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폭망 분위기다.”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여권 인사의 내년 4월 총선 여당 전망이다. 그는 총선 승패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어야 수도권에서 어느 정도 승부를 펼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30%대로는 대구·경북(TK)과 서울 강남 3구를 제외하고는 후보들이 아무리 개인기를 발휘해 봐야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12월 둘째 주 31%다. 오랜 기간 31∼36% 박스권에 갇혀 있다. 위기감을 느낀 여권이 판을 바꿔 보겠다고 선택한 것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카드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앞에 놓인 여러 과제 중 하나는 인적 쇄신이다.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키워드는 험지 출마와 불출마를 내세운 ‘희생’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한 인적 쇄신으로 기득권 정당 이미지를 벗어나는 것이다. 인적 쇄신은 여당의 절대 우세 지역이라 해도 제 역할을 못하는 의원들은 과감히 물갈이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이들이 험지로 나가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자격 미달 의원들 물갈이는 헌신이나 희생이 아니지만 험지 출마는 헌신과 희생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 결단은 현 정부나 여당에서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총선용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으로 출마에 나선 장관과 대통령실 참모들의 모습은 여당의 위기감과는 딴판이라는 게 여당 다수 인사들의 지적이다. 임기가 남았음에도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출마 지역으로 서울 서초을, 경기 성남 분당을을 거론하다가 지역구 쇼핑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인사의 말이다. “그들은 장관, 참모를 하며 권력을 누린 것 아니냐. 그런 이들이 윤 대통령이 준 직책으로 경쟁력을 갖췄으면 그 경쟁력을 써먹을 험지에 가야지, 서울 강남갑 성남 분당을 같은 양지만 고집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이 인사는 교체 장관 모두 총선 출마 대상인이었던 ‘총선용 개각’ 그 자체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장관, 참모들이 윤심을 업은 것처럼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원하는 곳에 공천을 줘야 하는 ‘윤심 공천 약속’을 받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인사는 “이들이 바로 이 정부 들어 새 권력의 혜택을 누린 새로운 윤핵관 아닌가. 이들이 희생하고 헌신해 험지에 출마해야 새 바람이 분다”고 했다. 그는 “호남 가라는 게 아니다. 장관-참모로 일하며 얻은 경쟁력을 만만치 않은 곳에서 발휘하며 이겨 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한동훈 비대위가 장관-참모 출신에게 쉬운 지역구를 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권을 떠나 총선에 나가겠다는 장관-참모 출신들은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보여야 한다. 친윤 핵심들도 방향성은 옳았다고 한 인요한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 중 하나도 내년 총선 때 모든 지역구에서 전략공천을 원천 배제하고 대통령실 출신도 예외 없이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동훈의 여당이 ‘용산 낙하산 공천’ 논란을 어떻게 돌파해 공정한 공천이라는 숙제를 풀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11월 2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엑스포 총회 표결 결과가 자신이 보고받아 왔던 판세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윤 대통령이 직접 각국 정상들에게 전화로 유치를 호소했던 걸 생각하면 허탈감이 컸을 것이다. 그날 오전 윤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가 담긴 담화문을 발표했다. “제 부덕의 소치” “예측이 많이 빗나갔다”는 이례적 표현들이 담겼다. 국정의 총책임자인 윤 대통령마저 부산이 경쟁 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열세라는 걸 투표 날까지 몰랐다는 자괴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유치전 막판 1차 투표에서 부산을 지지하겠다고 한 국가가 50개국 이상이라는 외교부의 분석이 대통령실에 보고됐다. 정부는 사우디가 물량 공세를 펼친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 가운데 부동표가 상당수 있다고 판단했다. 잘못된 판세 판단은 2차 결선 투표에서 “우리를 찍어 달라”는 잘못된 전략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실은 각국의 투표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며 국가정보원의 해외 정보 역량 부실부터 문책할 듯하다. 해외 정보 파트의 대대적 인사 조치가 예상된다. 엑스포 유치 기간 김규현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권춘택 전 국정원 1차장이 인사 문제로 파벌 싸움을 벌였다는 점을 대통령실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정원이나 외교부 등 실무 부처에서 진작 열세라는 정보와 판단이 있었는데도 이런 보고들이 대통령 귀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산이 리야드에 대패할 수 있다는 판세 분석은 이미 9월부터 나왔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얘기다. 실무자들은 “근소한 열세가 아니라 최소 수십 표 차 대패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엑스포 유치가 힘들다”는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 재외공관의 분석이 외교부 본부로 보고됐다고 한다. 정부 내 엑스포 담당자들은 유치 실패가 예상되는 자리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2030년이 아니라 2035년 엑스포 유치를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었으니 내년에 다시 유치를 신청하면 된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이번 유치는 어렵다는 기류가 있었다. 아프리카 국가들 정상 측에 유치를 설득했지만 사우디로부터 지원받은 자금 때문에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는 얘기도 들렸다. 여권 관계자는 “실무 부처의 비관적 판세가 대통령실에 들어가도 윤 대통령에게는 이런 상황이 보고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은 사우디보다 1년 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천문학적 오일머니를 내세운 사우디의 물량 공세에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평창 겨울올림픽도 2전 3기 끝에 유치에 성공했다. 하지만 유치 실패 과정에서 드러난 정보 역량, 외교력 부실을 넘어 실상이 윤 대통령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새만금 잼버리의 총체적 준비 부실도 대통령실은 파악하지 못했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실상 대신 ‘장밋빛 보고’가 반복되고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대통령실 개편과 개각은 새 국정 동력을 얻기 위한 쇄신보다 내년 4월 총선에 장관과 참모들이 대거 출마하면서 이뤄진 총선용이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며 근본적 인적쇄신을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막말로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고 오해도 많이 받고 망가질 겁니다. 어느 언론을 보니 저를 엄청 씹던데 대츠 오케이(That’s okay). 나 하나 망가지고 한국 정치에 긍정적인 변화 있으면 좋은 겁니다.” 지난달 27일 본보 신나리 기자가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인터뷰했다. 그가 위원장에 임명된 지 4일 만이었다. 그날 인터뷰 전문을 보며 이 대목이 눈에 띄었다. 그가 두 달을 얘기한 건 혁신위 임기를 가리킨 것이다. 그는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라고 했다. “(나는 혁신위가) 뭘 주문하면 그걸 전달하는 도구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2주가 지난 지금 인 위원장은 기존 정치인과 다른 화법과 행보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인 위원장을 아는 인사에게 그가 어떤 인물인지 물었다.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아요. 정해진 형식보다 자신이 원하는 실질적인 대답을 듣기를 원하는 아주 직선적인 스타일입니다.” 그는 “웬만한 정치인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라며 “상대를 격의 없이 부둥켜안는 포용력이 있다”고도 했다. 이 인사는 인 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그가 정치 경력이 없는 의사라는 면에서만 생각하면 그의 발언에 호응을 받지 못할 부분이 있고 비토 세력이 많겠지만 정치가 바뀌길 원하는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는 좋은 실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인 위원장의 정치적 직설적 화법과 감각은 여권의 판을 흔들고 있다. 위원장 임명 직후 통합을 얘기한 그는 곧바로 희생을 화두로 들고나왔다. 그가 내놓은 친윤·당 지도부·영남 중진의 불출마, 수도권 험지 출마는 여당 공천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그는 “과거엔 정치인이 희생한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위해) 희생했다. 그걸 엎자는 것이다. 국민이 희생을 그만하고 정치인이 희생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 입장에선 불출마, 수도권 험지 출마론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이지만 국민 눈높이에선 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정말 자신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가늠할 키워드인 것이다. 생각이 달라도 상대를 미워하지 말자는 인 위원장은 무작정 이준석 전 대표를 찾아갔다. 영어를 쓰며 인 위원장을 거부한 이 전 대표를 ‘젊은 꼰대’로 보이게 만들었다. 당 지도부와 갈등하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났다. 인 위원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가면 갈수록 우리 당(국민의힘) 안에서 곤혹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20%는 꼴통 보수고 20%는 꼴통 좌익”이라며 “60%가 선거의 결론을 낸다”는 대목은 표현은 거칠었지만 어떻게 해야 유권자의 마음을 살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인 위원장은 “완전히 망가지고 멍들어도 일만 잘하면 된다. (혁신위가 끝난 뒤) 뒷방에 앉아서 TV를 보면서 ‘참 보람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갑 출마가 거론된 데 대해서는 “나는 내려놓았다. 서대문갑 유혹 받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없어져 버렸다. (혁신위) 끝나는 날까지 올인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정치와 다른 화법과 스타일만으로 성공할 수는 없다. 다음 달 혁신위가 일을 마무리할 때 인 위원장이 던져 놓은 각종 화두가 말만으로 그친다면 그 역시 실패하는 것이다. 그의 행보가 ‘정치인 인요한’의 몸값을 높이는 데만 쓰이지 않기를 바란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윤석열 대통령 집권 5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25일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첫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시정연설에 앞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장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 여당 지도부와 환담할 때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자리는 비어 있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당시 이 대표가 이 환담 자리에 참석하는 것으로 얘기가 됐었다”고 했다. 이 환담 없이 곧바로 본회의장으로 가 시정연설을 할 수도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차를 마시며 얘기할 기회로 봤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 대표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전 윤 대통령이 여야 극단 대치를 풀기 위해 이 대표와 만날 생각이 있는지 물었을 때 나온 얘기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만나 협치를 논할 생각이 있지만 이 대표 측이 소극적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인식이었다. 지난해 시정연설 보이콧 이후 1년간 대통령실·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소통의 정치력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 대표의 민주당은 과반 의석수에 기대 논란의 법안들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은 “거야의 폭주”라는 비판 외에 무기력했고 윤 대통령은 거부권에 의지했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까지 거론한 윤 대통령의 이념 발언은 대통령실과 여당 내부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여당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가 여권을 흔들자 윤 대통령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이념은 충분히 언급했으니 이제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고 건의했다고 하다. 내년 4월 총선도 결국 윤 대통령 얼굴로 치러야 한다는 여권의 절박감이 반영됐을 것이다. 민생 현장으로 가겠다는 윤 대통령의 얘기도 떠난 중도층 민심을 잡으려면 경제와 민생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는 치명적이다. 보통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나 같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소통하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참모와 외부의 조언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하고 국민에게 지며 야당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변화했다”고 느낄 것이다. 이 대표는 검찰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보궐선거 승리로 기세를 잡았지만 그 역시 변하지 않으면 내년 총선을 장담하기 어렵다. 사법 리스크가 여전한 것도 걸림돌이지만 더 큰 건 정치 리스크다. 민주당 내엔 그가 수평적 소통이 부족하고 행정가 시절의 상명하복식 수직적 소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강경 지지층에 기댄 채 정치다운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중진 의원들의 비판이 심상치 않다. 소통과 통합 측면에서 그도 낙제점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23일 당무에 복귀한다. 현장을 찾아 최고위원회를 열고 민생과 통합 메시지를 내겠다는 얘기가 들리는 것도 변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테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중 누가 얼마나 먼저 빨리 크게 변하느냐가 중도층을 움직이고 총선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31일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만날 수 있지만 여야 대표와 함께 만나는 형식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시정연설 전 환담은 대통령과 야당 대표 회동의 가장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누가 먼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지 유권자들은 지켜볼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지금은 탈냉전 시대가 아니다. (신)냉전 시대다. 이념이 필요 없는 탈냉전 시대라는 사고가 오히려 구태의연하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이념 드라이브’에 대해 야권이 “냉전적 사고”라고 비판한 건 잘못이라며 강조한 말이다.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체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경쟁이 바로 냉전의 핵심이라는 게 김 원장의 진단이다. 전략적 체제 경쟁은 가치와 체제, 군사, 경제 네트워크의 3대 경쟁이다. 중국은 지난해 20차 당대회에서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중화민족 부흥”을 목표로 제시했다. 미국 등 민주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체제 경쟁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가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50년경에는 사회주의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 중국몽이다. 한중 간 경제 협력 속에서도 체제 이념 문제를 둘러싼 대립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미국 중심의 안보 네트워크에 적극 동참하지 않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첨단 기술의 경제 네트워크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경고다. 좋든 싫든 이런 국제 현실을 인정하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세계에 분명히 밝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그것이 국익이다. 지금 상황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가치와 철학의 부재를 뜻한다”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동북아 질서가 신냉전의 한복판임을 보여준다. 북한을 수차례 방문하며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 온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로버트 L 칼린 연구원과 함께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글 한 편을 기고했다. 북-러 정상회담이 미국 대북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회담으로 김정은이 “1990∼2019년 30년간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을 포기했다”고 썼다. 김정은과 푸틴은 군사협력을 전방위로 전개할 계획임을 숨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가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선택은 단순히 상황이 절박해서가 아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지원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북한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게 두 사람의 진단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7월 동해 북방한계선(NLL) 바로 위쪽에서 사상 처음 연합 해상훈련을 했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굉장히 주목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한반도가 신냉전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 권위주의 체제인지 따지는 것은 신냉전 질서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국가가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 중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 현실의 엄중함을 짚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이념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언어가 그런 현실을 진단해 국가 방향을 제시하는 걸 넘어 정치적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외연 확장을 뜻하는 ‘산토끼’보다 전통적 보수층인 ‘집토끼’를 잡으라고 했다는 말도 들린다. 많은 참모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과 싸우는 전사가 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윤 대통령의 이념론이 대통령과 이념적으로 한 몸이 된 ‘내 편의 전사’만 키우려는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신냉전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헤쳐 나갈 도구로 사용하기를 바란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최근 주말의 일이다. 통일기반 조성 업무를 담당하는 통일부 과장이 문승현 차관 방을 찾았다. 통일기반 조성 관련 구상을 담은 두꺼운 보고서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 과장은 문 차관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고 논의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2시간여 보고서 내용을 토론했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로 일하지 않는 공무원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다. 이런 공무원 조직으로 나라 망한다는 자조까지 고위 당국자 사이에서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주말에도 나와 자기 업무에 적극 임하는 실무급 공무원들이 있다. 폐지론에 이어 인력 감축과 조직 개편으로 뒤숭숭한 통일부 소속이다. 통일부는 정원의 13%에 해당하는 81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 중 일부는 다른 부처로 갈 기회가 있다는 이직 권고를 듣는다. 일부는 교육을 가고 파견을 간다. 대기발령 상태인 공무원도 있다. 남북 교류협력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들은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합됐다. 교류협력이라는 말은 국장급 이상 부서에서 사라졌다. 그동안도 가장 약한 부처라는 말을 들었다. 정권마다 부침이 심했다. 통일부 일부 공무원들 사이에선 국가공무원법상 징계 시효가 3년이라는 점이 회자된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때 일로 징계 대상에 올라 조사받는 공무원들이 많다 보니 나온 말이다. 3년 이전의 일은 징계받지 않으니 뭐라도 하려면 정권 초에 하고 그다음부터는 복지부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다. 사기가 크게 떨어진 통일부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보통 공무원들은 기피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준비해 차관과 토론하는 공무원이 통일부에 있다. 많은 이들이 통일부 업무의 전부가 남북 교류협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교류협력은 통일부 업무의 20∼30%라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준비하고 대한민국에 이런 권리가 있다는 걸 대내외에 적극 알리는 게 통일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했다. 통일부는 북한 영토에까지 대한민국의 연고권이 있음을 알리는 가장 핵심적인 부처다. 그것이 통일부 존재의 이유다. 그런데도 이를 잘 모른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남북 교류협력은 남북이 국가와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민족 간 특수관계라는 점을 근거로 한다.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교류협력 자체가 목적이 되고 이권으로 문제가 생겼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2019년 북한에 소금을 지원하겠다며 5억 원 보조금을 받았는데 정작 위탁을 맡긴 업체는 소금을 구매하지 않았다. 지금 통일부가 위기라지만 오히려 특수관계인 북한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제대로 된 교류협력 방안을 연구할 기회다. 북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새로운 통일 전략을 수립할 기회다. 지금까지 통일부에서 대북-통일 장기 전략의 기틀이 될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온 적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1946년 미국 외교관이었던 조지 케넌은 8000자나 되는 장문의 전문(롱 텔레그램)을 본국에 보냈다. 소련 동향을 심층 분석한 그 보고서는 미국의 소련 봉쇄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한 봉쇄 정책을 염두에 두라는 게 아니다. 어떤 방향이든 통일부가 한국 정부의 장기적인 대북-통일 전략의 기반을 만들 롱 텔레그램을 작성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움직일 때 통일부는 강한 부처로 거듭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왜 우리는 몰랐나.”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개막 전까지 “총체적 부실 상황을 대통령실 정부가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파행의 1차적 책임은 전라북도다. 전북도지사가 잼버리 집행위원장이다. 부지 선정부터 잘못됐다. 나무도 한 그루 없는 진흙탕에 야영장이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도 책임이 크다. 기반시설 조성에 손을 놓았다. 2017년 8월 새만금이 개최지로 선정된 뒤 6년 시간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잼버리 관련 공사는 2021년 11월에야 시작됐다. 야영장 내 샤워장과 급수대 설치 공사는 올해 3월에야 시작됐다. 국회에서 지난해 11월까지 3차례나 예산 집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누구도 새겨듣지 않았다. “행사 개최가 1년도 남지 않은 2022년 9월 말까지도 기반시설 설치가 계속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지적을 무시했다. 잼버리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아직 예산 집행률조차 정확히 집계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을 다 세워놓았다고 주장했다. 개막하고 보니 샤워장 화장실 급수대 등 필수 위생시설이 태부족했다. 나무도 없는 야영장 부지는 지나치게 넓었다. 캠프와 캠프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어 필수물자 조달도 어려웠다. 조직위원회는 어떤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허둥댔다. 조직위는 아직 실제 입국한 잼버리 참가자가 몇 명인지도 정확히 모른다. 참가 신청자 자료만 가지고 있어 숙소를 분산 배정할 때 문제가 생겼다. 배정해 놓은 숙소에 대원들이 오지 않았다. 실제론 입국하지 않았거나 이미 한국을 떠난 대원들에게 숙소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무능력했다.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직위 공동위원장 시스템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체제였다. 조직위는 와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공무원들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버텨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대통령실 주도로 새만금 야영장 화장실 문제부터 숙소 분산까지 수습에 나선 뒤에야 혼란이 어느 정도 해결되기 시작했다. 여가부와 전북도의 부실 책임을 묻는 동시에 이런 황당한 부실 준비 실상이 개막 전까지 윤석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뒤늦게 임시방편 대책에 나선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장관들이 대통령 듣기 좋은 얘기만 하고 실상을 보고하지 않은 것 아닌가. 폭염 대책 부실에 대한 우려가 컸는데도 그런 민심은 윤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지금 대통령실과 정부에 진짜 민심과 여론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기능이 마비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윤 대통령은 비위나 정보 캐는 걸 대통령실에서 하지 않겠다며 민정수석실을 없앴다. 민정수석실의 또 다른 주요 임무는 국민 여론과 민심 동향 파악이다. 민정수석실 폐지로 국민 여론을 듣는 이런 기능까지 사라져 대통령실이 민심과 괴리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잼버리 부실 준비 실상을 미리 알지 못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에서 벗어나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열었다. 잼버리 사태는 대통령실이 ‘좋은 얘기만 전하는 장밋빛 보고’가 아니라 진짜 민심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경고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2017년 10월 31일. 문재인 정부와 중국이 사드 3불을 거론하며 한중 관계 개선에 합의한다. “사드 문제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도록 이번 합의로) 봉인됐다고 보면 된다.” 그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이후 당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우리는 (사드는) 일단락된 것으로 이해한다”고 입을 맞춘 듯 말한다. 그해 11월 13일. 일이 터진다. 리커창 당시 중국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드 문제의 단계적(階段性) 처리에 한중이 합의했다”고 말했다. “사드 문제는 봉인됐다”는 청와대 설명과 달랐다. 중국은 ‘한국이 다음 단계로 사드를 잘 처리할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로 압박한다. 문재인 정부는 회담 내용을 전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중국어 “階段性”의 영문 번역이 “in the current stage(현 단계에서)”라고 돼 있다는 해명을 내놓는다. “현 단계에서 문제를 일단락, 봉합하자는 것”이라는 설명자료를 낸다. 당시 베이징 특파원으로서 중국 외교부 당국자에게 “리 총리가 말한 ‘階段’이 영어로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One step toward final goal. The final goal is the removal of THAAD in peninsula.” “최종 목표를 향한 첫 단계다. 최종 목표는 한반도에서 사드 제거(철수)”라는 말이었다. “사드 문제 일단락”을 주장하던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과 정반대 얘기를 한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의 최종 목표가 사드 철수라고 했다. 그해 11월 22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3불에 더해 “사드 시스템이 중국의 안전 이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을 중시한다”고 했다. 다음 달 중국 환추시보는 ‘3불 1한’이라는 말을 처음 쓴다. 왕이의 그 말이 사드 운용 제한에 해당하는 ‘1한’이었을 것이다. 왕이는 “중국에는 ‘말에는 반드시 신용이 있어야 하고 행동은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言必信行必果)’”는 말이 있다. 한국 측은 계속 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3불 1한을 한국의 약속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해 11월 2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강경화 장관은 “3불은 우리가 중국에 동의해 준 사안이 아니고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확인해줬을 따름이다. (중국의) 1한 추가 요구도 분명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금 6년여 전 그 한 달을 복기해 보면 중국은 ‘한국이 다음 단계로 사드 문제를 잘 처리할 책임이 있다’는 메시지로 약속 이행을 압박했다. 문재인 정부는 3불은 약속이 아니라 했다. 1한의 존재는 부인했다. 2019년 12월 4일 국방부 문서에는 “2017년 10월 3불 합의”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면서 “중국 측은 환경영향평가 절차 진행을 사드 정식 배치로 간주해 한중 간의 기존 약속에 대한 훼손으로 인식하고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2020년 7월 31일 국방부 문서는 “중국은 양국이 합의한 3불 1한이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명시했다. 최근 사드 환경영향평가와 관련해 드러난 사실들은 2017년 10월 31일 이후 일어난 석연치 않은 일들이 한중 관계를 이유로 안보 주권을 양보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한다. 윤석열 정부 외교부는 당시 한중 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 진실을 알아야 한중 관계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음지에서 일하다 이름 없이 지는 별.”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는 “국정원이 비록 부침을 겪어 왔지만 많은 직원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정원에는 임무 수행 중 숨진 요원을 기리는 ‘이름 없는 별’ 추모석이 있다. 현재 별의 숫자는 19개다. 이 인사는 “퇴직 뒤에도 무슨 일을 했는지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직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이다. 이게 땅에 떨어지면 국정원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인사 파동이 그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짓밟고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달 재가한 국정원 1급 인사를 철회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의 측근 A 씨가 인사에 무리하게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들의 얘기다. 승진 인사 대상에는 A 씨의 입직 동기가 여럿 포함됐다. 인사 파동의 팩트는 분명했다. 그런데 책임 소재를 둘러싼 국정원 내부 갈등은 내전을 방불케 했다. A 씨 측은 이번 1급 인사가 “문재인 정부 서훈, 박지원 전 원장 시절 득세한 좌파들 때문에 망가진 국정원을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를 “A 씨의 인사 전횡으로 모는 건 인사에서 배제된 김 원장 반대 세력의 쿠데타”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반면 인사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쪽은 “좌파와 결탁한 반개혁 세력의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한다. 이 내전은 인사 파동에서 드러난 사실관계마저 극과 극으로 전달하게 만들었다. A 씨 측은 교체 대상이 됐던 미국과 일본 정보거점장 자리에 있었던 이들이 “비리 때문에 소환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두 자리에 인사를 하려다 인사 파동으로 뒤집혔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국정원 인사는 “징계성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임기가 다 된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 두 자리에 A 씨와 가까운 이들을 앉히려 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난장판 속에 윤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떠났다. 귀국 뒤인 29일 윤 대통령은 첫 개각 날 김 원장으로부터 조직 정비 보고를 받았다. 윤 대통령의 재신임으로 김 원장은 유임됐다. 하지만 곪아 터진 국정원의 뿌리 깊은 파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정부 때 망가진 국정원을 정상화하겠다”는 명분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 A 씨가 부적절하게 국정원장이나 다른 고위직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명분이 잘못된 방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A 씨는 문재인 정부 때 한직으로 밀렸다고 한다. 그 역시 문재인 정부의 부당한 인사 피해자일 것이다. 이번 인사에 문제가 있다는 이들 가운데서도 문재인 정부가 “국정원 적폐 청산”을 내세워 국정원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폐해 때문에 “국정원 내부에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정글의 법칙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좌우를 가르고 파벌을 만드는 방식으로 무리한 인사를 정당화하면 직원들 간 적대감만 커질 것이라고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는 말했다. “진정한 우파는 소수고 대부분은 전 정부에 부역한 좌파나 기회주의자라는 식으로는 국정원 직원 다수를 설득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인사가 특정 라인에 편중되면 조직을 스스로 특정 울타리에 가두게 된다. 그러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파벌 싸움의 악순환이 또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다수 직원의 명예와 자부심을 살리며 개혁할 방법을 찾아야 국정원이 진짜 살아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적이 저러는 건 그런가 보다 하는데 내부 총질은 아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주변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당내 비판을 ‘내부 총질’로 규정하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는 검찰의 수사를 대선에서 패배한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려는 것으로 보고 이 대응에 진력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로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그의 상황으로 민주당이 직면한 위기를 비명계는 사법 리스크라 부른다. 내년 총선까지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민주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민주당이 직면한 ‘이재명 리스크’는 사법 리스크가 아니다. 정치 리스크다. 이 대표에게서 정치가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리스크다. 그는 “편을 만들지 않는다”고 얘기하지만 비명계나 중립 성향 의원들은 이 대표가 당내 비판 세력을 포용하지 못하고 ‘자기편’인 강성 팬덤에 기대고 있다고 본다. ‘내부 총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가 그를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일부는 그가 정당 대표가 아니라 여전히 경기도지사처럼 행동한다고 본다. 지시하면 따르는 직원들과 일하던 단체장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웃으며 일하는 직업이다. 그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이를 통해 세력을 키워간다. 하지만 “편을 만들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거꾸로 보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이 별로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러다 보니 “당의 통합보다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에 의지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래경 사태’는 이 대표의 정치 리스크를 가장 적나라게 보여줬다. 우선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을 당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인사는 이 대표의 정치적 실패다. 현충일 전날에 “자폭된 천안함 사건을 조작해 남북 관계를 파탄 낸 미 패권 세력”이라는 주장을 펼친 음모론자를 다른 자리도 아닌 혁신위원장에 앉혔다. 그는 2019년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 대책위원회’를 추진한 인사다. ‘이재명 편’이라는 얘기다. 혁신기구는 지도부 비판이 불가피하다. 두 번째는 정치적 조정 과정 실종이다. 이 대표는 임명 전날 저녁에야 지도부에게 임명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광온 원내대표가 “이래경이 누구냐”고 했을 정도다. 친명계를 제외한 당 지도부와 원내지도부 모두 이런 방식에 불만을 제기한다. 일부 의원들은 “이 대표가 당은 수직적이지도 않고 의원들 모두 생각이 다 다르다는 걸 외면한다”고 비판한다. 세 번째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임명한 인사가 9시간 만에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다음 날 이에 대한 얘기 없이 SNS에 다른 얘기들을 올렸다. 야당 대표가 정부 여당 비판하는 걸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이 닥친 그 혼돈에 침묵하는 유체이탈 화법 같은 묘한 장면이었다. 그는 8일까지도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 대표가 할 일”이라는 애매한 말 외에 사태를 수습할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정치 실종의 ‘이재명 리스크’가 민주당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새 정부 1년인데도 지난 정부 정책을 시행했던 공직자들이 그대로 남아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고 있으면 솎아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을 여전히 추종하면서 정부 추진 정책에 방해가 되는 공무원’들을 겨냥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 국정기조에 맞추지 않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면 과감한 인사조치를 하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같은 부처에서는 대통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산하 기관 인사를 내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에게는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공직자들의 자리 나눠 먹기 병폐로 보였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취임 1년을 맞아 전 부처에 변화의 속도를 높이라고 주문한 것이다. 정권 교체 뒤 공무원들에게 정책을 180도 바꾸라 하면 저항이 없을 수 없다. 책임지려 하지 않고 다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내에서는 장관들이 무한책임을 지고 공직사회의 이런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들이 국정 기조에 발 맞추지 않고 현 정부 개혁도 공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참모들을 차관으로 내려보내 용산 장악력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런 가운데 나온 윤 대통령의 취임 1주년 발언은 공직사회 기강 잡기가 몰아칠 것을 예고한다. 윤 대통령은 집권 1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전세 사기의 토양”으로 “집값 급등과 시장 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을 지적했다. “가상자산 범죄와 금융투자 사기를 활개치게 만든” 원인으로 “증권합수단 해체로 상징되는 금융시장 반친 행위 감시 체계 무력화”를 거론했다. “군이 골병 든” 이유로 “국군통수권자가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이니 전 세계에서 제재를 풀어달라”고 한 점을 들었다. 이런 메시지는 윤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특별히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려야 1년간 무엇을 했는지 대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취임 1년을 맞아 인터뷰한 원로들은 윤 대통령의 집권 1년 방향에는 공감했지만 이제 문재인 정부와의 대비를 넘어 현 정부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낸 이각범 KAIST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이 국정 방향의 전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국민들과 더 소통할 것”을 제안했다. 윤 대통령 취임사준비위원장이기도 했던 그는 “‘우리가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선전하기보다는 실제 정책의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방적인 홍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에 실질 효과가 없으면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고언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 서울대 명예교수는 윤 대통령의 당선 뒤 첫 일성인 국민통합에 성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인하대 교수는 3대 개혁에서 전략과 청사진,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1년 동안 국민이 변화와 개혁을 체감하기엔 시간이 좀 모자랐다. 2년 차엔 속도를 더 내 국민이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집권 2주년의 메시지는 이 발언을 바탕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18∼29세 지지율은 19%였다. 64%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체 연령대 지지율(31%)과 비교해도 크게 낮았다. 윤 대통령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함께 가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대통령실의 설명을 무색하게 한다. 대통령실의 MZ세대 행정관들이 여론 동향을 윤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직보하고 있다지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갤럽의 같은 조사에서 집권여당 국민의힘에 대한 18∼29세 지지율은 18%였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21%였다. 찍을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이 절반을 넘는 54%에 달했다. 거대 양당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15%포인트 높다. 전체 연령대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32%로 같았다. 무당층 비율은 31%로 지난해 대선 이후 가장 높았다. 거대 양당 지지율에 육박했다. 최근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보인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를 보면 조사 결과는 당연해 보인다. 주 최대 69시간 근로 문제는 여전히 해답을 내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여당 정책에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기·가스요금은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정에 있다”는데 인상 폭 결정은 한 달 가까이 늦어지고 있다. 서민 부담을 높일 요금 인상 전에 한국전력의 자구책이 중요하다. 하지만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에어컨 사용량이 많아지는 여름 전에 인상 폭을 정해 불확실성을 빨리 해소해야 한다. 결정을 미루는 배경에 여당이 내년 총선, 지지율 하락을 의식하고 있다는 시선이 많다. 그래 놓고 국가채무와 재정 적자를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재정준칙 법제화의 국회 처리를 미뤘다. 여론의 역풍이 불자 뒤늦게 “빨리 처리하겠다”고 한다. 여당 관계자는 “건전재정은 전혀 표가 안 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여당의 실책으로 반사이익을 보며 한때 지지율을 역전했던 민주당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 주 만에 지지율이 4%포인트 떨어졌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대해 한 최고위원은 “50만 원은 사실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돈이라 실비일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친명계 좌장은 “실무자들의 차비·기름값·식대 수준”이라고 했다가 사과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인식이 얼마나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는지 실감케 한다. 민주당 내에 ‘전당대회 때 돈 주고 받는 것이 관행이고 오히려 돈을 안 주면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다’는 게 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 당 지도부는 이재명 대표가 사과했지만 당 차원의 구체적인 진상조사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 당내에서도 “지도부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돈봉투 의혹의 중심에 있는 송영길 전 대표는 22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기자회견에서 뒤늦게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며 귀국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돈봉투 의혹에는 “전혀 몰랐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문제를 해결하지도, 제대로 책임지지도 않는 거대 양당에 무당층 비율은 높아진다. 그러니 제3지대 창당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다. 얼마 전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당 중진 이상민 의원은 “맹종하고 단색을 지향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별 차이도 없는데 (두 당이) 통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두 당이 정치개혁을 추구한다며 선거제 개편을 논의하고 있다.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안보를 위해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1%에 불과했다. 경제는 2.3%였다. 동아일보와 국가보훈처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17∼22일 진행한 조사 결과는 한국인들이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통령실이 “일본에 거부감이 덜하다”고 보는 젊은층(19∼29세)도 2.2%, 3.3%만이 안보, 경제면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여론의 반감을 뚫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일 굴욕외교”를 슬로건 삼아 독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 관련 진실을 밝히라 주장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후쿠시마 현장을 확인하겠다며 방일을 강행했다. 민주당은 정작 왜 극우 산케이 등 일본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독도, 후쿠시마 관련 보도를 쏟아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한일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일본 집권 자민당 내 강경 우파들이 흘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파벌이다. ‘아베파’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에 나서자 초조해졌다. ‘기시다가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사죄와 반성을 표하면 안 된다.’ 이게 아베파의 정서다. 독도나 후쿠시마 관련 내용을 흘리며 기시다의 한일관계 구상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기시다도 아베파를 의식한다. 소식통은 “통절한 사죄와 반성 내용을 언급할 경우 아베파가 들고일어나 정권을 내놓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기시다에게 있다”고 했다. 기시다가 약속한 방한 때 사죄와 반성에서 진전이 있을 거라는 낙관도 어렵다. 기시다는 아베파의 공격을 피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자신의 집권 성과로 부각하려 할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도 기시다가 사죄와 반성에서 진전된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한미일 협력,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동감한다면 기시다가 강제징용 피해자·유족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성의를 보일 수 있도록 운신의 폭을 넓혀 주는 게 필요하다. 그게 초당적 협력이다. “민주당은 오히려 기시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아베파에 놀아나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오래 봐온 전문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독도 거론은 가짜뉴스가 분명해 보인다. 기시다가 윤 대통령에게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말한 자체를 감출 일인가. 시각을 바꿔보자. 일본은 오히려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에 수입 규제를 풀어달라고 매달리는 셈이다. 칼자루는 한국이 쥐고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의 첫 대응은 화를 키웠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반응은 “정상회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였다. 거론됐다 한들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원칙대로 하겠다고 분명히 대응하면 될 일이었다. 대통령실이 쉬쉬하자 후쿠시마 관련 문제가 거론된 것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구도가 형성됐다. 윤 대통령의 지난달 한일관계 관련 대국민 담화도 문제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의 할 일이 부각되지 않고 기시다 대신 변명해주는 느낌을 국민에게 줬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수십 차례 과거사에서 사과했다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미래로 간다고 과거를, 피해자·유족을 잊는 게 아니라며 이들을 위해 윤 대통령이 무엇을 할지 담화에 큰 비중으로 진솔한 내용을 담았다면, 지금 여론 지형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한덕수 국무총리(사진)가 13일 “(정부는) 에너지 요금에 대해 상반기에 동결한다는 정책을 만들지 않았다”며 “상반기엔 기타 공공요금만 동결한 것이다. 에너지 요금은 국민들의 어려움을 감안해가면서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준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 총리는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상반기에라도 전기-가스요금 조정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상반기는 국민들이 비교적 에너지를 적게 쓰는 기간이기 때문에 에너지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에너지 가격을 조금씩 조정해 나가는 게 나중에 폭탄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필요할 경우 상반기 중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 총리는 “아직 얼마를 언제 어떻게 할지는 결정되진 않았다. 면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공공요금은 상반기 동결 기조하에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 총리의 언급에 따르면 정부가 밝혔던 상반기 동결 대상 공공요금은 도로, 철도, 우편요금 등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한 총리는 조선업 등 제조업 인력난 문제와 관련해 조선업 관련 특정활동(E7) 비자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도 “필요하다면 더 늘리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인력에 대해선 (외국인 비자) 쿼터 제한을 거의 자율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징용해법 성급? 오히려 늦어… 미래세대, 과거사 얽매여선 안돼”징용문제로 미래발전 막혀선 안돼피해자-유족 원하면 기꺼이 만날 것… 日, DJ-오부치 선언 행동으로 보여야조선업 등 외국인 비자 쿼터 없애야… 연금개혁, 10월까진 정부안 낼 것SVB 파산, 韓경제 영향은 적은 듯… 국내 은행 건전성 어느때보다 강해“젊은 우리 미래 세대들이 과거사에 너무 얽매여서 미래로 전진하는 것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우선순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3일 2시간 동안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해법과 관련해 “한일 관계의 미래가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유족들과는 “필요하다면 기꺼이 만나겠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한 총리는 “현안(강제징용 문제) 때문에 한일 양국이 전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미래의 발전이 가로막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안’ 강제징용 해법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만큼 “한일 간에 고통스러운 과거는 있었지만 이제는 (여기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이후 한일 간 협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양국이 함께 동남아시아 등 제3국에 공동 투자·인프라 구축에 나설 수 있다는 비교적 구체적인 협력 방안도 제시했다.● “日, 김대중-오부치 선언 행동으로 보여야”―한일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지만 이렇게 성급하게 진행해야 하는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법원 판결이 있은 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현재까지) 10여 년간 아무것도 해결을 못 했다. 오히려 (관계 정상화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해법을 일부 피해자들은 거부한다. 피해자나 유족들을 만날 계획이 있는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만날 생각이다. 그분들의 고통,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환경, 경제적 측면, 공급망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동북아 안보, 공급망 재편, 첨단산업 협력 등 측면에서 일본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다. 이웃으로서 한국이 미래에 (일본과) 좋은 관계를 가져가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피해자·유족을 언제 만날 생각인가. “(피해자나) 유족이 원한다고 할 때가 최우선 순위다.”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이 대법원 판결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많은 법률 전문가들과 논의했다. 자문도 구했다. (전문가들은) 제3자 변제가 대법원 판결의 기본 취지와 부합한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등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발표했지만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 등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선 의사를 표명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일단 일본의 1차적인 반응은 사과 문제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 (일본 정부의) 전체적인 입장을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대로 지켜지는 게 더 중요하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게 더 중요하다.” ―경제협력 분야에서 한일 간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인가. “(일본의) 수출 규제나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국) 제외 조치 등은 정상적인 국가 간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 이 부분이 정상화되면 산업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킬 때 혼자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일본과 신산업 발전에서도 협력할 수 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기술 개발, 제3국 진출 공동 프로젝트 등도 이뤄져야 한다.” ―한일이 함께 제3국에 진출해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건가. “공동 투자나 공동 인프라 구축이 가능하다.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필요하다면 중동까지 공동 진출할 수 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한 (국내 부처 간) 컨센서스(동의)는 이뤄져 있다.”● “외국인 필수인력 비자 전환, 제한 없이 추진”―조선업계가 인력난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 인력들이 가지 않으려는 분야에서는 외국 인력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비자 발급 등에서 어떤 추가 조치를 계획하고 있나. “필요하다면 비자(발급)에서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지난해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120명이 장기 체류가 가능한 숙련기능인력(E-7-4) 비자로 전환했다. 올해는 이 비자 전환 쿼터를 400명으로 늘렸다. 앞으로 기술을 가진 필수인력의 비자를 전환하는 건 심사를 하되 제한 없이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수인력에 대해서는 거의 자유롭게 (전환하는) 방향으로 계속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조선업계 등에서 외국 인력 비자 쿼터 제한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건가. “우리 국민들이 잘 (일하러) 가지 않는 분야에선 거의 자율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국민들도 그 (외국)인력들이 결국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경제가 발전하고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력이 없어서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는 게 도움이 되는지, 외국 인력들이 다 같이 살면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부가가치를 올리는 것이 좋을지 큰 미래를 봐야 한다.”● “정부 연금개혁안 10월까지 낼 것”―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가운데 교육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 것인가. “제일 중요한 건 공교육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교육기관 간 경쟁을 하게 해 교육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는 이번에 30개 정도 (지방대에 예산을 지원해서) ‘글로컬’ 대학을 만들려고 한다. 이 대학을 일류로 만들면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사교육에만 의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지방대를 키우도록 해 교육 부문에서도 권한을 대폭 지방에 이양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안 도출이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반드시 연금 개혁을 해나갈 것이다. 10월까진 (연금 개혁에 대한) 정부안을 낼 것이다. 정부는 매년 3월까지 (국민연금 기금의 지속 가능성 등을 전망할 때 쓰이는) ‘재정 추계’를 하고, 10월까지 이 재정 추계에 기반한 정부안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연금개혁은 국민들에게 빨리 결과를 보여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충분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들이 연금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상히 알고 ‘내가 이를 찬성했을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충분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요금 상반기 동결 정책 만들지 않아”―취약계층이 난방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추가 대책이 있는가. “한국은 에너지 가격이 2021년 대비 지난해 38%가량 올랐다. 유럽 등에선 2∼4배 올랐다. 에너지 때문에 고통받는 건 전 세계가 같은데 결국 지난해 우리 무역 수지 악화는 에너지 비용 증가 때문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우리도 어느 정도) 따라가 주면서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처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 혜택을 제대로 보려면 에너지 가격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다만 취약계층에 대해선 필요한 공공부문 지원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을 하반기에는 올려야 하나. “상반기엔 기타 공공요금만 동결한 것이다. 에너지 요금은 국민들 어려움을 감안하면서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수준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다.” ―필요하면 상반기 중에라도 에너지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인가. “에너지 가격에 대해서 상반기에 동결한다는 정책은 만들지 않았다. 에너지 가격은 필요한 국민 부담을 감안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최소한으로 현실화해 나가는 쪽으로 조정해 나간다는 것이다. 오히려 상반기는 우리 국민들이 비교적 에너지를 적게 쓰는 시간이다.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드리면서 조금씩 조정을 해나가는 게 나중에 에너지 가격이 폭탄으로 오지 않는 그런 정책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은 얼마를 언제 어떻게 할진 결정한 바 없다. 면밀하게 검토해서 해야 한다.”● “부산엑스포 유치, 불리하지 않다”―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 우리 경제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시장은 굉장히 엄격하고 무서운 곳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SVB는 예금을 받아 운영하는 은행과 달리 벤처기업 대상으로 투자해주는 은행이라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적을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은행의 건전성은 어느때보다 강하다. 다만 시장의 변동성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대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 검찰 출신이 지나치게 많이 기용된다는 비판도 있다. “각료 중 검찰 분야 출신 인사가 다수를 차지하진 않는다.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나는 검찰 출신 각료들의 일하는 능력이나 자세가 만족스럽다고 얘기하고 싶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상황은 어떤가. “(지난해) 7월부터 민관 합동 원팀이 돼서 150개 국가를 접촉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그렇게 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엑스포를 유치하면 4000만 명의 관람객이 방한하고 경제적으로 60조 원 정도의 생산 효과가 있다. 다음 달 실사단이 방문하면 특히 개발도상국들이 대한민국을 모델 삼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리려고 한다.”인터뷰=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정리=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
“1966년 6월 말이었다. 청두에 있는 우리 학교 교장을 연단에 올려보냈다. 50대 여성이었던 교장은 반동분자 집안 출신이었다. 우리는 교장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씌웠다. 학생들이 발길질과 주먹질을 퍼부었다. 교장은 의식을 잃고 연단에 쓰러졌다.” ‘중국을 읽다’ 저자 카롤린 퓌엘은 중국사회과학원 교수의 증언을 전한다. 그는 청두 홍위병 단장이었다. 그해 문화대혁명 속 홍위병의 집단 광기가 중국 전역에 몰아쳤다. 그달 런민일보에 “모든 괴물과 악마를 척결하라”는 논설이 실린다. 마오쩌둥이 1958년 시작한 대약진 운동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마오쩌둥의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었다. 1961년 류사오치에게 주석 자리를 내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실패에 대한 솔직한 반성 없이 권력 중심에 다시 서려는 마오쩌둥의 욕망이 문화대혁명을, 홍위병을 불러냈다. 마오쩌둥은 자신을 숭배하던 홍위병들에게 1966년 6월 편지를 보낸다. “반역은 정당하다(造反有理).” 그해 8월 마오쩌둥은 홍위병 완장을 차고 100만 홍위병을 사열한다. 홍위병들은 “마침내 나는 위대한 마오 주석을 만났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며 감격했다. 홍위병들은 표적 색출, 처단에 나선다. 공산당 내 자본주의 노선 추종자, 부르주아 지식인 등이었다. 수배 전단이 등장했다. 프랑크 디쾨터가 쓴 ‘문화대혁명’에 묘사된 실상은 공포스럽다. 곤봉과 채찍으로 구타했다. 머리에 불을 질렀다. 작두칼로 사람을 죽였다. 철사로 목 졸라 죽였다. 유명 작가 라오서는 여학생 수십 명에게 맞아 사망했다. 그의 옷 주머니에 마오쩌둥 시집이 있었다. 문화대혁명 초기 반당 분자 색출에 앞장섰던 왕광메이. 그는 류사오치의 부인이었다. 그조차 1967년 4월 홍위병 여학생들에 의해 공개처단(批鬪) 대상이 됐다. 홍위병들은 하이힐을 신기고 몸에 꽉 끼는 치파오를 입혔다. 탁구공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게 하고 모욕했다. 광분한 홍위병들의 대규모 폭력으로 체제 자체가 위협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 저자 폴 로프는 “마오쩌둥이 홍위병이 초래한 대혼란을 묵묵히 지켜만 봤다”고 지적했다. 2년 뒤인 1968년에야 마오쩌둥은 홍위병이 너무 멀리 갔다며 해산을 명령한다. 류사오치와 부주석 덩샤오핑을 몰아내고 다시 당을 장악한 뒤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 ‘개딸’들이 ‘수박’ 색출에 나섰다.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은어다. 홍위병 시절로 보면 공산당 내 자본주의 노선 추종자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를 ‘수박 7적’이라 지목하는 이미지가 등장했다. “국민의힘과 내통해 이재명 대표를 팔아넘기고 윤석열 정권을 창출한 첩자들을 직접 꾸짖어 처단하자”고 주장한다. 지난해 대선 패배 직후에도 이 대표는 ‘개딸’들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며 적극적이었다. 이 대표가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빠진 지금 강경파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은 강성 지지층 당원들을 부추기는 각종 주장을 쏟아낸다. 이 대표는 4일에야 페이스북에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둘러싼 우려와 불신엔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솔직한 답변 없이 강성 지지층들의 공개처단 흉내 내기가 없어질 수 있을까.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내년 총선 공천 때 살생부 논란이 2016년 때보다 더 커질지도 모르겠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인사는 10일 최근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년 공천권을 둘러싼 내분의 예고편이라는 것이다. 살생부(공천 배제자) 논란이 불거진 2016년 총선 공천 때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와 친이(친이명박)계 갈등은 내전을 방불케 했다. 친박계는 친이계와 유승민계 위주로 탈락시키고 친박계와 진박(진짜 친박)을 대거 공천했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핵심 ‘친박대오’ 당을 만들겠다. 비박계와 불편한 친박을 정리하겠다”고 했다는 주장까지 훗날 흘러나왔다. 중진 인사는 “선거에서 이기는 공천을 할 수 있다면 대통령과 당 대표가 공천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비판을 듣기 싫다고 내쫓고 생각이 안 맞는다고 잘라내면 그게 살생부다. 대통령이나 당 대표와 가깝다는 이유로 경쟁력 부족한 후보가 공천되고, 공천받지 못한 이들이 저항하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고, 기어코 공천을 따내기 위해 당 권력과 뒷거래하다 알려지면 국민의힘 총선은 엉망이 될 것이다.” 대통령실은 “모든 권력 투쟁은 당청 갈등에서 비롯된다”며 “당정 일치”를 강조한다.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힘 당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탄핵될 수 있다는 취지로 김기현 의원이 얘기한 데 대해서도 그런 얘기 할 수 있다는 속내다. 반면 대통령이 사실상 여당을 직할하면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의 정책 방향을 통제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니어재단이 원로 그룹들의 얘기를 들어 펴낸 ‘한국의 새 길을 찾다’에서 “대통령제는 크든 작든 제왕적 대통령제로 자꾸 간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어도 벌써 제왕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 전 원장의 아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 대통령과 죽마고우다. 지난 대선 한때 윤 대통령과 함께했다 갈라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책에서 “문제는 대통령이 과연 민주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느냐다. 정치 현장에서 보니 (그간) 당선된 사람은 구름 위로 올라가고 항상 태양이 비추고 있으니 자기 멋대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는 민주주의를 해나갈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에는 “제왕적 대통령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에서는 벌써부터 윤 대통령 측근들의 내년 총선 차출설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도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총선에 나섰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들이 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 뒤 ‘대통령 경호부대’처럼 행동했다. 이러면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가 뭐가 되는가. 제왕적 대통령제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내 적지 않은 의원들도 전당대회 분란에 “이건 정말 아니다”라면서도 내년 공천을 받지 못할까 침묵한다.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이를 위한 여야의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도 출범했다. 이들은 선거제 개혁으로 다당제가 되면 정치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야 모두 공천권을 둘러싼 ‘사당화’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천권 개혁 없이는 선거제 개혁도 공허한 일이 되는 게 아닐까.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켄터키주 코빙턴을 방문할 때 전용차량 ‘더 캐딜락 원’에 동승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전차 지뢰 공격도 견디는 이 육중한 방탄 차량은 비스트(Beast·야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전용차량에 함께 타는 특전은 보통 백악관이나 정부 고위 인사, 대통령 측근들이 누린다. 이날 동승한 사람은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새해 첫 일정을 야당의 상원 1인자와 함께 시작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백악관이 추진한 많은 어젠다를 반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켄터키주와 오하이오주를 잇는 클레이 웨이드 베일리 다리 앞에서 연설했다. 2021년 미국 전역의 인프라 개선을 위해 자신이 제안해 만든 인프라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조2000억 달러(약 1512조 원)라는 천문학적 예산 투입이 필요한 이 법안은 매코널 원내대표 등 공화당의 협조로 통과됐다. 이 다리도 인프라법에 따라 개선 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많은 부분들에서 의견이 다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매코널 원내대표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man of his word)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약속하면 의심할 필요도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매코널 원내대표를 정치적 지향점은 달라도 신뢰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료로 묘사했다. “당신(매코널)이 없었다면 인프라법이 통과되지 않았을 겁니다. 매코널 원내대표는 국가에 기여할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공통점(common ground)을 찾을 의향이 있는 분입니다.” 매코널 원내대표도 인프라법이 “입법의 기적”이라며 화답했다. 그는 정부, 여야가 “중요 이슈에서 협력하기 위해” 공통점을 찾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이렇게 함께해서 결과를 얻는 사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 언론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가 남은 임기 2년간 공화당과 협치하려는 백악관의 로드맵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로 상원은 민주당,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됐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백악관 참모들은 갈라진 의회는 핵심 현안에서 여야 간 이견이 매우 클 것이고 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매코널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과 매코널 원내대표는 당은 다르지만 상원에서 수십 년간 함께 일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버락 오마바 행정부 시절 두 사람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감세 정책을 연장하는 데 합의했다. 매코널은 2015년 바이든 대통령의 큰아들 조의 장례식에 공화당 인사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매코널의 측근인 존 코닌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정책에서 견해가 달라도 좋아하지 않기가 어려운 인물”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새해 첫 일정에 야당과 접점은 없었다.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는 윤 대통령의 ‘관저 식사 정치’ 참석자는 상당수 여권 인사들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당권 주자들이 ‘윤심(尹心)’ 경쟁을 벌이는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비스트 옆자리를 내준 것처럼 윤 대통령이 야당 인사들에게도 관저 만찬 테이블 자리를 내주면 어떨까. 윤완준 정치부장 zeitung@donga.com}
“세계화는 거의 죽었습니다. 자유무역도 거의 죽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세계화가 돌아오기를 원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91세 장중머우(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말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싶었던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의 연설과 어울리지 않았다. 6일(현지 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그는 “세계의 지정학 환경이 크게 변했다”고 했다. TSMC의 투자로 애플 등 미국 핵심 기업들이 미국에서 바로 최첨단 반도체를 조달한다. 재 뿌리기 싫어서였을까. 미국 언론은 “세계화의 죽음” 발언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대만의 유력 경제 매체 차이신그룹 셰진허 회장은 8일 “사실 세계화가 죽은 지 몇 년 됐다. TSMC 애리조나 공장은 과거 볼 수 없던 새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미국 온라인 뉴스레터 ‘인터커넥티드’의 케빈 쉬는 “세계화는 죽었다. 아무도 듣지 않고 있다”는 제목의 글에서 이를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TSMC는 비용 절감을 위한 국제 분업, 고도의 전문화, 초국경 공급망 등 세계화 양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기업이었다. 미국 기업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원천 기술만 보유하고 생산은 다른 나라에서 하는 국제 분업의 수혜자였다. TSMC는 대만 공장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 전략으로 성공 신화를 써나갔다. 장 창업자는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애리조나 공장에서 만드는 반도체가 대만에서 만들 때보다 최소 50% 더 비쌀 겁니다.” 장 창업자가 애리조나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한 얘기를 더 들어보자. “우리는 1년 반 전 미국에서 엔지니어 약 600명을 고용했습니다. 그들을 대만으로 보냈어요. 대만에서 1년∼1년 반 동안 (반도체 생산) 트레이닝을 받았죠. 그들 수만큼의 대만 엔지니어들도 트레이닝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싱글 웨이퍼를 생산하기 전 1000명 이상 훈련시킨 겁니다. 우리가 잘 준비돼 있다는 매우 좋은 신호입니다.” 케빈 쉬는 행간을 읽어보라고 했다. 미국에서 고용한 엔지니어들이 TSMC 반도체를 생산할 정도로 숙련되지 못해 추가 비용을 들여 훈련을 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팀 쿡 애플 CEO는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반도체과학법’에 “생큐”라고 했다. 아이폰이나 맥북이 생산 비용 증가로 얼마나 비싸질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TSMC는 왜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결정을 내렸을까. 장 창업자가 해리스 부통령에게 말했다. “반도체가 더 비싸져도 미국에 공장을 짓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미국에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니까요.” ‘메이드 인 아메리카’는 동맹국들에 중국에 첨단기술이 들어가도록 놔둘 수 없다는 지정학적 명분을 내세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4일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불공정 경쟁이라 비판하면서도 “유럽식 IRA로 답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처럼 EU에 투자하는 친환경 산업 기업에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EU는 한국 철강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로 무역장벽을 높이려 한다. 내년 우리는 지정학이 지배하는 자국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의 격랑이 더욱 크게 휘몰아치는 세계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등 도시 곳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6일 상하이 도심에서 시민들이 “시진핑 퇴진, 공산당 퇴진” 구호까지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CNN과 로이터, BBC 등 주요 외신은 “중국 전역에서 코로나19 방역 정책에 대한 분노 및 항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3년째 유지하고 있는 봉쇄 정책인 ‘제로코로나’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퍼지고 있다고 현지 중국인들이 동아일보에 전했다. 27일 블룸버그 등 서방 언론들과 쯔유(自由)시보 등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26일 밤~27일 새벽 상하이 우루무치중루(中路)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 나와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최대 도시 우루무치에서 24일 발생한 화재 사고로 10명이 숨진 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은 시위 참가자 수가 수백 명이라고 보도했다. 우루무치중루에는 소수민족인 위구르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우루무치는 화재 발생 당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가 장기화되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에 봉쇄 강화를 위해 가져다 놓은 여러 설치물들 때문에 소방 당국의 진입이 늦어져 사망자가 늘어났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에서 급속히 확산됐다. 트위터 등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상하이 시위 참가자들은 거리에 촛불을 놓고 모여 격앙된 목소리로 “독재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시행)하라” 등을 외쳤다. 블룸버그는 상하이 시위에 대해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이후 (규모가) 가장 큰 반(反)정부 거리 시위”라고 평가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동영상에 다르면 상하이 시위 참가자들은 26일 시작된 시위에서 “자유와 인권을 원한다”고 외쳤다. 로이터는 “항위 시위가 27일 새벽까지 이어졌다”며 “참가자들은 ‘우루무치 코로나19 봉쇄 해제’, ‘중국의 모든 코로나19 봉쇄 해제’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시간이 갈수록 시위 규모가 계속 커졌다”고 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코로나19 감염 여부 검사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외쳤다. 현지 공안(경찰)들은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AP통신에 “친구 한 명은 공안에 두들겨 맞고 두 명은 최루탄을 마셨다”면서 “공안은 친구가 끌려가는 것을 막으려는 내 발을 짓밟았다”고 전했다. AP통신은 공안 약 100명이 시위대를 막아섰고 이후 공안을 실은 더 많은 버스가 도착했다고 전했다. 대만 쯔유시보는 “이번 시위에 상당히 많은 대학생들이 참여했다”면서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시위 가운데 가장 반(反)정부적이고 급진적인 시위”라고 평가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도 시 정부 청사 앞에서 주민들이 시위를 벌이며 “코로나19 봉쇄를 해제하라”고 외치는 영상이 25일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도 중국 당국의 방역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27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베이징 도심인 차오양구 일부 아파트에서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는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한 주민은 “왜 단지 전체를 봉쇄하는 거냐” “봉쇄를 결정한 사람이 누구냐”고 따져 물었다. 또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화재를 언급하면서 “우리 건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라고 항의했다. 공안이 출동했지만 영하의 날씨에도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은 채 약 1시간 동안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남부 장쑤성 난징에서는 대학생들이 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하며 ‘인민 만세’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영상도 퍼지고 있다. 수도 베이징과 제2도시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단행동이 이어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동북부 지린성 창춘시에 사는 30대 왕모 씨는 “3년째 제로코로나 봉쇄가 계속되고 있지만 나아진 게 없다는 반감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매일 최다를 경신하고 있다. 27일 중국 당국에 따르면전날 중국 본토 신규 확진자 수는 3만9506명으로 4만 명대에 육박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간 한중 회담에서 잘 안 쓰던 말을 했다. “경제 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걸 반대해야 한다.” 범안보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중국에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수출을 못 하도록 한 미국을 비판할 때 중국이 쓰는 말이다. 시 주석은 윤 대통령에게 경제 문제를 안보와 연결시킨 미국의 ‘장단에 놀아나지 말라’고 훈계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경제 문제를 정치-안보 문제와 연결한 적이 있다. 불과 5, 6년 전이다. 2016∼2017년 한국이 사드를 배치했다는 이유로 경제 보복을 가했다. 사드 배치가 한국의 안보 주권 사항이라는 설명에도 한국 대중문화 수입을 금지하는 이른바 ‘한한령’을 발동했다. 중국은 정부 차원의 보복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을 믿는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중국에 한한령 해제를 요구하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다. 중국은 오히려 사드 관련 이른바 ‘3불 1한’을 주장한다. 사드 운용 정상화라는 주권 문제에 사실상 내정간섭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정상화 진척에 따라 한중관계 마찰의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도 정치 안보 등 문제를 경제 보복과 연결한 적이 있다. 2018년 호주가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에서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참여를 배제하자 호주산 와인, 소고기, 석탄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2012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국유화하자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다. 2010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중단했다. “경제 협력을 정치화하고 범안보화하는 걸 반대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말은 일종의 ‘내로남불’로 해석할 수 있는 셈이다.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식 강압 외교를 뜻하는 ‘전랑(늑대전사) 외교’의 강도가 집권 3기에 더욱 높아질 것을 예고한다. 최근 시 주석 자신이 직접 ‘전랑 외교란 이런 것’임을 보여줬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16일 연회장이었다. 시 주석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두 사람이 전날 나눈 대화가 모두 신문에 실렸다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진정성이 없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의 경고를 곁들였다. “이는 잘 계획된 공개적 훈계였다, 어른이 아이를 훈계하듯.” 데이비드 멀로니 전 중국 주재 캐나다대사는 미 뉴욕타임스에 “시 주석은 일부러 기자들의 마이크에 잡힐 거리에서 트뤼도를 질책했다”고 했다. 시 주석과 윤 대통령 회담을 보도한 중국 관영 중국중앙TV 영상을 보면 시 주석이 범안보화 얘기를 한 뒤 윤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으로 넘어간다. 시 주석의 말에 동의한 것처럼 보여주는 편집. 중국공산당의 전형적인 선전전이다. 시진핑 3기 중국과 외교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좋은 말만 해선 답을 찾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다음 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기왕 경제의 정치·안보화 반대를 말씀하셨으니 앞으론 사드 보복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뒤 실질 협력의 기회를 찾자고 제안하면 어떨까. 윤완준 국제부장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