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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가 이러려고 ‘잘못 없다’ 했나…‘박근혜 전 대통령이 둔 자충수 6’#2. “대면조사 요구에 수차례 불응했고 헌재 탄핵심판에도 끝내 불출석하는 등 향후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출석을 거부할 우려”검찰이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3.지난해 10월 1차 대국민 사과부터 30일 법원 구속영장 심사에 나오기까지 지나온 156일. 박 전 대통령,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없을까요?#4.① 2016년 10월 25일 태블릿 PC 보도 다음날. 1차 대국민사과“최순실 의견 청취, 청와대 보좌진 완비 후 그만 둬”지난해까지 최순실에 각종 기밀문서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5. ② 2016년 11월 4일. 2차 사과 및 약속“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특검 수사도 수용할 것”검찰과 특검 대면조사, 압수수색 요구 잇따라 거부.거짓 약속에 여론은 더욱 악화됐습니다.#6. ③ 2016년 11월 29일. 3차 사과“진퇴 문제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진퇴 결정 국회에 떠넘겨 진정성 보여줄 기회를 상실했습니다.#7④ 2017년 2월 27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종결최후변론에 끝내 불출석.서면으로 ‘혐의 부인’ 주장 되풀이했습니다. #8.⑤ 3월 10일 헌재 전원일치 ‘파면’ 결정헌재 “허위 해명으로 국민 신뢰 저버렸고 검찰 조사거부는 법치주의 부정” 판단국가 지도자의 거짓된 태도가 파면의 결정적 사유였습니다. #9⑥ 3월 12일 청와대에서 나와 삼성동 사저 도착“시간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헌재 결정에 불복하며 일반 국민들과 끝내 담을 쌓았습니다. #10.3월 27일.검찰은 “구속 불가피” 판단을 내립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은 세번째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11.그리고 내일(30일). 박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출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디 이번 만은 자충수를 두지 않길 바랍니다.기획 | 신광영·김아연 기자제작 | 김한솔 인턴}
박근혜 전 대통령은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으면서 “내가 뇌물 같은 더러운 돈을 받으려고 대통령을 한 줄 아느냐. 동생들과도 인간관계를 끊고 지냈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공모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준 대가로 최 씨가 돈을 받도록 한 게 아니냐는 검찰의 추궁에 박 전 대통령이 격하게 반발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사실 밖에서 대기하던 비서진이 박 전 대통령의 반응에 놀라 조사실로 뛰어 들어가는 소동이 빚어졌다고 한다.또 박 전 대통령은 27일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 측 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영장 청구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30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강부영 영장전담판사 심리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로 했다. 검찰은 28일 박 전 대통령 측의 영장실질심사 출석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전 대통령 변론은 유영하 정장현 변호사 등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응해 검찰에선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과 이원석 특수1부장 등이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한다. 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검찰은 2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피의자(박 전 대통령)는 막강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최순실 씨(61·구속 기소)가 삼성에서 돈을 받도록 한 책임이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또 “공범인 최 씨와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한 공직자들뿐 아니라 뇌물 공여자까지 구속된 점에 비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반한다”고 영장 청구 배경을 밝혔다.○ 박 전 대통령, 298억 원 뇌물수수 혐의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특수본과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 13가지를 모두 구속영장에 반영했다.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의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298억여 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최 씨와 공모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1) 승마 지원에 77억여 원, 동계영재센터 지원 등 명목으로 16억 원가량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삼성 계열사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 원도 박 전 대통령 뇌물 액수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앞서 특검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로 봤던 삼성의 최 씨 모녀에 대한 지원 약속 138억 원은 박 전 대통령 영장에서 빠졌다. 실제 지급되지 않은 돈은 뇌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을 내도록 16개 대기업에 요구한 행위에 대해 특수본은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를 적용했다. 삼성이 두 재단에 출연한 204억 원은 뇌물죄와 직권남용·강요죄가 동시에 해당된다고 판단했고, 다른 15개 대기업의 출연금은 뇌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특수본은 일단 SK와 롯데도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출연을 강요한 혐의의 피해자로 분류했다. 하지만 “아직 수사 중”이라고 밝혀 여지를 남겨뒀다. 특수본은 구속영장에 첨부한 의견서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국격을 실추시키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렸음에도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관계까지 부인으로 일관하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범죄에 가담했다가 구속된 피의자가 15명에 이르는 점도 형평성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해야 할 사유”라고 적었다.○ 박 전 대통령, 검찰 구치감서 대기할 듯 박 전 대통령은 30일 오전 10시 반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할 계획이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영장실질심사에 나오도록 하기 위해 구인장을 발부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인장에는 영장심사를 받고 난 뒤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대기해야 할 ‘유치 장소’가 현재는 공란이다. 법원 관계자는 “영장심사를 하는 재판부가 심사를 마친 뒤 ‘유치 장소’를 적은 구인장을 검찰에 넘기면 그 장소에서 박 전 대통령이 대기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특수본이 있는 서울중앙지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해 영장심사를 받은 피의자의 경우 통상 서울중앙지검 내 구치감이나 서초경찰서 유치장, 또는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한다. 법원 관계자는 “국가인권위가 영장 발부 전에 구치소에서 대기하는 것을 인권 침해라고 결정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호·경비 문제를 감안할 때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구치감에서 대기할 가능성이 높다.신광영 neo@donga.com·김준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조사를 마친 검찰은 이르면 23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한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자는 22일 “박 전 대통령 조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법과 원칙에 맞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특수본은 이날 박 전 대통령 조사 결과를 김수남 검찰총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이 결과를 이미 검토를 마친 검찰 안팎의 의견과 종합 판단해 이르면 23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론지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오전 9시 35분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시작한 박 전 대통령은 21시간 19분이 지난 22일 오전 6시 54분 청사를 떠났다. 검찰 조사는 21일 오후 11시 40분에 끝났지만, 박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문 조서를 검토하고 수정하는 데 7시간 이상 걸렸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 공무상 비밀 누설 등 자신이 받고 있는 13가지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 수사가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와 상관없이 다음 달 초까지 박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또 SK, 롯데 등 대기업 수사와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 사건도 4월 중순 이전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검찰 조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 이동흡 변호사(66)와 판사 출신 전병관 변호사(53)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배석준 eulius@donga.com·신광영 기자}
21일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14시간 5분간 강도 높게 조사했다.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2시간 45분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조사를 받은 시간은 11시간 20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 종료 후 22일 새벽까지 신문조서를 검토한 뒤 조서에 서명·날인을 하고 귀가했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를 받는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에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조사 방식 문제로 다투는 대신 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며 공소 제기를 준비하는 ‘실리 추구’ 전략으로 맞섰다. 이미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있기 때문에 애써 자백을 받기 위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검찰, 깍듯이 예우하며 진술 유도 서울중앙지검 노승권 1차장검사는 이날 오전 9시 25분 박 전 대통령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진상 규명이 잘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성실히 잘 조사받겠다”고 답했다. 이날 조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과 이원석 특수1부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님” 또는 “대통령께서”라고 존대하며 예의를 갖췄다. 하지만 조서에는 법과 관행에 따라 ‘피의자’로 기재했다. 박 전 대통령도 조사를 받으며 두 부장검사에게 “검사님” 등 존칭을 썼다. 검찰은 이날 편면유리를 통해 바깥에서 조사실을 들여다보거나, 조사실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사 상황을 모니터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는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할 때, 이인규 중수부장 등 대검 간부들이 모니터링룸과 사무실에서 CCTV로 조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수사팀에 조언을 한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14시간 넘게 조사를 받는 동안 2, 3시간마다 15분씩 휴식시간을 줬다. 검찰은 조사실 구석에 소파 2개를 들여놨고, 옆문으로 연결되는 휴게실에 응급용 침대까지 구비했다. 박 대통령은 조사실 밖에 있는 일반 화장실을 이용했다. 검찰은 진술을 기록하는 보조검사 중 일부를 여검사로 배치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도록 배려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답변을 거부하거나 역정을 내는 등 별다른 돌발 상황 없이 조사가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차분한 말투로 혐의 부인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조사에서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등 13가지 혐의를 담담한 태도와 차분한 말투로 모두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비리에 대해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끊어내기’ 전략을 구사했다. 최 씨가 삼성 측에서 딸 정유라 씨(21)의 승마훈련 지원비로 거액을 받은 데 대해서는 “그런 돈거래 자체를 몰랐고, 최 씨가 돈을 받았다고 해도 나와는 경제적으로 무관하다”고 부인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 등 측근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선 ‘책임 떠밀기’식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선 “최 씨나 안 전 수석에게 재단 설립을 지시한 적이 없다”며 “기업들에 ‘사회공헌 차원에서 문화·체육 관련 공익사업이나 투자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원론적인 부탁을 했을 뿐 재단 출연을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재단 출연이 문제가 되자 청와대 내부에서 ‘재단 설립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한 것’으로 말을 맞췄다”는 안 전 수석의 진술, “박 전 대통령이 ‘(삼성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잘 챙겨보라’고 지시했다”는 최원영 전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59)의 진술 등을 들이밀며 박 전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이같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나 증거들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초밥과 죽으로 식사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35분부터 14시간 넘게 조사를 받는 동안 점심과 저녁 식사를 했다. 점심은 김밥과 유부초밥 도시락, 저녁은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주문한 전복죽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사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시간이 많이 걸려 다들 고생할 텐데 (조사가 끝나기 전) 먼저 돌아가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전 9시 35분 조사를 시작한 한 부장검사는 오후 8시 35분 조사를 마쳤고, 바통을 넘겨받은 이 부장검사가 오후 8시 40분부터 11시 40분까지 3시간 동안 조사를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의 옆자리에는 유영하 변호사(55)와 정장현 변호사(56)가 교대로 앉아 조언을 했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김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사저에 칩거한 지 9일 만인 21일 오전 9시경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사저를 떠나게 된다. 사저에서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있는 서울중앙지검까지는 5.5km. 승용차로 20분 남짓한 거리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 앞까지 검은색 에쿠스 경호차량을 타고 이동한다. 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바닥에 테이프로 표시된 노란색 삼각형 포토라인 위에 서야 한다. 재임 중 특수본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 요청을 수차례 거부한 끝에, 결국 민간인 신분으로 검찰청사에 불려오게 된 것이다.○ 13가지 혐의 전면 반박할 듯 박 전 대통령은 이날 포토라인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성실하게 검찰 조사를 받겠다”는 뜻을 밝힐 예정이다. 하지만 자신의 뇌물수수나 직권남용 등의 혐의와 관련된 사실 관계나 판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5일 첫 대국민 사과에서 “꼼꼼히 챙겨보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인데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같은 해 11월 4일 2차 대국민 사과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고 언급했고, 같은 달 29일 3차 대국민 사과에서는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죄드립니다”라고 말했다. 21일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서 박 전 대통령이 밝힐 대국민 메시지도 이 정도 수준일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12일 청와대를 떠나 사저에 복귀하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21일 포토라인에서 “성실히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말한다면 거기에 내포된 의미는 검찰 조사에서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13가지 혐의를 적극 반박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박 전 대통령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밝히고 잘못 알려진 부분을 바로잡을 것”이라며 “심야조사가 필요하다면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큰 틀에서 특수본과 특검 수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 범의(犯意·범죄를 저지르려는 고의성)는 부인해 형사 처벌을 피하는 전략을 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범행의 고의 여부를 입증할 책임이 검찰에 있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보고를 받았지만 사업에 관여하거나 사익을 취한 적은 없다”며 기본적 사실은 인정하면서 불법을 저지를 뜻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 시나리오별 질문 준비 특수본은 지난해 말 조사를 통해 입수한 자료와 특검에서 넘겨받은 각종 물증을 최대한 활용해 박 전 대통령을 압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꼼꼼하게 적힌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업무수첩 56권 등을 바탕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할 질문 수백 가지를 준비했다. 특수본이 지난해 말 수사할 때부터 재단 수사를 맡아 온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과 특별수사통 이원석 특수1부장이 번갈아 박 전 대통령을 신문하게 된다. 특수본 조사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입증이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대통령이 두 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기업들에 출연을 요구한 대가로 해당 기업 측과 대가성이 있는 ‘뒷거래’를 했다고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이 13가지 혐의를 모두 부인할 것으로 보고 경우의 수에 따른 시나리오별 질문 순서를 촘촘히 짜놓았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영상녹화실에서 조사할 계획이지만 박 전 대통령이 녹화를 거부하면 수용할 방침이다.신광영 neo@donga.com·차길호 기자}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16일 김창근 전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67)과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 등을 소환 조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검찰에 출석해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13가지 혐의를 모두 부인할 것으로 보고 대응 카드를 준비 중인 것이다.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상세하게 담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56권과 국정 농단 사건 관련자의 진술 등 증거를 다수 확보해 문제될 게 없다는 자세다. 특수본 관계자는 이날 “수사가 정점으로 가고 있어 청와대나 (박 전 대통령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별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할 준비가 거의 마무리됐다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 13가지 혐의 모두 부인할 듯 박 전 대통령은 21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때와 마찬가지로 삼성으로부터 433억 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와 대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 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 등을 모두 부인할 것으로 보인다. 두 재단 설립은 선의로 한 일이고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재단 등을 이용한 사익 추구는 전혀 몰랐다는 주장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헌재는 10일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최 씨의 사익 추구를 돕기 위해 기업들에 재단 출연금을 강요하고, 사기업에 인사 청탁을 하는 등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분명히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특수본도 헌재와 똑같은 판단을 하고 있다. 또 대기업들이 두 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대가성이 있는지 확인해 뇌물죄 적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검찰 조사에서 잘못된 사실관계를 바로잡겠다”며 헌재가 인정한 사실관계까지 부인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헌재가 파면 결정을 내린 근거가 앞으로 박 전 대통령이 받게 될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다투겠다는 의미다.○ “안종범은 ‘살아 움직이는 증거’” 하지만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증거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박영수 특별검사팀 조사실과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 씨의 국정 농단 공모를 상세하게 증언한 안 전 수석에 대해 ‘살아 움직이는 증거’라는 평가를 한다. 안 전 수석은 탄핵심판에서도 “대기업들의 재단 출연이 문제가 되자 박 전 대통령과 일부 수석비서관들이 ‘재단 모금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도한 일’이라고 입을 맞췄다”고 폭로했다. 특수본이 이날 안 전 수석을 소환 조사한 것은 박 전 대통령 조사를 위한 질문지를 작성하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촘촘히 가다듬기 위해서다. 안 전 수석이 업무수첩 56권에 기록한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사항과 회의 발언 중 박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입증할 정황을 상세하게 재구성하려는 것이다. 특수본이 이날 SK 전현직 고위 임원들을 소환한 것도 박 전 대통령 조사를 위한 전초전 성격이 짙다. 박 전 대통령이 SK 측에 최태원 회장(57)의 사면을 약속하면서 두 재단 출연금 111억 원을 요구한 혐의 등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SK 측은 “김창근 전 의장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나 ‘그룹 총수 부재로 대규모 투자 결정이 지연되는 등 어려움이 크다’고 읍소했지만 부정한 청탁은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신광영 neo@donga.com·김준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15일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로부터 21일 출석 통보를 받은 직후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변호인단을 통해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구속수사를 피하려는 ‘로키(Low-key·몸을 낮추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검찰이 소환조사 시점까지 엿새나 말미를 주는 등 성의를 보였는데도 앞서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 요구를 거부했던 것처럼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다가는 자칫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등 국정 농단 사건 관련자 상당수가 이미 구속 기소된 만큼, 검찰 내부엔 박 전 대통령도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다만 특수본은 박 전 대통령 조사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감안해 21일 소환조사 전후까지 여론의 흐름을 지켜본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 朴 측 몸 낮춘 ‘로키’ 모드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이날 오전 특수본의 소환 통보에 “21일 출석해 성실히 조사를 받을 것이며 자료 제출 등 제반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기 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자세다. 박 전 대통령은 그동안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3차례나 조사를 요구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 “변론 준비가 덜 됐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불응했다. 특검과는 지난달 9일 청와대 경내에서 대면조사를 하기로 합의했지만 이후 “조사 일정이 언론에 유출됐다”며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출두 방침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여러 차례 어긴 점을 헌법재판소가 주요 파면 사유로 지적한 점을 박 전 대통령이 간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며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는 배경에는 어떻게든 구속 수감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성실하게 검찰 수사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 여론의 동정표를 이끌어내 선처를 받겠다는 것이다.○ “영장 청구 여부 朴 태도에 달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게 소환조사에 앞서 충분한 시간 여유를 준 것은 ‘신사적인 수사’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복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변호인단을 꾸리고 방어권을 온전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 박 전 대통령이 조사에 불응할 명분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초 17일경 소환을 검토했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의 ‘21일 또는 22일 출두’ 의사를 감안해 조사 날짜를 21일로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조사 준비와 경호, 안전 등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 많아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특검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과 공모했거나,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불법을 저지른 혐의가 있는 인사들을 대부분 구속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주범격인 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검찰 내부에 많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불구속 수사할 명분도 미약하다. 박 전 대통령이 12일 사저로 복귀하면서 “시간이 걸려도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며 헌재 결정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여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로서는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가두는 건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반론과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동정론을 전적으로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검찰은 향후 박 전 대통령의 행보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뒤 최종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21일 오전 9시 반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 포토라인에서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는 구속영장 청구 여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민 앞에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검찰이 이를 불구속 수사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예우나 경호 문제 등을 트집 잡아 또다시 소환조사를 거부하거나 헌재 파면 결정에 대한 불복론을 반복한다면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신광영 neo@donga.com·전주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10일 이후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가 있는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에는 방송카메라 거치대와 사진기자용 소형 사다리가 줄줄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유력 인사들이 검찰에 출두할 때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질문을 받으며 걷는 길, ‘포토라인’이 생긴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17일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할 경우 이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복귀한 뒤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공모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의 피의자 신분으로 국민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노태우, 전두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검찰 조사를 받는 4번째 전직 대통령이며,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는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3번째 대통령 검찰 관계자는 14일 “과거 전직 대통령의 사례를 참조해 박 전 대통령 소환 방식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소환에 응했던 노태우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포토라인에 섰던 전례를 감안하면 박 전 대통령 역시 TV 생중계로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찰에 출두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에서 청와대 경호처가 제공한 42인승 리무진 버스를 타고 대검찰청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포토라인에 선 노 전 대통령은 바싹 마른 얼굴에 착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사저에서 출발할 때) 왜 국민들에게 면목 없다고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면목 없는 일이지요”라고 짧게 답한 뒤 대검 중앙수사부 조사실로 올라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1일 대검찰청에 출석하며 포토라인 주변을 둘러싼 취재진을 향해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짤막하게 사과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검찰은 조사 당일과 전날 이틀 동안 탐색견을 동원해 대검찰청사 내부를 샅샅이 수색했다. 만에 하나 전직 대통령 경호에 문제가 발생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검찰이 출석을 요구한 1995년 12월 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앞 골목에서 검찰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이튿날 새벽 강제 연행돼 안양교도소로 압송됐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출석을 거부하자 그날 밤 법원에서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즉각 집행했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면조사를 거부해온 박 전 대통령은 파면과 동시에 형사 불소추 특권이 사라져 더 이상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할 근거가 없다. 자연인 신분이 됐기 때문에 검찰청사 이외의 장소에서 조사를 받을 수 없고 다른 전직 대통령들처럼 검찰청사로 출두하게 됐다. ○ 영상녹화실에서 부장검사가 조사 박 전 대통령은 특수본이 있는 서울중앙지검 7층의 영상녹화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 씨가 지난해 10, 11월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사를 받았던 대검 중수부 특별조사실은 51m²(약 15평) 면적에 화장실과 샤워시설, 소파 등이 있지만 서울중앙지검 영상녹화조사실에는 이런 편의시설이 없다. 따라서 검찰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조사 도중 화장실을 이용할 때 청사 복도에서 검찰 관계자나 민원인들과 마주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조사는 유영하 변호사(55) 등 변호인이 동석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 사건 주임검사인 서울중앙지검 한웅재 형사8부장(47)이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 부장은 지난해 10월 국정 농단 사건 수사가 시작될 때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경위 등 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와 관련된 사안들을 수사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혐의가 13가지에 이르는 만큼 한 부장 외에 개별 혐의를 수사한 담당검사가 조사실에 동석할 가능성이 있다. 특수본 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조사실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조사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등을 감안해 박 전 대통령 조사를 가급적 한 차례로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2차례에 걸쳐 27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1차례 10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 조사는 최소 1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신광영 neo@donga.com·허동준 기자}
《 8인의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전원 일치’ 합의하고 10일 오전 결정문에 서명하기까지 토론과 설득을 거듭하는 산고(産苦)의 시간을 보냈다. 헌재의 결정이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합의 계기가 되기 위해 일치된 의견을 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선고 요지를 낭독하며 “재판관 전원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결정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등을 둘러싸고 재판관들 간 논란이 심했던 1단계에서 논점이 정리된 2단계, ‘전원 일치’ 결정을 위해 설득에 몰두한 3단계까지 이어진 92일간의 막전막후. 그 결정적 순간들을 소개한다.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92일간의 여정은 헌법재판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다투면서 지혜를 모아간 한 편의 드라마였다. 1단계에선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유무 등 사실관계와 법리 적용을 놓고 심한 이견을 보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묘수를 찾아내 논점이 정리된 2단계로 접어들었고, 3단계에선 ‘전원 일치’ 결정을 목표로 설득하는 작업이 펼쳐졌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선고 요지에서 밝힌 ‘역사의 법정 앞에 선 당사자의 심정’은 이 3단계를 거치며 재판관들이 짊어졌던 책임의 무게를 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었다. ○ 1단계: 뇌물죄 등 놓고 이견 팽팽 재판관들이 맞닥뜨린 첫 고비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을 탄핵 사유로 인정할지였다. 일부 재판관은 탄핵심판 법정에 섰던 25명의 증언과 검찰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위법 사실을 상당 부분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일부 재판관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 등 국정 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범죄 사실을 확정하는 게 이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추후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될 경우 이어질 형사재판에 영향에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설립은 선의로 한 일이고 최 씨의 비리를 알지 못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을 최 씨의 공범이라고 인정하려면, 박 전 대통령에게 최 씨의 범죄에 가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대면조사를 하지 못한 검찰 수사기록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일부 재판관들의 의견이었다. ○ 2단계: ‘뇌물죄’ 배제로 돌파구 열려 재판관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뇌물죄 등 형사법 위반 여부를 박 전 대통령 파면 여부 판단에서 빼자”고 합의하면서 논점 정리의 실마리를 찾았다. 재판관 8명 모두가 인정하는 탄핵소추 사유만으로 박 전 대통령 파면 여부를 판단해 보기로 한 것이다. 탄핵 사유를 △사인(私人·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참사 대응) 등 4가지로 압축하자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제기한 박 전 대통령의 위법행위 중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만 판단 근거로 삼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행위 중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8·구속 기소)이 최 씨에게 기밀자료를 보내도록 지시 또는 방조하고, 더블루케이 등 최 씨 소유의 회사가 특혜를 받도록 개입한 것 등 제한적 사실만을 결정문에 담은 게 그 결과였다. 재판관들은 결정문 작성을 돕는 헌재 연구관들에게 “‘혐의’ 등 형사적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고 헌법 위반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라”고 지시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결정문에서 사실관계를 지극히 보수적으로 인정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3단계: ‘전원 일치’ 위해 막판까지 설득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박 전 대통령의 법률 및 헌법 위반 사실이 파면을 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를 놓고 이견이 생겼다. 인용 정족수(6명)를 위협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재판관들은 ‘전원 일치’로 결정하자며 토론을 계속했다. “‘8인 재판부’가 일치된 결론을 내는 것이 국론 통합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게 전 재판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재판관들은 평의를 거듭해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정도가 심각해 대통령직에 복귀하더라도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결론에 합의했다. 이견을 나타낸 일부 재판관들을 설득한 결과였다. 박 전 대통령의 진정성 없는 해명과 검찰 및 특검의 대면조사 회피,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 거부가 국민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불신을 줬다는 데 공감한 것이다. 8인 재판부는 10일 오전 선고를 1시간가량 앞두고 8번째 평의를 열어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문에 일치된 의견으로 서명했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당했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 첫 부녀(父女) 대통령, 1987년 직선제 이후 첫 과반 득표 대통령 등 여러 기록을 세웠으나 결국 임기를 351일 남겨두고 불명예 퇴진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선고에서 “피청구인(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고도 잘못을 숨기고 수사에 불응한 것은 헌법 수호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며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이에 재판관 전원(8명)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피청구인이 최 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사실을 은폐한 것은 대의민주제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파면 사유를 설명했다. 또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기고 검찰 및 특별검사의 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과 관련한 언행에서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 결정 직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겨야 했지만 사저 시설 정비를 이유로 이날 대통령 관저에 머물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특별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돼 대선은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차기 대선일은 이날부터 꼭 60일이 되는 5월 9일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60일간 ‘대통령 부재’라는 초유의 국가 리더십 공백 상태를 맞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한 데 이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다. 황 권한대행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이제는 (헌재 결정을) 수용하고 지금까지의 갈등과 대립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며 “국회가 소통과 양보를 통해 국민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며 “(정치권이) 새로운 분열과 분란을 조장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탄핵반대 집회 도중 2명 사망이날 헌재 주변에선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폭력으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차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 머리를 맞은 김모 씨(72) 등 2명이 숨지기도 했다. 한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자연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을 다음 주중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다. 이재명 egija@donga.com·신광영·장관석 기자}
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파면이란 역사적 결단을 내리는 데 헌법재판관 8명 중 단 한 명도 이의가 없었던 결정적 사유는 ‘국가 지도자의 거짓된 태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진 뒤 허위로 해명하며 내부 단속에 몰두한 점 때문에 그를 파면하지 않고는 위법한 권한남용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하고도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에 불응하며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을 문제 삼았다. 박 전 대통령의 그 같은 태도는 법치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이 스스로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과 형사처벌을 피해 보려고 거짓으로 잘못을 감추는 데 급급하다 몰락을 자초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진실성 없어…국민의 신임 배반” 헌재가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하려면 2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탄핵소추 사유로 제시된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명백히 어긋나야 하고, 위반의 정도가 파면이 불가피할 정도로 중대해야 한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사유를 크게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참사 대응) 등 4가지로 정리했다. 헌재는 이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최 씨의 국정 농단을 방조하고 권한을 남용한 잘못에 대해서만 위법성을 인정했다. 탄핵 사유 4개 중 1개만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헌재는 2차 관문인 중대성을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부당한 권한남용이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심각한 수준으로 지속된 게 문제라고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 씨가 추천한 인물을 고위직으로 임명하고 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을 요구해 최 씨가 이권을 취하도록 도왔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뒤 박 전 대통령의 행태가 재판부의 판단에 쐐기를 박았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해명이 객관적 사실과 달라 진실성이 없고, 진상 규명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지키지 않는 등 신뢰 회복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질타했다. 헌재가 “박 대통령 파면으로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르는 손실보다 압도적으로 크다”고 본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잇따른 거짓말로 대통령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 “헌법 수호 의지 저버렸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의혹이 확산되던 지난해 10월 25일 1차 대국민 담화를 갖고 “취임 직후 연설문 표현 등에서 잠시 최 씨 도움을 받았고 청와대 보좌진이 완비된 뒤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이른바 ‘말씀 자료’뿐 아니라 인사 자료와 외교 문건 등 각종 기밀을 지난해 중반까지 최 씨에게 지속적으로 전달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또 올해 1월 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간담회를 자청해 “누군가를 봐주기 위해 챙겨준 적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이 최 씨 추천 인사로 채워지고, 최 씨 소유의 광고회사(플레이그라운드)가 대기업 광고를 따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를 동원한 사실이 밝혀지며 이 역시 거짓말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1월 25일 한 인터넷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국정 농단 사건은) 불순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이 헌재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대통령이) 대기업들에 재단 설립 자금을 내도록 요구했지만, 강제모금 의혹이 불거지자 ‘전경련이 자발적으로 추진한 일’이라고 청와대 내에서 말을 맞췄다”고 털어놨다. 박 전 대통령은 이렇게 ‘일방통행식’ 거짓 해명을 반복하며 검찰과 특검의 대면조사 요구에 계속 불응했다. 또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도 완력으로 막아서며 거부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지’를 저버린 것으로 판단했다.○ “헌법상 성실 의무 위반”…보충의견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는 성실성의 기준이 모호해 파면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 결정상의 잘못으로 파면할 수 없다’는 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적용됐던 법리다. 다만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신광영 neo@donga.com·전주영·김민 기자}
2004년 5월 14일 오전 10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9명의 재판관이 들어서자 장내는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오전 10시 3분, 윤영철 당시 헌재 소장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시작한다”고 선언한 뒤 결정문을 읽었다.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압력을 행사했고 … 선관위의 위법 결정을 폄하해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리인단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윤 소장이 20분간 탄핵 사유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낭독하는 동안 심판정의 긴장은 고조됐다. 윤 소장이 “이제 대통령 파면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히자 주선회 당시 주심 재판관은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셨다. 이때가 오전 10시 23분. “파면에 필요한 재판관 수(6명)의 찬성을 얻지 못해 청구를 기각한다.” 63일간 정지됐던 노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권한을 회복한 순간이었다. 9명의 재판관이 대심판정을 빠져나간 시각은 오전 10시 28분이었다.○ 심판정 소란 우려…마지막에 결론 밝혀 13년의 시차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11시 헌재의 결정 앞에 선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는 3개였던 반면 박 대통령의 경우 13개에 달한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문제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비교적 단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뇌물수수, 직권남용, 직무유기 혐의 등 국정 농단 사건 전반에 걸쳐 있다.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의 선고문 낭독 시간이 2004년 탄핵심판 때보다 3배가량 더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판관들은 이날 선고 직전 최종 평의를 열고 박 대통령 파면 여부에 대한 최종 표결을 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찬반 ‘몇 대 몇’의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다. 반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재판관들은 선고 전날 평의를 열어 최종 표결을 했다. 결정 이유를 모두 읽은 뒤 마지막에 탄핵 인용 또는 기각을 밝히는 주문을 낭독하기로 한 것도 이 자리에서 정해졌다. 통상 다른 사건 심판에서 주문을 먼저 공개한 뒤 그 이유를 밝히는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심판정 안팎이 소란스러워져 결정 이유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부도 2004년 때와 같이 최종 결론을 후반에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당시 재판부는 소수 의견 공개 여부를 놓고 선고 전날까지 논의를 한 끝에 비공개를 결정했다. 주선회 주심 재판관은 선고 뒤 ‘찬반 숫자를 알려 달라’는 질문에 “죽을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재판관들끼리 약속했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관들 의견이 ‘6(기각) 대 3(인용)’으로 갈렸다는 추측은 제기됐지만 실제 표결 결과가 공식 확인된 적은 없다. 하지만 2005년 헌재법 개정으로 재판관들이 각자 의견을 결정문에 표시하게 돼 10일 선고에서는 이정미 권한대행이 각 재판관의 의견을 일일이 밝히게 된다.○ 박 대통령 2004년 기각에 “국민 여러분께 죄송” 헌재의 결정에 정치적 명운이 달린 박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의 대표였다. 박 대통령은 헌재의 기각 결정이 나온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대통령 탄핵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불안을 드리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신광영 neo@donga.com·허동준 기자}
헌법재판소가 10일 오전 11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한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한 뒤 사건을 헌재에 접수한 지 91일 만에 탄핵심판이 종결되는 것이다. 헌재는 탄핵심판 선고의 TV 생중계를 허용했다. 헌재는 8일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평의를 열고 탄핵심판 선고일을 10일 오전 11시로 결정했다. 헌재는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측에 각각 선고일을 유선으로 통보한 뒤 이메일과 우편을 보냈다. 헌재는 이날 박 대통령 탄핵 여부에 대한 최종 표결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는 9일 평의를 열 방침이다. 또 10일 선고 직전 평의를 열고 표결을 할 가능성이 있다. 헌재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선고 당시 오전 9시 반 평의를 열어 최종 표결을 한 뒤 10시에 선고했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뒤에는 평의를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만약 10일 선고에서 8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할 경우 박 대통령은 즉각 파면된다. 차기 대통령 선거는 5월 9일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탄핵 인용 결정 다음 날부터 60일 이내에 대선이 실시돼야 하고, 50일간의 공고 기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4월 29일(토)부터 5월 9일(화) 사이에 대선이 치러져야 하는데 4월 말∼5월 초 징검다리 연휴를 감안하면 5월 9일 대선이 유력하다. 만약 재판관 3명 이상이 탄핵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할 경우 박 대통령은 즉각 직위에 복귀한다. 헌재가 선고의 TV 생중계를 허용한 것은 1988년 헌재 설립 이후 다섯 번째다. 지금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행정수도 이전, BBK 특검법 권한쟁의 심판, 통진당 정당해산 심판 사건의 선고 생중계를 허용했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기일 결정에 박 대통령 측은 “차분하게 결과를 기다릴 것”이라며 “헌재 결정을 예단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9일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를 열어 국정 점검 등의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키로 했다. 또 탄핵 인용이나 기각, 각하에 따른 박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 등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석준 eulius@donga.com·신광영·우경임 기자}
8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날짜를 10일로 확정한 것은 8명의 재판관이 박 대통령 파면 여부에 대한 결심을 사실상 굳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탄핵심판 사건이 복잡하고 쟁점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선고를 불과 이틀 남겨둔 상황에서 선고 기일을 정했기 때문에 각 재판관이 이미 굳힌 심증을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헌재 관계자는 이날 “재판관들이 9일에도 평의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이날 결정문 수정 등에 대한 마무리 논의를 한 뒤 10일 선고 직전 평의를 다시 열어 탄핵 찬반 의사를 표결에 부칠 가능성이 높다. ○ “각 재판관 결심 섰다” 헌재는 통상 선고일로부터 짧으면 이틀, 길면 1주일 전쯤 선고 기일을 정해 사건 당사자들에게 통보한다. 이번 탄핵심판 사건처럼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일반 사건의 경우 재판관들이 최종 평의를 열어 표결까지 마친 뒤 선고일을 통보한다. 선고 기일 확정은 재판부가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할지 정해졌다는 것, 즉 8명의 재판관이 ‘찬성 몇’ 대 ‘반대 몇’으로 갈렸는지 결과가 나왔다는 의미다. 헌재는 2014년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을 할 때 선고 당일 오전 9시 반 최종 평의를 연 뒤 10시에 선고를 했다.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최종 평의 결과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재판관들은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선고 이틀 전 선고 기일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통진당 해산심판은 ‘8 대 1’로 인용돼 재판관들의 의견이 거의 엇갈리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비해 탄핵소추 사유가 많고 사실 관계가 복잡해 결정문 작성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또 탄핵 찬반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극심해 재판부로서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재판관이 결론을 내린 뒤 선고 기일 통보 시점을 최대한 늦춘 것으로 보인다. 헌재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이 이미 거의 완성되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헌법재판소 연구원 출신인 전학선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부가 선고를 불과 이틀 앞두고 선고 기일을 공지한 것을 보면 재판관들의 결정이 바뀔 가능성이 없어 결정문이 바로 준비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각 재판관 결정 공개하는 첫 탄핵심판 이번 탄핵심판 결정문은 재판관들이 인용 또는 기각 등 개별 의견을 밝힌 뒤 재판부 차원의 결정을 내리고, 다수 의견에 속한 재판관들이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만약 탄핵 인용 정족수인 6명 이상의 재판관이 파면에 찬성한 경우 재판부는 “탄핵 인용”을 주문으로 정하고 찬성 측 재판관들이 탄핵소추 사유별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법률 또는 헌법을 위반한 박 대통령의 행위가 무엇이며, 위반의 정도가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다고 판단한 근거를 상세히 적시하게 된다.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한 재판관은 소수 의견으로 결정문에 반영된다. 만일 탄핵 인용에 찬성한 재판관이 6명에 못 미칠 경우에는 ‘탄핵 기각 또는 각하’가 주문이 되며 이 같은 판단을 내린 사유가 결정문에 우선적으로 담긴다. 또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각 재판관의 찬반 여부가 결정문에 표시된다. 헌재는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는 인용과 기각이 몇 대 몇으로 나뉘었는지 밝히지 않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5년 탄핵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이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도록 헌재법이 개정돼 이번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찬반 의견의 수와 해당 결정을 내린 재판관의 이름이 모두 공개된다.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재판관들로선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결정문 회람…막판 수정작업 재판관들은 10일 선고 전까지 결정문 초안을 회람하면서 막판 수정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 변론 종결 후 탄핵 인용·기각·각하 등 각 경우에 대비해 미리 써놓은 결정문 가운데 재판부의 최종 의견에 합치되는 결정문을 골라 보완하는 것이다. 그간의 평의를 통해 논의된 결과물이 반영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이번 탄핵심판에서는 재판관들의 개별 의견이 모두 공개되는 만큼 소수 의견을 제시한 재판관들이 논리를 더욱 탄탄하게 다듬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관 회람을 거쳐 최종 결정문이 나오면 재판관들은 이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게 된다. 보통 선고 하루 이틀 전 서명이 이뤄지지만 통진당 해산심판 때는 선고 당일 최종 평의가 끝난 뒤 재판관들이 결정문에 서명했다. 8일 오후 3시부터 5시 반까지 2시간 반 동안 열띤 분위기 속에서 평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재판관들은 다소 피곤해 보이면서도 상기된 표정으로 퇴근했다. 한 재판관은 “결론을 내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희는 입이 없어요. 입이 없다니까요”라고 말하며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전주영 기자}
헌법재판소는 7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날짜를 결정하지 않았다. 당초 헌재 안팎에서는 이날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측에 선고기일 통보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이 나왔다. 10일 선고가 유력한 상황에서 선고 사흘 전에는 양측에 일정 통보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헌재는 “선고기일 통보가 8일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혀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 “혼란 줄이려 통보 시기 조절” 헌재 주변에서는 이날 8명의 재판관이 모두 박 대통령 파면 여부에 대한 결심을 굳혔지만,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을 감안해 선고 일정 통보 시기를 조절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재판관들은 오후 3시부터 1시간가량 평의를 열었다. 재판관들이 탄핵심판 심리를 끝낸 다음 날(지난달 28일)부터 매일 1시간 반∼2시간 동안 평의를 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날 평의가 가장 짧았다. 이를 두고 “재판관들 간에 이견을 좁혀야 할 만큼 긴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각 재판관의 심증은 굳어졌지만 선고 일정 발표를 늦추는 이유는 선고기일 통보 후 탄핵 찬반 양측의 소모적 대결이 더 심해질 것을 예상해 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날 박 대통령 대리인단 일부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맹비난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탄핵심판 각하 또는 기각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하며 막판 여론몰이에 나섰다. 헌재는 헌법소원 등 일반 사건의 경우 보통 선고기일 2∼7일 전 당사자에게 통보한다. 매달 넷째 주 목요일에 선고를 하는데 이르면 전주 목요일, 늦어도 선고 이틀 전인 화요일 오전에는 우편송달 등을 통해 선고 일정을 알려준다. 하지만 선고 기일 통보 기한에 대한 법적 규정이 없어 대통령 탄핵심판처럼 예민한 사건은 보안 유지를 위해 선고 직전에 통보하는 경우도 있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선고 사흘 전에,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할 때는 선고 이틀 전에 일정을 통보했다. 단, 지금까지 주요한 사건의 경우 선고일 하루 전에 통보한 사례는 없었다. 이를 감안하면 헌재가 만약 8일까지 선고 날짜를 확정하지 않을 경우, 선고일은 10일이 아니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퇴임일인 13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종 결정 못 내려 치열하게 의견 조율” 헌재 일각에선 재판관들의 최종 의견 도출에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재판관 중 일부가 아직 박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고일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관들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뿐만 아니라 심리절차가 정당했는지, 박 대통령의 반론권이 충분히 보장되었는지 등에 대해 심도 깊게 토론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판관들이 지난주 오전에 열던 평의를 6일부터 오후 시간대로 옮긴 게 의견 조율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오후가 오전보다 시간적으로 (논의를 하기에) 더 효율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주처럼 오전 10시에 평의를 시작하면 점심시간까지 길어야 2시간 정도 논의를 할 수 있지만, 오후로 옮기면 더 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사건기록 및 법리를 검토 중인 헌법재판소는 지난주 매일 오전 열었던 재판관 평의를 6일에는 오후 3시로 늦췄다. 이날 오후 2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발표한 국정 농단 사건 수사 결과를 참고하려고 평의 시간을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특검은 박 대통령 파면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다량 포함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이날 특검 수사 결과 발표문과 국정 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피의자들의 공소장 등 A4용지 400쪽 분량의 참고자료를 헌재에 제출했다.○ “특검이 탄핵 정당성 확인” 특검은 수사 결과 발표에서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공모해 거액의 뇌물을 받고 대기업들을 압박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바로 박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에 해당한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지위를 남용해 대기업 총수들에게 재단 출연금을 내도록 압박하는 등 위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해 왔다. 특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박 대통령이 최 씨와 짜고 경제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헌법상 권한을 남용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헌재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의 중대한 법률 위반’의 사례로 뇌물수수 등 부정부패 행위를 명시한 바 있다. 특검이 수사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와대, 정부와 다른 의견을 표명하는 것으로 낙인찍은 문화인 예술인을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정부 예산 지원 대상에서 배제한 것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헌법을 위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검은 박 대통령이 대면조사와 청와대 경내 압수수색을 거부해 수사와 진실 규명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는데, 이 또한 헌재 재판관들의 심증 형성에서 박 대통령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헌재 안팎에서는 “특검의 수사 결과로 박 대통령의 탄핵 정당성이 확인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검 수사 결과 반영은 재판관 재량 특검 수사 결과가 박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와 대부분 중첩되지만 그 내용이 헌재 재판부의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분명치 않다. 재판부는 증거로 채택된 자료를 근거로 사실관계를 판단해야 하는데 특검의 수사자료는 헌재에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헌재가 특검 수사 결과를 증거로 채택하려면 추가로 변론기일을 잡아야 한다. 이 경우 ‘8인 재판부’가 유지되는 3월 13일 이전 선고가 어려워진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은 이런 점을 감안해 특검 수사 결과를 증거가 아닌 참고자료로 제출했다. 재판부의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참고자료의 경우 증거 효력은 없지만 재판관들이 각자 재량에 따라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가 이날 평소 오전 10시에 열던 평의를 특검 수사 결과 발표 뒤인 오후 3시로 늦춘 것은 재판관들이 특검 수사 결과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공모 관계를 뒷받침하는 증거와 정황을 다수 담고 있는 특검 수사 결과는 재판부가 박 대통령 주장의 신빙성을 가늠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헌재는 7일 탄핵심판 선고 날짜를 공지하고 선고 당일 심판정 방송 생중계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옷차림 등 외모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권한대행은 탄핵심판 변론이 이어지던 지난달 중순까지 회색이나 자주색 등 비교적 밝은 색감의 외투를 주로 입었다. 그런데 최종 변론을 사흘 앞둔 지난달 24일경부터 주로 짙은 남색이나 검은색 코트에 어두운 톤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최종 변론기일을 전후해 머리 스타일도 약간 달라졌다. 헌재 안팎에서는 옷차림과 머리 매무새에서 진중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헌재의 여성 수장으로서 단호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변화라는 분석이 많다.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 간의 치열한 변론 공방을 마무리한 뒤 탄핵 찬반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헌재가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심리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헌재 일각에선 “이 권한대행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방향을 정한 것 같은 모습”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탄핵심판의 결론이 나올 때까지 국민 시선이 온통 헌재에 쏠려 있는 만큼 재판관들 사이에서 한 치의 흐트러진 모습도 보여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이 권한대행의 변화에 많은 언론사의 취재 경쟁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1월 31일 이후 탄핵심판을 이끌어 오고 있는 이 권한대행의 일거수일투족은 각 언론사의 집중 취재 대상이다. 이 권한대행은 헌재 건물 정문 앞에서 차량을 타고 내릴 때마다 집중적인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으며, 심판정에서 심리를 진행하는 장면이 매일같이 각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 기자}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이 김수남 검찰총장 등 검찰 간부들과 통화를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 총장이 통화 당사자에게 다시 우 전 수석의 비리 혐의 등 국정 농단 사건 수사를 맡겨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김 총장은 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넘겨받은 사건을 지난해 말 이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다시 수사하도록 했다. 이 지검장이 지난해 10월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태블릿PC 보도가 나온 직후 우 전 수석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7∼10월 김 총장 자신을 비롯해 검찰 수뇌부가 우 전 수석과 수시로 통화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김 총장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 민정수석실, 검찰 수사팀 전방위 접촉 특검은 민정수석실 핵심 관계자가 지난해 10월 검찰 수사팀 간부들과 수시로 통화한 기록을 확보했다. 우 전 수석뿐 아니라 민정수석실이 조직적으로 검찰의 국정 농단 사건 수사 상황을 알아보려고 전방위 접촉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당시 민정수석실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것으로 확인된 한 검찰 간부는 “청와대 압수수색 문제로 통화했을 뿐 부적절한 대화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또 국정 농단 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된 검찰 특별수사본부장인 이 지검장도 우 전 수석과의 통화 내용에 대해 “문제가 될 만한 대화는 없었다”고 김 총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특검은 우 전 수석이 통화 당시 청와대 다른 수석비서관들과 최 씨의 태블릿PC 보도 대응 방안을 논의하다 이 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검찰의 태블릿PC 조사 상황을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총장도 이런 정황 때문에 막판까지 특별수사본부에 다시 수사를 맡기는 문제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별수사본부가 가동된 뒤 우 전 수석과의 새로운 유착 의혹이 제기될 경우 수사 자체가 엉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 특임검사를 임명하거나 새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 전 수석과 통화를 한 검찰 간부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제외할 경우 수사팀 구성 자체가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또 이 지검장이 아닌 다른 검찰 간부에게 특별수사본부를 맡길 경우 검찰 수뇌부 스스로 지난해 특별수사본부가 한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부정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 박영수 특검, 검찰에 ‘우병우 구속’ 압박 박영수 특검은 이날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며 검찰을 향해 사실상 우 전 수석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조금 보완해서 법원에 재청구하면 100% 발부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를 잘할 것이고 또 안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또 박 특검은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 비리나 세월호 수사 외압은 솔직히 혐의가 인정되지만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수사하지 못했다”며 “검찰은 수사 대상에 제한이 없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특검의 우 전 수석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검찰이 보강 수사를 거쳐 우 전 수석을 구속하지 못하면 수사 의지를 의심받을 것이라는 압박이다. 이에 검찰 일각에서는 “우 전 수석 구속에 실패한 특검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불만이 제기됐다.신광영 neo@donga.com·김준일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이 열렸던 지난달 27일 오후 헌법재판소 1층 남자 화장실. 심리 휴정 시간에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권성동 단장(57)과 황정근 변호사(56)가 박 대통령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72)와 마주쳤다. 앞서 김 변호사는 지난달 22일 변론기일에 탄핵심판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향해 “국회 측 수석 대리인”이라고 비난하는 등 100분간 막말 변론을 해 재판관들에게 충격을 줬다. 당시 그는 방청석을 향해 서서 변론하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나 강일원 주심 재판관을 비난할 때만 한 번씩 재판부 쪽을 바라보곤 했다. 화장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난 황 변호사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선배님, 방청석 말고 재판부를 보면서 변론을 하셔야 카메라에 얼굴이 잘 잡힙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열리는 헌재 심판정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심판 장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돼 헌재 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화장실에서 나가 심판정에 선 김 변호사는 황 변호사의 조언 때문이었는지 시선이 대체로 재판부 쪽을 향했다. 김 변호사의 지난달 22일 막말 변론을 두고 법조계에선 박 대통령 탄핵 반대 여론을 자극하기 위한 일종의 ‘쇼잉(showing)’이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심판정 밖에서도 헌재 사이트를 통해 변론 장면을 생생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론이 모두 녹화 중계되는 헌재 심판정은 국회 탄핵소추위원단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이 전 국민을 상대로 치열하게 퍼포먼스를 하는 무대다. 박 대통령 측이 미르·K스포츠재단 장악 음모가 담긴 증거라며 ‘고영태 녹음 파일’을 심판정에서 직접 틀자고 재판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도 고 씨의 육성이 국민에게 전달되면 탄핵 반대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73)는 변론이 열릴 때마다 어깨에 태극기를 망토처럼 걸치고 헌재에 나타나더니 지난달 14일 13차 변론에선 아예 심판정에서 방청석을 향해 태극기를 펼쳐 들고 ‘포토타임’을 갖기도 했다. 또 권성동 단장과 박 대통령 측 대리인 이중환 변호사(58)는 변론 시작 전 늘 웃는 모습으로 호탕하게 악수를 나눴다. 하지만 막상 변론이 시작되면 죽기 살기로 맞붙었다. 카메라 기자들이 심판정에서 떠나기 전까지 신사의 품격을 보여 줬던 것이다. 탄핵심판의 창과 방패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이 상대편 지지자들에게 밉상으로 찍히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심판정은 증인들에게도 국민과 만나는 통로였다. 구치소 수감 상태에서 헌재에 증인으로 나온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과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48·구속 기소)은 수의 차림으로 심판정에 섰다. 구속된 미결수가 다른 재판의 증인으로 나올 경우 사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56·구속 기소) 등이 검은색 코트를 입고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었다.신광영 neo@donga.com·배석준·전주영 기자}