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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성(王城)이 있던 경주 월지의 출토품에서 고려시대 기와로 추정되는 유물 200여 점이 최근 발견됐다. 고려왕조가 들어선 후에도 통일신라시대의 일부 궁궐이 존속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다. 25일 국립경주박물관은 “1976년 월지에서 출토된 유물 3만3000여 점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려시대 추정 기와 200여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2032년까지 수장고에 보관된 월지 출토품 전량을 재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다. 고려시대 추정 기와는 ‘옥간요(玉看窰)’가 새겨진 기와 1점과 평평한 면에 원형 돌기 문양을 새긴 일휘문(日輝文) 수막새 8점, 국화무늬 수막새 200점이다. 옥간요와 일휘문 기와는 각각 10세기 후반, 11세기 이후 등장하는 고려 기와로 분류된다. 그런데 가장 많은 양이 나온 국화무늬 수막새는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사용됐다. 박물관은 이것도 고려시대 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주 천관사지와 천룡사지에서 출토된 국화무늬 수막새에서 기와를 끊어 제작하는 고려시대 기법이 발견돼서다. 이현태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천관사지·천룡사지 출토 기와와 월지 출토 기와를 비교해 정확한 제작 시기를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여 점 모두 고려 기와로 최종 확인되면 고려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통일신라의 일부 궁궐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를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멸망한 왕성의 궁궐은 철저히 파괴된다는 기존 통념을 뒤엎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선 끝까지 결사 항전한 후백제와는 달리 신라는 정권이양이 상대적으로 순조로웠기에 궁궐 일부를 남겨 놓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는 “신라 경순왕은 대세가 기울자 왕건에게 나라를 바친 것으로 기록돼 있다”며 “경순왕이 고려 초 경주를 관리하는 사심관으로 임명된 만큼 월지 근처에 그의 별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월지는 조선시대에도 경치가 좋은 ‘안압지’로 알려진 만큼 정자와 같은 건물이 존속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고려사에 언급된 조유궁(朝遊宮)이 월지 근처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고려사에는 ‘1012년 황룡사 탑을 수리하기 위해 경주 조유궁을 헐어 목재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현태 학예연구사는 “무거운 목재를 옮기려면 황룡사 인근의 월성이나 월지에 조유궁이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기와로 보수된 건물이 조유궁이 맞는다면 신라가 망하고도 전각이 일시에 파괴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이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다면 월지 출토 유물을 모두 통일신라시대 이전 것으로 본 기존 학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월지에서 나온 청동거울(동경) 2점은 중국 요나라 양식에 가깝다. 이 같은 양식의 청동거울이 출토된 요나라 무덤은 통일신라가 멸망한 해(935년)보다 60, 70년이 지난 11세기 초에 지어졌다. 하지만 학계는 청동거울이 월지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이를 통일신라 유물로 간주해왔다. 경주박물관 관계자는 “출토 기와를 재검토해 월지 유물의 연대가 고려시대까지 확장되면 연대 해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일본인 소장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사진)이 광복 후 처음으로 국내에 공개된다. 호암미술관은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여는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 7세기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을 선보인다고 25일 밝혔다. 이 불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물병을 든 채 자비로운 미소를 띠고 있으며 높이는 28㎝다. 1907년 충남 부여군 규암리 밭에서 발견됐으며, 1922년 대구에 살던 일본인 의사에게 팔려 일본으로 반출됐다. 2018년 6월 불상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져 문화재청이 42억 원에 매입을 추진했지만 일본인 소장자가 150억 원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번에 대여 형식으로 국내 전시장에 들어오는 것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국내 불상 중 출토지와 소장 경위가 확인된 것은 이 불상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사찰이 소유한 15세기 조선 ‘석가탄생도’와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이 소장한 ‘석가출가도’도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다. 둘 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출가를 묘사한 불화로, 한 세트로 추정된다. 일본과 독일에 흩어져 있는 두 불화가 한자리에서 나란히 전시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선 해외 컬렉션 27개에서 모은 불화, 불상 등 불교 미술품 총 92건을 선보인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조선 후기 실학자 혜강 최한기(1803∼1877)가 쓴 ‘통경(通經·사진)’ 실물이 처음 발견됐다. 방대한 유교 경전들을 독창적으로 주석한 해설서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부여 함양 박씨 종가가 기탁한 고문헌 자료를 연구하다가 통경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최한기는 유교와 서구 문명의 통합을 구상하며 ‘농정회요(農政會要)’ ‘심기도설(心器圖說)’ 등 1000권 이상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지만 대부분 유실됐다. 통경은 논어, 맹자, 시경, 서경 등 유교 핵심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을 주제별로 분류해 해설한 책이다. 20책 53권으로 구성돼 있는데, 최한기가 28세 무렵 저술한 초기작으로 추정된다. 장원석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십삼경 전체를 다루는 방대한 저술은 동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한기는 통경에서 십삼경의 내용을 학부(學部)·사물부(事物部)·의절부(儀節部)로 구분하고, 각 부 밑에 조목(條目) 271개를 넣었다. 또 십삼경 각각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찾을 수 있는 색인과 시각적 이해를 위한 250개의 그림도 있다. 통경을 발견한 이창일 책임연구원은 “통경은 유교의 모든 분야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밀하게 구성돼 있다”며 “유교 지식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은 독창적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중연 장서각은 책을 발견한 뒤 수개월간 분석했다. 저자명이 적혀 있지 않아 최한기가 쓴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분석 결과 기존에 알려진 서문 내용과 책의 일부 내용이 같고, 최한기의 주요 사상과도 일맥상통한 점이 확인됐다. 한중연은 이번 발견 성과를 알리는 온라인 발표회를 26일 개최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김혜순 시인(69)이 시집 ‘날개 환상통’(사진)으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상)을 수상했다. 한국 문학 작품이 NBCC상을 받는 건 처음으로, 번역 시집이 이 상을 받은 것도 전례가 없다. 21일(현지 시간) NBCC는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열린 ‘2023 NBCC상’ 시 부문 수상작으로 ‘날개 환상통’의 영어판 시집(Phantom Pain Wings)을 선정 발표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NBCC상은 1년간 미국에서 영어로 쓰인 최고의 책을 선정해 시, 소설, 논픽션, 전기, 번역서 부문별로 수상자를 정한다. 이날 김 시인은 출판사를 통해 “전혀 수상을 기대하지 못했다. 아시아 여자에게 상을 준 것이 놀랍고 기쁘다”며 “훌륭한 번역으로 오래 함께해 온 최돈미 씨에게 감사하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에 대신 참석한 미국 출판사 뉴디렉션퍼블리싱의 제프리 편집자는 “젠더는 명사가 아닌 동사다. 이렇게 또 하나의 여성을 택해줘서 고맙다”는 김 시인의 소감을 대신 전했다. ‘날개 환상통’은 김 시인의 등단 40주년을 맞아 201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13번째 시집이다. 동명의 표제시에서 화자인 ‘나’와 ‘새’는 권력자들로부터 추방당한 채 함께 환상통(幻想痛)을 겪는 존재로 그려진다. 김 시인은 ‘새 하기(새가 되기)’라는 개념을 통해 젠더 차별을 넘어서는 내용을 담았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새를 주어도 목적어도 아닌 동사로 만들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무는 시적 효과를 증폭시켰다”고 말했다. ‘날개 환상통’은 한국계 미국인인 최돈미 시인(62)의 번역을 거쳐 지난해 5월 미국에서 출간돼 현지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말 이 시집을 ‘올해 최고의 시집 5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김 시인은 한국 문단에서 ‘여성시의 기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입선한 뒤 1979년 계간지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로 등단해 총 14권의 시집을 내놓았다. 문단에선 여성적 특성을 수용해 새로운 인간상과 세계에 대한 비전으로 만들어내는 김 시인의 작품 성향이 서양의 페미니즘과 다른 의미에서 독특하게 받아들여졌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강동호 문학평론가는 “김 시인은 여성으로서 정체성에서 인간 종의 문제로까지 작품세계를 확장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며 “동시대와 호흡하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보편성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논픽션이나 소설에 비해 번역이 까다로운 시 부문에서 수상작이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김 시인은 이번 수상에 앞서 ‘죽음의 자서전’으로 2019년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비롯한 4개의 해외 문학상을 받았다.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2010년대 이후 최돈미 시인 겸 번역가처럼 한국어와 영어에 모두 밝은 번역가들이 등장해 번역의 질이 높아지면서 해외 문학상 수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좋은 일자리, 좋은 돈벌이, 더 나은 인생을 위해 찾아갈 곳은 캐나다 앨버타주 북부의 ‘오일샌드(원유 성분이 함유된 모래)’ 광산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고향인 캐나다 동부의 해변마을 케이프브레턴을 떠나려고 한다. 목표는 단 하나. 돈을 벌어 대학 학자금 대출을 단번에 갚는 것이다. 신간은 캐나다 유명 만화가인 저자가 명성을 얻기 전인 2005년 오일샌드 광산에서 보낸 2년을 그린 그래픽 노블(만화형 소설)이다. 야생동물과 오로라 등 앨버타의 장엄한 자연을 담아낸 그림과, 광산에서 만난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글이 눈길을 끈다. 캐나다 최대 오일샌드 채굴업체 ‘싱크루드’의 공구 담당 직원이 된 저자의 하드코어 ‘미생(未生)’이 펼쳐진다. 그가 맡은 업무는 현장 노동자에게 필요한 장비를 대여해주는 간단한 일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열악했다. 살가죽을 벗겨내는 듯한 영하 40도 이하의 강추위를 매일 견뎌야 했고, 채굴 과정에서 오염된 공기 탓에 기침과 가래가 끊이지 않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광산에선 아무리 쾌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우울함을 이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남녀 비율이 50 대 1인 근무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성폭력이었다. 무얼 하든 남성들의 불쾌한 관심을 받아야 했던 그녀는 마치 ‘어항 속 금붕어’ 같았다. 첫 만남에 ‘귀염둥이’로 불리는 건 애교였고, 성적 농담이 수시로 오갔다. 남성들이 그녀를 구경하기 위해 건물 앞에 줄을 섰고, 호시탐탐 숙소 앞을 지키기도 했다. 매니저에게 항의해도 돌아오는 말은 차가웠다. “여기에 발 들였을 때부터 남자들 세상이란 걸 알고 있었잖아.” 결국 저자는 잠시 광산을 떠난다. 은퇴자들의 부유한 도시인 빅토리아섬의 해양박물관에서 일한다. 이곳에선 광산 노동자들의 성희롱 대신 동료로서 존중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급여. 박물관은 주 최대 노동시간이 21시간이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도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저자는 앨버타 광산으로 돌아온다. 책의 묘미는 저자가 온전한 피해자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석유 채굴 작업 후 남은 오염수 웅덩이인 ‘테일링 연못’에선 수백 마리의 오리가 죽어간다. 계약직 노동자가 중장비에 깔려 숨져도 회사는 “근로 손실 재해 없이 노동시간 300만 시간을 달성했다”며 자축한다. 저자에게 학자금 대출을 갚을 돈을 준 광산회사는 인근 원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파괴한 악덕 기업이었다. 저자는 늘 폭력을 당하는 쪽이라고 여겨온 자신이 환경을 파괴하고 원주민의 삶을 망가뜨린 가해자에 가담했다는 사실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모두 저마다의 오일샌드를 경험했다. 이것은 내가 겪은 오일샌드다.” 저자는 산전수전 겪은 오일샌드를 단순히 나쁜 곳 혹은 좋은 곳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힘든 와중에 저자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 ‘아빠 같은’ 사람들도 그곳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오일샌드의 끔찍한 면을 알려달라”고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보다 광산 동료들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다. 노동 소외, 성폭력, 환경 파괴 등이 점철된 오일샌드 광산은 한국의 현실과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책을 읽다 보면 치열한 사회생활 속에서 ‘나의 오일샌드’가 어딜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안전하게 류하(流下·아래로 흐른다는 의미)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전문약. 효과 없는 약으로 실패하신 분들은 월경 중지 개월 수를 적어 편지로 문의하세요. 다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심하고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비밀리에’ 알려드립니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일본어로 발간된 신문인 경성일보의 1931년 1월 7일 자 ‘쓰키야쿠(月藥·월경 관련 약품)’ 광고다. 광고 문구만 얼핏 보면 월경 불순 치료제로 보이지만, 실상은 임신 중절약을 판매하는 내용이다. 최근 쓰키야쿠 광고가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은밀한 임신 중절 통로였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나왔다. 배홍철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은 16일 한국여성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침묵하는 월경(月經): 1920∼30년대 국내 일본어 간행 신문의 ‘쓰키야쿠’ 광고 지면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경성일보, 조선신문, 조선시보 등 국내에서 간행된 3개 일본어 신문의 쓰키야쿠 광고 1211건을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쓰키야쿠 상품은 주로 약품(1062건·88%)으로, 일본에 본사를 둔 광고주가 우편 거래와 상담을 제공했다. 배 연구원은 “일본어 신문을 읽던 조선 내 일본인 거주자나 상류층 조선인 여성들이 광고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쓰키야쿠 광고는 ‘월경 불순 치료’를 명시한 일반 광고와는 달랐다. ‘비밀 보장’, ‘신체 무해’, ‘복용 경험’, ‘후불제’ 등의 문구를 삽입하면서도 투약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1921년 1월 12일 자 경성신문의 쓰키야쿠 광고에는 ‘월경이 없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임신, (중략) 여성은 조금이라도 서둘러 통경(通經) 전문약을 복용하는 게 좋다’는 문구가 나온다. 배 연구원은 “예외적으로 월경이 오지 않는 배경과 해결 방안을 기술한 광고”라며 “당시 쓰키야쿠 광고가 임신 중절용임을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24년 21건에 불과하던 쓰키야쿠 광고는 1932년 210건으로 약 10배로 급증했다. 1930년대 업체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대놓고 ‘임신 조절’ 문구를 명시하는 광고도 나왔다. 미국에서 산아 제한 운동을 창시한 마거릿 생어(1879∼1966)를 내세운 신문광고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임신 중절과 피임을 법으로 막았다. 1912년 일본 형법을 조선에 적용한 ‘조선형사령’에 따르면 낙태를 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었다. 1930년에는 ‘유해 피임용 기구 취체규칙’을 제정해 피임 핀이나 자궁주입기 등의 피임 기구 사용을 금지했다. 배 연구원은 “일제의 피임 금지는 출산을 늘려 더 많은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쓰키야쿠 광고는 일제강점기 여성들이 국가의 감시를 피해 피임을 시도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문화재청이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경남 합천 해인사의 대장경판을 디지털화하는 ‘팔만대장경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사업’을 내년까지 추진한다고 18일 밝혔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 고종(재위 1213∼1259년) 때 부처님의 힘을 빌려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불교 경전을 새긴 목판이다. 목판의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해 ‘팔만대장경’으로도 불린다. 현재 해인사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장경판전(藏經板殿)에 보관돼 있다. 해인사 대장경판은 경판에 먹을 입혀 인쇄한 인경본(印經本)이 있지만 국내에 일부만 남아 있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고려 시대 때 일본에 전해진 책도 구성이나 내용이 완전하지 않다. 이에 문화재청은 올해부터 경판을 정밀하게 기록하고 보존 상태를 조사해 인터넷으로 대장경판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할 방침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저는 제가 잘 아는 장소의 불안정하고 어른어른 빛나는 버전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간 ‘우주의 알’(은행나무)의 저자 테스 건티(3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22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 장편소설은 그의 데뷔작이다. 건티는 1960년 스물일곱 살에 전미도서상을 받은 필립 로스 이후 가장 젊은 수상자다. 미국 노터데임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뉴욕대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물세 살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완성까지 5년 가까이 걸렸다”며 “고향인 미국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를 떠나 뉴욕에 살면서 다층적인 소설의 구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소설은 쇠락해가는 미국의 가상 도시 바카베일의 한 저가 아파트 주민들이 7월 한 주 동안 겪은 일을 다룬다. 바카베일은 자동차 산업으로 한때 번영했다가 쇠락한 그의 고향을 닮았다. 소설 원제인 ‘토끼장(The rabbit hutch)’과 같은 아파트에서 다닥다닥 붙어 사는 주민들은 저마다 배경은 다르지만 모두 외로움을 안고 산다. 그는 “고향에 미국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이 있었지만 갑자기 문을 닫아 지역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며 “소설의 배경은 미국 전역의 이런 탈공업화 도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주인공들은 팍팍한 현실을 이기기 위해 기묘한 행동을 한다. 나이가 차 위탁가정에서 독립해야 했던 열여덟 살 소녀 블랜딘은 우연히 가톨릭 여성 신비주의자들의 이야기를 접한 뒤 초자연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육체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자신의 몸을 칼로 찌르는 의식을 치른다. 건티는 “블랜딘은 항상 내가 보고 싶었던 ‘영웅’이다. 매번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마주치는 모든 것에 대해 열성적인 호기심을 갖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블랜딘은 위탁가정을 벗어나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년 세 명을 만나 함께 산다. 그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면모가 잘 부각된다. 건티는 “미국의 위탁 청소년 중 절반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명 중 1명은 위탁가정에서 독립하는 동시에 집이 없는 상황에 처한다”며 “집에서 쫓겨난 아이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훨씬 많은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모공에서 색색의 섬유가 자란다고 믿는 50대 남자, 자신의 부고 기사를 직접 작성하면서 죽음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유명 여배우 등이 등장한다. 건티는 “‘낯설게 하기’는 내 글쓰기 과정의 필수”라며 “글을 살아 숨쉬게 하려면 모든 문장에 나 자신이 놀라야 한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미국 문단의 샛별로 떠오른 그는 ‘준비된 작가’다. 20대 때 시를 많이 쓴 그의 아버지는 매일 밤 어린 건티에게 책을 읽어줬고, 매년 핼러윈마다 지역 도서관에 열리는 ‘어린 작가 콘퍼런스’에 참여해 작품을 발표하도록 했다. 그는 현재 두 번째 소설을 집필 중이다. 그는 “나는 기억할 수 있는 한 항상 이야기를 써왔다”며 “앞으로는 희곡과 시나리오, 시 등 새로운 형식의 글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네이버가 언론보도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로부터 온라인으로 정정 및 반론 보도, 추후 보도 청구를 직접 받겠다고 15일 밝혔다.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가 들어온 기사에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노출하기로 했다. 언론중재위원회 결정이 나오기 전 포털에 정정 요청만 해도 기사에 문제 소지가 있다고 표시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네이버는 서면과 등기우편 등으로 접수하던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이달 28일 청구용 웹페이지를 신설한다고 15일 밝혔다. 또 네이버에 온라인으로 정정 보도 청구가 접수돼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포털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부터 해당 문구를 표시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정정 요청이 들어온 경우 언론사에 해당 기사의 댓글을 일시적으로 닫는 방안을 적극 요청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뉴스 유통업체에 불과한 포털이 언론사의 기사 편집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뉴스 서비스를 독점하는 거대 포털이 오류로 판명되지 않은 기사에 낙인을 찍어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온라인 정정 보도 청구가 악용될 소지가 커진 가운데 언론의 추가·후속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가 독자적으로 뉴스에 ‘품질이 안 좋은 뉴스’라는 딱지를 붙이겠다는 것”이라며 “언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이버, 중재위 판단前 기사에 ‘정정 청구중’ 표시… 法 위반 논란“정정보도 온라인 접수”법조계 “정정보도, 서면청구 규정포털, 온라인 접수땐 법위반 소지” 언론중재법 15조 1항에 따르면 언론사에 대한 정정 보도 등은 서면으로 청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는 제17조의 2 ‘인터넷 뉴스서비스 사업자는 지체 없이 정정 보도 청구 등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하고 언론사 등에 청구 내용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들어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 해석은 다르다. 류형우 법률사무소 눈 대표변호사는 “‘지체 없이’ 알리라는 의무는 서면 요청을 받은 뒤 언론사에 빠르게 전달하라는 것”이라며 “서면이 아닌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언론계에서는 네이버의 조치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오류가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은 기사에 대해 사기업인 네이버가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해석이다.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네이버라는 대형 포털이 언론의 기본 역할을 침해했다. 위헌 가능성이 높은 명확한 언론 자유 침해”라고 했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분쟁을 조정 및 중재하는 과정에서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기 위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것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 등이 노출됐을 때 사람들에게 해당 기사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크다”고 했다. 사기업인 네이버가 언론중재법에 따라 설립된 준사법적 독립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의 역할을 과도하게 넘본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 정책으로 인해 언론중재위원회의 공식 절차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네이버의 새로운 정책 발표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수 세종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검증 대상이 되는 고위공직자, 정치인이 자신한테 비판적인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정정 보도를 요청해 댓글 창이 막힐 수 있다”며 “의혹이 충분히 있다고 느껴져도 기사를 조심해서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온라인신문협회는 이날 네이버의 발표 직후부터 일부 소속사 대표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공론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한 관계자는 “네이버가 뉴스 유통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언론사들의 저질 연성 기사 생산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문제는 외면하고 정정 보도 청구를 이유로 언론사들에 대한 영향력과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작은 금강산으로 불리는 함경북도 명천의 칠보산(七寶山)의 절경을 디지털로 구현한 전시가 한국과 미국에서 함께 열린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5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과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작은 금강, 칠보산을 거닐다’ 전시를 동시 개막했다고 밝혔다.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칠보산도병풍(七寶山圖屛風)을 폭 22m, 높이 4.7m에 달하는 디지털 화면 3면에 영상으로 구현한 전시다. 미국 전시에선 디지털 영상과 함께 실물 병풍도 선보인다. 국내 전시는 5월 26일까지, 미국 전시는 9월 29일까지 진행된다. 칠보산도병풍은 함경북도 명천에 있는 칠보산을 그린 그림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병풍은 19세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작자는 미상이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1억2986만4880권. 2010년 구글북스가 추산한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수다. 작가이자 희귀 서적 수집자인 저자는 이 중 증쇄를 거듭해 지금까지 읽히는 ‘위대한 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많은 장서 가운데 버려지고 잊혀졌지만, 반짝이는 보석 같은 책을 찾아 헤맨다. 연구도 증쇄도 되지 않아 세상에 딱 한 권씩만 남은 책들. 그러나 저자는 “이 책들은 너무 이상해 어떤 범주에도 집어넣을 수 없지만, 명성을 떨친 책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인 ‘책이 아닌 책’에서는 입을 수 있는 책, 먹을 수 있는 책, 상해를 입히는 책 등 희한한 책들을 다룬다. 예를 들어 자동차 브랜드 랜드로버는 두바이 고객을 대상으로 사막에서 자동차가 고장 날 경우 생존을 돕는 지침서를 발간했다. 불 피우는 법과 야생동물 사냥법 등이 담긴 책은 먹을 수 있는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졌다. 랜드로버는 “최후의 방편으로 책을 먹으라”며 “책이 치즈버거에 버금가는 영양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장 ‘출판 사기’에서는 세상을 속이고 기만한 책들을 살펴본다. 2005년 영국 문학 평론가 A N 윌슨은 시인 존 베처먼의 미공개 연애편지가 담긴 전기를 출간했다. 그런데 이 편지는 윌슨이 자신의 책을 비난하자 앙심을 품은 역사학자 베비스 힐리어가 멋대로 날조해 윌슨에게 보낸 것이었다. 편지 각 행의 첫 글자만 모아 ‘세로 읽기’를 하면 ‘A N 윌슨은 상놈의 자식(A N Wilson is a shit)’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외에도 신간은 중세의 상상 속 동물을 모은 백과, 마법사의 마도서, 천사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온갖 괴짜 책을 소개한다. 독서하며 엄숙하고 무거운 지식을 지향해 온 우리는 황당한 책들 앞에서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상력에 금기가 없음을 몸소 증명하는 도발적 매력에도 흠뻑 빠질 것이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조선시대 일본인이 거주하던 마을인 왜관(倭館)은 조선과 일본의 외교 및 무역의 중심지였다. 특히 임진왜란(1592∼1598년) 이후 양국 간 국교 재개를 위해 1678년 부산 용두산 자락에 설치한 초량왜관은 약 33만579m² 규모로, 대마도에서 온 500여 명이 살았다. 이들은 일본 조리도구로 일본 요리를 만들고, 조선 도기로 술이나 조미료 등을 보관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다. 가타야마 마비 도쿄예술대 미술학부 교수는 9일 한일관계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초량왜관 선창지 유적 발굴 성과에 대하여’ 논문을 발표했다. 가타야마 교수는 2018년 8월 부산박물관과 함께 부산 중구 동광동 공사현장에서 수습한 도자기 조각들을 조사했다. 공사 현장은 왜관요(倭館窯) 자리로 알려진 옛 로얄관광호텔로부터 250m 떨어진 지점의 선창 부지다. 왜관요 수리 공사 과정에서 도자기 조각들이 선창 부지까지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에선 2.6m 깊이의 토층에서 기와 조각 57개, 도자기 조각 449개가 나왔다. 이 중 조선 옹기 조각이 191개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일본 도자기 조각 71개, 왜관요 도자기 조각 49개, 조선 백자 조각 48개, 일본 백자 조각 44개 순이었다. 출토품은 왜관 거주 대마도인들의 일상생활을 잘 보여준다. 유물 중에는 된장을 짓이기는 용도의 일본 도기 스리바치(擂鉢)와 흙으로 만들어진 일본 냄비의 일부가 포함됐다. 이들 대부분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옹기 조각도 191개로 많이 발견됐다. 가타야마 교수는 “일본인들이 왜관에서 주로 일본 요리를 해먹었지만 선물로 받거나 구입한 조선 옹기에 술이나 조미료 등을 보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견된 일본 백자의 생산지는 일본 사가현 아리타(有田)로 분석됐다. 정유재란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를 구운 조선 도공 이삼평(미상∼1656)이 아리타 자기의 시조로 추앙받는다. 임진왜란 때 납치된 사기장 이우경이 만든 나가사키현 하사미(波佐見) 가마에서 제작된 자기도 포함됐다. 그동안 초량왜관에 대한 학술 연구는 문헌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이 같은 고고학 연구는 드물었다. 2018년 가타야마 교수와 함께 유물을 수습한 나동욱 영남성곽연구소장(전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은 “왜관은 한일 간 무역 교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라며 “앞으로도 중요 유물들이 발굴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덕수궁 2층 목조 건물인 ‘석어당(昔御堂)’에 올라 봄을 만끽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22∼28일 하루 두 번 덕수궁 주요 전각 5곳의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옛날 임금의 집’이라는 뜻의 석어당은 궁궐에서 보기 드문 2층 목조건물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의주까지 피란을 갔던 선조가 한양에 돌아와 임시로 머물며 통치한 곳이다. 덕수궁관리소 관계자는 “참여자들은 석어당 2층에 올라 만개한 살구꽃을 감상하며 봄을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사신들의 접견 등 중요 의식을 치르던 중화전(中和殿), 조선 고종(1852∼1919)이 승하한 침전인 함녕전(咸寧殿)도 이번 행사 기간 개방된다. 대한제국 초기 정전으로 사용된 즉조당(卽阼堂)과 고종의 외동딸인 덕혜옹주(1912∼1989)의 유치원으로 사용된 준명당(浚眀堂) 내부도 체험할 수 있다. 프로그램 운영 시간은 각각 오전 10시와 오후 3시 30분이다. 회당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중학생 이상이면 참여할 수 있고 무료다. 15일 오전 11시부터 궁능유적본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회당 15명씩 신청할 수 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30년 전 조선후기 시화사(詩話史·시와 이야기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한국 전반의 시화사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신간 ‘한국 시화사’(성균관대출판부·오른쪽 사진)를 펴낸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63·왼쪽 사진)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교수는 책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까지 시화사를 총망라했다. 시화는 시와 이야기가 섞인 책으로 시에 얽힌 일화, 시 작법, 시인에 대한 평가 등이 포함된다. 안 교수는 한국 시화의 출발점을 12세기 고려 문인 정서가 1170년 이전에 쓴 걸로 추정되는 ‘과정잡서(瓜亭雜書)’로 보고 있다. 정서는 유배생활 중 왕이 자신을 불러주지 않아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래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정잡서는 현존하지 않지만, 속파한집서(續破閑集序) 등을 통해 그 존재가 알려져 있다. 실물이 남아 있는 고려시대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1211년)을 한국 시화의 효시로 보는 게 학계 통설이다. 과정잡서는 이보다 40년 이상 시기가 앞선다. 신간에는 안 교수가 확보한 시화 자료들이 풍부하게 담겼다. 안 교수는 일제강점기 승려 시인 석전 박한영(1870∼1948)의 시론서 ‘석림수필’(1943년)을 2017년 경매로 구입해 분석했다. 그는 “석림수필은 일화를 많이 담은 전통 한국 시화와는 다른 장편의 시론”이라며 “선종과 한시는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시선일치(詩禪一致)의 시각에서 분석한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기존 연구의 사각지대였던 현대 시화사도 폭넓게 조명했다. 반드시 한시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시조 시인 조남령(1918∼미상)이 1949년 문예월간지 ‘학풍’에 기고한 ‘시화삼제(詩話三題)’를 소개하며 “시조를 보는 독자적 안목을 제시한 문예비평”이라고 평했다. 1914년 10월∼1915년 3월 잡지 ‘공도’에 ‘조선고대부인시문고(朝鮮古代婦人詩文考)’를 연재하는 등 여성 시문학에 일찍이 주목한 문인 김원근(1870∼1944)의 이야기도 담겼다. 안 교수는 “한국 시화는 시 창작법을 위주로 설명하는 중국 시화와 달리 시에 얽힌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민족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에 대한 보존 처리를 마쳤다고 11일 밝혔다. 국외문화유산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2022년 11월 보존 작업을 시작한 지 16개월 만이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나라 장군 곽자의(郭子儀·697∼781)가 노년에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함께 연회를 즐기는 장면을 그린 조선 후기 회화다. 안녹산의 난 등에서 공을 세운 곽자의는 분양왕으로 봉해져 85세로 죽기 전까지 본인을 비롯해 아들 8명, 사위 7명도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다. 재단 관계자는 “조선 궁중과 민간에선 부귀와 다복을 소망하며 곽분양행락도를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고 말했다. 6폭 또는 8폭 병풍에 그린 곽분양행락도는 국내외를 합쳐 37점 정도 남아 있다. 이번에 보존 처리를 마친 곽분양행락도는 가로 50cm, 세로 132cm 크기의 병풍 8폭이 이어진 형태다. 1∼3폭에는 집안 풍경과 여인, 4∼6폭에는 잔치 장면, 7∼8폭에는 연못과 누각의 모습을 묘사했다. 그라시민족학박물관은 1902년 독일 미술상으로부터 곽분양행락도를 구입해 소장했다. 입수 당시 8폭의 병풍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나무틀이 뒤틀리면서 그림을 분리했다. 그림 부분만 낱장으로 보관했다가 재단의 보존 처리를 거쳐 병풍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한국은 현대사에서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한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입국(移入國·이주자들을 수용하는 국가)으로의 변화는 불가피합니다.” 신간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세종서적)의 저자 헤인 데 하스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로코, 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 나라에 거주하며 30년 넘게 이주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네덜란드 사회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이번 신간은 그의 첫 대중서로, 이주를 둘러싼 편견과 오해 22가지를 나열한 뒤 데이터를 활용해 반박했다. 그는 “더 효율적인 이민 정책을 수립하려면 무엇보다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경제 성장 후 동남아시아 등에서 외국인이 이주하는 주요 이입국이 됐다. 이와 관련해 그는 “인구 고령화와 교육 수준 향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3D 업종에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가 종사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 인구 중 이입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3.5%지만 비율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는 1960∼1970년대 서유럽에서 나타난 현상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도 1990년대까지 ‘이입국이 아니다’라고 부정했지만 최근 몇십 년 사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며 “한국 정부도 입국한 이주자들을 한 번 쓰고 버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대하는 정책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 0.65명을 기록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또 경신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떨어지는 출산율을 되돌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며 “정책을 통해 출산율이 높아진다고 해도 더 많은 젊은이가 경제 활동에 나서기까지 몇십 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법무부가 저출산·고령화를 맞아 인구 감소 대안으로 이민청 신설을 발표한 가운데 저자는 “이민 정책만으로 인구 고령화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현실적일 만큼 높은 수준의 이입이 필요한 데다, 이주자들도 나이를 먹는다”며 “결국 노동력 부족 문제는 지속되거나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포장하지도 말자고 주장한다. 신간은 이 외에도 ‘세계는 난민 위기에 봉착했다’, ‘이입 때문에 범죄가 급증한다’ 등 이민자들을 둘러싼 각종 통념을 데이터로 논증해 나간다. 그는 “한국이 증거에 기반해 더 효과적인 이주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수십 년간 유럽 등이 저지른 실수를 답습하지 않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짐을 짊어졌다.” 2005년 ‘미투(Me too)’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의 인권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신간 ‘해방’에서 생애 첫 성폭력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곱 살 소녀였던 버크는 자신이 ‘밖에서 놀 때 시야에서 벗어나지 말 것’ 등의 규칙을 어겼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신간은 버크가 미투 운동에 이르게 된 인생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미투’ 해시태그가 사용됐다. 이 운동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책에는 침묵하던 어린 소녀가 세계 여성들에게 용기를 준 인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 흑인 문학에 심취한 똑똑한 소녀였던 버크는 고교 시절 흑인 청소년 네트워크에서 활동한다. 청소년 캠프에서 ‘우리는 모두 리더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당찬 소녀였지만, 자신의 피해는 직면하려고 하지 않았다. 죄책감은 침묵을 깬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활동가가 된 버크는 캠프에서 열두 살 소녀 헤븐을 만난다. 헤븐은 버크에게 자신이 엄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버크는 어렸을 적 자신을 닮은 헤븐을 외면한다.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는 버크에게 여전히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일을 후회하던 그는 흑인 공동체 지도자들이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력을 묵인하는 상황을 목격하곤 각성한다. 어느 날 밤 잠에서 깨 허겁지겁 수첩을 꺼낸 뒤 두 음절을 적는다. ‘Me too.’ 신간은 ‘피해자의 말하기’가 사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책하며 자신의 잘못을 곱씹는 대신 누군가와 경험을 공유하면서 가해자의 잘못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당한 폭력과 맞서며 내면을 다듬어가는 버크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다. 말하기를 통해 성폭력의 상처를 치유한 인물이 또 있다. 신간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의 저자 김진주(필명)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다. 2022년 5월 모르는 남성에게 돌려차기를 당해 전신마비가 왔지만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신간엔 저자가 500일간 법정 투쟁을 이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제외된 성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을 언론에 알린다. 또 1000쪽이 넘는 재판기록을 직접 뒤져 성범죄 정황을 발견한다. 결국 ‘살인미수’만 적용돼 12년에 그쳤던 1심 형량은 항소심에서 ‘강간 및 살인미수’로 변경돼 2심에서 20년으로 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저자는 스스로를 ‘가장 색채로운’ 피해자라고 말한다. 통념에 갇힌 피해자답게 우울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걸 꺼리지도 않는다. 보복 범죄를 다짐하는 범인을 ‘잡범’이라고 일축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합의해 달라”는 뻔뻔한 범인의 태도에 “미친 것 아니야?”라며 분노한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성범죄 피해자들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들과 연대하고자 한다. 국적도 나이도 다른 버크의 미투와 겹쳐 보이는 이유다. 사실 그의 말대로 위축되어야 할 인물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김진주가 더 이상 ‘색채로운’ 피해자가 아니기를 바란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당당해야 한다. 책을 읽으며 든 “내가 범죄를 당한다면 김진주처럼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명확히 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이 책을 교과서처럼 집어 들 것 같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이탈리아는 6·25전쟁 중인 1951년 10월 의료지원 부대 ‘제68적십자병원’을 한국에 파병했다. 유엔 회원국은 아니었지만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인도적 지원에 나선 것이다. 병상 150개, 부대원 60여 명 규모로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병원은 전쟁이 끝난 1955년까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한 환자 20만 명 이상을 치료했다. 특히 1952년 9월 사상자 170여 명이 발생한 구로동 경인선 열차 충돌 사고 당시에 다수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한국과 이탈리아 간 교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모든 길은 역사로 통한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열린 전시로, 조선과 이탈리아가 1884년 6월 26일 ‘조·이 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양국이 교류한 사진 10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선 제68적십자병원의 활동 사진 및 영상이 처음 공개됐다. 부대원들이 물자를 나르고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은 물론 이들의 인터뷰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지혜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탈리아의 의료부대 파견은 양국 관계가 특히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제3대 이탈리아 영사 카를로 로세티(1876∼1948)가 1902년부터 대한제국에 머물면서 촬영한 사진 컬렉션도 볼 수 있다. 한양 상급학교 대수학 강의시간, 꿩 장수, 1900년대 초 동대문 대로 등 다양한 옛 대한제국 모습이 담겼다. 이탈리아 대표 문화유산인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무료.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유토피아 도시 ‘멍청(蒙城)’. 소설가, 독자,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20, 30대 7명이 ‘비둘기 북클럽’에 모여 책을 읽는다. 그들은 정적인 활자를 누구보다 동적으로 읽어낸다. 울고 웃고, 때론 전율한다. 활자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현대인에게는 낯선 자극이다.“문학은 노력한 만큼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휴대전화 쇼츠(짧은 동영상)가 가져다주는 즐거움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죠.”올 1월 신간 ‘격정세계’(은행나무·사진)를 펴낸 중국 소설가 찬쉐(殘雪·71)는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의 필명 찬쉐는 ‘녹지 않고 남은 눈’이란 뜻으로 본명은 덩샤오화(鄧小華)다.‘중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찬쉐는 실험적이고 강렬한 언어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영국 베팅 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가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가로 그를 지목했다. 1953년 중국 후난성에서 태어난 그는 네 살 때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던 부모가 극우주의자로 몰려 온 가족이 노동교화소로 끌려갔다.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한 뒤 서양문학과 영어를 독학했고, 재봉사로 일하던 서른 살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찬쉐의 첫 장편소설 ‘황니가(黃泥街)’를 한국어로 옮긴 김태성 번역가는 “찬쉐는 유년 시절을 거치며 겪은 삶의 어려움과 부조리함을 몽환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라고 평했다.신간은 북클럽 회원들이 얽히고 설키며 사랑하는 연애소설이다. 지리멸렬한 현대인의 삶에 문학과 사랑이 격정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영감은 몸과 마음이 발동하는 격정에서 나온다”며 “격정이 작품을 쓰는 동안 시종일관 나를 관통해 1년이 안 되는 시간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말했다.다소 난해했던 전작과 달리 신간은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작품세계의 문턱을 낮춘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일부러 낮췄다기보다 실험문학이라는 일관된 속성이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저력이 지금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주인공들은 문학만큼 사랑에도 열정적이다. 독서에만 몰두하던 샤오쌍은 오랜만에 다시 만난 대학 동창 헤이스에게 설렌다. 작품 속 같은 비둘기 북클럽 출신의 평론가 페이와 결혼한 작가 한마는 “두 사람이 함께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이상적인 반려자’”라고 말한다. 찬쉐는 “책에서 묘사하는 건 이상적인 사랑으로 육체를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승화시킨다”고 했다.찬쉐는 매일 낮에는 철학책을, 밤에는 소설을 쓴다. 최근 쓰는 소설은 욕망에 관한 장편소설 ‘양서인(兩棲人·양서류 인간)’이다. 그는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격정세계’에 빠져들어 등장인물들과 함께 격정적인 삶을 경험해 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찬쉐와의 일문일답.―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늘 지목되고 있는데 올해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은 예측하기 쉽지 않고 예측할 필요도 없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 문학적 이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확산 속도가 이미 크게 빨라졌다. 이번에 도박 베팅 사이트에서 나를 수상 후보 1위로 선정한 덕분에 중국 국내 언론에도 꽤 많이 보도됐다. 이러한 홍보가 내 문학 영향력을 확대한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나 역시 만족스럽다.”―문학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인생의 사건은 무엇인가.“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일 것이다. 그 일로 나는 인간성의 심오함과 복잡함을 알게 되었다. 일흔여덟 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 일과의 관계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보다 더 훌륭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내게 희망을 품고 오랜 시간 동안 하루같이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내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글을 쓸 때 구상이나 동기 없이 ‘자동적으로 글을 쓴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자동적으로 현실세계와 유리된 글을 끌어내는 원천은 무엇인가.“사전에 구상하지 않는 건 창작할 때 신체적 욕망의 충동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쓸 때는 중국인으로서의 실천적인 본능에 입각해서 이렇게 했는데 어느 정도 쓰다 보니 조금씩 자각하게 되었다. 서양의 고전 문학과 철학에 깊이 빠져들면서 내 작품이 특히 강한 정체성을 가질 뿐 아니라 작품의 형상이 창작 전체의 화환을 구성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 작품들은 통속적이고 표면적인 해석에 기대지 않고 세계 가운데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세계의 본질과 인간성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낯설지만 친숙한 모습으로 삶에 깊숙이 들어가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소수의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이런 작은 성공은 내게 한층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격정세계’를 쓸 때 내 안에 들끓는 욕망을 어렴풋이 느꼈는데 무엇보다 갈망하던 그것들을 하나의 통합적인 세계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문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 사는 ‘멍청’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처럼 느껴진다. 삭막한 주인공 샤오쌍의 고향 ‘징청’과 특히 대조되는데, 공간의 대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나.“‘멍청’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유토피아로 격정의 도시다. 그렇다고 그곳은 결단코 사상누각이 아니라 가능성의 도시다. 생활 속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면 적잖은 사람에게 이런 가능성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행동할 수 있게 독려하는 그런 이상적인 꿈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멍청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징청과 대비시켜 독자들로 두 종류의 삶 가운데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작품 속 인물들은 얽히고설키며 격정적인 사랑을 이어간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무엇이고, 사랑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보는가.“사랑은 육체와 영혼의 이중적인 끌림이다. 어디에 중점을 둘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이중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묘사하는 건 이상적인 사랑으로 육체를 들뜨게 할 뿐 아니라 영혼을 승화시키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은 목적을 가지고 살게 하며, 우리가 발 딛고 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세상에서 사랑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과 동성애를 포함해서 자연 속 다른 것들에 대한 집착 역시 사랑이다.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어떤 이유로 사랑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는 자신의 인간성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불행할 수밖에 없다.”―글에 몰입하고 이를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비둘기 북클럽 속 주인공들처럼 함께 감상을 나누는가, 아니면 침잠해 글을 이해하려 하는가.“비둘기 북클럽 같은 것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스스로가 인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감성이 더없이 풍부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북클럽의 광경들은 자신을 각각으로 분열해서 연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이는 마음속 욕망을 자연스럽게 발휘한 것이다. 내 문학에서 등장인물들이 지닌 자질은 하나같이 자신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전부 나의 가능성이며, 하나로 합치면 문학의 소우주를 구축한다. 인물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건 작가가 가진 원시적인 힘이다. 이런 소설은 ‘독창성’의 경지를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서양식 사유의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본토의 자의식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북클럽 주인공들은 제목에 ‘X’가 포함된 소설을 읽으며 몰입한다.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읽기를 바라면서 소설을 집필했는지.“X는 허구적 이상 소설로 미래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내가 말하는 본질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면서 본질에 가장 가까운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적나라하고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인생을 즐기고, 예술을 즐기며 이로 인해 창조의 격정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독자에게 바라는 바다.”―기존작과 신간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예전에 쓴 소설은 ‘격정세계’보다 좀 더 추상적이어서 보통 사람들이 읽기에는 다소 힘에 부친다. 하지만 내 팬들은 그것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훗날 ‘암흑 대지 어머니의 선물’을 쓰자 가독성이 좋은 편이라 젊은 층에 사랑을 받았다. ‘격정세계’ 역시 비슷한 종류의 소설로 나는 늘 실험 중이다. 끊임없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고, 이는 내게 만족을 가져다준다.”―소설에는 독자를 대표하는 샤오쌍, 소설가를 대표하는 한마, 비평가를 대표하는 페이 등이 등장한다. 이 세 요소가 어떻게 조화돼야 문학세계가 완성될 수 있다고 보는가.“세 가지는 문학의 기본 요소로 문학은 전파를 통해서 발전한다. 소설은 아무도 읽지 않으면 사라진다. 이를 알아챈 사람들은 문학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감상하기 위해 독자와 비평가를 배출했다. 나는 실험 소설의 독자와 비평가는 필히 창조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설은 양자의 ‘감정이입(공감)’과 연기적 해석을 통해서만 이질적이지만 공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준 높은 요구다. 그래서 대도시 멍청에서 정상급 독자나 비평가가 열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학은 대중적이지 않지만 생명력은 더없이 길다.”―신간을 접할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독자들이 책 속 인물과 함께 춤추면서 진심 어린 즐거움을 얻었으면 한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무라야마 담화’의 실수는 선악의 기준으로 일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전제하에 사죄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2월 일본에서 출간된 ‘아베 신조 회고록’에 실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말이다. 번역 후 한국에서 새로 출간된 이 회고록은 아베 전 총리가 퇴임 후 2020년 10월부터 약 1년간 요미우리신문 기자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무라야마 담화’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현직 일본 총리 최초로 한국의 식민 지배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죄한 담화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는 이 담화를 사실상 부정하고, ‘자기반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회고록엔 “일본만 식민지배를 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억울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전 서양 각국도 식민지배를 했을 것”, “벨기에 국왕이 잔혹 행위를 했다며 콩고 공화국에 사과한 것은 2020년” 등 온통 ‘남 탓’하는 그의 말들로 가득하다. “일본은 과거 몇 번이나 사과해 왔습니다. ‘여러 차례 사과를 시켰으면 이제 됐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뻔뻔하면서도 솔직한 ‘가해자’스러운 태도는 다소 말을 잃게 만든다. “역사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등과의) 싸움에서 일본이 왜 이렇게 약하냐”고 묻는 신문기자들의 질문 자체에도 “일본은 억울하다”는 인식이 묻어난다. 아베 전 총리는 이에 대해 “역사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풍화될 테니 그냥 넘어가자는 자세라 외무성이 싸워오지 않았다”며 “내 정권 들어서는 열세를 만회하려 했다”고 변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묻힌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길”이라고 합리화했다. 책을 읽으면 한국에서 아베 전 총리가 그저 대표적인 혐한파 우익 정치인 정도로 평가 절하되는 이유가 이해된다. 2022년 총격으로 사망한 그는 일본에선 8년 8개월을 재임한 ‘최장수 총리’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우익 발언은 한국인의 정서와는 확실히 유리됐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을 받는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에 대해 “재무성의 책략일 가능성이 있다”고 회피하는 등 다방면에서 성실한 회고(回顧)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모리 마유코(森万佑子)의 신간 ‘한국병합’에선 역사에 대한 젊은 연구자의 자기 반성적 면모가 엿보인다. 저자는 서울대에서 한국 근대사를 배운 연구자로서 양국 사료를 고루 제시하며 한일 병합 과정을 촘촘히 파헤친다. 혐한과 케이팝이 공존하는 일본에 정작 균형 잡힌 사료에 근거해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저서가 없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껴 집필했다. 일본인임에도 한국을 주어로 책을 집필한 점이 흥미롭다. 기존 대다수 일본인이 쓴 책들은 ‘일본이 왜 한국을 병합했는가’에 집중한 경향이 컸지만, 이 책은 ‘대한제국이 성립 후 붕괴하는 과정’으로 눈을 돌린다. 대한제국 황제와 정부를 주인공으로 두고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한 인물들을 분석한다. 모리는 “일본이 한국인으로부터 통치에 대한 합의와 정당성을 무리하게 얻으려 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피력한다. 1990년대 이후 양국 연구자들이 수행한 한일 병합 관련 연구에서 발생한 논쟁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일본은 ‘국제법’을, 한국은 ‘역사학’을 근거로 대립하는 가운데 모리는 이 책이 한일 양국의 생각의 간극을 좁히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다. 서양의 핑계를 대며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우익 정치인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이유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