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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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4-10-24~2024-11-23
문화 일반40%
음악30%
인사일반17%
문학/출판13%
  • 황석영 ‘철도원 삼대’, 세계 3대 문학상 ‘부커상’ 최종후보 올라

    황석영 작가(81)가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2020년·창비) 영문판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22년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2017년), 지난해 천명관 작가의 장편소설 ‘고래’(2004년)에 이어 한국 작가의 작품이 3년 연속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처음이다. 부커상 위원회는 9일(현지시간) ‘철도원 삼대’의 영문판인 ‘마터 2-10’(Mater 2-10)을 포함해 6편의 최종 후보작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이에 따라 황석영은 소설을 영어로 옮긴 번역가 소라 김 러셀, 영재 조세핀 배와 함께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의 최종후보가 됐다. ‘철도원 삼대’는 철도원 가족을 둘러싼 방대한 서사를 통해 일본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노동자의 삶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앞서 황석영은 장편소설 ‘해질무렵’의 영문판 ‘앳 더스크’(At Dusk)로 2019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오른 적이 있다.부커상은 노벨 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한국작가 중에선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았다. 올해 수상자는 다음 달 21일(현지 시간) 영국에서 발표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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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편적 정서로 어른까지 사로잡아… K-아동문학의 힘

    아동문학 작가 이금이(62)가 202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2년마다 아동문학 발전에 공헌한 글·그림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수여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은 아동문학상 중 세계 최고 권위를 지녀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불린다.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수지 작가가 그림 부문에서 이 상을 받은 데 이어 이 작가가 연달아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K아동·청소년문학’이 연달아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건 이야기가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작가의 작품은 보편성을 무기로 다양한 세대와 나라를 포괄하고 있으며 2차 창작물로도 자주 만들어진다. 하와이 이민 1세대가 등장하는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년·창비)은 2022년 뮤지컬로 제작됐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장편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년·사계절)는 2021년 웹툰으로 만들어졌다. 일각에선 이금이 이수지 등 한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교육열 높은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질 좋은 콘텐츠란 점에서 경쟁력이 높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아이들에게 읽기 좋은 책을 고르려는 학부모의 선구안이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영미 아동·청소년문학이 100년 동안 쌓은 수준을 최근 수년 사이 빠르게 따라잡아 이젠 해외 서점 아동문학 상위권을 한국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 작품들을 수입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책의 내용, 그림 수준 등 어느 것도 뒤처지지 않게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발전한 덕”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작품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내용이 깊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읽는 ‘영 어덜트(Young Adult)’ 문학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심향분 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 위원장은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한국의 역사적 상처라는 특수성부터 성장의 아픔 등 여러 국가 독자가 공감하는 보편성까지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 시대의 어린이·청소년과 함께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작가”라고 했다. 한국 문학의 인기가 전체적으로 올라간 덕도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해외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우리 문학을 출간하겠다고 번역 지원을 요청한 건수는 2014년 13건에서 지난해 281건으로 10년 만에 21배 늘었다. 정보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2004년·문학동네)가 각각 2022,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이런 높은 평가는 한국 작가들의 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수지 작가는 2022년 한국 작가 최초로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수상했다. 그림책 ‘구름빵’(2004년·한솔교육)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김지안의 ‘달리다 보면’(웅진주니어), 서현의 ‘호랭떡집’(사계절), 최연주의 ‘모 이야기’(엣눈북스)가 우수상 격인 특별언급 부문을 수상했다. 전문가들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함께 지닌 아동·청소년문학이 한국 문학을 이끌 수 있다고 평가한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아동·청소년문학은 유아들이 즐겨 보는 그림책과 어른들이 읽는 성인 문학을 잇는 가교”라며 “번역 사업 지원 등 정부가 나서 아동·청소년문학을 키운다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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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 출판사들 앞다퉈 러브콜…‘K아동문학’ 세계서 통한 이유

    아동문학 작가 이금이(62)가 202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주목받고 있다. 2년마다 아동문학 발전에 공헌한 글·그림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해 수여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은 아동문학상 중 세계 최고 권위를 지녀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린다.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수지 작가가 그림 부문에서 이 상을 받은데 이어 이 작가가 연달아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K아동·청소년 문학’이 연달아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건 이야기가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기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작가의 작품은 보편성을 무기로 다양한 세대와 나라를 포괄하고 있으며 2차 창작물로도 자주 만들어진다. 하와이 이민 1세대가 등장하는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2020년·창비)은 2022년 뮤지컬로 제작됐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장편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2016년·사계절)은 2021년 웹툰으로 만들어졌다. 일각에선 이금이 이수지 등 한국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교육열 높은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질 좋은 콘텐츠란 점에서 경쟁력이 높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아이들에게 읽기 좋은 책을 고르려는 학부모의 선구안이 한국 아동·청소년 문학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과 영미 아동·청소년문학이 100년 동안 쌓은 수준을 최근 수년 사이 빠르게 따라잡아 이젠 해외 서점 아동문학 상위권을 한국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박지은 비룡소 편집주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 작품들을 수입하기 바빴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책의 내용, 그림 수준 등 어느 것도 뒤처지지 않게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이 발전한 덕”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작품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내용이 깊고, 다루는 주제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읽는 ‘영 어덜트’(Young Adult) 문학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심향분 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BBY) 위원장은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한국의 역사적 상처라는 특수성부터 성장의 아픔 등 여러 국가 독자가 공감하는 보편성까지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 시대의 어린이·청소년과 함께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작가”라고 했다. 한국 문학의 인기가 전체적으로 올라간 덕도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해외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우리 문학을 출간하겠다고 번역 지원을 요청한 건수는 2014년 13건에서 지난해 281건으로 10년 만에 21배 늘었다. 정보라 단편소설집 ‘저주토끼’(2017년·래빗홀), 천명관 장편소설 ‘고래’(2004년·문학동네)가 각각 2022, 2023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이런 높은 평가는 한국 작가들의 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수지 작가는 2022년 한국 작가 최초로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수상했다. 그림책 ‘구름빵’(2004년·한솔교육)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2020년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았다.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김지안의 ‘달리다 보면’(웅진주니어), 서현의 ‘호랭떡집’(사계절), 최연주의 ‘모 이야기’(엣눈북스)가 우수상 격인 특별언급 부문을 수상했다. 전문가들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함께 지닌 아동·청소년문학이 한국 문학을 이끌 수 있다고 평가한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는 “아동·청소년문학은 유아들이 즐겨보는 그림책과 어른들이 읽는 성인 문학을 잇는 가교”라며 “번역 사업 지원 등 정부가 나서 아동·청소년문학을 키운다면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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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전자책 유출 보상, 작가들은 배제… 정보공유 안해 내 작품 피해 여부 몰라”

    “혹시 제 작품이 유출됐는지 확인해 줄 수 있나요? 전 제가 낸 작품의 전자책(e북)이 유출됐는지 아닌지조차 모릅니다. 확인할 방법이 있다면 제게 좀 알려주시겠어요?” 중견 작가 A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5월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e북 72만 권이 해킹돼 그중 5000여 권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암암리에 퍼졌지만, 1년 가까이 자신의 책 유출 여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A 씨는 “내 책이 유출됐는지,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최근 출판계에선 알라딘 e북 유출 사건에서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작가가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판사들이 알라딘과 보상을 마무리하고 있지만, e북의 저작권을 지닌 작가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알라딘 e북 해킹 사건은 지난해 5월 한 고교생에게 알라딘 시스템이 해킹당해 전자책 72만 권이 유출된 일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출판인회의는 피해를 본 출판사 중 140개 출판사를 대리해 알라딘과 해결 방안에 합의했다.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위로금은 종당 100만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도 한국출판인회의와 별도로 약 300개 출판사를 대리해 알라딘과 보상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들은 협의 과정에서 저작권자인 자신들이 배제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알라딘 전자책 유출사태 해결을 위한 저작권자 모임’은 지난달 11일 성명을 통해 “출판사들이 작가들에게 직접 유출 현황을 공유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작가가 자신의 책이 유포됐는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출판사에 문의하지 않는 이상 자신의 책이 유출됐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 단체는 알라딘, 한국출판인회의, 출협에 각각 항의 공문을 보냈다. 이 단체를 대표하는 안명희 작가는 “알라딘은 피해 출판사에 대한 개별 위로금 지급과는 별개로 피해 작가에 대해 직접 배상해야 한다. 작가단체와 직접 협상해 사과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현업에 있는 작가들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B 작가는 “종이책 판매량도 정확히 집계하지 못하는 출판계에서 e북 사건에 제대로 대응할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각에선 작가, 문인 단체가 힘이 없는 현 상황이 문제를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8년 문학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벌어지면서 이른바 문단이 해체됐고, 작가들이 중지를 모을 구심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C 작가는 “출협 등 출판계 단체는 모두 출판사 대표들의 모임이다. 과거 문단이 있던 때와 달리 문단이 줄어들면서 작가들이 문제를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e북 유출 사건은 전례 없는 일이다. 사건 해결과 보상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향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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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혁신가-예술가 떠난 ‘경영자의 애플’ 향배는

    2011년 10월 4일 애플의 디자인 총괄 수석부사장 조너선 아이브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집에 들어섰다. 췌장암에 걸린 잡스의 얼굴은 수척했다. 두 다리는 뻣뻣한 나뭇가지처럼 말라 있었다. 같은 시간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본사에서 신제품 ‘아이폰 4S’를 공개했다.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아이브와 쿡은 야심작 아이폰 4S의 실패에 대해 상의할 경황이 없었다. 다음 날인 5일 잡스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잡스 사후 아이브와 쿡이 애플을 이끈 과정을 조명한 경제경영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가 4년간 애플 전·현직 임직원 200여 명을 취재해 썼다. 잡스를 다룬 전기 ‘스티브 잡스’(2011년·민음사)처럼 기업의 속살을 인간사로 풀어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아이브를 창의력 가득한 ‘예술가’로, 쿡을 사안을 꼼꼼히 챙기는 ‘운영자’로 정의한다. 이런 성향 차이 탓에 두 사람의 동거는 불편했다. 올 2월 출시된 확장현실(XR) 기기 ‘비전 프로’를 둘러싼 견해차가 대표적이다. 아이브는 멀리 떨어진 가족을 잇는 소통의 기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쿡은 게임과 영화를 즐기는 미디어 기기로 시장에 내놓았다. 현실세계를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제품을 팔아야 매출이 늘 거라는 판단에서다. 갈등이 폭발하지는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이다. 결국 아이브가 2019년 애플을 퇴사할 때, 쿡은 아이브를 붙잡지 않았다. 퇴사 후 애플과 맺은 디자인 컨설팅 계약이 2022년 중단됐을 때 아이브는 서운함을 드러냈다. 애플의 혁신적 디자인을 이끈 아이브가 떠난 뒤에도 애플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3조 달러(약 4043조 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애플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올 초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마이크로소프트(MS)에 빼앗겼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투자를 망설인 데 따른 것. 저자는 쿡이 이끄는 애플의 성공 여부를 섣불리 예단하지 않는다. 다만 “애플은 어떻게 영혼을 잃었나”라는 말로 아이브가 떠난 뒤 애플이 잡스의 창업 취지와는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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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세한 번역이 살린 ‘Ajimae’의 고유성[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이금이 작가가 올해 세계적인 아동문학상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엔 번역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이수지 작가가 202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수상했지만, 한국인 글 작가가 최종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금이 작가는 수백 쪽에 달하는 두툼한 장편소설을 자주 써온 만큼 한국어를 어떻게 영어로 바꿨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20년 국내 출간된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2022년 영문판으로 출간됐다. 한국판은 하와이 인사말인 ‘알로하’를 강조한 제목을 달았다. 반면 영문판은 ‘The Picture Bride’라는 직관적 제목이다. 소설이 20세기 초 미국 하와이에 이민 간 남성과 서로 사진만 교환한 뒤 혼인한 여성인 ‘사진 신부’의 삶을 다뤘다는 점을 영미권 독자에게 바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주인공 이름은 ‘버들’이다. 고유명사라 ‘Bodeul’이라 번역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문판은 버드나무를 뜻하는 ‘Willow’라 번역했다. 버들이란 이름이 버드나무에서 왔다는 점에 착안해서다. 여성의 머리칼처럼 축 늘어진 잎 때문에 ‘여인’, 버들 류(柳)와 머무를 류(留)가 독음이 같아 ‘이별’을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버드나무의 함의를 전달하기 위해서 아닐까. 반면 ‘아지매’라는 표현은 발음 그대로 ‘Ajimae’라 번역했다. 아주머니의 방언인 이 단어가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당시 여성의 처지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설의 등장인물인 ‘부산 아지매’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친가가 부산이라 추정될 뿐이다. 이금이 작가 역시 한국판에서 “구포(소설의 배경)에 사는데도 부산 아지매로 불리는 아주머니”라고 묘사하며 이름 없는 여성들의 삶을 서술했다. ‘포와(布哇)’ 역시 발음 그대로 ‘Powa’라 썼다. 당시 조선인들이 하와이를 발음하기 힘들어 한자를 음역한 것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다. 당시 사진 신부에게 하와이가 얼마나 두렵고 미지의 땅이었는지 번역이 보여주는 셈이다. 소설 영문판이 지난해 5월 미국의 저명한 출판상인 ‘노틸러스 출판상’ 역사소설 부문 금상을 받은 건 이런 섬세한 번역 덕이다. 번역가 이력도 흥미롭다. 소설 번역을 맡은 이는 안선재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82)다.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안 교수는 1970년대에 종파를 초월한 수도원인 프랑스 테제공동체에 머물며 수행하다 그곳을 방문한 고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김 추기경의 초대로 1980년 수사로 한국에 온 뒤 서강대에서 영어영문학을 가르치다 1994년 귀화했다. 안 교수는 정년 퇴임 후에도 서강대 근처에 오피스텔을 마련해 한국 문학작품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 때마다 조명을 받는 건 작가다. 하지만 좋은 번역이 없다면 유명 작품도 심사 대상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에서 진행되는 안데르센상 수상자 발표에서 ‘Ajimae’ 같은 이색적인 단어가 언급되길 기대해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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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詩와 함께 반세기… 문지-창비, 600-500호 시집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1994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2000년), ‘슬픔치약 거울크림’(2011년)…. 김혜순 시인(69)이 문학과지성사(문지) 시인선으로 출간한 시집들이다. 1981년 문지 시인선 17호 ‘또 다른 별에서’부터 2022년 567호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까지 시집만 총 12종이다. 해외에 번역된 시집도 8종에 이른다. 김 시인이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BCC상)을 수상한 ‘날개 환상통’도 2019년 527호로 출간됐다. 이광호 문지 대표는 “문지 시인선은 동시대 세계 독자와 함께 읽는 책”이라며 “시는 번역이 어려운 장르지만 문지 시인선 중 번역된 시집은 86권”이라고 했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출판사인 문지와 창비가 최근 각각 600, 500호 기념 시집을 최근 펴냈다. 3일 출간된 문지 시인선 600호 기념 시집 ‘시는 나를 끌고 당신에게로 간다’는 501∼599호 시집에서 작가들이 썼던 후기를 모았다. 지난달 29일 출간된 500호 창비 시선 특별시선집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엔 401∼499호 창비 시선에서 시를 한 편씩 골라 담았다. 한국 시의 세계화를 이끈 두 시선집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문지는 1978년 황동규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부터 46년, 창비는 1975년 신경림 시집 ‘농무’부터 49년 동안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시집을 펴냈다. 창비 신인 시인상에서 20세로 당선돼 최연소 수상자가 됐던 한재범의 시집 ‘웃긴 게 뭔지 아세요’처럼 젊은 시인을 발굴하는 것도 특징. 백지연 창비 부주간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고 신구 조합이 탄탄한 시선집이 목표”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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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다 보면’ ‘호랭떡집’ ‘모 이야기’… 韓그림책 3편, 伊 ‘볼로냐 라가치상’

    국내 그림책 작가 3명의 작품이 아동문학계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김지안의 ‘달리다 보면’(웅진주니어), 서현의 ‘호랭떡집’(사계절), 최연주의 ‘모 이야기’(엣눈북스)가 올해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우수상 격인 특별언급 부문을 수상했다고 1일 밝혔다. 1966년 제정된 볼로냐 라가치상은 이탈리아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도서전인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출품된 책 중 예술성과 창의성이 우수한 책에 수여한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BIB상’과 함께 세계 3대 그림책 상으로 꼽힌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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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선 짧게 묘사한 中문화혁명… 첫 장면에 펼쳐 작품 설득력 얻어

    광기에 사로잡힌 믿음의 끔찍함. 지난달 21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세계 1위(TV 부문·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드라마 ‘삼체’는 첫 장면부터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의 비극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제자와 아내에게 버림받고 끝내 살해당하는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예저타이(페리 영)의 죽음을 통해 홍위병이 지식인을 핍박한 역사를 직시한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은 이후 예저타이의 딸 예원제(진 쳉·로절린드 차오)가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반이성적이고 폭력적인 인간 대신 외계인에게 지구를 맡겨야 한다는 ‘인간 회의론자’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문혁 당시 각계 지식인들이 무참히 죽은 역사를 통해 반지성적 행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원작인 중국 작가 류츠신의 장편소설 ‘삼체’(전 3권·자음과모음·사진)에선 이 에피소드가 첫 장면에 나오지 않는다. 1권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짧게 언급될 뿐이다. 류츠신이 2013년부터 쓴 ‘삼체’는 공상과학(SF) 소설계의 노벨 문학상으로 통하는 휴고상을 받고 900만 부 이상 팔렸다. 류츠신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설도 홍위병 장면으로 시작하려고 했지만 출판사가 검열을 우려해 바꿨다”고 털어놨다. 민감한 장면을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적당히 뒷부분에 배치했다는 것. 원작에서도 문혁에 대한 묘사는 짧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다. 예저타이가 죽은 뒤 단상의 모습을 원작은 “핏줄기만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붉은 뱀처럼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가다 단상 끝에서 한 방울씩 아래에 있는 빈 상자 위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세밀하게 묘사한다. 예저타이의 부인이 귀가해 실성한 듯 웃는 구절은 부부의 연마저 끊어버린 문혁의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드라마 ‘삼체’ 공개 후 중국에선 “드라마가 중국을 나쁘게 그렸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정치적 각색”이라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자체 제작한 30부작 드라마 ‘삼체’가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반발은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삼체’ 제작진은 원작자의 허락하에 각색을 했다는 입장이다. 미국판 원작소설에선 홍위병 장면을 맨 앞 장에 넣었다. 넷플릭스가 중국계 캐나다 감독 쩡궈샹(曾國祥)을 섭외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중국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일각에선 예원제가 겪는 시련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삶과 연관 지어 보는 시선도 있다. 시 주석은 문혁 당시 아버지 시중쉰 부총리가 숙청되면서 함께 하방된 적이 있다. 오지에서 7년간 토굴 생활을 하다 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 예저타이가 숙청당한 뒤 고생하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주도하는 연구원이 된 예원제의 삶과 겹쳐 보인다. 드라마가 전 세계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주목된다. 원작은 배경이 시종일관 중국이지만, 드라마는 영국, 미국 등으로 확장됐다. 특히 드라마에선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 배우가 출연했다. 박진혜 자음과모음 편집부장은 “단순히 중국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 드라마에 여러 인종이 등장하도록 바꾼 점이 돋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드라마에서 이주자들이 피부색이나 비자 문제로 차별받는 장면을 넣어 이주 문제를 강조한 점이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외계인이 지구로 이주할 때, 지구인들은 ‘외계의 이주자’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했다.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외계인이라는 위협에 맞서는 게 한 국가만의 투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 세계적 투쟁임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국적의 출연진을 캐스팅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원작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드라마는 다섯 명의 영국 옥스퍼드대 동문을 중심으로 우정의 서사를 풀어낸다. 원작에서 중국 과학자인 왕먀오가 홀로 맡았던 탐정 역할을 드라마는 다섯 명이 함께 맡는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드라마 시즌2의 세계관과 배경이 우주로 확장된 원작소설의 흐름을 따라갈지, 옥스퍼드 동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지 기대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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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문화대혁명’ 오프닝부터 비판…넷플릭스 ‘삼체’ 어떻게 달라졌나 [선넘는 콘텐츠]

    “버러지를 근절하라! 모든 악귀를 쓸어버려라!”1966년 중국 베이징 칭화대. 칭화대 물리학과 교수 예저타이(페리 영)가 고깔모자를 쓰고 홍위병에게 끌려 나온다. 남자 홍위병이 “물리학 수업 중에 상대성 이론을 가르치지 않았나?”고 소리친다. 예저타이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상대성 이론은 물리학의 기초 이론인데 입문 수업에서 안 다루겠나”고 받아친다. 여자 홍위병이 “아인슈타인은 미국에 가서 원자 폭탄 만드는 걸 도왔다”고 외친다. 예저타이의 부인이자 칭화대 물리학 교수인 사오린이 “반혁명적 빅뱅 이론을 가르쳤다”며 예저타이를 고발한다.흥분한 수천 명의 청중은 “예저타이를 단죄하라!”고 외친다. 홍위병들이 잇따라 허리띠를 풀어 예저타이를 향해 휘두른다. 광기에 사로잡힌 홍위병들이 몰려나와 예저타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린다. 잠시 후 예저타이의 숨이 끊어지고, 홍위병들은 당황한 듯 그 자리를 뜬다.● 첫 장면부터 ‘문화대혁명’지난달 21일 공개된 뒤 넷플릭스 세계 시청 순위 1위(TV 부문·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오른 드라마 ‘삼체’의 첫 장면이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중국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끔찍함을 직설적으로 묘사한다. 제자와 부인에게 버림받고 끝내 살해당하는 예저타이의 모습을 통해 홍위병이 지식인을 핍박한 역사를 직시한 것이다.특히 이 장면은 이후 예저타이의 딸 예원제(자인 쳉, 로절린드 챠오)가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지구는 인간이 지배해선 안 된다는 회의론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대혁명 당시 각계각층 지식인들이 무참히 죽은 역사로 반지성적 행동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다.반면 SF(공상과학) 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하고 900만 부 이상 팔린 중국 작가 류츠신이 2013년부터 연달아 쓴 원작 장편소설 ‘삼체’(전 3권·자음과모음)에서 이 에피소드는 첫 장면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1권 초·중반부에 이르러 7페이지 남짓하게 짧게 언급될 뿐이다.왜 장면 배치가 달라진 걸까. 류츠신은 2019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소설도 홍위병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출판사가 검열을 우려해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중국 출판사는 이 장면을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이야기의 뒷부분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류츠신은 NYT에 “마지못해 (편집에) 동의했지만 소설이 달라졌다고 느꼈다”고 했다.원작 소설에서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묘사는 짧지만 참혹하기 그지없다. 예저타이가 죽은 뒤 단상의 모습을 원작 소설은 “광란의 대회장이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핏줄기만이 유일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붉은 뱀처럼 천천히 구불구불 기어가다 단상 끝에서 한 방울씩 아래에 있는 빈 상자 위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고 세밀하게 그려낸다. 예저타이의 부인 사오린이 집에 돌아간 뒤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장면을 묘사하는 원작 소설은 부부의 연마저 끊어버린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준다.류츠신이 ‘삼체’를 쓴 것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류츠신은 “문화대혁명 때 밤에 총소리를 들었다. 도시를 순찰하는 붉은 완장을 찬 남자들로 가득 찬 트럭을 본 것을 기억한다”고 NYT에 말했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으로 바뀌던 문화대혁명이 류츠신이 ‘삼체’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삼체’는 중국의 참혹한 역사를 SF라는 장르적 특성 안에 품어낸 대작”이라며 “요즘 한국 SF에도 근현대사 등 역사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과 작가들이 필요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 “원작자 허락 받고 각색”‘삼체’ 공개 후 중국 내에선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드라마가 중국을 비하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중국을 나쁘게 그린다”, “중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정치적 각색”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지난해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30부작 드라마 ‘삼체’가 더 낫다는 주장도 유행하고 있다. 이런 반발은 특히 중국의 젊은 ‘애국주의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넷플릭스가 원작의 심오한 개념을 단순하고 조잡하게 변형시켜 서양 영웅 스타일의 할리우드 스토리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하지만 원작자의 의도를 반영한 각색을 정치적이라고만 비난할 수 있을까. 실제로 ‘삼체’ 제작진은 원작자의 허락하에 각색했다. 또 원작 소설은 미국판에선 홍위병 장면을 맨 앞장에 배치했다. 그래서 이 장면의 각색은 미국판 번역자가 한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판 번역자이자 SF 소설가인 켄 리우는 2019년 NTY와의 인터뷰에서 “서사 중간에 묻혀 있던 역사적 회상을 끌어내어 소설의 서두로 바꾸자고 원작자에게 제안했다”고 회상했다.넷플릭스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감독을 섭외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2010년 감독 데뷔한 증국상은 중국 영화계에서 주로 활동했다. 증극상은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실제 문화대혁명을 겪은 사람을 인터뷰해 인간적이고 세세한 분위기까지 담으려 노력했다”고 했다.물론 류츠신이 원작에서 중국 체제를 오로지 비판한 것만은 아니다. 류츠신은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에 대해 각종 인터뷰에서 직답을 피하곤 한다.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를 강조한 원작의 메시지는 동아시아적 문화의 특징을 강조한 것처럼 느껴진다. 또 원작은 중국을 미국만큼의 과학 강국으로 묘사한다. 중국 ‘SF세계’ 편집장인 야오하이쥔이 원작 서문에서 “최근 10년간 중국 문학에서 SF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미국 SF와의 비교를 동서양 취향 차이로 논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진전을 이룬 작품이 많이 발표됐다”고 자부심을 드러낸 이유다.일각에선 예원제가 겪는 시련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생과 엮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문화대혁명 당시 아버지인 시중쉰 부총리가 숙청되면서 하방한 바 있다. 오지에서 7년 동안 토굴 생활하다 공산당에 입당했다. 아버지 예저타이가 숙청당한 뒤 고생하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주도하는 연구원이 된 예원제의 삶과 시 주석의 인생이 겹쳐보인다.● 다국적 캐스팅으로 이민자 문제 강조드라마가 전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원작 소설은 중국만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드라마는 배경을 영국 미국 등으로 넓힌 것이다. 특히 남미, 아시아 등 다양한 이민자 출신 배우를 조합한 것도 특징이다. 박진혜 자음과모음 편집부장은 “단순히 중국을 중심으로 두지 않고 드라마에 여러 인종이 등장하게 바꾼 점이 돋보인다”고 했다.드라마에서 이민자들이 피부색이나 비자 문제로 차별받는 장면을 넣어 이민의 문제를 강조한 점도 두드러진다. 이를 통해 외계인이 지구로 이민을 올 때, 지구인들은 이민자(외계인)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확장했다. 드라마의 총괄 프로듀서인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다양한 지역 출신의 배우들을 원했다. 외계인이라는 위협에 맞서는 한 국가만의 투쟁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 세계적인 투쟁인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국적의 다양한 출연진을 캐스팅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드라마가 원작보다 인간적 면모를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드라마는 다섯 명의 옥스퍼드대 동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며 이들의 우정을 강조한다. 원작에서 중국 과학자인 왕먀오가 홀로 맡았던 일종의 탐정 역할을 드라마는 다섯 명이 함께 맡은 것이다. 이를 통해 접근법은 신선하지만, 필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원작의 한계를 넘어선다.다만 옥스퍼드 동문의 서사가 길어져 드라마가 지루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SF 소설을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거치는 각색 과정에서 세계관에 집중할지, 인간관계에 초점 맞출지는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드라마 시즌2가 세계관과 배경을 우주로 넓힌 원작 소설의 흐름을 따라갈지, 옥스퍼드 동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사를 창조할지 기대된다”고 했다.드라마 ‘무빙’을 본 뒤 스마트폰을 켜고 원작 웹툰을 정주행한 적이 있나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상 캐스팅’을 해본 적이 있나요? ‘선넘는 콘텐츠’는 소설, 웹소설, 만화, 웹툰 등의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깊이 있게 리뷰합니다. 원작 텍스트가 이미지로 거듭나면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재밌는 감상 포인트는 무엇인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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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휴일 없이 1057일째 근무 중… 日 편의점 사장의 애환

    “편의점 차리는 건 어때?” 1990년대 중반 30대인 저자는 남편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 저자는 유치원, 남편은 호텔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지만 부부가 함께 자영업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편의점을 차리면 지긋지긋한 삶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떼돈을 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친척의 부고를 들어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갈 수 없었다. 누가 언제 무슨 일로 화를 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한시도 마음 놓고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 차리니 약 30년간 편의점 주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과로와 손님에 시달리는 삶을 저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편의점 점주로 사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편의점 왕국’ 일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가 쓴 에세이다. 온갖 잡화를 팔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일본 편의점의 속살을 유쾌하면서도 잔잔하게 전한다. 한국 거리 곳곳에도 편의점이 즐비한 만큼 한국 독자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편의점에선 손님이 왕이다. 특히 서비스를 중시하는 일본에선 고객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필수다. 예를 들어 저자는 계산대 앞에서 “담배”라고만 주문하는 손님의 취향을 외운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라도 주듯 동전을 던지고, 전자레인지를 턱으로 가리키며 음식을 데우라고 명령하는 ‘진상’ 손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저자가 고군분투하는 건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일본의 편의점 수는 5만7544개에 이른다. 최근 청년들이 일하지 않으려고 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2021년 기준 일본의 편의점 사장이 1년 동안 쉬는 일수는 21.3일에 불과하다. 저자 역시 휴일 없이 일한 지 1057일째다. 그럼에도 저자가 편의점 운영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편의점엔 요즘 사람들이 먹고 읽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라 장사하는 재미가 있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맙다”는 단골손님의 응원에 힘이 나기도 한다. 수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편의점을 ‘천객만래(千客萬來)’라고 부르며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음, 역시 나는 편의점을 사랑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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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로 잘 썼냐고요? 장그래처럼 최선은 다했습니다”

    “결국 최고의 바둑이란, 나의 최선을 이끌어낸 상대의 몫일지도.” 만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옛 바둑 스승의 말을 떠올린다.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 사장이 된 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다 스승의 조언에서 묘안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과거 장그래는 스승에게 “최고의 바둑, 대국은 뭐냐”고 물었다. 이에 스승은 “바둑은 혼자 두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승은 “묘수가 가득하려면 상대의 바둑도 굉장히 좋아야 한다. 내가 결점 없이 둔다는 건 상대 역시 결점이 없거나 적었다는 반증 아니겠냐”고 했다. 스승은 우문현답을 덧붙인다. “상대도 나도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 내가 이겼을 때 이보다 최선일 수 없었던 바둑이 나온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미생’이 12년 만에 완결됐다. 20일 ‘미생 시즌2’(더오리진) 20, 21권이 동시 출간돼 종지부를 찍은 것. 윤태호 작가(55)는 27일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스튜디오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힘에 부치고, 팔을 다치는 등의 이유로 여러 번 쉬어서 약 5년 동안 연재를 중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2년 연재를 시작한 뒤 완결까지 12년이 걸린 대장정”이라고 말했다. “최고로 잘 썼냐는 질문엔 쉽게 답하기 힘들죠. 하지만 장그래처럼 최선을 다했습니다.” 2012∼2013년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미생’ 시즌1은 바둑에 인생을 걸었다 실패한 고졸 출신 장그래가 종합상사인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하면서 겪는 좌충우돌을 그렸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같이 폐부를 찌르는 명대사로 독자들의 선풍적 지지를 받았다. 2015년부터 연재된 시즌2는 장그래가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에서 일하는 과정을 통해 한국의 기업문화를 생생히 살려냈다. 2014년 방영된 동명의 tvN 드라마에 힘입어 시즌 1·2 단행본 판매량은 약 300만 부에 달한다. 그는 “시즌2에선 장그래의 입사 동기인 ‘장백기’처럼 4년제 대학을 나온 평범한 직장인의 삶도 충실히 다루고 싶었다”며 “회사와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다 갖춘 직장인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동력으로 살아갈까 고민했다”고 했다. 12년 전 연재를 시작한 만큼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그래는 시즌1에서 무턱대고 야근하며 열심히 일한다면, 시즌2에선 동료와 선후배를 챙기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리더로 묘사된다. 그는 “요즘 시선으로는 장그래는 너무 열심히 일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빌런’(악당)으로 비칠 수 있다”며 “주 52시간 근무 시대에 맞춰 작품을 낡아 보이지 않게 했다”고 설명했다. “장그래가 성장한 만큼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담으려고 했어요. 상급자인 ‘오상식’, ‘김동식’의 부하 직원이 아니라 독립적 주체라는 걸 보여주려고요. 그래서 결국 온길 인터내셔널의 사장이 장그래에게 사장직을 물려준 거죠.” 시즌2는 이창호 9단과 마샤오춘 9단의 제3회 삼성화재배 결승 5번기 제5국을 모티브로 한다. 이 경기 216수에서 이창호는 드디어 승리를 확신하는 듯 ‘계가’(計家·대국이 끝난 후 이기고 진 것을 가리기 위하여 집 수를 헤아리는 일)를 향해 달려간다. 같은 216수를 내세운 미생 마지막 화에서 장그래는 후배 ‘조아영’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승기를 잡은 이창호, 결혼하는 장그래. 미생을 완결한 그는 완생(完生)에 이른 걸까. 윤 작가는 두 손을 합장하며 이렇게 답했다. “그건 모르죠. 다만 제겐 미생을 읽고 댓글을 달아준 독자들이 최고의 바둑 상대였습니다. 묘수로 가득한 삶을 살던 제게서 최선을 이끌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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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 없는 그림책이 말 걸어오는 세계,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

    “제가 쓴 디지털 세계의 글이 영원히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글이 모두 사라질 거란 두려움이 찾아왔죠.” 이수지 작가(48)는 26일 에세이 ‘만질 수 있는 생각’(비룡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블로그에 오랫동안 썼던 글이 얼마 전 블로그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종이책을 펴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림책은 어린이 손에 쥐어지는 물리적으로 단단한 물건”이라며 “책을 묶으며 그동안 내가 해 온 작업이 그렇게 떠다니는 글을 모아 물리적 실체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2022년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책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작가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내 그림책 작가 중 처음으로 제36회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그의 대표작은 ‘파도야 놀자’(2008년), ‘거울속으로’(2009년), ‘그림자놀이’(2010년)다. 제본선을 활용해 ‘경계 3부작’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바다와 모래사장, 현실과 거울 등의 경계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책의 물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신간 역시 책의 물성을 독특하게 살려냈다. 큰 사각형 안에 작은 사각형을 넣은 표지는 그가 작품에서 자주 쓰는 ‘책 안의 책’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초판은 실로 꿰맨 책등이 보이는 ‘누드 제본’으로 제작됐다. 그는 “그림책 작가는 책을 쓸 때 판형이 어떻고, 무게가 얼마고, 종이를 뭘 쓰는지를 생각하는 예술가”라며 “그림책은 손에 든 순간부터 책 읽기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신간에는 그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을 당시의 일이 담겼다. 초창기 작업 노트나 외국 편집자와 일한 경험처럼 작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들과 보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그는 “그림책이 기본적으로 어린이 책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 세계에 빠져드는 독자가 많다”고 말했다. 신간에서 그는 ‘말 없는 그림책이 내게 말없이 말 걸어오는 내밀한 세계. 이것은 완전히 다른 언어이며, 이것이 바로 나의 언어구나’라고 썼다. 글을 최소화하고 그림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 세계에 대한 개인적 감상을 고백한 것이다. 이날 그는 “오독(誤讀)할 수 있는 그림책은 얼마나 멋지냐”며 “아이들이 그림책 안에서라도 정답만 얘기하면서 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다음 달 8일 발표되는 안데르센상 글 부문 수상 후보에 이금이 작가(62)가 포함됐다. 한국 그림책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의 태도요. 어른에겐 이 이야기가 정말 멋있어, 너랑 같이 이걸 느끼는 게 너무 좋다는 태도가 필요해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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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경란 ‘일러두기’ 이상문학상 대상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47회 이상문학상 대상에 소설가 조경란(55·사진)의 단편소설 ‘일러두기’가 25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대도시 변두리 동네에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복사집을 운영하는 ‘재서’와 길 건너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미용’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내용이다. 각박한 현실의 이면에서 여러 인물들의 내면의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작에는 김기태의 ‘팍스 아토미카’, 박민정의 ‘전교생의 사랑’, 박솔뫼의 ‘투 오브 어스’, 성혜령의 ‘간병인’, 최미래의 ‘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5편이 뽑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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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진보초 거리에선 누구나 서점 주인이 된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서점 주인을 꿈꿔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환상을 충족시켜 보고 싶다면 일본 도쿄 진보초 거리에 있는 책방 ‘파사주 바이 올 리뷰스’로 가보면 어떨까. 이 책방에선 서점 주인이 될 수 있다. 월 임대료 5500엔(약 5만 원)만 내면 누구에게나 판매용 책장을 빌려준다. 교수나 번역가는 자신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헌책을 내놓는다. 작가나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펴낸 책을 판다. 책장은 300개가 넘는다. 책장마다 주인의 정보가 담긴 QR코드가 붙어 있어 스마트폰으로 도서 정보나 재고량을 알 수 있다. 결제는 신용카드나 모바일로만 가능하다. 주로 현금을 쓰는 일본에선 이례적이다. 이른바 ‘셰어형 서점’이 진보초에서 퍼져가고 있다. 신간은 ‘거대한 서점’이라 불리는 진보초를 기록한 에세이다. 일본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했던 한국인 저자가 진보초 책방 18곳을 취재해 썼다. 진보초에 처음 서점이 생긴 건 1877년이다. 메이지유신 직후 근처에 대학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학생들이 드나드는 서점이 하나둘 문을 열었다. 일본에서 정치경제는 마루노우치, 소비문화는 긴자, 지식유통은 진보초를 대표 거리로 친다. 진보초에 서점이 130개 이상이라고 하니 상상 이상이다. 진보초를 지탱하는 건 오래된 서점이다. 1881년 문을 연 ‘산세이도 진보초 본점’, 1890년 개점한 ‘도쿄도서점’처럼 문을 연 지 100년 이상 된 서점이 가득하다. 가로 2cm, 세로 3cm에 단편소설 한 편을 담은 이른바 콩책을 판매하는 ‘로코서방’, 오래된 동화 헌책만 파는 ‘미와서방’처럼 독특한 서점도 많다. 일본 화구와 문구를 파는 ‘분포도’, 고지도 전문점 ‘신세도서점’같이 다양한 물건을 판다. 물론 시대에 따라 진보초도 바뀌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식당을 운영하는 어린이책 전문 서점 ‘북하우스 카페’, 서점 안에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는 ‘고미야마서점’처럼 새로운 시도도 보인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는 일을 선호하는 일본 출판계 모습을 한국 출판계에 곧바로 적용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책을 사랑하는 이웃 나라의 변화를 눈여겨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니 잠시나마 서점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든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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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다한 인연의 말… 행간에선 들릴지도[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여러 해석을 내놓곤 한다. 특히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처럼 주인공의 감정과 주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더욱 그렇다. 물론 인터뷰를 찾아보면 작가와 감독의 생각을 유추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이의 입장에서 쓰인 글을 읽으면 창작자의 의도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 감독이 직접 쓴 각본을 펼쳤다. “해성,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아마 이렇게 어리지 않았다면 제대로 표현했을 텐데.” 12세인 소꿉친구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이 처음 헤어지는 장면에서 해성의 감정을 묘사한 지문이다. 나영은 가족을 따라 이민을 가려는 차다. 작별을 앞두고 두 사람은 함께 걷다가 머뭇거린다. 해성은 “야!”라고 부르고 나영은 “왜!”라고 답한다. 이때 해성이 느끼는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무 어려 인사마저 건네지 못하는 해성의 마음이 지문에서 짙게 느껴진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국 가정의 너무나도 평범한 아침 식사의 모습이다. 해성이 살아오는 동안 한결같은 모습이다.” 24세가 된 해성의 집안을 묘사한 지문이다. 해성은 미국에 사는 나영에게서 연락을 받은 차다. 하지만 지문은 해성이 처한 현실을 명확히 설명한다. 셀리 송은 해성의 가족에 대해 ‘너무나도 평범한’이란 단어를 2차례 쓴다. 이민자로서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나영 집안과 평범함을 중시하는 해성 집안이 지닌 문화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은유한다. 36세가 된 나영과 해성이 미국 뉴욕에서 만날 때 각본은 더 직설적으로 의도를 전달한다. 뉴욕에서 나영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해성의 마음에 대해 셀린 송은 “아주 길게 느껴질 게다. 고통스러울 정도로”라고 표현한다.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강가 풍경에 대해선 “뉴욕이란 도시만큼이나 다양한 연인들의 모습. 짝이 없는 사람이라곤 해성밖에 안 보인다”고 설명한다. 두 사람의 만남을 바라보는 나영의 남편 아서(존 매가로)의 감정도 눈길이 간다. 아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해성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또 다른 생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서가 두 사람이 서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걸 모른 체하자 셀린 송은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할 뿐. 친절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평가한다. 이처럼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세세히 묘사한 지문을 읽다 보면 이 작품이 영화보단 소설이나 연극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숨겨진 ‘이스터에그’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12세인 나영과 해성이 함께 뛰어노는 장소가 이일호 작가의 조각상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응시’라고 각본엔 명시돼 있다. 서로를 마주 보는 얼굴을 그린 조각상은 교감하는 둘의 관계를 뜻하는 것 아닐까. 나영의 부모가 이민을 위해 짐을 쌀 때 등장하는 음악은 레너드 코언의 ‘이봐, 그런 식의 작별은 안 돼’다. 두 사람의 서투른 작별에 대한 은유로 느껴진다. 해성을 만나러 간 나영을 집에서 기다리던 아서는 게임 ‘오버워치’에서 우주의 균형에 대해 설법하는 승려 로봇을 선택해 플레이한다. 아서가 불교의 윤회 개념에서 온 ‘인연’이란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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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의 승화, 시적 공간의 확장… 다채롭게 변주될 작품 골라”

    동아일보와 전남 강진군이 공동 주최하는 제21회 영랑시문학상 본심에 오른 후보작이 선정됐다. 영랑시문학상 예심 심사위원회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15일 심사를 진행해 5개 작품(시집)을 선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영랑시문학상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그의 시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현한 시인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지난달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신달자 시인)는 올해 운영 요강과 심사위원 위촉 및 심사 기준을 확정하고, 예·본심 심사위원단을 구성했다. 1차 예심 위원인 고봉준 김훤 박순원 시인과 2차 예심 위원인 고재종 문태준 오형엽 시인은 ‘등단한 지 10년 이상 된 시인이 2022, 2023년 출간한 시집’을 대상(기존 수상작 제외)으로 올 2월부터 17개 작품을 선정했다. 이 중 심사를 거쳐 5개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경윤 시인의 ‘무덤가에 술패랭이만 붉었네’ △곽효환 시인의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 △안미옥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이은규 시인의 ‘무해한 복숭아’ △함기석 시인의 ‘모든 꽃은 예언이다’이다(이상 작가명 가나다순). 김 시인의 ‘무덤가에 술패랭이만 붉었네’는 실존적 고통을 불교적 사유로 극복하려는 시집이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애절함을 불교의 무상과 무아의 차원으로 수용하고 승화시키는 아름다움을 동반하고 있다”고 했다. 곽 시인의 ‘소리 없이 울다 간 사람’은 한국 시의 시적 공간을 북방까지 크게 넓힌 점을 인정받았다. 심사위원단은 “‘북방의 시인’이라는 시인의 별칭에 호응하듯 만주, 시베리아, 연해주 등 광활한 북방 공간을 가로지른다”고 했다. 안 시인의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는 과거의 상처와 고통이 현재와 미래에 남아 있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다. 심사위원단은 “고통이 안과 밖, 그림자와 빛, 나와 너라는 이분법을 넘어가는 과정을 집과 나무를 통해 형상화했다”고 했다. 이 시인의 ‘무해한 복숭아’는 길, 기억, 상실, 부재 등의 단어로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표현한 시집이다. 심사위원단은 “타자에게 가닿고자 마음의 무늬를 표현하는 모습이 절실하다. 사랑과 존재의 본질에 가 닿으려는 솜씨는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했다. 함 시인의 ‘모든 꽃은 예언이다’는 시인이 실제 삶 속에서 만난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현실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시인이 그간 그토록 돌아보지 않던 짙은 서정성에다 과거의 민중시적인 태도까지 더해져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에너지가 넘치는 시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오늘의 한국 시단에서 현재적 의미로 다채롭게 변주될 수 있을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고 밝혔다. 본심은 29일 열린다. 시상식은 다음 달 19일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에서 열린다. 상금은 3000만 원.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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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관의 영랑시문학상, 불혹까지 뻗어갈것”

    “영랑시문학상은 20년 후 불혹(不惑)이 됩니다. 앞으로도 외부 환경이나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뻗어 나가길 바랍니다.” 강진원 전남 강진군수(65·사진)는 21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영랑시문학상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 그는 “영랑시문학상은 사람으로 치면 약관(弱冠)의 나이다. 이제 막 갓을 쓰고 성년이 됐다”며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탄탄한 토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강진군은 2020년부터 영랑시문학상을 동아일보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강 군수는 “영랑시문학상은 일제강점기 빼앗긴 주권을 되찾기 위해 뜨겁게 항거했던 실천하는 지식인이며 동시에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 영랑 김윤식 선생을 기리는 뜻깊은 문학상”이라며 “영랑은 강진의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강진군은 영랑의 시대정신과 주옥 같은 시를 후세에 남기고 지켜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인의 이름을 건 문학상은 시인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 시대에 만나는 생생하고 특별한 이벤트”라며 “시는 실제 세계에 기반하지만 현실과는 독립된 독자적인 영역을 지닌 전혀 새로운 세계다. 인류에게 문자가 사라지지 않고 상상력이 소멸하지 않는 한 시는 계속해서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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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문화 바람 타고… 숨은 보석 ‘히든 챔피언’이 뜬다

    “데뷔할 줄 몰랐어요. 몇 년 동안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너무 좋았죠.”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을 연출한 김희진 감독(38)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랜 고생 끝에 첫 장편영화 감독이 돼 먹먹하다는 소감을 밝힌 것이다. 김 감독은 ‘수학여행’(2010년) 등 단편영화 3편을 연출했을 뿐 오랫동안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다. 2017년 ‘로기완’의 연출을 제안받았지만 캐스팅과 투자 문제로 작품 제작은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투자를 결정하고 배우 송중기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로기완’은 1일 공개 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탈북자 인권 문제를 다뤄 국제적 관심을 얻은 데 따른 것이다. 김 감독은 “빛을 보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다. 연출가로서 데뷔하는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최근 세계적인 K문화 열풍에 힘입어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히든 챔피언’이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선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신인 창작자들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 넷플릭스에 따르면 2022∼2025년 선보였거나 선보일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다섯 편 중 한 편은 신인 감독의 작품이다. 예컨대 민홍남 감독은 단편영화 ‘병원이나 가야겠습니다’(2005년)만 연출했을 뿐 주로 연출부 스태프나 조감독으로 일했는데, 올 초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선산’을 연출했다. 올 1월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황야’의 허명행 감독 역시 무술감독, 스턴트 배우로 일하다가 감독으로 처음 데뷔했다. ‘선산’이나 ‘황야’는 모두 충무로에선 메가폰을 잡지 못한 감독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통해 해외로 진출 기회를 얻은 사례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9일 방한해 “신인 감독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무대로 데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OTT가 창작자의 명성보다 작품성에 주목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K콘텐츠 인기에 힘입어 작품만 좋다면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는 구조인 것. 배우 송중기는 ‘로기완’ 기자간담회에서 신인 감독 작품에 참여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를 보지 감독이 누군지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제 유명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작품을 보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학에서도 히든 챔피언 창작자들이 빛을 보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서울국제도서전의 지식재산권(IP) 상담 건수는 2022년 115건에서 지난해 944건으로 불과 1년 새 8배 넘게 급증했다. 주연선 은행나무 출판사 대표는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해외 출판사 40곳과 상담했는데 이 중 60% 이상이 우리 책을 사려는 상담이었다”며 “해외 출판사에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동안 책을 팔러 오는 곳이었는데 지난해부터 사러 오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의경 작가의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2022년·은행나무)는 영국, 미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출간을 최근 확정했다. 국내에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미국 판권은 북미 최대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계열의 호가스북스에 팔렸다. 호가스북스 편집자는 김 작가에게 e메일을 보내 “오늘날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문제에 관심이 높은데 ‘헬로 베이비’가 이를 잘 다뤄 마음에 들었다”고 썼다.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 현상이 벌어지는 가운데 난임 병원에서 만난 30, 40대 여성의 고민을 담은 점이 호소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진희 은행나무 이사는 “인구 감소 트렌드와 소설의 주제가 맞닿아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신인인 박소영 작가의 장편소설 ‘스노볼’(2021년·창비)은 미국, 영국 등 10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미래 혹한기에 돔으로 둘러쳐진 따뜻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 기후 위기에 관심이 높은 해외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보라 작가의 장편소설 ‘메모리케어’(2023년·은행나무)는 미국, 영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딥페이크 가짜뉴스가 국내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힘든 미래를 그린 책 내용이 영미권 독자들의 흥미를 끈 것. ‘메모리케어’를 해외에 수출한 국제 문학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는 “앞으로는 창작자의 명성보다 작품 내용의 보편성이나 작품성이 콘텐츠의 성공을 판가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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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에 등돌린 유럽은 이제 ‘섬’… 타인은 위협이 아니라 삶의 기회”

    “유럽은 ‘섬’이 됐습니다.” 프랑스 작가 필리프 클로델(62)은 19일 서울 서대문구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린 첫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15일 국내 번역 출간된 장편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행나무)을 쓴 건 이방인을 배척하는 유럽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유럽 사람들은 이민자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자신만의 세상을 유지하려 한다”며 “하지만 끊임없이 밀려올 이민자와 공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공쿠르상과 르노도상을 잇따라 수상하고 공쿠르상 심사위원에 오른 유명 작가다. 나약한 인간과 선악의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회색 영혼’(2005년·미디어2.0)이 대표작이다. 그는 영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2008년)로 영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신간 배경은 지중해의 작은 섬마을이다. 사람들은 올리브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평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해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흑인 청년 시신 세 구가 발견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시신이 왜 밀려왔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온천 사업이 틀어질지 걱정하다 시신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사건을 은폐한다. 그는 “지금 유럽은 시리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들어오고 있다.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유럽인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소설을 쓴 건 2018년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더 심해졌어요.” 신간에서 상당수 등장인물들은 이름 없이 시장, 의사, 신부 등으로만 불린다. 그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나 시간을 특정하지 않은 건 어느 시대에나 이 이야기가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간은 우화”라고 했다. 작품에서 외지인인 교사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진실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한다. 불신과 공포, 이기심이 섬을 가득 채운다. 그는 “세상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누어져 있지 않다. 선악을 모두 품고 있는 인간상을 다양하게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민자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첨예한 사안이다. 문학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정치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그대로 직시할 수 있게 해주죠. 타인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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