 이런 모리카와를 상대로 아시아 선수 최초 신인상을 수상했다. 농구에선 중국의 야오밍이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휴스턴에서 미국프로농구(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됐다. 여자 테니스에선 일본의 오사카 나오미가 지난해 세계 랭킹 1위를 찍었다. 오사카는 흑인 혼혈선수로 일본어를 거의 못해 자국에서조차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종목마다 아시아 선수의 진입 장벽은 큰 편차가 있다. 여러분은 과연 누가 세계의 벽을 허문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보이는지 궁금하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스포츠계 속설 하나. 구기종목 승률은 공 크기에 비례한다. 공이 큰 종목일수록 강팀이 쉽게 이기고, 작은 종목일수록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 과연 그럴까. ●프로야구 SSG는 올해 개막 10연승을 달렸다. 개막전부터 내리 10승을 한 것은 프로야구 41년 역사에서 2003년 삼성과 타이 기록이다. SSG는 2일 현재 승률도 0.760(19승 6패 1무)으로 단연 1위다. 시즌의 5분의 1밖에 돌지 않은 시점이긴 하지만 눈여겨 볼만하다. 역대 최고 승률은 1985년 삼성의 0.706. 연간 리그를 치르는 국내 4대 프로 종목 가운데 공이 가장 작은 야구에서 정규 시즌 우승 승률은 통상 6할 초반 대에서 결정된다. 특히 지난해 우승팀 KT의 승률은 0.563이었다. KT는 삼성과 동률을 이뤄 사상 최초로 시즌 145번째 엑스트라 경기를 치르고야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런 야구는 포스트 시즌이 되면 이변이 확 줄어든다. KT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역시 사상 최초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치르고 올라온 4위 두산에 한 순간도 리드를 내주지 않은 채 4연승했다. 1차전 7회 1-1 동점이 가장 큰 위기였다. 4위나 5위 팀부터 계단식으로 올라오는 포스트 시즌을 치른 31년간 한국시리즈 4전승은 7번 나왔다. 모두 정규시즌 1위 팀의 몫이었다. 반면 1위 팀이 우승컵을 놓친 것은 5번에 불과했다. 1위 팀의 4전승 우승이 역전 드라마보다 쉬웠다는 이상한 결론이다.●31년간 26번 우승한 정규 시즌 1위 팀의 한국시리즈 승률은 0.665(111승 5무 56패)에 이른다. 우승을 놓친 5시즌은 제외한 수치다. 이는 1위 팀이 정규 시즌에서 거둔 승률 0.615(2473승 79무 1528패)를 제법 웃돈다. 특히 1위 팀은 한국시리즈 상대와의 정규 시즌 맞대결에선 승률이 0.547(294승 15무 243패)에 불과했지만 가을잔치에선 펄펄 날았다. 반면 그동안 준플레이오프에선 상위 팀이 올라간 경우가 30번 중 16번, 플레이오프에선 31번 중 16번에 그쳤다. 5할을 겨우 웃도는 수치다. 이를 두고 야구계에선 계단식 포스트시즌의 폐해를 지적하곤 한다. 지난해 두산은 키움과 와일드카드 2경기, LG와 준플레이오프 3경기, 삼성과 플레이오프 2경기 등 7경기를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 두산이 우승하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메이저리그에선 와일드카드 제도가 도입된 1995년 이후 13개 팀이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7개 팀이 우승컵을 안았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확률이다. 미국처럼 양대 리그제에선 와일드카드 팀은 결정전만 1경기 더 치르면 되고, 8강 토너먼트부터는 공평한 조건에서 맞붙기 때문이다.●가장 공이 큰 농구는 1위와 꼴찌의 승률 편차가 역시 크다. 지난달 정규 시즌이 끝난 남자프로농구는 1위 서울 SK가 승률 0.741(40승 14패)인 반면 10위 서울 삼성은 0.167(9승 45패)이다. 여자는 1위 KB스타즈가 0.833(25승 5패), 6위 하나원큐가 0.167(5승 25패)로 더 벌어진다. 농구는 야구와 달리 마치 양대리그제인 것처럼 포스트시즌은 남자가 6강 플레이오프, 여자가 4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2일부터 서울 SK와 3위 안양 KGC가 챔피언결정전을 벌이는 남자의 경우 그동안 24번의 포스트시즌이 열렸는데 정규시즌 1위 팀이 우승한 것은 12번으로 딱 절반이었다. 이미 KB스타즈가 통합 우승컵을 안은 여자는 30번의 포스트 시즌(2007년까지 겨울 여름리그가 있었다)에서 정규 시즌 1위 팀은 22번 우승했다. 한때 최강으로 군림했던 신한은행이 6시즌 연속, 우리은행이 5시즌 연속 통합 우승을 한 효과다. 이변이 별로 없을 것 같은 농구에서 최종 우승팀이 바뀌는 역전 드라마가 속출하자 이번엔 1위 팀이 어드밴티지가 좀 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남자 농구는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르니 1위와 2위 팀은 4강에 선착해 있긴 하다. ●축구와 배구는 어떨까. 여러분께서 짐작한 결과와 엇비슷하다. 축구는 시즌 초이긴 하지만 울산이 승점 23점(7승 2무)으로 1위, 성남이 5점(1승 2무 6패)으로 12위다. 야구의 승률로 따지면 울산은 1.000이고, 성남은 0.143이다. 지난해까지 사상 최초로 5년 연속 우승한 전북은 14점(4승 2무 3패)으로 4위에 머물러 있다. 전북은 지난해 76점(22승 10무 6패), 승률 0.786으로 우승했다. 축구는 무승부가 워낙 잦아 승률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또 1부와 2부 리그 승강제 플레이오프는 있지만 2012년부터 포스트 시즌 없이 정규 시즌만으로 우승팀을 가리는 전통을 고수한다. 배구는 이달 남자부 통합 챔피언에 오른 대한항공이 승률 0.667(24승 12패), 여자부 1위 현대건설은 0.903(28승 3패)이다. 여자부는 올해 현대건설이 워낙 독주했다. 지난해 1위 GS칼텍스는 0.667(20승 10패)이었다. 배구는 야구와 같은 계단식 포스트 시즌을 치른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선 양대 리그가 정착된 1901년 이후 정규 시즌 최고 승률은 1906년 시카고 컵스의 0.763이다. 아이스하키는 82경기 체제가 정착된 이후 1995∼1996시즌 디트로이트가 세운 0.756이다. 이에 비해 농구는 1995∼1996시즌 시카고 불스가 세운 0.878. 미식축구는 경기 수가 적긴 하지만 2007시즌 뉴잉글랜드가 16전 전승을 거뒀다. ●개인 종목은 어떨까. 테니스와 골프를 비교하면 쉽다.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은 로저 페데러(41·스위스),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명의 선수로 꼽힌다. 셋은 여전히 현역으로 이들이 동시대에 경쟁한 것은 테니스계의 축복이다. 클레이코트에 특화돼 있고, 수비형 선수로 불리는 나달은 그동안 2인자 이미지가 강했지만 1월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그랜드슬램대회 21회 우승, 통산 승률 0.833(1048승 210패), 메이저 승률 0.879(298승 41패) 등 여러 부문에서 라이벌들을 간발의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물론 이번 호주오픈에는 2020년 US오픈 실격패에 이어 각종 구설수에 오르며 바람 잘 날 없었던 현 세계 랭킹 1위 조코비치가 백신 거부로 불참하긴 했다. 어찌됐든 나달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8할대 승률과 3할대 우승 확률을 장착한 두 라이벌과 늘 맞닥뜨리면서도 20년간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테니스계에선 한때 이들 트리오가 동시에 출전하면 우승자는 무조건 셋 중에서 나온다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나달은 클레이코트인 프랑스오픈에선 2005년부터 2020년까지 16년간 13번이나 우승했다. 클레이코트 통산 승률은 0.915(464승 43패)에 이른다. ●골프는 테니스보다 공이 작은 만큼 우승이 녹록치 않다. 타이거 우즈(47·미국) 때문에 착시 현상이 생겨서 그렇지 우승 확률 10%를 넘긴 선수는 역대 5명밖에 안 된다. 우즈도 최근 0.222(369개 대회 82승)까지 내려왔다. 2013년까지 승률은 0.256이었다. 나머지 4명은 벤 호건(64승·0.213), 바이런 넬슨(52승·0.181), 샘 스니드(82승·0.140), 잭 니클라우스(73승·0.123) 순이다. 테니스와 달리 이들은 모두 왕년의 스타들이다. 현역 2위는 로리 맥킬로이(20승·0.095). 11연승 신기록을 갖고 있는 스니드도, 메이저 최다승(18승)의 니클라우스도 우즈에겐 안 된다는 강력한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하나금융그룹은 스포츠계에서도 큰손이다. 스포츠를 통한 고객과의 만남과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을 추구한다. 프로 종목인 축구 골프와 여자농구 테니스는 물론이고 비인기 종목인 루지 롤러스케이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후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때는 공식후원 은행을 맡아 국가 스포츠 행사를 지원했다. 스포츠 저변 확대와 사회공헌 마케팅의 일환이다.축구는 하나다하나금융스포단이 가장 공을 들여온 스포츠는 축구다. 1998년부터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후원 은행을 맡았다. 대표팀의 A매치가 열리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금융그룹이 함께했다. 대한축구협회가 개최하는 FA컵 타이틀 스폰서이기도 하다. 프로와 아마가 모두 모여 정상을 가리는 FA컵의 공식 명칭은 하나원큐 FA컵이다.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하는 K리그 타이틀 스폰서도 2017년부터 맡고 있다. 하나원큐 K리그다. 이로써 하나금융그룹은 프로와 아마를 아우르는 축구 통합 챔피언이 됐다. 이와 함께 그린킥오프, 모두의 축구장, 모두의 K리그 등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축덕카드 등 공동 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2020년에는 시민구단으로 운영돼온 대전 시티즌을 인수해 대전 하나시티즌으로 재창단 했다. 오랫동안 내홍을 겪으며 2부 리그에서도 하위권에 머물던 대전은 단기간에 강팀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강원과의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을 1-0으로 이겼지만 2차전에서 1-4로 져 아쉽게 승격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팬들로부터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받았다.월드스타 손흥민(토트넘)을 광고 모델로 발탁해 성공을 거뒀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글로벌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축구는 하나다’라는 슬로건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돋보이는 골프 마케팅하나금융골프단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와 국내 남녀 스타, 유망주로 구성된 18명의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 ‘천재 소녀’로 불렸던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1월 계약 후 2주 만에 게인브리지 대회에서 우승해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했다. 지난해 이민지(호주)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패티 타와타나낏(태국)은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해 메이저 퀸에 올랐다. 타와타나낏은 300야드를 쉽게 넘기는 시원한 장타를 앞세워 신인왕과 안니카 메이저 어워드를 석권했다. 지난해 에비앙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친 신예 노예림(미국)도 하나금융 마크를 달고 있다. 될성부른 나무를 떡잎 시절부터 알아보는 스카우트에 능하다는 게 골프계의 평가다.하나금융그룹은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3년간 LPGA와 해온 스폰서십을 끝냈다. 그 대신 2019년부터 국내여자프로골프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을 개최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메이저급 대회로 아시아 골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대회다. 남자프로골프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은 한중일 3개국 스타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다. 한중 투어 KEB외환은행 인비테이셔널을 계승한 대회로 2018년 일본 투어가 합류하면서 3개국 대회로 확대됐다.비인기 종목도 하나가 함께 한다2012년 9월 여자프로농구 신세계를 인수한 부천 하나원큐는 올해 리그 하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신임 사령탑 김도완 감독을 중심으로 명예 회복을 벼르고 있다. 지난해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팀에는 신지현이 가드로 발탁돼 활약했다.테니스는 2017년부터 국내 유일의 세계여자테니스협회(WTA) 투어이자 내셔널 타이틀이 걸린 메이저 대회인 하나은행 코리아오픈을 개최하고 있다. 생활 스포츠로서 테니스의 저변 확대를 위한 다양한 마케팅도 진행하고 있다.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후원했던 하나금융그룹은 장애인 체육에 대한 지원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해 자카르타 아시아경기에 이어 올해 베이징 겨울패럴림픽에 한국 대표팀 공식후원 은행으로 참여했다. 장애인체육회와 경기단체(노르딕, 아이스하키, 컬링, 스키) 후원에도 적극적이다. 4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하나TV 유튜브 등을 통해 대회 홍보와 선수 소개를 하는 등 장애인 체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하나금융그룹은 2010년부터 대한롤러경기연맹 후원사를 맡아 매년 전국 규모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어린이와 함께 하는 인라인스케이팅 교실을 열어 건전한 여가 문화를 만드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인 우효숙 등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강사로 나서 지도한다. 루지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원도 계속하고 있다.하나금융그룹은 “스포츠를 매개로 한 고객과의 소통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 하반기 카타르 월드컵 등 국내외 스포츠 빅 이벤트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을 벌여 코로나로 침체된 문화 체육을 활성화시키고, 국가대표 금융그룹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비인기 종목과 장애인 체육 후원도 계속해 스포츠로 하나 되는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취임 한 달이 안 된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최초 타이틀을 여러 개 갖고 있다. 선수 생활은 짧았지만 화려했다. 1972년 고려대 최초의 1학년 4번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부상으로 일찍 선수 생활을 접은 뒤에는 1978년 채널A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동아방송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MBC에서 국내 최초의 연봉제 직업 해설가가 됐다. 작고한 KBS 하일성이 구수한 입담을 자랑했다면 그는 현역 출신답게 야구 이론과 현장 취재가 곁들여진 논리적인 해설로 인기를 모았다. 이 덕분인지 1985년 말 34세의 나이에 코치도 거치지 않고 역대 최연소 프로야구 감독이 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청보에서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15승 2무 40패의 흑역사를 남긴 채 퇴장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던 그는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스포츠 음성 정보 서비스 업체를 창업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경기가 다 끝난 심야에 예쁜 목소리의 이 업체 여직원들로부터 현장 취재 이모저모를 물어보는 전화를 받는 게 즐거움이었다.▶야구 관계자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상 최초의 야구인 출신 허 총재는 기자와도 인연이 깊다. 주니어 시절엔 신문에 실을 그의 관전평을 정리하는 담당이었다. 사실 다른 해설가들과는 달리 그의 글은 손 볼 게 거의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마포의 한 아파트 바로 옆 동 이웃이었던 그는 같은 라인에 살던 배우 김혜수 씨와의 친분을 자랑하곤 했다. 괴력의 강타자답게 그의 샌드웨지는 150야드를 조준했다. 말(說)이란 게 하다 보니 또 야생 말(馬)처럼 옆으로 샜다. 각설하고 허 총재가 대단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맡던 야구 대통령에 어떻게 올랐는지 기자는 모른다. 부산 출신에 경남고 고려대 한일은행 인맥이면 야구계에서 최고이긴 하다. 그는 대한민국 최장수 해설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속사정이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야구계가 위기를 느꼈고, 변화를 바랬다는 점이다. 이게 허구연을 불러낸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허 총재는 그에게 부여된 실무형 타이틀에 맞게 20일 남짓한 기간에 벌써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그는 취임사에선 4불(음주운전, 승부조작, 성범죄, 약물복용)을 강조했다. 강정호의 국내 복귀를 반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간접 표명한 것일 수도 있어 키움과의 법적 분쟁이 예상되기도 한다. 취임 기자회견에선 대전 베이스볼 드림파크 신축을 백지화하려는 지역 정치인들을 향해 “소중함을 모르면 구단이 떠날 수도 있다”고 몰아붙였다. 그러자 일부 지자체장 후보와 지역 언론, 팬들 사이에선 반발이 나왔다. 이에 한화는 박찬혁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연고지 이전 계획은 없다”고 무마에 나서기도 했다. 허 총재는 잠실 복합 돔구장 건축을 제안해 서울시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서울시는 원래 한강변에 3만3000석 규모의 개방형 야구장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부지가 협소하다는 지적이 있던 터라 현 야구장 위치에 돔구장 건립을 검토하기로 했다. 내년 하반기 착공 목표다. 허 총재는 또 자신이 1열 직관한 경기에서 한 심판이 오심을 하자 허운 심판위원장을 통해 바로 2군으로 강등시키는 중징계를 내렸다. 너무 가혹하다는 동정론과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는 법치 실현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왔다.▶허 총재는 여러 별명 가운데 ‘허프라’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그의 홈페이지 타이틀은 ‘허구연의 허프라’이다. 야구 인프라를 개척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는 허구연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달아놓았다. 이를 보면 취임 이후 그가 일부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소 거칠게 가속 페달을 밟은 일들이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2011년 초 KBO 야구발전실행위원회가 내놓은 프로야구 1000만 관중 시대 예측 보고서의 작성 책임자 역시 당시 허구연 위원장이었다. 이 보고서는 통계학적 시계열 분석을 활용하고, 미국 일본 등 야구 선진국의 좌석 점유율과 국내 프로야구의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해 가까운 미래에 1000만 관중 달성을 낙관했다. 그러나 이 장밋빛 보고서는 기자가 소속된 동아일보 등 일부를 제외하곤 주요 언론에서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시 8개 구단에서 팀당 133경기씩 총 532경기를 치르는 제도 하에선 전 경기가 매진돼야 1050만 명의 관중 동원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결론부터 말하면 이 보고서는 이후 두 번의 대반전을 겪게 된다. 첫 번째는 보고서가 예상한 시계열 분석(구단 수 증감과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제외한 통계학적 분석)을 무려 10년 이상 앞당기는 프로야구의 전성기가 바로 도래했다. 프로야구는 이듬해인 2012년 경기당 평균 관중 1만3451명의 사상 최고치를 찍게 된다. 이는 좌석 점유율로 따지면 68.1%에 이른다.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 하면 시장 규모와 야구장 서비스의 질에서 비교가 안 되는 미국과 일본이 평균 70% 수준이다. 양국은 홈팀이 입장 수입을 방문팀과 나눠 갖는 한국과 달라서 관중 부풀리기가 일부 있을 수 있어 이미 우리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평가였다. 또 좌석 점유율이 100%에 육박하는 보스턴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한신 요미우리 등이 있어 전반적인 열기에선 한국이 양국을 앞섰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이후 2013년에 NC가, 2015년에 KT가 창단하면서 대망의 10구단 체제가 완성됐다. 경기 수는 팀당 144경기씩 총 720경기로 늘어났다. 신생구단이 생기면 평균 관중은 한동안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프로야구는 양적 성장을 계속해 2017년에 840만 명(평균 1만1668명)으로 총 관중 수에서 정점을 찍었다.▶그러나 호사다마였을까. 2018년 807만 명, 2019년 728만 명으로 주춤했던 총 관중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2020년 32만 명(평균 456명), 2021년 122만 명(평균 1706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 시대 통계는 제외하더라도 2019년 한화 KT 키움은 평균 관중이 8000명도 안 됐다. 특히 한화는 팬들의 열기는 높지만 낙후된 대전구장과 계속된 하위권 성적이 관중들을 떠나게 했다. 1964년 개장한 대전구장은 국내 최고령이고, 유일하게 1만5000석 아래다. 결국 11년 전 보고서는 10년 이상 빨리 성장했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10구단 체제가 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희한하게도 이 낡은 보고서에 이미 답이 나와 있다. 보고서에는 좌석 점유율이 55%만 돼도 대구 광주 대전 목동 구장의 좌석 수가 2만5000석 이상이면 1034만 명 동원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결국 해답은 야구 인프라 확충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심판은 공정을 일으켜 세우고, 선수와 구단은 신뢰를 회복하는 게 코로나에 지친 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이끄는 촉매가 될 것이다. 천만 관중 시대를 여는 것은 야구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가 회생할 유일한 해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